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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언어문학 제78집(2017.12).

279-307
아도르노의 교육담론*1)

김누리 (중앙대)

국문요약
2015년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시리아 난민 백만 명을 받겠다는 선언으로 세상을 놀라
게 했다. 그러나 진정한 경이로움은 메르켈의 결정이 아니라, 그 결정을 받아들인 독일
인의 성숙한 정치의식에 있다. 어떤 의식을 가진 국민이기에 백만 난민을 받은 총리를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다시 승리를 안겨줄 수 있단 말인가.
이 논문은 ‘백만 난민의 기적’을 낳은 비밀을 추적해보려는 시도이다. 이 현대판 기적
은 1970년대 교육개혁 이후 탄생한 ‘신독일인’의 성숙한 정치의식에 기인하며, 이 교육
개혁은 무엇보다도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중심 가설
이다. 역으로 말하면 아도르노가 성숙을 위한 교육에서 주장한 교육적 지향들, 즉 민
주주의 교육, 이데올로기 비판 교육, 반권위주의 교육, 저항권 교육, 공감 교육, 과거청
산 교육 등이 70년대 교육개혁을 통해 새로운 교육원리로 정착되었고, 이런 비판 교육,
공감 교육을 받고 자란 새로운 독일인이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기에 그런 기적이 가능
했다는 것이다.
아도르노의 교육사상이 한국교육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세 가지다. 경쟁지상주의 교육
은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야만 교육’이라는 것이고, 올바른 의식을 길러주지 않고 단순
한 지식만을 채워주는 것은 ‘반교육’이라는 것이며, 저항권 교육, 반권위주의 교육 등 정
치교육이 부재한 한국의 교육으로는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핵심어: 아도르노, 교육개혁, 반권위주의교육, 비판교육, 과거청산

Ⅰ. 들어가며

2015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시리아 난민 100만 명을 받겠다고 선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실제로 그 해에 독일은 백15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 이 논문은 2017년도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ZeDES)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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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메르켈 총리는 연방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독일 역사상 최장수 총리


가 될 길이 열렸다.
시리아 내전이 촉발한 난민 위기 속에서 유럽 각국 정부가 보인 대응과 비교해
보면 독일 정부의 행보는 참으로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
우 불과 수만 명의 난민을 받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나라 전체가 거대한 정치적
격랑에 휩쓸리지 않았던가. 영국에서는 ‘난민 공포’가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브
렉시트를 초래했고, 프랑스에서는 강경한 반난민 정책을 펴는 극우 파퓰리즘 정
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팽이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2위에 올라 결선투표까지 가
는 돌풍을 일으켰다. 폴란드, 헝가리 정부의 극단적인 반난민 정책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극우 정당의 놀라운 약진도 유럽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정치 세
계에서 정의, 평등, 인권, 인류공영 등의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아메리
칸 퍼스트’가 상징하듯 오직 국가간 경쟁과 이익 추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탐
욕의 시대가 열린 것 같다.
독일의 백만 난민 수용은 이런 암울한 세계에 한 줄기 빛과 같은 구실을 했다.
메르켈 총리의 결단도 빛났지만, 엄청난 수의 난민을 받아들인 대다수 독일인들
의 성숙한 정치의식이 더 눈부셨다. 독일인들은 시리아 난민을 따듯하게 맞이하
는 환영문화 Willkommenskultur를 선보였고, 선거에서 자신의 난민 수용을 ‘잘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메르켈 총리에게 다시 가장 많은 표를 주었다. 난민 문제로
인해 극우주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 AfD’이 전후 최초로 연방의회에 진출하
게 됐지만, 독일인의 절대 다수가 이 ‘혐오 정당’을 혐오하고 있다.
백만 난민을 받아들인 정부가 무너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서 다시 승
리하는 일이 과연 어느 나라에서 가능한 일일까? 오로지 경쟁과 실리가 세상의
이치가 되고, 정의나 연대는 냉소의 대상이 되어버린 탈가치의 시대에 어떻게 이
런 정치적 기적이 일어났을까?
이 글은 ‘백만 난민의 기적’을 낳은 비밀을 추적해보려는 시도이다. 이 현대판
기적은 1970년대 독일의 교육개혁 이후 탄생한 ‘신독일인’의 성숙한 정치의식에
기인하며, 이 교육개혁은 무엇보다도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
았다는 것이 이 글의 중심 가설이다. 역으로 말하면 아도르노가 성숙을 위한 교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81

육에서 주장한 교육적 지향들, 즉 민주주의 교육, 이데올로기 비판 교육, 반권위


주의 교육, 저항권 교육, 공감 교육, 과거청산 교육 등이 70년대 교육개혁을 통해
독일의 새로운 교육원리 Bildungskanon로 정착되었고, 이런 비판 교육, 공감 교육
을 받고 자란 신독일인이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기에 백만 난민의 기적이 가능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아도르노가 교육에 관심을 갖고 교육 문제에 본
격적으로 뛰어들게 되는 과정, 즉 이른바 아도르노의 ‘교육학적 전환’의 배경을
살핀 후에, 그가 강연과 대담을 통해 피력한 교육사상을 묶은 저서 성숙을 위한
교육을 중심으로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을 분석하고, 그의 교육사상이 독일의 교
육개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도르노의 교육
사상이 갖는 현재적 의미와 한국의 교육에 던져주는 시사점도 짚어볼 것이다.

Ⅱ. 아도르노의 교육학적 전환

“아도르노의 가장 어두운 책”(Habermas 1988, 130)이라고 위르겐 하버마스가


평한 계몽의 변증법은 아도르노가 얼마나 비관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계몽이 곧 신화이자 야만’이라며 계몽의 역사를 비판하고,
‘계몽 자체의 계몽’을 요구하는 아도르노가 교육과 교육개혁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은 일견 지극히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아도르노는 학문 세계의 아도르노만큼 비관적이지는 않았다.
혹은 눈앞에 닥친 절박한 현실이 그에게 순수한 비관주의로의 자기유폐를 허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도르노는 사실 전후 독일의 정신적, 심리적 폐허 속에서 교
육과 교육개혁에 대한 관심을 놓은 적이 없었다. 1949년 망명을 끝내고 귀국한
후 그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교수들이 대학을 지배하는 현실을 보고 대
학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나치 과거의 청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교육계
에 대해서도 민주적인 신념을 가진 새로운 교사 세대를 양성해 교육을 근본적으
로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Albrecht 2000/3, 132)
아도르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학자들 대다수가 교육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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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공감하고 있었다. 다른 망명 학자집단들이 대부분 전후


독일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현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데 반해, 프랑크푸르
트학파는 시종일관 문화 영역에 관심을 가졌고, “나치즘과 대결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Albrecht 2000/2, 120)으로서 교육 분야를 중시했다. 특히 정치교육을 통해
사회의 전면적인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식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를
비롯한 모든 학자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과거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교육계를 개혁하고, 정치교육을 통해 사회 민주
화를 견인해야 한다는 아도르노의 오랜 구상은 1950년대 말까지는 적극적인 실
천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아도르노가 교육적 ‘실천’에 나서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1959년 12월 24일에 쾰른에서 터진 사건이었다. 두 명의
극우 성향 정당의 당원이 새로 문을 연 유대교회를 한밤중에 습격해 나치의 상징
과 구호로 훼손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독일에서는 반유대주의적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했고, 국제적으로도 반유대주의 물결이 거세게 퍼져나갔다.
이러한 극우주의 선동의 파고는 다음 해에 가서야 점차 잦아들었다. 아도르노가
교육학, 특히 정치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이 ‘쾰른 사건’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959년 크리스마스야말로 서독의 정신적 건국일”(Albrecht
2000/5, 393)이라는 주장은 아주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아
도르노는 - 호르크하이머도 함께 - 과거청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과거
청산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교육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의 이런 활동은 1970년대에 ‘새로운 독일’이 탄생하는데 단단
한 밑돌이 되었다.

