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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語中文學 第60輯, 2015.

4, 韓國中語中文學會

고전문학 및 문화
中語中文學 第60輯, 2015. 4, 韓國中語中文學會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1)
- ‘爭奇’ 시리즈를 중심으로

崔 琇 景 숙명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부 강사

목차 1. 들어가며
1. 들어가며
2. ‘爭奇’시리즈의 출판에 관련된 몇
가지 쟁점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기까지 중국의
3. 博物的 분류, 脫계보적 배치
출판 산업과 독서 시장은 질적, 양적으로 미증
4. 遊戲를 위한 전통의 활용
5. 문인들의 ‘物’ 담론과 상업출판 유의 발전을 거듭한다.1) 그 간 학계에서는 이
6. 나오며 시기의 출판의 역사에 대해 상당히 다양한 방식
으로 접근해 왔다. 출판물 자체에 관련된 서지
학적인 연구, 지역이나 출판 단위를 중심으로
한 실증적 연구는 물론 이를 當代의 문화적 경
향이나 지식계의 조류, 사유 방식의 변화와 연

* 이 연구는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4S1A5A2A01012610)
1) 명대 후기 서적의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배경과 개황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Cynthia
J. Brokaw, “On the History of the Book in China”, Edited by Cynthia J Brokaw &
Kai-Wing Chow, Printing & Book Culture in Late Imperial Chin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郭盟良, 뺷晩明商業出版뺸 北京: 中國書籍出版社, 2011. 독서 대중의 증가에 대
한 개괄적인 설명은 Benjamin A. Elman, Civil examinations and Meritocracy in late
imperial china, Harvard Univ. press, 2013, 126-134쪽 참고.
4 中語中文學제60집

계한 ‘출판문화’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2)


특히 이 시기 가장 특징적인 현상 중의 하나가 ‘편집형 출판물’의 대량 생산
이다. 이른바 ‘편집형 출판물’이란 특정 개인의 창조적 글쓰기로 만들어지는 근
대 이후의 著作이 아닌 기존에 이미 존재했던 자료들 –기록되었거나 구술로 전
해지는- 을 수집하여 이를 수정하거나 혹은 원문 그대로 배치하여 출판된 서적
을 말한다.3) 물론 전통적 개념의 詩選이나 文選 등도 ‘편집형 출판물’에 포함되
지만 명대 후기의 출판 환경에서 이 ‘편집형 출판물’이 특히 주목받아야 하는 이
유는 전체 출판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명대 후기 지식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 그리고 상업출판의 서적 생산 방식이 여기에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대 후기 사회는 출판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과 서적 소비
층을 구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출판 산업 전체를 성장시켰고 상업의 場에
진입한 출판은 명대 후기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낸다. 현재의 특정 문학장르로 귀속시키기 어려운
각종 文學選集, 日用類書, 路程書, 尺牘集, 雜字書 등 다양한 편집형 출판물이 16
세기 후반부터 쏟아진다. 그런데 상업적 목적을 위해 기획된 이러한 출판물들
역시 단일한 조건과 배경 하에서 독자적으로 생산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출판물들은 여러 층위에 걸쳐서 文人들의 사유방식, 지식 체계, 담론과 상호 영
향을 주고받는 순환 관계에 놓여 있다.4) 때문에 이러한 출판물들에 대한 연구는

2) ‘출판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의 학문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아직 중국의 출판 역사


단계에 상응하는 용어가 정립되지는 않았다. Tobie-Meyer Fong은 “The printed world:
books, publishing culture, and society in Late Imperial China”에서 관련 용어를 설명하며
‘인쇄의 역사(print history)’가 기술로서의 인쇄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서적의 역사
(book history)’, ‘출판의 역사(publishing history)’, 그리고 ‘출판문화(publishing culture)’는
모두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질문들에 주목하고 있다고 하였다.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Vol. 66, No.3 2007)
3) 본고에서 말하는 편집형 출판물의 유형은 크게 選集, 總集, 叢書로 나눌 수 있다. 선집
(anthology)과 총집(collection)은 종종 그 범위가 중복되지만 대체적으로 선집은 동일 작가
의 작품이나 동일 혹은 유사 장르의 작품 중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선정하는 것이고 총집은
복수의 작가와 작품을 다양한 기준에 의해 수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叢書는 보통
단행본 작품을 한데 모은 것을 가리키지만 때로는 특정 주제에 따라 대량으로 자료를 수집
하여 엮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4) ‘文人’이란 종종 신분적 측면에서 관료나 紳士와 중복되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문화적 자원을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계층을 의미한다. 이들은 과거를 통과하기 위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5

상인과 여성을 포함하여 보다 다양한 수준의 독자를 겨냥하고 있는 상업출판이


當代의 엘리트 문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고 있는지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
다.
1620년을 전후하여 明代의 대표적인 출판 기지인 福建 建陽에서 출판된 편집
형 출판물인 ‘爭奇’ 시리즈는 1580년대부터 출현한 종합적인 문예선집을 보다 정
교하게 만든 형태라 할 수 있다.5) 지금까지 총 7種이 알려진 ‘爭奇’ 시리즈에 대
해 그간 선행 연구에서는 文體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 시리즈는 현재 학계
에서 통용되는 장르 개념으로는 적절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우나 鄭振鐸 이래 대
체적으로 ‘小說’의 일종으로 수용되는 경향이 있다.6) 이는 아마 이 시리즈의 대
표 편집자인 鄧志謨가 소설가로 알려진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소설 대신 희곡과의 親緣性을 주장하기도 한다.7) 본고는 이 ‘쟁기’ 시리즈를 특
정 문체 혹은 장르로 歸屬시키려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17세기 초반 建
陽에서 출판된 여러 總集 중 하나인 ‘爭奇’시리즈를 통해 明末 출판문화의 多岐
한 양상을 탐색하되 특히 ‘物’과 관련된 지식이 어떻게 서적을 조직하는지 집중

해 유가 경전과 官方에서 공인하는 정통의 주석을 학습했고 과거시험을 위한 작문과 문예


적 글쓰기 훈련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명대 후기부터는 자신의 저작물 출판도
‘문인’의 요건 중 하나에 해당된다.
5)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문체별로 기존의 글쓰기를 분류, 수록한 편집형 출판물이
속속 생산된다. ‘종합총집’이라 부를 수 있는 이러한 편집형 출판물에는 이질적인 내용과 역
사적 배경을 가진 작품들이 ‘문체’라는 기준에 의해 하나의 지면 공간에 수록된다. ‘通俗類
書’라고도 불리는 소설중심 종합총집에 대해서는 이시찬, 「명 만력시기 소설선집의 출현과
형식적 특징」(뺷중국소설논총뺸 제29집, 2009년 3월); 최수경, 「뺷國色天香뺸과 明末 상업출판
에서의 ‘책’의 변형」 (뺷중국어문논총뺸 59집, 2013, 10) 참고. 이외에 희곡중심 종합총집에
관해서는 Yuming He, Home and the World - Editing the "glorious Ming" in
Woodblock-Printed Books of the Sixteecth and Seventeenth Centuries, Harvard
University Press, 2013, chapter 1, chapter 2 참고.
6) 鄭振鐸, 뺷揷圖本中國文學史뺸, 第六十章「長篇小說的進展」, 上海人民出版社, 2005年. 潘建國은
‘爭奇’시리즈에 ‘爭奇小說’라는 새로운 소설 문체명을 부여하였다. 「明 鄧志謨“爭奇小說”探
源」(뺷上海師範大學學報뺸 第31卷, 2002年 3月); 「晩明七種爭奇小說的作者與版本」(뺷文學遺
産뺸, 2007年 第四期) 참고.
7) 戚世携, 「鄧志謨“爭奇”系列作品的文體硏究」, 뺷文學遺産뺸 2008年 第四期. 이 밖에 金文京 역
시 ‘爭奇’ 시리즈에 관한 연구가 있다. 「晩明文人鄧志謨的創作活動-兼論其爭奇文學的來源
及傳播」 (뺷經典轉化與明淸敍事文學學術硏討會論文集뺸, 臺北中硏院文哲所 2004年版), 「童婉
爭奇與晩明兩性文化」,(뺷明淸文學與性別硏究뺸, 江蘇古籍出版社, 2002年) 참고.
6 中語中文學제60집

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8) 우선 ‘쟁기’ 시리즈의 출판이 드러내는 몇 가지 현상


들을 전반적인 상업출판의 지형도 속에서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쟁기’ 시리즈
의 지식의 종류와 형태를 분석하여 이 서적들이 어떤 체계에 의해 지식을 배치했
는지, 상업출판이 다른 층위의 지식을 어떻게 결합시키는지 그리고 당시 유행하
던 ‘物’의 담론을 어떻게 활용하였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양상들의 사회문화적 의
미는 무엇인지 등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필자는 온라인을 통해 美國 國會圖書館에 소장된 春語堂 本 4종(花鳥·風月·童
婉·蔬果)과 국내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和刻本 뺷梅雪爭奇뺸를 열람하였다.
따라서 전반적인 ‘爭奇’ 시리즈에 대한 소개와 해설은 기존의 선행 연구를 참고
하되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 시에는 필자가 열람한 5종을 중심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2. ‘爭奇’시리즈의 출판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

1623년을 전후하여 몇 년간 ‘□□爭奇’라는 제목을 달고 동일한 포맷으로 소재


를 달리하여 편집된 책들이 建陽의 書坊에서 집중적으로 출간된다. 현재까지 뺷花
鳥爭奇뺸, 뺷山水爭奇뺸, 뺷風月爭奇뺸, 뺷梅雪爭奇뺸, 뺷茶酒爭奇뺸, 뺷童婉爭奇뺸, 뺷蔬果爭
奇뺸 등 7종이 알려져 있다.
명대 후기에는 ‘奇’를 책의 표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9) 이 시기에

8) ‘物’의 범주와 개념은 Benjamin A. Elman의 설명을 참고하였다. 그는 ‘物’을 “이름붙일 수 있


는[名物] 대상, 현상, 그리고 사건에 대한 보다 광범위하고 無정형적인 이해를 위한 약칭으
로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On Their Own Terms: science in China, 1550-1900,
Harvard University Press, 2005, 「preface」). 본고에서 ‘物’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혹은 느끼거나 상상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인공물과 자연
물, 현상, 사건을 의미한다. 또한 ‘物’은 그 유사성과 차이점에 근거하여 분류가 가능하며 이
름 붙일 수 있는 특정한 대상이기도 하다.
9) 가장 유명한 예로 凌夢初의 뺷拍案驚奇뺸를 들 수 있지만 이러한 허구 서사가 아닌 전통적인
장르나 문체를 수록한 서적에도 ‘奇’를 제목에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특히 ‘爭奇’라는 제
목이 인기가 있었다. 潘建國은 이 시기 ‘爭奇’를 제목에 사용한 서적들의 예를 들었는데 뺷車
書樓彙輯各名公四六爭奇뺸(許以忠 편찬), 뺷尺牘爭奇뺸(張一中), 뺷新鐫樂府爭奇뺸(王公亮), 뺷擧
業捷徑古文爭奇뺸(郭忠志) 등 다양한 문체와 장르의 선집에 모두 사용되었다. (「晩明七種爭
奇小說的作者與版本」 각주 1번 참고)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7

‘奇’字가 함축하고 있는 문화적 의미의 범주는 전통적인 字義를 훨씬 뛰어넘는다.


‘爭奇’시리즈를 포함해 이 시기 서적 표제에 사용되는 ‘奇’자는 뛰어남, 우월함을
의미하는데 그 뛰어남은 바로 ‘新奇’,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움’에서 비롯된다. 이 시기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비단 출판계 뿐 아
니라 모든 문화적 영역, 나아가서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통분모이기도 했다.10)
傳奇와 故事集의 편찬으로 이미 建陽의 출판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던 鄧志謨(1559- ?)가 노년에 접어들어 새롭게 고안한 이 ‘쟁기’ 시리즈는
1622년 무렵에 뺷花鳥爭奇뺸가 萃慶堂에서 출판되면서 시작된다.11) ‘쟁기’ 시리즈
는 대단히 균일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뺷茶酒爭奇뺸를 제외한 나머지 6종은 모두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12) 제1권은 두 종류의 ‘物’ 간의 논쟁으로 구성된 대화와
희곡(혹은 기타 운문)이, 제2권과 3권은 두 종류의 ‘物’을 소재로 한 운문 작품을
수록한 選集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뺷花鳥爭奇뺸의 구성은 다음과 같
다. 卷一에서 鳳凰을 비롯한 百鳥 무리와 牡丹을 비롯한 百花의 무리가 서로 자
신의 우월함을 주장하며 설전을 벌인다. 결국 신화 속 인물 東皇이 중재자로 나
서 이들을 꾸짖고 각각 樂府曲을 지어 올리게 한다. 이들이 올린 樂府曲을 본 동
황은 감탄하여 이들을 사면했고 이들은 감사하면서 물러난다. 동황은 새와 꽃을
소재로 한 시집을 간행하여 배포하게 한다. 卷二와 卷三은 이 百花詩와 百鳥詩,

10) 이 ‘새로움’에 대한 열망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명대 후기 ‘유행’의 탄생일 것이다.


