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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서철학회논문집

동서철학연구 제87호, 2018. 3.


DOI: 10.15841/kspew..87.201803.273

성숙과 계몽을 위한 고전교육


-칸트와 아도르노의 성숙개념의 고전교육적 의미-

이 하 준(한남대)

한글 요약

이 글의 목적은 ‘대학의 고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변


을 제시하는 데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들이 교양교육 과정에서 고전읽기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이 강좌들은 본래의 목적과 달리 의사소통 교육, 글쓰기 교육, 인성 교
육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관련 연구도 교수학습의 극대화를 위한 방안을 제
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칸트와 아도르노의 성숙과 계몽개념은 위와 같은 도구화된 고
전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전거를 제공한다. 양자는 수단화된 고전교육이 아니라 자
립적 목적을 가진 고전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자기형성, 성숙, 비판정신이 고전교육
의 목적이 되어야한다는 점, 고전교육이 개인의 성숙과 사회의 성숙을 지향해야 한다
는 점을 시사한다. 문헌학, 훈고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이비 교양’, ‘사이비 성숙’
을 지양하기 위해서 성숙과 자기계몽이 고전교육의 궁극목적이 되어야 한다.

주제어 : 칸트, 아도르노, 계몽, 성숙, 사이비 성숙, 고전교육

1. 서론

대학 교양교육의 중요한 흐름 중의 하나가 고전교육의 강화이다. 국내의 대부


분의 대학들이 교양교육 과정에서 고전읽기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고전교육의
확대는 현재진행형이다. 고전교육의 확대에 따라 고전교육의 현황과 문제점에
관한 연구물도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도입기를 넘어 성장기에 접어든 현 단계
274 이하준

에서 고전교육 전반에 대한 중간평가가 필요하다. 이 글은 ‘오늘날 한국대학의


고전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논자 나름의
답변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위 질문에 대한 논자의 답변은 칸트와 아도르
노의 성숙과 계몽개념에 기초한다. 근대 이후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전
적 답변은 한마디로 자기형성(Selbstbildung)으로 요약될 수 있다. 칸트의 인간
교육형성론도 자기형성으로서의 교육을 이성의 사용과 관련해 규명하며 자기형
성의 목적이 ‘성숙’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아도르노도 교육의 목적을 성숙에 두
고 있다. 비판적 주체형성으로서 자기형성에 대한 논의는 절반의 교육
(Halbbildung)으로 명명되는 성숙을 위한 교육의 전반적인 실패와 아우슈비츠
의 재발과 그 이후 발생한 새로운 야만을 극복하는 탈야만화 교육과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다.
논자가 볼 때 고전교육은 그 어떤 교과목보다 보편적 가치교육을 우선에 두며
인간성 함양에 기여할 수 있는 과목이다. 이런 점에서 고전교육의 궁극적 목적
과 칸트나 아도르노가 말하는 자기형성으로서의 교육의 이념, 특히 양자의 성숙
개념은 그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국내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고전교육은 도
구화와 기능화 원리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본래의 고전교육의 이념과 목적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
해 고전교육의 현실을 고찰하고 고전교육의 본래적 목적성을 재인식하는 계기
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고전교육의 현재적 문제, 둘째, 칸트의 성
숙과 계몽 개념, 셋째, 아도르노의 성숙을 위한 교육. 넷째, 칸트와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더 나은 고전교육을 위한 방향과 그들 논의의 고전교육적 의미를 순서
에 따라 주제화할 것이다.

2. 고전교육과 고전교육 연구의 문제

10여년 전부터 고전교육을 위한 교과목들이 본격적으로 개설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 전후로 교양교육으로서 고전교육의 중요성과 교육과정 운영의 필요성
이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그 근거로는 정체성 및 가치교육으로서의 고전텍스
트의 우위성, 현재 삶과 사회이해를 위한 “자료정전”1)으로서 맥락화의 탁월성,

1) 고규진, 「다문화 시대의 문학정전」, 독일언어문학 23집, 2004,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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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독서교육과의 비교우위론 등이 제시되었다. 비교우위론의 맥락에서 고전


교육 과정은 기존의 독서교육 과정을 대체하거나, 독서교육 심화과정으로 운영
되고 있다. 이 밖에 고전교육의 필요성은 사고력과 창의성, 인성 등을 강조하는
사회와 기업의 새로운 인재상 요구에 대한 교육적 대응의 측면에서 제기되었다.
이렇듯 고전교육의 활성화 동인은 교육내적 측면과 교육 외적 측면이 혼재하며
교육과정 운영방식도 실로 다양하다. 교양필수 교육과정으로 편성된 고전교육
강좌들은 다양한 강좌 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전읽기와 토론>(부산대, 한
남대), <고전읽기와 글쓰기>(이화여대), <명저읽기와 글쓰기>(영남대), <독
서와 토론>(중앙대, 동덕여대), <문명전개의 지구적 문맥I, II>(경희대) <인
문학 독서토론>(숙명여대) 등이 그 예이다. 성균관대의 <성균논어>교육과정
과 같이 특정한 고전 텍스트를 지정해 고전교육을 실천하는 대학도 있다. 고전
교육 교과목을 필수화하지 않은 대학의 경우에도 선택과목으로 고전읽기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2) 인문교양 강화라는 교육패러다임의 확산에 따라 고전
교육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판단된다.
논자가 볼 때 고전교육 과정의 운영과 연구경향에 뚜렷한 특징과 문제성이 발
견되는 데 그것은 바로 기술적, 도구적 경향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교양교육 과
정이 역량교육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고전교육은 비판적 사고역량, 인성역량. 창
의역량, 의사소통 역량의 함양 차원에서 기능화, 수단화되었다고 해도 무리한
주장이 아니다. 강옥희는 고전교육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능력 및 확
장”3)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김수정과 박혜정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
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4)할 수 있는 것이 고전교육이라고 믿
는다. 부산대 교필 과목인 <고전읽기와 토론>의 교과목 개요에서는 통합적 사
고능력의 배양이 고전교육의 목적임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학생들의 고전에 대한 이해와 독서량의 부족 심화 현상을 방지하고


