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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경제학회 「문화경제연구」

제15권 제2호, 2012년 8월, pp.57~78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문화경제학

성 제 환*

Ⅰ. 서 론
목 차
Ⅱ. 문화경제학과 소비
Ⅲ.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그 특징
Ⅳ.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문화경제학
Ⅴ. 결 론

이 글은 보드리야르(J. Baudrillard)의 소비사회론에 비추어 문화 경제학의 새로운 가능


성을 모색해보려는 것이다. 문화․예술 상품에 대한 선호나 취향은 거의 대부분 사회적으
로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 가치가 평가되는 과정에서도 예측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
래서 이 상품의 유통과 소비에 사회적인 평판이나 가치관이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자주 발
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에서 광고가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가 결정되는 과정이나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문화 경제
학은 이 이론에게서 패러다임 차원의 유용성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핵심주제어 : 문화·예술상품, 문화자본, 소비사회, 문화적 가치, 광고

*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sung@wku.ac.kr


이 논문은 원광대학교 2012년도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논문제출일: 2012년 7월 2일, 논문 수정일: 2012년 8월 9일, 게재확정일: 2012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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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이 글은 보드리야르(J. Baudrillard)의 소비사회론에 기초하여 문화 경제학의 새로운 가


능성을 모색해보려는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그는 ‘후기구조주의’를 대표하는 사회학자
이므로, 그의 소비사회론은 근대 계몽철학이나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비판에서 출
발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계몽철학은 ‘주객 이원론’에 입각해서 주체 중심으로 객체(자
연)를 이해하고 변형시키면서 역사와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의
경제학이 이러한 철학을 수용하고 있으며, 주객이원론의 경제학적 변용이 생산주의 담론
이다. 이 담론은 주체가 자신의 욕구와 생산능력에 비추어 객체(자연)를 지배할 수 있으
며, 그래서 사회적․경제적 과정이나 관계가 모두 주체의 생산(능력)과 욕구에 비추어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은 자본주의 사회가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인위적인 소비욕
구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다시 대량소비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한다. 이
와 달리 생산주의 담론은 모든 교환․소비 행위가 생산과 욕구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비
로소 이해가능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이 담론은 광고를 통해 인위적인 소비욕구가
창조되고 이것이 다시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과정이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
렇게 본다면, 그의 소비사회론은 이미 경제학. 특히 생산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셈이다.
물론 보드리야르의 비판은 생산주의 담론을 가정하는 경제학 전체, 그 중에서도 고전
파 정치경제학과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문화 경제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고전파와 맑스주의 중에서 특히 후자가 주로 비판된다. 그렇지만 문화․예
술 상품의 경우 일반 상품과 달리 가치판단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
종 선호가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특징까지 보여준다. 문화 경제학은 기존 경제학의 표준
적인 모델화 방식에 대해 다양한 과제를 던진다거나(M. Hutter, 1996, p. 267), 기존의
경제학을 넘어 좀 더 폭넓은 지평에서 문화나 예술에 대한 경제학이 시도될 필요가 있
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D. Throsby, 1994, p. 26). 게다가 문
화․예술 상품은 다른 상품과 달리 그 가치가 상당부분 사회적 평판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광고효과를 통해 인위적인 소비욕구가 창출되고 이것이 다시 대량소비로 이어지
는 소비사회의 특징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역으로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
론이 문화․예술상품의 소비를 설명하는 데에도 상당히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
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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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보드리야르의 사회학은 초기와 후기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초기 저작에서는 소비사회론을 제기하면서 주로 생산주의 담론을
비판하고 있지만, 후기저작에서는 생산주의 담론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
문이다. 그래서 켈너는 그의 사상이 󰡔상징교환과 죽음󰡕(Symbolic Exchange and death,
1976)을 기점으로 초기와 후기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본다(D. Kellner, 1989). 켈너에 따르
면, 초기와 후기는 각각 맑스주의에 기호학을 도입해서 자본주의 문화를 평가하는 시기
와 맑스주의를 버리고 기호학적 상상력을 극단화한 시뮬레이션 모델에 입각해서 자본주의
문화를 설명하는 시기로 구분되며, 󰡔대상체계󰡕(Le Système des objets, 1968), 󰡔소비사회󰡕
(La société de consommation, 1970),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Pour une critique
de l'économie politique du signe, 1972), 󰡔생산의 거울󰡕(Le Mirror de la production,
1973) 등이 초기 저작에 해당된다.1) 초기와 후기의 구분을 수용할 경우, 이 글의 주제인
소비사회론은 주로 초기 저작에 국한된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을 문화산업과 연결해서 살펴본 연구는
매우 드물다. 문화산업에서 몸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이미지가 소비되는 양식을 보드리
야르의 소비사회론에 비추어 설명한 논문(이수인, 2011)과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
드리야르의 후기 이론(simulation 이론)에 비추어 해석하는 논문(윤병달, 2009)이 있지만,
이는 모두 사회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이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에 나타난 예
술관을 아렌트(H. Arendt)의 예술관과 비교하면서 전자를 비판한 논문(박치완, 2010)도
있지만, 이것도 문화 경제학계의 연구성과는 아니다. 문화경제학계에서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이 문화 경제학의 패러다임 차원에서 새로운 시야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
다는 평가가 있는 정도이다(원용찬, 1998, pp. 35-38). 이러한 의미에서 본 논문은 보드
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의 관점에서 문화 경제학을 분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려
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먼저 2장에서 문화 경제학의 특징과 함께 문화․예술상품이 소비되는 방
식이나 과정을 살펴보면서 문화 경제학의 발전에 필요한 사항을 점검할 것이며, 3장에서
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의 의미와 그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4장에서는 문화
경제학이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에서 어떠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확인해
볼 것이다.