이 유행은 타인과 자신(혹은 자신이 속한 계급)을 구분하여 분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
법이다. 때문에 다수가 소유하게 되면 이는 더 이상 유행하지 않고 새로운 기준이 유행한
다. 명대 후기는 이러한 유행에 대한 욕망 때문에 사치소비가 가장 광적으로 진행되었던 시
기이기도 하다. 티모시 브룩/이정·강인환 옮김, 뺷쾌락의 혼돈: 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뺸,
2005년, 도서출판 이산, 285-305쪽 참고.
11) 뺷風月爭奇뺸의 서문을 쓴 張大佐는 “(등지모는) 일찌기 뺷화조쟁기뺸를 지었는데 이는 풍류에
관한 책이라 선비들이 선망했다. 그리고는 뺷산수쟁기뺸를 지었는데 선비들이 또 선망했다
(惟嘗作 뺷花鳥爭奇뺸 , 此風流卷也, 士艶之. 既又作山水争奇 , 士又艶之.)”고 하였다. 이로
보아 뺷풍월쟁기뺸 이전에 이 두 책이 차례로 나왔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뺷風月爭奇·敍뺸, 明
天啓 年間 春語堂 刊本, 미국 국회도서관본(http://rarebook.ncl.edu.tw/rbook/hypage.cgi)
12) 뺷茶酒爭奇뺸는 현재 北京의 國家圖書館과 首都圖書館에 2권자리 春語堂本이 소장되어 있다.
杜信浮의 뺷明代版刻綜錄뺸에 淸白堂本도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로서는 소장처를 알 수 없다.
필자는 아직 이 책을 직접 열람하지는 못했고 기타 선행 연구에서도 뺷차주쟁기뺸의 구성에
대한 언급은 없으므로 이 책이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원래 2권으로 구성된 것인지 3권 중
1권이 소실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8 中語中文學제60집

즉 꽃과 새를 소재로 한 역대 시인들의 시선집이다. 모든 ‘쟁기’ 시리즈가 동일한


패턴으로 구성되었고 각 권의 시작 부분과 때로는 중간에도 소재와 관련된 全相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즉 ‘쟁기’ 시리즈는 형식적으로는 ‘擬人化된 詠物 敍事’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서적의 유형으로 보면 다양한 작가와 장르, 문체를 수록한
總集의 일종이다.
선행 연구에 의하면 ‘쟁기’ 시리즈 7종 중 적어도 6종이 建陽의 書坊인 萃慶堂
에서 초판 발행되었다. 그 이후 春語堂, 淸白堂 등에서도 발행되었는데 이는 萃
慶堂本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淸代에 와서도 일부 간행되었고 일본에도 전
파되어 새로 판각되거나 필사되었다. 지난 1985년 대만의 天一出版社가 萃慶堂
本을 영인, 출판한 바 있다. 국내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和刻本 뺷梅雪爭奇뺸가 소
장되어 있는데 이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듯하다. 이 판본은 조선총독부
소장 도서로 표지 중앙에 ‘梅雪爭奇’라 제목이 있고 오른쪽에는 ‘新井白蛾校’, 왼
쪽에 ‘書肆 文煥堂梓’라 되어 있다. 제일 앞에 新井白蛾의 서문이 있는데 그 연도
는 寶曆14년, 즉 176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에 原序인 武夷蝶庵主의 小引
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과 주석은 그대로 수록했으나 원서에 있던 삽도는 삭제했
다. 참고로 일본의 內閣文庫에는 뺷茶酒爭奇뺸, 뺷童婉爭奇뺸를 제외한 萃慶堂本 간
행 爭奇 5종과 뺷童婉爭奇뺸의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 외에 京都 龍谷大學
도서관에는 뺷童婉爭奇뺸의 췌경당본이 수록되어 있다. 뺷매설쟁기뺸 和刻本 역시
일본에 이미 유포되었던 ‘쟁기’ 시리즈를 저본으로 삼아 교정을 거쳐 판각, 인쇄
한 것으로 보인다. 기타 ‘爭奇’ 시리즈의 편집자, 판본, 구성에 대해서는 潘建國과
金文京 등에 의해 기본적인 양상이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진 바 있으므로 본 고에
서는 이러한 내용들은 생략하고 기본적인 사항을 아래에 간단히 표로 정리한다.

표1 ‘爭奇’ 시리즈의 판본과 관련자


간행연 서문자 및 기타
표제 편집자 판본
도 관련자
1623
花鳥爭奇 鄧志謀 余應虬/筠臺 萃慶堂本/春語堂本
이전
1623
山水爭奇 鄧志謨 桂林標 萃慶堂本/明 刻本/淸白堂本
이전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9

風月爭奇 鄧志謨 1623 張大佐 萃慶堂本/春語堂本(鄭思鳴刊本)


武夷蝶庵 萃慶堂本/明刻本/和刻本(1764年
梅雪爭奇 ? 武夷蝶庵主
主13) 文煥堂本)
茶酒爭奇 朱永昌 1624 朱永昌 春語堂/淸白堂/明刻本
竹溪風月 萃慶堂本/春語堂本/日本
童婉爭奇 1624 醉中叟
主人 필사본(江湖時代)/淸 刻本
竹溪風月 萃慶堂本/春語堂本/和刻本(1787년본
蔬果爭奇 1624 醉中叟
主人 과 1829년본)

‘쟁기’ 시리즈의 전체적 구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형식에서 보여주는 정


련됨과 균형에 대한 고려이다. 일찍이 16세기 후반에 등장했던 뺷국색천향뺸 등의
종합총집들에서는 비대칭적이고 자의적 배치나 모호한 유형 기준이 상당히 많았
지만 1720년대에 등장한 ‘爭奇’ 시리즈는 구성은 물론 서술에 이르기까지 기계적
인 ‘균형’을 고려하고 있다. 양편의 대화는 물론 양편에서 제시하는 작품들(희곡
이나 운문), 이들을 소재로 한 詩選
에 이르기까지 편집자는 정확하게
분량을 양분한다. 그림 1 에서 한
페이지씩 나란히 제시된 ‘鳳凰百
鳥’와 ‘牡丹白花’는 이 책에서 규범
화된 균형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쟁기’시리즈의 2권과 3권은
일반적인 詩選 형태를 모방하여 詩
體와 소재라는 두 가지 기준을 정
확하게 운용하였다. 하지만 鄧志謨
를 비롯한 편집자들이 일반적인 詩
그림 1 春語堂本 뺷花鳥爭奇뺸卷一
選의 편집 목표 – 적확한 詩學의
표현, 미학적 기준의 수립, 혹은 문화 권력의 획득-에 야심이 있었던 것으로는

13) 武夷蝶庵主에 대해 金文京은 등지모의 別號라고 추정했으나 (「晩明文人鄧志謨的創作活動-


兼論其爭奇文學的來源及傳播」)潘建國은 萃慶堂本 뺷梅雪爭奇뺸에 등지모의 社友인 魏邦達
(字 去非)의 이름이 도장으로 찍혀 있음을 들어 그가 뺷梅雪爭奇뺸의 편집자라고 주장하였
다. (「晩明七種爭奇小說的作者與版本」)
10 中語中文學제60집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서 보이는 전체적인 인상으로는 이들은 문학적 표준보다


는 한층 더 세련된 형태의 문화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더욱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형태를 처음 개발한 편집자는 序文의 자료로 보아 소설, 희곡, 類書와
편지모음집 등의 편찬으로 이미 建陽의 출판계에서 명성을 누리던 鄧志謨였음이
분명하다. 그는 뺷花鳥爭奇뺸,뺷山水爭奇뺸, 뺷風月爭奇뺸를 잇달아 펴내며 종합총집의
한 유형으로서의 ‘爭奇’류의 패턴을 확립한다. 하지만 이 3종을 제외한 속편들은
등지모가 편집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출간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뺷風
月爭奇뺸와 연도를 서문에 밝힌 뺷童婉爭奇뺸, 뺷茶酒爭奇뺸, 뺷蔬果爭奇뺸를 토대로 우
리는 이 시리즈가 대단히 짧은 시간에 기획,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張大佐가
쓴 뺷風月爭奇뺸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그대는 어찌 奇에 관한 책을 두 가지를 내고는 세 번째는 없는가?’ 경


남(등지모를 말함)은 말했다. ‘뱃속이 궁해서입니다.’ 내가 말했다. ‘하늘
은 그대에게 재물은 내려주지 않았지만 재주를 주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그대가 전대가 궁한 것은 있을 수 있으나 뱃속이 궁한 것은 있
을 수 없는 일이요.’ 경남은 말했다. ‘꼭 하고는 싶으나 또 奇한 것이 무
엇이 있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明月과 淸風이 어찌 奇하지 않겠습니
까? 그대는 유독 하나의 길에서만 (奇함을) 다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요?’ 경남은 말했다 ‘생각해 봅시다’ 그러고 열흘이 지나 다시 그 집을
방문해보니 완성되어 있었다. 14)

장대좌는 뺷易經뺸과 正史를 예로 들면서 걸작은 반드시 세 편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등지모에게 속편을 독촉한다. 이미 뺷화조쟁기뺸와 뺷산수쟁기뺸를 펴낸
등지모가 아이디어의 빈곤을 호소하자 달과 바람이 좋은 소재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충고한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얻은 등지모가 불과 열흘 만에 책을 완성했
다는 것이다. 이름 없는 문인이 상업적 목적으로 펴낸 편집형 출판물을 신성한
‘경전’에 비유하는 태도도 일반적이지 않지만 책 한 권을 편집하는 속도도 놀랍

14) “君胡不以兩其奇者而三之? 景南曰: 腹窮矣. 予曰: 天靳景南財. 不靳景南才, 謂景南窮於橐,


則可. 謂景南窮於腹, 不可也. 景南曰: 必欲爲之, 復有何奇耶? 予曰: 明月淸風, 獨非奇耶? 君
獨不能爲渠一爭耶? 景南曰: 待思之. 越旬日, 復訪其家, 則其編成矣.”(張大佐, 뺷風月爭奇·敍뺸,
春語堂本)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11

다. 물론 장대좌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으며 ‘열흘’이라는 시간은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이 ‘서적’과 ‘편집’ 행위를 대하는 자세이다. 이들은 서적을 편찬하는 것은 자신의
지식과 심혈을 쏟아 완성하는 지난한 과정이 아니라 수요에 재빠르게 부응하기
위한 보다 경제적인 행위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내세우게 되었다. 이들에게
책이란 그 무엇보다 ‘상품’이었고 그것을 굳이 ‘詩的 환원주의’나15) 계몽주의로
포장할 필요가 없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들과 관련된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이 ‘爭奇’ 시리즈에 관련되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이 공동체의 성격이다. 뺷화조쟁기뺸를 출판했던 萃慶堂의
운영자 余應虬은 처음 이 책을 출판하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때 친구인 균대가 뺷화조쟁기뺸라는 책을 가지고 와서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내가
말했다. 이 책을 누가 만들었는가? 균대가 말했다. 우리 (친척) 형인 백졸생입니
다.”16) 余應虬의 호는 猶龍이며 췌경당의 주인인 余德彰(泅泉)의 아들이다.17) 그
의 아버지 여덕창은 매우 왕성하게 활동한 건양의 대표적 출판가이며 유명한 余
象斗의 사촌이기도 하다. 여덕창 부자가 운영한 萃慶堂은 70여종의 출판물을 남
긴다. 서문을 보면 마치 등지모의 친척이 먼저 뺷화조쟁기뺸를 가지고 여응규를 찾
아와서 출판을 청한 듯 보인다. 만약 이 상황이 사실이라면 등지모와 같은 전문
편집자가 특정 아이템을 기획해서 출판업자에게 직접 출판을 제안하는 관례가

15) ‘시적 환원주의(reductionism)’란 Kai-wing Chow가 사용했던 용어이다. (Publishing,


Culture and Power in Early Modern China,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4, 13쪽) 그는 명청 문인들의 選集들이 습관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詩的 환
원주의’를 통해 그리고 경제적 사업과의 관련성을 암시하는 글을 배제함으로써 정보를 억
누르고 삭제했다고 하였다. ‘시적 환원주의’란 한 사람의 경제적 활동을 넌지시 비추는 메타
포나 비유와 같은 시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16) “時有友筠臺持뺷花鳥爭奇뺸一書, 請余敍. 余曰 …… 更不知誰爲此書? 筠臺曰吾兄百拙生也. ”
(뺷花鳥爭奇· 序뺸, 春語堂本) 여기 나오는 균대는 등지모의 族弟로 등지모의 뺷得愚集뺸卷四에
그에게 보내는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潘建國, 「晩明七種爭奇小說的作者與版本」 참고.
17) 余氏의 족보에 수록된 이름순서가 혼란스럽게 되어 있어 余泅泉이 余德彰의 아들이자 余應
虬의 형제라는 설도 있으나 (謝水順, 李挺著 뺷福建古代刻書뺸 第三章第一節, 福建人民出版
社, 1997年版) Lucille Chia는 다른 인쇄물과 묘비명 등을 종합하여 여사천과 여덕창은 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 Printing for Profit - The Commercial Publishers of Jianyang,
Fujian(11th-17th Centurie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161쪽 참고.
12 中語中文學제60집

