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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적 글쓰기의 개요 작성하기

제목 스페셜 스텝 유학생

소제목 세부 내용

1. 아버지는 잘 공부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나를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키우셨다.

1. 엄격하신 2. 아버지가 엄격하게 키우셔도 미워하지 않고 오히러 잘


아버지와 공부하게 많이 노력한다.
노력한 딸
3. 아버지가 옆에 없어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1. 아이에게는 큰 꿈이 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위대한


생명을 구하는 꿈이다.

2. 중학교일 때 생물학과의 예상치 못한 연결과 함께 다시


2. 의사의 꿈 꿈을 가진다.

3. 또 다시 그 꿈을 잃어버렸고, 그때가 마지막 꿈이기도


개요 했다.

1. 2021 년 3 월에 새싹의 시작, 백지장 인생의 첫발걸음을


내딛는다.

3. 가족의 2. 많은 어려움, 억울함, 피곤함을 겪으며 가족의 따뜻함을


따뜻함을 찾는 그리워한다.
아이
3. 드디어 2 년 5 개월 가족의 따뜻함도 찾았고 새로운 것도
이해하게 된다.

1. 일에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다.

4. 특별한 2. 내 인생을 변화하게 시키는 친구를 만났다.


도약

3. 내 인생의 큰 도약, 유학생의 특별한 도약이다.

특별한 도약 유학생
1. 엄격하신 아버지와 노력한 딸

나의 아버지는 학구열이 굉장히 높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나는 집안의


장녀이기 때문에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야만 했다. 아버지는 공부도 잘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에도 매우 엄격하셨는데, 특히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나를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아버지는 기대가 크셨고, 나를 가르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아버지는 ‘ 이 가난하고 작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공부하지 않고 지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어 ‘ 라고 말을 자주 하셨다. 그래서 늘 나에게 공부하라고, 공부를 잘하라고,
아버지보다 더 잘하라고 강요하셨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 잔인하고 가혹한 요구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매일 하는 말씀이 너무 지쳤고 때로는 나를 아버지를 위해 살기 위해 나를
창조하셨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우리 지역 아이들은 보통 7 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반대로 아버지는 내가 4 살 때 나를 유치원에 보냈다. 당시 고향에서는
아이가 학원에 다니는 것은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고, 아버지는 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셨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친구들과 놀리 시간도 없었고, 친구들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다. 우울하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소녀가 되어 매일 집과 학교를 반복하며
지냈다. 가끔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데, 유치원과 초등학교 7 년 동안 그런 일을 겪었다.
또래처럼 놀지도 못하고, 어려서부터 학업에 대한 압박을 견뎌야 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어렵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버지를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 엄하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매우 사랑하시는다. 땀 흘리는 모습과 아버지가 일을 많이 하셔서 가장
아플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자매를 키우고 우리를 학교에 보내기 위한 열정과 기대를
보고 알았기 때문에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공부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대신
공부하고 친구들과 더 많이 소통하는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아마도 그 당시 아버지도 나의
노력과 피로를 보시고 고등학교 때부터 덜 엄격해졌고 나의 결정을 더 존중해 주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노력과 엄격한 교육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반에서 1 등을 했다. 물론 가장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이시이다.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해야 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나
자신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지만,
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새겨져 있고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소중한 아버지를 기억하고 항상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인내한다. 나는 아직도
아빠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2. 의사의 꿈

나는 한때 꿈이 많은 어린 소녀였. 당시 나의 고향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심각한 질병을 가진 사람도있었다. 당시에 내 이웃은 몸이
아파도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갈 수가 없었고, 몇 달 뒤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녀와 아주
친해서 그녀는 건강할 때마다 나와 함께 놀러 갔고, 맜있는 것이 있으면 나눠 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너무 심하게 아팠을 때 나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
자매를 잃은 후 나는 늘 내 마음 속에 아주 큰 소망을 품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만날때마다 나의 작은 소망과 큰 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털어놓았다. '할머니, 나는
의사가 되고 싶어 ' 라고 할머니가 매주 나게 듣는 말입니다.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고, 영웅이 되고 싶었고, 그
위대한 생명들을 구하고 싶었다고 늘 스스로에게 말했다. 의사가 될 수 있다면 고향의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하겠다고 다짐했다. 12 세 어린이에게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꿈이다. 사람을 구하려는 내 꿈은 이제 막 불타올랐고,
그것은 점차 타오르는 작은 불꽃에 불과했는데, 마치 그 타오르는 불꽃 위에 찬물 한 통이
던져진 것처럼 내 삶에 장애물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내가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 않았고, 의사가 되려면 잘 공부하고 많은 돈이
필요해야 하는다.그뿐만 아니라 당시 고향에서 의사는 조건이 많이 필요하다. 어머니는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권위 있는 지위를 갖고 있거나 그 지위를 얻기 위해 뇌물을 줄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그 분야를 더 이상 공부하지 못하게
막으셨다. 그 말을 듣고 언젠가부터 내 안의 불이 점차 사그라들고 더 이상 의사가 될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있었다.
몇 달 후에 우리 학교에서 한 과목을 잘하면 그 과목을 수강하고, 상을 받으면
고등학교 입시를 면제해주는 대회를 열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한 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보라고 하셔서 내가 어떤 과목을 잘하는지 몰르는데 선생님의 권유로 임의로 한 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봤다. 그 때 내 친한 친구가 생물을 선택했기 때문에 나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따라 선택해서 시험을 쳤다. 좀 놀랐는데 내가 상을 받았다. 내가 잘했는지,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 내 마음속에는 다시 공부해서 의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떠올랐다. 생물학은 본질적으로 의학 분야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정말 잘 공부해서 생물학 시험을 볼 수 있다면 의학도 당연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다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안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 과목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학과
화학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그렇게 묵묵히 노력했고 가족들에게는 그 노력을
알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3 개월쯤 전 까지 가족들에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의학 공부를 하려고 했는지 이야기하고 가족들이 응원해 주기를 바랐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말하지 않는게 좋았다. 어머니가 또 반대 하셨다. 맹렬한 반대에 나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어머니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어머니가 나에게 매우 슬퍼하고 화를 내실 것
같아서 내 주장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단지 꿈을 꿀 줄 아는 사람이지만 그 꿈을 위해
과감히 노력할 생각은 없는 사람이다. 나는 또 그 꿈을 잃었고, 이번이 감히 꿈을 꾼
마지막이기도 했다. 그해 고등학교 졸업시험 때 경제학과에 진학했고 그 꿈도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 남아 있었다.