충분한 독서를 통한 기초 사유 강화와 다양한 분야의 고전 독서를 통한

2) 이하준, 「인성함양을 위한 고전교육의 방향탐색」, 교양교육연구, 8권 5호, 2014,


426쪽 참조; 함정현, 민현정, 「대학교양교육에서 고전활용에 대한 연구」, 동방학
30집, 2014, 489쪽 참조.
3) 강옥희, 「창의성과 비판적인 사고능력 개발을 위한 고전읽기 수업방안 연구」,교양
교육연구 10권 4호, 2016, 546쪽.
4) 김수정, 박혜정, 「고전읽기를 통한 계열별 글쓰기의 실제- 이화여대 <고전읽기와
글쓰기> 공대 특성화반을 중심으로」-대학작문 17호, 2016, 38쪽.
276 이하준

통합적 시각 배양을 위해 고전읽기와 토론 교과목을 운영하고 있다.5)

이화여대의 교필 과목인 <고전읽기와 글쓰기>의 교수자들에 의해 소개되는


교과목 개요에는 위에 언급한 역량만이 아니라 인성역량도 고전읽기의 중요한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균관대의 고전읽기 교필 과목인 <성균논어>는 인
성역량 함양을 강좌개설의 기본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름을 달리하는 고전교육
강좌들의 교육목적은 특정한 역량의 강화라는 기술적, 도구적 성격을 여실히 보
여준다. 고전교육은 특수목적을 지향하는 기능화된 교육의 된 것이다. 문제는
고전교육이 특정 교육역량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과목화 되었을 때 반드시 다른
여타의 유사목적의 강좌보다 더 큰 교육성과를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았으며 위와 관련된 경험적 추적연구가 본격화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특정역량 함양을 위한 특화된 고전교육이 고전교육의 궁극
적 목적에 얼마만큼 부합되는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고전교육의 극단적 도구화 사례는 ACE 사업(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육성사
업)나 CORE 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의 수주를 위한 고전교육과정 도입
이다. 이국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이들 사업을 지원 받은 대학들
은 인문 교양교육, 고전읽기 교육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강조되었고 관련 교과
도 늘어났다”6) 그의 주장의 타성성은 직접적 인과관계에 대한 경험적 자료분석
을 필요로 하지만, 고전교육의 교필화와 사업수주 간에 아무런 상관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고전교육에 관한 연구경향에서도 기술적, 도구적 특징들이 강하게 드러난다.
고전교육의 도입기에는 고전교육의 당위성과 수업모델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면, 그 이후의 연구들은 교수-학습방법론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향들이 대부분
을 차지한다. 어떻게 고전교육의 효과를 극대화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논
의와 연구는 수업운영 사례분석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
은 연구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전읽기와 토론>강좌에서의 읽기모형 개선
방안」, 「과학의 고전읽기 교육사례 연구」, 「창의성과 비판적인 사고능력 개발을
위한 고전읽기 수업방안 연구」, 「대학 교양 고전 교육과 상호텍스트성의 활성화
-읽기, 토론, 쓰기의 연계를 중심으로」, 「고전읽기를 통한 의사소통교육 방안」.

5) http://culedu.pusan.ac.kr/
6) 이국진, 「대학 교양교육으로서의 고전읽기와 독서교육」, 동남어문논집 43집,
2017, 20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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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읽기를 통한 인성지도 방안」. 이 밖에 특화된 교수방법론을 활용한 교육효


과 극대화 방안을 논하는 연구물들이 있다. 이에 관련된 연구로는 「영상매체를
활용한 고전 독서법 방안 연구」, 「디지털 시대,문학 고전 읽기 방식-고전 변용
텍스트의 상호매체적, 상호문화적 읽기를 중심으로-」, 「디지털 시대의 고전 읽
기; 독서 환경의 변화와 고전(古典)」 등이 대표적이다. 사례 중심의 교수-학습
방법론에 대한 연구성과와 그것의 환류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이에 매몰된 기술적, 도구적 관심 연구경향들은 ‘왜, 무엇을 위한 고전교육인가’
를 놓침으로써 본말이 전도되는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이는 다른 교양교과목과
의 ‘목적의 차별성’을 약화시키는 위험을 수반하게 한다.

3. 자기형성, 성숙 그리고 고전교육

고전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위 문제에 대한 답변은 고전교육 도입기의 연


구물에서 여러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이 중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리터가 편
집한 철학의 역사적 개념사전 중 교양(Bildung)부분을 번역하며 교양의 개념
사를 정리한 손동현의 논문이다.7) 교육에 대한 철학적 첫 질문은 ‘교육이란 무
엇인가’이다. 이 질문은 Bildung이란 무엇인가로 수렴된다. Bildung 개념 자체가
다의적이지만, 교육목적과 관련해서 Bildung은 자기 교육을 통한 자기형성
(Selbstbildung) 이외로 번역될 수 없다. 논자에 따라 자기형성을 위한 교육의
역할과 방법론의 차이를 보여줄 뿐이다. 자기형성의 교육사상을 체계화한 훔볼
트의 이전의 사상가나 동시대 혹은 그 이후의 사상가들에 교육은 자기형성 교육
이다. 자기형성은 인간다움의 잠재성, 개방성, 자율성, 독립성, 주체성, 자기창
조, 자기교육, 자기규정성, 가치의 형성, 전인성, 비판정신, 자기실현의 개념요
소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자기형성으로서 교육의 이념은 비단 자유교육의 이념
과도 큰 차이가 없으며 고전교육의 궁극적 목적이기도하다.
고전교육의 궁극적 목적인 자기형성은 칸트와 아도르노에게는 성숙개념으로
변주된다. 이들 논의에서 자기형성과 성숙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나 이들은
주로 성숙개념을 사용한다. 논자는 양자의 입장을 수용하며 고전교육 목적의 본
래성을 회복하기 위해 ‘성숙’을 고전교육의 목적으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