1) 게인은 켈너와 동일하게 초기와 후기를 구분하지만, 그 의미는 조금 다르다. 게인은 맑스주의에 기
호학을 도입해서 ‘상품소비주의’를 분석하던 초기에서 뒤르케임(Durkheim)의 패러다임 쪽으로 이
동한 후기로 구분하기 때문이다(M. Gane, 1991, pp. 4-5). 초기와 후기의 구분문제는 이 글의 주
제가 아니므로 다만 이 글에서는 켈너와 게인의 시기구분을 수용해서, 초기저작을 중심으로 살펴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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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문화경제학과 소비

문화 경제학은 흔히 문화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태동․발전했다고 평가된다는 점에서


(池上惇․植木浩․福原義春, 1999, p. 24), ‘재화나 산업으로서의 문화’는 문화 경제학의 필
수 요소에 가깝다. 게다가 문화 경제학은 그 특성상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출발할 수밖
에 없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분석도구나 방법론을 문화나 예술 영역에 거의 그대로 적용
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기 쉽다. 문화 경제학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문화나 예술 영역
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영역에 경제학의 시장경제 논리나 합리적 선택 방법
까지 거의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B. S. Frey & W. W. Pommerehne, 1997).
물론 문화나 예술 영역에 경제학의 방법론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문화나 예술의 경제
적 측면-이른바 ‘재화나 산업으로서의 문화’-을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 이것
의 모든 측면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B. Frey, 1994, pp. 6-7). 그렇다고
해도 문화나 예술은 상품으로 교환되는 경우에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까
지 동시에 드러낸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문화․예술상품이
교환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경제학의 분석도구로 접근이 가능할 수 있지만, 좀 더 충분한
분석이나 설명을 위해서는 이 상품의 고유가치인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
다(성제환, 2012, p. 68). 더구나 문화적 가치는 가치중립적인 특징을 지닌 경제적 가치
와 달리 가치판단을 포함하는 범주에 속한다. 이 경우, 문화적 가치판단은 문화․예술상
품의 문화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종종 이 상품의 경제적 가치에도 상당
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다면 문화나 예술이 생산되거나 유통되는 과정은 문화적 가
치판단의 의미나 영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한 적절하게 이해되거나 설명되기 힘든
영역일 수 있다. 그래서 경제학의 시장논리나 합리적 선택논리만으로는 충분하게 이해되
거나 설명되기 힘든 영역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문화 경제학에서 ‘문화’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상품이나 산업으로서의
문화와 가치(판단)로서의 문화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문화나 예술의 가치가 경제적 가치
와 문화적 가치로 구분될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한 이중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문화
경제학이 경제학의 방법론에 대해 상당히 중요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후터의 평가(M.
Hutter, 1996)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2) 후터에 따르면, 문화 경제학은 기존의 경제학에

2) 문화경제학에서 종종 수사학적 접근이 시도되는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임상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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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6가지 과제(construction sites)를 던지고 있는데, (예술 분야와 비예술 분야 간) 생산


성 차이, (문화나 예술 분야의) 공공재적 특성, 문화적 선호의 특성, (문화나 예술 관련
투자의) 장기 수익률, (문화나 예술 분야에 대한) 기술혁신의 영향, 예술적 가치평가의
특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문화적 선호의 특성과 예술적 가치평가의 특성이 문화적 가
치판단과 관련된 과제에 해당된다.3) 문화적 선호의 경우, 기존의 경제학은 안정적 선호
에 대한 표준적 가설에 기초하지만, 문화 경제학에서는 이 가설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
다. 문화나 예술에 대한 선호나 취향은 상당부분 사회적으로 형성될 뿐만 아니라, ‘스타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예측불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가치평가의 경우에도 문화 경제
학은 기존의 경제학과 차이를 보인다. 기존의 경제학은 주로 화폐적 교환 가치 중심으로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지만 문화적 가치평가는 이와 다를 수 있으며, 경제학에서는 주로
개인의 사용가치나 효용의 크기가 중요하지만 문화나 예술 분야에서는 오히려 보증과
평판(certification and reputation building)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중요할 수 있다(M.
Hutter, 1996, pp. 265-267).
사정이 이와 같다면, 문화 경제학은 ‘상품이나 산업으로서의 문화’와 ‘가치로서의 문
화’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그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모두 분석․평가․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된다.4) 이러한 맥락에서, 트로스비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개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본적으로 이 개념은 문화나 예술 영역
에서 경제 논리와 문화 논리가 종종 충돌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러한 충돌이
나 갈등이 대부분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문화자본 개
념이 도입될 경우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D. Throsby, 2004, pp. 10-11).
트로스비에 따르면, 문화는 행위 집합(문화산업 내부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위)과 태도
집합(가치관, 관습, 규범 등)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모두 인간 행위의 집단적 측면, 즉
특정 사회나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적 가치를 내포한다. 문화자본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증식하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크게 유적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 조각 등
과 같은 유형의 문화자본과 관습, 신념, 가치 등과 같은 무형의 문화자본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문화자본은 사회나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적 가치를 증식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

3) 나머지 4가지 과제 중에서 공공재 특성은 현대 문화경제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보몰․보웬의


