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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왕들의 전쟁 -2
제2부 왕들의 전쟁 -2
조지 R.R.마틴
http://cafe.naver.com/whosay
산사
“용기를 내.”
마상시합에서 죽음을 모면한 후부터,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 빗자루
말을 질질 끌고 다녀야 했다.
“전하.”
“저 년을 일으켜라.”
‘나의 플로리안.’
“반역자, 반역자!”
“보로스, 메린!”
‘목을 베려나?’
‘곧 끝날 거야.’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난 벌을 주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런가? 그렇겠지.”
티리온이 조프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디 가려구요?”
“가즈우드에 가서 기도 좀 하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돈토스를 만나 당장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야 했
다.
“들어오세요.”
“제가 경의 포로인가요?”
“포로는 무슨? 오히려 귀한 손님이지.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좋겠는
데…….”
“좋아요.”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해요.”
“아니요.”
“저는…….”
“아뇨.”
캐틀린
영주들이 절을 하고 물러갔다.
“춥구나.”
불안한 듯 희미하게 떨리는 렌리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순간 그림자
의 검이 그의 목을 내려쳤다. 목에 두른 보호대는 천 조각처럼 너무나
쉽게 찢겨 나갔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렌리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
왔다.
‘그림자였어.’
“전……. 저는…….”
“안 돼!”
“스타니스가요? 어떻게요?”
‘아침의 유령이다.’
“난 그분께 결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브리엔느가 아수라장 속을 걸으며 조용히 말했다.
“스타니스 경 말인가요?”
“큰일났습니다. 렌리 경이…….”
“전투는…….”
“전투는 없을 거예요.”
캐틀린이 단호하게 말하며 말에 오르자 호위대가 주변으로 정렬했
다. 웬델이 캐틀린의 왼쪽에, 페르윈이 오른쪽에 섰다.
“조용히 해!”
모르몬트의 말에 존은 입을 다물었다.
“존?”
“응, 아주 좋았어.”
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히 그랬겠지.”
“네.”
존은 화로에 불을 지피고는 모르몬트가 가장 좋아하는 적포도주를
주전자에 담아 화로 위에 걸어 두었다. 그런 뒤 모르몬트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향신료와 계피, 벌꿀 등을 준비했다. 그는 늘
몸을 데우려면 펄펄 끓는 뜨거운 음료를 마셔야 하지만 포도주만은
절대로 끓을 때까지 데워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그 때
문에 존은 포도주를 불에 올려놓을 때마다 주전자를 유심히 지켜봐
야 했다.
“프로스트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밀크워터를 건너 강을 따라 올
라가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만스 레이더한테 들킬 게 뻔
합니다.”
“저희 레인저들은…….”
“알겠습니다.”
“저녁을 준비할까요?”
“네 늑대는 뭘 하고 있나?”
존은 솔직히 말했다.
“그렇겠지.”
존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고스트!”
존은 우선 경비 초소로 갔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고스트! 이제 이리 와.”
하지만 다이어울프는 고개를 들고 불길하고 불안해 보이는 새빨간
눈으로 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강물이 침을 흘리는 것처럼 고스
트의 턱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고스트가 이내 숲 속으로 달려가 버렸
다.
“고스트, 안 돼. 거기 서!”
‘이건 미친 짓이야.’
“고스트, 뭘 하는 거야?”
그건 바로 스온브라더의 검은 망토였다.
브랜
“롭 형한테서?”
“롭 형이 집으로 오는 중이에요?”
브랜은 처음 듣는 인물이었다.
“이제 남은 건 티윈 경뿐이군요.”
“아뇨, 우린 지금 매우 슬퍼요.”
오샤가 싱긋 웃었다.
“바다가 오고 있습니다.”
“바다가 오고 있다?”
“그게 다예요?”
“워그(Warg)입니다.”
“뭐라고요? 워그?”
“두려우세요?”
브랜은 그후 혼자 방에 있을 때면 세 번째 눈을 떠 보려고 몇 번 시도
를 해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마에 주
름도 잡아 보고 찔러도 보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
들에게 조젠이 꿈에서 보았다는 일도 경고해 주려고 했지만, 그 얘기
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말에 미라가 화를 냈다.
“모르겠어.”
‘안 돼. 안 돼…….’
티리온
“누가 죽인 거죠?”
세르세이가 물었다.
“황금이죠.”
“그렇지요.”
“맞는 말입니다.”
“페티르 경이요?”
‘선수를 치는군.’
“5백 명 주십시오.”
옳은 말이었다.
“그러죠.”
바리스가 싱긋 웃었다.
세르세이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여행하기에 좋은 날은 아냐.’
“그렇게 달콤했습니까?”
테온
“데려가라.”
‘술주정뱅이.’
“또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 있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좋아.”
‘왜 토끼가죽일까?’
늙은 전사가 혀를 찼다.
“우리 쪽 말인가요?”
“그럼 내 배로 오시죠.”
“그건 그렇죠.”
테온은 그 말에 흥분했다.
“하지만 영주님께서는…….”
“토르헨의 성은 튼튼한가요?”
아리아
‘콱 죽어 버려라.’
‘저들도 모두 콱 죽어 버려라.’
‘위즈만 죽는다면…….’
하지만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는 항
상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떠들어댔고,
아리아는 그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난 안 그랬어요!”
“아니 그랬어. 나도 들었다구.”
“그러죠.”
“루칸을 데려올게.”
