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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문

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김 경 근**

I. 머리말 다양성
II. 고대 이집트인의 사고 내재성
III. 신의 존재 V. 신과 인간
출현 다신교
창조 사자와 내세
죽음과 부활 사자의 신격화
IV. 신의 성격 VI. 맺음말
동물 형상

I. 머리말

고대 이집트 문명을 3천 년 이상 지속할 수 있게 한 요소는 무엇일까? 좁혀서 생


각하더라도 역시 종교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도슨(C. Dawson)의 말처럼 하나
의 문화가 일정한 종교적 형태 없이 통일성을 유지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1)
여러 문명사가들 역시 종교 신앙과 그 이념을 문명 발달의 초석으로 간주하였다.2)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이집트 문명에 매료되었고 이집트인의 학문과 지혜를
높이 평가하였다.3) 그러나 그들에게 이집트 종교의 동물숭배 관행은 받아들이기 어

* 이 논문은 2009년도 전북대학교 연구기반조성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음


** 전북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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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운 것으로서, 인간의 몸과 동물의 머리가 기괴하게 결합된 형상은 신에 대한 관념


을 훼손하는 것으로 비쳐졌다.4) 그런가하면 20세기에 들어서도 고대 이집트나 메
소포타미아의 다신교는 고등종교 출현 이전 단계의 것으로 간주되어 차별적인 평
가가 내려졌다.5)
하지만 고대 종교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차별적 평가에는 편견이 개입된 부분도 적지 않다 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고대
이집트인의 신에 대한 관념을 중심으로 이집트 종교, 즉 다신교 신앙의 내적 논리를

1) 도슨은 “가장 미천한 계층에게도 종교와 전통의 신성한 한 자리를 부여한” 고대 이집트와 “권
력이나 부에 치중하느라 삶의 뿌리에 소홀하여 고유의 사회 기관들이 붕괴되는 대가를 치른”
고대 로마를 비교하면서 사회가 종교를 상실하면 구심력을 잃게 되어 해체과정에 접어든다
고 하였다. Christopher Dawson, The Dynamics of World History, 이길상 역, 『세계사의
원동력』(현대지성사, 1999), p. 118.
2) 14세기의 이븐 칼둔과 17세기의 비코 그리고 20세기의 슈펭글러와 토인비는 공히 종교 신앙
을 문명의 총합을 위한 초석으로 간주하였으며 문명의 쇠퇴 역시 회의주의와 물질주의로 인
한 종교의 타락과 약화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Grace E. Cairns, Philosophies
of History, 이성기 역, 『동양과 서양의 만남』(평단문화사, 1984), pp. 14~15.
3)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이소크라테스 등에게 이집트는 학문과 지혜의 요람으로 비쳐
졌다. 또한 이집트 문명의 매력은 로마인들도 열광시켰으며 4세기 말 크리스트교에 의해 억
압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Dimitri Laboury, Idées reçues: L'Egypte Pharaonique, 임미경
역, 『이집트문명』(웅진 지식하우스, 2007), pp. 21~22.
4) Henri Frankfort, Ancient Egyptian Religion, An Interpretation(New York, 1961), p. 8.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을 숭배하던 로마 시민들의 눈에는 종종 이집트 종교가 괴물들로 가득
들어찬 세계로 비치곤 했으며……간혹 이집트의 종교 세계에 조롱을 던지기도 했다” D.
Laboury, 『이집트문명』, pp. 53~54.
5) ‘축의 시대’라는 개념을 유행시킨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기원전 6세기 전후, 즉 보편 종교
가 출현한 시기를 인류의 정신사에 획을 긋는 가장 위대한 전환점이라고 하였다. Karl
Jaspers, The Origin and Goal of History(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53),
pp. 1~2. 토인비는 야스퍼스를 이어받아 “기원전 6세기의 위대한 다섯 선각자 중에서 그 누
구도 최고의 두 문명, 즉 수메르-아카드와 이집트 문명의 자녀가 아니었다는 것은 실로 의미
심장한 일이다. 이 새로운 비전은 이제 더욱 역동적인 후대문명 지역에서 출현하게 되었던 것
이다”라고 하여 축의 시대와 이집트-메소포타미아 사이의 단절을 강조한 바 있다. Arnold J.
Toynbee, Mankind and Mother Earth; A Narrative History of the World, 강기철 역, 『세
계사 - 인류와 어머니 되는 지구』(일념, 1991), pp. 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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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하고자 한다. 신에 대한 관념은 종교의 한 측면에 불과하지만 고대 이집트 종


교의 경우, 그것을 유대-크리스트교와 차별화시킨 핵심적 측면이기도 하다.6) 필자
는 사료집 『사자의 서』(Books of the Dead)’7) 그리고 기존의 연구들을 통해 이 문
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II. 고대 이집트인의 사고

고대 이집트인의 심성과 사고는 전-논리적이고 모순적일 뿐 아니라 집단적 범주


를 벗어나지 못하는 야만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연구자들은 주로 문맹 민중
들의 숭배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관행을 기괴한 것으로 그려내곤 했다.8)
이에 대해 프랭크포트(Henri Frankfort) 등 일군의 학자들은 이집트인을 비롯
한 고대인의 사고의 특징과 일관성을 보여줌으로써 반론을 펼쳤는데 그들이 고안
한 것은 ‘복합적 접근’(multiplicity of approaches)이란 개념이었다.9) 이는 문제를

6) 모세가 정립한 유대교의 교리는 기존의 종교들을 이방적이라고 거부함으로써 반-종교(anti-


religion)라는 새로운 범주를 수립했는데, 특히 10계명 중 제 1계명인 타 신에 대한 숭배 금지
와 제 2계명인 우상숭배 금지는 고대 이집트의 종교관행에 대한 의식적 차별화에서 나온 것
이다. Jan Assmann, Moses the Egyptian: The Memory of Egypt in Western Monotheism,
변학수 역, 『이집트인 모세 - 서구 유일신교에 새겨진 이집트의 기억』(그린비, 2010), pp.
17~18.
7) 『사자의 서』는 내세에서의 구원과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주문들을 수록한 것으로서
신에 대한 관념이 잘 드러나 있는 고대 이집트 종교의 주요 사료이다. 『사자의 서』는 장례 기
념물이나 여러 파피루스에 산재한 기록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편역서들은 담고 있
는 내용과 번역에서 차이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필자는 그로 인한 편차를 줄이기 위해 Ray-
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San Francisco, Chronicle Books,
1994)를 주로 참고하되 본 논문에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편역서인 E. A. Wallis
Budge(ed), The Books of the Dead (London, Arkana, 1923)와 대조 작업을 거쳤다. 국
내에는 서규석 (편역), 『이집트 사자의 서』(문학동네, 1999)가 번역 출간된 바 있다.
8) Jorgen P. Sorensen, “Introduction,” in Gertie Englund, ed., The Religion of the Ancient
Egyptians. Cognitive Structures and Popular Expressions. Proceedings of Symposia in
Uppsala and Bergen 1987 and 1988 (Uppsala, Academiae Ubsaliensis, 1989), p.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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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한 이론으로 해결하는 대신 해당 맥락에서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 여러 직관이


나 체험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복합적 접근은 다신교에도 부합하는 것으로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신을 형상화하거나 그 성격을 묘사할 때 사용한 방식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태양신 레를 묘사할 때 단일한 이미지나 용어로 나타내는 대신 아툼, 눈,
누트, 하토르, 오시리스 그리고 다른 신들의 아들로 표현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
이다.10)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주의 신성한 힘들에 직면할 때 통일성의 문제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프랭크포트가 제시한 고대인의 사고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구체성 혹은 형체성이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집트에서 창조신은 태초의 바다에서 나타
난 언덕, 즉 태고의 언덕에서 만물을 창조했다고 전해진다. 왕들의 무덤은 이 태고
의 언덕과 형태가 일치하도록 만들어졌다. 죽은 왕은 내세에 다시 태어나므로 그의
무덤을 우주의 삶이 시작된 태고의 언덕의 양식인 피라미드 모양으로 만든 것이
다.11) 이집트인에게는 태고의 언덕은 오직 한 곳뿐이라는 이론적인 공간 관념 대신

