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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및 심리치료 - 적용과제 2

이은정 2021200700

1) 인간 중심 치료에 관한 적용

1. 나의 부모는 나에게 어떤 특별한 가치를 언어적으로 표현한 적은 많지 않다. 그러나


부모와 나의 상호 관계를 통해 배우게 된 가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독립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고,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부모님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나는 부모님과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면서 또
부모님에게 받은 가치를 따르기도 한다.나에게 있는 다른 가치는 다른 사람으로 부터
주어진 나의 역할을 잘 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독립적인 성격과 내가 경험한 환경적 요소가
부모님의 가치를 평가 할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전히 그 선택한 일을 잘 하기 위해 부지런해야 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서
누군가에게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치를 따르고 있다.
내 삶의 다양한 내부적, 외부적 경험을 통해 나의 가치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현재는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시선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내게 중요한 가치이다. 또한 그
가치에 맞는 행동을 선택했다면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상관없이
정말 내게 기쁨을 주고, 내게 만족을 주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갖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2. 나는 나 자신을 이 세상 수십억 인구에서 독자적이고 구별되는 개인으로, 나의 내적, 외적


상태와 상관 없이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로 생각한다. 나를 이루는 내 삶의 모든 경험은
개인적인 의미와 목적을 지닌, 내 인생을 창조해 낸 유일한 사건들이기도 하며, 그 경험들은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상호 작용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인으로서 외부 환경으로 부터 독립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외부
환경과 한 순간도 떼어 낼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현재 독자적 인격체로서의 나를
매우 소중한 존재로서 평가하고, 그 가치는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것으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한다. 또 한편 나는 현재 외부 환경과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환경의 일부분으로서도 존중 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환경을 더
온전하게 하기 위한 역할과 책임을 지니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평가한다.
나의 이상적인 모습은 내 스스로가 나만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내면에 참 된 자유를 누리는 것이며, 동시에 외부 환경과 유연하게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관심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나의 가치와 외부의 가치가 충돌하지 않고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함께 성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자기 통찰력과 진실함,
개방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내면의 자유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통찰력을 가지고,
나를 이해하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바라고, 사회적
환경에서 진실함과 개방성을 가지고 나를 외부 환경에서 구별 할 뿐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
나의 현실적인 자기와 이상적 자기는 아직도 통합점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현실적인
자기는 내면적으로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의 현재적인 경험 외에 다른 경험을 얻기 위한
내면적 활동, 사고나 통찰에 관심이 없을 때가 많다. 나의 현실적인 자기는 외부 환경이
요구하는 안정감을 거부하며 외부와 다른 구별성을 추구하지만, 이상적 자기의 가치와
통합하려는 노력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나의 현실적인 자기와 이상적인 자기의 특성이
일치 할 때도 종종 있지만, 현실적인 자기는 이상적 자기에게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더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그 간격 만큼 불일치가
생겨난다. 이상적 자기는 그런 내 안의 욕구를 억압하고, 나의 개방성을 방해 할 때가 많다.
그러나 현실적 자기와 이상적 자기 사이의 가치가 충돌하고 통합되는 과정을 지금 까지 매
순간 겪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서로를 받아 들이는 체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사회적 조건적 가치를
따르고, 내가 동의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에 순응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때론
그런 욕구 때문에 가면을 쓰고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에 불만을 느낀다.

3. 나의 유기체적 경험은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이면서 결국 환경과 상호 작용의 결과로


만들어진 나의 내면적, 외적 활동이다. 즉 내가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편과 다투게 되었을 때, 나의 의견이 받아 들여 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그 때문에 분노를 느끼고, 또 그것을 말로 표현했을 때처럼 , 내 안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각, 감정, 신체적 행동 모두가 나의 유기체적 경험이다. 내가 외부 환경과 접촉하는
모든 순간, 내게 침투하는 내면적, 외면적 사건들을 통해 반응하고 표현하는 것이 나의
유기체적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자기와 경험은 대체로 일치 하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자기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 보다는 검열하고 평가 한 후 통제하는 내적 힘으로 경험을 새롭게 자기화 한다.
내가 자각하는 모든 경험들에 대체로 수용적이고 편안하게 느끼는 편인 것 같다. 하지만 내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경험들이나 죄책감이 드는 경험, 혹은 나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경험에
대해서는 더 많이 자각함으로 회피적인 방어 기제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내가 긍정적인 인정과 존중을 받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경험들은 나의 열등을 자각하게 하는
경험들이고, 나의 이상적 자기와 충돌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방어 기제를 사용하여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적인 경험으로는 내가 한 여자 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자주 외면하고 무시한다. 대체로 나에게는 그런 욕구가 없는 것 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종종 다른 여자들의 옷이나 패션 스타일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입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특히 때로는 내가 한번도 입어 보지 않은 화려한 색깔의 옷들로
온 몸을 치장하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길에서 춤을 추면서 밴드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다. 외적인 경험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면서
뭔가를 부탁해 올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 보다는 겸손을 가장하여 외면해 버린
적이 많았다.

