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on page 1of 26

Études de Langue et Littérature Françaises, 113, 5-30 (2018)

DOI http://dx.doi.org/10.18824/ELLF.113.01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루소 자서전의 “실험적” 기획에 대해

김 영 욱
(서울대학교)

❚차 례❚

Ⅰ. 문제제기
Ⅱ. 자서전 쓰기 방법의 과학적 모델: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기압계’로
Ⅲ. 자서전의 ‘체계적 정신’:
루소 자서전의 인식론적 기능과 18세기 경험주의
Ⅳ. ‘실험인간학’의 요구:
달랑베르의 지식체계 안에서 루소 자서전의 위치
Ⅴ. ‘체계적 정신’에서 벗어나기:
방법론적 비유의 진화와 그 인간학적 의미
Ⅵ. 결론

Ⅰ. 문제제기

이 연구의 목적은 루소 Jean-Jacques Rousseau의 자서전 기획에서 방법론


적 비유로 사용되는 두 과학기술에 대한 참조를 달랑베르 Jean le Rond
d’Alembert와 18세기 경험주의 정신의 관점에서 최대한 해석하여, 루소 자서
전과 달랑베르 지식체계 사이의 단순하지 않은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다.1)

1) 이 글에서 루소 인용은 다음 판본을 이용하며, 약어 “OCR”와 권수, 쪽수로 표기한다.


Jean-Jacques Rousseau, Œuvres complètes, 5 vols., Paris,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59-1995.
6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루소 자서전에 대한 흔한 선입견이 있다. 독자들은 그것이 박해망상증자인


자의식 과잉의 작가가 자기변호를 위해 늘어놓은, 흥미롭지만 좋아한다고 말
하기 어려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백 Les Confessions』(1765-1767,
1769-1770 집필)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Les Rêveries du promeneur
solitaire』(1776-1778 집필)의 기획서라 할 수 있는 『뇌샤텔 원고 Manuscrit
de Neuchâtel』(1764 집필) 서문과 「첫 번째 산책 Première promenade」(1776
집필)을 읽어보면, 거기에서 논의의 학문적인 태도와 구조를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당대 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참조는 우선 텍스트
의 학구적 분위기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학구성은 한때 철학자
였던 자의 망상에 묻어나온 과거의 흔적일 뿐인가?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달랑베르와 루소를 함께 읽으며 이
문제에 답해볼 것이다. 이 작업의 정당성은 다음 사실들에 있다. 루소는 19세
기 철학사로 펼쳐질 자아에 대한 탐구에서도 어디까지나 달랑베르의 동시대
인으로서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자서전 기획에 나타나는
과학에 대한 참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 참조가 속해 있는
자서전 기획의 지적 배경을 엄밀한 방식으로 파악할 수 없다. 루소가 자기
자신의 삶을 쓰는 행위에 인간인식이라는 학문적 이념을 부여하고 그러한
기획을 실천하기 위한 전대미문의 방법을 고민할 때, 그 이념과 방법은 달랑
베르가 묘사하는 18세기 사유의 자연학적 반체계주의의 지평 위에서 고안되
기에, 제네바 시민의 자서전 기획은 아카데미 회원의 학문체계와 종합될 가
능성을 얻는다. 그런데 이 종합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두 철학자는
결국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된다.

달랑베르 인용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다음 판본을 이용하며, 약어 “DERE”와 쪽수로


표기한다. Jean le Rond d'Alembert, Discours préliminaire de l’Encyclopédie et articles
de l’Encyclopédie, éd. M. Groult, Paris, Honoré Champion, 2011. 『철학의 요소 Éléments
de philosophie』에 대해서는 1822년에 다섯 권으로 편집된 다음 선집을 인용하며, 이
선집에 대해서는 약어 “OA”와 권수, 쪽수로 표기한다. Jean le Rond d’Alembert, Œuvres
de d’Alembert, 5 vols., Paris, Belin, 1822. 또한 이 글에서 따로 출처를 밝히지 않는
『백과사전 Encyclopédie』의 항목들, 즉 “카메라 옵스큐라 chambre obscure”, “기압계
baromètre”, “휴대용 기압계 baromètre portatif”, “대기 atmosphère”, “토리첼리의 관
Torricelli, tube de” 등에 대한 인용 혹은 언급은 다음 인터넷 사이트를 참고한 것이다.
http://www.lexilogos.com/encyclopedie_diderot_alembert.htm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7

루소 자서전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많다. 루소 자서전을 철학사에 편입시


키는 우리의 작업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둘 혹은 셋만 언급하면 된다. 필로넝
코 Alexis Philonenko는 독일관념론 전문가답게 『고백』을 칸트를 비롯하여
19세기 독일철학의 관점에서 평가할 줄 안다.2) 루소의 자서전을 동시대의
철학과 연관시키는 작업 중에서는 『몽상』의 반체계성을 몽테뉴 Montaigne와
비교하는 마르티노 Emmanuel Martineau의 중요한 연구3)가 있지만, 우리의
작업은 그보다는 샤락 André Charrak의 최근 연구4)와 만난다. 왜냐하면 이
18세기 철학 연구자는 루소의 반체계적 성격을 콩디약 Étienne Bonnot de
Condillac과의 비교를 통해 경험주의와 더 엄밀한 방식으로 연결하기 때문이
다. 우리의 방법은 다르다. 이 연구에서는 루소 자서전 기획을 달랑베르가
구성한 계몽주의 지식체계 속에서 평가할 것이며, 그런 다음 루소가 그 체계
에서 벗어나는 현상에 주목할 것이다. 그래야 같은 전제에서 출발한 두 사유
가 어떻게 분기하는지를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
우리는 루소의 자서전 기획과 함께 달랑베르의 경험주의적 학문 기획, 즉 『백
과사전 서언 Discours préliminaire de l’Encyclopédie』(1751), 『철학의 요소
Éléments de philosophie』(1759) 그리고 『백과사전 Encyclopédie』(1751-
1772)의 몇몇 항목들을 검토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루소-달랑베르 관계를 해설하는 보통의 주제를 벗어나
며,5) 역사적이거나 문헌적인 근거가 약한 연관관계를 다룬다. 여기에서 다룰

2) Alexis Philonenko, “Essai sur la signification des Confessions de J.-J. Rousseau”,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74(1), 1974, p. 1-26.
3) Emmanuel Martineau, “Nouvelles réflexions sur les “Rêveries”. La Première Promenade
et son “projet””, Archives de Philosophie, 47, 1984, p. 207-246.
4) André Charrak, Rousseau. De l’empirisme à l’expérience, Paris, Vrin, 2013.
5) 루소 전공자는 달랑베르를 통해 보통 세 가지 주제를 언급할 수 있다. 하나는 『학문예술론
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1750)에서 문명과 학문에 대한 루소의 비판과
그에 대한 달랑베르의 반응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때 달랑베르의 텍스트로는 『백과사전
서언』과 『철학의 요소』 9, 12장이 주된 검토대상이 된다. 두 번째로, 『백과사전』 7권(1757)
달랑베르의 “제네바Genève” 항목, 루소의 긴 반박문인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à d’Alembert』(1758), 달랑베르의 답장(1760)(OA IV, p.432-461)으로 이어지는 제네바와
연극에 대한 논쟁이 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하고 풍부한 작업인데, 특히 정치와 미학의
첨예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의
두 주제를 포함하여 18세기 지성계 안에서 루소와 달랑베르의 관계를 역사적 자료와
편지 등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8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관계는 다분히 개념적이어서 추론에 의지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예상보다


더 루소 사유를 규정하고 동시에 달랑베르에 의해 대표되는 ‘계몽주의의 정
신’의 한 단면을 관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관찰의 관건은 루소의 자서전
기획을 달랑베르의 체계에서 도출되는 ‘실험적 expérimental’ 인간학 개념으
로 정의하는 데 있다.

