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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기

잔혹한 맹수의 목줄

62 화.

“……!”
급기야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못했다.
물 밖에서 죽어 가는 물고기처럼 입술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어윈이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 계속 말씀해 보십시오. 시간은 여유로우니까요. 아, 답답하다고요?
그러고 보니 창문을 닫아 두셨더군요 . 환기는 환자에게 아주
이롭습니다. 그런데, 어딜 가십니까?”
어 윈이 그 렇게 말 하며 목 덜미 를 끌어 올리 자 , 콜리 너의 육 중한
체격이 지푸라기처럼 허공에 들렸다.
콜리너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도 ,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발끝이
연신 허공을 헤집었다.
“창문을 열고 싶다고요? 뭐, 저는 괜찮습니다.”
“……!”
“이제 와서요? 흐음,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느끼나 보군요 .
좋습니다. 계속해 보십시오.”
어윈은 바깥까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하며 뚜벅뚜벅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있던 콜리너가 돌연 축 처졌다 .
입이 헤 벌어지면서 혀가 길게 튀어나오고 침이 줄줄 흘렀다.
우드드득. 목뼈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러자 마침내 동공이 풀어지면서 희미하게 남아 있던 생명의 빛이
꺼졌다.
어윈은 손아귀에 들린 콜리너를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차갑게
냉 소하 다가 더 러운 쓰 레기 를 내동 댕이 치듯 힘 을 잃은 몸 뚱이 를
창문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와장창!
삽시간에 창문이 깨어지면서 바닥으로 낙하한 육중한 몸뚱이가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찔리고 쪼개지는 끔찍한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와 동시에.
“꺄아아아악!”
“꺄악!”
사건 사고마다 양념처럼 빠지지 않는 높다란 비명과 경악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의장님!”
“주인님!”
벌컥, 콜리너의 침실 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무슨 일입니까!”
시종들과 기사들이 실내로 진입했을 때, 어윈은 팔짱을 낀 채로 긴
다리를 벌리고 느긋하게 안락의자에 앉아 깨진 유리창 사이로 휑한
바람이 부는 창문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어, 어, 어……!”
직속 시종이 입을 틀어막으며 비명을 삼키는 가운데, 다른 시종
하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엉망으로 부서진 창가로 다가갔다가 그
아래를 내려다보고서 참담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뒤따르던 기사와 병사들도 앞서 창가에 선 시종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헉 , 소리를 내거나 ,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
이마를 짚는 등의 세세한 반응만 조금씩 달랐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원으로 이어지는 1 층의 마당에는 어떤 조화인지
수레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수목과 관목을 다듬는 작업이 예정돼
있었는지 수레 가득 갈퀴며 쟁기가 날카로운 날붙이를 삐죽삐죽
벌리고 켜켜이 쌓여 있었다.
콜리너는 창밖으로 떨어지자마자 날붙이에 전신이 찔렸는지 벌집이
되었고,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폭포수처럼 뜨거운 선혈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어윈 단장님.”
겨우 공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린 뮌스 파의 기사 하나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글쎄.”
어윈은 무표정하게 어깨를 으쓱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난들 알겠나.”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게 뻥 뚫린 채로 삐죽삐죽한 유리 조각이
폐가의 거미줄처럼 널린 창틀을 턱짓했다.
“ 의장님과 대화 중이었는데, 갑자기 창문으로 돌진하더니 그대로
뛰어내리더군.”
“…….”
누가 봐도 명백한 오류투성이의 설명이었지만 , 죽은 자가 말이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한순간 따르던 우두머리를 상실한 기사가 망연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뭐,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지.”
어윈은 건조한 눈길로 푸른 하늘을 흘깃하며 덧붙였다.
“ 죽기에 딱 좋은 날이지 않나. 화창하고, 맑아서.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나 보군 ,
흐음.”
조용하고 평온했던 정원은 부랴부랴 사태를 파악하고 공황에 빠진
사람들이 허둥지둥하며 일으킨 소란으로 어수선해졌고, 이내 반워트
백작성 전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

“어윈 님께서 보냈다고요?”