아도르노는 무엇보다도, 1959년 말 ‘하켄크로이츠 낙서 사건’의 결과 공적인 논쟁


을 지배하던 ‘과거청산’이라는 주제를 선취한 최초의 사회학자였다. [...] 호르크하
이머와 아도르노는 1960년대 전반기에 과거청산의 가장 중요한 전문가로 진화해
갔다. 이들의 중점적인 테마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독일과 유대교, 둘째는 반유
대주의와 편견의 사회학, 셋째는 정치교육이었다. 철학, 심리학, 역사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들과 비견할 정도로 과거청산 문제에 개입한 그룹이나 개인은 없었
다.(Albrecht 2000/4, 235)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83

‘과거청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교육 분야는 과거청산을 수행할 주체이기도


했지만, 교육계 자체가 과거청산의 대상이기도 했다. 대학이나 학교는 나치 시대
가 종말을 고한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여전히 과거청산의 무풍
지대였다.
국내외적 환경도 아도르노의 과거청산과 교육개혁 노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
성되었다. 국외적으로는 소련이 서방의 분열을 노리면서 독일은 나치청산이 이루
어지지 않았다는 선전선동 공세를 펼쳤고, 독일과 서방연합국 사이에서도 긴장이
높아지면서 신뢰의 위기가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데나워는 유대인 집단수용
소 방문,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 등 적극적인 정치적, 외교적 행보에 나서는 한편,
과거청산 교육을 크게 강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청산 문제의 방대한 정
신적 제도적 교육화”가 이루어졌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과거청산
의 내재화가 사회적으로 실현”(Albrecht 2000/5, 394)되었다.
이처럼 쾰른 사건을 계기로 ‘과거청산의 교육화’, ‘과거청산의 내재화’라는 질
적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과거청산 문제를 교육에서 중요한 주제로 비중 있게
다루게 됨에 따라 독일이 오늘날 모범적인 ‘과거청산의 나라’가 될 수 있게 된 초
석이 놓인 것이다. 이런 성공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쾰른 사건이었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이가 바로 아도르노였다.
1959년 이후 아도르노의 학문적, 정치적 활동을 돌아보면 그에게 ‘교육학적 전
환’이라고 부를 만한 질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환의 가시적 동
기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쾰른 사건이었지만, 아도르노가 교육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에는 보다 깊은 사상사적 이유가 있다.
아도르노와 교육학의 관계를 돌아보면, 아도르노와 프랑크푸르트학파가 교육
학에 미친 영향이 과소평가되어온 사실이 눈에 띈다. 그것은 계몽의 변증법이
상징하듯 계몽과 교육에 대한 그의 회의적인 관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도르노
의 비관적인 지적 태도가 교육학의 기본정조인 낙관주의와 맞지 않았고, 아도르
노 편에서도 “사회과학의 교육학화를 사회학의 소비화의 한 양상”(Albrecht 2000/5,
387)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아도르노의 이런 회의적이고 체념적인 입장은 프랑크푸르트학파
의 역사를 돌아보면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1930-40
284 독일언어문학 제78집

년대에 자유주의적인 유대 지식인들이 강한 교육 낙관주의를 견지한 데 반해, 프


랑크푸르트학파의 좌파 유대 지식인들은 교육에 대해 비관적 관점을 가졌다. 이
는 어두운 파시즘의 과도기 속에서 부르주아 문화는 사라질 것이라는 종말론적
진단에 기인한 태도였다.” 전후에 이러한 진단이 틀렸음이 밝혀진 후에야 그들은
“교양이상과 교육이상을 다시 높게 평가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교육적 금욕주
의는 결국 마르크스주의적 종말론의 부수적 결과”였다. 이들은 소련의 스탈린주
의를 보면서 이러한 종말론과 작별한 이후에 교육적 금욕주의와도 결별하게 된
것이다.(Albrecht 2000/5, 389)
요컨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각인한 교육적 금욕주의가 폐기되었다는 정
신사적 변화와 쾰른 사건으로 조성된 과거청산의 요구라는 정치사적 변화가 겹치
면서 50년대 말에 아도르노에게는 ‘교육학적 전환’이라고 부를만한 변화가 생겨
난 것이다.

Ⅲ. 아도르노의 교육 담론

‘교육’이라는 말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소위 인간 형성 Menschenformung이 아니


다. 어느 누구도 외부로부터 인간을 형성할 권리는 없다. 그렇다고 단순한 지식의
전달도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의식의 형성이다. 그것은 동시에 분명한 정치적 의
미를 갖는다. 교육의 이념은 [...] 정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기능할 뿐만 아니라, 그 개념에 맞게 작동해야 하는 민주주의는 성숙한 인간을 요
구한다. 실현된 민주주의는 성숙한 자들의 사회로서만 상상할 수 있다.(107)1)

아도르노는 교육이란 ‘올바른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고, 이는 정치적으로 요구


되는 이념이며, 민주주의는 성숙한 인간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교육 이
념은 이처럼 출발부터가 민주주의 교육 이념이고 정치교육 이념이다. 아도르노가

1) Theodor W. Adorno: Erziehung zur Mündigkeit, Vorträge und Gespräche mit Helmut
Becker 1959-1960, hrg. von Gerd Kadelbach, Frankfurt a.M. 2015(1971). 이하 이 책의
인용은 괄호에 쪽 번호를 넣는 것으로 한다.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85

교육은 올바른 의식을 가진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그것은


이미 교육이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는 올바른
교육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본다. 이처럼 아도르노의 교육론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교육론인 것이다.

Ⅲ.1 교육의 문제로서의 과거청산

아도르노가 과거청산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59년 쾰른 유대교회 훼손 사건을 겪고 나서부터이다. 그는 과거청산의
의미가 왜곡되는 현상에 대해 개탄한다. “과거청산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지
나간 것을 진지하게 정리하고, 밝은 의식으로 과거의 미몽을 깨부수는 것이 아니
라, 과거에 종결점을 찍고 가능하면 그것 자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되었
다.”(10) 그는 나치즘의 과거를 진지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망각하
려는 경향이 팽배한 1950년대 말의 현실을 겨냥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독일에서 과거청산은 실패했다고 본다. “나치즘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너무나 괴물 같아서 죽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못하는 것의 유령으로 살
아 있는지, 애초에 죽지 않은 것인지 알지 못할”(10) 뿐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아
도르노는 과거청산 교육을 교육개혁의 핵심 사안으로 삼게 된다.
과거청산 문제와 관련하여 아도르노의 탁월한 점은 바로 나치 과거의 청산 문
제를 민주주의의 내재적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민주주의 ‘속’에서의
나치즘의 존속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파쇼적 경향의 존속보다 잠재적으로 더 위
험하다고 생각한다.”(10) 아도르노는 ‘민주주의 속의 파시즘’, ‘내 안의 파시즘’,
‘아주 일상적인 파시즘’을 겨냥한다. 파시즘을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기구나 조직
이 아니라, 민주주의 내에 존재하는 경향이나 성향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
때문에 아도르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교육, 특히 정치교육이다. (정치)교육을
통해서만 ‘민주주의 속의 파시즘’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역사의식의 약화가 “사회적으로 자아를 약화시키는 징후”(13)라고
본다. 역사의 소실은 자아의 소실로 이어진다는 이러한 관점은 ‘민주주의의 최대
의 적은 약한 자아’라는 아도르노의 유명한 명제와 결합할 때 새로운 의미지평을
286 독일언어문학 제78집

