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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Fate Prototype 창은의 프래그먼트 Little Lady ACT
1부 Fate Prototype 창은의 프래그먼트 Little Lady ACT
──동화의 왕자님.
하지만, 우린 알고 있었다.
왕자님은 분명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응, 그래──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당신
빛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당신
운명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죽은 자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잃어버린 물건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떠한 기적이라고 한들,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것들로 한정된다.
말세에 다시금 구제를.
성도의 재현.
왕국의 수리.
파도의 저편에서 일곱개의 목이, 열개의 왕관이 나타난다.
죄가 깊은 것.
그대의 이름은 적대자.
그 개략은 탐욕.
그 축복은 모독이 되어 휘몰아친다.
널리 기적을 초석삼아.
이에 역설적으로, 잃어버린 주님의 사랑을 증명하려한다.
◀━▶
성배전쟁.
그것은, 마술사들의 소원을 건 살인전이다.
천사의 계제를 받은 일곱 명의 마술사와 일곱 기의 서번트.
일찍이, "비명의 죽음"을 맞은 영령들은 서번트라는 영혼의
그릇을 얻어 현세에 소환,
마스터인 마술사와 함께 한 곳에 모여 사람의 상식을 초월한,
강렬한 싸움을 벌여 마지막 한명이 될 때까지 서로를 죽인다.
마술사, 서번트. 함께 소원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때는 1999 년.
밀레니엄
구기 천년기의 끝자락.
약속된 극동의 땅──이 도쿄에서 최신의 성배전쟁이 시작
된다.
그래서,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서번트, 한 기.
푸른 눈동자를 가진 저 사람.
백은의 갑옷을 입은 저 사람.
최하위, 7 계위 천사의 마스터인 나를 만나,
이 성배전쟁을 함께 싸우리라고 다짐해주는 1 계위 서번트.
나를 지키겠다는 기사.
세이버.
당신에 대한 것도.
아버지에 관한 것도.
성배전쟁이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도.
언니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언니──.
마나카 언니.
예를 들면, 그래.
나는 언니를, 계속──
◀━ ▶
「으─」
아직은 다소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부드러운 침대 속에서
사죠 아야카는 멍하니 눈을 떴다.
햇살. 작은 새들의 지저귐.
(이제 아침이야)
【1991】
평소 의식하지 않는 연도를 흘끗 보고 시각을 확인했다.
【AM 6:14】
오전 6 시 14 분.
또래 여자아이라면, 분명 대부분은 두번째 잠에 빠질 시간.
그러나 아야카의 생활습관은 일반적인 여자 초등학생들과는
조금 달라서
디지털 표시에 다소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딱이네」
「좋아」
혼자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만.
요리는 아직 하지 않는다. 아버지한테 맡기고 있다.
집안 일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는 아버지 혼자서 하고 있다.
가끔 가정부가 오는 날도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방이 많은
사죠 저택은 결국 아버지가 관리한다.
아야카가 집안 일을 도와주는 것도 아버지의 지시가 있어야
만 한다.
「아버지, 이제 일어나셔야죠?」
「어라?」
Garden
──가든.
우거진 푸른 나무들. 꽃. 수십가지의 식물. 거기다 몇 마리의
비둘기.
아야카의 모습을 보고는 몇 마리가 주변으로 몰려온다.
일반적인 집의 마당보단 식물이 많다고 생각하고,
정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과장된다는 생각에 역시,
가든이라고 부르는게 맞다고 아야카는 생각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어라?」
「아버지」
「너희들 말구」
「뭐였더라……」
──지금부터.
「시작된다, 였나」
──시작된다.
「그래서」
「그러니까……」
낯익은 목소리.
곧바로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되돌아 본다.
「아버지」
「……네」
「……」
「열심히, 할게요」
「네」
──어라?
무슨 말을 하셨는지 몰랐다.
매일 아침, 식사시간 전까지는 절대 가든 밖으로 보내주신 적
이 없는데.
이제야 아야카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쪽을 보고 계시지 않았다.
시선은 안채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디를 보고 계신건지, 한
순간, 알 수 없었다.
다이닝
아마, 식당 쪽──
「……」
「나보단 네가 더 낫겠지」
「?」
「요리를 하고 싶어해」
「요리?」
「언니가 말했어?」
「그래」
「그렇구나」
◀━ ▶
「응, 언니」
「앗, 으, 응──」
봐, 지금도 그렇잖아.
부엌에서도 척척. 하지만, 굉장히 우아하게.
아버지 대신 언니가 부엌에 섰던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지금과는 달리, 필요하니까 준비한다는 느낌이었다. 효율적
으로, 솜씨는 좋게.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전에도 대단했지만, 뭐랄까.
같은 대단하다는 말이지만 의미는 다르다고 해야할지.
「아무것도 아냐」
「그래?」
역시, 아름답다.
웃는 얼굴이 무엇보다 아름답고, 어떤 그림책이나 인형의 공
주님보다 예쁘다.
이렇게 기뻐하는 언니의 얼굴을 보는건, 얼마 만이었을까.
뭐든지 잘하는 사람. 언니.
뭐든지, 그래.
비둘기도.
고양이도.
나처럼 꼼짝 못하진 않는다.
「으, 응. 괜찮아?」
「어때?」
「맛있어……」
정말, 맛있다.
기름으로 만든 요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바삭하고 부드러워, 전혀 기름진 느낌이 없다. 맛있어.
「주문?」
마술. 주문.
나도 알고있다.
그럴 것이, 마술이란건, 정말 있는거니까.
우리의──
「뭐?」
언니.
당연한건데도, 무슨 말을 하는걸까.
그런 표정이었다.
