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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哲學會論文集

哲學硏究 第137輯, 2016. 2

플라톤의 ‘nous’개념 *

티마이오스 편을 중심으로 -
1)

김 윤 동(경북대)
[논문개요]
소크라테스는 아낙사고라스의 nous 개념에서 드러난 기계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극복하여 목적론적 세계관을 수립하였다. 이를 철학적 유산으로
물려받은 플라톤은 목적론의 범위를 우주론에까지 확장하였다. 그의 만년의
우주론적 저작 티마이오스 는 목적론적 세계관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우주는 창조자의 창조작업에 의한 결과물로서, 이전의 무질서하고 혼돈
가운데 있는 물질적 질료에 기하학적 비례가 부여됨으로써 질서 있고 조화
로운 상태가 되었다. 우주의 창조자 혹은 제작자인 데미우르고스가 이렇게
아름다운 우주를 만들게 된 동기는 자신의 선함(to agathon)을 모든 것이
닮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영원하고 완전한 선의 이데아를 본
으로 삼아 비한정적인 물질적 재료들에게 적도(to metrion)를 한정시킴으로
써 선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주의 제작자
데미우르고스는 측정술(metrētikē)을 행사하는 탁월한 장인(匠人)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구체적인 작업에서 우주 몸체가 물 불 공기 흙이라는 4원소를 통
해서 만들어지고, 다음으로 우주혼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적용되는 수학적
비례가 대단히 난해하다. 여하간 우주몸체 안에 우주혼이 들어감으로써,
운동하고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우주가 탄생하게 되고, 플라톤은 이것을
살아있는 신(神)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런데 플라톤은 nous가 혼과 떨어져
있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nous와 혼의 관계 그리고 데미우르고스의 정
체성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를 통해서, 이 우주가 신(神)
* 이 논문은 2013학년도 경북대학교 학술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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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목적론적 계획 아래 만들어졌으며, 신의 선함(좋음)과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닮은 유일한 천구(天球)임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주 안에 깃든
질서와 조화를 인간이 마땅히 본받을 때, 개인과 국가의 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임을 말하고 있다. 개인과 국가는 우주가 그러하듯이 선한
nous의 통치와 지배 아래 있을 때, 궁극적으로 신의 목적과 계획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 주제분야 : 서양철학, 존재론, 우주론
* 주 제 어 : 창조, 우주지성, 우주혼, 신, 데미우르고스

Ⅰ. nous와 아르케(archē)
철학 곧 philosophia(지혜사랑)는 가시적인 현상세계의 이면에 있는 본질
내지 근원을 묻고, 이에 답하려는 지적 활동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종말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
는 시작과 끝이 없이 영원토록 존재할 것인가? 이 세계는 저절로 있게 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인가? 형이상학적 동물인 인간은
이러한 궁극적 문제를 묻지 않으려야 묻지 않을 수 없고, 그 물음에 대답
하려야 대답할 수 없어서 고뇌하는 존재이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예외 없이
이러한 세계의 기원문제 앞에서 그들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최대한 발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그들의 창조신화였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神統記)에 따르면, 땅의 여신 Gaia가 하늘의 신
Ouranos와 결합하여 많은 것들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발설되었는지 알기 어려운 신(神)에 관한 이야기(mythos) 즉 신화(神話)는
그 내용을 확장해가면서 긴 세월동안 희랍인들의 정신세계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인간 정신의 성숙과 그리스 문명의 진보로 말미암아 신화적 종
교 안에서의 맹목적 신앙의 아성(牙城)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학적
탐구와 논리적 사고는 세계 내지 우주의 아르케(archē)를 새로운 각도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종교에서 철학에로, 뮈토스(mythos)에서 로고스(logos)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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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의 이동은 희랍정신사에서 대 혁명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올림포스의 신(神)들은 거인(巨人)들의 반란으로 몰락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탈레스의 ‘물’에서부터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에 이르기까지, 자연 철학자
들이 탐구한 아르케는 신이 아니라 물질적인 원소였다. 시작, 원리, 지배
등의 의미를 지닌 ‘아르케’는 희랍자연철학의 핵심주제로 자리잡았다.
물, 아페이론(apeiron), 공기, 불을 거쳐 엠페도클레스의 ‘물 불 공기 흙’,
아낙사고라스의 ‘씨앗들’(spermata)에 이르는 동안, 물질적 구성의 시작과
운동의 원리에 관한 문제가 줄곧 대두되어 왔다.
아낙사고라스도 무수한 종류의 씨앗들에서 어떻게 물질적 세계가 구성
되며, 어떤 원인에 의해 우주의 질서가 야기되는지를 설명해야하는 과제
를 안고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이전의 철학자들에게는 없었던 ‘nous' 개
념을 자신의 체계 속에 도입하였다. 파이돈 (97c) 편에 의하면, 아낙사고
라스가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며 그것들의 원인으로 되는 것
은 결국 nous(지성)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nous
가 모든 것에 질서를 지어주고 각각의 것이 최선의 상태에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아낙사고라스는 “사물들에 대한 질서부여와 관련된 어떤 원인들을 그것
에는 돌리지 않으면서도, 공기와 에테르, 물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이
상한 것들을 원인으로 주장하였다”는 것이다(98b-c). 다시 말하자면 아낙
사고라스는 nous를 우주 질서의 원인으로 설정해 놓았으나 선(to agathon)
혹은 좋음의 관점에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그
것들 각각에 대한 원인과 공동의 모두에 대한 원인을 제시한 다음에는,
이들 각각에 가장 좋은 것과 이들 모두에 공통되는 좋은 것을 덧보태어
설명해주리라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아낙사고라스의 이러한 nous관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기계론은 자연의 영역에서건 인간의 영역에서건 간에
사물과 사태에 대해 ‘어떻게’를 답할 뿐, ‘왜’에 대해서 즉 목적과 이유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감행할 수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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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하고 독배를 기다리는 현상에 대해서, 기계론은 그의 뼈, 힘줄, 살,
피부의 어떠함으로 인해 감옥에 앉아있다고 설명할 뿐이다(98c-d). 이유인
즉 원래 아나사고라스가 nous를 우주질서의 원인으로 상정할 때, 단지 혼
돈상태에서 운동이 결여된 물질의 덩어리에 최초의 회전운동을 일으킨
원동자(原動者)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

