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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스의 자연주의

- 브라시에의 「유명론, 자연주의, 유물론」을 중심으로

1. 레이 브라시에의 「유명론, 자연주의, 유물론」은 셀라스의 자


연주의에 대해서 해명하고 있다.

2. 이 글 때문에 레이 브라시에에 대해서 그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사변적 실재론>을 주장한다. 그는 <사변적 유물
론>을 주장하는 프랑스 철학자 메이야수의 책, <유한성 이후>
를 영어로 번역하였다. 사변적 실재론은 칸트주의, 현상학, 포
스트모더니즘에 반대하면서 사유와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는 <상호관계주의>(corelationism)에 대해 비판한다. 하이데거
와 비트겐슈타인이 상호관계주의의 대표적 현대 철학자로 간주
된다. (메이야수와 셀라스를 비교하는 논문들을 모아놓은 책이
The Legacy of Kant in Sellars and Meillassoux -
Analytic and Continental Kantianism(2018)이다. 브라시에
는 이 책에 셀라스와 메이야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3. 「현대 자연주의와 그 함축」의 서론 격인 1장에서 바쇼와 뮬


러가 브라시에의 글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다.

4. <자연주의자가 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서로 모순적으


로 보이는 다음 두 주장을 조정하는 것이다. 첫째, 실재는 비명
제적이다. 둘째, 우리는 실재에 대한 명제적 지식을 갖는다.>

5. 자연주의가 해야 할 과제는 아마 철학의 근본적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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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즉 실재와 사고, 실재와 언어, 혹은 자연과 이성,
인과적 질서와 개념적 질서, 실재적 질서와 지향적 질서의 관
계를 해명하는 일이다.

6. 사실 모순처럼 보이는 두 주장이 있을 때, 그 하나를 부정해


버리면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실재가 비명제적인 것이 아
니라, 명제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이 바로 상호관계주의의
주장이 된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우리는 비개념적 실재, 즉
칸트의 물자체와 같은 것에 대해서 알 수 없고,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7. 마찬가지로 실재에 대한 우리의 명제적 지식을 실재의 관점


에서 설명하면서 명제적 지식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 가령
지향성이나 규범성을 부정해 버리면 된다. 특히 강성 자연주의
혹은 과학주의는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다.

8. 그러나 셀라스는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한


다. 이런 의미에서 셀라스의 철학은 이원론적이라고 할 수 있
다. 그 이원론적인 것을 잘 해명하여 통합적이며 통관적
(synoptic) 견해를 만드는 것이 철학의 과제라고 셀라스는 말
하고 있다.

9. 브라시에의 글에는 거의 나타나 있지 않은데, 셀라스가 구


분하는 현시적(manifest) 혹은 상식적 이미지와 과학적 이미지
의 문제가 셀라스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이미지,
두 가지 사유방식, 두 가지 개념틀은 서로 자율적이고 독립적
이지만, 현시적 이미지는 존재적으로 과학적 이미지에 의존하
고 있으며, 과학적 이미지는 방법론적으로 혹은 인식적으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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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자연주의에 대한 셀라스
주장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10. 자연주의의 프로그램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두 가지이다.


그 하나가 심적인 것을 물리적, 자연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것
이며, 다른 하나가 언어적인 것, 의미적인 것을 물리적이고 자
연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셀라스는 이러한 환
원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비환원적 유물론, 혹
은 비환원적 자연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11. 왜 그러한 환원이 불가능한가? 그것은 그러한 환원이 일종


의 자연주의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
이다. 가치, 당위, 규범이 자연적 사실로 환원되지 않는 것처
럼, 마찬가지로 우리 언어의 지향성이 갖고 있는 규범적 기능
은 자연적 사실로 환원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보편자를 개별
자로 환원하는 것도 자연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셀라스는
주장한다.)

12. 셀라스는 심리적 지향성이 언어적 지향성에 의존하고 있다


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셀라스의 심리학적 유명론
(psychological nominalism)이다. 언어가 자연적 사실로 환원
되지 않기 때문에, 언어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사유, 즉 심적
인 것은 자연적 사실로 환원되지 않는다.

13. <브라시에는 비판적 존재론이 말하려는 쟁점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첫째, 이름의 본성과 이름과 지시 대상의 관계, 둘째,
이름과 사물 사이의 차이가 있는 이유, 셋째, 종류의 본성 등이
다. 이 문제들에 대해 셀라스는 메타언어 기능주의자의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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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한다. 그가 그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소여, 혹은 주어진 것
(the given)의 신화를 설명하려는 데에 있다.>

14. 셀라스의 존재론에 대해 브라시에는 <비판적 존재론


(critical ontology)>라고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 설명하
고 있지 않은데, 아마 칸트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부르는 것 같
다. 어떤 의미에서 셀라스는 칸트주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셀라스는 과학과 형이상학(Science and
Metaphysics, 1963)에서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한 칸트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셀라스와 스트로슨이 20세기 분석철학에 칸트
적 영향을 부활시킨 대표적인 철학자들이다.)