1966년 저작(Baumol, W. J. & W. G. Bowen, 1966)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의 근거로
제시되었던 내용이며, 생산성 차이, 장기수익율, 기술 혁신의 영향은 ‘보몰의 비용압박’((Baumol's
cost disease)과 관련된 논쟁에서 제기되었던 내용들이다(D. Throsby, 1994). 보몰․보웬의 1966년
저작은 최근에 국역본이 출간되었다(임상오 역,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 서울: 해남, 2011).
4) 클래머에 따르면, 문화 경제학은 사회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구별을 요구한다(A. Klamer,
2003, p.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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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실물자본, 인적자본, 천연자본 등과 결합해서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는 문화․예술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도 기여한다(D. Throsby, 1999, pp. 5-6). 사실
상 트로스비의 문화자본 개념은 사회학자 부르디외(P. Bourdieu)에게서 차용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초점이 ‘소비’보다 ‘생산’쪽으로 조금 더 이동한 듯 보인다.5)
문제는 문화․예술 상품의 경우 소비자가 느끼는 실제 효용이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
스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스는 상품 구입과 동시에 소비자가
효용을 얻게 되지만, 문화․예술상품의 경우에는 문화․예술 향유능력에 따라 그 효용이
상당히 크게 달라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능력을 갖추기까지는 거의 효용을 얻지 못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승마를 즐기기 위해 말을 구입하거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연주회 티켓을 사는 경우, 상품을 구매함과 동시에 소비자에게 즉시 효용이 발생하
지 않는다. 승마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술이나 지식이 습득되어야만 비로소 소비자에
게 효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6) 그렇다면 트로스비의 문화자본 개념은 경제적 가
치와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문화 경제학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지만, 주로 생산 측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문화․예술 상품의
중요한 특징인 소비 측면이 과소평가되거나 간과되는 한계를 안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
렵다. 이는 역으로 문화경제학이 문화나 예술의 ‘소비’ 측면을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있
는 이론이나 관점을 요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문화 경제학 내부에 문화․예술상품의 소비측면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완전
히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글러와 베커(Stigler & Becker, 1977)가 대표적이다. 이들
이 보기에, 기존의 소비이론은 대부분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과 소득을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상정하기 때문에, 수요의 변화를 소비자 취
향의 변화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론에서는 상품의 가격이나 소득 같은 화폐적
요인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취향까지 불변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수요의 변화가 설명되기
힘들다. 이와 달리, 스티글러와 베커는 시장에서 구매한 상품으로부터 효용을 얻기 위해
스스로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의 축적에 시간을 투자하는 소비자를 가정하고, 이러한 소
비자가 획득한 기술이나 지식을 ’소비자본‘(consumer capital)으로 명명한다. 이제 소비자
의 문화․예술 향유능력은 그가 보유한 소비자본에 비례하게 되며, 효용 극대화는 상품
의 가격만이 아니라, 소비자본에 투자된 시간의 기회비용까지 고려한 잠재가격(shadow

5)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이 문화․예술 상품의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박조원(2010), 황경호․
권상희(2011) 참조.
6) 그러므로 소비자가 문화나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통한 학습(learning by consuming)이나
취향의 개발 과정(cultivation-of-taste process)이 필수적인 조건일 수 있다(성제환, 2012, pp. 70-77,
P. Brito & C. Barros, 2005, pp. 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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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ce)에 의해서 결정된다. 여기서 소비자본은 상품의 가격이나 소득수준 같은 화폐적 요


인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취향이 불변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수요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
는 새로운 이론적 장치로 기능한다(성제환, 2012, pp. 71-74).
이러한 스티글러와 베커의 소비이론은 소비자본과 연결된 문화․예술 향유능력이 문
화․예술상품의 소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
미를 갖는다. 문제는 이 이론에서 문화․예술상품의 소비나 소비자본이 주로 개인의 자
발적인 선택의 결과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후터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면, 문화적 선호나
취향은 상당부분 사회적으로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 변화의 방향이나 정도 또한 예측불
가능하다.7)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화적 선호나 취향이 상당부분 그가 속한 집단의 가치
관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자의 선호나 취향은 종종 공급자의 광고
효과에 힘입어 달라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상품의 경우에는 그 정도나 빈도
가 특히 더 높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경제학에서 광고는 대부분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로 설명된다. 스티글러와 베커의 소비이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설
명방식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소비자 내부의 주관적인 선호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 광고
의 효과와 무관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광고는 단순히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급자가 원하는 시장이나 상품의 이미지를 창조해서 소비자의
취향이나 선호를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소비를 유도한다(D. Slater, 2002, pp. 67-68). 아
마도 이러한 특징은 문화․예술상품의 경우에 특히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는 곧
문화․예술상품의 소비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 소비자의 문화․예술 향유능
력만이 아니라 광고와 같은 인위적 장치를 통해서 끊임없이 소비가 유도되는 측면까지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7) 물론 스티글러와 베커도 문화적 취향의 사회적 측면을 부정하지 않는다. 베커는 문화에 대해 다음
과 같이 설명한다. “개인들은 다른 사회적 자본보다 자신들의 문화를 통제하기 어렵다. 자신들의
인종(ethnicity), 민족(race), 또는 가족사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국적이나 종교를 변화시킬 수 있지
만 이 조차 매우 어렵다. 문화를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점과 그것의 감가상각율이 낮다는 점 때문
에 문화는 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일생동안 대체로 주어진 것이다”(G. Becker, 1996,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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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그 특징

