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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초 석사 23 홍서준

Lecture Notes
일자 / 시간 2023 년 9 월 5 일 <2 주차> / 18:40 – 20:20

강의명 / 교수명 동양심리학 / 신경희 교수님

A. 마음이란 무엇인가
“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라는 고정된 객체가 사라지는 것 느꼈을 때 타자간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영이 현현한 존재이며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느꼈다. 자아초월 관련 작가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가 없다는건 어떻게 보면 반쪽자리 실재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명확하게 “나”가 있다. 자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켄윌버가 말하는 초월적 영성의 궁지를 추구하는 모종의 자기 기만적 영성 우회일지도
모른다. 현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면서 ‘자아는 없다’, ‘나는 없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말 역시 진리를 머리로만 이해한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동양심리학은 마음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함으로써 몸마음(bodymind)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은 이 것이다, 저 것이다’, ‘너는 이래서 그렇다’ 등 말은 너무
많은데 실천은 없다. 지식은 많으면서 실천이 부족하다. 너무 자신이 대단하고 위대해서 타인에게 하나라도 너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알려줘야 할 것 같은 시대이다.

하지만, 붓다가 자신의 가르침을 뗏목 혹은 방편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말 조차 맹신하지 말라고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 말 혹은 지식이 담기에 진리는 너무 복잡하고 다차원적이기 때문에 무엇을 언급하고
적는 순간 그 것은 고정화 되어 반쪽자리, 혹은 그 보다 못한 진리가 되고 만다. 도덕경의 “도가도비상도”처럼
도라고 얘기하는 순간 그 도는 이미 지나가고 없다. 마음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더 이상 그 마음은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하면 과연 무엇이 도라고 얘기할 수 있냐고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꽤 오랜시간 동안 잡을 수 없는 마음을 구조화하고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구조화하고 구체화할수록


마음에 대한 이해는 항상 그 틀을 벗어나고 다른 차원을 보여줬다. 이 것은 내가 아무리 많은 심리학적 지식을
얻고 배워도 결국 같았다. 마음은 진리만큼 복잡해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다만, 플라톤과 데카르트의
사고방식이 규정한 이원론적, 합리적 과학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시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과학 조차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의 체계일 뿐 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느순간
아는척하는 것보다 듣는게 더 중요해졌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수히 비참하게 빗나가는 순간을 너무
많이 겪고 나니 나는 아는게 사실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리는 다차원적이고 내가 말하는 것이
진리인만큼 저 사람의 말 조차 진리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이론을 알고 심리학 지식을 쌓는 것
보다 “don’t know mind”를 갖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나에게 더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차차 이렇게
동양심리학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실천으로 몸마음에 진리를 스며들게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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