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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이오네스코
오증자 역

등장인물
베랑제

데이지
뒤다르
보따르
빠삐용 씨
노신사
논리학자
웨이트리스
카페 주인
뵈프 부인
주부
식료품가게 주인
식료품가게 안주인
소방수
노인
노인의 아내

작품해설
1960 년 「코뿔소 」가 독일의 뒤셀도르프 초연에서 성공을 거두자 이어서 파리에서는 장 루이 바로 연출
과 주연으로 오데옹 극장에서 공연되고 , 영국에서는 오슨 웰즈 연출 ,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으로 로열
코트 극장에서 공연됨으로써 , 이오네스코는 세계적인 극작가로 부각된다 .
「코뿔소 」는 그의 초기 작품들에 비해 주제가 뚜렷하여 이해와 공감이 쉬운 작품에 속한다 . 이오네스코
는 당시 전 유럽을 휩쓸던 나치즘의 집단 본능에 대한 맹렬한 풍자로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
한 평화로운 마을에 코뿔소가 등장함으로써 마을 주민들이 속속 코뿔소로 변신하는 가운데 그들 사이
에 엇갈리는 경이와 공포가 코믹하게 전개된다 . 그러나 유행병처럼 번지는 변신에 저항하는 한 소시민
베랑제의 투쟁이 영웅적이면서도 희비극적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1976 년 극단 산울림에 의해 공연되었
음)

제 1 막

장치
시골의 어느 작은 마을의 광장 . 무대 안쪽 이층집 . 아래층은 식료품 가게의 전면 . 두세 개의 계단을 올
라가서 유리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다 . 가게 전면 위에 식료품상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도록 써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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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여져 있다 . 이층에는 두 개의 창 . 이 가게 주인들의 살림집으로 되어 있다 . 식료품 가게의 위치는 무대


안쪽으로 비교적 왼쪽 무대 뒤에서 과히 떨어져 있지 않다 .
식료품 가게 너머로 멀리 교회의 종각이 보인다 . 식료품 가게와 오른쪽 무대 사이에 골목길이 있음직
하다 . 무대 오른쪽에는 약간 비스듬히 카페의 전면 이층에 창문 하나 . 카페의 테라스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무대 중앙까지 여러 개 널려 있다 . 테라스의 의자들 옆에는 먼지가 자욱이 쌓인 나무 한 그
루가 서 있다 . 푸른 하늘에 눈부신 햇살 . 그 빛에 벽들이 하얗게 빛난다 . 여름의 어느 일요일 정오에
가깝다 . 곧 장과 베랑제가 테라스의 의지로 가서 앉을 것이다 .
막이 오르기 전에 종소리 . 종소리는 막이 오르자 몇 초만에 그친다 . 막이 오르면 한쪽 팔에는 빈 장바
구니를 , 또 한쪽 팔에는 고양이를 안은 여자가 말없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간다 . 그녀가 지나가자
식료품 가게 안주인이 가게문을 열고 그녀가 가는 것을 내려다본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아, 저 여자예요 . (가게 안에 있는 남편을 향해 ) 저 여자라구요 . 건방지게 우리집


에선 안 사가지 뭐유 .

안주인 , 들어가 버린다 .


무대는 잠시 비어 있다 . 무대 오른쪽에서 장이 나타난다 . 동시에 왼쪽에서는 베랑제가 나타난다 . 장의
옷차림은 말쑥하다 . 밤색 양복 , 붉은 넥타이 , 풀이 빳빳이 선 칼라에 밤색 모자 , 혈색 좋은 얼굴 , 반짝
반짝 닦은 크림색 구두를 신고 있다 . 베랑제는 면도도 안하고 모자도 없다 . 머리는 덥수룩하고 옷은 구
겨져 있다 . 모든 게 허술하다 . 피곤한 표정 . 졸리운 듯 이따금 하품을 한다 .

장 (오른쪽에서 나오며 ) 오긴 왔구먼 , 베랑제 .


베랑제 (왼쪽에서 나오며 ) 오랜만이야 장.
장 역시 또 지각이로군 . (팔목시계를 본다 ) 열 한 시 반에 약속을 했는데 벌써 열 두 시가 다 됐지
않아?
베랑제 미안해 . 오래 기다렸어 ?
장 아니 , 보다시피 나도 지금 오는 길이야 .

그들은 카페 테라스의 테이블로 앉으러 간다 .

베랑제 그렇다면 좀 덜 미안하군 . 자네도 역시 ….


장 아냐 , 난 달라 . 난 기다리는 건 질색이야 . 그럴 시간이 없다구 . 자네가 워낙 제 시간에 올 줄을
모르니까 내가 일부러 늦게 온거지 . 자네가 나타날 만한 시간에 맞춰서 왔단 말씀이야 .
베랑제 그건 그렇지만 … 그래두 ….
장 왜 제 시간에 왔다는 말이라도 하려구 ?
베랑제 아니 물론 … 그런 소리야 내가 어찌 하겠나만 .

장과 베랑제 , 앉는다 .

장 그야 그렇지 .
베랑제 뭘 마시겠어 ?
장 자넨 아침부터 마시겠다는 거야 ?
베랑제 하두 더워서 . 너무 가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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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장 마시면 마실수록 목을 더 마르는 법이야 . 이건 과학적인 상식이라네 .


베랑제 과학적으로 구름까지 몰아올 수만 있다면야 이렇게 가물지도 않겠고 목도 덜 마르게 될 텐데
말야.
장 (베랑제를 자세히 뜯어보며 ) 그런 건 자네가 참견할 게 못돼 . 베랑제 , 지금 자네가 마시고 싶
은게 물은 아니겠지 ….
베랑제 여보게 장, 그건 또 무슨 소리지 ?
장 왜 몰라서 묻나 ? 난 지금 자네의 갈증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세 . 자네의 갈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
베랑제 그 말을 들으니 마치 ….
장 (베랑제의 말을 가로막으며 ) 이봐 , 자네 처량하게 됐군 .
베랑제 처량하다니 , 그렇게 보이나 ?
장 난 장님이 아니야 . 자넨 지금 지쳐 있어 . 또 밤샜군 ? 자네 하품하는데 그래 ? 졸려 죽겠는 모양
이지.
베랑제 머리가 좀 아파서 ….
장 술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
베랑제 응, 좀 마셨더니 목이 칼칼하고
장 일요일 아침이면 늘 이 꼴이란 말야 . 허긴 보통날도 마찬가지지만 .
베랑제 아냐 , 보통날은 그렇게 잦지는 않아 . 일을 해야 하니까 .
장 그래 넥타이는 어쨌나 ? 취해서 돌아다니다가 잃어버렸구먼 .
베랑제 (손으로 목을 만져 보더니 ) 응, 정말 이상한데 . 내가 넥타이를 어떡했지 ?
장 (웃저고리 주머니에서 넥타이를 꺼내며 ) 자, 이걸 매게 .
베랑제 아니 이건 … 고맙네 . 자넨 정말이지 친절해 . (그는 넥타이를 맨다 )
장 (베랑제가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매는 것을 보며 ) 머리도 엉망이로군 . (베랑제 , 손가락으로 머리를 쓱쓱 빗
는다) 자, 빗 여기 있네 . (웃저고리의 다른 주머니에서 빗을 꺼낸다 .)
베랑제 (빗을 받으며 ) 고마워 . (그는 엉성하게 빗질을 한다 )
장 면도도 안 했잖아 ? 자네 얼굴을 좀 잘 보게 .

그는 웃저고리의 안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내 베랑제에게 준다 . 베랑제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 거울 속


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혀를 내민다 .

베랑제 혓바닥이 하얗게 덮였군 .


장 (거울을 돌려받아 주머니 속에 다시 넣으며 ) 그야 놀라울 것도 없지. (베랑제가 내미는 빗을
받아서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 간장이 나빠지고 있는 거라네 .
베랑제 (불안해져서 ) 정말 그럴까 ?
장 (넥타이를 돌려주려는 베랑제에게 ) 넥타이는 그대로 매둬 . 난 많이 있으니까 .
베랑제 (감탄하며 ) 자넨 몸단장에 주의가 대단하단 말야 .
장 (여전히 베랑제를 살펴보며 ) 옷은 다 구겨지구 한심하군 ! 셔츠도 원 저렇게 더러워서야 , 구두는 … (베랑제
는 발을 테이블 밑으로 감추려 한다 ) 구두도 안 닦았잖아 ? …어쩌면 이렇게 엉망이지 . 저 어깨는 도….
베랑제 내 어깨가 어때서 ?
장 몸을 뒤로 돌려봐 . 자 어서 . 어디 벽에 가서 기대섰던 모양이로군 …. (베랑제 , 힘없이 장 쪽으로 손을 내민
다) 솔은 없어 . 주머니가 불룩해져서 솔은 안 갖고 다녀 . (베랑제 , 여전히 힘없이 어깨에 묻은 하얀 먼지를
손바닥으로 툭툭 턴다 . 장은 고개를 돌린다 ) 원 저런 ! 도대체 그런 건 어디서 묻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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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기억이 안 나는데 .


장 한심하군 한심해 . 친구라기가 부끄러울 지경일세 .
베랑제 그 말은 너무 심하잖아 ?
장 그 말밖에는 안 나오게 됐네 .
베랑제 장, 하지만 내겐 낙이라는 게 거의 없잖아 ? 이 마을에서는 모두가 따분하단 말야 . 난 매일 사
무실에서 하루 여덟 시간씩 일에 쫓기고 , 휴가래야 여름휴가 3주뿐이니 , 마치 일 때문에 사는 사
람 같다니까 . 그러니 토요일 밤엔 숫제 지쳐서 … 이해하겠지 . 그래서 기분전환을 하려고 ….
장 어이 , 그런 게 어디 자네뿐인가 !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사는 거야 . 난 뭐 남들처럼 일 안 하는
줄 아나 ? 나도 매일 사무실에서 여덟 시간 근무하고 휴가는 일년에 스무 하루뿐일세 . 그런데도
보다시피 난… 견디어 낸다고 .
베랑제 견디어 낸다고 ?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자네처럼 잘 견디지는 못할걸 .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
아.
장 모든 사람이 다 참고 견디는데 자네라고 뭐 특별한 인간이라도 되나 ?
베랑제 그렇다는 게 아니라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나도 자네 정도는 되네. 아니 분명히 말하자면 내가 자네보다야 낫지 . 자기
의무를 다할 줄 아는 사람이 우월한 인간이니까 말이야 .
베랑제 의무라니 ?
장 자신의 의무 말야 … 이를테면 직장에서의 의무라든가 .
베랑제 아, 그렇군 직장에서의 의무라 ….
장 그런데 어젯밤엔 어디서 마셨나 ? 그거야 생각나겠지 .
베랑제 오귀스트의 생일 파티가 있었어 . 우리 친구 오귀스트의 ….
장 우리 친구 오귀스트라고 ? 그럼 왜 난 초대 안했지 ? 우리 친구 오귀스트의 생일이이라면 말
야….

그때 아주 멀리서 부산한 소리가 들려온다 .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면서 야수의 숨소리 , 급히 달려오는


소리 . 코뿔소의 긴 울음소리 .

베랑제 거절을 못하겠더군 . 또 거절한다는 것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


장 난 안 갔잖아 ?
베랑제 안 갈 수 밖에 . 자네는 초대를 안 받았잖아 .
웨 이 트 리 스 (카페에서 나오며 ) 안녕하세요 ? 뭘 드시겠어요 ? (소음이 아주 커졌다 .)
장 (베랑제에게 안 들릴까봐 사뭇 소리친다 . 그 자신은 아직 의식 못하고 있는 그 소음을 누를 만
큼 큰소리로 ) 그래 맞았어 . 난 초대 안 받았다구 . 초대받는 영광이 내겐 안 왔었단 말야 … 하지
만 초대를 받았어도 난 안 갔을 걸세. 왜냐하면 … (소음이 이제는 굉장히 커졌다 .) 아니 , 저게 무
슨 소리지 ? (육중하고 세찬 짐승이 달려오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린다 . 속도가 매우 빠르다 .
짐승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 도대체 저게 뭘까 ?
웨 이 트 리 스 정말 저게 무슨 소릴까요 ?

베랑제는 여전히 느슨한 채로 아무것도 귀에 들리는 않는 듯이 장에게 초대에 대한 얘기만 태평스럽게


늘어놓고 있다 . 그는 입술을 움직이지만 무슨 소린지는 들리지 않는다 . 장은 벌떡 일어나다가 앉아 있
던 의자를 쓰러뜨린다 . 왼쪽 무대 뒤쪽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킨다 . 그러는데도 베랑제
는 시종 지친 듯이 그대로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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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장 아니 , 저기 코뿔소가 ! (짐승의 부산한 소리가 여전히 빨리 이번에는 멀어져 간다 . 그래서 그뒤


에 오는 말소리들은 분명하게 드린다 . 이 장면은 극히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 다시 되풀이해
서) 아니, 코뿔소가 !
웨 이 트 리 스 코뿔소가 !
식 료 품 가 게 안주 인 (가게 문으로 얼굴을 내밀며 ) 아니, 코뿔소가 ! (가게 안에 있는 남편에게 ) 여보 ,
빨리 와봐요 . 코뿔소예요 .

모두들 짐승이 달려가는 왼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

장 사정없이 막 달려가는군 . 진열장에 부딪칠 듯이 아슬아슬하게 스쳐가는데 .


식료품가게 주인 (가게 안에서 ) 어디에 ?
웨 이 트 리 스 (두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 어머나 !
식 료 품 가 게 안주 인 (여전히 가게 안에 있는 남편에게 ) 어서 나와 봐요 .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주
인이 고개를 내민다 )
식료품가게 주인 (고개를 내밀며 ) 아니 , 코뿔소가 !
논리학자 (왼쪽에서 무대로 급히 나오며 ) 코뿔소 ! 그게 전속력으로 저 맞은 편 인도를 달려가고 있어
요.

장의 “아니 , 코뿔소가 !”에서 시작된 대사들은 모두가 거의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 “어머나 !” 하는 어떤
여자의 외마디소리가 들린다 . 그 여자가 무대에 나타난다 . 그녀는 무대 중앙까지 뛰어나온다 . 장바구니
를 들고 지나가던 그 주부이다 . 무대 중앙까지 오자 그녀는 바구니를 떨어뜨린다 . 바구니 안에 있던 물
건들이 무대 위로 흩어진다 . 병이 하나 깨진다 . 그러나 한 쪽 팔에 안고 있던 고양이는 놓지 않는다 .

주 부 어머나 !

왼쪽에서 노신사가 주부의 뒤를 이어 나타난다 . 그는 식료품가게로 달려가 주인 부부를 밀어제치고 가


게 안으로 들어간다 . 그 사이에 논리학자는 식료품가게 입구의 왼쪽 구석 벽에 붙어선다 . 장과 웨이트
리스는 선 채로 , 베랑제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이 세 사람이 따로 한 무리를 이루고 있
다 . 동시에 왼쪽에서는 “저런 !”이라든가 “어머나 !”라는 외마디소리 . 도망 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가 들려온다 . 짐승이 지나가면서 일으킨 먼지가 무대 위로 뿌옇게 밀려온다 .

카 페 주 인 (카페의 이층 창에서 얼굴을 내밀며 ) 무슨 일이야 ?


노신사 (식료품가게 주인 부부 뒤에 숨어서 ) 실례합니다 .

멋쟁이 노신사는 흰 각반에 소프트 모자 , 상아 손잡이의 지팡이를 들고 있다 . 논리학자는 벽에 붙어 서


있다 . 그는 회색 콧수염에 코안경을 걸고 납작한 캉캉모자를 쓰고 있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노신사에게 떠밀리는 바람에 남편을 떠밀며 노신사에게 ) 조심하세요 . 지팡이까
지 들구 .
식료품가게 주인 이건 너무하지 않소 . 조심 좀 하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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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이들 부부 뒤로 노신사의 머리가 보인다 .

웨 이 트 리 스 (카페 주인에게 ) 코뿔소예요 !


카 페 주 인 (창에서 웨이트리스에게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 (그때 코뿔소를 보고) 아니 , 저런 !
주 부 어머나 ! (무대 뒤의 “저런 !”이라든가 “어머나 !”하는 소리가 그녀의 “어머나 !” 하는 소리의 반
향처럼 울려 온다. 찬거리와 병이 들었던 바구니를 떨어뜨린 주부는 한쪽 팔에 안고 있는 고양이
는 놓치지 않았다 .) 가엾어라 . 너도 무서웠던 모양이로구나 .
카페 주인 (계속 왼쪽을 바라보며 짐승이 달리는 것을 눈으로 좇고 있다 . 그러는 동안 짐승 소리들
은 차츰 멀어진다 . 소의 발굽소리며 울음소리 따위가 . 베랑제는 흙먼지 때문에 고개를 약간 돌릴
뿐 조는 듯이 아무 소리가 없다 . 얼굴만은 찡그리고 있다 .) 이거야 원.
장 (역시 고개를 약간 돌리며 그러나 과격하게 ) 아니, 저런 (재채기한다 )
주 부 (무대 중앙에서 왼쪽을 돌아다본다 . 찬거리가 그녀의 주위에 흩어져 있다 .) 아니 , 저런 . (재채기한다 )
식료품가게 주인 부부 (무대 안쪽에서 노신사가 들어가서 닫은 가게 유리문을 다시 열며) 아니 , 저
런.
장 아니 , 저런 ! (베랑제에게 ) 자네도 봤지?

코뿔소 때문에 들려오던 소음과 소의 울음소리가 아주 멀어졌다 . 모두들 선 채로 아직도 코뿔소가 달


려가는 쪽을 바라본다 . 베랑제만은 여전히 무심하게 앉아 있다 .

일동 모두 (베랑제만 제외하고 ) 아니 , 저런!


베랑제 (장에게 ) 응, 코뿔소였던 것 같지 ? 어유, 이 먼지 .(그는 손수건을 꺼내 코를 푼다 .)
주 부 아니 , 저런 … 정말이지 무서워서 혼났네 .
식료품가게 주인 부인의 바구니가 … 찬거리가 ….
노신사 (부인 곁으로 와서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다가 모자를 벗으며 부인에
게 상냥하게 인사한다 )
카페 주인 아무리 생각해도 ….
웨 이 트 리 스 글쎄 말예요 , 그럴 수가 ….
노신사 (부인에게 ) 이것들을 주워 드려도 괜찮을까요 ?
주 부 (노신사에게 ) 네, 감사합니다 . 모자는 어서 쓰시죠 . 아유 , 어찌나 무서웠던지 .
논리학자 공포라는 건 이성적인 게 못 됩니다 . 이성으로 마땅히 공포심을 극복해야죠 .
웨이트리스 이젠 코뿔소가 안 보이는군요 .
노신사 (주부에게 논리학자를 소개한다 ) 제 친구 논리학자입니다 .
장 (베랑제에게 )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
베랑제 되게 빠르네 , 짐승이라는 건.
주 부 (논리학자에게 ) 처음 뵙겠습니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남편에게 ) 그것 참 고소하게 됐는데 . 우리집에선 안 사가더니 ….
장 (카페 주인과 웨이트리스에게 ) 어떻게들 생각하세요 ?
주 부 그래도 난 고양이는 놓치지 않았어요 .
카페 주인 (창에서 어깨를 으쓱하며 ) 이런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인데요 ?
주 부 (노신사가 흩어진 물건들을 줍고 있는 동안 논리학자에게 ) 이것 좀 잠깐 맡아주시겠어요 ?
웨 이 트 리 스 (장에게 )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에요 .
논 리 학 자 (고양이를 받으며 주부에게 ) 사납진 않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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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카 페 주 인 (장에게 ) 마치 별똥별같이 빠르잖아요 ?


주 부 (논리학자에게 ) 아주 온순해요 . (다른 사람들에게 ) 내 포도주가 .
식료품가게 주인 (주부에게 ) 저희 가게에도 있습니다 . 뭐든지 다 있습죠 .
장 (베랑제에게 ) 이봐, 자네 생각은 어떠냐니까 !
식료품가게 주인 (주부에게 ) 물건들도 썩 좋구요 .
카페 주인 (웨이트리스에게 ) 그러구 서 있지만 말구 어서 손님들 모셔 . (베랑제와 장을 가리키는 소
리이다 . 그는 다시 안으로 사라진다 )
베랑제 (장에게 ) 뭘 말야 ?
식료품가게 안주인 (남편에게 ) 어서 가서 한 병 가지구 나와요 .
장 (베랑제에게 ) 뭘 말야?
식료품가게 주인 (주부에게 ) 저희집에 깨지지 않는 병에 든 기가 막힌 포도주가 있습니다요 . (그는
가게 안으로 사라진다 )
논리학자 (안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 나비야 ! 나비야 ! 나비야 !
웨 이 트 리 스 (장과 베랑제에게 ) 뭘 드시겠어요 ?
베랑제 (웨이트리스에게 ) 빠스띠스 두 잔!
웨 이 트 리 스 네, 갖다드리죠 . (카페 입구 쪽으로 간다 )
주 부 (노신사의 도움을 받으며 흩어진 물건들을 줍는다 )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시네요 .
웨 이 트 리 스 빠스띠스 두 잔이요 . (그러고는 다시 카페로 들어간다 )
노신사 (주부에게 ) 원 별 말씀을 .

식료품가게 안주인 ,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

논리학자 (물건을 줍고 있는 노신사와 주부에게 ) 좀, 질서 정연하게들 넣어봐요 .


장 (베랑제에게 ) 그래, 자넨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야 ?
베랑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 응… 뭐 별로… 먼지가 좀 나는구먼 ….
식료품가게 주인 (포도주병을 들고 가게에서 나오며 주부에게 ) 부추도 있습니다 .
논리학자 (여전히 안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 나비야 ! 나비야 ! 나비야 !
식료품가게 주인 (주부에게 ) 1리터짜리 , 100프랑입니다 .
주 부 (가게 주인에게 돈을 주고 흩어졌던 물건들을 모두 바구니에 다시 담은 노신사 쪽으로 가며 )
정말 친절하십니다 . 프랑스적인 예절을 갖추고 계시네요 . 요즘 젊은이들 같으면야 어림도 없죠 .
식료품가게 주인 (주부에게 돈을 받으며 ) 저희집으로도 좀 오십쇼 . 행길을 건너실 필요도 없으니 말
입니다 . 그럼 그런 무서운 일도 안 당하실 게 아닙니까 ?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
장 (앉아서 계속 코뿔소 생각만 한다 ) 아무래도 보통일이 아냐 .
노신사 (모자를 벗고 주부의 손에 키스하며 ) 부인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
주 부 (논리학자에게 ) 감사합니다 , 선생님 . 제 고양이를 맡아 주셔서요 .

논리학자 , 고양이를 주부에게 내준다 . 웨이트리스가 마실 것을 들고 다시 나타난다 .

웨 이 트 리 스 자, 여기 빠스띠스 가져왔습니다 .
장 (베랑제에게 ) 그 버릇 못 고치는군 !
노신사 (주부에게 ) 모셔다 드릴까요 ?
베랑제 (장에게 카페로 다시 들어가는 웨이트리스를 가리키며 ) 난 광물수를 좀 갖다 달랬는데 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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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자가 잘못 가져온 거야 .

장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경멸조로 어깨를 으쓱한다 .

주 부 (노신사에게 ) 고맙습니다만 남편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 그럼 다음 기회에 .


노신사 (주부에게 ) 그럼 진심으로 다음 기회를 기다리겠습니다 , 부인.
주 부 (노신사에게 ) 저도요 . (부드러운 눈길을 보내고 나서 왼쪽으로 나간다 )
베랑제 이젠 먼지도 안 나는군 ….

장은 또 한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

노신사 (사라져 가는 주부를 지켜 보며 논리학자에게 ) 멋이 있어 !


장 (베랑제에게 ) 코뿔소 말야 , 암만해도 꿈만 같다니까 .

노신사와 논리학자 , 오른쪽으로 걸어가 조용히 나가려고 한다 . 두 사람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

노신사 (주부 쪽으로 마지막 눈길을 보낸 다음 논리학자에게 ) 매력 있지 않소 ?


논리학자 (노신사에게 ) 삼단논법을 설명해 드리지 .
노신사 아, 그 삼단논법 ?
장 (베랑제에게 ) 난 암만해도 꿈만 같아 . 도대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구 .

베랑제는 하품한다 .

논리학자 (노신사에게 ) 삼단 논법에서는 대전제 , 소전제 , 그리고 나서 결론이 있는 거예요 .


노신사 결론이라니 무슨 결론 ?

노신사와 논리학자 , 퇴장한다 .

장 아냐 , 꿈만 같아.
베랑제 (장에게 ) 자네야말로 꿈을 꾸고 있군 . 아까 그건 코뿔소였다구 . 진짜 코뿔소 말야 … 저쪽으
로 갔군 …저 멀리로 .
장 하지만 이봐 . 이런 일은 들어보지도 못하던 일이란 말야 ! 시내 한복판을 코뿔소가 멋대로 뛰어
다니다니 ! 자넨 그게 놀랍지 않단 말야 ? 이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구 ! (베랑제 , 하품 한
다) 입 좀 가리고 하품하게 .
베랑제 아… 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 . 위험하니까 말야 . 난 그 생각을 미처 못했군 . 너무 신경쓰
지 말아 . 우린 괜찮으니까 .
장 경찰에 항의해야 해. 경찰은 뭐하러 있는 거야 ?
베랑제 (하품을 하다가 얼른 손으로 입을 막는다 ) 아, 실례 … 코뿔소가 동물원에서 도망을 나온 모양
이지?
장 자넨 서서 꿈을 꾸고 있는 것 아냐 ?
베랑제 난 앉아 있는걸 .
장 앉아 있으나 서 있으나 마찬가지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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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아냐 , 달라 .
장 그런 게 문제가 아냐 .
베랑제 하지만 마찬가지라고 말한 건 자네 아닌가 ? 앉아 있는 거나 서 있는 거나.
장 자네 말귀가 그렇게 어두운가 ? 앉아 있건 서 있건 꿈을 꾸긴 매한가지라 이 말이야 .
베랑제 그래 , 난 꿈을 꾸고 있어 … 인생을 꿈이니까 .
장 (계속해서 ) …그 코뿔소가 동물원에서 도망친 거라고 말했으니 자넨 꿈을 꾸는 게 아니고 뭔가 ?
베랑제 응, 그런 모양이라고 내가 그랬지 .
장 (계속해서 ) …동물들이 페스트에 걸려 다 죽은 뒤로는 이 고장엔 동물원이 없는데두 ? 벌써 옛날
부터 말야.
베랑제 (여전히 무관심하게 ) 그렇다면 곡마단에서 도망을 친 걸까?
장 곡마단이라니 ?
베랑제 글쎄 …순회곡마단 같은 데서 말야.
장 이 고장에선 떠돌이 흥행은 금지돼 있다는 걸 자넨 몰라서 하는 소린가 ? 우리 어릴 때부터 그
런 건 안 한다구 .
베랑제 (하품을 참으려 하지만 하품이 나오고 만다 ) 그렇다면 그때부터 이 부근 숲속 늪지에 숨어
있었나 보지 ?
장 (두 팔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 이 부근 숲속 늪지라니 , 이 부근 숲속 눞지라니 … 이봐 , 자네 알
콜의 캄캄한 안개 속에 완전히 파묻혀 있군.
베랑제 (고지식하게 ) 응, 그건 사실이야 … 뱃속에서 자꾸만 올라오는데 .
장 뱃속이 아니라 머리를 온통 덮어 씌우고 있네 . 자네 이 부근 숲속 늪지를 알고 있나 ? 이 지방을
‘소 카스틸랴 ’라고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 그 정도로 이 지방은 사막 같은 곳이라구 !
베랑제 (기진맥진해서 ) 그러니 어떻단 말야? 그럼 , 아마 조약돌 그늘에 숨어 있었을까 ? …아니면 마
른 나뭇가지에 둥지라도 치고 있었나 ?
장 자네 , 재치를 좀 부려 보겠다는 생각인 모양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 ! 자넨 지금 지쳐 있는 거야 .
그따위 허튼소리나 하구 . 자넨 진지한 말을 할 힘이 없어 .
베랑제 오늘 , 오늘 , 오늘만이야 … 사정이 그렇게 돼서 …. (그는 어렴풋이 고개를 든다)
장 어디 오늘뿐인가 늘 그 모양이지 .
베랑제 아냐 , 늘 그렇진 않아 .
장 자네의 말재주 따위는 안 통해.
베랑제 아냐 , 그런 게 아닌데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난 누가 날 놀리는 건 질색이야 !
베랑제 (가슴에 손을 대며 ) 자넬 놀리다니 , 장. 절대로 그럴리가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베랑제 , 자넨 지금 날 놀리고 있는 거야 .
베랑제 아냐 . 그렇지 않아 .
장 맞아 , 자넨 방금 날 놀린 거지 뭔가 ?
베랑제 어째서 그런 생각을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확실해 .
베랑제 난 절대로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자넨 날 바보 취급하고 있어.
베랑제 자넨 정말 고집불통이로군 .
장 게다가 날 아주 멍청이인 줄 안고 있는 모양인데 자넨 날 모욕한 거야 .
베랑제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네 .

-9-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장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다구 ?


베랑제 그런 생각을 안 했으니까 없는 거지.
장 마음에도 없는 것을 생가하는수가 있거든 .
베랑제 그럴 리는 없어 .
장 어째서 그럴 리가 없다는 거지?
베랑제 그럴 리가 없으니까 없는 거지.
장 어째서 그럴 리가 없는지 설명해 봐. 자넨 뭐든지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
베랑제 그런 말 한 일 없는데 .
장 그렇다면 자네 왜 그렇게 잘난 체하는 건가 ? 그리구 다시 한번 묻겠는데 왜 날 모욕하지 ?
베랑제 자넬 모욕하는 게 아냐. 오히려 자넨 내가 자넬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고 있잖아 ?
장 자네가 날 존경하고 있다면 왜 내 말에 반대하는 거지 ? 시내 한복판에 코뿔소가 날뛰게 내버려
둬도 괜찮다느니 하면서 말야. 더군다나 일요일 아침이니까 거리엔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
하기야 어른도 그렇지 .
베랑제 대개들 미사에 갔잖아 ? 어른들이야 뭐 위험할라구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아니지 , 장보러 가는 시간이기도 하지 .
베랑제 난 시내 한복판에서 코뿔소가 뛰어다니게 내버려두는 게 위험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어 . 다
만 그 위험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야. 미처 그걸 생각 못했다구 .
장 자네가 뭘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있나 .
베랑제 그래 , 맞았어 . 코뿔소를 풀어놓은 건 좋지 않군.
장 그런 일이 있어선 절대로 안 돼.
베랑제 맞았어 . 그런 일이 있어선 절대로 안 되지 . 말도 안 되는 일이야 . 그래 , 하지만 그런 짐승 때
문에 자네와 내가 싸울 까닭이야 없지 . 어쩌다 우연히 우리 앞에 나타난게 된 그따위 코뿔소 한
마리 때문에 자네가 내게 시비를 걸 거야 없지 않아 ? 그건 우리가 화제에 올릴 가치조차 없는
미련한 네 발 짐승이라구 . 더군다나 사나운 짐승인데다가 … 어쨌든 이젠 사라지고 없는 것 아냐 ?
지나가고 만 짐승 한 마리를 놓고 자꾸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구 . 그러니 장, 이젠 우리 다른
얘기를 하는 게 어떨까 … 화제가 궁한 것도 아닌데 . (그는 하품한다 . 그리고 컵을 들며) 자네의
건강을 위해서 .

