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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저주의 진흙이 길가메쉬를 덮친다.

「큭.」

이건 다르다. 영웅왕은 확신했다.


이것은 자신이 격퇴한 그 진흙이 아니다.
그 저주의 진흙이 아니다.
진흙에 가라앉던 도중에 죽인 여자를 본다.
그런가. 이 녀석이. 이 녀석의 의사로 이것이 움직이고 있는 건가.
저주는 아니다. 그와 비슷한 거지만 죽으라고 외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욕구다. 식욕.
다쳤기 때문에 먹어서 회복하려 하고 있다.

「웃기지마―――――」

사냥감을 잡아먹듯이 영웅왕을 삼키려 하는 건가.


이미 몸은 절반까지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다는 거냐.
우득, 하고 팔이 꺾인다.
상관없다. 그건 상관없어.

「짐을 우습게 보지 마라, 잡종―――――!」

진흙을 찢고 길가메쉬의 팔이 뻗친다.


그 팔에는 쇠사슬이 얽혀 있었다.

「하늘의 쇠사슬이여―――――!」

가로등, 벽, 쇠사슬은 온갖 사물에 감겼고, 그리고 온갖 사물에 꽂혔다.


그대로 길가메쉬를 들어올린다.
꾸륵꾸륵, 하는 싫은 소리가 났다.
진흙은 길가메쉬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런 구속은 영웅왕에게는 무의미.
쇠사슬로 진흙으로부터 벗어난 길가메쉬는 빌딩의 옥상에 내려섰다.

「빌어먹을―――――!」

왼팔이 잘려 있었다.

「잘도 했겠다.」

으득, 하고 이빨을 갈았다.


이 몸은 영령이 아니라 이미 육체가 있는 몸이다.
잘게 썰어지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뚝뚝, 하고 왼팔에서 피를 흘린다.
이미 빌딩 아래에는 그 소녀가 없다.
놓쳤나.

「짐이 살해당할 뻔할 줄이야.」


처음의 보구의 투척으로 끝장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 저렇게까지 당하고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없다.
저렇게까지 진행되어 있을 줄은.

「흥, 그렇다면 심장을 찌르고 머리를 부술까.」

아직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었을 리가 없다.
방심할 수는 없다.
고동이 멈출 때까지, 목이 날아날 때까지, 이젠 영웅왕에게 방심은 없다.
사고하는 도중에 얼마 안 되는 어두운 부분을 일으켰다.
피가 부족하군.
혀를 차고 교회에 일단 돌아가려고 생각했다.
저기라면 혼을 먹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팔은 낫지 않지만, 뭐하면 이 육체를 버려도 좋다.

「이 시건방진. 죽음으로도 부족하다, 잡종………」

그렇게 내뱉고 길가메쉬는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호오, 길가메쉬, 심하게 당했군.」

교회의 지하.
너무 청정한 공기 속에서 영웅왕은 혼을 먹고 있었다.

「―――――코토미네냐.」

길가메쉬가 불쾌하게 말하면서 코토미네 키레에게 시선을 향했다.


얇은 미소를 띄우는 신부.
자신의 마스터이지만, 이 정도로 신뢰관계가 적은 주종관계도 없을 것이다.
충성심이고 뭐고 없다.

「아마도 마토우 사쿠라를 처치하러 갔다가 실패한 거겠지.


―――――길가메쉬. 난 너에게 조용히 지켜보라고 명령했을 텐데.」
「하―――――. 웃기지 마라, 코토미네.
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 따위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고로 짐의 마음대로 움직인다.
오만불손한 언동 속에서도 확실한 왕으로서의 품격을 느껴지게 한다.

「그런가. 그렇군.」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코토미네 키레는 길가메쉬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길가메쉬가 눈썹을 찡그렸다.

「왜 가까이 오는 거지?」
「글쎄」

키릭, 하는 소리가 났다.


어느 사이에 꺼냈는지 코토미네의 손에는 흑건이 쥐어져 있다.

「길가메쉬. 우리들의 주종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립되고 있었다고 해도 되겠지.
―――――고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게 되었을 때」

흠칫, 하고 길가메쉬의 등골이 떨렸다.


이 거리. 아처의 거리가 아니다.
키릭, 키릭, 하고 흑건의 손잡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코토미네의 얇은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붕괴한다.」
「코토미네, 네놈!!! ――――――――――하지만.」

고함과 내리깔은 목소리가 지하에 울린다.


길가메쉬의 어깨에는 조용히 흑건이 꽂혀 있었다.
건검을 꺼낼 틈조차 없었다.
과연 대행자라는 것인가.
길가메쉬는 꽂혀 있는 것이 자신의 어깨가 아니었다면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을 것이다.
이제와서는 저주밖에 토할 수 없지만.

「배반하겠다는 거냐………」
「천만에, 길가메쉬.
우리의 관계는 원래부터 이랬잖나.
화창한 일상생활을 체험하느라 해이해진 건가―――――
서로 등을 맡길 정도의 관계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코토미네가 일어서서 흑건을 꺼냈다.

「너를 처치할 수 있는 기회는 적다.


랜서가 사라진 지금, 그리고 마토우 사쿠라가 순수하게 자라고 있는 지금.
이레귤러인 여덟 번째 서번트는 불필요하다.」

그 말에 길가메쉬는 큭, 하고 웃었다.

「아주, 아주, 아주―――――짐을 얕잡아보고 있군, 코토미네.」

오른팔에 그람을 쥐고 길가메쉬가 말했다.

「짐의 스킬을 잊었나. 단독 행동이라면 짐의 특기다.


―――――마스터 살인을 주저할 이유 따위는 없어.」
「그렇다면 죽여봐라, 길가메쉬. 그것도 여흥이지.」

코토미네 키레는 악마처럼 웃었다.


길가메쉬는 이미 할 말 따위는 없다는 듯이 칼을 치켜든다.
하지만 그 순간에 코토미네 키레의 팔이 번뜩였다.
마력 행사.
우뚝, 하고 길가메쉬의 몸이 흔들린다.
뚝 하고 식은 땀이 나왔다.

「령주, 라고―――――!?」
「마지막 령주다. ――――――――――자해해라. 아처.」

그람이 번뜩이면서 길가메쉬의 숨통으로 향한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웃었다.

「그러니까 얕잡아보고 있다는 거다―――――하찮은 놈!」

그람은 길가메쉬의 목덜미를 살짝 스치는 정도로 끝났다.


영웅왕은 그 의사로 령주의 속박조차 튕겨 날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의 기세를 살린 채로 회전하듯이 그람을 코토미네를 향해 휘둘렀다.

「큭!」

받아낸 흑건이 부러지고, 코토미네가 벽에 처박힌다.


길가메쉬의 근력은 영웅의 그것이다.
아무리 대행자라고 해도 인간의 범위에 들어가 있는 코토미네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큭.」

피가 멈추지 않는다.
상처입은 어깨. 빼앗긴 팔에서도 피가 분출한다.
다친 몸으로는 이것이 한계란 말인가.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혼을 먹고 있을 틈이 없다.
팔을 휘둘러 내리치는 것만으로도 다친 몸이 비명을 지른다.
그 진흙에게 예상 이상으로 빼앗겨 있다.
이렇게까지 자신이 약해지고 있었다니.
코토미네가 일어나기 전에 죽일 수밖에 없다.
지익, 지익, 하고 몸을 질질 끈다.
다행히 코토미네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다.

「―――――길가메쉬.」

울리는 목소리는 낮게 영웅왕의 귀청을 쳤다.


그람을 치켜든다.

「그것을 죽이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웅왕.」

―――――너는 인격마저도 그 진흙에게 먹힐 것이다.


라고 그런 말을 했다.

「―――――짐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짐 이상으로 고상한 자 뿐이다.


그런 진흙 따위가 아니다.」

그 말을 듣고 코토미네는 웃었다.

「세이버, 랜서, 아처, 캐스터, 버서커.


이미 다섯 명이 삼켜졌다. 흑백을 가리지 않고.
길가메쉬. 거기에 너의 이름이 따르지 않기를 빌겠다.」

길가메쉬는 코토미네를 노려보았고, 코토미네는 마지막까지 웃고 있었다.


푹, 하고 그람이 심장에 꽂힌다.
코토미네 키레는 마지막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저 유쾌해서 참을 수 없다고 말하듯이 웃고 있었다.
꽂힌 그람이 피로 빛나고 있다.
길가메쉬는 난폭한 숨을 내쉬면서 긴 주종관계에 이별을 고했다.

코토미네의 시체를 처리하고 교회의 지하실에 갇혀 있던 인간의 영혼을 모조리 다 먹었다.


그 때 처음으로 자신이 먹고 있던 영혼의 소유자의 얼굴을 본다.

「―――――흥.」

아이였다. 청년과 소년의 경계선에 있는 아이였다.


모든 영혼을 먹혀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그것』은 길가메쉬에게 단 한 마디만 말했다.

―――――고마워.

이런 지옥 밑바닥에서 해방시켜줘서 고마워.


날 죽여줘서 고마워.
신부를 죽여줘서 고마워.

「―――――구역질나. 말이 다르잖아.」

분한 듯이 중얼거리고 길가메쉬는 소파에 몸을 깊이 가라앉혔다.


의식이 가라앉는다.
머나먼 날의 꿈을 꾸었다.

항상 많은 인간을 죽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모두 다 죽였고.
갖고 싶은 것은 모두 빼앗았다.
불로불사까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을 때, 길가메쉬는 생각했던 것이다.
엔키두는 벌써 죽어버렸다.
그 친구의 죽음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했을 터인데.
불로불사의 감미로운 울림은 무한의 원망으로 바뀌었다.
―――――살아서 어떻게 할 거냐.
모든 것을 평정해 온 영웅왕에게 있어서 한순간만 빼앗은 의문이었다.
친구는 이젠 없다. 세계는 전부 짐의 것이다.
재보는 모두 모았다.
절세의 미녀라 불리는 존재조차 보는 거에 질렸다.
―――――그 이상으로 더 이상 겨룰 상대가 없는 것이다.
신조차 길가메쉬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짐을 죽이려고 하는 자의 움직임 따위는 전부 손바닥 위에 있다.
더 이상 살아서 뭘 한다는 것일까.
시시하다고 판단했다.
망설일 정도라면 처음부터 불로불사 따위를 원해서는 안 되었다.
정을 알 정도라면 친구를 양성해서는 안 되었다.
왕좌에 한 명. 왕좌에 혼자.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고 생각했을 때부터 길가메쉬는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아니, 영웅왕으로.
뱀이 약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흥, 하고 코를 울린다.
불로불사의 묘약을 내던진다.

「―――――주겠다, 뱀이여.」

길가메쉬는 비웃었다.
엔키두를 죽인 『죽음』이다.
자신마저도 위험할지도 모르는.
하지만―――――그것이야말로 경쟁이 있다.
황금갑옷을 걸치고 길가메쉬는 크게 웃었다.

「―――――짐을 죽여봐라!
삼천세계의 모든 것은 짐에게 엎드린다.
죽음이라고 해도 그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
왜 그 진흙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가.
팔을 먹혔기 때문인가.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짐은 자신의 것을 다치게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큭, 하고 소리를 흘리면서 웃었다.
어느 사이에 자고 있던 것 같았고, 밖에서 빛이 비추어지고 있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왜 잊고 있었던 것일까.
짐에게 엎드리지 않는 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불필요한 사고 따위는 불필요.
그저 발소리를 울리면서 석권하자.
짐의 백성을 상처입히는 자는 후회한다.
짐의 백성을 상처입히는 자는 죽음으로서 속죄한다.

―――――고마워.

목소리가 남았다. 머릿속에 하나의 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말이다.
죽인 사람에게 들은 일은 처음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흥이겠지.」

눈을 떴다. 몸은 빼앗은 영혼으로 보강되었다.


빼앗긴 왼팔만이 아직도 열을 갖고 있다.
길가메쉬는 반신을 일으켜서 오른팔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자기 전에 킨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코토미네가 켰는지도 모른다.

『60 명의 인간이 행방불명.』

그저 흐르고 있었다.
―――――빼앗긴 왼팔, 빼앗긴 60 명의 생명.

「―――――나에게서 빼앗다니 좋은 배짱이구나.」

몸을 일으켰다.
한쪽 팔이 없다는 것은 생각의 다른 균형을 무너지게 한다.
그리고 밖을 돌아다니기에도 눈에 띈다.
장농을 찾아서 롱 코트를 꺼냈다.
코토미네의 것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걸쳐 입고 행방불명된 백성들이 주거하던 장소를 머리에 주입시킨다.
주는 것도, 이루는 것도.
옛날과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침략에는 새로운 침략으로 돌려줄 뿐이다.
코트를 걸치고 길가메쉬는 방을 나왔다.
영웅왕의 병사는 어느 때라도 뒤를 따르고 있다.

―――――갈까. 시작의 나팔이 울었다.

영웅왕은 다리를 세게 내디뎠다.


검은 진흙을 털어내기 위해, 스스로의 것을 지키기 위해.
영웅왕은 앞으로 나아간다.

부웅, 하고 오토바이가 배기가스를 토해냈다.


주입된 주소에서는 여기가 사라진 사람들의 주거지인 것 같다.
경찰이 상당히 많이 있다.
아니, 저건 경찰인가.
길가메쉬는 눈을 가늘게 했다.
사람이 아닌 사람의 기척도 섞여 있다.
마술사도 있는 것 같다.

「키무라 씨, 이건.」
「카토에게 전해. 뭔가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

제복은 입지 않았다. 형사라는 녀석들일까.


드라마로밖에 본 적이 없지만.
요즘 형사는 마술사도 있는 걸까. 실로 기묘하다.
어딘가 날카로운 분위기를 가진 뱀 같은 남자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옆에 있는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는 말투를 봐서 실질적으로 일을 주도하고 있는 것 같다.
길가메쉬가 군을 인솔하고 있었을 때에도 저런 녀석이 있었다.
위에는 나오지 않지만, 병사로서 쓸 수 있는 녀석.
모자를 쓴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여자는 옆에 있던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길가메쉬를 턱으로 가리켰다.

「―――――이봐이봐.」

고개를 젓는 남자.

「형씨. 오토바이를 한 손으로 운전하는 건 위험해.」

쓴웃음을 지으면서 다가온다.


겉모습뿐이다, 라고 길가메쉬는 판단했다.
이런 타입은 등을 보이면 찔러 온다.

「운전에 문제는 없다. ―――――꺼져라 잡종.


지금은 네놈을 상대하고 있을 틈이 없다.」

처음부터 그 진흙의 짓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었다면 좋았던 것이다.


혹시 아직도 남아 있는 라이더나 어쌔신이 사람을 덮쳐서 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확인하러 왔을 뿐.

주거지는 무엇 하나 부서지지 않았는데, 사람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답은 나와 있다.
남자가 쓴웃음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표정이 움직이지 않는 남자다.
일단은 미소인데 가면 같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무섭군. 너의 눈은 무서워.
그건 너.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눈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희생해도 상관없다는 눈이야.」
「물론이다. 짐을 다스리는 것은 짐뿐.
―――――그리고 죽여야 할 자는 죽여야 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없는 가옥들을 바라본다.


남자도 길가메쉬와 같은 방향을 본다.

「그렇다면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납득할 수 없어.
불합리하게 빼앗긴 사람은 아무도 납득할 수 없어.
부처님도 천국에서 화내고 있어.
집안에는 먹고 있던 케이크가 있었다.
생일이었던 걸까. 아직 아이였다.
도로에 떨어져 있던 슈트가 있었다. 퇴근길이었겠지.
필사적으로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던 아버지였을 거다.
자신이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의복만이 서로 겹쳐서 떨어져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연인이었겠지. 자신들의 행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리고 그것은 배신당할 미래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남자는 독백하듯이 중얼거렸다.


길가메쉬는 자기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남자의 인상이 완전히 지쳐 있는 모습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분한 건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뜬 남자는 한순간 지난 후, 한숨을 쉬었다.

「분하다.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터인데, 분노가 생길 터인데. 원한을 풀 수 있을 터인데.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형씨는 마술사지.
아아, 이제와서 숨길 필요도 없지.
나도 약간 뒤섞인 거라서. ―――――잡종이라.
이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은 없을지도.」
「―――――」

길가메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남자가 움직일 수 없는 이유 따위는 흥미가 없다.
남자의 신상 이야기 따위는 흥미가 없다.

「네놈이 무엇에 묶여 있는지는 몰라.」

거기서 말을 자르고 오토바이의 엔진을 걸었다.


길가메쉬는 다음에 남자가 눈을 가늘게 한 것을 몰랐다.
눈부신 무언가를 보듯이 눈을 가늘게 한 것을 몰랐다.

「하지만 받아들였다.」

오토바이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런 말은 몇 번이나 말했었지.


내 능력으로는 무리다. 소용없다.
그렇게 말한 자에게 몇 번이나 말했다.」

말을 자르고 오토바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귀에는 얼마 되지 않는 목소리만이 남는다.

―――――맡겨두면 된다.

하아, 하고 남겨진 남자는 한숨을 내쉰다.


자기보다 분명히 연하인 외관의 남자에게 들은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것은 자신의 눈이 흐렸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형씨,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면 안 돼.」

남자는 웃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마토우 사쿠라를 죽인다. 아마도 그것이 가장 지름길일 것이다.


오토바이는 바람을 가르면서 마토우 저택을 향한 길로 나아간다.
길가메쉬는 생각한다.
그것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와 있다, 라고.
한 번 감로를 맛보면 더 이상 멈출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든 것을 다 먹을 때까지, 그 진흙도 마토우 사쿠라도 멈출 리가 없다.

커브를 꺾는다. 바람이 귓가에서 울고 있다.

―――――이제 와서, 정의를 내세울 것도 없다.


길가메쉬는 코웃음을 쳤다.
죽은 60 명의 생명. 원수는 토벌하자.
짐의 백성을 상처입히는 것은 반드시 지옥을 보게 하겠다.
하지만 그 남자처럼 짐에게 분개할 자격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뒤에 두고 가는 경치는 모든 것이 친숙한 것이었다.


몇 년이나 이 마을에서 지냈다.
먹으면 오묘한 것도 있었고.
읽으면 웃음이 나오는 서적도 있었다.
옷을 사는 것은 이 가게로 결정하고 있는 곳도 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길가메쉬의 백성들이다.

―――――판매장의 상인.
먹어보라고 내민 음식.
재미있게 진행되던 서적.
어울린다고 칭찬받았던 양복.
길가메쉬는 생각해낸다.
이질적인 자의 용모 때문인지 상점가의 사람들이 많이 말을 걸어오곤 했다.
자신을 향하던 웃는 얼굴을 생각해낸다.
―――――짐의 백성, 인가.

없어져서는 곤란하다.

그 사람도, 그 사람도, 그 사람도.


떠오르는 얼굴은 무수히 많다.
정이 들었냐고 질문받으면 그 말대로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일, 눈을 떴을 때 그것이 없어져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언제나대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판매장의 사람이 웃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웃는다.
짐은 그것을 보고 희미하게 웃는다.
그래서 좋다. 그것이 좋다.
이유 따위로 번민하지 마라.
분노 따위를 느낄 자격 따위는 없다.
알고 있다.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없어지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하.」

오토바이가 바람을 가른다. 세계를 방치하고서.


상대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악.

「이유 따위는 그걸로 충분하겠지―――――!」

영웅왕은 웃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따위는 바로 그 옛날에 떠맡고 있었다.
그것을 빼앗겠다면, 그 건방짐을 깨닫게 하면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이여.
네놈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 짐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짐의 이름은 길가메쉬.
인류 최고의 영웅왕이리니.

오토바이는 마토우 저택 앞에서 멈추었다.


마토우 저택은 기묘하게 생각될 정도로 조용하다.
사람의 기척도 없다. 그 늙은 벌레의 기척조차 희박하다.

「―――――허탕을 쳤나.」

혀를 찬다. 그 늙은 벌레의 일이다.


본체, 아니, 핵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부분은 이미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길가메쉬가 여기까지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쌔신이 요격하려고 오지도 않는다.
혹은 잠복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왜 기습을 걸어오지 않는 걸까.
오토바이에 아직도 타고 있는 자신은 지금, 정말로 빈틈 투성이일 터인데.
딱, 하고 손가락을 울렸다.
길가메쉬의 배후에 어느 사이에 떠올라 있던 보구가 마토우 저택을 차례차례로 파괴해 나간다.
뭐든지 무너뜨려 놓아서 손해볼 것은 없다.
적의 진 같은 건 없는 쪽이 좋은 것이 당연하다.
희미하게 한숨을 토했다.
그럼 지금부터 어디에 가야하는 걸까.
또 밤까지 기다릴까.
그러나 상대가 나오는 태도를 본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
맞부딪히지 말고 주위를 둘러볼까.
길가메쉬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스륵.

「뭐지?」

공포심. 아니, 이건 뭐야.


잘린 왼팔의 상처자국이 아파진다.
키릭, 라고 강렬한 기척을 발하는 쪽을 노려본다.
진흙의 기척과는 다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다.
이렇게까지 진한 기척은 없다.

「―――――그런가.」

삼켜진 거냐, 계집.


길가메쉬는 으득, 하고 이빨을 갈고 오토바이를 발진시켰다.

그렇게 목표로 해야 하는 곳은 "전 세이버의 마스터"의 집이다.

길가메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일"은 끝나 있었다.


에미야 저택의 뜰에 쓰러져 있는 두 명의 마술사와 잠시 멈춰서는 한 명의 서번트.
뜰의 초목이 시들어서 진흙의 잔향을 느끼게 한다.
사락, 하고 지면을 소리를 내면서 밟아았다.
라이더가 지금 눈치챘다고 말하듯이 얼굴을 이쪽으로 향한다.

「―――――누구시죠?」

라이더가 말한다.
길가메쉬는 대답하지 않는다.
쓰러져서 엎드려 있는 린에게 손을 뻗었다.
안색은 창백함을 넘어서 흙빛이 되어 있다.

「마력을 전부 빼앗긴 건가.」

이번에는 라이더가 침묵하고, 얼굴을 숙이고 입술을 깨물고 있다.

「뭐하고 있나. ―――――네 녀석이 처치하지 않으면 죽을 거다.」

그대로 린을 들어올려서 라이더에게 던진다.


라이더가 당황해서 그것을 받아들였다.
안대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지만 노려보고 있겠지.

「여자를 다루는 건 귀찮다.


수컷 잡종은 내가 옮기겠다.
그 녀석은 네 녀석이 옮겨라, 라이더.」
벌써 길가메쉬가 시로의 소매를 잡고 있다.
하지만 온전하게 옮길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질질 끌면서 툇마루를 향해 간다.

「사………쿠……, 라.」

시로가 목소리를 흘렸다.


정신을 차린 것으로 여기고 관심을 가지지만, 눈꺼풀이 닫혀진 채 그대로다.
눈에는 눈물이 떠올라 있었다.
칫, 하고 혀를 찬다.
길가메쉬가 시로를 양손으로 안아들고 툇마루에 흙이 묻은 발로 비집고 들어갔다.

「라이더, 뭘 멍하니 하고 있나. 옮겨라.」

곁눈질로 라이더를 보고 말하고 길가메쉬는 안쪽으로 사라져 갔다.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라이더였지만 마스터의 명령도 있다.
시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된다.
팔 안의 린을 회복시키고 라이더도 에미야 저택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신발을 벗고.

길가메쉬는 라이더에게 자신의 일을 가볍게 설명했다.


전회로부터 잔류하고 있는 서번트라는 것만을.
너무 많이 말하면 경계심을 갖게 해서 최악에는 싸우게 될 수도 있다.
솔직히 쓸데없는 수고는 하고 싶지 않았다.
왼팔의 상흔이 손상을 입는다.
창고 안에 있던 보구를 사용해서 암컷 잡종의 마력을 보충하고 있다.
수컷 쪽은 딱히 직접 손을 댈 것도 없이 내버려두면 눈을 뜰 것이다.
가벼운 쇠약함이 보였지만 무시해도 좋다고 판단했다.

「―――――자, 이야기하는 걸 허락하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말해라. 라이더.」

라이더는 침묵하고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있을 뿐이다.
길가메쉬는 눈을 가늘게 했다.
죽일까, 그런 사고가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른다.
이렇게까지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마토우 사쿠라』와 관계가 깊다……….
결국은 마토우 사쿠라의 서번트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그것에게 삼켜져도 주군은 주군이라는 것인가.

「뭘 웃고 있는 겁니까, 아처.」

자신이 웃고 있었나, 하고 생각하고 입술을 만졌다.


확실히 미소의 형태로 일그러져 있다.
조소라고 부를 수 있는 미소로.
「아니, 아무것도. 그런 주군에게 충성하느라 고생이 많다.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라이더에게서 살기가 피어오른다.

「정정해주십시오, 아처.」

그러나 길가메쉬는 전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답한다.

「닥쳐라, 라이더. 그 이상의 말을 하면 반역이라고 간주하겠다.」

길가메쉬의 배후에는 이미 무수한 보구가 떠올라 있었다.


이 거리에서도, 옥내에서도 지연을 취할 생각은 없다.
기병 정도는 일격으로 죽일 수 있다.
배후의 보구에 숨을 집어 삼켰는지 라이더가 망연한 중얼거림을 흘렸다.

