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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및교육사

[7차 강의록: 서양 교육철학 및 교육사- 로마의 교육과 철학]

□ 로마(제국)의 교육과 철학

- 로마 제국(BC 27년~ AD. 476년) 은 이탈리아 반도 작은 도시국가(기원전 750년


경)에서 시작하여 그리스와 소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며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
하였다. 그리스 문화, 헬레니즘, 이집트의 문화를 흡수하고, 기독교 요소를 첨가하여
유럽의 고전 문화를 통합․절충하였으며 이를 후대에 전했다. 그러나 게르만 민족의
남하로 BC. 476년에 멸망하였다.

- 로마인은 사물의 가치를 유용성이나 효용성 기준에서 보았고, 실제적이며 현실적


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제도 등을
탐색하고 조직적인 군대나 도로, 건축물 등을 발달시켰다.

- 로마인은 개인의 안전과 자율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법을 중요시했고, 이를


준수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다.

- 평민의 요구로 기원전 449년 12 동판이 만들어져 법과 관습이 성문화되기 시작되


었다: 채무, 가족, 결혼, 상속, 장례, 재산, 부동산, 민사소송, 불법행위 등에 대한 법
이나 규칙이 담겨있다.

- 이 12 동판법은 로마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정의와 형평


성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자연법사상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이
와는 다른 평가를 받기도 한다.

① 인간의 이성, 보편적 인간성 등에 입각한 법으로 서양 세계의 자유와 평


등의 기초가 되었다.
② 주로 기존 사회의 관행을 성문화 했을 뿐, 실제적으로 평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근본적 대책은 담아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귀족계급이 자신들의
권리 보호를 하기 위한 장치라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 그럼에도 법 앞에 귀족과 평민간의 공정성과 모든 시민의 평등성을 수립
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로마의 교육은 로마의 전통 교육을 강조하는 시기(공화정시기)/ 그리스 문화의 영


향으로 헬레니즘적 이상과 실체가 등장했던 그리스화된 시기/ 기독교의 발달로 인
한 쇠퇴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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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의 교육
a) 공화정 시대(BC. 510~ BC. 27)
․ 이 시기 로마 엘리트의 최대 관심은 전쟁과 정치였다.

․ 이 시기 교육의 핵심은 성인의 삶을 보고 배우는 것:


그중에서도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가부장적 교육이 매우 중요하였고, 아버지
에게 절대복종을 해야 했다.

․ 교육내용은 삶과 관련된 내용에 국한된 것:


글자 읽기, 종교와 합창의 의식, 신체훈련 등이었다. 신체적 활동은 체육관
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투장이나 야영지에서 무기를 가지고 이루
어졌다. 소년들의 교육은 장차 시민으로서 하게 되는 일에 실제적으로 참가
하면서 진행되었다 → 청치가, 농부, 군인, 그 밖의 활동을 준비하는 것이
교육이었다.

․ 공화정 말기에 이르러 그리스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b) 제정 시대(BC. 27~BC. 470)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지중해를 정복하고 제정을 선포한 후 로마에서는 그리스식 문
화와 교육(헬레니즘적 이상과 실제가 나타났던 교육)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 교육받은 상당수의 그리스인이 전쟁포로나 상인, 노예 등으로 이탈리아에 유입되


어 자연스레 헬레니즘 문화가 전파될 수 있었다: 상류층 사람들은 그리스 노예를
교육자로 고용하며 그리스어와 사상을 접할 수 있었고 아테네와 소아시아로 철학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 이 시기의 교육의 목적은 애국심이 강하고 법을 준수하는 유능한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문자학교와 문법학교, 수사학교가 있었다.
․ 문자학교는 6-7~12세 사이의 모든 아동을 위한 학교로 읽기, 쓰기, 셈
하기를 배웠으며, 12 동판 본 한 권만을 교재로 삼았다. 음악이나 율동, 체
육 등과 같은 분야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으며 강압과 벌은 로마학교에서 자
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 문법학교는 12세~13세 해당하는 상류계급의 소년들만이 진학하여 문법


공부를 하였다. 문법의 의미는 정확한 화술과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 분석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문학을 포함한다. 교과목으로는 문법,
라틴어, 그리스문학, 라틴 문학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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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학교는 로마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정치에 뜻을 둔 16세 이상의 소
년을 위 한 학교이다. 학생들은 연설기법을 익히고 웅변가가 실제로 다루어
야 하는 주제와 웅변의 다양한 형식을 연습하고 연구했다. 이는 관료나 장
교 및 사회의 상류층이 되기 위한 중요 한 수단이었다.

c) 로마교육의 쇠퇴기
-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박해를 이겨내고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국교의 지위를
획득했다; 따라서 교회 조직도 로마의 행정조직에 따라 도시, 농촌, 수도 등 지역의
특성에 맞게 정비되었다.

- 이 과정에서 교회 전체 영도자 로서의 교황 지위가 강력해 지기 시작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며 이교도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는 점점 매력을 상실했으며 폐
쇄적 종교관은 이교도를 배척하며 중세의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2) 로마의 대표적 사상가


- 이 시기 학자로는 웅변가이자 작가인 키케로(Cicero, 기원전 106-43)와 인간의 탁
월성을 웅변의 능력에서 찾은 퀸틸리아누스(Quintilian, 35-96)가 있다.

a) 키케로
- 로마교육의 미래에 대한 길을 제시한 당대의 학자이다. 그의 교육의 목표는 웅변
가였다.
그가 의미한 웅변가는 그리스 시대의 교육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일반 교양
인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말 잘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중을 계
몽하는 지도자로서의 웅변가를 의미했다.
웅변에 필요한 이론과 기술은 물론 철학교육도 강조하였다.

- 그는 그리스의 인문주의을 바탕으로 한 교육 이상을 로마에 계승하고 발전시킨


학자이다.

b) 퀸틸리아누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이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논의를 집대성하


여 수사학의 기초를 완성한 학자)
로마의 민주주의가 억압되어가고 있는 로마제정 초기에 공화정 시기의 자유로웠던
수사학을 회복시키려 한 철학자이자 웅변가이자 교육가이다. 기교 중심의 수사학이
아닌 도덕성을 갖춘 웅변가의 양성이 그의 교육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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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 시기: 자유로운 웅변과 연설, 설득의 문화가 꽃피우던 시대
제정 시대: 법 위에 황제가 있고 자유로운 연설이 불가능했으며 반론이나
비판은 황제에 대한 모욕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시대.

퀸틸리아누스는 『수사학 강론』에서 논리적인 사고의 웅변가가 되기 위한 교육 내용


을 다루고 있다.
모두 1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말하기와 글쓰기의 중요성도 언급한다.
수사학의 교육 단계: 유년기, 사춘기, 성인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언어, 문법, 변론 능력)

키케로의 사상을 이어받아 『웅변가의 교육』을 저술하였다. 퀸틸리아누스 또한 웅변


가를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키케로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는 완벽한 웅변가는 인간
성을 구비하고 인격이 완숙된 인간을 의미한다고 보고 웅변에 필요한 기법에 철학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말과 사고를 조화롭게 발달시켜야 한다고 했다.

***퀸틸리아누스의 『수사학 강론』은 그후 오랜 시간 잊혀졌지만 1416년 포지오 브


라치올리니(Poggio Bracciolini)라는 이탈리아의 한 학자가 성 갈로 수도원 도서실
에 있던 이 책을 발견하고 가치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 후 필사본을 제작하여 보급
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발견된 이후 이 책은 기록에 따르면 1475년부터 1600년
사이에 100판 이상이 출판되었고, 18세기까지 서구의 수사학 교육의 교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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