그때 노신사와 논리학자가 오른쪽에서 다시 등장 . 그들은 얘기하면서 카페 테라스의 의자로 앉으러 간


다 . 장과 베랑제에게서는 꽤 떨어진 오른쪽 뒤쪽에 .

장 그 잔, 테이블 위에 내려놔 . 이젠 좀 그만 마셔.

장은 자기 잔을 한 모금 마시고서 반쯤 빈 잔을 테이블 위에 놓는다 . 베랑제는 자기 잔을 놓지도 마시


지도 못하며 손에 들고 있다 .

베랑제 그렇다고 이걸 그대로 이 집 주인에게 내보낼 거야 없지 않아 ? (마시려는 시늉을 한다 )


장 내려놓으라니까 .
베랑제 좋아 . (그는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려 한다 . 그때 금발의 젊은 타이피스트 데이지가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무대를 지나간다 . 데이지를 보자 베랑제는 후닥닥 일어선다 . 일어서다가 삐닥
하는 바람에 잔을 떨어뜨려 장의 바지에 술을 엎는다 ) 어이, 데이지 !
장 이봐 , 조심해 . 하는 짓이 어째 이 모양이야 .

- 10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데이지야 … 미안해 … (그는 데이지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숨는다 ) 이런 꼴로야 … 데이지가


보면 곤란해 .
장 정말 안 되겠는데 , 절대로 안 되겠어 .(그는 사라져 가는 데이지 쪽을 본다 ) 저 여자가 무서운
가?
베랑제 쉿! 쉿!
장 심술궃게 생기지도 않았는데 .
베랑제 (데이지가 일단 사라지자 다시 장에게로 오며 ) 미안하게 됐네 . 이렇게 또.
장 그게 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거야 . 이젠 몸도 말을 안 듣고 손에 힘까지 빠져 버렸으니 정신도
멍해지고 흐느적거릴 수밖에 . 자넨 지금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파고 있어 . 이젠 끝장이라구 .
베랑제 난 그 정도로 술을 좋아하진 않아. 하지만 술을 안 마시고는 안 되겠으니까 그러는 거지. 두
려워서랄까 ? 그래서 안 두려워지려고 마시는 거야 .
장 두렵긴 뭐가 두려워 ?
베랑제 나도 잘 모르겠어 .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운 그런 불안감이야 . 사람들 틈에 끼어서 산다는 게
난 불안해 . 그래서 그럴 때마다 한 잔씩 마시는 건데 마시면 기분이 가라앉거든 . 잊어버리구 .
장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거겠지 .
베랑제 난 피곤해 . 벌써 여러 해 전부터 피곤하다구 . 내 몸 하나 가누기가 힘들단 말일세 .
장 그게 바로 알콜중독증이라구 . 술고래의 우울증이고 ….
베랑제 (계속해서 ) 난 내 몸이 마치 납덩어리 같은 기분이야 . 아니면 등에 다른 사람을 하나 지고 다
니는 기분이고 . 난 나 자신에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말일세 . 난 나 자신이 정말 나인지 아닌지
를 모르겠어 . 그런데 술만 좀 들어가면 그 무겁던 짐도 싹 없어지고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단 말
일세. 난 다시 내가 된다 이런 말이야 .
장 쓸데없는 소릴랑 집어 치워 . 베랑제 , 날 좀 보게 . 난 자네보다 더 무거워 . 그런데도 나는 가뿐하
기만 해. 가뿐하지 가뿐해 .

그는 마치 날기라도 하려는 듯 두 팔을 옆으로 벌리고 흔든다 . 노신사와 논리학자가 다시 나타나 얘기


하며 무대 위로 걸어오고 있다 . 바로 그때 그들은 장과 베랑제 곁을 지나가다가 노신사가 장의 한쪽
팔에 부딪친다 . 그 바람에 노신사는 논리학자의 팔에 쓰러진다 .

논리학자 (토론을 계속한다 )삼단 논법의 일례를 …. (충돌한다 ) 아니 !


노신사 (장에게 ) 좀 조심하시오 . (논리학자에게 ) 미안 .
장 (노신사에게 ) 죄송합니다 .
논리학자 (노신사에게 ) 천만에 .
노신사 (장에게 ) 괜찮아요 .

논리학자와 노신사 , 카페 테라스의 테이블에 가 앉는다 . 장과 베랑제의 뒤 약간 오른쪽에 .

베랑제 자넨 힘이 넘치는군 .
장 암. 나는 힘이 세지 . 내가 힘이 센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네 . 난 체력이 강하니까 힘이 세
고, 또 정신력이 있으니까 힘이 넘치지 . 거기다가 또 난 술에 젖어 있지 않으니까 힘이 세고 , 난
자네에게 약을 올리려고 하는 소린 아니네 . 하지만 사실상 자네 마음이 괴로운 건 술 때문이란
말일세 .
논리학자 그러니 이게 바로 삼단 논법의 예입니다 . 고양이는 네 발 동물이다 . 이지도르와 프리코는

- 11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네 발 동물이다 . 그러므로 이지도르와 프리코는 고양이다 .


노신사 내 개도 네 발 동물인데 .
논리학자 그렇다면 그것은 고양이지요 .
베랑제 난 그저 살아갈 만한 힘밖에 없네. 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
노신사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내 개는 고양이라 이 말씀이요 ?
논리학자 논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 그러나 같은 이치로 고양이도 강아지가 될 수 있지요 .
베랑제 내 마음을 짓누르는 건 고독이야 . 사람들과의 접촉도 그렇고 .
장 그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아 . 자네 마음이 괴로운 건 고독 때문인가 , 아니면 주위에 사람이 많기
때문인가 ? 자넨 자기가 무슨 생각이라도 많이 하는 사람 같은 소리를 하지만 논리적인 데가 하
나도 없어.
노신사 논리학이라는 건 아주 훌륭하군 .
논리학자 남용만 하지 않는다면 그렇지요 .
베랑제 살아간다는 건 이상한 거야 .
장 천만에 , 그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은 없지 . 그 증거로 모든 사람이 다 살고 있으니 말야 .
베랑제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더 많은걸 . 죽는 사람 수는 자꾸 느는데 산사람 수는 극히 적으니
말이야 .
장 죽은 사람이야 숫제 아무것도 없는 건데 그런 걸 가지고 얘기를 하다니 … 하하 (크게 웃는다 )
죽은 사람들이 자네를 괴롭히기라도 한단 말인가 ?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어떻게 자네 마음을 괴
롭힌다는 거지 ?
베랑제 난 내가 존재하고 있는 건지 어떤지를 모르겠어 .
장 자넨 존재하고 있지 않네 . 자넨 생각을 안 하니까 말야 . 생각을 좀 하게 . 그럼 존재하게될 테니 .
논리학자 삼단 논법의 예를 하나 더 들어봅시다 . 모든 고양이는 죽게 마련이다 . 소크라테스도 죽는
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고양이다 .
노신사 그럼 소크라테스도 네 발 동물이겠군 . 옳아요 . 난 지금 소크라테스라는 고양이 한 마리를 기
르고 있거든 .
논리학자 그것 보십쇼 .
장 결국 자넨 틀려먹은 인간이야 . 거짓말쟁이고 . 자넨 입으로는 인생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어
떤 사람한테는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말야 .
베랑제 누구한테 ?
장 자네 사무실의 여자 친구한테 말야 . 아까 지나간 그 여자. 자넨 그 여자를 좋아하지 ?
노신사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고양이였겠군요 ?
논리학자 논리학은우리에게 그렇다는 걸 증명했지요 .
장 자넨 그 여자에게 자네의 이런 처량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 (베랑제의 몸짓 ) 그건 자네가 매사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야 . 그런데 자넨 그 여자가 술고래한테 마음을 줄 것 같은가 ?
논리학자 그럼 , 다시 고양이 얘기로 돌아갑시다 .
노신사 말씀하시죠 .
베랑제 그러나저러나 그 여자는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걸 .
장 그게 누군데 ?
베랑제 뒤다르라고 회사 동료야 . 법대 출신에 법학자라고 . 회사에서도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지 . 데이
지의 마음 속에서도 전도가 유망하고 . 난 그 친구하고는 도저히 경쟁이 안 돼.
논리학자 고양이 이지도르는 네 발 동물이다 .
노신사 그걸 어떻게 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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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논리학자 이건 가정입니다 .
베랑제 그 친구는 부장 눈에도 들었어 . 그런데 나야 뭐 장래랄 게 있나 ? 공부도 못했고 행운이라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
노신사 아, 가정이란 말씀이군요 .
장 그래 자넨 이대로 물러서겠다는 거야 ?
베랑제 안 그러면 어쩌겠나 ?
논리학자 프리코도 네 발 동물이다 . 그렇다면 프리코와 이지도르는 발이 몇 개일까요 ?
노신사 둘 합해서 ? 아니면 따로따로 ?
장 인생은 투쟁이야 . 싸우지 않는다는 건 비겁해 .
논리학자 합해서냐 따로따로냐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요 .
베랑제 그렇지만 할 수 없잖아 ? 내겐 무기가 없는걸 .
장 이봐 . 무기를 잡으라구 무기를 .
노신사 (곰곰 생각한 끝에 논리학자에게 ) 여덟 개, 여덟 개지요 .
논리학자 논리학은 암산으로 통합니다 .
노신사 논리학이란 여러 가지 면이 있군요 .
베랑제 어디서 무기를 구하지 ?
논리학자 논리학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
장 자네 자신 안에서 구해야지 . 자네의 의지로 .
베랑제 어떤 무기를 ?
논리학자 이를테면 말입니다 .
장 인내라는 무기 , 교양 , 시성이라는 무기지 . (베랑제 , 하품한다 ) 발랄하고 반짝반짝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는
거야. 현대적 인간이 되라 , 그 말이야 .
베랑제 현대적이 되라니 , 어떻게 ?
논리학자 그 고양이 두 마리에서 다리 두 개는 빼겠습니다 . 그럼 한 마리에 몇 개씩 남죠 ?
노신사 그건 복잡한데요 .
베랑제 그건 복잡한데 .
논리학자 복잡하긴 오히려 간단하죠 .
노신사 당신에겐 간단할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도 않아요 .
베랑제 자네에겐 그게 간단할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도 않아 .
논리학자 머리를 좀 써봐요 . 자, 한번 해보시죠 .
장 기운을 좀 내보게 . 자, 한번 해보는 거야 .
노신사 모르겠는데요 .
베랑제 정말 모르겠는데 .
논리학자 어째 그렇게 머리가 안 도실까 ?
장 어째 그렇게 머리가 안 도나 ?
논리학자 종이에다 계산을 한번 해보십시오 . 고양이 두 마리에서 다리 여섯을 뺍니다 . 그럼 한 마리
에 몇 개씩 남지요 ?
노신사 잠깐 … 기다려요 .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계산한다 .)
장 이렇게 하면 되네 . 우선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면도는 매일 할 것. 셔츠는 깨끗하게 입을 것.
베랑제 세탁비가 비싸서 .
장 술을 줄이면 돼. 외관은 이렇게 하게 . 이런 모자에 이런 넥타이 , 품위 있는 양복 그리고 구두는
반짝반짝하게 닦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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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옷차림을 얘기하면서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모자 , 넥타이 , 깨끗한 구두를 베랑제에게 과시한다 .

노신사 해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군요 .


논리학자 말씀해 보시죠 .
베랑제 그러구 나선 어떡하면 되지 ? 말을 해보게 .
논리학자 어디 좀 들어봅시다 .
베랑제 어디 좀 들어보세 .
장 자넨 내성적이야 . 하지만 재능은 있거든 .
베랑제 내게 재능이 있다구 ?
장 그 재능을 발휘하란 말야 . 자극을 받지 않으면 안 되네 . 현대의 문학과 문화를 알아야만 돼.
노신사 우선 이런 답이 나올 수 있겠군요 . 즉 고양이 한 마리는 다리가 네 개요, 또 한 마리는 다리
가 두 개란 말씀이에요 .
베랑제 그럴 만한 한가한 시간이 내게 있어야지 .
논리학자 당신에겐 재능이 있습니다 . 그 재능을 발휘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
장 그 얼마 안 되는 시간만이라도 유효하게 쓰면 되는 거야 . 되는대로 적당히 살면 안 된다구 .
노신사 내게 그럴 만한 시간이 어디 있어야죠 , 관리였으니까요 .
논리학자 공부할 시간이란 찾으면 늘 있게 마련입니다 .
장 시간이란 늘 있게 마련이라구 .
베랑제 너무 늦었어 .
노신사 내 나이엔 너무 늦었어요 .
장 절대로 너무 늦은 게 아냐 .
논리학자 절대로 너무 늦은 게 아닙니다 .
장 자넨 하루 여덟시간 근무야 . 나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야 . 하지만 일요일이 있고 퇴근
후의 저녁시간이 있고 또 여름 휴가 3주가 있지 않나 ? 그 정도면 충분해 . 시간 이용의 방법만 좋
으면 말이야 .
논리학자 그럼 다른 해답을 들어봅시다 . 방법만 좋으면 … 방법만 …

노신사 , 다시 계산한다 .

장 이봐 , 술 마시고 병이 나는 쪽보다는 생기발랄한 쪽이 낫지 않아 ? 회사에서도 말야. 그렇게 되


면 한가한 시간을 훌륭하게 보낼 수 있다구 .
베랑제 말하자면 어떻게 ?
장 박물관에 간다든가 문예잡지를 읽는다든가 강연회를 들으러 가는 거지 . 그러면 자네의 그 불안
감도 없어지고 자넨 문화인이 되는 거야 .
베랑제 그렇겠군 .
노신사 이럴 수도 있겠군요 . 즉 다리가 다섯 개 있는 고양이 한 마리에다가 …
장 과연 그렇지 ?
노신사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고양이가 한 마리 . 하지만 이런 것들도 고양이라 할 수 있을까요 ?
논 리 학 자 논리적으로 안될 까닭이라도 있습니까 ?
장 돈도 함부로 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는 곳에 써야 하네 . 이를테면 재미있는 연극을 보기
위해서 극장표를 산다든가 하면 좋겠지 . 자네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전위극이 뭔지나 알고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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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이오네스코의 연극 가 본 일 있어 ?
베랑제 아니 , 그저 얘기만 들었지 .
노신사 여덟 개의 다리에서 두 개를 빼면 두 마리의 고양이 중의 ….
장 지금 마침 이오네스코의 연극을 하고 있으니 어서 가보게 .
노신사 한 마리는 다리가 여섯 개일 수도 있겠고 ….
장 그 연극은 말야 , 현대 예술 생활로 들어갈 수 있는 기가 막힌 입문서가 될 걸세 .
노신사 그렇다면 또 한 마리는 다리가 하나도 없다는 해답이 되겠습니다 .
베랑제 과연 그렇겠는데 . 자네 말대로 난 이제부터 현대적으로 되어야겠어 .
논 리 학 자 그럴 경우에는 그 한 마리는 특수한 고양이가 되는 거지요 .
베랑제 그렇게 하겠네 . 자네에게 약속하지 .
장 나한테보다는 우선 자네 자신에게 약속을 해야지 .
노신사 그럼 고양이 한 마리는 다리 넷이 다 없으니까 고양이에선 낙오되는 것이 아닐까요 ?
베랑제 엄숙하게 약속하지 . 그 약속 꼭 지키겠네 .
논 리 학 자 그건 옳지 못해요 . 그러니까 그것은 논리적인 것이 못됩니다 .
베랑제 이젠 술 마시는 대신 교양을 쌓기로 결심했네 . 그랬더니 벌써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은데 ,
머리도 맑아지구 ….
장 그것 보라니까 .
노신사 논리적이 아니라구요 ?
베랑제 오늘 오후부터 당장이라도 시립 미술관엘 가보겠네 . 오늘밤엔 연극표를 두 장 사겠고 . 같이
안 가려나 ?
논리학자 왜냐하면 올바른 것이 곧 논리이니까요 .
장 끈기가 있어야 해. 자네의 그 뜻이 변치를 말아야 한다구 .
노신사 알 것 같군요 . 올바른 것이 .
베랑제 약속하지 . 자네에게도 도 나 자신에게도 . 오늘 오후에 날 미술관에 데려가 주지 않겠나 ?
장 오늘 오후엔 난 낮잠을 자야 해. 그게 내 스케줄이라구 .
노신사 올바르다는 것도 논리학의 일면이군요 .
베랑제 그럼 , 오늘 저녁 극장에는 나하고 같이 가주겠지 ?
장 오늘 저녁은 안되겠는데 .
논리학자 머리가 이젠 탁 트이셨군요 .
장 자네의 그 좋은 뜻이 계속되야 할 텐데 . 하지만 난 오늘 저녁엔 맥주 홀에서 친구들과 만나야
하거든 .
베랑제 맥주 홀에서 ?
노신사 그런데 다리가 하나도 없는 고양이는 ….
장 가기로 약속했거든 . 그러니 약속은 지켜야지 .
노신사 …생쥐를 잡으려 해도 빨리 뛸 수가 없겠습니다 .
베랑제 이 사람아 , 자네가 그런 좋지 못한 예를 보여주다니 , 자네도 마시면 취할걸 .
논 리 학 자 아, 벌써 논리학에 진전이 있으십니다 .

그때 또다시 코뿔소가 달리는 빠른 발소리 , 울음소리 , 시끄러운 발굽소리 , 요란한 숨소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소음이 들려온다 .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무대 안쪽에서 전면을 향해 . 왼쪽 무대 뒤에서 .

장 (화를 내며 ) 어이, 어쩌다간 한 번이야 . 자네하곤 근본적으로 달라 . 왜냐하면 자넨 … 자넨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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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쨌든 자네하곤 다르다구 .
베랑제 어째서 다르지 ?
장 (상점들 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누르려고 큰소리로 ) 난 술꾼은 아니란 말이야 .
논 리 학 자 고양이는 발이 없어도 쥐를 잡아야 합니다 . 그게 고양이의 천성이니까요 .
베랑제 (아주 큰 소리로 ) 난 자네가 술꾼이라고는 말 않겠네 . 하지만 난 왜 자네보다 더 술꾼이 돼야
하느냐 말야 ? 같은 조건인데두 !
노신사 (큰 소리로 ) 고양이의 천성이 뭐라구요 ?
장 (아주 큰 소리로 ) 매사엔 정도라는 것이 있는 거야 . 난 자네와는 달리 분수를 지킬 줄 안단 말
야.
논 리 학 자 (노신사에게 귀에다 손을 대고 ) 뭐라구요 ?

굉장한 소음이 네 사람의 얘깃소리를 지워 버린다 .

베랑제 (귀에다 손을 대고 장에게 ) 그럼 난, 난 어떻다구 ?


장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 내 말은 ….
노신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 내 말은 .
장 (소음이 아주 가까이서 나는 것을 깨닫고 ) 무슨 일이지 ?
논 리 학 자 이게 뭐지 ?
장 (일어난다 . 일어서면서 앉았던 의자를 쓰러뜨린다 . 아까와는 반대쪽으로 달려가는 코뿔소이 소음이 나는
무대 뒤 왼쪽을 바라본다 ) 야, 코뿔소가 !
논 리 학 자 (일어서면서 앉았던 의자를 쓰러뜨린다 ) 야, 코뿔소가 !
베랑제 (여전히 앉은 채로 그러나 이번에는 졸음이 가신 표정으로 ) 코뿔소다 ! 아까와는 반대편인데 .
웨이트리스 (쟁반과 잔을 들고 나오다가 ) 이게 뭐지 ? 어머나 , 코뿔소가 ! (쟁반을 떨어뜨린다 . 유리컵
이 깨진다 )
카 페 주 인 (가게에서 나오며 ) 뭔데 그래 ?
웨 이 트 리 스 (카페 주인에게 ) 코뿔소예요 .
논 리 학 자 코뿔소가 맞은편 보도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데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가게에서 나오며 ) 야, 코뿔소다 !
장 야, 코뿔소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가게 이층 창에서 고개를 내밀며 ) 어머나 , 코뿔소가 !
카 페 주 인 (웨이트리스에게 ) 그렇다고 컵은 왜 깨뜨려 ?
장 마구 달리니 진열장들이 아슬아슬한데 .
데이지 (왼쪽에서 등장하며 ) 어머나 , 코뿔소가 !
베랑제 데이지 !

먼젓번과 마찬가지로 도망 다니는 사람들의 다급한 발소리 , 여기저기서 “야!” “어머나 ” 하는 외마디소

웨 이 트 리 스 아니 저런 !
카 페 주 인 깨뜨린 건 물어내야 해.

베랑제 , 데이지의 눈에 뜨일까봐 숨으려 한다 . 논리학자 , 노신사 , 식료품가게 주인 , 무대 중앙으로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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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며 외친다 .

일 동 아니 저런 !
장과 베랑제 아니 저런 !

찢어지는 듯한 고양이의 울음소리 . 이어서 여자의 째지는 듯한 외침소리 .

일 동 오!

거의 동시에 소음이 급히 사라져 간다 . 조금 전의 그 주부가 나타난다 . 바구니는 없다 . 그러나 피투성


이의 죽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다 .

주 부 (울먹이며 ) 내 고양이를 밟아 죽였다구요 . 내 고양이를 !


웨 이 트 리 스 코뿔소가 고양이를 밟아 죽였대요 !

식료품가게 주인 부부는 창문에서 , 그리고 노신사 , 데이지 , 논리학자는 주부를 둘러싸고 말한다 .

일 동 저런 가엾어라 .
노신사 가엾어라 .
데 이 지 와 웨 이 트 리 스 가엾어라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부 부 (안주인은 창에서 ) 노 신 사 ․ 논 리 학 자 가엾어라 !
카페 주인 (웨이트리스에게 깨어진 유리컵과 쓰러진 의자들을 가리키며 ) 뭘 하고 있는 거야 ! 얼른
얼른 주워 담지 않고서 .

이번에는 장과 베랑제가 급히 나와 죽은 고양이를 안고 울먹이는 주부를 둘러싼다 .

웨이트리스 (깨진 컵과 쓰러진 의자들을 정리하려고 카페의 테라스 쪽으로 간다 . 계속 주부가 있는


쪽을 뒤돌아보며 ) 가엾어라 !
카 페 주 인 (웨이트리스에게 깨진 컵과 의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 저기야 , 저기 .
노신사 (식료품가게 주인에게 ) 어떻게 된 걸까요 ?
베랑제 (주부에게 ) 울지 마십쇼 , 부인 . 정말 안됐습니다 .
데이지 베랑제 … 여기 있었군요 ? 당신도 봤어요 ?
베랑제 안녕 . 데이지 . 면도도 못해서 미안합니다 .
카 페 주 인 (유리조각 줍는 것을 감독하다가 주부 쪽을 힐끗 보며 ) 그 고양이 참 안됐군 .
웨 이 트 리 스 (유리조각을 주어 모으려 주부 쪽으로 등을 돌린 채) 가엾어라 .
(물론 이 대사들은 매우 빨리 거의 동시에 튀어나온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문에서 ) 정말 이건 너무한데 ?
장 너무한데 .
주 부 (죽은 고양이를 안고 흔들어 주며 울먹인다 ) 가엾은 미쭈, 가엾은 미쭈 !
노신사 (주부에게 ) 이런 처참한 일을 당하신 부인을 다시 만나뵙게 되다니 .
논 리 학 자 그만해 두십쇼 , 부인 . 고양이란 모두 죽게 마련이니까요 . 이젠 단념하십시요 .
주 부 (울먹이며 ) 내 고양이가 , 내 고양이가 , 내 고양이가 !

- 17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카페 주인 (앞치마에 깨진 컵을 불룩하게 담고 있는 웨이트리스에게 ) 어서 , 쓰레기 통에다 갖다 버


려! (의자를 다시 세우며 ) 천프랑 물어내야 해.
웨 이 트 리 스 (카페 안으로 들어가며 주인에게 ) 돈밖에 모르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 이젠 진정하십요 , 부인.
노신사 고정하십죠 , 부인 .
식료품가게 안주인 오죽이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
주 부 내 고양이가 ! 내 고양이가 ! 내 고양이가 !
데이지 그렇구말구요 . 오죽이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
노신사 (주부를 부축하여 테라스의 테이블 쪽으로 간다. 모두들 따라간다 ) 부인, 여기 좀 앉으십시오 .
장 (노신사에게 ) 어떻게 된 일일까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논리학자에게 ) 어떻게 된 일일까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문에서 데이지에게 ) 어떻게 된 일일까요 ?
카페 주인 (여전히 울면서 죽은 고양이를 안고 흔들어 주는 주부를 테이블 앞에 앉히는 동안 다시
나타난 웨이트리스에게 ) 부인한테 물 한잔 갖다 드려.
노신사 자, 부인 . 앉으시죠 .
장 부인이 안 됐어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문에서 ) 고양이가 가엾지 .
베랑제 (웨이트리스에게 ) 차라리 꼬냑을 한 잔 갖다드리죠 .
카 페 주 인 (웨이트리스에게 ) 꼬냑 한 잔! 지불은 선생님께서 하시는 거죠 ?

웨이트리스 , 카페 안으로 들어가며 대답한다 .

웨 이 트 리 스 알겠습니다 . 꼬냑 한 잔이요 .
주 부 (흐느끼면서 ) 괜찮아요 . 마시고 싶지 않아요 .
식료품가게 주인 조금 아까도 지나갔다구요 . 가게 앞으로.
장 (식료품가게 주인에게 ) 같은 놈이 아니에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장에게 ) 하지만 ….
식료품가게 안주인 아까하고 같은 소였어요 .
데이지 그럼 두 번씩이나 지나갔단 말이에요 ?
카페 주인 내 보기엔 같은 놈 같던데.
장 아뇨 , 아까하고는 다른 코뿔소였어요 . 먼저 지나간 놈은 뿔이 코에 뿔이 두 개 난 아시아 종 코
뿔소였고 , 이번 놈은 뿔이 하나밖에 없는 아프리카 종 코뿔소던데요 .

웨이트리스가 꼬냑 한 잔을 들고 나와 부인 앞에 놓는다 .

노신사 자, 꼬냑입니다 . 이걸 드시면 기분이 좀 가라앉으실 겁니다 .


주 부 (울면서 ) 싫어 … 요….
베랑제 (갑자기 신경을 곤두세우며 장에게 ) 바보 같은 소리 좀 작작하게 ! …뿔이 하난지 둘인지 자네
가 어떻게 안다고 그래 ? 그놈은 쏜살같이 지나갔는데 ! 제대로 볼 수도 없게 말야 ….
데이지 (주부에게 ) 그래요 . 기운이 좀 나실 거예요 .
노신사 (베랑제에게 ) 과연 , 무섭게 빠르더군요 .
카 페 주 인 (주부에게 ) 어서 , 들어 보세요 . 술맛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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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장에게 ) 자넨 뿔을 셀 틈이 없었을 텐데….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웨이트리스에게 ) 마시게 해드려요 .
베랑제 (장에게 ) 게다가 흙먼지에 파 묻혀서 ….
데이지 어서 마셔보세요 , 부인 .
노신사 부인, 한 모금만 … 기운을 차리시고 ….

웨이트리스가 잔을 주부의 입술에 갖다대며 마시게 한다 . 주부 처음에는 거절하는 듯하더니 결국은 마


신다 .

웨 이 트 리 스 됐어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 데이지 , 됐어요 !
장 (베랑제에게 ) 난 멍청한 사람이 아니야 . 계산이 빠르거든 . 두뇌가 명석하니까 …
노신사 (주부에게 ) 이제 좀 괜찮으시죠 ?
베랑제 (장에게 ) 하지만 , 그 놈은 머리를 숙이고 달려갔잖아 ?
카 페 주 인 (주부에게 ) 맛이 괜찮습죠 ?
장 (베랑제에게 ) 그러니까 잘 보이지 .
주 부 (마시고 나서 ) 내 고양이가 !
베랑제 (화를 내며 장에게 ) 말 같지 않은 소리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주부에게 ) 원하신다면 우리집 고양이라도 드릴까요 ?
장 (베랑제에게 ) 내가? 자네가 감히 내 말을 말 같지 않은 소리라니 ?
주 부 (식료품가게 안주인에게 ) 다른 고양이는 필요없어요 ! (그녀는 고양이를 흔들어 주며 흐느낀
다)
베랑제 (장에게 ) 그래, 정말이지 .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카 페 주 인 이젠 잊어버리시죠 .
장 난 말같지 않은 소리는 한 일이 없네 !
노신사 좀 달관하실 줄도 아셔야 합니다 .
베랑제 자넨 , 잘난 척 할줄 밖에 몰라 . (소리를 높이며 ) 유식한 체나 하고 ….
카 페 주 인 (장과 베랑제에게 ) 이것 보세요 , 선생님들 그만 !
베랑제 (장에게 계속해서 ) …유식한 척 하지만 아는 것도 제대로 없으면서 … 이봐, 코에 뿔이 하나밖
에 없는 코뿔소는 아시아 종이라구 ! 아프리카 종은 뿔이 두 개야 ….

모두들 주부는 팽개쳐 두고 , 큰소리로 다투고 있는 장과 베랑제 주위로 몰려든다 .

장 아냐 , 그 반대야 !
주 부 (혼자서 ) 그처럼 귀엽던 내 고양이가 ….
베랑제 내기 할까 ?
웨 이 트 리 스 내기를 하려나 봐요!
데이지 화내지 마세요 , 베랑제 .
장 너하곤 내기 안 하겠어 . 뿔이 두 개 난 건 바로 너야 ! 이 아시아 종자야 !
웨 이 트 리 스 어쩌면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남편에게 ) 싸움이 붙을 것 같아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아내에게 ) 무슨 소리야 ! 내기라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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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카 페 주 인 (장과 베랑제에게 ) 여기서 난동을 부리시면 곤란합니다 .


