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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Juguete Del Gran Duque
El Juguete Del Gran Duque
com/comic/ep_list/plaything
“감사합.......”
그러니까.......
대답하지 못하고 혀가 굳어버린 나를 보며, 대공이 구김 없는 얼굴로 생긋
웃었다. 몹시도
상큼한 미소였다.
그러니까.......
“자, 이제 대답해야지?”
@ 일러스트 : 무트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VOLUMEN 1
“뭐, 그렇지.”
아까도 왔다 갔는데.”
“계약 종료돼서 떠날 일만 남은 동네에서 뭐 중요한 일이 있다고 사람을
들들 볶아.”
“그러게 말이야. 자기 아들이나 똑바로 단속할 것이지.”
어디 가서 뒈졌나?”
“대장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간 코뼈 부러질걸.”
“…씨발놈.”
고마운 걸 모르고!”
“뭐라고 했는데?”
“아, 예. 눈물 나게 고맙네요.”
“…….”
계약되어 있을 거고.”
“대공이 사적으로 부릴 몇 명을 남겨 두고 가라고 하더군. 그런 작은 계약은
허 자기 기사들은 어쩌고.”
“ ?
바람만 차서는.”
난 뭐가 그리 다른지 모르겠는데, 자식을 기사로 길러 신분상승까지 시킬
꿈을 가진 파빅은 자기도 용병이면서 용병을 한없이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기사라고 해 봐야 작위가 후대까지 인정되는 것도 아니고, 영주와 직접
계약을 맺어 그에게 녹봉을 받게 된다 해도 갑옷과 무기, 말을 관리하다
보면 개털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마일처럼 집에 돈이 좀 있으면 그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가며 귀족 여자와 결혼을 노려 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 당장
지금의 미로스 대공도 기사가 아닌 용병을 곁에 두고 부린다고 하는데, 어차
피 대공과 계약을 맺는다면 기사나 용병이나 다른 게 뭐 있냔 말이다.
그리고 마일 그 녀석은 싹수가 이미 노랗다. 어디 영주가 받아 주기나
할까가 의문이고, 받아 준다 해도 귀족 여자와의 결혼은……. 으음……. 그
녀석, 여자들은 잘생겨서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럼 뭐… 아주 희망이 없는
얘기는 뭐, 아닌 것 같긴 한데…….
음. 근데 내가 죽여 버려서 노란 싹수마저 싹둑 잘라 버렸구나. 취향이
의심되는 변태 강간미수범이었지만, 자식의 죽음을 모르는 아비와 같이
있노라니 또 마음이 불편해져 버렸다.
“하, 마일 그 녀석은 대체 어딜 갔는지 말이야.”
“음?”
“아니.”
보좌관과 하게.”
미남은 꼭 목소리조차 잘생겨야 하는 것인가.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었다. 저렇게 잘생겼는데 목소리도 좋고, 젊은 나이에
공국의 대공이며 이미 검증된 통치 능력을 지닌 데다가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땅의 지배자가 될지 모르는 남자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파빅이라고 했지.”
“네, 네.”
“…….”
“…….”
사내인 것 같긴 해.”
모든 상황을 본 듯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마일을 죽이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다른 여자를 안았던 것까지 모두 직접 목격했다는 듯이.
“무슨… 말씀이신지…….”
“감사합…….”
그러니까…….
대답하지 못하고 혀가 굳어 버린 나를 보며, 대공이 구김 없는 얼굴로 생긋
웃었다. 몹시도 상큼한 미소였다.
그러니까…….
“자, 이제 대답해야지?”
있나?”
평소 마일을 싫어해서 잘 죽었다고 생각하는 놈도 분명 있을 테지만, 역시나
입도 벙긋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놈을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식구의 죽음에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우리 용병대의 체면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더 난감해져 버렸고 말이다.
“내 아들이지만, 어딜 가나 친구를 잘 만드는 것만큼 적도 잘 만들었다는 걸
“그랬던 것 같은데.”
“하아, 일릭.”
“……뭐어.”
묻지 않으마.”
“당연한 소리를. 사람 난처하게 하지 마요.”
***
그는 아주 대범했다.
‘무슨 소리요, 그게.’
‘왁!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있었습니다.”
“무슨 대화를 했나.”
“… 마일… 그러니까 단장의 살해된 아들에 대한 정보를 치안대 쪽에서
넘겨주지 않으니… 각하께 부탁을 드려 보라고…….”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잠시 고민했지만, 나를
빤히 주시하는 노란 눈동자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사실을 토하고야 말았다.
그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요요히 빛나는 촛불과도 같았다. 빛이 반사되는
것뿐임에도, 그 눈동자가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하하, 그럼 알려 주도록 할까? 갈비뼈를 부수며 가슴에 박힌 검에 정확히
그가 제시한 길을 걷는 것 외에는.
내뱉은 뒤 차라리 그냥 자살할까 하는 충동이 불쑥 머리를 들었지만 이내
사그라졌다. 그렇다고 수치심이 작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생존은 모든 것에
앞서는 본능이었다. 나는 빌어먹게도 안타깝게도 결코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 어떤 치욕을 겪어도 살아남고 싶었다.
“진정성이 없잖아.”
허 허윽, 힉…!”
“ ,
“…예.”
“남자한테도 받아 봤나?”
“……남자한테는 받아 본 적 없습니다.”
다시.
다시.
다시. 몇 번인지 모를 ‘다시’가 이어졌다.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대놓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음에도 대공은 개의치 않고 성기를 물게 했다.
그는 열 오른 눈으로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곰 같은 험악한
남자가 갖은 액체로 지저분해진 얼굴로 헐떡거리는 게 뭐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이라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내 얼굴만 바라보았다.
내가 눈을 감으면 눈가를 문질러 눈을 뜨게 만들었다. 깊숙이 삼키기를
반복하면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안 뜨려고도 해 보았지만, 눈을
뜨지 않으면 숨이 막히도록 성기를 물고 있어도 빼 주지 않았다. 어차피
눈물로 흐려져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는데도, 그는 계속 눈을 뜨게 만들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다시 체모가 얼굴에 닿도록 깊게 성기를 머금은 나를 내려다보며 그가
웃었다. 숨통이 막혀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만 가늘게 숨을 쉬어 내고 있는
내 코끝을 톡톡 건드리기도 했다. 얼굴에 맺힌 땀과 눈물을 훔쳐 문질러
주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생리적인 눈물이 지치지도 않고 차올랐던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것이다.
“……예?”
“그대 아래 입으로.”
“…….”
- 다음 화에 계속
6.
“…….”
으 흐으, 큭…….”
“ ……
“언제까지 내가 해 줄 수는 없지 않겠나?”
대공은 짐짓 엄한 말투로, 그러나 다정한 듯이 속삭였다. 오일을 안쪽으로
밀어 넣어 마른 내벽이 충분히 젖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깊게 들어온
손가락들이 내벽을 문질러 넓혔다. 내장을 간질이는 탓에 속에서부터
열기가 홧홧하게 올랐다. 안쪽부터 가려운 기묘한 감각에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 척추를 따라 찌릿찌릿한 성감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아!”
“힘, 빼야지…….”
- 다음 화에 계속
7.
“아, 예…….”
“고작 한두 시간 잔 것 같은데.”
“흐응.”
“으, 으윽…….”
“이거야 원, 질척질척하잖아.”
“물 마시겠나?”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진 대공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침대의 필러
옆쪽으로 늘어뜨려진 태슬을 잡아당겼다. 단순히 장식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하인을 부르는 벨이었다.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당혹감에 나는 급히
시트로 몸을 가렸다. 나체로 우두커니 서 있는 대공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제 차림새가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하인이 들어와서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스무
살은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이었다.
“얼음. 그리고 간단히 씻을 것을 가져와라.”
“씻겨.”
씻겨라. 그 명령에…….
“잠, 잠깐.”
“……예?”
타고 싶단 거였다면야, 내 특별히.”
“그건…….”
“다들 나가.”
각하……!”
“
“각하…….”
“여어, 일릭.”
용병대 숙소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체즈번이 다가왔다. 트레이에 오트밀과
빵 따위를 받아 온 녀석은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힐끔 녀석을 한번
쳐다본 뒤 다시 내 접시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도시에서 먹는
식사였기에, 단체 배식임에도 질이 나쁘지 않았다.
“목소리 아직도 안 나와?”
“나오지만 목이 아파.”
너 잘 안 아프잖아.”
굳이 비밀유지 조항이 아니라 해도 말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무표정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녀석도 내게서
대답을 듣고자 했던 게 아니라 마주 한숨을 내쉬고는 식사에 몰두했다. 나
역시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체즈번 녀석이 대공을 언급한 순간 식욕은
바닥으로 뚝 떨어져 버렸지만 말이다.
“도무지 대공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추가 계약은 지금
“리리엘.”
리리엘. 그녀는 내가 마일을 죽인 뒤 만났던, 나의 알리바이가 되어 주는
여자였다. 대공과 계약을 한 뒤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 전까지는
말을 맞추기 위해 그녀에게 꽤나 공을 들였었다. 혹시라도 용병대에서 내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행적을 캐
다가 그녀에게 닿았을 때, 괜히 쓸데없이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만난 곳이 마일이 죽은 물레방앗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이야기라든가. 그렇지 않아도 라도반이 내 동기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마일이 사라진 날 그가 죽은 장소에 내가 가까이 간 적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용의선상 1순위에 오를 게 분명했다.
그런 불의의 사태를 막기 위해 나는 적절히 그녀의 입을 막아 둘 필요가
있었다. 재가를 원하는 과부라는 점에서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만큼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뜻이므로 나를 위해 조금의 거짓말은 해 줄
것이었다. 만나자마자 불이 붙어서 헛간에서 관계를 가졌다는 건 당신의
명예에 그리 좋은 얘기가 아닐 테니, 누가 나와의 일에 대해 묻거든 내가
집으로 찾아간 걸로 얘기하자. 그녀를 위한다는 듯이 속삭이자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도리어 고마워하기도 했던 그녀였다.
“자기 집에 좀 들러달라고 하던데.”
“그걸 이제 얘기하면 어쩌자는 거야.”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어 녀석에게 으르렁댔다.
숙소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공의 곁에서 기절하듯이 잠들 정도로 대공에게
혹사를 당했던 그 다음 날.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하던
대로 출근을 했던 나는 대공을 만나지도 못했다. 필요하면 부를 테니 그
전까지는 용병대에 머물러 있으라는 전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로서는 쌍수 들고 환영할 소리였다.
그래서 그 뒤로 지금 며칠째 숙소에 머무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걸 이제 와
전달해 주다니. 며칠 동안 내게 소식이 없어서 그녀가 영문도 모른 채
하염없이 기다렸을 게 아닌가.
“아니, 뭐……. 잊고 있었지.”
“음.”
눈을 씻고 찾아도 없고…….”
“으음.”
살면 안 될까?”
신이시여……. 무신론자인 나였지만, 지금은 신을 찾을 수밖엔 없었다.
설령 악마라도 좋으니 나를 이 상황에서 구해 주기만 한다면 십일조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용병 생활… 너무 위험하잖아. 또 어디 전쟁터로 가게 될지도
“응……. 자고 갈래?”
“그래.”
“응…….”
있었냐고.”
그 순간 내 심장이 철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몸도 머릿속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리리엘이 나에게 쪽 입을 맞추었는데 반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는 그 순간 내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내가 부르지 않아도, 자기가 먼저 와 줄 거지?”
“아닙니다.”
“그럼?”
“제 손이요?”
거다.”
씨발놈……. 나는 정말 필사적으로 욕을 주워 삼켰다. 언젠가 진짜 대공을
한 대는 때릴 것 같았다. 어차피 그렇게 될 거 그냥 지금 패 죽이고 나도
자살해 버릴까. 자꾸만 그런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아아, 하루 종일 지루한 탁상공론을 듣고, 서류 따위를 봤더니 말이지.
“…….”
“안 무겁게 앉아야지.”
그는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나를 나무랐다. 씨발. 나는 다시금 튀어나오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하는 욕설
을 삼키며 다리를 벌려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말이
걸터앉았다지, 몸만 맞닿았다 뿐 내 체중의 대부분을 내 다리 힘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대공이 내 엉덩이를 제 쪽으로 당겨 조금 더 앉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내 다리에 힘을 뺄 수가 없었다.
서른 넘은 시커먼 용병이 꽃같이 예쁜 대공의 다리 위에 앉다니……. 정말
누가 볼까 무서울 정도로 수치스러운 꼴이었다. 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화끈했다. 정작 대공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는 나른한 얼굴로 내가
입고 있는 셔츠 앞을 풀어 헤쳤다. 그렇게 가슴을 드러내 놓고 그는
근육으로 두꺼운 가슴에 작게 도드라진 유두를 빤히 바라보았다.
“며칠 일 없이 쉬었을 텐데. 그대는 별일 없었나.”
실종된 날… 죽은 날의 행적을요.”
체즈번은 이전에도 리리엘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체즈번이 나에게 말을 늦게 전달한 건 잊고 있어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내 행적을 쫓고 있던 도중 마침 리리엘이 나를 만나러 용병대에
찾아왔고, 그 덕에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어 만나러 갔던 것이다. 마일이
죽은 날 내가 리리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리리엘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리리엘이 내 알리바이를 증명해 주었을 테니 용병대의 의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도 좋을까. 잠시 자문해 보았지만, 리리엘이 체즈번에게
무어라 대답했는지 듣지 못했기에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약속대로
집에서 만났다고 증언을 해 주었다면 용병대에서 내게 씌운 혐의가 조금
가벼워졌을 것 같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또 나름의 문제가 있었다. 바로 리리엘이었다. 그녀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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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똑똑했다. 자신을 찾아와 나에 대해 묻는 체즈번을 보고, 내가 뭔가 숨
겨야 할 것이 있어 그녀에게 말을 맞춰 달라고 부탁했음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찾아오라고 말을 하던 눈빛이
잊히질 않았다. 나는 네가 용병대로부터 숨기고 싶어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눈이었다.
“그자가 그대의 엉덩이를 노리고 있었다는 걸 다들 알았나 보지?”
날렸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박아 달라 매달리는 그대를 내칠 정도로 내가
“예…?”
“어서.”
우 으으……. 흐…….”
“ …
12.
“내가?”
- 다음 화에 계속
13.
내가 좀 예민했나 보다.”
“
“대답하라, 용병.”
“오줌 싸러 왔다.”
“믿지도 않을 거 묻긴 왜 물어.”
천사.
“헉……. 허억……?”
“일릭.”
사내가 내 이름을 읊조렸다. 몇 번이고 나를 부르던 때와 같은 목소리였다.
그의 사람 같지 않은 외모에 잠시 환상에 잠겨 있던 내 의식이 현실로
단박에 내동댕이쳐진다.
대공. 그는 내 악몽과도 같은 존재인 미로스 대공이었다.
대공의 주변에 선 기사들이 모두 검을 들고 나를 적대시하고 있었지만, 나는
검을 내릴 수밖엔 없었다.
“…예, 각하.”
“그게…….”
대공이 내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회피하는 걸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즉각적으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헐떡거리는 숨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그의 눈치만 보았다.
단둘이 있었다면 대공은 나를 다른 방법으로 몰아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사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대공의 사적인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히 밤중에 나선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지금 나를 희롱할 여유는 없는 모양이었다.
“베이즈.”
“……그건.”
“이렇게 멀리까지?”
“……예?”
“남들이 볼까 봐 무서워?”
“……예. 조금.”
꼭 대공의 것과 닮은.
“덕분에 말이지.”
말이야.”
하 네 엉덩이라면 내가 아주 기분 좋게 때려 줄 텐데 말이지.”
“ .
“나도 그게 늘 안타까워.”
“뭐?”
쉽게 망가지지는 않겠어.”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여자가 나를 품평했다. 대공과 얼굴만 아니라
사람을 핥듯이 바라보는 시선도 닮았다.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똑같은
노란 눈동자가 두 쌍이나 나를 오르내리니 숨통이 콱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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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 줘.”
“벗겨 보고 만져 봐야 알지 이렇게 본다고 뭘 어떻게 알아.”
“고마워. 역시 누이뿐이야.”
15.
하나 붙어 있긴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은 게 아닙니다.”
“그럼?”
“……우리 아들이라고.”
“예.”
“……네.”
특히나 티마예브는 근친으로 태어난 아이로 왕위를 이어왔지.”
“
“…….”
흠뻑 젖어 들었다.
“으윽… 흐……!”
- 다음 화에 계속
16.
“…….”
백자지 귀엽잖아.”
“
“아닙니다.”
음
“ ?”
“대공이 미혼이잖아?”
“……뭐?”
되지 않는 미모잖아?”
어느 영주의 미망인이 어린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여 늙지 않는 미모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는 대륙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널리 퍼진 괴담이었다.
물론 대공은 그런 괴담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이번 임무에서 처음 대공을 본 동료 용병놈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했었다. 나도 처음 봤을 때 숨을 멈출 정도로 놀랐고
지금까지도 놀라곤 하는 그런 미모의 소유자였으니, 피로 목욕을 한다는
괴담은 충분히 있을 법 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오늘 맡았던 그의 은은한 체취를 떠올렸다. 그 이전의 정사에서
맡았던 냄새들도 돌이켜보았다. 연한 살 냄새. 그러나 절대로 악취는
아니었다. 십 년을 넘게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살았기에 피 냄새라면
귀신같이 알았다. 대공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그런 비린내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냄새를 맡고 정결하다는 단어를 떠올렸을까.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또 그게
피 목욕의 결과였다면 그의 누이 역시 피로 목욕을 한다는
뜻인데……. 그 남매는 성격적인 면에서 보면 피로 목욕하는 게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타고난 미모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런 대공이 가끔 이 숲으로 외유를 나온다더군.”
“글쎄. 유부녀라거나.”
“헉. 대박.”
“거기에 동성이라거나.”
“나, 난교?!”
“…….”
“개새끼…….”
있거든.”
“호위 말입니까?”
“……일릭만 말입니까?”
일릭.”
“
“……예.”
예 어제 모두 떠났습니다.”
“ .
“…아닙니다.”
“호위라고 들었습니다.”
“…수도에 계신 게 아닙니까?”
“……예?”
“무… 무슨…….”
밀크 먹자.”
“
- 다음 화에 계속
19.
“예……?”
“밀크.”
“아…….”
아. 진심으로 한 대 칠 뻔했다.
내가 들은 중에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쓰레기 같은 칭찬이었다. 그건
칭찬이라기보다는 모욕이었다. 물론 훈련을 많이 한 덕분에 내 전신에
근육이 잘 발달했고 특히 흉근이 펌핑이 잘 되어 있다지만, 대공이 말하는
‘예쁘다’는 건 결코 평범한 의미는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독보적인
“선물… 이요…?”
“……그게…….”
