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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태권도 원류 무덕관 연구
국기 태권도 원류 무덕관 연구
결 과 보 고 서
1차년도 10,000,000천원 1명
계 천원 명
Ⅰ. 연구목적 및 방법 ---------------------------------------1
1. 당초 연구의 목적, 필요성 및 연구목표 --------------1
2. 당초 연구 내용, 범위 및 방법 -----------------------18
Ⅱ. 연구수행 내용 및 결과 ---------------------------------22
Ⅲ. 연구결과 활용계획 --------------------------------------62
Ⅴ.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 -------------------------68
Ⅰ. 연구 목적 및 방법
1. 당초 연구의 목적, 필요성 및 연구목표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1) 황기는 1949년 5월에 『화수도교본』을 저술했다. 무예계에 최초로 간행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1956년 『무예
도보통지』를 접하고 한국 전통무예인 수박희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명칭을 수박도로 정착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당시 복사기가 없던 시절, 2년에 걸쳐 <무예도보통지>를 꼼꼼하게 필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한수박도협회가 탄생된
다. 그것이 바로 1970년 5월 『수박도(唐手)대감』이며 1993년 8월 『무도철학』 등 모두 11권의 책을 저술했다.
2) 무덕관(1945년 11월 9일)을 창설한 황기(1914~2002)는 경기도 장단군에서 출생, 경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만주
철도국에 근무하면서 당시 손꼽히던 양국진(楊麴震) 선생한데 본격적으로 무예를 수련했다. 그는 광복 후 서울에서 무덕
관을 창설, 초대 관장에 취임, 무술을 보급했는데 1956년 서울대 나현성 교수를 통해 서울대도서관에서 <무예도보통지>
를 발견하게 되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라 근 2년간에 걸쳐 책을 서술하였다. 그리고 책대
로 수련하면서 당수도(唐手道)를 수박도(手搏道)로 명칭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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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武藝圖譜通志》에 나오는 권법에 《수박도》언급하였다. 1957년에 처음
으로 무예서적인 《武藝圖譜通志》를 발견한다. 그 이유는 1945년까지 36년간 에
서도 일본 무예에 대한 것만 보고 들어와 우리나라의 문화와 무예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수박도를 보급 발전시켜 공헌하고자 결심한 그는 놀라움과 환희
에 도취된다. 이 고서를 발견한 후부터 그는 매일 서울 대학 도서관에 나가 보고 연
구하면서 58년까지 이 책 전부를 복사해 왔다. 그는 이 책을 연구하여 정교한 해설
과 그 기법의 해설을 한국인은 물론 온 세계인들에게 보급시키고자 결심한다. 그러
나 이 서적은 번역 보완하여 우선 한글판을 발간하기 위해 착수하는데 참으로 어려
운 난관에 봉착한다. 즉 이 중요한 기법을 번역하고 그 해설을 발표함에 있어서 중
대한 사명감은 물론 이에 대한 능력 양성과 갖가지 준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
다. 특히 《武藝圖譜通志》에 기재된 원문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인 사상이 기본
무예정신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 기법과 역사와 전통이 자연스럽게 부합되어 본
질적인 면을 최대한 살려내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 한학에 능통해야 한다. 둘째, 진정한 무예가 무엇인가를 터득하여야 한다.
