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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이오네스코 作)
코뿔소 (이오네스코 作)
이오네스코
오증자 역
등장인물
베랑제
장
데이지
뒤다르
보따르
빠삐용 씨
노신사
논리학자
웨이트리스
카페 주인
뵈프 부인
주부
식료품가게 주인
식료품가게 안주인
소방수
노인
노인의 아내
작품해설
1960 년 「코뿔소 」가 독일의 뒤셀도르프 초연에서 성공을 거두자 이어서 파리에서는 장 루이 바로 연출
과 주연으로 오데옹 극장에서 공연되고 , 영국에서는 오슨 웰즈 연출 ,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으로 로열
코트 극장에서 공연됨으로써 , 이오네스코는 세계적인 극작가로 부각된다 .
「코뿔소 」는 그의 초기 작품들에 비해 주제가 뚜렷하여 이해와 공감이 쉬운 작품에 속한다 . 이오네스코
는 당시 전 유럽을 휩쓸던 나치즘의 집단 본능에 대한 맹렬한 풍자로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
한 평화로운 마을에 코뿔소가 등장함으로써 마을 주민들이 속속 코뿔소로 변신하는 가운데 그들 사이
에 엇갈리는 경이와 공포가 코믹하게 전개된다 . 그러나 유행병처럼 번지는 변신에 저항하는 한 소시민
베랑제의 투쟁이 영웅적이면서도 희비극적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1976 년 극단 산울림에 의해 공연되었
음)
제 1 막
장치
시골의 어느 작은 마을의 광장 . 무대 안쪽 이층집 . 아래층은 식료품 가게의 전면 . 두세 개의 계단을 올
라가서 유리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다 . 가게 전면 위에 식료품상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도록 써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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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장과 베랑제 , 앉는다 .
장 그야 그렇지 .
베랑제 뭘 마시겠어 ?
장 자넨 아침부터 마시겠다는 거야 ?
베랑제 하두 더워서 . 너무 가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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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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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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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장의 “아니 , 코뿔소가 !”에서 시작된 대사들은 모두가 거의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 “어머나 !” 하는 어떤
여자의 외마디소리가 들린다 . 그 여자가 무대에 나타난다 . 그녀는 무대 중앙까지 뛰어나온다 . 장바구니
를 들고 지나가던 그 주부이다 . 무대 중앙까지 오자 그녀는 바구니를 떨어뜨린다 . 바구니 안에 있던 물
건들이 무대 위로 흩어진다 . 병이 하나 깨진다 . 그러나 한 쪽 팔에 안고 있던 고양이는 놓지 않는다 .
주 부 어머나 !
식료품가게 안주인 (노신사에게 떠밀리는 바람에 남편을 떠밀며 노신사에게 ) 조심하세요 . 지팡이까
지 들구 .
식료품가게 주인 이건 너무하지 않소 . 조심 좀 하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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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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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웨 이 트 리 스 자, 여기 빠스띠스 가져왔습니다 .
장 (베랑제에게 ) 그 버릇 못 고치는군 !
노신사 (주부에게 ) 모셔다 드릴까요 ?
베랑제 (장에게 카페로 다시 들어가는 웨이트리스를 가리키며 ) 난 광물수를 좀 갖다 달랬는데 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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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자가 잘못 가져온 거야 .
노신사와 논리학자 , 오른쪽으로 걸어가 조용히 나가려고 한다 . 두 사람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
베랑제는 하품한다 .
장 아냐 , 꿈만 같아.
베랑제 (장에게 ) 자네야말로 꿈을 꾸고 있군 . 아까 그건 코뿔소였다구 . 진짜 코뿔소 말야 … 저쪽으
로 갔군 …저 멀리로 .
장 하지만 이봐 . 이런 일은 들어보지도 못하던 일이란 말야 ! 시내 한복판을 코뿔소가 멋대로 뛰어
다니다니 ! 자넨 그게 놀랍지 않단 말야 ? 이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구 ! (베랑제 , 하품 한
다) 입 좀 가리고 하품하게 .
베랑제 아… 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 . 위험하니까 말야 . 난 그 생각을 미처 못했군 . 너무 신경쓰
지 말아 . 우린 괜찮으니까 .
장 경찰에 항의해야 해. 경찰은 뭐하러 있는 거야 ?
베랑제 (하품을 하다가 얼른 손으로 입을 막는다 ) 아, 실례 … 코뿔소가 동물원에서 도망을 나온 모양
이지?
장 자넨 서서 꿈을 꾸고 있는 것 아냐 ?
베랑제 난 앉아 있는걸 .
장 앉아 있으나 서 있으나 마찬가지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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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아냐 , 달라 .
장 그런 게 문제가 아냐 .
베랑제 하지만 마찬가지라고 말한 건 자네 아닌가 ? 앉아 있는 거나 서 있는 거나.
장 자네 말귀가 그렇게 어두운가 ? 앉아 있건 서 있건 꿈을 꾸긴 매한가지라 이 말이야 .
베랑제 그래 , 난 꿈을 꾸고 있어 … 인생을 꿈이니까 .
장 (계속해서 ) …그 코뿔소가 동물원에서 도망친 거라고 말했으니 자넨 꿈을 꾸는 게 아니고 뭔가 ?
베랑제 응, 그런 모양이라고 내가 그랬지 .
장 (계속해서 ) …동물들이 페스트에 걸려 다 죽은 뒤로는 이 고장엔 동물원이 없는데두 ? 벌써 옛날
부터 말야.
베랑제 (여전히 무관심하게 ) 그렇다면 곡마단에서 도망을 친 걸까?
장 곡마단이라니 ?
베랑제 글쎄 …순회곡마단 같은 데서 말야.
장 이 고장에선 떠돌이 흥행은 금지돼 있다는 걸 자넨 몰라서 하는 소린가 ? 우리 어릴 때부터 그
런 건 안 한다구 .
베랑제 (하품을 참으려 하지만 하품이 나오고 만다 ) 그렇다면 그때부터 이 부근 숲속 늪지에 숨어
있었나 보지 ?
장 (두 팔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 이 부근 숲속 늪지라니 , 이 부근 숲속 눞지라니 … 이봐 , 자네 알
콜의 캄캄한 안개 속에 완전히 파묻혀 있군.
베랑제 (고지식하게 ) 응, 그건 사실이야 … 뱃속에서 자꾸만 올라오는데 .
장 뱃속이 아니라 머리를 온통 덮어 씌우고 있네 . 자네 이 부근 숲속 늪지를 알고 있나 ? 이 지방을
‘소 카스틸랴 ’라고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 그 정도로 이 지방은 사막 같은 곳이라구 !
베랑제 (기진맥진해서 ) 그러니 어떻단 말야? 그럼 , 아마 조약돌 그늘에 숨어 있었을까 ? …아니면 마
른 나뭇가지에 둥지라도 치고 있었나 ?
장 자네 , 재치를 좀 부려 보겠다는 생각인 모양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 ! 자넨 지금 지쳐 있는 거야 .
그따위 허튼소리나 하구 . 자넨 진지한 말을 할 힘이 없어 .
베랑제 오늘 , 오늘 , 오늘만이야 … 사정이 그렇게 돼서 …. (그는 어렴풋이 고개를 든다)
장 어디 오늘뿐인가 늘 그 모양이지 .
베랑제 아냐 , 늘 그렇진 않아 .
장 자네의 말재주 따위는 안 통해.
베랑제 아냐 , 그런 게 아닌데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난 누가 날 놀리는 건 질색이야 !
베랑제 (가슴에 손을 대며 ) 자넬 놀리다니 , 장. 절대로 그럴리가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베랑제 , 자넨 지금 날 놀리고 있는 거야 .
베랑제 아냐 . 그렇지 않아 .
장 맞아 , 자넨 방금 날 놀린 거지 뭔가 ?
베랑제 어째서 그런 생각을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확실해 .
베랑제 난 절대로 ….
장 (말을 가로막으며 ) 자넨 날 바보 취급하고 있어.
베랑제 자넨 정말 고집불통이로군 .
장 게다가 날 아주 멍청이인 줄 안고 있는 모양인데 자넨 날 모욕한 거야 .
베랑제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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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자넨 힘이 넘치는군 .
장 암. 나는 힘이 세지 . 내가 힘이 센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네 . 난 체력이 강하니까 힘이 세
고, 또 정신력이 있으니까 힘이 넘치지 . 거기다가 또 난 술에 젖어 있지 않으니까 힘이 세고 , 난
자네에게 약을 올리려고 하는 소린 아니네 . 하지만 사실상 자네 마음이 괴로운 건 술 때문이란
말일세 .
논리학자 그러니 이게 바로 삼단 논법의 예입니다 . 고양이는 네 발 동물이다 . 이지도르와 프리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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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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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논리학자 이건 가정입니다 .
베랑제 그 친구는 부장 눈에도 들었어 . 그런데 나야 뭐 장래랄 게 있나 ? 공부도 못했고 행운이라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
노신사 아, 가정이란 말씀이군요 .
장 그래 자넨 이대로 물러서겠다는 거야 ?
베랑제 안 그러면 어쩌겠나 ?
논리학자 프리코도 네 발 동물이다 . 그렇다면 프리코와 이지도르는 발이 몇 개일까요 ?
노신사 둘 합해서 ? 아니면 따로따로 ?
장 인생은 투쟁이야 . 싸우지 않는다는 건 비겁해 .
논리학자 합해서냐 따로따로냐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요 .
베랑제 그렇지만 할 수 없잖아 ? 내겐 무기가 없는걸 .
장 이봐 . 무기를 잡으라구 무기를 .
노신사 (곰곰 생각한 끝에 논리학자에게 ) 여덟 개, 여덟 개지요 .
논리학자 논리학은 암산으로 통합니다 .
노신사 논리학이란 여러 가지 면이 있군요 .
베랑제 어디서 무기를 구하지 ?
논리학자 논리학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
장 자네 자신 안에서 구해야지 . 자네의 의지로 .
베랑제 어떤 무기를 ?
논리학자 이를테면 말입니다 .
장 인내라는 무기 , 교양 , 시성이라는 무기지 . (베랑제 , 하품한다 ) 발랄하고 반짝반짝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는
거야. 현대적 인간이 되라 , 그 말이야 .
베랑제 현대적이 되라니 , 어떻게 ?
논리학자 그 고양이 두 마리에서 다리 두 개는 빼겠습니다 . 그럼 한 마리에 몇 개씩 남죠 ?
노신사 그건 복잡한데요 .
베랑제 그건 복잡한데 .
논리학자 복잡하긴 오히려 간단하죠 .
노신사 당신에겐 간단할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도 않아요 .
베랑제 자네에겐 그게 간단할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도 않아 .
