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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와 상대성이론

김 재 영

1920년 10월 27일 네덜란드의 레이 단어는 ‘헤아릴 수 없는’ ‘不可量’이란 뜻


덴 제국대학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고, 실질적으로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Äther und Relativitätstheorie(에테르와 만질 수 없는’이나 ‘아주 흐릿하게만 존
상대성이론)”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재를 드러내는 괴기스러운’이라는 의미이
레이덴 대학은 1919년 아서 에딩턴의 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속
일식관측으로 갑자기 유명해진 아인슈타 성이 무게 또는 질량이 없거나 거의 없
인을 전임교수로 초빙하려 애썼지만, 아 다는 것이어서, 과학사에서는 ‘무게 없는’
인슈타인이 이를 고사하자, 그 대신 객원 이라는 번역어가 정착했다.] 로버트 보일
그림 1.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테르 신의 부조(독
교수로 초빙했고, 이를 위한 취임 강연이 은 자기가 에테르라는 무게 없는 유체가 일 베를린 소재 페르가몬 미술관). https://com
었다. 절친한 벗 파울 에렌페스트와 늘 나타내는 성질이라는 생각을 펼쳤고, 뉴 mons.wikimedia.org/wiki/File:Aether_in_
battle_with_a_lion-headed_Giant.jpg.
물리학의 영웅으로 칭송하던 헨드릭 안 턴은 빛을 에테르로 설명했다. 이 둘을
톤 로렌츠를 앞에 두고 한 강연이어서 구별하기 위해 각각 전자기 에테르와 빛 되었다고 해서 로렌츠를 비롯한 다수의
더 특별했다. 에테르로 불렀다. 18세기에는 연소나 식 물리학자들이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한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물의 호흡을 설명하기 위해 플로지스톤 것은 아니다. 1900년 윌리엄 톰슨(켈빈
에테르를 부정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 이 추가되었고, 열의 이동을 설명하기 위 경)이 물리학자의 하늘에 있는 두 개의
르면 절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공간이 있 해 칼로릭의 이론이 만들어졌다. 19세기 구름 중 하나로 마이컬슨-몰리 실험을
어서는 안 되고 모든 관성계가 대등하지 말에는 빛이 전기와 자기의 파동임이 밝 언급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임에 모두 동
만, 전자기 과정이 일어나는 텅 빈 공간 혀졌고, 이 파동을 전달해 주는 매질이 의했지만, 에테르의 존재를 처음 의심한
의 한 점에는 속도 벡터를 할당할 수 없 다름 아니라 에테르라 여겨졌다. 것은 다름 아니라 앙리 푸앵카레였다. 푸
기 때문에, 에테르라는 개념은 불필요하 1887년에 “지구와 빛 에테르의 상대운 앵카레는 1901년 국제물리학자 학술대
다는 것이다. 그런 아인슈타인이 왜 이 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앨버트 마이 회에서 마이컬슨-몰리 실험의 설명뿐 아
강연의 제목을 “에테르와 상대성이론”으 컬슨과 에드워드 몰리의 연구는 에테르 니라 과학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고찰을
로 한 것일까? 그리고 그 내용은 구체적 에 대한 프레넬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통해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
으로 무엇일까? 것이었다. 1818년에 발표된 오귀스탱 프 으로 나아갔다. 이 내용은 1902년에 출
17세기부터 열, 전기, 자기, 빛 등을 레넬의 실험과 이론적 논의를 근간으로, 판된 <La Science et l'Hypothèse> (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무게 없는 유 아르망 피조는 에테르의 속성 때문에 빛 학과 가설)에 수록되었다.