도와줬지.”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양손 엄지
와 검지에 그 정체불명의 기름을 바른 대공은 전과 다르지 않은
음성으로 말하며 내 유두를 비비적거렸다. 한참 유두를 비비다가
손가락으로 유륜을 덧그리듯이 문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 액체를
가슴의 다른 곳에는 묻히지 않았다. 오직 유두와 유륜에만 문질러 발랐다.
덕분에 내 유두는 딱딱하게 일어났다가 말랑말랑해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헉……?”
내가 내민 손에 그가 쥐여 준 자그마한 병 하나 때문에.
그건, 내 가슴을 엄청난 성감대로 만든, 대공의 누이가 주었다는, 그
저주스러운 병이었다.
“누이가 만드는 미약이지. 성감대에 바르면…… 효과는 아주 좋은 것 같아.
그렇지?”
“…….”
“검사할 거야.”
20.
내 허락 없이 싸지 말 것.’
‘
혼자 사는 게 나을지도.”
그 뒤로 여자애는 일릭은 다른 꼰대들과는 생각이 다르다느니, 사람을
존중할 줄 안다느니 하는 칭찬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칭찬이
절대 기쁘지 않았다. 이게 다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보니, 나 홀로 비참할
따름이었다. 변태를 만나서 당해 보니 변태 무서운 줄을 알겠더라…….
이런 깨달음 따위 영원히 몰랐으면 좋았으련만.
- 다음 화에 계속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Volumen
2
생각하는 거야?”
내가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아니, 아랑곳 않는
여자가 종알종알 잔소리를 해 댔다. 그렇다고 여자를 상대로 짜증을 내기도
거북해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여자와 처음 대화 몇 마디를
나눴을 때는 기분 전환이 되어서 꽤나 유쾌하기도 했었는데 어쩌다가 또
대공 생각을 하면서 울적해졌나. 기분 전환. 하. 대공 그 새끼가 기분
전환이랍시고 내 가슴을 빨아 댔었지.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만약
지금처럼 예민하게 달아올라 만지기만 해도 짜릿할 때 가슴을 빨려
버리면…….
‘잘 하면 상으로 빨아 줄 테니까.’
물어봤었다고.”
“범인인 새끼가 그래 내가 죽였소 하겠냐? 뭘 묻고 앉았어.”
있다고.”
“용병이 아닐 확률은.”
은밀히 빼 온 정보인데…….”
“으음?”
생겼잖아?”
이 용병 새끼들이 단체로 눈깔들이 다 삐었나. 파빅이야 제 새끼가
세상에서 가장 잘생겨 보인다 해도 그렇다 친다만, 전에 체즈번도 그렇고
지금 아닉도 그렇고 눈이 옹이구멍인 모양이었다.
“치정 사건도 더러 있더라고.”
“…하.”
나냐?”
어. 난 그날 마일새끼를 죽였어.
차마 대답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삼켰다. 자연스럽게 기억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당시를 회상한다. 물레방앗간으로 오라는 쪽지. 갔더니 기다리고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있다가 냅
다 달려드는 마일 새끼. 뒷구멍 어쩌고 하기에 검을 휘둘렀더니
너무 맥없이 찔려 뒈져 버려서 당황했었지. 도망치듯이 나와서 알리바이를
만들 생각을 하는데 마침 리리엘을 마주쳐서……
아.
“아…….”
리리엘.
리리엘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공에게 시달리느라 정말 완전히 잊고
있었다.
대공의 누이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는 리리엘을 만나긴 해야 하는데 아래가
민둥산이라서 어쩌나 고민을 하며 그녀를 피했었고, 다녀온 뒤로는
우울함에 침잠되어 그녀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나는 네가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 다 안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였는데.
“왜. 뭐 생각난 거 있냐?”
“별로.”
“오늘은 누굴 만날 거냐고.”
아니겠냐.”
그나마 그것이 내 어깨를 가볍게 해 주는 한마디였다. 아닉은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 속에 용의자… 아니, 마일의 피해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갔다. 물론 별 소득은 없는, 지난한 하루였다.
각자 흩어져서 이런저런 조사를 한 다음, 저녁에 모여서 하루 동안 알아낸
것들을 공유했다.
이전에는 라도반에게 보고를 하는 형식이었으나 현재는 담당자가 없어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주절주절
일과를 늘어놓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파빅은 어제의 일로 단단히
마음이 상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놈들이 주고받는 얘기를 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마일은 개새끼고, 정말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이런
새끼를 죽였다고 내가 대공과 그런 거래를 하고, 그런 꼴을 당하고…….
울적한 마음만 커져 가고 있을 때였다.
“이봐, 일릭. 뭐 하나 묻자.”
차출된 게.”
어? 그러게?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일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놈의 지적이 꽤나 예리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진짜 이상하긴 한데……. 믿을지는 모르겠다만, 대공이 물은 적 없어.
추정을 했을 수도 있지.”
“잠깐. 애당초 20명이라는 명수만 제시한 게 아니라 보낼 명단을 그쪽에서
“대공이 직접?”
해 줬다고.”
“…… 대공 쪽에서 손을 쓴 거라면, 시체도 남기지 않고 살인 사건이 아니라
실종 사건으로 만들었겠지. 굳이 알려 줬다니…… 대공은 역시 아닌가.”
“하, 씨발 차라리.”
없었어. 내게 말을 한 것도 없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보고 들은 게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냐?”
“어어, 그래.”
“아, 어어…….”
“…좀, 피곤해서.”
“으음…….”
“하지만 다른 사람 생긴 것 같지도 않으니, 이번만 내가 용서해 줄게.”
그녀는 짐짓 자비를 베풀 듯이 오만한 얼굴로 읊조렸다. 나는 몸 둘 바를
모를 기분이 되어버렸다. 원래라면 상대가 그 누구라 해도 내게 집착을 할
기미를 보이면 정리할 마음부터 먹었을 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오만한 저 표정은 자신이 내 약점을 쥐고
있음을 정확하게 아는 얼굴이었다. 만약 다른 여자와 놀아났다면 나를
파멸시키려 들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다른 여자와 놀아나지 않았다.
……다른 남자의 노리개가 되었을 뿐.
23.
“리리엘.”
나는 그녀의 손이 내 바지 속을 파고들기 전에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
그리고 곧장 그녀의 옆구리를 내 허벅지로 밀어 침대로 쓰러뜨리고 그 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내 아래에 깔리게 된 그녀는 잠시 놀란 듯 파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어 그 눈이 유혹적으로 휘어진다.
“자기도, 차암.”
“아… 예…….”
자리에서 쿡쿡 웃었다.
“시킨 건 매일매일 했나?”
“……예.”
“그거 참 볼만했겠군그래.”
“……가고…….”
나는 내 입이 열린 줄도 몰랐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멋대로 목소리가
성대를 울리며 비집고 튀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열이 너무 오르고
욕구가 차올라서 머리가 멍했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자신의 허락 없이는 사정하지 말라는 낮은 음성이 머릿속에 한가득했다. 저
호박색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했었다. 거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낮은 음성으로.
그러니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가고… 싶습니다…….”
24.
헉 힉, 흐윽!”
“ …!
“…….”
그러니까 쪽.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25.
하아…….”
“
“…이, 이놈!”
“네놈이..!”
그나마 장점이잖아?”
베이즈란 놈은 얼굴에 한껏 의기양양한 미소를 띤 채 고기 덩어리처럼
매달린 내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았다. 툭, 툭, 등이며 복부 등을 가볍게
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몸이 흔들려서 결박된 손목이 끊어질 것 같았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조금만 더
지나면 감각이 무뎌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심호흡으로
숨을 골랐다.
“어때. 어떤 걸 쓸지 네게 선택지를 줄까?”
텐데?”
단장님……. 그건 그렇지만 감히 각하께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
“그 입 닥치지 못하겠나!”
“단장님! 어차피 각하께서 깨어나시면 사형시킬 놈 아닙니까! 게다가
어떤 문제가 생긴다고.”
용병 나부랭이가 감히 그의 얼굴을 때려 며칠간 의식마저 없었다면,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깨어났을
때 분노가 어마어마할 텐데 말이다 도리어 내 털끝 하나 손대지
.
- 다음 화에 계속
26.
“이리 와.”
잠에 취한 듯이 낮게 잠긴 음성. 침대 위로. 짧게 떨어지는 명령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듣는 탓일까. 혹은 그가 깨어
있다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어쩐지 귓가가 오싹해졌다. 목덜미를
따라 소름이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일릭.”
27.
“…….”
괜한 것을 물은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졌다.
엷은 미소를 띤 대공의 얼굴에서 그의 생각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왕족이었다. 왕자로 태어나 그의 부모에게도 물론 맞아 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어떤 큰 잘못을 했다 해도 매 맞는 아이를 따로 두고 맞을
일은 없었을 테지. 어쩌면 그를 때린 건, 특히 안면에 손을 댄 건 내가
최초일지도 모르겠다. 씨발,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예상하고 묻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물어본 내가 멍청이였다. 그냥 입이나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갈 것을.
“뭘 그리 눈치를 보지?”
“…….”
“팔다리를 자를까.”
“…….”
…예뻐…….
“웬만한 귀족도 누리지 못할 호사를 누리게 해 줬더니 남의 다리나
훔쳐보고 말이야.”
훔… 쳐…….
“변태같이.”
28.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우웁!”
언제 얼굴을 다정히 쓰다듬었냐는 듯이, 머리카락을 뽑을 기세로 당겨 제
사타구니에 처박았다. 입안으로 그의 성기가 난폭하게 밀려들었다. 입안에
들어온 것을 반사적으로 저항 없이 깊이 머금으며 나는 기함하고야 말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입에 물고 핥고 빨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것이, 어느
새 단단하게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
“욱, 우욱……!”
“귀여웠어.”
“……헉…….”
“아…… 아닙니다.”
“예? 아… 어… 예…….”
“…송구합니다.”
“예…….”
“…답니다.”
“……예….”
“…….”
없다! 검을 들어라!”
버럭 외치며 놈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몸을 잔뜩 움직인
탓에 아직 전신에 남아 있던 흥분이 호승심이 되어 화르륵 끓어올랐다.
지지부진 입씨름을 하는 것도 귀찮고, 마주칠 때마다 개새끼가 으르렁대는
걸 참아주는 것도 취향이 아니었다. 다시는 개기지 못하도록 흠씬 두들겨
패 주리라. 그렇지 않아도 대공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는데, 화풀이를
할 아주 좋은 기회기도 했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29.
읏차.”
“
“…!”
“…죽여 버리겠다!!”
“그만.”
대공의 목소리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헉… 헉…! 가, 각하…!”
“그, 그건…….”
쉬는 것으로 보이는군.”
“…….”
“……예.”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대공의 태
도에는 일말의 여지조차 없었다 냉막한 표정에 베이즈란 놈은
.
“…….”
“어디 다친 곳 없나?”
“…….”
“…….”
“무슨 말을?”
“…….”
“베이즈의 혀를 뽑는 게?”
“…….”
30.
“…… 흐음.”
예상보다 한참이나 길었던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대공이었다.
“싫단 말이지. 약조를 해 달라?”
“아직은 가면 안 되지.”
“……!”
웃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분명 희열이었다. 마치 파충류의 그것처럼
번뜩이는 호박색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이지 요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을 한
악마새끼였다.
“쉬이, 괜찮아. 상처를 내지는 않을 테니까.”
“…!!”
아 안 돼……!”
“ ,
- 다음 화에 계속
31.
이런.”
“
지옥 같은 시간 속에 대공 역시 점차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끝을
느꼈는지, 그가 내 성기를 놓아주며 대신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았다.
삽입이 깊어졌다. 질컥질컥 온갖 음란한 소리를 울리며 대공의 허릿짓이
빠르게 이어졌다. 기절을 할 듯이 의식마저 깜빡였다. 강요된 쾌감이
아팠다. 아니, 그 미칠 듯한 쾌감 속에서도 성기가 너무나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싸지 못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하복부 안쪽이, 대공이 성기를
처박아 짓누르는 그곳이 터질 것 같았다. 이미 터져도 몇 번은 터져야 했을
감각이었다. 막혀 있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그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아아아!!”
“큭……!”
없어서야.”
평소에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였지만, 이번처럼 도구까지 사용하며
나를 고문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타고난 성벽도 성벽이지만,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대를 쉬이 용서한 게 잘못이었을까. 내가 그대에게 너그럽기로서니, 그
대에게 친히 하사한 것을 이렇게 뱉어 내는 건 지나친 불경 아닌가.”
대공의 말은 그저 구실에 불과했다.
이건 명백한 ‘벌’이다. 이 관계를 타인에게 알리는 게 싫다, 이 관계가
알려진다면 계약을 지속할 의미가 없다, 그러니 약조를 해 달라……. 감히
대공의 앞에서 주제 넘는 말들을 지껄인 대가였다. 그 만용으로 인해 내가
지금 이런 꼴을 당하게 된 것이다.
“내 관대함이 지나쳤던 바. 이제라도 제대로 참을 때까지 가르치는 게 내
의무겠지.”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미소에 나는 더더욱 굳어질
수밖엔 없었다.
저항을 했다간 더한 짓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더는 이 짓을
당할 여력이 없었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다.
씨발, 내가 왜 이런 꼴까지 당해야 해. 두렵고 막막한 와중에 속에서
억울함이 울컥 솟아올랐다. 동시에 눈가가 욱신욱신거리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야가 부옇게 흐려졌다.
눈가에 가득 고였다가 뺨을 적시며 주르륵 흘러내리는 건 눈물이었다.
살면서 내가 웬만한 육체적, 심리적 고통에 눈물 한 번 흘려 본 적이
없었는데. 대공을 만나서는 이게 몇 번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심지어 성행위 도중에 운 것도 아니고, 진짜 진절머리 나는 상황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나는 눈물이었다.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눈물이 나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내가 혀 깨물고 죽어 버릴 수도 없고…….
“……이건…….”
“…….”
“…나서요.”
채 씻겨지지 않은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전쟁터에서 살아온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늘 정결한 체취를
풍기던 대공과는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그런.
“……피비린내라.”
“……혀를… 뽑으셨습니까?”
“설마. 다짜고짜 혀부터 뽑는 건 옳지 않아.”
…아니, 혀를 뽑아 준다는 소리는 대공이 이전에 먼저 꺼냈으면서 왜 나를
32.
거 아냐!”
문을 열자마자 대뜸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내가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적잖이 놀랐었던 모양이었다. 화가 난, 그러나 동시에 안도하는
복잡해 보이는 얼굴에 나 역시 복잡 미묘한 감정이 찾아들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가족 같은 사이에, 식구라고 나를 아껴 주는 그
마음씨에 고마움이 잠깐. 그 아들을 죽인 게 나라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조금.
하지만 이내 그러게 아들을 잘 키웠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할 일이 없지
않았겠나 하는 분노와 짜증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보고할 게 없으니까 안 갔지. 아니었으면 어련히 먼저 찾아갔을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 몰라요?”
“뭣이 어째? 이 새끼가 정말! 너 감옥에 갇혔다는 얘기 듣고 용병대
와. 우리 대장 의리 보소.
“너 하나 때문에 용병대에 불똥이 튈까 봐 잠을 못 잤다! 그런데 이놈은
“뭐가요.”
“고문?”
“…하아.”
“말 못 한다니까.”
“아, 몰라, 몰라. 아무튼 이렇게 풀려났고, 용서도 확실히 받았으니 대장은
걱정할 거 없어요.”
“이 새끼… 확실한 거야?”
있었겠다.”
“이 새끼는 걱정을 해 줘도.”
그 말에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뭐? 여자를 건드렸냐고? 의심하는 수준하고는 말이다. 내가 자기 아들처럼
호색한, 난봉꾼도 아니고 말이다. 도리어 대공한테 건드려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기분이 다시 수직으로 곤두박질쳐 버렸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건 어떻게 알았대?”
“대공이 용병 하나를 곁에 두고 쓰니 기사들이 배가 아팠나 보지? 너
그 정도라고……?
차라리 대공의 속내를 까뒤집어 볼 수 있다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공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기에 생각을 할수록 머리가 아프고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막막하기
만 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런 인간에게 걸려서 이 고생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기만 했다.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입을 다물어? 거기서 기사놈들이랑 붙었냐? 그래서
“대장.”
“…….”
다가온 것은 아닉이었다.
“얼굴 한번 엄청나네.”
“뭐가.”
33.
“……그래.”
않겠어?”
“…대공을 의심하고 있다고?”
“무슨 의미냐.”
나를 향한 시선에 나는 순간 기가 찰 뿐이었다.
용병대에 존재하는 몇 가지 철칙. 그 중에 한 가지는 바로 용병대 내부
사정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진행된 계약이라면 패널티를
막론하고 파기해야 했다. 그 어떤 계약도 용병대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만큼 간혹 의뢰인에게 큰돈을 받고 용병대 내부 사정을 파는
변절자가 나온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잔혹하게 보복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지금 아닉이 나를 변절자로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일은 죽어도 싼 놈이었어.”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날 분명히…!”
“리리- 흡.”
그녀의 집에 도착해서 등 뒤로 문을 닫자마자, 그녀가 다시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뺨을 부여잡고 입을 맞추는 그녀의 몸짓이 절박했다. 그러나
그 몸짓은 유혹이라기보다는 어떤 확인과 안도에 가까웠다.
그녀를 밀어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별 수 없이 그녀를 도닥이며
입맞춤에 응했다. 혀를 섞지 않고 입술과 입술만을 감물었다 놓고 턱과
뺨을 모두 빨리는 그런 입맞춤이었다.
“일릭. 일릭…….”
“…뭐…?”
머리들이 내걸렸었어.”
“반발이 심했을 텐데.”
34.
“어어.”
“…어제…….”
와……. 이거 돌겠네.
적극적으로 내 애정을 갈구하는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뒤로는 식은땀을
잔뜩 흘리면서도 나는 착실하게 그녀를 끌어안고 목줄기를 따라 입을
맞추었다. 그녀 역시 나를 끌어안고 내 등을 긁고 문질렀다. 허리를
쓸어내려 엉덩이를 쥐는 그 의욕 충만한 손길에 나는 난감해 죽을 것
같았다.
이전이라면 내가 무척 즐겼을 적극적인 타입의 애무지만…….
대공이 만지는 것과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알아 버려서.
아니아니, 씨발. 갑자기 그걸 지금 여기서 왜 떠올려. 대공의 얼굴은 그
해악이 보통 해악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얼굴이 빛이 나도록 잘생겨
버리니까 뇌리에 각인이 되어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타이밍에까지
제멋대로 머릿속을 점유해 버리지 않는가.
나는 애써 뇌중에 떠오른 대공의 잘난 얼굴을 털어 버리며 그녀에게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집중했다.
지금은 이 한 몸 바쳐 리리엘의 몸과 마음을 녹여야 했다.