Ⅱ. 자서전 쓰기 방법의 과학적 모델: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기압계’로

『뇌샤텔 원고』라 불리는 『고백』 초고의 서문은 최종본에는 누락되거나 파


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루소 자서전의 이론적이고 방법적인 토대를 담고 있
다. 여기에서 최초의 현대적 자서전 작가는 그 기획의 인간학적인 이념(“자기
편애 amour-propre의 이중의 환상”을 극복하여 인간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비교항 pièce de comparaison”을 제공하는 것), 자서전 형식의 필연성
(“비교항”의 구성을 위해 “내적 존재방식”을 탐구해야 할 필요), 그 유일한
대상으로서의 ‘나’(자기편애를 분석한 철학자이자 시대의 자기편애의 희생자
인 ‘장-자크’), 진실을 말하는 방법(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왜곡을 예방
하는 방법으로서 “모든 것을 말하기 tout dire”) 등에 대해 진술한다. 그러고
나서 루소는 이 새로운 기획을 실행하기 위해 “발명해야” 할, “그만큼 새로운

그런데 이 세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연구를 참고할 수 있고, 여기에서는 그 중


몇몇을 안내하는 것으로 그친다. 첫 번째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연구가 그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 Victor Goldschmidt, “Le problème de la civilisation chez Rousseau (et
la réponse de d’Alembert au 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 dans Jean-Jacques
Rousseau et la crise européenne de la conscience, acte de colloque, Paris, Beauchesne,
1980, p. 269-316. 두 번째 주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있지만, 우선 최근의 논문모음집
을 보라. Rousseau, politique et esthétique. Sur la Lettre à d’Alembert, éd. B. Bachofen
et B. Bernardi, Lyon, ENS Éditions, 2011. 이 문제에 대해 루소와 달랑베르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연구로는 다음 글을 소개한다. Florent Guenard, “Rousseau et d’Alembert :
le théâtre, les lois, les mœurs”, Corpus, 38, 2001, p. 133-155. 세 번째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두 연구를 참고하라. John N. Pappas, “Rousseau and d’Alembert”, PMLA, 75(1),
1960, p. 46-60. Raymond Trousson, “Querelles de philosophes : Rousseau et d'Alembert”,
Romanische Forschungen, 106, 1994, p. 139-167.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9

언어 un langage aussi nouveau”에 대해 말한다.

만약 내가 다른 이들처럼 세심하게 쓴 작품을 만들려는 것이라면, 나를 그리지


않고 꾸며낼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내 초상 portrait이지, 한 권의 책이 아니다.
나는 말하자면 카메라 옵스큐라 chambre obscure에서 일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필
요한 기술art이라고는 보이는 대로 표시된 선을 정확하게 따라가는 것뿐이다. 따라
서 나는 내용에 대해 취했던 방침을 문체에서도 취한다. 나는 문체를 일정하게
uniforme 만들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라도 내게 떠오르는 문체로 쓸 것이며,
고심하지 않고 기분에 따라 문체를 바꿀 것이고, 모든 것을 느끼고 보이는 대로,
꾸밈도 거리낌도 없이, 뒤죽박죽이라도 신경 쓰지 않고 말할 것이다. 내가 받은 인
상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감정에 동시에 나를 내맡김으로써, 사건이 내게 일어난
순간과 그것을 묘사하는 순간에서, 그러니까 이중으로 내 영혼의 상태를 그릴 것이
다. 내 문체는 고르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단도직입일 때도 있고 산만할 때도 있고,
현자 같을 때도 있고 광인 같을 때도 있고, 근엄할 때도 있고 쾌활할 때도 있을
것이니, 문체 자체가 내 이야기를 구성할 fera partie de mon histoire 것이다.6)

자신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어떻게 써야 하는가? 1764년


의 루소는 광학적 비유를 사용한다. “초상”과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의 연결은 우연이 아니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도 보고한 바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중세까지 주로 태양의 시각적 재현을 위해 사용되다
가, 르네상스 시기 양면볼록렌즈와 조리개의 도입과 함께 다양한 형태들을
포착하는 데에도 쓰이기 시작한다. 17세기에 반사경이 장착되면서 이미지를
수평면 상에 옮길 수 있게 되고 소형화를 통해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자,
화가들이 본격적으로 이 장치를 활용한다. 17세기 화가들은 이 광학장치 덕
분에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7) 18세기에 대상을 시각적으로
정확하게 재현하는 장치로는 카메라 옵스큐라만한 것이 없었다. 『백과사전』

6) OCR I, p. 1154.
7) 카메라 옵스큐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Encyclopædia Universalis의 “Chambre obscure”와
“Photographie” 항목을 참고하라.
http://www.universalis-edu.com/encyclopedie/chambre-noire-chambre-optique/
http://www.universalis-edu.com/encyclopedie/photographie-histoire-des-procedes-phot
ographiques/
10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3권(1753)에서 “카메라 옵스큐라 chambre obscure” 항목을 쓴 것은 달랑베르


이고,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시각의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 (...) 그것은 (...) 다른 어떤 재현도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이 장치가
있으면, (...) 데생을 모르는 사람도 최고로 정확하고 정밀하게 대상을 소묘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데생이나 회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수단을 이용
해 자신의 기예 art에서 완벽해질 것이다.”
하지만 루소는 재현의 정확성이라는 측면을 단순하게 이해하지 않는다. 이
장치를 통해 대상을 재현하는 주체는 “기술”의 비중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작가는 더 이상 “문체”의 형
식을 결정하는 일에, 더 나아가 문체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어두운 방”의 벽에 떠오른 “선”을 겹쳐 그릴 뿐이다. 각 구간들
사이의 이질감이나 불균형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광학적 원리가 외부 대상
과 그 재현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을 보장한다. 이렇게 재현주체의 주관성이
광학적 원리로 대체된다. 그런데 왜 그래야만 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왜곡하여 유포하는 자들의 “체계 système”를 벗어
나기 위해서다. “개인적인 적들이 생기자 그들은 그들의 관점 vues에 따라
체계를 만들고, 내 명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그것을 그 체
계 위에 세웠다. (...) 그들은 나를 우호적인 조명 jour 안에서 보는 척하면서
아주 다른 조명으로 노출시키는 exposer 법을 알고 있었다.”8) 즉 “그들”은
시각적 왜곡의 체계를 건설했으며, 이를 모면하는 방법은 ‘나’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쓰는 자
가 빠져들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인간의 삶은 오직 그 자신만
이 쓸 수 있다. (...)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삶을 쓰면서 그것을 위장한다
déguise. (...) 실재하는 자신은 전혀 보여주지 않고, 보이고 싶은 대로 자신을
드러낸다 se montre comme il veut être vu.” 자서전 작가는 자기 자신의 이미
지를 왜곡하려는 “자기편애”의 유혹을 극복해야 하며, 카메라 옵스큐라의 반
기술적, 반주체적 원리는 이 유혹을 벗어나는 방법을 제공한다.
그의 마지막 자서전 기획인 유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첫 번째 산

8) OCR I, p. 1152.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11

책」(1776년 가을 집필)에서, 루소는 이전의 자서전들이 실패한 상황을 두고


『몽상』의 전략을 치밀하게 규정한다. 이 마지막 글쓰기의 고유한 문제(절대
적 고독 속에서 자아는 자기 자신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조건(사회와
죽음 사이에 있는 자아의 고독), 방법(고독의 극단적 성격을 이용해 자신의
“자연형 naturel”을 향유하기)이, 일종의 고독의 변증법을 통해 차례로 서술
된다. 그리고 『뇌샤텔 원고』와 마찬가지로 「첫 번째 산책」의 마지막 부분에
서도 작가는 자기에 대해 쓰기 위한 방법적 문제를 고민한다.