9) 프랭크포트는 “현대인들의 언어가 많은 표현 수단을 갖춘 것과 달리 고대 이집트어에서는 의


미를 조절하는 추상명사, 부사 그리고 접속사 등이 드물게 사용되었다. 그들의 심성은 구체
성을 지향했으며 그 언어는 구체적 이미지에 의존했고 따라서 주 개념을 조절함으로써가 아
니라 동시에 여러 접근법을 인정함으로써 표현하였다”고 하였다. Henri Frankfort, Kingship
and the Gods. A Study of Ancient Near Eastern Religion as the Integration of Society
and Nature(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pp. 41~42. 같은 맥락에서 엥글
룬트는 다음의 예를 들고 있다. 12왕조 세헤텝(Sehetep) 왕의 석비에 표기된 비문을 보면 왕
은 시아(Sia) 신, 레(Re) 신, 하피(Hapy) 신, 크눔(Khnum) 신, 바스테트(Bastet) 신 그리고
세크메트(Sekhmet) 신과 동일시되는데 이 신들은 각각의 속성, 즉 사려 깊고 고매한(시아),
위대하고 빛나는(레), 호의적인(하피), 창의적인(크눔), 온화하고 성실한(바스테트) 그리고
강력하게 개입하는(세크메트) 것으로 상징되는 존재이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은 형용사
대신 여러 개의 (고유)명사를 대상(여기서는 왕)과 동일시하는 복합적 접근을 통해 대상의 다
양한 성격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Gertie Englund, “Gods as a Frame of Reference on
Thinking and Concepts of thought in Ancient Egypt,” in Gertie Englund, ed., The Reli-
gion of the Ancient Egyptians. (Uppsala, Academiae Ubsaliensis, 1989), p. 21.
10) Gertie Englund, “Gods as a Frame of Reference on Thinking and Concepts of thought
in Ancient Egypt,” Ibid., 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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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형상을 갖추면 본질을 공유한다는 형체적인 공간 관념이 있었다.


시간에 대한 관념 역시 구체적이었다. 이집트에서 신년은 나일강이 불어나기 시
작하는 초여름에 제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왕의 대관식도 자연의 순환에서 유리한
시점이 올 때까지 미루었다. 이들 모두 시간의 변화에 구체적 의미를 부여한 사례들
이다.12)
구체성을 지향한 이집트인들의 사고는 하나의 이미지나 상징이 실체를 대신할
수 있다는 대용의 원리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죽은 자는 자기의 영혼이 돌아와
서 빵을 먹을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빵 모형을 무덤에 남겨두거나 문자로 쓴 빵이
라는 글자를 대용물로 삼았다.13) 이는 조각상이나 그림과 같은 이미지는 그것이
나타낸 대상의 본질의 일면을 포함 혹은 대신한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14) 또한
신들 역시 자신들의 형상을 띤 조각상으로 들어간다고 인식되었다. 그 점에서 조각
상은 신이었다. 따라서 성직자는 날마다 조각상을 깨우고 숭배하고 씻기고 옷을
입혔으며 음식을 제공했다. 이 숭배 활동이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들은 물러
날 것이며 조각상은 텅 비고 생명이 없는 형체로 남게 될 것이었다.15) 뒤에서 볼 것처
럼 고대 이집트에서 신은 성스런 동물, 자연 현상, 조각상 등 다양한 구체적 매개물
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은 공간과 시간 뿐 아니라 신과 같은 관념적 존재에 이

11) Henri Frankfort & Henriette A. Frankfort, Before philosophy : the intellectual adven-
ture of ancient man: an essay on speculative thought in the ancient near East, 이성기
역,『고대 인간의 지적 모험-오늘날 종교와 철학으로 성장한 고대 신화와 신앙들』(대원사,
1996), pp. 32~33.
12) “고대 이집트인들은 적절한 의식을 행함으로서 새로운 시간을 맞이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자연의 재생이 실패하여 재난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E. O. James, “The
Religions of Antiquity,” Numen, vol. 7(Dec. 1960), p. 139.
13) Henri Frankfort & Henriette A. Frankfort,『고대 인간의 지적 모험』, p. 82.
14) Ninian Smart, Religious Experience of Mankind(New York, Scribner's, 1984), p. 243.
15) Jan Assmann, The Search for God in Ancient Egypt(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1), 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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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기까지 모든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식 및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세계의 경험과 관


련짓고자 하였다. 이는 ‘복합적 접근’과 함께 그들의 신에 대한 관념에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III. 신의 존재

출현
이집트에서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인 기원전 3500년 경, 즉 선 왕조시대 후기 고
고학 유적들에서 발견된 최초의 신들은 대부분 암소나 매, 숫양, 자칼과 같은 동물
신들이다.16) 동물들의 시체에 수의를 두르는 등 매장에 쏟은 정성 그리고 부장품들
은 신성한 동물 혹은 동물 형태를 한 신성한 힘에 대한 숭배를 시사한다.
선사 시대 인간이 가혹한 자연 속에서 접한 동물들의 우월한 능력은 동경의 대
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적을 정복하는 것과 같은 인간 활동에 강력한 힘을 갖춘
동물을 개입시키기도 하였다.17)
한편 같은 시기에 출현한 인간 형상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신으로 보기 어렵다
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18) 이집트에서 의인화된 신의 개념은 뒤늦게 등장했을
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의 혼합 형태를 띠는 등 의인화는 결코 완전하지 않았다. 대
체로 선사시대 이집트인에게 동물은 강력하고 신성한 존재로서 인간을 능가한 것

16) Richard H. Wilkinson, The Complete Gods and Goddesses of Ancient Egypt(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2003), p. 12.
17) 기원전 3000년경의 나르메르 화장판의 뒷면에는 매가 포로를 잡고 있으며 앞면에는 황소
가 적의 도시 벽을 무너뜨리고 적을 짓밟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8) 주로 진흙으로 된 벌거벗고 수염이 달린 조야한 형태의 인간 형상들이 나카다 시대(기원천
4천~3천년의 선왕조기)의 고고학 층위에서 발견되었지만 벌거벗은 사람들은 주로 이집트
에 의해 복속된 적들을 가리켰다는 점에서 신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더욱이 신의 모습을 진
흙이라는 내구성이 약한 물질로 표현했을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Erik Hornung,
Con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the One and the Many(I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6), 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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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보인다.
역사시대에 이르면 동물의 우월성은 약화되기 시작하지만 그 변화는 점진적이
었다. 통일 이집트의 첫 번째 왕은 전갈, 메기, 솔개, 코브라 등 동물 이름을 가졌으
나 기원전 2800년 경 제 1왕조 말기에 동물 타입의 이름은 사라진다. 하지만 동물
형상은 사라지지 않고 주로 인간-동물의 혼합 형태로 존속하였다. 제 3왕조의 비문
에서는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신의 혼합형태가 나타났는데 이는 제 1왕조에서 오
직 동물 형태로 나타난 바 있다.19) 창조신화는 이러한 신들의 출현을 이야기로 수
립한 것이다.

창조
이집트인들은 물을 비롯하여 태양과 땅, 하늘과 공기 등 일상적인 자연현상들
을 신으로 간주하였다. 이집트 창조신화에서는 이들의 발생을 다루고 있으며 거기
에는 여러 판본이 있지만 창조신 - 헤르모폴리스에서는 여덟신, 헬리오폴리스에서
는 태양신 아툼 그리고 멤피스에서는 프타 - 이 신들과 인간 그리고 우주 만물을 창
조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창조신이 신들을 창조했다는 진술은 소위 이집트 유일신교에 대한 증거로 인용
되어 왔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창조신에게 유일신에 상응하는 절대적 위상
을 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자의 서』에서 아툼 신은 ‘하늘을 만들고 존재
하는 것들을 창조한 신’, ‘만물의 군주’ 혹은 ‘신들을 만든 자’, ‘생명의 군주’ 그리고
‘위대한 신’으로 불린다.20) 그런데 이러한 칭호 대부분은 아툼 신 외에 다른 신들에
게도 적용된다. 태양신 레는 ‘신들의 창조자’이자 ‘신들의 왕’, ‘하늘의 군주’로 불리며
프타(타테넨)는 ‘유일자’, ‘인류의 창조자’로 칭해지고 오시리스는 ‘영원의 왕’, ‘신들
과 인간의 지배자’, ‘만물의 군주’, ‘왕 중 왕’으로 불린다. 호루스 역시 ‘아툼의 권능
을 획득한……만물의 군주’로 칭해진다.21) 한마디로 최고신의 지위를 여러 신들이

19) Ibid., p. 105~109.