사물과 사태의 물리적 인과관계를 문제 삼는 기계론과 세계의 존재이유


와 운동방향을 선(善) 혹은 좋음이라는 가치실현에서 바라보는 목적론은
애당초 같은 멍에를 맬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것은 ‘왜 사물이
현재의 상태대로 있을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nous가 사물들을
가장 좋은 상태에 있게끔 배열하고 조처했기 때문이다.’라는 대답이었다.
이처럼 목적론적 원인이 사물의 참된 설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의 nous는 비록 기계론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
하였으나 기계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궁여지책(deus ex machina)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는 당시 유물론적 기계론의 운명적 한계를 예감하고 물질적 차원을
넘어선 nous를 제시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는 “영혼을 돌보는 것이 인간의 최대 관심
사이어야 한다.”, 그리고 “다이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라고 설파하였
다. 왜냐하면 그는 영혼과 그 속에 깃든 다이몬이 인간의 삶에 질서를 부
여하고 인생의 목적인 덕(arete)을 실현시키기 때문이다. 그가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애지자(philosophos)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내면
에서 들려오는 다이몬 곧 nous의 소리를 청종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nous가 모든 행동을 일으키고 지배하는 원인이자 원리(archē)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덕(德)을 실현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소크라테스의 목적
1) W.K.C. Guthrie,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Ⅱ(Cambridge, 1965), 272-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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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적 인간관은 주지하다시피 그의 제자 플라톤에게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영혼의 기능이 훌륭하게 발휘된 상태를 의미하는 ‘아레테’는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 나아가서 우주의 영역에로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다.
덕스러운 개인, 정의로운 국가, 조화로운 우주가 플라톤 철학의 기본
구도이자 목표이다. 그의 인식론, 존재론, 영혼론, 가치론은 모두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전기에 속하는 저작들로 분류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편들’이 모두 개인적 차원의 덕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면, 전기의 마
지막을 장식하는 대작(大作) 국가 는 국가적 차원의 덕 곧 국가의 정의
(正義)를 겨냥하였다. 이윽고 생의 말년에 이른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에서
우주적 차원의 덕 곧 조화(kosmos)를 그려내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개인
과 국가의 관계가 소문자-대문자의 관계와 같다면, 개인 및 국가와 우주
간의 관계는 소우주-대우주라는 관계와 같은 것이다.( 국가 368e-369a).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이상적 개인의 존재론적 토대가 되듯이, 이상적인
우주는 이상적 인간과 사회의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 우주 곧 자연세계의
이상적인 질서와 조화가 인간의 실천적 영역의 본(本)이 되므로, 우리는
마땅히 이를 본받아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해보자면, 이 우주는 시작(archē)을 가지며 신화
속의 신들이 바로 그 시작이라고 믿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부터 태동한 과학적 철학적 사고(logos)는 자연의 재료 가운데서
아르케를 찾았고, ‘물’에서 시작하여 ‘원자’에까지 탐구의 수준을 높여갔다.
하지만 유물론에 근거한 기계론적 세계관은 세계의 물리적 운동을 역학적
인과관계로 해명하는 데 그칠 뿐, 가치지향적인 존재의 목적과 이유를 밝힐
수 없었다. 따라서 세계관의 전환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에서 소크라테스
는 인간 행동의 아르케를 ‘다이몬’에서 찾았고, 제자 플라톤은 이를 확장하
여 인간과 우주를 관통하는 아르케를 nous라고 상정하였다. 인간적 nous
곧 인간적 지성(知性)이 인간 존재의 시작과 지배원리가 되듯이, 우주의
기원과 지배원리도 우주적 nous 곧 우주적 지성이라는 것이 그의 근본적
신념이었다. 이처럼 목적론자인 플라톤이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주의
물질적 생성과 운동에서라기보다 가치실현 즉 선(좋음)의 실현에 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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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다. 그러므로 그의 nous는 우주의 질서와 균형과 조화에서 비롯되는
우주적 선(to agathon)의 시작과 원리(archē)이자 원인(aitia)이 된다.

