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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地名表記 字音의 上古音的 特徵
古代地名表記 字音의 上古音的 特徵
12)
兪 昌均 ❙
Ⅰ.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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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자료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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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고대지명 표기자음의 검토
1. 複聲母의 흔적
(1) 臨屯
前漢의 武帝는 元封3년(B.C.108), 衛氏朝鮮을 멸망시키고 그 故地를 중심으로 樂
浪․臨屯․玄菟․眞番의 4郡을 두었는데 이른바 漢4郡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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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樂浪
한4군의 다른 하나인 樂浪도 이와 꼭 같은 입장에서 처리될 수 있다. 칼그렌은 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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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giag>iag>jau(요)
glag
lag
g->ng-
gl
l-
gak>giak>ak(악)
glak
lak>lak(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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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買省縣
고구려 지명에 ‘來蘇縣 本高句麗 買省縣 景德王改名 今見州’도 본래 복성모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시대별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買省縣 → 來蘇郡 → 見州
(A) (B)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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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성모에서 분화한 형태
(1) 波害乎吏縣(卷35)→波害乎史縣(卷37)
≪삼국사기≫에서 같은 지명이 위와 같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波害乎吏의 乎는 平
의 오자일 것이다. 그 아래의 平吏-平史에 있어서 吏가 史와 교체한 것이다. 이것도
史가 吏의 오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史→吏의 대응으로 본다면 이는 吏
→史가 등가적임을 뜻한다.
칼그렌은 史는 sli̭ǝg로 吏는 li̭ǝg로 재구했는데, 史를 sli̭ǝg와 같이 복성모로 재구
하면서 吏는 단성모인 li̭ǝg로 재구한 까닭은 이해하기 어려우나 이는 史가
s-
sl-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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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文峴縣→斤尸波衣
이 예는 文이 斤尸과 대응한 것이다. 文은 중세어에서는 ‘글’로 나타난다. 斤尸을
중세어의 ‘글’과 대응하는 것으로 본다면 尸는 ‘ㄹ’을 표기한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가 없다.
신라의 지명에서도 阿尸兮→阿乙兮, 古尸山→管城 등의 예가 있다. 이것은 모두 l-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명뿐만 아니라 吏讀나 鄕歌에서 尸는 거의 l-에 대용되었
다. 어째서 尸가 l-에 대용될 수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곳에서 제기한 바 있
기에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을 피한다.8) 尸가 l-에 대용된 것은 sl-가 s-와 l로
분화한 데서 말미암은 것으로 s-에 대용된 예도 있다. 加尸兮→新復縣의 加尸는 復의
훈 ‘가-가시’와 대응한 것으로 볼 때, 이는 중고음을 기층으로 하는 새로운 현상이
라 생각한다.
3. 유성성모의 흔적
(1) 國內州→不而→尉那嵒城
≪삼국사기≫ 권37의 鴨綠水以北已降城十一 가운데 들어있는 지명이다. 이 지명의
예는 國→不→尉, 內→而→那와 같은 대응 관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州․嵒은
이 지명에 붙은 접미사이다. 다만 不而에는 접미사가 붙어 있지 않으나 國內의 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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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阿斯達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李丙燾의 설에 따라 阿斯達의 阿斯를 朝鮮의 朝에 대응시
켜 ‘아’로 읽고, 국어의 ‘아침’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阿斯達의 표
기시기를 근거로 할 때 과연 阿斯의 음이 ‘아’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12)
阿의 상고음은 ㆍ[a](칼그렌)로 재구하여 성모가 ㆍ(影母)로 되어 ‘아’는 ․로 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설문≫에 의하면 ‘阿 大陵曰阿. 從阜可聲’이라 했다. 이것은
阜와 可의 합성으로 可가 聲符가 된다는 뜻이다. 漢代에 이 阿가 성부 可와 다르게
실현되었다면 許愼은 분명히 따로 음가를 제시했을 것이다. 여기 성부로서의 可만 제
시하고 달리 음가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阿가 可와 등가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
제에 있어서 影母는 일반적으로 성문정치음 [ʔ]으로 이해되는데 음절두음에서 이것이
어떻게 변별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문제이다. 필자는 影母로 기술되는 성모는 본래
는 어떤 정지음이나 마찰음에 속하던 것인데 그것이 삭제됨으로써 발달한 것으로 본
다.