오늘처럼 그녀가 감정적으로 나올 때 굳이 결혼 얘기를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 일단 정신 없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녀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어서 빨리 흥분을 해야 했다. 이전의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말캉한 가슴이라거나, 가느다란 허리, 보드라운
엉덩이를 만지고 있노라면 아래가 아주 자연스럽게 벌떡…….
자연스럽게…….
자연… 스럽게…….
……좆됐다.
“하아……. 일릭…?”
“…….”
“털이…….”
씨바…알…….
들키지 않도록 얼마나 애를 써 왔는데. 그 누구도 내 거시기 주변이
민둥민둥해졌다는 걸 알 수 없게 내가 진짜 씨발, 소변 보고 싶은 것까지
참아 가며 개고생을 했는데, 내가 씨발.
“당신…….”
철썩!!
요란한 소리와 함께 뺨이 휙 돌아갔다. 자칫 잘못하면 모가지가 꺾일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
35.
“금발? 그 여자야?”
“이익…!”
“아니면 뭐, 너도 박아 줘?”
아냐.”
이런 저급한 말싸움에는 소질이 없었고 말다툼을 하느니 무시하고 피해
버리는 나였지만, 사실 지금은 속에서 피어오르는 짜증을 누를 길이
없었다. 아까 리리엘에게 뺨을 맞고 여기서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 나는 상당히 짜증을 표출하고 싶고 이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새끼를 주
먹으로 못 때리면 말로라도 때려야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다는
것이다.
“너, 너, 이 씨발, 이 백정새끼가…!”
“무슨 소리야?”
“너도 아까 그런 소리 했잖냐.”
그런 놈을 길게 상대하고 그래.”
아닉의 모호한 화법에 나는 순간 말려들 뻔했다. 하지만 아닉의 말은 내
질문에 정확한 대답 없이 화제를 돌려 버린 것에 불과했다. 아까는 한껏
분위기를 잡아 놓고선, 이제 와 없었던 일인 양 구는 게 나를 몹시도
찝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소 진지하게 말했다.
“난 아니다.”
“…….”
일단 던져 본 소리다.”
한번 찔러 본 거라면 상관없지만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미심쩍게 놈을 보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 해 보이더니 물었다.
“근데 아까 그 여자가 마일 죽은 날 네가 만났다는 여자야?”
모르겠다.
갑자기 리리엘에 관심을 갖는 그에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리리엘과의 사이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 지금에 와서는 말이다.
만약 지금 용병대 사람들이 찾아간다면 리리엘이 무어라 대답할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은 차라리 나았다. 만약 내가 그날 만난 시각과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장소에 대
해 거짓말을 해 달라 했던 얘기를 하기라도 한다면……. 의심의
화살은 단번에 나에게로 향하게 될 게 틀림없었다.
아니, 씨발 그렇다고 리리엘을 죽여서 입을 막을 수도 없지 않나.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녀를 죽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녀가 죽는다면 역시나
내가 의심 받을 테니 말이다.
어떡하지. 난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대공이 그래도 나와 약속을 하고
계약을 맺었으니 나를 도와주겠지? 믿어도 되겠지? 지금 믿을 건
대공뿐인데……. 아니, 씨발 그럼 그 변태 짓거리를 언제까지 당하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내 머릿속이 온갖 고민과 상념들로 미친 듯이 돌아가던 때였다.
문이 갑자기 열리고 굳은 얼굴로 파빅이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용병들이
모여 있던 이유를 몰랐던 나였다. 갑자기 내려진 소집 명령에, 그 누구도
이유는 모르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파빅의 등장에 용병들의 술렁거림이
잦아들었다. 누가 보아도 그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빅은 하나하나 우리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번뜩거렸다.
“교황이 성명서를 냈다.”
***
- 다음 화에 계속
36.
“데리러 왔지.”
아니 씨발 내가 왜 너를 보고 기뻐해야 하는데요.
그 말이 혀끝까지 튀어나왔으나 필사의 인내심으로 나는 말을 삼킬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럴 인내심이 남아 있다는 게 나 스스로도 내심
신기하기까지 했다.
“…오실 거라고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탓에… 놀랐습니다…….”
아니 환장하겠네.
대공은 짐짓 상처받았다는 얼굴을 해 보이는 것으로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아니 진짜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원래 그렇게 말주변이 좋은 놈이 아니었다. 대공이 아니라 상대가
여자였다면, 말 몇 마디로 풀어주는 대신 대뜸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을
것이다. 그걸로 통하지 않는다면 관계를 정리해 버리는 방법으로 살아왔던
인생이었다.
하지만 대공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를 상대로 절대 내 쪽에서
먼저 입을 맞추고 싶지 않았다. 그런 짓을 허락 없이 저지르고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에게 내가 먼저 격정적인
입맞춤을 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아주 내 꼴도 보기가 싫은 사람처럼 말야.”
“각하를 보고 놀란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뭐.”
“그러니까 그게.”
“그게?”
에라이, 씨발 나도 모르겠다.
위기의 순간 내 입은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불쑥 내뱉어 버렸다.
“너무 잘, 생기셔서.”
“…….”
“……얼굴이요….”
“얼굴만?”
“머리카락도…….”
하
“ .”
죽일까.”
“
37.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졌다.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던가. 죽여서 입을 막는 것. 그것도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대공이 손을 써 준다고 하니 어쩌면 내게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내가 마일을 죽인 게 들통나지 않게 해 주겠다는 것이 그가 나에게 약속한
조건이었으니, 리리엘을 죽이는 것 역시 약속을 지키는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쩌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서 몸을 던져 온 여자를 그런 식으로
죽게 한다는 게 영 내키지가 않는다.
문득 대공이 피식 짧은 웃음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내가 굳어진 사이 그의 입술이 쪽, 다시 한번 내
입술에 닿았다. 마치 도장을 찍듯이 입술이 맞닿아 뭉개지도록 꾸욱 내
입술을 누르고 떨어져 나갔다.
“농담이다.”
오싹오싹 소름이 돋아난다. 그게 귓가에 감기는 대공의 낮은 음성 탓인지,
연인 사이에서나 할 법한 입맞춤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징그러울 정도로 간지러운 감각이라 손끝이 절로 움찔댔다.
“이런 일로 내 백성을 죽일 수는 없지.”
야, 이…… 개새끼야……!
“…!”
대공이 안쪽을 자극할 때마다 입에서 신음이 터지려 했다. 눈앞에 번쩍번쩍
안화가 피면서 열기가 정수리까지 치솟는다. 삽입은 과격했지만 이어지는
대공의 추삽질이 그리 괴롭지는 않았다. 도리어 정신이 아득해 올 정도로
쾌감이 차고 넘쳤다.
별관이 이렇게 멀었던 것일까. 마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했다.
덕분에 말발굽 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마차가 흔들렸다. 그 안에서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대공에게
짓눌린 내 몸 역시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발기한 내 성기 역시 내
손안에서 잔뜩 흔들렸다.
“절경이로군.”
“아… 네…….”
“……예?”
“그대는 씻고 쉬어.”
아니 근데 아까부터 대공이 하는 짓이 좀 불쾌한데. 들어가 보라느니, 씻고
쉬라느니……. 이거 꼭 무슨 일터로 나가는 남편이 살림하는 부인한테 할
법한…….
“이따 밤에 천천히 예뻐해 줄 테니.”
……아니 씨발…….
38.
뱀이 입을 맞추었다.
입을…….
뱀새끼가 내 입술에 쪽 하고 입을…….
“…씨발…….”
개꿈이네.
자각한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뱀이 나를 휘어감아 옥죄고 있었던
것도, 내 거시기를 파고들어온 것도 모두 꿈. 현실의 나는 푹신푹신하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대공의 침대에 방만하게 널브러져 있…….
“허억…!!”
“히익!”
그 와중에 대공의 손가락이 푹, 안을 꿰뚫고 들어왔다. 내벽의 점막을
자극하는 손가락에 새된 소리가 샌 순간에는,
“흐읍!”
“하아…….”
“…그날만 그랬습니다.”
“……흐음.”
좋다… 좋다란 말이지.
대공은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고개를 풀썩 떨어뜨렸다.
다행히도 좋은 냄새라는 말로 답이 되었는지, 그는 더 이상 제 체취에
집착하며 설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표현이 될 거였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좋은 냄새라고 할 걸, 나는 왜 표현력도 없는 주제에 어쭙잖게
숲이니 리넨이니 떠들었단 말인가. 잠시 자괴감이 내 명치를 훅 치고
지나갔다.
대공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어 색색거리는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힐끔 본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어깨에 머리를 댄 채
새근새근 잠에 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잠든 얼굴을 이렇게 보는 건 처음 같았다. 늘 내가 먼저
기절하듯이 잠들어서, 내가 본 대공의 잠든 얼굴이라고는 아침에 잠깐
뿐이었다. 혹은 멍든 얼굴로 누워 있을 때라거나……. 그때 대공은 깊이
잠들었다기보다는 일어나 있는데 나를 놀리느라 자는 척하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지금 본 대공은 정말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잠시 또 홀린 듯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짝 떨림이 이는 긴 속눈썹이며 오똑한 콧날 따위를 물끄러미
보았다. 혹시라도 갑자기 눈을 뜰까봐 무서운 마음이 조금 들면서도 그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얼굴에서
시선을 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쳐다보고 싶지 않은데 .
“돌아가다니. 어째서?”
예
“…… ?”
아, 뺨의 손톱자국…….
그걸 가리키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반사적으로 뺨을 매만졌다. 손끝에
거실거실한 딱지가 만져졌다. 그리 길지도 깊지도 않아서 금방 나을
상처였다. 얼굴에 생겨서 눈에 잘 띈다 뿐이지 내 몸에 이런 흉터는 한두
개가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대공이 정색을 하고 하는 말이 아주 가관이었다.
“이렇게 다쳐서 오다니. 밖은 그대에게 너무 위험해.”
39.
“……연습이요?”
승마 연습.”
“
말 타는 것을 배우기는 했지만 내 말을 가져 본 적도 없고 말을 자주 탈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나로서는 딱히 비교할 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나
대공이 퍽 자부심까지 담아서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좋은 말인 모양이었다.
나 같은 용병 나부랭이가 타기에는 과분한 말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말을 지금……
“타 봐.”
“아주 잘했어.”
“…예. 감사합니다.”
“…….”
틀린 점을 봐 드릴 겁니다.”
멀끔한 차림새의 청년은 신분을 쉬이 짐작할 수가 없었다. 기사라고
하기에는 태도가 정중하면서도 사근사근했고 종자라고 보기에는 나이가
들어 보였으며 하인이라고 보기에는 태도에 기품이 있었다.
“허리를 조금 더 세우세요. 이번엔 조금 더 빠르게 가 볼까요?”
“…….”
기분전환이 필요해.”
“
대공이 내 손을 놓았다. 그 대신 그의 손이 향한 곳은 내 허리춤이었다.
실내복 하의의 허리 끈을 잡아당기는 그의 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리고 그가 손수 내 옷을 벗기는 행위에 소름이 쭉 끼쳐왔다.
“제가 하겠….”
“읏…….”
…어우, 씨발…….
“흣…….”
“으읏, 흣…….”
잠깐 기다려 달라거나, 그건 좀 힘들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려고 했으나, 내
입에서는 억눌린 소리만이 흘러나갔다. 입에 가득 셔츠를 물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만류한다고 대공이 들어먹을
인간도 아니고, 도리어 내가 저항을 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그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대공이 내 가슴에 미약을 바르는 걸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다. 애당초 피할 방법은 없었겠지만.
“기분 좋은가?”
“넣어서 박고 싶어.”
“내일 동이 트는 대로.”
“가만히 있어.”
“…….”
“선물.”
… 아니 선물이라니. 낮에 했던 승마 같은 건 충분히 선물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그가 말하는 선물은 그런 종류가 결코 아닐 것 같았다.
선물이라는 그 단어가 이렇게 불길하고 불안한 단어일 줄 예전에는 내가
미처 몰랐었다.
대공의 입가에 걸린 미묘한 미소가 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물론
오전에도 말 탄다는 소리에 괜히 지레 겁을 먹었다가 정말 말을 타게
되어서 어리둥절한 적도 있기야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선물’이라는 것이 나에게 이로울 것이 결코 없을 것이란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거절하고 싶다. 그런데 그 불안감이 표정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대공이 문득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 전쟁터로 떠나는 그대에게 필요한 물건이지.”
“바로 회의 준비하겠습니다.”
일릭은 내…….”
“
내……?
잠시 대공은 말을 마무리하지 않고 말꼬리를 늘렸다. 문득 대공의 눈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그의 눈가가 마치 웃는 듯이 찡긋댔다.
“친위대다. 계속 내 곁을 지킬 사람이지.”
내가 원체 얼굴이 무덤덤한 편이 아니었다면 그 순간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었으리라.
아니, 친위대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무리 급조해 낸 자리라 해도, 나
같은 용병 나부랭이에게는 지나치게 과분한 직위였다.
…하지만 꽤나 머리 좋은 단어 선택이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거의 모든
보겠군요.”
……그냥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버리는 것이다.
“아, 예.”
것들이다.”
…아니……. 분명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뜻은 끝에 가서야 통했다.
있나.”
…… 그럼 누구는 입맛을 돋우는 얼굴을 가졌나.
아까의 민망함에 더한 민망함이 더해져 괜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식사 예절도 몰라서 늘 주변을 지저분하게 더럽히며 와구와구
시끄럽게 먹는 용병 나부랭이인 나랑 먹는 게 오히려 더 비위가 상할 것
같은데, 대공의 취향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들지.”
하기로 했지.”
…보급. 말은 보급이지만 약탈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않겠지.”
“…엔리온이면 현 교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42.
생각했나.”
“……설마 병정놀이에서 못 이긴 것 때문에 이번 전쟁을 일으킨 건
아니겠지요.”
“하하, 일릭. 그대도 농담을 할 줄 아는군.”
“질투요?”
것입니까.”
“그걸 아는지는 모르겠군. 나를 증오하고 있을 뿐이지. 프리스카 백작을
죽는 쪽이 이득일 텐데.”
“……예?”
그리고 문을 연 것을 잠시 후회했다.
문 밖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대공의 하인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물론 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다- 알 수 있었다. 대공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올 것이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 나는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그럼
“침대로 올라와.”
나는 분부에 따라 침대 위로 올라왔다. 손바닥과 무릎을 짚어 네 발 동물의
모습으로 그를 향해 움직였다.
더. 더. 가까이. 그가 말하는 대로 사지를 움직여 조금씩 나아갔다.
어느새 나는 대공의 머리 양옆에 손을 짚고, 그의 골반 옆쪽으로 무릎을
짚어 내 아래에 그를 가두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빛깔의 벨벳 침구 위에 흐트러진 은빛의 머리카락이 내 손과 손목에
휘어 감겼다. 그 감촉은 생각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가늘게 자아낸
비단실이 이처럼 부드러울까 싶었다.
“일릭.”
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선물. 미로스를 떠나기 전날 밤, 답지 않게 허벅지 사이에 문지르는
43.
“빨리.”
그런데…….
나는 열에 들뜬 멍한 상태로 몸에 시트를 두른 채 대공을 기다렸다. 아, 솔직
히… 솔직히 가슴이든 좆이든 마구 만져서 사정을 해 버리고 싶었다.
정점을 찍을 듯이 가파르게 상승하다가 절정을 찍지 못하고 멈춰, 그대로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미지근하
게 식어 가는 몸이 괴로웠다. 아니, 식는 것도 아니다. 대공이
가슴과 안쪽을 막 이상하게 자극해 놓은 바람에 열기가 간질간질 지속되어
더 괴로웠다.
이러다가 대공이 밤새 안 들어오면…… 아니 씨발 나는 옷도 못 갈아입고
싸지도 못하고 그냥 이렇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야? 대공이랑 섹스가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이 욕구를 풀고 싶은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런데 그걸 계속 참으며 맥없이 있어야 한다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어 잠깐 엿보았던 대공의 무시무시한 얼굴이 떠올랐다. 감히 흥을
깬 자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그 얼굴은… 나로서는 조금 놀라웠다. 내
기억에 없는, 처음 보는 냉막한 얼굴이다. 심지어 그의 얼굴을 때렸을
때에도…… 그러고 보면 대공이 나를 향해 화를 낸 적은 없었던 것일까.
아, 근데 몸이… 몸이 자꾸 뜨거웠다. 마치 미약을 먹은 것처럼 몸
이곳저곳이 욱신거린다. 레이스에 가슴이 비벼지는 감촉이 되게
괴롭고도… 짜릿했었다. 레이스 천과 함께 대공의 입술로 희롱 당했을 때는
막… 아, 씨발 그냥 그때 싸 버릴 걸. 그랬으면 이렇게 답답하고 괴롭지는
않을 텐데.
사정은 대공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그게 조금 웃기기도 했다. 대공 역시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이 크게 흥분한 상태였다. 새삼 그게 바지 안에
갈무리가 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겉에서 볼 때 한쪽으로 두드러지지
않을까. 발갛게 물든 볼이 금방 가라앉지도 않을 텐데 그 얼굴을 본
신하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애당초 그가 이렇게 섹스 도중에 방해를 받은 적이 있기나 했을까. 그
커다란 게 발기한 상태가 심히 괴로울 텐데 어쩌고 있으려나. 대공이 남들
앞에서 성욕을 애써 참고 있는 걸 생각하면 깨소금이다 싶기도 했다.
아니 근데, 이러다 진짜 밤새 안 들어오는 거 아냐? 그럼 나는 어떡해야 해??
문이 거칠게 열리며 대공이 돌아온 것은, 그즈음이었다.
“하인들을 부를 테니 옷을 입어, 일릭.”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가 명령했다.
방을 나설 때처럼 싸늘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감정을 짐작하기 힘든
그런 표정이었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하인들이
곧 들이닥칠 테니 옷을 입으란 말에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황급히
바닥에 널브러진 셔츠와 바지를 주워 입었다. 먼저 속옷을 벗었어야 했는데
그럴 겨를이 없어서 그냥 위에다 걸쳐 입었다.
바지를 겨우 다 걸쳤을 즈음 귀신 같이 하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대공의 갑주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온 하인은 내 것을 들고 있었다.
“오시안이 쳐들어온 것입니까?”
언짢은데 말이야.”
언짢다는 말과는 달리 대공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스듬히 입술을
끌어올려 웃는 그 얼굴은 분명 아까의 분노하던 얼굴과는 달랐다. 이쪽이
내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시르반 요새에서 말을 타고 세 시간 정도 달리면 알즈라는 작은 마을이
“……예?”
…즐긴다니. 뭘요.
“…….”
“출발한다.”
오랜만에 술과 고기를 지급 받아 흥겨운 저녁 시간을 보낸 병사들이 내일의
전투를 위해 모두 잠에 든 시각.
