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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소나타

스트린드베리 작

등장인물

노인: 허멜

학생: 아르겐 홀츠

우유배달소녀: 유령

관리인

관리인의 처

상복의여인: 관리인의 처와 망자 사이에서 난 딸.

대령

미이라: 대령의 처

여자: 대령의 딸, 실제로는 노인의 딸

귀족: 스칸스코리 남작. 상복의 여인의 약혼자

요한손: 노인의 하인

벵크손: 대령의 하인

피앙세: 백발의 노파. 한 때 노인의 약혼자. 쿡. 하녀. 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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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장

집 밖, 현대식 가옥 정면의 귀퉁이. 위로는 아래층, 전면으로는 거리가 보인다. 아래층 끝은


우측으로 원형의 방과 연결되고 그방 위쪽으로 일층에는 발코니가 있고 거기에 깃대가 세워
져 있다. 원형의 방 창문은 이 집 전면의 거리로 향해있고 귀퉁이로 가면 뒤쪽으로 뚫려있
는 샛길(무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로 향해있다. 극이 시작될때 원형의 방의 블라인드는
내려져 있다. 그러나 뒤에 그것이 올려지면 방 안에 서 있는 젊은 여인의 대리석 조상이 보
인다. 그 상은 종려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난다. 원형의 방 좌측으로는
히아신드 방이 있는데 그 방 창문은 파란색, 흰색, 분홍색의 히아신드 꽃병으로 가득 채워
져 있다. 좀더 좌측으로, 뒤쪽에는 우람한 이중 현관문이 있고 그 좌우로 통에든 월계수가
있다. 문들은 활짝 열려있어 마호가니와 놋쇠로된 난간이 달린 대리석 층계가 보인다. 현관
문 좌측으로, 또 하나의 아래층 창문이 있는데 거기 창거울 (창 안쪽으로 비스듬히 걸려있
어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 걸려있다. 귀퉁이 쪽으로 원
형의 방 위쪽에 있는 발코니 난간 위에는 푸른색 이불과 두 개의 흰색 베개가 놓여있다. 그
왼쪽 창문들에는 흰 시이트가 걸려있다. (초상집을 뜻하는 것이다.) 이 집앞 맨 앞쪽에 초록
색 벤치가 하나 놓여있고 그 우측으로는 물마시는 분수, 좌측으로는 광고판이 있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다. 막이 오르면 가깝고 먼 곳이 있는 여러 교회들에서 종소리가 울려온다.
계단에 상복의 여인이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다. 관리인의 처가 현관 계단을 청소하고 나
서 문 장식들을 닦고 월계수에 물을 준다. 광고판 옆에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신문을 읽고
있다. 머리와 수염은 하얗고 안경을 쓰고 있다. 우유배달 소녀가 우측 코오너를 돌아 나온
다. 철사로 나온 바구니에 우유 통을 넣어 가지고 들고 나온다. 여름복장을 하고 있다. 갈색
구두에 검정 양말을 신고 흰 모자를 썼다. 모자를 벗어 분수대에 걸어놓고 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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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땀을 씻어내더니 손을 씻고 물을 거울삼아 머리를 매만진다. 증기선의 고동소리가 들린


다.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들려오는 무거운 오르간 소리가 이따금씩 정적을 깬다. 약간 뒤,
사방이 조용하고 우유배달 소녀가 치장을 끝냈을 때 학생이 좌측에서 들어온다. 간밤에 잠
을 못 잤고 수염이 텁수룩하다. 곧장 분수대로 간다. 말을 시작하기 전 잠시 사이가 있다.

[학생] 컵 좀 주시겠습니까? (우유배달 소녀가 컵을 자기 쪽으로 움직인다) 아직 다 쓰지


않았습니까? (우유배달 소녀, 공포에 찬 얼굴로 그를 쳐다본다.)

[노인] (혼자말로) 저 사람이 누굴 보고 이야기를 하고있지? 내 눈에는 아무도 안 보이는


데, 미친 것 아닌가? (대단한 놀라움을 안고 그들을 계속 주시한다.)

[학생] (우유배달 소녀에게) 무얼 그렇게 노려보세요? 제 얼굴이 그렇게 흉상 스러워요? 하


긴 간밤에 한숨도 못 잤죠. 물론 댁에서는 내가 밤새 노느라고 샌 줄로 생각하실 거예요
---

(여자 그대로 가만히 있다) 내가 술을 마신 걸로 생각하시죠? 술 냄새가 납니까? (여자 조


금도 변하지 않는다) 면도도 못했죠. 물좀 주세요. 뭐 공짜로 먹는 게 아닙니다. (사이) 아,
참 설명을 해 드려야 아시겠죠. 지난밤에 나는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하고 간호하느라고 꼬
박 새웠어요. 어젯밤, 그 집이 무너질 때 마침 내가 거기 있었거든요. 이제 아시겠죠. (여자
컵을 행궈 그에게 물을 떠준다) 고마워요. (여자 꼼짝않고 서있다. 천천히) 부탁이 있는데
요. 좀 들어 주시겠죠? (사이) 제 눈좀 보세요. 뻘겋죠? 열이 나서 죽겠어요. 그런데 나는
손으로 상처와 시체를 만졌기 때문에 눈에 닿으면 위험할 것 같아요. 그러니 내 손수건 좀
꺼내서--- 그건 아주 깨끗하니까요--- 물에 적셔 눈을 좀 닦아주세요. 좀 해주겠어요? 착
한 사마리아 사람이 좀 되어 주세요. 네?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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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소녀, 망설이다가 그가 시킨 대로 해준다.) 고마워요. (지갑을 꺼낸다.) (여자 거절하는


시늉을 한다.) 바보같이 굴어서 미안해요. 아직 잠이 덜 깨서--- (우유배달 소녀 사라진다.)

[노인] (학생에게) 실례하오. 그런데 지금 학생이 어젯밤 사고 현장에 있었다고 한 얘기를


들었는데--- 그 기사를 방금 읽었지.

[학생] 그게 벌써 신문에 났습니까?

[노인] 모조리 다 났더군. 학생의 초상화까지. 그런데 그 훌륭한 젊은 학생의 이름을 알아


낼 수 없는 걸 아주 안타까워 하고 있어.

[학생] 그래요? (신문을 힐끗 본다.) 네, 전 데요. 허지만 저는 절대!---

[노인] 조금 전까지 같이 얘기를 한 사람이 누구였소?

[학생] 못보셨습니까? (사이)

[노인] 이거 묻는 게 좀 실례될지 모르지만--- 학생 이름이 참 뭐요?

[학생] 왜 그러세요? 저는 세상에 선전이 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칭찬할 것이 있으면 또


으레 못 마땅한 점도 있게 마련이니까요. 요즘 보면 사람을 찾아내 못살게 구는 기술이 하
도 발달해서 말입니다.--- 게다가 저는 보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노인] 학생은 부자인 모양이군.

[학생] 아뇨. 오히려 정반대 에요. 저는 아주 가난한 사람입니다.

[노인] 그런데, 학생, 학생 목소리를 내가 전에 들어본 일이 있는 것같애. 젊었을 때 친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어떤 말을 할 때 내는 소리는 학생이 지금 내는 소리와 꼭같
았어. 그런 발음을 하는 사람은 여지껏 본 일이 없었지. 오직 그 친구와 학생 뿐이야. 혹시
상인이었던 아르겐홀츠씨와 무슨 관계가 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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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제 아버님이십니다.
[노인] 운명이란 참 묘하기도 하군. 그러니까 내가 학생을 처음 본 것은 학생이 간난 애기
때였어.

[학생] 그랬습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제 집은 파산하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노인] 그래 맞아.

[학생]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노인] 나는 허멜이요.

[학생] 그럼 노인께서?--- 기억에---

[노인] 집에서 내 이름을 이따금 들어본 일이 있소?

[학생] 네.

[노인] 그리고 내 이름을 말할 때는 일종의 증오심을 가지고 했겠지? (학생 잠자코 있다)
그랬을 거야. 상상할 수 있어, 학생은 아마 내가 학생 아버지를 파멸시킨 장본인이라고 들
었을 거요, 그렇지? 어리석은 투기를 해서 망한 사람은 모두가 누굴 속이지 못해 그 사람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사이) 사실은 말일세, 자네 아버님은 내게서 나의 전재
산인 일만 칠천 크라운을 빼앗아 갔다네.

[학생] 그것 참 이상하군요. 어떻게 같은 얘기가 그처럼 전혀 다른 얘기가 될 수 있습니까?

[노인] 학생은 내가 진심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지 않는군?

[학생] 제가 어느 쪽을 믿어야 됩니까? 제 아버님은 거짓말을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노인] 그건 사실이야.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는 없으니까. 그런데 나도 역시 아버지거든. 그


러나---

[학생] 무슨 말씀을 하려고 그러세요?

[노인] 나는 자네 부친이 위기에 있는 것을 구해줬어. 그런데 부친은 그 대가로 나를 말할


수 없이 증오했단 말이야. 은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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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보답으로 말이야. 가족한테도 나를 욕하도록 만들었지.


[학생] 아마 도움을 주실 때 너무나 굴욕감을 느끼게끔 하셨기 때문에 은혜를 저버린 것인
지 모르겠군요.

[노인] 남의 도움이란 으레 굴욕적인 것이요.

[학생] 저한테 바라시는 게 뭡니까?

[노인] 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조그마한 수고를 몇 가지 해준다면 그 은혜의 보


답을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하겠소. 보다시피 나는 다리가 불구자요. 그렇게 된 것이 어떤
사람은 우리 부모 탓이라고도 하지. 하지만 나는 차라리 그놈의 인생, 온통 함정투성이인
인생을 나무라고 싶어. 이 구멍에 가서 거구로 박히게 마련이니까. 하여튼 나는 계단을 오
르지도 못하고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지도 못하는 형편이야.

[학생] 저보고 무엇을 해달라시는 겁니까?

[노인] 우선 이 휠체어를 좀 밀어주게, 저 연극광고를 좀보게. 오늘밤 무얼 하는지 알고 싶


네.

[학생] (휠체어를 밀면서) 시중드는 사람이 없습니까?

[노인] 있지. 하지만 심부름을 갔어. 곧 돌아올 거야. 학생은 의과 대학생이요?

[학생] 아닙니다. 이학을 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무얼 할 지는 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노인] 아하! 수학을 잘하오?

[학생] 네, 어지간히 합니다.

[노인] 그게 좋소. 아마 일거리 있으면 좋아하겠지.

[학생] 그러믄요.