1. 생산주의 비판과 사용가치 물신성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은 경제학, 특히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비판의 초점은 생산과 욕구를 중심으로 한 ‘생산주의 담론’에
있다. 그에 따르면, 경제학은 전통적인 주객이원론에 따라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양자
를 다시 욕구주체와 욕구대상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욕구는 역사나 사회와 무관하게 인
간 내부에 존재하는 인간의 자율적인 본성이자 모든 사회적 의미를 구성하는 제1의 원
리이다. 욕구주체인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을 생산함과
동시에 사회와 역사를 재생산한다. 그렇다면 경제학에서 사회․경제적 의미는 모두 경제
주체의 초역사적․초사회적인 욕구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위(생산, 즉 노동)로 환원되
는 셈이다. 이는 곧 생산주의 담론이 주체와 대상을 자율적이고 상호 분리된 영역으로
전제하면서도 양자를 다시 인간의 욕구체계로 통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이러한
통합과정에서 생산과 욕구가 모든 것을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 즉 '생산의 거울‘(mirror
of production)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J. Baudrillard, 1972, pp. 69-71).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맑스주의 정치경제학과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이러한 생산주의
담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양자의 차이를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맑스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분에 기초해서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비판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상품교환을 교환가치와 사용
가치의 관계로 이해했다면, 맑스는 이를 비판하면서 상품교환을 교환가치에 국한된 현상
으로, 사용가치를 교환의 전제조건으로 각각 구분한다. 여기서 사용가치가 인간의 욕구
본성에 부합되는 구체적인 유용성을 의미한다면, 교환가치는 ‘추상적인 인간노동량’에 따
라 결정되는 크기(가격)를 의미한다. 맑스는 양자를 다시 ‘구체적인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 인간노동’의 산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는 곧 맑스가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각각 ‘구체성’과 ‘추상성’의 범주로 구분하고 나서 전자를 후자의 조건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K. Marx, 1867, pp. 87-103).
맑스의 경우, 교환가치를 산출하는 ‘추상적인 인간노동’은 ‘사회적 평균’의 의미를 갖
고 있으므로, 이러한 가치와 연결된 교환과정은 곧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특성을 지니는
영역이 된다. 보드리야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맑스가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보다 진일보
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그는 맑스가 사용가치를 자연적인 본성(욕구)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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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취급하는 ‘사용가치에 대한 자연주의 명제’를 수용함과 동시에 이것을 교환가치의 전


제조건으로까지 취급한다는 점에서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과 차이가 없다고 비판한다(J.
Baudrillard. 1973, p. 56). 심지어 그는 ‘사용가치에 대한 자연주의 명제’를 맑스주의의
근본적인 한계로 정의하기도 한다.(J. Baudrillard, 1972, p. 130).8)
흥미로운 사실은 보드리야르가 이러한 생산주의 담론을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산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인간들 간의 관계를 상품교환 관계라는 하나의 기
능으로 추상화시킴과 동시에 인간의 행위 또한 욕구충족이라는 하나의 추상적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추상화시켰다고 본다. 그는 이를 통해서 ”이질적이고 복잡한 욕망
(desire)이 하나의 합리화된 욕구(need)로 환원 및 조직”되었다고 본다(D. Kellner, 1989,
p. 34). 다양하고 복잡한 욕망구조가 자본주의적 합리성이라는 단일한 기준에 따라 단순
화․추상화된 것이다. 즉,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자본주의적 축적구조에 부합되는 방향
으로 단순화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품은 구체적인 사용가치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단순화․추상화라는 인위적
인 욕구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코드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 소비대상에 불과하다(J.
Baudrillard, 1972, p. 65). 그렇다면 사용가치와 욕구는 이미 ‘추상화 과정’을 통해 사회
적으로 생산된 것에 불과하며, 그래서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어
렵다. 자본주의는 상품교환논리-등가성 논리-만이 아니라 사용가치 논리까지 생산해 내고
이를 통해 모든 대상을 (단일하게 추상화된) 사용가치와 욕구에 입각해서 평가할 수 있
는 상황까지 만들어 내는 셈이다. 그가 사용가치나 욕구에 대해 주체나 대상을 맺어주는
초월적 매개항이 아니라 “사회적 추상노동의 등가물“(J. Baudrillard, 1972, p. 155; 강조
는 원저자)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보드리야르가 사용가치를 ‘사회적 추상’의 산물로 이해하는 데에는 맑스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겨 있다. 맑스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각각 ‘구체’와 ‘추상’의 범
주로 구분했다면, 보드리야르는 사용가치까지 사회적 추상의 산물로 보고 있기 때문이
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 구체적이고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추상적이고 사
회적인 것이라면, 이 능력을 담지하고 있는 개인 역시 사회적으로 생산된 존재일 수 있
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드리야르는 근대사회의 등장과 함께 개인이 과거의 사회적 구속
에서 해방되었지만, 이 해방은 개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와 권리

8) 여기서 보드리야르는 사회적․역사적인 관계와 무관하지만 그 관계의 목적이나 기원으로 취급되는


것을 ‘초월적 기의’(signified)로 정의하는데, ‘사용가치에 대한 자연주의 명제’는 그 전형적인 사례
에 속한다. 이 명제에 따르면, 사용가치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욕구)에서 비롯된, 그래서 사회적,
역사적 교환관계와 무관하면서도 (사회적, 역사적 교환관계의 산물인) 교환가치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 결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66 성 제 환

