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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

주방의 고인물 (1)

영국에서 최대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토크쇼.

‘유명인의 밤’의 스튜디오에서 두 명의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신선한 닭고기를 쓰레기로 만들어버렸잖아? 이딴 쓰레기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이 뭐야? 내


주방에서 당장 꺼져.”

유명인이나, 스타들을 게스트로 불러놓고 난처하게 만드는 게 이 토크쇼의 컨셉.

“실제로 하신 말씀들을 모아봤는데, 어떻게 이런 심한 말씀을……?”

진행자는 익살맞게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내에게 질문했다.

“진심을 담은 말이,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질문을 받은 사내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흠. 제이미. 하여튼 강적이에요. 역대 게스트 중에 이렇게 태연한 사람은 처음 보네요.”

질문을 받은 사내는 제이미 핸더슨.

셰프(Chef)에게 최고 영예의 별, 미슐랭 스타를 21 개나 보유한 남자다.

“미슐랭 스타 말고도 제이미 씨의 이력은 대본에 한가득 쓰여 있네요. 프랑스 최고의 장인에게 수여되는
칭호 MOF, 대영제국훈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 직접 집필하신 요리책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고…….
뭐, 그냥 잘나가는 요리사라고 하고 넘어갈까요?”

진행자는 또 한 번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프닝부터 시종일관 제이미를 놀리거나 깎아내리곤, 제이미를 향한 칭찬이나 대단한 이력들은 짧게


말하고 생략하려는 의도였다.

물론, 그런 이력들을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이미의 명성은 알고 있을 터였지만.

토크쇼의 컨셉상, 진행자는 제이미가 당황하고 난처해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만 소개해 주셔도 감사한걸요. 제게는 요리사라는 단어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니까요.”

그러나 제이미는 또 아주 태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후, 오늘 제가 제이미 씨를 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한번 해볼까요?”

“네, 그러시죠.”

“미슐랭 스타에 관련된 이야기를 시청자분들께 해주실래요? 저희가 계속해서 미슐랭 스타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을 모르는 시청자분들도 계실 것 같거든요.”

진행자는 제이미를 당해낼 수 없다는 식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멘트를 이어나갔다.

“있는 그대로 설명 드리자면, 미슐랭 1 스타는 같은 종류의 식당들 사이에서 뛰어난 요리를 선보이는 집,
2 스타는 가던 길에서 차를 돌릴 정도로 훌륭한 요리를 선보이는 집, 3 스타는 그 요리를 먹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을 집입니다.”
“그런 것 말고, 시청자분들은 피부에 와 닿는 설명을 원하실 것 같은데요?”

피부에 와 닿는 설명, 제이미는 망설임 없이 답변을 이어나갔다.

“별 한 개만 있어도,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손님이 몰려옵니다. 별 두 개면 원래 매출의 몇


배가 뛰어오릅니다. 별 세 개는 전 세계 수많은 식당 중 백여 곳이 조금 넘습니다. 전 세계에서 백여
곳밖에 되지 않는 식당이 가지는 가치는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와아아!

방청객들의 탄성이 흘러나왔고, 진행자는 그 기세를 몰아가려는 듯이 곧장 새 질문을 던졌다.

“그런 대단한 별을 제이미 씨는 총 스물한 개나 가지고 계십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그 별 한 개를 얻기


위해서 수많은 청춘들은 젊음을 불태우는데, 솔직히 제이미 씨는 자금력으로나 인맥으로나 그 젊은
셰프들보다 별을 얻기가 쉬울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슐랭 스타의 공정성과 익명성은
무려 110 년이나 지속되어왔습니다. 110 여 년 간 공정성과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았더라면, 그 긴 역사를
유지할 수 없었겠죠.”

“아, 세계 최고의 요리사라는 권위를 가졌음에도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것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미슐랭 스타의 평가 항목은 크게 다섯 가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자세한 평가 과정과


평가단원들은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져 있다.

제이미 정도의 재력과 요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미슐랭 스타를 얻기 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재력과 영향력, 명성과 그 권위는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오로지 맛, 그게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제이미의 시선 한 편에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 환생 4 분 32 초 전. ]

‘후.’

제이미는 그 문장이 떠오름과 동시에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자, 제이미 씨? 마지막 순서로,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먹는 요리를 준비해봤는데요.”

“흠. 네. 어떤 음식이죠?”

“한류열풍을 타고 들어온 음식입니다. 들어보셨나요? 매운 떡볶이와 튀김! 그리고 순대입니다!”

제이미는 포크를 건네받자마자, 떡볶이의 떡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 환생 3 분 11 초 전. ]

그때에도 제이미는 시선 한 편에 떠오른 문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맛이 어떻습니까? 진짜 솔직하게, 평소에 독설을 하시던 대로 평가해주시죠.”

“매운 떡볶이라고 했나요? 제 혓바닥을 아예 조져놓은…….”


그때, 제이미의 눈에 여러 줄의 문장들이 떠올랐다.

[ 제한된 모든 시간이 소모되었습니다. ]

[ 미슐랭 스타 : 21 개 ]

[ ‘미슐랭 스타 25 개를 받아라!’ 실패. ]

[ 20 년 전, 2020 년으로 돌아갑니다. ]

털썩.

“엥? 제이미! 제이미! 왜 그래요! 눈 떠봐요! 구급차! 구급차 불러!”

***

[ 미슐랭 스타 30 개를 받아라. ]

[ 20 년이 주어졌습니다. ]

[ 환생까지 남은 시간 : 19 년 364 일 ……. ]

나에게 주어진 이 개 같은 미션은 아주 단순한 법칙을 가지고 있었다.

미션에 실패하면 이름 모를 국적의, 이름 모를 사람으로 환생하게 되고, 환생할 때마다 얻어야 하는


미슐랭 스타가 늘어난다는 것.

[ 미슐랭 스타 30 개를 받아라. ]

그렇게 쌓이고 쌓여, 여섯 번째의 삶이 시작된 지금은 무려 30 개를 얻어야 된다.

두 번째, 세 번째의 삶을 살았던 때는 환생우울증, 회귀우울증도 겪었었지만.

지금은 최대한의 효율을 살릴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할 뿐이다.

경험상, 20 년이란 시간은 절대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미션에 성공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가졌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이 지옥 같은 환생‧회귀의 무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내가 모든 것을 쏟아 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거의 성공할 뻔했다.’

지난, 다섯 번째 삶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였다.

환생한 기간을 모두 합치면 요리사로서의 인생을 살길 약 100 여 년, 수준 이상의 내공과 경험치가 쌓인


나는 미션의 성공에 아주 가까워졌었다.

환생한 지금,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됐지만 이번 삶에는 미션 성공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번엔 성공한다…….’
모든 것을 잃고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는 씁쓸함을 느끼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단, 차라리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거듭된 환생‧회귀를 거쳐 얻은 노하우였다.

‘후.’

나는 곧장 새롭게 얻은 이 몸의 정보와 기억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좋은 기억들이 하나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더군다나 내가 깨어난 곳이 어딘지 알았을 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아찔해졌다.

“유현아, 순대 간 좀 썰어줄래?”

***

‘매운 떡볶이…….’

‘반유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의 작은 분식집 아들로 환생했다.

학교 앞에 위치한 자리 덕분에 장사는 제법 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에게 주어진 이 환경은 미슐랭 스타 30 개를 받는 것에 결코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

바로 이전의 삶에는 영국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요리사로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쉽지 않은 환경이다.

어떻게 해야 주변 환경을 바꾸고 효과적으로 미션을 달성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중에, 나에게 곧바로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다.

“메뉴 줄이는 거, 생각 좀 해 보셨어유?”

살집이 제법 있는, 중년의 남자가 사람들을 대거 거느리고 들어와 어머니를 앉혀놓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장사가 참 어렵쥬? 저도, 그 맘 이해해요. 이 메뉴판에 적힌 것들이 다 자식 같고 그렇쥬.”

중년의 남자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우리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 뒤론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지만, 그 말투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따뜻함이 묻어나 있었다.

“다 버려요 다!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예유. 백원종. 내 이름 석 자 걸고, 이 가게 살릴 테니까.


내 말만 잘 들어요! 안되면 내가 같이 장사할게, 알겠쥬?”

백원종의 골목가게.

백원종이라는 요리 연구가이자 사업가인 사람이, 골목의 죽어있는 상권을 살린다는 취지의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우리 어머니의 가게가 그곳에 섭외되었던 것이다.

방송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지난 삶을 통해 몸소 겪어봐서 알고 있다.

요리사나 식당 업주가 방송을 잘 이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은 나열하면 끝이 없겠지만 우선


지금 당장 내가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손님이고, 돈이었다.
어쩌면 돈은 칼과 불보다 더, 미슐랭 스타를 얻기 위해 소비해야 될 시간을 줄여주는 도구이기도 했으니까.

“아들은 제대로 해 볼 거여? 안 할 거여?”

나는 힘들게 분식집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등골을 빨아먹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

아니, 사실상 집에서 놀고먹는 못난 백수 아들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대가 없이 집에서 돈을 받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

그리고 내가 환생하기 전, 이 몸의 쓰레기 같은 행동들이 모두 방송을 타고 전파된 상황이었다.

“내가 이번 주까지 결정하랬지! 공부할 거면 제대로 공부만 혀. 어머니 방해하지 말고, 가게에 발도
들이지 마! 방송 타서 손님 많아지면 계산대 앉아서 놀고먹고 하려고?”

“유현아…….”

혹시나, 백원종의 말에 내 기분이 상했을까 봐 어머니는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이 장면 또한, 방송을 통해 모두 전파를 탈 것이다.

“어머니도 아들 좀 그만 감싸유! 다 큰 아들 그렇게 감싸서 뭐하게요! 아들! 어떡할 거야! 결정을 한


거야? 안 한 거야?”

시청자들에게 고구마를 먹이는 나의 모습을 굳이 방송에 내보낸 PD 의 의도는 뻔한 것 아니겠나.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방송의 힘을 알고 있다.

이 사각의 프레임에 어떻게 내 모습을 실어야 될지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 진짜 해보는 거여! 응? 딴 맘 먹지 말고! 내가 숙제 내줄 테니까, 다음 주에 보겠어! 알겠쥬?”

백원종이 말한 ‘숙제’는 우리 어머니와 스텝들, 그리고 다른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철부지 아들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숙제.

백원종은 달라진 나의 성실함과 태도를 보기 위해 이런 숙제를 내줬을 것이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숙제는 요리에 100 년을 쏟아 부은 지금의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2 화. 주방의 고인물 (2)

간소하게 차려진 스튜디오 안.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있었다.

“아! 분식집 아들! 이게 뭔가요! 대체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한 명은 백원종이었고, 다른 한 명은 골목가게의 메인 MC 인 이성주였다.


“어머! 진짜…….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가…….”

그리고 가장 왼쪽에 있던 여자.

이 프로그램의 감초 역할을 하는 여배우 정사랑이 존경스러운 눈빛을 모니터에 보내고 있었다.

“아니, 대표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무슨 특훈을 내리신 건가요?”

“저 정도는 다 해야쥬. 조금 있으면, 더 어려워질 겁니다.”

작은 모니터에 비치는 반유현, 일명 ‘분식집 아들’의 모습에 이성주와 정사랑은 놀라움의 감탄을 보냈다.

그들과 반대로 옆에 있던 백원종은 아직 자신이 기대한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식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메뉴를 두 가지로 줄였습니다. 떡볶이, 튀김, 순대를 다 빼버리고 라면하고 계란 볶음밥 두
가지로요.”

“순대는 맛있었는데…….”

정사랑이 아쉬운 표정으로 백원종을 쳐다봤다.

백원종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피식 웃어 보이곤,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분식집 어머니가 하는 음식 중 제일 괜찮은 음식이 계란 볶음밥이었습니다. 레시피에 재료를 추가해서


맛을 보완했고, 국물이 있어야 될 것 같아서 라면을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저 두 가지 메뉴를
제대로 뽑아낼 수 있느냐…….”

“자! 분식집 아들에게 내주었던, 숙제이자! 오늘의 미션입니다! 과연! 일주일 동안 메뉴를 뽑는
숙련도를 얼마나 키워놨을지!”

“예. 방금 보신 것들은, 별것도 아니고 이제 손님들이 계속 들이닥칠 겁니다. 감당 안 될 정도로. 그때


어떻게 대처하냐를 보면, 그간의 연습량을 알 수 있어유.”

모니터에 비친 반유현의 모습은 분명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계란을 깨는 자세와 주방의 동선만 봐도 반유현이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정도는 초등학생들도 좀만 하면 해유.”

그러나 백원종을 만족시킬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 정도는 연습을 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고, 한꺼번에 엄청나게 많은 손님들이 몰렸을 때,


그때서야 연습‘량’이 드러난다는 것.

“아 두 번째 손님! 한 번에 많은 양을 주문하는데요! 뭐, 아직까지는 태연하게 주문을 받으시는군요! 자,


문제는 이제 시작됩니다.”

진행자인 이성주의 말대로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분식집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아! 이제 주문이 밀리기 시작합니다! 계란 볶음밥 17 개, 라면 8 개! 과연, 분식집 모자(母子)는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까요?”

“어머……. 대표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이성주는 긴박감이 넘치는 멘트, 정사랑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화면을 다채롭게 했다.

백원종은 그 가운데에 앉아 팔짱을 끼고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백원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야?”

화면에서는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아아아! 아들! 분식집 아들 반유현 씨의 웍질이 현란합니다! 마치 중식의 대가처럼 대형 팬을 화구에


올려놓고 돌리고 있습니다아!”

“와! 저 대파 써는 것 좀 보세요!”

“불을 올려놓고 중간에 대파를 썰고 있습니다! 저 여유를 보세요! 분식집 아들! 대체 일주일 만에 어떤
일이 있던 겁니까! 이게 백원종 대표의 특급 솔루션인가요!”

화면 속의 반유현은 메뉴를 만들어내는 숙련도뿐만 아니라, 가르쳐 주지도 않은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어어? 대표님! 저 볶음밥에 물을 넣으시는데 찬물을 왜 넣는 건가요?”

“찬밥으로 밥을 볶으면 밥알이 살아있지만, 수분이 너무 없으니까…… 물을 좀 넣고 더 볶아주는 건데…


….”

물을 넣고, 밥을 더 볶는 것은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간단하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의 식감을 살리는 세밀함은 저 분식집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고, 빠르게 낼 수 있는 요리를 가르쳤었는데 분식집 아들인 반유현의 행동을 보면 어딘가 이상했다.

“아! 저 국자로 양은냄비에 물을 한꺼번에 퍼 나르는 것 좀 보세요!”

한 손으로는 계란 볶음밥 10 인분이 들어있는 대형 팬을 돌리며, 한 손으로는 거대한 육수 통에 담긴


육수를 국자로 옮겨 화구에 올려진 양은냄비에 차례로 담았다.

주방에서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편한 것이 누가 봐도 베테랑.

‘방송 타고 싶어서, 실력을 숨긴 거여?’

반유현이 보여준 모습들은 이런 의심도 자연스럽게 했다.

백원종의 요리 인생 동안, 단 일주일 만에 주방을 누비며 모든 일을 해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저 칼질 또한 그 의심의 근거였다.

“감독님 잠깐 나 좀 봐유.”

백원종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거짓으로 방송을 할 생각이었으면, 출연도 하지 않았을 백원종이었다.

정령, 반유현이 방송을 위해 실력을 숨기고, 부모님 등골 빼먹는 철없는 캐릭터를 거짓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당장 하차를 한다 해도 말릴 사람이 없을 터.

“사실대로 말해요. 감독님.”


***

환생을 거듭했고, 난 100 년이 넘는 삶을 살았다.

그러고 그 100 년이 넘는 시간 대부분을 미슐랭 스타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 갈아 넣었다.

주방에 있는 일이라면 내가 못 할 것이 없었고, 요리와 맛이라면 언제나 주목을 받았다.

“유현아…… 너, 대체…….”

그에 따라 지금 어머니의 반응도 당연히 수없이 겪어본 것이었다.

물론 이런 식의 반응들, 즉. 놀라움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싫다면, 내가 가진 요리 실력을 조금씩


보여주며, 밸런스와 완급조절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환생자나 회귀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랄까.

그런데, 매번 그것들은 나의 효율을 빼앗았다.

“유현아! 너 어떻게, 갑자기?”

20 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의 효율을 죽여가면서, 내 실력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력을 보여줄 판이 깔리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내는 것이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는


방법이다.

어차피 모든 의심과 놀라움은 단 두 줄의 문장으로 해결되니까.

“요리가 이렇게 쉬운 건줄 몰랐습니다.”

“밤새 열심히 연습했더니 되는데요.”

실제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회귀나 환생을 생각할 사람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곤, 내 말처럼 사람들은 ‘알고 보니 요리 천재’라는 별명을 붙여주곤 했다.

“밤새, 연습했더니? 된다고?”

내 앞에 있는 백원종도 내가 보여준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믿어야 했다.

“아니, 아드님이 요리 천재였어유?”

나는 한꺼번에 많은 손님을 상대하는 모습 말고도 맛으로 백원종을 놀라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판이 깔리면 내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게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앞에 있는 백원종과 수많은 카메라들은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백 대표님이 만들어주신 계란 볶음밥이라는 게, 간장을 베이스로 불 맛을 살렸잖아요? 그런데, 그게


유일한 메뉴인 라면하고 겹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겹쳐?”
“라면의 간도 짜고, 간장 베이스인 계란 볶음밥도 간하고 불 맛이 합쳐지면, 혀가 쉴 틈이 없죠. 그리고
볶음밥을 제 방식으로 만든다면 불 맛을 굳이 내지 않아도 되니,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만들었다고? 나, 참.”

백원종은 놀라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계란 볶음밥을 먹더니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간장이 약간 들어가긴 합니다만, 버터와 꿀의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라면의 맛을 중화 시킬


수 있습니다. 맛있게요.”

백원종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가 만든 ‘계란 버터 꿀밥’을 닥치는 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이야! 이거는 진짜 내가, 레시피를 사고 싶네. 나한테 팔아유.”

그리곤, 연신 감탄사를 뱉어댔다.

사실, 맛이 없으면 더 이상한 것 아닐까.

백원종의 요리 경력은 길어야 25 년. 나는 100 년이었으니까.

“진짜! 단순하지만, 맛은 놓치지 않는, 이런 건 진짜 고수들이나 하는 건데! 참나! 라면하고 조합도


진짜 좋아. 와, 진짜 기가 막혀유!”

백원종의 미친 듯한 먹방과 이 주옥같은 멘트들은 방송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 서현동 분식집 아들! 알고 보니 요리 천재! ]

[ 백원종 대표! 레시피 사고 싶어! 분식집 아들에게 장사 제안? ]

[ 정신 차린 분식집 아들, 시청자들에게 감동 전해… ]

[ 백원종 “서현동 분식집 같은 곳이 있으니, 보람을 느낀다.” ]

그리고 그 방송은 수많은 기사와 영상 클립으로 더 많이 퍼지기 시작했고, 우리 집 분식집은 발 디딜 곳이


없어졌다.

이 몸으로 환생하고 5 주차에 벌어진 일이었다.

***

골목가게의 흥행 덕에, 먹고 살기엔 충분한 돈을 벌고 있다.

분식집에 딸린 쪽방에서 탈출할 생각에 어머니의 매일이 즐거워 보이셨다.

[ 미슐랭 스타 : 0 개 ]

그런데, 이 정도의 돈은 내 목적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돈에 허덕이지 않을 정도의 환경을 만들어 놨다는 것에만 의의를 뒀다.

돈은 미슐랭 스타를 얻기 위한 시간을 줄이는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더 강력한 무기는 셰프로서의
이름값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유명호텔의 총괄 셰프, 이미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셰프 등 명망 높은 셰프들은 돈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뿐만 아니라 그 이름값은 주방의 셰프들을 꾸릴 때에도 사용된다.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요리는 돈벌이가 아닌, 예술이 되기에, 수준 이상의 셰프들은 돈만 보고


일자리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값이 없다면, 자신을 따르는 셰프가 없을 것이고, 레스토랑의 셰프들을 꾸릴 수가 없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돈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요리사로서의 이름값은 그만큼 중요하다.

내게 주어진 이 개 같은 미션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였다.

‘분식집 아들 말고, 요리사로서의 이름값을 올려야 돼.’

그리고 하필 지금, 골목가게의 메인 PD 인 이성찬이 밥을 먹으러 왔다.

이성찬의 집이 이 근처이기도 하고, 이 분식집을 보면 일하는 보람이 있다나.

덕분에 그는 우리 분식집에 자주 들렀고, 나는 그와 멀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야, 유현아 이거 네가 만든 요리.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린다? 나도 회사 때려치우고 체인점으로 해서


분식집 2 호점 내면 레시피 가르쳐줄래?”

“감독님이라면, 당연히 가르쳐 드려야죠.”

“허허. 솔깃한데? 백 대표님도 이 가게만 생각하면 힘이 불끈 나신데, 더 열심히 하시겠다고……”

이성찬은 말을 끝마치지도 않고, 내가 개발한 계란 볶음밥을 입에 넣는다.

그가 입을 오물거릴 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감독님, 혹시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감독님이랑 친하세요?”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이미 미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미국에서는 저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 셰프들이 대거 방출되었다.

대한민국의 케이블 방송사인 ‘TVM’이 정식으로 판권을 수입해 제목에 ‘코리아’를 붙여 제작을 진행
중에 있었고,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광고가 수많은 매체에서 뿌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왜?”

내가 출연한 ‘골목가게’도 TVM 이 방송사였고, 당연히 골목가게의 PD 인 이성찬과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감독과는 친분이 있었다.

“친하긴 친하지, 내 옆자리야 그 선배. 대학 직속 선배이기도 하고. 왜?”

나는 수줍게 웃으며 이성찬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제가 고민이 있는데…….”


100 년을 넘게 살면서 배운 게, 요리 기술뿐이겠나.

팬에 버터를 녹이듯이, 이성찬을 살살 녹이기 시작했다.

3 화. 주방의 고인물 (3)

“얼마 전에 방영돼서 대박 터진 애 말하는 거냐? 분식집 아들?”

“예. 본격적으로 요리사가 되고 싶다던데. 미슐랭 스타를 받겠다나?”

“하하하. 사람 한 명 망쳐놨네, 네가.”

“망쳐놓긴요. 주방에서의 실력이 그렇게 일취월장한 것만 봐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것 아닙니까? 천재는


천재인 것 같아요. 어디까지 천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골목가게’의 PD 이성찬과,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이하 ACK)’의 PD 김수호의 대화였다.

“당연히 우리야 좋지, 분식집 아들 와꾸 좋잖아. 키 크고, 잘 생겼고. 화제성이 충분해.”

“스토리도 좋잖아요.”

“그래, 스토리도 좋지, 못난 철부지 아들이 정신 차려서 어머니 분식집 살려내고, 어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최종목표는 미슐랭이며, 그 첫걸음으로 ‘ACK’에 지원했다!
죽여주네, 스토리.”

김수호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일명 ‘분식집 아들’, 반유현의 비주얼부터 스토리 라인까지, 그가 자신이 맡은 프로인 ACK 에


참여한다면 프로그램 방영 전 대중의 관심을 받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게 사실이었다.

“이미 팬덤도 생긴 것 같던데, 유현이 이용해서 프로그램 이슈화도 한번 하시고요. 분식집의 장사는 계속
잘되더라도, 사실 유현이 인기가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인기라는 게 원래 거품이라는 거, 선배가 제일 잘
알잖아요? 유현이는 방송 타서 좋고, 선배는 프로그램 이슈화할 수 있어서 좋고.”

“그래……. 물론 나도 이용하고 싶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방송사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사 시청률


자체가 떨어졌잖아. 화제몰이를 한번 하긴 해야 되는데. 흠.”

김수호 역시, 후배인 이성찬의 말에 동감했다.

각종 동영상 플랫폼과 SNS 때문에, TV 시청률 자체가 떨어진 시국이었다.

때문에, 동영상 플랫폼과 SNS 에서 요즘 가장 핫한 반유현의 인기가 떨어지기 전에 그를 섭외하는 것은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꽤나 괜찮은 전략이었다.

“그럼 유현이 바로 본선 섭외하는 걸로?”

“나도 그러고 싶다. 근데 그렇다고 본선 티켓을 뿌릴 수가 없어. 나도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야.”

ACK 의 본선에는 총 200 명의 참가자들이 진출한다.

그중 100 명은 예선에서 각종 시험을 통해, 9000 명의 참가자들과 직접 겨뤄 올라온 사람들이고, 나머지


100 명은 각종 대회의 수상자나, 특별한 이력이 있어 방송사에서 섭외를 한 사람들이다.

“수상경력 없어도, 좀 특별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섭외해서 본선 티켓 주잖아요? 유현이 정도면


특별한 경력이 있는 거 아니에요? 분식집을 대형 맛집으로 만들어낸…….”

“그래, 특별한 경력이 있으면 되지. 5 대째 운영되는 국밥집 손자나, 경력 33 년 칼국수 장인 같은


사람들을 보고 특별한 경력이 있다고 하는 거야. 방송 좀 타서 잘된 분식집 아들을 특별한 경력이라 해봐.
시청자들한테 무슨 욕을 처먹을래?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성상 진짜 조금이라도 공정성에 문제가 될 만한
여지가 있으면 안 돼.”

“아…….”

이성찬도 사실은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반유현의 경력은 그들과 비할 바가 되지 못했으니까.

“그럼, 이미 ACK 예선은 끝났으니까. 방법이 하나밖에 없는 겁니까?”

“그렇지, 요리 대회 수상.”

“흠. 그럼, 선배님. 섭외하실 때, 본선 티켓 한 장만 비워 주세요. 저도 유현이한테 말해놓은 게 있어서


…… 할 말은 있어야 되잖아요?”

확정은 아니지만,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 적어도 체면치레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뭐, 그 정돈 해줘야지. 깍듯한 후배님의 부탁이기도 하고, 그 친구를 섭외하고 싶은 내 마음도 있으니까.
흠, 근데 요리 대회에서 수상은 할 수 있으려나, 그 친구?”

김수호는 이성찬의 말에 긍정으로 대답하면서도 마음을 비워두었다.

요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요리 대회에서 수상을 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


다른 화젯거리를 찾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

이성찬은 내게 ‘ACK’에 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요리 대회를 말했다.

-서울시 요리 대회.

“그런데, 전국대회나 국제대회가 아닌, 시가 주최하는 대회라 1 등을 해야 된데, 그나마 다행인 건 1 등을


두 명 뽑네?”

그러면서도 시가 주최하는 대회지만 작은 규모의 요리 대회는 아니며, 역대 수상했던 사람들을 보면 꽤나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여 말해주었다.

당연히 나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설령 떨어지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위로였을 것이다.

‘어떤 요리가 좋을지.’

대회는 총 2 라운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1 라운드는 주특기 요리로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한 시간 동안 준비해서, 심사 위원 앞에


선보이는 것이다.

이곳에서 선발된 사람들은 2 라운드에서 주최 측에서 정한 재료로 제한 시간 내에 얼마나 더 맛있고,


창의적인 요리를 냈느냐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수준 높은 요리를 선보여봤자야.’


소 잡는 칼로 닭 잡는다는 한국말이 있지 않던가.

1 라운드와 2 라운드에서 각각 선보인 요리들은 레시피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애초에 대회의 취지가 서울시 요리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미슐랭 스타를 받았던, 수십 년의 연구와 그에 따른 독창성과 맛을 겸비한 내 요리를 고작 서울시


요리 대회에 선보이기는 싫었다.

‘셰퍼드 파이.’

그래서 선택한 것이 셰퍼드 파이였다.

셰퍼드 파이는 영국의 대표적인 가정식 중 하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잘게 간 고기를 익히고, 그 위에 으깬 감자를 올려 오븐에 구워낸 음식이다.

‘많이도 해먹었었지.’

미슐랭 스타 21 개를 가진, 최고의 셰프로 살던 전생에, 당연하게도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은 나의


요리를 기대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내놓던 요리가 셰퍼드 파이였다.

일상적인 요리이기도 하지만, 손님 접대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요리.

나에겐 큰 부담감이 없고 조리법에 조금만 정성을 들인다면 손님에겐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도 이 요리를 1 라운드에 제출할 요리로 선택한 이유였다.

“유현아, 쉬는 날에는 좀 쉬지. 또 요리 연습하려고 그래?”

다만, 요리 대회전에 그 요리를 한 번쯤 만들어 봐야 했다.

머릿속엔 그 정보들이 생생하더라도, 이 몸에 익숙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조금 이따가 맛 좀 봐주세요. 어머니.”

어느 날부턴가 확 달라진 나의 말투, 태도에 어머니도 이제는 적응이 된 것 같았다.

분식집에 손님이 한 번에 많아져 몸은 고되지만, 매일매일이 행복해 보이셨다.

“엄마가 도와줄 건?”

“그냥 옆에 계시다가 맛만 봐주세요. 아, 어제 제가 숙성시켜놓은 감자 어디에 두셨어요?”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레시피는 곧장 감자를 삶아 으깬 뒤 간을 하는 것이지만, 나는 영국 정통 방식을


따라, 감자를 계란 흰자에 설탕을 뿌려가며 거품을 만들어낸, 머랭(meringue)에 숙성시켜두었다.

“어차피 삶을 감자를 계란 거품에 숙성시키는 이유가 있니?”

어머니가 백원종 대표의 레시피와 나의 레시피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요리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내 옆에서 조리하는 법에 대해 물어보셨다.

“맛보실 때, 그 차이를 설명 드릴게요.”

후룩! 치이익!

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뒤에 간 고기를 볶고, 기름을 쏟아 낸 뒤 갖은 채소를 넣고 볶았다.

레드 와인, 닭고기 육수, 토마토 퓌레(과립즙)를 첨가하며 맛을 더 풍부하게 했다.

“와…….”

“맛있어요?”

“유현아, 이거 돈 받고 팔아도 되겠는데?”

***

서울시 요리 대회 현장.

백여 명 가까이 되는 참가자들이 각자의 요리를 앞에 두고 서 있었다.

“이거 비싼 돈 받고 팔아도 되겠어요.”

어머니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돈과 연관을 짓는다.

“이야……. 이거 아마추어 실력이 아닌데? 충격이네, 충격이야. 다른 분들도 일로 와서 맛 좀 보세요.”

내 음식을 처음으로 먹은 심사위원이 다른 심사위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랜드 힐튼 서울 총주방장, 미슐랭 2 스타 셰프, 전(前) 청와대 조리실장, 한국조리사협회장,


한식요리연구원장 등 각각 대한민국 외식 업계에서 한 가닥 한다는 인물들이 모두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곤 내 셰퍼드 파이를 한입씩 맛보더니 모두가 충격적이라는 말을 뱉어냈다.

“와, 앞자리로 못 가겠는데요?”

급기야, 미슐랭 스타 셰프인 잭 킴은 숟가락질을 몇 번 더 해, 내 셰퍼드 파이를 떠먹었다.

요리 대회에서 자신의 성적을 예측할 수 있는 방식 중의 하나는 심사위원이 내 요리 앞에 머무는 시간이다.

내 앞에 이들이 머물러 있는 시간을 정확히 재진 않았지만, 아직까지 1 등인 것은 확실했다.

“흐음! 날카롭고 풍부한 파마산 치즈의 맛이, 음. 간 소고기와 어우러지고, 음. 그 맛의 마무리는 으깬


야채와 토마토 퓌레……. 음.”

한식요리연구원장은 교포 출신인지 어눌한 발음을 잡아가며, 내 요리를 평가했다.

“감자에 어떻게 계란의 풍미를 더했죠? 신기하네요.”

그 옆에 있던 잭 킴은 계속해서 내 요리를 조금씩 먹으며 맛을 느끼더니, 질문을 던졌다.

“영국 정통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솔트 프로스트, 머랭에 각종 소금과 각종 향신료를 추가해 감자를 일정


시간 숙성시키면 계란의 풍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오호. 영국에 살았던 적이 있나요?”

“이, 없습니다.”

잭 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원래, 셰퍼드 파이는 양치기들이 먹던 음식이죠? 근데 이거 양고기가 아니네요? 램(lamb)을 구하기


어려워서 이렇게 쓰신 건가요?”

잭 킴의 말 그대로였다.

1 년 미만을 산, 어린 양은 램(lamb). 1 년을 넘게 산 다 큰 양을 머튼(mutton)이라고 하는데, 다 큰


양은 특유의 누린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그렇다고 질 좋은 어린 양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소고기를 사용했었다.

“흠. 토마토소스도 기성품을 사용한 게 아니라, 직접 만드신 것 같네요? 토마토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게
……. 참…… 제가 한 수 배우는 느낌이에요.”

최소 반백 년 정도는 요리를 해야, 진정 ‘맛’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 텐데.

잭 킴은 그나마 나의 의도를 잘 잡아냈다.

“과찬이십니다.”

맛의 신선한 충격들을 즐기며,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내게 묻는 잭 킴,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은 마치 내


‘2 회 차’ 삶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미소처럼 흐뭇한 표정으로 잭 킴을 바라봤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잭 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곤 심사위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사위원들은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멀리서 그들의 주된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얼추 알 수 있었다.

“흠. 저 정도 내공이라면, 골목가게인가요? 그 방송프로그램은 모두 연출인 것 같군요.”

“맞습니다. 단순한 천재 셰프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 1 라운드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요리를 직접 준비해서, 한 것이니까. 다음 라운드가 중요하겠군요.


잭 셰프님, 무슨 걱정 되는 일이라도 있어요?”

“음……. 요리 천재도, 요리 천재지만 반유현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자신감과


여유는 이미 탑 셰프인 것 같아요. 조금 과하다는 느낌도 있긴 한데, 뭐랄까……. 저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는 느낌이…….”

“푸하하! 셰프님도 참, 미슐랭 투스타 셰프를 이제 갓 요리를 시작한, 요리 새내기가 귀엽게


쳐다본다고요?”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심사위원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
“제 14 회 서울시 요리 대회, 여기까지 올라오신 분들은 이미 실력이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124 명 중 31 명.

31 명만이 마지막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2 라운드는, 저희 주최 측에서 정한 재료로 본인만의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것입니다.”

잭 킴이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맡았다.

“재료 공개하겠습니다!”

잭 킴은 그 식재료가 담겨 있는 상자를 열고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바로! 오리! 입니다!”

세계 어떤 나라를 가도 환영받는 식재료인 오리였다.

잭 킴은 이 대회에서 오리를 식재료로 고른 이유와, 오리 요리의 장점을 이어서 말했다.

그리곤 뒤이어 흥미로운 얘기를 던졌다.

“오리 주물럭과 오리 백숙만 23 년째 장사해 오신 김해숙 선생님, 가마솥 오리 구이, 볶음으로 수차례
방송을 탔던 ‘감순 오리’를 운영하시는 최감순 선생님. 흠, 뭐 당연히 경력이 오래된 분들이 유리한
점이 있겠지만. 저희는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할 것입니다.”

최훈은 2 라운드의 재료를 오리로 선정함에 따라, 유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른 두 명을 말했다.

우승자를 두 명 뽑는 대회에서, 아주 강력한 두 명을 말하자 자연스럽게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우승자는 이미 정해진 거야?”

“참나 평생을 오리 요리를 한 사람을 오리로 어떻게 이겨?”

“아니, 김해숙 님은 요리천왕 오리고기 편에도 나오신 분이잖아. 하. 망했다.”

일명 오리 장인이라 불리는 중년의 두 여성.

사람들의 불만은 그 두 사람에게 들릴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무슨 요리를 할까.’

4 화. 차원이 다른 맛 (1)

오리 요리의 달인으로 소개된 김해숙과 최감순 둘 다, 자신의 필살기를 사용했다.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의 눈은 그 두 명의 달인들을 향했다.

수십 년의 노하우가 담긴 그녀들의 몸짓을 보고, 뭐 하나라도 얻고자 하는 눈빛이었다.

“반유현 씨는 어떤 요리를?”

그런데, 참가자들의 관심과는 반대로 심사위원들은 나의 요리에 모든 관심을 쏟아냈다.


“오리 가슴살을 이용한 스테이크를 해 볼 생각입니다.”

이들은 기대가 된다는 눈빛들을 보내며, 이것저것 질문하며 나의 조리대에 가까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1 라운드에서 선보인 셰퍼드 파이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물론, 그 와중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심사위원도 있었다.

“너무 평범한 것 아닌가요? 여기 있는 참가자들 중에 가슴살 스테이크를 못 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확실한 실력 차이가 있어야만 됩니다. 그 정도로 자신 있어요?”

전(前) 청와대 조리실장인 김성호의 말이었다.

실제로, 많은 참가자들이 선택한 요리가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였다.

‘오리 주물럭’과 ‘오리볶음’을 각각 요리하고 있는 김해숙과 최감순, 그녀들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기


위한 참가자들의 도피처가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였던 것이다.

김성호는 참가자들의 그런 정신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종일관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화풀이는 심사위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나에게로 이어졌다.

“같은 요리 일지라도 편견을 깨는 신선한 맛은, 가산점이 부여되는 항목입니다. 그런데,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는 너무나 잘 알려진 요리지요. 편견을 깨는 요리가 쉽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미 당신들의
머리에도 정형화된 맛들이 그려져 있을 텐데.”

맞는 말이긴 한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

김성호의 말대로,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는 조리법이 널리 알려져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였다.

그런데 그것을 이용하면, 오히려 더 충격적이고 신선한 맛을 보여줄 수 있다.

이미 정형화된 요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충격은,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내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보면, 아직 경험이 한참 모자란 자 같았다.

뭐, 사람들이 보기에 전 청와대 조리실장한테 경험을 논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100 년을
넘게 요리한 내 앞에선 김성호의 경험을 경험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저였다면, 고만고만한 참가자들끼리 비슷한 맛을 경쟁하느니, 차라리 달인들의 요리를 따라 하고 조금


더 새로운 맛을 만들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달인들의 요리라는 완벽한 비교 대상이 있으니, 신선함이 더
부각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새롭고 신선한 맛에는 선후배가 없으니까요. 달인이라고 꽁무니를
내빼기나 하고. 쯧. 요즘 사람들은 요리에 대한 태도가……. 쯧쯧, 이렇게 도전 정신이 없어서야.”

김성호는 혀를 여러 번 차더니, 뒷짐을 지곤 다른 참가자의 조리대로 이동했다.

그때, 잭 킴이 다가왔다.

“많은 참가자들이 오리 가슴살을 굽고 있는데, 경쟁력이 있길 바랍니다.”

“굽기의 정도, 그리고 소스와 가니쉬(곁들임)로 새로운 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흠, 제발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셨으면 좋겠네요.”


잭 킴도 내가 선택한 요리를 보고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1 라운드에 기대감을 너무 높여둔 탓에, 더 재밌고, 더 신선하고, 더 맛있는 그런 요리를 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비해, 이미 수많은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를 먹어본 저들에겐 나의 선택 자체가 진부했을 것이다.

“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오직 요리. 상대를 설득시킬 때에는 머리를 숙이고, 몇 마디의 말을 덧붙이는 것보다 나의 요리를 맛보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물론, 요리를 10 년, 20 년 했다고 거들먹거리는 저들에게 내 의도를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은 것도 없지는
않았다.

치이이익!

오리 가슴살을 팬에 올려둔 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오리 기름이 나오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

“충격적이네요. 맛이.”

총 여덟 명의 심사위원이 내 조리대를 둘러싸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는 전(前) 청와대 조리실장이었던 김성호의 표정이 눈에 띄었다.

“크흠!”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곤, 수저를 내려놨다.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또 한 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까 전, 내 앞에서 요리하는 태도가 어떻다느니, 젊은 사람들의 도전 정신이 어떻다느니 떠들어 대던


사람. 맛에 굴복했다.

‘맛있어도, 맛있다고 못 하겠지. 자존심 상하니까.’

내 생각대로 김성호는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세워보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금류에는 과일 소스가 잘 어울리지 않나? 오렌지를 이용한 비가라드 소스나…….”

“과일 소스는 새롭고 편견을 깨는 신선한 맛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이 요리에 비가라드
같은 과일 소스를 부었다면 이 오리에게 울면서 사과를 했을 겁니다. 진부하게 죽여줘서 미안하다고.”

심사위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나의 발언에 무례함을 질책하는 심사위원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선보인 요리의 맛이 내 말의 힘을 강력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김성호의 연배가 심사위원들 중에선 높았던 탓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그의 시선을 피하곤 나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이 헛기침을 해댈 뿐이었다.

그에게 독설을 몇 마디 들었던 참가자들은 내 말에 통쾌했는지, 곳곳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나의 대답과 장내 분위기에 김성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본전도 못 건진 김성호는 내 조리대를 둘러싸고 있는 심사위원들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크를 내려놓은 심사위원이 내게 질문했다.

“과일 소스 없이, 어떻게 이런 달콤함, 상큼함, 알싸함까지 다 잡을 수 있나요?”

“오리 기름이 팬에 녹아 나오고, 베이스팅을 시작할 때, 꿀과 각종 채소를 담가두었던 간장을


넣었습니다.”

베이스팅은 팬에 녹아 나온 기름을 스푼으로 고기에 끼얹으며 고기를 익히는 방식인데, 나는 오리에서


녹아 나온 기름에 꿀과 간장을 첨가하여 베이스팅했다.

“나머지 상큼함과 알싸함은 곁들여진 부추와 달래로 잡아냈습니다. 겨울을 이기고 나온 봄나물은
은은하면서도 강력한 맛을 냅니다. 풍미를 더하기 위해 당근 퓌레를 약간 곁들였습니다.”

“이야…….”

간단한 설명뿐이었지만, 모든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나의 설명은 귀뿐만 아니라, 저들의 혀와 코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식이 끝났을 땐, 모든 심사위원들이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정이나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굽기 정도에 레스팅 시간까지 완벽하게 맞췄군요. 모든 재료의 맛까지, 오리 끝판왕이네. 이건 뭐…….
우리가 평가할 음식이 아닌 것 같아요. 참나. 허허허.”

“그러게요, 달래, 부추, 당근 퓌레까지 모든 재료가 입에서 살아있네요.”

“와, 이건 뭐……. 김 셰프, 우리 요리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이건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 요리만


잘한 게 아니잖아. 재료의 배합부터, 천재야 천재.”

심사위원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때에,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여성이 한 명 있었다.

중년의 여성, 오리 주물럭의 장인 김해숙이었다.

“선생님들요. 저도 한 번 먹어봐도 될까예?”

심사위원들이 나를 쳐다봤고,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해숙은 손으로 달래와 부추를 올린 가슴살 한 점을 집어먹고는 손에 묻은 소스까지 빨아먹었다.

“어……. 으응?”

입을 오물거리더니, 눈을 끔뻑이곤 말했다.

“이 요리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예?”

한 분야에 20 여 년이 넘는 세월을 투자했지만,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고개를 숙이는 그녀.

100 여 년이 넘는 내 경험 앞에서는 주름 잡지 못하지만,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아니, 정확히는 잭 킴에게 그랬듯이 후배를 보는 마음의 기특한 감정일 것이다.


“반유현 씨, 제대로 요리 배워볼 생각 없어요?”

내가 김해숙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을 때, 그 옆에 있던 잭 킴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참가자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반유현 씨가 가진 그 여유와 자신감은 실력에 기반한 것이군요. 연락처 좀 가르쳐 주세요. 1 라운드의
셰퍼드 파이도 그렇고 이 오리 스테이크의 맛이 평생 생각날 것 같아서, 그냥은 못 보낼 것 같습니다.”

미슐랭 2 스타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 잭 킴.

대한민국 내에서는 엄청난 인지도, 프랑스에서도 꽤나 인지도가 있는 셰프라던데.

전생에도, 전전생에도 이름은 못 들어봤다.

아니, 어쩌면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별 한 두 개를 가지고 놀던 내가 아니었고, 상대적으로 미슐랭 스타의 개수가 적은 한식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그에게 할 대답은 한 가지였다.

***

나의 우승은 확정되어 있었고, 나머지 우승자 한 명을 가르는 게임에서는 김해숙이 이겼다.

그리고 나는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ACK)’ 본선 진출권을 얻었다.

내 우승은 사람들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나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운이 좋다. 이번 생은 뭔가 달라.’

물론, 우승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 속도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환생하자마자 곧장 방송에 출연해 서울시 요리대회라는 기회를 얻고, 그 대회에서 성과를 내 셰프로서의
이름값을 쌓을 수 있는 ACK 에 출연한 것은 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이전의 생에서는 없던
속도였다.

[ 분식집 아들 반유현! 요리대회 수상자 캐스팅으로 ‘ACK’ 본선진출! ]

나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ACK 제작팀과 방송사는 언론을 이용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 전(前) 청와대 조리 실장에게 정면으로 반박한 반유현! 맛으로 승부하다. ]

[ 미슐랭 2 스타 잭 킴을 반하게 한 그의 요리는? ]

“이런 기사는 너무 자극적인 것 같은데요. 굳이?”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러더만. 없던 얘기는 아니잖아.”

ACK 의 녹화 첫날, 나를 응원하겠다고 따라온 ‘골목가게’의 PD 이성찬이 나의 불만을 달래주고 있었다.

[ 분식집 아들의 인생역전극! ACK 를 통해 시작된다. 반유현 “벌써부터 가슴이 벌렁거려…” ]


“가슴이 벌렁? 이런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

“어떡하냐, 너도 도움을 받았는데 그 정도는 받아줘라 좀.”

ACK 제작팀은 이미 100 명을 골라낸 예선을 끝난 상황에서, 나머지 100 명을 섭외하는 중이었다.

경력과 수상기록이 없는 내가 섭외될 확률은 ‘0’이었고, 이성찬이 ACK 의 감독인 김수호에게 미리


언질을 안 했더라면 나는 수상했더라도 애초에 ACK 의 본선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뭐, 도움받은 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이 정도로 언론 플레이를 할 줄은…….”

[ 서울시 요리 대회 심사 위원 김정옥 “요리 천재의 탄생. 앞으로 그의 행보에 주목하라.” ]

[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감독 김수호 “‘진짜 천재’ 셰프의 합류로 많은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

참가자들을 한곳에 모아 놓은 대기 공간에서, 내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했고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사진을 부탁하는 이들도 있었다.

‘셰프가 아니라, 그냥 유명인으로만 날 알아보는군.’

피곤했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셰프가 아니라, 그저 유명한 일반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음에도, 같이 레스토랑을 열어 보겠냐는 큰손의 투자자들이나 유명 셰프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피곤함을 감수하면서도, 언론과 방송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은 효율을 위함이었다.

이 방송프로그램은 나에게 셰프라는 타이틀이 걸리는 기반을 아주 빠르게 다져줄 것이니까.

“야야. 유현아, 저기 봐.”

이성찬이 나를 툭툭 치면서 대기실에 걸려있던 모니터를 가리켰다.

본격적으로 경연이 시작된 것인데, 참가자와 심사위원들이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대기실이 술렁이는 것을 보니 화면 속의 참가자는 꽤나 유명한 참가자인 듯했다.

“서울시 요리 대회에서 심사위원이었던 잭 킴, 알지? 그 레스토랑에 있는 사람이래.”

잭 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내 요리에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던, 미슐랭 투스타를 소유한 그 셰프.

나에게 요리를 배울 것을 제안한 셰프였기에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화면에 비친 사내는 그 셰프의 제자이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주 젊은 나이에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의 수석 조리장으로 계시는 윤종혁 씨. 우승 후보로


손꼽히시는데, 본인의 라이벌이 있으십니까?”

윤종혁. 뉴욕의 명문 요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졸업하자마자 잭 킴의 레스토랑에서 수석


조리장을 맡고 있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소유자였다.
대기실 화면에 비치고 있는 심사위원이 그에게 질문하자, 곧장 대답이 나왔다.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분식집 아들로 유명한 반유현 씨랑 겨뤄보고 싶네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력한 우승 후보인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 대기실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그의 말은 대기실을 더 시끄럽게 만들었다.

“제 사부, 아니. 저희 총주방장님께 아주 건방진 소리를 했더라고요. 그 친구가.”

5 화. 차원이 다른 맛 (2)

방송과 언론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반유현이요.”

“반유현 님이요.”

“반유현 씨?”

참가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제각기 달랐지만, 나의 이름이 계속 회자되었다.

환생하자마자 ‘골목가게’에 출연했을 때부터, ACK 본선에 섭외되기까지 각종 매체와 SNS 에서는 지겨울
정도로 줄곧 나를 요리 천재라고 말해왔기에,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잘생겼으니까요. 헤헤.”

“그냥, 방송사에서 너무 밀어주는 게 티 나잖아요.”

“뭐랄까……. 진짜 천재니까? 이겨보고 싶다?”

“그 사람을 이기면 제가 엄청나게 부각될 테니까?”

내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단 한 명.

잭 킴의 제자인 윤종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다른 참가자들과 그 질감이 달랐다.

“저희 총주방장님께, 실력이 궁금하다는 말을 했답니다. 그 친구가.”

나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 또는 내가 가진 화제성 때문에 나를 꺾어보고 싶다는 말을 하며 내 이름을


거론한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그의 비릿한 미소에는 건방진 놈을 짓밟아서 혼쭐을 내주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미슐랭 투스타 셰프, 잭 킴한테? 천재답게 건방진 면이 있는 건가.”

그 말을 들은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찡그려졌고, 나와 함께 그들의 대화를 모니터로 보고 있던 이성찬이


말을 건넸다.

“엥? 진짜로 저런 말을 했어?”

“제 요리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잭 킴한테 요리 실력이 궁금하다 했다고?”

서울시 요리 대회, 그 경연장에서 있던 일이었다.

어떤 요리를 하는지, 그 요리에 담긴 스토리와 맛들은 어떤지, 그 실력이 궁금하다고 잭 킴에게 말했었다.

“무턱대고, 자신에게 요리를 배우라니까 그 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에요?”

당연히 그런 생각으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가 먼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길래, 내 궁극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있어, 그에게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최대한 자세를 낮춰 말했었다.

100 년을 넘게 산 내 처세술이 그의 기분을 나쁘게 할 리는 없었고, 아무래도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당시의 상황이 입으로 전해질 때, 자극적인 소스들이 첨가되어 얘기가 와전된 것 같았다.

“대중들한테 알려진 네 이미지를 보면, 사람들이 딱 소스치기 좋은 이야기네. 너는 나쁜 의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질문 한 건데 말이야. 그치?”

“예.”

“그래도 이 자식아, 그런 유명 셰프가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 하면 냅다 줘야지. 너도 참, 특이한 놈이야.


거기서 실력을 왜 물어봐? 당연히 최고겠지. 미슐랭 스타 셰프인데.”

이성찬이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어떤 요리를 하셨나요?”

ACK 의 첫 번째 라운드의 룰은 단순했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한 시간 동안 조리한 뒤, 심사위원 앞에서 5 분 동안 플레이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컬리플라워 퓌레를 곁들인 관자 버터구이입니다.”

윤종혁이 특유의 두꺼운 목소리로 심사위원의 물음에 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랑 같은 요리네.’

우연의 일치인지, 내가 제출할 요리를 알아낸 것인지, 윤종혁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내가 선보일 요리와
같은, 관자 요리를 꺼냈다.

내가 관자를 고른 이유는 관자라는 식재료의 특성상, 실력에 따라 맛에서 명확한 차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윤종혁은 그런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나를 혼내려고?’

착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재능까지 갖춰 미슐랭 레스토랑의 수석 조리장이 된 윤종혁.

저놈이 나를 보기엔 웬 조무래기가 방송의 힘을 빌려 나타나서 요리 천재라느니, 인생 2 회차라느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눈꼴 사납게 보였을 것이다.
자신의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다 가져가기도 했고.

게다가 자신의 스승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니, 나를 혼내줄 명분도 생긴 것이다.

“야? 왜 웃어? 윤종혁 셰프가 너랑 같은 요리를 꺼냈는데? 너 미쳤어? 웃음이 나와?”

당연하게도 난 그의 귀여운 투정을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

ACK 에는 세 명의 심사위원이 있다.

-미슐랭 스타 11 개를 가진 폴 피에르의 유일한 동양인 제자이자, 두바이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 출신 강요한.

-프랑스에서 오직 한식으로 미슐랭 3 스타를 받은 최훈.

-한식의 어머니라 불리는 김애란.

요리 평가에 있어서 악명 높기로 소문난 그들에게, 엄청난 극찬을 받고 윤종혁의 심사는 끝났다.

“엄청난 맛집을 이 스튜디오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합격입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합격이에요. 앞치마를 받아 가십시오.”

그리고 나의 차례가 왔다.

“반유현 도전자, 내외부적으로 말이 참 많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나에게 겁을 주고, 긴장감을 심어주려는 건지 차갑게 나를 노려봤다.

“당신의 요리가, 그런 논란들을 일축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요리를 가져오셨나요?”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나는 아주 평온하게 내 요리의 덮개를 열었다.

“관자 버터구이입니다.”

“호호, 흥미롭게 됐군요. 윤종혁 셰프의 요리와 같은 요리라…….”

“관자는 미슐랭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로 쓰이기도 하고, 저렴한 술집의 술안주로 쓰이기도 합니다.
실력과 조리법에 따라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습니다. 본인의 요리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훈의 교포 특유의 발음으로 혀를 굴리며 말했고, 강요한이 건방진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가장 높은 맛의 관자 구이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심사위원들은 오히려 당황했다.

심사위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춘 뒤에 차례로 한 명씩 맛을 보고, 저마다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서로 대화를 나눴다.

“흠. 와, 이거 뭐야?”

“에……? 이 무야? 이게 무슨 맛이야?”

저들끼리 대화를 나눠도 그에 대한 답이 나오질 않은 모양이다.

김애란의 질문에 맞춰 강요한과 최훈이 다시 다가와 내 요리를 집어 먹었다.

“크레송……?”

최훈이 맛을 한참 음미하더니, 소스의 핵심적인 재료를 내게 말했다.

역시 미슐랭 3 스타를 받은 셰프라서 그런지, 머리가 빠르다.

“아, 물냉이?”

크레송이라는 말이 나오자, 김애란도 말했다.

“관자가 가지고 있는 단맛에 크레송, 한국말로는 물냉이, 그 녀석이 가진 약간의 쓴맛을 첨가해 풍부한
풍미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냉이 버터 소스를 올렸습니다.”

크레송, 물냉이, 워터크래스 등 여러 가지 이름을 지닌, 꽃의 생김새가 냉이와 닮은 식물.

약간의 매운맛과 쌉쌀하고 상쾌한 맛이 특징이다.

“다진 양파와 물냉이를 함께 넣고 볶다가, 닭 육수를 넣고 끓인 뒤 갈아서, 버터로 농도를 맞췄습니다.”

저들이 궁금해하는 맛의 비법은 당연히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약간의 시간 차를 주고,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저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접시 바닥에 있는 퓌레(과립즙)는 브로콜리가 아닙니다.”

“아…….”

“와, 어쩐지. 그, 그럼 뭡니까 이게?”

그리고 이렇게 연출되는 장면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자 구이를 먹었을 때보다 말이다.

“컬리플라워 퓌레에, 완두콩 퓌레를 섞었습니다. 흰색 컬리플라워와 초록색 완두콩이 섞여 연두색에


가까운 빛을 띠는데요. 아마도 색깔만 보셨을 때는 브로콜리에 버터와 생크림을 넣은 퓌레로 생각하셨을
겁니다.”

심사위원 세 명 모두가 내 말에 경청한다.

아마도, 자신들이 몰랐던 맛들이 나의 간략한 설명에 의해 합쳐지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브로콜리 퓌레에 올려진 관자 구이가 시중에 너무 많기에, 초록색 퓌레를 브로콜리라고
완전히 확정하셨을 겁니다. 그리곤, 왜 관자의 끝 맛에 브로콜리 특유의 향이 올라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드셨을 테죠.”

나는 그들이 내 음식을 먹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모조리 알고 있다.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전혀 상상치 못한 완두콩 특유의 단맛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저들의 표정이 변화하는 것을 캐치했기 때문이다.

“와…….”

자신들이 그려놨던 맛의 그림이,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깨우친 표정.

그렇게 모든 맛들의 의문이 풀리고,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다시 내 음식의 맛을 본다.

그제서야 입안에서 넘실대는 재료들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충격적이네요.”

“저희가 감히 이런 요리를…….”

김애란이 합격의 상징인 앞치마를 내 목에 걸어줬다.

그리고, 미슐랭 3 스타인 최훈 셰프가 심사를 마무리하려 했다.

“이건 뭐……. 윤종혁 셰프가 제 후배라서 말하는 것도 있지만, 음……. 윤종혁 셰프의 관자 구이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도달…… 해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음……. 맛을 그리는 법부터, 재료의 조화까지
저에게 관자 구이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주셨…….”

프랑스에서 20 년을 넘게 산 최훈의 어눌한 발음이 답답했는지, 김애란 셰프가 한마디를 던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그냥 최고였어요. 뭘 평가를 해. 더 평가하지 마이소. 그냥, 최고. 최고!”

***

“아이고, 우리 아들 진짜……천재야. 고생했어.”

내가 앞치마를 받아왔다는 사실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다 나보다 잘 나가는 거 아니여?

백원종 대표에게는 축하 메시지까지 날아왔고.

이성찬에게도 축하 메시지가 날아왔다.

-유현아, 제작팀이 편집하고 있는 것 보니까, 느낌이 좋아. 방송도 대박 날 것 같은 느낌이야. 아무튼


진짜 축하한다. 넌 될 줄 알았어! 

그 외에 별다른 연락이 안 온 것을 보면, 환생하기 전부터 딱히 친구가 없는 몸이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불필요한 인연 때문에 손해를 봤던 적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첫 녹화를 하고 난 뒤 삼 일 뒤에, 다시 스튜디오를 찾았다.


두 번째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대기실 문을 열기 전, 분명 이 안은 시끌벅적했는데, 내가 등장하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보니, 아마도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이 공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그때, 내가 아는 얼굴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오랜만이라예!”

오리 장인 김해숙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도 여기 출전하셨네요?”

“뭐, 나는 오라카면 오고, 가라카면 가는기지! 아아, 진짜 참말로 잘 먹고 있슴니데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달래랑 부추를 곁들인 스테이크예!”

유명한 오리 장인이 내게 와서 레시피에 대한 감사 인사까지 전하고 있으니, 대기실의 분위기가 더욱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 사람들이 그러던데! 거, 유현 씨 때문에 관자 요리한 사람들이 다 떨어졌다고예. 기준만 올려놨다고.


좀 살살, 봐주면서 하지!”

김해숙에겐 전혀 나쁜 의도가 없었지만, 대기실에 있는 모든 참가자들이 김해숙의 입을 막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하하. 그래요? 괜히 미안하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심사위원들이 들어왔다.

여덟 대의 카메라도 같이 들이닥친 것을 보니, 이때부터가 촬영의 시작이었다.

“반유현 씨. 1 라운드 최우수 성적으로 합격하셨습니다. 2 라운드 미션을 선택하실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6 화. 요리천재, 방송천재 (1)

심사위원 강요한이 나에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자, 반유현 씨? 다음 미션을 선택해 주시죠.”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그 보기들은 나로 하여금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게 했다.

-중화면 뽑기, 배추 손질하기, 양파 썰기, 무 깍둑썰기, 무 채썰기 …….

내 표정을 보고 있는 참가자들은 매우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반유현 씨? 빨리 골라주시죠.”

종이에 적힌 ‘미션’들은 아주 간단한 것처럼 적혀있었지만.


스튜디오에 차려진 재료들의 양을 보곤 이 미션이 그저 기본기를 테스트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체력 테스트를 하겠다는 건가.’

곳곳에 쌓여있는 밀가루 포대나, 배추, 무와 같은 것들은 1 라운드에서 합격한 60 여 명의 참가자들이


쓰기엔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

즉, 종이에 적힌 저 미션들은 이를테면 밀가루 ‘20kg’로 중화면 뽑기, 배추 ‘30 포기’ 빨리


손질하기와 같은 육체적인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그 ‘양’을 감추고 있다.

그래놓고, 내가 미션을 선택하면 주방에선 체력이 중요하다느니 진부한 소리를 해대면서 숨겨진 그 ‘양’
을 말하겠지.

나는 자연스럽게 내 몸을 내려다봤다.

‘흠, 이 몸으로 저 양들을 소화하려면, 몸에 경련이 일어나고도 남는다.’

100 년간 쌓아온 지식들은 내 머릿속에 있고, 칼질을 비롯한 재료를 손질하는 동작들도 그나마 이 몸에
익숙하게 만들었지만, 요리에 필요한 ‘근육’들이 형성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내 몸은 덩치 좋은 몇몇 참가자들과는 다르게 10kg 이상의 밀가루 반죽을 밀고, 무거운 무와


배추를 몇 kg 씩 썰어내기엔 적절하지 않은 몸이었다.

아니, 뭐, 하려면 하겠지만 고된 노동은 질색이다.

“양파 썰기로 하겠습니다.”

단순한 이유였다.

***

“양파 15kg 짜리 한 망. 최대한 빨리 썰어내십시오. 속도, 균일한 두께 등 총체적으로 판단해서 수준


이하의 참가자는 도중에 탈락시키겠습니다.”

심사위원 강요한이 말했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

강요한의 말과 함께, 칼과 도마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64 명의 참가자들이 칼질을 하고 있으니, 칼이 도마를 때리는 명쾌한 소리가 소음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여유롭게 양파를 손질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참가자들 중에서 조금은 튀는, 몇몇을 눈에 담았다.

“어우, 너무 잘하시네.”

내가 눈에 담았던 이들에겐 자연스럽게 심사위원들이 다가갔다.

내 눈에 쓸 만한 칼솜씨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당연하게도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김해숙 씨, 과연 장인답게 칼솜씨가 현란하시네요.”

그중 한 명은 김해숙이었다.

이미 나와 안면이 있기도 하고, 방송에 빈번하게 출연할 정도의 실력자이다.

그녀의 요리를 제대로 맛본 적이 없지만, 칼을 다루는 것과 재료를 다루는 몸놀림에서 그녀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헤헤. 양파는 오랜만이라, 좀 힘드네예.”

“화이팅하시고, 속도 좀 더 올리시면 좋을 것 같네요.”

심사위원 강요한의 말에, 수줍은 미소를 짓고는 다시 칼질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몇몇 사람들을 눈에 담은 뒤에, 나는 다시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주목했다.

‘뭐지, 이 아저씬?’

내 바로 옆에서 양파를 다듬고 있는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

내가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때, 김애란이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도 이 아저씨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아니 갱복 씨! 이걸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감이죠, 뭐. 헤.”

최경복이 쑥스럽다는 듯이, 짧게 웃음소리를 내뱉고는 계속해서 칼질을 이어나간다.