열어준다. 역사의식의 약화는 기억의 약화를 낳고, 이는 또한 자아의 약화를 낳으


며, 이렇게 약화된 자아는 권위 앞에 굴종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으로 이어져 또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하나의 연쇄적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역사의식-기억
능력-자아형성-민주주의는 연쇄적인 영향관계에 있다. 여기서 아도르노는 과거청
산의 부재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악영향을 구조적으로 포착한다.
아도르노는 나치 과거청산 문제의 핵심인 ‘기억’의 문제를 심리적 방어기제에
기초한 개인의 심리적 억압의 문제로 좁히지 않고, 자본주의의 체제 문제로 확장
하는 탁월한 안목을 보여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사회에서 기억이
소멸하는 현상이 퍼져가는 것을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억 없는 인간의 경
악스런 모습”(13)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즉 기억의 소실은 “자극으로 넘쳐나고,
과잉자극에 어쩔 줄 모르는 인간의 타락의 산물이거나 반동의 형식이 아니다. 그
것은 부르주아적 원리의 진보성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13) ‘기억 없는
인간’이라는 현대인의 모습은 단순히 과잉자극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근본적
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시민 사회는 전면적으로
교환법칙 하에 있고., 교환은 그 본질상 무시간적인 것이다. [...] 회상과 시간과 기
억이 진보하는 시민 사회 자체에 의해서 일종의 비합리적인 잔여물로서 제거된
다. [...] 인간이 기억을 단념하고, 그때그때의 현재적인 것에 적응하는데 짧은 호
흡으로 자신을 소진시킨다면, 거기엔 하나의 객관적인 발전법칙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13) 기억의 소멸은 자본주의 사회의 객관적인 발전법칙이다. 아도르노는
‘과거청산’이라는 문제를 결국은 과거(역사, 기억, 시간)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로
보는데, 이때 과거의 개념은 부르주아 사회의 객관적인 발전법칙이라는 넓은 지
평에서 조명된다. 과거를 기억하는 문제가 단순히 개인적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법칙과도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즉 진정한 과거청산, 특히 과
거에 대한 기억의 보존은 심리적인 억압과 방어 기제라는 주관적 요인 때문만이
아니라, 기억을 ‘비합리적 잔여물’로 보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법칙성 때문에도 쉽
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아도르노는 독일인의 방어심리보다는 자본주의의 일반원리에서 망각의 원인
을 찾는다. “정신 병리보다는 일반적인 사회적 상황에서 나치즘에 대한 망각이
설명될 수 있다”(14)는 것이다. 이처럼 독일인들의 심리상태보다는 자본주의 사회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87

의 메카니즘에서 집단적인 망각 현상의 원인을 찾는 아도르노의 관점은 알렉산더


미첼리히가 슬퍼할 능력의 부재 Unfähigkeit zu trauern에서 전개한 사회심리학
적 설명과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아도르노는 망각을 지극히 의식적인 행위로 본다. “기억을 지우는 것은 무의식
적 과정의 우위에 대한 의식의 약함보다는 너무도 깨어있는 의식의 성과”(14)인
것이다. 망각은 의식적 과정이며, 바로 이 ‘의식적 망각’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청산’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교육의 문제로 전화된다.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도 바로 이것이다. 망각은 의
식적인 ‘일’이기 때문에, 망각에 맞서는 진정한 과거청산을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
이 필요한 것이다.
아도르노는 나치즘의 과거가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전혀 청산되지 않았다고
본다. 독일인들이 전후에도 심리적으로는 패배를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관적 측면에 따르면, 즉 인간의 심리 속에서는 나치즘이 집단적 나르시시즘을


고양시켰다. 간단히 말하면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민족적 허영심을 키운 것이다.
[...] 이러한 집단적 나르시시즘은 히틀러 정권의 붕괴를 통해 심각하게 손상을 입
었다. 그러한 손상은 단순한 사실성의 영역에서만 일어났다. 개인들은 그것을 의
식화하지 못했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제대로 종결시키지 못했다. 이것이 ‘청산되
지 않는 과거’라는 말이 갖는 사회심리학적 의미이다. [...] 저 동일화와 집단적
나르시시즘은 결코 파괴되지 않았고, 계속 존재한다. 패배는 내적으로는 1918년
이후와 같이 거의 승인되지 않았다.(19)

독일인은 1945년 패전 이후에도, 1918년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처럼, 심리적으


로는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판단이다. 바로 그렇
기 때문에 과거청산의 문제는 내적 청산, 심리적 청산, 주관적 청산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체제의 변화보다도 인간의 변화가 관건인 것이다. 여기서 아도르
노가 과거청산과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아도르노는 전후 서독 사회에서 파시즘이 살아남아 있다고 진단하면서, 그 구
조적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아마도 아래 인용문은 서독이 과거청산에 실
패한 원인에 대해 제출된 수많은 분석들 중에서 가장 빼어난 분석일 것이다.
288 독일언어문학 제78집

파시즘은 아직도 살아있다. 자주 인용되는 ‘과거청산’은 오늘날까지 성공하지 못


했고, 그 풍자화, 즉 공허하고 차가운 망각으로 변질되었다. 이것은 파시즘을 배
태한 객관적인 사회적 전제들이 계속 존속하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파시즘은 본
질적으로 주관적인 성향에서 도출될 수 없다. 경제적인 질서와 경제적인 조직이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을 자신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존의 질서에 의존하도
록, 미성숙 상태에 남아있도록 한다. 살고자 하면 그들에게는 기존의 질서에 적
응하는 것, 자신을 끼워맞추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이념이 호소하는 자율적인 주체성을 지워버려야 하고,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만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 현혹연관을 꿰뚫어보는 것은 그들에게 인식이라는 고통
스러운 노력을 요구한다. 삶의 질서, 특히 무엇보다도 총체적 지배를 향해 팽창
해가는 문화산업은 그들이 인식을 얻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한 적응의 필요성,
현존하는 것, 주어진 것, 권력 그 자체와 동일시할 필요성은 전체주의적 잠재력
을 높인다. 그러한 잠재력은 적응에로의 강제 자체가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불만
과 분노에 의해 강화된다. 현실이 저 자율성, 결국은 민주주의의 개념이 본래 약
속한 저 행복의 가능성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민주주의에 무관심하고,
내심 민주주의를 증오하는지도 모른다.(22f)

아도르노는 파시즘은 죽지 않았다고 본다. 과거청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과


거청산은 근본적으로 보면 파시즘을 배태한 객관적인 사회적 전제들, 즉 자본주
의 체제가 그대로 존속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아도르노는 자본주의가 존재
하는 한 파시즘에 대한 근원적 청산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 질서
속에서 대중은 자율적인 주체성을 잃고 기존질서에 적응하고 있다. ‘포기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 하에서의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꿰뚫
어보려면 인식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문화산업이 그것을 방해한다. 이런 상황에
서 전체주의가 다시 등장할 잠재력은 커지고 있다. 대중은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민주주의에 무관심하거나 민주주의를 적
대시한다.
파시즘이 살아남은 구조를 아도르노는 단순한 사회심리학적 지평을 훨씬 뛰어
넘어 총체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특히 자본주의의 ‘적응 강제’와 문화산업의 ‘현
혹 연관’이 과거청산 실패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는 대목은 아도르노의 안목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89