7) 손동현, 「교양교육의 새로운 위상과 그 강화 방책」, 교양교육연구 3권 2호, 2009,


7쪽 이하 참조.
278 이하준

이유는 다음과 같은 같다. 1) 고전교육은 실용주의적 교육, 직업중심 교육과 대


립되는 개념으로 ‘인간다움’, 곧 인간성의 성숙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성숙’
을 교육목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2) 성숙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지향하는 전
인교육의 측면을 잘 드러내는 개념이다. 3) 성숙은 자기이해, 사회이해, 세계이
해의 균형성을 잘 표현하는 개념이다. 4) 가치교육, 인격성 교육으로서 고전교
육을 이해하면 성숙은 그것의 최적화된 결과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5) 성숙은
내면성의 완성이라는 인문교육의 목적에 부합되는 개념이다. 6) 성숙개념은 고
전교육의 특수 목적화(역량교육), 기능화, 도구적 성격을 원리적으로 배제하며
그와 같은 관점에서 시도된 기술적 정의의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 7) 성숙은 역
량교육의 수단으로서 고전교육과정의 운영 시 제기되는 ‘최적화단 교육과정 여
부’, ‘독서교육과의 차별성’에 대한 의구심을 피할 수 있다. 8) 성숙은 고전교육
의 최종성과를 잘 표현하는 개념이다. 9) 성숙은 파편적인 지식과 정보의 습득
으로서 문헌학적 고전 교육의 낡은 전통을 배제하는 개념이다. 10) 성숙은 훈고
학으로 빠질 수 있는 전통적 고전교육의 성격을 제어하는 개념이다. 11) 성숙은
고전교육의 목표 중에 하나인 자신에 대한 자기책무성을 잘 드러내는 개념이다.
12) 성숙은 동양과 서양의 지성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통한 지평의 융합과
보편성의 체화에 부합되는 개념이다. 13) 고전은 인류의 정신적 성숙의 산물임
으로 고전교육의 목적을 (정신적)성숙으로 설정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14) 성숙은 고전을 매개로한 인문교육의 총체적 요소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총
체적 요소란 고전읽기의 다층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저자의 자기인식과 시대인
식의 이해, 당대의 현실의 이론화 과정과 고전에 반영된 내용의 검토, 독자의 자
기이해와 시대인식에 근거한 시대변화 인식, 고전의 해석 및 현재화의 가능성과
이를 통한 새로운 전망 등을 포함한다.
위와 같은 논거들에 근거해 고전교육의 목적을 성숙으로 설정하는 경우 새로
운 개념을 제안하는 데는 의미가 있으나 지나치게 일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교육의 목적에 대한 기존의 기술적 정의보다는
고전교육의 목적성에 더 부합한다는 장점이 있다. 뒷장에서 살펴 볼 칸트와 아
도르노의 성숙개념은 고전교육의 목적과 고전교육의 방향성을 재음미하고 현재
의 고전교육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성숙과 계몽을 위한 고전교육 279

4. 칸트의 성숙개념

칸트의 철학을 계몽(Aufklaerung)의 관점에서 계몽철학으로 바라보는 시각


은 그리 낯선 시각이 아니다. 칸트의 철학을 비판, 이성, 자유, 자율성, 계몽개념
으로 특징화 할 수 있다.8) 여기서 주제화하는 계몽과 성숙(Muendigkeit)에 대
한 논의는 「계몽이란 무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
진다. 칸트는 계몽을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미성숙의 상태로부터 벗어
나는 것”9)으로 정의한다. 이 때 계몽은 타자의 교육에 의해 획득되는 결과를 의
미하지 않으며 자기계몽을 말한다. 계몽을 자기계몽으로 이해하는 한 계몽은 성
숙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성숙개념은 이성의 독자적인 사용과 관련된
다. 칸트는 미성숙을 “다른 사람이 지도 없이는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못
하는 무능력”으로 규정한다. 이는 실용적 관점에서 인간학에서도 동일하게 표
현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


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해 대신 생각
해주고 그 자신은 그것을 그저 따라하거나 혹은 보행기에 의지해 즉 남
의 도움으로 걷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아직 어설퍼도 자신의
발로 경험의 지반위에서 앞으로 걸어 나아가는 것(성숙)이다.10)

칸트는 두 저서에서 성숙과 미성숙의 판별기준을 ‘지성의 결핍’의 여부가 아


니라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유무로 제시한다. 여기서 능력은 자발적 용기
와 지성사용에 대한 자기 책임성을 의미한다.11) “너 자신이 지성을 사용하는 용

8) M. Kubsda, Selbstreflexion und Emanzipation, Wuerzburg, 2014, p.35.


9) Kant,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aelung?, in: W. 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yadt, 1983(a), Bd 9, p.53.
10) Kant, "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in: W. 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tadt, 1983 Bd. 10, p.549.


11) 계몽에 있어 용기 등과 같은 도덕적 덕목에 대한 칸트의 강조는 그가 계몽이 곧 이

성이며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의 단초를 제공한다(이충


진, 「칸트 계몽사상의 현재성, 사유혁명과 그것의 정치적 조건」, 소통과 인문학
12집, 2011, 153쪽.) 이와 같은 주장은 이성의 공적 사용이 말하는 비판(정신)이
곧 계몽이라는 해석에 대립되며 무리한 해석이다. 칸트의 전체철학에서의 관점에서
볼 때 비판정신으로서 이성=계몽의 도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용기와 같은 심리적
280 이하준

기를 가져라 하는 것이 계몽의 표어이다”12)라는 말에 계몽-성숙-용기-책임


의 내적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칸트에게 계몽과 성숙 개념은 생물학적, 사회
적, 관습적, 법률적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의미이다. 또한 ‘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이거나 행위의 결과를 지칭하는 개념도 아니다. 칸트에게 계몽과 성숙은 자
신의 이성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과정, 책임지지 못함에서 책임짐의 과정에로의
진입과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칸트가 거듭 밝히고 있듯이 계몽된 자, 성숙
한 사람이 되는 것과 미성숙한 사람의 차이는 자유의지에 따른 이성의 독립된
사용여부에 있다. 칸트는 계몽과 성숙의 조건으로서 용기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게으름과 비겁함을 극복할 것을 요구하다.