셋째, 무예 수박에 대해 실적으로 장구한 시일을 체험하여야 한다. 넷째로, 십삼세
에 대한 진리에 입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상기한 네 가지 조건을 구비한 사람
만이 완전에 가까운 번역과 해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는 문장에 내포되어 있는 요소와 조건, 그리고 기본동작을 그대로 살리는데 최선의
노력을 하였고 상기한 네 가지 조건을 부합시켜 모든 주 동작은 물론 부수되는 연
결동작을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면을 참작하여 번역한다. 《武藝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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譜通志》를 발간 기록한 사람의 동작방법과 일치하도록 완전한 번역 해설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그 근사치에는 도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武藝圖譜通志》
에 기록된 실기에 대한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다면 이는 무예로서의 진정한 가치는
이미 상실한 설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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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의 인식을 통해 뿌리 없는 실체의 존재 없는 현상에
난립하고 있는 역사성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무덕의 신체관과 역사관
에 나타난 의미와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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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의 목적
이 연구는 대한민국 전통무예인 태권도 원류 무덕관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과 철
학관 그리고 신체사상관의 이치 및 실제에 대한 사료들이 존재하고 있으나 그 의미
와 가치관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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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주체의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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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권도 원류 무덕관 역사적 재조명과 학문적 검토
그러나 태권도 현대화 과정에서 협회를 구성한 주주인 모체관을 장애물로 여기고
집행부를 중앙집권제인 전횡체제로 전환한데서 생긴 역사적 흔적물이다. 하지만 모
든 무예는 유파에 따라서 그들 나름에 특징 있어야 한다. 정통성과 독특한 기법의
4) 서상렬(구명, 백낙언)은 2006.3월 “무덕관을 통합 하여야 한다”는 책을 발간, 무덕관의 재건과 통합을 역사적 사명감으로
집필 하였고 1955년 공군대학에서 정규과목인 당수도의 실제와 이론을 강의하였다. 또한 세계무덕원 충재에 추대
(2005.7)되어 통합 선봉에 있어서 선구자였다.
5) 영문 표기로는 World Moodukkwan Federation이라하고 약칭은 W M F 명칭이다. 연맹의 취지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무덕관 무예인들을 융합과 태권도의 발전을 지향하는 단체로 발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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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가 있기 마련이다. 단지 목적을 위해 모체관을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은 자수상
목에 우를 범하는 경우이다.
단체통합이나 올림픽가입에 각관을 체제가 장애가 될 게 없는데도 전통이 있는
유파가 형성된 모체관을 폐지하고 관명마저 못쓰게 하는 것은 근본을 버리라는 말
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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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 공식화ㆍ표준화의 기준 마련이 하는 연구가 시급한 실정이다. 신체문화자원인
태권도 무예문화의 활용한 태권도계의 학문에 관련 자료를 수집ㆍ분석해 타당성을
검토하고 나아가 무덕관과 태권도 역사적 흔적들을 수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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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행연구와의 비교(선행연구 내용물 정리에 있어서 제목 나열보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구체
적으로 작성할 것)
역사와 문화는 숭고한 정신과 희생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관을 형성할
수 있는 가치관을 만들어주는 사상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
람과 다른 사람들과 가치관이 형성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역사와 문화는
그들이 생각하고 이를 계승발전 시킬 수 있는 존재론적 관점을 주어야 사관이 형성
된다. 이때 그들 속에 새로운 문화가 나오며 그것이 새 역사가 된다. 무예문화 역시
이를 만들고 계승발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여야 한다. 우리 무예 중에 대표
하는 것이 태권도이다. 단 순간에 태권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모체관이 존재한다. 즉 강덕원ㆍ무덕관ㆍ송무관ㆍ오도관ㆍ정도관ㆍ지도관ㆍ
창무관ㆍ청도관ㆍ한무관 9대관을 일컫는다. 9대관의 마크는 지도관과 한무관을 제
외하고는 공통적으로 바른 주먹, 즉 오른 주먹을 상징적으로 택하고 있다. 표기에
있어 무덕관과 지도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글과 영어, 2개어 표기를 선호하고 있
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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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태권도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태권도의 스포츠화 과정에 대한 각종
논의를 살펴보고 태권도가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세계화의 길을 걸어가기 위한
방법, 무도성과 스포츠화의 조화도 탐색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김영선(2011)의
『우표로 보는 태권도 발자취』는 68개국 나라에서 발행된 145종의 태권도 테마
우표를 수록하고 있다. 우표가 발행된 시기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태권도가 세계적
인 스포츠로 인정받기까지의 역사를 상세히 엿볼 수 있다.