“그럴게요.”
“위즐!”
“다음엔 늦지 마!”
“난 당신을 구해 줬어요.”
“전갈이 있어요.”
“위즈…….”
“위즐, 이리 와.”
“네가 날 보는 걸 봤어.”
‘위즈…….’
‘네게서는 아냐.’
아리아는 비스킷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그러자 위즈가 아리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생각을 꿰뚫기라도 한 듯 섬뜩한 눈빛이었
다. 아리아는 재빨리 시선을 떨구고는 감히 다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런 바보 같은!’
누군가 혀를 찼다.
캐틀린
리버룬까지 이틀 남짓 가야 할 즈음, 한 정찰병이 강가에서 말에게 물
을 먹이고 있는 캐틀린 일행을 발견했다.
“알았네.”
“리버스 경은 지금 어디 계시지?”
“아니.”
“렌리 경이 살해되었네.”
병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버지께 무슨 일이라도?”
캐틀린은 그 말에 발끈했다.
“돌아가겠습니다, 스톰엔드로요.”
답이 뻔한 질문이었다.
“예.”
“스타니스를 죽이려고?”
“그래, 들었어.”
‘그런지도 모르지.’
“브리엔느, 렌리 경은 이제 가고 없어.”
캐틀린은 깜짝 놀랐다.
“나를? 왜?”
“넌 결백했으니까.”
캐틀린은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 때가 되면 막지 않을게.”
‘여기서 싸울 모양이지?’
“라니스터들의 목을 매단 모양입니다.”
“우와, 멋진 광경이군요.”
‘다들 많이 늙었구나.’
“바로 가 뵈어야겠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몹시 궁금했다.
“영광이오.”
“저들은 누구지?”
‘난쟁이의 소행이군.’
“그럼 세르 클레오스는?”
“협상안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들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다 뭐지?”
“나의 백성들이에요.”
에드무레가 대답했다.
“떠나는 일은 없을 거야.”
“누님, 티윈 경이 오고 있어요.”
“그럼, 어디 가서 그 얘길 좀 들어 볼까?”
“가즈우드가 좋을 것 같군요.”
“피비린내가 진동하겠군.”
“글쎄…….”
“아버지한테는 말씀드렸니?”
“아버지, 제가 돌아왔어요.”
“왔구나.”
그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잠이 드실 겁니다.”
“그래요.”
“리사는 오지 않을 거예요.”
“몇 자 적어 보도록 하죠.”
“네드?”
캐틀린은 사일런트시스터들을 보고 무슨 일인지 직감했다. 어서라이
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 어디 있죠?”
“얼굴을 보고 싶어요.”
“뼈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보고 싶어요.”
캐틀린은 돌아섰다.
시스터들이 고개 숙여 절을 하고 방을 나갔다.
대너리스
마차에는 커튼이 쳐져 있어 먼지와 열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커
튼도 실망감까지 막아 주지는 못할 터였다. 대니는 맥이 쭉 빠져 마차
에 올랐다. 콰스인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에서 빠져나온 것만으로
도 기뻤다.
“없어요.”
대니는 자신의 의지를 목소리에 실어 담으려는 듯 힘주어 대답했다.
“칼리시!”
“불마법사입니다, 칼리시.”
“보고 싶어요.”
“그러시지요.”
“소매치기로군요.”
“훌륭한 속임수군.”
“속임수가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은요?”
“나 때문이라구요? 어째서요?”
대니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죠?”
“진실입니다.”
“맞습니다.”
“그가 내게 청혼했어요.”
“그 이유를 알 만합니다.”
대니는 피식 웃었다.
“그럼 어디로요?”
“동쪽으로 가겠습니다.”
티리온
“불쌍한 것!”
“저기에 있습니다.”
“개새끼!”
“천하의 몹쓸 놈!”
“창녀!”
“난쟁이! 악마!”
군중의 분노는 조프리는 물론이고 세르세이, 티리온에게까지 폭발했
다. 욕설과 함께 ‘늑대 왕 만세!’, ‘스타니스 왕 만세!’, 심지어 ‘렌리
왕 만세!’를 외치는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병사들을 밀치고 앞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머리 위로 돌멩이, 쓰레기, 오물 등이 날아다녔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줘!”
“빵!”
“빵, 빵!”
“달려라!”
“내 딸이 남아 있어요. 제발 누가 가서 롤리스를…….”
티리온은 뜰을 휙 둘러보았다.
“산사는 어디 있지?”
세르세이가 끼여들었다.
“뭐라고!”
“산사! 다친 데는 없니?”
“내 딸은…….”
“따님은 못 봤습니다.”
그때였다.
‘아, 불! 불을 두려워하는구나.’
“샤가는 자고 있습니다.”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그럼 깨워!”
“자네도 그런가?”
“그건 바리스 경에게 물어 보십시오.”
“사람들은 경을 가장 증오합니다.”
“바리스 경은 어디 계셨습니까?”
‘토멘이 왕이 된다면…….’
다보스
“영주님.”
“브리엔느 말이오?”
코트나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그렇소.”
“전하.”
“전하, 어찌 제가 감히…….”
“자네는 우리 측 영주들보다 세르 코트나이를 더 높이 평가하는군,
안 그런가?”
“손가락이 전부 그 안에 들어 있나 보지?”
‘행운이 있기를…….’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시원한 물 좀 갖다 주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물 대신 포도주였으면 좋겠군.’
