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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s sombrios 우울한 나날
Dias sombrios 우울한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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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
개자식!
냄새나고 더러운 동물따위가 어떻게 인간의 주인따위가 될 수 있다고.
새빨갛게 충열된 눈으로 남자에게 살기를 드러냈지만 돌아오는건 내장을 헤집는 끔찍한 고통
뿐이었다.
아아악!! 참지 못한 비명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살을 파고드는 손을 피해 하얀 몸뚱이가 경련을 일으키며 흔들린다.
지하굴의 칼튼은 그 악명답게 손속에 자비가 없었다.
의뢰인일땐 그토록 살갑더니 적으로 돌아서자 저항도 못할만큼 철저히 짓밟는다.
온몸을 파헤치는 생경한 감각에 벤 하일즈는 드물게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살려달라 매달릴 만큼 절박하진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릴지 언정.
“…….”
“저는 지금부터 당신이 가장 경멸해 왔던 수인족들에게 그 몸을 범하라 명할겁니다.
당신이 모멸감에 죽고 싶어할 얼굴이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나른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에 벤 하일즈는 찢어지고 헤진 입술을 벌려 웃음소리를 내었다.
역겨운 동물 냄새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마른 소리를 내던 그는 비참하게 자비를 구하느니 차라리 제 몸을
포기하는 방향을 택했다.
시야가 하얗게 점멸한다. 모든것이 뒤바뀐 날. 그리고 그건 지옥의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했다.
-1 편-
["벤님?"]
["그딴게 재미있나?"]
["지식이란건 배워도 배워도 모자름이 없으니까요."]
벤 하일즈는 나직히 코웃음쳤다. 그래봤자 지루한 샌님밖에 더 되나.
모름지기 사내라면 검이다. 찌르고 베고.
찢어지는 비명과 사방이 피로 적셔진 대지만큼 황홀한 것도 없다.
나름대로 생각해서 진지하게 충고했더니 검은머리의 소년은 말없이 웃고만 만다. 눈가의 점이
어린놈 주제에 지독하게 야하다.
가끔은 이대로 잡아먹고 싶을 만큼.
그러나 벤 하일즈는 음험한 속내를 숨기고 커다란 나무를 등받이 삼아 몸을 기대었다.
따사로운 볕이 쏟아지는 나른한 오후였다.
깜빡..
"...기분나쁜 꿈을 꿨군."
"큭..."
빌어먹을 재규어자식.
사나워지는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다가온 검은머리의 신사는 벤의 허리를 잡아 침대로
이끌었다.
반항없이 끌려가 앉자 그가 손을 뻗어왔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리자 오늘은 때릴생각이 없다며 상냥한투로 속삭인다.
모멸감에 떨리는 손을 가만히 움켜쥐자 검은머리의 남자. 헤일런은 벤을 침대위에 눕히고
침의를 옆으로 젖혔다. 근래 햇빛을 못본 탓인지 드러난 나신은 눈처럼 새하얗기만 했다.
"쉬이..가만히."
급소나 다름없는 부위를 남에게 내맡기고 있으려니 불쾌함과 불안함이 동시에 엄습했다.
고의라고 생각할 만큼 다리 사이를 느릿하게 배회하던 손이 상처가득한 비부에 이르렀다.
질척. 향유와는 다른 끈적한 액체가 주름을 문질렀다.
날카로운 살기가 금방이라도 그를 향할듯 꿈틀 거렸지만 벤은 인내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가 구멍을 비집고 들어와 내벽을 훑었을 땐 저도 모르게 토악질이 나왔다. 살의는
눌러참았지만 생리적인 반응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2 편-
벤 하일즈.
그는 하일즈가의 삼남으로 그리 대단한 권력가의 자제는 아니지만 나름 건국초부터 존재해온
유서깊은 귀족가문의 혈통이었다.
위로는 형이 둘. 아래로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지만 형제들과의 사이는 오히려 타인보다 못할
정도였다. 훗날 벤이 귀족에서 노예로 전락했을 때조차 모른척 외면했을 정도이니 알만했다.
* *
헤일런에게 떠밀리다 시피 들어온 방에서 벤은 또 다시 손님을 받았다.
허리가 아프고 밑이 부어 따끔한 통증까지 밀려왔지만 헤일런이 그의 몸 상태를 신견써줄리
만무하다. 벤 그 스스로도 아쉬운 소리를 뱉어낼 남자는 아니었고.
"그 무...컥!!"
"내가 못죽인게 아니라 안죽이고 있던걸 알아야지.."
날카로운 비녀가 남자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꿰뚫었다. 그륵 거리며 남자가 손목을 떼어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제약이 있어 이전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순 없지만 단련되지 않은 일반인 정도라면야 손 쉽게
해치울 수 있다.
하물며 오늘은 이런 도구까지 있는데. 고맙게도.
콰직!!!
마지막으로 벤이 감흥없는 눈으로 남자의 시체를 내려 보았다. 크게 뜨여진 동공. 주르륵
시트를 적신 붉은 핏덩이.
저런. 또 저질러 버렸군.
이로써 체벌이 있겠지만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처하긴 하나 희미한 만족감을 지워내지 못한 벤은 그대로 침대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촤악!!!
"윽!"
"그만."
하아, 하.
그제야 벤은 반쯤 감았던 눈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온 몸이 다 땀과 피로 축축하게 젖어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일 힘도 없었다.
난도질을 해 놓은 가슴과 등짝엔 이렇다할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탁. 책을 덮은 검은머리의 사내가 몸을 느긋하게 일으켰다. 늘어져 있던 몸은 대단히 길고
유연했다.
이윽고 벤의 앞까지 다가온 헤일런이 수통을 들어 그의 입가에 물을 흘려 넣어 주었다.
꿀꺽. 꿀꺽.
반사적으로 목울대를 넘기자 차가운 생수와 비릿한 피냄새가 입안을 가득 메웠다.
그래도 마른목을 축이기엔 충분했다.
철그렁.
드디어 손과 발을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후들 거리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휘청거리자 헤일런이 그를 자연스레 받아 들었다.
불쾌함에 어깨를 잡고 밀어내자 뒤로 물러난 헤일런이 벤에게 입힐 옷을 가져왔다.
이윽고 상처위에 와닿는 천의 감촉에 벤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벤..하일즈?"
붉은 머리칼에 답답한 성격을 그대로 내보이듯 단추를 목까지 꼼꼼히 채운 검은색의 제복.
남자는 반년전만 해도 벤과 사사건건 부딪치던 사관학교 동기. 쟈엘 칸 대령이었다.
4편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리가 없다. 자신의 동기이자 적수였던 사내의 앞에서 예뻐해 달라
유혹질이라니. 옷을 전부 벗는것만 못한 차림으로 그 앞에 섰을 때 느낀 수치심과 모욕감.
당장에라도 꺼지라고 소리치며 덤벼들고 싶은 충동을 얼마나 참아냈는지 모를 것이다.
스스로를 깎아 내린것도 그의 동정과 구경거리 보듯 하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버린 위치가 비참할 정도로 피부에 와닿았다. 헤일런은 그런 의도에서
자신을 쟈엘에게 보냈을 것이다.
속에서 울컥 울컥 튀어오르는 감정에 눈앞이 뜨끈하게 달았다.
반성?
피가 거꾸로 치솟는 기분에 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헤일런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가 들고있던 책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속이 뒤집혔다.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벤은 유독 헤일런의 도발에 흥분을 많이 했다. 가학심만을
자극했던 이전과는 또 다른 의미로. 내가 왜 너까짓놈 때문에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목을 꽉 조이는 힘에 헤일런이 소리없이 웃으며 그의 손목을 잡았다.
"윽!"
"이런. 아직은 무립니다 벤. 이렇게 반항하시면 전처럼 사지를 묶어두고 손님을 받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아니."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얌전히 있겠다."
"착하군요. 말만 잘 따르신다면 최소한의 자유는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인간인 당신과
다르니까요."
"...내가 뭘 해야 하지?"
"내일 저녁에 있을 파티에 참여해 주시면 됩니다. 벌이니까 힘들건 당연히 각오해 두십시오."
"별 말씀을."
* *
헤일런은 지위와 나이여부를 막론하고 말투와 태도가 정중했다. 검은 신사라고 불리는 이유가
달리 있는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습관은 전주인인 벤하일즈에게 영향이 컸다. 의외로 귀족적인 그는
예의범절에 꽤나 민감해서 제 아랫것들의 실수를 결코 용납치 않았다.
군인출신이다 보니 위계질서를 무너트리지 않기 위함도 있었을 테지만.
"그런데 왜 하필 창부였습니까?"
"칼튼씨가 제게 그를 넘겨주며 그런 조언을 하더군요."
-
지하굴의 칼튼은 확실히 장사치로서 수완이 좋았다. 비록 방법이 지저분 하긴 하나 귀족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헤일런은 벤의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도덕적인 관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따라서 현재 벌어지는 파티 역시 자금벌이 중 하나로만 생각될 뿐이었다.
"......"
그런데 그 순간.
"큭!"
아아.
도저히 꺾이지 않는 고집에 헤일런은 눈가를 깊이 휘며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6 편-
비밀스런 파티를 즐기기 위함인지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섬뜩한 가면이 걸렸다.
커다란 손들이 몸을 주무를 때마다 벌레가 기는마냥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본능에 충실했던
동물새끼들 보다 더 포악하고 잔인했다.