반짝반짝. 아침의 아름다운 빛을 받으며.
벚꽃잎과 같은 색을 지닌 입술에서 들려오는 소리.
마치, 정말로, 그건──
진짜 마법 같아.
나는, 그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채, 그렇게 생각했다.
「사랑?」
그렇게 말하고는──
언니는,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마치, 내 저편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자, 먹어봐」
가련한 소녀였다.
햇살에 비쳐질 것 같은 부드러운 머리카락.
옅고, 맑은 색의 눈동자.
비취색의 드레스는, 그녀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반짝임으로 활짝 핀 꽃 한송이.
짧게 대답했다.
감사의 뜻을 담아서.
「먹어주었으면……」
「그래서……」
아무래도──
식탁에 차려진 요리의 산을 앞에 두고, 이제서야 똑바로 정신
을 차렸다.
분명, 평범한 사람의 한끼 식사량으로는 너무나도 많다.
「그래도──」
「거짓말은 아냐」
긍지와 검에 걸고.
결코 거짓을 입어 올리진 않는다.
사죠 마나카──
그것이, 소녀의 이름이었다.
아침 식사를 시작하고 잠시 후.
말했던 대로 요리를 입에 넣고, 대략 절반정도가 사라질 쯤에
서야
소녀의 표정은 밝아지고 있었다.
맛있네,라고 그가 말할 때마다 소녀는 순간순간 밝아졌다.
요정과 꽃의 분위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소녀도, 그 자신도.
「그래서 말이지」
「응, 그건 정말 맛있었어」
「응, 맛있었어」
「정말?」
「응」
「정말? 정말?」
예스, 마이 레이디
「그래, 나의 주인이여. 네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다행이야──」
굳이 말하자면──영국이라는 말에 대해 그는 친근감을 느
끼진 않았지만,
소녀의 마음은 전해졌다. 충분해.
정말 맛있었다. 그가 아는 요리와는 노력, 공정부터 다르다.
「저기, 세이버」
「왜?」
「──성배전쟁의 방식」
◀━ ▶
◀━ ▶
소녀의 말은 이어진다.
명량하게──
큰 봉오리를 가진 꽃의 아름다움을 유지한 채로,한점의 흐림
없이.
아마도 후자.
이 젊음이 마스터로 선택받은 이상.
말이 이어진다.
그의 시선을 받아 들이면서.
말은 이어진다.
약점──일반적인 마술사라면, 가계 그 자체. 가족. 자녀.
이젠 입을 열 수 밖에 없다.
마스터
하지만 그건, 자신이, 주인인 마술사에게 전략,
전술적 의견을 얘기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마나카」
참을 수 없을 뿐이다.
소녀가, 가리지 않고 자랑하며 순응하는 모습에
성배전쟁에. 살인에.
6 인 6 기를 모두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생각은 없
어,
라고 이미 생각하는 것을.
「나의……」
「그래, 당신이 다칠 필요는 없어.
서번트와의 전투에서, 1 계위인 당신이 질 리는 없지만,
그래도 싸우다 다치기라도 한다면」
짧은 말.
여기에 담긴 의미를 그는 간신히 느꼈다.
서번트들이 본격적으로 부딪치는 전투가 진행된다면
이 령주에 담긴 방대한 마력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국면이
뒤따른다는 것도,
분명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이 소녀는 피하려하고 있어?
어째서──라고 눈길로 묻자, 소녀는 점점 표정을 바꾼다.
◀━ ▶
령주.
천사의 계제
그것은,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말살하는 궁극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열쇠.
◀━ ▶
「효율이라고, 네가 말했어」
재차 그가 말했다.
기억은 정확했다.
어제, 소녀와 그녀의 아버지인 마술사에게 들었던 현시점에
서
예상한 다른 마스터의 정보는 그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상냥하네, 세이버」
「마나카」
「응」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는 또 그에게 미소를 보인다.
「어째서?」
목소리, 말.
그건 커다란 충격과 함께 그의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다.
전쟁터에서 휘둘러진, 강철로 만들어진 큰 망치로 일격,
하늘을 찢고 땅을 꿰뚫는, 난폭한 용의 발톱과 송곳니.
그것들조차 통하지 않으리라 생각된, 그것은 말과 표정이라
는 칼이었다.
소녀 사진이 그걸 칼이라고 느끼지 않고 있는게, 깊이, 그의
가슴 사이를 뚫었다.
「예를 들어」
생각해낸다 말을.
아직이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왜 그런말을 하는거야?」
──미소.
──반짝이는 눈동자.
──아름다움과 함께.
「그러기 위해선」
──반짝임에 활짝 피어난 꽃, 한송이.
──단지.
빛이───
불이 꺼져 있을텐데도 이따금 눈부신 빛이 쏟아진다.
벽돌과 비슷한 콘크리트 소재로 만들어진 바닥이 저절로 깎
여져 나간다.
조금 늦게 울리는 새된 금속음.
동시에 바람,이라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흉악한 충
격이 주위에 휘몰아치고, 깊이 뿌리박힌 나무들이 꺾여 날아
간다.
초록 잎이 날아오른다. 나무껍질 파편이 사방에 튄다. 가로등
이 깨진다.
「과연 제 1 위 서번트」
목소리가, 울린다.
한쪽 그림자가 우뚝 다리를 멈췄다.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키를 충분히 뛰어넘을 길이의 거대한 금속덩어리를,
가뿐하게, 한 손으로 거머쥐고───
「글레이브(剛劍)에요.
그러면서 빠르고, 정확하고, 빈틈이 조금도 없죠.」
랜 서
창잡이가 말했다.
너무나 길고, 너무나 거대하다.
그렇다, 그것은 '창'이다.
