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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의 비밀병기 (Secret Weaponry)에 관한 연구

2020년 7월

한국 국방과학기술 연구소
나치독일의 비밀병기 (Secret Weaponry)에 관한 연구

1945년 5월 8일은 나치독일이 연합국에게 항복을 선언한 날이다. 이


로 인하여서 독일에서의 핵무기개발은 미완성으로 확인이 되었다. 만
일에 핵무기개발에 성공하였다고 하면 미국과 영국에 핵폭탄을 투하
함과 동시에 나치독일의 승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을 수도 있
다. 1945년 8월 6일에 미국에서는 히로시마에 우라늄폭탄 “작은 소년
(Little Boy)”을 투하 하였고 8월 9일에는 플루토늄으로 제조된 핵폭탄
“비만형 남자 (Fat Man)”를 나가사키에 투하 하였다. 이로 인하여서 8
월 15일 일본은 항복을 선언하였다. 결국에는 미국의 핵폭탄 보유로
인하여서 제2차 세계대전은 그 종국을 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런데 과연 그런 것이었던가? 놀라운 것은 미국에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한 우라늄폭탄 “작은 소년”은 나치독일에서 이미
1943년도에 독일 오르드루프 (Ohrdruf)에서 핵실험에 성공한 것을 그
대로 복제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는 1945년 4월에
고농축 우라늄 핵연료 U235를 580kg을 잠수함 U234에 실어서 일본
으로 보내려 한 사실도 있었다. 왜 히틀러는 1943년도에 성공한 바
있는 우라늄폭탄을 실전에 사용치 아니하였는가? 그리고 전기한 바
미국에서 나가사키에 투하한 “비만형 남자 (Fat Man)” 역시 독일의 인
스부르크의 최첨단 과학연구소의 개발로 플루토늄 폭탄을 제조하여서
스웨덴 뤼켄 (Ruecken)에서 1944년도에 성공적으로 핵실험을 마친 바
있다. 이것 역시 미국에서는 나치독일의 플루토늄폭탄을 복제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1944년 나치독일에서 인스부르크타입의 플루토늄 핵폭탄을 제조하여서 성공리에 실험한 바 있다.

그렇다면 히틀러는 이미 핵실험에 성공한 바 있었던 우라늄폭탄과 플


루토늄폭탄을 왜 실전에 사용하지 아니하였던가? 그의 전쟁에서의 승
리하고자 했던 야망은 전혀 다른 국면에 있었다. 핵폭탄을 사용하는
것은 말세의 징후이며 적과 아군이 공도동망하는 매우 위험한 또 바
람직하지 못한 대량 살상무기이며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여지없이 파
괴시키고 한 도시를 초토화 해 버리는 그러한 무기인 것이다. 그것보
다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완벽히 실현하면서 인명살상도 하지 아니하
고 문화유산의 찬란한 도시를 초토화 시킬 필요도 없는 전혀 새로운
국면의 무기를 히틀러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이른 바 “잠재우
는 폭탄 (Schlafbombe)”이라고 하는 것이다. 히틀러는 나치독일의 최
후까지 성실한 자세로 자기에게 임한 한스 캄믈러 (Hans Kammler) 박
사에게 비밀리에 “잠재우는 폭탄”을 개발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캄믈러는 이를 실현코자 비밀리에 체코슬로바키아 모처의 지하도시에
서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이른바 잠재우는 폭탄이 거의 완성의 단계에
까지 이르렀던 상태에서 나치독일이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체코슬로
바키아의 비밀지하도시에서 개발한 “잠재우는 폭탄”의 문서들과 부품
들을 전부 오스트리아의 비밀장소로 옮기고 캄믈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945년도 캄믈러가 자취를 감춘 때에는 그는 오스트리아의 마우타우
젠-구젠 (Mauthausen-Gusen)의 유대인들 강제수용소로부터 그 인근
의 쌍 게오르겐 구젠 (St Georgen an der Gusen) 이라는 장소에 엄청
나게 거대한 지하도시를 건설한 이후였다. 캄믈러는 그곳으로 여러가
지의 비밀병기의 부품들과 기술정보문서들을 옮겼다. 그 중에 “잠재우
는 폭탄 (Schlafbombe)”의 기술정보와 부품들이 있었다. 독일이 통일
이 된 이후인 1992년도에 필자는 바로 이 비밀병기의 개발정보들을
은닉해 둔 장소인 쌍 게오르겐엘 독일의 핵물리학자인 바이츠제커박
사와 함께 방문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 잠재우는 폭탄에 관한 상세
한 기술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바이츠제커를 위시한 나치독일에서의 핵무기개발의 역사에 관하여서