달빛만이 오롯이 비추던 어둑한 숲길에 횃불이 피어올랐다. 기사들에
둘러싸인 채 대공이 말을 몰았다. 그의 곁을 어느새 부턴가 내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고 있었다.
설마 다른 용무가 있으니 이 밤중에 갑자기 알즈라는 곳으로 가는 것이리라
짐작을 하면서도. 나는 저 미치광이의 머릿속을 또 내가 멋대로 속단하는
게 아닌가, 정말 그 목적이 오입질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 다음 화에 계속
44.
45.
“……어…….”
“…….”
나는 덥썩 대공의 팔을 붙잡았다.
물론 내가 건틀렛을 끼고 있어서, 또 대공 역시 건틀렛을 끼고 있어서
철컥철컥 쇠와 쇠가 닿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었다. 그 끝에서 미약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늘 사용했던 경어를 잊고 갑시다 따위의 말을 했던
것처럼, 그의 권력을 잠시 잊어버렸다. 그의 의지에 반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도 생명의 위기 앞에서는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손에 붙든 것을 힘주어 당기며 걸음을 옮겼다. 어느 새 달리고 있었다.
미쳤다고 지금 대공을 데려가고 있나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송곳처럼 찔러
댔지만, 그를 붙잡은 손에서 힘이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괴물의 아가리처럼 새카맣게 입을 벌린 숲속으로 대공을
이끌었다.
걸음을 멈춘 것은 호흡이 턱끝까지 닿아 더는 달릴 수가 없었을
즈음이었다.
대공에게도 한계였는지 내가 멈추자 그 역시 내 곁에 서서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격하게 움직인 뒤에 달리기까지 했더니 숨이 보통 가쁜 게 아니라
나는 허리까지 수그리고 호흡을 진정시켰다.
대공은 서 있는 것도 힘든 모양이었다. 그는 나무에 몸을 기대어 몸을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지탱했다.
“…큭큭.”
챙겼겠어.”
약탈은 좋아하지 않는대도.
대공을 죽일까 말까를 고민하는 와중에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머릿속에는 그를 그냥 죽여 버리자는 욕망이 가득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내적 갈등이 아주 최고조였다가 이제 그 저울이 죽이자는 쪽으로 완전히
기운 뒤였다.
그러나.
“달칸 용병대에서 그대를 제거하려면 힘이 많이 들어가겠군 그래.”
“…….”
아주 잘한 짓이라고.
대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도와주실 거잖습니까.”
“……누구?”
“…사얀?”
“…….”
“사얀……. 아닙니까?”
그 뒤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실언을 했다는 건 사얀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는 말을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더 자세한 것을 물을 수가 없다. 어떤 멍청이가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전시에 상
황 판단을 이 따위로 해서 대공에게 야행을 시키고 이런 위험에
빠뜨렸는지는 궁금하지만, 안다고 해서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또 대공이 저 정도로 말을 아낀다면 내가 더 아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공 역시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침묵이 조금 길어졌다. 오직 숨소리만 들렸다. 그마저도 격앙되었던 처음에
비해 차츰 잦아들어, 이내 숲에서 벌레 찌륵거리는 소리 외에는 들리는 게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대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만 이동할까. 기척이 가까워지는 것 같군.”
- 다음 화에 계속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대.”
……대공은…….
요새로 갈 겁니다.”
“…….”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라베인 백작이 그를 나에게 맡겼다. 그런데 나 혼자 살아 돌아오고…
대공은 돌아오지 않는다면. 심지어 그가 포로로 붙잡히거나 혹은 시체로
발견된다면.
“이건 탈영보다 질이 나쁘지. 그대가 나를 적에게 넘긴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나.”
…그렇다. 최악의 경우, 아니 무조건적으로 반역죄가 씌워질 것이다.
“입 닥치라 했는데도.”
갈수록 가관이었다.
“이렇게 우스운 꼴은 처음이다. 하.”
“입 다물어라. 이것 놓으래도.”
손을 뻗어 그의 뒤통수를 감쌌다.
그대로 끌어당겼다. 피비린내가 훅 끼쳤다. 물론 대공의 피도, 내 피도
아니었다. 서로의 얼굴에 묻어 있던 적의 혈흔일 뿐.
나는 손가락에 감기는 그의 머리카락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장갑과
건틀렛을 꼈기에 그 감촉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언젠가 한번 만져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욕망을 충족시킬 기회였기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품으로 끌어당김과 동시에, 몸을 돌려 그를 근처의 나무로
밀어붙였다.
이성을 잃은 여자들을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나한테 떼를 조금 쓴다고 그녀들을 죽일 수는 없으니,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은 하나밖엔 없는 것이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을 알고
둘은 몰랐다.
“흐읍……!”
“움직이는 건 문제없는데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요새를 빼앗을 때에도 제법 고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내보내.”
잠시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물러섰던 오시안의 군대가 날이 밝아 오는 것과
함께 다시금 몰려들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번 전투에 그들은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대공이 여기서 꺼낸 카드는 고작 화승총 부대였다. 명중률이
형편없는 데다가 관통력도 약해 기사의 중갑을 결코 뚫지 못하는.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해 폭죽인 양 하늘을 향해 쏘는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되던
화승총 말이다.
나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이 되어 대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대공의 얼굴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긴장감은커녕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화승총 부대가 다가오는 기사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나는 그들이 총을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쏜 직후
무력하게 기사들에게 치일 것을 예상했다 .
49.
또?
순간 반문할 뻔했다. 그만큼 황당했던 것이다. 알즈에 대체 뭐가 있기에
거길 가겠다고 또 난리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가 단순히 방해
없는 환락을 위해 알즈의 별장에 가려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목숨 걸고 몰래 거기까지 가야 할 용건이라는 게 대체 뭔지 몰라서
그렇지.
아, 물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공과의 이 계약에 대해 마음이 더 복잡해진
지금, 대공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깊게 아는 것은 결단코 사양이었다.
“이번에는 위험하지 않을 거다.”
어디 다치신 곳은…….”
“나는 괜찮네.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롭지.”
“……그렇다면, 오늘인가요?”
“오늘이지.”
“지금도?”
그렇게 갑옷 위를 희롱(?)하는 대공이 지나치게 나와 거리가 가까웠다.
갑옷이 아니었다면 몸이 닿아 천 너머로 체온이 느껴질 거리였다. 그렇게
찰싹 달라붙어서 한 손은 내 허벅지를 매만지고 다른 손으로는 갑옷 위를
비비적대며 말하는 탓에 그의 숨결이 후욱 귓가까지 불어 왔다.
너무 깜짝 놀라서 어깨가 움츠러들며 얼굴로 열이 확 몰렸다.
“지, 지금은……. 안 입었…습…….”
“하아? 어째서. 늘 입으라고 준 것인데.”
“그게……. 전시라서, 제가 움직이기에, 그러니까.”
대답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아니, 그게…….”
성하.
대공의 입에서 성하라는 호칭이 나올 만한 인물.
그는 바로 교황 엔리온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교황은 더 젊어 보였다. 나이를 많이 본다 해도
마흔은 결코 안 되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대공에게서 그 누이를 좋아하다가 차이고 대공을 미워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나잇살 많은 아저씨가 어린 여자애를 쫓아다니다가
차이고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나 하는 편견을 갖기도 했던지라 그를 직접
보고서는 조금 놀라고야 말았다. 아무리 일찌감치 교단을 이끌 기대주로
점찍어졌다지만 교황이 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지위가 보통 지위가 아니라서인지 그의 전신에서는 어떤
기품이 느껴졌다. 오늘의 전투에서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쪽에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못한 채 충격적인 패배를 한 남자로는 보이질
않았다.
특히나 대공을 향한 그의 투지가 강렬해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대공의 인사에도 대꾸 한마디 없이 안으로 들어와 권하지도 않은 자리에
앉은 남자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다. 대공 역시 무어라 더 말을
건네지 않아서 살얼음판 같은 위태위태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잔재주를 부리셨더군요.”
할까요.”
“처음 청하였을 때 응하셨더라면 그 잔재주를 굳이 볼 일도 없었을 것을요.”
앉아.”
존대를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어조. 그러나 상대를 찍어 누르는 내용에
교황은 잠시 말을 잃었다. 순간 이 방의 모두를 아연하게 만들 정도의
폭언이었다.
그리고 이내 방 안의 공기가 긴장감으로 더욱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완전히 미쳤군.”
“들여보내.”
셈인가…!”
교황이 내보이는 여과 없는 분노에 아이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아이는
어디 숨고 싶다는 듯이 흠칫댔으나 대공은 그 아이를 도리어 제 앞에
세웠다.
아이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겁을 먹은 듯한 혹은 충격을 받은 듯한
호박색 눈동자가… 나는 왜 이렇게 보고 있기가 힘이 들고 기분이 이상한지
모를 일이다. 뭔가 대공의 어릴 적 모습을 연상케 하는 그의 아이를 두
눈으로 보는 건 이 와중에 나에게 기묘한 충격을 선사했다. 아니 솔직히
어떤 상황보다 더 당혹스럽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저 미치광
이 대공도 저렇게 보송보송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던 시절이
있었을 것 아닌가!
그 괴리감에 어째서인지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아이를 똑바로
보기가 어려우면서도 자꾸 힐끔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지금 대공의 어린 시절 어쩌구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데, 자꾸
만 주의가 그쪽으로 흘러가서 도무지 이 상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뭔가 패닉이었다.
아이는 그러나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듯이 살기를 띄우고 있는 나나 다른
기사가 아닌, 제 아버지인 대공과 교황을 불안한 눈길로 번갈아 본다. 열
살은 되었을까 싶은 어린 아이가 겁을 먹은 모습이 몹시도 어여쁘고
애처로워 보이면서도 그 외양 때문에 대공이 자꾸 떠올라서 나는 막 기분이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렇게 남모를 패닉에 빠져 있는 사이, 대공은 노골적으로 교황을
도발했다.
“질투하는 사내란, 추한 겁니다. 성하.”
“그대가 감히!”
모를 겁니다.”
“……무슨.”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건 아이를 지켜보고 있던 교황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적의와 분노만이
가득 차 있던 그의 회색의 눈동자에서 일순간 분노가 증발하며 동공이
찢어질 듯이 확장되었다.
대공이 그러쥐고 당긴 아이의 머리채가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그 은빛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그러나 고통에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채가
통째로 뜯겨져 나갔음에도 아이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피가
흐른다거나, 붉은 두피가 드러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대공의 것과 꼭 닮은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간 자리 아래에는 그 대신
짓눌려 있던 짧은 검푸른 빛깔의 머리카락이 있었다.
검푸른 빛깔의 머리카락.
아이의 동그란 머리통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것은, 아이의 눈앞에 선, 이
쪽과 대적하고 선 젊은 교황의 것과 똑같은 색깔의 머리카락이었다.
삽시간에 내려앉은 충격으로,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적막이
내리깔렸다. 찰나의 침묵이 영겁처럼 이어졌다.
침묵을 깬 것은 대공이었다.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그저 무덤덤했다.
“이스테샤는 단 한 번도 당신을 배신한 적이 없어.”
아이의 머리카락을 보는 교황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역시
아이의 푸른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를 모르지 않으리라.
교황이 내보이던 적의와 대공이 내뱉은 배신이라는 단어. 그리고 아이의
푸른 머리카락.
“오히려 지키려고 했지.”
않았나.”
“……누구로부터.”
이상하잖아.”
대공의 입에서 나온 상식적인 대답에 교황의 눈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갖고 있던 오해가 지나치게 깊고도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아 버려서 또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물론 오해를 하고 있다가 밝혀진 사실에 놀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대공이 틀림없이 근친 관계로 누이를 사랑하고 그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너희… 티마예브는…….”
버렸어.”
제 집안의 얘기를 하는 대공은 몹시도 냉소적이었다.
“엔리온, 당신 눈에 카미드는 제정신으로 보이던가.”
걱정했었다.”
제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고 고통을 고스란히 내비치는 교황을 보다가
대공이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교황은 제 감정을 의심했다는 말조차 고통스럽다는 듯이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자리조차 포기하려 했던 사람이다. 내가…
“네 아버지는 나란다.”
그에 다급해진 것은 교황이었다.
“잠깐만. 조금만, 조금만 더.”
능력이 되었으면서.”
“카미드는 멍청하기는 하지만 제 살 궁리는 하는 놈이다. 놈을 죽인다면
“…….”
하지도 마.”
교황은 호언장담을 했다. 대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공의 태도가 꽤나
건성이라는 것은 아마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헌데 오늘 이 회담에 내가 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우리
“그럼 성하.”
“……성하? 갑자기 무슨.”
“그렇지, 내 사랑?”
길러야겠습니다, 성하.”
“…….”
“…….”
“…….”
큰 오해를 해서 미안했습니다.”
아니, 야. 그 발언은 지금 뭔데. 저기요. 아까도 사과 안 했으면서 왜 지금은
사과하냐??
“예쁜 사랑 응원하겠습니다.”
뭘, 뭘 응원해? 뭘? 어??
나는 이토록 기가 막힌데 대공은 방긋 웃었다. 전쟁을 끝낸다는 얘기를 할
때도 피로감만을 드러내던 사내가, 새파랗게 질린 교황이 되는대로
주워삼킨 말 한마디에 아주 방긋 웃어버렸다. 빛이 쏟아질 듯이 아름다운
미소였다.
교황은 눈이 부시다는 듯이 눈가를 찡그렸다.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고맙… 미안합……. 잘 지내세요.”
“……아니, 각하…!”
“제가 언제…….”
…알즈에서 뭘 해.
나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시 말을 해 주어야 하는 걸까.”
“아아. 분명 그랬지.”
“…….”
뒤통수를 치려 한다든가.”
“엔리온이 막지 못해도 상관없지. 며칠 동안은 어떠한 전투도 일어나지
- 다음 화에 계속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52.
악물었다.
그러나 나를 주시하는 호박색의 눈동자 앞에 역시,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무릎과 손바닥으로 카펫 위를 짚어 그에게로 기어갔다.
내 머릿결보다도 부드러운 카펫이었기에 손바닥과 무릎이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네 발 짐승의 꼴로 타인의 앞에 벗은 몸을 보이는 것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몹시도 굴욕적이었다. 평정심을 위해 애를 쓰고 있음에도
얼굴로 벌겋게 열이 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씨발, 이 또한 지나가야 끝이 나리라. 눈을 질끈 감은 셈 치고 사지를 겨우
억지로 움직여 그의 앞으로 기어갔다. 대공이 다리를 벌려 나는 그가
원하는 만큼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대공의 성기가 내
코앞에 있었다.
나는 그의 다리 사이에서 그를 한번 올려다보았다. 대공은 여전히
피곤하다는 얼굴이었다. 당장 물지 않고 무엇 하냐는 듯, 그가 내 입가에
반쯤 발기한 성기 끝을 갖다 대었다.
나는 귀두를 입술로 조여 물고 사탕을 먹듯이 혀로 핥으며 입 안에 가득
들어오는 둥그런 것을 빨았다. 그것만으로도 대공의 호흡이 조금 흔들렸다.
머릿속에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은 감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약속을 했으면서 교황에게 그와 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알렸다. 전쟁을 끝내기 위함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내 의사는 전혀
존중받지 못했다.
그것에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면서도, 대공의 좆이나 빨고 있는 이 상황에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압도적인 권력의 차이 앞에 내가 무엇을 할 수
.
있겠는가.
그 차이만으로도 굴복할 수밖엔 없을진대, 대공은 자그마한 공국 하나를
가지고서 대륙의 수많은 나라들을 상대로 승기를 잡는 능력을 보였다.
그러니 더욱 그의 앞에 나는 꼬리 내린 개의 꼴일 수밖엔 없었다.
아니, 씨발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아프고 괴로운 것은
싫지만. 사… 어쩌구라든가, 연인 어쩌구 하는 소리를 들을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철저히 육체를 능욕당하는 편이 백 배는 낫다는 거다.
내가 그렇게 겨우 내 감정을 추슬렀을 때였다.
“내가 그대에게 영 믿음을 사지 못한 모양이야.”
있겠어.”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그리고 그
불안은 곧, 현실이 되어버린다.
“언제까지 내가 풀어 줄 수는 없으니, 스스로 적실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말
기억하고 있나?”
아니…….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그간 대공에게 당해 온 게 하도 많아서 그런 옛날 일은 잊어버렸다. 따지고
보면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았건만, 그와 내가 몸을 섞은 지 몇 번 안
되었던 그 시절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가 그때의 일을 입에 담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는 그랬다.
‘혼자서도 적실 줄을 알아야지, 응? 느끼는 점도 찾고 말야. 언제까지 내가
해 줄 수는 없지 않겠나?’
남자의 성기를 입에 무는 것도 처음이었던 그날, 폭력적인 펠라티오를
강요해 놓고는 다시 뒤에서 내 아래에 성기를 박아 들어오며 그가 했던
얘기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오일을 써 주기는 했었다. 그러나 오일을 쓰기 이전에는 마른
내벽을 억지로 벌리며 삽입하려 했다. 채 풀어지지도 않은 입구로 성기가
들어올 때의 그 쓰라린 통증에 나는 그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아팠다. 진짜 찢어질 것처럼 아팠던 것이다.
“오늘 해 보도록 할까.”
침실이 지척이라.”
“……!”
대공은 화가 난 것일까.
“아윽, 읍…! 으, 으흡!!”
“아윽!!”
개새끼야…….
“써 주십시오…….”
윤활유 좀 제발 써 줘라…… 제발.
잔뜩 품었던 독기는 그가 가볍게 허리를 튕긴 순간 어디로 갔는지,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육두문자가 아닌 애처로운
애원이었다.
“그냥 움직이고 싶은데.”
있었지만.”
대공이 다시 개같은 소리로 내 복장을 뒤집어 놓았지만, 나는 자존심을
세울 수가 없었다.
대공이 얼마나 자비가 없는 사람인지는 전쟁을 겪으면서 내가 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 멋대로 욕심을 채우며 움직여 나를 걸레짝처럼 찢어 놓고도
아무 감흥이 없을 위인이었다. 그러니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굽히고 비는 게
맞지 않는가. 애당초 압도적인 권력 앞에 내 자존심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너무…… 아픕니다…….”
뜨겁고 간지러웠다.
손가락이라도 넣어서 긁고 찌르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나를 휘어잡았다.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대공의 손가락이 더 세게, 더 난잡하게 아래를 쑤셔
주기를 바라는 욕망이 이성을 지배한다.
싸고 싶었다. 아니, 사정은 극상의 절정이 아닐 것 같다. 이미 내 성기
끝에서는 질질 정액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몸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안에 들끓
는 열기가 가라앉질 않았다. 도리어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인
것처럼 화르륵 타올랐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쿵쾅쿵쾅 뛰었다.
“크윽, 으, 으윽!”