아도르노에게 있어 근본적인 과거청산은 ‘강한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계몽


으로서의 과거 청산은 본질적으로 주체에로의 그러한 전환이고, 주체의 자의식과
자아를 강화하는 것이다.”(27) 강한 자아를 가진 민주시민이야말로 나치즘의 과거
가 반복되는 것을 차단할 가장 확실한 방패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를 독일 교육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독일 교육은 바로
‘아우슈비츠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슈비츠가 독일 교육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우슈비츠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교육에 보내는 최우선적인 요구이다. 이 요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적
인 것이기에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할 의무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 사람들
이 이 요구와 그것이 제기하는 물음들을 그렇게 의식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끔직한 일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교육 이상
에 대한 모든 논의는 아우슈비츠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상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교육이 반대하는 야만이었다.”(88)
이렇듯 아도르노는 독일 교육의 최우선 목적은 아우슈비츠의 반복을 막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가 반복될 위험은 상존한다. “야만으로 추락하는 일이 다시
벌어질 위험이 있다는 말들이 오간다. 야만은, 그러한 추락을 조성하는 조건들이
본질적으로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존재한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 프
로이트의 통찰력은 실로 문화와 사회학 영역에도 미치고 있는데, 나에게 가장 심
오한 통찰로 보이는 것은 문명이 자기 편에서 반문명적인 것을 가져오고 또 그것
을 점점 더 강화한다는 통찰이다. 문명화의 원칙 자체에 야만의 싹이 들어있다면,
그것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어떤 절망적인 면을 갖는다.”(88) 아도르노의 물음은
절박한 것이다. ‘문명 속의 야만’이 문명화의 원칙이라면, 어떻게 야만과 싸워야
할까? 나치즘이 문명화의 거역이 아니라 그 결과라는 계몽의 변증법의 이러한
핵심적인 인식은 과거청산의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과
거청산의 교육’을 추구하는 아도르노 교육담론의 특수성이 유래한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의 반복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계속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아우슈비츠를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는 관
점을 극복해야 한다. 아우슈비츠는 “진보와 계몽과 소위 증대하는 휴머니즘의 거
290 독일언어문학 제78집

대한 경향에 비해 고려할 가치가 없는 역사 진행의 일탈 현상”이 아니라 “강력한


사회적 경향의 표현”이다. “민족말살은 19세기 말부터 많은 나라에서 벌이진 공
격적인 민족주의의 부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88f)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의 반복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라
고 본다. 그는 “주체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그러한 비행을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든 메커니즘을 인식해야 하고, 그들 자신에게 이러한 메커니즘을 보여
주어야 하며, 그 메커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의식을 일깨움으로써 또 다시 그렇게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죄는 살해당한 자에게 있지 않다. [...]
죄가 있는 것은 오직 아무런 소신 없이 증오와 공격적 분노를 그들에게 쏟아낸
사람들이다. 그러한 무소신은 극복되어야 하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을 외부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비판적인 자기성찰을 위한 교육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90) 아우슈비츠의 반복을 막으려면 주관적인 측면, 즉 인간의 심
리를 변화시켜야 하는 데, 이것은 결국 교육의 몫이다.

Ⅲ.2. 반권위주의 교육: 강한 자아를 가진 인간

아도르노는 미국 망명 시절 미국의 연구자들과 함께 권위주의 성격 연구를


공동 집필하였다. 그는 “잠재적 파시즘을 진단하고, 그 결정요인을 규명하는
것”(Adorno 1982, 2)을 연구의 과제로 설정하고, “반민주적인 선전에 수용적인 성
격구조를 가진, 잠재적인 파시스트 성향의 개인”(Adorno 1982, 1), 즉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개인을 중점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권위주의적 성격과 파시즘
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고, 권위주의적 성격이 파시즘을 강화하는 사회심
리학적 토대임을 밝혀냈다. 따라서 아도르노의 ‘아우슈비츠 교육담론’에서 권위
주의의 문제가 핵심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의 반복
을 근본적으로 저지하려면 반권위주의 교육을 통해 민주적인 시민을 길러내야 하
는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권위주의적 성격은 “정치적, 경제적 기준들과 그리 상관관
계가 없다.” 오히려 “권력과 무기력의 차원에 대한 사유, 경직성과 무반응, 관습
주의, 동조습성, 자기신념의 결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험 능력의 전적인 결여 등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91

과 같은 특성들이 권위주의적 성격을 정의한다. 권위주의적 성격은 현실의 권력


과 곧장 자신을 동일시한다. 특정한 내용은 상관없다. 근본적으로 권위주의적 성
격은 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대용물로서 거대한 집단과의 동일시와 이
것을 통한 보호를 필요로 한다.”(17) 여기서 권위주의적 성격의 중요한 특성들이
소환된다. 무력감, 경직성, 관습주의, 동조습성, 무신념, 경험능력의 결여, 권력과
의 동일시, 약한 자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를 낳은 것은 이러한 ‘옛 권위주의적 성격’이 아니다. 그것
은 새로운 유형의 권위주의적 성격이다. “아우슈비츠의 세계에 특징적인 유형은
아마도 새로운 유형일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집단과의 맹목적인 동일시를
뜻하고, 다른 한편으론 히믈러, 회스, 아이히만이 그랬듯이, 대중과 집단을 조작하
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반복의 위험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집단의 맹목적인 우위를 막는 것이고, 집단화의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집단
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95)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동
일시와 집단을 조작하는 능력의 제고가 새로운 권위주의적 성격의 핵심적인 특성
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아도르노는 집단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가진 개
인을 길러내는 것을 파시즘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자, 민주교육의 핵심
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새로운 유형의 권위주의적 성격’에서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아도르노가
‘조작적 성격 manipulativer Charakter’이라고 부른 유형이다. “맹목적으로 자신을
집단 속에 끼워 넣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이미 물질과 같은 것으로 만들고, 자
기 결정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지워버린다. 다른 사람을 무정형의 대중으로 다
루려는 태도도 더해진다. 나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권위주의적 성격에서
‘조작적 성격’이라고 명명했다.”(97) 그는 회스나 아이히만 같은 자들을 조작적
성격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본다.

조작적 성격은 조직분노 Organisationswut, 직접적인 인간적 경험을 할 능력의 결


여, 어떤 종류의 무감정, 과도한 현실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
르더라도 소위, 광기어린 것이긴 하지만, 현실정치 Realpolitik를 수행하고자 한다.
그는 단 일초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달리 생각하거나 소망하지 않는다.
292 독일언어문학 제78집

그는 그러한 행위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일을 한다는 의지에 사로잡혀 있다. 행위,


활동, 소위 ‘효율성’ 자체를 그는 하나의 우상으로 만든다. 이러한 유형(의 인간
들)은 그 사이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널리 퍼졌다. 당시에는 단지
몇몇 나치 괴물들이 사례를 보인 일들이 오늘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 이런 유형의 조작적 성격들을 하나의 정식으로 부른다면, 나는 ‘사물화
된 의식’의 유형이라고 부르겠다. 처음에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사물처럼 만들고, 다음에는 이 사람들이, 그런 가능성이 주어지면, 다
른 사람들을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다.(97f)

여기서 아도르노가 말하는 ‘조작적 성격’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조작적 성격


이 나치 부역자들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일상적인 파시
즘’으로서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조작적 성격을 ‘사물화된 의식’
유형으로 명명함으로써, 이런 성격의 위험이 나치즘의 과거에서 뿐만 아니라, 자
본주의의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과거청산’의 부재를 나치
잔재의 모습에서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작동원리 자체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도르노의 성찰이 갖는 높은 차원을 현시한다. 이러한 고도로 정교한 비판
의식이 68학생 운동 세대에서도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권위주의 이론, 특히 조작적 성격 개념에 바탕을 두고 아도르노는 반권
위주의 교육을 옹호한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극복하고 조작적 성격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강한 자아를 가진 개인’을 길러내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다고 아도르노
가 전인적 개인 사상과 같은 근대 초기의 낭만적 인간관을 옹호하는 순진한 사상
가는 아니다. 그는 변증법의 대가답게 현대 사회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가능성과
한계를 냉정하게 혜량하고 있다.
아도르노는 개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 또한 분명하게 지
적한다. 그는 “반개인주의는 분명 반동적이고 파쇼적이며, 이런 권위주의적 반개
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단언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을 위한 교육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가장 현실적인 가능성, 즉 노동과정이 특별히 개인적인 속성
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까닭에 오늘날에는 개인화의 사회적 가능성이 전반적
으로 결여되어 있기”(117) 때문이다. 요컨대 반개인주의는 분명 파쇼적이고 반동
적이지만, 개인화의 사회적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을 위한 교육을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93