체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여기에서 ‘무게 의 속력이 물질 속에서 굴절률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1905년에 “Zur Elektro-
없는’이란 말은 영어의 imponderable의 달라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하여 dynamik bewegter Körper”(움직이는 물
번역어이며, subtle fluid라고도 한다. 이 1851년에 발표했다. 마이컬슨-몰리의 실 체의 전기역학)에서 빛 에테르의 존재가
험은 프레넬의 다른 가설, 즉 에테르는 불필요하다고 말했고, 1907년에 출판된
저자약력 투명한 매질의 내부가 아니면 언제나 정 “Relativitätsprinzip und die aus dem-
김재영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물리학 지해 있다는 가설을 확인하려는 것이었 selben gezogenen Folgerungen”(상대성
기초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
랑크 과학사연구소 초빙교수 등을 거쳐 현재 다. 이를 위해 우주 공간 속에 퍼져 있 원리와 거기에서 도출되는 결과들)에서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는 에테르를 통한 지구의 운동이 광속에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빛 에테르라는 개
물리철학 및 물리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공저로
영향을 주는 것을 검출하기 위해 정교한 념은 이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다. 전자기
『정보혁명』, 『양자, 정보, 생명』, 『뉴턴과 아인슈
타인』 등이 있고, 공역으로 『아인슈타인의 시계, 간섭계를 만들었지만, 실험결과는 이론적 마당은 뭔가 물질적인 것의 상태가 아니
푸앵카레의 지도』, 『에너지, 힘, 물질』 등이 있다. 예측값의 1/40 이하였다. 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
(zyghim2@kaist.ac.kr)
그러나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이 발표 며, 질량 있는 물질과 비슷하고 관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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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연에서 아인슈 에 대한 이론을 전개했다. 독일어권에서
타인은 일반상대성이 맥스웰의 이론보다 더 권위를 갖고 있던
론을 발전시키면서 이 헤르츠의 이론에서는 뉴턴 방정식을 따
전에 에테르가 존재하 르는 보통의 물질과 맥스웰 방정식과 연
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관된 에테르를 모두 다루고 있었지만, 물
이전의 생각을 버리게 질은 속도와 에너지를 갖는 역학적 대상
되었다고 말했다. 시 인 동시에 전자기마당을 만들어내는 장
간과 공간이 동역학적 본인이기도 했다. 문제는 물질이 없는 진
인 역할을 하기 때문 공 속에서도 전자기파가 존재해야 하므
에 이것이 다름 아니 로 에테르도 전자기마당을 만들어낸다는
라 에테르라는 것이었 점이었다. 그래서 물질과 관련된 전자기
다. 특수상대성이론과 마당(D, H)과 에테르와 관련된 전자기마
그림 2. 1920년 아인슈타인이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에서 한 강연의 원고
달리 일반상대성이론 당(E, B)을 별도로 상정해야 했다. 로렌
표지와 첫 페이지.
에서는 명시적으로 에 츠는 맥스웰-헤르츠 전자기학의 단점을
량)이라는 특성을 공유한다.”라고 주장했 테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새로운 전자-에테
다. 결론이었다. “다만 이 에테르는 시간 속 르 이론에서 물질은 철저하게 뉴턴 방정
하지만 로렌츠 앞에서 진행된 강연에 에서 추적할 수 있는 부분들로 구성되어 식을 따르고, 에테르는 맥스웰 방정식을
서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있는, 무게 있는 매질 특유의 속성들을 따른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 로렌츠는 푸앵카레의 오류지적을 받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에테르가 시간 다.”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혼동할 아들여 1904년에 “Weiterbildung der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입자들로 이루어 여지없이 아인슈타인은 에테르가 존재한 Maxwellschen Theorie. Elektronen-
져 있다고 가정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 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theorie” (맥스웰 이론의 확장. 전자이론)
나 에테르의 가설이 그 자체로 특수상대 아인슈타인은 1919년 11월 15일에 을 발표했다. 푸앵카레도 1901년 “Sur
성이론과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에 로렌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전의 논문 les principes de la mécanique”(역학의
테르에 운동의 상태를 할당하지 않도록 들에서 에테르의 전적인 부재를 주장하 원리)와 1908년 “La dynamique de l’élec-
조심해야 한다. 분명히 특수상대성이론의 는 대신 에테르의 속도라는 게 없다는 tron”(전자의 동역학)을 통해 역학과 전
관점에서는 에테르 가설이 언뜻 공허한 것만 강조하고 말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 기, 자기 및 빛을 통일적으로 서술하는
가설로 보인다. ... [그러나] 에테르를 부 했습니다. 왜냐하면 에테르란 말이 다름 체계적인 이론을 발표했다.
