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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준비
주일 설교 준비
마태복음 21 장 1-11 절
1. 본문의 중심 주제 정하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도시 가운데 소동을 일으켰다. 예수님은 소동을 일으키시는 분이다.
여기에 초점을 두고 말씀을 전개하도록 하자. 그러면 대략 아래의 설교 구성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마태복음은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holy city)이라고 부른다.(마 4:5) 광야에서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이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유혹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여전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개선문을 통해 입성한다면, 당연히 자신이 이끄는 군대의 강력함을 드러내는 행렬을
자랑하게 된다. 전투용 말과 마차와 멋지게 휘날리는 깃발 그리고 승리의 영광에 취한 병사들의
늠름한 모습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귀와 나귀 새끼가 동원되는 방식도 상당히 우스운 면이 있다. 개역개정이나 새번역성경은
예수님의 지시를 받은 두 제자가 마을에 들어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 주인에게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내어줄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헌데 개역개정 성경 3 절의 각주에 달려 있듯이,
여기에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즉시 돌려보내리라 하라.”라고도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제자 두 사람이 마을에 들어가서 아주 늠름하게 나귀 주인에게 우리 주님께서 쓰시려고 한다고
말하면 바로 내어줄 것이라는 해석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쓰실 것인데 너무 염려하지 마시라, 우리
주님이 금방 돌려 보내주실 것이다, 이렇게도 번역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지금
나귀를 일시적으로 렌트해서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다. 이게 일반적인 장군들의 입성과
너무 비교가 된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스가랴 9 장 9 절의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해석한다.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무리들은
열광적으로 환영을 한다.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서 길에 편다.
그리고 소리를 높여 외친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9 절)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27:20) 그럼에도 지금 무리들은 “호산나”라고 외친다. 본래 호산나의
의미는 “제가 간구하오니, 저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과연 그들은 호산나의 의미를 담아서
외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감탄사처럼 내뱉는 것일까?
무리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사실은 변화를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더욱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할렐루야를 남발하지만, 할렐루야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지 않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 우리 모습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자체로 소동이었다. 세상의 왕들에게는 특히 소동이었다. 예루살렘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큰 소동이 일어난다. 입성의 때에 일어난 것은 진짜 소동도
아니다. 더 큰 소동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이제 소동의 시작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지진을 일으키는 소동이
될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무덤을 지키던 자들의 심장에서 소동이 일어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마음이 너무 귀했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던가!
우리 도시의 학교와 병원과 기업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이 도시가 우리로 인해서 이전과 같을 수
없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