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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주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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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1강] 인생 따위, 6장 신따위


종교의 진짜 모습은 난해하지 않다.
과학의 시대, 여전히 종교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영성에 대한 탐구는 종교와 다르다.

1
1-2장에서 마루야마 겐지는
가족과 부모를 떠나 홀로 서야 한다고
지나칠 만큼 강경하게 말한다.

학생들은 말한다.
그 메시지의 깊은 뜻이 무엇이든
부모에 대해 그런 투로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고 말이다.

일리있다.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세상에는 드물게
거칠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거침의 힘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그 거친 말투에 대해 웃어넘겨야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거칠게 구느냐고 물어야 한다.

열기에 들뜬 사람
무언가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는 오히려 차가워져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열기와 거침을 넘어서,
그들 스스로도 놓치곤 하는
진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2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도
마루야마 겐지는 냉혹하다.
연애는 연애놀이가 되기 쉽고,
그러면 망한다는 것이다.
환상을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고나면 진실이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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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그것들은 모두 성숙해가야만
사랑답다는 것이 선생의 메시지다.

성숙의 관점에 서면
마루야마 겐지의 모든 말이 이해된다.
- 부모로부터의 독립,
-자식의 독립을 바라보는 부모의 자세,
-연애와 사랑에 대한 태도,
-섹스와 일에 대한 말들.

3
이번에는 종교에 대해서 말한다.
당연히 좋은 말은 별로 없다.

우리에게 종교란 어떤 것인가?


거대한 신전, 경건한 성직자들,
좋은 말씀, 그리고 신성한 헌금

마루야마 겐지는
이중 '헌금/돈'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인간사를 냉철하게 보는 방법은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다.
말보다 풍모를 주시하라고 권고한다.
돈이나 풍모에는 어쩔 수 없이
욕망의 흔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종교의 실체를 아주 간단히 꿰뚫어볼 수 있다.


혼은 과연 영원히 살 수 있는가 따위의
심오한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교의의 옳고 그름을 놓고 성가신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종교단체의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주시하면,
그 사기성이 곧바로 드러난다.
신자들에게 기부나 보시, 봉사 등의 명목으로
돈을 거두어 들이는 구조인지 아닌지만 보면
사기행각인지 아닌지 저절로 판명될 것이다.
한마디로 종교단체는 호박을 덩굴째
끌어 모으면서 배를 불리고 있다."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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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하게 울리는
그들의 말보다는 그들의 풍모를 주시한다.
속세사람들보다 훨씬 세속적이고 천박한,
먹고 마시고 싶은대로 해 피하지방에 둘러싸인
뭉글뭉글한 몸과 탁한 눈, 그리고 추악한 외모를.
그것이 성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고행을 불사했다는 인간의 육체이고 풍모인가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나, 지금의 그 꼴은 무엇인가
욕망에 몸이 단 범부의 전형 아닌가 한꺼풀 벗기면
어디에나 있는 너절한 아저씨 아닌가"
122

이 신랄한 공격을 정확히 읽어야한다.


마루야마 겐지 자신은
종교단체에서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종교단체는
건전하고 존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여기에 종교 모욕은 없다.
엉터리 종교에 대한 경고다.

4
종교에 이런 측면이 상당하다면
그럼에도 이런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을까?

첫째,
종교는 의외로
그리 신중하게 선택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략 부모의 종교를 따라간다.
[우리는 이슬람교를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
종교단체가 주는 공동체적 위안,
그것이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더이상 가족에 의존하지 못하는
새로 선 성인들은 외롭고 힘들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는 일,
과정의 실패를 견뎌내는 일,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는 것 등이
너무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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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준비되어 있다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것이 종교다.
[많은 사이비 선교의 핵심은
공동체의 따뜻함을 앞에 내세운다.]