「그것은.」
「짐의 모든 것이자 진정한 작품이다.
서투른 몽상을 안고 시시하게 죽지 마라. 라이더.」

라이더는 그 말을 듣고 살기를 지웠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인가.
아마 후자일 것이다.
모든 것은 주군을 위해서인가.
지금 자신이 죽으면 그 영혼은 마토우 사쿠라에게 흘러든다.
그렇게 되면 지옥의 괴로움을 맛보는 것은 마토우 사쿠라다.
흠, 하고 길가메쉬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목을 베어서 마토우 사쿠라를 괴로워하게 하는 것도 여흥일까.
자신의 서번트를 손 안에 넣지 않았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라이더에게 애착이 있다는 거겠지.

―――――죽일까?

한 번 조용히 사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성배를 완성시킬 수 있는 도움을 자신이 할 필요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라이더를 가까이 놓아두면 마토우 사쿠라가 라이더를 삼키기 위해 스스로 올지도 모른다.
딱, 하고 손가락을 울려서 보구를 사라지게 했다.
패를 사용하는 것을 실수해선 안 된다.
길가메쉬는 차가워진 사고로 생각한다.
싸움은 뜨겁게. 책략은 차갑게.
선택하고 이겨내는 것이 영웅왕의 역할.

「뭐 좋다. 라이더, 사라져라.


이 잡종들에게 이야기를 듣겠다.
네 녀석이 눈앞에 있으면 목을 베어버릴 것 같으니까.」

라이더는 말없이 일어서서 자취을 감추었다.


영체화한 걸까.
기척이 없다. 정말로 근처에서 없어진 것 같다.

「그럼―――――」

길가메쉬는 치료에 사용한 구급상자에서 붕대를 꺼낸다.


빙빙, 하고 자신의 왼팔의 상흔에 감았다.
아픔이 멎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두 마리의 잡종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떻게 된 거지.」

수컷 잡종은 사쿠라라고 말했다.


확실히 세이버의 마스터였던 잡종이다.
과연 이 녀석은 그 기사왕을 삼킨 것이 마토우 사쿠라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아니다. 알고 있든, 알지 못하고 있는 건 관계가 없다.
그 기사왕을 진흙에게 먹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백계에 처할 죄상이 있다.

스윽, 하고 손을 뻗었다.
또 흐르고 있던 눈물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닦는다.

「웃기는군. 남자가 경솔하게 우는 것이 아니다.」

한숨을 섞으면서 말했다.


여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는 남자 따위는 죽일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럼 정말로.

「―――――어떻게 된 거지.」

길가메쉬는 혼자서 한숨을 쉬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서 길가메쉬는 숲을 걷는다.


오토바이는 숲에 들어오는 곳에 두고 왔다.
그 선택은 정답이었던 것 같다.
나무 뿌리가 곳곳에 만연해서 도저히는 아니지만 오토바이로는 나아갈 수 없다.
팔을 주머니에 꽂고 걷는다.
역시 한쪽 팔이라면 밸런스가 나빠서 이상한 곳에서 비틀거리고 만다.
핸디캡이 있지만,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다.
여기에는 지금 자신밖에 없다.
아니, 앞으로 조금이면 마토우 사쿠라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을까.
자, 우선은 나와 똑같이 오른팔을 뜯어서 잘라주자.
검으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뜯어서 잘라주자.
고통도, 놈의 행위도 잊지는 않았다.

고성이 보여 왔다. 희열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길가메쉬.


그렇다, 이 감각이다. 흠칫, 하고 몸이 떨렸다.
전장의 공기.
그렇다, 이것이다. 이것을 잊고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쳐부순다. 그것은 즐겁다.
웅크리고 있는 자가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것이 유쾌하다.
길가메쉬는 고성의 문을 향해 보구를 사격했다. 그 수는 스물 넷.
어떤 것이라도 전설급이자 필살이다.
고성의 문이 무너지자 보이는 인트랜스 홀.
거기에 검은 성배가 있다.
길가메쉬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당신, 누―――――」

사쿠라가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길가메쉬의 동작에 의해 차단되었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재차 보구가 발사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쿠라에게 닿지 않고 주위의 벽이나 바닥을 도려냈다.

「이런 때, 그래, 이런 때에 어울리는 말이 있지―――――.」

사쿠라 앞에 세이버가 나타난다.


길가메쉬가 그 진홍의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문답무용이라고.」

퍼부어진 보구의 수는 세는 것이 불가능.


차례차례로 나타나는 그것은 폭력의 홍수이다.
바닥을, 벽을, 천정을, 그리고 세이버의 육체마저도 도려낸다.
세이버가 무언가를 말한다. 자신에게는 아니다. 자신의 마스터에게다.

「버………를,………불러……」

붕괴되는 파편이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한다.


사쿠라는 머리를 움켜쥐고 있다. 공포인가.
그 표정을 보고 길가메쉬는 미소를 깊게 했다.
그럴 것이다. 몸에는 새겨지고 있다. 사지를 절단한 이 보구의 맛이.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나온 보구는 조금 전의 배.
세이버는 혀를 차고 입술을 꽉 다물었다.
비장하지 않았다. 절망도 아니다.
―――――이상하다.
길가메쉬는 거기서 생각했다. 세이버가 거리를 좁혀오지 않는다.
저것은 검사다. 그렇다면 접근전이야말로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 이상으로 보구의 무리를 앞에 두고 조금 전부터 세이버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런 것은 서늘한 바람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 사격을 멈추려고 다가오지도 않는다.
무수한 보구가 세이버를 쏘라고 강요한다.
확실히 세이버는 아름답다. 될 수 있으면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적인 이상 봐주는 건 없다.
불가시의 검이 검게 빛난다.

「바보같은. 저게 엑스―――――」
칼리버인가. 길가메쉬가 말을 흘렸다.
확실히 수많은 보구 중에는 선성과 악성이 있다.
하지만 저 강력함은 무엇인가.
오히려 그 검이 발하는 황금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어둠이 강력함을 보이는 것일까.

「―――――큭!」

왠만한 보구로는 격멸할 수 없다.


지금 정말로 휘두르려 하고 있는 기사왕의 필살검은 영웅왕조차 베어버릴 것이다.
검은 성검으로부터 휘몰아치는 막대한 마력 때문에 발사한 보구가 빗나가서 차례차례로 노린 것과 다른 장소에
꽂힌다.
에아를 뽑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력이 충분할까.
육체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무리다.
왼팔의 상흔은 진흙에 당한 탓에 고통이 그치지 않는다.
마치 성질이 나쁜 감기 같다.

「약속된――――――――――」

늠름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렇게까지 타락해도 네 녀석의 목소리의 낭랑함은 변하지 않은 거냐. 기사왕이여.
망설인다. 망설일다. 망설인다.
에아를 발사하면 이 장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불리해진다.
지금의 세이버와 길가메쉬는 마력의 보유량이 다르다.
상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천천히 살해당할 뿐이다.

자기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고오오, 하고 귓가에 소리가 울렸다.

지금의 세이버는 표현하자면 용일 것이다.


사람이 외경을 보이는 환상종 그 자체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을 쳐부수는 것은 즐겁다.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당하는 것도 이렇게 유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길가메쉬는 사고 중에 이미 판단하고 있었다.
여기는 물러난다. 수육되었을 세이버는 예상외다.

「――――――――――승리의 검!」

섬광이 눈을 가렸다.

「지금은―――――네 녀석이 강하다!」

외침과 동시에 무수한 보구를 쏘기 시작한다.


검은 빛을 일시적으로 차단하고 날아가버린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하얀 성배를 억제하면 정식적인 성배의 기동은 할 수 없다.
검은 성배가 예상 이상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해도, 진짜마저 제어해 두면 성배에 대한 간섭 정도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있다. 당장 하얀 성배를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준비를 해두자.

「―――――사쿠라!」
「잠깐, 시로, 안 돼! 지금의 사쿠라는 보통이 아니야!」

그 목소리를 듣고 길가메쉬의 머리는 한순간에 끓어올랐다.

저 멍청한 놈, 상황도 모르는 거냐――――――――――!!

길가메쉬의 움직임이 한순간 멈춘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성검의 일격이 길가메쉬에게 들이닥친다.
검은 섬광이 일직선으로 모든 것을 다 태웠다.
길가메쉬는 한 개만 시로 쪽으로 보구를 날리고,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방어에 돌렸다.
스스로 후방으로 날아서 물러나기 쉽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순간의 열과 충격. 고성 밖으로 튀어나와 나무에 몸이 부딪혔다.
길가메쉬는 간신히 화상 정도로 끝났다.
자신의 보구들이 이토록 믿음직스럽게 생각되었던 것도 오랜만이다.
시로에게 날린 일격은 노린대로 어깨에 꽂혔고, 시로는 뒤에 있는 유리창을 부수고 밖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안고 있던 이리야도 함께.
다소 난폭하지만 바보에게는 좋은 약이겠지.
상처가 아프지만 전력을 다해 일어섰다.
시로들이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되는 장소로 가자, 시로가 웅크리고 있고 팔 안에는 이리야가 안겨 있었다.

「잡종, 네놈은 바보로군.」


「무슨, 짓이야.」

시로는 이리야를 떼어놓고 자신도 일어섰다.


어깨에 박힌 검을 뽑아낸다.

「앞으로 조금이었다면 사쿠라를」


「앞으로 조금 저기에 있었다면 죽어 있었다. 멍청이.」

길가메쉬는 그렇게 내뱉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빨리 여기에 온 것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걸 말할 필요도 없으니.

「철수한다. 잡종. 여기에 있어도 이미 할 수 있는 건 없다.」

길가메쉬가 달리기 시작한다.


시로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했지만, 이리야가 살짝 주의를 주자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에서 한층 더 큰 소리가 난다.

『■■■■―――――!!』

「헤라클레스냐!」
길가메쉬가 말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평상시의 자신이라면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한쪽 팔. 그리고 마력 공급이 전혀 없는 상태로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달린다.

나무들 사이를 정의의 아군과 하얀 성배, 그리고 영웅왕이 질주한다.

길가메쉬의 눈앞에 있는 나무들이 전부 분쇄된다.


보구가 무수히 난무해서 또 큰 나무를 분쇄했다.

「달려!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정도라면 네놈이라도 할 수 있겠지, 잡종!」


「큭, 무리한 말을 하고 있잖아!」

이리야를 안고서 시로가 질주한다.

「헤라클레스는 다리가 느린 것 같군. 결국은 둔해빠진 소인가!」


「버서커는 그렇지 않아!」

이리야가 외쳤다.

「적을 옹호하고 있을 상황이냐! 잡종, 더 빨리 달려!」

경치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시로는 필사적으로 길가메쉬의 뒤를 쫓았다.

「―――――칫.」

혀를 찬다. 버서커가 울리는 굉음이 들리고 있지만 아직 멀다.

「여기서 네놈이 오는 거냐―――――어쌔신!」

그 외침과 동시에 시로에게 다크가 날아왔다.


그것 모두를 영웅왕의 보구가 튕겨내서 날려버린다.
발을 멈춘 길가메쉬.

「이봐, 너, 뭘 하는 거야!」
「적과 대립할 때는 발을 멈추는 거다. 그것이 서번트라면 더욱 그렇지.
가라, 잡종. 이대로 쭉 가면 나갈 수 있을 거다.」

시로는 한순간 망설였지만, 팔 안의 중량감을 깨닫고 달리기 시작했다.

「너! 다음에 만나면 이름을 가르쳐줘! 언제까지 너라고 부를 순 없으니까!」

그리고 시로가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길가메쉬는 큭, 하고 웃었다. 웃기는군, 이라고 중얼거린다.
남은 것은 영웅왕과 해골가면.

「어쌔신. 잘 왔다.」
길가메쉬의 뒤에 무수한 보구가 떠오른다.

「네놈에게서 그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웅왕.」


「―――――호오.」

길가메쉬는 눈을 감고 웃었다.

「어쌔신의 랭크는 확실히 미천하지.


하지만 우리들이 전쟁하던 시대에 살아 있던 사람 중에서 어쌔신을 바보취급할 수 있는 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그보다 더하지, 예를 들자면」
「나 같은 것, 이라고 하는 건가.」
「그렇다.」

눈을 뜨는 길가메쉬. 한쪽 팔을 올리고 딱, 하고 손가락을 울렸다.

「그런 고로 네놈을 여기서 죽여주지. ―――――다시 말하마. 잘 왔다, 어쌔신.」

보구의 비. 그것은 일격으로 어쌔신을 죽이고도 남는 것이다.

「날 그것으로 죽일 수 있을까, 아처.」

나무들을 날려버리고 들이닥치는 보구를 향해 어쌔신이 발을 내디뎠다.

「그렇다면 봐라. 어쌔신의 칭호는 살인의 칭호,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위다.」

마치 보구의 비를 풀지 않듯이 발을 디딘다.


길가메쉬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묻겠다, 아처. 그 보구. 역시 네가 겨누고 있는 건가.」

피하는 행동도 없다. 그저 단순하게 똑바로 걸어온다.


길가메쉬는 한기를 느끼고 움직였다.
자신이 조금 전까지 있던 곳에 다크가 꽂혀 있다.

「아니겠지. 이렇게나 많은 숫자다.


당연히 표적을 자동으로 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쌔신이 걷는 것을 멈추었다. 조금씩 스피드를 올린다.

「하지만 그 『자동으로 노리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


마력인가, 기척인가, 그렇지 않으면 보고 인식할 수 있는 모습 그 자체인가.」

해골가면이 웃는다.

「―――――기척 차단. 알 수 있겠나, 영웅왕.」

어쌔신이 사라진다. 아니, 서번트의 스피드라고 해도 같은 서번트인 길가메쉬다.


간파할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는 낼 수 없을 터.
「까불지 마라, 하찮은 놈!」

전방위에 보구를 사출한다.


지면을, 나무를 도려낸 길가메쉬의 보구는 주위를 공터로 만들었다.

「나에게 그것은 맞지 않는다. ―――――너에게는 유감이지만.」

베여서 쓰러진 나무나 도려낸 지면은 다리를 디딜 곳을 나쁘게 하는 것으로 끝났다.


길가메쉬는 움직인다. 멈춰 있으면 살해당할 것이 뻔하다.

「―――――나와 너는 매우 궁합이 좋은 것 같군.」

목소리조차 어디에서 들리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다리를 디딜 곳을 나쁘게 한 것이 실패라면, 게이트 오브 바빌론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치명적이다.


게이볼그를 손에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사락, 하고 다리를 움직여 무사한 나무에 등을 댄다.
―――――옛날을 생각해낸다. 갑자기 그런 것을 생각한다.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다. 강함에 도달하기까지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다.
진홍의 창에 눈을 떨어뜨린다.
기척을 잡을 수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 스피드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볼그라면 찔러서 꿰뚫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다. 으득, 하고 이빨을 간다.
길가메쉬는 사용자가 아니다. 소유자이다.
그리고 이 몸은 아처. 랜서의 흉내 따위는 도저히 불가능.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위기는 아니다. 이런 것이 위기라면 조금 전의 세이버와의 교전은 구사일생이었을 것이다.


사락, 하고 낙엽이 소리를 낸다.
―――――낙엽?
자신의 발밑을 본다. 지금은 겨울이다.
게다가 이러한 숲에서는 낙엽을 청소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낙엽의 소리로 어쌔신을 감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당히 여유롭군, 아처.」

소리는 머리 위. 순간에 얼굴을 머리 위로 향한다.


그것이 실수였다.
떨어져내린 것은 다크 여섯. 그리고 어쌔신 자신.
길게 뻗은 외투가 낙하하는 도중에도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다.
진짜는 어쌔신―――――!
판단은 한순간이다. 어디로 피해도 다크를 몇 발 맞게 된다.
그렇다면 맞아도 좋다.
오옹, 하고 게이볼그가 마력을 띠었다. 마나는 없다.
이것은 원전. 이름 따위는 전무.

「받아라, 어쌔신. 영웅왕의 일격을―――――!」


「―――――어림없다.」

푹, 하는 소리가 나면서 다크 두 개가 몸에 꽂혔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웃는다.


인정해야 할 적에게 입혀진 상처는 훈장이다.
절대적인 죽음의 창이 던져져서 어쌔신의 심장을 노리고 달린다.
푹, 하는 육질의 감촉.
―――――성공했다!

「짐의 승리다, 어쌔신!」

확실한 육질의 감촉이 있었다. 꿰뚫었다는 감각이 있다.


그대로 휙 소리를 내면서 어쌔신의 몸이 지면에 구른다.

「뭣―――――!」

그러나 외투 안에는.

「카핫! 네놈도 그 정도냐, 아처.」


「늙은 벌레라니!!!」

거기에는 밀집한 음충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꿰뚫린 음충들이 괴로워하면서 몸을 뒤틀고 있다.

「경악해야 할 것에 경악하고 있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지.


영웅왕, 네놈은 여기서 죽는다.」

그것은 어쌔신의 목소리였다.


순간에 시선을 향한다.

거기에는 얼굴도 코도, 눈시울마저 없앤 무안이 있었다.


번뜩, 하고 다크가 번뜩였다.

「―――――웃기지 마라! 하찮은 놈!!」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왔다.


자칫하면 얼굴이 부딪힐 근거리까지 좁힌다.
목덜미를 향한 다크는 길가메쉬의 귀를 없애는 것으로 끝났다.
푸슉, 하고 피가 분출한다. 길가메쉬는 이를 악물었다.
고통은 덮어둬라. 고통을 느끼지 마라. 고통은, 그래, 고통은 눈앞의 이놈에게.
―――――퍼부어라!
그람, 하르베―, 듀랜달―――――나타나는 보구들.

「그건 통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그건 알고 있다―――――!」
폭풍우처럼 발사되는 보구. 하지만 어쌔신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고 길가메쉬도 더욱 전진했다.
손에는 칼. 그것은 화염검. 그 칼날의 아름다움에 불꽃의 개념을 두른 무장.
목적은 어쌔신이 아니라 지면에 흩어진 낙엽이다.
그 검의 이름은 프란베르쥬. 보통 강철에서 태어난 양손검이다.

「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화륵, 하고 지옥의 맹렬한 불이 불타오른다.


길가메쉬는 어쌔신과 교차하는 순간에 배를 베였는지, 거기에서도 피가 배여 있다.

「웃기는군. 전투라는 건 시야의 넓이다.


승리라는 건 이겨내는 것이자 살아남는 것이다.
적을 타도하는 것은 2 차나 3 차다.」

웃는다.

「네놈의 마스터가 숯이 되겠군.」

어쌔신이 그 얼굴을 억제한다. 외투에 시선을 돌렸다.


이미 대다수의 벌레가 숨이 끊어져 있다.
어쌔신은 망설였다. 그는 충의자이다. 주인의 위기라면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 이상 해도 승산이 없어.」

이 장소는 불리했다. 불꽃의 흔들림은 어쌔신의 거처를 눈에 띄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상황. 불리해졌다. 어쌔신은 실감했다.
이길 수 없다, 라고.
지금은, 이라는 가정이 붙지만 여기서는 이길 수 없다.
어쌔신은 그렇게 판단하고 외투를 주워 주인의 벌레를 팔로 안았다.
가면을 얼굴에 붙인다.

「결판을 내겠다.」
「죽을 텐데도 일부러 도전하는 거냐, 어쌔신.」

조롱하듯이 웃었다.
궁합이 나쁜 것은 아무래도 난감하지만, 이미 드러난 암살술 따위는 얼마든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어쌔신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단번에 나뭇가지에 뛰어서 올라탄다.
해골가면을 잠깐 보이고.

「그것이 어쌔신이다. 영웅왕.」

그 말을 남기고 모습도 기척도 완전히 지웠다.


길가메쉬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는 확실히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살해당하는 쪽은 자신이겠지.
불길을 얼음의 마검으로 지우지 않으면 안 되겠어, 라고 창고에 손을 뻗는다.
하지만 거기서 털썩, 하고 쓰러졌다.

「―――――큭.」

귀, 배, 그리고 몸에 꽂힌 채로 있는 다크.
애초에 계속 그렇게 되어 있었으니 반동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

버서커의 목소리가 들린다.

「따라잡힌 거냐, 잡종……」

무능한 놈, 이라고 내뱉는다.


적어도 목숨을 대신해서 성배를 수호하고 있지 않으면 그 목이 달아난다고 속으로 외쳤다.
몸을 질타하면서 일어선다.

「가야 해.」

뚝, 뚝, 하고 피가 떨어졌다. 죽을 정도는 아니다, 라고 판단했다.


짊어지는 것은 편하지 않다. 하지만 등에 중량감이 없으면 걷는 의미도 없는 것이다.
길가메쉬는 얼음의 마검을 한번 휘둘렀다.
불꽃이 꺼진다. 잠시 생각하다가 상처에도 그것을 댔다.

「―――――윽.」

아팠다. 하지만 피는 멈추었고. 눈이 떠졌다.


어떻게든 걷는다. 만신창이라도. 피로 몸이 더러워져 있어도.

나아가는 영웅왕은 긍지가 강했다.

그만해. 쓰러져버려. 아아, 언제나 들리고 있었다.


무겁다. 그렇게 느낀 일이 없었던 적이 없다.
길가메쉬라는 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무리를 짊어진다.
그 길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불손하거나 광분한 자도 있었다.
사람은 지배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그것들을 모조리 가라앉혔다. 힘이 없는 자가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은 상상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모조리 죽였다. 붉은 대지. 반역하는 자들은 모조리 땅에 처박아 두었다.

지금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보기 흉하다. 비유할 것도 없을 정도로 보기 흉하다.


팔이나 귀도 잘리고, 배는 차갑게 얼어붙어서 피를 멈추고 있었다.
이것이 신조차 두려워했던 영웅왕의 모습인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죽여야 할 것을 죽이고, 원해야 할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자신의 흉한 몰골조차 승리의 첨물일 것이다.

「짐이, 정의―――――인가?」

중얼거린 말은 농담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길가메쉬가 하려고 하고 있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을 타도해서 짐의 백성들을 구한다.
정말 멋진 일이다.

훅, 하고 얼굴을 올렸다. 버서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포효도 외침도 울리지 않고 싸우는 광전사가 있을 리가 없다.
혹은 모든 것이 끝난 건가. 그렇게 냉정한 사고로 생각했다.
툭, 하고 다리를 내디딘다. 그것도 좋다.
그 잡종이 죽어 있다면, 영혼을 몸에 발라 함께 싸우는 일부로서 삼자.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머나먼 곳에서 버서커의 등이 보였다.


그 거체는 온 몸이 진흙에게 범해지고 문드러져 있다.
불쌍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헤라클레스라고 하면 반신. 저렇게까지 더럽혀져야 할 이유가 없다.
세이버조차도 그 정도의 진흙을 쳐낼 수 없었던 것이 의외라고 하면 의외였다.
그 기사왕조차도 무른 부분이 있었던 걸까.
툭, 하고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서 나아간다.
이젠 아무래도 좋은 일인가.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 대 일이라면 그것은 짐의 생명과 맞바꾸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기사왕이라고 해도 구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길가메쉬는 무의식 중에 떨구고 있던 얼굴을 올렸다.

「―――――뭐지.」

거기에는 광전사의 모습은 없고.


붉은 옷감을 나부끼면서 혼자 선 인간의 모습.

그것은 영웅의 탄생이었다. 이 세상에서 방금 태어난 새로운 전설.


사람으로서 태어나 영웅으로 끝난다. 그런 전설.
장소는 조용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말하는 사람이 없고. 세계조차 그 탄생을 가느다란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웅왕은 입술을 열었다.

「잡종―――――.」

그 목소리는 천계였다. 영웅왕. 길가메쉬.

「―――――네놈의 이름은?」

새로운 전설이 입을 열었다.


「에미야, 시로.」

보통 남자의 이름이다. 영웅이 된 보통 남자의 이름이었다.


반신을 그저 격퇴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여자를 되찾기 위해 타도한 영웅의 이름이었다.

영웅왕은 수긍했다. 수많은 흩어짐 중 하나에서.


에미야 시로는 길가메쉬 안에서 에미야 시로가 되었다.

「가자, 잡종. 또 추격자가 오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젊다. 길가메쉬는 웃었다.


이 짐에게 이름을 부르게 하는 영광은 아직 멀었다.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아인츠베른의 숲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보석검. 그것은 길가메쉬를 도리 밖이라고 일컬어지게 하는 것이다.

「너도 가지지 않고 있구나. 그에 가까운 보구도 없는 거야?」


「존재하지 않는다. 짐의 시대에는 마법 따위는 흘러넘치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단순한 발화 마술이라도 그것은 마법이었지.」

길가메쉬는 코웃음을 치면서 토오사카 린에게 말했다.

「계집. 단념해라. 이건 무리다.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술사라면 조금씩 제작해 가면서 제자에게라도 연구를 계속하게 해라.
내 예산이라면 이천 칠백 년 후 정도에는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

비웃는다.
에미야 저택에 도착한 후, 이 계집은 아무래도 예의를 모르는 마술사였는지, 에미야 시로가 다친 이유와 왜
깨우지 않았어, 이 바보 등 여러가지를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용서해주자. 드물게 지금의 나는 기분이 좋다.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짐의 이름을 가르쳐줬더니 이 사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투영하도록 할 수밖에 없나.」


「………터무니없는 소리 마라. 계집. ―――――그 아처의 팔을 가진 잡종에게 만들게 할 생각인가?」
「그렇지만. 어째서 네가 알고 있지.」

가늘어진 눈으로 노려보는 린에게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했다.