Ⅱ. nous와 선한 우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플라톤의 nous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원인일
뿐 아니라 그것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낙사고라스의
nous는 우주의 질서부여자로 상정되었지만, 정작 명실상부한 기능을 발휘
하지 못하고 말았다. 파이돈 (97c)에서 대화의 주인공 소크라테스는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고 질서의 원인이 되는 것은 nous라고 말한 아낙사고라스에
대해 비판하였으나, 정작 nous가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구체적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뿐만 아니라 다른 후기 대화편들에서도 nous가
질서부여의 원인이라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모든 것과 이 우주는 비이성적이며 무계획적인 힘과 우발적인 것이 지배
한다고 우리는 말해야 할까, 아니면 반대로 우리의 선인(先人)들이 말했듯이,
nous와 어떤 놀랍고 질서를 잡아주는 지혜(phronesis)가 조종한다고 말해야
할까?
nous가 바로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주와 해, 달, 별들
그리고 모든 회전운동의 광경에 대해 합당하거니와, 그것들에 대해서 저로
서는 결코 달리 말하지도 달리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 필레보스 28d-e)
2)

후기 대화편 티마이오스 에서 플라톤은 이 미결된 숙제를 집중적으로


풀기 시작한다. 어떻게 nous가 혼돈 상태에 있는 물질세계에 질서를 부여
2) 박종현 역, 필레보스(서울: 서광사, 2004).
본 논문에서 플라톤 저작의 인용문은 모두 박종현 교수의 번역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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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조화로운 우주를 탄생시키는지를 티마이오스 편에서 자세히 기술


하고 있다.
그는 먼저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27c-29d)에서 자신의 우주론적 탐구의
성격과 범위를 밝히고, 이어서 우주 창조의 동기와 순차적인 창조작업을
서술해 나간다.
티마이오스 의 본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Ⅰ부> 지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29d-47e), <Ⅱ부> 필연의 산물들, <Ⅲ부> 지성과 필연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의 우주론을 통해서 nous의 활동
영역과 활동방식을 밝힘으로써 nous가 어떻게 우주생성의 아르케이면서
동시에 우주질서의 원인(aitia)이 되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자신의 우주론을 세부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존재와 생성
의 구분, 생성의 원인 곧 창조자, 생성의 본(本)이라는 큰 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 판단으로는 먼저 다음 것들이 구분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존재하는 것’(to on aei)이되 생성(genesis)을 갖지 않는 것은 무엇이고, ‘언제나
생성되는 것’(to gignomenon aei)이되 결코 존재하지는 않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입니다. ... 한데, 생성되는 모든 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원인이 되는
어떤 것에 의해 생성됩니다. 그런데 무엇을 ‘만드는 이’(demiurgos)는 그가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바라보며, 이런 걸 본(paradeigma)으로 삼고서,
자기가 만드는 것이 그 형태와 성능을 갖추게 할 경우에라야, 이렇게 완
성되어야만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됩니다. ... 그것(우주)은
생성되었습니다. 그것은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것이며, 몸통(sōma)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27d-28b)
위의 인용문에서 분명히 드러난 내용은 우주 생성의 원인(aitia)이 ‘데미
우르고스’라는 점과 그에 의해 만들어진 우주는 본(本)이 되는 이데아계의
모사물로서 생성계에 속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생성의 원인인 데미우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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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생성의 본, 생성된 우주라는 3요소가 그의 우주론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 삼자(三者)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다.
“이 우주(to pan)의 창조자(poiētēs)와 아버지 (patēr)를 찾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거니와, 찾아낸다 하더라도 모두를 상대로 이를 말해준다는 것은 불
가능합니다. ... 만약에 이 우주(kosmos)가 과연 아름답고 이를 만든 이
(dēmiourgos) 또한 훌륭하다면, 그가 영원한 것(to aidion)을 바라보고서 그랬을
것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 왜냐하면 생겨난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우주이며, 원인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이 그걸 만든 이이기 때문
입니다.”(28c-29a)
여기서 ‘영원한 것’이란 다름 아닌 ‘선(善)의 이데아이다. 자기 동일성
을 갖는 불변의 영원한 실재는 선 혹은 좋음 그 자체이기 때문에, 훌륭한
장인(匠人)이 이를 본으로 삼아 만든 이 우주는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
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주를 만드는 데미우르고스는 티마이오스 에
서 아버지(patēr), 제작자(poitēs), 지성(nous), 신(theos) 등으로 명명되는데,
통상적으로 우주 생성과 질서 부여의 원인이 되는 nous를 의인화(擬人化)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플라톤이 만듦의 관점에서 우주생성을 설명하고,
만듦이 성립하려면 무엇보다 만듦의 원인(aitia)이 되는 장본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는 기독교의 전능한 하나님


과 다르다. 데미우르고스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가 아니라,
주어진 재료를 갖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가는(demiourgia) 우주
제작자일 뿐이다. 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가 우주를 만든 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3) 박종현, 희랍사상의 이해(서울: 종로서적, 1982), 187쪽.


nous, 세계영혼 그리고 신(神) 개념과 연관된 데미우르고스의 정체성 문제는 뒷부분
에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티마이오스 에서 데미우르고스의 정체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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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nous’개념 (김윤동) 117

