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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 60, 2016. 8, 83~111 http://dx.doi.org/10.15299/jk.2016.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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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1)김 영 철*

1. 들어가기
2. 연구방법
1) 연구 방법
2) 심층면접 디자인
3.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의 형성과 특성
1) 한인사회의 형성과정
2) 한인사회의 경제활동
3) 한인사회의 특성
4. 아르헨티나 한인 1.5세의 역이민과 적응
1) 아르헨티나 한인의 재이민
2) 아르헨티나 한인 1.5세의 역이민
3) 한인 1.5세들의 적응기
4) 사회적․문화적 차이
5. 결론

<국문초록>
본 논문은 아르헨티나 한인의 역이민에 대한 연구이다. 아르헨티나 한
인의 역이민은 현지 한인 사회의 형성과 경제 상황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
가 있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경제활동과 강력한 민족적 정체성과 공동체
를 형성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2000년을 기점으로 일
부 아르헨티나 한인들이 역이민했고 한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

* 이 논문 또는 저서는 2008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08-362-A00003).
**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교수(latin@b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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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1.5세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


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한국에 교육과 경제활동을 위해 역이민해 정착했
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조직문화와 직장생활, 자녀교육과 언어문제에 직
면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기도
했지만 아르헨티나 한인 공동체와의 접촉을 통해서 아르헨티나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 주요어: 아르헨티나, 재외동포, 재이민, 역이민, 1.5세대

1. 들어가기

세계화(globalization)과정은 국제이주(international migration)로 정


의할 수 있을 정도로 송출국과 수용국 모두에게 이주와 정착 과정에서 사
회·문화적 적응과 수용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한인들도 전세계 170
여 개국에 7백20만명이 거주하고 있어 디아스포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진행된 디아스포라는 산업화 과정에서 진행된 이주
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세계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북미, 일본, 중국과 구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국가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구한말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강압을
피해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했던 한인들이 정착해 살아오면서 지역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
와 달리 유럽, 중남미, 동남아와 오세아니아에서는 산업화 과정에 이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역사가 길지 않고 한인 이주 규모도 크지 않은 것이 사
실이다.
중남미 국가들로 이주한 한인들은 2010년을 기점으로 이민 50주년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
고 중남미 사회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한인 커뮤니티를 구성하여
성장했고, 더불어 현지 주류 사회와 소통하면서 사회적 동반자로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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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3

하는 민족 집단의 정체성을 발전시켜왔다. 짧은 이주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현지 정착과 경제성과를 이룬 중남미 한인 이주와 사회에 대한
연구와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는 확대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의 중남미 한인 연구는 한인 이주의 역사, 사회문화
적인 적응과정과 한국의 중남미 진출과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연구되었
다. 한인 이주 역사 연구1)를 통해 멕시코의 에니켄 이민,2) 쿠바의 한인
이민,3) 개별 국가들의 한인 이주사4)들이 발간되면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
았던 중남미 한인들의 발자취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또한 사회 문
화적 적응 과정 연구5)를 통해 개별 국가 단위에서 어떻게 한인 사회가 성
장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주류 사회와 소통하고 있는가를 밝혔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증가하면서 한국기업과 한인의 경제활동6)을 어떻
게 접목시켜 상호 윈-윈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도 확대해 왔다.
이런 연구들이 중남미 한인들의 전혀 다른 자연환경과 사회문화적인 배경
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결과를
알리는 것인 동시에 새롭게 이주하는 한인이나 성장하는 한인 2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또한 이런 연구를 통해 중남미 한인들이 어떤

1) 국사편찬위원회, 「중남미 한인의 역사」, 󰡔국사편찬위원회󰡕, 2007 참조.


2) 이자경,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한맥문화출판부, 2006 참조.
3) 서성철, 「쿠바의 한인이민사」, 󰡔이베로아메리카연구󰡕, 11,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2000, 137~159쪽.
4) 정하원, 안경자, 최금좌, 󰡔브라질 한인 이민 50년사󰡕, 브라질 한인회, 2013, 참조.
5) 임상래, 김우성, 이광윤, 김용재, 김영철, 이순주, 󰡔중남미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 부산
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8 참조 ;Carolina Mera, "Korean networks in the America:
the 1.5 generation as a transnational actor", The 4rd World Congress of Korean
Studies, Sheraton Grande Walkerhill Hotel (Seoul, Korea), Sun. Sept. 21st ~
Weds. Sept. 24th, 2008; "Koreans in Latin America: cultural interactions and
new understanding", The 3rd World Congress of Korean Studies, Cheju National
University, ROK, October 27-30, 2006 참조.
6) 김영철, 󰡔우리나라 기업의 브라질 진출 확대와 교민 활용방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7, 참조; 「브라질 한국기업의 한인 2세대 노동환경 연구」, 󰡔포르투갈-브라질 연구󰡕
12-1, 한국 포르투갈-브라질 학회, 2015, 5~27쪽; 구경모, 「파라과이 진출 한국 기업과
한인 사회의 갈등: 한인 후속세대의 사례를 중심으로」, 󰡔중남미연구󰡕 34-2, 중남미연구
소, 2015, 5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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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을 통해 현지 사회에 적응했는가를 잘 볼 수 있다.