유두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강한 마찰이 있고 성기로는 넣어서는 안될 물건이 사출을
가로막았다. 온갖 도구들이 사용되어졌다.
그만.
벌어진 입으로 누군가가 우악스럽게 성기를 밀어넣었다. 안을 가득채운 살덩이에 숨이 턱턱
막혀 괴로워 했지만 창부의 사정을 봐줄이가 있을리 만무했다.
"컥..허억. 읍."
"잘 받아 먹어야지. 흘리면 다시 가득 싸넣어주마. 하하."
끔찍하다. 끔찍했다.
사내들에게 유린 당하는 것이 이번 처음은 아니었지만 약에 취한 몸으로. 마찬가지로 약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십수명에게 용변기처럼 사용되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 몸이 통제를 벗어난 것도 견딜 수 없는데 천박하게 구른 몸뚱이는 이 행위에 쾌락마저
느끼고 있었다.
* *
한계에 다다랐음에도 여전히 자극을 원하는 육체에 벤은 피가 배어날 정도로 입술을 짓씹었다.
헤일런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손끝이 덜덜 떨렸다. 평온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긴장감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래서 거래조건은 뭡니까? 당연하지만 무리한 조건은 받지 않습니다."
역시나 수인족을 인질로 삼은게 효과가 있는지 헤일런은 크게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벤은 그제야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그 역시도 지나친 조건을 내세울 생각은 없었다.
쟈엘을 대접하지 못함 벌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스스로
이런 말을 입에 담을리는 없을테니.
"너..."
"예. 말씀하십시오."
"네 창부가 되어주겠다."
"......"
제안이 아니라 명령조에 가까운 말투. 오만한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태도였다.
벤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몇년만에 찾은 황궁은 이전과 다르게 정원이 온통 풀과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서 쉽게 볼수 없는 가지각색의 식물에 눈이 다 아파왔다.
벤의 불만어린 투에 곁에선 시종이 설명을 덧붙였다. 대공께서 직접 가꾸신 것들이라고.
어울리지 않게 식물키우기 따위에 취미가 있다더니 황궁에도 그 솜씨를 선보인 모양이다.
10 살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의 체구는 몹시도 작았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귀족인가?
[...안녕?]
[......]
"안녕."
"이거 몇개?"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럼 발로 치료해도 돼?"
"......"
그나저나.
짜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얼굴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벤은 인상을 찌푸리며 얼얼한 뺨을
손으로 만졌다.
입안이 터졌는지 비릿한 피맛이 혀끝에 닿았다. 이제와서 이정도는 별달리 굴욕이랄것도
없지만 상대가 헤일런일 때는 사소한것 마저도 기분이 나빴다.
*
허벅지가 벌어지며 조금의 배려도 없이 단단하고 커다란 성기가 아래를 꿰뚫고 들어왔다.
짐승의 섹사에는 배려가 없었다. 배를 가득히 채운 살덩이가 연약한 내벽을 무참히 짓이겼다.
벤의 방식에 몇년간 강제로 노출되었기 때문인지 헤일런은 그만큼 하는 방식이 난폭했다.
개자식. 좀 천천히..!
찢어진 입구에서 줄줄 흐르는 피를 윤활유 삼아 헤일런의 움직임이 조금전 보다
매끄러워졌다. 정작 당하는 벤의 입장에선 이러나 저러나 죽을 맛 이었지만.
질척.
"읏!"
"큿! ...아."
"아..아윽!"
"어헉...학! 그, 그만!"
보통의 인간과는 체력과 근력이 달랐다.
내장이 위로 뚫고 올라올 만큼 강한 움직임에 견디다 못한 벤이 몸무림을 쳤다. 이것은
쾌락으로도 덮을 없는 오로지 고통을 주기위한 행위였다.
도망가려는 먹잇감에 흉폭해진 짐승이 그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으르릉..
귓가에 전해지는 섬뜩한 짐승의 울음소리에 벤은 도망가려던 것도 잊고 몸을 움츠렸다.
이번엔 확실히 공포로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하얗게 질린 손끝이. 악물린 턱이 그의
심정은 대변하듯 엉망으로 떨렸다.
그를 기민하게 알아챈 헤일런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허리를 곧게 폈다.
살기어리던 눈빛이 천천히 사그라 들었다.
"심장소리가 아주 요란하군요."
"......하아..하."
"확장된 동공. 빨라진 호흡. 수축된 근육까지. 마치 겁이라도 먹은것 같습니다."
서서히 가슴에 기울어진 헤일런의 얼굴에 벤은 그를 당장에 밀어내고 싶었지만 공포에 억눌린
몸이 제 마음대로 따라주질 않았다. 피가 얼어붙는 것 기분이었다.
두근 두근.
몸이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떨림은 더해갔다. 표정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으나 신체의
변화까지 숨기기는 어렵다. 재미있다는 듯 헤일런이 웃음소리를 내며 몸을 떼어냈다.
위에서 벤을 여유로이 내려다 보는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앞에둔 포식자 같았다.
어둠속에서 번뜩이는 노란 맹수의 눈동자 때문에 특히나 그런 감상을 떨칠 수 없었다.
신사같은 얼굴로. 그와 같은 말투로 헤일런이 벤의 엉망이된 뺨을 손바닥으로 살살 문질렀다.
"하악..!"
"......"
"일어나셨군요."
"커헉!!"
"윽!"
짤랑.
방울 소리와 함께 구멍이 벌어지며 작은 이물질을 단번에 삼켜버렸다.
이게 무슨?
딸랑.
귓가에 울리는 수치스러운 소리에 한걸음 한걸음 떼는 것이 고역이었다. 참아야지.
인내해야지 하고 억지로 걸음을 떼어보았지만 짐승처럼 엎드려 기는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차라리 얻어 맞고 다리를 벌리는게 더 나을만큼.
결국 벤은 얼마 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반항적인 눈빛에 옆구리에 사정없는 발길질이 이어졌다. 커헉. 기침을 하며 벤이 몸을
웅크렸다. 쇳덩이에 얻어 맞은마냥 한순간 숨이 안쉬어졌다.
"벤. 움직이셔야지요."
"......"
**
헉헉..
비오듯 땀을 흘리다 그대로 널브러지자 다가온 헤일런이 그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두 뺨. 가파르게 오르락 거리는 가슴과 가운 사이로 보이는 가느다란 허벅지.
툭툭. 어깨를 치다 쇠사슬을 당겨도 반응이 없자 헤일런은 여태껏 함부로 굴린것과 다르게
벤을 조심스레 품에 안아 올렸다.
"욕실부터.."
["흐음. 마셔볼테냐?"]
"윽..기다려. 밖에다가..!"
"싫습니다."
..죽일 짐승새끼!
벤은 욕지거리를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뱃속으로 뜨끈하게 퍼지는 정액에 말못할
모욕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한방울 까지 다 밀어 넣고야 말겠다는 듯 줄줄이 쏟아지는 액은
성기에 막혀 흘러내리지도 않았다. 악 다물린 턱이 덜덜 떨렸다.
뒤를 내어주는 것까진 그간의 경험으로 이제 그럭저럭 참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동물따위의
씨물이 제 뒤를 채울때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산산 조각나는 기분이 든다. 상대가 한때 제
성노예였던 헤일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좀더 뿌리 깊은 곳까지
뒤흔들었다.
"...빼."
"여기서 더 하겠다고?"
“예.”
몸이 반대로 돌려졌다.
이번엔 서로 마주보는 정상위의 체위였다. 성기를 빼내지 않은채라 전해진 충격에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아래를 쇠몽둥이 따위가 빙글 헤집은 느낌이었다.
대답은 없었다.
어쩐지 요근래 자신을 지나치게 몰아간다 싶더니 그런 속셈이 있었던 건가. 지치게 해서 뭘
얻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그렇게 묻자 헤일런은 잠시 고민하다 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슬슬 두피를 어루만져오자
미간을 좁힌 벤이 그의 손을 탁 쳐냈다.
"......"
"윽!"
"역시 아직 끝낼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뭐, 뭐..
벤이 당황하던 말던 헤일런은 다리를 잡아 올리며 다시 추삽질에 몰두했다. 퍽퍽, 안을
거칠게 박아대는 살덩이에 벤은 혀를 깨물뻔 하다 가까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시야가 두 갈래로 나뉘어 흔들린다. 허기는 지고 아래는 폭력적으로 들쑤셔 대서 이제 아프다
못해 감각도 희미해졌다.
이 몰상식한 놈이 이짓으로 날 죽일 셈이구나. 벤은 가물가물해 지는 의식속에 그런 생각을
했다.
-
"......"
다만.
“큭!”
“이리 오십시오.”
“…….”
"커헉! 컥! 대체 뭐..쿨럭."
"건방지게. 자신의 처지를 좀 자각하십시오 벤. 저까지 헷갈리지 않습니까."
"컥. 흐읍..하아. 하."
대답? 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알길이 없다. 자신이 요구한 것이라고는 머리를 감겨달라는
것 뿐이었는데.
심지어 말도 다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것에 대해 머리 박고 사죄라도 하라는 건가 뭔가.
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뭘 또 거슬리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뜬금없는 분풀이에
기분이 확 상했다. 패고 싶은거였으면 차라리 그렇다고 말을 하던지.