다다다다다!

균일한 속도, 소리, 같은 크기로 썰려 나오는 양파.

나무랄 것이 없는 실력이었다.

일반 칼이 아닌 중식도로 양파를 쳐내는 게 숙련도가 꽤나 높다.

중식당에서 아주 오랜 기간 일한 사람일 것임이 틀림없다.

물론, 특별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주목한 건 다른 것이었다.

‘양파를 보지도 않고 썰어?’

그의 시선은 언제나 도마 위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망에서 양파를 꺼낼 때도, 양파를 도마에 올려놓고 자를 때도, 시선은 언제나 정면이거나 천장을
응시했다.

처음엔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퍼포먼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앞이 얼마나 안 보이십니까?”


“허허. 형태만 보입니다. 형태만.”

“대체 요리를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말씀드렸잖아요. 감이라고 허허허.”

심각한 표정의 심사위원들과는 달리, 최경복의 대답은 호쾌했다.

“최경복 씨, 위층으로 올라가세요. 합격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엿듣고 있자니, 그가 도마 위에 시선을 두지 않고 칼질한 이유를 알았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제가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시력이 없이도, 이렇게 균일하게 자른 것을 보면, 됐습니다. 올라가세요.”

최경복은 작년부터 시력을 점점 잃기 시작해, 지금에 와서는 거의 모든 시력을 잃고, 그 형체마저도


흐릿하게 보이는 수준이라고 했다.

도마 위에 시선을 두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굳이 고개를 아래로 향하게 할 이유가 없던 것이었다.

나도 100 년을 요리했지만, 시력을 잃고도 이런 프로그램에 나와 도전을 한다는 게 사뭇 대단해 보였다.

“반유현 씨.”

내 바로 옆자리에 있던 최경복이 합격자들의 장소인 위층으로 올라갔고, 자연스럽게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다다다다다다!

당연히, 내 칼질엔 심사위원들이 나무랄 때가 없었다.

속도, 잘린 양파의 크기, 움직이는 동선이 최소화된 칼날.

내가 보기에도 만족스럽다는 것은, 저들이 보기에 아주 완벽할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도 위층으로 올라가라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다른 말이 날아왔다.

“일색이 천재 요리사이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시고 계십니다. 이 정도는 너무 평범한 것


아닌가요?”

강요한이 말했다.

내가 아무리 기교 없이 정석적으로 썰었다고는 해도, 이놈은 미묘한 디테일의 차이를 모른다.

칼에 힘을 최대한 적게 넣고, 부드럽게 썰어 양파즙이 가장 덜 나오게 썰고 있었다.

양파가 칼날의 날카로움만으로 잘려나갈 정도의 힘.

그 이상이거나 이하의 힘을 주게 되면 양파에서 보다 더 많은 양의 즙이 나온다.

양파즙이 나올 때, 양파를 써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되어있는 건데, 강요한은 내 메마른 눈을 보고도
핀잔을 줬다.

‘내가 여태껏 썰어낸 양파가, 여기 있는 양파 전체보다 많을걸.’


물론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병자 취급은 사절이니까.

방송의 재미를 위해 PD 가 저렇게 시킨 것인지, 심사위원들은 한번을 그냥 안 넘어간다.

이보다 더 잘하려면, 칼춤을 추면서 양파를 썰어야 되나.

나보다 80 년 정도는 후배인 이들에게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 줘야 하나를 생각했을 때, 강요한이 힌트


아닌 힌트를 줬다.

“물론, 반유현 씨가 잘하고 계신 건 맞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셨던 최경복 씨는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는 하시더군요. 더 큰 차이를 벌리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이 몸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도마를 내리쳤다.

다다다다다!

이 공간 안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던 박자로 도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참가자들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기계처럼, 아니 기계보다 더 정교하게 양파들이 썰려 나갔다.

이 속도를 보고 놀란 건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요한이 내 칼질을 보곤 잠시 주춤했다.

“어허, 그 참, 그, 속도만을 말한 게 아닙니다. 시력을 잃은 분들도……. 예?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


….”

그러곤 요리하는 사람의 자세가 어떻고, 태도가 어떻고를 말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나를 몰아세우려는 강요한이다.

이해는 한다. 이 프로그램의 사실상 주인공인 내가 곤경에 빠져야 재미가 나올 테니까.

‘사기캐’라는 별명이 붙은 나를 깎아내려야, 다른 참가자들의 의지도 올려줄 수 있고.

그 의도를 알고 나는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에, 에에?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바로 옆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는 최경복이 사용하던, 중식도를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다다다다다다!

뜬눈으로 양파를 썰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빠르게.

눈을 감고 양파를 썰어댔다.

다다다다다다!

다른 참가자들의 칼질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눈을 감고 있어 모르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칼을 놓고 내 칼질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이 주방엔 나의 칼질 소리만이 가득했다.

다다! 다다다! 다다다다! 다다!

내가 칼로 도마를 내려치며 이러한 박자를 만들었을 땐, 억지로 트집을 잡으려 했던 강요한의 지금 표정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

너무 충격을 받았으려나.

이번엔 완급 조절 좀 할 걸 그랬다.

***

“3 라운드는 팀 배틀입니다.”

2 라운드에 진출한 64 명의 참가 중, 양팔 썰기 미션에서 합격한 참가자는 39 명이었다.

그중 팀장으로 8 명의 인원이 뽑혔다. 당연히 나는 팀장으로 선발되었다.

“크흠! 반유현 씨, 가장 높은 점수로 2 라운드를 통과하셨습니다. 먼저 팀원을 선택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네 명의 팀원을 뽑아주십시오. 본인을 포함한 다섯 명이 한 팀이 될 것입니다.”

나는 내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들이 나를 보는 반응은 이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재밌어.’

매스컴을 타고 등장한 요리 천재, 저들이 생각한 나는 맛을 보는 감각이 뛰어나 그에 따라 재료들을


조합하는 타고난 능력이 있는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타고난 능력과 감각이라는 것은, 요리 경력이 없던 내가 신선하고 충격적인 요리를 만들어 내는 걸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테니까.

따라서 맛도 맛이지만 ‘미션’ 위주의 이 프로그램에서는 요리의 숙련도 또한 평가항목이기에, 갈고


닦이지 않은 타고난 재능은 얼마 못 가서 탈락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나의 칼질에 기계처럼 썰려 나가는 양파를 보곤, 모두 그런 생각을 접은 것 같았다.

특히나 요리 경력이 오래된 칼국수 33 년 경력의 달인, 일본 초밥 장인의 애제자, 중식의 대가 등 ‘장


인’이라 불리던 그들은 내 칼질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방송 노름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각 분야에서 달인 또는 장인이라 불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인다.

나의 팀원이 되고 싶은 것이었다.

“반유현 씨, 제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제한 시간 내에 선발하지 않으시면, 다음 팀장에게 권한이


돌아갑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가장 먼저 이름을 불렀다.

“김해숙 선생님.”

오리 요리의 장인 김해숙, 그녀의 겸손한 성품과 실력을 모두 알고 있기에 이번 선택은 쉬웠다.

“최경복 선생님.”

그리고 아까 전 내 옆에서 양파를 썰었던 맹인.

최경복을 선택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칼질을 그렇게 해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쓸 만한 내공이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핸디캡은 우리 팀의 색깔을 더 불어넣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와 장애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뭉친 어벤져스 같은 느낌이랄까.

연배가 꽤나 있는 두 사람을 고르자, 김애란이 한마디를 던졌다.

“반유현 씨, 팀원들의 경력도 좋지만 앞으로 다양한 미션을 해야 될 테니, 다양한 연배의 팀원을 고르는
것도 좋아 보이네요.”

방송이기도 하고, 나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서 외골수의 느낌을 풍기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 명의 젊은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윤종혁 씨.”

1 라운드 때부터 나를 언급했던 윤종혁.

양파 썰기 미션을 통해 팀장으로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놈이다.

뿐만 아니라, 요리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계속해서 밟아왔고, 실제로 미슐랭 투스타에서도 일하고 있는
윤종혁은 김해숙과 최경복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보충할 수 있다.

오랜 경력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요리의 ‘최신 감성’ 같은 것들을 말이다.

젊고 어린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의 실력이 그중에서는 뛰어난 편이었다.

“하.”

팀장으로 선발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나의 팀원이 된 기분은 그의 표정에 그려졌다.

자존심이 강한 놈인 줄은 알았는데, 대놓고 표정이 어두워지니 정신교육을 한번 들어가 줘야될 것만


같았다.

“으음. 어떤 기준으로 뽑으신, 음. 건가요?”

최훈이 내게 물었고, 나는 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희 팀은 확실한 서열이 있습니다. 제가 뽑은 순으로 저희 팀의 서열이 정해진 것입니다.”

“실제 주방처럼 직급을 만들어 최대 효율을 끌어내겠다는 건가요? 흠, 그런데 우승 후보 윤종혁 씨가 세


번째라는 거죠?”
나는 최훈의 질문 뒤에 내 팀원들을 바라봤고 곧바로 정신교육을 시작했다.

“윤종혁 씨. 가장 뒤에 서주세요. 그 앞에 한 명 더 뽑아야 되니까요.”

내 말에 싸늘함이 느껴졌는지, 그는 기분 나쁜 표정보다 오히려 당황했고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은 여린 놈이군.’

주방에서 이런 놈들을 쉽게 다루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다.

7 화. 요리천재, 방송천재 (2)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적을 깬 목소리였다.

나를 향해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한 명의 젊은 여자가 손을 들고 말했다.

예쁘장한 그녀의 얼굴은 당당함을 표현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그녀가 많은 긴장을 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민서윤.

1 라운드에서 된장찌개를 선보이고, 심사위원들에게 ‘엄마의 손맛’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들고 말하자,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저도요.”

“시키신 대로만 하겠습니다.”

“어떤 요리든 자신 있습니다.”

민서윤을 시작으로 몇몇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모두 내 팀원이 되고 싶은 이들이었다.

각 분야에서 명인, 달인이라는 이들도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손을 들고 나온 것을 보면, 나뿐만 아니라


나의 팀원인 김해숙과 최경복, 윤종혁이 주는 무게감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인 듯했다.

‘팀원이 되기보단 우리와 적이 되기 싫은 게 아닌가.’

어쨌든 경쟁이 기반인 이 프로그램에서 당연히 저들의 마음속 한 편에는 저런 생각이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런 생각을 숨기는 것 보다 드러내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

그때 마침 민서윤이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우승하기엔 모자란 실력입니다. 그런데 이왕 본선까지 올라온 거 최고의 팀에서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 이미 뽑혀있는 내 팀원들을 바라봤다.

윤종혁은 팔짱 끼고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고, 최경복은 내가 자신을 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김해숙에게로 향했고, 김해숙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선택을 자신에게 넘기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열심히 할게요!”

내가 다시 민서윤을 바라보자, 그녀는 기회가 왔다는 듯이 간절함을 짜내며 말했다.

팀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선에선, 사실 누가 들어와도 상관이 없었다.

요리에 있어서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이나 영감을 줄 만한 사람은 적어도 이 스튜디오 안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하고, 간절한 이를 뽑는 게 팀 전체에 이득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또한 ‘엄마의 손맛’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녀가 실력 면에서도 뒤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

총 8 개의 팀이 완성되었고,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다.

김해숙과 최경복은 55 세로 동갑.

윤종혁과 민서윤은 33 세로 동갑이었다.

내가 뽑은 모든 팀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나를 마냥 어린 사람으로 취급하지 못했다.

짧게나마 1, 2 라운드를 거치며 보여줬던 내 실력들이 저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갱복 씨, 용띠면 친구네예. 잘 부탁드립니더.”

“하하. 예 해숙 씨, 잘 부탁드릴게요. 제가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리…… 팀에 피해가 가면 안 될


텐데.”

윤종혁도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잘 부탁드립니다.”

“예.”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 때문에 내가 불편했을 테지만, 그래도 내가 팀장이라고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넸다.

다만, 내 실력을 한두 번밖에 보지 못했기에 이 시스템, 방송상으로만 팀장일 뿐, 아직까지는 나를


자신의 윗선으로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요리사의 자존심이라는 게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나는 윤종혁 같은 사람을 주방에서 수없이 많이


만나봤다.
엄격한 서열 문화가 있고, 제자가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도제식 교육문화가 만연한 주방에서
버티고 버텨 요리기술을 배웠다는 자부심이 저놈의 자존심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도제식 교육문화에 익숙하기에 자신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완전하게 허리를 굽힐 줄 안다.

‘언제까지 가려나.’

아직까진 나에게 허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있지만, 장담하건대 다음 녹화 일을 넘지 않을 것이다.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의 조리장인 그는 정교하진 않더라도 실력의 차이를 가늠할 수준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 수준도 아니라면 애초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이곳은 매 순간마다 요리 실력을 뽐내야 하는 경연의 현장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본인과 나의


차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민서윤도 인사를 건넸다.

마음을 제대로 정리했는지, 이제는 제법 단단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에 떨림이 없고, 눈빛에서 그녀의 의지가 돋보였다.

“허허허. 앞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팀원들이 좋아 보이네요. 기운이 느껴집니다. 팀장님. 시켜만


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걸걸한 목소리의 최경복이 말했고, 그때 심사위원들이 다시 장내로 들어왔다.

“3 라운드 팀 미션은, 모든 팀원들이 빠지지 않고 요리에 개입을 해야 됩니다.”

“총 세 가지의 요리를 만들고, 주어진 재료로 메인 요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 그럼 재료가 뭔지 보겠습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대본을 한 줄씩 번갈아 가며 읽자, 하늘에서 하얀 가루들이 쏟아져 내렸다.

“밀가루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심사위원의 말에 참가자들이 술렁였고, 내 머리는 곧장 계산을 시작했다.

한 가지의 요리가 아니라, 총 세 가지의 요리를 심사한다는 것은 그 요리들의 조화까지 심사항목에


들어간다는 것.

나는 밀가루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른 요리들의 전체적인 맛을 그려봤다.

그때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뜨뜻한 수제비도 좋을 것 같은데예.”

“저는 파스타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와 관련된 서브 요리들도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고요.”

“저는 칼국수? 허허허, 그런데 뭐. 팀장님이 하시는 대로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민서윤이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내게 말했다.


“팀장님. 밀가루 반죽은 경복 삼촌이 자신 있다고 말하시고, 수제비는 저랑 어머니가 자신 있어요. 종혁
씨는 파스타가 좋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때마침 내 생각이 정리되었고,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떡볶이, 계란 김밥, 튀김.”

“예?”

“에?”

“부, 분식이요?”

“하, 반유현 팀장님!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는 거예요? 저희는 지금 이 대회에 인생을 걸고…….”

강철이라도 씹어 먹을 것 같은 의지를 불태우던, 민서윤은 나의 시시콜콜한 대답에 실망한 눈치였다.

“이유가 있어요? 떡볶이?”

반면에, 윤종혁은 침착한 편이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제 머릿속에 떠오른 메뉴입니다.”

실제로, 별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분식집 아들이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환생 직전에 먹었던 떡볶이가 더럽게 맛이 없어서 그게


생각났던 것일지도.

맛과 조화로만 평가되는 이번 미션에서는 그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

“요리 선정에 시간을 쏟기보다, 빠르게 요리를 정하고 어떻게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고민하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다만, 팀원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말을 덧붙일 뿐이었다.

실제로 우리 팀을 제외한 모든 팀들이 어떤 음식을 할 것이냐에 대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시간의 효율은 맞는 말씀이긴 한데,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너무 무심하게 떡볶이를 툭! 말씀하시니까…


….”

이 대회가 끝나기까지 나에게 어려운 상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긴 것인데,
나의 모습이 저들에겐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해를 푸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제일 자신 있는 밀가루 음식이 떡볶이입니다.”

내가 단호하게 끊어 말하자 그제서야 팀의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뭐, 팀장님이 그렇다는데 저희가 따라야지예.”

“허허허. 해숙 씨 말이 맞습니다. 믿고 가야죠. 우리 팀장님이 어떤 팀장님인데. 충성!”

최경복이 박수를 치며 힘을 붓 돋았고, 윤종혁이 본격적으로 내게 질문했다.


“분담을 어떤 식으로 하실 겁니까?”

자존심상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나를 팀장으로서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똑똑한 놈. 효율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일단은 한 수 굽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계란 15 개, 미림, 식용유, 새우, 오징어, 전분 …….”

나는 곧장 머릿속에 떠오른 재료들을 말했고, 팀원들은 재료들을 찾으러 출발했다.

이 스튜디오 안에서 가장 빠른 움직임이었다.

식재료가 있는 곳으로 우리 팀원들이 이동하자 다른 팀들은 소란스러워졌다.

“거봐! 저, 반유현 씨 팀은 벌써 출발하잖아! 다른 팀들은 그러다 요리도 못 만들겠어. 밤새울 거야?”

심사위원 강요한이 다른 팀들을 더 재촉했다.

***

음악에 지휘자가 있듯이, 주방에도 전체적인 맛을 조율하는 지휘자가 있다.

그리고 주방의 지휘자로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한 나의 주문에, 내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경복 님, 밀가루 냄새를 제거하는 게 관건입니다. 시간상 반죽을 숙성시킬 수도, 다시마 물 같은 것을
쓸 수도 없으니까요. 콩가루를 넣고 반죽을 만들면 밀가루 냄새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시력을 잃어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최경복이 땀을 흘리며 반죽을 치댔다.

“타마고야키.”

“일본식 계란말이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계란이 말려있는 형상 말고, 푸딩처럼 부드럽고. 카스테라 형식으로 만드는 게
있습니다. 교쿠라고도 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계란에 새우를 갈아 넣어 맛을 내고, 마를 갈아 넣어 식감을 살릴 수 있습니다. 계란을 팬에 올린


뒤에는 곧장 명란 크림소스를 만들어주세요.”

“계란 김밥이라는 게, 김 안에 밥 대신 계란을……?”

윤종혁은 유명 요리학교 출신의 레스토랑 수석 조리장답게, 이해가 빠른 편이었다.

“맞습니다. 만든 일본식 계란말이에 명란 크림소스를 얹혀, 김으로 말아서 김밥 형태로 만들 겁니다.


중요 포인트는 떡볶이의 강렬한 맛을 중화시키는 것입니다. 입이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죠.
계란의 부드러운 식감과 달짝지근한 명란 크림소스, 그리고 계란과 함께 녹아서 사라져 버리는 김과 그
김의 은은한 향을 최대한 살려야 합니다.”
윤종혁이 흠칫 놀란 눈빛으로 날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 미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나를 보고 제법 요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냐는 듯이 묻는 미소.

가볍게 무시했다.

앞서 말했지만, 이놈이 나에게 납작 엎드리는 것은 자연의 순리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해숙 님께서는, 전체적으로 필요한 재료들을 손질해주세요. 식당에서 주문을 받듯이 팀원들이 말하는
재료를 손질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떡이 나오면, 떡볶이 소스를 만들어주세요. 고운 고춧가루
사용하시고, 올리고당은 열을 받으면 단맛이 날아가니 물엿 사용하시고요. 미원을 넣기보단, 케첩, 카레
가루, 새우 가루를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이고! 내가 할 수 있을낀가?”

“중간중간 제가 맛을 봐드리겠습니다.”

“하이고! 하모 걱정 없습니더!”

치이이익!

그때, 기름에 반죽이 튀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나는 당장 그쪽으로 몸을 옮겼다.

“민서윤 씨, 튀김에 수분이 너무 많습니다.”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재료에 수분기가 얼마나 있는지를.

나는 재료들을 손질하는 것을 시연했다.

“이렇게요.”

키친타월을 이용해 오징어의 껍질을 문댄 뒤에, 살짝 뜬 껍질을 잡아채 쉽게 벗겨냈다.

그리고 빠르게 오징어를 썬 뒤 키친타월로 수분을 제거했다.

새우 또한 내 왼손에 올려놓은 뒤에,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껍질을 쉽게 벗겨냈다.

그 뒤로 새우의 내장을 제거하고 힘줄을 끊는 것까지, 1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민서윤이 만들어 낸 튀김 반죽에 손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민서윤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튀김 반죽도 다시 하세요. 이런 반죽으로 튀김을 하면…….”

너무 눅눅해서 개밥을 먹는 느낌일 것 같으니까.

라는 말이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막아냈다.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인 평가가 그 사람의 발전을 더 빠르게 시킬 수 있기에, 독설가라는 별명은 매번의
삶에서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런 말을 내뱉었다간 미치광이나 또라이, 망나니로 평가받기 딱이다.

성격상 머릿속에 떠오른 말들을 뱉고 싶었지만, 아직 이 몸의 레벨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최대한 차가운 물로 튀김 반죽을 만드세요. 바삭한 식감이 포인트입니다. 떡볶이, 계란 김밥과 반대되는
식감이요.”

내가 그린 맛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뿐이었다.

나는 모든 팀원들에게 중요 포인트를 집어준 뒤에, 한 발 치 멀리 떨어져 그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동시에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들은 아무래도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가장 빠른 요리 선정에, 레시피까지 술술 말하고. 가장 빨리 주방에 들어간 것부터, 팀원들 분담…….


쟤 뭐야 대체?”

“무조건 레스토랑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경험이 없는데 저래 할 수 있누?”

“어엄. 저 네 명의 움직임을 야악간, 약간 과장하자면. 음. 제 레스토랑의 주방보다 효, 효율적입니다.


반유현 씨는 헤드 셰프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있네요. 음. 김애란 심사위원님 말씀대로, 저건 경험으로만
가능한 건데. 쓰읍.”

대다수의 팀들이 우왕좌왕하며 주방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나의 팀원들은 더욱더 맡은 바에 충실했다.

“맛이 제일 궁금해.”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우리 팀의 요리에 관심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완벽하게 방송용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8 화. 요리천재, 방송천재 (3)

맛만 보고도 그들이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리했는지 맞춰냈다.

“미림에 알코올을 제대로 안 날렸네. 마는 갈아서 채로 걸어야…….”

윤종혁이 맡았던, 타마고야끼.

나는 그것의 맛을 보고 평가를 내렸다.

“다시 하셔야겠습니다.”

윤종혁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는 나의 지적을 납득한다는 뜻으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의 지적이 너무나 구체적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윤종혁은 본인보다 내가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췄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케찹을 너무 많이 넣으셨어요. 감칠맛만 조금 살릴 정도로. 그리고 새우 가루 빼먹으셨어요.”

“아. 아이고, 그렇네예! 근데, 팀장님은 무슨 귀신인가 봐요? 어떻게 맛만 보고 다 아셔?”

나의 오더를 받아 요리를 시작한 팀원들은, 나의 지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민서윤 씨, 이 정도면 다 괜찮은데, 전분 가루에 오징어를 버무려서 튀김옷이 안 벗겨지게 해주세요.


그리고 재료를 튀길 땐 조금씩, 튀김 반죽을 뿌려주시고요.”

물론, 내가 가진 맛의 눈높이를 조금 낮춰서 평가했다.

100 년 경력의 내 맛의 눈높이를 저들이 맞추려면 최소 몇 년은 걸릴 테니까.

이 미션을 쉽게 성공할 정도의 맛을 주문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맛을 주문했는지, 그것만 생각하세요.”

***

“와……! 무슨…… 떡볶이를?”

우리의 음식을 맛본 심사위원들의 첫 마디였다.

그리고 충격적인 표정들.

그런데, 그 충격의 표정들은 얼마 안 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이건 진짜, 우리 엄마가 해준 떡볶이보다 맛있다. 이야, 계란 김밥은 진짜 최고여. 하하하! 떡볶이가
이렇게 강력하다니.”

“푸딩처럼 푹신하고 녹아버리는 타마고야끼……. 아주 바삭한 튀김까지. 흠. 기본기가 대단합니다.”

“이 세 개의 요리는 각각의 요리가 아니라 스토리를 갖춘, 하나의 요리인 것 같습니다. 첫 시작을
떡볶이로, 그리고 계란 김밥으로 갔다가 튀김으로. 맛과 식감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감동이고요. 합격입니다.”

즐거운 표정으로 계속 요리를 먹다가 그렇게 한 마디씩 평가를 던졌다.

뒤이어 심사위원 중 제일 연배가 높은 김애란이 심사평을 요약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여러 악기가 있다고 해서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거는, 반유현


씨의 노련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조화에요. 처음부터 봤거든예? 요리 선정부터, 분업, 오더까지.
진짜, 지인짜 물건이야. 반유현 씨.”

그리고 특유의 흐뭇한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대급의 심사평을 들은 우리 팀원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하하하! 역시 우리 팀장님!”

“꺄아! 반유현 팀장님!”

“이길 줄 알았슴니더! 우리 팀장님이 어떤 사람인데예!”

그리곤 승리를 자축했다.


윤종혁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곤 말없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니, 나에게 어색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축하……. 드립니다.”

그렇게 차례로 다른 팀들의 심사가 끝났고, 남은 합격자들은 한 자리에 다시 모이게 되었다.

총 네 팀. 스무 명이 남아있었다.

합격자들에겐 서로 다른 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합격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자유롭게 다른 팀원들이 만들어 낸 요리를 맛봤다.

스무 명밖에 남지 않았고, 이미 서로서로 얼굴을 많이 봐왔던 터라 어색함은 전혀 없었고, 서로의 합격을


축하하는 즐거운 분위기였다.

“와. 이, 이거 떡볶이랑 계란 김밥의 조화되는 것 봐. 튀김도……!”

“이 정도는 분식집 아들이라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식이 아닌디?”

“졌다 졌어. 진짜, 이걸 어떻게 이겨?”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팀이 했던 음식을 먹기 위해 많은 참가자들이 몰려들었고, 우리의 바로 옆에서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대체 뭐로 이런 맛의 조화를 만드는 거지?”

내 100 년의 경험 동안 얻은, 미묘한 차이들.

그것들이 누적되면서 합쳐져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맛에 대한 경험이 많을수록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진정한 요리사라면 맛에 대한 경험이 적은 이들도 높은 단계의 맛을 느낄 수 있게 인도해 주는 능력 또한


특출 나야한다.

나는 사람들이 평소 접할 수 있었던 떡볶이와 계란 김밥, 튀김에 그 능력을 담아냈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와 민서윤 씨! 이거 튀김 민서윤 씨가 했다고요? 엄청 맛있는데?”

우리 팀이 했던 요리를 맛본 한 참가자가 말했다.

“저희 팀장님이 다 가르쳐주셨어요.”

“에이! 이 정도는 본인 실력도 있는 거지! 가르쳐 준다고 다 되겠어요?”

예쁘장한 민서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추세는 감탄과 감동이었다.

참가자들이 우르르 모여서 우리의 요리를 맛보고 있었다.


“이, 떡볶이랑 튀김을 어떻게?”

사람들은 시간이 조금 지나니 맛을 즐기기보다는 탐구하는 느낌이었다.

“허허허. 맛있네. 제가 앞이 보이진 않지만. 맛을 보니 정성이 꽤나 많이 들어갔겠는데요? 팀장님도


드셔보세요.”

우리 팀원들도 다른 팀의 요리를 맛보고 있었다.

밀가루를 얇게 펴 구워 토르티야가 큰 대접의 가운데에 있고, 케이준 치킨 샐러드, 찹 스테이크, 새우


레몬 샐러드가 각각 그 주변을 장식한 요리였다.

개인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토르티야에 각 요리를 싸 먹는 타코를 만든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젓가락을 들자마자 내려놨다.

“에? 팀장님 타코 못 드세요? 이렇게 싸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민서윤이 내가 젓가락을 놓는 것을 보자마자 물었다.

나는 그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접시에 담긴 토르티야의 색만 봐도, 입에 넣으면 요리를 망치는 밀가루 냄새가 풍길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밀가루 냄새도 잡지 못한 요리를 입에 넣기 싫었다.

뿐만 아니라, 토르티야에 싸 먹으라고 만든 요리들의 그 색감만 봐도, 굳이 맛을 안 봐도 나에게


신선하고 특별한 영감을 주지 못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냄새를 맡았더니, 역시나. 먹을 가치가 크게 없었다.

“정말 왜 안 드세요? 꽤 맛있는데 이거?”

당연히, 보기만 해도 맛을 안다고 했다간 중 2 병 취급받기 딱 좋다.

타고난 요리 천재들도 그 정도 능력은 부리지 못하니까 말이다.

“배불러서요. 많이 드세요. 민서윤 씨.”

그리고 그때. 심사위원 강요한이 마이크를 들었다.

“자! 스톱!”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라고 신호를 주는 강요한.

얼음땡을 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다음 미션 또한 팀 미션입니다.”

즐거운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드디어 또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을 가진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음 라운드에서 진행될 미션은 바로! 다른 팀 요리 따라 하기입니다!”

참가자들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강요한이 곧장 우리 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반유현 씨 팀. 지금 팀 멤버 총원이 타코 앞에 있습니다. 반유현 씨 팀이 다음 라운드에서 준비해야 할
요리는 바로 타코입니다!”

많은 팀원들이 가까이에 있는 음식이 그 팀이 해야 할 요리가 되었다.

강요한이 그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각 팀당 요리를 선정하려 했을 때,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

스슥! 스슥!

신발이 바닥에 비벼지는 소리.

우리 팀이 만든 요리를 먹고 있던 많은 참가자들이 심사위원들의 눈치를 보며,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하듯이 은밀한 걸음으로 서서히 우리의 요리에서 멀어지려 했다.

그 누구도, 역대급 심사평을 받은 우리의 요리를 만들기 싫었을 것이다.

떡볶이라는 요리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지만, 저런 단순한 요리로 역대급 평가를 받아낸 팀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것이 좋을 사람은 당연히 없을 터.

“허허. 이래들,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뭐 되겠나!”

그런 모습을 본 김애란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참가자들은 고개를 바닥으로 떨궜다.

그리고 우리의 요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한 참가자에게 김애란이 말을 던졌다.

“어이. 최현상 씨? 함 해볼래요?”

구수한 사투리가 섞여 있는 김애란의 말.

저 대답을 거절하면, 화끈한 성격을 가진 김애란에게 쓴소리를 듣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

“예……. 저희가 반유현 씨 팀의 요리를 해보겠습니다.”

그제서야, 최현성과 그 팀원들을 제외한 사람들의 얼굴이 활짝 펴지기 시작했다.

폭탄이 제거되었으니, 딱히 어려울 것이 없다는 마음들이 표정을 통해 드러났다.

나는 그때 저들의 행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우리 팀이 해야 할 것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밀가루를 구워 만드는 토르티야는, 경복 님께서 맡으면 될 것 같습니다.”

“예! 팀장님! 허허허. 이번에도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우리 팀이 따라 해야 할 타코는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어있었다.

밀가루를 얇게 구워낸 토르티야와 케이준 치킨 샐러드, 찹스테이크, 새우 아보카도 샐러드였는데.

나는 먼저, 새우 아보카도 샐러드를 음미하며 그 안에 들어간 재료를 맛보고 있었다.

“재해석은 필요 없습니다. 그 요리와 가장 똑같은 요리를 만드는 팀이 높은 점수를 획득하게


되어있습니다.”

맛있게 만들려면, 더 맛있게 만들겠지만, 심사기준은 ‘똑같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에 들어간 재료를 골라내기만 했다.

“레몬즙하고, 레몬껍질을 강판에 갈아서 만든 제스트, 파프리카, 파슬리. 파슬리도 프랑스 파슬리는
아니고, 이탈리안 파슬리에요. 아몬드도 갈아 넣었고…….”

내가 재료들을 말하자, 민서윤과 윤종혁이 그것을 받아 적었다.

내 팀원들은 이제, 나에게 어떠한 토도 달지 않았다.

이전 라운드의 활약으로, 내가 이번엔 돼지 간으로 타코를 만든다고 해도 믿고 따라올 분위기였다.

특히나 윤종혁의 태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에게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내 팀원들이 모두 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을 때, 강요한이 한마디를 더 던졌다.

“그리고, 이 미션에는 제한 사항이 하나 걸려있습니다.”

정확히는 모든 사람들의 집중을 깨는 말이었다.

“A 요리를 만들었던 A 팀은 자신들의 요리를 맡게 된 팀의 한 명을 뺄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타코를 만들었던 팀의 팀장이었던 중년의 남성이 손을 들고 말했다.

“반유현 씨를 빼겠습니다.”

강요한의 말이 끝마치자마자 저런 말이 나왔다.

참가자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내가 지명되자마자 ‘야스!’, ‘그럼, 해볼 만해!'라는 말들을 뱉으며 자축하기


시작했다.

“반유현 씨, 반유현 씨는 2 층으로 올라가서 대기해 주십시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을 할 때, 다른 참가자들이 보지 못했던 나의 팀 미션 활약상을 낱낱이 말했고, 그


덕에 나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아주 유력한 우승 후보가 되어있었다.

당연히 나를 이번 라운드에서 열외 시키는 것이, 다른 팀들에게도 유리했을 것이다.

아주 강력한 우승 후보와 겨루는 게 좋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

오로지 맛을 겨루는 프로그램이 아닌, 오락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프로그램.

그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4 라운드, 다른 팀 요리 따라 하기에서 열외자로 선택받은 분들은 모두 자동합격입니다. 이번엔 그냥 2


층에 올라가서 쭉 쉬시면 됩니다.”

마지막 남은 네 개의 팀에서 각각 한 명씩,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실력자들이 열외자로 지목되었고,


지금은 나와 함께 2 층에 올라와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동으로 합격되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게 된다.


“합격이라고요?”

제작진의 의도는 하나였다.

매번 주목을 받는 실력자들은 미션에서 한 번쯤 열외를 시켜,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인물들은 새로운 스토리를 화면에 끌어들이고, 그것들은 방송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유현 씨, 떡볶이랑 계란 김밥이랑 튀김은 진짜……. 편안한 강도의 습격이라고 해야 되나? 뭔가에
뒤통수를 맞았지만, 아주 좋았다? 응? 나 뭐라는 거야 진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촤하하하!”

실력이 뛰어나, 열외를 당한 여섯 명의 사람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ACK 의 메인 PD 인 김수호가 나에게 다가왔다.

“유현 씨, 반가워요. 저 PD 김수호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내가 이곳에 출전할 수 있게 기회를 줬던 사람이었다.

인사를 하곤 반말과 존대를 섞어 나에게 편하게 했다.

“좀 미리 언질을 해줘야 될 것 같아서.”

“예?”

“유현 씨 방송 분량이 너무 많아, 버리기 아까운 장면이나 화면들이 너무 많더라고.”

김수호의 얼굴엔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공존해 있는 것 같았다.

“시청률이 얼마나 나오냐에 따라 다르지만, 유현 씨 너무 유명해져도 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크흠! 유명해지면 얻는 것도 많겠지만, 그만큼 또 피곤해지거든.”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단번에 유명해지면, 성격을 버리고 자아를 잃게 되는 것을 많이 봤다면서,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었단다.

방송이 되기 전 나에게 그런 조언을 직접 해주러 온 것이다.

“내가 방송경력 23 년 차거든? 이번 프로 느낌 좋아. 터질 것 같아.”

9 화. 너 정도면 쓸 만하지 (1)

자체 시청률 4.1%.

케이블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이었다.

담당 PD 김수호의 말처럼, 실제로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ACK)’는 대박을 쳤다.

4 라운드까지 녹화를 마쳤지만, 방영된 1 화는 1 라운드가 대부분의 내용이었다.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전혀 상상치 못한 완두콩 특유의 단맛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와······.

1 라운드에 내가 선보였던, 관자 요리를 맛보고 충격을 받은 심사위원들의 표정.

그리고 시간차를 두고 심사위원들의 충격을 즐기며, 여유롭게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 바로 뒤에는 윤종혁의 인터뷰 장면이 비쳤다.

-반유현 씨요? 이번엔 제가 우습게 봤습니다. 그런데, 맛이란 게 원래는 운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운
좋게, 이것저것을 섞었는데 맛있고 신선한 맛이 탄생할 수도 있는 거죠.

-반유현 씨가 만든 관자 요리가 운이란 건가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면 갈수록 그 실력은 드러나겠죠.

대회 시작부터 나의 이름을 거론했던 윤종혁이 나와 같은 관자 구이를 선보이고, 심사위원들이 나의


요리에 압도적인 평가를 하자 그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장면.

1 라운드에서는 저런 식으로 인터뷰를 해놓고, 2 라운드, 3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결국, 암암리에 내


실력을 인정한 윤종혁이었다.

앞으로 방송될 2 화, 3 화에는 윤종혁이 아주 공손한 자세로, 내가 말하는 재료들을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모습이 그려질 텐데.

1 화가 이런 식으로 방영된 것을 보면, 제작진은 윤종혁을 이미 방송의 제물로 정한 듯했다.

-반유현 씨요? 저는 유학까지 했는데도······ 제가 생각할 수 없던 맛을 만들어 내잖아요? 관자 구이에


크레송 버터 소스, 그리고 맛을 감추기 위한 완두콩 퓌레? 진짜 감탄했어요. 저보다 나이는 몇 살 어리지?
6 살? 어리신데, 오빠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이때에는 나와 팀이 될 줄 몰랐던 민서윤의 인터뷰까지.

많은 사람의 흑역사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흑역사와는 반대로, 새로운 역사도 탄생되었다.

[ 반유현! 젊은 스타 셰프 윤종혁 격파! ]

[ 심사위원 최훈 “관자 요리의 새로운 기준을 선보여준······.” ]

[ 김애란 “이런 맛은 처음 본다.” ]

[ 두바이 미슐랭 셰프 출신 강요한 심사위원 “충격 그 자체의 맛을 봤다.” ]

...

[ ACK 녹화 현장은 반유현 쇼크! ]

‘ACK’에 관련된 기사들의 대부분에 내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방송 첫날, 실시간 검색어에 나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할 정도였다.


이전의 삶에서도 많은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이 정도의 파급력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환생한 지 약 3 개월 차에 대중들에게 이 정도의 주목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진도가 아주


빠르다.

나에 대한 기사들을 계속 보다 보니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 반유현의 사소한 행동으로 알아본 반유현의 이상형 맞추기! ]

이딴 시원찮은 기사들도 순위에 있는 것을 보면, 각종 온라인 언론사들은 실시간으로 가장 핫한 나에 대한


기사를 무자비하게 찍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중들의 관심과는 별개로, 셰프로서, 요리사로서의 입지는 아직 모자란 듯했다.

꺄아아악!

‘골목가게’가 방영되었을 때보다, 더 많은 인파가 우리 분식집으로 몰렸었다.

내 이름이 걸린 현수막부터,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까지.

저 장비들을 보면, 저 사람들의 목적은 분식집의 음식 아닌 ‘나’였다.

“흠.”

분식집에는 어머니 또래의 직원들을 세 명이나 뽑았음에도, 일손이 모자랐다.

“오늘 너무 고생했다, 유현아, 밖에서 손님들 줄 세우랴, 팬들 인사해주랴······ 쉬는 날에는 대회


준비해야 될 텐데.”

“어머니가 더 고생하셨어요. 주방에서 뛰어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요.”

영업이 끝난 저녁 시간이 되고, 가게의 문을 완전히 닫았다.

그리고 나에게 어머니가 여러 장의 명함을 건네줬다.

“유현아, 네가 너무 바빠 보인다고, 연락처를 이렇게 많이 남겨놓고 갔어. 우리 아들 진짜 성공했네.


성공했어······.”

1 화가 방송되자마자, 눈치 빠른 비즈니스맨들이 우리 가게를 들렸다.

명함을 놓고 간 사람들은, 내가 나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하며 밖에서 뛰어다닌 탓에, 나에게
직접 말을 건네지 못한 것이다.

나는 천천히 명함들을 바라봤다.

-용신백화점 영업팀장. 이영길

“그 사람은 백화점 사람인데, 무슨 떡볶이를 같이하자는데? 계란 김밥이랑 같이 메뉴로 묶어서 입점을


하겠냐고 물어봤어. 계란 김밥이 뭐니?”

내가 선보인, 떡볶이와 계란 김밥 그리고 튀김은 3 라운드였다.

방송된 1 화의 분량을 보고는 내가 떡볶이와 계란 김밥이라는 메뉴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방송되지도 않은 걸 어디서 알아 와서, 선점하겠다는 건가.”

방송되기 전에, 레시피와 그에 대한 판권을 계약해 선점하려는 것이었다.

“빠르긴 빨라.”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의 장사꾼들이 안 그러겠냐마는.

특히 대한민국이란 이 나라의 장사꾼들은 항상 한 발 더 빠른 것 같았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식문화가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화음식연구소 과장. 김승한

-(주)대영식당 영업이사, 조정환

-(주)슈가&솔트 대리, 김호찬

···

그밖에도 수많은 명함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돈 부족하세요?”

“아니, 엄마는 이 정도면 충분해. 이 정도 돈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아들이 이렇게 잘되니까 더 행복해.
꼭 지금처럼만······.”

어머니의 의견을 확인하곤, 나는 받았던 명함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다행이에요 어머니, 제가 원하는 것도 이런 게 아니거든요.”

***

방송된 1 화에서, 내 실력을 다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1 라운드에서 선보인 관자 요리에 대해서 말이다.

‘없다면, 이 나라를 당장 떠난다.’

방송을 통해 나왔지만, 요리를 설명하는 내 모습에서 느낀 사람이 있어야 된다.

내가 구현한 맛과, 스토리, 그리고 나의 내공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명함만을 던져놓고 간 저들은 모두 ‘0’점이었다.

나의 실력을 알아봤다면, 명함 하나만을 놓고 갈 리가 없다.

나의 실력을 모르고, 그저 내가 얻은 인기로만 장사를 해보려는 이들이다.

저들의 창업 노하우와 나의 요리를 이용하면, 장사야 잘되겠지만.


돈을 벌고 사업을 하는 것은 미슐랭 스타 30 개를 얻는 내 목표와는 완전히 다른 길이다.

돈은 아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맹목적인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불나방처럼 돈의 맛에 빠져서 미션에 실패했던 두 번째 삶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명함을 쓰레기통에 처넣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홀에 앉아 눈치를 보고 있는 이 사람들은 그나마 쓸 만한 사람들이었다.

“마감 시간입니다.”

주방과 붙어 있는 테이블에 각각, 정장을 입고 있는 세 명의 남자들이 앉아있었다.

나는 분식집에 딸린 쪽방에서 문을 살짝 열어놓고 그들과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그들의 동선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감 시간이라고 말했는데도, 눈치를 보며 나가지 않는 그들.

“주방 마감해야 되는데, 더 필요한 것 있으세요?”

어머니가 친절한 말투로 한 명의 남자에게 묻자, 남자 한 명이 눈알을 굴린다.

“그, 반유현 씨······.”

웃긴 건 그 남자 한 명이 입을 열었을 때, 남은 두 명의 남자들도 엄청난 집중을 기울인다.

그래서 알았다.

저 세 명의 남자가 모두 따로 왔지만, 목적은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아, 유현이요? 팬이시구나. 오늘은 유현이가 쉬느라······. 다른 분들도 유현이 못 보고 다


돌아갔거든요?”

가게에 불청객들이 많이 몰리는 탓에, 어머니는 내가 주문한 대로 대사를 날렸다.

“어머니, 저, 방금 들어왔어요.”

나는 어머니가 뱉었던 말이 민망하지 않게, 말을 내뱉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저 찾아오셨죠?”

나의 등장과 함께, 각각 다른 정장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 명은 동시에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마치 잘 짜인 안무를 연습한 것처럼 말이다. 그 안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명함이었다.

세 명은 서로 경쟁하듯이 나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화윤 호텔 수석 조리장 이기철.

-에드 월 호텔 부주방장 브랜든 킴.

-레스토랑, 다이닝 임프레스. 총 주방장 문상원.


화윤 호텔과 에드 월 호텔은 둘 다 5 성급으로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 요리인들의 꿈인
곳이기도 하다.

다이닝 임프레션은 이미 프랑스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문상원이 한국에서도 미슐랭 스타를 받기 위해


차린 레스토랑이었다.

이 세 명의 사람은 각각의 네임드에 걸맞게 나의 실력을 알아본 이들이었다.

짧은 방송으로도 내 실력을 알아본 까마득한 후배들이 기특해서 사탕이라도 쥐여주고 싶었다.

물론, 나의 진짜 실력은 저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있지만.

“안녕하십니까.”

“아, 예······. 이기철입니다.”

“이거,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민망하군요.”

저들끼리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각자의 욕망을 꺼내기 시작했다.

“서울시 대회에 참가하셨을 때, 그 결승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생각이 들었죠. 꼭 잡아야겠다고.


반유현 씨,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시고자 한다면, 제가 제안 드리는 것은 저희 주방의 중간
책임자로서 주방 경험을 하며, 맛을 연구하고······.”

“주방의 책임자보단 반유현 님의 연구를 지원하고 싶습니다. 송구스럽게도, 반유현 님의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봤습니다. 관자 구이에 곁들여진 퓨레와
가니쉬의 그 창의성은 진짜······.”

“하하하. 우리나라에서 최고인 두 호텔에서, 준비를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레스토랑은······.”

요리에 있어서 자신들의 위치가 높다고 생각할 사람들인데, 내 앞에서 공손해진 걸 보면 정말로 나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저런 제안을 받자고 ACK 에 출연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 목표를 위해 훨씬 더 빠른 차를 원한다.

저들의 직급과 위치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그게 내가 탈 차는 아니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래서 나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생각 좀 더 해보겠습니다.”

완곡하게 둘러댔다.

그 말에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는 저들의 표정을 보면, 자신들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가져왔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지금 나를 찾아온 이 사람들은 요리사로서 꽤나 높은 직급과 명예를 가졌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어떤 차를 ‘첫 차’로 타느냐에 따라 인생의 효율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정도의 실력과 인프라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거물’이라 불리는 그들은 왜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봤다.

방영된 1 화에서 나의 실력을 다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지만, 충분하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자라면 나의 실력을 알아봐야 한다.

이런 나의 확신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내려졌다.

‘대한민국을 떠야겠다.’

이 나라 안에는 내가 써먹을 만한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10 화. 너 정도면 쓸 만하지 (2)

내 생각대로라면, 당장 이 나라를 떠나는 게 맞지만.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ACK)의 파급력을 일주일간 몸소 체험하고 생각을 바꿨다.

분식집의 손님들은 계속해서 많아졌고, 내 이름과 나를 발굴한 백원종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에서 내려 올


줄을 몰랐으며, 내가 방영된 장면은 짧게 편집되어 각종 온라인 매체 이 곳 저 곳에 뿌려졌다.

이 정도 방송의 파급력이라면 시간을 조금 더 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마음을 너무 급하게 먹은 것일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지켜봐야겠어.’

그리고 ACK 의 세 번째 녹화 날.

실제로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이 나왔다.

대한민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쓸 만한 후배’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팀 미션, 파스타 거장들에게 맛을 평가받아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스타 거장들을 섭외했습니다!”

심사위원 강요한이 외치자, 계단에서 요리복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걸어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와! 루시앙 말릭?”

“허, 허얼!”

루시앙 말릭.

내가 환생하기 직전엔 미슐랭 스타 14 개를 가지고 있던 남자였다.

요리 행사나, 방송에서 몇 번 봤기에 나와 얕은 친분이 있기도 했던 사람.

‘악마의 파스타’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요리는, 그가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그가 등장하고, 강요한은 참가자들을 술렁이게 할 말을 던졌다.

“지금! 미슐랭 스타 6 개를 소지하고 계십니다. 미슐랭 스타가 2 개, 2 개, 1 개, 1 개로 총 네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십니다. 3 개의 별을 받지는 못하셨는데, 그게 이번에 한국에 오신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통역가가 강요한의 말을 루시앙 말릭에게 전했고, 루시앙 말릭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미슐랭 3 스타를 못 받았다라…… 제 아픈 부분을 건드리시는군요.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저를 잘


보좌해주던 강요한 심사위원의 간절한 부탁에 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엔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이곳엔, 제가 미슐랭 스타 3 개를 도전할 때에 필요한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겠죠?”

루시앙 말릭의 말에 참가자들이 술렁였다.

이미 미슐랭을 가진 스타 셰프가 ‘다음 미슐랭에 함께 도전할…’ 이라는 말만 해도 젊은 요리사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엔 충분했다.

‘루시앙, 방송쟁이 다 됐네.’

물론, 진정으로 이곳에 그런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방송용 멘트겠지만, 그 말이 방송용 멘트이건 아니건 나에게 상관이 없다.

실제로 내 목표를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내 요리를 선보일 기회가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파스타에 일가견이 있는 셰프 45 명.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는 루시앙 말릭.

나는 저 녀석의 입을 놀라게 할 맛만을 생각했다.

‘이번 생은 진도가 더 빠를 것 같군.’

***

“미션은 실제의 주방이 돌아가는 것처럼 진행됩니다.”

5 라운드의 남은 합격자는 12 명.

3 명씩 네 팀이 구성되었다.

세 명이서 홀 서빙과 메인 요리인 파스타, 그리고 전채요리나 디저트 중 한 종류를 택해서, 총 세 개의


업무를 분담한다.

“아이고, 이거 팀장님한테 신세만 져서야…….”

팀은 새롭게 랜덤으로 구성되었지만, 우연치 않게 나는 손을 맞춰본 팀원들과 다시 팀이 되었다.

김해숙과 민서윤. 두 명의 여성과 5 라운드를 함께 하게 되었다.

“각 팀별로 메뉴를 정해주십시오. 윤종혁 씨, 가장 먼저 메뉴를 고를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4 라운드에서는 열외자로 자동 합격했기에, 4 라운드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냈던 윤종혁이 가장


먼저 선택 권한을 얻었다.

“해물 크림 파스타로 하겠습니다.”


윤종혁의 팀원들은 윤종혁의 자신만만한 어조에 저절로 기세가 올라갔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치며 여간 난리가 아니었다.

그에 따라 나의 팀에 소속된 두 명의 여성들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유현 팀장님. 우린 뭐를…….”

민서윤은 겁도 많고 걱정도 많지만, 시키는 일은 다 잘한다.

김해숙은 그냥 다 잘하고.

이런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은 쉽다.

오히려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이것저것 선택지를 묻다 보면 효율이 떨어진다.

“알리오 올리오.”

“에?”

내말에 팀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지만, 믿어야겠다는 표정도 함께 공존했다.

“역시, 반유현, 가장 기본으로 승부한다는 겁니까? 나는 진짜 믿을 수가 없어예. 자네가 요리를 시작한


지 반년도 안됐다는 게.”

심사위원 김애란이 말했다.

“팀원들 표정 봐요. 알리오 올리오는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기라. 반유현 씨의 실력이 좋다고는 해도.
파스타로는 진짜 유명한 셰프들한테 맛을 보여줄 낀데. 괜찮겠어요? 그러다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꼴
되면 난 몰라요이.”

김애란이 우리 팀원들의 속을 벅벅 긁어줬다.

내 팀원들도 실제로 저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 기대는 해볼게요. 팬이니까예.”

그리곤 김애란은 뒷말을 덧붙였다.

나는 팀원들을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심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곧장 역할을 나눴다.

“어머니는 샐러드로 에피타이저를 준비해주시고, 민서윤 씨는 홀을 담당하시는 걸로, 메인 요리인


파스타는 제가 맡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땐, 내 팀원들만이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과, 심사위원들도 나의 오더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놈이 또 어떤 식으로 하려나, 그것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메뉴 제대로 구성하시는 것까지 시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저 유명한 셰프들의 배를 계속 굶길 수는
없으니까. 조금의 시간만 드리겠습니다.”

강요한의 말을 하자, 각 팀별로 구비된 주방으로 들어갔다.

“면을 삶는 정도는, 가장 기본인 알단테(Al dente)로 맞추고, 특별한 오더가 있으면 그때그때, 바꿀
겁니다.”

나는 내가 파스타를 어떻게 만들 건지, 나의 팀원들에게 설명해줬다.

이들이 파스타를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그 과정과 조리법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좁은 주방에서 본인이 아닌 다른 상대의 다음 행동을 알게 되면서, 더 좋은 주방 동선의


효율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면을 삶은 물, 면수는 절대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면을 삶을 겁니다. 면을 계속 삶을수록 그 면수엔


전분이 진해지니까요.”

“유화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맞습니다. 면수에 들어있는 전분이 파스타에 있는 기름을 면과 더 합쳐지게 해주죠.”

내가 그 과정과 조리법을 설명해주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 교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간단합니다. 올리브 두르고, 마늘 올리고 페페론치노랑 파슬리 같이 볶을 겁니다. 그쪽에


팬 하나만 주시겠어요?”

김해숙이 자신의 뒤에 있는 볶음용 팬을 꺼내줬다.

“이거 말고요.”

“이거요?”

“팬의 종류도 파스타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늘을 기름에 볶을 때, 마늘의 면이 팬에


직접……. 아니, 시간 없으니까 궁금하시면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뒤에, 그것들을 볶는 시연을 했다.

“마늘은 무조건 통마늘을 손질해서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제가 마늘을 준비해 달라고 하면 당장 주방으로
들어오셔서 통마늘을 손질해주세요.”

마늘의 종류와 그것을 다진 것을 사용했나, 슬라이스 한 것을 사용했나.

불의 세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또는 파슬리를 어떤 타이밍에 투하했느냐, 어떤 치즈를 올렸냐에


따라 그 미묘한 맛의 차이는 천차만별로 날 수 있는 것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였다.

그만큼 셰프가 가진 노하우와 기본기에서 엄청난 실력 차이가 나는 음식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주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과 효율을 위해 설명한 것이었으니,


나는 이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한 뒤에 넘어갔다.

“레몬, 올리브유에 소금 후추 간을 해서 드레싱을 만들어주세요. 아주 약한 맛으로, 야채의 산뜻함만


살려서 식욕을 돋울 정도. 메인 요리를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만 할 수 있게요.”
팀원들에게 조리법을 숙지시킨 뒤에는 샐러드의 드레싱 간을 조절했다.

그에 들어갈 채소도 골랐는데, 이 또한 손님의 오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홀을 맡은 민서윤에게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눈빛에서 빛이 난다. 매번 느끼지만 그 의지 하나만큼은 칭찬해줄 만하다.

“실수만 안 하면 될 겁니다.”

주방에서 홀을 너머다 보니, 실제로 유명한 셰프들이 수없이 많이 앉아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루시앙 말릭이었고. 그 외에도 많은 셰프들이 앉아있었다.

요리를 한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들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조수나, 직원들까지 40 명의 심사위원들이 있었다.

“헤엑! 와, 우리 교수님도 계신데요?”

알고 보니 민서윤은 일본 소재의 명문 요리학교 출신이었다.

“그래? 홀에서 주문받으면서 잘 봐달카이 하믄 되겄네!”

김해숙이 그런 민서윤에게 말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마세요.”

레스토랑에서의 팀워크는 홀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도 포함시키는 것이다.

손님들의 의사를 주방에 제대로 전달해야만 하고, 주방의 의도를 손님에게 전달하는 것.

그런 점에서 홀 서빙도 요리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이었다.

민서윤이 결연한 표정을 짓고 나갔다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후. 복잡해요. 팀장님 잘 들으세요. 총 파스타 16 개, 그중에서 8 개는 부가티니(Bucatini)면, 5 개는


링귀네(Linguine)면, 3 개는 탈리아텔레(Tagliatelle)면을 사용해주시고요. 나머지는 일반
스파게티면이에요.”

미션의 변별력을 갖추기 위함인지, 심사위원으로 선발된 저들은 면의 종류까지 바꿔가며 주문했다.

면의 종류에 따라 조리 시간과 방법이 다른데, 그것을 세밀하게 조절하는지를 보는 게 저들의 의도인


듯했다.

그중에서도 나의 이목을 끄는 주문이 있었다.

“그런데, 좀 특별한 주문도 있어요. 스파게티면을 65% 익힌 파스타…….”

면의 익힘 정도를 퍼센트로 알려준 단 하나의 주문.

루시앙 말릭의 주문이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면의 익은 정도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저 65%라는 수치는 루시앙 말릭의 취향이기도 했다.

“65%가 어느 정도죠? 알단테보다 덜 익은 건가……. 더 익은 건가……. 스테이크로 치면 미디움 웰던?”

경험이 없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정확한 숫자를 맞추기 어렵다.

“걱정마세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면을 넣는다.

면이 삶아지면 미리 준비해둔 재료와 함께 팬에 볶는다.

“끓는 물에 55% 익히고, 나머지 10%는 팬에 볶으면서 익힐 겁니다.”

그에 따라, 면의 익힘 정도를 조정할 수 있는 단계는 두 단계인 것이다.

물론,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정확한 수치로 그 익힘 정도를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계처럼 정교하게 수치를 맞추려면 최소 몇 년은 면만 붙잡고 있어야 될 것이다.

“이게, 65% 익힌 파스타입니다.”

민서윤이 루시앙 말릭 앞에 파스타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민서윤이 프랑스어를 살짝 구사했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접시를 내려놓는 것을 보곤, 다시 남은 주문들을 해결하려 화구 앞에 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리들을 하나씩 지정된 선반에 올렸다.

민서윤은 선반에 있는 요리들을 하나씩 홀로 옮겼다.

그때, 내가 민서윤의 팔을 낚아챘다.

“잠시만요. 시간차를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민서윤이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고, 나는 홀 방향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민서윤이 홀을 봤을 땐, 모든 이유가 설명되었다.

내가 루시앙 말릭이 주문한 65% 익은 파스타를 가장 먼저 선보인 이유와, 이미 요리가 완성되었음에도


시간 차를 두어야 할 이유 말이다.

“엥? 뭐에요 저 사람? 왜 자기가 주문한 파스타가 아닌 것도…….”

루시앙 말릭은 내가 만든 파스타 요리를 맛본 뒤에, 대단한 의심을 품었는지, 나의 주방에서 나오는
파스타들을 모조리 자신의 테이블로 가져갔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곤 내가 있는 주방을 바라봤다.

나와 한 차례 눈이 마주치자, 동료 또는 부하들이 먹어야 할 파스타까지 조금씩 맛을 봤다.

독불장군처럼 모든 접시를 자신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계속해서 맛을 본다.


“루시앙 말릭의 테이블이 접시로 꽉 찼습니다. 이 파스타도 저 테이블로 가게 될 거예요.”

“이건, 저기서 주문한 파스타가 아닌데……?”

“쉿.”

그때, 밖에서 강요한 심사위원의 말이 들려왔다.

“반유현 씨! 잠깐 주방에서 나와 보세요!”

11 화. 너 정도면 쓸 만하지 (3)

파스타의 거장이라 불리며, 미슐랭 스타 6 개가 있는 루시앙 말릭.

그는 끝끝내 한 팀의 주방에서 나온 모든 종류의 파스타를 맛봤다.

때문에 순서에서 밀려난, 다른 팀의 파스타들은 차갑게 식어가는 중이었다.

“숨길 수 없는 실력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스파게티(Spaghetti)부터, 탈리아텔레(Tagliatelle), 푸실리


(Fusilli), 마카로니(macaroni), 링귀네(Linguine) 등 면의 생김새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파스타가
있다.

“익힘 정도 65%. 모든 면의 익힘을 65%로 통일했다······.”

참가자들의 실력을 정확히 나누기 위해 한 종류의 면만이 아닌, 여러 종류의 면을 주문한 루시앙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종류의 면을 먹어봐도, 반유현이라는 참가자가 만들어 낸 파스타는 그 맛이 일정했다.

그것도 최고로, 자신이 이제껏 맛봐온 어떤 파스타보다도 단순하지만 강력한 맛을 가졌다.

“군더더기가 없어.”

루시앙 말릭의 반응을 보고, 다른 심사위원들도 반유현의 파스타에 엄청난 관심을 쏟아냈었다.

대체, 루시앙 말릭이 저 정도의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맛일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모두 와서 먹어봐.”

루시앙 말릭의 테이블 위에 반유현이 만든 16 개의 파스타 접시가 올려져 있었고, 루시앙 말릭이 포크와
수저를 내려놓자, 그의 동료와 부하직원들이 그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차례로 접시에 담긴 파스타를 맛보기 시작했다.

“음.”

“엥?”

“와우!”

저마다 충격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파스타를 먹었다.


물론,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초짜 셰프이거나, 깊은 지식이
없어 그 맛의 한계를 체험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먹어보고도 모르겠나? 이게 얼마나 대단한 파스타인지?”

그런 이들은 루시앙 말릭의 질책을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대단한 파스타를 먹어 놓고도, 그것을 못 헤아리는 제자와 부하들이 한심한 루시앙 말릭 이었다.

“면의 종류마다 그 시간과 조리 강도가 다른 것이 당연한데, 이 셰프가 만든 모든 파스타의 면과 맛이


일정하다는 건! 모든 종류의 면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 마늘의 향과
올리브유의 향, 그밖에도 맛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들이 이건, 이건 미친 거야! 이런 세세한
차이들은 나조차도 컨디션에 따라 다를 텐데. 내 주방에서 파스타를 그렇게 처먹고도! 이걸 모른다는
말인가?”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의 맛, 그뿐만 아니라 면의 종류가 다름에도 일정한 맛을
내는 이 파스타는 본인이 지금 당장 팬을 잡더라도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최고의 컨디션과 최상의 환경이
갖춰졌다면 모를까.

“요한! 이 파스타를 만든 셰프의 얼굴을 보고 싶네.”

루시앙 말릭의 반응을 보고 놀란 건, 파스타를 심사하기 위해 섭외된 셰프들 뿐만이 아니었다.

수년 전 런던의 한 레스토랑에서 루시앙 말릭에게 요리를 배웠던 심사위원 강요한도 그의 반응을 보고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고, 엄청난 고집이 있으며, 주방에서만큼은 너무나 권위적이어서 쉽게


가까워지기조차 힘든 루시앙 말릭이 요리를 인정하며 그 셰프를 보고 싶다고 한다라······.

“셰프님, 서바이벌이지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거라.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맛있으면 맛있다.


맛없으면 맛없다, 어떤 파스타가 제일 맛있느냐만 선정해주시면 됩니다. 하하하.”

강요한, 자신만 해도 그에게 파스타를 배울 때, 버려진 접시가 수백, 수천 그릇이었다.

루시앙의 맛의 기준이 높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강요한이었다.

어쩌면 그가 방송의 연출을 위해 과한 행동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너야말로 장난하냐? 말귀 못 알아들어? 이 셰프 얼굴 당장 봐야겠다고.”

루시앙 말릭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강요한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들은 옛 스승의 호통에 강요한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어디서 파스타를 배웠습니까?”

통역사의 말이 없이도, 난 프랑스어를 알아듣고 구사할 수 있지만, 통역사가 루시앙 말릭의 말을


전달해줬다.

유창하게 프랑스어까지 함부로 뱉었다가는 더 이상 셰프나 요리 프로가 아니라, 미스터리‧신비 프로그램에


나가야 될 판이었으니까.

