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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뽀개기

문화콘텐츠학부 231458오현욱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과거의 내 모습은 고개를 너무 빳빳이 쳐들


다가 바람에 부딪혀 좌절하고 아파하는 벼였을까 아니면 고개를 너무 깊게 숙이고 만 나머지
스스로 심연에 빠져 괴로워하는 벼였을까. “적당히”라는 단어를 모르던 나는 아마 이 두 가지
측면이 다 포함되는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대여섯 명씩 되는 초등학교·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입학한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열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반 실장 투표에 도전하고 당선이 된 후엔 각종 전교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
했다. 이런 자신감과 리더십이 필요한 직책은 난생처음이었지만 중학교 때까지 나름 전교 상
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왔던 나는 내게 필요한 부분을 빠짐없이 경험하고 채워나가는 것도 내
미래에 있어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현실의 내 모습은
이제껏 다녀오던 학원을 지난 겨울방학 때 그만두고 그 사이 방학과 코로나로 인해 공부습관
과 생활습관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너무 미숙한 고등학교 신입생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를 크
게 개의치 않게 여기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쉽게 개선시킬 수 있는 문제라고 착각했
었다. 또 달라진 것이 있다면 2차 성징을 일찍 맞아 중학교 때까지 남들보다 큰 체격으로 학
교생활을 보냈었지만 성장이 멈춘 이후, 고등학교에 오니 그대로인 나에 비해 주변 친구들의
평균 체격이 다들 커졌거나 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중학교 때만 못한 생활습관과 모
습으로 실장의 직책의 일을 처리해가며 보낸 1학기, 성적은 크게 떨어져 있었고 이젠 남들보
다 못난 성적과 체격으로 또래 친구들의 주목을 끌기엔 턱도 없는 임팩트의 학생1이 된 나의
모습만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 항상 내 주변에 몰려오고 곁에 있어줬던 중학교 친구들은 고등
학교 때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가 갈라져 다른 고등학교로 갔거나 같은 학교로 올라온 친구들
은 다른 친구에게로 옮겨갔다. 물론 나는 이전에도 밝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던지
라 내 현재 처지의 원인을 인품이나 성격 같은 내적 요인보다 성적이나 외모에만 초점을 맞추
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누가 봐도 손가락질할 정도로 무너진 생활습관에 자기
절제력도 없는 놈이 남의 이목을 끌 수 있고 자기 자존심을 채워줄 수 있는 허황된 요소에만
집착하게 된 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이때의 나는 학원에서 강제로
시켜주는 공부나 생활습관의 교정 없이 스스로 인내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엔 턱도
없이 나약한 소년이었다. 상황은 점점 안 좋은 쪽으로만 치달아갔고 나도 모르게 날을 세우고
성격이 삐뚤어져 버리게 된 것인지 같은 학교에 진학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마저 나와 미세하
게 거리를 두는 것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나는 속으로 나의 부끄러운 면을
감추는 것에만 급급해하며 주변을 둘러볼 여유 없이 타인을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남
들과 똑같이 친구들을 대해도 나에게만 이렇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일까’ 하고 헛된 고민을
하며 괴로워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금에서야 보면 이렇게 바로 답이 나올 간단한 문제에
그때 당시의 나는 정답을 찾지 못하였고 끝없는 자기 비관에 빠지다가 결국 신경 쓰지 말고
다 놓아버리자는 변명으로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를 포함하여 내 주변을 마주 보고 이해하려
하는 것을 전부 포기하게 됐다. 1,2학년 때와 달리 3학년 때는 학교 안에서 아무 직책도 맡지
않았고 급식을 먹으러 갈 때 마주치는 친구들이 신경 쓰여 점심을 먹지 않았다. 수능을 핑계
로 학교에서는 수업과 관련 없는 공부를 했으며 실상 수능보다는 예체능과 관련된 공부를 했
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말 진학할 대학교를 정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부모님과
끊임없이 다툼을 갖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대학교에 보내려고 하시는 부모님의 뜻
에 결국 나는 나의 내신 성적으로 갈 수 있고 가장 내가 관심 있던 예체능과 관련 있어 보이
는 학과에 지원을 넣었다. 이 시기에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있었지만 이때의 나는 나 스
스로에게 해탈한 척을 해오며 반쯤 정신이 풀린 채로 “목표가 있는 삶을 사는 척”을 하며 살
았던 것 같다. 그렇게 수능을 마치고 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집에서 생활을 하던 때에 갑자
기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제일 서운함을 느껴왔던 친
구는 술에 취한 채로 되려 내게 서운함을 토해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당황스러움과 억울
함을 느낀 나는 냉담하게 내 입장을 표명했고 친구는 이에 다시 반박했다. 갑작스럽게 진행하
게 된 서로의 감정을 토해내는 토론 형식의 대화에서 나는 내가 외면하고 살았던 인류애라는
낯선 감정과의 대면에 극도의 어색함을 느끼며 심지어 불쾌감까지 들었다. 여기서 나는 내가
몇 년 동안 전혀 모르고 지냈던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되었으며 ‘친구는 나를 자신의 가장 자
랑스러운 친구라고 여기며 살아왔다.’,‘거리감을 두며 벽을 쌓은 것은 친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심지어 친구와 내가 아닌 제삼자가 봤을 때도 이는 명백했다.’ 이런 사실들은 나
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충격을 주었고 나의 인생관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
다. 이후 자격지심이라는 내가 앓았던 병을 여실히 이해했다.
“없을수록 있어 보이는 척을 한다,”,“자격지심을 갖게 된다.” 유튜브에서 이런 자신의 경험담
을 푸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사람들은 나와 관계가 없는 속이 좁은 사람들이고 그런 건 이런
사람들만 갖는 못난 태도라고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분하게도 그것은 누구보다 나
와 가장 관련이 있는 경험담이었고 경험을 해본 결과 ‘이런 자세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아닌척해 봤자 계속해서 내가 아닌 주변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스스로 의미 없는 아픔을 느낀
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의 시선만을 의식하기보다는 나를 인정하고 아픔을 받아들이자.
비록 내가 내 인생의 가치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깎아버렸고 현재 초라해진 내가 되었어도
지금은 그것을 의식하고 초조해하며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닌 미래의 나에게 굳건한 투자가
필요할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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