세계화는 일방적인 이주와 정착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측면을 전제한다.
중남미 한인들이 현지 사회에 적응하고 다시 재이민이나 역이민을 결행하
는 경우도 많이 있다. 아르헨티나 한인 1세대들의 재이민과 역이민에 대한
문학적 고찰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이것은 한인 문학에 나타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7) 사실 중남미 한인 1세대들은 중남미가 최종적인 정
착지가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으로 재이민하기 위한 교두보로 생각하는 경
우가 많았다. 때문에 여전히 한인 1세들은 제3국으로의 재이민에 대한 기
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2세대
들은 재이민이나 역이민보다는 자신이 성장한 현지 사회에 정착해서 자신
들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경향들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한인 사
회가 독립적인 민족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와 소통하는데 있어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통계조
사 기간인 2009년부터 중남미 재외동포의 영주귀국은 점진적으로 줄어
2015년에는 거의 절반 정도로 감소했다. 이런 현상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
겠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한인들의 영주귀국이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배경에는 중남미 경제 환경이 개선되어 현지에서의 경
제활동이 더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와 더불어 역이민을 하고
자하는 1세대들의 재이민의 선택이 좀 더 다양해진 측면들도 있다. 그리고
한국의 빠른 발전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간단치 않아 영주귀국에 대해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변화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표 1> 중남미 재외동포 영주귀국 현황(2016년 6월 기준)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462명 469명 422명 390명 394명 312명 286명 190명

출처: 외교부 영사서비스과 자료: 2016년 6월까지 통계자료

7) 이상갑, 「역/재이민의 세계와 코레안 아르헨티노:맹하린의 소설비 「세탁부」를 중심으로」,


󰡔어문연구󰡕 61, 200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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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 1세와 2세들은 여전히 학업을 위해서나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재이민과 역이민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최근에는 재이민 보다는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선택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율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으로 역이민한 한인 동포들
에 대한 연구8)는 많지 않다.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노령화되면서
한국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역이민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 이들
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보다는 미국 한인 사회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경우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남미 한
인들의 역이민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중남미
에서 한국으로의 역이민의 인구통계적인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둘
째, 중남미 한인들의 역이민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역이
민으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는 이민자가 대부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재
외동포로 집중되어 있어 중남미 전체의 경향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남미 한인들의 역이민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중남미 한인들 중에 성공적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재외동포의 역이민을 통해 중남미 한인들이 역이민을 선택하
는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한국 사회에서 역이민자가 적응하는 과정에 부
딪히는 문제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와 같이 세계화는 쌍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재외동포들이 한국 사
회로 역이민 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향후 역이민의 규모가 커진다면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역이민을 통해
한인 1.5세들에게 역이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파악함으로써
한인사회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8) 아르헨티나 영주귀국자수 2005년 110명, 2006년 101명, 2007년 99명, 2008년 89명을
기록하였음. 조덕주, 「중남미 출신 대학생의 재외한국학교 경험 유무에 따른 대학 학업
및 생활 적응에 관한 연구」, 󰡔중남미연구󰡕 34-3,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2015,
181~211쪽; 박채순, 「아르헨티나 한인 동포의 재이주에 관한 연구」, 󰡔이베로아메리카󰡕
11-2,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2009, 233~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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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방법

1) 연구 방법
본 연구는 아르헨티나 한인 1.5세대들의 역이민 원인과 정착과정을 분석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연구 목적 달성을 위해 초국가적 접근을 활용한
다. 이 접근법은 역이민을 전체적인 이민 스토리로 파악하고, 역이민이 이
민자의 최종적인 기착지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이민자들은 고국과 강력한
사회적․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 정체성(Transnational
Identity)을 형성하고 발전시킨다. 따라서 트랜스내셔널리즘은 가족관계,
친구와 직접적인 접촉뿐만 아니라 이민자가 민족적 동질감으로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과 연결되어 있다.9) 이런 다양한 측면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문헌 연구와 심층면접 연구 방법이 적절하다. 문헌 연구는 한국
인의 아르헨티나 이민, 한인사회의 형성과 특성에 대한 사료 연구와 적응
과정에 대한 사례연구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이 방법은 주로 아르헨티
나 한인들이 발간하는 이민사와 개별 연구자들이 한인들의 정착기를 연구
한 내용들이 대상으로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의 형성과 특성을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아르헨티나 역이민에 대한 사례연구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따라서 아르
헨티나 한인들의 정착기를 다룬 언론보도나 개인적인 면담을 통해서 확보
된 내용들을 분석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사례연구에서도 대부분이 아르헨
티나 한인들의 현지 사회 적응과 관련된 것이었다. 따라서 문헌 연구들은
아르헨티나 한인의 역이민의 사적 배경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설명하는
데 매우 적절한 연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역이민에 대한 문헌 자료들이 많지 않았고, 본 연구의 목적이

9) Stefanie Smoliner, Michael F rschner, Josef Hochgerner & Jana Nov, Comparative
Report on Re-Migration Trends in Central Europe, Leibniz Institute for Regional
Geography, 2012, 13~14쪽; Carolina Mera, "Korean networks in the America: the
1.5 generation as a transnational actor", The 4rd World Congress of Korean
Studies, Sheraton Grande Walkerhill Hotel (Seoul, Korea), Sun. Sept. 21st ~
Weds. Sept. 24th, 2008; 박채순, 앞의 논문,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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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7

한국에서 정착해서 생활하는 한인들의 개인적 삶을 통해 적응과정을 분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층면접 방법을 활용했다. 심층면접 방법은 응답자
의 태도와 행동에 내재하는 보다 근본적인 동인을 밝히는 데 장점을 지니
고 있고, 양적인 조사 방법이 대개 표준화되어 있어 예측 가능한 결과만을
도식적으로 도출하는 데 비해 알려지지 않은 심리를 포착하는 데 유용한
조사 기법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삶을 추적할 수 있고, 통계를 통한 양적
분석이 지니는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다. 따라서 역이민한 이민 1.5세대들
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역이민의 원인을 분석하고, 또한 한국 사회에 적응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화차이와 문화적응 혹은 갈등들을 좀 더 면밀
하게 분석하는데 유용한 연구 방법이다.

