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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x.doi.org/10.17156/BT.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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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88 (2018): 1-22.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1

김진규 (백석대학교/구약신학)

이 연구의 목적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포로생활 70년(25:11-12; 29:10)의 의


미를 밝히는데 있다. 연구 방법론으로는 예레미야서의 70년을 직접 인용하
고 있는 스가랴서(1:12; 7:5), 다니엘서(9:2), 역대기하(36:21)와 간접 인용하고
있는 에스라서와 학개서의 해석을 비교하는 성경 내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
였다. 연구 결과 예레미야서의 표면적인 의미로는 제1차 포로기인 주전 605
년부터 고레스의 칙령이 내린 주전 538년이 설득력이 있으나 어떤 청중은
제2차 포로기인 주전 597년에 포로로 잡혀왔기 때문에 이 기간을 어림수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스가랴서를 필두로 다른 성경
들이 예레미야서의 포로 70년을 성전이 파괴됨으로 하나님께서 떠나버린 주
전 586년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전이 재건됨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된 주
전 516년까지로 보는 견해이다. 이는 본 연구에서 성경 내적 해석을 통해 밝
힌 의미이다. 이런 이해는 70년이란 기간과도 일치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주제어: 예레미야, 포로생활, 70년, 바벨론, 성전, 고레스

* 이 논문은 2018년도 백석대학교 대학연구비에 의하여 수행된 것임을 밝힌다.


* 논문 접수일: 2018. 07. 31. 수정 접수일: 2018. 10. 22. 게재 확정일: 2018.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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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이 연구의 목적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칠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하리라는 예언(렘 25:11-12; 29:10)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
히는데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생활 70년의 의미를 밝히는 말씀이
적어도 네 곳에 더 나오는데(대하 36:21; 단 9:2; 슥 1:12; 7:5), 성경 내적
해석을 통하여 포로생활 70년의 의미를 함께 이해하려고 한다.
예레미야서 자체만 보면 70년 포로생활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남 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간지 정확히 70년 만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주전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다.1 포로귀환도 세 차례
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제1차 포로귀환은 주전 538년, 제2차 포로귀환은
주전 458년, 제3차 포로귀환은 주전 445년에 이루어졌다.2 포로귀환 70년
을 말할 때 귀환년도를 주로 제1차 귀환시기인 주전 538년으로 본다. 이
때가 고레스가 이스라엘 포로들을 귀환하도록 칙령을 내린 해이기 때문
이다.3
제1차 포로로 잡혀간 주전 605년부터 주전 538년까지 계산하면 67년
이 되고, 제2차로 포로로 잡혀간 주전 597년부터 계산하면 59년이 되고,
제3차로 포로로 잡혀간 주전 586년부터 계산하면 48년이 된다. 그렇다면
예레미야서가 예언한 70년간의 포로기간은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가? 상

1 Walter C. Kaiser, Jr., A History of Israel: From the Bronze Age through the Jewish Wars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8), 419. 예레미야서 52장 28-30절에 따르면 포로로 잡혀간
시기를 느부갓네살 제7년, 제18년, 제23년으로 밝힌다. 이는 주전 598, 587, 582년으로 확인되
기 때문에 카이저의 견해와 달라 보인다. 그런데 전통적인 학계의 견해는 세 번째 나오는 주
전 582년에 느부사라단이 포로로 잡아간 사건을 그달리야의 암살과 이에 대한 바벨론의 대응
으로 본다(렘 41:1-3). G. L. Keown, P. J. Scalise, and T. G. Smothers, Jeremiah 26-52, WBC 27
(Nashville: Thomas Nelson, 1995), 382. 이렇게 보면 느부갓네살 제19년에 느부사라단이 예루살
렘 성전과 왕궁을 불태운 해는 주전 586년으로 밝혀진다(렘 52:12-13).
2 Kaiser, A History of Israel, 421; Tremper Longman III and Raymond B. Dillard,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2nd ed., 박철현 역, 뺷최신 구약 개론뺸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
스트, 2009), 267-68.
3 Kaiser, A History of Israel, 421.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3

징적인 숫자인가? 어림수인가? 아니면 정확한 숫자인가? 정확한 숫자라


면 어떻게 숫자의 차이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안
한다. 1) 70년을 인간의 수명(시 90:10)이나 3세대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로 본다.4 2) 구약을 넘어 고대근동의 신들의 진노로 도시들이 황폐
한 기간으로 보는 견해이다. 에살하돈(Esarhaddon of Assyria)의 검은 돌에
는 70년이란 기간이 마르둑이 바벨론에 대해서 불쾌함을 보인 기간으로
등장한다.5 3) 70년을 제1차 포로로 잡혀간 주전 605년부터 고레스의 칙
령이 난 시기인 주전 538(혹은 539)년에 대한 어림수로 보는 견해이다.6
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주전 586년으로부터 성전이 재건된 주전 516
년으로 보는 견해이다.7
이 연구에서 필자는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70년이란 숫자뿐만 아니
라 스가랴서, 다니엘서, 역대기에 등장하는 이에 대한 해석과 에스라서에
등장하는 고레스의 포로귀한 선포에 이르기까지 70년이란 숫자에 대한
성경 내적 해석(inner-biblical exegesis)을 통해 그 의미를 밝히려고 한다.