3. 가족의 따뜻함을 찾는 아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생활의 미래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나는


나의대학생활에 혼란스러웠고 걱정했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은 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잘 못 선택하면 앞으로 내 인생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오래 고민하다가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고, 다른 나라에 와서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한다. 나는 어릴때 잘못했던 것처럼 하고 싶지도 않고 가족의 통제를 받고
싶지도 않는다. 나는 배움의 자유를 원하고, 원하는 삶을 살고 싶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2021 년 3 월에 나는 내 인생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나는 새싹과 같고
아무것도 모르는 빈 페이지와 같이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나의 삶을
그대로도 재미있고 새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여기에서 좋은 삶과 가족의
통제가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가 생각보다 잘해내지 못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유학생활에서 어려운것과 힘든 일을 많이 만났다. 혼자 사는 편안함을
누리다가 불과 몇 달만에 부모님이 매우 보고 싶었고, 나의 동네가 그리워지고, 많은 것을
그리워했다. 나는 부모님이 나를 보살펴주는것, 잘 먹는것, 늦잠을 부리는것, 부모님한테
용돈을 받는 것, 미친 듯이 여동생과 싸우는 것… 등이 그립다. 부모님이 정말 보고 싶고 그
행복한 감정이 그립다. 그 그리움 때문에 내가 빨리 찾으러 갔다. 저번 여름 방학을 이용해
고향에 부모님을 만나러 갔으며, 2 년 만에 따뜻함을 찾으러 돌아갔다. 나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집의 손님이 되었냐, 언제부터 우리집에 돌아가는 것은
놀러 가는것이 되었냐 ‘ 라고 했으며 그집은 우리집인데 집 2~3 년 후에 돌아갈 수 있고
2~3 일 동안 놀러갈 수 있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 말이다. 이는 집을
방문하는 손님과 다르지 않는다. 이글을 읽을 때 마음이 매우 아픈데 사실 내가 집을
방문하는 손님이 되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존중하게 도와주고 내가 가족과 연결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고 알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어디로 가든지 집보다 좋은 곳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도와준다.

4. 특별한 도약

말씀드린 대로 문화와 생활 방식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다. 그것이 아마도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한국에서 공부한 2 년
동안 나는 어떤 일이든 잘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적이 없었고, 어떤 장벽도 극복하지
못했다. 친구를 사귀지도 못하고,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고, 스스로의 수줍음과 두려움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동아리에 가입하지도 못한다. 나는 자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항상
가만히 서 있었다. 유학을 온 이후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서 획기적인 발전이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고 본다. 경험과 지식은 모두 갖추고 있지만 이를 발전에 활용할
용기가 없다. 개인적으로 내 삶의 속도는 토끼를 닮지 못하고 거북이를 닮았다.
나는 친절한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친구에게 자주 속마음을 털어놓고 수줍은
마음을 털어놨다. 선생님 같아서 늘 좋은 점을 많이 알려주고, 설명해주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고, 늘 옆에서 응원해주는 선생님 같다. 그 친구는 내가
느리거나 수줍음이 많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내가 그 친구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 쭉아
너 잘했어, 너 정말 착하고, 똑똑하고, 강해 ’ 라고 했다. 그럴때마다 정말 위로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지만 두려울 때마다 그 친구는 항상 ‘ 해보지 않으면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 노력하면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 라고 말하곤 했고 ‘
너 잘할 수 있다 ’ 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 덕분에 용기를 내서 가장 좋아하는 태원도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 동아리에서의 경험을 통해 정말 잘했다고 느꼈고, 두려움과
부끄러움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것은 큰 도약이었고, 내 인생에 특별한 도약이었고, 하고
싶은 마음과 용기를 북돋아 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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