“파스타에 대해 깊게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배운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이 몸, 반유현은 내가 환생하기 전까지 파스타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제대로 된 파스타를 먹어보지도 못한 몸이었고.

“그런데, 어떻게······.”

도무지 루시앙 말릭의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나 보다.

그가 온갖 생각을 하며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길래, 그 고통을 조금 풀어주었다.

“맛을 보면, 그 맛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루시앙 말릭은 그제서야, 아주 흥미로운 표정을 짓더니 내게 질문을 던졌다.

“슈퍼 테이스터?”

미각 돌기가 평범한 사람들보다, 35%가량 많은 사람들을 슈퍼 테이스터라고 한다.

맛을 보는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사람들, 루시앙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그런 종류의 사람으로


묶는 듯했다.

“아니야, 맛을 보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해. 충분한 경험만이······.”

그러나 미슐랭 스타 여섯 개를 가진 셰프답게, 루시앙 말릭은 꽤나 노련한 실력자였다.

나와 함께 각종 경연을 치렀던 참가자들이나, 심사위원은 나의 실력 대부분을 타고난 능력이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루시앙 말릭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나의 노련함과 경험을 콕 집어냈다.

‘확실히 쓸 만한 후배님이군.’

그러나 나의 경험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에, 씁쓸한 의문을 삼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루시앙이었다.

그리곤, 본론을 꺼냈다.

“이런 요리 천재를 대한민국에서 만날 줄이야······. 내 밑에서 요리를…… 아니, 혹시 함께 일을 해볼


생각 있습니까?”

다른 참가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들은 내가 이번 라운드에서 1 등을 한 것보다, 미슐랭 6 스타 셰프에게서 직접 제안을 받은 것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당장은 부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 될 수도 있다.

루시앙 말릭이 실제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제안이 의미하는 바는 완벽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 몸의 기억들을 살펴보면 군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주방의 문화는 그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고의 파스타 요리사의 주방엔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한, 얼마나 치열한 경쟁들이 있겠는가.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루시앙 말릭은 말을 덧붙였다.


“접시닦이나, 잔반 처리 같은 걸 시킬까 봐 그런 건가요? 내가 새롭게 열게 될 레스토랑의 소시에
(Saucier) 자리라면 괜찮겠습니까? 물론, 당신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해도 몇 가지 검증이 더
필요하겠지만요.”

소시에.

주방에서 주로 소스와 버터를 이용한 각종 요리를 담당하는 파트의 장, 수석 조리장을 뜻한다.

요리를 갓 시작한 새내기 요리사에게, 미슐랭 스타를 가진 요리사가 이런 화끈한 제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내가 만들었던 파스타들이 루시앙 말릭에게 엄청난 영감을 준 모양이다.

이 주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의 제안이 나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내 파스타만으로는 내 실력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건가. 소시에라니.’

주방에서 파트의 장, 또는 수석 조리장이라는 자리는 젊은 요리사라면 응당 오랜 경험을 해도 될 만한


자리였다.

그것도 파트장 중에서 주방의 큰 축을 담당하는 소시에라면, 요리사로서 많은 실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나에겐 요리를 배우는 경험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자리만을 원할 뿐이었다.

“분명, 내가 본 당신의 파스타 맛은 내 레스토랑의 수 셰프(Sous Chef) 자리를 내주어도 될 만한데,


당신의 경험이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치열한 주방에선,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높은 직급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셰프들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능력이 제게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까?”

내가 하지 못할 말이라도 한 것 마냥, 내 말에 이곳의 분위기는 차가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변해버렸다.

“허허. 재능에 걸맞게 아주 당돌한 친구네요.”

날카로운 내 질문에 당황한 듯이, 루시앙 말릭은 웃음을 흘렸다.

“경험과 경력을 뒤엎을 수 있는 실력이 있으면 됩니다. 아니, 사실상 제가 인정한 셰프라면 가능합니다.
제 레스토랑의 수 셰프를 제가 선발하겠다는데 아무도 문제 삼을 수 없죠. 그런데…….”

그는 말을 흐렸지만, 나는 그가 할 말들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미슐랭 6 스타인 루시앙이 나를 주방에 섭외했다 한들, 셰프로서 경력이나, 정통성이 없는 내가
다른 셰프들의 존경을 받으며 주방을 지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이력서에 한 줄 정도는 채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일단 이 프로그램에서 1 등을 한 뒤에 다시 만나시죠.”

내가 당장 레스토랑을 차려서, 팀원들을 꾸린 뒤에 미슐랭 스타를 찍어내듯이 받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정통적으로 요리를 배운 셰프들은 경험과 경력이 없는 내 밑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팀 자체를 꾸릴 수가 없다.

하물며, 이미 체계가 잘 갖춰진 레스토랑에서 아무런 경력도 없는 나의 지휘를 누가 따르겠는가.


루시앙은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나에게 1 등을 제안했다.

미슐랭 6 스타의 셰프가 새로 오픈하게 될 레스토랑은 미슐랭 평가단이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할 확률이 높은


곳이다.

더군다나 요리의 레시피에 개입할 수 있는 수 셰프(Sous Chef) 직급의 제안은 1, 2, 3, 4, 5, 6 회차


이때까지의 어떤 삶보다, 빠르게 미슐랭 스타를 받을 가능성이기도 했다.

“1 등, 그 후에 뵙겠습니다.”

***

ACK 의 준준결승, 파스타 미션을 거쳐 최종적으로 6 명의 참가자가 살아남았다.

그리고 준결승 ‘스테이크 요리’에서는 3 명의 참가자가 살아남았다.

최고의 스테이크 요리를 선보였고, 결승까지 가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반유현 씨, 윤종혁 씨, 이안 초이 세 분이 결승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윤종혁은 워낙 잘 알고 있던 터였고, 이안 초이는 그간 미션에서 간간이 눈에 띄긴 했는데, 큰 존재감을


보인 인물은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나라! 일본의 고급 정찬 요리인 가이세키가, 결승전의


요리입니다!”

와아아아!

‘가이세키’라는 단어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심사위원의 말대로, 일본은 요리의 고향이라 불리는 프랑스보다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당연하게도 나의 많은 관심을 받던 게 일식이었고, 실제로 매번의 삶에서 나는 일식으로 미슐랭 스타를


챙기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었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전통식 코스요리인 ‘가이세키’를 선보이는 결승전에서 내가 질 확률은 ‘0’이다.

결승전 녹화 날은 수많은 사람들이 왔고, 우리는 방청객들의 완벽한 주목을 받는 무대 위의 조리대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나는 곧장 요리를 시작한 반면에 저 둘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10 가지의 종류가 넘는 일본식 코스요리를 함축하고, 요약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반유현! 반유현!”

방청석에는 나와 함께했던 참가자들이 있었고, 나의 어머니와 이성찬, 백원종까지 나를 응원하러


와주었다.
요리에 집중하자, 나를 응원하는 소리들이 한층 작아졌다.

그렇게 90 분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나의 요리를 소개했다.

“전채요리, 구이요리, 튀김 요리로 코스를 구성했습니다.”

나의 소개를 받은 심사위원들이 젓가락을 들었다.

내 요리들이 저들의 입으로 들어갔고, 결과는 정해졌다.

12 화. 출발선을 깨끗하게 (1)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승전답게 최고의 요리를 보여주셨군요.”

-무늬 오징어와 계란 노른자를 버무려 간장과 와사비로 간을 한 전채요리.

-흰살생선에 일본식 된장을 발라 삼나무로 감싸 구워낸 구이요리.

-완두콩 껍질에 새우와 흰살생선을 다져 넣고 튀긴 튀김 요리.

나의 실력을 압축할 수 있는 세 가지로 구성된 코스요리였다.

실제로 이번에 선보인 요리 중 메인 요리인, 흰살생선에 삼나무 향을 입힌 요리는 지난 삶 동안 미슐랭


스타를 여러 번 받았던 요리이기도 했다.

시간이 제한되었기에, 수십 년간 쌓아온 비법을 이용한 조리법이 생략되기도 했지만, 내 주특기의 일부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우승자는……. 반유현입니다.”

와아아아!

팡파레가 터지고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지만, 나는 아주 차분했다.

“유현아……. 진짜 고생 많았다. 우리 아들.”

“축하해유, 이게 뭔 일이래요?”

“이야! 반유현이 완전히 출세했네, 내 덕도 있는 거 알지? 하하하!”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셨고, 백원종, 이성찬이 직접 찾아와 나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리고 함께 이 대회를 달렸던 김해숙, 민서윤, 최경복까지.

“축하드립니다.”

마지막엔 윤종혁까지 나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흠.’

우승 상금 2 억과 내 이름으로 된 요리책 발간, 그에 따라 얻게 될 인기.

기쁘기도 하지만, 이제야 출발선에 들어선 느낌이 동시에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여러 번의 환생과 회귀를 거치면서 얻게 된 고질병이었다.

‘시작은 제대로 할 수 있겠군.’

물론, 그 어떤 삶보다 빠르고 파워풀하게 출발선에 섰다는 점에서 설레는 마음도 공존했다.

***

내가 우승 소감을 발표했던 날, 그리고 정확히 삼일 뒤에 집으로 비행기 표가 날아왔다.

보낸 이는 루시앙 말릭이었으며, 비행기 표와 함께 있던 편지에는 우승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사업적으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정말 괜찮겠니?”

매번 나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찬성을 하시던 어머니였지만, 내가 홀몸으로 머나먼 프랑스로 떠난다고 하니,
많은 걱정을 표하셨다.

“엄마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해야 된다, 유현아.”

결국엔 허락하셨고, 분식집은 아무리 많은 손님이 몰려도 안정적일 정도로 직원들의 숙련도도 올라갔기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씨, 제가 모시겠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 이름이 크게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나를 벤으로 안내했고, 친절하게도 나의 모든 짐을 거둬주었다.

“루시앙 셰프께서 계신 곳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금방 도착할 겁니다.”

더군다나 한국인 통역사까지 붙여, 나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고 신경 쓴 티가 났다.

이런 세세한 것에서 루시앙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십 여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한 식당에 내렸고 루시앙이 나를 반겼다.

“유현,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루시앙은 손님을 맞이하는 정중한 태도로 나를 반겼다.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를 하게나.”

루시앙은 ‘레드 테이블’이라는 자신의 레스토랑 안으로 안내했다.

미슐랭 2 스타를 얻은 곳이자, 요리의 성지인 프랑스에서도 꽤나 정평이 나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짧게 나눴을 때, 루시앙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7 만 파운드에 순수익의 5%.”

루시앙 말릭은 구체적인 숫자를 먼저 제시했다.

“‘파스타의 거장이다.’, ‘아버지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파스타를 메인으로 해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적은 없다네, 이번엔 열게 될 레스토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전통 면 요리로 미슐랭에 도전할 거야.
내가 자네의 파스타를 먹고 제안을 했던 건 모두 그 때문이라네. 그 수준 높은 면에 대한 이해도……
그게 내 주방에 꼭 필요할 것 같아서였어. 물론, 자네가 가진 인지도 또한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네. 이 동네에서도 자네의 ACK 활약상을 본 사람들이 적지 않거든.”

그리곤 본론을 길게 늘여놓았다.

“한국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에서 부주방장을 맡아줬으면 좋겠네.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분업하고, 팀원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 방송을 통해서 봤네. 내가 오만했다는 걸 깨달았어.
자네는 그 정도의 직급을 가질 실력이 있네. 그런데, 요리를 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배운…… 그
의문만 풀어주면 좋으련만.”

오너셰프인 루시앙 말릭을 제외하면, 총주방장 다음으로 주방에서의 서열 2 위, 수셰프. 즉, 부주방장의


자리를 내게 제안했다.

여섯 번째의 삶 동안 이렇게 빨리, 미슐랭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에 부주방장의 제안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구멍만 한 분식집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도가 빠른 편이었다.

“그리고 자네와 함께할 수셰프가 한 명 더 있네.”

나와 같은 직급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은 문제 될 건 없었다.

당연하게도 레스토랑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수셰프. 즉, 부주방장의 직급을 가진 셰프는 많아지는
것이었으니까.

“인사하게, 라크라네. 이곳 ‘레드 테이블’에서 소스 파트의 장을 맡고 있다가 새로운 레스토랑이


오픈하면서 부주방장으로 옮겨갈 것이라네.”

루시앙은 주방으로 나를 데려가, 나와 함께 새로운 레스토랑의 부주방장을 맡을 사람을 소개했다.

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백인 남자였다.

그가 먼저 손을 건넸지만, 싸늘하게 나를 쳐다보는 것이 딱히 반가워 보이진 않았다.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이 완벽히 자리를 잡기까진, 이곳 레드 테이블에 있는 셰프들이 조금씩 지원을
해야 할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어. 혹시 모르니, 인사는 해둬야겠지?”

루시앙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방에 있는 십여 명의 셰프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었고, 재료 손질이나 메뉴 개발을 위해 출근한 셰프들이었다.

이렇게 한가할 때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루시앙은 자리를 비켜줬다.

“천천히 인사들 나누고 나오게.”

루시앙이 주방을 나가자, 이곳 주방에 있던 셰프들의 눈빛이 단숨에 변해버렸다.

부러움, 시기, 질투, 증오 등 모든 것이 섞인 눈빛들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이내 소리로 변해버렸다.

“요리 천재라고 소문났더구만, 그냥 간판으로 쓰시려는 거겠지. 라크 셰프님이 진정한 부주방장이고, 이


사람은 그냥, 인지도를 위한 거겠지?”
당장 이 전의 삶만 해도,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했던 기간이 10 년을 넘는다.

프랑스어와 영어가 섞인 대화였지만,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

내 옆에 통역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내가 자신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통역사가 저들의 대화를 통역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안절부절못하면서 내 눈치를 봤다.

나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저들의 대화가 어디까지 나가는지 보려고 가만히 있었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진 탓에, 주방에 한국인을 추가로 투입하시려는 생각이실 거야.”

“그래, 한국인들이 맨날 먹는 고추장, 된장은 우리보다 잘 알 테니까.”

저들끼리 나를 조롱하는 말을 하고는 서로 낄낄댔다.

급기야, 서로의 농담에 취해 나를 선택한 사람이 루시앙이라는 것도 잊은 듯했다.

나를 욕하는 건,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루시앙의 선택을 욕하는 것 아니겠나.

“푸하하하! 고추장, 된장만 먹는 사람들이 미슐랭의 맛을 알아?”

나 때문에 승진기회를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신들보다 경력도 없는 동양인 놈이 수셰프의 자리를


맡는다니 배가 아픈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배 아픈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저런 말들을 뱉는 것이고.

“이놈의 직급이 어떻든 간에, 우리한테는 신입이잖아요? 신고식을 화끈하게 치러야 될 것 같은데.”

“라크 셰프님, 시험이나 해볼까요?”

셰프들의 제안에, 나와 함께 수셰프를 맡게 될 라크가 말없이 피식 웃어 보이곤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니들 맘대로 해, 너무 괴롭히지는 말고.”

***

“지중해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라네. 블루베리 크림에 얹은 달고기, 그리고 레몬 아이올리를 곁들인
새우와 캐비어. 트러플을 얹은 매쉬드 포테이토와 게 요리.”

루시앙은 일도 일이지만, 먼 길을 온 내게 최고의 요리를 대접하겠다면서 홀에 앉혔다.

셰프들이 직접 요리를 내게 가져다 줬고, 요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건넸다.

나는 그들의 설명을 들은 뒤에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그런데 어딘가, 거슬리는 맛이 느껴졌다.

“Le niveau de ce caviar n'est pas le meilleur.(최고 등급의 캐비어가 아닌데요.)”

일부러, 프랑스어로 말했다.

적어도 이 공간엔 내가 프랑스어를 언제 배웠고 공부했는지 따질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못 알아들을 줄 알고, 프랑스어로 내 욕을 하던 놈들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 유창한
프랑스어에, 망치에 머리를 맞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우, 유현! 그렇게 불어를 유창하게 할 줄은……. 그런데, 캐비어……. 캐비어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루시앙은 내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미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의 지적을 듣고는


저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내 한마디에 이 레스토랑 전체가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그, 그럴 리가 있나? 유현, 우리는 항상 최고 등급, 벨루가의 캐비어만을 사용한다네.”

루시앙은 내가 제기한 문제에 의심을 품었지만, 나는 확신했다.

새우 살 위에 곁들어진 캐비어의 등급이 최고 등급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그렇겠죠. 그런데, 제가 느낀 맛은 최고 등급의 캐비어가 아닙니다.”

혓바닥과 입천장으로 으깨며 느끼는 캐비어의 향이, 새우 살의 향을 뚫어야 했건만 그렇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캐비어의 끝 맛에서 올라오는 고소함은 레몬의 산을 이기지 못했다.

최고 등급의 캐비어라면 그 존재감을 당당히 뽐냈어야 했는데, 어딘가 시들한 느낌이었다.

“이 요리가 메뉴로 나온 지 얼마 안 된 겁니까? 미숙한 맛입니다.”

“그럴 리가 있나, 우리는 항상 최고의 재료만 손꼽는다네. 라크! 당장 나와 보게!”

루시앙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주방에 있던 셰프들이 차례로 뛰어나왔다.

“당장 설명해, 라크, 내 손님이 왜 캐비어에서 최고 등급의 맛을 느낄 수 없는지.”

“캐비어의 냉장 기간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오래된 캐비어가 섞여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드시는 데에는 문제는 없으나 그 향과 풍미가 떨어져 불편을 드렸군요. 새로 요리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라크가 차가운 말투로 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런데, 라크라는 이놈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철갑상어 알, 바다의 블랙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리는 세계 3 대 진미 중 하나인 캐비어.

대체 내가 이 식재료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졌겠는가.

‘싸가지 없는 새끼.’

확실한 건, 냉장 기간이 오래 지난 캐비어의 식감이 아니었다.

등급이 낮은 캐비어와 냉장 보관이 잘못된 캐비어의 식감은 확연히 다르다.

라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했지만, 그의 옆에 있던 셰프들의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우리 직원들이 재료를 완벽하게 선별하지 못했네. 실제 손님에게 대접하는 거라면
아예 내보내지를 않았을 텐데, 어쩌면 함께 일하게 될 자네에게 이 레스토랑의 요리를 맛보게 해주려고
없는 재료로 무리를 한 모양이야. 허허…….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나?”

루시앙은 직원들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짧게 웃음 짓고는 다음의 요리로 포크를 가져갔다.

트러플(truffle:송로버섯)을 얹은 메쉬드 포테이토와 게살 요리.

나는 그것을 씹자마자 실소했다.

“트러플 때문에, 감자와 게살의 향은 아예 지워졌습니다. 향이 약한 여름 트러플을 사용해야 모든 재료의


맛들이 어우러졌을 텐데, 굳이 겨울 트러플을 사용한 이유가 있습니까? 원래 이런 요리인가요? 이런
요리가 손님의 테이블에 올라가는 겁니까?”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에서 나올만한 요리가 아니었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합니다. 이 정도의 음식이라면, 제안하신 수셰프 자리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고의 맛을 지향하는 식당이라고 저에게 제안하셨는데, 최고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들을 몰아붙일수록, 그들은 더욱더 안절부절못했다.

더군다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는 루시앙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라크는 곧장 이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먼 길을 오셨고, 앞으로 저희의 가족이기도 하신데, 최상의 요리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원래,
트러플의 향이라는 것은…….”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을 듣기 싫었다.

정확히는 들어줄 가치가 없었다.

“Tu te fous de moi? (장난해?)”

내가 미소를 지은 뒤, 프랑스어로 라크에게 말하자 옆에 있던 루시앙의 얼굴이 빨개졌다.

루시앙도 자신의 주방에서, 요리에 장난을 친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아닌 듯했다.

13 화. 출발선을 깨끗하게 (2)

요리사의 자존심. 알량한 자존심이든, 숭고한 자존심이든.

매번의 삶에서 나의 효율을 망치는 주범이었다.

‘한심한 놈들.’

앞에서도 누누이 말했지만, 엄격한 서열을 기반으로 한 도제식 교육방법이 주방에서는 만연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요리를 숭고한 예술의 끝이라고 하면서도 밥그릇을 챙기는, 애매한 생각을 가진 놈들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어느 분야든 그렇겠지만, 애매한 놈들이 물을 흐린다.

‘밥그릇 말고도 숟가락, 젓가락 다 뺏어야 정신을 차리지.’


문제는, 내가 저놈들의 태도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오너셰프이자, 총주방장으로서 내가 대신 사과하네. 직원들 간의 텃세에 의해 벌어진 사태지만, 이건


엄연히 ‘레드 테이블’의 역사에 누를 끼칠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이기도 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셰프, 아니. 셰프라는 단어가 아까운 그 사람들은 주방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분을 삭이지 못하던 루시앙은 생각보다 강력한 나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했다.

“해고를, 해야 된다는 말인가?”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진심을 담지 않는다면
의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의사에게 의사의 자격이 있습니까? 요리사가 요리에 진심을 담지 않았는데,
같은 문제를 같게 보시지 않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나의 말에, 루시앙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짧게는 5 년, 길게는 10 년을 자신의 밑에서 일한 셰프들을 한순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情) 따위에 사무친다는 말인가.’

나는 그의 추억과 정을 이번 사건에 연관시킬 만큼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시험하기 위해 재료를 바꿔 넣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불손하다.

요리를 요리로 대하지 않는 사람의 자세였다.

“가벼운 마음을 가진 요리사들이 주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레스토랑엔 손님들이 식사하러 올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그가 할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

라크는 이번 사건을 직접 실행하진 않았지만, 방관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직급은 그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해주었다.

“흠. 유감스럽지만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혼자 할 수 있겠나?”

“문제없습니다.”

그에 따라 나는 새롭게 오픈 될 레스토랑의 유일한 수셰프가 되었다.

이 소식은 ‘레드 테이블’의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밖으로도 퍼져 나갔다.

원래 소문이 그렇듯이, 실제 벌어진 일에 각종 조미료가 더해져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레드 테이블에서 9 년 동안 일한 라크를 해고시켰데. 재료 관리를 못한 것을 죄목으로 완전히
보내버렸다던데?”

“완전 독사래 독사. 이번에 새롭게 오픈되는 루시앙 말릭의 레스토랑, 거기 수셰프 자리를 혼자
차지하려고 그런 것 아니냐.”

“와, 근데 그래도 실력은 있는 것 아니야? 맛만 보고 트러플과 캐비어의 등급을 맞출 정도면……. 그냥


독사가 아니네, 코브라야 코브라.”

“실력이 있든 말든, 그런 놈 밑에 있으면 커리어만 버리는 거야. 재능만 믿고 설치는 부류들.”

이 소문이 내 귀에 들어온 것은, 나의 바로 위 직급을 맡게 될 총주방장(Chef De Cuisine)을


만나서였다.

“인사는 간단히 하지. 루시앙 셰프님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셰프들이 모인 도시,
이 파리에서 자네의 소문이 이미 널리 퍼졌으니,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군.”

올리버 러셀.

미국 출신의 요리사로써, 내가 환생하기 직전에 14 개의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던 요리사다.

환생 직전 시점만을 놓고 보면 루시앙 말릭과 같은 별의 개수를 가지고 있는 요리사.

그 뒤의 미래는 보지 못했지만 올리버의 나이는 루시앙보다는 훨씬 어렸으니, 스승을 뛰어넘은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다.

“파리로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자네에 대한 소문이 도는 것을 보면, 우리가 맡을 새로운 레스토랑이


엄청난 주목을 받겠지만, 큰 문제가 있어.”

악수를 건네자마자, 일 얘기부터 하는 것을 보아하니, 올리버는 열정 또한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지원했던 셰프들이, 대부분 지원을 취소했다네.”

오픈하기 전에 엄청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주방을 우리 둘이 운영할 수는 없지 않겠나?”

새롭게 오픈 될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지원했던 셰프들이 집단으로 지원을 취소했다는 것.

그 이유는 단순했다.

루시앙 말릭이 미슐랭 스타를 가졌더라도, 수셰프 자리엔 자신들이 납득하지 못할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나였고.

그런 내가,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다른 수셰프를 찍어냈다는 소문은 지원동기를 꺾고도 남을만한


것이었다.

뭐,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고 굴러 온 돌을 빼내려는 시위를 단체로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들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프랑스 파리의 고인물, 오래된 셰프들의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일종의 텃세이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루시앙 셰프님께서도 셰프들에게 압력을 받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를 자르라고요.”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노력하고 계신 것 같은데…… 흠. 주요 셰프들, 각 파트 장의 구성을 이미
끝냈어야 하는 시기인데, 아주 큰문제야. 파리의 텃세가 이렇게 강할 줄은.”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소문에도 올리버는 나에게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시앙 셰프님이 자네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지원 취소를 한 셰프들 것을 빼고, 남은 이력서라네.”

올리버의 왼손엔 종이 뭉치가 들려있었는데, 실제로 루시앙 말릭의 명성에 비해 아주 적은 양의 이력서가


있었다.

‘오히려 잘됐군.’

어차피 내 앞에서 요리 실력은 다 거기서 거기다.

때문에 고집을 피우지 않고 내 말을 스펀지처럼 쑥쑥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꾸리는 주방에서는 가장


강력한 효율을 자랑한다.

내가 ACK 팀 선발에서 민서윤을 그녀의 의지만 보고 뽑았던 것처럼 말이다.

베테랑이고, 경력이 있다고 해서 허리 빳빳하게 세울 셰프들은 어차피 필요가 없었다.

알아서 자신들이 이력서를 취소했다니, 루시앙과 올리버에겐 심각한 일이었겠지만 나에겐 고마울 일이었다.

“나는 문제가 분명하다고 느끼는데, 자네는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이 이력서에 있는 사람들, 면접 날이 언제입니까?”

***

100 년의 경력 앞에선, 날고 긴다 하는 셰프들의 실력은 모두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하나의 주방에서 각 파트를 맡게 될 조리장을 뽑는 수준에서는 기본만 갖춰져 있다면 내 눈에는
모든 사람이 동일했다.

잘만 가르쳐 주면, 빠른 시일 내에 그것을 숙달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내가 사람을 뽑는 조건이었다.

“한국에서 ACK 보고, 따라왔습니다. 타고난 능력이건 말건, 반유현 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한명은 최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였다.

원래는 테니스 선수였고, 어깨를 다쳐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요리의 길을 선택한 사내.

한국에 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들어가 재료 손질만 3 년째, 이 악물고 버텼음에도,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운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요리를 배워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와중에 내가 방송에 나타났고, 단숨에 스타 셰프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나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발, 접시닦이라도 다시 하겠습니다.”

과도하게 충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남자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전직 운동선수라는 독기 강한 캐릭터에, 간절함까지 더해져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저의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딱 좋을 것 같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이쿠 렌, 오노 지겐이라는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수년간 견습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사내였다.

이곳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하는 그는, 이곳에 있을 동안은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일 하겠다는
소리다.

“제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뭐든 하겠습니다.”

프랑스 국적을 가진 여성, 에바 티에리.

레드 테이블에서 셰프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찬모’의 역할을 하던 젊은 여성이었다.

간절함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차라리 이런 종류의 사람이 나을 때가 있다. 100 년의 경험상 확실한 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

애초에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확실해?”

최민성, 렌, 에바. 내가 세 명의 이력서를 올리버에게 건네자 올리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운동선수, 일식당에서 재료 손질하던 사람, 찬모. 이 세 명의 커리어……. 확실해?”

“어차피, 다 똑같습니다.”

내가 뽑은 세 명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요리를 할 수 있고, 자신이 경험했던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할 테니, 시켜만 달라는 것.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만 하면 된다.

“뭐, 비슷비슷한 실력에선 맞는 말이긴 한데. 걱정이야. 셰프라는 타이틀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각 파트의 조리장으로 쓰겠다니. 자네가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이
선택에 따른 모든 책임은 주방장과 부주방장인 우리한테 오는 것이라네.”

올리버도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들이 내뿜는 독기와 열정은 다른 경쟁자의 실력을 뒤집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어 말했다.

내가 뽑은 세 명의 사람은 주방에서 요리에 대한 책임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파트의 장으로 뽑는 것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지만, 나의 자신감에 올리버는 긴가민가했다.

“우리 소꿉장난하는 게 아닌 거, 잘 알지?”

“오픈까지 세 달의 시간이 있으니, 숙련시키는 데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루시앙 셰프님께서도


확인하셨고요.”
“후. 나도…… 자네의 그 천재성을 믿어보겠네. 그럴 수밖에 없지…….”

천재라는 재능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루시앙과 올리버는 나를 믿어야만 했다.

경력은 없지만, 타고난 재능을 가진 놈이 선배들을 해고시키며 제대로 된 진상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넣을 ‘셰프’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상관없다. 조금은 미숙해 보이는 이 세 명의 사람과 그 잘나간다는 ‘셰프’님들의 실력차이가


나에겐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

“너희들 여기서 일주일을 살았다고?”

레스토랑 ‘레드 테이블’ 식재료 창고 한 편에 마련되어있는 주방.

주요 직급을 가진 셰프들이 메뉴를 개발하거나, 견습생들이 요리를 연습하는 곳.

이곳엔 반유현이 뽑았던, 최민성, 렌, 에바가 초췌한 몰골로 있었다.

“일주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연습만 했다 이 말이냐?”

그 몰골을 보고 놀란 건, 올리버였다.

“반유현 셰프가,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무슨 숙제길래 집에도 안 가고…….”

“어차피 갈 곳도 없고요. 이불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헤헤. 후.”

눈이 반쯤 풀린 렌이 생선구이를 꺼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에바는 맑은 야채수프, 최민성은 샐러드를 꺼냈다.

“반유현 셰프님이 만든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코스를 저희 셋이 만들라고 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와서 파스타를 만들어주셨고, 저희는 그것을 조금씩 먹으면서
연구했어요.”

“이리로 줘보게나.”

올리버는 이들의 요리를 직접 먹어보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한 입씩 입에 넣자마자 감탄을 흘렸다.

“뭐야. 너희들이 한 거 맞아? 이 정도면, 메뉴로 나가도 되겠는데?”

그런데 주방장인 올리버의 칭찬에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해도 모자를 판에, 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올리버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칭찬을 받고도 춤추지
않을 셰프는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이들은 초급요리사들이다.

앞으로 맡게 될 총주방장인 자신의 말보다 강력한 말은 없을 터.

“자네들 밥은 먹었나? 얼른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랜 시간동안 정신력과 체력을 많이 써서, 세 명이 동시에, 무기력증에 걸린 것인가.

“내가 반유현 셰프한테 말해 줄 테니까, 오늘은 다들 들어가서 눈 좀 붙이게나.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내다니, 하하하! 진짜 고생했어. 이 정도면 훌륭해.”

올리버의 말에, 기분 좋게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 없는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 어디 아파?”

그때, 이들이 올리버의 칭찬에도 무기력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밝혀졌다.

반유현의 등장이었다.

“올리버 셰프님, 오셨습니까.”

반유현은 올리버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앞에 놓인 음식을 거침없이 한 입씩 입에 넣었다.

반유현이 포크를 집자마자 세 사람의 몸이 경직되었다.

“에바, 채소를 팬에 살짝 구워서 끓이라고 했는데, 그래야 채소의 풍미가…… 흠. 아직도 풍미가
가득하다는 뜻이 정확히 뭔지 몰라 넌.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연구를 해.”

반유현은 에바가 만든 맑은 야채수프를 모두 싱크대에 버렸다.

“렌, 불에 올린다고 구이가 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대구 살이 다 무너져 내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렌이 만든 대구구이를 버렸다.

“최민성, 이런 건 배고픈 염소들도 안 먹는 풀이야.”

또, 최민성이 만든 샐러드까지 모두 버렸다.

“셋 다, 다시 해.”

“예! 셰프!”

잔잔한 반유현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대답이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내가 조리법을 가르쳐주고 너희들이 그걸 그대로 따라 하는 거라면, 맥도날드랑 다를 게 없잖아.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맛이 뭔지, 맞추려고만 생각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게 너희들의 실력을 가장 빨리 키워 줄 테니까.”

반유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올리버는 당황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던, 불과 몇 분 전의 과거를 지우고 싶었다.

“예! 셰프!!”

세 명의 외침이 터져 나왔고, 그들의 우렁찬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반유현은 몸을 돌려 올리버를


바라봤다.

“셰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어?”

14 화. 출발선에서는 부스터를 (1)

“이런 게 평론이냐? 찌라시지.”

올리버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앉아서 키보드나 때리는 놈들이 고귀한 척은 다 해요.”

프랑스는 요리라는 문화를 꽃피운 나라인 만큼, 요리와 셰프들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문화도
발전되어있다.

나 또한, 파리에 거점을 둔 셰프들뿐만 아니라 ‘요리평론가’라고 불리는 그들의 레이더에 포착된 이후로,
엄청난 논쟁거리가 되고 있었다.

[ 미슐랭 6 스타 루시앙. 자부심 넘치던 요리사, 돈의 맛에 눈떠. ]

[ 대한민국 천재 셰프, 반유현 섭외! 득일까 독일까? ]

[ 미슐랭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 요리 경력 1 년도 안 된 요리사 섭외 ]

[ 루시앙 말릭, 맛보단 돈? 이슈화에 초점을 맞추다. ]

루시앙 말릭이 화제성을 위해, 나를 수셰프로 선임했고 이는 맛보단 돈을 위한 선택이라는 기사들이 지역


잡지와 레스토랑 잡지에 찍혀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파리에 있는 음식평론가들은 정통성이 없는 나, 더 나아가 루시앙 말릭을 깎아내리기 위해


레스토랑의 오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총알 장전을 해놓고 겨냥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나는 이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건, 레스토랑의 오픈을 준비하는 셰프로서 큰 축복이라는 걸 두 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에 대한 모든 논쟁들은, 미슐랭 6 스타를 가진 루시앙 말릭의 이름값 보다 효율적이었다.

미슐랭 스타 셰프가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만한 기대를 불러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받은 주목과,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바보도 아니고.”

그리고 나는 이 기회의 잠재력을 최대로 폭발시킬 계획을 했다.

“그랜드 오프닝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 그랜드 오프닝을 하자고? 이 멤버로?”

그랜드 오프닝.

한국에서도 개업식이라는 문화가 있던데, 그와는 완전히 다르다.


개업식은 축하의 분위기라면, 그랜드 오프닝은 축하와 평가가 동시에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지인 위주로 초대를 하는 개업식과는 다르다.

그랜드 오프닝은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전,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목적도 크기 때문에 특급호텔의


유명 셰프들, 기자, 평론가부터 배우나 가수도 초대하는 경우가 많다.

“터트리는 겁니다. 한 방에.”

“메뉴에 대한 구성하고, 주방의 조직도 편성이 안 되어 있는데, 그랜드 오프닝을 지금 말하기엔…….”

“모든 게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

“요리하는 사람들에겐, 요리가 가장 강력한 설득력입니다. 초보 요리사나, 견습생들, 요리 꿈나무들을


한자리에 불러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 머릿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말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조금 더 빨리 행동해야 했다.

일단, 주방의 조직 편성을 마무리하는 것이 그 첫 번째였다.

최민성, 렌, 에바. 밤새 주방에서 나의 숙제를 해결하고 있는 세 명의 파트장, 그들을 보조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가장 빨리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서든 주방에 발을 들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상대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견습, 수습 셰프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수많은 레스토랑의 견습생들.

재료를 손질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셰프를 꿈꾸는 이들이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말하자, 다수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EAP 요리 아카데미.”

나는 출석을 부르듯이, 이어서 몇 개 단체의 이름을 불렀다.

그 단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 구성원들은 모두 셰프를 꿈꾸고, 요리를 배우길 희망하는 초급


셰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을 한곳에 모으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루시앙 말릭이라는 미슐랭 스타의 부름을 거절할 ‘요리 꿈나무’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설령, 루시앙이 그들을 부른 이유가 접시닦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미래가 창창한 여러 분에게 메뉴 테스트를 받게 돼서 영광입니다.”

메뉴 테스트는 레스토랑들이 오픈하기 전, 이 메뉴가 시장에 먹힐지를 판단하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이 있다.

미슐랭 스타 셰프가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의 메뉴 테스트를 본인들이 한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마다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내가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는 진정한 의미의 메뉴 테이스팅이 아니었다.

“올리버 셰프와, 한국에서 온 반유현 셰프,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세 명의 조리장이 이 코스를


구성했습니다.”

루시앙이 주방의 인원들을 소개했고, 루시앙의 기존의 레스토랑인 ‘레드 테이블’에서 지원을 나온 서빙
직원들이 접시를 나르기 시작했다.

접시가 그들의 테이블에 올려진 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고 홀 전체가 술렁였다.

“이건 배운 적이 없는 맛인데.”

“와! 이거 뭐야?”

“미쳤어 진짜. 이 정도면 우리 헤드 셰프님도 놀랄 거야!”

“우리 교수님도 이런 맛은…….”

메뉴 테스트라는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저들은 우리의 요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요리에 열정 가득한 요리 꿈나무다운 모습이었다.

그때, 내가 루시앙에게 사인을 보냈고 루시앙은 준비한 멘트를 던졌다.

“크흠!”

술렁이던 홀이 루시앙의 기침 소리 단번에 조용해졌다.

“여러분 모두, 셰프를 꿈꾸고 계십니다. 셰프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 무엇입니까?”

준비된 멘트라 그런지, 살짝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곳에 모인 요리 초급자들은 루시앙의 말에 엄청난


집중력을 쏟아냈다.

“맛입니다. 맛. 학벌, 경력, 어떤 셰프의 밑에서 얼마나 일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장담하건대,
저희가 새롭게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최고의 맛을 지향할 것입니다.”

이곳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강력한 맛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맛은, 최고의 맛을 지향한다는 루시앙의


말에 엄청난 신빙성을 덧붙여 주었다.

“흠……. 그리고 우리는 도전하는 사람을 막지 않습니다.”

루시앙이 옅은 미소를 보이곤,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수백 장의 종이 뭉치를 들어 보이고 말했다.

“지원서는 여기에 있습니다.”

루시앙의 말은 투박하고 어색했다. 문장의 매끄러움과 논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를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알아들었을 것이다.

“저, 정말요? 지원서를 작성하면 되는 겁니까?”

매 순간 배움에 목말라 있는 요리 꿈나무들. 그들은 이미 배웠을 것이다.


요리로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을 말이다.

강렬한 맛을 느낀 뒤, 별것도 아닌 한 마디에, 자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을 테니까.

그리고 자연의 법칙처럼 이 주방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겠지.

***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한 지 두 달도 안 돼서 주방의 총 사람 수는 21 명이 되었다.

주방 조직 편성을 결심하고, 3 일도 되지 않았을 때 얻은 성과였다.

오히려 요리 꿈나무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사람을 선별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세간의 관심은 더욱 쏠렸다.

[ 반유현 셰프. 베테랑 셰프 멀리하고, 초급 셰프들 흡수하는 기이한 행보 계속 보여! ]

루시앙과 올리버는 계속되는 비현실적인 일에 놀라는 것도 지친 눈치였다.

“프랑스, 이탈리아의 전통 면요리가 저희 레스토랑의 메인이죠.”

“그렇지.”

“코스는 최대한 간단히 하고, 주 요리인 파스타를 이주에 한 번꼴로 바꿔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주방에서 나의 유일한 상급자인 이 두 사람은, 이젠 나의 말을 믿어보는 것이 아니라, 맹신하고 있다.

“그게 좋겠네.”

“뭐, 자네 생각이라면.”

루시앙과 올리버, 이 두 사람은 파리에 있는 셰프라면 꼭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나의 말에 무조건적인 찬성을 표하니, 새롭게 주방의 가족이 된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채 요리로 스프, 메인 요리로 파스타, 그리고 파스타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생선구이,
마지막으로 디저트.”

심지어 헤드셰프이자, 주방장인 올리버는 나의 말을 메모장에 기록하고 있었다.

“스프는 에바, 파스타는 당분간은 제가 직접하고, 생선구이는 렌, 디저트는 민성이가.”

“예! 셰프!”

조리장들의 군기가 바짝 든 모습까지 더해져,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의 긴장감이 더해졌다.

세 명의 조리장 밑에는 각각 다섯 명 또는 여섯 명씩 배치했다.

“조리장들은 내 노하우를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이 전수 받은 사람들이다. 잘 따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야.”

내가 가르쳤던 조리장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직원들은 각자 파트의 조리장들과 돌아가, 메뉴에 대한 얘기를 했고, 나는 루시앙과 메인 요리인
파스타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그때, 이 주방에 있는 모든 이들은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눈에 담아야 했다.

“이게, 정말 의도한 맛인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한 번 더 똑같은 맛으로 만들어 드릴까요?”

“소스의 점성은 전분과 버터로 조절을 하지만, 자네의 파스타에는 그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세밀함이
있어. 내가 가진 옵션은 강, 중, 약이라면, 자네는 옵션이 10 단계 정도는 되는 것 같네.”

루시앙은 나를 섭외한 이후부터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곤 했다.

주방의 인원을 꾸리는 것부터, 메뉴 선정 그리고 파스타에 대한 이해까지.

총체적으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을 인정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갇힌 주방에서만 생활하다 보니까, 정통적이라는 것을 내세워서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고 있던 것이야. 자네를 섭외한 것은 그런 것을 깨보고자 하는 시도였다네, 그 결과는 지금까지 아주
훌륭해. 나를 가두고 있던 틀을 깨줘서 고맙네.”

루시앙 말릭은 경력과 명성에 걸맞게 겸손이라는 덕목까지 갖춘 요리사였다.

“파스타라는 게, 그렇게 세밀하고 어려운 요리던가? 내가 악마의 파스타라는 별명을 가진 요리사인데?


하하하 진짜, 도통 모르겠네.”

파스타의 거장, 파스타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루시앙은 나에게 요리를 배우듯이 내 옆에서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그런데 대체, 이런 걸 다 어디서 배웠단 말이야? 절대 재능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인데.”

재능으로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재능인 것처럼 능숙히 해내는 나의 모습을 본 노련한 요리사들은 이따금씩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노력해서 안 되는 건 많아. 하긴 자네 같은 천재가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될 필요는


없지.”

올리버는 멍하니 우리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

루시앙의 동료들, 올리버의 동료였던 베테랑 셰프들을 상대로 메뉴 테스트를 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모든 종류의 파스타가 최고의 맛이었어. 메뉴를 테스트할 필요도 없어.”

“다른 코스들의 밸런스는 누가 잡은 거야?”

“이거, 일 나겠는데 루시앙?”

메뉴 테스트를 하기 위해 온 12 명의 심사위원들 모두 극찬을 했다.


덕분에 주방의 기세와 분위기는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그런데 언제나, 이들의 기세와 나의 기세가 합쳐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일단 다음 주 그랜드 오프닝의 코스는 맑은 채소스프, 대구구이, 그라니타로 하고, 메인은 해물


크림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토마토 스파게티로 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올리버가 나의 의견을 되물었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아니, 그랜드 오프닝을 하는데, 주문을 받겠다는 거야?”

올리버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뷔페 형식이 아니라?”

그랜드 오프닝은 약속된 시간에 초대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은 자신들이 오픈 후에 선보일 메뉴들을 뷔페 형식으로 대접하곤 한다. 맛의


질이 조금 떨어질지라도, 안정적으로 한 번에 많은 손님을 상대할 수 있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방식은 그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자네 말대로라면, 그 주문들을 한 번에 소화해야 돼. 유현, 자네의 주방 지휘 능력이 비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번엔 반대야. 완전히 도박이잖아.”

올리버는 동일한 시간에 한 번에 몰린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서 소화하기엔, 맛의 퀄리티가 들쑥날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했다.

“기회가 왔으니 승부를 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루시앙은 옆에서 나와 올리버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일일이 주문을 받아서, 최고의 요리를 그날 온 모든 손님들에게 제공을 했을 때 얻는 이득은 계산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실수가 벌어졌을 때의 리스크도 계산할 수 없어, 이미 이 도시의 모든 식당들과 음식


평론가들이 우리를 겨냥하고 있어. 우리가 오픈을 계획했을 때부터, 이런저런 말들이 너무 많았다는 건,
자네도 알잖아.”

이전과 달리, 올리버는 내 말에 처음으로 반대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오픈은 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반응이나 분위기로 이 레스토랑은 어느 정도 성공의 기반을 다져놓고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나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그런 시점에 무리한 승부수가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게 올리버의 의견이었다.

“이미 루시앙 셰프님께서는 제 말에 동의하신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예? 셰프님, 정말 유현의 말에 동의하셨습니까?”


루시앙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루시앙 셰프님께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평론가, 루이드 뤼샤르를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하셨습니다.”

“뭐?”

루이드 뤼샤르.

미슐랭 스타 셰프이자, 프랑스 내에서 가장 명성 높은 요리 평론가였다.

그의 한마디에, 문을 닫은 레스토랑이 허다할 정도로 그는 유명한 평론가였다.

루시앙은 그를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했다.

“말대로 일을 벌인 김에, 제대로 해야지 않겠나. 애초에 반유현 셰프가 이 주방에 왔을 때부터 우리
레스토랑은 평범해 질 수가 없는 거야. 요리 경력이 1 년도 안된 반셰프의 천재성이 어디까지인지도
궁금하지 않나?”

루시앙이 올리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올리버는 아무리 나를 믿는다고 해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는 그와 반대로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초대된 손님들께 일일이 주문을 받는 형식으로 해도 되겠습니까?”

15 화. 출발선에서는 부스터를 (2)

“이 사람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요리사 아니야?”

“그냥 요리사냐? 특급 요리사지.”

“이 사람이 그랜드 오프닝에 온다고?”

주방에 있는 직원들은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메일로 초대장을 보내놓고, 그에 응한 사람들의 이름표를 만들어 자리를 지정하는 작업이었다.

“와……. 이 분은 되게 유명한 영화배우잖아.”

그랜드 오프닝 행사에 초대된 인원은 자그마치 113 명.

특급 호텔의 셰프부터, 기자, 요리 평론가, 배우나 가수들까지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초대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지. 루시앙 셰프님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어.”

올리버의 말대로, 그랜드 오프닝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슐랭 6 스타를 가진 루시앙 말릭의 명성과 그에 따른 인맥이 없었더라면, 이런 유명인들을 대거


초대하는 것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배우나 가수 분들은 주방하고 멀리 떨어진 입구 쪽에 배치해줘. 기자나 평론가들은 주방과 가까운


자리로.”
나와 올리버도 홀로 나와서,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을 읽으며 자리 배치를 감독하고 있었다.

직업과 그 인지도에 따라, 각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름표를 올려놨다.

그때, 명단을 쭉 내려 읽던 올리버의 표정이 굳어졌다.

“루이드 뤼샤르. 제일 거슬리는 이름이야. 이 자식의 자리는 도마 위에 놔야 할 것 같지 않나? 그 이름표


도마 위에 올려놔. 허튼 소리하면 확 썰어버리게.”

올리버의 과격한 농담에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들 루이드 뤼샤르가 누군지 알고 웃는 거야?”

루이드 뤼샤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스토랑 비평가.

미슐랭 스타 셰프의 입지와 재치 있는 입담을 이용해, 블로그와 SNS 상에서 수많은 팔로워들을 보유했고,
방송에도 자주 모습을 보이며 요리 평론가로서도 확고하게 입지를 다진 사람이었다.

“앉아서 고귀한 척 음식이나 먹고, 말이나 몇 마디 내뱉는 놈들 때문에 몇 명이 고생하는 거야 대체.”

당연하게도 요리를 평가하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셰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받을 수 없었다.

“고마운 일 아닙니까.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그랜드 오프닝에 와준다는데.”

“속도 좋구만. 반 셰프.”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으레, 그런 권위적인 평론가들은 없는 얘기를 지어서 할


일은 없으니까요.”

실제로, 거침없는 악랄한 비평으로 유명세에 오른 그였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이 던진 말에 의해 그 레스토랑에 많은 영향이 끼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사전 조사를 좀 했습니다.”

당연히 나는 루이드 뤼샤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레스토랑 평론가로 이름을 떨친, 그의 비평을 100 년간 얼마나 많이 봐왔겠는가.

100 년간 쌓인 나의 데이터로 추정컨대, 루이드 뤼샤르 또한 개인적인 취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요리를 객관적으로 비평하고 평가한다고 하지만, 저놈도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충격적일 정도의 신선한 맛이 아니라면, 정통적인 맛을 좋아하는 놈. 어중간하게 창의적인 걸 아주


싫어하는 놈이지.’

문제는, 내가 그에게 일대일로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주방에 있는 모든 셰프들의 손을 거쳐서 코스 요리가 탄생하게 된다.


“자, 다들 유명인들 이름 보고 낄낄거렸으면, 이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자.”

한 명의 실수가 맛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주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지 트레이닝, 그 당일을 완전히 떠올려봐. 100 명이 넘는 손님이 왔고, 그 모든 손님들, 한 명 한


명이 이 레스토랑의 존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야.”

며칠간의 쉴 틈 없는 연습으로 체력이 많이 소모된 이들에게 나는 다시 힘을 불어넣었다.

“반대로 말하면,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커리어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기회의 날이기도 해.
완벽해질 때까지, 다시 칼 잡아, 불 올리고 팬에 기름 둘러.”

“예! 셰프!”

주방이 순식간에 후끈해졌다.

***

미슐랭 스타 셰프인 루시앙 말릭의 이름 아래에 새롭게 오픈된 레스토랑.

기존에 그가 운영하던 레스토랑의 이름 뒤에 ‘파스타’를 붙였다.

‘레드테이블-더 파스타.’

그랜드 오프닝 당일 날, 그 앞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되자, 초대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온 기자들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헐리웃 배우들부터, 특급 셰프 등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은 포토 존이 설치된 곳에서 기념사진을 한 컷씩


찍고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 안 된다. 연습했던 것처럼만. 연습했던 것처럼만 하자.”

각자 배정된 자리에, 백 명이 넘는 유명 인사들이 자리를 채웠다.

나는 홀에 사람이 꽉 찬 것들을 확인하고, 주방의 직원들을 격려했다.

때마침, 레스토랑에 임시로 마련된 무대 위에 이곳의 오너 셰프인 루시앙이 자리했다.

“오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자리를 채워주신 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조명이 루시앙을 비췄고, 루시앙이 말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오일, 크림, 그리고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파스타, 각 코스의 메인 요리인 파스타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 코스는 여러분들이 수많은 자극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파스타의 거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던 루시앙이었다.

그의 입에서 ‘수많은 자극’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사람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고생을 한 두 명의 셰프를 소개합니다. 총 주방장을 맡고 있는 올리버와


부주방장인 반유현 셰프입니다!”
루시앙 말릭이 무대 위에서 나와 올리버의 이름을 호명했고, 나는 무대 위로 나아갔다.

수많은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이야! 진짜 젊어! 셰프 ‘반’이라고?”

“소문이 진짜였어. 어떻게 저 나이에 수셰프를?”

“천재래, 천재. 루시앙이 알아보고 섭외했대.”

나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에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심사위원이라 생각하면 떨릴 법도 하지만 마음속에 여유가 차고 넘쳤다.

반면에 내 옆에 서 있는 올리버는 온몸이 완전히 경직되어 로봇처럼 걸어 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커리어에서 총주방장을 처음 맡은 올리버가 이토록 떨리는 게 이해되긴 했다. 그래서 그런가,
마흔이 넘은 중년의 아저씨가 귀여워 보였다.

“셰프님, 로봇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좀 걸어가시죠?”

“자네는 어떻게 그리 편안해? 후.”

우리는 무대로 걸어 나가면서 속닥였고, 그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무대에 다다랐을 때, 루시앙은 올리버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크흠! 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하하. 특히나 부주방장인 이 친구가 이 레스토랑의 오픈에 많은
…… 어, 자질구레한 설명 말고 맛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올리버는 급하게 마이크를 나에게 떠넘겼다.

올리버의 말을 끝으로 울려 퍼지던 박수는 내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 절정에 달했다.

사람들에 대한 나의 관심도가 반영된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레드 테이블-더 파스타의 부주방장을 맡은 반유현입니다. 제 위에 계신 두 셰프님들의…


….”

내가 인사치레 멘트를 할 때, 무대의 가장 앞에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루이드 뤼샤르였다.

홀의 직원이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그가 곧장 내게 질문을 던졌다.

“파스타라는 요리 자체가 이 파리라는 도시에만 수천 개, 수억 개가 있을 겁니다. 이 식당만의 특별한


점이 있습니까?”

“드셔보시면 압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질문이 공격적이고 꽤나 날카로웠다.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면서 얘기하자, 루이드 뤼샤르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허허. 아주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혹시, 면의 익힘 정도도 정할 수 있습니까?”

루이드 뤼샤르는 나의 답변이 불쾌했다는 듯이, 나를 불리한 곳으로 몰았다.

113 명이 먹을 코스 요리를 단번에 만들어야 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

놈의 경력으론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거기에 더해 코스의 메인 요리인 파스타의 면 익힘 정도를 각각 다르게 주문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은 나의


허를 찌르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주방의 동선을 무너트리려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파스타 면의 익힘 정도를 주문받는 게 사소한 일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추가된 주문은 셀 수 없이 연습한 주방의 동선을 무너트릴 우려가 있었다.

소수의 인원이 그런 것이 아니라, 113 명의 손님들이 모두 면의 익힘 정도를 정한다면 말이다.

저놈은 그것을 알면서도 내게 저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내가 그의 물음에 거절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일이고, 거절을 하지 않는다면 주방을 곤란하게 할 아주


악랄한 질문을 내게 던진 것이다.

“허허허. 루이드, 물론, 파스타의 면 익힘 정도를 고를 수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한 번에 많은 양의


코스를 제공해야 되는 특별한…….”

루시앙은 내가 대답하기 전 내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가로채고, 루이드 뤼샤르의 질문에 대답했다.

매번 도전적인 모습을 보이던 내가, 망설임도 없이 루이드 뤼샤르의 물음에 대답할 것을 미리 방지하는
모습이었다.

“루시앙 셰프님께서 SNS 에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자신의 레스토랑에 있는 수셰프, 반유현 셰프는 같은


파스타일지라도, 면의 익힘 정도와 맛을 각각 달리해 수없이 많은 파스타를 만들어 낸다고요. 이곳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다들 그 세밀함을 보고 싶어서 자리하셨을 텐데, 오늘은 그 세밀함의 맛을 보지
못하는 겁니까?”

그런데 오히려 루시앙의 말에 루이드 뤼샤르가 역공을 퍼부었다.

SNS 는 인생낭비라고 누가 그랬었나, 루시앙이 나의 파스타 실력을 봤던 날, SNS 에 내 이야기를 올렸던


모양이다.

루이드 뤼샤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님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의 말처럼, 손님들도 루시앙이 인정한 나의 실력을 보고 싶다는 듯한 격려의 박수였다.

“허허허. 루이드! 미안하지만, 오늘은…….”

루시앙은 루이드 뤼샤르의 말에 완곡하게 거절하려 했다.

알량한 자존심을 부리기 위해 면의 익힘 정도까지 모든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았다간, 전체 요리의 질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긴, 단번에 코스요리를 빼야 되니, 면의 익힘 정도까지 주문받기엔 무리겠죠. 요리의 시간도 다르고
그럼, 코스의 시간도 각각 테이블마다 달라야 하니까…….”
루이드 뤼샤르는 이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말투를 보아하니, 자신이 한 수 접어준다는 말투였다.

그리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의 도발에 굳이 넘어갈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또 다른 기회를 포착했다.

원래, 기회라는 게 리스크를 동반하는 것 아닌가.

“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순간 수많은 카메라와 조명들이 루이드 뤼샤르와 루시앙, 그리고 나와 올리버를 비추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환생을 거듭하며 매번 그래왔듯이, 판이 깔리면 내 최고의 실력을 보여 주는 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법.

“무, 뭐? 반 셰프. 그건 예정에 없던…….”

“자, 잠시만!”

루시앙과 올리버가 크게 당황했고, 나에게 속삭였지만 소용없었다.

손님으로 초대된 셰프들 마저 나의 한마디에 당황할 정도였으니, 나의 직속상관인 저 둘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그런데,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것을 한국말로 표현하면, 모양 빠진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주방, 준비해주세요.”

내가 마이크로 그렇게 말하자, 주방에 있는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직원들의 모습을 본 총주방장, 올리버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루시앙은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이번에도 나를 믿어보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한마디의 말을 덧붙였다.

“이 정도면, 나를 포함한 주방의 모든 셰프의 커리어를 배팅한 거야. 파리에서 제대로 터를 잡던가, 짐
싸고 나가던가, 둘 중 하나라네. 자신 있지 반셰프?”

16 화. 출발선에서는 부스터를 (3)

셰프들의 무대 인사가 끝나고 뒤이어 행사를 위해 섭외했었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다.

웅장하지만 편안하고 평온한 소리, 그렇지만 주방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삑! 삑! 삑!

주방에서는 수많은 주문서들이 찍혀 나오고 있었다.

“맑은 감자 버섯 스프! 양파 수프! 베두레 알라! 모든 전채요리는 그냥 다 들어가! 다 시작해! 빨리!”


“예! 셰프!”

오너 셰프인 루시앙은 홀과 주방을 종횡무진 하며 전체적인 것을 총괄하는 역할, 올리버는 주문서들을


읽으며 셰프들에게 지시하고 주방을 총괄하는 역할, 나는 셰프들이 그 지시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원래는 그랬다.

원래는 그렇게 짜여 있었는데, 나에겐 새로운 임무가 추가되었다.

“흠.”

전채요리, 즉 애피타이저의 지시를 끝낸 올리버는 주문서를 보다가 표정을 찡그렸다.

그리곤 나를 향해 소리쳤다.

“반 셰프! 이거 정말 할 수 있겠어?”

“제가 못한다고 하면, 방법 있습니까?”

모든 주문서에는 파스타 면의 익힘 정도가 퍼센트(%)로 적혀져 있었다.

우리가 몇 날 며칠을 밤새 연습했던 것과 달리, 모든 손님들에게 각각의 입맛에 맞는 커스텀 형식으로


파스타 요리를 제공해야 했다.

“알덴테(Al dente)가 몇 퍼센트야! 오십 퍼센트?”

파스타의 가장 보편적인 면의 익힘 정도인 ‘알덴테’.

그 기준을 오십 퍼센트라고 손님들에게 말했었다.

“생각하면 쉽습니다. 십 퍼센트나, 백퍼센트처럼 극단적인 주문은 애초에 받지 않습니다. 맛이


없으니까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익힌 정도인 삼십 퍼센트부터, 사십 퍼센트, 오십 퍼센트…
… 팔십 퍼센트까지 총 여섯 개의 화구를 이용해서 각각의 면을 삶을 겁니다.”

10% 차이로 각각 면을 다르게 삶아, 소스와 함께 팬에 볶을 때, 그 세밀한 익힘 정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예를 들어, 43%의 익힘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다면 40%로 삶은 면을 사용해 볶고, 55%의 익힘 정도는
50%로 삶은 면을 볶으며, 그 익힘 정도를 더하는 것이었다.

“좋아!”

나의 설명을 들은 올리버는 엄청난 영감을 얻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삶은 면을 소스와 볶으면서 면의 익힘 정도를 추가로 조정하는 것은 파스타의 기본이었기에, 113 명이


각각 주문한 익힘 정도를 맞추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면을 팬에 볶으면서 세밀하게 그 익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셰프가 있다면 말이다.

“루시앙 셰프님, 나, 그리고 반 셰프가 직접 해야 되겠는데.”

문제는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춘 이들은 모두, 나를 포함해 주방을 관리 감독하는 셰프들이었다.


우리가 직접 팬을 잡으면 113 명의 파스타를 커스텀으로 선보이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주방의 질서가 무너질 염려가 있었다.

“저 혼자 하겠습니다. 최민성, 샐러드 내려놓고 잠깐 나한테 붙어.”

“예, 셰프!”

나는 보조로 한 명을 지목했고, 내 몸을 대충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꽉 묶었다.

“다들 반 셰프 말 들었지?! 식자재 창고에 있는, 연습용 화구에까지 물 올려!”

“예!! 셰프!”

화구에 올려둔 물에 면이 각각의 정도로 삶아졌을 때, 나는 주방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

면의 익힘 정도를 50%, 60%로 평범하게 주문한 손님들이 대다수였지만, 51%, 47%와 같이 짓궂은 주문을
한 손님들도 여럿 있었다.

나는 그런 짓궂은 주문을 한 손님들의 파스타에 정성을 쏟았다.

51%와 47%라는 숫자로 주문을 받아놓고, 맛에서 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지금,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손님들이 말해주었다.

“내 파스타는 51%, 자네 것은 47%라고 하지 않았나?”

“하하하! 이거 진짜 장난하는 거야 뭐야? 4%의 차이?”

1%의 차이는 심혈을 기울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에 많은 파스타를 볶아야 되는 지금엔 사실


나조차도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2%나 3%의 차이 정도는 구현할 수 있었는데, 그 정도 차이만으로도 내 파스타를 맛본 사람들은 충격의


헛웃음을 뱉었다.

물론 그 정도의 미묘한 차이는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내 배는 파스타 면이 가득 차


있었다. 면 하나씩 맛을 보다 보니 배가 부른 것이다.

“이거 뭐야! 기계가 만든 거야?”

특히나, 손님들 중에선 동종업계에 속한 셰프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충격이 컸던 것 같았다.

서로 자신들의 파스타 익힘 정도를 말하면서, 다른 익힘 정도를 주문한 사람들과 파스타를 바꿔먹어 가며


비교하기 시작했다.

“면의 익힘 정도가…… 이렇게 나눠질 수 있다니. 미친…….”

요리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충격에 빠진 것이다.

“나는 51 퍼센트로 주문했는데, 자네는 54 퍼센트, 자네는 60 퍼센트…… 이게 말이 되나……. 이 작은


차이를 어떻게 명확하게 만들어냈지?”
“아니, 왜 다들 면의 익힘 정도에만 치중 하는 거야? 이거, 에멀젼(Emulsion:유화)도 장난 아닌데?
면에서 소스가 찐득하게 베어져 나오는 게……. 면뿐만 아니라 이정도 수준의 맛을……!”

요리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그 외의 사람들에겐 그런 깊은 지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다만 주변에 있는 유명 셰프들이나, 평론가들이 놀라는 것을 보고는 이 요리가 대단한 요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와! 너무 맛있네요.”

“호호! 이렇게 파스타 명가가 또 태어나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루시앙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예전 ACK 에 출연했을 당시, 그가 요구한 익힘 정도를 정확히 맞췄던 적이 있었다.

동시에, 두께나 길이가 다른 면으로 만든 파스타를 모두 동일한 맛으로 선보이기도 했었고.