4 Keown, Scalise, and Smothers, Jeremiah 26-52, 75; H. Lalleman, Jeremiah and
Lamentations, TOTC 21 (Downers Grove: IVP Academic, 2013), 203.
5 W. L. Holladay, Jeremiah 1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6), 669; J. H. Walton, V. H.
Matthews, and M. W. Chavalas,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Old Testament (Downers
Grove: IVP, 2000), 662.
6 원래 Duhm에 의해 옹호된 이 견해를 Orr는 뒤 따르고 있다. A. Orr, “The Seventy
Years of Babylon,” VT 6/3 (1956): 304-06. 다른 주석가들의 견해를 참조하라. L. C. Allen,
Jeremiah, OTL (Louisville/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8), 286-87; Lalleman,
Jeremiah and Lamentations, 202; Walton, Matthews, and Chavalas,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Old Testament, 659.
7 이 견해는 오래 전에 위틀레이(Whitley)에 의해 매우 설득력 있게 논증되었다. C. F.
Whitley, “The Term Seventy Years Captivity,” VT 4/1 (1954): 60-72; C. F. Whitley, “The Seventy
Years Desolation--A Rejoinder,” VT 7/4 (1957): 416-18. 다른 주석가들의 견해를 참조하라.
Holladay, Jeremiah 1, 669; Allen, Jeremiah, 287; Lalleman, Jeremiah and Lamentations, 202;
Walton, Matthews, and Chavalas,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Old Testament, 659. 한
국학자 중에는 역사신학자인 김성욱이 이 견해를 옹호하고 있다. 김성욱, “에스라의 역사이해
와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 「개혁신학」 16 (2004): 119-43; 김성욱,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 연구”, 「목회와 신학」 184 (2004): 194-99. 학자에 따라 성전이 완공된 시기를 주전 515년
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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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

예레미야서에는 ‘칠십 년’이라는 말이 세 번 등장한다(렘 25:11-12; 29:10).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70년의 연구가 중요한 것은 이 본문이 성경의 다른
책들에 나타나는 포로생활 70년의 모체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책들은
시기적으로 포로후기의 문헌으로서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에 대해 해석
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포로생활 70년이 어떤 맥
락에서 사용되었는지 살펴보자.

(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렘 25:11-12).

예레미야서 25장의 예언이 선포된 시점은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


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1절)이다. 이는 주전
605년인데, 고대근동 패권의 큰 지각변동이 일어난 시기이다. 이때가 바
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를 무찌르고 근동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해이다.8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제1차 포로들
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던 해이기도 하다. 예레미야는 이제 곧 포로로 잡
혀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돌이켜 회개하도록 촉구한다(5-6절). 선
지자의 반복적인 외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은 사실을 거듭 깨우친다(4, 8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
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 다른 종류의 하나님의 종인 바벨
론 왕 느부갓네살을 시켜서 북녘의 모든 민족을 데리고 와서 유다 땅을
치고 주변 국가들을 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9절).9 10절에는 도성이 훼

8 P. C. Craigie, P. H. Kelley, and J. F. Drinkard, Jr., Jeremiah 1-25, WBC 26 (Dallas: Word
Books, 1991), 364.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5

파되어 사람 사는 흔적이 사라진 모습처럼 보인다. 바로 이 맥락에서 본


문의 메시지가 등장하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면 70년간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런 역사
적인 맥락에서 보면, 주전 605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1차로 포로로 잡
혀갔던 해에 전했던 메시지이기 때문에 이제 임박한 포로생활을 앞둔 그
들에게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할 것이지
보인 말씀이다. 이는 실제적인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의 시작점을 알리
는 메시지와 같다.
12절은 70년간의 포로생활이 끝나는 시점을 알려준다. 이 시점은 바
벨론이 망하는 때이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의 나
보니두스(Nabonidus)와 그의 군대를 오피스(Opis)에서 무찌름으로 바벨론
의 국운은 끝이 나게 되었다. 이때가 주전 539년이다.10
이제 예레미야서 29장 10절에 나오는 70년의 맥락을 살펴보자.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


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에게 보낸 메시지이다. 예


레미야가 대상으로 삼았던 포로들은 주전 597년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
들이었다.11 주된 메시지는 포로로 잡혀간 그들에게 집을 짓고 자식을 낳
고 살면서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도록
촉구한다(5-7절). 이어서 그곳에 함께 있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경고
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8-9절). 바로 이 맥락에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을 채우고 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포로

9 성경은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라고 칭하고 있다(9절). 하나님의 종들이 거