요구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아도르노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몰락한 한 원인을 이처럼 노동과정의 탈개
성화에서 보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보다 근원적인 진단을 감행한다. “오늘날 사회
는 비개인화 Nichtindividuation에 우선권을 둔다. 즉 함께 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것과 나란히 자아 형성의 내적 약화가 진행되는데, 그것은 심리학에서는 ‘약한
자아 Ich-Schwäche’라고 알려져 있는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개
인 자신, 즉 완고하게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개인화된, 자기 자신을 어
떤 의미에서는 최후의 목적으로 간주하는 인간 자체가 매우 문제적인 무언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개인이 몰락한다면, 그것은 개인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해 보복을 당하는 꼴인 것이다.”(118) 여기서 아도르노는 비개인화, 자아의 약
화, 이기적 개인주의를 개인의 몰락의 세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렇게 개인이 몰락한 상황에서 ‘조화로운 개인’을 꿈꾸는 것은 시대착오적이
다. “아직 훔볼트의 머릿속에 살아있던 일종의 조화의 이념, 즉 사회적으로 기능
하는 인간과 그 자체로 교양을 갖춘 인간 사이의 조화의 이념은 더 이상 실현될
수 없다. [...] 교육은 이러한 균열을 향해 작업해야 하고, 균열을 땜질하거나 어떤
총체성 이상이나 그런 유사한 헛소리들을 대변하는 대신에 이런 균열 자체를 의
식화해야 한다.”(118f)
아도르노는 저항하는 개인, 강한 자아를 가진 개인을 성숙한 개인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유연한 자아’이다. “자아와 자아 결속의 어떤
확고함은, 시민적 개인의 모델에서 형상화되어 있듯이, 성숙함의 한 요소이다. 확
고한 자아를 길러내는 대신, 자신을 상시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적응시켜
야 할 가능성은 오늘날 많은 사례에서 요구되고,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우리가 심리학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약한 자아의 현상들과 조화를 이
룬다.”(143) 강한 자아는 성숙함의 요소이지만, 현대인은 확고한 자아를 강화하는
대신,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한 자아’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약한 자
아’ 현상은 권위주의적 요인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요인에 의해서도
강화되고 확산된다. 즉 자아를 약화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은 권위주의와 자본주의
인 것이다.
이런 모순된 상황이기에 진정한 성숙을 위한 교육은 오늘날 ‘저항 교육’일 수
294 독일언어문학 제78집

밖에 없다. “성숙을 실제로 구체화할 수 있는 유일인 길은 교육이 모순을 위한 교


육, 저항을 위한 교육이 되도록 진력하는 데 있다.”(145) 아도르노에게 성숙을 위
한 교육은 곧 ‘저항을 위한 교육’이다. “개인이 저항의 힘의 중심으로서만 살아남
을 수 있는”(118) 오늘날 성숙이란 곧 기존의 질서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저항을
의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Ⅲ.3 정치 교육: 저항하는 인간

아도르노의 아우슈비츠 교육론은 근본적으로 정치교육론이다. 더 이상 아우슈


비츠의 반복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에 주어진 최우선적 요구는 결국 정
치적인 요구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정치교육을 매우 중시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독일 민주주의가
대단히 후진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민주주의 체제가 독일에선 사람
들이 실제로 자기 자신의 일로 경험하고, 자기 자신을 정치적 과정의 주체로 인
식할 만큼 시민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여러 체제들 중에서 하나의
체제로 여겨진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파시즘, 군주정과 같은 견본 카드 사이에서
선택권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민주주의는 인민 자신과 동일시되지 않고, 인민의
성숙의 표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15) 독일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1950
년대만 해도 이렇듯 순진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여러 정치 체제 중의 하나라고
인식되었지, 그것이 ‘인민의 지배’를 실현하는 형식이거나, 인민의 성숙을 요구하
는 체제라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아도르노는 독일 사회에 대해 “인민
이 민주주의를 낯설게 느끼는 데에 사회의 자기소외가 반영돼 있다”(16)고 진단
한다.
아도르노는 독일이 처한 이런 후진적 상황을 타개하는 방편으로서 정치교육의
유용성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독일에서는 “정치 수업을 욕하는 것이 하나의 유
행”(24)이 되어 있지만, 정치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매우 유용하다고 본다. 이
때 정치교육의 핵심은 아우슈비츠를 향해야 한다. “모든 정치교육은 결국 아우슈
비츠가 반복되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104)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정치교육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95

키우는 저항권 교육이다. 물론 아도르노도 교육에 내재한 적응과 저항 사이의 ‘이


중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교육이 적응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제 자리를 잡도록 준비시키지 않는다면, 교육은 무력하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거기에만 머물러 ‘잘 적응한 사람들’ 이외에는 다른 아
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기존의 질서가, 그 나쁜 상태 그대로, 유지된
다면, 이러한 교육도 마찬가지로 의문스러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화와 합
리성을 지향하는 교육의 개념에는 애초에 이중성이 존재한다.”(109) 교육은 적응
을 가르치지만, 적응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기존의 질서에 적응하는 능력뿐만 아
니라, 저항하는 능력도 가르쳐야 한다. 올바른 교육자라면 이러한 적응과 저항의
긴장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아도르노가 더 중시하는 것은 적응 교육이 아니라
저항 교육이다. “교육은 이 전면적인 순응주의의 시대에 우선적으로 적응을 강화
하는 것보다는 저항을 강화시킬 과제를 갖는다.”(110)
아도르노는 젊은 세대의 ‘과도한 현실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데, 거기엔 무엇
보다도 저항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전체 환경에 의해 순응의
과정이 그렇게 과도하게 강요됨으로써, 사람들은 순응을 이를테면 자기 자신에게
고통스럽게 강제하고, 자기 자신에게 현실주의를 과장하고, 프로이트 식으로 말
하면,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과도한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은 내게는 물론 이른 유년기에 시작되어야 할 가장 결정적인 교육의 과제들
중 하나로 보인다.”(110) 젊은이들이 과도한 현실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른 유년기부터 저항권 교육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이른 시기부터 저항권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압도적인 순응주의에 결국 굴복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의 인
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들이 내비치는 것이 결국은 과장된 현실주의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도르노는 계몽이 사람들을 “순한 양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반대한
다. “양처럼 되는 것은 그 자체가 야만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것은 끔직한 일을
함께 목격하고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굴복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
다.”(128f) 아도르노에게 계몽의 기능은 사람들을 양처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자처럼 저항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분노’를 옹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야만에 대한 투쟁에는, 혹
296 독일언어문학 제78집

은 야만을 철폐하는 투쟁에는 분노의 계기가 포함된다. 형식적인 휴머니티의 개


념에서 출발하는 사람이라면 그 자체를 야만이라고 비난하겠지만 말이다.”(123)
아도르노는 비록 마르쿠제처럼 ‘폭력’을 변호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분노’는 옹
호하고 있다. 근원적으로 불의한 체제에 연루되어 있는 개인들은 야만의 특성으
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분노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 아도르노의 이러한 생
각이 ‘저항권 교육’ 이념의 바탕을 이룬다.