이경명(2002)의 『우리 태권도의 역사』는 앞서 간행된 '태권도 현대사'의 잘못을
바로 잡고 한민족의 고유 무예를 포함, 오늘날까지의 태권도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
다. 이 저서는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한민족의 고무예를 시작으로 현재 태권도의
번창기까지를 흑백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으며 태권도인의 시.공간적 기록이며
교훈적 개념으로서의 태권도 역사의 의미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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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으로 구성된 저서로 태권도 선수와 수련생들, 도장 그리고 태권도를 사랑하고 알
고 있는 일반이들 모두의 이야기가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이경명(2012)의 『태권
도 인명사전』은 오늘의 태권도가 있기까지에는 1950~60년부터 해외 각지에 진출
하여 씨앗을 뿌린 한인사범들의 노력이 있었으며 우리는 그 분들의 소중한 업적을
기려야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 측면에서 초기 한인사범들의 노고를
기리는 의미에서 ‘태권도인명사전’ 작업을 하게 되었다. 150여 명에 이르는 개척자
및 국내유관기관의 장들이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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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방(1986)의 「解放 以後 韓國 跆拳道의 發展過程과 그 歷史的意義」는 태권
도사는 ‘카라테 유입론’으로도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는 ‘실증주의(實證主義) 사관’
을 통해 태권도의 역사서술을 진행한 것이다. 실증주의 사관은 문헌을 통해 객관적
이면서 과학적으로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실증주의 사관에 따른 태권도
사의 서술은 전통성에 흠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주장〔일본 카라테에 영향을 받은
태권도〕이다. 제도권에서 인정하기에 곤란함을 가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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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원(2015)의 『태권도 9갸관 역사 자료집』은 강덕원, 오도관, 창무관, 무덕
관, 정도관, 청도관, 송무관, 지도관, 한무관 등 각 관의 탄생배경을 다루고 있다. 특
히 관의 활동과 계보에 따른 유물 중심으로 개괄적 내용만 제시하고 많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그나마 태권도 원류 9개관 학술저서 및 유물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좀더
가치 있는 연구물이 있어 후속 연구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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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초 연구 내용, 범위 및 방법
1) 연구의 문제
국기 태권도 정체성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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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7가지의 연구쟁점을 선정할 것이다. 이상의 구체적인 접근방법으로
하여, 태권도와 무덕관의 무예실제와 신체사상사를 비교 및 분석을 통해 이에 대한
연관성 및 전통성을 밝혀내는 데에 그 초점을 맞추어 이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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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연구수행 내용 및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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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관 그리고 신체사상관의 이치 및 실제의 극치에 대한 의미와 가치관을 명확히 제
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의 인식을 통해 뿌리 없는 실체의 존재 없는 현
상에 난립하고 있는 역사성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이다. 올바른 전통무예 당수도 무
덕의 신체관과 역사관에 나타난 의미와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
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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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예도보통지]와 권법(당수도)의 역사적 함의
신권을 얼굴 가까이 대었다가 아래로 꽂아 내리면서 앞으로 걸어서 불꽃이 중심으로 모이듯 만남
을 교묘히하여 즉시 잡고 도사렸다가 손을 들어 사정없이 동작으로 옮긴다.
한줄기의 재찍을 가로 세로 흔들며 돌산을 파헤치듯이 두 다리가 앞으로 나아가서 상인이 다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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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의 힘이 약하거나 담이 크면 나는 교묘히 신을 통하는 힘으로 들어치기
를 좋아 하라.
神拳 當面 揷下 進步 火??心 遇巧就拿就跌擧手不得 留情 一條鞭 橫直披? 兩進腿 當面傷人 不? 他
力粗膽大 我巧好打通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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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초창기 무덕관 당수도(수박도) 무명의 역사적 함의
첫째, 한학에 능통해야 한다. 둘째, 진정한 무예가 무엇인가를 터득하여야 한다.