논리학자 머리를 좀 써봐요 . 자, 한번 해보시죠 .
장 기운을 좀 내보게 . 자, 한번 해보는 거야 .
노신사 모르겠는데요 .
베랑제 정말 모르겠는데 .
논리학자 어째 그렇게 머리가 안 도실까 ?
장 어째 그렇게 머리가 안 도나 ?
논리학자 종이에다 계산을 한번 해보십시오 . 고양이 두 마리에서 다리 여섯을 뺍니다 . 그럼 한 마리
에 몇 개씩 남지요 ?
노신사 잠깐 … 기다려요 .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계산한다 .)
장 이렇게 하면 되네 . 우선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면도는 매일 할 것. 셔츠는 깨끗하게 입을 것.
베랑제 세탁비가 비싸서 .
장 술을 줄이면 돼. 외관은 이렇게 하게 . 이런 모자에 이런 넥타이 , 품위 있는 양복 그리고 구두는
반짝반짝하게 닦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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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노신사 , 다시 계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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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이오네스코의 연극 가 본 일 있어 ?
베랑제 아니 , 그저 얘기만 들었지 .
노신사 여덟 개의 다리에서 두 개를 빼면 두 마리의 고양이 중의 ….
장 지금 마침 이오네스코의 연극을 하고 있으니 어서 가보게 .
노신사 한 마리는 다리가 여섯 개일 수도 있겠고 ….
장 그 연극은 말야 , 현대 예술 생활로 들어갈 수 있는 기가 막힌 입문서가 될 걸세 .
노신사 그렇다면 또 한 마리는 다리가 하나도 없다는 해답이 되겠습니다 .
베랑제 과연 그렇겠는데 . 자네 말대로 난 이제부터 현대적으로 되어야겠어 .
논 리 학 자 그럴 경우에는 그 한 마리는 특수한 고양이가 되는 거지요 .
베랑제 그렇게 하겠네 . 자네에게 약속하지 .
장 나한테보다는 우선 자네 자신에게 약속을 해야지 .
노신사 그럼 고양이 한 마리는 다리 넷이 다 없으니까 고양이에선 낙오되는 것이 아닐까요 ?
베랑제 엄숙하게 약속하지 . 그 약속 꼭 지키겠네 .
논 리 학 자 그건 옳지 못해요 . 그러니까 그것은 논리적인 것이 못됩니다 .
베랑제 이젠 술 마시는 대신 교양을 쌓기로 결심했네 . 그랬더니 벌써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은데 ,
머리도 맑아지구 ….
장 그것 보라니까 .
노신사 논리적이 아니라구요 ?
베랑제 오늘 오후부터 당장이라도 시립 미술관엘 가보겠네 . 오늘밤엔 연극표를 두 장 사겠고 . 같이
안 가려나 ?
논리학자 왜냐하면 올바른 것이 곧 논리이니까요 .
장 끈기가 있어야 해. 자네의 그 뜻이 변치를 말아야 한다구 .
노신사 알 것 같군요 . 올바른 것이 .
베랑제 약속하지 . 자네에게도 도 나 자신에게도 . 오늘 오후에 날 미술관에 데려가 주지 않겠나 ?
장 오늘 오후엔 난 낮잠을 자야 해. 그게 내 스케줄이라구 .
노신사 올바르다는 것도 논리학의 일면이군요 .
베랑제 그럼 , 오늘 저녁 극장에는 나하고 같이 가주겠지 ?
장 오늘 저녁은 안되겠는데 .
논리학자 머리가 이젠 탁 트이셨군요 .
장 자네의 그 좋은 뜻이 계속되야 할 텐데 . 하지만 난 오늘 저녁엔 맥주 홀에서 친구들과 만나야
하거든 .
베랑제 맥주 홀에서 ?
노신사 그런데 다리가 하나도 없는 고양이는 ….
장 가기로 약속했거든 . 그러니 약속은 지켜야지 .
노신사 …생쥐를 잡으려 해도 빨리 뛸 수가 없겠습니다 .
베랑제 이 사람아 , 자네가 그런 좋지 못한 예를 보여주다니 , 자네도 마시면 취할걸 .
논 리 학 자 아, 벌써 논리학에 진전이 있으십니다 .
그때 또다시 코뿔소가 달리는 빠른 발소리 , 울음소리 , 시끄러운 발굽소리 , 요란한 숨소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소음이 들려온다 .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무대 안쪽에서 전면을 향해 . 왼쪽 무대 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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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쨌든 자네하곤 다르다구 .
베랑제 어째서 다르지 ?
장 (상점들 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누르려고 큰소리로 ) 난 술꾼은 아니란 말이야 .
논 리 학 자 고양이는 발이 없어도 쥐를 잡아야 합니다 . 그게 고양이의 천성이니까요 .
베랑제 (아주 큰 소리로 ) 난 자네가 술꾼이라고는 말 않겠네 . 하지만 난 왜 자네보다 더 술꾼이 돼야
하느냐 말야 ? 같은 조건인데두 !
노신사 (큰 소리로 ) 고양이의 천성이 뭐라구요 ?
장 (아주 큰 소리로 ) 매사엔 정도라는 것이 있는 거야 . 난 자네와는 달리 분수를 지킬 줄 안단 말
야.
논 리 학 자 (노신사에게 귀에다 손을 대고 ) 뭐라구요 ?
먼젓번과 마찬가지로 도망 다니는 사람들의 다급한 발소리 , 여기저기서 “야!” “어머나 ” 하는 외마디소
리
웨 이 트 리 스 아니 저런 !
카 페 주 인 깨뜨린 건 물어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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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며 외친다 .
일 동 아니 저런 !
장과 베랑제 아니 저런 !
일 동 오!
식료품가게 주인 부부는 창문에서 , 그리고 노신사 , 데이지 , 논리학자는 주부를 둘러싸고 말한다 .
일 동 저런 가엾어라 .
노신사 가엾어라 .
데 이 지 와 웨 이 트 리 스 가엾어라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부 부 (안주인은 창에서 ) 노 신 사 ․ 논 리 학 자 가엾어라 !
카페 주인 (웨이트리스에게 깨어진 유리컵과 쓰러진 의자들을 가리키며 ) 뭘 하고 있는 거야 ! 얼른
얼른 주워 담지 않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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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웨 이 트 리 스 알겠습니다 . 꼬냑 한 잔이요 .
주 부 (흐느끼면서 ) 괜찮아요 . 마시고 싶지 않아요 .
식료품가게 주인 조금 아까도 지나갔다구요 . 가게 앞으로.
장 (식료품가게 주인에게 ) 같은 놈이 아니에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장에게 ) 하지만 ….
식료품가게 안주인 아까하고 같은 소였어요 .
데이지 그럼 두 번씩이나 지나갔단 말이에요 ?
카페 주인 내 보기엔 같은 놈 같던데.
장 아뇨 , 아까하고는 다른 코뿔소였어요 . 먼저 지나간 놈은 뿔이 코에 뿔이 두 개 난 아시아 종 코
뿔소였고 , 이번 놈은 뿔이 하나밖에 없는 아프리카 종 코뿔소던데요 .
웨이트리스가 꼬냑 한 잔을 들고 나와 부인 앞에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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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웨 이 트 리 스 됐어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 데이지 , 됐어요 !
장 (베랑제에게 ) 난 멍청한 사람이 아니야 . 계산이 빠르거든 . 두뇌가 명석하니까 …
노신사 (주부에게 ) 이제 좀 괜찮으시죠 ?
베랑제 (장에게 ) 하지만 , 그 놈은 머리를 숙이고 달려갔잖아 ?
카 페 주 인 (주부에게 ) 맛이 괜찮습죠 ?
장 (베랑제에게 ) 그러니까 잘 보이지 .
주 부 (마시고 나서 ) 내 고양이가 !
베랑제 (화를 내며 장에게 ) 말 같지 않은 소리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주부에게 ) 원하신다면 우리집 고양이라도 드릴까요 ?
장 (베랑제에게 ) 내가? 자네가 감히 내 말을 말 같지 않은 소리라니 ?
주 부 (식료품가게 안주인에게 ) 다른 고양이는 필요없어요 ! (그녀는 고양이를 흔들어 주며 흐느낀
다)
베랑제 (장에게 ) 그래, 정말이지 .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카 페 주 인 이젠 잊어버리시죠 .
장 난 말같지 않은 소리는 한 일이 없네 !
노신사 좀 달관하실 줄도 아셔야 합니다 .
베랑제 자넨 , 잘난 척 할줄 밖에 몰라 . (소리를 높이며 ) 유식한 체나 하고 ….
카 페 주 인 (장과 베랑제에게 ) 이것 보세요 , 선생님들 그만 !
베랑제 (장에게 계속해서 ) …유식한 척 하지만 아는 것도 제대로 없으면서 … 이봐, 코에 뿔이 하나밖
에 없는 코뿔소는 아시아 종이라구 ! 아프리카 종은 뿔이 두 개야 ….
장 아냐 , 그 반대야 !
주 부 (혼자서 ) 그처럼 귀엽던 내 고양이가 ….
베랑제 내기 할까 ?
웨 이 트 리 스 내기를 하려나 봐요!
데이지 화내지 마세요 , 베랑제 .
장 너하곤 내기 안 하겠어 . 뿔이 두 개 난 건 바로 너야 ! 이 아시아 종자야 !
웨 이 트 리 스 어쩌면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남편에게 ) 싸움이 붙을 것 같아요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아내에게 ) 무슨 소리야 ! 내기라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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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깜짝 놀라 그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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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랑제 증거라니 , 무슨 ?
노신사 조금 전의 당신 주장 말이오 . 친구하고 그런유감스러운 논쟁까지 일으키게 했던 그 주장에
대한….
식료품가게 안주인 (베랑제에게 ) 그래요 , 무슨 증거라도 있으슈 ?
노신사 (베랑제에게 ) 코뿔소 두 마리 중의 한 놈은 뿔이 두 개고 다른 한 놈은 뿔이 하나였다는 걸 어떻게 아
시죠? 그리고 어느 쪽이 그렇다는 거죠 ?
식료품가게 안주인 이 양반이라고 우리보다 더 잘 알 리가 있겠어요 ?
베랑제 우선 코뿔소가 과연 두 마리였는지조차 모르는 일입니다 . 내 생각엔 코뿔소는 한 마리뿐이었
던 것 같아요 .
카페 주인 코뿔소가 두 마리였다는 점은 인정하기로 합시다 . 그렇다면 뿔이 하나 있는게 어느 놈이
죠? 아시아 종인가요 ?
노신사 아니죠 . 뿔 두 개짜리가 아프리카 종입니다 . 난 그렇게 생각해요 .