"고독이 바로 해소된 듯한 착각에 빠져 기뻐하고,


자신이 생각하지 않아도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환경에 취한다. " 116-7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탓에
신자들은 호화로운 신전과 천박하고 과장된 의상,
장엄한 멜로디의 노래와 기도, 신비성을
유독 강조하는 분위기 등의 눈속임에 여지없이 속아
교단의 공기를 한번 들이쉬고서는
무한한 혼돈의 절반이 당장 정리된 듯한
착각에 젖는다." 118

5
정신을 차리고
종교를 다시 봐야한다.
과연 인간을 궁휼히 여기는 신이 있단 말인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가?

"-- 신이라는 자가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박애의 정신과 위대한 구원의 힘으로
인류는 오래전에 구원을 받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 완전한 존재가, 딱딱한 바위로 뒤덮이고
그 바로 아래에는 펄펄 끓는 마그마가 흐르는
별의 표면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인간이
고뇌하고 무릎 꿇고 울며불며 매달릴 때까지
뒷짐을 지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
아니 그보다,
인간이라는 이 어중간하고 덜떨어진 존재를
이 세상에 보낼리가 없지 않은가" 125-6

6
마루야마 겐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따로 있다.
종교에 의해 인간적인 자세,
자립과 자유의 자세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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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내비치는 것은
절대 새벽빛이 아니다.
신비를 가장한 황혼의 빛이다.
그쪽에는 인간성을 짓뭉개는 깜깜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면 할수록,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립의 정신이
깍여나간다." 121

"자립의 길을 따르면,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것들에
휘둘려야 하는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
징징거리는 횟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온갖 종교가 떠들어대는, 말도 안되는 기만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이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만에 하나 아무리 분투해도 모자라
비참한 일을 당했거나 사면초가에 빠졌다 해도,
할 수 있는 만큼 다하고 그런 지셩이 되었다면
시원하게 그것도 인생의 일부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29

7
영성을 찾는 여행

마루야마 겐지의
종교에 대한 경계를 어떻게 이해할까?
신이 아니라, '신성한 것'에 대한
겸손과 탐구를 죄악시만 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이렇다.

인간의 삶은
사랑과 신성함으로 구성된다.
일상이야 영리함으로 대처하지만
그것 이상의 차원이 있다.
내 것을 기꺼이 내주고 싶은 사랑,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의 기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겸손함,
이런 것들이 인간의 영혼 안에 들어있다.

그런 영혼의 갈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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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의 탐구가 나온다. spirituality


그것은 본질적으로 여행이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의
물음에서 시작되는 여행이다.
이미 아는 곳에는 답이 충분치 않으며,
질문이 이끄는 곳 어디라도 가는 여행이다.
미지의 목적지를 찾는 여행이다.

그런데 이 영성이 곧 종교일까?


그렇지 않다. 영성의 추구는
오히려 종교를 위협하곤 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탐구하는 마음들에게
확고한 대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전과 성직자들이 그 일을 한다.

거기서 종교는
일종의 계약을 제시한다.
자신들에게 복종한다면
안녕과 내세의 복락을 주겠다는
계약이 종교의 본질이다.

종교는 세계를 빈틈없이 설명하고,


우리에게 예정된 목표와 명료한 계약을 제시한다.
명령에 복종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계약.

그러나 영성의 탐구는


그런 대답에 순종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너무 쉬운, 편리한 대답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계속 행군한다.
그래서 종교와 영적 여행이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는 어떤 질서체계를 만드는 것이며,


영적 여행을 그 질서 밖으로 튀어나가려 하기 때문이다.
영성주의자는 종교의 안일함, 세속성에 눈감지 않는다.
[종교혁명은 쾌락주의 무신론자가 아니라
독실하고 금욕적인 수도사 루터에 의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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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에필로그

종교와 정치는 기피주제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열광적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열광 없이
종교와 정치를 볼 수 있어야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종교라는 제도에 뒤덮여있는
과장과 허세, 기만을 꿰뚫는다.
그 지적에 걸리는 한
종교는 대답할 능력도 없고
정당성도 갖기 어렵다.

