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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좀 살자 제발

“타, 얼른.” 재운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뭐 돼? 나는 물었다.

“응, 나 사장 아들”

정말 짜증나는 눈웃음이었다.

“하…뭐 일하기 싫긴 했으니까.”

솔직히 완전 이득이다. 무언가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디 가려고?”

“사람이 살 의지가 가장 강할 때는 무언가 책임져야 할 것이 있을 때라고 하더라. 애완동물을 구하러


가려고.”

솔직히 어제 죽으려던 사람이 어제부터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하면 안 믿을 것 같았다.

복잡하게 형부가 키우기로 하고는 언니가 나한테 넘겼다고 설명하기는 귀찮았다.

“하, 그래 그럼.”

나는 대답했고, 재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차는 출발했다.

“얘 예쁘지 않아?” 재운이는 갈색의 푸들을 안고 오더니 말했다.

“야, 나 돈 없어.”

애완동물 샾 옆에는 으리으리한 건물들과 지하철 역, 그리고 쇼핑몰이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적어도 감히 내 돈을 쓰러 오는 것은 아니다.

“사 줄게” 재운이는 말했다.

도대체 너는 뭐가 부족해서 죽으려던거니?

주변을 둘러봤다. 강아지와 고양이, 다 하나 같이 잘 관리 되어있었고 너무나 예뻤다. 하지만


원룸에서 두마리라니, 정말 아니였다.

“재운아, 나는 너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 난 진심이야.”

그때, 하얀 고양이가 저 건너편에 보였다. 어제 공원에서 봤던 터키쉬 앙고라였다. 한 쪽은 푸른색, 한


쪽은 초록색의 눈이었고, 저 멀리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재운이는 푸들을 내려놓고 나를 보더니 터키쉬 앙고라를 봤다.

“경호원! 저 고양이 좀 데리고 와줄래?”


재운이가 말하자 경호원은 바로 달려갔다.

“야! 고양이 놀래!”

나도 모르게 따라 뛰어갔다.

역시나, 경호원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내가 숨이 차서 멈추자, 고양이도 멈추고는 다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숨을 고르고 난 뒤, 나는 고양이를 향해 걸어갔다.

고양이는 빤히 보더니, 내가 손을 뻗자 할퀴었다.

“아!”

따끔하더니 왼손 중지에서 피가 살짝 나왔다.

경호원은 주머니에서 소독약을 꺼내 달려왔다.

그리고 경호원 뒤에는 재운이가 있었다.

“냥냥아, 우리 같이 놀까?”

재운이는 해맑은 표정을 하고 쪼그려 앉아 고양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고양이는 처음에는 경계하더니 자세를 풀었다.

재운이는 천천히, 손을 뻗었고, 고양이는 놀래지 않았다.

재운이가 쓰다듬자, 고양이는 눈을 감고 재운이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경호원이 내 손가락을 소독하고 반창고까지 붙일 때즘, 재운이는 고양이를 안고 나한테 말했다.

“찾았다! 네 애완동물.”

“제발, 나 힘들어. 나는 너가 진짜 애완동물을 구해줄 줄은 몰랐어. 그냥 일하기 싫어서 온 건데.”

나는 헐떡이며 말했다. 땡볕에서, 남들 다 보는 데에서 달리고 고양이는 나를 할퀴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자고 싶었다.

“자, 이제 너네 집에 가자.” 재운이는 해맑게 말했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야! 미쳤어!” 나는 소리질렀다. 사람 몇몇은 우리를 쳐다봤다.

“다짜고짜 애완동물 샾에 데려가고, 경호원 시켜서 길고양이 쫓고, 이제는 내 집에 같이 가자고? 우리


서로 안지 하루 밖에 안 됐어!”
“아, 나는 도와주려던 건데.”

재운이는 고개를 숙이더니 아무 말도 못했다.

“너 그거, 나 도와주는 거 아니야. 어제 커피 마시면서 말동무해준건 고마워. 나를 돕고 싶으면, 딱 그


정도만 해줘. 그 고양이는 너 좋아하네. 너가 키워.”

더 이상 말하기도 싫었다. 소독약 바른 중지가 점점 아파왔다.

차 타고 회사로 돌아갈 때는 서로 아무 말도 안 했다.