그러면 이 우주를 구성한 이(ho synistas)가 무슨 까닭으로 일체 창조물과



이 우주를 구성했는지를 말해보도록 하죠. 그는 선한 이었으니, 선한 이에
게는 어떤 것과 관련해서도 그 어떤 질투심이든 일어나는 일이 결코 없습
니다. 그는 질투심에서 벗어나 있어서, 모든 것이 최대한으로 자기 자신과
비슷한 상태에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바로 이것을 생성과 우주(kosmos)의
무엇보다도 가장 주된 원리(archē)로서 지혜로운 사람들한테서 받아들인다면,
그 받아들임은 지당한 것입니다.” (29d-30a)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데미우르고스의 우주창조 혹은 우주제
작의 동기는 우주가 자신의 선(좋음)을 닮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
것이 우주가 만들어진 가장 주된 이유이자 원리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목
은 마치 구약 성경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장면과 유
사하다. 빛, 궁창, 땅, 식물, 동물을 만들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였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짓고 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
였다. 특히 인간을 창조한 다음,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간 것은 그의 창조
작업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
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라는 구절은 창조 작업의 정점에 있는 인간
이 하나님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플라톤의 데미
우르고스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전능자도 아니고 ‘하나님’같은 유
일신도 아니지만, 자신의 선, 좋음, 훌륭함을 제작물인 우주를 통해서 나
타내고자 함에 있어서는 양자가 너무나 유사하다. 그리고 데미우르고스가
자신과 닮은 우주를 만들겠다는 분명한 소원과 욕구를 가지고 작업에 임
하고, 또 ‘헤아림을 통해서’(dia tou logismon) 지성을 혼 안에 넣고 혼을
몸통 안에 넣게 했다는 점에서, 소원, 계획, 의도, 숙고를 지닌 사유하는
지성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창조 작업이 이루어져갈 때,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감정을 지닌 인격적 신(神)의 모습을 보인다.
이것(우주)을 생기게 한 아버지가 이것이 영원한 신들의 상(像)으로서 생

겨나 운동하게 되고 살아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경탄하며 기뻐한 나
머지, 그것을 그 본(本)에 대해 한결 더 닮은 것으로 만들어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37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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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창조 신화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비
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를 두고 고래로부터 끊임없는 논
쟁이 있어왔다. 다시 말하자면 플라톤이 우주의 창조를 실제적 사건으로
믿었는지, 아니면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창조 신
화를 동원한 것인지의 문제이다. 이러한 쟁점은 티마이오스 의 저작
4)

성격뿐만 아니라 우주 질서의 원인이 되는 데미우르고스의 인격성, 그리고


nous의 초월성과 내재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섣불리 판정내리기는 어려우나, 플라톤이 굳이
신화의 형식을 빌어 우주의 생성을 설명한 이유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가 우주가 생성의 시간적 시점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무엇
때문에 창조 신화의 형식을 빌어 와서, 마치 자신이 창조의 현장을 본 듯
이 묘사하였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플라톤은 국가 의 ‘선의 이데아’에
이르러, 이 세계가 이데아의 모사(模寫)라는 것을 확정지었다. 철학자의
‘디아렉티케’(dialektikē)는 바로 ‘선의 이데아’에 도달하기 위한 오름길이
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과제는 ‘선의 이데아’를 정점으로 하는 이데아계
가 현상계에 어떻게 실제적으로 분유(分有)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를 형상인식의 오름길과 만듦의 내림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5)

인간 세계에서 이러한 과업은 국가 에서 철인왕이, 법률 에서는 입


법가가 떠맡게 된다. 그렇다면 전체 자연 세계 곧 우주 안에서는 누가 이
임무를 완수할 것인가? 그가 바로 우주적 장인(匠人) 데미우르고스이다.
이 우주는 처음부터 원래 질서, 균형, 조화를 갖춘 모습이 아니라 혼돈과
무질서 가운데 있는 물질적 재료들로부터 신적 제작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세계의 생성 근거를 밝히기 위해서
플라톤은 세계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질서한 물질적
세계(필연)를 질서의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질서의 본(本) 곧 ‘선의
4) 박종현 김영균(공동역주),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서울: 서광사, 2000), 77쪽
전자의 편에는 Aristotles, Vlastos, Hackforth, Guthrie 등이고,
후자의 편에는 Proklos, Taylor, Cornford, Cherniss 등이 속한다.
5) 박종현, 티마이오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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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nous’개념 (김윤동) 119

이데아’와 본에 따라 질서를 부여하는 기술과 힘이 필요하다. 이처럼 지


금의 우주를 이전의 혼돈에서 질서로 전환된 것으로 보는 것이 플라톤의
우주관이라면, 그러한 전환에는 반드시 실제적인 전환의 시점이 있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사료된다.