확실히 이토록 특이한 상황은 고찰하고 묘사할 가치가 있고, 나는 내 마지막 여


가를 이 검토에 바친다. 이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질서 ordre와 방법 méthode을
가지고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할 능력이 없으며, 게다가 그런
일은 내 영혼의 변이 modifications와 이 변이의 추이 successions를 나에게 보고하
려는 me rendre compte 목적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자연학자들 physiciens이 매일 변하는 대기 air의 상태를 인식하기 위해 하는 작업
opérations을 나 자신에 대해 할 것이다. 나는 내 영혼에 기압계 baromètre를 대어
볼 것이고, 잘 감독하고 오랫동안 반복한다면 이 작업을 통해 자연학자들의 것만큼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기획을 거기까지 확장하지
않는다. 나는 작업들을 기록 registre하는 데 만족할 것이고, 그것들을 체계 système
로 환원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몽테뉴와 동일한 기획을 수행하지만, 목적
은 그의 것과 완전히 반대다. 즉 그는 그의 에세 essais를 오직 타인을 위해 썼고,
나는 나의 몽상 rêveries을 오직 나를 위해 쓴다.9)

루소가 사회에서 벗어나 죽음을 기다리는 자아의 본성을 인식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일종의 기상관측술이다. 기압계는 카메라 옵스큐라보다 훨
씬 최신의 발명품이었다. 토리첼리 Evangelista Torricelli가 수은 기둥의 높이
로 대기의 무게를 처음 잰 것이 1643년이다. 이후 눈금이 추가되었으며, 여러
기술적 발전이 있었고, ‘대기압’ 개념이 규정되었다. 날씨와 기압의 관련성이
곧 인식되지만, 18세기에는 아직 분명하게 설명되지 못했다.10) 『백과사전』

9) OCR I, p. 1000-1001.
10) 기압측정과 기압계의 역사에 대해서는 역시 Encyclopædia Universalis의 “Mesure de
la pression atmosphérique”와 “Pression atmosphérique” 항목을 참고했다.
http://www.universalis-edu.com.rproxy.sc.univ-paris-diderot.fr/encyclopedie/mesure-de
12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2권의 “기압계 baromètre” 항목 서두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에는 단지 기압


의 변화를 알려주는 검압기 baroscope와 기압을 명시적으로 측정하는 기압계
는 구별해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 매일 매일의 산책과 몽상을 기록하는 루소
에게는 더 최신의, 휴대용 기압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휴대용 기압계
baromètre portatif”, “대기 atmosphère”, “토리첼리의 관 Torricelli, tube de”
항목 등을 쓴 것도 달랑베르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을 중심으로 그가 작성한
『백과사전』 항목이 1700여개에 이르기 때문에, “카메라 옵스큐라”나 “휴대
용 기압계” 항목의 작성자가 달랑베르라는 사실을 대단한 우연이라고 할 수
는 없다. 우리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몽상』으로 돌아가자. “영혼”과 “대기”의 유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제
자서전의 대상은 더 이상 정적인 어떤 형상(“초상”의 “모델”)이 아니라, 시시
각각 변하는 어떤 운동 혹은 흐름(“변이”와 “추이”)이다. 그 대상은 더 이상
외부의 특정한 사물이 아니라, 고정되거나 경계를 가지지 않는 실체이고 일
종의 환경이다. 루소는 자신과 닮은 어떤 형상을 제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몽상』의 묘사대상은 형상을 가지지 않는 희미한 비중의 변화이고, 그것은
연속적인 “선”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데이터를 통해 대략적인 그래프로 그려
질 것이며, 이렇게 얻어진 이미지에는 대조할 원본조차 없을 것이다.
『뇌샤텔 원고』 서문이 박해자들의 ‘체계’에 대한 대응책으로 주관성의 ‘기
술’을 최소화했다면, 여기에서 체계에 대한 거부는 더 명확한 방식으로 표명
된다. 그리고 이 거부를 통해 루소의 방법은 “자연학자들”의 것과 구별된다.
자연학자들은 “질서와 방법”을 가지고 데이터를 측정하며, 그렇게 측정된 데
이터를 모아 체계를 구성한다. 하지만 루소는 자신이 그런 작업을 수행할 “능
력”이 없으며, 더 나아가 체계를 구성하는 것과 『몽상』의 기획은 양립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왜 그런가? 자아에 대한 인식을 체계로 환원하는 것은, 그
러한 인식이 타인을 향하고 있다는 증거다. 『몽상』에서 루소는 어떤 타자의
지평도 함축하지 않는 자아인식의 순간들에 이르려 하며, 이것은 『고백』에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극복해야 했던 자기편애보다 더 철저한

-la-pression-atmospherique/
http://www.universalis-edu.com.rproxy.sc.univ-paris-diderot.fr/encyclopedie/pression-a
tmospherique/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13

비판을 요구한다. 두 글 모두에서 자아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공통의 임무


였다. 하지만 『고백』에서 그 진실은 적합한 독자를 기다리는 반면, 『몽상』에
서는 그러한 독자의 지평 자체를 소거한 글쓰기가 요구된다. 이 때문에 루소
는 「첫 번째 산책」에서 『고백』과 『몽상』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한다. “따라서
이 종잇장들은 내 『고백』의 부록 appendice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말할 것들
이 그런 이름에 합당하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므로, 나는 이제 그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11) 『몽상』은 고정된 형상 없이 매 순간 변화하는 “영혼의
상태”를 오직 자아 자신에게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기록”할 뿐이다.
우리는 카메라 옵스큐라와 기압계의 비유가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고백』
과 『몽상』의 기획을 각각 지지하는지 설명했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방법이
바깥의 체계화에 맞서 진실한 자아의 형상을 그리고 전달하려 한다면, 기압
계의 방법은 안의 체계화 경향에 대한 한층 더 철저한 비판을 통해 그러한
목표조차 극복하려 한다.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기압계로의 방법론적 비유의
진화를 통해, 체계화에 대한 비판은 더 급진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Ⅲ. 자서전의 ‘체계적 정신’:


루소 자서전의 인식론적 기능과 18세기 경험주의

이렇게 루소의 자서전은 어떤 ‘체계화’에 맞서는 ‘관찰’의 방법론을 통해


구상되며, 『고백』과 『몽상』의 기획에서 발견되는 과학기술에 대한 참조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루소 자서전의 이러한 이념은 루소 자
신만의 것도, 그의 자서전 기획에 고유한 것도 아니다.
우선 그것은 달랑베르가 지지하는 18세기 경험주의 사유의 토대 위에 있
다. 달랑베르에게 계몽주의 정신은 자연학 physique에 의해 총체적으로 갱신
된 학문 일반의 반체계적 성격을 토대로 삼는다. 그는 『철학의 요소』 1장
「18세기 중반 인간정신의 묘사 Tableau de l’esprit humain au milieu du
dix-huitième siècle」에서 단언한다. “그[자연학]와 함께 거의 모든 다른 학문

11) OCR I, p. 1000.