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자, 완전히 다른 종류의 종을 보내셔서 유다를 치게 하셨다.
Craigie, Kelley, and Drinkard, Jeremiah 1-25, 365-66.
10 P. Briant, “Perisian Empire,” ABD 5: 236-44 (espp. 237-38).
11 Keown, Scalise, and Smothers, Jeremiah 26-52,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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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10절). 이전과는 달


리 하나님께서 그때에는 포로 중에 있던 그들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면
기도를 들어주시고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12-13절). 포로 생활하
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미
래와 희망을 주려고 하신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11절). 앞의 예
레미야서 25장 11절과는 달리 29장 10절의 청중들은 70년 포로생활의 시
작점이 주전 605년이 아니라 주전 597년이 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
렇게 되면 70년이란 숫자의 계산이 좀 더 복잡해진다.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생활이라는 표현은 동일하지만 듣는 청중
에 따라 그들의 포로생활의 시작점이 605년일 수도 있고 주전 597년일
수도 있다. 어느 해를 시작점으로 두더라도 바벨론 제국의 종말은 주전
539년이기 때문에 70년이라는 숫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 이를 어림수로 보기도 하고, 상징적인 숫자로 보기도 한 것
을 앞에서 보았다. 제1차 포로들에게 있어서 주전 605년부터 주전 539년
까지의 기간은 66년으로서 약 4년의 차이가 나는 어림수에 해당된다. 그
런데 제2차 포로들에게는 주전 597년부터 주전 539년까지가 58년에 해당
되기 때문에 이를 70년의 어림수로 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12
70년에 대한 상징적 의미의 해결책을 권, 스캘리스, 스모더스(G. L.
Keown, P. J. Scalise, and T. G. Smothers)는 제안하고 있다. 이들은 예레
미야서 27장 7절에 근거하여 70년이라는 숫자가 3세대를 가리키는 말이
라고 주장한다. “모든 나라가 그[느부갓네살]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렘 27:7). 바벨론 왕을 70년간 섬기리
라는 말을 3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70년은 3세대에 대한 상징적 표
현으로 보는 것이다.13 이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예레

12 오르(Orr)는 예레미야서에 근거해서 70년을 주전 605년에서 주전 539년까지 66년에


대한 어림수로 보는 옹호자이지만 그는 예레미야서 29장 10절의 청중들이 제2차 포로기인 주
전 597년에 온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위틀레이도 지적하고 있
다. Orr, “The Seventy Years of Babylon,” 304-06; Whitley, “The Seventy Years Desolation--A
Rejoinder,” 417. 70년을 어림수로 보는 견해와는 달리 이를 문자적인 70년으로 보는 강력한 옹
호자는 위틀레이이다. Whitley, “The Term Seventy Years Captivity,” 60.
13 Keown, Scalise, and Smothers, Jeremiah 26-52, 75.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7

미야서 29장의 맥락에 나오는 또 다른 말씀을 인용한다. 예레미야서 29


장 6절에 포로 생활하던 그들에게 3대에 걸쳐서 자손을 낳도록 지시한
말씀을 근거로 제시한다.14 권, 스캘리스, 스모더스의 해석이 설득력이 있
어 보이지만 예레미야서가 미래 예언에 대해 수치를 사용할 때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2년
만에 포로가 돌아오리라고 예언한 것은 맥락상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렘 28:11).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금년에 죽으리라고 예레미
야가 예언한 말씀도 마찬가지이다(렘 28:16).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
대로 문자적으로 그 해의 일곱째 달에 죽었다(렘 28:17).15 70년이란 숫자
를 어림수나 상징적으로 보는데 어려움이 있는 점은 예레미야서가 미래
를 예언할 때 사용한 수치가 상징적이거나 어림수로 볼 수 있도록 장르
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Ⅲ. 후속 문헌들의 포로생활 70년 해석

1. 스가랴서

예레미야서의 포로생활 70년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스가랴서는 성경 내


적 해석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스가랴서는 70년에
대해 구체적으로 두 번 언급하고 있다(슥 1:12; 7:5). 스가랴서 1장 1절은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을 시작한 연도가 “다리오 왕 제 이년 여덟째 달”
이라고 밝히는데, 이때는 주전 520년이다.16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전한
첫 번째 메시지는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 . .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
게로 돌아가리라”라는 말씀이다(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14 Keown, Scalise, and Smothers, Jeremiah 26-52, 75.