당시 존재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물론 이러한 모델은 다소 특수한 이


들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등지모는 췌경당에서 가정교사로 일
했다는 설이 있다.18) 물론 이 설을 뒷받침할만한 문헌적 증거는 없지만 현재 판
본이 남아 있는 등지모의 출판물은 거의 모두 萃慶堂에서 출판되었거나 여덕창
부자의 손을 거쳐 나온 것이다.19) 등지모와 여덕창 부자가 오랫동안 사업적인
거래 관계 내지는 私的 교류 관계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뺷산수쟁기뺸의 서
문을 쓴 桂林標는 등지모와 마찬가지로 췌경당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편집자
로 추정된다.20) 張大佐는 등지모와 오랫동안 교유한 社友이다.21) 그리고 潘建國
의 고증대로 武夷蝶庵主가 魏邦達이라면 그 역시 建陽 余氏와 인연이 깊은 인물
이다. 등지모의 社友로 알려졌지만 등지모보다 한 세대 아래의 위방달은 여상두
의 重孫인 余公仁(元長)의 절친한 친구이다. 소설중심 종합총집인 뺷燕居筆記뺸의
몇 가지 판본 중 馮夢龍本으로 알려진 판본을 실제 편찬한 여공인은 뺷연거필기뺸
뒷부분에 부록으로 자신의 시문집인 뺷南昌詩集뺸을 수록하는데 여기에 여공인이
위방달에게 보내는 시가 실려 있다.22) 이로 보아 위방달 역시 여씨 일가의 출판
사업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朱永昌 역시 이 余氏 일가의 ‘출
판 공동체’ 내부의 인물이다. 그의 신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潘建國
은 그와 관련된 두 가지 자료를 찾아 제시하고 등지모와 마찬가지로 余氏 일가의
출판사업에 참여했던 편집자였을 것이라 추정한다.23)
출판의 사회학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은 ‘쟁기’ 시리즈의 기획과 출판에 관련
되어 있는 인물들은 모두 건양의 余氏 일가와 교분 관계가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
이다. 이는 명대 후기 출판 양상의 추이에 몇 가지 재미있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명대 후기의 출판 시장에서는 축사 비슷한 서문을 써서 그 책의 성가를 높여주는
이른바 ‘출판 전문’ 명사들이 적지 않게 활약했다. 주로 과거 시험에서 좌절했거
18) 宋莉華, 뺷明淸時期的小說傳播뺸,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4, 137쪽.
19) 陳旭東, 「鄧志謨著述知見錄」, 뺷福建師範大學學報뺸(哲學社會科學版), 2012年 第4期.
20) 潘建國, 「晩明七種爭奇小說的作者與版本」, 뺷文學遺産뺸, 2007年 第四期.
21) 장대좌에게 보낸 편지가 등지모의 뺷續得愚集뺸卷三에 수록되어 있다. 潘建國, 「晩明七種爭奇
小說的作者與版本」.
22) 뺷南窓詩集뺸 「次魏去非古錢供韻」, (馮夢龍 編, 뺷燕居筆記뺸, 古本小說集成 207-208, 上海古籍
出版社, 1994)
23) 潘建國, 「晩明七種爭奇小說的作者與版本」.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13

나 官途가 순탄치 못한 문인들이 名公, 혹은 山人이라는 이중적 함의를 지닌 타


이틀 아래 일종의 ‘賣文’을 통해 돈을 벌고 서적의 명성을 높여주었다.24) 陳繼儒
가 가장 대표적이며 탁월한 예이다. 문단에서의 명성을 활용하는 관례는 소설,
희곡, 고사집 등과 같은 이른바 통속물 출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자신이
출판계 대표적인 ‘名公’이었던 馮夢龍은 뺷智囊뺸(明 天啓 刊本)을 출간하면서 유
명한 관리이자 정통 문인이었던 張公亮(1584-1652)등을 서문자로 내세운다. 굳
이 名人이 아니더라도 해당 지역의 지방관이나 지인들의 서문이나 贊을 많이 받
아 네트워크를 과시하는 사례는 당시 상당히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建陽 余氏 일가의 출판물 생산 방식은 이와 다소 달랐다. 余氏 일가 중
가장 유명한 余象斗는 상업출판업자 중 책의 序跋文이나 刊記 등을 통해 매우 활
발하게 자신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25) 建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序文’
이나 ‘題辭’와 같은 파라텍스트를 상업적 출판업자들이 직접 작성하는 경우는 드
물었다. 余象斗는 그런 점에서 출판업자들의 자아 표현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는 熊大木의 역사소설 뺷大宋中興岳王傳뺸을 余氏 가문
의 書坊인 三台館에서 다시 출판하면서 ‘名公’의 명성에 기대는 대신 자신의 친
척인 余應鰲을 작가로 제시한다. 저자의 이름을 사칭하는 행위는 建陽의 출판업
자들에게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여상두가 자신과 자신의 일족에게 단순
한 장사꾼이 아닌 저자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음은 짐작할 수
있다. Lucille Chia는 여상두가 아들, 조카와 함께 편찬한 뺷地理統一全書뺸의 서문
에서 자신과 자신의 조상을 유가적 교육을 받았고 충효 사상이 뛰어난 인물로 묘
사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여상두가 건양의 출판업자들에게 일종의 ‘지적인 존중’
을 부여했다고 표현한다.26) 물론 건양의 출판업에 종사했던 인사들의 지식 정도
에 대해 지금 우리가 결론내리기는 힘들지만 여상두 자신도 출판업에 종사하기
전에는 여러 번 과거 시험에 응시했었다. 또 여씨 가문과 쌍벽을 이루는 劉氏 가
문의 대표적 출판가이자 여상두와는 사업적 제휴 관계였던 劉龍田(1560-1639)

24) Kai-wing Chow, Publishing, Culture and Power in Early Modern China,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4, 104-112쪽 참고.
25) Lucille Chia, 앞의 책 157쪽.
26) Lucille Chia 앞의 책 159쪽.
14 中語中文學제60집

의 아들 劉孔敬은 진사가 되기도 했다. 즉 이러한 출판업자들의 상당수는 젊은


시절 정통 관료들과 동일한 내용의 교육을 받았고 이러한 이들은 전형적인 ‘儒
商’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실제 지식 정도 여부보다는 이들
이 자신의 정체성과 대외 이미지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예를 들어 余應虬는
뺷화조쟁기뺸의 서문에서 고전을 인용하며 ‘爭’의 본질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데 이
는 이전에는 서문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名公’들에 의해 이루어지던 행위이다.
‘쟁기’ 시리즈는 일반적인 경전 스타일을 모방하여 批點을 통해 원문의 출처와
의미를 독자들에게 지시해주고 있지만 이 경우 보통 따로 소개되기 마련인 批點
담당 인사의 이름은 전혀 거론되지 않는다. 건양의 출판물 상당수는 출판업자 본
인들이 이를 담당했기 때문이다.27) 즉 건양의 출판업자와 편집자 모두 名人의
명성을 등에 업지 않고도 서적 전체를 감당할만한 능력과 자의식을 드러내 보인
다.
이러한 현상이 혹시 建陽의 余氏 가문에서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출판 방식
일까? 1606년 여상두는 余邵魚 편찬의 全相本 뺷列國志傳뺸을 일부 수정하고 비평
을 달아 뺷按鑑演義全相列國評林뺸(八卷本)을 출간한다. 물론 여기서 그는 자신이
비평을 달아 다시 판각하였으며 雙峰堂(여상두 부친의 서방)에서 출판했음을 적
극적으로 밝힌다.28) 하지만 곧이어 강남 지역의 서방에서 출간된 12권본과 10권
본은 모두 陳繼儒와 李贄의 명의 하에 등장한다.29) 물론 진계유와 이지의 실제

27) 路善全, 뺷在盛衰的背後 - 明代建陽書坊傳播生態硏究뺸, 北京: 中國傳媒大學出版社, 2009,


139쪽.
28) “象斗校正重刻全相批評, 以便海內君子一覽, 買者須認雙峰堂爲記, 余文台識.” (뺷按鑑演義全
相列國評林·識語뺸, 丁錫根 編著, 뺷中國歷代小說序跋集뺸, 北京:人民文學出版社, 1996, 860
쪽) 여소어 편찬의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데 이 원본 역시 유명인이 참여했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29) 12권 본은 1615년 나왔고 전체 명칭은 뺷新鐫陳眉公先生批評列國志傳뺸이다. 이 12권본의
현존하는 3종의 판본 중 출판 지역을 확인할 수 없는 1종을 제외한 나머지는 각각 소주와
남경의 것으로 추정된다(‘姑蘇龔紹山本’과 ‘得月齋周譽吾本’. 주예오는 周曰校로 유명한 남
경의 周氏 가문의 일원임) 이 책은 광고에서 진계유의 손을 거쳤다는 것을 판매 포인트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10권본은 金閶(蘇州) 五雅堂에서 나온 뺷片璧列國志뺸로 표지에 ‘李贄先
生批閱’이라는 문구로 이지의 참여를 선전하고 있다. 각 판본의 양상과 상호관계에 대해서
는 宋征兵, 뺷明代小說列國志傳的創作與批評硏究뺸 (上海師範大學 碩士論文, 2011) 第二節
참고.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15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異論이 분분하지만 그 진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각 書坊


들의 출판 전략이다. 즉 건양 지역에서는 출판업자가 담당할 수 있었던 評이나
批點등의 부분을 강남 지역의 출판업자들은 외부 문인에게 위탁(혹은 가탁)했던
것이다. 建陽의 출판업자들도 만약 강남의 서방과 협력하여 그 곳에서 출판물을
펴낸다면 역시 이러한 관례를 따르곤 했다. 17세 초 南京 蕭氏 가문의 師儉堂에
서 펴낸 뺷繡襦記뺸는 남경에서 출판되기는 했으나 評을 서술한 陳繼儒를 제외한
나머지 출판 담당자 3인이 모두 건양의 유명 출판 가문의 사람들이었고 이 중에
는 여상두의 손자인 余文熹도 포함되어 있었다.30) 즉 실제 출판을 진행한 사람
은 건양의 출판업자들이었지만 만약 강남의 서방에서 출판되는 경우에는 여전히
그 곳의 관례대로 유명인의 개입을 필요로 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
면 建陽 余氏의 출판물에서는 기획에서 인쇄에 이르기까지 이들 가문 중심의 ‘출
판공동체’외에 외부인의 개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이 생산 효율성이
나 경제성 혹은 여타 현실적 문제 등 어떤 목적에서건 이러한 출판 모식은 결과
적으로 書坊의 운영자들을 비롯한 이들 전문 출판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변화
를 암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江南의 출판 방식과 구분되는 建陽 지역
의 지역적 특징이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 建陽과 다른 지역(南京)의 출판물을
비교한 연구결과에서는 지역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거니와31) 무엇
보다 이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건양과 다른 지역에서 출간된 동일한
텍스트의 다른 판본을 대량으로 비교해 봐야 할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는 일단
전국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건양의 출판사에 소속된 전문 편집자들과 출
판업자들이 자신들에게 스스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권리 –다른 지역에서는
文士들에게 주어졌던-를 부여하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쳐야
할 듯하다. 이들은 名人을 초청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적 권력을 상향 조정하
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量的, 質的 발전이 절정에 달한 명대 상업
출판의 몇 가지 모식 중 가장 진화된 양상인지도 모른다.

30) Lucille Chia, “Of Three Mountains Street – The commercial publishers of Ming Nanjing”,
Edited by Cynthia J.Brokaw&Kai-Wing Chow, Printing and book culture in late imperial
Chin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125쪽.
31) Lucille Chia, “Of Three Mountains Street – The commercial publishers of Ming Nanjing”
참고
16 中語中文學제60집

3. 博物的 분류, 脫계보적 배치

‘爭奇’ 시리즈의 구성에서 가장 독특하고 차별화된 부분은 복수의 문체와 주제


혹은 소재를 모두 단일한 서적에 수록했던 다른 종합총집들과 달리 특정한 ‘物’
을 중심으로, 특히 중국의 전통 문화에서 병렬적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인식되는
두 가지 대상을 중심으로 매 서적을 편집했다는 점이다. 꽃와 새[花鳥], 산과 물
[山水], 바람과 달[風月], 차와 술[茶酒], 매화와 눈[梅雪], 채소와 과일[蔬果],
미소년과 기녀[童婉] 등의 자연 혹은 인공물로 이루어진 조합은 ‘蔬果’의 경우처
럼 경험 세계의 층위에서 상호간의 유사성이나 동일성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
만 중국의 문화적, 언어적 관습에서 유래한 병렬 혹은 대립 관계에 놓여 있기도
하다. ‘쟁기’의 이러한 독특한 분류 체계에는 두 가지 前景이 존재한다. 하나는
전통적 글쓰기, 특히 문예적 글쓰기 속에서 일반화된 비유적이고 암시적인 언어
적 틀이다. 花鳥나 山水, 風月, 梅雪등은 인공이 아닌 자연물이기는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객관물이기보다는 중국 문인들의 글쓰기 전통 속
에서는 하나의 문화적으로 상징화되고 고정화된 ‘대상’, 즉 인공화된 ‘자연물’의
성격이 짙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게는 식물인 꽃과 동물인 새가 병치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즉 ‘화조’나 ‘산수’ 등은 자연의 대상
인 동시에 문화적으로 코드화된 일종의 지시물이다.
또 한 가지의 前景은 도덕적, 철학적 방어 기제 없이 外物을 묘사할 수 있게
된 명대 후기의 博物的 사유방식이다. ‘物’에 대한 그간의 정통적 해석은 도덕적
수양을 통해 ‘窮理’에 이르기 위한 ‘格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물의 이
치를 궁구[格物]’함으로써 지식을 확장[致知]시킨다는 고전 속의 학문 방법론은
朱熹에 의해 萬物에는 일치되고 단일한 道가 존재한다는 본질적 사유관념과 세
계관으로 확장되어 근대 이전까지 유가의 지배적인 학문방법론으로 기능한다.
물론 뚜렷한 도덕주의적 목표의 제시 없이 사물이나 현상을 條目化한 類書등의
편찬이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北宋초기 편찬된 대표적인 官方 類
書인 뺷太平御覽뺸의 조목을 보면 ‘쟁기’의 대상들이 상당히 다른 맥락으로 분류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17

