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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손성태
단독/배재대학교

Son, Sungtae(2009) Las palabras coreanas que se encuentran en la


historia, régimen, costumbre y topónimos aztecas, The Korean Journal of
Hispanic Studies, 2, 1-53.

En el presente trabajo nos dedicamos al estudio de unas palabras, muy


iguales a las coreanas, que se encuentran en los términos de historia, régimen,
costumbre y topónimos del Imperio azteca. De ello nos damos cuenta de que
Aztlan, lugar original místico de los aztecas corresponde a 아사달(阿斯達),
lugar también místico de Kochosun, el primer reino antiguo construído por los
antepasados coreanos a. C. Otras coincidencias entre aztecas y coreanos son
los que encontramos entre Colli/Coli y 고리(稿離), entre Tlamatini y 다 마틴
이, y entre otros muchos vocablos. Lo más importante que tenemos por este
estudio es que las ambas palabras Aztlan/ 아사달 significan ‘tierra blanca’. ‘La
tierra blanca’ no es una simple palabra sino que contiene una consciencia
histórica común entre los dos pueblos, que tienen los aztecas y los coreanos.
El concepto de esta palabra fue reflejado en sus costumbres funerales y
aficiones a la ropa blanca. Otro sorprendente es que las formas históricamente
evolucionadas de la palabra ‘땅’ se encuentran en los topónimos mexicanos. La
comparación entre Tlamatini y ‘다 마틴 이’ nos revela la coincidencia
sintáctica, fonético-fonológica, morfémica y semántica entre náhuatl y coreano.
Lo más sorprendente, además de ésta, es el uso de ‘n/ㄴ’, un nexo que no
tiene ninún significado en sí mismo pero tiene una función de convertir la
frase precedente en la adjetiva que pueda modificar al sustantivo siguiente.
Además de estos, en el presente trabajo hemos encontrado también la similitud
o coincidencia entre varios vocablos aztecas y coreanos que fueron usados en
sus costumbres y topónimos. Todo ello, creemos, afirman que eran de un
mismo pueblo los aztecas y los coreanos.

Key Words: Aztlan/ Colli, Coli/ Tlamatini/ Tlall, Tla, Tlan/ Co; 아사달
(阿斯達)/ 고리(稿離)/ 다 마틴 이/ 달, 따, 땅/ 곳

* 이 논문은 2009년 6월 13일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스페인어문학회 여름학술


대회에서 발표한 것임.
2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1. 서론

지금까지 세계사와 인류사에 따르면, ‘아메리카의 원주민은, 3만~4만여


년 전 인류의 마지막 빙하기에 많은 물이 지상에서 얼음으로 얼었고, 그
로 인하여 바닷물의 수위가 매우 낮아져서 베링해협은 바다가 아니라 육
로로 아메리카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때 원시 몽골리안들, 즉 신석
기의 고아시아인들이 그 육로를 통하여 걸어서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그
후 빙하기가 물러가면서 얼음들이 다시 녹아서 바닷물의 수위가 매우 높
아졌고, 그래서 육로로 연결되었던 베링해협의 길이 바다로 다시 변하면
서, 더 이상의 고아시아인들의 아메리카 이동은 없었다’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에 대하여 우리는 매우 중요하고 구체적이며 정확한 수
많은 반증을 발견하였다. 그 반증은 언어, 풍습, 종교, 제사의식, 역사적
기록, 건축양식, 생활습관, 각종 장신구와 의복 등 인간 생활의 전 분야에
걸쳐서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서, 3만 년 전이면 원시 고아시아인들은 아
직 오늘날처럼 민족 분열이 일어나기 이전이었고, 의복도 섬유로 된 의복
이 아니라 동물의 가죽을 몸에 걸치는 정도였으며, 윷놀이나 오월 단오
때 여인들이 창포에 머리 감는 풍습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
면 원시 고아시아인들에게 이러한 문화가 있었다면, 그 후의 시대에 일어
난 민족 분열로 인하여, 이러한 문화는 북방 고아이시아인들의 모든 후예
들, 즉 몽골, 일본, 만주, 중국 등 모든 주변국에서도 공유되어 있어야 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습은 모든 민족에게 공유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서, 네 개의 나무 가락으로 만든 윷놀이는 주변국
에는 없는 우리민족 고유의 놀이이다. 또 오월 단오절에 창포라는 푸른
풀을 물에 으깨어 우려낸 파란 물에 머리를 감는 풍속도 우리민족만의
풍습이다. 또 언어적으로도 우리민족만이 주격 조사 ‘-이’와 ‘-가’를 사용
한다. 우리와 인종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몽골어에도 주격조사가 없고, 중
국어에도 없다1). 그런데 아스텍 제국에서는 우리 민족 고유의 윷놀이와

1) 일본어는 ‘-와’와 ‘-가’를 주격조사를 사용한다. 일본어의 형성에 우리말이 적지 않은 영


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주장들이 있다. 그 이유는 기원전 부족국가 시대부터 일본인의
조상들은 우리의 부여계 선조들이 살던 아무르강 이남, 송화강 유역 근처에 살면서 문화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3

창포로 머리 감기가 있었고, 그들의 언어에서는 주격 조사 ‘-이’와 ‘-가’가


발견되고,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복수형 어미 ‘-들’과 ‘-떼’도 그
대로 있었고2), 우리말 고어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ㅎ종
성체언’들도 매우 많이 나타난다.
또 고고학적으로,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멕시코 이남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개미핥기의 토우가 전시되어 있다. 이 토우는 5세기경에
축조된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우리나라 고고학자들은 이 토
우가 개미핥기이며, 그것을 만든 이는 개미핥기를 직접보고 만든 것이 틀
림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멕시코 이남에서만 서식하는 개미핥
기를 그 당시에 누가 어떻게 보고서 만든 것인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
채,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일치가 우리민족이 아메리카로 건너 간 역사적 사
실로 인한 것으로 보며, 방대하고 다양한 증거를 단계별, 주제별로 제시

적 교류를 지속해 왔고(김운해, 『대쥬신을 찾아서 I, II』), 기원후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와 백제의 수많은 사람들과 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활동하며 살았다. 고구려의 담
징은 일본 호오류사(法隆寺)의 금당 벽화를 그렸고, 백제의 왕인, 아직기는 일본에 한학
(漢學)을 전하여 학문의 씨를 내렸다.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와 ‘고사기’에는 삼
국 시대 고구려의 사람들이 수 백 명씩 배를 타고 건너와서 살 땅을 달라고 했다는 기록
도 있다. 오늘날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40여㎞ 떨어진 사이타마현 히다카시는 고구려인들
의 후예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기차역이 두 곳 있는데 둘 다 고려역(高麗
驛)과 고려가와역(高麗川驛) 등 ‘고려’라는 이름으로 돼 있다. 이곳에는 수많은 가게의 간
판, 학교, 지명 등에 고구려를 의미하는 ‘고려(高麗)’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
어, 고려촌 고마본향, 고려전, 고려치, 고려소학교, 고려중학교, 고려우체국, 고려향, 고려
산, 고려고개, 고려원 등이 있다. 고구려는 장수왕 때부터 그 국가명칭을 ‘고구려’보다는
‘고려’를 더 많이 사용하였고, 중국의 많은 문헌들도 주로 ‘고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백제가 패망한 후에는 백제 왕실과 귀족 및 백성들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 이전에 백
제와 신라의 전투에서도 많은 일본군이 백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참전했던 것도 ‘삼국사
기’ 등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어에 우리말의 흔적이 나오고, 일본 문화와
우리 전통문화가 비슷한 점이 발견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최근에는 일본어가 백제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펴는 국내학자도 있다(단국대, 김용운,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
2) 흥미로운 점은 복수형 어미 ‘-떼’의 사용이다. 아스텍어에 관한 자료집 『Studies in
Uto-Aztecan Grammar Vol. II, 53』에 보면, 우리말의 ‘-떼’에 해당하는 복수형어미 ‘-te’
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bokahte(vaca-h-te, ‘소떼’), tuntohte(tonto-h-te, 바보
떼), sitlal-te(estrella-te, 별떼). 이 예에서 명사 뒤에 뜻 없이 붙는 소리 [h]는 우리말 고
어의 ‘ㅎ종성체언’의 ‘ㅎ’과 일치한다. 우리말에서 복수형 어미 ‘-떼’는 오직 동물에게만
사용되는 데 반하여, 아스텍어에서는 동물, 사람, 사물에게 다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흥
미로운 점은 ‘만주어’에도 이 복수형 어미 ‘-떼(te)’가 있는데, 아스텍어처럼 사람, 동물,
사물에게 다 사용된다. 아스텍의 역사서에 따르면, 그들의 선조들이 원래 살았던 땅을 떠
난 시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대략 발해시대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우리민족이 만
주지역에 넓게 분포하여 살았다.
4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하고자 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본 연구에서는 아즈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수많은 우리말 가운데 그 일부를 살펴봄으로써, 그들
이 우리 민족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2. 우리말의 자음소와 스페인어 자음소 비교

아스텍인의 나와들어와 우리말을 비교하려면, 먼저 두 언어의 음운의


기본적 특징을 알아야 한다. 언어의 음운적 특징은 음소의 종류, 조음위
치, 조음방법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게 된다. 우리말 자음의 음소 종류와
조음위치에 대하여 최명옥(2004)은 다음과 같이 도표화하고 있다3). 음
성․음운론에서는 음소는 / / 로 표기하고, 음성은 [ ]로 표기하지만, 음
소와 음성을 굳이 구별하지 않을 경우에는 ‘ ’로 표기한 최명옥의 예를
본 연구에서도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음소도 본 연구에 필요한 부분만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표 1> 우리말 자음소

h
이 표를 보면, 파열 양순음에는 ㅂ(p), ㅃ(p’), ㅍ(p )가 있고, 파열 치경
h
음에는 ㄷ(t), ㄸ(t’), ㅌ(t )이 있으며, 파열 연구개음에는 ㄱ(k), ㄲ(k’), ㅋ

3) 최명옥(2204), 『국어 음운론』,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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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 이 있고, 파찰 경구개음에는 ㅈ(č), ㅉ(č’), ㅊ(čh)이 있다. 이 세 쌍으


로 된 각 음소그룹은 평음소, 경음소, 격음소로 구별된다.
그런데,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스페인어 자음은 평음소, 경음소, 격음
소의 구별이 없다. 이를 Quilis(1964)가 제시한 스페인어 자음소 표를 통
하여 확인할 수 있다4).

<표 2> 스페인어 자음소

<표1>과 <표2>를 대조해 보면, 우리말의 치경음은 단순하지만, 스페


인어 치경음은 사실상 ‘치경음, 치근음’으로 나뉘어 져 있고, 우리말에는
없는 치순음과 치간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우리말의 파열 양순음 ‘ㅂ, ㅃ, ㅍ’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파열 양순음은 ‘p’밖에 없고, 파열 치경음 ‘ㄷ, ㄸ, ㅌ’
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음소는 ‘t’밖에 없으며, 파열 연구개음 ‘ㄱ, ㄲ, ㅋ’
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음소는 ‘k’밖에 없으며, 파찰 경구개음 ‘ㅈ, ㅉ, ㅊ’
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음소는 ‘c’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대응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ㅂ, ㅃ, ㅍ ← 대응 → p
ㄷ, ㄸ, ㅌ ← 대응 → t
ㄱ, ㄲ, ㅋ ← 대응 → /k/ ⇢ c +a, o, u; qu 또는 cu +e, i
ㅈ, ㅉ, ㅊ ← 대응 → /c/ ⇢ ch, tz

4) 이 표는 Quilis가 제시한 스페인어 자음소 표에서 본 연구에 필요한 음소만 간추려 표시


했다. 또 발음 방법에 따라서 유성, 무성으로 구별되는데, 이것도 여기서는 무시한다. 이
유는 지금부터 관찰하려는 나와들어의 음성 표기를 한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은 이러한
음성학적 지식이 없어서, 그러한 구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여기서 기억할 것은 스페인어에서 음소 /k/를 실현하는 알파벳은 모음


a, o, u 앞에서는 c이고, 모음 e, i 앞에서는 qu 또는 cu라는 것과, 파찰
경구개음 /c/를 실현하는 알파벳은 ch이고, 나와들어에서는 많은 경우에
tz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대응 비교에서 우리말을 스페인어로 표기하면 자음의 종류
가 크게 축소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말의 자음소를 스페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점을
저명한 나와들어 학자였던 Sullivan(1988)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5).

The alphabet used for Nahuatl was introduced by the early


Christian missionaries, using the orthographic conventions of
sixteenth-century Spanish. This orthograhy represents the Nahuatl
phonological system reasonably well, but it obcures or
underrepresents some phonetic facts of the language.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나와들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한 알파벳은
16세기 스페인의 철자규범이었다. 이 철자법은 나와들어 음운체계를 잘
표현하기는 했지만, 일부 발음을 제대로 표현 못했거나 축소했다.