14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이 새로운 형태를 가지게 되었으며, 학문들은 실제로 새로워졌다. (...) 따라서


세속학문들의 원리에서 계시의 토대까지, 형이상학에서 취미의 문제들까지,
음악에서 도덕까지, 신학자들의 스콜라적 논쟁에서 상업의 대상들까지, 군주
의 권리에서 인민의 권리까지, 자연법에서 민족의 개별법까지, 한 마디로 우
리와 더 관계된 질문들부터 우리와 가장 희미하게 관련된 문제들까지 사람들
은 모든 것을 논의했고, 분석했으며, 적어도 뒤흔들어보았다.”12) 법학과 윤리
학, 심지어 신학까지 포함하는 학문 일반을 변화시킨 ‘자연학적 전회’란 무엇
이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계몽주의의 철학 La philosophie des Lumières』
(1932) 서두에서 카시러 Ernst Cassirer는 자연학의 발전이 낳은 18세기 학문
의 패러다임을 효율적으로 요약한다. 17세기까지의 사유가 경험과 현상을 선
험적인 질서와 원리로 환원하는 식으로 작동한다면, 계몽주의의 정신은 사실
과 경험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그 다음에 풍부한 현상을 설명하는 원리로 나
아간다. “따라서 사유의 진행은 개념과 공리에서 현상으로 가지 않으며, 그
반대다. 관찰이 ‘주어진 것 datum’이고, 원리와 법칙이 ‘얻을 것/질문
quaesitum’이다. 이 새로운 방법적 ‘프로그램 programme’이 18세기의 모든
사유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계몽주의 시대는 이 사유의 이상을
과거의 철학적 학설들에서 빌려오지 않고, 눈앞에 모델이 존재하는 동시대
자연학의 사례를 통해 제작한다.”13) 새로운 사유 방법의 고안은 대표적으로
뉴턴 Isaac Newton 물리학이라는 모델을 갖는다. 달랑베르에게 모든 학문의
기초는 체계 이전의 현상이며, 학문활동의 기본은 추론이 아니라 관찰이다.
그에게는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형이상학조차 관찰의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한
다. 『백과사전』 “학문의 요소 éléments des sciences” 항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학문이 오직 관찰만을 진정한 원리로 삼고, 그럴 수밖에 없다
면, 각 학문의 형이상학은 단지 관찰에서 나온 일반적인 결론들을 가능한 한
가장 넓은 관점에서 제시한 것일 뿐이다.”14) 기본개념이나 형이상학보다 오
히려 관찰에 우선권을 주는 이런 경험주의적 원리는 달랑베르로 하여금 선험

12) OA I, p. 122-123.
13) Ernst Cassirer, La philosophie des Lumières, tr. P. Quillet, Paris, Fayard, 1966, p.
42-43.
14) DERE, p. 239.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15

적 체계에 종속되어 있었던 17세기까지의 ‘체계의 정신 esprit de système’과


관찰과 경험을 통해 수학적 원리의 추출을 시도하는 18세기의 ‘체계적 정신
esprit systématique’을 구별하도록 한다. 다음은 『백과사전 서언』의 진술이
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을 인식하길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결코 모호하고 자
의적인 가설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상에 대한 반성적 연구를 통해서, 현상
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많은 수의 현상을 가능한 한도 내에서 원리로 간주
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 환원하는 기술을 통해서다.”15)
루소 또한 자연학의 혁신과 경험주의적 원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체계
의 정신’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달랑베르와 다르지 않으며, 이것은 단지 자서
전 기획만이 아니라 그의 인간연구 전체에 적용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달
랑베르가 자연학을 중심으로 시도한 것을 인간인식의 기획 속에서 수행한다.
『불평등기원론 Discours sur l’origine de l’inégalité』(1755)에서 모든 사회적
속성이 제거되어 자기애와 연민을 제외하고는 어떤 본성도 없이 자연상태에
놓여 있는 자연인은, 일종의 인간존재의 ‘타블라 라사 tabula rasa’로 기능한
다. 혹은 『에밀 Émile ou de l’éducation』(1762) 4권의 다음 문장을 보라. “내
가 더 단정적인 이유,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래도 되는 이유는, 나는 체계의
정신에 전념하는 대신 추론에 최소한의 몫만 주고 관찰만을 신뢰하기 때문이
다. 나는 내가 상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본 것에 근거한다. (...) 과거의 삶에
서 여러 인민과 신분을 관찰하며 볼 수 있었던 것만큼은 전부 비교한 후에,
(...) 어떤 시대이고 신분이고 민족이든 모두에게 공통된 것만을 이론의 여지
없이 인간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다.”16) 인간에게서 어떤 선험적 전제도 인
정하지 않고 오직 관찰만을 방법으로 삼는 것은, 『불평등기원론』에서 착수된

15) DERE, p. 82-83.


16) OCR IV, p. 550. 물론 ‘체계의 정신’에 대한 루소의 비판은 단지 인간학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와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도덕편
지 Lettres morales』는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다.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추론들의 연쇄 안에서는, 동일한 명제가 여러 차이들과 함께 다시 나타날 것이다. 이
차이들은 감지가 거의 불가능하여 철학자의 정신에 포착되지 않는다. 결국 이 차이들이
꽤 늘어나 철학자가 모르는 사이에 명제를 완전히 바꾸어버릴 정도로 그것을 변형시키게
되면, 그는 하나의 명제에 대해 증명한다고 믿는 것을 다른 명제에 대해 말할 것이고
그만큼 그의 결론들은 오류가 될 것이다. 이런 단점은 체계의 정신과 뗄 수 없는 것이고,
이 정신은 혼자서 거대한 원리들에 이르고 언제나 일반화를 한다.”(OCR IV, p. 1090)
16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인간을 인식하기 connaître l’homme’ 기획의 지속적 원리였다.


그리고 『뇌샤텔 원고』의 첫 부분에서 우리는, 자서전 기획조차 이러한 경
험주의적 인간연구 기획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나는 인간을 인식하고 connaître 있다고 그토록 자부하는 사람들 각각이 겨우 자


기 자신만을 알 뿐이라는 사실을 자주 주목했다. 이것도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이 사실일 때의 얘기지만. 어떻게 한 존재를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않은 채 오직 그 자신 안의 관계만으로 잘 규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 불완전한 인식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인식하
려고 할 때 사용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 나는 사람들이 적어도 하나의 비교항
을 가지고 자신을 측정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각자가 자신과 더불어 타자 하나
는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그리고 바로 내가 그 타자 autre가 될 것이다.17)