20) Ray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chapter 79, 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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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모든 신들을 낳는 ‘신들의 어머니’라는 개념도 존재하


였다. 호루스의 어머니인 이시스는 신왕국 시대에 ‘모든 신들의 어머니’라 불렸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고대 이집트의 주요 신들은 거의 창조신의 위상을 가짐으
로서 결국 신들은 서로서로를 창조한 것으로 귀결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화에
서는 특정 신들에게 창조주로서의 위상을 부여했지만 『사자의 서』의 경우처럼 개인
신앙이 반영된 곳에서는 다수의 주요 신들이 창조신이나 다른 신들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각각의 신에게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위상과 역할을
부여하는 ‘복합적 접근’을 창조론에도 적용시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고대
이집트인들의 창조관이나 우주관에는 독특한 방식이 드러난다. 하나의 대상에 대
해 단일한 관념만을 떠올리는 현대인과 달리 고대 이집트인은 예컨대 하늘이라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 여러 관념, 즉 하늘은 네 개의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다든가, 공
기의 신인 슈의 두 팔이 떠받치고 있다든가 혹은 하늘의 신 누트가 손끝과 발끝을
지면에 대고 대지 위에 구부리고 있다는 등 다양한 생각을 떠올리곤 했던 것이다.22)
창조론 혹은 우주발생론을 수립하는 것은 곧 자연현상 뒤에 숨은 질서와 그를
주관하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수립하는 것이었다.23) 태양이나 달의 경로 혹은 계절
의 순환과 같은 자연의 질서는 인간 사회의 질서와 연관을 맺으면서 후자의 문제 해
결에 도움을 줄 것이었다. 그런데 연관 방식에 있어서도 하나의 자연 현상은 인간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관련을 맺을 수 있었다. 태양은 만물에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존재의 창조자로 나타나는가 하면, 날 마다의 떠오름은 죽음에 대한 승리 그리고
불변의 경로는 질서를 예시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문제와 신적인 힘 사이에 복수의 관계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21) Ibid, ‘Introductory Hymn to the Sun-God Re, Plate 1; ‘Introductory Hymn to Osiris’,
Plate 2.
22) Henri Frankfort & Henriette A. Frankfort, 『고대 인간의 지적 모험』, 앞 책, p. 58.
23) 이집트인들은 그 질서를 마아트(Maat)라고 칭하면서 그것을 창조주가 의도한 형태로 보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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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신의 권능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신의 힘을 복합적으로 표


현함으로써 신들을 고양시켰다. 송가에서 “이것 역시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
입니다”라는 구절은 반복하여 나타난다.24)

죽음과 부활
다양한 권능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신들은 불멸의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의 특
징 중 하나는 일시성, 즉 시간 속에서 시작과 끝을 가진다는 점이다. 신들은 태어나
거나 창조되며 시간과 함께 늙고 죽어 간다.25) 오시리스와 호루스 신화에서 오시리
스와 세트는 죽음을 맞이하고 위대한 태양신 레는 매일 밤 죽은 다음 새벽에 다시
태어난다.
죽음의 원칙은 이집트 모든 신에게 적용된다. 신왕국의 문헌들은 달의 신 토트
가 인간과 신들에게 공히 정해진 수명을 부과했다고 하며 죽음이 ‘모든 신과 여신
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26) 후기 이집트에서는 신전의 내부 가장 깊숙한 곳이
신들의 무덤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신은 불멸이어야 한다는 일반적 관념
과 대비되는 것이다 .
하지만 신들의 죽음은 영원한 소멸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집트인의 관점에서는
죽음이 생명을 뒤따르는 것처럼 생명 역시 죽음으로부터 출현하였다. 호르눙(E.
Hornung)에 의하면 이집트 신들의 죽음은 “그들로 하여금 다시 젊어지는 것을 가
능케 하고 시간의 불가피한 결과인 해체를 피할 수 있게 한다.”27) 이렇듯 일찍부터

24) Henri Frankfort, Ancient Egyptian Religion, An Interpretation(New York, Harper &
Row, 1961), p. 19.
25) “나는 오래 살았고 마음 또한 피로하다……나의 다리는 이미 힘이 없어져 걸어 다닐 수도
없다. 나는 이제 이 새로운 고통을 받아들이고 신들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서 새롭게 살아
가야 한다”.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신 레가 하토르에게 한 이 말은 최고신도 인간이 겪는 피
로와 노쇠를 초월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서규석 (편역), 『이집트 사자의 서』, 앞 책, p. 44에
서 재인용.
26) Richard H. Wilkinson, The Complete Gods and Goddesses of Ancient Egypt, op. cit.,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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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들은 부활과 재생을 죽음의 진정한 의미라고 보았다.28)


죽음이나 창조 이전의 비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는 태초의 바다와 암흑으로서
그곳은 태양의 경로 너머 혹은 지하세계(Duat)에 있다고 묘사된다. 죽음의 적대적
측면이 존재의 소멸의 위협이라면29) 또 다른 측면은 갱신 혹은 회춘이다. 매일 태양
은 태초의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 생명체를 잠들게 하지만, 새벽에 활기를 회복
하여 대양으로부터 재탄생하고 그를 통해 세계는 창조시의 상태를 회복한다. 나일
강의 경우도 연중 순환과정에서 범람 후 다시 풍요를 제공한다. 결국 회춘은 노화
와 해체, 즉 존재에 대한 일시적 부정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필연성이
이집트인들이 죽음이라고 부른 것의 생산적인 의미이다.
이처럼 이집트인들은 생명과 질서는 그를 둘러싼 죽음과 혼돈 혹은 비존재를
인정할 때에만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균형 잡힌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2천
년 이전에 수립된 인류 역사상 최초라 할 수 있는 이집트적 존재론,30) 특히 죽음과
비존재의 갱생적 측면은, 뒤에서 보겠지만, 그들로 하여금 존재의 불완전성으로부
터 오는 회의주의로의 함몰을 피하고 내세에 대한 낙관론을 견지할 수 있게 한 것
으로 보인다.

27) “너는 깨어나기 위해 잠들며, 너는 살아나기 위해 죽는다”라고 피라미드 문서는 표현했다.


관문서에서는 “(죽은 자는) 아툼처럼 날마다 죽음 이후에 생을 갱신”한다. 시누헤 이야기에
서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시누헤는 내세로의 ‘떠남’을 통해 자신의 신체가 회춘할 것을 기대
한다. Erik Hornung, Con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160.
28)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강하게 가졌다는 점에서 고대 이집트인들
은 메소포타미아 인들과 달랐다. 처음에는 부활의 개념이 왕에게만 적용되었으나 고왕국
이후 대중들도 부활을 상징하는 오시리스 호칭을 갖게 되었으며 왕이 피라미드 문서를 장
례에 사용한 것처럼 대중들도 일종의 내세 안내서인 『사자의 서』를 폭넓게 사용하였다. 강
성열, 『고대 근동의 신화와 종교』(살림, 2006), pp. 58~59.
29) 이는 인간에게 적용되는 개념으로서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후 심판에서 파멸을 선고받은 자
는 ‘비존재하는 자’가 되어 더 이상 다른 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다고 믿었으며 그 점에서 동
양의 윤회사상과 구별된다.
30) “다른 어떤 문명도 죽음과 그 창조적 잠재성을 자신의 생활 방식으로 그토록 완벽히 통합
시키지 못했다” Erik Hornung, Con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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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199

죽음과 부활이 결국 하나인 것처럼 다른 차이들도 대립보다는 수렴으로 귀결


되었다. 이집트의 종교적 존재론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라든가 인간과 식물 혹
은 자연 현상 사이의 차이가 강조되지 않았으며 생명체와 비 생명체 혹은 인간과 사
물의 이분법도 없었다.31)
또한 지상 세계와 신의 세계를 분리하는 기독교 사상과 달리 고대 이집트에서
는 현세와 내세가 단일한 영역으로 간주되었다.32) 이집트인들은 신들이 지상세계에
도 거주한다고 믿었다.33) 고대 이집트에서는 육체와 영혼의 구분도 뚜렷하지 않았
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번역에서 영혼과 동일시하는 카(ka)라는 개념은 생명 혹은
생명력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34) 카는 인간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물건이나 식물 등 모든 사물에 존재하면서 그 생명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갱신하게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명으로 연결된 존재론에서 인간의 생명은 죽고 난 후에도 새로운 형태로 계속