4. 몇 번의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과 이해를 받은 경험이 있다. 비록 그 경험들이 긴 기간에


걸쳐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기억에 오래 남는 사건이었다. 특별히 나의 교회 주일
학교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생각난다. 그분들에게 조건 없는 긍정적 존중과 이해를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언제든 필요할 때면 전화 해서 내 속 얘기를 있는 그대로
말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몇 있다. 그 친구들은 나를 조건없이 받아 주고 평가 하지 않으며,
공감해 주고 수용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들과 있을 때면 난 선교사 이은정도 아니고,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냥 인간 이은정으로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다. 그 친구들과 있을 때 나의 경험이 통제나 억압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 되고 또
내게도 수용되어 나는 내면의 갈등없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것은 친구들을
통해서 나에게 주어진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으로 인해 나의 현실적 자기를 그대로
표현하는 데 통제가 없어 지고, 이상적 자기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어진 상황에서 내 있는
모습 그대로가 내 자신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 리더 선교사들은 나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자리에 많이 있었다.
평가와 비판이 그들의 역할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과정 중에 부딪 칠 수 밖에
없는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그들의 평가와 비판은 때때로 내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나의 가치가 존중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들의 평가로 인해
나의 현실적 자기가 받아 들여 지지 않을 때 그것을 억압하고 이상적 자기의 영향을 받게
되며 죄책감과 현실 부정 같은 부적절한 감정에 사로 잡히게 된다. 리더와 동료를 통해
가치의 조건을 습득해 가는 과정에서 현실적 자기와 큰 거리감을 느낀 다면 스스로가 나를
부정하는 가면을 쓰게 될 수 있다. 반대로 나를 긍정적으로 존중해 주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내면적 갈등을 해소하고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되는 긍정적 경험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고, 나를 쉽게 표현하고 자기 신뢰가 높아지게 된다.
5. 나는 온전히 기능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다. 아직도 현실적 자기에 대한 수용이
부족하고, 이상적 자기와의 통합의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안정감이 부족하고 말과 행동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 나를 개방함에도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내 모습과 달리 지금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많고, 방어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신뢰가 많이
부족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함에 두려움이 많다.
부정적인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의 경험을 더 하면 좋을 것
같다. 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를 더 많이 개방할 수 있는 편한 관계들, 즉 친구들을
만나고 더 많이 대화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나를 개방하고 또 내가 받아 들여지는 긍정적
경험을 함으로 나의 진솔한 면을 나 자신이 그대로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 게슈탈트 치료에 관한 적용

1. 게슈탈트는 내가 의식할 수 있는 욕구, 감정, 동기등을 말한다. 내가 자각할 수 있는


지배적인 감정을 말한다. 나는 지금 어두운 방안에서 느껴지는 정적을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 창 밖에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잠시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있고 싶다. 눈이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있어서 밖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지금 이 순간 나를 방해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따뜻한 방안에 있는 느낌이 좋다. 밖은 너무 추워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 나는 지금 옷을 여러 겹 껴 입어 충분히 따뜻하다.
나는 지금 현재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창 밖을 바라보며 눈을 감상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돌아 오더라도 그냥 내 방에
앉아서 조용히 있고 싶다는 걸 알아차렸다.

2. 나는 대체로 알아차림에 민감하다. 그러나 접촉에 까지 모두 다 이르지는 못한다.


게슈탈트가 생성되고 알아차림까지 나의 의식은 매우 활발히 움직인다. 그러나
알아차림에서 에너지가 동원되고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접촉까지 이르는 과정은 또 다른
상당한 시간과 자각을 요구한다. 알아차림이 어떤 접촉으로 해소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알아차림에 대해 정직하고 수용적인 마음이 있지만, 그것을 외적인
접촉으로 표현할 수 없을 경우 나 자신 과의 접촉으로 해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 혼자 있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 환경과의
상호작용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욕구에 대해 충분히 수용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를 압박하기 보다는 나 자신과 내면의 소통이 이루어 지도록 함으로 해소를 한다.
나는 내게 일어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그 여러 가지 일들이
어떤 순서를 가지고 처리 될 때가 많다. 동시적이지만, 쪼개어 지면서 분산 되어 일어 나고
해결 되는 것 같다. 결국엔 어떤 상황에서든 동시에 알아차림이 일어나고, 동시에 접촉을
일으킬 수는 없기 때문에 알아차림과 접촉이 한 패키지로 일어 나지 않더라도, 알아 차림과
접촉이 어떤 우선 순위의 질서를 가지고 일어나고 해소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경우 우선
순위가 분명하지 않아 순서가 정해 지지 못하고 서로 얽힐 때, 마음의 혼란과 압도당하는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3. 개체가 분명한 게슈탈트를 형성하지 못했거나 게슈탈트를 형성했지만 해소를 잘 하지