「훗. 짐은 영령. 그런 이질적인 존재를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게 이상한 거다. 이 시대에서, 이 단기간에 사람으로서 영웅으로 올라온 거니까.」
「―――――」

입가에 손을 대는 린.

「저기, 길가메쉬.」
「뭐냐.」
「너, 이대로 방치하면 죽어.」
「상처라면 낫는다.」
「왼팔의 상흔도?」

혀를 찼다. 그렇게 잘린 팔은 아직도 고통을 호소해 오고 있었다.

「거기서 마력이 조금씩 흘러나가고 있어.


그런 상태로 용케도 움직일 수 있었구나.」
「푸념을 흘리는 것은 잡종이나 하는 거다.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는 것도 잡종이나 하는 것이다.
짐에게는 관계없다.」

기가 막히는구나, 라고 린은 중얼거렸다.

「근성으로 온 거구나?」

길가메쉬는 재차 코웃음을 쳤다.


침묵을 긍정이라고 여긴 린은 어깨를 움츠렸다.
약간의 침묵. 그것을 깬 것은 린이었다.

「거래하지 않을래?」
「뭐야―――――?」

길가메쉬의 눈이 가늘어진다.

「나라면 그 팔을 보강할 수 있어. 대신에 시로를 돌봐줬으면 해.」


「―――――짐을 사용할 생각이냐, 계집.」
「그래. 사용할 거야.」

린은 웃었다. 장렬한 미소였다.

「이쪽은 바보같이 죽을 생각으로 검을 투영시켜서 여동생을 죽이려 하고 있으니까 말야.


영웅왕이라 해도 뭐든지 사용해주겠어.」

일어섰다.

「―――――시로는 여기에 두고 가겠어. 보석검을 투영하면 이젠 한계겠지.


죽으러 갈 일 따위는 없을 거야.」
「그 녀석은 『사쿠라』에게 집착하던데?」
「―――――응. 그래. 그러니까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거야.」
「데리고 갈지 어떨지 판단하라고?」
「아니야.」

죽을지, 살지. 그것을 결정하게 해줘―――――토오사카 린은 그렇게 말했다.

「가면 죽어. 네가 데려가면 죽어.


그렇지만, 여기에 있으면 살아날지도―――――으응, 살아날 거야.
마토우 사쿠라는 내가 죽일 테니까.」
태연하게 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팔이 떨리고, 주먹에서는 피가 방울져 떨어진다.
길가메쉬는 무표정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죽일 건가. 여동생을.」


「죽일 거야. 여동생을, 그런 거지.」

길가메쉬는 얼굴에 어두운 미소를 띄웠다.

「과연 토오사카의 마술사로군. 계집.


전회에 코토미테에게 희생된 남자도 그랬다. 그런 눈을 하고 있었지.」

그러나 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요동도 하지 않았다.


길가메쉬는 그 미소를 지웠다.

「좋아. 팔을 고치는 것을 허락하지. 그 잡종의 선정은 짐이 하겠다.


하지만―――――네 녀석 혼자서 마토우 사쿠라에게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세이버를 비롯해, 그 늙은 벌레도 죽지 않았다. 어쌔신도 건재하다. 그건 어떻게 할 거지?」
「………라이더에게 협력을 받을 거야.」
「무모하군. 그 서번트는 상당한 충의자다. 그런 주인이라도 목숨을 버릴 심산이다.」

이해할 수 없군, 이라고 덧붙인다.


린이 침묵한다.

「―――――기다려보는 것이 어때.」
「에?」
「잡종의 대답 따위는 직접적으로 나올 거라고 짐은 생각하지만. 그 녀석은 나아가는 걸 주저하지 않아, 절대로.
반한 여자를 위해 반신을 타도하는 남자다. 죽음 따위는 방해도 되지 않겠지.」

「네, 그렇기 때문에 선배는 오지 않았으면 해요.」

그 목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길가메쉬의 팔이 튀어올랐다.


떠오르고 있던 마토우 사쿠라의 환영에 보구가 꽂힌다.

「흥, 과연 바보처럼 정직하게 온 것은 아니었나.」

내뱉어버린다.
사쿠라의 환영은 슬픈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언니나 선배도 제게 오지 말아주세요. 오면―――――분명 죽여버릴 테니까.」

그 사쿠라의 얼굴을 보고 린은 훅,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말과 함께 토해낸다.

「그 반대야, 사쿠라. 내가 널 죽일 테니 그런 걱정은 필요없어.」

팔은 떨고 있지 않았다.

「―――――이제와서 무른 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이 바보.」


린이 말한다. 흔들림도 요동도 없이, 토오사카 린이 말한다.
사쿠라는 그 말을 눈을 크게 뜨고 들었다.

「언, 니.」
「비극의 배우는 어울리지 않아. 꺼져라, 검은 성배.」

길가메쉬가 린을 가리듯이 앞에 섰다.

「서로 칼날을 겨눈 거다. 서로 죽이는 것 외에 무엇이 있지.」

사쿠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길가메쉬의 얼굴도 일그러진다.

「짐의 팔, 그리고 네 녀석에게 삼켜진 생명. ―――――돌려받겠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악.』」


「생각났어요―――――.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서번트………!」
「무의식 중에 내 팔을 삼킨 거냐? 어쩔 도리가 없군.
다음에는 자신의 증오로 죽이러 와라.」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마토우 사쿠라의 환영을 무수한 보구들이 완전히 날려버린다.

「―――――그렇게 하면 증오를 갖고 죽여주지.」

길가메쉬는 중얼거렸다.

Interlude――――――――――

어쌔신은 류도우 사의 동굴 앞에 있었다.


팔 안에 안고 있던 벌레가 도중에 죽어 있었다.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나.」

툭, 하고 벌레를 지면에 떨어뜨렸다.


시체를 소중하게 안고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의 주인은 수백 년을 산 마술사 중의 마술사다.
본체는 따로 있다. 육체의 보충도 시간이 있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력 공급이 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여유가 없는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계약은 끊어지지 않았다.

지하 동굴에 발을 디딘다.
휘잉, 부는 바람이 어쌔신을 가렸다.

여기는 지옥이겠지. 어쌔신은 생각한다.


서번트가 죽은 후에 삼켜지는 것이 성배라면, 이 대성배의 기동식이 있는 이 동굴은 서번트에게 있어서 확실한
지옥이었다.
도저히 천국이라고는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어쌔신에게 있어서는 익숙해진 공기다.
언제나 어쌔신은 지옥에 있었다. ―――――지옥에서 계속 죽였으니까.
뚜벅뚜벅, 하고 어쌔신은 걷는다.
이윽고 대성배의 틈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한 사람의 소녀가 잠시 멈춰서고 있었다.
마토우 사쿠라. 불쌍한 소녀이지만, 동정 이상의 감정은 들끓지 않는다.
마토우 사쿠라의 불행, 마토우 사쿠라가 받은 악의 따위는 어쌔신으로서는 일소로 넘길 정도로 가벼운 것이다.
그가 살았던 곳에서는 여자는 더욱 비참하게 사용되었다.
방안술과 암살술을 배우고 영원히 어둠 속에서 계속 죽인다.
거기에 존엄은 없다. 거기에 행복 따위는 전무.
그저 도구로서 있다. 그것이 일생.
남자 암살자는 눈꺼풀, 코, 입술, 얼굴의 오목하고 볼록한 모든 것을 배제하고 변장술을 배웠다.
그리고 계속 죽이는 운명에 얽매인다. 사용되고, 사용되고, 완전히 사용될 때까지.
자신의 발밑에 죽음의 세례가 얽혀붙을 때까지 계속 죽인다.
그것이 암살자다.

하지만 어쌔신은 자신의 불행을 말하는 취미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성배에게 빌면 자신의 과거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의 행복한 일생을 보내는 과거마저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들어진 모형정원 안에서 웃는 취미는 없다.


거친 사막 속에서, 피를 마구 토하는 삶의 방식이야말로 나의 일생.
―――――그저 묘비에 새길 이름을 원한다.
황야에서 죽어서 자신의 단도를 묘비로 하자.
다만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다.
그것뿐이다.

「마술사.」

호소했다.
대답이 없다. 마토우 사쿠라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술사―――――?」

한번 더 호소했다. 하지만 대답이 없고.


다만 마토우 사쿠라의 입가만이 움직였다.
말이 나왔다.

「―――――세이버.」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이 검은 섬광이 어쌔신에게 덤벼들었다.

「―――――큭!?」

쉬익, 하고 휘두른 성검을 회피한다.


피할 수 없을 속도의 검극은 아니다. 이 몸은 어쌔신.
랜서를 토대로 하는 민첩함과 그 몸놀림이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탁, 하고 한순간에 후퇴했다.
얼굴을 마토우 사쿠라에게 향한다.
가지고 있는 것은 검은색의 검. 검은 성배의 여자가 웃었다.

『사쿠라, 멈춰라!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게냐!?』

그것은 어쌔신의 주인의 목소리.


마토우 사쿠라의 손 안에 있는 내 주인의 목소리다.

「마술사!」

구해야 한다. 신속에 이르는 발놀림으로 어쌔신은 자신의 주를 탈환하러 간다.

「―――――어딜 보고 있습니까. 어쌔신.」

하지만 신속은 신속에게 타도되었다.


가로막는 칼날. 검은 성검.
휘두른 검을 순간적으로 다크로 받아냈다. 당연하다는 듯이 단도가 부서진다.
하지만 모른다. 네 녀석의 강함 따위는 모른다. 앞으로 다리를 내디딘다.
최강의 검을 앞에 두고 어쌔신은 외투를 날렸다. 시야가 교란된다.
세이버를 앞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찮은 자, 네놈은 여기서 사라져라.」

세이버의 목소리가 등을 친다.


전방에서 마토우의 주인의 절규가 들렸다.
계약이 끊어졌다. 라인이 끊겼다. 그것은 즉 주인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지금 등쪽에서 다가오고 있다.

바람을 가른다.
그렇게 표현해도 될 일격이다. 등으로부터 베이는 것은 어쌔신에게 잘 어울리는 말로일까.
하지만 어쌔신은 마음 속으로 외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쌔신은 이름을 갖고 싶어한다.
하찮은 꿈이겠지. 하찮은 소원이겠지.
지금 등을 베려 하고 있는 기사왕의 소원에 비하면, 자신의―――――왜소한 암살자의 소원 따위는 작은
것이겠지.
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양보해선 안 되는 것이다.

「날 얕보지 마라앗!」

그래, 날 얕보지 마라, 기사왕.

기척을 차단하고 자신을 공기라고 착각해라.


몸에 착용한 단도를 이용해서 타도해라.
언제나 같다. 상대를 죽여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시체의 끝에 자신의 이름이 쓰인 묘비가 있다면.
그때까지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계속 죽이자.
몸을 틀었다. 눈앞에 들이닥치는 성검. 공기가 귓가에서 울고 있다.
해골가면에 칼날이 먹혀들었다. 세계가 느려진다.
가장 뛰어난 것은 세이버.
가장 강한 것은 버서커.
최고 속도는 랜서.
최고의 판단력은 아처.
보구라면 라이더.
마술이라면 캐스터.

그럼 어쌔신은―――――?

머릿속에 황금의 왕이 떠오른다.

나는 그에게 뭐라고 말했던가. 결판을 내자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가면이 갈라져 간다. 얼굴이 갈라져 간다.
―――――죽을 수 없는 이유가 늘어날 뿐이다.

온전히 서로 맞부딪혀서는 이길 수 없다.


암살자는 진흙을 뒤집어쓰고, 모멸받아도, 그래도 살아남는 것이다.
몸을 옆으로 흘리려고 한다.
가면이 얼굴의 가죽과 함께 벗겨져 간다.
격통,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어쌔신은 웃고 있었다.

―――――어쌔신이라는 클래스에게 유리함 따위는 없다.


마스터라면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서번트를 암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쌔신은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연구한다.
약자는 강해지려고 한다. 강자처럼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다.
살아남으려고 강해진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기긱, 하고 얼굴의 근육을 칼날이 서서히 떨어뜨려 간다.
어쌔신은 웃는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입가의 미소는 보는 것을 압도했다.
재차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외친다.

――――――――――난 죽지 않는다!

대성배의 틈에 피가 튄다.
카앙,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가면이 떨어졌다.

보석검의 투영은 역시 부담이 심한 것이었다.


길가메쉬는 도소에서 뛰듯이 해서 쓰러진 에미야 시로를 내려다 보고 있다.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사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일어선 시로의 눈은 어딘가 공허하고 언동도 이상하다.
단편적으로밖에 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계집, 잡종을 쉬게 해라.」

한숨을 섞으면서 말했다.


린은 보석검 투영의 성공에 기뻐하고 있느라 시로의 상태에 핀트가 맞지 않고 있었다.
하기야 마술사가 자신이 계속 원해 온 결과의 일단에 접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이리야는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에미야 시로가 가야 할 운명을 예측하고 있는 것일까.

린이 길가메쉬의 말에 수긍하고 시로에게 얘기한다.


하지만 시로는 공허한 눈을 약간 움직일 뿐이다. ―――――이대로 폐인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린이 한번 더 얘기하려고 했을 때 시로의 얼굴이 흔들렸다.
눈의 초점이 합쳐진다.
팔에서는 피가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

손바닥을 찢고서 붉은 보석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얼마나 강력하게 꽉 쥐었다는 것인가.
모두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시로에게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바로 그 본인은 자신의 손의 상처를 자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미 통각조차 미친 걸까.
린이 그 손등을 뚫고 나와 있는 보석을 보고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두세 가지 대화 후, 에미야 시로를 여기서 쉬게 해 두는 것이 결정된다.
세 사람은 일어서서 도소를 나왔다.

「―――――뭐야, 저건.」

린이 입술을 깨문다.

「뭐야, 저건!!」
「어머, 저건 우리들이 바란 거잖니, 린.」

이리야가 얇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 담겨진 감정은 자조라고도 불러야 할 것이다.

「잘 되긴 했어―――――그렇지만 마술의 기본은 등가교환이지?


그렇기 때문에 린. 그 보석검만큼 시로는 깎여버린 거야.」
「그 성배가 말한 대로다.
계집,―――――각오의 시간은 바로 그 옛날에 끝나 있다.
잡종으로서도 각오는 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의 이상을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했던 거다. 그 의미를 생각해라.」
「―――――알고 있어.」

으득, 하고 린이 이빨을 꽉 깨문다.

「바보같은 소릴 하고 있잖아. 난.
그래, 이해하고 있고, 각오도 되어 있었어.
시로는 신뢰하고 있었고, 응해주었어.
―――――그렇지만 이건 터무니없잖아!」
눈에는 눈물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흘리지는 않는다.

「나는 그 녀석에게 죽으라고 했어!


보석검을 투영한다는 건 그런 일인 걸!
―――――알고 있어!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 녀석은 그 녀석이었어!
뭐야, 뭐냐고, 이건………」

고개를 숙였다.

「아처와 잡종은 동일 인물이었다.


―――――하, 영령의 팔을 달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을 사용할까 생각했는데.
자신의 팔이다. 확실히 그렇게 익숙하게 한 것도 당연하지.」

린도 어느 정도는 깨닫고 있었으리라.


확신한 것은 그 보석을 보고 나서였지만.
길가메쉬는 말을 계속한다.

「결국 그 잡종은 그런 삶의 방법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이리야는 동의했다.

「결국 시로는 시로니까. 사쿠라의 아군이 된다고 결정해도 시로는 시로니까.」


「그리고 말했지, 계집. 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지.
바보에게 죽을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렇게 말했지.
―――――웃어라, 계집. 바보는 죽을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웃어줘라. 원하고 있던 것은 이미 네 손 안에 있잖나?」

보석검에게 시선을 향한다. 그것은 일곱가지 색깔로 빛나는 미려한 단검이다.


린은 길가메쉬의 말을 듣고 보석검에 눈을 떨어뜨렸다.
으직,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그래, 정말이지. 난 쓰레기야―――――」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 것과 동시에 이빨을 토해낸다.

「『마음의 군살』이구나. 아아, 완전히 자신에게 구역질이 나.」

길가메쉬는 희미하게 입가를 비틀어지게 했다.


실로 좋은 여자였다.
모순을 안으면서 모순을 자각한다.

「어쨌든 다음은 네가 시로를 데리고 갈지 아닐지 결정하는 것뿐이야.」

왼팔의 상흔은 이미 보수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보다는 다소 상태가 좋다.
거기서 린이 길가메쉬를 가볍게 노려보고 말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결정할 거지?
내가 말해두기는 좀 그렇지만, 시로는 꼭 간다고 할 거야.」
「안에 의사를 숨기는 것은 좋지.」

길가멧슈는 입가의 미소를 크게 했다.

「하지만 그것을 말로 나타낸다는 것은 더욱 더 좋은 것이다.」

린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리야는 아까부터 혼자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로는 기우뚱, 하면서 일어선다.


눈앞에는 익숙한 집의 현관. 다만 거기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 서 있다.

「왜 그러나, 잡종.」

길가메쉬가 웃었다.

「여기까지 오면 된다. 내가 있는 곳까지, 이 저택의 문까지 오면 되는 거다.」

―――――그러면 동행을 허락하지. 그렇게 영웅왕은 중얼거렸다.


라이더는 시로를 보고 있다. 조금 전에 손을 대려고 했지만 시로에게 제지당했던 것이다.
탁, 하고 다리를 내디뎠다.

「―――――느려.」

그 한 마디와 동시에 보구가 날아온다. 하지만 살상에 이를 듯한 보구는 아니다.


가령 검이 날아왔다고 해도 그것은 칼끝이 아니라 자루를 향해 있다.
또 날려졌다. 이것으로 벌써 세 번째.

「잡종. 시간도 없다. 단념해라―――――아무도 네놈을 책망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역할이 있다. 대장장이는 기사의 흉내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기사도 대장장이의 흉내를 낼 수 없는 거다.」

거기에 꾸짖는 것이 있으리라.

「짊어지는 왕은 여기에 있다. ―――――무릎을 꿇어라, 잡종.


네놈은 네놈의 역할을 완수했다.」

하지만 시로는 우직하게 일어서서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락, 하고 모래를 밟는다. 몇 번이나 밟은 모래를 밟는다.

「―――――잡종.」

눈을 감는 길가메쉬.

「네놈, 착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


설마 자신은 죽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탁,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양상이 바뀌는 보구들.


그것은 길가메쉬의 평상시의 전투 스타일.

「잠깐, 길가메쉬! 너―――――」


「닥쳐라, 계집. 나에게 의견을 꺼내는 건 불허한다.」

그 한 마디로 린이 말을 멈춘다.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안심해라, 운이 좋다면 죽지는 않는다―――――」

그 한 마디와 함께 보구가 발사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로의 주위를 꿰뚫는 거에 머문다.
시로는 주위를 보지 않고 나아가고 있었다.
숙이고 있던 얼굴을 올리면서 말을 중얼거린다.
지금 시로를 보는 자가 있었다면, 그는 검의 언덕에 있다고 표현할 것이다.
수많은 보구에 둘러싸인 에미야 시로는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기억하고, 있어.」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면서 보구가 날았다. 시로의 뺨을 스친다.

「어떤, 기억을 잊어버려, 도」

다리를 더욱 세게 앞으로 내디딘다.


린이 눈을 부릅떴다. 소년의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보기 흉하다. 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울지는 않았다. 울면 꺾여버리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울어버린 에미야 시로는 보기 흉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상처입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나아가는 소년의 모습이 이렇게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일까.

「사쿠라의, 웃는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

몇 번이나 밟아 울린 모래. 몇 번이나 밟은 에미야 가로 이어지는 길.


사쿠라와 몇 번이나 걸었다. 몇 번이나 밟은 이 모래.
달리기 시작했다. 보구조차 뒤로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소녀는 60 명 이상의 인간을 죽였다.」

길가메쉬가 중얼거린다. 그것은 마토우 사쿠라의 죄의 죄상이다.

「그것을 용서할 수 있겠나, 잡종―――――!」

물음에 대답은 없다. 오로지 돌진하고 있다.


보구에 의한 공격이 그치고 있다.
「결정했어―――――!」

용서한다. 용서한다. 용서한다. 용서한다.


자신에게 그녀의 죄의 죄상을 묻는다면 그 이상의 판결은 없다.
에미야 시로는 정의의 아군이 아니다.
불합리하겠지. 빼앗긴 생명은 마토우 사쿠라의 죽음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던 것일까.

―――――뇌리에 불길의 지옥이 깜박거린다.

알고 있던 것일까.

―――――어둠에게 삼켜지거나 먹힌 사람들의 절규가 들린다.

알고 있던, 것일까.

가슴의 안쪽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울린다.


이상에 반하는 짓이다. 그것은 해선 안 된다.
안에서 생각할 뿐이라면 좋다.
그것은 말로 되지 않았고, 아직도 간과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말해봐라.

―――――에미야 키리츠구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동경했다. 안도의 미소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것조차 잃게 된다.

알고 있던 것일까―――――!

달려나가는 다리가 납처럼 굳어진다. 다리에 얽혀붙는 것은 죽은 자들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다.
그것을 자신 안에 있던 중요한 것과 맞바꿔서 뿌리쳤다.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 불길의 기억. 그것은 깊이 새겨진 죄악.

부서진다.

―――――친한 사람과 맞바꾼 통곡한 분노의 기억. 그것은 괴로운 이상.

부서진다.

―――――단 한 사람, 지옥으로부터 구해준 소중한 사람. 그것은 갈망한 동경.

부서진다.

길가메쉬까지 앞으로 몇 걸음.

「나는―――――누구도 아니야.」

웃지 않는 소녀.
희미하게 웃는 소녀.
언제나 함께 웃었던 소녀.
비오는 날에 운 소녀.
몸조차 일으킬 수 없는데도 웃는 소녀.

―――――둘이서 빌었다. 모든 것이 끝나면 벚꽃을 보러 가자.

그것은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소원이―――――어디서 계속되는 희망이었는지는 기억하고 있다.

대지를 밟는다. 한 번 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작은 소원이 아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같은 길을 걸어간다.
떨어지는 일 없이 계속 둘이서.

「―――――나는 사쿠라의 아군이야―――――!!」

보구의 비도, 죽은 자들의 저주도, 과거의 이상조차 뒤로 하고서.


에미야 시로는 외쳤다.

「―――――웃기는군.」

그대로 앞으로 무너진 시로를 한쪽 팔로 받아낸다.

「그 도리는 네놈에게밖에 통하지 않아.


같은 도리로 마토우 사쿠라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잘 외쳤다. 잡종.」

그것이야말로 이 영웅왕이 인정한 자.


도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본인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쌓여 있다.
유일하게 다른 것은 그것을 관철할 수 있을지 아닐지의 여부.
모멸, 조소, 원망하는 말. 그것조차도 밟아서 없애면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만이 가는 길이다.

예전에 자신이 수억의 시체를 겹겹이 쌓고 걸었던 길이다.


길가메쉬는 웃었다.

「라이더.」

이미 가까이에 서 있던 라이더에게 시로를 건네준다.

「네 녀석이 옮겨라.」

한 마디를 하고 길가메쉬는 몸을 날렸다.

「뭘 멍하니 있나, 계집. 적을 쳐부수러 간다.」

검은 라이더 슈트가 한순간에 찢겨졌다.


황금 갑옷을 빛나게 하고, 어깨로 바람을 가른다.
한쪽 팔이 없어도, 정말로 거기서 내뿜어지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영웅왕을 세상에 드러냈다.
길가메쉬는 외친다. 예전에 전장에서 내린 호령처럼 외친다.

「――――――――――성배 전쟁의 개막이다!」

무서운 것은 세이버이다.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어쌔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려워해야 할 것이 마토우 사쿠라이다.

류도우 사의 돌층계에서 옆길로 들어가 대성배가 있는 장소로 향한다.

「그래, 무엇보다도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쿠라를 지키고 있는 벽이 두껍다는 것.」

린이 중얼거린다.

「세이버는 말할 것도 없고, 어쌔신도 어두운 곳 안에서 난전이 되면 마술사인 우리는 정신이 들면 목이 달아나고
있다는 것이 될 수도 있어.」
「서번트도 예외는 아니다. 그건 살인에 특화된 서번트다.
죽인다고 하는 한 분야의 천재다. 살인의 영웅이지.
짐으로서도 될 수 있으면 상대로 하고 싶지는 않다.」

길가메쉬가 분한 듯이 중얼거린다.

「―――――허나 벽이 두껍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들이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라이더가 말한다. 등에는 아직도 시로가 업혀 있었다.

「성배는 아직도 기동하고 있습니다. 성배에 흡수되어야 할 서번트는 여섯.


어쌔신, 세이버, 그리고 제가 남아 있는 지금, 성배의 기동에는 약간 여유가 있지요.」

길가메쉬가 라이더의 의견을 듣고 조소했다.

「라이더, 네 녀석은 정말로 자신의 주인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뭘 위한 희생이냐. 뭘 위한 60 명의 희생이냐.
확실히 종래의 성배라면 효력이 약해져 있겠지.
하지만 우습게 보지 마라. 저것은 무한의 마력의 솥.
비록 불완전한 기동이라고 해도 움직인다. ―――――아니, 마토우 사쿠라가 움직일 거다.」

눈앞에는 동굴의 입구.