노신사 저… 코에 뿔이 하나밖에 없는 코뿔소가 무슨 종이라고 했죠 ! (식료품가게 주인에게 ) 댁은 장사를 하는
분이니까 아시겠군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남편에게 ) 그래요 , 당신은 아시겠구려 !
베랑제 내게 무슨 뿔이 있어 ? 뿔이 나한테 왜 났겠느냐 말야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노신사에게 ) 장사꾼이라고 뭐든지 다 알 리가 있습니까 ?
장 뿔이 있다구 .
베랑제 난 아시아인이 아냐 ! 또 아시아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라구 !
웨이트리스 그럼요 , 아시인도 댁이나 나같이 똑같은 인간이죠 ….
노신사 (카페 주인에게 ) 옳습니다 !
카 페 주 인 (웨이트리스에게 ) 누가 네 의견 말하랬어 ?
데이지 (카페 주인에게 ) 이 여자 말이 옳아요 . 아시아인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걸요 .

이런 말다툼이 오가는 중에도 주부는 계속 울먹인다 .

주 부 그렇게 착하더니 ! 우리하고 똑같았는데 .


장 (흥분해서 ) 그자들은 피부색이 노랗다구 !

논리학자는 장과 베랑제를 둘러싼 무리와 주부 사이에서 혼자 떨어져 그들의 논쟁에 가담은 하지 않은


채 주의깊게 바라만 보고 있다 .

장 난 가겠습니다 , 여러분 안녕!. (베랑제에게 ) 너한테 인사하는 것 아냐 !


주 부 (여전히 ) 우릴 그렇게 따르더니 ! (흐느낀다 )
데이지 자, 베랑제 ! 장….
노신사 나한테 아시아 친구들이 있었는데 . 그럼 그 사람들은 진짜 아시아인이 아니었나 ?
카 페 주 인 내겐 진짜 아시아인 친구가 있었죠 .
웨 이 트 리 스 (식료품가게 안주인에게 ) 내게도 아시아 친구가 하나 있었죠 .
주 부 (여전히 ) 내겐 정말 귀여운 녀석이었는데 !
베랑제 그래 , 넌 빨갛다 빨개!
식 료 품 가 게 안 주 인 (창에서 ) ․ 웨 이 트 리 스 어쩌면 !
카 페 주 인 어째 사태가 험악해 지는데 !
주 부 (여전히 ) 그렇게 깨끗하더니 ! 저 혼자서 오줌 똥 다 가리구 .
장 (베랑제에게 ) 정 이러면 , 날 다신 못 만날 줄 알아 ! 내가 너 같은 얼간이하고 어울리다니 시간
이 아깝다 !
주 부 (여전히 ) 감정도 그러게 잘 나타내더니 !
장 (화가 나서 급히 오른쪽을 향해 걸어간다 … 그러나 아주 나가려다 말고 다시 되돌아온다 )
노신사 (식료품가게 주인에게 ) 아시아인 중에는 피부색이 흰 사람 , 검은 사람 , 푸른 사람 그리고 또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죠 .
장 (베랑제에게 ) 이 술주정뱅이야 !

모두들 깜짝 놀라 그를 본다 .

- 20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장을 향해 ) 이젠 용서 못하겠다 !


일 동 모 두 (장을 향해 ) 저런 !
주 부 (여전히 ) 말만 못했지 . 아니 , 그것도 ….
데이지 (베랑제에게 ) 저이의 화를 돋구지 말 걸 그랬어요 .
베랑제 (데이지에게 ) 그건 내 탓이 아니예요 ….
카 페 주 인 (웨이트리스에게 ) 조그만 관을 하나 찾아와 . 이 가엾은 고양이를 넣게 ….
노신사 (베랑제에게 ) 내 생각엔 당신 말이 옳아요 . 아시아 종 코뿔소가 뿔이 두 개고 아프리카 종은
뿔이 하나….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이 양반은 그 반대라는 거예요 .
데이지 (베랑제에게 ) 두 분 다 옳지 못했어요 .
노신사 (베랑제에게 ) 어쨌든 , 당신 말이 옳았어요 .
웨 이 트 리 스 (주부에게 ) 부인 , 어서 이 상자에다 고양이를 넣으세요 .
주 부 (미친 듯이 울면서 ) 안 돼요 ! 안 돼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미안하지만 난 장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데이지 (주부 쪽으로 돌아서며 ) 이젠 정신을 차리셔야죠 , 부인 !

데이지와 웨이트리스는 고양이의 시체를 안고 있는 주부를 카페 입구 쪽으로 데리고 간다 .

노신사 (데이지와 웨이트리스에게 ) 같이 가 드릴까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아시아종 코뿔소는 뿔이 하나고 아프리카 종은 두 개죠. 또 역도 진이구요 .
데이지 (노신사에게 ) 괜찮아요 .

데이지와 웨이트리스는 여전히 슬퍼하는 주부를 데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남편에게 ) 아니 , 당신은 왜 밤낮 남하고는 거꾸로만 가는거유 !


베랑제 (모두가 코뿔소의 뿔 얘기만 하는 동안 혼자 떨어져서 . 방백 ) 데이지 말이 옳아 . 장의 말을
반박하는 게 아니었는데 .
카페 주인 (식료품가게 안주인에게 ) 댁의 남편 말이 옳아요 . 아시아종 코뿔소는 뿔이 두 개고 아프
리카 종도 두 개일 수 있다구요 . 또 역도 진이고 .
베랑제 (방백 ) 장은 반박당하는 건 견디지 못해 . 조금이라도 자기 뜻을 거슬리면 펄펄 뛰니까 .
노신사 (카페 주인에게 ) 당신이 틀렸어요 .
카 페 주 인 (노신사에게 ) 대단히 죄송하게 됐습니다 !
베랑제 (방백 ) 화를 내는 게 그 친구의 유일한 결점이지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노신사와 카페 주인과 남편을 향해 ) 두쪽이 다같은 건지도 모르죠 .
베랑제 (방백 ) 사실은 아주 착한 녀석이거든 . 내가 신세를 많이 졌는데 .
카 페 주 인 (식료품가게 안주인에게 ) 한쪽이 뿔이 두 개라면 다른 한 쪽은 응당 하나라야 하잖아요 ?
노신사 아니죠 . 어쩌면 그 다른 한쪽이 뿔이 두 개고 한 쪽은 뿔이 한 개일지도 모르죠 .
베랑제 (방백 ) 내가 조금만 참았으면 좋았을걸 . 그런데 그 친구는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을까 ? 난 그
를 화나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 (모두에게 ) 그 친구는 늘 엄청난 소리만 내세우는 거예요 . 자기
의 지식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 거죠 . 자기가 틀렸다는 걸 절대로 시인하지 않는답
니다.
노신사 (베랑제에게 ) 그럴만한 증거라도 있으시오 ?

- 21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증거라니 , 무슨 ?
노신사 조금 전의 당신 주장 말이오 . 친구하고 그런유감스러운 논쟁까지 일으키게 했던 그 주장에
대한….
식료품가게 안주인 (베랑제에게 ) 그래요 , 무슨 증거라도 있으슈 ?
노신사 (베랑제에게 ) 코뿔소 두 마리 중의 한 놈은 뿔이 두 개고 다른 한 놈은 뿔이 하나였다는 걸 어떻게 아
시죠? 그리고 어느 쪽이 그렇다는 거죠 ?
식료품가게 안주인 이 양반이라고 우리보다 더 잘 알 리가 있겠어요 ?
베랑제 우선 코뿔소가 과연 두 마리였는지조차 모르는 일입니다 . 내 생각엔 코뿔소는 한 마리뿐이었
던 것 같아요 .
카페 주인 코뿔소가 두 마리였다는 점은 인정하기로 합시다 . 그렇다면 뿔이 하나 있는게 어느 놈이
죠? 아시아 종인가요 ?
노신사 아니죠 . 뿔 두 개짜리가 아프리카 종입니다 . 난 그렇게 생각해요 .
카 페 주 인 뿔이 두 개 있는 놈은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아프리카 종이 아니예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암만 따져 봤자 도로아미타불이로군 .
노신사 하지만 이 문제는 분명히 밝혀져야 합니다 .
논리학자 (조심스럽게 나온다 ) 여러분 말씀중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
닙니다 . 제 소개부터 말씀드리자면 ….
주 부 (울먹이며 ) 이 분은 논리학자세요 .
카 페 주 인 아, 논리학자요 !
노신사 (논리학자를 베랑제에게 소개한다 ) 제 친구 , 논리학자입니다 .
베랑제 처음 뵙겠습니다 .
논리학자 (계속해서 ) …논리학의 전문가지요 . 여기 제 신분증이 있습니다 . (그는 신분증을 보인다 )
베랑제 영광입니다 , 선생님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저희들도 대단히 영광스럽습니다 .
카 페 주 인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십쇼 . 아프리카종 코뿔소는 뿔이 하나인지 ...
노신사 혹은 둘인지 ...
식료품가게 안주인 그리고 아시아종 코뿔소는 뿔이 둘인지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혹은 하나인지 .
논리학자 아니, 바로 그 점이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 내가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 바로 그 점이
지요.
식 료 품 가 게 주 인 하지만 , 우리 모두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그 점입니다 .
논 리 학 자 자, 여러분 제게 말을 좀 시켜 주십시오 .
노신사 여러분 , 어디 들어봅시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남편에게 ) 그럼 , 그 양반 얘기를 좀 들어 보세요 .
카 페 주 인 듣고 있습니다 , 선생님 .
논리학자 (베랑제에게 ) 내가 얘기하는 것은 특히 당신에게 하는 말이오 . 그리고 여기 계신 여러분에
게도 하는 말입니다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우리에게도 ….
논리학자 자, 우선 여러분은 어떤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무의식중에 그
문제에서 이탈하고 만 거예요 . 처음 시작은 방금 지나간 코뿔소가 아까 지나간 코뿔소와 같은 코
뿔소냐 , 아니냐가 문제였습니다 . 해답을 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

- 22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어떻게요 ?
논 리 학 자 자, 여기 뿔이 하나밖에 없는 동일한 코뿔소를 여러분이 두 번 보았는 지도 모르겠고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잘 알아들으려는 듯 되뇌인다 ) 뿔이 하나밖에 없는 ….
카 페 주 인 (마찬가지로 ) 코뿔소를 두 번….
논 리 학 자 (계속해서 ) 혹은 뿔이 두 개있는 동일한 코뿔소를 여러분이 두 번 보았는 지도 모르겠고 ….
노신사 (되뇌인다 ) 뿔이 두 개 있는 코뿔소 한마리를 두 번….
논리학자 그렇죠 . 또, 첫번째 코뿔소의 뿔이 하나였는데 다른 코뿔소인 두번째 코뿔소도 역시 뿔이
하나였는지도 모릅니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 하, 하….
논리학자 마찬가지로 첫번째 코뿔소의 뿔이 둘, 두번째 다른 코뿔소도 역시 뿔이 둘이었는지도 모르
겠고.
카 페 주 인 그렇군요 .
논 리 학 자 이번에는 여러분이 본 것이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우리가 본 것이 ….
노신사 그래요 우리가 본 것이 ….
논 리 학 자 만일 여러분이 본 것이 첫번째 놈은 뿔이 두 개 난 코뿔소였고 ….
카 페 주 인 뿔이 두 개 난 코뿔소였고 ….
논 리 학 자 두번째 놈은 뿔이 하나밖에 없는 코뿔소였다면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뿔이 한 개밖에 없는 코뿔소였다면 ….
논 리 학 자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 거기서는 아무런 결론이 안 나옵니다 .
노신사 거기서는 결론이 안 나옵니다 .
카 페 주 인 어째 그럴까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원, 난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네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원! 저런 !

그의 아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창에서 사라진다 .

논리학자 왜냐하면 , 얼마 안 되는 그 사이에 코뿔소가 뿔을 하나 잃어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 조금 전


의 코뿔소가 먼젓번 코뿔소와 동일하다는 것도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죠 .
베랑제 알겠습니다 . 하지만 ….
노신사 (베랑제의 말을 막으며 ) 잠자코 좀 있어요 .
논 리 학 자 또, 뿔이 두개 있는 코뿔소 두 마리가 두 놈 모두 뿔을 하나씩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
노신사 그럴 수도 있죠 .
카 페 주 인 암, 그럴 수도 있지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그렇구말구요 !
베랑제 네, 그렇지만 ….
노신사 (베랑제에게 ) 잠자코 좀 있어요 .
논리학자 만일 여러분이 본 코뿔소가 첫번째 놈은 그것이 아시아종이었건 아프리카종이었건 뿔이 하
나밖에 없었고 ….
노신사 아시아종이건 아프리카종이건 ….
논 리 학 자 …두번째 코뿔소는 뿔이 두 개였다고 한다면 ….
노신사 뿔이 두개였다고 한다면 !

- 23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논 리 학 자 그것이 아프리카종이었건 아시아종이었건 상관없이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아프리카종이었건 아시아종이었건 ….
논리학자 (논증을 계속하면서 ) …그때는 , 우리가 서로 다른 두 마리의 코뿔소를 문제로 삼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가 있겠습니다 . 왜냐하면 두번째 뿔이 코뿔소의 코에서 삽시간에 눈에 띠도록 크게
돋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
노신사 매우 희박하고 말고요 .
논 리 학 자 (자신의 추론에 만족해서 ) 그렇게 되면 그것은 아시아종이나 아프리카종의 코뿔소가 ….
노신사 아시아종이나 아프리카종의 코뿔소가 ….
논 리 학 자 …아프리카종이나 아시아종 코뿔소가 되는 것인데 ….
카 페 주 인 아프리카종이나 아시아종이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허허 !
논리학자 이것은 논리적으론 불가능하지요 . 왜냐하면 , 하나의 생물이 동시에 두 장소에서 태어날 수
는 없기 때문입니다 ….
노신사 또, 연거푸 태어날 수도 없고 .
논 리 학 자 (노신사에게 ) 그 점에는 증명이 필요해요 .
베랑제 (논리학자에게 ) 잘 알겠습니다만 그것이 문제의 해결은 안 되는군요 .
논리학자 (베랑제에게 권위있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며 ) 물론이죠 . 단, 이런 식으로 해서 문제는
정확하게 제시되어야만 합니다 .
노신사 정말 논리적이로군요 .
논 리 학 자 (모자를 벗으며 ) 여러분 , 그럼 안녕히 !

그는 돌아서서 왼쪽으로 나간다 . 그 뒤를 노신사가 따라간다 .

노신사 여러분 , 안녕히 . (그는 모자를 벗고 논리학자를 뒤따른다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그게 아마 논리적이라는 모양이지 ….

그때 카페에서 주부가 비탄에 젖어 상자를 들고 나온다 . 그 뒤로 마치 장례식처럼 데이지와 웨이트리


스가 뒤따라오고 있다 . 행렬은 오른쪽 출구를 향해 간다 .

식료품가게 주인 (계속해서 ) 그게 아마 논리적인 모양이지 . 하지만 뿔이 하나였는지 둘이었는지 아


시아종인지 아프리카종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코뿔소에게 고양이 한 마리가 밟혀 죽은 것은 사실
이란 말이야 . (그는 극적인 몸짓으로 밖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
카페 주인 그 말이 옳아요 . 그건 맞았어요 ! 그게 코뿔소이건 무엇이건 간에 고양이가 밟혀 죽은 것
만은 용서할 수 없어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그건 용서할 수 없죠 .
식료품가게 안주인 (가게 문으로 얼굴을 내밀며 남편에게 ) 여보 , 어서 들어와요 ! 손님들이 와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가게 쪽으로 가며 ) 암, 용서할 수 없지 .
베랑제 장하고 싸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 (카페주인에게 ) 꼬냑 한 잔 주세요 ! 더블로 !
카 페 주 인 예, 드리죠 . (꼬냑 잔을 가지러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
베랑제 (혼자서 ) 내가 화를 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카페주인 , 손에 커다란 꼬냑 잔을 들고 나온
다) 마음이 너무 서글퍼서 미술관엔 못 가겠는데 . 교양을 쌓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루지 . (그는
꼬냑 잔을 들고 마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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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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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제 2 막 제 1 장

장치
관청 사무실 또는 개인 기업 , 이를테면 법률서적의 대 출판사 사무실 . 무대 중앙 안쪽으로 커다란 두짝
문 , 그 위에 ‘부장실 ’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 그 문 옆 , 왼쪽 구석에 타이프라이터가 놓여 있는 데이
지의 책상이 있다 . 계단으로 통하는 문과 데이지의 작은 책상 사이에는 왼쪽 벽에 붙여 놓은 또 하나
의 테이블 . 그 위에는 직원들이 출근하면서 사인하는 출근부가 있다 . 거기서부터 왼쪽 전면에 계단으로
통하는 문 . 계단의 상부 , 난간 그리고 층계참이 보인다 . 전면으로 테이블 하나에 의자 둘 . 테이블 위에
는 교정지 , 잉크 , 펜 . 보따르와 베랑제의 책상이다 . 베랑제는 왼쪽 의자 , 보따르는 오른쪽 의자 . 오른쪽
벽 가까이에 그보다는 좀더 큰 또 하나의 장방형 테이블 . 역시 서류며 교정지 등이 흩어져 있다 . 이 테
이블에도 (훨씬 좋고 ‘거창한 ’) 두 개의 의자가 마주 보고 있다 . 뒤다르와 뵈프 씨의 테이블이다 . 뒤다
르는 벽에 기대어 있는 의자에서 직원들을 마주보게 될 것이다 . 그의 직함은 부장대리 .
안쪽 문과 오른쪽 벽 사이에는 창이 하나 있다 . 오케스트라 박스가 있는 극장에서는 객석과 마주보이
는 가운데 전면에 간단한 창틀만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오른편 안쪽 구석으로 외투걸이 . 회색 작업
복이나 낡은 웃저고리들이 걸려 있다 . 경우에 따라서는 외투걸이가 오른쪽 벽 바로 옆 , 무대 전면에 놓
일 수도 있다 .
벽에는 먼지가 쌓인 책과 서류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 왼쪽 책꽂이 위에는 안쪽으로 ‘법률 ’, ‘법전 ’이라
고 씌어 있고 , 오른쪽 벽에는 약간 비스듬히 , ‘관보 ’, ‘국세법 ’이라고 씌어 있다 . 부장실 문 위의 시계가
9시 3분을 가리키고 있다 .
막이 오르면 뒤다르가 그의 테이블 옆에 서 있다 . 객석에서는 오른쪽 옆모습이 보인다 . 테이블 반대쪽
에는 보따르 . 객석에서 왼쪽 옆얼굴이 보인다 . 두 사람 사이로 역시 테이블 앞에 부장이 객석을 정면으
로 향하고 있다 . 부장 왼쪽에 약간 뒤로 데이지 . 그녀는 타이프로 찍은 서류를 들고 있다 . 세 사람이
둘러앉은 테이블의 교정지들 위로 신문이 크게 펼쳐져 있다 .
막이 오르면 몇 초 동안 인물들은 움직이지 않은 채 , 그 자세에서 최초의 대사가 시작된다 . 활인화를
형성한다 . 제 1 막의 시작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
부장 . 50 세 가량 , 단정한 복장 . 곤색 신사복 , 레지옹 도뇌르 약장 (略章 ), 빳빳이 세운 칼라 , 검은 넥타
이 , 갈색의 짙은 콧수염 . 빠삐용 씨라고 불린다 .
뒤다르 . 35 세 . 회색빛 신사복 웃저고리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검은색 소매커버를 끼고 있다 . 안경을 써
도 좋다 . 키는 큰 편 , 장래의 간부 , 부장이 국장대리가 되면 그가 부장이 된다 . 보따르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
보따르 . 전직 국민학교 교사 . 거만한 표정에 짤막한 흰 콧수염 . 나이 육순은 실한 노인 (그는 모르는 게
없이 매사를 다 아는 척한다 .) 베레모를 쓰고 회색 긴 작업복을 입고 있다 . 꽤 높은 코에 안경을 쓰고
귀에는 연필이 꽂혀 있다 . 팔에는 역시 소매커버 .
데이지 . 금발의 젊은 처녀 .
뒤에 등장할 뵈프 부인 . 50 대의 뚱뚱한 여인 . 눈물이 잦고 숨을 헐떡인다 .
등장인물들은 막이 오르면 오른쪽 테이블 주위에 선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 부장은 식지로 신문을 가
리키고 있다 . 뒤다르는 보따르를 향해 손을 뻗치고 ‘하지만 잘 보란 말야 !’ 하는 듯한 표정 . 보따르는
작업복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 입술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띠고 ‘나는 못 속일걸 ’ 하는 표
정.
데이지 , 타이프한 서류를 들고 뒤다르를 지켜 보고 있는 듯하다 . 잠시 후에 보따르가 입을 연다 .

보따르 말도 안 되는 소리 ! 황당무계해도 분수가 있지 !

- 26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데이지 제가 봤는걸요 ! 코뿔소를 내 눈으로 봤다구요 .


뒤다르 신문에 났으니까 그건 확실해요 . 부인할 수야 없지 .
보따르 (형편없이 경멸하는 투로 ) 흥!
뒤다르 여기 씌어 있지 않아요 ? 자, 고양이가 밟혀 죽었다는 기사가 여기 있군요 ! 부장님 한 번 읽어
보시죠 !
빠 삐 용 씨 “어제 일요일 , 정오경 . 시내 공원 광장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후피 동물에게 밟혀 죽었음 .”
데이지 바로 교회 광장은 아니었지만요 !
빠삐용 씨 이게 전부야 . 상세한 내용은 없군 .
보따르 흥!
뒤다르 그 정도면 충분하죠 . 확실합니다 .
보따르 난 신문기자들을 믿지 않아요 . 신문 기자란 모두가 허풍장이지 . 난 난대로의 생각이 따로 서
있어서 내 눈으로 본 것 외에는 믿질 않거든 . 전에 선생으로 있을 때부터 난 명백한 것, 과학적
으로 증명되는 것 이외에는 상대하지 않아요 . 말하자면 나는 정확하고 방법적인 정신의 소유자란
말씀이오 .
뒤다르 지금 정확하고 방법적인 정신이라는 것이 여기서 무슨 소용이 있죠?
데이지 보따르씨 ! 이 기사는 아주 정확한 것 같아요 .
보따르 이걸 정확하다는 거요 ? 그렇다면 , 후피 동물이라는 건 도대체 뭘 말하는 거지 ? 고양이가 밟
혀 죽었다는 기사를 쓴 기자가 말하는 후피 동물이 어떤 동물이냐 말이오 ! 거기 대해서 한마디
도 없지요 ? 그리고 고양이라는 건 또 뭘 말하는 거지?
뒤다르 고양이가 뭔지는 누구나 다 아는 것 아닙니까 ?
보따르 수코양이냐 암코양이냐가 문제란 말이오 . 또 무슨 색이지 어떤 종자인지 . 나는 인종차별에는
반대지만 말이오 .
빠삐용 씨 이봐요 보따르 , 문제가 다르지 않소? 인종차별이 이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소 ?
보따르 부장님 , 용서하십쇼 . 하지만 인종차별이 20세기의 가장 큰 과오 중의 하나라는 건 부인 못하
시겠죠 ?
뒤다르 물론 그거야 우리도 동감이지만 그러나 여기선 그게 문제가 아니라 ….
보따르 뒤다르 , 그건 경솔하게 다룰 문제가 아니에요 . 역사적인 사실이 증명하듯이 인종차별은 ….
뒤다르 그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니까요 .
보따르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을 텐데 .
빠삐용 씨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에요 .
보따르 아니조 , 인종차별을 고발할 기회는 절대로 놓쳐선 안 됩니다 .
데이지 하지만 여기에는 인종차별의 편견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구요 . 당신은 문제의 방향을 다
른 데로 끌어가시는 거예요 . 지금은 단지 후피 동물 , 그러니까 코뿔소에게 밟혀 죽은 고양이가
문제라니까요 .
보따르 난 남불 (南佛) 태생이 아니오 . 남불 사람들은 상상력이 너무 지나쳐서 탈이야 . 그러니까 이번
사건도 어쩌면 생쥐에게 밟혀 죽은 벼룩 하 마리를 가지고 떠드는 건지도 모르지 . 그걸 과장한
거요.
빠삐용 씨 (뒤다르에게 ) 자, 그럼 우리 사건의 요점을 이야기해 보지 . 데이지가 봤다구 ? 코뿔소가 거
리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걸 말이야 .
데이지 어슬렁거리다니요 ? 막 뛰어 다녔는걸요 .
뒤다르 나 자신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들이 ….
보따르 (말을 가로막으며 ) 그게 다 허튼 수작들이란 말이오 . 신문 기자들을 믿다니 ! 그자들은 대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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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우롱한다 이 말이오 . 그 너절한 신문이 잘만 팔리게 꾸며서 사장의 비위를 맞추려는 거지 . 그들


은 사장의 종이니까 . 뒤다르 , 그런 걸 당신이 믿고 있다니 ! 법학사요 ? 법률가라는 사람이 . 참 우
스워서 ! 하, 하, 하….
데이지 하지만 , 내가 봤는걸요 . 코뿔소를 봤다니까요 ! 정말이에요 .
보따르 아니 , 난 아가씨를 얌전하게 봤는데 .
데이지 보따르 ,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에요 ! 나 혼자 본 게 아니에요 . 제 주위에서 여러 사람이 봤는걸
요.
보따르 흥! 그야 뭔가 다른 것을 봤겠지 ! …어차피 아무 할 일도 안 하고 , 빈둥거리는 한가한 사람들
이니까 .
뒤다르 어젠 일요일이었습니다 .
보따르 난 일요일에도 일해요 . 교회에 나오라는 신부의 말은 난 안 들으니까 ! 그 말 듣다간 땀 흘려
서 밥 벌어먹을 시간 다 뺏기게 .
빠삐용 씨 (분개해서 ) 무슨 말을 그렇게 !
보따르 죄송합니다 . 부장님의 비위를 거슬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 제가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종교를 경멸한다는 뜻은 아니올시다 . (데이지에게 ) 아가씨는 우선 코뿔소가 무지나 아시오 ?
데이지 그건 … 굉장히 크고 , 보기 흉한 동물이죠 !
보따르 그러면서도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어요 ? 데이지 , 코뿔소란 ….
빠삐용 씨 코뿔소에 대한 강의는 여기서 하지 말아요 . 여긴 학교가 아니니까 .
보따르 그렇다면 유감이로군요 .

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베랑제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 사무실 문을 살며시
열어 본다 . 문이 열리면서 ‘법률출판 ’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

빠삐용 씨 데이지양 , 아홉시가 지났으니 출근부 이리로 가져와요 . 지각한 사람들에게는 안됐지만 !

데이지는 출근부가 놓여 있는 왼쪽 작은 테이블로 간다 . 그때 베랑제가 들어온다 .

베랑제 (방 안 사람들이 토론을 계속하고 있는 사이에 , 들어서면서 데이지에게 ) 안녕 . 데이지 . 나 지


각 아니죠 ?
보따르 (뒤다르와 빠삐용 씨에게 ) 난 다만 저 아가씨의 무지를 반박하는 거예요 .
데이지 베랑제 . 자, 빨리요 .
보따르 …학교가 아니더라도 궁전이건 초가집이건 아무 데서라도 좋아요 .
데이지 출근부에 빨리 사인하세요 !
베랑제 고마워요 . 부장님 벌써 오셨나 ?
데이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베랑제에게 ) 쉿! 저기 계세요 .
베랑제 벌써 ? 이렇게 일찍 ? (그는 급히 출근부에 사인한다 )
보따르 (계속해서 ) 아무 데서건 상관없습니다 . 출판사라 해도 마찬가지지요 .
빠삐용 씨 보따르 , 내가 보기에는 ….
베랑제 (사인하면서 데이지에게 ) 아직 10분도 안 지났는데 ….
빠삐용 씨 말이 너무 지나친 것 같군.
뒤다르 (빠삐용 씨에게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부장님 .
빠삐용 씨 (보따르에게 ) 당신의 동료요 나의 협력자인 뒤다르를 무지몽매한 사람처럼 말을 하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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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되죠. 더구나 이 사람은 법학사요 우리 회사의 우수한 직원인데 .