15이는 하나냐가 그의 첫 번째 거짓 예언을 시작한지 두 달 안에 일어난 일이다.
Keown, Scalise, and Smothers, Jeremiah 26-52, 58.
16 Thomas McComiskey, Zechariah, An Exegetical and Expository Commentary: The Minor
Prophets (Grand Rapids: Baker Books, 200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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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


들이 여호와께 돌아올 때, 여호와께서도 그들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씀하
신다. 이 첫 말씀의 중요한 메시지는 여호와께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돌
아오시는가’이다.
스가랴와 학개는 포로귀환 후 성전 재건이 지체되자 이스라엘 백성
들을 독려하여 성전 재건을 완성하도록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이다.
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동일하게 주전 520년이다.17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이는 스가랴서 1-8장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면 답이 분명하다.
이는 성전 재건이 완성이 되어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거처로서 기능을
하게 될 때이다. 스가랴서 1장 16-17절에 따르면 여호와의 돌아오심과 예
루살렘 성전의 건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18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 완성
이 되면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택한 도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
다.19 스가랴서 2장 10절에도 미래의 시점을 가리켜 “시온의 딸아 노래하
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신
다.20
스가랴서 3장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어(3절)
제사장 기능을 감당할 수 없는데, 천사가 그의 죄를 없애 주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준다고 말한다(4절). 이때가 언제인가? 레위기에 따르면
제사장이 죄 용서받고 제사장의 의복으로 갈아입는 위임식을 행한 후에
제사장으로서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레 8-9장).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죄
용서받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은 곧 성전이 완성된 후에 그가
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이루어지는 일이다.21
17 J. A. Motyer, Haggai, An Exegetical and Expository Commentary: The Minor Prophets
(Grand Rapids: Baker Books, 2000), 973.
18 McComiskey, Zechariah, 1043-45.
19 McComiskey, Zechariah, 1045.
여호와의 거하심과 성막/성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출 25:8).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
20
스라엘 백성과 거하시기 위한 장소였다. McComiskey, Zechariah, 1064. 물론 제사를 드리는 장
소로서 성막의 기능이 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그들과
교류하시기 위한 더 넓은 개념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9

스가랴서 8장 3절에는 여호와께서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살겠다.”(새번역)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미 돌아오신 것처
럼 말씀하신다. 이는 성전 재건이 완성되어가면서 임박한 여호와의 임재
의 시점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전이 완성되면 그때는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 “성산”이라고 불릴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 중
에는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은 “성산”(Mount of Holiness)이라고 불릴 수
없었다.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성전은 더렵혀졌고, 포로귀환 이후에도 성
전이 완성되기까지는 여전히 “성산”이라고 불릴 수 없었을 것이다.22 그
런데 스가랴서 8장 23절에는 이방인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
을 붙잡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신다”(새번역)라는 말을 들었다고 고
백한다.23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상은 구약에서 원래 성막을 주신
근본 목적이었다. 출애굽기 40장 33-35절에는 모세가 하나님께서 지시하
신 명령대로 성막을 완성하게 되자 성막에 구름이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
이 성막에 충만하게 되었다. 이는 성막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시작한 것을 보인다.24 에덴동산에서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실낙원을
회복한 것이 바로 성막을 통해서이다.25 하나님께서 성막을 통해서 이스
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면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내셨다(슥 8:8). 신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 시작했

21 참고, McComiskey, Zechariah, 1070-71. 물론 스가랴 3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여호수


아 대제사장은 예표적인 인물로서 싹이라고 칭하는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단번에 씻을 것을 모형론적인 관점에서 보인다(8-10절). 성전 재건이 중요한 이유는 메시
야의 사역 이전에 구약시대에 메시아의 사역을 예표하는 사역을 대제사장이 감당했는데, 그의
사역이 바로 성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성전이 완성되지 않고는
대제사장의 사역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 스가랴가 환상 가운데 본 것처럼 성전이 없는 상
태의 대제사장의 모습은 누더기를 걸친 모습과도 통한다.
22 McComiskey, Zechariah, 1137-38.
물론 이 장면은 구약시대의 지평을 넘어 신약교회 시대에 이루어질 일을 그림 언어
23
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개념은 원래 성막에 여호와의 임
재에서 유래한 말이다(출 25:8). McComiskey, Zechariah, 1156-57.
24 J. I. Durham, Exodus, WBC 3 (Nashville: Nelson Reference & Electronic, 1987), 500.
25 그래서 뺷ESV 스터디 바이블뺸은 이를 “오경의 절정”이라고 본다. L. T. Dennis et al.,
ESV Study Bible, 신지철 외 역, 뺷ESV 스터디 바이블뺸(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4), 49.
10 |「성경과 신학」 88

다(요 1:14).26 스가랴서 1-8장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나님의 돌아오심은


