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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 한국중세사 13 주차 -

『삼국사기』의 역사인식

강문식
학습 내용

1. 고려 전기의 역사 서술
2. 김부식의 생애
3. 『삼국사기』의 내용과 특징
4. 『삼국사기』에 대한 평가
고려 전기의 역사 서술

삼국사 • ‘ 구삼국사 ( 舊三國史 )’ →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구분


( 三國史 ) • 현재 전하지 않음 → 『동명왕편 ( 東明王篇 ) 』 , 『제왕운기
( 帝王韻紀 ) 』 , 『고려도경 ( 高麗圖經 ) 』 등에 흔적 보임
• 단군신화 및 단군조선 수록
• ‘ 북진정책’의 이상 투영 → 삼국을 고구려 중심으로 정리
• ‘ 단군조선 → 고구려 → 고려’의 국가 계승 의식 반영
세상에서 동명왕 ( 東明王 ) 의 신기하고 이상한 일을 많이 말하니 , 어리석은 남녀들이라도 흔히 그
일을 말한다 . 내가 일찍이 그 얘기를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 “ 선사 ( 先師 ) 중니 ( 仲尼 ) 는 괴력난신
( 怪力亂神 ) 을 말씀하지 않았다 . 동명왕의 일은 실로 황당하고 기괴하여 우리들이 얘기할 것이
못된다 .” 고 하였다 . 뒤에 『위서 ( 魏書 ) 』와 『통전 ( 通典 ) 』을 읽어 보니 역시 그 일을 실었으나
간략하고 자세하지 못하니 , 국내의 일은 자세히 하고 외국의 일은 소략히 기록한 뜻인지도
모르겠다 .
지난 계축년 (1193, 명종 23) 4 월에 『구삼국사 ( 舊三國史 ) 』를 얻어 「동명왕본기 ( 東明王本
紀 ) 」를 보니 그 신이 ( 神異 ) 한 사적이 세상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더했다 .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귀 ( 鬼 ) 나 환 ( 幻 ) 으로만 생각하였는데 , 세 번 반복하여 읽어서 점점 그 근원에
들어가니 , 환 ( 幻 ) 이 아니라 성 ( 聖 ) 이며 , 귀 ( 鬼 ) 가 아니라 신 ( 神 ) 이었다 . 하물며 국사
( 國史 ) 는 사실 그대로 쓴 글이니 어찌 허탄한 것을 전했으랴 ! 김부식 ( 金公富軾 ) 공이 국사를
중찬 ( 重撰 ) 할 때에 자못 그 일을 생략했으니 , 공은 국사가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므로 크게
이상한 일은 후세에 보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생략한 것이 아닌가 ?
- 이규보 , 「동명왕편서 ( 東明王編序 ) 」 -
편년통재 속편 • 고려 예종 대 (1105~1122), 홍관 ( 洪灌 ) 이 왕명을 받아
( 編年通載續
編) 편찬한 편년체 역사서
• 송대 학자 장형 ( 章衡 ) 의 저술 『편년통록』의 속편 성격
• 삼한 시대 이래 고려 초기까지의 사적 ( 史蹟 ) 수록

편년등록 • 의종 대 (1146~1170), 김관의 ( 金寬毅 ) 가 편찬한 역사서


( 編年謄錄 )
• 태조 왕건의 가족 계보와 고려의 건국 과정을 기록
김부식 ( 金富軾 ,
1075~1151)
• 1075 년 ( 문종 29) 출생 . 본관 경주 .
• 1096 년 ( 숙종 1) 과거 급제
• 한림원 ( 翰林院 ) 에서 20 여 년간 재직
• 1116 년 ( 예종 11) 송나라 사행 ( 使行 )
• 1134 년 ( 인종 12) 묘청의 난 진압
• 1142 년 ( 인종 20) 관직 은퇴 (68 세 )
• 1145 년 ( 인종 23) 『삼국사기』 완성
• 1151 년 ( 의종 5) 사망 . 시호 문열
( 文烈 )
김부식의 • 4 형제 → 모두 문과 ( 文科 ) 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
형제들 • 김부식 모친 → 자식을 잘 양육한 훌륭한 어머니로 칭송 받음
국가에서 매년 곡식을 하사

2 남 : 김부필 ( 金富佾 )
1 남 : 김부필 ( 金富弼 )
문과 급제 [ 연대 미상 ]
1088 년 ( 선종 5) 문과 급제
직한림원 ( 直翰林院 ), 평장사 ( 平章
1107 년 ( 예종 2) 여진 정벌 참전
事)

4 남 : 김부철 [ 의 ]( 金富轍 [ 儀 ])
1097 년 ( 숙종 2) 문과 급제
3 남 : 김부식 ( 金富軾 )
직한림원 ( 直翰林院 ), 지추밀 ( 知樞
密)
(cf) 이자겸 집권기에는 이자겸의
김부식의 활동과 업적 전횡에 맞섰던 신진 관료