또 한 가지 미리 생각해 둘 사항으로는, 아스텍 제국을 정복한 직후에


아스테카인들의 나와들어를 스페인어 알파벳으로 차음(借音)하여 적었던
사람들은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자나 선교사, 그리고 그 후에 이 선교사들
에 의하여 스페인어 교육을 받고 자란 원주민 역사가들이었다는 사실이
다. 즉, 이들은 음성·음운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과, 기록
도구로 사용된 것이 음성학적 부호가 아니라 스페인어 알파벳이라는 사
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스페인어에는 원래 알파벳 ‘k’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말
의 파열 연구개음 ‘ㄱ, ㄲ, ㅋ’을 들었을 때, 그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어
떻게 기록했을까? 다른 언어로 차음하여 기록할 경우에 가장 중요한 기
준은 ‘원래의 음(音)’에 가장 가깝게 표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어
알파벳으로 우리말의 파열 연구개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방법은 이 음소

5) Sullivan(1988), 『Compendium of nahuatl grammar』, 5.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7

들 뒤에 모음 ‘ㅣ, ㅔ, ㅐ’등이 오면 ‘qu’ 또는 ‘cu’로 표기할 수밖에 없고,


그 밖의 모음이 오면 알파벳 ‘c’로 표기하는 것이었다. 둘 째, 우리말의 파
찰 경구개음 ‘ㅈ, ㅉ, ㅊ’을 가장 잘 나타내는 방법은 스페인어 알파벳으로
는 ‘ch’이다. 그리고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나와들어를 기록할 때 많이
사용한 자음소 ‘tz’도, 위 도표를 고려해 보면, 이 파찰 경구개음에 가장
가까운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파찰 경구개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때로는 ‘ch’를 사용하고 때로는 ‘tz’를 사용했다. 그리고 우리말의
모음 ‘ㅓ, ㅡ’는 스페인어에는 사실상 표현할 음소가 존재하지 않아서 개
별 상황에 따라서 ‘e’나 ‘u’나 심지어 ‘i’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서울’을 스페인어에서는 ‘seúl(세울)’로 표기하는 것이 일례이다.

3. 아스텍 역사에 나타나는 우리말

3.1. 아스단(Aztlan)= 아사달(阿斯達)

3.1.1. 아스테카인들의 근원지인 Aztlan의 원래 명칭은 Aztan이었다.

아스텍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원래 살던 곳을 Aztlan이라고 했다. 그


곳에는 피라밋이 있었다고 그들의 역사서에 그림으로 남겼다. 이미 잘 알
다시피, 스페인어의 모든 알파벳은 발음되므로, 이 지명은 오늘날 ‘아스들
란’으로 발음된다. 그러나 원래의 이 지명은 ‘Aztlan(아스들란)’이 아니라,
Aztan(아스단 또는 ‘아스땅)이었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고전 나와들어의 대가인 Anderson(1974)
은 아스텍제국 정복후의 초기 스페인인들이 차음하여 기록한 문헌을 분
석하면서, 나와들어 자음 ‘tl’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Anderson(1974: 5)
8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여기에서 보듯이, 고전 나와들어에서는, 즉 아스테카인들의 원래의 말


에서는 ‘t’ 소리 다음에 ‘l’ 소리가 없었다.
두 번째 증거는, 이미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나와들어를 아직도 멕시
코시티에서는 매년 특강 형식으로 나와들어 학자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는데, 그 기본 교재로 사용되는 Wolgemuth(1981)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2) Wolgemuth(1981: XV)

이 인용문은 두 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다. 첫째, 테오티와칸에서 내려


온 사람들이 나와들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6), 아
스텍 제국 정복시기의 후기 나와들어에서 ‘tl’ 음으로 말하던 자음소는 그
이전 시대에는 ‘t́
’로만 말해졌다는 것이다. 즉 아스테카인들이 사용하던
원래의 말에서는 ‘t’ 다음에 ‘l’음이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
고 있다.
세 번째 증거로는 아스텍제국을 멸망시켰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Hernán Cortés)가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5세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6) 테오티와칸(Teotihuacan)은 오늘날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40킬로 지


점에 있는,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 최초의 문명을 이룬 고대 도시 유적이다. 테오티와칸의
문명을 일으킨 민족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 문명은 학자들 간에 이견
이 있지만 대체로 기원전 50년경부터 기원후 8세기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본다. 이 문명
이 망하고 나서, 그 곳의 주민들이 남하하여 그 다음의 문명중심지인 톨란과 지금의 멕
시코시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9

3) Cortés 의 세 번째 편지(1522년 5월 15일)7)

잘 알려져 있듯이, 아스텍제국의 수도는 오늘날 역사가들이


Tenochtitlan(테노치티들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도시는 오늘날의 멕시
코시티가 있는 곳에 있었던 텍스코코 호수 안의 섬에 건설된 도시였다.
그런데, 이 편지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코르테스는 아스텍제국의
수도를 Tenochtitlan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Tenuxtitan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에 아스테카인들은 자기들의 말, 나와들어를 기록할 문자가
없었고, 스페인 사람들은 그들의 말소리를 스페인어로 차음하여 그대로
기록하였다. 코르테스도 아스테카인들이 그들의 도시국가를 부르는 명칭
을 스페인어로 받아 적었다. 그런데 그의 이 기록에는 분명하게 자음소
‘t’ 다음에 ‘l’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복자 코르테스는 처음 아스텍제국을 발견하자마자 정복 전쟁을 일으
킨 것은 아니다. 그가 아스텍제국에 도착한 것은 1519년 11월 8일이었고,
아스텍제국의 목테수마 2세 황제의 환대를 받으며 6개월 동안 평화롭게
함께 살았다. 따라서 그는 정복전쟁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극심한 인종의
대이동과 섞임, 그로 인하여 발생한 여러 부족들 간의 언어의 뒤섞임과
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아스테카인들이 그들의 수도를 칭하는 정확한 말
을 들었을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증거로는, 아스텍제국 하에 독자적인 도시국가를 건설
하고 아스텍제국에게 대항했으며, 인신공양의 희생을 가장 많이 당했던
Tlaxcala(들락스칼라)국가의 명칭에 대한 인터넷 위키 백과사전의 설명을
인용하기로 한다.

4) Tlaxcala 국가 명칭에 대한 설명8)

7) Pascual de Gayangos(1866), 『Cartas y relaciones de Hernán Cortés』.


8) 출처 웹 주소: http://es.wikipedia.org/wiki/Tlaxcala_(Estado).
10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이 인용문에는, Tlaxcala 국가명은 원래 Texcallac이었는데, 언어적 혼


란으로 말미암아 Tlaxcala로 변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여기서도 원래
는 자음소 ‘t’ 다음에 ‘l’이 없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스텍제국의 수도인 Aztlan이 원래는 Aztan이라는 것
을 확인할 수 있다. Aztan은 우리말로 ‘아스단’ 또는 ‘아스땅’으로 읽는 것
이 가장 자연스럽다9).

3.1.2. Aztan의 의미 = 하얀 땅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은 아스테카인들의 이야기와 전설을 듣고, 그들의


조상들이 원래 살았던 근원지가 Aztlan, 즉 Aztan 이라고 기록했다. 문자
가 없었던 아스테카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종이에 그림으로 남겼는데, 대
부분은 원본이 사라지고 정복이후의 필사본이다. Boturini 코드도 그 중의
하나로서 16세기 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1) Códice de Boturini의 아스단을 떠나는 장면10)

9) 앞에서 우리말을 스페인어로 표기하면 자음의 단순화 과정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따라


서 스페인어 표기를 다시 우리말로 복구하려면, t가 ‘ㄷ, ㄸ, ㅌ’에 대응하므로, 정확하게
어떤 음소에 해당하는지 추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이외의 많은 증
거 자료들이 아스테카인들이 우리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므로, 이 복구 과정도 우리말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읽도록 하겠다.
10) Kingsborough(1964), 『Antigüedades de México, Vol. 2』, Laminas I-II.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11

위 그림은 아스테카인들이 Aztan을 떠났던 역사를 기록한 그림 중 하


나이다. Aztan에 대하여 그림으로 남긴 모든 문헌들은, 그곳에 위가 평평
한 피라미드를 그려두고 있고11), 그곳을 떠날 때에는 배를 타고 떠난 장
면을 그려두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메리카나 유럽의 대부분의 학자
들은 Aztan이 멕시코 서북부 어느 지역의 섬일 것으로 생각하고서, 고도
의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을 섬을 멕이코와 멕이코 주변 지역에서 오랫동
안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런데, 초기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 현자(賢者)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책이나, 원주민들이 정복전쟁 이전에 남긴 그림문자 문헌을 해석
해 본 바에 따르면, Aztan은 단순한 섬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모든 문헌들은 아스테카인들이 그들의 근원지인 Aztan을 떠난 후,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콜와족의 선조들이 살았던 땅 TeoColhuacan(테오콜와
칸)에 도착하여 한 동안 그곳에서 살았고 - 17세기 초의 원주민 역사가
Torquemada는 이들이 여기서 9년을 살았다고 기록함-, 그 후에 그 땅에
살던 8개 씨족들과 함께 다시 떠나서, 어딘가에 도착한 후에, 배를 타고
Aztan을 영원히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배를 타고 건넌 곳은 큰 바다가
둘로 갈라져 있고, 다시 그 물이 섬으로 수없이 나뉘어져 있는 곳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우리는 아스테카인들이 Aztan을 떠나서 처
음 도착했다는, 그래서 9년을 살았다는 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선조들의

11) 이 피라미드의 모양은 중국 길림성에 남아있는 ‘장군총’의 형태와 비슷하다. 길림성은


고구려와 발해의 옛 영토로서, 위가 평평한 많은 피라미드가 남아 있다. 장군총의 윗부분
은 사각형의 구멍 같은 것이 뚫려있는데, 우리나라 학자들은 그 위에 무엇인가 얹혀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그러한 것이 그려져 있다.
12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한 갈래인 ‘부여’의 영토였을 것이라고 보며, 그 후에 다시 이동하여 배를


타고 떠난 곳은, 지금의 러시아 캄챠카 반도이고, 그들은 알류산 열도를
통하여 배를 타고 떠났을 것으로 추정한다12).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아스테카인들의 Aztan의 뜻은 무엇일까? 아스텍
문화와 역사를 연구한 모든 학자들은 그 뜻이 ‘하얀 땅, 하얀 흙’을 의미
한다는 데 일치하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들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한다.

2) Juan de Tovar의 기록13)


En esta tierra están dos provincias, la una llamada Aztlan, que
quiere decir ‘lugar de garzas’,
yla otra se dice Teoculhuacan, que quiere decir ‘Tierra de los que
tienen abuelos divinos’ ...

이 인용문에서, Aztlan은 ‘백조의 장소(lugar de garzas)’를 의미하고,


Teoculhuacan(테오쿨와칸)은 ‘신성한 노인들이 있는 땅’을 뜻한다고 하고
있다. 어휘의 다양성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동식물의 이름을 사용하여 색
깔을 표현한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백조의 장소’는 ‘하얀 장
소’ 즉 ‘하얀 땅’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어서 보게 되는
Duverger의 설명을 보면 확인 할 수 있다.

3) Cristian Duverger(1978)14)

12) 이 부분에 대하여는 저자가 국내 일부 전문가 선생님들께 검토용으로 제출한 「아메리


카로 건너 간 우리민족의 문화적 문헌적 증거」라는 논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
다. 또, 이 초고를 바탕으로 현재 새롭게 준비 중인 논문에서는 ‘민족 이동의 루트와 역
사적 증거’에 관하여 보다 많은 증거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13) Juan de Tovar(2001), 『Historia y creencia de los indios de México』, 64. 토바르는
신부이자 역사가로서 멕시코 텍스코코에서 1543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원주민과 스페
인인의 혼혈이었고, 아버지는 초기 정복자 장군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들어를 비롯
하여 여러 원주민 언어에 정통하여, 그당시 멕시코의 최고 지성인으로 꼽혔다. 1573년 멕
시코 총독이 원주민의 역사를 기록하여 스페인 왕실에 보고하고자 하여, 예수교단의 주
교에게 부탁하였고, 예수교단은 토바르에게 그동안 수집한 많은 자료들을 주면서 역사서
집필을 부탁하였다. 토바르는 이 자료들과 자신이 직접 여러 지역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
하고, 원주민 노인들의 이야기를 채집하여, 이 역사서를 집필하였다. 이 역사서는 18세기
까지 스페인 왕실에서 보관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4) Duverger, Christian(1987), 『El origen de los aztecas』, 101-102.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13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Duverger는 Aztlan의 어미 ‘-tlan’은 ‘~장


소에, ~가까이에’를 의미한다고 했다. aca-tlan은 ‘갈대 가까이에’를 의미하
고, moyo-tlan은 ‘모기들의 장소’라고 해석하고 있다. 아카(aca)는 멕시코
에서 자생하는 갈대의 한 종류이다.
여기서 우리는 ‘tlan’, 즉 ‘tan’이 ‘~장소에, ~가까이에, ~장소’로 해석되었
음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계속해서 보도록 하자.