정하는 것은 텅 빈 공간이 여하간 물리 아니라 공간이 물리적 속성을 지니고 있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
적 성질을 전혀 지니지 않는다는 가정과 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일 뿐임을 알 수 론이라는 체계적인 이론을 처음 제시한
궁극적으로 같다. ... 요컨대 일반상대성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다. 것이 아니라 실상 로렌츠와 푸앵카레가
이론에 따르면 공간은 물리적 속성을 부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입장을 바꾼 까 실질적으로 기본적인 틀을 이미 마련해
여받으며 이런 의미에서 에테르는 존재 닭은 무엇일까? 이를 대답하기 위해 놓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상대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에테르가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헨드릭 성이론의 주창자가 누구인가를 둘러싼
없는 공간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런 공간 안톤 로렌츠는 그 해에 “Versuch einer 논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차례 진행
에서는 빛의 전달도 가능하지 않을 뿐 Theorie der electrischen und optischen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주요한 기여로 흔
아니라 공간과 시간의 표준(즉 자와 시 Erscheinungen in bewegten Körpern” 히 여겨지는 ‘광속 일정 원리’도 푸앵카
계)이 존재할 가능성도 없으며, 따라서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적 및 광학적 현상 레가 1898년에 출판된 논문 “La mesure
물리적 의미의 시공간 간격도 존재하지 의 이론을 위한 시론)에서 기본적인 물리 du temps”(시간의 척도)에서 이미 명확
않는다.” 적 대상을 무게가 있는 전자(Elektron)와 하게 서술한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무게가 없는 에테르(Äther)로 나누어 이 은 어디에서도 로렌츠나 푸앵카레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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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인용하지 않았다. 의 실험을 비롯하여 로렌츠의 국소시간 동등하지만 존재론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조금 넉넉하게 봐 주면, 1905년 당시 이론 등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해석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대학에 자리를 얻지 못했던 알버트 아인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직접 푸 아인슈타인은 하룻강아지답게 복잡한
슈타인으로서는 프랑스어로 쓰인 푸앵카 앵카레와 로렌츠의 저작을 읽지 않았더 것들을 모두 단순화시키고, 몇 가지 기본
레의 저작들을 제대로 읽지는 못했을 것 라도 그 논의는 비교적 상세하게 이해하 전제들을 그냥 가정해 버린 채 그 다음
이고 로렌츠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지 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아인슈타 에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그것이 바로 가
못하고 있었을 거란 상상을 해 볼 수 있 인이 1905년에 출판된 논문에서 푸앵카 장 혁명적인 요소였다. 역사적으로 아인
다. 레와 로렌츠를 인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슈타인을 추앙할 만하지만, 아인슈타인
이 또한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좀 특이한 일이다. 이후에도 아인슈타인 혼자 독불장군으로 해냈다고 생각하는
1902년부터 시작한 올림피아 아카데미 은 로렌츠와 푸앵카레의 기여를 제대로 것은 옳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심지어
(Akademie Olympia)에서 아인슈타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막스 아브라함 같은 불운한 물리학자까
모리스 솔로빈 및 콘라트 하비히트와 더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상대성이론의 지 포함하여)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모
불어 에른스트 마흐나 칼 피어슨을 읽었 기본 틀은 로렌츠의 에테르 이론과 푸앵 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을 뿐 아니라 1904년에 독일어 번역판 카레의 확장 안에 있었다고 평가하는 게 경험이 쌓여가면서 점차 확장되는 아
이 출판된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을 옳다. 아인슈타인은 로렌츠와 달리 에테 인슈타인의 사고를 따라가면, 에테르라는
함께 읽고 깊이 토론했었다. 르 정지계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고, 어 개념 자체의 확대를 볼 수 있다. 특수상
또한 아인슈타인은 학부 시절부터 아 느 관성계에서든 시계로 측정하는 모든 대성이론의 단계에서는 에테르를 단지
우구스트 푀플(August Föppl)의 유명한 시간이 대등하게 참된 시간이라고 보았 전자기파의 매질쯤으로 협소하게 보았던
교과서 <Theorie der Elektrizität. Ein- 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에테르 정지계를 미숙한 입장이었지만, 일반상대성이론에
führung in die Maxwellsche Theorie 긍정하는가 여부만이 다를 뿐, 아인슈타 서 에테르 개념이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der Elektrizität> (맥스웰의 전기이론 입 인의 이론과 로렌츠의 이론의 경험적 증 동역학적 시공간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
문)을 꼼꼼하게 공부했다. 푀플은 라이프 거들은 전적으로 동등하다. 따라서 아인 게 되면서, 결국 에테르의 중요성을 인정
치히 대학의 공학적 역학 교수였고, 맥스 슈타인의 접근과 로렌츠의 접근은 같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의
웰의 전기이론을 해설하는 그 책은 매번 형식이론에 대한 구별되는 해석들로 봐 통일장이론을 모색하던 시기에는 배경시
쇄를 거듭하며 개정되었다. 바로 그 책의 야 한다. 또한 민코프스키의 4차원 시공 공간으로서의 에테르와 전자기 상호작용
마지막 장 제목이 “움직이는 전하의 전 간 개념도 상대성이론에 대한 세 번째 을 하는 중력마당으로서의 에테르를 모
자기학”이었고, 여기에서 마이컬슨-몰리 해석으로 봐야 한다. 형식이론상으로는 두 포괄하려 애쓰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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