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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장에서 마루야마 겐지는
가족과 부모를 떠나 홀로 서야 한다고
지나칠 만큼 강경하게 말한다.
학생들은 말한다.
그 메시지의 깊은 뜻이 무엇이든
부모에 대해 그런 투로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고 말이다.
일리있다.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세상에는 드물게
거칠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거침의 힘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그 거친 말투에 대해 웃어넘겨야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거칠게 구느냐고 물어야 한다.
열기에 들뜬 사람
무언가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는 오히려 차가워져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열기와 거침을 넘어서,
그들 스스로도 놓치곤 하는
진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2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도
마루야마 겐지는 냉혹하다.
연애는 연애놀이가 되기 쉽고,
그러면 망한다는 것이다.
환상을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고나면 진실이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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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그것들은 모두 성숙해가야만
사랑답다는 것이 선생의 메시지다.
성숙의 관점에 서면
마루야마 겐지의 모든 말이 이해된다.
- 부모로부터의 독립,
-자식의 독립을 바라보는 부모의 자세,
-연애와 사랑에 대한 태도,
-섹스와 일에 대한 말들.
3
이번에는 종교에 대해서 말한다.
당연히 좋은 말은 별로 없다.
마루야마 겐지는
이중 '헌금/돈'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인간사를 냉철하게 보는 방법은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다.
말보다 풍모를 주시하라고 권고한다.
돈이나 풍모에는 어쩔 수 없이
욕망의 흔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숭고하게 울리는
그들의 말보다는 그들의 풍모를 주시한다.
속세사람들보다 훨씬 세속적이고 천박한,
먹고 마시고 싶은대로 해 피하지방에 둘러싸인
뭉글뭉글한 몸과 탁한 눈, 그리고 추악한 외모를.
그것이 성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고행을 불사했다는 인간의 육체이고 풍모인가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나, 지금의 그 꼴은 무엇인가
욕망에 몸이 단 범부의 전형 아닌가 한꺼풀 벗기면
어디에나 있는 너절한 아저씨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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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교에 이런 측면이 상당하다면
그럼에도 이런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을까?
첫째,
종교는 의외로
그리 신중하게 선택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략 부모의 종교를 따라간다.
[우리는 이슬람교를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
종교단체가 주는 공동체적 위안,
그것이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더이상 가족에 의존하지 못하는
새로 선 성인들은 외롭고 힘들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는 일,
과정의 실패를 견뎌내는 일,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는 것 등이
너무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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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탓에
신자들은 호화로운 신전과 천박하고 과장된 의상,
장엄한 멜로디의 노래와 기도, 신비성을
유독 강조하는 분위기 등의 눈속임에 여지없이 속아
교단의 공기를 한번 들이쉬고서는
무한한 혼돈의 절반이 당장 정리된 듯한
착각에 젖는다." 118
5
정신을 차리고
종교를 다시 봐야한다.
과연 인간을 궁휼히 여기는 신이 있단 말인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가?
6
마루야마 겐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따로 있다.
종교에 의해 인간적인 자세,
자립과 자유의 자세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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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내비치는 것은
절대 새벽빛이 아니다.
신비를 가장한 황혼의 빛이다.
그쪽에는 인간성을 짓뭉개는 깜깜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면 할수록,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립의 정신이
깍여나간다." 121
"자립의 길을 따르면,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것들에
휘둘려야 하는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
징징거리는 횟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온갖 종교가 떠들어대는, 말도 안되는 기만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이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만에 하나 아무리 분투해도 모자라
비참한 일을 당했거나 사면초가에 빠졌다 해도,
할 수 있는 만큼 다하고 그런 지셩이 되었다면
시원하게 그것도 인생의 일부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29
7
영성을 찾는 여행
마루야마 겐지의
종교에 대한 경계를 어떻게 이해할까?
신이 아니라, '신성한 것'에 대한
겸손과 탐구를 죄악시만 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이렇다.
인간의 삶은
사랑과 신성함으로 구성된다.
일상이야 영리함으로 대처하지만
그것 이상의 차원이 있다.
내 것을 기꺼이 내주고 싶은 사랑,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의 기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겸손함,
이런 것들이 인간의 영혼 안에 들어있다.