[노인] 거 참 잘 됐네. (광고를 살핀다) 오늘밤에 <발퀴레>를 하는군. 그건 곧 대령이 딸을


데리고 극장엘 온다는 것을 뜻해. 그는 언제나 6열 끝자리에 앉으니까 내 학생을 그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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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앉히지. 저기 공중전화 있는 데로 가서 좌석을 예약하게, 6열 82번으로.

[학생] 저보고 대낮에 오페라 극장엘 가자는 말씀입니까?


[노인] 그렇소. 하라는 대로만 해요. 그럼 모든 것이 학생한테 잘될 테니까. 나는 자네가 행
복하고 부유하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는 걸 보구 싶어. 어젯밤 자네는 용감하게 인명을
구해줬어. 따라서 자네의 이름은 무언가 가치가 있는 이름이 될 거야.

[학생] (전화 있는 데로 가면서) 이건 참 이상한 모험이로군!

[노인] 학생, 도박을 하나?

[학생] 네, 불행히 도요.

[노인] 우린 그걸 행운으로 만들어 보세. 어서 가서 전화하게. (학생 간다. 노인 신문을 읽


는다. 상복의 여인, 보도로 나와서 관리인의 처에게 말을 한다. 노인, 듣고 있다. 그러나 객
석에서는 아무것도 듣지 못 한다. 학생 들어온다.) 예약이 됐나?

[학생] 네. 됐습니다.

[노인] 저 집을 보았지?

[학생] 네,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어제, 햇빛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는 저 집 앞


을 지나면서 저는 저 집안에 있을 모든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래, 같
이 가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죠. [저 위층에서 젊고 아름다운 아내와 두명의 귀여운 아이
들과 함께 일년에 2만 크라운의 수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게.] 하고요.

[노인] 자네도 그렇게 애기했군. 그렇게 애기했어. 그래, 그래! 나 역시 이 집을 매우 좋아


해.

[학생] 가옥에 손을 대고 계십니까?

[노인] 음--- 그래. 하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식은 아니야.

[학생] 이 집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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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모조리 다 알고 있지. 우리 나이 또래에는 서로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양친과


조부모 까지도 말이야.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다 얽히고 설히게 마련이지. 내 나이 지금 꼭
팔십인데 그러나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나는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 흥미가 많아. (평복 차림의 대령이 보인다. 창밖에 있는 한 관계를 보고는
다시 방으로 되돌아가 대리석 조상 앞에 선다.) 보게, 자 사람이 대령일세. 자네가 이따 옆
에 않게 될 사람이야.
[학생] 저분이--- 대령입니까? 전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모든 동화책을
읽는 것 같은데요.

[노인] 내 인생이 말하자면 온통 동화책 같다 할 수 있네. 그리고 얘기는 서로 다르지만 그


게 다 한 가락의 실에 꿰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주체는 항상 반복되고 있지.

[학생] 저 대리석 조상은 누구 것입니까?

[노인] 그야 물론 그의 부인 거지.

[학생] 부인이 그렇게 훌륭한 분이 었나요?

[노인] 어--- 그랬지.

[힉생] 자세한 이야기를 좀 해 주세요.

[노인] 우리가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세. 젊은이 가령 내가 이런 얘기를 한


다면 자네는 나를 미쳤다고 할거야. 하지만 실은 부인은 남편을 버리고 갔었고 남편은 부인
을 때렸고 부인은 다시 돌아와 그와 재혼을 했네. 그리고 이제는 저 방안에 미이라처럼 앉
아서 자기자신의 조상을 숭배나 하고있지.

[학생] 이해가 안되는 군요.

[노인] 그럴 거야. 그런데 저기 히아신드가 있는 창이 있지. 그 방에 대령의 딸이 살고있네.


지금은 말을타러밖에 나가고 없지만 곧 돌아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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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그럼 저기 관리인과 얘기하고 있는 상복의 여인은 누굽니까?

[노인] 그 얘긴 좀 복잡하지. 하지만 저 위 흰 시이트가 보이는 방에 있는 죽은 자와 관계


가 있어.

[학생] 그럼 그는 누구인데요.

[노인] 자네나 나와 똑같은 인간이지. 그러나 그에겐 아주 유다른 점이 있는데 그건 그의


허영심이야. 만약 자네가 주일 아이 였다면 지금 그가 저 문을 나와서 반만 게양된 영사기
를 쳐다보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거야. 그는 영사 였었지. 그리고 왕족 또는 귀족의 보관과
사자, 깃달린 모자와 여러 가지 색깔의 리본을 미치게 좋아했었지.

[학생] 주일 아이라고 하셨죠? 제가 주일에 태어났는데요.


[노인] 그래? 그게 정말인가? 하긴 나도 그걸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자네 눈빛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럼 자네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수 있겠군. 그런 줄을
알고 있었나?

[학생] 남들이 보는 것이 무언지를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때 보면--- 아! 이런 건 얘


기해서 안되는 건데!

[노인] 나는 벌써 그걸 거의 확신하고 있었던 건네. 하지만 나한테는 얘기해도 돼. 나는 그


런 일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학생] 이를테면 어제 말입니다--- 저는 나중에 집이 무너진 그 잘 알지 못하는 길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전에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죠. 그
때 벽에 금이 간 것으로 보았습니다. --- 그리고 마루가 딱 딱 부러져 나가는 소리를 들었
죠. --- 그런데 그때 그 벽밑을 지나는 어린애가 있길래 달려가서 채어가지고 나왔어요.
그리고 바로 집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구조가 되었지만 어린애를 안고 있었다고 생각되던
제 두팔에는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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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습니다.

[노인] 그래, 그래 내가 생각한 꼭 그대로야. 그런데 말이야. 애기좀 해 보게. 조금 아까 분


수대 옆에서 왜 그런 식으로 몸짓을 하고있었나? 그리고 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나?

[학생] 제가 우유배달 소녀와 애기를 하고 있던 것을 못 보셨습니까?

[노인] (공포물에 질려) 우유배달 소녀?

[학생] 정말? 오, 그게 그렇게 됐었군. 아, 내가 투시력이 없었어.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지. (피앙세가 창거울이 붙어있는 창 옆에 앉은 것이 보인다) 저 창옆에 있는 노부
인을 보게. 본 일이 있냐? 저 여자는 한때 내 피앙세 였었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이야.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지. 놀라지 말게. 그 부인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네. 우리는 서로
매일 보고 있지만. 그런데도 내겐 아무느낌도 없어. 한때는 서로 영원히, 영원히 사랑을 맹
세한 사이 였는데도 말이야.

[학생] 세상에, 무슨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요세 여자들에게 절대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노인] 용서하게 젊은이. 우리에겐 고작 한다는 게 그것뿐이었어. 그렇지만 저 노부인이 옛


날에는 젊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자네 눈으로도 보아서 알 수 있겠나?
[학생] 잘 보이질 않는군요. 하지만 용모에 어딘가 매력이 있습니다. 부인의 눈을 볼 수가
없군요. (관리인의 처가 잘게 썬 전나무 가지가 든 바구니를 들고 나온다)

[노인] 아, 저기 관리인의 처가 나오는군! 상복의 여인은 바로 저 여자와 망자 사이에서 난


딸이야. 그 때문에 저 여자 남편이 관리인 직을 얻게 되었지. 그러나 저 상복의 여인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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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유산을 가지고 있는 귀족의 구혼자가 있어. 지금 그는 현재의 부인과 이혼 수속 중


일세. 그녀는 그를 떼어버리고 위해서 그에게 석조저택을 선사하고 있고 구혼자인 이 귀족
은 실은 망자의 사이란 말일세. 저 위층 발코니에 그의 침구를 말리고 있는 것이 보이지.
참 복잡한 관계라 하겠어.

[학생] 그거 정말 되게 복잡하군요.

[노인] 그래.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다그래.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

[학생] 그럼 그 망자란 분은 누굽니까?

[노인] 좀 전에도 묻지 않았나, 그래 내 대답해주지. 저 모퉁이를, 상인 출입문이 있는 모퉁


이를 돌아가 보세. 옛날에 그가 늘 도와주던 가난한 사람들이 상당한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걸세.

[학생] 그분은 인정이 있으신 분이었군요. 그럼.

[노인] 그래, 경우에 따라.

[학생] 항상 그런 게 아니구요?

[노인] 그으럼, 사람이란 으레 그런 걸세. 자, 이 의자를 좀 밀어주게. 저 햇빛이 있는 데


로. 나는 지금 굉장이 추워. 사람이 움직이지를 못하면 피가 굳어버린단 말이야. 나는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아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네. 그러나 먼저 해야할 일이 두 서너가지 있어.
이손을 좀 만져보게, 얼마나 찬가.

[학생] (손을 잡으며) 그렇군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찬데요. (자기 손을 뺄려고 애쓰면서


뒤로 움찔 물러서지만 뺄 수 없다)

[노인] 나를 버리고 가지 말아주게. 나는 이제 지치고 외로운 몸이야. 그렇지만 항상 이랬


던 것은 아닐세. 내가 살아온 인생은 엄청나게 긴 인생이었네. 엄청나게 길고 말고. 그동안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또 많은 사람이나를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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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만들어 주었지. 그걸로 피차 상쇄가 되지만--- 그러나 죽기전에 자네가 행복해 지는


것을 나는 꼭 보고싶어. 자네와 나의 운명은 자네의 부친과 그밖의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서 서로 얽혀버린 거야.

[학생] 이 손을 놓아주세요. 저의 모든 힘을 뺏아가는 것 같군요. 제몸도 얼어오는데요. 저


한테 바라시는 게 뭐예요?

[노인] (손을 놓아주며) 가만히 침착하게 기다려보게. 그럼 다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될 테니


까. 여기 아가씨가 오는군. (객석에서는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은 여자가 다가오는 것
을 쳐다보고 있다)

[학생] 대령의 따님입니까?

[노인] 그의 딸이지. 그녀를 잘 보게. 저런 걸작품을 본 일이 있나?

[학생] 마치 저기 있는 대리석 조상 같군요.

[노인] 그건 그녀의 어머니지.

[학생] 말씀대로 그렇군요. 여자의 몸에서 난 여자로 저런 여인은 평생 처음 보겠어요. 저


여자와 결혼을 하는 남자는 정말 축복 받을 남자겠어요.

[노인] 자네는 그것을 볼 줄 아는군. 그녀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다 알아보는 게 아니야.


(여자가 영국식 부인 승마복을 입고 들어온다. 주위에 있는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천천히 문쪽으로 걸어간다. 문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관리인의 처에게 몇마디 말을 건네고는
집안으로 들어간다. 학생이 한 손으로 눈을 가린다)

[노인] 자네 우나?

