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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손

글쓴이ㆍ W. W. 제이콥스
번역ㆍ오성진

Part 1

모든 것이 기분 나쁠 정도로 차갑게 젖어있는 밤. 래버냄 빌라, 블라인드가 모두 열려있는


거실만큼은 바깥과 다르게 벽난로속 불꽃이 환하게 타오르며 따뜻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체스경기가 한창이었는데 그중 아버지는 게임이 조금 더 박진감
넘치길 바랬는지 자신의 왕을 굉장히 날카롭고 위험한 지역에 계속해서 밀어넣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구석 벽난로 앞에서 평화로이 바느질을 하던 늙은 여인이 그에게
나무라듯이 한마디 던질 정도였다.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화이트씨. 아들이 실수가 벌어진 현장을 발견하지
못 하게 주의를 산만하게 하려는 어설픈 노력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바람소리를 잘
들어보렴."

“듣고 있어요,” 아들이 말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가며 표독한 눈빛으로 보드를 살피던
아들은 무언가 발견한듯이 읊조렸다. “체크…...”

“오늘 그 놈이 올 수 있을런지 정말 모르겠구나, 이런 날씨로는 힘들 수도 있겠어.” 여전히


아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테이블 위에 올린 손을 움직이던 아버지가 말했다.

“메이트.” 아들이 답했다.

“이 주변에서 이 지역이 최악일거야 아마,” 화이트씨는 뜬금없는 화와 역정이 섞인


목소리로 성질을 내며 외쳤다. “세상에 사람이 살고있는 모든 개같고, 험하고, 형편 없는 곳
중에서도 여기가 최악일거란 말이야. 가장 가까운 마을로 통하는 통로는 다리가 푹푹
빠지는 늪지에다가 마을 안에 길들엔 죄다 물살이 넘실대잖아. 도대체 사람들이 뭔 생각들을
하며 사는건지. 하긴... 동네에 불 들어온 집이 두 채밖에 없으니까 남이사 어찌되든 지들 알
바 아니다, 이거겠지.”

“너무 성내지 말아요, 여보,” 그의 아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어쩌면 다음 판은


이길 수도 있잖아요.”
화이트씨는 날카롭게 고개를 든 순간,그는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그렇고 그런 눈빛을
목격했다. 그는 하려던 말을 전부 삭히고 하얀 수염 밑으로 작고 멋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저기 오시네요,” 대문이 너무 큰 소리를 내며 열리고 집문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아들, 허버트 화이트가 말했다.

노인은 무척 반가워하며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문을 열어주며 문 앞에 서있는 남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문 앞에 남성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 한 채 마찬가지로 인사를 건넸고
이를 답답히 여긴 화이트 여사는 혀를 차며 남편에게 얼른 들어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노인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남자는 키가 크고 골격이 넓은 남성이었으며 그의 구슬같은 두
눈은 밝은 빛을 분출했고 그의 혈색 좋은 피부는 붉은 선홍빛을 뽐내고 있었다.

“모리스 원사입니다, 오래간만입니다.” 거대한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원사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주어진 자리에 앉아서 집주인이 위스키와 위스키 잔을 꺼낼
때 까지, 그리고 구리주전자를 불 위에 세워둘 때 까지 가만히 앉아 주변 상황을
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원사는 위스키를 세 잔째 들이키고 나서야 눈에 불빛을 더욱이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친 가족은 호기심 가득한 눈들을 하고 둥그렇게 앉아 멀리서
돌아온 그들의 손님을 바라보았다. 원사는 우람한 어깨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그가 목격한
신기한 장면들과 용맹무쌍한 이야기들, 전쟁, 전염병,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에 관한 얘기들을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십일 년이 지났어,” 화이트 씨가 원사의 말을 중간에 끊어먹고 아내와 아들을 향해


말했다. “이 놈이 떠난지 벌써 이십일 년이 지났다고. 창고에서 같이 일할 때는 아주 그냥
옷깃만 스쳐도 젊음이 쏟아져내리던 친구였는데 지금 요 놈 꼴 좀 봐봐.”

“아직 충분히 젊게 보이시는데 왜 그러세요,” 그의 아내가 순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직접 인도라는데 가보고 싶네,” 노인이 말했다, “그 나라 구경 좀 하고 싶어서 말이야.”

“그냥 지금 사시는데 계세요,” 원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원사는 빈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작게 쉬고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그래, 나도 옛날 신사들도 가보고 고행하는 수도자, 저글러들도 만나보고 싶다고,” 노인이


말했다. “아, 그래! 모리스, 저번에 얘기하던 그 원숭이 손인가 뭔가 하는건 어떤
이야기였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군인은 재빨리 말했다. “적어도 들을 가치는 없는 이야기예요.”