Ⅲ.4. 탈야만을 위한 교육: 공감하는 인간

아도르노는 “독일의 탈야만화 Entbarbarisierung”를 “가장 중요한 교육목표”로


제시한다. (94) 이때 ‘야만’이라는 개념으로 뜻하는 바를 그는 “고도로 발전된 기
술문명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형식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문
명보다 뒤쳐져 있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사람들은 압도적인 다수가 문명의
개념에 조응하는 형식화 Formung를 경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시적인 공격
의지, 원시적인 증오, 젊잖게 말하면, ‘파괴본능’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파괴본능은 자기편에서 이러한 문명 전체가 파괴되어버릴 위험을 고조시키는데
기여한다. 나는 이것을 저지하는 것이 당연히 아주 긴급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
문에, 모든 다른 특별한 교육 이상들은 그 뒤를 따른다고 생각한다.”(120) 1968년
4월에 방송된 이 대담에서 나타나는 아도르노의 문제의식에는 당시의 위기의식
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월남전과 끝 모를 군비경쟁, 핵전쟁의 위험 등의 상황을
아도르노는 ‘문명보다 뒤쳐진’ ‘야만’의 개념으로 포착하면서 이를 극복할 방안으
로 교육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무엇보다도 독일 교육에서 ‘야만의 징후’를 본다. “독일의 교육관
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관점들은 이런 것이다. 즉 인간은 결속을 이루어야 한
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어떤 객관적으로 통용되는, 독단적으로 설정된
가치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직한 야
만이 폭발했었기”(121) 때문에 탈야만의 교육이 더욱 절실한 것이다.
60년대 말까지 독일의 교육관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순응하는 교육이었지,
그것에 비판적으로 맞서는 교육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도르노의 문제 제기는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97

1970년대에 비판적 교육학이 등장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아도르노의 ‘야만’ 개념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그가 이 개념을 문화와 반대되
는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에게 있어서 문화는 야만의
생산자이다. “교육의 개념 속에는, 또한 바로 소위 교양을 키우는 교육 속에서도
야만적 요소들이, 즉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계기들이 존재한다. [...] 바로 이러한
문화의 억압적인 계기들이 그 문화에 내던져진 사람들 속에서 야만을 생산하고
재생산한다.”(122) 문화가 모자라서 야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자체가
야만을 생산하는 것이다. 나아가 아도르노는 현존 체제를 작동시키는 이데올로기
를 위험한 야만의 유형으로 본다. “오늘날 위험한 형태의 야만은 질서의 이름으
로, 권위의 이름으로, 기존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다”(123)는 것이다.
이처럼 야만이 기성문화의 산물이자 기존질서의 결과물이라면, 아도르노에게
야만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특히 심각하게 문제시하는 야만
의 양상들을 들여다보자.
아도르노는 교육에 있어서의 ‘경쟁’을 대표적인 ‘야만 현상’으로 본다. “경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교육에 반하는 원리”로서 “인간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수
업은 결코 경쟁 본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경쟁으
로 “탈야만화된 인간을 기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돌아
보면서 “소위 경쟁적 충동이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우를 기억할 수 없다”고
회고하고, 경쟁이란 “우리의 교육체제가 여전히 물들어 있는 신화들 중 하나”라
고 평가한다.(126) 아도르노는 또한 ‘팔꿈치’로 상징되는 경쟁의 야만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사람들에게서 팔꿈치를 사용하는 습관을 없애야 한다. 팔꿈치를 사용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없이 야만의 표현이다.”(127) 이처럼 아도르노에게 경쟁은
반인간적인 교육원리이고, 야만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지침이다.
폭력성도 야만의 중요한 증표이다. 아도르노는 “인간이 교육체제를 통해서 모
두가 물리적 폭력에 대한 혐오감을 체득하게 되기를 바란다.”(129f) 그가 68혁명
의 과격화, 폭력화 과정에서 마르쿠제와 이견을 갖게 된 것도 폭력에 대한 그의
민감성과 관련이 깊다.
아도르노는 권위주의가 야만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교
육 속에서의 야만의 영속화는 본질적으로 이 문화 자체 속에 있는 권위원리에 의
298 독일언어문학 제78집

해 매개된다. [...] 그렇기에 특히나 초기 유아기 교육에 있어서 일체의 모호한 권


위의 철폐는 탈야만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이다.”(131) 반권위주의가 탈야만
의 ‘가장 중요한 전제’라는 아도르노의 관점은 이후 1970년대 반권위주의 교육의
정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강인함 Härte을 이상화하는 교육에서도 아도르노는 야만의 징후를 본다. “강인
함의 교육상은 철저히 전도된 것이다. 남성성은 최고의 인내심에 있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새디즘과 종이 한 장 차이인 매저키즘의 사본이 되었다. 강인함은 바
로 고통에 대한 무심함을 의미할 뿐이다.”(96f) 강인함의 교육은 전도된 교육이다.
인내심에 기초한 강인한 남성상은 매저키즘의 전형이고, 매저키즘은 새디즘의 이
면이다. 강인함은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의 결여를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교육은 인내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아도르노는 공감 능력, 특히 ‘사랑 능력’의 복원에서 전면화된 야만의 현실에
서 벗어날 일말의 가능성을 본다. 사랑 능력이 중시되는 이유는 -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 현대인이 사물화와 소외에
빠져 사랑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현대인이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차가움을 생
산하고 재생산하는 사회적 질서”를 비판한다. “재앙의 조건으로서의 차가움에 반
대하기 위해서는 차가움의 고유한 조건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고, 개인적 영역에
서 선제적으로 이러한 조건들과 맞서 싸우려는 시도가 요구된다.”(102) ‘냉기’를
조성하는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를 극복하고, 따스한 공감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통찰력과 저항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Ⅲ.5 새로운 인간의 탄생: 성숙을 위한 교육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은 결국은 ‘성숙을 위한 교육’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성숙


의 개념은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제시한 고전적인 정의, 즉 ‘계몽이란
인간이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는 명제에
서 따온 것이다. 아도르노는 칸트의 이 정의가 “오늘날에도 지극히 시의성이 크
다”(133)고 본다. 왜냐하면 성숙의 문제는 곧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문제가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299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대의적 선거라는 제도 속에서 결집되는 바, 각 개


인의 의사 형성에 근거한다. 이때 비이성이 결론으로 나오지 않으려면, 각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능력과 용기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칸트의 위대성에 대한 모든 언설은 헛소리나 립 서비스에 불과하
다.”(133) 여기서는 이성과 민주주의의 관계가 관건이 된다. 이성이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성의 교육, 즉 성숙의 교육은 곧 민주주의
교육이다.
아도르노는 성숙한 인간이 민주주의의 전제라고 본다. 성숙한 인간 없이 민주
주의는 불가능하다. 성숙한 인간이 갖춰야할 자질은 무엇보다도 자율성과 민주성
이다. 자율적인 인간만이 민주주의 사회를 견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우슈비
츠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도 막아낼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원리에 반대하는 유
일하게 진정한 힘은, 칸트식 표현을 사용해도 된다면, 자율성이다. 즉 성찰하고,
자기 결정하고, 동조하지 않는 힘이다.”(93) 민주주의는 결국 성숙한 사람들에 의
해 유지되고, ‘자아가 강한’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이다.
아도르노는 ‘성숙’과 관련된 교육학 서적들을 둘러본 인상을 비판적으로 토로
한다. “성숙 대신에 거기에서 발견한 것은 실존론적으로 위장된 ‘권위’와 ‘결속’
개념이거나, 성숙의 개념을 사보타지하고,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전제를 은밀하
게 뿐만 아니라 내놓고 저지하려는 그런 혐오스런 개념들이다.”(136) 독일 교육은
1960년대 중반까지도 성숙한 인간, 즉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인간보다는 권위에
굴종하는 신민, 결속을 중시하는 국민을 길러내는 교육이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
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성숙과 계몽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오늘날 그러한 이념이 처
해있는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깊이 통찰하고 있다. 이것이 아도르노를 소박
한 계몽주의자와 구별짓는 중요한 특성이다. “(성숙이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물
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질서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타율적이라는 것,
즉 어떤 인간도 오늘날의 사회에서 정말로 자신의 고유한 성향에 따라 존재할 수
없다는 사회적 모순 때문이다. 그러한 한에 있어서 사회는 무수한 매개 심급과
통로를 통해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오늘날 성숙의 본원적 문제는 과
연 (세상의 질서와) 맞장 뜰 수 있는지, 어떻게 맞장 뜰 것인지에 달린 것이
300 독일언어문학 제78집

다.”(144) 아도르노는 성숙의 문제를 개인의 내적 발전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회


를 대하는 개인의 관점과 태도의 문제로 본다. 그에게 성숙은 도덕적, 윤리적 문
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이다.
이처럼 성숙의 문제가 결국 실천의 문제로 귀결될 때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
은 다름 아닌 무력감이다. “어떤 특수한 영역에서 우리의 세계를 정말로 개입하
면서 변화시키려는 노력들은 즉시 압도적인 기존권력의 힘 앞에 직면하고, 무력
감에 빠질 운명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변화시키려는 자는 이러한 무력감
자체와 자기 자신의 무력감을 그가 생각하고 또한 행하는 것의 계기로 삼을 때에
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147) 아도르노는 무력감 자체를 사유와 실천의 계기
로 삼을 때 무력감을 극복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격려한다. 이 책의 마지
막 문장이 무력감의 극복을 권유한다는 점에서 볼 때, 아도르노는 순수이론에 대
한 그의 강한 집착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실천의 교육자’였다고 할 수 있다.