그것으로 나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루시앙이었지만, 이 정도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 이 정도는 나도 불가능해.”

113 명의 각기 다른 주문을 한꺼번에 소화했다.

그것도, 먹는 사람들이 2%, 3%의 차이를 느낄 만큼의 세밀함을 갖춘 상태로 말이다.

루시앙은 자신이라면 하지 못했을 일을 내가 했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절대 재능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네, 이제는 바른대로 말하게나. 내 눈은 절대 못 피해.”

내가 요리를 갓 시작한, 짧은 경력의 셰프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정 지은 듯했다.

그가 계속 집요하게 질문했지만, 나는 머리와 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나와 루시앙이 말싸움을 하고 있을 때, 한곳에 자리하고 있는 루이드 뤼샤르가 보였다.

루이드 뤼샤르는 자신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는 네 명의 파스타를 각각 44, 47, 50, 53 으로


주문했었는데, 오차 없는 그 명확한 차이에 놀랐는지, 테이블에 올려진 파스타를 전부 맛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카메라로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나와 눈이 마주친 루이드 뤼샤르는 민망했는지, 미소를 짓곤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고개를 한번 까닥거리는 것으로 대꾸해줬다.

그랜드 오프닝이 시작할 때, 내가 거침없이 말대답을 한 것만으로 도발적인 질문을 날렸던 것과 달리


지금은 그를 무시하듯이 고개를 까닥거렸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도발한 것에 대해 앙갚음을 해주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놈 아닌가.

더 중요한 것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저놈의 평론은 앞으로도 계속 이용해 먹을 수도 있다.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이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효율적인 측면에서 좋다고 판단했다.


모든 사람들의 식사가 끝났을 무렵, 나와 루시앙, 그리고 올리버는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제가 예전에, SNS 에 글 하나를 올렸었습니다. 제가 부주방장으로 섭외한 반유현 셰프의 파스타는 같은
파스타일지라도 그 맛이 10 단계 정도로 나뉜다고요. 하지만, 오늘 보니까 그 맛이 100 단계로 나눠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실제로 오늘 그 맛을 보셨지 않습니까?”

루시앙이 내가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고,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앞으로 젊은 천재 셰프, 반유현 셰프의 행보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루시앙이 마무리 멘트를 던졌을 때, 주방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오늘 요리를 맛본 손님들은 아주 멋진 뮤지컬 공연을 봤다는 듯이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만큼 오늘의 요리는, 흠잡을 것 없이 완벽했다는 것이었다.

***

정통적이지 못하며, 건방진, 천재 셰프의 이미를 달고 있던 나는, 매우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천재 셰프의


이미지를 새로 달았다.

[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대일 커스텀 파스타! 성공! ]

[ 1 퍼센트의 차이를 구현할 수 있는 천재. ]

[ 감당할 수 없는 천재 셰프와 베테랑 셰프 둘의 합작. ]

[ 루이드 뤼샤르 입을 닫다. ]

그랜드 오프닝에 다녀간 수많은 요리 평론가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루이드 뤼샤르의 도발부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손님 한 명 한 명씩을 위한 파스타를 만들어냈던


것까지, 그들은 그 날 있었던 일과 맛에 대해서 상세하게 서술했다.

그 때문인가, 레스토랑을 대개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평가하던 평론가들이 남긴 평들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비평을 하는 평론가는 없고, 모두가 칭찬일색이다. 이유는 뻔하지.’

칭찬들이 너무 많아, 비판적인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권위를 떨어트릴 수 있는 행동이 되는


것일 테니까.

“한 달 동안 예약이 꽉 찼습니다, 이 정도 기세라면, 두 달 세 달, 여섯 달까지 예약이 꽉 찰 텐데 굳이


한 달씩 예약을 묶어 놓는 이유가 있나요?”

예약 담당 매니저이자, 홀 서비스 매니저인 엘이 말했다.

금발의 백인 여성인 그녀는, 이번 그랜드 오프닝에서도 실수하지 않고 서비스를 수행해 꽤나 많은 공로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요리에 관심도 제법 있어, 홀 직원들 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여섯 달 치 예약을 미리 받아버리면, 신경 쓸 일이 적어지는 것 아닌가요?”

“미슐랭.”

“미슐랭이요?”

“어. 미슐랭 평가원들이 여섯 달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

미슐랭 평가원들은 일반 손님들과 똑같이 예약을 한다.

그들의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레스토랑에 절대 외압을 가하지 않는 것이다.

미슐랭 스타 평가원이라고 한들 예약에 따른 순서를 기다려야했다.

따라서 6 개월 치 예약을 미리 받는 것은, 미슐랭 스타 평가원의 방문을 늦출 수도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약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손님들의 노쇼(NO-Show)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아……. 셰프님들한테는 당장 확정된 매출보다,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게 중요하지.”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이 엘은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내 손에 들려있는 종이 뭉치를 보고는 다시 내게 질문했다.

“그건 뭐예요? 명함?”

그랜드 오프닝 직후에, 사람들이 내게 직접 주고 간 명함들이었다.

“벌써 다른 곳으로 떠나실 준비를 하는 거예요?”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면,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나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다.

대중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슐랭 평가원들이 왔을 때를 대비해 코스를 구성하는


메뉴나, 메인 요리인 파스타의 맛을 더 끌어 올리는 게 내가 남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기왕에 이곳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는다면, 더 많은 개수를 얻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냥 보는 거야. 어떤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졌는지.”

물론, 그렇게 이곳에 남아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도, 다음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고르는 중이었다.

20 년이라는 제한 된 시간에서 목적을 이루어 내려면 조금도 지체 돼선 안 된다.

나는 나에게 받은 명함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곤,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명함들을 정리했는데,


그중에 가장 강력한 명함을 보고 있었다.

-펠리지오, 헤드 셰프 A.톰슨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5 성급 호텔, 그 주방의 총괄인 톰슨의 명함이었다.

“헤, 헥! 펠리지오 헤드 셰프?”

“이 사람을 알아?”

“그 사람을 알기보단, 그 직급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잖아요. 제 전공이


호텔경영이거든요. 라스베이거스는 어쩌면 이곳 파리보다, 요리 경쟁이 심한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헤드 셰프를 맡았다는 건 진짜…….”

실제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카지노를 보유한 호텔들은 일명 ‘큰손’이라 불리는 손님들을 자신의
호텔에 투숙시키기 위해 호텔마다 여러 전략을 구상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에 투자한 돈을 카지노로 충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텔과 리조트 그룹의 맛에 대한 투자는


엄청났다.

그들의 레스토랑 사랑 덕분에, 셰프들에 대한 대우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던 것도 사실이다.

“와, 롤스로이스에 경호원에 스위트룸까지 제공하면서 스카웃했다는데요? 라스베이거스, 그 동네는


셰프들한테 이런 대우를 해주는구나…….”

톰슨을 인터넷에 검색해본 엘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그 셰프가 무슨 말을 하면서 명함을 준거에요?”

“그 롤스로이스 나 태워주겠다고, 색다른 경험을 시켜주겠다나.”

“에? 색다른 경험이요?”

“아마도 한 달 뒤에 있을 ‘미식 축제’에 날 초대하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

17 화. 더 파워풀 하게 (1)

내가 속해있는 레스토랑의 주방은 점점 안정화가 되었고, 이 몸으로 환생한 지 5 개월이 넘었을 때였다.

“셰프님! 미국에서 택배가 왔습니다.”

주방의 한 직원이 내게 거대한 박스를 가져왔다.

“협찬제의야? 앞으로 그런 건 묻지 말고 창고에 넣어둬.”

이 도시 내에서 ‘레드 테이블-더 파스타’라는 식당의 유명세는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에 따라, 기업들은 이 주방의 지휘자인 나에게 각종 선물 공세를 펼쳤었다.

물론, 말이 선물이지 믹서기나, 접시나, 칼 같은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해 달라는 구애 행위였다.

현지에서 ‘레드테이블 - 더 파스타’의 유명세를 고려했을 때, 내가 방송이나 언론에 비춰지리라 예상한


것이다.

“협찬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요?”

“뭔데.”

직원의 목소리에 나는 박스에 적힌 글씨들을 읽었다.

-펠리지오 호텔 총주방장. A.톰슨

라스베이거스 5 성급 호텔, 펠리지오의 헤드 셰프인 톰슨.

현재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스타 셰프들을 배출시킨 미국 명문 요리학교 CIA 의 교수


출신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약 한 달 전, 그랜드 오프닝이 끝난 직후에 나에게 명함을 건넸던 그가 나에게 또다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와……. 이 칼은……. 독일제 명품 칼 아니에요?”

명품 칼이 종류별로 8 자루가 담긴, 선물 세트와 함께 말이다.

‘마음을 과감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군.’

펠리지오 호텔이 톰슨을 총주방장으로 섭외한 가장 큰 이유는, 명문 요리학교의 교수 출신인 그가 가진


인맥을 이용해 강력한 셰프 군단을 만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명품 칼을 선물해주면서까지,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나 또한 그의 레이더에 걸린 것일 테고.

나는 택배 안에 들어있던 칼자루를 꺼냈고, 그 바닥에 있는 편지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비행기 표와 편지가 담겨져 있었다.

비행기 표는 라스베이거스 행이었고,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생략… 세계 최대의 미식 축제라고도 불리는, ‘베이거스 언코크드(Vegas Uncork’d)’에 반유현


셰프님을 초대합니다. 한 달 전 먹었던 그 파스타의 맛을, 이곳에 있는 셰프들에게도 전하고 싶군요.
행복했던 기억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 작은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셰프, 톰슨.-

베이거스 언코크드(Vegas Uncork’d).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주최하고, 그곳에 있는 수많은 호텔들이 후원하며, 1 년에 한 번씩, 총 11 번


개최된 이 행사는 라스베이거스를 미식의 도시로 입지를 굳히는 일에 많은 기여를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의 요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으며, 그 못지않은 수많은 먹거리와 볼거리를 볼
수 있는 행사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축제 중에 가장 큰 축제야.”

“거, 거기에 셰프로 초대되신……”

때마침 루시앙과 올리버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뭐해?”

멍 때리고 있는 직원과, 가만히 편지를 읽고 있는 나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듯이, 내 옆으로 와 편지를
함께 읽었다.

“흠……. 가는 게 당연히 좋지. 전 세계 수많은 미식가들과 유명한 셰프들이 모이는 자리에, 자네의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가. 그런데, 크흠! 돌아오지 않을까 봐 겁나는구만.
라스베이거스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셰프를 여럿 봤거든. 그곳엔 셰프를 홀릴 요소들이 너무 많아.”

“이 레스토랑이 미슐랭 스타를 받을 때까지는 자리를 지킬 생각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날 만큼 이곳의


주방이, 아직 제 성에 차지는 않습니다.”

“하하하! 오너 셰프로서 가장 가슴 뭉클한 말이야! 더군다나 자네가 그런 말을 해주니, 아주 든든해!”


루시앙이 나의 대답에 호탕하게 웃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데, 미슐랭 스타를 받는다면?”

“더 큰물로 가야죠.”

“흠. 천재 셰프들이 가진 양날의 검인가, 영원히 가둬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거? 하하하! 지금부터


자네를 놓치지 않을 방법을 지금부터 생각해야겠구만. 혹시나 베가스에서 어떤 제안을 듣더라도 내 제안을
한 번 더 들어주게.”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라스베이거스 행, 비행기에 앉아 지난 삶들을 되돌아봤다.

‘사람만 더 있었더라면.’

100 년의 삶을 살며 얻은 경험 덕에, 여태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셰프로서 입지를 올리고


있지만, 입지를 얻으면서 챙겨야 할 진정한 알맹이는 따로 있다.

‘지금부터 쌓아놔야 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라도,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이 마구잡이로 가맹점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인맥, 정확히는 ‘사람’이었다.

미슐랭 스타를 한 개, 두 개가 아닌 서른 개를 얻으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상, 여러 개의 레스토랑을


동시에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분신술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레스토랑을 매번 이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에겐 매번의 삶 동안 검증된 ‘내 사람’이 필요했다.

나의 요리 의도를 구현하며, 각 레스토랑의 수많은 인력과 식재료를 관리하고, 내 이름값을 떨어뜨릴


염려가 없는, 그런 사람.

곳곳에 퍼진 레스토랑에서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 사람들 말이다.

문제는, 나의 분신들은 한 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매번 다른 국적의 다른


몸으로 환생하는 나는, 전생에 쌓았던 인연들을 모두 잃게 되므로, 매 삶에서 인간관계에 많은 시간을
소모했었다.

‘환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 행사에 갈 수 있다니.’

그런데, 내가 초대받은 이 행사는, 그런 시간들을 효과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행사였다.

행사에 참여하는 셰계적인 명성의 셰프들, 그리고 그들을 보조하거나 따르는 셰프들.

셀 수 없이 많은 셰프들이 모인 그 자리엔, 내가 전생 동안 검증했던 셰프들이 있을 확률이 높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전생을 함께한 내 ‘옛 동료’들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한 명만 만날 수 있더라도.’

여러 번의 생을 거듭하면서 만났던 수십 명의 옛 동료들 중 단 한 명, 한 명과 커넥션을 만들 수 있기만


해도 내가 한 이 발걸음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나의 동료들은 내가 목표를 이루는 것에 강력한 힘을 보탰다.

***

공항에 내리자마자,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나를 차로 안내했다.

톰슨이 나에게 명함을 줄 때, 언질을 했듯이 롤스로이스 차량에 특별 의전을 추가해 나를 데리러 온
것이다.

각종 조형물과, 조명, 그리고 분수가 펼쳐지는 라스베이거스의 거리를 보며, 성공의 상징인 세계적인
명차의 가죽 시트에 몸을 파묻고 가는 이 느낌.

“영어를 그렇게 잘하실 줄 알았다면, 통역사를 데려오지 않을 걸 그랬습니다. 하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환생한 지 1 년이 채 안 됐으니까, 이 느낌을 느낀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전생엔 슈퍼스타이자, 특급 셰프로 롤스로이스를 탔다면, 지금은 그저 실력과 잠재력으로만 이 차를 타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편안히 쉬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정이 잡히는 대로, 저희가 직접 올라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나를 펠리지오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안내했다.

혼자 있으면 공포감이 생길 정도로 넓고 조용한 객실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나. 고급 쇼파에 누워 창밖으로 라스베이거스의 전경을 눈에 담고 있을 때, 누군가 객실을


노크했다.

“반 셰프, 톰슨입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곧장 문을 열었다.

나를 이곳에 초대한, 이 호텔 메인 레스토랑의 총주방장 톰슨이었다.

“죄송합니다. 더 오래 쉬셨어야 할 텐데. 제가 너무 뵙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자하고, 자상하게 생긴 생김새와 달리 감정표현이 꽤나 저돌적이었다.

“영광입니다. 톰슨 셰프님.”

“제가 영광이지요. 반 셰프에 대해 조사를 좀 했는데,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는 걸 싫어하신다고…….


하하. 자리에 앉으시죠,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톰슨은 준비한 말을 하듯이, 어색한 말투로 내게 말했고, 우리는 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

“편지에 쓴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다. 단, 하나도 거짓이 없습니다. 반 셰프의 파스타, 기계가 만든 것


같은 정교한 파스타를 저희 직원들에게 맛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주방의 일일 강사로
초대를 한 것이고요. 그에 따라,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의 비용은 저희 펠리지오 호텔에서 부담합니다.
그리고 반 셰프보다 셰프로서의 생활을 오래 한 선배로서, 이런 특별한 행사에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크흠! 음…….”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여서 당황한 것인지, 톰슨은 연신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행사는 4 일 동안 진행되는데, 둘째 날 밤. ‘그랜드 테이스팅’이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이곳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 정상급 셰프들의 요리를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행사지요. 각
셰프들마다 부스가 정해져 있는데, 제 부스에서 그 파스타를 만들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외식업계에 수많은 인맥들을 가진 톰슨, 그는 프랑스에서 먹었던 내 파스타에 완전히 미쳐버린 것인지,
연신 파스타를 말했다.

“저희 직원들에게 파스타를 맛보여주시고, 제게 마련된 부스에서도 파스타를 만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파스타 말고도 보여줄 수 있는 요리가 수천만 가지인데 말이다.

***

“그랜드 테이스팅이 낼모레이니, 내일 그…… 파스타 강의가 가능하시겠습니까?”

톰슨은 내일 강의를 위해, 주방에서 내게 필요한 물건들을 고르라고 했다.

파스타 강의를 할 때에 필요한 물건을 미리 구비해, 내 편의를 봐주겠다는 의도였다.

“제가 강의라고 말하긴 했지만, 부담 갖지 마세요. 그냥 반유현 셰프가 가진 기술을 선보이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저희 직원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에 따라 우리는 펠라지오의 레스토랑인 주방으로 내려갔다.

주방엔 다섯 명의 사내들이 한 테이블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허허. 쉬는 날에도 나와서, 요리 연습을 하는 거야?”

“예! 셰프! 오셨습니까.”

“여기, 프랑스에서 온 반유현 셰프. 내가 많이 얘기했지, 한번 주방에 모실 거라고.”

“아…….”

톰슨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이름을 들어봤다는 표정이었다.

다만, 내 나이가 저들의 생각보다 훨씬 어려서 그랬는지, 내가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반유현’일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톰슨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머릿속에서 나를 엄청난 베테랑 셰프로 그려 놓았을 테니 말이다.

나를 행사관계자쯤으로 봤던 모양인데, 나를 보는 저들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내일 우리 셰프들 전부 모아서, 반유현 셰프의 파스타를 맛볼 거라네. 내가 받았던 영감을 자네들한테도
주려고. 하하! 그래서 반유현 셰프한테 필요한 게 있으면 구비해주려고 잠시 주방에 내려온 거야.”

“아, 그럼 편하게 주방 이용하시라고 저희가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톰슨은 주방을 비우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사내들은 자리를 내주려 했다.

“아니, 됐습니다. 무슨 요리입니까?”

나는 괜찮다는 표시를 한 뒤에 그 사내들이 만든 요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쉬는 날에도 주방에서 요리 연습을 하는 사내들을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요리 업계의 ‘고인물’로서, ‘뉴비’들의 열정을 보면 저절로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나.

“아, 갈비찜입니다. 한국에서 오셨으니까. 잘 아실 테죠.”

“하하! 그러고 보니, 반유현 셰프가 한국 사람이구나! 맛 한번 봐줄래요? 고향의 맛이 느껴지는지. 이


친구들 우리 주방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막내들이거든요.”

내가 포크를 들어, 잘게 부스러진 고기 중 한 점을 찍어 먹었다.

“뭐, 맛있네요. 근데…….”

나도 모르게 시식 평을 하려던 그때, 이들은 나의 평가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꿀꺽.

저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아무래도, 톰슨이 내 얘기를 입이 닳도록 했던 모양이다.

18 화. 더 파워풀 하게 (2)

펠리지오 호텔 소속 약 40 여 명의 셰프들이 내가 만든 10 가지의 파스타를 차례로 맛봤다.

“꼭 재료로만 맛의 승부를 보려는 분들이 있는데, 요리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들을 잘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일식의 대가들이 칼질 한번 한 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횟감에 칼이
지나가는 결마다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고요. 칼과 칼질이 그렇듯이,
파스타 면을 볶는 프라이팬과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파스타를 맛본 셰프들은 수많은 궁금증을 가졌겠지만, 난 짧은 설명만을 했다.

내가 가진 기술과 노하우는 말로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했으며, 애초에 요리라는 게 이런


강의형식으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차피 내 파스타를 먹은 저들의 혀와 뇌는 이미 수많은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의 경험을 잘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들이 모두 나의 정교한 파스타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나는 또 새로운 요리를 그들 앞에


보였다.

이미 파스타로 나의 맛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둔 탓인지, 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갈비찜입니다.”

내가 요리의 이름을 말하자, 톰슨이 나의 말을 가로챘다.


“하하. 어제 우리 막내들이 연습하던 갈비찜을 반유현 셰프가 맛보고, 직접 갈비찜을 해주신다고
하셨어.”

어제, 주방에서 요리를 연습하던 사내들의 갈비찜을 먹었었다.

그리고 짧은 시식 평을 남겼을 때, 톰슨은 내게 갈비찜도 같이 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었다.

아마도, 파스타 말고도 다른 내 요리 실력이 궁금했던 터였을 것이다.

그래놓고 톰슨은 내가 선심 써서 갈비찜 요리를 해줬다는 듯이 판을 깔아줬다.

“드셔보시죠.”

나는 역시나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고, 펠리지오 호텔 소속의 베테랑 셰프들부터, 견습생까지 차례로 맛을 보기


시작했다.

“oh…….”

“wow!”

“식감과 소스의 배합이……. 완전 고급 요리 같아.”

어떤 한국인 셰프는 고향 생각이 난다며,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톰슨은 갈비찜을 맛본 뒤에 내가 돌아가지 못하게 프랑스행 비행기를 취소해야 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도 내일 있을 그랜드 테이스팅에 차려지는 다른 레스토랑의 부스를 보니까 한식이 없을 텐데, 이


요리를 해볼래요? 파스타만큼 장난 아니네요. 후…….”

“셰프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도와드리는 입장이니까요. 그런데, 많은 양을


준비해야 되는 만큼 저를 도와줄 보조가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하! 보조, 당연히 필요하죠. 자, 여기서 내일 그랜드 테이스팅에 반유현 셰프를 도와줄 사람?”

톰슨이 한곳에 모여 있는 셰프들을 향해 말했고, 직급이 낮은 셰프들이 나의 눈에 들겠다는 듯이, 서로


경쟁하며 빠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때.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안토니, 미노, 자네들까지 왜 그래? 허허. 참.”

안토니와 미노.

두 사람은 각각 이 호텔의 수셰프와 수석 조리장이었다.

견습이나 인턴이 아닌, 베테랑 셰프들도 하나둘, 나의 보조를 하겠다고 손을 들고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이 저보다 어리고, 경력이 부족하다고 한들, 제 요리 실력이 그보다 부족하다 생각하면
배워야지요. 하하하! 배우는 데 자존심이 필요합니까.”

주방 서열로 치자면 톰슨의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수셰프, 안토니는 턱수염을 만지며 호탕하게 웃었다.
***

그랜드 테이스팅이 시작되기 4 시간 전.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야외 수영장에는 간이 천막으로 수많은 부스들이 차려졌다.

각 부스는 누구나 알만한 특급 셰프들이 각각 맡아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 행사장은 ‘요리신들의 정원’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도 했다.

각각의 부스에서 셰프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 또한 펠리지오 호텔, 톰슨이 배정받은 부스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셰프님! 하하하! 편하게 시켜주시면 됩니다. 제가 보조를 맡기로 했으니까요.”

190cm 의 거구의 덩치를 가진 안토니가 나를 보곤,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덩치와 큰 목소리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안토니! 행사 참여 안 하고 주방을 지킨다면서, 왜 나온 거야? 맘이 바뀌었어?”

“아니. 배추 썰고 있는 거 안 보이나? 이 양반아! 하하하! 오늘은 이분의 보조야.”

“보조? 상당히 젊은……. 누구신데.”

“요즘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요리사!”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주변 부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 쪽을 쳐다봤다.

나에게도 그런 시선들이 느껴져 주변을 둘러봤을 때, 저 건너편 부스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두 남자가


있었다.

‘여기 있었군.’

헨리와 제리 형제.

바로 이 전생에 나와 함께 미슐랭 스타를 거머쥐었던, 나의 동료이자 제자였던 남자들이다.

저들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전생에 두바이에서 헤드 셰프를 맡았을 때, 각각 다른 파트의 조리장으로 처음 만났었는데, 지금 저


둘은 견습생의 신분이었다.

전생에 나를 맨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젊은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이! 멍청이 형제들! 그 속도로 오늘 행사 준비나 하겠냐. 주방에서 설거지만 하다가, 행사라고 숨 좀
트게 해줬더니, 여유가 넘치나 봐?

그들과 눈을 마주치곤 가벼운 눈인사를 하려 했을 때, 저들은 상관의 구박에 다시 고개를 처박고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접시닦이부터 요리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꽤나 힘든 세월을 보냈군.’


그들이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고든 레지의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요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었기에,
나는 높은 확률로 그들이 이곳에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가 직접 고든 레지의 레스토랑을 찾아갈 계획을 했을 정도로, 이전생의


동료들을 만나는 건, 내가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내가 오랜 세월 검증했던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덕을 많이 보기도 했지.’

저 두 명의 형제는 런던과 두바이에서 총 9 개의 미슐랭 스타를 함께 쟁취한 셰프들이었다.

나와 함께 주방을 꾸리기로 결심한 뒤부터, 나의 말을 맹신하고 충성하던 셰프들이다.

그것도 전생에서 10 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그들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던 터였다.

내가 앞서 말하지 않았었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내 사람’이 필요하다고.

문제는, 지금 시점에 저들과 나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는 것에 있다.

갑자기 불쑥 찾아가서 인사를 건네는 것도 웃기다.

전생에 10 년을 함께했던 동료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언제나 철두철미한 저들의 성격도 문제였다.

‘지금의 나를 무시하고도 남을 놈들이다.’

항상 큰 꿈을 가진 형제였다.

매사에 계산적이기도 한 저 형제들은 나의 접근 자체를 꺼려할 것이다.

나에게 미슐랭 스타나, 그에 걸맞는 직급이 있으면 모를까.

내 지금의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톰슨이 나를 직접 저들에게 소개해 주지 않는 이상, 견습생인


자신들에게 접근한 나를 수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선, 이 행사에서 주목을 받아 저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반 셰프! 라스베이거스의 생활은 어떤가?

“뭐, 좋습니다. 너무들 잘해주셔서요.”

루시앙이었다.

전화를 받을 때부터, 그의 목소리가 상기되어있었다.

-다름 아니라, 좋은 소식이 있네.

“직접 전화를 주실 정도면, 엄청난 소식 같은데.”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26 위에 우리가 뽑혔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Best Restaurants)’은 미슐랭 가이드보다 역사는 깊지 않지만,
그 공신력에 있어 미슐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미식가들의 지침서였다.

영국의 유명 레스토랑 메거진이 주최하는 행사로, 수많은 전문가들이 레스토랑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참여해, 그 신뢰도에서도 전 세계 미식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곳에, 오픈부터 메뉴개발까지 나와 함께한 ‘레드 테이블- 더 파스타’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레스토랑을 오픈한 지, 1 년도 아닌, 약 두 달 만에 이룬 성과였다.

‘여섯 번째 삶 중에서 최초군.’

더군다나, 환생한 지 반년도 채 안 된 시점에 얻은 성과였다.

여섯 개의 삶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가장 적은 시간을 들여 얻은 성과였다.

실제로, 30 위권에 등록된 레스토랑의 주요 셰프들 중 내 나이가 가장 어렸다.

-하하하! 뜻밖의 선물이라, 어안이 벙벙한가? 또 다른 선물이 하나 더 있다네.

“어떤 겁니까?”

- 공영방송사인 프랑스 텔레비지옹(France Télévisions)에서 올해의 셰프로 자네와 올리버를 동시에


후보에 올렸다고 연락이 왔네. 어떻게 이런 겹경사가 있을 수 있겠나! 귀국하는 대로 파티를 해야 될 것
같아! 내가 진짜 자네를 잘 봤어! 하하하! 자네는 진짜 복덩이야. 반 셰프!

나에게도 무척 기쁜 소식이었다.

지금 내 몸의 나이가 20 대인 만큼, 루시앙이 내게 전한 소식들은 나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이 아주


파워풀할 것이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이렇게 알려지는 것은, 때때로 미슐랭 평가원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순간, 나의 전생의 동료인 헨리와 제리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반유현 셰프! 이쪽으로 와서 인사 좀 나누시죠!”

때마침 톰슨이 나를 불렀다.

***

“으. 이거 일반 생선이랑은 다른 것 같은데.”

헨리가 제리에게 말했다.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에서, ‘고든 레지 - 라스베이거스’ 부스의 보조 역할을 맡은 그들은 손질이 가장


번거로운 물고기 중 하나인 아귀를 손질하는 중이었다.

“주둥이 먼저 날리고, 아가미 날리고……. 간은 따로 빼놓는다고 했나?”

“껍질부터 벗기는 거랬어.”

“주둥이를 날려야 껍질 벗기기가 쉽지.”

일반 생선과는 생김새부터 사뭇 다른 아귀를 놓고 두 형제는 언쟁을 벌였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광경이 벌어졌다.

“펠리지오 호텔 톰슨 셰프님인데. 무슨 일 있나? 무슨 소리를 저렇게 질러대?”

“내버려 둬. 원래 저 셰프님은 기분 좋은 일 있으면, 저렇게 호들갑 떤다고 그러더라.”

“엥? 저 사람은 누구야?”

저 멀리에, 어쩌면 헐리웃 배우들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이 모여 있었고.

그 중심에 펠리지오 호텔의 총주방장인 톰슨과 한 명의 젊은 사내가 있었다.

톰슨이 기쁜 소리로 뭐라고 외치는데,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셰프들이 그 젊은 사내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뭐지, 저 사람? 박수를 받고 있는데……. 저 슈퍼스타 셰프들한테?”

“우리가 신경 쓸 일이냐. 우리도 언젠가 주목을 받을 거야. 빨리 아귀나 손질하자.”

“아니, 저 사람 저렇게 젊은데, 무슨 일로 저 대단한 사람들한테 박수를 받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때, 헨리와 제리의 바로 옆 부스에 있던 한 셰프가 말했다.

두 형제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엿들을라고 엿들은 건 아닌데, 저 젊은 사람이 한국 사람인데, 저 사람이 이끄는 레스토랑이 이번에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30 위 안에 들었다네요.”

“아…….”

“와……. 우리보다 어려 보이는데?”

그런데 그때, 스타 셰프들에 둘러싸여 있던 그 젊은 셰프가 헨리와 제리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에, 엥? 우리?”

“저 사람이 우리를 가리키는데?”

“뭐, 뭐야. 너 오늘 잘못한 거 있냐?”

“아니 전혀 없는데, 형은?”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가리키다 못해, 그 젊은 셰프는 헨리와 제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암……. 왜, 또, 무슨 일이냐.”

때마침, 자신들을 구박하던 조리장이 눈을 떴다. 두 형제가 아귀를 손질하는 것을 감독하다가 잠깐 눈을


붙였었는데, 소란스러움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보세요.”

헨리가 턱 끝을 움직여 부스의 앞을 가리켰다.


“뭐, 뭐야! 저분들이 이쪽으로 왜와? 너네 무슨 사고 쳤어?”

그들이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건, 오늘 이곳에 초대된 모든 스타 셰프들이 헨리와 제리가 있는


부스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19 화. 모든 시선이 나에게(1)

저 멀리 ‘고든 레지-라스베이거스’의 부스에 헨리-제리 형제가 경직된 상태로 서 있었고, 나와 고든


레지, 그리고 톰슨은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20 대의 나이에 레스토랑을 지휘하는 셰프로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기란 쉽지 않죠.
저도 당신의 나이 때엔, 주방 구석에서 양파를 썰고 있었으니까요.”

현재 미슐랭 스타 11 개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탑 셰프, 고든 레지의 말이었다.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운 뒤에 말을 덧붙였다.

“하하하. 톰슨의 손님이기도 하고, 최연소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스폐셜 유망주 셰프가
저희 부스를 둘러보고 싶다는데, 저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지요.”

고든은 내 두 번째 삶에서 나를 가르친 셰프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요리사의 인생을 살아가는 매번의 삶마다 등장하는
고정출연자이기도 했다.

‘실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지.’

환생‧회귀를 한 내가 매번 미래를 바꾸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전생에 이름을 떨쳤던
셰프들이 이번 생에는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는데, 고든 레지는 항상
세계 정상급 셰프의 자리를 차지하는 셰프였다.

‘출연을 너무 빨리하셨군.’

지금까지의 삶을 살면서 그와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많지만, 일단은 뒤로 미루었다.

남다른 사업수완과 실력을 갖춘 그와는, 분명 이번 생에서도 언젠가 또 함께할 일이 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 지금 최우선인 것은 내 앞에 경직된 채로 서 있는 헨리-제리 형제였다.

고든 레지와 지금 깊은 관계를 맺었다가는, 헨리-제리 형제가 나의 밑으로 들어오는 것을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귀(monkfish)라는 생선을 알고 계신가요?”

우리가 부스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서 아귀를 손질하고 있던 헨리-제리 형제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경직된 자세였다.

어느 레스토랑을 가던 견습생들은 오너 셰프 앞에서 엄청난 긴장을 하곤 하는데, 그들도 정확히 그런


자세였다.

뿐만 아니라, 그 옆엔 톰슨도 있었고, 고든 레지가 나와 편하게 대화를 하고 있으니, 저들의 머릿속에선


나 또한 상급자로 인식했을 것이다.

“아귀를 팬에 구워서 각종 채소와 허브로 맛을 낸 소스를 살짝 올려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준비할


겁니다. 원래 행사의 부스에서는 가볍고 간단하지만 대접받는 것 같은, 음식이 먹히는 법이거든요.
거기에 망고 푸딩으로 디저트를 더할 겁니다.”

고든 레지는 나에게 요리를 설명한 뒤에, 헨리-제리 형제에게 물었다.

“자네들, 제대로 손질하고 있나?”

“예! 잘하고 있습니다!”

“아, 자네들이 주방에 새로 들어왔다는 그 형제들인가? 둘 다 잘생겼네. 이름이 뭔가?”

고든 레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만 해도 전 세계에 10 개였다.

더군다나 세계적 셰프인 그가 견습생이라는 직급을 가진 직원의 이름을 알 리가 없을 터.

“헨리와 제리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내가 했다.

고든 레지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는 표정이었고, 헨리-제리 형제는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

“저도 아까 부스에서 요리를 준비하는데, 되게 열심히 하시더라구요.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허허. 그래? 이야! 자네들 특급 유망주 셰프의 눈에 들었네. 헨리, 제리 기억해야겠어 나도.”

이 말 한마디로 헨리와 제리 형제에겐 나의 존재가 각인되었을 것이다.

칭찬보다는 구박을 더 받는 견습생의 신분인 저들에게 나처럼 말해준 이는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귀가 손질이 다 끝나질 않아서 요리는 미리 보여드리지 못하겠네요. 어이, 조리장! 여기 반유현
셰프라고,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셰프야. 물어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대답해 드려.”

고든 레지는 친절하게 나의 손을 잡고 흔든 뒤에 말했다.

다른 할 일이 있다는 듯이, 시간이 나면 또 보자는 식으로 나를 자신의 부스에 남겨두고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고든 레지 레스토랑의 그릴 파트를 맡고 있는, 그렌입니다. 천천히 둘러보다가 가시죠. 아직 저희


부스가 완성되진 않았지만. 헤헤.”

“견습, 헨리입니다!”

“제리입니다.”

고든이 나를 소개해준 덕분인지 아까 전, 헨리와 제리를 구박하던 조리장, 그렌은 깍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런데, 나를 앞에 두고도 헨리와 제리를 구박하는 모습이 내 표정을 찡그리게 했다.

“야야, 너희들의 이름은 안 궁금해. 빨리 아귀나 손질해. 이제 시간 없단 말이야!”

두 형제는 곧장 고개를 처박고 아귀의 몸에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귀의 몸에 묻어 있는 미끌미끌한 진액은 초보 요리사들이 손질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그에 따라 두 형제도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그럴수록 그렌의 구박은 거세져 갔다.

“후. 행사라고 데리고 나왔더니! 다시 주방에 내려가서 양배추 손질할래? 내가 직접 해야겠어? 내가


주방에서 칼 가져올 때까지, 손질 안 된 아귀가 남아 있어 봐. 내가 다 할 테니까.”

자신이 남은 아귀를 손질한다는 것은, 도와준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도움이 되지 않으니, 꺼져버리라는 소리. 남은 아귀는 아홉 마리였다.

“딱히 구경할 건 없네요. 헤헤. 이놈들이 아귀 손질하는 게 볼거리는 아니니까요. 뭐, 편하게


구경하다가 가십시오.”

웃긴 건, 그렌이 성질을 내다가도 나에겐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헨리와 제리의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칼이 아귀의 몸을 뚫는 자취가 정확하지 않아졌다.

“도와드릴게요. 가위 좀 주세요.”

전생에, 이들과 함께 얻었던 미슐랭 스타만 해도 9 개다.

지금으로 치면, 내 미션의 대략 3 분의 1 가량의 미슐랭 스타를 얻은 것이었다.

다시금 이렇게 검증된 ‘내 사람’을 구하려면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에게 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려는 나의 모든 행동들은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귀한 나의 옛 동료들이 천대받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여기…….”

얼떨떨한 표정의 제리가 나에게 가위를 건넸고 나는 아귀 손질을 시작했다.

“주둥이, 아가미, 내장 같은 구이 요리에 쓸모없는 건 날려버릴 거 아닙니까?”

아귀를 뒤집은 다음, 입의 한쪽 끝에 가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위로 순식간에 주둥이를 날려버린 다음, 아가미를 잘라냈다.

내장들도 가위로 털어낸 뒤에 잘라냈다.

모든 동작이 하나의 동작같이 연결되었고, 저들의 눈에는 숙련된 미용사가 가위를 다루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양식을 주로 했나 본데. 그렇다면 가위로 손질하세요. 생선을 잘 안 다뤄본 초짜들이 아귀를


손질하기에는 칼보다 가위가 나을 겁니다.”

두 형제가 어벙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너무 빨리 이들을 찾아온 것인가.

“후. 잘 보십시오.”
“예!”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다.

내가 시연할 때 나의 손짓을 바라보는 저들의 눈빛을 보니, 요리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그리고 약간의 놀라움도 보였다. 자신들과 나이대가 비슷한 셰프의 실력이라곤 할 수 없을 정도로 숙련된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가위로 다 손질된 건 이쪽으로 던지세요. 내가 칼로 마무리할 테니까.”

또, 그 눈에는 견습생인 자신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도와주는 나에 대한 고마움과 감동이 담겨 있었다.

“손에 진액까지 묻혀 가시면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이 형제들의 머릿속에는 나의 이름을 확실히 박은 것에 의의를 뒀다.

세계 최고의 주방이라고도 불리는 고든 레지의 레스토랑에서, 이들을 확실하게 내 쪽으로 당기기에는 아직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작 아귀를 손질하는 것을 보여줬다고 마음이 움직일 이들이 아니었다.

‘우선, 이 행사에서 주목을 받는다.’

일단은 이 행사장에서 사고를 한 번 쳐야겠다.

***

내가 다시 부스로 돌아와 불에 가열되던 갈비찜을 꺼냈을 때, 대망의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가 시작되었다.

각자 동경했던 셰프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셰프들의 요리를 먹어 볼 수 있는 행사였다.

전 세계 미식가들이 모인 것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와, 전에 주방에서 먹었던 갈비찜보다 맛이 더 깊습니다. 백김치까지…… 이건 뭐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나의 보조를 하겠다고 부스에 나와 함께 서 있던 안토니가 말했다.

“달달하면서 약간의 점성을 가진 갈비찜 소스에, 고기가 부드럽게 갈라져 찢겨지는……. 마무리로 상큼한
백김치가 입을 개운하게 씻겨주는……. 오늘 보조로 오길 잘했습니다. 하하하하!”

“이 정도라면…….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메인으로 하자고.”

톰슨이 나에게 긴급 제안을 했고, 그에 따라 나의 갈비찜과 백김치가 펠리지오 호텔 톰슨의 부스에서 메인


요리를 맡게 되었다.

각 셰프에게 배정된 부스는 행사에 모인 세계적인 미식가들에게 자신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요리를
선보여 홍보 효과를 챙길 수 있는데, ‘천재 셰프’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를 앞세워, 강력한 나의
갈비찜을 메인으로 선보인 뒤에, 레스토랑의 메뉴를 홍보하기보다 펠리지오 호텔 자체를 홍보하려는
톰슨의 의도였다.

쉽게 말해, 내가 펠리지오 호텔의 소속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이미지와 실력을 이용해 자신의


레스토랑을 홍보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세계적인 셰프들과 미식가들에게 내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허허허! 반 셰프님도 곱상하게 생긴 게, 팬들이 많을 것 같은데?”

입장하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안토니가 나에게 말했다.

“제가 무슨 할리웃 스타도 아니고, 미국에서 절 알아볼 사람이 있겠습…….”

“꺄아아! 오빠 한국에서 왔어요!”

내가 무심하게 대답하려던 찰나에, 세 명의 여성이 우리 부스를 덮쳤다.

특이점은 세 여성 모두, 동영상 촬영 전용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풉! 없기는. 주세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안토니가 피식 웃더니, 여성들에게 카메라를 건네받는다.

“골목가게 때부터 팬이었어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진짜 축하드려요! 한국에 오빠 난리도 아니에요!


오빠 요리하는 거 유튜브에 올려도 되죠?”

“저도요! 오빠 근황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유튜브에 올려도 될까요?”

“유튜브, 좋은 취지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죠. 이건 제가 한 요리인데 드셔보시죠.”

내 손을 꼭 부여잡고는 호들갑을 떨어댄다.

톰슨 특유의 호들갑은 이 여성들에 비해선 아주 약과였던 것이다.

그러곤 작은 접시에 담겨 있는 갈비찜 한 점을 먹고는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크헉! 와아아! 진짜 대박!”

“와! 우리 엄마, 할머니가 한 것보다 맛있잖아.”

“반유현 오빠, 아니, 반유현 셰프님! 와! 진짜 대박!”

그런데 내 관심을 끌었던 건, 이 여성들이 아니었다.

‘뭐지.’

하얀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 수십 명이 여성들의 뒤를 기웃거리더니 내가 있는 부스를 중심으로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톰슨의 제자들인가.’

내가 프랑스에서 꽤나 잘나가는 파스타 집의 수셰프이고, 그 레스토랑이 월드 베스트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들, 방금처럼 한국인이 아니고서야, 라스베이거스에서 내 얼굴을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 부스의 주인인 톰슨의 제자들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는 명문 요리 학교의 교수 출신이었으니까, 이런 대형 행사에 그의 제자들이 감사 인사를 전하러 얼굴을


비출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소문 좀 냈어요. 이 동네 셰프들한테.”

그런데, 내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안토니가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만 10 년을 일했거든. 친구가 좀 많아! 허허허! 내 친구들한테 자네 음식 좀


먹어보라고 연락을 돌렸습니다!”

족히 오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허허허허! 반유현 셰프님이 보여주신 파스타랑, 갈비찜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이렇게나 많은 셰프들이
모였네요! 갈비찜이 동날 것 같으니까 추가분을 준비하셔야겠습니다! 하하하!”

안토니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얀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줄을 서자, 행사에 참여한 일반인들 또는 기자, 미식가들이 우리의 부스에
주목했다.

미술품 전시회에서 수많은 화가들이 하나의 그림 앞에 서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그림은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저긴 뭔데?”

“무슨 셰프들이 줄을 저렇게 섰데?”

“몰라, 다른 행사를 또 하나?”

“셰프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부스인가 봐! 엄청 맛있나 본데?”

‘요리신들의 정원.’이라고 이름이 붙어진 행사장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전생에 나를 도왔던 다른 멤버들도 찾기가 쉬울 것 같다.

그들이 이 행사장에 있다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테니까.

어쩐지 이 번 삶은 전 우주가 나를 돕는 느낌이다.

20 화. 모든 시선이 나에게(2)

“안토니! 어디 갔어! 반유현 셰프님? 이게 대체 무슨 일…….”

잠시 부스에서 떨어져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던 톰슨이 헐레벌떡 다시 부스로 돌아왔다.

비정상적일 정도의 사람이 한꺼번에 부스로 몰리니 무슨 사고가 일어난 듯싶었던 것이다.

불안해하는 그의 눈동자가, 내가 서 있는 부스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셰프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나의 말에 톰슨의 눈동자는 더 빠르게 흔들렸다.

수많은 경험이 있는 베테랑 셰프인 그였지만, 세계적인 행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부스에 문제가
생겼다니 그 초조함과 불안감을 감출 수 없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왜…….”

사람들이 이렇게 몰렸음에도 나의 평온한 표정이 그를 더 혼란케 한 모양이다.

“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 역대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에서 이런 적은…….”

“스물다섯 명, 그 이후의 사람들한테는, 지금 당장 요리를 대접할 수가 없습니다. 셰프님께서 직접 라인


정리 좀 해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 줄이……. 단지, 우리 부스의 요리를 먹기 위한 줄이라고요?”

벌써 이 행사에 참가한 지 5 년째, 다섯 번째인 톰슨.

세계적인 셰프들의 요리를 한 공간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그랜드 테이스팅’을 기획한 기획자의
의도일 터인데, 단 하나의 부스가 ‘독점’하다시피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가 처음 겪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하……. 대체 이게 무슨…….”

깊은 생각에 빠진 듯이 톰슨의 초점이 흐려졌다.

그때, 안토니가 부스의 테이블을 쿵! 찍으며 박스를 내려놨다.

“하하하! 반 셰프님! 고기 가져왔습니다!”

그제서야,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인 톰슨은 부스를 향해 길게 이어진 행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준비한 요리가 모자라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양해의 말이었다.

나는 곧장 박스를 열어 고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찜에는 적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블링이 찬란한 이런 고기는 찜 요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안토니가 주방에서 가져온 고기는 최고급 레스토랑이 쓰는 소고기답게, 마블링, 지방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적당히 끼어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고기는 스테이크를 만드는 것에는 최상급의 재료겠지만 찜요리에는 적절하지 않은
재료였다.

“저희 주방은 고기를 들일 때에, 고기의 질과 신선도를 확인하는 전문 직원이 있을 정도로 재료를
섭외하는데 정성을 다합니다. 이 고기가 최고라는 건…….”

“이 고기가 최고의 고기라는 건, 스테이크 요리를 할 때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나의 단호한 대답에 안토니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저희 레스토랑은 주로 그릴을 이용해서 소고기를 요리하는 터라, 대부분의 소고기들이 이


정도의 단백질과 지방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갈비찜을 추가로 요리해 선보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스테이크와 같은 구이용 고기를 찜으로 요리했다가는 찜요리 특유의 고급스러운 식감을 표현할 수 없으며,
그릴 위에서는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표현해주던 마블링이 찜통 안에서는 녹아내려 소스를 느끼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더군다나, 지금 가져온 고기는 식감과 맛을 살리기 위해 각종 향신료나 허브로 미리 재워둔 고기도 아닌,
생고기 그 자체였다.

여러모로 내가 만든 갈비찜을 먹기 위해 줄 지어선 사람들에게 완벽한 요리를 선보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하하! 이거, 10 년 동안 이 행사를 봐왔는데, 이런 관심은 처음입니다. 저 셰프 친구들이 조리복만 안


입고 있었어도,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제가 괜히 오바를 했나 봅니다. 제
친구들에게도 반 셰프님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허허…….”

안토니의 말대로,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우리의 부스 앞에 일렬로 줄을 지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미식의 축제인 그 현장에서 수많은 셰프들의 관심을 받는 부스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미식가들과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장의 요리는 모두 소진되었지만 줄지어있는 저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갈비찜은 포기, 더 빠른 요리가 필요하다.’

“메뉴를 바꿔야겠습니다.”

미식의 성지로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는 이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몸담고 있는 셰프들과 전 세계 각지에서


온 미식가들에게 나의 요리를 확실하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저렇게 길게 이어진 행렬 안에 전생에 나와 함께했던 내 동료들이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내 이름을 세계적인 미식가와 셰프들에게 확실하게 알릴 기회이기도 하지만, 이번 생에서도 그들과의


접점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레스토랑과 특급호텔에서만 10 여 년이 넘는 요리 경력을 가진 안토니가, 방송이나 대회가 아니고


손님들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것에 즉흥적으로 요리를 해봤을 리가 없었다.

안토니는 습관처럼 회의적인 말을 뱉었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어떤 요리를 하실 겁니까. 그릴을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허허.”

안토니의 몸에 배어버린 습관에 의해 나온 말은 그새,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해있었다.

나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이 순간 쑥스러웠는지, 말끝에는 웃음을 흘렸다.

“이 고기가 그릴용 고기라고 해도, 이 행사를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에게 스테이크를 선보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고기를 굽는 것도 실력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지만, 스테이크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진부함을 지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미 저 건너편에 있는 부스에선 스테이크를 굽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 어떤 요리를?”

안토니의 호기심은 또다시, 나에 대한 기대로 변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맛본 나의 파스타와 갈비찜, 그리고 백김치는 그의 마음에 사무치게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책상도 튀기면 맛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쇠고기가스……?”

“예, 맞습니다. 소고기를 한번 튀겨보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안토니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짓고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

“최연소! 월드 베스토랑 셰프, 반유현 셰프님께서, 2 부 요리로 규카츠를 선보이실 예정입니다.”

규카츠(牛カツ).

쇠고기가스, 비프가스라고도 불리는 음식이며, 말 그대로 소고기를 튀긴 음식이다.

최상급의 소고기를 이용해, 빠른 시간 내에 요리 할 수 있으면서도 스테이크는 아닌, 여러모로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요리였다.

“펠리지오 호텔의 특별 게스트! 특급 유망주 셰프, 반유현 셰프의 요리,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대학교 강단에 오래 섰던 그의 경력 때문인지, 그의 언변과 발성은 사람들의 뇌리에 확실히 꽂힌 모양인


것 같았다.

톰슨의 말은 사람들이 줄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

“엥? 2 부 요리?”

“갈비찜을 만든 셰프가 또 요리를 선보인다는 거지?”

“그런가 봐! 다시 줄 서자!”

앞전에 나의 갈비찜을 맛봤던 셰프들과 미식가들이 다시 행렬의 뒤로 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놀이공원에서, 어린아이들이 재밌는 놀이기구를 내리자마자 다시 줄에 서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더해, 요리 연구가이자 셰프로 꽤나 높은 권위를 가진 톰슨의 상기된 목소리가 줄 서 있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대체 뭔데, 여기가.”

“펠리지오 호텔 톰슨이 또 인맥으로 한 건 했나 보네. 특급 게스트라니.”

그에 따라 ‘요리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그 행사장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서 있는 부스의 분위기가 그릴이 달궈지듯이 계속해서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마르코! 자네도 거기 서 있는 거야?”

마르코 스톤, 고든 레지, 에리 리퍼트 등 ‘그랜드 테이스팅’에 정식으로 초대되어 각 부스를 맡고 있는


세계적인 셰프들조차 나의 부스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까 톰슨이 말한, 그 셰프 아니야? 프랑스에서 맛본 파스타가 말도 안 되게 정교해서 초대했더니,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을 수상했다는…….”

결국에, 이 행사장 전체에 있는 대부분의 스타 셰프들이 나의 부스에 줄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우리 부스에 줄을 서는 광경이 또 한 번 벌어졌다.

100 년을 넘는 요리 인생 동안, 나도 이 행사에 많은 참여를 해봤었는데, 내가 미슐랭 스타를 10 개 이상


소지하고 있던 적에도 못 누려본 인기이자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행사장에는 대부분의 셰프들이 미슐랭 스타를 10 개 이상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의 나처럼, 특급 셰프들 사이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셰프에 대한
호기심이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또 그릴파트장 아닙니까. 셰프님. 이곳에 저만한 보조가 없을 겁니다! 허허허!”

고기의 겉 부분을 살짝 구워, 고기 특유의 향과 맛을 살린 뒤에, 머스타드 소스를 발라 감자전분과


밀가루를 섞어 묻혔다.

“튀김을 하실 건데, 빵가루를 입히기 전에, 밀가루에 감자 전분을 섞어 사용하는 게, 식감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토니는 실제 나의 보조이자 제자가 된 마냥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호기심을 품었다.

“안토니 셰프님 말씀대로, 감자전분이 추가되면서 튀겨졌을 때, 식감과 고소함을 살릴 수도 있지만,


감자전분의 분자 크기가 소고기 세포의 크기보다 커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습니다.”

“아…….”

질문에 따른 나의 답변을 들었을 때는, 안토니 특유의 호쾌함은 사라져 있었다.

“대체 그 정도의 깊이는 어디서 배우는 겁니까? 세포의 크기라니……. 하하하! 반유현 셰프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저희 레스토랑에 있는 견습생들을 다 내보내고, 제가 견습 생활을 해야될 것만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정말. 정말 요리를 시작하신 지 1 년이 안 되셨다고요?”

나는 안토니의 질문에 짧게 “예.”라고 대답한 뒤에, 요리를 계속했다.

감자 전분과 밀가루가 묻어 있는 고기에 계란물을 묻힌 뒤, 빵가루를 입혔다.

그리고 튀김기에 빠트렸다.

치이이이익!

낮은 온도로 먼저 익힌 뒤, 높은 온도로 튀겨낸 규카츠가 나왔고 나는 그것을 한입에 넣기 좋게 썰어 놨다.

겉은 바삭하게 잘 튀겨졌지만, 속은 선 분홍빛을 띠는 소고기의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이 연출되었고 나는


그것을 곧장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 사람당 한 점씩. 미리 만들었던 백김치도 함께 곁들어 주었다.

“와우! 바삭함, 고기의 풍미, 튀김의 고소함……. 기계가 맛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맛이 정교해.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느낌이야.”

“대단해, 한국의 반유현 셰프라고?”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의 수셰프래. 이 요리는 그의 특기가 아니야. 그가 만든 파스타도 먹어보고 싶군.”

음식을 맛본 사람들의 표현을 달랐지만, 대개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이 말하고 있는 한 명의 셰프에게 주목했다.

“대단하시군요.”

노부 마츠로. 일식의 세계화에 앞장선 일식의 대가이자,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을 3 곳이나 가진


셰프였다.

이곳에 있는 다른 셰프들에 비하면, 그의 인지도와 그가 가진 미슐랭 스타의 수는 떨어지지만, 내가


그에게 주목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의 밑에서 요리를 배우고 시작한, 나의 옛 동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의 부스에 줄을 섰다는 것을 알고부터 그 주변을 계속해서 찾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찾던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저기요, 셰프님!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어요?”

몸집이 작고 왜소한 동양인 여성이, 규카츠를 한입 베어 물더니 영어로 내게 물었다.

낯가림과 부끄러움 따위는 전혀 없는 당당한 물음이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는 욕구가 아주 강한 여성이다.

“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나는 이 여성의 국적과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키무라 메이. 도쿄 출신의 여성으로 ‘일본 똑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었다.

아시아 지역에 있는 내 레스토랑의 총괄역할을 맡은 그녀이기도 하고.

헨리-제리 형제에 버금가는 충성도와 실력을 겸비한 여성이다.

나의 유창한 일본어에 놀란 듯, 그녀가 일본어로 내게 말했다.

“일본 사람이세요? 이거……. 배우고 싶어요. 셰프님. 같은 튀김인데 왜 다르지…….”

지금은 주방에서 재료 손질을 도맡아 하는 인턴에 불과한 직급을 가졌지만, 나는 그녀의 잠재력을 알고
있다.

‘헨리, 제리, 메이. 벌써 세 명을 찾았다.’

21 화. 내 이름 석 자 걸고(1)

“명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레스토랑의 메뉴로 가져다 쓰고 싶을 정도네요.”

세계적인 셰프들은 하나같이 칭찬을 쏟아냈다.

한입에 들어가는 작은 한 점에 다양한 맛이 있었고, 그 다양한 맛들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순서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계적인 셰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던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지금 내 인생의 시간상 효율을 따져
보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 환생 19 년 5 개월 3 일 4 시간 24 분 4 초 전. ]

19 년이 넘는 삶이 남아있었고, 여태까지의 삶과 비교하면 가장 빠른 진도였다.

이 몸으로 환생한 지 1 년도 채 안 돼서, 저들의 머릿속에 내 이름을 각인시킨 것 아니겠나.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로 나의 목표를 이루는데 시간을 상당히 단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바로 이전 생, 다섯 번째 삶에서 운영하던 레스토랑만 스물한 개였다.

각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나의 요리 의도를 구현하고, 주방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 즉, 나를


충실히 따르고 주방을 지휘했던, 각 레스토랑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들만 골라놔도 21 명이다.

앞서도 누누이 말했지만,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확장시키는 것에는 내가 믿고, 나를 따르는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이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을 소모했었다.

인간관계라는 게 원래 예측할 수 없고, 반전의 연속 아니던가. 그에 따라 시행착오도 많은 것이고.

‘100 년을 살아도 헤아릴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지.’

그동안 축적된 빅 데이터와 눈치로 사람을 보는 안목은 남다르겠지만, 나는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검증된 사람들을 다음 생에, 다음 생에, 두고두고 사용했었다.

마침 세계적인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에 따라 그들의 밑에서 요리를 시작했던 나의 ‘옛 동료’


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유현이라는 이 몸으로 환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 3 명을 벌써


만났다는 것은,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나의 요리를 맛보이고 인정받았다는 것에 비할 만큼 효과적이고
파워풀한 일이었다.

“일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계신, 마츠로 셰프님의 주방에 남아 있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으신가요?”

다만, 접점을 만들었을 뿐이지, 옛 동료들이 아직은 나와 함께한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다음은 계획되어 있었다.

***

펠리지오 호텔 그룹의 회장부터, 실무를 담당하는 총지배인까지 모든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회의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단 한 명, 반유현이었다.

“톰슨, 어떻게 반유현이라는 사람을 초대한 건가?”

모든 간부들의 의문점은 일단,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런 경력과 업적이 없는 한국인 셰프를 호텔의 주방에 초대해 요리를 시켜놨더니, 다음날 그 셰프가
몸담고 있는 레스토랑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선발된 것.

뿐만 아니라 그는 세계적인 규모의 미식 축제, 그 행사 현장을 뒤집어놓고 갔다.

덕분에 톰슨의 입지는 자동으로 올라갔다.

“톰슨, 진짜 대단하긴 하네. 자네의 안목이, 최고 연봉을 주면서 자네를 선임한 우리도 대단하고.”

펠리지오 그룹의 회장 리처드가 말했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그의 농담 섞인 어조에 직원들이 환하게 웃었다.

“말 좀 해보게 톰슨, 대체 뭘 보고 그렇게 대단한 원석을 발견한 거야? 아무런 경력도 없는 동양인을
호텔 주방에 초대해 강의를 시켰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건가.”

리처드는 톰슨의 안목이 대단하다며, 연신 그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톰슨은 오히려 그런 말에 부끄러워졌다.

실제로 자신은 유현의 파스타의 세밀하고 정교한 맛에 깊은 영감을 받아, 자신의 직원들에게도 그런
영감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고, 그런 영감을 만들어 준 유현에게 요리 업계의 선배로서 좋은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와의 커넥션을 만들었다기보다, 그냥 단순한 이유였다.

“저도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천재였습니다.”

“너무 겸손해도 탈이야. 그런 대단한 천재와 커넥션을 만들었다는 건, 그리고 그 천재를 이용해 우리
호텔의 인지도를 확 올려놓지 않았나.”

“실제로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맛본 사람들이라면, 느꼈을 겁니다. 그냥 천재의 느낌이 아닙니다. 마치…
…. 비유하자면, 수십 년, 수백 년간 요리를 연구한 베테랑 중에서도 최고 베테랑 같았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가진 그였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노련함과 능숙함으로 요리를 해내던 그.

톰슨은 그 날의 기억이 선명했다.

‘예정에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원래 하던 메뉴인 갈비찜과 성질이 전혀


다른 새로운 메뉴를 선보였지.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어.’

그 당시엔 오히려 톰슨 본인이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었다.

“그래서, 톰슨,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건가.”


“어떤 사태를…….”

“어떤 사태긴, 우리 호텔에 최강의 맛집이라는 타이틀을 걸어준 셰프를 그냥 놓칠 텐가?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세계적인 미식가들만 몇 명이야. 셰프들은 몇 명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를 노리고 있을
텐데, 자네가 선수 쳐야지. 자네가 반유현을 이쪽으로 먼저 불렀으니까, 다른 진영보다는 승산이 있을 것
같네.”

“저도 그러고 싶지만, 감히 제가 담을 정도의 천재가…….”

“자네는 아직도 교수의 버릇을 못 고쳤어. 자네는 이곳에서 연봉을 받는 직원이야. 좋은 말로 하면 전문


경영인 정도는 되겠지. 매출에 목을 매야 돼. 매출에 목을 맨다고 생각하면 반유현이를 데려와야 되나?
데려오지 말아야 되나?”

리처드 회장은 보다 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천재이고 말고, 그를 키울 수 있든 말든, 상관없어.”

회의 시작할 때, 농담이 섞인 목소리와는 정반대였다.

“지금 받고 있는 연봉의 두 배 제시해. 최대 세배까지 승인하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호텔들 사이에서 맨몸으로 레스토랑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때아닌 복이 굴러들어왔어. 당연히 무조건
잡아야 되지 않겠어?”

리처드는 톰슨에게 확실하게 지령을 내렸다.

“우리 펠리지오 호텔에게 엄청난 기회야.”

***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가 끝났고, 그다음 날.

프랑스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까지 약 7 시간가량 남았을 때였다.

“이번 반유현 셰프의 파워풀함에, 행사장에 있던 모두가 감동했습니다. 파스타, 갈비찜, 백김치, 규카츠
……. 모두 군더더기 없는 요리였습니다. 덕분에 저희 펠리지오 호텔의 레스토랑도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번의 행사에서 저희 펠리지오 호텔이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모두 반유현 셰프 덕분입니다.”

톰슨은 며칠을 함께 했음에도, 나에게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입이 닳도록 나를 칭찬했다.

그리곤,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목소리를 낮게 깔아 말했다.

“음. 공식적으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와 어떤


계약으로 일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저희 ‘더 펠리지오’에서는 기본 연봉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사측과 얘기가 다 끝난 이야기입니다.”

펠리지오 호텔 1 층에 위치한 ‘더 펠리지오’는 톰슨이 총주방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호텔 자체는 역사가 깊지만, 정통성이 있는 레스토랑은 아니었고, 1 층의 쇼핑몰 한 공간을 개조해


레스토랑으로 만든 것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최근 트렌드가 미식이었고, 그에 따라 펠리지오 호텔도 투숙객들에게만 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차린 것이었다.
관광객들을 자신의 호텔로 유치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였다.

그 투자 중 하나로, 펠리지오 호텔은 톰슨에게 고액의 연봉을 제시해 ‘더 펠리지오’의 첫 헤드 셰프로


선임했다.

톰슨은 뉴욕 명문 요리학교 CIA 의 교수 출신이었고, 수많은 스타 셰프를 배출해낸 사람이었다.

펠리지오 호텔 그룹은 그의 인맥을 통해 셰프 군단을 만들라는 미션을 내줬던 것이다.

“최대한 자유롭게, 반 셰프의 요리 커리어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해 드리겠습니다.”

나에게 이 제안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루시앙이 어떤 제안을 할지 궁금하군.’

