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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

김경욱

문서 토론

최종수정시간 2021 /  1 /  20 23 : 44 : 59

목차 [감추기]

1. 개요
2. 논란
3. 결말
4. 주석

1. 개요

_ 소설가 A씨는 2021년 현재 등단 29년 차 대한민국의 중견 작가, 아니


중년 작가다. ‘어떤 단체나 사회에서 중심이 되어 활동하거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 사람’이라는 ‘중견’의 사전적 정의에 값하는지 여부는 관점에 따라 다
를 것이기에 가급적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표현을 쓰도록 하자. 최
대다수의 최대진실이라는 본 매체의 캐치프레이즈에 반하는 대목은 게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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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라도 난상토론을 거쳐 줄이 그어질 수 있다 는 운영 방침을 다시금 상기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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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발단은 소설가 A씨가 페이스북(이하 페북)에 올린 ‘내 소설을 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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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사반세기 넘게 소설가로 살다 보니 별
소설 같은 일도 다 겪게 되네요.”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첫
문장이었다. ‘별 소설 같은 일’이란 다음과 같다. 소설가 A씨는 자신의 신작
단편 발표 사실을 동료 소설가 B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소설가 B씨와는 같
은 해 등단한 동년배 작가라는 인연으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_ ‘절대 안 쓴다던 소설가 소설이라니, 헐.’ 소설가 B씨가 보낸 문자였다.


흔한 카톡이 아닌 아이메시지. 소설가들끼리는 카톡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제 글이 읽혔는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매체 환경이 싫어서라는,
단 몇 초라도 읽히지 않는 소설가라는 현실에서 놓여나고 싶다는 작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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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결과 를 참조할 만하다. 동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소설가들
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A사의 핸드폰과 노트북을 선호했다. 겉멋
이라기보다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에라도 기대고픈 영감 고갈 상태의 직업
적 토템이었다. 역시나 몇 년째 영감 고갈로 허덕이고 있던 소설가 A씨는 웬
봉창 뚫는 소리인가 싶어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문자에 즉각적인 전화로
응답하는 아날로그적 결례라니. 소설가 A씨가 얼마나 황당해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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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소설가 A씨의 페북에 간접인용으로 게재된 통화 내용 을 직접인용으
로 생생히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가 B씨:절필하는 한이 있어도 소설가 소설은 절대 안 쓴다더니.
진작 좀 쓰지 그랬어.
소설가 A씨:소설가 소설? 내가?
소설가 B씨:멋쩍으면 술이나 한잔 사.

_ 전화를 끊자마자 소설가 A씨는 자신도 모르는 신작이 실렸다는 잡지


를 찾아보았다. 신작이라니. 소설가 A씨는 몇 년째 개점휴업 상태였다. 오늘
부터는 하며 노트북을 켰다가도 나무위키 각주를 정독하고 있거나 문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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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우는 턱걸이봉 가격비교 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만 발견하기 일쑤였다. 원
고 청탁이 끊겨 글을 못 쓰는 것인지 글을 못 써 청탁이 끊긴 건지 선후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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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했다. 동명의 신인 작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목차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 순간 소설가 A씨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 말
미에 적힌 프로필마저 본인의 것이었다.

_ “인디언들이 사냥감에게 했던 말을 책이 되어준 나무들에게 전한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것은 소설가 A씨가 출생년도, 출신지, 학력 등등 이력
서 같은 프로필 대신 쓰는 자기소개였다. 한낮에도 입김이 새어 나오는 뉴욕
의 한 스튜디오에서 샴고양이 한 마리와 체온을 나누며 소설을 쓰고 있다는
식의 미국 작가 흉내로 보기엔 다소 핍진한 사연이 있다. ‘이것도 소설이냐.
베어진 나무만 불쌍하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잊지 못할 한 줄 평을
인터넷 서점에서 접한 뒤부터라고 소설가 A씨는 고백한 바 있다. 문학이 죽
었느니, 문학의 영향력이 사라졌느니 하는 소리도 믿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한 권의 소설책이 독자를 열혈 환경주의자로 변신시키는 현장을 똑똑히 목
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문학이 자신을, 세상을 속이려 들고 있었
다. 낙관 같은 프로필에도 모르는 소설은 여전히 모르는 소설이었다. 소설가
A씨는 자신이 썼다는 소설의 첫 몇 줄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훑어 내리지 않
을 수 없었다.

_ “글이 죽어라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문화센터 창작워크숍이나


출간 기념 북토크 같은 자리에서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다. 처음 몇 번은 대
충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언제부턴가 나만의 모범답안이 생겼다. “집을 바꾸
세요. 저는 2년마다 집을 바꿉니다. 전세를 재계약한 적이 한 번 있는데 갑자
기 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물론 지어낸 얘기다. 영감 타령은 아마추어나 하
는 짓, 프로페셔널은 그냥 책상 앞으로 간다. 꼭 책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부엌 식탁이든 무릎 위든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만 있으면 어떤 글이라도 쓸
수 있다. 그런 내게 단 한 줄, 단 한 단어도 써지지 않는 때가 올 줄 상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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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겠는가.