“원숭이 손?” 화이트 부인이 많이 궁금한 눈치로 물었다.

“아 뭐, 마법이라든가, 미신이라든가...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거예요.” 원사가 퉁명스럽게


답해줬다.

세 명의 청중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서 더욱 열심히 들을 태세를 갖추었다. 방문객은


무의식적으로 빈 잔을 입술까지 가져다 댔다가 다시 내려놓았고 집주인은 그를 위해 잔을
채워주었다.

“그냥 봤을 땐,” 원사가 주머니를 뒤지며 말을 꺼냈다, “그냥 작은 손이예요. 말려서 미라가
되어버린 작은 손.”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집어 바깥에 내밀었다. 화이트 부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녀의 아들은 그것을 집어다가 굉장히 면밀하게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화이트씨는 “이게 얼마나 특별하길래 그래?”라고 말하며 아들에게서 가로챈 원숭이 손을


살펴본 뒤, 테이블 위에 도로 올려놓았다.

“늙은 수도승이 주문을 걸어놨어요,” 원사가 입을 열었다, “굉장히 신성하다고 알려진


수도승이 말이예요. 들리는 말로는 세상 사람들은 결국 운명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증명해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덤벼드는
사람들에겐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교훈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그래서 세 명의 다른 남자가
각자 세 가지 소원을 빌 수 있게끔 원숭이 손에 주문을 걸었다고 해요.”

원사가 말하면서 보인 태도는 너무나도 진중해서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들이


도무지 웃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럼 원사님께서 직접 세 가지 소원을 빌어보시면 되지 않나요?” 노부부의 아들 허버트가


똑부러지는 질문을 던졌다.

원사는 여느 중년 남성들이 그러하듯 젊은이의 사뭇 대담한 질문에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왜 안 해봤겠니,”라고 조용히 말하던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정말로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졌나요?” 화이트 부인이 물어보았다.

“물론이죠,” 원사가 말하는 순간 그가 든 술잔이 그의 강력한 앞니에 쨍하고 부딪혔다.

“그럼 원사님 말고도… 소원을 빈 사람이 있나요?” 노파는 재차 질문했다.


“첫 번째 남자는 일찌감치 소원 세 개를 빌었죠, 네,”라는게 그의 대답이었다. “앞에 두
소원이 뭐였는지는 모르겠다만 세 번째 소원이 죽음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제가
손을 얻었거든요.”

원사의 말투는 너무도 무겁고 어두워서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침묵에 젖었다.

“모리스, 너 말대로 소원 세 개를 다 빌었으면 이제 너한테는 쓸모없는 물건이겠네,” 침묵을


깬건 늙은 남성이었다. “그러면 대체 왜 아직도 이걸 지니고 있는건가?”

원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그냥... 전리품 같은거죠, 뭐.”

“만약 자네가 세 가지 소원을 한 번 더 빌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아예 새롭게 말이지,”


노인이 상대방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그 기회를 잡을건가?”

“잘 모르겠네요,” 그의 상대가 답해주었다. “정말 모르겠어요.”

원사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원숭이 손을 집어 올리더니 갑자기 불길 속으로 원숭이 손을


던져버렸다. 화이트씨는 단말마를 내지르며 얼른 불가로 뛰어가 원숭이 손을 집어왔다.

“타게 냅두는게 나을텐데요,” 원사는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리스, 자네가 이걸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노인이 말했다, “그냥 나에게 주게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노인의 친구는 고집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분명히 불길


속으로 던졌습니다. 설령 원숭이 손을 지니고 계신다고 한들, 저를 탓하시면 안 돼요. 얼른
다시 불속으로 던지세요, 그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노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새롭게 그의 소유가 된 물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소원을
빌 때 특별히 해야할 일은 없는건가?” 그가 질문을 던졌다.

“원숭이 손을 오른손으로 쥐고 높게 든 뒤에 큰 소리로 소원을 비시면 돼요.” 원사가 말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렸다시피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는 조심하셔야 될 거예요.”

“꼭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 같네요,” 화이트 여사가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고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를 위해서 제 몸에 손이 여덟개 정도 더 달릴 수 있게 소원을
빌어보는건 어때요?”
그녀의 말을 들은 노인이 주머니에서 신비한 힘이 깃든 물건을 오른손으로 꺼내들자 화이트
가족 세 명은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하지만 원사만큼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노인의 팔을
힘껏 쥐었다.

“꼭 소원을 빌어야겠다면,” 원사가 힘겹게 말했다, “조금 더 상식적인 소원을 비세요.”