31) 크리스티앙 자크는 “누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자연은 인간에게 봉사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괴상스럽
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한 존재일 뿐이며 짐승보다 더 중요한 존재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Christian Jacq,
Initiation à l'égyptologie, 윤정현 역, 『크리스티앙 자크와 떠나는 이집트 여행』(한밭,
1997), p. 54.
32) “고대 이집트는 유대-크리스트교에 비견할 두-세계 이론을 발전시킨 적이 없다. 여기에서 타
당한 것은 저기에서도 타당할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문헌들은 다음 세상에서 빈자가
부자가 된다거나 혹은 그 반대가 되는 역전의 개념을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Jan Assmann,
The Mind of Egypt: history and meaning in the time of the Paraohs(New York, Met-
ropolitan Books, 2002), p. 170 ; p.182.
33) 이집트인에게 도시는 각 지방 신의 고향이자 영지였으며 거기 - 숭배 조각상이 놓인 도시
신전의 지성소 - 에 신이 거주한다는 생각은 시민들을 연결시키고 그들에게 고향임을 느
끼게 하였다. Jan Assmann, The Search for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25;
p. 43.
34) Ragnhild B. Finnestad, “Egyptian Thought About Life as a Problem of Translation,” in
Gertie Englund, ed., The Religion of the Ancient Egyptians. Cognitive Structures and
Popular Expressions. Proceedings of Symposia in Uppsala and Bergen 1987 and 1988
(Uppsala, Academiae Ubsaliensis, 1989), 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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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신이나 인간, 비-인간적 생명체 혹은 비생명체 -


태양, 별 - 로도 자신을 나타낼 수 있다. 『사자의 서』 77~88장에는 사자가 자신을
신, 동물(황금의 매, 신성한 매, 피닉스, 왜가리, 제비, 뱀, 악어) 그리고 식물(연꽃)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주문이 수록되어 있다.35) 이처럼 생명 개념을 다양한 존
재 형태와 결부시켰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신의 형상을 동물 혹은 인간과 동물의 결
합이라는 괴상한 방식으로 사유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IV. 신의 성격

동물 형상
동물 형상의 신들에 대한 숭배는 고대 이집트 역사 내내 일반적이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만연하였다.36) 남자 신들은 종종 황소, 숫양, 매 혹은 사자의 형태를
띠었고 여자 신들은 종종 암소, 코브라, 암사자 혹은 독수리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동물 모습의 신들 혹은 동물에 대한 숭배는 흔히 이집트 종교의 특징으
로 간주되곤 한다. 하지만 이를 동물 자체에 대한 숭배로 규정짓는 것은 지나친 단
순화이다. 왜냐하면 동물 형상은 신성의 특정한 일면을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동물을 숭배할 때는 그 배후에 자리 잡은 -
혹은 그것이 연상시키는 - 어떤 신성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이 표현되는 방식은 다양하여 동물 형상은 그 중 하나에 불과했
다. 인간과 동물을 결합한 신 - 매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한 호루스, 사자 머리를 한
여신 세크메트(Sekhmet), 숫양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한 크눔(Khnum) - 도 있었
으며 하나의 신이 여러 형태를 띨 수도 있었다. 토트 신은 따오기 혹은 따오기 머리

35) E. A. Wallis Budge(ed), The Books of the Dead, op. cit., pp. 248~279.
36) 숭배 동물의 경우 주로 공동체의 종교적 재산이었다. 살아있을 때 동물은 신전에서 관리되
었고 죽고 난 다음에는 동물들의 미라로 채워진 납골실에 매장되었다. John Baines, Soci-
ety, “Morality, and Religious Practice,” in Byron E. Shafer, ed., Religion in Ancient
Egypt: Gods, Myths, and Personal Practice(London, Routledge, 1991), p.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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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01

를 한 인간의 형상을 띠었고 여신 하토르는 완전한 인간의 형태를 취하거나 암사


자, 뱀, 하마, 암소 그리고 나무 요정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37)
이는 동물이나 인간의 형상이 신의 실제 모습으로 간주되지 않았음을 시사한
다. 그것이 실제 모습이라면 하나의 신에 대해 다양한 형상이 존재한 것을 설명하
기 어렵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신의 진정한 형태는 감춰진 신비로운 것으로서
오직 죽은 자만이 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신들의 도상은 외관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그 성격과 힘에 대한 암시
로 해석할 수 있다. 매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질주하는 모습이 호루스의 힘을 암시
했다면 암소 혹은 암사자나 뱀으로 묘사되는 여신 하토르의 경우 암소의 모성적
부드러움 혹은 풍요와 함께 암사자의 사나움과 뱀의 예측 불가함을 겸비했다고 보
아야 할 것이다.38) 결국 동물들은 신 자체가 아니라 신의 이미지나 그 성격을 담는
그릇이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존재가 아닌 동물인가? 앞에서 보았다시피 사고체계상 종교
적 감정을 추상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고대 이집트인은 구체적 형태를 숭배
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 경우 특히 생물적인 것이 적합했을 것이다. 『사자의 서』에서
는 신에 대해서뿐 아니라 사자 자신도 동물과의 동일시를 통해 동물의 속성을 공
유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뱀과 동일시를 할 때는 “나는 장수한 뱀이다……
나는 매일 다시 태어나고 갱신되며 회춘한다”라고 하였으며 악어에 대해서는 “나
는 공포의 대상인 악어이다……나는 위대하고 힘센 물고기-같은 존재로서……”
라고 하여 뱀의 장수와 회춘, 악어의 공포와 힘을 물려받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39)
이렇듯 동물들의 행동과 존재방식은 종종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기 때문에 이집트

37) David P. Silverman, “Divinity and Deities in Ancient Egypt,” in Byron E. Shafer, ed.,
Religion in Ancient Egypt: Gods, Myths, and Personal Practice(London, Routledge,
1991), p. 110.
38) Erik Hornung, Con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113.
39) Ray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op. cit., plate 27 chapter
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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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인들은 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서 동물들을 폭넓게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


인다.40)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동물 형상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볼 수 있다. 만약 동물
자체가 신으로 간주된다면 이는 의인화된 신에 대한 숭배보다 더 낮은 단계에 위치
하게 된다. 하지만 숭배 동물의 형태가 신의 권능에 대한 상징의 역할을 한다면 인
간은 의인화보다는 상징을 통함으로써 훨씬 더 빨리 신에 대한 경외감에 도달할 수
있으며 상징의 기괴함은 신의 본질에 대한 의식을 훼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에 대
한 경외감이 기괴하고 감각적인 표현과 결합한 것, 이는 고대 이집트 종교의 또 하
나의 특징이었다.

다양성
앞에서 보았다시피 고대 이집트의 신들은 단일 형태로 표현되지 않았다. 동물,
인간 혹은 혼합이든 간에 다양한 형태를 띠었으며 특히 주목할 점은 그 형태 중 어
느 하나도 다른 것을 압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의 신 토트는 따오기, 원숭이
혹은 달로 나타나는가 하면 인간 모습 혹은 인간-동물 혼합 형태를 보여주는데 그
중 어느 것도 그의 다양하고 풍부한 성격을 포괄할 수 없었다.41)
신의 형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성과 모호함은 그 호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
에서 보았다시피 오시리스, 호루스 혹은 프타 등 주요 이집트 신들은 호칭이 다양
하고 의미도 중첩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하나의 신에 대해 여러 호
칭을 사용함으로써 신에 구현된 풍부한 권능을 입증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신들을 둘러싼 다양성은 그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신도 한 가지 기

40) 고대 이집트에서는 대중들 뿐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들도 동물숭배에 가치를 부여했다. 람


세스 2세의 아들인 샤무스(Chamus)는 가장 심오한 신학에 정통했지만 황소 신 아피스 숭
배에 대단히 헌신적이었다. Cornelius P. Tiele, Comparative History of the Egyptian and
Mesopotamian Religions, vol. 1, History of the Egyptian religion(London, Routledge,
2000), p. 218.
41) Erik Hornung, Con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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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03

능에만 전념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세트 신은 착한 신인 오시리스와 호루스의 적,


즉 악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자의 서』에서 세트는 혐오의 대상인 동시에42) 다
른 악마나 혐오스런 존재를 물리칠 때 동원되는 유익한 신이기도 했다.43)
이렇듯 다양성은 고대 이집트 신들의 형상, 이름 그리고 역할에 이르기까지 이집
트 종교를 관통하는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신들의 다양성
에 논리적 모순을 느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개별 신이 지니는 여
러 측면 중 일부를 다른 신의 측면과 자유로이 결합 및 분리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것이 이집트 종교 특유의 ‘제신통합주의’(syncretism)이다.
제신통합이란 한 신이 다른 신에게 ‘있다(혹은 깃든다)는 관념’의 실현이다. 예
를 들어 아문-레라고 하면 그것은 레가 아문 안에 있다(깃든다)는 것이다. 다만 그
것은 신들의 융합 또는 일치가 아니기 때문에 그 결합은 일시적이고 언제든지 해소
될 수 있었다.44)
이런 현상은 어떻게 발생하였는가? 태양신 레의 경우를 보자. 레는 고왕국 하에
서 그 중요성이 꾸준히 커졌으며 제 4왕조부터 왕의 이름에는 레가 포함되어 왕은
‘레의 아들’로서 왕위를 가진다고 생각되었다. 제 6왕조에서는 태양신 레가 진정한
창조신이 되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 창조신으로 간주된 다른 신들은 태양신과 제신

