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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발명 Mid-Term

로마의 금화, 중국의 개원통보, 한국의 상평통보, 진대의 화폐제도

- 중국 화폐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변화 양상

1. 자연화폐에서 인공화폐로의 발전

조개는 중국 최초의 화폐였고 상나라 때 화폐로 활용되면서 현재 중국의 한자에서 가치 관련


글자들은 모두 조개 패貝가 부수이다. 하지만 상품의 교환이 증가함에 따라 화폐의 수요량이
증가하게 되고 바다조개는 점차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상나라 사람들이 구리를
사용하여 바다조개를 모방하게 되면서 인공화폐를 사용하게되었다.

2. 복잡 다양한 형태에서 통일된 형태로

상나라 때 구리화폐의 출현 이후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화폐의 형태가 매우 다양했다. 전국시대에


각 국이 스스로 화폐를 주조할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제후국 안에서도 여러 화폐를 주조했다.
하지만 이는 시대가 변화함에따라 통일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진나라의 경우 통일하면서 경제정책, 조세징수, 도량 등의 문제로 화폐를 통일했다.

3. 지방에서 주조가 중앙에서 주조하는 것으로

한나라 초기에는 지방에서 자유롭게 화폐를 주조하는 것을 허용했었다. 하지만 한 무제는 반량전의
도주가 멈추지 않자 오수전을 주조했고 지방에서 주조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이를 ‘군국오수’라고
호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제는 지방의 주조권을 회수하고 통일적으로 오수전을 주조했고
오수전은 당시에 유일한 합법적 화폐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에 역대로 화폐의 주조는
중앙정부에서 직접 경영하고 관리하게 되었다.

4. 무게의 단위(칭량화폐)에서 통보제로 변화

진한 이래로 반량과 오수와 같이 동전에 그 무게를 명확하게 표기하였으나 당고조 이연은 화폐


개혁을 결심하고 새로운 화폐를 주조했다. 역대의 무게가 다른 화폐를 “새로운 기원을 연다”는
의미인 “개원통보”를 주조했다. 개원통보는 중국 최초의 통보전이다. 이후 민국통보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5. 금속화폐에서 지폐로의 변화

상업적 교환이 발달하면서 화폐의 사용량이 증가하게 되었다. 점차 동전의 재료인 구리가
부족해지게 되고, 보충을 위해 일부지역에서는 철전을 주조하게 된다. 북송 진종 때는 정부의 허락
하에 사천의 부자들이 공동으로 ‘교자’를 발행하게 된다. ‘교자’는 중국 최초의 지폐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지폐가 되었다.

- 진한대 화폐제도의 특징

진한대에는 전국적인 범위에서 통일된 화폐제도를 수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황금과 동전을


법정화폐로 규정하고 황금과 동을 본위화폐로 규정하였다.

- 리디아의 일렉트럼; 일렉트럼이란 무엇인가


리디아의 일렉트럼(electrum)은 금 80%와 은 20%를 합성하고 그 물질을 일렉트럼이라고
불렀으며 기원전 7 세기 경 일렉트럼으로 최초의 주화를 주조했다. 금ᆞ은 주화는 리디아 왕국에서
크로이소스왕의 재임시절 주조했으며 주로 소아시아에서 발견되며 사자와 황소의 앞부분을
묘사하고 있다. 일렉트럼은 기원전 6 세기 중반이후 더 이상 제작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은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주된 금속화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은 주화가 그 뒤를 잇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었으며, 두 가지 금속을 혼합한 일렉트럼은 합금 속에 섞인 금의 양이 주화의 가치를 현저히
다르게 했기에 가치를 따지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 로마의 주화 (데나리우스)

청동주화와 함께 로마의 주축이 되는 화폐 역할을 하였다. 기원 전 211 년 제 2 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 원로원에 의해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데나리우스는 이후 로마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우수한
은화로 교역을 비롯해 돈이 사용되는 모든 분야에서 인기있는 화폐로 발달하였다. BC140 년
데나리우스의 요율이 16 아스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400 여년간 가치를 유지하였다. 3 세기까지
통화제도는 덜 발달되고 주조화폐의 역할 또한 불분명해졌다.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화폐제도가 더욱 중요해지고, 이 시기에 다른 지중해 연안의 주요도시와 비슷한 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순도 100 퍼센트의 화폐를 주조하기도 했으며 네로 황제의 개혁으로
순도가 92 퍼센트로 낮아졌으나 기존의 상업적 지위는 계속 유지되었다. 3 세기의 위기로 인한
혼란상으로 순도가 무려 5 퍼센트까지 낮아졌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개혁을 단행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개혁을 단행하여 솔리두스(4.48g) 금화로 데나리우스
은화를 대신하게되었다.

- 정복 중 로마 화폐 제도의 특징

1. 로마인이 관리하는 영토 안에서만 데나리우스가 사용되고 이미 주조화폐의 전통을 가지고 있던


지중해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가면서 로마는 실용적인 입장에서의 기존의 주조화폐를 계속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로마는 점령지역의 화폐제도를 파괴하지 않음으로 통일과정에서의 반발을
줄일 수 있었다. <-> 진시황은 통일 과정에서 화폐 통일

2. 중앙집권적으로 강요하며 복종시키기 보다 이미 존재하는 체제를 허용해 로마체제에 합병시키는


것이 로마인의 특징이다.