바로 성전 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따라오는 질문은 ‘하나님은 언제 이스라엘을 떠나셨는가?’
라는 질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기를 거부하시
고 떠난 시점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바로 그 시점과 매우 밀접한 관
계가 있다. 에스겔서 8-11장이 이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에스겔은
제2차 포로들이 잡혀갈 때(주전 597년)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간 선지자로
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에스겔을 들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상숭배의
실상을 낱낱이 보이신 후(8장)에 성전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이신다(9장). 에스겔이 주의 영에 이
끌려 환상을 본 해가 “[포로로 잡혀간 지]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
새”(8:1)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때가 주전 592년 9월 17일이
다.27 이 환상은 앞으로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이 파괴될 그때를 바라보면
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미리 보여주신 환상이다. 에스겔서 8장이 이
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장면은 성전
에서 벌어지는 각종 우상숭배의 모습들이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이
렇게 더렵혀진 성전의 모습을 보이시면서 “그들은 여기서 가장 역겨운
일을 하여, 나의 성소에서 나를 멀리 떠나가게 하고 있다”(겔 8:6; 새번
역)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의 죄악 때문에 이마에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
을 모두 멸절하도록 명령하신다(9장). 10-11장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
살렘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단계별로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들에게서 떠나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갔고(10:4), 이어서 성전 문지방
을 떠나 그룹들 위로 가서 머물렀고(10:18),28 이후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26 요한복음 1장 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 사용된 “거하시


매”(evskh,nwsen)라는 말은 ‘천막’(skhnh,)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하
나님의 임재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G. R. Beasley-Murray, John, 2nd ed. WBC 36
(Nashville: Nelson Reference & Electronic, 1999), 14.
27 L. C. Allen, Ezekiel 1-19, WBC 28 (Dallas: Word Books, 1994), 137.
28 알렌은 이 장면을 하나님께서 성막 가운데 계신 임재가 끝난 것으로 본다. Allen,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11

가운데서 떠올라 성읍 동쪽에 있는 산꼭대기에 머물렀다(11:23).29 이 장


면까지 본 후에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다시 바벨론의 포로들 가운데
로 데리고 왔다(11:24).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더렵혀진 성전
에서 떠나시는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았다. 바로 이 시점이 예루살
렘의 파괴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절의 시점과 일치한다. 이때가 바로
주전 586년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의 시점과 일치한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스가랴서의 70년이란 말이 어떻게 사용되
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스가랴서 1장 12절에 70년이 등장하는
데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 살펴보자.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


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슥 1:12).

이 말씀은 스가랴서에 두 번째 임한 말씀 속에 나타난다. 1장 7절에


“다리오 왕 제 이년 열한째 달”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는 1장 1절의
말씀이 주어진 시점과 동일한 주전 520년이다. 이 말씀은 천사가 여호와
께 드린 말씀인데,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생활 70년은 포로귀환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라, 스가랴가 이 말씀을 받
은 이 시점까지 계속됨을 알 수 있다.30 그래서 맥코미스키(McComiskey)
는 이때를 주전 586년부터 주전 520년까지의 기간인 67년의 어림수로 보
고 있다.31 이렇게 해석하게 하면 예레미야서를 해석할 때와 같은 동일한

Ezekiel 1-19, 158-59.


29 성막 완성의 시점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성막에 임재하실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출 40:34-35). 여호와께서 성막을 떠나실 때도 “여호
와의 영광”이 떠나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Durham, Exodus, 500.
30 페터슨(Petterson)도 커티스(Curtis)의 견해를 빌어 동일한 주장을 한다. A. R.
Petterson, Haggai, Zechariah, and Malachi, Apollos Old Testament Commentary 25 (Downers
Grove: IVP, 2015), 117.
31 McComiskey, Zechariah, 1038-39.
12 |「성경과 신학」 88

수치게임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예레미야서의 해석과는 다른 중


요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천사의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주전 538년을 마지막 시점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다. 18년이 지난 주전 520년 이 시점에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
나님의 진노아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언제
끝이 나겠는가? 스가랴서 1-8장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 끝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때는 성전 재건이 완료된 시점이
다(1:16-17; 2:10-11; 3:3-4; 8:2-3, 8-13).32
스가랴서에 두 번째 70년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 곳은 7장 5절이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
하여 한 것이냐(슥 7:5).

이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한 시기는 “다리오 왕 제 사년 아홉째 달”


로서 주전 518년에 해당된다.33 이 말씀은 베델 사람이 성전의 제사장들
과 예언자들에게 묻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붕
괴된 것을 애곡하며 매년 5월 17일에 금식해오고 있는 관습을 염두에 두
고, 이제 성전을 재건하게 될 터이니 언제까지 계속 금식해야 할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34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답변이다. 여기에 나오는
70년도 주전 518년이라는 스가랴가 말씀을 받은 시점과 맞추게 되면 역
시 숫자게임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스가랴서 1장 12절에
나오는 70년이란 수치와도 맞지 않게 된다.
해결책은 이것이다. 스가랴서는 예레미야서가 예언한 ‘바벨론 포로생
활 70년’이라는 이미 구체화된 표현을 염두에 두고 70년을 사용하고 있
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는 다음에 다룰 다니엘서 9장 2절과 역대기하 36

32 Petterson, Haggai, Zechariah, and Malachi, 117.


33 McComiskey, Zechariah, 1127.
34 McComiskey, Zechariah, 1124-25.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13