42) “세트가 검은 돼지로 변신하여 그(호루스)의 눈에 상처를 입혔다. 레는 말했다. ‘돼지는 호


루스에게 저주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호루스를 따르는 신들 사이에서 돼지에 대한 저주가
생겨나게 된 이유이다” Ray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op.
cit., chapter 112, p. 114.
43) “그 산 꼭대기에 악마-뱀이 있다. 그는 레 신을 노려보고……거대한 물을 7 큐비트나 삼켜
버릴 것이다. 세트는 그에게 쇠창을 던져 그가 삼킨 모든 것을 토하도록 할 것이다……세
트는 그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있으니 돌아가라. 왜냐하면 나는 수컷이니까! 나는 레를 위
해 신들을 구조하러 왔다. 그래야만 레 신이 밤에 나를 위해 휴식하러 갈 수 있으니까” Ibid.,
chapter 108, p. 113.
44) “아문-레는 아문이 레에게 혹은 레가 아문에게 흡수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레가 아
문 안에 있지만 아문 속에서 소멸되지는 않으며 아문과 마찬가지로 레도 자신을 유지함으
로써 두 신은 다른 결합에서도 자신들을 별도로 나타낼 수 있다.” Erik Hornung, Con-
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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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통합적으로 결합된 X-레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듯 레는 그 본질과 행동 범위가


확대된 결과 다른 신들에 거하게 되고 이집트인들은 다양한 신들 안에서 레를 인식
하게 된 것이다.45) 신들의 결합은 이처럼 깃든다는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사자의
서』에 나오는 것처럼 더 적극적으로 교접이라는 방식을 띠기도 하였다.46)
그 외에도 제신통합은 여러 방식으로 행해졌다. 아문-레가 바람과 태양이라는
서로 성격이 다른 신의 결합이었다면, 아툼-케프리(Khepri)는 같은 태양신의 서로
다른 측면, 즉 저녁과 아침의 표현을 결합했고 소벡(Sobek)-레, 혹은 크눔
(Khnum)-레처럼 지방신을 주요 신과 결합시키는 경우도 있었다.47)
제신통합은 신들의 공존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이렇게 결합된 신들 사이에는
충돌이 없었으며 실제로 많은 신들이 같은 신전의 여러 예배실에서 숭배되었다.48)
따라서 제신통합주의는 유일신적 성향이 아니라 그 반대를 나타낸다. 아문-레 신
의 경우 사람들은 아문에서 레를 발견하고 숭배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에 대
한 신적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인식이 심화된다. 그리하여 제신통합주
의는 하나의 신이 다른 신들로부터 고립하여 초월적으로 군림하는 것, 즉 단일한
신에 숭배를 집중하는 것을 억제하는 결과를 낳는다.49)
이처럼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신의 역할과 위상이 변할 때에도 한 신으로 하여

45) Ibid., pp. 91~92. 그 외에도 신들의 결합은 죽은 자를 저승의 위험에서 구조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여러 신들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행해졌다는 관점도 있다. J. Gwyn Grif-
fiths, “Motivation in Early Egyptian Syncretism”, in M. H. Van Voss (ed), Studies in
Egyptian Religion(Leiden, E.J. Brill, 1982), p. 44.
46) “그는 누구인가? 그는 오시리스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이름은 레이다. 그의 이름은 레
를 찬양함이며 그는 레의 영혼으로서 그와 레는 교접(copulate)했다” Ray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op. cit., Plate 7, chapter 17.
47) Richard H. Wilkinson, The Complete Gods and Goddesses of Ancient Egypt, op. cit.,
p. 33.
48) 이집트의 각 신전에는 최고신을 둘러싼 부차적 신들을 숭배하는 예배소가 여러 곳 있었다.
어떤 신도 자기 신전의 유일한 거주자는 아니었다. Jan Assmann, The Search for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37.
49) Erik Hornung, Con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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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05

금 다른 신들을 통합 흡수시키기보다는 일시적으로 결합시킴으로서 다양성을 보


존하도록 하였다. 그러다보니 이집트의 종교는 약 2천에 달하는 수많은 신을 인
정하였으며50) 신의 위상과 성격도 유일신교에서의 초월적 절대신과는 거리가 있
었다.

내재성
앞에서 보았다시피 고대 이집트의 신들은 인간들처럼 노령 그리고 죽음에 종속
되었다는 점에서 시간을 초월하지 않았다. 또한 나일 찬가에서 나일의 신 하피
(Hapy)에 대해 “당신은 이 땅에 내려왔고……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하였습니다”라고 한 것처럼51) 이집트의 신들은 본질상 자연에 내재하였기
때문에 공간을 초월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아문-레는 최고신이었지만 자연, 즉 바람과 태양에 내재한 상태였다. 반면 창
조주인 프타는 자연 속에 내재한 힘은 아니었다. 그런데 프타를 신봉하는 멤피스
신학이 아문-레를 중심으로 한 신학만큼 전국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시
사적이다.52) 초월적인 신을 내세운 멤피스 신학의 한계 그리고 훗날 유일신인 아텐
숭배의 실패는 이집트 종교의 성향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집트 종교는 초월적 유
일신보다는 여러 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그들이 자연 속에 내재한다는 관념을 고수
했던 것이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인에게 신들은 멀리 떨어져있거나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
니었다. 『사자의 서』에서 사자 아니는 자신의 신체의 부분들을 각 개별신들과 동일
시하는데, 예컨대 “나의 머리는 눈 신의 머리, 나의 얼굴은 레 신의 얼굴, 귀는 하토

50) Roger B. Beck [et al.], World History - Patterns of Interaction(Evanston, McDougal
Littell 2002), p. 36.
51) Gaston Maspero, Hymne au Nil, (Paris, 1868) 재인용, 서규석 (편역), 『이집트 사자의 서』,
앞 책, pp. 20~21.
52) Henri Frankfort, Ancient Egyptian Religion, op. cit.,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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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르 신의 귀, 내 귀는 (늑대신) 웨프와벳의 귀……”하는 식으로 스물 하나의 신들과


동일시하면서 “내 사지의 어느 한 부분도 신이 깃들지 않은 곳은 없다”고 하였다.53)
이는 신과의 동일시를 통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주문이지만 어쨌든
신을 가깝게 느꼈다는 표시가 아닐 수 없다.
고대 이집트인은 신들의 활동을 인간과 결부시켰으며 자연의 작용도 인간의 생
명의 견지에서 이해하곤 하였다. 그리하여 태양의 일상적인 출현을 생명의 탄생으
로 설명했고 달이 기우는 것을 눈이 병들었다고 설명했다.54) 이처럼 이집트의 신들
은 자연에 내재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생명의 상호관계를 가능케 하였고 이집트
인의 생활과 관련을 맺었던 것이다.55)
신의 형상과 성격을 다룬 이 장에서 우리는 이집트 신들의 동물 형상, 다양성 및
내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대 이집트 신들의 성격이 우리에게
익숙한 유일신교의 그것과 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
의 종교는 다신교였다고 결론을 내릴 것인가? 그 경우 신과 인간의 관계는 유일신
교의 그것과 어떻게 달랐을까?