카 페 주 인 뿔이 두 개 있는 놈은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아프리카 종이 아니예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암만 따져 봤자 도로아미타불이로군 .
노신사 하지만 이 문제는 분명히 밝혀져야 합니다 .
논리학자 (조심스럽게 나온다 ) 여러분 말씀중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
닙니다 . 제 소개부터 말씀드리자면 ….
주 부 (울먹이며 ) 이 분은 논리학자세요 .
카 페 주 인 아, 논리학자요 !
노신사 (논리학자를 베랑제에게 소개한다 ) 제 친구 , 논리학자입니다 .
베랑제 처음 뵙겠습니다 .
논리학자 (계속해서 ) …논리학의 전문가지요 . 여기 제 신분증이 있습니다 . (그는 신분증을 보인다 )
베랑제 영광입니다 , 선생님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저희들도 대단히 영광스럽습니다 .
카 페 주 인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십쇼 . 아프리카종 코뿔소는 뿔이 하나인지 ...
노신사 혹은 둘인지 ...
식료품가게 안주인 그리고 아시아종 코뿔소는 뿔이 둘인지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혹은 하나인지 .
논리학자 아니, 바로 그 점이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 내가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 바로 그 점이
지요.
식 료 품 가 게 주 인 하지만 , 우리 모두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그 점입니다 .
논 리 학 자 자, 여러분 제게 말을 좀 시켜 주십시오 .
노신사 여러분 , 어디 들어봅시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남편에게 ) 그럼 , 그 양반 얘기를 좀 들어 보세요 .
카 페 주 인 듣고 있습니다 , 선생님 .
논리학자 (베랑제에게 ) 내가 얘기하는 것은 특히 당신에게 하는 말이오 . 그리고 여기 계신 여러분에
게도 하는 말입니다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우리에게도 ….
논리학자 자, 우선 여러분은 어떤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무의식중에 그
문제에서 이탈하고 만 거예요 . 처음 시작은 방금 지나간 코뿔소가 아까 지나간 코뿔소와 같은 코
뿔소냐 , 아니냐가 문제였습니다 . 해답을 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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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랑제 어떻게요 ?
논 리 학 자 자, 여기 뿔이 하나밖에 없는 동일한 코뿔소를 여러분이 두 번 보았는 지도 모르겠고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잘 알아들으려는 듯 되뇌인다 ) 뿔이 하나밖에 없는 ….
카 페 주 인 (마찬가지로 ) 코뿔소를 두 번….
논 리 학 자 (계속해서 ) 혹은 뿔이 두 개있는 동일한 코뿔소를 여러분이 두 번 보았는 지도 모르겠고 ….
노신사 (되뇌인다 ) 뿔이 두 개 있는 코뿔소 한마리를 두 번….
논리학자 그렇죠 . 또, 첫번째 코뿔소의 뿔이 하나였는데 다른 코뿔소인 두번째 코뿔소도 역시 뿔이
하나였는지도 모릅니다 .
식료품가게 안주인 (창에서 ) 하, 하….
논리학자 마찬가지로 첫번째 코뿔소의 뿔이 둘, 두번째 다른 코뿔소도 역시 뿔이 둘이었는지도 모르
겠고.
카 페 주 인 그렇군요 .
논 리 학 자 이번에는 여러분이 본 것이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우리가 본 것이 ….
노신사 그래요 우리가 본 것이 ….
논 리 학 자 만일 여러분이 본 것이 첫번째 놈은 뿔이 두 개 난 코뿔소였고 ….
카 페 주 인 뿔이 두 개 난 코뿔소였고 ….
논 리 학 자 두번째 놈은 뿔이 하나밖에 없는 코뿔소였다면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뿔이 한 개밖에 없는 코뿔소였다면 ….
논 리 학 자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 거기서는 아무런 결론이 안 나옵니다 .
노신사 거기서는 결론이 안 나옵니다 .
카 페 주 인 어째 그럴까요 ?
식료품가게 안주인 원, 난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네 .
식 료 품 가 게 주 인 원! 저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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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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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막 제 1 장
장치
관청 사무실 또는 개인 기업 , 이를테면 법률서적의 대 출판사 사무실 . 무대 중앙 안쪽으로 커다란 두짝
문 , 그 위에 ‘부장실 ’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 그 문 옆 , 왼쪽 구석에 타이프라이터가 놓여 있는 데이
지의 책상이 있다 . 계단으로 통하는 문과 데이지의 작은 책상 사이에는 왼쪽 벽에 붙여 놓은 또 하나
의 테이블 . 그 위에는 직원들이 출근하면서 사인하는 출근부가 있다 . 거기서부터 왼쪽 전면에 계단으로
통하는 문 . 계단의 상부 , 난간 그리고 층계참이 보인다 . 전면으로 테이블 하나에 의자 둘 . 테이블 위에
는 교정지 , 잉크 , 펜 . 보따르와 베랑제의 책상이다 . 베랑제는 왼쪽 의자 , 보따르는 오른쪽 의자 . 오른쪽
벽 가까이에 그보다는 좀더 큰 또 하나의 장방형 테이블 . 역시 서류며 교정지 등이 흩어져 있다 . 이 테
이블에도 (훨씬 좋고 ‘거창한 ’) 두 개의 의자가 마주 보고 있다 . 뒤다르와 뵈프 씨의 테이블이다 . 뒤다
르는 벽에 기대어 있는 의자에서 직원들을 마주보게 될 것이다 . 그의 직함은 부장대리 .
안쪽 문과 오른쪽 벽 사이에는 창이 하나 있다 . 오케스트라 박스가 있는 극장에서는 객석과 마주보이
는 가운데 전면에 간단한 창틀만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오른편 안쪽 구석으로 외투걸이 . 회색 작업
복이나 낡은 웃저고리들이 걸려 있다 . 경우에 따라서는 외투걸이가 오른쪽 벽 바로 옆 , 무대 전면에 놓
일 수도 있다 .
벽에는 먼지가 쌓인 책과 서류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 왼쪽 책꽂이 위에는 안쪽으로 ‘법률 ’, ‘법전 ’이라
고 씌어 있고 , 오른쪽 벽에는 약간 비스듬히 , ‘관보 ’, ‘국세법 ’이라고 씌어 있다 . 부장실 문 위의 시계가
9시 3분을 가리키고 있다 .
막이 오르면 뒤다르가 그의 테이블 옆에 서 있다 . 객석에서는 오른쪽 옆모습이 보인다 . 테이블 반대쪽
에는 보따르 . 객석에서 왼쪽 옆얼굴이 보인다 . 두 사람 사이로 역시 테이블 앞에 부장이 객석을 정면으
로 향하고 있다 . 부장 왼쪽에 약간 뒤로 데이지 . 그녀는 타이프로 찍은 서류를 들고 있다 . 세 사람이
둘러앉은 테이블의 교정지들 위로 신문이 크게 펼쳐져 있다 .
막이 오르면 몇 초 동안 인물들은 움직이지 않은 채 , 그 자세에서 최초의 대사가 시작된다 . 활인화를
형성한다 . 제 1 막의 시작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
부장 . 50 세 가량 , 단정한 복장 . 곤색 신사복 , 레지옹 도뇌르 약장 (略章 ), 빳빳이 세운 칼라 , 검은 넥타
이 , 갈색의 짙은 콧수염 . 빠삐용 씨라고 불린다 .
뒤다르 . 35 세 . 회색빛 신사복 웃저고리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검은색 소매커버를 끼고 있다 . 안경을 써
도 좋다 . 키는 큰 편 , 장래의 간부 , 부장이 국장대리가 되면 그가 부장이 된다 . 보따르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
보따르 . 전직 국민학교 교사 . 거만한 표정에 짤막한 흰 콧수염 . 나이 육순은 실한 노인 (그는 모르는 게
없이 매사를 다 아는 척한다 .) 베레모를 쓰고 회색 긴 작업복을 입고 있다 . 꽤 높은 코에 안경을 쓰고
귀에는 연필이 꽂혀 있다 . 팔에는 역시 소매커버 .
데이지 . 금발의 젊은 처녀 .
뒤에 등장할 뵈프 부인 . 50 대의 뚱뚱한 여인 . 눈물이 잦고 숨을 헐떡인다 .
등장인물들은 막이 오르면 오른쪽 테이블 주위에 선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 부장은 식지로 신문을 가
리키고 있다 . 뒤다르는 보따르를 향해 손을 뻗치고 ‘하지만 잘 보란 말야 !’ 하는 듯한 표정 . 보따르는
작업복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 입술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띠고 ‘나는 못 속일걸 ’ 하는 표
정.
데이지 , 타이프한 서류를 들고 뒤다르를 지켜 보고 있는 듯하다 . 잠시 후에 보따르가 입을 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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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베랑제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 사무실 문을 살며시
열어 본다 . 문이 열리면서 ‘법률출판 ’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
빠삐용 씨 데이지양 , 아홉시가 지났으니 출근부 이리로 가져와요 . 지각한 사람들에게는 안됐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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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르 그것도 모르고 있군 . 데이지양은 외뿔박이 코뿔소 한 마리를 봤다는데 베랑제 당신이 본 코
뿔소는 뿔이 하나였소 ? 둘이었소 ?
베랑제 실은 바로 그것이 문제랍니다 .
보따르 무슨 소린지 통 모르겠군 .
데이지 기가 막혀 !
보따르 난 당신들을 화나게 할 생각은 없소 . 하지만 당신들 얘기를 난 믿지 않아요 . 이 나라에 코뿔
소를 봤다는 소리는 아직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으니까 !
뒤다르 어쩌다가 그럴 수도 있겠죠 .
보따르 아니 절대로 없어요 .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 외에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코뿔소는 할머
니들의 미신속에서나 꽃이 피는 거요 .
베랑제 코뿔소에 ‘꽃이 핀다’는 표현은 적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
뒤다르 맞아요 .
보따르 (계속하며 ) 여러분들의 코뿔소 얘기는 신화니까 !
데이지 신화요 ?
빠삐용 씨 자, 이젠 일할 시간이오 !
보따르 (데이지에게 ) 신화라니까 ! 비행접시 같은 이야기지 !
뒤다르 하지만 실제로 고양이 한 마리가 밟혀 죽었잖아요 ? 그건 부인할 수 없죠 .
베랑제 그건 내가 증언할 수 있어요 .
뒤다르 (베랑제를 가리키며 ) 이런 증인들이 또 있다는데요 !
보따르 이런 증인을 신용하다니 !
빠삐용 씨 자, 여러분 ! 어서 !
보따르 (뒤다르에게 ) 군중심리라는 거요 . 뒤다르 , 군중심리 . 그건 마치 대중의 아편인 종교 같은 거란
말이오 !
