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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사 학 위논 문

「醫山問答(의산문답)」교수·학습 방안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국 어 교 육 전 공

권 태 주

2016년 8월
「醫山問答(의산문답)」교수·학습 방안

지도교수 오 윤 선

이 논문을 교육학석사(국어교육)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국 어 교 육 전 공

권 태 주

2016년 8월
권태주의

교육학석사(국어교육)학위 논문을 인준함

심사위원장 인

심사위원 인

심사위원 인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16년 8월
목 차

논문요약 ·························································································································· ⅳ

Ⅰ. 서 론 ·········································································································· 1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 1

2. 선행 연구 검토 ······································································································ 5

3. 연구 대상 및 방법 ································································································ 8

Ⅱ. 「의산문답(毉山問答)」과 문학 교육 ············································· 10
1. 「의산문답」과 교육과정의 연관성 ······························································· 10

가. 「의산문답」의 내용 체계 ·········································································· 10
나. 「의산문답」과 교육과정 ············································································ 16
2. 「의산문답」의 교육 요소 ················································································ 21
가.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통합의 지향 ······················································· 21
나. 북학론(北學論)의 사상적 출발점 ······························································· 36

다. 상대주의적 사유를 통한 인식의 지평 확대 ··········································· 46

Ⅲ. 「의산문답」의 교수·학습 방안 ······················································· 54


1. 교재화 방안 ·········································································································· 54
가. 교재화의 방향 ································································································ 54
나. 교재화의 실제 ································································································ 56
2. 교수․학습방안 ···································································································· 64

가. 1차시 ················································································································ 64

- i -
나. 2차시 ················································································································ 66
다. 3차시 ················································································································ 68

Ⅳ. 결 론 ········································································································ 71

참 고 문 헌 ···································································································· 73

ABSTRACT ··································································································· 77

- ii -
표 목 차

<표-1> 1차시 교수·학습 지도안(약식) ···································································· 64


<표-2> 2차시 교수·학습 지도안(약식) ···································································· 66
<표-3> 3차시 교수·학습 지도안(약식) ···································································· 68

- iii -
논문요약

「毉山問答(의산문답)」교수·학습 방안

권 태 주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지도교수 오 윤 선)

본 연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홍대용이 평생에 걸쳐 이룩해 낸 학문적


결정체인 「의산문답」에 담긴 교육 요소를 검토하고, 교수·학습 방안의 제시
를 목적으로 한다.
「201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의 『문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현대문학이
고전문학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서정 갈래의 작품이 월등하게 많은 반면 교술 갈래의 작품은 수록 빈도
가 매우 미미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학습자들이 교술 갈래를 중시했
던 한국문학, 넓게는 동아시아 문학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의 흐름과 상황을 오해할 소지가 있다. 따라
서 훌륭한 고전 교술 작품을 발굴하여 『문학』 교과서의 제재를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런 차원에서 「의산문답」은 매우 적절한 제재가 될 수 있다. 「의산문
답」은 인문학, 역사학, 자연과학, 정치학, 문화인류학 등의 다양한 담론을 포
함하고 있는 백과사전식 저작이면서도 이 별개의 논의들이 ‘균(均)’ 또는 ‘일
(一)’의 평등사상 내지는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엮여 있는 한 편의 문학 작품이
기 때문이다.
또한 홍대용의 전 생애에 걸친 학문 탐구의 결실이 집약된 「의산문답」을

- iv -
학습하는 것은 북학파가 등장하여 사회 개혁적인 북학론을 제시하게 되는 배
경을 이해하는 데 여러모로 유익하다. 따라서 「의산문답」이 『문학』 교과
서의 제재로 활용된다면 학습자들은 이 작품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시
대적 상황, 개혁을 추구하는 담론의 발생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문학과 인접 학문과의 연관성 등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의산문답」의 내용 체계, 교육과정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의산문답」의 대표적인 담론 중 일부를 교재로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학습
자 중심의 학습활동을 제시하여 문학이 철학, 자연과학, 역사학 등의 학문 분
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학습해 보고, 당시의 주류적 세계관을 극복하
려 했던 홍대용, 넓게는 실학자들의 사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안하였으며,
이것을 학교 현장에서 교수·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습지도안을 제시하
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 현행 『문학』 교과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다소나마 해소하고,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문학 교육
이 이루어지는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
다.

주요어 : 홍대용, 의산문답, 인물균, 우주무한론, 화이론, 상대주의, 북학론,


통합

※ 이 논문은 2016년 8월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위원회에 제출된 교육학석사(국어교육)학위 논문임.

- v -
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본 연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홍대용이 평생에 걸쳐 이룩해 낸 학문


탐구의 결정체인 「의산문답」의 교육 요소를 검토하고, 교수·학습 방안의 제
시를 목적으로 한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문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몇 가지 문제점이
눈에 띤다. 수록 작품의 갈래 간 불균형이 극심하다는 것, 우리 교육과정이 지
향하는 ‘통합’에 부합하는 작품이 부족하다는 점, 북학파의 여러 인사 중에서
유독 박지원의 작품들이 교육 제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우선 『문학』 교과서 수록 작품을 갈래별로 분류했을 때 그 비율이 기형적
으로 불균형하다는 점을 짚어 보자. 「2012 국어과 교육과정」의 『문학』 교
과서에는 현대문학이 고전문학에 비해 훨씬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현
대문학 중에서도 서정 갈래와 서사 갈래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반면 극 갈래나 교술 갈래의 작품 수는 극히 적은 형편이다.
한 예로 천재교육(김윤식)에 수록된 총 82편의 작품을 갈래별로 분류해 보
면 서정 문학 57편, 서사 문학 16편, 교술 문학 7편, 극문학 2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교과서 편제가 지나치게 서정 문학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다시 현대 문학과 고전 문학으로 구분하여 작품을 분류해 보면 47편의
현대 문학에서 현대시가 29편으로 약 60%, 현대 소설이 약 30%(14편)의 비율
로 구성된 반면 35편의 고전 문학에서는 운문이 28편으로 80%를 차지하고 있
다. 반면 고전 교술 문학은 4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고전 문학 전체의
11%이고, 『문학』교과서 수록 작품 전체로 봤을 때 0.08%에 불과하다. 이런
갈래별 불균형은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 1 -
이런 현상은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이 서정과 서사, 구체적으로 현대시와 현
대 소설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것들의 창작 편수는 희곡
이나 수필에 비해 월등히 많은 상황이고, 문학의 주 독자층 역시 시와 소설에
집중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국 현대문학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갈
래가 『문학』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것은 문학의 생산과 수용이
라는 현실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1)
하지만 고전문학의 경우는 현대문학의 전개 양상과 사뭇 다르기 때문에 교
과서의 갈래에 따른 수록 양상도 달라야 할 것이다. 『문학』 교과서를 살펴
보면 고전문학에서는 서정 갈래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상대적으로
서사 갈래의 작품은 소수이며, 특히 극, 교술 갈래는 기껏해야 2∼3편 정도가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2). 현대 문학과 고전 문학, 운문과 산문의 불균형한 작
품 분배를 지적하는 것은 그 작품 수를 동일하게 수록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
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수적(數的)인 문제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고전보다는 이 시대의 문학을 읽히고 학습하도
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의 비율을 비정상적일 만
큼 차등적으로 배분하게 되면 학습자들이 현대 문학의 바탕이 되는 고전 문학
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될 뿐만 아니라 문학이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진 것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또한 ‘사실, 진실, 도(道)’를 중시하여 글이 도를 표현하는 도구로
보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문학관을 견지했던 과거 선인들의 인식에서 비롯
된 서사·극 문학의 경시와 함께 서정과 교술 문학을 중시하는 문학적 전통을
학습자들이 이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1) 물론 이것은 문학의 생산과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두 갈래 위


주의 교과서 편제는 문학의 다양한 양상을 학습해야 한다는 문학 교육의 당위적 측면에서
볼 때 부적절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2) 출판사별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문학』 교과서에서 2∼3편 정도가 활용
되고 있다. 특이하게 상문출판사는 고전 교술 작품을 6편 수록하여 다른 출판사에 비해 월
등히 많은 작품을 수업 제재로 활용하고 있는 반면 지학사는 단 한 편도 수록하지 않았다.

- 2 -
따라서 학습자들이 고전문학의 양상을 올바르게 학습하기 위해서는 서정과
교술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술 문학을 향유했던 선조들의 문
학관과 사유 방식 등을 학습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학습의 과정 속에서 학
습자들은 한국문학, 넓게는 동아시아 문학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홍대용의 「의산문답」을 『문학』 교과서에 실어 교수·학습
의 제재로 활용하는 것은 교술 문학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
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3) 물론 한 편의 작품을 추가한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
히 해결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훌륭한 고전 교술 문학 작품 한 편을 발굴하
여 후학들에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 교육과정이 지향하고 있는 ‘통합’의 관점에 부합하는 작품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1992년에 고시된 6차 교육과정에서 ‘통합’의 개념을 본격
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여 이후의 교육과정에서는 ‘통합’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
으로 개정이 이루어졌다.4) 그런 차원에서 홍대용의 「의산문답」은 교육과정
이 목표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교재가 될 수 있다.
「의산문답」은 인물균(人物均)의 존재론적 담론, 지원설(地圓說)·지전설(地
轉說)·우주무한론(宇宙無限論) 등의 자연과학적 담론, 인물(人物)의 근본과 변
화 과정을 논하는 문화인류학적 담론, 정치권력과 계급의 탄생 등의 사회·정
치학적 담론, 중화(中華)와 오랑캐의 구분, 역외춘추론(域外春秋論) 등의 역사
학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과 학문적 지식이 총망라되어 마치 백과사
전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별개로 보이는 담론들이 ‘균(均)’ 또
는 ‘일(一)’로 표현된 ‘평등’의 인문학적 관점으로 통합되어 한 편의 작품을 이
루고 있다.

3) 홍대용이 만년에 창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산문답」은 그 갈래적 속성이 다소 애매하


여 소설로 보아야 할지, 교술 갈래로 보아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기는 하지만 소설
적 특성이 미약하고, 교술적 특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일단 교술 갈래의 작품으로 보고 논
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의산문답」의 문학 갈래에 대해서는 Ⅱ-2-가에서 상술할 것이다.
4) 이 점에 대해서는 Ⅱ-1-나에서 상술할 것이다.

- 3 -
따라서 「의산문답」은 우리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통합 혹은 융합의 본보기
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작품을 교육 제재로 활용된다면 학습자들
은 각 학문 영역의 지식뿐만 아니라 학문 영역을 경계 짓지 않고 그것들을 넘
나드는 선조들의 학문하는 자세와 태도,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여러 학문
영역의 지식을 융합하려는 시도 등을 학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세 번째로 『문학』교과서를 비롯하여 국어과 교과서에서는 북학파의 여러
인물 중에서 유독 박지원의 작품들만이 교육 제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학파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의 이론적, 사상적 배경
이 되는 홍대용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박지원을 비롯한 북학파
는 철학, 역사학, 경제학, 문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
어지고 있으며, 특히 박지원에 그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반면 홍대용은 그리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홍대용은 18세기 조선의 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북학파와 밀
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북학파의 다른 인물들에 앞서 다녀온 청나라 연행 경
험과 한족(漢族) 선비들과의 교유 등은 북학파 인사들이 청에 대한 관심을 갖
는 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연행길에 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
었다. 북학파 인사들의 연행 경험은 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하였다.
또한 당시의 경직된 주자학적 세계관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청
을 변방의 오랑캐가 아니라 중화 문명을 품고 있는 하나의 나라, 민족으로 바
라보고, 조선을 중화 문명의 맥을 잇는 소중화가 아니라 중국과 대등한 하나
의 나라, 민족으로 보려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북학파의 이 같은 인식은 홍대용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의산문
답」은 홍대용의 사상이 집약된 저술로서 북학파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학습자들은 「의산문답」을 통해 당대 시대
적 상황과 함께 북학파 출현의 사상적 배경을 학습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 4 -
2. 선행 연구 검토

홍대용에 관한 연구는 다양하다. 문학, 동양철학,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뿐


만 아니라 특히 과학사 분야에서도 홍대용에 대한 연구는 풍성하기 그지없다.
또한 「의산문답」에 대해서도 다양한 분과 학문에서의 연구가 집적되었는데,
각 분과 학문의 연구자들은 「의산문답」을 구성하는 다양한 담론 중 연구자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연구가 많았다.5)
물론 「의산문답」에는 철학, 역사, 정치, 사회, 자연과학, 문화 등 광대한 영
역의 학문이 담겨 있으므로 각 분과 학문의 각론 연구도 「의산문답」의 본질
을 탐구하고, 그 깊이를 가늠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의산
문답」이 한 편의 작품이고, 「의산문답」을 구성하는 다양한 담론들은 하나
의 주제를 향해 가고 있다. 따라서 「의산문답」에 대한 연구는 이 작품을 구
성하고 있는 다양한 담론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때 진정한 의미가 탐
구될 수 있을 것이다.
홍대용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를 집적한 김태준은 「의산문답」을 허자와
실옹이라는 허구적 인물의 설정과 소설적 구성을 바탕으로 한 철학소설로 보
고, 박지원이 「호질(虎叱)」을 창작한 배경에 「의산문답」이 있다6)고 하였
고, 윤주필은 김태준과 마찬가지로 「의산문답」을 소설로 보기는 하지만 작
품의 내적 구조를 분석하고, 작품에 나타나는 우언적 성격의 지속성을 바탕으
로 우언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7)
이와 달리 「의산문답」의 도입부에 소설적 특성이 일부 나타나기는 하지만

5) 전영준, 「조선 후기 북학파 형성의 효시, 담헌 홍대용」, 『역사와 실학』 Vol.26, 역사실
학회, 2004, 118-120쪽 참조. 여기에 홍대용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 목록이 잘 정리되
어 있다.
6) 김태준, 『홍대용 평전』, 민음사, 1987, 215쪽.
7) 윤주필, 「조선조 우언소설의 반문명성-의산문답의 허구적 장치를 중심으로」, 『도교문
화연구』12, 한국도교문화학회, 1998, 214쪽.

- 5 -
그것만으로는 작품 전체를 소설로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본 임형택8), 박희병9)
은 작품 전체를 이루는 내용과 가공의 두 인물이 대화를 하는 양상은 한문학
에 자주 등장하는 양식임을 지적하면서 임형택은 ‘철리적, 우언적 산문’으로,
박희병은 철리산문(哲理散文)에 속하는 글로 보았다. 조동일10)도 도입부의 서
사성은 인정하면서도 작품의 교술성에 주목하여 ‘서사적 교술’로 규정하였다.
「의산문답」의 갈래에 대한 선행 연구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논의들
은 기본적으로 「의산문답」이 한 편의 문학 작품임을 전제로 한다. 이는
「의산문답」이 문학작품으로 보는 데 이견이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지금과
는 달리 학문 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의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철학
과 자연과학, 역사학, 사회학 등이 문학적 장치에 의해 오묘하게 통합된 「의
산문답」을 문학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본 연구는 선학들의 이
와 같은 노고를 참고하고, 조동일의 견해를 수용하여 「의산문답」을 교술 갈
래의 한 작품으로 다루려고 한다.
한편 박희병은 「의산문답」에 나타나는 다양한 담론을 분석하고, 그것들이
각각 별개로 존재하는 담론이 아니라 ‘균(均)’ 사상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지적
하였다.11) 김태준12)과 조동일13)은 「의산문답」의 내용에 나타나는 특징을 분
석하고, 박지원의 소설 「호질」과의 연관성 차원에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의산문답」을 문학 교육적 차원에서 연구한 것은 길진숙이 거의 유일하
다. 「의산문답」은 문학적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략

8) 임형택, 「홍대용의 의산문답 - ‘허’와 ‘실’의 의미 및 그 산문적 성격」, 『실사구시의 한


국학』, 창작과비평사, 2009, 179-180쪽.
9) 박희병, 「홍대용 연구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한 검토」, 『진단학보』79, 진단학회, 1995,
211-212쪽.
10) 조동일, 「조선 후기 인성론의 혁신에 대한 문학의 반응」, 『한국문화』12,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91, 75쪽.
11) 박희병, 「담헌 사회사상의 논리와 체계」, 『담헌 홍대용 연구』, 사람의무늬, 2012.
12) 김태준, 앞의 책, 215-219쪽, 265-282쪽 참조.
13) 조동일, 앞의 논문, 71-88쪽.

- 6 -
에 의해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학술적 건조함을 넘어 정취가 있는 글이 되었으
며, 그렇기 때문에 「의산문답」은 새로운 글쓰기와 통합적 사유를 조망할 수
있게 하므로 「의산문답」의 교육을 통해 지금의 학문 분야별로 가둬놓은 협
소한 글쓰기의 폐단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보았다.14) 김혜연은 문학 교육은
아니지만 국어 교육의 차원에서 『성호사설』과 「의산문답」을 과학 글쓰기
의 모범으로 제시하였다.15)
이처럼 「의산문답」을 문학 교육적 차원에서 접근한 논의는 거의 전무하
다. 이에 본 연구가 「의산문답」의 본질을 탐구하고,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바에 부합하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밝힘으로써 「의산문답」의 문학 교육적
연구의 작은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14) 길진숙, 「홍대용의 의산문답 읽기와 문학 교육적 성찰」, 『우리어문연구』 29집, 우리


어문학회, 2007, 166쪽.
15) 김혜연, 「홍대용 의산문답의 글쓰기 방식 - 과학 텍스트로서의 특징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와 실천』 76집,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 2010.
,「과학 글쓰기의 또 다른 가능성 - 성호사설과 의산문답을 중심으로」, 『국어교
육학연구』 46집, 국어교육학회, 2013.