그것은 환영의 바위로 숨겨진 지옥의 입구이다.

길가메쉬가 그 입구를 향해 다리를 내디딘다.


모두도 그것을 따른다. 동굴 안의 공기는 놀라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길가메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재차 걷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의 어머니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막 태어난 갓난아이는 살해당해야 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아.」
「사쿠라의 태내에 있는 것이 사쿠라를 조종하는 거야?」

린이 눈썹을 찡그렸다.

「………말하자면 도구다. 이 세상에 증오하고 있는 악의에게는 어머니조차 도구에 지나지 않아.


마토우 사쿠라라는 절차를 통해서 그것이 태어나지.」

마참내 열린 장소로 나왔다. 모두의 다리가 멈춘다.


그 자리에 멈춰서고 있던 것은 최강의 검.

「그렇겠지, 세이버. 마토우 사쿠라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을 낳는 것과 동시에」


「―――――죽겠죠. 그것은 자신을 다루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그것이 탄생한 순간, 사쿠라는 먹히게 됩니다.」

세이버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연다.

「하지만 그것이 주인의 소망이라고 한다면, 검인 나는 따를 뿐.


나는 휘둘러져야 할 검입니다. 거기에 의사는 필요 없습니다.」

길가메쉬는 실망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타락했군, 세이버. 예전의 네 녀석은 아름다웠지만, 지금의 네 녀석에게는 전혀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
「베이지 않는 칼날에서 베이는 칼날이 되었을 뿐. 이것이 접니다, 아처.」

불가시의 성검은 아직도 뽑지 않았다.

「린, 당신은 앞으로. 사쿠라가 당신은 통과시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

가볍게 수긍했다. 손에 쥐고 있던 보석검을 다시 잡고 세이버의 옆을 빠진다.

「………토오사카.」

시로의 목소리가 린의 등을 쳤다.


뒤돌아 보니, 라이더에게서 떨어져 자기 혼자서 서 있는 에미야 시로의 모습이 있었다.

「사쿠라를, 부탁한다.」

그것은 토오사카 린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닐 터이다.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려는 소녀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닐 터이다.

「―――――보장은 할 수 없어.」

린은 그렇게 차가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넌 날 과대평가하고 있어. 난 만능이 아니라 조금 힘이 있을 뿐인 아이야.」

시로는 고개를 저었다.

「토오사카는 강해-----그렇지 않았다면 망설이지 않았어.


마술사로서 임한다면 사쿠라를 죽인다. 언니로서 임한다면 사쿠라의 아군이 된다.
그렇지만 망설인 것은 토오사카의 강함이야.
마술사로서, 토오사카 사쿠라의 언니로서 단호하지 못한 토오사카는 분명 강해.」

린은 차가운 표정을 무너뜨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야, 에미야 군. 나는 물러. 이런 상황에 몰려 있어도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었어.」


「아니겠지.」

시로가 말한다.

「어떻게든 된다가 아니라 어떻게든 해보겠어라는 거겠지.」

린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구나, 라고 한 마디 중얼거린다. 가볍게 수긍했다.
발길을 돌리고 주저없이 걸음을 진행시킨다.

「――――――――――그래.」

그 말을 남기고 토오사카 린은 동굴의 안쪽으로 사라졌다.

세이버는 그 대화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성검은 아직도 그 손에 없다.


시로는 세이버를 본다.

「―――――그만둘 수는 없겠어, 세이버.」


「―――――」

성검을 한순간에 구현화시키고 그 칼끝을 들이댄다.


그 동작이 대답이 되었다.
시로가 다시 말하려고 입을 연다.
하지만 그것은 길가메쉬에 의해 차단되었다.

「물러나 있어라, 잡종.」

길가메쉬는 시로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뒤로 쫓아버렸다.


라이더도 그 상태를 보고 길가메쉬의 옆에 나란히 섰다.
서로 가벼운 눈짓를 했다.

「안대를 벗겠습니다. ―――――원호를.」


「알았다. 마음껏 싸워라.」

나타나는 무수한 보구.


울리는 손가락의 소리. 발사되는 보구. 달리기 시작하는 기병.
길가메쉬는 눈을 가늘게 하고 세이버를 보고 있었다.
검게 물든 갑옷. 검게 물든 성검.
이 추악한 존재가 그 기사왕인가.

(―――――마음에 안 들어.)

사고 도중에 시로가 길가메쉬의 어깨를 잡았다.


「왜 막았어!」

길가메쉬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비뚤어지게 했다.

「잡종―――――」
「뭐지?」

길가메쉬는 창고에서 한 개의 단검을 꺼냈다.


입술의 일그러짐이 명확한 미소가 되어 간다.

「―――――세이버를 구할 생각은 없나?」

시로는 그 질문에 숨이 막혔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라고 있으면서도 실현될 수 없는 소원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가?」
「할 수 있다.」

길가메쉬는 단언했다.

「원래는 나와 라이더가 파상 공격을 계속 걸고 있으면 이길 수 있다.


이전 싸움 때는 마력 부족 때문에 강력한 보구를 날릴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은 없다.」

시로가 시선을 향하자, 라이더와 길가메쉬의 보구가 폭풍처럼 날뛰면서 세이버를 공격하고 있었다.

「역시 보구를 사용하면 곤란하지만, 이 공격 도중에 진명이라도 주창해봐라.」

순간에 꼬치다, 라고 길가메쉬는 웃었다.

「잡종, 그 단검의 효과는 알고 있겠지. ―――――그리고 짐이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내기다.


네놈이 그 검을 갖고 세이버를 찌를 수 있다고 해도, 과연 그것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른다.」
「가능성은?」
「잘 해봐야 3 할. 네 녀석이 세이버에게까지 겨우 도착할 수 있을 확률도 포함해서 말이야.」

길가메쉬가 보구를 한층 더 사출한다.


라이더에게 시선을 보내 손으로 물러나라는 신호를 한다.
순간 라이더가 후퇴해 왔다.

「뭡니까? 지금 건. 세이버에게 시간을 주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마안은 세이버를 향한 채 그대로다.

「그렇다면 빨리 끝내자―――――어떻게 할 건가, 잡종.


나로서는 이대로 세이버를 죽이는 건 참을 수 없다.
저 정도 되는 자는 얼마 되지 않으니까.」

시로는 길가메쉬의 말에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수긍했다.

「하겠어. ―――――내 불찰로 세이버가 저렇게 되었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걸고 싶어.」

그런가, 하고 길가메쉬는 수긍했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어라.」

라이더에게 한 개의 검을 넘겨준다. 그것은 마검 그람.


세이버에게 있어서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검이다.

「라이더는 그것과 네 녀석의 무기를 사용해서 잡종을 원호해라.


나도 다소의 마력을 사용해서 보구를 쏘겠다.」

라이더는 끝까지 말을 듣지 않고 달려나갔다.


길가메쉬는 가볍게 혀를 찼다.
시로도 라이더의 뒤를 따르듯이 앞으로 나왔다.

「잡종.」

시로의 등을 길가메쉬의 목소리가 친다.

「계약을 끊는다는 것은 마토우 사쿠라와의 계약을 끊는다는 의미다.


진흙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계약이 끊어진 것을 상관하지 않고 네놈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

시로는 달리기 시작했다.


라이더가 고함을 울리면서 세이버와 서로 싸우고 있다.

「세이버는 미숙한 나에게 목숨을 맡기고 싸워주었어.」

목소리가 작아서 길가메쉬에게 닿아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시로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광경.
그 아름다움과 고상함에 마음이 뛰었던 기분을 기억하고 있다.
도장에서 정좌를 하고 있던 늠름한 모습은 거기에 기사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검은 진흙과 싸우겠다고 결정했을 때. 그녀는 충고와 함께 자신의 의견을 쾌히 받아주었다.
그 결과, 그녀는 검은 진흙에 그 몸을 더럽히게 되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마토우 조켄이?
검은 진흙이?
그렇지 않으면 추적해온 어쌔신이―――――?

아니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강하고 고상한 그녀를 그런 꼴로 만들어버린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라고 하는 건 잘못되었어.」

길가메쉬에게는 들리고 있을까, 아니,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것은 자신의 결의를 위한 말이기 때문에.

「목숨이라면 이미 옛날에―――――!!」

그 때, 에미야 키리츠구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부터.


빗속에서, 자신 이외에 누구 앞에서도 웃을 수 없었던 소녀를 꼭 껴안았을 때부터.

「――――――――――걸고 있었다고!!!」

날카롭게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보구의 폭풍우 가운데를 파고든다.


라이더가 자신의 존재를 느꼈는지, 그람과 엑스칼리버가 불꽃을 튀기면서 서로를 튕겨 날렸다.
라이더는 크게 후퇴했고, 세이버는 약간 비틀거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됐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하다.

「세이버―――――!!!」

맹렬히 미친 소리를 억누르지 않고 힘껏 외친다.

「시로―――――!?」

예상외의 것을 본 것 같은 눈으로 이쪽을 본다.


그것도 그렇다. 영웅왕의 보구와 라이더의 바람 같은 공격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안의 중압을 견뎌내면서. 그것을 이루어버리는 세이버의 힘에는 아낌없는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 힘을 가지는 그녀를 그와 같은 진흙이 침범하게 해버린 자신은 타기해야 할 소행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돌려주자.
그래, 이것은 돌려줄 뿐이다.
지금까지의 고마움과 쌓여 온 에미야 시로로서 빌린 것을 돌려줄 뿐이다.
단검을 치켜든다. 입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스스로도 뭐라고 말하는지는 모른다. 세이버도 외치고 있었다.
이상하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이버의 아름다운 얼굴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휘둘러 내리친다. 아처의 팔에 따라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던 한쪽 팔 이외의 근육이 차례차례로 끊어져 나간다.

으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 중에 입술로부터 빠지는 소리.


아픔과 그 목소리와 함께. 할 말을 생각해 냈다.
세이버의 성검이 라이더의 쇠사슬과 길가메쉬의 보구의 연격을 받지만, 그런데도 세이버의 팔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라이더의 쇠사슬이 끊어지고, 길가메쉬의 보구가 튕겨 날아간다.
휘둘러지는 성검. 자신을 지켜주고 있던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시로가 빨랐다.

단검의 칼날이 이미 세이버에게 꽂히려는 찰나.


에미야 시로는 입술을 열었다. 아무래도 들어주었으면 하는 말이었다.
반격하는 칼날에 베여서 만약 죽어버린다고 해도 들어주었으면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그래서 중얼거렸다.

「고마워, 세이버. ―――――너에게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어.」


생각이 있었다. 한 번 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고 하는 생각이.
세이버의 부동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린다.

「시―――――」

로, 라고 세이버가 중얼거리는 순간에, 계약 파기의 단도가 가슴에 꽂혔다.

길가메쉬는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결과부터 말해두자. 세이버의 흑화는 풀 수 없었다.
그것도 자명. 저것은 이미 수육한 영령.
계약 파기의 단검으로는 육체 정보까지 고쳐 쓰는 것은 할 수 없다.
하지만, 하고 길가메쉬는 웃었다.
그렇다. 하지만 성검은 예전의 주인을 베는 일이 없었다.
시로에게 맞을지 아닐지의 거리에서 멈춰 있었던 것이다.

시로가 세이버에게서 단검을 뽑아내고, 그대로 손부터 미끄러져서 바닥에 누웠다.

「―――――그걸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세이버가 조용히 말한다. 칼날을 물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할 수 없어.」

시로는 말했다.

「나는………세이버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

에미야 시로의 성배 전쟁은 그녀를 잃었을 때 끝나 있었다.


가령, 한번 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도.
이젠 자신의 검이 되어 달라고는 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잃어버린 령주. 끊어진 인연. 에미야 시로와 그녀의 이야기는 이미 끝나 있었다.
세이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로, 내 손은 이미 피로 더러워져 있습니다. ―――――몇 명이나 되는 인간을 죽게 내버려두었습니다.


그 진흙에 먹히는 인간을 죽게 내버려뒀습니다.」

성검이 시로의 몸에 약간의 상처를 낸다.

「이 검을 봐주십시오, 시로.」

검은 성검. 그것은 지금의 그녀를 상징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칼리반을 꺾었을 뿐이었지만―――――이 검까지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자조한다.

「………미안.」
「왜, 사과하는 겁니, 까.」

짜내기 시작하듯이 목소리를 흘렸다. 눈을 보고 연다.

「나는―――――내가 후회하고 있지 않는 것은!


내가 단 하나만 자랑할 수 있는 것으로서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당신을 도울 수 있던 것입니다, 라고 세이버는 외쳤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사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만큼은, 그것만큼은 사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로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 슬픈 듯한 눈으로 세이버를 보았다.

「나는 세이버에게 여러가지를 버리게 했어.」

칼날이 먹혀든다. 성검이 피를 받았다. 한층 더 칼날이 깊게 먹혀들어 간다.

「허나 그것은 두 번 다시 만회할 수 없는 것인 겁니까, 세이버.」

라이더가 얘기한다. 이미 안대로 덮어서 마안을 숨기고 있었다.

「―――――꺾인 신념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라진 긍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세이버는 고개를 젓는다.

「꺾이지 않는 신념과 사라지지 않는 긍지를 계속 가질 수 있는 영웅 따위가 있을 것 같으냐.」

길가메쉬가 천천히 걸어오면서 다가왔다.

「영웅도 인간이다. 영령도 마음이 있다.


사실이 우리들을 어떻게 말한다고 해도, 우리들도 마음이 꺾였을 때가 있다.
안고 있던 이상에 반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었다.」

「난 그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겁니다―――――!!!」

세이버가 외쳤다. 그것은 비통한 절규였다.


어떻게든 하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자가 울리는 절규였다.

「왜 우리는 완벽하게 있을 수 없는 겁니까! 완벽해질 수 있을 터인데!


우리는 영웅이에요! 세계에게 인정받고 성배의 자리에 들어갈 정도의 영웅일 터인데!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우는 사람들을 필요한 희생으로서 잘라버릴 필요도 없었는데!」
「―――――네 녀석은 신이냐, 세이버.」
「신으로 있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습니다!」

길가메쉬의 말에 세이버는 비통한 외침으로 대답했다.

「나는 웃게 할 수 있었으면 될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웃을 수 있었으면 했던 것 뿐입니다!」


「―――――마토우 사쿠라에게 동정한 거냐.」

길가메쉬는 조소를 떠올렸다.


「불쌍한 아이에게 예전의 자신을 겹친 거냐.
『얻어버린』 입장에 놀아나는 그것을 보고 동정한 거냐, 세이버.」
「길가메쉬………」

라이더가 길가메쉬의 언동을 비난한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듣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 영웅왕은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동정으로 휘두르는 검인가, 비통한 절규로 휘두르는 검인가.


한 사람의 여자의 슬픔을 위해 많은 백성을 잘라버리는 검인가, 그것이 네 녀석인가?」
「그것의 뭐가 나쁘다는 겁니까! 나는 많은 걸 짊어질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수많은 백성의 웃는 얼굴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대신에 상처를 받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단 말입니다!」

「웃기지 마라――――――――――!!」

길가메쉬가 노호를 울렸다.

「네 녀석이 검이라고? 웃기지 마라.


네 녀석이 검이라고 한다면 그 잡종을 당장 죽여라! 검은 감정 따위가 없다!
검은 흔들리는 일이 없는 강철이다! 말하지 않는 철이야말로 검이다!」

그 말을 들어도 성검은 움직이지 않는다. 시로의 몸을 얕게 베고 있을 뿐이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네 녀식은 검이 아니다. 짐이 네 녀석을 뭐라고 불렀는지 잊었나, 세이버!
이 영웅왕이 네 녀석을 뭐라고 불렀는지 잊었나!」

길가메쉬는 광분하고 있었다.


그녀가 진흙에게 삼켜진 이유 따위는 모른다.
어떤 약점과 후회가 있고, 어떤 슬픔이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길가메쉬 안에 새겨져 있는 세이버는 이러한 약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니,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했다.
그러니까 유일하게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도 좋다고 했던 것이다.
자신의 계율로 스스로를 다루고, 어디까지나 긍지가 높고. 누구나가 동경할 것 같은 고상함으로.
그래서 불렀다. 자신 이외에 이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전에는 그 생각이 전혀 흔들리는 일이 없었는데.
싸움이라고 하는 분쟁 속. 성검을 휘두르는 그녀를 보고 그 이름이야말로 어울린다고.

「――――――――――기사왕이여!」

그 울림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등을 세이버가 알 리가 없다.


다만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엔키두라는 이 세상의 유일한 친구만이라고 결정한 왕이 거기에 담은 말의 의미를
알 리가 없다.

「세이버.」

시로가 말을 건다.
「나는 네가 말하고 있는 것을 잘 알아.」

세이버는 예전의 주인을 보고 있었다.

「나도 원했어. 꺾이지 않는 신념과 사라지지 않는 긍지. 나도 완벽해지고 싶었어.」

그 누구라도 구하고 싶었다. 그 누구라도 살 수 있을 터였다. 그 누구라도 살면 될 터였다.


저 불길의 지옥을 환시한다.

「―――――구하고, 싶었어.」

지금은 이젠 구할 수 없다. 구하고 싶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에미야 시로는 그 이상을 내던졌으니까.
양부가 준 웃는 얼굴은 이제 손이 닿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나는」

아처의 팔이 쑤신다. 머릿속에 붉은 언덕이 플래시백 한다.


―――――본래라면 거기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이상이었다. 웃으면서 죽은 아처를 보면 알 수 있다.
거기는 에미야 시로의 지옥이며, 모든 죄가 청산될 약속의 땅이었다.
정의의 아군. 부서진 이상의 파편은 아직도 꽂혀 있다.

「나는―――――」

그녀는 자신의 이상이었다. 긍지 높은 기사왕. 최강의 환상을 갖고 악을 미워하는 기사.


아처가 자신의 이상의 완성형이라면. 세이버는 자신의 이상 그 자체다.
안고 있던 약함을 안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참을 수 없다고 외칠 수 있는 소녀의 강함을 알고 있었다.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기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 같은 사람을 구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그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상을 버렸어.」

혼자서 울고 있던 소녀를 위해.


그렇다, 세이버는 말했다. 많이는 짊어질 수 없다. 그 말대로다.
자신에게는 많이 짊어질 수 없다.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것은, 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옆에서 웃어준 소녀뿐이다. 빗 속에서 껴안은 소녀뿐이다.

「후회는, 없습니까.」

세이버가 입을 연다.

「후회는 얼마든지 하고 있어. 지금 가슴 속은 고함을 지르고 싶어져 있어.


자신이 주워지고 나서 쭉 함께 해온 것이었어.
키리츠구와의 최후의 연결이었지.」

남겨진 것은 추억만으로. 주인이 없는 집. 혼자서는 너무 큰 집.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버렸어. 후회하고 있어,
그렇지만 후회를 죽이고. 그래도 난 사쿠라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라고 말을 이었다. 철면피라고 해도 좋다.


한 번 잃은 그녀와 한번 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니.
그런데도 말했다.

「부탁해, 세이버. ………사쿠라를 구해줬으면 해.」

세이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검을 천천히 시로의 몸으로부터 떼어놓았다.


카앙, 하고 칼끝이 지면에 닿으면서 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의 서번트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

알고 있어.

「나는 당신의 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

알고 있다.
금빛의 눈동자를 가늘게 했다.

「하지만」

웃었다.

「기사왕―――――알트리아 펜드래건으로서라면 당신을 위해 이 검을 바치겠습니다.」

그 웃는 얼굴에 어느 정도의 갈등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기회를 주어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미소에.

「―――――고마워.」

예전의 그녀를 생각해내고 울어버릴 것 같은 것을 숨기는 거에 필사적이었다.


세이버가 그 말에 뭐라고 답하려고 한 순간.

세이버가 순간의 판단으로 시로를 냅다 밀치고 날아온 단검을 쳐서 떨어뜨렸다.


그 단검의 이름은 다크.
영웅왕. 기사왕. 각자를 상대로 도망치거나 싸워낸 암살자의 단검이다.

「어쌔신………!」

세이버가 소리를 높였다.

「호흡하는 사이, 타이밍. 모든 것이 완벽했을 터인데. ―――――대단하군, 세이버.」

반만 피로 칠해진 해골가면이 웃는다.


「남자다워진 거 아닌가, 어쌔신.」

뭐라고 외치려고 한 세이버의 앞에 나온다.

「거기에 있는 세이버 덕분이지.」

어쌔신이 대답했다. 둘 사이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가라.」
「뭐라고요?」

무심코 되물은 세이버에게 길가메쉬가 웃었다.

「라이더와 잡종을 데리고 가라, 기사왕이여. 이미 남은 유예도 없을 텐데.」

세이버는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수긍했다.


셋이서 서로 수긍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세이버만이 잠시 뒤돌아 보고.

「당신의 일갈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길가메쉬.」

길가메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어쌔신과 마주 보면서 등만을 보이고 있다.

「―――――무운을.」

그 말을 남기고 세이버도 달려서 떠났다.


길가메쉬는 희미하게 입술을 느슨하게 하고 있었다.

「나와 싸울 생각인가, 아처.」


「그렇다, 어쌔신. 우리들이 결판을 낸다.
우리들이 결판을 내는 거다. 이 지옥이야말로 결판을 낼 장소로 어울리지.」
「궁합이 나쁘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그게 어쨌다는 거냐. 결국은 살아남은 자가 승자다, 어쌔신.
그리고 그것은 네놈이 아니다.」
「내가 진다고.」
「그렇다.」

길가메쉬가 손가락을 울린다. 무수한 보구군.

「전력으로 상대해주지―――――받아라, 어쌔신.」


「봐주는 건 없다. 아처.」

다크가 어쌔신의 손 안에서 몇 개가 나비의 날개처럼 펴졌다.


어쌔신은 다리를 내디뎠고, 길가메쉬는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영웅왕과 암살자가 상대의 생명을 서로 빼앗는다―――――.

축하한다. ■■■. 넌 오늘부터 암살자 최대의 명예가 주어진다.


―――――응? 그 눈은 뭐냐. 그 얼굴은 뭐냐.
불만이 있을 리가 없겠지. 역부족이라고 주위에서 말할 리도 없겠지.
너는 우수하니까.
망설임이 있다면 좀 더 죽이자. 좀 더. 좀 더. 좀 더. 좀 더.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망설임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죽이면 된다.

웃기지 마라.

슉, 하고 발사된 보구가 귓전을 빼앗았다.


마음은 완전히 안정되어 있다. 흔들리지 않는다.

명예로운 것이다. 자랑으로 생각한다. 넌 살인의 재능의 정점에 달해 있다.


그러니까 이름을 계승할 수 있다. 하산의 이름을. 암살자들이 원해 마지 않았던 이름을.

나는 슬프다.

외투를 내던졌다. 세이버에게 베인 피가 묻은 몸이 드러난다.


조금씩 입이 열린다. 다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세계가 느리다.

너로서는 이름을 버리는 일이 되지만, 큰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해골가면이 경박하게 웃었다. 우리의 이름은 하나이니까.
계승된 이름이니까. 긍지높은 이름이니까.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나의 입술도 같은 말을 냈다. 받아들여라.

태어난 곳은 더러운 곳. 그렇다면 죽을 곳은 어디인 것일까.


눈앞에 있는 황금의 왕이 외친다.

「어쌔신!!」

보구가 들이닥친다. 나의 입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외침이 달렸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살인은 좋다. 그것은 알고 있다.


그것은 존재 의의다. 그것을 부정해버리면 어쌔신이 될 수 없다.
피를 내뿜으면서 달린다. 보구의 비는 모두 어쌔신에게 길을 열었다.
하하하, 하고 길가메쉬가 웃음소리를 내고 있다.
유쾌해서 참을 수 없다고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쌔신은 마음 속으로 그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꺼리는 일 없이. 누구에게 허물을 잡히는 일 없이. 날 통과시킬 수 있는 인간.
나나 나같은 암살자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속물. 칼날에 마음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받아들여라.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튕겨 날리면서 포효한다.


포효와 동시에 베인 곳으로부터 피가 분출했다.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 어쌔신! 그 용맹함은 정말 멋지다!!」


좀 더 냉철하게. 좀 더 냉정하게. 어디에 뜨거워질 곳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 남자와 서로 마주 보았을 때는 냉정했다. 이기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불거져 나오는 피가 빼앗은 체력과 마력을 머리에 주입한다.
발을 디디는 다리나, 옮기는 손마저 승리를 위한 한 수단.
원래 어쌔신은 행동 그 자체 모든 것이 페이크.
거짓 안에 있는 진실의 칼날은 자신이라도 간파할 수 없는 필살.

소수의 보구가 똑바로 날아온다.


그것은 기척 차단이라는 스킬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설의 여러가지였다.

(아까워하지 않는다―――――인가.)

길가메쉬의 미소는 무너지지 않는다.


폭군놈. 이라고 내뱉어버렸다. 정말 대단한 남자다.
이런 남자를 섬기고 싶었다.
스스로 조직을 만드는 것도 없고. 누군가에게 사역되는 것도 아니고. 패업의 첨물로서 이 남자를 섬기고 싶었다.