한껏 날카롭게 벼려진 기세에 헤일런은 다시 물고문을 이어갔다.
첨벙!!
물에 처박히고, 또 들어 올려지고.
괴롭게 물을 뱉어내면서도 곧죽어도 잘못했다는 말이 없자 헤일런은 잡은 머리채를
놓아주었다.
"아, 흐아악!!"
"잊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만. 제 이능은 얼음을 다루는 겁니다. 쉽게는 사물을. 나아가
대기를 얼리기도 하고."
"아, 으윽. 그, 그만!"
"이런건 사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만. 칼튼씨가 이런저런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시더군요.
그는 참 배울게 많은 사람입니다."
"허억..!"
안에 들어찬 얼음이 부피를 늘리고 쩌적. 쩍. 주위의 물까지 얼어붙어 가는 가운데 공포는
극에 달해갔다. 입김이 나올만큼 기온이 낮아지자 벤은 숨도 제대로 뱉어내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엄습하는 추위와 내부를 찌르는 얼음덩어리가 목구멍을 뚫고 나올것만 같았다.
"하으..으윽. 헤, 헤일런."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노예의 본분을 벗어난 명령조의 말투는 삼가주십시오.
아시겠습니까?"
"......"
"대답."
"...유념하지."
빌어먹을 노예. 그보다 더 빌어먹을 재규어 새끼. 벤은 수면위에 일렁이는 제 처참한 모습에
욕조끝을 부서져라 쥐었다.
*
*
벤은 그날 이후 오랜만에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대자앙!"
벌컥.
이어지던 생각은 난데없이 들이닥친 불청객에 의해 뚝 끊겨버렸다. 갈색머리의 늑대 수인족.
벤은 날이 선 목소리로 상대를 꾸짖듯 말했다.
"뭐냐. 무례하게."
"..여기 우리 대장 안오셨습니까?"
없어.
"제게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없다만."
"이 뻔뻔한 인간놈! 그 때 날 두드려 패놓고!!"
패다니.
"내가?"
"그래. 당신이!"
"몰라. 기억안나."
"일단 근처 나무위는?"
"정원은 샅샅히 뒤져봤지만.."
"뭐가 그리 즐겁습니까?"
"......"
날이 저문 느즈막한 시간. 열흘만에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벤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렇다할 기척도 없이 들어온 검은머리의 청년이 바로 코앞에서 두눈을 부드러이 휘고 있었다.
벤은 경련하는 입꼬리를 바로 내리며 불쾌한 낯을 했다.
* *
"예?"
헤일런의 위에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던 벤이 대뜸 그런말을 해왔다.
헤일런의 위에서 직접 허리를 움직이며 만족시켜야 했던 탓인지 그는 평소보다 다소
지쳐보였다.
벤은 숨을 가늘게 내뱉으며 단단한 가슴팍 위에 뺨을 올렸다. 피부가 워낙에 서늘한 편이라
그런지 뜨겁게 달아 올랐던 열기가 차차 식어갔다. 피로함에 떨리는 눈꺼풀을 내리감자
시야가 까맣게 뒤덮였다.
찌꺼기 처럼 떠오르는 기억은 쾌감에 잠식되어 뿌옇게 흐려졌던 정신을 일깨웠다.
달이 기울던 이른 새벽. 갈기갈기 찢긴 고양이의 시체를 보며 저를 경악어린 눈으로 보던
남자. 부서진 빙판위에 선 마냥 위태롭게 떨리던 손끝과 빨라지던 맥박.
그렇게 들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하자면 운이 없었다. 뚝뚝. 지면을 적시는 붉은 핏빛에
벤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덮어쓰고 있던 가면은 그렇게 산산조각 났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건조한 웃음이 새었다. 그 이전엔 단순히 필요에 의해 애착을 가졌다면
지금은 순수한 증오만이 전부였다. 그 이전에도 없을 만큼 벤은 헤일런에 대한 살의만으로
악착같이 이 지옥같은 나날들을 견뎠다.
지하굴의 칼튼에게도 만만치 않은 원한을 가졌지만 자신이 갈고있는 칼날은 오로지
헤일런만을 향했다.
자신이 겪은 이 치욕과 모멸감은 그로 인해 파생되었기에.
경멸하던 동물 따위가 제 위에 올라서 주인 행세를 하려 했던것은 벤에게 뼈아픈 수치였고.
자긍심에 상처를 입혔다.
벤에게 있어 헤일런은 여전히 하잘것 없는 노예였다. 자신이 그에게 저지른 일은 당연히
여기면서도 반대의 경우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뼛속부터 오만한 그의 천성 때문이기도 했고. 보수적인 귀족 혈통인 탓도 있었다.
자라온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아..하."
* *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자르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더 나은 조건만 있다면 금세 돌아설
위험을 감안해야 한다. 그건 이번일로 아주 뼈져리게 깨닫지 않았던가.
흐음.
이제는 익숙한 창부의 요염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유혹하듯 휘어진 자줏빛 눈동자가
지독하리만큼 퇴폐적이었다.
"저, 그럼 올라가실까요?"
"뭐?"
......?!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순간 벤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런곳에서
마주칠거라 생각지 못한 둘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쿵쿵.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갈듯 요란하게 맥박쳤다.
알아보면..
여기서 들키면 어쩌지. 또 도망나오자 마자 잡혀서 돌아가게 되나.
칼튼이라면 죽이진 않더라도 분명 헤일런에게 가져다 바칠 가능성이 용이했다. 벤은 땀에
젖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의심어린 눈초리로 그를 보던 칼튼이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무슨 소리야. 하나도 안 닮았어. 그리고 이런 눈은 도발적이라고 하는거다. 색기 넘치는게
남자 한둘 홀려본게 아니겠어. 내가 임자만 없었다면 하룻밤 정도는 어울려 줬을텐데."
"..아닌데 닮았는데."
타닥. 탁!
"헉..허억. 헉."
어느샌가 거리를 좁혀온 기사들이 뒤를 에워쌌다. 쉬익.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에 어깨에
두르고 있던 숄이 툭 떨어졌다.
"멈춰라! 이 요녀!!"
"길거리의 창부 주제에 감히 기사를 시해하다니!"
"......하."
"도, 도와.."
...쟈엘 칸 대령.
벤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정말이지 되는 일 하나 없다고.
"무슨 일인가?"
주춤.
나직히 울리는 목소리에 다가오려던 기사들이 서로 고개를 돌려 눈치를 보았다.
곁에 따라 붙은 수행원은 없지만 남자의 차림새와 분위기가 귀족으로 보였던 탓이었다.
그들이 머뭇거리며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사이 쟈엘이 먼저 쓰고있던 모자를 내리며 얼굴을
드러냈다.
"가십시오. 죄는 묻지 않겠습니다."
"......"
멈칫. 그 자리에 멈춰서게 된 쟈엘이 한숨을 쉬고는 자신에게 용건이 있느냐며 나직히 물었다.
벤은 그의 몸을 자신쪽으로 잡아 돌렸다. 노란홍채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단지 그뿐이었지만
어떤 확신에 입술끝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 *
"윽!"
"아, 미안하다. 그게 좀 놀라서.."
"......됐다. 혼자 일어설 수 있어."
그래 뭐 기분 나쁠수도 있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도움을 거절한 벤이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쟈엘은 멀뚱히 선 채로
그런 벤을 바라보다 그보다 앞서 걸어나갔다.
도착한 방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했다. 이런 사치는 안 부릴 줄 알았는데 온갖 명화며
조각상이 방안 곳곳에 즐비해 있었다.
벤은 그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일단 입고있던 거추장 스러운 여자 옷부터 훌훌 벗어
던졌다.
"내 양심은 그 정도로 충분해. 그래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네게 다른걸 요구할 수 있지."
"다른것?"
"사람 하나만 만나게 해줘."
'벤.'
다리 사이로 뜨겁고 커다란 살덩이가 밀려든다.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내부를 가득 채워갔다.
환영임이 틀림 없음에도 그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헉. 소스라치게 놀란 벤이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벤 하일즈?"
"아.."
"씻어야 겠다."
목욕시중을 들이는게 가장 편했지만 함부로 사람을 들일수는 없었다. 자신의 얼굴이 워낙에
유명했던 터라 소문이 새어나갈 위험이 있다. 여자인 줄 알고 들인 사람이 실은 남자였다고
알려지는 것도 쟈엘의 평판을 깎는 일이었고. 물론 그의 평판이 깎이는 정도야 벤은 아무래도
상관없긴 했다.
"!"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흑발. 황금을 박아넣은 듯 화려한 금색의 눈동자. 그러나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긴 동공.
커다란 장신의 남자는 넓은 실내에 덩그라니 선채로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이 권태로운 얼굴.
압도적인 분위기.
뜻밖의 인물에 벤은 긴장을 누그러 트린 대신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그리슨 대공."
"..너는 쟈엘이 아니군. 그대는 그러니까.."
"......"
"학살자?"
"벤 하일즈."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그랬군.
벤은 새삼스러울것도 없어 다시 침묵만 하는 쟈엘에게 덤덤히 말하며 그에게서 식사를 받아
들었다.
애초에 찾아온 목적은 선물이 아니라 자신때문 이었는지 모른다. 저 권태로운 용은 세상일에
관심은 없지만 반대로 자신이 애정을 품은것엔 집착이 대단했다.