데이지 난 비행접시를 믿어요 .
보따르 흥!
빠삐용 씨 (단호하게 ) 그만들 두지 못할까 ! 잡담들은 이제 그만하라구 ! 코뿔소가 있거나 말거나 비행
접시를 믿건 안 믿건 일은 해야지 ! 실제 동물이냐 가공의 동물이냐를 놓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
내라고 회사가 월급을 주는 줄 아나 ?
보따르 가공이에요 ?
뒤다르 실제라구요 .
데이지 실제로 있고말구요 .
빠삐용 씨 여러분 다시 한 번 주의를 주겠는데 지금은 근무 시간이오 . 결말도 안 날 그 논쟁은 이젠
그만 두시오 ….
보따르 (기분이 상해서 빈정대듯 ) 동감입니다 . 부장님 , 당신은 부장이시니까 부장님 명령이라면 우리
야 복종해야죠 .
빠삐용 씨 자, 빨리들 해요 . 난 당신네들 월급에서 벌금을 제하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 뒤다르 , 금주
법에 관해서 자네가 쓴 해설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
뒤다르 지금 정리중입니다 , 부장님 .
빠삐용 씨 빨리 끝내요 . 급하니까 . 베랑제 . 그리고 보따르 . ‘특산주 등록’이라는 포도주 통제법의 교정
은 끝났나요 ?
베랑제 아직 안 끝났습니다 , 부장님 . 어지간히는 했습니다만 ...
빠삐용 씨 같이 교정을 봐서 끝내시오 . 인쇄소에서 기다리고 있소 . 데이지양은 내 방으로 편지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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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받으러 오고 . 타자를 빨리 쳐서 .
데이지 알겠습니다 , 부장님 .
빠삐용 씨 뵈프 씨는 오늘 안 나왔나 ?
베랑제 (주위를 둘러보며 ) 그러고 보니 안 나왔군요 .
빠삐용 씨 바로 그 사람이 있어야겠는데 말야 . (데이지에게 ) 아프다든가 출근을 못하겠다는 무슨 연
락이라도 없었나 ?
데이지 아무 말도 없었는데요 .
빠삐용 씨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선다 ) 계속 이 지경이면 파면이야 . 벌써 여러 차례 나를 골탕먹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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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빠 삐 용 씨 (데이지에게 ) 물 한 컵 갖다드려요 .
데이지 네, 곧 가져올게요 !
그순간 소음이 들려온다 . 굉장한 무게로 계단이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 아래층에서 코뿔소의 괴로운 울
음소리가 들려온다 . 계단이 무너질 때 일어나던 먼지가 일단 가라앉으면서 허공에 매달린 층계참이 보
인다 .
데이지 맙소사 !
뵈프 부인 (의자에 앉아서 가슴에 손을 얹고) 아!….
베랑제 진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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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가 무섭게 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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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데이지 가엾어라 !
베랑제 (앞의 대사를 이어서 , 보따르에게 ) 당신은 뭐든지 다 알 텐데 어때요 ? 뿔 두 개 난 것이….
빠삐용 씨 베랑제 , 왜 그렇게 횡설수설하나 ? 아직도 정신이 안 나는 게 아냐 ? 보따르 말이 맞군 .
보따르 이런 일이 어떻게 이 문명국에서 감히 ….
데이지 (보따르에게 ) 그래요 , 하지만 진짜로 있잖아요 ?
보따르 이건 파렴치한 음모야 ! (의회연단의 연사처럼 뒤다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를 무섭게
노려보며 ) 이건 자네 책임이야 !
뒤다르 이게 왜 내 책임이오 ? 당신 책임은 아니고 ?
보따르 (분개해서 ) 내 책임이라고 ? 항상 약자의 책임으로 돌리는군 . 이게 나 한 사람만의 문제라면
몰라도 ….
빠삐용 씨 이젠 계단도 없어졌으니 , 꼼짝 못하게 생겼군 .
데이지 (보따르와 뒤다르에게 ) 그만들 해 두세요 . 지금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라구요 .
빠삐용 씨 모두가 사장 책임이야 .
데이지 그렇죠 . 그러나 저러나 우린 어떻게 내려가죠 ?
빠삐용 씨 (정답게 농조로 , 타이피스트의 뺨을 쓰다듬으며 ) 내가 안아 주지 . 그리고 함께 뛰어내리는
거야!
데이지 (부장의 손을 뿌리치며 ) 손대지 마세요 ! 코뿔소처럼 꺼칠꺼칠한 그 손으로 !
빠삐용 씨 농담이야 .
뵈프 부인 아니, 이럴 수가 !
베랑제 (뵈프 부인에게 ) 왜 그러시죠 ?
뵈 프 부 인 저건 제 남편이예요 ! 뵈프 , 가엾게도 , 여보, 어떻게 된 거예요 ?
데이지 (뵈프 부인에게 ) 확실하세요 ?
뵈프 부인 네, 그이에요 . 틀림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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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뵈프 부인 아이구 ! 맙소사 !
데이지 어떻게 잘 되겠죠 ….
빠 삐 용 씨 (뒤다르에게 ) 법률적으로는 어떻게 되나 ?
뒤다르 가정법원에 가야 되겠죠 .
보따르 (일행의 뒤를 따르며 ,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 이거야 원. 완전히 미친 짓들이로군 ! 어떻게
된 사회인지 원! (보다르가 중얼거리는 동안 , 모두들 뵈프 부인 주위로 몰려가 뺨을 툭툭 친다 .
뵈프 부인은 눈을 뜨고 ‘아!’ 하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더니 다시 눈을 감는다 . 모두들 다시 그녀의
뺨을 때린다 ) 어쨌든 내가 조합에 가서 모든 얘기하죠 . 궁지에 빠져 있는 동료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 이젠 모든 걸 다 알게 될 거야.
뵈프 부인 (정신이 든다 ) 가엾은 그 양반을 저대로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 가엾어라 . (코뿔소의
울음소리 들린다 ) 날 부르고 있어요 . (부드럽게 )
데이지 뵈프 부인 , 좀 괜찮으세요 ?
뒤다르 이젠 정신이 들었어 .
보따르 (뵈프 부인에게 ) 안심하시고 우리 위원회에 맡기십시오 . 우리 조합 에 안 드시겠습니까 ?
빠 삐 용 씨 일이 또 늦어지는군 . 데이지 , 편지 ….
데이지 그보다는 ,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를 먼저 생각해야죠 .
빠 삐 용 씨 그래 , 그게 문제긴 문제야 . 창문으로 .
베랑제 위험해요 !
뵈프 부인 저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
뒤다르 부인을 붙잡아요 !
뵈프 부인 내가 집으로 데려가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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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빠 삐 용 씨 어쩌려구 저러지 ?
뵈프 부인 (계단 위에서 뛰어 내리려한다 ) 여보 , 내가 내려갈게요 !
베랑제 뛰어 내리려나 봐요 .
보따르 아내로서야 응당 그래야겠지 .
뒤다르 그건 무리예요 .
뵈 프 부 인 여보 , 나예요 . 내가 왔어요 .
뒤다르 등에 올라탔어요 . 승마하듯이 .
보따르 여장부로군 .
뵈 프 부 인 의 목 소 리 집으로 갑시다 . 여보 , 돌아갑시다 .
뒤다르 전속력으로 달리는데요 .
베랑제 빨리 달리는데요 !
뒤다르 (빠삐용 씨에게 ) 부장님은 마술을 배우신 일이 있으십니까 ?
빠 삐 용 씨 옛날에 … 조금 … (한쪽 문 있는 데를 돌아보며 ) 여태 전화가 안 끝났군 ….
베랑제 (계속 코뿔소를 바라보며 ) 벌써 꽤 멀리 갔는데요 . 이젠 보이지도 않아요 .
데이지 (나오면서 ) 소방서가 안 나와서 애먹었어요 !
보따르 (혼잣말에 결론이라도 내리듯이 ) 당치도 않은 일이야 !
데이지 소방서가 안 나와서 혼났어요 ….
빠 삐 용 씨 사방에서 불이라도 났나 ?
베랑제 전 보따르와 동감입니다 . 뵈프 부인의 태도는 정말 감동적이에요 . 마음씨가 착하고 .
빠 삐 용 씨 직원 하나가 모자르게 됐으니 , 대신 누굴 써야겠는데 .
베랑제 그 사람은 이제 여기선 정말로 필요없는 사람이 돼 버린 걸까요 ?
데이지 불이 나서가 아니래요 . 다른 데서도 코뿔소들이 나타나서 그리로 불려간 거래요 .
베랑제 코뿔소들이 또 있다고 ?
뒤다르 뭐라고 ? 코뿔소들이 또 있다고 ?
데이지 그래요 . 다른 코뿔소들이 또 있는 거죠 . 시내 여기저기서 신고가 들어왔대요 . 오늘 아침엔 일
곱 마리였는데 , 지금은 열 일곱 마리가 됐다나요 .
보따르 기가 막혀서 !
데이지 (계속해서 ) 서른 두 마리라는 소리도 있어요 . 아직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 곧 확인이 될 거예
요.
보따르 (아직 납득이 덜간 듯이 ) 흥! 과장이겠지 !
빠삐용 씨 그래, 우리를 여기서 꺼내러 오겠다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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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랑제 난 배가 고픈데 ….
데이지 네, 오겠대요 . 소방수들이 지금 오고 있는 중이에요 .
빠삐용 씨 그럼, 다시 일을 해야지 !
뒤다르 지금은 그럴 경황이 없잖습니까 ?
빠삐용 씨 그래도 그 동안에 허비한 근무시간을 만회해야지 .
뒤다르 보따르 , 그래도 코뿔소의 출현을 부인하겠어요 ?
보따르 우리 조합에서는 사전 통고 없이 배포 씨를 해고하는 데는 반대예요 !
빠삐용 씨 그 결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오 . 조사 결과가 그렇게 되리라는 거지.
보따르 (뒤다르에게 ) 아니 , 난 코뿔소의 출현을 부인하지 않아요 . 뒤다르 . 난 부인한 일 없어요 .
뒤다르 신용할 수 없는 양반이로군 .
데이지 그래요 . 신용할 수 없는 분이에요 .
보따르 다시 한 번 말해두지만 난 절대로 부인한 일 없어요 . 난 다만 어떻게 되가는지를 끝까지 알
아보려 했을 뿐이지 . 그런데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알게 된 거요 . 난 단지 현상만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오 . 그걸 이해하고 분석하지 . 적어도 분석할 줄을 ….
뒤다르 그럼 , 어디 그 분석 좀 들어봅시다 .
데이지 보따르 . 설명해 보세요 .