게으름과 비겁함은 어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쉽게 스스로를 후견인에


게 내맡기게 되는가에 대한 원인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로 남아 있는 것
은 매우 편안한 일이다. 내가 나 대신에 지성을 갖고 있는 책을, 나 대신
에 양심을 갖고 있는 목사를, 나 대신에 음식 조절에 신경 써주는 의사
등등을 갖고 있다면, 나 스스로 수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이에 대
한 대가를 지불한 능력을 갖고 있다면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 대신에 이 귀찮은 일들을 떠맡을 것이기 때문이다.13)

‘나 대신 책’이 의미하는 바는 권위에 의존하는 사고습관, 주체적 사고와 비판


적 반성 능력의 개발을 위한 노고의 회피를 의미한다. ‘나 대신 목사’는 도덕적
성찰에 대한 게으름과 도덕적 책무성의 회피를 말한다. ‘나 대신 의사’는 육체적
건강관리에 대한 자기책임을 방기하고 위임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넓은 의미의 자기관리 의지의 결핍이라 볼 수 있다. 칸트는 이성적 차원,
도덕적 차원, 생활관리의 차원에서 편의성과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심리적 경향
성이 인간을 미성숙에 머무르게 하는 핵심원인으로 진단하면서 이와 같은 심리
적 경향성을 스스로 파괴할 것을 요구한다. 성숙의 어려움을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적 경향성에서 찾는 칸트의 의도는 ‘왜 대부분의 인간이 미성숙 상태에 머
물러 있는가’를 규명하기 위한 것 이상이 아니다. 도덕적 차원과 생활관리 차원
에서 미성숙이 이성적 차원의 미성숙과 같은 위상과 무게를 갖지 않는다. 이는

동인이 강조되는 이유는 계몽이 여전히 진행되어야만 하는 시대적 환경을 칸트가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12) Kant(1983(a), p.53.
13) 같은 책, p.53.
성숙과 계몽을 위한 고전교육 281

「계몽이란 무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자기지성의 사용에 논의를 집중


하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칸트는 성숙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화된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14)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공중이 미성숙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
하며 그래야만 하는 것이 ‘인류의 신성한 권리’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류의 신성
한 권리를 실천하지 않고 미성숙에 머무는 것은 곧 인간성에 대한 심대한 침해
가 된다. 칸트가 말하는 공중은 담론 공동체에 참여하거나 관련된 사람들을 의
미한다. 공중이 미성숙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성의 공적 사용(der
oeffentliche Gebrauch)이 중요하다. 이성의 공적 사용 사례로 그는 '어떤 사람
이 한 학자로서 전체 공중 앞에서' '과세의 부당함이나 부정'에 대해 말하거나
성직자가 학자적 입장에서 교회의 도구마나 종교나 교회제도의 개선방안 등에
대해 발표하고 제안하는 경우를 제시한다.15)
여기서 학자는 직업적 학자가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
로 논제를 파악하고 자신의 입장을 공론 참가자에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을 지칭
한다, 공적 이성을 사용하는 한 누구나 학자이며 공중 사이의 공적 이성의 자유
로운 사용은 ‘과감히 알려는 용기’를 상호강화 시킨다. 이를 통해 공중은 각자의
공적 이성을 개발하고 성숙을 촉진시키게 된다.16) 힌스케의 관점에서 칸트의
이성의 공적 사용에 관한 입장은 그의 논문이 출간된 <베를린 월간잡지>의 주
요구성원과 그 주변 지식인들의 모임인 수요회의 진리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태
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 따르면 이 모임의 참여자는 각자가 진리라고 생각
하는 것을 권위나 권력 혹은 양심과 같은 것에 근거를 두지 않고 오직 이론적 근
거에 바탕을 두는 자유로운 진리탐구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17)
이성의 공적 사용을 통한 미성숙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의 조

14) 같은 책, p.54.
15) 같은 책, p.58 참조.
16) 칸트의 계몽과 성숙이라는 개념은 하버마스적 의미에서 담론공동체에서 참여하는
의사소통적 이성의 사용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칸트가 프랑스
혁명에서 세계공론의 장을 보았고 공론의 중요성을 간파했지만 현대적 의미의 공론
장으로의 구조변동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시대적 한계를 노정했다고 비판 한
다. 칸트적 의미의 담론공동체와 하버마스적 그것은 참여자의 성격에서 차이가 분
명하다. J. Habermas, Einbeziehung des Anderen, Studien zur politischen
Theorie, Frankfurt a. M., 1996, p.134 참조.
17) N. Hinske, Was ist Aufklaelung? Beitraege aud der Berlinischen Monatschrift,
Darmstadt, 1981, S. XXIV 참조.
282 이하준

건과 방식이다. 칸트는 ‘매 시점마다 이성의 공적 사용과 그것을 위한 ‘자유’의


보장을 강조한다. 그는 계몽(성숙)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그러한 자유라고
선언한다. 공적 이성의 사용조건과 방식에 대한 칸트의 입장은 무제약적인 개인
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라 언론출판의 자유, 권위나 권력으로부터의 자
유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공적 이성을 특정한 시점, 특정한 장소와 상
황, 특정한 사안에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사용한다면, 그것은 칸트적 의미의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칸트는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을 비판에 부치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18)라고 말한다. 만약 비판으로 통칭되
는 무제약적 공적 이성사용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경우, 독립적인 사유능력의
불안전한 경우, 다른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환경인 경우에 공적 이성은 제한적,
임의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이성의 공적 사용의 제1전제는 독립된 사유의 주체, “매 순간
스스로 생각하는”19) 주체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률적 보장도 독립
적인 사유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20) 칸트에게 “스스로
생각함은 자기 자신 안에서(자신의 고유한 이성 안에서) 스스로 최고 높은 단계
의 시금석을 찾아내는 것”21)을 말한다. “철학함은 이성의 고유한 사용의 연습을
통해 배울 수 있다”22)는 논리학의 시각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사유의 주체와
성숙의 주체는 동일한 주체이다. 성숙은 계몽, 독립적이고 주체적 사유, 이성의
자유로운 공적 사용의 의미를 갖는다. 다르게 말해 비판정신의 소유가 곧 성숙
이며 자기계몽이다.
칸트의 역사철학적 사유의 문맥에서 성숙은 동물에서 인간화, 본능의 유모차
에서 이성의 사용자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가 문화나 문화화라는 개념을 사용
할 때도 같은 의미이다. 칸트의 도덕철학에서 성숙은 단순히 훈육을 통한 야만

18) Kant, Kritik der reien Vernunft, in: W. 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tadt, 1983, Bd 3, A. XI.
19) Kant, "Was heisst sich im Denken orientieren?", in: W. 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tadt, 1983, Bd 5, p.283.
20) 칸트의 계몽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정신의 자유만이 아니라 행위의 자유를 포
함하는 개념이다. 주체적 행위(selbsthandeln)는 계몽의 조건이자 계몽의 추동체이
다.
21) Kant, "Was heisst sich im Denken orientieren?", in: W. 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tadt, 1983(b), Bd 5, p.283.
22) Kant, "Logik", in: W. 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yadt, 1983,
Bd 5, p.448.
성숙과 계몽을 위한 고전교육 283