"지금이다."
"그나저나 연락은?"
"왔습니다. 하셀에 있는 아란드의 사탑에서 보자고 합니다."
아아. 그럼 그렇지.
벤은 담벼락 위에 앉아 깃이 달린 부채를 흔들며 뒷정리를 지시했다. 헤일런의 실수는 자신을
살려둔 것과 필요에 의해 인간과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세상에 인간만큼 교활하고 잔인한 생물도 없다. 그렇게 당하고도 헤일런은 멍청한 짓을
반복한다. 여느 수인족들이 그러하듯. 동물들의 한계다.
차르르. 탁. 챠르르.
손에 들린 검붉은 부채가 활짝 펴지고 다시 좁혀지길 반복했다.
헤일런의 생각을 지우고 다음으로 움직일 경로를 머리속으로 그려보는데 별안간 한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붉은빛이 골목 어귀를 밝혔다.
"...벤 하일즈?"
"......"
자신을 이꼴로 만들어 놓은 주제에 퍽 열렬한 환영인사다. 비웃는게 아니라 정말로 그 전일은
전부 잊은마냥 해맑아서 속이 더 뒤틀렸다.
칼튼역시 장난 이었는지 자신을 침대에서 죽여줄 사람은 하나로 족하다며 금발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엉덩이를 움켜잡았다가 놓기까지 했다. 뿌리칠 줄 알았던 카시안은 그에게
밀착하며 가슴에 뺨을 댔다. 형제라고 하기엔 농밀한 접촉들.
챠르륵.
왼쪽손에 들린 부채가 넓게 펴져 얼굴을 반쯤 가렸다.
후회할텐데.
그 의뭉스러운 한마디가 가슴을 술렁이게 했지만 벤은 코웃음치며 그를 무시했다. 칼튼의
말을 더럭 믿고 돌아서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저놈이 무슨 의리로 제게 도움이 될 조언을
할까. 차라리 그 반대면 몰라도.
빌어먹을 동물새끼들.
지금까진 장난이었다는 듯 길목마다 함정을 깔아두고 포위를 좁혀왔다. 그리고 하나 둘.
동료들을 죽이며 벤을 고립시켰다.
움찔.
스쳐지나가는 검은그림자에 벤은 숨을 죽였다. 놈들은 주변을 탐색해 나갔다.
다행히 근처가 전부 피로 범벅되어 있어선지 벤을 쉽게 찾지는 못했다.
"...하아..하."
두근..
"......"
으욱..!
맞잡힌 손가락이 하나 하나 꺾이자 벤의 몸이 덜컹 흔들렸다.
..
벤은 바르작거리는 검은남자를 짓누르고 손바닥에 날카로운 단검을 박았다. 피부를 찢고
근육마저 파헤치는 칼날에 검은 눈동자가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러면서도 차마 비명은
지르지 못하고 이를 악문다. 철저히 제게 순응하는 모습에 발끝부터 저열한 쾌감이 올라왔다.
["크윽..!"]
벌어진 다리사이로 단단한 성기를 밀어넣자 야한 눈매가 반으로 접히며 파르르 떨렸다.
좁은 구멍은 언제나 처럼 뜨거웠고 벤의 것을 기다렸다는 듯 조여 물었다.
하아. 하..
가쁜 숨을 삼키는 남자의 눈가가 빨갛게 충혈되어 물기를 적셨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듯한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고여있기만 했다.
["..대령."]
["좋아. 말해봐."]
["주인님. 목이 마릅니다."]
["아아, 하긴. 벌써 이틀째니까."]
* *
"흐으..그, 그만둬."
그만둬. 하지마.
벌어진 입으로 금방이라도 뱉고 싶은 말이었지만 벤은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헉..하윽. 하.."
"흐음. 구멍이 작아서 그런가 이정도 크기로는 제대로 뒤가 막아지지 않는군요."
"뭘 하려고, 윽!"
뒤를 막고있던 동그란 구가 빠져 나갔고 이어 물이 새어나가기도 전에 그보다 더한 크기의
물건이 안을 사정없이 파고 들었다. 아래가 이미 가득찬 상황에 일전보다 커다란 모형이 퍽,
쳐올리자 눈이 충격으로 크게 뜨여졌다.
"으아, 아악!!!"
"빼...!"
"보기 좋지 않습니까? 새끼를 밴 암컷같은 모습입니다만."
빼, 빌어먹을. 빼란..말이야!
자신을 조롱하는 말에 일일히 귀를 기울일 수 없을 정도로 벤의 신경은 모조리 아래로 쏠려
있었다.
헉..허억. 헉.
뭐..
놀랄틈도 없이 아래 구멍을 비집고 들어온 손가락이 혹사당한 안을 무자비하게 쑤셨다.
"!"
"다른게 아니라 도주하는 노예를 언제까지 두고볼 수만은 없어서 교육을 하려는 겁니다.
단순한 편의의 문제지요."
"......"
"기억나십니까? 당신이 그런말을 했었죠. 머리나쁜 짐승은 매로 가르쳐야 한다. 잘못된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것에 대한 대가를 몸으로 체득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벤은 인간이지만
그 이전에 노예이니 짐승처럼 다뤄도 이의는 없겠지요?"
변이의 과정이었다.
벤은 얼어 붙은 듯 몸을 굳혔다. 떠오르는건 모든 것이 뒤바뀌었던 그날의 기억.
어둡고 비좁은 지하실. 자신을 둘러싼 짐승들. 코를 마비시킬것 같았던 악취. 무력했던 자신.
비참하게 흔들리던 육체.
귓가에 흩뿌려졌던 발정난 짐승의 숨소리.
"하아..하."
"윽!"
자신을 한입에 삼킬듯 쩍 벌어지는 짐승의 주둥이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눈에 띄었다.
할짝..
돌기가 돋아난 까슬한 혓바닥이 목덜미를 핥아오자 바짝 얼어붙은 벤은 비명도 흘리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심장마저도 멈춘 기분이었다. 어둠속에서는 노란빛을 내는 눈동자가 그를 제
앞발 사이에 두고 먹이처럼 사로잡았다.
"하지마."
"......"
"하지마..하지마. 더러운 짐승주제에, 더 이상 내게 손대지 말란 말이다."
노려보는 눈동자와 명령조의 말투는 여전하지만 그것은 어쩐지 애원을 닮아 있었다.
"으, 욱.."
투둑. 툭.
여린살이 찢어지며 뭉툭하고 커다란 것이 안을 단번에 뚫고 들어왔다. 앞서 관장을 빙자한
고문보다 더한 고통이 하반신을 관통했다.
수인화한 재규어의 성기는 인간의 것보다 뜨겁고 단단했다. 크기야 말할것도 없었다. 흥분한
짐승의 숨소리. 맥박치는 핏줄까지. 모든것이 예민하게 와닿아 더 괴로웠다.
벤은 저를 붙잡고 가두는 재규어의 품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단순히 아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의 근본을 부수는 이 행위가 싫었다. 그러나 망가진
몸은 무력하여 주먹하나 제대로 오므리지 못했다.
"헉..허억. 크흑..윽."
벤은 그 순간 옴짝달싹도 못하게 붙들린 사냥감이었다. 교미를 위해 흔들리는 한 마리의
암컷이었다.
쿵,
순간 장기가 전부 위로 처박히는 감각에 토기가 치밀어 오른 벤이 입을 벌렸다.
"흐으..아..악!"
엉덩이 사이로 퍽퍽퍽, 인간이 아닌것의 성기가 쉴새없이 짓쳐들고 몸뚱아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아아. 벤은 문득 자신이 갈고리에 걸린 고깃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악! 아, 아아!"
끔찍해.
종내엔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이 순간 만큼은 분노도 치욕도 증오도 그 무엇도 붙들고
있을수가 없었다.
....
철썩,
귓가를 올려붙이는 강한 통증에 벤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입 벌리십시오."
"......"
"끔찍합니까?"
"......"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합니다. 당신은 제 노예이니까요. 내겐 당신을 지배하고
가르칠 권리가 있습니다."
"..인정할 수 없다. 인정안해."
헤일런의 말처럼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눈앞이 아찔할 정도의 쾌감만이 그를 지배했다.
"흐악..! 아, 아아!!"
아아..
알면서도 발작하듯 덜덜 떨리는 몸은 그에게 더한 자극을 원했다. 수치를 모르고 뻐끔거리며
개폐하는 구멍이 짐승의 성기를 게걸스레 탐한다. 들러붙고 있는 힘껏 빨아당겼다.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맛있습니까?"
"흐, 아악...!"
절정이 임박해 왔다. 들썩들썩 허리를 흔들다 사정을 마치자 내장 깊숙한 곳에 그의 정액도
줄줄이 쏟아졌다. 임신이라도 시키는 끝도없는 양에 아랫배가 가득차 포만감 마저 들었다.
바르작 거리며 벤이 신음했다. 헤일런은 그가 다른 생각에 빠질 여력을 주지 않았다.
사정직후의 예민한 몸을 제 위에 얹고 다시 아래를 부풀렸다. 하아..하. 땀이 얼굴을 흠뻑
적시며 떨어졌다.
아, 아냐. 안돼..그만둬.
뒤늦게야 제 행동을 깨닫고 고개를 저어보지만 먼저 움직인 쪽은 헤일런 이었다.