난다.
필중의 마가 걸린 보구의 『위』에 올라탔다.
공격해 오는 보구를 발을 디딜 곳으로 삼아서 암살자는 질주한다.

그렇다.

문득 사고가 떠올랐다.
그 눈이다. 그 진홍의 눈이다!
불타는 것 같은 붉은색. 그것이 날 열광시킨다.
카리스마다.
그 눈동자와 위세 앞에서는 이성과 약으로 굳힌 자신 따위는 간단하게 무너져버린다.
냉정한 자신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열광하고 있다. 왕을 죽여라.

길가메쉬가 창고에서 최강의 보구를 빼냈다.

「발사한다. 두 번째 말하는 거지만. ―――――네놈에게 쏘는 거에는 조금의 주저도 없다!」

마력의 폭풍이 거칠어진다. 바람 피하기의 가호가 고마웠다.

「여기서 가라앉혀주마, 영웅왕! 네놈이 내는 발소리는 너무 크게 울린다!」

견딜 수 있을까. 그 일격을. 망상심음으로는 그 보구에게 이길 수 없다.


그건 당연하다. 왕과 암살자다. 대등하다고 그가 말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망언.

「천지를 괴리시키는――――――――――」

피할 수밖에 없다. 막을 방법 따윈 없다.


한탄하는 것은 여린 이 몸이 아니라, 어쌔신이면서 피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생각하는 자신의 느린 면을 생각해라.
몸을 비튼다. 보구 위를 뛰어넘었다. 길가메쉬의 머리 위로 몸을 도약시킨다.
공중에서는 동작을 취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취하지 못하는 동작? ―――――설마.

「――――――――――개벽의 별!!」
그것은 하늘과 땅을 가른 검. 창생의 검. 에아의 이름을 두른 괴리검.
자신의 몸을 당장 날려버리겠다는 듯이 들이닥치는 마력의 소용돌이.
하아, 하고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어쌔신이 몸을 떤다.
손 안에 있는 다크는 셋.
전설도 전승도 없는 단도로 세계를 가른 검을 막아 보이자.

옛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어떤 거나 귀천이 있다.


얼굴, 집안, 능력.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수준의 힘에 지나지 않는다.
얼굴을 바꾸어도 자신의 진실한 얼굴은 변함없다. 추악한 얼굴은 추악한 얼굴인 채다.
가문을 원해도 태어난 장소는 변함없다. 자신을 안은 것은 차가운 사막의 모래다.
능력? 능력이라고. 나중에 몸에 익힌 능력 따위는 천재에게는 실현되지 않는다.
편 손은 차가운 칼날밖에 잡을 수 없다. 왜냐고 묻는 소리는 마음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모레 죽을까.
오늘 죽지 않았다. 내일 죽을까?
내일 죽지 않았다. 모레 죽을까?
언제까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사람을 죽였을 때의 피의 미지근함이나, 시체의 무게 따위는 잊어버리고 싶다.

―――――받아들여라.

닥쳐닥쳐닥쳐닥쳐. 사고는 불필요하다.


자신을 다루는 목소리도, 형태를 만드는 말도 필요없어!

『죽음』이 공기를 찢으면서 들이닥친다.

길가메쉬가 웃고 있다.

알 수 없다. 왜 서로 죽이는 장소에서 웃을 수 있는 걸까.


두렵지 않은 건가.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건가.
나처럼 약으로 심리를 안정시키고 있을 리가 없다.
흥분해서 넋을 잃을 만큼 젊을 리도 없다.
왜 웃을 수 있는 거지. 왜 서로 죽이는 장소에서 웃을 수 있는 거지.

―――――나는 웃을 수 없다. 나는 웃지 않는다.

웃을 수 있는 것 같은 현실에 살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휙, 하고 단도를 한 개 던졌다.
보구의 약점은 많이 있다.
마나의 해방. 그리고 대군 보구에 있는 최대의 약점은.
사용자를 속박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길가메쉬가 쥔 괴리검에서는 마력의 소용돌이가 내뿜어지고 있다.
투척한 팔에만 기척 차단을 걸었다.
겉보기에는 온 몸으로부터 한쪽 팔만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투척된 칼날은 길가메쉬에게 눈치채이지 않고 그의 손가락에 꽂혔다.
악력이 약해지면서 괴리검이 길가메쉬의 손바닥에서 흔들렸다.
마치 하늘을 가르듯이 한 줄기의 빛이 동굴의 하늘을 태웠다.
잔재주.
그렇다. 이것은 잔재주라고밖에 할 수 없다.

「재미있군! 네놈은 어디까지 짐을 즐겁게 해주는 거냐, 어쌔신!!」

들이닥치는 마력의 소용돌이. 이 일파만 견디면 다음은 없다.


하지만 이 일파로 자신은 죽는다.
수단을 쓸 수 있는대로 써라. 죽으면 끝이다. 그것뿐이다.
기척 차단을 걸어서 바람 피하기의 가호를 둘렀다.
자신을 지키는 방패의 약함에는 웃음마저 새어나온다.
팔은 방어에 돌릴 수 없다.
중력에 끌려서 도약한 몸이 낙하해 가는 것을 느낀다.
마력의 소용돌이에 자신이 뛰어들어 간다.

뜨겁다.

작열하는 뇌 골수. 원망의 말을 내뱉는 심중.


발끝부터 열이 몸을 태우고 머리 끝까지 빠져 간다.
뒹굴고 싶다. 고통에 몸을 떨게 하면서 고통의 외침를 흘리고 싶다.
하지만 그런 사고는 머릿속만으로 덮어둔다.

어쌔신은 입술을 열었다.

「망상――――――――――」

귓전을 보구가 빼앗아 간다.


옆구리를 창이 스쳤다.
흘러넘치는 피는 검붉고 공중에 마구 흩날린다.
낙하하고 있다. 추락하고 있다.
어쌔신은 생각했다.
너무나 멋진 것이다.

낙하하고 있다. 추락하고 있다.

몸이 다 타버리지 않고.
어쌔신은 왕에게 겨우 도착할 수 있다.
몸은 아직도 중천, 낙하의 한중간.

「――――――――――심음.」

저주의 영력이 쏘아진다.

하하, 하고 영웅왕은 웃었다.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온 웃음이었다.


유쾌해서 참을 수 없었다.
상공에서 덤비는 어쌔신은 자신의 최강의 보구조차 뿌리치고 짐을 죽이러 왔다. 좋아.
길가메쉬의 손가락이 춤춘다. 발사되는 보구가 차례차례로 어쌔신을 스쳐 간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눈동자는 불타오르는 의사를 켠 채로,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고 빛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를 보고 재차 생각했다. 좋아. 짐에게 검을 겨누는 건방짐.

「―――――그것을 허락하마, 어쌔신!」

저주의 팔이 길가메쉬의 심장을 붙잡는다. 비지땀이 불거져 나왔다.


끼릭끼릭, 하면서 가슴이 아파진다. 이 손에 잡혔을 때 짐은 죽는 것인가.
희열을 얼굴에 띄운 채로 어림없다고 길가메쉬는 외쳤다.

「―――――어림없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이 몸을 꺾는 거에 그 보구로는 너무 싸다.


그 저주의 팔로는 영웅왕의 능력을 꺾는 것은 할 수 없다.

―――――행운이라는 능력이 그것을 막는다.

어쌔신은 저주의 팔을 움직였다. 손 안에 있는 가상의 심장이 꽉 쥐어진다.


그것은 승리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상대가 길가메쉬 이외의 사람이었다면, 그러나.
아직도 무사한 자신의 심장을 자각하면서 영웅왕은 사납게 웃는다.
죽여주자. 강자와의 싸움은 마음이 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영웅왕의 손가락이 울리는 것보다 빨리.


영웅왕이 찬사의 말을 보내는 것보다 빨리.

어쌔신은 착지와 동시에 달리고 있었다.

「이럴―――――수가!?」

그 행동은 예상외. 탄화하고 있을 다리로,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 다리로.


맹렬하게 달려오는 암살자는 영웅왕으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다.

피를 마구 흩날린다.

「―――――」

외침을 울린다.
나아가는 다리는 망설임이 없다.

손에는 두 개의 단도.

길가메쉬는 순간에 보구를 쏘려고 했다.


어쌔신은 거기에 반응해 한 개의 단도를 아래로부터 감아올리듯이 투척 했다.
지금 정말로 발사되지 않거나 발사되고 있던 보구에 단도가 맞아 한 개의 보구가 위로 튕겨나간다.
그리고 보구끼리의 큰 충돌이 벌어졌다.

가볍게 보지 않았다.
자신의 보구가 효과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고로 생각했다. 고로 사고했다.
괴리검을 견디고, 자신의 보구를 쏜 다음에 생길 방심을 예측했다.

―――――보구는 비장의 카드가 아니었다.

투척되는 보구군은 한 번 보고 있었다. 저것은 직선으로밖에 날지 않는다.


기척 차단으로는 막지 못할 보구였다. 그 법칙은 빗나가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길가메쉬가 아처였다면 이런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다크로 보구의 궤도를 어긋나게 해서 서로를 충돌시키는 것은.

촥, 하고 손 안에서 단 한 개가 된 단도를 쥔다.

나아가는 도중에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상관없다.

이미 영웅왕은 바로 거기다.
어쌔신은 길가메쉬에게 돌진했다.

「훌륭하다―――――」

영웅왕의 그 말은 한숨 같은 것이었다. 표현하자면 감탄이겠지.


눈앞에 번뜩이는 칼날을 응시하고.

―――――웃었다.

「하지만 짐 쪽이 한 수 위였군.」

칼날이 다가온다. 목과 그 몸을 베려고 다가온다.

「상공을 향해 쏜 보구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지?」

어쌔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혹은 대답할 수가 없다.


대답한 순간에 자신의 패배가 들이닥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상한 느린 속도로 세계가 흘러간다.
길가메쉬의 목에 지금 정말로 칼날이 먹혀들려고 하는 그 순간에.

어쌔신의 팔이 하늘에서 떨어진 보구에 날아갔다.

「―――――」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빙글빙글 춤추면서 떨어져 간다.


말은 없다. 칼날이 안 되면 이빨이 있다.
손상된 칼날은 자신의 목숨을 모조리 태워버릴 때까지 있다.
뜯어먹을 각오는 버릴 만큼 있었다.
몸이 앞으로, 라고 외친다. 마음이 나아가라고 외친다.
푹, 하는 충격으로 허리에 도검이 박힌 것을 알았다.
모른다. 그런 건 모른다.
쩌적쩌적, 하고 몸이 갈라져 간다. 어쌔신은 멈추지 않는다.
디딜 다리도 없고, 상대를 죽이기 위한 팔도 없다.
아니, 애초에 죽이기 위해 팔 등이 필요했던가―――――?
피조차 이젠 흘러나오지 않는다. 입에서는 메마른 듯한 소리가 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다리 따위는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죽이는 거에도 팔 따위는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

이빨을 드러내는 어쌔신.


길가메쉬는 웃음을 지으면서 어쌔신을 보고 있다.

「반복하마, 훌륭했다, 어쌔신. 그리고 이젠 마지막이다.」

그 말과 동시에, 어쌔신은 최후의 소리를 들었다.


콰직, 하고.
무언가 중요한 것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어쌔신의 의식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아 있었다.


길가메쉬가 부서진 머리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연명 조치일까, 죽여놓고서 연명시키는 건 없다. 그렇게 암살자는 웃는다.
거기서 생각했다. 부서진 머리로 영웅왕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자각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심하게 불안정한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번트는 영령의 영혼을 손질한 것이다.
하지만 수육과는 달리 능력은 클래스에 얽매인다.
그리고 거짓된 육체가 소멸했을 때 영혼은 성배에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상태는 무엇인 걸까.

「―――――곤란하군.」

길가메쉬가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쌔신의 시체가 소멸하지 않아―――――」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이었을까.

「자신의 유열에 너무 잠겼나―――――아니,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결판이었다.


세계를 저울에 거는 것으로 하자.」

거기서 말을 끊고 어쌔신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의식이 있군, 어쌔신. 허나 입술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몸은 움직일 수 없다.」

어쌔신은 반응하지 못했지만 알고 있다고 수긍했다.


그런 동작을 취하려고 했다.
실제로는 목이 약간 움직이는 정도였지만.

「서번트를 죽이려면 머리나 심장을 부수는 것이 정도였을 터인데.


정도로서는 있을 수 없는 전개라는 건가.」

쓴웃음을 짓고 길가메쉬는 걷기 시작했다.

「세이버가 막았는지, 혹은 잡종이 죽었는지, 혹은 계집이 죽었는지, 라이더가 검은 성배를 도왔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라고 길가메쉬가 중얼거렸다.

「들리고 있겠지, 어쌔신. 통곡이다. 통곡이다.


땅을 기는 것 같은 원한의 목소리다.
서번트를 흡수하지 않고 현계할 줄이야.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라도 헤아린 건가?」

길가메쉬가 동굴 안쪽으로 사라져 간다.


어쌔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다.

「―――――어쌔신」

소리는 멀고,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둠 속에서 시퍼런 칼날이 번뜩였다.


다크가 어쌔신의 옆에 꽂힌다.

「묘비로서는 궁상스럽지만 말야. 짐에게 꽂아넣은 칼날이니 자랑으로 삼아도 좋다.」

발소리가 멀어져 간다. 영웅왕은 마지막에 한 마디만 고했다.

「안녕이다, 핫산 자바하.」

그 말에 어쌔신의 속마음이 희미하게 뛰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자각하는 일 없이. 그 생각을 말하는 일도 없이.
어쌔신은 떠나는 영웅왕의 발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잘못된 것은 선택기였다.
린은 탈진해 있는 사쿠라를 끌어안고 있었다.
옆구리에서는 매우 새빨간 피가 흘러 떨어지고 있다.
사쿠라를 죽일지 어떨지 망설이는 것이 아니었다.
성배를 부술지 어떨지 망설어야 했던 것이다.
검은 그림자가 린을 둘러싼다. 그것을 몇 번이나 보석검으로 베어버렸다.

「무한 지옥이란 건가―――――?」

불쾌하게 중얼거리면서 몇 번이나 보석검을 휘두른다.


조금 전부터 시야를 다 메울 정도의 그림자가 린과 사쿠라를 삼키려고 다가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쿠라를 되찾으려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아아, 빌어먹을.」
여기서 죽는다. 아마도 토오카사 린은 여기서 죽는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하려고 하면서.
토오사카 린은 죽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토오사카 린은 죽는다.

「에미야 군이 올 때까지.」

저주하듯이 중얼거린다. 에미야 시로가 올 때까지 버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최소한의 자신의 역할이다.

―――――결론부터 말해둘까.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은 불완전한 상태인 채로 현계했다.


성배의 기동진 중앙에 있는 고기덩어리.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이었다.
서번트를 모두 손 안에 넣을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앙리 마유로서 반영웅의 서번트로서 현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진흙과 고기의 덩어리.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이었다.
사람의 얼굴들이 빽빽이 표면에 떠올라 원망하는 소리를 계속 토해내고 있다.
그 몸으로부터 뻗어나오는 기분 나쁜 검붉은 촉수는 기분 나쁘게 뛰면서 지면을 치고 있었다.

제길, 제길, 제길, 제길.


사쿠라에게 의식은 없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베어버리고 있는 것은 사쿠라의 마력으로 생성된 검은 거인이다.
마스터가 필요하다. 그 고기의 괴물에게는, 아직도 마스터가 필요하다.
마력 공급이라는 면이 아니다. 어머니로서 필요한 것이겠지.

「웃기, 지………말라고.」

눈이 희미해진다. 다만 팔만은 아직도 세게 잡고 있었다.


자신의 여동생을. 보석검을.
어느 쪽도 말없이 잡고 있었다.

상처가 손상을 입는다. 입에서 내뱉는 말은 자신을 고무하는 것이다.


평행세계로부터 보석검을 사용해서 아무리 마력을 방출해도 끝이 없다.
디디고 있는 곳도 나빠서 언제 발밑부터 무너질지 불안해진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보석검을 휘두르면서.
그 만큼 팔의 근육이 팽팽해지면서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하, 아.」

흘리는 한숨은 뜨거웠고. 얼굴은 매우 창백했다.

「토오사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환청인지도 모른다.


이 저주 속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른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사쿠라의 중량감과 자신의 상처의 뜨거움 뿐이다.
필사적으로 베어버린다. 검은 거인의 형상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아아, 이건 악의다. 린은 갑자기 생각했다.
마토우 사쿠라가 노출되어 온 악의. 이렇게 자신이 베어버릴 수 있는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사실이었다면 좀 더 빨리.
사실이었다면 훨씬 옛날.

나는 여동생에게 닥치는 악의를 밀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푹, 하고 무릎이 무너진다. 이를 악물고 견뎠다.


여기서 쓰러지면 모든 것이 꺾이고 만다.
모두의 신념도 함께 꺾이고 만다.
에미야 시로의 결의라든지.
라이더의 마음이라든지.
세이버의 원통함이라든지.
그 금빛의 왕의 묘한 신뢰라든지.

그리고 아처의 마음도 전부.

제길. 제길.
팔은 축 처졌고, 보석검은 손가락 끝에 걸려 있었다.
빨리 휘두르지 않으면.
빨리 빨리 빨리 하지 않으면.
이 아이가.

사쿠라가 또 멀리 가버린다.

얼굴을 올린다. 검은 거인의 팔이 지금 정말로 린의 얼굴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그런 걸 인정할까 보냐.


마토우 사쿠라를 죽일 수 없었다. 그 시점에서 토오사카 린은 끝났다.
토오사카를 자칭할 자격은 없다.

「얕보지 마!!」

이젠 자신은 마술사가 아니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많은 것을 버려 왔고. 많은 것을 배반했으면서.
결국은 정에 흐르게 되는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보석검을 혼신의 힘을 담아서 휘둘렀다.


일격으로 베이는 검은 거인.

푸직, 하고 몸 속에서 한층 더 큰 소리가 울렸다.


팔이 축 처진다.

사리사욕을 위해 신비를 사용하는 것은 마술사다.


그것이 선한 성질에 기반한 욕구라도, 악한 성질에 기반한 욕구라도.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마술사는 그만둔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사용한다.
신비도 환상도 전설도 전부 사용해서 쳐부순다.
나는 마법사를 목표로 하는 마술사가 되어주겠다.

입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온다. 너무 무리했다. 입에서 피가 나온다.

그렇지만 외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규였다. 절규였다.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동굴을 흔들어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의 원망의 목소리마저 삼켰다.

죽음. 그것을 실감했다. 죽지 않는다고 할 확신같은 건 없었다.


그저 여동생이 중요했다. 결국은 모두 배반할 수 없어서 버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하나만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토오사카 린의 성배 전쟁은 그 붉은 궁병을 잃은 심점에서 끝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본래 없었던 이야기다.


성배 전쟁에서 서번트를 잃은 자신 따위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토오사카 린은 이길만 하니까, 이길 수
있으니까.
―――――가령, 잃었다고 해도 교회의 보호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이 현상은.
서번트를 잃었는데도 퇴장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여동생을 되찾으려 하고 있는 지금의 자신이 이상의 토오사카
린인가?
아버지가 바랐을 토오사카의 모습인가?
설마. 이것이 『이상』일 리가 없다. 성배를 손에 넣어야 할 토오사카일 리가 없다.

사쿠라를 한순간만 세게 끌어안았다.

린은 린이었다.
어쩔 수 없는 바보같은 언니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소녀는 충분했던 것이다.

사쿠라를 잡고 있던 손을 떼어 놓는다.

「토오사카!!!」

필사적인 목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곁눈질로 문득 그것을 보았다.

다리가 끊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고 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에미야 시로의 모습이 있었다.
조금 전의 소리는 환청이 아니었던 것이다.
희미하게 미소를 띄운다.
그의 뒤에는 무언가를 외치는 세이버와 진흙을 쳐내면서 나아가는 라이더가 있었다.

글자 그대로 최후의 힘이었다.

손을 쑥 내밀어 시로 쪽으로 사쿠라를 냅다 밀쳤다.

「―――――바이바이, 에미야 군. 난 여기서 리타이어하겠어.」

그것은 생각하고 있던 만큼 분한 말이 아니었다.


검붉은 촉수의 창이 토오사카 린의 몸을 연거푸 꿰뚫었다.

에미야 시로는 약하다. 에미야 시로는 약하다.


구하고 싶었던 것을 구할 수 없다.
그런 정의의 아군은 없을 터였다.
알고 있었다. 자신의 무력을 자각하고 있었다.

몸 안에 구멍이 뚫리면서 무너지는 린.


그 눈은 허공을 본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이젠 아무도 보지 않은 채.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다.

「토오………, 사카?」

팔 안에 있는 사쿠라를 꼭 껴안았다.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있을 수 없었다. 에미야 시로 안에서 토오사카 린은 완벽한 존재였다.
탁월한 마술사이자, 인간적인 강함도 갖추고 있었다.
에미야 시로가 원하고 있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토오사카 린 정도의 힘이 있다면. 그렇게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세이버에게 마력 공급이 만족하게 되지 않았던 때도 그랬다.
토오사카 린이라면, 그녀 정도의 마력이 있다면. 그렇게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토오사카가 죽다니.

결점이 없기 때문인 완벽함이 아니었단 말인가.


꺾이지 않기 때문인 완벽함이 아니었단 말인가.

「시로!!!」

세이버가 시로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내던졌다.


라이더가 그것을 받아 후방에 내린다.

「시로, 단검을 사쿠라에게」

라이더의 목소리가 멀다.


세이버의 등이 멀다.

린의 시체는 지면에 방치되어 있는 채로 검은 진흙에 삼켜지려 하고 있었다.

「토오사카.」

사쿠라에게서 손을 떼어 놓는다. 계약 파기의 검을 떨어뜨렸다.


라이더가 눈썹을 찡그린다. 시로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시로, 심정은 압니다―――――하지만 우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사쿠라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의 의미는.

―――――사쿠라 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다.

무의식 중에 몸이 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라이더의 손이 허공을 가른다.

「―――――시로!!」

아니야, 아니야―――――아니야!
이미 정의의 아군이라는 말은 없다. 쫓아갈 이상은 없다.
마토우 사쿠라를 무엇보다도 우선한다고 결정했을 때로부터 만 명을 위해 일하는 에미야는 죽었다.
세이버가 고함치고 있다. 오지 말라고 고함치고 있다.
그래, 그렇지만 말야. 세이버.
그대로 내버려두면 토오사카가 죽어버려.
아직 살아있을 거야. 아직 죽지 않았을 거야.
왜냐하면 그녀는 토오사카 린이니까.

차례차례로 덮쳐 오는 검붉은 촉수의 창을 전부 쳐내고 있던 세이버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시로.」

목소리는 조용하다.
린의 시체는 세이버 앞에 널려 있었다.
검은 성검을 내걸 수 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면 무언가를 잃습니다.


세계의 천칭은 결코 기울지 않습니다.
죽어야 할 것이 죽고, 살아야 할 것이 삽니다.」

그 말은 확실히 에미야 시로의 고막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차례차례로 동료가 죽어가고, 때로는 그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때도 있겠죠. ―――――그렇지만」

검이 달린다―――――.

그 검은 촉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면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토오사카 린『이었던 것』의 목을 날렸다.

「―――――어리광부리지 마라!!」

피조차 분출하지 않는 토오사카 린의 시체.


어느 정도의 피를 토하고 흘리고, 계속 흘리면서―――――자신의 여동생을 지켰는지 알 수 없었다.

린의 목이 데굴데굴 구른다.

「어리광부리지 마라! 마스터! 이건 무엇인가! 이 지옥이 무엇인지 대답해봐라!」


시로는 쓰러졌다. 보기 흉하게.
토오사카 린의 시체에게 겨우 도착하기 전에 쓰러졌다.
눈에는 눈물이 떠올라 있다. 참을 수 없이 분해서.
낮은 신음소리가 목의 안쪽으로부터 생겨났다.

「성배, 전쟁.」
「그렇다!」

세이버가 외쳤다.

「전쟁! 전쟁! 전쟁!」

저주처럼 그 말을 마구 내뱉는다.
차례차례로 세이버를 찔러 죽이려고 하는 촉수를 튕겨 날렸다.

「이건 전쟁이다! 서로 죽이고, 서로 죽이고, 서로 죽이는 전쟁이다!


거기에는 기적도 형편이 좋은 현실도 없다!」

맹렬한 기합과 함께 촉수를 성검으로 베어냈다.

「린은 무엇을 위해 죽었습니까! 린은 무엇을 지키고 죽었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습니까!」

약속된 승리의 검이 적을 찢어발긴다.


세이버는 한층 더 단신으로 돌진했다. 목소리가 높이 울린다.

「―――――사쿠라를 구하기 위해서겠죠! 그렇다면 시체에게 가서 뭘 할 심산입니까!」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자신의 무력함을 알고 있듯이.


―――――토오사카 린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토우 사쿠라를 제일로 선택했을 때부터 누군가가 죽을 거라는 것을.
자신은 머리의 구석에서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인정할 수 없었던 것 뿐.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뿐.

죽는다고 한다면 자신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결정하고 있었는데.
동경하고 있던 소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 뿐이었다.

「그대가 있어야 할 장소는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다―――――」

세이버는 결국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게 앞으로 한 걸음인 곳까지 육박했다.