- 7 -
3. 연구 대상 및 방법

「의산문답」은 홍대용의 저작인 『담헌서(湛軒書)』 내집 권4 보유(補遺)


편에 실려 있다. 정확한 창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작품에 담긴 사상의 완숙
함이나 홍대용이 중국인 손유의(孫有義)에게 보낸 편지, 박지원이 남긴 글 등
을 바탕으로 볼 때 홍대용 생애의 말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16) 현재는
『담헌서』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필사본을 홍대용의 5대손인 영선
(榮善)이 1939년 신조선사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1967년 민족문화추진회는 신조선사에서 발행한 『담헌서』의 완역본을 출
간17)하였고, 이것을 한국학술정보(주)에서 2008년에 새롭게 엮었으나18), 번역
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족문화추진회의 완역 이후에 김태준이 김효민
과 함께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읽을 수 있도록 「의산문답」을 번
역하여 책으로 출간했으며19), 이숙경20)은 김태준의 번역보다 더 쉽게 풀이하
고, 각 장마다 해설을 삽입하여 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초등학
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만화도 다수 출간되었다.21)
본 연구에서는 1974년에 발행된 탐구당의 『국역 담헌서』와 한국학술정보
(주)의 『국역 홍대용 담헌서』를 기본 자료로 삼는다. 다만 이 책들의 번역이
오래전에 이루어진 것이라 지금 사용하는 표현과는 다소 다르거나 어려운 어
휘들이 많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 교과서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교재화의 실례에서는 김태준·김효민의 번역을 활

16) 박희병, 「담헌 사회사상의 논리와 체계」, 128-130쪽 참조.


17)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담헌서』Ⅰ〜Ⅴ, 민문고, 1967.
18)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홍대용 담헌서』 1〜5, 한국학술정보, 2008.
19) 김태준·김효민, 『의산문답』,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20) 이숙경·김영호, 『개혁을 꿈꾼 과학사상가 홍대용의 의산문답』, 파라북스, 2013.
21) 드림아이, 『만화로 읽는 동양철학15. 의산문답』, 태동출판사, 2008. 신현정, 『만화 홍대
용 의산문답』, 주니어김영사, 2011. 김성화·권수진, 『조선의 과학자 홍대용의 의산문답』,
한국고전번역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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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할 것이다.
본 연구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Ⅱ장에서 「의산문답」에 담긴 교육 요소
를 살펴봄으로써 다양한 학문 영역의 담론들이 한 편의 작품으로 융합되고 있
는 「의산문답」이 「201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통합의 방향에 부합
하는 작품임을 밝힐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의 중요한 학문적 흐름이었던 실
학, 그 중에서도 북학파의 출현과 북학론의 대두가 홍대용의 학문적 결정인
「의산문답」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힐 것이다. 이것은 문학 작품과
시대적 상황, 역사적 맥락의 연관성을 살피기 위함이다.
더불어 작품 속의 두 인물인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대화와 인식의 변화
과정 속에서 당시의 주자학자들의 주된 세계관인 중심과 주변, 중화와 오랑캐
를 구분하려는 자세가 비판되고, 상대주의적 시각으로 세상과 우주를 바라보
는 자세가 드러나고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의산문답」이 타인을 이해하
고,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소통을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대화가 갈등 해결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등과 같은 인성 교육적 효과를
유발할 수 있음을 제시할 것이다.
Ⅲ장에서는 Ⅱ장에서 밝힌 내용을 바탕으로 「의산문답」을 교재로 만들고,
교수·학습 방안을 구안할 것이다. 「의산문답」은 철학, 자연과학, 문화인류학,
정치학, 역사학 등 여러 분과 학문적 담론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문학
교육이 요구하는 영역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문학과
인접 분야’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를 위해 철학적 담론의 일부, 자연과학적
담론의 일부, 역사학적 담론의 일부를 발췌하고, 본문의 날개 문제와 학습활동
을 통해 학습자 스스로 한 편의 문학 작품 안에 다양한 분과 학문이 담길 수
있음을 알고, 이런 별개의 담론이 어떻게 한 편의 작품으로 묶일 수 있는지
생각해 봄으로써 문학이 다양한 인접 학문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또한 교수·학습 지도안을 제시하여 앞에서 언급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지도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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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毉山問答(의산문답)」과 문학 교육

1. 「의산문답」과 교육과정의 연관성

가. 「의산문답」의 내용 체계

「의산문답」의 정확한 저작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행 연구자들은


「의산문답」의 내용과 그것의 사상적·학문적 완숙함, 그리고 홍대용의 편지
나 연암 박지원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홍대용 생애의 최만년(最晩年)에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22)
「의산문답」은 홍대용이 일생에 걸쳐 탐구해 온 학문의 결실이다. 홍대용
은 어려서부터 벼슬에 대한 뜻을 버리고 평생 학문에 종사하겠다는 마음으로
고학(古學)은 물론 상수학(象數學), 천문학, 수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일생을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천문을 관측
하는 혼천의를 만든 과학자이자 가야금, 양금의 빼어난 연주가이기도 했다. 이
런 홍대용의 백과전서식의 학문적 관심을 바탕으로 인물균(人物均)과 같은 철

22) 김태준은 홍대용이 40대 초반인 1770년대 초에 「의산문답」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가 홍대용의 후반생에서 가장 자유로웠고, 학문적 완숙기에 이르렀던 시기였으
며, 중국의 선비들에게 보낸 편지의 여러 곳에서 「의산문답」에 포함된 학문적 내용들이
반복적으로 주장된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으나, 스스로도 ‘참으로 불확실한 가설에 지나
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다. 김태준, 앞의 책, 218쪽. 한편 박희병은 홍대용이 1773년 중국인
손유의(孫有義)에게 준 시에서 인물균(人物均)·화이일(華夷一) 사상이 피력되어 있고, 1775
년 이후에 지은 「담헌연기」와 「을병연행록」에는 조선을 변방의 오랑캐로 보는 자비
(自卑)의 태도가 나타나지만 「의산문답」에서는 상대주의에 의거해 자존(自尊)의 태도로
지양되고 있으며, 박지원이 연행 중에 중국인들에게 담헌의 지전설을 설명하면서 담헌이
책을 쓰지 못했다는 말(『열하일기』「곡정필담」)에 근거하여 ‘적어도 1780년 이후에 씌
어진 담헌 최만년의 저작’일 것으로 보고 있다. 박희병,「담헌 사회사상의 논리와 체계」,
128-130쪽 참조. 다수의 다른 연구에서도 「의산문답」의 저작 시기는 박희병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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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적 사상, 지원설·지전설·우주무한론 등의 자연과학적 사상, 역외춘추론과 같
은 사회·역사적 사상 등이 총망라되어 홍대용의 사상적·학문적·문학적 결정(結
晶)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의산문답」인 것이다.23)
30년을 은거하면서 ‘천지의 조화와 성명(性命)의 은미(隱微)함을 궁구하고
오행의 근원과 삼교(三敎)의 진리를 달통하여 인도(人道)를 경위(經緯)로 하고
물리(物理)를 깨달아 통’24)한 조선의 허자(虛子)는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자
신의 사상과 학문을 유세(遊說)하지만 인정받지 못한 채 비웃음만 당한다. ‘작
은 지혜’를 가진 ‘비루한 세속 사람’들과는 큰 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며 더 큰
세상인 연경으로 가서 그곳의 선비들과 60일 동안이나 교류하지만 그 결과는
조선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허자는 세상을 도피할 뜻을 품고 의무려산에
들어갔다가 거인의 거처에 쓰인 ‘실옹지거(實翁之居)’라는 팻말을 보고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한다.

내가 허(虛) 자로써 호를 한 까닭은 장차 천하의 실을 살펴보고 싶어 한 것이


며, 저가 실(實) 자로써 호한 것은 장차 천하의 허를 타파시키고자 함일 것이
다.25)(『국역 담헌서』, 179쪽)

「의산문답」을 이끌어가는 두 인물인 실옹과 허자 중에서 허자의 인물됨과


이 둘의 만남을 소개하는 도입부에서부터 허자는 사회로부터 외면 받는 존재

23) 김태준·김효민, 『의산문답』,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154-155쪽 참조.


24)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홍대용 담헌서 2』, 한국학술정보(주), 2008, 178쪽. 이하부터는
『국역 담헌서』로 약칭한다.
25) 虛子曰 我號以虛 將以稽天下之實 彼號以實 將以破天下之虛(민족문화추진회, 『국역 담헌
서Ⅰ』, 탐구당, 1974, 「영인본」 82쪽, 이하부터는 『담헌서』로 약칭한다.) 2008년에 발
행된 『국역 홍대용 담헌서』에는 한문 원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는 「의산문답」의 국역은 『국역 홍대용 담헌서』를, 원문은 1974년에 탐구당에서 발행
한 『국역 담헌서』의 말미에 수록된 『담헌서』 영인본(影印本)을 따른다. 인용하는 출
전이 다르므로 국역의 출전은 본문에, 원문의 출전은 각주에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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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그려진다. 그가 삼교(三敎)의 진리를 달통하였다고는 하지만 주된 학문적
경향은 성리학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의 학문은 세상의 조롱거리밖에 되
지 않는다. 이것은 허자의 학문적 성취가 불완전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
편으로는 허자가 평생을 매진하여 달통한 성리학이 당시 사회의 학문적 가치
를 담지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허자의 학문은 사회
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불어 허자가 ‘허(虛)’라는 글
자로 자신의 이름을 삼은 까닭을 밝히는 부분을 보더라도 허자는 세상의 환영
을 받지 못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허자가 ‘허’로서 이름을 삼은 이유는 천하의 실(實)을 살펴보고 싶기 때문이
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자기 스스로가 ‘허’한 존재로서 ‘실’을 추구하는 인물
이자, ‘실’에 의해 타파되어야 할 대상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허자의 혼잣말을
통해서 30년 동안 성리학 연구에 몸 바친 스스로를 ‘비어 있음, 헛됨, 공허함,
거짓’ 등의 의미를 갖는 ‘허(虛)’ 자로 이름을 삼은 것을 겸사(謙辭)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의산문답」의 전편에 걸쳐 실옹과의 문답을 통해 30년 간
탐구했던 학문을 버리고 새로운 인식과 안목을 가진 인물로 변해 가는 허자의
모습을 볼 때 겸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30년 간 연구해서 성리학을 달통한 그
가, 또는 그가 깨달은 성리학이 모두 ‘헛됨, 거짓’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26)이
라 할 수 있다. 결국 세상의 비웃음을 받는 허자의 상황과 이름, 혼잣말 등을
통해 우리는 허를 버리고 실을 추구하려는 「의산문답」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성리학에 평생을 매달린 허자는 실옹을 만나 문답을 펼치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된다. 실옹은 허자가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학문
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담론을 하게 되는데, 그 큰 줄기만을

26) 홍대용의 삶과 사상을 생각해 볼 때 그가 성리학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홍대용의 사상적 기반뿐만 아니라 실학의 학문적 경향은 모두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기 때
문이다. 따라서 「의산문답」에서 비판의 대상이자, 변화의 주체인 허자의 전형성은 성리
학 자체라기보다는 성리학적 관점을 절대시하는 경직된 성리학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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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해 보면 ‘인물균(人物均)–지원설(地圓說)-우주무한론–역외춘추론’ 등을
꼽을 수 있다.
‘인물균’은 인간과 사물의 가치를 논하는 인문학적 담론이다. 예법과 의리를
가진 인간은 고귀한 존재인 반면 그것을 갖지 못한 금수와 초목은 열등하다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인(人)과 물(物)에 대한 평가였다. 하지만 인간과 사물
의 우열을 가르는 당시의 기준은 전적으로 인간만의 것이었다. 인간의 기준으
로 사물을 평가하기 때문에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사물의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홍대용은 인간도 사
물도 아닌 새로운 기준 ‘하늘’을 제시한다. 하늘의 관점에서는 인간과 사물이
‘균등’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실옹과 허자의 본격적인 논의는 ‘지원설’로 이어진다. 지원
설27)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을 부정하고,
지구는 둥글다는 주장이다. 당시의 사대부들이 천원지방설을 신봉하는 것은
옛날 사람의 기록에만 의지한 것일 뿐, 일식과 월식을 ‘관찰’해 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자명하다는 것이 홍대용의 논리이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위아래가 있을 수 없고, 동서남북이 결정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위아래와 동서남북이 정해질 뿐이다.
여기서 지원설은 앞서 언급한 인물균의 논리와 맞닿게 된다. 인간을 기준으
로 세계를 바라볼 때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듯이 지구는 평평하
고, 그렇기 때문에 중심과 주변을 구획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구는 둥글고, 그
렇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을 중심으로, 그 이외의 곳을 주변으로 구획할 수 없
다. 따라서 중화는 중심이고, 사이(四夷)는 주변이라는 인식은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중화가 중심이라면 사이가 주변일 수 있지만, 사이가 중심이라면 중화
가 주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를 절대화하지 않는 것이 인물균과 지

27) 여기서의 ‘원(圓)’은 2차원의 평면으로서 둥글다는 뜻이 아니라 3차원의 입체로서 둥글다
는 뜻이기 때문에 ‘구(球)’자를 써서 ‘지구설(地球說)’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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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설을 연결해 준다.
지원설에 이어서 우주는 무한하다는 주장이 제시된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
는 하늘의 별들 밖에도 별들이 존재하고, 하늘은 끝이 없어 별들 역시 무궁무
진하다. 이것이 ‘우주무한론’이다. 당시 사람들의 천문관으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해와 달, 별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
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구에서 보면 온 하늘의 반짝이는 것들이 하나하나의
별이지만, 그 별에서 보면 지구 역시 하나의 별에 불과하다. 지구가 하나의 세
계이듯 저 하늘의 무한한 별들 역시 나름의 세계이다. 따라서 지구가 중심이
라 한다면 각각의 별들 역시 우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이 역시 상대주의
적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인물균, 지원설’과 동일선상에 놓인다.
우주무한론에 이어 은하, 태양·달·지구 등 별의 모양과 상태, 신선술, 점성
술, 달의 명암(明暗), 북극·남극, 유성·혜성, 천도(天道)28)의 변화 이유, 일월(日
月)의 크기 변화, 기후의 변화, 지역에 따른 시간의 차이, 상전벽해(桑田碧海)
의 이치, 지진의 이유, 장례(葬禮)의 절차, 풍수지리설 등 자연과학과 문화학적
담론 등이 허자과 실옹의 문답 형식으로 계속된다.
이후 ‘인물지본, 고금지변, 화이지분’의 담론이 이어진다. 기(氣)를 바탕으로
형성된 상고시대의 인과 물은 서로 조화롭고 화락하게 살았다. 그러나 기가
쇠해지고, 남녀의 교접에 의해 인물이 탄생하는 중고 시대는 형화(形化)의 시
대로서 소유의 관념이 발생하고, 그를 바탕으로 한 이기심으로 인해 갈등이
유발된다. 그리고 정치권력이 탄생하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된다.
중국에서는 이런 혼란의 시대에 성인(聖人)이 출현하여 검소(儉素)와 겸양으
로 질서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하·은·주의 시대에 다시 이기심을 가진 권력이
나타나고, 그들이 사욕(私慾)을 드러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을
위하는 혼란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인물지본, 고금지변’이다.
‘화이지분’은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이다. 공자의 『춘추(春秋)』에서 중화와

28) 여기서 말하는 ‘천도(天道)’는 바람과 구름, 비와 눈 등의 자연 현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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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를 명백하게 구분하였고, 이것을 근거로 중화를 중심으로, 그 이외의 세
계를 주변으로 보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실옹은 공자가 중화와 오랑
캐를 구분한 것은 공자가 혼란스러워진 세계를 바로잡기 위한 방편일 뿐 공자
가 중화가 아닌 오랑캐의 땅에서 태어났다면 오랑캐를 중심으로 보았을 것이
라 말한다. 이렇게 이어진 논의를 ‘역외춘추론’으로 맺고 있다.
이상으로 「의산문답」의 내용 체계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의산문답」
은 인과 물의 관계에서부터 지원설, 지구설, 무한우주설, 역외춘추론까지 인문,
자연과학, 인류 문화사적·역사적·철학적 담론까지 다양한 화제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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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의산문답」과 교육과정

지금 이 시대의 학문은 과거에 비해 엄청난 진보를 거듭해 왔고, 그와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학문의 영역은 비약적으로
넓어지고, 세밀해졌다. 근대 이후로부터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지식을 중시하는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각 분야의 학문은 거시적이기보다는 미시적인 관점으로
점차 더 깊이를 더해 갔고, 분과 학문적 틀이 형성되면서 학문 간의 벽은 높
아졌다. 더불어 산업사회라는 시대적 상황은 한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가가
요구되는 시대였으므로 미시적인 분과 학문적 지식은 오랜 시간 유용하게 사
용되었고, 학교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 중심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시대가 변했다. 산업사회를 넘어서 정보화 사회가 도래
하였다. 이제는 지식의 생산뿐 아니라 생산된 지식을 가치 있는 정보로 만드
는 것,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깨는 창의성을 발현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지식 중심 사회에서 발생하는 주체성의 상실, 특정 계층·성·
인종의 소외 등의 문제, 출산율의 저하와 고령화로 인한 노동 인구의 감소, 계
층 및 세대 간의 갈등과 같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더 이상 지식 중심의 교
육이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분과 학문의 벽을
허물고, 다양한 학문 간의 연계와 교류가 강조되는 교육이 대안으로 제시되었
다.29)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이후부터 창의적인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융합인재교육(STEAM)을 강조하고 있다. 융합인
재교육은 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공학), Arts(인문·예
술), Mathematics(수학)을 요소로 하는데, 특히 Arts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음

29) 한혜정, 「융·복합 인재 양성을 위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의 구성 방안」, 『융·복합 시