지나친 쾌락의 물결에 벤은 또 다시 이성을 놓고야 말았다.
“…하아. 하..”
욱신. 지나친 약물복용으로 두통이 찾아왔다. 그런데도 몸은 여전히 뜨겁고 각인된 쾌락을
쫓는다.
헤일런은..
저 머리좋은 짐승은 벤을 약에 절여 미치게 만들 작정인 듯 했다.
"흐윽...큿!"
그런 속셈이라면 가히 성공적이었다.
이성이 사라지고 동물처럼 본성만이 남는 기분은 생각보다 비참하고 끔찍했다.
짐승의 모습으로 범해지는 것보다 더한 고문이 있을줄이야.
내가 내 자신이 아니게 되는 기분. 이건 자아의 상실과도 같았다.
"하아..학. 흣."
"흐읏! 아..!"
"아, 아아...!"
"좋습니까?"
"하악...읏, 흐으..!"
"좀 더 소리 내셔도 됩니다. 어차피 또 잊혀질 테니까요."
질꺽.
허리를 뒤로 물려 성기를 느릿하게 뽑아내자 젖은 소리와 함께 벤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아, 하아."
"후.."
챙그랑..!
실수로 테이블을 친 덕에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만."
아니.
전혀 만족스럽지 않아. 이런걸 원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 손에 인형처럼 얌전히 안겨있는
벤의 모습에 적당히 타협하는 자신이 있다. 이것도 괜찮겠다고. 원하는 만큼 머리를
쓰다듬어도 적의는 없었다.
포기는 익숙하다. 어차피 바라고 또 바라도 벤은 들어주지 않을것이고 자신은 항상 그러하듯
체념할 것이다.
* *
<-- 부서지다 -->
머리가 어질거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린 벤은 멍하니 천장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일어나셨습니까?"
"......"
"제가 아닙니다."
“뭐?”
“제가 아니라 당신이 무리하게 움직이다 침대에서 떨어진겁니다.”
"......"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저는 벤이 식사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험한꼴을 당하고 싶으신게 아니라면.”
“…협박하는 솜씨가 나날이 느는군.”
"별 말씀을요."
"욱..."
먹은게 전부 약이라고 생각하니 아래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원흉인 헤일런이 다 비운
그릇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 손길을 받던 벤은 그제야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이럴때면 건드리지 말라고 뿌리쳐야 했는데 이상하게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필요성을 못느꼈다. 기나긴 잠의 여파일까. 아니면 학습된 공포의 여파인가. 헤일런에 대한
감정이 어딘가 둔해지고 누그러진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좁다."
"별로요. 전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다고. 내가.
헤일런은 벤이 못마땅한 얼굴로 쏘아보던 말던 책장을 하나씩 넘겼다.
하지만 어째선지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몸은 멀쩡했다. 반응이 있다면 벌써 왔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식사에는 약을 쏟아붓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째서?
자신이 겁을 집어먹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독서를 하느라
약을 먹이는걸 잊은건가?
급기야 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시트위로 얼굴만 빠끔히 내민 채 헤일런에게 묻기까지
했다.
"약은..안먹이는 건가."
"먹고 싶습니까?"
"......"
"또 도망가실 겁니까? 그럴 마음이 있다면 저로서도 먹일 도리밖에요."
..치워.
반사적으로 한 마디를 뱉어내려다가도 그 손길이 꽤나 익숙해서 입을 벙긋거리다 말았다.
대체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얼마나 만져댔으면 이 따위 더러운 기분이 드는거냔 말이다.
"..혼자 걸을 수 있다만."
"아. 죄송합니다. 습관이 되서."
"돌팔이 의사같으니."
"은혜도 모르는 약쟁이 노예같으니."
넬도 지지않고 말했다. 그쯤에서 벤은 심기가 확 비틀렸다.
약쟁이? 도저히 좌시할 수가 없었다. 반말도 거슬리는 마당에 감히 내게 뭐라고? 건방진
짐승새끼. 이를 털어주지.
벤이 험악한 얼굴로 주먹을 치켜들자 기다렸다는 듯 넬이 뒤로 물러섰다.
"홍차도 가져와."
* *
오독.
"......"
오도독.
"음.."
"벤."
"...하?"
"......"
"칭찬으로..흣. 알지."
"……."
* *
짜악...!
짝!
“큭!”
"하아...하."
“…….”
자, 잠깐.
“…그거 말고는.”
“일어서십시오.”
"아, 흐윽?!"
차, 차가워.
엄습하는 한기에 허리를 덜덜 떨자 헤일런이 부가적인 설명을 붙였다.
입구가 팽팽히 늘어날 정도로 부피감도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헤일런이 다른 한손을 펴
보이며 제 안에 들어간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벤은 눈을 크게 떴다. 성기모양을 본뜬
얼음. 자신이 노예가 되기 이전이었다면 기발하다 칭찬했을 정도로 정교했지만 지금은 이능을
왜 저런데다 낭비하는가 못마땅할 뿐이었다.
그러나 헤일런 본인은 만족한 얼굴이다.
"얼음으로 만든 장난감은 제 마음대로 크기나 길이의 조절이 가능해서 사용하기가 제법
편리합니다."
"윽..아!"
뭐?
벤이 경악해서 고개를 돌리자 헤일런은 아랑곳 않고 또 하나의 얼음을 물에 적셔 이미 들어갈
자리도 없는 밀부사이를 꾹 찔렀다.
미친...
지금 상태로 그런게 들어갈리가 없다.
"다리를 좀 더 벌리셔야지요."
"흐읏..아. 윽!"
"흐앗...아!"
"분발해 보십시오. 벤."
쾌락에 사로잡혀 흐려졌던 자줏빛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힘겨워 하면서도 비굴함이나
굴욕감은 없었다.
"....그렇다면야 감사히."
...
"하아..하."
"하.."
까닥. 목줄을 잡아 당기자 불쾌한듯 눈썹끝이 올라갔다. 거리가 가까워 질수록 긴장이 되어
손바닥 사이사이에 땀이 배어났다.
헤일런은 나름 이 팽팽한 긴장감을 즐겼다. 위험한 일이 설레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이전에 벤의 밑에 있었을 때의 영향같았다.
"크윽!"
"그만. 발버둥 치지 마시고."
* *
"...다 끝났나?"
하지만 경험상 헤일런이 원하는 대답이나 행동에는 타협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숙인다.
-
그리고 이튿날. 시각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붉은 목줄을 챙겨 산책을 나가려던 헤일런은
평소와 달리 침대위에 축 늘어져 꼼짝도 안하는 벤을 보고 심장이 내려앉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그는 엎드려 있는 벤의 어깨를 붙잡았다.
움찔.
그제야 기척을 느낀듯 반응을 보이는 벤에 헤일런은 스스로도 이해못할 안도를 하며 그를
잡았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뭐야. 벌써 산책 시간인가?"
"벤.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갛습니까?"
"…모르겠다만. 그 빌어먹을 약의 후유증인가 보지."
“…….”
"……?"
이어지는 침묵과 여러차례 이마를 짚었다 내렸다 끝내는 이마까지 맞대는 헤일런에 벤은 이게
뭐하는 짓인가 미간을 좁혔다.
"...뭐 하는 짓이냐."
"열이 있다고 제가 당신을 배려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산책은 그대로
다녀올겁니다."
"좋을대로."
휘청.
"......"
* *
"넬이요? 넬은 약품을 받을게 있다고 도시로 나가서.. 삼일은 있어야 돌아올 겁니다만."
해일런은 시선을 내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몇번을 거듭 생각해도 결론은 같았다.
**
"벤."
"..하아. 하."
"벤 하일즈. 제게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시면 곤란합니다."
그도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헤일런에게 예상외로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영원히
변치 않을 진실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깨어진 기분.
몇번을 불러도 벤에게서 대꾸가 없자 입술을 짓씹던 헤일런이 결국 손을 번쩍 치켜 들었다.
짜악..!
안돼. 당신은 고작 이정도로 굴복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렇게 누워있지 말고 어서
일어나서 저항해봐.
짐승따위가 감히 누구 얼굴에 손을대냐고 무시하고 조롱해. 내게 보통 사람과 다른것을
보여달란 말이다.
내장을 파헤치지도 않았고 사지를 잘라낸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나약하게 구는건지
헤일런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짝!
"..콜록. 뭐야."
"벤. 내 창부. 아프다고 해야할 일을 거르시면 곤란합니다."
"......"
"큿!"
"빠십시오."
"...뭐?"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이걸로 타협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어서 끝내지 않으면 이 주위를 모조리 얼음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방에서 주무시고 싶은건 아니시겠죠?"
주위를 얼려가는 서늘한 공기에 벤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갔다. 고민은 짧았고 벤은 순순히
헤일런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어떻게 하나 지켜보던 헤일런은 놀라 표정을 굳혔다. 열에 들떠 정신이 없어서 였는지 단순히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예상치는 못한 일이었음은 분명했다.
할짝..
"......"
"...억울하게도 말이지."
"하아..으.."
"......"
"헤일런?"
"그거, 설마 술인가?"
"예. 맞습니다만."
"한잔 드릴까요?"
"......"
"부탁합니다. 제게 술을 주세요."
"!!?"
아..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하는 헤일런의 반응이 우스운지 벤이 픽 웃음을 흘렸다.