보따르 전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 때로는 단과대학이나 종합대학이 국민학교만큼의 가치
도 없긴 하지만요 .
빠삐용 씨 (데이지에게 ) 어서 , 출근부 가져와 !
데이지 여기 있습니다 , 부장님 .
빠삐용 씨 (베랑제에게 ) 아, 베랑제가 나타났구만 .
보따르 (뒤다르에게 ) 대학에는 명확한 관념, 관찰 정신 , 실용적인 감각이 결여되어 있단 말이오 .
뒤다르 (보따르에게 ) 그럴 리가 !
베랑제 (빠삐용 씨에게 ) 안녕하셨습니까 , 부장님 . (그는 부장의 등 뒤를 지나 세 사람의 테이블 뒤를
돌아서 외투걸이 쪽으로 간다. 외투걸이에서 작업복 혹은 낡은 웃저고리를 벗기고 그 자리에 외
출복을 대신 걸어놓는다 . 그리고 외투걸이 옆에서 입고 있던 웃저고리를 벗고 작업복으로 바꾸어
입은 다음 자기 테이블로 가서 서랍 속의 검정빛 소매커버를 꺼내는 등… 사람들에게 인사도 한
다) 안녕하셨어요 . 부장님 ? 죄송합니다 .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지요 . 잘 지냈어 ? 뒤다르 ! 안녕하세
요, 보따르 !
빠삐용 씨 베랑제 , 자네도 코뿔소를 보았다구 ?
보따르 (뒤다르에게 ) 대학 교육이란 건 생활엔 아무 필요도 없는 추상적인 것뿐이라구 .
뒤다르 (보따르에게 ) 말도 안 되는 소리 !
베랑제 (지각한 것이 송구스러워 계속 부리타케 사무용품들을 챙기면서 빠삐용 씨에게 자연스러운
어조로 ) 네, 물론 봤습니다 .
보따르 (돌아다보며 ) 흥!
데이지 그것 보세요 . 내가 터무니없는 소릴 한 건 아니라구요 .
보따르 (빈정거리듯 ) 베랑제는 인사로 하는 소리예요 . 보기와는 달리 여자에겐 친절하단 말야 .
뒤다르 코뿔소를 봤다는 게 어째서 인사로 하는 소리라는 거예요 ?
보따르 그럴 수 있지 . 그게 데이지의 꿈 같은 이야기를 두둔해 주려는 거니까 . 모두가 데이지에게는
친절하거든 . 그야 , 이해가 갈 만하지만 .
빠삐용 씨 보따르 , 그렇게 악의로 해석하진 말아요 . 베랑제는 우리 얘기엔 끼어 들지 않았으니까 . 방
금 들어오지 않았소 ?
베랑제 (데이지에게 ) 당신도 봤죠 ? 우린 봤다니까요 .
보따르 흥, 허긴 베랑제라면 코뿔소를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 (그는 베랑제의 등 뒤에서 베랑제
가 술 마시는 흉내를 낸다 ) 상상력이 풍부하니까 말야 ! 이 친구 같으면야 . 모든 게 다 가능할 수
있어요 .
베랑제 나 혼자가 아니었단 말입니다 . 코뿔소를 본 게… 한 마리였던가 두 마리였던가 ….
보따르 몇 마리를 봤는지조차 모르시는군 .
베랑제 내 친구 장하고 같이 있었어요 ….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 .
보따르 (베랑제에게 ) 횡설수설하시는군 .
데이지 뿔이 하나밖에 없는 코뿔소였어요 .
보따르 흥! 두 사람이 한 패가 돼서 우릴 놀리는군 .
뒤다르 (데이지에게 ) 내가 듣기로는 뿔이 두 개라든데 .
보따르 그럴려면 아예 미리 함께 짜놓을 걸 그랬구려 !
빠삐용 씨 (시간을 보며 ) 이제 그만해 둡시다 . 시간만 자꾸 가는군 .
보따르 베랑제 , 코뿔소는 한 마리를 봤소 , 두 마리를 봤소 ?
베랑제 에― 그게 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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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보따르 그것도 모르고 있군 . 데이지양은 외뿔박이 코뿔소 한 마리를 봤다는데 베랑제 당신이 본 코
뿔소는 뿔이 하나였소 ? 둘이었소 ?
베랑제 실은 바로 그것이 문제랍니다 .
보따르 무슨 소린지 통 모르겠군 .
데이지 기가 막혀 !
보따르 난 당신들을 화나게 할 생각은 없소 . 하지만 당신들 얘기를 난 믿지 않아요 . 이 나라에 코뿔
소를 봤다는 소리는 아직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으니까 !
뒤다르 어쩌다가 그럴 수도 있겠죠 .
보따르 아니 절대로 없어요 .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 외에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코뿔소는 할머
니들의 미신속에서나 꽃이 피는 거요 .
베랑제 코뿔소에 ‘꽃이 핀다’는 표현은 적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
뒤다르 맞아요 .
보따르 (계속하며 ) 여러분들의 코뿔소 얘기는 신화니까 !
데이지 신화요 ?
빠삐용 씨 자, 이젠 일할 시간이오 !
보따르 (데이지에게 ) 신화라니까 ! 비행접시 같은 이야기지 !
뒤다르 하지만 실제로 고양이 한 마리가 밟혀 죽었잖아요 ? 그건 부인할 수 없죠 .
베랑제 그건 내가 증언할 수 있어요 .
뒤다르 (베랑제를 가리키며 ) 이런 증인들이 또 있다는데요 !
보따르 이런 증인을 신용하다니 !
빠삐용 씨 자, 여러분 ! 어서 !
보따르 (뒤다르에게 ) 군중심리라는 거요 . 뒤다르 , 군중심리 . 그건 마치 대중의 아편인 종교 같은 거란
말이오 !
데이지 난 비행접시를 믿어요 .
보따르 흥!
빠삐용 씨 (단호하게 ) 그만들 두지 못할까 ! 잡담들은 이제 그만하라구 ! 코뿔소가 있거나 말거나 비행
접시를 믿건 안 믿건 일은 해야지 ! 실제 동물이냐 가공의 동물이냐를 놓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
내라고 회사가 월급을 주는 줄 아나 ?
보따르 가공이에요 ?
뒤다르 실제라구요 .
데이지 실제로 있고말구요 .
빠삐용 씨 여러분 다시 한 번 주의를 주겠는데 지금은 근무 시간이오 . 결말도 안 날 그 논쟁은 이젠
그만 두시오 ….
보따르 (기분이 상해서 빈정대듯 ) 동감입니다 . 부장님 , 당신은 부장이시니까 부장님 명령이라면 우리
야 복종해야죠 .
빠삐용 씨 자, 빨리들 해요 . 난 당신네들 월급에서 벌금을 제하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 뒤다르 , 금주
법에 관해서 자네가 쓴 해설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
뒤다르 지금 정리중입니다 , 부장님 .
빠삐용 씨 빨리 끝내요 . 급하니까 . 베랑제 . 그리고 보따르 . ‘특산주 등록’이라는 포도주 통제법의 교정
은 끝났나요 ?
베랑제 아직 안 끝났습니다 , 부장님 . 어지간히는 했습니다만 ...
빠삐용 씨 같이 교정을 봐서 끝내시오 . 인쇄소에서 기다리고 있소 . 데이지양은 내 방으로 편지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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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인 받으러 오고 . 타자를 빨리 쳐서 .
데이지 알겠습니다 , 부장님 .

데이지는 그녀이 작은 테이블로 가서 타이핑한다 . 뒤다르도 자기 테이블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 베랑제


와 보따르는 그들의 작은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 객석에서는 두 사람 다 옆모습 . 보따르는 계단 쪽 문
에 등을 향하고 있다 . 보따르는 기분이 언짢은 표정 . 베랑제는 소극적이며 피로한 표정 . 그는 케이블
위에 교정지를 놓고 보따르에게 원고를 넘겨 준다 . 보따르는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는다 . 그 사이 빠삐
용 씨는 문을 쾅 닫고 나간다 .

빠삐용 씨 그럼 이따 봅시다 , 여러분 ! (나간다 )


베랑제 (읽으면서 교정한다 . 보따르는 연필을 들고 원고를 읽어 내려간다 ) ‘특산주’의 통제라 … (교정
한다) ‘득’이 아니라 ‘특’이고 … (교정한다 ) 등록도 ‘녹’이 아니라 ‘록’이지… 상부구릉지대의 하부
지역 보르도 지방의 특산주등록은 ….
보따르 (뒤다르에게 ) 나한텐 없는데 , 한 줄 띄었군 .
베랑제 다시 한번 읽어야지 . 특산주 등록은 ….
뒤다르 (베랑제와 보따르에게 ) 좀 조용히들 읽으시오 . 그 소리 때문에 내 일에 집중이 안 돼요 .
보따르 (뒤다르에게 베랑제의 고개 너머로 조금 전의 토론을 다시 시작한다 . 그 사이에 베랑제는 잠
시 동안 혼자서 교정을 본다 . 그는 소리없이 입술만 움직인다 ) 그건 속임수라구 !
뒤다르 속임수라니 , 뭐가요 ?
보따르 당신네들의 그 코뿔소 얘기 말이오 .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게 당신네들의 선전이니까 !
뒤다르 (일손을 멈추고 ) 선전이라니요 ?
베랑제 (참견한다 ) 그건 선전이 아니에요 ….
데이지 (타이핑을 중단하고 ) 내 눈으로 본 걸요 ! 나도 보고 또 모두들 봤다고 몇 번씩 말하지 않아
요?
뒤다르 (보따르에게 ) 웃기시는군 … 선전이라니 ? 무슨 목적으로요 ?
보따르 (뒤다르에게 ) 그만둬요 ! 그거야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 ? 시치미떼지 말라구 !
뒤다르 (화를 내며 ) 난 그런 이상한 조직에서 월급 받는 사람은 아니에요 !
보따르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개지며 , 주먹으로 테이블을 친다 ) 이건 모욕이야 용서할 수 없어 ! (보
따르 일어선다 )
베랑제 (사정하듯 ) 보따르 , 그만 ….
데이지 뒤다르 , 그만둬요 ….
보따르 모욕이라니까 ….

별안간 부장실 문이 열린다 . 보따르와 뒤다르는 얼른 다시 앉는다 . 부장은 출근부를 들고 있다 . 그가


나타나자 갑자기 조용해진다 .

빠삐용 씨 뵈프 씨는 오늘 안 나왔나 ?
베랑제 (주위를 둘러보며 ) 그러고 보니 안 나왔군요 .
빠삐용 씨 바로 그 사람이 있어야겠는데 말야 . (데이지에게 ) 아프다든가 출근을 못하겠다는 무슨 연
락이라도 없었나 ?
데이지 아무 말도 없었는데요 .
빠삐용 씨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선다 ) 계속 이 지경이면 파면이야 . 벌써 여러 차례 나를 골탕먹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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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든. 여태까지는 눈감아 줬지만 , 이젠 안 되겠어 …. 누구 , 그 친구 책상 열쇠 가지고 있는 사람 없


소?

바로 그때 뵈프 부인이 들어온다 . 마지막 대사가 진행되는 동안 , 그녀가 층계를 황급히 뛰어오르는 것


이 보인다 . 그녀는 불쑥 문을 연다 . 숨을 헐떡이며 몹시 당황한 표정 .

베랑제 뵈프 부인이 오셨군요 .


데이지 안녕하세요 ? 뵈프 부인 .
뵈프 부인 안녕하셨어요 , 부장님 . 안녕들 하셨어요 , 여러분 !
빠 삐 용 씨 그런데 바깥양반은요 ? 어떻게 된 거예요 ? 이젠 안 나오겠답니까 ?
뵈프 부인 (숨이 차서 ) 죄송합니다 … 저의 그이 때문에 말예요 … 주말여행을 갔다가 감기가 살짝 들
었지 뭡니까 !
빠 삐 용 씨 감기가 살짝 들었어요 ?
뵈 프 부 인 (부장에게 편지를 내밀며 ) 네, 이렇게 전보로 왔군요 . 수요일에나 돌아온다고요 … (사뭇 기
절이라도 할 듯이 ) 물 한 컵만 주세요 … 의자하구요 ….

베랑제가 무대 한가운데로 자신의 깨끗한 의자를 갖다 준다 . 그녀는 그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

빠 삐 용 씨 (데이지에게 ) 물 한 컵 갖다드려요 .
데이지 네, 곧 가져올게요 !

그녀는 물 한 컵을 갖다가 다음의 몇 마디 대사가 진행되는 사이에 뵈프 부인에게 물을 마시게해준다 .

뒤다르 (부장에게 ) 저, 부인 , 심장이 약한가 보죠 .


빠 삐 용 씨 뵈프 씨의 무단 결근은 곤란한데요 . 하지만 그렇다고 부인께서 그렇게 떨 건 없습니다 .
뵈프 부인 (간신히 ) 그건 … 그건 … 코뿔소가 저를 막 쫓아와서 그런거예요 .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
베랑제 뿔이 하나던가요 ? 둘이던가요 ?
보따르 (웃음을 터뜨리며 ) 웃기지 좀 마쇼 !
뒤다르 (분개해서 ) 부인 얘길 들어봐요 .
뵈프 부인 (분명하게 말하려고 애를 쓰며 , 손가락으로 층계 쪽을 가리킨다 ) 저기 있어요 . 아래층 입
구에! 층계를 올라올 기세던데요 .

그순간 소음이 들려온다 . 굉장한 무게로 계단이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 아래층에서 코뿔소의 괴로운 울
음소리가 들려온다 . 계단이 무너질 때 일어나던 먼지가 일단 가라앉으면서 허공에 매달린 층계참이 보
인다 .

데이지 맙소사 !
뵈프 부인 (의자에 앉아서 가슴에 손을 얹고) 아!….

베랑제가 부인에게로 달려가 , 부인의 뺨을 툭툭치고 물을 먹인다 .

베랑제 진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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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그 사이에 빠삐용 씨 , 뒤다르 , 보따르는 왼쪽으로 달려가 급히 문을 여느라고 먼지에 묻힌 층계참에서


서로 부딪친다 . 코뿔소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린다 .

데이지 (뵈프 부인에게 ) 좀 괜찮으세요 ?


빠삐용 씨 (층계참에서 ) 저기 있다 . 저 아래 ! 한 마리야 !
보따르 내 눈엔 안 보이는데요 . 착각이라니까요 .
뒤다르 있어요 . 저 아래 빙빙 돌고 있는데요 .
빠삐용 씨 여러분 , 틀림없어요 . 빙빙 돌고 있어요 .
뒤다르 올라오진 못할 거예요 . 계단이 없어졌으니까 .
보따르 정말 이상하군 .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람 .
뒤다르 (베랑제 쪽을 돌아보며 ) 이리 와봐 . 와서 보라구 . 자네가 말하던 코뿔소야 .
베랑제 갈게 .

베랑제 , 층계참 쪽으로 달려간다 . 데이지도 뵈프 부인을 놓아두고 뒤따른다 .

빠삐용 씨 (베랑제에게 ) 자, 코뿔소의 전문가가 와서 좀 보라구 .


베랑제 전 코뿔소의 전문가는 아닌데요 ...
데이지 어머 , 저것 좀 보세요 … 빙빙 돌고 있군요 . 괴로워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
뒤다르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군. (보따르에게 ) 어때요 , 이젠 보이시겠죠 ?
보따르 (퉁명스럽게 ) 과연 보이는군 .
빠삐용 씨 그럼, 우리 모두가 착각을 일으킨 거요 ? 당신도 ….
보따르 난 절대로 착각 같은 건 안 합니다 . 저 이면에 뭔가 있겠죠 .
뒤다르 있다니 뭐가요 ?
빠삐용 씨 (베랑제에게 ) 저건 분명히 코뿔소지 ? 안 그래? 자네가 봤다는 게 저거지 ? (데이지에게 ) 데
이지양도 그런가 ?
데이지 네, 물론이죠 .
베랑제 뿔이 두 개군요 . 저건 아프리카종 , 아니 저건 오히려 아시아종인지도 몰라요 . 모르겠는데요 .
아프리카종 코뿔소는 뿔이 두 개인지 하나인지 .
빠삐용 씨 저 놈이 층계를 무너뜨려서 오히려 다행이군 . 어차피 무너지게 돼 있었으니가 ! 다 썩어빠
진 저 낡은 계단을 시멘트 층계로 갈아 달라고 내가 사장한테 말을 했는데 ….
뒤다르 일주일 전에도 제가 그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 부장님 .
빠삐용 씨 어차피 무너지게 돼 있었다구 . 그걸 미리 알았던 거지 . 내 말이 틀림없었어 .
데이지 (빠삐용 씨에게 , 비꼬듯 ) 부장님 말씀이야 늘 틀림없죠 .
베랑제 (뒤다르와 빠삐용 씨에게 ) 뿔이 두 개 있는 건 아시아종 코뿔소의 특징인가요 아니면 아프리
카종의 특징인가요 . 그리고 뿔이 하나 있는 게 아프리카봉의 특징인가요 . 아시아종의 ….
데이지 가엾어라 . 저렇게 끝없이 울며 돌고 있으니 . 왜 그러는 걸까 ? 어머나 우리를 쳐다보네 . (코뿔
소를 향해 쓰다듬어 주기라도 할 듯) 어디 좀 보자 . 여기야 , 여기 ….
뒤다르 귀여워해도 안 될걸 . 길이 안 들어 있을 거요 .
빠삐용 씨 어쨌든 이젠 위험할 건 없어 .

코뿔소가 무섭게 운다 .

- 33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데이지 가엾어라 !
베랑제 (앞의 대사를 이어서 , 보따르에게 ) 당신은 뭐든지 다 알 텐데 어때요 ? 뿔 두 개 난 것이….
빠삐용 씨 베랑제 , 왜 그렇게 횡설수설하나 ? 아직도 정신이 안 나는 게 아냐 ? 보따르 말이 맞군 .
보따르 이런 일이 어떻게 이 문명국에서 감히 ….
데이지 (보따르에게 ) 그래요 , 하지만 진짜로 있잖아요 ?
보따르 이건 파렴치한 음모야 ! (의회연단의 연사처럼 뒤다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를 무섭게
노려보며 ) 이건 자네 책임이야 !
뒤다르 이게 왜 내 책임이오 ? 당신 책임은 아니고 ?
보따르 (분개해서 ) 내 책임이라고 ? 항상 약자의 책임으로 돌리는군 . 이게 나 한 사람만의 문제라면
몰라도 ….
빠삐용 씨 이젠 계단도 없어졌으니 , 꼼짝 못하게 생겼군 .
데이지 (보따르와 뒤다르에게 ) 그만들 해 두세요 . 지금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라구요 .
빠삐용 씨 모두가 사장 책임이야 .
데이지 그렇죠 . 그러나 저러나 우린 어떻게 내려가죠 ?
빠삐용 씨 (정답게 농조로 , 타이피스트의 뺨을 쓰다듬으며 ) 내가 안아 주지 . 그리고 함께 뛰어내리는
거야!
데이지 (부장의 손을 뿌리치며 ) 손대지 마세요 ! 코뿔소처럼 꺼칠꺼칠한 그 손으로 !
빠삐용 씨 농담이야 .

그동안에도 코뿔소는 계속 운다 . 뵈프부인은 일어서서 다른 사람들 틈에 와서 낀다 . 그녀는 잠시 밑에


서 돌고 있는 코뿔소를 주의깊게 바라보다가 별안간 무서운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

뵈프 부인 아니, 이럴 수가 !
베랑제 (뵈프 부인에게 ) 왜 그러시죠 ?
뵈 프 부 인 저건 제 남편이예요 ! 뵈프 , 가엾게도 , 여보, 어떻게 된 거예요 ?
데이지 (뵈프 부인에게 ) 확실하세요 ?
뵈프 부인 네, 그이에요 . 틀림없어요 .

코뿔소는 격렬하면서도 부드럽게 응수한다 .

빠 삐 용 씨 그럴 리가 ! 그렇다면 ,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파면이다 !


뒤다르 그게 확실해요 ?
보따르 (방백 ) 이젠 모든 걸 알겠군 ….
데이지 그럼 , 이런 경우엔 퇴직 보험을 어떻게 지불하죠 ?
뵈프 부인 (기절해서 베랑제의 품에 쓰러지며 ) 아!
베랑제 아니 !
데이지 저리로 옮기죠 .

베랑제는 뒤다르와 데이지의 도움을 받으며 뵈프 부인을 의자로 옮겨다 앉힌다 .

뒤다르 (부인을 옮기면서 )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 부인 .

- 34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뵈프 부인 아이구 ! 맙소사 !
데이지 어떻게 잘 되겠죠 ….
빠 삐 용 씨 (뒤다르에게 ) 법률적으로는 어떻게 되나 ?
뒤다르 가정법원에 가야 되겠죠 .
보따르 (일행의 뒤를 따르며 ,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 이거야 원. 완전히 미친 짓들이로군 ! 어떻게
된 사회인지 원! (보다르가 중얼거리는 동안 , 모두들 뵈프 부인 주위로 몰려가 뺨을 툭툭 친다 .
뵈프 부인은 눈을 뜨고 ‘아!’ 하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더니 다시 눈을 감는다 . 모두들 다시 그녀의
뺨을 때린다 ) 어쨌든 내가 조합에 가서 모든 얘기하죠 . 궁지에 빠져 있는 동료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 이젠 모든 걸 다 알게 될 거야.
뵈프 부인 (정신이 든다 ) 가엾은 그 양반을 저대로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 가엾어라 . (코뿔소의
울음소리 들린다 ) 날 부르고 있어요 . (부드럽게 )
데이지 뵈프 부인 , 좀 괜찮으세요 ?
뒤다르 이젠 정신이 들었어 .
보따르 (뵈프 부인에게 ) 안심하시고 우리 위원회에 맡기십시오 . 우리 조합 에 안 드시겠습니까 ?
빠 삐 용 씨 일이 또 늦어지는군 . 데이지 , 편지 ….
데이지 그보다는 ,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를 먼저 생각해야죠 .
빠 삐 용 씨 그래 , 그게 문제긴 문제야 . 창문으로 .

의자에 쓰러져 있는 뵈프 부인을 빼놓고는 모두들 창문 쪽으로 간다 . 보따르는 혼자 무대 한가운데


서 있다 .

보따르 난 이게 어디서 생긴 일인지 안다구 .


데이지 (창가에서 ) 너무 높아요 .
베랑제 소방수를 부르면 사다리를 가져오지 않을까요 ?
빠삐용 씨 데이지양 , 내 방에 가서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봐 . (빠삐용 씨는 데이지를 따라갈 듯이 보
인다)
데이지 (안쪽 문으로 나간다 .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 여보세요 . 소방서예요 ?” 하는 소리 . 이어서
잘 들리지 않는 통화 소리 )
뵈프 부인 (별안간 일어서며 ) 그이를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구
요!
빠 삐 용 씨 혹시 이혼을 원하신다면 … 지금이야말로 정당한 사유가 됩니다 .
뒤다르 분명히 저쪽이 나쁜 거니까요 .
뵈프 부인 안돼요 ! 저 불쌍한 사람을 ! 그럴 때가 아니에요 . 내 남편을 저대로 내버려 둘 순 없어요 .
보따르 부인이야말로 착한 부인이십니다 .
뒤다르 (뵈프 부인에게 ) 하지만 , 어떡하시려구요 ?

뵈프 부인은 왼쪽으로 달려가 층계참으로 뛰어든다 .

베랑제 위험해요 !
뵈프 부인 저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
뒤다르 부인을 붙잡아요 !
뵈프 부인 내가 집으로 데려가겠어요 .

- 35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빠 삐 용 씨 어쩌려구 저러지 ?
뵈프 부인 (계단 위에서 뛰어 내리려한다 ) 여보 , 내가 내려갈게요 !
베랑제 뛰어 내리려나 봐요 .
보따르 아내로서야 응당 그래야겠지 .
뒤다르 그건 무리예요 .

계속 전화를 걸고 있는 데이지를 빼놓고는 모두들 층계참 위의 부인 옆에 몰려 있다 . 뵈프부인 뛰어


내린다 . 베랑제가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치마만 손에 걸려 있다 .

베랑제 붙잡을 수가 없었어 .

밑에서 코뿔소의 부드러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

뵈 프 부 인 여보 , 나예요 . 내가 왔어요 .
뒤다르 등에 올라탔어요 . 승마하듯이 .
보따르 여장부로군 .
뵈 프 부 인 의 목 소 리 집으로 갑시다 . 여보 , 돌아갑시다 .
뒤다르 전속력으로 달리는데요 .

뒤다르 , 베랑제 , 보따르 , 빠삐용 씨 , 무대 중앙으로 돌아와 창가로 간다 .

베랑제 빨리 달리는데요 !
뒤다르 (빠삐용 씨에게 ) 부장님은 마술을 배우신 일이 있으십니까 ?
빠 삐 용 씨 옛날에 … 조금 … (한쪽 문 있는 데를 돌아보며 ) 여태 전화가 안 끝났군 ….
베랑제 (계속 코뿔소를 바라보며 ) 벌써 꽤 멀리 갔는데요 . 이젠 보이지도 않아요 .
데이지 (나오면서 ) 소방서가 안 나와서 애먹었어요 !
보따르 (혼잣말에 결론이라도 내리듯이 ) 당치도 않은 일이야 !
데이지 소방서가 안 나와서 혼났어요 ….
빠 삐 용 씨 사방에서 불이라도 났나 ?
베랑제 전 보따르와 동감입니다 . 뵈프 부인의 태도는 정말 감동적이에요 . 마음씨가 착하고 .
빠 삐 용 씨 직원 하나가 모자르게 됐으니 , 대신 누굴 써야겠는데 .
베랑제 그 사람은 이제 여기선 정말로 필요없는 사람이 돼 버린 걸까요 ?
데이지 불이 나서가 아니래요 . 다른 데서도 코뿔소들이 나타나서 그리로 불려간 거래요 .
베랑제 코뿔소들이 또 있다고 ?
뒤다르 뭐라고 ? 코뿔소들이 또 있다고 ?
데이지 그래요 . 다른 코뿔소들이 또 있는 거죠 . 시내 여기저기서 신고가 들어왔대요 . 오늘 아침엔 일
곱 마리였는데 , 지금은 열 일곱 마리가 됐다나요 .
보따르 기가 막혀서 !
데이지 (계속해서 ) 서른 두 마리라는 소리도 있어요 . 아직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 곧 확인이 될 거예
요.
보따르 (아직 납득이 덜간 듯이 ) 흥! 과장이겠지 !
빠삐용 씨 그래, 우리를 여기서 꺼내러 오겠다던가 ?

- 36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난 배가 고픈데 ….
데이지 네, 오겠대요 . 소방수들이 지금 오고 있는 중이에요 .
빠삐용 씨 그럼, 다시 일을 해야지 !
뒤다르 지금은 그럴 경황이 없잖습니까 ?
빠삐용 씨 그래도 그 동안에 허비한 근무시간을 만회해야지 .
뒤다르 보따르 , 그래도 코뿔소의 출현을 부인하겠어요 ?
보따르 우리 조합에서는 사전 통고 없이 배포 씨를 해고하는 데는 반대예요 !
빠삐용 씨 그 결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오 . 조사 결과가 그렇게 되리라는 거지.
보따르 (뒤다르에게 ) 아니 , 난 코뿔소의 출현을 부인하지 않아요 . 뒤다르 . 난 부인한 일 없어요 .
뒤다르 신용할 수 없는 양반이로군 .
데이지 그래요 . 신용할 수 없는 분이에요 .
보따르 다시 한 번 말해두지만 난 절대로 부인한 일 없어요 . 난 다만 어떻게 되가는지를 끝까지 알
아보려 했을 뿐이지 . 그런데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알게 된 거요 . 난 단지 현상만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오 . 그걸 이해하고 분석하지 . 적어도 분석할 줄을 ….
뒤다르 그럼 , 어디 그 분석 좀 들어봅시다 .
데이지 보따르 . 설명해 보세요 .
빠삐용 씨 설명하시오 . 동료들이 모두 그걸 원하니 .
보따르 설명하지요 ….
뒤다르 들어 봅시다 .
데이지 재미있겠는데요 .
보따르 설명하지요 …. 언젠가는 ….
뒤다르 왜 지금 당장 안 하고 ?
보따르 (빠삐용 씨에게 위협하듯 ) 우리끼리 우선 얘기해 봅시다 . (모두에게 ) 난 이 사건의 원인을 알
고 있어요 . 그 내막을 ….
데이지 내막이라니요 ?
베랑제 무슨 내막을요 ?
뒤다르 그게 알고 싶은데요 . 그 내막이 ….
보따르 (계속한다 . 무서운 얼굴로 ) 또 난 중요 인물의 이름들도 모두 알고 있다구요 . 배반자들의 이
름도. 난 속이지 못해. 이 도발의 의미와 목적을 곧 여러분에게 알려드리지요 . 내가 그 선동자들
을 폭로하겠어요 .
베랑제 누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
뒤다르 보따르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
빠삐용 씨 그런 헛소릴랑은 그만둡시다 .
보따르 헛소리라니오 ? 내가 헛소리를 한다구 ?
데이지 아까는 보따르가 우리에게 헛소리를 한다고 비난하고선 ….
보따르 아까는 그랬지 . 하지만 지금은 헛소리가 아니라 도발이 된 거요 .
뒤다르 도대체 어째서 그렇게 되었죠 ?
보따르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지 . 여러분 ! 어린애들은 진짜로 아무 것도 모르지만 위선자들은 알고도
모르는 척한단 말입니다 .

소방차가 도착하는 소리 . 신호소리가 들린다 . 창문 앞에서 급정거하는 차의 브레이크 소리 .

- 37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데이지 소방차가 왔어요 !


보따르 모든 게 뒤바뀌어야 해. 이대로는 안 된다구 .
뒤다르 보따르 . 그런 소리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 코뿔소들은 정말 있는 거예요 . 그밖에 다른 뜻은 아
무 것도 없다구요 .
데이지 (창가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 여기예요 . 소방수 아저씨 !

밑에서 소란스러운 소리 . 동요 , 자동차소리 들려온다 .

소방수의 목소리 사다리를 놔!


보따르 (뒤다르에게 ) 나는 사건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구 . 확실한 해석이 있지 .
빠삐용 씨 오후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야 해.

소방차의 사다리가 벽에 걸쳐진다 .

보따르 일은 이제 끝장난 거로군요 . 부장님 .


빠 삐 용 씨 회사측에선 뭐라고 하겠나 ?
뒤다르 사정이 사정인걸요 , 뭐.
보따르 (창을 가리키며 ) 어쨌든 같은 길로 해서 돌아오라는 명령은 못하겠죠 . 그러니 층계가 고쳐질
때를 기다리면 되겠군 .
뒤다르 만일 다리라도 부러지는 사람이 생기면 , 그거야말로 회사가 골치 아플걸요 .
빠삐용 씨 그렇군 .

소방수의 모자 , 이어서 소방수가 나타난다 .

베랑제 (데이지에게 창문을 가리키며 ) 먼저 내려가시죠 . 데이지 .


소방수 자, 아가씨 .

소방수가 창문에서 기어 내리는 데이지를 안고 함께 사라진다 .

뒤다르 그럼 데이지 , 나중에 봅시다 .


데이지 (사라지면서 ) 이따 뵈요 , 여러분 !
빠삐용 씨 (창문에서 ) 데이지 양, 내일 아침에 전화하라구 . 우리 집에 와서 타이핑해야 해. (베랑제에
게) 베랑제 . 우린 휴가가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해. 되도록 빨리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구 . (나
머지 두 사람에게 ) 다들 들었죠 ?
뒤다르 알겠습니다 . 부장님 .
보따르 물론이죠 . 우리야 뼈가 으스러질 때까지 착취당하는 거니까요 .
소방수 (다시 창문에 나타나며 ) 이번엔 누구 차례죠 ?
빠 삐 용 씨 (세 사람에게 ) 자, 어서 .
뒤다르 부장님께서 먼저 .
베랑제 부장님께서 먼저 .
보따르 물론 먼저 내려가셔야죠 .
빠 삐 용 씨 (베랑제에게 ) 데이지 양의 편지를 이리 가져와요 . 저기 테이블 위에 .

- 38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 편지를 가지러 갔다가 빠삐용 씨에게 그것을 전한다 .

소방수 자, 빨리요 . 시간이 없어요 . 여기뿐이 아니라구요 .


보따르 봐요 , 내 말이 맞지 ?

빠삐용 씨 , 편지를 팔에 끼고 창문을 기어 내린다 .

빠 삐 용 씨 (소방수들에게 ) 서류 조심하시오 . (뒤다르 , 보따르 , 베랑제를 돌아보며 ) 그럼 또 봅시다 .