빠삐용 씨 설명하시오 . 동료들이 모두 그걸 원하니 .
보따르 설명하지요 ….
뒤다르 들어 봅시다 .
데이지 재미있겠는데요 .
보따르 설명하지요 …. 언젠가는 ….
뒤다르 왜 지금 당장 안 하고 ?
보따르 (빠삐용 씨에게 위협하듯 ) 우리끼리 우선 얘기해 봅시다 . (모두에게 ) 난 이 사건의 원인을 알
고 있어요 . 그 내막을 ….
데이지 내막이라니요 ?
베랑제 무슨 내막을요 ?
뒤다르 그게 알고 싶은데요 . 그 내막이 ….
보따르 (계속한다 . 무서운 얼굴로 ) 또 난 중요 인물의 이름들도 모두 알고 있다구요 . 배반자들의 이
름도. 난 속이지 못해. 이 도발의 의미와 목적을 곧 여러분에게 알려드리지요 . 내가 그 선동자들
을 폭로하겠어요 .
베랑제 누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
뒤다르 보따르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
빠삐용 씨 그런 헛소릴랑은 그만둡시다 .
보따르 헛소리라니오 ? 내가 헛소리를 한다구 ?
데이지 아까는 보따르가 우리에게 헛소리를 한다고 비난하고선 ….
보따르 아까는 그랬지 . 하지만 지금은 헛소리가 아니라 도발이 된 거요 .
뒤다르 도대체 어째서 그렇게 되었죠 ?
보따르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지 . 여러분 ! 어린애들은 진짜로 아무 것도 모르지만 위선자들은 알고도
모르는 척한단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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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창가로 가서 사다리를 타려 한다 .
소방수 자, 빨리 ….
베랑제 (창을 가리키며 ) 먼저 내려가 .
뒤다르 (베랑제에게 ) 자네가 먼저 .
베랑제 아냐 , 먼저 내려가 .
뒤다르 괜찮대두 , 어서 .
베랑제 제발 , 어서 먼저.
소방수 빨리 빨리요 !
뒤다르 자, 어서 .
베랑제 자, 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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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막 제 2 장
장치
장의 집 . 장치 구조는 2 막 1 장과 거의 같다 . 즉 무대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
오른쪽 무대의 4 분의 3이나 5 분의 4가 (무대의 크기에 따라 ) 장의 방이다 .
안쪽으로 벽에 기대어 장의 침대 . 장이 누워 있다 . 무대 한가운데 의자나 소파가 하나 . 베랑제가 오면
앉게 될 것이다 .
오른쪽 중앙에 장의 화장실로 통하는 문 . 장이 그리고 들어가면 세면대와 샤워의 물소리가 들린다 . 방
왼쪽에는 칸막이가 있어서 무대를 둘로 나눈다 . 중앙에는 계단으로 통하는문 . 너무 리얼하지 않은 양식
화된 장치를 원할 때에는 칸막이 없이 문만 달아도 된다 . 무대 왼쪽에는 층계 , 장의 방으로 통하는 층
계의 마지막 부분 , 난간 , 층계참이 보인다 . 그 층계참과 같은 높이에 안쪽으로 이웃집 방문 . 무대 안쪽
으로 아래층에는 유리문의 부분이 보이고 , 그 위에 ‘관리인 ’이라고 씌어 있다 .
막 오르면 장이 객석을 등진 채 침대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다 기침한다 . 잠시 후 베랑제가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 노크한다 . 장은 대답이 없다 . 베랑제 , 다시 노크한다 .
노 인 뭐요 ?
베랑제 장을 찾아왔습니다 . 장의 친구입니다 .
노 인 난 또, 날 부르는 줄 알았지 . 내 이름도 장이요 . 다른 장이었구만 .
노 인 의 아 내 목 소 리 (방안에서 ) 우리래요 ?
노 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아내 쪽을 돌아보며 ) 아냐 , 다른 장이래 .
베랑제 (두드리며 ) 장!
노 인 나가는 건 못 봤는데 어젯밤에 봤어요 .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습디다 .
베랑제 예. 그게 바로 저 때문이랍니다 .
노 인 아마 , 열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 또 한 번 불러봐요 .
노 인 의 아 내 목 소 리 장! 웬 수다예요 !
베랑제 (두드리며 ) 장!
노 인 (아내에게 ) 그래 곧 갈께 …. (그는 문을 닫고 사라진다 )
장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누워서 목쉰 소리로 ) 뭐야?
베랑제 장, 나야 나.
장 누구 ?
베랑제 나야 , 베랑제 . 들어가도 괜찮겠지 ?
장 응, 자넨가 ? 들어와 .
베랑제 (문을 열려다가 ) 문이 잠겨 있는데 .
장 그래 잠깐만 . 곧 나갈께 . (장이 일어난다 . 실은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다 . 녹색 잠옷에 머리는
헝클어져 있다 ) 잠깐만 . (열쇠구멍에 열쇠를 끼고 돌린다 ) 잠깐만 . (다시 침대로 가서 먼저처럼
이불을 쓰고 눕는다 ) 들어와 .
베랑제 (들어오며 ) 잘 있었어 , 장?
장 (침대에서 ) 지금 몇 시지 ? 자넨 , 회사에 안 나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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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거든 .
장 나는 균형이 완벽해 . (장의 목소리는 점점 쉬어간다 ) 난 정신이나 육체가 다 건강하다구 . 나의
혈통은 ….
베랑제 물론 , 물론. 그래도 감기가 든 게 아닐까 … 열이 있나 ?
장 모르겠어 . 약간 있는 것 같아 . 머리가 아프니까 .
베랑제 가벼운 편두통이군 . 그럼 난 그만 가볼까 ?
장 아냐 , 그냥 있어. 괜찮아 .
베랑제 목이 쉬었는데 역시 .
장 목이 쉬었다구 ?
베랑제 응, 약간 . 그래서 아까는 내가 목소리를 못 알아들었다구 .
장 내가 왜 목이 쉬어 ? 내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어 . 오히려 변한 건 자네 목소리지 .
베랑제 내 목소리가 ?
장 그렇다니까 .
베랑제 그런지도 모르지 . 난 그걸 느끼지 못했지만 .
장 자네야 뭘 느낄 줄 아나 ? (이마에 손을 대며 ) 확실히 머리가 아픈거야 . 분명 내가 어디 부딪친
거야! (그의 목소리는 더욱 쉬어 간다)
베랑제 어디다 부딪쳤길래 ?
장 모르겠어 . 기억이 안 나.
베랑제 부딪쳤으면 아팠을 텐데도 ?
장 아마 , 자면서 부딪친 모양이야 .
베랑제 그렇다면 그 충격으로 잠이 깨었을 게 아닌가 ? 자넨 아마 부딪치는 꿈을 꾼 게로군 .
장 난 꿈 같은 건 절대로 안 꿔….
베랑제 (계속한다 ) 어쨌든 자는 동안에 머리가 아파온 걸 거야. 자넨 꿈 꾼 걸 잊어버렸나 보지 . 아
니 오히려 무의식 속에서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라.
장 내가 무의식 속에서 ? 나는 의식이 확실한 사람이야 . 정신이 헷갈리는 사람이 아니라구 . 나는 정
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사람이라구 . 언제라도 말이야 .
베랑제 그건 나도 알아 .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 .
장 좀더 분명히 하라구 . 나한테 불쾌한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아 ?
베랑제 머리가 아플 땐, 어디다 부딪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말이야 . (장에게 다가가며 ) 정말 부
딪쳤으면 머리에 혹이 생겼을 텐데 . (장을 자세히 보더니 ) 저런 혹이 하나 생겼군 . 정말 혹이 생
겼어.
장 혹이 ?
베랑제 (장의 이마를 가리키며 ) 저기 , 저기 바로 코 위 이마에 .
장 혹 같은 게 어디 있다구 그래 ? 우리 가문에 혹이 난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
베랑제 거울 있나 ?
장 아니 , 그럼 ! (이마를 만지더니 ) 정말 생긴 것 같은데 . 목욕실에 가서 봐야지 . (그는 벌떡 일어나
서 욕실 쪽으로 간다 . 베랑제 , 눈으로 그의 뒤를 따른다 . 목욕실에서 ) 정말인데 혹이 생겼어 . (돌
아온다 . 얼굴빛이 더욱 녹색으로 변했다 ) 그것 봐. 분명히 내가 어디에 부딪쳤다구 .
베랑제 자네 안색이 나쁜데 얼굴빛이 파래진 걸 보니.
장 자넨 어째서 내게 불쾌한 소리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나 ? 자기 얼굴은 어떻고 ?
베랑제 미안하네 . 자넬 일부러 괴롭힐 생각은 아닌데 , 그만 .
장 (귀찮은 듯이 ) 그런 것 같지도 않구먼 ,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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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안에서 ) 브르르 ….
베랑제 몸을 떨고 있군 . 안 되겠는데 .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
다시 전화 쪽으로 간다 .
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급히 물러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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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베랑제 물론 그럼 됐기는 하지만 , 그래두 코뿔소가 되는 게 그렇게 좋을까 , 정말 ?
장 왜 좋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 ?
베랑제 왜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 역시 그렇겠군 .
장 아냐, 그것도 나쁘지 않다구 ! 어쨌든 코뿔소도 우리처럼 하나님이 만든 짐승이니까 우리와 마찬
가지 자격으로 살 권리가 있다구 !
베랑제 우리의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야 그렇지 . 하지만 지능 정도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
장 (방 안을 왔다갔다 하며 목욕실을 들락날락거린다 ) 자넨 우리의 지능이 좀 낮다고 생각하나 ?
베랑제 그래도 우리에겐 우리의 도덕이라는 게 있지 않아 ? 그건 동물들의 도덕과는 양립될 수 없다
고 생각하는데 .
장 도덕이라 ! 도덕 같은 건 이젠 진저리가 난다! 도덕이야 좋지 ! 하지만 우린 그걸 뛰어넘어야 해!
베랑제 그럼 그대신에 뭘?
장 (여전히 같은 동작 ) 자연이지 !
베랑제 자연 ?
장 (마찬가지로 ) 자연에는 법칙이 있어. 도덕이란 건 사람이 만든 거니까 자연에는 어긋나는 거야 .
베랑제 그렇다면 자넨 인간의 도덕적 법칙 대신에 정글의 법칙을 세우겠다는 건가 !
장 난 거기서 살 거야 . 거기서 살 거야 .
베랑제 입으로야 그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
장 (뎌진히 왔다갔다 하며 말을 가로막는다 ) 우리 생활의 토대를 다시 세워야 돼. 원시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구 .
베랑제 난 그 의견에 찬성하지 못하겠는데 .