Ⅳ. 아도르노의 교육학적 영향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은 68혁명과 브란트 정부 탄생 이후 불어닥친 거대한 사


회적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1970년대 초부터 교육개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
다. 그것은 아도르노에게는 ‘교육학적 전환’의 결과물이었지만, 독일 교육학에게
는 ‘사회학적 전환’의 출발점이었다. 이러한 전환을 거쳐 독일의 교육학은 비판
교육학으로 재탄생했고, 반권위주의 교육, 탈야만의 교육, 성숙의 교육을 기치로
내걸면서 ‘새로운 독일’을 만드는데 중추적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1999년 독일 건국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볼프강 티
어제 국회의장이 아도르노의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과 계몽의 변증법을 인
용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는 아도르노가 독일의 ‘정신적 건국’에 결정
적인 기여를 했음을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아도르노로 대표되는 비판이론이 독일 교육학에 미친 영향을 교육학자 블랑케
르츠는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301

비판이론을 수용한 교육학자들은 명확한 실천적 요구를 가진 교육학을 발전시켰


는데, 이를 ‘해방 교육학’ 혹은 ‘비판 교육학’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방향의 교육
이 실천적으로 이루어져 교육개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계몽의 변증법’은 학
교 제도의 올바른 조직화와 해방적인 교과목 수정을 통해 저지될 수 있으며, 세
계사의 도정은 다시 ‘신분도 특권도 없는’(아도르노) 사회로의 진보적인 길로 되
돌릴 수 있다고 많은 해방적 교육학자들은 생각했다. ‘기회의 평등’에서 ‘도구적
이성’에 이르기까지 어떤 문제도 비판이론의 세례를 받은 교육학자들에 의해 해
결되지 않고, 실천에 옮길 수 없는 문제는 없었고, 어떤 비판도 너무 급진적인
비판은 없었다.(Blankertz 1987, 40)

여기서 1970년대 초기 아도르노의 교육사상이 수용되던 교육학계와 교육현장


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교육을 통한 급진적 사회개혁의 비전이 아도르
노에 의해 제시된 것이다.
아도르노로 대표되는 비판이론이 1970년대 초부터 교육학계에 “밀물처럼 수
용”(Albrecht 2000/5, 388)되어 독일의 교육 공론장을 일거에 뒤덮었다. 교육학과
교육적 실천에 영향을 미친 여러 이론들 중에서 비판이론은 특수한 위상을 지녔
다. “1970년대에 다른 어떤 이론도 비판이론 만큼 독일의 교육 공론장을 움직인
이론은 없었다.” 비판이론에 기대어 ‘비판적 교육학’을 세우려는 시도도 광범위하
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비판이론을 가지고 정당화된 ‘비판적 해방적 교육’에
대한 찬반”은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Behrmann 2000, 452)
아도르노의 교육사상은 교육학의 사회학적 전환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1970년대 교육학은 아도르노와 비판이론을 수용하면서 교육학의 토대를 새로이
규정하게 되었던”(Wulf 1987, 21)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은 물론 1970년대에 그친
것이 아니다. 그 이후에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교육학의 논의와 교
육 실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Paffrath 1987, 9)
그렇다면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은 구체적으로 교육개혁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방식으로 수용된 것인가. 우선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비판이론이
“대학과 학교에서 교육원리 Bildungskanon로서 수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비판이론은 “교육지식 Bildungswissen”의 구성부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Albrecht
2000, 18) 비판이론이 68혁명 이후 학교에서 하나의 교육원리로 수용되었다는 것
302 독일언어문학 제78집

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독일의 교육개혁이 ‘비판교육’, ‘해방교육’, ‘반권위주


의 교육‘의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도 비판이론이 교육의 기본원리로서 받
아들여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비판이론이 1970년대 이후 일종의 ’필수
교양지식‘이 됨으로써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비판적인 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하는 나라가 되었고, 이런 교육을 받은 새로운 독일인들은 가장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비판 교육학의 핵심개념인 계몽, 해방, 사물화, 소외, 비판, 권위주의적 성격 등
의 개념이 모두 비판이론에서 온 개념들(Wulf 1987, 22)이라는 사실은 독일 교육
학에 미친 아도르노와 비판이론의 영향력을 가늠하게 한다. 나아가 비판 교육학
의 공통된 문제의식인 “기존 질서 비판, 적응으로서의 교육 거부, 사회의 강압에
맞서 인간의 능력 강화, 성숙과 자유의 옹호”(Pöggeler 1987, 55) 등도 아도르노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판 교육학이 비판이론
의 교육학 버전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중에서도 특히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이 미친 영향은
컸다. 이 강연문은 “미래 교육의 기본 원칙이 정초되어 있다”(Pöggeler 1987, 54)
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교육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수용되었고, “프로이트의
가설보다 더 높은 의미지평에 정주하는 교육학적 예언서”(Pöggeler 1987, 58)라고
극찬을 받았다. 이 텍스트는 교육학이 비판이론에 접근하는 단초가 되었고, 비판
이론이 교육학에 미친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간주되었다.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이 교사들에게 미친 영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도르
노는 정치 교육을 통해 교사들을 비판이론의 ‘대리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주로
방송 강연과 독일사회학회 교육사회학 분과 위원회에서의 활동 등을 통해 교사들
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초 비판이론의 영향 하에 교육사회학이
발전시킨 교사상이 70년대 교사들의 자화상을 상당 부분 지배했다. “비판이론이
교육학에서 지배적인 이론이 되었을 때, 교사들은 비판이론의 대리인이 되었
다.”(Albrecht 2000/5, 404f)
비판이론이 발전시킨 교사상이 지배적인 것이 됨에 따라 독일의 교육은 비판
이론의 이념에 따라 개혁되었다. 독일 교육의 진보성은 바로 비판이론의 진보성
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독일의 반권위주의 교육과 과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303

거청산 교육의 성공에는 아도르노와 비판이론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V. 나가며