15. <존재론>을 <선험적(transcendental) 분석론>으로 대체하


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핵심 주장을 범주가 우리 경험
의 구성적 조건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즉 우리 경험 가능성의
구성 조건 혹은 필요 조건이 바로 개념적 범주이다.

16. 이러한 칸트의 주장이 경험적 ‘소여의 신화’를 비판하고 있


다. 우리 지식은 경험적 소여를 기초로 하여 구성되는 기초주
의적 건축물이 아니다. 비개념적이고, 비추론적으로, 직접적으
로 알려지는 지식과 같은 것은 없다. 감각은 지식의 필요 조건
이지만, 그 자체 지식이 아니다. (이것이 셀라스의 유명한 주장
이다. 이 점에서 셀라스는 경험론은 물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
주의나 토마스주의도 틀렸다고 주장한다.) 지식은 개념에 의해
매개되어야 한다. 모든 지식은 이성의 논리적 공간 안에서, 즉
언어나 개념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을 감각
이나 감각소여로 환원시키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 오류를 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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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17. 이런 칸트적 맥락에서 바쇼와 뮬러의 다음과 같은 요약을


이해할 수 있다.

18. <그 신화는 일관성이 없는 다음 세 가지 명제들로 설명된


다. 첫째, 감각 내용에서 오는 비추론적 지식, 둘째, 감각 내용
에 대한 감각작용은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셋째, 명제
적(혹은 개념적) 사실에 관한 지식은 습득된다는 사실 등이다.
셀라스는 감각 내용에서 얻어지는 지식이 습득되며, 개념에 의
존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규칙 지배적이다.>

19. 중요한 것이 우리의 경험적 지식이 습득되는 것이며, 경험


적 지식은 개념에 의존하고 규칙 지배적, 즉 규범적이라는 것
이다. 이것이 강성 자연주의를 비판하는 셀라스의 주요한 논제
이다. 셀라스에 의하면, 진정한 자연주의, 혹은 브라시에의 표
현으로 ‘이성적 자연주의’는 이러한 개념적 규범성을 자연주의
의 맥락에 적절하게 위치시켜야만 한다.

20. ‘소여’에 대한 셀라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 언어의 규칙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물론 이것이 우리
에게 주어져 있는 언어적, 개념적 규칙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주어진 언어적이고 개념적
규칙이 없다면, 우리의 사유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유가 언어에 의존하며, 언어의 유비적 확장이기 때문이다.

21. 마음에 대해서 셀라스는 우리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


적으로 도입한 가설적 대상이 바로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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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가스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분자를 이론적으로 도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2. 브라시에는 ‘소여의 신화’를 다음 두 가지 논제로 정리하고


있다. (i) 사유와 감각을 구분해야 한다. 사유는 지향적 질서 혹
은 인식의 질서에 속하지만, 감각은 자연적 질서, 인과적 질서
에 속한다. 이런 자연적이고 인과적인 것은 결코 정당화 기능
을 수행하지 못한다. 또 경험은 칸트가 주장했듯이 언제나 개
념 의존적이다. (ii) 언어적 지향성이 심리적 지향성에 우선적이
다. 즉 마음이 언어에 의존한다. 따라서 후설이 주장하는 것처
럼 마음이 언어에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다.

23. 셀라스의 생각이 칸트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두 가지 측


면에서 해명될 수 있다. 첫째, 우리 지식은 이성의 논리적, 개
념적, 규범적 공간, 즉 현시적 이미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둘
째, 우리는 칸트가 알 수 없다고 주장한 물자체의 세계에 대해
서 알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론과학이다.
이 맥락에서 셀라스는 과학적 실재론을 주장한다. 브라시에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것을 칸트의 용어법에 따라 초월적
(transcendental, 혹은 선험적) 실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브
라시에는 초월적 실재론의 주장을 궁극적인 것은 대상이 아니
라 과정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24. <규칙을 사용하여 생각할 때 우리가 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하향식(top-down) 규칙도 없이 어떻게 메타언어 구조가
작동하는가? 여기가 바로 셀라스가 개념을 기능적 범주로 설명
한다고 브라시에가 해명하는 지점이다. “붉은”이란 용어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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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면서, 그 용어가 (프랑스어로 <붉은>을 의미하는) “rouge”
라는 용어처럼 논리적 공간에서 같은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말
할 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메타언
어 범주(sortal)를 (혹은 종류 표현을) 표현하기 위해 그 기호
(“rouge” 또는 “붉은”)를 논리적 공간에 위치시킨다. 그런 용
어는 추상적 실재물(abstract entities)을 지칭하지 않지만, 의
미를 나타내는 기능적 범주를 표현하는 기호(signs)이다.>

25. 언어나 마음은 결코 자연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중요


한 기능을 한다. 그것이 바로 범주적, 분류적 기능이다. 이 기
능은 대상언어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메타언어적 분류적
기능>이다. (이러한 셀라스의 주장이 그를 일반적인 유명론자
와 구분하게 만든다. 보편자를 제거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쉬운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보편자의 존재를 요구
할 정도로 그런 보편자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해명하는 것이
다.)