[학생] 아무 희망도, 없는 데야 절망밖에 뭐가 또 있겠습니까?

[노인] 내뜻을 펼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만 찾을 수 있다면 내가 문과 마음을 다 열어 줄


수 있지. 나에게 봉사하게. 그러면 힘을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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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이건 하나의 거래입니까? 저 보고 영혼을 팔라하는 겁니까?


[노인] 아무것도 팔 건 없어. 이보게 학생, 나는 일생동안 뺏어만 왔어. 그러나 이제 나는
주고싶어. 그런데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거든. 나는 부자야. 굉장한 부자야. 그러나 상속자
가 없어. 나를 죽도록 괴롭혀주는 아무짝에 쓸데없는 인간밖에는. 내 아들이 되어주게.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 내 재산을 물려받아 주게. 그래서 인생을 즐겨주게. 내가 적어도 멀리
서나마 바라볼 수 있도록 말야.

[학생]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노인] 우선 <발퀴레>를 가서 보아주게.

[학생] 그건 결정을 본 겁니다. 그 외에는요?

[노인] 오늘 저녁--- 저 원형의 방에 들어가 주어야만 되겠어.

[학생] 저길 어떻게 들어갑니까?

[노인] <발퀴레>를 계기로.

[학생] 노인께선 왜 저를 매게체로 선택하셨습니까? 저를 과거에 아셨던가요.

[노인] 그야 물론이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네를 눈여겨보아 왔었어. 그런데 저기 발코니를


쳐다보게. 하녀가 영사를 위해 반기를 올리고 있지. 이제는 침구를 뒤집어 널고있군. 저기
푸른색 이불이 보이지? 본래 두사람이 덮도록 되어있는 것인데 지금은 한사람이 덮어 자고
있어. (여다가 옷을 갈아입고 창문에 나타나 히아신드에 물을 주고 있다) 저기 내 귀여운
애가 나왔어. 그녀를 좀 봐, 똑똑히 보아두어! 꽃들에게 얘기 하고있지. 어때, 그녀자신이
푸른 히아신드같지않나? 히아신드에게 마실 것을 주고 있군. 그건 순수한 물이야. 그러면
꽃들은 그물을 색과 향기로 바꾸어 놓지. 지금 저기 대령이 신문을 들고 나오는군. 가옥 도
괴에 관한 기사를 보여주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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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초상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녀 역시 무관심하지 않군. 자네의 용감한 행위에 대한


글을 읽고 있어--- 구름이 끼는 모양이야. 비가 오게 되면 이거 아주 곤란 할 텐데, 요한
손이 곧 돌아오지 않는다면 말이야. (구름이 잔뜩 몰려 오고 컴컴해 진다. 창거울 앞에 있
던 피앙세가 창문을 닫는다) 지금 내 피앙세가 창문을 닫고있군. 올해 일흔 아홉이야. 저
창거울이 그녀가 사용하는 유일한 거울이지. 왜냐하면 그거울 속에서 자신을 보는 것이 아
니라 바깥 세상을 두 방향에서 볼수 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세상쪽에서는 그녀를 볼 수 있
어. 그건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지. 하여간 그녀는 아름다운 노부인이야. (이때 망자가 사
이트에 싸여서 문 밖으로 나온다)

[학생] 어이쿠, 이게 뭐야?


[노인] 무얼 보았는데?

[학생] 아니, 노인께선 보지 못 하셨단 말입니까? 저기 저 문간에 망자가 서 있지 않습니


까?

[노인] 나는 아무것도 못 봐.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 어서 말해보게.

[학생] 그가 거리로 나오고 있어요. (사이) 방금 머리를 돌려 기를 올려다보고 있군요.

[노인] 내가 뭐랬나? 다음에 그는 틀림없이 화관을 세어보고 방문객 명함을 읽어 볼 걸세.


거기에 빠진 자에게 저주가 있을진저.

[학생] 이제는 모퉁이로 돌아가는 데요.

[노인] 뒷문에 모여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세 보려고 가는 거지. 그 가난한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훈장과 같애.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축복의 인사를 받네. 그러나 나한테서
는 축복의 인사를 받지 못할 거야. 우리끼리니까 얘기지만 그는 말못할 악당이었어.

[페이지] 017

[학생] 그러나 자비로운.

[노인] 항상 자기의 웅장한 장례식만을 생각하는 자비로운 악당이었어. 죽을 때가 가까워


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는 국가를 속여 오만 크라운을 사취했어. 이제 자기의 딸이 다른
여인의 남편과 관계를 맺게 되니까 자신의 유언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거야. 지금 저 악
당은 우리의 얘기를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다 들을 수 있겠지. 뭐, 다 들어도 좋아. 아, 요
한손이 오는군. (요한손 들어온다) 보고를 하게! (요한손 말을 하나 객석에서는 들리지 않는
다) 집에 없어? 응? 이런 멍충이. 그럼 전보는? 아무것도 없어? 그래, 그래서--- 오늘 저
녁 6시에? 좋아, 특종기사로 말이지? 그의 이름을 전부내고 아르겐홀츠, 학생, 생년월일,
--- 부모--- , 응, 아주 잘 됐어--- , 비가 올 것 같은데--- 그래, 그가뭐래? 그저 그래.
그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해야만돼. 여기 귀족이 오는군. 요한손, 나를 저 모퉁이로
밀어줘. 가난한 사람들이 뭐라고들 하나 들어보게. 그리고, 아르겐홀츠, 자네는 여기서 기다
려주게. 알겠지? (요한손에게) 빨리, 빨리. (요한손, 휠 췌어를 밀어 모퉁이를 돌아간다. 학
생, 히아신드 주위의 흙을 만져주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고 있다) (귀족, 상복을 입고 들어와
서 아까부터 보도를 이리저리 걷고 있던 상복의 여인에게 말을 건다)

[귀족]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하면 좋소? 우리는 기다려 야만 되겠오.

[상복의여인] 저는 기다릴 수 없어요.


[귀족] 이쪽으로 좀 와요. 그렇다면 시골로 내려가구료.

[상복의여인] 그건 싫어요.

[귀족] 이쪽으로 좀 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얘기를 죄다 듣겠소. (광고판 있는 데로 가서


대화를 계속한다. 들리지는 않는다. 요한손, 되돌아온다)

[페이지] 018

[요한손] (학생에게) 주인 나리께서 아까 그거 잊지 말고 꼭 명심하고 있으라고 부탁하시더


군요.

[학생] (망설이면서) 이봐요--- , 먼저 꼭 얘기를 해줘요--- 댁의 주인 어른이 도대체 누


구에요?

[요한손] 꽤 여러 가지 인물이죠. 그리고 전에는 모든 인물이 다 되었죠.

[학생] 마술을 부리는 사람인가요?

[요한손] 경우에 따라서 그렇죠. 그분이 평생동안 찾고 있던 것은 주일아이라고 자기는 말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지도 몰라요.

[학생] 그분이 원하는게 뭐요? 그분 욕심이 사나운 분이죠, 그렇죠?

[요한손] 그분이 바라는 건 힘이에요. 하루종일 자신이 토르신인 것처럼 마차를 타고 돌아


다니면서 이집 저집 쳐다보다 그걸 헐어버리고 새 길을 내고 새로 시가지를 건설하기도 합
니다. 또 집안으로 침입하여 창문을 타고 기어 들어가서 인간의 운명을 망쳐놓고 적을 죽이
기도 합니다. 그리고 절대 용서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걸 상상할 수 있으시겠어요. 이 비참
한 불구자는 옛날에는 돈 후앙이었어요. 비록 늘 여자들을 잃긴 했지만 서두요.

[학생]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게소?

[요한손] 학생양반, 그는 아주 교활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여자가 싫증이 나면 여자들이 제


발로 떠나게 만들거든요. 그러나 그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간시장에 가서 사람도둑
질을 하는겁니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도둑질하고 있어요. 나도 법의 손아귀로부
터 문자그대로 도둑질당한 거나 다름 없어요. 사실은 내가 잘못을 저질렀죠. 그래요. 그리고
그걸 그가 빤히 알고 있었어요. 그이는 감옥에 쳐 넣는대신 저를 그의 종으로 삼았어요. 저
는 오로지 입에 풀칠

[페이지] 019
을 하기 위해서 종이 된 겁니다. 그게 결단코 좋은 건 아니죠.

[학생] 그런데 그분이 이집에서 하려는 일이 무어에요?

[요한손] 그 얘기는 말씀 드리지 않겠어요. 너무 너무 복잡한 얘기예요.

[학생] 이 일에서 빠져 나갔으면 더 좋겠소. (여자가 창 밖으로 팔찌를 떨어뜨린다)

[요한손] 저런! 젊은 아가씨가 팔찌를 창밖으로 떨어뜨렸군! (학생이 천천히 그쪽으로 가서


팔찌를 그쪽으로 가서 팔찌를 집어 여자에게 돌려준다. 여자 딱딱하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학생 다시 요한손한테로 간다) 아, 그래 도망치실 생각이란 말씀이군요. 그러나 그분이 일
단 자기 그물속에 잡아넣은 이상 생각처럼 그게 그렇게 쉬운일은 아닐걸요 그분은 하늘과
땅 사이 무서워 하는게 하나도 없는 분이에요. 그렇군요, 한가지는--- 한 사람만은 오히려
---

[학생] 말하지 마시오. 나도 알 것 같소.

[요한손] 그걸 어떻게 댁이 아십니까?

[학생] 짐작으로. 그 분이 두려워 하는 사람은 우유배달 소녀죠?

[요한손] 그 분은 우유 차만 보면 딴데로 고개를 돌립니다. 그것뿐 아니에요. 그 분은 자면


서도 말을해요. 전에 함부르크에 있었던 것 같드군요.

[학생] 그 분을 믿어도 괜찮겠소?

[요한손] 믿어도 됩니다. 무엇을 하던.

[학생] 저 모퉁이에서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

[요한손] 가난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죠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약간의 말을 뿌리면서 한


번에 한 개씩 돌을 뿜고 있는 겁니다. 집이 무너질 때까지요. 아시겠지만 저는 교육받은 사
람이에요. 전에 한때 챙 장사를 했었죠--- 아직도 떠나버리실 생각입니까?

[페이지] 020

[학생] 나는 배은 망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분은 전에 제 아버님을 구해주신 적이 있죠.


그런데 이제 그 대가로 저에게 조그마한 수고를 좀 해달라 하는 것 뿐이에요.