사실상, 그랜드 테이스팅에서 내가 선보였던 요리의 맛과 그 화제성을 생각하면 이 제안이 끝이 아닐


것이다.

이미, 나의 명함을 가져간 셰프들과 외식업계 관계자만 해도 수십 명이었다.

그에 따라 나를 ‘현재’ 붙잡고 있는 루시앙의 제안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가 할 제안의 질을 높이기 위해 톰슨에게서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내려 했다.

“저는 이제 요리를 갓 시작한, 초보 요리사입니다. 물론, 그대로 믿는 분이 없겠지만요.”

“초보보다는 천재 요리사가 어감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뭐 아무튼, 제안은 감사드리지만 아직 제가 돈을 쫓으며 요리를 하기엔,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요리가 가진 숭고한 예술의 가치에 사무친, 초보 요리사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거대 자본이 투자된 메이저 레스토랑의 셰프보다, 작은 주방이더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게
훗날 제 요리 실력을 쌓는 것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의 목적은 미슐랭 스타이기도
하지만, 펠리지오 호텔의 반유현이 아닌 반유현 그 자체가 되고 싶습니다. 저만의 표현방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런 요리사…….”

톰슨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내가 원하는 답변을 뱉어냈다.

“어떤 셰프든지, 그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셰프가
되고 싶죠. 흠……. 그렇다면 타협점으로, 반유현 셰프의 이름을 내건 메뉴를 하나 만드는 게 어떨까요.
스폐셜 메뉴이자 특별메뉴로요.”

루시앙이 맨 처음 나를 섭외하려 했을 때 내게 그랬듯이, 톰슨도 파격적인 제안을 내걸었다.

연간 4 천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 라스베이거스, 그 중심에 있는 호텔의 레스토랑에 나의


이름을 내건 메뉴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회사 측과 협의는 해봐야 할 사항이지만, 제가 책임지고 추진해보겠습니다. 반 셰프께서 가진 화제성과


실력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승인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족할만한 표정을 보이자, 톰슨이 고개를 숙였다.


“후……. 사실, 반유현 셰프……. 제 직업은 사실상, 당신을 섭외하는 것이지만. 양심의 가책이 너무나
느껴집니다. 넓은 바다를 헤엄쳐야 할 돌고래를 수족관에 가두는 느낌…….”

“됐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곧장 끊었다.

끝까지 들어보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 말을 그가 뱉게 된다면, 톰슨이 회사에 가질 죄책감을 생각했다.

“마지막에 하실 말씀, 전 못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갈 생각도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예? 그게 무슨 말씀…….”

펠리지오 호텔 그룹의 레스토랑, 총주방장 톰슨에게 이 정도의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다음


스텝은 수월해졌다.

내 새로운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부터, 내 옛 동료들을 다시 섭외하는 것까지 말이다.

22 화. 내 이름 석 자 걸고(2)

나는 다시 프랑스 파리로 돌아왔고, 지금 내 앞에는 루시앙과 올리버가 앉아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아니, 사실 예상을 못 한 거지. 우리가 너무 안일했네. 거만하기도 했지, 천재


셰프의 가치를 우리만 알아본다고 생각했어. 하하하! 베가스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 레스토랑의
셰프가 인정을 받았다니,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구만.”

그리고 우리 세 명은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랜드 할렌 호텔 그룹, 총 지배인 ……. ]

[ MGM 호텔, 일식 레스토랑 노하리, 총주방장 ……. ]

[ 330 만 구독자 유튜버 앨른 ……. ]

[ 미슐랭 1 스타, 뀌셩 오너 셰프 ……. ]

[ 미국 방송사 FOX, ‘더 셰프’ PD 스티븐 리 ……. ]

나에게 온 수많은 메일들이 나열되어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나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던 사람들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제가 어떤 제안을 받게 되더라도, 루시앙 셰프님께 제가 받은 제안을 말씀드리기로 했었잖아요.”

루시앙은 내가 라스베이거스로 떠나기 직전, 내가 그곳에서 어떤 제안을 받든지 간에 그 제안을 승낙하기


전, 자신에게 먼저 말해 달라고 했었다.

나를 잡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으니, 자신에게도 기회를 한 번 달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톰슨에게 받았던 제안을 모두 루시앙에게 말해줬다.

“필라지오 호텔그룹에서……. 연봉 두 배와 자네의 이름이 들어간 스폐셜 메뉴를 제안했다고?”


톰슨의 제안이 구체적인 계약서로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로지, 톰슨이 나에게 했던 제안만을 가지고 루시앙과의 협상에 나섰다.

“맞습니다. 연봉을 두 배를 제시한 것 보면, 아마도 세 배까지도 염두에 뒀을 겁니다.”“세 배라…….”

“물론, 제가 연봉을 올려달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톰슨의 제안을 이용해 루시앙에게 얻어내고자 하는 바는 단 한 가지였다.

“톰슨 셰프님이 제게 제안했던 것은 연봉만이 아닙니다. 제 이름을 건 특별메뉴를 만들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셨었습니다. 지금의 저에겐 돈과 이름값을 선택하라면, 셰프로서 이름값을 올리는 것을
선택할 겁니다.”

나의 말에 루시앙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다음에 할 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루시앙 셰프님께서 다음에 오픈하실 레스토랑의 이름에, 제 이름을 추가해주십시오.”

“커헉!”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총주방장 올리버가 물을 뿜어냈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흠. 유감스럽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레스토랑을 새롭게 오픈할 계획이 없다네. 지금 당장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서, 레스토랑을 새로 오픈할 여력이 없다네.”

루시앙은 나의 제안을 선뜻 수락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듯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저도 지금 당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루시앙의 말처럼 내가 오픈부터 메뉴 개발에 참여했던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 주방의 안정화에 더 힘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픈 초기인 만큼 맛의 퀄리티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것에 도움이 되기에, 나도


힘을 보태야 하는 상황인 것도 맞다.

다만, 나에게 온 메일들을 보면 나에겐 수많은 선택지가 생겼다.

그 선택지들을 거스르면서 다음 스텝도, 루시앙과 함께 갈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 오픈하실 레스토랑의 이름을 ‘레드 테이블-반유현’으로 정해주시고, 그곳의 오너 셰프 자리를


제게 맡겨주시면,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의 맛을 올리고 유지하는 것에 힘을 쏟겠습니다.”

요리를 시작한지 1 년도 안 된 새내기가 미슐랭 스타 셰프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제안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입에서 충분히 나올만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메일을 일일이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기업과 호텔그룹, 자본가들에게도 몇 개의 메일이 와 있었다.

나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여는 건, 지금 나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을 일이었기에 루시앙에게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었다.
“제가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것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아직은 루시앙 셰프님의 이름에
기대 가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나의 이름을 내걸고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나의 인지도는 아직 루시앙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사람들의 눈에 그는 미슐랭 스타 셰프였고, 나는 근래에 주목받고 있는 유망주 셰프였으니 말이다.

“‘레드 테이블 - 반유현’ 그림 괜찮지 않습니까.”

루시앙이 아무 말 없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후……. 자네가 받은 제안들을 나에게 말해줘서…… 자네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고맙네.”

***

“호랑이를 키웠는데, 호랑이가 나를 잡아먹지 않고 이용해먹는 느낌이라네. 나를 잡아먹으면 스스로


사냥을 해야 되니까, 내가 만들어 놓은 집안에 따뜻하게 누워서, 내가 만들어 놓은 것들을 이용하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야. 아주 영악한 호랑이지. 크흠! 그런 호랑이가 누군지 아나 반 셰프?”

루시앙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한 소감이었다.

“내가 쌓아온 ‘레드 테이블’이라는 브랜드의 이름값을 자네한테 빌려주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네. ‘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이 오픈되는 것은 오히려 기쁜 일일 수도 있지. 다만, 먼 훗날에 ‘반유현-레드
테이블’로 이름의 순서가 뒤바뀔까 봐 걱정되는 거야. 하하하.”

“아직 멀었습니다. 파스타 집부터 완성시켜 놓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요.”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한 달입니다.”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의 맛을 끌어올리고, 그 맛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주방에


만드는 기간.

나는 약 한 달의 기간을 내다봤다.

“하, 한 달 만에 가능하다고 보는가? 자네가 뽑아 놓은 조리장들과 그 밑에 있는 셰프들은 성실함과


열정으로는 최고긴 하지만. 실력이 뛰어나거나, 경력이 많은 셰프들이 아니라네, 모두 이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시작한 사람이거나,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셰프들이지.”

“제가 한 달 내내 주방에 붙어 있는다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겨울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미슐랭 가이드는 매년 겨울에 발간된다.

내년 겨울까지는 약 6 개월의 시간이 남았었다.

한 달 동안 주방을 견고하게 만든 뒤에 나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하려 했다.

“자네, 설마…….”

내년 겨울,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되기 전, 루시앙과 얘기했던 대로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을 오픈할
생각이다.

그리고 ‘레드 테이블 - 파스타’ ‘레드 테이블 - 반유현’ 각각 두 개의 레스토랑 모두 미슐랭 스타를
받아낼 생각을 했다.

100 년을 넘게 산 나로서도 꽤나 타이트한 계획이긴 했지만, 이번 생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모든 것을


쏟아내려면 이 정도 계획은 해야 되지 않겠나.

더군다나,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보면 불가능한 계획들도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계획을 짜다 보면, 무너질 확률이 높지 않나? 당장 또 주방의 사람들은 어떻게 편성해
놓으려고?”

“이미 몇 명은 골라놨습니다. 내일 저희 레스토랑 쉬는 날 아닙니까. 세 명 다 내일 도착할 겁니다.”

“세 명?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군데? 대체 지금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가, 반 셰프?”

“원래 그러셨듯이,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잠재력이 충만한 셰프들도, 이미 섭외를 해놨기 때문이다.

“자네 때문에, 쉬는 날에도 출근을 해야겠구만. 대체 누굴 골라놨다는 건지 봐야겠어.”

***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성과를 꼽으라면, 톰슨에게 제안받았던 것이리라.

그에게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루시앙과 협상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에 못지않은 성과들도 있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소개했다.

“여기는 헨리, 제리, 메이입니다.”

수줍게 서 있는 그들을 향해 시선이 쏠렸다.

“어……. 반가워요. 근데 그…….”

이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쉬는 날에 출근한 루시앙과 주방의 셰프들이었다.

내가 다음의 레스토랑 오픈을 위해 직접 골라놓은 사람이 있다는 말에, 그들은 엄청난 호기심을 품고 쉬는
날에도 주방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루시앙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어떤 주방에서 일하다가?”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은 온전히 나의 계획과 나의 뜻대로 만들어질 테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나를 믿는다고는 해도, 나의 선택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이들이 모두 나의 나이 또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노부 마츠로 셰프님의 주방에서 배우다 나왔습니다.”

“저희는 ‘고든 레지-라스베이거스’에서 왔습니다.”

그들의 대답과 함께 주방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노부 마츠로도 그렇고, 고든 레지도 그렇고 세계적인 셰프였기 때문이다.

“오호호! 대단한 주방에서 일하고 왔구만, 노부 마츠로 셰프 하고는 나도 안면이 있지! 자네들 모두 반
셰프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친구들인가 보군!”

루시앙의 상기된 목소리에, 헨리-제리 형제와 미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저희는 견습생을 하다가…….”

“저는 인턴으로 있다가 반유현 셰프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그들의 말에,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때, 내 얼굴에 미소가 깃들어 있는 것을 본, 루시앙이 내게 말했다.

“자네,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지? 웃어?”

***

내가 데려온 이들에 대한 의심은 루시앙과 올리버뿐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난 나의 ‘옛 동료’들에게 주방을 소개해주고 있을 때, 셰프들이 찾아왔다.

“셰프님, 저 사람들을 어디에 쓰실 겁니까?”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가 오픈할 때 내가 뽑았던 조리장들, 최민성, 렌, 에바였다.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전부터, 나에게 무한한 충성심을 보여주던 이들이었다.

다만, 내가 또 다른 세 명의 셰프를 데려오니,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릴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각자의 실력에 맞게, 잘 맞춰 써야지. 대충 구상은 해놨어.”

“저희도 처음 셰프님을 뵀을 땐, 이렇다 할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역할을 맡기실 건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그랬듯이 처음부터 키워서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사람이 아이템도 아니고. 사용한다니.”

“셰프님이 새롭게 오픈하실 레스토랑에 저희가 사용되고 싶습니다.”

최민성이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여기서 평생 파스타 면을 볶을 거였다면, 애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반유현 셰프님이 가는 길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셰프님께 인정받으려면 불과 몇 개월 전처럼, 밤을 새우면서까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는 이런 반응까지 생각했었다.

이것 때문에, 나의 전생의 동료들을 빨리 불러들인 것이기도 하다.

“메기 효과라고 알아?”

수조에 넣어둔 정어리들은 활동성이 떨어져서 얼마 못 가고 죽는데, 그의 강력한 천적인 메기를 수조에
넣어두면 활동성이 올라가서 오히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효과.

이번 생에 처음 만난 최민성, 렌, 에바의 실력을 끌어올리고, 주방의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경쟁심을


부추길 필요가 있었다.

“원래 있던 세 명과,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세 명. 누가 메기고 누가 정어리일지는 아직 나도 몰라.”

수조 안에 있는 정어리들은 고통스럽겠지만, 보다 파워풀한 계획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슐랭 스타를 두 곳에서 한 번에 받을 거야. 내년 겨울. 얼마 안 남았어.”

“예? 미슐랭을 동시에 두 곳……? 그게 무슨…….”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야.”

살아남아라.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그들에게 확실한 동기를 부여했다.

23 화. 긴장할 필요 없어 (1)

“한국에 로또라는 게 있거든?”

“로또?” “라이따?” “로토.” “롯도.”

국적이 다른 여섯 명이 모여서 그런지, 저마다 발음이 제각각이다.

“1 부터 45 의 숫자 중에 여섯 개를 찍어 맞추면 당첨되는 복권이야.”

“요리 그만두고 복권이나 사라는 말씀……?”

주방에서 독설을 너무 많이 했나.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이들의 기가 잔뜩 죽는다.

“너희들의 유대감이나 나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여섯 명을 한 번에 부를 만한 명칭이 필요한 것 같아서.”

“그 명칭을 ‘로또’로 하신다는 말씀……?”

“너희가 여섯 명이잖아. 나쁜 뜻은 아니야. 뭐, 복권처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 이라는 뜻도


될 수 있고.”

총 여섯 명. 일명 로또 육인방의 실력은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영업일에는 퇴근 시간도 정해놓지 않고 요리를 연구했으며, 매주 월요일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면, 이들을 불러놓고 경연을 치르게 했다.

그리고 그 경연이 끝난 뒤에는 우리 레스토랑 근처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이것도 다 공부야.”
이들의 빠른 성장이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효과적으로 쓰일 것이기에 이들에게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지금 이들과 함께 있는 이곳은 미슐랭 1 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 ‘샤탈르’였다.

“이번 주도 수고했고, 맛보는 음식들은 싹 다 머릿속에 새겨 넣어.”

격려 차원에서 이들을 레스토랑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있지만, 셰프로서의 실력 향상은 얼마나 많은 맛을


경험했느냐에 달려 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다른 깊이의 영감을 받는 것은 맛의 경험 차이에 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레스토랑 ‘샤탈르’의 헤드 셰프 피르앙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 땐, 이곳의 셰프가 나와서 자신을 소개했다.

“반유현 셰프께서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직접 나왔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들끼리


서로 안면을 터놓으면 좋은 일이 많을 테니까요. 하하! 실제로 뵈니 더 잘생기신 것 같습니다.”

미슐랭 원 스타를 4 년째 유지해오고 있는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

피르앙이 웃으며 나에게 악수를 건넸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저는 올리버 셰프님하고 런던에서 같이 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리버 셰프님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반 셰프님에 대해 너무 궁`금한 탓에 자리 좀 만들어 달라고 했었는데, 너무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하하! 어? 이분들도 반 셰프님하고 같이 주방에 계신 분들 아닙니까? 여섯 분 모두 정말
성실한 친구들이라고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올리버와의 친분이 있었고, 나에 대한 이야기와 나와 함께 온 로또 육인방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버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피르앙이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제가 식사 시간을 방해한 것 같습니다. 식사 먼저 하시죠. 하하하! 고기는


채끝살이며 그 옆에 곁들여진 버섯은 포타벨라 버섯, 느타리버섯, 송이버섯입니다. 저희 가게에는 총 11
가지의 버섯을 취급합니다. 예약하실 때, 셰프의 추천을 받겠다고 하셔서 제가 직접 골라봤습니다. 맛이
괜찮으십니까?”

“예, 맛있네요.”

로또 육인방이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나와 함께 일하고 배우면서 내가 맛있다고 말을 하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로또 육인방의 요리를 목구멍 아래로 넘긴 적이 없었으니까.

이들은 나에게서 맛있다는 말을 듣겠다는 오기로 똘똘 뭉쳐져 있는 상태였다.

“버섯이 엄청 신선하네요.”

미슐랭 스타를 소유한 레스토랑답게, 내 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다만, 그 맛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모두 머릿속에 그려져 재미는 없었다.


“최민성.”

“에, 예!”

내가 최민성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자 그가 대답했고 자동으로 자신이 느낀 것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버섯은 물에 닿으면 영양분과 맛, 그리고 향이 떨어집니다. 기름과 소스가 묻어있어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지만 맛으로만 본다면, 이 접시에 올려진 버섯에는 물에 데친 버섯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버섯을 물에 데쳐 맛과 향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식감을 살리기 위함인 것…….”

“메이.”

내가 최민성의 말을 끊고 메이의 이름을 부르자, 메이도 길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송이버섯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상처가 나면 진액이 나와요. 셰프가 칼질을 할 때도 마찬가지죠.


그 진액이 품은 특유의 강한 향은 저희 같은 동양인들에겐 매력적이어도,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향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요리에서는 송이버섯을 통째로 물에 데친 것 같아요. 최민성이 말했듯이 구운 버섯과
물에 데친 버섯이 섞여 있지만, 송이는 오로지 데친 버섯으로만 구성되어 있네요. 비싼 송이를 물에
데쳤다는 게 화가 치밀어 오를 노릇이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를 중시한 요리인 것 같습니다.”

“다른 건.”

“채끝살에 곁들여진 레드와인 소스가 조금 독특해요. 꿀이랑 포도? 라임? 어떤 과일을 으깨서 같이 졸인
것 같은데,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고기와 버섯의 향에 산뜻함을 더해서 좋네요.”

그때 내가 피르앙을 바라봤고, 피르앙은 순간 멈칫했다가 탄성을 내뱉었다.

“응? 그…….”

피르앙은 매우 놀란 듯이 말을 잇지 못했다.

올리버에게 듣기로 나와 함께 있는 여섯 명 모두, 나를 따르는 주방 보조이자 제자라고 들었을 텐데


저들이 말하는 수준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재료 손질이나 하던 견습 셰프들이라고 들었을 것인데, 저들이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들은 이미 그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어쩌면, 요리의 맛을 보고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이 자신의 주방에 있는 ‘셰프’라 불리는 이들보다
높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설명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메이가 하나를 놓친 것 같습니다. 레드와인 소스의 어딘가에 분명히, 양파의 흔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파의 단맛이 아니야. 당근의 단맛도 느껴졌어. 확실히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인 것 같습니다
셰프님. 한입에 풍부한 맛들이 있는 게 즐겁습니다.”

뒤이어서는 헨리와 제리가 각각 말했다.

“이 정도 소스의 점도라면, 얼마나 끓였을 것 같아?”

나의 말에 여섯 명이 동시에 포크로 소스를 찍어 먹고는 맛을 음미했다.

피르앙도 뒤이어 나올 답변들이 궁금했는지 숨을 죽이고 가만히 기다렸다.


“수분을 증발시켜 소스의 점도를 조절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감자전분이나, 밀가루 또는 천연 점증제인
잔탄검(Xanthan Gum)을 소량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정답.”

주방 보조라 생각했던 이들이, 식재료와 그 조리법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며, 요리를 한 장본인도 아닌
내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었는지 피르앙은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 웃음의 의미의 절반 이상이 놀라움이었고, 나머지는 경외심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요리 경력이 1 년도 되지 않은 나의 천재성은 워낙 널리 알려진 터라, 놀랄 것이 없지만 나를 따르는 로또


육인방의 실력을 키운 스승이 ‘나’일 것이라 생각하니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저기……. 반 셰프님과 그 밑의 셰프들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피르앙이 우리들의 대화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내게 질문을 던지려 했을 때, 홀의 직원이 피르앙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주방에 뭔 일이 있나.’

셰프가 손님 테이블에 나와 있을 때, 다른 직원이 그 중간에 끼어들어 귓속말을 한다는 것은 이


레스토랑에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주방의 재료가 떨어져 메뉴를 빼야 한다거나, 주방에 작은 불이 났다거나, 예측 못 한 상황이 갑작스럽게


벌어졌을 땐, 실례를 무릅쓰고서라도 주방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반 셰프님. 나중에 커피 한 잔이라도 하면 좋겠네요. 뭐, 이 동네의 요리


동향이라든지…… 할 얘기가 많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뒤에 나올 요리에 대해선 이 친구가 친절히
답해드릴 겁니다. 저는 주방에 급한 일이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귓속말은 들은 피르앙은 굳은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인 뒤에 주방으로 걸어갔다.

내가 생각한 대로 급한 일이 생겼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주방을 향했지만, 로또 육인방의 실력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이 찜찜한 표정이었다.

내가 로또 육인방과 대화하는 것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홀 매니저, 리안입니다. 이제 디저트 준비해드릴 텐데, 메인 요리에 대해 더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로또 육인방에 동시에 나를 쳐다봤고,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이들이 홀 매니저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학습하고자 하는 열정은 그 누가 봐도 대단해 보였을 것이다.

그때, 우연하게도 홀 매니저의 손에 들려있는 주문서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홀 매니저가 피르앙에게 귓속말을 했던 이유와, 피르앙이 급하게 주방으로 걸어간 이유가
적혀있었다.

[ 11 번 테이블. ]

-양송이 크림 소스 & 안심 스테이크

-셰프 특선 버섯 코스.
한 개의 코스요리와 하나의 단품 요리.

-피노 누아르 와인(Pinot Noir Wine).

-시바리스 소비뇽 블랑(Sibaris Sauvignon Blanc).

그리고 두 가지 와인.

“11 번 자리가 저쪽인가요?”

“흐! 에……. 무슨 문제라도……?”

나의 물음에 홀 매니저는 손에 들려있던 주문서를 황급히 몸쪽으로 가져가더니, 나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내가 가리킨 11 번 테이블에는 두 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코스요리와 단품을 동시에 시켰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코스요리에는 소믈리에가 각 단계의 요리에 맞는 와인을 페어링해주는데, 저 테이블은


와인을 병째로 두 병을 시켰다.

와인이 페어링 되지 않는 단품 요리에 곁들여 먹을 와인을 두 종류 주문한 것이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두 명의 사람이 먹고도 남을 요리와 술을 시켰다.’

레스토랑의 창의성과 구성을 볼 수 있는 코스요리와, 셰프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는 단품 요리,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술. 확실하진 않지만, 익숙한 패턴이었다.

레스토랑의 음식을 즐기는 것이 아닌, 평가하러 온 사람들.

그런데, 음식을 평가하러 온 미식가나 비평가라면, 대부분 자신의 소속이나 신분을 밝히기 마련인데
저들은 맛과 레스토랑을 평가할 것처럼 주문해놓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가능성이 높다.’

홀 서버이든, 주방의 셰프든, 요리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정황상 저들의 정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미슐랭 스타, 평가원들이 오셨나 보군요.”

“아…….”

나의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직원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실제로 피르앙이 주방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이유는, 미슐랭 평가원으로 의심되는 손님이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주방 안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 저 안에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로또 육인방의 눈동자도 미친 듯이 흔들렸다.

“너네도 알고 있지? 여기서 평가원들을 만났다는 건, 우리 레스토랑의 차례도 얼마 안 남았다는 거.”

나는 11 번 테이블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계속 쳐다봤다.

요리를 음미하는 게, 범상치 않다.

***

미슐랭 스타를 평가하는 평가원들은 정해진 예산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당연하게도
지역별로 인원을 구성해 레스토랑들을 평가한다.

따라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의 불과 100m 도 떨어져 있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미슐랭 평가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내가 있는 이곳에도 평가원들이 곧 나타날 것이라는 예고편이기도
했다.

“왜 떨어. 자신 없어?”

그 예고편대로, 내가 메뉴 개발부터 오픈까지 참여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도 미슐랭


평가원으로 의심되는 남자 둘이 들어왔다.

로또 육인방을 비롯한 주방의 셰프들도 우리 홀에 미슐랭 평가원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주방의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이들의 경력이 짧은 터라, 그 무거운 분위기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총주방장이나 부주방장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긴장하지 마. 우리가 연습하고 노력했던 방법은 세계 최고야. 그 어떤 주방도 우리 시스템을 따라오지


못한다. 다들 알고 있잖아.”

내가 나지막이 말하자,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다.

“예!! 셰프!”

삐비비빅!

홀에서 주문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울리고, 주문서가 프린팅되어 나왔다.

“내 말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는 새낀 당장 주방에서 꺼지면 되는 거고, 나머지는 요리 시작한다. 오일


A 코스 성게 알 링귀니(Linguine) 파스타, 단품 바질 페스토 파스타 주문 들어왔다. 메인 요리는 내가
직접 맡고, 나머지 요리는 서빙되기 전 나한테 다 가져와.”

“예! 셰프!”

내 오더에 주방의 셰프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섯 번의 삶을 사는 동안 역대 최연소 미슐랭 스타를 거머쥔 사람의 나이가 31 살이었다.

그건 바로 이전 생의 ‘나’였고, 이번 생엔 그 기록을 깨부술 모든 준비, 그리고 타이밍이 갖춰졌다.

띵!

“서버!”
내가 종을 치며 홀 매니저를 부르자, 그가 요리가 담긴 접시를 가져갔다.

매번 느끼지만 이번 생은 정말 기대가 된다.

24 화. 긴장할 필요 없어 (2)

“셰프님…… 부르십니다.”

미슐랭 평가단원들은 맛을 본 뒤에 그 요리의 구성이나 조리법에 대해 책임 셰프와 인터뷰를 진행하곤


하는데, 홀 직원이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리를 총괄한 셰프님께 여쭤볼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 주방에서는 총주방장인 올리버와 부주방장인 나, 둘 중 한 명을 부른 것이다.

홀 직원의 물음에 올리버가 나를 보고 말했다.

“내가 나갈까?”

홀 직원이 그랬듯이, 올리버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묻어났다.

총주방장이라는 커리어를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미슐랭 평가단이 왔으니 그는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요리사로서 적지 않은 경험을 가진 그였지만, 미슐랭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떨쳐낼 수 없는 듯해


보였다.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았던 셰프가 다음 해에 쓰리스타를 유지 못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자살을 하는 사건도


있었으니, 셰프에겐 미슐랭 스타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고, 올리버가 긴장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짓는 올리버였다.

다만, 주방의 총책임자인 자신이 나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씁쓸함도 함께 느꼈을 것이다.

오픈부터, 이 주방을 꾸리고 미슐랭 평가단원의 인터뷰를 하는 것까지, 총주방장인 자신보다 내가 더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을 터였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요리를 시작 한지 기껏 1 년이 된 내가 여태껏 보여준 행보는 충분히 자신을 뒤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어쩌면, 요리에 20 년 가까운 시간을 소비한 자신과 ‘나’를 비교하며 회의감이나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올리버는 요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다.

올리버는 이 레스토랑의 모든 재료의 신선도를 관리 할뿐만 아니라, 나는 그가 이 주방에서


총주방장으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성취감과는 반대되는 감정을 주는
게 나도 영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목표를 위해 최대의 효율을 뽑아낼 뿐이었다.

나는 곧장 홀로 나갔고, 미슐랭 평가원들을 마주했다.


“안녕하십니까, ‘레드 테이블-더 파스타’의 수셰프 반유현입니다.”

“호호. 덕분에 이 식당을 예약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인기가 너무 많으시더군요. 실제로 뵙고 싶기도 했고


요리도 맛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라스베이거스의 현장에 있었거든요.”

미슐랭 평가단이라고 해서 딱딱하고 기계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평범한 손님을 가장하고 레스토랑에 방문하기 때문에, 실제의 손님처럼 행동한다.

“요리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이 모든 코스요리의 구성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왜 구성을


이렇게 하셨는지요.”

이 질문, 지겹도록 많이 들어본 질문이다.

경험상 이 질문은, 미슐랭 스타 평가 항목 다섯 가지 중, 요리에 대한 창의성을 평가하려는 질문이다.

그 말은 즉. 일단, 요리의 맛은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평가원의 말.

“참, 먹으면 먹을수록 뭐랄까……. 대단한 요리인 것 같습니다.”

별을 받는 건 이미 정해진 것 같다.

***

미슐랭 평가원들이 이 레스토랑에 들린 이후부터, 나는 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동시에 얻는다.’

여섯 번의 삶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환생한 지 1 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동시 두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해 두 개의 레스토랑 모두에서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

그 어떤 삶보다 파워풀한 계획이 나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도대체 그게 무슨……. 나는 지금 자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네, 반 셰프.”

“저희 레스토랑에 왔었던 그들이 미슐랭 평가원이라면, 이 지역에 다시 재방문할 것입니다.”

미슐랭 평가단들은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미슐랭 스타를 평가하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니면 그 이상.

확신이 설 때까지 방문하거나, 평가원들을 바꿔서 재방문한다.

내게 중요했던 건, 그들이 다시 이 지역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재방문할 때를 노린다.’

타이밍상 둘도 없는 기회였다.

“이전에 말씀드렸던, 제 이름을 붙인 레스토랑 말입니다.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미슐랭 가이드는 미슐랭 스타를 평가할 레스토랑을 현지의 반응이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미리 선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미리 선정된 레스토랑에 평가원들이 방문하게 되는 데, 이런 평가 시스템에는 예외의


경우가 있었다.

매체에 등장하지 않는 현지의 ‘숨겨진 맛 집’들이 그 예외였다.

평가원들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다 맛이 좋은 집을 만나면, 그 식당이 이미 선정된 평가 대상인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그 식당을 평가 리스트에 임의로 추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외를 만든 것은 유명한 식당이 아닌, 맛이 훌륭한 식당을 소개하는 미슐랭 가이드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오픈을 앞당겨서 바로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근방에요.”

시기상 올해, 미슐랭 평가 대상 리스트가 작성된 이후에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것이었으니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이 미슐랭 평가를 받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레스토랑을 오픈해, ‘현지의 맛 집’으로 만들어 놓고 미슐랭 평가원들이 방문할 수밖에
없는 레스토랑으로 만드는 것.

올해 안에 두 개의 레스토랑에서 동시에 미슐랭 스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었다.

“미슐랭 스타 평가 기간은 3 월에서 8 월. 4 월 말인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내년 겨울에


발간될 미슐랭 가이드에 네 개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꽃 피우려 면요.”

“하…….”

레스토랑 ‘레드 테이블’의 창시자이자, 미슐랭 스타 여섯 개를 가지고 있는 루시앙.

그는 이제 나의 계획이나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선 현실, 비현실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해낸 일들을 보면서, 나의 비현실적인 계획들은 실패해서 잃는 것보다 성공했을 때 얻는 게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덕이었다.

“내년 겨울에 최소 네 개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될 것이라고?”

“제 계획은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더 들어 볼 수 있겠나? 어떻게 주방을 조직할 것이며 메뉴 구성은? 광고나 홍보 같은 건…


….”

루시앙은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무언가에 홀린 듯이 기분이


좋아졌고, 나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캐물었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로또 육인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매출이 목적이 아닌 미슐랭 스타가 목적이기에, 소규모로 오픈할 예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방의
구성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 여섯 명 중에 네 명을 뽑아 주방을 구성하겠습니다.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 생기는 저들의 빈자리는 현재 그 밑에서 보조를 하고 있는 애들을 올리면 될 것 같고요. 물론,
그 또한 경쟁으로.”
내가 이 말을 했을 땐, 로또 육인방의 얼굴에 비장함이 깃들었다.

어떻게든 내 선택을 받겠다는 표정.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들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루시앙도 그것을 느꼈는지, 이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주방의 조직구성에 대해선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린 뒤,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홍보는?”

“홍보도 제가 크게 노력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노트북을 열어, ‘수신함’에 쌓여 있는 메일들을 읽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한국에서의 방송,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의 그랜드 오프닝,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언코크드’ 등
굵직한 행사에서 내 실력을 보여줬을 때, 얻었던 메일들이었다.

[ 그랜드 할렌 호텔 그룹, 총 지배인 ……. ]

[ MGM 호텔, 일식 레스토랑 노하리, 총주방장 ……. ]

[ 330 만 구독자 유튜버 앨른 ……. ]

[ 미슐랭 1 스타, 뀌셩 오너 셰프 ……. ]

…[ 미국 방송사 FOX, ‘더 셰프’ PD 스티븐 리 ……. ]

RPG 게임에서 캐릭터의 인벤토리 창에 전리품들이 꽉 차 있는 것처럼 나의 메일함도 그랬다.

나는 지금 가장 나에게 효과적일 것 같은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 미국 방송사 FOX, ‘더 셰프’ PD 스티븐 리 ……. ]

“더……셰프? 여기서 섭외 요청이 왔어? 지금, 자네한테?”

“예, PD 님과 미팅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더 셰프’라는 프로에 대해선, 루시앙 셰프님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알지! 그런데, 이 프로에서 벌써 자네를 섭외했다는 게…….”

루시앙은 나라는 인간에 대해 제대로 된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나의 일을 추진하는 힘과 속도를 대체 누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도박중독에 걸린 것 같네. 불확실하지 않은 것에 계속해서 내가 가진 것을 걸게 되는……. 그런데,


자네에게 배팅을 했을 때 잃은 적은 없으니, 내가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네에 대한 두려움이겠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며 혼잣말로 자아성찰을 하고 있는 루시앙에게 내가 말했다.

“레스토랑 자리나 알아보러 가시죠. 그리고 외출한 김에, 주방 안에 들어갈 각종 집기류나 홀에서 쓰일
책상하고 의자도 오늘 다 구매해야겠습니다. 오늘부터 오픈 준비를 하는 걸로.”

모든 것이 루시앙의 돈으로 진행될 테지만, 그는 선택권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짓더니, 나를 바라봤다.


“이번에도 기대……해도 되겠나?”

나의 최대 투자자인 루시앙의 지갑을 여는 일에는 딱히 힘을 들이지 않았다.

***

“반유현 셰프님이 최연소 출연자십니다. 아, 원래 천재들은 최연소라는 단어에 크게 기분 좋아하지


않는다던데, 셰프님도 그러신가요? 하하하!”

나와의 미팅을 위해 미국에서 날아온 스티븐 리가 내 앞에 앉아있었다.

미국 방송사인 FOX 의 소속이며, ‘더 셰프’의 제작을 총괄하는 감독이었다.

“미국에서 살았던 기간이 길지만, 저희 부모님 두 분 다 한국 분이셔서, 한국말이 편하실 테니,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하하.”

“아, 예.”

“음,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유현 셰프님의 명함을 요구할 때 뵀지만, 저는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죠. 세계적인 셰프들이 열광하는 20 대의 천재 셰프라. 그것도 한국인……. 사실상
동양인들이 유럽의 주방에서 무시를 당하는 일이 많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 날의 기억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제가 감사하죠. 우선, 저희 프로에 대해서 먼저 설명드려야 될 텐데요.”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더 셰프.

셰프들의 삶을 짧은 다큐 형식으로 영상에 담아내는 방송프로그램이었다.

세계적인 셰프들의 요리와 레시피, 또는 셰프 개개인들의 노하우가 방영되며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성공한 셰프들의 호화로운 사생활까지 방영되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이름 들어 알만한 셰프님들은 모두 출연하셨고요.”

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헬로 키친’, ‘어메이징 셰프’, ‘탑 셰프’ 등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이


줄줄이 탄생한 것을 보면, 전 세계 쿡방 열풍의 시작을 알린 프로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쿡방 열풍의 중심이 되었고, ‘더 셰프’는 미국 내에서 시청률 순위 10 위권 안에 매번


안정적으로 이름을 올리는 프로가 되었다.

“루시앙 셰프님께서도 저희 프로그램 초창기에 출연하셨었죠. 그때가 루시앙 셰프님께서 미슐랭 원스타를
처음 얻으셨을 때 같은데요?”

나의 투자자이자, 레드 테이블의 오너 셰프인 루시앙도 이 프로에 출연해서 이름을 알렸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별명인 ‘악마의 파스타’도 이 방송을 통해 얻은 별명이라고 했다.

“그 별명이 유치하다고 손사래를 치시더니, 지금은 본인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신다면서요? 풉!”

스티븐 리가 루시앙을 놀려댔다. 중년의 루시앙보다 나이는 10 살 이상 아래지만 꽤나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다.
“반유현 셰프님도 원하는 방향이나, 방송에서 쌓고 싶은 이미지 같은 게 있으십니까? 기본 촬영 콘티는
저희가 짤 테지만, 셰프님들께서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매력들을 넣어드리기도 하거든요. 루시앙
셰프님은 본인께서 파스타를 통달한 셰프라고 그 부분을 강조해 달라고 하셨었어요. 악마의 파스타…….”

“스티브, 오랜만에 봤는데 참 짓궂구만. 그만하게나. 내가 졌네. 졌어.”

“하하하!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루시앙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을 직접 스카웃해서 주방에 데뷔시키셨는데,


반 셰프님이 방송에서 부각될 매력 포인트가 뭐 있나요?”

“뭐, 반 셰프의 매력이라 하면 그냥, 천재라는 것? 말 그대로 천재.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천재.”

둘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방송과 일에 대한 얘기를 계속했다.

“저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반 셰프님을 처음 뵀을 때부터 줄곧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반 셰프님의 엄청난


천재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요.”

“방송 특성상 극적인 연출을 위해 과장된 모습을 그릴 텐데, 내가 악마의 파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처럼…… 크흠! 내 생각에 반 셰프는 인위적인 프레임을 씌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음, 거침없이 성장하는 천재? 타고난 능력을 가진 무협지 주인공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거슬리는 것들을 모두 쓸어 담는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반 셰프님의 행보만 봐도 그와 다를 점이 없어
보입니다. 셰프님 말씀대로 반유현 셰프님은 이미지를 만들거나 덧씌울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큰 틀은 있어야겠죠.”

나를 앞에다 앉혀다 놓고 둘이 칭찬을 해대니 내가 딱히 그들의 대화에 낄 틈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하려던 이야기들을 둘이 알아서 하고 있었다.

“마침, 반 셰프님이 본인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계시다니 레스토랑이 오픈되기까지의 과정을
주된 내용으로 해서 영상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천재적인 재능을 온전히 녹여내고 있는 레스토랑이다!
미친 천재가 이 일대의 모든 레스토랑을 쓸어버리겠다……는 식으로……. 하하, 제가 너무 과했습니까?”

새롭게 오픈하게 될 레스토랑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더 셰프’에 출연하는 주된 목적이었다.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이 좋았는지 루시앙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루시앙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PD 님 말씀대로라면, ‘더 셰프’에 제가 담긴 영상이 처음으로 방영되는 그다음 날,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을 오픈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내 이름을 건 레스토랑의 오픈 날짜가 정해졌다.

25 화. 요리업계 슈퍼맨(1)

-반 셰프를 만나게 해준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제작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엄청난 영감을 받았죠.

-베이거스에서 모든 셰프들이 놀랐습니다. 저는 그 바로 옆에 있었는데, 제 요리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인터뷰는 다 땄고, 흠. 편집만 남았지? 제일 큰 문제가 남았네.”


방송사 FOX 의 편집실.

파리에서 반유현 셰프와 며칠간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제작진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그냥 탑 셰프야.”

“그쵸. 요리 실력, 노하우, 레스토랑을 꾸리는 거, 주방에서의 카리스마…… 역대 출연 셰프들과


비교해도 뭐 하나 뒤처지는 게 없네요. 저희뿐만 아니라 그들도 인정을 하는 것 보면…….”

방송 프로그램 ‘더 셰프’의 메인 감독인 스티븐 리와 스텝들의 대화였다.

다큐멘터리 방송의 특성상, 셰프에 관련된 모든 것을 낱낱이 카메라에 담기 위해 촬영 기간 내에는 셰프와


오랜 시간을 붙어 있게 된다.

그에 따라 스티븐과 그의 휘하에 있는 스텝들은 반유현과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확신했다.

“여러모로, 지금까지 촬영된 분량을 보면 확실하게 콘티를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편집 방향을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 애초에 기획했던 대로 ‘거침없이 성장하는 천


재’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방송에 내보내면, 오히려 시청자들한테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애초 우리가 생각했던 기획이랑 실제 반유현 셰프의 모습은 너무 달랐어.”

세계적인 셰프들과 여러 번 촬영을 진행했던 터라, 이들도 셰프의 실력을 얼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주방 안에서, 반유현의 행동과 말은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았다.

그의 몸에 밴 노하우나 재료에 대한 이해도는 그가 이미 세계적인 탑 셰프라고 한들 이상할 점이 없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주방을 휘어잡는 그의 통찰력과 카리스마는 어쩌면 그들보다 한 수 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조미료는 무조건 직접 만들어 사용할 거야. 특히나 스모크 파프리카 가루, 표고버섯 가루, 새우 가루,
다시마 가루 같은 향이 뚜렷한 조미료들. 그리고 요리에 사용되는 허브는 직접 재배해서 사용한다. 손이
많이 가겠지만 그 정성은 결국 맛으로 간다는 거. 이제 그만 말해도 되지 않나?

-예! 셰프!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반유현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쳤다.

셰프라면 누구나 자신의 요리에 있어서 맛을 양보하지 않는다지만, 반유현의 맛에 대한 ‘집념’은 그


어떤 셰프보다 강해 보였다.

“음. 정말로 미숙한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천재라고 한다면, 뛰어난 실력을 뽐내지만 어느 정도 덜
익은, 날 것의 느낌도 조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반 셰프님은 너무 완벽하니까요. 처음의 기획에 맞춰서
최대한 편집해 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한 정도입니다.”

“그러게, ‘천재’라는 것보다 이미 완성된 셰프, 숨어있던 고수, 그런 느낌으로 콘티를 다시 짜야 할 것


같아. 이거……. 우리 기획 뒤집은 적이 여태 한 번도 없었지? 최초네.”

다큐멘터리 형식의 방송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촬영하더라도 그 셰프를 어떤 스토리 라인으로, 어떤


촬영기법으로 영상에 담을 것인지는 기본적인 기획과 그에 따른 콘티가 있는 법.
그 기획을 뒤집는다는 것은 이미 수십 명의 셰프를 촬영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도 최초였다.

처음 기획의 의도와 셰프의 성질이 맞지 않더라도, 그 틀에 셰프를 집어넣는 게 이 제작진들의 특기였는데,


반유현은 자신들이 짜놓은 틀에 넣을 수 없는 존재였다.

‘천재’라는 단어로 형용될 수 없을 만큼,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이미 국장님께 보고한 기획안도 다시 수정해서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제일 문제구만. 예능국 새끼들 귀에 들어가면 피곤해질 텐데. 국장님께서 촬영분을 보셨을라나?”

“예능국이요……?”

이미 모든 촬영은 끝마쳤던 상태이기에, 편집의 방향만을 수정하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예능국 놈들이 ‘라스트 테이블’이라는 프로그램 제작 준비 단계에 있거든. 셰프 열다섯 명을 섭외해서


각 나라의 뭐 어쩌고저쩌고……. 요리 경연하는 프로.”

“그게 왜 문젭니까?”

“그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쓸 만한 셰프들을 찾고 있다고 했거든. 더군다나 국장님께서 예능국


출신이시잖아. 내 생각엔 국장님이 그쪽에 언질을 줬을 것 같은데.”

스티븐의 말에 조감독은 그제 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죠?”

“걔네가 섭외할 열다섯 명 중에 네 명이 제작 투자사에서 밀어 넣은 셰프들인가 봐. 나머지 셰프들은 그


네 명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야. 그 네 명을 대놓고 밀어줄 텐데, 실력으로 될 문제가 아니잖아.
뭐, 우리도 그렇지만 연출과 편집으로 모든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예능국 놈들이니까…….”

미슐랭 스타 셰프 정도의 영향력은 없지만, 요리업계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젊은 셰프들, 즉.


셰프로서 미래가 짱짱한 열다섯 명을 섭외해 경연을 펼치는데, 그중 네 명은 제작 투자사가 직접 꽂아
넣은 셰프들이었으니 나머지는 들러리나 다름없다는 것.

반유현은 그 정도 단계의 셰프들 중에서 누구보다 파워풀하게 요리업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니, 그만한
불쏘시개가 없을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반유현 셰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예능국, 그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국장님을
통해 우리가 반유현 셰프를 촬영한 영상을 봤다면…… 반유현 셰프를 섭외하려고 애타게 달려들 거야.
불쏘시개로 사용하면서 투자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에는…… 반유현 셰프만 한 사람이 없으니까…
….”

“반유현 셰프의 커리어에도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저희 프로그램에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겠네요.”

반유현이 촬영 기간 동안 보여줬던 행동들은, ‘진짜 셰프’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모습들이 많았다.

맛에 대한 집념이며, 열정이며, 주방에서 셰프의 태도나 자세 등 어느 하나 빈틈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반유현이 실제로 보여준 모습이 그랬고, 그것을 그대로 편집해 방송에 방영한다고 한들.

차후에 방영될 ‘라스트 테이블’이라는 예능 프로에서 반유현을 그저 다른 셰프를 띄우기 위한


불쏘시개로 활용한다면, ‘더 셰프’ 팀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희가 라스베이거스 갔다가, 파리 갔다가, 발품 팔아서 노력한 게 얼만데 그 새끼들은 공짜로
그걸 가져가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아무튼. 우리 프로그램의 신뢰도 문제도 그렇고, 반유현 셰프님의 미래도 그렇고 그놈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할 순 없지.”

“이런 건 진짜. 국장님께서 중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발굴한 사람을 그런 식으로…….”

“중재는 무슨,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국장님께서도 반유현 셰프가 ‘라스트 테이블’에 출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실 거야. 반유현 셰프한테 직접 전화를 해야겠어.”

“같은 방송사끼리 출연자의 섭외를 막는 게……. 크흠! 뭐, 그쪽이 먼저 더럽게 시작한 일이니까요.”

그렇게, 대화가 끝마무리 되어갈 때쯤에, 편집실의 문이 열렸다.

“수고들 많네.”

“구, 국장님?”

***

프랑스 파리 먹자골목이라고도 불리는 몽토르게이 거리.

그곳에 빨강, 주황, 노란색이 보기 좋은 비율로 섞여 있는 간판이 걸려있다.

거리에 온통 불어와 영어로 되어있는 간판만이 있었는데, 한글로 적혀있는 간판이 눈에 딱 들어온다.

< 레드 테이블 - 반유현 >

파리 한복판에 걸린 나의 이름, 그리고 그 밑에 셀 수 없이 몰려있는 인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내


레스토랑은 다시금 이슈가 되었다.

“여기가 그! 분식집 아들 반유현이 차린 레스토랑이야?”

“와……. 이미 파리에서 유명한가 봐!”

“오매! 주모! 파리 한복판에 한글이!”

이 몸에 있던 기억들과 여태까지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대한민국엔 특유의 정서가 있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다른 나라에서 누군가 자랑스러운 일을 해내면 대단한 자긍심을 느끼는 것.

그걸 ‘국뽕’이라고 한다고 했나. 파리 한복판에 있는 내 레스토랑의 한글 간판이 그 정서에 한몫을 한


모양이었다.

물론, 한글뿐만이 아니라 그 간판 밑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뭐, 내가 잘되는 것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에겐 고마운 일이었다.

“엥? 분식집 아들! FOX 의 ‘더 셰프’에도 출연했대!”

“한국어로 간판이 달린 식당에, 외국인이 그래서 많은 거야?”


총 여섯 개의 테이블, 나를 포함하면 다섯 명의 셰프가 전부인 가게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음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어제 방영된 ‘더 셰프’ 때문이었다.

[ 미슐랭 스타의 브랜드, 레드 테이블을 입은 천재 셰프! ]

[ 신이 내린 실력! 그는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던 것인가! ]

[ 올리버 러셀 “파리에 도착했을 때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왔던 반유현 셰프입니다.” ]

[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목표는 미슐랭 30 개! ]

어저께 이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과정과 나의 주방에서의 생활을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하루 뒤인


오늘.

나는 나의 이름이 걸린 레스토랑을 오픈했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요리사 인기가 영화배우 뺨치네. 저 레스토랑 맛있어서 가는 거냐?

-ㅋㅋ죽기 전에 저 셰프의 요리는 먹어볼 필요가 있음. 방송거품인지 맛있는 건지.

-요리의 시작을 방송으로 했으니 거품이 있을 듯요.

-모르면서 지껄이네. 라스베이거스에서 셰프들 줄 서 있는 사진 봐라.

-이번에 방송된 거 보면 오바 연기하는 것 같던데. 나이대가 비슷한 셰프들이 반유현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게 완전 콩트였음.

나에 대한 논란은 방송이 방영된 이후에 더 커졌지만,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저들은 내 요리의 맛을 보지 못한 자들이며, 내가 원한 건 이슈화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레스토랑의 입구 앞은 인산인해였지만, 레스토랑의 내부는 그나마 조용했다.

매출이 아닌, 오로지 미슐랭 스타만을 위한 가게였기에 규모가 작았다.

서버는 없었고, 내 밑에서 요리를 배웠던 셰프들이 요리와 서빙을 동시에 했다.

“에피타이저, 아뮤즈 겔(Amuse geule)로 튜나 타타르(Tuna Tartare)입니다.”

체구는 작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당돌한 성격을 가진 메이가 서빙하며 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 참치살은 단계별로 여러 온도를 거쳐 숙성시킨 회이며, 막 다져놓은 것 같지만, 정확한 크기로 잘게


잘라 낸 것입니다. 아보카도, 폰즈 소스와 와사비로 식감과 맛을 냈고 직접 스리라차 소스를 만들어 살짝
넣었습니다. 소스와 재료들이 잘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실 수…….”

설명을 듣고 요리를 맛본 손님들의 표정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셰프들이 주방이나 홀에서 움직이는 것만 봐도 불편함 없이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오픈


첫 날의 어수선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요리부터 코스의 시간에 맞는 서빙까지 모든 게 정교하게 계산된 것처럼 흘러갔다.

이런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맛은 미슐랭 평가단의 발길을 재촉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슈화시키는 것에도 성공했으니, ‘현지의 맛집’이 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이 동네에 재방문하게 될 미슐랭 평가단원이 이곳에 방문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내가 주방에서 플레이팅을 하며, 감독하고 있을 때 홀에서 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손님! 저희는 백퍼센트 예약제이고요…….”

당연하게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예약이 아닌 곳이 어디 있겠나.

진상 손님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불청객일 확률이 높다.

실제로도 그런 듯 메이가 주방과 홀이 연결되어 있는 틈에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말했다.

“셰프님, 셰프님 찾으시는데요? 방송국에서 왔다고.”

“방송은 필요 없어 이제, 돌려보내.”

“아니, FOX 사의 PD 님이래요!”

메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주방을 울렸고, 나는 홀 한편으로 나갔다.

FOX 사는 이 레스토랑이 성공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게 해준, ‘더 셰프’의 방송사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햐안 백발의 곱슬머리, 그리고 뿔테안경을 낀 남자.

그 남자가 명함을 건네며 나에게 인사했다.

[ FOX, 예능국 PD L.브랜든 ]

-‘라스트 테이블’ 제작 총괄

“예능국에서 무슨 볼일이.”

명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찡그려졌다.

바로 이전 생에, 쿡방 열풍의 ‘종말’을 불러왔던 프로그램의 PD 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PD 와 국장,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작진들이 전생에 셰프들에게 저질렀던 악마 같은 행동들은 너무


유명했기에,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 표정이 찡그려진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매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에게 불타는 정의감 따위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사람은 바뀌지 않지.’

1 회차, 2 회차, 3 회차… 그리고 6 회 차의 삶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사람은 바뀌지가 않는다. 전생에 했던 짓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런 점에서 이놈이 나를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이 PD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한테 개수작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내 이름을 건 레스토랑의 시작이 좋다했더니, 꼭 이런 식으로 똥파리가 끼어든다.

26 화. 요리업계 슈퍼맨(2)

“각 나라의 유명 인사들을 모시고, 그 나라의 요리를 평가받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유명 배우


누가 있죠? 이병현 씨, 최민석 씨 같은 분들 모시고 한식을 선보여 평가받거나, 다른 예를 들면 독일
국적의 톱 레이서인 슈마엘을 모시고 독일의 전통 요리를 평가받는 거죠. 경연 형식으로요.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대중성이 있는 그들이 요리를 평가하면 좋은 점이…….”

나에게 주저리주저리 ‘라스트 테이블’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탄탄히 입지를 다지던 젊은 셰프들을 섭외한 뒤, 그 셰프들의 레시피를 방송에서
공개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했다. 물론, 여기까지였다면 문제가 없었다.

셰프들의 레시피를 응용해 대량으로 냉동식품 또는 인스턴트식품을 만들어, 프로그램의 이름을 붙인 뒤에


팔았고 수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뒤, 레시피를 개발한 셰프들에게는 고작 차비 정도의 돈을 쥐여주는
파렴치한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톡스 시술, 성형 등을 강요하며 셰프 자체를 아이템으로 사용하려 했던 놈들.

리얼리티 경연 프로그램이라 하지만, 모든 것이 짜여 있었다.

쿡방으로 돈의 맛을 제대로 본 제작진들은 더욱더 공격적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방송의 힘을 빌려 셰프의 꿈을 가진 이들을 유혹해, 단물 빨고 버리기를 공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시간이 지나 이 만행들이 밝혀지면서 셰프들이 방송에 진입하는 장벽이 높아졌다.

셰프들이 방송에 출연을 하지 않으려고 할 뿐 아니라, 대중들이 쿡방을 보는 시선이 확 달라졌다.

그에 따라 스타 셰프 또는 셰프테이너라 불리는 재능 많은 셰프들의 탄생은 이전과는 다르게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양아치 같은 새끼.’

이 프로그램 때문에, 전생에 많은 셰프들이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내가 지금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건, 그 때문이 아니다.

매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갈아 넣는 나에게, 다른 셰프들을 대변하는, 불타는 정의감 따위는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지금 불쾌했던 이유는, 브랜든, 이 PD 놈이 나에게 개수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쇠가 달구어졌을 때 두들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회를 잡으라는 말이지요. 한국말로는 물들어올 때 노


저어라 정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셰프님,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자신의 힘으로 이곳에 찾아올 손님들의 발길을 끊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펼쳐 홀에 앉아있는 손님들을 가리킨다.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오는 것에, 저희 방송사가 많은 노력을 했잖아요? 방송가에서는 배신을 가장


싫어하거든요. 그 말도 아시죠?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고.”

내 표정에서 분위기를 파악하고, 내가 순순히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는지, 아예 대놓고 협박을


시작했다.

“제가 방송 일을 하지만, 참…… 방송이란 게 양날의 검입니다. 어떻게 다듬고 가꾸냐에 따라 맛집이
쪽박집이 되기도 하고, 쪽박집이 맛집이 되기도 하잖아요. 아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따위가 뭐, ‘
레드테이블 - 반유현’ 같은 유명한 레스토랑을 망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렇게 속을 살살 긁더니, 내가 출연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 나열했다.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될 것이라는 둥, 스타들과의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둥.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젊고 실력 좋은 셰프들은 혹할만한 이야기들이었다.

“저희 국장님께서도, 반유현 셰프를 꼭 섭외하라고 말씀하셨고요.”

그런데, 그 속내를 알고 있는 나한테 통할 리가 있겠나.

마음 같아선, 손에 쥔 무쇠 팬으로 얼굴을 깨고 싶었지만 이놈은 그 정도로 끝내선 안 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내가 가진 것들을 방송의 제물로 사용하려는 놈 아닌가.

방송의 힘을 빌려 협박을 섞어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이번에 출연을 거절하더라도 다음에 또다시 나를
귀찮게 할 놈들이었다.

전생에 이들이 했던 짓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고.

“출연하겠습니다.”

아예 싹을 뽑아 버리고 싶어서, 대답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뽑아 버린 싹을 내 성장의 밑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올랐다.

주방에서 일을 하던 네 명의 셰프들이 나의 대답에 놀란 듯이 내 쪽을 쳐다봤다.

내가 무심하게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들은 다시 주방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의 선택에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게 무엇이든 믿겠다는 의지가 보여졌다.

“그럼, 출연하시는 겁니다? 셰프님! 저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예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대답할 게
아니라구요! 다른 셰프들은 고개를 재깍 숙이던데……! 하하하하!”

브랜든이 나에게 손을 건네며 웃었다.

‘전생의 죄까지 얹어서, 벌 받아야겠다. 넌.’

그 건방짐에 없던 정의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첫 방송은 1 월이 목표고, 첫 촬영 날은 정해지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PD 놈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줄 타이밍은 ‘그때’와 딱 맞아떨어질 것이다.

***

‘더 셰프’ 가 방영되고 나서 약 5 개월.

즉,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이 오픈된 지, 약 5 개월이 지났다.

약 5 개월 동안, 테이블은 비어있는 날이 없었고 레스토랑은 자리를 완벽하게 잡았다.

셰프로서의 내 이름 석 자를 파리 전역에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슐랭 평가단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방문을 했으며, 그 결과 발표 날까지는


약 3 개월이 남아있는 시점이었다.

분명, 3 개월 뒤에는 더 많은 힘을 얻고, 지금과는 또 다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를 기다리며 차근차근 그때 이후의 계획들을 수립하고 있었다.

“미슐랭 가이드 발간 일까지 시간을 맞춰 주실 수 있을까요? 아, 표지 작업은 어떻게 됐습니까?”

-표지는 셰프님이 저번에 괜찮다고 하셨던 걸로 했습니다. 색감만 더 추가해서. 그때까지 약 3 개월


남았으니까,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의 우승 보상으로 걸려있던, 나의 이름으로 된 요리책도 발간을


준비했다.

출간 전, 꽤나 큰 규모의 광고들도 시행했고, 7%의 인세로 계약이 되어있었으니, 이곳에서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올 것이 기대됐다.

< 반유현 셰프, 분식집 아들은 어떻게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최연소 셰프가 되었나. (요리가 제일
쉬웠어요!) >

원래 책 제목은 무게를 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먹방, 쿡방 열풍이 불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서에 맞게 제목을 지었다.

120 페이지 분량의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은 책이었다.

-본 내용은 편집팀에서 손 볼 게 거의 없었다는데요? 이 책의 모든 구성을 셰프님께서 하셨다면서요?


엄청 알차다고 하던데. 편집팀 모든 직원들이 한 번에 패스했다고 하네요. 깊이 있는 레시피들과
지식들을 이렇게 쉽게 설명한 책이 시중에 없다고 할 정도니까요.

전화 통화였지만, 출판사 직원의 존경스러운 눈빛이 느껴지는 듯했다.

전생엔 다섯 권의 요리책을 발간했고, 그중 세 권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으니, 내가 책을 구상하는


능력과 경험은 두말할 것 없었다.

내가 전생에 발행했던 책들에 비해 조금 더 대중적이고, 쉬운 요리들을 넣었더니 편집자의 반응이 좋다.

-요리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에, 딱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 어쩜 못하는 게 없으십니까 셰프님? 조만간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제가 직접 파리로 날아가서 크게 대접하겠습니다! 호호호!

내가 휴대폰을 닫자,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의 셰프 중 한 명인 최민성이 다가왔다.


“셰프님, 내일부터 촬영 들어가시는데, 도와드릴 것 없습니까?”

항상 충성심이 넘치며, 나에 대한 충성심만큼이나 요리에 대한 열정은 이 주방에 있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놈이다.

“없어.”

“옙!”

나의 단호한 대답에 무안하다는 듯이 최민성이 주방 한편으로 사라지자, 메이가 또 내게 다가왔다.

“셰프님, 라스트 테이블, 내일 촬영하시는 그 방송프로그램 있잖아요? 그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대형 외식업체들이 꽂아 넣은 셰프들 밀어주기라던데요?”

“알아.”

“아니, 아니! 셰프님은 그냥 그놈들을 위해서 그냥 깔아주게 되는 거라고, 소문이 파다한데요?”

메이가 특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메이가 나를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순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원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을 가진 그녀였다.

“영국 최대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아시죠? ‘에브리데이’. 거기 회장이 방송사 FOX 의 최대 광고주
중에 한 명인데, 그 사람이 키우고 있는 셰프들 네 명이 출연한대요!”

“알아.”

“아니이! 지금 셰프님 그렇게 평온하신 거 보면, 전혀 이 사태를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메이가 앙탈을 부리자, 그 옆에 있던 헨리가 다가왔다.

“메이, 셰프님께서 그런 일을 모를 리가 없잖아. 가만히 있어.”

모델 같은 얼굴과 훤칠한 키, 생각하는 것도 올바른 그였다.

잔잔한 목소리로 메이를 타이르자 메이가 풀이 죽은 상태로 주방집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셰프님, 방송에 출연하시는 이유가 당연히 있으시겠지만, 저희도 궁금합니다. 음, 셰프님의 방송


출연은 저희가 소속되어 있는 이 레스토랑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니…….”

“궁금하냐.”

“예.”

내 주방에 있는 최민성, 메이, 헨리, 제리 모두 내가 방송에 또 한 번 출연하는 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촬영 날짜가 당장 내일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내 눈치를 보면서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궁금증은 촬영 전날인 이제야 터진 것이고.

“쪽박집을 맛집으로 만든다느니, 맛집을 쪽박집으로 만든다느니 그 소릴 해대는 걸, 언젠가 또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예 밟아서 없애 버려야겠다는 생각이야.”
“예?”

네 명의 셰프가 온전히 나의 말에 집중했다. 미슐랭 평가단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왔을 때도,


감정에 동요하지 않던 나였다.

매사에 무심한 성격을 가진 내가, 이 정도까지 한 사람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 PD 가 셰프님께 무례하게 말하는 건 봤는데, 셰프님께서 그놈들을 밟아서 없애버린다고 한다고 할


정도로 그놈들이 나쁜 짓을 저지른 겁니까……?”

“그냥, 귀찮은 것들이 내 눈에 계속 띌까 봐. 별것도 아닌 놈들이 뭐라도 되는 마냥 까부는 게 싫어.


성가신 건 질색이거든.”

“아…….”

내가 이유를 밝혔음에도 이들의 궁금증이 다 가시지 않은 듯했고, 제리가 내게 물었다.