이 인용문에서는, Aztlan, 즉 Aztan은 ‘하얀 색의 장소’를 의미하며, 이


것은 초기 선교사이자 학자였던 Durán 신부도 인정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하얀 장소’에서 온 이 아스테카 민족은 ‘하얀 민족’
을 의미한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의 내용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Aztlan(아스들란), 즉 Aztan(아스단)은 ‘하얀 장소’ 즉 ‘하얀 땅’을 의미하
고, 둘째, 이 민족의 이름은 그래서 ‘하얀 민족’ 즉 ‘백의 민족’을 의미한다
는 것이다. Aztlan이 ‘하얀 장소’를 의미한다는 것은 오늘날 아스텍을 연
구하는 모든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아
스텍제국에 도착했을 때, 모든 건물들은 ‘흰 흙’으로 칠해져 있었다. 오늘
14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날 멕이코인들이 흰 옷을 즐겨 입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연유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Aztan(아스단)의 단어 구조를 연구해 보아야 한다. 즉
어느 부분이 ‘하얀’을 의미하고, 어느 부분이 ‘땅, 흙’을 의미하는지 분석해
보아야 한다.

3.1.3. Aztlan의 어미 ‘-Tlan’의 형태 변화

오늘날 멕이코의 수많은 지명들이 ‘~tlan’으로 되어 있다. 특히 역사적


으로 오래된 지명에서 이러한 어미들이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Aztlan, Tenochtitlan, Mixtlan, Tizatlan, Cuauhtitlan 등 매우 많다. 이를
우리말로 읽으면, 모두 ‘~땅/단’이 된다: ‘아스땅/단, 테노치티땅/단, 믹스땅
/단, 티사땅/단, 과우흐티땅/단’
그런데, 이 ‘-tlan’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두 개 더 있다. 바
로 ‘-tlall’과 ‘-tla’이다. 각각 우리말로 ‘달’과 ‘다’로 읽힌다. 우리는 tlall의
예를 앞의 Anderson의 발음 설명 인용에서 이미 보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보기로 한다.

1) tlall(달)= 땅

여기서, tlalli를 ‘땅(earth)’이라고 분명하게 번역하고 있다. 즉, tlalli는


앞에서 본 것처럼 원래는 talli이었고, 발음대로 읽으면 ‘달리’가 된다. 그
런데, 여기서 사용된 어미 ‘-i’는 우리말의 주격조사 ‘이’ 이다. 그 증거는
다음 예문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2) 주격 조사 ‘이’15)

15) Langaker(1984), 『Studies in Uto-Aztecan Grammar』, 4, 9.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15

이 예문은 멕이코 중북부 치와와 지역에서 사는 원주민들의 언어에서


채집된 예문이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우리말이 나오고 있고, 윷도 있으
며, 또 다른 주격조사 ‘가’도 나온다16). 그런데, 이 예문은 앞에서 본 스페
인어 자음소표에 의거하여 읽으면, ‘환이 호세 자빌레’로 읽히고, 그 뜻은
영어 해석이 보여주는 것처럼 ‘환이 호세를(붙)잡았다’이다. 즉 문장 자체
가 우리말 그대로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Huan(환)’ 다음에 나오는 ‘-i’는 우리말의 주격조
사 ‘이’와 정확하게 기능, 위치, 음운 즉 발음까지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
주격조사는 나와들어 방언에 매우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들어를 연구한 아메리카와 유럽 학자들은 인도-유럽어의 문법적 전통에
얽매어 이 주격조사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라틴어와
게르만어로 대표되는 인도-유럽어에는 주격조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17).

16)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이 지역 원주민을 ‘Nanamuri(나나무리)’라고 부르는데, 그


구성은 ‘발(nana) +사람들(muri)’이다. 먼저 muri(무리)라는 말의 뜻은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하는데, 우리말의 ‘무리’와 똑같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람들의 명칭이 결국 ‘발 무
리, 발 사람들’을 뜻하는데, 김한규(2004: 9)도 ‘관자의 발조선(發朝鮮)’이라는 명칭에서
‘발’은 우리민족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17) 주격조사는 특이한 언어요소이다. 이것은 뜻은 없고 오직 기능만 있는 단어로서, 어떤
단어가 주어역할을 하는가를 표기해주는, 즉 주격을 부여하는 역할만 한다. 그런데 영어
나 스페인어와 같은 인도-유럽어에서 주격은 ‘동사 앞’이라는 위치에 의하여 표시된다.
따라서 이런 언어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말의 주격 조사는 ‘전혀 쓸모 없는 사족(蛇足)에
불과한 단어’가 된다. 따라서 인도-유럽어 학자들은 위와 같이 나와들어에 나오는 주격조
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명사의 ‘뜻 없는 어미’ 정도로 이해했다. 전 세계의 수
천여 종류의 언어 가운데, 주격조사를 가진 언어는 오직 네 개 정도라고 한다. 우리말,
일본어, 인도의 드라비다어 정도가 그에 속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또 박은용(1974:
128)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뜻은 없고 기능만 있는 격조사(格助詞)와 같은 것은
다른 외래어(外來語)에서 차용되는 일이 절대 없다. 따라서 나와들어에서 우리말의 주격
조사와 같은 ‘이’와 ‘가’가 모두 나온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스테카인들이 우리민
족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더구나 숱한 어휘가 일치하고, 위 예문처럼 문장 자체가 우리
16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따라서, 위의 나와들어 tlalli는 tlall(달)+i(이)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명


사는 tlall 이고, 위에서 본 대로 원래의 나와들어에서는 t 다음에 l 이 없
었으므로 tall이 된다. 이 단어를 앞에서 본 스페인어 자음소 표에 따라서
읽으면 ‘달’로 발음된다. 나중에 보겠지만, 우리말에서 ‘달’은 ‘땅’의 고어이
다. 결국,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tlall이 ‘땅’을 의미하는데, 그 발음을 스
페인어 자음소 규칙에 맞추어 읽은 결과, ‘땅’을 의미하는 우리말 고어
‘달’이 나왔다. ‘양달, 음달’의 ‘달’이 그것이다.

3) Tla(다, 따) = ‘땅’
‘땅’을 의미하는 나와들어의 세 번째 단어는 ‘tla’이다. 여러 역사서에는
이 단어가 ‘땅’을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를 확인하기 위
하여 1528년에 한 원주민에 의하여 쓰인 것으로 알려진- 원주민이 구술
하고, 스페인 사람이 스페인어 알파벳으로 차음하여 기록한 후 스페인어
로 번역한- Anales de Tlatelolco(다델올곳 연대기)에서 두 가지 예를 인
용하기로 한다.

a) A la puesta del sol llegamos allá(a un lugar) llamado


Chicuicnauhtla.18)
‘태양이 졌을 때, 우리는 그곳 치귁나우흐땅에 도착했다.’
b) Cuando llegaron a Uaxquauhtla, levantaron una piramide de
tierra. allá se quedaron 12 años.19)
‘왁스과우흐땅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흙으로 피라밋을 건설하고, 그곳
에서 12년을 머물렀다.’

이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tla는 ‘땅’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Aztlan은 원래 Aztan이며, 어미 tlan/tan이 ‘땅’을 의미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같은 뜻의 어미가 두 개 더 있다는 것도 확인
하였다. 따라서 Aztan은 ‘az(아스)+tan(단, 땅)’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뜻

말과 일치하고, 문화와 풍습까지 일치한다면, 그것은 그 의미가 매우 중대하다고 할 수


있다.
18) 『Anales de Tlatelolco』, 1948, 5.
19) ibid., 32.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17

은 ‘흰+땅’임을 보았다. 그리고 멕이코에 남아 있는 ‘땅’에 대한 단어는


tlan(단); tlall(달); tla(다)의 세 가지가 있음도 보았다.
여기서, 우리말의 ‘땅’의 고어를 살펴보자. 우리말의 ‘땅’은 서정범(2000,
213쪽)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시대적으로 음운 변화가 일어났다.

4) 우리말 ‘땅’의 음운 변화 과정

닫> 달> 다>  >  > 땅


이 음운 변천 과정과 위에서 살펴 본 나와들어의 세 단어를 비교해 보
면, 다음과 같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괄호 안에는 위에서 확인
한 대로 t 다음의 l 음을 생략한 표기이다.

달 = tlall(tall)
다,  = tla(ta)
, 땅 = tlan(tan)

‘달’이 ‘땅’을 의미한다는 것은 지금도 사용하는 ‘양달, 응달’에서 확인된


다. ‘양달’은 해가 드는 땅을 뜻하고, ‘응달’은 해가 들지 않는 땅을 뜻한
다.
이 비교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말 ‘땅’의 역사적 음운 변화 과정이 멕이
코의 나와들어에 모두 나온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음운 변화는 일반적으
로 매우 긴 세월 속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위의 우리말 ‘땅’
의 음운 변화도 매우 긴 세월동안 이루어 진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렇
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즉 “그렇게 긴 세월
동안 겪은 ‘땅’의 변화 단계가 어떻게 한꺼번에 멕이코 원주민 언어에 남
아 있을 수 있는가?” 이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유일하게 합리적인 것은
‘아스테카인들이 멕이코로 매우 장기간에 걸쳐서 이동해 왔기 때문이다’
일 것이다. 그렇다. 멕이코 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매우 장기간
에 걸쳐서 여러 차례 멕이코로 이동해 왔다. 제일 먼저 온 시기는 기원
후 49~50년 사이이고20), 제1차 대규모 유입은 670년경이며21), 제2차 대규

20) Chimalpain(17세기 초), 『Memorial breve acerca de la fundación de la ciudad de


Culhuacan』, 1991년 판, xxxiv.
18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모 유입은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원래 살았던 Aztlan을 820


년에 출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22). 먼저 온 사람들은 ‘고리족’이고 맨 마
지막으로 온 사람들은 ‘멕이족’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나중에 좀 더 자
세하게 보기로 한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질문은 ‘멕이코에서도 tlall(tall)이 다른 두
형태에 비하여 먼저 사용되었다는 것, 즉 고어(古語)라는 것을 확인 가능
한가?’ 일 것이다. 역시 그렇다. 멕이코의 여러 역사서에 기록된 바에 따
르면, 먼저 온 고리족은 다섯 개 파로 나뉘어 한 파는 중부 지역에 남고,
다른 네 파는 동서남북으로 이동해 갔다고 분명히 기술하고 있다23). 즉
이들 중에 한 파는 남하하여, 지금의 과테말라에 머물며 한동안 살았음이
유적으로 확인된 상태이다. 그 후에 이들에 대한 기록은 역사에서 사라졌
지만, 과테말라보다 더욱 아래에 있는 엘살바도르의 언어에 ‘tal(달)=땅’이
라고 나온다24). 즉 고리족의 일파로서 남하한 집단이 과테말라를 거쳐서
엘살바도르로 더욱 남하했음과 그들은 ‘땅’을 ‘달’이라고 했음을 시사하는
증거이다25).

3.1.4. 고조선의 아사달(阿斯達) = Aztan, 그 뜻과 의의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고, 그 세워진 곳은 아사달(阿斯達)


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사학계는 고조선의 건국 위치가 요동이었다는 사
실에 대하여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아사달이 어느
곳인가 하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아사달이 지명인지, 어떤 지
역의 특성을 나타낸 말인지도 아직 우리는 모르고 있다.
그런데, 아사달을 표기한 한자어 阿斯達은 ‘언덕 아 + 어조사 또는 이

21) ibid., 3.
22) Juan de Tovar, ibid., 10.
23) Duverger, ibid., 234.
24) Universidad de El Salvador(1996), 『Nahuat』, 11.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tal=
tierra. tierra는 ‘땅’을 의미하는 스페인어이다.
25) 고리족이 남하하여 남미까지 갔음을 증거하는 언어적 증거는 매우 다양하게 나온다. 잉
카제국의 언어였던 케추아어에는 주격조사 ‘가’가 매우 규칙적으로 나온다. 그 외 매우
다양한 언어적 증거가 남미의 방대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별도의 많은 연구가 필
요하다고 본다.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19

사 + 도달할 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단어의 조합은 합리적인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명칭을 적은, 당시의 중국인들
이 우리 선조들의 말을 ‘한자로 말소리만 차음’하여 기록했기 때문일 것
이다. 이렇게 한자로 차음하여 기록한 다른 예도 있다. 부여의 고리족을
지칭할 때, 중국의 어떤 문헌은 ‘고리’를 稿離라고 기록했는데, 고리족의
일파인 주몽이 세운 고구려를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 역시 ‘고리’라고 기
록했는데, 이때에는 高麗라고 기록했다26).
‘고리’의 경우처럼, 阿斯達도 한자로 차음하여 기록했을 것이므로, 우리
식 발음 ‘아사달’ 보다는 중국식 발음이 보다 더 정확하게 그 당시의 우
리 선조들의 말을 반영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阿斯達의 중국식 발음
은 ‘아스다’이다.
‘아스다’는 바로 아스테카인들, 즉 자신들을 ‘멕이’족이라고 부른 그들이
원래 살았던 Aztan(아스단)과 거의 완벽하게 발음이 일치한다. 더구나, 국
어 학자들도 ‘아스다’의 ‘다(達)’는 ‘땅’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위에
서 우리가 본 Aztan의 tan이 ‘땅’을 의미한다는 사실과 정확하게 일치한
다. 그렇다면 ‘아스(阿斯)’는 az에 해당할 것이고, 그 뜻은 ‘하얀, 흰’을 의
미할 것이다.

