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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및 심리치료 - 적용과제 1

이은정 2021200700

1) 정신분석 치료에 관한 적용

1. 프로이트가 말하는 원초아, 자아, 초자아를 내 마음속에서 찾아 내고, 그 뭐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또 다른 나에게 각각의 이름을 붙여 주는 일은 낯설고 힘든 일인 것 같다.
먼저 내 안의 어떤 내가 원초아의 이름을 가질 수 있을 지 생각해 보면, 딱 하니 떠오르는
그의 얼굴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외면 당하고 억압 당한 그의 초라한 모습이 그려진다. 어린
시절 나는 자주 부모의 부재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고,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외롭고 두려움이 가득했으며,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에 어디서든 주눅들어 있었다.
외로움과 거절감, 두려움이 가득한 나의 원초아는 밝고 씩씩하게 살고 싶은 나에게 감추고
싶은 존재였기 때문에 늘 무시당하고 외면당했다. 그러나 원초아는 나에게 가냘프지만 끊임
없는 징징댐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곤 했다. 그 때문에 나는 외롭고 허무함을 자주
경험했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늘 스스로를 비교 하고, 만족하지 못했다.
반면 자아는 강한 의지력으로 삶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의식이 자라면서 자아는 삶의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적극적이고 경쟁적인 활동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삼고 삶의 문제들을 헤쳐 나갔다. 원초아와 갈등 사이에서 자아는 원초아를
억누르고,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실에 적합한 나를 만들고, 활발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사회 생활을 했다. 그러나 자아의 그러한 태도는 나를 쉽게 지치게 했고, 내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많은 문제들 앞에서 좌절하여 삶의 깊은 절망감을 경험하게 했다.
그리고 내게 가장 친숙한 얼굴의 초자아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이었다. 초자아는 부모님에 의해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린 시절 부터 다녔던
교회 목사님 설교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엄격한 모습을 하기도 했고, 끝없이 나를
채찍질하는 선을 향한 이상이었다. 나는 그 이상의 절대적 가치에 순복할 준비가 늘 되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삶의 본질에 대한 끊임 없는 사색과 질문이 나를 따라 다녔고, 그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깊은 우울감을 경험했다. 또한 오랜 시간 지병으로 고생했던
할머니의 죽음은 나를 심한 죄책감으로 몰고 가더니 급기야는 오랜 시간 매일 밤 꿈 속에서
아픈 할머니를 간병하는 나를 마주해야 하는 고통 스러운 시간으로 이어졌다. 나의 나약한
의지로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엄청난
절망감과 우울감을 느꼈다. 초자아를 실망시켰고, 그의 요구에 더 이상 반응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 갈 수 없는 절벽에 이른 것 같았다.
거의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초자아를 외면하고자 하는 반향이 강하게 일어났고, 내 안에
방어 기제들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신앙의 초자연적인 힘 안에서 초자아와 화애
할 수 있었지만, 그 후로도 자주 초자아가 강력한 힘을 발휘 할 때면 나는 좌절을 거쳐
회피와 무기력을 경험 할 때가 있다.
나의 자아와 나는 하나 있는 듯 하면서도 다른 존재로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인 것 같다.
자아는 때때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가 웃는 낯을 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는가 하면,
때론 깊은 고민 때문에 심각해 지기도 하고, 때론 분노하며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자아는 지금 내가 느끼는 전반적인 감정을 내 마음에 그려 주고, 그 그림을
해석해 주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글로 써 주기도 하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하는 내 모습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어, 내의 모든 행동
결정의 근본적인 주체가 된다.
나의 자아는 자주 현재를 거부한다. 현재 나의 환경격 요구의 수용에 적극적으로 동의
하지 못 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여 현재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과거 어느 시간, 어디 쯤에서 방황하고 있다. 원초아와 초자아는 지금의 방황은 자아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라고 말하고 있지만, 자아는 아직 그들을 설득할
만한 분명한 답을 찾지도 못했고, 방황을 끝낼 수 있는 미래적 소명을 만나지 못했다.