_ 글 한 줄 못 쓰는 소설가가 주인공이라니. 더구나 주인공이 떠들고 다


닌 얘기는 소설가 A씨의 창작수업 단골 레퍼토리였다. 대체 누가 이런 미친
짓을! 소설가 A씨는 소설을 읽다 말고 탁 소리 나게 잡지를 덮었다. 도둑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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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것은 이름 석 자만이 아니었다. ‘그분이 오신다.’ 제목마저 언젠가 펴낼 글
쓰기 책 타이틀로 찜해둔 문장이었다. 어느새 소설가 A씨는 떨리는 손끝으
로 잡지 맨 뒷장에 적힌 편집부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편집자 C씨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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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가 A씨의 통화 내용 역시 직접인용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편집자 C씨:무슨 말씀이신지……. 작가님께서 먼저 원고 주셨잖아요.
오랜만에 그분이 오셨으니 독자들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소설가 A씨:제가 투고했다고요?
편집자 C씨:네. 이메일로요. 투고작들 중에서 특별히 실어드린 건데.
소설가 A씨:그 메일 좀 볼 수 있을까요?
편집자 C씨:개인 메일인데 함부로…….
소설가 A씨:제가 보낸 메일이라면서요.
편집자 C씨:어, 그렇네요. 맞다. 작가님께서 보낸 메일함을 체크해보시
면 되잖아요.
소설가 A씨:거기 있으면 이런 전화도 안 했겠죠.
편집자 C씨:그런가요.
혼란스럽기는 편집자 C씨 역시 마찬가지였음을 짐작하고도 남을 통화
였다.

_ 문제의 이메일을 전달받자마자 소설가 A씨가 확인한 것은 보낸 사람


이었다. 익숙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 연전에 해킹당한 일로 해지한 계정
이었다. 누가, 어떻게 이 계정을? 그러고 보니 창작과제물도 같은 계정으로
받았었다. 앙심을 품은 누군가 그새 꿰찬 걸까? 개연성은 충분했다. 어떤 문
장을 접하든 오늘은 화내지 않으리라 다짐해도, 어느새 독한 비말을 분수처
럼 뿜어내게 되는 순간이 학기마다 몇 번쯤 있었다. 소설가 A씨는 마음속 빨
간 펜을 다잡으며 이메일 본문으로 눈길을 옮겼다. 편집자 C씨가 들려준 대
목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었다. “한국문학 명예의 전당과 같은 귀지에 실린
다면 더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발가벗고 들이대는 태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메일이 아니라 영혼을 해킹당한 기분이었다.

_ 너는 누구냐?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혹시 내 창작수업을 들은 적이


있느냐? 면식범이라는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굳어가는 가운데 소설가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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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닌 계정으로 보낼 메일을 썼다. 냉철하면서도 활어처
럼 퍼덕이는 문장, 담백하면서도 핵심을 꿰뚫는 문장, 오리지널 작가의 문장
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문장이었다.
소설가 A씨가 이제껏 써온 무미건조한 글과 달리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 꿈
틀거렸다. 겨우 열 몇 줄이었지만 500쪽짜리 장편이라도 탈고한 기분 아니
었을까.

_ 답장은 오지 않았다. 채 5분도 안 돼 열어본 것으로 나오는데도 일주일


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소설가 A씨는 치미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두 번째 메일을 보냈다. “무책임한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법적 대응을 고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한물간 작가라고, 무늬만 소설
가인 주제에 소설 창작씩이나 가르친다고, 가짜 나마저 나를 무시하는 것인
가. 소설가 A씨는 이런 자격지심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예
고한 법적 대응을 위해 소설가 A씨가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있는 D씨
에게 연락했다는 것이다. 사무장 D씨는 소설가 A씨의 고등학교 동기였다.

_ “사기로 걸 수 있어.” 머릿속에 맴돌던 말을 법조인의 육성으로 들은 소


설가 A씨는 안도감을 느꼈을까. 어쩌면 문제가 거의 다 해결된 듯한 착각마
저 들었을지 모른다. “원고료는 못 받았지? 사기죄는 작위적인 행위로 말미
암아 부당하고 배타적인 이익이 실현돼야 구성되는 범죄거든.” 사무장 D씨
가 고소장을 써 내려가듯 말했다. 의료계, 법조계에 아는 사람 하나쯤은 있
어야 한다던 옛 어른들 말씀을 떠올리며 소설가 A씨는 고개도 끄덕였을 것
이다. 계좌 입금 내역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꽤 후한 액수의 원고료가 들어
와 있었던 것이다. 단편소설 원고료 지급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200자
원고지 장당 계산하는 방식과 분량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주는 방식. 매절
이던 원고료가 정액제로 바뀌면서 한국 단편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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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품 분량이 원고지 1매 줄어들 때마다 바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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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 함숫값 이 평균 0.23퍼센트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_ “네가 쓴 거 아냐? 예술가들은 그런다면서? 신이시여, 이것이 진정 제