아스(阿斯) = az(하얀)
다(達) = tan, tlan(땅)

결국, 우리는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아사달이 어떤 지명(地名)


이 아니라, 그 지역의 자연 환경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고조선이 건국된 곳은 ‘하얀 땅’ 즉 ‘하얀 흙’이 많은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7).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흰 색을 숭상하고 흰 옷을 즐겨 입어서 ‘백의민
족’으로 불려왔고. 죽어서 장례를 지낼 때에도 ‘흰 흙’, 즉 회(灰)를 그 사

26) 高麗를 우리는 ‘고려’라고 발음하지만, 중국 발음은 ‘고리’이다. 麗를 ‘리’로 발음하도록


기록한 중국 문헌도 있다. 예를 들어 ‘사기(史記)’ 권 6이나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27) 고조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인 것 같다. 고조선은 요동의 흰 흙이 많
은 곳일 것으로 추정된다.
20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체나 관 위에 뿌려주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경상도에서는 관 위에 뿌리


고, 경기도에서는 활관하여 사체 위에 직접 뿌리는 풍습이 아직도 조금
남아 있다. 이것은 평생을 흰 옷을 입고 살다가 죽을 때에도 흰 흙을 덥
고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흰 색을 단순히 좋아하는 단계가 아
니라, 거의 종교적 신념처럼 ‘숭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흰 색’에 대한 강한 애착심의 근원이 민족 최초의 국가가
아스다(阿斯達), 즉 ‘하얀 흙, 하얀 땅’에서 건설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
렇다면, 결국 ‘백의민족’의 진정한 의미는 ‘하얀 땅에서 태어나서 하얀 옷
을 입고 평생을 살다가 하얀 흙으로 되돌아 간다’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진정한 민족 정체성일 것이다.
그런데, 아스테카인들도 자기들을 ‘하얀 땅, 아스단’에서 왔다고 했으며,
그래서 그들의 모든 건축물을 흰 색으로 칠했고, 죽을 때에도 흰 흙을 덮
어주는 풍습이 있었다28). 그들도 ‘백의민족’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앞에서
이미 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아사달의 고조선은 기
원전 7세기경에 건국되어 기원전 1세기에 한나라에 의해서 망했다. 그런
데, 아스테카인들은 820년에 아스단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시간
적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문제는 간단하다. 유목
민의 가장 특징적인 풍습 가운데 하나가, 그 민족에게 가장 의미 있는 지
명(地名)을 어디를 가든지 반드시 가지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29). 820
년은 요동지역의 주체가 발해였던 시대이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인 대
조영(大祚榮)이 건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민족 구성은 매우 복잡
했다. 그 구성원의 일부로서 옛날부터 그곳에 살아 온 ‘고조선의 후예들’
도 있었을 것이다. 또 부여의 고리족에서 내려 와서 고구려를 건설했던
사람들도 이들과 어울려 살면서 같은 민족으로서 공동의 역사의식, 즉 아
스다에 대한 애착과 소중함을 공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스테카의 ‘Aztlan, Aztan(아스단)’은 우리 민족의 아스다
(阿斯達)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단순하게 발음과 뜻에서만 일치하는 것이

28) 손성태(2009), 「아스테카인의 탄생, 육아 및 장례 문화」, 『비교민속학 제39집』, 비교


민속학회.
29) 김운회(2006), 『대쥬신을 찾아서 I, II』.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21

아니라, 이 말에서 유래한 역사의식과 생활방식, 풍습까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30).

3.2. 콜와(Colhua)족 = 고리족

3.2.1. 아스테카족과 고리족의 만남

아스테카인들이 아스다를 떠나서 멕이코에 도착한 시기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매우 다르다. 토바르신부는 902년에 도착했다고 하고, 어떤 신부
나 학자들은 1090년, 또 어떤 학자들은 1116년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
든 아스테카인들이 멕이코에 도착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방랑생활을 한
후 지금의 멕시코시티가 있는 곳에 도착했던 13세기 후반에, 그 곳에는
이미 먼저 온 여러 민족들이 그들의 도시국가들을 건설하여 살고 있었다.
멕시코 역사에는 서북쪽에서 내려온 민족이 7개 민족이며, 이들 가운데
가장 늦게 도착한 민족이 아스테카, 즉 멕이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
스테카인들이 텍스코코 호수 주변- 지금의 멕시코시티가 있는 곳-에 도
착했을 때, 그 주변의 방대한 영토에 있었던 대표적인 도시국가들은
Alcohuacan, Tepanecan, Culhuacan(Colhuacan), Xochimilco, Chalco,
Tlaxcalteco 등이었다. 이곳에 새로운 민족 아스테카의 도착으로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아스테카인들을 몰아내려고 기존 국가들이 연합하여
아스테카인들을 공격함으로서 시작되었는데,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콜와인들은 전쟁 직후에 아스텍인들을 자기 땅으로 데려가 살게 하고, 그
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30) 아스테카인들이 요동 지역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김한규(2004)의 <주25>에 보면, “진상승(陳尙勝)도 민속학의 각도에서(요동의) 조선인의
풍습으로 새숭배(鳥崇拜)가 보편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아스테카인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들을 아스단에서 인도하여 낸 지도자가 후이질로포치들이
(Huitzilopochtli)라는 무당인데, 그 뜻을 스페인 선교사들이 ‘불길한 새’라고 번역했다. 즉
새신앙(鳥信仰)의 무당이 지도자였다. 아스텍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역대 지도자가 바로
‘새 신앙의 무당’이었다. 요동지역에 새숭배(鳥崇拜)가 성행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고조선의 준왕이 기원 2년 전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사람들을 이끌고 배를 타고 서
해안으로 내려와 한반도 남쪽에 정착하였는데, 오늘날 한반도에 남아 있는 솟대의 분포
를 보면 90% 정도가 영남과 호남지역에 있다(이필영, 1990: 21).
22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멕시코의 모든 역사서에서는 아스테카인들과 콜와인들은 원래 같은 민


족이었고, 풍습이 같았으며, 언어도 같았고, 그들의 조상들이 원래 살던
곳도 서로 인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아스테카인들의 아스단(Aztlan)
과 콜와인의 조상들이 살았던 신성한 콜와칸(Teo Colhuacan) 또는 옛 콜
와칸(Huey Colhuacan)은 서로 마주 보는 가까운 지역으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스텍제국을 연구한 학자들은 아스단이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옛 콜와칸이 어디였는지도 찾지 못하였다. 역사가
들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가장 놀라운 기록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아스테카인들과 콜와인들이 서로 같은 민족임을 인정하고, 만나자 마자
일반 백성들이 서로 결혼도 하고 왕래도 하면서 살았고, 아스테카인들은
그들의 국가를 건설하자마자 콜와국에 가서 콜와의 왕자를 데려와서 초
대 왕으로 삼았으며, 나중에 이 두 나라는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어 아스
텍제국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16세기 스페인 신부들과 역사가들은 아스텍의 옛 문헌과 그림, 그리고
구전되는 이야기를 통해서, 아스테카인들이 아스단을 출발하여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콜와인들의 조상들이 살던 옛 콜와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
다.
그렇다면, 우리는 콜와인들은 누구이길래 아스테카인과 서로 같은 민족
임을 알아보고, 그들의 조상들이 서로 이웃해 살았다고 했는가 하는 질
문과,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옛 콜와칸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그렇다. 콜와인들은 바로 우리 선조들의 한 갈래였던 ‘고리’족
이었으며, 옛 콜와칸은 ‘고리족이 살던 곳’ 즉 부여를 의미한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3.2.2. Colhua(콜와) = ‘고리’ 의 증거

1) ‘콜와’는 ‘고리’에서 변한 말이다.31)

31) Davies, Nigel(1980), 『The Toltec Heritage』, 23.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23

이 인용문을 보면, Culhua(쿨와) 또는 Colhua(콜와)는 Colli(고리)라는


말에서 왔으며, 고리는 ‘할아버지’를 의미하고, 쿨와칸은 ‘할아버지가 사는
장소’ 또는 ‘조상들이 사는 장소’라고 한다32).

2) ‘고리’는 둥글게 휘어진 물건을 가리킨다.33)

이 인용문은 ‘고리(Colli)’가 ‘둥글게 휘어진 물건’을 가리킨다고 분명하


게 설명하고 있다.

3) 쿨와칸은 ‘둥근 언덕(낮은 산)’을 의미한다.34)

이 인용문에서는, 콜와(Colhua)인들이 사는 쿨와칸(Culhuacan)은 ‘봉우


리가 둥근 언덕 또는 낮은 산(cerro encorvado)’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
다.

4) 고리(colli)와 고리(coli)35)

32) 이것을 처음 해석한 사람은 Eduard Seler(1859-1922)이다. 그는 독일 베를린의 인종박


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1887년부터 멕이코와 중미의 언어와 고고학을 연구하
여, 신비한 마야 문헌을 최초로 해석해내기도 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연구는 아스텍과
중미 연구의 기본 바탕이 된다고 한다. 그는 특히 실증적 증거를 매우 중요시하여, 아시
아와 아메리카 문화가 서로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증적 증거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33) Duverger, ibid., 124.
34) Kingsborough(1964), 『Antigüedades de México』, Laminas XIX-XX.
24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Duverger는 colli가 ‘고리’를 의미하고,


coli는 ‘조상, 할아버지’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이 두 단어를 구별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이 네 개의 인용문의 내용을 요약하기 전에 먼저 용어부터 검
토해 보자. 인용문(1)에서는 colli가 ‘할아버지, 조상’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인용문(4)에서는 coli가 그렇다고 하고 있다. 인용문(2)와 4)는 colli가 ‘둥
글게 휘어진 물건’을 가리킨다고 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colli와
coli가 혼용되어 있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언어적 모든 자료는 원주민
의 말을 듣고 스페인어로 차음하여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단어는
별개의 단어가 아니라, 원주민의 말을 차음하여 적는 과정에서 생긴 이음
(異音)일 것이다. 또 콜와인들이 살던 곳을 Culhuacan이라고도 하고
Colhuacan이라고도 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잠시 이 언어적 문제부터 설명하기로 한다. 이 문제는 아스테카
인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매우 중요한 언어적 증거이기도 하고, 외국
어 입장에서 본 우리말의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645년 Carochi 신부는 아스테카인들의 나와들어에 관한 최초의 문법
서를 멕이코에서 썼다. 그 문법서에 의하면, 아스테카인들의 말은 모음
‘u(ㅜ)’와 모음 ‘o(ㅗ)’가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고 했다36). 이 이유 때
문에 위에서 본 것처럼 아스테카인의 말을 차음하여 기록한 모든 문헌에
서 이 두 모음이 혼동되어 기록되어 있다.
아스테카인들이 우리민족이고, 그들의 말이 우리말이라는 우리의 논지
를 유지하려면, 이 혼동의 문제도 우리말의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우리말과 스페인어의 모음 체계를 비교해

35) Duverger, ibid., 139.


36) Carochi(1979), 『Arte de la lengua mexicana』, 1-2.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25

보기로 한다. 이를 위하여 아래에서 우리말의 모음 사각도와 스페인어의


모음 삼각도를 비교해 보자37).

여기서 우리말의 모음 ‘ㅜ’는 스페인어 모음 ‘u’에 대응하고, 우리말의


모음 ‘ㅗ’는 스페인어 모음 ‘o’에 대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
리말의 모음 ‘ㅗ’의 발음위치를 스페인어 모음 ‘o’의 발음 위치와 비교해
보면, 우리말의 모음 ‘ㅗ’가 스페인어 ‘o’보다 훨씬 위에, 즉 훨씬 더 모음
‘ㅜ’에 가까운 위치에서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의 모음 ‘ㅗ’는 모음 ‘ㅜ’와 마찬가지로 원순모음(圓脣母音)이고,
스페인어에서는 모음 ‘u’만 원순(圓脣)이고, 모음 ‘o’는 평순(平脣)이다. 바
로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우리와 같은 발음 특징을 가진 아스테카인들의
발음을 스페인 사람들은 ‘ㅗ’라고 하는지 ‘ㅜ’라고 하는지 잘 구별하여 알
아듣지 못하였고, 결과적으로 모든 문헌 기록에서 Colhuacan/ Culhuacan,
Colhua/Culhua, Xochimilco/ Xuchimilco, Tenochtitlan/Tenuchtitlan 처럼
혼동하여 적었던 것이다38). 이렇게 스페인 사람들이 아스테카인들의 말을
듣고 일으켰던 언어적 혼동의 원인을 우리 모음 체계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언어적 증거일 것이다.