2. 나는 자주 지성화, 합리화와 승화나 억압, 투사 등의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특히 불안을


느낄 때면 지성화 방어 기제를 통해 나에게 불안을 불러 일으키는 문제를 분석해 보거나
내가 현재 느끼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비판하려는 과정을 반복한다. 투사를 통하여 나에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려,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그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불안의 문제를 신앙적인 관점 아래 비판하고 억압하면서 그 억압의
과정을 기도로 승화 하여 불안 감정을 억압 하는 동시에 불안을 이겨낼 평안이라는 도구를
얻기 위해 영적 훈련에 집중한다.
이런 방어 기제를 통해 불안을 다루게 될 때, 나는 자기 비판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자책감도 많이 든다. 결국 모든 문제를 나에게 돌리거나 때론 지성화 과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자주 불안의 핵심은 나의 성숙하지 못한 행동의 결과라는 결론을 내릴 때가
많았다. 그러한 결론은 나에게 처벌에 대한 두려움 또한 주기도 한다. 결국 나는 나에게
일어나 불편한 상황에 대해 그 책임이 나에게 있으며 난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될 거란 공상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그 불안을 기도로 승화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영적 성숙과 감정의 내면적
해결을 이루기도 한다. 기도를 통해 나의 감정을 하나님께서 솔직히 표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분을 의지함으로 평안을 얻게 되어 현실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내면적 힘을 얻게 된다.
3. 담임 교사와 나와의 관계는 그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저 평범했던 것 같다.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경험했던 관계에 대해 좋고 나쁘다는 식의
평가를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담임 교사가 나를 차별하지도 않기 바랬고, 또 나에게 특별
대우를 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갈등이 일어 나지 않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할 수
있는 관계이기를 바랬고, 대부분의 담임 선생님과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나의 중고등학교
생활에 담임 선생님은 기능적 역할만을 담당하는 사람이었고, 그들과 어떤 특별한 감정적
교류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현재의 내 상사는 지금 현재 속해 있는 선교 단체의 리더이다. 그 부부는 캐나다 사람으로
나와는 상당히 다른 경험을 했고, 문화적, 사회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적으로 물리적, 정서적 거리를 느낄 때가 많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미팅을 자주 한다. 나는 그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온화하고
관계적이며, 배려심이 많다. 난 그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는
동료로 남을 수도 있다. 그들은 나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기대하지만, 난 그들을
정서적으로 의지 하고 싶지 않다. 영적으로나, 일과 관련해서 그들의 조언을 받거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것을 이야기 하는 일은 때로 불편하고 그들이
나에게 너무 관심을 갖는 것도 불편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을 원한다.
어린 시절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많이 바쁘셨기 때문에 소소한 돌봄을 많이 받지 못했다.
대신 무뚝뚝하고 화를 잘 내는 조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분들이 나이가 많으셨기
때문에, 나를 돌봐 주시기 보다는 그저 함께 지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나는 정서적인 교감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스스로 나의 정서적인 필요를
해결했던 것 같다. 혼자 잘 놀았고, 혼자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익숙했고, 어른의 돌봄을 받으면서 놀이를 한다거나 공부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글을 가르쳐 주거나 공부를 지도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난 혼자서
한글을 배웠고, 학교 공부도 늘 잘 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익숙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이런 경험이 권위자들과의 관계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권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정서적 교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분히 일 중심적이고 독립적인 역할을 기대했다. 그들의 권위를 그다지
존경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지시 받고 조언 받는 것도 좋아 하지 않았다. 현재의
리더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들을 좋아하지만, 그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관심이 없고, 내가 유지하고 있는 어떤 내면적, 외면적 패턴이 그들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내 것은 내가 지켜 나가는 것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4. 나의 성격적 특성은 독립적이면서도 사교적이고, 즉흥적이고, 창조적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서도 고독의 시간을 매우 즐긴다. 전통적인 제도를 좋아 하지 않으며 반항적이고,
변화를 좋아한다. 쉽게 편견을 갖기도 하고, 성격이 급하다. 판단이 빠르고, 결론을 먼저
듣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성격적 특성은 어린 시절에 혼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했던 경험에서 온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는 나에게 독립적인 삶의 주체가 되는 길을 알려 주었고, 나는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의지하기 보다는 내가 혼자 적극적으로 놀이를 만들고, 놀이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지시나 반대를 만나면 수용하지 못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자주 싸우기도 했다. 나에 대한 비판을 받아
들이기 어려워 하는 성격적 특성은 문제를 원만하게 풀기 보다는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어릴 적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한 적절한 훈계를 받기 보다는 화가 많았던 할머니의
희생양의 되어 늘 잔소리나 욕을 먹고 지냈던 경험 때문에, 누군가의 비판적 목소리는 나의
존재를 향한 할머니의 욕설이 투사되어 받아 들이기 힘들었다. 집에 있는 것을 싫어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에도 익숙했다. 성장하면서는 책 읽기를 좋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혼자
여행 하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아, 아빠에 대해 내가 어떤 감정을 갖고 살았는 지도 알기 쉽지 않다.
아빠에 대한 애착 보다는 엄마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이 컸던 것 같다. 엄마의 따듯한
보살핌을 간절히 갈망했고, 늘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를 가엽게 여기고, 그런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아빠에 대한 원망 어린 시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엄마에게 보상을 해 주고 싶은 심리가 컸고, 공부를 잘 해서 엄마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떤 면에서는 엄마는 남자 아이에게든, 여자 아이에게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으로 존재하여 엄마를 차지 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적 욕구와 같은
자연스럽고도, 강렬한 생존적 욕구이면서 기쁨을 주는 감정인 것 같다. 그래서 아빠는 모두
아이들의 적이고, 그 아빠로부터 엄마를 차지하고 지켜 내려는 아이들은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똑같이 오이디프스 컴플렉스를 경험하는 것 같다. 나는 아빠를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 더 똑똑해 져서 엄마의 보호자로의 역할을 아빠 대신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아빠가 같이 시간을 보냈던 것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아빠만 둘이 함께 있는 것에
질투를 느끼고, 엄마를 뺏기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었다. 그래서 내가 아빠 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엄마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기도 했다.
2) 아들러식 치료에 관한 적용