셋째, 무예 수박에 대해 실적으로 장구한 시일을 체엄하여야 한다. 넷째로, 십삼세
에 대한 진리에 입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상기한 네가지 조건을 구비한 사람만
7) 황기의 무덕관 《武藝圖譜通志》에 나오는 권법에 1957년 《수박도》언급한 내용을 조사·분석, 논의하여 전개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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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전에 가까운 번역과 해설을 할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문장에 내포되어 있는 요소와 조건, 그리고 기본동작을 그대로 살리는데 최선의 노
력을 하였고 상기한 네 가지 조건을 부합시켜 모든 주 동작은 물론 부수되는 연결
동작을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면을 참작하여 번역한다.《武藝圖譜通
志》를 발간 기록한 사람의 동작방법과 일치하도록 완전한 번역 해설을 한다는 것
은 있을 수 없지만 그 근사치에는 도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武藝圖譜通志》에
기록된 실기에 대한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다면 이는 무예로서의 진정한 가치는 이
미 상실한 설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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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좌수는 좌쪽옆으로 내려 갖는다. 이때 좌수 팔굽을 약간 굽히고 전신과 자우
양수에 힘을 많이 주지말고 우수권 갑향은 자기 후면향 좌수 장향은 하양이 되게
갓는다. 즉 원도 제 1번도와 같은 동작으로서 가자세 시작전 준비자세를 취한다. 그
리고하세 즉 좌족을 약간 옆(상대방향)으로 내어 놓으면서 좌우 양족 무릎을 굽혀
서 몸을 낮추어 가지고 사고립자세나 후굴자세를 취하는 동시에 좌수는 팔굽을 45
도 정도 굽혀 위로 세워서 팔을 올려 가지고 우수는 팔굽을 굽혀 저가 명치앞 위치
에 수평하게 뉘어 중단 방어동작을 취한다. 이때 명치와 우하완부간의 거리는 7cm
정도이고 우수갑향은 상향이 되게 가지고, 즉 단편세를 취하고 대적 태세를 갖춘
다.n 즉 대련 준비동작을 취한다. 이때 마음을 조급해하거나 딱딱하게 갖지말고, 자
연스럽고 태연하게 가지며, 전신에 힘을 너무 많이 갖지 않고 앞면 공간을 향하여
즉 상대방을 향하여 눈, 즉 시선과 자기 마음의 통일과 마음을 명쾌하게 가지고 좌
우 양수는 힘을 약간주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갖는다. (상대방은 이와같은 방법, 요
령으로 시선과 몸향이 반대가 되게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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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동시에 상체는 허리를 앞쪽으로 힘주어 많이 굽혀 엎드린다. 이렇게 되면 자신과
상대방은 밀착하여 즉 자신의 배우에 상대치 두 마리의 소가 밀착하여 누워 있는
것 과 같은 형태로서 계속하여 좌우 양수에 힘을 많이 주면서 앞쪽으로 허리를 더
욱 많이 굽히면 자신의 등위 밀착하여 엎혀 있던 상대방은 사진의 앞쪽으로 빙돌아
지상에 떨어져 넘어지게 된다. 이 순간 천지가 진동할 정도의 큰 목소리로 부르짖어
기합소리를 낸다. 이 공법 동작은 유도의 업어치기와 흡사한 방법 요령의 대련법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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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해설이다. 여기서 서로 상박, 즉 두사람이 서로 대련할 수 있는 동작 자세는
불과 안시측신세와 구류세등 몇몇세에 그치고, 두사람이 일어서서 서로 잡고 씨름
하는 식으로 업어서 넘기는 동작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것은 위태롭고 또 유희하는
것에 가 다. 그러나 이 행공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거듭하여 전해 내려오는 구보기
법인 것이다. 식자는 이러한 점을 스스로 알아주기 바란다. 그 열가지 방법 자세가
이 책에는 누락되어 있으므로 증보하여 그결 문과 같이 병서, 기록 삽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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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전통무예 당수도 무덕관 역사적 재조명과 학문적 검토 및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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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때는 ‘당수도’로 개칭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 《武藝圖譜通志》』를
연구하던 중 고려시대부터 수박희라는 고유무예가 존재해 왔던 것을 알게, 권법을
더욱 연구하고 재정립했다. 수박도 무예를 보급 전념하고자 1960년 6월 정부로부
터 법인체 인가를 받았다. 특히 1970년대 초에는 무덕관 관세가 제일일 정도로 자
랑할 만했다. 그러던 중 태권도 단일화와 모체관 해체 및 관명 불사용 조치가 시행