V. 신과 인간

다신교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에 대한 관념에 있어서는 다신교와 유일신교의 관점이 맞
서왔다. 오랫동안 다신교의 관점이 우세했지만 19~20세기에는 유일신교의 관점이

53) Ray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op. cit., Plate 32, chapter
42.
54) Henri Frankfort, Ancient Egyptian Religion, op. cit., p. 28.
55)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일정하게 정형화된 신화 속의 인물이 되었으며, 그러한 신화는 숭
배자들의 일상적인 관심사와는 거의 관계가 없었다……그에 비해 이집트의 신들은 출생과
사망의 중요한 모든 주기와 연결된 상징적인 관계를 잃지 않았으며 영원히 중요한 존재로
남았다” Veronica Ions, 『이집트 신화』, 앞 책, p.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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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07

대두하기도 하였다.56) 논쟁의 존재를 염두에 두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자.
『사자의 서』를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특정한 신보다는 되도록 여러 신들과
연결되고자 하였다. 『사자의 서』 제 17장에서 사자는 자신을 ‘절대자’이자 ‘세계를
지배하는’ 아툼 신, ‘떠오르는’ 레 신, ‘위대한’ 눈 신, 부활의 신 오시리스 그리고 아버
지를 보호한 호루스 신과 동일시함으로써57) 그 신들 모두의 가호를 받고자 했다.
또한 이집트 신화에는 최고신이 존재하지만 그 특징들은 어떤 한 신에게만 국
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신들이 ‘창조자’, ‘신들의 왕’ 그리고 ‘만물의 군주’ 등으로 불
렸다는 사실을 앞에서 본 바 있다.58) 실로 최고 존재의 칭호는 특정 신이 아니라 레
나 아문과 제신통합으로 결합한 신들 혹은 지방신들에게 두루 부여되곤 했다.59)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신들이 평등하거나 구별이 없었다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신을 숭배할 때 고대 이집트인들은 종종 한 신을 지목하여 숭
배하였다. 한 신을 경배하되 다른 신들을 배제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는 이러한
관행은 배타적 유일신교와 구별하여 단일신교(henotheism)라고 명명된다.
단일신교는 신의 단일성과 신적 존재의 다양성이 절충된 것으로 고대 이집트
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유일신교 성향의 최대한이었다. 그것은 신은 숭배 대상
으로는 단일체이지만 그 본질과 표현에 있어서는 복합체라는 것이다. 한 신에 대
한 기도문을 다른 신의 이미지 아래에 새기고도 모순을 느끼지 않은 고대 이집트
인들은 하나이자 다수라는 명제를 모순이 아니라 보완적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
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에 대한 관념은 인간과 신의 관계에 어떻게 작용하였을까?
다신교에서의 신의 위상 및 인간과 신의 관계가 유일신교에서의 그것과 달랐으리라

56) 다신교 대 유일신교의 논쟁에 대해서는 Erik Hornung, Con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p. 19~27 참조.
57) Ray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op. cit., Plate 7, chapter 17.
58) 각주 21 참조.
59) Erik Hornung, Conceptions of God in Ancient Egypt, op. cit., p. 231;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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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는 생각은 충분히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에 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행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는 『사자의 서』를 분석함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해보
고자 하였다.

사자와 내세
『사자의 서』를 만든 목적은 사후 내세에서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고자 하는
것으로 다른 종교들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특징이라면 사
자는 자신이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주문을 신 앞에서 낭송한다는 점이다. 사
자가 신에게 구원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이 유일신교에서처럼 전지
전능한 신의 자비와 은총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자의 생전의 행동이 도덕적이고 올
바른 것이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은 마아트(Maat)라는 단어로 함축되
는데 그것은 정의, 진리 그리고 질서를 의미한다. 생전에 마아트를 행하거나 준수
한 사람은 사후에 오시리스 신이 주재하는 법정에서 그 심장이 순수한 것, 즉 새의
깃털보다 가벼운 것으로 간주되어 구원을 받게 되지만 마아트를 행하지 못한 사
람, 즉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심장이 무거워져 괴물에게 잡혀먹히고 만다는 것이다.
『사자의 서』에서는 통상 마아트가 정의와 진리(right & truth)로 번역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 역시 같은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제 125장을 보면 사자의 영혼이 오
시리스의 심판정으로 가기 전에 홀을 통과하는데 그 홀에는 고대 이집트의 42개 지
방을 대표하는 42 지방신이 앉아 있으며 사자는 그들 각각에게 부정고백, 즉 42가
지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고백을 한다.60)
부정고백의 내용은 주로 일상생활에서 저지르기 쉬운 과오들이 망라되어 있으
며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도 있다. 분류해보면‘잘못’(2), ‘도둑질’(6), ‘살상’(1), ‘눈금
속이기 혹은 거짓말’(2), ‘난폭’ 혹은 ‘퉁명스러움’(2), ‘간통’ 혹은 ‘부적절한 성교’(4),

60) Ray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op. cit., Plate 31, chapter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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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09

‘사람을 울리기’(1), ‘위선’(1), ‘법규위반’ (2), ‘곡물 관련 부당이득’(1), ‘비밀누설’(1),


‘소송제기’(1), ‘재산싸움’(1), ‘사람을 겁주기’(1), ‘화내기’ 혹은 ‘목소리를 높이기’(2),
‘약속 불이행’(1), ‘남을 저주’(1), ‘(진리를) 반박’(2), ‘성급함’(1), ‘수다스러움’(1), ‘왕
을 험담’(1), ‘물을 걸어서 건넘’(1), ‘건방지게 행동’(1), ‘부정한 치부’(1), ‘신을 저
주’(1), ‘제물 파괴 혹은 절도’(1), ‘지방신 경멸’(1), ‘성스러운 가축 살해’(1)로 되어 있
다.
이 항목들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신 혹은 신앙과 관련된 항목이 드물다는 점
이다. 전체 42개 항목 중 단 4개, 즉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파괴하거나 신을 저주하
거나 지방신을 경멸하거나 성스러운 가축을 살해하는 것만이 그에 해당한다. 나머
지 압도적 다수는 절도, 사기, 간통, 협박 등 일상적 인간관계에서 범죄 혹은 비도덕
적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구원의 기준으
로 삼은 것은 신에 대한 헌신이나 신앙심뿐 아니라 도덕적 행동과 덕망이었으며 오
히려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역점을 두었을 것으로 본다. 신앙심보다 도덕적 행동
에 더 역점을 두는 모습은『사자의 서』
의 다른 장들에서도 볼 수 있다.61)
이로서 우리는 마아트의 내용이 신앙과 크게 관련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렇다면 신이 주관하는 구원에 있어서 신앙심보다 일상의 도덕적 행동이 관건이 되
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자의 서』를 보면 신은 자신에게 바쳐지는 제물뿐 아니라
올바름이나 정의에 의해 사는 존재라는 구절들이 나온다. 즉 신이 올바름을 중시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양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오는 내(레의 영혼)가 저주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을 것이다. 나
는 올바름(righteousness)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것으로 산다(live by it)”.62) 또
한 레는 허위를 싫어하며 날마다 정의에 의해 살아간다고 하였다. “나는 태초의 물
로부터 출현한 레이며, 나의 영혼은 신이다……허위(falsehood)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레가 날마다 그것으로 살 수 있게끔 정의(righteousness)를 창조한

61) Ibid., Plate 3, chapter 18, chapter 153 참조.


62) Ibid., Plate 27, chapter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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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오시리스이다”63)
사자는 레 신에게 마아트라는 양식을 바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한다. 『사자
의 서』 제 96~97장에서 사자 누는 “나는 레에게 마아트를 부여하기 위해 여기에 왔
다”64)라고 선언하였다. 또한 130장에서 사자 누는 자신을 “나는 마아트(여기서는
정의와 진리의 여신을 의미)를 장악하고 레 신 앞에 그녀를 바친 자이다”라고 하였
다.65) 그럼으로써 사자는 “나는 매일 레를 아포피스로부터 구출한다. 그를 공격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선언한다.66)
사자의 서 200개의 장들 중 최고신인 레가 마아트를 양식으로 살아가며 사자
는 그것을 바침으로서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것은 서너 곳에서 언급될 뿐이지만 그
내용은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하다. 특히 레 신이 ‘날마다’그것을 양식으로 살아간
다는 것은 매일 저녁에 죽었다가 다음 날 새벽에 다시 부활하는 태양신으로서의 기
능과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원의 조건에 나타난 고대 이집트의 신과 인간의 관계의 특징은 구원
의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자가 바란 구원의 내용은 신의 은총으로 천국에
서 영생한다는 추상적인 것도 있었지만 물질로 표현되는 구체적인 것이 더 중요
하였다.
『사자의 서』제 99장에서 사자 누(Nu)는 신에게 “오늘 당신의 선물은 나에게 주
어져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져야 할 선물은 보리, 에머밀, 나에게 예정된 선물
은 몰약과 의복, 나에게 예정된 선물은 생명, 안녕과 건강, 나에게 주어질 선물은 내
가 내세에서 나아갈 때 어떤 형태도 취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라는 주문을 행한

63) Ibid., chapter 153 B (papyrus of Nu), p. 124.