재운이는 말없이 고양이만 쓰다듬었다.

나는 말없이 차에서 내렸고, 회사에 들어갔다.

“야! 우주은! 너 왜 이제야 출근해!” 과장이 나를 보더니 얼굴이 시뻘게져서 말했다.

“아 조재운 이 개새끼..”

그 뒤는 뻔했다. 회장 아들로 보이는 놈이랑 놀아주느라 늦었다고 하기에는 조재운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었고, 나는 다친 중지로 반성문도 쓰고, 느려진 타자속도로 밀린 업무를 다 해야했다.

결과는 뻔했다. 나는 저녁도 굶고 8 시까지 일하고 겨우 퇴근했다.

“하, 조재운 다음에 보면 죽여버려야지”

중얼거리며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제이콥이 달려와 이리저리 뛰다가 두발로 서더니, 꼬리를 흔들며 앞발로 내 무릎을
쳤다.

“그래, 산책 나가자.”

잠이 너무나도 간절했지만, 일단 집으로 들어가 어제 배송 온 강아지 목줄을 챙겼다.

그리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을 때쯤 기억이 끊겼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10 시였다. 제이콥은 눈을 뜬 나를 보더니 달려와 마구 괴롭혔다.

“알았어 알았어, 엄마가 미안.”

화장도 안 지우고 잠들었었다.

“아 너무 귀찮은데.”
대충 세수하고 마스크 쓰고 나갔다.

문을 나서자 마자, 제이콥은 이리저리 달려가며 가로수에 영역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목줄 찬 건 제이콥인데, 끌려다니는 건 나였다.

그렇게 제이콥이 17 번째 영역표시를 마쳤을 때쯤, 공원 앞에 도착했다.

사람은 적었고, 물 흐르는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났다.

제이콥은 신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따라 달렸다.

아무래도 제이콥 키우는 동안은 살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달려가다 보니 운동기구들 있는 쪽에 도착했다.

나는 제이콥 목줄을 옆에 묶어 두고는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었다.

백 개째 하고 있었을 때, 지쳐서 누웠더니, 하얀 고양이를 안은 남자가 거꾸로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너 강아지 키웠었어?” 재운이는 말했다.

“아 그게..”

“실망이다. 너 죽었으면 강아지는 어떻게 되는 거야 방에 갇히는 거야?” 재운이는 말을 이어갔다.

“아니, 어제 너 만나고 나서부터 키우기 시작했어, 이름은 제이콥이야.” 나는 대답했다.

“아, 너는 나보다 생각이 빠르구나. 아까 말을 하지. 안녕 제이콥!”

재운이는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제이콥은 재운이를 보더니 짖어 대며 반겼다.

“너 같으면 자살하려던 사람이 강아지를 분양했다는 걸 믿겠냐.” 나는 말했다.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재운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말 안하고 따라온 거야?” 재운이는 물었다.

나는 재운이 머리를 한 대 쥐어 박았다.

“내 팀에는 잘 얘기해준다며, 나 야근하고 왔어 미친놈아.”

그 부분은 아직도 화가 안 풀렸다.

“아! 미안, 그때 기분이 안 좋았어서, 까먹어버렸네.”


재운이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야!”

내가 소리지르자 제이콥과 고양이는 나를 쳐다봤다.

“미안, 다음부터는 꼭 말해줄게”

재운이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음? 내가 뭐 너 맨날 놀아주게? 너가 이러니까 연애 한 번 못해보지.” 나는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나 모쏠인거.”

재운이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하…그냥 보면 알아. 너 몇 살이니?”

나는 물었다.

“나 27 짤”

재운이는 윙크하며 말했다. 역겨웠다.

“나보단 많네 정신연령은 5 살 같은데”

“오 넌 몇 살인데?”

“26”

“뭐야, 반말하지마”

재운이는 장난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맞을래?”

정신차려보니 실없는 대화로 우리는 2 시간동안 같이 산책하고 있었다.

“야, 너 사장 아들이지? 부럽다 난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

나는 말했다.

“아”

재운이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뭐야? 사장 아들 아니였어?”

나는 물었다.

“맞지, 맞는데,”

재운이는 말을 잇지 않았다.

“뭐야, 나 간다.”

졸려서 미칠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바로 못 잤다.