대를 위한 인재 육성 방안』, 제8회 청람교육포럼, 2014, 24-26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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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미술과 같은 예술뿐만 아니라 인문․사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왜냐하면 ‘반성적 사유와 미적 사유를 특징으로 하는 인문·예술은 과학, 수학,
공학, 기술의 사유 방식을 보완하여 창의적인 발상과 통찰을 가능하게 할
것’30)이라 보기 때문이다. 과학, 수학, 공학, 기술은 공통적으로 학문의 특성상
분석적인 사유 방식을 갖는데, 이것을 하나로 통합하여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창의적 발상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인문·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인문·예술이
분과 학문 간의 융합 또는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
다.31)
한편 국가 수준의 국어과 교육과정은 1992년에 고시된 6차 교육과정에서부
터 ‘통합’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1997년 고시된 7차 국어과
교육과정은 ‘통합’을 의도적·체계적으로 강조하면서 특히 문학 과목의 성격·목
표·방법·평가 항목에서 반복적으로 통합을 강조하였다. 2007 교육과정은 교수·
학습 방법에서 통합을 강조하였으며, 통합에 관한 다양한 접근 방법이 제시되
었다. 이후 개정된 2009/2012 교육과정은 2007 교육과정의 취지를 이어받아
통합적 교수·학습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공통 국어 과목을 포함한 고등학교
선택 과목들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교수·학습 면에서 통합은 대
세가 되었다32)고 할 수 있다.
통합이 교육과정의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2012년 개정 국어과 교육
과정」의 문학 교과가 목표로 삼은 것은 ‘통시적·공시적으로 다양한 사회·문화
적 맥락 속에서 문학의 제반 양상을 이해하고 문학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
며 이를 자신의 삶과 연계하여 이해함으로써 예술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태
도를 기르는 것’33)이다. 이 목표는 학습자가 문학 작품을 읽고 감상하면서 문

30) 이재분, 「미래 융·복합 시대의 인재 육성을 위한 융합교육의 방향과 과제」, 『융·복합
시대를 위한 인재 육성 방안』, 제8회 청람교육포럼, 2014, 6쪽.
31)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융합인재교육은 아쉽게도 대체로 과학 중심
이며, 인문·예술의 역할과 기능은 종속적이거나 아예 배제되기 일쑤였다.
32) 김창원, 「통합형 국어과 교육과정 구성의 방법과 과제」, 『2015 국어과 교육과정 및 교
재 개발 방안』, 제49회 청람어문교육학회 정기학술대회 자료집, 2014, 7-1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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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이론을 바탕으로 작품 자체를 이해함과 더불어 작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의 맥락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이것을 학습자 본인의 삶과 연계시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이 다루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이다. 작가가 자신의 관점에서 바
라보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제도, 문화 등 인
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를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 바로
문학인 것이다. 따라서 문학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모든 환경을 작품의 배
경으로 하며, 그 속에서 발생하는 삶의 다양한 문제를 표현하기 때문에 인문,
사회, 문화, 예술 등의 다양한 학문 영역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
다.
문학의 이와 같은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홍대용의 「의산문답」이
다. 이 작품은 ‘인류의 기원, 계급과 국가의 형성, 법률과 제도, 천문, 율력,
산수, 과학, 지질, 기상 현상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논의를 담고
있’34)는 글이기 때문에 이 텍스트 하나만으로도 문학이 얼마나 다양한 학문
영역과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중심과 주변의 해체를 기획하는 화이일(華夷一)의 사상을 통해
조선 사회를 지배하던 주자학적 가치관, 세계관을 탈피하여 새로운 세계 인식
을 보여주었던 북학파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과 역사를,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인물균(人物均) 사상을 통해 문
학과 철학을, 지구설·지전설·무한우주설을 비롯하여 다양한 자연현상을 화제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과학을, 국가와 지배 계급의 형성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문학과 사회를 통합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 연구는 「의산문답」의 범교과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33) 「201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134쪽.


34) 김혜연, 「과학 글쓰기의 또 다른 가능성 - 성호사설과 의산문답을 중심으로」,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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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문학’ 과목의 내용 성취 기준 중에서 다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4) 문학이 예술, 인문, 사회 등 인접 분야와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한다.


(8) 한국 문학 작품에 반영된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감상한다.
(13) 문학을 통하여 자아를 성찰하고 타자를 이해하며 삶의 다양성을 이해
하고 수용한다.

앞서「의산문답」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담론들은 위의 성취 기준


중 (4)를 매우 잘 보여 줄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한편 홍대용은 박지원을 비롯한 북학파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35) 따라서 「의산문답」의 다양한 담론을 하
나로 엮어 줌으로써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 주는 ‘균(均), 일(一)’의 이념이
북학파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리고 북벌(北伐)의 주장이 횡행하고, 소중화
(小中華)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청나라를 선진
국가로 인식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자는 북학(北學)의 논의가 나타나게 되었
는지를 살피는 과정에서 18세기 조선 사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북
학파의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앞서 제시한
성취 기준 중 (8)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산문답」의 주요 화제들인 사람과 사물의 우열론인 ‘인물균’에서부터 지
구가 둥글다는 ‘지원설’, 태양계는 무한한 우주의 일부일 뿐이라는 ‘무한우주
설’, 실옹과 허자의 대화를 마무리하는 ‘역외춘추론’까지 한결같이 모두가 중심

35) 그래서인지 많은 연구자들은 홍대용을 북학파의 일원으로 포함시켜 북학파 연구의 대상


으로 삼는다. 물론 이런 견해에 반대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특히 박희병의 경우는 홍대용
이 북학파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되 홍대용과 북학파의 사상적 노선이 다르기 때
문에 홍대용을 북학파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여 ‘담연(湛燕)그룹, 담연일파’라
는 용어를 제안하였다. 박희병, 「홍대용은 과연 북학파인가」, 『민족문학사연구』Vol.50,
민족문학사학회, 2012,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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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서 모두가 주변일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 시각이 「의산문답」을 관통하고
있다. 또한 허자의 잘못된 인식을 깨우쳐 주기 위해 노력하는 실옹, 실옹의 가
르침을 수용하여 변화해 가는 허자의 모습,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대화’로 진
행된다는 점은 욕심과 이기심이 만연된 현대 사회의 수많은 갈등 상황을 해결
해 나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앞
서 제시한 성취 기준 중 (13)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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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산문답」의 교육 요소

가.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통합의 지향

「의산문답」은 실옹과 허자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담론을 다루고


있다.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와 같은 인문학적 담론으로 시작해
서 지구가 방형(方形)인지 구형(球形)인지, 천동설과 지동설, 일식(日蝕)과 월
식(月蝕), 구름·비·눈 등 갖가지 자연 현상, 기후, 시간, 바다의 염도와 결빙 등
등의 자연과학적 담론, 인간 사회의 변화 과정, 사서(史書)의 관점 등에 관한
역사·사회학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백과사전적인 내용을 허자가 묻고 실옹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담론을 포함하고 있는 「의산문답」의 독특한 내
용 구성으로 인해 이 작품의 장르 규정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의 논의가 있어
왔다. 오랜 시간 홍대용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김태준은

「의산문답」은 홍대용의 실학론을 집대성한 저작인 동시에, 18세기 조선조의


대표적 철학소설이다. 이 책은 그 제목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의무려산을 배
경으로 벌어지는 실학문답으로, …… 이를 혹 그의 철학논문으로 생각하는 경향
이 없지도 않으나, 허구적 인물들의 설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간 수법이 오
히려 소설에 접근하고 있다. 이때는 이 작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박지원의
「호질(虎叱)」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도 철학소설이 나타난 시대였다. 흔히 생
각하고 있는 바와 같은 논문으로서가 아니라, 허구의 인물 설정과 소설적 구성으
로 이 실학론을 펴고 있다는 곳에 작가의 실학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리라.36)

고 하여 허구적 인물 설정과 소설적 구성 등을 근거로 「의산문답」을 홍대


용의 사상이 집약된 철학소설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박지원의 한문 단편소

36) 김태준, 앞의 책,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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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 「호질(虎叱)」과 비교하면서 ① 3장으로 된 대결의 장면 구성, ② 꾸짖
는 자와 꾸지람을 당하는 자의 인물 구성, ③ 인물들의 대결 양상, ④ 실학론
과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적 내용의 주제적 측면 등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호질」의 창작 동기를 「의산문답」에서 찾고 있다.
김태준과 마찬가지로 「의산문답」을 소설로 규정하려는 관점은 윤주필에게
서도 보인다. 「의산문답」의 ‘도입부에는 고도의 우언(寓言) 장치가 설정되어
있고 논변부는 토의 구조를 위주로 하되 우언적 표현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분량적으로는 논설적 경향이 매우 강하지만 우언소설로 읽을 때
작가의 의도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37)는 입장을 취하여 「의산문답」
을 ‘우언소설’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조동일은

「의산문답」이라는 작품이 문학 갈래로서 지닌 특징은 서사적 교술이라 해야


마땅하다. 서두의 설정에서는 서사적 수법을 사용했으나, 허자와 실옹의 문답이
시작한 다음에는 두 인물의 견해 차이가 있을 따름이고 서로 다른 행동을 하게
하는 성격 차이조차 없으며, 대화가 있을 따름이고 사건은 없다. 대화가 끝난 다
음에 다시 어떻게 했다는 결말도 없다. 오직 도입부에서만 서사적 수법을 사용하
는 데 그친 아주 제한된 의미의 서사적 교술이다.38)

라고 하여 철학소설로 보는 김태준의 견해에 동조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30년의 학문을 마치고 세상에 나온 허자가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고 은거하기
위해 의무려산에 들어갔다가 실옹을 만나게 되는 「의산문답」의 도입부에서
만 서사성을 인정하되 그 이후에 실옹와 허자의 문답이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교술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아주 제한된 의미의 서사적 교술’ 작품이라는 것
이다.
한편 박희병의 경우 「의산문답」에서 실옹, 허자라는 허구적인 인물 설정

37) 윤주필, 앞의 논문, 214쪽.


38) 조동일, 앞의 논문,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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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도입부에서 『장자(莊子)』와 유사한 우언(寓言)적인 성격이 발견되고 있지
만 ‘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 간의 문답은 우언이라기보다는 문답
의 형식을 빈 논술(論述)에 가깝다’고 하면서

사실 「의산문답」은 동아시아 한문학의 전통 속에서 보아야 잘 이해될 수 있


는 면이 있다. 잘 알려져 있듯, 한문학은 ‘文·史·哲’이 어우러져 있다. 그것은 특히
‘散文’이라고 일컬어지는 광범한 글쓰기의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한문학
산문 가운데서 특히 역사와 문학이 결합된 작품을 ‘歷史散文’이라 부르고, 철학과
문학이 결합된 작품을 ‘哲理散文’이라 부른다. 그런데 철리산문 가운데에는 작가
의 철학적 사유를 그냥 直敍해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필요한 대로 약간의 허구
를 설정하여 主客間의 문답을 통해 작가의 사상을 펼치는 수법을 구사하는 경우
도 있다. 「의산문답」은 바로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39)

라 하였다. 즉 「의산문답」을 철리적, 우언적 산문으로 보는 임형택의 견


해40)를 수용하여 교술 산문 가운데서도 한문학의 한 갈래인 철리산문으로 보
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산문답」과 같은 철리산문이 우리 문학사
에서 이른 시기에 발생하여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규보의 「슬견설
(蝨犬說)」·「문조물(問造物)」, 김시습의 「잡저(雜著)」, 권필의 「주사장인
전(酒肆丈人傳)」, 장유의 「설맹장논변(設孟莊論辯)」, 신경준의 「소사문답
(素沙問答)」 등을 철리산문의 중요한 성과로 꼽고 있다.41)
「의산문답」이 소설인지, 교술인지, 아니면 철리산문인지와 같은 갈래 규정
은 작품의 성격을 밝힘으로써 작품의 본질적 양상에 접근하는 매우 의미 있는
논의이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의산문답」의 갈래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행 연구자들이 갈래 규정 이전에 공통적으로 「의산문답」을 문학 작품임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39) 박희병, 「홍대용 연구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한 검토」, 211-212쪽.


40) 임형택, 앞의 논문, 179-180쪽 참조.
41) 박희병, 위의 논문,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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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의산문답」을 소설도 아니고 논설도 아닌 글쓰기로 보는 길
진숙의 견해를 주목할 만하다. 길진숙은 앞서 언급한 조동일의 견해를 비판하
면서 「의산문답」이 완벽한 소설의 양식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소설
관습에 익숙한 근대인들의 기대감에서 나온 평가이며, 다만 근대적 소설 양식
안으로 포획되지 않을 뿐’42)이라 하였다.

「의산문답」은 …… 문학적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략


에 의해서 생산된 글쓰기이다. 소설도 아니고 학술적 논변도 아닌 사이에서 문학
적 글쓰기도 뛰어넘고 학술적 글쓰기도 뛰어넘었다. 문학적 글쓰기만으로 담아내
기 어려운 철학적 성찰과 정치적 결단(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능
력)을, 또한 학술적 글쓰기만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형상성과 언어의 상징성을 한
텍스트에 녹여내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문학적 글쓰기에 결핍되기 쉬
운 사상적 결단성을 불어넣고, 학술적 글쓰기에 생겨나기 쉬운 건조함과 난해함
을 극복하였다.43)

마치 중국과 조선의 접경에 위치하여 중국도 아니요 조선도 아닌 의무려산


처럼, 그곳에 살면서 중국의 지식인도 조선의 지식인도 아니며 지상적 존재도
초월적 존재도 아닌 실옹처럼, 그리고 조선의 선비였지만 실옹과의 문답을 통
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허자처럼 「의산문답」은 소설도 아니고 학술 논
문도 아니면서 그것들을 뛰어넘는 한 편의 문학 작품인 것이다.
「의산문답」에는 마치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나열되어 있어
우리가 문학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양상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문
(天文)과 자연물, 자연 현상에 대한 진술이 많기 때문에 사실 과학 분야에서의
연구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분야의 연구는 아쉽게도 「의산문
답」을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 보기보다는 「의산문답」에서 필요한 부분에
만 집중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의산문답」을 이루는 내용 요

42) 길진숙, 앞의 논문, 174쪽.


43) 위의 논문,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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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 대한 각론의 연구는 각각의 의미를 규명하기에 적합할 수는 있다. 그러
나 이런 연구는 각각의 담론이 하나로 엮여 있는 한 편의 작품으로서의 본질
적 의미를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언급한 선행 연구자
들의 업적은 「의산문답」을 한 편의 완결된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근거
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201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문학’ 교과의 내용 체계 중 [문학의 수용과
생산]에서 ‘문학과 인접 분야’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세부 성취 기준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4) 문학이 예술, 인문, 사회 등 인접 분야와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한다.

이것은 문학 교과에서 예로부터 규정되어 왔던 문학의 내용인 시, 소설, 희


곡 등의 전형적인 문학 작품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인문을, 사
회를, 예술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와 반대로 인문, 사회, 예술을 통해
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실상 학교 현장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문학』 교과서의 면면을 살
펴보면 문학이 마치 시와 소설, 희곡에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문이재도(文以
載道)의 관념 아래 시(詩)만을 특히 중시하고 상대적으로 소설과 극문학을 홀
대했던 동아시아의 문학적 전통을 고려해 본다면 비단 시, 소설, 희곡만으로
동아시아의 문학을 포괄할 수는 없다. 서정․서사․극으로 3대별하는 서양의
문학적 전통과는 달리 여기에 교술이라는 또 하나의 갈래를 설정하여 문학사
를 기술하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기존의 『문학』 교과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문학은 인간 존재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인간과 사회, 세계와의 갈등을
다루기도 한다.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므로 문학은 곧 인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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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서술이다. 이는 달리 생각해 보면 인간이 하는 모든 활동이 문학으로 표
현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한편 인간이 하는 활동의 거의 대부분은 학문으로 정
립되어 있거나 되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러므로 문학은 다양한 학문 영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인간에 대한 진술이므로, 인간
의 활동 영역인 예술, 인문, 사회, 과학, 정치, 역사 등은 문학의 스펙트럼 안
에 포섭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등의 다양한 담론을 담
아내고 있는 「의산문답」은 문학 교과의 교육 목표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
는 더없이 좋은 제재라 할 수 있다. ‘인물균, 지원설, 우주무한론, 역외춘추론’
으로 이어지는 핵심 담론을 살펴보면 「의산문답」이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균(均)’의 관점에서 이것들을 통합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균’은 인간과 사물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전통 성리학에 매진하
여 달통한 허자는 지혜와 깨달음, 예법, 의리를 갖춘 인간이 그것들을 갖추지
못한 금수(禽獸)와 초목(草木)보다 귀하다고 본다. 그러나 실옹은 ‘사람으로서
물(物)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로서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며,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물이나 마찬가지’44)(『국역 담헌서』,
185쪽)임을 깨우쳐 준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문제 삼는 것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금수와 초목이 지혜도 깨달음도 없고, 예법도 의리도
없는 미물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인간을 기준으로 삼아서 다른 존재
를 바라보는 인간 중심의 관점이자, 자기중심적인 관점일 뿐이다. 자기중심적
인 관점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있을 수 없다. 사물의 관점에서는 사람
을 천하게 보게 되는데, 이것 역시 인간 중심적 관점과 마찬가지로, 굳이 이름
을 붙이자면 사물 중심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중심적 관점이나 사물
중심적 관점은 편향적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래서 ‘하늘’의 관점에서 보아
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과 사물을 공정하고 평등한 대상으로 인정할 수

44) 以人視物 人貴而物賤 以物視人 物貴而人賤 自天而視之 人與物均也(『담헌서』,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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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여기서 사람과 사물에는 차이가 없다는 홍대용의 존재론적 인식이 드러
난다.
‘지원설’은 땅이 둥근 공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而地方)’라는 전통적인 천지관(天地觀)을 뒤엎는 주장이다. 물론
지원설은 홍대용만의 독창적인 주장도, 시대를 앞서는 주장도 아니다. 16세기
말 명나라에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중국에 처음
으로 땅이 둥근 공 모양이라는 서양의 학설을 소개하였고, 1645년(효종 5)부터
중국 조정의 공식 천문학으로 채택된 서양의 천문학이 지원설을 관측과 계산
의 기본 모델로 사용하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지원설을 받아들이고 있으므로45)
「의산문답」에 나타난 지원설을 홍대용의 혁신적인 주장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홍대용의 지원설이 중요한 것은 ‘중국을 세계의 지리적 중심으로
상정해 왔던 종래의 중국 중심적 세계관을 해체하’46)고 있다는 점이다.