루소는 인간인식의 구성을 위해 순전히 경험주의적인 전제를 도입한다. 인


간인식 작업은 “관찰”과 “비교”를 통한 귀납적인 방법만을 인정하며, 선험적
인 형이상학적 원리나 체계의 도입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인식은
어떤 난관에 처해 있으며, 자서전은 이 난관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시된다.
인식을 위해서는 비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타자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교대상으로서 자신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기편애에 물든
사회적 의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을 인식하기 위
해서도 타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즉 자아에 대한 인식과 타자에 대한
인식은 서로를 전제한다.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할 것인가? 루소는 자신의
삶을 모든 사람이 참고할 수 있는 “비교항”, 그러니까 모든 자아의 “타자”로
제시할 참이다. 1755년의 루소가 사유하는 정신의 비판을 통해 사회상태의
인간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조항으로서 ‘자연인’을 추론한다면, 1764년
의 루소는 자아 인식과 타자 인식의 상호전제성을 극복하고자 ‘나’의 삶을
하나의 “비교항”으로 제시한다.
즉, 자서전은 인간연구에 필수적인 관찰의 난관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다. 물론 이 난관은 루소 자신의 실존적 위기를 통해 포착된 것이다. 1762년

17) OCR I, p. 1148-1149.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17

『에밀』과 『사회계약론』이 야기한 스캔들과 이후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을 통


해 루소는 동시대 인간들의 타인에 대한 관찰이 왜곡과 체계에 물들어 있음
을 깨닫는다. 망상이든 사실이든, 이것은 루소의 경험주의적 원리에 대한 심
각한 위협이다. 여기에서 관찰의 장애물인 “자기편애의 이중의 환상”은 달랑
베르와 18세기 자연학적 경험주의가 비판하는 학문에서의 “체계의 정신”에
호응한다. 인간인식의 기획 안에서 관찰의 교정작업, 이것이 루소가 자신의
자서전 기획에 부여한 학문적 의미다. 자서전은 시대의 자기편애와 사회적
체계에 의해 방해받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관찰을 정상화시키려는 기획으로
고안된다. 그리고 이 교정작업은 어떤 원리의 규명이나 비판이 아니라, ‘장-
자크’라는 특수한 자아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이 작
업은 다른 모든 관찰을 가능하게 할 최초의 관찰로 정의될 것이다.

Ⅳ. ‘실험인간학’의 요구:
달랑베르의 지식체계 안에서 루소 자서전의 위치

여기에서 자연스러운 의문 하나가 제기된다. 루소의 자기탐구가 특정한 인


식론적 기능을 갖도록 기획되었다면, 경험주의 인식론의 원리를 공유하는 달
랑베르의 학문체계 안에서 그 위치는 어디일까?
『백과사전 서언』과 『철학의 요소』에서, 달랑베르는 자연학과 함께 혁신된
“인간지식체계의 도면 Système figuré des connaissances humaines”을 작성
하고 그 구성과 부분들을 해설한다. 베이컨 Francis Bacon의 체계를 수정하고
재배치하여 만든 달랑베르의 도면은 ‘지성 entendement’의 세 가지 기능에
따라 지식들을 분류한다. 첫 번째 능력은 “순수하게 수동적이고 마치 기계적
인 지식의 수집”18)인 ‘기억 mémoire’으로서, 이 능력에 호응하는 지식은 ‘역
사 histoire’다. 다른 두 능력은 ‘이성 raison’과 ‘상상 imagination’인데, 전자
가 기억에 의해 수집된 자료 즉 ‘직접인식 connaissances directes’을 추론을
통해 가공한다면, 후자는 그것을 모방을 통해 가공한다. 그리하여 ‘철학

18) DERE, p. 102-103.


18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philosophie’과 ‘예술 beaux-arts’이 분리된다. 이렇게 기억, 이성, 상상의 순서


로 배치된 도면은 그 자체로 정신의 경험주의적 발생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
성의 각 능력과 그에 해당하는 지식 안에서는, 가장 단순한 자연물로부터 인
간을 거쳐 신에 이르기까지 대상의 종류에 따라 지식이 분류된다.
이 지식체계에서 루소의 자서전 기획이 기입될 곳을 찾아보자.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나는 기억-역사 범주 안에 한 개인과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관찰결과로서 자서전 작업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성-
철학 범주 중 ‘자연학 science de la nature’, ‘신학 science de dieu’과 구별되
는 ‘인간학 science de l’homme‘에서 자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부터 검토해보자면, 인간학은 다시 두 범주, 인간정신의 기
술을 다루는 ‘논리학 logique’과 인간의 의무를 다루는 ‘도덕학 morale’으로
나뉜다. 도덕학은 다시 보편적인 윤리 개념과 규칙을 다루는 ‘일반도덕학
morale générale’과 인간사회의 법을 다루는 ‘특수도덕학 morale particulière’
으로 나뉜다. 도덕학은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 가면서 이성적인 원
리보다 경험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
내려는 루소의 자서전은 의무나 법을 그 자체로 탐구하지 않기에 달랑베르가
정의하는 도덕학의 일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첫 번째 가능성이 남는다. 인간학보다는 기억-역사 범주에서 자
서전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달랑베르의 체계에서 도덕학을 구성하는 이성의
추론은 그 추론대상으로서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관찰자료를 요구하며, 역
사적 지식이 이 역할을 담당한다. 루소의 자서전은 체계를 배제한 채 관찰을
기초로 역사를 서술한다는 점에서도, 당연히 역사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
달랑베르에게 역사는 철학과 비슷하게 대상에 따라, 즉 그것이 자연을 다루
느냐 인간을 다루느냐 신성을 다루느냐에 따라 ‘자연사 histoire naturelle’,
‘문명사 histoire civile’, ‘종교사 histoire sacrée ou ecclésiastique’로 나뉜다.
그리고 우리는 “문명사” 안에서 ‘회고록 mémoires’이라는 항목을 발견한다.
여기가 루소 자서전의 자리인가? 하지만 우리는 루소가 『뇌샤텔 원고』와 「첫
번째 산책」에서 자신의 자서전과 여타 전기류, 자전적 글쓰기와의 차이를 계
속해서 강조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의 자서전은 인간이 자신의 내
적인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역사 histoires, 전기 vies, 초상 portraits, 성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19

격론 caractères”과 구별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쓰지만 타인의 시선이나 요구


에 종속되어 쓰는 회고록이나 몽테뉴식의 글쓰기와 구별된다.19) 이런 구별은
루소가 자신의 자전적 관찰이 지닌 독특한 지위를 얼마나 잘 인식하고 있는
지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루소의 자기관찰이 다른 모든 인간에 대한 관찰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로 제시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루소의 자서전은 단지 역
사적 자료가 아니라, 역사적 관찰의 조건이며 그것이 가능한지 묻는 최초의
‘실험’이다.
루소 자서전의 이런 독특한 지위를 ‘실험적’이라는 수식어로 설명하는 것
은 전혀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다. 『백과사전』 6권(1756)의, 달랑베르가 쓴
“실험적 expérimental” 항목20)을 읽어보자. 달랑베르는 이 형용사를 통해 체
계에 속박되지 않고 관찰과 실험을 기반으로 지식을 확장시키는 인식방법을
뜻한다. 그에 따르면 비록 고대인들은 근대인들이 그 많은 체계들을 가지고
도 혹은 그 때문에 관찰하지 못한 것을 정확하게 인식했을 정도로 관찰에
능숙했으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관찰과 실험은 과학의 정당한 방법으로 인
정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요구를 분명하게 제기한 것은 베이컨과 데카르트
였으며, 관찰과 실험을 과학의 진정한 방법으로 정립한 것은 뉴턴이다. 뉴턴
은 “기하학을 자연학에 도입하는 기술과, 실험을 계산과 통합시킴으로써 정
확하고 심오하며 분명하고 새로운 과학을 만드는 기술”21)을 보여주었다.
관찰과 실험을 주된 방법으로 삼는 ‘실험자연학 physique expérimentale’의
개념과 역사를 살핀 다음, 달랑베르는 좀 더 수학적인 자연학과 더 실험적인
자연학을 구분한다. 전자에서도 관찰과 실험은 필요하긴 하나 그것의 역할은
일반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형이상학과 순수수학에 의해 밝혀진 이론
을 확인하고, 경험과 이론 사이의 차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머문다.
운동법칙 일반을 다루는 ‘역학 mécanique’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실험자연
학은 “추론으로 그 원인을 알기 힘들고, 그 연관관계가 인지되지도 않으며,
혹은 여러 측면을 통해 고찰한 후에도 아주 불완전하고 드물게만 그 연관을
보게 될 뿐인 현상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우리는 현재

19) OCR I, p. 1149-1150.