37) 우리말의 모음소는 장·단모음의 구별과 이중모음의 발달로 매우 많다. 여기서는 본 연


구에 필요한 일부만 표시한다. 나와들어에도 장·단모음 구별이 있다.
38) 이것을 아스테카인들이 우리민족이라는 또 하나의 강력한 증거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러한 음운적 차이점도 같은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
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본 연구자가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 선교사들도 영어에서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한국인의 모음 ‘o’ 발음과 모음 ‘u’발음을 미국인들이 잘 구별
하여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26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따라서, 위의 콜와칸(Colhuacan)/쿨와칸(Culhuacan) 중에서 아스테카인


들이 어떤 것을 발음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같은 지명을 기록했다
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위에서 인용한 네 개의 인용문의 내용을 요약
해 보자.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 ‘Culhua/ Colhua’는 ‘고리’라는 말에서 왔으며, 그 뜻은 다음 세 가지


이다.
a) 휘어진 물건
b) 둥근 언덕, 봉우리가 둥근 낮은 산
c) 조상이나 할아버지

16세기 전반기에 기록된 보투리니 코드(Códice de Boturini)에는 콜와


족이 살던 곳을 아스테카인들이 그림문자로 다음과 같이 그려 두었다39).

이 그림은 낮은 언덕 산 위에 ‘고리’ 모양을 그려서, 콜와족이 살 던 곳


을 표시한 것이다. 바로 Colhua의 어원인 Colli/Coli가 ‘둥글게 휘어진 물
건’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 Colhua족이 우리말
뜻 그대로의 ‘고리’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문자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산 위의 휘어진 부분은, 우리민족이 ‘고리’라고 칭하는 물건의 모
습이다.
또 위에서 보았듯이 colli/coli는 산 봉우리가 둥근 모습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우리말의 고리도 봉우리가 둥근 산을 의미했다. 그 증거는 다음
사진으로 알 수 있다.

39) Kingsbourough, ibid., Láminas XIX-XX.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27

사진 왼쪽은 충북에 있는 환산, 즉 고리산이고, 사진 오른쪽은 2001년


에 세운 이 산의 소개비이다. 그 내용에는 ‘환산의 옛 이름은 고리산’이라
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고리산의 봉우리가 둥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colli/coli가 ‘할아버지, 조상’을 의미한다는 증거를 우리말에
서 찾아보자. 우리말에는 ‘고리타분한’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어
떤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나타낸다. 사
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은 ‘할아버지나 노인’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고리타분한’의 ‘고리’는 할아버지나 조상을 의미했을
가능성이 있다40)41).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colli/coli가 우리말의 고리의 뜻과 정확하
게 일치함을 보았다. 그리고 앞에서 본 우리말과 스페인어의 자음소표를
대응시켜 보면, colli/coli는 ‘고리’로 발음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다시
설명하면, 우리말의 자음소표에 따르면, 자음 ‘ㄱ, ㄲ, ㅋ’은 파열 연구개음
이고, 이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파열 연구개음소는 /k/이지만, 스페인어 알

40) ‘고리타분한’이라는 말 자체가 ‘고리답은>고리다운’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보인다. 또


우리말에는 이 말과 뜻이 거의 같은 ‘구리타분한’도 있다. 이것도 어쩌면 우리말의 모음
‘ㅗ’와 ‘ㅜ’가 너무 가깝게 발음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말에는 ‘나모/나
무, 삼촌/삼춘, 졸졸새다/줄줄새다, 콜콜자다/쿨쿨자다’처럼 이 두 모음의 혼동 예가 상당
히 많이 존재한다.
41) ‘고리’라는 말이 ‘할아버지’라는 뜻까지 내포하게 된 것을 사전언어학의 의미메타포(은
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고리’가 의미하는 ‘둥글게 휘어진 모습’은 할아버지의 ‘둥글게 휘
어진 허리’의 모습과 메타포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에는 ‘산허리’라는 말도 있
다.
28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파벳 체계에는 알파벳 k가 원래 없어서, 이 음소는 모음 a(아), o(오), u


(우) 앞에서는 알파벳 ‘c’로 표기된다. 또 16세기 당시에는 음성·음운론적
지식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스페인어에는 평음소, 경음소, 격음소의
구별도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co가 우리말의 ‘고’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
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아스텍제국의 모든 역사서에서 아스테카인들이 그들의 근원지
인 ‘아스단’을 떠나서 처음 도착한 곳이 Colhua족, 즉 colli/coli(고리)족의
조상들이 살던 땅이었다고 기록한 대목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배를 타고 떠난 곳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를
향하여 가기 위해서는, 옛 고조선이 있었던 발해의 요동지역에서 제일 먼
저 도착할 곳이 옛 부여, 즉 고리족이 살던 땅이기 때문이다. 또, 아스테
카인들이 처음 지금의 멕시코시티 지역에 도착하여 전쟁이 일어났을 때
에도, 왜 Colhua족이 그들을 같은 민족으로 알아보고 자기 땅으로 데려가
살게 해 주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 자신이 ‘고리’족이었기 때문이
었을 것이다.
그리고 Colhuacan/Culhuacan의 어미 ‘-can(간)’이 장소를 가리키는데,
우리말에도 장소를 가리키는 예가 분명히 있다: 정지간, 헛간, 곳간, 뒷간,
대장간 등.

3.3. 멕이코(México) = 멕이족이 사는 곳

3.3.1. 멕이(Mexi)의 뜻

오늘날의 멕시코라는 국가 명칭을 멕시코 인들뿐 아니라 모든 스페인


어권 사람들은 ‘멕시코’라고 하지 않고 ‘멕이꼬’ 또는 ‘메히꼬’라고 발음한
다. 이 명칭은 원래 아스텍제국을 일으킨 아스테카족에서 유래했다. 아스
테카인들은 자신들이 ‘Aztan(아스단)’에서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스단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신들을 아스테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스단을 떠
난 후 이동의 어느 시점에서 아스테카라는 명칭 대신에 자신들을 ‘멕이카’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방황과 유목 생활 끝에 마침내 1325
년 텍스코코 호수-지금의 멕시코시티 지역-의 섬에 자신의 나라를 세우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29

고, 그곳을 Tenochtitlan(테노치티땅) 또는 멕이꼬(México)라고 부르기 시


작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멕이꼬’라는 명칭이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명칭
‘멕이’와 우리말의 장소를 가리키는 ‘곳’이라는 증거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Mexi에 대한 기록42)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Aztlan, 즉 아스단을 떠날 때 최초의


우두머리가 Mexi였다고 기록하고 있다43).

2) Mexicano라는 말은 Mexi에서 왔다44).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늘날 멕이코인을 지칭하는 Mexicano라는


말이 Mexi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3) México는 ‘멕이+곳’ 의미한다45).

42) Juan de Tovar, ibid., 10.


43) 이 인용문에서도 Aztlan을 섬으로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남긴 아스텍의 모든
역사서에는 Aztlan을 섬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배를 타고 물을 건너서
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초기 스페인 사람들은 그들이 그 옛날에 바다를 건너서 이동했으
리라고는 상상을 못했고, 따라서 가까운 어느 섬에서 살다가 왔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이다.
44) Juan de Tovar, ibid., 70.
45) Juan de Tovar, ibid., 84.
30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이 인용문은 오늘날의 멕이코라는 국가 명칭 México가 ‘멕이사람의 장


소’를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스페인어 lugar는 장소(場所)
를 뜻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순 우리말은 ‘곳’ 또는 ‘땅’이다. 다음 예문의
대응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장소/ 곳/ 땅/에는 무엇을 심을까?

México는 ‘Mexi +co’로 구성되었으므로, 이 어미 ‘co’는 앞의 자음소표


에 따라서 대응해 보면 우리말의 ‘곳’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곳’
의 받침 ‘ㅅ’의 표기에 대하여는 다음 예문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낫+으로 → 나스로
이 곳 + 이, 에 → 이 고시, 이 고세
좋+으니, 아 → 조흐니, 조하

이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말의 받침은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바로


뒤의 말과 결합하게 되므로,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받침을 정확하게 받
아 적을 수 없다. 더구나 스페인어나 영어에서는 낱말의 받침 개념 자체
가 없고 표현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아스텍인들의 나와들어를 기록한
모든 문헌은 신대륙 발견이후 스페인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알파벳
으로 차음하여 받아 적은 것이다. 따라서 ‘곳’을 ‘co’로 표기한 원인은, 첫
째, 위와 같은 우리말의 화용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고, 둘째, 낱말의 받
침 개념 자체가 없는 스페인어의 언어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매우 드물게 이 받침 ‘ㅅ’을 살려서 ‘곳’ 즉 ‘coc’으로 표기한 예가 있기는
하다46).

이 예문의 뜻은 ‘... 9년을 머문 뒤에 그들은 그곳을 떠나서 Chimalcoc


에 머물렀다’이다47). Chimalcoc이 지명(地名)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며, 나

46) 『Anales de Tlatelolco』, 33.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31

와들어에서 chimal(치말)은 ‘방패’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지명은


‘chimal+coc’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고, 지명이라는 사실을 고려하고,
앞의 자음소표로 대응해 보면, coc는 우리말의 ‘곳’에 해당함을 알 수 있
다.

4) Mexi의 다른 이름48)

이 인용문은 여러 가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원주민 국가들 중


하나였던 테파네카 왕가의 후손으로서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역사 기록
을 남긴 테소소목(Tezozómoc)의 기록을 인용하여, Mexi(멕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Mexi의 다른 이름은
Chalchiuhtlatonac이었으며, 늙은 왕 Motecuhzoma의 작은 아들이었고, 아
스단을 떠날 때의 멕이 사람 아스테카(azteca mexitin)의 길 안내자 역할
을 했다고 한다. 또 그의 이름을 Mexi 또는 Meci로 기록하고 있다. 또
사하군(Sahagún) 신부가 쓴 유명한 문헌 플로렌틴 코드(Códice
Florentino)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Meçitli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도 밝
히고 있다. 그런데 나와들어에서 어미 ‘-tli’는 아무런 뜻이 없는 요소이다.
따라서 사하군 신부는 Meçi라고 기록했다고 보아야 한다49).

47) 이 예문의 번역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느껴진다. ‘~를 떠나서 ~에서 머물렀다’라는 표현


은 성경에서 매우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 문헌의 원문은 나와들어를 받아 적은 것
이지만, 그것을 스페인어로 번역할 때에 사용된 표현은 성경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 아스텍의 문헌을 기록하고 번역한 사람들이 카톨릭 신부들이었다는 것을
‘언어 뉘앙스’에서 찾을 수 있다.
48) Duverger, ibid., 148.
49) 간단히 설명하면, ‘-tli’는 ‘tl +i’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각각은 우리말의 복수형 어미 ‘들’
과 주격조사 ‘이’에 해당한다. 나와들어에서 복수형어미 ‘tl’은 처음에는 복수형 어미로 사
용되었으나, 나중에 그 뜻을 잃어버리고 거의 모든 명사에 뜻 없는 어미로 붙여 사용되
었다. 예를 들어, Tezozomoc을 Tezozomoctli라고도 했다. <참조: Anderson, ibid., 13; 위
키 사전 인터넷 판 http://es.wikipedia.org/wiki/Mexico> .
32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5) Eduard Seler의 해석50)


1576년에 기록된 오빈코드(Códice de Aubin)를 해석한 Eduard Seler에
따르면, 아스테카인들이 ‘멕이’로 이름을 바꾼 시기는, 그들이 처음으로 선
인장이 서 있는 곳에서 포로 세 명-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을 잡
은 직후였다.

이 모든 내용을 요약하면, 오늘날의 국명 México는 ‘Mexi +co’로 구성


된 말이며, 그 뜻은 ‘멕이의 곳’, 즉 ‘멕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Mexi는 그 이름의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고, 아스테카인들의 이동 시작과
연관되어 있으며, 초기 이동의 안내자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azteca
mexitin이라는 용어를 볼 때 아스테카인은 처음부터 mexitin(멕이 사람)
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51).

3.3.2. 맥이(貊夷)족

그런데 신용하(2005)는 ‘다시보는 한국역사, 고조선 아사달 문명’에서


우리민족 가운데, 요동지방에 거주하였던 사람들을 후한서(後漢書)에는
맥이(貊夷)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52).