왕이 남아 있던 물을 마저 들이켰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왕이 또 한 번 고개를 까딱했다.
붉은 여자가 속삭였다.
“경은 좋은 남자인가요?”
“거짓말.”
“신호음이 한 번 울렸나?”
“알겠습니다, 로드커맨더.”
“샘, 이만 가볼게.”
존은 그를 반갑게 맞았다.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대가는?”
“그러지.”
“술 마셨어?”
“내가 갈게.”
늙은 곰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어떤 왕 말씀이십니까?”
“뭐라고?”
“그렇다고 해도 말입니다.”
“어떻게 말인가?”
“그럴지도 모르지요.”
“난 더 이상 부하들을 잃고 싶지 않네.”
모르몬트의 눈이 동그래졌다.
모르몬트가 존을 바라보았다.
“가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티리온
“둘 다입니다.”
“아, 그렇군.”
“고맙네, 란셀.”
“생각해 보겠네.”
“뭐라고 씌어 있습니까?”
브론은 글을 읽지 못했다.
‘난 자네를 믿을 수가 없어.’
“차타야로 가시려구요?”
“자넨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것이 흠이야.”
“될 대로 되라지, 뭐.”
“저게 누구 목소리지?”
그가 문을 열자 노랫소리도 뚝 그쳤다.
“오, 티리온!”
사이몬이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그는 절대로…….”
“자이메 형에 대한 소식이오?”
“빌어먹을 놈!”
“둘 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소?”
샤에가 입을 비죽거렸다.
“하지만 난 무서워.”
‘내 사랑, 아는 것이 정말 없군.’
“당신에겐 제가 있잖아요.”
샤에가 몸을 바짝 붙이며 티리온의 목에 팔을 감고 키스했다. 샤에의
키스는 언제나 그의 잠자던 남성을 깨웠다. 하지만 티리온은 부드럽
게 샤에를 떼어놓았다.
“부엌이요?”
샤에가 낄낄거렸다.
“제가 싫어지셨어요?”
“잠시일 뿐이야.”
샤에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시키는 대로 할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바리스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이야기로군.”
“불가능합니다.”
“경, 왜 그러십니까?”
캐틀린
‘난 항상 내 의무를 수행했어.’
한 손에 검을 치켜든 그가 서 있도다.
달리의 마지막…….
발 아래에는 붉은 풀
머리 위에는 붉은 깃발
하늘에는 붉은 황혼
‘나를 따르라!’
그들은 강을 건너갔도다.
“아이를 낳는 것도 또 다른 전쟁이지.”
“그렇게 하세요.”
“정말 그럴까요?”
옆에 있던 데스몬드가 설명했다.
“지금이에요.”
브리엔느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순간, 갑자기 말들의 비명소
리가 하늘을 찔렀다.
“무슨 일이지?”
“적군이 다시 레드포크를 건너고 있어요, 마님.”
“그렇습니다.”
클레오스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런 모습을 보는 캐틀린의 입가
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목격자들이 있나요?”
“그렇겠죠.”
“그것 참 이상하군.”
“넌 아버지를 위해 노래했었니?”
“렌리 경을 위해서는?”
“아뇨. 한 번도요.”
“언젠가 넌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게 될 거야.”
“부인, 이겼습니다.”
브랜
그는 으르렁거리면서 문 앞을 서성거리다가 다시 한 번 문에 몸을 내
던졌다. 하지만 문은 삐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있어.’
‘나는 짐승이야.’
‘다그머가 이긴 걸까?’
“호도르!”
브랜은 아래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호도르는 아니라도 누구라
도 소리를 들으면 달려올 터였다.
“호! 도! 르!”
“테온?”
브랜은 혼란스러웠다.
“워랙, 나가 있게.”
“조용히 해, 릭콘.”
“나를 모두 잘 알 것이…….”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쁜 놈!”
‘미켄은 피에 빠져 죽었어.’
‘자기 피에 빠져 죽은 거야.’
“자, 내게 더 말할 사람 있나?”
“저 얼빠진 놈의 입을 막아라.”
“그레이조이 영주님!”
“호도르.”
아리아
“알아채면 어떡해.”
“핑크아이가 깨서 너를 찾으면…….”
“무슨 소리지?”
“뭐? 난…….”
핫파이가 투덜거렸다.
‘난 하렌할의 유령이야.’
‘약탈한 거로군.’
‘블러디머머스들이잖아.’
“성주님.”
“닥쳐!”
‘젠드리는 강해.’
아리아는 그가 가슴받이를 물에 담금질할 부젓가락을 들어올릴 때
창문을 넘어 그의 옆으로 뛰어내렸다.
“가서 자는 게 좋을 텐데.”
“그런데 밖이 왜 그리 소란스럽지?”
젠드리가 피식 웃었다.
“어떻게?”
“경비병들은 죽여야겠죠.”
“숫자가 많지 않다면…….”
“두 명만 있어도 너와 나로선 감당하기 힘들어. 이미 경험했잖아. 아
직도 깨달은 바가 없니? 네가 이 일을 시도하면 바르고 호트는 네 손
과 발을 자를 거야.”
“당신은 겁쟁이예요.”
“날 좀 내버려둬.”
“윈터펠이요.”
눈을 떴다.
그때였다.
‘신이 보냈나?’
“젠드리가 말해 줬나요?”
“난 신을 조롱한 적 없어요.”
아리아는 그의 귀에 입을 갖다 댔다.
“자켄.”