26. 범주, 보편자, 언어적 보편자, 언어적 유형, 이것들은 어떤


대상이나 추상체를 의미,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셀라스의 이런
생각은 <의미는 관계가 아니다>라는 명제로 간명하게 표현된
다. 의미를 관계라고 생각하면, 의미에 대응하여 추상적 보편자
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의미는 결코 관계가 아니다.

27. <‘s’가 M을 의미한다.>

28. 이 문장은 최종적으로 다음처럼 이해된다. 즉 <‘s’가 ∙M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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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 철학적 번역에서 중요한 것이 점인용이다. 그것은 언어
적 유형, 혹은 언어적 보편자를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표현
‘s’가 우리 언어에게 ‘m’이라는 표현이 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보편자는 언어표현
이 언어 공동체에서 작용하는 기능의 동일성으로 해명된다. 그
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의미한다>라는 관계어가 <이
다>라는 특수한 종류의 계사로 변했다는 것이다. 즉 관계가 제
거된다.

30. ‘의미한다’, ‘지시한다’, ‘진리이다’ 등의 의미론적 표현들이


모두 메타 언어적 분류 기능, 즉 범주적 기능을 하고 있다. 따
라서 그것은 직접 어떤 대상들이나 실재와 관계 맺고 있지 않
다.

31.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러한 메타언어 범주(sortal)와 비명


제적 실재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야만 한다. 그것에 대해, 셀라
스는 그리기(picturing)에 의존한다. 그리기에서 그 관계는 인
과적 관계이다. 사고작용과 구문적 형식 모두는 우리 신경계의
자연적 과정으로 실현된다.>

32. 이 설명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그리기(picturing)가 메타


언어적 범주와 실재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번스타인
(R. Bernstein)은 셀라스의 철학이 비트겐슈타인 전기철학과
후기철학의 독창적인 조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셀라스가 주장
하는 현시적 이미지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의 핵심이 표현
되고 있다. 즉 우리 언어는 규칙 지배적이며 규범적이다. 반면
에 과학적 이미지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의 핵심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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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표현되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은 이상과학
(ideal science)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고, 그 핵심이 실재에 대
한 ‘그리기’ 개념이다.

33.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세계 사이의 동형성이 있다고 주장


한다. 그 동형성을 보여주는 것이 그리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언어, 즉 과학언어는 바로 그림언어이다. 언어와 실재의
연결은 메타언어적 범주와 실재의 연결이 아니라, 과학적 이미
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기에 의해서 연결된다. 이런 맥락에
서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에서 보여주는 철학적 주장,
즉 세계와 언어의 동형성은 바로 과학언어, 즉 과학적 이미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34. 셀라스는 이 과학적 이미지를 존재적, 실재적, 인과적 질서


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리기는 인과적 관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자연 사물들의 인과적 관계를 표상하고 그린다. 이 자연사물에
대응하는 것이 <자연적-언어적 대상>으로서 이름이다. 이 자연
적-언어적 대상에 대해 브라시에는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다.

35. <따라서 •red•와 같은 종류표현(sortal)의 메타언어적 기능


은 “실재의” 비언어적 물리적 속성과 연관된다. 이러한 속성은
기호-도안 “red”에 의해 명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구
문적 역할에 의해 그려지거나 표상된다. 따라서 “a”로 명명된
대상 a에 “red”라는 속성이 서술되는 “red a”라는 표현에서
하나의 사례(token) “red”는 빨감이라는 속성을 지시하거나 지
칭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름 “a”와 연관되는 구문론적
배열(syntactical concatenation)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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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속성과의 연결을 설명해준다.>

36. 메타언어적 범주와 실재에 대한 바쇼와 뮬러의 설명은 브


라시에의 이런 설명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언어
표현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즉 기능적 차원과 질
료적 차원이다. “red”라는 언어표현은 질료적으로 영어로 된
글자기호이다. “rouge”는 프랑스어 글자기호이다. 그런데 이렇
게 서로 다르게 표기된 언어표현이 동일한 의미적 기능을 한
다. 따라서 동일한 기능이 다른 질료 속에 구현될 수 있다. <메
타언어적 기능이 실재의 비언어적 물리적 속성에 연관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37. 논리철학논고의 비트겐슈타인이 이름은 의미(sense)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대상을 지시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호표현의 질료적 차원, 즉 <기호-도안>은 단지
대상을 표상하고 그릴 뿐이다. 그것은 의미론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단지 구문론적 역할만 한다. 그 역할은 대상을
그리는, 즉 대상과의 연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 다음 같은
예가 셀라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38. 환자의 두뇌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뇌파 검사기는 환자의


물리적 상태로부터 인과적으로 대응하는 어떤 기호적 상태를
보여준다. 이것이 셀라스가 생각하는 그리기 혹은 표상하기이
다. 또는 소리를 재생하는 시디와 같은 것을 생각하면 될 것이
다.