장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 가슴이 답답해 .
베랑제 잘 생각해 봐. 동물에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없다구 . 그런 귀중한 가치의 체게를 인간
의 문명은 수세기를 걸려서 세워 놓은 건데….
장 (여전히 목욕실 안에서 ) 그 모든 걸 다 무너뜨려야 돼. 그럼 우리는 좀 더 건강해질 꺼야 .
베랑제 진담은 아니겠지 농담이겠지 . 자넨 지금 시(詩)라도 쓰고 있는 기분인가 보지.
장 브르르 …. (사뭇 코뿔소의 울음소리 같다 )
베랑제 난 자네가 시인인 줄은 미처 몰랐는데 .
장 (목욕실에서 나온다 ) 브르르 …. (그는 또 코뿔소의 울음소리는 낸다 )
베랑제 그게 진짜 자네 생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군 . 자네야말로 늘 그런 소릴 하지 않았나 ? 인간
이란….
장 (말을 가로막으며 ) 인간 … 다신 그런 말 입 밖에도 내지 말아!
베랑제 내 말은 인류라는 뜻이야 . 휴머니즘은 ….
장 휴머니즘이란 다 케케묵은 소리야 . 자넨 진부하고 감상적이로구만 .(욕실로 들어간다 )
베랑제 하지만 정신이란 ….
장 (욕실에서 ) 또 그런 케케묵은 소리야 ? 시시한 소리 작작하라구 !
베랑제 시시한 소리라구 ?
장 (욕실에서 알아듣기 힘들만큼 쉰 목소리로 ) 물론이지 .
베랑제 장, 자네가 그런 소릴 하다니 놀랬는데 ! 자네 돈 것 아냐 ? 결국 자네도 코뿔소가 되고 싶다는
거 아냐 ?
장 그래서 안 될 것도 없지 ! 난 자네 같은 편견은 없으니까 .
베랑제 똑똑히 좀 말해보게 . 못 알아듣겠어 . 발음이 분명칠 않아.
- 47 -
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장 (여전히 욕실에서 ) 자네 귀가 나쁜 거야 .
베랑제 뭐라고 ?
장 자네 귀가 나쁘다고 . 코뿔소가 되면 안될 것도 없다고 말했네 . 난 변화를 좋아하니까 .
베랑제 자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 (베랑제는 말을 중단한다 . 장이 완전히 녹색이 되어 무
서운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 이마의 혹도 거의 코뿔소의 뿔처럼 변해버렸다 ) 아니 자네 정
말 미쳤구만 ! (장은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방바닥에 던진다 . 분노에 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낸다 )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게 . 이젠 자네 모습이 아니네 .
장 (겨우 알아들을 소리로 ) 더워 … 너무 더워 전부 벗어버려야지 . 답답해 . 옷이 답답해 . (잠옷의 바
지를 벗는다 )
베랑제 무슨 짓이야 ? 도무지 자네답지 않게 ! 평소의 그처럼 단정하던 자네가 !
장 늪이다 ! 늪!
베랑제 날 좀 봐! 내가 안 보이나 ? 내 소리가 안 들려?
장 잘 들려 ! 잘 보이고 !
베랑제 위험해 !
장 (거칠게 숨을 쉬며 ) 미안해 ! (그리고는 쏜살같이 욕실로 달려간다 )
베랑제 (왼쪽 문을 향해 달아나려다가 다시 되돌아서서 장의 뒤를 따라 욕실로 간다 . 그러면서 중얼
거린다 ) 역시 저 친구를 이대로 놓아둘 순 없지 . 내 친구니까 . (욕실에서 ) 의사를 부르겠어 ! 꼭
불러야 해. 불러야 한다구 ! 내 말을 믿어 !
장 (욕실에서 ) 안 돼!
베랑제 (욕실에서 ) 정신차려 , 장! 바보같이 굴지 마! 아니 ! 자네 뿔이 눈에 띄게 자꾸 자라는데 … 넌
코뿔소야 !
장 (욕실 안에서 ) 널 밟아버릴 테다 ! 널 밟아버릴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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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급히 계단을 뛰어내린다 ) 관리인 ! 관리인 ! 이 집에 코뿔소가 있어요 ! 경찰을 부르세요 ! 관리
인! (관리인이 문을 여는 것이 보인다 . 코뿔소의 머리가 나타난다 ) 아니 여기도 또! (베랑제는 급
히 계단을 뛰어오른다 . 그는 장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망설인다 . 그러다가 다시 노인의 방문 쪽으
로 간다 . 그때 노인의 방문이 열리며 코뿔소의 보그마한 머리 둘이 나타난다 ) 아니 , 이런 ! 이럴
수가! (베랑제는 장의 방으로 들어간다 . 욕실의 문이 여전히 흔들린다 . 그는 객석의 정면에 있는
틀만이세워진 창문 쪽으로 간다 .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린 그는 실신하듯 알아듣기 힘든 빠른 소
리로 중얼거린다 ) 사람 살려요 ! 사람 살려요 !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창문을 넘어 창문 반대쪽 , 즉
객석 쪽으로 넘어오다가 급히 다시 기어오른다 . 왜냐하면 그순간 오케스트라박스에서 코뿔소의
수많은 뿔들이 한 줄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 베랑제는 재빨리 창문을 다시
넘어가 잠시동안 창에서 내다본다 ) 거리에는 이제 코뿔소들이 떼로 몰려다니는군 . 코뿔소의 군대
야!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구나 … (사방을 둘러본다 ) 어디로 빠져나가지 ? 어디로 빠져나간다 ? 행
길 한가운데만 있더라도 좀 낫겠는데 . 이젠 보도에까지 쫙 깔려있으니 ! 어디로 해서 나간다 ? 어
디로? (그는 미친듯이 문과 창문 쪽으로 헤맨다 . 그동안에도 욕실 문은 계속 흔들리고 있다. 장
이 코뿔소 울음소리를 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 이러한 움직임이
잠시 계속된다 . 베랑제는 빠져 나가 보려고 허둥대며 노인의 방 앞에도 가보고 계단에도 나가보
지만 그때마다 코뿔소의 머리와 울음소리에 마주쳐서 도망하고 만다. 그는 창가로 돌아와 밖을
내다본다 ) 코뿔소가 떼를 지어 다니다니 ! 코뿔소는 고독한 동물이라고 들었는데 ! 그렇지가 않군 .
그런 생각은 이제 뜯어 고쳐야겠는데 ! 거리의 벤치들을 모두 부셔버렸구나 ! (손을 뒤튼다 ) 어떻
게 하지 ? (그는 다시 이리저리 출구를 찾아가 보지만 코뿔소가 눈에 띄는 바람에 길이 막힌다 .
그가 다시 욕실 앞에 오자 욕실 문이 무너지려고 한다 . 그가 안쪽 벽으로 와락 기대자 벽이 무너
진다. 그러자 거리가 보인다 . 그는 소리치며 도망간다 ) 코뿔소다 ! 코뿔소 ! (우지끈거리는 소음 . 욕
실 문이 무너지려고 한다 )
-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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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제 3 막
장치
앞의 장과 거의 같은 배경과 도구 . 베랑제의 방 . 장의 방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 . 단지 약간의 장식 , 즉
한두 개의 가구로 다른 방임을 나타낸다 . 왼쪽에 계단과 층계참 .
층계참 안쪽으로는 문 . 관리인의 방은 없다 . 방 안 깊숙이 장의자가 하나 .
베랑제가 객석을 등지고 장의자에 누워 있다 . 안락의자 하나에 전화가 놓인 작은 테이블 .
보조 테이블에 의자 하나 . 깊숙이 안쪽으로 열려진 창 . 무대 전면에는 창틀 . 베랑제는 옷을 입은 채로
머리에는 붕대를 매고 장의자에서 잔다 . 악몽에 시달리는 듯 자면서 몸을 뒤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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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베랑제 약간 … 약간 쉬지 않았나 ?
뒤다르 아니 .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
베랑제 그럼 됐어 . 덕분에 안심했네 .
뒤다르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지 ?
베랑제 모르겠어 . 그건 모르겠지만 목소리란 변할 수도 있으니까 . 왜 그럴 수도 있지 않아 ?
뒤다르 감기라도 들었나 ?
베랑제 아니 … 아닐 거야 . 어쨌든 앉아. 뒤다르 , 저기 안락의자에 .
뒤다르 (안락의자에 앉으며 )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지 ? 아직도 머리가 아픈가 ? (그는 베랑
제의 붕대를 가리킨다 )
베랑제 응, 머리가 계속 아프군 . 하지만 혹은 안 생겼어 . 부딪치진 않았으니까 … 안 그래 ? (그는 붕대
를 올려 뒤다르에게 이마를 보인다 )
뒤다르 없어 . 혹은 안 생겼는데 . 보이지 않아.
베랑제 절대로 안 생길 거야 . 절대로 .
뒤다르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다면 혹이 왜 생기겠나 ?
베랑제 부딪치지 않으려면야 안 부딪칠 수 있지 .
뒤다르 무론이지 주의하기 나름이니까 . 그런데 자네 왜 그래? 신경이 곤두서고 흥분해 있는데 . 그래 ,
그게 바로 편두통 때문이라구 . 움직이지 말게 . 그러면 나을 거야 .
베랑제 편두통 ? 편두통 같은 소린 하지 말아 . 그 얘긴 말라구 .
뒤다르 그런 일을 당했으니 편두통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
베랑제 좀처럼 기분이 가라앉질 않는군 .
뒤다르 그러니 머리가 아픈 것도 당연할 수밖에 .
베랑제 (거울 앞으로 달려가 붕대를 치켜올린다 ) 아냐 , 아무것도 … 이봐 , 처음엔 이런 식으로 시작되
거든.
뒤다르 시작이라니 뭐가 ?
베랑제 다른 존재로 변한다는 게 무서워 .
뒤다르 진정하고 그만 앉아요 . 방안을 왔다갔다하면 신경이 점점 더 날카로와진다구 .
베랑제 그래 , 그 말이 맞아 . 진정해야지 . (의자에 가서 앉는다 ) 너무 놀라서 그래 .
뒤다르 장 때문이지 . 나도 알아 .
베랑제 응, 장 때문에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됐으니까 .
뒤다르 자네가 쇼크를 받은 건 알만하네 .
베랑제 누구라도 쇼크였을 걸. 안 그래 ?
뒤다르 그래도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진 말라구 . 그렇다고 자네까지 ….
베랑제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 장은 나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거든 . 그런데 그만 갑자기 돌변해
버렸으니 . 내 눈앞에서 말야 . 무지하게 화를 내면서 ….
뒤다르 나도 알아 . 자네가 속은 거야 . 그러니 이젠 잊어버리라구 .