끝 부분이 칼날처럼 폭이 넓은 형태인 금속덩어리는,
이 20 세기 현재에는 서적이나 영상과 같은 기록,
혹은 박물관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서력 이전부터 대략 근대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의 투쟁
에 있어
중요한 무구로 위치해 왔고,
많은 용사들이 목숨을 맡기고 목숨을 빼앗아 온 무기다.
손잡이가 긴 칼. 전장의 꽃. 그게 바로 '창'.
「꽤나...」
기이한 광경이었다.
이케부쿠로 최대의 초고층 빌딩인 선샤인 60 옆에서.
바로 지금도 이따금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가는 수도 고속도로
의 고가도로 위에서.
철갑옷을 몸에 두른 여자가 그렇게도 길고 거대한 '창'을 손
에.
◈ ◈
과연 그렇군, 창인가.
이 정도로 훌륭한 창을 보게 될 줄이야.
영령 7 기가 모여 치뤄지는 성배전쟁이 어떠한 것인가
서번트에게는 필요한 전제지식이 성배에 의해 자동적으로
부여된다.
마술사들의 마력 충돌, 서번트 끼리의 거대한 힘의 충돌,
영웅담에 나오는 기적과 절기(絶技)의 구현.
그것은 물리법칙조차 비틀어버리는 경탄의 경지,
세계에 있어 일종의 유린이자 신화의 재연(再演)이기도 하
다. 라고 했나.
「과연」
싸우기 위해.
칼날을 맞대기 위해.
눈 앞에 버티고 선 창을 든 적을 상대하기 위해.
약 240 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초고층 빌딩 아래.
완만한 계단이 몇 개 겹쳐져 실로 발디디기 힘든,
어떻게 보기엔 중간 규모의 공원 같아 보이는 가짜 벽돌 만들
어진 광장 한가운데서.
계단 몇 개 위에 서서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는 적과 대치한
다.
긴 머리칼은 전장에선 방해만 되기 마련인데, 자신감과 실력
의 표출인 듯하다.
여자 창잡이.
수행시절 친구 중에서 여자 창병이 한 명있었지만 전혀 싸우
는 방식이 다르다.
갑옷 차림도 그의 실제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없다.
브리튼이 아닌 이국의 영령이란 뜻이다.
「어머, 들켜버렸군요.」
보거라.
초고속으로 접근하는 랜서의 매끄러운 손끝에 금속덩어리,
거대한 창의 모습이 있는지를.
조금 전까지 가뿐이 손바닥에서 놀리고 있던 초중량의 창은
지금은 모습을 지우고 있다.
세이버와 똑같이 바람의 마.력.을 쓴 것인지, 뭔가의 마술을
쓴 것인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전설의 효과에 의한 것인지.
「곤란해요.」
「훌륭합니다.」
「──────윽!」
가로 일직선으로 베어넘긴다.
바람을 두른 검, 그 칼날은, 아까처럼 양손으로 든 것이 아닌
한 손으로 쳐올렸다.
몸을 옆으로 회전시키며 굽힌 자세로 한 손으로 날리는 일격.
불꽃이 일었다.
세이버의 시계를 불꽃이 뒤덮는다.
아랑곳없이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넣는다. 칼날을 앞으로
내민다.
적의 심장부를 꿰뚫기위해 검 끝을 밀어넣는다.
허나 손에 받는 느낌이 얕다.
확인하니 랜서의 모습은 멀찍이 떨어져있다.
칼날을 휘두른다고 닿는 거리가 아니다. 다시금 간격을 좁힐
필요가 있는 거리.
「...만만치 않으시군요」
이제서야 랜서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어디선가 꺼낸, 너무나도 마술에 쓰임 직한 작은 병이라든가.
「곤란해요.」
토시마구 이케부쿠로,
선샤인 60 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늘어 선 복합빌딩 중
한 채.
아무도 없을 옥상.
이미 심야라 하기보단 새벽이라고 하는 게 어울리는 시각.
여러 상업시설이 한 층에 한꺼번에 들어가 있는 빌딩은 각각
모든 층에 아무도 없고, 옥상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마나카」
짧게, 소녀의 이름을 부른다.
사죠우 마나카.
서번트로서의 그의 주인. 마술사.
함께 성배를 얻기 위해 성배전쟁에 도전하는 유일무이한 마
스터.
캠프 시트
마나카는 옥상 한 모퉁이에 펼쳐진 돗자리위에 다소곳이 앉
아
이쪽이 오는 것을 기다린 것 같다.
마나카의 옆에는 큰 바구니와 휴대용 보온 포트.
「무섭다니?」
「과연」
「...맛있어?」
「응.」
먹으면서 끄덕인다.
백작의 이름이 붙어있지 않았지만,
빵에 속재료를 끼워 먹는다는 습관 자체는 옛날 로마부터 있
었고,
브리튼에도 전해졌던 것이니.
세이버는 솔직하게 끄덕여 보인다.
이런 식으로 먹는 빵은 예전부터───
「좋아해.」
예전부터 좋아했다.
거짓이 없는 말이었다.
그는 왕인 것과 동시에 스스로를 당당히 기사라 자부하는 세
이버는
좀처럼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단지 사실을 말한다.
「바...방금 그건...」
「응.」
「비겁해, 세이버.」
「맞아.」
「후웅」
「당연하지.」
「응」
해결했다고?
「어떻게든 했어.」
시원스레───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꽃과 같이 반짝이는 표정으로 말한다.
순간 세이버는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는다.
「있지 세이버」
일종의 열기 같은 게 있어서───
「나 혼자서 서번트를 1 기, 어떻게든 했으니까」
「상을 줘───」
그는 어느 색깔을 떠올린다.