장 21절과 에스라서 1장 1절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우리가 물어야할


질문은 ‘진정한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언제 끝나는가?’이다. 스가랴서
는 이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님은 베델 사람들의 형식적인 금
식을 책망하시면서 진정한 삶의 변화를 요청하신다(7:9-10). 여기에 나오
는 70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파괴된 후 재건된 시점을 염두고
두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스가랴서 1-8장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슥 1:16-17; 2:10-11; 3:3-4; 8:3, 8). 스가랴서에 나오는 70년에 대한 두 말
씀을 종합하면 성전 파괴의 시점으로부터 재건의 시점까지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성 있는 이해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전 586년에서 주
전 516년까지 70년이 될 것이다.35

2. 에스라서

포로생활 70년을 성전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다른


책에도 존재한다. 에스라서에는 70년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지만 여호
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예언을 이루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
시켜 칙령을 내린 내용을 소개한다(스 1:1). 에스라서는 고레스의 칙령을
두 번 소개하고 있다(스 1:2-4; 6:3-5). 두 곳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레
스 칙령의 강조점은 유대인들의 귀환에 있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있음이 분명하다.36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그릇들도 되돌려 보내 성전이 완성되면 원래 위치에 다시 두도록 지시하

35 Whitley, “The Term Seventy Years Captivity,” 72. 안타깝게도 위틀레이는 성경의 데이
터를 신뢰하지 않고 스가랴서에 나오는 70년이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필자는 포
로기 이전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예언이 포로귀환과 함께 포로후기에 구체화된 표현으로
존재한 것으로 본다.
36 고레스 실린더에는 고레스가 왜 이스라엘 종교에 대해서 관용정책을 펴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본인은 제국에 속한 여러 나라들의 전통과 관습과 종교를 존중할 것
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천명하는 바이다.”
Cyrus the Great, “고레스 실린더와 성경 예언 – 고레스 실린더에 담긴 성경의 확실한 예언”,
http://about cyrus.com/ko/%EA%B3%A0%EB%A0%88%EC%8A%A4-%EC%8B%A4%EB%A6%B0%
EB%8D%94-%EC%84%B1%EA%B2%BD-%EC%98%88%EC%96%B8/. 앗수르와 바벨론의 종교
억압정책은 속국들의 계속된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고레스가 이 문제점을 잘 알고 속국
의 종교와 관습과 전통에 대해 관용정책을 펴게 되었다. Walton, Matthews, and Chavalas,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Old Testament, 459-60.
14 |「성경과 신학」 88

고 있다(6:5). 에스라서의 강조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귀


환하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돌아가서 고레스의 지시대로
성전을 재건하는데 있다. 이는 진정한 포로 됨에서 해방은 이스라엘 백
성들이 성전을 재건함을 통해서 완성됨을 암시하고 있다.

3. 역대기하

역대기하 36장 21-23절은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에 대해 3가


지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예레미야서의 70년을 이스라엘 백성들
이 안식년을 지키지 못하여 땅이 황폐하게 된 기간으로 보고, 이 시기를
땅이 안식을 누리는 기간으로 묘사한다(21절). 둘째, 예레미야서가 포로생
활 70년에 대해서 예언한 말씀의 성취의 시점을 고레스의 칙령을 내린
시점으로 보고 있다(22절).37 셋째, 여기서도 고레스의 칙령의 내용이 간
략하게 요약되어 나타나는데, 그 핵심적인 메시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재
건에 있다(23절).38 그래서 위틀레이는 본문이 나오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70년은 고레스의 칙령을 넘어서 성전이 완성되는 시점까지 포괄한
다고 본다.39

4. 학개서

스가랴와 함께 학개도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중단


된 성전을 재건하도록 독려한 선지자였다. 학개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고 재건을 중단한 후부터 학개가 말씀을 선포하던 당시
까지 황폐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두 번씩 보여준다(1:5-11; 2:15-19).40

37 R. B. Dillard, 2 Chronicles, WBC 15 (Waco, TX: Word Books, 1987), 301.


M. J. Selman, 2 Chronicles, TOTC (Downers Grove: IVP, 1994), 551. 셀만은 예레미야
38
70년 예언의 성취가 성전 재건과 관계가 있다고 보지만 70년과 성전 완성과의 관련성에 대해
서는 회의적이어서 논리적인 난점이 있다. 그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지 않
아 논리의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39 Whitley, “The Term Seventy Years Captivity,” 72.
40 학개가 4번에 걸쳐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모두 주전 520년이었다. R. L. Smith,
Micah-Malachi, WBC 32 (Waco, TX: Word Books, 1984), 148.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15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였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이


들의 삶은 여전히 포로생활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암시한다. 학개는 이들
이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선포한다
(2:19). 여호와께서 학개를 통해 성전을 지어라 그러면 “내가 그것으로 말
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은 재건된 성전에서 받으시는 예배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으로 스미스(Smith)는 이해한다.41 여기서도 에스겔에서처럼
동일한 하나님의 임재를 지칭하는 “영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은 성전 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스가랴서와 함께 에스라서, 역대기하 36장, 학개서에서 밝
히는 ‘예레미야 포로생활 70년’의 메시지는 고레스의 칙령으로 돌아온 시
점에 포로의 멍에를 완전히 벗어버린 것이 아니라, 포로귀환 이후에도
여전히 포로의 멍에를 메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누리는 시점은 성전이 재
건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때 시작됨을 가르치고 있다. 포로생활 70년의 성경 내적 해석의 결과 진
정한 포로 귀환의 시점은 성전이 재건된 주전 516년이라는 결론에 도달
하게 된다.

