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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로 주목을 받으며 일본 문단에 등장한 신인 작가. 집필 활동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했다. 2014년 2월 ‘요루노 야스미’라는 필명으로 투고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올린 원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 이후 책으로 출간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처음에는 기발한 제목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만개한 벚꽃 앞
에 서 있는 고등학생 남녀를 주인공으로 쓴 섬세한 청춘물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 감성을
자극한다는 것이 더 화제가 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16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로 일본 서점 대상 2위에 올랐으며 일본의 각종 출판 집계에서
1,2위를 기록했다.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2017년 여름, 개봉이 확정되었다. 다른 작품으로는
《또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밤의 괴물》이 있다.
옮긴이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번역으로 2005 년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
마문예번역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적인 번역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직업으로서의 소설
가》《여자 없는 남자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메스커레이드 호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아쿠타
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다자이 오 사무의 《인간실격》,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칼에 지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마타요시 나오키의 《불꽃》, 오카자키 다쿠마의 《커피점 탈레
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 가와무라 겐키의 《억남》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KIMI NO SUIZO O TABETAI
ⓒ Yoru Sumino 2015
All rights reserved.
Original Japanese edition published in Japan in 2015 by Futabasha Publishers Ltd.,
Tokyo.
Republic of Korean version published by Somy Media, Inc.
Under license from Futabasha Publishers Ltd.
Korean translation rights ⓒ 2017 by Somy Media, Inc.
한국 독자분께
스미노 요루
내 클래스메이트였던 야마우치 사쿠라의 장례식은 생전의 그녀와는 전
혀 닮은 구석이 없는 꾸무럭한 날씨에 거행되었다.
그녀의 생명이 가진 가치의 증거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에 감
싸였을 장례식에도 빈소에도,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집에 있
었다.
다행히 나에게 참석을 강요할 유일한 클래스메이트는 이미 이 세상에
없고, 선생님이나 그쪽 부모님이 나를 불러낼 권리도 의무도 있을 리 없
어서 나는 나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하자면 아무도 불러내지 않더라도 고교생인 나는 마땅히
학교에는 나가야 했지만 그녀가 휴일 동안에 세상을 떠나준 덕분에 궂은
날씨에 굳이 외출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배웅하고 적당히 점심을 챙겨먹은 뒤, 나는 줄곧
내 방에 틀어박혔다. 그것이 클래스메이트를 잃은 섭섭함이나 허전함에
서 온 행동인가 하면, 아니었다.
클래스메이트였던 그녀가 불러내지 않는 한, 원래부터 나는 휴일을 내
방에서 보내는 성격이다.
방 안에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인생의 지침서나 자
기계발서 쪽은 좋아하지 않고 소설을 즐겨 읽는다. 침대에 누워 하얀 베
개에 머리나 턱을 얹고 문고본을 읽는다. 하드커버는 무겁기 때문에 되도
록 문고본이 바람직하다.
지금 읽는 책은 전에 그녀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책을 별로 읽지 않는
그녀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만난 최고의 책이다. 빌려온 뒤 내내 책장에
꽂아놓았고 그녀가 죽기 전까지는 꼭 읽고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결국 때
를 놓쳐버렸다.
때를 놓친 것은 이제 어쩔 수 없으니까 다 읽은 뒤에는 그녀의 집에 찾
아가 돌려주기로 했다. 그녀의 영정(影幀)에 절하는 것은 그때 하면 된다.
침대에서 반쯤 남았던 그 책을 다 읽고 났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커
튼을 닫고 형광등 빛으로 시력을 얻었던 나는 시간의 경과를 휴대폰에 걸
려온 한 통의 전화로 알았다.
전화는 별것 아니었다. 어머니한테서 온 것이다.
처음 두 번은 무시했지만 역시나 계속 안 받았다가는 저녁밥이 위태롭
다 싶어서 휴대폰을 집어 귀에 댔다. 전화 내용은 쌀을 좀 씻어두라는 것
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알았다는 뜻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기 전에 문득 깨달았다. 그 기기를 손에 든 게
이틀만이었다. 의식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라고
하면 너무 의미심장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이틀 동안 휴대폰
을 집어드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개폐식의 내 휴대폰을 딸깍 펼쳐 메시지 수신함을 확인했다. 열어보지
않은 메시지는 한 통도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어서 송
신 메시지를 확인했다. 거기에 통화 이외의 기능으로 최근 이용내역이 눈
에 들어왔다.