그것은 흰색이다.
아직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무구한 흰색. 더럽혀지지 않
은 흰색───
혹은.
세상 모든 것을 빈틈없이 칠하는, 절대적인 흰색일까.
「있지, 그거 알아? 그 소문」
「응 그거. 메리」
「그렇구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소문. 도쿄 한정. 메리. 메리?
사죠우 아야카에겐 잘 모르는 이야기다.
급식인 코페빵을 양손으로 잡고 덥석 베어 먹으며
책상을 나란히 맞붙인 같은 반 여자애 둘의 이야기를 멍하니
듣는다.
한 입. 빵을 베어 문다.
달고 쌉싸래한 마멀레이드 덕에 평소와는 맛이 다르다.
싫지 않다. 좋아하는 부류.
「이름 들었어?」
「이름?」
「메리의 이름. 아니, 메리라고 할까, 소문의 이름말이야」
「이름이라니?」
「응」
「응」
오후 11 시.
죽음의 메리.
뒤숭숭한 이야기가 들린 것 같다.
(뭘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항상 점심시간에 떠드는 두 사람.
곧 잘 TV 를 보는 듯한 애와,
역 옆에 있는 입시학원에 일주일에 세 번이나 다닌다는 애.
학교 밖에서 방과 후에 놀거나 한 일은 없으니 뭐가 됐든 정
확히 어떤지 잘 모른다.
오후 11 시의 죽음의 메리.
이어지는 말을 제대로 의식해서 들어본다.
먼저 묻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해봤자 TV 도 그다지 보지 않고
학원에 다니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순정만화 잡지를 한 달에 한 권 사 보는 정도인 자
신으로선,
또래 여자 초등학생의 잡담에는 제대로 어울릴 수 없겠다고
평소에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다.
그래서, 입은 식사하는 데만 쓰고. 우물우물.
그저, 귀만 귀울여 정보를 얻어낸다.
(응-)
그것은, 소문이었다.
어른에게 살며시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 소녀.
(여자 아이)
그것은, 밤이었다.
늦은 밤 길거리에서 소녀는 모습을 나타내고.
(밤?)
그것은, 죽음이었다.
(콧쿠리상, 이었나)
「다 죽는 거구나...」
「완전 무섭다」
저 봐, 무섭다고 말했지.
「엣, 그런 거야?」
「무서워...」
기분 나쁘다곤 생각한다.
소문의 내용은 확실히 정말 뒤숭숭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늦은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성인 남성에게 말을 걸어,
외국인 '메리'가 호텔로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소녀 메리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거울에는
영어로
반 애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아버지는, 마술사니까.
───진짜 신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니까.
괴담 따위.
진짜 환.상.종.은 그렇다 쳐도, 소문 따위에 지지 않는다.
'응'
작게 중얼거리고.
아야카는 다시 빵을 한 입 베어 문다.
상상의 짐승.
오랜 전설 안에서만 나오는 존재.
비닉하라.
은폐하라.
신비의 누설은 마술사의 금령(禁令)이기도 하다.
방과 후───
집에 도착할 즘엔 이미 해가 기울어져 있었다.
해가 이렇게 빨리 지는 건 분명 계절 탓이다.
토하는 숨결이 아침과 똑같이 하얗게 되는 것이 좋은 증거.
또렷이 눈에 보인다.
조금 춥다.
아야카는 양손에 '하아'하고 입김을 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갑을 들고 올 걸 그랬다고 생각하면서.
'그럼'
문 앞에서 멈춰 선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나름대로 큰 집으로 보인다.
가까운 곳에 사는 반 친구는 '저택'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에는 역시 와닿는 게 없지만 크기로는 다른 집보단 약간
큰 것 같기도 하다.
「어제보다 빨리 됐으려나」
중얼거리면서 문을 민다.
마치 하나의 벽처럼 꿈쩍도 안 하던 문이 스르륵 열린다.
다음은 이제 평범한 집과 똑같다.
문을 빠져나가서 제대로 닫고.
「다녀왔습니다」
작게, 중얼거린다.
이 시간에는 아버지도 언니도 거실에는 없고 대체로 들어갈
수 없는 방,
아야카가 들어가선 안 되는 방 어딘가에 뭔가를 하는 게 대부
분이라서,
말을 걸어도 얼굴을 보이는 일이 없으니 별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어서와」
무슨 냄새가 나네?
자연히 며칠 전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혹시, 하고 마
음이 조급해진다.
밀가루 굽는 구수한 이 냄새는,
아름다운 목소리.
아름다운 얼굴.
저녁인데도. 이제 어두운데도, 반짝반짝 눈부시게.
언니인 마나카가 에이프런을 두른 모습으로 웃음 짓고 있었
다.
「언니, 뭐 만들어?」
「후후. 뭘 거 같아?」
「케이크? 좋은 냄새 같아서」
「그러니?」
「응」
「브리튼?」
이미 저녁이고 아침 햇살 같은 건 없고 저녁 해도 지고 있는
데.
에이프런 차림으로 즐겁게 요리하면서 주방을 빙글빙글. 반
짝반짝.
하지만 부지런히 손은 움직이고 있고, 척척 효율 좋게, 솜씨
좋게.
케이크가 반 정도 정답이라면, 나머지 반은 뭘까?
「언니. 저기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물쭈물.
그러고 있으려니 언니가 하던 일을 계속 하면서, 한 마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이쪽을 보지 않는 언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지
만.
분명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 아까랑 똑같은 표정을 지어줬을 거다.
긴 시간 동안 보지 못했던 언니의 웃는 얼굴을 이렇게 상상할
수 있다니,
그날 아침 전까지는 생각도 못해봤다.