되어 있다. 예를 들어 ‘山水’는 여기서 하위분류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독립된


유형이 아니었다. 州郡部의 일부 항목에 산이나 강의 이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그 사물 자체에 대한 관찰이나 소재의 대상으로 유형화시킨 것이 아니라 행
정구역의 경계를 구획하는 지리학적 관점에서 地名化되어 수록되어 있다. 明代
초기 편찬된 官方 類書인 뺷永樂大典뺸을 살펴보면 卷2345-2347까지 ‘鳥’를, 券
5838-5840까지 ‘花’를 수록했다. 그런데 ‘鳥’條의 앞뒤로는 ‘梧’와 ‘蘇’條가 있다.
이 ‘梧’와 ‘蘇’는 주변의 사물이 아닌 梧州와 蘇州, 즉 지역을 의미한다. ‘鳥’와
‘花’를 해석하고 유형화하는 방식도 대단히 추상적이다. ‘鳥’에 해당하는 하위 조
목은 다음과 같다. ‘赤鳥 - 黑鳥- 丹鳥- 錦鳥 - 靑鳥 - 蒼鳥 - 碧鳥 -仁鳥- 義鳥
- 慈鳥 - 細鳥 - 朝鳥 - 雲白鳥 - 丹翠鳥 …… ’32) ‘花’에 해당하는 하위 조목은
다음과 같다. ‘簪花 - 買花 - 賣花 - 陌上花 - 墓上花 - 隔墻花 - 墻頭花 - 山路
花 - 道傍花 …… ’ 33) 뺷영락대전뺸의 편집자들은 ‘物’을 분류하는데 있어 생물학
적 분류에 근거하지 않는다. 이들은 시각이나 현상적으로 객관화할 수 없는, 인
간의 삶이나 문예적 글쓰기 혹은 신화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새와 꽃의 명칭과 관
련 일화를 수록한다. 이와 같은 ‘物’의 분류와 해석은 사실상 ‘物’ 그 자체를 대상
으로 하기보다는 인간사에 ‘物’이 개입되어 있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 맥락이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분류와 지식체계가
前景化하고 있는 것은 바로 ‘物의 세계’가 아닌 인간적 질서의 확립, 더 정확히
말하면 통치 질서의 확립이다.
이러한 格物 관념은 사실 명대 후기에도 여전히 지식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명대 후기에는 이와 동시에 사물이나 현상을 호기심에 입각하여 분류하고 배열
하는 ‘博物的’ 관심 또한 존재했다. 이러한 博物的 사유는 단일한 道에 의해 관통
될 수 없고 절대 우위의 ‘준거틀(frame of reference)’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늘
어놓기’식 지식 체계에 입각한 것이다. Benjamin Elman은 朱熹의 사고방식에 따
르면 이른바 ‘博物’은 ‘格致’적 관점과는 상대적인 것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후자
는 도덕적 목표에 의해 지시되고 상대적으로 전자는 목적 없는 博學이기 때문이

32) 뺷永樂大典뺸 卷二千三百四十五, 姚廣孝 等撰, 楊家駱 編, 뺷永樂大典뺸 第十六冊, 世界書局 影


印本, 1962.
33) 뺷永樂大典뺸卷五天八百三十八, 뺷永樂大典뺸第十六冊, 世界書局 影印本.
18 中語中文學제60집

다.34) 뺷博物志뺸로 표상되는 고대의 博物이 異國, 異人, 異物 등 낯선 것에 대한


상상력과 호기심에 바탕을 두고 구성되었다면35) 明代의 博物은 本末적 계보를
지향하는 기존의 정통 사유체계에 대한 顚倒的 성격이 강하다. 즉 고대의 박물학
처럼 비현실적 요소가 여전히 들어있으나 本末之道의 格物的 관점을 해체하고
지식을 평행적으로 나열하는 ‘脫계보적’ 성격에서 그 시대적 특징을 찾을 수 있
다.
이러한 박물적 사유와 지식체계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유형의 서적 출판에서
도 표현되어 있다. 이 시기에 유행한 총서와 총집, 각종 요약본, 類書, 특히 16세
기 말부터 비슷한 포맷으로 상업 출판에 의해 대량 출간된 日用類書는 이러한 박
물적 지식 체계와 사유방식이 집약된, 일종의 대중들을 위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36) 일용유서들은 전통 유서에서는 상상 할 수 없었던 온갖 세속적인 지식
들을 모두 포괄한다. 지리, 농업, 의학, 군사, 점복, 인물, 養生, 편지 쓰는 법, 온
갖 종류의 농담과 유머, 가정의례, 書法, 棋譜, 蠻夷, 화초 키우는 법, 심지어는
기녀를 다루는 법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람, 사건을 한 권에 담으
려 시도한다.
그렇다면 ‘爭奇’ 시리즈는 명대 후기의 博物的 지식체계, 사유 방식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을까? 지금까지 ‘爭奇’ 시리즈에 대해 언급한 기존의 학자들은 예외
없이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1권에 대단한 관심을 보인다. 潘建國은 이 앞부분
의 논쟁이 敦煌 문서에 존재하는 議論, 즉 佛道論難, 帝王仲裁의 論議表演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37) 물론 ‘쟁기’의 논쟁 형태 자체가 敦煌 문서를 직접 계승
했을 것 같지는 않으나 민간 技藝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유래와 관계없이 이러한 논쟁은 결국 ‘物’의 나열로 귀착된다. 이는 물

34) 本杰明 ‧ 艾爾曼, 「收集與分類: 明代匯編與類書」, 뺷學術月刊뺸41卷, 2009年 5月.


35) 이연희, 「낯설음에 대한 유혹 – 지괴의 타자성」(뺷도교문화연구뺸제34집, 2011, 4월) 참고.
36) 四庫全書의 분류에 의하면 ‘類書’는 事文, 科舉, 書翰啟劄, 詩賦詞藻, 氏姓人物, 故事, 幼學啟
蒙類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명대의 상업출판은 전통적인 종합유서는 물론, 특정 분야만을
전문화한 전문 유서,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이야기를 다루는 백과사전적 성격의 ‘日用
類書’ 등 다양한 형태의 類書를 생산해낸다. 일용유서의 개념과 분류에 대해서는 일반적으
로 선구자격인 酒井忠夫의 의견을 많이 따른다. 酒井忠夫,「元明时代の日用類書とその教育
史的意義」(뺷日本の教育史學뺸1期, 1958年) 참고.
37) 潘建國, 「明鄧志謨爭奇小說探源」.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19

론 서사의 外皮를 쓰고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형식을 띠고 있으나 동시에 ‘物’을


분류하고 유형화하기 위해 작성한 ‘목록’이기도 하다. 명대 후기의 문화적 관점
에서는 ‘物’에 대한 목록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지식 체계의 재현이자 읽을거리
였다.38) 뺷花鳥爭奇뺸는 卷一의 논쟁을 통해 꽃과 새에 해당하는 생물들의 이름을
나열한다. (원문 평점은 생략했음)

지빠귀가 말했다. “우리 鳳凰은 새들의 왕이시며 七德을 겸비하셨고 글


에는 五彩가 흐르니 태평의 상서로운 기운이 있어 사람들이 서로 보려
고 하니 너희 꽃들 중에 (이런 것이) 있느냐?”
두견화가 말했다. “우리 牡丹은 꽃들의 왕이시며 色으로 말하면 國色이
며 香은 天香이로다. 魏씨 집과 姚씨 집에서 심었다 하여 사람들이 서
로 소중히 여기는데 너희 새들 중에 (이런 것이) 있느냐?”
지빠귀가 말했다. “우리 새들 중에는 大鵬이 계신데 바람을 타고 날아
올라 구만리도 한 순간에 날아간다. 어찌 꽃이 적수가 되겠는가?”
두견화가 말했다. “우리 꽃들 중에 璠桃가 있는데 감로수만을 먹고 삼
천년에 한 번만 꽃을 피운다. 너희 새들이 어찌 비하겠는가?”
지빠귀가 말했다. “우리 새들 중 瑞鶴는 신선들 중 으뜸이다.”
두견화가 말했다. “우리 꽃들 중 仙桂는 항아의 향료이다.”
지빠귀가 말했다. “우리 흰 꿩[白鷴]은 맑고 깨끗하여 瑤池를 빙설처럼
꾸며 주었다.”
두견화는 말했다. “우리 붉은 은행[絳杏]은 아름답고 선명하여 (신선들
이 사는) 紫府를 붉은 색으로 물들였지.”
지빠귀는 말했다. “우리 靑鳥는 서왕모의 심부름을 하지.”
두견화는 말했다. “우리 木樨는 장원들의 꽃이라네.” 39)

지빠귀와 두견화의 설전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도입부를 통해 편집자는 새와

38) Clunas는 명대에는 물건의 ‘목록’에 관련된 독자층(readership)이 존재했다고 하였다. Craig
Clunas, Superfluous things : material culture and social status in early modern China,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4, 49쪽.
39) “百舌曰: 我鳳凰爲白鳥之王, 體備七德, 文成五彩, 太平祥瑞, 人所快覩, 汝花中有麽? 鬧陽曰:
我牡丹爲花中之王, 色則國色, 香則天香. 魏紫姚黃, 人所爭重, 汝鳥中有麽? 百舌曰: 我鳥中有
大鵬, 扶搖狂飇, 九萬里只一瞬. 如何花可以敵之? 鬧陽曰: 我花中有璠桃. 飽歷甘露, 三千年只
一花, 汝何鳥可以比焉? 百舌曰: 我鳥中瑞鶴, 仙人之麒麟. 鬧陽曰: 我花中仙桂, 姮娥之龍涎.
百舌曰: 我白鷴瑩潔, 是瑤池氷雪粧成. 鬧陽曰: 我絳杏芳菲, 是紫府丹砂染就. 百舌曰: 我靑鳥
乃爲王母使. 鬧陽曰: 我木樨刻是狀元花.” (뺷花鳥爭奇뺸一卷, 春語堂本 5-6쪽)
20 中語中文學제60집

꽃에 속하는 자연물들을 관련된 고전(여기서는 주로 神話나 道敎 관련 문헌)과


연계하여 소개한다. 이들의 舌戰은 서사적 진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대상
물을 나열하는 ‘목록’의 성격이 강하다.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않고 ‘物’에 관
한 목록을 역사적 관점으로 배열하는 것이 이른바 ‘중국식 博物’이라 한다면40)
비록 과학적 분류는 아니지만 이러한 형태가 명대 후기에 유행하던 博物的 사유
방식과 지식 체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목록이 제시된 뒤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된다. 뺷風月爭奇뺸에서 바람과 달을 각
각 대표하는 風神少女와 月姊姮娥 간의 논쟁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들이 어떻게
박물적 배치를 구현하는지를 보겠다.

소녀는 말했다: 쯧쯧, 네가 어찌 나를 이긴다는 거야? 한 번 따져 보자.


옛날 蘇軾이 ‘바람과 꽃이 장춘원에 잘못 날아들고 눈과 달은 불야성에
함께 임한다.’41)고 했어. 나를 앞에 놓았다고.
항아는 말했다: 邵雍이 ‘오동나무에 걸린 달 가슴 향해 비치고, 버들가
지에 부는 바람 얼굴을 스치네.’42)라고 했어. 나를 먼저 놓았네요. 43)

두 진영의 논객들은 고인들의 시 구절에서 바람과 달 중 어떤 것을 앞에 내세


웠는지를 근거로 우열을 가리려 한다. 蘇軾의 시는 눈 내린 뒤 시인이 바라본 풍
경을 묘사한 것이고 邵雍의 시는 한가로운 은거의 정취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반박하거나 조롱하기 위한 언어적 자료로 전락하는 순간 이 작품
들은 하나의 수단으로 변질된다. 편집자들이 자료를 취하는 첫 번째 원칙과 근거
는 詩學이나 詩的 정신이 아닌 오로지 ‘소재’이다. 원전의 의미와 작품 전체의 맥
락과는 유리된 이러한 소재주의는 문학적 글쓰기를 대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
으로 간주하는 유희적 태도를 보여준다. 편집자는 이 압축된 설전을 통해 고금의
시공간을 종횡무진하며 자신의 문학적 지식과 문헌적 교양을 뽐내지만 이러한
40) Benjamin A. Elman, On Their Own Terms: science in China, 1550-1900, Harvard
University Press, 2005, 「Introduction」 5쪽.
41) 이 대목은 蘇軾의 7언율시 「雪后到乾明寺遂宿」의 한 구절이다.
42) 이 구절은 邵雍(1011-1077)의 「首尾吟」 중 한 대목이다.
43)“少女曰 嘖嘖, 爾何以勝我? 試數焉. 昔坡仙云, 風花誤入長春苑, 雪月交臨不夜城, 則居我爲先
也. 姮娥曰, 邵康節云, 梧桐月向懷中照, 楊柳風來面上吹, 則居我爲先也. (뺷風月爭奇뺸, 春語
堂本 10쪽)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21

脫가치적인 ‘섞임’에 의해 原典의 정신과 함의는 깡그리 무시된 채 오로지 ‘사물’