클래스메이트였던 그녀에게 내가 보낸 메시지였다.
단 한 마디의 메시지.
이걸 그녀가 열어봤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한 차례 내 방을 떠나 주방으로 가려다가 나는 다시 한 번 침대에 엎드
렸다. 그녀에게 보냈던 말을 마음속으로 다시금 곱씹었다.
나는 그녀가 그것을 열어봤는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열어봤다고 치고, 그녀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생각하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결국 쌀은 어머니가 돌아와 씻어 앉혔다.
나는 꿈속에서 그녀를 만났…었는지도 모른다.
|1|
“ .”
학교 도서실 서고에서였다.
먼지가 부옇게 떠도는 공간에서 책장에 꽂힌 책들의 순번이 올바른지
아닌지 확인한다, 라는 도서위원으로서의 임무를 한창 충실히 수행하는
참에 야마우치 사쿠라가 나에게 이상한 고백을 했다.
무시해버릴까 생각했지만 이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은 그녀와 나뿐이니
까 역시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엽기적인 그 말은 나한테 던져진
것일 터였다.
별수 없이 등을 맞댄 책장을 살펴보고 있을 그녀에게 반응을 보여줬다.
“느닷없이 카니발리즘(Cannibalism)*에 눈을 떴어?”
2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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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 병실이지.”
나는 매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녀는 볼이 부루퉁해졌다.
용서해줘, 지금 그런 걸 감안할 겨를이 없으니까.
“…….”
“????? 군…?”
그때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더 안쪽, 더 밑바닥에
고인 진짜 마음을 찾아냈다. 그것은 깨닫고 보면 바로 가까이에 깃들어
내 마음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는데도 나 자신은 여태까지 깨닫지 못한 것
이었다. 내가 겁쟁이였기 때문에.
최근 며칠 동안, 아니, 사실은 항상, 찾아 헤맸던 답이 지금 그곳에 있
었다.
그렇다, 나는 너를…….
그 말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이 부쳤다.
“……정말로.”
“엇, 드디어 입을 열었네? 왜 그래, ????? 군?”
“정말로 너는 나한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엇, 웬일이야, 갑자기? 아, 부끄러워라.”
“진심이야. 고마워.”
“너, 열 있는 거 아냐?”
그녀가 손바닥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당연히 열은 없었기 때문에 그녀
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열이 있다고
생각한 건가? 나는 재미있어서 웃어버렸다. 그걸 보고 그녀가 다시 내 이
마를 짚으려고 했다. 나는 다시 웃었다. 그게 계속 되풀이되었다.
재미있다.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게 열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 다음에 나는, 매우 감사하게도
병문안 선물로 내가 손수 사다준 파인애플을 먹자고 제안했다.
지난번 병문안 때, 다음 선물은 파인애플이었으면, 이라고 말했던 그녀
는 좋아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둘이서 맛있게 파인애플을 먹고 있는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나도 참 운이 없다니까.”
“진실이냐 도전이냐 때문에? 그런가. 근데 게임이 아니라도 내가 대답
할 만한 질문이면 대답해줄게.”
“아이구, 됐네요, 게임 결과인데 뭘.”
그녀는 딱 잘라 말했다.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는지, 여전히 짐작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간식시간도 끝나고, 보충수업 진도만큼 그녀에게 알려준 다음에 항례
행사가 된 마술 감상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지난번 병문안 이후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술 상품을 이용한 간단한 마술이었다. 매번
그랬지만 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공부하는 시
간에도 마술을 하는 시간에도 조금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마음
을 깨달은 나는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가야겠다. 슬슬 배도 고프고.”
“에이, 벌써 가려고?”
그녀는 어린애처럼 몸을 흔들며 항의했다. 그녀에게 달랑 혼자뿐인 병
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료하고 꺼림칙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곧 병원 점심시간이잖아. 게다가 절친 님이 오시기라도 하면 나
를 점심거리로 삼을 텐데.”
“너의 췌장을?”
“응, 그럴지도.”
육식동물의 먹잇감이 되는 나를 상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녀가
“얼음 땡!”을 걸었다.