즉 본래 있었던 g-, d-, b-, dz-, z-와 같은 자음의 소멸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는 것
이다. 可의 상고음은 k̒â로 재구하고 있으나, 阿는 *gar와 같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
다. 이것은 *gar>ɤa>ㆍa와 같이 발달한 것으로 봐야 하며 許愼이 可聲이라고 한 것
은 바로 이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斯는 si̭ěg(칼그렌)으로 재구하고 있다. 그러나 丁邦新에 의하면 운미의 -g는 이미 前
漢때 -ï와 같이 변화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集韻≫에 의하면 斯는 相支切(支
部)과 같이 실현되는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이의 상고음은 si̭ar로까지 소급시킬 수 있
다. 우리 한자음으로는 中世音은 ‘’, 현용음은 ‘사’로 실현되나 이는 ‘/슬’과 같은
것으로 가장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阿斯는 gasǝr과 같이 재구할 수 있는데 필자는 이것을 濊
의 초기음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濊의 초기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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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sǝr이며 이는
gar(gara의 축약형)
gar
giar>iar>jaj
gasǝr ^ ^
河 g̒â / 何 g̒â
西 si̭ǝr / 瑟 si̭ět
良 li̭ang / 羅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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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다.
迦는 加를 성부로 한다. 加는 ka이나 迦는 ga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葉은 di̭ɐp/
si̭ɐp의 두 음을 취한다. si̭ap를 취하면 迦葉은 gasi̭ap가 되는데, 이는 gasǝ-과 음성적
으로 유사하며, -p는 후속의 原의 bǝr에 의해 삭제되는 同音重出 표기에 따른 것이
다.14) bǝr은 伐과 같은 접미사일 것이다. 이는 東夫餘를 세운 夫餘族이 濊와 동일한
종족이었음을 뜻한다.
≪삼국유사≫<圓光>조에 나오는 ‘嘉瑟岬’은 혹은 加西로도 쓰고 또 嘉栖로도 쓰
는데 모두 방언이다. 岬은 俗에서 古尸이라 한다. ……지금의 雲門寺 동쪽 9천보쯤
되는 곳에 加西縣이 있는데 혹은 嘉瑟峴이라고도 한다고 했는데, 嘉瑟․嘉栖․加西가
모두 gasǝr의 표기로 본다. 이러한 지명은 가장 일찍이 정착한 濊族이 거주한 곳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따르면 “朱蒙이 烏伊 摩離 陜父 등과 더불어 남쪽
으로 달아날 때 건넌 강이 淹氵虒水인데 일명 盖斯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압록강의 동
북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 淹氵虒水와 盖斯水가 모두 gasǝr의 이표기인 것으로 측
정한다. 이것은 淹-盖 氵虒-斯와 같은 대응을 보인다고 하겠다.
盖는 蓋의 약자로 상고음은 kâd/k̒âb의 약음자이다. 이 경우에는 kâd를 취한다. 漢
代에는 -d>-r에 kar이었던 것으로 측정한다. 周法高는 처음부터 kar로 재구했다. 淹은
․i̭aㅡ로 재구한다. 이것은 介母 -i̭-의 앞에서 유성의 g-가 삭제된 형태를 취하고 있
으나, 보다 이른 시기의 음은 gam이었던 것으로 측정한다. 氵虒의 상고음은 si̭eg로 斯
와 같다. 이것은 淹氵虒수가 곧 蓋斯水임을 뜻하는데 바로 濊의 초기음 gasǝr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濊의 성모가 ㆍ-가 아니고 g-임은 이것이 곧 상고음의 형태를 간직
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신라지명의 阿尸良國(阿那加倻)→咸安郡(개신지명)→의 예는 阿→咸의 대응이다.
이것은 阿가 ga일 때 가능한 것이다. 阿가 역시 g-를 가졌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gasǝr의 지명은 전국에 널리 퍼져 있다. 여기에 일일이 들 수 없으나, 이는 이 땅에
가장 먼저 건너온 종족이 濊를 gasǝr로 부르던 시기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것에 居西干이 있다. 居西干은 신라 첫째의 왕인 朴赫居世에 붙여진
왕호이다. 이 居西干의 居西도 濊를 뜻하는 지명 阿西良의 이형태로 생각된다. 이것
은 居西干이 곧 濊王이라는 뜻인데, 朴赫居世가 古濊族의 출신임을 뜻한다.