나는「응」하고 크게 끄덕인다.
「어, 저기...」
「베이킹 파우더말이야」
「앗, 응. 여기 있어 언니」
「으, 응」
혹시.
아니, 혹시나가 아니라 아마 맞을 거다.
접시를 꺼내는 것뿐 아니라 언니의 요리를 거드는 일 자체가
오늘 이것이 처음이다.
혼자서 오븐에 손대지 말라고 아버지가 말했지만 언니랑 같
이 있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계속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나───
처음으로 언니를 거들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괜히 긴장이 된다.
왜냐면 언니에겐 분명 도움 따윈 필요 없을 테니까.
「으응」
어물어물거리고 있다.
나, 엄청 어물어물거리고 있다.
하지만 마나카 언니는 슬쩍 쳐다봤을 뿐 딱히 화내지는 않았
다.
얼굴은 역시 볼 수 없었지만 웃는 소리는 들려왔다.
「자, 달걀」
「고마워. 제대로 가져왔구나, 잘했어」
「으, 으응」
「다른 건...」
「어, 으, 응」
Sunny side up Turnover
「서니 사이드 업? 턴오버?」
「서니가 좋아...」
「으, 응」
「시험 삼아 먹어봐」
「응」
그렇게 말하고.
다시 언니는 웃는 얼굴을 보여줬다.
반짝반짝하고 가든에 피어나는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꽃
과 같이.
환상종인 요정이 아니라, 그림책 속에 나올 것 같은 귀엽고
고상한 요정 같다.
그리고 역시, 성에 사는 공주님 같아.
「후후」
어라?
언니가 그 날 아침과 똑같지만, 약간 다른 느낌이다.
즐거운 느낌이 아니라───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기울여 언니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
봤다.
그러자 언니는 「응?」하고 시선을 돌린다.
「왜 그러니?」
「아, 저, 저기」
허둥지둥하고 만다.
들켜버린 것도, 허둥지둥.
멍하니 있다가 거드는 일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에도, 허둥
지둥.
뭐 좋은 일 있었어? 하고 묻기까지 몇 초나 걸렸다.
「응」
「응. 동물」
뭔가───
서번트.
현계한 영령들.
세이버
검의 영령
버서커
광(狂)의 영령
아처
궁(弓)의 영령
랜서
창의 영령
라이더
기(騎)의 영령
캐스터
술(術)의 영령
어새신]
영(影)의 영령
단지, 예외적으로───
오후 11 시.
도쿄도 신주쿠구, 서 신주쿠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가의 한편.
신도심 지구로 알려진 콘크리트 길가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푸른 나무들이 무성한 장소였다.
단지 그들은 사라졌다.
대신 단 하나의 사람 그림자가 있었다.
늘씬한 실루엣이었다.
밤이 가져오는 어둠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나이는 10 대 후반정도.
언뜻 보면 젊음에 찬 팽팽한 몸에만 주목할 수 있으나,
칼로 먹고 사는 사람 눈으로 본다면 의도적일 정도로 여성스
러운 육체가
전투를 위해 단련되어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겠을 것이다.
여자는 전사였다.
정확하게는 어둠 속에서 목숨을 빼앗는 일에 적합한 자였다.
달빛이 여자의 얼굴을 비춘다.
해골이 붙어있었다.
귀에서 턱, 목선은 아름답지만,
눈가와 코를 덮은 상징적인 해골 가면 때문에 정확한 얼굴은
파악할 수 없다.
목소리가 울린다.
소녀의 입술에서 나온 말이다.
여자 앞에 소녀.
바로 앞까지 아무도 없었을 텐데.
확실히 아.무.도. 없.었.을. 공간에 소녀는 모습을 나타냈다.
「뭔가, 할 말은 있어?」
「아뇨, 없습니다」
「말해 봐」
「응~?」
「마나카 님」
「괜찮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캐스터가 만든 '진지'는 강력하지. 마스터가 있는 곳까지 가
는 건」
소녀는 엷게 웃으며
「당신에겐 역부족이구나.
당신, 예쁘게 생겼지만, 정면돌파는 좀 어려운가 봐. 그것보
다」
질투는 하지 않는다.
여자는 단지,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으로,
이 하늘의 음성도 이러랴싶은 울림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 자
신에게 과한 명예니까.
「...맞아. 스콘을 만들었어.
이번엔 잘 구워진 것 같지만, 그는 잔뜩 먹어주면서 맛에 대
한 감상은 적어.
맛있어, 좋아해, 그것밖에 없어. 기쁘긴 하지만, 기쁘긴 하
지만, 그건」
원패턴
「변화가 없다는 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무슨 말을 해도 나는 기쁘지만」
「네」
「네」
본질적으로는 변한 게 없다.
상대가 누구든, 이를테면 인형이 상대라도 상관없는 행위.
그저,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있을 뿐.
그래도───
립스틱이었다.
이미 전부 다 써버린 진.홍.색. 립.스.틱.
단지, 예외적으로───
인간의 영혼.
이것을 '섭취'하는 것으로 마력을 보충하는 게 가능한 것이
다.
명심하라.
립스틱을 건네받고.
소녀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받드는 여자에게 웃어 보인다.
「잘했어, 잘했어」
「훌륭해 당신」
「당신에겐 기대하겠어」
소녀는 웃는다.
별빛과 달빛을 쬐며.
반짝임, 눈부심, 그 자체로─
───똑, 똑, 똑.
───기울어진 물뿌리개에서 물방울 몇이 떨어져 내린다.
손에 있던 무게가 쑥 빠져나간다.
초목이 울창하게 들어선 가든의 근원이 되는 토지에 물이 스
며든다.