“잠깐,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
그녀는 까불까불 손짓을 했다. 경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다가
갔더니 그녀는 아무런 악의도 조심성도 타의도 꿍꿍이도 반성도 책임도
없이 상반신을 쭉 내밀어 내 품에 뛰어들었다.
나는 예감도 전조도 내보이지 않은 그녀의 행동에 놀라는 것을 깜빡 잊
었다. 나 스스로도 의외일 만큼 침착하게 나는 그녀의 어깨에 턱을 얹었
다. 달큼했다.
“……이런이런.”
“지난번과는 달라, 이건 장난 아니야.”
“……그럼 뭔데?”
“요즘 이상하게 사람의 온기가 그립더라.”
그녀의 그 말에 나는 어떤 확신을 가졌다.
“실은 계속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아, 쓰리사이즈? 가슴이 닿으니까 궁금해?”
“너, 바보냐?”
“우와하핫.”
“너, 뭔가 낌새가 좀 이상한 것 같다, 라는 질문이야. 무슨 일 있었어?”
몸을 껴안은 채,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마음대로 내 품에 안긴 채, 나
는 그녀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이전과는 달리 바보 취급을 당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내 체온으로라도 괜찮다면 쓰고 싶은 만큼 써주었
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두 번 가로저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어.”
당연히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
게 할 용기도 나에게는 없었다.
“그냥 네가 주는 진실과 일상을 맛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래.”
하긴 빗나간 용기가 있었다 한들, 혹은 없었다 한들 그때 내가 그녀의
마음속을 알아내는 데는 이르지 못했으리라.
정말로 나는 타이밍이라는 행운에서는 완전히 버림을 받았다.
그녀가 침묵한 사이에 등 뒤에서 맹수의 울부짖음이 들려온 것이다.
“사쿠라, 안녕…엇? 야야, 너, 너! 오늘 딱 걸렸어!”
졸지에 그녀를 침대에 떠밀어놓고, 크르릉 하는 포효를 들으며 문 쪽을
돌아보니 마왕 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클래스메이트가 있었다. 어지
간한 나도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을 것이다. 포위망을 좁혀오는 교코에게
서 도망치려고 뒷걸음질을 쳤지만 침대가 방해를 했다.
마침내 교코가 내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이제 다 끝났구나 하는 참에
구조의 손길이 내려왔다. 그녀가 잽싸게 침대에서 내려와 절친을 끌어안
았다.
“교코는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빨리 도망쳐!”
“아, 응! 자, 그럼 나는 간다!”
나는 교코에게서 도망치듯이, 라기보다 오로지 도망치기 위해서 병실
을 뛰쳐나왔다. 그녀를 찾아오면 항상 도망만 친다. 마지막으로 교코가
내 이름을 높직하게 부르짖는 것을 깨끗이 무시하면서 세 번째 병문안은
끝이 났다. 내 몸에 아직 달큼한 향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역시, 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는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
니었지만, 그다음 날인 일요일 밤에 그녀에게서 메시지를 받고 나는 그날
그녀가 감추려고 했을 터인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입원 기간이 예정보다 2주일 연장되었다.
|7|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사망한 뒤, 나는 그렇게 체념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그녀가 완전히 유골이 된 다음에도 나는 그녀의 집에
가지 않았다.
하루하루 내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내가 그녀의 집에 찾아갈 용기와 이유를 발견하기까지 열흘쯤의
시간이 필요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직전에 나는 생각해냈다.
그녀의 스토리의 남은 몇 페이지, 그걸 알아내는 게 가능한 유일한 방
법이 있다는 것을.
나와 그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
<공병문고>를, 나는 읽어야만 한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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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를 다 읽고 되돌아온 세상에 그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새삼
실감했다.
무너진다는 것, 내가 무너진다는 것.
자각했다. 이걸 억지로 막는 것은 무리한 짓이라고 자각했다.
그전에 꼭 물어봐야 할 일이 있었다.
“어머님, 사쿠라의 휴대폰은……?”
“휴대폰?”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휴대폰 한 대를 들고 나왔다.
“우리 사쿠라가 세상 떠난 다음에도 전화는 통하게 해뒀었는데 요즘에
는 전원도 끊겼구나.”
“부탁드립니다. 잠깐만 보여주세요.”
어머니는 말없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개폐식 휴대폰을 열고 전원을 켰다. 잠시 기다린 끝에 메시지 메뉴의
수신함을 열었다.