베랑제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어 . 굉장히 인간적이던 놈이었다구 . 휴머니즘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녀석인데 믿어지지가 않아 . 우린 옛날부터 의기투합해 왔지 . 그녀석이 그렇게 될 줄은 난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 난 그 친구를 나 자신보다 더 믿었거든 … 그런데 나한테 그런 식으로 나오다니 .
뒤다르 그 친구는 꼭 자네 한 사람에게 덤벼들려고 코뿔소가 된 건 아닐 거야 .
베랑제 그래도 보기엔 그런 것 같던데 . 자네가 거기서 … 그 얼굴 표정을 보았더라면 ….
뒤다르 우연히 자네가 그때 그의 집에 있었기 때문이야 . 누구와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걸 .
베랑제 내 앞에서는 여태까지의 우리 사이를 생각해서라도 참았어야 옳았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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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뒤다르 자넨 매사를 자기 본위로 , 무슨 일이건 자기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네가 이 세계의
표적은 아니잖아 .
베랑제 하긴 그래 . 되도록 사리에 맞는 생각을 해봐야겠어 . 하지만 그 친구에게 일어난 현상은 아무
래도 마음에 걸려 . 솔직히 말해서 그 일로 난 지금 제 정신이 아니야 .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뒤다르 지금 당장은 나로서도 만족한 설명을 할 수가 없군. 난 사실을 확인해서 기록하고 있는 중이
야. 그건 분명 있었던 일이니까 설명이 되야 해. 하지만 자연의 호기심 , 변덕 혹은 기상천외의
힘, 장난 같은 걸 누가 알 수 있겠느냐 말야 ?
베랑제 장은 자만심이 대단했지 . 나야 야심이라는 게 없는 놈이지만 . 난 그저 지금의 상태로 만족하
고 있어 .
뒤다르 그 친구는 어쩌면 맑은 공기가 좋았는지도 모르지 , 전원과 넓은 공간이 … 그는 마음의 휴식
이 필요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 생각엔 그렇다고 그 사람이 ….
베랑제 그래 ,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은 해봤어 . 하지만 난 스포츠 정신이 없다든가 좁은 세계 속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소시민이라고 비난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입장을 바꿀 생각은 없어 .
뒤다르 물론 우리 모두 바꾸지 않을 거야. 그런데 자넨 왜 그 일 때문에 그렇게 불안해 하나 ? 우연
한 코뿔소 사건을 가지고 . 그것도 일종의 병인지 모르겠군 .
베랑제 맞았어 . 난 전염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
뒤다르 이젠 잊어버리래두 . 자넨 그 일을 지나치게 중대시하고 있어 . 장의 경우는 일반적인 증상도
아니고 전형적인 것도 아니야 . 자네도 자네 입으로 , 장은 자만심이 대단했다고 말했잖아 ? 내 생
각엔 자네 친구를 헐뜯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그 친구는 흥분이 잘하고 야만적인고 괴상한 사
람이었던 것 같아 . 그러니까 그런 괴팍한 친구는 문제로 삼을 게 못돼 . 문제가 되는 건 늘 보통
인간들이지 .
베랑제 응, 그 말을 들으니 이젠 분명해지는군 . 자넨 아까 이 현상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지 . 그런
데 지금 그 설명은 그럴 듯한데 . 그래 , 그 친구는 분명 그 지경이 되려고 , 그런 발작 증상이 , 그
것도 미친놈의 발작이 일어났던 게 틀림없어 … 하지만 장은 어떤 이론이 있어 가지고 , 그 문제를
충분히 생각한 끝에 결심한 것 같던데 … 그건 그렇다 치고 , 그럼 뵈프는 ? 그 사람도 역시 미쳤을
까? …또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
뒤다르 전염병이라는 가정도 세울 수 있지. 유행성 감기처럼 말야 . 전염병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았으
니까.
베랑제 이번 경우는 전혀 달라 . 그렇다면 혹시 식민지에서 온 게 아닐까 ?
뒤다르 어쨌든 뵈프건 다른 사람들이건 자네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런 짓을 했거나 일부러 그렇게
된 건 아니야 . 그런 목적이었다면 ,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
베랑제 그건 그래 .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어. 그 말에는 마음이 좀 놓이는군 … 하지만 그렇다면 사태
는 오히려 더 중대한 건지도 모르지 않을까 ? (안쪽 창 밑에서 코뿔소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
저거 들리지 ? (그는 창으로 달려간다 )
뒤다르 내버려둬 . (베랑제는 다시 창을 닫는다 ) 신경쓰지 말라니까 . 자넨 그 생각에 완전히 얽매어
있어. 그게 좋지 않다구 . 그러면 신경이 너무 지쳐버려요 . 물론 자네에겐 쇼크였겠지만 말야. 그
런데 다른 데서 쇼크를 또 받고 싶어서 그래 ? 이젠 기운이나 차리도록 노력해야지 .
베랑제 나도 그렇게 되지나 않을까 해서 그래 .
뒤다르 어쨌든 그건 생명에까지 관계되는 건 아니라구 . 병 중에는 건강한 병도 있거든 . 고칠 새악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이야 . 그러니 곧 나을 거야 .
베랑제 하지만 반드시 흔적이 남을걸 . 그처럼 전신에 이상이 생기는데 그 흔적이 안 남을수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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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지….
뒤다르 일시적인 거라니까 염려하지 마….
베랑제 확실해 ?
뒤다르 그렇지뭐 . 그러리라는 거지 .
베랑제 정말로 그 병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걸리지도 않겠지 . 그건 신경성인 병이니까 안 그래 ? …
꼬냑 한 잔 할까? (그는 병이 놓인 테이블로 간다 )
뒤다르 난 괜찮아 . 고맙지만 안 마시겠어 . 자네나 마시고 싶으면 사양 말고 마시지 그래 . 하지만 조심
하게. 마시고 나면 머리가 더 아플걸 .
베랑제 전염병에는 알콜이 좋아 . 면역을 시켜주니까 . 말하자면 알콜이 독감의 세균을 죽이거든 .
뒤다르 그렇다고 모든 세균을 죽일라고 ? 이번 코뿔소 병엔 어떨는지 아직 모르잖아 .
베랑제 장은 알콜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아 . 그 친구는 술 안 마시는 걸 자랑해 왔으니까 . 그래서 그
친구가 그… 그런 모습으로 변했을지도 …. (뒤다르에게 술이 가득 찬 잔을 내밀며 ) 정말 안 마실
래?
뒤다르 아냐 , 안 마셔 . 점심 전에는 절대로 .
베랑제 (자기 잔을 비운다 . 손에는 계속 술잔과 병을 든 채로 기침한다 )
뒤다르 그것 봐, 자넨 그 술을 견디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기침이 나지 않아 ?
베랑제 (불안해서 ) 그래 , 기침이 나는데 내가 어떤 기침을 했지?
뒤다르 누구나 하는 기침이지 뭐. 약간 독한 것을 마셨을 대 하는 그런 기침 .
베랑제 (병과 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러 간다 ) 기침이 이상하진 않던가 ? 진짜로 사람들이 하는 그런
기침이었어 ?
뒤다르 뭘 또 그러나 ? 사람의 기침이지 그럼 특별히 다른 기침이라는 게 어디 있다구 그래 ?
베랑제 나도 모르겠어 … 혹시 동물의 기침이라든가 … 코뿔소도 기침하나 ?
뒤다르 이봐 베랑제 , 자네 어떻게 된 거 아냐 ? 혼자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괴상망측한 의문
을 품고 … 이 사태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은 의지를 갖는 거라고 자네 자
신이 말했지 않아 ?
베랑제 그래 .
뒤다르 그럼 . 자네가 그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게 .
베랑제 가지고 있는 건 틀림없어 .
뒤다르 자기 자신에게 그걸 증명해 보이라구 . 자, 꼬냑은 이제 그만 마시고 … 그러면 좀더 확신이 설
거야.
베랑제 내 뜻을 왜 못 알아주지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마시는 건 마심으로써 그 재난에서 구출
되려는 거야 . 다 계산이 있어서 마시는 거라구 . 전염병만 없어지면 난 안 마실 거야 . 난 이번 사
건이 생기기 전에 벌써 결심을 한걸 . 지금은 일시적으로 그 결심을 철회하는 거지 .
뒤다르 그건 변명이야 .
베랑제 그렇게 생각하나 ? …어쨌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구 .
뒤다르 정말 그럴까 ?
베랑제 (겁에 질려 ) 그럼 상관이 있단 말인가 ? 자넨 마시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나 ? 난 알콜 중독
은 아냐 . (그는 거울로 가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 혹시 … (그는 손을 얼굴로 가져가 붕대
위로 이마를 만져 본다 )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어 . 나빠지진 않았어 . 이게 괜찮다는 증거지 … 절
대로 해롭진 않단 증거라구 .
뒤다르 농담이야 베랑제 , 장난으로 해 본 소리야 . 자넨 만사를 어둡게만 보는군 . 조심하게 , 그러다가
신경쇠약이 되겠네 . 그 쇼크가 완전히 가시고 불안도 사라져서 밖에 나다니며 바람을 쐬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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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랑제 그건 숙명론이야 .
뒤다르 아니 지혜지 . 이런 현사이 일어났을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거든 . 그러니까 그
원인을 가려 내려고 해야지 .
베랑제 (일어서면서 ) 그래 ? 하지만 난 이 사태를 인정하고 싶질 않아 .
뒤다르 그럼 어떡하겠다는 건가 ? 어쩔 셈이냐 말야 ?
베랑제 지금으로서는 나도 모르겠어 . 생각해 봐야겠어 . 신문에 투서를 해야 할지 성명서를 내야 할지
시장을 만나 봐야 할지 시장이 바쁘다면 부시장이라도 만나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
뒤다르 당국의 일은 당국에게 맡겨 두라구 . 요는 말이지 난 자네가 과연 도덕적으로 이 문제에 관여
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문이라구 . 게다가 난 별로 대두로운 문제라고는 생각 안 해. 내
의견으로는 스스로 피부를 바꾸고 싶어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미쳐서 허둥댄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 그 친구들은 사람의 피부가 견디기 어려웠던 거야. 피부를 바꾸는 거야 그들의 자유지 .
그들의 문제라구 .
베랑제 악은 뿌리째 뽑아야 한다구 .
뒤다르 악, 악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 뭐가 악이고 뭐가 선인지 어떻게 안다구 ? 그것도 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 자넨 , 자네 일이 걱정되는 거지 ? 그래 , 그건 사실이야 . 하지만 자넨 절대로 코뿔소는
되지 않을걸 … 그럴 소질이 자네에겐 없어 .