1. 나는 내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열등감이 있다.


어디서나 받아들여 지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잘 하지 못하였다. 그런 인정을
받을 만한 능력이나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나를 인정해 주고, 나의
재능을 알아 주었던 사람들도 많이 만났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열등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열등감은 나의 재능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부모님은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나는 4-5 살 때부터 한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아무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 오빠의 학습지를 얻어 혼자 공부해서 한글을
익혔다. 나의 학업적 성취나 재능에 대해 큰 관심이 없으셔도 옆에서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
주지 않았던 부모님의 성향이 나의 열등감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 중에
교육을 많이 받으셨거나, 지혜롭게 자녀를 이끌어 가시는 부모님을 가진 아이들이 늘
부러웠고, 난 혼자서 이러한 내 인생의 결핍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다.
이런 열등감 때문에 난 늘 경쟁심이 강했다. 내 주위에 공부 잘 하고 유능한 친구들을 보면
경쟁심이 생겼고, 그들은 나의 친구가 아니라 이겨야 할 적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들이
1등이 되면 2등인 내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그 좌절은 때때로 내 인생
전체를 흔들며,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런 1등을 향한 경쟁심은 나의 열등감의 결과
인 것 같다. 1등을 하면 선생님으로 부터 인정과 존중이 얻을 수 있고, 2등보다는 1등을 훨씬
더 좋아하셨던 부모님께도 인정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의
해결책이었다. 나는 경쟁의 기회가 있다면 뭐든 1등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랬던 것도 아니었지만, 습관적으로 1등을 하지 않으면 속이
상했다. 어릴 적 부터 학업의 성취에 있어서 부모님의 도움이나 학원 등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하는 환경이 익숙하면서도
싫었다. 그리고 내의 그런 환경을 부끄러워 하며, 부모님에 대해서도 가정 형편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았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1등을 할
수 없는 일이 더 자주 생기면서, 나는 굳이 1등을 향해 매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씩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중 나보다 더 많은 성과를 이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질투가 생겨서 그 사람들과는 친구가 되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깊이 묵상하곤 한다. 나를
영적 자녀로 입양해 주신 하나님을 나의 참된 부모로 생각할 때 난 큰 안정감을 느낀다.
그분이 내 모든 것에 관심이 있으신 것을 생각하며, 그분이 나를 정말 소중히 생각하신 다는
것을 느낄 때 난 열등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또한 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나에게 주어진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의지력의 개발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 같다.
2. 위로 3살 많은 오빠가 한 명 있다. 오빠와는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나보다는 오빠에게 좀 더 많은 신경을 쓰고 더 잘 해 주신 것 같다. 내 기억에, 그
이유는 어릴 적 부터 까다로운 성격에 말썽을 자주 피웠고,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오빠를 보면서 난 둘째로서 좀 더 착하고 오빠 처럼 말썽을 피우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오빠 때문에 마음 고생 하시는 엄마를 내가 위로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말썽을 피우기 라도 하면 엄마는 오빠보다 나를 더
많이 혼냈던 것 같다. 나는 문제 안 일으키는 착한 아이여야 했다. 그래서 난 집에서
조용했고, 부모님이 보시는 곳에서는 더 조용하게 지냈던 것 같다. 또한 내가 남자인
오빠와는 다르게 여자 아이로 인정받으며 양육된 느낌은 많지 않았다. 초등 학교에 입학
하기 전엔 가정 형편상, 오빠가 입던 옷을 자주 물려 입었고, 머리도 늘 짧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둘째 였을 뿐이었다. 난 부모님께 순종적이었고, 가능한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잘 지내서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랬었다. 늘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항상 그리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난 시끄럽고, 명랑하고, 적극적인 아이였다.