수많은 미개봉 메시지 속에서 발견했다.
내가 보낸 마지막 말.
그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
그것은 ‘읽음’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전해졌다…….
휴대폰과 <공병문고>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는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여 무너지기 직전에 마지막 말을 했다.
“어, 어머님…….”
“응?”
“죄송합니다, 여기서 이러는 건 안 될 일이지만, 하지만……, 죄송합니
다…….”
“…….”
“제가 좀, 울어도, 괜찮겠습니까.”
어머니는 자신도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 나를 용
서해주었다.
나는 무너졌다. 아니, 사실은 진즉에 무너져 있었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극, 으아아아아, 아아아…….”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의지가 아니라 내 몸의 기능이 우는 것을 멈췄을 때, 눈앞에서는 그
녀의 어머니가 변함없이 조용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내가 얼굴을 들자 어머니는 하늘색 손수건을 내밀었다. 머뭇머뭇 손수
건을 받아 나는 헉헉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그 손수건은 너한테 줄게. 사쿠라 손수건이야. 네가 갖고 있어주면 그
아이도 좋아할 거야.”
“……고맙습니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눈과 코와 입을 닦은 뒤에 그 손수건을 교복 호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한 번 자세를 바로잡고 정좌했다. 어머니처럼 나도 눈이 붉어진
채였다.
“죄송합니다, 흐트러진 꼴을 보여서.”
어머니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아이들은 울면서 크는 거야. 우리 사쿠라도 걸핏하면 울었어.
어려서부터 아주 울보였거든. 하지만 너를 만났던 날 일기에 적혀 있는
대로 너와 시간을 함께하던 때쯤부터 우리 사쿠라가 울지 않게 됐어. 전
혀, 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서 나는 너한테 고맙다. 사쿠라는 네 덕분에
정말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나는 다시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쿠라에게서 소중한 시간을 얻은 것은 오히려 저예요.”
“너와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식사라도 한 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
쿠라가 너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해주는 바람에 그걸 못했구나.”
어머님의 슬픈 미소에 나는 다시 뒤흔들렸다.
뒤흔들리는 나 자신을 받아들인 채, 나는 어머니에게 그녀와의 추억을
아주 조금 이야기했다. 일기에 적혀 있지 않은 이야기였다. 물론 진실이
나 도전이냐에 대해서나 한 침대에서 잤다는 얘기는 빼고. 어머님은 수없
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말을 하다 보니 내 마음이 서서히 슬픔에서 헤어나는 것 같았다.
소중한 기쁨이나 슬픔은 그대로였지만 쓸데없는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베어 넘겨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 어머니는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했
다.
이야기 말미에 나는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다음에 또 조문하러 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때는 꼭 우리 사쿠라의 아빠와 오빠도 만나자. 아참, 교코
와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던데?”
그녀를 꼭 닮은 어머니가 큭큭 웃었다.
“아, 네, 그렇게 됐습니다. 이래저래 사정이 있어서 교코가 나를 싫어하
는 바람에…….”
“억지로 그러라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가능하면 교코와 너와 우리 가
족이 함께 식사라도 하자. 인사차, 라는 것도 있지만 사쿠라가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한 두 친구와 그렇게 허물없이 지낼 수 있으면 나는 참 좋
겠다.”
“저보다 교코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문제지만,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뒤 나는 다시 방문하기로 약속하고 자
리에서 일어섰다. <공병문고>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내가 가져오기로 했
다. 조의금 만 엔은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어머니는 현관까지 배웅해주었다. 운동화를 신고 다시 인사를 건네고
현관 문손잡이를 잡으려는 참에 어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참, 이름이 어떻게 되지?”
무심코 던진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정면으로 몸을 돌려 대답했다.
“하루키라고 합니다. 시가 하루키*.”
* 시가 하루키=시가 나오야+무라카미 하루키. 시가 나오야는 객관적이고 예리한 시선으로 유명
한 일본의 소설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일본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상실의 시대》가
있다.
손을 맞대고 눈을 감았다.
마음을 나만의 것에서 너에게 건네는 것으로 바꿨다.
용서해줬으면 해, 여기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
기도하는 것.
원래 태생이 고약한 성격이라서 우선 불평부터 좀 해야겠어.