뒤다르 조심해서 가십시요 , 부장님 .
베랑제 조심해서 가십시요 , 부장님 .
빠 삐 용 씨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 “서류 조심해요 !” 하는 소리가 들린다 )
빠삐용 씨의 목소리 뒤다르 ! 사무실에 문 잠가요 !
뒤다르 (큰소리로 ) 염려마십쇼 , 부장님 . (보따르에게 ) 먼저 내려가시죠 .
보따르 그럼 , 난 내려가겠소 . 내려가는 길로 당국에 가서 알아보겠어요 . 그래서 이 수상한 비밀을 밝
혀내고 말거요 .

그는 창가로 가서 사다리를 타려 한다 .

뒤다르 (보따르에게 ) 벌써 다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요 .


보따르 (창문을 기어 내려가며 ) 빈정대는 모양이지만 어림없지 . 내가 바라는 건, 자네에게 증거와 증
거물을 보여주는 거야. 그래 , 자네 배신의 증거를 말야 .
뒤다르 말도 안 되는 소리….
보따르 자네의 모욕은 …
뒤다르 (가로 막으며 ) 모욕한 건 당신이오 ….
보따르 (사라지면서 ) 난 모욕 같은 건 안 해. 난 증거만을 보인다구 .
소방수의 목소리 자, 빨리요 .
뒤다르 (베랑제에게 ) 오늘 오후에 뭐하겠나 ? 한 잔 안 할래
베랑제 오늘은 사양하겠어 . 모처럼 시간이 생겼으니 , 내 친구 장이나 만나러 가려구 . 그 친구와 화해
를 해야겠어 . 어제 서로가 언짢았었거든 . 내가 나빴어 .

소방수의 머리가 다시 창가에 나타난다 .

소방수 자, 빨리 ….
베랑제 (창을 가리키며 ) 먼저 내려가 .
뒤다르 (베랑제에게 ) 자네가 먼저 .
베랑제 아냐 , 먼저 내려가 .
뒤다르 괜찮대두 , 어서 .
베랑제 제발 , 어서 먼저.
소방수 빨리 빨리요 !
뒤다르 자, 어서 .
베랑제 자, 어서 .

- 39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두 사람 , 동시에 창으로 기어 내린다 . 소방수가 그들이 내리는 것을 거들어 준다 . 그 사이에 막이 내


린다 .

- 40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제 2 막 제 2 장

장치
장의 집 . 장치 구조는 2 막 1 장과 거의 같다 . 즉 무대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
오른쪽 무대의 4 분의 3이나 5 분의 4가 (무대의 크기에 따라 ) 장의 방이다 .
안쪽으로 벽에 기대어 장의 침대 . 장이 누워 있다 . 무대 한가운데 의자나 소파가 하나 . 베랑제가 오면
앉게 될 것이다 .
오른쪽 중앙에 장의 화장실로 통하는 문 . 장이 그리고 들어가면 세면대와 샤워의 물소리가 들린다 . 방
왼쪽에는 칸막이가 있어서 무대를 둘로 나눈다 . 중앙에는 계단으로 통하는문 . 너무 리얼하지 않은 양식
화된 장치를 원할 때에는 칸막이 없이 문만 달아도 된다 . 무대 왼쪽에는 층계 , 장의 방으로 통하는 층
계의 마지막 부분 , 난간 , 층계참이 보인다 . 그 층계참과 같은 높이에 안쪽으로 이웃집 방문 . 무대 안쪽
으로 아래층에는 유리문의 부분이 보이고 , 그 위에 ‘관리인 ’이라고 씌어 있다 .
막 오르면 장이 객석을 등진 채 침대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다 기침한다 . 잠시 후 베랑제가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 노크한다 . 장은 대답이 없다 . 베랑제 , 다시 노크한다 .

베랑제 장! (다시 노크한다 ) 장!

층계참 안쪽으로 난 문이 반쯤 열리며 흰 턱수염의 자그마한 노인이 나타난다 .

노 인 뭐요 ?
베랑제 장을 찾아왔습니다 . 장의 친구입니다 .
노 인 난 또, 날 부르는 줄 알았지 . 내 이름도 장이요 . 다른 장이었구만 .
노 인 의 아 내 목 소 리 (방안에서 ) 우리래요 ?
노 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아내 쪽을 돌아보며 ) 아냐 , 다른 장이래 .
베랑제 (두드리며 ) 장!
노 인 나가는 건 못 봤는데 어젯밤에 봤어요 .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습디다 .
베랑제 예. 그게 바로 저 때문이랍니다 .
노 인 아마 , 열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 또 한 번 불러봐요 .
노 인 의 아 내 목 소 리 장! 웬 수다예요 !
베랑제 (두드리며 ) 장!
노 인 (아내에게 ) 그래 곧 갈께 …. (그는 문을 닫고 사라진다 )
장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누워서 목쉰 소리로 ) 뭐야?
베랑제 장, 나야 나.
장 누구 ?
베랑제 나야 , 베랑제 . 들어가도 괜찮겠지 ?
장 응, 자넨가 ? 들어와 .
베랑제 (문을 열려다가 ) 문이 잠겨 있는데 .
장 그래 잠깐만 . 곧 나갈께 . (장이 일어난다 . 실은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다 . 녹색 잠옷에 머리는
헝클어져 있다 ) 잠깐만 . (열쇠구멍에 열쇠를 끼고 돌린다 ) 잠깐만 . (다시 침대로 가서 먼저처럼
이불을 쓰고 눕는다 ) 들어와 .
베랑제 (들어오며 ) 잘 있었어 , 장?
장 (침대에서 ) 지금 몇 시지 ? 자넨 , 회사에 안 나갔나 ?

- 41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자넨 아직도 자고 있잖아 ? 회사에 안 나갔나 ? 미안하게 됐네. 방해한 것 같아서 .


장 (등을 돌린 채) 이상한데 . 내가 자네 목소릴 못 알아들었으니 .
베랑제 하긴 나도 . 자네 목소리를 못 알아들었어 .
장 (계속 등을 돌린 채) 앉아 .
베랑제 어디 아픈가 ? 내가 바보였어 . (장은 웅얼웅얼 대답한다 ) 장, 자네와 다투다니 . 그것도 그런 얘
길 가지고 .
장 무슨 얘기 ?
베랑제 어제 말야 ….
장 어제 언제 ? 어디서 ?
베랑제 자네 잊어 버렸나 ? 코뿔소 얘기 말야 . 그 불길한 코뿔소 말일세 .
장 어떤 코뿔소 말야?
베랑제 그 코뿔소 . 어제 우리가 본 그 코뿔소 말야. 자네 말대로라면 두 마리지만 .
장 아, 그거 , 생각나네 … 그런데 그 두 마리의 코뿔소가 불길하대 ? 누가 그런 소릴 하던가 ?
베랑제 아니 , 그저 그렇게 말해 본 거야.
장 그렇다면 그 얘긴 이제 그만두지 .
베랑제 자넨 그럼 진짜로 화가 난 건 아니군 .
장 그래서 ?
베랑제 난 자네한테 쓸데없이 고집부린 걸 후회한다는 얘길 하고 싶어서 내가 왜 그렇게 악착같이 …
고집을 부렸는지 … 화를 내면서까지 말야… 그래 정말이지 . 내가 바보였어 .
장 그럴 테지 .
베랑제 미안해 .
장 난 몸이 좀 좋질 않아 . (기침한다 )
베랑제 그래서 누워있군 . (어조를 바꾸며 ) 그런데 말야 , 장, 우린 둘이 다 옳았어 .
장 도대체 뭐가 ?
베랑제 결국은 … 같은 … 그 얘긴데 , 그 얘길 또 끌어내서 미안하지만 , 내 간단히 얘기할게 . 장, 우린
둘이 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옳았다는 얘길 하고 싶었던 거야. 그게 지금 증명되었거든 . 이 도시
에는 뿔이 둘 있는 코뿔소도 있고 , 하나있는 코뿔소도 있다구 .
장 그래 , 내 뭐라던가 ! 그러니 야단났지 ?
베랑제 그래 야단났어 .
장 잘 됐을 수도 있지 . 경우에 따라서는 .
베랑제 (계속해서 ) 뿔 두 개짜리가 어디서 왔건 뿔 하나짜리는 또 어디서 왔건 , 뿔 하나짜리가 어디
서 오고 뿔 두 개짜리는 어디서 왔건 그런 건 사실 문제가 별로 안 된다구 . 내 생각에 중요한 것
은 코뿔소 그 자체의 존재야 . 왜냐하면 ….
장 (홱 돌아보더니 흐트러진 침대 위에 앉으면서 , 베랑제를 향해 ) 난 지금 몸이 안 좋다구 ! 기분
이 안 좋아!
베랑제 그거 안됐는데 ! 어째 그렇지 ?
장 나도 모르겠어 . 불편해서 그래 , 몸이 불편해 ….
베랑제 피로한 거 아냐 ?
장 천만에 기운이 넘치는걸 .
베랑제 그러니까 … 일시적인 피로 말야… 누구나 그럴 때가 있으니까 .
장 난 절대 그런 일 없어 .
베랑제 그렇다면 건강 과다로군 . 에너지가 남아 돌아가도 때로는 좋지 않은 거지 . 신경의 균형이 깨

- 42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지거든 .
장 나는 균형이 완벽해 . (장의 목소리는 점점 쉬어간다 ) 난 정신이나 육체가 다 건강하다구 . 나의
혈통은 ….
베랑제 물론 , 물론. 그래도 감기가 든 게 아닐까 … 열이 있나 ?
장 모르겠어 . 약간 있는 것 같아 . 머리가 아프니까 .
베랑제 가벼운 편두통이군 . 그럼 난 그만 가볼까 ?
장 아냐 , 그냥 있어. 괜찮아 .
베랑제 목이 쉬었는데 역시 .
장 목이 쉬었다구 ?
베랑제 응, 약간 . 그래서 아까는 내가 목소리를 못 알아들었다구 .
장 내가 왜 목이 쉬어 ? 내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어 . 오히려 변한 건 자네 목소리지 .
베랑제 내 목소리가 ?
장 그렇다니까 .
베랑제 그런지도 모르지 . 난 그걸 느끼지 못했지만 .
장 자네야 뭘 느낄 줄 아나 ? (이마에 손을 대며 ) 확실히 머리가 아픈거야 . 분명 내가 어디 부딪친
거야! (그의 목소리는 더욱 쉬어 간다)
베랑제 어디다 부딪쳤길래 ?
장 모르겠어 . 기억이 안 나.
베랑제 부딪쳤으면 아팠을 텐데도 ?
장 아마 , 자면서 부딪친 모양이야 .
베랑제 그렇다면 그 충격으로 잠이 깨었을 게 아닌가 ? 자넨 아마 부딪치는 꿈을 꾼 게로군 .
장 난 꿈 같은 건 절대로 안 꿔….
베랑제 (계속한다 ) 어쨌든 자는 동안에 머리가 아파온 걸 거야. 자넨 꿈 꾼 걸 잊어버렸나 보지 . 아
니 오히려 무의식 속에서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라.
장 내가 무의식 속에서 ? 나는 의식이 확실한 사람이야 . 정신이 헷갈리는 사람이 아니라구 . 나는 정
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사람이라구 . 언제라도 말이야 .
베랑제 그건 나도 알아 .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 .
장 좀더 분명히 하라구 . 나한테 불쾌한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아 ?
베랑제 머리가 아플 땐, 어디다 부딪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말이야 . (장에게 다가가며 ) 정말 부
딪쳤으면 머리에 혹이 생겼을 텐데 . (장을 자세히 보더니 ) 저런 혹이 하나 생겼군 . 정말 혹이 생
겼어.
장 혹이 ?
베랑제 (장의 이마를 가리키며 ) 저기 , 저기 바로 코 위 이마에 .
장 혹 같은 게 어디 있다구 그래 ? 우리 가문에 혹이 난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
베랑제 거울 있나 ?
장 아니 , 그럼 ! (이마를 만지더니 ) 정말 생긴 것 같은데 . 목욕실에 가서 봐야지 . (그는 벌떡 일어나
서 욕실 쪽으로 간다 . 베랑제 , 눈으로 그의 뒤를 따른다 . 목욕실에서 ) 정말인데 혹이 생겼어 . (돌
아온다 . 얼굴빛이 더욱 녹색으로 변했다 ) 그것 봐. 분명히 내가 어디에 부딪쳤다구 .
베랑제 자네 안색이 나쁜데 얼굴빛이 파래진 걸 보니.
장 자넨 어째서 내게 불쾌한 소리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나 ? 자기 얼굴은 어떻고 ?
베랑제 미안하네 . 자넬 일부러 괴롭힐 생각은 아닌데 , 그만 .
장 (귀찮은 듯이 ) 그런 것 같지도 않구먼 ,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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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숨소리가 꽤 거친데 자네 목이 아픈가 ? (장은 다시 침대에 앉는다 ) 목이 아파 ? 편도선염인가


보지.
장 내가 편도선은 또 왜?
베랑제 그건 창피한 것도 아니야 . 나도 편도선이 있거든 . 맥 좀 짚어볼까 ? (베랑제는 일어나서 장의
맥을 짚으려 한다 )
장 (더욱더 목쉰 소리로 ) 괜찮아 .
베랑제 맥은 아주 정상인데 , 걱정할 것 없겠어 .
장 걱정 같은 건 하나도 안 한다구 . 내가 왜 걱정을 해?
베랑제 그건 그래 . 며칠 쉬면 나을 테니까 .
장 난 쉴 시간 없네 . 밥은 찾아먹고 살아야 하니까 .
베랑제 배가 고프다면 대단한 병은 아냐 . 하지만 며칠은 그래도 쉬어야 할걸 .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
니 말야 . 의사를 불렀나 ?
장 의사는 필요없어 .
베랑제 아니야 , 의사에게 보여야 하네 .
장 난 의사를 부를 생각이 없으니 의사는 부르지 말게 . 나 혼자서 나을 수 있어 .
베랑제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은 잘못이야 .
장 의사들은 있지도 않은 병을 만들어내는 자들이야 .
베랑제 그야 , 선의에서 그러는 거지 . 남을 돌보는 게 즐거워서 그러는 거야 .
장 그자들은 병을 만들어 낸다구 ! 만들어 내―.
베랑제 하긴 만들어 내는지도 모르지 .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 만들어낸 병을 고치기도 하잖아 ?
장 내가 믿는 건 수의사들밖엔 없어.
베랑제 (장의 손목을 놓고 있더니 다시 잡으며 ) 자네, 정맥이 부풀어 오른 것 같은데 , 그래 정맥이
튀어 올랐어 .
장 힘이 있다는 증거지 .
베랑제 물론 , 그건 건강과 힘의 증거지 . 하지만 ….

그는 장이 싫어하는데도 장의 팔뚝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 장은 팔을 홱 잡아당긴다 .

장 자넨 왜 내 팔을 무슨 신가한 짐승이라도 보듯이 그렇게 들여다보지 ?


베랑제 자네 피부가 ….
장 내 피부가 어때서 ? 내가 언제 자네 피부 들여다보던가 ?
베랑제 마치 … 그래 , 눈에 띄게 삽시간에 피부색이 변하는 것 같아서 , 초록색이 돼 가는데 . (다시 장
의 손을 잡으려 한다 ) 딱딱해지구 .
장 (손을 또 빼며 ) 그런 식으로 만지지 말아 . 도대체 어쩌려구 이러는 거야 ? 귀찮게 굴지 마.
베랑제 (혼잣말로 )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한 모양이군 . (장에게 ) 의사를 불러야겠어 . (전화 쪽으
로 간다 )
장 수화기 다치지 말아 . (그는 베랑제에게로 달려가 그를 떠다민다 . 베랑제 , 비틀거린다 ) 남의 일에
참견 말라구 .
베랑제 그럼 , 그만두지 . 자네를 위해서 그런 건데.
장 (기침 . 숨소리가 거칠다 ) 내 몸은 자네보다 내가 더 잘 알아 .
베랑제 숨쉬기가 힘든 모양이야 .
장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몸에 맞게 숨을 쉬는거야 . 자네 귀에 내 숨소리가 듣기 싫다면 난 자네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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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소리가 싫네 ! 자네 숨소리는 너무 약해 . 숫제 들리지도 않잖아 ? 금방 죽어가는 사람 같다니까 .


베랑제 하긴 자네만큼 힘이 세진 못하지 .
장 그렇다고 내가 언제 자네에게 힘을 붙여 주라고 의사를 불러 보내던가 ? 저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
베랑제 화는 내지 말게 . 난 자네 친구 아닌가 ?
장 우정이 어디 있어 ? 난 자네의 우정을 믿지 않아 .
베랑제 너무 그렇게 기분 상하게 말하지 말아 .
장 기분 상할 것도 없어 .
베랑제 자넨 내 친구인데 ….
장 난 자네 친구가 아냐 .
베랑제 자넨 오늘 사람이 싫어진 모양이군 .
장 그래 , 난 사람을 싫어해 . 내겐 그게 좋다구 .
베랑제 아직도 어제 싸운 일이 마음속에서 풀어지지 않은 모양인데 , 어젠 내가 나빴어 . 나도 그걸 인
정해. 오늘 온 것도 바로 자네에게 그걸 사과하려고 ….
장 싸움이라니 , 무슨 싸움 ?
베랑제 아까 말했잖아 . 그 코뿔소 이야기 말야 .
장 (말은 듣지 않고) 사실은 난 인간들을 싫어하지는 않아 . 관심이 없는 거지 . 그보다는 인간들이
내겐 불쾌해 . 그자들이 내 길을 반대하고 나서지 말아야지 . 만일 그러는 날엔 내가 그 자들을 짓
밟아 놓고 말걸 .
베랑제 난 방해 같은 건 안 하리라는 걸 자네도 알고 있잖아 ?
장 내겐 목적이 있어 . 난 그걸 향해서 덤벼드는 거야 .
베랑제 자네 말이 옳아. 하지만 , 지금 자네는 어떤 정신적인 위기에 처해있는 것 같아. (조금 전부터
장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이 벽에서 저 벽으로 방 안을 맴돈다 . 베랑제는 그를 지켜본다 . 이따
금 그를 피해서 가볍게 몸을 비킨다 . 장의 목소리를 점점 더 쉬어간다 ) 그렇게 날 뛰지 마.
장 옷을 입고 있다는 게 영 불편하군 . 이젠 잠옷도 답답해 . (그는 잠옷의 웃저고리를 젖혔다 여몄다
한다)
베랑제 아니 자네 피부가 웬일이지 ?
장 또 내 피부 타령인가 ? 이건 내 피부야 . 자네 피부하고 바꾸기라도 할 줄 알고 ?
베랑제 짐승가죽 같아졌는데 .
장 그보다 더 단단할걸 . 기후가 아무리 뒤바뀌어도 견딜 수 있거든 .
베랑제 자네 점점 더 녹색이 되어 가는데 .
장 자넨 오늘 색깔에 미쳤군 . 허튼 소리만 하는걸 보니 . 또 마셨나 보지?
베랑제 어젠 마셨지만 오늘은 아냐 .
장 그게 다 지난 날에 하두 퍼마셔서 그렇게 된 거야 .
베랑제 이제부터 개심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어 ? 안 그래 ? 난 자네 같은 친구들의 충고는 들으니까
말야. 그렇다고 그걸 창피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반대지 .
장 그런 거야 아무려면 어때 ! 브르르 ….
베랑제 뭐라구 ?
장 아무 말도 안 했어 . 그저 브르르 … 했을 뿐이지 . 기분이 좋아지니까 .
베랑제 (장의 눈을 들여다보며 ) 뵈프 씨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 그 사람이 코뿔소가 됐어.
장 뵈프 가 어떻게 되었다고 ?
베랑제 장난 좀 그만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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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장 내가 숨쉬는데 왜 그래? 여긴 내 집이니 내 마음대로야 .


베랑제 그야 그렇지만 .
장 내 말에 거슬리지 않는 게 좋을걸 . 더운데 더워 . 브르르 . …잠깐만 몸을 좀 식히고 와야겠어 .
베랑제 (장이 욕실로 달려가는 동안 ) 열이 있군 .

장은 욕실 안에 있다 . 그의 숨소리가 들리고 수돗물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 .

장 (안에서 ) 브르르 ….
베랑제 몸을 떨고 있군 . 안 되겠는데 .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

다시 전화 쪽으로 간다 .
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급히 물러선다 .

장 그래서 그 선량한 뵈프가 코뿔소가 됐다구 ? 하하하 … 자넬 놀리는 거야 . 가면을 뒤집어쓰구 .


(그는 욕실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민다 . 그의 얼굴빛은 녹색이 완연하다 . 코 위의 혹도 좀 더
커졌다 ) 가면을 뒤집어 쓴 거야.
베랑제 (집안을 왔다갔다하며 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 아냐 , 진짜라니까 .
장 그래 ? 그렇다면 그것도 괜찮겠군 .
베랑제 (욕실로 사라진 장 쪽을 돌아다보며 ) 일부러 그렇게 된 것 같진 않던데 . 자기가 원해서 코뿔
소로 변한 건 아니라구 .
장 (욕실 안에서 ) 그걸 어떻게 알지?
베랑제 여러 가지로 봐서 그런 것 같더라 .
장 만일 그자가 일부러 그렇게 된 거라면 , 일부러 그렇게 된 거라면 어떡할래 ?
베랑제 그럴 리가 있나 . 그 부인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던데 ….
장 (몹시 거센 목소리로 ) 하하… 그 뚱보 마누라 말인가 ? 하하 ! 그건 바보라구 !
베랑제 바보건 아니건간에 ….
장 (급히 나와서 웃저고리를 벗어 침대 위에 던진다 . 그동안에 베랑제는 조심스레 돌아다본다 . 가
슴과 등이 녹색으로 변한 장이 다시 욕실로 들어간다 . 들어갔다가 또다시 나오며 ) 뵈프는 자기
생각을 마누라한테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구 ….
베랑제 그렇지 않아. 장, 그 사람들은 꽤 원만한 부부였어 .
장 꽤 원만하다구 ? 확실해 ? 응? 브르르 ….
베랑제 (욕실 쪽으로 가자 장은 그의 코 앞에 대고 문을 꽝 닫는다 ) 응, 꽤 원만하던데 , 그 증거로 ….
장 (안에서 ) 뵈프는 자기만의 생활이 있었어 . 마음 속에는 비밀스러운 한 구석으 지키고 있었는걸 .
베랑제 자네에게 말을 시키면 안 되겠는데 . 몸이 힘든 것 같으니 말야 .
장 천만에 오히려 거뜬해지는걸 .
베랑제 제발 의사 좀 부르게 해줘 .
장 그건 절대로 안 돼. 난 고집불통의 인간들은 질색이야 . (장은 방으로 들어온다 . 베랑제는 섬뜩해
서 뒤로 약간 물러선다 . 장의 몸이 더욱 녹색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 그는 말하는 것이 몹시 힘이
들어 보인다 . 목속리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변해 있다 ) 어쨌든 자기가 좋아서건 싫어서건 코뿔소
가 된 건 그자에겐 잘된 일이라구 .
베랑제 그게 무슨 소리야 ? 어떻게 자네가 그런 생각을 ….
장 자넨 뭐든지 나쁘게만 본단 말야. 그자에겐 코뿔소가 되는 게 좋으니까 좋은 거지! 그럼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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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뭐야?
베랑제 물론 그럼 됐기는 하지만 , 그래두 코뿔소가 되는 게 그렇게 좋을까 , 정말 ?
장 왜 좋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 ?
베랑제 왜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 역시 그렇겠군 .
장 아냐, 그것도 나쁘지 않다구 ! 어쨌든 코뿔소도 우리처럼 하나님이 만든 짐승이니까 우리와 마찬
가지 자격으로 살 권리가 있다구 !
베랑제 우리의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야 그렇지 . 하지만 지능 정도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
장 (방 안을 왔다갔다 하며 목욕실을 들락날락거린다 ) 자넨 우리의 지능이 좀 낮다고 생각하나 ?
베랑제 그래도 우리에겐 우리의 도덕이라는 게 있지 않아 ? 그건 동물들의 도덕과는 양립될 수 없다
고 생각하는데 .
장 도덕이라 ! 도덕 같은 건 이젠 진저리가 난다! 도덕이야 좋지 ! 하지만 우린 그걸 뛰어넘어야 해!
베랑제 그럼 그대신에 뭘?
장 (여전히 같은 동작 ) 자연이지 !
베랑제 자연 ?
장 (마찬가지로 ) 자연에는 법칙이 있어. 도덕이란 건 사람이 만든 거니까 자연에는 어긋나는 거야 .
베랑제 그렇다면 자넨 인간의 도덕적 법칙 대신에 정글의 법칙을 세우겠다는 건가 !
장 난 거기서 살 거야 . 거기서 살 거야 .
베랑제 입으로야 그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
장 (뎌진히 왔다갔다 하며 말을 가로막는다 ) 우리 생활의 토대를 다시 세워야 돼. 원시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구 .
베랑제 난 그 의견에 찬성하지 못하겠는데 .
장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 가슴이 답답해 .
베랑제 잘 생각해 봐. 동물에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없다구 . 그런 귀중한 가치의 체게를 인간
의 문명은 수세기를 걸려서 세워 놓은 건데….
장 (여전히 목욕실 안에서 ) 그 모든 걸 다 무너뜨려야 돼. 그럼 우리는 좀 더 건강해질 꺼야 .
베랑제 진담은 아니겠지 농담이겠지 . 자넨 지금 시(詩)라도 쓰고 있는 기분인가 보지.
장 브르르 …. (사뭇 코뿔소의 울음소리 같다 )
베랑제 난 자네가 시인인 줄은 미처 몰랐는데 .
장 (목욕실에서 나온다 ) 브르르 …. (그는 또 코뿔소의 울음소리는 낸다 )
베랑제 그게 진짜 자네 생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군 . 자네야말로 늘 그런 소릴 하지 않았나 ? 인간
이란….
장 (말을 가로막으며 ) 인간 … 다신 그런 말 입 밖에도 내지 말아!
베랑제 내 말은 인류라는 뜻이야 . 휴머니즘은 ….
장 휴머니즘이란 다 케케묵은 소리야 . 자넨 진부하고 감상적이로구만 .(욕실로 들어간다 )
베랑제 하지만 정신이란 ….
장 (욕실에서 ) 또 그런 케케묵은 소리야 ? 시시한 소리 작작하라구 !
베랑제 시시한 소리라구 ?
장 (욕실에서 알아듣기 힘들만큼 쉰 목소리로 ) 물론이지 .
베랑제 장, 자네가 그런 소릴 하다니 놀랬는데 ! 자네 돈 것 아냐 ? 결국 자네도 코뿔소가 되고 싶다는
거 아냐 ?
장 그래서 안 될 것도 없지 ! 난 자네 같은 편견은 없으니까 .
베랑제 똑똑히 좀 말해보게 . 못 알아듣겠어 . 발음이 분명칠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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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장 (여전히 욕실에서 ) 자네 귀가 나쁜 거야 .
베랑제 뭐라고 ?
장 자네 귀가 나쁘다고 . 코뿔소가 되면 안될 것도 없다고 말했네 . 난 변화를 좋아하니까 .
베랑제 자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 (베랑제는 말을 중단한다 . 장이 완전히 녹색이 되어 무
서운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 이마의 혹도 거의 코뿔소의 뿔처럼 변해버렸다 ) 아니 자네 정
말 미쳤구만 ! (장은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방바닥에 던진다 . 분노에 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낸다 )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게 . 이젠 자네 모습이 아니네 .
장 (겨우 알아들을 소리로 ) 더워 … 너무 더워 전부 벗어버려야지 . 답답해 . 옷이 답답해 . (잠옷의 바
지를 벗는다 )
베랑제 무슨 짓이야 ? 도무지 자네답지 않게 ! 평소의 그처럼 단정하던 자네가 !
장 늪이다 ! 늪!
베랑제 날 좀 봐! 내가 안 보이나 ? 내 소리가 안 들려?
장 잘 들려 ! 잘 보이고 !

그는 머리를 숙이고 베랑제에게 달려든다 . 베랑제 , 몸을 피한다 .

베랑제 위험해 !
장 (거칠게 숨을 쉬며 ) 미안해 ! (그리고는 쏜살같이 욕실로 달려간다 )
베랑제 (왼쪽 문을 향해 달아나려다가 다시 되돌아서서 장의 뒤를 따라 욕실로 간다 . 그러면서 중얼
거린다 ) 역시 저 친구를 이대로 놓아둘 순 없지 . 내 친구니까 . (욕실에서 ) 의사를 부르겠어 ! 꼭
불러야 해. 불러야 한다구 ! 내 말을 믿어 !
장 (욕실에서 ) 안 돼!
베랑제 (욕실에서 ) 정신차려 , 장! 바보같이 굴지 마! 아니 ! 자네 뿔이 눈에 띄게 자꾸 자라는데 … 넌
코뿔소야 !
장 (욕실 안에서 ) 널 밟아버릴 테다 ! 널 밟아버릴 거야 !

욕실에서 요란한 소음 . 코뿔소의 울음소리 . 거울과 물건들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 . 이어서 겁에 질린 베


랑제가 나타나 안에서 미는 듯한 욕실문을 억지로 닫으려 한다 .

