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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벽운마을 이야기

벽운마을의 산신제
벽운마을에 벌써 며칠째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폭우로 올가을엔 벼에 달린 낟알이 얼마 되지 않아요.
겨울이면 식량이 모두 떨어질 텐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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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공터에 모여 앉았습니다.

올해 농사는 망했어요. 이러다 다 굶어 죽는 거 아니에요?

아직도 하늘에 구름만 가득하니 어쩜 좋아요.

어떻게 해야 비가 그칠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봐도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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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데, 지난봄에 시집온 새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요, 신령님이 나타나셔서 누군가


아끼는 나무를 베어갔다며 무척 화를 내셨어요. 그 때문에 벌을
주시는 게 아닐까요?

새댁의 말에 마을 사람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신령님의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누가 베어갔는지 전혀 알 수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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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며칠이 지나, 신령님이 새댁의 꿈속에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당장 우물가로 가거라. 거기에 귀한 분이 계실 테니 잘


모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벌을 받을 테니 명심해야 할
것이야.

새댁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그러고는 서둘러


우물가로 나가봤더니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남자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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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요! 보다시피 나는 문둥병에 걸렸소.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몸이란 말이요.

괜찮아요. 여기 우리 둘밖에 없잖아요.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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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은 문둥병 때문에 지금껏 혼자 지냈을 남자가
가여웠습니다. 신령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남자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새댁이 건넨 따뜻한 말에 문둥병 남자는 마음의
문을 열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배가 고파요. 따뜻한 밥 한 그릇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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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은 마을 사람들에게 우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면서,
산신제를 열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령님의 노여움이 풀려야 비가 그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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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 모두들 팔을 걷어붙이고 산신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남자들은 청소를 하고 아주머니들은 커다란
솥을 걸고 고깃국을 끓였습니다. 아이들은 오순도순 모여
앉아 떡을 둥글게 빚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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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 준비가 끝나갈 무렵, 공짜로 밥을 준다는
소문에 배고픈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새댁이 우물가에서 만난 문둥병
남자는 보이지 않았어요.

새댁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습니다. ‘신령님, 아직

그분이 오시지 않았어요. 따뜻한 밥이 식기 전에 다시 뵐


수 있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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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신기하게도 문둥병 남자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리로 앉으세요. 고깃국과 떡도 있어요.

문둥병 남자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준비한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왔을 때처럼 아무도 모르게
스르륵 사라져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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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새댁은 꿈속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신령님을 만났습니다.

너의 착한 마음과 정성이 마을을 살렸구나. 날이 밝으면


수락산에 올라 족두리 바위 밑을 보아라. 그곳에 선물이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족두리 바위에 가보니, 천년 묵은 산삼이 여러


뿌리 놓여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산삼을 시장에 내다
팔아 식량과 옷을 장만했고, 그 덕분에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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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더 높이

여러분 문둥병이 뭘까요? 문둥병은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전염병


으로 지금은 한센병이라 부른답니다. 한센병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살이 썩고 문드러지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은 한센병을 하늘에서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죠. 차별도 심했어요.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기의 간을 꺼내 먹는다는 잘못된 소문도 있었답
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
지 마세요. 이미 좋은 치료
약이 개발되어 있으니까요.

✽1934년에 지어진 건물로 일본인들이 한


센인들을 데려다가 강제로 수술ㆍ해부하
던 곳입니다. 등록문화재 제66호.
소록도 한센인 수용시설(사진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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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용기가 행복의 비법임을 깨달은 소금장수 이야기

소금장수 별이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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