64) Ibid., chapter 96 & 97, (papyrus of Nu), p. 109. 벗지는 같은 대목에 대한 번역을 “I have
come to give right and truth to Ra"라고 하여 마아트가 정의와 진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
고 있다. E.A. Wallis Budge, The Book of the Dead, op. cit., p. 292.
65) Raymond Faulkner(e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op. cit., chapter 130 (pa-
pyrus of Nu), p. 117.
66) Ibid., chapter 144 (papyrus of Nu),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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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11

다.67) 이는 이집트인들이 내세에서 바란 것은 현세에서 누렸던 안락하고 풍요로운


물질생활을 연장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고대 이집트인은 구원의 조건과 내용에 있어서 세속적 혹은 인간 중심
적인 방식과 관점을 견지하였다. 우선 구원의 조건은 암묵적이지만 다분히 계약적
이다. 계약의 내용은 사자의 세속적 행동이 마아트에 부합할 때 신은 구원을 내려
주도록 되어 있으며 신의 재량이나 권능이 작용할 여지는 희박해 보인다. 사자는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가는 여정에서 신에게 보호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때
에도 자신이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음을 환기시킨다. 그런가하면 구원의 내
용, 즉 내세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사자가 기대하는 것은 현세에서의 물질
생활을 연장하는 것일 따름이다. 신이 주관하게 될 새로운 - 아마 신성하고 영적인
- 생활에 대한 전망이나 기대는 희박하다. 고대 이집트에서 내세를 주관하고 사자
를 심판하는 것은 신이지만 주도권은 사자, 즉 인간에게 있으며 사자의 관념은 다
분히 인간 중심적이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자가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는 등 자신의 위상을 맘껏 높이려 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사자의 신격화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자를 신과 동일시 혹은 신을 능가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등 인간을 신격화하였다. 『사자의 서』는 거기에 수록된 주문에 대해 “이것을 낭송
하는 자는 내세에서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그는 신성한 신이 될 것이며 어떤
사악한 것도 그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그는 매일 오시리스 곁에서 먹고 마실 것
이다……. 그는 살아날 것이고 신과 같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산 자들에 의해
매일 레처럼 숭배될 것이다. 이것은 백만 번 진실이다”68)라고 하였다.

67) Ibid., chapter 99, p. 110. 다른 장에서는 그 외에도 사자가 맥주와 고기 그리고 저승 세계
의 아홉 신들처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Ibid, chapter 72.
68) Ibid., chapter 136 A, (papyrus of Nu), p. 118. 사자의 신격화는 다른 장들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보호의 낭송이 그를 위해 그의 목에 자리 잡으면, 그의 시신은 신이 될 것이며 그의
친척들도 함께 될 것이다” Ibid., chapter 101, p.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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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자를 신처럼 높이는 것은 『사자의 서』의 기본 테마이기도 했다. 무엇


보다 대부분의 사자는 자신의 이름 앞에 오시리스를 붙여 예컨대 ‘오시리스 아니’ 혹
은 ‘오시리스 누’라고 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오시리스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다른
신들과의 동일시도 행해지지만 오시리스와의 동일시가 일반적인 이유는 오시리스
가 내세를 관장하는 신인데다 또한 죽었다가 부활했기 때문에 사자도 같은 효과,
즉 오시리스처럼 부활할 뿐 아니라 오시리스의 아들인 강력한 호루스 신이 오시리
스를 보호했듯이 자신도 보호해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69)
하지만 사자의 바람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최
고신 아툼과 동일시됨으로써 저승세계에서 가해질 수 있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
신을 방어하고자 한다. 『사자의 서』에서 사자 누는 괴물 아포피스에게 다음과 같
이 선언한다. “너의 독은 나의 사지로 들어올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사지는 아툼
의 사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름이 비밀인 존재이며 혼란의 신들보다 훨씬 더 성
스러운 군주이다”.70)
또한 사자의 동일시는 오시리스와 아툼이라는 두 최고신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자는 동시에 여러 신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이는 그 신들의 속성, 즉 특유
의 권능을 동시에 물려받기 위함일 것이다. 사자 누는“오 그대(아포피스)여. 내게
길을 열어다오. 왜냐하면 나는 레이고 나는 나의 적들을 물리치고 지평선으로부
터 올라왔기 때문이다……나는 호루스로서 일어났으며 나는 프타로서 내려앉았
고 나는 토트처럼 강하고 아툼처럼 전능하다”라고 주문을 외웠다.71) 그리고 앞
에서 보았듯이 사자는 자신의 사지를 부분 별로 각 개별신의 그것과 동일시하고

69) “오시리스의 사지는 지치거나 부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도 똑같이 행해지길”,
“오시리스가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듯이 나도 그렇게 일어나길” Ibid., chapter 45~46. 137
장에서는 “오시리스여, 호루스의 눈은 당신을 보호합니다. N이여, 호루스의 눈은 당신을
보호합니다. 그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당신의 적들은 실로 당신 앞에
쓰러졌습니다” Ibid., chapter 137 A.
70) Ibid., chapter 7(Papyrus of Nu), p. 101.
71) Ibid., chapter 11 (papyrus of Nu), 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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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13

어느 한 부분도 신이 깃들지 않은 곳은 없다고 말함으로써 신격화는 절정에 달한


다.72)
이처럼 내세에서 사자의 위상은 인간이 아니라 신에 해당하는 것이다.73) 따라서
사자의 역할 역시 다른 신들에게 혜택과 보호를 베풀어주는 당당한 것이다. 사자
는 겸손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최대한 높여서 말한다. 특히 오시리스를 구출한
호루스와 동일시하여 자신이 최고신을 구했다는 사실을 소리 높여 선언한다.“아비
도스에 있는 그대 신들이여. 기쁜 마음으로 나를 만나고 나의 아버지 오시리스를
보러 올지니……나는 호루스이다……내 눈은 그(오시리스)의 적을 물리치고 그의
아버지를 보호하여 그와 그 어머니를 범람의 홍수로부터 구출하였다”74) 또한 사자
아니는 “나는 그(오시리스)를 위해 그의 코에 영원의 생명을 불어넣었다”.“나는 저
승세계에 있는 턱을 당신(오시리스)에게 가져왔고, 나는 당신의 등뼈도 가져와서
그들을 결합하였다. 나는 그(오시리스)의 상처에 침을 발랐다”라고 자신의 공적을
열거하였다.75) 나아가 사자는 또 하나의 최고신인 레에 대한 보호를 언급하는 일
도 빼놓지 않는다.76)
이러한 역할과 위상을 토대로 사자는 레와 오시리스를 제외한 다른 신들에 대

72) “내 머리는 눈의 머리이고, 내 눈은 하토르의 눈이며 귀는 (늑대신) 웨프와벳의 귀, 코는 연


꽃잎을 주관하는 켄티-카스, 입술은 아누비스, 어금니는 셀켓, 앞니는 여신 이시스, 팔은 멘
데스의 군주인 램, 가슴은 사이스의 여신 네이스, 등은 세트, 음경은 오시리스, 근육은 케라
라의 군주들, 내 사지 어느 부분도 신이 깃들지 않은 것은 없으며 토트 신은 내 모든 살들의
보호자이다.” Ibid., Plate 32, chapter 42.
73) “나는 신의 왕국의 군주들인 그대들의 이름을 압니다. 왜냐하면 나도 당신들의 일원이기 때
문입니다” Ibid., chapter 81 B (papyrus of Paqrer), p. 109. 또한 사자 아니(Ani)는 다음
과 같이 말한다. “오, 내 앞에 있는 그대들이여,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길, 왜냐하면 나는 그
대들과 함께 성장한 신이기 때문에” Ibid., Pl 7, chapter 17.
74) Ibid., chapter 138 (papyrus of Nu), p. 119.
75) Ibid. Plate 11, chapter 147.
76) “N(사자)의 보호는 하늘에서 레 신에 대한 보호이다. N은 매일 레에 대한 공격자들을 몰
아낸다. N은 호루스처럼 하늘의 지평선의 신성한 장소에 진입했다. N은 레가 (입장할 수
있도록) 문들에서 알려지도록 하는 존재이다” Ibid., chapter 136 A (papyrus of Nu),
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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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군림하고자 한다. 사자는 자신이 ‘신들 중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길을 비켜 달라고 하였다.77) 사자 누는 저승의 다른 신들에게 “추종자들은 레를 섬
기는 것처럼 나를 매일 섬길지어다. 나는 레의 추종자이며 그의 하늘을 받는 자이
다”라고 하였다.78) 그리하여 사자는 결국 신들을 인도하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나는 로세차우(저승)에서 태어났고 지평선의 군주의 힘이 내게 부여되었다. 나는
신들을 지평선에 있는 오시리스 주변으로 이끈다. 나는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 중
하나이다”.79)
이처럼 자신의 위상에 도취된 사자에게는 신들을 부릴 수 있다는 주장도 터무
니없는 것이 아니었다. “신성한 아우케무가 다음과 같이 묻는다. 누가 너(사자)를
위해 그것(밭)을 갈아줄 것인가? 하늘의 신과 땅의 신들 중 가장 위대한 자들(이 그
들)이다. 사이스를 지배하는 아피스-황소를 위해서 한 것처럼 그들이 나(사자)를
위해 타작할 것이다. 북쪽 하늘의 군주인 세트를 위해 한 것처럼 그들이 나를 위해
수확할 것이다”80)
그렇다면 최고신에 버금가는 위상과 혜택을 요구한 사자는 신이 자신의 요구
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였을까? 놀랍게도 그는 신들을 협박하기에 이르
는데 그 대상에는 모든 신들이 포함되었으며 최고신인 레나 오시리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자 누는“만약 반란자들에 의해 나에게 어떤 위해라도 가해진다면
나는 레의 음경과 오시리스의 머리를 집어 삼켜버릴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
다.81) 특히 레에 대해서는 그가 두려워하는 세트를 동원하여 협박하였다. “오 레
신이여, 나를 해치는 어떤 악한 반대도 당신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않기를. 왜냐
하면 나는 세트로서 파괴의 의지를 갖춘 존재처럼 하늘의 지평선에 폭풍우를 일
으킬 수 있기 때문에.”82)