못한 경우, 배경으로 사라지지 못한 게슈탈트가 남아 있는 상태가 미해결과제가 된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나의 공부를 방해하고 있는 남편에 대해 분노라는 감정이 떠오르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지금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 주고 싶지만 그럴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는 참 많은 미해결 과제가 있다. 특별히 요즘 외부 활동이 적고, 집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미해결 과제가 불쑥 불쑥 떠오르곤 하는 것 같다. 권위자나 연장자에게
억울한 대우를 받았을 때 그 사람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이 자주 떠오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내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했거나 원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했던 것들이 자주 생각난다. 결국 내가 나로 있지 못하고 사회적 가치 기준을 따라
나를 억압했던 순간들이 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자주 떠오르고, 그 순간에 느꼈던 분노와
수치, 불안등의 감정이 종료 되지 않은 채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것들 중에 숙면을 방해 할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정서적, 신체적, 영적
필요가 있었을 때 그것들을 살피기 보다는 여러 이유에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하였다.
그 때 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고 그 때문에 일에 더 몰두하며 나와 가족을 몰아 붙였다.
나는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것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저항적 행동으로 나와 가족을 힘들게 했다. 지금은 그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기
보다는 그것 때문에 내가 선택한 잘못된 행동을 후회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면 수치, 분노,
불안, 죄책감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나는 그 때를 회상하며 돌이켜 보는 것을 싫어 한다. 왜냐면 그 때를 회상할 때, 당시 내가
느꼈던 불편한 감정들이 떠오르고, 그 때 나의 행동과 말이 만들어낸 경험들에 만족하지
않으며 죄책감과 자책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 시간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 하며,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수용해 주고, 그 때 내 아이들의 삶을 다시 한번
조명해 본다면 다른 해석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지금 나는 그 때 아이들의 삶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를 자책하기 위해, 투사적
현상으로 그 때 내 아이들이 나를 원망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 시절 어린 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계속 가지고 살고 있다. 나를 자책하는 행동으로 해소 되지 않은
나의 게슈탈트를 종결 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계속
회상되곤 한다. 그 때를 다시 기억하면서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잘 이겨내고 건강하게 자라
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미해결 과제를 떠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4. 난 지금 빈 의자에 앉아 있고, 그 맞은 편에 앉은 김 선생님을 상상하고 있다.


“김 선생님은 당신은 이 시간 자신이 위선과 마주해야 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insecure 하고 자기 신뢰가 없는 작은 아이 같은 사람인지 깨달을 때가 되었어요. 리더가
되었지만, 리더로서 인정 받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지, 리더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지요. 리더의 권위를 사용해서 사람들을 이용하고, manipulate 했지요.
불안을 감추기 위해 통제와 억압, 그리고 과장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서, 자신의 문제를
감추기 위해, 저와 남편을 희생양으로 삼았지요. 그러나 당신이야 말고 그 모든 속임수에
제일 큰 희생양이었어요. 당신은 리더 라는 역할이 주는 힘을 경험하고 싶어 안 달나
있었어요. 그 힘을 얻음으로 그 동안 당신이 겪었을 설움을 보상해 보고 싶었겠지요? 그리고
그 보상으로 얻은 것이 바로 나와 남편을 억누르고 마음대로 상처를 입힘으로 얻은
희열이었나요? 당신 안에 있던 악이 그렇게 활개를 치는 동안 당신은 속수무책으로
비참하게 무너진 거예요. 우린 그것을 다 지켜 보았지요. 우리가 당신에게 대항하지 않은
것은 바로 당신이 그렇게 비참하게 무너지도록 놔 두는 것이 맞는 일이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맞아요. 그것이 정당한 판결이었어요. 우린 그 때 그것을 잘 몰랐지만, 당신은 이미
선고를 받은 거에요. 거짓의 사람으로. 당신이 이겼다고 생각했겠지요?”
나는 그 사건을 겪으면서 남편의 뜻을 따라 기다리고 참는 것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난
기다리고 참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 보았던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말하고 나를 변호 했어야 했다. 무조건 참는 것은 오히려 나를
존중하는 행동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따르기 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판단했던 것을 믿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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