[요한손] 뭔데요?
[학생] <발퀴레>를 보러 가자는 거죠.

[요한손] 그건 제가 모를 얘기군요. 허지만 그 분은 항상 새로운 술수를 쓰는 분이에요. 저


분 좀 보세요. 지금 경찰관에게 말을 붙이고 있는걸. 저분은 언제나 경찰과 친하게 지내죠.
그들을 이용하고 그들을 연루시켜 자기 이익을 취하고 거짓된 약속과 기대로 그들을 사로
잡고 있죠. 그러면서 언제나 그들을 넘겨짚고 무얼 염탐해 내거든요. 오늘 안으로 저분은
원형의 방에 들어가 있게 될 겁니다.

[학생] 거기 들어가서 무얼 하지요? 저분과 대령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요한손] 짐작은 되지만 장담은 못 하겠어요. 댁에서 그 방에 들어가 보면 직접 아시게 되


겠죠.

[학생] 나는 절대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할 거예요.

[요한손] 그것은 댁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발퀴레>를 보러 가세요.

[학생] 그렇게 해야 되는 거요?

[요한손] 네, 그분이 그렇게 말했으면 말이죠. 저분을 보세요. 거지들이 끄는 전차를 의기


양양하게 타고 가는 걸 보세요. 저 거지들은 그들이 수고한 값으로 아무 것도 받은게 없습
니다. 그의 장례식때에 대접을 받게 될 것이란 암시 밖에는 말에요. (노인 나타난다. 그는
한명의 거지가 끄는 휠체어 위에 일어서 있다. 그 뒤로 나머지 거지들이 따르고 있다)

[노인] 찬양하라! 어제 자기의 목숨을 바쳐 수많은 생명을 구해낸 그 고귀한 청년을 찬양하
라. 아르겐홀츠 만세! (거지들은 모

[페이지] 021

자를 벗는다. 그러나 만세를 부르지는 않는다. 창가에 서있던 여자가 손수건을 흔든다. 대령
이 원형의 방의 창문에서 내다보고 있다. 노인이 창 앞에서 일어난다. 하녀가 발코니에서
기를 깃대 꼭대기까지 올린다) 시민 여러분은 손뼉을 치시오. 오늘은 주일입니다. 그러나
웅덩이에 빠진 당나귀와 밀밭의 이삭은 우리를 용서해줄 겁니다. 비록 주일 아기는 아니지
만 나는 예언의 능력과 또한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함부르크에서 있었던
일로서 그때도 오늘 처럼 주일날 아침이었습니다.

(우유배달 소녀가 들어온다. 학생과 노인 눈에만 보인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두팔을 들어


올리고 노인을 응시한다. 그러자 노인은 공포에 질려 주저 앉더니 몸을 오그리고 뒤튼다)

[노인] 요한손! 나를 데려가줘! 빨리!--- 아르겐홀츠, <발퀴레>를 잊지말게.


[학생]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요한손] 두고 봅시다. 두고 봐요.

[장] 2장

원형의 방 내부. 뒤쪽의 백자 스토오브가 있다. 그 양쪽으로 거울, 괘종시계, 가지모양의 촛


대가 있다. 스토우브 오른쪽에 홀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고 출입구 너머로 초록색과 마호가
니색의 가구가 비치된 방이 약간 보인다. 스토우브 왼쪽으로 벽과 똑같은 벽지를 바른 반침
문이 나있다. 종려나무로 둘러 싸여있는 초상에는 커어튼 시설이 되어있어 조상을 가릴때에
는 그것을 내리도록 되어있다. 왼쪽에 있는 문으로 히아신드 방과 통한다. 그 방에서 여자
가 책을 읽고 앉아 있다. 휴게실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대령의 등이 보인다. 대령의 하
인인 뱅트슨이 홀에서 들어온다.

[페이지] 022

제복을 입고 있다. 그 뒤로 요한손이 따라 들어 온다. 웨이터 복장을 하고 있다.

[벵트손] 자, 당신은 내가 코우트를 받고있는 동안 차를 대접 하시오. 전에 이런 일 해본적


있소?

[요한손] 당신도 알겠지만 사실 나는 낮에는 전차를 밀어주는 일을 하고 있소. 그러나 저녁


이 되면 웨이터가 되어 손님접대 같은일을 하지. 이 집에 들어와 보는 것은 항상 내꿈이 없
었죠. 이 집 사람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죠, 그렇죠?

[벵트손] 그--- 그래 어딘가 약간씩 정상이 아니지.

[요한손] 오늘 파티는 음악 파티요, 아니면 딴 무슨 파티요?

[벵트손] 우리들이 이름을 붙인 유령 만찬회야. 그들은 차를 마시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아.


그렇지 않으면 대령 혼자서만 모든 말을 하든가. 그리고 동시에 모두 비스킷을 아삭아삭 씹
어 먹지. 그 소리는 마치 천장에서 나는 쥐소리 같아요.

[요한손] 왜 유령 만찬회라 했죠?

[벵트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유령 같으니까, 그리고 이 모임을 20년간 계속해 오는데, 모


이는 사람이 항상 똑같은 얘기야. 아니면 아예 말을 않는단 말이야. 발각될까 겁이 나서 말
이요.

[요한손] 이 집 여주인은 여기 안 끼나요?


[벵트손] 아, 끼죠. 그러나 그분은 미쳤어. 그 분은 햇빛을 이겨 내지 못하기 때문에 반침
속에 들어가 있지. (벽지 바른 문을 가리킨다) 저 안에 들어가 앉아 있단 말이요.

[요한손] 저 안에?

[벵트손] 아까 말하지 않았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약간씩 다 정상이 아니라고.

[요한손] 그런데 그 부인은 생긴 것이 어떻게 생겼죠?

[페이지] 023

[벵트손] 미이라 같소. 한번 보고 싶소? (문을연다) 저기 있어. (대령 부인의 모습이 보인


다. 미이라같이 창백하고 오그라 들었다)

[요한손] 아이구 맙소사!

[미이라] (서투른 말로 지껄인다) 왜 문을 열어? 항상 꼭 닫아두라고 말했지 않아?

[벵트손] (오묘히 상대를 속이는 투의 소리로) 타 타 타 타. 자, 착하지. 착하게 굴어. 그러


면 근사한 걸 받지, 귀여운 앵무새야.

[미이라] (앵무새처럼) 귀여운 앵무새, 제이름. 당신 거기 있소? 끄르르르!

[벵트손] 저 부인은 자기가 앵무새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마 그게 맞는지도 몰라. (미이라


에게) 앵무새야, 지저귀어봐. (미이라 지저귄다)

[요한손] 그동안 살면서 별의 별 것 다 보았지만 이건 정말 지독한데.

[벵트손] 집이 오래되면 곰팡이가 나지 않오. 그렇듯 사람도 너무 오래 같이 붙어살면서 서


로 고통을 주면 모두 미쳐 버린단 말이요. 이집의 여주인도 그렇지, 앵무새야 그만!--- 저
미이라 말이요. 40년 동안을 같은 남편, 같은 가구, 같은 친척, 같은 친구들과 살아왔소.
(벽지 문을 닫는다) 그리고 이집에서 벌어지는 일도--- 나에게는 이해 불가능한 일이지만
--- 똑같아. 저기 저 조상을 보시오. 저게 부인이 젊었을 때의 모습이었소.

[요한손] 아, 맙소사! 저 조상이 저 미이라란 말이오?

[벵트손] 그래요. 눈물이 안 나올수 없죠. 게다가 어떻게 되서인지, 그분이 자신의 상상에
미쳐서 그랬든 어쨌든, 그분은 앵무새 비슷하게 되어 버렸단 말이요. 말하는 품세라든가 병
들고 불구가 된 사람을 보면 견디지 못하는 품세가 말이요.

[페이지] 024
그 부인은 자기의 친딸을 못봐. 그딸이 아프니까 말이요.

[요한손] 그 젊은 아가씨가 아픈가요?

[벵트손] 그걸 몰랐소?

[요한손] 네. 그럼 대령말인데 그 이가 누구요?

[벵트손] 차차 알게 될거요.

[요한손] (조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면 끔찍하군--- 저 부인은 올 해 몇이요?

[벵트손] 아무도 그건 몰라요. 하지만 그분이 서른 다섯이었을 때 꼭 열 아홉 살 같이 보였


다고 하더군. 그리고 부인은 남편에게 그렇게 믿고 있도록 했어. 바로 이 집에서 말이지. 저
카우치 옆에 있는 일본제 검은 장막이 뭔지 아시오? 저걸 보고 모두 죽음의 장막이라 합니
다. 누가 죽게 되면 저걸로 덮어 씌우거든. 마치 병원에서 시체를 씌우듯.

[요한손] 참 소름 끼치는 집이군! 그런데도 그 학생은 여기가 천국인양 들어오고 싶어 야단


이니.

[벵트손] 무슨 학생말이요? 아, 알겠소. 오늘 저녁에 오기로 된 학생말이죠. 대령과 젊은


아씨가 오늘 오페라 극장에 갔다가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두분이 다 그에게 반한 모양입니
다. 흠, 이제 내쪽에서 좀 물어봅시다. 당신 주인--- 그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그분은 누구
요?

[요한손] 그분 말이죠, 저--- 그분도 오늘 여기 와요?

[벵트손] 그분은 초대 받지 않했소.

[요한손] 초대 받지 않아도 와야 된다면 그분은 올거요. (노인이 목발을 짚고 홀에 나타난


다. 프륵 코우트를 입고 실크해트를 썼다. 남몰래 앞으로 다가와서 귀를 기울인다)

[벵트손] 그 노인 악마지, 그렇죠?

[요한손] 철저한 악마죠.

[벵트손] 영락없는 악마 같다니까.

[요한손] 그런데다 마술쟁이이기도 해요. 잠긴 문으로도 들어가니


[페이지] 025

까. (노인이 다가와서 요한손의 귀를 움켜잡는다)

[노인] 이 악당 녀석--- 조심해! (벵트손에게) 대령보고 내가 왔다고 전하게.

[벵트손] 하지만 손님들이 오시기로 되어 있는데요.

[노인] 알고 있어, 하지만 나의 방문도 꼭 기다린 건 아니겠지만 예상하고 있던 거나 진배


없어.

[벵트손] 알겠습니다. 성함이 누구시라고 말씀드릴까요? 허멜 씨?