대공이 손가락을 거두었을 때 나는 허리를 비틀며 몸부림쳤다. 나도 모르게
허리가 자꾸만 튕겨지고 엉덩이를 어떻게든 자극하고 싶어서 시트에 비벼
댔다. 그러나 안쪽은 전혀 자극이 되지가 않았다. 이토록 간지럽고 뜨겁고
화끈화끈한데 그 무엇 하나 만족되는 게 없었다.
몸에 너무 열이 올라서 그대로 심장부터 타들어갈 것만 같았다. 죽을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뭔지 모를 이 욕망의 해일에 죽을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뒤를 향했다.
“흐으, 으, 크, 으, 흑!”
“…!!”
대공이 절정에 이른 순간, 그는 내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냥 문 게 아니라
치아 자국이 날 정도로 아득, 제가 무슨 짐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깨물었다.
아팠다. 아니, 아파야 했다. 그러나 대공이 울컥울컥 내 안에 제 정액을 토해
내는 동안, 나 역시 눈앞이 새하얗게 바라는 오르가슴에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몸을 떨었다. 사정조차 없었다. 그가 내벽을 강하게 짓누르며 사정한
순간, 그냥 절정에 휩쓸려 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대공이 나를 바로 눕힌 뒤였다.
“일릭.”
“…….”
“…….”
***
“아, 예.”
“약혼녀요?”
“……그 애가 저를 좋아할까요?”
“착하구나.”
걸리지 않았다.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킨 순간 눈에 보이는 건, 분명 대공이었다. 그는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 도착했습니까?”
겨우 말을 했을 때 내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쉬어 있었다.
나는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 목이 쉬어 있어서는 아니었다. 목이
맛이 갔다는 건 이미 아침에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놀란 이유는 마차 안에, 아직도 네 사람이 있는 와중에 내가 여태까지
쿨쿨 잤기 때문이었다. 맞은편에서 멜이라고 불린 부인이 심란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더 미칠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자인 레이사가 잠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 아이는
부인의 허벅지를 벤 채로 자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대공의 다리를
베고 잔 것처럼 말이다.
“피곤했나 봐.”
있어야 말이지.”
“송구… 송구합니다…….”
않겠나.”
“…….”
……경……?
내 이름 뒤에 절대로 붙어서는 안 될 호칭으로 나를 부른 것은 언제
나왔는지 모를 궁정 의사였다. 내가 기사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대체 왜 경이라는 호칭을 붙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를 부른 게
맞나 싶어서 대꾸도 하지 않고 쳐다보니 그가 말했다.
“열이 있는 것 같군요.”
그 뒤로 나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열이 올라서 떨어지지 않는데다가 몸살이 쉬이 가시질 않았던 것이다.
기운이 좀 없고 머리가 아프면서 온몸이 욱신거리는 걸 빼면 당장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냥 쉬고 싶어서 계속 많이 아픈 척을 했다.
궁정 의사가 처방한 약이 좋기는 한 모양인지 근육통은 차차 가라앉았다.
얼얼하고 욱신거리던 다리 사이의 통증도 꽤나 빠르게 좋아졌다. 3일째
되던 날에는 열도 다 떨어졌다.
그러나 괜찮아졌다고 했다가 또 대공의 곁으로 불려 갈까 봐 나는 방에만
머물렀다.
다행히도 대공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부디 제가 나한테 했던 짓이
과했다는 자각이 있다면 좋을 텐데. 물론 대공은 타인의 사정 따위를
봐주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쉬는 동안 드문드문 그 밤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오싹하게 소름이
돋아나면서 구역질이 나려 했다.
미약을 윤활유로 사용해서 날 이성을 잃게 만들어서는 몇 번이고 했던 것.
그래, 거기까지는 용납할 수 있었다. 괴로울 정도로 느끼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때까지는 쾌감의 범주였다. 한계까지 몰아붙여져서는 쥐어
짜이고 박히고……. 그걸 생각하면 안쪽이 어쩐지 얼얼하면서도 근지러운
그런 느낌이 들어 불쾌해졌지만, 그래,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잘도 삼키는군. 내 좆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응?’
주던데?”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나와 있었던 것인가.
그날 내가 아프긴 아팠는지 주변 상황이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도열한 기사들의 위용에 조금 놀랐던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씨발, 내가 진짜 그 전날 오죽 고생을 했어야 말이지. 아직도 그 후유증에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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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잘 안 돼서 그래.”
…아니. 그 애는 그냥 어린애였다.
했나 싶긴 하더라.”
“무슨 소리냐.”
“대공 명령으로 우리가 중요 인사를 호위한다고 로인에 갔었잖아. 거기서
습격이 몇 번 있었거든.”
“습격?”
…그 순간 조금 머리가 아파 왔다.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속으로 조금 웃었다. 체즈번 이 새끼, 용건 없이 내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문병을 왔다고 하더니 사실은 용건이 있었다.
놈은 그냥 온 게 아니었다. 파빅이 가서 나를 떠보라고 보내서 온 것이다.
다만 파빅보다 내 편에서 나를 더 생각해 주는 고마운 놈이었다. 그래서
내게 용병대로 돌아오지 말 것을 경고하고, 파빅이 이번 방문을 사주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이쯤 되니 내가 지금 감시를 받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알즈에서 귀환하는 날부터 지금까지 아팠다는 걸 용병대가 어떻게
알았겠느냔 말이다.
“…야, 난 이만 가 본다. 몸조리 잘 해라.”
체즈번은 내게 퉁명스러운 인사를 건네고는 몸을 일으켰다. 나는 솔직히
놈이 고마웠다. 놈의 방문과 경고로 확실히 깨달은 게 있었던 것이다.
용병대에서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감히 위험을
감수하고 대공이 머무는 성 안에 있는 나를 감시할 리가 없을 테니.
……어떻게 할까.
적 없고 기침 한 번 해 본 적이 없어요.
갑자기 또 속에서 울컥 치솟아 오르는 바가 있었으나 나는 다시 한번 꾹
눌러 참았다. 그러면서 최대한 순종적인 표정을 지으려 애를 썼다.
대공을 자극해서 또 며칠 전 밤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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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생각인가.”
“크흑, 허억, 그건.”
같은데.”
“……아니, 그게 말입니다요, 나리.”
“안내해라.”
“……아니, 그게…….”
“저들과 함께 나도 성에서 나갈 거니까.”
“……예?”
“그만 따라와.”
“이 양반 이거, 나한테 첩자 내보낸단 소리하더니 본인이 첩자인 거 아니야?
내가 값은 잘 쳐 줄 테니까, 엉?”
아. 사기꾼 새끼. 하는 말 들어보니 견적이 딱 나왔다. 나는 놈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나 놈이 나를 따라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기사인 척하는 기사 아닌 양반, 거 말수 되게 없으시네. 같이 좀 가요오!”
되는 거잖아.”
“아, 이 형님 진짜 사람 안 믿네. 출발일을 아슬아슬하게 맞췄대도요.”
틀린 게 있나 봅시다, 참 나.”
놈은 투덜거리며 나를 앞서 걸었다. 나는 그런 놈의 뒤통수를 빤히
주시했다.
- 다음 화에 계속
“당장 내일?”
“……누가 떼어먹냐?”
올 테니까.”
“내가 널 어떻게 믿고. 같이 간다.”
따라오는 거야?”
히죽거리는 놈의 면상을 한 대 패 줄까 잠시 고민했다. 계약이야 무사히
진행되었고 출발이 내일이라지만, 정말로 출발을 해서 무라드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놈을 믿지 못했다. 놈의 말대로 라싼에 도착해서 일이 너무 술술
풀리니 더욱, 상황에 순응하면서도 경계심을 늦출 수는 없었다.
“그럼 이름 가르쳐 줘요.”
“반트.”
“널 못 믿는대도.”
“뭐, 나야 세상 모든 곳을 다 잘 알지.”
- 다음 화에 계속
58.
상단의 짐마차들을 호위하며 걷는 것이 하루 종일의 일과였다. 두세 시간
꼴로 한 번씩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식사를 챙겨 먹는 걸 제외하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해가 질 때까지 걸었다.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면 행진을 멈추고 야숙 준비를 했다. 작업을 분담하여
일부는 식사를 준비해 저녁 식사도 그제야 먹었다. 오는 도중에 나는 토끼
두 마리를 잡았다. 베슬란이 상단에서 운 좋게 소금을 구해 와서 토끼에
소금을 솔솔 뿌려 맛깔나게 구웠다. 낮에 먹었던 비릿한 생선 구이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기름진 고기를 먹자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날이 그리 춥지 않았기 때문에 모닥불을 하나 피워 두고 그 주변으로
동그랗게 누워 잠을 청했다.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서 누운 놈들도
있었다. 나는 바깥을 택했다.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불침번은 보통 맨 처음이나 맨
마지막에 서는 게 좋았는데, 운 나쁘게도 내 순서는 네 명 중 세 번째였다.
베슬란 녀석은 첫 번째를 뽑았다며 싱글벙글이었다.
그놈 웃는 낯을 보고 있으면 왜 괜히 짜증이 나는지 참 모를 일이었다. 분명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놈인데 말이다.
찌륵찌륵.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나뭇잎이
사사삭 저들끼리 몸을 부빈다.
평화로운 밤. 나는 누운 채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달빛이
밝았다. 새하얀 빛에 주변에는 별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달무리가 없으니 내일도 날이 맑을 모양이다. 쏟아지는 달빛에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새카만 밤하늘에 하얗게 떠 있는 달.
그 빛으로 실을 자아낸 것인가 싶은 새하얀 은빛의 머리카락.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던 그 감촉. 손가락으로 끝을 만지면 그
끄트머리조차 매끄러웠다. 내가 안아 온 그 어떤 여자의 머리카락보다
부드러웠다. 혹시라도 그 머리카락을 살갗 위를 스칠 때면…….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그 달빛처
럼 드리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 또한 달빛을 받은
조각상처럼 빛이 났더랬지. 눈동자만큼은 떠오르는 태양의 빛깔처럼
노랗고도 붉었다. 보석 호박(琥珀)을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눈동자는
어쩌면 동틀 녘이나 해질녘의 붉게 빛나는 노란 태양을 닮았던 것도 같다.
감히 마주 보기도 부담스러운 눈동자였다. 바라보고 있자면 때로는
지나치게 요사스러워, 파충류의 그것처럼 동공이 세로로 찢어져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었는데.
열기로 일렁이는 눈동자에 오싹 소름이 돋아났다. 델 것 같은 빛깔이었다.
일릭.
낮게 속삭이는 그 목소리가 닿은 고막부터 간지러움이 번지는 건
어째서일까. 귓속을 통해 머릿속이 어쩐지 저릿했다. 그리고 배꼽
안쪽으로도. 가슴 끝도 근지러웠다. 그 간지러움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뜨거운 것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간지러움이 번졌던 곳곳에 전부 열이 오른다.
아…….
달빛에 새하얗게 빛나는 손이 가슴을 가볍게 쥔 순간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갔다. 그 손이 부드럽게 가슴을 주물러 손가락이 유두를 스친
순간에는 몸이 흠칫 튀었다.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부드럽고 간지러운 손길이었다. 그렇잖아도
예민하게 변해 버린 유두 위를 간질이며 손가락이 원을 그렸다. 아주아주
야살스럽고 부드럽게 문지른 위를 몇 번이나 덧그렸다.
으으응……. 나는 한숨처럼 신음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걸렸다. 오싹오싹해 몸이 더 움츠러들었다.
손이 살갗을 잔뜩 문질렀다. 가슴을 움켜쥐었다가 복부에 도드라진 굴곡을
쓰다듬었다. 골반을 붙잡은 채 그가 몸을 맞댔다. 엉덩이며 회음부에
열기를 담은 살덩이가 와 닿았다.
나는 그것이 주는 쾌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안쪽을 꿰뚫어 잔뜩
치댈 때의 아찔한 쾌감. 이성만 아니라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그 쾌감 말이다. 뻐근할 정도로 아래를 벌리고 들어와 내벽을
녹진하게 만들며 진퇴를 반복하는 그 움직임이 주는 쾌감을 알아서, 가슴
속이 기대감으로 벅차올랐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어쩐지 숨
을 쉬기가 버거웠다. 열기 때문에. 또 기대감 때문에.
안쪽이 근지러웠다. 항문이 자꾸만 발씬거렸다. 내 몸을 어루만지고 있는
저 길고 아름다운, 섬세한 손가락이 그 안쪽으로 들어올 때의 감각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진다. 물론 생긴 것과는 달리 과격하게 움직여 사람을
괴롭게 만들기 일쑤였지만……. 그 고통은 통증만 아니라 격렬한 쾌락이
뒤섞인 것이었다. 종내에는 고통인지 쾌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더
괴로울 정도로.
따뜻하고 말캉한 입술이 헐떡이는 내 입술에 포개어진다. 소름끼치고
징그러운 행위였다. 그러나 내 입술을 빨고 입안을 유영하는 혀에 전신의
성감대가 불을 지른 듯이 오싹오싹한 쾌감을 전해 온다. 그의 가슴에 닿아
비벼지는 가슴 끝이 찌릿했다. 뒤가 근질근질했다. 그 안쪽은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허덕이며 안을 꽉 채우며 들어와 박힐 살덩이를 원한다.
아랫도리에 피가 몰려 하복부까지 뻐근함이 일었다. 허벅지 근육까지
당기는 듯했다.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 안쪽을 절절 끓게 만들고 결국에는
폭발시킬 그런 쾌락이.
그러나 성기를 만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안쪽을…
그보다 더 깊은 안쪽을 만져, 몸부림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쾌락을
느끼고 싶었다. 단단하면서도 두꺼운 것이 안을 가득 채워 안쪽을 잔뜩
찔릴 때의 그 쾌감 속에 사정하고 싶다…….
일릭.
내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은빛의 머리카락. 나를 굽어보는 호박색의
눈동자. 달빛을 등지고 있음에도 빛이 나는 듯한 얼굴을 나는 홀린 듯이
바라본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그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지 않는 그 때문에
애가 닳아서…….
일릭. 일릭.
일릭…….
일릭….
“형님!”
“허억…!!”
눈을 번쩍 떴을 때 보이는 얼굴에 나는 막혀 있던 숨을 탁 토해 내며 눈앞의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놈을 있는
힘껏 떠밀어 버렸다.
놈이 으악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졌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주먹을 내지른
게 아니라 그냥 밀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절제한 편이었다. 아니, 지금
이라도 한 대 치고 싶었다.
잠에서 깬 순간. 내가 꿈을 꾸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정신이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머리가 핑글핑글 돌면서 혼란스러웠다. 현실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상체를 반쯤 일으킨 채로 헐떡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노상이었다. 나는 침낭 속에 있었다. 주변에 다른 용병들의 코 고는 소리가
찌륵거리는 벌레 소리에 뒤섞여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는 모닥불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나는 얼굴을 쓸어내려 마른세수를 했다. 얼굴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침낭 속의 몸도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다. 헐떡이며
토해지는 숨결도, 몸도 모두 뜨거웠다.
“아이, 씨……. 왜 갑자기 사람을 떠밀고 그래…!”
아 저 뺀질이 새끼 진짜.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언짢은데 놈이 깐죽거리자 아까 그냥 떠밀지 말고
턱주가리를 날려 버릴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내가 이성을 잃고
대공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기도 했던 인간인데 저 뺀질이가 대체
뭐라고…….
아니, 씨발 나는 왜 또 멍 자국으로 얼룩져 그 여느 때보다 퇴폐적으로
보였던 그때의 하얀 얼굴을 떠올리고 있나.
흠칫 하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털었다. 얼굴에 벌겋게 오른 열이
가시지를 않았다. 내 몸의 반응을 내가 통제할 수가 없었다.
“잘 거니까 닥치고 꺼져.”
심사가 더러워서 내뱉는 말도 거칠 수밖엔 없었다. 나는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어깨까지 침낭을 올리고는 놈을 등지고 눈을 감았다. 옆으로 누우니
적어도 그 달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 좀 나았다.
그러나 오늘따라 달이 밝기는 왜 이렇게 밝은지, 또 코 고는 소리들은 왜
이렇게나 거슬리는지 잠이 오질 않았다. 몸에 오른 열은 쉬이 식지를
않아서 더 죽을 맛이었다.
…씨발, 내가 안 뺀 지 며칠 되기는 했다지만, 그런 개꿈을 꿀 줄이야.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고.”
없는 상황이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쿵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
대공 각하. 그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용병대 이름이 뭡니까.”
- 다음 화에 계속
일릭.”
“
하더군.”
역시나 리리엘은 내 알리바이가 거짓이라는 걸 용병대에 전달을 한
모양이었다.
그때 마침 전쟁이 터지고, 대공이 나를 곁에 데리고 다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전쟁이 없었고 대공이 나를 제 곁에 붙여 두지 않아 내가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용병대에
돌아가야 했다면, 이 사태는 진작에 일어났을 터였다.
씨발 결국 대공의 곁에 남는 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악수를 둔 셈이었다.
“내 아들이 죽은 그 오두막, 그 근처였다고 말이다!”
“…….”
게 미안하지도 않았소?”
어차피 뒈질 거. 마음이 잔뜩 비뚤어져서 나는 더 이상 나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아니, 통제하기도 싫었다.
나도 씨발 억울하던 차였다. 되도 않는 희롱과 추행을 일삼던 게
마일이라는 새끼였다. 좆도 아닌 놈이 나보다 강한 척하는 것도 같잖아
죽겠는데, 상대를 안 하면 닥치고 꺼질 것이지 놈은 정도를 몰랐다. 나를
상대로 강간 미수 따위를 저질렀으니 죽는 게 당연하지 않나. 피하라고
내지른 검 하나 피하지 못해서 심장을 꿰뚫린 것도 우습다. 기사가
된답시고 떠들던 놈이, 결국 약해 빠져서 뒈진 것 아닌가.
그런데 내가 죽인 가해자새끼가 용병대 대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었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공에게 온갖
수치스러운 꼴을 다 당했다.
씨발, 억울한 건 나란 말이다!
“동료를 죽여도 이 난리는 안 나지. 그런데 마일이 우리 동료였던가?”
“이 새끼가…!”
“……뭐?”
손으로 너를 단죄하겠다!”
“……하.”
“일릭.”
미로스의 대공이 이 자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아니……. 설마.
나는 문득 대공과의 첫 만남에서 그가 내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설마 그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앞에서 그때 했던 말과 같은 소리를-
“강간을 저지르려던 그 좆이 어떤 꼴로 발딱 서 있었는지 말을 해 주길
바라나.”
……해 버렸다. 대공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은 넘치는 자비였다.”
…아니, 약간 속이 시원하기도 했는데……. 대공은 선이 없었다. 물론 그는
보네만.”
그 모든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은 자비를 내린 것이라고, 대공은
말하고 있었다.
그건 물론…….
“그대의 아들은 내가 죽였다.”
눈빛으로.