가 창조한 작품입니까?” 할리우드 영화 <벤허> 감독이 시사회장에서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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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해당 발언의 공식적 기록이나 객관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무
장 D씨의 법조인답지 않은 카더라식 농담에도 소설가 A씨는 웃지 못했다.
창작수업 강사료를 받는 계좌였다. 수강생들에게 계좌번호를 알릴 일은 없
었는데. 돈이 왜 그 계좌로 들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동
기의 농담이 그냥 농담이 아니었으면, 신들린 듯 한달음에 휘몰아 쓴 소설이
었으면 하고 소설가 A씨는 생각했다. 포기하기 아까운 액수였는지도 모른
다. 그러나 소설가 A씨가 받은 모욕감이 몇 곱절 더 컸다. 왕성한 활동을 하
고 있었다면, 글 한 줄 못 쓰는 소설가 얘기만 아니었다면 모욕감이 덜했을
까. 원고 달라는 곳이 없어도 먼저 들이대지는 않겠다며 자존심 하나로 버텨
온 세월이었는데, 창작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한 기분이었다고 소설
가 A씨는 훗날 심경을 토로했다.

_ 소설가 A씨는 편집자 C씨에게 다시 전화해 원고료 반환의 뜻을 밝혔


다. 편집자 C씨는 작가가 적어준 계좌로 정상 지급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반응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소설이라고 폼을 잡아온 얘기해온 소설가 A씨였다. 가
짜 A씨는 예외였다. 이해보다 진상규명이 먼저였다. 소설가 A씨는 잡지 맨
뒷장에서 본 정기구독 계좌로 원고료를 고스란히 반송했다. 얼핏 계산해보
니 반백 년 치 구독료였다. 통장 잔고는 바로잡았지만 편집자 C씨의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일까요? 이번 작품 재미있
게 읽었다는 평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참인데. 본인 얘기에 인색하던 분이
쓴 자전적 소설이라 더 반가웠다고.”

_ 소설가 A씨의 입가에 헛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본인 얘기에 인색하던


사람이 쓴 자전적 소설이라 더 반가웠다고? 본인 얘기에 인색하다는 전제부
터 글러먹었다 잘못됐다. 모든 소설이 허구인 것과 똑같은 이유로 모든 소
설은 자전적 기록 아닌가. 소설가는 현실이라는 똥구멍 항문에서 뽑아낸 씨
줄과 날줄로 있을 법한 허구라는 거미줄을 짓는 존재 아닌가. 이제껏 발표한
수많은 소설 중에서 경험이라는 공기가 완벽히 차단된 진공상태에서 탄생
한 것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작가 입으로 경험담이라고 밝혀야 자전소설 대
접을 받나? 일기장에 적어야 일기가 되나? 화자와 주인공과 작가는 별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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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라는 소설 독법의 기본도 모르나? 알 만한 사람들마저 왜들 이럴까. 그
러면서도 소설가 A씨는 덮어둔 잡지를 다시 펼쳐 들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
가. 당사자도 모르는 자전소설이라니. 두려운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
는 게 당연했다.

_ 소설이 안 써지면 이사를 하라고 순진한 작가 지망생들에게 약을 팔던


조언하던 소설가가 글이 안 써져 용을 쓰다 이사를 가게 된다. 그것도 흉사
가 있었다는 집으로.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며 시작하라. 멋진 엔딩이라고
꿍쳐둔 장면부터 전면에 내세워라. 월급벌레로 전락한 현대인이 진짜 벌레
가 되는 장면을 하수는 엔딩으로 아껴두지만 고수는 오프닝으로 써먹는다.
소설 쓰기는 인터넷 쇼핑과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되었다고 지
르고 어떻게든 수습하는 과정이 소설이다. 곤경이야말로 플롯의 핵심.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수준이 적절하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연민과 공포를
자아내면 A. 흉사라는 소리에 오히려 흥미를 느낄 만큼 직업적 궁지에 몰린
소설가, 인생의 아이러니를 환기하는 곤경이라면 A+. 소설 내용은 소설가 A
씨가 창작수업에서 주워섬긴 대로 전개되었다. 수강생 중에 범인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믿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_ 해당 소설을 일부러 찾아볼 시간이 없는 분들은 [줄거리 보기]를 클릭


하시라.