그는 무릎을 꿇고도 어쩐지 왕좌에 앉은냥 오만해 보였다.
"그거 아십니까?"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원한을 곱씹는 벤에게 헤일런은 사막에서 단비를 뿌리듯 반년만에
처음으로 술을 맛보게 해주었다.
아팠던 자신을 괴롭혔던 보상인지 헤일런은 그에게 사막에서 구하기 힘든 과일까지 안주로
내어 주었다. 의도야 어쨌든 일단 먹고 보자 싶어서 침대맡에 등을 기대고 앉자 헤일런이
얇게 잘라낸 오렌지 하나를 포크로 찍어 내민다. 그것을 벤이 자연스럽게 받아 먹으며 병을
기울였다. 동그란 잔에 차오르는 술이 몹시도 감질맛났다.
"그게 그렇게 맛있습니까?"
"!"
"감상은?"
"아....."
"하기야. 이정도로 네놈이 뭐 간에 기별이나 가겠냐만은."
["벤님."]
"벤."
그야..
* *
"얼마나?"
뭐?
벤이 굴욕감에 부들부들 떨면서 노려보자 헤일런이 달래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든 벤은 뿌리치지도 못했다.
한때 벤이 지배했던.
아니. 당시에도 몸은 길들여진 짐승은 아니었었지. 그렇다고는 해도 그때의 헤일런은
이렇게까지 고압적인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 보진 않았다. 벤은 흐트러진 숨소리를 간신히
정돈하며 헤일런과 시선을 마주했다.
"...노력해 보지."
효과는 있었다. 확실히 몸을 겹치고 있으면 살인욕구보다는 쾌감이 머리속을 지배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약의 후유증인지 어쩐지 거칠게 관계를 갖을수록 벤의 몸은
더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벤은 몸도 일으키지 않은 채 말했다.
"왜? 나랑 한번 자고 싶나?"
"이봐."
"헤일런."
다시금 이름을 불렀을 때. 바람 한점 불지 않았는데 바로 위에서 나뭇잎이 파스스 떨어졌다.
"...뭐."
"......"
올라타란 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런 기색이 읽혀 묻자 재규어의 머리가 아래위로 작게 끄덕였다.
물론 순순히 움직여줄 벤이 아니라 모른척 외면하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왜 짐승의 위에
올라 타야..
"자, 잠깐!"
하아..하.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놀란 벤이 헉헉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럽게 나뭇가지 위에 올라섰다.
동의도 없이 저를 제멋대로 끌고 올라온 헤일런을 향해 절로 사나운 목소리가 나왔다.
"무례한 짐승놈이."
"......"
"기다려! 얌전히 올라타 줄테니까 옷은 물지마!"
"장난이 조금 과했습니까?"
머리 위에서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에 벤은 숙였던 고개를 쳐올렸다. 장난? 속에서 뜨거운
것이 확 끓어 올랐다.
"너, 이...!"
"이제보니 흥분도 잘하고. 겁도 많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벤은 그제야 처음으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벤은 아, 하고 감탄을 터트렸다.
언제 어디서도 볼 수 있는 하늘이었다. 그러나 조금은 특별하기도 했다. 전쟁터를 연상케
하듯 먼 끝자락에서 부터 화려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황금빛의 석양. 탁 트인 전경. 저녁놀에 물든 작은 세상이 한눈에 가득 담겼다. 그것은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지만 그보다 더 생동감이 넘쳤다.
"벤."
촤악, 주변으로 비산하는 물방울에 벤이 미간을 찡그리자 헤일런이 가볍게 사과를 건네며
아예 뭍으로 올라왔다.
* *
"실례."
싱겁기는.
* *
"왜 화를 안 내지?"
"예?"
"한번도 네가 화를 낸걸 본적이 없는것 같아 읏. 하는 말이다."
이 편의를 굳이 자존심 때문에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래를 비집고
들어오는 이물감은 여전히 기분이 더럽다.
"큭.."
"벤. 입술..깨물지 마시고."
하아. 하.
몸을 겹칠수록 약의 후유증이 사라진다고 하더니 어째 자신이 속은것 같은 기분도 든다.
아니라면 왜 날이 갈수록 몸이 민감해지고 헤일런과의 행위에 거부감이 사라지겠는가. 역시
그 돌팔이 호랑이가 제게 수를 쓴것이 분명하다.
저열한 짐승놈.
그의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건 아니지만 이럴때 마다 기분이 저조해지는건 별 수 없는 일이다.
단추가 다 풀린 셔츠와 겉옷을 갈기갈기 찢고 싶은 심정이다.
그 말처럼 헤일런은 잠자리에서 조차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쉬워 하는 사이 옷을 전부 벗어버린 헤일런이 몸을 겹치며 벤의 안으로 삽입을 해왔다.
오밀조밀 모여든 주름이 입을 벌려 길고 굵은 기둥을 조금씩, 착실히 삼켜내기 시작했다.
거칠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이물감이 안을 채우는 감각에 벤은 헉 거친 숨을 토해냈다.
꿈틀대는 내벽과 느리게 들어오는 만큼 귀두의 생김새와 울룩불룩 돋은 핏줄이 지나치게
선명히 느껴졌다.
"아, 윽..!!"
입구가 빠듯했다. 이윽고 아래가 두쪽으로 갈라지는 고통에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전보다야
확실히 나아지긴 했지만 처음 삽입시의 통증이 아예 없을수는 없었다.
헤일런의 몸은 전반적으로 체온이 서늘한 편이지만 유독 아래만큼은 불기둥처럼 뜨거웠다.
긴장감에 등근육이 팽팽이 당겨지고 시트를 움켜쥔 손끝이 하얗게 질리자 헤일런이 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할짝. 할짝.
까쓸한 혀끝이 가슴에 붙은 유실을 쓸어 올리자 벤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가슴을 딱히
성감대로 여긴 적은 없었는데 언젠가 부터 가장 민감한 부위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하으..읏."
춥. 추웁. 부드러운 점막이 유두를 강하게 빨아 당기자 저릿한 전율이 척추를 따라 올라왔다.
혀끝이 돌기를 꾹 짓눌렀다. 애무가 짙어질수록 벤의 눈가가 야하게 일그러졌다.
수치스럽기야 하지만 좋은게 좋은거라고. 몸이 아픈것보다야 낫다며 벤은 애써 합리화 하는
중이다. 지금만 해도 위에서 가해지는 기분좋은 쾌감덕에 아래의 통증은 어느정도 잊혀지고
있었다.
가슴에서 얼굴을 떼어낸 헤일런이 벤을 위압적으로 내려다 보았다. 부드럽게 웃고는 있지만
어딘가 단호한 기색이 어린 눈동자다. 뒤늦게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퍽, 하고 거칠게
안을 찔러올리는 성기가 먼저였다.
주르륵. 밀려 올라간 그의 것이 장기마저 밀어 올릴 듯 했다.
"흐악! 아, 아아..!"
퍽!
"흐으.."
약에 취했을 때처럼 오로지 쾌감만을 쫓는 몸뚱이. 그러나 다른건 자신의 기억이 어느때보다
선명하다는 점이었다.
허둥대던 두 팔이 헤일런의 목에 둘러졌다. 몸이 일으켜진 채로 안기자 삽입은 더욱 깊어졌다.
쿨쩍.
맞닿은 육체는 매끄럽고 유려하면서도 그가 안겨도 무리가 없을만큼 단단했다. 골반을
붙들린채 아래 위로 내리 박히자 즈윽. 흥분한 성기가 그의 탄탄한 복근에 비벼졌다. 탁탁탁.
젖은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대단히 음란했다.
윽. 그, 그만.
아파서라기 보다는 너무 느껴서 괴로웠다.
참다 못해 결국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가 나오고 나서야 무지막지하게 몰아 붙이던 섹스에
휴식이 찾아왔다.
헤일런은 화음부에 새겨진 붉은색의 꽃잎을 손가락 끝으로 찬찬히 매만졌다. 단지 그 뿐인데
오싹한 소름이 돋아 허벅지가 경련을 했다.
"여기. 이곳에 제 흔적을 새겨두면 당신이 좀 더 고분고분해 질까요?"
"퍽도."
"그럴것 같긴 합니다."
* *
하. 애새끼도 아니고.
벤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다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찍.
"왠 쥐새끼가.."
키가 훤칠한 사내는 벤과 유사한. 그러나 가슴에는 대령의 직위를 뜻하는 마크가 정확히
새겨진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단정하게 묶인 붉은머리칼에 노란 홍채. 쟈엘 칸 대령.
잠시 고민하던 벤이 빙긋 웃었다.
사소한 부분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쟈엘과 다르게 벤은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
진실을 숨길 수 있는 교활한 사내였다.
쟈엘은 수인족을 아끼고 보호하지만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면 그것을 폭력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애초에 수인족이란 보호의 대상이었지 헤일런의 경우처럼 주인에게서 자립해 인간과 동등한
선에 자리한 선례는 없었다.
뭐가 이렇게 독해..
몇번인가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벤은 곧잘 알렉이 그러했듯 금세 뿌연 연기를 입술새로
뱉어낼 수 있었다.
"제법 맛있군."
"그렇지? 죽이지? 이번에 테오제국에서 수입해 온건데 중독성이 대단하단 말이지.
그나저나 죽이는걸 네가 한다는건 좀 곤란한데. 넌 헤일런 밑에서 구르느라 몸이..윽!"