濊는 우리 민족의 연원으로 역사가 매우 길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종족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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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熱也山-尼山
백제지명의 熱也山은 개신지명에서는 尼山이 되었다. 이것은 熱也-尼의 대응이다.
熱의 중세음은 (동국정운)으로 尼와의 음의 대응은 성립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상고음으로 소급하면 尼가 곧 熱也의 축약현상임을 알게 된다. 熱의
상고음은 n̒i ̭at로 ‘널’을 가정할 수 있고 尼의 상고음은 n̒i ̭ǝr, 중고음은 ńi이나 이는 상
고음의 형태가 그때까지도 존속하고 있었거나, 尼山이라는 표기가 백제시대의 것을
그대로 취했을 가능성이 있다. 熱이 n-로 나타남은 신라에서도 같다.
熱兮縣(泥兮縣)→日谿縣
(4) 大良州郡(大耶州)→江陽郡
이것은 良→耶와 같은 대응을 보이는 것이다. 良이 신라에 있어서는 ‘라’의 전사에
이용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서 耶가 良과 대응한 것은 耶가 역시 ‘라’
이었음을 뜻한다. 耶의 상고음은 źi̭å/dzi̭å/dzi̭o 등으로 재구된다.
그러나 보다 이른 시기에는 dår와 같았을 것이며 이것이 ra로 바뀌었을 것이다. 재구
음은 dår>di̭år>ri̭a와 같은 발달을 겪었을 것이다. 耶가 ‘라’이었음은 신라에서는 하
나의 관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d-의 r-화는 다른 예에서도 볼 수 있다. 古冬攬郡(古陵
縣)은 冬攬→陵의 대응인데 이도 d->r-로 기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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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齊次巴衣→孔巖縣
이 예는 巴衣-巖의 대응이다. 巴衣가 巖임이 분명하다. 巖의 중세어는 ‘바회’이다.
이 예의 孔巖은 ≪용비어천가≫에는 ‘구무바회’로 되어 있다. 이것은 명백히 첫 음절
의 ‘바’와 둘째 음절 사이에 자음 ‘-ㅎ-’이 개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
런데 신라시대의 향가 <獻花歌>에는 이것을 ‘岩乎’로 적고 있다. 이 巖은 고구려 지
명에서는 이외에도 鵂鶹城縣-租波衣-鵂巖郡, 三峴縣,-密波兮, 文峴縣-斤尸波衣 등과
같은 예가 있다. 여기에서 衣가 兮와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岩
乎의 乎는 말음절을 첨기한 것으로 상고음은 g̒o로 재구된다. 兮는 ger(周法高)와 같
다. 董同龢는 乎는 ɤag, 兮는 ɤieg로 재구했는데, 이들은 模韻에 속하는 것으로 운미
를 고려해 넣으면 乎는 gag>ɤar>ɤoi와 같은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볼 수 있고 兮는
gieg>ɤieɤ>jej와 같은 발달을 생각할 수 있다. 중세국어의 ‘바회’는 이 중간단계 go
i>ɤieɤ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衣는 ․i̭ǝr(上古)>․jḙi(中古)와 같이 상모가 ㆍ
-(影母)로 되어 있으나 위의 사실을 감안하면 衣의 상고음은 gi̭ǝr로 소급되고, 이는
ɤi̭ǝr>․jaj와 같이 g-의 삭제로 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 지명의 衣가
g-를 가졌던 상고음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衣가 중
세음에서 ‘의’로 나타나기 때문에 고구려어의 巖은 ‘바의’였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鵠浦縣-古衣浦도 ‘衣’가 상고음 g-를 따른 것임이 분명하다. 鵠의 음은 g̒ôg으로 재
구되고, 중세어는 ‘고해’로 중간에 -ㅎ-을 가진 점이 ‘바회’와 같다. 이것도 ‘衣’가 상
고의 g̒ôg의 단계의 음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 운미자음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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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西縣 - 都盆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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