[노인] 맞았어, 그래 (벵트손 홀을 건너 휴게실로 간다.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 요한손에게)


나가! (요한손 망설인다) 나가라니까! (요한손 홀로 사라진다. 노인 방안을 살펴본다. 조상앞
에 걸음을 멈추고 대단히 놀라는 표정이다) 아멜리아! 이게 그녀로군--- 그녀야!

[미이라] (반침으로부터) 예에에쁜 앵무새. (노인 깜짝 놀란다)

[노인] 이게 뭐야? 방안에 앵무새가 있나? 안 보이는데.

[미이라] 제이콥, 당신 거기 있소?

[노인] 이 집이 귀신 들린 집이로군.

[미이라] 제이콥!

[노인] 어이 무서워. 그래 이게 바로 이 집에서 숨겨두고 있는 비밀이군. (반침 쪽으로 등


을 돌리고 서서 조각을 바라보고 있다) 저기 그가 있군. 아--- 바로 그가!

(미이라, 노인의 등뒤로 다가와서 그의 가방을 잡아 당긴다)

[미이라] 끄르르르! 이게--- ? 끄르르르!

[노인] (대경해서 펄쩍 뛰며) 아이고 하느님! 이게 누구야?

[미이라] (제 목소리로) 제이콥이죠?

[노인] 네. 내이름이 제이콥이요.

[미이라] (감개 무량하여) 제가 아멜리아예요.


[노인] 아니야, 아니야--- 오 하느님!

[페이지] 026

[미이라] 지금 내 얼굴은 이렇죠. 그래요. (조상을 가르키며) 옛날 제 얼굴은 저랬어요. 인


생은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나 봐요. 그렇지 않은가요? 저는 거의 대부분 저 반침 안에서
살고 있어요. 난 보는것도 내가 남에게 보이는 것도 싫으니까요--- 그러나 제이콥 당신은
이집에서 무얼 바라길래 왔어요?

[노인] 내 자식이오, 내자식.

[미이라] 그 애는 저기 있어요.

[노인] 어디?

[미이라] 저기--- 히아신드 방에요.

[노인] (그녀를 보면서) 그래, 저 애야. (사이) 그래 저애의 아버지는 어떻소?--- 대령 말


이오--- 당신의 남편?

[미이라] 전에 그이한테 화가 치밀었을 때 모든걸 말해 버렸어요.

[노인] 그래--- ?

[미이라] 내 말을 믿지 않습니다. 하면서 이러겠죠. [그건 여자들이 남편을 죽이고 싶을 때


모두 하는 소리야.] 그렇지만 그건 역시 끔찍한 죄악이에요. 그것으로 그의 전 인생은, 또한
그의 전 가문은 거짓된 것이 되어버렸어요. 이따금 저의 귀족의 족보를 들여다 보고 그럴
때마다 나 혼자 이렇게 말하죠. [이제 그녀는 어떤 하녀처럼 가짜 출생 증명을 가지고 살아
가겠구나. 그 때문에 감화원에 간 사람들도 있는데]

[노인] 그런 사람이 많지. 내가 알기로는 당신 자신의 생년월일도 정확치 않을거야.

[미이라] 그건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만들었죠. 내 잘못은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의 죄악에


당신은 가장 큰 몫을 했죠.

[노인] 그렇지 않아. 그 죄악은 당신 남편이 내 피앙새를 뺏어갔기 때문에 발생한 거요. 나
는 본래 태생이 벌을 주지 않고는 용서를 할 수 없는 사람이야.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내 지상명이지.

[페이지] 027
[미이라] 이 집에 와서 무얼 찾아 내리라 생각하는 거예요? 무얼 원하는 거예요? 여긴 어
떻게 들어왔죠? 내 딸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만약 딸에게 손만 대면 당신은 죽었요.

[노인] 나는 그녀에게 호의를 갖고 온 거요.

[미이라] 그럼 그 애 아버지도 살려줘야 돼요.

[노인] 안돼.

[미이라] 그럼 당신은 죽어요. 이 방, 저 장막 뒤에서.

[노인]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한번 내 이빨로 문 것을 놓아줄수는 없어.

[미이라] 당신은 그애들 학생과 결혼시키기를 원하죠? 왜 그래요? 그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어요.

[노인] 그는 부자가 될거야. 나를 통해서.

[미이라] 당신은 오늘밤 여기 초대를 받았나요?

[노인] 아니, 그렇지만 오늘의 유령 만찬회에 초대를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요.

[미이라] 누가 오는지 아시나요?

[노인] 정확히는 몰라.

[미이라] 그 남작, 이 위에 사는 분으로--- 오늘 오후 매장을 한 장인의 사위.

[노인] 관리인의 처의 딸과 결혼하기 위하여 이혼을 준비중인 남자--- 전에 당신의 애인이


었던 사람.

[미이라] 그밖의 손님으로 당신의 전 피앙세였고, 내 남편에게 유혹을 당한 여자.

[노인] 정선된 모임이군.

[미이라] 아, 우리가 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노인] 그런데 무엇 때문에 같이 살고 있소?

[미이라] 죄악과 비밀과 범죄로 우리는 어쩔수 없이 묶여 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속
박을 끊고 제 멋대로 가버린 적이 수없이 많아요. 그러나 언제나 다시 서로 엉키게 되었죠.

[페이지] 028

[노인] 대령이 오는 것 같소.

[미이라] 그럼 나는 아멜레한테 들어가 보겠어요. (사이) 제이콥 자기 행동에 조심해요. 그


를 살려줘요. (사이, 히아신드 방으로 들어가서 사라진다. 대령, 한 손에 편지를 들고 들어
온다. 냉정하고 서먹서먹하다)

[대령] 앉으십시오. (천천히 노인 앉는다. 사이, 대령 그를 응시한다) 선생께서 이 편지를


쓰셨죠?

[노인] 그렀소. (사이)

[대령] 존함이 허멜씨신가요?

[노인] 그렇소. (사이)

[대령] 제가 알기로는 선생께선 제가 지불하지 않은 약속 어음을 모두 가져오신 것 같은데


요. 저로서의 결론은 모든걸 오로지 선생 처분에만 맡긴다는 것뿐입니다. 무엇을 요구하시
나요?

[노인] 지불이요. 어떠한 방법으로든.

[대령] 어떤 방법입니까?

[노인] 매우 간단한 방법이죠. 돈 얘기는 하지 맙시다. 그저 나를 손님으로 이집에 있게만


해주시오.

[대령] 그 정도로 만족을 하신다면---

[노인] 감사하오.

[대령] 그 밖에는요?

[노인] 벵트손을 해고해 주시오.

[대령] 어째서 말입니까? 그는 저의 충성된 하인으로 일생동안 저와 같이 지냈고 그의 오


랫동안의 충직한 봉사는 나라의 훈장을 받을만 한데 어째서 제가 그런짓을 해야겠습니까?
[노인] 그건 당신 혼자서 그렇게 본 거죠. 훌륭한 점만 있는 것으로, 그러나 그는 겉보기와
다른 사람이요.

[대령] 그럼 어떤 사람입니까?

[노인] (당황해서) 사실이요, 허지만 벵트손은 나가야 해요.

[페이지] 029

[대령] 노인께서 이 집 주인 노릇을 하실 참입니까?

[노인] 그러소. 여기 있는 모든 것은 다 내것이니까 가구, 커어튼, 식기, 린네트 류--- 그


밖의 것도.

[대령] 그밖의 것이라뇨, 뭡니까?

[노인] 모든 것 다 말이요, 이집에 있는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내것이요.

[대령] 좋습니다. 다 댁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문의 문장과 내 명예로운 이름만은 역


시 나의 것입니다.

[노인] 아니요. 그것조차 당신의 것이 아니요. 당신은 귀족이 아니니까.

[대령] 어찌 그런말을! (서류를 끄내며) 이 문장지 초본을 읽어 보면 당신이 쓰고 있는 이


름의 가문은 백년전에 단절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거요. 그 비슷한 풍문을 들어 본 적은
있지만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내 아버지 한테 물려받았소. (읽는다) 사실이군, 선생 말씀이
맞군요. 나는 귀족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장이 새겨진 이 반지를 빼야겠군요. 이것 선생것
이 사실입니다. (그에게 준다) 여기 있습니다.

[노인] (주머니에 넣으며) 좀 더 계속합시다. 당신은 대령도 아니요.

[대령] 제가 아니라고요?

[노인] 아니지, 과거의 한때 당신은 미국 지원병 부대의 임시 대령 계급을 받은적이 있지만


쿠바에서 전쟁이 끝나고 그 부대가 재 편성된 후에 그같은 계급은 모두 폐지되어 버렸소.

[대령] 그게 사실 입니까?

[노인] (자기 주머니를 가리키며) 읽어 보겠소?

[대령]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누구십니까? 무슨 권리가 있길래 거기 앉


아 이런식으로 남을 홀랑 벗겨내십니까?

[페이지] 030

[노인] 차차 알게 될거요, 그러나 벗겨내는 작업을 계속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


라 알고있소?

[대령] 아니 어찌 감히?

[노인] 그 가발을 벗고 거울속을 들여다봐요. 그리고 그 이빨과 수염을 떼어버려 보시오.


벵트손을시켜 당신의 그 금속 코르셋을 풀어버리게 하시오. 그러면 아무개라 하는 하인의
신분이 드러날 테니까. 그자는 어느집 주방에서 일하던 자로 순전히 타산적으로 예정을 준
자였지--- (대령이 테이블 위에 있는 벨을 누르려고 하는데 허멜이 제지시킨다) 벨에 손대
지마. 벵트손을 부르지 마시오. 그랬단 그를 체포 하겠소. (사이) 손님이 도착하기 시작하는
군. 침착성을 잃지 말고 우리 옛날에 했던 역을 잠시 계속해 봅시다.

[대령] 당신은 누구요? 그 목소리와 눈이 낯익은데.

[노인] 알려고 하지 말아요. 잠자코 복종이나 해요. (학생 들어와서 대령에게 인사한다)

[학생] 안녕하십니까?

[대령] 어서 오시오, 젊은이. 당신은 그 큰 참화에서 아주 훌륭한 행동을 함으로써 모든 사


람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끔 되었소. 그런 당신을 우리집에 모시게 된 걸 영광스럽게 생각
하오.

[학생] 제 비천한 신분에 비해--- 귀하의 높은 성명과 고귀하신 가문은---

[대령] 아르겐홀츠 씨를 소개할까요--- 허멜씨요, 아르겐홀츠씨, 여기 숙녀들과 잠시 자리


를 같이 해 주시면 고맙겠소. 나는 허멜씨와의 얘기를 끝을 내야겠기에 말이요. (학생을 히
아신드 방에 안내한다. 거기서 수줍게 여자와 얘기하고 있는 그가 보인다) 참 훌륭한 청년
이죠.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 부르고 시를 짓는 청년입니다. 그가 귀족의 피만 가졌더라면,
아니면 그와 동일한 지위를 가진 집안의 출신이었더라면

[페이지] 031

나는 굳이 반대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노인] 무엇에 말이요?