화이트씨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원숭이 손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고 멀리서 온 친구에게


다시 앉기를 권유하며 자리에 앉았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는 모두 원숭이 손의 존재를 잊은
것 마냥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식사 후에는 모두가 둘러앉아 인도에서 군인이 직접
겪은 모험담의 후편을 귀기울여 들었다.

“원사님께서 말하신 원숭이 손이라는게 다 거짓이라면,” 막차를 잡기 위해 나간 손님을 뒤로


정문을 닫으면서 허버트가 말했다, “많이 실망스러울 것 같아요.”

“답례로 뭐라도 드렸어요, 여보?” 화이트 부인이 따뜻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냥 조그만거라도 주려고 했지,” 살짝이나마 대단한 것처럼 꾸며 말하며 남편이 답했다.
“근데 원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가져가게 만들었지. 그런데 글쎄 그 녀석이 나를 한
번 더 밀치더니 기어코 풀밭에다가 던져버리더군.”

“설마 그 분이 그랬을리가요,” 허버트는 거짓으로 두려워하는 얼굴로 비꼬았다. “이제 저희는


부자가 되고, 명성을 얻고, 행복해질 일만 남았네요. 아예 시작으로 국왕이 되는 소원을
빌어보시는 건 어때요, 아버지? 그러면 더 이상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으셔도 될텐데.”

그 말을 듣고 잔뜩 뿔이 난 화이트 부인은 의자 덮개를 들고 아들을 쫓아 테이블 주위를 빙빙


돌았다.

화이트씨는 주머니에서 원숭이 손을 꺼내들고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뭘 가지고


소원을 빌어야 할 지는 확실히 모르겠어,” 그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볼 때 지금 내게 부족한
건 딱히 없단 말이지.”

“집문제만 해결되면 꽤 행복해지지 않으시겠어요?” 허버트가 아버지 어깨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럼 이백 파운드를 달라고 소원을 빌어보세요, 그럼 될 것 같은데요.”

그의 아버지는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고있는 자신을 한심해한다는 표정으로 원숭이


손을 쥔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허버트는 여유로이 피아노 앞에 앉아 어려운 코드 몇
개를 연속해서 연주했다.

“나는 이백 파운드가 생기기를 바란다,” 노인이 결심한 듯 원숭이 손을 쥔 오른손을 치켜들고


말했다.
그가 말을 마치는 순간에 맞춰 허버트는 큰 소리가 나게끔 피아노 코드를 몇 개 더 쳤고
노인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아내와 아들은 노인을 향해
달려갔다.

“움직였어,” 하고 그가 울부짖었다. 그의 떨리는 눈빛은 어느새 바닥에 떨어진 물체를


향해있었다. “내가 소원을 빌었을 때 저 망할 것이 분명 뱀처럼 내 손을 휘감으면서
움직였다고.”

“그래요? 그런데 돈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걸요,” 아들은 캐주얼하게 말하며 한 때는 원숭이


손목에 붙어있었을 그것을 집어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하늘에
부탁한 이백 파운드는 보지 못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네요.”

“분명 환각같은 거겠죠, 여보,” 그의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을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건넸다.

화이트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올해 놀랄 치는 다 놀란 것 같다만… 뭐,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신경쓰지 말자고.”

다시 벽난로 앞에 모여 앉은 부자는 파이프에 남아있는 담뱃잎을 태웠다. 빌라 바깥에 부는


바람은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고 긴장에 휩싸인 노인은 윗층에서 바람에 따라 쿵쾅대는
문소리를 듣고 있었다. 좀처럼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적막이 세 명 위에 내려 앉았다. 이내 두
노부부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라가보시면 분명 침대 정중앙에 돈다발이 들어있는 커다란 가방이 올려져 있을거예요,”


장난기 가득한 허버트가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과 함께 말했다,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얻게 된 돈이니 주머니에 넣는 순간 분명 흉측한 괴물같은 게 옷장 위에서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겠죠.”

허버트는 어둠속에 혼자 앉아 죽어가는 불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불꽃에서


피어오르는 얼굴들을 지켜보았는데 마지막 얼굴은 너무도 무서운 동시에 원숭이의 것과
매우 닮아있었다. 허버트는 눈앞에 광경이 너무도 신비로워 한참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불꽃에서 나타나던 형상이 무서울 정도로 선명해지는 바람에
허버트는 황급히 불을 끌 만한 물잔을 찾기 위해 테이블 위에 손을 더듬거렸다. 물컵 대신
그의 손에 집힌건 원숭이 손이었는데 허버트는 얼른 그 물건을 내려놓고 코트 위에 손에
어련히 묻었을 기분 나쁜 기운을 닦아내고는 벌벌 떨며 도망가듯이 뛰어 올라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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