되면서 법인체인 수박도를 제외한 당수도 무덕관, 태권도 무덕관은 분열에 서막을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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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결론 및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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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년도 무덕관 당수도 · 수박도·태권도 실제와 상관관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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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태권도 교서와 태권도 원형 지침서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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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구성되었다. 이후 《태권도 백과사전》에서 다른 형이 추가적으로 제작되지 않
았으며, 현대 ITF 태권도에서 24개의 형으로 승급과 승단을 사용하고 있다.
최홍희(1972)는 24개 형을 만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전 생애라는 의미를
부여 하면서 자신의 태권도관을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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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대한민국 태권도•수박도•당수도 황기와 최홍희의 사관에 관해
황기가 언급한 수박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어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전통무예이
기에 역사적으로 고고학적으로 고증할 수 있는 무예이다. 즉 몸과 마음을 닦아 참된
사람을 만드는 인간사상의 철학이다. 경기단체에 가입하여 무예를 경기화 하고 또
상품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무도의 본질을 망각하는 처사이며 심사숙고할 문제라고
경고했다. 이날에 모임이 후일 최홍희이가 태권도 명칭으로 명명하는 데에 무게를
실어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서상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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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한 수박도(手搏道)로 하여 사단법인체로서 주무부처인 문교부에 법인등록 승인
을 받는다. 이 시기가 1960년 6월 30일 사단법인 인가일자이다. 국제간의 교류가
단독적으로 법적행위가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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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 태권도계 통합 작업을 재차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 시기 무덕관을 제외한 태
수도협회 구성은 명분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최홍희이는 무덕관 황기를 다
각도로 회유하고 압박하기 시작했다(서성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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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5일 대한태수도협회를 대한태권도협회로 명칭을 명명하고 전국체전을
앞두고서 무덕관 지방도장을 통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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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는 하등의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기에 보다 심오한 역사적 기반을 형성하
였다.
그렇다면 수박도 창시자 황기와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의 인생철학에 대해서 살펴보
자.
5.16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질서한 정국을 수습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무예계도
통합하여 국기를 만들었다. 이를 지원하고자 한다는 미명으로 대한체육회 산하 대
한태권도협회로 통합하라는 강권이 나왔으나 통합의 조건이 무덕관을 흡수하려는
조건이고 보니 당시 무도계에서 관세가 제일 큰 무덕관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한태권도협회 초대회장이 군 장성인 채명신을 보아도 알 수 있다(서상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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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으나 모두가 직장과 생업형편이 여의치 못해 시간의 여유가 없다보니 관무에 전
념하기도 어려운 실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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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에 문선선 사범 7단을 선출하였다(서상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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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회장에 취임 한지 채 1년도 안되서 최홍희가 1966년 정기총회에서 자기수족
과 다름없던 집행부일파의 계략으로 협회에서 불명예 퇴진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
니 최홍희로서는 안타깝고 절통한 일이었다(서상렬, 2012).