Ⅲ. nous와 측정술(metrētikē)
플라톤은 이제 구체적인 제작의 원리를 우주의 몸체(cosmic body)을 만
드는 데에 적용시킨다(31b-34a). 상당히 복잡하게 설명되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 우주가 유일성의 측면에서 ‘완전히 살아
있는 것’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의 천구(ouranos)가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 제작의 본(本)이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닮은
우주는 당연이 하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단일성은 완전
성을 의미하는 바, 우주가 단일할 때 더 좋은 것이 된다(33a). 이제 물질
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물 불 공기 흙을 기하학적 비율에 따라 결합
시키고, 이것을 결합시킨 이(ho syndēsas) 말고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해체되지 않게 하였다. 이렇게 하나뿐인 유일한 우주는 전체로서 살아있
는 완전한 것으로서 늙지도 병들지도 않게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우주는
자신 안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포용하기 위해서 구형(球形)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리하여 구성한 이(ho syntheis)는 모든 것을 자신 안에서 스스로
겪기도 하고 작용을 미치게도 하게끔 자족적(自足的)이게 하였다. 그리고
전후 상하 좌우 회전이라는 7가지 운동 가운데 지성(nous)과 지혜(phronēsis)
에 가장 많이 연관되어 있는 운동 즉 같은 방식으로 같은 곳에서 그리고
자신 안에서 도는 회전운동을 하게 하였다(34a). 그런데 우주의 몸체가 회전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혼이 자리 잡고, 몸체 전체에 뻗쳐 있을
뿐만 아니라 몸체를 밖에서 혼으로 감싸야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회전하는
유일한 우주는 자기 이외에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행복한 신(神)으로 탄생하였다(3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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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哲學硏究 第137輯
이제 데미우르고스는 우주 혼을 제작하는 일에 착수하는데, 이 작업의
설명도 우주 몸체 못지 않게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이 두 영역에 공
통적인 원리는 기하학적 비례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우주 혼과 우주 몸의
양자관계에서, 전자는 후자보다 출생에서나 훌륭함에서나 앞서고 혼이 몸
의 주인이고 몸을 다스리는 자임을 먼저 밝히고 있다(34c). 그리고 나서
데미우르고스는 ‘불가분적이고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존재(ousia)’와
‘물체들에 있어서 생성되고 가분적인 존재’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셋째
종류의 존재’를 혼합한다. 그리고 ‘동일성’과 ‘타자성’을 ‘존재’와 함께 혼
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만들고, 다시 각 부분으로 분할하여 1,2,4,8의 2배
간격과 1,3,9,27의 3배 간격이 되게 한다.
그리고 이 전체 구조를 길이로 둘로 가르고, 그 둘을 x자 모양으로 중점
이 서로 교차하도록 한 다음, 그 각각이 원형으로 하나를 이루게 구부린
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 원을 하나는 바깥쪽으로, 다른 하나는 안쪽으로
돌게 하였는데, 전자를 ‘동일성의 운동’, 후자를 ‘타자성의 운동’이라고
명명하였다(35a-39c).
혼은 천구(天球)의 중심에서 바깥쪽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향으로 엮이어

있고 또한 천구를 바깥쪽에서 둥글게 에워싸고 있어서, 자신 안에서 스스로
회전하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슬기로운 삶의 성스러운 시작을 보게 되었
습니다.”(37e)
우주 혼과 우주 몸체라는 ‘nous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의 작업특징을
말하자면 전체로서의 단일성과 기하학적 비례에 따른 결합과 분할이다. 6)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주제작의 본은 단일성을 그 본성으로 갖고 있는 바,


이의 모사물이 최대한 닮은 것으로 지어지기 위해서는 단일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우주의 몸체도 단일한 것으로 구성되고, 그 속에 깃들게
되는 우주 혼도 단일한 전체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될 때 우주가 전체적인
6) 김영균, 플라톤의 우주론에 있어서 지성(nous)에 관한 연구 (철학 55집, 한국철
학회, 1998),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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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nous’개념 (김윤동) 121

통일성 속에서 질서와 조화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데미우


르고스가 이데아를 본으로 삼아 우주를 생성시킬 때, 기하학적 비례에 입
각하여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kosmos)로 만들어지기 전의
물질적 재료는 혼돈과 무질서 가운데서 ‘비례(logos)도 없고 척도(metron)도
없는 상태’(53a)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의 몸을 이루는 4원소들도
기하학적 비례로 구성되고, 우주 혼도 역시 수학적 비례에 따라 구성되어
운동을 한다. 이렇게 볼 때, 기하학적 비례 관계로 만들어진 것은 질서와
조화를 갖추게 되며, 이를 통해서 이데아(본)와 nous(제작자)의 선(to agathon)
이 제작물에게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기하학적 비례는 단순히 산술적, 도형적 비율만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물들이 질서와 조화를 갖춤으로써 선(좋음)
을 실현하게 되는 조건을 의미하는데, 이를 플라톤은 적도(to metrion) 혹
은 균형(symmetron)이라고 부른다. 데미우르고스 앞에 주어진 무질서한
물질적 재료들은 ‘한정지어지지 않은 것’으로 ‘비한정자’(to apeiron)이다.
‘더하거나 덜하거나’ 혹은 ‘지나치거나 모자라거나’ 한정되지 않은 상태
를 한정시키는 것을 ‘한정자’(to peras)라 부른다. 우주제작의 본이 되는
이데아는 바로 플라톤이 ‘필연’(anankē)이라 명명한 ‘비한정자’에게 한정
을 부여하는 ‘한정자’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비한정자’와 ‘한정자’가 혼
화(symmixis)될 때, 질서와 조화를 지니는 우주가 생성되는 것이다. 기하
학적 비례(logos) 혹은 적도(適度)는 이렇게 비한정적인 것을 한정시키는
원리이며, 이데아 세계와 ‘필연’의 세계가 만날 수 있는 매개로서 기능한
다. 우주를 만드는 장인(匠人) 데미우르고스는 각 사물의 조건에 적절한
한정의 정도 곧 ‘적도’(to metrion)를 부여하는 탁월한 기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수(數)를 개재시킴으로써’(entheisa arithmon) 불균형적이고 비
한정적인 것을 질서와 조화를 갖춘 것으로 변화시키는 자이다( 필레보스
25d-e). 이렇게 비한정자와 한정자를 혼합하고 무질서에 질서를, 불균형에
균형을 가져오도록 적절한 정도를 측정하는 기술이 곧 ‘측정술’(metrētikē)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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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哲學硏究 第137輯

“이미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측정술을 이처럼 둘로 나누어 구별한 것이네.


