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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초 석사 23 홍서준

Lecture Notes
일자 / 시간 2023 년 8 월 29 일 <1 주차> / 18:40 – 20:20

강의명 / 교수명 동양심리학 / 신경희 교수님

A.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형용할 수 있는 것인가? 마음은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인가? 마음은 볼 수 있는 것인가? 수천년, 아니 인류
태고 이래 마음 만큼 풍부한 탐구가 이루어졌던 대상은 없었을 것이다. 왜 이토록 마음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괴롭게 하기도 하는 걸까? 마음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길래 인류의 운명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일까? 필자 역시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이 질문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6 살 즈음 나는 왜 나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일수도, 쟤 일수도 있는데 왜 하필 나란 말인가? 왜 이 모습이며, 성격이며, 한국인이며, 이 집에서
태어났으며 등 끊이지 않은 질문의 굴레에 빠져 머리가 꽤나 복잡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차츰 나이가 먹고
나를 받아드리게 되었을 즈음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다. 무언가 성취를 하고, 남들이 좋다는거 해봐도 그
만족감과 행복이 지속되지 않음을 깨달았고 너무 잠시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게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소위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많이 가지려고, 많이
먹으려고, 많이 누리려고 하는걸까? 모든 이가 동일한 목표를 살고 있다면 틀림없이 내가 비정상적인 것이고,
다른 사람이 맞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32 년 넘게 살았지만 역시나 삶이란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행했고, 허무했고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너무 진부하고 재미가
없었다. 물질에서 공허함을 느꼈다. 삶에 분명 이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련의 삶의 경험이 나를 마음 공부로 이끌었지만 여전히 마음 탐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동서고금에서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서양에서는 외부의 자연세계를 이성적, 합리적 사고에 기반하여
객관적 진리를 실증적으로 탐구했다는 점이 고무적이고, 동양에서는 내부의 마음세계에 대한 직관적, 감성적
탐구를 통해 주관적 세계의 중요성과 수용을 강조했다. 마음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려면 양 세계의
상보적인 관점을 수용하여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만, 지난 300 년간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사고가
현대 사회의 사상을 지배했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통합적, 전일적 시각을 강조하는 동양적 관점과의 융합이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헤겔이 말한 것처럼 <정,반,합>의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간다면 현대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합”이 필요한 시대라고 사료된다.

축의 시대(기원전 8,9 세기 – 기원전 3 세기)에 동서양에서 인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여러 성인과 철학자가


출현했다는 것을 단순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그리스에서는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인도에서는 붓다, 중국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제가백가, 페르시아와
팔레스타인에서는 현대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모태인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의 출현까지 다양한 사상, 철학,
종교가 제창된 시기였다. 당시는 대혼란의 시기로 전 세계가 잦은 다툼, 투쟁에 휘말렸고 삶의 복잡성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모두가 혼란의 카오스의 빠져 있는 시기였다. 어떻게 보면 현대 사회의 기조와 매우 흡사한
모습 아닌가? 2,000 년이 지난 이 시점, 곧 또 다른 축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물질주의와 자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영성과 본질을 잃어버린 인류는 근원을 잊어버린 채 인간성이 말살되었고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대부분의 사상과와 학자들이 “수축사회”에
진입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탐욕이 만연한 현 사회에 더 이상의 성장이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치우친 현상을 균형 잡기
위해서는 대혼란과 기존 패러다임의 붕괴는 불가피하다고 사료되기 때문에 꼭 끔찍한 사건이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불확실성이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우리의 통제 안에 있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 생각한다. 혹자에 따르면 인류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내면의
힘의 추동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니까…
자초 석사 23 홍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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