베랑제 (문을 밀며 ) 저 친구는 코뿔소다 ! 코뿔소 ! (베랑제는 용케 문을 닫는다 . 그의 옷저고리는 뿔에


받혀서 찢어져 있다. 베랑제가 문을 닫는 사이에 뿔이 문을 뚫고 나온 것이다 . 문은 계속 짐승에
게 밀리며 흔들린다 . 욕실 안의 소음도 계속된다 . 겨우 알아들을 만한 ‘빌어먹을 , 더러운 새끼!’
등의 말소리에 섞여 코뿔소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 베랑제는 오른쪽 문으로 달려간다 ) 설마하니
장이 이 지경이 되다니 ! (그는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층계참 위의 문을 수없이 주먹으로 두
들긴다 ) 이 아파트 안에 코뿔소가 있어요 ! 경찰을 불러줘요 ! (문이 열린다 )
노 인 (얼굴을 내밀며 ) 왜 그러시오 ?
베랑제 경찰을 부르세요 . 이 집안에 코뿔소가 있어요 ….
노 인 의 아 내 목 소 리 무슨 일이에요 ? 왜 이리 시끄러워요 ?
노 인 무슨 소린지 나도 모르겠소 . 코뿔소를 봤다나봐 .
베랑제 네, 이 집 안에요 . 경찰을 부르세요 .
노 인 그런 일로 사람들을 일일이 불러내다니 ! 원 별 버르장머리 없는 양반 다보겠군 . (그는 베랑제
의 코 앞에서 문을 쾅 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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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급히 계단을 뛰어내린다 ) 관리인 ! 관리인 ! 이 집에 코뿔소가 있어요 ! 경찰을 부르세요 ! 관리
인! (관리인이 문을 여는 것이 보인다 . 코뿔소의 머리가 나타난다 ) 아니 여기도 또! (베랑제는 급
히 계단을 뛰어오른다 . 그는 장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망설인다 . 그러다가 다시 노인의 방문 쪽으
로 간다 . 그때 노인의 방문이 열리며 코뿔소의 보그마한 머리 둘이 나타난다 ) 아니 , 이런 ! 이럴
수가! (베랑제는 장의 방으로 들어간다 . 욕실의 문이 여전히 흔들린다 . 그는 객석의 정면에 있는
틀만이세워진 창문 쪽으로 간다 .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린 그는 실신하듯 알아듣기 힘든 빠른 소
리로 중얼거린다 ) 사람 살려요 ! 사람 살려요 !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창문을 넘어 창문 반대쪽 , 즉
객석 쪽으로 넘어오다가 급히 다시 기어오른다 . 왜냐하면 그순간 오케스트라박스에서 코뿔소의
수많은 뿔들이 한 줄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 베랑제는 재빨리 창문을 다시
넘어가 잠시동안 창에서 내다본다 ) 거리에는 이제 코뿔소들이 떼로 몰려다니는군 . 코뿔소의 군대
야!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구나 … (사방을 둘러본다 ) 어디로 빠져나가지 ? 어디로 빠져나간다 ? 행
길 한가운데만 있더라도 좀 낫겠는데 . 이젠 보도에까지 쫙 깔려있으니 ! 어디로 해서 나간다 ? 어
디로? (그는 미친듯이 문과 창문 쪽으로 헤맨다 . 그동안에도 욕실 문은 계속 흔들리고 있다. 장
이 코뿔소 울음소리를 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 이러한 움직임이
잠시 계속된다 . 베랑제는 빠져 나가 보려고 허둥대며 노인의 방 앞에도 가보고 계단에도 나가보
지만 그때마다 코뿔소의 머리와 울음소리에 마주쳐서 도망하고 만다. 그는 창가로 돌아와 밖을
내다본다 ) 코뿔소가 떼를 지어 다니다니 ! 코뿔소는 고독한 동물이라고 들었는데 ! 그렇지가 않군 .
그런 생각은 이제 뜯어 고쳐야겠는데 ! 거리의 벤치들을 모두 부셔버렸구나 ! (손을 뒤튼다 ) 어떻
게 하지 ? (그는 다시 이리저리 출구를 찾아가 보지만 코뿔소가 눈에 띄는 바람에 길이 막힌다 .
그가 다시 욕실 앞에 오자 욕실 문이 무너지려고 한다 . 그가 안쪽 벽으로 와락 기대자 벽이 무너
진다. 그러자 거리가 보인다 . 그는 소리치며 도망간다 ) 코뿔소다 ! 코뿔소 ! (우지끈거리는 소음 . 욕
실 문이 무너지려고 한다 )

-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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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제 3 막

장치
앞의 장과 거의 같은 배경과 도구 . 베랑제의 방 . 장의 방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 . 단지 약간의 장식 , 즉
한두 개의 가구로 다른 방임을 나타낸다 . 왼쪽에 계단과 층계참 .
층계참 안쪽으로는 문 . 관리인의 방은 없다 . 방 안 깊숙이 장의자가 하나 .
베랑제가 객석을 등지고 장의자에 누워 있다 . 안락의자 하나에 전화가 놓인 작은 테이블 .
보조 테이블에 의자 하나 . 깊숙이 안쪽으로 열려진 창 . 무대 전면에는 창틀 . 베랑제는 옷을 입은 채로
머리에는 붕대를 매고 장의자에서 잔다 . 악몽에 시달리는 듯 자면서 몸을 뒤튼다 .

베랑제 안 돼. (사이) 뿔, 뿔을 조심해 . (사이. 안쪽 창 밑으로 떼를 지어 지나가는 코뿔소들의 소리가


들린다 ) 안 돼! (그는 꿈에 나타난 것과 싸우다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 잠이 깬다 . 겁에 질린
표정.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 그러고는 거울로 가서 붕대를 위로 올려본다 . 그 사이에 소음이 멀
어진다 . 그는 이마에 혹이 나지 않은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 망설이다가 장의자로 가서
눕더니 이내 다시 일어난다 . 그는 테이블로 가서 그곳에 있던 꼬냑 병과 잔을 들어 술을 따라 마
시려 한다. 그러나 잠시 입속에서 승강이를 한 끝에 병과 잔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 의지가 있
어야지 , 의지가 ! (그가 다시 장의자로 가려는데 안쪽 창 밑에서 코뿔소들이 달리는 소리가 또다
시 들린다 .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아. (안쪽 창으로 가서 잠시 내려다보다가 신경이 곤두서는
듯 창문을 닫는다 . 소음이 그친다 . 그는 작은 테이블로 가서 잠시 망설이더니 ‘할 수 없지‘ 하는
듯한 몸짓을 한다 . 그러고는 꼬냑을 한 잔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킨다 . 병과 잔을 제자리에 다시
놓는다 . 기침한다 . 자신의 기침에 불안해진다 . 또 기침한다 . 그리고 그 기침에 귀를 기울인다 . 또
다시 거울 속으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 기침하면서 창을 연다 . 짐승들의 숨소리가 더욱 크
게 들린다 . 그는 또 기침한다 ) 아냐 , 그렇진 않아 .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창문을 닫는다 . 붕대
위로 자신의 이마를 만져본다 . 장의자로 가서 자려고 한다 . 뒤다르가 계단을 올라온다 . 층계참에
이르자 베랑제의 문을 노크한다 )
베랑제 (벌떡 일어서며 ) 뭐야 ?
뒤다르 좀 어때, 베랑제 , 좀 어때 ?
베랑제 누구요 ?
뒤다르 나야 , 나.
베랑제 내가 누구야 ?
뒤다르 나야 , 뒤다르 .
베랑제 아, 자네로군 . 들어와 .
뒤다르 들어가도 괜찮을까 ? (문을 열려 한다 ) 문이 닫혀 있는데 .
베랑제 잠깐만 . 곧 나갈게 . (그는 문을 열러 간다 . 뒤다르 들어온다 )
뒤다르 어이 , 베랑제 .
베랑제 어이 , 뒤다르 . 지금 몇 시지 ?
뒤다르 아니 , 아직도 집안에 갇혀 있다니 . 기분은 좀 괜찮은가 ?
베랑제 미안해 , 목소리를 못 알아들어서 . (베랑제는 창을 열러 간다 ) 응, 좀 나은 것 같은데
뒤다르 내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는데 . 난 자네 목소리를 분명히 알아듣겠던걸 .
베랑제 미안해 , 잠깐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 과연 자네 목소리는 그대로군 . 내 목소리도 변하지 않
았지?
뒤다르 변하긴 왜 변해 ?

- 50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약간 … 약간 쉬지 않았나 ?
뒤다르 아니 .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
베랑제 그럼 됐어 . 덕분에 안심했네 .
뒤다르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지 ?
베랑제 모르겠어 . 그건 모르겠지만 목소리란 변할 수도 있으니까 . 왜 그럴 수도 있지 않아 ?
뒤다르 감기라도 들었나 ?
베랑제 아니 … 아닐 거야 . 어쨌든 앉아. 뒤다르 , 저기 안락의자에 .
뒤다르 (안락의자에 앉으며 )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지 ? 아직도 머리가 아픈가 ? (그는 베랑
제의 붕대를 가리킨다 )
베랑제 응, 머리가 계속 아프군 . 하지만 혹은 안 생겼어 . 부딪치진 않았으니까 … 안 그래 ? (그는 붕대
를 올려 뒤다르에게 이마를 보인다 )
뒤다르 없어 . 혹은 안 생겼는데 . 보이지 않아.
베랑제 절대로 안 생길 거야 . 절대로 .
뒤다르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다면 혹이 왜 생기겠나 ?
베랑제 부딪치지 않으려면야 안 부딪칠 수 있지 .
뒤다르 무론이지 주의하기 나름이니까 . 그런데 자네 왜 그래? 신경이 곤두서고 흥분해 있는데 . 그래 ,
그게 바로 편두통 때문이라구 . 움직이지 말게 . 그러면 나을 거야 .
베랑제 편두통 ? 편두통 같은 소린 하지 말아 . 그 얘긴 말라구 .
뒤다르 그런 일을 당했으니 편두통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
베랑제 좀처럼 기분이 가라앉질 않는군 .
뒤다르 그러니 머리가 아픈 것도 당연할 수밖에 .
베랑제 (거울 앞으로 달려가 붕대를 치켜올린다 ) 아냐 , 아무것도 … 이봐 , 처음엔 이런 식으로 시작되
거든.
뒤다르 시작이라니 뭐가 ?
베랑제 다른 존재로 변한다는 게 무서워 .
뒤다르 진정하고 그만 앉아요 . 방안을 왔다갔다하면 신경이 점점 더 날카로와진다구 .
베랑제 그래 , 그 말이 맞아 . 진정해야지 . (의자에 가서 앉는다 ) 너무 놀라서 그래 .
뒤다르 장 때문이지 . 나도 알아 .
베랑제 응, 장 때문에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됐으니까 .
뒤다르 자네가 쇼크를 받은 건 알만하네 .
베랑제 누구라도 쇼크였을 걸. 안 그래 ?
뒤다르 그래도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진 말라구 . 그렇다고 자네까지 ….
베랑제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 장은 나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거든 . 그런데 그만 갑자기 돌변해
버렸으니 . 내 눈앞에서 말야 . 무지하게 화를 내면서 ….
뒤다르 나도 알아 . 자네가 속은 거야 . 그러니 이젠 잊어버리라구 .
베랑제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어 . 굉장히 인간적이던 놈이었다구 . 휴머니즘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녀석인데 믿어지지가 않아 . 우린 옛날부터 의기투합해 왔지 . 그녀석이 그렇게 될 줄은 난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 난 그 친구를 나 자신보다 더 믿었거든 … 그런데 나한테 그런 식으로 나오다니 .
뒤다르 그 친구는 꼭 자네 한 사람에게 덤벼들려고 코뿔소가 된 건 아닐 거야 .
베랑제 그래도 보기엔 그런 것 같던데 . 자네가 거기서 … 그 얼굴 표정을 보았더라면 ….
뒤다르 우연히 자네가 그때 그의 집에 있었기 때문이야 . 누구와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걸 .
베랑제 내 앞에서는 여태까지의 우리 사이를 생각해서라도 참았어야 옳았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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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뒤다르 자넨 매사를 자기 본위로 , 무슨 일이건 자기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네가 이 세계의
표적은 아니잖아 .
베랑제 하긴 그래 . 되도록 사리에 맞는 생각을 해봐야겠어 . 하지만 그 친구에게 일어난 현상은 아무
래도 마음에 걸려 . 솔직히 말해서 그 일로 난 지금 제 정신이 아니야 .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뒤다르 지금 당장은 나로서도 만족한 설명을 할 수가 없군. 난 사실을 확인해서 기록하고 있는 중이
야. 그건 분명 있었던 일이니까 설명이 되야 해. 하지만 자연의 호기심 , 변덕 혹은 기상천외의
힘, 장난 같은 걸 누가 알 수 있겠느냐 말야 ?
베랑제 장은 자만심이 대단했지 . 나야 야심이라는 게 없는 놈이지만 . 난 그저 지금의 상태로 만족하
고 있어 .
뒤다르 그 친구는 어쩌면 맑은 공기가 좋았는지도 모르지 , 전원과 넓은 공간이 … 그는 마음의 휴식
이 필요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 생각엔 그렇다고 그 사람이 ….
베랑제 그래 ,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은 해봤어 . 하지만 난 스포츠 정신이 없다든가 좁은 세계 속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소시민이라고 비난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입장을 바꿀 생각은 없어 .
뒤다르 물론 우리 모두 바꾸지 않을 거야. 그런데 자넨 왜 그 일 때문에 그렇게 불안해 하나 ? 우연
한 코뿔소 사건을 가지고 . 그것도 일종의 병인지 모르겠군 .
베랑제 맞았어 . 난 전염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
뒤다르 이젠 잊어버리래두 . 자넨 그 일을 지나치게 중대시하고 있어 . 장의 경우는 일반적인 증상도
아니고 전형적인 것도 아니야 . 자네도 자네 입으로 , 장은 자만심이 대단했다고 말했잖아 ? 내 생
각엔 자네 친구를 헐뜯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그 친구는 흥분이 잘하고 야만적인고 괴상한 사
람이었던 것 같아 . 그러니까 그런 괴팍한 친구는 문제로 삼을 게 못돼 . 문제가 되는 건 늘 보통
인간들이지 .
베랑제 응, 그 말을 들으니 이젠 분명해지는군 . 자넨 아까 이 현상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지 . 그런
데 지금 그 설명은 그럴 듯한데 . 그래 , 그 친구는 분명 그 지경이 되려고 , 그런 발작 증상이 , 그
것도 미친놈의 발작이 일어났던 게 틀림없어 … 하지만 장은 어떤 이론이 있어 가지고 , 그 문제를
충분히 생각한 끝에 결심한 것 같던데 … 그건 그렇다 치고 , 그럼 뵈프는 ? 그 사람도 역시 미쳤을
까? …또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
뒤다르 전염병이라는 가정도 세울 수 있지. 유행성 감기처럼 말야 . 전염병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았으
니까.
베랑제 이번 경우는 전혀 달라 . 그렇다면 혹시 식민지에서 온 게 아닐까 ?
뒤다르 어쨌든 뵈프건 다른 사람들이건 자네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런 짓을 했거나 일부러 그렇게
된 건 아니야 . 그런 목적이었다면 ,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
베랑제 그건 그래 .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어. 그 말에는 마음이 좀 놓이는군 … 하지만 그렇다면 사태
는 오히려 더 중대한 건지도 모르지 않을까 ? (안쪽 창 밑에서 코뿔소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
저거 들리지 ? (그는 창으로 달려간다 )
뒤다르 내버려둬 . (베랑제는 다시 창을 닫는다 ) 신경쓰지 말라니까 . 자넨 그 생각에 완전히 얽매어
있어. 그게 좋지 않다구 . 그러면 신경이 너무 지쳐버려요 . 물론 자네에겐 쇼크였겠지만 말야. 그
런데 다른 데서 쇼크를 또 받고 싶어서 그래 ? 이젠 기운이나 차리도록 노력해야지 .
베랑제 나도 그렇게 되지나 않을까 해서 그래 .
뒤다르 어쨌든 그건 생명에까지 관계되는 건 아니라구 . 병 중에는 건강한 병도 있거든 . 고칠 새악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이야 . 그러니 곧 나을 거야 .
베랑제 하지만 반드시 흔적이 남을걸 . 그처럼 전신에 이상이 생기는데 그 흔적이 안 남을수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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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지….
뒤다르 일시적인 거라니까 염려하지 마….
베랑제 확실해 ?
뒤다르 그렇지뭐 . 그러리라는 거지 .
베랑제 정말로 그 병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걸리지도 않겠지 . 그건 신경성인 병이니까 안 그래 ? …
꼬냑 한 잔 할까? (그는 병이 놓인 테이블로 간다 )
뒤다르 난 괜찮아 . 고맙지만 안 마시겠어 . 자네나 마시고 싶으면 사양 말고 마시지 그래 . 하지만 조심
하게. 마시고 나면 머리가 더 아플걸 .
베랑제 전염병에는 알콜이 좋아 . 면역을 시켜주니까 . 말하자면 알콜이 독감의 세균을 죽이거든 .
뒤다르 그렇다고 모든 세균을 죽일라고 ? 이번 코뿔소 병엔 어떨는지 아직 모르잖아 .
베랑제 장은 알콜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아 . 그 친구는 술 안 마시는 걸 자랑해 왔으니까 . 그래서 그
친구가 그… 그런 모습으로 변했을지도 …. (뒤다르에게 술이 가득 찬 잔을 내밀며 ) 정말 안 마실
래?
뒤다르 아냐 , 안 마셔 . 점심 전에는 절대로 .
베랑제 (자기 잔을 비운다 . 손에는 계속 술잔과 병을 든 채로 기침한다 )
뒤다르 그것 봐, 자넨 그 술을 견디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기침이 나지 않아 ?
베랑제 (불안해서 ) 그래 , 기침이 나는데 내가 어떤 기침을 했지?
뒤다르 누구나 하는 기침이지 뭐. 약간 독한 것을 마셨을 대 하는 그런 기침 .
베랑제 (병과 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러 간다 ) 기침이 이상하진 않던가 ? 진짜로 사람들이 하는 그런
기침이었어 ?
뒤다르 뭘 또 그러나 ? 사람의 기침이지 그럼 특별히 다른 기침이라는 게 어디 있다구 그래 ?
베랑제 나도 모르겠어 … 혹시 동물의 기침이라든가 … 코뿔소도 기침하나 ?
뒤다르 이봐 베랑제 , 자네 어떻게 된 거 아냐 ? 혼자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괴상망측한 의문
을 품고 … 이 사태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은 의지를 갖는 거라고 자네 자
신이 말했지 않아 ?
베랑제 그래 .
뒤다르 그럼 . 자네가 그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게 .
베랑제 가지고 있는 건 틀림없어 .
뒤다르 자기 자신에게 그걸 증명해 보이라구 . 자, 꼬냑은 이제 그만 마시고 … 그러면 좀더 확신이 설
거야.
베랑제 내 뜻을 왜 못 알아주지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마시는 건 마심으로써 그 재난에서 구출
되려는 거야 . 다 계산이 있어서 마시는 거라구 . 전염병만 없어지면 난 안 마실 거야 . 난 이번 사
건이 생기기 전에 벌써 결심을 한걸 . 지금은 일시적으로 그 결심을 철회하는 거지 .
뒤다르 그건 변명이야 .
베랑제 그렇게 생각하나 ? …어쨌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구 .
뒤다르 정말 그럴까 ?
베랑제 (겁에 질려 ) 그럼 상관이 있단 말인가 ? 자넨 마시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나 ? 난 알콜 중독
은 아냐 . (그는 거울로 가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 혹시 … (그는 손을 얼굴로 가져가 붕대
위로 이마를 만져 본다 )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어 . 나빠지진 않았어 . 이게 괜찮다는 증거지 … 절
대로 해롭진 않단 증거라구 .
뒤다르 농담이야 베랑제 , 장난으로 해 본 소리야 . 자넨 만사를 어둡게만 보는군 . 조심하게 , 그러다가
신경쇠약이 되겠네 . 그 쇼크가 완전히 가시고 불안도 사라져서 밖에 나다니며 바람을 쐬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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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기분이 훨씬 나아질 거야 . 그러면 그런 우울한 생각들은 싹 날라가 버린다구 .


베랑제 밖에 나다닌다구 ? 결국은 그래야겠지 . 난 그때가 두려워 . 분명 그것들을 만나서 ….
뒤다르 만나면 어때 … 지나가는 걸 보거든 피하면 될 게 아닌가 ? 도대체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베랑제 내 눈엔 그 놈들만 보이는 걸. 자넨 날 병적이라고 말하겠지만 .
뒤다르 달려들진 않을 거야 . 건드리지만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을걸 . 요는 그놈들이 사납진 않다구 .
천성적으로 순진한 데가 있지 . 천진스럽다구 . 어쨌든 난 자네 집에 오기 위해 온 행길을 그냥 걸
어서 왔는데 , 그래도 보다시피 난 이렇게 무사하지 않은가 .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
베랑제 난 코뿔소를 보기만 해도 질겁을 하겠는걸 . 신경이 곤두서 . 그렇다고 화가 나는 건 아니야 .
쓸데없이 화를 내면 안 되지 . 화를 내면 곤란하게 되어 버린다구 . 화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니까
속이 이상해지는군 . (가슴을 가리킨다 ) 가슴이 조이는 것 같아 .
뒤다르 자네가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어느 정도가지는 무리가 아니네 . 하지만 도가 지나쳐 . 자네에
겐 유머가 없어 . 그건 자네의 결점이야 . 자넨 유머가 없어 . 사태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볍게 생
각할 줄 알아야지 .
베랑제 난 이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연대 책임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 그러니까 내게도 관
계가 있다구 . 무관심할 수야 없지 .
뒤다르 자네가 남에게 비판받고 싶지 않으면 남을 비판하지도 말아야 하네 . 그리고 만사를 그렇게
일일이 다 걱정하다가는 세상 살아갈 수 없을걸 .
베랑제 이런 일이 만일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서 신물을 보고 알게 됐다면 사태를 침착하게 토론할
수도 있겠지 . 문제를 여러 면으로 연구하고 거기서 객관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거야 . 학술
적인 토론회를 열어 학자 , 작가, 법률가 , 예술가들을 불러서 의견을 들을 거란 말야 . 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얘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유익할 수도 있다구 . 하지만 자네
자신이 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 있거나 갑자기 그 난폭한 현실 앞에 부딪치게 되면 자기
자신도 직접 관계가 있다는 기분이 어찌 안 들 수 있겠나 ? 너무 크게 놀라고 보면 냉정해질 수
가 없는 법이지 . 난 너무 놀랐다구 . 쇼크였어 . 아직도 가슴이 가라앉질 않아 .
뒤다르 나도 놀라긴 자네나 마찬가지로 놀랐네 .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 벌써 익숙해지기 시작했으니
까.
베랑제 자넨 나보다는 신경이 튼튼해서 좋겠네 . 하지만 자넨 이런 생각 안 드나? 이건 불행한 일이
라고….
뒤다르 (가로막으며 ) 그야 이런 사태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 . 그렇다고 내가 뭐 코뿔소하고 한편이
라는 얘기는 아니네 ….

이때 무대 전면의 창틀 밑을 지나가는 코뿔소들의 소음 .

베랑제 (벌떡 일어서며 ) 또 왔구나 . 또. 아, 안되겠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어 . 난 저놈들에게 익숙해질


수가 없어 . 내가 틀렸는지도 모르지 . 난 저놈들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서 잠도 잘 수가 없다구 .
불면증까지 걸렸어 . 그러니 너무 피곤해서 낮에도 졸기만 한다니까 .
뒤다르 수면제를 먹지 그래 .
베랑제 그걸로는 해결이 안 돼. 잠이 들면 더 고역인걸 . 꿈을 꾸면서 악몽에 시달리니 말야.
뒤다르 너무 모든 일에 신경을 쓰니까 그렇지 . 자넨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가 좋은 모양이지 ? 안 그
래? 말해 봐.
베랑제 난 절대로 매저키스트는 아냐 .
뒤다르 그렇다면 그 일에 익숙해져서 극복을 해야지 . 이렇게 된 이상 그밖에 달리 도리가 없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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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그건 숙명론이야 .
뒤다르 아니 지혜지 . 이런 현사이 일어났을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거든 . 그러니까 그
원인을 가려 내려고 해야지 .
베랑제 (일어서면서 ) 그래 ? 하지만 난 이 사태를 인정하고 싶질 않아 .
뒤다르 그럼 어떡하겠다는 건가 ? 어쩔 셈이냐 말야 ?
베랑제 지금으로서는 나도 모르겠어 . 생각해 봐야겠어 . 신문에 투서를 해야 할지 성명서를 내야 할지
시장을 만나 봐야 할지 시장이 바쁘다면 부시장이라도 만나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
뒤다르 당국의 일은 당국에게 맡겨 두라구 . 요는 말이지 난 자네가 과연 도덕적으로 이 문제에 관여
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문이라구 . 게다가 난 별로 대두로운 문제라고는 생각 안 해. 내
의견으로는 스스로 피부를 바꾸고 싶어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미쳐서 허둥댄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 그 친구들은 사람의 피부가 견디기 어려웠던 거야. 피부를 바꾸는 거야 그들의 자유지 .
그들의 문제라구 .
베랑제 악은 뿌리째 뽑아야 한다구 .
뒤다르 악, 악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 뭐가 악이고 뭐가 선인지 어떻게 안다구 ? 그것도 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 자넨 , 자네 일이 걱정되는 거지 ? 그래 , 그건 사실이야 . 하지만 자넨 절대로 코뿔소는
되지 않을걸 … 그럴 소질이 자네에겐 없어 .
베랑제 그래 , 바로 그거야 . 우리 마을의 지도자들이랑 시민들이 모두 자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까 행동에 나설 결심을 못하는 거야 .
뒤다르 그렇다고 외국에 원조를 청할 수야 없잖아 ? 이건 어디까지나 국내 문제니까 .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구 .
베랑제 난 세계의 연대성을 믿고 있는데 ….
뒤다르 자넨 돈키호테야 . 이건 악의에서 하는 소리는 아닐세 . 난 자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
네. 자넬 위해서 말야 . 알겠지 ? 자넨 이제 마음을 가라앉혀야 해.
베랑제 그래 , 자네 말이 맞아 . 난 지금 너무 불안해 하고 있어 . 이젠 마음을 다부지게 먹어야겠어 . 자
네를 붙잡아 놓고 허튼소리만 들려줘서 미안하네 . 자네도 할 일이 있을 텐데 말야 . 내가 아프다
고 낸 결근계 받아 주던가 ?
뒤다르 염려 마. 다 잘 됐으니까 . 게다가 일도 아직 시작 안 했거든 .
베랑제 계단을 여태도 안 고쳤나 ? 그런 태만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만사가 잘 안 나가는 거지.
뒤다르 지금 고치고 있는 중인데 빨리 안 되네 . 일꾼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일꾼을 불러와도
하루 이틀 하고 나면 안 오거든 . 그 다음엔 통 볼 수가 있어야지 . 그러니 다른 일꾼들을 또 찾아
야 할 판이라구 .
베랑제 실직으로 불평들은 하면서 ? 이번에는 시멘트 계단을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는데 .
뒤다르 아니 , 이번에도 목조야 . 나무는 새 나무라지만 .
베랑제 회사가 한다는 짓이 밤낮 그 모양이군 . 쓸데없는 돈은 함부로 뿌리면서 필요한 지출에는 재
정이 부족하다는 거지 . 빠삐용 부장은 불만이겠군 . 늘 시멘트 계단을 원했으니 말야 . 그래 부장은
뭐라든가 ?
뒤다르 부장이 이젠 없다구 . 빠삐용 부장이 사표를 냈어.
베랑제 그럴 리가 .
뒤다르 정말이야 .
베랑제 놀랐는데 … 그 계단문제로 ?
뒤다르 그렇진 않겠지 . 어쨌든 본인이 말하는 이유로는 그건 아냐 .
베랑제 그렇다면 왜? 왜 그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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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뒤다르 시골로 내려가겠대 .