20) DERE, p. 253-264.
21) DERE, p. 258.
20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이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고, 겸손하게 사실을 축적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달랑베르는 기압에 대한 연구를 이 실험적 연구의 대표적
인 예로 든다. 기압과 날씨의 관계에 대한 당대의 많은 이론은 관찰과 실험보
다는 추론에 의지하기에 우스꽝스러운 결론만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22) 이
런 연구에서 자연학자는 보통의 관찰로는 모호하게 인식되는 어떤 현상을
실험을 통해 절대적으로 측정하고 결정하여 원리를 도출해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자연학은 “수리물리학적 physico-mathématique”인 것과 “일반적이고
실험적인 général et expérimental” 것으로 구분되고, 여러 개별 과학들은 이
기준에 의해 학문체계 안에 배치된다.23)
달랑베르는 항목 끝에서 매우 흥미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그는 항목 중간
에서 1753년 파리대학 Université de Paris에 실험자연학 교수직이 신설된 당
대의 학문적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평가한 바 있는데, 결론에서는 도덕학, 공
법학 droit public, 역사학의 자리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없었던
‘실험적’ 자연학 교수직을 설립하는 것에서는 외국을 모방하면서, 우리에게
하나도 없는 아주 유용한 다른 세 자리를 설립하는 것에서는 왜 같은 모범을
따르지 않았던가. 도덕학 교수직, 공법 교수직, 역사 교수직이 그것들로, 이
세 주제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이해된 ‘실험적’ 철학에 속한
다.”24) 왜 그런가? 이에 대한 답은 『백과사전 서언』에서 볼 수 있다. 달랑베
르는 인간학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그 연구가 너무
나 필요하고 소크라테스에 의해 권장되었음에도, 이성을 통한 탐구만으로는
인간 자신에게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신비로 남는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천재
들은 바로 그토록 중요한 문제에 대해 고찰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나머
지 사람들보다도 못한 앎에 이르고 만다.”25) 이 진단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
가? 달랑베르는 도덕학을 실험적 철학에 포함시킴으로써 인간들 사이의 일종
의 운동법칙과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도덕학이 추론만으로는 확립될 수 없음
을 암시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도덕학은 실험철학에 속하고, 형이상학

22) DERE, p. 263-264.


23) 이 구별과 분류에 대해서는 『백과사전 서언』과 『철학의 요소』 등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Cf. DERE, p. 81-84 ; OA I, p. 299-345.
24) DERE, p. 264.
25) DERE, p. 85.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21

적이고 선험적인 체계를 우선 배제한 후 관찰과 실험을 일차적인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 이로부터 논리적으로, 도덕학의 구성을 위한 ‘실험인간학’에 대
한 필요가 도출된다.
이것만으로도 루소의 자서전을 달랑베르에게서 암시적으로 요구되는 실험
인간학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루소 자서전의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서는 ‘실험’을 강한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 이미 달랑베르는 “실험적” 항목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험적’ 자연학은 혼동해선 안 되는 두 가지, 즉
엄밀한 뜻의 ‘실험’과 ‘관찰’에 기초한다. 후자는 덜 숙고되고 덜 섬세한 것으
로서 그것을 통해 눈으로 보게 되는 사실들에 한정된다. (...) 반대로 전자는
자연에 더 깊이 침투하여 거기에 감춰진 것을 드러내며, 특정한 방식으로,
물체들의 다른 조합을 통해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어 연구한다.”26) 즉 실험
은 특수한 사실을 통해 일반적 관찰의 모호함과 피상성을 해소한다. 루소 자
서전의 인식론적 기능이 ‘장-자크’라는 특수한 사실 속으로 침투하여 인간연
구에서 관찰의 보편적 오류를 해소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자서전 기획이 엄
격한 의미에서 ‘실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로 루소의 자서전은 단순한 관찰의 모음인 달랑베르식의 역사 범주에 완전히
포함되지 않는다.
달랑베르의 체계에서 루소의 자서전 기획은 도덕학의 추론을 위해 필요한
실험인간학의 출발점으로 규정된다. 그것은 어떤 체계의 편견이나 악의도 없
이 한 인간과 사회의 운동을 관찰하려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인식에 필요한
관찰의 가능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 관찰은 지금껏 아무도 시도한 사람이 없
으며, ‘장-자크’라는 매우 특이한 대상을 통해 가능한 실험적 성격을 가진다.
동일한 경험주의적 전제에서 출발한 달랑베르가 실험자연학을 요구하게 되
었다면, 루소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같은 경험주의 원리 안에서 달랑베르
가 짐작했으나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실험인간학을 요구한다. 이렇게 루
소의 자서전은 그것이 얼마나 자기변호의 욕망에 물들어 있든지, 최소한 그
기획안에서는 그의 사유가 속한 지식체계와 긴밀히 호응한다.

26) DERE, p. 254.


22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Ⅴ. ‘체계적 정신’에서 벗어나기:


방법론적 비유의 진화와 그 인간학적 의미

이제 『뇌샤텔 원고』와 「첫 번째 산책」의 방법론적 비유에 대해 다시 생각


해보자. 우리는 앞에서 카메라 옵스큐라와 기압계의 비유가 타자의 체계화
위협과 자아의 체계화 경향을 배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되었음을 밝혔다.
먼저 자연스러운 질문 하나가 제기된다. 루소를 유럽 지성계 전체에 알린 『학
문예술론』부터, 그는 과학과 예술을 반대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철학자로 간
주되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루소는 자서전 기획을 해설하면서 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비유를 끌어들이는가? 이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루소는 과학
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과학을 비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
히 말해 그가 비판하는 것은 과학 그 자체라기보다 과학의 사회적 효과다.27)
사유의 영역 안에서 과학은 언제나 루소의 주요한 토대다. 우리는 위에서 루
소의 사유와 당대의 경험주의 사이의 밀접한 관련에 대해 이미 말했으므로
이것을 입증하기보다는 참고문헌을 덧붙이고 말 것이다.28)
더 흥미로운 질문은 두 비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제기될 수 있다. 이미
말한 대로 루소의 자서전 기획은 어떤 체계화에 반대하는 경험주의적 인간학
의 설립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고백』에서 『몽상』으로 가면서 체계화에
대한 거부는 더 급진적인 양태를 취한다. 그런데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기압
계로의 방법론적 비유의 이동은 이러한 반체계의 급진화와 어떻게 호응하는