악라(卾羅) 사람은 악라로써 정계(正界)를 삼고 진랍(眞臘)으로써 횡계(橫界)를


삼으며, 진랍 사람은 진랍으로써 정계를 삼고 악라로써 횡계를 삼는다. …… 중국
사람은 중국을 정계로 삼고 서양으로써 도계(倒界)를 삼으며, 서양 사람은 서양을
정계로 삼고 중국으로써 도계를 삼는다. 그러나 실에 있어서는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사람으로서 지역에 따라 다 그러하니, 횡(橫)이나 도(倒) 할 것 없이 다 정
계다.47)(『국역 담헌서』, 191쪽)

전통적인 성리학의 관점에서는 땅은 네모나고, 사람들은 그 네모난 땅 위에


서만 살고 있으며, 네모난 땅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고 보았다. 중국이 중심에

45) 인터넷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지구설」항목(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


457078&cid=46637&categoryId=46637) 참조.
46) 김문용, 「담헌의 천문·우주 이해와 과학」, 『담헌 홍대용 연구』, 사람의무늬, 2012,
211쪽.
47) 是以卾羅之人 以卾羅爲正界 以眞臘爲橫界 眞臘之人 以眞臘爲正界 以卾羅爲橫界 …… 中
國之人 以中國爲正界 以西洋爲倒界 西洋之人 以西洋爲正界 以中國爲倒界 其實戴天履地 隨
界皆然 無橫無倒 均是正界(『담헌서』,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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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므로 그 이외의 지역은 주변이 된다. 중심과 주변은 위계화되고, 따라서
화(華)와 이(夷)의 구별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홍대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악라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곳을
정계로 삼고, 진랍 사람도 자신이 있는 곳을 정계로 삼는다. 같은 이치로 중국
사람은 중국을 정계로 삼지만 서양 사람은 서양을 정계로 삼으니 ‘횡이나 도
할 것 없이’ 악라, 진랍, 중국, 서양이 모두 정계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는 중
심이 없다. 중심이 없으니 주변이 있을 수 없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악라와 진랍, 중국, 서양이 모두 중심이 되고, 모두 주변이 된다. 즉 모
두가 ‘균(均)’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늘이 움직이고 땅이 고요하다는 천운설
(天運說)을 부정하고, 지구가 자전을 하고 있다는 ‘지전설(地轉說)’도 지원설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주무한론’은 우주가 무수하게 많은 별들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지구가 우
주의 중심이라는 기존의 지구중심설을 부정하고 있다.

하늘에 가득한 별 치고 세계로 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성계(星界)로부터 본다


면 지계(地界)도 또한 한 개의 별이다. 한량없는 세계가 공계(空界)에 흩어져 있
는데 오직 이 지계만이 바로 중심에 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여
러 다른 세계에서 보는 것도 이 지구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기 스스로 중
심이라 하나니 각별히 모두 세계로 된 것이다. …… 따라서 지구가 해와 달의 중
심은 될 수 있지만 오위(五緯)의 중심은 될 수 없고, 해가 오위의 중심은 되나 여
러 성계의 중심은 될 수 없다. 해도 중심이 될 수 없는데 하물며 지구에 있어서
랴?48)(『국역 담헌서』, 194-195쪽)

지구가 한 개의 별로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듯이 저 하늘에 가득 찬 무


수한 별들도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가 우주에는 무한히

48) 滿天星宿 無非界也 自星界觀之 地界亦星也 無量之界 散處空界 惟此地界 巧居正中 無有


是理 …… 衆界之觀 同於地觀 各自謂中 各星衆界 …… 是以地爲兩曜之中 而不得爲五緯之
中 日爲五緯之中 而不得爲衆星之正中 日且不得爲正中 況於地乎(『담헌서』,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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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져 있으므로 오직 지구만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없으며, 지구를 중
심이라고 한다면 저 하늘의 별들도 모두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뿐
만 아니라 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하나의 세계로서 스스로를 중심으로 삼는다.
중심은 주변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중심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주변이 생
긴다. 따라서 모든 별이 중심이라면 모든 별은 다시 주변이 된다. 달리 말하면
그 어느 별도 절대적인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 어떤 별도 절대적인 주
변이 될 수 없다. 지원설을 설명할 때와 매우 닮아 있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없이 모두가 ‘균’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구가 해와 달의 중심이 될 수 있지만 오위의 중심이 될 수 없고, 태
양이 오위의 중심은 될 수 있지만 여러 성계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어
느 것이 절대적인 중심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중심이면서 주변이 되는 관계,
즉 중심과 주변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의산문답」에는 ‘지원설, 지전설, 무한우주론’ 이외에도 달의 명암, 구름·
비·눈·번개·천둥·무지개 등의 대기 현상, 기후, 밤낮의 길이, 바다, 지진 등 대
자연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49)
‘지원설·지전설·무한우주설’을 포함한 자연 현상은 외부의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이므로 가치가 내재되어 있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홍대
용은 이 무가치적인 자연 현상을 자신의 인식적 틀 속에서 가치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둥근 지구가 자전을 하고, 지구와 같은 세계가 우주에 무
한하다는 사실 명제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중심이 있을 수 없고, 지구와 같
은 세계가 우주에 무한하므로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인
간 세계든, 지구든, 우주든 절대적인 중심과 절대적인 주변은 있을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가치 명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49) 「의산문답」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분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그동안 과학사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그것 역시 의미 있는 연구이기는 하지만 「의산문답」에 보이는
자연과학적 언명들은 독립적이지 않고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다른 부분과 유기적 관계를
맺으므로 「의산문답」을 한 편의 완결된 작품으로 보고 연구에 임하는 것이 작품의 진정
한 의미를 살펴보는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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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사실 앞서 살펴봤던 인물균 사상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즉 홍대용
의 자연과학 연구는 인문학 및 사회과학 연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가 서
로를 안받침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50)
‘역외춘추론’은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지으면서 중국은 ‘안’으로, 사
이(四夷)는 ‘밖’으로 하여 중국과 오랑캐를 구별하였는데, 그것은 공자가 중국
에 살았기 때문일 뿐 만약 공자가 오랑캐의 지역에 살았다면 오랑캐를 ‘안’으
로, 중국을 ‘밖’으로 구별했을 것이라는 논의이다.
여기서도 앞선 논의와 일관되게 ‘안-밖’에 대해 거론한다. 공자는 자신이 중
국 사람이기 때문에 중국을 ‘안’으로 삼았을 뿐이다. 만약 공자가 중국 사람이
아니라 오랑캐의 땅에서 태어났다면 공자는 오랑캐를 ‘안’으로 삼아 『춘추』
를 지었을 것이다. 이것은 ‘안-밖’의 관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말한다. 중
국은 절대적인 ‘안’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오랑캐 역시 절대적인 ‘밖’이 아니다.
공자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스스로가 있는 곳을 ‘안’으로 삼을 뿐
이다. 앞선 논의와 연결해서 생각한다면 ‘지원설·지전설·무한우주설’에서 언급
했던 ‘중심-주변’이 ‘안-밖’으로 변주되고 있음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역외춘추론’은 인물지본(人物之本)-고금지변(古今之變)-화이지분(華夷
之分)으로 이어지는 인류 문화사에 대한 통찰과 중국 역사의 변천 과정에 대
한 결론으로 볼 수 있다.
인(人)과 물(物)의 형성에는 기화(氣化)와 형화(形化)의 두 가지가 있는데,
기화는 순수하게 기(氣)의 작용에 의한 것이고, 형화는 암수의 교접에 의한 것
이다. 상고(上古) 시대는 오직 기화로 되었기 때문에 이때의 인과 물은 서로
해치는 일 없이 화락하고 조화롭게 살았으므로 태평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중고(中古) 시대에는 인간들 사이에 소유의 관념과 이기심이 발생하
면서 상고 시대의 화락하고 조화로운 상태는 사라졌다.

50) 박희병, 「담헌 사회사상의 논리와 체계」,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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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육체로 교접하며 기혈(氣血)이 소모되고, 기교한 꾀가 본심을 헤치매 정
신에 울화가 생겼다. 안으로 기갈(飢渴)의 걱정과 밖으로 한서(寒暑)의 괴로움이
있게 되매, …… 온갖 물(物)은 각각 제 몸을 위하기에 이르렀으니, …… 함부로
사냥하고 고기 잡으매 조수(鳥獸)와 어별(魚鼈)이 제대로 살 수 없게 되었고,
…… 좋은 저택을 지으매 초목과 금석(金石)이 형체를 보전할 수 없게 되었다.51)
(『국역 담헌서』, 220-221쪽)

기화가 끊기고 암수의 교접에 의해 인과 물이 점차 늘어나고, 정욕이 생기


게 되며, 인과 물은 각각 제 몸을 위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자신들의 의식주
를 위해 사물을 함부로 사용하게 되면서 화락하고 조화로우며 태평했던 상고
시대가 제각기 자신의 몸만을 위하는 자기중심적인 화란(禍亂)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용맹스럽고 지혜롭고 욕심 많은 자가 그 중간에 나서 제 마음과 같은 자를 몰


아 각각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매, 약한 자는 일만 수고로웠고, 억센 자는 이권
을 누렸다. 각각 갈라 점령한 강토를 아울러 차지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벌리면서 육박을 하므로 백성이 제대로 살 수 없게 되었다. …… 날카로운 칼과
창, 혹독한 활과 화살로 성(城)을 뺏고 땅을 다투매 쓰러진 시체가 들을 메웠다.
생민의 재앙이 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52)(『국역 담헌서』, 221쪽)

이때에 용맹스럽고 지혜롭고 욕심 많은 자가 나타나 한 지역을 차지하고 우


두머리 노릇을 하면서 더 많은 강토를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이권
(利權)을 누리므로 약한 자는 늘 수고롭게 일하게 된다. 정치권력은 이 같은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정치권력의 탄생은 곧 지배하는 자와 지배 받는 자의

51) 男女形交 精血耗竭 機巧攻心 神火焦熬 內有飢渴之患 外有寒暑之苦 …… 於是萬物各私其


身 …… 濫以佃漁 鳥獸魚鼈 不得遂其生矣 …… 侈以棟宇 草木金石 不得葆其體矣(『담헌
서』, 91쪽)
52) 於是勇智多欲者生於其間 驅率同心 各占雄長 弱者服其勞 强者享其利 割裂疆界 睢盱兼倂
治兵格鬪 張拳肉薄 民始傷其生矣 …… 刀戈之銳 弧矢之毒 爭城爭地 伏尸原野 盖生民之禍
至此而極矣(『담헌서』,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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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자기를 위하려는 욕심과 소유의 자기중심적 인
간이 출현하면서 인간은 사물을, 심지어 인간조차도 지배하고 수탈하는 시대
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가와 인민, 지배와 피지배이라는 개념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53)
여기까지가 ‘인물지본’에 대한 설명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자기중심
적인 욕심과 이기심에 의해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애초에는 기화로
태어난 인과 물이 서로 조화롭고 화락하게 살아가는 평등한 존재였다는 논리
는 앞서 살폈던 인물균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물지본’이 구체적인 국가를 상정하지 않고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시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인 반면 ‘고금지변’은 구체적으로 중국 역사에 바탕
을 두고 있다.
비록 화란(禍亂)의 시대가 되었지만 복희·신농·황제·요순과 같은 성인이 등
장하여 검소, 공손, 겸양을 실천함으로써 백성의 질서를 바로잡았기 때문에 천
하가 다시 화락해졌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풍속이 변해서 사람들이 화려함
과 사치를 추구하게 되자 중국의 문명은 타락의 과정을 걷게 된다. 하·은·주의
삼대(三代)를 여태껏 태평성대의 시대로 칭송해 왔지만 홍대용의 시각은 달랐
다.

53) 정치권력과 국가의 탄생,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형성에 대한 홍대용의 생각은 루소(J. J.
Rousseau)가 말하는 인간 불평등의 진행 과정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다. “불평등의 진전
을 추적해 보면 우리는 법과 소유권의 확립이 그 첫 번째 단계이며, 행정관직의 제도가 두
번째 단계였음을, 그리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로는 합법적인 권력의 전제 권력으로의
변화였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신분은 첫 번째 시기에, 강자와 약
자의 신분은 두 번째 시기에, 그리고 주인과 노예의 신분은 세 번째 시기에 의해 허용되었
다.”에서 보듯이 소유의 관념으로부터 불평등의 관계가 형성된 후 정치권력의 탄생, 지배/
피지배 계급의 구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루소(J. J. Rousseau), 김중현 역, 『인간 불평등
기원론』, 웅진씽크빅, 2014, 124쪽. 홍대용 역시 소유의 관념에서 이기심이 비롯되었고, 그
것을 바탕으로 정치권력과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본 연구의 관점에
서 볼 때 학습 내용으로서 루소의 담론과 홍대용의 담론을 연계하여 동․서양의 정치․사
회학적 관점을 비교해 보는 것도 교육적으로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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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夏后)가 천자의 위(位)를 아들에게 전하게 되자 백성이 비로소 제집 이익
만 꾀하게 되었고, 탕무(湯武)가 임금을 내쫒고 죽이자 백성이 비로소 위를 범하
게 되었다. …… 하나라가 충(忠)을 숭상하고, 상(商)나라가 질(質)을 숭상했으나
당우(唐虞)에 비하면 이미 꾸민 것이었고, 성주(成周)의 제도는 오로지 화려하고
사치함만 숭상하여 …… 주(周)나라는 이미 없어졌던 것이다. …… 주나라 이후로
왕도(王道)가 날로 없어지고 패도(覇道)가 횡행하여 거짓 인(仁)한 자가 황제로
되고 병력(兵力)이 강한 자가 왕이 되었으며, 지략을 쓰는 자가 귀하게 되고 아첨
을 잘한 자가 영화롭게 되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림에는 괴임과 녹으로 꾀고 신
하가 임금 섬김엔 권모를 미끼로 하였다. …… 상하가 서로 다투어 사욕만 꾀하
였다. 아아! 슬프구나. 천하가 번잡하게 됨은 이욕을 품고 서로 대한 때문이었
다.54)(『국역 담헌서』, 222-224쪽)

하나라의 우왕은 천자의 지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백성이 자기


집안의 이익을 꾀하게 되고, 은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은 임금을 내쫓았
기 때문에 백성이 그것을 본받아 위아래의 질서가 없어지게 되었다. 하와 은
은 충(忠)과 질박함을 숭상하긴 했지만 꾸밈이 있었고, 주의 제도는 오로지 화
려함과 사치함만을 숭상하였으므로 중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주나라
이후로 왕도(王道)가 없어지고 패도(覇道)가 횡행하여 거짓과 지략, 아첨, 권모
(權謀)가 난무하여 상하(上下)가 모두 사욕(私慾)만 꾀하므로 천하가 번잡해지
고, 결국 명나라에 와서 천하는 오랑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고금지변’의 내용이다. 홍대용은 역사의 흥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검소 : 사치함’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상고 시대나 복희·신농·
황제·요순이 다스리던 시대는 공통적으로 검소하고 질박하였기 때문에 천하가
화락하였지만, 화려함과 사치함이 나타났던 하·은·주를 포함하여 이후의 천하
는 점차 번잡해지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54) 夏后傳子而民始私其家 湯武放殺而民始犯其上 …… 夏忠商質 比唐虞則已文矣 成周之制


專尙夸華 …… 天下之無周久矣 …… 自周以來 王道日喪 覇術橫行 假仁者帝 兵彊者王 用智
者貴 善媚者榮 君之御臣 啗以寵祿 臣以事君 餂以權謀 …… 上下掎角 共成其私 嗟呼咄哉
天下穰穰 懷利而相接(『담헌서』, 9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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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과 사치함은 자신 과시의 한 방편이고, 자기 과시는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뿌리로 삼는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욕심과 소유를 유발한다. ‘인물지본’에서 보았듯이 욕심과 소유는 지배·
피지배, 착취·피착취, 국가·백성의 관계를 만든다. 이런 관계는 갈등을 유발하
므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 이 혼란스러움이 해결되고, 인과 물이 조화롭게
사는 사회가 되려면 인과 물이 ‘균(均)’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고금지변’ 역시도 인물균 사상과 연결되고 있다.
‘화이지분’은 화(華)와 이(夷), 즉 중국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것이다. 공자는
『춘추』에서 중국을 ‘안’으로서 문명의 세계로, 오랑캐를 ‘밖’으로서 야만의
세계로 표현하여 안과 밖을 엄격하게 구별하였다. 17세기 이래로 조선의 학계
에서는 이 같은 『춘추』를 이념적 근거로 삼아 존주대의(尊周大義)를 외치면
서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로 깔보며 야만시하였고, 중국을 차지한 청나라에
망한 중화, 즉 명나라를 대신해서 중화의 예악문물을 보존하고 있는 조선이
바로 소중화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홍대용의 생각은 달랐다.