연기가 모락 피어오르는 부근을 귓가에 들이대자 후끈한 열기에 알렉이 바들거리며 반항하던
행동을 멈췄다.
"혀를 지져서 못쓰게 할수도 있고. 아아. 그러고 보니 네놈. 내 신세를 꽤나 부러워 하던데."
"자, 잠깐만! 뭘하는..힉!"
"뭘 하긴. 뒷구멍으로도 한번 맛보라는 거지. 입으로 먹었을 땐 맛있었잖아."
"이봐. 벤 하일즈."
"왜."
"나야 그런 수인족 따위 아무래도 좋지만. 너는 그래도 꽤 오래 알아왔는데 죽이는건 아쉽지
않겠어? 여러모로."
* *
"그건 뭡니까?"
콜록. 콜록.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헤일런이 실내에 가득찬 뿌연 연기에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는
수인족이라 후각이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다. 벤이 대꾸없이 후, 연기만 뿜어대자 다가온
헤일런이 파이프를 빼앗아갔다. 그는 자신을 멍하니 올려다 보는 벤은 본척도 하지 않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압수입니다. 어디서 이런 독한걸.."
"압수라니. 그건 내것이다."
"이왕이면 그 코트도."
"...조금은 고마워 하셔도 저는 굉장히 감격할텐데 말입니다."
"굉장히 고마워 하는 중이다만."
"왜 그러십니까?"
"아니 방금.."
"커헉.."
"벤!"
"윽. 왠 화살이.."
벤은 손등으로 턱을 훔치고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헤일런은 저보다 더 놀란듯 충격에
굳은 얼굴로 벤을 내려다 보고 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저 멍청한 놈이.
벤은 몰려오는 통증에 입술을 짓씹었다. 악 다문 턱끝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투명하게 빛나는 얼음위로 달빛이 쏟아졌다. 얼음의 결정이 두 눈에 선명히 들어올 정도로
그것은 시리도록 하얗게 빛났다.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듯.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세번째로 두드렸을 때 투명한 얼음위에 균열이 생겼다. 쩍, 쩌적. 콰각! 균열은 점차 커지다
이내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모든것이 부서졌다. 살인을 기피하는 헤일런이라지만 필요할 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콰직. 얼음파편이 가루처럼 바람에 날렸다. 주위는 고요했고 벤과 헤일런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숨을 거두었다. 이 순간 이곳은 검은재규어의 존재감만이 가득했다.
"......"
"벤!!"
.....
하아. 하.
열감기를 앓았던 그때처럼 뜨거운 숨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몸이 뜨거웠다.
벤은 간간히 정신이 들었지만 그 시간이 그리 오래도록 유지되지는 못했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벤."
"벤."
"벤 하일즈.."
"...그만 좀. 불러."
"벤?"
"벤."
"......듣고있으니 말해."
"콜록. 뭐?"
"...예쁜것엔 애정을 품지 말라고 했는데. 저는 당신말처럼 멍청하고 어리석은 짐승이라.."
사박.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잔디를 밟아가며 벤이 멈춰선 곳은 정원에 우뚝 박혀있는 커다란
나무였다.
-
눈을 떴을 때. 벤은 어느샌가 침대위에 홀로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언제 빠져 나갔지.
벤은 허전한 옆자리를 돌아보며 두 손을 어색하게 굽혔다 폈다.
벤이 사경을 헤매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부터 헤일런은 꼬박꼬박 벤의 곁에서 잠을 자고
깨어나길 반복했다.
몸 이곳저곳이 둔기에 후드려 맞은듯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허리부터 시작해 골반 그리고
허벅지 사이에도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라버니."
"......"
"노예가 되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런것 치고는 잘 지내고 계신가 보네요. 주인이 좋은사람
이라 그런가."
"저는 이전부터 당신의 이유없는 학살이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생명이
스러지는 순간순간이 그저 유희에 불과했겠지만.."
그런것에 일일히 가치를 두는건 소모적인 일이었다. 전쟁터를 기꺼워 한것도.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조차 무덤덤했던건 그래서였다.
"위로라고 생각하던지."
"그럼 주인님이라고 불러 주실겁니까?"
"일어나셨습니까?"
돌기를 만지작 거리며 잡아 당기고 꾹꾹 아플정도로 눌러오는 통증이 아랫배를 단단하게 했다.
엉덩이 살을 만져대던 손은 어느덧 그 사이의 구멍을 지분거렸다. 이윽고 주름 사이사이를
긁어대는 손톱에 등골이 오싹오싹해졌다.
그러다 오늘따라 윤활유조차 바르지 않은 메마른 손가락이 안을 파고 들자 불편한 이물감보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절로 마른 숨이 토해졌다.
"하윽..!"
"으읏."
"몸에 힘 좀 풀어 보십시오. 오늘은 좀 아프게 할 생각인데."
알면 쓰라고..
감았던 눈을 뜨며 그런 눈짓을 하자 별안간 헤일런이 몸을 일으켰다.
"?"
"빠십시오."
"......"
"하아..음."
흡, 하아..읏.
뜨거운 숨을 흘리며 입을 조이자 헤일런이 벤의 머리칼 사이를 헤집으며 머리를 좀 더 깊게
밀어넣었다.
"읍..컥."
-
하아..하.
애무가 지나쳤던 유두는 여자의 그것처럼 부풀어 올라있고 허벅지나 엉덩이도 손자국이
벌겋게 남았다.
"..화풀이는 다 끝났나?"
"벤."
"......"
["흐음. 마셔볼테냐?"]
["한병 더요."]
["벤님."]
["벤니이임."]
["왜."]
["벤 하일즈."]
[".....하고 싶어요."]
["벤님."]
"벤."
"그만 일어나십시오."
"......!"
"뭘 하고 싶다고?"
벤을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하니 어린놈이 그때부터 제 몸을 노렸을리는 없고.
"예?"
"..아니다. 꿈을 좀 꿔서."
"뭐..."
그르릉 목울대를 울리며 낮은 신음이 입술새로 흩어졌다. 야릇한 흥분감이 열기를 지폈다.
"..으, 하아."
벤은 한번도 이렇듯 입을 맞추며 관계를 이어간 적은 없었다. 가볍게 입술이 맞닿은 정도야
있었지만.
애초에 벤은 타인과 타액을 나눌 정도로 진득한 행위는 그리 달가워 하지 않았다. 헤일런과의
입맞춤도 따지고보면 지금이 처음이었다. 숨이 모자라 가슴이 크게 부풀어 쯔음에야 헤일런은
벤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헉..허억. 참았던 숨이 한번에 터져 나왔다.
타액으로 범벅이되어 윤이 나는 입술. 언뜻 그안으로 비치는 발간 혀가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쾌감에 젖어 흐려진 두 눈. 전에 없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 헐떡이자 배부른 짐승마냥
만족해하던 헤일런이 그의 머리를 다독거렸다.
"만져 드립니까?"
"......"
"벤."
"......"
"벤 하일즈. 내 아름다운 창부."
"불렀으면 말을.."
“…….”
"벤 하일즈."
고개를 돌리자 눈에익은 검은제복이 보였다. 칼에 찔려도 변하지 않을것 같은 무뚝뚝한 표정.
큰키에 붉은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사내는 벤의 앙숙이자 지금은 조력자로 돌변한 쟈엘 칸
이었다.
그의 뒤에는 셔츠차림에 코트 하나를 어깨위에 걸친 알렉이 보였다. 알렉은 벤과 눈이
마주치자 그 언젠가 빼앗겼던 파이프를 입에서 떼며 손을 휘휘 흔들었다.
지금도 칼튼네 구역에선 있어도 무서워서 사용을 못한다고 알렉이 한창 불만을 토로했다.
벤도 칼튼이 이전에 슬럼가 하나를 박살 내놓은건 알지만 그게 쥐 때문 이었는지는 몰랐다.
하여간 골때리는 새끼.
"난리도 아니군."
"그냥 습관입니다."
"......"
…굳이 죽일 필요까지야 있을까? 목숨만은 살려서 예전처럼 자신의 노예로 거둬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간의 수치를 되갚는것이 꼭 죽음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증오가 돌연 증발한 것은 아니다. 모멸감과 수치를 잊지는 않았다. 다만 방법을 달리할 뿐.
헤일런과 함께한 평온한 일상에 녹아 들었는지 벤은 이런 매일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그에겐 돌아갈 곳도 없었다. 가족도 자신을 버렸고 대령직으로 복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를 살리는건 고려할만 하다. 놈이라면 배신 같은건 모를테고.
도시 생활에 익숙하긴 하지만 자신이 다시 주인이 된다면야 일전에 헤일런이 말했던 한적한
숲에서 살아줄 용의도 있다. 물론 벤의 욕구는 종종 그가 채워줘야 겠지만. 그래, 이정도라면.
“벤.”
손끝에서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은 쟈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위협스레 그의 목을 노렸지만 별안간 허공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늘 검만 사용해서 잊고 있었지만 쟈엘 역시 이능의 소유자였다. 이능의 소유자가 다른 이능을
제압하기 위해선 한쪽의 마력이 더 우세하거나. 혹은 이길 수 밖에 없는 조합일 때.
-콰콰쾅!!!!
-콰콰쾅!!!
쾅!
“…하아. 하. 큭..”
