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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은 지난 100 년 사이에 독립적인 과학으로 등장했지만 현대 과학으로 생화학의 출현 을 위

한 기반은 이전 세기에 준비되었다. 1900 년도 이전의 기간에는 반응속도론 및 분자의 원자 구성


과 같은 기본적인 화학 원리의 이해가 급속한 발전을 보였다.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생산되는 많
은 화학물질은 19세기 말에 밝혀졌다. 그 이후,생화학은 이론이 정립되고,생화학자들은 생명의
화학 공정들을 밝히게 되었다. 생화학 및 다른 분야에 미치는 영향의 성장은 21 세기에도 계속되
었다. 1828 년 프라드리히 벌러는 무기물인 암모니움 사이아네이트를 가열하여 유기물인 유레아를
합성하였다. 이 실험은 일반적인 무기물을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만 발견되는 유기물로 합성할 수
있는 최초의 실험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 물질의 합성과 분해가 생물학 외부에서 지배적
인 것과 같은 동일한 화학적,물리적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이해한다. 특별한 과정 또는 활력적인
과정이 분자적 수준에서 삶을 설명하는데 필요한것은아니다. 비록수십여 년 전에 많은 대학에 첫
번째 생화학과가 설립되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벌러의 유레아 합성을 생화학이 시작한 날로 지
정하였다. 루이 파스퇴르는 미생물학의 창시자와 적극적으로 배종설을 주장하는 옹호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스퇴르는 입체 이성체들의 발견 등 생화학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생화
학의 역사에서 두 가지 주요한 약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촉매로서 효소의 역할의 발견 및 정보
와 같은 핵산의 역할-운반 분자.20세기의 초반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매우 큰 크기의 단백질
과 핵산의 특성을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현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는 단백질과 핵산
의 구조가 어떻게 생물학적 기능과 관련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약진은 에두아르트 부
흐너 (Eduard Buchner) 의 연구 결과로부터 알게 된 효소의 생물학적 반응의 촉매로서의 효소의
규명이다. 1897 년 부흐너는 효모 세포 추출물이 설탕과 포도당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전환하
는 발효를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전 과학자들은 오직 살아 있는 세포에서만 복잡한 생
물학적 반응이 촉진된다고 믿었다. 생물학적 촉매제는 부흐너의 동료인 에밀 피셔에 의해 탐구되
었다. 피셔는 설탕의 가수분해를 통하여 효모의 효소 촉매 효괴를 연구하였다. 그는 효소와 반응
물들 또는 기질들이 촉매반응을 하는 동안 중간화합물을 형성한다는 것을 제안하였다. 피셔는 또
한 알맞은 구조를 갖는 오직 한 가지 분자만이 주어진 효소에 대한 기질이 될 수 있음을 제안하
였고,효소를 엄격한 주형 또는 자물쇠 그리고 기질을 그에 알맞은 열쇠로 설명하였다. 연구자들
은 곧 삶의 거의 모든 반응이 효소에 의해 촉매되는 것을 알았고 수정된 효소반응의 자물쇠와 열
쇠 이론은 현대 생화학의 중심 정설로 남아 있다. 효소 촉매의 또 다른 성질은 생물학적 반응이
효소가 없을 때에 비해 빨라진다는 것이다. 반응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더불어 효소는 생성물의
수율은 증가시키고 부산물은 거의 만들지 않게 된다. 유기화학에서의 많은 촉매반응은 50'"'-'60
의 수율을 얻는다고 생각되는 반면, 생화학적 반응은 더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부산물이 세포에
해롭고 그들의 생성이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이다. 촉매의 단계는 장에서 서술될 것이다.
20세기 후반에는 구조 생물학 특히 단백질의 구조에 대한 학문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최초
의 단백질 구조는 존 켄드루와 막스 페루츠가 주도한 케임브리지 대학(영국)의 과학자들에 의해
1950 년대와 1960 년대에 밝혀졌다. 그 이래로 수천 가지 다른 단백질들의 차원 구조가 밝혀졌으
며 단백질의 생화학적 복잡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놀랍게 증가했다. 이러한 빠른 발전은 더 크
고 빠른 검퓨터의 이용으로 인하여 이전까지는 단순한 계산기와 손으로 이루어지던 것을 대제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통하여 만들어졌다. 생화학 역사의 두 번째 돌파구는-정보 분자인 핵산의 식
별 부흐너와 피셔의 실험이 있은 반세기 후였다. 1944 년에 오즈월드 에이버리, 콜린 매클레오드
그리고 맥클린 맥카티는 DNA를 병원성 세균인 Streptococcus pneumoniae 계통으로부터 추출해냈
고, 이 DNA를 비병원성 Streptococcus pneumo iae 계통에 투여했다. 비병원성 세균은 영구적으
로 형질전환이 일어나 병원성 세균이 되었다. 이 실험은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최초의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해 주었다. 1953 년에 제임슨 핫슨과 프란시스 크릭은 DNA의 차원 구조를 추론했다.
핫슨과 크릭은 DNA의 구조를 통해 DNA가 스스로를 복사, 즉 복제하여 다음 세대로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즉시 제안했다. 이어진 연구는 DNA에 암호화된 정보가 RNA로 전사되어
단백질로 번역된다는 것을 보였다. 핵산 분자 수준에서의 유전학 연구는 분자생물학의 한 분야이
며 분자생물학은 생화학의 일부분이다. 핵산이 어떻게 저장되고 유전정보를 전달하는지 이해하기
위하여 핵산의 구조와 정보 흐름에서의 역할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생화학 공부의 대부분이
효소와 핵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쏟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크릭이 1958 년에
예측했던 대로 핵산으로부터 단백질로 가는 정보의 일반적인 흐름은 비가역적이다. 그는 핵산으
로부터 단백질로 가는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을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라고 불렀다. 중심 원리
라는 말은 종종 잘못 이해된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그림에서처럼 종합적인 정보의 흐름을 가
리커지는 않는다. 대신 이러한 중심 원리는 핵산에서 단백질로 가는 정보가 반대로 단백질에서
핵산으로는 되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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