[대령] 제딸과의 결혼이요---


[노인] 당신 딸이라고!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그녀는 어째서 항상 저기에서만 지내고 있소?

[대령] 밖에 외출할 때 만 제외하곤 자기가 히아신드 방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하니까요. 그


점이 참 별난 점이에요. 아, 홀시 타인크로나의 베아트리체 양이 오시는군요. 매력있고 교회
의 지주고 자신의 출생과 지위에 합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분이죠.

[노인] (혼잣말로) 나의 피앙세. (그 피앙세가 들어온다. 약간 미친사람처럼 보인다)

[대령] 홀시타인크로나 양입니다. 허멜씨요 (피앙세 무릅굽혀 절하고 자리에 앉는다. 귀족


이 들어와 착석한다. 상복을 입고 있고 신비스런 표정이다) 스칸스크로그 남작이올시다---

[노인] (일어서지 않은채 방백) 저 자가 보석 도둑이지. (대령에게) 이제 미이라만 온다면


파티에 모일 사람은 다 모였구료.

[대령] (히아신드 방문 앞에서) 폴리!

[미이라] (들어오면서) 끄르르르--- !

[대령] 젊은 사람들도 들어오게 할까요?

[노인] 안돼. 젊은 사람들은 안돼. 그들은 아껴두어야지. (모두 소리없이 둥글게 앉는다)

[대령] 차를 가져오게 할까요?

[노인] 차가 무슨 소용이요? 여기 차 마실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겉치레를 한단 말이요?

[대령] 그럼 얘기를 할까요?

[노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날씨 얘기를? 서로의 건강에 대해서나 물어? 그 역시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지. 차라리 침묵을 지킵시다. 그러면 여러 생각들을 들을 수 있고 과거를 볼

[페이지] 032

수있지. 침묵은 아무것도 감출수가 없소.--- 그러나 말은 감출수가 있단 말이요. 전에 책을


보니까 언어의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은 야만인들이 자기네 부족의 비밀을 타부족에게 감추기
위해서였소. 그러니까 언어는 모두가 하나의 암호이며, 그 열쇠를 발견한 자는 세계의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소. 그러나 그렇다고 비밀은 열쇠없이는 폭로될 수 없는 것
은 아니요. 특히 부자관계를 입증시키는 경우 특히 그렇소. 법정에서의 증언은 별개의 문제
지. 서로 합의를 본 문제인 경우 두사람의 위증만 있으면 무엇이거나 증명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내가 지금 밝히려고 하는 문제는 증인을 세울 필요가 없소. 자연은 인간에게 감추어
야 될 것은 감추려고 노력하는 조심성을 주었소. 하지만 인간은 생각도 않게 어떤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우연하게 가장 깊은 비밀이 폭로되는 수가 있어요--- 즉 사기꾼의 가면이
벗겨지면 악한의 정체가 노출된 단 말이요. (사이, 모두 침묵을 지키며 서로 쳐다보고 있다)
이 침묵! (긴 침묵) 가령 여기 이 집, 이 우아한 집, 미와 부와 교양이 조화되어있는 이집
--- (긴 침묵) 이곳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안 그렇습
니까? 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거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나를 알고 있을 거요.
모르는 척 하고들 있지만 (히아신드 방을 가리킨다) 저기에 내 딸이 있소. 분명히 내 딸이
요. 다들 그걸 알고 있을 거요. 그대는 지금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른채 살고 싶은 욕망을 잃
어버렸소. 실인즉은 그녀는 갖가지 죄악과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 찬 이 집의 공기 속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중이요. 내가 그녀에게 친구를 구해준 이유도 그 때문이었소. 그와 더불어
그애가 밝고 따뜻하게 고귀한 것들을 누리며 살아 갈 수 있도록 말이요. (긴 침묵) 그것이
이 집에서의 나의 사명이었소. 즉 우거진

[페이지] 033

잡초를 뽑아 버리고 죄악은 모두 들추어내며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하여 이 젊은 두 사람이


내가 선물로 준 이집에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눈 것. (긴 침묵) 이제
나는 당신들 각자에게 적당한때 적당한 차례로 안전 통행권을 주겠소. 만약 지체하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체포하겠소. (긴 침묵) 저 벽위에 죽음을 알리는 풍뎅이처럼 때깍때깍하면서
가고 있는 시계소리를 들었죠? 그것이 말해 주고 있는게 뭔지 들었소? [시간이 됐다. 시간
이 됐어. 시간이 됐어] 하는거요. 잠시후 그 시계가 치면 당신들의 시간은 이제 끝이요. 그
때는 모두 갈 수 있소. 하지만 그 전에는 안돼. 시계가 치기 전에는 그건 팔을 들어 당신들
을 못하게 할 거요. 명심하고 들으시오! 시계는 이렇게 경고 하고하고 있으니 [기계는 칠
수 있다] 나도 역시 칠 수 있지. (목발 하나로 테이블을 친다) 들었소? (침묵, 미이라 시계
로 가서 정지시킨다. 그런 뒤 정상적인 진지한 음성으로 말한다)

[미이라] 그러나 나는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있어요. 나는 과거를 거꾸로 돌려서 이미 되어


진 일을 무효로 만들 수 있어요. 그러나 그건 뇌물이나 위협을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
직 고통과 참회를 통해서 하는 거요. (노인에게로 간다) 우리는 비참한 인간이에요. 그걸 우
리는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잘못을 저질러 왔고 죄악을 범해 왔어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곁으로 보기와는 다른 사람이죠. 왜냐하면 우리의 본 바탕은 실제보다
선량한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당신, 제이콥 허멜이 가짜 이름을 가지고 우리를 재판하려 했
다면 당신은 결국 우리들, 가련한 죄인들 보다 더욱 나쁜 인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거에
요. 왜냐하면 당신은 실은 지금의 당신이 아니니까요. 당신은 인간의 혼을 도둑질하는

[페이지] 034

사람이죠. 당신은 거짓된 약속으로 내 혼을 도둑질 했죠. 당신은 오늘 매장한 영사를 살해


했죠. 빚으로 그를 교살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학생을 도둑질해서, 당신을 학생을 도
둑질해서, 당신한테 한 푼도 빚을 꼼짝못하게 만들었단 말이에요. (노인 일어나서 말을 하
려다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 그녀의 말이 계속됨에 따라 점점 더 뒤틀리며 옴츠려든다) 그
러나 당신의 인생에는, 의심은 가지만 내가 분명 하게는 모르고 있는 어두운 구석이 있어
요. 그걸 벵트손은 알고 있을 거에요. (테이블의 벨을 누른다)

[노인] 안돼. 벵트손은 안돼, 그는 안돼.

[미이라] 그가 알고 있는게 분명하군요. (다시 벨을 누른다. 홀 복도문에 우유배달 소녀가


나타난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그녀를 보고 노인은 공포에 질려 뒤로 움츠려든다.
벵트손이 들어오자 소녀 사라진다) 벵트손, 이 사람을 알고있지?

[벵트손] 네. 나도 알고 그도 저를 알고 있습니다. 아시듯이 인생이란 흥하다 망하다 하는


건가 봅니다. 저는 그를 위해 일한 바 있습니다만, 한때는 그가 저의 고용살이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만 2년동안 그는 저의 주방의 식객 노릇을 했었죠. 그는 세시 전에는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음식을 두시에 다 준비했어요. 그럼 가족들은 저 짐승이 먹고 난 찌꺼기를 데
워서 먹었습니다. 그가 수우프거리를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대신 쿡은 물을 채워 넣었습니
다. 그는 마치 흡혈귀 처럼 거기 앉아서 집의 골수를 빨아 먹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골같이 되어 버렸던 겁니다. 우리가 그쿡을 도적놈으로 몰았을 때 우리는 저 자 때문에
하마터면 감옥에까지 갈뻔 했었죠. 후에 저는 저자를 함부르크에서 만났는데 다른 이름으로
행세하고 있더군요. 그 때 그는 고리 대금을

[페이지] 035

하는 흡혈귀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는 동안 자기가 저지른 밤죄가 발각될


까 두려워 그는 그것을 목격한 한 젊은 여자를 꾀어 내 얼음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 한 혐
의를 받은 바가 있었습니다--- (미이라가 한손으로 노인의 얼굴을 훑는다)

[미이라] 그것이 당신이요. 자, 그 약속어음과 유언장을 내버려요. (요한손이 홀 복도문에


나타나서 이제 노예상태에서 풀려나게 된 것을 알고 흥미진진하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
다. 노인, 한 묶음의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집어던진다. 미이라,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등을 어루만져 준다) 앵무새, 제이콥 당신. 거기있우?

[노인] (앵무새 처럼) 제이콥 여기있어. 예쁜 앵무새. 끄르르르!

[미이라] 시계가 이제 쳐도 괜찮을까?

[노인] (뻐꾸기 소리를 내면서) 시계 쳐도 괜찮아.(뻐꾹 시계를 흉내 내며) 뻐꾹. 뻐꾹. 뻐꾹


--- (미이라, 반침문을 연다)

[미이라] 자, 이제 시계가 쳤어. 자 일어나서, 내가 20년 동안 우리의 죄를 참회하면서 보


낸 반침으로 들어가요. 거기 들어가면 밧줄이 걸려 있는데 그 밧줄은 당신이 영사를 교살시
켰고, 당신의 은인에게 교살을 감행하려든 식으로 쓸 수 있을거요. --- 가! (노인 반침으로
들어간다. 미이라, 문을 닫는다.) 벵트손, 장막을 저 죽음의 장막을 쳐. (벵트손, 장막을 문
앞에 설치한다) 이제 끝났군. 하느님 그의 영혼에 자비를 베푸소서

[모두] 아멘. (긴 침묵) (여자와 학생, 히아신드 방에 나타난다. 그녀는 하아프를 들고 있는


데 전주곡을 치자 학생의 암송이 따른다)

[학생] 태양을 보았나니 감추어진 것을 본 듯 하여라. 사람은 뿌린데로 거둘 것이니 행동이


선량한 자는 복받을 것이요. 분노

[페이지] 036

가운데 행한 행동은 악의 속에서 구제함을 얻지 못할 것이로다. 내가 괴롭힘을 준 사람을


사랑의 진실로써 위로 하라. 이는 상처를 낫게 할 것이로다. 악을 행치 않는 자 두려움을
모르는도다. 아름다워라 결백함이여.

