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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권119

다변 아마도 우리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161 이런 까닭에 고귀하고 정의로운 것에 관해, 그리 고 일반적으로 정치 5

학의 문제들에 관해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학생은 좋은 습관을 통해 훌륭


하게 자랐어야 한다. 171 제일원리(arche)는 사실이며, 이것이 충분히 분명하
다면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는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을 통해 훌륭하게 자란 사람은 제일원리들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쉽게
취할 것이다. 가지고 있지도 않고 쉽게 취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면 헤시오도
스의 다음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10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닫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요, 10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 역시 고귀한 사람이지만,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서 들은 말을
가슴속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니라.

저15장 행복과 세 가지 삶의 유형

111 이제 우리가 곁길로 빠졌던 곳11에서부터 다시 논의를 진행해 보 도록


하자. 그들의 삶을 통해 판단해 보 건 대, 다중들, 특히 대단히 통속적인 사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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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두 종류의 원리를 구분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탐구에 있


어서 우리에게 알려진 원리로부터 본성적으로까연에 따라) 알려진 원리로 나아가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이 것이 원리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원리로 향해 나아가는지
를 물었던 플라톤의 물음에 대한 대답인 셈이다
10 헤시오도스, 『일과 날』 293행, 295∼297"�

11 4장 1s1 1095"30 이하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념틀을 논의하다가 ‘ 원리들’의


논의로 접어들었던 대목,
20 I 니코마코스 윤리학

들은 좋음과 행복을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그들


의 생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121 그런 까닭에 그들은 향락적인 삶
을 좋아하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삶의 유형은 세 가지인데,12 지금 막 이
야기한 삶과 정치적 삶, 그리고 셋째로 관조적 삶이 그것이다. 13 I 많은 사
20 람들은 짐승들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완전히 노예와 다름없음을 보여 주지
만, 그래도 이유가 없지는 않다. 높은 지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르다나
팔로 스13가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141 반면 교양 있는 사

람이나 실천적인 사람은 명예를 선택한다. 대개 이것이 정치적 삶의 목적이


25 니까 그렇지만 명예는 우리가 추구 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인 것 같다. 명예는
명예를 받는 사람보다 수여하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좋음은 고유한 어떤 것으로서 쉽게 우리에게서 떼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예감때문이다.
IS I 게다가 사람들이 명예를 추구 하는 것은 자신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이다 어쨌든 그들은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또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또 그들의 닥월성을 근거로 명예를 얻
30 고자 한다. 따라서 적어도 이들에게는 탁월성이 명예보다 더 나은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16 1 어 쩌 면 명예가 아니라 탁월성이 정치적 삶의 목적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불완전한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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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에우데모스 윤리학』 1214"31 35, 1215"32- b 14 참조

1 3 사르다나팔로스 (Sardanapall。s, Ashur-bani pal)는 니네베(Nineveh)에 수도를 정한

아시리아 전성기 시대의 왕(기원전 668∼627년)이다(헤로도토스, r역사』 2권 151철), 전해 오


는 이야기에 따르면 쾌락주의자로서 호사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에 따르면 그는 종종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정도의 식자였으며, 니네베에 있는 궁정에 도
서관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 고하는 것과 같은 ‘쾌락주의자로서
의 사르다냐팔로스’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전설이 아니라면 다른 왕에게서 유래하는 것
으로 보인다
져11권121

다 탁월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생 동안 잠을 자거나 아무런 활동도 하


지 않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나쁜 일을 당하거나 아주 큰 불행을 겪을 수
도 있기 때문 이다. * 어떻게든 주장(thesis) 14을 방어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
한, 누구도 이렇게 살아가 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 1096a

것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마무리 짓자. 일상적 논의 작업15에서도 그 문제


에 관해 충분히 이야기했으니까. I 71 셋째 삶의 유형은 관조적 삶이지만 이
것에 관해서는 나중에16 검토하도록 하자. Isl 돈을 버는 삶은 일종의 강제 5

된 삶이다. 또 부(富)가 우리가 추구하는 좋음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돈은 다른 것을 위해서 유용할 따름이니까. 그런 까닭에 차라리 우리가 앞
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그것
들은 그 자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들이므로. 그렇지만 그것들도 우리가 추구
하는 좋음인 것 같지는 않다. 또 이것에 대해 실로 많은 논변들이 제기되어 10

왔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그냥 내버려 두도록 하자

저16장 좋음의 이데아 비판

111 아마도 보편적 좋음을 검토하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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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f변증론』 1권 104b 19-20 에서 ‘주장’(thesis)은 통
‘ 상적 의견에 위배되는(paradoxes),
저명한 철학자의 믿음’, 즉 ‘역셜’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r천체론』 306a12 참고
15 ‘일상적 논의 작업’으로 번역한 원어 ‘앵키클로스’(enkyklos)라는 말은 『정치학』에서
세 번 사용되는데, 매일같이 행하는 일상적인 일’로 이해된다 그것이 (1) 지금은 전해지
지 않는 대 외용 저술인지, 아니면 (2) 아카데미아에서 이루어졌던 것처럼 대중을 상대로
일상적으로 행해진 철학적 담론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6 10권 6장∼8장. 특히 1171'12-1178a8, 1 178”22-29, 1179a32를 보라‘
22 l 니코마쿄스 윤리학