당 · 송 고문 ( 唐宋古文 ) 의 대가 보수적 정치가


『동문선 ( 東文選 ) 』에 시문 105 편 수록 이자겸 난 이후 개경 문벌 대표
송에서도 탁월함을 인정받은 문장 개혁보다는 현상 유지 · 지속에 주력

역사가
고려 중기 대표 유학자
왕조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
유가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
『삼국사기』 , 『예종실록』 , 『
불교 비판 , 신라 유학자 행적 부각
인종실록』
개성 영통사 대각국사비 ( 정면 )
고려 전기에 제작
비문 ( 碑文 ) 을 김부식이 지음
• 인종 즉위 후 이자겸이 왕의 외조부이므로 왕에게 칭신 ( 稱臣 ) 하지 말도록 하자는 주장 제기
→ 김부식이 반대
“( 전략 ) 비록 천자의 아버지라 하더라도 존호가 없으면 , 왕으로 하여금 절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  또 위제 ( 魏帝 ) 의 아버지 연왕 ( 燕王 ) 우 ( 宇 ) 는 표문 ( 表文 ) 을 올릴 때에 칭신 ( 稱
臣 ) 하였습니다 . 부자가 지극히 가깝다고 하더라도 예수 ( 禮數 ) 가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
하물며 외조부는 어떻겠습니까 ? 『의례 ( 儀禮 ) 』의 오복 ( 五服 ) 제도를 살펴보면 어머니의
부모는 복 ( 服 ) 이 소공 ( 小功 ) 으로 5 달에 그칠 뿐이니 자기의 부모와는 존중하고 가까이
함에 거리가 있습니다 . 어찌 똑같은 예를 올릴 수 있겠습니까 ? 마땅히 표문을 올릴 때는
칭신하고 왕정에 있을 때는 군신의 예를 행하며 궁궐 안에서는 집안 사람의 예로 서로 만나야
합니다 .”

• 이자겸의 생일을 ‘인수절 ( 仁壽節 )’ 로 부르자는 주장에 대해 김부식이 반대


“ 생일을 절 ( 節 ) 이라고 부르는 것은 옛날에는 없었습니다 . 당 ( 唐 ) 현종 ( 玄宗 ) 때 처음으로
황제의 생일을 천추절 ( 千秋節 ) 이라고 하였는데 , 신하에게 ‘절’을 사용하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
『삼국사기 ( 三國史
記)』

• 묘청난으로 분열된 민심 수습을 통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


편찬 목적
• 금과의 평화적 외교 관계 확립을 통한 국가 안정 추구
•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 → ‘관찬사서 ( 官撰史書 )’
편찬 과정
• 김부식이 1142 년 은퇴 직후 편찬 개시 → 1145 년 완성
/ 편찬자
• 김부식 [ 책임편찬관 ], 최산보 ( 崔山甫 ), 이온문 ( 李溫文 ),
허공재 ( 許洪材 ) 등 11 명
• 김부식 : 서문∙논찬 ( 論贊 ) 작성 , 사료 ( 史料 ) 선택 , 각
권 구획
10 명의 편사관 : 편찬 실무 담당
체재와 내용
총 50 권 → 연표 ( 年表 ) 3 권 , 본기 ( 本紀 ) 28 권 , 지
기전체 ( 紀傳體 ) (志) 9권,
① 「진삼국사표 ( 열전
進三國史表
( 列傳 ) )10
」 :권편찬 동기 등을 서술
내용 ② 본기 ( 本紀 ): 고구려본기 10 권 , 백제본기 6 권 , 신라본기
12 권
※ 핵심 내용 : 국왕의 정치 활동 , 천재지변 , 전쟁 , 외교
③ 지 ( 志 ): 제사 , 음악 , 복색 ( 服色 ), 거기 ( 車騎 ), 기용 ( 器
用 ), 옥사 ( 屋舍 ), 지리 ( 地理 ), 직관 ( 職官 ) 등 8 항목
④ 열전 ( 列傳 ): 총 69 명 → 신라 58 명 , 고구려 8 명 , 백제 3