3. 로마는 정복 후에도 원래의 조세제도는 계속되었고, 화폐제도의 기능이나 주화 자체도 로마의


주화와 공존하며 계속 사용했는데 예외적으로 기원 전 146 년 카르타고와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도시들을 모두 파괴하고 카르타고의 화폐를 유통에서 제외시키고 녹여버렸다.
이는 카르타고의 주조화폐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1 세기가 넘도록 로마인에게는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 개원통보

당고조 621 년 오수전을 폐지하고 각지에 감독관을 두어 “개원통보”를 주조했는데 이로부터 중국의
동전은 중량을 화폐의 명칭으로 하는 “오수전”체제가 끝나고 “통보전” 체제가 시작됐다.

개원통보의 형태는 한의 오수전을 모방했는데 직경은 2.4~2.5cm 에 사각형 구멍의 크기는 0.7cm,
곽의 두께는 0.2cm, 무게는 4.5g 정도다. 개원통보는 제작이 정교, 가치가 안정되어 동전을
제작하는 표준이 되었다. 재료는 동이고, 10 문을 1 량(10 문 = 동전 10 개, 1 량은 37.5g )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며 통일된 개원통보가 제작 유통되어 화폐 경제의 발전을 촉진했다.
주변의 국가에서 개원통보를 모방하여 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예를 들면 일본의 와도카이친,
신강지방의 장종총보, 소그드 등이 있고 이후 베트남의 타이핑흥보, 고려의 해동통보 등에서 동전의
주조가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마지막 개원통보 모양의 주화는 청나라의 선통통보, 중화민국의
민국통보가 마지막이 된다. 일본은 메이저 유신 바로 이전까지 문구영보, 한국의 상평통보 대략 3
천가지가 나오고 마지막은 1887 년이다. 개원통보는 칭량화폐가 아닌 계수화폐다.
(*참고* 시대별 특징)

<춘추시대 이전 화폐 제도 특징>

이 시기의 화폐는 여전히 원시적이어서 화폐에 아무런 문자가 없다.

최초의 화폐인 천연 바다조개를 위주로 하고 포폐 도폐, 금, 비단, 옥, 동폐를 보조로 사용

금속화폐로 바다조개 모방

서주시대까지 천연 바다 조개는 여전히 중요한 화폐

<진한대 화폐 제도 특징>

전국적인 범위에서 통일된 화폐제도 수립

황금과 동전을 법정화폐로 규정

황금과 동을 본위화폐로 규정

<위진남북조 화폐제도의 특징>

화폐제도가 문란하여 통일성과 연관성이 결여 + 화폐의 질이 안좋아짐

기본적으로 동전과 비단이 본위화폐로

화폐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자주 통화팽창(인플레이션)이 발생

화폐의 재료가 다양해져서 동 이외에도 철, 주석과 아연 등도 화폐의 주조에 사용

화폐의 단위가 ‘문’ 으로 바뀌어 1 천문을 1 관으로

중국 최초로 연호전이 출현

<수당대 화폐제도의 특징>

전국적인 범위에서 통일적인 화폐제도를 시행

화폐의 유통은 동전과 비단을 위주로 하고 때로는 금과 은을 이용하여 교역

739 년간 시행하던 “오수전”을 폐지하고 “통보전”을 사용

<오대십국 화폐제도의 특징>

구리가 부족하여 전대의 개원통보를 계속 사용

<송대 화폐제도의 특징>

금속화폐를 위주로 하고 은과 지폐가 점차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으며 비단류는 일상적인


상품의 지위로

② 주화의 명칭이 매우 다양한데 모두 보자를 사용하여 통보, 원보, 중보 등.


③ 금속화폐의 유통 지역이 통일되지 않았다. 북송대에 사천지역 철전을 사용, 섬서지방은 동전과
철전이 동시에 사용되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동전을 사용, 남송대에는 철전의 유통지역이 더욱
확대되어 동전은 주로 동남지방에서만 사용

④ 금속화폐의 주조량이 대단히 많고 종류도 매우 복잡하다(동일한 연호전도 동전과 철전, 크기와


무게의 구별이 있고, 전서와 예서 혹은 예서와 행서를 함께 쓰기도 하였다.

⑤ 가치는 모든 종류의 주화가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의 가치가 존재

<로마의 화폐제도의 특징>

• 로마 최초의 화폐는 양과 소로 추측

• 라틴어의 돈 = 페쿠니아(Pecunia), 소 = 페쿠스(Pecus)에서 파생

• 이탈리아 토착 주민이나 초기 로마인들은 청동 막대의 무게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통화의 기준을


결정

• 대강 잘라낸 청동 덩어리와 나뭇가지 모양의 막대 청동이나 철이 이때 사용

- 로마의 화폐 가치
- 중국 고대의 도량형

반량전: 1 냥의 반

오수전: 검은 기장 500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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