베랑제 은퇴를 하겠다구 ?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잖아 ? 앞으로 중역도 될 수 있을 텐데 .
뒤다르 그걸 포기한 거지 . 늘 좀 쉬어야겠다고 말하긴 했어 .
베랑제 부장이 그만두면 사장이 굉장히 곤란할 텐데 . 후임자를 찾아야겠군 . 자네로선 기회가 온 셈이
구나. 자네의 학력이면 말이야 .
뒤다르 사실은 …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부장이 코뿔소가 됐다구 . (멀리서 코뿔소의 소음)
베랑제 코뿔소가 ? 빠삐용 부장이 코뿔소가 됐어 ? 아니 , 그럴 수가 , 그럴 수가… 우습긴 그게 뭐가 우
스워. 왜 진작 그 얘길 안 해줬나 ?
뒤다르 이봐 자넨 유우머 감각이 없어. 그래서 그 얘길 안 해준거라구 … 내 생각에 자넨 그걸 우습
게 받아넘기질 못하고 쇼크받을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던 거야 . 자넨 어찌 그리 민감한가 ?
베랑제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 아 아… 빠삐용 부장이 그런 좋은 지위에 있으면서 ….
뒤다르 그러니까 부장의 변신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라니까 .
베랑제 부장은 일부러 그렇게 됐을 리가 없어 . 그러니까 코뿔소가 되고 싶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라
구.
뒤다르 그걸 어떻게 아나?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는 거야.
베랑제 분명 그건 분명 실수였을 거야. 그는 속으로 감추고 있는 콤플렉스가 있었을 거라구 . 진작 정
신분석을 받았으면 좋았을걸 .
뒤다르 그게 일종의 전지 요법이라면 알 만도 하겠는데 . 사람마다 제 나름대로의 기분전환법이라는
게 있으니까 .
베랑제 부장은 끌려 들어간 거야. 확실해 .
뒤다르 누구에게나 그런 기분이 들 수는 있는 거지 .
베랑제 (겁에 질려 ) 누구에게나 ? 아냐 . 자넨 그렇지 않아. 안 그래 ? 나도 안 그렇고 .
뒤다르 그러기를 바라지만 .
베랑제 설마 . 모두가 … 모두가 … 안 그래 ?… 그렇잖아 ?… 안 그래 ?
뒤다르 암, 물론이지 .
베랑제 (약간 진정하며 ) 그래도 빠삐용 부장은 좀더 저항력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 정신력이 좀
더 강할 줄 알았는데 … 그래서 그 사람한테 어떤 득이 있다는 거지 ?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
뒤다르 부장의 태도에는 사욕은 없어 . 그건 확실해 .
베랑제 물론이지 . 그 점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 걸까 ? …없는 걸까 ? 오히려 없는 편일걸 . 기분으
로 그렇게 됐다면 말야 … 이봐 그렇다면 보따르는 부장의 그런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겠는데 ?
보따르는 어떻게 생각하던가 ? 부장의 그 처사를 ?
뒤다르 그 딱한 보따르는 화를 내더군 . 분개했지 . 난 또 그렇게 화난 사람은 .
베랑제 그래 이번에 보따르가 화를 낸 것은 무리가 아냐 . 보따르는 그래봬도 대단한 인물이거든 . 생
각이 깊고. 그런 걸 난 그 사람을 오해하고 있었지 .
뒤다르 그쪽에서도 자넬 오해하고 있었는걸 .
베랑제 그건 내가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지 . 하긴 자네도 그 사람을 과히 좋게 생
각하진 않았지 .
뒤다르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니 … 그렇진 않아 . 난 그 사람하고 의견이 안 맞을 때가 많았지 . 그의
회의적인 태도 , 불신, 경계심이 내 마음엔 안 들었던 거야 . 이번 일만 하더라도 난 보따르에게 전
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냐 .
베랑제 지금은 그 반대의 이유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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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뒤다르 아니 , 그건 좀 달라 . 나의 추리나 판단에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더 미묘한 데가 있


어. 그건 보따르에게는 장확하고 객관적인 논거라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야 . 다시 말하지만 , 난
코뿔소에도 찬성하지 않네 . 전혀 안 하지. 그런데 보따르의 태도는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지나치
게 감정적일 뿐이라구 . 말하자면 공식적이지 . 그가 자신의 입자을 지키는 것은 내 보기엔 단순히
웃사람에 대한 증오심에서 그러는 것 같아 . 그러니까 열등감과 원한에서 오는 거지 . 그래서 시시
한 소리만 계속 지껄이는 거라구 . 난 그런 속론 따위는 귀에 들리지도 않네 .
베랑제 하지만 , 기분나쁘게 생각 말게. 난 이번에는 보따르에게 전적으로 동감이야 . 그 친구는 훌륭
해.
뒤다르 그건 나도 부인하지 않아. 하지만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다구 .
베랑제 그래, 훌륭한 사람이야 ! 훌륭한 사람이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건데! 대지를 네 다리로 , 아
니지 실례 ,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거야 . 난 그 사람과 전적으로 동감이라는 게 기뻐 . 요다음
에 그를 만나면 그를 칭찬해 줘야지 . 난 빠삐용 부장을 비난하네 . 그는 굴복해서는 안 될 사람이
었다구 !
뒤다르 자넨 너무 도량이 적어 ! 빠삐용 부장은 오랜 세월을 책상에만 붙어 있다 보니 이젠 긴장을
좀 풀고 싶었는지도 모르잖아 ?
베랑제 (가로막으며 ) 자넨 도량이 너무 크군 . 마음이 지나치게 넓다구 !
뒤다르 이봐 . 베랑제 . 항상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 어떤 현상과 그 결과를 이해하려면 그 원인을
캐도록 해야지 . 그런 노력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 우린 생각하는 존재니까 말야 . 아까도 말했지
만 나도 지금까진 그렇질 못했어 .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 그건 나도 의문이야 . 어쨌든 호의적
인 생각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말이야 . 호의가지는 아니라도 중립적인 입장 , 그러니까 마음을 넓
게 가지는 게 필요하다구 . 그게 바로 과학적인 정신의 특성이란 말일세 . 모든 것은 논리적이야 .
이해한다는 것은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지.
베랑제 자넨 바야흐로 코뿔소의 공명자가 돼가는군 그래 .
뒤다르 아냐 . 그렇게까지는 안 될 거야 . 난 다만 , 사태를 정면에서 냉정하게 보려고 할뿐이지 . 난 현
실에 눈을 돌리려는 거야 내 생각에도 자연적인 것에는 진정한 악이란 없는 것 같애 . 매사를 악
으로만 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야 . 그런 건 죄상을 캐내는 검사나 할 일이라구 .
베랑제 그래 , 자넨 그게 자연적이라고 생각하나 ?
뒤다르 코뿔소가 자연이 아니고 그럼 뭔가 ?
베랑제 그건 그래 . 하지만 코뿔소가 되는 인간이란 , 두말 할 것도 없이 비정상이라구 !
뒤다르 두말할 필요도 없다구 … 글쎄 …
베랑제 그래 . 두말할 것도 없이 비정상이야 . 절대로 비정상이지 !
뒤다르 상당히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 자네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까지가 비정상인지나 아나 ? 자
넨 그 개념을 정의할 수 있느냐 말야 ?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을 . 철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어 . 그 정도의 지식은 자네도 알고 있었어야 하
는 건데 .
베랑제 이 문제는 철학적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지도 모르지 .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간단해 . 증명을 하
려 든다면 운동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 … 그러나 사람은 걷지 . 걸어 , 걷는
다구… (그는 방 안을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 걷구말구 . 그렇게 되면 갈
릴레오처럼 ‘그래도 움직이는 걸’ 하고 중얼거리게 될 거야 .
뒤다르 자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야 . 혼돈하지 말라구 . 갈릴레오의 경우는 반대로 이론적 과학적인
사색이 상식과 독단을 눌러 이긴 거라구 !
베랑제 (낙담하며 ) 그게 어떻다는 거야 ? 상식이니 독단이니 하는 건 모두가 말이라구 , 말! 내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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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은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됐는지도 모르지 . 하지만 , 자네 머리 속은 비어있는 거지 뭔가 ! 정상이 뭐


고 정상 아닌 게 뭔지도 모르고 있으니 ! 자넨 갈리레오를 가지고 날 꼼짝 못하게 만들지만 … 그
까짓 갈릴레오가 어쨌건 내가 알게 뭐야 !
뒤다르 갈릴레오를 들먹여서 문제를 만든 건 자네야 . 실용성이 최후의 승리자라느니 어쩌니 , 하면서
말야. 그야 최종적으로는 실용성이 이기겠지만 그것도 이론으로 밝혀져야만 하는 거라구 . 사상과
과학의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잖아 ?
베랑제 (점점 더 화를 내며 ) 증명은 무슨 얼어죽을 증명이야 ? 그건 다 헛소리라구 ! 미친 짓이야 !
뒤다르 미친 짓이라는 게 뭔지나 알고 말해야지 .
베랑제 미친 짓이 미친 짓이지 ! 미친 짓이란 그대로 미친 짓이라구 ! 미친 게 뭔지야 증명할 필요도
없어. 그래 , 코뿔소 사건은 실용적인 건가 , 이론적인 건가 !
뒤다르 양쪽 다지 .
베랑제 뭣이 , 양쪽 다라구 !
뒤다르 양쪽 다 아니면 , 그 중의 하나지 . 그 점을 토론해야겠군 .
베랑제 이쯤 되면 … 난 생각을 그만두겠어 .
뒤다르 자넨 지금 흥분해 있어 . 우리는 의견이 서로 맞질 않아 . 그러니 진정하고 애길 해 보세 . 토론
을 해야지 .
베랑제 (미친듯이 ) 내가 흥분하고 있다고 ? 내가 장 같은 모양이지 ? 그래두 난 장처럼 되고 싶진 않
아. 아냐 , 난 장을 닮아가는 건 싫어 . (진정하며 ) 난 철학은 몰라 . 난 공부를 못했어 . 자넨 대학을
나왔지만 말야 . 그래서 자넨 편안한 마음으로 토론을 할 수 있지만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난 서툴다구 . (코뿔소의 무서운 소음 . 처음에는 안쪽 창 밑으로 지나가다 나중에는 정면의
창밑으로 지나간다 ) 하지만 난 자네가 틀렸다는 걸 느낄 수는 있어 … 본능적으로 오는 거지. 아
냐, 본능적인 건 코뿔소야 . 난 직관적으로 그걸 느낀다구 . 그래 , 직관적이라는 말이 맞아 .
뒤다르 직관적이란 건 또 뭐지?
베랑제 직관적이란 … 말하자면 … 그냥 느껴지는 거야 … 그러니까 자네의 지나친 관용, 모든 것을 용
서하는 너그러움 … 실제로 날더러 말하라면 , 그건 허약한 점이지 … 무분별이고 ….
뒤다르 그런 점을 늘 소박하게 주장해온 건 오히려 자네 아닌가 ?
베랑제 난 자네에게 결코 못 당할 거야 . 하지만 내 말 좀 들어보게 . 난 논리학자를 어떻게든 찾아내
서….
뒤다르 논리학자라니 ?
베랑제 논리학자 , 철학자 , 어떻든 논리학자야 … 논리학자가 무너지는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 게 아
닌가. 내가 만났던 논리학자가 나한테 증명해 주었는데 ….
뒤다르 뭘 증명해 주었다는 거야?
베랑제 아시아종 코뿔소가 아프리카종이고 , 아프리카종 코뿔소는 아시아종이라구 .
뒤다르 무슨 소린지 원!
베랑제 아냐 … 그 사람은 그 반대를 증명해 주었다구 . 즉 아프리카종이 아시아종이고 , 아시아종이 …
아냐 오히려 그 반대였지 . 어쨌든 그 사람하고 얘길해 보면 알게 될 거야. 그 사람도 자네 같은
사람이야 . 훌륭하고 , 예민하고 박학한 지식인이지 . (코뿔소의 소음이 커진다 . 두 사람의 대화는
두 개의 창 밑으로 지나가는 코뿔소들의 소음에 묻혀 버린다 . 잠시동안 두 사람의 입술의 움직임
만이 보일 뿐 아무 말도 안 들린다 ) 또 왔군! 끝이 없다니까 ! (안쪽 창가로 달려간다 ) 지겹다 ! 지
겨워! 빌어먹을 !

코뿔소들이 사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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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는 주먹으로 코뿔소들이 가는 쪽을 가리킨다 .

뒤다르 (앉아서 ) 그 사람 좀 보고 싶은데 , 자네가 말하는그 논리학자 말야 . 그 사람이 이 문제의 미


묘한 점, 미묘하고도 모호한 점을 밝혀만 준다면 … 그 이상 바랄 게 없겠는데 .
베랑제 (무대 앞의 창문으로 달려가며 ) 좋아, 내가 데려다 주지 . 그럼 그 사람이 자네에게 얘길해 줄
거야. 두고 봐 탁월한 인물일 테니 . (창가에서 코뿔소 쪽을 향해 ) 빌어먹을 놈들! (바로 전과 같
은 동작 )
뒤다르 가는데 내버려둬 . 자네 좀 점잖게 굴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되나 ? 사람들한데 ….
베랑제 (여전히 창가에서 ) 또 오는데 . (창 밑의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 코뿔소의 뿔에 꿰뚫린 캉캉모자
가 보인다 . 그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급히 사라진다 ) 모자가 코뿔소의 뿔에 꽂혀 있다니 ! 아
니, 저건 논리학자의 모자 아냐 ! 논리학자의 모자야 ! 이런 빌어먹을 ! 논리학자가 코뿔소가 되다
니!
뒤다르 그렇다고 그렇게 욕설이나 퍼부어서야 쓰나 !
베랑제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지 ! 기가 막혀서 ! 이젠 누굴 믿어야 하지 ! 논리학자까지 코뿔소가 되었
으니!
뒤다르 (창가로 가며 ) 그 사람이 어디 있는데 ?
베랑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 저기 , 저거야 ! 보이지 ?
뒤다르 모자를 쓴 코뿔소는 저것밖에 없지 않아 ? 저걸 보고 그런 상상을 하는군 ! 저게 바로 자네가
말하는 그 논리학자란 말야?
베랑제 논리학자가 … 코뿔소라니 !
뒤다르 그래도 지난 날의 개성은 남아 있군!
베랑제 (또다시 모자를 쓴 코뿔소가 사라져 가는 쪽을 가리키며 ) 난 안 따라 가겠어 ! 안 따라가 !
뒤다르 만일 자네 말대로 저게 진짜 그 사상가라면 그 사람은 유혹에 넘어갔을 리가 없어. 선택하기
전에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신중히 생각했을 테니까 말야 .
베랑제 (여전히 창가에서 사라져가는 왕년의 논리학자와 다른 코뿔소들을 향해 소리친다 ) 난 안 따
라간다구 !
뒤다르 (안락의자에 앉으며 ) 그래, 이건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야 !

베랑제는 정면의 창을 닫고 안쪽 창을 향해 간다 . 그 창 밑으로 다른 코뿔소들이 지나간다 . 코뿔소들은


이 집 주위를 돌고 있는 것 같다 . 그는 창을 열고 소리친다 .

베랑제 난 안 따라가 !
뒤다르 (안락의자에서 혼자 ) 저것들이 이 집 주위를 빙빙 맴돌고 있군! 놀고 있는 거야! 큰 아이들이
지! (조금 전부터 데이지가 층계를 올라오는 모습이 무대 왼쪽에서 보인다 . 그녀가 베랑제의 방
을 노크한다 . 팔에는 바구니를 들고 있다) 베랑제 , 노크 소리 아냐 ? 누가 왔나 봐! (그는 아직도
창가에 있는 베랑제의 소매를 끈다 )
베랑제 (코뿔소들 쪽을 향해 소리치며 ) 이건 굴욕이야 ! 굴욕 . 가장행렬이야 !
뒤다르 누가 노크를 한다구 . 안 들리나 ?
베랑제 미안하지만 자네가 열게 !

그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코뿔소들만 바라본다 . 코뿔소들의 소음이 멀어진다 . 뒤다르가 문을 열러 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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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데이지 (들어서며 ) 안녕하세요 . 뒤다르 ?


뒤다르 야, 데이지 !
데이지 베랑제 있어요 ? 좀 어때요 ?
뒤다르 잘 있었어요 , 데이지 ? 데이지는 베랑제한테 자주 오는 모양이지 ?
데이지 어디 있어요 ?
뒤다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 저기 .
데이지 아무도 없이 혼자 있으니 안됐잖아요 ? 게다가 요즘은 몸까지 좋지 않다니까 돌봐 드려야죠 .
뒤다르 데이지는 진짜로 좋은 친구네
데이지 그럼요 . 사실 , 좋은 친구죠 .
뒤다르 마음씨도 곱고 .
데이지 좋은 친구지요 . 그뿐이에요 .
베랑제 (창을 열어 놓은 채로 돌아다본다 ) 아, 데이지 ! 잘 왔어요 ! 정말 당신은 친절해 !
뒤다르 과연 그렇군 .
베랑제 데이지 , 그 논리학자가 글쎄 코뿔소가 됐어요 !
데이지 나도 알아요 . 지금 오다가 길에서 만났어요 . 그 나이에 굉장히 빨리 달리던데요 ! 좀 어떠세요 .
베랑제 ?
베랑제 (데이지에게 ) 머리가 , 아직도 머리가 아파 ! 무섭게 아프다구 ! 당신은 그걸 어떻게 생각해요 ?
데이지 좀 쉬어야겠죠 … 며칠 더 조용히 , 집에서 .
뒤다르 (두 사람에게 ) 내가 방해가 되는 것 아닌가 ?
베랑제 (데이지에게 ) 난 지금 논리학자 얘긴데 ….
데이지 (뒤다르에게 ) 방해라니 . 왜요? (베랑제에게 ) 아, 그 논리학자 얘기요 ? 난 그 사람에 대해선 전
혀 아무런 생각도 없어요 .
뒤다르 (데이지에게 ) 혹시 내가 결례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데이지 (베랑제에게 ) 생각을 해봤자 어쩌겠어요 . (베랑제와 뒤다르에게 ) 아주 새 뉴스가 하나 있어요 .
보따르도 코뿔소가 됐다구요 .
뒤다르 아니 !
베랑제 그럴 리가 ! 그는 반대였는데 , 잘못 알았겠지 . 그는 그걸 항의했던 사람이에요 . 방금 뒤다르가
그러든데 , 안 그래 뒤다르 ?
뒤다르 분명 그래 .
데이지 그가 반대했다는 건 나도 알아요 . 그렇지만 어쨌든 코뿔소가 된걸요 . 빠삐용 부장이 코뿔소가
된 그 다음날에 .
뒤다르 그 사람이 생각을 바꾼게로군 ! 누구나 생각을 바꿀 권리는 있는 거니까 !
베랑제 그렇다면 ,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할 수 있는 것 아냐 !
뒤다르 (베랑제에게 ) 그러니까 훌륭한 사람인 거야. 조금 아까 자네가 한 말에 의한다면 말야 .
베랑제 (데이지에게 ) 믿어지지 않는데 , 누가 당신한테 거짓말을 한 걸거요 .
데이지 내 눈으로 본걸요 .
베랑제 그렇다면 그가 거짓말을 한 거지 . 그런 척만 했을 거야 .
데이지 진지한 얼굴이던데요 . 그야말로 진지한 얼굴이더라구요 .
베랑제 그가 그럼 그렇게 된 이유라도 말합디까 ?
데이지 네, 이렇게 말하더군요 . 시대를 따라야 한다고 . 그게 인간으로서의 그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
뒤다르 (데이지에게 ) 어쩐지 데이지를 꼭 여기서 만날 것 같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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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시대를 따르다니 ! 그게 무슨 놈의 정신이람 ! (그는 과장된 몸짓을 한다 )


뒤다르 (데이지에게 ) 회사가 문을 닫은 후로는 아무데서도 통 만날 수가 없더니 .
베랑제 (혼자 떨어져서 계속) 그렇게 단순할 수가 ! (같은 동작 )
데이지 날 만나고 싶으면 전화만 걸면 됐을 텐데요 왜?
뒤다르 …조심스러워서 .
베랑제 하긴 잘 생각해 보면 , 보따르의 그런 무모한 결심은 놀라울 것도 없지 . 그의 단호한 태도도
사실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던 거니까 . 어쨌든 좋은 사람임엔 틀림이 없는데 ! 좋은 사람들이 좋
은 코뿔소가 되다니 . 아! 그런 사람들은 성실하기 때문에 속임수에 넘어가는 거라구 !
데이지 테이블 위에 바구니 좀 놓아도 되지요 ?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놓는다 )
베랑제 그 사람,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남에게 원한도 잘 품고 ….
뒤다르 (데이지에게 , 바구니 내려놓는 것을 도우려고 뛰어가며 ) 미안, 용서해요 . 진작 내려놓게 해줄
걸.
베랑제 (계속 ) …그는 상관에 대한 증오와 열등감 때문에 변신을 한 거야…
뒤다르 (베랑제에게 ) 자네의 추측은 틀렸어 . 그 친구는 부장의 뒤를 따라간 거야 . 그 친구 말을 빌린
다면 착취자들의 앞잡이 뒤를 말야 . 내 생각엔 , 그의 경우는 파괴적인 충동보다는 오히려 집단의
식 쪽이 더 강했을 것 같애.
베랑제 파괴적인 건 코뿔소야 . 숫적으로 약한 소수파기 때문에 말야 .
데이지 소수라니오 ! 지금은 그 수가 얼마나 늘어났다고요 ! 내 사촌도 코뿔소가 되고, 그 색시도 됐는
걸요. 그 외에도 명사들 , 예를 들어 릿즈 추기경 ….
뒤다르 주교가 !
데이지 네. 마자랭 추기경도요 .
뒤다르 그럼 곧 외국에까지 번지게 되겠군 .
베랑제 그 악의 근원이 하필이면 우리나라라니 !
데이지 게다가 또 귀족들까지도 . 생 시몽(프랑스의 작가 1675 ∼1755 - 역주 ) 같은 분도요 .
베랑제 (두 팔을 번쩍 쳐들고 ) 우리의 고전까지라 !
데이지 그러고도 또 있어요 . 많아요 . 아마 이 도시주민의 4분의 1은 그렇게 됐을걸요 ?
베랑제 그래도 아직은 우리 쪽의 수가 많아요 . 그러니 그 잇점을 이용해야지 . 우리까지 말려들기 전
에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한다구 .
뒤다르 상대방은 만만치가 않아 .
데이지 우선 지금은 점심이나 먹어요 . 내가 먹을 걸 가져왔으니 .
베랑제 데이지 , 정말 고마운데 .
뒤다르 (방백 ) 정말 친절해 .
베랑제 (데이지에게 ) 이거 너무 고마워서 .
데이지 (뒤다르에게 ) 우리하고 함께 계시는 거죠?
뒤다르 방해하고 싶진 않은데 .
데이지 무슨 소릴 그렇게 하세요 , 뒤다르 ? 같이 있어 준다면 우리야 좋지요 .
뒤다르 그래도 방해가 될까봐 ….
베랑제 그렇지 않아, 뒤다르 . 정말 아니래두 . 자네가 있어주는 편이 더 즐겁다구 .
뒤다르 난 좀 바빠서 약속이 있어요 .
베랑제 조금 아까는 한가하다고 그랬잖아 ?
데이지 (바구니에서 먹을 것들을 꺼내며 ) 먹을 것 구하러 다니느라고 혼났어요 . 가게들이 쑥밭이 되
어 버렸어요 . 코뿔소들이 전부 휩쓸었거든요 . 다른 가게들도 굉장히 많이 닫았더군요 . ‘변신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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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에 휴업’이라고 써붙여 있던데요 .


베랑제 넓은 울타리 안에 그놈들을 가두어 놓고 감시해야 한다구 .
뒤다르 그 계획은 실천될 수 없을 거야 . 우선 동물애호협회가 들고일어날걸 .
데이지 그리고 모두들 코뿔소 무리 속에 친척이나 친구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복잡해질걸요 .
베랑제 그렇다면 모두가 다 이 사건에 걸려 들었단 말인가 ?.
뒤다르 모두가 연대책임을 지고 있는 거지 .
베랑제 하지만 어떻게 코뿔소야 될 수 있겠나 ? 그건 생각도 못 할 일이야 ! 생각도 못할 일이라구 .
(데이지에게 ) 상 차리는 것 도와드릴까 ?
데이지 괜찮아요 . 접시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아니까요 . (벽장으로 가서 식기를 꺼내 온다 )
뒤다르 (방백 ) 아니 , 이 아가씨는 이 집안을 휑하게 알고 있군 그래 ….
데이지 (뒤다르에게 ) 자, 삼인분 가져왔어요 . 여기서 식사하시는 거죠 , 네?
베랑제 (뒤다르에게 ) 그대로 있어요 , 어서.
데이지 (베랑제에게 ) 벌써 모두들 익숙해졌어요 . 이젠 코뿔소들이 행길로 떼를 지어 뛰어다니는 걸
봐도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니까요 . 이쪽에서 길을 피해 주고는 그대로 산보를 계속한다든가
볼 일을 보는 형편이지요 .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예요 .
뒤다르 그게 더 현명한 처사지 .
베랑제 난 안 그래 . 난 그럴 수 없어 .
뒤다르 (깊이 생각하며 ) 혹시 직접 체험해 볼 필요가 없을까 몰라.
데이지 어쨌든 지금은 식사나 합시다 .
베랑제 아니 , 자네가 어떻게 그런 소릴 … 법률가인 자네가 … (밖에서 코뿔소들의 무리가 몹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 나팔소리 , 북소리도 들린다 ) 저건 또 뭐야 ? (그들은 정면의
창 쪽으로 달려간다 ) 뭘까 ? (벽이 무너지는 소리 . 무대의 일부가 온통 먼지에 싸인다 . 가능한 한
인물들은 그 먼지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 . 말소리만 들릴 뿐이다 )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무슨 일
일까요 ?
뒤다르 아무것도 안 보여. 들리지도 않구 ?
베랑제 이 정도면 안 되겠는데 !
데이지 접시들이 먼지에 다 더러워지겠어요 .
베랑제 비위생적이야 .
데이지 빨리 먹읍시다 . 다른 생각은 이제 그만하구요 . (먼지가 가라앉는다 )
베랑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 그놈들이 소방서의 벽을 무너뜨렸군 .
뒤다르 정말 다 무너졌구먼 .
데이지 (창가를 떠나 테이블 곁으로 오며 들고 있던 접시를 닦다가 두 사람 곁으로 급히 온다) 모두
들 나오고 있어요 .
베랑제 소방수들 전원이 코뿔소의 연대로군 . 북을 앞세우고 .
데이지 큰 길로 쏟아져 나오는데요 !
베랑제 이젠 정말 못 참겠군 ! 못 참겠어 !
데이지 운동장에서도 나오는데요 !
베랑제 집집에서 다 나오는군 !
뒤다르 창에서도 !
데이지 모두들 합세하는 거예요 .

왼쪽 층계참 문에서 계단을 급히 내려가는 사나이가 보인다 . 이어서 코 위에 커다란 뿔이 달린 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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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나의 사나이 , 다음에는 머리가 완전히 코뿔소로 변한 여자 .

뒤다르 이제 우린 숫적으로 감당 못하겠는걸 .


베랑제 저 중에서 뿔 하나짜리가 몇 마리고 , 뿔 둘짜리는 몇 마리지 ?
뒤다르 그 문제는 통계학자들이 통계를 내고 있는 중이야 . 유식한 논쟁의 꼬투리를 잡을 절호의 찬
스니까 말야 .
베랑제 그 비율은 대강밖에 못 낼걸 . 너무 빨리 지나가니까 , 자세히 볼 시간이 있어야지 . 계산할 틈
을 안 준다구 !
데이지 그런 건 통계학자들한테 맡기면 될 걸 왜들 그러세요 . 자, 베랑제 식사하십시다 . 그럼 좀 진정
이 될 거예요 . 기분도 좋아지고 . (뒤다르에게 ) 당신도 어서요 .

그들은 창가를 떠난다 . 데이지에게 한쪽 팔을 잡힌 베랑제는 순순히 따라간다 . 뒤다르는 가다 말고 멈


춘다 .

뒤다르 난 별로 배가 안 고픈데 . 아니 그보다도 통조림을 별로 안 좋아해서 . 밖에 나가 풀밭에서 먹


고 싶군 .
베랑제 그러지 마. 위험하다구 .
뒤다르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정말이야 .
베랑제 그러니까 하는 소린데 ….
뒤다르 (말을 막으며 ) 사양이 아니라니까 .
데이지 꼭 가시고 싶다면 억지로야 ….
뒤다르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면 곤란한데 .
베랑제 (데이지에게 ) 내보내면 안 돼요 .
데이지 나야 여기 있어 주시길 바라지만 … 그런 건 자유 아녜요 ?
베랑제 (뒤다르에게 ) 인간은 코뿔소보다는 우월하다구 !
뒤다르 그 말에 반대는 않겠네 . 하지만 찬성도 안 하겠어 . 나도 모르니까 . 그거야 경험만이 증명할 수
있는 문제지 .
베랑제 (뒤다르에게 ) 자네 역시 허약한 인간이로군 , 뒤다르 . 그건 일시적인 열정에 지나지 않아. 나중
에 후회할 걸.
데이지 그래요 . 진짜로 일시적인 열정이라면 그다지 위험할 것도 없겠죠 .
뒤다르 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네 ! 나의 의무는 내 동료들과 친구들의 뒤를 따르는 거야 . 좋건 나쁘건
간에.
베랑제 자넨 그 사람들과 결혼이라도 한 것 같은 말투로군 .
뒤다르 난 결혼 같은 건 단념했네 . 그런 작은 결합보다는 세계라는 하나의 큰 가족을 택하겠어 .
데이지 (맥없이 ) 뒤다르 , 그건 섭섭한데요 . 하지만 우리로선 어쩔 도리가 없군요 .
뒤다르 나의 의무는 그들을 버릴 수가 없어요 . 그러니 나의 의무를 따르는 수밖에 .
베랑제 그 반대야 자네의 의무는 … 자넨 자의 진짜 의무를 모르고 있는 거야 …자네의 의무는 그들에
게 대항하는 걸세 . 냉정하고 단호하게 .
뒤다르 난 냉정해 . (그는 무대를 빙빙 돌기 시작한다 ) 냉정하고 말고 . 비판을 하려거든 밖에서 할 게
아니라 내부에서 하는 쪽이 나을 거야. 난 그들을 버릴 수가 없어 . 버릴 수가 없다구 .
데이지 마음씨가 착하시군요 !
베랑제 착한 게 지나친 거지 . (문 쪽으로 급히 가며 뒤다르에게 ) 착한 게 지나치다구 ! 자넨 잘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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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야. (데이지에게 ) 그를 붙잡아요 ! 그는 잘못 생각한 거야. 그는 인간이라구 .


데이지 난들 어떻하라구 ?

뒤다르가 문을 열고 달아난다 . 그가 층계를 급히 뛰어내리는 것이 보인다 . 베랑제가 그 뒤를 따르고


데이지는 층계참 위에서 소리친다 .

베랑제 뒤다르 , 돌아와 ! 모두가 자넬 좋아하고 있다구 , 가지 마! 너무 늦었어 ! (그는 뒤돌아온다 ) 너무


늦었어 !
데이지 손을 쓸 수가 없었는걸요 뭐.

데이지는 베랑제의 등뒤로 문을 닫는다 . 베랑제는 정면 문 쪽으로 급히 온다 .

베랑제 저놈들한테로 가버렸군 . 지금 어디 있을까 ?


데이지 (창가로 오며 ) 저 코뿔소들하고 같이 있는데요 .
베랑제 어느 게 그 친구지 ?
데이지 그야 이젠 알 수 없죠 . 뒤다르의 모습은 이제 알아볼 수가 없으니까 !
베랑제 모두가 똑같으니 , 똑같이 생겼으니 ! (데이지에게 ) 그 친구 처음엔 망설였으니 억지로라도 붙
잡을걸 그랬어 .
데이지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해요 ?
베랑제 당신이라면 좀 더 강경히 나왔어도 됐을 텐데 . 좀더 간곡하게 말릴 걸 그랬어요 . 그 친구는
당신을 좋아했으니까 말이오 . 안 그래 ?
데이지 그런 뜻을 내놓고 표시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는걸요 .
베랑제 그래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는걸 . 그 친구가 그런 짓을 한 건 실연 때문이었어 . 내성적인 사
람이었으니까 ! 용감한 짓을 해서 당신을 감동시키고 싶었던 거예요 . 어떄? 당신도 한번 그 친구
뒤를 따라볼 생각은 없어요 ?
데이지 없어요 . 없으니까 여기 이렇게 있는 것 아녜요 ?
베랑제 (창 밖을 내다보며 ) 거리에는 이젠 온통 코뿔소뿐이로군 . (안쪽 창으로 가서 ) 코뿔소 뿐이야 !
당신 생각이 틀렸어 , 데이지 . (다시 정면 창에서 내다보며 ) 어딜 보나 사람이라곤 그림자 하나 얼
씬 안 하는군 . 길은 그놈들이 온통 차지했어 . 뿔이 하나 난 놈들과 둘 난 놈들이 꼭 반반이로군 .
뿔의 수로밖엔 구별할 길이 없는데 . (코뿔소들이 달려가는 강한 소음 . 그러나 이 소리는 음악화
되어 있다 . 안쪽 벽면 위에 양식화된 코뿔소의 얼굴들이 나타났다간 사라져 버린다 . 그 얼굴들은
막이 끝날 때까지 점점 더 많아진다 . 마지막에는 안쪽 벽면에 가득히 나타나 완전히 고정된다 .
그 얼굴들은 기괴하지만 차츰 아름답게 비쳐온다 ) 데이지 , 실망하지 않았소 ? 후회 안 해요 ?
데이지 안 해요 .
베랑제 당신을 위로해 주고 싶어 . 데이지 , 난 당신을 사랑해요 . 이젠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줘 .
데이지 창문 닫아요 . 너무 시끄러워요 . 먼지가 여기까지 올라오네요 . 온통 다 더러워지겠어요 .
베랑제 그래 , 당신 말이 옳아요 . (그는 정면의 창을 닫고 데이지는 안쪽 창문을 닫는다 . 두 사람 무대
한 가운데서 만난다 ) 우리가 같이 있는 한, 난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어 . 다른 일은 어찌됐건
상관없어요 . 아, 데이지 ! 난 여자를 사랑하게 되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 (그는 데이지의 손을, 그러
고는 팔을 잡는다 )
데이지 안 되는 게 어딨어요 ?
베랑제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 당신도 나하고 같이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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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데이지 그럼요 .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한 거예요 . 당신은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선 ,
별게 다 두렵군요 ! 무슨 일이 일어나건 문제없어요 .
베랑제 (중얼거린다 ) 내 사랑 , 내 기쁨 ! 내 사랑 … 키스해 줘. 내게 이런 정열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
데이지 이젠 좀더 침착하고 자신을 가지세요 .
베랑제 이젠 그렇다니까 . 자, 키스해줘 .
데이지 나, 너무 피곤해요 . 조용히 좀 쉬세요 . 안락의자에 좀 앉으세요 .

