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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vs 포르투갈” 신항로, 드디어 열리다!


대항해시대 본격 개막 유럽의 오랜 숙원 사업이던 신항로가 마침내 열리게 되었
다.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신대
륙을 발견한 이래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셀주크 튀르크와 비잔티움 제국이 150년 동안 벌인 십자군 과거 디아스가 발견한 아프리카 희망봉을 넘어서 인도로
전쟁으로 지중해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해상 교 가는 항로를 개척하였다. 또, 그 뒤를 이은 스페인의 마젤
역로를 통해 아시아의 문물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큰 인기를 란은 1519년부터 1522년까지 4년에 걸친 항해로 세계일
끌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지중해 무역권 독점으로 인해 일 주에 성공하였다. 신항로가 가져다 줄 막대한 이익을 누가
부 나라들은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되었다. 그 결과, 여러 나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서 유럽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라들이 앞다투어 아시아와의 직접 교역로를 찾아나서는 대 많은 자원과 인력을 투자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그 이익
항해시대가 전개되었다. 을 가져갈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신항로 개척으로 인하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 여 아프리카에서 민간인을 납치하여 노예로 사고파는 이
들은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 교역로 탐색에 나섰을까? 른바 ‘노예 무역’과 플랜테이션 농장이 횡행하고 있는 바
1487년 8월,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왕 주앙 2세 이를 근절할 수 있는 대책 또한 절실한 상황이다.
의 명령을 받아 리스본에서 3척의 배를 이끌고 항해를 시작
한다. 하지만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프리카 남단을 향하
던 배는 폭풍을 만나고, 표류하다가 오늘날의 포트엘리자베
스(남아프리카공화국)라고 불리는 육지에 이르른다. 이곳
이 아프리카의 최남단이라고 생각한 디아스는 인도로 향하
기 위해 다시금 출항하기로 하지만,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
질 것을 두려워한 배의 선원들이 포르투갈로 돌아가기로 결
정하자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폭동이 일어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1488년 1월, 디아스의 원정대는 귀국길에 오른다. 돌아오
던 중 그들은 갈 때는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던 거대한 곶을
목격하게 된다. 이곳이 진짜 아프리카의 최남단인 희망봉이
다. 비록 인도양 항로 개척에는 실패했지만, 디아스는 최초
로 희망봉에 도달한 사람이 되었다.
*여담) 사실 디아스는 처음에 이곳에 ‘폭풍의 곶’이라는 이름을 붙
였으나, 주앙 2세가 너무 부정적이라며 ‘희망봉’으로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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