27) Leo Strauss, “L’intention de Rousseau”, dans Pensée de Rousseau, éd. G. Genette
et T. Todorov, Paris, Seuil, 1984, p. 67-94.
28) 루소 사유와 18세기 과학의 관계는 터무니없는 주제도, 미지의 영역도 아니다. 루소는
유물론으로 대표되는 어떤 ‘과학주의’를 비판할 뿐, ‘과학’의 발전에는 민감하며 동시대의
과학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루소 사유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연구들을
참고하라. Alexis Philonenko, “De la bonne intégration. Théorie fondamentale de la
volonté générale”, Rousseau et la pensée du malheur, t. 3. Apothéose du désespoir,
Paris, Vrin, 1984, p. 25-45. Corpus, n° 36, Jean-Jacques Rousseau et la chimie, dir.
B. Bensaude-Vincent et B. Bernardi, 1999. Rousseau et les sciences, dir. B.
Bensaude-Vincent et B. Bernardi, Paris, L’Harmattan, 2003. Bruno Bernardi, La fabrique
des concepts. Recherches sur l’invention conceptuelle chez Rousseau, Paris, Honoré
Champion, 2014.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23

가? 형상의 재현과 수치의 불연속적 측정은 언뜻 보기에 대상의 속성에 따른


차이만을 가질 뿐, 어떤 상태를 기술할 때 주관적인 요소를 최소화한다는 점
에서는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달랑베르의 지식체계는 이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달랑베르의 자연학 한쪽 끝에는 가장 추상적
이고 이성적인 수학이 있고, 다른 쪽 끝에는 기압에 대한 연구로 대표되는
실험자연학이 놓인다. 그런데 “인간지식체계의 도면”에서 볼 수 있듯이 카메
라 옵스큐라의 원리인 광학 optique은 전형적인 수리물리학적 자연학에 속한
다. 달랑베르의 설명에 따르면 실험자연학은 “엄밀히 말해 이론을 기초로 한
실험과 관찰의 수집이고, 반면에 수리물리학적 과학은 수학적 계산을 실험에
적용함으로써 때로는 단 하나의 특이한 관찰로부터 수많은 결론을 추론한다.
이 결론들은 그 확실성으로 인해 거의 기하학적 진리에 접근한다.”29) 이어서
달랑베르는 그 대표적인 예로 광학의 연구를 든다. 즉 카메라 옵스큐라와 기
압계의 비유는 그 기술들이 근거로 삼는 광학과 기상학 météorologie이 “인간
지식체계의 도면”에 놓인 위치의 차이를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카메라 옵스
큐라에서 기압계로의 이동은 달랑베르적인 의미에서 인간학의 ‘실험적’ 성격
이 더 강화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실험성의 강화가 자서전의 반체계
화 양상에 호응한다.
하지만 루소의 기상학은 달랑베르가 지정해둔 자리를 이내 벗어나버린다.
『백과사전』 “실험적” 항목에서 달랑베르가 실험자연학으로서 기상학을 묘사
하는 것을 보자. “일상의 관찰은 공기가 무게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오직 실험만이 그 무게의 절대적 양에 대해 우리가 접근하도록 해준
다. 이 실험이 기체학 aérométrie의 기초이고, 추론이 나머지를 완수한다.”30)
추론이 하는 역할은 현상들을 원리로 환원하는 것으로서, 이에 대한 평가는
『백과사전 서언』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원리들을 더 이해하기 쉽게 해주
는 이런 환원 réduction이 진정한 체계적 정신을 구성하며, 이것을 체계의 정
신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31) 달랑베르에게 관찰과 실험에 기
초한 원리적 환원은 경험주의적인 학문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29) DERE, p. 84.


30) DERE, p. 261-262.
31) DERE, p. 83.
24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는 「첫 번째 산책」에서 루소가 자신의 기상측정과 자연학자들의 작업을 구별


하는 것을 기억한다. “나는 작업들을 기록하는 데 만족할 것이고, 그것들을
체계로 환원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즉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영혼
의 기상학은 체계적 정신이 요구하는 “환원”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18세기의
경험주의적 지성의 요구로부터 벗어난다.
이런 사실은 『몽상』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달랑베르는 원리의 환원
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 한 학문의 원리들의 수가 줄어들
수록, 원리들의 영역은 넓어진다. 왜냐하면 한 학문의 대상은 필연적으로 결
정되어 있기에, 이 대상에 적용되는 원리들은 수가 더 적을수록 그만큼 더
적용범위가 커지기 때문이다.”32) 그렇다면 이런 가능성을 포기하는 『몽상』
의 자기탐구는 실험인간학이되, 적용범위가 넓은 보편적인 인식이 아니라 아
주 좁은 적용범위만을 가지는 특수한 인식을 지향한다. 『몽상』의 특수인간학
은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고 죽음을 앞두고 있으며 이 상황을 느끼고 사유
할 줄 아는 단 한 명의 인간을 위한 것이다. 루소는 『몽상』의 기획에서 타자
의 자리를 완전히 소거함으로써 체계적 정신마저 지양하는 영혼의 상태를
규정하려 한다.
체계적 정신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는 이런 특수인간학이 달랑베르의 체계
안에서 발견되긴 어려울 것이다. 확인해보자. 달랑베르가 『백과사전 서언』에
서 도덕학 부분을 설명하며33) 그것을 일반도덕학과 특수도덕학으로 나눈다
고 이미 보고했다. 이 특수도덕학은 다시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자연법
juriprudence naturelle은 홀로 있는 인간의 의무에 대한 학문이며, 경제법
l’économique은 가족으로 있는 인간의 의무에 대한 학문이고, 정치법 la
politique은 사회로 있는 인간의 의무에 대한 학문이다.” 역시 도덕학의 모든
부분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8년 후 『철학의 요소』에서 도덕학을
다시 논할 때, 달랑베르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구분한다. “도덕의 대상은
넷이다. 인간이 보편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에 대해 가지는 의무, 특수
한 사회가 그들의 구성원들에 대해 가지는 의무, 특수사회들이 서로에 대해
지는 의무, 마지막으로 각 특수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그리고 그들

32) DERE, p. 83.


33) DERE, p. 176.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25

이 속한 국가에 대해 지는 의무.”34) 이 네 가지 범주는 각각 ‘인간의 도덕학


morale de l’homme’, ‘입법자의 도덕학 morale des législateurs’, ‘국가의 도
덕학 morale des états’, ‘시민의 도덕학 morale du citoyen’이라고 명명된다.
그런데 『백과사전 서언』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 분류방식이 아니다. 달랑베
르는 여기에 한 가지 범주를 추가한다. 그것은 ‘철학자의 도덕학 morale du
philosophe’이다. “그것의 목적은 우리 자신을 타인과 상관없이 행복하게 만
들기 위한 생각의 방식”35)이다. 이런 비사회적인 도덕학의 개입은 의아하다.
비록 그 내용이 전통적인 현자의 윤리와 다르지 않다 해도, 달랑베르는 철학
자의 도덕학을 통해 특수도덕학의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사
회적 존재로서의 인간만을 다루는 『백과사전 서언』의 경험주의적 인간학을
은연중에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달랑베르의 묘사를 계속 읽어보자.