노랗고도 붉은 눈동자에 나는 잠시 영혼을 빼앗기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대공이 결국 나를 구해 준 것이다. 제 입으로 약조했던
것처럼, 용병 따위가 나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이걸로 되었지, 일릭?”
“…….”
아니 씨발…….
아니, 굳이 그 한마디는 왜 붙이는 건데?
대공은 쓸데없는 말을 또 한마디 덧붙여서 이 자리에 선 모두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밥을 다 지어 놓고 거기에 코를 빠뜨리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 와중에
가장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것은 바로 나였다.
‘이걸로 되었지’라니! 파빅이 나를 다시 노려보잖아! 죽일 듯이
노려보잖아!!
기껏 제가 죽였다고 해 놓고, 이걸로 되었냐는 소리는 왜 하냐고! 결국 그건
마일을 죽인 건 나인데 대공 자신이 뒤집어써 준 거다 하고 사실을 죄다
얘기한 거랑 뭐가 달라…!
“그러니 이제 돌아갈까.”
……입술이 포개어졌다.
것을.”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현실 분간
을 하지 못하고 굳어져 있는 나를 보며 대공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했다. 나는 뭐라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다시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대공이 눈앞에 있다는 것에 나 홀로 패닉이었다.
잠에서 막 깬 탓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씨발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어. 생각하려 했으나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 정리가 되질 않았다.
아, 싸웠다. 머리가 찢어졌다고 대공이 그랬나? 그래, 머리로 누굴
들이받았다. 파빅. 그래, 파빅이 싸움을 걸어서. 아, 그래.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그래,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로감이 이미 최대치였다.
싸우느라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었기에 망정이지, 사실은 이미 충분히
한계였다.
그것이 어떤 강력한 충격에 의해 한순간에 전부 끊어지면서 의식을
잃어버렸던 것 같은데.
“이만 내릴까.”
결국 내 성질머리가 폭발했다.
씨발, 솔직히 이제는 모든 게 한계였다. 기절했다가 깬 덕분에 체력은
되돌아오긴 했는데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억울함도 분노도
이미 최대치였다.
나를 보던 용병 놈들의 표정이 폭발적으로 떠올랐다. 기사들의 경악한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시선들에 나는 진짜
미쳐 버리겠단 말이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굳이…!”
“그걸로 끝냈으면 용병대가 끝내 그대를 변절자로 몰아 데려갔을 텐데?”
“그건 절 데려갈 구실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구실이라는 걸 없애려면 그대가 나와 뭘 했는지를 얘기해
무엇 있겠나, 내 사랑.”
입도…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사……. 그 단어 때문에. 그런 소리를 설마 정말로
진심으로 내뱉고 있는 것인가 싶어서, 너무 징그러워서 무섭기까지 했다.
“용병대 대장의 아들을 죽인 게 그대든 나든 무슨 상관인가. 그대가
죽였지만 내가 죽인 셈이지.”
경악과 패닉으로 굳어져 버린 나를 두고 대공은 미친 소리를 이어 갔다.
“부부는 일심동체라지 않아?”
부…….
그것은 정말이지 내가 감당할 수가 없는 단어였다. 전신에 바퀴벌레가 수천
마리 붙어 있어도 이보다는 덜 징그러울 단어였다. 참고 견딜 수준이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아니었다,
이건.
처음 그가 내게 입을 맞췄을 때보다, 사랑 소리를 했을 때보다 더. 씨발, 나는
정말이지 더는 이 미친 자를 참을 수가 없어서-
“나의 왕비가 되어 줘, 일릭.”
“각, 각하!!”
“각하!”
외전 사얀 1.
티마예브의 왕족들은 순혈을 유지하기 위해 왕국의 긴 역사 내내 근친혼을
자행하였다. 특히나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해 국왕 혹은
왕세자가 혈연이 이어진 여자를 곁에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대 국왕의 첫 번째 왕비는 따로 있었으나 그에게 첫 번째 아들을 낳아 준
것은 동복의 누이였다. 사촌간도, 이복 남매간도 아닌 동복 남매간의
성혼은 교단의 법령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며 대륙 전반에서 금기시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왕비가 되지는 못했지만 왕비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이름뿐인 왕비가 화병으로 사망한 이후에는 대놓고 왕비 행세를
하기도 했었다.
남매간에 정을 통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으나, 때는
교단이 거의 힘을 잃었으며 왕권이 극히 강화된 시기였다. 그 강력한
권력을 타인과 나누고 싶지 않다는 왕족들의 배타주의는 친남매 간의
결합을 도리어 지극히 성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동복 남매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카미드는 태어날 때부터 제 핏줄로
인해 그 누구보다 강력한 정통성을 부여받았다. 국왕이 그를 지극히 아끼는
것은 물론, 모든 왕족과 대다수의 귀족이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근친혼으로 태어난 존재들이 어찌 건강할 수 있을까. 그 전대의
근친혼으로 인해 태어난 국왕의 누이이자 카미드의 친모는 카미드를 낳고
몇 년 뒤 병을 얻어 앓다가 사망했다.
그녀가 죽고 얼마 뒤 국왕은 제 사촌 누이를 두 번째 왕비로 맞이하였다.
사촌지간이었기에 결혼이 성립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왕비는 당시 미로스
공국을 다스리는 공작의 딸로, 은빛의 머리카락과 호박색 눈동자를 지닌
신비로운 외모의 여인이었다.
국왕에게 사촌 간인 여자는 조금은 불만족스러운 상대였으나, 혈족 중 그
누구도 그녀만큼 국왕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미로스의 공녀가
국왕의 두 번째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쌍둥이 남매를 출산했다. 두 번째 왕비가 낳은 아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왕비만을 닮아, 은빛의 머리카락과 호박색의 눈동자를 지니고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있었다.
국왕은 자신을 전혀 닮지 않은 남매를 꺼림칙하게 여겼다.
왕비가 낳은 딸아이는 그래도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딸아이는 제 아들
카미드의 반려가 되어 이 왕국을 이어 갈 또 다른 후계자를 낳아 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 아들은? 국왕에게는 혈통부터가 완전무결한 후계자인 카미드가
있었다. 또 다른 아들은 필요치 않았다. 더욱이 그 아들이 자신은 전혀 닮지
않아, 사실은 제 자식이 아닌 건 아닐까 의심이 드는 아들이었다.
국왕은 쌍둥이를 낳은 뒤 왕비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핑계로 왕비를
왕성에서 쫓아내었다. 왕비는 아이들과 함께 친정 미로스로 돌아와
아이들을 길렀다. 그녀는 제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했으며, 두 아이에게
사랑을 쏟아부었다.
그러다가 불운한 사고로 그녀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사얀은 자신의
불안정함을 알았지만 그 증상을 적당히 조절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길지 않았고, 모친의 사후 쌍둥이는 다시
티마예브의 왕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얀은 카미드를 싫어했다.
그래서 어느 날 카미드가 키우는 앵무새를 죽여 버렸다. 언젠가 맛있게
먹었던 닭고기 요리처럼 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냈다. 머리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카미드가 그 새가 어떤 새인지 알아야 할 테니 말이다.
사얀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기분이 좋았다.
카미드는 그 새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다섯 살이나
더 많은 카미드가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새된 비명을 내지르는 꼴이
우스워서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카미드는 울면서도 여기가 이렇게 불룩하게 되어 있었어.”
“피학성애자?”
건.”
카미드는 종종 이스테샤를 부르곤 했다. 사얀과 함께 있을 때면 둘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도망치곤 했지만, 왕세자의 초대를 번번이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로는 이스테샤 혼자 카미드를 만나러 가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스테샤는 돌아오자마자 사얀에게 달려가 울음을 쏟았다.
이스테샤가 싫다고 거절하면 카미드는 비 맞은 개처럼 끙끙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보내 주기는 했지만, 그녀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들이 이미
이스테샤에게는 상처였다.
사얀은 그래서 카미드를 죽이고 싶어했다. 카미드를 죽이자고 자꾸
속삭였다. 앵무새의 배를 가른 것처럼, 카미드의 배를 가르자! 아픈 걸
좋아하니까 울면서 좋아하겠지. 음, 그런데 카미드가 좋아하는 걸 떠올리면
사실 사얀은 기분이 아주 나빴다.
“하지만 나도 이스를 좋아하는걸. 어머니는 남매끼리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도 사얀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사얀이 카미드처럼… 그렇게 될까 봐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난 걔 싫은데.”
“걔 글자는 읽을 줄 안대?”
“…어, 괜찮아.”
“……사얀…….”
외전 사얀 2.
……그 상대가 멍청이 엔리온이 될 거라고는 사실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눈물을 흠뻑 머금은 이스가 자신을 보며 도움을 청했을 때 티마예브의 둘째
왕자 사얀은 깨질 듯한 두통에 미간을 찡그렸다.
다른 나라의 왕실에서 공부를 하고 문화를 익히러 가게 되었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티마예브의 왕실을 떠났던 엔리온이 돌아온 지 1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이었다. 둘이 약초와 의학 공부를 하느라 자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사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부에 진전도 있었다.
이스테샤가 어느 날부터 사얀에게 가져온 약들이 분명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를 없애 주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차처럼 생긴 주제에 맛이 끔찍할
정도로 없는데다가 먹고 나면 몸에 열이 올라 누구든 다 산 채로 껍질을
벗기고 싶다는 가학성이 끓어오르는 게 괴롭긴 했지만, 쉴 새 없이
머릿속에서 떠들어 대는 목소리를 닥치게 만들 수는 있었다. 약을 과하게
먹고 나면 머리가 더 아파질 때가 있다 해도 소리가 들리는 것보다는 참을
만했다.
아, 물론 이제 사얀은 그 목소리가 아닌 본인이 사얀이라는 것도 안다.
정확히는 그 목소리도 자신도 모두 사얀이다. 목소리의 형태로 머릿속에
왕왕 울려 대는 것은 사실은 본인의 또 다른 생각이었다. 약을 끊으면 그
경계가 다시 명확해지면서 목소리가 분리되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모든 게 자신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소리 여부와
상관없이 사얀은 미쳐 있었다. 광증은 근친으로 얼룩진 티마예브 왕족의
유전병이었다.
다만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티마예브의 왕자라는 자신의 위치가 굳이
미치지 않을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각했을 뿐이다. 그가 좀 미쳐
있다 해도 무엇이 문제겠는가. 미친 짓을 능히 실행하고도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을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카미드가 나를 쉽사리 건드리지 못할 입지를 다져 놓기는 했는데.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그래도 네
가 사랑하는 남자를 지켜 줄 수 있는 정도는 못 되는걸 .”
“……알아.”
거겠지.”
이스테샤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적으로
몹시 동요한 지금에도 그녀는 다행히도 지극히 이성적이었다.
“일단 엔리온을 성도로 떠나보내.”
“……같이… 있고 싶어…….”
약속하지.”
사얀의 약속에 이스테샤는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 약속의 무게를 알기에.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그러나 그
녀는 분명 조금은 웃고 있었다.
“바보. 아이가 여자애면 어떡하려고.”
- 다음 화에 계속
63.
외전 사얀 3.
물론 미로스의 대공이 일개 용병 나부랭이를 오래 기억 속에 남겨둘 이유는
없었다. 사얀은 그게 아니더라도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 지나치게
많았으므로, 시르반 요새를 빼앗고 세리포브와 강화 조약을 맺었을 때 이미
그의 머릿속에 그 용병의 존재는 사라져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 사얀은 더더욱 무료해졌다. 요즘에는 그의 뜻에
거스르는 사람이 좀처럼 없는 탓에 감옥을 채울 일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취미방에 장난감을 가져다 두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나마 나은 게
있다면 사냥이었다.
도대체 카미드는 언제쯤 건강이 좀 악화가 될까. 혹은 심각한 정치적인
실수도 괜찮은데.
사얀은 그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사실 이대로 평화가 지속되다가 카미드가 후계자 없이 자연사하는
것이었다. 결국에 그의 공석은 사얀의 것이 되고, 또 레이사의 것이 될 테니
말이다.
카미드가 자꾸만 레이사를 찾기 위해 공국을 들쑤시는 것이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레이사를 잘 숨겨 두기만 한다면 버텨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또
카미드가 쓸데없이 사얀을 견제하지 않도록 이스테샤가 설득만 잘 한다면
말이다.
이 평화에 문제가 있다면 사얀 자신이 지루하다는 것뿐이겠지.
당장 티마예브의 왕실을 뒤집어엎을 게 아니라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사얀은 이 기약 없는 기다림에 염증을 느끼며 간혹 사냥을
하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삼아 시간을 죽였다.
그러다가 그 남자를 발견한 것은, 제 사냥터 가장자리에 위치한
물레방앗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였다.
미로스의 백성들은 대공의 사냥터 위치를 알고 있었다. 또 사냥이 있기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며칠 전부
터 깃발을 올려 두기에 사용되는 사냥터 주변에는 가까이 오지를
,
않았다.
그러니 대공의 사냥터 주변에서 모습을 보였다면 이방인이거나
암살자라는 뜻인데.
난데없이 물레방앗간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에 대공은 조금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부하들을 물린 채 저 홀로 사내의 뒤를 밟았다. 암살자는 아닌 느낌.
아마도 용병일 것 같았다. 전사의 육체로서 꽤나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째서인지 야한 느낌도 조금쯤.
그런데 남자의 육신에 그런 감상을 느낀 게 대공 혼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물레방앗간 안에는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 다른 남자와
무어라 실랑이를 하는 것 같더니, 그 이후의 일은 순식간이었다. 흑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저에게 달려드는 사내의 가슴을 검으로 쿡 찔러 버린
것이다.
무심한 얼굴에 군더더기 하나 없는 솜씨였다. 가슴을 꿰뚫린 남자는
즉사했다. 하도 깔끔하게 사람을 죽여서 대공은 휘파람이라도 불 뻔했다.
더 볼만한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이 뭐랄까…….
길게 옆으로 찢어져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눈매라든가, 단단해 보이는 굳은
턱 따위가 조금……. 조금 그랬다.
그러나 남자의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곧장 그
자리를 뜬 것이다.
나가서 얼마 가지 않아 남자는 저를 아는 체하는 여자의 허리를 꿰어
안았다. 인적 드문 외곽의 길이라지만 대낮에 하기에는 과감한 행태가
아닌가. 얼굴을 붉히는 여자를 남자는 짐승처럼 안고 헛간으로 데려갔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보는 취미는 그다지 없었으나, 대공은 어쩐지 거기까지
뒤를 밟아 헛간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자에게 벽을 짚고 허리를 숙이게 한 뒤 남자는 뒤에서부터 여자를 안고
있었다. 교성이 귓가를 간지럽게 울렸다. 남자의 허릿짓이 격렬해지자
여자의 신음소리가 더더욱 커져 갔다. 남자는 덥다는 듯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던졌다.
단단한 목과 승모근. 넓게 벌어진 어깨와 흉포한 굴곡을 드러내며 쩍
갈라지는 근육들. 그것만으로도 예술적이라 하련만, 백미는 그 널찍한 등이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역삼각형
으로 좁아지며 허리가 제법 날렵하게 빠진다는 점이었다. 척추 골
양옆으로 발달해 그의 움직임에 따라 꿈틀거리는 기립근이 묘하게
관능적이었다.
게다가 그 아래의 엉덩이는 또 어떠한가. 여자의 안쪽으로 진퇴를
반복하느라 조였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그 엉덩이 근육을 사얀은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남자들의 몸보다 야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피부색 때문인
것도 같았다. 얼굴과 팔, 상반신이 짙은 색인 것과는 달리, 옷에 가려져
있었던 둔부는 은근히 희었다. 전신적으로 체모가 그다지 많지 않아 살갗이
맨들맨들해 보이기도 했다.
유연하게 튕겨지는 허릿짓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 허릿짓이 이어질
때마다 엉덩이 위쪽이 보조개처럼 움푹 패이는 게 또 야해 보였다.
움직이는 뒤태에서 사얀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벗은 몸이라면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성교중인 사내의 뒷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것이 상당히 볼만하다. 특히나 엉덩이. 음,
저 엉덩이.
저런 엉덩이라면…….
저 탄력적인 엉덩이에는… 음.
제 좆을 박아 넣고 잔뜩 조이게 하고 싶다.
티마예브의 둘째 왕자, 미로스의 대공 사얀은 본디 섹스보다는 조금 다른
것을 좋아하는 자였으나, 눈앞의 용병을 보고 든 생각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무덤덤했던 얼굴. 조금 난처해하다가 금방
무표정해지는 얼굴. 여자를 낚아챌 때도, 그녀를 안을 때에도 크게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
우는 얼굴은 어떨까.
뒤로 가득 사내를 품고 엉엉 우는 얼굴, 보고 싶은데.
미로스의 대공이 입맛을 다신 순간. 불쌍한 용병의 미래는 그렇게 결정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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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사얀은 회상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들었다.
티마예브의 왕녀. 프리스카 백작 부인, 이스테샤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티마예브의 왕실에서 두 사람이 마주하는 것 역시 10년 만이었으나
사얀에게는 이렇다 할 감흥이 없었다. 그는 그런 종류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카미드는 깨어났나?”
“…전하께서는 이제 막 깨어나셨지.”
주변에 듣는 귀가 있는데 현 국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사얀에게 경고를
하듯 이스테샤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힘주어 ‘전하’라는 소리를 하는
그녀를 보며 사얀은 비위도 참 좋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다음 왕위에 오를 후계자로서 사얀은 서거하기 전의 국왕을
만나야 했다. 그래도 카미드가 병석에 누워 있다고 하니 전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숨도 제대로 쉬어 내지 못하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카미드를 보는 것은
분명 유쾌한 일이었다.
사얀은 이스테샤를 칭찬해 주고 싶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버티고 버텼던
그녀가 결국에는 저 의심 많은 카미드를 중독시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약을 제조하는 솜씨가 더 좋아졌는지 의심 받을 정도로 급작스럽지도
않았다. 물론 북부가 의심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이제는 크게
상관없었다. 길리어드가 사얀의 편에 섰으므로, 에도스 공작은 더 이상
골치 아픈 상대가 아닐 것이었다.
확 죽여 버렸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이스테샤는 카미드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그러나 숨은 붙어 있는 폐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죽인 게 아니니 골육상잔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형제간에 과한
행동이었다 해도 이것은 이스테샤가 동의를 한 일이니까 틀린 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은 10년 동안 이스테샤를 곁에 두고 괴롭힌 카미드의
죄였다. 또 형제인 사얀을 먼저 죽이려 한 것도 카미드니까 이스테샤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사얀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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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화에 계속
64.
외전 사얀 4.
너도 이렇게 될 줄을 알고 나를 그토록 죽이고 싶어했던 거겠지.”
“
“거긴 왜.”
“거기가 더 기분 나빠.”
“아하. 그렇다면야.”
셈인가.”
“죄… 죄송합니다, 각하…….”
