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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과학기술사
조선시대의 석회 사용
글 _ 송 종 택
단국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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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00~1,500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이집트의 시멘트를 기재로 하는 콘크리트용 골재로서 그 수요증가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또는 그리스·로마의 신전 등은 거 의 요인이 되었다.
대한 석회석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또, 고대 그리스 밀
로의 비너스 상이나 16세기 초 르네상스시대 미켈란젤로 2.2. 석회의 사용
의 모제 조각 등은 백색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대리석이 석회를 사용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10,000년 전으로
다. 이와 같이 석회석은 고대 중세에 있어서 건축문명이 거슬러 올라간다. 터키 동부의 Cajenu 지역의 유적은
나 예술의 소재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데, 이것 7,000년 전에서 14,000년 전의 것으로 그 바닥이 석회
은 석회석이 지닌 장식성, 가공성, 내구성, 균일성 등의 특 모르타르로 되어 있다. 근동에 8,000년 전 석회가 사용된
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확실한 증거가 있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Lepenski vir에
서기 75년에 로마인들은 석회석을 석회와 함께 도로 서 6,000년 전의 바닥이 1,960년 발굴 되었는데 그것은
건설에도 널리 사용하였다. 1세기 동안 석회석은 건설· 석회, 모래, 점토, 물로된 모르타르로 만들어진 것이다.
건축에서 골재로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석회석은 석회에 의한 점토의 안정화 공법은 5,000년 전 티베트에
로마시대 이후 석회를 결합제로 사용하는 콘크리트의 골 서 Shersi 피라미드의 건축에 사용 되었다. 석회는 역시
재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시멘트를 결합제로 사용하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건설에 석회석과 함께 사용 되었고
콘크리트의 골재로 이용되어지고 있다. 1세기 로마인들 그리고 중국의 만리장성의 건설에도 사용 되었다.
은 니회(泥灰, marl)및 연질백악이 토양의 알칼리화에 최근 발견된 유적의 분석 결과 신석기 시대에 이미 석
유익함을 알게 되었다. Mainz 북쪽에 있는 Ubian 사람 회가 사용 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신석기
들이 백토[석회질 니회토(泥灰土)]를 자신들의 경작지를 시대 요새도시로 알려지고 있는 Jeriko 발굴시 발견된 석
기름지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였음을 Pliny가 보고하고 회콘크리트의 부착물의 방사선 동위원소 분석결과 기원
있다. 전 7,000년 전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Yiftah에서의
고순도의 석회암은 많은 세기에 걸쳐 석회소성용, 유 석회콘크리트(Fig. 2) 발견 등으로 석회콘크리트 기술이
리제조용 그리고 금속제련산업에 이용되었다. 1824년 포 이미 보급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석회계 시멘트의
틀랜드시멘트의 발견은 석회석이 시멘트 원료로서, 또 뿌리는 10,000년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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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내외라 할 수 있다. 이것으로는 건축물과 능묘의 시설 고구려 고분 회벽도 회삼물 벽으로 보이는데, 천 수백
에도 넉넉하지 못하여 일반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량의 공 년 동안을 습기찬 지하에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 견
급은 자연 억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도가 가히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다.
벽을 바르는 것을 분벽(粉壁)이라고 한다. 면회(面灰)
3.3. 석회(강회)의 시공방법 로 분벽 하였다고도 하는데 이것은 궁궐이나 사찰 등 고
전통적으로 흙을 써서 하는 일은 그 종류에 따라 다르 급 건물의 벽 치장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면회에 쓰
다. 백토와 석비례는 판축(版築)이나 입사기초의 재료로 이는 흙손은 박달나무 등으로 별도로 만든다.
좋고, 백토(白土)는 굴림백토를 만들어 사벽(砂壁)하는데 기구(용구)로는 간단한 것이 사용되었으며, 흙손, 면토
쓴다. 굴림백토란 모래가 섞인 흙을 진흙과 굵은 모래와 (面土) 흙손, 흙받기, 흙체가 있는데, 흙손은 쇠 흙손, 나
섞으면서 이겨서 쓰도록 되어있는 것인데, 모래가 고루 무 흙손이 있으며, 작은 것과 큰 것이 있다. 주걱은 사무
섞이게 하기 위하여 흙덩이를 자꾸 되풀이하여 굴린다. 리를 섞고 푸기위한 것으로, 이 또한 나무 주걱과 쇠 주
굴릴 때 담벼락에 치는 방법이 있고 모래는 어레미로 치 걱이 있다. 흙체는 흙과 모래를 치기 위한 체로서, 고운
거나 해서 굵은 것은 가려낸다. 점력이 중화되고 모래가 체와 굵은체가 있으며, 굵은체를 어레미, 얼금체라고도
알맞게 섞여서 사벽하면 트지 않고 마르면 색도 희끄무 한다. 이외에 팡개 (새 벽흙을 떨어내는 참대쪽 또는 철
레하거나 흰색이어서 보기에도 좋다. 차지고 점력이 강 편) 등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으
한 흙은 마르면 튼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여물 며, 수평(水平), 자, 줄눈자, 실, 긴 오리대목, 결속철물 등
을 섞어 쓴다. 여물로는 식물성인 삼(麻)이나 짚, 동물성 이 있었다고 한다.
인 털(毛)이 사용된다. 짚여물이나 삼여물은 초벽을 치거 참고로 현재 문화재 수리·보수에서 강회가 사용되는
나 담장을 쌓거나 하는 일에 주로 쓰인다. 털여물은 고급 곳은 기초공사(Fig. 3), 기단공사, 벽 미장공사, 지붕공사,
의 담벼락이나 천장을 앙토(仰土)하는 회사무리 반죽에 성벽공사(Fig. 4)에서 주로 이용되고 있으며, 시공방법은
쓰인다.
구워진 상태의 생석회는 덩어리 모양인데, 이것을 강
회라 한다. 강회를 필 때는 흙더미위에 강회를 퍼얹고 가
마니를 덮는다. 그리고 물을 부으면 김이 나면서 덩어리
의 석회가 부셔져 가루가 된다. 이것을 분회(粉灰)라 한
다. 분회는 물을 먹은 상태이다. 이것으로 회사무리를 한
다. 회삼물 또는 삼화토라 부르는 이 가공 혼합물은 회와
백토와 고운 모래의 세 가지를 같은 비율로 혼합하여 만
드는 것인데, 만드는 과정을 회방아 찧는다고 한다. 분회
가 지닌 수분과 백토와 고운 모래가 지닌 수분만으로 자
꾸 회방아 찧으면 좋은 회삼물이 된다. 이것은 굳으면 트
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강도가 마치 돌과 같아서 회삼물
로 만든 능묘의 회광(灰壙)을 깨뜨릴 때는 정(釘)으로 쪼
아도 잘 깨뜨려지지 않을 정도이다. Fig. 3. 기초공사에서 강회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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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맺는말
송종택
세계속의 석회사용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고, 우리나라
1968년 한양대학교 요업공학과 (공학사)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고문헌에서 나타난 석회석의 산지, 1980년 일본동경공업대학 (공학박사)
석회의 제조에 대한 기록, 석회의 시공방법 및 용도에 관 1980년~1982년 (주) 금강 중앙연구소
(책임연구원)
하여 소개했다. 1982년~현재 단국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2003년~2005년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석회는 최초의 시멘트 재료로서 인류사에 등장하여 토 (관장)
목·건축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19세기 포틀랜 2005년 한국세라믹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