(혹은 현상)의 피상만이 남는다. ‘梧桐月’이나 ‘楊柳風’의 함의와 관계없이 중요
한 것은 이들이 ‘月’과 ‘風’의 일종이라는 사실일 뿐이다.
사실 이 시기 상업출판의 대표적인 편집형 출판물인 日用類書에는 ‘花鳥’와 같
이 일상의 삶과 크게 관계없는 物은 수록되지 않았다. 때문에 얼핏 보면 ‘쟁기’시
리즈는 일용유서 등과는 분류 체계나 준거틀이 다른 듯하다. 하지만 ‘쟁기’의 편
찬자들이 기본적으로 참조하고 있는 각종 시와 경전과 관련된 자료들 역시 ‘脫계
보적’인 병렬과 나열이라는 類書 편찬 방식으로 재편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
가 있다. 일용유서는 외형적인 ‘物’의 형태에 주로 입각하여 그것들을 나열, 병렬
하는 ‘沒가치적’ 특징을 지닌다. 물론 일용유서가 사회적, 역사적 질서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용유서 역시 전통적 혹은 當代的 가치를 반영한 부
분이 적지 않다.44) 하지만 사물을 분류하는데 있어 本末的, 계보적 가치 관념이
아닌 병렬적 질서를 적용하는 이러한 방식은 명대의 博物的 세계인식과 결코 무
관치 않다. 사실 물질은 문학적 글쓰기 속에서는 종종 기탁이나 비유, 암시를 위
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景物은 시 속에서 자아 표현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즉 外物
의 묘사는 사람의 심리와 사람이 만든 세상의 질서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
이다. 이러한 전통적 本末 관념과는 반대로 外物의 외형을 기준으로 경전과 글쓰
기의 역사적 계보를 해체한 이러한 분류는 파격적이면서 當代的이다. 이들의 자
료 배열 방식에는 어떠한 도덕적 전제나 자기 수양의 명제도 포함되어 있지 않
다. 이들 자료는 ‘物’을 전시하기 위해 동원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脫계보적’ 편
집은 卷二와 卷三에서도 재현된다. 뺷花鳥爭奇뺸卷之二의 ‘七言絶句’ 부분을 보면
「梅花」(鄧志謨) - 「白梅」(蘇軾) - 「墨梅」(楊基) - 「牡蘭」(楊萬里) - 「桃花」(蘇軾)
- 「李花」(黃庭堅) - 「梨花」(杜牧) - 「海棠」(鄭谷)- 「酴釀花」(황정견)의 순으로 배
열한다. 이러한 배열을 보면 이들에게 분류의 기준은 포면적 소재일 뿐 시의 함
의에 담긴 역사적, 사회적 질서나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시의 내용이
나 역사적, 문화적 배경 등을 곱씹을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鄧志謨는 아
마 시각적으로 가장 빠르게 분류가 가능한 대상의 이름(즉 제목)만으로 빠르게

44) Yuming He는 뺷萬用正宗不求人뺸등의 일용유서들이 삽화와 같은 시각적 형태를 통해 어떻게


명 왕조의 제국적 시각과 이상을 반영하고 있는지 분석하였다. 앞의 책 195-201쪽 참고.
22 中語中文學제60집

편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회적 함의와 질서를 포함시키는 계보적 방식에서 벗어나 현상적, 시
각적인 外物 그 자체를 기준으로 재배치하는 이러한 類書式 분류 방식은 박물적
지식체계 뿐 아니라 ‘수집’되고 ‘분류’된 자료를 각각의 원작자가 아닌 편집인에
게 귀속시키는 當代的 저작권 개념, 즉 창조적 산물로서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
아닌 편집된 서적에 대한 소유권으로서의 저작권 관념과도 관계있을 것이다. 편
집자의 서적에 대한 소유권은 ‘수집-분류-배열’ 행위가 수립하는 서적 내부의 모
종의 질서에서 기인한다. 漢武帝의 「秋風辭」는 새삼 설명이 필요없는 辭賦의 경
전적 작품이며 제왕의 정신과 기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의 권위와 무게
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뺷풍월쟁기뺸卷二에 실린 「추풍사」는 ‘바람을 소재로 한
辭賦’라는 내부적 질서의 틀에 의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추풍사」가 갖는 영
향력 속에 내포되어 있는 문학사적 질서가 완전히 소실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러한 것들이 이 서적의 준거틀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편집자들이 이 상업적
편집형 출판물을 통해 드러내는 ‘物’의 세계는 인간 세계의 諭比인 동시에 피상
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쟁기’ 시리즈의 피상적 소재주의를 완전히 중립적인 ‘博物’의
실현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뺷영락대전뺸의 추상적인 분류와는 다르지만 ‘쟁기’
의 物의 목록 역시 여전히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가 혼재되어 있다. 사실 명대 후
기에 유행했던 博物的 관심은 결코 근대적 자연과학이나 실험 혹은 경험에 기반
한 실체적 탐색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45)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것은
類書나 叢書 등에서 볼 수 있는 지식의 ‘늘어놓기’식 배열이 결코 카오스식의 무
맥락적 의미체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만력 연간에 등장했던 소
설총집 등 편집형 출판물들에서 편집자에 의한 지식의 재배치가 종종 새로운 의
미적 맥락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음에 주목한 바 있다.46) 日用類書의 지식 배치
속에서도 ‘博物’과 ‘格致’가 늘 혼재하고 있었던 것도47) 이와 동일하게 이해할 수

45) Benjamin A. Elman, On Their Own Terms: science in China, 1550-1900, 59쪽; 本杰明 ‧
艾爾曼, 「收集與分類: 明代匯編與類書」.
46) 최수경, 「國色天香과 明末 상업 출판에서의 ‘책’의 변형」, 뺷中國語文論叢뺸제59집, 2013, 10.
47) 本杰明 ‧ 艾爾曼, 「收集與分類: 明代匯編與類書」.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23

있을 것이다. 600여권의 서적을 수록한 뺷格致叢書뺸의 편집자 胡文煥과 같은 대


형 총서의 편집자, 뺷本草綱目뺸을 편찬한 李時珍과 같이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의
학자에 가까운 자연과학자들은 博物的 지식 배치를 실천한 대표적인 사례일 것
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이러한 博物을 통해 실현하려는 것은 ‘사물들을 (정확하
게) 호칭하는 것’[名物]이나 사물/현상/사건의 역사적 서술을 수집, 수록하는 것
이었다. 이러한 ‘용어들의 계보학’ 내지는 ‘텍스트화된 자연사(natural history)’48)
는 바로 고전적 지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이 천착한 것은 뺷爾雅뺸나 뺷詩
經뺸과 같은 경전에서 이러한 사물이나 현상이 어떤 용어로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에 대한 ‘서술의 역사’였지 사물 그 자체에 대한 경험적 지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4. 遊戲를 위한 전통의 활용

‘쟁기’ 시리즈가 명대 후기의 박물적 지식체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


지만 동시에 전통 유서의 편집과 經典의 배열 방식을 모방하기도 했다. ‘쟁기’의
각 一卷에 등장하는 양 진영의 논쟁은 매우 해학적이고 때로 유치하기까지 하지
만 이들이 구사하는 언어의 상당수는 고전문헌에서 인용한 것들이다. 그 출전은
유가 경전, 뺷莊子뺸, 역사서, 그리고 시와 산문, 필기 등 고전문화 전반을 망라한
다. 사실 전통 유서 역시 이러한 고전에서 해당 조목을 추출하여 인용문을 제시
하는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과 평점이 함께 한 공간에 배치되는
것 역시 당시 四書를 비롯한 經典의 주요한 지면 배치 방식이기도 했다. ‘쟁기’의
一卷은 단순하고 통속적인 설전과 고상한 인용문이 미묘한 양상으로 뒤섞여 있
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영역의 경계는 挾批에 의해 조심스럽게 드러나지만 사실
이 경계는 독자들에게 경외를 느끼게 하기 보다는 독자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을
가늠해보는 유희적 성격이 더 두드러진다.
물론 ‘쟁기’ 시리즈 뿐 아니라 명대 후기 상업적 편집 출판물들에서 온갖 이질
적인 요소들이 뒤섞이는 현상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異種性은 종
종 유희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하나의 시퀸스 속에 동서고금의 텍스트를 연결

48) Benjamin A. Elman, On Their Own Terms: science in China, 1550-1900, 38쪽.
24 中語中文學제60집

시키고 혼합하는 이러한 현상은 戲曲總集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다. 戲曲총집의


하나인 뺷博笑珠璣뺸에 대한 분석에서 Yuming He는 이러한 결합이 “그들 사이의
경계의 권위와 분할의 느낌을 전복시키고 텍스트적 유희의 특별한 공간 내부에
서 이 둘의 통약가능성(commensurability) 을 제시한다.”고 지적한다.49) 이 통약
가능성이란 여기 인용된 자료들이 雅俗의 각기 다른 세계에서 유래하지만 이 두
요소 모두 유희적 목적에 동원되었다는 최소한의 공통분모에서 비롯된다.
뺷童婉爭奇뺸은 유희적 목적을 위해 고전의 轉用과 재맥락화가 얼마나 극단적으
로 진행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이 작품은 7種 중 유일하게 사물이 아닌
사람을 중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뺷동완쟁기뺸는 도시 거주 남성들의 性的 쾌락의
대상인 미소년과 기녀를 소재로 삼고 이들을 앞의 花鳥나 山水와 같은 관찰 대상
으로 놓았다. 물론 이들은 경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
이 아닌 物化된 객체이다. 이러한 기획을 性의 物的 대상화라고 간단히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시리즈 기획 방향이 확대되었을 가능성을 생
각해야 한다.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원래 이 시리즈는 당시 유행하던 이른
바 鑑賞家(connoisseurs) 시장과 관련되어 기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뺷동완쟁기뺸에 이르면 아마 書坊에서는 감상가들 뿐 아니라 도시의 子弟들에게도
눈을 돌린 것 같다. 子弟文化는 곧 도시의 비주류 문화 혹은 대안문화와 상당 부
분 겹쳐진다.50) 문인 엘리트들의 주류문화 –과거시험, 경전에 대한 해석, 정통
詩文 등으로 압축되는 – 속에 표현되지 못하는 도시 남성들의 이 대안문화에는
뺷금병매뺸에 묘사된 상인들, 한량들을 포함한 각종 네트워크와 기루와 연회로 대
표되는 공간들, 酒令 등과 같이 오로지 즐거움과 공감대 형성만을 목적으로 하는
유희적 글쓰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뺷동완쟁기뺸가 전통적 글쓰기를 활용하는 방식은 다른 시리즈와 비슷하다. 이

49) Yuming He, 앞의 책, 28쪽.


50) Shang Wei는 뺷금병매뺸의 西門慶과 그 주변 한량들의 삶의 형태를 ‘子弟文化’라 표현하는데
이러한 子弟文化는 일용유서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뺷금병매뺸와 일용
유서는 동일한 준거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The Making of the Everyday World Jin
Ping Mei cihua and Encyclopedias for Daily Use”(edited by David Der-wer Wang and
Shang Wei, Dynastic Crisis and cultural Innovation - from the Late Ming to the Late
Qing and beyond, Harvard Univ. Press, 2005) 참고.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25

책의 卷上에는 長安城에 있는 美童들의 기방인 長春苑과 妓女들이 살고 있는


不夜宮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이 두 곳 모두 狎客들에게 유명했다. (괄호 안
은 原註임)

……이상과 같은 미소년들은 태도가 閑雅하여 이를 본 사람들은 놀라


말하기를 “어떤 어미가 寧馨兒51)를 낳았을꼬. 瓊林瓊樹가 속세의 먼지
를 날려버리는구나.” …… 이상의 여자들은 뛰어난 풍도에 자태가 아름
다웠으니 보는 이들은 모두 놀라며 “하늘인가 땅인가.”라 했다. (뺷詩
經뺸에서 나온 구절) 52)月姊雲仙들은 범상한 속세의 인물들이 아니구
나.“라 하였다. 두 곳의 기방에서는 남자들의 자색이 속되지 않았고 여
자들의 자색은 범상치 않았다. 화류객들은 혹은 장춘원에서 미동들을
희롱하였고 혹은 불야궁에서 기녀들과 시시덕거렸다. 봄날 아침의 일각
은 만금의 가치가 있는 법이니, 그 정취가 대단했다. 53)

손님을 둘러싼 미동과 기녀들의 경쟁은 우연히 저자거리에서 이들 두 무리가


마주치면서 우습고도 저속한 싸움으로 비화된다. 이들은 서로를 모욕하면서 시
종일관 고전 문헌에서 인용한 전고와 名人들의 시를 인용한다.