"......"
쩌엉!!!!
검과 그의 손톱이 맞부딪치며 몸이 튕겨져 나갔다. 비틀 발을 헛디뎠다가 균형을 잡았다.
지금까지는 이렇다할 싸움이 없어 몰랐는데 몸이 지나치게 가볍다. 어딘가 둔중했던 근육대신
온 몸에 힘이 가득 실렸다. 이건 마치 넬이 수작을 부리기 전의 온전한 육체 같았다.
푸욱!
"...!"
"아..."
놀람에 기인한 억눌린 목소리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채 제 품에 안긴 헤일런을 내려 보았다.
"뭐야. 너..왜."
"..글쎄요. 당신에게 졌다가 또 노예로 살고 싶지 않기도 했고. 뭐 이유야 아무렴 벤에겐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
".....죽, 었나?"
뼈를 빗기고 살을 꿰뚫던 감각. 깊숙히 심장을 헤치던 날카로운 칼날. 흘러내리던 피. 우욱,
떠올린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건드리지 마."
["벤님."]
"왜.."
["벤 하일즈."]
["사랑이 하고 싶어요."]
<-- 뒤바뀐 나날 -->
언제적 소릴 하는건지.
이미 알고 있다는 헤일런의 담담한 말에 가면속의 녹안이 가늘게 뜨여졌다.
언젠가 벤이 입가에 물고있던 파이프. 그것은 알렉의 상점이 막 입수한 수입품으로 시중에는
아직 유통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알렉은 벤과 친분이 있었던 백작가의 귀족. 거기에
벤의 성향을 접목하면 이미 답은 나왔다.
벤이 헤일런을 잘 알듯 헤일런도 그를 잘 알았다.
그럼 어째서 먼저 죽이지 않느냐는 칼튼의 질문에 그저 웃었다. 그러자 칼튼이 못마땅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두 손은 답답하다는 듯 철제 테이블을 마구 두드렸다.
하..
헤일런은 한숨을 내쉬며 제 이마를 짚었다.
그제야 상대에게 장기를 털어 줄거라는 칼튼의 말이 그리 심하지 만은 않은걸 알았다.
....
그리고 그날밤 헤일런은 그에게 넌지시 한가지 제안을 했다. 자신과 단 둘이 한적한 숲에서
살지 않겠냐고. 헤일런의 가장 이상적인 바람.
하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말을 꺼내기 무섭게 거절당했다.
혹여 그가 긍정한다면 이 너저분한 싸움도 포기할 생각이었는데 화려한 도시 생활에 익숙한
벤에겐 역시 무리였던 모양이다. 벤 다운 대답이었다.
제게 검을 들이미는 벤을 보기 전까지는.
"......"
카앙!
푸욱!
"...!"
가슴을 파고든 날카로운 검이 아프고 소름끼쳤다. 살을 찢고 근육을 헤집었다. 컥, 절로
비명이 터졌지만 헤일런은 벤을 꽉 끌어안은 손을 놓지 않았다.
생각지 못했던 제 행동에 벤은 조금 놀란듯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웅덩이 처럼 고여 들었다.
그는 이유를 물었지만 헤일런은 답하지 않았다. 이유따윈 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에겐 아무래도 좋을.
더러운 피가 묻는다 질색할 남자는 의외로 얌전했다. 사락. 손가락 사이사이를 스치는
머리카락의 감촉에 다소 들뜬 기분이 되었다.
"쿨럭..쿨럭!"
...벤.
벌어진 입술새로 왈칵 왈칵 피가 쏟아진다. 통증에 숨이 가빠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주인이라고 한번쯤은 듣고 싶었지만 미련은 버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아무것도 바라는게
없다. 그저..
손을 올려 벤의 뺨을 만졌다. 하나 하나 눈에 담고싶어 조심스럽레 매만지다 끝으로 입술에
닿았다.
톡.
손가락을 움직여 다시한번 톡.
**
벤.
벤..
벤 하일즈.
말을 하진 않았어도 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멍청하고 어리석은 짐승은 또 다시 벤을 좋아해 버린걸. 알고는 있었지만
헤일런은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이상을 바라오지 않았고 벤은 그 감정을
이용할 수 없다면 차라리 외면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목숨까지 내던질 줄은 미처 몰랐다. 상상도 해본적이 없다. 이젠 철없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
"안 죽었어.."
툭, 투둑.
안돼.
..안돼.
"살려줘."
"응? 뭐야. 너 울..아니 그전에 그거 나한테 하는 말?"
"너라면 헤일런을 살려줄 수 있잖아. 지하굴의 약은 다 죽어가는 시체도 살릴 수 있다고
들었다. 전에 네 사촌이란 놈도 내 칼에 맞고 살아나지 않았나."
붙잡을 유일한 존재가 자신을 이지경으로 밀어넣은 칼튼이란 사실이 못내 우스웠지만 벤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원한이야 어쨌든 헤일런부터 살리고 봐야했다. 일단은 그것부터.
"뭐. 그 좀비의 경우엔 대공의 힘을 빌린거지만. 근데 아무리 나라도 죽은놈을 살리진 못해.
읏차 어디 보자."
"싫어. 내가 왜?"
"…살려줘."
"응?"
"살려줘. 부탁이니까, 헤일런을 살려줘.."
헤일런..은 내게.
내게...
"...주인."
응? 칼튼이 다시 되물었다.
이미 헤일런의 죽음을 당당히 바라보지 못한것 부터가 계획에 어긋난 일이다. 벤은 그제야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스스로 내던졌다.
폭력이나 협박따위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이건 온전한 그의 선택이었다.
<-- 完 -->
칼튼의 뛰어난 의사덕에 헤일런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적절한 시기의 치료와 수인화를
막기위해 먹었던 넬의 약이 가장 치명적이었던 독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한것이다.
하지만 목숨만 건졌다 뿐이었지 의식까지 돌아오지는 않았다.
멍하니 기대어 있던 벤은 눈앞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검은머리에 단정한 눈썹.
콧대. 입술.
언제나 봐오던 익숙한 모습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하지가 않았다.
"일어나."
〈完結〉
그러나 이능을 가진 수인족은 제국내 굉장히 희귀한 경우였고, 오래지 않아 그것을 인간에게
들킨 헤일런은 황족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안녕?]
-아니.
* *
환상이어도 좋았다.
부드러운 감촉에 헤일런이 한번. 그리고 엎드려 있던 벤이 한번 움찔 어깨를 들썩였다.
놀란듯 그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
"......"
"....님."
"..주인님."
"!"
심장이 덜컹 떨어질 만큼 헤일런은 크게 놀랐다. 귓가의 울림이 이명처럼 번졌다. 맞닿은
체온은 따듯한데 상황은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키길
반복하는 헤일런에게 벤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인정해. 네가 이겼어."
"......"
"정신을 차리고 몇번이고 목을 부러트리려 했는데, 도저히 죽일수가 없었다..그게 안됐어.
안되더라고."
"다시."
"......"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방금 제게 뭐라고.."
..
하...하하.
헤일런은 웃었다. 현실치고는 지나치게 달콤했고 꿈이라면 다신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벤."
"벤 하일즈."
"그래. 듣고있으니 말해."
-뒤바뀐 나날 마침-
<-- 외전 -->
02、그들의 사정.
“…….”
“…….”
-쫓아내줘 제발!
“이런. 힘이 너무 과했나.”
“벤.”
우뚝.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누군가의 목소리에 벤의 나이프가 셀리아의 눈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추었다. 믿을 수 없지만 정말로 그 한마디에 벤의 행동이 멎은 것이다. 아쉬운듯 짧게 혀를
찬 벤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반듯한 검은 정장에 신사모를 쓴, 나른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청년이 서있었다. 먼저
입을 뗀 건 벤쪽이었다.
“내 주인님이지.”
“……그래서 누가 주인이라고?”
“아….”
“?”
“셀리아.”
그리고.
“…….”
“…….”
“저는 솔직히 아직도 벤 하일즈라는 인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대장을 죽이려 했던
것도 그렇고.”
“나도 쟤 별로. 근데 우리가 끼어들 틈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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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여러분벤을장애인으로만들지맙시다....x22222
이번편 쓰다가 코멘보고 당황ㅋㅋ 저렇게까지 할 예정은 없던지라ㅋㅋ..
p. 소중한 돼지님 항상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다른분들도 감사해요!
추천&코멘&쿠폰 다 사랑해옄:) 오타는 오후에나 수정할게옄// 가시기 전엔 추천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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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감기 우습게 봤다가 (마음&몸)고생, 하는 둘(..)
-큽, 이번편에 열감기 파트는 다 끝내고 싶었는데 ..ㅜㅡㅜ.
-추천&코멘&쿠폰 감사합니다. 오타는 내일 수정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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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헤리둥절&벤리둥절(...)
p. 추천&코멘&쿠폰 감사합니다.
p. 아차... 조이님 이북은 부크크에서 팔긴 하는데 현재는 2 개밖에 없습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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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추천*코멘*쿠폰,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ㅁ;!!
p. 재미있게 봐주시는건 좋지만 한달결제 노놐ㅋㅋㅋㅋ, 날씨 많이 춥져 ㅜㅜ 여러분도 감기
조심하세요!
p. yemara 님 주신 그림 작품설정과 뜰에 올려두었습니다! 감사해여! 넘 이뻐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