하늘이 내고 땅이 길러주는, 무릇 혈기가 있는 자는 모두 이 사람이며, 여럿에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모두 이 임금이며, 문을 거듭 만들고 해자
를 깊이 파서 강토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다 같은 국가요, 장보(匠保)이건 위모
(委貌)건 문신(文身)이건 조제(雕題)건 간에 다 같은 자기들의 습속인 것이다. 하
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느냐? 이러므로 각각 제 나라 사람을
친하고 제 임금을 높이며 제 나라를 지키고 제 풍속을 좋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
나 오랑캐가 한가지다.55)(『국역 담헌서』, 226쪽)

홍대용은 ‘안과 밖의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혈기가 있다는 점에서


사람은 모두 같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점에서 임금은 모두 같으며, 강토를 지

55) 天之所生 地之所養 凡有血氣 均是人也 出類拔華 制治一方 均是君王也 重門深濠 謹守封
疆 均是邦國也 章甫委貌 文身雕題 均是習俗也 自天視之 豈有內外之分哉 是以各親其人 各
尊其君 各守其國 各安其俗 華夷一也(『담헌서』,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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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다는 점에서 국가는 모두 같다. 장보, 위모, 문신, 조제는 모두 자기들이 소
속된 사회의 문화일 뿐이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장보를 쓰는 사람의 눈에는 위모가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위모를 쓰는 사람
의 눈에는 장보가 이상해 보인다. 모두 자기를 기준, 중심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과 오랑캐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인물지본–고금지변-화이
지분’으로 이어지는 ‘역외춘추론’은 홍대용의 인류 문화사에 대한 통찰이자, 역
사의식이며, 존재론적 사고를 함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산문답」의 핵심 담론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어찌 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는 내용들이 중구난방 열거된 담론들이 사실은 하나의 틀로
엮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보는 관점, 즉 편벽되게 한 쪽의
관점에서만 세상과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인문학, 자연과학, 역사학, 사회학 등 전혀 무관
해 보이는 담론들이 상대주의적 관점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인해 「의산문
답」이라는 한 편의 글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오랜 시간 성리학 연구에 매진한 허자가 세상에 나와 조선과 중국에
서 인정받지 못한 채 방황하지만 실옹을 만나고, 그의 깨우침에 따라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 그리고 허자의 잘못된 인식을 깨우치는 실옹의 담론이라는 두
궤도를 따라 「의산문답」의 내용이 진행되기 때문에 「의산문답」을 독립된
각 편의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이야기로 읽게 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지속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56)
이렇듯 점차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현대의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다양
한 학문 영역에 속하는 담론을 담은 「의산문답」을 통해 학습자들은 문학과
인접 학문과의 연관성을 인식할 수 있으며, 현행 교육 과정의 주요 키워드이
면서 새롭게 개정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융·복합 시대의 미래
인재로 자라는 기반을 닦는 기회가 될 것이다.

56) 길진숙, 앞의 논문,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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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북학론(北學論)의 사상적 출발점

홍대용은 1731년(영조 7년) 충청도 천원군에서 아버지 홍력(洪櫟)과 어머니


청풍 김씨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나 1783년(정조 7년)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홍대용이 살았던 18세기의 한복판은 조선 사회의 주류적 사고인 성리
학, 주자학에 대한 반성과 그에 따른 대안으로서 실학이 발전한다는 측면에서
사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에서부터 정치․사상적 근간이자 사회․문화적 이데올
로기로서 이전 시대와는 다른 조선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원동력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 이념이자 관념론에 치우친 학적(學的) 전통으로 자리 잡은 성리학은 7
년 동안의 임진왜란을 거치고, 임금이 적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국치(國恥)의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함께 백성들을 곤궁하고 피폐한
생활로 밀어 넣었다.
17∼18세기의 조선의 정치적 주류이자 학계를 이끌었던 노론 계열의 지식인
들은 주자학을 절대화하면서 예론(禮論)과 심성학(心性學)에 경도된 채 한 치
의 비판도 수용하지 않았고, 양란(兩亂)을 자초했던 자신들에 대한 반성도 이
루어지지 않았다. 한낱 변방의 오랑캐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여진족이 세운 청
나라가 발흥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되었던 명나라를 제압하는 대외적인 상
황과 함께 병자호란으로 인해 달라진 청과의 수치스러운 외교적 상황 속에서
이적(夷狄)․금수(禽獸)와 구별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심성(心性)의 해명
에 의해 확인되며, 중화의 적통(嫡統)으로서의 긍지는 올바른 예(禮)의 실천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고 믿었던 지식인들은 심성론과 예학에 학문적 관심을 집
중하였다.57)

57) 유봉학, 「북학 사상의 형성과 그 성격」, 『한국사론』Vol.8, 1982,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19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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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의 예송(禮訟) 논쟁과 함께 흔히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 불리는,
100여 년에 걸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은 당시 주자학의 견고한 울타리
속에 머물렀던 지식인들이 양란 이후 고통 받던 백성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백성들의 실생활과는 유리된 관념론적 논쟁에 얼마나 깊이 휩
싸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논쟁이 심화될수록 목
민관들은 자신들의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다.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탐관오리들은 더욱 날뛰었으며, 온갖 구실로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쥐어짰고,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논쟁인
인물성동이론에서 기존의 주자학적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변화의 단초가 발견
된다는 점이다. 사물의 본성인 물성(物性)에 대한 관심 자체는 인간을 둘러싸
고 있는 외부 사물을 새롭게 설명해 가려는 시도로서 전통적인 심성론 위주의
주자학에 대한 새로운 태도의 출현을 예고한다. 심성(心性) 주변의 사물에 대
한 관심은 곧 자연관의 변화와 함께 기왕에 절대시되던 인간 우위, 인간 위주
의 사고방식이 부정되고, 인간의 지위가 상대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사물의 지
위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견해와는 다른 새로운 물론(物論)
이 제기될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상수학이나 경제, 명물학(名物學)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58)
이와 같은 사상적 흐름과 함께 관념론에 치우친 주자학에 대해 회의적인 시
선을 보내면서 새로운 변화의 기운을 품은 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양란
을 거친 후부터 시작해서 영․정조 시대를 기점으로 양란을 겪으면서 피폐해
진 백성의 마음을 추스르고, 토지제도의 개혁과 농업의 혁신, 유통과 상업의
발전 등을 통해 성리학, 특히 주자학적 관념론을 극복하려는 실학적 자세를
가진 일군(一群)의 지식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양란 이후 조선 전기(前期)와는 달라진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

58) 유봉학, 앞의 논문, 198-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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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견지한 이들은 기존의 관념론적 주자학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학문적으
로는 박학다식(博學多識)을 숭상하여 천문학, 수학, 역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외래로부터 전래되는 서구 문물과 학문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가졌다. 더불어 조선의 법적․제도적․사회적 모순과 같은 현
실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조선 실
학의 발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반계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隧錄)』과
같은 저작들은 현실적으로 개혁의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조선 사회가 가진
모순을 제거하고, 이전과는 다른 조선을 만들기 위한 실천적인 시도라는 점에
서 그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59)
실학은 이후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적 태도를 중시하며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세상을 경륜(經世)하고,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적절한 제도와 방법을 갖추어 실천적으로 활용(致用)하며,
백성들의 쓰임에 편리(利用)하게 하여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며(厚生),
관념이 아닌 사실에 입각(實事)해서 진리를 탐구(求是)하는 실학의 학문적 태
도는 백성들의 실질적인 삶에 대한 일부 지식인들의 직접적인 관심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런 실학적 태도 중 특히 이용후생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이 바로 북학파
(北學派)였다.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학(北學)’은 ‘북쪽을 배우자’라는 의
미를 담고 있다. 원래 『맹자(孟子)』의 「등문공」에 남쪽의 초나라 사람 진
량이 북쪽에 있는 중화(中華)의 선진 문화를 배워 초나라의 낙후된 문화를 변
화시키려고 했다는 내용에서 유래된 말로, 조선에서 ‘북학’이라는 표현은 박제
가의 『북학의(北學議)』에서 처음 보이지만, 그 사상적 연원은 박제가 이전에
홍대용이나 연암 박지원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홍대용이나 박지원 이전에 그들의 선배로서 그들과 교유하던 성대중

59) 인터넷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반계수록(磻溪隧錄)」항목(http://terms.naver.com/entry.


nhn?docId=556415&cid=46622&categoryId=466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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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大中)을 통해 북학론이 발흥할 수 있었던 단서를 발견할 수는 있다. 성대중
은 우리나라 문물과 학술의 미흡함을 직시하고, 청조 문물의 우수성에 대한
현실적 인정 위에 청의 것이라도 선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강지술(自强之
術)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60) 당시의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중국
이 오랑캐인 청에 의해 더럽혀졌다는 인식 아래 모든 면에서 청나라를 거부하
던 입장과 비교해 본다면 성대중의 견해는 부분적으로나마 청 문물에 대한 수
용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홍대용은 성대중과는 다른 관점에서 청의 문물을 바라보았다. 성대중은 청
(淸)과 한(漢)을 분리하는 입장에서 비록 중국이 청나라에 지배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청나라가 지배하고 있는 중국의 땅은 옛 중국의 문화가 잔존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청나라에 남은 옛 중국의 문물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
다. 하지만 홍대용에게 ‘한(漢)은 화(華)이고, 청(淸)은 이(夷)’라는 차별적이고,
우열적인 관점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청은 중화의 문물이 잔존하는 공간이 아
니며, 현재의 청나라가 보유한 문물은 그 자체로서 우수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홍대용의 이와 같은 관점은 당대의 주류적 사고였던 ‘한(漢)은 곧 화(華)’라
는 관념에서 벗어난 것이자, 세계의 중심인 중화가 보유한 예악제도(禮樂制度)
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61) 달리 말하면 중화의 문화
를 절대화하여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華夷二)하는 기존의 화이관(華夷觀)을 부
정하고, 중화와 오랑캐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화이일(華夷一)의 화이관이 홍
대용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노론계 사림(士林)인 송시열에서 비롯된 소중화(小中
華) 의식은 중화의 정통성을 이은 명나라가 오랑캐인 청나라에 의해 멸망하면
서 중국에는 더 이상 중화 문명이 존재하지 않으며, 중화 문화의 명맥은 조선

60) 유봉학, 앞의 논문, 234-235쪽 참조.


61) 위의 논문,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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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잇고 있다는 문화 자존 의식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의식의 근저에
는 ‘한(漢)은 화(華)이고, 청(淸)은 이(夷)’라는 화이관이 놓여 있었다.
홍대용은 소중화 의식의 바탕이 되고 있는 문화 가치 위주의 화이관과는 다
르게 지역의 구분을 기준으로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고자 했다.

우리 동방이 오랑캐가 된 것은 지세(地勢)가 그러한 때문인데, 또한 어찌 숨길


필요가 있겠소? 이적(夷狄)에 나서 이적에 행한다 하더라도 진실로 성인(聖人)이
될 수도 있고, 대현(大賢)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만족하지 않게 생각할 것이
뭐 있겠소?62)(『국역 홍대용 담헌서 2』, 내집 권3, 「우답직재서(又答直齋書)」,
50쪽)

홍대용에게 조선은 중화 문명의 맥을 잇고 있는 소중화가 아니라 명백한 이


(夷)였다. 그러나 그의 화이관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이(夷)라 할지라도 성인
이나 대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화(華)와 똑같이 열려 있는 것이므로 이(夷)
임을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중화의 명맥을 잇고
있다는 소중화로서의 자부심이 아니라 조선을 중국과 별개로 존재하는 개별
주체로서 긍정함으로써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존
의식의 강화63)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륜(五倫)과 오사(五事)는 사람의 예의이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서로 불러 먹


이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며, 떨기로 나서 무성한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으로
서 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로써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
람이 천하다.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물이 마찬가지다.64)(『국역 담헌서』, 185쪽)

62) 我東之爲夷 地界然矣 亦何必諱哉 素夷狄行乎夷狄 爲聖爲賢 固大有事在 吾何慊乎(『담헌


서』, 61쪽)
63) 유봉학, 앞의 논문, 236쪽.
64) 五倫五事 人之禮義也 羣行呴哺 禽獸之禮義也 叢苞條暢 草木之禮義也 以人視物 人貴而物
賤 以物視人 物貴而人賤 自天而視之 人與物均也(『담헌서』,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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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주나라 사람이다. 왕실이 날로 낮아지고 제후들은 쇠약해지자 오나라와
초나라가 중국을 어지럽혀 도둑질하고 해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춘추』란 주
나라 사기인바, 안과 바깥에 대해서 엄격히 한 것이 또한 마땅치 않겠느냐?
그러하나 가령 공자가 바다에 떠서 구이(九夷)로 들어와 살았다면 중국법을 써
서 구이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주나라 도를 역외(域外)에서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
즉 안과 밖이라는 구별과 높이고 물리치는 의리가 스스로 딴 역외 춘추가 있었을
것이다.65)(『국역 담헌서』, 227쪽)

「의산문답」에서 보이는 인간과 사물을 대등한 관계로 보는 인물균(人物


均)의 논리나 공자(孔子)가 노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노나라의 역사를 『춘
추(春秋)』에 담았을 뿐 오랑캐의 땅에서 살았다면 역외춘추(域外春秋)를 지었
을 것이라는 역외춘추론의 논리는 중화라는 중심에 종속된 오랑캐로서의 조선
이 아니라 중화는 중화대로, 조선은 조선대로 존재하므로 중화와 조선을 대등
하게 보려는 개별 주체의 긍정과 자존 의식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중
국이라는 하나의 지점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부정하고 ‘하늘
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하나의 사람과 하나하나의 문화가 스스로 가
운데가 되는 다중심적이고 다원적인 세계’66)임을 표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있었기에 청(淸)을 한(漢)과는 별개로 인정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청은 중화의 선진 문물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중화(中華)와 마찬
가지로 선진적인 문물을 가진 나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홍대용은 직접적으로 북학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의 중국 여행 기록
인 『연기(燕記)』에서는 청나라의 문물이나 제도, 규모 등에 대한 찬탄이 드
러나기도 하지만 중국의 문물을 관찰하면서 조선과 장단점을 비교하기도 하
고, 중국 문물의 문제점을 거론하기도 하는 등 중국 문물에 완전히 경도되지

65) 孔子周人也 王室日卑 諸侯衰弱 吳楚滑夏 寇賊無厭 春秋者周書也 內外之嚴 不亦宜乎 雖


然 使孔子浮于海 居九夷 用夏變夷 興周道於域外 則內外之分 尊攘之義 自當有域外春秋
(『담헌서』, 92쪽)
66) 김원명·서세영, 「홍대용의 세계관 변화와 그것의 현대적 의의」, 『동서철학연구』제72
호, 한국동서철학회, 2014,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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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학자적 태도로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67)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대용의 화이론이 중요한 것은 화(華)에 대한 이(夷), 명나라에 대한 청나라,
중국에 대한 조선을 보는 관점이 ‘화, 명나라, 중국’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는
기존의 주자학적 화이론의 폐쇄적인 관점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며, 이와 같
은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박지원과 박제가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 북학론이 전
개되기 때문이다.
북학론은 조선이 소중화가 아닌 오랑캐(夷)임을 인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중
국과 대등한 주체로서 인식하고, 청의 선진적인 문물이 곧 중화의 문물이라는
선진 문물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대두68)된 것이다.
기존의 화이론을 넘어서 청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로 보려는 홍대용의 생각
은 박지원을 통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북학에 대한 논의로 진전된다. 홍대용
과 마찬가지로 연행의 경험을 가진 박지원은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고, 선진 문물을 누리는 청나라를 보면서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지금 중국의 주인은 오랑캐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배우기를 부


끄러워하고, 중국의 옛 문물까지 함께 싸잡아 얕잡아 보고 무시한다. 저들이 변발
에 좌임(左袵)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들이 점거하고 있는 땅이 어찌 삼
대(三代) 이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의 그 중국이 아니겠으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어찌 삼대 이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사람의 후예가 아
니겠는가. 또한 설령 오랑캐라 할지라도 그들이 지닌 법과 제도가 훌륭하다고 한
다면 그들에게 가 그들을 스승으로 섬기며 배워야 옳겠거늘, 하물며 그 규모의
광대함과 마음씀씀이의 정밀함, 예악(禮樂)의 웅장함과 문장의 찬란함이 여전히
삼대 이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고유의 문물을 간직하고 있음에랴! 저
들과 비교해 보면 정말 우리가 나은 건 하나도 없는데, 그저 상투를 틀고 있답시
고 천하에 잘난 체하며 “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67) 박희병, 「홍대용은 과연 북학파인가」, 137-138쪽 참조.


68) 유봉학, 앞의 논문,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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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천은 노린내가 난다고 헐뜯고, 그 인민은 짐승 같다고 욕하고, 그 언어는 사
람의 말이 아니라고 모함하면서, 중국 고유의 좋은 법과 훌륭한 제도까지 함께
싸잡아 배척한다면 대관절 어디에서 본받아 행할 것인가?69)

청나라가 명나라를 내몰고 중원을 차지하였지만, 그 땅은 여전히 삼대 이래


의 한(漢)이 머물렀던 곳이고, 또한 한의 문화가 간직되어 있는 곳이라는 박지
원의 인식은 청나라와 중국의 문화를 별개로 생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중국
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청이지만, 중국에는 예로부터 이어지는 중화의 문물이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따라서 조선이 중화의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는 청을
매개로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청을 배우자는 북학의 논리가 가능해지는 것이
다. 또한 여기서 진일보하여 청나라가 비록 오랑캐이기는 하지만 청나라가 지
닌 법과 제도가 우리보다 낫고 뛰어나다면 그들에게 가서 스승으로 섬기며 배
워야만 조선의 낙후된 문물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폐한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다는 주장에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박지원의 북학론과 궤를 같이 하는 박제가의 견해는 더욱 극렬하다. 박제가
는 『북학의(北學議)』에서 주자학적 세계관을 정초로 하는 조선 사대부들의
화이관을 배격하고, 현실주의적 자세로 청의 선진 문물을 배워야 할 것을 주
장했다.70) 조선이 부강하지 않고, 조선의 백성들이 가난한 형편에 놓이게 된
것은 중국의 선진적인 제도나 문물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므로 조선이 부강
해지고, 조선 백성의 삶이 윤택해지기 위해서는 중국의 선진적인 제도와 문물
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는 『북학의』의 곳곳에 보인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사

69) 박지원, 박희병 외 역, 「北學議序」, 『연암산문정독』, 돌베개, 2007, 194-195쪽.