2) 심층면접 디자인
심층면접 디자인은 다면적인 질문을 통해 심층적인 분석을 위한 내면적
인 이야기를 끌어내어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역이민의 원인과 정착
과정에 부딪힌 문제점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통한 어떤 방법으로 극
복했는지는 파악할 있도록 진행했다.
첫째, 면접대상자들을 이민 1.5세대로 제한했다. 한국으로 이주한 아르
헨티나 한인들 중에 역이민으로 정의할 수 있는 세대는 이민1세대와 1.5세
대들이다. 이민 1세대들은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서 선택한 경우와 노후 생활을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역이민을 선택했다
는 것을 기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민 1세대들은 아르헨티나
로의 이민과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심층면접대상자들도 이민 1세대들과 마찬가지로 공통적인
경험을 지니고 있지만 부모의 선택으로 이민을 떠났기 때문에 그 선택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고민하면서 역이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실 이민 1.5세대는 이민 1세와 이민 2세의 중간적 존재로서,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민 국가와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이중적으로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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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둘째, 심층면접을 통해서 다층적인 분석이 가능하도록 기초정보 조사와
개인적 경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질문들로 구성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인 정보, 개별적인 경험, 교육 환경 및 가족관계까지의 정보
들을 확보하여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또한 면접 시에 던
진 질문들은 개인 정보를 토대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표 2> 심층면접대상자들의 기초 정보


구분 면접자 1 면접자 2 면접자 3
성별 여 남 여
연령대 40대 40대 40대
이민세대 1.5세대 1.5세대 1.5세대
출생지 한국 한국 한국
교육정도 대학원 대졸 대학원
직업 전문직 자영업 공무원
한국: 17년
한국 10년
국별 교육기간 아르헨티나 17년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10년
7년
한국:20년 한국: 35년
한국: 30년
거주 국가 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15년
25년 10년
가족관
결혼여부 기혼 기혼 기혼

자녀수 2명 4명 1명
자녀국적 한국 아르헨티나 한국
가족역이민 없음 직계가족 없음
가족거주국 아르헨티나(부모) 아르헨티나(부모) 한국
부모국적 한국 한국 한국
연령 40대 40대 40대
배우자 국적 한국 한국 한국
이민경험 없음 있음 없음
이민년도 1985년 1977년 1987년
역이민 년도 1999년 2001년 1992년
한국거주기간 17년 15년 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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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9

셋째는 피면접자들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개인적인 경험들을 전달


할 수 있도록 진행했다. 구체적인 일정과 내용은 2016년 7월 8일 서울에
서 진행했으며 3명을 동시에 상호 교차 질문 방법을 통해서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진행했다.

3.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의 형성과 특성

1) 한인 사회의 형성과정
아르헨티나로의 한인 이민은 크게 시대별, 이민자 특성, 이민 형태에 따
라 5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째 단계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국적으로 이민한 사람들이다. 당시에 일본국 조선인 3명이 개인적인 자격
으로 입국했다. 첫째는 1940년 이전에 한인 여자가 입국했으나 정확한 내
용이 밝혀지지 않았다. 두 번째 경우는 1941년 일본 어선의 주방종업원으
로 하선한 이차손씨이다. 그는 1964년에 한국에서 부인 손경자씨를 데리
고 왔고, 훗날 아르헨티나 교민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세 번째는 1950년에
입국한 강영례라는 여자로 일제 강점기인 1938년에 중국의 상해에 거주하
다 이탈리아인과 결혼하여 이탈리아로 갔다가 가족을 따라 아르헨티나로
입국했다.10) 이들은 공통적으로 일제 감정기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일
본 국적의 조선인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단계는 한국 전쟁의 반공포로가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경우이다.
1956년 2월 4일 55명의 반공 포로들이 제3국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아르
헨티나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1956년 10월 21일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아세이사(Ezeiza) 공항에 9명의 포로가 도착했는데, 그 중 7명이
인민군이고 2명은 중공군 출신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1957년 5월 11일 비

10) 김영철, 「브라질 한국기업의 한인 2세대 노동환경 연구」, 󰡔포르투갈-브라질 연구󰡕 12-1,
한국 포르투갈-브라질 학회, 2015, 58쪽; Carolina Mera, "Koreans in Latin America:
cultural interactions and new understanding", The 3rd World Congress of
Korean Studies, Cheju National University, ROK, October 27-30, 200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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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기 편으로 5명이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11) 이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서 생활했으며 한국인의 공식이민이 진행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 번째 단계는 한국 정부가 산업화와 인구증가를 우려해 실시한 인구
분산 정책에 따라 추진된 공식이민이다.12) 1965년 10월 14일 농업이민자
들이 같은 해 8월 17일 부산항을 출발해 도착했다. 한국인의 공식이민은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으나, 외무부 발표를 보면 이미 1965년에 파라과이
와 볼리비아 이민자들 중에 169명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의 농업이민은 라마르께 농장을 시작으로 산 로렌소 농장, 얏
다마우카 농장, 이스까야꾸 농장, 산 하비에르 농장 등으로 확대되었다.
1960년대 중반 농촌을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촌인 레띠로촌에 모
여들어 생업에 종사했다. 다음으로 공동체를 형성한 곳은 비쟈쏠닷띠촌이
었고, 세 번째로 마련한 곳은 아르헨티나 한인들의 집단거주지로 성장한
109촌이었다. 1960년대 편물 삯일일 이민사회에 각광을 받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봉제 삯일까지 전개되면서 한인사회의 경제중심지로 자리 잡았
다. 1970년대까지 이민이 지속되었으나 농업이민을 벗어나 중산층, 자영
업자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원이 바뀌었다. 또한 교통수
단의 발전으로 배로 이동하는 것이 비행기로 바뀐 것도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성격을 분석해보면 공식이민의 단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는 1985년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투자이민협정을 체결하면
서 투자이민이 급증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자본을 지닌 동포들이
많이 이주했다. 이시기는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아르헨티나의 경제위
기가 맞물러 한국이민자들의 일방적인 투자와 진출이 확대되는 시기이다.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처럼 아르헨티나도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규모로 투자 이민이 가능했다.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
가 또 한번 변혁기를 맞은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정착금을 준비하고 했