는 필자의 저서 “21세기 핵시대의 여명”을 참고하기 바란다. 바로 북
부독일의 에스펠캄프 (Espelkamp) 지하도시에는 독일의 첫번 우라늄
폭탄 첸트너 76 이라는 프로토타입의 우라늄폭탄도 있었다. 그것은
다 완성되어 있었다. 나치독일에서는 바로 그 첸트너 76이라는 우라
늄폭탄을 가지고 1943년도에 독일의 오르드루프에서 핵실험에 성공을
하였던 것이다. 내부에는 76kg 의 U235 핵연료가 들어 있었으며 폭
탄의 전체 무게는 3.8 톤이었다.
아래에는 미국의 히로시마에 투하한 “작은 소년 (Little boy)” 우라늄폭
탄의 사진을 소개한다. 비교해보면 독일의 프로토타입 우라늄폭탄 첸
트너 76과 겉모양은 매우 유사하다. 히로시마 우라늄폭탄 “작은 소년”
에는 U235 핵연료가 64kg 들어 있었고 폭탄의 전체무게는 4.4 톤이
었다.
나치독일에서 이미 1943년도에 우라늄핵폭탄 첸트너 76을 완성하여
서 성공적인 핵실험을 하였고 또 오스트리아 (당시에는 나치독일의
행정지역) 인스부르크에서 개발한 플루토늄핵폭탄 역시 성공적으로
완성되어서 스웨덴의 뤼켄에서 핵실험을 끝낸 바 있다. 그리고 “은빛
의 새 (Silver Bird)”라는 로켓비행기를 두 대를 완성하여서 지구의 저
궤도를 회전하면서 뉴욕과 워싱톤에다 첸트너 76이라는 우라늄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고 또 캄믈러가 개발한 ICBM (대륙간 탄도미사일)
A9/A10을 노르웨이 크리스챤산드에서 대서양을 횡단하여서 첸트너
76의 절반 정도의 무게를 핵탄두로 사용해 뉴욕을 핵폭격 할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당시의 나치독일에서는 로켓비행기에 탑재하여서
미국에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고 또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탑재하여
서 미국에 핵공격을 가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기술이 다 완성이 되어
있었다.
Silverbird Rocketplane payload 4 metric tons ICBM A9/A10 payload 2 metric tones

그런데 히틀러는 완성된 핵폭탄과 그 운반수단을 개발해 놓고서도 핵


무기를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에 독일이 미국보다
핵폭탄개발에 뒤진 연유가 아니었음이 오늘날 확실히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기한 바 오스트리아의 쌍 게오르겐의 지하도시에는
완성된 핵폭탄들이 여러 개가 존재해 있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3 – 4
개씩 수거하여서 핵폭탄의 연구자료로 사용한 것도 지금은 잘 알려진
바이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영국의 핵폭탄 제조기술은 독일의 완성된
핵폭탄의 원형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패망한
나치독일에서 그러한 최첨단의 완성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1945년도에는 극비에 부쳐서 발설이 되지 아니하도록 미국,
영국, 소련에서 노력한 바 있었다. 지금은 나치독일에서 핵폭탄을 완
성하였고 미국에서는 그것을 복제하여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한 사실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히틀러를 위시한
나치독일의 고위층에서는 승전이 보장되는 핵무기개발의 완성을 석기
시대의 유물처럼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핵무기는 사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생각한 히틀러와 나치수뇌들은 “잠재우는 폭탄”을 개
발하고자 하였고, 한스 캄믈러가 진두지휘를 하여서 그러한 특수한 폭
탄이 거의 다 완성단계에 이르렀으나 그만 실전에서 사용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서론으로 필자는 나치독일에서 완성된 핵무
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서도 전쟁에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잠재우
는 폭탄”의 사용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었음을 주장하려고 한다.