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위한 존재


라는 하나의 의미로 환원됨과 동시에 자연을 상품논리에 따라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변형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는 개인이 경제체계 내에서 자신의 (자율
적인)욕구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경제체계가 욕구주체로서의 개인의 기능과 욕구대
상으로서의 대상의 기능을 동시에 요구한다고 주장한다.9) 간단히 말해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을 상품생산 논리에 부합되는 존재로, 소비사회의 소비유혹에 끊임없이 지배
당하는 존재로 해방시킨 셈이다.
더 나아가, 보드리야르는 생산주의 담론이 ‘사용가치 물신성’에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물신성 개념은 맑스가 교환관계 분석을 통해서 제시한 것이다. 교
환관계가 일반화되면 이 관계가 마치 사물 내부의 자연적인 속성에 따라 진행되는 것으
로 취급되는, 그래서 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들 간의 사회적 관계가 은폐되면서
상품 자체가 신격화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데, 맑스는 이것을 ‘상품 물신성’으로 정
의했다(K. Marx, 1867, pp. 133-149).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물신성 개념을 사용가치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사용가치도 교환가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노동의
추상에 기초한 사회적 관계를 전제한다. 그렇지만 생산주의 담론은 사용가치에 대한 자
연주의 명제에 따라 이 가치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관계나 맥락을 은폐한 채 오로지
자연적인 욕구의 산물로, 그래서 교환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본질이자 이 관계의 목적으
로 취급한다. 여기서 사용가치는 사회적 관계나 맥락과 분리된 실체, 즉 초사회적인 자
연적 실체로 신격화되는 상황이 나타나는데, 그는 이것을 ‘사용가치 물신성’으로 정의한
다(J. Baudrillard, 1972, p. 132).
그렇다고 해서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의 전제라는 점을 보드리야르가 인정하지 않는 것
은 아니다. 다만 그는 사용가치를 인간본성이라는 자연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취
급하는 관점에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는 이러한 사용가치 물신성을 자본주의 질
서의 정당화 문제와 연결시킨다. 사용가치가 초사회적인 자연적 실체로 물신화 되면, 상
품교환관계나 상품생산관계 전체가 이러한 사용가치에 의해 보증되는, 즉 초사회적 보증
원리를 지닌 것으로 정당화된다. 이는 곧 사용가치 물신성이 자본주의 질서를 인간의 자
연적인 본성, 즉 욕구에 부합되는 것으로 정당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
한다. 더구나 그는 맑스 역시 사용가치에 대한 자연주의 명제를 수용함으로써 사용가치
물신성에 갇히게 되었다고 본다. 이는 곧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이 외관상으로는 자본주의
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사용가치 물신성을 통해 오히려 자본주의를 정당화

9) 이는 보드리야르가 주체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후기구조주의(post-modernism)를 대표하는 사회학자


임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문화경제학 67

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J. Baudrillard, 1972, pp. 132-133).


이와 같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동일한 사회적 논리가 작용하고 이를 통해서 사용
가치 물신성까지 작동된다면,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논리에 대한 이해가 무
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전통적인 상품논리(즉, 상품의
정치경제학)는 사용가치 물신성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적합하지 않
다. 오히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똑같이 사회적 코드로 끌어들이는 논리를 분석할 필
요가 있는데, 그는 이 논리를 전통적인 상품논리와 구별해서 기호논리, 즉 ‘기호의 정치
경제학’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는 사용가치 물신성의 의미나 그 효과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것을 생산해내는 사회적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아닌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호의 정치경
제학은 그가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출발점이자 자본주의 질서를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장치인 셈이다.

2. 기호의 정치경제학과 소비사회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논리의 핵심은 생산이 아니라 재생산이다.


소비되지 않는 생산물은 자원의 낭비일 뿐이며, 재생산되고 소비되는 것만이 생산물로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산은 재생산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의미와 기능을
인정받는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이 소비와 재생산을 보증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재생산과 소비가 생산과 축적을 보증한다고 본다(J. Baudrillard, 1976, p. 137).
그가 이렇게 재생산을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재해석하는 데에는 경제학의 생산중심의 논
리-즉 생산주의 담론-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비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새
롭게 이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러한 재생산은 주로 광고를 통해 작동된다. 광고는 단순히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
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품에 대한 인위적인 소비욕구까지 창조함으로써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의 소비와 재생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광고가 종종 “경제영역에 대한 문화적 개입”(D.
Slater, 2002, p. 61)으로 정의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광고를
매개로 한 대량소비방식이 산업혁명과 함께 일반화되었다고 본다.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생
산능력이 출현하면서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의 판매와 소비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으며,
광고를 이용한 인위적인 소비욕구의 창출이 그 해결책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인위적으로 조작된 사회적
소비과정을 필연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J. Baudrillard, 1976, p. 137).
68 성 제 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결합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보드


리야르는 경제학자들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사회의 출발점
을 일반적으로 20세기 포드주의(fordism)에서 찾는데 반해(M. Aglietta, 1979), 보드리야르
는 그 출발점을 산업혁명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아마도 여기에는 ‘생
산’ 아니라 ‘소비’에 초점을 맞추어 자본주의의 역사와 구조를 전체적으로 재해석하려는
그의 강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대량소비에 관한 그의 설명이 대부분 생산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인위적인 광고효과를 매개로 작동될 경우, 생산과 욕구
가 소비와 교환관계 외부에 존재하면서 이것들을 보증해주는 요인으로 기능한다는, 생산
주의 담론이나 상품의 정치경제학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제 생산과 욕구는
인위적인 광고효과의 산물로, 그래서 소비와 교환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관계 내부의 범
주로 정의되며, 소비와 생산은 모두 인위적인 욕구조작에 따른 차이관계로 설명된다. 예
를 들어, 사람들이 비싼 외제차를 값싼 국산차보다 선호한다면, 이는 고급차와 저급차로
대변되는 문화적 차이 때문이지 두 자동차가 갖고 있는 유용성-즉 사용가치-의 차이 때
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차이 논리가 기호화된 코드체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소비를 유혹한다. 보드리야르가 소비사회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기호의 정치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주장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보드리야르는 종종 기호의 정치경제학이 필요한 이유를 자본주의의 역사적 특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자본주의 등장 이후 교환의 법칙, 즉 가치법칙이 달라졌다고 본
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노동량과 욕구가 상품교환 외부에서 상품의 가격을 설명해주는
외적 지시대상으로 기능했지만(고전적 가치법칙), 자본주의가 등장한 뒤에는 코드화된 기
호체계 내부의 차이체계로만 상품의 가격이 설명되는 구조적 가치법칙으로 전환되었다
고 보기 때문이다(J. Baudrillard, 1976, p. 127). 이렇게 볼 경우,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은 자본주의 경제에 자본주의 이전의 가치법칙을 적용하는, 시대착
오적인 견해로 이해될 수도 있다.10)

