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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마의 동방선교역사 St Thomas East Mission [3]

성 도마의 동방선교역사는 에데싸에서 인도북부지역 오늘날에는 서부 파키스탄의


탁실라 (Taxila)에서부터 본격적인 동방선교로 알려졌다. 오늘날 파키스탄 교회사
에서는 특별히 성 도마의 동방선교역사에 관한 강의가 매우 빈번하다. 그 중에
여기에 파키스탄 교회사의 강의에서 두 번째 강의제목을 소개한다. “성 도마, 인
도의 사도 (탁실라)” 로 되어 있는 파키스탄 교회사 강의에서는 본격적인 성 도마
의 인도선교에 관한 역사가 매우 소상하게 거론되고 있다. 예루살렘(Jerusalem) –
에데싸(Edessa) – 파키스탄 탁실라(Taxila) 이러한 성 도마의 여행의 경위가 확실하
다고 주장되고 있다. 오늘날 탁실라는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Islamabad)의 인근도시로 알려져 있다. 물론 탁실라가 더 오래된 유서깊은 도시
인데 파키스탄의 수도가 바로 이 유서깊은 고대 문명의 도시인 탁실라 옆에 이슬
라마바드라는 대규모의 도시 곧 파키스탄의 수도를 건립하였다. 이슬라마바드라
는 파키스탄의 수도를 건설할 때에는 제일 먼저 그곳에 성 도마의 교회를 세웠다.
1960년도에 카라치라는 도시를 이슬라마바드로 개정하여서 파키스탄의 수도로
정하였는데 바로 이때에 성 도마의 교회부터 건설하였다. 그만큼 그 지역에 성
도마가 내방하여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했다고 하는 역사를 중요시 했다는 이야
기가 된다.