Ⅳ. 다니엘서의 포로생활 70년 해석

다니엘이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린 내용이 9장 2절에 기록되어 있다.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하게 된 시점을 9장 1절에서 밝히고 있는데,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로 구체적으로 밝히
고 있다. 메대 사람 다리오가 통치하기 시작한 시점은 주전 538년이다.42

41 Smith, Micah-Malachi, 153.


16 |「성경과 신학」 88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43

다니엘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들으려고


재를 깔고 앉아 베옷을 걸치고 금식하면서 기도한다. 기도의 내용이 4-23
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조상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민족을
위해 회개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왜 다니엘이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기도를 하고 있을까? 다니엘이 제1차 포로로 잡혀
왔기 때문에 그 해는 카일에 따르면 주전 606년이다.44 다니엘이 메대 사
람 다리오 왕의 통치 첫 해인 주전 538년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때는
포로로 잡혀온 지 69년째 되는 해이다.45 다니엘의 관점에서 보면 예레미
야서에서 예언하고 있는 70년이 다 차 가고 있다. 카일은 다니엘이 이렇
게 간절히 금식기도하고 있는 이유를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주전
539년 바벨론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아직 포로들이 귀환하도록 명령이 떨
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조속히 실행하시길 간구하고 있다고 본
다.46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동족의 영적인 상태를 볼 때 포로생활이라
는 징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딱
한 처지를 두고 금식기도를 했다고 본다.47

42 C. F. Keil, Ezekiel & Danie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9, trans. J. Martin and
M. G. Easton (Peabody, MA: Hendrickson, 1996), 705. 여기에 등장하는 다리오는 스가랴서 1장
과 학개서 1장에 등장하는 다리오와는 다른 왕이다.
43 Keil, Ezekiel & Daniel, 706. 카일은 다니엘이 인용하고 있는 칠십 년 동안의 예루살
렘 황폐는 예레미야서 29장 10절이 아니라 25장 11절을 인용하고 있다고 본다. 다니엘서 9장
24절에 나오는 “일흔 이래”와 예레미야의 포로생활 70년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은 본 연
구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다루지 않겠다. 다음 주석을 참고하라. J. Goldingay, Daniel,
WBC 30 (Nashville: Thomas Nelson, 1989), 257-60.
44 Keil, Ezekiel & Daniel, 706. 후대의 학자들은 이때를 주전 605년으로 주로 본다.
45 Keil, Ezekiel & Daniel, 708.
46 Keil, Ezekiel & Daniel, 708-9.
47 Keil, Ezekiel & Daniel, 709.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17

카일에 의하면 다니엘이 이해한 예루살렘의 70년간의 황폐함은 문자


적인 주전 606년부터 주전 536년까지로 본다. 카일은 고레스가 등극한
해를 주전 536년으로 본다.48 만약 이들 햇수가 정확하다면 상당히 설득
력 있는 견해이다.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이 제1차 포로기는 주전 605년
으로, 고레스가 칙령을 내린 해는 주전 538년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다. 다니엘서가 사용하고 있는 표현 자체를 보면 70년간의 예루살렘의
황폐함은 예레미야서 25장 11-12절에 나온 표현과 큰 차이가 없다. 앞에
서 말한 대로 다니엘서도 예레미야서가 사용하고 있는 이미 고착화된 70
년 포로기를 염두에 두고 사용하고 있다. 이제 물어야할 질문은 ‘진정한
예루살렘의 황폐함은 언제 끝나는가?’이다. 이는 다니엘이 이해한 70년과
다를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스가랴서와 학개서가 전해준다. 이미 앞에
서 이들은 성전 재건 완성의 때가 진정으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끝나는
때라고 밝히고 있다.