전근대 동아시아의 역사 서술 체재

• 본기 ( 本紀 ), 열전 ( 列傳 ), 지 ( 志 ), 연표 ( 年表 ) 로 나누어
기전체
( 紀傳 기록하는 체재
體) • 사마천 ( 司馬遷 ) 의 『사기 ( 史記 ) 』에서 처음으로 적용
→ 반고 ( 班固 ) 의 『한서 ( 漢書 ) 』에서 정형화됨
• 중국 -25 사 ( 史 ) / 한국 - 『삼국사기』 , 『고려사』
• 역사 기록을 연 · 월 · 일순으로 정리하는 편찬 체재
편년체 • 중국 - 『자치통감 ( 資治通鑑 ) 』 / 한국 - 『고려사절요』 , 『
( 編年
體) 조선왕조실록』
• 편년체의 변형 → 강목체 ( 綱目體 ), 『자치통감강목 ( 資治通鑑綱
目)』
성상 폐하 ( 聖上陛下 ) 께서는 당요 ( 唐堯 ) 의 문사 ( 文思 ) 를 타고나셨고 하우 ( 夏禹 ) 의 근검
( 勤儉 ) 을 체득하시어 , 부지런히 정무를 돌보신 여가에 전고 ( 前古 ) 를 널리 보시고 , “ 지금의
학사 ( 學士 ), 대부 ( 大夫 ) 는 오경 ( 五經 )∙ 제자 ( 諸子 ) 의 서적과 진 ( 秦 )∙ 한 ( 漢 ) 역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두루 통하고 자상히 설명하는 자가 더러 있으나 , 우리나라의 일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아득하여 그 시말 ( 始末 ) 을 알지 못하니 , 매우 한탄스럽다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더구나 신라 , 고구려 , 백제가 나라를 세우고 정립 ( 鼎立 ) 한 후 예를
갖추어 중국과 상통했으므로 범엽 ( 范曄 ) 의 『한서 ( 漢書 ) 』나 송기 ( 宋祁 ) 의 『당서 ( 唐書 ) 』
에는 모두 열전 ( 列傳 ) 을 두었는데 , 중국의 일은 자세히 기록하고 외국의 일은 소략 ( 疏略 )
히 하여 다 싣지 않았습니다 . 또 고기 ( 古記 ) 는 글이 거칠고 볼품 없으며 사적 ( 事跡 ) 이
누락돼 있어서 군후 ( 君后 ) 의 선악과 신자 ( 臣子 ) 의 충사 ( 忠邪 ) 와 국가의 안위 ( 安危 ) 와
인민의 치란 ( 治亂 ) 을 모두 드러내어 경계로 삼기에 부족합니다 . 그러니 재주와 학문과
식견을 갖춘 인재를 얻어 일가 ( 一家 ) 의 역사를 이루어서 만세 ( 萬世 ) 에까지 해와 별처럼
빛나게 해야 합니다 . - 김부식 , 「진삼국사표 ( 進三國史表 ) 」 -
< 신라 여왕 즉위에 대한 『삼국사기』 사론 >
논하여 말한다 . 신 ( 臣 ) 이 듣기에 옛날에 여와씨 ( 女媧氏 ) 가 있었는데 , 이는 바로
천자 ( 天子 ) 가 아니라 복희 ( 伏羲 ) 를 도와 9 주 ( 州 ) 를 다스렸을 뿐이다 . 여치 ( 呂
雉 ) 와 무조 ( 武曌 )  같은 이에 이르러서는 어리고 나약한 임금을 만나서 조정에
임하여 천자처럼 정치를 행하였으나 [ 稱制 ]  사서 ( 史書 ) 에서는 공공연하게 왕이라
일컫지 않고 단지 고황후 ( 高皇后 ) 여씨 ( 呂氏 ) 나 측천황후 ( 則天皇后 ) 무씨 ( 武
氏 ) 라고 썼을 뿐이다 .
하늘의 이치로 말하면 양 ( 陽 ) 은 굳세고 음 ( 陰 ) 은 부드러우며 ,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은데 , 어찌 늙은 할멈 [ 姥嫗 ] 이 규방 ( 閨房 ) 에서 나와
나라의 정사를 처리하도록 하겠는가 ? 신라는 여자를 받들어 세워서 왕위에 있게
하였으니 진실로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요 ,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
특징 한계

① 유교사관 ( 儒敎史觀 ) ① 신화 , 설화적 내용 삭제


→ 합리주의 , 도덕주의 , 왕도정치 - 유교적 합리주의 강조 영향
② 역사를 정치의 귀감으로 인식 - 고조선 , 삼한의 역사 누락
→ 포폄 ( 褒貶 ) ② 신라 편중의 서술
③ 천재지변과 정치의 관계 중시 - 열전의 신라 편중 (69 명 중 58 명 )
④ 사실주의 ※ 반론 : 삼국의 ‘본기’가 공존
⑤ 영웅주의 신라본기 12 권 ( 통일 전은 5 권 )
⑥ 신라 계승의 역사의식 고구려 10 권 , 백제 6 권
삼국사기 ( 국보 제 322-1 호 )
『 삼국사기』에 대한 평가

신채호 , 김철준 등
부정적
- 김부식은 진취적인 고유 사상을 말살시킨 사대주의자
평가
-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에 물든 역사서 ( 신채호 )

고병익 , 이기백 , 신형식 , 정구복 등


- 『삼국사기』는 조선전기 역사서보다 덜 사대적 ( 고병익 )
긍정적
- 『삼국사기』는 합리적 유교사관에 입각한 역사서
평가
→ 신이적 ( 神異的 ) 인 고대사학에서 한 단계 발전 ( 이기
백)
리뷰 퀴즈
1. 학자 김부식의 학문적 특징은 무엇입니까 ?
2. 『삼국사기』의 서술 체재인 기전체 ( 紀傳體 ) 는 어떤 특징을 갖습니까 ?
3. 『삼국사기』의 서술이 신라에 편중됐다고 비판하는 근거와 그에 대한 반론에 대해
설명하세요 .
4. 『삼국사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자들의 주장에 대해 설명하세요 .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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