사죠우 아야카는 손 주변과 지면을 바라보며 작게 숨을 토한
다.
하얀 숨결. 이미 해는 중천에 떴는데도 공기는 차가웠다.
옆쪽 유리벽에서 내리쬐는 햇빛도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
오늘은 조금 시간이 느리다.
오늘도, 느리다.
「공부……」
마술 공부. 해 두는 게 좋을까.
그래, 어렴풋이 생각한다.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해야 하는 것은 몇 개 정도 있는데, 전부 공부다.
마술 공부, 학교 공부.
전부 다 필요한 것이라고 아버지는 평소부터 말씀하셨고,
아야카도 그럴 것이라고 막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술사 집안이니 마술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
현대의 인간이니 학교 공부를 하는 것도 당연.
어느 쪽도 필요. 어느 쪽도 당연.
이를테면 선생님이 안 계시더라도.
「……」
「안 돼.」
작게 중얼거린다.
「먹이, 아까 줬잖아.」
「어휴.」
그런 실패는 두 번 다시 안 한다.
어제, 가든에 무성한 푸른 나무들과 꽃에 물을 주면서
속이 점점 가벼워지는 물뿌리개를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있다
가
무게 밸런스가 변하는 걸 깨닫지 못하고 깜빡 손을 놓아버렸
다.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요령이 좋은 편은 아니다───라기 보단, 설마 싶을 때는 예
감이 적중한다.
분명 나는 손재주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제는 정말 부주의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실패하지 않을 거다.
손재주가 있든 없든,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한다.
「응.」
「오늘도, 없는 걸까.」
중얼거리는 목소리.
물뿌리개에 채워져 가는 물 소리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작
게.
「아버지.」
아침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도 마찬가지다.
「언니.」
중요한 의식.
아버지도, 언니도, 그것에 참가하고 있다.
나도 뭔가 돕는 편이 좋을까? 하고 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저
었다.
너는 의식과 상관없지만 당분간 학교는 쉬어라.
그렇게 말하고───
「쉬는 거, 언제까지지……」
어제, 오늘.
이틀 연속으로 초등학교를 쉬고 있다.
줄곧, 집 안에서.
절대로 저택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고 지시받았으니까.
왜냐고 이유를 물으니, 상정된 것보다 전.황.이 혼돈스럽다,
어떻게 된 일일까?
잘 알 수 없다. 물어보려고 해도 아버지가 없다.
아침 일과 시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제도, 오늘도.
아침 식사는 냉장고에 준비해 놓은 것을,
점심과 저녁은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라는
메모가
식당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점심, 먹고 나서」
「뭐 하지? TV 나 볼까……」
중요한 의식.
마술사의 대원.
성배전쟁.
자세한 것은 모르고, 알 수 없다.
하지만 조금쯤 아야카에게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몇 가지───
이를테면, 언니.
마나카 언니.
예전부터 훨씬 반짝반짝하고, 아름다워졌다.
이를테면, 부친.
아버지.
언니가 바뀐 것과는 달리 조금 무.서.워.졌다.
성배전쟁.
그것은 서로 죽고 죽이는 행위.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미끼를 사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말라.
도쿄도 세이부, 오
쿠타마산속.
등산로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들 틈 사이로,
누구의 눈에도 닿을 일 없는 사투가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화살이다.
그가 손에 쥔 불가시의 검처럼 현대에선 거의 사용되는 일이
없는 무기.
적대하는 타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인간이 다루는 도구의
하나.
활의 현을 팽팽히 당기고, 시위에 메긴 화살을 놓아,
원거리에 있는 목표를 꿰어, 죽인다.
조금 전 마나카의 말.
산속으로 발을 딛기 직전.
자신의 마스터인 소녀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표정이 어두워
진다.
보옥과 같은 투명한 창은의 눈동자가 젖고, 아름다운 얼굴에
슬픈 기색이 비치며.
당초의 「당신이 다치지 않도록」이란 말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깊게, 소녀는 한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이버가 신경 쓸 것은 아니다.
검을 쥔다. 한쪽 손.
다가오는 적을 양단하기 위함이 아닌,
날아오는 화살을 떨어트리기 위해 휘두르는 검이라면,
한쪽 손, 오른손으로 검을 쥐는 것이 알맞다.
불의의 사태에 대비해 왼손은 자유롭게 놔둬야하겠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서번트 특유의 기척은 지금도 산속에 농후하게 떠돌고 있다.
방심하지 않고, 자세를 유지한 채 기다린다.
그러자───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재미있군.」
소녀 한 명이 보인다.
사랑스럽다고도,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콧노래를 부른다.
소풍 온 일.반.인.일까.
이런 추운, 숨결이 하얗게 변하는 계절에?
외견은 마술사를 상대로는 어떤 판단기준도 되지 않는다는
건 안다.
「찾았다.」
보고 있었다.
소녀는, 확실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설마하는 생각이 조금씩 뇌리에 떠오른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무엇에 대해?
그───
서번트를 말하는 것인가.
소풍.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치만……」
눈동자 깊은 곳에───
뭔가가 보이고───
「아야카. 여기 있었구나.」
「그렇구나……」
「공부는 하고 있느냐?」
(들킬까?)
「그렇군.」
짧게 끄덕였을 뿐.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응.」
「죄송해요. 먹는 걸 잊고 있어서……」
「너는 식탁 쪽을 준비하거라.」
「어?」
「네, 네.」
「언니는?」
한 입 먹고 한 입 마시면서.
작은 목소리로 슬쩍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식당은 여전히 조
용하다.
시선을 그라탕에서 올려보니 아버지는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면 하지 않을 표정을 얼굴에 띄우고 아버지는 이쪽을
보고 있다.
「아버지?」
뭘까.