10) 보드리야르는 일반적으로 후기구조주의자로 분류되지만, 이른바 ‘탈근대’(post-modern)을 이해하


는 방식에서는 후기구조주의자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후기구조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상
당수가 ‘탈근대’(post-modern)를 종종 역사적 의미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제임슨(F. Jameson)은
‘후기구조주의’를 ‘후기자본주의(late capitalism)의 상품 논리’로 정의하는데 여기서 ‘탈근대’는 현
대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후기 자본주의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F. Jameson, 1991). 이와 달리,
후기구조주의자들은 ‘탈근대’를 주로 ‘근대성’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한 이론적 장치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리요따르(J-F.Lyotard)는 ‘탈근대적 조건’(post-modern condi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계몽이성과 근대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계몽이성의 ‘메타서사’(meta-narrative)를 해체하고자 노력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문화경제학 69

이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대상이 그것 자체의 내용이나 특징이 아니라 다른


대상에 대한 차별화된 기호체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대상이 차별화된
기호로서 자율적인 것이 되어야만 소비와 소비대상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된다”(J.
Baudrillard, 1972, p. 66). 그래서 그는 개인, 대상, 욕구, 생산보다 차별화된 기호체계가
우선하며, 이 기호체계는 개인, 욕구, 생산을 코드체계 내에서 재생산하면서 스스로를 재
생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그 어떠한 대상도 이러한 차별화된 기호체계나
코드체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J. Baudrillard, 1972, p. 78).11) 그러면서도
이 체계는 자신의 재생산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용가치에 대한 자연주의 명제‘
혹은 ’사용가치 물신성‘을 수용하도록 유혹한다.
이렇게 볼 때, 자본주의는 한 편에서 차별화된 기호체계를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
남과 다른‘ 선택을 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사용가치 물신성이
나 사용가치에 대한 자연주의 명제를 통해 마치 이 선택이 마치 자신의 자연적인 욕구
에서 비롯된 결과인 것처럼 믿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맑스주의는 고전파 정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기호체계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데올
로기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오류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회주의적 대안 또
한 물질적 풍요를 중심으로 한 생산주의 담론에 기초한 것이 된다. 이러한 오류 혹은 한
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비판의 초점을 상품의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기호
의 정치경제학으로 이동해야 한다.
기호의 정치경제학에 따르면, 소비사회의 주역은 소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더 많은
소비를 유혹하는 자본주의적 기호체계이다. 보드리야르는 여기서 ‘더 많은 소비’ 혹은
이를 향한 움직임은 소비사회를 작동시키는 기본 동력이다. 그래서 그는 ‘더 많은 생산’이
연상되는 ‘생산성’과 비교하기 위해 ‘더 많은 소비’가 연상되는 ‘소비성’(consommativity)
개념을 고안해 내기도 한다. 이렇게 ‘더 많은 소비’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자본주
의적 기호체계의 재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유혹당하는 개인에 불과하다. 소비자에게 선택의

한다(J.-F. Lyotard, 1984). 이렇게 볼 때 보드리야르는 후기구조주의자로 분류되면서도 종종 역사


적 시기구분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런 맥락에서도 그의 소비사회론은 중요한 쟁점을
안고 있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을 것이다.
11) 보드리야르가 생산주의 담론을 공격하면서 사용가치 물신성, 외적 지시대상(이른바 ‘초월적 기
의’)을 비판하는 방식은 데리다(J. Derrida)가 차연(différance) 개념을 통해 근대 이성, 본질주의,
지시대상의 특권적 위치를 비판하는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 이렇게 볼 경우, 보드리야르의 후기
사상인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론은 이미 초기부처 그 조짐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외적 지
시대상이나 초월적 기의가 해체되고 재현과 모방이 일반화되면, 가짜와 진짜, 진실과 기만의 차
이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무한한 모방으로 전환되는 시뮬레이션(simulation) 모델이 작동되기 때
문이다(J. Baudrillard, 1981, pp. 166-184).
70 성 제 환

자유가 있지만, 이 자유는 오직 어떠한 소비유혹에 넘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서 선택하는 영