“잠재우는 폭탄”을 사용하게 되면 대량 인명살상이 필요치 않고 또


문화적인 고도의 값진 유산을 파괴하지 않고서도 승리가 보장이 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치독일에서는 이러한 멋진 승전의 기회를 실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서론으로 나치독일에서 완성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


유와 승리가 보장되면서 인명살상이나 기물파손이 전혀없는 기발한
방법이 모색되었기 때문에 히틀러를 위시한 나치독일의 수뇌들은 이
러한 생각에 몰입하였던 것이다. 다음에는 캄믈러가 개발하여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던 이른 바 “잠재우는 폭탄”의 기술적인 원리와 효
과와 사용방법 등에 관한 비교적으로 상세한 기술정보를 서술코자 한
다. 필자의 저서 “21세기 핵시대의 여명”은 나치독일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핵무기를 개발한 그 역사를 상세히 서술한 것이다. 필
자의 그러한 연구도 참고하면 앞으로 전개될 “잠재우는 폭탄”에 관한
기술적인 서술이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나치독일 “잠재우는 폭탄” 한스 카믈러(Hans Kammler)에 의해 완성

수면상태는 인간의 5개의 감각기관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를 의미한다. 한스 카믈러는 히틀러로부터 "잠재우
는 폭탄” 개발에 대한 지시를 극비리에 받고나서 즉시 그 일에 착수
하였다. 그는 우선 감각기관의 기능을 일정한 시간동안 기능정지시키
는 일을 생각하였다. 카믈러는 수면 전 상태에서 감각과 연관된 신경
조직을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감각기관의 작동을 일정시간 동안 정지
시킬 수 있는 화학약품들을 연구하였다. 그는 나치독일 당대에 유포된
화학약품들을 다양하게 구입하여 쥐에게 우선 실험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카믈러가 사용하였던 화학약품들은 일곱가지였다.
1) Diazepam: C16H13ClN2O

2) Triazolam: C17H12Cl2N4
3) Flurazepam: C21H23ClFN3O

4) Temazepam: C16H13ClN2O2
5) Zopiclon: C17H17ClN6O3

6) Zaleplon: C17H15N5O
7) Zolpidem: C19H21N3O

이러한 신경안정제에 속하는 화학약품들을 조합하여 동물실험을 통하


여서 그는 감각기관들을 약 8시간동안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도
달하였다. 곧바로 카믈러는 인간에게 직접 임상실험을 하였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강제수용소에 갇혀있는 유대인들을 임상실험에 동
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8시간은 인간에게는 정상적인 수면시간이다.
카믈러는 생각하기를 밤12시에 적진에 살포된 "잠재우는 폭탄"으로
인해 8시간 잠자는 시간이면 충분히 적군을 아군기지로 운반하여 무
장해제시키고 감옥 같은 데에 투옥 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스
스로 깨어나면 항복문서에 조인하도록 설득시키면 전쟁은 나치독일의
승리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카믈러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
에 억류된 유대인들을 계속해 임상실험에 동원하였다.

8시간동안 유대인들의 감각기관들은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8시간후


에는 임상실험에 동원된 유대인들은 정상적으로 스스로 깨어났다. 그
러나 그들은 8시간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카
믈러는 24시간동안 즉 만 하루를 감각기관을 마비시키고 깊은 수면에
빠지게 하는 두가지의 강력한 화학물질을 찾아냈다. Diphenhydramin
과 Hydrochlorid 라는 화학물질들이다. 앞의 일곱가지 화학물질에다
이 새로운 두가지 화학물질들을 더하게 되면 수면시간이 30시간까지
연장될 것으로 카믈러는 확신하였다. 유대인들을 다시 임상실험에 동
원한 결과 그들은 모두 다 30시간의 깊은 수면에 빠졌다. 카믈러는
30시간의 수면시간이 가능한 "잠재우는 폭탄"의 개발을 유대인들의
임상실험을 통하여서 완성하였던 것이다. 그의 생각에는 30시간의 수
면시간이면 충분히 적진에 들어가 최고 군사령관과 최고정치인을 잠
든 동안에 납치하여 투옥시키고 무장해제시킨 다음에 항복문서에 조
인하도록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카믈러가 히틀러에게
"잠재우는 폭탄"의 완성에 대해 보고하고자 했으나 히틀러는 이미 베
를린 지하벙커에서 자살하고 나치독일의 패망이 눈앞에 이르러 그는
모든 비밀병기제작의 문헌과 부품들을 오스트리아로 옮긴 후에 스스
로 잠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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