Ⅴ. 성전 중심 포로생활 70년 이해의 신학적 함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운 70년의 포로기를


연상케 하겠는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이들이 바벨
론에 잡혀가 포로 생활하는 것도 매우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육신적인 고통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이들 가운데 계시던 하나님께
서 그들로부터 떠나셨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
의 백성 되게 하는 것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셨기 때문이다. 이는
반복된 언약의 공식을 통해서 드러난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레 26:12; 신 29:13; 렘 30:22; 31:1; 32:38). 하나님
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도 이 언약을 맺기 위해서 선
택하셨고, 애굽 땅에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목적도

48 Keil, Ezekiel & Daniel, 705.


18 |「성경과 신학」 8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죄악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
해 필요한 장치가 바로 성막/성전이었다. 성막/성전에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이들의 죄를 용서하심을 통해 이들과 지속적인 언약 관계를 유지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김으로 말
미암아 하나님 백성으로의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을 징
계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심각한 죄악은 우
상숭배였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기 때문에 언약의
근본을 흔드는 죄악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고 우상을 하나
님으로 모시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과 거
하실 수 없는 죄악이다. 우상숭배는 언약의 당사자이신 하나님 자신을 거
부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성막/성전의 본질적인 기능을 무효케 만든다.
에스겔서 8장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기 직전에 이스
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범하고 있는 각종 우상숭배의 죄악을 폭로하고
있다(5, 10-12, 14, 16절). 이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기 직전에 하
나님께서 떠나시는 장면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것이다(겔 8:6).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최대의 비극은 나라가 망한 것이나 포로로 잡혀간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성전의 파괴와
함께 하나님은 그들로부터 떠나 버리셨다. 이것이 진정한 바벨론의 포로
됨의 의미이다.
포로 귀환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의 칙
령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이 진정한 포로 됨에서 해방이 아니라, 하
나님께서 이들 가운데로 되돌아오실 때 포로 됨에서 진짜 해방되는 때이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도 포로 된 삶에서 돌아오
지 못했다는 것이 스가랴서와 학개서의 메시지이다(학 2:15-19; 슥 1:12;
7:5). 학개와 스가랴는 포로 됨에서 해방된 삶은 성전건축을 완성할 때임
을 분명하게 밝힌다(학 1:8; 슥 1:16-17). 성전이 완성되어 멀리멀리 떠났던
하나님께서 이들 가운데로 돌아오실 때 이들은 진정한 ‘임마누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학 1:8; 2:15-19; 슥 1:16-17; 2:10-13; 8:1-6).
예레미야서의 70년 포로생활 예언의 의미| 19

Ⅵ. 나가는 말

예레미야서 25장 11-12절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주전 605년 제1차


포로기로부터 시작하여 고레스의 칙령이 내려진 주전 538년까지가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렇게 되면 바벨론 포로 70년은 67년에 대한 어
림수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레미야의 청중 가운데는 주
전 597년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렘 29:10)이 있기 때문에 포로 70년을
59년에 대한 어림수로 보는 데는 난점이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스가랴서, 학개서, 에스라서, 역대기하, 다니
엘서의 성경 내적 해석을 통해 밝힌 바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정한 포
로 됨과 포로 귀환은 육신적인 포로 됨을 뛰어넘어 성전이 파괴됨으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떠나셨던 시점(주전 586년)과 성전이 재건됨으로 하나
님께서 돌아오신 시점(주전 516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밝혔다. 그
근거로 에스겔서 8-11장에 성전이 파괴된 시점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
나시는 장면을 통해 보였고, 성전 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돌아오신다는
사실을 학개서와 스가랴서의 메시지를 통해 논증했다.
성전 중심 포로생활 70년을 이해할 때, 성경에 여섯 번이나 반복되
고 있는 70년이란 수치가 정확히 성취된 것을 보일 뿐만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날 우리까지 진짜 포로 됨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롭
게 깨닫게 한다. 육신적인 포로 됨의 고통보다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은
함께 하시던 하나님께서 떠나시는 때이다. 포로 됨에서 진정한 회복도
하나님의 임재의 회복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성막/성전은 ‘하나님
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표상이었는데, ‘임마누엘’
이란 이름(사 7:14)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계시하신다(요 1:14). 이는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관계
회복이 영적 포로 됨에서 해방되는 길임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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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Meaning of Jeremiah’s 70-Year Exile

Kim, Jinkyu* 49

The goal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meaning of the 70-year exile in
Jeremiah (25:11-12; 29:10). An inner-biblical exegesis is used as the main
tool of this study: the meaning of 70 years is derived from comparing texts
which directly quote the 70 years of Jeremiah (Zech 1:12; 7:5; Dan 9:2;
2 Chron 36:21) and which indirectly cite Jeremiah’s message (Ezra,
Haggai). The text in Jeremiah 25:11-12 seems to indicate the exile period
is from 605 BC (when the first captives were moved to Babylon) to 538
BC (when Cyrus issued his edict), but the text in Jeremiah 29:10 has diffi-
culty in regarding the period as a round number because the recipients of
the prophet’s message were brought to Babylon in 597 BC (when the sec-
ond captives were moved to Babylon). Inner-biblical exegesis of the Book
of Zechariah (and other texts) clarifies that the period of exile began in
586 BC (when God left the people of God by destroying the temple) and
ended in 516 BC (when God came back to the temple at the time the second
temple were rebuilt). This interpretation matches the 70-year period of exile.

Key-Words: Jeremiah, Exile, 70 years, Babylon, Temple, Cyrus

* Baekseok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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