[장] 3장

히아신드 방 실내. 전체적으로 이국적이며 동양적이다. 어딜보나 갖가지 색의 히이신드로


가득차 있다. 어떤 것은 화분에 어떤 것은 구근이 유리병에 담겼고 그 뿌리는 물속에 잠겨
있다. 백자 스토우브 꼭데기에 큰부처가 앉아 있는데 그무릎에 골파의 구근이 놓여져 있고
거기에 줄기가 솟아있다. 공모양의 하얀송이와 별모양의 꽃이 피어 있다. 오른쪽으로 원형
의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져 있고 그 방안에 대령과 미이라가 침묵을 지키며 움직이지 않
고 앉아있다. 죽음의 장막 일부가 또한 보인다. 왼쪽으로 식료품(식기) 실 및 주방으로 통하
는 문이 있다. 학생과 여자(아텔레) 가 테이블 옆에 있다. 남자는 서있고 여자는 하아프를
들고 앉아 있다.

[여자] 이번에는 제꽃들에게 노래해 주세요.

[학생] 이건 당신의 영혼의 꽃입니까?

[여자] 네. 유일한. 당신도 히아신드를 사랑하시나요?

[학생] 세상의 어떤꽃보다 사랑 합니다. 순백의 뿌리를 무색 투명한 물속에 내리고 물위에
떠있는 구근에서 반듯하고 가늘게 뻗어 올라간 그 순결한 모양을 사랑 합니다. 그 색깔 또
한 저는 사랑하고 있어요. 결백처럼, 순수한 그 은백색, 꿀처럼 단 노란색, 젊음이 넘치는
핑크색, 무르익은 붉은색, 그러나 그 중에 제일가는 것은--- 그윽하고 믿음이 충만한 이슬
에 젖은 푸른색입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황금보다도 진주보다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꽃을 사랑하기 시작한

[페이지] 037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였는데 이 꽃은 제가 못가진 훌륭한 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의 숭배하다시피 해오고 있어요. --- 그런데---

[여자] 말씀 계속하세요.

[학생] 저의 그런 사랑에 보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꽃들이 저를 미워하고


있기 때문이죠.

[여자] 무슨 뜻인가요?

[학생] 녹기 시작한 눈위를 달려온 초봄의 바람처럼 강하고 순수한 그들의 향기가 감각을
어지럽혀 귀를 먹게하고 눈을 멀게 하여 나를 방 밖으로 내몰아 독 묻은 화살로 찌르니 내
가슴에 상처가 나고 내 머리에 불이 붙는단 말입니다. 이 꽃의 전설을 아시나요?

[여자] 얘기해 주세요.

[학생] 먼저 그 의미를 살펴 보십시다. 물 위에 떠 있거나 흙속에 묻혀 있는 구근은 땅을


뜻합니다. 다음. 곧바르게 올라간 줄기는 이 세상의 축입니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 뿔이 여
섯 개 난 별 꽃이 피어 있죠.

[여자] 땅 위에--- 별들이. 아! 정말 아름다운 얘기군요! 그걸 어디서 배우셨어요! 그걸 어


떻게 찾아내셨어요!

[학생] 글쎄요--- 당신의 눈속에서. 그리고 참, 이 꽃은 우주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처가 땅인 구근을 안고 앉아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것이 밖으로 위를 향하여 자라
면서 그 자체가 하늘로 변되어가는 것을 지켜 보는 그의 두눈이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 이유
가 다 그 때문인 것입니다. 이 가련한 땅은 장차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 가련한 땅은 장차
천국이 될 것입니다. 부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여자] 이제 알겠어요. 그러니까 눈꽃도 히아신스 꽃처럼 육각형이 아니겠어요?

[페이지] 038

[학생] 맞았습니다. 눈꽃은 유성임에 틀림 없어요.

[여자] 그리고 아네모네는 눈에서 자라난 눈 별이고요.

[학생] 그러나 창공에서 가장크고 아름다운 별인 황금빛의 붉은 천왕성은 붉고 황금색의 꽃


잔과 여섯줄기의 흰빛을 가진 수선화입니다.

[여자] 꽃이 핀 골파를 보신 일 있으세요?


[학생] 있고 말고요. 그것은 흰 별들이 흐트러진 천체처럼 둥근 구체속에 꽃들을 담고 있습
니다.

[여자] 아!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가! 그건 누구의 생각이었어요?

[학생] 당신의.

[여자] 당신의.

[학생] 우리의. 우리는 같이 그것을 출생 시켰습니다. 우리는 결혼했어요.

[여자] 아직은.

[학생] 아직 남은 일이 무업니까?

[여자] 기다림. 시련. 인내.

[학생] 좋습니다. 저를 시험하십시오. (사이) 말씀좀 해 주세요. 어째서 댁의 부모님은 한마


디의 말도 하지 않고 저처럼 침묵을 지키며 저기 앉아 계시는 겁니까?

[여자] 그 분들은 피차 할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예요. 그리고 서로 상대의 말을 믿지 않


기 때문이죠. 저의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답니다. 우리의 누구도 속일 수가 없는데 말을
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요.

[학생] 아, 듣기도 무서운 일이로군요!

[여자] 여기 쿡이 와요. 그녀를 보세요. 얼마나 크고 비대 해요. (그들 쿡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은 아직 그녀를 볼수 없다)

[학생] 그녀가 왜 옵니까?

[페이지] 039

[여자] 식사에 대한 것을 물으려고 오죠. 어머니가 아프셔서 제가 집안일을 보살피지 않으


면 안 되거든요.

[학생] 우리가 주방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여자] 우리도 먹어야 하니까요. 저 요리사를 잘 보세요. 저는 저 여자를 보기만 해도 견딜


수 없어요.
[학생] 저 악마는 누구에요?

[여자] 흡혈귀인 허멜 집안의 여자에요. 저 여자는 우리를 잡아먹고 있어요.

[학생] 그럼, 왜 해고를 시키지 않습니까?

[여자] 저 여자는 안가요. 우리 힘으로는 저 여자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저 여자가 우


리집에 있는 것은 우리의 죄업 때문이랍니다. 댁에서는 우리가 탄식으로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것을 보시지 못하세요?

[학생] 왜요? 먹을 것이 넉넉치 못해서 인가요?

[여자] 아뇨. 우리는 먹는 것을 풍족하게 먹고 있어요. 그렇지만 힘은 모조리 빠져 버렸어


요. 저 여자가 고기의 영양분은 모두 끓여 없애고 우리에게는 섬유질과 물만 주거든요. 그
러면서 알짜는 태워 없애고 고깃국물과 주우스는 저 여자 혼자서 마셔 버리 거든요. 저 여
자의 손이 닿은 것이면 무엇이든지 맛이 달아나요. 마치 저 여자는 눈으로 빨아 들이는 것
같아요. 커피도 저 여자가 마셔버리면 우린 찌거기나 먹게 되죠. 포도주도 저 여자가 다 마
시고 빈 병에 물을 채워 넣거든요.

[학생] 그 여자를 내 보냅시다.

[여자] 할수 없어요.

[학생] 왜요?

[여자] 우리도 모르겠어요. 저 여자는 안 나가요. 저 여자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녀는 우리 한테서 모든

[페이지] 040

가운을 뺐어 갔어요.

[학생] 내가 내쫓을까요?

[여자] 안돼요. 지금대로 그대로 있어야만 돼요. 왔어요. 나 한테 식사를 무엇으로 할 것인


가 물을 거예요. 내가 대답해 주면 거기에 이의를 달고 제멋대로 하겠죠.

[학생] 그럼 그 여자 보고 스스로 지시를 내리라고 하죠?

[여자] 그 여자는 그렇게는 하지 않으려 듭니다.


[학생] 세상에 참 이상한 집안도 다 보았군! 마술에 걸린 집이야.

[여자] 그래요 저 여자가 당신을 보더니 그냥 돌아가는 군요.

[쿡] (문간에서) 아니에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찡그리는 얼굴에 이빨이 모두 드러난


다)

[학생] 나가!

[쿡] 나갈때가 되면. (사이) 지금 갈때가 됐어. (사라진다)

[여자] 화를 내지 마세요. 참으세요. 저 여자는 우리가 이 집에서 겪어야될 많은 시련중의


하나에요. 저희집엔 역시 없애지 않으면 안될 하녀가 또하나 있는 걸요.

[학생] 당했군! 음악!

[여자] 기다려요.

[학생] 음악!

[여자] 참으세요. 이 방은 시련의 방입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러나 갖가지로 결함 투


성이에요.

[학생] 정말이오? 그렇다면 그런 점은 손을 봐야죠. 대단히 아름다운 방이지만 좀 춥군요.


왜 불을 피우지 않죠?

[여자] 연기가 나기 때문이네요.

[학생] 굴뚝을 뚫으면 되지 않아요?

[여자] 소용 없어요. 저기 책상이 있죠?

[학생] 보통 좋은 책상이 아니군요.

[여자] 그러나 저 책상은 자꾸 흔들거려요. 매일같이 다리에 코르크를 끼우지만 그걸 하녀


가 청소를 하면서 빼어 버리거든

[페이지] 041

요. 그래 저도 새로 또 끼우죠. 저 펜대에는 매일아침 잉크가 묻어 있고 저 잉크스탠드도


역시 그래요. 그래서 매일 아침 저는 저 여자가 간뒤에 그것들을 청소하지 않으면 안돼요.
(사이) 세상에 그보다 더 나쁜 일거리가 어디 있겠어요?

[학생] 청소를 다 하다니. 아!

[여자] 그래도 저는 그걸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요. 아!

[학생] 그 밖에는요?

[여자] 한밤중에 일어나 창문을 봐야 되죠. 하녀가 열어 놓고 가서 덜그렁거리니까요.

[학생] 그 밖에?

[여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공기 조절판의 코오드를 연결해야 되죠. 하녀가 그걸 뽑아 버


렸으니까요.

[학생] 그 외에는요?

[여자] 하녀가 간 뒤에 청소를 하고 먼지를 털어야 돼요. 하녀가 장작만 갖다 들이 밀어 놓


은 스토우브에 불을 붙이고 공기 조절판을 손 봐야 되고 식기들을 닦고 식탁을 다시 놓고
병을 따고 방안 공기를 살피고 침대 잠자리를 보고 앙금으로 누르끼해진 물병을 닦고 언제
나 봐도 없는 성냥과 비누를 사오고 굴뚝을 청소하고 램프의 끄름이 나지 않도록 심지를 자
르고 손님들이 올 때 꺼지지 않도록 기름을 넣어 주어야 되고---

[학생] 음악을!