“그 프로에 섭외된 셰프들 열다섯 명을 보아하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젊은 셰프들이기는 하나, 셰프님의


실력에는 한 참 못 미칠 것 같습니다. 괜히 그 정도의 셰프들과 같은 수준으로 방송에 비쳤다가 여태껏
쌓아온 명성에 영향이 미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수준으로 못 묶어.”

“카메라 안에서 하는 행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놈들 편집 실력이 아마추어도 아닌데요.


비슷한 실력으로 묶어서 아득바득! 경쟁하는 식으로 편집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셰프님을 깎아내리는 것이고요. 저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셰프님의 진짜 생각이 궁금합니다.”

형인 헨리 못지않게 모델 같은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그리고 진중함을 가진 그였다.

“그 어떤 편집 실력을 가졌더라도, 손을 못 대게 만드는 거야 외부적으로.”

“대체 어떤 말씀이신지…….”

“첫 방송이 1 월이래. 미슐랭 스타가 발표되는 달도 1 월이잖아.”

내가 말함과 동시에 네 명의 셰프가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래. 고만고만한 셰프라고, 나를 포함해서 열다섯 명을 섭외했어. 어찌저찌 편집으로 나를 깎아내리려


하겠지. 저들이 미리 선정해둔 셰프들을 띄우기 위해서. 그런데, 내가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모든 촬영을 끝내놓고 방영이 얼마 남지 않은 1 월에 말이야.”

왜, 제작진들의 머릿속엔 내가 미슐랭 스타를 받게 되리란 생각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미슐랭


스타를 받게 된다면 방송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중학교 리그에 섭외한 꼴, 프로 선수와 중학생 간의 의미 없는 경쟁은


애초에 시청자들이 납득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컥…….”

“PD 놈을 밟아 놓는 것도 그렇고. 사건 하나를 만들어서 내가 미슐랭 스타를 받게 될 때, 더 큰 주목을


받게 하려고.”
이제 이해돼? 라는 식으로 셰프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의 앞길을 방해하려는 상대를 잔혹하게 짓밟겠다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내가 스스로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되리란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 듯했다.

27 화. 요리업계 슈퍼맨 (3)

“라스트 테이블!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요리!”

벌써 세 번째 녹화.

첫 방이 나가기 전 마지막 녹화였다. 이 이후의 촬영은 첫 방송이 나가고 난 뒤에 촬영한다고 했다.

물론, 내 계획대로라면 이 제작진들이 그 이후의 촬영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스튜디오 전체에서 나 혼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심 찔렸다.

모두가 할렐루야를 외칠 때, 혼자서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느낌이랄까.

“라스트 테이블! 세 번째 경연은 바로오!! 대한민국입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힘껏 외쳤다.

나를 포함한 열다섯 명의 셰프들이 박수를 치면서 녹화는 시작되었다.

“오늘 평가위원으로 세 분을 모셨습니다.”

첫 번째 촬영은 인도, 인도의 영화배우와 기업인 그리고 정치인이 출연해 셰프들이 요리한 인도 음식을
맛보고 평가했다.

두 번째 촬영은 일본이었고, 나를 포함한 셰프들이 일식을 요리해 일본의 유명 축구선수와 방송국의 PD,
그리고 소설가가 나와서 음식을 평가했다.

그리고 오늘은 대한민국이었다.

“첫 번째! 현재 메이저 리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류형진 씨를 모시겠습니다!”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엄청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류형진이 첫 번째 게스트였다.

이 프로그램에 예산을 꽤나 많이 집행했다고 하더니, 게스트가 빵빵하다.

저런 거물급 스포츠 스타를 움직이려면 출연료를 꽤나 많이 줬을 터였다.

“한국 음식을 너무나 먹고 싶었는데, 저희 구장 근처에는 마땅히 먹을 곳이 없었습니다. 헤헤. 특히


반유현 셰프님! 음식이 너무 궁금했어요. 저도 음식을 좋아해서 잡지 같은 것들을 많이 보는데,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안녕하세요! 반유현 셰프님!”

최근 가장 높은 몸값을 올리고 있는 화제의 메이저 리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외모를 가진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번째 게스트는! 이번에 할리우드에 진출하신! 영화배우 최민석 씨입니다!”

국민 배우라고도 불리며,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흥행작을 남긴 배우였다.


이번에 할리우드에 진출했다고 미국의 방송프로그램에 자신을 홍보하러 나온듯했다.

“여기 계신 셰프님들이 모두 훌륭하시겠지만. 우리 딸내미가 반유현 셰프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허허.


제가 일단 먹어보고 남으면 포장해가도록 하겠습니다.”

배불뚝이 옆집 아저씨같이 생겼지만, 카메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유롭게 너스레를 떠는 게


확실히 베테랑 배우였다.

“세 번째 게스트는!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계신! 엘른 조!”

첫 번째, 두 번째, 그래도 이 몸의 조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고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세 번째 게스트가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에브리데이 그룹의 메뉴 개발 고문 아닌가.’

이 프로그램의 최대 광고주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셰프이자, 그 그룹의 직원인 사람이었다.

중년의 남자인 그가, 나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반유현 셰프의 음식이 가장 기대됩니다. 앞서 두 번의 경연에서는 그렇다 할 성과를 못 냈다고


하셨는데, 부디 한식만은…….”

지랄. 인도요리와 일본요리 앞선 두 경연에서도 게스트들에게 최고의 극찬을 들었던 나였다.

그의 말을 다른 셰프들도 흠칫했다.

분명, 당시의 분위기로나 게스트들의 반응으로나 나의 요리가 최고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놓고 촬영을 한다고?’

나는 그의 노골적인 언사에 앞선 두 촬영분이 어떻게 편집되었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더군다나 이번 회차가 왜 한식으로 설정되었고, 저놈이 왜 게스트로 초대되었는지도 단번에 깨달았다.

‘아예 나를 깔고 가려는군.’

반유현이라는 셰프, 즉. ‘나’를 자신들이 미리 선정해 놓은 셰프들의 디딤발로 대놓고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한국인인 나를 한식에서 이기고 간다면 그 셰프들이 더 부각될 것이니까.

물론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이었지만, 대놓고 이렇게 나오니 기분이 좋지 못했다.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의 메인 PD 인 브랜든을 쳐다보자, 브랜든은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의 얼굴을 보자, 오히려 안 좋았던 기분이 풀려버렸다.

내가 이 지루한 녹화에 참여해서 얻을 것들이 확실히 정해져 있다는 것을 다시 되새겼기 때문이다.

‘나를 만만하게 본 PD 놈에게 엄청난 선물. 그리고 나를 향한 스포트라이트.’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버터의 전원을 켜고 칼을 잡았다.


***

한식이라 하면 내 머릿속에는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영국인의 삶을 살았던 이전 생, 그리고 그전 전생, 내가 미슐랭 스타 10 개 이상을 소지한 셰프로의 삶을


살다 보면 항상 들었던 질문이 있었다.

“두유 노 비빔밥? 두유 노 불고기?”

왠지 모르게,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음식에 자긍심이 넘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이 음식들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맛봤던 기억을 되살렸다.

‘독설을 내뱉었지.’

불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고기에는 사람마다 개인적인 취향은 있겠지만, 대게 미디엄(medium)이나, 미디엄 레어(mdium-rare)


의 굽기가 가장 맛있는 맛을 낼 수 있는데, 내가 먹었던 모든 불고기들은 오버 쿡(overcook) 되어있었다.

고기의 익힘 정도를 지나치게 해 고기가 너무 질겨진 상태였다.

내가 먹어본 모든 불고기들의 고기가 얇은 이유이기도 했다.

“반유현 셰프, 어떤 요리를 하실 겁니까?”

“불고기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동안 먹었던 불고기는 미리 양념에 재어 놓았기 때문에 마이야르
반응도 일으킬 수 없었고, 소고기 특유의 풍미와 육즙, 맛을 살릴 수 없었습니다.”

“오호! 불고기에서 소의 육즙과 맛을 살리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사회자의 질문에 내가 말하자, 스크린에 류형진과 최민석이 매우 기대가 된다는 식으로 박수를 치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세 번째 게스트이자, 미슐랭 투스타 셰프인 엘른 조가 마이크를 잡았다.

“양념에 24 시간 정도 고기를 재워 놓아야 그 맛이 고기 깊숙이 배어들 텐데, 이런 경연에서 불고기를


어떻게 한다는 말씀인지…….”

“가르쳐 드립니까?”

고기를 굽고, 레스팅 할 때, 미리 만들어 둔 양념에 고기를 넣으면, 수축했던 고기가 팽창되면서 그
양념을 빠르게 흡수한다.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그라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터.

알면서도 괜스레 물어보는 저놈의 질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엘른 조는 나의 대답이 무안했는지, 대놓고 나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저는 차라리 그 앞자리에 계신 메이슨 셰프처럼 비빔밥이나, 그 옆에 있는 라두 셰프처럼 칠절판이


강력한 요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식의 특성을 보여주는 요리지요.”
메이슨, 라두.

지목된 두 명의 셰프가 나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내가 무슨 요리를 하고, 무슨 짓을 하든지 저들이 이긴다는 눈빛이다.

방송사 FOX 의 최대 광고주 중 하나인 ‘에브리데이’에 소속되어 있는 셰프들이었다.

“불고기? 방송이 어떻게 나갈지는 모르겠네. 큭!”

“야. PD 님이 너무 대놓고 티 내지 말라 그랬잖아.”

“아니, 우리 회사 덕분에 이 프로그램도 생긴 거고, 다른 셰프들도 방송 탄 건데 왜? 푸풉!”

지금은 나를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즐겁겠지만, 그 즐거움의 대가도 결국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미림과 간장, 마늘, 파, 배 등을 넣고 믹서기에 갈아 불고기 소스를 만들었다.

“아, 그냥 설탕이 아니라 흑설탕을 넣으시네요?”

“흑설탕 특유의 맛이, 불고기의 맛을 올려 줍니다.”

해설자의 질문에 대답하며 만든 양념에는 방금 구운 큼지막한 크기의 고기를 넣었다.

불고기처럼 얇지는 않은, 한 입 거리의 찹스테이크와 가까운 크기의 고기였다.

어느 정도 레스팅(Resting)이 이루어졌고, 고기의 살에 양념이 배어 들어가자, 나는 양념과 고기를 다시


통째로 팬에 올려서 졸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양념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면서, 육즙 가득한 불고기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

마지막 녹화를 끝낸 지, 2 개월하고 절반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예고편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 젊고 재능있는 셰프들의 진검승부! 세계의 맛을 표현해라! ]

[ 라스트 테이블! 예고. -반유현 셰프 편. ]

예고편은 각 셰프들을 한명 한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방영되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암전되더니.

[ 대한민국을 휩쓸고 라스베이거스, 파리를 휩쓸다. 천재 셰프! 반유현. ]

한줄의 문장을 시작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와……! 불고기에서 이런 맛이 납니까? 씹을 때 육즙이 터지는 불고기! 저희 구단에 말해서 특별 셰프로


초청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 정도 요리라면 한식의 세계화는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내 불고기를 먹었던 메이저 리거, 류형진이 말하는 장면이 나왔고.
-너무 맛있는데요. 워낙 불고기가 유명하고 맛있긴 하지만, 이런 맛은……! 와우! 양념도 대단합니다.
오래 숙성한 게 아니라, 제한된 경연 시간 동안 요리하신 거잖아요? 최곱니다.

그 뒤이어 말하는 국민 배우 최민석의 말이 아주 짧게 영상에 담겨있다.

그리고 그 장면 뒤로는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을 소유한 엘른 조의 독설이 담겨있었다.

-분명히, 주제가 한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리는 이름만 불고기이지, 한국적인 것이 전혀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흠. 맛은 그렇다 쳐도…….

나의 굳은 표정과 엘른 조의 독설이 교차 편집되어있었다.

-메이슨 셰프의 비빔밥이야말로 저절로 고향이 생각나는 맛입니다. 한식이라 함은 맛과 영향의 균형이
중시되는 음식이니까요. 반유현 셰프의 요리는 맛에만 너무 치중했습니다. 뭐, 실용적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셰프라면 요리의 테마와 건강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부분이 하나도……

되도 않는 독설을 해댔다. 현장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예고편이었다.

원래 예고편이란 게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많이 담는다지만, 못 봐줄 정도로


작위적이고 인위적이었다.

당시의 현장을 그대로 담았더라면, 이런 화면은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고생 많았겠네. PD 양반.’

그런데, 그런 영상을 보고 있음에도 내 눈앞에 적힌 글귀는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 Michelin guide Paris. 2020 ]

2020 년 미슐랭 가이드 파리. 시상식.

역대 인생 통틀어 가장 빠르게 이 시상식에 자리를 차지했다.

당당하게 초대장을 받아 시상식에 도착했다.

조리복을 입고 있는 수많은 셰프들이 연회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으며, 나도 그 한자리에 껴있었다.

“떨리는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루시앙과 올리버는 대체 몇 시간 동안 기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고편 보셨습니까?”

내가 그들의 긴장을 풀어 주려, 핸드폰을 건넸다.

내가 엘른 조에게 호되게 혼나고 있는 장면이 담긴 예고편이었다.

“쯧쯧, 엘른 조? 이 친구 이거 큰일났구만. 오늘 자네가 미슐랭 스타를 수여하게 되면, 이 친구가 했던


말은 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늘 혹시라도 반 셰프가 엘른 조, 저 친구보다 많은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되면…….


푸하하하! 참 웃긴 장면이 연출되겠습니다. 한국말에 그런 속담이 있다며!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루시앙과 올리버는 이미 내가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작위적인 편집으로 희생되었음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오늘 이후에 저들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을 걱정하는 듯했다.

“그러게, 마음을 정직하고 올바르게 써야지. 어쭙잖은 돈의 논리를 요리세계에 갔다 놓은 놈은 언젠가


몰락하게 되어있어.”

그때, 무대 위로 한 백인 남성이 올라왔다.

“미슐랭 가이드, 파리, 2020 에 초대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올해의
미슐랭 스타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28 화. 요리업계 슈퍼맨 (4)

“먼저, 각자의 자리에서 올 한 해 수준 높은 요리를 선보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대 위에 오른 백인 남성은 미슐랭 가이드, 인터네셔널 디렉터.

마이클 엘라인이었다.

“저희 평가원들은 해가 지나갈수록 올라가는 파리 현지의 요리 수준에, 매번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당찬 발언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곳, 파리가 요리의 성지인 만큼 수많은 이슈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첫 번째로, 식약청 신고
조작사건이 있었죠.”

파리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가, 경쟁 레스토랑에 쥐를 풀어놓고 프랑스 식약청에 신고를 한
사건이었다.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 현지에서 일어났던 이슈들을 말하며, 한자리에 모인 셰프들과 소통했고 부드럽게 행사를


이끌어가는 마이클이었다.

나도 팔짱을 끼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의 입에서 나도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그리고 가장 큰 이슈는, 대한민국의 반유현 셰프라고 생각됩니다.”

미슐랭 스타를 수상하는 자리, 그 시상식의 인사말 순서에서 어떤 한 셰프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거론된 것은 나조차도 처음이었다.

셰프의 이름을 거론하는 종류라 함은,

‘아무개 셰프가 올해로 미슐랭 스타를 10 년째 보유하고 계신다.’

‘미슐랭 스타의 영예를 차지했던 아무개 셰프가 올해로 은퇴한다. 박수를 부탁드린다.’
등의 말이었다.

그런 경우가 아님에도 나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은 확실히, 내가 약 1 년의 기간 동안 보여준 것들이


이 요리업계에서 아주 파워풀했다는 증거였다.

카메라가 나의 얼굴을 잡았고, 무대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 화면에 나의 얼굴이 나왔다.

나의 얼굴이 비치자마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엄청난 활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하. 이미 평가원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시더군요. 별명도


있으시다던데……. 슈, 슈퍼맨이라고 하셨나?”

무대 옆의 한쪽을 바라봤고 그곳에 서 있던 스텝들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말을 이어갔다.

“파리에 건너 온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를 파리의 유명 맛집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뒤이어 경력이 짧은 어린 셰프들과 함께, 본인의 이름을 딴,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을
성공적으로 안착하셨죠. 저도 한때 셰프였던 사람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슈퍼맨이라는 별명이
저절로 납득이 됩니다. 도무지 그의 행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하하하. 더군다나 이
자리에 누군가를 응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초대장을 받으셨으니. 참……. 오늘 미슐랭
스타를 받으시면 세계 최연소 미슐랭 스타 셰프가 되실 텐데요.”

마이클이 말을 끊고, 무대 양옆에 있는 스크린에 팔을 가져갔다.

“여, 여기 화면에 계신 분이 반유현 셰프입니다. 친해지실 분들은 오늘 행사 끝나고…… 아셨죠?”

윙크와 함께 웃음을 보인 마이클이었다.

“각설하고, 이제 대망의 2020 미슐랭 스타를 발표하겠습니다.”

마이클이 무대의 정중앙에서 한 발짝, 옆으로 비켜났고 여성 아나운서가 셰프들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은 호명된 셰프가 무대 위로 올라오면 악수와 함께 그에게 트로피를 선물해 줬다.

“다섯 번째,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 샤탈르입니다. 샤탈르는 이제 5 년째, 미슐랭 원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이 되었습니다. 제프 벤 오너 셰프와, 총 주방장 피르앙 셰프께서는 버섯 요리로 손님들께
대단한 맛을 선보이며…….”

우와아아!

아나운서가 호명되는 레스토랑과 셰프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고 박수가 계속해서 쏟아진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 시상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듯하더니, 끝이 났다.

“다음은,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에 지정된 레스토랑과 그 셰프님을 호명하겠습니다.”

그 멘트가 이어져 나왔을 때는, 루시앙과 올리버의 표정이 이상했다.

원스타를 시상하는 순서에서 우리의 레스토랑인 ‘레드 테이블’이 호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스타……. 그 이상을 받는다는 거야……?”

이 행사에 한두 번 참석해 본 것이 아닌, 루시앙은 눈치가 빠르다.

***
“세계 최연소, 미슐랭 스타 셰프의 탄생입니다.”

우와아아아아!

그 말에 누구나 다 알았다는 듯이, 박수와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음에도 거대한 스크린에는 루시앙, 올리버, 내가 비쳐졌다.

“레드 테이블! 더 파스타!”

우와아아!

루시앙과 올리버, 그리고 나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진짜야! 진짜 해냈어! 반 셰프! 푸하하하!”

“…….”

올리버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도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총주방장인 직급을 가졌음에도, 나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묵묵히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그였다.

뿐만 아니라, 나의 비현실적이고 파워풀한 계획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우와아아!

우리가 무대 위로 올라가자 함성이 다시 쏟아졌고,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시작되었다.

“런던에서 건너온 오너 셰프, 루시앙, 그리고 헤드 셰프 올리버, 그리고 천재 셰프 반유현의 합작으로


그들은 오픈 1 년도 채 안 된 기간에 미슐랭 투스타를 부여받았습니다…….”

우리 셋이 무대 위로 올라갔고, 트로피를 건네받았다.

“축하드립니다. 슈퍼맨.”

마이클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루시앙, 축하드립니다. 이제, 미슐랭 스타 여덟 개를 가진 셰프가 되셨군요. 올리버, 축하드려요.


처음부터 투스타를 얻고 시작하시는군요.”

마흔이 넘은 두 명의 남자의 눈망울에 촉촉해졌다.

그런데 그때, 장내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에……? 이거…….”

아나운서가 자연스럽게 이어가던 내레이션을 멈추고, 요상한 소리를 낸 것이다.

그러고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대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행사 진행 요원들이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그제 서야 대본을 읽었다.


무대 위에서 트로피와 꽃을 받은 우리가 무대 위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레, 레드 테이블, 반유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다시 무대 위를 바라봤다.

대본을 잘 못 읽어서 내 이름을 또 부른 건가?

“바, 바, 반유현 셰프는!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두 개의 레스토랑에서
미슐랭 투스타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니었다. 나의 이름이 걸린 레스토랑이 호명된 것이었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무대 위로 다시 올라갔다.

우와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다시 쏟아져 나온 타이밍에 아나운서는 그제 서야 템포를 잡고 차분히 대본을 읽어나갔다.

“세계 최연소, 세계 최초로 같은 지역 대에서 미슐랭 스타를 동시에, 두 개의 레스토랑에서 받은 셰프의


탄생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이름이 또 호명되자 루시앙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고, 올리버는 꿈을 꾸고 있다는 듯이 멍


때리고 나를 바라봤다.

저 멀리에서 박수를 치고 있던 로또 육인방은 엄청난 괴성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셰프니이임!”

“흐어엉!!”

내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자, 마이클이 내게 말했다.

“참…… 이런 경우도 있군요. 내년 시상식이 기대됩니다. 반유현 셰프님.”

이 타이밍에는 내가 즐거운 미소로 고개를 숙이고 다시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게 맞지만, 나는 이 자리를


빌리고 싶어졌다. 이제 내가 하는 말을 아무도 우습게보지 못한다.

“디렉터님, 제게 5 분만 마이크를 빌려 주시면 안 될까요?”

“무슨 일 이시죠? 하하. 소감과 인터뷰 시간은 따로 마련되어있습니다.”

“아닙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셰프의 꿈을 가진 젊은 사람들을 짓밟고,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그들의


아이디어나 노동력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제가 혼자 싸우기엔 힘들고, 여기에 계신 미슐랭
스타 셰프님들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가득 차 있는 행사장. 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셰프들이


모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식가등 요리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 또한 가득했다.

“오. 대체 무슨 일 이신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슈퍼맨이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데 당연히


자리를 비켜드려야죠.”

이곳에 있는 셰프들의 별을 모두 합치면, 200 개는 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요리업계에서 못 할 일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셰프들의 마음을 흔들어 내 편으로 만들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존경하는 선배 셰프님들…….”

첫 시작 멘트. 그리고,

“……셰프의 꿈을 꾸는 이들을 위해 힘을 모아 주십시오.”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

[ 세계 최초, 최연소, 미슐랭 4 스타 셰프의 탄생. ]

[ (오늘의 핫 이슈!) 요리 업계 지각 변동! ]

[ 명문 요리 학교 재학생들 잇따라 휴학, 자퇴. “반유현을 따라!” ]

[ 반유현 “엘른 조 셰프, 한식에 대해 논하지 않았으면 한다.” ]

[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피에르 “그를 핍박하며 그의 성장을 안 좋게 보던 셰프들 알아서 물갈이될 것.


자동 정화 시스템을 만들어 낸 반유현 셰프, 존경.” ]

하나의 모니터에, 반유현에 대한 기사가 실시간으로 바뀌며 떠오르고 있다.

그와 반면에, 다른 모니터에는 기사에 묘사된 반유현과는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반유현, 반유현 요즘 말도 많은 이름인데, 제가 실제로 봤을 땐 별 볼 일 없어 보였습니다. 자신만의


창의성에 갇혀 뭔가를 해보려고 하긴 하는데, 그게 그렇게 강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메이슨 셰프나 지뉴 셰프? 혹은 라두 셰프가 요리에 있어서 훨씬 정교하지 않았나…….

“씨발. 이딴 식으로 편집을 해놔? 이걸 어떻게 방송에 내?”

FOX 사의 예능/다큐멘터리국 국장이 말했다.

약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고, 분위기는 장례식장 못지않게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겨우겨우 화를 억누르며 질문했다.

“이 시국에, 이런 방송을 내보내겠다고? 어떻게 책임질 거야! 온 요리계가 반유현을 외치고 있는데,
시청률 하나는 잘 나오겠다. 제기랄!”

영상의 대부분은 인위적인 편집으로 반유현 셰프의 실력을 하향시킨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들이 미리 선정해 둔 셰프들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주목받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세계 최연소 그리고


동시에 두 곳에서 미슐랭 스타를 얻은 반유현 셰프를 깎아내렸다가는 오히려 자신들이 침몰하게 생긴
판이었다.

“제발……. 대답 좀 해봐. 이건 어쩔 거야.”

[ 방영 하루 전, 라스트 테이블 출연했던 셰프 “의도적으로 반유현 셰프를 깎아내리기 위해 제작진들이


대사를 강요했다.” ]
더군다나 촬영 현장에 있던 다른 셰프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어느 곳에 서야 할지 뒤늦게 깨달은 셰프들이었다.

“어? 브랜든, 브랜든 감독님!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야?”

몸에 모든 힘이 빠진 듯이 국장은 호통도 칠 수 없었다. PD 를 타이르는 국장이었다.

오히려 그런 국장의 반응이 두려웠던 브랜든이다.

“수, 수습해보겠습니다.”

“수습? 내일이 방송 나가는 날인데, 전 직원들 다 불러서, 다시 편집해도 못할걸?”

더군다나 이미 예고편은 나갔던 상황.

출연 셰프 15 인 중 반유현 셰프를 소개하는 예고편이 단연 화제가 되었고, 이미 그로 인해 FOX 사와 아직


방송되지도 않은 프로그램, ‘라스트 테이블’에 여론이 악화되고 있었다.

-ㅋㅋㅋㅋ 엘른 조는 뭐임? 미슐랭 원스타가 미슐랭 포스타한테 요리가 어쩌고저쩌고?

-듣도 보도 못했던, 엘른 조는 웬 방송에 나와서 설쳐 대고 있나? 킹유현 셰프한테?

-ㄴㄴ 기사 떴음, 대형 프렌차이즈 에브리데이 소속 셰프들 띄우려고 만든 프로임.

-브랜든? 그 PD 연출한 프로들 봐, 돈 되는 프로들만 맡았음.

“…….”

뒤늦게 악화된 여론을 본 국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정도 여론이라면…… 방송을 내보낼 수가 없다…….”

그로 발생할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초특급 배우부터,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소설가, 메이저 리거등 대형 게스트들을 섭외한 출연료도
못 건지게 생겼다.

뿐만 아니라, 그 돈들의 출처는 최대 광고주인 ‘에브리데이’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이 잘못된다면, 앞으로 더는 그 회사의 광고나 투자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했으니, PD 브랜든과 국장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머리를 쥐어 잡고 있는 제작진들, 도무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 고통스러워할 때였다.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본부장 비앙카였다.

“미슐랭 포(four)스타 셰프를, 되도 않는 하수 셰프로 만들려고 했던 가짜 PD 가 누구야.”

굳어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사태가 점점 악화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브랜든이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반유현 셰프……. 인기 검색어 1 위. 그 셰프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 줄 알아?”

반유현이라는 이름을 검색했을 때, 메인 화면에 도배되어있는 기사들.

아무래도 방금 전보다 상황은 더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 미슐랭 스타 도합 214 개의 별, 움직이다. 초신성 셰프 반유현에게 힘을 실어주는 별들. ]

[ 합치면 214 개의 별을 가진 셰프들, 방송사 FOX 의 ‘라스트 테이블’ 제작진 규탄. ]

[ 파리를 기점으로, 미슐랭 스타 셰프들 갑질 방송 퇴출 운동 시작. ]

[ 세계 최연소, 최초의 기록을 세운 그날, 곧장 요리 업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반유현! ]

“미슐랭 스타, 파리 수상식에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셰프들이 반유현 셰프의 말에 지지하고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네? 단 한명도 빠짐없이. 브랜든, 우리 어떻게 해야 돼? 반유현이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맞대응 하면 되는 거야?! 응?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본부장 비앙카의 말에 브랜든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29 화. 쓸어 담기 시작(1)

프랑스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대부분이 나의 말에 공감하고 지지를 표했다는 것은, 유럽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셰프들이 내 말에 지지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프랑스라는 나라는 유럽 내 요리의 성지였고, 셰프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몰리는
곳이었으니까.

“존경하는 선배 셰프님들…….”

미슐랭 스타 셰프들, 총 214 개의 별들 앞에서 한 내 연설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셰프들의 특징이라 함은, 요리를 요리로 보지 않는 것이다.

“여기 계신 셰프님들께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숭고한 예술, 또는 그 이상의 행위를 요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정의를 해두셨고, 그에 따라 요리는 갇힌
틀 없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을 알고, 그에 따른 감정선을 살짝 건드려줬다. 뿐만 아니라, 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방송이라는 ‘틀’은 실력이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셰프들을 주목받게 하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기능을 이용해서 젊은 셰프들의 능력을 착취하고…….”

방송의 힘에 의해 핍박받고 있는 젊은 셰프, 즉 후배들의 힘든 현실을 말하고 있는데 모른 체한다면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후……. 여기 계신 선배님들, 그리고 저희가 힘을 모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감정에 호소하는 떨리는 목소리까지 연출해줬더니, 하나둘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려 나의 연설에 지지의사를


보내왔다.

자신이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내 말에 딱히 관심이 없던 셰프들도
얼떨결에 잔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잔을 들어 올린 뒤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던 셰프들도 나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방송이라는 외부의 강력한 힘이, 진정 실력이 있는 셰프를 그저 방송을 위한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실력이 없는 셰프들을 끌어올린다면 선배님들께서 만들어 온 이 업계의 찬란한 역사를 지키고자 하는
셰프가 없을 것입니다.”

나의 발언들이 살짝 오바스럽기도 했지만, 분위기상 자연스러웠다.

세계 최연소로,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 그것도 네 개나.

이 행사장에서 가장 많이 호명된 이름은 ‘반유현’이었고, 이 현장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사람이


나였다. 그런 나의 말이 단지 어리광이나 투정으로 보이지는 않을 터였다.

단언컨대, 내 말은 저들의 머릿속을 확실하게 울리고 있다.

“방송사, FOX 의 라스트 테이블 PD 와 제작진은 저, 그리고 우리 셰프들의 숭고한 자존심과 가치를
짓밟으려 했습니다.”

나의 레스토랑에 찾아와 협박을 했던 것, 방송 편집을 위해 나에게 노골적인 언사를 퍼부었던 것. 그리고


저들이 셰프들의 레시피를 착취하려 했던 정황들. 나는 모든 것을 무대 위에서 말했다.

내가 모든 말을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했을 때, 무대 아래에 있던 한 중년의 남성이 외쳤다.

“자! 반유현 셰프의 말대로! 우리의 자존심은 우리가 지킵시다! 방송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요리의
가치를 그저 방송의 소재로 사용하려 했던, 저! 제작진들! 그리고 저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일조한
회사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힘을 모읍시다. 위하여!”

현재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소유한, 피에르 하프만이었다.

셰프들 중에선 가장 선배이자, 셰프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아온 그가 외치자, 잔을 들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샴페인 잔을 한 번 더 들어 올려 건배를 했다.

이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건배가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불러올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끝.’

그러나, 수많은 조명과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쉬가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심기를 건드린 ‘라스트 테이블’의 PD 와 제작진들이 몰락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환생한 이후로, 가장 임팩트 있던 밤이었다.

***

[ 최연소 미슐랭 4 스타, 반유현 “요리는 숭고한 예술,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 ]

어느 포털, 어느 신문사에서도, 내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합치면 214 개. ‘별’을 가진 셰프들, 방송사 FOX 의 ‘라스트 테이블’ 제작진 규탄. ]
[ 파리를 기점으로, 미슐랭 스타 셰프들 갑질 방송 퇴출 운동 시작. ]

[ 요리 업계를 위해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움직이다. ]

나의 말과, 나의 말에 따른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행동이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과학으로 치면,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데 모여 한 명의 젊은 천재 과학자의 말에 힘을 모아줬다고 하면


되려나. 정확한 비유는 아닐지라도, 이번의 일은 그 정도 파급력쯤은 되는 것 같았다.

그 행사장에서 있었던 일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언론사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 방송사 FOX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사로 거듭나겠다.” ]

제작진과 방송사는 급하게 사과를 했지만, 이미 일이 너무 커진 뒤였다.

논란은 원래 더 큰 논란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 라스트 테이블 출연 셰프들의 레시피 식료품 업체와 거래한 정황들 포착! 단독공개! ]

[ 출연 셰프들 “레시피를 편법으로 팔아먹으려 한 제작진 고소. 방송출연 계약서도 불공정.” ]

그 결과, 나를 인위적으로 편집한 그 제작진들은 해산되어 뿔뿔이 흩어졌고, 나를 협박했던 총 책임자,


브랜든 PD 와 국장은 사표를 냈다.

그리고 ‘라스트 테이블’의 촬영분은 방송사의 뜻에 따라 전부 폐기 되었고, 그 방송이 나와야 될 시간엔


내가 이전에 출연했던 ‘더 셰프’가 한 번 더 방영되었다.

-오직 맛, 너희들이 생각한 맛을 네 요리를 먹는 사람도 똑같이 느낄 수 있어야 돼. 대화의 언어가


다르면 안 된다고.

-예! 셰프!

다큐멘터리 ‘더 셰프’에서는 주방을 호령하는 나의 모습이 다시 한번 비비쳤다.

이미 몇 개월 전에 방영된 방송분이었지만, 이번의 파급력은 그와 달랐다.

약 91 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된 저번 방송과는 달리, 재방송임에도 약 193 만 명의 시청자를


달성했다.

이는 미국 내 가장 인기 높은 드라마인 ‘우주이론’의 시청자 230 만 명과 비교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파급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각종 매체들은 방송사의 갑질에 초점을 맞춰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신 있게 목소리를 낸 젊은


셰프인 ‘나’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행동이라나 뭐라나. 뭐 나를 포장해주니 좋긴 하지만.

나의 메일함은 어떤 메일이 중요한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메일이 쌓여있었고, 핸드폰은 번호를 아예


바꿔야 될 판이었다.

“자네가 뜬금없이 연설을 할 때는 진짜 심장마비 걸릴 뻔했네. 반 셰프.”

루시앙은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며, 지난 미슐랭 시상식에서 있던 나의 발언들을 되짚어 보며 말했다.


“그런 카리스마…… 내가 자네를 프랑스 파리의 셰프로 데뷔시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 덕분에
내가 자네의 스승인줄로만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탄로 났어. 허허. 나에겐 그런 카리스마가 없거든.
허허. 그리고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구만.”

“루시앙 셰프님께서 우려했던 상황이라 함은…… 제겐 좋은 상황 아닙니까.”

우린 서로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격식 없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를


존중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꺼낼 수 있는 사이.

“당연히, 자네가 그 연설로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다는 것은 좋지. 이제 나의 브랜드인 ‘레드 테이블’이
자네의 이름에 묻히게 생겼네. 하하하! 별수 있나 뭐. 이제 나로서도 어쩔 수 없구만.”

루시앙은 나와의 이별을 이미 예측한 듯이 말했다.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다음 목표는 어딘가? 미슐랭 스타를 얻었고, 자네는 지금, 한국에서 파리로 날아왔을 때랑은 그
이름값과 명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나. 나는 미슐랭 스타 네 개를 동시에 받아낸 자네를 잡아 놓을 수 있는
재산도 없고 여력도 없네.”

“아직 파리에 남아있을 계획입니다.”

“파리?”

루시앙은 놀랐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가 이제 이 도시를 떠나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파리에서 가장 비싼 땅에 위치한, 그리고 가장 고급 호텔인, 포시즌스 호텔에 제 이름을 새겨


넣으려고요.”

루시앙이 놀란 눈으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는…….”

“예, 지금까지 미슐랭 3 스타를 유지하던 그 레스토랑이 올해 2 스타로 강등되었죠. 그 자리에 새로운
주인을 구하고 있습니다.”

“참……. 자네 계획은 언제나 놀라워.”

***

팔라스 등급(Distinction Palace).프랑스는 5 성급 이상의 호텔을 팔라스(palace)라고 한다.

파리에 위치한 팔라스급 호텔은 12 개가 있는데, 그중 파리에서 가장 비싼 땅.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Paris Golden Trangle)’지대에는 ‘포시즌스’라는 호텔이 있다.

포시즌스라는 이름은 전 세계 5 성급 호텔의 리스트에 33 개가 될 정도로 세계적인 호텔 그룹이기도 하다.

물론, 내게 중요한 건 그 호텔이 얼마나 고급지고, 얼마나 서비스가 좋으냐는 것이 아니었다.

‘타이밍이 딱 좋다.’

포시즌스 호텔 파리에는 총 세 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세 개의 레스토랑이 가진 미슐랭 스타는 1 개, 1 개, 3 개. 합치면, 5 개로 모든 레스토랑이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작년까지 3 개를 가지고 있던 레스토랑이 올해 2 개로 강등되었고, 그 레스토랑을 총 책임 하던
헤드셰프가 강박과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내어놓은 것이다.

덕분에 포시즌스 호텔 측은 발 벗고 나서 그 레스토랑을 새로 맡을 셰프를 찾기 시작했고.

나는 지금 그 새로운 셰프가 될 후보 중 한 명으로서 초대장을 받고 포시즌스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돈 냄새 가득하군.’

그 호텔로 향하는 길.

프라다, 돌체,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들의 이름이 거리에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덕분에 이 거리는 유명인들과 패셔니스타들이 좋아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여전하네.’

포시즌스 호텔의 앞에서 그 건물을 올려다봤다.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은 아니지만, 건물 외관 구석구석이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호텔의 대문에는 화려한 유리 세공과 조명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 앞에 서 있던 한 중년의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체크인 하시겠습니까? 짐이 따로 있으시면 제가 로비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오늘 14 시에 요리사들의 모임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요리사들의 모임이란, 이 호텔 레스토랑을 새롭게 이끌어나갈 후보, 그 셰프들의 모임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안내해서 걸어간 곳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더니 동시에 일어나서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미국에서 온 올린입니다.”

미슐랭 스타 11 개를 가진 셰프.

“오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슈퍼스타를 여기서 뵙는군요. 하하.”

미슐랭 3 스타인 포시즌스 도쿄의 헤드 셰프.

굵직한 이력을 가진 셰프들이 내게 인사했다.

나는 이들의 얼굴을 잘 모르지만, 이들은 나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

로비를 돌아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얼굴을 보더니 밝은 미소를 띤다.

“하하. 반유현 셰프님. 혹시 초대장을 볼 수 있습니까? 저희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거든요.”
“예?”

미슐랭 스타 11 개를 가진, 미국 국적의 셰프 올린이 내게 정중하게 물었다.

초대장을 보자는 이들의 궁금증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나는, 흔쾌히 초대장을 내밀었다.

[ 포시즌스, 셰프들의 모임. ]

일시와 장소가 적혀있었고, 그 초대장 사이에 검은색 카드가 끼워져 있었다.

그 검은색 카드를 본 올린이 말했다.

“역시……. 누군 초대장에 이 카드가 있고, 누구는 이 카드가 없는 것을 보니 초대된 셰프들에게


차별점을 둔 것 같습니다. 이 호텔의 레스토랑을 차지할, 가장 유력한 후보들에게는 호텔의 객실을
제공해주는 것 같군요.”

올린이 자신의 초대장을 꺼내어 자신에게도 검은색 카드가 들어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곤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덧붙였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그 유력한 후보에 드신 모양입니다. 후. 이거, 요즘 가장 잘나가는 셰프를


라이벌로 삼아야 된다니 조금 부담스럽네요.”

30 화. 쓸어 담기 시작(2)

미슐랭 3 스타를 유지해야 된다는 강박과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가 버린 셰프.

평범한 레스토랑이었다면, 그 아래에 있던 수셰프들이 그 헤드 셰프의 자리를 대신하지만, 포시즌스


호텔은 조금 달랐다.

‘까다롭기로 유명하지.’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메뉴로 구성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그 자리를 빌려준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던 셰프에게는 곧장 그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메뉴를 구성하고, 레스토랑을 운영해본 자에게만 자격을 주는 것은, 자신들의 자리를 어떤 셰프의
성장 발판으로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오직 완성된 셰프만이 포시즌스 호텔 내부에 레스토랑을 차릴 수 있었다.

까다로운 조건 덕분에 프랑스의 팔라스 등급 호텔 중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호텔이기도 하다.

‘내가 들어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맛에 대해 눈이 높은 이 호텔의 명성은 현지에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파리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방문한 사람이라면 이 호텔을 꼭 들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비싼 땅인 ‘골든 트라이 앵글’ 지대에 위치해 있어, 나의 이름을 이곳에
내건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크다.

한국 사람들이 적자를 내면서라도 명동이나, 강남에 가게를 내어 간판을 걸고, 홍보 효과를 거두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말이다.
“역사가 깊은 호텔이기도 하죠.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셰프들은 이 호텔 안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차리고 싶어 할 정도니까요.”

“아, 예.”

정해진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던 나는, 객실로 올라갔다.

로비에 앉아있으니, 다른 셰프들의 노골적인 관심과 시선들이 부담스러운 탓이었다.

계속된 질문세례에 귀찮은 것도 있었고.

초대장에 있던 검은 카드는 올린의 말대로, 객실에 체크인할 수 있는 카드였다.

띠리릭!

문에 카드를 대자, 소리를 대며 잠금장치가 풀렸다.

침대에 누우니 창문으로 에펠탑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구와 뷰를 보니, 하룻밤에 150 만 원은 족히 넘는 방이었다.

객실을 둘러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곳에 초대받은 셰프들 중에 나처럼 객실을 받은 셰프들이 몇 명일지
말이다.

‘내 상대가 몇 명이나 될는지.’

호텔은 레스토랑을 차지할 유력한 후보에게만 객실을 제공했다.

객실을 제공하지 않은 후보들 중에서도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면 그때에 객실을 제공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객실을 제공 받지 못한 셰프들도 불만은 없었다. 어떤 대우를 받더라도 이 호텔 안에 레스토랑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테니까.

나에게 중요했던 건, 그나마 나의 상대가 될 만한, 객실을 제공 받은 셰프들이 몇 명이나 될 것 인지였다.

‘일단 미슐랭 11 스타 올린.’

로비에서 만난 올린은 초대장에 궁금한 점이 생겼다면서 나의 초대장을 보여 달라고 했었다.

사실 그가 궁금했던 것은 내가 자신과 같은 대우를 받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대충 그 정도 수준의 셰프들이라는 건데…….’

미슐랭 스타 11 개를 가진 셰프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는 점에서, 얼추 그들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낮은 개수의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요리 업계에 있는 현재 나의 입지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나보다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는 건, 나에게 그만한 매력을 이 호텔 측이


느꼈다는 것 아니겠나.

똑똑.

내가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셰프님, 아래로 내려가시죠. 모두가 모여 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뒤에 침대 위에서 하던 생각을 마무리했다.

현역 셰프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 요리 업계에서의 내 입지는 지금도 대단하지만, 내가 이 호텔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면…….

‘흠. 일단 얻어낸다.’

***

열여덟 명의 셰프들이 이 호텔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 중,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 레스토랑을 맡게 될 셰프님이 이 중에 계십니다.”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 로만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와 동시에 주변을 둘러 셰프들의 얼굴을 담았다.

아마 나와 같은 시간대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사람들이 객실을 받은 셰프들이리라.

그나마 나의 상대가 될 만하고, 꽤나 높은 수준의 이력을 가진 셰프들.

“여기 계신 두 분은, 저희 포시즌스 파리, 레스토랑 세 곳 중, 두 곳을 운영하시는 셰프님들입니다.”

한 명은, 프랑스 최고 장인에게 수여되는 MOF 훈장을 수여 받은 마리옹 보랭제.

한 명은, 포시즌스 호텔에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안겨준, 장루이 뒤크레였다.

둘 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오직 요리에만 모든 것을 쏟아내는 스타일인 터라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요리와 맛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프랑스
요리 문화에 많은 기여를 한 사람들이었다.

소개를 받은 마리옹이 입을 열었다.

“저희 동료가 될…… 셰프를 선발하는 데에 도움을 달라고 하시더군요.”

뒤이어 장루이가 말했다.

“이번엔 그래도 젊은 셰프들이 여럿 섞여 계신 것을 보니, 기대됩니다.”

전생엔 이 호텔에 입성하기까지 5 년 정도가 걸렸었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 둘이 모두 은퇴하고 나서 내가 이 호텔에 레스토랑을 런칭 했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미래대로라면, 이들이 셰프로서 활동하는 기간은 고작 4 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저들의 특성을 내 입장에서 요약하자면, 요리에 대한 이해가 높고, 깊은 지식을 가졌을 테지만. 곧
요리계를 떠날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미래를 알기에, 그들을 그렇게 평가했지만 이곳에 있는 다른 셰프들은 저들과의 인연을 맺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커리어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식으로 눈을 반짝거렸다.

“인터뷰를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두 분씩 순서에 맞게 저쪽 방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이 말했다. 다들 이곳의 입지를 알 만한 사람들이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은
줄이겠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말하곤, 레스토랑 내에 프라이빗 공간으로 마련된 곳으로 들어갔다.

셰프들은 순서를 기다리다가 자신의 차례대로 두 명씩 들어갔다.

순서는 따로 정해진 것이 없었고, 프라이빗 공간과 가까운 순서였다.

“셰프님, 이 자리를 맡기엔 너무 젊으신 것 아닙니까?”

“예?”

올린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웃고 있지만 다소 공격적인 언사에 내가 무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에 당황했는지 올린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아니, 당연히 셰프님의 실력은 이미 소문이 났고, 저도 셰프님을 현재 가장 핫한 셰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슐랭 포스타를 단번에 얻으셨는데 두말할 것 없죠. 하하하. 그런데, 나이가 어리시니 더
많은 도시의 주방을 경험하는 게 좋으실 텐데…….”

“파리에 왜 정착해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겁니까?”

“예, 예. 무슨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혹시 제가 배울 것이 있나 해서 말입니다. 하하하.”

“제게 물어보시는 이유가?”

내가 쉽게 답해주지 않자, 올린은 더 저자세를 취하며 내게 질문했다.

“하하하…… 저는 정말 나쁜 의도가 없습니다. 저는 제 밑에 있는 셰프들에게, 주방에서 1 년 2 년을


일하면 무조건 다른 주방으로 떠나야 한다고 가르치곤 하거든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새로운
문화와 맛을 많이 봐야 한다고요. 그런데, 근래에 가장 유명한 셰프이자, 가장 핫한 셰프로 떠오르신
반유현 셰프님께서, 파리라는 도시, 한 곳에만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니까……. 제가 저의 제자들에게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반유현 셰프는 왜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느냐고 묻는데, 제가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요?”

“아…….”

지나친 관심이 귀찮아서, 냉소적인 태도로 대했던 것인데, 올린은 오히려 고개를 더 조아렸다.

“효율을 위해섭니다.”

“파리에 상주하시면서 레스토랑의 맛을 유지하기 위한……? 그런 건가요?”

“사업의 일환이라 답은 못 드리겠습니다.”

“그럼, 제 제자들에게 크흠! 하하하! 이거, 이거!”

어딜 가나 인정받는 미슐랭 스타 11 개를 가진 그도, 내게 계속 머리를 조아리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호탕하게 웃는다.

자존심을 상하게 할 마음은 없었는데. 나는 미안한 마음에 답해줬다.

“제자들에게는 조금만 더, 지켜보라고 하십시오. 파리에 제가 계속 있는 이유가 곧 나올 겁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엄청난 걸 배울 수 있을 겁니다.”
***

“올린 셰프님의 요리의 특징을 말해주세요.”

나와 올린이 같이 붙어 있던 덕에, 우리 둘은 같이 면접장으로 향했다.

이 호텔의 사장인 로만과 이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두 명의 셰프. 그리고 몇 명의 간부들이 함께


참석해 있었다.

“전통적인 중식을 바탕으로, 일식, 한식의 에센스를 섞습니다. 오래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중일은 얽히고 얽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문화권 안에 속하죠. 저는 식문화에서도 세 나라에 대단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엄청난 공통점도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요리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동양권
나라들의 요리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조절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올린은 미국 국적을 가졌지만, 동양의 요리를 주로 하는 셰프였다.

그리고 동양의 요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요리를 개발해냈고, 다양한 퓨전 요리로 레스토랑을 운영해
미슐랭 스타 11 개를 받은 셰프였다.

“차이점과 공통점을 조절하신다는 게 어떤 말씀이신가요?”

“같은 식재료일지라도, 문화에 따라 이해가 다릅니다. 각각 국적이 다른 셰프들 앞에 돼지고기를 놓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라고 하면 모두 다른 요리가 나오는 것이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은 돈까스를
만들려고 할 것이며, 중국 사람은 동파육, 한국 사람은 그대로 구워 먹겠죠. 저는 사람들이 가진 이
차이를 맛으로 통합하기 위해 애씁니다.”

“예를 들면요?”

올린과 심사위원의 면접은 그렇게 길어졌고, 나의 차례가 왔다.

“반유현 셰프님, 하하. 오늘 오신 셰프들 중에 최연소이십니다.”

어딜 가나 최연소라는 소리를 듣는 게, 환생 초반엔 기분이 좋았다.

역대 인생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취를 해나가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아, 최연소라는 말도 질리시겠습니다.”

로만이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었다.

“각설하고, 질문 먼저 드리겠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는 어떤 요리입니까?”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알지 않나. 이럴수록 나는 더 빛을 발하는 거.

“제 요리는…….”

31 화. 쓸어 담기 시작(3)

“저는 요리를 언어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의 첫 마디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내게 집중했다.

“요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모든 의도가 상대의 머릿속에서도


그려져야 하죠. 제가 상상하는 맛을, 상대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 셰프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리에는 당연히 개인적인 취향이 있다.

저마다가 살면서 느낀 경험들이 다르고, 느꼈던 맛들도 다르다.

그런데, 내가 요리에 쏟아부은 100 년의 시간은 그 모든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같은 재료를 이용한 요리라면, 나의 요리가 맛있다. 자만이나, 허영심이 아니라 실제로.

때문에, 나에겐 내가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린 맛이 가장 맛있는 요리였으며, 그 맛을 상대가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그 어떤 셰프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맛이 가장 강력한 것이라면,


응당 그 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셰프의 역할 아닌가.

“반유현 셰프님이 상상하고, 의도하신 맛이 상대에겐 맛없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의도한 맛이 가장 맛있을 겁니다.”

이 공간에 있던 셰프들과 호텔 그룹의 간부들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대체 어떻게, 내가 이토록 자신만만한지 궁금한 눈치였다.

아무리 세계 최연소 미슐랭 포스타라고 한들, 거만해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잘난 맛에 취한, 젊은이로도 비췄을 수도 있고.

내가 한 말이 저들에게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요리를 저들에게 선보일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저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뷰는 이만하도록 하죠. 맛으로 어떤 것을 보여주실지 기대됩니다.”

결국 셰프는 맛으로 모든 말을 증명하면 된다.

서울시 요리 대회에서도, ACK 에서도, 미슐랭 평가원 앞에서도 매번 그랬지 않았나.

말로 기대감을 올려놨다면 저들이 기대하는 만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면 될 뿐이다.

“객실에서 잠시 쉬시고, 저녁 시간에 뵙겠습니다. 셰프의 말과 얼굴만 보고 그 요리가 기대되기는


처음입니다. 하하하.”

이 호텔 레스토랑의 터줏대감인 마리옹이 말했다.

***

면접이 끝난 뒤에는 요리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면접에서는 자신만의 요리 철학이 뚜렷한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을 실제


요리에 반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리 테스트는 방송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경연 형식을 빌렸다.

1 시간 이내에 지정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주방 한 테이블과 오픈형 냉장고에 식재료와 주방 도구들이 잘 가지런히 정돈되어있었다.

저것들만 봐도, 이 호텔 그룹이 요리 테스트에 얼마나 중점을 두고 있느냐를 알 수 있었다.

“당연히, 하나의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조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장의 말에, 조리복을 입은 젊은 사람들이 주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모두 열여덟 명. 요리 테스트를 보는 셰프의 인원과 같은 숫자였다.

“셰프 한 분당, 보조 한 분을 붙여드리겠습니다.”

보조들이 주방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나는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한 명의 여성이 깜짝 놀란 듯이 입을 가렸다.

“흡!”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보조들에게 셰프를 선택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셰프님들께서 선택권을 가지면, 여러 가지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셰프님들은 뒤를 돌아주시고, 오늘 보조로 참여하신 분들은 원하는
셰프 뒤에 서 주십시오.”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의 말은 방송 MC 의 말처럼 무게감이 없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이 테스트가 포시즌스 파리에 입점할 수 있는 다리라고 생각하니,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현장처럼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주십시오.”

나는 뒤를 돌아 있었는데, 사장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내 바로 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 줄 너무 많아. 가장 먼저 온 두 명 말고는 다른 셰프님 쪽으로 붙어.”

나와 함께 요리를 하길 희망하는 보조들이 너무 많아 사장이 직접 나서 정리한 것이었다.

뒤를 돌아 있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뒤에서만 이런 얘기를 한 것을 보면 보조들의 마음이


나에게로 쏠린 듯했다.

“자, 뒤를 돌아주세요.”

내 뒤에는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한 명의 남성은 중국계 미국인이었고, 한 명의 여성은…… 아까 나와 눈이 마주치고 크게 놀랐던


여성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민서윤 씨. 여기서 볼 줄이야…….”

“아니, 팀, 팀장님 진짜로! 어떻게 여기서 만난대요?”


민서윤.

한국에서 ACK(어메이징 셰프 코리아)에 출전했던 당시, 나의 선택을 받아 내 팀원으로서 같이 미션을


깨나가던 여자였다. 실력도 모자라지 않아 심사위원들에게 ‘엄마의 손맛’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녀였다.

무엇보다 나의 말을 이해하고 충실히 따르는 것에 있어서는, 로또 육인방과 견줄 만할 정도로 배움의


자세에 익숙하고 겸손한 그녀였다.

나의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요리 보조.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민서윤의 팔을 잡아챘다.

그 옆에서 선택을 기다리던 중국계 미국인, 보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셰프들 쪽으로 걸어갔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아니니, 가볍게 인사만 나누시고 곧장 요리 시작하겠습니다.”

사장이 말했고, 민서윤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요리 테스트에 무엇이 걸려있는지 알기에, 죽기 살기로 도와주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흡사, ACK 에서 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던 눈빛과 같았다.

“안부는 있다가 여쭤볼게요. 팀장님. 여기는 어쩌면 ACK 그 현장보다 중요한 자리니까요.”

“지금 물어봐도 되는데.”

“팀장님! 후. 그 말도 안 되는 여유와 성격이 진짜였다는 게 밝혀지긴 했지만……. 어떻게 이런


곳에서까지……!”

나보다 나이는 일고여덟 살 많지만, ACK 촬영 당시 사용했던 팀장이라는 칭호를 여전히 사용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요리 시작하세요.”

포시즌스 파리의 다른 하나의 레스토랑을 맡고 있는 장루이의 말에 요리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

“팀장님, 저는 어떤 것을 준비하면……?”

“제가 ACK 에서 튀김 요리할 때 가르쳐 드렸던 것. 튀김 가루랑 기름 좀 준비해주세요.”

“예!”

민서윤은 나의 말에 곧장 행동했다.

‘장어로 끝을 낸다.’

주방에는 작은 수조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곳에는 살아 있는 민물장어가 있었다.

내가 주방 한 편에 걸려있는 뜰채를 들고 수조로 다가가 장어들을 힘껏 건져냈다.

뜰채 안에서 힘차게 요동치는 게 신선도가 높은 장어였다.

파다닥! 파다닥!
그밖에 다른 수조에는 많은 종류의 어패류가 있었고, 냉장고에는 질 좋은 고기들이 가득했지만 내가
장어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어려운…… 재료를 또……!”

‘장어는 손질하는데 5 년, 꿰는데 8 년, 굽는 것에 평생’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굉장한 숙련도를 가져야 하는 식재료이다.

앞서도 증명해 왔지만, 판이 깔리면 내 최대의 실력을 보여주는 게 내 인생에 가장 효율적이지 않았던가.

이 자리에서도 그 효율을 따지다 보니 아무도 손대지 않는 식재료를 즉석으로 골랐다.

“참나……!”

“잘나셨고만.”

“장어? 너무 무모하잖아. 우리한테는 기회야.”

“푸하하하! 우리를 대놓고 무시하는 거야? 젊은 친구. 그러지 말라고.”

내가 많고 많은 식재료들 중에 장어를 골랐다는 것 자체가 이 주방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이었다.

이 요리 테스트의 심사위원으로 있는, 셰프들 그리고 호텔의 간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창칼.”

칼날이 짧고 끝이 날카로운 칼로, 장어를 손질할 때 주로 사용하는 칼이었다.

내가 말하자, 튀김용 기름을 만들고 있던 민서윤이 나의 손에 창칼을 쥐여줬다.

칼을 잡자마자 건져 올린 장어의 아가미에 칼을 찔러 넣었다.

빨간색 피가 흘러나왔고, 나는 칼을 찔러 넣은 장어들은 물을 채워둔 개수대에 던져 놨다.

장어의 몸에 피를 빼는 작업을 위해서였다.

“피 빠질 동안 간장조림 소스 준비할 겁니다.”

냄비에 물과 청주를 넣고 끓인 뒤 생강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생강은 장어 특유의 비린내를 잡을 수 있으며, 특히나 조림 요리를 할 때는 장어의 지방이 녹아 소스에


느끼한 맛이 날 수도 있는데, 생강은 그 느끼함을 잡아줄 수 있다.

물이 끓어오르자 간장과 설탕, 맛술을 넣고 충분히 끓여 내기 시작했다.

간장 조림 소스가 우러나고 있을 때, 나는 곧장 장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도마 위에 장어의 머리를 고정시키는 집게에 장어의 머리를 끼운 뒤, 장어의 지느러미 밑으로 칼을 후벼


넣었다.

솨악!

드드득!
칼과 장어의 뼈가 맞닿는 소리가 났고, 나는 능숙하게 장어의 내장을 걸러낸 뒤, 머리를 쳐냈다.

한 마리의 장어를 손질하는 것에, 6 초 정도 걸렸다.

원래 4 초를 넘기지 않았었는데, 이번 생에 장어를 처음 만지다 보니 무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셰프들은 혀를 내둘렀다.

“장어를 무슨……. 새우껍질 까듯이…….”

저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지만 나는 관심을 주지 않고 요리에 집중했다.

손질된 장어를 적당히 썰어 낸 뒤 펼쳐, 간장 조림 소스에 투하했다.

그 뒤엔 끓고 있는 간장을 장어의 살에 끼얹으며 조렸다.

“민서윤 씨. 대파 좀 썰어주세요.”

민서윤은 나의 의도가 뭔지 알았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음에도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건네줬다.

받은 대파를 곧장 간장 조림 소스에 넣었다.

“일로 오세요. 간장을 계속 장어 위에 끼얹어 주세요. 스테이크 구울 때 베이스팅 하는 것처럼요. 허브도


넣을 건데, 그 타이밍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브요? 아, 아! 아닙니다!”

내 조리법에 궁금증이 생겼다가, 이 요리 테스트가 어떤 테스트였는지 다시금 깨달은 민서윤이었다.

“네, 끝나면 다 가르쳐 드릴게요.”

민서윤이 간장 조림을 하고 있는 옆의 화구에 냄비를 하나 더 올려놓고, 복분자 술을 부었다. 그리고


설탕을 넣었다.

“이것도 잘 저어 주세요. 알코올을 날리고 단맛만 살릴 겁니다.”

민서윤에게 그것들을 맡겨 놓고 나는 미리 손질해둔 장어를 꼬챙이에 꿰었다.

숙!

숙!

수욱!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다른 셰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생각해 놓은 구상대로 요리를 이어나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리 생각해 온 것처럼, 그리고 누구보다 숙련된 장인처럼.

“장어 간장 조림, 장어 깐풍기, 장어 소금구이. 세 가지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요리가 모두 완성되었고, 나는 성인 팔 길이만 한 긴 접시에 그것들을 올려두었다.


“조림, 튀김, 구이 순으로 요리를 맛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모두가 메인요리인 것 같았지만. 먹는 순서가 있었다.

“흠. 조리법의 차이로 코스를 구성하신 겁니까? 같은 장어 요리에도 순서가 있군요.”

물론, 내가 구상해 놓은 순서는 먹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

“……!”

“구운 장어의 식감이…….”

맛에 놀라 표정 관리를 할 심사위원들, 그리고 그 광경을 내가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까지.

이게 내가 생각한 오늘의 순서였다.

32 화. 쓸어 담기 시작(4)

“음식을 맛보진 않았지만. 일단 독보적이긴 합니다. 농어, 대구, 닭, 소, 돼지, 여러 재료들 중에


장어를 직접 손질해서 요리한 셰프는, 반유현 셰프밖에 없으니까요.”

그 말을 시작으로 내 요리에 대한 심사가 이어졌다.

“장어는 조림 요리를 하면, 부드러워지는 생선입니다.”

심사위원들이 나의 요리를 입에 머금고 음미했다.

“간장에 장어를 졸일 때에 대파를 넣었습니다. 대파도 함께 드셔보시죠.”

강력한 맛은 사람을 홀린다. 내 요리의 맛을 본 사람들은 나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호텔 간부와 셰프들은 시종일관 놀란 표정으로 나의 지시에 따라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니쉬도 함께 얹어서 드시면 맛이 배가 될 겁니다.”

“가니쉬, 이거 부추인가요?”

“맞습니다. 복분자주의 알코올을 날려 설탕은 아주 조금 넣고 함께 졸인 드레싱을 얹은 부추입니다.”

“와……. 이거, 뭐!”

포시즌스 호텔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두 명의 셰프, 마리옹과 장루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저들이 왜 저런 심각한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부추는 생강으로 한번 잡았던 장어 특유의 비린 맛을 완벽하게 정리해주며, 알코올을 날린 복분자주를


이용해 만든 드레싱은 부추가 줄 수 있는 알싸함에 단맛과 상큼한 맛을 더해줍니다. 그리고 이 가니쉬는
구이, 튀김, 조림 어디에도 잘 어울립니다.”

부추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봐도, 장어와 잘 어울리는 식품이지만 그 맛에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식품이다.
마늘과 파와 같은 성질을 가진 부추는 그 특유의 알싸함을 줄이고 다른 맛을 얹어주면 장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강력한 가니쉬가 될 수 있다.

“재료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부추와 복분자주라…….”

“부추의 알싸함을 잡기 위해 꿀을 넣자니, 꿀은 부추와 영양학적으로 상극이고, 설탕을 넣자니 설탕이


주는 강한 단맛이 장어의 고소함을 가릴 수도 있다…… 그래서, 알코올을 날린 복분자를 이용했다는
건가요?”

장루이가 나의 의도를 그나마 캐치해냈고, 나에게 질문했다.

“맞습니다. 처음엔 레드 와인을 이용할 것인가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복분자 특유의 단맛과 약간의
산도를 표현하기엔 모자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거…… 오늘 레드 와인을 이용한 소스를 만든 셰프님들은 긴장하셔야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조림, 튀김, 구이 순으로 나의 모든 요리를 먹고 자신들의 소감을 말했다.

