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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나방 전문
공작나방 전문
(가) 모처럼 나를 방문한 친구 하인리히 모어가 저녁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서재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는
저물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가파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호수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마침, 내 어린 아들이 밤
자 속의 나비는 밝은 램프 불 아래 빛나는 자태를 드러내었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그 고운 빛깔을 가진 형상들의 이름을
제자리에 꽂고 상자 뚜껑을 덮으며 말했다. “잘 봤네.” 약간 딱딱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 그 추억은 별로 달갑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고 있었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좀 상했다네. 창피하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안 밖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밤을 수놓았고, 내 친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라) 내가 나비를 잡기 시작한 건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쯤이었을 거야. 처음엔 별로 열심이랄 것도 없이, 다른 애들이 다
른 일은 전혀 돌보지 않게 되었다네. 주위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못 하도록 말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걱정을 할 정도였
어. 나비를 잡는 데 열중하면, 학교의 수업 시간도, 점심도 잊어버리고, 탑시계가 우는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 학교를
쉬는 날은 빵 한 쪽을 호주머니에 넣고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끼니때에도 돌아오지 않고 뛰어다니곤 하였다네.
(마) 지금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면, 이따금 그때의 열정이 몸에 스미는 듯 느껴진다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어린아이만이
느낄 수 있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심정에 사로잡히곤 하지. 그 소년 시절에 처음으로 노랑나비를 찾아냈던 그때
는 메마른 벌판의 찌는 듯이 무더운 낮과, 정원 속의 서늘한 아침과, 신비스러운 숲속의 저녁때, 나는 마치 보물을 찾아 헤
매는 사람처럼 포충망을 들고 나비를 노리고 다녔어. 그리하여 아리따운 나비를 발견하면 – 특별히 진귀한 것이 아니라도
(바) 부모님께서 훌륭한 도구는 하나도 마련해 주시지 않아서, 나는 내가 잡은 나비들을 헌 종이 상자에다 간추려 두는 수
극히 마음에 흡족하고 희귀한 나비가 손에 들어와도, 남에게는 비밀로 하고 내 누이들에게만 이것을 보여 주곤 했어. 그러
음에 흡족하고 자랑스러워, 꼭 이웃집 아이에게만은 보여 주리라고 생각했지. 이웃집 아이란, 뜰 건너편 집에 사는 교원의
수집물은 그리 대단치는 않았으나, 수집물을 깨끗하고 정확하게 정리하는 솜씨만은 놀랄 만하였지, 게다가 그는 나비의 날
(사) 나는 이 소년에게 푸른 날개의 나비를 보여 주었다네. 그는 무슨 전문가나 되는 듯이 그것을 감정하고 나더니, 희귀한
것임을 자기도 인정하면서, 20페니히의 값은 된다고 하였지. 그러나 그는 이내 트집을 잡기 시작하여, 날개를 편 방식이 나
(아) 이태가 지나서 우리는 꽤 머리가 굵은 소년이 되었는데, 그때도 나의 나비 잡는 것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었어. 그
을 들여다보았다네.
면 거무스름한 앞날개를 펼치고 아름다운 뒷날개를 드러내 보일 뿐인데, 그 빛나는 커다란 무늬가 매우 이상한 모양을 나타
을 하나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얼마나 부러웠는지……. 방으로 가는 도중에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어.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네. 에밀이 없는 듯해서 문의 손잡이를 돌려 보니, 문은 잠겨 있지 않았어.
(차) 어쨌든, 실물을 한번 보리라는 생각에 나는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어, 그리고 에밀이 나비를 간직한 두 개의 커다란 상
양털 같은 털을 바로 곁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네. 그러나 그 유명한 무늬만은 보이지 않았아. 종이쪽에 가랴쟈 있었지.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나는 유혹에 끌려 종이쪽을 떼어 내고, 꽂혀 있는 핀을 뽑았어. 그러자 네 개의 커다란 무늬가 그림에
없는 욕망에 그만 난생처음으로 도둑질을 했다네. 나방은 벌써 말라 있어서, 손을 대는 정도로는 형체가 일그러지지 않았어
나는 그것을 손바닥 위에 받쳐 들고 에밀의 방을 나왔다네. 그때 나는, 어 커다란 만족감 이외에 아무 생각도 없었지.