11) 김정훈, 「재아 한인 시문학의 특성 연구」, 󰡔한민족문화연구󰡕 32, 한국민족문화학회,


2010, 246쪽.
12) 서성철,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인 이민:아르헨티나 한인사회와 현지적응」, 󰡔라틴아메리카
연구󰡕 18-3,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2005,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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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11

던 이민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좀 더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초기 이민자들이 형성한 경제 토대와 문화 정체성
은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부터를 초국가적(Transnational)
이민으로 규정하기도 한다.13)
마지막은 세계화이후 2000년을 전후에 한국과 아르헨티나간의 인적교
류 확대와 맞불러 있다. 여전히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인적교류는 한국인
들의 투자와 이민이 절대적으로 많지만 세계화 이후 상대적으로 많은 아
르헨티나인들이 입국하고 한인들이 역이민의 형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이에 따라 치안도 더욱 나빠지면
서 한인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다른 국가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중에는 자녀 교육을 위해 선택된 재이민도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는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정치·경제 상황을 반영
할 뿐만 아니라 개방화와 노동력 이동의 자유화가 확대된 세계화의 흐름
과 같은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의 변화를 추
적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변수들을 분석해야 하는 어려움
을 지니고 있다.

2) 한인사회의 경제 활동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많은 22,730명14)의 재외동포
들이 거주하고 있다. 한인들은 대부분 109촌, 아베쟈네다와 온세 광장을
중심으로 한인 타운을 형성하고 있으며 주로 의류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인 경제활동은 80%가 섬유산업에 집중되어 있다. 부에노아이레스시의
아베쟈네다지역에 약 1,200여개, 온세 지역에 약 400여개, 그 외 지방도
시에 약 150여개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분포는 아래 <표 3>과
같다.

13) 박채순, 앞의 논문, 238쪽; Carolina Mera, op. cit., 2008 참조.
14) 재외동포재단 20015년 재외동포현환 통계(http://research.korean.net/skyimage/20160412/
201604121316511442015재외동포현황.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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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한국민족문화 60

<표 3> 아르헨티나 한인 경제활동 현황

지역구분 업종별 현황 개수

의류상 750여개

의류부속상 40여개

아베쟈네다 원단상 70여개

공장 40여개

의사/변호사/회계사/통관사 80여개

온세지역 의류 및 기타 400여개

지방도시 의류 및 기타 150여개

전체 1200여개

출처: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2015년 통계

아베쟈네다는 아르헨티나 섬유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상당히 높다.


아르헨티나 산업구조가 목축업, 광물자원 개발과 같은 1차 산업이 중심으
로 이루어져 있어 제조업 분야가 약하다. 따라서 한인들이 다른 산업으로
경제활동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지만 실질적으로 확대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런 면에서 한인 사회가 섬유산업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통해 고급화 전
략을 통해 발전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최근 경제상황이 호전되면서 안정적인 경제를 토대로 주류사회로 통합
되어가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전히 전
체 한인 인구의 64.2%가 영주권만을 가지고 있고, 33,8%가 시민권을 가
지고 있다. 여전히 1세대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만, 한인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사회·경제 활동을 하는데 있어 시민권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한인 1세대들은 아르헨
티나를 재이민을 위한 중간 기착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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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13

제, 아르헨티나 경제가 악화되었던 2000년대 초반 많은 한인들이 멕시코,


브라질과 미국으로 이주했었다. 경제상황이 호전되면서 다시 아르헨티나
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표 4> 아르헨티나 체류형태별 현황

영주권자 일반체류자 유학생 시민권자 전체

14,600명 390명 50명 7,690명 22,730명

출처: 재외동포재단 2015년 재외동포현황 자료, p.20

3) 한인사회의 특성
공식이민 5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인 사회는 1.5세와 2세들이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다.15) 아르헨티나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인(변호사, 회계
사, 의사, 디자이너)으로 활동하고 있는 규모가 약 200명이 이른다.16) 이
들은 한인 사회의 주도층으로도 성장하기도 하지만 아르헨티나 주류사회
와 소통하면서 직접적인 참여율을 높이고 있다. 그 이유는 부모세대들과
달리 스페인어와 아르헨티나 문화에 익숙한 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부모
세대들이 스페인어에 대한 학습이나 아르헨티나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
재이민을 위한 중간 기착지로 생각했다면, 이들 세대는 자신의 의지가 많
이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성장기를 보냈거나 출생한 사람
들로서 아르헨티나의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어 자신의 정체성을 아르헨티
나로 인식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고향으로 인
식하고 있다. 변겨레 씨가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저는 한국계 아르헨티
나인이지 절대로 외국인이 아니다.17)”라고 말한 것처럼 스스로를 아르헨

15) 아르헨티나 문화부 차관보에 임명된 변겨레, 방송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진이, 유일


한 한국인 탱고댄서인 크리스탈 유, 여성조각가 김윤신, 생물학 박사인 양승민 등이 대표
적인 경우이다.
16) Kotra, 「아르헨티나」, Kotra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2015, 308쪽.
17) “한인2세 아르헨 차관보 변겨레 "언제나 한글이름으로 결재" http://www.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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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한국민족문화 60