그렇다고
좋은 종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종교는 영성탐구의 정신을
최대한 보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휘황한 교회나 사찰을 보는가?
먼저 왜 이토록 휘황할까를 생각해보라.
그런 다음 우리가 찾는 영성은 어디에 있는지
온힘을 다해서 생각해보라.

-기만 아닌 진실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가능한 구원은 어떤 것일까?
-누가 좋은 인간인가, 좋은 삶인가?
-내가 정말 존중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와 부처를 특별하게 본다.


영성의 물음은 참으로 엄청난 것인데,
그것들에게 어떤 답의 길을 열어간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들을 것이 참으로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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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2강] 인생 따위 9장 청춘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청춘,
최대의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

청춘, 그건 본질적으로 가난하다.


힘과 회복력은 넘치지만
어떤 것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다.
에너지와 시간이 남아도는 가난,
이 화려한 가난의 시기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이 시기, 반드시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1
청춘은
사춘기 너머에서 시작된다.

사춘기는 혼란의 시기다.


유아기부터 계속되어온 삶,
그 당연한 질서가 갑자기 의심스러워진다.
의문을 던질 수 있는 두뇌가 만들어지고,
성적 에너지가 충만하기 시작한다.
욕망과 호기심이 눈뜨는 시절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서는 어디서 온건가
이성에 대한 관심은 강렬한데,
이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리고 부모는 누구인가
등등.

당연히 답은 모른다.
답을 낼 수 있는 능력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의문을 던지고 반항할 뿐이다.
반항이 시들해질 즈음 20대 청춘에 들어선다.
대학을 입학한다.

청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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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적 물음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만들어가는 시기다.
그 답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그것 뿐이 아니다.
청춘에는 사춘기 이상의 물음이 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천직을 찾아내야 한다.
천직을 위한 재능을 찾아내야 한다.

2
자신을 제대로 봐야한다.

천직은
관심/열정, 재능, 시장
세가지를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잘하는가
-좋은 일터는 있는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말들이 많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이 밥 먹여준다고도 하고,
다른 누구는 결국 좋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을 이긴다고도 하고..

마루야마 겐지의 생각은


둘다 틀렸다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 잘할 것 같다는 것,
그걸로는 별로 알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3
들어가봐야 한다.

어떤 일이 내게 적합할지
내가 그것을 잘할지는
그 일에 들어가야 확실하다는 것이
마루야마 선생의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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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렇다.
사람도, 취미도, 스포츠도 모두 마찬가지다.
첫인상은 별로 말해주는 것이 없다.

당신의 친구, 첫인상은 어땠는가


지금도 첫인상이 남아있는가

피아노를 치고 싶은가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 아는가
그 연습을 즐겁게 해낼 수 있는가

축구를 좋아하는가
축구의 무엇을 좋아하는가
화려한 경기장, 힘찬 움직임,
멋진 유니폼 등등.
그러나 축구의 매력은 그 정도가 아니다.
축구의 전략을 알게 되면
축구 스킬의 복잡함을 알게되면
그리고 축구를 직접 해보면
그때에야 축구를 진짜 좋아하게 된다.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마루야마 선생은 말한다.
자신에 대해 함부로 단정하지 말란다.
학업성적은 피상적인 것이고,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당신에 대한 책임감도 없는 친구나 지인의 평가,
현실적으로는 거의 무의미한
자신의 성향/열정 같은 것들로
자신에 대해 쉽게 단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진짜 재능은 찾아야한다는 것이
마 루야마 겐지의 메시지다.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적합과 부적합을 판단하고,
재능의 유무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실력이 정체된다.
결국 그 방면에 재능이 없었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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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싫어서 시큰둥하게 시작한 일이 의외로 성격에 맞아


놀라운 진보를 이루고 어느새 선두에 서는 존재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74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꾸역꾸역 해왔는데,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잠자고 있던 재능이 갑자기 꽃을 피우는 예도 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집중하고 분투해서
천직이라고 자부하는 선까지 이르는 것이다." 174

4
그러라고 청춘이 있는거다.