그리 간단하진 않았어, 네가 말했던 만큼은, 네가 느꼈던 만큼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야.
어려웠어, 정말.
그래서 일 년씩이나 걸렸어. 이건 내 책임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드디어 내 선택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그건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일 년 전에, 분명하게 선택했어. 너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타인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성공했는지 어떤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선택은 했어.
이제 너의 절친이자 내 첫 번째 친구인 그녀와 너의 집에 간다.
사실은 셋이서 함께 만났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이제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천국에서 모두 함께 만나자.
어째서 너도 없는 집에 우리 둘이 찾아가느냐면, 그날 너희 어머니와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그건 교코한테도 아까 혼이 난 얘기야.
변명을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동안 내내 혼자 살아온 사람이라서 나
는 이를테면 친구라는 것의 기준조차 알지 못했어.
너의 집에는 교코와 반드시 친구가 된 다음에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
으니까.
친구를 알지 못했던 나는 너와 나의 관계를 기준으로 삼았어.
용서 못해, 라는 말을 들었던 그날로부터 우리는 한 걸음씩, 정말로 한
걸음씩, 친구로서의 길을 걸어왔어. 내가 내딛은 첫길, 평소에는 급한 성
격이면서도 매번 발밑이 휘청거리는 나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 교코에
게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역시나 너의 절친이야. 물론 본인에게 이런
말은 절대로 안 하지만.
그리고 마침내 얼마 전에 당일치기였지만 교코와 함께 우리가 일 년 전
에 갔던 그곳에 다녀왔어. 그때 처음으로 너의 어머니와 했던 약속을 교
코에게 얘기했어. 그랬더니 좀 더 빨리 말할 것이지, 라면서 화를 내더라.
내 친구, 진짜 성질도 급하지?
오늘 묘에 공양한 것은 그때 사온 선물이야.
학문의 신이 계시는 곳에서 생산한 매실 술.
너는 아직 열여덟 살이지만, 특별히 허락해줄게. 미리 잠깐 맛봤을 때
는 꽤 맛있었어.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교코는 건강해. 아, 알고 있나?
나도 건강해. 너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더.
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생각했어,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
지 살아왔다고.
하지만 네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
은 믿어지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우리는 분명 둘이 함께하기 위해 살아온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어.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는 부족했어.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주기 위해 살아온 것이겠지.
요즘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없는 나는 혼자 일어서지 않으면 안 돼.
그것이 둘이어서 마침내 하나였던 우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고 생각해.
……또 올게. 죽은 다음의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니까
너의 집에 갔을 때 사진 앞에서나마 똑같은 애기를 해줄게. 만일 듣고 있
지 않다면, 내가 천국에 갔을 때 다시 얘기해줄게.
자, 그럼 안녕.
…….
아참, 너에게 했던 한 가지 거짓말을 아직 털어놓지 않았구나.
너는 <공병문고>를 통해 혼자 울었던 것, 나에 대한 것, 거짓말을 했던
것 등을 털어놓았으니까 나도 공평하게 다 털어놓도록 할게.
잘 들어.
내가 언젠가 말했던 맨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 얘기, 그건 거짓말이야.
생각나지? 어디에나 ‘님’을 붙이는 여학생 얘기. 그건 새빨간 거짓말,
그냥 내가 지어낸 얘기야.
네가 너무 감동해주는 바람에 차마 말을 못했어.
실제 이야기는 글쎄, 다음에 다시 너를 만났을 때 해주게 될까?
만일 내 진짜 첫사랑 같은 여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때는 정말로 그 아이의 췌장을 먹어도 좋을지 모르겠다.
버티고 버틴 끝에 목 놓아 울기
벚꽃잎 질 때마다
전해지지 않은 마음이 또 하나
눈물짓는 얼굴, 웃음 짓는 얼굴에 지워져간다
그리고 또 한 번, 어른이 되었다
뒤따라올 뿐인 슬픔은,
강하고 맑은 슬픔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잊지 말아줘, 네 안에 피어나는 love
2017년 2월
양윤옥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017년 3월 17일 1판 1쇄 인쇄
2017년 4월 1일 1판 1쇄 발행
전자책 발행 2017년 5월 10일
저자 스미노 요루
옮긴이 양윤옥
발행인 유재옥
본부장 조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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