“그랬겠지.”
나이프가 사라졌다.
“따라와.”
“지금요?”
“따르겠어요. 뭘 해야 하죠?”
그가 불 위의 검은 솥을 가리켰다.
“다 될 때까지 기다릴게요.”
아리아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달렸다.
“위즐, 가서 도와라.”
“이게 뭐지?”
“그럼 들여가.”
“가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
“벌써 식사시간인가?”
“그런데 빵이 없잖아?”
그때였다.
“스푼도 필요 없지!”
“영주님.”
“이제부터 그렇소이다.”
“전 위즐이에요.”
“매우 잘했다.”
“이해할 수 없지?”
“아뇨, 알아요.”
“네, 다 갚았어요.”
“죽다뇨?”
아리아는 머뭇거렸다.
“어디로요?”
“자, 받아.”
“이게 뭔데요?”
“아주 귀한 동전이야.”
“이건 말을 사기 위한 게 아냐.”
“그럼 뭐할 때 쓰는 건데요?”
“그 얘긴 삶과 죽음이 뭐냐고 묻는 거랑 똑같아. 남자를 찾을 일이 있
으면 브라보스에서 온 아무에게나 이 동전을 주면서 발라 모르굴리
스라고 말해.”
“발라 모르굴리스.”
“발라 모르굴리스.”
“발라 모르굴리스.”
날이 밝자 전투 중에 이유 없이 죽은 소년 하나만 빼고 사람들이 모두
돌아왔다. 핑크아이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혼자
위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오르기가 힘들다고 투덜대면서. 잠시 후 그
가 돌아와 하렌할이 북부인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너는 왜 죽었니?”
“놔 줘!”
“넌 몇 살이지?”
“열 살입니다.”
“열 살입니다, 영주님이라고 해야지. 그래, 동물을 좋아하느냐?”
“조금요, 영주님.”
“저기 망루 위의 기를 보시오.”
‘저 곰은 새까맣네. 요렌처럼…….’
대너리스
“그럼 저를 데려가시죠.”
‘저 사람은 줄곧 저기 있었나?’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그러지요.”
“알았어요.”
“마시세요.”
‘어? 이 방은 나도 아는 곳이야.’
“하나가 더 있어야겠소.”
“안 됩니다!”
“드래곤의 어머니…….”
‘세 개의 머리는 드래곤…….’
“셋이라고요?”
“나는 잘…….”
‘도와 주라…….’
‘보여 주라…….’
“드로곤!”
티리온
“그럴 수도 있지.”
“어떤 지시지?”
그 말에 티리온은 미소지었다.
테온
“무슨 일이에요?”
그때 우르젠이 돌아왔다.
“늑대들이 사라졌습니다.”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여기는 누가 책임자였지?”
“드레난과 스킨트였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랬다. 그럴 필요도, 그럴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그들이 있어
야 할 자리에 없었다. 스킨트는 창자가 밖으로 다 빠진 채 해자에 둥
둥 떠 있었고, 드레난은 성문 초소에서 반쯤 벌거벗은 채 입이 양쪽
귀까지 찢어져 너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누더기가 된 튜닉이 등을 반
쯤 가리고 있었다. 초소에는 부츠와 반바지가 아수라장이 된 바닥을
굴러다녔고, 문가의 작은 탁자에는 치즈와 빈 포도주 병,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이런, 내 밑엔 얼간이들뿐이로군.’
“우르젠, 네가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해 봐라. 여긴 어둡고 춥다. 보초
를 서는 내내 너는 빨리 교대 시간이 오기만을 바라겠지. 그런데 갑자
기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러더니 계단 꼭
대기에서 눈이 보이는 거야. 횃불에 반사되어 빨갛게 번쩍거리는 눈
이 말이야. 그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너를 향해 돌진해 오
지. 너는 그제야 창을 들지만 놈들은 이미 네 배를 갈라 버리지. 얇은
천을 찢듯이 북! 그러면 창자가 밖으로 튀어나올 거고, 그 순간 다이
어울프 하나가 네 목을 확 물어뜯는 거야.”
테온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블랙 로렌이 말했다.
“한밤중엔 안 돼.”
“몇 명이나 빠져 있나?”
“여섯입니다.”
“댄서요?”
‘이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
“살가죽을 벗겨 버리시지요.”
“알겠습니다.”
“마에스터 루윈.”
“뭐지?”
웩스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물가에 질퍽거리는 발자국이 보였다.
“발자국이군.”
테온은 화가 나서 비아냥거렸다.
루윈도 얼른 동조했다.
“조세스의 말이 맞습니다. 게다가 횃불을 들고 숲을 뒤진다고 찾을
것 같지도 않고…….”
“왕자님.”
“여길 좀 보십시오.”
“테온 왕자님.”
존
그들은 산 맞은편 어두운 밤하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을 보았
다. 별보다 더 밝게 빛나면서, 가끔씩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긴 했지
만 그렇게 강렬한 불빛은 아니었다.
코린 하프핸드의 말에 일행 중 가장 산을 잘 타는 스톤스네이크가 자
진하고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여자잖아!”
‘단 한 번이면 끝난다.’
“항복할 텐가?”
“항복해요.”
“이제 너는 우리 포로다.”
“저 여자는 창잡이야.”
“이름이 뭐지?”
“이그리트.”
“전 이름을 알려 드렸는데요.”
“난 존 스노우야.”
여자가 움찔했다.