성의 제어를 넘어서는 자율적(도덕적) 행위자를 의미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추


측해본 인류 역사의 기원」에서 성숙은 이성을 갖고 '스스로 삶의 여정을 선택하
는 능력'의 소유와 그것의 행사를 뜻한다.23)
지금까지 보았듯이 성숙과 관련해 분명한 것은 그 성숙이 교육에 의해서만,
그것도 이미 교육받은 인간에 의해서 교육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다. 비록 칸트가 교육학에서 “인간은 교육되어야 할 유일한 피조물이다”24)나
“인간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될 수 있다”25)는 주장을 하지만 이것은 가
르침의 기술, 즉 경험적이며 실용적인 관점에서 나오는 언급이다. 그가 말하는
교육의 본질적 의미는 내면성의 형성이라는 의미의 도야(Bildung)이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형성의 교육이다.26) 「계몽이란 무언인가라는 질문에 대
한 답변」에서나 칸트의 전체철학에서 성숙은 항상 이성의 주체적 사용과 책임
있는 행위, 비판, 도야, 주체적 삶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 칸트의 성숙개념은
아래에 살펴 볼 아도르노의 그것과 비교해 사회정치적인 문제의식이 상대적으
로 결여되어 있다.27) 이것은 비판은 하되 저항의 금지와 복종원칙을 내세우는
계몽군주에 대한 칸트적 정당화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5. 아도르노의 성숙개념

주지하다시피 계몽개념은 아도르노 철학을 관통하는 주도적인 개념이며28)

23) Kant, "Mutmasslicher Anfang der Menschengeschichte", in: W. 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yadt, 1983, Bd 9, p.89.
24) Kant, "Ueber Paedagogik", in: W. 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tadt, 1983, Bd 10, p.687.
25) 위의 책, p.699.
26) 내면성의 완성으로서 자기형성를 추구하는 교육은 칸트의 교육개념에서 문화화, 시
민화, 도덕화의 형식을 갖는다. 자기형성으로서 도야는 사유와 행위에서의 책임성
의 원칙을 실천하는 성숙한 인간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김영래의 규정처
럼 칸트의 교육학을 성숙성의 교육학, 계몽의 교육학이라 규정할 수 있다. 김영래, 칸
트의 교육이론, 학지사, 2003, 133쪽 참조.
27) L. Frühbrodt, "Kant, die Aufklärung und ihre Folgen", http://www.zweite-
aufklaerung.de/kant-die-aufklaerung-und-ihre-folgen 참조.
28) 아도르노의 계몽개념은 자연지배 도정에서 문명화, 문명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성의
도구화와 관련된 개념이다. 이때 계몽은 문명화의 조건이자 문명병리학의 시작이
다. 신화의 곔몽화와 계몽의 신화화 논제를 통해 아도르노는 계몽의 계몽 즉 계몽의
284 이하준

그가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바는 계몽의 자기계몽, 그의 표현대로 ‘계몽의 계몽’


이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보여주는 문명사적, 이성비판의 측면에서 계몽개념
의 전개와 달리 아도르노의 교육사상에서 나타나는 계몽개념은 칸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계몽의 의미로 사용되며 이는 다시금 성숙개념과 동일한 의미
층위를 갖는다. 성숙에 관한 아도르노의 논의는 성숙을 위한 교육(Erziehung
zur Muendigkeit)에서 발견되며 1960년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교육관련 인
터뷰나 강연 등에서 부분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성숙을 위한 교육은 ‘탈야만화
로서 계몽을 위한 교육’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탈
야만화를 위한 교육」 등은 그의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교육(학)적 답변으로
볼 수 있다.
아도르노는 훔볼트나 슈라이어마흐가 말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기형성으로
서의 교육개념의 전통위에 서있으며 칸트적 성숙개념을 적극 수용한다. 아도르
노는 성숙을 “자기정신의 주체로서 자유”, “자기의식을 스스로 정초”하고 ‘자기
욕망을 승화시키는 주체”됨29)과 “자기규정(Selbstbestimmung)적 주체형성”30)
으로 정의한다. 자기의식, 자기정신, 자기규정적이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아도르노의 성숙개념은 칸트의 경우와 같이 이성의 능력 및 활동과 관련되며
생물학적, 사회적 연령개념과 관련이 없다. 아도르노와 칸트의 성숙개념의 유사
성은 이성의 자유로운 공적 사용의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도르노가 말
하는 비판적 이성이 칸트의 성숙담론에서의 공적 이성이다. 아도르노는 비판적
이성과 도구적 이성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 구분은 칸트의 성숙담론에서 공적 이
성과 사적 이성의 구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목적달성을 위한 최적화된 이성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아도르노의 도구적 이성과 칸트의 이성의 사적 사용은 맥
을 같이한다. 그가 말하는 비판적 이성과 칸트의 이성의 공적 사용 역시 ‘비판’
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성의 공적 사용이 칸트가 말하듯이 매
순간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Selbstdenken)이라면 그것의 전제는 비판적 의식
을 전제해야 한다. 아도르노가 말하는 비판적 이성이란 ’중단 없는 사유의 부정

자기비판을 강조한다. 아도르노의 신화와 계몽에 대한 논의는 노성숙, 「계몽과 신


화의 변증법」, 철학연구 50집, 2000, 219쪽 이하 참조; 이종하, 아도르노. 고통
의 해석학, 살림, 2014, 21쪽 이하 참조.
29) Th. W. Adorno, Erziehung der Muendigkeit, Frankfurt a. M., 1970, p.140.
30) 이종하, 「소외된 교육과 해방의 교육-아도르노의 ‘교육현실’ 비판-」, 시대와 철학
16권 2호, 2005, 191쪽.
성숙과 계몽을 위한 고전교육 285

성‘을 의미하며 이 부정성은 사회비판, 세계비판의 지속적인 전개로 나타난다.