역일 뿐이다. 이러한 소비사회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 생산주의 담론이나 상
품의 정치경제학에서 벗어나기 어렵다(J. Baudrillard, 1972; pp. 85-87). 그래서 그는 코드화
된 기호체계를 해체하는 데서 진정한 탈출구를 찾는데, ‘상징교환’이 여기에 해당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상징교환은 추상적 가치관계가 아니라 특수한 의미의 상징을 매
개로 한 구체적인 관계를 지칭한다. 그는 모스의 ‘선물교환’(M. Mauss, 1967)을 이러한
관계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선물은 두 당사자 사이의 독특한 동기
와 목적에 따른 상징의 교환으로,12) 현대 사회에서는 결혼반지가 여기에 속한다. 일반
반지가 가격이나 유행에 따른 기호가치로 환원가능한데 반해, 결혼반지는 두 사람의 관
계를 가격이나 보석이라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특수한 의미로 맺어주는 상징이다.
여기서는 거래 당사자와 교환이 분리되거나 기호로서 코드화될 수 없다. 결혼은 모든 경
우에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유행이나 기호로 환원시킬 수도 없다.
모든 교환이 진정한 의미에서 구체적이며 절대적으로 유일하기 때문이다(J. Baudrillard,
1972, pp. 65-66). 이러한 상징교환에서는 모든 것이 타자를 전제하며, 그 어떤 것도 타
자가 없이는 규정될 수 없다. 아울러 교환관계가 자율적인 주체나 그의 욕구 또는 기호
로 환원되지 않으며, 생산자와 그의 생산물이 소비자나 소비대상과 구분되지 않고 생산
이 유용성이라는 목적에 갇혀있지도 않다(J. Baudrillard, 1973, pp. 102-103).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상징교환’에서 생산주의 담론과 자본주의적 기호체계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이자 혁명적 대안을 찾는다. 자본주의적 상품교환은 모든 교환관계를 추상적인 원
리-가격-로 환원시키지만 상징교환은 모든 것을 사회적 추상원리로 환원시키거나 초월적 기
의로 보증하지 않는다. 오직 구체적인 ‘행위’만이 존재한다. 구체적인 행위와 관계를 매개하
는 상징은 추상적 원리나 초월적 기의가 아니다. 여기서는 동일한 대상이 교환되더라도 구
체적인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소비가 더 많은 생산을 위한 재생산
으로, 교환이 등가성으로, 생산과 소비가 추상적인 기호로 각각 봉합되지 않는다.13)

12) 모스의 ‘선물교환’은 원래 원시사회의 교환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지만, 후기구조주


의자들은 여기서 근대이성의 동일성 명제를 비판할 수 있는 ‘타자성’ 모델의 원형을 찾는다(J.
Pefanis, 1991, ch. 2).
13) 이러한 상징교환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을 거부하고 생산주의 담론과 코드화된 기호체계를 급
진적으로 부정하는 상징적, 문화적 행동을 전제하는데, 보드리야르는 여기서도 맑스주의와 차이를
보인다. 그가 보기에,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나 사회주의자는 코드화된 기호체계의 내부에 존재하는
‘타자’이므로, 이 체계의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이들에게서 기호체계의 해체를
기대하기는 힘들며, 오히려 코드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배제된 주변계급이 진정한 해방세력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적 코드체계는 생산주의 담론만이 아니라 백인중심주의, 유럽중심주
의, 가부장제주의, 일부일처제까지 포괄하는 것이므로, 여성, 흑인, 동성연애자, 학생 등이 모두
코드체계에서 배제된 주변계급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J. Baudrillard, 1973, pp. 129-147).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문화경제학 71

Ⅳ.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문화경제학

오늘날과 같은 대중소비사회에서 광고의 역할은 크다. 이것은 단순히 상품에 관한 정


보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종종 주관적인 욕구체계를 변화시켜 소비를 유혹하는 요
인으로도 기능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선호나 취향을 변화시키는데 종종 디자인이나 색
상이 상품의 기능이나 유용성보다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도 이러한 광고 효과와 무관
하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중소비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선호나 취향
혹은 소비욕구는 광고효과와 동시에 분석될 필요가 있다.
더구나 현대 사회에서 경제와 문화는 점점 더 긴밀하게 얽히고 있다. 이는 단순히 문
화 산업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광고와 유행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상
품 자체를 소비하는 상황만큼이나 그것의 이미지나 상징을 소비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에 문화의 중요성이 계속해서 높아
지고 있음을 시사한다(P. de Gay & M. Pryke, 2002; J. Allen, 2002; P. Heelas, 2002).
그렇지만 문화나 예술은 상품으로 생산되거나 유통되더라도 경제적 가치와 함께 문화적
가치까지 동시에 지닌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상품이나 서비스의 경우와 조금은 다를 수
있다. 경제적 가치와 달리 문화적 가치는 가치판단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만 아니
라, 문화나 예술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회적 평판이나 유행처럼 사회적․집단적으로 형성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선호형성이나 가치평가 측면에서, 문화 경제학이 경제학의 방법론에 중요한 과제를 던
지고 있다는 후터의 평가를 가볍게 취급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보
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이 경제학 전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비판
이 시사하는 바에 대해 문화 경제학 연구자들이 특히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 또한 마찬
가지일 것이다. 문화나 예술 분야에서 사회적 평판이나 가치관, 혹은 유행의 역할은 보
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에서 광고가 보여주는 역할과 거의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문화나 예술에 대한 선호나 취향은 거의 대부분 사회적으로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 가
치가 평가되는 과정에서도 예측불가능성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사회적 평판이
나 가치관이 문화․예술 상품의 유통과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할 수밖
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문화 경제학은 광고와 같은 인위적인 장치를 통해 소비욕구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떠한 경제학 분야보다도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은 문화 경제학에 대해 패러다임 차원에서
새로운 시야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72 성 제 환

도 이 이론은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가 결정되는 과정이나 그 메카니즘을 이해하