“불길이 일면 눈에 띄기 쉬워.”
“다른 사람들도요.”
“다른 사람들이라면?”
“자유민들.”
“왜 여기로 모이지?”
“당신만큼이나요.”
“나만큼? 그게 무슨 뜻이지?”
존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랬지.”
“어머니는 누구죠?”
존은 즉각 대꾸했다.
“완전히 자기 중심적이군.”
“맞아요. 항상 그렇죠.”
“그래도 듣겠어.”
“용감하시군요.”
이그리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바엘은 거짓말쟁이야!”
존은 확언하듯 말했다.
“모두 세 명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항복했어요.”
“코린 하프핸드.”
코린이 존을 바라보았다.
존은 목이 탔다. 속수무책이었다.
“여자를 죽여 본 적이 한 번도 없군요?”
“나 역시 까마귀야.”
“날 태울 건가요?”
“두려운가?”
“추우니까 빨리 끝내 줘요.”
존은 손에 힘을 주며 롱클로우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가.”
산사
“놔요. 놔줘요.”
산도르가 히죽 웃었다.
그가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악행? 신들?”
산도르가 조롱하듯 피식 웃었다.
“오, 안 돼. 제발…….”
진정으로 원치 않은 일이었다.
‘이를 어쩌지…….’
하녀들은 대야를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금세 알 것이었다. 문득
침대 시트가 생각났다. 급히 달려가 보니 선명한 핏빛 얼룩이 보였다.
“앉거라. 좀 들겠니?”
“아뇨, 괜찮습니다.”
“피를 보자 너무 두려웠어요.”
“그건 네가 진정한 여자가 되었다는 징표란다. 캐틀린 부인이 네게
가르쳤으리라 생각하는데……. 너는 이제 네 생애의 한창때를 맞이
한 거야.”
“이렇지가 않다면?”
세르세이가 빙긋 웃었다.
“그래, 그럴 거다.”
“그자를 잘 아세요?”
“우리 모두 잘 알지.”
그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자는 왜 도망갔죠?”
“저도 그래요.”
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다면 왜 저한테 명령하셨죠?”
“고스트, 이리 와.”
‘존?’
‘얘가 원래 눈이 세 개였나?’
고요한 외침이었다.
나무가 몸을 굽혀 그를 쓰다듬었다.
‘캐슬블랙인가?’
“고스트!”
‘하지만 꿈속이었는데…….’
“그냥 꿈이었어요.”
“그렇지. 하지만 로드커맨더 말씀이, 크래스터가 와이들링들이 밀크
워터의 근원지로 모인다고 했다. 그러니 네가 본 대로 얘기해 봐.”
“변신, 스킨체인저?”
“코린, 저기 좀 보세요.”
“앞으로 돌진한다.”
“상태가 어떠냐?”
“다른 길로 돌아간다.”
“네? 다른 길로요?”
“고스트, 이리 와.”
“불은 안 돼.”
코린은 그 한 마디뿐이었다.
‘여기서 죽는 거구나.’
존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다들 잘 들어 봐라.”
티리온
“북부에서 온 전갈입니다.”
“누나에게 보고해야겠소.”
“그 여자는…….”
“비터브리지에서는 아직 소식 없어?”
“아직 없어.”
‘빌어먹을 바리스.’
‘물론 전혀 쓸모 없는 인간들이지만.’
“조프리는 아직 어린애야.”
“티리온, 그 애는 이제 겨우 열세 살이야.”
“아니.”
“난 타트라면 뭐든 좋아.”
“왜 그 벌레가 이상해?”
“내가 당황한다구?”
‘그 생각도 꽤 유혹적인데…….’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오, 난 그들이 너 없이도 잘 싸울 거라 생각해. 그들이 널 사랑하는
이유는 황금 때문이지 너의 장난꾸러기 같은 재치 때문이 아냐. 하지
만 걱정하지는 마. 널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 네 목을 잘라 버리겠단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자이메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 여자는 반항했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행동을!”
“언제든 꼭 구해 줄게.”
그 말이 왕대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롤리스는?”
“모자이크?”
“잠깐만.”
“왜 그래요?”
캐틀린
“명령이시라면…….”
“킹스랜딩에 관한 소식입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이번 전령조는 세르 로드릭이 세르
윈의 성에서 보낸 거야.”
“부인?”
캐틀린은 잠시 멈추었다.
“아가씨들은…….”
“포도주요?”
브리엔느가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킹슬레이어에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한밤중에 말인가요?”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부인, 자정입니다.”
간수가 눈을 내리깔았다.
“알겠습니다.”
열쇠는 그의 허리 벨트에 걸려 있었다. 그는 열쇠를 찾는 내내 낮은
목소리로 무어라 계속 불평을 중얼거렸다.
“난 서 있어도 상관없어요.”
자이메가 키득거렸다.
“스타크 부인.”
“진실만 얘기한다면.”
“그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어요.”
“브랜은 염탐 같은 짓은 안 해요.”
“신을 원망하라구요?”
“내가 자객을?”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당신 누이 짓이었겠군?”
“단검? 어떤 단검 말입니까?”
“날 속일 생각인가요?”
“네.”
자이메가 또 한 번 병을 들어 잔에 술을 채웠다.
그가 잔을 들었다.
“교살당했다? 어떤 식으로요?”
“밧줄을 썼겠죠.”
“이미 끝난 죽음이에요.”
“아에리스…….”