2015년에 정점으로 치달은 유럽의 난민 위기는 흥미롭게도 주요 국가들의 대


응방식의 차이로 인해 그 나라의 ‘정치적 성숙성’을 잴 수 있는 시금석 구실을 했
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프랑스의 극우 열풍과 대비되는 독일의 ‘백만 난민 수용’
을 보고 세계는 독일인의 성숙한 정치의식에 경외감을 느꼈다.
필자도 올해 여름에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 체류하면서 독일인들의
높은 정치의식에 다시 한번 큰 감동을 받았다. 프랑크푸르트대학 캠퍼스에도 시
리아 난민을 위한 임시수용소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누구 하나 이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대다수 학생들이 수용소의 ‘불편한 시설’
에 대해 난민들에게 미안해했다. 베를린에서는 ‘걸림돌 Stolpersteine’로 상징되는
새로운 기억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바로 집 앞에 놓여있는 유대인 학살을 상기시
키는 황동판을 보면서 많은 독일인들이 불편해하거나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과
거와 만나는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난민’과 ‘나치 과거’를 대하는 대다수 독일인들의 성숙한 의식을 보면서 이것이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 글은 독일인들의 이런 놀라운 정치적 성숙
성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기획의 첫 번째 시도에 해당된다. 이런 현재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자.
먼저 독일이 성공적인 과거청산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도르노의 교
육담론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그의 강연 「아우
슈비츠 이후의 교육」은 새로운 독일의 교육강령이자 교육원리로 격상되어, ‘청산
되지 않은 과거’의 나라를 ‘과거청산의 모범국’으로 변화시킨 교육개혁의 방향타
구실을 하였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
라는 경구가 보여주듯이, 과거청산의 문제를 인적, 제도적 차원을 넘어 ‘내적’ 차
원으로 심화시켰다. 그 결과 독일은 심도 깊은 과거청산을 이룬 나라가 된 것이
다. “아도르노에 의해 서독에서 과거청산은 도덕의 명령에 따른 의식의 내재화라
304 독일언어문학 제78집

는 장기적인 과제로 변했다. 그것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형성된 새로운 서독의


엘리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처럼 아도르노는 “내재화된 과거청산을 교육기
관에 제도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Albrecht 2000/5, 447)
아도르노의 비판이론은 신자유주의가 퍼뜨리는 ‘긍정 이데올로기’와 ‘낙관주
의’가 현존하는 위기와 갈등을 은폐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돌아볼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판이론의 비판성과 사회비판적 비관주의는 더욱 농밀해진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찰하고 과장된 현실주의를 극복하는 정신적 무기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거짓 긍정과 값싼 낙관론에 맞서 비판과 목적론적 비관주의
Zweckpessimismus를 견지해야 현실의 위기를 타개할 공간이 열린다. 오늘의 세계
를 규정하는 것은 거짓된 긍정과 참된 비판의 대립이다.
아도르노를 통해 독일의 교육학은 ‘계몽 교육학’에서 ‘비판 교육학’으로 전환
했다. 그의 계몽 비판, 문명 비판은 교육학의 많은 분야에서 “시야의 확대와 사고
의 전환”(Wulf 1987, 31)을 낳았다. 아도르노의 영향으로 독일 교육은 단순한 계
몽사상의 확산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차원으로 심화되었다. 바로 이 지
점이 독일 교육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자리다. 독일처럼 교육의 ‘비판
성’이 중시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독일 교육의 특수성은 그 비판성에 존재하
고, 그것은 바로 프랑크푸르트학파, 특히 아도르노 사상의 급진적 비판정신에 뿌
리를 두고 있다.
아도르노의 교육담론은 그가 숨은 실천가였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아도르노
가 실천하지 않는다고 비판받던 바로 그 시절에 교육학은 아도르노의 영향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실천으로의 전환”(Blankertz 1987, 40)을 감행하는 역설적 상
황이 벌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돌아보면, 아도르노는 이론을, 마르쿠제는 실천을
대표한다는 도식적 이분법은 틀렸다. 아도르노의 교육담론과 교육활동은 그가 자
기 나름의 방식으로 실천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마르쿠제가 “비판이론의 정치
화”를 실천했다면, 아도르노는 “비판이론의 교육화”(Albrecht 2000/2, 102)를 실천
한 것이다.
아도르노의 교육사상이 한국 교육에 던져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의 관점에
서 보면 한국 교육은 야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교육이다. 아도르노가 ‘야만의 표
식’이라고 한 바로 그 경쟁이 한국 교육의 핵심원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의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305

목표는 ‘올바른 의식의 형성’이라는 아도르노의 관점에 따르면 한국 교육은 영락


없이 반교육이다. 한국의 학교는 의식 대신 지식만을 쌓는 곳이고, 비인간적인 교
육환경으로 인해 정상적인 의식조차 오히려 왜곡시키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지
막으로 한국 교육에는 아도르노가 중시했던 교육적 가치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다. 반권위주의 교육, 저항권 교육, 정치 교육, 강한 자아를 기르는 교육, 공감 교
육 등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아도르노의 교육사상이 교육
개혁의 원리가 됨으로써 오늘날 성숙한 독일인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
리도 혁명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영악한 헛똑똑이’가 아니라 ‘성숙한 인간’을 기
르는 교육으로의 대전환을 감행할 때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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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ffrath, F. Hartmut(Hg.): a.a.O., 21-39.

Zusammenfassung
Die Bildungskonzeptionen Theodor W. Adornos
Kim, Nury (Chung-Ang Univ.)

Die 2015 von der Kanzlerin Angela Merkel getroffene Entscheidung, eine Millionen
Flüchtlinge aus Syrien aufzunehmen, war ein aufrüttelnder Schock nicht nur in
Deutschland, sondern auch in der ganzen Welt. Besonders erstaunlich ist das aus
heutiger Sicht gerade deshalb, weil die Flüchtlingskrise in England zum Brexit führte
und in Frankreich die rechtspopulistische Marine Le Pen beim Rennen um die
Präsidentenschaft in die Stichwahl brachte, während in Deutschland als Ergebnis der
Bundestagswahlen mit aller Wahrscheinlichkeit Frau Merkel ein weiteres Mal zur
Kanzlerin gewählt werden wird.
Die vorliegende Arbeit geht von der Frage aus, wie es dazu kommen kann, dass in
Deutschland eine Kanzlerin, die eine solche Unsumme von Flüchtlingen aufgenommen
hat, sich trotz gewisser Stimmverluste ihrer Partei schließlich doch erneut als Kanzerlin
wird durchsetzen können. Denn dies erscheint wie ein Wunder in dieser sinn- und
아도르노의 교육담론 307

morallosen ‘Trumpwelt’. Was uns eigentlich überrascht, ist nicht die Entscheidung
Merkels, sondern die mündige Toleranz der überwältigenden Mehrheit der Deutschen
und deren Willkommenskultur.
Meine These lautet, dass dieses Wunder der Guten Deutschen auf jene
Bildungsreform in den siebziger Jahren zurückzuführen sei, die überwiegend von den
Bildungskonzeptionen Theodor W. Adornos beeinflusst und inspiriert worden war. Die
vorliegende Arbeit versucht in diesem Zusammenhang, die Bildungsdiskurse Adornos
im Sinne der Erziehung zur Mündigkeit zu rekonstruieren und dann seinen grossen
Einfluss auf die Bildungsreform nachzuweisen sowie über die aktuelle Bedeutung seiner
Bildungskonzeption nachzudenken.
Die wichtigsten Erziehungskonzeptionen Adornos sind in wenigen Stichworten
festzuhalten: Anitautoritäre Erziehung, Aufarbeitung der Vergangenheit, Überwindung
der Ich-Schwäche, Widerstandsfähigkeit, Vermögen zur Emphatie usw. Durch eine an
diesen Konzepten orientierte politische Erziehung kann nach Adorno ein antiautoritärer,
widerstandsfähiger und sich einfühlender Mensch mit gefestigtem Ich, d.h. ein mündiger
Mensch herangebildet werden.
Durch die von Adorno inspirierte Bildungsreform hat das deutsche Bildungswesen
seit Anfang der siebziger Jahre einen neuen Menschentypus geformt. Diese ‘neuen’
Deutschen waren es, die damals die zweite Gründung der Bundesrepublik mitgeprägt
und heute das besagte Flüchtlingswunder herbeigeführt haben.

Schlüsselwörter : Adorno, Bildungsreform, Aufarbeitung der Vergangenheit,


Anitautoritäre Erziehng, Erziehung zur Mündigk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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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mail : niethe@cau.ac.kr
논문투고일 : 2017. 11. 3 / 심사완료일 : 2017. 12. 4 / 게재확정일 : 2017.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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