교회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가 제일 먼저 성 도


마가 내방하여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사건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인
상을 주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슬라마바드의 옆도시 탁실라 (Taxila)에 성 도마
가 머물러서 인도철학과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였던 것을 기리면서 작은 규모이
지만 성 도마의 기념교회가 1960년도에 이슬라마바드에 세워진 것이다. 인도는
문화의 전통이 오래되었고 힌두성현들과 불교신앙이 개화기에 들어 종교행사들이
왕성했던 때에 성 도마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만일
에 그 파키스탄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나타나지 않고 그의 제자라고 하는 위임
받았다는 인물이 자신을 들어낼 때에 이는 고도의 문명이 전해진 탁실라에서는
수용될 수 없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성 도마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가? 그의 예
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사도의 직분을 맡았다고 하는 자아의식 등이
매우 강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대 문명의 세계인 탁실라에서 무명한
서방에서 온 도마라는 인물의 모든 언행이 수용이 되기가 쉽지 아니했을 것이다.
1822년에 발견된 “성 도마의 행적 (Acts of St Thomas)”는 시리아어로 기록된 주
후 3세기경에 기록된 매우 오래된 문헌이었다. 거기에서 신화적인 에피소드가 거
론되어 있는데 무엇인가 성 도마가 이적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탁실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또 그 지역에 기독교의 복음이 유
포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성 도마의 행적 (Acts of St Thomas)”에 기록된 내용에
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에데싸에서 성 도마는 능력이 있는 건축사로
발탁이 되어서 은 30량을 받고 탁실라로 안내되었다고 한다. 성 도마를 파키스탄
의 탁실라로 안내한 장본인 상인이었는데 그의 이름이 전해온다. Abban 으로 불
려지는 상인은 도마를 데리고 탁실라의 왕국의 곤도파레스 (Gondophares) 왕에
게 소개하였는데, 곤도파레스왕은 도마에게 화려한 궁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도마는 거액의 착수금도 받고 일꾼들도 지원 받아서 매우 아름답고 화려한 궁을
지어주기로 곤도파레스 왕과 약속하였다. 그런데 곤도파레스 왕에게는 도마의 행
위가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되었다. 즉 도마라는 사람이 돈을 다른데 사용하고 또
궁을 짖는 일은 전혀 시작도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곤도파레스
왕은 평민으로 변장하고 도마가 사람들과 만나는 장소를 정탐한 결과 도마는 왕
이 준 거액의 착수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임금님 곤도파레스의
하사금입니다. 훌륭하신 임금님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돈을 마구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궁을 짖는 일은 시작도 안하고 있었다. 그래서 곤도파레스왕은 도
마를 불러서 궁을 짖는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언제 궁이 세워지게 될 것인가를
물었다. 도마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묻는 왕에게 자신만만한 어조로 “궁이 언제 다
완공되는가 하면 임금님께서 죽으신 이후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임금님께서 그
궁에 들어가 행복하게 사시려면 우선은 죽으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였을 때에
왕은 매우 불쾌하여서 도마에게 거액의 착수금도 주고 일꾼들도 다 지원했는데
사기를 당한 것으로 생각되어서 즉각 도마를 투옥시켰다. 그리고는 신하들과 의
논하여서 도마를 사형에 처하기로 정하고 사형일자까지 정하였다. 그런데 왕의
친동생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곤도파레스 왕은 도마의 사형집행을
불가불 연기하지 않을 수 없이 되었다. 그런데 장례식 직후에 동생이 다시 살아
나서 곤도파레스에게 이야기 하는데 의하면 자기는 하늘나라에 갔었는데 거기에
서 매우 아름다운 궁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들에게 저것이 누구의 궁이
냐고 물었을 때에 그것은 지상의 곤도파레스왕의 궁이라고 이야기 하더라는 것이
다. 그래서 곤도파레스왕은 동생의 그러한 이상스런 이야기를 예의주시하여 듣고
나서 투옥된 도마를 불러내서 궁을 짖는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때에 도마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궁을 다 지었다고 이야기 하면서 곤도파레스
왕이 거할 궁을 하늘나라에다 건설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때에 곤도파레스는 그
하늘나라의 궁이 어떻게 생겼는가고 물었다. 도마의 설명과 죽었다가 살아난 동
행의 이야기가 서로 일치하여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곤도파레스 왕
은 다시 도마에게 물었다. 왜 내가 살아야 하는 궁을 지상에다 짖지 아니하고 하
늘나라에다 지었는가고 물었다. 그때에 도마는 우리의 인생은 제한되어 있어서
이 지상에서 잠시 거하는데 아름다운 궁을 지어 놓아도 그 안에서 매우 짧은 시
간동안 살다가 죽으면 그 궁은 결국 남의 것이 되는게 아닌가? 하늘나라에서 우
리는 영원히 살게 되는데 영원히 사는 곳에서 아름다운 궁에 거하는 것이 더 좋
지 않겠는가고 말하였다. 그때에 곤도파레스 왕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면 그 하늘나라에서 어떤 법이 통용되는 곳인가를 물었다.
바로 이때에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즉 천국에 대한 비유들을 낱낱히 알
려 주면서 하늘나라에 들어 가려면 이러한 가르침을 남겨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곤도파레스왕은 도마에게 세례를 받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개종되었다고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신화적인 내용으로 여겨
지만 성 도마에게 일어난 이러한 이야기로 인하여서 탁실라 근교의 세 개의 왕국
은 모두 다 기독교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성 도마의 행적”이
라는 글 속에 보여졌다. 아래에는 곤도파레스라는 왕이 실존했던 인물이었음을
입증하는 당대에 사용되었던 동전을 제시한다. 동전에 보여지는 인물의 모습이
곤도파레스 왕의 모습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신비스런 이야기가 성 도마
의 초인간적인 면모 즉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제자라고 하는 것이 확증
되었다고 하는 내용이 “성 도마의 행적”이라는 글에 포함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파키스탄 교회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다. 곤도파레스왕은 바

로 탁실라 근교에 있는 세 개의 왕국들 중에 하나로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곤도파레스왕의 모습이 담긴 동전 성 도마 당시에 유포된 동전

성 도마가 파키스탄의 고도 문명도시인 탁실라에 체류한 사건은 파키스탄의 교회


사에서 매우 중요시 되고 있다. 최근 2013년도에는 파키스탄교회의 신학자 살만
라쉬드 (Salman Rashid)가 “탁실라의 성 토마스 (St Thomas in Taxila)”라는 저서를
발표하여서 성 도마의 파키스탄선교에서 공헌한 매우 상세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바로 거기에 자주 인용된 곤도파레스와 성 도마와의 신비스런 이야
기 곧 하늘나라에 지은 곤도파레스의 궁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적인 면모라고 주
장하고 있다. 성 도마는 탁실라에서 단순한 유학생활만을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
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인 선교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음이 확실하
였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파키스탄에서는 성 도마의 기독교복음을 전파한 역사적인 사실과 기독교
의 복음이 기독교교회의 초창기에 선포된 것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파키스탄은 오
늘날 기독교국가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과 신학자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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