자이메가 술에 취해 한 번 더 히죽 웃었다.
캐틀린은 뒤로 한 걸음 물러갔다.
“브리엔느!”
“부인, 부르셨어요.”
“네 검을 줘.”
캐틀린은 손을 뻗었다.
테온
입 안에 검은 피가 가득 고여 땅에 뱉었더니 눈 위에 불타는 듯한 시
뻘건 구멍이 생겼다. 놈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자비를…….’
“그러지.”
“창문을 닫아라.”
요즘 그가 꾸는 꿈은 갈수록 더 섬뜩해졌다. 지난밤에는 방앗간에 홀
로 남겨진 꿈을 꾸었다. 뻣뻣하게 굳은 시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반
쯤 언 손으로 옷을 입히고 있었는데, 시체가 아주 음산하게 저항하는
것 같았다. 반바지를 끌어올려 입히고, 굳어서 굽혀지지 않는 다리에
가죽 부츠를 신겼다. 그리고 허리에 한 뼘 정도 되는 가죽 벨트를 두
르고 장식용 단추를 달았다.
‘제기랄.’
그 말에 테온은 버럭 화를 냈다.
테온은 눈을 치켜 떴다.
“안 돼. 지하 납골당은 안 돼.”
“어쨌든 안 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어…….’
“우리들의 형제지.”
“안 돼. 난 내가 빼앗은 이 성을 잘 지킬 거야.”
“가 버린 건가요?”
“나도 안다.”
‘아샤도 그럴 테고.’
“얼마나 많이?”
“그렇군요.”
“나가.”
산사
“산사!”
“산사!”
“여기야, 여기!”
“싫어, 싫단 말이야.”
“싫어, 싫어요.”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있을까요?”
“싫어요.”
“샤에, 도와 줘.”
“저 아이는 병에 걸렸어요.”
“예.”
“정말 적절히 때를 맞추었구나. 남자들은 적지에서, 너는 이곳에서
피를 흘리다니 말이다.”
“진정한 기사들이라…….”
다보스
“영광스런 임무입니다.”
“대열을 정렬하라.”
‘아후우우우우우우우…….’
“빠른 속도로!”
다보스가 소리쳤다. 점차 빨라지는 북소리에 물살을 가르는 노의 움
직임도 급격히 빨라졌다. 노 젓는 소리에 맞춰 갑판 위의 병사들도 검
으로 방패를 치며 탁탁 소리를 냈다. 궁수들이 허리에 찬 화살통에서
첫 화살을 꺼내 조심스럽게 활시위에 얹었다.
‘아후우우우우우우.’
전투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투 속도로!”
‘곧 우리 차례가 되겠군.’
‘저쪽으로는 안 되겠어.’
“사격 개시!”
‘저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다보스는 킹스랜더 호의 함장이 물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
게 떴다.
“충돌 속도로!”
“후진하라.”
“와일드파이어군!”
“우현은 노를 저어라!”
“함장님, 하트 호를 점령했습니다.”
“아버지.”
티리온
“오, 내 함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는 못 합니다!”
“빌어먹을!”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핸드면 답니까?”
‘그럼 세르 만돈을?’
“당신이?”
“전열을 정비하라.”
산사
‘와일드파이어 같아.’
산사는 홀 안을 휙 둘러보았다.
“하지만 성이 함락된다면요?”
“네? 저요?”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어. 산사, 넌 이제 여자야. 기억하지? 그리
고 내 장남의 약혼자이기도 하고.”
“당신은 무슨 일이죠?”
“알겠습니다, 왕대비님.”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산사는 두려움보다 사랑이 사람들의 충성을
얻어내는 데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티리온 경께서…….”
“무슨 말씀이세요?”
“더 마시겠니?”
“아뇨, 그만 마시겠어요.”
“우리라고요?”
왕대비가 손을 뻗어 산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티리온
“쐐기 대형으로!”
“저는 경의 종자입니다.”
“창을 들어라!”
“킹스랜딩!”
‘샤가가 나를 보면 비웃겠군.’
“머드게이트로 가자!”
“머드게이트로 향하라!”
“킹스랜딩!”
“하프맨! 하프맨!”
“라니스터!”
“하프맨! 하프맨!”
‘전투 열병.’
“항복.”
“저기를 보십시오.”
“뭘 말인가?”
‘배가 부서지는구나.’
“티리온 경, 제 손을 잡으시죠!”
‘어째서지?’
오직 물과 노, 갑판만이 보였다.
마침내 티리온은 숨을 헐떡이며 갑판으로 기어올라 바닥에 등을 대
고 누웠다. 머리 위로 초록색과 오렌지색 불꽃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
올라 하늘에 광선을 남겼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누
군가 시야를 가렸다.
“자이메 형?”
‘그 아이? 말도 안 돼.’
산사
“안 됩니다.”
“그 아이는 내 아들이에요.”
란셀이 다시 간청했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요!”
그때 늙은 여자가 울부짖었다.
“말씀해 주세요.”
“이분을 도와 줘요.”
하지만 하인들은 멍하니 산사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그 중 하나가 포
도주 병을 든 채 달아났다. 잠시 후 또 다른 하인도 아무 말 없이 홀을
나가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산사는 남은 한 사람과 함께 란셀을 일으
켰다.