는 데 상당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이론은 코드화
된 기호체계가 소비를 유혹해서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측면만이 아니라 ‘사용가치 물신
성’을 통해 이러한 소비방식이 정당화되는 측면까지 보여준다. 이는 곧 그의 사회학이
‘소비’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질서가 재생산되는 방식과 함께 이것이 정당화되는 방식까
지 동시에 보여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소비사회론의 모든 내용이 문
화 경제학에 대해 언제나 유용한 것은 아니다.
보드리야르는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논리의 핵심을 생산이 아닌 재생산에서 찾는다. 여
기에는 생산되면 소비될 수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판단과 달리, 소비되어야만
생산이 지속될 수 있다는 그의 판단이 놓여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판단은 그의
소비사회론을 가능하게 만든 중요한 조건에 속한다.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감안할 때,
이렇게 생산과 소비를 구분하고 둘 중 어느 하나를 본질이나 기원으로 취급할 수 있다
는 판단 자체를 비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의 이론이 대중소비사회의 특징을 설명하
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적 질서나 축적구조가 재생산되
는 과정까지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이 이론의 가장 큰 특징이 자본주의적
축적구조에 대한 설명방식의 변화로 요약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학자들이 이 구조
의 핵심을 ‘생산’에서 찾는데 반해, 그는 ‘소비’에서 찾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이 생산과 자본의 논리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
졌다는 평가(배영달, 2010, pp. 199-201)는 지나치게 단순한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본주의 질서로부터 혁명적으로 벗어나는 상황을 ‘해방’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는 점
에서, 그의 소비사회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어떤 의미에서 맑스주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혁명의 주체나 그 방법에 대해 맑스와 다르게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데. 여기에는 광고를 매개로 한 대중소비사회의 특징이나 이를 설명
하기 위한 ‘후기구조주의’ 철학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결코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판단이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면,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이 문화 경제학에 제
공하는 교훈이나 시사점은 부분적이다. 문화․예술 상품은 경제적 가치와 함께 문화적
가치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산업은 자본주의 경제논리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측면
만큼이나 이 논리와 무관한 측면 또한 상당부분 갖고 있다. 그래서 문화경제학은 자본주
의 질서나 그 축적구조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부분만큼이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연구대
상으로 포함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그의 소비사회론에서 자본주의 질서의 비판과 관련
된 내용은 문화 경제학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광고를
매개로 한 대량소비방식과 이것이 다시 정당화되는 방식은 문화․예술상품이 생산되고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문화경제학 73

소비되는 과정에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므로, 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문


화 경제학자들도 충분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Ⅴ. 결 론

앞서 보았듯이, 문화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


는 문화․예술상품을 주요 분석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양면적 가치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요구된다. 트로스비는 ‘문화자본’을 통해 이 방법을 확보했지만, 이 방법
은 문화적 가치의 생산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그 소비를 설명하
는 데에는 상당한 약점을 드러낸다. 그런데 문화․예술상품은 선호형성이나 가치평가 측
면에서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스와 상당히 다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이 상품에 대한
선호나 취향이 사회적 평판이나 유행, 또는 공동의 가치관으로부터 상당히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또한 문화 경제학이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은 광고를 통해 인위적인 소비욕구가 창조되고 이것이 대량
소비로 이어진다는 측면과 함께 ‘사용가치 물신성’을 통해 자본주의 질서가 정당화되는
측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소비에서 찾는다는 점
에서, 이 사회의 핵심을 생산(과 욕구)에서 찾는 경제학자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문화․예술상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에 부분
적으로나마 적용될 수 있다. 문화․예술상품의 경우, 사회적 평판이나 가치관, 또는 유행
에 따라 선호나 취향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이 종종 소비자의 자연적인 욕구에
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문화산업의 경우에도 광고처럼 인위적으
로 소비욕구를 부추기는 요인(사회적 평판이나 가치관, 또는 유행 등)이 존재할 뿐더러,
모든 소비가 소비자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설명되는, 그래서 문화․예술상품이 소비되는
방식이나 구조가 정당화되는 측면까지 부분적으로나마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14)

14) 칸트는 ‘초연함‘(disinterestedness)를 예술적 가치판단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다(A. Van den Braembussche,
1996, pp. 34-35),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 기준은 문화산업계의 현실적 이해관계를 감추거나 정
당화하는 것일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실질적으로는 이해관계에 기초해서 문화나
예술의 가치를 평가면서도, 자신의 평가를 ’초연한‘ 예술적 가치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74 성 제 환

물론 경제학과 사회학의 간극을 고려할 때,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을 문화 경제학에


거의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두 학문 사이에는 접근방법이나 설명 대
상에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분석의 대상에서도 양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그의 소비사회론은 주로 자본주의적 질서의 재생산이나 이 질서
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문화 경제학은 문화나 예술의 특성상 종종 자본
주의와 무관한 측면까지 설명하거나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호형성이
나 가치평가 측면에서, 문화경제학이 기존 경제학의 접근 방법에 상당히 중요한 과제를
던지고 있으며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이 부분적으로나마 시사
점을 제공할 수도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 이론은 경제학 밖에서 문화 경제학을 되돌아보
게 만드는, 그래서 문화 경제학이 기존의 경제학에 대해 던졌던 과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는 계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에 대해
문화 경제학이 패러다임 차원에서 주목해야 하는 가치가 있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론과 문화경제학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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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Baudrillard’s Theory of Consumer Society and Cultural Economics

Jae-Whan Sung*

This Paper aims at finding the new possibility of Cultural Economics in view of
Baudrillard's theory of consumer society(BTCS). Preferences for or tastes in artistic-cultural
goods(ACG) are not only socially formed, but also are very unpredictable in their
valuation pricess. And social reputation or view of value has often a decisive effect on
exchange and consumption of this ACG. These situations look very similar to the situation
that advertisements seriously affect consumption in BTCS. Therefore, I think that this
BTCS has thrown new light on the consumption decision process of ACG. Sometimes,
it said that this BTCS is very useful to Cultural Economics paradigm.

Key Words : artistic-cultural goods, cultural capital, consumer society, cultural


value, advertising

* Professor, Dept of Economics, Wonkwang University, sung@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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