그렇다면
진짜 재능, 천직은 어떻게 찾아야할까
마루야마 선생의 조언은 이것이다.
도전해가면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재능과 그에 걸맞는 천직을 발견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니
직접 겪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도전하고 시도해보라는 뜻이다.
젊은 시절에는
경험하라고, 도전해보라고들 말하는데,
그 경험, 도전이라는 게 무엇일까?
해외여행 같은 것만이 아니다는 거다.

"싫고 좋음이나 자기류의 해석은 모두 무시하고,


온갖 일에 도전해 보면서 자기 안에 소리없이 숨겨져있는,
곤히 잠들어있는 재능을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새로이 발견한다는,
생의 목적과 직결되는 위대한 행위이며,
젊었을 때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면 다름아닌 그것이다.
젊음이란 그 때문에 있는 것이다." 175-6

5
미리 죽는다.

이걸 하려고 하지 않으면
미리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마루야마 겐지 답게 독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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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이란 언제나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 과감히 덤벼들어야만 가능하다.
그걸 주저하고 보류만 하다가는
시간에 쫓기고, 통념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불현듯 졸업이 다가오면


어디든 취직할 수밖에 없고,
겨우 취직이 되면 즉시 안정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되는데,
그것이 자신에게 걸맞는 <삶의 공식>일지는 생각할 여지도 없고,
결국 인생의 입구에서 스스로 자기 길을 막아버리는 것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젊어서 이미 죽을 준비를 끝낸 보통사람들은


자기보다 뛰어난 자와 만날 일이 거의 없고.
오래 눌러앉아 있어봐야 성취감은
털끝만큼도 얻을 수 없으며,
불궁의 정신 따위도 전혀 필요하지 않은
그런 잿빛 코스를 밟는다.
그리고 그 길에서 튀어나와 이탈한 자들을
고립적이고 가엾은 존재로 간주한다.
낙오자 또는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경멸하는 것으로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위치를 옹호한다.
가능성이 무한한 자립의 길을 완강히 외면하고서,
보통의 평범한 코스 밖에 걷지 못하는,
하강과 추락으로 점철된 인생을 두서없이 변명한다.
만성적인 무력감에 시달리다
원래는 훨씬 더 풍요롭고 훨씬 더 충실하고 훨씬 더
변화무쌍했을 인생을 슬프고 처량하게 마감한다." 177

6
장엄한 목표를 가져라.

청년이여,
재능과 천직을 발견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라.
반드시 그걸 해봐라.

이것이 마루야마 선생의 조언인데,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이고 있다.
청년이라면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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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한, 장엄한 목표를 찾으라는 것.

이익만을 따지고
자기 앞 영광에만 집착하면
야욕의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항상 분주하고 바쁘고
성공과 실패가 점철되며
자만과 좌절이 가득한 삶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것 말고
대단한 인간, 장엄한 인간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져본다면
어떻까?

사회의 리더가 되라는,


국민과 인류를 구원하라는
그런 목표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직업범위 내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
주변을 밝게 비춰줄 사람,
그와 상의하고 싶은 사람,
의리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도
좋은 목표일 것이다.

마루야마 선생은
더 세게 말하고 있다.

"생애를 다 바쳐도 좋을 만큼의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은 환상 따위가 절대 아니다.
차분히 기다리고 시시각각 관찰하는 끈질김만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고 언젠가 만날 수 있는 현실 자체다." 181

"목표 중의 목표, 목적 중의 목적은


온 정력과 인생을 쏟아 부어도
발전과 진보가 멈추지 않을 만큼 심오한 것이어야 한다.
게다가 아무도 발을 내딛지 않은
미지의 세계와 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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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그것을 발견하고 그 길에 발을 디딘 자는


거짓 삶과 진정한 삶을 구별할 수 있다.
나아가 수많은 사람이 혈안이 되어 추구하는 행복,
즉 단순히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공허한 충만감 따위는 상대하지 않게 된다." 182

7
에필로그

마루야마 선생의 조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뻔한 소리다.. 그런 반응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좋은 충격을 받는다.
청춘의 시기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구나,
그런 걸 청춘의 도전이라고 하는구나.