유튜브로 공부하며 제이콥을 씻기고, 힘들게 이도 닦아줬다. 아까 못 지운 화장도 겨우겨우 졸음


참아가며 지웠다.

“하, 샤워는 내일 아침에 해야겠다.”

침대에 눕자, 제이콥은 뛰어서 올라오더니 내 위에 엎드렸다.

“엄마 좀 자자.”

제이콥은 귀여웠지만, 내 배위에 올라탄 건 정말 불편했다.

다음날은 제발 별일 없기를 바랬다. 정말 피곤했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샤워하고, 제이콥이랑 놀아주며 아침먹다가 집을 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시계를 보며 달려갔다.

정직원 된 지는 3 개월이 다 되어가고, 어제까지 한 번도 지각한 적 없지만 오늘 지각해버리면 그대로


지각쟁이로 찍힐 거다.

“어! 우주은!”

조재운은 회사 정문 앞에 서있었다.

“뭐, 용건만 말해 지각까지 5 분 남았어.”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나 고양이 이름 뭘로 지을까?”

재운이는 물었다.

“그러게…음…”

“아! 레나! 레나 괜찮다 어때?”

저럴거면 나한테 왜 물어본거지?

“어어 좋네, 이따 봐.”

나는 말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제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밀린 업무 다 처리했습니다”

과장님께 커피 한 잔 드리며 말했다.

“그래 그래, 한 번쯤 실수할 수도 있지. 우리 주은이는 항상 잘하니까 내 넘어가주마.”

과장님은 좋으신 분 같았지만,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나를 딸 대하듯이 하고, 어설프게 챙겨주는 게 오히려 더 스트레스인데 그걸 아실까?

오늘은 일이 적었다.

보고서 서너 개 결재 받고 몰래 몰래 강아지 양육법 좀 공부하더니 벌써 퇴근할 시간이었다.

“뭘로 시간 때우지…”

그러다가 인터넷에 “길고양이 절대로 키우면 안 되는 이유” 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보니 길고양이는 위생적으로 진드기나 바이러스가 많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되며, 원래


고양이는 산책하면 절대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뭐야, 절대 안 되는 건 아니잖아”

요즘 클릭수에만 집착하느라 다들 표현이 과격해진 것 같다.

시계를 보니 7 시 정각, 퇴근할 시간이었다.

“퇴근해보겠습니다.”

짜릿하면서도, 슬프다. 어차피 내일 또 출근해야 했으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조재운이 앉아 있었다.

“너 할 거 없어?”

나는 짜증섞인 말투로 물었다.

“아니, 이따 보자고 했잖아 너가.”

재운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더라…

“야 근데, 길고양이 위생관리 필요하다는데, 괜찮겠어?”

나는 물었다.

“어 동물보호센터에 맡기니까 다해주더라. 그리고 고양이는 산책시키면 안 된다고 하네. 이제부터는


집에만 놔둬야겠어.”

재운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이름이 레나라고?”

“어 이쁘지? 그치?”

재운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쁘네, 그럼 이제 나는 못 보려나.”

아쉬웠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고양이,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

재운이는 말했다.

“아이씨,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나는 회사 로비가 다 울리도록 소리질렀다. 옆에 차에 타던 경호원은 움찔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너무 짜증났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남의 집에 가고 자기 집에 초대하는 걸 너무나 쉽게 말한다.


더더군다나 이 회사 사장의 아들 집이다.

“오지마 그럼”

재운이는 삐진 표정으로 말했다.

“됐어 갈게.”

차 타고 조금 가자 대저택이 있었다.

“와 너 여기서 레나랑 둘이 사는거야?”

나는 물었다.

“아니? 우리 가족 다 여기서 사는데?”

“뭐라고?”

다시 한 번, 운전하시던 경호원 분이 움찔하셨다. 우리 엄마가 진짜 성악가긴 하셨나보다.

“아니 가족이랑 살면서 갑자기 고양이 데려와서 키우고 그래?”

나는 물었다.

“응, 내 방 안에서만 키우면 되지.”

아, 얘 방이 내 집보다 크겠구나.

차에서 내리고, 재운이가 문을 열자, ‘ㄹ’사의 회장, 조찬휘 회장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누구니?”

재운이를 보며 물으셨다.

“인사해! 내 여자친구 우주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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