塞眞은 말했다.“정말 잘난 南子의 정부 같으니.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


한 적이 있었지. ‘너희들이 새끼 돼지를 낳았으니 (아들을 낳았음을 일
컫는다) 우리 수퇘지는 돌려 다오.’54) 수퇘지의 짝이 감히 나와 견주느
냐? …… 少朝가 말했다. ”정말 잘난 안녹산의 계집 같으니. 어떤 사람
이 시로 이렇게 읊었지. ‘어린 죽순 돌아보는 이 없고, 모래 위 어린 새

51) ‘寧馨兒’란 말 그대로 하면 ‘이런 아이’라는 의미인데 보통 아이나 젊은이의 외모를 칭찬할
때 사용한다. 뺷晉書뺸에서 나온 표현으로 王衍의 젊은 시절 외모와 풍채를 형용한 말이다.
52) 뺷詩經·庸風·君子偕老뺸에서 나오는 표현으로 원전에는 “胡然而天也!胡然而帝也!”로 되어
있다. 의미는 ‘무엇이 하늘이며 무엇이 天神인가!’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외모와 치장이 天
神처럼 아름답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53) “以上諸人, 態度閑雅, 見之者必警曰, 何物老嫗生此寧馨兒. 瓊林瓊樹, 殆風塵表物矣. …… 以
上諸娟豊神綽約, 見之者, 必警曰, 胡然而天, 胡然而地, (句出詩經) 月姊雲仙非塵凡中質矣. 是
二院也, 男子絶俗, 女色超群, 遊冶之子, 惑於長春苑中, 拈花美(*弄의 誤字인 듯)樹, 成於不夜
宮中, 雨撩撩雲, 一刻春曉抵萬金, 趣甚.” (뺷童婉爭奇뺸一卷, 4쪽. *는 필자주)
54) 이는 뺷左傳·定公十四年뺸중 “野人歌之曰既定爾婁猪,盍歸吾艾豭?”에서 나온 전고이다. 杜預
의 주에 의하면 婁猪란 새끼 돼지를 원한다는 뜻으로 衛靈公의 妃인 南子를 비유한 것이다.
艾瑕란 수퇘지란 의미로 양성애자인 宋朝를 비유한 것이다. 원래 송조는 위나라의 大夫로
위령공의 비인 南子와 간통을 하자 宋人들이 그 들을 풍자해서 부른 노래 중 한 구절이다.
26 中語中文學제60집

어미에 기대 잠드네.’55) 누추한 새 새끼가 감히 나와 겨루려는 거냐?“


56)

朱熹를 비롯하여 정통 도학가들에 의해 도덕적, 정치적 의미로 줄곧 해석되어


오던 뺷시경뺸의 시는 여기서 창녀의 용모와 자태를 칭찬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초
봄의 풍경을 그린 詩聖 杜甫의 서정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여
성의 몸을 지칭하는 모욕적인 의미로 轉用된다. 전용과 再맥락화의 과정을 통해
이 모든 언어적 수사는 유희와 조롱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언어유희는 다양한 지
식적, 교육적 배경을 지닌 독자들의 읽기를 다양한 층위로 조작하기 위한 트릭일
수도 있다. 여기에 인용된 원전의 의미를 해독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이해하
고 있는지에 따라 독자의 해석 지평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종 고전 문헌에서 발췌한 인용문, 평점과 주석 등은 실제로 독자의 독서를 안
내하는 역할도 하겠으나 그 보다는 경전 텍스트의 구성에 대한 형태적 모방이라
는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당시 독자들은 큰 글자와 작은 글자로 분명히 구분한
‘본문과 주석’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경전 텍스트에 대단히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
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들은 ‘疑似 經典’의 외형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기여한
다. 하지만 경전이나 고전시로 대표되는 정통의 글쓰기가 상호 간의 비방이나 욕
설을 위해 동원되는 이러한 구조에서 사실 고전은 그 자체로 公的 담론의 바깥
에 위치한 패러디일 뿐이다. 서적 생산자들은 끊임없이 이 세계와 정통적 고전
세계의 연계를 상기시키지만 이러한 원전들은 여기서 편집자의 조작에 의해 전
이되고 再맥락화될 수 밖에 없다.
原典의 ‘轉用’은 뺷동완쟁기뺸의 卷二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위에서 설
명했다시피 모든 ‘쟁기’ 시리즈의 卷二와 卷三은 卷一에서 논쟁을 벌인 두 당사
자들을 소재로 한 역대 詩選이다. 그런데 뺷동완쟁기뺸의 卷二는 대부분 우정과 관
련된 역대 시인들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送友歸宜春」(唐 紀唐夫), 「期友不來」

55) 이 시는 두보의 絶句「漫兴」九首 중 7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糝徑
楊花鋪白毡,點溪荷葉叠青錢. 笋根雉子無人見,沙上鳧雛傍母眠.”
56) “眞曰, 好一個南子的姦夫. 人有云, 既定爾娄猪,盍歸吾艾豭. 艾豭之配敢與吾角勝? …… 朝
曰, 好一個安祿山的蠻婆, 人有詩云, 笋根稚子無人見, 沙上胡(*원전에는 鳬字임)雛傍母眠. 胡
雛之累, 敢與我爭强?” (뺷동완쟁기뺸 上卷 6쪽. *는 필자주)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27

(宋 黃魯直)등의 작품은 고전시에서


매우 일반적인 우정을 노래하는 시
로 해석되지만 편집자는 여기서 손
님과 美童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 시들을 동원한다. 友에 대한 전
통적인 범주와 개념은 여기서 다시
한 번 전복된다. 물론 이러한 활용
이 창조적이었다거나 기발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적어도 뺷동완쟁기뺸에
서 남성간의 우정을 소재로 한 전통
시의 활용은 누가 봐도 명백한 誤導
그림 2 春語堂本 뺷童婉爭奇뺸卷上
이며 견강부회이다. 편집자가 물론
이 두 관계 (友誼와 狎邪)의 차이를 혼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균일화, 규
범화된 ‘爭奇’시리즈의 틀을 준수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가능성이 높다. 편집
자는 이미 틀이 갖추어져 있는 서적의 규범을 지키기 위해 자료를 억지스럽게 끌
어온다. 상업출판은 종종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텍스트의 형태를 만들어내기보다
는 검증된 형태와 자료를 재활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은 명
대 후기 도시의 이른바 ‘B급 문화’와 엘리트 문인들이 공유하는 글쓰기 전통을
하나의 구조 속에 결합할 때 생기는 의미와 개념에서의 괴리를 아랑곳하지 않는
다. 이백과 두보와 같은 전통시의 상징들은 이 텍스트 속에서 편집자가 설정한
의미 범주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배치된다.
전통의 활용이나 轉用은 물론 鄧志謨가 독창적으로 발명한 것은 아니다. 전통
의 轉移的 활용은 명대 후기 상업출판에서 생산한 편집형 출판물의 보편적인 규
범이기도 하다. 원래 송대 이후 전통의 借用과 활용의 문제는 많은 문인들의 고
민거리가 되어 왔다. 이 문제는 시 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모방 혹은 다시쓰기와
관련하여 제기되었다. Martin Huang은 明代 四大奇書에서 ‘義’에 관련된 전통적
개념이 어떻게 진화되고 전이되는지를 분석한 바 있다.57) 그는 義 관념의 표현

57) 黃衛總(Martin Huang)/홍주연 역, 「탈역사화와 상호텍스트화: 중국 전통 소설 발전에서의


선례의 불안」, 뺷중국소설연구회보뺸 52집, 2002, 11.
28 中語中文學제60집

이 사대기서 사이에서 계속 전복되고 재해석되면서 가치의 순위가 전도될 수 있


음을 보여준다. 물론 ‘쟁기’와 같은 상업적 출판물에서 전통의 활용(用古)과 창조
성 사이의 불안과 긴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爭奇’라는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유희적 시선으로 도시 남성들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不恭스러운
유희적 글쓰기는 결국 전통적 글쓰기에서 동력과 정당성을 확보한다.
전통의 활용이나 전도는 종종 다양한 결과를 낳게 된다. 예를 들어 四大奇書
안에서 義와 같은 전통적 덕목들이 선례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그 의미와
범주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脫 역사화’를 이루어 냈다면58) ‘쟁기’ 시리
즈를 비롯한 명대 후기의 상업적 편집형 출판물들은 이러한 자의적인 전통의 활
용과 전이를 통해 ‘脫 도덕화’를 달성한다. 北宋 말기 이후 사대부들의 글쓰기와
학문 경향은 이전의 문화중심주의에서 윤리, 철학적 관점으로 변화되었다 59) 그
리고 이러한 ‘주체의 도덕화’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식인들을 지배했었다.
하지만 명대의 사회적 재편은 이러한 양상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다. 명대 후기
의 다양한 사상적 진폭과 물질적 조건의 변화가 사대부들로 하여금 理學의 교조
적 도덕중심주의로부터 상당 부분 벗어나게 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명
대 후기에 개인의 욕망이 도덕적 타락과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다는 식의 개탄은
이미 당시의 관료들 사이에서 익숙한 주제였다.60) 때문에 유희적 목적을 위해
기획된 상업적 출판물에서 ‘脫 도덕적’ 경향이 드러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전통의 활용’이라는 방식에 기대고 있다는 것은 매
우 의미심장하다. ‘전통의 활용’이 결국에는 전도된 의미를 구성하고 있기는 하
지만 상업출판의 생산자들 역시 ‘전통’을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
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전의 혼합이 추구하는 유희적 독서, 사물의 표상에 의거한 분류와
병렬식 지식 체계의 부활, 도덕이나 윤리적 가치를 전제하지 않은 전통의 활용
등 ‘爭奇’ 텍스트의 내부적 양상들이 보여주는 서적 생산의 사회적 의미를 탐색

58) 黃衛總, 앞의 논문.


59) 피터 K. 볼/심의용 옮김, 뺷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뺸 (서울: 북스토리, 2008년) 참고.
60) 티모시 브룩 지음/이정·강인황 옮김, 뺷쾌락의 혼돈- 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뺸, 이산, 2005,
「서론」 참조.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29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문인들의 ‘物’ 담론과


‘爭奇’ 시리즈의 사물에 대한 관점을 비교해 보고 ‘쟁기’의 편집자들이 추구하던
독자대중의 문화적 정체성을 탐색해 보도록 하겠다.

5. 명대 文人들의 ‘物’ 담론과 상업출판

‘쟁기’시리즈는 팔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의 성격이 강하지만 이미 명대 후기에


는 ‘物’에 대한 관심을 문학적 글쓰기로 발전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는 사
물을 분류하고 감상하는 鑑賞(connoisseurship)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논
쟁이나 詩選의 형태를 빌리기는 했지만 ‘爭奇’ 시리즈가 지닌 기본적인 구성과
틀이 특정 ‘物’에 대한 평가 혹은 賞讚이기 때문에 이 책을 감상가들
(connoisseurs)과 연계시킨 의견도 이미 제시되었다.61) 16세기 중반 이후 문인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일상생활에 관련된 사물이나 예술품, 골동품들을 제대로 감
상하고 평가하는 방식에 관한 글들이 유행했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鑑賞문헌
(connoisseurship literature)’이라 칭한다.62) 관련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서의 ‘감
상’ 혹은 ‘감식안’은 경제 발전에 따른 소비문화의 번영과 더불어 특정 대상에 대
한 ‘집착[癖]’의 형태를 보이는 문인들의 삶의 양상과도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전까지는 유가적 삶에 대한 대안적 형태의 하나로 존재하던 ‘癖’이 16세
기 이후 문인들의 필수적 자질이 되었다는 것이다.63) 이러한 ‘癖’은 특정 ‘物’에

61) Lucille Chia, Printing for Profit - The Commercial Publishers of Jianyang,
Fujian(11th-17th Centuries), 241쪽.
62) ‘connoisseurship’이란 원래 예술품이나 물건에 대한 감식안 혹은 감상 능력을 의미하고
literature는 책과 에세이 종류를 포함한 ‘문헌’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connoisseurship
literature’에 해당하는 적확한 한국어 번역어는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다. 뺷쾌락의 혼돈뺸의
한역본에서는 이러한 저작들을 ‘취향 안내서’라 번역하였다. 이 번역어는 이러한 문헌들의
목적과 사회적 존재 양상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이러한 문헌
들이 학자나 문인들의 ‘고상한’ 취향과 분명 관계가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특정 대상을 감
별할 수 있는 능력이나 그 대상의 내면적 가치와의 동일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을 드
러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는 잠정적으로 ‘鑑賞 문헌’이라 해석하였는데 이는 物(인공물,
자연물 모두 포함)을 구분하고 즐기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16-17세기에 유행한 저
작물들을 의미한다.
63) Judith T. Zeitlin, “The petrified heart: Obsession in Chinese literature, art, and
30 中語中文學제60집

대한 과도한 관심과 애정을 기반으로 그 ‘物’을 분류하고 다듬고 적절히 배치하


고 향유하는 방식을 묘사하는 특정 유형의 담론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유형의 著作들은 주변의 자연환경, 화병이나 가구, 악기, 문방사우, 서
재를 비롯한 거처 등 자신의 삶에 관련된 모든 사물들을 논하고 품평하는 특정한
글쓰기의 틀을 점차 확립한다. 이러한 저작들이 명대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었지
만 가장 유행한 것은 명대 후기였다. 高濂의 뺷遵生八箋뺸 (1581), 屠龍의뺷考槃餘
事뺸(1606), 文震亨의 뺷長物志뺸(1615-1620로 추정) 64)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저작들의 출간은 이 시기 物에 대한 담론이 대단히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담론들은 물론 상업출판의 편집자가 아닌 정통 교육을 받은 문인들에 의해 공론
화되었지만 사실상 특정 개인의 취향이나 창조적 아이디어를 반영했다고 보기보
다는 이미 조성된 규격화된 담론의 틀을 재확인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
다.
‘쟁기’의 소재들 중 ‘童婉’을 제외한 다른 자연물들, 특히 花, 水, 蔬, 果 등은
‘감상문헌’에서도 즐겨 다루는 대
상들이다. 이 두 가지 종류의 글쓰
기가 문체, 형식적 틀과 같은 외부
적 형태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상문헌들
과 ‘쟁기’ 시리즈는 우선 철저하게
‘소재주의’에 입각하고 있으며 모
두 博物的 지식 체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
그림 3 春語堂本 뺷蔬果爭奇뺸卷上 리고 이외에도 이들은 결정적인

medicine” Late imperial China, Vol.12, Number 1, June 1991, pp.1-26.