今之主中國者 夷狄也 恥學焉 幷與中國之故常而鄙夷之 彼誠薙髮左袵 然其所據之地 豈非三
代以來漢唐宋明之凾夏乎 其生乎此土之中者 豈非三代以來漢唐宋明之遺黎乎 苟使法良而制
美 則固將進夷狄而師之 况其規模之廣大 心法之精微 制作之宏遠 文章之煥爀 猶存三代以來
漢唐宋明固有之故常哉 以我較彼固無寸長 而獨以一撮之結 自賢於天下曰 今之中國 非古之
中國也 其山川則罪之以腥羶 其人民則辱之以犬羊 其言語則誣之以侏離 幷與其中國固有之良
法美制而攘斥之 則亦將何所倣而行之耶
70) 박희병, 「홍대용은 과연 북학파인가」,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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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이 쓰고 있는 글자의 소리가 중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리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하고 있다.
박제가의 논리나 제안에는 중국을 우등한 것으로, 오랑캐를 열등한 것으로
보는 중화주의 내지는 모화(慕華)의 모습을 보이는 등 정도를 넘어서는 것들
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박제가가 중국의 선진적인 문물과 제도 중에서도 기
기와 제도의 표준화를 통한 산업의 발전, 해외통상, 생산력 향상을 위한 기술
의 도입 등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 것은 ‘중국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여 낙후된
조선을 발전시키고 조선 인민을 가난함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절박한 심
정’71)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홍대용을 비롯하여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은 공통적으로 청나라
여행의 기회를 통해 청나라의 선진적인 문물을 직접 체험하였으므로 청나라를
경험하지 못한 채 망해 버린 명나라를 상기하며 청나라를 변방의 오랑캐로만
폄훼하는 조선의 일반적인 지식인들과는 달랐다.72)
홍대용은 학자적인 객관적 시선으로 청의 장단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였고,
박지원 등의 북학파 등은 청의 문물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을 가졌으며, 홍대
용보다 적극적으로 청의 문물을 수용하려는 입장을 보였다. 청에 대해 폐쇄적
인 태도를 보이던 당시의 주류적 관점과는 달리 북학파의 인사들이 이와 같은
개방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려는 기존의 화이
관을 탈피하고, 모두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화이관을 견지했던 조선의 주류적 세계
관과 구별되는 홍대용의 화이관을 「의산문답」에 나타난 내용을 바탕으로 살
펴보고, 그것이 북학파의 화이관 내지는 세계관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고찰
해 보았다. 이 과정은 조선 후기 실학의 전개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이용후생

71) 위의 논문, 134쪽.


72) 물론 당시 청나라를 경험한 사람들조차도 청의 문물에 대해 입맛에 맞게 취사(取捨)하여
연행의 기록을 적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이경구, 「담헌의 지식인 교유와 지성사적 위치」,
『담헌 홍대용 연구』, 사람의무늬, 2012,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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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利用厚生學), 또는 북학파가 출현하게 된 사상적 배경을 살핌과 동시에 홍
대용이 그 중심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북학파는 주로 한국사에서 다루는데, 그 내용을 살
펴보면 북학파의 주요 인사들이 주장했던 북학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이 중
심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것을 가르치는 교사의 관점과 능력에 따라 교수의
내용이 교과서보다 확장될 수 있겠지만, 교과서의 내용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
것은 북학론의 현상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이해는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맥락을 파악
하는 것이다. 역사 속의 한 사건은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전후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벌론은 병자호란과 존명배청(尊明排淸), 소중화
의식을 바탕으로 제기된 논의이듯 북학론은 북벌론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중화와 오랑캐에 대한 기존 관념의 변화로부터 탄생했다. 학습자들은 이
런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북학파 인사들의 개혁적 주장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왜 그와 같은 북학의 방법이 제시되는지에 대해 수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01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의 문학 교과에서는 [한국 문학의 범위와 역
사]의 세부 성취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8) 한국 문학 작품에 반영된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감상한다.

문학이 사회와 시대의 거울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문학은 필연적으로 사


회·시대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홍대용의 「의산문답」에 담긴 화이
관은 북학파가 출현하게 되는 사상적 배경이 되므로 학습자들은 이 작품을 통
해 한국사 교과에서 학습하는 북학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뿐만 아니라
「의산문답」을 읽는 과정을 통해 다른 교과에서 배운 실학 내지는 북학파의
철학적·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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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상대주의적 사유를 통한 인식의 지평 확대

「의산문답」은 실옹과 허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홍대용의 서사적 전


략에 의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실옹과 허자의 대화를 통해서 철학, 역사, 자
연과학, 정치사상의 담론들이 전개되는데, 허자는 조선의 지식인으로 평생을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진 반
면 실옹은 의무려산이라는 편벽된 공간에 은거하는 은자적(隱者的) 인물로 나
타난다. 여기서 생각해 볼 만한 점은 홍대용이 「의산문답」의 공간적 배경으
로 선택한 의무려산이다.
의무려산은 중국과 조선의 접경에 위치한 요동 지역에 솟아 있는 산으로,
높지는 않지만 기이한 바위와 봉우리 때문에 백두산, 천산(千山)과 함께 중국
동북 지방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곳이다. 의무려산이 연행 사신들이 왕래하
는 길에서 비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신들은 의무려산을 바라보며 지나쳤
지만 홍대용은 중국 연행의 과정에서 이 산에 직접 올랐었다. 홍대용이 여기
서 어떤 감흥을 가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연행길에 비껴 있는 의무
려산을 찾아가 등반했던 경험은 분명한 의도가 있어 보이며, 따라서 그 의도
적인 경험은「의산문답」의 창작 과정에서 실옹과 허자의 대화 공간을 설정하
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짐작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눈여겨 볼 것은 「의산문답」이 중국과 조선의 접경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다. ‘경계가 서로 맞닿음’을 뜻하는 ‘접경(接境)’은 ‘사이’ 정도로 바꾸어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쪽이 될 수도 있고, 저쪽이 될 수도 있는 ‘사이’는 다시 말하면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공간이다. 의무려산이 중국과 조선의 접경이라면
그곳은 중국도, 조선도 될 수 있지만, 중국도 아니고 조선도 아닌 공간인 셈이
다. 홍대용은 왜 이런 곳을 「의산문답」의 공간으로 선택했을까?
‘생물의 종류에는 사람과 금수, 초목이 있는데, 이 셋에는 귀천(貴賤)의 등급
이 없다.’는 실옹의 말을 들은 허자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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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생물 중에 오직 사람이 귀합니다. 저 금수나 초목은 지혜도 깨달음도
없으며, 예법도 의리도 없습니다. 사람이 금수보다 귀하고 초목이 금수보다 천한
것입니다.73)(『국역 담헌서』, 184-185쪽)

이에 실옹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사람으로서 물(物)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로서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물이 마찬가지이다.74)(『국역
담헌서』, 185쪽)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중에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고 보는 성리학의 존


재론적 관점은 허자로 대표되는 당대 조선의 유학자들이 세상의 존재를 보는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이렇게 초목보다 금수를, 금수보다 사람을 더 존귀하게
보는 위계적인 관점 때문에 하등한 존재는 고등한 존재를 위해 헌신하는 지
배·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되어 차등이나 차별이 횡행하는 사회가 고착되고, 그
것이 곧 질서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억압과 착취가 당연시될 수밖에 없었다.
서양의 진보된 과학에서 출발한 근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인간은 인간을 위해
지구의 모든 것을 개발하였고, 그로 인해 인간은 과거에 비해 많은 편리를 누
리고 있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지구를 둘러싼 오존층에는 구멍이 생겼고,
극지방의 빙하는 녹고 있으며, 지구 곳곳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이상
기후가 사람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그 어떤 존재보다도 존귀한 인간을 위해
하등한 모든 존재들을 활용하였기에 이제는 그들이 인간에게 되갚음을 하고
있으며, 이것을 두고 인간들은 ‘환경의 역습’이라고 부른다.
비단 자연만이 아니다. 근대 이후에 허물어져 가던 계급, 계층과 같은 관계
는 표면적으로 와해되었지만 여전히 그 질서는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태생

73) 天地之生 惟人爲貴 今夫禽獸也草木也 無慧無覺 無禮無義 人貴於禽獸 草木賤於禽獸(『담


헌서』, 83쪽)
74) 以人視物 人貴而物賤 以物視人 物貴而人賤 自天而視之 人與物均也(『담헌서』,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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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통해 귀속되던 계급이나 신분 질서가 이제는 과거와는 또 다른 기준인 경
제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고, 이것이 인간들 사이를 갈등하게 만
들고 있다.
갈등에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원인의 궁극점에는 자기 관
점의 고집이 있다. 자신과는 다른 관점,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할
때 결국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도 옳을 수 있고, 당신도 옳을 수 있다는
유연하고 상대적인 관점이 아니라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는 관점이 갈등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조선의 허자는 이 시대의 또 다
른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옹은 허자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허자가 사람이 금수나 초목
보다 귀하다는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며, 금수의 입장에서는
금수가, 초목의 입장에서는 초목이 가장 귀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동물원에
서 마주친 원숭이와 사람 중에 누가 관람을 하는가? 우리는 우리를 기준으로
원숭이를 관람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원숭이는 원숭이의 입장에서 인간을 관람
하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가 우리와 다른 원숭이를 보듯이 원숭이 역시 자신
과 다른 인간을 보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상대
주의적 관점이지만, 당대인들의 보편적 사고였던 인간 중심의 시각을 가진 허
자로서는 충격적인 진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옹의 이와 같은 인식은 「의산문답」의 도처에 보인다.

(가) “옛사람이 이른 말에 ‘하늘은 서쪽과 북쪽이 가득 차지 않고 땅은 동쪽과


서쪽이 가득 차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도 과연 가득 차지 않는 곳이
있습니까?”
“이것은 중국의 야언(野言)이다. 북극(北極)이 낮게 도는 것을 보고 하늘이 가
득 차지 않은 줄로 의심하여, 강하(江河)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땅이 가득
차지 않은 줄로 의심한 것이다. 땅 형세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에 얽매어 온 지
구의 다른 관점을 살피지 않으니, 또한 어리석지 않느냐?”75)(『국역 담헌서』,
212-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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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악라 사람은 악라로써 정계(正界)를 삼고 진랍으로써 횡계(橫界)를 삼으며,
진랍 사람은 진랍으로써 정계를 삼고 악라로써 횡계를 삼는다. 또 중국은 서양에
대해서 경도(經度)의 차이가 180도에 이르는데, 중국 사람은 중국을 정계로 삼고
서양으로써 도계(倒界)를 삼으며, 서양 사람은 서양을 정계로 삼고 중국으로써 도
계를 삼는다. 그러나 실에 있어서는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사람으로서 지역에
따라 다 그러하니, 횡(橫)이나 도(倒) 할 것 없이 다 정계다.76)(『국역 담헌서』,
191쪽)

(다) 하늘에 가득한 별치고 세계로 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성계(星界)로부터


본다면 지계(地界)도 또한 한 개의 별이다. 한량없는 세계가 공계에 흩어져 있는
데 오직 이 지계만이 바로 중심에 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77)(『국역
담헌서』, 194쪽)

(라) …… 문을 거듭 만들고 해자를 깊이 파서 강토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다 같은 국가요, 장보이건 위모건 문신이건 조제건 간에 다 같은 자기들의 습속
인 것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느냐? 이러므로 각각 제
나라 사람을 친하고 제 임금을 높이며 제 나라를 지키고 제 풍속을 좋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가 한가지다.78)(『국역 담헌서』, 226쪽)

(가)∼(라)는 모두 「의산문답」에서 허자의 무지(無知)와 편견을 깨우치는


실옹의 가르침이다. (가)는 온 지구의 다른 관점을 살피지 않는 것은 매우 어
리석은 것임을, (나)는 악라와 진랍, 서양과 중국이 모두 자신을 정계로 삼고

75) 虛子曰 古云天不滿西北 地不滿東南 天地果有不滿歟 實翁曰 此中國之野言也 見北極之低


旋 則疑天之不滿 見江河之東注 則疑地之不滿 泥於地勢之適然 不察環面之異觀 不亦愚乎
(『담헌서』, 89쪽)
76) 是以鄂羅之人 以鄂羅爲正界 以眞臘爲橫界 眞臘之人 以眞臘爲正界 以鄂羅爲橫界 且中國
之於西洋 經度之差 至于一百八十 中國之人 以中國爲正界 以西洋爲倒界 西洋之人 以西洋爲
正界 以中國爲倒界 其實戴天履地 隨界皆然 無橫無倒 均是正界(『담헌서』, 84쪽)
77) 滿天星宿 無非界也 自星界觀之 地界亦星也 無量之界 散處空界 惟此地界 巧居正中 無有
是理(『담헌서』, 85쪽)
78) 重門深濠 謹守封疆 均是邦國也 章甫委貌 文身雕題 均是習俗也 自天視之 豈有內外之分哉
是以各親其人 各尊其君 各守其國 各安其俗 華夷一也(『담헌서』,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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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또한 (다)는 성계의 관점에서는 지계 역시 하나의 별에
불과함을 말하며 지계가 중심이 아님을, (라)에서는 중국과 오랑캐 사이에는
안팎의 구별 없이 모두 한가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논의들이 지향하는 바는 하나이다. 바로 중심과 주변, 중국과 오랑캐라는
분별의 해체이다. 중국이라는 하나의 지점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절대적 기준
을 부정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하나의 사람과 문화가 스
스로 가운데가 되는 다중심적이고 다원적인 세계79)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의산문답」의 서사 진행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중심과
주변을 해체하여 세계를 다중심적이고 다원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서로가 서로
를 인정하는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역사, 자연과학, 정치사
상 등의 다양한 담론들의 집합체처럼 보이는 「의산문답」이 한 편의 유기적
인 글로 읽힐 수 있는 것은 ‘상대주의’라는 주제가 이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
기 때문이다.80) 서사의 공간이 단순하게 인물들이 사건을 전개하는 하나의 장
소로서 끝나지 않고 사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는 등의
차원 높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홍대용이 ‘상대주의’라는 주제
를 드러내기 위해 중국과 조선의 접경에 위치한 의무려산을 허자와 실옹의 대
화가 진행되는 서사의 공간으로 설정한 것은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홍대용이 실옹과 허자의 대화 공간을 의무려산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홍대
용이 조선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자유롭게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
로 보는 견해81)가 있지만, 필자는 길진숙의 의견에 좀 더 주목해 보고자 한다.

79) 김원명·서세영, 앞의 논문, 184쪽.


80) 「의산문답」에서는 이것을 ‘균(均)’ 또는 ‘일(一)’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과 사물이 하늘
에서 보면 한가지라는 ‘인물균’, 중화와 오랑캐는 마찬가지라는 ‘화이일’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상대주의적 시각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81) 조동일, 앞의 논문, 74-75쪽. 김정호, 「홍대용 의산문답의 정치사상적 특성과 의의」,
『동양정치사상사』 제6권,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7, 116-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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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려산은 「의산문답」의 원문에 의하면 ‘하(夏)’와 ‘이(夷)’의 접경에 위치한
다. 중국 동북에 존재하는 산이지만, 경계적 공간으로서의 의미 이외에 실제적 의
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18세기 당시 조선 선비들에게 세계는 ‘조선과 중국’이었
다. 그것도 중화와 오랑캐로서 세계를 구분했다. 이런 세계의 이해 속에서 중국도
아니요 조선도 아닌 공간이 의무려산이었던 것이다. 의무려산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과 조선의 접경일 뿐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인 산이다. 평
면에서 불룩 솟아난 산은 땅도 아니요, 하늘도 아니다. 이런 공간에서 사는 실옹
은 지상적 존재도 아니고 초월적 존재도 아니다. 지상과 초월 사이의 존재이다.
사이의 존재는 차이를 가로지른다. 실옹은 중국과 조선의 차이, 중화와 오랑캐
의 차이, 지상과 초월적 세계의 차이를 가로지르며 경험한 자이다.82)

홍대용이 「의산문답」의 공간으로 의무려산을 설정한 것이 30여 년 동안


성리학을 연구하여 성리학적 진리에 달통한 허자가 실옹의 입을 통해 비판되
고, 허자 역시 실옹을 통해 잘못을 시인하며 새로운 인식을 지닌 인물로 변모
해 간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당대의 경직된 성리학에 대한 비판, 소중화 의식
에 사로잡힌 조선 사회의 인식에 대한 질타를 위한 정치적 설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산문답」이 조선 사회 내지는 성리학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삼는 글이 아니라 홍대용의 사상적 혁신의 결실인 상대주의적 관점을 다양한
소재를 통해 드러내는 글이라는 점에서 볼 때 단순히 홍대용 자신의 일신상의
안전을 도모하는 장치를 넘어 의무려산이 갖는 공간적인 특성에 주목해야 한
다.
의무려산이 중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이기는 하지만, 중국과 조선의 접경
즉 중국과 조선의 ‘사이’에 존재한다는 공간적 특성이 더욱 중요하다. 의무려
산이 중국이면서 조선이자, 중국도 아니요 조선도 아닌 ‘사이’의 공간이기 때
문에 그곳에 사는 실옹은 중국과 조선의 차이, 중화와 오랑캐의 차이를 넘나
들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82) 길진숙, 앞의 논문,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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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숲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에서 한 발 떨어져 있을 때 스스로
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반성이 전제되어야만 비판이 가능해진다.
‘의심하는 주체는 시스템과 시스템, 또는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나타난다
.’83)는 가리타니 고진(柄谷行人)의 말처럼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차이에 서
서, 두 공동체를 성찰할 수 있’84)었던 실옹의 진술을 통해 조선 사회와 경직된
성리학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고, 차이를 넘나드는 ‘사이’의 공간인 의무려산
은 조선과 성리학이 가진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드러내
기에 최적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홍대용이 「의산문답」의 공간으로 의무려
산을 설정한 것은 자신이 「의산문답」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상대주의’라
는 주제 의식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고려였던 것이다.
「201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문학’ 교과의 내용 체계에서는 [문학과 삶]
에서 ‘문학과 삶의 다양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세부 성취 기준
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3) 문학을 통하여 자아를 성찰하고 타자를 이해하며 삶의 다양성을 이해


하고 수용한다.