도약해서 성검을 치켜든다.

「―――――그대가 있어야 할 장소는 사쿠라의 곁일 터이다!!!」

검이 육괴에 꽂혔다. 하지만 완전히 베이지 않았다.


베인 곳으로부터 차례차례로 새로운 고기가 솟아올라 재생한다.
표면에 빽빽이 나 있는 얼굴들이 절규했다.
입으로부터 예리한 혀를 쑥 내밀어 세이버의 몸을 차례차례로 꿰어버린다.
하지만 기사왕은 쓰러지지 않는다. 기사왕은 버티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죽어버릴 것 같은 상처도, 서번트인 세이버에게는 무의미하다.
피를 토하면서 웃는다.
원망해도 좋다. 꾸짖어도 좋다.
혹시 린이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 죽어가는 상태라고 해도.
하지만 마술 각인조차 빛나지 않는 그녀가 비록 살아있었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죽어버릴 것이다.
짐이 된다. 살아있었다고 해도 토오사카 린은 짐이 된다.
그래서 죽였다. 목을 날렸다.

―――――천국에는 갈 수 없다.
천국이라는 것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세이버는 미소를 깊게 했다.
그것으로 됐다. 기사왕이라 불리고 있어도 결국 자신은 살륙자로서의 일면도 가지고 있다.
몇 명을 죽였는지도 모른다.
지옥으로 가도 좋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검을 더욱 깊이 밀어넣었다. 절규가 울린다.

「약속된―――――」

차례차례로 몸에 혀가 꽂힌다. 눈이 떨어져서 공중을 날았다.

「―――――승리의 검!!」

정말로 두려운 것은 『죽음』을 헛되게 해버리는 것이었다.


그 총명한 토오사카 린이라는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갓이었다.
『죽음』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식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허한 생각을 억지로라도 채워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눈물을 흘려도 좋다. 후회해도 좋다.
왜냐고 물어봐도 좋다.
시체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거기에 있을 뿐이기 때문에.
생각을 연결하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녀가 마지막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그녀밖에 모른다.
그렇다면 의지를 잇자.
그녀가 하고 있던 행동을 이어나가자.
그녀가 원하고 있던 것을 해주자.
그녀가 안고 있었을 이상을 실현시켜주자.

세이버에게는 검밖에 없다. 세이버에게는 힘밖에 없다.

그러니까 힘을 발휘하자.
그렇다면 검을 휘두르자.

대답은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밖에 낼 수 없는 것이니까.
성검의 빛이 작렬하면서 동굴을 뒤흔들었다.
육괴가 튀고 날아 가루가 되어 지면이나 벽에 달라붙었다.
세이버도 반동으로 날아가 그 몸을 고무 공처럼 튀면서 굴렀다.

「세이버!!」

시로가 세이버에게 달려오려고 했지만 세이버의 손에 제지당했다.

「………시로는 사쿠라에게 가주십시오.」

성검을 지팡이로 삼아서 일어섰다.


육질의 파편이 모여 형태를 되돌려 간다.

「아무래도 아직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차단하듯이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니, 마지막이다. 짐이 왔다.」

세이버의 시선이 입구에 있는 영웅왕을 포착했다.

「길가메쉬.」

그 말에는 답하지 않고 길가메쉬는 다리를 나아가게 한다.

「추악한 것이다.」

육괴를 보면서 중얼거린다.


나타나는 보구들.

「즉시 해치운다. 도와라. 세이버.」

그 말을 신호로 보구가 차례차례로 발사되었고, 재생한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이 절규를 울렸다.

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아-----」

으득, 하고 이빨을 꽉 문다.


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에미야 시로는 허탈해진 상태로부터 일어섰다.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목적을, 무엇을 이루기 위해 여기에 왔던가.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토오사카 린의 얼굴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젠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는다. 이젠 두 번 다시 웃을 수 없는 얼굴이.
그저 너는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루라고.
그 동경한 소녀의 강함으로 호소해 왔다.
「그래, 알고 있어.」

사쿠라에게로 몸을 질질 끌면서 돌아왔다.


라이더가 말없이 이쪽을 보고 있다.

「미안.」
「………아니요.」

살짝 고개를 젓고 말했다.

「돌아오지 않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기서 무너져서?」
「네.」

라이더는 살짝 입가를 느슨하게 했다.

「사쿠라를 잘 부탁합니다.」

라이더가 일어선다. 세이버와 길가메쉬에게 가세할 심산일 것이다.


시로는 그것을 만류했다.

「잠깐 기다려줘. 라이더.」


「―――――뭐죠? 잡담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길가메쉬도 세이버도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은 무진장하게 재생해 나간다.
온갖 소원을 실현하는 마력의 솥. 그것은 무서울 정도의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 아군이 되어주고 있다. 이길 기회는 너무 충분할 정도로 있다.


하지만 에미야 시로와 토오사키 린, 그리고 라이더의 목적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을 타도하는 것이 아니다.
마토우 사쿠라를 구하는 것에 있다.

「지금부터 사쿠라와 저것의 계약을 끊겠어.


―――――그렇지만 동시에 아마 라이더와의 계약도 끊어져버릴 거라고 생각해.」

시로는 단검을 줍고 사쿠라를 향했다.

「그 때 사쿠라는 라이더의 마스터가 아니야. 그래도」

마토우 사쿠라를 구해줄 건가.


그 질문에―――――

―――――라이더는 미소지으면서 수긍했다.

「바보같은 질문이군요. 시로. 저는 사쿠라가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그래, 분명.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사쿠라에게 단검을 가까이 한다.

「계약이 끊어지면 사쿠라를 밖까지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싶은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라이더는 받아들여주었다. 받아들여주었다.

시로는 미묘하게 미소지었다.


단검을 치켜든다.
의식이 없는 사쿠라의 얼굴은 자고 있었을 때의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눈을 떴을 때는 전부 끝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바라고 그렇게 맹세하면서.


에미야 시로는 단검을 내리쳤다.

세이버와 길가메쉬는 한순간만 눈을 맞춘 후, 서로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게 향했다.


세이버는 성검을 들지 않고 지면에 검의 칼끝을 대고 있다.
성검은 지면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깎고 있었다.
길가메쉬가 쏘는 보구의 비가 차례차례로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게 꽂혀 가지만, 어떤 것도 결정적 수단이
되지 않았다.
길가메쉬는 이를 가는 것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지면에 누웠다.
머리 위를 검붉은 촉수의 창이 통과한다.
세이버는 기합을 지르면서 지면을 검으로 떴다. 자갈이 흩날린다.
그대로 앞으로 날듯이 발을 디뎠다. 완전히 죽이려면 보구의 일격으로 완전히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다.
원망의 표정을 띄우는 얼굴이 쩌억 하고 입을 연다.
날카로운 혀가 튀어나와서 세이버의 몸을 겹겹이 뚫었다.

「세이버!!!」

길가메쉬가 큰 소리로 외치는 목소리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혼자 태연자약하게 검을 치켜든다.


완전히 죽는 걸까, 아니면 죽이는 걸까.
그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주인을 배반했고.
또 새로 얻은 주인을 배반했다.
원래의 칼집으로 돌아왔다고만 말하면 듣기에는 좋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할 수 없다. 한 번 꺾인 검은 두 번 다시 고쳐지지 않는다. 상처라면 낫는다. 하지만 검은
고쳐지지 않는다.
이젠 난 안 된다. 세이버는 확신했다.
체내를 찔리면서 확신했다. 꺾인 검은 돌아오지 않는다.

「약속된―――――」
혀가 눈을 뚫었다. 안구가 튀어나가서 공중을 난다.
웃는 기사왕. 배반의 기사에게 이 업보는 잘 어울린다.
혀가 멈추지 않는다. 세이버의 뇌 골수조차 뚫어버리려고 뼈를 깎아 나간다.
기사왕은 마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말을 연결했다.
머릿속에는 적을 죽인다는 사고와 꺾인 검의 이미지가 떠올라 있었다.
꺾인 검의 이름은 칼리 번. 자신이 기사도를 거역해서 꺾인 검.
지금의 나는 이 검 자체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검.
보기 흉하게 꺾인 검은 주인에게 버림받는다.
아니, 그 이상으로. 검 자신이 자신에 대해 포기한다.
적을 벨 수 없는 검 따위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검의 존재 의의가 살인이라면, 죽일 수 없는 시점에서 그것은 보통의 쇳조각이다.

「―――――승리의」

쇳조각이라는 말에 가슴 안쪽으로부터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아무것도 베지 못하는 검인가?
정말로 아무도 죽일 수 없는 검인가?

정말로―――――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검인가?

아니다.

머리의 구석. 먼 기억의 끝.


나란히 서는 기사들.
모두가 나에게 검을 바쳤다.
기사의 맹세.

그 추억의 저편에서.
예전의 내가 서 있다.

양팔이 당겨져서 뜯겨나갔다.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새지 않는다. 사고가 작열하고 있었다.
성검이 나뒹군다. 어떤 때에도 나를 버리지 않았던 검이 나의 양팔과 함께 떨어져 간다.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예전의 내가 칼집으로부터 검을 천천히 빼들었다.


기억 속의 기사들이 말한다.
나아가소서, 우리들의 기사왕이시여.
각자가 검을 빼들면서 외쳤다.
당신이야말로 우리들의 자랑이 되리니.
예전의 내가 칼집으로부터 빼든 검을 나에게 향했다.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들리지 않는다.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재차 입을 연다.
이번에는 제대로 들렸다.
돌아왔다, 돌아왔어.

이빨을 드러냈다. 뼈가 깎여나간다.


두개골을 예리한 혀가 가른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린 것이 아니다. 이빨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한순간의 교착. 순간의 찰나. 하나의 검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칼리번.

그 검은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몸을 더욱 앞으로 넘어뜨렸다.
이빨로 그 뛰어들어온 검의 자루를 악물었다.
으드득, 하고 이빨이 소리를 내면서 부러진 것을 알았다.
상관없다.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것이다.
상관없다. 꺾인 검은 무력하지 않았다.
혀가 머리의 반을 날렸다.
뇌수가 난다. 피의 비 속에서도 세이버는 동요하지 않는다.
최강의 기사는 죽지 않는다. 최강의 기사는 흔들리지 않는다.

마나도 필요없다. 그저 친다.

내디딘다. 내디딘다.
체내에 구멍이 뚫린다. 갈라진 머리에서 피가 흩날린다.
수육한 것이 실수였나?
에미야 시로의 아군이 된 것이 실수였는지?

―――――설마.

발을 디딘다. 발을 디딘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이 절규를 질렀다.
아이의 얼굴로, 노인의 얼굴로, 여자의 얼굴로, 남자의 얼굴로.
절망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것은 우리들과 동질적인 존재. 그것이 왜 저렇게 눈부신 걸까.

검게 물든 몸.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 달리는 모습.


그것이 왜 저렇게 신성한 걸까.
단정하게 묶은 머리카락이 풀려서 바람에 흩날렸다.

황금의 눈동자가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을 쏘아본다.

교차.

그대로 세이버는 앞으로 무너졌다.


입에서 칼리번―――――아니, 그람이 떨어졌다.
남은 한쪽 눈으로 그 검을 본다. 환상을 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검은 이 때 그 순간만. 한때의 전설이 되었다.

「―――――아.」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이 문득 목소리를 흘린다.
아이 같은 목소리이며, 노인 같은 목소리이며, 남자 같은 목소리이며, 여자 같은 목소리였다.

갑자기 남자의 얼굴이 파열한다.


계속해서 여자, 노인, 아이.
아니, 빽빽이 표면에 떠올라 있던 얼굴이 차례차례로 파열해 나간다.

길가메쉬는 그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그가 선 위치로부터 세이버가 진명을 해방하려고 한 순간에 그녀의 팔을 잘라서 날려버리려 하는 촉수가 보였다.
그래서 원호의 의미로 보구를 날렸다.
그녀와 그 나름대로 관계가 있는 마검 그람을. 한때의 자랑의 검의 원형을.
그것을 저렇게 사용할 거라고는.

「훌륭하다, 기사왕.」

진명을 해방하지 않고 저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을 베어버렸다.


과연 이 영웅왕이 자신 이외에 유일한 왕으로 인정할만 하다.

계속 파열하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은 자신이 안으로부터 분출한 진흙의 바다에 가라앉고 있었다.

「짐이 직접 손을 댈 것도 없었나.」

그 모습은 확실히 치명상.


그러나.
세이버에게 눈을 향했다. 이쪽도 당장 사라질 것 같다.
양팔이 잘리고, 머리가 갈라지고, 체내는 구멍 투성이다.
손을 베풀면 다소는 살아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길가메쉬가 그렇게 생각하고 세이버를 향해 다리를 내디디려고 한 순간에.

「뭣―――――!?」

횡으로 날아온 촉수에 날아갔다.


기습? 아니, 움직일 수 없을 터인 자가 움직였다.
완전한 사고의 사각으로부터의 일격이다.

그대로 촉수는 눈으로도 잡을 수 없는 속도로 마토우 사쿠라를 향해 간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른다. 상상은 할 수 있지만 확실한 확신은 없었다.
길가메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잡종!」

그 일갈로 시로가 알아챘다.


곧바로 상황을 판단하고 사쿠라 앞으로 나온다.
라이더는 사쿠라를 옮기기 시작하는 도중이었는지 그녀를 안고 있었다.

피하는 것은 에미야 시로로서는 할 수 없었다.

앞으로 한 번으로 충분하다.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터무니 없다고 말하게 하지 않는다.
앞으로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만신창이가 된 몸이다. 몸에 새긴 긍지는 아직 살아있을까.

사고는 필요없다. 그저 의지로서 향한다.

몸을 꿰뚫리는 주인. 지금 정말로 심장에 촉수의 창이 찌르려는 도중.

「기―――――」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분명 말을 하는 기능은 날아간 뇌 골수 안에 있었던 것이다.
으득, 하고 악문 이빨이 울었다.
이상을 버렸다고 피를 토하듯이 말했다. 에미야 시로.
그렇지만 당신은 그렇게 또 사람의 앞에 선다.
도움이 되지 않는 마스터.
지금까지 있던 중에서도 최저의 마술사.

―――――최고의 마술사.

죽여주겠어. 죽여주겠어. 당신을 위해 죽여주겠어.


당신은 나에게 마지막까지 꿈을 보여주었다.
긍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가로 목숨 정도는 주겠다.
수육한 몸은 고통이 비정상일 정도로 심각했다.
영령의 육체의 편리함이라는 것을 통감한다.
하지만 수육되었기 때문에 머리가 날아가도 아직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감사하자.

길가메쉬가 고함 소리를 내고 있었다.


멈춰, 그만둬.
생각해보니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 따위는 영원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강의 적. 지금은-----어떨까.
아군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왕으로서의 자세는 좋아했다.
자신이 목표로 하고 있던 완벽에 가까웠다.
신들조차 눈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왕.
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흔들리는 몸. 무의식 중에 달리고 있었다.


움직였다. 움직여주었다.

「하하―――――」

웃음이 새었다. 긍지가 새겨지고 있었다.


그저 앞으로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질주.
시야의 구석에 들어온 에미야 시로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촉수가 가슴에 꽂힌다.
아아, 아픕니까, 시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서번트였습니다. 나는.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잃었다.
영웅왕과 자신의 차이. 진흙에게 범해졌는지 아닌지의 여부.
의지를 강하게 가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꺾이지 않는 의지로. 되찾은 긍지로 기사왕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을 향해 달린다.

아니,―――――그렇게 바라고 있다.

꾸물꾸물하면서 무너진 진흙.


예전에 그것에게 졌다. 지금은 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것뿐이다.

달리는 군화 소리. 기사들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 발도.


나아가라. 나아가라. 흥분이 머리를 채웠다.
옆에 눈을 돌리자 기사들이 있다.
환상인가. 결국 머리가 미쳐버린 건가.
상관없다. 이것으로 만족이다.
이룰 수 없었던 행군. 있을 수 없었던 진군.
그것을 보여 준다면, 머리가 미쳐 있다 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언제나처럼.
앞장선다. 일번 창은 누구냐. 이름을 올리는 자는 누구냐.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이 세이버를 알아채고 몸을 진동시킨다.


무너진 얼굴이 절규했다.

세이버는 몸을 포탄처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포탄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게 돌격했다.

세이버가 삼켜진다. 하지만 에미야 시로를 향한 촉수는 세이버가 준 충격에 의해 그의 몸을 얕게 찢는 것으로


끝났다.

세이버는 그 상태를 보고 만족스럽게 웃는다.


몸이 삼켜져 간다. 마지막에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아아, 마스터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목이 떨리지 않는다. 삼켜져 간다.
내가, 내가 사라져 간다. 그 전에 작별을. 이별의 말을.
입이 열렸다. 긁힌 소리가 샌다.
작별인사를 하자.

「고마……, 웠, 다.」

나온 것은 이별의 말이 아니라 고마움의 말이었다.


그것이 이상해서.
그것이 기뻐서.
세이버는 생긋 미소지으면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 삼켜졌다.

「안녕, 어쌔신.」

어쌔신은 얼굴을 들었다. 정확하게는 들려고 했다.


치명상을 입으면서, 그저 영혼이 거기에 있을 뿐인 어쌔신에게는 얼굴을 들 필요도 없었다.
얼굴을 드는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얀 소녀가 어쌔신의 영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힘을 빌려줄래?」

어쌔신은 생각한다. 이 소녀는 무엇인가라고.


적이나 아군인가. 혹은 또 다른 존재인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어쌔신은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암살자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살인의 힘이 필요하면 손을 빌려준다.
분명 여기서 손을 빌려주는 것은 그 영웅왕에게 가세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유쾌한 것이었다.

어쌔신이 손을 뻗는다. 하얀 소녀와 어쌔신의 손이 겹쳤다.

「버서커와 아처는 일단 내 안에 있지만 버서커는 오염되어 있고, 아처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어.


당신이 마지막 희망이야. 어쌔신.」

그 말과 동시에 어쌔신의 의식이 끊어졌다.

떨리는 몸을 질질 끌면서 에미야 시로는 앞으로 나왔다.


무엇을 잃었나? 이 며칠 동안 무엇을 잃었나.
자신의 고집 때문에 얼마나 되는 것을 잃었는가.
각오하고 있었다? 각오하고 있었다고.
웃기지 마라, 웃기지 마라. 이 현실을―――――.

동경한 붉은 소녀와, 함께 달려나간 금빛의 소녀를 생각해낸다.

――――자신은 각오가 되어 있었다는 것인가?

라이더와 사쿠라는 이젠 없다.


그녀들은 더 이상 자신의 등에 없다.
그렇다면 도망쳐야 한다. 무엇을 놔두고서라도 도망쳐야 한다.
에미야 시로는 정의의 아군이 아니니까.
그런데.

왜 이 다리는 떨리면서도 앞으로 나오는 것인가.


아아, 젠장. ――아아, 빌어먹을.

――정의의 아군은 어른이 될 정도로――.

알았다, 알았어, 키리츠구.


나는 그것을 알아버렸다.
당신과 같은 광경을 보고 말았다.
당신이 아마도 날 사랑해준 것처럼.
본 적도 없고 모르는 사람을 계속 구하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내 곁으로 돌아와주고, 거기서 죽어버린 것처럼.

나도 이젠 누군가를 구하고 나서 죽을 수 없다.


사쿠라에게 돌아가지 않고 죽을 수는 없다.
조금 전까지 안고 있던 이상은 정리해버렸다.
아처의 팔은 나에게 자신의 미래의 말로를 가르쳐주었다.
조금 전까지의 자신이라면, 그것도 교훈으로 삼아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어떤가.
게다가 공포를 느껴버린 것은 아닌가.
사쿠라가 옆에 있어주지 않는 것에 공포를 느껴버린 것은 아닌가.

그 말대로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작열의 밤. 시작의 날.
거기서 밟아 온 모든 인간에게.
자신은 원망의 목소리를 향할 수 있을까.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게 향하는 것은 속죄인가.

그렇다면 아직 구할 방법이 있었겠지.


사락, 하고 지면을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황금의 왕의 등이 보였다.

「괜찮겠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건 당연한 질문이겠지.


나의 목적은 사쿠라를 구하는 것뿐이다.
결국은 여기서 더는 관련될 필요가 없는 인간과는 동떨어진 소행.
나같은 쓰레기는 필요없다.

「그래.」

더 유연하게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대로 사쿠라에게로 돌아가면 된다.
이 황금의 왕은 반드시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을 완전히 토벌할 것이다.
평안한 나날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만――――.

「도와줘. 길가메쉬. 난 저놈을 용서할 수 없어.」

――――그런 것은 할 수 없었다.

저놈은 사쿠라를 울게 했다.

한 걸음.

저놈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한 걸음.

저놈은 토오사카와 세이버를 이 현실로부터 떨어뜨렸다.

한 걸음.

두근, 하고 아처의 팔이 뛰었다.


잘 판단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아처.
그래, 알고 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그렇지만 앞으로 한 번뿐이야.
지금부터 앞으로 어떤 난관이 있어도 이 이유를 꺼내는 것은 반드시 마지막으로 한다. 약속한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이상. 버리고 간 이상.


누군가를 위해 분노하는 힘을.
목표로 한 정의라는 이유를.
한 번만 더 나에게 내걸게 해줘.

정의의 아군.

그 이상을, 그 이유로, 나에게 칼날을 휘두르게 해줘.

한 걸음.
길가메쉬와 에미야 시로는 어깨를 나란히 한다.
길가메쉬의 입술은 치켜 올라가 있었다.

「과연.」

문득 중얼거렸다.
아직도 꿈틀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을 지켜보면서 중얼거린다.

「과연, 과연, 과연,――――그런 이유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의 악까지 60 걸음 정도.


그 마지막 도정을 영웅왕이 앞서서 내디딘다.
「그건 그래. 그 말대로다.
――――세이버가 목숨을 걸었고, 계집이 목숨을 버렸다.
그 가치가 너에게 없으면 나의 세상이 기운다.
균형을 취할 수 없게 되지.」

그럼 갈까. 손을 치켜들고 길가메쉬는 더욱 걸음을 진행시켰다.

「――――따라와라, 잡종.
적은 무려 세계의 악의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의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따위는 없겠지?」

『이 세상 모든 것의 악』따위는 적이 아니다.
영웅왕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인솔하겠다, 따라오라면서 그 금빛의 등을 보였다.

에미야 시로의 얼굴에 표정이 떠오른다.


그것은 결의의 미소였다.
결연하게 한 미소였다.

영웅왕의 창고가 열린다.

하지만 그런데도.
공중에 떠오르는 수많은 전설의 보구인데도.

「에, 그래도 부족해.」

목소리가 등을 친다. 누구의 목소리냐고 물어볼 것도 없었다.


길가메쉬는 뒤돌아 보지 않고 그저 앞만을 대비한다.
에미야 시로는 영창하고 있던 투영 마술의 영창을 멈추고 경악한 표정으로 뒤돌아 본다.
이리야스필 폰 아인츠베른이 두 사람을 그 두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말한다.

「이 성배도, 어벤저라는 것도 파손되어 있어.


이젠 성배 자체에 반동이 올 거야.
무한의 마력의 솥이라고 해도 사실은 무한하지 않아.
열화하기도 하고, 쇠약하기도 해.
대개 무한--한계가 없다는 개념은 인간의 옛 사상.
혹시 우주라면 한계가 있을 지도 몰라.」
「강의는 필요없어.」

길가메쉬가 그 말을 잘라버렸다.

「죽일 방법만을 말해라.」


「성급한 사람이구나.」

기가 막히다고 말하듯이 이리야는 어깨를 움츠렸다.


――당연히 영웅왕에게는 그 행동이 보이지 않지만.

「――성배를 부수는 건 간단해.


지금의 저것은 무형의 존재.
서번트와 마스터의 관계는 잘 되어 있어.
서번트에게 있어서 마스터는 현대 세계의 쐐기야.
그러니까 저것은 사쿠라를 원하고 있어――
손에 넣는 것으로 무러져 버린다고 해도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은 거니까.」

거기서 말을 자르고.

「――돌려말하는 식으로 말하는 건 그만둘까.


중요한 건 저것에게 명확한 형태를 주면 되는 거야.」

경쾌한 발걸음으로 이리야는 영웅왕과 에미야 시로를 추월했다.


시로가 반사적으로 이리야에게 손을 뻗는다.
이리야는 시로우와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 떠오른 감정은 터무니없는 상냥함이었다.

「"움직이지 마."」

그 한 마디로 손이 멈춰버렸다. 이를 악문다.


의지의 강함만으로는 육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의 눈이 이상하게 빛난다. 매료의 마안.
그런 단어가 머리를 빼앗는다.
상냥한 표정을 한 그 얼굴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환시한다.

「형편이 좋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아.


누구나 상처입고, 이야기처럼 행복하게 끝나주지 않아.
그래, 시로. 넌 그 현실이 너무나 싫고 참을 수 없어서 정의의 아군이 되고 싶어했었지.」

그렇지만 정의의 아군은 이젠 없다.