티나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주류사회와 동등한 관계 속에서 생활과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부모세대들은 여전히 아르헨티나에서 오
랫 동안 살았지만 낯선 외국인으로 인식하고 대등하지 않은 관계로 한인
사회와 아르헨티나 사회를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부분이 부모세대
와 자녀세대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아르헨티나 한인 1세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인회,
한글학교, 재아이민문화원 등 각종 단체 설립, 한국 생활 풍습 유지 등의 다
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 중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르헨티나 한인 문인협회(Escritores Coreanos en Argentina)
였다. 문학잡지인 “로스안데스 문학(Literatura de Los Andes)”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해왔다.18) 로스 안데스 문학이 한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주류 문학에 합류하여 아르헨티나
인들의 삶과 관념에 호소할 수 있는 문학작품을 산출해내는 것보다는 한
국인의 문화와 정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아르헨티나의 소수민족문학으로
자신들만의 문화서클을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의 소수민족이 아니라 외국에 있는 한국 문학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런 이유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되었
다고 할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인으로서의 동질적 문학작품 생산이 어려웠
기 때문에 선택한 측면도 있다. 이러한 현지인들과 소통 거부의 상징적 형
태는‘매직글라스’를 통한 거리두기라고 규정한다. 매직글라스는 바깥쪽은
거울이고 안쪽은 유리처럼 바깥을 훤히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특수 거울을
말한다. 즉,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보게 되
지만, 안쪽에서는 유리를 통해 거울을 보는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지인과 재아 한인 사이에 매직글라스를 설치하는 것

bulletin/ 2016/06/30/0200000000AKR20160630199600014.HTML(2016.07.29.검색
일자)
18) 아르헨티나 한인 문인 협회와 문학잡지 그리고 문단 작품과 해석에 대해서는 이명재, 「아
르헨티나 한인들의 한글문단 고찰」, 󰡔우리문학연구󰡕 46, 2015; 김환기, 「아르헨티나 코
리안 문학 선집」, 보고사, 20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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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15

은 자신을 방어하려는 고슴도치의 움츠림이며, 대화 거부의 적극적인 의


사 표시라 할 수 있다.19)
사실 아르헨티나는 다문화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역
사 속에서 찾아보면 원주민과 아프로 아르헨티나인(Afro-argentino)들을
차별한 경험을 지니고 있는 국가다.20) 그리고 현재 백인 인구가 85%를 차
지하는 백인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유색인
들에 대해서 눈에 드러나지 않는 차별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문화가 유럽
문화에서 많이 유래되면서 다른 지역 출신 이민자들에게 대해 브라질이나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해 폐쇄적이다. 한국인들의 현지 문화
적응 과정의 어려움과 더불어 아르헨티나 문화가 가지고 있는 배타적인
요소가 한인 1세대들이 접근하고 소통하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4. 아르헨티나 한인 1.5세의 역이민과 적응

1) 아르헨티나 한인의 재이민


아르헨티나 재외동포들의 재이민은 이민과 동시에 시작되었으나 1990
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집중되어 있다. 현지사회가 1990년대 말
부터 2000년대 초까지 외채 문제로 비롯된 경제위기를 겪었다. 2003년부
터 GDP 성장이 지속되면서 위기가 끝났지만 경제적 파급효과는 매우 컸
으며 한인 사회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민
들이 밀집한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한인 타운(백구촌)과 시내의
아베쟈네다 및 온세 지역의 한인 상가는 휴·폐업이 잇따르고 미국과 멕
시코, 브라질 등 인접 국가로 대거 재이민을 떠나는 ‘엑서더스’ 현상이 벌

19) 김정훈, 위의 논문, 255쪽.


20)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신들이 인종적으로는 백인이고 문화적으로는 유럽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원주민과 아프로 아르헨티나인들에 대한 차별의 역사에 대해서는 서성철,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아프로·아르헨티나인: 19세기 흑인 인구의 은폐 과정」, 󰡔라틴아메리카연
구󰡕 27-2, 2014, 109~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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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한국민족문화 60

어졌다.21) 한인들은 큰 경제적 손실을 입어 어쩔 수 없이 재이민을 선택한


경우였다. 1989년 말 동포 수가 4만 명에 달했으나, 장기간 계속 되는 경
제 사정 악화로 캐나다, 미국, 브라질, 멕시코 등으로의 재이주 및 한국으
로 귀국하는 역이민 현상으로 동포 수 감소 추세를 보이며 한인사회가 1만
5천명 선까지 감소했다.
한인들은 경제위기가 끝나고 많은 수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재이주를 했
지만 이전 규모로 성장하지는 않았다. 아르헨티나로 재이민한 한인들은
대부분이 경제적 이유에서 탈출을 시도한 것이었기 때문에 성장이 회복되
면서 아르헨티나로 회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르헨티나를 중간 기착지
로 생각했던 한인들은 경제위기를 계기로 다른 국가로 재이민하는 기회로
여기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으
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 일부는 자녀들을 재이민한 국가에 두고 아
르헨티나에서 다시 재기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재이민, 재이민의 역이민에 대해서 2008년 아르헨티나 이민문화
연구원이 실시한 연구를 살펴보면 재이민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는 아르헨티나의 높은 인플레이션, 실업율과 디폴트 선언 등의 정치·경
제적 이유였다.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경제 불황은 실제 많은 교민들이
미국, 멕시코와 브라질로 이주하는 원인이었다. 둘째는 자녀들이 좀 더 나
은 교육환경에서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서 였다. 셋째
는 멕시코, 칠레와 브라질 혹은 영어권 국가를 선택하여 재도전을 위한 것
이었다. 넷째는 아르헨티나의 불안한 치안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사
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범죄율이 증가하고 통제가 어려운 지경으로 발
전하기도 했다. 다섯째는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 살겠다는 현지화 의지의
부족이다. 여섯째는 계돈 문제, 금전 차용, 이성간의 문제 등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22) 이와 같이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는 특정국가나

21) “아르헨티나 사태로 한인사회도 ‘휘청’-재이민 급증”, 한겨레, http://legacy.www.hani.


co.kr/section-007100001/2002/02/007100001200202050809032.html((2016.07.28.
검색일자)
22) 박채순, 앞의 논문, 244~245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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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17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재이주가 이루어졌다. 내용을 살펴보면 재이민의