“작은 새, 네가 올 줄 알았어.”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
밖에서 불기둥이 높이 치솟으면서 잠시 주위가 밝아졌다. 산사는 잠
시나마 그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핏자국이 선명한 검은 얼굴, 불빛에
반짝이는 눈……. 빛이 사라지면서 그는 다시 피에 얼룩진 하얀 망토
를 걸친 덩치 큰 그림자가 되었다.
“누가 이겼죠?”
“잃은 게 뭔데요?”
“모든 것을 다.”
“떠난다고요?”
“어디로요?”
검과 화살을 막아 주시고,
“작은 새…….”
“무슨 일이죠?”
돈토스가 바닥에 내려놓아 주자, 산사는 숨이 차고 어지러워 침대 기
둥을 붙잡았다.
“롭?”
산사는 모든 희망을 걸었지만…….
대너리스
“한 척 말입니까?”
“그래요, 배 한 척이 필요해요.”
“싫어요!”
“배 스무 척을 드리겠습니다.”
“다른 서틴들은요?”
“길을 비켜라.”
“날강도나 다름없군요!”
“그들이 쫓아오나요?”
“조금 더 높이 들어 보시오.”
“이 사람 숨넘어가겠어요. 값을 지불하세요.”
“정말 슬픈 일이오.”
하지만 대니는 미처 그 말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쏘였나요?”
“벨와스는 누구죠?”
“나를 잘 아시오?”
‘세 개의 머리는 드래곤…….’
대니는 문득 그 말을 떠올렸다.
아리아
“너 일부러 그랬지!”
“왜 이러세요?”
“저기 보여?”
“이거 놔요!”
“하나.”
“네가 해.”
그는 도움이 필요할 때면 친한 척하다가도, 일이 끝나면 자신은 종자
고 아리아는 하녀일 뿐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크로싱의 영주 아들임을 늘 자랑삼아 말했다. 조카도, 서자도, 손자도
아닌 적자임을 강조하면서, 언젠가 공주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얘기
도 빼놓지 않았다.
“잊지 않았소.”
호스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나서서 간언해야 합니다. 이 전쟁은 패색이 짙습니다. 롭
왕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에 루제 볼톤이 빙긋 웃었다.
“누가 왕께 그런 충고를 할 거지? 이런 어려운 시기에 자네들처럼 용
맹한 형제들이 많아서 아주 기쁘군. 좋아, 자네들의 얘기를 곰곰히 생
각해 보겠네.”
“예, 영주님.”
“읽어 보게.”
“편지를 보내야겠어.”
루제 볼톤이 웃는 듯 이를 드러냈다.
“세르 그레고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외쳤다.
“발라 모르굴리스.”
그 말이 주는 어감이 좋았다. 아리아는 뜰을 가로질러 목욕탕으로 가
면서 까마귀떼 위를 선회하는 큰 까마귀를 보았다.
“좀 어두워졌구나. 초를 밝혀라.”
“아뇨, 영주님.”
아리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럼 아무 말 말아라.”
그는 잠시 동안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전…….”
“난 아랫사람에게 질문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네 혀를 잘라 버려
야 입을 다물겠느냐?”
“죄송합니다, 영주님.”
“아닙니다.”
“왜 그래요?”
“나의 공주님이…….”
“내게 검을 줘요.”
“난 간다고 말한 적 없어.”
“알았어. 잊지 않을게.”
아리아는 나올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킹스파이어타워로 다시 들어
가, 발소리를 죽이며 나선형 계단을 뛰어올라 방으로 갔다. 옷을 벗고
내복과 반바지를 두 벌 겹쳐 입고는 제일 깨끗한 튜닉을 걸쳤다. 가슴
에 드레드포트 가문의 문장이 수놓아진 그 옷은 루제 볼톤 병사들의
정복이었다. 그러고는 신발 끈을 묶고 모직 망토를 어깨에 두른 후 목
에다 매듭을 지었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녀는 계단 아래로 내려갔
다.
“뭐야?”
“이 시간에? 말을 왜?”
“이 시간에? 뭐 때문에?”
“은이라고?”
“그럼 어디 줘 봐.”
“발라 모르굴리스.”
아리아는 쓰러지는 병사를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병사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자 동전을 주워 올렸다. 하렌할 성밖에서 크고
긴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네가 그를 죽이다니!”
“내가 못할 줄 알았어?”
아리아는 말에 올라탔다.
산사
조프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가에리! 마가에리!”
“마가에리, 마가에리.”
‘이제 난 자유야.’
‘웃으면 안 돼.’
“전 집에 가고 싶어요.”
케반이 다시 일어섰다.
‘트라이덴트의 최고 영주라고?’
“네 최후는 지금이다.”
“입 닥쳐라.”
“성모여!”
기사가 울부짖었다.
“조프리는 왕이 아냐!”
‘우리를 모두 해산시키려나?’
“무슨 뜻이죠?”
“안 돼! 그는 날 보낼 거예요. 그럴 리가…….”
“이 보석들은 뭐죠?”
“멋지군요.”
테온
“전령조들을 더 날려보내라.”
“날려보내라니까!”
“그 길뿐입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나?”
“제가 액스를 들고 도개교에 서 있겠습니다. 그러면 적들이 저를 치
러 건너올 겁니다. 한 번에 하나씩. 문제없습니다. 제가 숨을 쉬는 한
아무도 해자를 건너올 수 없을 겁니다.”
“말씀대로 하시지요.”
‘턴클락이라고?’
테온은 버럭 화를 냈다.
“알겠습니다, 왕자님.”
‘이 친구도 내게 등을 돌리는군.’