_ [접기] 중년 소설가 ‘나’는 두 해째 글 한 줄 못 쓰고 있다. 단골 카페를


바꾸고 독서실을 끊어도 소용없던 차에 이사 갈 전세 아파트를 계약한다. 소
설이 죽어라 안 써지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사기
친 조언한 대로였다. 이사를 앞둔 어느 날 흉사가 있었던 집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찜찜해하는 아내와 달리 나는 묘한 흥분에 사로잡히는데……. [더
보기]

_ [접기] 천벌받을 소리라며 펄쩍 뛰는 집주인. 불길한 얘기를 흘린 당사


자(계약을 놓친 부동산중개업자)는 여전히 수상쩍은 말(모르는 게 약이다.
어차피 공동묘지 터였다)만 늘어놓는다. 아내의 성화로 나는 아파트 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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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와 경찰 친구에게 전화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노골적인 냉대와 끔찍한
사건 현장(한 독거노인의 시신이 반려견에게 반쯤 뜯어 먹힌 얼굴로 밀폐된
안방에서 발견되었다) 목격담뿐. 어떻게든 소설을 쓰려 몸부림치던 나는 빈
아파트에 미리 들어가 노트북을 켠다. 밖에서 잠그게 되어 있는 안방 문을
발견한 순간 글이 술술 풀린다. 누군가 갇혀 있었던 걸까, 가족 중 한 명이?
간만에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치며 신들린 듯 자판을 두드리는데 안방 문이
꽝 소리를 내며 잠기고 때맞춰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점집까지 찾으며 불
안감을 달래던 아내는 동을 착각했다는 최초 발설자의 해명을 전하며 홀가
분해한다. 도로 글이 안 써지자 분노에 사로잡혀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나.
동이든 호든 4자를 쓰지 않는 단지임을 확인하고 절망(착각할 만했기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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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다. 그런 내게 흉사의 결정적 증거가 포착된다. 엘림. 소문의 진원지인
부동산 상호와 똑같은 이름의 교회 스티커가 현관문에 붙어 있다. 착각했다
는 해명이 거짓이라고 확신하며 지도 앱을 열어보니 단지 조감도 위로 무서
운 형상이 겹친다. 노트북 앞으로 돌아간 나는 그분이 오시기를 기도하듯 자
판에 두 손을 나란히 올린다.

SF 작가 엘림 팽(Elim Peng)을 찾으시나요?

2. 논란

_ “그나저나 내용증명은 어디로 보내?” 사무장 D씨의 물음에 뒤미처 확


인해보니 소설가 A씨를 사칭한 자가 남긴 주소도 소설가 A씨의 현 거주지였
다. 마지막 과제는 출력본으로 제출하고 싶다, 투고작을 미리 읽어줄 수 있느
냐, 뭐 좀 보낼 게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소를 묻던 문자들이 소설가 A씨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육필 원고라면 필적 대조라도 해볼 텐데. 유일한 단서인
메일 계정조차 본사가 해외라 한국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으로는 추적이 불
가능할 터였다.

_ 조용한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 범죄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공개수배로 전


환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소설가 A씨도 같은 방법을 택했다. 소설가 A씨
에게는 계정만 만들어둔 페북이 있었다. 잘나가는 작가들 동향을 살펴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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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벤치마킹하려는 의도였지만 첫 글이 안 써져 사실상 두 해째 휴면 상태였
다. 소설가 A씨의 페북은 잠에서 깨어나 외쳤다. “제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
한 분은 하루빨리 자수하여 광명 찾기를 권합니다. 눈 밝은 독자분들은 주변
에 범인으로 의심되는 분이 있으면 주저 말고 제보 바랍니다.”

_ 공개수배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페북 세상에서도 소설가 A씨는 아


싸였다 친구가 많지 않았다. 현실화된 것은 기대가 아니라 우려였다. 가뭄에
콩 나듯 달리는 댓글이었지만 소설가 A씨에겐 인터넷 서점 한 줄 평의 트라
우마를 상기시킬 법했다. ‘이것도 게시물이냐, 혹사당한 손가락만 불쌍하다’
까지는 아니어도 심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페북 글로 듣보 작가
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는 정도야 양반이었다. 어떤 작품세계를 일군 작가
인지 일부러 찾아보았는데 굳이 그러지 말기를 권한다는 글 앞에서는 입술
을 깨물었을 수도 있다. 재미라는 것과는 방화벽을 쌓은 전작들을 보니 이번
소설(안 읽어봤지만 굳이 소설가 A씨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면 핵노잼일 게
분명하다)도 동일인물이 쓴 게 틀림없다는 대목에서는 오히려 전의가 불타
올랐을 것이다.

_ 어쨌든 작품의 진위를 밝히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환영할 일이었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소설가 A씨는 자신했다. 수강생들의 습작을 범죄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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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처럼 톺아보던 소설가 A씨였다. 범행 수법은? 동기는? 동일범죄 전과
는? 현장에 흩어진 단서를 모아 범죄자의 실루엣을 그려내는 프로파일러.
소설가 A씨는 합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범죄의 결과물에 과학수사의 현미
경을 들이댔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육안이면 충분했다. 눈에는 눈,
인상비평에는 인상비평. 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논점이 흐려질
수 있었다.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는 미술계의 경우 화가들은 자기 그림인지
아닌지 척 보면 안다고 말하곤 한다. 모두가 진짜라는데 화가만 아니라는 사
례도 있고 모두가 가짜라는데 화가만 진짜라는 믿기지 않는 사례도 있다. 미
술계 일각에서는 위작 시비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돈 되
는 작가라는 업계의 인증이라나. 객관적 감정법은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
이 보통이나 최근에는 나노융복합 분석이 각광받는 추세다. 미술품이 고가
로 거래될수록 시비는 빈번해지리라는 예측이 업계의 중론이다. 같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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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문학계는 위작 청정구역으로 분류돼왔다. 유명 작가의 미발표작을 발굴
했다는 주장에 시비가 붙기는 했지만 백 퍼센트 작가 사후였고 역시 백 퍼센
트 돈은 안 되는 일이었다. 살아 있는 작가가 스스로 문제 삼기는 아마도 세
계문학사 최초일 터였다. 소설가 A씨는 재미라는 주관적 요소로 어떻게 동
일인물이라 예단할 수 있느냐고 유감을 표한 뒤, 첫 문장만 봐도 자기 스타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글이 죽어라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자신은
독자들을 낚는 데만 혈안인 이런 첫 문장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해당 글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 낚시문장에는 저의 지문(指紋)이 한 점도
묻어 있지 않습니다.”