이버지의 이런 얼굴, 본 적이 없다.
눈동자 깊은 곳에 뭔가가, 어떤 다른 사람이 있는 듯한 꺼림
칙한 느낌.
「아야카는……」
「응.」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누구?
어째서 안쪽 방에 있는 거야?
아버지와 언니는 그 사람과 만나고 있는 거야?
「언니는 잘있을까?」
문득 입에서 튀어나온 말.
자연히 흘러나온 말이 아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꺼낸 말.
아버지의 얼굴에 붙어있는 무언가를 떼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라탕에 시선을 돌리는 척하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살핀다.
표정. 눈 깊은 곳의 느낌. 실패, 이상한 느낌 그대로다.
「그, 그렇구나.」
「문제 따위는……」
───정말로, 불쾌했으니까.
아버지에 대해선, 좋아한다.
정말 좋다.
아버지도 분명 날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생각한다.
지금도 아버지를 좋아한다.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을 뿐.
그뿐.
응, 그뿐이다.
아버지는 여느 때의 얼굴로.
고요한 목소리로.
뭘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뭔데? 하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식당을 나갔다.
같이 복도를 걷는다.
어라. 어라?
이런 식으로 아버지랑 손을 잡는 건 엄청 드문 일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렇게 한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초등학교에 올라간 이후론 기억에 없다.
「만일에 하나?」
「?」
잘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렇,구나.」
「그래. 널. 위.해.서.」
「뭐……?」
「언니,는……?」
엄마도?
알고 있다니, 무엇을?
「그러니까 아야카.」
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이건 네 거다.」
그렇게───
가든에 대한 것.
엄마에 대한 것.
그리고, 나.에. 대.한. 것.
응, 하고 나는 몇 번이고 끄덕였지만, 하는 말의 뜻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알게 됐어.
아버지는, 조금 무서워진 아버지는, 그래도───
「■■■■■■■■───!!」
광전사[버서커]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향해 울부짖는다.
요새와 같이 견고한 마술 정원 한가운데서.
화살은 놓여났다.
동전은 이미 던져졌다.
대성배.
원망기는 무자비하게 가동을 계속하고 있다.
수많은 비극을 회전시키면서.
───약속된 때는 가깝다.
───성배전쟁은, 격렬함을 더하며, 도쿄의 밤을 짓밟고 있다.
그것은, 기억.
「그럼, 다녀올게.」
언니───사죠우 마나카.
이렇게 복도를 통해 현관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
렇다. 뭔가가 다르다.
창문에서 내리쬐는 아침 햇살은 반짝반짝하는 반짝임을 언
니의 전신에 흩뿌린다.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이나 요정, 그 이상으로 고귀한 무.
언.가.라도 되는 듯이.
초등학교로 올라가기 전 아버지가 몇 번정도 읽어준 적도 있
었던 그림책 속에서도,
이렇게나 눈부신 사람은 없었고,
혼자서 몇 번이나 봤던 외국에서 만든 만화 영화 속에서도 없
었다.
될 수 없다.
그것은 이제, 어쩔 도리가 없이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쪽이 어떻게 된 거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도 생각하거나 하지 않는다.
「마나카, 언니……」
「언니, 가는 거야……?」
「후후. 왜 그래?」
「……쓸쓸하지 않아.」
「거짓말 하면 싫어.」
「쓸쓸해.」
「잘했어, 잘했어.」
「너도 알게 될 날이 올까.」
───반짝반짝, 빛나며.
「사랑한다는 것.」
사랑이라는 것. 그리는 것.
그것은 단어로는 알고 있어도, 실감한 적은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언니.」
「죽지는, 않겠지?」
우물쭈물 말을 올린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채로 고개를 들지 않
고,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않고.
「그래도, 응. 그렇지.」
───신비를 입은 듯한 목소리.
「그렇게 잘 따라준다면」
마지막까지.
사죠우 아야카는 알 수 없었다.
성배전쟁.
그 종막에 대해서.
패퇴───
대부분의 경우는 마술사의 절명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항목에 기재한대로다.
권리의 파기.
이것은 성당교회에서 파견된 감독관에게 선언하는 것으로
성립된다.
별도의 항목에 기재한대로다.
허나───
그것은, 기억.
마지막───?
아니, 틀리다.
그건 단지 일시적인 이별.
진짜 마.지.막은 그 후에 찾아왔으니까.
지금으로썬 단편적으로 밖에 생각해낼 수 없는, 생각해내고
싶지도 않은 기억 중 하나.
입체마법진.
대.성.배에 흔들거리는 까만 무언가.
죽 늘어선 제물.
차례로 떨어져가는, 무수한 소녀들.
평범하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이 소비되어가는 생명. 생명.
생명.
누군가가 웃는 목소리.
누군가가───
아마, 그래, 그건, 아버지가 웃고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
다..
「───어떻게 된 거냐.」
「너를 고른 내가 잘못이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깨달은 것은, 얼굴에 뭔가가 튄 것을 느낀 뒤였으니까.
그렇다, 나는, 감았던 눈꺼풀을 열고.
그리고, 봤다.
보고 말았다.
언니가, 나를 감싸듯이───
지켜려는 듯이 버티고 선 모습을.
「언니.」
피───
언니의───
닫힌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창문 바로 앞에 있는 나뭇가지에 앉아 시간을 고하는 작은 새
들의 목소리.
아침의 기척. 밤의 어둠과 차가움은 거짓말 같이 어딘가로 사
라지고, 자기 직전까지는 ‘내일’이었던 날이, 「오늘」의 형태를
띠고 다가온다.
「……으응.」
(아침이구나.)
그래도 추운 건 춥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다시 자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어떻게든 참는다.