부모님은 오빠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자 더 기대를 두지 않으셨고, 까다롭고,
다혈질 이었던 오빠가 학교에서 그냥 별 말썽 없이 잘 지내 주기만을 바라셨던 것 같다. 대신
나는 집안의 구세주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고, 학교에서 반장, 부반장을 곧 잘
하는 나는 엄마, 아빠에게 위안이 되었다. 뭐든 알아서 혼자 해냈으며, 예체능에서도 늘 상을
받았고,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았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칭찬도
많았지만, 여전히 돈 버느라 바쁜 부모님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나보다 더 중요해 보였다.
그런 이유에서 였는지, 난 집안 형편이 나아 진 후에도 늘 용돈을 타 쓰거나, 부모님께 돈을
달라는 말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부모님께 뭔가를 드릴 때
마음이 편했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희생적으로 살고 있다. 내가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내
것을 챙기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가족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자주 ‘미안하지만’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남편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해 줄 때, 난 은근히 눈치를 보고, 남편이
혹시라도 귀찮아 하는 표정을 할 것 같으면, 너무나 서운하고 화가 난다. 그것은 내가 요구
할 수 없는, 당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무의식에서 나온 수치심의 표현인 것 같다. 아이들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해 주면 고맙고 기쁘지만,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해야 마음이 편하다. 다른
사람 과의 관계에서도 난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어 한다. 내 존재 만으로
내가 그들에게 가치가 있다는 생각 보다는, 내가 뭔가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그들이
나를 인정해 주고 좋아 해 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도움 받기 보다 돕는 일이
더 좋고, 도움을 받고 나면 여러번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뭐든 보답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3. 공동체 의식이나 사회적 책임감은 인간 누구에게나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와 별개로 살아 갈 수 없다는 인간관에 기초하여 인간의 정신 건강에 있어서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 한다. 인간은 태어나자 마자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부모와 신체적, 정서적 소통을 하며, 점차적으로 그 사회적 관심과 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정상적인 발달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정신 건강의 기준을 이러한 사회적 관심의
정상적인 발달, 증대로 생각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개인적인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관심이 적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일에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공간을 벗어나
사회라는 더 큰 공간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할 수 있게 되고, 결국은 개인의 정신
건강에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충실한 삶을 산다는 것 또한
사회라는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벗어나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사회적 관심과
충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고, 그것을 회피 한다면 고립된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다. 나의 개인적인 삶이 어떻게 공동체와 사회 안에서 의미를
찾고 서로 소통 할 것인지에 깊이 고민하고 살고 있다. 지난 한 주 나의 사회적 관심과
공동체 의식은 현재의 코로나 봉쇄 상황 속에서 크고 활발한 활동 보다는 주변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향하고 있다. 개인적인 안부에 관심을 갖고 물어 보고,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친구와 이웃들에게 격려를 주고자 한다. 또한 환경 문제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활용 수집이나 비닐 사용 자제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한다.