_ 반대증거가 제출되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기별을 듣고서 여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화장
을 고치는 것이었다.’ 낚싯바늘이 아니라 아예 그물을 던지고 있는 이 첫 문
장 또한 작가님을 사칭한 누군가의 소행인가요?” 소설가 A씨는 아닥하고 말
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것은 매만지고 또 매만지느라 자신의 지문이 덕지덕
지 묻은 문장이었다. 할 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전자가 단순히 호기심을
끄는 문장이라면 후자는 캐릭터와 상황과 주제가 한 몸으로 녹아든 문장이
었다. 그러나 소설가 A씨는 재미가 있다 없다는 인상비평에서 구체적인 팩
트를 다투는 단계로 논의가 진일보한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_ 소설가 A씨도 범죄의 결과물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 나섰다. 그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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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답지 않은 클리셰 의 연속이라는 지적이었다.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두려움’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그때였다’ ‘칠흑 같은 터널’……. 창
작과제물이었다면 빨간 펜이 칼춤을 췄으리라 혀를 차던 소설가 A씨는 합평
원고들을 새삼 뒤져보기도 했다.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까 기대를 품었으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용의선상에서 제할 원고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모두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_ 클리셰라는 리트머스지도 소설가 A씨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


왔다. 소설가 A씨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사 사례들이 속속 발굴된 것이다. 앞
문장과 연결이 어정쩡할 때마다 순간접착제처럼 사용하는 표현까지 비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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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됐다. 문득이라는 부사가 그러했다. 특히 작중인물이 중요한 무언가
를 떠올리는 문장엔 어김없이 등장한다며 각 단편마다 빈도수를 정리한 글
까지 올라왔다. 미처 의식하지 못한 상투어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무언가’ ‘이내’ ‘뇌리를 스쳤다’ ‘불현듯’…….
발굴된 상투어 목록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이후 소설가 A씨의 페북 계정은
다시 휴면상태로 돌아가는 듯했다.

_ 소설가 A씨는 검증 포인트를 바꿔 복귀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캐릭터가 올드하기 짝이 없다.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외면받는 시대에 소
설가 주인공이라니. 소설이 써지지 않는 소설가는 문학박물관에서도 맨 안
쪽에 전시될 삼엽충 같은 화석 아닌가. 삼엽충은 캄브리아 초기의 원시해양
에서 서식한 절지동물이다. 기능적으로는 두부, 흉부, 미부로 나뉜다. 삼엽
충의 해부학적 구조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비극의 서사구조(도입-갈
등-대단원) 사이에 유비관계가 존재한다는 가설이 있지만 입증되지 않았
다.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벌레’가 삼엽충이라고 주장한 비교고생물
학자 역시 정식 논문을 제출한 바 없다. 구리기로는 소설가의 아내 캐릭터가
13
더 심각했다. 흉사라는 한마디에 점집으로 달려가는 시대착오적 모습이라
니. 가부장적 한국문학이 여성인물에 덧씌운 부정적 선입견을 무비판적으
로 재생산하고 있다. 이상이 소설가 A씨의 이른바 캐릭터 화석론이었다.

_ 이번에도 반박의 근거는 소설가 A씨 자신의 소설이었다. 창조주 본인


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안티히어로 캐릭터들이 화석 밖으로 줄줄이 소환
되었다. 풍자의 대상이었다는 해명은 소설가 A씨 자신을 되비추는 반사 신
공 앞에서 맥을 못 췄다. 도리어 반사하는 거울을 뽀드득뽀드득 닦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고 화장을 고친다? 여자를 몰
라도 너무 모른다고밖에는…….” 화장이라는 행위는 공동체가 분담해야 할
노인문제를 가족 내 여성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 분위기를 고발하는 소설
적 장치라고 소설가 A씨는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항변했다. 이즈음
페북 게시물 조회수는 최대 세 자리를 찍었고 페친은 47명으로 늘어나 있었
다. 웬만한 글은 (소설가 A씨의 시간감각상) 빛의 속도로 묻혀버렸다. 엄숙
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글은 특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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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관리자 삭제]