그런 영혼의 갈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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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종교는 탐구하는 마음들에게
확고한 대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전과 성직자들이 그 일을 한다.
거기서 종교는
일종의 계약을 제시한다.
자신들에게 복종한다면
안녕과 내세의 복락을 주겠다는
계약이 종교의 본질이다.
8
에필로그
마루야마 겐지는
종교라는 제도에 뒤덮여있는
과장과 허세, 기만을 꿰뚫는다.
그 지적에 걸리는 한
종교는 대답할 능력도 없고
정당성도 갖기 어렵다.
그렇다고
좋은 종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종교는 영성탐구의 정신을
최대한 보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휘황한 교회나 사찰을 보는가?
먼저 왜 이토록 휘황할까를 생각해보라.
그런 다음 우리가 찾는 영성은 어디에 있는지
온힘을 다해서 생각해보라.
m[3-2강] 인생 따위 9장 청춘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청춘,
최대의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
1
청춘은
사춘기 너머에서 시작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서는 어디서 온건가
이성에 대한 관심은 강렬한데,
이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리고 부모는 누구인가
등등.
당연히 답은 모른다.
답을 낼 수 있는 능력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의문을 던지고 반항할 뿐이다.
반항이 시들해질 즈음 20대 청춘에 들어선다.
대학을 입학한다.
청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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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적 물음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만들어가는 시기다.
그 답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그것 뿐이 아니다.
청춘에는 사춘기 이상의 물음이 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천직을 찾아내야 한다.
천직을 위한 재능을 찾아내야 한다.
2
자신을 제대로 봐야한다.
천직은
관심/열정, 재능, 시장
세가지를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잘하는가
-좋은 일터는 있는가
3
들어가봐야 한다.
어떤 일이 내게 적합할지
내가 그것을 잘할지는
그 일에 들어가야 확실하다는 것이
마루야마 선생의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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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렇다.
사람도, 취미도, 스포츠도 모두 마찬가지다.
첫인상은 별로 말해주는 것이 없다.
피아노를 치고 싶은가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 아는가
그 연습을 즐겁게 해낼 수 있는가
축구를 좋아하는가
축구의 무엇을 좋아하는가
화려한 경기장, 힘찬 움직임,
멋진 유니폼 등등.
그러나 축구의 매력은 그 정도가 아니다.
축구의 전략을 알게 되면
축구 스킬의 복잡함을 알게되면
그리고 축구를 직접 해보면
그때에야 축구를 진짜 좋아하게 된다.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마루야마 선생은 말한다.
자신에 대해 함부로 단정하지 말란다.
학업성적은 피상적인 것이고,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당신에 대한 책임감도 없는 친구나 지인의 평가,
현실적으로는 거의 무의미한
자신의 성향/열정 같은 것들로
자신에 대해 쉽게 단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진짜 재능은 찾아야한다는 것이
마 루야마 겐지의 메시지다.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적합과 부적합을 판단하고,
재능의 유무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실력이 정체된다.
결국 그 방면에 재능이 없었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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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고 청춘이 있는거다.
그렇다면
진짜 재능, 천직은 어떻게 찾아야할까
마루야마 선생의 조언은 이것이다.
도전해가면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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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죽는다.
이걸 하려고 하지 않으면
미리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마루야마 겐지 답게 독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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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목표를 가져라.
청년이여,
재능과 천직을 발견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라.
반드시 그걸 해봐라.
이익만을 따지고
자기 앞 영광에만 집착하면
야욕의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항상 분주하고 바쁘고
성공과 실패가 점철되며
자만과 좌절이 가득한 삶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것 말고
대단한 인간, 장엄한 인간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져본다면
어떻까?
마루야마 선생은
더 세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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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나는 엄청 운이 좋은 사람이다.
별로 고생스럽게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몇번의 용감한 전환 덕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을 찾았다.
철학교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내가 가장 잘해낼 일이
이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대학시절,
마루야마 선생의 조언을 접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해본다.
대학시절, 훨씬 넓게 돌아다녔을 것 같다.
다양한 일 속으로 들어가봤을 것 같다.
내 삶은 시시했다.