“이 부추라는 하나의 가니쉬가 세 가지 요리에 모두 어울립니다. 그리고 각 요리마다 다른 특성을


보여주는 듯한……. 구이와 먹을 때는 고소한 감칠맛을 올려주고, 조림과 먹을 때는 겹겹이 여러 맛이
더해지는 느낌…….”

“이 장어구이는 어떻게 이런 식감을 낼 수가 있는 겁니까? 기름기는 빼고, 담백함은 더하면서 겉은


바삭한 이 느낌까지. 이건 역대급입니다!”

“간장 조림 장어와 함께 플레이팅 된 대파도 존재감이 엄청났습니다. 대파를 모두 씹은 뒤에 튀김을 곧장


먹으니 저절로 눈이 감기더군요.”

서로가 나의 맛의 의도를 더 잘 알았다는 듯이, 경쟁하듯 소감을 뱉어냈다.

오히려 심사위원들이 나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느낌이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칭찬을 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각 조리법에 최적화된 크기의 장어를 쓰는 것에도 신경 썼습니다. 32cm 에서 36cm 의 장어는 튀김용,
41cm 에서 45cm 의 장어는 구이용으로. 그 중간의 장어는 조림용으로.”

“막 잡아 손질해서 요리한 것처럼 보였더니, 그게 아니라……. 그 정도의 디테일까지 신경 쓰셨다는


겁니까?”

“와…….”

“생선은 크기에 따라 식감과 살의 맛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장어도 똑같습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고, 몇몇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가 흠칫
놀라 딴청을 피웠다.

그럴수록, 그 뒤에 심사를 기다리던 내 경쟁 셰프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제일 까다로운 장어를 직접 손질해 이런 평가를 받고 있으니, 자신들의 요리가 저절로 초라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심사에 많은 영향을 끼칠 셰프, 마리옹이 쐐기를 박았다.


“면접 때 말씀하셨던 그대로네요. 반유현 셰프가 의도한 맛이 가장 맛있을 거라던. 너무 맛있었습니다.
이 요리가 가장 맛있었는데, 제가 반유현 셰프의 요리 의도를 다 파악한 것 맞습니까?”

***

요리 테스트는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1 차, 2 차, 그리고 어쩌면 3 차까지. 호텔 측의 확신이 설 때까지 셰프를 시험한다.

그럼에도 셰프들은 불만이 없었다.

이 호텔 안에 레스토랑을 런칭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의, 셰프로서 입지를 갖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다음 테스트를 기다리며, 보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준 민서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포시즌스


호텔의 레스토랑, 1 차 요리 테스트에서 나에게 극찬을 했던 마리옹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왔다.

이 호텔에 소속된 레스토랑들은 모두 호텔의 투숙객들에게는 예약을 따로 받는다.

덕분에, 관광객이나 외부의 손님들로 예약이 꽉 차 있더라도 투숙객들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에겐 제공 받은 객실이 있었기에,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팀장님! 대단하세요. 1 년 만에 슈퍼스타가 되신 게…….”

민서윤이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말을 건넸다.

“오셨습니까? 이번에 고마워서 식사라도 대접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제가 고맙죠. 셰프님……. 그런데, 저랑 스캔들 터지면 어떡하시게요?”

“무슨? 스캔들?”

“아니, 완전 연예인이신데 저 같은 여자랑 같이 밥 먹었다간…….”

매사에 진지한 민서윤이었기에,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왜 여기에 계셨던 겁니까?”

“아, 방송 끝나고 요리 유학 왔죠. 장루이 셰프님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진짜, 반유현
셰프님 처음 얼굴 봤을 때 너무 놀랐어요. 와……. 아니, 미, 미슐랭 포스타 셰프 맞죠?”

“네.”

민서윤은 아직 내가 미슐랭 스타를 소유한 셰프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민서윤과 헤어진 지는 1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ACK 라는 방송 경연 프로그램의 참가자, 우승자에서 세계 최연소 미슐랭 스타 셰프로.

“그때 그냥 팀장님 따라갈 걸 그랬어요. 바짓가랑이 붙잡고.”

“하. 주방일이 힘드신가 봐요. 표현이 과격해지셨네.”


“치. 장어 요리했던 것들 비법 좀 가르쳐 주세요.”

나는 민서윤에게 요리 테스트 당시 선보였던 요리의 디테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민서윤은 곧장 노트를


꺼내 나의 말을 모조리 받아 적었다.

“와……. 이런 건 진짜 팀장님한테 밖에 못 들어요. 대체 어느 주방에 가도 이런 디테일은 가르쳐 주지


않던데.”

“무튼 보조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은 잘 지내십니까?”

“아, 김해숙 어머니는 또 냉동 오리 홈쇼핑으로 대박 나셨고, 최경복 아저씨는 중식당을 차리셨어요.


앞이 안 보이는 장애를 가지셨는데, 정말 대단하시죠? 그리고 윤종혁은 이탈리아에 있는 주방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다 별일 없이 잘 지내시네요.”

우리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을 때 요리가 서빙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단호박 무스와 감자 크로켓입니다.”

첫 요리가 나왔고, 민서윤은 매우 맛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서도 내 표정을 응시하는 민서윤이었다.

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을 보고 싶다는 건,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일관된 반응이었다.

민서윤도 그런 눈치로 내 표정을 살피고 있는 듯했다.

“푸아그라 라비올리입니다.”

다음 코스에 무슨 요리가 나올지 알 정도로 정통적인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다만 확실히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곳이라 그런지, 재료의 손질법과 관리에 엄격한 기준을 세워 놓은
듯했다.

“구운 관자와, 그다음으로 샤프란 소스를 곁들인 흰살생선구이입니다.”

역시나, 내가 영감을 받거나 배울 점은 없었다.

그게 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민서윤이 내게 물었다.

“티, 팀장님 맛없으세요? 여기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거기에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님 중 한 명인
마리옹 셰프님이 운영하는…….”

“오해하지 마세요. 저도 맛있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우세요? 응당 셰프라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되는
거 아니에…… 헤엑!”

민서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다가 내 뒤쪽을 바라보더니 크게 놀랐다.

나는 곧장 뒤를 돌았다. 그리고 민서윤이 놀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
이 레스토랑의 주인인 마리옹과, 포시즌스 호텔 내 또 다른 레스토랑의 주인 장루이였다.

그리고 그 둘이 내게 다가온 직후에는 포시즌스 호텔 파리의 사장인 로만이 들어왔다.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어떤 말씀……?”

“어……. 조심스럽지만, 반유현 셰프님 단독으로 2 차 요리 테스트를 보고 싶다는 게 저희 호텔 측의


의견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무심코 민서윤의 얼굴을 봤더니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놀란 눈으로 나와 이 호텔의 직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세…….”

“반유현 셰프님, 다른 셰프들의 요리를 보는 게 시간 낭비라고 느껴졌습니다. 이미 저희 포시즌스 호텔의


새로운 레스토랑의 주인이 거의 정해졌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2 차 요리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저희의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셰프님들의 시간까지 뺏는다는 생각입니다.”

그 옆에 있던 장루이가 로만의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그래도 반유현 셰프님의 다른 요리를 한 번 더 봤으면 하는 마음에,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 테스트를


단독으로 진행해 볼까 합니다.”

“의미 없는 요리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도의적일 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셰프님들과 저희,


모두에게 유익할 것 같습니다.”

포시즌스 호텔의 레스토랑 중 한 자리, 그 비어있는 자리의 새로운 주인은 ‘나’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고, 그것을 완벽하게 확정 짓기 위해 단독으로 요리 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셰프들을 전부 불러 의미 없는 요리 테스트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일이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흘러간다. 이 호텔 측의 의사결정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것도, 1 차 테스트처럼 주방 안에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야 되는 겁니까?”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해주시면 저희가 판단하는 것에 좋을 것 같습니다.”

“판단…….”

분명, 나의 요리를 맛보고 나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터인데, 아직까지 그 판단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이 호텔의 경영을 책임진 사장, 로만은 줄다리기를 했다.

경영자로서 나와의 계약을 맺을 때, 조금 더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기 위해서 고개를 굽히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계약을 맺을 때의 우위를 갖는 것은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먹은 요리들을 똑같이 내놓겠습니다. 재료만 준비해주십시오.”


포시즌스 호텔의 역사를 함께 했고,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마리옹의 레스토랑.

방금까지 민서윤과 함께 비워낸 이곳의 요리를 똑같이 내어놓겠다고 말했다.

‘확실하게 하려면.’

나에게 이 레스토랑의 자리가 중요한 것인가, 저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인가를 정확히 대보면
그 우위는 명확히 판명 난다.

이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인 마리옹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장 찡그렸다.

그러더니 웃음을 짓는다.

“하하하하! 제 요리를 그대로 하시겠다는……? 엄청 기대됩니다. 이번에도 그 하신 말씀을 요리로


증명해내실지요.”

저들에겐 그저 젊은 셰프의 도발적이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느껴졌겠지만, 나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말했다.

그저, 내 요리를 비교 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점을 세워줬을 뿐이다.

함께 있던 간부들과 셰프들도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하하. 반유현 셰프님, 다소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마리옹 셰프님의 요리를 그대로 따라 하시겠다니…….
무모한 도전을 하실 필요 없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하셔도 됩니다. 저희 호텔 측에서는 그 정도
배려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배려를 해준다라…… 이들의 태도를 보건대, 아직 자신들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속으론 내가 이 호텔에 필요하다고 애타게 울부짖으면서.

무작정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내가 먼저 저들에게 솔직하게 대해줘야, 저들도 속마음을 제대로 꺼낼
것이란 생각에 말했다.

“아직 디저트가 안 나왔습니다. 식사가 안 끝났거든요. 밖에서 기다려 주시죠.”

이 한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나의 태도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버렸는지,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 로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에…… 예?”

33 화. 내가 더 별이 많아 (1)

그렇게 독립적으로 요리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지난 1 차 요리 테스트에서는 이 주방을 열여덟 명의 셰프가 꽉 채웠지만, 지금은 나와 포시즌스 호텔의


간부들, 마리옹과 장루이, 그리고 그를 따르는 셰프들이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혼자 계시고, 심사위원인 저희들의 시선은 분산되지 않으니 부담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나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루이가 말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말이기도 했다.


1 차 요리 테스트처럼 경연 형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하면, 당연히 최고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을 것이다.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나의 능력을 제대로 확인해보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아, 그렇겠군요. 1 차 요리 테스트와는 달리, 저희는 밖에 나가 있겠습니다. 지금 이 주방은 반유현


셰프님의 공간입니다.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주세요.”

나와 민서윤을 제외한 모두가 주방에서 나갔고 우리 둘만 남았다.

민서윤은 얼떨결에 나와 식사를 하다가 나의 보조를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이 요리 테스트가 계획에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더더욱 없었을 터.

나에게 요리를 배울 수 있고 저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또 나의 선택에 의문이든 모양이다.

“근데 정말…… 마리옹 셰프님의 레스토랑에 있는 메뉴들을 똑같이 하실 거예요?”

“네.”

“굳이 왜……. 비욘세 앞에서 비욘세 노래를 부르신다는 건데…….”

“비유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욘세한테 노래를 가르쳐 준다는 느낌입니다.”

“팀장님! 물론 팀장님의 말씀이 근본 없는 자신감, 자만심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후. 그러다 진짜


사람들한테 미운털 박히겠어요!”

실제로 내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감출 줄 알아야 된다고. 겸손에 대하여 내게 말하는 민서윤이었다.

더군다나 마리옹은 요리에 대한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이 일대의 셰프들에게 존경받는 셰프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민서윤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착각하지 마세요. 민서윤 씨. 제가 마리옹 셰프님 보다 미슐랭 스타가 많은 셰프입니다.”

미슐랭 스타가 셰프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평가요소라 할 수 없지만, 그냥, 사실관계를 짚어줬다.

민서윤이 나를 마리옹의 아래 단계에 있는 셰프라 생각하는데, 가만히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마리옹은 미슐랭 원스타, 나는 포스타. 나는 그보다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짧은 웃음을 흘려 보이자, 민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아아. 그건, 그렇네요. 마리옹 셰프님이……. 팀장님 보다…….”

“포시즌스 호텔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계신 마리옹 셰프님과 장루이 셰프님의 미슐랭 스타를 합쳐도, 네
개가 되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
“단호박 무스, 감자 크로켓.”

“푸아그라 라비올리.”

“구운 관자, 샤프란 소스를 얹은 가자미 구이.”

“메추리 스테이크.”

내가 방금 전 마리옹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메뉴들을 수첩에 적었다.

다들 괜찮은 맛을 보여주었지만, 조금씩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조금의 디테일만 추가됐더라면, 더 높은 맛을 보여 줄 수 있었던 부분들.

“더도 아닌 덜도 아닌, 미슐랭 1 스타 수준의 레스토랑이었습니다. 더 높은 수준의 레스토랑으로 가려면


같은 요리라도 확실히 다른 점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하나 내가 먹었던 메뉴들과 아쉬웠던 점들을 모두 확인한 뒤에는, 요리를 시작했다.

“단호박 껍질 깎고 씨 빼고, 물에 삶아주세요.”

먼저 단호박 무스를 위한 손질을 민서윤에게 맡기고 나는 감자 크로켓을 준비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식 조리법과 발음이 섞여 ‘고로케’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원래의 이름은 크로켓이다.

‘마리옹 셰프의 크로켓과 맛의 확실한 차이를 내야 하는데. 튀김이나, 기름은 어차피 비슷하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었으니, 튀김반죽과 기름, 그리고 튀기는 방법에는 꽤나 많은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튀김을 바삭하게 만들기 위해 반죽에 탄산수를 넣는다든가, 맥주를 넣는 방식들은 아주 평범한 것들이라는
소리다.

또는 튀김용 기름에 참기름을 섞어 기름의 풍미를 높이는 것도, 맛에 있어 큰 차이를 만들 수는 없을


터였다.

미슐랭 스타의 레스토랑에 있는 음식들은 모두 그 정도의 노력과 노하우는 기본으로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와의 맛의 차이를 완벽하게 줄 수 있는 것은 재료의 첨가였다.

똑같은 메뉴를 만들어 내기로 했으니, 요리의 외형이나 색감이 바뀌지 않고 미세하지만 미세하지 않게
맛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나는 선반 위에 놓인 소스, 또는 조미료, 향신료가 담겨 있는 통들을 둘러봤다.

‘이거지.’

곧장 내 머릿속에 떠오른 조미료를 선반에서 꺼내어, 삶아 으깬 감자와 잘게 썰어 볶은 야채에 투하했다.

그리고 손으로 모양을 빚어 전분가루와 빵가루를 묻혀 튀겼다.

“이 색깔, 이 색깔이 나왔을 때, 건지세요.”

단순 반복의 일은 민서윤을 시켜놓고, 나는 민서윤이 손질한 단호박을 으깼다.


그다음 생크림에 거품을 내 그것을 으깬 단호박과 잘 섞었다.

생크림의 농도와, 단호박의 삶은 정도, 그리고 간. 정확히 맞아 떨어져 마리옹의 레스토랑에 있던 단호박
무스가 탄생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을 보여줘야 했다.

‘당근 퓨레랑……. 이 가루가 있으면…….’

단호박 무스에 당근을 소량 으깨어 퓨레를 만들어 넣었다. 색깔이 변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당근은 단호박의 단맛과 대적하는, 새로운 단맛을 내어 줄 것이고 그렇게 쌓인 두 가지 단맛은 이 요리를
먹는 이에게 호기심과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나는 또 선반에서 다른 향신료를 가져와 투하했다.

“플레이팅은 민서윤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이어지는 요리는 푸아그라 라비올리. 푸아그라를 속으로 채워 넣은 이탈리아식 만두다.

푸아그라를 꺼내 뜨거운 물에 담가두었던 칼로 썰었다.

정교하게 썰린 푸아그라를 팬에 굽고, 와인에 설탕을 넣고 함께 졸인 사과와 버터에 볶은 야채를 속으로


채워 만두를 빚었다.

물론, 만두를 빚는 속도 또한 신경 써야 한다. 밀가루 반죽에 수분이 날아가기 전, 반죽에 계란물을


묻혀가며 빠른 속도로 만두를 만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구운 관자, 샤프란 소스를 곁들인 가자미 구이, 메추리 스테이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대……단, 하십니다.”

막힘 없이 요리를 뽑아내는 나를 보고 민서윤이 한 말이었다.

“민서윤 씨도, 그만 놀랄 때 되신 것 같은데.”

루시앙이나, 올리버, 그리고 로또 육인방 같이 나와 함께 일했던 이들은 놀라는 단계를 넘어섰는데, 아직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

한창 주방 안에서 반유현과 민서윤이 요리를 만들고 있을 때, 밖의 상황은 차분했다.

“장루이, 사실 우리가 여기서 심사를 하고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유지해 온 역사에 함께할 레스토랑의 셰프를 뽑는 건데.”

“흠. 자네의 말도 맞지만, 우리에게 합격을 얻으려 하는 저 셰프는…….”

마리옹이 그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장루이는 알아들었다.

저 주방 안에 있는 셰프가 우리보다 더 나은 실력과 감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역사상, 단독 테스트란 게 없었지 않나. 이곳에 초대된 셰프들 모두 각 지역에서 최고로 인정 받는


셰프들이고, 유럽 최고의 호텔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싶다는 욕심을 가진 셰프들인데. 누구 하나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했을 거야. 다들 요리 테스트에서 최고로 실력을 뽐낸 거라고. 그중에서도 압도하는
실력을 가졌다는 건…….”

“정확히 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

“흠. 우리가 요즘 자주 얘기하던 것들 있지 않나. 언젠가 때가 되리란 걸,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두 셰프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는 식으로 자주 이야기했었다.

은퇴라는 단어를 가슴 속 깊이에서 만지작거리곤 했었는데, 마침 혜성처럼 등장한 ‘반유현’이라는


청년이 보여준 실력 덕에 그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내 레스토랑에, 내가 직접 개발한 메뉴들을 그대로 내놓겠다고, 저렇게 당돌한 젊은이를 본 적이 없어.


아니, 본 적은 있지. 그런데 내 마음에 묵직하게 와 닿게 한 젊은이가 없었어.”

“그것도 맞지. 사실, 속으론 저 젊은이가 자네를 진짜 이겼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네.”

마리옹은 장루이의 호탕한 웃음이 섞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으니까?”

그때, 두 셰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만이 말했다.

“셰프님들 두 분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십니까?”

“로만, 우리도 갈 때가 된 것 같네요.”

“예? 60 대 초반의 나이이신 두 분이 어딜 가십니까. 아직 한창이시지 않습니까?”

“아니, 우린 더 이상 우리 몸에 베어버린 습관 때문에 혁신적인 요리를 내놓지 못합니다. 머리가


굳어버렸죠.”

“그게 무슨 말씀…….”

마리옹과 장루이가 나누고 있던 대화가, 시시콜콜한 얘기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로만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가 노력한 시간들이 그대로 실력이 되었다면, 저 젊은 셰프가 우리의 요리를 따라 할 엄두를
냈겠습니까? 우리가 쓰는 시간들은 헛되이 버려지고 있고, 떠날 때가 됐다는 뜻입니다.”

“지나치십니다. 셰프님. 하하하. 반유현 셰프의 말에 신뢰가 가긴 하지만, 수십 년의 내공과 노하우가


담긴, 마리옹 셰프님의 요리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저희 호텔의 자랑인데요. 매번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마리옹 셰프님께서도 미슐랭 스타 3 개는 거뜬하게 얻으셨을 겁니다. 아무리 반유현
셰프가 요리 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지만…….”

로만은 반유현의 실력을 보고 회의감을 느낀 마리옹을 위로했고, 마리옹은 로만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마도, 내가 노력한 시간들이 혁신적인 요리를 생각해 낼 실력을 쌓아주진 못했지만, 저 친구가 나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알 수 있게 해준 것 같네요.”

이상하게도, 반유현이 뱉은 말들은 거만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말이 남다른 자신감이고, 확신으로 보였던 것은 괜한 느낌이나 촉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셰프들을 봐왔던, 경험이었다.

“준비 다 됐습니다.”

그때 마침, 반유현 셰프가, 주방에서 접시를 들고나오는 게 보였다.

***

“먼저 드셔보시죠.”

코스의 첫 번째였던, 단호박 무스와 크로켓을 가리켰다.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위기가 매우 무거웠다.

마리옹과 장루이가 먼저 시식을 했는데, 단호박 무스를 입에 넣자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맛의 출처를 아시겠습니까?”

“대체…….”

“하하하하!”

마리옹은 초점이 없고, 장루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당근 퓨레를 넣어, 새로운 맛을 추가했습니다. 진득한 단맛을 내는 단호박에 다른 맛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향을 위해 시나몬 가루를 조금 넣었습니다.”

마리옹은 그대로 놀란 눈을 하고 날 바라봤다.

나는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대답해줬다.

“그냥,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감자 크로켓도 드셔보시죠.”

나의 말에 감자 크로켓을 먹은 이들은 저마다 탄성을 내뱉었다.

확실히, 마리옹이 만든 크로켓과 같은 모양과 같은 색을 가졌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 미묘한 차이, 감칠맛입니다.”

로만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크로켓을 계속해서 입으로 가져갔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새우가루를 약간 첨가했습니다. 감자 크로켓의 속에 들어가는 재료는 똑같지만, 새우가루를 넣었다는


것만으로도 맛은 확 달라집니다.”

선반 위를 둘러보다가 즉석으로 골라 넣은 조미료였다.

내가 재료를 말해주고 나서야, 나를 심사하러 왔다는 이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와…….”

“감칠맛. 그걸 살리는 게 이 요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마리옹 셰프님의 크로켓은 볶은 콩을


조금 으깨 넣어 특유의 고소함을 추가하셨지만, 감자에 소금 간을 쳤기에 그 고소한 포인트가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넣은 새우가루는 감칠맛을 더하고, 볶은 야채와 으깬 감자의 맛들을 부드럽게 합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새우가루 하나를 추가한 것으로 전체적인 풍미를 올릴 수 있습니다.”

마리옹과 장루이는 생각이 많아진 듯이 초점이 없는 눈으로 단호박 무스와 감자 크로켓을 계속 찍어


먹었다.

평가를 한다는 것을 까먹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계속해서 요리를 입으로 가져가 탐구했다.

“아시겠지만 이게 첫 번째 요리입니다.”

마리옹과 장루이. 미슐랭 스타를 가졌고, 꽤나 오랜 경력의 셰프들이라, 자존심이 강할 줄 알았는데.

나이와 경력이 훨씬 어린 나의 요리에 맛을 인정하고, 배움의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아 내 생각보다


수준이 높은 셰프들인 것 같았다.

‘테스트는 끝났고.’

내가 준비한 코스에서 첫 번째 요리는 테스트였다.

저들이 내 요리를 맛볼 자격이 되는지. 더 정확히는, 마리옹의 요리와 내 요리의 완벽한 차이를 파악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테스트였다. 저들은 그 테스트를 방금 통과했다.

내가 테스트를 받는 자리에서, 심사위원의 테스트를 왜 했냐고?

저들이 요리를 먹음으로써, 내 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이 요리 테스트에서 합격하리라는 것이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것 아니겠나.

그냥, 그 결과를 미리 알고 싶었다.

“다음은 푸아그라 라비올리입니다.”

34 화. 내가 더 별이 많아 (2)

“이런 조화는……!”

푸아그라 라비올리. 이탈리아식 만두, 파스타 반죽에 그 속을 푸아그라와 각종 볶은 채소로 채워 넣었다.

그것을 입에 넣자마자, 푸아그라 특유의 기름진 담백함이 터져 나온다.

그 담백함은 잘게 다져 넣었던 닭다리살과 섞여 그 육질의 맛을 한껏 높이 올려준다.

“와.”

씹자마자 탄성을 내뱉는 건, 앞서 말한 푸아그라의 기름짐 때문이었다.

푸아그라의 기름은 고소함과 담백함을 동시에 가져다 줬다.

물론, 그 맛이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느끼함을 동반할 수가 있다는 것이 문제.

“와! 밀가루 반죽 속 안의 재료들이 절대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방금 나온 탄성과 ‘균형’이라는 말은 그 느끼함이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푸아그라의 지방과, 닭다리살 육질의 맛이 절정에 달했을 때, 와인에 졸인 사과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존재감을 뽐냈다. 그리고 느끼함이 지속되는 것을 막아줬다.

뿐만 아니라, 와인에 설탕을 넣고 졸인 사과는, 새콤달콤 감칠맛을 돋우며 버터에 볶은 야채들과,


푸아그라와 닭다리 살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환상…….”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확실한 맛의 차이가 느껴지는 내 요리를 맛본 이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비교의 대상은 프랑스 파리에 몸담고 있는 셰프들의 정신적 지주, 마리옹이었으니 말이다.

“레시피가 궁금합니다.”

“마리옹 셰프님의 요리에는 없던 담백함이야…….”

마리옹은 직원들의 평가에 그저 헛웃음을 흘렸다.

재료와 조리법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주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자신의 요리를 카피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불과 한 시간 전이었다.

어떻게 내가, 즉석으로, 주방에서의 순발력만을 갖고 이런 맛을 이끌어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 보였다.

“샤프란 소스를 곁들인 가자미 구이입니다.”

나도 그 의문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내가 100 년을 넘게 요리를 해온 사람이라고 설명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준비한 요리를 선보였고, 그 뒤의 결과는 똑같았다.

칭찬, 놀라움, 경외심, 언제나 그렇듯 그런 반응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

“재료 하나하나에 대한 이해와 깊이……. 이 요리들을 감히 평가할 사람이 있는가…….”

마리옹이 작게 읊조렸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결과는 또, 확실하게 정해졌다.

***

포시즌스 파리,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겠다는 꿈을 꾸는 셰프들은 수없이 많다.

더군다나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셰프들에겐 더 없는 꿈의 장소이자 명예일지도.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되었다.

“축하드립니다.”

2 차 요리 테스트를 한 지 이틀이 지났고, 나는 다시 포시즌스 호텔을 찾았다.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벽에 걸린 대형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 포시즌스 파리의 새로운 맛의 역사 시작, 반유현! ]

“환영합니다.”

사장인 로만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수십 명의 직원들이 경쟁하듯 박수를 쳤다.

포시즌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은 총 세 개. 나는 그중 하나의 레스토랑을 맡게 되었다.

“저희의 오랜 전통입니다. 새로운 가족을 환영하는 마음에 전 직원들이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반유현, 이 몸으로 환생하고부터 막힘없이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먹자골목인 몽토르게이 거리에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내 이름이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었는데, 파리 내에 가장 비싼 땅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약 80 년 역사를 가진 포시즌스 호텔에 내
이름을 걸게 되었으니, 내가 이곳의 호텔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된다는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될 터였다.

“대외적인 홍보는 셰프님과 함께, 구체적인 일정을 그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점진적으로 실행하겠습니다.”

케이크를 자르고, 이 호텔 그룹의 직원들에게 소감과 포부에 대해 말하고, 박수를 받는 둥 행사 치레 몇


가지 일정을 마쳤고. 나는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인 로만과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을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궁금해집니다. 뭐, 저희 호텔 측에서


간섭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홍보나, 주방과 홀을 새롭게 꾸미는 것에 있어서 저희 측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요.”

포시즌스 호텔이 맛에 있어 꽤나 유명한 입지를 갖는 것은 자유도 때문일 것이다.

호텔이라면, 매출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포시즌스 그룹은 자신의 호텔에 레스토랑을 맡고


있는 셰프를 전적으로 믿었다.

물론, 그만큼 셰프를 선별해내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기에, 거기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반유현 셰프님은 저희 호텔 역사 최초, 단독 테스트를 하셨으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더군다나 내가 최근 파리에서 올렸던 성과들과 요리 테스트에서 이들에게 보여줬던 실력들은 그 신뢰와


믿음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로만의 눈동자도 거의 하트 모양과 다름없었다. 나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들어 있다.

“레스토랑을 오픈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신뢰에 반하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예?”

사장 로만은 뜻밖의 내 말에,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은 그렇다 할 선례를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주방과 메뉴를 구성해 오픈한 레스토랑이었다.

그랬던 나의 과거를 알고 있던 탓에, 포시즌스 안에 내가 새롭게 차릴 레스토랑도 아주 빠르게


오픈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습니까?”

“내년의 미슐랭 스타를 목표로 삼을 겁니다. 그 뒤로는 늦춰지지 않게 할 생각입니다.”

로만은 놀란 눈을 하곤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내년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오픈한 지 1 년 만에 또 미슐랭 스타를 얻겠다는


말씀이신데. 역시 반유현 셰프님이십니다! 하하하! 제가 괜한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걸린다고 하셔서
올해를 지나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 셰프님. 혹시, 빨리 미슐랭 스타를 얻어야 된다는 강박과
부담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저희 호텔 측에서도 그런 것은 원치 않습니다.
완벽한 오픈을 위한 것이라면 최소 8 개월까지도 시간을 드리니까요.”

로만은 나의 성격이나, 내가 레스토랑을 차리는 방식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레스토랑을 어디에 오픈하든, 나에게 부담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포시즌스 호텔 파리에 자리를 얻었음에도, 내가 당장 레스토랑을 오픈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부담감은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오픈하고 싶은 마음인데, 사람이 모자랍니다.”

“아…….”

주방의 인력난.

나는 100 년을 넘게 주방에 있었지만,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인력들은 생을 거듭할 때마다 리셋 된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들고, 동료들을 처음부터 다시 사귀고…….

앞서도 누누이 말했지만, 이 미션이 어려웠던 이유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이번 생에서는 세계 최대 미식축제인 라스베이거스의 언코크드 행사에서 활약해, 그 어떤 삶보다


전생의 동료 세 명을 빠르게 찾았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이들을 가르쳐 레스토랑을 확장하고 꾸렸기에 1 년 만에 미슐랭 포스타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맡게 된 레스토랑은 그 규모가 완전히 다르다. 두세 명의 동료를 찾는다고 될 규모가


아니었다. 프라이빗 다이닝 공간을 제외한 자리가 무려 210 석.

어떤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내 계획에 의하면 이 주방에 최소 20 명 이상의 셰프가


필요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제대로, 파트별로 셰프들을 꾸리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내 이름을 걸고, 셰프들을 비롯한 각 분야의 직원들을 모집한다면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다.

미슐랭 스타 최연소 셰프, 반유현.

셰프라면 누구나 나의 주방을 탐낼 만큼 내 이름의 가치는 높아져 있는 상태였고, 그 레스토랑의 위치가


포시즌스 호텔이었으니, 두말하면 입 아프다.

로만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당장 모집 공고를 올리면 되겠습니까? 반유현 셰프님 이름으로요. 파트별 연봉을 말씀해주시면 그대로
공고를 내겠습니다.”

“모집 공고를 올려, 셰프를 거르고, 섭외하고, 협상하고, 그것이 끝난 뒤에는 또 주방에서 합을 맞추고
…….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로만의 말대로 공고를 올려 셰프들을 구하게 된다면 보통의 레스토랑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아니겠나.

1 분 1 초가 모자란 나에게 평범한 방법은 오히려 해가 된다.

“그런 방식은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모집공고로 한 번에 셰프들을 뽑게 되면 요리의 맛을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새로운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 사람들과 합을 맞추며 주방을 꾸리는 것에 많은 시간이 들어갈 것이다.

이는 250 석 이상을 갖춘 대규모 레스토랑들 대부분이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미슐랭 스타를 획득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시간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내가, 검증되지 않은 셰프들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데에 시간을 쏟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들이 끝까지 나와 함께하리란 보장도 없는 것 아니겠나. 지금 내 행동
하나하나가 내 미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란 확신이 없으면, 과감하게 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에 따라 곧장 내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들을 로만에게 말해주었다.

“직접 섭외할 겁니다.”

“아……. 반유현 셰프님께서 미리 정해놓은 셰프들이 있군요.”

“맞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연매출 300 억은 거뜬히 넘기는 거물급 셰프들이죠. 미슐랭 스타를 쓸어 담을
그런 셰프들만 골라놨습니다.”

물론, 자세하게 말하진 않았다.

그들이 아직은 주방 어딘가에서 재료 손질이나 하고 있을, 새내기 셰프라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 로만의 눈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

‘확실하고, 효율적으로 하려면.’

나의 옛 동료들, 전생에 나와 함께 세계를 호령하며 미슐랭 스타를 얻고 그 이름을 널리 알렸던 셰프들을


섭외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20 년 전인 지금, 그들은 현재 주방 보조, 인턴, 견습 셰프를 하고 있을 터였지만.

이는 나의 발 빠른 확장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메이, 제리, 헨리만 봐도.’

수습 또는 인턴셰프였던 그들을 처음 섭외했을 때에 사람들은 많은 의문을 품었지만 그들은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의 주축으로서 나의 손이 되어주고 있다.

이처럼, 앞으로 내가 오픈할 레스토랑의 규모와 계획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생을 거듭하며, 수십 년간


검증한 멤버들을 빨리 찾는 것이 세계 각국에 발 빠르게 레스토랑을 확장하고, 오픈하며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에는 꼭 필요하다.

지금 당장은 모집 공고를 올려 셰프들을 섭외하는 것보다, 내 옛 동료들을 찾고 가르치는 시간이 조금 더


소모될지라도, 훗날 더 빠르고 강력한 계획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었다.

“정해 두신 셰프들의 리스트를 좀 보여주시면, 저희가 그에 따른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로만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때, 호텔의 한 직원이 로만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로만이 나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헐레벌떡 다가온 것을 보니 꽤나 위중한 일인 것 같았다.

직원은 나에게도 고개를 깍듯이 숙인 뒤에 말하기 시작했다.

“마리앙, 장루이 셰프님께서 돌연 은퇴를 하신다고, 면담요청을 하셨습니다. 사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뭐?”

“두 셰프님 모두, 올해 3 월 만료인 레스토랑 운영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은퇴를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께 면담을 요청하셨다고…….”

로면의 표정은 순식간에 확 바뀌어 버렸다.

그 말에는 나도 조금 놀랐다. 이 호텔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 레스토랑을 맡은, 두 셰프가 돌연 은퇴를


하겠다고 사장을 찾아 왔다라…….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내가 요리 테스트에서 선보였던 태도와 요리가 저들의 요리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 바, 반유현 셰프님. 지, 지금 조금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레스토랑 운영 때까지 주기적으로


만나 뵙게 될 테니, 일단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포시즌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은 총 세 개…….

한 자리는 이미 내가 차지했고,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남은 두 개의 레스토랑이 공석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저 베테랑 셰프들이 가볍게 은퇴를 입 밖으로 꺼낼 리 없다.

그에 따라, 내 머릿속에 아주 ‘신선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 호텔의 레스토랑 세 개를, 다 차지해봐?’

나에게 신선하다는 것은, 100 년이 넘는 인생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뜻한다.

35 화. 내가 더 별이 많아(3)

포시즌스 그룹 간부 총회의.

세계 각국의 포시즌스 호텔을 이끄는 간부들이 모여, 분기당 한 번씩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백 여 명 가까이 되는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엔 저희 도쿄에서도 미슐랭 3 스타를 얻었습니다.”

포시즌스 도쿄의 사장이 말했다.

그러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해낸 것은 아니고,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셰프님께서 해내신 거죠. 저는


호텔 그룹 차원에서 셰프님을 조금 도와드렸을 뿐입니다. 흠, 그나저나 이 기쁜 일이 호텔의 매출과
직결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아니, 미슐랭 3 스타라면, 당연히 매출로 직결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3 스타의 정의가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될 집인데, 투숙객들이 줄을 지을 겁니다. 하하하! 사장님도 참……. 괜한
걱정은 하지 마시죠.”

분기별 매출을 보고하고, 문제점과 해결책, 또는 비전 있는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등 어느 기업의 회의와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세계 각국에서 모였고 각 나라들마다 경제나, 문화 이슈가 달랐기에 이것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파리는 요즘 어떻습니까?”

포시즌스 서울의 사장이 말했다.

근래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반유현의 소식을 귀동냥으로 듣고는 그 소문이 사실인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포시즌스 파리의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미슐랭 3 스타가, 2 스타로 강등되었다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반유현 셰프를 그 레스토랑의 새로운 셰프로 섭외하셨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와!”

“세계 최연소, 역대 최초? 단번에 미슐랭 포스타를 받은 반유현을 섭외했습니까?”

저들끼리 얘기를 하던 간부들이, 그 말을 듣곤 모두 로만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직 오픈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반유현 셰프가 섭외되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 여기 계신 간부님들께서도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로만이 그에 대답했고, 그에 따라 포시즌스 파리에 반유현이 섭외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이 되자 회의장은


술렁였다.

“하긴! 반유현 셰프라면, 엄청난 비밀 병기니까……. 기대됩니다.”

“와……. 그 셰프, 다음 행보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듣네요.”

“하하하하! 이 양반아, 궁금하긴. 나는 메일 보내고, 섭외 팀까지 꾸렸는데? 파리에서 선수 칠 줄이야.”

“뉴욕지점에는 셰프들도 많으면서 반유현 셰프까지 섭외하려는 건 욕심 아닙니까?”

그 술렁임이 계속될수록, 로만의 표정은 굳어졌다.

“아니, 로만 사장님!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으십니까. 요즘 언론이든, SNS 든 반유현 셰프의 말이


많아요! 조금 더 말해주십시오. 반유현 셰프가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좀 가르쳐주십시오.”

“그러게, 너무 궁금하네. 여기 있던 분들 모두 반유현 셰프한테 관심 가졌던 사람들 아닙니까? 하하하하!


그 정도는 말씀해주실 수 있잖아요. 로만 사장님.”

로만의 굳어진 표정은 괜히 겸손을 떠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

기분이 매우 좋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 표정을 숨기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곳에 있는 모두 호텔을 경영하는 사장으로서 유명 셰프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로만은 반유현을 얻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들 그런 줄 알고 로만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떠들어 댔다.

하지만, 실제론 그게 아니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간부들의 원성을 듣다 못한 로만이 입을 열었다.

“저한테는 그 왕관이 너무 무겁나 봅니다. 반유현 셰프를 섭외한 뒤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약 백여 명의 사람이 있던 회의실은 정적이 되었다.

그 정적은 이들의 반유현을 향한 관심이었다.

“저희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 두 곳을 경영하고 계신, 마리옹 셰프님과 장루이 셰프님께서 은퇴를
선언하셨습니다.”

“예? 수년 전부터 포시즌스 파리의 명성을 키워주신 그분들이요?”

“이유가 뭐야? 로만!”

“자네가 반유현 셰프를 섭외하려고 그 두 분에게 섭섭하게 한 것 아니야?”

로만의 말에 이전보다 장내의 술렁임은 더해졌다.

“두 분 다,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보고, 자신들이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원래 은퇴를


생각하고 계셨는데, 마침 그 생각들을 실천에 옮길 계기가 생기신 겁니다. 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그럼 그 자리는 누가 맡게 되는 거야?”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만……. 반유현 셰프가…… 남은 두 레스토랑도 운영하게 될 확률이…….”

“그게 가능해!? 아무리 미슐랭 포스타라지만……. 동시에 세 개를 운영한다고?”

이 대화가 계속될수록, 로만에게 관심은 쏟아졌고 로만은 그것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을 드렸습니다. 반유현 셰프님께. 그 시간 내에 구체적인 계획과 그에 따른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면,


실제로 저희 포시즌스 파리의 세 레스토랑을 동시에 운영하시기로.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호텔 최초로
반유현 셰프 전담팀을 따로 꾸려 의전과 보좌를 해야겠죠.”

로만이 마침표를 찍으려 했던 말에도, 장내의 술렁임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로만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저도 압니다. 비현실적인 거, 다른 분들이라면 이 다른 전략을 세웠을 겁니다. 마리옹 셰프님과 장루이
셰프님의 은퇴를 막는 방법을 생각하셨겠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보시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반유현
셰프의 실력과 그의 말에서 나오는 자신감, 그리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아우라.
여러분도 그것들을 봤다면 제가 반유현 셰프님께 시간을 드렸다는 것에 무조건 동의하셨을 겁니다.”

***

포시즌스 호텔은 전 세계 40 개국에 약 111 개의 지사가 있다.

각각 호텔의 사장이 그 호텔을 총괄하며 경영을 도맡아 하곤 하는데, 이들은 같은 사장의 직급을
가졌더라도 입지가 다르다.

“로만 사장님의 힘이라면, 그 정도 기회는 제게 주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특히나, 내가 있는 이곳 파리의 사장인 로만은 남다른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었고, 그곳에 위치한 포시즌스는 약 80 년의 긴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같은 사장직급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모이더라도 로만은 자신의 목소리를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반유현 사단을 꾸릴 예정입니다.”

“바, 바, 반유현 사단이요?”

원래는 스무 명, 많게는 서른 명의 셰프들을 섭외해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을 채울 생각이었다.

일단, 미슐랭 스타를 가진 레스토랑이나,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등 나름 영향력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를 여섯 명에서 열 명 정도 직접 섭외한 뒤에, 뼈대를 세우고 내가 알고 있는 기억들을 이용해
주방 구석 어딘가에서 재료를 손질하며 셰프를 꿈꾸고 있을 옛 동료들을 찾으려 했었다.

그런데, 계획이 조금 달라졌다.

마리옹과 장루이의 은퇴는 기정사실화되었고, 나는 그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호텔 측에서 그 빈자리를 다른 셰프로 채우지 못하게 하려면 나의 계획이 실제로
실현되리란 믿음을 심어주어야 했다.

“전 세계 요리 유망주들이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 직접 나서서, 주방을 채울 인력들을


섭외해 오겠습니다.”

“저희는 최고의 맛을 가져야만 하는 포시즌스 호텔입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욕심을 알겠지만, 검증되지
않은 셰프들을 대거 뽑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포시즌스 호텔을 그저 젊고 어린 셰프들의 등용문으로 삼지


않으시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시간을 주시면, 모든 것을 확신으로
바꿔 드릴 테니, 제게 시간을 주십시오. 내년에, 기대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얻게 해 드릴 테니까요.”

그렇게 해서 얻어낸 시간이었다.

약 세달. 나는 로만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내가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 세 곳의 인력을 채워 넣고, 그 인력들은 미슐랭을 얻을 만한 맛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없다.’

100 여년이 넘는 삶 동안 해본 적 없는, 참으로 ‘신선한’ 계획이었다.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 세 곳에 나의 이름을 새겨 넣고, 그 세 곳 모두에서 동시에 미슐랭 스타를


얻어내는 것.

‘레드 테이블’의 루시앙과 올리버였다면 무조건적으로 나를 지지했겠지만, 아직 로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도 은연중에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과연……. 사, 삼 개월이면 되는 겁니까?”

그런 점에서 나의 이 계획이 이들에게도 비현실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전생에 나와 함께했던 동료들이 약 20 년 전인 지금엔 어디에 가장 많을까.

우선 첫 번째로 고려해 본 것은 각국의 명문 요리학교였다.

뉴욕의 요리학교 CIA, 프랑스의 르꼬르동 블루, 일본의 츠지 요리학교 등 각 나라의 꼽히는 요리학교들.

전생에 나와 함께했던 셰프들 중에 그곳을 지금 다니고 있는 셰프들이 많지만, 일단 명문 학교 출신


셰프들은 보류였다.

‘왈가왈부 설득할 시간도 없다.’

나의 한 마디로 저들이 학교를 휴학하거나 그만두고, 내 주방에서 일하게 된다면 상관이 없지만.

과연 누가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아무리 내가 영향력을 가진 셰프라 한들, 자신들의 학업을 포기하는 것에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터였다.
나는 그들이 고민하는 시간을 지켜봐 줄 시간이 없는 사람이었고.

‘주방 보조 출신들.’

메이와 헨리-제리 형제처럼 주방의 보조부터 시작해 나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셰프의 길을 걷게 된


동료들도 떠올렸다.

이들은 나의 한마디에 당장 내 주방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요리학교를 다니는 이들보다는 높다.

이미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지금보다 더 큰 역할과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는 말을 건네면


나의 주방으로 넘어올 사람은 그렇지 않을 사람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내 동료들이 어느 주방에서 처음 요리를 시작했느냐를 모두 떠올린다 치더라도,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이들을 섭외하기란, 현재는 역부족이었다.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엄청나게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기에, 지금의 시간은 금이었다.

그래서 떠오른 마지막 선택지였다.

‘요리 대회 출신들.’
정확히 나에게 지금 필요한 성질들을 모두 갖춘, 셰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당장 내 주방으로 들어와 일할 확률이 높으며, 배움과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 높으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어 있는 수준의 셰프들.

물론, 요리 대회라 함은 내가 환생하자마자 출전했던, 서울시 요리 대회 같은 작은 규모의 대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싱가폴 국제요리대회, 2020 FHA Culinary Challenge.

세계 4 대 요리 대회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요리 대회는,

세계 22 개국에서 약 800 여 명의 정상급 요리사들이 출전하며, 1000 여 명이 넘는 젊은 유망주 셰프들이


출전한다.

‘하나, 둘…….’

2020 년, 그 대회의 현장에 있을, 내가 아는 얼굴들을 헤아려봤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세 명의 옛 동료들을 찾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숫자이기도 했다.

일단, 이 대회에 출전해 그들을 만나는 것이 첫 번째였다.

‘수십 년간 검증했던 인물들, 내 옛 동료들로 중심을 잡아 놓고.’

두 번째는 이전 생에 나와 접점이 크지 않았지만, 유능한 셰프들과 만나는 것이었다.

나를 따르고 믿었던 셰프들만을 섭외하기엔, 나에게 필요한 인력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면, 나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셰프들을 찾을 수가 있다.

더군다나 세계 각국의 수많은 셰프가 몰리는 곳에 가면, 내 기억 언저리에 있던 셰프들이 떠오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세계 최초로 단번에 미슐랭 포스타가 되었으며, 그 나이가 세계 최연소라는 나의
지금의 정체성이었다.

‘조용히 출전하기는 글렀군.’

36 화. 내가 더 별이 많아(4)

[ 미슐랭 포 스타 셰프 반유현, 2020 싱가폴 국제 요리 대회 출전. ]

[ 반유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계속 보이다! 2020 FHA Culinary Challenge 참가. ]

[ 전 대회 우승자 차돈 셰프. “세계적인 축제라지만, 반유현 셰프의 출전은 불공평.” ]

[ 세계조리사연맹 관계자. “미슐랭 스타가 있는 셰프의 출전을 금지하는 규정 없다.” ]

[ FHA 준비 위원 “만 25 세인 반유현 셰프의 나이로는, 영셰프 부문에도 출전할 수 있어.” ]

“우리 셰프님을 지켜보고 있으면, 무슨 영화를 보는 것 같지 않냐?”

레스토랑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의 주방에서 네 명의 셰프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런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우리도 그걸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자. 벌써 우리의 인생은 1 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어. 반유현


셰프님의 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값이 올라갔잖아. 안 그래?”

“몸값이 올라도 이곳을 떠날 수가 없는 딜레마……. 얼마의 연봉을 주더라도 이 주방을 떠날 수가 없지.”

그때, 주방에 반유현이 등장했다.

“일들 안 하고 뭐해. 다음 주에 코스 바뀌는 거 오늘 테스트 아니야?”

“흡!”

“예, 예! 셰프!”

여유롭게 대화를 하던 이들이 주방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됐고, 다 여기 앉아봐.”

반유현은 무슨 할 말이 있다는 식으로, 네 명의 셰프들을 불러 모았다.

“분위기 보니까, 내가 국제요리대회에 출전한다는 걸 벌써 안 것 같은데. 맞나?”

“예, 셰프님. 출전하신다고…….”

“너희들 중에도 한 명 출전해.”

“예?”

모두가 놀란 눈으로 반유현을 바라봤다.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그랬다.

마음 놓고 그런 대회에 나가 경험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지만, 당장 레스토랑에


몰려오는 손님을 받기에도 바빴던 네 명이었다.

“레스토랑의 운영에 지장이 없으려면 딱 한 명이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아. 요리 대회가 실력을 키우기


좋거든. 그렇다고 네 명 모두를 출전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너희끼리 선발전을 통해서, 단 한 명만
출전할 기회를 줄게.”

네 명 중, 단 한 명.

셰프들의 눈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반유현은 그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

“행사 내내 나랑 움직일 거야.”

현재, 대중들이 반유현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그의 입지는,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대우를 해줄


것이다.

더군다나 반유현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마음은 설렜다.

물론, 반유현의 마음에는 이들 중 한 명을 데리고 대회에 출전할 다른 이유가 있었다.


***

싱가포르행 비행기 안이었다.

퍼스트 클래스. 옆자리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내 자리로 넘어왔다.

“셰프님! 저랑 같은 종목에 출전하신다고요?”

“어. 개인 부문에서, 메인요리(Plated dish Class), 아시안 밀(Asian meal Class), 라이브 쿠킹
(Live cooking Class) 총 세 가지 종목에. 너는 그중에서 라이브 쿠킹에만 출전하지?”

“네, 저는 한 종목에만 출전해요. 그런데, 금메달은 이미 셰프님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너무 그러진 마. 나도 안 될 때가 있으니까.”

“푸. 그런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내 옆에 앉게 된 사람은 메이였다.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의 셰프 네 명 중 선발전을 통해 메이가 선발된 것이었다.

대회에 출전해 설레는 마음을 내게 보여주려는 것인지, 하루 종일 떠들어 대는 그녀였다.

“셰프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걸 다 차지해버리겠다는 말로 들린다고 저희끼리 주방에서


얘기했었거든요.”

“일 안 하고 그런 얘기들이나 하고 있냐.”

“치. 놀지만은 않았다는 걸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셰프님과 같은 종목에 출전하게 되었으니, 그때 제가


셰프님께 정식으로 도전을 신청하겠습니다. 흐흐흐. 마침 라이브 쿠킹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종목이니까요.”

“맘대로.”

“셰프님! 제자한테 관심이 너무 없으시네!”

퍼스트 클래스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위해 세워진 가림막 때문에 메이의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고 있으리란 게 그려졌다.

“저희 주방 도구들 때문에 짐도 많은데, 이것들 어떻게 숙소로 옮기죠?”

그리고 메이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조리도구 때문에 일반 관광객들보다 두세 배는 무거운 짐을 가져왔다.

몸만 오면 될 것이라는 반유현의 말에 짐만 챙겨 공항으로 왔건만, 비행기에서 내릴 때가 되니 내려서의


계획이 궁금해졌다.

이동수단이나, 숙소 그리고 식사와 같은 자잘한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다 해결해 놨으니까 걱정 마.”

“어떻게요? 직접 사비로 하신 거예요?”

“아니, 대한조리사중앙회. 그쪽이랑 연락이 됐어.”


대한조리사중앙회.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을 받은 법인 단체이며, 국제 요리 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선발하는 기관이었다.

“거기서 왜요? 대한민국 국가 대표 선수로…… 아니면?”

“국가대표팀의 명예 감독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나를 모시고 싶다던데.”

대한민국도 국가대항부문에 출전하는 나라 중 하나였는데, 대한조리사중앙회는 나를 그 팀의 감독으로


선임해, 팀 내 사기를 높이고, 대회 내에서 팀 자체의 주목도를 올리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교수 및 특급호텔의 셰프로 구성된 코칭 팀이 있었기에, 앞에 ‘명예’를 붙여 나의 이름만을


빌리려 했다.

코칭이나, 선수들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그저 마스코트의 역할만 해달라는 것.

요리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인 내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명예 감독이 된다면 그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 부문에서는 참가자로 출전하시고, 국가대표부문에는 명예 감독으로 출전하시는 거예요?”

“셰프들한테 조언 좀 해주고, 내 이름만 빌려줘도, 이동수단, 숙소, 식사 등 모든 것들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나에게도 꽤나 괜찮은 제안이었다. 우선은, 그들의 예산으로 이동수단, 숙소, 식사를 지원해 준다는 것은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내 몸을 편하게 해줄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하려고 하신 건 아니잖아요. 셰프님,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돈을 내고서라도 해결하실


분인데. 셰프님 성격상, 셰프님께서 하시는 행동은 모든 게 맞아 떨어져야 되잖아요. 뭐 땜에 명예
감독을 맡으신 거예요?”

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메이가 콕 집어서 내게 말했다.

나와 함께 있던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사고가 예리해진 것 같다. 내가 그런 단순한 이유로 감독이라는


직책을 맡을 것 같지는 않았나 보다.

“내가 이 대회에 참가하는 애초에 목적 있잖아.”

“음? 강력하고 잠재력 넘치는 셰프들을 파리로 데려가겠다는 계획이요?”

“그래, 국가대표 대항전은 라이브 쿠킹이 아니라, 코칭 팀이 아니면 조리하는 걸 볼 수 없어.”

“아……. 제대로 셰프들을 골라내기 위해서라면 그들이 조리하는 모습까지 봐야 된다?”

이번 대회에 애초에 참가하는 이유는 내 전생의 동료들과, 잠재력이 충만한 셰프들과 접점을 만드는 것에
있으니까.

요리의 맛만 봐도 셰프의 실력과 잠재력을 알 수 있지만, 심사위원이 아니기에 참가자들의 요리를 맛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일반 참가자 신분으로는 그들의 요리를 구경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명예 감독을


맡았다.
감독직을 맡았다고 해서, 나의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었고 다른 국가의 국가대표 셰프들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흔쾌히 수락한 것이었다.

“그럼, 다른 말로 하면, 셰프의 요리를 맛보지 않아도, 셰프가 요리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 실력을
가늠할 수 있으시다는 거예요?”

“어.”

“아…….”

메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허풍이나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긴, 제가 요리하는 모습만 보고 제 요리를 맛보지도 않고 버리신 접시가 수백 개죠. 셰프님?”

그러곤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셰프님이 다른 국가의 감독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시겠네요? 어쩌면 국가대표 선수들보다
나이가 어릴 수도 있고.”

“뭐, 그렇겠지.”

“아무튼, 이번엔 제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 드릴 거예요! 정식으로 대결을 신청합니다. 셰프님!
셰프님을 요리로 한번! 이겨 보…….”

“그래, 꼭 날 이겨봐.”

당돌한 성격만큼이나 승부욕도 강한 그녀였다.

“힝. 제가 어떻게 이겨요, 셰프님을.”

그렇지만 냉정하게 주제 파악도 할 줄 안다.

***

저 멀리에 긴장된 표정의 메이가 보였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중인 것 같았다.

나와 메이 사이에는 가스버너와, 개수대, 도마를 올려 조리할 수 있는 여섯 개의 간이 조리대가 있었고,


그 조리대에는 각각 국적이 다른 셰프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와 메이의 거리를 굳이 재 보자면, 열 걸음에서 열다섯 걸음 정도는 될 것 같았다.

150 명의 셰프들이 있는 이 경연장 안에서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자리를 배치 받은 것이다.

“이번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라이브 쿠킹(Live cooking)! 전 세계 각 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셰프님들이 직접 출사표를 던지셨습니다!”

우와아아아!

개인부문(individual challenge)의 많고 많은 종목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이 라이브 쿠킹이었다.

말 그대로, 셰프들은 완전히 오픈된 공간에서 요리를 하고, 이 행사에 참가한 관광객들이나 심사위원들은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관람한다.

요리하는 모습에도 감점 사유가 있을 수 있으며, 그와 반대로 퍼포먼스를 통해 가산점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맛이 점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항목이지만, 조리 과정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경연
종목이었다.

더군다나 인기나 유명세가 조금 있는 셰프들의 조리대 앞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기에, 그것들을
신경 쓰는 것도 일이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역시! 각국의 요리잡지, 요리 신문, 방송사에서 반유현 셰프의 이름을 거론했습니다. 사회자인 저
역시도 반 셰프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죠! 인터뷰를 한번 해보실까요!?”

사회자가 능글맞은 멘트를 날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에서 온 반유현입니다.”

“허허! 반 셰프님 안녕하세요. 보시다시피, 반유현 셰프님의 조리대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 어떻게, 항상 이렇게 차분하신지. 떨리지 않으세요?”

내가 대답하려 했을 때, 한 중년의 사내가 사회자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저 사내, 어디서 봤다. 나라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다.

“제가 반유현 셰프에게 질문 하나만 드리고 싶습니다.”

“아, 네! 어떤 질문이신가요?”

사회자는 그가 내 팬인 줄 알고 웃으며 마이크를 건네줬다.

“반유현 셰프님. 다른 셰프들의 불만을 무시하고 이 대회에 참가하셨잖아요? 당신의 행동이, 그들의
불만처럼 후배들이나, 젊고 유망한 셰프들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미슐랭
포스타에, 파리에서 유명한 레스토랑 두 개를 운영하시는데, 굳이 여기에 나오신 이유가 뭡니…….”

예상을 깨는 공격적인 언사에 사회자가 놀랐는지, 마이크를 중간에 가로챘다.

그러나 중년의 남자는 마이크가 없음에도 내게 대놓고 소리쳤다.

“관심이 필요하다면 연예인이나 해라! 반유현!”

“아, 하하하하. 모든 분들이 반유현 셰프의 팬일 수는 없으니까요! 하하하.”

어쭙잖게 상황을 수습하려는 사회자를 이번엔 내가 툭툭 쳤다.

그가 나를 쳐다봤을 땐, 내가 고개를 끄덕거렸고 사회자가 나의 입에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제가 이 대회에 나와서 불만인 분들에게 여쭙겠습니다. 제가 이 대회에 나온 것이 잘못일까요? 할 수


있는 게 불만을 품는 것밖에 없는, 당신들의 실력이 없는 게 잘못일까요?”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꺄아악!
우우우-!

박수와 야유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박수는 나를 존경하고 응원하는 셰프들, 또는 관광객들일 것이고 야유는 나에게 시기와 질투를 가진
이들일 것이다.

그 두 그룹 간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덕분에 이 현장이 더욱 뜨거워졌다는 것이다.

‘예열은 끝났고.’

운이 좋았다. 일단 이 현장의 관심을 나에게 쏠리도록 만들 수 있었으며.

대회 일정의 첫 시작이 ‘라이브 쿠킹’ 종목이었다는 것이 그랬다. 그에 따라 나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고, 그 활약은 내가 셰프들을 섭외하는 것에 적지 않은 힘을 얹어줄 것이다.

그때, 저 멀리에 있는 메이가 눈에 들어왔다.

‘너도 잘해야 된다.’

나, ‘반유현’의 제자인 메이까지 활약을 보여준다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내가 가르친 제자까지


압도할 만한 성과와 활약을 보여준다면…….

물론, ‘메이의 활약’까지 내 계획에 있던 것이었다.

37 화. 내가 더 별이 많아(5)

“실력이 안 되면, 배움의 자세라도 있는 게.”

나의 직설적이고 거친 언행 덕분에 분위기는 계속해서 뜨거워졌고, 이 현장의 소식을 전하려던


기자들에게는 쉴 틈 없이 일이 쏟아졌다.

내 말 하나하나가 그들의 타이틀이 될 터였으니 말이다.

“그럼, 불만을 가진 셰프들 말고 반유현 셰프의 눈에 띈 셰프도 있나요?”

“저쪽에 있는 여성분이 눈에 띕니다.”

나는 당연히 메이를 가리켰다.

메이는 놀란 듯이, 제발, 제발 그러지 말라는 식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매사에 당당한 태도를 가진 그녀였지만, 사람들의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싫어했다.

“아아아! 반유현 셰프가 눈여겨보고 있던 셰프가 있단 말인가요!”

다른 조리대의 셰프들을 인터뷰하고 있던 사회자와 인이어로 무전을 나눴는지, 다른 곳에 있던 사회자가


메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회자는 메이에게 질문을 했다.

이 경연장의 맨 앞에 걸린 거대한 스크린에 메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반유현 셰프에게 지목을 받으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원래 무슨 관계이신가요?”


“어……. 제자…….”

메이의 앞에 있던 사회자가 메이에게 질문했을 때, 경연장 안에 있던 한 젊은 사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레드테이블 - 반유현’의 메이잖아! 메이 셰프!”

“에에?”

“아! 메이!”

내가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을 오픈하기 전, 방영되었던 ‘더 셰프’는 내가 주방에 있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방영했었다.

그에 따라, 나의 밑에서 일하던 로또 육인방의 얼굴도 간간이 비쳤는데 메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던
것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의 엑스트라보다 덜한 비중으로 방송에 나온 메이를 기억하는 것을 보니, 수도 없이 내


방송을 돌려 본 사람 같았다.

“아아! 지금 한 분께서, 반유현 셰프가 지목하신 여성분의 정체를 밝혀 주셨습니다! 레드 테이블,


반유현의 셰프 중 한 명! 메이 셰프입니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되던 관심이 그녀에게도 나누어졌다.

그녀의 정체가 밝혀지자, 사회자는 이 대회의 볼거리가 무엇인지 짚어주었다.

“아!! 스승과 제자가 같은 경연장에서 실력으로 승부를 봅니다. 소문처럼 반유현 셰프의 제자를 가르치는
방식이 도전적이고 신박하군요! 반유현 셰프님, 메이 셰프가 이긴다면, 하산해도 되는 겁니까?”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메이를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내줬다.

원래, 압도적으로 강한 빌런보다, 그것에 대항하고 도전하는 자가 대중들의 응원을 받는 것 아니겠나.

나는 이 경연장을 압도하는 진짜 악당이 된 것처럼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대형 스크린은 반으로 갈라져, 나의 얼굴과 메이의 얼굴을 각각 비추고 있었다.

나의 출전에 불만을 품었던 못난이들에게 미안하지만.

경연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관심은 우리에게로 쏠렸다.

***

요리와 제과 종목을 합하면, 대략 30 개 종목의 경연이 이뤄진다.

국제조리사협회(World Association Chefs Societies)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대회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회.

이곳에서 수상을 한다는 것 자체로도, 셰프들은 자신의 급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연 중에서도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이 지금의 ‘라이브 쿠킹’이었다.


넓은 경연장에 약 150 명의 셰프가 조리대를 각각 차지하고 있었고, 한 시간 동안 메인 요리 한 종류를 3
인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회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요리하는 과정에 가산점이 붙기도 하고, 감점이 되기도 한다.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시작을 외치자, 대형 스크린의 한쪽에는 60 분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머지 한쪽에는
참가자들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물론, 그 첫 화면에는 내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연어 콩피를 할 생각입니다.”

콩피(Confit).

원래 식자재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기름이나 시럽에 재료를 잠기도록 담가 높은 온도로 가열하는 방법을


일컬어 부르는 말로, 프랑스에서 유래한 조리법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할 요리는 ‘연어 콩피’였다.

올리브유에, 연어를 잠기게 담가 오랜 시간 조리해 버터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고소하게, 생선 특유의


기름진 풍미가 잘 드러나는 요리를 할 생각이었다.

내가 많고 많은 요리 중에 생선 요리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앞서 말했듯이, 라이브 쿠킹은 맛뿐만 아니라, 요리 ‘과정’도 보여주는 경연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콩피를 할 올리브유를 준비했다.