맥족은 지금의 요하(이전 이름 패수) 중류에서 기원하여 요동·요서와


동으로는 송화강, 압록강, 대동강 유역까지 넓게 퍼져 살던 곰 토템 부
족이다. 모계 중심 유목문화와 옥문화를 발전시키고 적석총을 남긴 신

50) Seler(1991), 『Collected works in Mesoamerican Linguistics and Archaeology』,


20-21.
51) 멕이코의 국가 명칭을 일부 문헌에서는 ‘달의 배꼽’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México가 metztli(달)+xictli(배꼽)으로 구성되었다고 분석한, 1880년에 멕이코에서 발간된
백과사전 「México a Través de los Siglos」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의견은 이 두 단어의
형태소 결합을 제대로 설명 못한다. 즉, 이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어미 ‘-tli’는 <주42>
에서 설명했듯이 아무런 뜻이 없으므로 빼고, metz와 sic의 결합으로 metz +sic이 되고,
여기서 일단 tz와 c가 각각 탈락하고, 장소를 나타내는 co가 결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점은 왜 이 두 요소가 탈락했는가를 설명 못한다. 그래서 위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도 이 설명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시하고, ‘멕이의 곳’이라는 해석이 옳다고 한다. 정
복 초기의 스페인 신부들도 이 뜻으로 기록하고 있다고도 밝히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http://es.wikipedia.org/wiki/Mexico를 참조하기 바란다.
52) 신용하(2005), 『한국 원민족 형성과 역사적 전통』.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33

석기 부족으로, ‘후한서’ 등에 ‘맥이(貊夷)’ ‘웅이(熊夷)’라고 기록되어 나


온다.

우리는 여기서 아스테카인들이 옥을 매우 중요시하고 옥문화 발전 시


켜 갔으며, 옥을 구하기 위하여 매우 먼 과테말라 남쪽까지 찾아 갔으며,
옥으로 비녀까지 만들어 사용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주목
할 점은 후한서가 4세말~5세기 중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시기에 요동지역의 우리민족을 ‘멕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앞에서 아스테카인들이 떠나 온 곳이 ‘아스단’이고, 이 명칭은
고조선의 ‘아스다’와 일치하며, 그들의 첫 이동 루트도 부여의 고리족이
살던 곳과 일치하고, 콜와(Colhua)의 어원인 ‘고리(Colli/Coli)’의 뜻과 발
음도 부여계 선조들의 명칭인 ‘고리’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렇다
면, 아스테카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가리켜 사용한 Mexi(멕이)라는 명칭
이 방금 본 ‘멕이(貊夷)’와 우연의 일치일까? 그럴 수는 없다고 본다. 앞
에서 보았듯이 ‘땅’과 같은 말은 역사적 음운 변화 단계마저 아스텍의 나
와들어와 일치하고 있고, 일부 문장마저도 우리말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좀 더 흥미로운 증거들을 뒤에서 보기로 한다.

3.3.3. ‘-co’ = ‘곳’ 이라는 기타 증거

우리는 앞에서 México의 ‘co’가 우리말의 ‘곳’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았


다. 이것에 대한 증거는 아스텍 역사서에 매우 많이 나온다. 여기서는 아
스텍 역사서에 나오는 예들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증거를 보도록 하겠다.
Juan de Tovar는 그의 역사서에서 신대륙 발견 이전에 서북쪽에서 텍
스코코 호수가로 내려와서 각자 자기 나라를 건설한 민족들과 그 국가
명칭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우리는 7개의 초기 이동 민족들 중에
일부만 보기로 한다53).

Chalca(찰가) - gente de las bocas(입의 사람들)

53) Juan de Tovar, ibid., 66-68.


34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Chalco(찰고) - lugar de las bocas(입의 곳, 입의 사람들이 사는 곳)


Xuchimilca(수치밀가) - gente de las sementeras de flores(꽃밭의 사
람들)
Xuchimilco(수치밀고) - lugar de las sementeras de flores(꽃밭의 곳)
Tepaneca(테파네가) - gente del puente o pasadizo de piedra(돌다리
사람)
Azcapotzalco(아스카포짤고) - hormiguero(개미굴, 개미 곳)

이 예들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ca’는 사람을 뜻하고, ‘co’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서, 우리말 ‘고, 곳’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지명은
Azcapotzalco이다. 이 지명은 Azcaputzalco라고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
유는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모음 ‘o’와 모음 ‘u’의 혼동 때문이다. Juan
de Tovar는 이 지명을 ‘개미굴’이라고 해석했다. Azcaputzalco는 ‘아스카
푸잘고’로 발음된다. Azca는 ‘개미’를 뜻하는 말이고, ‘-tzalco’은 ‘tzal +co’
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co’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서 우리말
‘곳’과 일치한다. ‘tzal’의 tz는 파찰 경구개음이므로 우리말의 ‘ㅈ, ㅉ, ㅊ’
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말의 ‘ㅊ’은 스페인어의 음소 /c/와 정확하게 일
치하고, 스페인 알파벳체계에서 이 음소는 항상 ch로 표기된다. 16세기
문헌에서 이 두 음소가 구별 없이 사용된 경우가 많아서 뚜렷하게 구별
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현대 스페인어 음성·음운론으로 보면 ‘ㅊ’
음은 스페인어에서 ch 소리에 가깝고, ‘ㅈ, ㅉ’ 음은 tz 소리에 가깝다고
구별해 볼 수 있다. 따라서 tzal의 발음은 ‘잘’ 또는 ‘짤’로 읽을 수밖에 없
다.
자음소 p는 파열 양순음이므로, 우리말의 파열 양순음 ‘ㅂ, ㅃ, ㅍ’중의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putzalco는 우리말의 ‘푹잘곳’으로 발음된
다54).
이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한 가지 해보아야 한다. 우리민족이 한자어
를 받아들인 것은 대략 4세기 말~5세기 초로 보고 있고, 중국이라는 이민
족의 언어를 일반 평민들까지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하게 받아들여서 사용

54) 물론 이 단어는 각 음소의 대응 가능성에 따라서 ‘북잘곳, 뿍잘곳, 푹잘곳...’등으로 발음


될 가능성도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우리말과 연관성 탐구라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으
므로, 여타 다른 발음 가능성은 일단 접어둔다. <주9> 참조.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35

했다고 가정하기는 어려우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시해 보아야 한다.


만약 한자어를 모르는 서민들이 ‘개미굴(窟)’의 굴(窟)을 어떻게 말했을
까? 순 우리말을 사용하여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마도 ‘푹 잘 곳’일 것이
다. 이런 경우는 아스텍의 나와들어에 적지 않다. 예를 들어서 지옥(地獄)
은 우리 민족의 샤머니즘적 정신세계를 고려해 볼 때 매우 오래된 말일
것이다. 그런데 위와 똑 같은 방법으로, 한자어를 모르는 서민들 또는 한
자어 도입 이전에 우리민족은 무엇이라고 했을까? 나와들어에 흥미로운
대답이 있다. 나와들어에서 지옥을 ‘Mictlan’이라고 한다. 앞에서 검정한
바와 같이 tlan은 ‘땅’이다. 따라서 Mictlan은 ‘밑 땅’이 된다. 지옥은 땅
속 깊고 어두운 어느 곳에 있을 것으로 믿어 온 우리민족은 지옥을 ‘밑
땅’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아스텍 제도에 나타나는 우리말

4.1. Tlamatini(다마틴이) = 점쟁이

우리는 이제 언어적으로 매우 놀라운 일치를 보여주는 말을 살펴보기


로 한다. 아스텍인들은 점(占)쟁이를 Tlamatini 라고 했다. 이 말을 앞의
자음소표와 지금까지 논증해온 바에 따라서 읽으면 ‘다마틴이’로 발음된
다.

1) Tlamatini의 뜻55)

이 인용문은 아스텍제국의 노인들이 남겨 놓은 금언집으로 알려진


Huehuetlatoli(왜왜다돌이)에서 발췌한 것이다. 여기서 tlamatini의 뜻을

55) 『Huehuetlatoli: Testimonios de la antigua palabra』, 9.


36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아맞히는(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번역해


두고 있다. 이 말이 우리말이라면 그 구성은 ‘다 +마티+ㄴ+이’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 단어의 각 형태소를 나와들어 사전에서 찾아보기로 한
다56).

2) tla(다)의 뜻57)

여기에서 보듯이, tla(다)는 대명사(pron.)로서 사물(cosa)를 대신해서


사용하고, 물건의 량(cantidad)을 나타낼 수 있고, 또 때때로 두 번 반복
하여 사용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3) mati(마티)의 뜻

mati 는 ‘알다(saber), 알아차리다, 깨닫다(informarse)’의 뜻이라고 설명


하고 있다.
따라서, tlamatini는 그 의미 구조가 다음과 같다.

tla: las cosas(여러 가지 사실들)


mati: saber, informarse(알다, 깨닫다, 알아차리다)
n: 뜻이 없음

56) Siméon(1999),『Diccionario de la lengua Náhuatl o mexicana』, 1885년 초판 발행,


549.
57) 앞에서 본 ‘땅’을 가리키는 tla도 이 항목 바로 다음에 예문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acatla를 ‘lugar lleno de cañas(갈대로 가득찬 장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aca는 멕
이코에 자라는 갈대의 일종이다.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37

i: el que ~(~한 사람)

이 말을 위에서 본 우리말 자음소표와 스페인어 자음소표를 바탕으로


대응을 해 보기로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형태소가 대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la + mati + n+ i
다 마티 ㄴ 이

우리는 이 대응 관계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전체적인 명사구의 뜻이 일치한다. (의미론적 일치)


tlamatini = 다 마틴 이 = 모든 것(여러가지 사실)을 알아맞히는 사

2) 각 형태소, 즉 단어의 뜻과 발음이 일치한다.: (형태소적 일치)
tla = 다, mati = 마티 (마치), i = 이 (사람)
3) 그 배열순서, 즉 어순이 일치한다. (통사론적 일치)
4) 각 단어의 품사적 기능이 일치한다. (문법기능적 일치)
어순이 ‘목적어+동사+관형사형 어미 +행위자 주어’로서 정확한 우리
말 어순이다.
5) 뜻이 없는 음운소 ‘ㄴ’의 첨가와 그 기능이 일치한다.
(음운론적 일치)
6) 구개음화가 일치 한다: ㅌ> ㅊ (역사적 음운 변화 과정의 일치)

동사에 관형사형 어미 ‘́
ㄴ/n’을 첨가하여 뒤에 오는 명사를 수식하게
한다. 이것은 우리말만이 가지고 있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예를 들어;

가다 → 간 사람
보다 → 본 사람
38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주17>에서도 밝혔듯이, 뜻은 없고 기능만 있는 말은 다른 외래어, 즉


다른 민족의 언어에서 절대로 차용되지 않는다는 언어적 특징을 고려하
면, 이 관형사형 어미의 일치는, 이것만으로도 아스테카인들이 우리와 같
은 민족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될 수 있다.
우리말에서 자음 ㄷ, ㅌ은 역사적 음운 변화를 거쳐서 ㅈ, ㅊ으로 변했
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나와들어가 우리민족의 말이라면, 우
리의 옛 말과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말 ‘마치(다)’의 고어는 ‘마티’이
므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방금 하나의 구(句)의 일치를 보았다. 비록 단어 3개와 뜻 없는
문법소 1개로 구성된 말이지만, 언어학적 분석을 통하여 검증된 이러한
일치는 다른 민족 간에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아
스테카인들이 우리민족임을 주장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앞에서 했던 대로 같은 질문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한자
어를 모르는 우리선조들은 ‘점(占)쟁이’를 무엇이라고 했을까? 점(占)은
샤머니즘적 종교와 연관된 개념이므로 매우 오래된 말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선조들은 분명히 점쟁이에 해당하는 순 우리말을 가지고 있었을 것
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다마틴이’ 즉 ‘다 마티는 이’라고 했을 가
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반론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즉, 언어 간의 우연의
일치도 가능하다는 주장의 한 예로서, 흔히 영어의 many와 우리말의 ‘많
이’를 든다. 우리는 이것을 위와 같은 자음소표를 이용하여 음운대조를
해보기로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대조된다.

많이 / mani/
many /meni/

언뜻 보기에 음운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말의 ‘많이’는 ‘많+


이, 게, 아서→많이, 많게, 많아서’에서 보듯이, ‘많다’는 의미는 ‘많’에 있
고, 어미 ‘이’는 아무런 뜻이 없는 기능적 요소로서, 형용사 ‘많다’를 부사
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같은 방법으로 영어 many를 ‘ma+ny’로 나누
어 보면, ‘ma’에는 ‘많다’는 의미가 없고, ‘ny’도 부사화 기능이 없다는 것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39

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많이’는 부사이지만, many는 형용사이다.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많 + 이
(‘많다’의 뜻) + (부사화 기능)
ma + ny (또는 man +y)
(뜻없음) + (아무런 문법적 기능 없음)

이렇게 형태소적 비교를 해 보면, 우리말의 ‘많이’와 영어의 many는 전


혀 관련이 없음을 매우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예는 전혀 반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민족의 말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위와 같이 음운적 대응,
형태소적 대응, 문법 기능적 대응, 의미적 대응, 문장 구조적 대응 등 모
든 대응에서 일치해야 한다. 우리는 앞의 ‘tlamatini/다마틴이’에서 이러한
일치를 보았다58).