즉 그것의 한 부분은 수와 길이와 넓이와 속도를 ‘반대되는 것’과 관련해서
측정하는 모든 기술들이지만, 다른 부분은 ‘적도’와 ‘적정함’과 ‘때맞음’과
‘마땅함’ 그리고 ‘극단을 피하고 중간으로 향한 모든 것’과 관련해서 측정
하는 모든 기술들이네.”( 정치가 284e) 7)

이처럼 플라톤은 상호대립적인 두 항(項) 간의 양적 관계를 재는 기술


과 적도를 창출하는 기술이라는 두 종류의 측정술을 언급한다. 전자는
‘서로에 대한 큼과 작음의 상호관계에 관련된 것’이지만, 후자는 ‘생성의
불가결한 성립에 관련된 것’이다. 데미우르고스의 측정술은 후자에 해당
하며, ‘적도를 보존함으로써’(to metron sōzousai) 온갖 좋은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완성해 낼 수 있다.( 정치가 284a)
모든 좋은 것(to agathon)은 아름답고(kalon), 아름다운 것은 불균형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것으로 될 생물은 균형잡힌 것(symmetron)이라
보아야만 합니다.”(87c)
데미우르고스의 우주제작술은 다름 아닌 측정술이며, 더 정확히 말해
적도를 창출하는 기술이다. 각각의 사물이든 전체로서의 우주이든 간에
적도가 들어가면 질서, 균형, 조화를 갖게 되고, 이러한 요소들은 사물들로
하여금 좋음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도록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데미우
르고스는 적도와 균형이라는 사물의 구조적 측면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구성자’(ho synistas) 혹은 ‘구조결합자’(ho tektainomenos)라고 할 수 있다.
8)

처음에도 언급되었듯이, 이것들은 무질서한 상태에 있었는데, 신[데미우



르고스]이 이것들 안에 ... 균형(symmetria)들이 생기도록 했으니, 이는 비율
이 맞고 균형이 잡힐 수 있는 모든 것이며 가능한 모든 방식의 것이었습
니다. ... 그는 이 모든 것에 처음으로 질서를 잡아주고, 그 다음에 이것들
7) 김태경 역, 정치가(서울: 한길사, 2000), 164쪽.
8) 김영균, 플라톤의 우주론에 있어서 지성(nous)에 관한 연구 ,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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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nous’개념 (김윤동) 123

물 불 공기 흙]로 이 우주를 구성했으니, 이것은 자신 속에 있는 모든 사


[
멸하는 생물과 불사하는 생물 [천체들]을 품고 있는 ‘하나의 살아있는 것’
입니다.”(69b-c)
자신의 선함(to agathon)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닮게 하기 위해서,
영원히 존재하는 이데아를 본으로 삼아 무질서와 불균형의 상태에 있는
물질적 재료에 적도(to metrion)를 창출하는 측정술을 행사함으로써 데미
우르고스의 선하고 아름다운 우주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Ⅳ. nous와 데미우르고스
티마이오스 는 이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또 어떤 목적으로 지어
졌는가를 밝히는 플라톤의 우주론적 저술이다. 이 우주는 누군가의 창조
작업에 의해 생겨난 제작물이며, 그 이전에는 무질서 가운데서 혼돈상태에
있는 물질적 재료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 혹은 제작에는 세 요소가
필수적이다. 이는 제작을 위해 주어져야 하는 물질적 재료와 제작의 본(本),
그리고 제작을 이행하는 데미우르고스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대상이 데미우르고스 개념이다. 다시 말해 데미우르고스의
정체 혹은 존재론적 위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티마이오스 연구가들
사이에서 큰 이견의 편차를 보이고 있다.
제일 먼저 데미우르고스와 선의 이데아의 관계 문제이다. 앞서 살펴보
았듯이(29e), 우주를 구성한 자 곧 데미우르고스가 모든 것이 자신의 선함
과 최대한 닮은 상태가 되기를 바라는 동기에서 이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 즉 ‘영원한
것’(to aidion)을 바라보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이 본(本)
은 선의 이데아이다. 그렇다면 데미우르고스의 선함과 선의 이데아의 선
함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양자를 별개의 것으로 설정할 때, 이런 곤란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데미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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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哲學硏究 第137輯
고스와 선의 이데아를 동일시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 유리하다. 말하자
면 데미우르고스의 맞은편에 본으로서의 선의 이데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그 본이며, 동시에 세계를 생성시키는 원인도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인식과 인식 대상, 주체와 객체가 하나를
이룬다.
이러한 해석의 배경에는 기독교적 신관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른다. 구
약성경의 창세기 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
람을 만들고”(창1:26)라고 했을 때, 그 형상과 모양은 곧 하나님 자신을
일컫는다. 인간을 포함한 천지 창조의 본도 하나님 자신이고 창조의 원인
즉 작용인(作用因)도 자기 자신이다. 한편, 이와는 조금 다른 노선에서 우주
제작자와 제작의 본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Archer-Hind는 티마이오스
가 유일하게 플라톤주의가 완전하고도 치밀한 일원론적 관념론(monistic
idealism)의 체계임을 인지시켜준다고 하였다. 그의 무리하게 보이는 이 9)