「시로. 이젠 꿈 같은 기적은 끝났어.」

길가메쉬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멈출 이유는 없다. 멈출 생각도 없다.
길가메쉬는 이 성배에 아무런 생각도 없다.
그렇다. 역할이다. 이것은 적용된 역할이다.
계집이 여동생을 끝까지 지키고, 세이버가 마스터를 끝까지 지킨 것처럼.
이것은 움직이지 않는 배역이다.
누구나 헛되지 않게 배치되어 있다.
그렇게 길가메쉬는 생각했다.
사람의 역할이란 어디까지나 보편적인가. 혹은 불변인가.
――어느 쪽이라도 좋다. 물어보는 것은 한 가지.
죽는 것이 이 성배의 역할이라고 하면.
――자신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것.
그 사고를 일소로 덮어버렸다.
이 영웅왕을 세계가 정하는 역할 따위에 적용시킬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사납게 미소지으면서 성배를 본다.
죽는 것이 역할인가.
동정은 없다. 연민도 없다.
멈출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어긋나지 않도록.
길가메쉬는 손을 꽉 쥐었다.

「기적은 많이 있었어.
여기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던 것도 기적이라면, 내가 이렇게 시로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조차 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탁, 하고 이리야의 다리가 진흙을 향해 내디뎠다.

「발밑의 불확실함은 모두 알고 있었어.


한 걸음 어긋나버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와해되어버리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지.」
「이리, 야………?」

한쪽 발이 잠겨 간다.
주저없이 남은 한쪽 다리도 진흙에 담그었다.

「하지만 시로. 린도, 세이버도--그리고 나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후회는 없어.


바라듯이, 싸워서 바라듯이 죽었어.
그 죽은 모습을 나쁘게 말하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어.
그렇게 하게 하지 않아.」

신체가 진흙에 가라앉아 간다.

「세이버는 긍지와 충의를 지키고 죽었어.


린은 여동생을 지키고 죽었어. 그렇다면 나는」

시로를 위해 죽고 싶어, 라고.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만족스럽게 죽는 방법이라고.

에미야 시로는 달리기 시작하려고 했지만 다리의 근육이 끊어졌다.


아아, 알까보냐. 제길. 알까보냐.
나아가라.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면 아직 진흙이 허리까지밖에 올라와 있지 않아.
이리야를 구할 수 있어.
제길. 움직여, 움직여움직여움직여움직여―――――!!

「조금의 행복을 줄게.


린의 영혼은 아직 여기에 있으니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 발버둥치는 자신을 보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가메쉬를 보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눈을 감고 팔장을 끼고 있었다.

목까지, 이리야의 신체에 진흙이 목까지 올라온다.


구할 수 없다, 구할 수 없다.
그런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시끄럽다고 그것들을 덮어버린다.

「이리………, 야!」

외친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떨리는 입술로 외치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잡을 수 있도록.
반드시 어딘가에서 어이없이 잃어버린 가능성이 한번 더 돌아오도록.
팔을 쑥 내밀었다.
하지만―――――뻗은 손가락은 절망적일 정도로 닿지 않는다.

「고마워, 시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어.」

진흙이 소리를 내면서 이리야의 모습은 영원히 사라졌다.

기묘하게 가슴이 조용했다.


계속 잃은 마음은 이미 잔물결조차 서지 않았다.
슬픔은 가슴에 모두 집어넣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반드시 이 순간을 생각해낸다.
자신이 있다. 그저 며칠동안 함께 한 소녀를 생각해내고 반드시 울 것이다.
아아, 많은 것을 잃었다.
그렇다면 발을 멈춰볼까.
이젠 싫다, 그렇게 말하고 도망칠까.

사쿠라의 미소가 한순간 뇌리를 빼앗는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올바른 본연의 자세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도망쳐서 사쿠라의 웃는 얼굴을 가슴을 펴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뻗치지 못한 손에 대해 후회했다.
닿지 못한 손에 대해 후회했다.
잃어버린 많은 생명에 대해 후회했다.
세이버, 토오사카, 그리고 이리야.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그것들을 전부 모른다고 하는 것은.

에미야 시로로서는 할 수 없었다.

――성배를 부수는 건 간단해.

그녀가 한 말을 생각해낸다.
그녀? 그래, 그녀다―――――.

한순간의 노이즈.
문득 빠져버릴 것 같은 기억을 억지로 붙잡았다.

―――――이리야가 등을 밀어주었다.

「온다.」

길가메쉬의 한 마디로 사고가 중단되었다.

「―――――잘라버리는 것과 잘리는 것.
세계는 터무니없이 좁다.
그래, 그러니까 많다고 하는 것은 그 만큼 기분 나쁘다고 한 것이다.」

세계를 다시 칠해가는, 기억의 한쪽 구석에 약간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처의 팔이 호소해 오는 기억. 고유결계.
게다가 유사하다.

「없어지면 이렇게도 가슴으로 고민한다.


인간 따위는 처음부터 적은 것이 좋아.」

길가메쉬는 변질된 세계를 보고 중얼거렸다.


거기는 영웅왕에게 있어서, 에미야 시로에게 있어서 시작의 장소다.
그의 왕은 여기서 수육되었고.
그의 소년은 여기서 이상을 손에 넣었으니까.
하지만 영웅왕은 중얼거린다. 시시하다고.

눈앞에 보이는 큰 구멍.

거기까지 같은가, 라고 길가메쉬는 탄식했다.


아아, 여기는 나에게 있어서 패배의 장소였지.
영웅왕은 여기에서 기사왕에게 졌다.
저 혐오스러운 진흙에 삼켜지고 서번트 『아처』로서 소환된 자신이 졌던 것이다.

하지만.

부유하고 있는 검에게 호령을 내렸다.


구멍에서 나오는 무수한 촉수를 모조리 두들겨 잡는다.
구멍의 중심에는 제물로 바쳐진 아인츠베른의 소녀.
심장은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소녀의 인격은 존재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이 아인츠베른의 성배다.
인간이라는 기능을 버리고 성배가 되는 것이 아인츠베른의 호문클루스.

저것은 썩어버린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 바쳐진 제물인가.


대답은.

촉수가 다가온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태연자약.
미소까지 지으면서 다가오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길가메쉬의 목을 도려내려고 한 일격이 발사된 단도에게 저지당한다.
그것은 본 기억이 있는 물건.
두 번 서로 죽였다. 그렇다면 세 번째도 적인가?

물어볼 것도 없었다. 어느 쪽의 의문도.

저 성배는 제물 따위가 아니라, 이 최악의 진흙을 세계에 흘려보내지 않게 받아들이는 잔이다.

「―――――하.」

자신의 앞에 검은 외투를 날리는 암살자는 적이 아니었다.

「어쌔, 신?」

에미야 시로의 말에 어쌔신은 희미하게 수긍했다.

「왜 왔지?」

조롱하는 투로 묻는 길가메쉬.
어쌔신은 등을 보인 채로 중얼거린다.

「살인밖에 능력이 없는 자에게 왜냐고. 그렇게 묻는 건가, 영웅왕.」


「설마, 그저 농담이다. 어쌔신. 그래, 그렇겠지. 암살자가 하는 일은 하나.」
「그렇다. 하나.」

촤락, 하고 어쌔신의 손에 다크가 펼쳐졌다.


길가메쉬는 창고에서 보구를 차례차례로 꺼낸다.

「「죽일 뿐이다.」」

목소리가 겹쳤다.

달려라. 어쌔신이 말했다.


달려라. 길가메쉬가 말했다.

저것은 이 『시대』에 현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쓰러뜨려라.
아니, 에미야 시로 자신, 자신의 손으로 저것을 토벌하라.
그렇게 말했다.

촉수를 쳐내는 어쌔신의 뒤를 따른다.

길은 만들겠다. 넌 따라와라.
가로막는 건 처리해주겠다. 마음껏 달려라.

두 영웅의 목소리를 생각해낸다.


―――――말해주고 있다.
이 에미야 시로의 풍경 속에서, 이 지옥 속에서.
더욱 힘이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바란 장소에서.

잘도 그렇게 기쁜 말을 해준다―――――!!

어쌔신이 묻는다. 자신은 죽었던 것이 아니었냐고.


그렇다. 확실히―――――자신은 죽었다.
영웅왕에게 패해 서번트로서의 역할을 끝냈을 터이다.
어중간한 육체와 영혼이 남아 있었지만, 이처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것이 아니었을 터이다.
외투로부터 들여다 보이는 수족, 그리고 육체는 회색의 것이자 갈색의 것이었다.
나의 몸이 아니군.
부웅, 하고 팔을 휘둘렀다.
다음에는 상처 투성이의 신체가 삐걱거린다.
투척된 다크가 뛰어들어온 촉수를 쳐서 떨어뜨렸다.
후회는 없었을 터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발휘해서 서로 죽였다.
정면에서 저 영웅왕과 싸워서 죽었다.
후회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 싸움은 무엇인가.
책임을 다하고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참가하고 있는 이 싸움은 무엇인가.

어쌔신인 정면으로 오는 촉수만을 베어버린다. 좌우는 완전히 무시한다.


길가메쉬의 보구가 모든 촉수를 쳐서 떨어뜨려주고 있다.

게다가 암살자로서는 최저. 정면으로 돌진해 간다.


이 싸우는 방식은 무엇인가.
뒤에 달리는 소년이 있기 때문인가.
이 어떤 상관관계도 없는 소년이 있기 때문인가.
그야말로 바보같다.
어쌔신에게 의협심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명령받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렇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왜 자신은 달리고 있는 것일까.

덤벼드는 촉수를 자르거나 후려치고.


혹은 투척한 단도로 쳐서 떨어뜨린다.
왜 끊어질 것 같은 신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같은 건 없다. 그런 식으로 정색할 수 있다면 됐다.
어쌔신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죽이는 거에도 살해당하는 거에도 이유를 원하지 않고 계속 죽이고 있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죽인 거에 후회는 없다.
누구를 죽이려는 거에 그런 감정 따위를 넣은 적은 없었다.
감정을 약으로 죽인다. 얼굴을 태운다.
명령대로 죽인다. 거기에 자랑이 있었다.
거기에 긍지가 있었다. 납득도 있었다.
하지만 이유만이 없었다.
왜 자신이 어딘가의 누군가를 죽이는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없다. 알아선 안 된다.

하지만. 한 번만.
아아, 핫산으로서 산 자신의 최후에.
한 번만. 나이프를 잡은 그 손이.
한 번만. 사람의 육체를 도려낸 칼날을 잡으면서.
단 한 번만.

―――――툭, 하고 팔이 떨렸다.

크, 하고 목으로부터 소리가 새었다.


쓸데없닌 이야기다. 과거를 말하는 의미 따위는 없다.
그저 생각하기만 하자.
이 얼마 안되는 기억이야말로, 자신이 가슴에 품고서 죽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후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기억 따위는 잊자.
그것이 죽인 상대의 아이였던 것도 잊자.
후회를 느낀 것이 자신을 약하게 했던 것도 잊자.
그저 무색으로 된 암살자.

―――――당신이 마지막 희망이야, 어쌔신.

그런 아무래도 좋은 말이.
울 것처럼 기뻤으니까.
그 누구든지 타인의 의사로 죽여 왔고.
희망같은 말에 적용하게 된 것이 기뻤으니까.
그래서 달리고 있다니.

그런 것은 잊어버려라. 어쌔신.

그래, 서번트 『어쌔신』은 아무 후회도 없이 죽었다.


이것은 이미 그의 성배 전쟁이 아니다.
그렇다면 좋지 않은가.
단순하게 가자. 그렇게 되고 싶었을 터이다, 어쌔신.
그렇다면 그렇게 가자. 어차피 이것이 마지막이다.

준비는 되었나―――――.

어쌔신의 다리의 근육이 융기했다.


손에 가지고 있던 단도를 내던지고 긴 한쪽 팔로 뒤에서 달리고 있던 에미야 시로를 잡았다.
그대로 자신의 육체를 꿰뚫는 촉수 위를 달려나간다.
한 걸음 다리를 내디딜 때 마다 미치는 것 같은 격통. 미친다고?
하, 하고 웃었다.
그 미칠 수 있는 『기분』 따위는 없다.
같은 인간을 계속 죽인 인간이 제정신이어서 좋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상관할까 보냐. 나아가라.

―――――그저 오직 이 길로―――――간다!!

포효.

길가메쉬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적동색이었지만 푸르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신체를 억지로 지탱하면서 앞을 보았다.
달리는 어쌔신, 뒤를 따르는 에미야 시로.

―――――자신이 저것을 죽여도 되었다.


구멍의 중심에 떠올라 있는 하얀 성배를 본다.
그래, 저 소녀를 자신이 죽여도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무의미하다. 저 성배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참작해 준다면.
죽이는 역할은 자신이 아니라 에미야 시로에게 맡겨야 한다.
짐답지 않군. 그래, 짐답지 않아.
어떻게 된 거냐, 영웅왕.
저 녀석들과 오래 접하고 있느라 정이 들기라도 한 거냐.
마력이 바닥나고, 생명을 태우면서 무리를 하면서 보구를 쏘고 있는 자신의 몸을 무기력하다는 이유를 들어서
지금의 감정의 설명을 해버릴까.
가라사대, 한때의 기분의 미혹이었다고.
기분의 미혹. 입술을 매달아 올렸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허술하다. 보복과 복수와 빚이 있다.
그런 목적이 있다. 자신의 목적을 없었던 것으로 하면서까지 저녀석들에게 가세할 의미는 없다.

모순되고 있다. 그래, 알고 있다―――――.


이 모순이야말로 자신을 죽인 감정의 일부다.

태어났을 때 강철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어떤 인간의 추악함을 알아도 자신은 그대로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정을 알아서는 안 되었다.
재차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죽기 직전의 사고를 반복한다.
옛날은 모두 이치로 나뉘어진다고 생각했다.
인간이라는 것 모두가 깨끗이 나뉘어진다고 생각했다.
착한 인간도, 나쁜 인간도 잘 사용할 수 있다고.

어린 아이의 도리다.

짐은 아무것도 몰랐다. 인간이 그렇게 추악하다는 것을 몰랐다.


아아, 자신이 이렇게도 추악하다는 것을 몰랐다.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절망.
자신만은 다르다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보고 만 자기 자신의 추악함을.
자기 자신의 추악함을 인정하고, 그 다음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이 정도가 인간인가.

「정말이지」

어리석은 이야기.
길가메쉬는 매달아 올린 입술에서 피를 흘렸다.
무리를 하면서 싸웠던 것이다.
여기저기가 손상되어 있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다.

「그래도」

굴복할까 보냐. 세계여.


인간의 추악함은 알았다.
인간의 귀천은 알았다.
힘이 약한 자는 유린당할 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살아 왔지만. 그 생애에 후회 따위는 없지만.

지금 처음으로.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추악함도. 귀천도. 어딘가에서 유린당하는 인간도.

저 달리는 두 개의 등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바보같군.」

웃었다. 상쾌한 웃는 얼굴로 웃었다.


지금의 사고야말로 한순간의 기분의 미혹.
어린 아이의 도리는 버렸다.
인간은 추하다. 구할 방법이 없다.
짐에게 짓밟히고 디딜 곳으로 되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
아아, 그래도 그 사고에 미혹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고는 기분의 미혹이다.
길가메쉬의 신체가 앞으로 기운다. 쓰러지는 건가?
아니다. 밟고 내디딘다.
그리고 또 한 걸음 내디뎠다.
그것을 교대로 반복한다. 스피드가 올라간다.

그래도 모두 알고 있다.
이 가슴을 찌르는, 어쩔 수 없이 외치고 싶어지는 생각이 기분의 미혹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 충동에 몸을 맡기는 것을 변덕이라고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괜찮겠지.
속마음에 있는, 그저 얼마 되지 않는 유감을 여기에 두고 간다.

길가메쉬는 당장 쓰러질 것처럼 낮게 달리고 있었다.


보구의 비가 멈추지 않는다.
영웅왕의 진격을 따르듯이 모든의 촉수를 쳐낸다.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은, 자신이 필요로 한 대답은 생전에 모두 나와버렸기 때문에.
이제 와서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이 폭동은 가끔 일어나는 변덕이다.

어쌔신의 포효. 에미야 시로의 외침.


길가메쉬는 그것을 들었다.
입이 열렸지만 의식하지 못했다.
가슴을 찌른 감정이 말이 되어--아니, 소리가 되어 뿜어나왔다.

시야가 흔들린다. 삐걱거리는 육체.


잠깐 보인 어쌔신의 얼굴은 웃는 얼굴이었던 것처럼 생각된다.
그 표정은 가면 때문에 읽어낼 수 없었지만, 웃는 얼굴이었던 것처럼 생각된다.
그가 지른 포효는 정말 용맹했다. 이것이 영웅인가.
지금 자신을 잡고 달려나가는 이 자가.
이것이 예전의 에미야 시로가 되고 싶다고 바라고 있던 것인가.
단 하나, 사람의 몸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도리가 아닌 것의 존재인가.

「………큭.」

동경하지 않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자신도 이렇게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하지만.

한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웃는 얼굴.


기억 속 어디에서라도 있어준 웃는 얼굴.

평온을 바라지 않냐고 추궁받으면 그것도 또 거짓말이다.


하하, 하고 웃었다. 하하하, 하고 소리를 냈다.
달리는 것은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지금부터는 지탱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앞에서밖에 웃지 않았던 소녀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웃을 수 없었던 그녀를.
자신이 지탱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경치가 고속으로 움직인다.


가까워지는 성배의 구멍.
거기에 바쳐진 성배의 소녀를 본다.

그러니까 모두 가슴 속에 가라앉히자.
가슴의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히자.
구원를 얻은 날.
키리츠구와의 약속.
에미야 시로를 에미야 시로로서 하고 있던 모든 것을.
지금 가슴 깊숙히 가라앉히자.
자신이 죽을 때에 생각해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
웃었다. 그것으로 좋다.
죽기 직전에. 그 약속이.
좋았다고 중얼거린 아버지와의 약속을.
생각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눈부실 정도로 동경한 그 추억도.
정의의 아군이라는 그 최고로 떨리는 말도.

「그래,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부르르, 하고 아처의 팔이 떨렸다.


나는 네가 되지 않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까.
그래도. 그러니까.

구멍이 눈앞에 다가온다.

이 일격에.

「나와 너의 무게를 전부………!!!」

싣고 가자.

어쌔신에게는 사고가 없었다.


그저 오로지 달린다.
이 지근거리에서의 적의 공격은 이미 어쌔신이 막는 것은 불가능.
단도는 버렸다. 다리는 꿰뚫렸고, 어깨가 베이면서 짜집기된 몸이 떨어져 간다.
시체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가 움직이고 있다.
이젠 이 기적도 여기까지다.
토하는 피구역질은 없다. 중얼거려야 할 말도 없었다.
책임을 다한다. 기대에 응한다. 그것뿐이다.
아픔과 함께 감정을 생각해낸다.
떨리지 않았던 가슴이 떨린다.

―――――안녕이다, 핫산 자바하.

그 말을 생각해냈다.
영웅왕이 중얼거린 마지막 말.
자신이라는 존재의 마지막. 그 때에 들은 말.
그 영웅왕이 왜 그 때 자신을 이름으로 불렀는가.
스륵 하고 빈 손에 나이프가 나타난다.

―――――묘비로서는 궁상스럽지만.
그저 묘비에 새길 이름을 갖고 싶다―――――.

마지막 다크를 휘두른다.


자기자신의 가슴에 우뚝 솟은 자랑하는 칼날을 휘두른다.

―――――나에게 꽂힌 칼날이다. 자랑으로 삼아도 좋다.


황야에서 헛되이 죽어서 자신의 단도를 묘비로 하자-----.

「그런가.」

어쌔신은 중얼거렸다.
중얼거릴 말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가―――――!!」

이름을 갖고 싶다. 그렇다, 핫산이라는 것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집단의 이름이다.


때문에 그것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 이름은 자신의 묘비에 새겨야 할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깨가 꿰뚫린다. 칼날을 놓지 않는다.


당연히 에미야 시로도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로-----?

저주의 진흙 위를 달린다.

자랑해야 할 이름이 아닌가.


비록 역할이라도. 비록 주어진 이름이라도.
자신에게는 자칭해야 할 이름이 있었다.
그것조차 얻을 수 없는 자도 있었는데.
불려야 할 이름조차 없었던 자도 있었는데.

어쌔신의 이마를 촉수의 일격이 가격했다.


가면이 날아간다.

아아, 그래도. 그래도 싫었다.


자신의 이름. 그 정도는 자신만의 것이었으면 했다.

가면 아래에 있던 것은 같은 가면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가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부서진 얼굴이 아니라―――――.

영웅왕이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의 이름을.


핫산 자바하.
그래, 불러 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주저할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야말로 핫산 자바하. 산의 노인. ―――――어쌔신.
새겼다. 가슴에 확실하게.

―――――날쌔고 용맹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미형은 아니었고, 시선을 끌만한 화려함도 없다.
어디에도 있고, 분명 어딘가에 있다.
그런 남자의 얼굴이었다.

어쌔신은 다크에 옮겨지는 자신의 얼굴을 잠깐 보았다.


그것으로 좋다.
주저도 후회도 없다.
자리에 돌아가면 사라지는 기억이라고 해도.
안고서 갈 수 있다. 이 때 이 감정만은 안고 갈 수 있다.

다리가 뒤얽혔다. 한계다.


지탱해주었던 양 다리가 무너진다.
누구의 다리였을까.
고맙다.
중얼거린 말과 동시에, 무너지듯이 재가 되어 간다.
어쌔신은 웃었다. 여기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지옥.
참된 황야. 묘비는 손안에.
갖고 싶었던 이름은 가슴에.

그럼 죽자. 목소리를 냈다.


웃음소리. 그럼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꾹, 하고 팔에 힘을 집중했다.

「간다.」

대답은 의지로 왔다.


그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어쌔신은 한층 더 깊게 웃었다.
그 긴 팔을 휘두른다.
에미야 시로가 구멍보다 훨씬 위로 투척되었다.
실패? 이 시기에 이르러서?
설마―――――!

언제나 일격이란 것은 휘둘러 내리치는 것!


그 사고와 동시에 어쌔신의 신체는 수많은 촉수에 꿰뚫렸다.
상관할까 보냐. 죽자.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자신에게 감사를.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자신에게 감사를.
그저 마지막. 지면에 내팽개쳐지는 그 순간에.
눈밖에 남지 않은, 그렇게 사라지는 순간에.

황금의 왕을 보았다.

달린다.

고속의 세계. 1 초 후에는 시야의 모든 것이 변한다.


머릿속에서 많은 보구가 깜박인다.
영웅왕을 본 덕택에 무기의 저장에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뽑아야 할 검은.
만들어야 할 검은 정해져 있었다.

「―――――」

――너에게는 무리다.
그것은 에미야 시로를 『규명해』도 불완전한 투영밖에 할 수 없는 것.

지금은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등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 이외에 있을까.


있는 것이 없다. 있어도 될 리가 없다.
이 검 이외에, 이 때, 이 장소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게 휘둘려 내리쳐도 되는 검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괜찮다. 몇 번이나 보았다. 몇 번이나 맛보았다.
최강의 검이다. 지나친 흉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 하지만 하려고 하면 할 수 없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몸은 단지 그것에만 특화된 마술 회로.
확실히 에미야 시로에게 지나친 마술 행사를 시키면 자멸하는 것은 명확.

하지만 이 몸이―――――검을 투영하는 것으로 자멸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

「기,………아――!!!!」

마술 회로에 마력을 통하게 해라.


격철을 두들겨라. 준비는 되었나.
꾸욱, 하고 악문 이빨이 울었다.
주저는 있을 수 없다. 토오사카가 말했다.
언제의 기억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말했던 것이다.

마술 회로를 모조리 태워버릴 정도로 마력을 돌리면―――――.

양팔 안에 불확실한 검.
형태를 이루지 않은 세계 최강의 검.
아직이다, 아직이다, 아직이다.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처의 팔에 호응하듯이 마술 회로가 떠오른다.

그렇다. 싣고 가자. 그렇게 말했지. 아처.


이것은 정의의 아군의 소행이다. 네가 구역질을 할 정도로 싫어하는 소행이다.
하지만 동경했겠지. 이런 역할을.
이런 지옥의 장소에서. 에미야 시로의 시작의 장소에서.
직면하는 모습을 동경했겠지―――――?

동경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힘이 있다면, 그렇게 바란 이 장소에서.


나는―――――우리들은 지금.
힘을 발휘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닿게 하자.

그래, 토오사카가 말했다.


마술 회로를 다 태워버릴 정도로 마력을 돌리면.

그것은―――――「」에 도달한다고―――――!!

머리의 비등, 기억의 파괴. 상관없다.


가장 소중한 추억은 무너지지 않았고, 잃어선 안 되는 기억은 가슴 깊숙히 가라앉혔다.
일상의 단편이 부서져 가지만.
거기에 있던 각오를 잊지 않는다.
자, 기적을 일으키자. 마력 회로를 모두 태워서. 생명을 걸고서.

뽑아낸다, 그녀의--기사왕의 성검을.

지금 여기에. 약속된 승리를 내세운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흩어진다.


단선, 단선, 단선, 근육이라고 하기보다 줄기가 끊어진 것 같은 감각.
비정상적이기까지 한 허탈감.
낙하해 가는 이 몸.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미소.
바쳐진 소녀에게 성스러운 검을 내세운다.
진명은 필요없다. 진명을 주창하는 것은 할 수 없다.
이것은 그녀의 검이다.
형태를 흉내낼 수 있던 것만으로도 다행.
그리고 휘두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낙하, 낙하.
구멍.
하얀 소녀의 머리카락.
외침.
그리고 검을.