아도르노의 비판적 이성과 칸트의 이성의 공적 사용은 이성의 사용영역과 대상
의 관점에서 동일한 셈이다.
성숙과 계몽개념과 관련해 아도르노와 칸트는 입장의 차이를 보인다.31) 계
몽의 변증법에서 전개되는 문명의 병리학에 대한 아도르노의 역사철학적 논증
은 계몽의 파괴성에 대한 계몽의 자기계몽을 겨냥한 것이다. 계몽은 곧 문명(문
화)화를 의미하며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문화화가 아닌 야만화를 의
미한다.32) 야만문화의 극복은 동일성 사유의 부정성을 지양하고 비동일성의 사
유를 통해 자연-인간, 인간의 인간지배, 성적 지배, 종적 지배를 벗어나는 데 있
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계몽의 계몽이다. 계몽의 계몽으로서 야만문화의 극복
은 ‘화해’로 나타나며 그것이 인류적 차원의 성숙이다. 그런데 아도르노에게 인
류적 차원의 성숙은 여전히 요원한 문제이다. 자연지배 논리의 최정점으로서 나
치즘의 야만성은 그 이후에도 야만은 새로운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탈야만화는 해결되지 않은 현대사회의 극복과제이다. 이를 위해 그는 인
류의 성숙을 위해 ‘탈야만화 교육’을 역설한다. 탈야만화 교육이 인류의 차원에
서 중요한 것은 야만적인 문화가 인간에게 절반의 교양, 조야함과 같은 문화의
쓰레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33) 성숙과 탈야만화의 관계의 측면에서 아도르노
와 칸트는 입장을 달리한다. 아도르노는 탈야만화를 반성, 자기규정, 야만에 동
참하지 않는 능력으로 이해한다.34) 탈야만화 개념 속에 성숙개념에 이미 내포
되어 있다. 이에 반해 칸트는 탈야만화를 훈육의 교육단계에서 동물성을 제거하
고 인간성의 법칙들을 훈련시키는 개념으로 협소하게 이해한다. 계몽과 탈야만
화 개념에서 칸트가 인간학적 측면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면, 아도르노는 두
개념을 역사철학적, 사회철학적 차원으로 확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1) 아도르노의 사유에서 성숙과 계몽이 같은 의미층위를 구성하는 경우는 비판적 사유


와 주체되기의 실현으로서의 계몽의 계몽이라는 측면, 교육을 구성하는 행위주체들
(교육당국,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의 성숙을 위한 교육에 대한 인식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이다.
32) 아도르노와 달리 칸트에게 계몽, 계몽화는 문명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문화
화, 인간화, 도덕화를 의미한다. 문명의 병리로서 계몽의 야만화 논리는 칸트에서
찾을 수 없다.
33) GS4, p.31 참조.
34) Th. W. Adorno, Gesammelte Schriften, Bd. 10.2, Kulturkritik und Gesellschaft
I, hrsg von R. Tiedemann, Frankfurt a. M. 1998. p.679 참조.
286 이하준

미성숙으로부터의 해방, 성숙의 어려움에 관한 아도르노의 원인분석과 진단


도 칸트와 사뭇 다르다. 미성숙으로부터의 해방의 단서로 칸트가 ‘용기’라는 정
신적 덕목을 강조했다면, 아도르노는 ‘사회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강조한다.
여기에서 양자의 성숙을 위한 전제조건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사회
제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성숙되기를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기존의 사회제도 하
에서 자기이해와 자기규정에 근거해 자기되기를 실현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
다.35) 이와 같은 아도르노의 입장은 “올바른 사회 속에서만 올바른 삶의 가능
성”36)을 가질 수 있으며 개인해방이나 여성해방이 사회해방을 전제해야만 한다
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그에 따르면 성숙되기의 어려움은 보편화되어버린 절반의 교육(Halbbildung)
에 중요한 책임이 있다. 절반의 교육은 ‘교육 그 자체를 위한 교육’과 ‘정신활동
능력이 있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을 말한다. 이러한 절반의 교육은 성숙한
인간을 육성하는 데 실패하며 사회적응과 사회억압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내지
못한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성숙되기의 어려움을 야기하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
으로 문화산업의 부정적 역할을 강조한다. 문화산업의 부정적 역할은 거짓 욕구
의 생산, 사이비 개성의 형성, 대체 체험과 사이비 체험으로 인한 상상력과 창의
성의 빈곤화와 그로 인한 ‘살아 있는 경험’의 결핍의 조장에 있다. 성숙되기와
관련해 문화산업에 의해 제공되는 대중문화와 교양과의 관계에 대한 아도르노
의 진단은 암울하다.

대중문화는 문화적으로 더 좋은 날들을 경험했던 소비자들에게는 오


래 전에 폐기처분된 깊이에 대한 대용물을 제공해주며 통상적인 소비자
에게는 과시용으로 삼을 수 있는 잡다한 교양을 제공한다.37)

문화산업이 “교양의 상실과 야만적인 무질서 증가”38)의 근본 원인이라는 진


단이다. 오락과 유흥, 웰빙, 건강관련 방송프로그램으로 채워진 국내의 지상파
와 종편방송의 프로그램 구성 그리고 그것이 젊은 세대에 미치는 영향력, 가령
연예인 되기 및 연예인 따라 하기 열풍, 맛집 투어, 몸 관리와 치장의 문화적 트

35) Th. W. Adorno, Erziehung der Muendigkeit, Frankfurt a. M., 1970, p.144.
36) GS6, p.388.
37) GS3, p.174.
38) 같은 책, p.183.
성숙과 계몽을 위한 고전교육 287

렌드를 감안한다면, 아도르노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공중


파 드라마나 종편 드라마의 대부분은 성숙한 인간되기를 소재로 삼지 않고 행운
의 마력, 가벼운 삶의 즐거움이 중심소재를 이룬다. 이 드라마의 많은 경우가 동
류집단과 조직적응에 열중하는 미덕 및 규범의 수행자가 되기와 행복과의 상관
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문화산업은 개인과 사회의 완전한 동화를
추구함으로써 사이비 자유와 사이버 개성의 소유자, 즉 미성숙한 개인을 양산하
며39) “포만감과 둔감함”40)을 개인에게 제공함으로써 성숙에의 요구, 주체되기
를 포기하게 만든다. 인간의 성숙을 방해하는 문화산업의 작동 중에 내면성의
왜곡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의 내용물이 내면성
(Innerlichkeit)을 밀어내고 왜곡시킴으로써 내면성 자체를 실재하지 않는 거짓
의 산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문화산업은 내면성이라는 것을 공공연한 거짓말로 만든다. 내면성은