39.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하듯이 원자명제는 이름들의 배열이


다. 그것은 주어와 술어, 즉 개별자와 속성을 지시하는 보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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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red a”, 즉 “Ra”에서 “R”
이라는 속성을 생략하여 표현할 수 있다. 즉 “[a]”로 표기하면,
속성을 의미하는 표현이 사라진다. 관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표기하여 관계라는 보편자를 우리 언어에서 생략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기초적 명제, 원자명제는 이름, 더 정확하게 이
름기호-도안, 즉 자연적-언어적 대상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실재를 기술한다. (즉 속성이나 관계라는 보편자가 제거된다.)

40. <사고작용과 구문적 형식 모두는 우리 신경계의 자연적 과


정으로 실현된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언어적 기능은 언어적
형식과 사물의 다른 형식 사이의 패턴-지배적 연결에 근거한
다. 그러므로 범주란 그 메타언어 기능에 의해 설명되며, 그 역
할은 참인 표상(true representing)으로 설명되고, 그 표상은
그리기(picturing)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메타언어
범주(총체)는 자연주의적으로 설명된다.>

41. 자연적-언어적 대상으로서 우리 사유 기호도안과 언어 기


호도안은 질료적 차원에서 우리 신경 생리학적 과정에 구현된
다. 또한 사유나 언어의 기능은 그 질료적 차원에서 우리 행동
의 패턴 지배적 연결에 의존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기
능적 차원에서 규칙 지배적이다. 따라서 메타 언어적 기능을
하는 범주는 그 질료적 차원에서 참인 표상과 그리기로 설명된
다. 결국 언어의 의미나 사유는 언어적 보편자를 요구하지 않
은 채, 그 기능이 구현되는 자연적이고 인과적 질서에서 해명
되어, 개념적 질서와 자연적 질서가 서로 양립할 수 있게 된다.

42. 브라시에가 질료적 차원을 강조함으로써 약간 강한 자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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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성향을 드러낸다면, 브라시에의 글을 요약하고 있는 바쇼
와 뮬러는 셀라스의 견해를 이원론적으로 요약하는 것처럼 보
인다.

43. <결론적으로, 브라시에는 셀라스의 설명을 빌어 비판적 존


재론의 핵심 쟁점을 설명하려 한다. 첫째, 이름(names)은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는데, [하나는] 메타언어 기능에 의
해 의미론적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계의 다른 사물을 그
리는 자연 언어적 대상처럼 인과적으로 기능한다. 둘째, 종
(kinds)은 “규칙-지배적 발화 사례(rule-governed tokenings)
의 독특한 패턴에 반응하는” 메타언어 범주어이다.>

44. 이름은 두 차원을 갖는다. 하나가 메타언어적, 기능적 차원


이다. 다른 하나가 표상적 차원, 인과적, 자연적 차원이다.

45. 어떤 규칙도 두 차원에서 고찰할 수 있다. ‘규칙’이라는 고


유한 의미에서 우리 언어나 사유를 지배하는 규범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경향성을 규정하는 패턴 지배적 차원이다.

46. 자신의 책, <Nihil Unbound>(2007)에서 브라시에는 현시


적 이미지를 제거하려고 한다. 이 점에서 그는 제거적 유물론
자인 처칠랜드에 호의적이다. 셀라스 우파들이 현시적 이미지
보다는 과학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브라시에
는 다음처럼 주장한다. 물질적 과정에 해당하는 지시하기가 언
어의 기초이다. 이름은 물질적 패턴이다. 개념적 의미작용이 그
리기에 뿌리내리고 있다. “단어는 의미에 의해 실재를 묘사하
거나 표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어는 화자에 의해 준수되는
의미론적 규칙성(semantic regularity)과, 의미론적 규칙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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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되는, 물리적 패턴 사이에 성립하는 물리적 연결이다.”)

47. 그러나 셀라스 좌파, 즉 로티, 맥도웰, 브랜덤과 같은 철학


자들은 오히려 현시적 이미지가 갖고 있는 규범성과 지향성에
더 집중한다. 그 결과, 브라시에가 옹호하는 자연주의와는 다른
개방적(liberal) 자연주의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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