디지털 시계를 눈앞에 가져온다.
일상생활을 평범하게 보냈다면 안경 같은 게 없어도 상관없
을테지만,
요 8 년 사이 나름대로 눈이 나빠져버려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주변에 있는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근
시니까.
[1999]
오전 5 시 59 분.
이를테면 부활동 아침 훈련이라도 있는 동급생이라면 희한
할 것도 없는 시간.
「딱 맞췄네.」
중얼거리면서 알람기능의 스위치를 끈다.
알람을 설정한 시각은 오전 6 시 정각.
그러니까, 딱 맞다.
빨리 침대에서 나가야 한다.
「햐.」
의식이 확실해졌다.
자기 것인 수건으로 얼굴을 물기를 닦고
머리를 고정했던 핀을 빼고 안경을 다시 쓴다───
문득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받침대.
「……나중에 버려야겠네.」
「평범한 얼굴.」
말이 자연스레 흘러 나왔다.
안경을 쓴 여자 애. 어디에도 있을 거 같은, 눈에 띄지 않는 애
가 그곳에 있었다.
유일하게 그 사람과 닮았을지도 모르는,
빛을 받아 반짝일 투명한 눈동자도, 안경 렌즈에 겹쳐 매력적
으로는 비치지 않는다.
그가 많이 먹는 건 별로 상관없지만,
이쪽도 당연히 같은 양을 먹으리라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어제 붙인 반창고가 감긴 손끝으로 냉장고에서 야채를 몇 개
꺼내서,
식칼을 쥐고, 먼저 토마토 부터. 통통 썰기 시작한다.
갑자기, 목소리───
이제와서 놀라고 싶지 않은데도, 왓, 하고 목소리가 나와버린
다. 놀랐다.
시선을 향하니 그곳에, 그.의 모습이 있었다.
「놀라게 하지 좀 마, 세이버.」
「미안해, 아야카.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네가 집중하고
있길래.」
「……보통입니다.」
고기. 고기───
고기, 생물의 육체로 느껴지는 것은 안 된다. 서툴다. 피도 그
렇다. 그래서 소시지다.
육체로 느껴지지 않고, 피도 없는, 기성품.
이런 식의 가공식품이 아니면 육류는 다룰 수 없다.
흑마술사 실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왼쪽 손가락에 감긴 반창고가 좋은 증거다.
아야카는 한심하다곤 생각하면서도, 이것만은 어쩔 수 없다
고 생각한다.
「맛있겠는걸.」
「잘라서, 구운 것뿐인걸요.」
「……」
「……고마워.」
일단은 고맙다는 말을 해 둔다.
대답을 듣지 않고 테이블로 와서, 잘 먹겠습니다,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아야카 옆에 그가 시원스런 목소리로 '잘 먹
겠습니다.'라 말하고.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우선 토마토를 한입 입에 넣고 나서 달걀프라이를───
아아. 또다. 의식 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야카는 속으로 한숨을 쉰다.
뭘? 이란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최우수 서번트일 터인 그는,
아야카가 말로 하지 않는 것까지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마스터와 마력적인 연결이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닌, 그저 그는
감이 좋다.
금방 무언가를 헤아리는 것이다.
지금도 절대로, 무엇에 사과하는 것인지 그는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이다.
시선을 그에게 향하지 않고, 아야카는 끄덕인다.
(좋아하는구나.)
「……저기, 세이버.」
「왜?」
「당신, 언니의 서번트였지? 8 년 전 성배전쟁에서.」
순수한 호기심.
아마, 그런 거라고 아야카는 스스로 생각한다.
아무 말 없이 식사를 계속하는 것이 싫었다든가,
성배전쟁에 대한 정보는 조금이라도 많이 들어두는 편이 좋
을 거라든가,
몇 개의 이유는 떠오른다.
「?」
말에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만다.
그가 끄덕여 보인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사람. 아니, 영령.
최하위인 제 7 위·권천사의 마스터인 자신의 곁에서,
이 성배전쟁을 함께 싸우리라 맹세했던, 제 1 위의 서번트.
웃는 모습은 마치 그림에 그려진 영웅처럼 잘생겼다.
그리고 발랄한 정기가 넘치는───
(어라?)
여느 때의 그의 얼굴.
그럴 것인데, 지금, 아주 한순간.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미안해 보이는, 거북한듯 한 묘한 표
정이었다.
확실히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세이버?」
언니──────
마나카 언니.
이를테면, 그래.
나는, 언니를 계속──────
「언니 말이야?」
나는───
「나는……」
계속───
거짓말이 아니야.
거짓말이 아니야.
정말로.
「좋아했어.」
한 번 더, 말하고.
나는 웃어 보인다.
어색한 얼굴로 보이지 않았기를 빌면서.
그리고───
그리고, 소녀는 가든에 이른다.
아침 햇살을 한가득 끌어들인 유리로 만든 천장과 벽.
빛 속에서, 발치에 무리 지어오는 비둘기떼를 바라보며, 자신
의 손가락에 감긴 반창고의 존재를 의식하며, 한 마리를 살짝
안아든다.
언니의 기억.
아버지의 기억.
몇 가지를 소녀는 생각한다.
단편적으로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일.
기억에 없는, 어머니의 일.
「……아야카.」
안아 올린 비둘기를, 살짝 내려 놓고.
창은의 눈동자를 한 그를 향해, 소녀는 똑바로 끄덕인다.
「응. 갈게.」
───그리고, 걷기 시작한다.
───1999 년. 다시금 이 도쿄에서 행해지는 제 2 의 성배전
쟁으로.
(제 1 부 'Little Lady'·끝)
(제 2 부 'Best Friend'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