실제 생활에서의 인간적인 감정들을 좀 더 확실히 제어하기 위해 종교적
인 베스트셀러나 심리영화나 여성물에 첨가된 고통스러우면서도 유쾌한
양념이나 쓸데없는 수다로 취급된다.41)

위와 같은 인식에서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이 인간의 “내면생활 전체”를 “문화


산업이 제시하는 모델”42)에 따르게 하며 거짓 성숙(Scheinmuendigkeit)을 완
성시킨다고 진단한다. 성숙을 방해하는 거짓 성숙의 조장자로서 문화산업에 대
한 아도르노의 처방은 문화산업의 해체가 아닌 문화산업과의 비판적인 대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핵심은 문화산업의 논리를 분쇄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의 사회순응적 기제와 문화사업이 유포하는 이데올
로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거짓 성숙
을 위한 문화상품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대응이 성숙에 이르는 길이다. 사회
적 억압의 부드러운 대행자로서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적 대응을 사회적 차원에
서 보면 “독립된 존재로서 사회와 대립”43)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 성숙의 가능성
이 놓여 있다.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의 강력한 통합력과 은밀하고 세련된 현혹의

39) 같은 책, p.175.
40) 같은 책, p.185.
41) 같은 책, p.166.
42) 같은 책, p.181.
43) GS6, p.218.
288 이하준

방식들을 쉽게 극복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기정신의 주체되기, 자기의


식의 정초자 되기로서의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산업과의 대결과 성숙되기의 관계에서 보듯이 사회적 차원에서 성숙의
가능조건을 탐색하는 아도르노는 위에 덧붙여서 성숙(탈야만화)을 위한 교육정
책과 교육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의식형성의 단계부터 비판능력의 배양, 살아
있는 경험을 하는 교육,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 건전한 권위에 의한 교육, 개방
적이고 민주적인 교사의 역할, 교사, 학부모, 학생 자신의 자기계몽, 경쟁을 부
추기는 교육체제를 지양할 것을 촉구한다. 개인의 성숙을 위한 사회적 가능조건
으로서 교육개혁은 전체 사회구조의 변화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아도
르노는 더 나은 사회, 더 이성적인 사회가 건설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문제는 그
가 사회구조 자체의 개혁에 대한 설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데 있
다. 예상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데는 사유
의 본질인 부정의 정신으로 사태의 부정성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비판적이며 그
부정의 힘 자체에 거짓 성숙의 지양 가능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6. 결론에 대신하여: 칸트와 아도르노 성숙개념의 고전교육적 의미

앞서 고전교육의 목적설정과 관련된 문제와 칸트와 아도르노의 성숙개념을


살펴보았다. 칸트와 아도르노의 성숙개념이 고전교육의 목적과 방향성 및 수업설
계와 운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기서는 그것을 몇 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타 교과목과 교육효과의 비교우위가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전교육
의 도구화, 수단화를 비판하는데 칸트와 아도르노의 성숙개념은 비판적 전거를
제공한다. 칸트는 ‘목적 그 자체’를 강조한다. 그가 성숙개념에서 법률적, 사회
적, 생물학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의 지성을 책임성 있게 사용하는
성숙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그가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산출되어야 할 목적’과 ‘자립적 목적(der selbstständige Zweck)’개
념을 구분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44) 산출되어야 할 목적은 말 그대로 설
정한 목표를 의미한다. 자립적 목적은 산출되어야 할 목적과 대립개념으로 성취
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성취여부와 관련 없는 목적을 의미한다, 따

44) 칸트, 윤리향이상학 정초, 백종현 역, 아카넷, 2005, 164쪽(Ⅳ:437)


성숙과 계몽을 위한 고전교육 289

라서 자립적 목적은 수단으로 활용되는 하위목적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 칸트의


목적개념에서 보면 고전교육은 의사소통 역량이나 종합적 사고역량을 성취되어
야 할 목적으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위와 같은 고전교육의 변용은 고전교육 본
래의 자립적 목적의 훼손이다. (고전)교육의 기능화, 도구화와 관련한 아도르노
의 비판은 보다 직접적이다. 그는 성숙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의 기능수행
자를 양성하는 수단화된 교육을 비판한다.45) 그는 사회적 요구와 수요에 따른
교육이야말로 교육 자체를 상품으로 전락시킨다고 보았다. ‘무엇을 위한 교육인
가(Erziehung- wozu?)’에 대한 아도르노의 근본 질문은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성 함양에 있으며 그것이 곧 성숙되기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사회의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부응하는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인재는 거짓 성숙의 주인공이다.
이와 같은 아도르노의 입장은 단순히 취업과목이나 도구과목 위주의 교양교육
과정 운영만이 아니라 자기형성으로서 성숙을 중심에 두지 않는 고전교육에 대
한 비판의 근거를 제공한다. 오늘날 특수 목적을 지향하는 고전교육은 도구과목
의 교육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되지만, 다른 의미의 도구과목으로 전락하는 위
험에 처해 있다. 아도르노 식으로 말하면 고전교육에 대한 “진실성이 결여된 정
신”46)이 그러한 위험을 가져왔다.
둘째, 고전교육의 도구화와 관련해 대학본부의 의사결정자들의 반성이 요구
된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대학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ACE 사업이나
CORE 사업의 수주를 위한 고전교육과정 신설과 폐지는 철저하게 유용성의 논
리에 종속되어 있다. 대학의 교육과정 의사 결정자들은 교육의 이념만이 아니라
칸트와 아도르노의 성숙개념, 허치슨의 고전교육의 실천과 그 반성적 전개의 역
사를 다시 한 번 성찰해야 한다. ‘재정압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정
책적 대응’이라는 옹색한 답변은 고전교육과정의 신설과 사업수주의 직접적 원
인관계에 대한 엄밀한 검증에 기초했다기보다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의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고전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들의 시각교정과 지성적
양심의 회복이 요구된다.
셋째, 칸트의 ‘용기’테제와 아도르노가 강조하는 아동기의 비판의식 교육은
고전교육에서 교수자의 역할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고전교육이 강의중심
형 수업모델을 따르고 특정한 고전에 대한 문헌학적 탐구에 집중된다면 성숙을