64) Clunas는 이러한 유형의 저작의 선구라 할 수 있는 趙希鵠(1170-1242)의 뺷洞天靑錄集뺸 이
후 명대 후기에 物과 관련된 저작이 유행했음을 밝히고 高廉, 屠龍, 文震亨의 저작들, 그리
고 張應文의 뺷淸秘藏뺸(1595년) 등 기타 저작들의 계승 관계와 상호 유사성에 대해서 자세
히 서술하였다. Craig Clunas, Superfluous things : material culture and social status in
early modern China, chapter 1 「books about things」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4)
(first published 1991).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31

유사성 한 가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이 둘 모두 어떤 대상 그 자체의 본질


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비교를 통해 그 대상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余
德彰은 뺷화조쟁기뺸의 서문에서 이 책이 사실 사물의 ‘奇’ 그 자체보다는 ‘爭’, 즉
대립과 경쟁에 더 중점을 두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65) ‘쟁기’에서의 논쟁은 양자
가 서로 자신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촉발된다. 이들은 결국 스스로의 본질적 뛰어
남 뿐 아니라 상대방과의 비교 우위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
내려 한다. 그런데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物’ 담론에서도 적합하고 뛰어난 ‘物’을
선택하기 위한 상호 간의 비교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쟁기’의 서술 규범을 당시
의 감상 문헌과 비교해 보겠다. 뺷蔬果爭奇뺸卷一과 뺷長物志뺸권11 「蔬果」편을 예
로 들어 이들이 각각 사물을 어떻게 제시하는지 살펴보겠다.

뺷蔬果爭奇뺸
과일신은 말했다. “우리 배와 밤, 복숭아를 천자에게 바쳐야 해.”(출전
뺷사기뺸)
채소신은 말했다. “ 우리 마름 나물을 빈번히 데워서 왕공에게 바치지.”
과일신은 말했다. “우리 여지는 정말 뛰어나지. 이것을 따서 부엌 구석
에 두고 입술과 손바닥으로 부드러운 과육을 느끼고, 입안에 넣어 먹으
면 혀끝에서 감로수와 옥 같은 즙이 느껴진다니까.”(唐人의 「荔枝」시에
‘붉은 입술과 손바닥의 과육, 혀끝에 느껴지는 감로수로다’이라는 구절
이 있음)66)
야채 신은 말했다.“우리 냉이도 뛰어나다오. 陶씨집 항아리는 파랑, 녹
색, 푸른색, 노란 색으로 물들었네.(范仲淹의 「食薺賦」) 67)크게 벌린 입
속에 넣어보니 오색찬란한 맛이 씹히는구나.”68)
……
과일신은 말했다. “너희 순채가 좋기는 해도 성질이 차서 싫어.”

65) “余日花鳥固奇也, 鳥奇於聲, 花奇於色, 然色者自色, 聲者自聲, 何爭之有? 爭其奇者, 必人爲


爭之也.”
66) 唐 白居易의 「题郡中荔枝詩十八韻兼寄萬州楊八使君」을 말하는 듯하다. 원문은 “燕支掌中
顆,甘露舌頭漿.”이다
67) 范仲淹의 「薺賦」라는 작품을 말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陶家瓮内,淹成碧綠青黄. 措大口
中, 嚼出宫商徵羽.”
68) 果神曰, 我梨栗櫻桃(出史記)必貢之天子. 蔬神曰, 我蘋蘩溫藻, 可羞於王公. 果神曰我荔子最有
佳處, 摘之櫉端, 胭脂掌中嫩顆, 食之口內, 舌頭甘露瓊漿(唐人荔枝詩胭脂掌中顆甘露舌頭漿).
蔬神曰, 我薺菜亦有妙處, 陶家甕裡 淹成碧綠靑黃(范文公食薺賦),措大口中,(秀才之稱) 嚼出宫
商徵羽. (뺷蔬果爭奇뺸 上卷 5-6쪽).
32 中語中文學제60집

채소신은 말했다. “너희 금귤이 좋다고 해도, 신 맛은 딱 질색이야.”


……
채소신은 말했다. “너희들은 주나라 수도의 언덕 위에 어찌 이렇게 달
콤한 냉이나물 같은 게 있겠어?”69)
과일신은 말했다. “너희들은 태화 봉우리 끝에 어찌 이렇게 배만한 연
뿌리 같은 게 있겠어?”70)
……
채소신은 말했다. “어린애나 너희들 밤을 찾지.(陶淵明의 시에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는데 배와 밤만 찾는다는 구절이 있다) 부모님들이 좋아
하실 리가 있냐?” 71)
과일신은 말했다. “너희 녀석들이 미나리를 바친들 천자께서 선뜻 드시
기나 하겠어?”
채소신은 말했다. “우리들이 수정총이라 하는데 네가 어찌 감히 은행을
칭하느냐?”(歐陽修가 이르기를 吉州에는 금귤, 말린 죽순, 은행, 수정총
이 생산된다고 했다)72)
과일신은 말했다. “너희가 玉版笋라면 우리는 당연히 金柑이라 불러야
지.”73)

뺷長物志뺸
귤은 (밥은 안 줘도 되지만 돈을 벌어다 주는) 나무 노복으로 (이것을)
먹을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다. (종류는)녹귤, 금귤, 밀귤, 편귤 등 수
종이 있는데 모두 洞庭山에서 나온 것이다. 또 다른 한 종류가 있는데
福建의 것보다 작지만 색과 맛은 모두 비슷하며 이름을 漆堞紅이라 하

69) 이 구절은 뺷國風·邶風·谷風뺸의 둘째 연에서 가져왔다. 해당 원문은 “不遠伊邇,薄送我畿, 誰


謂茶苦, 其甘如薺.”이다.
70) 이 구절은 韓兪의 시 「古意」에서 가져왔다. 원문은 “太華峰頭玉井蓮,開花十丈藕如船.”이라
는 구절로 연꽃을 찬양하는 시이다.
71) 이 부분은 陶淵明의 시 「責子」에서 나온 것이다. 아들들을 하나하나 꾸짖다가 아홉 살이 된
막내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자는 나이가 아홉인데 배와 밤만 찾는구나(通子垂九
齡,但覓梨與栗).” 때문에 주석에서 다섯 살이라 한 것은 오류이거나 의도적 편집이다.
72) 출전이 잘못 표기되었다. 이는 구양수가 아니라 宋 羅大經 뺷鶴林玉露뺸卷十一에 나오는 표
현이다. 洪邁가 周益公에게 그의 고향인 虜陵에 무엇이 생산되느냐 묻자 익공이 ‘金柑玉版
笋,銀杏水精葱.’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73) 果神曰, 你蓴菜雖佳, 却嫌性冷. 蔬神曰, 你金橘雖好, 最恨味酸. …… 蔬神曰, 你周京原上, 焉
得有如蜜之薺. 果神曰, 你太華峰頭, 焉得有如船之藕. …… 蔬神曰, 你小兒索栗, (陶 明詩小兒
方五歲但索梨與栗),家長何嘗卽興? 果神曰, 你野人獻芹, 天子那肯輕食? 蔬神曰, 我稱水晶葱,
你如何敢稱銀杏?(歐陽公曰吉州上産金柑玉版笋銀杏水晶葱) 果神曰: 你云玉版笋, 我自是當稱
金柑. ( 뺷蔬果爭奇뺸 卷上 9쪽).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33

는데 더욱 뛰어나다. 衢州에서 나는 것은 껍질이 얇고 맛있지만 많이


얻을 수가 없다. 산에서는 사람들이 자꾸 땅에 떨어진 익지 않은 것으
로 귤약을 만드는데 짠맛이 비교적 강하다. 황귤은 다진 고기와 섞어도
된다. (이것들이 바로) 고인들이 말한 ‘金虀’, ‘若法制丁片’인데 (이것들
은) 모두 ‘속된 맛’이라 한다. 74)

사실 우열을 가리는 것이란 결국 순위를 매기고 등급을 나누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뺷장물지뺸의 저자인 文震亨은 기존의 관방 유서와는 다른 새로운 분류
체계에 의해 사물을 배열하고 동일 카테고리에 속하는 사물들의 비교 우열을 논
한바 있다. Clunas는 뺷장물지뺸와 같은 책들이 “그 자체의 실체로서의 物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실체에 대한 대조로서의 실체인 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
며” “사물에 대한 판단은 추상적으로는 수행될 수 없고, 오로지 차이로만, ……
다른 가능성에 대한 반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75) 마찬가
지로 ‘쟁기’ 시리즈 역시 기본적으로 특정 카테고리 속의 사물, 현상 혹은 사람의
우열을 품평하는 구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인화된 사물들이 자신의 우월함과
상대방의 열등함을 비교, 제시한다. 이들은 모두 끊임없이 하나의 사물과 또 다
른 사물 (혹은 너와 나)의 차이를 대조한다. 이러한 서술 규범은 ‘爭奇’류와 ‘감상
문헌’들이 공유하고 있는 핵심적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종류의 글쓰기가 지향하는 지점과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명대 후기 엘리트 문인들의 ‘物’ 담론에 대해서는 보통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상층 엘리트 문인들이 이러한 담론을 유포시켜 계층적 경
계를 지으려 했다는 ‘구분 짓기’로 해석하는 시선과76) 정치적 주류에서 소외된

74) “橘爲木奴, 旣可供食, 又可獲利, 有綠橘, 金橘, 蜜橘, 扁橘數種, 皆出自洞庭. 別有一種, 小於
閩中, 而色味俱相似, 名漆堞紅者, 更佳. 出衢州者, 皮薄亦美, 然不多得. 山中人更以洛池未成
實者, 制爲橘藥, 鹹者較勝. 黃橘堪調膾, 古人所謂金虀, 若法制丁片, 皆稱俗味. ” 文震亨 原著
/陳植 校注/楊超伯 校訂, 뺷長物志校注뺸, 江蘇科學技術出版社, 1984, 366-367쪽.
75) Craig Clunas, 앞의 책 52쪽; 89쪽.
76) Clunas는 부르디외의 ‘구분 짓기’의 관점에서 뺷장물지뺸를 읽었고 그는 이 책이 物 자체가
아닌 ‘物’이 존재하는 합당한 방식에 대한 이들 문인 엘리트들의 합의에 관한 책이라고 보
았다. 이후 티모시 브룩 역시 이러한 관점으로 명대 사회의 경제적, 계층적, 문화적 변화의
배경과 의미를 분석한 바 있다.(티모시 브룩 지음/이정·강인황 옮김, 뺷쾌락의 혼돈- 중국 명
대의 상업과 문화뺸, 이산, 2005) 그리고 巫仁恕는 뺷品味奢華뺸 (北京: 中華書局, 2006)등 일
련의 저작에서 풍부한 사례를 통해 Clunas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였다. 국내에서는
34 中語中文學제60집

문인들이 ‘物’에 대한 몰두와 애정을 표현함으로써 자아 표현과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려 했다는 관점이다.77) 사실 이 두 가지 관점 모두 ‘物’의 담론을 문화적,
사회적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출발점은 동일하다.
이에 비해 ‘爭奇’에는 사회 계층과 문화적 자원을 유지하고자 하는 편집자들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차이점은 결과적으로 이 둘의 서술양상과 준거틀의 차이를 낳았을 것
이다. 문진형과 같은 상층 엘리트 문인들의 품평 행위는 경제적, 사회적 유동성
속에서 스스로를 구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대상은 구체적이어
야 하고 분류는 최대한 세밀해야 한다. 이들이 진행하는 ‘物’에 대한 품평 기준은
재료나 형태와 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나 공간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복
합적인 것이다. 하지만 ‘쟁기’ 편집자들이 구사하는 ‘등급화’는 문진형의 그것과
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들의 품평은 양자 간의 상호 대결로 단순화된다. 즉 어
떤 곳에는 어떤 것이 더 적당한가가 아니라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지 혹은
나쁜지를 따지기 위한 훨씬 더 단순하고 통속적인 담론이다. 또한 문진형과 같은
이들이 구사하는 ‘物’ 담론이 상당 부분 특정 계층들이 공유하는 경험적 정보와
자료에 기대고 있다면 ‘쟁기’ 편집자들의 그것은 ‘전통’이 사물이나 현상을 과연
어떤 식으로 담보하고 있는가에 집중되어 있다. ‘쟁기’ 편집자들도 물론 物의 본
질이나 경험적 세계에서의 物의 속성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이의 증명은 ‘전통’
의 중재적 인용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그 무엇보다 ‘쟁기’의 ‘詠物 敍事’와 엘리트 문인들의 ‘物’ 담론이 갈라지는 지
점은 대상과 글쓴이의 자아의 관계 구성에 있어서의 차이이다. 1599년 袁宏道
는 「甁史」를 통해 꽃을 선택하고 기르고 배치하며 감상하는 데 있어 주의해야 될
점과 피해야 될 점을 자세히 서술하면서 物을 감상하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를 묘
사한다.