가장 큰 원인 경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역이민을 한 경
우에도 동일한 원인이었을까? 물론 위의 연구가 진행되던 시기와 지금의
아르헨티나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더라도 역이
민의 경우에는 재이민과 좀 다른 원인과 내러티브를 찾을 수 있다.
재이민의 역이민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한인들은 공통적으로 생활터전을 아르헨티나에 두고 위기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경제적 피난’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많았다.23) 사실 아르헨티나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많은 한인들은 거주국가의 경제 불황이나 개인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재이민이나 역이민을 떠났
다. 따라서 경제위기가 끝나면 당연히 본국으로 귀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
졌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재이민의 이유는 자녀교육이었다. 한국인들은 자녀교육에 대
해 아주 특별한 의식과 경험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이 아닌 개도
국으로 이민한 대부분의 한인들은 현지의 우수한 사립하고나 국제학교를
보내거나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아르헨티나 교민들도
현지의 우수한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을 선호했고, 경제력을 갖추고 나면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2) 아르헨티나 한인 1.5세대의 역이민


그럼 역이민은 어떤 원인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르헨티나 경제 위
기 시에서는 다른 지역과 동일하게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
다. 아르헨티나와 반대로 한국은 월드컵을 개최하는 등 경제상황이 안정
을 유지했고, 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발전 상황들이 아르헨티나 사회와 한
인사회에 인식되면서 본국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가 많이 바뀌었다. 한국

23) 아르헨티나 경제난에 부딪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스페인, 브라질, 멕시코와 미국으
로 이주했다. 사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많은 한인들은 거주국가의 경제 불
황이나 개인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재이민이나 역이민을 떠
났다. “아르헨티나 경제난으로 스페인 등 이민 행렬”, MBC News(2016.08.08.검색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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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한국민족문화 60

도 선진국으로 인식되면서 한국으로의 역이민도 진행되었다.


아래 <표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0년 104명을 정점으로 계속해서 감
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감소원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
을 텐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 상황의 변화, 아르헨티나 사회의 변
화, 한인사회의 세대 변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표 5> 아르헨티나 재외동포의 영주 귀국 현황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7월

101명 104명 97명 64명 75명 75명 51명 31명

출처: 2016년 7월 외교부 영사서비스과 제공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영주 귀국자 숫자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생활하고 있는 역이민자들을 통해 그 원인들
을 살펴보면 역이민의 원인과 유형들을 분석할 수 있다.
면접대상자들이 역이민의 1차적인 이유를 학업이라고 응답했다. 기초
정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3명 중에 2명은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다. 이민 1세들이 노후 생활을 즐기기 위해 한국으로 역이민 했
다면 1.5세대들은 학업을 위해 한국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많은 학생들
이 정규과정에 들어가서 학업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글교육과 문화
체험을 위해 단기방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응답했다.
또 다른 이유는 부모세대와 연결되어 있었다. 면접대상자들의 인터뷰
내용에서 보면 부모 세대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부모세
대들은 여전히 자녀들의 교육에 관여하기를 바라고 있고, 한국에 살고 있
는 친족들을 통해서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성장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나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한국의 눈부신 발전 수준으로 고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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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19

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르헨티나 교민 자녀들은 선진


국에서 교육받기를 바란다. 그 전에 다양한 통로를 통해 한국의 경제 발전
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겠지만,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아르헨티나 방
송매체를 통해 보여진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모국으로 자녀를
보내는 것은 곧 선진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지는 것이었다.

“2002년 월드컵 개최기간에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아르헨티나


방송들이 한국에 대해 보도하는 방송과 경기장 주변에 비춰지는 한국의
모습은 이미 선진국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면접자 1).”

그리고 언어적인 문제도 한국을 선택한 이유였다. 물론 교육을 통해 영


어에 능통한 자녀들이 많았지만, 한국어에 익숙하고 한국 문화에 익숙한
것도 한국을 선택한 이유였다. 면접자들 중에 1명은 한국에서 교육 받은
경험이 없었고, 1명은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국내에서 마쳤고, 나머지 1명
은 대학원 과정을 한국에서 마쳤다. 이들이 선택하고 있는 직업들은 한국
에서 교육 받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교육을 통해 한국 사회에 적응
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아르헨티나 한인들이 재이민이나 역이민을 선택하는 것은 아르
헨티나에서 대학 졸업 이후 사회진출에 많은 기회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
다. 아르헨티나는 1차 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제조업 중심의 사회보다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그래서 우수한 교
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지만 취업의 기회가 적을 수 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저임금이 한인 사회로 회귀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아르헨티나는 임
금이 낮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임금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인 가정에서 사위를 맞게 되었는데 직업이 의사인 예비사위에게 의


사 직업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딸을 포기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
다(면접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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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한국민족문화 60

위의 내용에는 한인 경제권의 소득이 아르헨티나 다른 직업군보다 높은


소득을 보장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아르헨티나가 다문화 사
회를 구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백인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한인
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해 준다.

3) 한인 1.5세들의 적응기
최근 아르헨티나 한인의 역이민은 주로 1.5세대들이 주도하고 있다. 자
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의 결정에 따라 이민했고, 한국의 교육과 문
화 경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집단이다. 또한 부모세대들이 만든 매직글라스에 자신을 끊
임없이 비추면서 글라스 넘어 있는 아르헨티나 주류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서 개인적 노력을 했던 세대이다. 한국의 경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
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인식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
다. 이런 특성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1.5세대들은 부모세대의 아르헨티
나 사회적응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2세대들이 주류사회로 통합되는 과정에
서 멘토와 롤모델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한국으로의 역이민 이유
도 단순히 한인의 역이민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만 아니
라 세대간의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즉 1.5세
와 2세들이 한국 사회를 이해함으로써 한인사회의 세대간 갈등요소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
하는 문제를 통해 부모세대들의 의식도 이해하고 있었다.
역이민자들이 겪고 있는 적응 문제는 크게 직장생활과 조직 문화, 언어
문제와 자녀교육에 대한 태도차이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언어문제를 제
외한 나머지 부분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갈등을 느끼고 있는 부
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하다 한국의 조직문화
와 자녀교육 문제를 바라보게 되면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직장생활과 조직문화에 대해 살펴보면 면접자 중 자영업자만이 이
질문에 대해 경험을 설명했다. 나머지 2명은 개인적인 활동이 가능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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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21

직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장생활과 문화에 대한 문화충격


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면접자 2는 한국의 조직문화가 한국과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운영하는데 차이가 있어서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저는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혼자일 할


때도 많지만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한국에서는 술이 없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거나 친해질 수가 없다.
심지어 밥 먹는 것을 통해 사업이 성사되는 경우가 많아서 적응하기 어
렵다(면접자 2).”