날린다.

한순간의 현기증. 불의의 공격.


마지막의 발버둥침.
뻗쳐오는 진흙의 창. 이젠 세이버는 없다.
여기서 꼬치가 되어 죽는 것이 에미야 시로의 말로인가.
있을 수 없다. 믿어라.
내 등에는 누가 있었나.
내 뒤에는 누가 있었나.

아니, 지금 정말로.

내 앞에는 누가 있나―――――?

「돌려받으러―――――그리고 돌려주러 왔다! 잡념이여!」

황금갑옷이 부서진다. 어깨에 타격을 입은 길가메쉬는 자세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웃는다. 양보해주겠다, 잡종.

「―――――짐의 백성! 그리고 네놈에게 진 빚을!」

미끄러지면서 들어가듯이 손에 나타나는 보구.


그 이름은 그람.
세이버가 마지막으로 휘두른 검.
혼신의 힘을 집중하고 휘두른다. 찢겨지는 촉수.
그리고 낙하. 시야에는 한 명의 남자.
가라. 그렇게 외치려고.
길가메쉬는 한순간만 말을 삼켰다.

깊은 미소를 띠고.

「가라―――――에미야 시로!!!」
그렇게 외쳤다.

잡종이 아니야. 잡종이 아니야. 잡종이 아니야―――――!!


눈물이 나왔다. 비유가 아니다.
속마음이 아니다. 지금 정말로 눈물이 나왔다.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무엇일까, 이것은.
닦을 수 없는 것을 다행이라고 느끼는 눈물이라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투영된 성검은 구멍을 베고, 그것에 몸을 바친 소녀를 벤다.
웃는 이리야. 목소리는 없다. 입술만이 움직였다.
힘.
내.
라고 그렇게 움직였다.
지금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 때문인가.
혹은 그 양쪽 모두인가.
육체를 벤다. 지금 정말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할 수 없다.
피로 물드는 그녀의 의복.
벗어나는 찰나, 한 마디만 중얼거렸다.

「그래―――――알았어.」

들렸는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그녀의 미소가 보인 것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벗어났다.

세계가 일그러진다. 그 한순간에 약간의 꿈을 꾸었다.


그것은 악성으로서 임명된 영령과 한 명의 서투른 마술사의 이야기.
그래, 확실히 너와는 이런 식으로 만나는 방법도 있었을지도 몰라.
『이 세상 모든 것의 악』에게 의식을 향한다.
그렇지만 작별이다.
지금 여기서는 나와 너는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어.

그대로 시로의 일검이 세계를 갈랐다.

이 결과는 알고 있었다.
전회의 성배 전쟁을 본떴다는 것이라면.
이렇게 선 위치에서.

영웅왕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진흙에 몸이 삼켜졌다.


이것을 재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여어.」

금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가 미소지었다.

「또 삼켜져버렸군요. 모처럼 팔을 희생하면서까지 살아남았는데.」

주위는 전부 검은색으로 칠해진 공간.


어째서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질문해야 할 입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아.」

소년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몸은 움직이지 않아. 왜냐하면 여기는 서번트가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니까.


본래라면 어떤 서번트도 여기에 존재할 수 없어. 여기는 자리로 가는 길.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궁극의 것뿐.
영령은 여기서 정보로 변환되고 지식만이 자리에 가게 돼.」

스륵, 하고 소년의 영상이 어그러진다.


다음 순간에는 푸른 창병이 거기에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겠지. 왜 정보만이 전해지는 것인지.」

빙글빙글 하고 심심풀이인 것처럼 붉은 창을 돌렸다.

「그것은 인간성이 변했기 때문이야. 어떤 존재에도 영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


우리는 경험한 것만큼 변해버리지.
그것은 적어도 우리를 사용하는 자에게 있어서 환영하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창병의 영상이 어그러진다. 배반의 마녀가 거기에 섰다.

「바라는 것은 우리들의 전성기. 가장 강하고, 가장 망설임이 없었던 때.


우리들은 많은 기억을 교훈으로서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근원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영상이 어그러진다. 붉은 궁병.

「나는 모두 거머쥘 수 없는 정의를 위해 영웅이 되는 것을 맹세했다. 세계에게 사용되는 것을 원했다.


나는 세계에 사역되는 가운데 정신이 마모되었고, 마침내 최초에 가장 강했던 자신을 잊었다. 하지만」

검은색으로 찬 세계에 영상이 떠오른다.


붉은 궁병과 한 명의 소년이 싸우는 장면.
궁병은 패배했고, 소년은 승리했다.
궁병은 그 영상을 보고 살짝 웃는다.

「그래, 근원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영상이 어그러진다. 기사왕.

「하지만 근원으로부터 많은 존재가 파생한다.


그것은 단순하게 나누어 선성과 악성의 두 가지다.」

기사왕의 성질이 반전했다.


검은 투구와 갑옷. 검은 검. 금빛의 눈.

「서번트인 이상, 그것에게 삼켜지면 우리들은 그 성질을 반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유지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더 이상 그것은 서번트라고 부를 수 없다.」

영상이 어긋난다. 어쌔신.

「하지만 너는 유지했다. 영웅왕.


제 4 회의 성배 전쟁. 너는 지금 완전히 같은 상황에 놓여졌고, 그리고 거기서 육체를 얻어 현세에 귀환했다.
―――――너는 어떤 때라도 규격외다.」

영상이 어긋난다.
그리스의 대영웅. 어깨에 하얀 성배.

「그래. 본래라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룰이니까.


당신이 한 일은 물고기가 하늘을 나는 일.
오염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반대로 그것을 다 마셔버렸지.」

하얀 성배는 웃었다.

「우리들, 마술사의 연구를.


마술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그렇게 만든 룰을, 당신은 간단하게 깨버렸어.」

영상이 흔들린다. 칠흑의 풍경에 녹아드는 신부옷.


코토미네 키레가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렇겠지, 길가메쉬.
제 4 회 때는 너의 육체가 무너지지 않았었다.
마력도 아직 충분히 있었다.」

신부는 웃었다. 바닥 같은 미소였다.


어둡고 보이지 않는 틈의 바닥 같은 미소.

「거듭 말해두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너에게 처음부터 기어올라갈 힘같은 건 남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그 말대로다.
마력은 바닥났고, 지금 육체조차 여기에는 없다.
어두운 어둠에 삼켜지고 자리로 돌아갈 뿐.

여기서 죽어도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자리로 돌아올 뿐이다. 이 경험을 지식으로서 축적하고, 더욱 자신을 쌓아 올리면 된다.
그래, 여기서 단념해버려도,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이 때보다 뛰어난 자신이 있다.
분명 대처할 수 있다. 이 상황에 다시 빠지면 대처할 수 있다.
지금은 무리라도 다음에는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라고?

다음에야말로 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인가.

「웃기는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소리가 들렸다.

「웃겨주는구나.」

그래, 이런 의지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좌절된 기분인가.」

이 의지를. 이 영웅왕의 의지를.


물들여져 있었던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것이 눈앞에 있다.
눈을 뜨고, 눈을 뜨고, 눈을 뜬다.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코토미네 키레.
자신의 마스터. 자신이 죽인 마스터.
웃었다. 그런 모습을 흉내내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바닥이 드러나 있다.
그렇다, 놈은 말했다. 근원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냐.
조금 전에 나타난 서번트는 전부 외관 뿐이었다.
그 근원까지는 흉내낼 수 없었다.
모습을 흉내내도, 거기에는 생생한 것이 없다.
위조품은 어디까지 말해도 위조품.
진짜 작품의 빛 앞에서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아야 할 팔을 치켜들었다.

「그런가, 네놈이 잃은 육체를 보강하기 위해 채워넣은 영혼―――――」

무려 야유. 중얼거리는 코토미네 키레.


아니, 지금 그의 영상조차 유지하지 않고 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인간의 형태를 한 그림자다.
그림자는 「하」라고 웃었다.

「죽인 존재에게 보호받으면서 살고 있다니.」


당연. 당연하다. 왕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있으면 왕이 아니다.
시체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다.
죽여야 할 사람을 죽이고, 따르는 사람을 살린다.
원한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손조차 유린하자.
악랄하다고 외치는 인간은 그 정도다.

원한을 말하기 전에 자신의 의지대로 외쳐라.


도움을 원하는 손을 잡아라.
주먹이야말로 자신이 싸우겠다는 의사 표시.

영웅왕은 그런 인간을 좋다고 하는 왕이다.

시체가 찬미 한다. 유린된 시체가 그에게 열광한다.

아군이나 적도 신조차도 영웅왕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구나 한 번은 동경한 완벽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
불가능 따위는 없다.
신조차 그의 앞에서는 단순한 관객에 지나지 않는다.

일절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고고한 영웅.


아주 조금의 곤혹스러움도 보이지 않는 잔혹하기까지 한 왕.

「있을 수 없어.」

그림자―――――앙리 마유가 토해내듯이 말했다.

「어떤 정신을 하고 있는 거냐.」

"기어 올라갈 수 없을 터인 어둠" 속에서.

「어째서 그렇게도」

앙리 마유는 길가메쉬를 흉내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가죽조차 걸칠 수 없었다.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어둠으로부터 나오는 영웅왕을 본다.

앙리 마유의 초상이 흔들리면서 형태가 정해지지 않는다.

「좋은 모습이로군, 너.」

아직도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모습으로 영웅왕은 웃음소리를 냈다.


손을 뻗는다. 무언가를 원하듯이 뻗은 왼팔. 잃었던 팔.
그것을 천천히 꽉 잡았다―――――
―――――과연 그것은 만들어진 우정이었던 건가.
아니, 비록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평생의 친구를 얻었다. 왕좌에서 혼자.


마음이 전부 검게 칠해져 가는 도중에, 거기서 후회하는 것을 할 수 없었던 가운데.

괴롭겠지, 라고 말해준 자가 있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을 가장하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래도 완벽하지 않다. 어딘가로 도망갈 장소를 원한다.
본인에게 자각이 없어도, 반드시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자신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만다.
그것은 약함이다. 타기해야 할 약함.
미쳐버릴 정도의 약함.

이 세상에 같은 종은 없다. 동족은 없다.


왕과 여신에게서 태어난 세계에서 최초의 영웅은 왕좌에서 단 혼자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웃으면서 그 누구라도 이용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원히 고정되는 자신은 존재할 수 없었다.

믿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 인간의 상냥함.


모든 것을 허용하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인간이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그 때문에 인간에게 가치를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변하지 않는 존재를 원했다.
보면 찬미하고 싶어지는 재보를 원했다.
그리고 온갖 사치를 다해 모든 것을 손에 넣은 후에.

그럼 여기서부터는?

그 물음이 왔을 때. 갑자기 모든 것이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사람을 정복한 것도.


대지를 모두 손에 넣은 것도.
재보를 모두 그 손에 넣은 것도.

빛나고 있던 세계가 급격하게 퇴색해 갔다.

하지만 신이라는 자는 아무래도 영웅왕을 음울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희망을 주었다. 그 이름은 엔키두.
처음 보았을 때 생각했다. 진흙에서 만들어진 그를 보았을 때 생각했다.
지성을 가진 그를 보았을 때 생각했다.

―――――분명 이것은 자신을 절망시킬 것이다.

머리를 긁어버리고 싶어지는 충동.


저것은. 저것은. 무의식 중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몸은 반신. 자신에게 주어졌을 터인 나머지의 인간성과 신성.
저것은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반신이다.

만나고 싶었다. 쭉 만나고 싶었다.


빠져 있던 자신 안의 감정.
퇴색해 가는 세계 속의 최고의 희망.
만날 수 없었을 터인 가능성.
명백한 신의 장난.
웃어주었다. 서로 웃어주었다.
함께 있자, 친구가 될 것이다.
영원히 배반하지 않는 친구가 될 것이다.

세계에게 묻는다. 이 우정은 거짓인가.


신이 만든 임시인가.

「아니다.」

그래, 아니다. 잡았던 손의 열기.


녀석이 죽었을 때의 절망은 자신이 안고 있던 희망의 반대.

그러니까 후회는 없다.


죽음에의 갈망을 안을 정도로 품은 희망은 컸다.

자신은 어떻게 살아 왔었나, 그것을 생각해내면 다음은 간단했다.


자신의 감정조차도 뛰어넘는다.
후회도 절망도 모두 빛이다.
잊을 수 없는 우정에 대한 공물이다.
저것은 자신이었다.
반신으로서 만들어진, 배반할 수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 친구다.
잔치를 베풀면서 작별한다. 울지는 않는다.
이젠 눈물은 없다. 그러니까 웃었다. 웃어버렸다.
죽일 수 있다면 죽여봐라, 죽음이여.

나는 그것마저도 뛰어넘겠다.
―――――꽉 쥐었다.

「그렇다―――――!」

잡은 곳에 영웅왕의 최강의 검인 에아가 있다.


마지막으로 꾼 꿈, 거기서 다시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

사지에 힘을 집중하고 기세좋게 튀어오르듯이 해서 일어섰다.


비어 있는 팔을 휘둘러서 무수한 보구를 소환한다.

향하는 시선은 천정으로. 붕괴하는 동굴.


언제 파편에 깔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에미야 시로에 의해 성배는 파괴되었다. 남은 건 붕괴뿐.

「―――――모두 뛰어넘어왔다!」

천정에는 종횡무진으로 쇠사슬이 둘러지고 있었다.


자신이 창고에서 꺼낸 것이 아니다.
그렇다, 친구란―――――손을 뻗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존재를 말한다.

엔키두가 비명을 지른다.


파편에게는 신성이고 뭐고 없다.
그저 쇠사슬이 떨어지려고 하는 암석을 모두 밀어내고 있었다.

보구가 춤추면서 난다. 쇠사슬이 끊어진다.


영웅왕은 웃었다.

「감당할 수 있겠나, 나의 강함을―――――! 」

투척된 보구가 암반을 분쇄해 간다.


에아가 소리를 냈다.

산산히 부서지는 암석.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것에게 영웅왕은 손을 쓰지 않는다.

「―――――넘어설 수 있겠나, 나의 높이를!」

마력이 끊어졌다―――――? 아니다.


이 안으로부터 솟구치는 열에 한계 따위는 없다.

그저 손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일 뿐.
공격을 퍼붓는 것은 왕의 일이 아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앗!!!!」

눈앞에 펼쳐지는 한 줄기의 꽃잎.


에미야 시로가 영웅왕에게 쏟아지는 것들을 쳐낸다.
「세계도 신도―――――하물며 서번트도!」

에아를 휘둘렀다. 일어나는 폭풍.


세계 최강이 여기에 있었다.

「어떤 것도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삐직, 하고 꽃잎에 금이 들어간다. 그대로 부서졌다.


무너지는 에미야 시로.
하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기리고 있다.
그것은 왜일까. ―――――물어볼 것도 없다.

「모두 짐의 발판! 짐에게 더해지는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발사되는 보구.

「―――――천지를 괴리시키는」

증명이다.
최강의 증명이다.

하늘과 땅을 가른 검.
세계를 모두 평정한 왕.
그 최강의 증명이다.

엑스칼리버. 사람이 낳은 최강이자 최고의 환상.


강하게 있는 것이라고 명명된 검.

하지만 그것도.
그것조차도.

「―――――개벽의 별!!!」

이 일격 앞에는―――――이길 수 없다.

암반을 분쇄하고 있던 모든 보구가 튕겨 날아간다.


완전히 끊어져 있던 쇠사슬이 주위에 은의 비를 퍼부었다.

천지를 가르는 일격이 하늘을 분쇄해 간다.

「어떤 것도, 그 누구라도, 모두 뛰어넘어간다.」

대항하고 싶다면 대항해라. 죽여주마.


누구라도, 누구라도, 누구라도.
앞으로 가게 하지 않는다.

들여다 보인 아침해.
살짝 보인 하늘을 올려다본다.
영웅왕은 하늘을 올려다본 채로 쓰러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소동은 쓸데없이 소란이 커졌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바보가 보기좋게 류도우 사의 동굴을 붕괴시켜준 덕택에 멋지게 나의 사후 처리가 늘어났다.
그것에 대해 불평하자, 녀석이 말했다.
행운이라고 생각해라, 짐이 한 일의 뒷처리를 맡기는 거다.

때리면 살해당할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시선으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가 코웃음치는 반응을 받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응, 그렇지만. 행운이라고 하면 행운이었던 것이겠지.

토오사카 린은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목에는 초커가 감겨져 있어서, 목에 생긴 상흔을 보이지 않도록 하고 있다.

나는 살아남았다. 운명의 못된 장난이 아니라 불완전한 마법으로.

임금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세이버의 검으로 잘린 것이 다행이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 다른 검이라면 연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그렇게까지 훌륭한 칼이었던 것이다.
체내에 빈 구멍은 보기 좋게 채워졌다.
없어진 육체가 무엇으로 보충되어 있을지는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단지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금의 행복을 주겠다.


린의 영혼은 아직 여기에 있으니까―――――

고맙다고 생각했다.
타인을 구할 정도라면, 자신을 구하라고 꾸짖어주고 싶기도 하다.
이번 성배 전쟁에서 잃은 것은 수를 셀 수 없다.
모든 것이 터무니없었다.
그 누구나 자신의 분수를 분별하고 있었다면 좋았는데, 아무도 멈추지 않았었다.
아니, 멈추고 있을 수 없었다.
후회를 없게 하려고 생각하면, 많은 짐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에미야 시로는 마술사가 아니게 되었다.

그의 마력 회로는 완전히 타버려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이제부터 일반인으로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뭐, 적당히 하라는 거지만 말야.」


그는 마토우 사쿠라과 함께 후유키 시에서 나간다고 한다.
적어도 사쿠라가 안정될 때까지 죄의식이 다소나마 누그러졌으면 한다.
자신도 그렇게 원했다. 에미야 시로의 말을 생각해낸다.
구할 수 있는 인간은 한정되어 있다, 라고.
토오사카 린은 자신이 무르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보다 자신의 여동생이 살아있어주는
것이 기쁘다.
누구에게도 비난받을 것 같은 생각이다.
그러니까 입으로는 내지 않고, 본인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살아있어준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혹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마토우가 완전히 무너지고, 아인츠베른도 성배의 소멸에 의해 후유키 시에게서 손을 뗐다.


완전히 일본에서 손꼽히는 영지, 후유키 시는 토오사카의 관리하에 놓여지게 되었다.
교회에도 새로운 인간이 온다고 하지만, 아직도 와 있지 않다.

홍차를 마셨다. 별로 맛있지 않았다.


자주 빈정거리는 서번트를 생각해낸다.

아아, 뭘까. 어째서 난 살아남아버린 것일까.


살아있어서 기쁘다고 생각하지만, 살아있어도 되는 것인지라는 생각도 있다.

「정말로 고생이구나.」

자신의 성격도, 자신이 놓여져 있는 상황도.

린은 신음소리를 냈다.
결계 때문에 부지내에 누군가가 들어온 것을 알았다.

딩동딩동, 하고 벨이 울렸다.

맑은 소리로 손님을 고한다.


교회의 인간이겠지.
밖에 나와 있는 사역마가 성직자용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직도 고생스러운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린은 한숨을 쉬었다.

행복하다는 것은 아마도 마토우 사쿠라에게 있어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겠지.

열린 문 앞에는 하얀 머리카락.

린은 그녀의 용모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 안에서 사고의 계속을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행복을 손에 넣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빼앗았으니까, 누군가가 당연히 손에 넣고 있었을 터인 행복을.
그러니까 행복한 나날은 그 아이를 괴롭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믿고 있다. 너덜너덜해지고, 누구에게도 시선을 받지 못할 정도로 그녀가 손상되어도.


버리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바보를 알고 있다.

미소를 지었다. 자연스럽게 샌 미소.


그것은 자신 안을 향한 것이지만, 찾아온 사람에게도 향하고 있다.

결정한 것은.
언제나 그 자주 빈정거리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언제나 도와준 하얀 소녀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언제나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바보와 여동생이 가슴을 펼 수 있도록.

「어서 오세요, 후유키 시에.」

살아가는 것.

에미야 시로는 툇마루에 혼자서 앉아 있었다.


이젠 슬슬 이 집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마토우 사쿠라를 이 거리에 놓아둔다는 선택사항은 에미야 시로로서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있지만, 밤에는 언제나 울고 있다.
일어날 때는 소리치면서 일어난다.
그리고 허공에 사죄한다. 머리를 조아리면서.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오로지 사과한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쿠라의 아군을 할 수 있는 자는 라이더와 자신뿐이다.

둘이나 있던 일을 기뻐하는 걸까.


둘밖에 없었던 것을 슬퍼하는 걸가.

자신은 기뻐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사쿠라에게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손을 잡는다. 마력은 이젠 없다.


마술 회로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상당한 기억도 잃고 있다. 『후지 누나』는 기억하고 있지만, 『후지무라 타이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것에 울었다.

그토록 자신을 지탱해준 아버지의 기억도 거의 남지 않았다.

『안심했다―――――』

그 중얼거림만큼은 기억하고 있는 것을 감사했다.


아마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배.」

무리하면서 웃는 그녀에게 미소짓는다.


일어섰다. 짐을 손에 들고 기억에 있는 일생을 보내 온 집에 작별을 고한다.
현관에 선 두 사람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 돌아올 때는.

사쿠라의 앞에 섰다. 손을 살그머니 잡는다.


살짝 미소지었다.

라이더가 이쪽을 보고 상냥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미소가 거짓이 아니게 되면.

반드시 돌아온다.

무너진 동굴 앞.
길가메쉬는 무엇을 하지도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어느 세계에서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올려다본 하늘은 이렇게 좁지 않았다.
사람이 늘어난 것 때문이겠지.

음울한 것이다, 라고 영웅왕은 생각했다.

갑자기 생각했다. 여행을 떠날까.


귀찮은 코토미네 키레는 이젠 없다.
령주로 속박될 위험이 없으면 여기에 머물고 있을 의미도 없다.
성배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세이버와의 재개도 없을 것이다.
슬픈 일이다. 문득, 자신의 반신과의 재회를 바라고 있던 자신을 깨닫는다.
바보같은 일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저 한 번이기 때문에 죽음인 것이다.


자신의 친구의 죽음을 모독하는 취미는 길가메쉬에게는 없다.

길가메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찾는 것은 직접적으로 발견되었다.
어쌔신의 단도가 한 개만 지면에 우뚝 솟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누군가가 꽂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쌔신이 했다고 생각하는 쪽이 즐겁다.

묘비의 칼날을 한 번 어루만졌다.


한순간, 창고에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이 솟았지만, 그것을 부정했다.
이것은,여기에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자신이 움직여버리면 그것은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길가메쉬는 살짝 입술을 비뚤어지게 했다.


매우 감상적으로 되어 있다.
발길을 돌렸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역시 하늘은 좁았다.

넓은 하늘을 보러 갈까.
아니, 가자고 결정했다.

기분이 내키면 이 세계를 다시 손에 넣는 것도 좋다.

길가메쉬는 웃음소리를 냈다.


어째서인지 즐거웠다.
세상이 지루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에미야 시로나 토오사카 린 같은 인간이 태어나는 세계라면 분명 싫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조금은 즐겁게 해다오, 세계여.」

최고의 영웅왕이 새로운 전설을 만들러 간다.

페이트/스테이 나이트

-길가메쉬 루트 완결-

머나먼 옛 이야기.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정도의 옛날.
누구보다 강한 왕은 누구보다 믿고 있던 친구를 잃어버렸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한 친구는 육체를 남기고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래의 흙덩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왕은 많이 슬퍼했습니다.
친구였던 흙덩이를 잡고 울었습니다.

왕은 생각합니다. 외톨이인 왕은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친구는 자신의 생명이 다하면 누구에게도 기억되어 있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너무나 슬픈 것이라고 왕은 생각했습니다.
세계는 왕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왕을 알고 있습니다.
신은 왕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는 분명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외톨이였던 왕보다 심한 고독이었습니다.

왕은 우정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죽음이라는 지금까지 생각한 적도 없는 것에 확실히 공포를 느꼈습니다.

불사라는 것은 왕의 마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도 온갖 유혹을 떨쳐내고서 왕은 우정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죽지 않고 있으면 그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맹세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은 결코 무엇에게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강한 왕이었습니다.


세계에 널린 모든 것이 왕의 손바닥이었습니다.
더 이상 손에 넣을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젠 기억 속의 친구 이외에 왕에게 갖고 싶은 것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살아서 어떻게 하지, 라고 왕은 묻습니다.
웃으면서, 모든 것을 웃어버리면서 왕은 울었습니다.

간단한 것이었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맹세는 필요없다.

왕은 약을 내던집니다. 삽상과 황금갑옷을 갖추고.

사는 데까지 살고, 친구를 만나러 가자.

왕은 생각했습니다.
시시한 세계 따위는 이쪽에서 버려주마.

그렇지만 왕은 스스로 죽는 것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라고 해도,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죽인 『죽음』에 굴복할 심산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시한 세계에 자신을 붙들어매기 위해 이름을 붙였습니다.

신을 묶는 쇠사슬.
반신의 왕을 반만큼 세계에 두는 쇠사슬.
――――――――――하늘의 쇠사슬(엔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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