_ 소설가 A씨가 자신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휘청거리는 사이 캐릭터를


넘어 엔딩이 도마에 올랐다. 이제껏 발표한 단편 대부분이 열린 결말이니 「그
분이 오신다」도 소설가 A씨가 쓴 게 틀림없다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흉사라
는 소문의 장본인조차 착각이었다고 말을 바꿨음에도 이사 갈 빈집에 홀로
앉아 영감의 원천이 돼버린 그 단어를 붙든 채 노트북 화면만 노려보는 주인
공. 흉사는 있었는가, 없었는가? 독자를 우롱하는 결말이라니. 소설가 A씨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똑 부러지게 결말을 지은 소설이, 마지막 장을 덮고 웃
어본 기억이 없다.”

_ 웃어본 기억이 없다니. 유머를 고통의 바다인 세상에 맞설 유일한 소


설적 무기로 여겨온 소설가 A씨였다. 다 양보해도 그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
었다. 작가의식의 결정체들이 근본 모를 단편 하나와 함께 도매금으로 넘
어가게 둬서는 안 됐다. 소설가 A씨는 위작과의 차별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화이트유머든 블랙유머든 유머라곤 약에 쓰려도 찾아볼 수 없다.” 소설가
A씨는 입이 아닌 뇌가 웃게 만드는 블랙유머를 제 소설의 트레이드마크, 아
니 워터마크로 내세우며 「그분이 오신다」엔 진본임을 보증하는 워터마크가
없다고 강변했다. “소설이 안 써지면 그만이지 흉사가 있었다는 빈집까지
쫓아가 치성드리듯 그분을 불러내야 하나. 너무 비장하다. ‘엄근진’ 그 자체
다.” 와중에도 유머 중의 유머는 블랙유머, 웃음 중의 웃음은 쓴웃음이라는
블랙유머 예찬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단편 「승강기」를 [줄거리 보
기] 예로 들었다.

_ [찾는 내용 없음]

_ 오르내리는 기계라는 뜻의 단편은 추락하는 소설가 A씨에게 동아줄


이 되었을까? 동아줄이되 내려가는 동아줄이었다. 동아줄의 끝에는 해당 소
설에 대한 혹독한 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층에 사는 주인공이 엘리베이
터 수리비를 내라는 요구에 맞서 싸운다. 읽게 만든다. 적절한 빌런도 등장
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은 증거를 대라고 맞받아치는 관리소장. 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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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다. 주인공 또한 같은 라인 집집이 돌아다니며 엘리베이터에서 본 적 없다
는 서명을 받는다. 그런데 결말은 어떤가. 악전고투하며 꼭대기층까지 걸어
올라간 주인공이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아연 홀가분함을 느
낀다. 이토록 허망한 엔딩이라니. 이 소설가는 정녕 독자가 진심 궁금해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단 말인가? 모르면 소설가 타이틀을 반납할 일이고 알면서
도 이러면 직무유기다. 똥 누고 밑을 안 닦은 기분이랄까. 흉사에도 소설 쓸
궁리만 하는 인간이나, 끝까지 맞서기는커녕 덜 억울하자고 일부러 엘리베
이터를 타는 인간이나.”

_ 최다 추천, 네 글자로 부족할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페북 초보 소


설가 A씨의 머릿속에 시스템 에러라는 빨간불이 깜박일 만큼 ‘좋아요’ 숫자
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댓글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음은 물론이다.
┕ ‌블랙유머라. 그래서 프로필 사진을 흑백만 쓰시나 보죠? 요즘은 영정
도 칼라로 뽑는데.
┕ 블랙유머요? 요즘 발표가 뜸하시던데 블랙아웃이 걱정되네요.
┕ 블랙유머, 블랙아웃. 라임이 예술이십니다.
┕ 댓글 학원 다니심?

_ 소설가 A씨의 페북은 씨의 문학적 장례식장을 방불케 했다. 아니, 장례


식장 밤샘 화투판처럼 기이한 열기로 흥청거렸다. 가장 이목을 끈 화투판의
화두는 흉사였다. 소설 속 흉사는 과연 무엇이었나? 작가가 안 쓰면 독자가
쓴다. 소설을 완성하는 끝판왕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다. 지난 세기에 주창된
수용주의 혹은 독자반응이론이 밀레니엄을 건너 재발견되는 분위기 속에
서 흉사가 있었음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사람들은 소설 속 주인공처
럼 그것이 무엇이었나 진지하게 추측하고 상상했다. 단순 자살부터 악령이
깃들어 서로서로 죽고 죽이는 가족 잔혹극까지, 해당 단어로 떠올릴 수 있는
불상사가 총망라됐대도 과언이 아니었다.