위의 내용은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직장생활이나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기 보다는 개인적인 친목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
만 한국의 조직문화의 특성 중의 하나가 개인적인 삶과 조직 활동이 하나
로 연결되어 있어 분리되지 않는다는 측면과 개인 사업자로 활동하고 있
는 자영업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직문화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으로 해석
할 수 있다.
한국으로의 역이민에서 만나는 또 다른 장벽은 언어였다. 아르헨티나로
어릴 때 이민한 사람들은 한국으로 역이민 하면 한글을 다시 배워야 한다.
현지 한인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는 ‘작은 한국’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어와
문화를 즐기지만 한국에서는 또 다른 언어적인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마
치 부모세대가 아르헨티나로 이민했을 때와 같은 언어적인 문제에 부딪히
는 것이다. 일상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어려운 단어나,
유행어와 같이 현시점을 반영한 단어, 그리고 쓰기에 약하기 때문에 간단
한 문서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면접자 2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였는데, 비교적 어린 6세에 이민을 떠
났기 때문에 한글을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스페인어를 배워서 스페인어가
거의 모국어 수준이었다. 스스로도 이런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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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한국민족문화 60

신고서와 호적을 만들어야 했는데 서류에 있는 글자가 무엇인지도 모르


겠고, 관공서를 갔는데도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귀
국 신고 작성하고 신분증을 받는데 정말 힘들었어요(면접자 2).”

한국으로의 역이민이 긍정적인 변화는 가족 범위 확대, 생활의 편의성,


경제적 안정과 안전한 치안이라고 응답했다. 다른 지역으로 재이민을 선
택했을 경우와 비교했을 때 나타나는 장점이었다. 대부분 이민생활은 한
인 공동체나 이민한 가족들간의 관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의 범
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가족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대안으로 현지
에 자리잡고 있는 종교단체들이다. 역이민은 그 동안 잊고 있던 조부모와
존속들로 가족의 범위가 확대된다. 가족확대는 개인적인 고충을 나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역이민자들에 많은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는 아르헨티나에서 경험하지 못한 생활의 편의성이라고 응답했
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에 비해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어 초기 정착과정
에서 빠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지만 적응기를 지나면 한국 사회가 구축
하고 있는 다양한 편의시설들을 활용할 수 있다. 이중에는 가정의 편의 시
설을 설치하는 과정이나 모든 상품들을 시간 제약 없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 생활의 이점이라고 언급한다. 아직 아르헨티나는 생
활 편의시설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안정성이 한국이 지니고 있는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심
층인터뷰 대상자들은 한국에서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영위하고 있었다.
특히, 자영업을 운영하고 있는 면접대상자는 역이민의 이유가 경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서 한국에서 터전을 마련한 것을 매우 만족했다. 그리고
나머지 2명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학부와 대학원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문 직업을 가지고 있어 직업적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이와 같
이 1.5세대들은 역이민이 대부분 경제활동을 위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 한인들이 역이민자들은 치안 문제에 매우 만족
했다. 아르헨티나는 치안이 불안해 한인들이 생활하는데 많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면접자들은 한국에서는 치안이 잘 유지되기 때문에 안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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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23

고 생활하고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응답했다.


이와 같이 한국으로의 역이민은 이민 1.5세들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
다. 1.5세대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한국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라고 한다. 똑같이 한국어를 하고
있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한국어의 어휘와 발음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라거
나 동료들이나 주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경우에 주변으
로부터 듣는 소리이다. 한국으로 역이민을 했지만 주변인으로서 살고 있
는 것 같다는 푸념을 한다. 물론 일부 1.5세대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
르게 인식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떠나 있던 시간들이 자아를 형
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영향은 더욱 크고 오래 동안 지속된다. 우리말
로 말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어디 사람이냐고 묻는 상황은
아르헨티나에서 겪은 정체성의 문제를 재생산되고 있다.

4) 사회적․문화적 차이
반면 한국으로의 역이민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우선, 높은 사회
적 스트레스, 높은 경쟁체제, 높은 교육열 그리고 아르헨티나 한인사회에
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주말 부부라던지 하는 최근 한국 사회의 변화로 인
한 현상들에는 적응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헨티나 한인들의
경제적 성공은 여러 가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인들의 근면 성실한 생활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생활 태도 때문에 한
국인들은 어디를 가든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근면 성
실한 생활태도에는 다른 사람보다도 더 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한인들도
아르헨티나 사회보다는 경쟁체제에 익숙해 있지만 한국 사회에가 지니고
있는 빠른 속도와 경쟁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아르헨티나 한인사회가 주류사회보다 교육열이 높기는 하지만 한
국의 교육열과는 차이가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개
입하는 ‘치맛바람’은 아르헨티나 교육 시스템에 자유분방하고 여유로운 체
제와는 사뭇 다르다. 이런 학교 교육보다는 주변 상황에 대한 적응을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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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한국민족문화 60

큰 문제로 여겼다.
마지막으로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주말부부에도 익숙해지는데 많
은 시간이 걸렸다. 한인사회는 교육을 위해 자녀와 떨어져 사는 경우는 많
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는 한인
경제 활동이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민한 가족간의
유대감이나 동질감이 굉장히 높았다. 이런 면에서 주말부부 혹은 주말가
족은 아르헨티나 한인들에게 적응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일면이었다.
면접자 1의 경우에는 대학 교육을 아르헨티나에서 했고, 대학원 과정을
한국에서 다녔는데, 교육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생 때 경험했던 차별에 대해 설명했다.