“피비린내가 나는군.”
“…송구합니다.”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있었다.
“미로스에 연락을 넣어서, 그곳에 있는 지하를 치우라고 해.”
“예, 그리 하겠습니다.”
기사 베이즈였나.
그가 제 연무장을 쓰고 있던 일릭에게 시비를 걸었던 밤. 베이즈는 대공이
연인이라 한 일릭의 처지를 질투하여 별관으로 대공을 찾아왔었다. 일릭을
대신해서 대공에게 기쁨이 되고 싶다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그의
애정을 바랐다.
그러나 베이즈는 그다지 침실로 데려가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대공은 그를 자신의 취미방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의자에 앉혀 놓고 사지를 결박한 이후에는……. 글쎄. 그 어떠한
짓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제야 사태 파악을 하고 울며 살려 달라 비는
남자에게서는 그 어떤 즐거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일단 손톱을 뽑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사얀은 도구를 들었다가 그냥 자리에
내려놓았다.
베이즈가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우는 꼴을 보기보다는 일릭이 우는
얼굴을 보는 게 더 짜릿했으므로.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굴욕감에
젖어 몸부림치는 모습이, 싫어서 질색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즐거웠으므로.
대공은 그 지하실에 베이즈를 내버려 둔 채로 올라와 버렸다. 그 뒤로 다시
내려간 적은 없었다.
대공의 명령이 없으면 그 지하실의 문은 열리지 않으니, 아마 베이즈는
그곳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럴 의도는 결코 아니었는데… 깜빡했다.
본성의 연무장에 허락 없이 들어가지 말라는 제 명령을 베이즈가 깜빡했던
것처럼 말이다.
뭐, 어차피 살려 둘 생각은 없긴 했다.
“그냥 태워 버리라고 해.”
챙겼겠어.’
제 곁을 떠나려 하는 게 괘씸해서 보내지 않았지만. 그냥 보내 줄 걸 그랬다.
그랬다면 적어도 오늘 밤의 외출에 동행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적어도
일릭은 살았을 테니 말이다.
아니, 대공이 죽으면 전쟁은 미로스의 패배로 돌아갈 테니 용병인 그의
목숨은 어차피 위태로웠으려나. 여러 생각이 느슨하게 머릿속을 부유했다.
‘달칸 용병대에서 그대를 제거하려면 힘이 많이 들어가겠군, 그래.
‘…사얀?’
‘사얀……. 아닙니까?’
그래, 사얀은 나다.
일릭이 그 이름을 부른 순간, 대공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제 존재를
확신했다.
사얀은 나야. 그러니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한다.
‘알즈로 간다.’
마주했을 때였다.
‘일어났나.’
“제가 왜 그쪽 형님입니까.”
“콱 죽일까 하다 참은 줄 알아.”
“왜? 아주 그냥 확 죽여 버리지?”
“......잘해?”
같아서 말이지.”
사얀의 말에 일릭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게 꼭 도망칠 생각을 하고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있다가 뜻
밖의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실제로도 일릭은 조금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도망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인가. 또 말을 선물한다는 건 무슨 확고한 자신감인가. 이런
종류의 놀라움이었다.
사얀은 물론 그가 이 왕성에서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정확히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곳은 티마예브의 왕성. 전시의 시르반 요새보다 더 철통같은 경계 속에
지켜지는 곳이었다. 국왕이 쓰러지고 사얀이 뒤를 잇기 위해 들어온 지금이
가장 성내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일릭 스스로가 돌아다니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성에서는 도망칠 만한 그 어떤 작은 구멍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설령 일릭이 사얀의 생각보다 멍청하여 도망을 시도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성에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붙잡힐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에게 말을 한 마리 사 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될 게 없었다.
미로스에서 티마예브로 올 때에도 일릭에게 좋은 말을 주어 타게 했지만
대공은 조금 더 특별한 말을 하사하고 싶었다. 승마에는 조금 서툰 그가
안정적으로 말을 탈 수 있도록 말이다.
아, 물론 말보다는 내 위에 올라타면 더 좋겠지만.
혀끝까지 말이 튀어 올랐으나, 어째서인지 내뱉어지질 않는다. 대공은 제
본심이면서 일릭이 싫어하는 말을 기어코 들려주는 것을 즐겼다. 이번에도
일릭이 질색하도록 말을 해 줄 요량이었는데- 이상하기도 하지. 어째서인지
혀끝에만 맴돌았을 뿐이었다.
“그래. 그것 때문에 들어왔을 뿐, 앞으로 다시 들어올 일은 없을 거다. 상단
“그럼 뭐가 문제지?”
당연하지.
대답조차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답할 수
있었다.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그런데…….
“설마. 그대가 원하면 성에 들일 수 있지.”
“……어제도 했잖습니까.”
“오늘은 안 했잖아?”
“…….”
“……차라리 죽이십쇼.”
“그 사랑한다는 그 단어 좀…….”
않아.”
“…….”
“사랑하는 건 그대 하나뿐인걸.”
사얀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일릭을 사랑한다.
사얀도 사람이니만큼, 자신이 일릭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일릭
역시 자신을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서 마음을 바라는
것은 아무리 정신이 나간 사얀이라 할지라도 자연스러운 욕망이었다.
그러나 사얀의 명철한 이성은, 일릭이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한 행동들을 일릭이 몹시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망까지 쳤던 일릭이 아닌가. 그런 짓을 했으니 일릭이
사얀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잘해 주는가와 상관없이 말이다.
사얀은 일릭이 싫어하는 짓을 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가
싫어하는 짓을 앞으로도 계속 많이 하고 싶었다.
일릭은 사얀이 만지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사얀은 일릭을 보면 만지고 싶단
말이다. 일릭은 제 몸이 사얀에게 개발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사얀은 제 손가락 하나만 닿아도 일릭이 자지러지게 만들고 싶었다. 또
이런저런 기구를 사용해서 그가 절정의 절정까지 몰려 몸부림치는 걸 보고
싶었다.
그런 걸 왜 참아야 하지. 설령 참는다 한들, 이미 해 놓은 짓들 때문에
일릭은 사얀을 사랑하지 않을 게 분명한데.
어떻게 해도 사얀은 일릭에게 사랑받을 수 없었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욱신욱신 아파 온다. 사얀은 어떤 형태로든 통증을 싫어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 얼굴 때린 것을 두 번은 봐주지 않겠노라 말했던 것과는 달리, 또
얻어맞고도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너그러이 넘어갔으니 말이다.
제 곁에서 도망치려 하면 사지를 자르겠노라 하였지만, 사실은 그러지 못할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것이었다.
팔다리의 유무와 상관없이 일릭을 사랑하지만, 일릭을
사랑하기에 그의 팔과 다리 역시 사랑하므로.
“으윽…!”
“흐윽……!”
“삼켰지.”
“아니, 그걸… 그걸 왜 먹습니까…….”
“흠…….”
“그, 그런…….”
응 일릭. 넣고 싶은데.”
“ ?
저기, 일릭?
“흣, 각하, 거긴, 아!”
에필로그
역병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갈 곳 없게 된 내가 몸을 의탁한 곳은
용병대였다. 어렸을 때부터 발육 상태가 좋았던 나였기에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입단할 수 있었다. 동네에서는 이미 주먹질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 내가 용병대에 들어와서 슬슬 용병대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었을 때, 나에게 가장 충격을 준 것은 동료의 죽음이었다. 그건 정확히는
처형이었다.
남자의 몸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한쪽 눈을 잃은 것인지 얼굴 반에
붕대를 둘렀는데, 한참을 갈지 않은 듯이 그 붕대가 원래의 색을 잃고
검붉은 피와 새카만 흙먼지로 얼룩덜룩 더러웠다. 남자의 전신이 그와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막 용병대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 교육을 맡고 있던 선임 용병은 어린
나이에 용병대에 들어온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러니 이런 처형
장면을 억지로 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봐. 이번 임무 전까지만 해도, 용병대에서는 최고 잘나가는
인간이었다고.”
“…그런 사람을 왜 처형하죠?”
그것만으로도 이미 절정이었다.
내 성기를 핥고, 빨아 당기다가 내가 사출해 버린 체액을 꿀꺽, 삼키는 걸
보고 있자면.
‘아니, 그걸… 그걸 왜 먹습니까…….’
‘사랑하니까?’
같잖은 사랑 타령에도, 가슴 속 깊은 곳부터 짜릿해 올 수밖엔 없는 것이다.
넣고 싶다며 애처롭게 졸라 대는 것에도,
그 징그럽기 짝이 없고 사람 미치게 만드는 도구들을 쓰고 싶다는
소리에도,
‘내 좆을 닮은 막대 같은 거. 그걸로 잔뜩 박으면서…… 빨아 줄까?’
라고 속삭여 버렸다.
나는 그냥 원래 그런 성격이었던 것 같다. 무덤덤하고 무신경해서 크게
좋은 것도 없고, 싫을 것도 없는. 내가 잘 하는 일을 적당히 하면서 먹고
살고, 크게 변화 없는 삶을 살며 귀찮은 일은 벌이지 않는, 그런 성격
말이다.
그냥 살았어도 잘 살았을 것이었다. 인생에 별다른 큰 재미는 없어도 그냥
적당히 능력을 인정받아서 돈도 좀 벌고, 나를 좋다고 하는 여자를 만나서
작은 즐거움도 찾고. 어쩌면 조금 더 나이가 먹어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고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벗어나더라도 결국 또 어찌어찌 흘러 살아가게 된다.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큰 저항 없이. 내가 견딜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풍파 정도는 적당히 흘러 넘기고, 또 그렇게 풍파를 겪다 보면
견딜 수 있는 범위가 더 커지기도 하고 말이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인생에는
그렇게 흐름이 있었고, 그 흐름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멀찍이 지평선 끄트머리에 걸린 산맥을 바라보며 나는 나란 인간에 대해
잠시 고찰을 해 보았다. 별 생각 없이 그냥 몸 편하고 등 따뜻하고 배부른 게
최고라며 사는 나라 해도 그런 상념에 빠질 때가 있었다. 어쩌면 봄을 타는
것인지도 모른다.
봄. 볕이 제법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북부의 산맥에서부터 불어오던 바람에도 제법 훈훈한 기운이 섞였다.
세상이 푸르게 뒤덮이고 붉고 흰 꽃들이 피어올라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해,
살갗에 닿는 공기가 어쩐지 간지러웠다. 말을 조금 달렸을 뿐인데 제법
땀이 날 것도 같았다.
꽃가루가 코를 간질이기라도 했는지, 타고 있던 말이 푸르릉 소리를 내며
머리를 털었다. 쉴 새 없이 쫑긋거리는 귀가 괜히 귀엽기도 하여, 나는
녀석의 갈기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짐승을 보고 귀엽다는 생각을 좀처럼 해
본 적 없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은데, 가까이 지내고 보니 말이라는 짐승은
꽤나 귀여운 면이 있었다. 제법 사람을 잘 따르기도 하여 대견할 때도 있고
말이다.
다만 장갑을 끼지 않은 손아래 걸리는 검은색의 갈기가 그리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그 감촉에 괜히 내 머리카락을 한번 만져 보게 된다.
음. 솔직히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각 없이 방치했던 머리가 꽤 길어져
어깨에 닿을 듯이 덥수룩해진 머리카락은 거칠거칠하니 좋은 감촉은
아니었다. 곱슬기가 있어서 북슬북슬해지기까지 한 머리는 절대로
매끄럽게 빗겨지지 않고 엉키며 손가락에 걸렸다. 결국 빗어 내기를
포기하고 괜히 헝클어뜨리다가 돌아가면 이발을 하자고 다짐했다.
이만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말고삐를 고쳐 쥐었다. 해의 높이로
추정해 보건대, 시간이 꽤나 지난 것 같았다. 오랜만에 안장에 앉았던
엉덩이가 슬슬 아파 오는 것을 보아도 한두 시간은 너끈히 지난 것 같았다.
봄이 오기 시작한 산과 들이 아름다워서 생각 없이 달리다 보니 꽤
멀리까지 나온 모양이었다.
슬쩍 말의 옆구리를 차는 것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말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점차 속도
를 올리자 바람이 빠르게 전신을 스쳐 지나갔다 열기에 조금 .
“예, 나간 김에.”
“일릭 경…!”
전하.”
“
“예, 전하.”
“레이사한테 맡겼다.”
“그래도…….”
돼.”
아니 어느 왕실에서 왕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상왕으로 물러나고 어린
후계자를 왕으로 세워 다른 이에게 섭정을 맡긴단 말인가. 권력을 빼앗겨서
뒷방 늙은이가 되거나, 왕이 자신의 권력을 나눠 주기 싫어서 후계자를
죽이는 사례는 있어도 가져가라며 왕위를 떠넘기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국왕이 이런 소리를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는 했다.
“광인보다야 뭐든 낫겠지.”
“예.”
했다.”
국왕이 손끝으로 정원의 끝을 가리켰다.
왕의 정원은 상당한 규모였는데, 보통 네 구역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분위기로 꾸며지곤 했다. 각 구역을 나누는 것은 무릎 높이로 오는 관목
울타리와 자갈이 깔린 길이었다. 그런데 왕의 손가락 너머에는 그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울타리보
다 한참 높은 정원수가 벽처럼 서 있었다. 한 구역을 가득 채울
정도로 그 벽의 가로 길이가 상당히 길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높이는 내 키와 비슷했다. 까치발을 들어야 네모지게 깎인 나무의 윗부분이
보일 높이였다.
“이게 뭡니까?”
“미로.”
미로?
내가 되물을 틈도 없이, 국왕이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물론 아무도 없는
곳이었지만 밝은 대낮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러나 손을 빼기도 전에 그가 나를 이끌었다. 벽 사이에는 입구가 있었고
그 안에는 왕의 말마따나 미로가 있었다. 온통 초록빛이라 나는 순간
방향을 잃어버렸다. 여기저기 갈래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을 왕은 거침없이
선택해 나아갔다.
“전하,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으려 했다.
그러나 내가 말을 맺는 것보다, 그가 멈추는 게 빨랐다. 눈앞에는 더 이상
길이 없었다. 우리가 들어온 길을 제외하고 3면이 전부 나무로 막혀 있어
온통 초록빛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일릭.”
입안을 파고들었다.
만약 섹스를 위해 이 따위 미로 정원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면, 그냥 내
생각을 정정하는 게 맞겠다. 이 새끼는 진짜 미친놈이었다.
“전하, 잠, 잠깐. 잠깐-”
크윽!”
“
“윽……!”
“밖이라서 더 흥분했나?”
“…무, 무슨…….”
같아.”
중얼거리며 국왕은 내가 입고 있던 단 한 장의 셔츠마저 휙 벗겨 버렸다.
덕분에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벗은 몸이 되어버렸다. 내 등 위로
떨어지는 봄볕이 따가웠다.
야외라는 실감이 새삼스럽게 찾아들었다. 밖이었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옷 하나 입지 않고, 뒤에는 사내의 성기를 가득 문 채로…….
“하루 종일 뒤가 막혀 있으면 말 탈 생각도 못할 테니, 내 곁에 붙어 있을
테고.”
와. 이 새끼 이거 뒤끝.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지금 아침
에 내가 그를 버리고 말을 타러 가 버렸던 걸 갖고 이 트집을 잡는
거였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버티고 선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특히나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고 풀 냄새가 비강을 가득 채울 때면, 머리
위에 하얗게 떠오른 태양 빛을 느낄 때면 수치심을 닮은 어떤 기묘한
감정에 가슴이 요동을 쳤다. 속 안에서부터 짜릿해서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빌어먹게도 왕의 지적처럼, 평소보다 성감이 날카롭게 전신을
질주했다.
“다음엔 저기 잔디밭에서 할까.”
사방이 탁 트인 잔디밭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바지 앞만 조금 풀어 헤친 국왕의 아래 깔려서.
상상한 순간 상상 이상의 배덕감이 휘몰아쳤다. 그 상황이, 지나가던
누군가가 볼 수도 있는 그 상황이 너무 과했다. 사방이 트여 있어
신음소리나 숨소리가 잔뜩 퍼져나갈 것이다. 그건 너무… 너무 과하게
야릇하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하반신이 조여졌다. 왕의 성기를 가득 품고 있는
내벽이 절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왕의 숨결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가 내 등에 몸을 바투 붙였다. 손이 가슴을 움켜쥐고, 유두를 비틀어
쥐었다.
“크흑! 흐읍!”
“제대로 버텨.”
결국 참아 내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간다.
안쪽을 잔뜩 자극 당해 성기 끝에서는 정액이 뿜어졌다. 나무 잎사귀가
하얗게 물들었다. 흰 점액질의 체액이 이슬처럼 나뭇잎 끝에 맺혔다.
사정이 평소보다 빨랐다. 안쪽만을 자극당하고 있음에도 너무 빨랐다.
야외에서 왕에게 박히고 있다는 이 상황 덕분에 가슴 속에 번진 수치심과
배덕감. 그게 왜 그렇게 짜릿한지 모를 일이었다. 너무 야릇해서
평소만큼도 참을 수가 없었다.
씨발……. 저 변태와 어울리다 보니 나도 변태가 되어 가나 보다. 지난 10년
동안 사실은 뼈저리게 느껴 온 바이기도 했다.
“으윽… 일릭, 일릭…….”
열락을 숨기지 못하는 짙은 신음소리에 귓가가 오싹해진다. 누군가가 이걸
듣기라도 하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데, 그게 또
짜릿해 온다. 미치겠다. 아니, 이미 미쳐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국왕의 말이 맞았다. 그는 미친놈이었다.
그리고 그게 옮아 나 역시 미친놈이 되었나보다.
“크으, 흐으, 아아…!!”
< 마침>
69.
외전 피서 1.
금년 여름은 기이할 정도로 더웠다. 아직 봄이 채 끝나기도 전인데 때 이른
더위가 찾아들었다. 매 여름마다 무더울 때면 곳곳에 얼음을 두어 기온을
낮추기도 했고 하인들이 커다란 부채로 바람을 만들어 그래도 시원하게 난
편이었는데, 그런 게 준비가 되지 않았던 탓에 성 안도 덥기는
매한가지였다.
밖에 나가서 말이라도 타면 조금 시원하련만. 그러나 쨍쨍 내리쬐고 있는
햇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눈 녹듯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너무 덥군.”
“나는 더워.”
“더워서 가기 싫다.”
예정이고요.”
“내가 이렇게 덥고 아프다는데, 그대는 너무 매정해.”
안녕하세요?”
“
없고요.”
“하지만 이 티마예브에서 국왕 전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일릭 경이라고
들었는 걸요? 아주 소소한 얘기도 괜찮아요. 저는 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일릭 경.”
중이셨답니다.”