이것은 감상자가 문학 감상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다양한 삶과 생각을


이해하고 평가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성찰을 바탕으로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내면세계를 형
성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익혀 온 성리학으로 무장한 허자가 실옹의 깨우침
과 자기반성을 통해 기존의 잘못된 것을 버리고 더 바람직한 인식과 세계관으

83)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강신주,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그린
비, 2014, 53쪽 재인용.
84) 강신주, 앞의 책,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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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변모해 가는 모습, ‘나’가 아닌 ‘사이’의 공간이 될 때 잘잘못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상대주의적 관점을 가질 때 나 아
닌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의산문답」이 무
수한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던
져 준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노사 간의 갈등, 정치적 갈등,
인종 간의 갈등, 문화적 갈등 등등 지금 우리 사회는 소위 갈등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회 구성원들 간에 적대적인 관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
다. 이것은 사회·정치·경제·문화 등 사회의 전 분야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
하는 경쟁 구도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또한 자아와 가치관 등이 정립되지 않은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다양
한 환경 속에서 자란 다른 학생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갈등을 겪
으며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성적과 입시라는 경쟁 구도 속에서 자신의 성공
을 위해서는 남들을 이겨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배우며 자란다.
무수한 문답을 통해 평생의 학문을 버리고 새로운 자아로 태어나는 「의산
문답」 속의 허자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옳다고 믿었던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도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또한 잘못된 견해를 가진 허자를 위해 무수한
문답을 마다 않고 깨우침을 돕는 실옹의 모습에서 학습자들은 배려의 자세를
배울 뿐만 아니라 보편적 사유일지라도 그것을 의심하고 반성하기 위해서는
사이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불어 학습자들은
「의산문답」 전편을 가로지르는, 상대주의적 시각과 사유가 다양한 갈등 상
황을 해결할 수 있는 주요한 방법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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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의산문답」의 교수·학습 방안

1. 교재화 방안

가. 교재화의 방향

앞에서 현대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전의 분과 중심의 학문에서 학문 간의 융


합 내지 통합이 강조되는 양상으로 바뀜에 따라 교육과정 역시 그와 같은 변
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음을 기술하고, 「의산문답」이 이와 같은 학문적 변
화의 흐름에 부합하는 작품임을 지적함으로써 「의산문답」이 갖는 교육적 가
치를 밝혔다.
또한 홍대용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학문적·사상적 결정으로서의 「의산문
답」을 교육적 제재로 활용함으로써 조선 후기의 중요한 사상적 흐름인 실학,
특히 북학파의 사상적 배경을 탐구할 수 있으며, 다양한 학문 영역을 종횡무
진하는 담론을 통해 한 편의 문학 제재가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사회학·자연
과학·역사학·정치학 등을 탐구하고, 각각의 학문이 개별적으로만 존재하는 것
이 아님을 배움과 동시에 인간을 둘러싼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의산문답」을 관통하고 있는 중심
-주변의 해체와 상대주의적 시각은 학습자들에게 배려, 갈등의 해결 등과 같
은 인성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음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의산문답」을 『문학』 교과서에 수록할 제재
로 만들어 보고자 한다. 「의산문답」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인물균, 지
구설·지전설, 우주무한설, 역외춘추론’ 중에서 ‘인물균, 지구설, 역외춘추론’의
일부분을 발췌하고, 「의산문답」에 담긴 교육적 가치를 학습자의 주도적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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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을 통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질문을 구성하여 교육적 효과를 높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현행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취 기준 중 다음과 같은
항목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4) 문학이 예술, 인문, 사회 등 인접 분야와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한다.


(8) 한국 문학 작품에 반영된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감상한다.
(13) 문학을 통하여 자아를 성찰하고 타자를 이해하며 삶의 다양성을 이해
하고 수용한다.

기존의 교과서에서는 주로 문학과 인접 분야의 관련성을 동일한 주제를 가


진 다른 양식의 작품을 비교하거나 모티브를 차용한 문학 작품과 회화, 또는
영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문학과 인접 학문의
관계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문학이 그 자체로서 다양한 학문 분야를 함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산문답」은 매우 좋은 제재이므로 한 편의 작품 안에서
다양한 학문 영역이 포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학습자에게 유의미할 것
이라 생각한다.
또한 홍대용이 북학파의 사상적·이론적 배경으로서 북학파의 여러 인물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의산문답」을 통해 이용후생을 강조하는 북학파의
출현과 그들의 사상적 경향을 살펴보는 데 의미 있는 제재가 될 수 있을 것으
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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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교재화의 실제

학습목표
⚫ 문학이 다양한 학문을 통합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 문학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다.

「의산문답」(毉山問答)

홍대용(洪大容, 1731∼1783)

[앞부분 줄거리] 조선에서 30년 동안 은거(隱居)하며 학문을 닦


아 천지만물의 조화와 진리를 깨달은 허자(虛子)가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학문을 논하였으나 비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사람들이
* 등장인물의 이름을 통
자신의 학문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실망한 허자는 중국의 북경으 해 인물의 성격을 짐작해
로 가서 60일 동안 선비들과 이야기하였지만 결과는 조선에서와 보자.
다르지 않았다. 허자는 자신의 학문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탄식
하며 도피할 마음을 먹고 조선과 중국의 접경에 위치한 의무려산
* 허자와 실옹이 만나는
(醫巫閭山)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만난 실옹(實翁)과 여러 이야
공간적 배경을 ‘의무려산’
기를 나누며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된다. 으로 설정한 이유를 생각
해 보자.

1 허자(虛子)가 말했다.
“천지의 살아 있는 것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귀합니다. * 실옹은 허자가 사람을
금수(禽獸)나 초목(草木)은 지혜도 깨달음도 없고, 예의(禮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이유
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義)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금수보다 귀하고, 초목은 가?
금수보다 천합니다.”
실옹은 고개를 젖히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과연 사람이로다. 오륜(五倫)과 오사(五事)1는 사
람의 예의(禮義)이다. 떼를 지어 다니며 서로 불러 먹이는 ◎ 어휘 풀이
것은 금수의 예의이고, 무리 지어 무성하게 자라면서도 평 1. 오사 외모는 공손해
야 하고, 말은 조리 있
안하고 느긋한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의 눈으로 물 어야 하며, 보는 것은
(物)을 보면 사람은 귀하고 물은 천하지만, 사물의 눈으로 밝아야 하고, 듣는 것은
분명해야 하며, 생각하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은 천하다. 하늘에서 바라보 는 것은 지혜로워야 한
면 사람이나 사물이 평등한 것이다. 다는 것이다.

- 56 -
사물은 지혜가 없는 까닭에 거짓이 없고, 깨달음이 없는
까닭에 행함도 없다. 그렇다면 동식물이 사람보다 훨씬 더
귀하다. 또 봉황(鳳凰)은 천 길 위를 날고 용(龍)은 하늘에
서 날며, 톱풀1과 울금향2는 신(神)과 통하고, 소나무와 잣
나무는 재목으로 쓰인다. 사람과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귀
하고 어느 것이 천한가? 대개 큰 도에 해가 되는 것은 자
만심보다 더 심한 것이 없는데, 사람이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물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자만심에 근거한 것이다.”
“봉황과 용이 하늘을 난다고 해도 금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시초와 울금초, 소나무와 잣나무도 초목에서 벗어나
* 실옹이 허자에게 강조
지 못합니다. 그 어짊은 백성을 윤택하게 하기에 부족하고, 하는 바는 무엇인가?
지혜는 세상을 다스리기에 족하지 못합니다. 복식과 의장
(儀章)3의 법도도 없고 예악병형(禮樂兵刑)4을 행하지도 않
는데 어찌 사람과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대의 미혹됨이 너무도 심하구나. 물고기를 놀라게 하
지 않는 것은 용이 백성을 윤택케 하는 것이고, 까마귀와
참새를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은 봉황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이다. 구름의 다섯 빛깔은 용의 의장이고, 온몸의 무늬는
봉황의 복식이다. 광풍과 폭우, 벼락이 치는 것은 용의 병
형이며, 높은 산봉우리에서 서로 응하며 울음을 우는 것은
봉황의 예악이다. 톱풀과 울금향은 종묘와 사직에서 보배처 ◎ 어휘 풀이
1. 톱풀 국화과의 여러해
럼 쓰이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동량(棟樑)5으로 귀하게 쓰 살이풀, 예로부터 점을
이는 재목(材木)이다. 치는 데 사용하였다.
2. 울금향 튤립, 이것을
이런 까닭에 옛사람들은 백성에게 혜택을 입히고 세상을
넣어 빚은 향기 나는 술
다스리는 데 실제로 만물에서 배워 본받았다. 임금과 신하 을 제사의 강신주(降神酒)
로 썼다.
의 예의는 대개 벌들에게서 취했고, 군대의 진법6은 대체로
3. 의장 의식(儀式)의 표
개미들에게서 취했으며, 예절의 법도는 다람쥐에게서 취하 (標)를 이르던 말.
고, 그물을 치는 것은 거미에게서 취했다. 그래서 성인은 4. 예악병형 예법, 음악,
병법, 형벌
만물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그대는 어
5. 동량 기둥과 들보
찌 하늘의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관점에 6. 진법 안진(雁陣), 학익
진(鶴翼陣) 따위와 같이
서 사물을 보는가?”
전투를 수행하기 위하여
허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크게 깨달았다. 진(陣)을 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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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옹이 허자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강과 바다의 물과 사람과 사물들이 한쪽 면에
모여 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중국과 오랑캐 땅의 수만 리
나 되는 멀고 가까운 땅이 모두 평평하여 태산처럼 큰 산
과 바다 밖의 외국 땅들도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면 한눈
에 모두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허자가 말했다.
“제가 평소 듣기로 그러기에는 사람의 시력에 한계가 있
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치상으로는 그러할 것입니다.” * 진랍과 악라, 중국과
“사람의 시력에는 물론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항해를 하면 서양이 모두 정계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
해와 달이 바다에서 뜨고 바다로 지며, 들판에서 바라보면 까?
해와 달은 들판에서 나와 들판으로 들어간다. 하늘은 바다
와 맞닿아 있고 들판은 막힌 것이 없으니, 시력의 한계라는
말은 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구를 측량하는 데는 하늘을 관측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하늘을 관측하는 데는 남극과 북극을 근본으로 한다.
하늘을 관측하는 방법에는 날과 씨1가 있다. 그래서 줄을
드리워 올려다보며 관측했을 때 직선이 되는 도수2를 천정
(天頂)이라고 부르며, 극으로부터 멀고 가까움은 위도가 얼
마라고 말한다. ◎ 어휘 풀이
지금 중국에서 배나 수레가 통하는 곳으로 북쪽에는 악 1. 날과 씨 날은 천, 돗
자리, 짚신 따위를 짤 때
라(卾羅)3가 있고, 남으로는 진랍(眞臘)4이 있다. 악라의 천 세로로 놓는 실이고, 씨
정은 북쪽의 북극으로부터 20도이며, 진랍의 천정은 남쪽의 는 가로로 놓는 실. 날은
경도를, 씨는 위도를 의
남극으로부터 60도다. 두 천정은 90도의 차이가 있으며, 두 미한다.
곳 사이의 거리는 2만 2500리이다. 따라서 악라 사람들은 2. 도수 각도, 온도, 광도
따위의 크기를 나타내는
악라를 정계(正界)5로 삼고 진랍을 횡계(橫界)6로 삼으며, 수.
진랍 사람들은 진랍을 정계로 하고 악라를 횡계로 한다. 또 3. 악라 러시아.

중국은 서양과 경도의 차가 180도에 이르는데, 중국 사람은 4. 진랍 캄보디아.


5. 정계 중심 세계
중국을 정계로 삼고 서양을 도계(倒界)7로 삼으며, 서양 사 6. 횡계 정계를 중심으로
람은 서양을 정계로 하고 중국을 도계로 삼는다. 그러나 사 수직을 이루는 지역을 의
미하는 듯.
실 하늘을 이고 땅을 밟으며 각자의 계(界)를 따르는 것은
7. 도계 지구의 자전축을
모두 마찬가지여서, 횡계도 도계도 없고 모두가 정계인 것 기준으로 대칭을 이루는
곳을 의미하는 듯.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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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옛 습관에 안주하여 익히되 살피지는 않
으며, 이치가 눈앞에 있는데도 탐구하지 않아, 평생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살면서도 그 실정에는 어둡다. 오직 서양의
어떤 지역은 슬기로운 기술이 정밀하고 상세하며 측량을
잘 알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 허자가 중국과 오랑캐

3 실옹이 말했다. 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
유는 무엇일까?
“명나라가 망하여 천하가 변발을 하게 되었다. 남방의 세
력은 부진한데 오랑캐의 운수는 날로 좋아지게 되었으니,
곧 사람의 일이 감응(感應)한 것이자 천명(天命)의 필연(必
然)이었던 것이다.”
허자가 물었다.
“공자(孔子)는 『춘추(春秋)1』를 지어 중국을 안으로 삼 * 실옹이 중국과 오랑캐
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근
고 사방의 오랑캐를 바깥으로 삼았습니다. 화이(華夷)2의 거는 무엇일까?
구분이 그토록 엄격한데, 지금 선생님께서 이 역사가 사람
의 일이 감응한 것이자 천명의 필연이었다고 귀결하신 것
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하늘이 낳고 땅이 키우는 것 가운데 모든 혈기 있는 것
은 한가지로 사람이다. 무리 가운데 매우 뛰어나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는 한가지로 군왕이다. 문을 겹겹이 세우고 해
자3를 깊이 파며 국경을 굳게 지키는 것은 한가지로 나라이
다. 장보(章甫)4나 위모(委貌)5를 쓰는 것이나, 문신을 새기
고 이마에 그림을 새기는 것이 한가지로 습속이니, 하늘에
서 바라보면 어찌 내외의 구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
로 각각 자기 백성들을 친히 여기고, 각각 자기 나라 임금
◎ 어휘 풀이
을 숭상하며, 각각 제 나라를 지키고, 각각 제 풍속을 편안
1. 춘추 공자가 노나라의
히 따르는 것은 화이가 마찬가지이다. (중략) 사적(事跡)을 편년체로 기
록한 책
공자는 주나라 사람이다. 그런데 주 왕실이 갈수록 비천
2. 화이 중국과 오랑캐
해지고 제후들은 쇠약해졌으며, 오(吳)나라와 초(楚)나라가 3. 해자 성 주위에 둘러
중원을 어지럽혀 침략하고 해치기를 그치지 않았다. 『춘 판 못.
4. 장보 은나라 때 쓰던
추』는 그런 주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니 내외를 엄격 모자의 일종.
히 구분한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5. 위모 주나라 때 쓰던
모자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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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자가 정말로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 오랑캐
땅에 살게 되었다면 중국의 것으로 오랑캐를 변화시켜 주
나라의 도(道)를 바깥에서 흥성시키려 했을 것이니, 내외의
구분이나 존왕양이(尊王攘夷)1의 도에 따라 자연 마땅히 역
외(域外)의 『춘추』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 ◎ 어휘 풀이
1. 존왕양이 왕실을 높이
(聖人)인 까닭인 것이다.” 고 오랑캐를 물리침.

짚어 보기

Ⅰ. ▢
1 ∼▢
3 의 중심 내용을 정리해 보자.

단락 중심 내용 핵심 사상

1

2

3

Ⅱ. ▢
1 과 관련하여 다음의 물음에 답해 보자.
1. ‘사람, 금수, 초목’을 바라보는 ‘허자’와 ‘실옹’의 입장을 정리해 보자.

2. 1에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옹’과 ‘허자’의 생각에 차이가 나타나는 이


유를 생각해 보자.

- 60 -
Ⅲ. ▢
2 와 관련하여 다음의 물음에 답해 보자.
1. ▢
2 에서 실옹이 설명한 ‘악라’와 ‘진랍’의 경도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어떤 문제
점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2. 다음은 조선 시대에 제작된 세계 지도들이다. ㉮와 ㉯에 나타난 당시 사람들


의 우주관은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고, ‘실옹’의 우주관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자.

㉮ ㉯

<천지도(天地圖)>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3. ▢
2 에 나타난 대화를 통해 ‘실옹’이 학문하는 자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61 -
Ⅳ. ▢
3 과 관련하여 다음의 물음에 답해 보자.
1. 다음은 ▢
3 의 앞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실옹’이 명나라의 멸
망과 청나라의 흥성(興盛)을 ‘천명(天命)’으로 보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복희·신농·황제·요순 등의 성인이 검소, 공손, 겸양을 실천하여 백성의 질서
를 바로잡았기 때문에 천하가 화락하였으나 시대가 바뀌고 풍속이 변해서 사
람들이 화려함과 사치를 추구하게 되자 중국의 문명은 타락하게 된다. 하나
라 우왕은 천자의 지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백성이 자기 집안의
이익을 꾀하게 되고, 은나라 탕왕, 주나라 무왕은 임금을 내쫓았기 때문에 백
성이 위아래의 질서를 지키지 않게 되었다. 하와 은은 충(忠)과 질박함을 숭
상하긴 했지만 꾸밈이 있었고, 주의 제도는 오로지 화려함과 사치함만을 숭
상하였으므로 중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주나라 이후로 왕도가 없어지
고 패도가 횡행하여 거짓과 지략, 아첨, 권모(權謀)가 난무하여 상하 모두 사
욕만 꾀하므로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결국 명나라에 와서 천하는 오랑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2. “하늘이 낳고 땅이 키우는 것 가운데 ∼ 어찌 내외의 구분이 있을 수 있겠


는가?”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단어를 찾아보고, 이 표현을 통해 ‘실옹’이
강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3. ‘실옹’이 공자를 성인(聖人)으로 추앙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 62 -
넓혀 보기
1. ▢
1 은 사람과 사물의 평등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고, ▢
2 는 지구의 모양에 대
한 자연과학적 담론이며, ▢
3 은 중국의 역사와 관련된 역사학적 담론이다.
각기 다른 학문적 담론이 한 편의 글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자.

2. 다음은 조선 사회의 보편적인 천지관을 근거로 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다. 「의산문답」에 보이는 홍대용의 세계관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자.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문화권의 대표적인 천지관(天地觀)은 ‘천원지방
(天圓地方)’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은 둥근 데 비해 땅은 평평하고 네모진 것
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천지관에 기초하여 중국을 중심에 두고 세계를 인식하
는 중화적 세계관이 유학의 확립과 더불어 지배적인 사고로 후대로 이어졌다.
중국 중심의 지리적 중화관은 중국 문명의 뛰어남을 강조하는 문화적 중화관,
곧 화이관(華夷觀)으로 발전되어 조선 사회에서도 수용되었고, 이후 지배적인
세계관으로 19세기까지 유지되었다.
-김인덕 외, 『한국 미의 재발견(2) - 과학문화』, 솔, 2005.