런 주장은 헤겔의 관념론의 영향 아래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는 헤겔의 ‘절대 정신’으로 각색되어 자기를 현현(顯現)시키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주로 드러난다고 해석한다.
다른 한편, 데미우르고스의 작용인으로서의 역할을 중시하다보면, 기독
교의 여호와처럼 유일신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 우주
의 생성동기가 데미우르고스의 선한 본성을 닮도록 하려는 것이며, 그의
넘치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주가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으로 제작되었음을
강조한다. 특히 데미우르고스의 유일성에 따라서 이 우주도 유일한 것이
10)

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는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임이 틀림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플라톤의 신(神) 개념이 성경의 유일신과 달리 불멸적인 것,
완전한 것, 영원한 것에 적용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티마이오스
에서 데미우르고스는 물론이려니와, 그가 만든 우주와 별들과 지구, 나아가
인간 영혼까지 ‘신’ 혹은 ‘신적인 것’(ho theion)으로 명명된다. 만물의

9) R.D. Archer-Hind, The Timaeus of Plato(Arno, Press, 1973), 2 .

10) A.E. Taylor, A Commentary on Plato’s Timaeus(Oxford, 1962), 7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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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nous’개념 (김윤동) 125

원인(형상인)으로서의 여러 이데아들이 점차 이데아 중의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로 일원화되어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면, 마찬가지로 만물을 생성케
하는 원인(작용인)들 중에서 궁극적 원인이 바로 신들 중의 신인 데미우
르고스가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데미우르고스를 유일신과 동일시하는
견해를 간과하기 어렵다.
데미우르고스는 이 우주를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들었다.
이 때 ‘살아있다’는 것은 ‘운동하고 있다’는 뜻이고, 운동이 가능한 것은
‘혼’(psyche)이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혼은 ‘스스로 운동하는
것’(to hauto kinoun)이며 따라서 모든 ‘운동의 원인’으로 간주된다.( 파이
드로스 245c) 따라서 데미우르고스는 우주가 살아있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런 물질적인 것 안에 운동을 일으키는 혼을 넣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연고로 이데아적인 동일성과 질료적인 타자성을
존재와 혼합하여 혼을 만들고 ‘동일성의 궤도’와 ‘타자성의 궤도’를 돌게
하였다. 이리하여 혼은 nous 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를 매개하는 중간
자가 되었고, 이 세계는 혼으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우주 몸체가 혼을 담음으로써 운동하는 생명체가 되었다면, 다른 한편
이 우주혼은 nous(지성)를 자신 안에 담음으로써 조화와 질서를 갖춘 우주
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질서와 조화의 원인은 혼 자체에서가 아니라
nous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데미우르고스 생명 이전의 세계를 살아있는
우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의 매개가 필요했기 때문에 혼을 우주
몸체에 넣었다. 마찬가지로 무질서한 질료의 세계를 질서 잡힌 우주로 바
꾸기 위해서 nous를 혼 안에 넣어야만 했다.
그는 nous를 혼 안에, 혼은 몸체 안에 함께 있게 하여 이 우주를 구성하

였는데 ... 이 우주는 진실로 신의 선견과 배려에 의해서, 그 안에 혼을
지녔으며 또한 지성을 지닌 살아있는 것으로 생기게 된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3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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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哲學硏究 第137輯
여기서 데미우르고스와 우주혼의 관계가 진지하게 숙고될 필요가 있다.
글자 그대로의 표현을 받아들인다면, 데미우르고스가 우주 몸체 안에 우주
혼을 넣고, 또 우주 혼 안에 nous 곧 우주 지성을 넣었으니까 데미우르고
스, nous, 혼이라는 세 가지 존재가 된다. 하지만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에서 데미우르고스와 nous 그리고 신(神)을 혼용하고 있으므로, nous와 혼의
관계가 문제로 남는다. 그런데 “nous는 혼(psychē)과 떨어져서는 어떤 것
에도 있을 수 없다.”(30b)는 선포를 수용하면, 결국 데미우르고스가 혼에
내재하는 셈이므로 데미우르고스는 우주 혼 안에 들어 있는 nous가 된다.
그리고 데미우르고스의 창조 내지 제작활동이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고
살아있는 것이 되게 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활동 곧 운동은 혼의 본성이
아니겠는가? 요컨대 운동의 원인이 혼이고 데미우르고스의 작업도 운동
이라면, 혼 안에 깃든 nous 곧 데미우르고스는 다름 아닌 혼이 아닌가? 11)

그러나 이런 해석은 운동의 원인으로서의 혼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럴


듯한 설득력을 가지나, 텍스트에서는 데미우르고스가 우주 혼을 만드는
이유와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데미우르고스와 혼 즉 제작자와
제작물의 관계를 무시하고 양자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인 듯이 보인다.
데미우르고스가 우주혼이나 혼 안에 들어있는 nous도 아니라면, 우주
바깥에 있는 초월적 nous가 되는 길밖에 남아 있지 않다. 티마이오스 의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묘사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분명히 이데
아를 본(本)으로 하여 무질서한 질료에다가 기하학적 비례를 통해 질서를
부여한 초월적 신(神)이다. 따라서 그는 세계를 만든 창조자 내지 제작자
12)