_ 공개수배라는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판단한 소설가 A씨는 죽을힘을


다해 혼신의 반론을 올렸다. 뭣이 중헌디? 라는 제목이었다. 한마디로 「승강
기」의 주인공이 엘리베이터 수리비를 냈는지 여부와 마찬가지로 흉사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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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 있었는지는 소설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카프카의 『성』에
서 유의미한 지점은 K의 입성(入城) 여부가 아니라 그것의 지연에 있다. 측량
기사로 초청받았음에도 환대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부조리.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증거를 대며 수리비 분담을 요구하는 게 아니
라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부조리. 이 전도야말로 교환
가치가 사용가치를 규정하는 자본주의 핵심모순 아닌가.”

_ 근거가 모호하고 비약적이며 가르치려 드는 태도가 없지 않은 원글에


비해 거기 달린 글들은 직관적이고 간명했으며 사실관계에서 출발했다. “님
은 카프카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카프카에겐 원고를 발표하지 말고 태우라
는 유언을 남길 자기객관화 감각이라도 있었는데.” “『성』은 유고작으로 알
고 있는데. 카프카가 안 죽고 완성했다면 어떻게든 결판이 났겠죠.” “성 주변
만 유령처럼 떠도는 K. K 소설의 운명이 오버랩된다면 오버일까.” 개중에는
위작이라는 소설가 A씨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글도 하나 있었다.

_ 소설가 A씨의 마지막 평정심마저 앗아간 것은 씨의 손을 유일하게 들


어준 바로 그 글이었다. “다른 사람이 쓴 거 맞는 것 같아요. 작가님보다 더
잘 썼거든요. 찐 가수보다 가창력이 뛰어난 히든 싱어처럼.” 거기 달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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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도 소설가 A씨의 혈압을 질환의심 경계 너머로 끌어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히든 라이터라, 신박하네요. 이름 가리고 나란히 실어서 어떤 글이
찐 소설가냐 맞히기!”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 추가한 희귀 직업병
목록에 예술가갱년기증후군(ACS)이 있다. 인위적 몰입의 과도한 반복으로
우뇌 시상하부 복내측핵에 교란이 발생해 떨어지는 낙엽에도 모욕감을 느
낀다고 보고되었다.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등줄기에 한기가 도는 것이 일반
적인 증상이나 종종 폭발적 분노도 동반한다. 그것은 소설가 A씨가 한 문장
이라도 쥐어짜내고자 노트북 화면만 종일 들여다볼 때 나타나던 증상이기
도 했다. “맞아요. 잘났든 못났든 내 새끼 아닌 건 틀림없습니다. 흉사가 있
든 말든, 그분이 오시든 말든 내 새끼 아닙니다.” 소설가 A씨가 올린 이 게시
물도 ACS의 명백한 징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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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말

_ 사라예보 하늘에 울려 퍼진 총성 한 발이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다면 충


동적으로 입력한 격정 발언은 언론을 참전시키는 스모킹 건이 됐다. 소설가
A씨는 취재전화 한 통 받은 적 없었지만 씨의 이름이 실린 지난 모든 기사보
다 두 배쯤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내 새끼 아냐.” 어느 소설가의 절규.’ ‘한
작가의 친자 시비 … 진실은 무엇인가?’ 문학기사로 짐작하기 쉽지 않아, 문
화면은 아예 건너뛰는 사람들까지 클릭할 만한 제목들이었다. 막장(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면서도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적 제목들은 결국 미술계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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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문단의 위작 논란이라는 야마 로 수렴되었다. 자극적인 제목에도 불구
하고 반응은 미미했다. 이런 소설가도 있었느냐며 노이즈 마케팅을 의심하
는 댓글 몇 개가 다였다.

_ 페북에서도 노이즈 마케팅 논란이 벌어졌다. “동료 작가 문자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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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부터 조작 주작 같다. 본인도 한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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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들끼리 소설 얘기는 금기 라고 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소설가 A씨
의 과거 발언과 글이 현재의 소설가 A씨를 겨냥했다. 이 합리적 의심을 해소
하기 위해 소설가 A씨는 장고 끝에 소설가 B씨의 문자 캡처본을 공개했다.

_ 이득을 얻는 자가 범인이다. 자작극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이번에는 문


제 소설의 원고료가 누구에게 지급되었느냐고(최초의 공개수배 게시물에 관
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물었다.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원고료 반환 내
역을 캡처하다 소설가 A씨는 멘털 암반층을 뚫고 내려가는 회의와 환멸에
빠졌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차라리 내 글인 양 가만있을 걸. 때늦은 후
회마저 밀려왔다고 소설가 A씨는 회고한 바 있다. 소설가 A씨는 며칠 페북도
닫고 핸드폰도 꺼두었다. 다 잊고 새 출발 하는 게 맞을까, 페북 계정 자체를,
부조리한 소란의 흔적을 깨끗이 폭파해야 할까, 고민하다 소설가 A씨는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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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심리학의 유명한 가설 하나를 떠올렸다.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소설가 A씨는 글을 남긴 페북 계정과 창작수업 수강생 명단을 대조해보았
다. 겹치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계정마다 일일이 들어가 살피는 저인망식
탐문도 헛수고였다. 눈팅만 했다면 역시나 추적 불가. 누구 말마따나 히든
라이터가 따로 없었다.