나선 것은 이제브나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시하며 나에게만 인사를 건넨 공주가 불쾌하기에 충분했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그녀는 무시당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면에서 공주는 몇 수쯤 위인 것 같았다. 그녀가 갑자기 제 뒤에 붙어 서
있는 여자에게 무어라 무라드의 언어로 속삭였던 것이다. 그러자 뒤에 선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공주님을 안다면 마땅히 먼저 예를 갖췄어야 하는 것 아닌지요. 또한
외전 피서 2.
그리고 나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아…! 아, 아아……!”
나는 되는대로 말을 주워섬겼다.
“그럼 피부는? 짙은 게 건강해 보이잖아.”
“새하얀 쪽이 좋습니다.”
너무 덥잖아.”
“
“……예……?”
“더우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 대체 더위와 알 낳기의 상관관계가 대관절 무엇이라고? 그리고 내가
어떻게 알을 낳아…??
그러나 국왕의 손에는 이미 협탁 위에 늘 놓여 있던 검정색의 상자가 들려
있었다. 몇 날 며칠째 놓여 있던 상자. 그 속에 들어 있는 동그란 구슬들을
본 순간, 내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나갔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대의 손버릇, 너무 나쁘니까.
그게 내 죄명이었다. 이것도 수 년 전 딱 두 번 저지른 죄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화려한 전적 때문에 내 두 손은 침대의 기둥에 묶여야
했다. 나는 무릎으로 침대를 짚고 엎드린 채로 결박당했다.
“으으윽, 으, 흐으, 으…….”
“아!”
“하나 더 넣어 줄까?”
안 돼. 안 돼……. 나는 기어코 울먹이며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시트에
고개를 처박고 애써 배설욕구를 참고 또 참았다. 배가 아팠다. 속이
불룩하게 부푼 기분이었다. 딱딱하고 둥근 이물감이 뱃속에 가득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왕은 그런 내 뒤에 바짝 제 앞을 붙였다. 뒤를 막아 주기라도 할 듯, 혹은
구슬로 가득 찬 안으로 제 좆을 박아 넣기라도 할 듯이 내 엉덩이에 제 몸을
꾸욱꾸욱 눌러 댔다.
“제발, 제, 발, 흐윽…!”
- 다음 화에 계속
외전 피서 3.
빌어먹을 국왕 새끼는 그런 나를 독촉하며 내 엉덩이를 좌우로 잡아
벌렸다. 제 마음대로 양껏 주무르며 꼬리뼈 끝에 입을 맞추어 쪽 빨아
당겼다. 몸서리 처지는 감각에 나는 흐느끼며 몸을 떨어야 했다.
“아니면 구슬을 넣은 채로 그냥 박아 줘야 할까.”
“내가? 왜.”
이미 험한 꼴 당할 만큼 당해서 더 험한 꼴이 없을 것 같은데 내가 굳이
긴장을 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다고.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베슬란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지금 전하를 노리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이 성에 들어와 있는지 알면, 형님
이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아하, 역시. 며칠 전의 연회에서 나에게 다가왔던 공주들이 모두 국왕을
마음에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이사는 일찍이 길리어드 공작의 막내딸과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약혼을 했
고 사이가 아주 좋다고 소문이 났으니, 왕비 자리를 비워 둔
국왕이 더 가능성이 있다 판단했을 터.
참 나. 그런 주제에 나를 마음에 둔 것처럼 다가왔다는 게 가증스럽고
불쾌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불쾌했다.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처자들이, 열 살도 더 많은 티마예브의 국왕을 노리고 온
것도 뭔가 기분이 미묘하게 안 좋고 말이다. 국왕이 얼마나 변태 같은 줄도
모르고, 멍청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그래, 뭐. 시집을 와 보라지. 와서 고생을 좀 해 봐야 저 국왕이 껍데기만
예쁜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기회에 여자들이 국왕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녀들 중 하나와 잘 된다면 뭐, 날 놓아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겠나.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긍정적인 전망이었다.
…그런데 내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 것은 어째서인지.
“뭐?”
“…아, 그래?”
“…어어, 뭐. 그렇지.”
외전 피서 4.
잠시 더 쉬다가 나는 홀로 숙소를 빠져나왔다. 아직도 날이 더웠고 거리는
한산한 편이었다. 축제 기간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닫히지 않았던 시장의
점포들 중에서도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축제의 마지막
날이다 보니, 사람들이 대부분 지친 모양이었다.
그래도 해가 지고 온도가 조금 떨어지면 다시 온 도시가 떠들썩하게 깨어날
것이다. 특히나 오늘 밤에는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대한 불꽃놀이가
있을 예정이었다.
불꽃놀이까지 보고 나면 밤이 깊을 텐데, 오늘도 들어가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멍하니 생각하며 나는 노점상에서 산 사과를 우적우적 씹으며 길을
걸었다. 이제는 딱히 갈 곳이 없어서 나는 더운 와중에 그늘을 찾아서
무료하게 걷고 있었다.
나다니는 사람이 줄었다 해도 아직 열심히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노상에 꾸며진 무대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공연단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연극을 하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그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애절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연인들을 다룬 공연이었다. 보통
인기를 끌기 마련인 외설스럽고 익살스러운 공연은 아닌 정통 로맨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남녀 한 쌍을 이루고
있었다. 중년 부부도 있었고 젊은 커플도 있었다. 차양이 드리워진
객석에는 고급스러운 차림의 커플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나는 평소 드라마나 로맨스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공연의
수준이 높다고 유명하다 해도 사랑 얘기는 찾아다니는 타입은 아니라는
거다. 게다가 공연은 거의 막바지인 듯 보였다.
그러나 내 걸음은 그 공연 앞에서 멈출 수밖엔 없었다.
“일릭 경?”
부르는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눈앞에는 열다섯, 열여섯 살의 남녀가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소년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너무나 연상케 하는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호박색의
영롱한 눈동자를 가진 소년. 바로 레이사였다. 평소와 달리 그는
짧게 자른 푸른 머리카락을 내보이고 있어서 나는 더 놀랄 수밖엔 없었다.
“전하.”
“저녁 때가 더 볼 게 많을 텐데요.”
“어제까진 그랬어요.”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길.”
“네. 삼촌도요. 그리고… 조만간 집에서 봬요.”
게 꼭 애교를 떠는 것 같았다.
삼십 대 중반의 남자가 부리는 애교가 징그럽고 소름이 끼치는 게
당연하련만.
“……화가 난 건 아니었…….”
갔나 보이질 않더군.”
음, 레이사는 약혼녀랑 데이트를 나갔거든요. 게다가 몰래 가장무도회에
참석할 준비를 하느라 바쁜 거고요. 그러나 나는 사실을 고하는 대신
모르는 척했다. 호시탐탐 제 아들에게 일거리를 떠넘기려는 국왕에게서
레이사를 지켜 주려는 작은 의리였다.
“고대 신들의 이야기라고 하던데. 본 적 있나?”
좋거든.”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아니, 아
직도 카이야 타령을 멈추지 않았어? 국왕의 집요함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쯤 되니 카이야에 뭐가 있나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용병 생활을 하면서 대륙 이곳저곳을 떠돌며 꽤 많은 것을 보았지만 잘
보전된 신전은 본 적이 없긴 했다. 폐허가 된 신전의 부서지고 풍화된
기둥들을 볼 때면 그저 허무하다는 감상밖엔 들지 않던데 말이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국왕의 미간에 짧게 핏줄이 섰다 사라졌다. 방해를 받은 게 여간 불쾌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방해받길 싫어하는 그를 방해해야 할
정도로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후. 이따 밤에 올 테니 그대는 쉬어.”
“네.”
“…….”
외전 피서 5.
하인들도 조금 이상하게 행동하는 밤이었다.
꽤 오랜 시간 거대한 욕탕을 가득 채운 시원한 물 속에서 물장구를 치며
씻고 난 이후에 나에게 마사지를 권했던 것이다. 굳이 그런 걸 받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은 게 아니었는데, 오랫동안 성 밖에 나가 있다 돌아왔으니
피로가 쌓였을 것이라며 마사지를 받아야 한다고 강요했다.
완고하게 거부할 정도로 싫지는 않아서, 욕탕에 딸린 마사지 베드에 누워
지압을 받았다. 근육을 문지르고 누르는 손길이 나쁘지는 않았다. 머리와
목, 등을 지압하는 손길이 제법 시원했다.
그리고 난 뒤에는 다시 뜨거운 물로 목욕을 했고, 방으로 돌아와 차갑게
얼린 과일과 과실주를 먹고 마셨다. 오늘따라 하인들의 시중이 세심했다.
어쩐지 그들의 기분이 꽤나 좋아 보였다. 마치 내가 돌아온 것이 대단히
기쁘다는 것처럼 말이다.
어쩐지 머쓱했지만 나는 모르는 체 시중을 받았다. 그래도 국왕의 곁에
머물며 시중을 받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는 있었다. 완벽하게 귀족
행세를 할 수는 없었지만, 식사 예절과 함께 익숙해진 게 있다면 바로
하인들의 시중이었다. 인간은 자신을 편리하게 하는 것에는 빠르게
적응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시원한 방에 반나체의 꼴로 널브러져 있었더니
잠이 솔솔 쏟아졌다. 전날 과음을 하고 늦게 일어났던 탓에 깨어 있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스르륵 잠에 들었다.
그렇게 얼마쯤 잤을까. 어딘가에서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향기가 풍겼다.
여름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상쾌한 향기가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속을
채웠다. 부드럽지만 건조하고 시원하면서도 차갑지는 않은 은은한 향기. 그
향기를 담은 공기가 흐를 때마다 새의 속 깃털처럼 부드러운 것이 살갗을
스치는 것만 같았다.
“으음…….”
“아름답군.”
목걸이를 채운 국왕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장신구가 채워진 쇄골
언저리를 문질렀다. 그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와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가
허리로 내려갔다. 그의 손길에 나는 몸을 긴장시키며 숨을 잘게 내쉬었다.
국왕이 그런 내 허리 아래에 팔을 넣어 제 쪽으로 당겨 안았다.
“신의 성은에 제물인 노예는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무도회의 날이잖아?”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
“그런데 왜 말이 없어.”
읏
“ …….”
“아니면… 박아 줄까?”
후일담 1.
필리아. 그녀가 자신의 약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녀의 나이 열네 살의
일이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소년의 약혼녀가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이미 3년 전에 진행되었던
약혼이라니. 저를 몹시도 예뻐하는 아버지가 이 말도 안 되는 일에
동의했다는 것을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아버지, 길리어드 공작은 그저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로 그녀와 오라비를 수도로 데려왔던 것이다. 수도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공작은 그녀에게 약혼에 관한 것을 알려 주었다.
3년 전에 구두로 진행되었던 약혼이 있었고, 그 약혼으로 인해 길리어드는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요.’
‘그렇군.’
아니었는데요.”
아니, 그 충고를 생각하면 필리아는 유쾌해지곤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틀렸으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을 이곳에
보낸 그를 필리아는 기꺼이 비웃을 수 있었다.
“어떤 충고였는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황후?”
필리아는 왕비가 아니었다. 그녀는 황후가 되었다. 몇 년 전 교황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칭제한 티마예브 제국의 초대 황후였다.
어디 그것만이던가.
“폐하께서 정부를 두어도 질투하지 말라는 충고였어요.”
보좌관도 동석했습니다.”
“……흠.”
“정말이지요?”
“폐하께서 어릴 때요?”
예 세리포브와 미로스의 전쟁이 끝날 무렵, 상황제 폐하를 따라 시르반
“ .
요새에 갔을 때 말입니다.”
필리아는 어느 시기를 이야기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때는 이 티마예브가
미로스의 적이었던 시기였다. 길리어드로서는 이때 줄을 잘 서서 지금의
지위를 확보한 만큼, 북부에서도 꽤나 중요한 역사로 다뤄지는 부분이었다.
“그때… 상황제께서 연인에게 다리를 베도록 하시고, 잠든 그의 머리카락을
계속해서, 이렇게…….”
“어머, 상황제께서요?”
있는 분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덤덤하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필리아는 레이사가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말인즉 상황제가 단 한 번도 레이사에게 다정한 적이
없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소중히 아끼고 어루만져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필리아의 얼굴이 문득 발갛게 달아올랐다.
종종 침실에서 레이사가 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마에 입을
맞추던 것을 기억해내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히. 아끼고
어루만져야.
레이사의 고백에 필리아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예쁘다, 아름답다라
는 말보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전해 오는 고백이 주는 감동이 더
컸다.
역시, 아버지가 틀렸다. 설령 레이사가 가진 비밀이 아니었다 해도
레이사는 황후가 아닌 정부를 만들 그런 사내가 아니었다. 사내가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사람만을, 필리아 그녀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남자였다.
어쩌면 한 사람만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티마예브 왕가의 핏줄에 새겨져
있는지도 몰라. 필리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였다.
“폐하. 상황제께서 들라 하십니다.”
후일담 2.
거대한 침대 위에 은빛의 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머리카락이 허리 언저리에 오게 된 시점부터 더 기르지는 않았지만, 사내의
머리카락치고는 너무도 긴 머리카락이었다. 그러나 그 긴 머리카락조차
어울릴 정도로 상황제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세월의 흐름을 비껴간 외모는 쉬이 나이를 짐작할 수
없어서 그 아름다움에 신비감마저 더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활기는
사그라졌지만 전보다 한층 깊어진 관능미가 그의 권태에 덧칠해져, 사내는
그저 고혹적일 따름이었다.
필리아는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바뀌어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여전히 상황제 사얀이리라고 말이다. 애석하지만
그녀의 남편 레이사도 상황제의 요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유언을 받아 적으라.”
그것이 무려 침실에서 누운 채 황제와 황후의 문후를 받는 상황제의
첫마디였다.
“…예, 전하.”
“네?”
아닌데.”
“하지만 상황제께서 갑자기 쓰러지신 후 매일 아침마다 폐하를 침궁으로
오라 하시니, 무슨 일인지 저도 궁금했는걸요.”
레이사는 궁금증 많은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는 필리아를 보다가 그녀의
뺨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필리아가 부끄러워하는 걸 보며 몇 번 더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 있자니 상황제가 왜 자신에게 양위를 하고 별궁에 처박혔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아, 어전회의, 오늘따라 가기가 싫네요.”
“아.”
“아…….”
이제 머리도 안 아프잖아요.”
“…….”
“…내가?”
후일담 3.
“우웁…!”
“…!”
후일담 4.
정사를 마친 후 일릭은 곧장 씻으러 가고 싶었지만, 상황제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자기 무엇 때문인지 제 몸을 와락 끌어안기에, 이 인간이 몸이 아파서 좀
힘들긴 했나 싶어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함께 한
세월이 길었고, 상황제는 갖은 변태짓을 제외하면 일릭에게 퍽 너그럽고도
다정하였기에 일릭 역시 미운정이 들 수밖엔 없었다.
특히나 정신을 멀쩡히 차린 오늘 아침의 유언은……. 일릭의 마음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얀이라는 이 남자는 침대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면에서도 늘 너무 과했다.
그러니까 너무… 과했다. 일릭조차 거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어쩌면 이 사내는. 어쩌면 정말로 이 사얀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일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년을 훌쩍 넘게 살을 맞대며
살아왔기에 일릭은 인정할 수밖엔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에게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것도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사얀의 등을 토닥인 것은 그래서였다. 사실은 그를 걱정도 조금
했고, 측은하다는 마음도 조금 있었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손이 갔다. 뿐만
아니라 사얀 같은 미남자가 축 처져 있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그다지
보기가 좋지 않은 광경일 것이라고 일릭은 생각했다.
그래서 등을 조금 토닥였더니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릭은
손을 거두어 사얀의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좀… 씻고 싶은데요. 몸도 좀 불편하고요.”
“아아.”
“그냥 있어.”
“열도 났잖아.”
“너무한걸.”
“아픈데.”
물론 숨겨지지 않았다.
40대임에도 청년 못지않게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는 일릭 역시 오래간만에
몇 년 전.
때는 바야흐로 티마예브 왕국의 왕자인 레이사의 즉위식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이었다. 즉위식이 곧 결혼식의 날이었기에 레이사는 요즘
일정에 쫓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즉위식을 기점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일국의 군주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 되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떨림, 그리고 불안과 책임감으로 그는 연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밤, 국왕이 은밀하게 자신을 내성의 가장 높은 탑으로 불렀을
때는 또 다른 의미로 긴장을 할 수밖엔 없었다.
내성의 탑은 과거 왕족을 유폐시키는 장소로 쓰였기에 더욱. 한때
티마예브의 국왕들은 정적과도 같은 제 혈육을 그곳에 가두어 두곤
했으므로, 왕성의 가장 높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몇 대 전의 선왕이 탑에 혈육을 가두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쓰인 적이 없어 레이사는 탑 꼭대기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내성에서 이어지는 긴 통로를 걷고, 그 통로 끝에서 다시 좁다란 층계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방.
층계의 끝에서 레이사가 문을 열자, 실내를 은은히 밝힌 작은 방이 그를
맞이했다. 사람의 머리 크기로 자그맣게 난 창을 제외하면 사방이 막혀, 레
이사는 문득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 화려한 티마예브의 왕성 그
Obra original: https://www.bomtoon.com/comic/ep_list/plaything 어디와도
비할 바 없이 허름한 장소였으며, 아무리 죄인의 신분이
되었다고는 해도 왕족이 생활하기에는 좁은 공간이었다. 삭막하게 느껴질
정도로 온기가 없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침대와 탁자, 의자 몇 개의
가구가 전부였다. 사용하지 않게 된 지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허름한 공간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껍데기를 가진 사내가 레이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티마예브의 국왕이자 레이사의 아버지, 아니 삼촌인 사얀이었다. 그를
마주한 순간 레이사는 어쩌면 이 숨 막히는 답답한 공기는 좁은 방 때문이
아니라, 사얀이 뿜어내는 위압감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까보다
더욱 고조된 긴장감에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흉곽 안을 둥둥 울려
댔다.
자그마한 탁자 위에서 요요히 빛나는 촛불이 무거운 침묵을 비춘다. 이런
사내를 두고, 자신이 며칠 뒤부터 왕이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속으로 자문하면서도 레이사는 국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 이 자리가 국왕 사얀이 일국의 군주로서 후계자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내릴 자리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탑 맨 위에 자리한 좁은 방. 그곳에 선 채로 사얀은 제 앞에 무릎을 꿇은
레이사를 굽어보았다. 아직 그를 불러낸 이유를 말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모든 것을 눈치챈 레이사다. 똑똑한 아이이니, 사실 별 다른 가르침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얀은 레이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사.”
“예, 전하.”
“……!”
“예. 그렇습니다.”
무방하다.”
사얀은 반지에 조각된 인장을 밀랍 위에 찍어 누르는 것으로써 레이사가
역시나 입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반지를 거두고 밀랍이 완전하게 굳고 난 뒤에야, 명령, 아니 유훈이 들어
있는 봉투를 레이사에게 건넸다.
“이것이 짐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