입법자의 도덕학과 국가의 도덕학은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만 관련되고, 인간의


도덕학과 시민의 도덕학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 관련된다. 하지만 이 도덕들은
말하자면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분명하고 확연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철학자
의 도덕학은 오직 공정한 정신과 강한 영혼만이 포착할 수 있는 더 섬세한 뉘앙스를
가진다. 풍속학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이것은 사유하는 모든 사람이 지향해야 하는
풍속학의 목표이고 주요한 결실이다. 이 학문의 요소가 끝나는 곳이 바로 여기다.36)

물론 달랑베르는 루소가 『몽상』에서 시도하는 자아에 대한 극단적인 실험


을 상상하지 않는다. 루소는 자신이 구축한 자연상태/사회상태의 존재론을
토대로, 불행과 죽음 사이에 있는 자아가 누릴 수 있는 존재방식에 대한 탐구
를 비사회적인 글쓰기를 통해 수행하려 한다. 하지만 루소의 존재론 또한 18
세기의 경험주의를 배경으로 고안된 것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확인한 것처럼
루소는 자아에 대한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시대적 전제 안에서 사유하
고 쓴다. 다만 그는 체계적 정신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인 달랑베르가 뒤늦게
인간학 끝에 추가하는 비사회적인 인간학의 오래된 요구와 가능성을 일찍부
터 감지하고 있었으며, 『몽상』에서 그것을 단지 전통적인 현자의 윤리학으로

34) OA I, p. 211.
35) OA I, p. 231.
36) OA I, p. 233.
26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수렴되지 않는 실험적 글쓰기로 표현한다. 이것이 광학에서 기상학으로, 하


지만 의도적으로 체계화하지 않는 기상학자의 작업으로 이동하는 방법론적
비유의 마지막 의미일 것이다.

Ⅵ. 결론

우리는 『고백』과 『몽상』의 기획에서 자서전 쓰기 방법의 모델로 제시된


두 비유를 통해 루소 자서전의 문제의식과 진화를 살펴보았고, 루소와 그의
자서전이 18세기 ‘체계적 정신’의 지식체계와 종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
해보았다. 이를 위해 루소의 자서전 기획을 달랑베르와 함께 읽는 것은 필연
적이었다. 루소의 지적 배경이 되는 계몽주의의 경험주의 정신을 그보다 더
체화한 사람은 드물고, 그러한 철학을 기초로 인간지식의 체계를 새롭게 설
계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철학자는 체계의 정신에 대한 반발을
통해 함께 시작했음에도, 철학적, 실존적 여정의 차이로 인해 체계적 정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태도는 달랐다.
문학적 진실이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18세기에, 자서전이라는 장르
는 최소한 그 기획단계에서는 진실을 대상으로 하고 진실에 대해 도전하는
이상 문학보다는 오히려 철학이나 역사와 더 관련된다. 따라서 진실의 인식
과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루소의 자서전 기획은 18세기의 경험주의적 전제와
분리될 수 없다. 루소가 규정하는 자서전 기획을 살펴본 다음에 달랑베르의
지식체계에서 상상-예술 범주에 넣을 여지는 없다. 개인적 망상이나 욕망의
개입을 부정하지 않으나, 망상이나 욕망이 구성되고 표현된다면 그러한 작용
또한 당대의 경험주의적 세계관을 토대로 하며 거기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자연학에 대한 참조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즉흥적으로 보일지라도 루소
와 그의 자서전 기획이 18세기 사유 일반과 맺는 미묘한 관계를 드러내는
기호가 된다.
우리는 이 연구에서 루소 자서전의 문학적인 혁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글의 결론을 그의 자서전 저작들의 모든 문장
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백』에서 『몽상』으로 이어지는 글들의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27

새로움, 혹은 이 텍스트들을 읽는 현대인의 놀라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


구가 있다. 우리는 다만 이 모든 새로움의 전제, 출발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왜냐하면 최초의 현대적 자서전 작가는 또한 당대의 가장 명민한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28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 참고문헌 ❚

d'Alembert, Jean le Rond, Discours préliminaire de l’Encyclopédie et articles de


l’Encyclopédie, éd. M. Groult, Paris, Honoré Champion, 2011.
, Œuvres de d’Alembert, 5 vols., Paris, Belin, 1822.
Cassirer, Ernst, La philosophie des Lumières, tr. P. Quillet, Paris, Fayard, 1966.
Charrak, André, Rousseau. De l’empirisme à l’expérience, Paris, Vrin, 2013.
Le Ru, Véronique, “Introduction. Portrait de d’Alembert en habit de philosophe et
de savant”,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93(1), 2017, p. 9-18
, Jean le Rond d’Alembert, philosophe, Paris, Vrin, 1994.
, “La philosophie “expérimentale” de d’Alembert”, Corpus, 38, 2001, p.
65-74.
Martineau, Emmanuel, “Nouvelles réflexions sur les “Rêveries”. La Première
Promenade et son “projet””, Archives de Philosophie, 47, 1984, p. 207-246.
Paty, Michel, “Les recherches actuelles sur d’Alembert”, dans Analyse et dynamique.
Études sur l’œuvre de d’Alembert, éd. A. Michel et M. Paty, Laval, Presses
de l’Université Laval, 2002, p. 25-93.
, “Rapport des mathématiques et de la physique chez d'Alembert”,
Dix-huitième siècle, 16, 1984, p. 69-79.
Philonenko, Alexis, “Essai sur la signification des Confessions de J.-J. Rousseau”,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74(1), 1974, p. 1-26.
Rousseau, Jean-Jacques, Œuvres complètes, 5 vols., Paris,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59-1995.
Encyclopædia Universalis : http://www.universalis-edu.com/
Encyclopédie ou 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 édition
numérique collaborative et critique : http://enccre.academie-sciences.fr/ency-
clopedie/recherche/
달랑베르와 함께 장-자크를 ■ 29

Résumé

Jean-Jacques avec d’Alembert : sur le projet


“expérimental” de l‘autobiographie de Rousseau

KIM Younguk

L’objet de notre étude est d’expliciter le fondement empiriste du projet


autobiographique de J.-J. Rousseau, dont la position face à l’“esprit
systématique” du XVIIIe siècle se déplace subtilement par le passage des
Confessions aux Rêveries du promeneur solitaire. Nous y procédons en deux
temps : tout d’abord, par un essai de définir, dans le “système des connaissances
humaines” de d’Alembert, la place du projet autobiographique rousseauiste
dégagé du Manuscrit de Neuchâtel, pour intégrer ce projet dans le présupposé
philosophique de l’époque ; puis, par une observation de la fuite de Rousseau
hors de ce présupposé projetée dans La Première Promenade, pour évaluer
cette déviation par rapport à la position de d’Alembert dans les Éléments
de philosophie. Ce qui est intéressant, c’est cette évolution de l’idée
autobiographique est accompagnée d’une autre évolution du modèle
méthodologique : de la chambre obscure des Confessions au baromètre des
Rêveries. Et nous pensons que la concordance des deux évolutions n’est jamais
anecdotique, mais significative. L’analyse de cette relation nous mène à la
conclusion suivante : que la nature du projet autobiographique comme première
tentative de la science de l’homme “expérimentale” montre que ce projet
se forme dans une perspective épistémologique des Lumières qu’est la science
empirique ; mais que l’évolution du projet autobiographique se fait avec une
critique de cette perspective.

주제어 : 경험주의(empirisme), 계몽주의(Lumières), 실험(expérience), 실험적(expérimental),


자서전(autobiographie), 지식체계(système des connaissances), 체계적 정신(esprit
30 ■ 불어불문학연구 113집 2018년 봄호

systématique)

* 논문 투고일: 2018년 1월 15일 * 심사 완료일: 2018년 2월 19일 * 게재 확정일: 2018년 2월 22일

You might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