김경욱 이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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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히든 라이터? 사람들은 왜 찐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보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진짜 가수인지 아닌지에만 관심을 기울일까? 공개
수배라는 취지는 처음부터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위의 회고에 의하면 소설가 A씨는 등단 이래 처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았다. 독자야말로 문학이라는 기차를 달리게 하는 영구
기관 아닌가. 소설가 A씨의 손바닥에 감지되는 것은 자신의 심박뿐이었다.
심장이 하는 일에 무지하듯 독자가 원하는 것은커녕 독자라는 존재에 대해
일도 아는 바 없었다. 갈빗대 밑의 멈추지 않는 펌프처럼 당연한 줄만 알았
던 독자. 열린 결말을 고수한 이유도 문학적 신념보다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
는지 모르기 때문이었을까. 소설가 A씨는 30년 가까이 소설을 써오는 동안
한 번도 접하지 못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독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
었다. 자신이 심연을 들여다본다고 여겼는데 심연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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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_ 심연은 깊기도 하지만 어디로 이어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본의 아니


게 소설가 A씨는 전에 없던 주목(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을 받고 있었다.
문제의 소설이 실린 잡지 과월호는 때늦은 증쇄로 정기간행물 카테고리에
서 역주행을 펼쳤다.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소설가 A씨의 책은
언론이 주목한 작가 코너에 한동안 진열되며 절판 신세를 모면했다. 친구라
고 해도 될지 모르지만 페친도 세 자리대에 진입했다. 그들은 냉철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친구 맺기를 원했다. 소설가 A씨가 기뻐했을지 허탈해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희소식이 분명했을 한 가지는 뚝 끊겼던 원고 청탁이 다시 들
어왔다는 사실이다. 앞서 소개된 작가의식 실태조사에서 창작의 원동력으
로 마감 날짜를 꼽은 응답자가 있었다. 소설가 A씨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
를 대답의 산증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탁상달력 한구석에 마감이라는 두 글
자를 적어 넣자마자 써야 할 소설 제목이 떠올랐다는 후문이다.

_ 「그분이 오신다」를 자신이 썼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_ 한 웹진에서 ‘히든 라이터’ 코너 신설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142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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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소설가 A씨의 발표 목록에 새로 추가된 단편 제목은 다음과 같다. 이
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

_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작(作). [이미지 보기]

4. 주석

1 혐오를 조장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표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표현, 프라이버시
를 침해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표현, 상투적이거나 교양과 거리가 먼 표현 등등.
2 이후 사건 전개에 관한 서술은 소설가 A씨의 페북 글을 바탕으로 일부 재구성했다.
3 『SNS시대의 작가의식 실태조사』, 공공예술정책연구원, 2019.
4 프라이버시 문제에 관해 본 매체에는 어떤 책임도 없음을 밝혀둔다.
5 https://www.choijergagyuk/hometraining/moontlepush-upbong#%5~&
6 『대산문화』 2020년 가을호, 100쪽.
7 프라이버시 문제에 관해 본 매체에는 어떤 책임도 없음을 밝혀둔다.
8 구나윤, 「원고 매수와 단편 미학의 상관관계」, 『한국현대소설문학흐름연구』 2017년 상반기호.
9 예술작품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도.
10 히브리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산에 도착하기 전에 머문 곳. “그들은 샘이 열두 개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 서 있는 엘림에 이르러 거기 물가에 진을 쳤다.” 텔아비브 대학교 문헌지질학과 애
덤 사이먼 교수는 출애굽기 15장 27절을 근거로 수에즈운하 120킬로미터 남동쪽에 위치한 알 라시드 오
아시스라고 추정한 바 있다.
11 어쩌면 소설이라는 비생산적인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반사회적 범죄가 되어버린 시대인지도 모
른다.
12 18세기 말 개발되어 고속 인쇄에 쓰인 인쇄용 금속판을 가리키는 불어. 문학과 영화에서 상투적이고 판에
박힌 듯한 표현을 칭하는 비평용어로 쓰인다.
13 역술이야말로 한계에 봉착한 이성주의를 극복할 대안적 세계관이라는 역술인협회의 항의가 있었다.
14 고혈압 질환의심 경계선은 심장 수축 시 140mmHg, 이완 시 90mmHg.
15 헤드라인 또는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가리키는 언론계 은어. 불교의 백팔지옥 중 허언을 일삼은
자들이 밤새 제 혀를 씹는다는 야마(夜魔)지옥. 일본어로 산(山). ‘야마 돈다’라는 표현이 있지만 머리와의
연관성은 밝혀진 바 없다.
16 본 매체는 ‘조작’이라는 단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17 「글 농사엔 농번기 따로 없어」, 동향일보, 1999. 10. 14.
18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살인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한민국 경찰청 범죄
분석통계에 따르면 현장을 다시 찾는 강력범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추
정된다.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 CCTV, 편의점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주민들.
19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김경욱 이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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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1993년 『작가세계』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장편소설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 등을 냈다.

144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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