“그래요.”
엠마는 시녀들이 갑작스레 별채를 찾아왔을 때 내심 놀랐지만 ,
표정을 여상하게 단속했다.
시녀들은 남의 집 고양이처럼 경계심 어린 얼굴로 엠마를
힐끗하다가 제나를 발견하고서 흠칫 놀라 구석으로 가서 섰다.
“왜요?”
“네?”
제나의 물음에 흑발의 시녀가 얼른 반문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모르죠.”
“ 두 사람, 카리나 백작 부인의 시녀들이잖아요 . 이곳에는 아무런
용무가 없을 텐데, 어윈 님이 보냈다는 게 진짜예요?”
“그럼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겠어요?”
흑발의 시녀가 발끈했다 . 그러자 제나가 의혹을 담아 고개를
기울였다.
“백작 부인께서 보낸 건 아니고요? 염탐하라고.”
“아니에요. 정말 단장님께서 이쪽으로 가 있으라고 명하셨어요.”
“흐응.”
탐탁지 않아 하는 제나의 시선에 움츠리던 금발의 시녀가 요리조리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몸을 가늘게 떨더니 엠마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허먼 양.”
“네?”
“잠시 마님께 다녀와도 될까요?”
“어윈 님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 않았나요?”
엠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긋 웃었다.
그에 금발의 시녀는 불편한 듯 몸을 배배 꼬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 그렇긴 하지만, 마님께서 저희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하실 것
같아서요. 여기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고 금방 돌아올게요.”
“안 돼요!”
허락이 떨어지면 냉큼 별채를 벗어나려는 기색이 엿보이는 금발
시녀의 앞을 막아선 것은 제나였다.
“제가 다녀올게요. 아. 가. 씨.”
제나는 시녀들에게 호칭을 똑똑히 들으라는 듯, 한 음절 한 음절
끊어서 말하고서 휙 돌아 나갔다.
하지만 기다림은 잠시뿐이었다.
본관으로 향했던 제냐가 창백한 얼굴로 별채에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이야?”
엠마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자, 제나가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 그게, 콜리너 의장님이…….”
더듬거리던 제나가 마저 말을 내뱉은 순간 시녀들의 안색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추락하셨어요.”
“……추락?”
엠마는 언뜻 그게 무슨 뜻인지 즉각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어서 제냐가 손가락을 높이 들었다가 다른 한 손바닥에 메다꽂는
시늉을 하자 바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정말이지 말 그대로였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추락이었다.
“아…….”
어떤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파악하자마자 제나 만큼이나 당황한
엠마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눈을 깜빡였다.
그런 두 사람을 앞에 둔 시녀들은 황급히 눈짓을 교환했다.
“저희가 급히 가 봐야겠어요!”
“마님께서 지금 저희를 찾으실 거예요!”
“갈게요!”
엠마는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시녀들에게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아니. 둘 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요.”
“그, 그래도, 큰일이 생겼으니 저희가 얼른 가서 얼굴을 비쳐야
마님께서 안심하실 거예요.”
시녀들을 향해 엠마가 단호히 말했다.
“그래서, 어윈 님의 지시를 어길 참이에요? 지금 제나더러 가서 이를
단장님께 알리라고 할까요?”
“……아, 아니에요.”
엠마의 강경한 태도에 시녀들이 흠칫하며 고개를 저었다.
콜리너에게 발생한 일은 어윈이 본관으로 향한 후 일어난 사달이다.
혹여나 어윈과 관련된 일일지도 모르니 , 일단 시녀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중요했다.
“어윈 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해요.”
제나와 눈빛을 교환한 엠마는 시녀들이 주저하는 틈을 타 그녀들을
방에 가두고 재빨리 문을 잠가 버렸다.
굳게 닫힌 문에 등을 돌리고 서자, 시녀들이 다급히 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저기요!”
“문을 열어 주세요!”
방문을 통해서 퉁탕거리는 타격음이 그대로 전해졌지만 , 별채의
문들은 본관과 마찬가지로 견고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죠?”
제나가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이에 엠마는 결연한 표정으로 창밖을 건너다보며 말했다.
“어쩌긴. 어윈 님이 오시거나 다른 소식이 당도할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해야지.”

***

콜리너가 추락해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카리나 백작


부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어윈이 있었다고요? 아악!”
카리나는 비명을 지르며 제어되지 않는 화를 폭발하려는 듯 양손을
허공에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어떻 게 ! 어윈이 들어가서 콜리너와 단둘 만 있 겠다는 걸 그 냥
내버려 뒀단 말입니까!”
“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의장님께서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으시다고
저희들더러 물러가라 지시하셔서…….”
그 자리에 있었던 집사장과 직속 시종이 우물쭈물하자 , 카리나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얼굴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렸다.
입술을 꾹 문 채로 잘게 떨리는 안면 근육 탓에 , 아름다운 얼굴이
일순 악귀처럼 보였다.
“너는!”
카리나는 콜리너의 직속 시종을 노려보며 삿대질을 했다.
“제 주인도 지키지 못하고 어디서 뻔뻔하게 살아 있지?”
“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날 일이야?”
드 르륵 , 카리나는 집무실 책상 서 랍 을 열고서 둘둘 말려 있는
매끈한 가죽 더미를 꺼냈다. 반질반질하게 길을 들인 채찍이었다.
무수한 가닥으로 갈라진 끝부분은 날카로운 금속 피스가 자잘하게
박혀 있어서 우둘투둘했다.
“마, 마님.”
시종이 겁에 질린 채로 카리나를 올려다보자, 카리나는 집사장에서
매서운 눈짓을 보냈다.
“마님? 어디서 뚫린 입이라고!”
“아악!”
집사장이 시종을 붙들자마자, 촤촥! 공기를 흉포하게 할퀴는
파공성과 함께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방적인, 마구잡이의 폭력이 행해졌다.
잠시 후, 차오르는 숨을 씩씩거리며 뱉어 낸 카리나가 얼굴에 튄
혈흔을 손등으로 닦으며 집사에게 말했다.
“ 지하 감옥 일은 어쩔 수 없어서 덮었다지만, 이 일은 간과할 수
없어요.”
“……예.”
집 사장 밀 러는 순 식 간 에 피떡 이 되어 버 린 시종 을 겁에 질 린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채찍에 박힌 금속 피스가 무시무시하게 휘둘러지는 통에 살갗이
터지고 근육이 찢어진 자리로 쉼 없이 피가 흘렀다.
얼굴이 뭉개지고, 상반신은 찢긴 옷감과 살덩이가 한데 뭉쳐서 언뜻
보면 잘게 다져진 고깃덩이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밤 고열이 난다면 이 시종의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울 터다.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찌르자,
밀러는 그 어느 때보다 정중하고 예의 바른 자세로 백작 부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이에 카리나가 분노로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단언했다.
“나는,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영주 권한을 이용해 단장을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할 거랍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전부 다 모이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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