“시험치고 나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성적이 안나 와서 교수님을 찾


아가서 이야기를 했는데, 성적평가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고, 내가
긴장해서 말을 더듬거리니까 스페인어 말을 잘하면 그때 다시 와서 이야
기하라고 했어요(면접자 1).”

“한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는 특정한 교수님의 수업이 문제가 있어서 수


업을 듣는 친구들이랑 서명을 받아서 교수님을 교체해달라고 요청하자고
했더니, 어떤 후배가 언니! 그렇게 하면 대학원 졸업 못해요(면접자 1).”

면접자 2는 역이민을 통해 영주 귀국했을 때 어려운 점 중에 하나는 관


청에 가서 호적을 만드는 행정적 서류와 절차가 매우 어려웠다고 했다. 6
세일 때 이민 갔을 때는 부딪히는 문제를 똑같이 부딪히고 있었다. 이런
문제는 행정절차도 모르고 한글도 올랐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자
녀도 역이민 왔을 때 자신이 아르헨티나로 떠날 때와 같은 6세였다. 그런
데 아이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자신과 유사한 문제로 어
려워하는 것을 보고 잘 선택한 것인가에 대해 반문한다고 했다.
위의 내용을 보면 대학 사회에서도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알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사회적 차별과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 일 수도 있지만 역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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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25

자들이 부딪히는 문제일 것이라고 판단된다. 면접을 진행하면서 대학생활


에서 교우관계와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었다. 우선 아르
헨티나에서는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한국과 같이 여흥을 즐기는 시간들이
없다. 그리고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를 함께 하면서 교우관계를 맺고 있다
는 점에서 다른 측면들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스포츠 활동 이후에 연결되
는 자리도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5. 결론

아르헨티나 한인들의 역이민은 2010년을 기점으로 정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체적으로 한인들의 영주귀국은 현지의 경제 불황,
교육 환경과 사회 조건들이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변수이다. 동시에
한국의 국내 상황도 역이민의 추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또 하나는 한인
세대의 변화가 역이민의 규모를 줄이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르헨티
나 한인들의 역이민 감소는 이와 같은 동일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본문에
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르헨티나 한인사회의 재이민과 역이민의 이유가
경제 환경의 변화가 크게 영향을 비치는‘경제 난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역이민이 줄어드는 이유에는 한국 국내의 변화가
큰 변수로 작동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2008년 이후 높지는 않
지만 꾸준히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2009년까
지 역이민이 증가한 것은 한국의 전체적인 이미지 개선이 영향을 미친 것
은 틀림없다. 2002년 이후 한국의 발전상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한국도
선진국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이민 세대의 변
화가 영주귀국의 숫자를 줄어들게 한 변수로 볼 수 있다.
이민 1세대들은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경제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노력
했다. 그 결과 한인사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체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경제규모를 확보하고 있다. 경제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노후생활을 누리기 위해 한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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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한국민족문화 60

이민 국가로 선택했다. 그런 이민 1세대들이 2010년까지 한국으로 역이민


을 했다.
그 이후 한국으로 영주귀국은 다른 세대들이 이끌고 있다. 부모의 선택
으로 이민을 떠난 1.5세대들이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선택했다. 역이민의
원인은 부모세대들이 선택했던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부모세대들의 자녀교육의 영향으로 교육 받기 위해 한국으로 역이
민 했다. 대학이상의 교육을 받고 자신들의 전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사
람들이었다. 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초기 아르헨티나 이민에서 겪은 어려
움과 언어 장벽이 존재했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2세대들은 한국으로의 역
이민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의 이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
났다. 이들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
에서 생활함으로써 국제화된 전문 인력으로 성장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한인 2세대들에게 다른 국가를 선택해서 적응하는 것과 별반 다르
지 않은 선택이다.
아르헨티나 한인 1.5세들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 다른 국가에
서 이주한 이민자들과 거의 유사한 적응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조사 대상자들이 대부분 14년 이상의 시간을 한국에서 생
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를 보낸 아르헨티나의 경험과 학습이 한국
에서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간섭하고 있었다.
또 하나 역이민자들은 다른 국가나 지역으로 재이주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있다. 이민 경험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갖출 수 있고 또 다른 사회의 가치들을 배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족들
중의 일부나 혹은 전체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에 대해서도 열려있
다. 여전히 그 대상 국가들은 주로 선진국을 대상하고 있다는 것은 부모세
대들이 지니고 있는 시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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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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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재외동포 1.5세의 역이민과 정착 연구 / 29

<Abstract>

A Study on Re-Emigration and Settlement of Argentine Korean


1.5 Generations

Kim, Young-Chul

This study analyzes the phenomenon of re-emigration through ethnographic


research on migration of Argentine Korean 1.5 generations. The re-emigration of
Argentine Koreans has been closely related to the economic transformation of
Korean community in Argentine and the history of Korean immigration into
Argentine since 1965. Most Koreans decided to stay in Buenos Aires, where
they could seek out profitable businesses and build a strong ethnic community
in the city.
Some Korean immigrants in Argentines decided to return to their homeland,
the economy of which has grown more stable than Argentins since the 2000s.
They were able to adapt to Korean society relatively easily when they returned
to Korea. The 1.5 generations of Argentine Koreans who completed basic
Korean education in Korea before moving to Argentine also did not encounter
any difficulty in maintaining their Korean identity while living in Argentine.
The members of the 1.5 generations of Argentine Koreans consider the homeland
as a new business opportunity and educational systems. But they have several
problems in settlement process in Korean, such as organizational culture,
childeren education, language problems. They experience difficulties in adapting
to Korean social system. The returned Argentine Koreans keeps Korean
identity and maintains Argentine Culture by Argentine Koreans Community.

* Key Words: Argentine, Oversea Koreans, Again Emigration, Re-Emigration,


1.5 Generation

ㆍ논문투고일: 2016년 7월 18일 ㆍ심사완료일: 2016년 8월 24일 ㆍ게재결정일: 2016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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