테온은 말을 세웠다.
“그레이조이, 미쳤나?”
그러자 로드릭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달라!”
테온은 표정 없이 피식 웃었다.
“내게 씌웠던 건 삼으로 만든 밧줄은 아니었어도 다를 게 없어. 살이
찢기는 아픔은 마찬가지니까. 세르 로드릭, 그게 내 살을 찢었다구.”
“이 독사 같은 놈!”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군.”
“나에겐 아니야.”
‘불공평해. 모든 게 불공평해.’
테온은 잔 너머로 불꽃을 응시했다.
그는 혼자 회상에 잠겼다.
그때였다.
“내기를 할 텐가?”
“난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트워치에 가라고?”
“테온 왕자님!”
“북부인들이…….”
“공격인가?”
루윈이 그의 팔을 꽉 잡았다.
‘드레드포트의 볼톤 가문 문장이군.’
“직접 가서 보겠다.”
루윈이 그를 따라왔다.
“도트락인들이요?”
붉은 투구를 쓴 자가 소리쳤다.
“20명에서 30명쯤이죠.”
“리크.”
그가 손등으로 입을 문질렀다.
그의 미소가 굳어졌다.
테온은 화가 치밀었다.
‘성문을 닫아!’
티리온
‘내가 울고 있나?’
‘왜 내가 저들을 모두 죽인 걸까?’
‘열기…….’
‘세르 만돈.’
티리온은 약이 올랐다.
‘아냐, 가지 마. 날 도와 줘. 도와 달라고.’
하지만 그가 낼 수 있는 소리는 희미한 신음소리뿐이었다.
‘난 입이 없어.’
그 말에 여자는 항상 깔깔거렸다.
“내 얼굴도?”
“그만…… 그만 하세요.”
“하라구. 지금 당장!”
‘상처…….’
“이름…….”
“네 이름…….”
“가져와!”
“더…….”
“예쁘군.”
“아마?”
‘그랬겠지.’
“아버지가 여기에?”
“가서…….”
“가서 그 아일 데려오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티리온 경…….”
티리온은 의아했다.
“알겠습니다.”
“세르 만돈은?”
포드릭이 움찔했다.
“저는 결코 죽일 생각은…….”
“죽었어? 정말 죽었어?”
“익사했습니다.”
씁쓸했다. 모든 게 씁쓸했다.
존
“존은 따로 할 일이 있네.”
“존은 아직 어립니다.”
“존, 검은 날카롭나?”
“그럼요.”
“알겠습니다.”
“네? 무슨 뜻이죠?”
“네? 항복이요?”
“그래야만 해. 이건 명령이다.”
“명령이라구요? 하지만…….”
“네, 하지만…….”
“하지만은 없다, 존. 그런 게 아니라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뭘 말입니까?”
“어디로 가는 거죠?”
“되돌아간다. 가자.”
존은 내심 마음을 졸였다.
“따라와라.”
“이런 곳이 있는 줄 알고 계셨군요?”
“네.”
존은 얼른 고스트를 찾았다.
“고스트, 이리 와.”
“잘 있었소, 래틀셔츠?”
“난 ‘뼈의 제왕’이다.”
남자의 투구는 거인의 두개골로 만든 것이었고, 가죽옷 소매 부분에
는 곰 발톱이 수십 개나 꿰매져 있었다.
“그걸 보여 줘라.”
개들 역시 한꺼번에 짖어 댔다.
“잠깐!”
존은 화살이 날아오기 바로 직전 재빨리 앞으로 두 발짝 나서며 소리
쳤다.
“항복하겠어요!”
존은 이그리트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될 거예요.”
“뭐든지 하겠어요.”
“날카롭구나.”
“저 친구를 데려와라.”
“이름이 뭔가?”
“그 아일 죽여라.”
“그 사람은 항복했어요.”
‘정말 자유민들이로군.’
존은 내심 놀랐다.
브랜
“브랜 왕자님.”
“브랜 왕자님?”
“윈터펠.”
“네, 좋아요.”
“난 서머와 함께 있었어요.”
“꿈일 뿐이에요.”
“누구의 피였는데요?”
“내가 한번 나가 볼게요.”
브랜은 가죽 만지는 소리와 부싯돌에 쇠를 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
서 뭔가 번쩍이더니 불이 붙었다. 오샤가 입으로 부드럽게 바람을 불
자, 발끝을 들고 선 소녀가 기지개를 켜듯이 길고 창백한 불꽃이 피어
올랐다. 오샤의 얼굴이 불꽃 위로 일렁거렸다. 오샤는 불씨를 횃대에
붙였다.
“호도르.”
“확실해?”
“확실해.”
“호도르.”
“집에 가고 싶어!”
“호도르.”
“호도르를 시켜 봐.”
“호도르.”
“호도르!”
“호도르!”
“호도르.”
“새기독!”
“테온의 짓이야.”
“가즈우드 쪽이에요.”
“불처럼 강한 어떤 힘이 있죠.”
“호도르? 호도르?”
“알고 있었다구요?”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납골당에…….”
“안 돼. 죽으면 안 돼요!”
오샤가 창에 몸을 기댔다.
“그렇다면 어디로요?”
“그럴게요.”
루윈이 침을 꿀꺽 삼켰다.
“네, 알겠어요.”
“왕자님들을 데려가세요.”
“호도르.”
“우리의 길은 북쪽이에요.”
왕들의 전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