4. 나이 50대를 바라보게 되면서 인생의 목표는 지금까지와 같은 방향성 안에 있지만,


이전과 다르게 더 구체적이 되고, 더 현실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내 주변
사람들, 이웃들의 영적, 신체적, 정서적 필요를 돕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담이라는 도구로 좀 더 전문성을 가지고, 사람들의 영적, 정서적 문제를 돕고 싶다.
그리고 활동 자체 보다는 관계와 사람에게 더 집중하여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회복과
변화로 인해 내 삶의 만족과 행복을 찾고 싶다. 또한 시간적 여유가 더 생긴다면, 문학을 더
공부하며 소설을 쓰고 싶다. 내 소망은 죽기까지 신앙적인 성숙을 이루는 것과 남편과 함께
건강하게 서로의 가장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것과 세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 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 꿈꾸던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떤 분야에서든 뛰어난 재능으로 성과를 내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현재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자유로워졌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그러한 동기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목표를 부합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지 돌이켜 보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본다면 어린 시절의 이상적인 내 모습과 어느 정도는 일치하지
싶다.

5. 나의 생활 양식은 내 안에 발달된 가치, 목표, 성격이 만들어 낸 삶의 방식인데, 나는


목표를 세우기를 좋아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향성을 가지고 미래를 계획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면이 나의 생활 양식이지 않을 까 생각한다. 성격상 경직되고 구체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미래에 대한 나의 계획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목표에 맞는
방향성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이런 생활 양식은 내 삶을 단순하고, 목표에 의해
움직이기 쉬운 유연함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목표가 주어지면 나의 생활 양식에
따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들을 머리 속에 그려 보고, 그 계획들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생각을 집중한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실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마련한다. 이러한 생활 양식 때문에 난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이사를 했다. 안정된 삶 보다는
목표가 있는 모험을 선택했던 것 같다. 문제가 생기거나 새로운 목표를 만나면 주저없이
지난 목표를 수정하고 적응하는 과정 중에 이사는 필수 였다. 그리고 때론 그 목표가 힘에
부칠 때도 많았는데, 나를 몰아붙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지칠 때가 종종
있었고, 이제는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나의 생활 양식은 내 삶의 목표를 이루는데 효과적이었다. 일단 목표가 생겼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천을 위해, 내 삶의 양식은 내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단계적인
계획들을 실천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다양한 실천 방법들을 생각해 보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찾도록 합리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가능한
빠르게 결정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생활 양식은 늘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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