따져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17 물론 이러한 탐구는 이데아 들을 도입한


사람들이 우리 의 벗들이기에 달갑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 서 진리를 구제하기
15 위해서는, 더 구나 철학자로서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것들까지도 희생시키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보인다. 친구와 진리 둘 다 소중 하지만, 진리를 더 존
중 하는 것이 경건하기 때문이다.
121 이 견해를 도입한 사람들은 선후가 이야기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데
아를 설정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수(數)들의 이데아 또한 세우지
20 않았던 것이다.18 그러나 좋음은 무엇임에 있어서도, 어떠함에 있어서도, 또
관계에 있어서도 이야기된다. 그런데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즉 실체는 본
성상 관계보다 먼저이다 관계는 존재(on)의 곁 가지, 존재에 부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하나의 공통된 이데아가 있지
는 않을 것이다.
13 I 또 좋음은 존재가 이야기되는 방식만큼이나 많은 방식으로 이야기
된다. 좋음은 신과 지성(nous)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무엇임에서 좋다고
25 이。t기되기도 하고, 닥월성
기되기도 하며, 적당량이 좋다고 할 때처럼 양에 있어서, 무엇에 대해 유용

--

17 앞서(4장 I 3 I 1095"26)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의 보편적이고 분리된 형상에 대한 플


라톤의 견해를 언급했다 여기서는 플라톤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er.에우데모스 윤리학』 1
권 8장 1217bJ; 『대윤리학j 1권 1장) 플라톤의 형상 이 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은
r형이상학』 1권 9장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18 수의 계열에는 선후가 있다 가령 1은 2에 선 행하는데, 2 가 있다면 반드시 1이 있어
야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 일반의 이데아가 있다면, 이 이데
아는 수의 계열에서 가장 먼저 오는 1 보다 더 먼저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합리
하다 『형이상학』 3권 3장 999"6 이하를 참고하라,

19 탁월성도 범주적으로는 질(質)의 범주에 속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성질


의 사람인지를 물었을 때 ‘용감하다’거나 ‘온화하다’라고 이야기하지, 누구의 아들이라는
식으로 관계를 이야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범주론』 8장 참고
지11권123

하다고 할 때처럼 관계에 있어서, 적시를 이야기할 때처럼 시간에 있어서, 적


절한 거처를 이야기할 때처럼 장소에 있어서, 그리 고 그 밖에 다른 것들〔을
이야기 할 때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음이 어떤

공통적이며 단일한 보편자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모든 범 주에서 좋음이 이야기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범 주
에서만 이야기되어야 했을 테니까. 141 또 하나의 이데아에 따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학문도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모든 좋음들에 대해서도 하나
의 학문만이 존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의 범 주 밑에 있 30

는 것들에 대해서도 여 러 가지 학문들이 관계한다. 예를 들어 적시(適時)에


관련하는 학문의 경우, 전쟁에 있어서 적시를 다루는 것은 병법이며, 질병에
있어서 적시를 다루는 것은 의술이다. 적당량에 관련해서 말하자면, 음식에
있어서의 적당량은 의술이, 운동에 있어서의 적당량은 체육이 관장하기 때
문이다.
IS I 또 ‘인간 자체’에 있어서나 ‘인간’에 있어서나 하나의 통일한 설명 35

(1。gos), 즉 인간에 대한 설명이 적용되는 한, * 그들의 ‘무엇 자체’를 가지고 1096b

도대체 무엇을 의 미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20 왜냐


하면 ‘인간 자체’ 나 ‘인간’ 모두 인간인 한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가 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좋음 자체’ 나 ‘좋음’ 역시 좋음인 한
에서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161 또 좋음 자체가 영원하다는 이유는 더
좋은 것일 수도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하얀 것이라고 해서 잠깐 동안
만 하얀 것보다 더 하얀 것이 아니듯이.
|기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이 일자(hen)를 좋음의 계열21에 놓고 있다는 5

--

20 『형 이상학』 1권 6장 981'32, 13권 4장 1078b9 1079•4, 13권 9장 10s6•24- bn 플


라톤, 『파 이돈』 74a-e.

21 『형 이상학J 1권 5장 986.22 아래를 보라, 피타고라스 학파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24 I 니쿄마표스 윤리학

점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더 그럴듯한 것올 이야기한 것처럼 보인다 스페우


시포스22 또한 이들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181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른 기 회23에 논하기로 하자.