당신들은 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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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이라는 주제
이런 주제는
사춘기 시절부터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논리적으로야 삶은 무의미한 것이고
그러니 당장 끝은 내는 것이 마땅할 것 같지만,
굳이 그래야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고,
끝낸다는 것은 힘들고 두럽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 끝에서 답없는 문제로 잊어가는 것,
그러다가 노년에 되면 새로운 현실감을 가지고
'철학교양'으로 부활하는 것,
그것이 이 주제의 통상적 히스토리다.
"이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노인네 같은 발상은 단박에,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쳐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치는 지인이나 깊은 밤에 스쳐 지나간 배처럼
무관한 것으로 변하고, 죽음을 이겨낼 자신도 얻는다.
이렇게 하여 멀리서 찾아온
초대하지 않은 손님인 죽음의 신은
젊은이들의 미숙하고 파릇파릇한 혼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지 못한 채,
교훈적인 대사 몇마디만 남기고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돌아간다." 193
2
물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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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선생은
그런 태도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죽음 앞에서 미리 움츠러들어
얼어붙어 있는 것은 이상한 태도라고 말한다.
그것은 미리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죽은 자로 행세하는 것이나 같다."
195
틀린 말이 아니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지금은 삶의 시간인데,
'죽은 체' 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아니다. 삶의 시간을 누려야한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해서 죽음이라는
인간조건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답을 가질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사건이
우리의 종말에서 기다린다고 <미리 아는>
우리에게는 어떤 태도가 가능할까?
적당히 잊고 사는 것은 한가지 방법인데,
그것 말고는 다른 답이 불가능할까?
3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
말하자면 우리는
삶 이전의 무의미로부터 우연히 태어나며,
우연한 시간에 삶 이후의 무의미로 되돌아간다.
우리 이전에도, 우리 이후에도
세상은, 우주는 나름의 방식으로
정상적으로 운행된다.
물론 안 만들어도 된다.
세상은 원래 무의미한 것이다.
그냥 오늘 즐거운 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보내는 걸로 충분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왠지 아쉽다.
아예 의미를 잊고 산다거나,
남들이 말해주는 걸 대충 따라간다면
대단히 섭섭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그런 자세에서는
고난을 견디기 쉽지 않다.
장미란 선수가 말하듯 인생이란 본디
무게를 견뎌내는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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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훌륭한 삶은 없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마루야마 선생 최고의 통찰은
훌륭한 삶이란 없다는 메시지인 것 같다.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데,
나에겐 이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는다.
그럼 이제부터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면 될까?
그러면 훌륭한 삶이 되는걸까?
이상한 결론 아닌가?
나는 이 지점에서
훌륭한 삶이란 없다 라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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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본래 별 것 없다.
어차피 무의미의 바다로 되돌아갈
잠시 핀 꽃송이일 뿐이다.
삶이란
자기가 뜻한대로 꾸려지는 것도 아니고,
엇비슷하게 꾸려냈다고 해도
어느 순간 갑자기 종료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삶이 똑같이 우주의 원자로 회귀한다.
이 작은 삶에 대해 훌륭하다는 말은 얼마나 어색한가?
삶이란 본래 훌륭하지 않다.
단지 풍성할 수 있을 뿐이다.
삶이란
우연히 주어진 시간 동안
맘껏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각자의 상황 속에서
의지로써 꾸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운좋은 삶이 있고, 불운한 삶이 있다.
어떤 삶은 여러가지를 획득하기도 하고,
어떤 삶은 좌절 속에서 수치를 겪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삶은 훌륭하고
저 삶은 비루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의 삶이란 각자의 의지를 시험한 것이고,
세상이 그 시험을 지지 또는 거부한 것 뿐이다.
누군가는 운이 좋을 뿐이다.
그러니
훌륭한 삶이란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분투한 삶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에게 진지했던 삶,
그래서 장엄해진 삶이 있으며,
그렇지 못했던 삶이 있을 뿐이다.
자기 멋대로 살아도 좋은 삶,
자신이 명령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삶,
이 삶을 그렇게 보내지 못한 사람의
아쉬운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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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생 그까짓 거'
삶이란 원래 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살아볼 만하다.
진지하기만 하면 감동이 있다.
자살은 너무 성급하다고 말하면서
선생은 삶을 견뎌보라고,
거기에 삶의 감동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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