77) Ibid., Plate 16, chapter 44; Plate 27, chapter 82.
78) Ibid., chapter 131 (papyrus of Nu), p. 118.
79) Ibid., chapter 144 (papyrus of Nu), p. 120.
80) Ibid., chapter 189 (papyrus of Nu), p. 135.
81) Ibid., Plate 16, chapter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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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15

나아가 사자는 일종의 최후의 통첩으로 자신이 정당화되지 못할 경우 자연의


질서가 훼손되고 세상이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위대한 신의 심판정
에서 적들에 대해 정당화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만약 당신이 나로 하여금 내 적들
을 물리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지 않는다면, 법과 질서를 기반으로 사는 하
피 신은 자신이 진리에 의거해 사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며, 또한 물고기를
먹고 사는 레는 그가 물고기를 먹고 살 수 있는 물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레는 진리에 의해 살도록 하늘로 올라가야 하며 하피는 물고기를 먹고 살도록 물
로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위대한 날은 그 상태를 종식하게 될 것
이다”.83)
이 주장은 고대 이집트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다소 놀라운 결론으로 인
도한다. 그것은 인간이 신에 못지않게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동참한다
고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신의 양식인 마아트를 공급함으로써 인간은 신을 먹여 살
림과 동시에 자연의 질서 유지라는 신의 역할에 동참하였고 그것을 근거로 최고신
에 버금가는 지위와 혜택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VI. 맺음말

일찍이 브레스티드(James H. Breasted)는 역사상 ‘양심’, ‘성격’ 그리고 ‘마아트’


라는 용어들이 처음 만들어지고 기록된 기원전 3천년에서 기원전 2천년 사이의 이
집트를 인류 정신 발달의 중요한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84) 그가
다른 사료들에서 발견한 고대 이집트인의 관념을 우리는 『사자의 서』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내세에서의 구원의 여부를 생전의 행실과 직결시

82) Ibid., chapter 39 (papyrus of Mes-em-Neter), p. 104.


83) Ibid., chapter 65 (papyrus of Nu), p. 107.
84) James H Breasted, The Dawn of Conscience(New York, Scribner's, 1933), pp.
39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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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킬 만큼 도덕성과 미덕에 대한 의식이 강했던 것이다.


흔히 고등종교에 비해 고대 종교는 최고 존재와의 소통을 통한 인간 내면의 도
덕성 함양이 결여되어 형식적이며 피상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그것은 실제
로 기원전 6세기 전 후 소위 ‘축의 시대’와 그 이전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
다.85) 그에 대해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인간의 도덕과 미덕의 역사를 1500년 이상
앞당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의 계율이 부과하는 엄격한 도덕규범에 얽매
여 자비와 용서를 갈구하던, 말하자면 신 앞에서 무력한 인간들은 아니었다. 사자
를 신격화하고, 신을 협박하기도 하며 신과 함께 자연의 질서 유지에 동참한다고
생각했던 고대 이집트인들, 신이 관장하는 내세에서의 구원의 조건과 내용까지도
인간과 세속의 논리로 규정했던 그들이 품었던 신과 신성의 의미는 현대인의 종교
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자의 서』라는 단일 사료만을 근거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거기
에 나타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우리가 논문의 앞부분에서 기존의 연구들을 통해 살
펴 본 바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여러 신을 동시에 숭배하지는
않았지만 경우에 따라 자신이 숭배하는 신에 다른 신들의 속성과 권능을 부여하고
신들을 결합시키는가 하면 자신을 여러 신들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신은
다양한 형상, 즉 동물이나 인간 혹은 둘의 결합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등 마치 신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규정되고 동원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 종교 혹은 고대 종교 전반에 대한 선입관, 즉 ‘기괴하고 전-논리적
이며 피상적이다’라는 관점이 모두 근거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 사로
잡힌다면 보편 종교와는 다른, 특히 인간중심적 신관과 나름의 논리를 지닌, 오래
되었지만 새로운 하나의 종교체계에 대해 눈을 감는 일이 될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85) Karen Armstrong,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Beginning of Our Religious Tradi-
tions(New York, Knopf, 2006) pp. xiii~xiv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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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17

다신교 체계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종교적 평화를 가져오는데 기여했는가하는 고


려는 차치하고라도.86)

(투고일 : 2011. 2. 1 심사시작일 : 2011. 2. 10 심사종료일 : 2011. 3. 4)

주제어 : 고대 이집트 종교, 신에 대한 관념, ‘사자의 서’, 동물-숭배, 다신교


Keywords : religion of ancient Egypt, conceptions of God, ‘Books of the Dead’, animal-
worship, polytheism

86) “고대 이집트에는 단일한 진리를 강요하는 성문화된 성전이나 권위 있는 교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종종 교리에 대한 신학적 설명을 어렵게 했지만 혼란보다는 유연성과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고대 이집트는 그 긴 역사 동안 거의 종교 전쟁을 치른
적이 없다”. Cyril Aldred, 『이집트 문명과 예술』(대원사 1998), pp. 403~405. 단 한번 신 왕
국 하 아케나텐의 치세 동안 태양숭배라는 일종의 유일신교를 강요한 종교운동이 있었지만
그 시도는 단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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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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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歷 史 學 報 第209輯 (2011.3)

Egypt: Gods, Myths, and Personal Practice, London, Routledge, 1991.

Jorgen P. Sorensen, “Introduction,” in Gertie Englund, ed., The Religion of the Ancient Egyptians.

Cognitive Structures and Popular Expressions. Proceedings of Symposia in Uppsala and

Bergen 1987 and 1988, Uppsala, Academiae Ubsaliensis, 1989.

Norman Locke, “A Myth of Ancient Egypt,” American Imago, 18:2, 1961: Summer.

Ragnhild B. Finnestad, “Egyptian Thought About Life as a Problem of Translation,” in Gertie 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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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ae Ubsaliensis,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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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221

[Abstract]

Concepts of God in Ancient Egypt

Kim, Kyung-keun
(Jeonbuk National Univ.)

Ancient people thought differently from people of the modern day, particu-
larly with regard to their approach to religion. Notable amongst these differences
is the use of a 'multiplicity of approaches' by ancient people and the way this
thinking influenced their concepts of god. As a part of this multiplicity, early peo-
ple often gave multiple forms, names and roles to the same god, or to the same
force of nature. This belief in both the multiplicity and immanence of god or gods
naturally excluded belief in transcendence. Particularly in ancient Egypt, people
conceived their gods in various ways: in human form, in animal form and most
often, in hybrid form comprising an animal head matched to a human body. But
the animal form did not represent the god's true essence. Rather, it was a means
of expressing the attributes or characteristics of a god. A study of the 'Book of
the Dead' reveals interesting traits concerning men and their gods. Ancient Egyp-
tians imposed the conditions of salvation to their gods and defined their after-
world life themselves. They even intimidated their gods with regard to preparing
for and protecting themselves in the after-world. These traits lead us to consider
the ancient Egyptian religion as something different from monotheistic religions,
something that contains its own sense of lo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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