나는 엄청 운이 좋은 사람이다.
별로 고생스럽게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몇번의 용감한 전환 덕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을 찾았다.
철학교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내가 가장 잘해낼 일이
이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대학시절,
마루야마 선생의 조언을 접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해본다.
대학시절, 훨씬 넓게 돌아다녔을 것 같다.
다양한 일 속으로 들어가봤을 것 같다.

내 삶은 시시했다.
당신들은 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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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3강] 인생 따위 10장 삶/죽음에 대하여


10장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훌륭한 삶이란 없다.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1
죽음이라는 주제

인간은 결국 죽음으로 사라지는 존재다.


우리가 결국 죽는다면
인간이 수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뭐든 만들려고 애쓰는 노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주제는
사춘기 시절부터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논리적으로야 삶은 무의미한 것이고
그러니 당장 끝은 내는 것이 마땅할 것 같지만,
굳이 그래야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고,
끝낸다는 것은 힘들고 두럽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 끝에서 답없는 문제로 잊어가는 것,
그러다가 노년에 되면 새로운 현실감을 가지고
'철학교양'으로 부활하는 것,
그것이 이 주제의 통상적 히스토리다.

"이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노인네 같은 발상은 단박에,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쳐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치는 지인이나 깊은 밤에 스쳐 지나간 배처럼
무관한 것으로 변하고, 죽음을 이겨낼 자신도 얻는다.
이렇게 하여 멀리서 찾아온
초대하지 않은 손님인 죽음의 신은
젊은이들의 미숙하고 파릇파릇한 혼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지 못한 채,
교훈적인 대사 몇마디만 남기고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돌아간다." 193

2
물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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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선생은
그런 태도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죽음 앞에서 미리 움츠러들어
얼어붙어 있는 것은 이상한 태도라고 말한다.
그것은 미리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죽은 자로 행세하는 것이나 같다."
195

틀린 말이 아니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지금은 삶의 시간인데,
'죽은 체' 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아니다. 삶의 시간을 누려야한다.

"삶을 통해 죽음을 응시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삶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로 쟁취하는 것이고,
죽음은 가능한 한 물리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악전고투와 고생 속에
생명의 가치가 숨겨져있다." 196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해서 죽음이라는
인간조건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답을 가질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사건이
우리의 종말에서 기다린다고 <미리 아는>
우리에게는 어떤 태도가 가능할까?
적당히 잊고 사는 것은 한가지 방법인데,
그것 말고는 다른 답이 불가능할까?

3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

특정한 종교적 확신이 없다면


17 3주차 강의.hwpx

우리 삶은 무의미로 가득찬 바다에서


잠시 피어오른 '한송이 꽃' 불과하다.

우주의 먼지들 몇개가


엔트로피의 법칙을 위배하며
우연히 생명의 형태로 태어나는 것이며,
일정정도 생명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

말하자면 우리는
삶 이전의 무의미로부터 우연히 태어나며,
우연한 시간에 삶 이후의 무의미로 되돌아간다.
우리 이전에도, 우리 이후에도
세상은, 우주는 나름의 방식으로
정상적으로 운행된다.

그렇다면 내 삶, 내 인생은 무엇일까?


마루야마 선생이 자주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
인생이라고 결론낼 수 있다.

인생에는 원래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삶이란 우발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내 삶을 위한 미리 설정해둔 목표나 의미가 없다.
그 말은 의미란 것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안 만들어도 된다.
세상은 원래 무의미한 것이다.
그냥 오늘 즐거운 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보내는 걸로 충분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왠지 아쉽다.
아예 의미를 잊고 산다거나,
남들이 말해주는 걸 대충 따라간다면
대단히 섭섭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그런 자세에서는
고난을 견디기 쉽지 않다.
장미란 선수가 말하듯 인생이란 본디
무게를 견뎌내는 일인데 말이다.
18 3주차 강의.hwpx

그런데 그걸로는 아쉽다면


비록 짧은 삶이지만 뭔가 해보고 싶다면
무얼 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멋대로 의미를 만들어봐야 한다는 거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무의미에 의해 <처단>된다.