그런데 지금까지 논의된 것들에 대해 어떤 는란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10 모든 종류의 좋음들에 대 해 그들의 이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추구되고 사랑받는 것들만을 단일한 이데아(형상)에 따라 좋다고 이야기하
며,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들, 혹은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는 것들, 혹
은 그 반대를 방해하는 것들은 이것들 때문에 좋음이라고 불린다고, 또 에
것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좋음이라고 불린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1 91 그렇

다면 좋은 것들이 두 가지 방식, 즉 그 자체로 좋은 것들과 이것들 때문에


15 좋은 것들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 그
자체로 좋은 것들을 유용할 뿐인 것들로부터 떼어 낸 후, 이것들이 단일한
이데아에 따라 이야기되는지 살펴보 도록 하자.
| 1이 그런데 어떤 것들을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놓아야 할까? 그것만으
로도 추구되는 모든 것들, 가령 사려 하는 것이나 보는 것, 어떤 즐거움들과
명예들인가? 우리는 이것들을 비록 다른 것 때문에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은 그 자체로 좋은 것들에 속하는 것으로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 아니면 좋음의 이데아(idea)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좋은

--

계열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형 이상학 내지 우주론을 전개한다. 첫째 계열은 한정(peras)의


계열로 흘수, 하나, 오른쪽, 남성, 정지, 직선, 밝음, 정방형, ‘좋음’으로 구성되고, 다른 하나
는 무한정(apeiron)의 계열로 짝수, 다수, 왼쪽, 여성, 운동 곡선, 어두움, 장방형, ‘나쁨’으
로구성된다
22 스페우시포스는 플라톤의 조카로서 플라톤이 죽은 후 아카데미아를 이어받아 죽을
때까지(기원전 407∼339년) 그 곳의 수장(首長)으로 있었다,
23 『형이상학』 1권 5장 986"22-26, 7권 2장 1028b21-24, 12권 7장 1072b30-1073a2,
14권 4장 109 1 "29-1091년, 1091b13-1092a17 참고
지11권125

것은 아니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데아(eidos)는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1111 반면 〔앞에서 언급했던〕 이것들도 그 자체로 좋은 것들에 속한다면, 좋
음에 대한 설명(logos)은 그 모든 것들에 있어서 통일한 것으로 드러나야만
할 것이다. 마치 ‘하양’에 대한 설명이 눈〔雪〕과 백연(Bi밍에 있어서 동일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그러나 명예나 사려 , 즐거움에 대한 설명은 그것들이 좋다
고 이야기되는 그 관점에서 서로 구별되고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단일한 이 25

데아에 따라 공통적인 것으로서의 좋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1121 그렇다면 좋음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된다는 말인가? 적어도 우연
으로부터 나온 동음이의 (homonymon)24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아니
라면 단일한 무엇으로부터 유래한 동음이의인가 혹은 모든 것이 하나에 기
여하는 통음이의인가 아니면 차라리 비례〔유비〕에 따른 동음이의로서의 좋
음인가? 보는 것이 육처}에 있어서 좋은 것으로 이야기되듯, 지성(nous)이 영
혼에 있어서 좋은 것으로 이야기되고, 그렇게 다른 경우에는 다른 것이 좋 30

은 것으로 이야기되니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런 문제는 현재로서는 놔두


어야 할 것이다. I 131 이것들에 관해 엄밀 하게 따지는 것은 철학의 다른 분
야에서 더 고유하게 다루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좋음의 이데아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약 공통적으로 서술되는 어떤 단일한 좋음 혹은 그 자체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어떤 좋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좋음은 인간적 행위로
성취할 수 있거나 소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닐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추구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1141 혹시 그래도 좋은 것들 중에 인간적 행위에 의해 소유되고 성취할 35

수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그것을 아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

--

24 여기서 말하고 있는 우연으로부터 나온 동음이의에 관해서는 5권 1장 I 7 I 1129•29-

30을 보라 이러한 예는 ‘쇄골’(kleis)과 ‘열쇠’(kleis)의 경우일 것이다.


26 I 니쿄마코스 윤리학

1097a 다. * 우리가 이것을 본( paradeigma)으로 가지고 있으면 ‘우리에게 좋은 것’


들도 더 잘 알 수 있 고, 또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알고 있으면, 그것들을 실
제로 성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1s1 물론 이 논의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여러 학문의 관행과
5 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모든 학문은 어떤 좋옴올 추구하며 그 부족한 점을
채우려 하지만,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앓에는 관심올 두지 않기 때문이다.
좋음의 이데아가 그토록 큰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기예의 전문가들 모두
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 심지어 그것을 추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이
치에 맞지 않는다
I 161 또 직조 전문가나 목수가 이 좋음 자체를 앓으로써 자신의 기술을
10 위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좋음의 이데아 자체를 봤다고
해서 의술에 더 능숙해지거나 병법에 더 익숙해질 것인가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의사는 분명 이런 식으로 건강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을 돌보는 것일 터이며, 아마 그것도 개별적인 인간의 건강을 돌보는 것


일 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의사는 개별적인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니까. 이
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 정도까지 이야기하기로 하자

제7장 우리가 추구하는 좋음과 행복

15 111 이 제 우리가 추구하는 좋음으로 다시 돌아가 그것이 과연 무엇일지 살


펴보 기로 하자 좋음은 서로 다른 행위나 기술에 있어서 각기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의술에서의 좋음과 병법에서의 좋음이 서로 다르 고 , 여타의 기술
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좋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서 나머지 것들이 행해지는 것인가? 이것은 의술의 경우에는 건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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