(카) 나는 나방을 오른손에 감추고 층계를 내려오는데 그때, 아래편에서 위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났어. 순간, 나는 내가 비
겁한 놈이란 것을 깨달았다네. 그와 동시에 들키면 어쩌나 하는 무서운 불안에 사로잡혀, 나는 본능적으로 나방을 감춘 손
을 그대로 양복저곳리 주머니 속에다 찔러넣었어. 그리고 천천히 발을 떼어 놓았어. 그러면서 속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부끄러운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지. 나는 이내 올라온 하녀와 어물어물 엇갈려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마에 땀을
(타) 이 나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될 수만 있으면 그 전대로 돌려놓아야겠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괴로웠다네. 그리
개 하나와 더듬이 한 개가 떨어져 버렸어. 떨어진 날개를 조심스레 주머니 속에서 끄집어내려고 하니까, 그나마 산산이 바
스러져서 이제는 이어 붙일 수조차 없게 되었지. 도둑질을 했다는 사실보다도, 그 아름답고 찬란한 나방을 내 손으로 망가
뜨렸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더 괴로운 일이었다네. 날개의 갈색 분이 온통 나의 손끝에 묻은 것을 보았지. 그리고 또, 날개
의 바스러진 조각들이 책상 위에 이리저리 흩어진 것을 보았어. 그것을 완전히 원형대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 대
(파) 그지없이 슬픈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나는 온종일 좁은 뜰 안에 주저앉아 있었지. 그러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모든
일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네. 어머니는 놀라움과 슬픔에 잠겨 어찌할 줄을 모르셨지만, 나의 이 고백이 얼마나 어려운 고
“에밀을 찾아가서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라. 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네가 가진 것 중에서 어느 하나를 대신 가지
라고 말해 보렴. 그리고 용서를 빌어야지.” 만일에 모범 소년인 에밀이 아니고 다른 친구였다면 나는 용서를 비는 것쯤 서
만들어 놓았다고 하면서, 사람의 소행인지 혹은 고양이가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더군. 나는 그 나방을 좀 보여
달라고 청했고, 우리는 방으로 올라갔어. 그는 촛불을 켰지. 못쓰게 된 그 나방이 날개판 위에 올려져 있었어. 에밀이 그 날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본디 모양으로 바로잡힐 가망은 없었고, 더듬이도 떨어진 그대로였어,. 나는 그제야 그것이 나의 소
행인 것을 밝혔다네. 그랬더니 에밀은 격분하지도, 큰 소리로 꾸짖지도 않고, 혀를 차며 한동안 나를 지켜보다가 나직한 소
(거) 나는 그에게 내 장난감을 모두 주겠다고 했어. 하지만 그는 듣지 않고 냉담하게 앉아, 여전히 나를 비웃는 눈으로 지켜
“뭐,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네가 모은 것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어. 게다가 오늘은 너의 나비 다루는
성의가 어떻다는 것을 알 만큼은 알았어.”
그 순간, 나는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늘어지고 싶었어. 이제는 아무론 도리가 없음을 알았다네. 나는 몹시 나쁜 놈으로
결정이 나고 에밀은 천하에 정직한 사람이 되어, 정의를 방패로 삼아 냉정하고 모멸적인 태도로 내 앞에 버티고 있었어. 그
(너) 그때 나는 비로소, 한번 저지른 일은 어떻게 해도 바로잡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나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어,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지도 않으시고 나에게 키스만을 하고 내버려 두는 것이 고마웠지.
어머니는 나더러 그만 잠자리에 들라고 하셨어. 여느 날보다는 시간이 늦은 편이기는 했지. 그러나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에 가만히 식당으로 가서 갈색의 두껍고 커다란 종이 상자를 찾아 가지고 와서 침대 위에 올려놓고, 어둠 속에서 뚜껑을 열
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