베랑제 그래 , 바로 그거야 . 우리 마을의 지도자들이랑 시민들이 모두 자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까 행동에 나설 결심을 못하는 거야 .
뒤다르 그렇다고 외국에 원조를 청할 수야 없잖아 ? 이건 어디까지나 국내 문제니까 .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구 .
베랑제 난 세계의 연대성을 믿고 있는데 ….
뒤다르 자넨 돈키호테야 . 이건 악의에서 하는 소리는 아닐세 . 난 자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
네. 자넬 위해서 말야 . 알겠지 ? 자넨 이제 마음을 가라앉혀야 해.
베랑제 그래 , 자네 말이 맞아 . 난 지금 너무 불안해 하고 있어 . 이젠 마음을 다부지게 먹어야겠어 . 자
네를 붙잡아 놓고 허튼소리만 들려줘서 미안하네 . 자네도 할 일이 있을 텐데 말야 . 내가 아프다
고 낸 결근계 받아 주던가 ?
뒤다르 염려 마. 다 잘 됐으니까 . 게다가 일도 아직 시작 안 했거든 .
베랑제 계단을 여태도 안 고쳤나 ? 그런 태만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만사가 잘 안 나가는 거지.
뒤다르 지금 고치고 있는 중인데 빨리 안 되네 . 일꾼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일꾼을 불러와도
하루 이틀 하고 나면 안 오거든 . 그 다음엔 통 볼 수가 있어야지 . 그러니 다른 일꾼들을 또 찾아
야 할 판이라구 .
베랑제 실직으로 불평들은 하면서 ? 이번에는 시멘트 계단을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는데 .
뒤다르 아니 , 이번에도 목조야 . 나무는 새 나무라지만 .
베랑제 회사가 한다는 짓이 밤낮 그 모양이군 . 쓸데없는 돈은 함부로 뿌리면서 필요한 지출에는 재
정이 부족하다는 거지 . 빠삐용 부장은 불만이겠군 . 늘 시멘트 계단을 원했으니 말야 . 그래 부장은
뭐라든가 ?
뒤다르 부장이 이젠 없다구 . 빠삐용 부장이 사표를 냈어.
베랑제 그럴 리가 .
뒤다르 정말이야 .
베랑제 놀랐는데 … 그 계단문제로 ?
뒤다르 그렇진 않겠지 . 어쨌든 본인이 말하는 이유로는 그건 아냐 .
베랑제 그렇다면 왜? 왜 그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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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들이 사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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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랑제 난 안 따라가 !
뒤다르 (안락의자에서 혼자 ) 저것들이 이 집 주위를 빙빙 맴돌고 있군! 놀고 있는 거야! 큰 아이들이
지! (조금 전부터 데이지가 층계를 올라오는 모습이 무대 왼쪽에서 보인다 . 그녀가 베랑제의 방
을 노크한다 . 팔에는 바구니를 들고 있다) 베랑제 , 노크 소리 아냐 ? 누가 왔나 봐! (그는 아직도
창가에 있는 베랑제의 소매를 끈다 )
베랑제 (코뿔소들 쪽을 향해 소리치며 ) 이건 굴욕이야 ! 굴욕 . 가장행렬이야 !
뒤다르 누가 노크를 한다구 . 안 들리나 ?
베랑제 미안하지만 자네가 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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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그럼요 .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한 거예요 . 당신은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선 ,
별게 다 두렵군요 ! 무슨 일이 일어나건 문제없어요 .
베랑제 (중얼거린다 ) 내 사랑 , 내 기쁨 ! 내 사랑 … 키스해 줘. 내게 이런 정열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
데이지 이젠 좀더 침착하고 자신을 가지세요 .
베랑제 이젠 그렇다니까 . 자, 키스해줘 .
데이지 나, 너무 피곤해요 . 조용히 좀 쉬세요 . 안락의자에 좀 앉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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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베랑제 그럴 수 있겠어 ?
데이지 약속할게요 . 믿어도 돼요 . (코뿔소의 소음은 멜로디로 변해 있다 ) 노래를 하나 보죠 ? 들리죠 ?
베랑제 노래하는 게 아냐, 우는 소리지 .
데이지 노래하는 거예요 .
베랑제 우는 소리라니까 !
데이지 당신 돌았군요 . 노래하는 소린데 .
베랑제 당신 귀가 음악적이 아니라구 !
데이지 당신은 음악이라는 걸 통 모르는군요 . 딱하기도 하지 . 자, 보세요 . 놀고 있잖아요 ? 춤추고 있
고.
베랑제 저걸 춤이라고 말하는 거야 ?
데이지 그들의 춤이예요 . 아름다운데요 .
베랑제 추악하기만 하군 !
데이지 험담은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 . 듣기 괴롭군요 .
베랑제 미안해 . 우리 저것들 때문에 싸우진 맙시다 .
데이지 저것들은 신(神)이라구요 .
베랑제 그건 과장이야 . 데이지 , 저것들을 좀 잘 봐요 .
데이지 질투하지 마세요 , 여보 . 미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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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네 스 코 - 「코 뿔 소 」
양심에 걸리는 사람이 또 하나 늘었군 . 최악의 사태가 머리에 떠오르는데 . 최악의 상태도 가능이
야 하지 . 괴물들의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불쌍한 어린 것! 아무도 내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나도록
도와주진 못하겠지 ! 이제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으니까 . (다시 코뿔소의 울음소리 . 미친 듯이 달리
는 소리 . 먼지가 뿌옇게 일어난다 ) 저 소리가 듣기 싫어 . 귀를 솜으로 막아야지 . (귀를 솜으로 막
는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을 향해 이야기한다 ) 저들을 설복시키는 길 이외에는 해결책
은 없는데 . 어떻게 설복시킨다 ? 변신을 거꾸로 해보면 될까? 그러면 옛날로 돌아올 수 있을까 ?
그건 헤라클레스나 할 수 있는 일이지 . 내 힘으론 안돼 . 그런데 그들을 설복시키려면 우선 말을
해야 할텐데 . 그들에게 말을 하자만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만 한단 말이야 . 아니면 저쪽에서 내가
쓰는 말을 배우든가 . 도대체 내가 쓰는 언어는 어떤걸까 ? 내가 쓰는 말은 뭘까 ? 프랑스어라야겠
지? 그런데 프랑스어란 또 뭘까 ? 어쨌든 원하다면 프랑스어라고 불러도 좋겠지 .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 이 말을 쓰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거든 .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내
말을 내가 알아듣기나 하는 걸까 ? 알아들어 ? (그는 방 한가운데로 와서 ) 데이지 말대로 , 만일 그
자들이 옳은 거라면 ? (다시 거울을 본다 ) 인간은 추하진 않아 ! 추하진 않아 ! (자신의 얼굴을 만
지며 들여다본다 ) 정말 묘한데 ! 난 뭘 닮은 걸까 ? 뭘? (그는 벽장으로 가서 사진 몇 장을 꺼내다
가 들여다본다 ) 사진이로군 ! 이 사람들이 모두 누구지 ? 빠삐용 ? 아니면 데이지인가 ? 그리고 또
이건, 보따르던가 ? 뒤다르 ? 아니면 장? 아니면 나일지도 몰라 . (그는 다시 벽장으로 달려가 그림
두서너 장을 꺼내온다 ) 이게 나로군 ! 이게 나야! (그는 안쪽 벽면 . 코뿔소들의 머리 옆에 그림들
을 걸러간다 ) 이게 나야 ! 나! (그가 그림을 걸자 , 노인과 뚱뚱한 여자와 또 한 사람의 남자의 그
림이 나타난다 . 이들의 추한 초상화가 매우 아름답게 변모된 코뿔소들의 얼굴과 대조적이다 . 베
랑제는 약간 물러서서 그림들을 바라본다 ) 난 미남이 아니로군 . 미남은 아냐 . (그는 그림들을 떼
어, 화가 나서 방바닥에 던져 버린다 . 그리고 거울 쪽으로 간다 ) 아름다운 건 그들이야 . 내가 잘
못이었어 ! 아, 나도 그들처럼 되었으면 ! 애통하게도 내겐 뿔이 없어 ! 이 밋밋한 이마는 얼마나 추
한가 말야 ! 축 늘어진 이 얼굴을 돋보이게 하려면 한두 개의 뿔은 있어야 하는데 . 곧 생기겠지 .
이젠 창피할 것도 없어 . 그들을 모두 만나러 갈 테니까 . 그런데 그게 왜 안 생기지 ! (그는 손바닥
을 들여다 본다 ) 손바닥이 축축하군 . 이게 꺼칠꺼칠하게 될까 ? (그는 웃저고리를 벗은 다음 , 셔츠
를 풀어헤치고 거울 속으로 가슴을 들여다본다 ) 내 피부는 너무 보드라워 . 너무 희고. 털이 너무
많아! 아, 나도 피부가 딱딱하고 그 기막힌 암록색이 되었으면 ! 나도 그들처럼 털없는 맨살이 되
었으면 ! (그는 코뿔소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 저들의 노래는 멋있어 . 약간 거칠긴 하지만 , 확실
히 매력이 있어! 나도 저 친구들처럼 할 수 있었으면 ! (그는 코뿔소의 흉내를 내보려 한다 ) 메,
메. 브르르 … 아냐, 이렇지 않아 . 다시 한번 해보자 . 더 세게 . 메, 메. 브르르 ! 아냐, 이것도 아냐 .
너무 약해. 활기가 없어서 안돼 . 메, 메. 브르르 ! 이건 염소 우는 소리지 코뿔소 소리가 아니야 !
아무래도 양심에 걸리는군 . 그들의 뒤를 제때에 따랐어야 하는 건데. 이젠 너무 늦었어 ! 아! 난
이제 괴물이다 . 괴물이야 ! 아! 난 이제 아무래도 코뿔소는 되지 못할 거야 , 절대로 ! 이젠 변할
수가 없어! 정말로 변하고 싶지만 , 이젠 안돼 . 난 이제 더 이상 내 얼굴을 볼 수가 없어 . 너무 부
끄러워서 ! (그는 거울을 등지고 돌아선다 ) 내 꼴은 너무 추해 ! 타고난 것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자는 불행한거야 ! (그는 갑자기 펄쩍 뛰어 오른다 ) 그렇다면 좋아 ! …난 그들 모두에게 대항하겠
다! 싸우는 거다 ! 싸우는 거야 ! (그는 코뿔소들의 머리가 정착해 있는 벽면을 마주보며 소리친다 )
난 나를 지키겠어 ! 저들 모두에게 대항해서 나를 지키겠어 ! 난 최후의 인간이다 ! 난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겠다 ! 굴복하지 않아 !
-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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