58) 우리는 여기서 나와들어의 정식 명칭을 검토해 보자. 나와들어의 정식 명칭은


Nahuatlatoli(나와다돌이)이다. 이 말의 정확한 구성이나 뜻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
부 학자들은 이 말이 Nahua+tlatoli로 구성되어 있고, tlatoli가 ‘말, 언어’라는 뜻으로 판단
하고, lengua nahua(나와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또 일부 학자는 Nahuatl+atoli로 분석
하고, atoli가 ‘말, 언어’라는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lenhua nahuatl(나와들어)이라는 용어
를 사용한다. 프랑스 학자 Launey(1979: 5)는 Nahuatlatoli를 ‘ langue claire(분명한 말)’
이라는 뜻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런데, 이 말을 우리말 음소표에 따라서 읽으면 ‘나와다
돌이’가 된다. 즉 이 말은 ‘나와 다들이’로 이해될 수 있다. ‘들(tl)’이 여기서 ‘tol’로 표기
된 것은 차음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차이로 보이고, 마지막 모음 ‘i’는 앞에서 이미 설명
한 주격조사 ‘이’에 해당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 말은 ‘나와 다들이~한다’라는 표현의 주
어로 사용되었던 말 같다. 우리는 여기서 이 단어의 차음 과정을 상상해 보자. 처음 아스
텍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그들이 어디서 왔는가?’였다. 이 질문
은 곧 ‘너희들은 무슨 말을 하느냐?’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스페
인어, 프랑스어, 독일어’처럼 국가 개념을 바탕으로 대답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앞에
서 보았듯이, 아스텍 제국의 각 부족들은 국가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 도시국가를
세우고, 그 명칭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불렀다. 멕이족은 ‘멕이고’로, 찰족은 ‘찰고’로
불렀다. 따라서 이 원주민들이 ‘너희들은 무슨 말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
답할 수 있었을까? 언어 명칭 개념 자체가 없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가능한 대답
중 하나가 ‘나와 다들이 그렇게 말한다’ 일 것이다. 이 대답을 원주민의 말을 모르는 스
페인 사람들은 언어명칭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호주에 유럽인들이 처음 도착하여, 두
발로 뛰는 짐승을 보고,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호주 원주민들은 ‘모른다’라고 그들
의 말로 ‘캥거루’라고 대답했다. 유럽인들은 그 동물의 이름이 ‘캥거루’라고 하는 줄로 알
아들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캥거루가 생겼다. 아스테카인들의 ‘나와다돌이’도 또 하나의
캥거루는 아닐까? 첫 음절의 ‘na’가 우리말 1인칭 ‘나’이고 둘째 음절 ‘hua’가 공동격 조
40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4.2. Tlatoani(다도안이) = 다 도와주는 사람

아스텍제국에서는 왕을 다도안이(Tlatoani)라고 불렀다. 이 말의 뜻을


아스텍 역사가들은 아직까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우리
말로 분석하면 그 뜻이 ‘모든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 또는 ‘모든 것을 도
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말의 형태론적 구조는 우리가
방금 본 ‘다마틴이’와 같다.

Tla + toa + n + i
다 도아 ㄴ 이

Tlatoani가 위에서 말한 우리말의 뜻이 맞다고 할 수 있는 증거가 있


다. 아스텍 역사를 정리한 Juan de Tovar 신부의 기록에, 아스테카인들이
처음으로 자기 나라를 건설한 후에, 같은 민족인 콜와족에게 가서 왕자
한 명을 모셔 와서 왕으로 옹립했다. 이 때, 아스테카의 늙은 무당 한 명
이 다음과 같이 그 왕에게 말했다59).

Señor y Rey nuestro, seas muy bien llegado a esta tu pobre casa
y ciudad... Mira, Señor, que vienes a ser amparo y sombra y abrigo
de esta nación mexicana, por ser la semejanza de nuestro dios
Huitzilopochtli, por cuya causa se te da el mando y la jurisdicción.
우리들의 왕이여, 이 가난한 나라, 가난한 집에 잘 오셨소... 왕이시여,
그대는 우리들의 신 후이찔로포치들이와 마찬가지로 이 백성 멕이카족
의 보호자가 되고, 그늘이 되어주고, 그리고 외투가 되기 위하여 여기
에 오셨소. 그래서 그대에게 모든 명령권과 재판권을 드리는 것이오.

사 ‘와’에 해당하는 언어적 증거가 나와들어에 있다. 또, 우리가 앞에서 인용한 문헌 중에


아스테카인들의 금언집으로 알려진 Huehuetlatoli가 있다. 이 말을 우리말로 읽으면 ‘왜왜
다들이’가 된다. 이 금언집의 내용은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내용이다. 따라서 아직도 그 뜻이 무엇인지 논란이 되고 있는 Huehuetlatoli도 우리말의
‘왜왜 다들이’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논리가 옳다면, 지금까지 학자들은 왜 이러한 뜻
을 몰랐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본문에서 인용한 사전의 ‘tla(다)’의 설명에서 볼 수 있다.
우리말의 ‘다’는 ‘모든 사람’을 뜻할 수 있는데, 인용한 사전의 설명에는 그런 설명이 없
다. 따라서 초기 스페인 사람들부터 지금의 학자들까지 이 뜻을 깨닫지 못하여, 이러한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닐까?
59) Juan de Tovar, ibid., 91.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41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최초의 왕에게 왕위의 의미를 다음과 같


이 전달하고 있다: ‘백성의 보호자가 되고, 그늘이 되어주고, 그리고 외투
가 되어 주어야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스테카인들에게 왕이란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들을 돌보고 보호해주는 자로 이해하고 있
었다. 바로 ‘모든 것을 도와주는 사람’ 또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
의 의미이다60).

5. 아스텍 풍습에 나타나는 우리말

아스텍제국의 풍습에는 그 풍습 자체가 우리의 것과 일치하고, 그 명칭


마저 우리말로 생각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우리는 여기서 일부 예들을
보기로 한다.

5.1. Te(때) = 때

아스테카인들은 온돌 목욕탕을 만들고, 이 목욕탕을 Temazcalli(때마스


갈리)라고 하고, 이렇게 하는 목욕을 Temaz(때마스)라고 했다61).
앞에서 이미 언급한 Sullivan(1988)의 지적처럼, 아스테카인들의 말을
스페인 선교사들이 받아 적을 때, 스페인어 자·모음 체계로 기록하면서

60) 아스테카인들은 왜 ‘왕(王)’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 호칭을 몰랐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역사서에 따르면 아스테카인들은 아스단, 즉 아사달을 820년에 떠났다,
따라서 이 시기의 우리나라와 주변 지역은 왕권이 강력하던 시기이므로, 비록 중국 한자
어를 모르는 일반 백성도 왕(王)이라는 칭호 정도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스텍 문헌
에 일부 한자어가 나온다는 사실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우리는 그 이유가 아스텍의
국가체제의 독특성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아스텍제국은 ‘무당’ 중심의 국가였다. 아스
텍의 최고 권력자는 가장 높은 무당, 후이질리포치들(새신을 모시는 무당)이었다. 그런데,
아스테카 인들은 아직 유목으로 방랑 생활을 하던 시기에도 항상 ‘정치적 우두머리’를 뽑
았고, 그는 전쟁이 벌어질 때면 부족을 이끌고 지휘했다. 그러나 그의 위치는 항상 무당
의 지시 하에 움직이는 신하의 위치였다. 그런데 그들이 아스단에서 이미 알고 있었을
왕(王)의 개념은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이 호칭을 의도적으로 사용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아스텍제국도 세월이 지나면서 국가체제가 점차 안정화되고
왕권도 강화되기 시작하자, 큰 무당 자신이 직접 왕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는 왕권이
매우 강했다.
61) Juan de Tovar, ibid., 82.
42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매우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Temazcalli를 정확하게 어떻게


발음했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
이라는 다양한 증거들이 있었고, 온돌도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의 하나이
므로, 이 음소의 결합도 우리말에 합치하는 결합이었을 것으로 본다. 따
라서 Temazcalli는 ‘때마스갈리’로 읽고, Temaz는 ‘때마스’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이 명칭에 우리말의 ‘때’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Temazcalli(때마스갈리)는 ‘te(때) +maz(마스)+call(갈)+i(이)’ 로 구성된 말
이다. 이 단어는 목욕과 관계된 말이고, 목욕에서 가장 중요한 우리말이
‘때’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단어의 te(때)는 사람 몸의 ‘때’를 말하는 것
같다. cal은 ‘갈’이라고 발음되는 단어로서, ‘집’을 뜻한다. 아스텍 제국에서
매우 널리 사용된 말 중의 하나로서, 오늘날의 몽골어 ‘겔, 게르’와 비슷한
말이다. 아스테카 인들이 살던 테노치티땅 건너편에 살았던 민족이 몽골
족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게 하는 매우 다양한 증거가 있다. ‘마스’는 그 뜻
을 알 수 없고, 어미 ‘i(이)’는 주격조사 ‘이’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중요한 점은 목욕과 관련하여 가
장 중요한 우리말 ‘때’를 아스텍인들도 목욕 용어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미국 아리조나 지역의 원주민의 집, 몽골인의 겔과 같다. 미국인들은


이것을 horgan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어 hogar(집)에서 나온 말이다. 같
은 구조의 집이 아스텍제국에도 있었다.>

5.2. Sambe(삼베) = 삼베

아스테카인들이 ‘천’을 의미하기 위하여 ‘sambe’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43

증거가 있다. sambe는 우리말 ‘삼베’로 읽히고, 아래 문장을 보면, 그 의


미도 우리말의 의미와 같다고 판단된다. 아래 예문은 원래 Duran신부가
16세기 중반에 멕이코에서 살면서 직접 보고 기록한 것이다62).

이 인용문의 첫 줄에 “이 모든 신상(神像)은 종이로 만든 삼베 쪼가리


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사용된 sambenito는
‘sambe + n + ito’로 구성된 단어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어미 ito는
스페인어의 축소사로서, ‘크기가 작음’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자음 n은
sambe의 모음 e를 살리기 위해서 첨가된 음소이다. 따라서 sambenito는
‘삼베 쪼가리’로 번역된다.
아스텍제국은 무당 중심의 신정국가(神政國家)였다. 그들은 피라밋을
쌓고 그 위에 작은 신당을 짓고 그 안에 작은 신상을 만들어 모시기도
하고, 간단한 제단(祭壇)을 만들고 그 위에 신상을 올려놓기도 했다. 이러
한 신상들은 화려한 색깔로 물들이고 그림도 그려진 종이, 천, 새 깃털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 때 사용된 천을 ‘삼베’라고 한 증거이다. 이 삼베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서 실을 만들어 짠 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63). 우리민
족의 삼베도 삼나무 껍질을 벗겨서 실을 만든 후, 천을 짠 것이다. 아스
텍제국에는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베틀과 물레도 있었다.
다른 연구에서 이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루기로 한다.

5.3. Totol(도돌) = 돌돌

우리 민족은 투환(投環)놀이를 했다. 투환놀이는 명칭 그대로 둥근 환


(環)을 던지는 놀이로서, 땅에 막대기를 세워두고 환을 던져서 막대기에
걸리게 하는 놀이였다. 그런데 <그림>에서 보듯이, 아스테카인들도 투환

62) Seemann Conzatti(1990), 『Usos del papel en el calendario ritual mexica』, 24.
63) 아스테카인들은 두 가지 종류의 천을 사용했다. 목화로 된 것과 나무껍질의 섬유로 된
것이다. 목화는 마야인들이 먼저 재배하던 것을 배웠다고 하고, 나무껍질로 만든 천은 아
스단을 떠날 때부터 입었던 옷의 재료로 기록에 나온다.
44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놀이를 했다. <그림> 밑에 있는 설명에 따르면, 아스텍제국 제10대 황제


목테수마와 스페인 장군 에르난 코르테스가 함께 투환놀이를 하고 있
다64). 투환놀이를 아스테카인들은 도돌로케(Totoloque)라고 하고 있다. 흥
미로운 점은 우리도 어떤 물건을 둥글게 말 때, ‘돌돌 말다’라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이다. 즉 ‘도돌로케’의 ‘도돌’과 ‘돌돌말다’의 ‘돌돌’이 어원적으
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65). 환(環)도 한자어이다. 한자어를 모르는 우리
민족이 순수한 우리말로 이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 ‘둥글다’
는 의미를 가진 ‘돌돌’을 사용하여 명칭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보인다. 흥
미로운 점은 우리 고어(古語)에 ‘둥글다, 둥글게 굴리다’의 의미로 ‘도돌’이
라는 말을 사용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희승(1981)의 국어대사전의
‘격구’ 설명 편에 보면 ‘공을 굴리다’의 의미로 ‘도돌방울하여’라는 옛 표현
을 사용하고 있다. 또 우리말에서 ‘것’을 구어(口語)에서는 ‘게/케’라고 한
다. 즉 ‘맛있는 게/케(것) 있니?’, ‘볼만 한 게/케(것) 있니?’, ‘살만한 게/케
(것) 보이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도돌로케’의 ‘-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게/케’를 스페인어로 표기할 때는 ‘-que’로 표기될 수
밖에 없다. 스페인어에는 원래 자음 ‘k’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
적으로 ‘도돌로케’의 뜻은 ‘둥근 것’을 의미할 수 있다.