3. 다음은 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박지원이 쓴 「북학의서(北學議序)」의


일부이다. 「의산문답」에 나타난 홍대용의 생각과 연관된 점을 찾아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홍대용이 북학파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자.

설령 오랑캐라 할지라도 그들이 지닌 법과 제도가 훌륭하다고 한다면 그


들에게 가 그들을 스승으로 섬기며 배워야 옳겠거늘, 하물며 그 규모의 광
대함과 마음씀씀이의 정밀함, 예악(禮樂)의 웅장함과 문장의 찬란함이 여전
히 삼대 이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고유의 문물을 간직하고 있
음에랴!

- 63 -
2. 교수·학습 방안

앞에서 「의산문답」의 주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교과서에 수록할 수 있도록


총 3차시의 분량으로 구성해 보았다. 차시에 비해 내용이 조금 짧기는 하지만
교사 주도로 이루어지는 수업이 아니라 학습자들이 글을 읽고 날개 문제에 답
을 해보면서 내용을 파악하고, ‘짚어보기-넓혀보기’ 활동을 통해 「의산문답」
의 내용 이해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북학파에 대한 이해, 당시의 주류적 인식
과는 다른 천문관, 우주관, 세계관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 차시를 넉넉
하게 잡았다.

가. 1차시

<표-1> 1차시 교수·학습 지도안(약식)

Ⅰ. 문학의 수용과 생산
단원명 1. 문학의 특성 [2] 문학과 인접 분야 차시 1/3
(1) 「의산문답(毉山問答)」

1. 문학이 다양한 학문과 융합될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학습목표
2. 문학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다.

단계 학습 과정 교수·학습 활동 시간 자료

학습 목표 ⚫ 학습 목표 제시
판서
도입 동기 유발 ⚫ ‘홍대용’을 소개하는 동영상 시청 15분
TV
⚫ 「의산문답」 동영상 시청
⚫ 지문 읽기
전개 내용 파악 ⚫ 날개 문제 정리 및 발표 30분
⚫ ‘짚어보기’ 1번 정리 및 발표
⚫ 학습 제재에 대한 형성평가
정리 형성평가 5분 유인물
⚫ 차시 예고

- 64 -
학습자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연암 박지원의 작품을 읽어
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겠지만 그와 매우 절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앞서 있었던 홍대용에 대해서는 접해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1차시
에서는 홍대용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홍대용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시청함으로써 홍대용의 학문적 탐구욕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 통섭을 추구하는 학문관, 자연과학을 섭렵한 과학자의 면
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85)
또한 「의산문답」이 매우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과
서에 수록되는 내용이 작품의 일부라는 점을 감안하여 작품 전체를 간추린 동
영상을 시청함으로써 학습자들에게 간략하게나마 작품 전체의 내용을 파악하
게 하는 것도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86)
두 개의 동영상을 통해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한 후 교과서 지문을 읽으면서
날개 문제를 확인한다. 이때 등장인물의 이름을 통한 인물의 성격 파악에서는
교사가 ‘허(虛) : 실(實)’의 사전적 의미를 밝혀 주는 것이 수업을 원활하게 진
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제시문에서 ‘의무려산’이 ‘조선과 중국의 접경’임이 명시되어 있으므로
학습자들은 제시문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조선의
접경 지역이 중국이면서 조선인 동시에 중국도 아니고, 조선도 아닌 공간임을
학습자들이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는 교사의 지도가 필
요하리라 생각된다. 이외의 날개 문제들은 제시문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사
실적 이해, 추론적 이해가 가능하므로 학습자 스스로 질문에 대해 답을 해봄
으로써 제시문의 중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짚어보기’의 Ⅰ은 제시문의 ▢
1 ∼▢
3 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활동이다. 이 활동

85) EBS에서 제작한 「역사채널 e」에 홍대용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있다. 제목은 ‘소행성
94400’(http://www.ebs.co.kr/tv/show?prodId=352&lectId=3108592)이다.
86) 경기문화재단에서 ‘의산문답’(http://www.ggcf.kr/archives/36314)이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동영상이 있다.

- 65 -
을 통해 제시된 내용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면서 ▢
1 ∼▢
3 에 나타난 홍대용의 중
심 사상을 함께 이해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 2차시

<표-2> 2차시 교수·학습 지도안(약식)

Ⅰ. 문학의 수용과 생산
단원명 1. 문학의 특성 [2] 문학과 인접 분야 차시 2/3
(1) 「의산문답(毉山問答)」
1. 문학이 다양한 학문과 융합될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학습목표
2. 문학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다.

단계 학습 과정 교수·학습 활동 시간 자료

학습 목표 ⚫ 학습 목표 제시
도입 10분 판서
동기 유발 ⚫ 전시 학습 내용 정리

⚫ 지문 읽기
전개 내용 파악 35분 유인물
⚫ ‘짚어 보기’ Ⅱ∼Ⅳ 활동

형성평가 ⚫ 학습 제재에 대한 형성평가


정리 5분 유인물
⚫ 차시 예고

2차시는 조선 건국에서부터 사대부들의 주류적 사고였던 성리학, 특히 주자


학적 세계관, 천문관 등을 살펴보고, 그것과 대조되는 홍대용의 사상을 비교함
으로써 홍대용의 혁신적인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Ⅱ-1, 2에서 ‘사람, 금수, 초목’을 바라보는 허자와 실옹의 관점을 비교해 봄
으로써 조선 후기에 있었던 사대부 간의 격렬한 논쟁의 주제인 ‘인물성동이론
(人物性同異論)’을 살펴볼 수 있다. 이때 도덕과의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에
서 배우는 내용과 연계한다면 문학과 인접 학문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
할 것이다. 한편 이 활동을 통해 허자가 조선의 주자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 66 -
반대로 실옹이 홍대용의 사상적 대리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Ⅲ-1은 실옹의 설명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질문이다. 학습자들은 언제나 교
과서를 절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교과서에서 나온 내용은 항상 옳으며, 그
것에 제시된 내용에서 지식과 교훈을 찾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교
과서는 학습 제재의 하나일 뿐 정전(正典)이 아님을 교사는 학습자들에게 지
도할 필요가 있다. Ⅲ-1을 통해 교과서를 대하는 학습자들의 태도를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습자들이 「의산문답」에 나온 오류로
인해 작품의 내용을 불신(不信)하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교사는 작품의 내
용보다는 실옹이 지구설을 증명하기 위해 펼치는 논리에 주목할 수 있도록 지
도해야 한다.
Ⅲ-2는 조선 시대에 제작된 지도를 통해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당시 사람들의 태도를 살펴보고, 실옹의 우주관
과 비교해 보는 활동이다. 이를 통해 「의산문답」에서 제시하는 우주관이 이
전보다 더욱 사실적·과학적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의산문답」
이 Ⅱ에서의 철학적 담론과는 다르게 자연과학적 담론을 담고 있는 텍스트임
을 인지하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Ⅲ-3에서는 실옹의 학문에 임하는 자세가 선학들의 가르침이나 세계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가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논리, 관찰과 실험 등을 중시하고 있
음을 학습자들의 이해를 유도한다. 또한 당대의 실학자들이 학문하는 자세를
함께 지도한다면 조선 후기에 융성했던 실학에 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Ⅳ-1은 「의산문답」에 나타난 홍대용의 명·청에 대한 이해를 통해 당대 사
대부들과는 다른 관점을 드러내기 위한 질문이다. 소중화 의식이 팽배해 있던
당대의 세계관과는 달리 청의 흥성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청나라의 발전된 과
학을 수용하려 했던 북학파에 대한 이해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Ⅳ-2를 통해 실옹이 말하고자 하는 상대주의적 시각과 태도를 이해할 수 있

- 67 -
다. 또한 이것을 바탕으로 「의산문답」을 관통하고 있는 ‘일(一)’ 내지는 ‘균
(均)’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Ⅳ-3은 앞서 했던 활동을 정리하는 차원의 질문이다. 실옹이 공자를 성인으
로 추앙하는 것은 자신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방편을 마련
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노나라 출신이었기 때문에 주나라의 법도를 통해서
문란해진 노나라를 바로잡고자 했을 뿐, 만약 공자가 오랑캐의 땅에 머물고
있었다면 그곳을 중심으로 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중심’이
다. 홍대용이 「의산문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중국이라는 중심의 해
체를 통해 누구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선도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주체성의 발현임을 지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 3차시

<표-3> 3차시 교수·학습 지도안(약식)

Ⅰ. 문학의 수용과 생산
단원명 1. 문학의 특성 [2] 문학과 인접 분야 차시 3/3
(1) 「의산문답」(毉山問答)
1. 문학이 다양한 학문과 융합될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학습목표
2. 문학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다.

단계 학습 과정 교수·학습 활동 시간 자료

학습 목표 ⚫ 학습 목표 제시
도입 5분 판서
동기 유발 ⚫ 전시 학습 내용 정리

⚫ 지문 읽기
전개 내용 파악 30분 유인물
⚫ ‘넓혀 보기’ 1∼3 활동

⚫ 학습 제재 정리하기
정리 정리하기 15분 유인물
⚫ 차시 예고

- 68 -
3차시는 2차시까지의 내용 학습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힘
과 동시에 사고의 확장을 유도하는 시간이다. 「의산문답」은 다양한 분과 학
문이 통합된 텍스트이자, 조선 시대의 주류적 사고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산물
이다. 따라서 「의산문답」의 교수․학습 과정을 통해 한 편의 고전 교술 작
품의 내용 학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통해 다양한 영역의 학문
적 담론이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학습자들이 앞으로 학습 내지는
학문을 하는 데 필요한 자세를 견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
다.
‘넓혀 보기-1’에서는 「의산문답」에 나타나는 다양한 담론을 관통하는 핵심
사상을 파악해 보는 활동이다. 한 편의 글이 유기적으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그 글을 구성하고 있는 단락 내지는 문단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의산문답」은 철학, 자연과학, 역사, 정치 등 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담
론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을 하나로 엮어 주는 관점이 바로 ‘균(均)’, 달리
말하면 중심의 해체를 통해 모두가 중심이 될 수 있는 ‘평등’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산문답」이 여러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는 산만한 글이
아니라 여러 이야기들이 그 심연에 깔린 홍대용의 사상을 통해 완벽한 한 편
으로 엮여 있는 작품임을 지도함으로써 여러 학문을 통섭하는 글쓰기의 전범
이 될 수 있음을 학습자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넓혀 보기-2’는 자연관에 투영된 정치관을 학습할 수 있는 질문이다. 자연
을 바라보는 관점이 순수하게 자연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관점에는 중심과 주변, 지배와 피지배, 우월과 열등의 가치관이 작
동하는 것임을 학습자들이 이해함과 동시에 당시의 자연관, 정치관에 담긴 사
유를 타파함으로써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홍대용의 사상을 파악할 수 있
는 계기가 되도록 지도해야 한다.
‘넓혀 보기-3’은 홍대용의 사상과 박지원을 비롯한 북학파의 사상을 비교해
보는 질문으로서, 홍대용이 박지원보다 선배였다는 점, 연행의 선배로서 북학

- 69 -
파의 구성원들에게 연행을 권유하였으며 북학파의 일원들이 홍대용을 연행의
모델로 삼았다는 점 등을 제시문과 함께 지도한다면 북학파의 이론적·사상적
선배로서의 홍대용의 위치를 학습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70 -
Ⅳ. 결론

본 연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홍대용의 「의산문답」을 교육함으로써 통


합·융합을 강조하는 「2012 개정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바를 달성하고자 했
다.
Ⅱ장에서는 「의산문답」을 구성하고 있는 주된 담론들을 간략하게 요약하
고, 그것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맞게 융합·통합을 추구하는 「2012 국어과
교육과정」과 융합인재교육(STEAM), 그리고「2015 개정 교육과정」에 부합
하는 작품임을 밝혔다.
지식의 생산뿐만 아니라 이미 생산된 지식을 가치 있는 정보로 만들 수 있
는 능력, 넘을 수 없는 담처럼 분리된 분과 학문적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능
력,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넘어서는 창의성이 중요해진 현재와 미래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문과와 이과의 영역 구분이 아니라 그것이 통합된
교육이 어려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의산문답」은 사람과 사물의 존재 가치를 탐구하는 철학적 담론, 지구의
모양과 자전, 무한한 우주, 그리고 다양한 자연 현상에 대한 자연과학적 담론,
신선과 역술과 같은 문화학적 담론, 인간의 근본, 정치권력의 탄생과 같은 문
화인류학적 담론, 중화의 멸망과 청의 흥성을 다룬 역사학적 담론 등이 ‘균
(均)’ 또는 ‘일(一)’이라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통합된 텍스트로서 지금의 분과
학문적 담론을 한 편의 문학으로 녹여낸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제재로 활용함으로써 우리 역사 또는 철학사,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북학파의 사상적 근원을 탐색해 볼 수 있으며, 학문 간
의 융·복합을 고민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심과 주변의 해체, 서로를 인
정할 수 있는 상대주의적 시각을 학습하는 인성 교육의 제재로 활용할 수 있
음을 밝혔다.

- 71 -
Ⅲ장에서는 Ⅱ장에서 제시한 「의산문답」의 교육 요소를 토대로 『문학』
교과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고, 그것의 교수·학습 방안을 제시
하였다. 「의산문답」에 담긴 다양한 담론 중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균, 지구
설, 역외춘추론’의 일부를 발췌하여 본문과 날개 문제를 구성하고, 기존 교과
서의 학습활동에 해당하는 ‘짚어 보기, 넓혀 보기’를 제시하였다.
1차시에는 제시문 읽기와 ‘날개 문제’를 통해 제시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활
동을 한 후 2차시에 ‘짚어 보기’에 제시된 물음에 답해 봄으로써 학습자들이
제시문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촉발하도록 하였다. 1, 2차시 활동을 바탕으로 3
차시에 ‘넓혀 보기’ 활동을 함으로써 「의산문답」이라는 한 편의 고전 교술
작품을 통해 다양한 분과 학문적 영역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창작 당시의 주류적 세계관을 극복하려 했던 홍대용의 노력, 넓게는 실학자들
의 사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연구는 현재 고등학교 문학 교과에서 이루어지는 고전 교술 갈래의 교육
양상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고전 교술 갈래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201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살피고자
하였다. 또한 「의산문답」에 담긴 교육 요소와 교수·학습 방안을 제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를 토대로 학교 현장에서 교수·학
습을 해 보지 못한 점은 한계로 남으며, 향후 「의산문답」을 바탕으로 한 교
육 연구가 활발해지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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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시대를 위한 인재 육성 방안』, 제8회 청람교육포럼, 2014.

5. 인터넷 자료
인터넷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http://encykorea.aks.ac.kr)
인터넷판 두산백과(http://www.doopedia.co.kr)
EBS(http://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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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S T R A C T

Teaching and Learning Methods for “Uisanmundap”

Kwon, Tae Joo

Major in Korean Language Education Graduate School of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Chung-buk, Korea

Supervised by Professor Oh, Yoon-Sun, Doctor of Literature

This study has set the objective : evaluating the association between the
contents of “Uisanmundap” and the education curriculum, and presenting
the practical example of teaching material to make use of “Uisanmundap”
- a erudite crystal of Daeyong Hong who was a realist in the latter period
of Joseon Dynasty, - as a high school Korean Literature reference.
Now, ‘2012 revised Korean Language curriculum’ being implemented,
considering the literatures written on highschool literature textbooks on
school fields genre by genre, there are overwhelmingly more modern liter-
atures than classical literatures, and especially, among them, enormously
more lyricism works are used as teaching materials than other genres. On
the other hand, the frequency of being written of Gyosul genre on text-
books is in quite slight degree. This phenomenon might be not only an
obstacle for learners to study naturally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liter-
ature, and broadly East-Asia literatures which emphasize Gyosul genre, b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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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o be the misunderstanding the flow and situation of Korean literature.
Therefore, the necessity to enhance teaching materials for literature by
discovering noble classical Gyosul works is highly issued.
In this aspect, “Uisanmundap” can be a very suitable teaching material.
The reason is that “Uisanmundap” is the work which is like encyclopedia
including various discourses such as humanities, history, natural science,
politics, cultural anthropology, etc. and each discourse is a literature which
is written in the point of equalitarianism of ‘equality(均)’ or ‘uniformity(一)’,
or relativism. Also, the writer of “Uisanmundap”, Daeyong Hong - who
was not just closely related with people who were in Bukakpa but also
was a person who became theoretical and ideological background of
Bukakpa, - greately influenced the formation and being on the rise of
Bukakpa. Learning “Uisanmundap”, which was the intensive scholarship of
Daeyong Hong through his whole life, is useful in various ways to under-
stand the background how Bukakpa appeared and then presented social
reformative. So, if “Uisanmundap” is used as teaching material for liter-
ature textbook, learners in the course of studying this work can under-
stand a set of flow which is related with the situation of that days and
the emergence of discourse pursuing reformation. Also, learners can have
the opportunity to explore the association between literature and adjacent
various scholarships.
I have made a teaching material by using the part of the representative
discourse of “Uisanmundap”, based on the study about the contents system
of “Uisanmundap” and the association between the contents and the educa-
tion curriculum. By presenting learner-centered learning activity, in addi-
tion, learners may learn that literature is quite closely related with phil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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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 natural science, history, etc. and may understand the cogitation of
Daeyong Hong and, widely, realists who tried to overcome the mainstream
view of the world at that times. Also, I have presented the lesson plan to
make teaching-learning activity happen by utilizing this teaching material
on the very school field.
Through this set of study, the meaningfulness of this study might be on
the point that this study handle the problem of present literature textbook
more or less, and can be the initial manure for literature learning which is
in the line with the direction of the current curriculum.

Keywords : Daeyong Hong, “Uisanmundap”, human-material equality(均),


Universe infinity theory, hwai(華夷) theory, integration, fusion,
relativism

※ A thesis submitted to the Committee of the Graduate School of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in partial fulfillment of the requirements
for the degree of Master of Education in Augus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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