이지 결코 피조물 혹은 제작물이 아니며 그 안에 깃들 수도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nous가 혼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는 명백한 선언
이 초월적 nous의 발목을 붙잡는다.( 필레보스 30c, 티마이오스 30b).
11) G.M.A. Grube, Plato’s Thought(London, 1970), 141-145 쪽
H. Cherniss, Aristotle’s Criticism of Plato and the Academy(New York, 1944), 607
-609쪽
12) R. Hackforth, Plato’s Theism , R.E.Allen(ed), Studies in Plato’s Metaphy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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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nous’개념 (김윤동) 127

그렇다면 초월적 nous와 내재적 nous는 어떤 관계인가? 데미우르고스는


어느 한편에 속하는가 아니면 양편 모두에 속하는가?
nous 의 초월성을 강조하면 데미우르고스는 세계 밖에서 유일신 같은
면모를 갖춰야 하고, 내재성을 강조하면 우주 혼 안에 깃든 nous, 실제적
으로는 우주혼과 동일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데미우르고스가 유일신도
우주혼도 아니라면 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여기서 nous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포괄하려는 해석이 등장한다. 먼저 nous가 혼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모든 nous가 혼 안에 있을 필요는 없으므로, 데미우르고스는 초월적
nous일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 나아가서 초월적 nous와 내재적 nous가
13)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후자는 전자의 ‘자기 투사’(self-projection)이며, 혼에


투사되기 때문에 혼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nous의 14)

초월성과 내재성을 모두 아우르는 방안으로서, nous를 하나의 ‘개체’


(l’individu)로서가 아니라 ‘기능’(la fonction)으로 이해할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nous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께 살리려는 앞의 세 가지
15)

해석을 종합하면, 창조 신화의 형식을 빌려서 인격화된 신(神) 데미우르고스는


우주 창조 작업을 통해서 이데아계와 현상계를 매개하는 nous적 기능이다.
이 기능을 발휘함에 있어서 초월적 기능과 내재적 기능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16)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데미우르고스의 정체성은 티마이오스 에


서 개진된 플라톤의 우주론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플라톤 자신은 이에 대해 “이 우주의 아버지를
찾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거니와, 찾아 낸다 하더라도 모두를 상대로 이를
말해준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28c)라고 말할 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아 후대의 연구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13) R.D. Mohr, Platonic Cosmology(Leiden, 1985), 181 . 쪽


14) R. Hackforth, Plato’s Philebus(Cambridge, 1972), 57 . 쪽
15) L. Brisson, Le même et l’autre dans la structure ontologique du Timée de Platon(Paris, 1974),

32-35 .
16) 김유석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에 관하여 사색 집 숭전대철학회
, (  13 , 쪽
, 1997),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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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哲學硏究 第137輯
플라톤은 이 세계의 기원과 원리를 밝히려는 작업에서 왜 신화의 형식
을 취했으며, 데미우르고스를 인격신처럼 묘사하였을까? 희랍 신화는 아
르케를 탐구하는 희랍인들의 최초의 표현양식이었다. 그들이 그려 놓은
원인으로서의 신들은 단지 논리성(logos)을 결여한 이야기로서의 초월적
존재였다. 이후 희랍자연철학은 뮈토스를 로고스로 대체하여 세계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막바지에 이른 유물론적 기계론은 세계
내 사물들의 인과적 연관성을 해명하는데 집착한 나머지, 세계의 목적론
적 존재 이유를 놓치고 말았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목적론적 관점에서 찾았고, 플라톤은 이를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하였다.
플라톤은 세계의 존재이유를 밝히기 위해서 세계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고, 디아렉티케의 힘든 탐구 끝에, 드디어 선의 이데아를 발견(인식)
하였다. 그런데 영원한 본(本)으로서의 이데아는 어떻게 이 세계(현상계)에
현상(現像) 혹은 분유(分有)되었으며, 이 세계는 어떻게 이데아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이 문제를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에서 해명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우주 곧 현상계의 시초(archē)를 밝히려는 일에서, 불가
피하게 신화적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학적 효과를 노
려서가 아니라 세계의 시작과 창조자의 영역까지는 로고스 즉 합리적 설
명과 사고가 미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티마이오스
의 우주론이 ‘그럴듯한 이야기’(eikōs mythos)에 불과하고, 그것을 넘어 더
이상은 탐구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다(29d). 어쨌든 티마이오스
에 나타난 그의 우주론은 헬레니즘 시대를 지나 중세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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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nous’개념 (김윤동) 12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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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哲學硏究 第137輯
<Abstract>

Plato’s Concept of <nous> in Timaeus* 17)

Kim, Youn-dong

Plato learned of teleology from his teacher Socrates and expanded it to its
application in cosmology. His cosmological work Timaeus was the final
edition of teleological view. The motive that Demiurge created the cosmos
was in resemblance of his goodness. He then modeled the idea of the Good
imposing limit to the Forms of Good in a material world. In this sense,
Demiurge was an excellent creator and created the Good cosmos.
The cosmic body was made from four elements (water, fire, air, earth)
and the cosmic soul entered the cosmic body and the cosmic intelligence
(nous) entered the cosmic soul. According to these steps, this cosmos was
created and named a living god. In conclusion, Plato asserts that this
cosmos was created by God’s teleological project, and resembles the
goodness of a god. When man followed the order and balance in the
cosmos, the good of the individual and the state would be accomplished.

* Key Words: creation, cosmic intelligence, cosmic soul, god, Demiurge

■ 논문접수일: 1월 15일, 심사일: 2월 15일, 게재확정일: 2월 21일

​ ​
* http://dx.doi.org/10.20293/jokps.2016.13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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