내가 보니 이 세상에서 재미없는 이야기에 보기 싫은 얼굴은 한 사람들

관련 논문으로 이은상, 「명말 강남 문인들의 물질문화 담론에 관한 試論」(뺷중국학뺸36집,


2010)이 있다.
77) Judith T. Zeitlin, 앞의 논문.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35

중에는 어딘가에 빠져 있는[癖] 사람이 없다. 만약 정말로 좋아하는 것


이 있다면 여기에 깊이 빠지고 심취하여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걸게 되
는 것이니 돈이나 벼슬, 장사 따위의 일을 돌아볼 새가 있겠는가? 옛날
에 꽃을 좋아하는 병이 있는 이들은 남들이 신기한 꽃 이야기 하는 것
을 들으면 깊은 계곡, 험준한 산이라도 넘어지고 구르는 것도 꺼리지
않고 찾아간다. 한겨울, 한여름이 되어 피부가 비늘처럼 갈라지고 진흙
같은 더러운 땀이 흘러내려도 모두 알지 못한다. …… 나처럼 꽃을 키
우면서 이것으로 한가로운 생활의 고독의 괴로움을 이기려고 하는 것
은 진정으로 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좋아한다면 이미
桃花源의 입구에 있을 것이다. 어찌 인간 세속의 관리 따위로 있겠는
가?78)

이 시기의 어떤 문인들에게 ‘物’은 이미 단순한 수집이나 응시의 대상이 아니


었다. 어떤 ‘物’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이 대상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향유할
줄 안다는 차원을 넘어서 物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物은 無用한 것, 말 그대로 ‘長物’이어야 한다. 物에 대한 ‘癖’으로 승화된 감상주
의의 배경에는 물론 경쟁 사회에서 밀려나 대안적 삶을 선택해야 했던 문인들의
자아표현 수단의 확대가 있다. Zeitlin이 말한 것처럼 ‘詩言志’의 개념은 이제 ‘物’
에게까지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79)
문인들의 ‘物’ 담론은 문인 계층의 분화와 계층의 융합· 이동이 동시에 발생하
던 16-17세기의 사회적, 문화적 산물이다. 문진형은 ‘物’을 계층적 방어를 위한
정치사회적 도구로 활용했고 袁宏道는 ‘物’을 자기 영혼의 투사로 보았다. 하지
만 상업출판 편집자들에게 있어 ‘物’은 인간 현실의 대리적 세계이며 즐거움을
위한 읽기와 이 책의 독자들이 익숙한 –혹은 익숙하다고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고전의 세계를 도덕적 고려나 윤리적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연계할 수 있는 좋은

78) “余觀世上語言無味, 面目可憎之人, 皆無癖之人耳. 若真有所癖,將沉湎酣溺,性命死生以


之,何暇及錢媽宦賈之事? 古之負花癖者,聞人談一異花,雖深谷峻嶺,不憚蹶躄而從之,
至於濃寒盛暑,皮膚皴鳞,污垢如泥,皆所不知. ……若夫石公之養花,聊以破閑居孤寂之
苦,非真能好之也. 夫使其真好之,已爲桃花洞口人矣,尙復爲人間塵土官哉?” (袁宏道, 뺷甁
史뺸十 「好事」, 楊家駱(淸) 編, 뺷袁中郞全集뺸, 「袁中郞隨筆」, 台北 : 世界書局, 1964, 21-22
쪽) 필자는 Judith T. Zeitlin, 위의 논문을 통해 이 글의 사회적 의미와 해석에 있어 많은 도
움을 얻었다.
79) Judith T. Zeitlin, 앞의 논문 8쪽.
36 中語中文學제60집

소재이기도 하다. ‘쟁기’의 편집자들은 명대 후기 물질이 가져다 준 세계와 사회


질서의 변화에 대해 당시 엘리트들이 느꼈을 불안과 분노를 거의 표현하지 않았
다.80) 이들은 본질적으로 기존 물질 담론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의미보다
는 명대 후기 편집형 출판물의 규범에 더 많이 지배받았다. 이들은 ‘새로움’과
‘익숙함’이라는 두 모순된 요소를 동시에 표현해야 했고81) 이를 위해 ‘物’에 대한
담론을 친숙한 언어를 통해 –구어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독자들에게 익숙한
고전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연극적이고 과장된 대결로 연출하게 된다. 이
는 다른 편집형 출판물에서는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이다. 물론 등
지모와 다른 편집자들은 기본적으로 엘리트 문인들이 극도로 정교화시킨 ‘物’ 담
론에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등지모 등은 이를 정교화하고 세분화하
기 보다는 압축시키고 단순화시키며 통속적인 양자 구도의 대결로 변질시킨다.
일부 문인들은 ‘자신들만의’ 경험적 세계에 존재하는 物을 언어를 통해 제시하
며 계층적 방어막을 친다. 하지만 자신들이 지닌 감식안을 문화자본으로 삼고 구
분짓기를 시도하던 이들의 ‘物 담론’은 상업적 출판업자들에 의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해석된다. 鄧志謨와 같은 전문 편집자에 의해 ‘詠物 敍事’의 형태로 전
이된 ‘物 담론’은 그 사회문화적 의미가 탈색된 채 ‘物’에 대한 늘어놓기와 비교
에 의한 과시와 賞讚이라는 외형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6. 나오며

‘쟁기’시리즈는 명대 후기 경제, 문화, 지식의 국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등장


한다. 일부 연구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등지모가 이 ‘쟁기’ 시리즈의 패턴을 만들
어 낼 때 공연 예술에 남아 있는 敦煌문서의 遺産을 계승했다 해도 당시 상업 출
판의 메카에서,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書坊에서 생산된 ‘쟁기’ 시리즈는 분명 明

80) 경제적 변화가 사람들의 사회적 행위에 미친 영향에 대한 당시 문인들의 우려와 불평은 거
의 규범화된 담론으로 형성될 정도로 일반적인 것이었다. 이에 대한 많은 예들이 티모시 브
룩 지음/이정·강인황 옮김, 앞의 책, 262-300쪽에 유형별로 나누어져 제시되어 있다.
81) 상업출판은 속성상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이 새로움은 독자 대중이 공유하는 ‘익숙함’의 틀
안에서 작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최수경, 「지식의 재활용: 明末 상업출판과 燕居筆記의 사
회학」( 뺷중국어문논총뺸제66집, 중국어문연구회, 2014, 12) 참고.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37

代的 특징을 가장 첨예하게 표현한 서적임이 분명하다.


과거 관념론자들은 어떤 外物에 대한 인식이나 지각을 일련의 잘 다듬어진 철
학적, 사상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세계관이나 우주관을 표현하는데 사용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物’은 사회적 관계의 표현을 위한 중요한 상징이 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물질생활에 보이는 무관심 내지는 경멸에 비교했을 때 의복이
나 주거 형태, 祭禮에 사용되는 도구의 규모나 정도를 세세히 규정하고 심지어는
이를 법률로 명문화한 것은 물질에 대한 극도의 형이상학적, 관념적 투사인 동시
에 계급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外物’을 객관적이고 경험적으로 응시한 기록이
적은 것도 이 같은 영향일 것이다. 이 外物에 대한 철학적, 사회적 관조는 단지
일상용품, 예술품 뿐 아니라 自然에 대한 시각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산과
물, 花鳥와 같은 外物은 문학적 글쓰기에서 수없이 다루어져 왔지만 이러한 외물
은 종종 문인의 자아를 표현하는 도구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문인들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늘 추상적 관념론으로 귀결되었을 뿐 자연과학적
관찰이 결여된 것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명대 후기에 전개된 博物的 사유와 지식체계, 그리고 ‘物 담론’으로 인해 훨씬
더 확장된 外物에 대한 관심은 각종 출판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사물
/현상을 분류하고 條目化한 일용유서를 비롯해 이를 보다 문학적으로 표현한 각
종 ‘감상 문헌’ 혹은 본고에서 다룬 ‘쟁기’류 역시 ‘物’에 관한 당시의 관심을 보
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상업출판의 기획 하에 탄생한 ‘쟁기’시리즈는 또한
‘雅한 것을 모두 俗化시키는’82) 당시 문화적 조류의 산물이기도 하다. 상업출판
의 규범과 관행, 직업적 출판업자들의 출판공동체, 박물적 지식체계에 기반한 사
물/현상에 대한 재분류, 엘리트 문인들의 물질 담론 등 여러 문화적 조건과 환경
이 교차하는 가운데 탄생한 ‘쟁기’ 시리즈가 다른 관련 문헌들과 어떻게 다른지
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卷一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화해 장면
일 것이다. 편을 갈라서 첨예하게 싸우는 사물/사람들은 결국 신화에 나오는 神
들의 중재에 의해 강제적으로 화해를 해야 했다. 뺷梅雪爭奇뺸에서 梅와 雪의 다
툼을 중재하라는 天帝의 명령을 받은 書生은 “(극단적인) 陰과 陽에서 벗어나 새

82) 이노우에 스스무/이동철 등 역, 뺷중국 출판문화사뺸, 서울: 민음사, 2013, 393-397쪽 참고.
38 中語中文學제60집

나 말처럼 훨훨 날아가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山人들이 사는 방법이다. 또 무


엇 때문에 더러운 흙 속의 하루살이들을 논해야 하는가? 83)라며 상호 비교를 통
한 우위 다툼의 무의미함을 隱者의 초탈함과 대비한다. 뺷蔬果爭奇뺸에서도 채소
와 과일들은 ‘造花의 神’인 黔雷의 판결로 싸움을 종결한다. “채소와 과일의 성숙
은 모두 자연의 造化에 있다. 자연의 조화가 때에 맞춰 빛을 내리쬐어야 과일은
가지에 가득 열리고 야채는 밭에 그득해지는 것이다.…… 너희들은 왜 싸우느냐?
지금 (너희들은) 전혀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84) 黔雷는
채소와 과일의 미덕은 절대적인 존재의 造化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며 이들의
싸움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는 물론 和諧와 中庸을 귀중한 가치로
여기는 전통적 가치관의 영향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당시 감상문헌에서 유행하던
‘物 담론’의 구도를 無化시키는 작용을 한다. 여기서 자연의 ‘조화’가 상징하는 절
대 권력은 ‘物’을 상호 비교하고 품평하는 행위에 냉소하고 ‘物’에 대한 이상화나
절대적인 찬양에 대한 반대를 암시한다.
비록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상업출판의 편집자들 역시 당시 엘리트 문인들
의 사유를 지배하던 博物的 지식 체계와 이들의 구사하던 ‘物’ 담론으로부터 자
양분을 흡수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쟁기’의 편집자들은 당시 문인들이 ‘物’을
바라보는 시선, 나아가서는 문인들의 당시 사회에 대한 인식에는 동의하지 않았
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말은 ‘物’을 매개로 사회 계층의 문화적 권력을 위계
화하려 했던 당시 문인들의 담론에 대처하는 상업출판물 생산자들의 전략의 하
나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바로 ‘자신들의 것’을 빠르게 모방하고 결국
俗化시키는 명대 후기 사회의 변화에 분노하던 문인들의 우려를 그대로 실현하
고 있다.

83) 跳出陰陽, 鳥鴪驂翔呀, 此乃是眞山人生的勾當, 又何須論那糞土中蜉蝣?”(뺷梅雪爭奇뺸, 新井白


蛾先生校, 文煥堂梓, 卷上 32쪽)
84) “然二家之成熟, 皆在化工, 化工之兩陽及時, 果則滿枝, 蔬則滿畦, …… 然則二家胡爲而爭, 今
有所爭, 爭所不必爭也.” (뺷蔬果爭奇뺸上卷 21쪽)
明代 後期 상업출판물 속의 ‘物’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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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study aimed to explore ‘things’ reflected by publications of the later


Ming
dynasty through ‘Zhengqi(爭氣)’ series generated in Jianyang Area of
China in the 1620s. Things mentioned herein mean man-made and natural
structures, phenomena and incidents as visible or imaginable ‘objects.’ The
later Ming Dynasty was a prime period of the publication industry and the
edited type publications. Edited publications mean publications collecting,
arranging and publishing works written by original authors. ‘Zhengqi’ series
is made up of 7 series initially developed by a renowned novelist and
editor, Deng Zhimo (鄧志謨) but another authors following Jianyang
produced its subsequent series. Unlike general publication types at that
time, those publications did not go through final alteration, introduction
remarks or comment by famous figures but were published only by
publication experts working for publishing firms. The way ‘Zhengqi’ series
was made up and thought was deeply influenced by the then popular
knowledge of natural history. According to traditional learning methods,
man has to gain the single principle piercing things but ‘Zhengqi’ series
enumerates, in parallel, things with no absolute prerequisites. This parallel
structure is opposed to the traditional concept of reasoning. However,
‘Zhengqi’ series as a commercial publication mainly pursues after pleasure,
for which they re-quote and transform cannons. Types of ‘things’
expressed by ‘Zhengqi’ series have much to do with discourse on ‘things’
explored by the then elites. Literary people, who were influential at that
time, analyzed relation between things, the self and the society through
‘connoisseurship literature.’ ‘Zhengqi’ and ‘connoisseurship literature’ all
selected the material-centeredness. Besides, they states their excellence
through comparison between both. In ‘Zhengqi’ series, however, we can’t
find worries over the social fluctuation of the later Ming Dynasty expressed
by ‘connoisseurship literature’ and the desire to express the self. On the
contrary, ‘Zhengqi’ series insinuates antagonism towards discourse on
42 中語中文學제60집

‘things,’ insisting that mutual competition in this way should have no


fundamental significance.

[Key words] “Zheng qi”series, commercial publishing, editorial books, the late
Ming China, wide knowledge, discourse on things
[주 제 어] ‘쟁기’시리즈, 상업출판, 편집형출판물, 명대 후기, 박물, ‘물’담론

투 고 일 : 2015. 3. 14
심 사 일 : 2015. 3. 21 ~ 4. 15
게재확정일 : 201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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