베랑제는 데이지에게 이끌려 안락의자로 간다 .

베랑제 이렇게 될 바에야 , 뒤다르가 보따르씨와 싸울 필요도 없었는 걸 그랬어 .


데이지 이젠 더 이상 뒤다르 생각은 마세요 . 내가 당신 옆에 있잖아요 ? 우린 남의 생활을 간섭할 권
리가 없어요 .
베랑제 그런 말 하는 당신은 내 생활을 간섭하지 않소 ? 당신은 나한테는 아주 강하거든 .
데이지 그건 문제가 달라요 . 난 뒤다르를 사랑한 적은 없어요 .
베랑제 알아요 . 만일 그 친구가 그냥 있었더라면 계속 우리 사이에 장애가 되었겠지 . 그래 행복이란
이기적인 거야 .
데이지 자기 행복은 자기가 지켜야죠 , 안 그래요 ?
베랑제 난 당신이 정말 좋아 . 데이지 , 사랑해 .
데이지 나를 좀 알게 되면 , 그런 소리도 아마 안 하게 될걸요 .
베랑제 당신을 알게 되면 될수록 더 좋아질걸 .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 , 아름다워 . (또다시 코뿔소들이
지나가는 소리 ) …더군다나 저런 것들을 놓고 비교해 본다면야 … (코뿔소들 쪽을 손으로 가리킨
다) 이건 칭찬도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 저것들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군….
데이지 당신 오늘은 얌전하게 지냈죠 ? 꼬냑 안 마시고요 ?
베랑제 응. 얌전했지 .
데이지 진짜 ?
베랑제 그렇다니까 . 맹세하지 .
데이지 거짓말 아니고 ?
베랑제 (약간 애매하게 ) 응, 거짓말 아냐 .
데이지 그렇다면 조금은 마셔도 돼요 . 기운이 날 거예요 . (베랑제 급히 따라가려 한다 ) 그대로 앉아
있어요 . 병 어디 있죠 ?
베랑제 (그 장소를 가리키며 ) 거기 , 그 탁자 위에 .
데이지 (탁자 쪽으로 가리키며 ) 몰래 감춰 두었군요 .
베랑제 손대지 않으려고 그랬지 .
데이지 (꼬냑을 약간 따라서 베랑제에게 내밀며 ) 정말 얌전하게 있었군요 . 진전을 보인 거예요 .
베랑제 당신과 같이 있다면야 진전이 더 빠르겠지 .
데이지 (잔을 주며 ) 자, 이건 상으로 드리는 거예요 .
베랑제 (단숨에 마시고는 ) 고마워 . (잔을 다시 내민다 )
데이지 안 돼요 , 이젠 . 오늘 아침은 그거면 충분해요 . (베랑제에게서 잔을 받아 병과 함께 탁자 위에
놓으러 간다 ) 술이 해로울 정도면 안 된다구요 . (베랑제에게로 돌아오며 ) 머리는 좀 어때요 ?
베랑제 많이 나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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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데이지 그럼 그 붕대 떼어버립시다 . 성가시잖아요 ?


베랑제 아니 , 손대지 말아요 .
데이지 왜요 , 풀어 버리자니까요 .
베랑제 붕대 속에 뭐가 생겼을까봐 겁이 나서 그래 .
데이지 (베랑제가 마다하는데도 붕대를 벗기며 ) 아직도 무섭고 , 어두운 생각만 하는 거예요 ? 보세요 .
아무 것도 없잖아요 ? 이마가 반반하기만 한데요 .
베랑제 (이마를 만져보며 ) 정말 ! 당신 덕분에 이젠 그 콤플렉스에서 해방됐어 . (데이지가 베랑제의 이
마에 키스한다 ) 당신이 없었더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
데이지 이젠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어요 .
베랑제 당신하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아 .
데이지 불안 같은 건 내가 쫓아낼 수 있거든요 .
베랑제 우리 , 같이 책 좀 읽읍시다 . 난 좀 박식해져야겠어 .
데이지 사람이 안 붐비는 시간엔 , 특히 산보도 하고요 .
베랑제 그래 , 센 강가로 뢱상부르 공원으로 ….
데이지 동물원에도요 .
베랑제 난 강하고 용감해질 거니까 , 당신과 나를 나쁜 놈들한테서 지켜줄 수 있을 거야 .
데이지 그럴 필요가 뭐 있겠어요 ? 우린 아무도 해치지 않을 텐데 .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아무도
우릴 해치려 들진 않을 거예요 .
베랑제 때로는 뜻하지 않게 남을 해친다던가 해를 입는 수도 있으니까 말이오 . 당신도 그 불쌍한 빠
삐용 부장을 싫어했잖아 ? 하지만 뵈프가 코뿔소가 되던 날,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해 주지 않아도
좋을 걸 그랬지 ? 손바닥이 꺼칠꺼칠하다는 등….
데이지 그게 사실이었는걸요 . 손바닥이 정말 꺼칠꺼칠했다구요 .
베랑제 그야 그랬겠지 . 하지만 그런 잔인한 표현이 아니라도 , 좀더 부드러운 말이 있었을 텐데 . 부장
이 그 말엔 쇼크받은 것 같았거든 .
데이지 그래요 ?
베랑제 겉으로만 나타내지 않았을 뿐이지 . 자존심이 있으니까 . 하지만 상당히 아픈 데를 찔렸던 모양
이야. 그래서 부장은 그런 결심을 한 거라구 . 당신은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할 수 있었느지도 모르
는데!
데이지 설마 부장이 그렇게 될 줄이야 알았나요 … 그 사람 행실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
베랑제 나 자신도 장과 좀더 다정하게 지내지 못했던 게 평생을 두고 후회스러울 것 같아. 난 그 친
구에 대한 나의 우정을 단 한번도 뚜렷하게 보여주질 못했거든 . 우린 서로가 이해를 잘 못했지 .
데이지 괴로워할 것 없어요 . 어쨌든 당신으로선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 안 되는 일은 못하는 거예요 .
후회를 해도 소용없잖아요 ? 그러니 이제 그 사람들 생각은 그만두라고요 . 좋지 않은 추억은 그만
버리는 거예요 .
베랑제 하지만 그 추억들이 자꾸 귀에 울려오고 눈앞에 떠오르는걸 . 그건 모두가 현실이니까 .
데이지 난 당신이 그렇게 현실적인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 좀더 시적 (詩的)인 줄 알았는데 . 당신에겐
상상력이라는 게 없군요 ! 현실도 많으니까 , 그 중에서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만 고르세요 . 상상의
세계로 도망가는 거예요 !
베랑제 말이야 쉽지!
데이지 나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모양이죠 ?
베랑제 충분하지 ! 충분하고 말고 !
데이지 당신같이 양심에만 매달리다간 만사를 다 망치고 말겠어요 . 누구에게나 결점은 다 있는 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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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요. 하지만 당신이나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


베랑제 정말 그렇게 생각해 ?
데이지 우린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좀 나아요 . 둘이 다 선량하고 .
베랑제 그건 그래 . 당신도 선량하고 나도 선량하고 . 그건 사실이야 .
데이지 그러니까 우린 살 권리가 있다구요 . 우린 또 우리 자신에 대해서 행복할 의무와 어떤 것에도
지배되는 않아야 할 의무가 있어요 . 죄의식은 위험한 징조예요 . 순수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구요 .
베랑제 그래 , 그래서 결국은 … (손가락으로 코뿔소들이 지나가는 창문 쪽을 가리킨다 . 안쪽 벽면에
코뿔소의 얼굴이 나타난다 ) …저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저 꼴이 된 거야!
데이지 죄의식은 갖지 말도록 합시다 .
베랑제 당신 말이 옳아 … 나의 기쁨 , 나의 여신, 나의 태양 … 난 당신하고 함께 있는 거지 ? 아무도
우리 두 사람을 떼어놓을 수는 없어 . 우리에겐 사랑이 있어 . 진실한 건 그것뿐이야 . 누구도 우리
행복을 방해할 순 없어 , 또 그럴 권리도 없고 . 안 그래 ? (전화 벨소리 ) 누가 전화를 하지 ?
데이지 (겁을 먹고 ) 받지 마세요 !
베랑제 왜?
데이지 몰라요 .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베랑제 어쩌면 빠삐용 부장이나 보따르나 혹은 장, 아니면 뒤다르일거야 . 결심을 바꾸었다고 우리에
게 알리려는 거겠지 . 당신 말마따나 , 그들의 경우는 단순히 순간적인 열정이었으니까 말야 .
데이지 그렇지 않을 걸요. 이렇게 빨리 생각을 바꾸었을 리가 없어요 . 생각할 틈도 없었을 텐데요 . 그
들은 끝까지 그 경험을 밀고 나갈걸요 .
베랑제 아니면 정부가 들고 일어난 걸 거야. 그래서 우리에게 자기네가 취할 방침에 협력해 달라는
전화일 거야 .
데이지 설마 그럴 리가 .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
베랑제 글쎄 , 그렇다니까 . 정부에서 걸려오는 벨소리야 . 전에도 들어본 일이 있지. 그건 벨소리가 길
다구. 받아야겠어 . 그 외엔 할 사람이 없으니까 . (수화기를 든다 ) 여보세요 ? (아무리 대구해 봤자 ,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코뿔소의 울음소리뿐 ) 당신 들리지 ?. 코뿔소 울음소리야 ! 자, 들어봐
요.

데이지가 수화기를 귀에 댔다가 흠칫 물러서며 급히 수화기를 놓는다 .

데이지 (무서워서 )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요 ?


베랑제 우리에게 장난을 치는 거야 .
데이지 장난도 분수가 있지 .
베랑제 어때 , 내 말 그대로지 ?
데이지 당신이 무슨 말을 했다고 그래요 ?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베랑제 난 각오하고 있었어 . 내가 예측했던 대로야 .
데이지 뭘 예측했다는 거예요 ? 미치 예측한 것도 없으면서 . 무슨 일이든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나
예측할 줄 아는 사람이 .
베랑제 아냐 , 진작부터 예측하고 있었다구 .
데이지 그 사람들 못됐군요 . 심술궃고 . 난 우롱당하긴 싫어요 .
베랑제 당신을 우롱하는 건 아냐 . 날 우롱하는 거지 .
데이지 난 당신하고 같이 있으니까 , 나도 우롱당하는 거지 뭐예요 . 그 사람들이 복수를 하는 거예요 .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뭘 어쨌다고 ? (다시 전화 벨소리 ) 선을 끊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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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전화국에서 야단하게 ?


데이지 당신은 아무 것도 용기를 못내면서 그러고도 날 지켜주겠다는 거예요 ?

데이지가 전화선을 끊는다 . 벨소리 멎는다 .

베랑제 (라디오 쪽으로 가며) 라디오를 켜고 뉴스나 들어 봅시다 .


데이지 그래요 , 사태가 어떻게 됐는 지나 알아봐야겠어요 . (라디오에서도 코뿔소의 울음소리가 나온
다. 베랑제는 스위치를 홱 돌린다 . 라디오 소리 멈춘다 . 그러나 코뿔소 소리의 메아리 같은 것이
아직도 멀리서 들려온다 ) 정말 야단났네요 ! 이건 못 견디겠어요 , 용서할 수 없다구요 ! (그녀는 몸
을 떤다 )
베랑제 (흥분해서 ) 진정해요 , 진정해 !
데이지 방송국까지 점령했나 보죠 !
베랑제 (몸을 떨며 흥분해서 ) 진정해요 , 진정해 ! 진정해 !

데이지는 안쪽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본다 . 거기서 다시 정면 창으로 가서 내다본다 . 베랑제는 같


은 동작을 반대 방향에서 한다 .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무대 한 가운데서 서로 마주친다 .

데이지 이건 농담이 아니에요 . 심각해진 거예요 .


베랑제 이젠 그놈들밖엔 없어 . 그놈들밖엔 없다구 . 정부도 그것들 편으로 넘어가고 말았으니 .

데이지와 베랑제는 다시 두 개의 창가로 . 조금 전과 같은 동작 . 또다시 무대 한가운데서 마주친다 .

데이지 이제 사람이라곤 아무 데도 없군요 .


베랑제 우리 둘 뿐이요 . 우리밖엔 안 남았어 .
데이지 이게 바로 당신이 원하던 것 아니예요 ?
베랑제 이렇게 되길 원한 건 당신이지 !
데이지 그건 당신이예요 .
베랑제 그건 당신이야 !

소음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 코뿔소들의 머리가 안쪽 벽면에 가득해진다 . 집 안 왼쪽 , 오른쪽 그리고


집 속에서도 야수들의 급한 발굽소리 , 거칠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 그러나 이 요란한 소리에는 리듬이
있고 음악적이다 . 동시에 , 특히 위층에서 들려오는 강한 소음 . 발로 짓밟는 소리 . 천장에서 횟가루가
떨어진다 . 집이 크게 흔들린다 .

데이지 지진이에요 ! (어디로 뛰어가야 할지를 모른다 )


베랑제 아냐 , 이건 우리 주위 놈들이 하는 짓이야 ! 코뿔소들 짓이라구 ! (좌우 , 사방으로 주먹질을 한
다) 그만해 ! 일을 못하겠다구 ! 소음 방지 몰라 ! 소음 방지 !
데이지 당신 말을 들어줄 게 뭐예요 !

그러나 소음이 약해진다 . 이제는 음악적인 일종의 배경음이 되어 버렸다 .

베랑제 (그는 역시 겁에 질려) 무서워 할 것 없어요 . 우린 같이 있으니까 . 나하고 같이 있는 게 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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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질 않소 ? 나 정도로는 안 되겠어 ? 내가 당신의 불안을 모조리 없애 주지 .


데이지 우리가 잘못인지도 몰라요 .
베랑제 이젠 생각할 것 없어 . 후회 같은 건 소용없어요 . 죄의식은 위험하다구 . 우린 우리의 인생을
사는 거야 . 행복하게 삽시다 . 우린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그자들은 심술궃진 않다구 . 우리가 해
치지는 않을 테니까 그쪽에서도 우릴 가만 내버려두겠지 . 마음을 가라앉히고 쉬어요 . 어서 안락
의자에 좀 앉지 . (그는 데이지를 안락의자까지 데리고 간다 ) 꼬냑 한 잔 마실래요 ? 기운이 날 거
요.
데이지 머리가 아파요 .
베랑제 (조금 전의 붕대를 가져닥 데이지의 머리에 감아준다 ) 사랑해 , 데이지 . 걱정 말아요 . 곧 괜찮
아질 거야. 일시적인 열병이니까 .
데이지 끝나지 않을걸요 . 결정적인 거니까 .
베랑제 사랑해 , 미칠 듯이 사랑한다구 .
데이지 (붕대를 올리며 )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 어쩔 수 없잖아요 ?
베랑제 그자들은 모두 미쳤어 . 세계는 병들어 있다구 . 모두가 미친 놈들이야 .
데이지 우리가 그들을 고치진 못할걸요 .
베랑제 그럼 저것들하고 어떻게 한 집안에서 살지 ?
데이지 (침착해지며 ) 이치에 맞게 살아야겠지요 . 타협할 길을 찾아내는 거예요 . 그들과 서로 이해하
도록 노력해야 해요 .
베랑제 그자들은 우리의 말을 이해 못할걸 .
데이지 그래도 그렇게 해봐야죠 . 달리는 해결책이 없으니까요 .
베랑제 그럼 당신은 그들을 이해한단 말이오 ?
데이지 아직은 못해요 . 하지만 어떻게든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죠 . 그들의 언어를 배우
고요.
베랑제 그것들에게 언어 같은 게 있을 게 뭐야! 아니 , 당신은 그걸 언어라고 말하다니 ?
데이지 당신이 언어를 뭘 안다고 그래요 ? 당신, 외국어의 천재는 아니잖아요 ?
베랑제 그 얘긴 나중에 합시다 . 우선 밥부터 먹고 .
데이지 난 이젠 배고프지 않아요 . 이젠 틀렸어요 .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요 .
베랑제 당신은 나보다 강하지 않소 ? 자꾸 놀라기만 하지 말아요 . 내가 당신에게 감탄하게 된 것도
당신의 그 용기인데 .
데이지 그 얘긴 전에도 들었어요 .
베랑제 당신 , 내 사랑을 믿어주겠지 ?
데이지 물론이죠 .
베랑제 당신을 사랑해 .
데이지 또 그 소리예요 ?
베랑제 이봐 , 데이지 . 우린 뭔가 할 수 있어 . 우린 아이를 낳을 수 있고 , 그 아이들도 또 아이를 만들
수 있어요 . 시간은 걸리겠지만 , 우리 둘이서 인류를 재생시킬 수 있다구 .
데이지 인류를 재생시켜요 ?
베랑제 우리가 아담과 이브가 되는 거지 .
데이지 아담과 이브의 시대에는 … 둘이 다 용기가 상당했죠 .
베랑제 우리도 용기야 가질 수 있지 . 게다가 또 용기가 꼭 그만큼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요 . 그저 시
간이 걸리더라도 인내만 있으면 돼.
데이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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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그래 , 용기만 조금만 있으면 돼. 아주 조금만 .


데이지 난 애길 갖고 싶지 않아요 . 귀찮아요 .
베랑제 그럼 어떻게 세계를 구하려구 ?
데이지 세계를 구해서 뭐하게요 ?
베랑제 그게 무슨 소리요 ! …나를 위해서야 데이지 , 세계를 구합시다 .
데이지 하긴 , 구원을 받아야할 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죠 . 비정상적인 건 우리들일지도 몰라.
베랑제 무슨 헛소리야 ? 데이지 당신 열이 있군.
데이지 우리 같은 인간들이 다른 데도 있대요 ?
베랑제 데이지 ,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요 .

데이지는 벽면에 비친 코뿔소의 얼굴을 이러지리 둘러 본다 . 층계참의 문과 난간 끝에도 보인다 .

데이지 저쪽이 오히려 보통 인간들이라구요 .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요 , 코뿔소 가죽을 쓰고 있으


니 기분이 좋은가 봐요. 미치광이 같은 얼굴이 아니에요 . 굉장히 자연스러운데요 . 저들이 옳았어
요.
베랑제 (두 손을 잡고, 절망적으로 데이지를 바라보며 ) 옳은 건 우리야 , 데이지 . 그건 확실해 .
데이지 쓸데없는 자만심이에요 !….
베랑제 당신은 내가 옳다는 걸 알고 있잖소 ?
데이지 절대적으로 옳다는 건 없어요 . 옳은 건 이 세계죠 , 당신이나 내가 아녜요 .
베랑제 아냐 , 데이지 . 내가 옳아. 그 증거로 내가 얘길 하면 당신이 알아듣는 거라구 .
데이지 그건 아무런 증거도 되지 않아요 .
베랑제 그 증거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한의 온 애정을 내가 당신에게 품고 있는 거야.
데이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
베랑제 난 이젠 당신을 이해 못하겠어 , 데이지 . 당신은 당신 자신이 하는 말도 이젠 모르고 있군 ! 사
랑이야 , 사랑 , 자 사랑이라구 ….
데이지 당신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걸 들으니 약간 창피해지는데요 . 그 병적인 감정 , 남자의 허약
성 그리고 여자의 허약성 말예요 . 이 열정 ,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발산하는 이 놀라운 에너
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니까요 .
베랑제 에너지라니 ? 당신은 에너지가 부러워 ? 자, 그렇다면 에너지 맛 좀 볼래 ? (그는 데이지의 뺨을
후려친다 )
데이지 아니 , 어쩜 이런 짓을… (그녀는 안락의자에 쓰러진다 )
베랑제 미안해요 , 용서해줘 ! (그는 키스하려 하나 , 데이지가 몸을 뺀다 ) 내가 나빴어 . 그럴 생각은 아
니었는데 . 나도 모르게 그만 … 내가 어쩌다가 그렇게 흥분했는지 원….
데이지 할 말이 없어졌던 거예요 . 그뿐이죠 , 뭐.
베랑제 불과 몇분 사이에 결혼생활을 25년쯤 한 사람들같이 되어 버리다니 !
데이지 당신도 딱한 양반이군요 . 이젠 당신을 알만해요 .
베랑제 (데이지가 울고 있는 동안 ) 그래 , 이젠 할 말이 없어졌는지도 몰라 . 당신은 나나 우리들보다
그들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오 .
데이지 그래요 .
베랑제 그래 ?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 당신에게 맹세하겠지만 , 난 굴복하지 않을 거야. 굴복은 안
한다구 .
데이지 (일어나서 베랑제에게로 다가가 , 그의 목을 껴안고 ) 나도 당신하고 같이 싸울 거예요 .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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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까지.
베랑제 그럴 수 있겠어 ?
데이지 약속할게요 . 믿어도 돼요 . (코뿔소의 소음은 멜로디로 변해 있다 ) 노래를 하나 보죠 ? 들리죠 ?
베랑제 노래하는 게 아냐, 우는 소리지 .
데이지 노래하는 거예요 .
베랑제 우는 소리라니까 !
데이지 당신 돌았군요 . 노래하는 소린데 .
베랑제 당신 귀가 음악적이 아니라구 !
데이지 당신은 음악이라는 걸 통 모르는군요 . 딱하기도 하지 . 자, 보세요 . 놀고 있잖아요 ? 춤추고 있
고.
베랑제 저걸 춤이라고 말하는 거야 ?
데이지 그들의 춤이예요 . 아름다운데요 .
베랑제 추악하기만 하군 !
데이지 험담은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 . 듣기 괴롭군요 .
베랑제 미안해 . 우리 저것들 때문에 싸우진 맙시다 .
데이지 저것들은 신(神)이라구요 .
베랑제 그건 과장이야 . 데이지 , 저것들을 좀 잘 봐요 .
데이지 질투하지 마세요 , 여보 . 미안해요 .

다시 베랑제에게로 가서 그의 목을 껴안으려 한다 . 이번에는 베랑제가 몸을 뺀다 .

베랑제 우린 완전히 의견이 대립되어 있어 . 그러니 더 이상 따지지 않는 게 차라리 낫겠오 .


데이지 당신 , 째째하게 굴지 말아요 .
베랑제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
데이지 (등을 돌리고 있는 베랑제에게 말한다 . 베랑제는 돌아선 채 거울 속으로 자신의 얼굴을 뚫어
지게 바라본다 ) 더 이상 같이 살 순 없겠군 .

베랑제가 거울을 보는 동안 , 여자는 조용히 문을 향해 걸어 나간다 . “너무했어 ! 진짜 너무했다구 !” 하


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밖으로 나간다 .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

베랑제 (여전히 거울을 들여다보며 ) 그래도 , 인간은 그토록 추악하진 않아 . 하지만 암만 봐도 내 얼


굴이 미남은 아닌데 ! 날 믿어요 . 데이지 ! (그는 돌아다본다 ) 데이지 ! 어디 있어, 데이지 ? 가면 안
돼! (그는 문 쪽으로 달려간다 ) 데이지 ! (층계참까지 가서, 난간 위로 몸을 구부린다 ) 데이지 , 올
라와! 돌아와줘 , 데이지 ! 당신 , 식사도 안 했잖아 ? 데이지 , 날 혼자 내버려두지마 ! 약속했잖아 ! 데
이지! 데이지 ! (그는 부르는 것을 단념한다 . 절망적인 몸짓 . 방으로 돌아온다 ) 물론 뜻이 서로 어
긋나게는 됐지만 , 마음이 안 맞는 부부란 오래 살 수가 없지 . 하지만 , 그래도 한마디 말이라도 하
고 떠났어야 했을 게 아냐 ? (그는 사방을 둘러본다 ) 단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갔군 . 그러는 게
아닌데 . 이젠 완전히 나 혼자로구나 . (그는 문으로 가서 , 조심스럽게 , 그러나 화가 나서 문을 잠
근다) 나만은 안 될걸 . (창마다 조심스럽게 잠근다 ) 내가 너희들한테 넘어갈 줄 알고 . (이번에는
코뿔소들의 머리를 향해 ) 난 너희 같은 것 안 따라가 ! 난 너희들을 이해 못해 ! 난 이대로 있을
거야. 난 한 사람의 인간이라구 , 인간 . (안락의자로 가서 앉는다 )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 견디기
어렵구나 . 데이지가 떠난 건 내 잘못이야 . 내가 데이지의 전부였으니까 . 데이지는 어떻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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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양심에 걸리는 사람이 또 하나 늘었군 . 최악의 사태가 머리에 떠오르는데 . 최악의 상태도 가능이
야 하지 . 괴물들의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불쌍한 어린 것! 아무도 내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나도록
도와주진 못하겠지 ! 이제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으니까 . (다시 코뿔소의 울음소리 . 미친 듯이 달리
는 소리 . 먼지가 뿌옇게 일어난다 ) 저 소리가 듣기 싫어 . 귀를 솜으로 막아야지 . (귀를 솜으로 막
는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을 향해 이야기한다 ) 저들을 설복시키는 길 이외에는 해결책
은 없는데 . 어떻게 설복시킨다 ? 변신을 거꾸로 해보면 될까? 그러면 옛날로 돌아올 수 있을까 ?
그건 헤라클레스나 할 수 있는 일이지 . 내 힘으론 안돼 . 그런데 그들을 설복시키려면 우선 말을
해야 할텐데 . 그들에게 말을 하자만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만 한단 말이야 . 아니면 저쪽에서 내가
쓰는 말을 배우든가 . 도대체 내가 쓰는 언어는 어떤걸까 ? 내가 쓰는 말은 뭘까 ? 프랑스어라야겠
지? 그런데 프랑스어란 또 뭘까 ? 어쨌든 원하다면 프랑스어라고 불러도 좋겠지 .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 이 말을 쓰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거든 .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내
말을 내가 알아듣기나 하는 걸까 ? 알아들어 ? (그는 방 한가운데로 와서 ) 데이지 말대로 , 만일 그
자들이 옳은 거라면 ? (다시 거울을 본다 ) 인간은 추하진 않아 ! 추하진 않아 ! (자신의 얼굴을 만
지며 들여다본다 ) 정말 묘한데 ! 난 뭘 닮은 걸까 ? 뭘? (그는 벽장으로 가서 사진 몇 장을 꺼내다
가 들여다본다 ) 사진이로군 ! 이 사람들이 모두 누구지 ? 빠삐용 ? 아니면 데이지인가 ? 그리고 또
이건, 보따르던가 ? 뒤다르 ? 아니면 장? 아니면 나일지도 몰라 . (그는 다시 벽장으로 달려가 그림
두서너 장을 꺼내온다 ) 이게 나로군 ! 이게 나야! (그는 안쪽 벽면 . 코뿔소들의 머리 옆에 그림들
을 걸러간다 ) 이게 나야 ! 나! (그가 그림을 걸자 , 노인과 뚱뚱한 여자와 또 한 사람의 남자의 그
림이 나타난다 . 이들의 추한 초상화가 매우 아름답게 변모된 코뿔소들의 얼굴과 대조적이다 . 베
랑제는 약간 물러서서 그림들을 바라본다 ) 난 미남이 아니로군 . 미남은 아냐 . (그는 그림들을 떼
어, 화가 나서 방바닥에 던져 버린다 . 그리고 거울 쪽으로 간다 ) 아름다운 건 그들이야 . 내가 잘
못이었어 ! 아, 나도 그들처럼 되었으면 ! 애통하게도 내겐 뿔이 없어 ! 이 밋밋한 이마는 얼마나 추
한가 말야 ! 축 늘어진 이 얼굴을 돋보이게 하려면 한두 개의 뿔은 있어야 하는데 . 곧 생기겠지 .
이젠 창피할 것도 없어 . 그들을 모두 만나러 갈 테니까 . 그런데 그게 왜 안 생기지 ! (그는 손바닥
을 들여다 본다 ) 손바닥이 축축하군 . 이게 꺼칠꺼칠하게 될까 ? (그는 웃저고리를 벗은 다음 , 셔츠
를 풀어헤치고 거울 속으로 가슴을 들여다본다 ) 내 피부는 너무 보드라워 . 너무 희고. 털이 너무
많아! 아, 나도 피부가 딱딱하고 그 기막힌 암록색이 되었으면 ! 나도 그들처럼 털없는 맨살이 되
었으면 ! (그는 코뿔소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 저들의 노래는 멋있어 . 약간 거칠긴 하지만 , 확실
히 매력이 있어! 나도 저 친구들처럼 할 수 있었으면 ! (그는 코뿔소의 흉내를 내보려 한다 ) 메,
메. 브르르 … 아냐, 이렇지 않아 . 다시 한번 해보자 . 더 세게 . 메, 메. 브르르 ! 아냐, 이것도 아냐 .
너무 약해. 활기가 없어서 안돼 . 메, 메. 브르르 ! 이건 염소 우는 소리지 코뿔소 소리가 아니야 !
아무래도 양심에 걸리는군 . 그들의 뒤를 제때에 따랐어야 하는 건데. 이젠 너무 늦었어 ! 아! 난
이제 괴물이다 . 괴물이야 ! 아! 난 이제 아무래도 코뿔소는 되지 못할 거야 , 절대로 ! 이젠 변할
수가 없어! 정말로 변하고 싶지만 , 이젠 안돼 . 난 이제 더 이상 내 얼굴을 볼 수가 없어 . 너무 부
끄러워서 ! (그는 거울을 등지고 돌아선다 ) 내 꼴은 너무 추해 ! 타고난 것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자는 불행한거야 ! (그는 갑자기 펄쩍 뛰어 오른다 ) 그렇다면 좋아 ! …난 그들 모두에게 대항하겠
다! 싸우는 거다 ! 싸우는 거야 ! (그는 코뿔소들의 머리가 정착해 있는 벽면을 마주보며 소리친다 )
난 나를 지키겠어 ! 저들 모두에게 대항해서 나를 지키겠어 ! 난 최후의 인간이다 ! 난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겠다 ! 굴복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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