[여자] 기다리세요. 일이 먼저예요. 생활의 때가 끼지 않게 하는 일을 먼저 해야 돼요.

[학생] 허지만 댁은 부유하고 하인이 두 사람이나 있지 않습니까?

[여자] 소용 없어요. 셋이 있대도 마찬가지죠.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때로는 아주 넌


더리가 나기도 해요. (사이) 만약 아이들 방까지 있었다고 상상해 봐요.

[페이지] 042

[학생] 인생의 최대의 즐거움이었겠죠.

[여자] 동시에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거죠. 인생이란 그렇게 힘든 고생을 할만한 가치가 있


는 것일까요?

[학생] 그것은 노동의 대가로 어떤 보상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당신으로부터 결


혼의 승낙을 얻기 위해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을 작정입니다.

[여자] 그런 말씀 마세요. 댁에서는 저를 가지실수 없어요.

[학생] 왜요?

[여자] 묻지 마세요. (사이)

[학생] 창문에서 팔찌를 떨어뜨리셨는데---

[여자] 그것은 손이 너무 가늘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쿡이 일본제 병을 들고 나타난다) 저


기 저 여자--- 저와 우리 모두를 삼켜 버리고 있는 저 여자.

[학생]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뭐예요?

[여자] 염료가 든, 이상한 글자가 적혀있는 병이에요. 물을 수우프로 바꾸어 가지고 그걸


고깃국물로 대신 하게하는 게 바로 저 간장이죠. 저 여자는 그걸 야채 수우프를 만들고 가
짜 거북 수우프로 만들어요.

[학생] (쿡에게) 나가!

[쿡] 당신네들은 우리들한테서 진을 빨아먹고 있고 우리들은 당신네들 진을 빨아먹고 삽니


다. 우리들은 피를 빨아 먹는 대신 물을, 그러나 염료가 든,--- 색깔이 있는 물을 당신들에
게 넘겨 주는 거죠. 이제 가겠어요. 그렇지만 떠나지는 않아요. 있고 싶은 동안까지는. (그
녀 나간다)

[학생] 벵트손은 어떻게 해서 훈장을 받았나요?

[여자] 그의 훌륭한 장점으로요.

[학생] 결점은 없나요?

[여자] 있죠. 큰 결점이 있죠. 하지만 그것으로 훈장을 탈 수는 없

[페이지] 043

지 않아요. (미소 짓는다)

[학생] 이 집안에는 많은 비밀이 있군요.

[여자] 여느 집이나 마찬가지죠. 그러니 우린 비밀을 간직하고 있도록 내버려 두세요.


[학생] 솔직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여자] 좋아하죠, 그러나 분별력을 갖고 있는 범위 내에서.

[학생] 이따금 저는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말 해 버리고 싶은 불같은 욕망에 휩싸일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히 솔직해져 버리면 세상을 망해져 버리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사이) 전에 교회에서 있은 어느 장례식에 간 일이 있었는데--- 매우 엄숙하
고 아름다운 장례식이었습니다.

[여자] 허멜씨의 장례식이었나요?

[학생] 네, 제 가짜 은인의 장례식이었죠. 관 머리쪽에는 고인의 친구가 서 있었습니다. 그


는 권표를 달고 있었어요. 저는 목사의 근엄한 태도와 감동적인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
니다. 저는 울었어요. 거기 모든 사람이 울었죠. 나중에 술집으로들 갔는데 거기서 저는 그
권표를 단 남자가 고인의 아들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자, 이해하려고 애쓰며
남자를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인은 자기 아들을 연모하고 있는 그 남자로부터 돈을
빌려 썼다고 하더군요. (사이) 다음날 그 목사는 교회 재산을 횡령한 죄로 체포되었습니다.
참 기막힌 얘기죠.

[여자] 아--- ! (사이)

[학생] 당신은 지금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여자] 말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게되요.

[학생] 말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습니다.

[여자] 사람이 자기생각을 모두 말할 수 있는 곳은 정신병원이에

[페이지] 044

요.

[학생] 맞았습니다. 저희 아버님도 정신병원에서 인생을 끝마치 셨으니까.

[여자] 편찮으셨나요?

[학생] 아닙니다. 건강하셨어요. 그러나 미치셨어요. 아버지는 이와 같은 환경을 한번 깨부


셔 버리셨던 겁니다. 우리들이나 마찬 가지로 아버지도 여러 가지들에 둘러 싸여 사셨습니
다. 그러나 그들은,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 대부분 건달들이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그들과 사교를 벌이며 지내지 않을 수 없었죠.--- 혼자서만은 살아갈 수 없는 노
릇이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그에게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그들이 얼마나 사기꾼들 인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기만을 속속들이 다
재고 계셨던 겁니다. 그러나 원래 현명하고 점잖은 집안에서 자라신 분이라 그들에게 항상
정중하게 대하셨죠. 그런데 어느날 아버님은 큰 파티를 베푸셨어요. 저녁때였습니다. 아버지
는 그 날의 여러 가지 일들에 피로하셨고 또한 혀를 놀리지 말면서 동시에 손님들과 아무짝
에 쓸데없는 얘기들을 나누어야만 되는 고욕에 테이블을 두드리며 조용히들 하라고 하시면
서 잔을 들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잠겼던 방아쇠가 열렸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엄청난 연설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껍데기를 완
전히 벗겨 버렸습니다. 그들의 모든 배신행위를 다 털어놨습니다. 그러고는 완전히 지쳐서
테이블 위에 앉으시더니 그들을 보고 다죽어 없어지라고 외치셨어요.

[여자] 오!

[페이지] 045

[학생] 그때 저는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


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먹다짐을 시작하고 손님들은 문으로 달려들 갔습니다. --- 그러
고는 아버지는 정신 병원으로 옮겨지고 거기서 세상을 떠나셨어. (사이) 물이 너무 괴여 있
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건 이 집안도 마찬가지예요. 여기는 뭔가 썩어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저는 당신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처음 본 순간, 이 집이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을 했었
습니다. 주일 아침, 저는 저기서서 안을 응시했습니다. 나는 대령이 아닌 대령을 보았으며
도둑이고 스스로 목졸라 죽여야했던 사람을 은인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나는 미이라가 아닌
미이라를 보았으며 또한 하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순결은 어찌되었습니까? 아름다움은 어
디서 찾아야 합니까? 자연 속에서죠. 그리고 주일 옷을 입고 있을 때의 자신의 마음 속에서
죠. 명예와 믿음은 어디 있습니까? 동화와 어린이의 환상속에 있죠. 그 약속을 실행시켜 주
는 것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상상속에 있습니다. 이제 당신의 꽃은 나에게 독을 넣어 주
었고 나는 그 독을 당신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청혼을 했고 시와 노래와
음악이 가득한 집에서 살고자 했습니다. 그때 쿡이 왔습니다. --- 기도합시다! 다시 한번
황금 하아프로부터 불과 영광을 튕겨내 봅시다. 어서요. 간청입니다.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
다. (사이) 그럼 내가 타 보겠어요. (하아프를 집어들지만 줄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벙어
리, 귀머거리로군, 가장 아름다운 꽃에 독이, 가장 지독한 독이 있다니. 모든 창조물에 저주
가, 생명 바로 자체에 저주가 내렸노라. 어째서 당신은 나의 신부가 되지 않으시려 합니까?
당신의 생명의 샘이 바로 병들었으니--- 이제 나도 주방에 있는 흡혈귀가 내 피를 빨고 있
는 것을 느낄 수 있구료. 그녀는 어린애의 피를 빠는 레이미아

[페이지] 046

야, 어린아이의 떡잎을 자르는 것은 이미 침실에서 벌어지지 않았다면 항상 저 주방에서 벌


어지고 있어요. 세상에는 눈을 멀게하는 독이 있는가 하면 눈을 뜨게 하는 독이 있어요. 나
는 후자의 독이 든채 세상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추한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없고, 악을 선이라 말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지옥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
것은 예수께서 이 땅위에--- 이 광인들의 소굴에, 이 감옥에 이 납골당에, 이 지상에 순례
를 오신 겁니다. 그런데 그가 광인들을 해방시켜 주고저 했을 때 광인들은 그를 죽었던 것
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도둑놈을 풀어놔 줬죠! 도둑놈은 언제나 동정을 받는단 말입니다. 슬
프도다! 우리 모든 인생이 슬프구나. 구세주여, 우리를 구하옵소서! 우리는 멸망해 갑니다.
(이때 여자는 늘어져 있다. 죽어가는 것이 보인다. 여자 벨을 누른다. 벵트손 들어온다)

[여자] 장마을 가져와요. 빨리. 나는 곧 죽어요. (벵트손, 장막을 가지고 와 펴서 여자 앞에


설치한다.)

[학생] 이제 해방이 되었구료. 창백하고 인자한 이여, 어서 가시오. 사랑스럽고 천진스러운


이여, 어서 잠드시오. 꿈을 꾸지 말고 잠을 자구료. 그러나 다시 깨어날 때는--- 끓어오르
지 않는 태양. 더럽지 않은 집, 지혜롭고 자비로운 부처님, 맘으로부터 하늘이 솟아 오르기
를 기다리고 앉아있는 부처님이시여. 우리의 시련을 이겨낼 인내와 순결한 뜻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소망이 꺾이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하이프의 줄이 부드럽게 울리며 밝은 빛
이 방안에 가득해진다) 태양을 보았더니 감추어진 것을 본 듯하여라. 사람은 뿌린데로 거둘
것이니, 행동이 선량한 자는 복 받을 것이요. 분노 가운데 행한 행동은 악의 속에서 구제함
을 얻지 못할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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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괴롭힘을 준 사람을 사랑의 친절로서 위로하라. 이는 상처를 낫게 할 것이로다. 악을


행치 않은자 두려움을 모르는도다. 아름다워라, 결백함이여. (장막뒤로 희미한 비탄의 소리
가 들려온다) 오, 불쌍한 이여, 환상과 죄악과 고통과 죽음의 세상, 끝없는 변화와 실망과
아픔의 세상에 태어난 자식이여. 당신이 가는 길에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가 있기를 비옵니
다. (방이 사라지고 뵈크린의 <죽음의 섬>이 멀리서 보인다. 그리고 그 섬으로부터 부드럽
고 달콤하고 멜랑코리한 음악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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