64) 목테수마 황제의 보다 정확한 이름은 ‘못되구수마’이다. 역시 대제사장 출신으로서 황제


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통치하던 1519년 11월 8일 코르테스가 아스텍제국에 도착했다.
아스테카인들은 그들이 말을 타고 온 것을 보고, 자기네 조상들이 큰 짐승을 타고 다녔
다는 전설을 기억하여, 그들이 조상신일 것이라고 믿으며, 매우 융숭하게 대접하고 온갖
편의를 제공했다. 그러나 1520년 5월 21일 아침 스페인 군인들이 아스테카인들을 대학살
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1521년 8월 13일 아스텍제국은 마지막 황제 과우흐테목이 생
포되면서 멸망했다.
65) 아스텍제국에서 스페인인들이 들어 온 후 천연두가 유행했다. 이 전염병을 ‘고골리스테
(cocoliste)’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병을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골골거린다’라는 표
현을 쓴다. ‘고골리스테’의 ‘고골’도 ‘골골거린다’의 ‘골골’과 어원적으로 연관되는 것 같다.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45

<그림> 목테수마 황제와 정복자 코르테스의 투환놀이66)

5.4. Patollin(바돌린) = 발 돌림

다음은 아스테카인들이 즐기던 놀이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 놀이가


우리민족 고유의 놀이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 놀
이의 명칭이다. 이 놀이는 <그림>처럼 발위에 나무 판을 올려두고 양 발
로서 돌리는 놀이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 판의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앉
혀 두고 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놀이의 명칭은 Xocuahpatollin(소콰흐
바돌린)이다67). 명칭의 뒷부분이 바돌린(patollin)인데, 놀이의 내용으로
보건데, 이 말은 우리말의 ‘발 돌림’으로 추정된다. 우리말이 맞다면 이 놀
이의 내용이 명칭 자체만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66) Ramon Mena L. & Jenkins Arriaga, Juan(1930), 47.


67) 나와들어에서 음절 /cua/를 [kua] 즉 ‘꾸아’로 읽으면 안된다. Sullivan(1988, P.6)에서 설
명하고 있듯이, /cu/는 [kw]로 발음된다. 따라서 음절 /cua/는 ‘콰’나 ‘꽈’정도로 발음된다.
마찬가지로 nahuatl을 ‘나우아들’로 읽으면 안되고, ‘나와들’로 읽어야 한다. 강모음 a 앞
의 약모음 u는 반모음이기 때문이다.
46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그림> 소콰흐발돌림(Xocuahpatollin)68)

6. 아스텍의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역사서에 보면 아스텍 제국의 지명에는 우리말의 ‘~땅’, ‘~곳’에 해당하


는 지명이 매우 많다.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멕시코는 국가 명칭부터 오
늘날의 숱한 지명과 도시명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
서 몇 가지 경우만 간단히 보기로 한다.

6.1. Popo(포포) = 폭폭

아스텍제국의 제3대 황제의 이름은 Chimalpopoca(치말포포카)이다. 그


는 이웃한 테파네칸국과 전운이 감돌던 1428년경,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
랐다가 그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역사서에서는 치말포포카
(Chimalpopoca)의 뜻이 ‘연기 나는 방패(rodela que humea)’라고 밝히고
있다69). 여기서 chimal(치말)은 방패를 뜻하고, ‘popo(포포)’는 ‘연기 나는’
을 의미하고, ca(카)는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사람’을 의미한다. popo가
우리말의 ‘폭폭’과 일치하는 것 같다. 우리말에서 연기 나는 모습을 다음

68) Ramon Mena L. & Jenkins Arriaga, Juan(1930), 41.


69) Juan de Tovar, ibid., 98.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47

과 같이 말한다.

1) 연기가 폭폭 솟는다.
2) 칙칙폭폭

‘폭폭’은 연기가 위로 솟는 모습을 나타내는 우리말 의태어이다. 그런데


멕시코시티의 남쪽에는 유명한 화산이 있는데, 그 산의 이름이
Popocatepetl(포포카테페들)이다. 이 화산의 특징은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연기가 폭폭 솟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명칭의 popo는 우리말의 ‘폭
폭’과 일치한다고 확인할 수 있다.

3) 포포카테페들(Popocatepetl) 산

6.2. 기타 지명들

아스텍 역사에는 우리말로 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명들이 매우 많고, 오


늘날의 멕이코 지명에도 그런 것들이 매우 많다. 그러한 가장 유명한 지
명 가운데 하나가 Tlatelolco(다델올고)이다. 이 지명은 아스텍제국의 제2
의 도시국가의 명칭이었다. 이 도시국가는 최초의 도시국가 Tenochtitlan
(테노치티땅)이 건설된 섬에서 바로 인접한 섬에 건설되었다. Tlatelolco
의 건설 유래는 다음과 같다. 아스테카인들이 1325년 테노치티땅에 도시
국가를 건설하면서, 무당과 유력한 집안 위주로 땅을 분배하여 나누어 가
졌고, 평민 집안에게는 작은 땅을 나누어 주었다. 이에 격분한 몇 개의
48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평민집안들이 뭉쳐서, 1337년 바로 건너편에 있는 조금 작은 섬에 가서


새로운 자치 도시국가를 건설했는데, 이 도시국가를 그들은 Tlatelolco라
고 명명했다. 그런데 이 명칭을 우리말의 자음소표를 이용하여 읽으면
‘다델올고’ 즉 ‘ 다들 올 곳’ 또는 ‘다 데려 올 곳’으로 이해된다. 아스텍제
국에는 우리민족의 전통 시장(市場) 문화인, 5일마다 열리는 5일장이 있
었는데, 바로 이 도시의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5일장이 열리는 장
날에는 테노치티땅의 사람들도 이곳으로 몰려와서 물물거래를 했다고 한
다. 따라서 ‘다들 올 곳’의 의미가 이해될 것 같다. 또 이 도시는 테노치티
땅과 경쟁관계였기도 했다. 테노치티땅은 고귀한 신분인 ‘제사장 그룹’ 즉
무당들과 ‘큰 씨족의 족장들’ 중심의 중앙집권적 도시국가인데 비하여, 이
도시는 평민들이나 작은 씨족의 족장 중심의 자치적 도시국가였다. 따라
서 일반 평민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다 데려 올 곳’의 의미도 가
능할 것 같다.
또 지금의 멕시코시티에서 남쪽으로 가면 푸에불라(Puebla)주가 있는
데, 거기에 Tlamanalco라는 도시가 있다. 아스텍제국 시대부터 있었던 도
시로서, 정복자 코르테스가 아스텍제국을 처음 올 때의 중간 주둔지였기
도 하며, 정복 이후에는 아스텍 역사를 기록했던 사하군(Sahagún) 신부가
말년에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의 명칭을 우리말로 읽으면 ‘다
마날고’, 즉 ‘다 만날 곳’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우리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지명들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세 지명을 인용하고 끝맺도록 하겠다. 아스테카인들이 아직 방
랑 생활을 할 때, 성질이 포악한 한 여자 무당의 아들을 죽여서 텍스코코
호수가의 갈대밭 속에 묻었다. 이 묻은 장소를 원주민 출신 역사가
Chimalpain은 Tultzallan(툴자란), Acatzallan(아카자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70). 이 명칭에서 Tul이나 Aca는 멕이코에 자생하는 갈대의 종류이다.
어미 ‘-tzallan’은 우리말의 ‘~자란’으로 보인다. 이 어미는 특히 식물 명칭
과 결합하여 장소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기 때문이다. 위 지명은 ‘툴이라
는 갈대가 자란 곳’과 ‘아카라는 갈대가 자란 곳’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보
인다.

70) Chimalpain Cuauhtlehuanitzin(1965), 『Relaciones originales de Chalco Amaquemeca


n』, 55.
아스텍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는 우리말 연구 ∙ 손성태 49

오늘날 멕시코의 유명한 휴양도시 Acapulco도 ‘아카라는 갈대가 많은


곳’이었다. 이 지명도 ‘aca+pul+co’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pul의 의미를 정
확하게 모른다. 일부 학자들이 ‘많은’으로 해석하기는 했지만, 우리말의
‘풀’일 가능성이 있다. 즉 Acapulco는 ‘아카풀의 곳’ 즉 ‘아카라는 갈대풀
이 많은 곳’으로 이해될 수 있다.

7. 결론

우리는 본 연구에서 아스텍제국의 역사, 제도, 풍습 및 지명에 나타나


는 수많은 우리말 가운데 극히 일부를 살펴보았다. 역사에 나타나는 대표
적인 말로서, ‘아스단(Aztlan)’은 고조선(古朝鮮)의 건국지인 아사달(阿斯
達)과 일치하고, ‘고리(Colli/Coli)’는 부여계 선조들을 가리키는 고리(稿離)
와 일치했다. 또 아스테카인들의 별칭인 ‘멕이(Mexi)’는 요동 땅에 거주하
던 우리민족을 5세기경부터 부르던 호칭인 멕이(貊夷)와 일치했다.
이러한 일치가 단순한 지명의 일치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내포
하고 있는 역사·풍습적 의미, 즉 공동의 역사의식까지 일치한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스단/아사달’이 ‘하얀 흙, 하얀 땅’이라는 뜻이며,
이는 우리민족이 흰 색을 숭상하고 흰 옷을 즐겨 입으며, 장례식에 흰 흙
을 사용하는 풍습이 민족 최초의 국가 건설지의 ‘하얀 땅’과 연관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71). 또 콜와(Colhua)족 명칭의 어원이라는 ‘고리
(Colli/Coli)’와 부여계 선조들의 명칭 고리(稿離)는 똑 같은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고리’의 ‘고리’도 바로 이
말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아스텍 역사와 문화를 연구한 모든 학자들이 가장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으로 생각해 왔던, 아스테카족과 콜와족이 서로 같은 민족임
을 알아 본 사건을 우리는 본 연구를 통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
구나 아스테카인들이 이동의 첫 도착지가 왜 콜와족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이라고 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71) 본 연구자의 졸고 「아스테카인의 탄생, 육아 및 장례 문화」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


루고 있다.
50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제2권

아스텍 제도에 나타난 ‘다마틴이(Tlamatini)’와 ‘다도안이(Tlatoani)’도


우리말이라는 것을 보았다. 특히 ‘다마틴이’는 우리말과 음운적 대응, 형태
소적 대응, 문법 기능적 대응, 의미적 대응, 문장 구조적 대응 등 모든 대
응에서 완벽하게 일치하고, 심지어는 우리말의 고유 특징인 관형사형 어
미 ‘ㄴ’까지 일치한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말 ‘땅’의 고어(古語)의 음운 변
화 과정이 아스텍의 지명에 모두 나오고, 제일 오래된 형태가 ‘달(tlall)’이
라는 것도 확인했고, 구개음화까지 일치한다는 것도 보았다.
이러한 언어적 일치는 우리말이 알타이어 어족으로 분류되는 일반적
기준보다 훨씬 협소하고 엄격한 기준에서 본 일치를 의미하며, 사실상 같
은 민족이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단언까지 할 수 있는 일치이다.
그 밖에 풍습과 지명에서 우리말과 일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휘 일부
도 보았다.
이미 다른 연구에서 밝혔던 아스텍과 우리민족 간의 다양한 풍습의 일
치까지 고려한다면, 이 모든 일치를 아스테카인들과 우리민족이 같은 민
족으로 보면, 매우 쉽고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지만, 만약 우연의 일치
라고 가정해 본다면, 그 일치의 원인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유는 오랫동
안 역사적으로 교류하면서 살아 온 바로 이웃한 일본이나 몽골에서도 본
연구에서 다룬 이러한 일치의 극히 작은 일부분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
이다.
마지막으로 ‘밑 땅’이나 ‘다마틴이’같은 말은 우리민족이 한자어가 일반
화되기 이전에 순 우리말을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도 가늠하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로 고리족은 ‘간’을 사용했고, 멕이족은
‘곳’을 사용했으며, ‘땅’은 공동으로 사용한 것도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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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배재대학교 스페인어․중남미학과
대전시 서구 도마2동 439 - 6 번지
E-mail: stson@pcu.ac.kr

논문접수일: 2009년 9월 16일


심사완료일: 2009년 11월 3일
게재확정일: 2009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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