45) 홍사현, 「교육 속의 야만」-니체와 아도르노의 교육비판, 니체연구 26집, 2014,


170쪽 참조.
46) GS3, p.165.
290 이하준

위한 고전교육의 목적을 상실할 위험에 빠질 것이다. 칸트에게 용기는 타인의


개입이 아닌 자기결단과 자발성의 원칙에 근거하며 고전은 성숙을 위한 자료이
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도르노도 자기형성을 통한 성숙의 차원에서 교육행위
에서 교수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제한한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자신
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47)이라는 그의 주장은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 자
체를 부정하거나 의미를 축소하는 데 있지 않고 ‘어떻게 스스로 주체적인 자기
자유와 그를 통한 자기형성을 하느냐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다. 칸트와 아도르노
의 관점은 지식전달형 고전교육, 정전주의에 매몰된 권위주의적 고전교육이 지
양되어야함을 강하게 시사한다.
셋째, 칸트와 아도르노의 성숙개념이 고전교육의 방향에 시사하는 바는 스스
로 책임지는 이성의 사용이 단순히 개인의 ‘성숙’만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및 세
계시민적 차원의 성숙을 지향해야한다는 데 있다. 칸트가 진정한 계몽군주라 칭
하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보장한 사상을 포함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
는 교양의 수준을 높이는 제도적 조건이며 시민교양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개인적 성숙과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성숙의 제도적 조건이다.48) 아도르노
경우 개인의 성숙은 사회적 성숙과 항상 연동된다. 성숙을 위한 사회적 조건의
개혁 없이는 사이비 교양과 사이비 개성만이 양성된다. 위와 함께 아도르노는
진정한 성숙을 위한 교육은 인류적 차원의 탈야만화 교육으로 확장할 것을 제안
한다. 칸트와 아도르노의 성숙개념의 사회적, 인류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고전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성숙만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의 사회정
치적 성숙과 인류의 성숙을 위한 실천적 관심과 행위를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재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성숙-사회적 성숙-인류의 성숙을 위한 고전교
육이야말로 ‘고전교육의 자기계몽’이라 할 수 있다.
넷째, 고전교육과 관련해 아도르노가 말하는 교육상품화 위험에 대한 경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도르노는 ‘교육이 단순히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면 순수
교육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또한 그는 성숙을 목적으로 하지 않

47) Th. W. Adorno, Erziehung der Muendigkeit, Frankfurt a. M., 1970, p.140.
48) 황태연은 칸트가 그의 정치철학 저서들에서 옹호하는 공화주의 체제가 정치적 성숙
을 나타내는 정체로 평가하며 계몽의 세계시민적으로 정초임을 강조한다. 위와 같
은 그의 주장에는 칸트식 계몽군주의 정당화와 보수주의적 논점, 신교적 입장, 계몽
의 미완성 테제 등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 황태연, 「칸트의 계몽게념과 정치
사상」, 계간 사상, 1998. 6호, 198쪽.
성숙과 계몽을 위한 고전교육 291

는 순수교육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교육상품이 된다고 말한다. 오늘날 고전교육


은 세속적인 이지성 식의 고전교육 만병통치론, 고급스런 힐링 인문학과 동시에
고전의 세속화에 반하는 원전주의 교육이 병존한다. 이러한 중첩화된 병리적 현
상은 특히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고전교육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전의
대중화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이벤트성 고전강연과 대중의 지적 허용심이 결
합되면서 고급문화 상품의 구입과 다르지 않은 소비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전
교육의 소비주체 중에는 고전의 학습을 유사 학술활동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
다.49) 이러한 현상은 상품으로 전락된 사물화된 고전소비이자 사물화된 고전교
육 이상이 아니다. ‘문화산업에 의한 진정한 교양의 상실, 거짓성숙화’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이 유효한 비판이었던 만큼 고전교육의 세속화(속류화)가 불러
오는 사이비 고전교육에 대한 비판 역시 유효하다. 이 비판의 강화가 성숙, 자기
형성, 자기계몽이라는 고전교육의 본래적 목적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
이다.
결론적으로 칸트가 당대에 던진 “현재 우리는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그의 대답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칸트는 위의 질문에 ‘아직 계몽이 진행
중인 시대 다시 말해 계몽이 완성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의
질문을 고전교육과 관련해 다시 다르게 물을 수 있다. ‘현재 우리는 고전교육의
계몽시대에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
히 ‘고전교육에서 계몽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9)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고등학문에 접근하려는 유한계급의 활동을 금력과시문


화의 한 양상으로서 평판얻기를 위한 문화선전의 일환으로 평가한다. 그는 이들의
유사학문 활동이 ‘고급스럽고, 고귀하고, 가치 있는’ 취미규범의 실천이상이 아니라
고 비판한다. 베블런, 유한계급론, 김성균 역, 우물이 있는 집, 2014, 431쪽 이하
참조.
292 이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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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schedel(Hg.) Kant Werke in 10 Bd, Darmstadt, 1983, Bd 5..
33. http://culedu.pusan.ac.kr/
294 이하준

【Abstract】

Classics Education for Maturity and Enlightenment


-Classics educational meaning of maturity concept of Kant and Adornos-

Lee, Ha-Jun(Hannam Univ.)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suggest an answer to the question ‘Has classics
education at university been done properly?’ These days, most universities open
lectures on reading classics as liberal education. These lectures are a method of
communication education, writing education, and personality education which is
different from the original purpose, and related studies have only suggested to
maximize teaching. The concepts of maturity and enlightenment of Kant and
Adornos provide the reason of criticizing the reality of classics education which is
instrumentalized as above. Both suggest that the classics education should have an
independent purpose rather than being means, the purpose of it should be
self-form, maturity, and critical mind, and it should focus on personal maturity and
social maturity. Maturity and self-enlightenment should be the ultimate purpose of
classics education to avoid the dangers of bibliography and exegetical studies as
well as ‘pseudo liberal’ or ‘pseudo maturity’.

Keywords: Adorno, Kant, enlightenment, maturity, pseudo maturity, classics


education

□ 이 논문은 2018년 02월 09일 접수되고


2018년 03월 27일 심사가 완료되어
2018년 03월 27일 게재가 확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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