"의미도 목적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즉, 스스로 찾을 수 잇다는 의미의 자유로움이
존중된다는 뜻이며,
의지의 세계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컨대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면서
멋대로 가는 것이 좋다는 영원한 암시인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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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삶은 없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마루야마 선생 최고의 통찰은
훌륭한 삶이란 없다는 메시지인 것 같다.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데,
나에겐 이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는다.

인생의 의미가 있네, 없네


이런 이야기는 사실 흔합니다.
철학강좌에 가면 어김없이 나온다.
결론도 대략 비슷하다.
지금 당장 자살할 생각이 아니라면
당연히 삶을 꾸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면 될까?
그러면 훌륭한 삶이 되는걸까?
이상한 결론 아닌가?
나는 이 지점에서
훌륭한 삶이란 없다 라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9 3주차 강의.hwpx

인생이란 본래 별 것 없다.
어차피 무의미의 바다로 되돌아갈
잠시 핀 꽃송이일 뿐이다.

삶이란
자기가 뜻한대로 꾸려지는 것도 아니고,
엇비슷하게 꾸려냈다고 해도
어느 순간 갑자기 종료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삶이 똑같이 우주의 원자로 회귀한다.
이 작은 삶에 대해 훌륭하다는 말은 얼마나 어색한가?
삶이란 본래 훌륭하지 않다.
단지 풍성할 수 있을 뿐이다.

삶이란
우연히 주어진 시간 동안
맘껏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각자의 상황 속에서
의지로써 꾸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운좋은 삶이 있고, 불운한 삶이 있다.
어떤 삶은 여러가지를 획득하기도 하고,
어떤 삶은 좌절 속에서 수치를 겪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삶은 훌륭하고
저 삶은 비루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의 삶이란 각자의 의지를 시험한 것이고,
세상이 그 시험을 지지 또는 거부한 것 뿐이다.
누군가는 운이 좋을 뿐이다.

그러니
훌륭한 삶이란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분투한 삶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에게 진지했던 삶,
그래서 장엄해진 삶이 있으며,
그렇지 못했던 삶이 있을 뿐이다.

자기 멋대로 살아도 좋은 삶,
자신이 명령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삶,
이 삶을 그렇게 보내지 못한 사람의
아쉬운 삶이 있을 뿐이다.
20 3주차 강의.hwpx

5
'인생 그까짓 거'

그래서 마루야마 선생은


계속해서 제대로 살아보라고 권한다.
함부로 포기하지도 말고,
너무 조심하고 겁내지도 말라고 말한다.
'인생 그까짓 거' 하면서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동물로 태어났지만, 맨 마지막에는


정신을 스스로 고취할 수 있는 인간으로 떠나야
비로소 고상한 인생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죽을 몸인데,
왜 그렇게까지 겁을 내고 위축되고 주저해야 하는가.
자신의 인생을 사는 데 누구를 거리낄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새로운 마음가짐과 태도를 무기로,
애당초 도리에 맞지 않고 모순투성이인 이 세상을
마음껏 사는 참맛을 충분히 만끽해라." 202

삶이란 원래 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살아볼 만하다.
진지하기만 하면 감동이 있다.
자살은 너무 성급하다고 말하면서
선생은 삶을 견뎌보라고,
거기에 삶의 감동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에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에야말로
진정한 삶의 감동이 있다고 확신했다." 201

"최후의 순간,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진정한 생이 시작될지도 모를 천재일우의 기회를,
끝이라고 여긴 그 지점에서 다시 삶이 시작될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은 아닐까." 201

6
에필로그
21 3주차 강의.hwpx

그래서 선생의 결론은 이것이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이게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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