태권도를 신앙처럼 여기며 살아온 최홍희는 1966년 3월22일 자기가 해외 대사로
근무하면서 닦아 놓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서독, 터키, 미국, 이집트, 아
랍공화국, 이태리, 한국 등 10개국을 주축으로 하여 국제태권도연맹을 조직하여 총
재가 되었지만 국내 기반이 허약하다 보니 해외에서도 떠돌이 신세가 된다. 그토록
심혈을 경주하여 만든 오도관도 최홍희가 태권도협회에서 불신임으로 퇴출당하고
국제태권도연맹을 조직하니 급격히 쇠퇴해 갔다. 현종명, 곽병오의 작고로 백중기
가 관장직을 맡아 명맥을 유지하는데 급급하였다(김산, 김창우, 송일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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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고자 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안타까운 현실은 두 사람이 통합했더라면 무언가
새로운 역사적 근원으로서 수박도나 태권도를 재창출 있었다고 생각되어진다. 하지
만 생각으로는 태권도 원형으로 가되 품새적 측면에서는 수박, 즉 권법을 추구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 국익적 선양으로 볼 때 가라데(공수도)설과
혁파할 수 있는 것을 재창출해야 한다. 모든 역사적 근원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
은 역사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법에 관련된 근본적 초석은 《武藝圖
譜通志》이라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었다. 그때 당시 황기가 물려준
수박도와 화수도 그리고 당수도 저서에서 그가 편찬한 내용은 대단하다. 그 이유는
인문과학적 측면 자연과학적 측면을 다양하게 신체학문의 근원을 만들었으며 더욱
진보된 형태를 완성했기에 가능하였다(서상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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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태권도의 신체행위 품새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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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의 태극과 팔괘에 보이는 테오리아(Theoria) (자료 : 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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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 품새의 중간에 편히서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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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은 한민족의 고대국가인 단군조선이 개국한 아사달(아씨땅)의 성산인 붉메(밝
산)의 의미이요. 밝은 산은 얼과 전통의 근원 신성함을 나타내는 뜻이다. 그리고 홍
익인간의 이치와 사상을 의미한다. 태백은 수없이 다른 위치와 말로 나타나 있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민족의 태반(胎盤)이고 상징인 백두산이다. 단군의 높은
이상을 바탕으로 품새에 의미를 두고 있다. 신체동작은 손날엎어잡기, 잡힌손목빼기,
금강몸통막기, 등주먹얼굴바깥치기, 손날아래헤쳐막기, 돌쩌귀 등이 있다. 품새선은
工자로 열린 하늘과 땅 사이를 사람이 올바로 이어주는 개천과 개국을 뜻이 있다.
품새의 동작은 몸통막기와 치기로 주로 구성되어 하늘과 땅 사이에 바로 선 사람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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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펴기, 밤주먹솟음치기, 휘둘러막기, 휘둘러잡아당기기, 금강옆지르기, 태산밀기
등이 있다. 신체기법동작은 움직임이 큰 동작과 팔동작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 천
권의 이치와 사상을 담았다. 품새선 ㅜ는 하늘에서 내리는 사람과 하늘의 뜻에 의한
사람, 그리고 하늘로부터 힘을 받은 사람과 하늘을 받드는 사람인 하늘사람이란 뜻
과 하늘과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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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여 품새에 보이는 테크네(Techne와 테오리아(Theoria) (사진자료 : 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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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결론 및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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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역부족이었으나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세계태권도
에 아버지라 일컬이었던 최홍희의 뛰어난 재주와 태권도의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
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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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성이 있는 역사관과 철학관 그리고 신체관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실제와 신체
사상사의 이치인 그 위대한 신체무예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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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활용계획
1. 연구결과 활용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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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덕관의 설립배경의 의의와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태권도 각 영역별에 관한 역사
성을 통한 태권도 공공기관과 태권도인들에게 소중한 교육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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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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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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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
→ 해당목차는 삭제불가(심의대상이 아닌 경우, 대상아님으로 표기)
1. 대상 여부(해당 칸에 ‘o’표시)
IRB 심의 대상 IRB 심의 대상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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