올리브유를 냄비에 가득 따르고, 레몬과 각종 향채, 그리고 허브를 넣은 뒤에 불을 올렸다.

그리고, 내가 생선 요리를 선택한 이유를 관중과 심사위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쾅!

우와아아아!

내가 연어 한 마리를 통째로 조리대에 올려놓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요리 과정이 심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셰프가 위생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적절한 재료 손질법을
사용하는지를 본다는 것인데, 그런 요소에서 감점을 당할 리는 없었으니, 나는 퍼포먼스에 집중했다.

연어를 조리대에 올려놓고는 곧바로 생선 손질용 칼을 꺼내, 연어의 지느러미 아래로 칼을 넣었다.

우와아아아아!

이런 경연 현장에서 여유롭게 생선을 손질한다는 것 자체가 관중들에겐 충격이었을 것이다.

모든 셰프들이 헐레벌떡 칼과 펜의 손잡이를 잡고 조리에 들어갔는데,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약 7kg 의


연어를 손질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얼굴엔 여유가 가득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샤아아악!
칼과 뼈와 맞닿는 소리가 나왔다.

내장을 빼 털어내고, 머리를 쳤다.

숙! 수우욱! 다다다다!

그리고 갈비뼈를 발라내고, 핀셋으로 잔뼈를 발라냈다.

“와! 저 살 발라진 것 봐. 뼈만 남았어!”

“미슐랭 포스타 셰프잖아요!”

“응? 미슐랭 포스타를 얻은 레스토랑은 모두 양식인데, 생선을 저렇게 잘 손질해?”

“와, 생선 요리를 하는 다른 셰프들은 그럼…….”

한 관중의 말처럼, 생선 요리를 하는 다른 셰프들이 초라해졌다.

내가 요리에 사용할 만큼의 연어 살을 모두 발라냈을 때에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마무리로 배꼽 살과 지방을 분리했고, 연어 살에 소금과 허브, 레몬 제스트를 뿌려 재워두었다. 그리고


곧장 소스를 준비했다.

시금치 카라멜 소스.

시금치를 물에 데친 뒤 블렌더로 갈아, 채에 걸러 버터와 설탕으로 농도를 맞췄다.

그런데 그때, 소스가 거의 완성될 때쯤에, 저 멀리에서 엄청난 탄성이 들려왔다.

우와아아!

그 탄성 소리가 너무 커서, 나의 요리에 집중을 하던 관람객들과 심사위원들도 그쪽을 바라봤다.

‘시작했나.’

나는 그 탄성의 근원지가 어딘지 알고 있었다.

그곳을 보지 않아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지 알았기에 딱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 요리에 집중할 뿐이다.

“대체 뭐야!”

“그 스승의 그 제자…….”

그리고 관중들의 입으로 전해져 오는 상황을 듣고 확신했다.

저쪽 어딘가에서 메이가, 나처럼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꺼냈다는 것을.

“반유현 셰프 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잖아! 저 정도는 기본이라는 거야?”

“국제 대회에서?”

우와아아아!
메이가 준비한 요리는 뫼니에르. 프랑스 전통의 생선 요리로, 버터에 생선을 굽기 전 밀가루나 전분을
묻혀 생선 살 특유의 식감을 살리는 요리이다.

평범하고 널리 알려진 요리지만, 내가 그랬듯이 이 현장에서 재료가 될 생선, ‘대구’를 통째로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숙! 수우욱!

왜소한 체구를 가진 그녀, 그리고 경연 시작 전 보여주었던 수줍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손길로 자신의


팔보다 큰 생선의 살을 깨끗하게 발라냈다.

타이머와 참가자들을 각각 비추고 있던 두 개의 대형 스크린은, 나와 메이를 비췄다.

우와아아아!

메이는 큰 대구를 손질하고, 나는 소스와 가니쉬를 만들고 있는 장면.

그 장면이 보여졌을 땐, 관중들과 심사위원들은 모두 그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생선요리를 준비한 몇몇의 셰프들은 의욕을 잃었지만, 몇몇의 셰프들은 아직도 희망을 잡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가 더 맛있으면 돼!”

그 셰프들은 맛에 희망을 갖고 열심히 요리를 준비하고 있으나, 그게 그들의 뜻대로 될 리는…… 당연히
없다.

***

모든 셰프들이 조리대에서 떠난 경연장.

각각의 조리대에는 셰프들이 60 분 동안 치열하게 만들었던 요리들이 올려져 있었다.

요리 과정과, 오로지 맛으로만 그 평가를 하는 경연에서, 이제 맛을 평가하는 시간만이 남아있었다.

심사위원만 35 명.

평가 기준의 잣대가 높기로 유명한 이 대회는, 심사시간이 되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방금 전만 해도 뜨겁게 불타오르던 경연 현장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요리를


깊게 뜯어 맛보고 있었다.

“이 셰프는 참…….”

“맛이…….”

“감점요소가 없네요.”

연어 콩피.

입안에 연어를 넣자마자 버터처럼 살이 녹아내렸다.

혀와 입안이 맞닿으며 연어의 살을 으깰 땐, 연어 특유의 기름진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시금치 카라멜 소스가 그 기름짐을 한번 닦아줬고, 가니쉬로 곁들여진 브로콜리니가 입안을 한 번
더 개운하게 헹궈줬다.

“맛이 똑같다면 연어를 즉석에서 손질한…… 반유현 셰프에게 가산점을 주겠지만, 가산점을 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반유현 셰프의 요리가 더 맛있습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어를 사용해, 식감이 특이하네요.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아주


좋은 식감입니다. 이미 손질되어 있는 연어를 사용한 것과 이 정도의 차이가 난다니……. 이걸 의도한
거라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던,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실제로 맛본 순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장난기 많은 심사위원들도 있었다.

“‘레드테이블 - 더 파스타, 반유현.’ 파리에 있는 두 개의 식당 다 예약 기다리려면 한 달이 넘어요.


여기서 먹어봐야 돼.”

“저쪽도 있잖아.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레스토랑 출신.”

“이름이 메이였나?”

그렇게 심사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심사위원들의 동선은 단순해졌다.

심사시간이 40 분가량 지났을 때는, 심사위원들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거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다들 다른 참가자들의 심사는 끝나셨죠?”

“심사는 다 끝났습니다. 그나저나 이 둘의 요리가 맛있고, 신기한 걸 어떡합니까.”

몇몇 심사위원들이 다른 조리대에도 붙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반유현의 조리대 앞에 서


있거나, 메이의 조리대 앞에서 그 요리를 맛보고 있었다.

“대구의 이리(정소)가 폰즈 소스와 참 잘 어울립니다. 물에 데치는 시간을 조절해 식감도 놓치지


않았어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대구 살을 이용한 뫼니에르도 훌륭합니다. 참나……. 그 스승의 그 제자란 말인가.”

“가서 연어 콩피 드셔보시고 오세요. 이 요리를 만든 메이 셰프가, 생선의 살에 대한 이해도를 확실히


스승에게 잘 배웠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심사시간이 지났을 때는, 결국 반유현의 요리 앞에,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모여 있었다.

“흠. 감탄밖에 안 나오는 요리입니다. 그런데, 반유현 셰프는 우리의 평가를 받기 위해 이 경연에
출전하신 건가요?”

“당연히 그런 것은 아니겠죠. 이미 반유현 셰프는 ‘별’이 많으니까…….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요?”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해서……. 메달을 안 줄 수도 없고. 곤란하군요. 그렇다고 메달을 주자니, 전
종목을 석권할 것 같고. 다른 셰프들의 불만이 많아질 만합니다. 생태계 파괴 아닙니까? 허허…….”

38 화. 내가 더 별이 많아(6)

각 종목마다 금, 은, 동메달이 있고 메달에는 점수가 있다.

금메달은 승점 10 점, 은메달은 9 점, 동메달은 8 점 그리그 그 외의 다른 상들은 5, 4, 3 점씩.


올림픽처럼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각 종목에서 받은 점수를 합산해, 최종 우승자와 수상자들을 가리는
대회였다.

물론, 여러 종목에 동시에 출전하는 참가자 수는 많지 않아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한 종목 한 종목에


정성을 쏟는 편이 많았다.

인기상, 창의력상, 등등 승점이 높지 않은 상이 차례로 호명되었고, 동메달을 받게 될 참가자들이 호명될


순서였다.

-더 그레이스 호텔의 로버트 에반스. 축하드립니다.

경연 당시 내 앞의 조리대에서 요리를 하던 셰프. 5 성급 특급호텔의 그릴 파트에 속해 있는 셰프였다.

아직 매우 젊어 높은 직급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잠재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0 년이 넘는 삶을 살았지만, 이번 생에 이 셰프를 처음 봤다는 것은 그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요리


업계를 떠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동메달 수상자의 호명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축하를 했고,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내 옆에 있던
메이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허, 로버트 에반스! 셰프님이 적으라고 해두신…….”

메이는 손에 들고 있는 수첩과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기록해두라고 언질 줬던 이름들이 차례로 수상을 했기 때문이다.

-블루 키친의 매튜 웨인. 축하드립니다.

동메달 수상자들의 이름이 나열될수록 메이의 놀란 눈은 점점 더 커졌다.

“뭐, 뭐에요 셰프님? 심사에 직접 참여하신 거예요?”

연이어서 내가 지정해 줬던 이름들이 호명되자 매우 놀란 듯했다.

이쯤 되니까 내가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거란 합리적인 의심을 시작한 메이였다.

“아니.”

“그, 그럼 어떻게 저걸 안다는 말씀이에요?”

내 경연 요리가 끝났을 때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심사위원에게 요리가 끝났다는 것을


알린 뒤에 요리를 제출하고, 경연장 내부를 돌며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의 손짓과 동선, 재료 손질법만 봐도 그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맛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인 판별법이지만. 칼질과 불의 온도 등 사소한 것부터, 크게는


그들이 준비한 재료의 조합과 각 재료들이 요리에 들어가는 양 등 그 겉보기만으로도 실력을 판단할
근거는 충분했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것들을 판단하고 말 것도 없이 셰프가 주방에서 움직이는 것만 보더라도


본능적으로 느낌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100 년 세월의 직감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수상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기에, 잠재력이 충만하지만 수상을 못 하게 될 셰프들을 놓칠 우려에
이름을 적어두었던 것이다.

“설마 다음 수상자도……? 리키…….”

-베네치아 호텔의 리키 넬슨. 축하드립니다!

“아니! 진짜 심사에 참여 안 하셨어요? 심사위원 중에 아는 셰프님이 있다든가.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만


보고도 수상자를 예측할 수 있다고요?”

“대충은.”

“이건 진짜……. 놀리지 마세요……!”

리키 넬슨.

그가 요리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그의 잠재력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전생에 나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충실히 운영해준 내 동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의 모습을 보지 않고도 라이브 쿠킹 종목에서 가장 처음 기록한 이름이었다.

날카로운 성격에 사회성도 그리 좋지 못해, 동료 셰프들과 마찰도 자주 일으켰던 놈이지만 요리 하나에


대한 열정에는 ‘미친놈’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강렬한 셰프였다.

‘메이랑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지금 내 옆에서 나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는 메이는 모르지만, 전생에는 그녀와도 잦은 마찰로 문제를


일으키곤 했었다.

메이도 어쩐지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표정을 찡그렸다.

“무슨, 이런 국제 대회에서 동메달씩이나 수상을 하는데 저런 무표정이래요? 자기가 엄청 잘난 줄 아는


것 같은데. 저런 사람을 파리로 데려가실 거예요?”

“네가 확실하게 콧대를 꺾어주면 되잖아.”

“예? 제가 저 사람을 무슨 수로.”

내 말의 뜻을 아직 못 알아들은 메이가 내게 질문했고.

그 동시에 나의 말뜻을 깨달았는지 동공이 확장됐다.

“허! 에에? 설마…….”

그녀가 놀란 듯이 소리를 질렀을 때,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첫 번째 은메달 수상자. ‘레드 테이블-반유현’의 메이 셰프입니다!

“축하해.”

메이가 최소 은메달을 수상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내가 그녀의 곁에 붙어서 가르쳐준 것들은 셀 수도 없이 많고, 그녀는 그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었다. 더군다나 이 대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와 그 맛은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았다.

동메달 3 명, 은메달 2 명.

내가 기록해두었던 명단에서 모든 수상자가 나왔다.

“너는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은메달이나 수상하는데. 너도 네가 잘난 줄 아는 거야?”

“아, 아니이이이. 셰프니이임!”

“축하한다.”

귀신을 본 듯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메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재료 손질을 하던 견습 셰프가 나와 함께 주방에서 생활을 한 지, 1 년도 채 안 돼서


국제 대회에서 수상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는 이곳에 있는 다른 셰프들에게, 내가 요리 기술을 전수하는 것에 아주 적극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것으로 비치기도 했다.

더군다나 ‘레드테이블 - 반유현’의 메이. 레스토랑의 이름에 나의 이름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나의 밑에서 일하며 요리를 배운 셰프라고 모두가 알게 되었다.

‘내 주방에 들어오고 싶을 테지.’

시상대로 걸어가는 메이보다, 나를 향해 뜨거운 시선과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설명할
이유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옛 동료를 비롯해 잠재력이 뛰어난 강력한 셰프들을 파리로 데려갈, 첫 번째 준비를 마쳤다.

***

‘레드 테이블-반유현’과 ‘반유현’.

라이브 쿠킹 종목 시상식에서는 내 이름이 정확히 세 번 호명되었다.

메이가 호명될 때, 그녀의 소속이 같이 호명되면서, 내 이름이 한 번 불렸으며.

내가 수상할 때는 나의 이름이 두 번 불렸다. 이를테면.

“마지막으로, 금메달을 차지하게 된 사람은!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의 반유현 셰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직 포시즌스 호텔의 레스토랑이 오픈을 하지 않았고, 내가 그 호텔의 레스토랑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기에, 나는 레드 테이블이라는 소속을 달고 출전했었다.

결과적으로 이 행사장에서 그 어떤 이름보다 ‘반유현’이라는 세 글자가 가장 많이 울려 퍼졌다.

“이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반유현 셰프님. 그 세 글자의 이름은 외워서 가겠어요.”

계단식으로 구성된 시상대, 내가 서 있는 계단의 아래 은메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메이가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메이가 나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것이 부러웠는지, 함께 시상대에 올라와 있던 동메달 수상자들과,


공동 은메달의 수상자들이 눈치를 보더니 내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뵙고 싶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팬입니다.”

“축하드려요 반유현 셰프님……. 혹시 이따가 사진 한 장만…….”

“아, 예. 당연하죠.”

일이 알아서 진행되어간다. 나의 이름값이 이만큼이나 강력해진 것이다.

시상대에 있던 셰프들은 내가 모두 눈여겨보고 기록해놨던 셰프들, 더군다나 그중 리키 넬슨은 나의


전생의 동료이기도 했다.

여기서 끝나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인연이 될 터지만, 나는 내 속내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어? 이게 뭐죠 셰프님?”

***

“100 명 이상이 들어갈 연회장을 찾으라고요?”

메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셰프님. 저 싱가포르에 처음 와보는데……. 영어도 그렇게 유창하지가 않…….”

이유는 알려주지 않고, 100 인 이상이 참석할 수 있는 연회장을 찾으라는 미션을 반유현에게서 받았다.

뭐 물론, 주방에서도 반유현은 무언가를 지시할 때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지시한 일을 수행하다 보면, 대부분 그 과정에서 깨우침을 받았다.

아마도 메이의 셰프로서의 잠재력과 실력이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은 반유현의 교육법과
메이의 호기심과 탐구력이 합쳐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야. 또 무슨 짓을 하시려는 거지…….’

그나마 이제는 반유현과 함께한 시간이 1 년이 다 되어갔기에, 그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는데,


이번에 시킨 일은 그 의도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셰프로서의 영업력을 키워주시려는 건가.’

싱가포르, 머나먼 타지까지 와서 100 명이 수용 가능한 장소를 3 일 만에 찾아야 했지만, 자신을 키워주고
가르쳐 준 셰프의 큰 뜻이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몇 곳의 호텔을 돌아다니며 장소를 섭외하고 있을 때에, 메이의 귀에 뜻밖의 소리가 들렸다.

“와! 이 대회에서 수상하면, 반유현 셰프님의……!”

반유현, 메이의 귀에 정확히 들린 세 글자였다.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저 얼굴은.’

반유현의 이름을 꺼낸 청소년들 중, 한 명은 메이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라이브 쿠킹 영셰프 부문에 출전해, 금메달을 얻게 된 소년.

메이는 더 이상 출전할 종목이 없었기에 이런저런 경연들을 관람하며 다녔던 터라, 수상했던 셰프들의
얼굴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메이가 알고 있는 얼굴 중 한 명인 라이브 쿠킹, 영셰프 종목의 금메달 수상자가 반유현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메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조금 가까이에 다가갔다.

“반유현 셰프님에게 명함 같은 종이를 받았다는 거지? 뭐라고 적혀있는데?”

반유현이 준 명함 같은 종이. 메이도 처음 듣는 얘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곤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파리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적혀있는데?”

“파리의 낭만? 파리의 스타 셰프 중 한 명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종이에 적어주었다는 건……. 어디서?”

그들도 그 종이에 적힌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대충 그 의미를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금메달을 수상한 소년이 말했다.

“나만 받은 게 아니야. 은메달, 동메달을 받은 셰프들도 반유현 셰프가 직접 초대권을 건네줬어.”

“모든 수상자들에게? 상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그런 종이를 준 거야?”

“아니, 종이를 받은 사람이 상을 받은 꼴이야.”

“엥? 반유현 셰프님이 상을 받을 사람을 예측했다는 거야?”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우리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긴 하셨는데 설마 모든 수상자를 예측할 수 있겠어?”

메이는 몇 마디 대화를 듣지 않았지만, 얼추 그 종이에 적힌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직접 눈여겨본 셰프들을 모두 한곳에 초대하겠다는 생각이신데……. 근데 대체 한곳에 모아 놓고


어쩌려는 생각이시지?’

매번 상상을 깨는 전략과 계획, 그리고 그것들을 실행했던 반유현이 대회 각 종목의 모든 수상자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그 초대를 받은 수상자들의 반응 또한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데, 그 설렘을 느끼기는 메이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이번엔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39 화. 왜 나를 보고 떨어? (1)

“대체 언제 이런 종이들을 뿌리고 다니신 거예요?”

“그냥 간간이 경연 구경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셰프들한테 나눠준 거야.”


“진짜, 대단하십니다. 셰프님. 이걸 초대장이라고 해야 되나요? 명함이라고 해야 되나요? 아무튼, 이
종이에 별칭까지 붙는다니. 참…….”

“별칭?”

메이가 혀를 차며 나를 바라봤다.

-행사의 끝, 그 전날 밤에 파리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해요. 당신은 그 낭만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레드테이블, 반유현.)

내가 셰프들에게 나눠준 종이, 명함 크기의 종이에 적힌 글귀였다.

“행사장에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 아시죠?”

“반? 뭐? 내 이름에 축복이라는 단어가 왜 붙어.”

반유현의 축복.

셰프들이 경연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었던 셰프에게 명함 같은 종이를 나눠줬는데, 그 종이가 그런
명칭을 얻었단다.

“그게 왜 축복이야?”

“셰프님이 준 종이를 받은 셰프들이 모두 상을 휩쓸었으니까요! 그 종이를 받는 사람은 무조건 그


경연에서 수상을 하게 되어 있다는 소문이 가득해요!”

각 종목에서 상을 받은 수상자들에게 ‘영업’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이는 내가 쌓아 올린 이미지를 한 번에 깎을 수 있는 소문이기도 했다. 미슐랭 포스타를 가진 셰프가 직접


대회에 출전해 유망한 셰프들을 얻어가기 위해 각 종목에서 상을 탄 수상자들에게만, 명함을 돌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것을 소문으로만 전해 들은 사람들이 나를 욕망만 가득한 셰프로 낙인찍기 딱 좋은 소문 아닌가.

그래서 나는 각 종목별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이 종이를 나눠주었다.

‘그런 명칭이 붙을 만도 하지.’

그 결과, 수상자는 모두, 나에게 종이를 받은 셰프들이었다.

내가 준 그 종이의 적중률 덕분에, 국제대회 내의 셰프들에겐 그 종이가 이 대회의 상을 받느냐 마느냐를


미리 알 수 있는 징표이자, 부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어쩌시려고요?”

“내가 마음에 드는 셰프에게 초대장을 주고, 한곳에 모아서 괜찮은 제안을 해볼까 했는데, 그 초대장
자체에 힘이 생겼으니, 이 대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겠어.”

***

“다른 생각이 있으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은 김정식이 내게 말했다.


“협회 차원에서 팀 내 선수들의 사기를 위해 명예 감독직을 드렸는데, 개인적인 영업을 하고 다니시면
어쩔 수 없이 자격을 박탈해야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협회에 건의하겠습니다.”

개인 부문에서 라이브 쿠킹 종목의 경연이 진행될 때마다, 그 행사에 참석해 나는 내가 눈여겨본


셰프들에게 명함 크기의 종이를 돌렸었다.

지금에 와서 그 종이가 문제라고 나에게 말하는 김정식이다.

“행사의 끝, 그 마지막 밤에 파리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 이 문구만 보면, 이 대회에서 수상한
셰프들을 파리에 있는 당신의 레스토랑으로 데려가려는 수작 중에 하나 아닙니까? 그것도 국가대표
감독직을 이용해서.”

속이 답답해 터질 것 같았다.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놈이 세상 물정을 이렇게나 모를 줄이야.

내가 내 주방의 인력을 채우기 위해 국가대표 감독직을 이용하는 줄 알고 있었다.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만.”

물론, 도움이 되긴 했다.

이 대회의 수많은 경연 중에서도 국가대표 부문은 수준 높은 셰프들이 많이 있는 경연이다.

국가대표부문의 종목들은 국가대표와 관련된 감독, 코치만이 관람을 할 수 종목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내가 맡은 명예 감독직은 더 많은 셰프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측면에서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개인적인 영업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수상자들에게만 이런 종이를 돌렸다는
것도 노골적인 욕심을 나타내시는 것 아닙…….”

“수상자들에게만 돌린 것이 아닙니다.”

“그럼 대회 각 종목에서 수상받은 셰프들이 모두 그 종이를 들고 헤벌레, 하고 있는데. 제가 본 것들은


거짓입니까?”

“저는 셰프들이 수상하기 전에 종이를 나눠줬습니다. 제 종이를 받은 셰프들이 각 종목에서 수상한


것이고요.”

“오호……. 반유현 셰프가 그 종이를 미리 준 셰프들만 수상을 했다? 돗자리를 까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 그랬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각 경연이 끝나고 시상식이 열리기 전, 내 눈에 띈 셰프들에게 명함 크기의


종이를 나눠주었다.

다만 그 적중률이 뛰어나 불필요한 오해를 산 것이다.

“이번 격려식은 이미 정해져 있던 행사니, 이 행사만 끝나면 자진사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격려식.

국가대표 선수단을 모아 두고, 경연에 출전하기 전 내 한마디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젊은 셰프들에게 나의 입지와 위상은 대단했으나, 그들을 가르치고 감독하는 이들에겐
나의 존재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이런 감정은 너무나 몸에 익숙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여러 이해관계가 있고,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있겠지만. 아주 간단하고 쉽게 말하자면, 질투다.

“싫습니다.”

굳이 저 남자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 생각했다. 무슨 권한으로 나에게 사퇴를 권고하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아직 국가대표부문의 종목에 참여하지 못했다.

국가대표부문의 경연에는 내가 꼭 종이를 나눠주어야 할 셰프들이 있었다. 여러 이유로 나는 그의 말을


거절했다.

“이미 협회에 건의를 했으니, 어차피 그렇게 될 겁니다. 그리고 확실한 건, 저는 감독입니다. 제가 맡은
이 국가대표팀의 명예를 위해서 그런 건의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죠.”

“대한민국 국적의 셰프들도 제가 사퇴하는 것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진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명예를 떨어트렸다면,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 테죠.”

“허…… 참.”

왜 사람들은 동경과 존경의, 좋은 감정들을 내버려 두고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갖는 것일까.

매번 느끼지만, 나는 저런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멍청한 사람들은 그 행동과 감정들에 대해 후회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격려식이 시작되었고, 내가 격려사를 마쳤을 때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셰프들의 거침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셰프님! 그 종이를 주시는 기준이 있나요?”

“저도, 받고 싶어요!”

“저도 한 장만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팬입니다아아!”

내가 만든 명칭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더,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그 종이는 메이가 했던 말처럼, 이


대회 전체에 많은 화제가 된 것 같았다.

이미 나에게 종이를 받은 셰프들은, 다른 경연에 출전할 동료 셰프에게 행운의 부적처럼 이 종이를


빌려주기도 한다고 했다.

물론,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무척이나 좋은 일이었다. 내가 만든 종이가 그런


파급력을 가졌다니. 나는 이렇듯 잘 만들어진 분위기를 잘 이용하면 될 뿐이다.

“이 자리에서도 몇 분께 종이를 나눠드리고 싶습니다만. 저의 이런 행위가 대한민국 팀 전체의 명예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우려에, 유감스럽습니다만……. 여기 계신 분들께는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약 올리듯이 말하는 게 아니라, 상당히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니 셰프들이 뒤를
돌아 한 곳을 응시했다.
셰프들은 그런 말을 내게 누가 했는지 알았다는 듯이, 김정식과 그 휘하의 코칭 스태프들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후끈하게 달아오르던 격려식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은 순간이었다.

***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민국 국적의 젊은 셰프들의 반발에 의해, 나는 명예 감독직을 사퇴하지 않을 수


있었고, 셰프들이 국가대표부문 3 코스(전채요리, 메인, 디저트) 종목을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무장입니다.”

그때, 이 대회의 가장 큰 후원사이자, 인증사인 세계조리사협회(WACS) 사무장이 내게 다가왔다.

“반유현 셰프님, 셰프님의 믿을 수 없는 행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행사장 내에서도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니십니다. 허허허.”

“아, 안녕하십니까.”

이 대회의 주최 책임자이기도 한 사무장이 내게 반듯하게 인사했다.

그러곤 사무장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종이……. 대체 어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그저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셰프들에게 종이를 드렸는데, 그게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허허. 그럴 만도 하죠. 그 종이를 받은 셰프님들이 모두 수상을 하셨다는 게……. 엄청난 안목을


가지셨다는 건데.”

사무장은 나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처럼 아주 편하게 내게 질문했다.

“요리의 평가는 모두 맛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어떻게 셰프들이 요리를 하는 행위만 보고 그렇게


평가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안목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판단하시는 근거가 있습니까?”

“칼을 잡고 있는 것만 봐도 느낌이 오는 몇몇 셰프들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했다.

실제로 셰프의 주방 동선과 칼을 쥐어 잡는 것만 봐도 대충 느낌이 온다.

“칼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요리 실력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저도, 요리 인생을 수년간 해봤지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워낙 이슈를 많이 만드시긴 하셨는데. 흠. 요리 실력뿐만 아니라 대단한 안목이
있으신 것 같군요. 아, 아, 물론 그 안목은 실력에 바탕 되어 나오시는 거겠지만요.”

사무장, 이 사람. 뭐랄까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직언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세계조리사협회, 일명 WACS 의 간부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우연히도 전생에 내 주방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셰프들이 몇몇 눈에 들어왔다.

“저분하고, 저분이 이 대회에서 수상하실만한 실력을 갖고 계십니다.”

나는 그 말을 한 뒤, 곧장 그들에게 다가가 종이를 건네줬다.


종이를 받은 셰프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감사하다며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더군다나 그 주변에서는 부럽다는 듯이 환호가 터져 나왔다.

본 경연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 셰프들은 내가 주는 종이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참…… 셰프들 사이에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저는 아직 믿겨지지가 않습니다만.


정말 방금 반유현 셰프께서 종이를 주신 저분들이 수상을 하게 된다면……. 저희 세계조리사협회에서
셰프님께 공식적으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안이요?”

“그 정도의 안목이 모두 사실이라면, 저희 WACS 의 공식 심사위원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요리대회를 주관하고 후원, 인증하는 단체의 공식 심사위원이라.

전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잠재력 있는 셰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직책 아닌가.

“우선, 지금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없군요. 정말 저 셰프들이 수상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 될 테니까요.”

나는 그저, 파리로 데려가고 싶은 강력한 셰프들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종이를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종이는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명칭까지 붙어 내 계획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줬다.

이 좋은 기운들…… 이쯤 되면, 천천히 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 대회가 끝났을 때 나의 모습이.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빨리 나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40 화. 왜 나를 보고 떨어? (2)

국가대표부문, 3 코스(전채요리, 메인, 디저트) 종목이 시작되고 세계 조리사협회, ‘WACS’ 사무장은 두


명의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독일 국적의 23 세, 닐스와 캐나다 국적의 21 세, 앨런.

두 명의 어린 셰프는 경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반유현이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종이를 나눠준 셰프였다.

‘칼을 쥔 것만으로도 그 실력을 알 수 있다고? 기가 차는구만.’

워낙 거침없는 언사와 자신감으로 유명한 반유현 셰프였지만,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 대체 경연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가.

‘응?’

그때, 사무장은 또 놀랄만한. 아니,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을 목격해야 했다.

반유현은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의 명예 감독을 맡았는데, 자신의 팀에 코칭을 하지 않고 경연장 내부를


여유롭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온도 제대로 맞춰!”

“밀가루 반죽 마르잖아! 더 빨리!”


각 팀들의 감독과 코치들은 조리대와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치열하게 코칭을 하고 있었는데,
반유현에겐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사무장이 그런 모습을 보고 놀란 것은 아니었다. 명예 감독이니, 참가에만 의의를 뒀으리라.

사무장이 놀란 것은 반유현이 경연장을 돌아다닐 때, 그 근처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셰프들의 반응이었다.

‘반유현의 눈에 들면, 이 대회에서 수상을 하리란 게 확실해진다는 건가.’

사무장의 저 멀리에 보이는 어떤 셰프는, 반유현이 지나갈 찰나를 맞춰 재료를 다듬는 걸 준비하다가,
그가 지나갈 때에 칼질을 시작하는 셰프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셰프들도 반유현을 향해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셰프들도 반유현의 안목을 인정하는 거지.’

경연장을 돌아다니는 심사위원들은 오히려 찬밥 신세가 된 것만 같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 대회에서, 한 명의 영향력이 저렇게 클 줄이야.’

마음으로 이해는 됐다. 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셰프였으니까.

매번 말도 안 되는 행보를 보여줬으니, 지금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저 모습도 그중 하나이리라.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저 젊은 셰프가 저런 안목과 실력을 갖췄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 우리 측의 공식 심사위원이 되면 최연소 아닌가.’

***

WACS 공식 심사위원의 제안조건으로 내 안목을 평가받기 위해 경연 시작 전에 미리 종이를 나눠줬던, 두


셰프, 닐스와 앨런의 컨디션을 체크해보니, 그 팀원들이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수상하는 것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세계조리사협회, WACS 의 공식 심사위원으로 발탁이 된다면, 세계 4 대 요리 대회를 내 앞마당처럼 드나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세계 4 대 대회뿐만 아니라, WACS 는 크고 작은 대회를 주관하는 기관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짧으면 6 개월 주기로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국제 요리 대회에 맘껏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고.

더 쉽게 말하면, 내가 이 대회에 출전했듯이 강하고 수준 높은 셰프들과의 접점을 꾸준히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채널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

포시즌스 호텔에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의 인력 문제를 해결하려 이 대회에 출전했더니만, 인생 전체의
인력 수급 문제를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가대표부문 3 코스 종목이 진행되는 한창, 웃겼던 것은, 셰프들이 나의 존재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셰프들이 요리를 하고 있는 조리대 안쪽으로는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텝들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 규칙.

셰프들은 조리대 앞에 서 있는 감독의 지시 사항을 듣다가도 내가 지나갈 때면 나에게 시선을 흘렸다.


더군다나 당장 그들의 옆에 심사위원이 있음에도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게, 내가 종이에 써놓은 글귀의
의미에 대해 대부분의 셰프들이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쯤 되면, 파리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겠지.’

내가 나눠준 종이에 대한 소문이 대회 내에 파다하게 퍼지면서, 그에 대한 추측들도 많아졌다.

수많은 말들이 많았지만, 셰프들은 글귀에 적힌 ‘파리’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터였다. 내가 파리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리라는 것을.

셰프들의 합리적인 추측 덕분에 내가 나눠준 종이의 가치가 올라가 고마울 뿐이었다.

이제는, 그 종이를 받게 된 셰프가 수상을 하게 되리란 징표이자 부적으로서 갖는 가치와 나에게 그러한
제안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초대장으로서의 가치 중에서, 후자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

‘셰프들의 눈빛들만 보면.’

이 현장이 싱가포르 국제 요리 대회가 아닌, 포시즌스 파리에 오픈될 반유현의 레스토랑 채용 요리


테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 말고 몇이 더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준 높은 셰프들의 요리 테스트를 볼 수 있어 배가 저절로 부른 느낌이었다.

내가 경연장을 한 바퀴 돌아왔을 때에는 내 눈앞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경연을 하고 있었다.

역시나, 이 팀도 감독 김정식이 조리대 앞에서 팔짱을 끼고 셰프들의 요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메뉴가 뭡니까?”

“흑임자죽, 떡갈비와 물김치, 천연 식재료로 색을 낸 떡과 수정과입니다.”

김정식이 관심 끄라는 듯, 퉁명하게 말했다.

나의 사퇴를 주장하다가 셰프들의 반발에 자신의 의견을 접었으니,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만도 했다.

이런 것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것은, 내 몸값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ACK 에 출전할 당시의 나였다면, 코를 납작하게 해줬을 테지만 굳이 그렇게 해서 얻을 게 없다.

“제가 도움 드릴 건?”

“원래 관심 없지 않습니까? 다른 나라 요리나 구경하러 가시죠.”

김정식이 그렇게 다시 말했을 때는, 셰프들이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나의 조언이나 코칭을 듣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일단 감독과 코칭스텝들은 나만큼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세계 최초로 단번에, 최연소 미슐랭 포스타를 받은 나의 조언을 듣는 것이, 훗날 이들에겐


영웅담과도 같은 추억으로 남지 않겠는가.

“셰프들이 원하는 것 같은데.”


“이미 구성이나 주방의 동선을 수십 시간씩 연습한 상태라, 조언할 게 없습니다. 정 우리 애들이 그러면,
그저 응원이나 하십쇼.”

나는 김정식과 조금 떨어진 조리대에 한 발짝 더 가가, 셰프들에게 물었다.

“메뉴의 스토리가 어떻게 됩니까?”

나의 이력이 뛰어날지 몰라도 나이는 비슷하다. 나는 그들에게 존대했다.

나에게 질문을 받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이정현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오히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몸이 경직되는, 그런 느낌, 기업 면접장에서의 예비 신입사원의


몸짓과도 같았다.

“아, 아, 크흠!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저희 팀은 한식의 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그냥, 한식 중에서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한식을 넣었습니다.”

이정현의 옆에 있던, 같은 국가대표팀의 팀원인 김소민이 말했다.

이정현이 목소리를 벌벌 떨며 대답하는 것이 답답했나 보다.

“외국인들이 흑임자죽과 떡갈비와 물김치, 떡과 수정과를 좋아한다는 근거는요?”

다른 셰프들과 달리, 내 앞에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는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흑임자, 검은깨는 원래 양식에서도 많이 쓰이는 식재료니 두말할 것 없고, 떡은 어느 나라에서나 먹히는


고소한 맛과 쫀득한 식감을 살릴 것이고요. 수정과는 계피 향을 조금 덜어내 국제적인 입맛에 맞출 겁니다.
그리고 떡갈비는 뭐, 두말할 것 없이 유명한 요리죠. 흠, 그런데 물김치는…….”

김소민이 물김치 이야기를 하다가, 감독의 눈치를 본다.

그러더니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저희 감독님께서 반유현 셰프님에게 영감을 받은 거라고 하셨거든요!”

“푸. 무슨 영감이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나에게 사퇴를 하라며 나무랄 땐 언제고, 자신이 감독을 맡은 팀이 선보일 요리가, 나에게 영감을 받은
요리란다.

속으론 나를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유현 셰프님이 규카츠랑 동치미 국물로 셰프들을 줄 세우신 사건 있잖아요. 그때,
저희 감독님이 동치미와 시원한 물김치 같은 음식도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구나라고 알게 되셨대요.
그래서 새콤달콤하게 입맛을 돋우는 가니쉬로 동치미를 자주 이용하곤 하셨어요.”

김소민은 내가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행사에서, 갈비찜이 다 떨어져 규카츠와 동치미 국물로 세계적인
셰프들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을 말했다.

그것에 감명을 깊게 받아 가니쉬로 동치미의 무를 자주 사용하던 김정식이었다.


“그래서 더, 열을 내셨구나. 나에게 영감받을 걸 내가 알면 안 될까 봐.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러울
테니까……?”

내가 김정식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독백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기분 좋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님께서 제게 영감을 받으셨다니요.”

김소민의 죄는 없었다. 나와 김정식의 껄끄러운 관계에 대해 관심이 없었겠지.

물론, 그것은 김정식의 일방적인 불편함이었다. 난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를 향해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엄지를 치켜세워줬다.

“크흠!”

조리대 안쪽에서 요리를 하던 셰프들은 자신들 감독의 표정이 왜 그렇게 달아올랐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물김치, 감독님 얼굴처럼 빨갛게 하려면, 육수를 우리는 망에다가 고춧가루를 넣어서 담그세요. 그럼
색깔이 불그스름하게, 예쁘게 나올 겁니다. 고춧가루를 직접 뿌리면 맛이 튀니까요.”

***

“국가대표부문, 코스 3 종. 금메달, 대한민국입니다.”

우와아아아!

내가 보기에도 그들이 우승할 것 같았다.

감독이 어쭙잖은 자존심과 열등감을 가지긴 했어도, 연습은 알차게 했던 모양이다.

내 조국이 우승을 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지만, 내 주된 관심사는 그게 아니었다.

“특별상, 독일의 닐스.”

우와아아아!

“개인 MVP 캐나다의 앨런.”

짝! 짝! 짝! 짝! 

경연 시작 전에 일명 ‘반유현의 축복’을 나눠 주었던 이들의 수상이었다.

나에게 종이를 받았던 그 두 명의 사내는 시상대에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실제로 나에게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그 종이를 받았던 당사자인 저 둘도 놀랐겠지만, 제일 놀란


사람은 또 따로 있었다.

“후.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WACS 사무장, 아드 헤놈입니다.”

“네.”

“참, 보고도 믿기 힘든 것 같습니다……. 시, 실제로 반유현 셰프님께서 경연 전에 종이를 준 셰프들이


수상한 것……. 후와. 와우……. 딱 두 명에게 그 종이를 줬는데, 그 두 명 모두 수상을 했군요.”

아까 내가 했던 말을 실제로도 증명한 순간이었다.


칼을 쥐고 있는 모습만 봐도 그들의 실력을 알 수 있다고.

그것을 알기 쉬웠던 것은 저 개인상을 받은 두 명은 이 전생에 나의 주방에서 일했던 이들이었다.

주축이 되어 미슐랭 스타를 호령하진 않았지만, 간부급 정도의 셰프들이었다.

“그, 그럼……. 아까 드렸던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시죠. WACS 의 공식 심사위원 자리요.”

“제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아직도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믿기 힘들었는지, 호탕하게 웃는 것이 어색했다.

그러다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돌아온 아드 헤놈이 내게 말했다.

“음. 다만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공식 심사위원이 되시는 순간, 현재 출전 예정 중이신 모든 종목에


출전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흠.”

나는 그의 말에 고민하다가 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내가 준비해 온 종이가 몇 장이나 남았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네.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주머니에 종이, 일명 ‘반유현의 축복’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대회 기간 내내 부지런히 돌아다녀, 앞으로 출전하게 될 종목들을 모두 취소하더라도 될 만큼의 할당량을


얼추 채운 것이다.

할당량이라 함은 내가 셰프들에게 나눠줄 종이의 양이었다. 대충 150 장은 만들어 왔었는데, 주머니를


뒤져보니 그것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 나에게 종이를 받은 셰프들을 어떻게 하냐는 건데.’

얼떨결에 대회의 일정이 끝났으니, 종이를 나눠주는 것은 이걸로 끝내고 이미 종이를 받은 셰프들을
파리로 데려갈 계획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파리에서부터 생각해 온 계획을 수정해야 됐기에 머리가 복잡해지려 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성과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똑똑한 셰프들의 실력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자리를 얻었네.’

WACS, 공식 심사위원.

이번 생은 주방에 셰프를 채우는 일에 대한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전 세계 유명한 셰프들이 몰리는 그 현장들을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41 화. 왜 나를 보고 떨어? (3)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건데? 여…… 여보? 여보세요?”


포시즌스 파리의 최고 경영자인 로만,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반유현의 계획과 행보가 궁금했던 나머지, 포시즌스 싱가포르 측의 직원들에게 지시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고 있던 중에 잠시 전화가 끊겼던 탓이었다.

“후. 너무 무모했었나.”

그 잠시 동안에는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쌓였다. 그중에서 불안한 마음이 점점 머릿속을 잠식해 나갔고,
그 마음은 자신의 선택이 무모했다는 결과를 내게 만들었다.

“흠.”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 포시즌스 그룹 내에서도 꽤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로만은 반유현을 믿고


그에게 시간을 주었었다.

다른 간부들의 만류와 다른 지점의 사장단들도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었으나, 자신이 그 당시 반유현에게


느꼈던 확신은 그들의 걱정을 모두 떠안아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선택인 줄 알았지.”

반유현은 포시즌스 파리 내에 레스토랑을 차지할 셰프를 뽑는, 요리 테스트에서 다른 스타 셰프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었고, 2 차 요리 테스트는 단독으로 진행할 만큼, 전례가 없던 실력을
보여주었던 탓에 그를 전적으로 믿어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가 어떤 셰프들을 데려오건, 포시즌스 파리가 가진 세 개의 레스토랑을 모두 맡기겠다는 생각도 그


마음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그의 싱가포르에서의 행보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셰프들과 1:1 면담을 통해 계약서를 찍어도 모자랄 판에, 유유히 경연장을 돌아다니면서 종이를
나눠주는 것이라니.

“아직 돌이킬 시간은 있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생긴 것과 동시에 자신이 무모한 선택을 했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 당시 반유현이
가진 매력과 실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경영자, 기업가로서의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호텔 외식업계에 장장 20 년을 근무했던 그 세월 때문이었다. 20 년이 넘는 시간동안 본적 없는 셰프를


만났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어떤 만화 주인공 같이 패기 넘치는 캐릭터를 가진 반유현은 로만이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반유현의 축복이건, 대회 현장의 모든 셰프들이 그를 찬양하던, 50 명, 60


명이 되는 셰프를 단번에 구할 리가. 구한다고 해도, 그 셰프들의 질이 좋을 리가 없지…….’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렇게 로만이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독백을 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래, 뭐 더 들어온 소식 있나?”


-예, 반유현 셰프가 모든 출전 계획을 취소하고, 파리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뭐? 요리 대회에 출전해서 강력한 셰프들을 구한다고 하더니, 중도 포기하신 거야?”

-음……. 포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종이를 받은 셰프들을 한 자리에


집결시키셨으니까요.

“그건 또 뭐야?”

-저도 제대로 확인하러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툭.

반유현이 파리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더 커져갔다.

대회가 끝나기까지는 아직 5 일이나 남은 상황, 벌써 레스토랑의 주방을 채울 셰프들을 다 구했다고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후. 금방 돌아온다니까, 얼굴은 보고 이야기해야겠지.”

레스토랑의 오픈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호텔의 매출은 떨어진다.

당장 포시즌스 파리 레스토랑을 맡게 될 셰프를 뽑는 공고를 올리고 싶었으나, 반유현에게 시간을 준다고


했었던 로만이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반유현에게 했던 말을 저버리는 것은, 상도가 아니라 생각한 나머지, 우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더군다나 요즘 가장 핫한 셰프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은 훗날 어떤 악재로 작용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

포시즌스, 파리.

아무것도 없는 공간, 원래는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였고 현재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어, 어떻게 되신 겁니까 대체?”

“뭐, 기대하신 대로입니다.”

“기, 기대한 대로라면…….”

나와 마주하고 있는 로만은 대체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떤 것부터 답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당연히, 목표로 하신 만큼의 셰프들을 구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구했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대, 대체 어떻게 구했습니까? 아니 어떻게는 그다음이고, 그 셰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루시앙과 올리버가 평소에 나에게 하던 질문과는 결이 달랐다.

그들은 나의 성공을 당연히 믿고, 그 성공을 어떻게 해냈는지가 궁금한 느낌이었는데, 로만은 나의 성공
자체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조금 지나면 이곳에 다 모일 겁니다.”

“아, 아니! 근로계약서라던가, 구체적인 조건이 담긴 서류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셰프들의 세계에는 그런 종이 쪼가리 말고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시종일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는 나의 태도에 답답함을 못 참는 로만이었다.

물론, 이 호텔의 간부들과 다른 사장단들의 우려를 모두 떠안고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하하! 반유현 셰프님, 말장난하자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 여쭙는 것은 엄연히 우리의 비즈니스의


관련된 내용입니다.”

“저도 말이나, 종이를 보여드리기보다 더 확실한 것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후……. 대체 계약서나, 그와 관련된 서류보다 더 확실한 믿음이……. 음?”

자신이 답답함을 표했음에도 아무런 태도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내 모습에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로만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나와 로만, 단둘이 앉아 있던 레스토랑의 회전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회전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가 돌아가고 나머지 하나가 또 돌아가기 시작했다.

“왔나 보네요 다들.”

내 말이 끝났을 때는,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뭐, 뭡니까!”

“서류보다 중요한 믿음이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전문을 통과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이게…… 무슨.”

조리복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은 하나, 둘, 계속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앞에, 4 열종대로 그들이 집결했다. 정확히 44 명.

“약속시간에 정확히 오셨네요. 여기 제 옆에 계신 분이 이 호텔의 사장이십니다.”

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온 내가 셰프들에게 로만을 소개하자, 셰프들이 박수를 쳤고 로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이분들은……?”
“저와 함께 포시즌스를 이끌어갈 셰프님들이십니다.”

“예에?”

후우우.

조리복을 입은 마흔네 명의 셰프들이 레스토랑에 들이닥친 뒤에 또다시 회전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 세 명이 걸어 나왔는데, 로만은 그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아니……! 저분들은.”

“저 세 명에게 각각의 레스토랑을 총괄하게 할 것입니다. 이 마흔네 명을 지휘할, 지휘급 셰프들이죠.”

***

“이렇게 총 마흔일곱 명입니다. 조직도를 설명해드릴까요?”

“어떻게…….”

마흔일곱 명의 셰프를 불과 2 주도 안 된 기간에 모았다는 것과, 내 머릿속에 그에 대한 모든 계획들이


있다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이 세 분은 세 개의 레스토랑을 각각 총괄하실 분들입니다.”

나는 싱가포르 국제 대회의 현장에서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종이를 나눠줬었다.

첫 번째 우선순위는 나의 옛 동료였던, 내가 수십 년간 검증을 해왔던 셰프들이었고, 두 번째 순위는


요리 그 자체에 대한 실력이나 잠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였다.

그렇게 종이를 나눠 줬던 셰프들 중에는 본인들이 속해있는 레스토랑에서 총 주방은 아니지만, 총


주방장을 보좌하는, 주방을 지휘할 수 있는 직급을 가진 젊은 셰프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속한 셰프들도 많았었다.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주방의 조직을 구성할 수 있고, 실력도 웬만큼 갖춘 지휘급 주방장들입니다.”

“아니, 이분들…….”

그 세 명의 스펙을 간단히 나열하면 이랬다.

-미슐랭 1 스타 오리엔 하우스의 수셰프, 영국 유명 잡지사 ‘THE COOK’ 선정 영향력 있는 젊은 셰프 3


위.

“재료 손질부터, 잠을 안 자면서 주방에서의 제 입지를 키워왔습니다. 이제는 파도를 맞아가며 거침없는
도전을 해보고 싶어 반유현 셰프님의 부름에 이끌려왔습니다.”

-미슐랭 2 스타 멘츠 키친의 부주방장, CIA 수석 졸업, 요리 방송 ‘Garnish’의 공식 패널.

“저도, 이상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창립자께서는 14 개의 미슐랭 스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 이렇게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는지…….”

-미슐랭 1 스타 미나의 수석 조리장, 팔로우 13 만 명의 요리 전문 인플루언서.


“저를 알아보셨잖아요? 반유현 셰프가. 3 년째 같은 직급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마침 몸이 근질거리기도
했고. 팔로우를 늘릴 컨텐츠가 없기도 했고. 제가 반유현 셰프님의 주방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팔로워가 엄청나게 늘 것 같은데요?”

요리업계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던 젊은 셰프들, 더 많은 발전을 하기 위해 국제 요리 대회에


출전했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자신을 소개하면서 내 밑으로 들어온 이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셰프들이었다.

이들을 각 레스토랑의 총 지휘자로 세운 이유는 경력도 경력이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요리를 수단으로 자신의 색깔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국제 요리 대회 경연장에서 확인했었다.

“자신의 색이 검정색이라는 것을 인지하려면, 흰색도 알아야 되고, 빨간색도 알아야 되잖아요?”

그 한마디에 내가 이들을 지휘급 셰프로 세운 이유가 다 들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대외적인 영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 계신 모든 셰프들은 실력은 기본이고, 이 세 분은 잡지사, 방송, SNS 등 대외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밑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또 다른 이슈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했다.

세 명의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주름 하나 없는 젊은 얼굴에, 눈빛에 열정 또한 가득했다.

우선, 로만의 의심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만한 인사들이었다.

로만뿐만 아니라, 나머지 44 인의 셰프들도, 자신들과 나를 연결 지어줄 이들에게 많은 기대를 가진


눈빛을 쏘고 있었다.

“지금부터 각 레스토랑의 메뉴를 구성하고, 코스를 짤 겁니다. 포시즌스, 파리.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


각각이 완전히 다르고, 환상적인 맛을 내보겠습니다. 목표는…….”

목표는 내년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이 세 개의 레스토랑의 이름이 동시에 호명되는 것.

우와아아아아!

셰프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나는 그 찰나에, 그것을 지켜보던 로만의 안면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로만 사장님, 떨지 마세요. 뭐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내 100 년 요리 인생의 내공이 본격적으로 몸 밖으로 표출되나 보다.

젊은 셰프들부터, 호텔 외식업계에 수십 년 몸담은 베테랑까지 내 앞에서 경직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42 화. 왜 나를 보고 떨어? (4)

“문제가 있는 셰프가 몇몇 있기는 합니다만. 음, 문제라고 하니까 뭔가 나쁜 말을 하는 것 같네요. 그건


아니고 뭐랄까……. 아직 저희 호텔 주방에 들여오기엔 시기상조인 셰프들입니다.”
나는 포시즌스 파리 총 경영자의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지만 내가 이곳으로 데려 온 셰프들의 실력에 대한
검증 과정은 꼭 있어야 했다.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세계적인 그룹의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나에게 레스토랑 경영의 전권을
쥐여줬음에도 이런 인사 검증은 필수적인 항목이었다.

만에 하나, 아니, 천만분의 하나라도 호텔 역사에 누가 될 사람들을 호텔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지


않겠다는 그룹 참모들의 신념이 담겨져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내게 문제가 생겼다.

“이 셰프들은 대체 무슨 근거로?”

나와 함께 전 세계 각지에 흩어진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미슐랭 스타를 거머쥐었던 전생의 동료들은,


마흔네 명의 셰프 중에 여섯 명이 있었다.

그 중엔 앨런, 닐슨, 리키 등 지난번 국제 요리 대회에서 수상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옛 동료들이


있는 반면에, 입증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옛 동료들이 있었다.

오히려, 내가 잠재력만을 보고 뽑은 셰프들이 내 옛 동료들보다 강력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20 년 전으로 회귀했고, 이들의 약 20 년 뒤를 보고 뽑은 것이었기에, 로만을


설득시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들은 현재, 열정밖에 없는 수습 셰프였으니 말이다.

“시간을 좀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도의적으로.”

“도, 도의적이요? 이들은 아직 저희 측에 채용이 되지 않았는데 무슨 도의요?”

“저를 보고 다 때려치우고 파리로 건너왔지 않습니까.”

로만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만 주시면 만들어 놓겠습니다.”

“하…….”

루시앙이나 올리버처럼 이쯤 되면 내 말에 거절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의 파격적인 행보를 실제로 본 이들의 특성이었다.

“얼마의 시간요?”

“두 달이면 저 건너에 그레이튼 호텔의 셰프들보다 잘할 겁니다. 할 수 있잖아?”

로만에게 탈락 통보를 받은 셰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로만을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에 꽤나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셰프님, 분명 두 달입니다. 그때는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형평성 문제도 있고…….”

“알겠습니다.”

“후.”
로만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이거는 어떻게 하신 겁니까?”

[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 반유현의 축복이 만들어낸 또 다른 기적. ]

[ 반유현, WACS 국제 심사위원 발탁. ]

[ 역대 최연소 심사위원, 심사위원계에 젊은 피 수혈. ]

[ WACS 회장 “반유현 셰프의 안목이라면, 세계 요리 문화 발전에 많은 도움 될 것.” ]

로만이 기사가 띄워진 휴대폰을 내게 건네며 물었다.

WACS 공식 심사위원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최연소라는데, 최연소라는 단어가 이제 질리시겠습니다. 하하.”

“크게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어딜 가나 최연소니까요.”

“참……. 될 사람은 뭘 해도 된다 그런 겁니까?”

로만은 며칠 전, 마흔일곱 명의 셰프들이 집결했을 때부터, 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듯했다.

“계속 비현실적인 일들을 만들어내고, 성공시키고, 더 잘되고. 끝이 어딜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셰프님의 행보를 낱낱이 분석해서, 성공 커리큘럼을 만들어 책으로 팔면 어떨까…….”

“그럼, 저작권은 제게도 있는 겁니까?”

“하여간 빈틈이 없으십니다. 아무튼, 대외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신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저희


호텔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흐음.”

로만이 다시금, 포시즌스 호텔의 기준치를 넘지 못한 셰프들, 내 옛 동료들을 바라보고 숨을 내뱉었다.

“WACS 심사위원의 안목이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하고, 반유현의 축복이란 게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궁금하고. 아무튼, 이 셰프들 두 달이라고 하셨습니다. 저 건너에 그레이튼 호텔의 셰프들 보다 실력이
좋아지게 하는 데에.”

“두 달이면 충분합니다. 여기 있는 메이 셰프는 경험해 봤거든요.”

나는 메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시 내 비서 역할을 위해 포시즌스 호텔에 동행해 있던 메이였다.

“두, 두 달요?”

우욱! 우웩!

메이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다.

그녀는 내가 제시한 그 두 달의 시간이 어떤지 알고 있었기에, 헛구역질을 내뱉었다.

포시즌스의 직원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나의 옛 동료들은 경기를 일으키는 메이의 반응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셋 다 주방에 들어가 있어. 아, 세면도구랑 옷도 챙겨서 주방에 갖다 놔. 물론 강제는 아니야.”


확실히, 내 옛 동료들에겐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이름 모를 ‘끼’가 있다.

모든 것이 각오가 되어있다는 듯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저 세 명을 보면 말이다.

***

“레스토랑 이름부터 정하시는 게…….”

“이름은 반유현, 그리고 그 뒤에는 색깔이 붙습니다. 반유현-레드, 블루, 옐로.”

전생부터 나는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마다, 나의 이름을 사용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름과 지명을 같이 사용했고, 같은 동네에 레스토랑을 차릴 때면 그 뒤에 색의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면, 반유현 - 파리, 라스베이거스, 도쿄 이런 식으로 이름을 만들다가 지명이 겹치는 곳이 있으면
색깔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곳은 같은 건물 안에 세 개의 레스토랑을 오픈해야 했으니, 지명을 생략하고 색깔을 붙였다.

“그럼, 팀 이름도 반유현팀이 되겠군요.”

내가 레스토랑의 이름을 결정짓자마자, 호텔 내에서 나의 이름으로 된 팀이 탄생했다.

“모든 레스토랑의 영업, 회계를 비롯한 사무적인 모든 일을 담당할 겁니다.”

일명 레스토랑 반유현팀. 호텔 내에 아예 새로운 부서가 생겨난 것이었다.

난 반유현팀의 직원들과 실질적인 실무를 하는 셰프들을 모두 총괄하는 직책을 맡게 된 것이었고.

“호텔 내 간부들의 의전도 함께 담당하는 총무과에 물어봐야겠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의전서열이 어느


등급에 해당되는지요.”

얼추 들어본 바로는 고급세단이나 비서도 붙여준다고 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었다기보다, 사람이 자리를 만든 경우였다.

그리고 나는, 나와 내 레스토랑을 위해 꾸려진 팀과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랜드 오프닝입니다.”

내가 실력 있는 셰프들, 그것도 40 명이 넘는 셰프들을 한 번에 파리행 비행기에 태울 수 있던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파리에서 가장 비싼 땅의 중심, 가장 역사 깊은 호텔에서 열리는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되는 유명 인사와


그 행사의 파급력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 근사한 행사에 참여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이들을 파리로 이끌었다.

더군다나, 반유현, 즉 내가 가진 캐릭터성은 그런 거대한 오픈을 하고도 남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좌석의 규모로 보나, 호텔의 역사로 보나 그 규모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도 호텔 외식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적지는 않으나, 이런 큰 규모의 그랜드 오프닝이라……. 초대


손님들부터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될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그 규모는 저희끼리 정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포시즌스 파리의 모든 레스토랑의 경영권을 가지셨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홍보하자는
말씀이신가요?”

내가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 세 곳을 모두 가졌다는 이야기는 아는 사람들만 비밀리에 아는 사실이었다.

싱가포르 국제 대회에서 ‘반유현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파리로 건너오지 않은 몇몇 셰프들에 의해


소문이 퍼지고 있을 테지만, 대외적으로 이 사실을 알린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이 사실이 불러올 파급력을 내가 원하는 때에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호텔의 역사에 걸맞는 역사적인 행사를 만들죠. 그러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

[ 포시즌스 파리, 역사 깊은 세 개의 레스토랑, 오늘로 모두 문 닫아. ]

[ 마리옹과 장루이 돌연 은퇴! 파리의 맛의 선구자, 역사의 뒤안길로. ]

[ 각각 7 년, 11 년째 레스토랑 운영하던 마리옹과 장루이 은퇴식 열려……. ]

[ 마리옹 “고향에 내려가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맛을 그리며 여유롭게 살겠다.” ]

“후회는 없지?”

이 호텔의 레스토랑을 수년째 운영했던 마리옹과 장루이는 호텔의 객실에서 떠오른 기사들을 읽고 있었다.

“우리의 은퇴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을 보면, 요리사로서 헛되이 일생을 보낸 것 같지 않네.”

“하하하. 참, 나도 그런 줄 알았어. 자네가 반유현 셰프의 이름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 장루이 “후임자인 반유현 셰프를 응원, 이 호텔의 레스토랑은 역사적으로 파리의 맛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반유현을 응원하겠다. ]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잔잔하고 훈훈한 분위기로 끝날 것 같던, 그 은퇴식, 마지막 기자
회견장에서 장루이의 발언은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었다.

“로만 사장에게도 직접 전화가 왔어. 왜, 호들갑을 떨었냐고.”

포시즌스 호텔 측은 반유현이 세 개의 레스토랑을 모두 차지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릴 계획이 있긴


했었지만, 장루이 덕에 그 계획을 앞당겨야 했다.

[ 포시즌스 파리, 반유현의 맛을 품다. ]

급하게 각종 광고를 냈지만, 급하게 그것을 해내려는 것이 미숙했는지, 이상한 소문들이 붙기 시작했다.

“우리의 은퇴가 반유현 셰프의 존재 때문이라는 게 기정사실화되었지 않나.”

사람들은 두 원로 셰프의 은퇴를 반유현의 등장과 연결 지었다.


파리의 수많은 셰프들의 존경을 받으며 한 자리를 지키던 셰프들의 갑작스러운 은퇴를 설명할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틀린 것도 아니잖아. 실제로 우리가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맛보고 떠날 때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허허허.”

“그 한 명의 셰프. 우리가 그래도 보는 눈은 제대로 있는 것 같네. 허송세월은 아니었어.”

“그러게 말이야. 이번 싱가포르 국제대회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였다던데.”

“대단해……. 이제, 나가지. 호텔 측의 배려에 잘 쉬었구만.”

포시즌스 파리는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며 은퇴식이 있는 그 날밤, 가장 비싼 스위트룸을 이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밤을 지새우고 추억을 되짚어보며 방을 나섰다.

“마리옹! 장루이 셰프님! 은퇴 이유를 왜 정확히 말씀해 주시지 않는 건가요?”

“수많은 셰프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셰프님들께서 가르치셨던 다른 셰프들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로비 앞에 준비된 차에 오르기 전, 기자들이 두 셰프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은퇴를 왜 하냐…….”

장루이가 질문에 짧게 대답하고 차에 오르려는 찰나, 마리옹이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역사가 바뀌는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새롭게 쓸 셰프를 만났고요. 이전과는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나가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셰프가 누굽니까? 반유현 셰프입니까?”

“새로운 미래? 셰프들의 미래를 말하시는 건지요! 그 미래를 펼치는 사람이 누굽니까?”

마리옹은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한마디를 툭하고 내뱉었다.

“다들 아시잖아요. 그게 누구인지.”

43 화. 새로운 역사는 지금부터 (1)

“자크,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아니야?”

“그렇죠. 그나저나 그렇게 바쁜 사람이 섭외가 가능할까요?”

[ 프랑스 요리 거장 둘, 마리옹과 장루이 “반유현은 요리업계 새로운 역사를 쓸 인물.” ]

“그러게 마리옹, 장루이 셰프 두 명 다 그런 소리를 해서 우리가 더 곤란해졌어.”

“더군다나 은퇴식에서 그런 말을 해서 파급력이 장난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는 반 셰프를 진짜 모르는


사람이 없겠네요.”

[ 80 년 역사 최초. 포시즌스의 모든 레스토랑 지배. ]

[ 포시즌스 역사상 최초로, 반유현의 이름을 딴 부서 신설. ]


[ 반유현 셰프! 미슐랭 시상식에서 있었던, 업계의 대격변, 다시 한번 일으키나. ]

[ 또! 세계 최초로 다수의 포시즌스 레스토랑, 세계 최초로 경영 ]

[ 대한민국 국민 가장 먹고 싶은 음식 1 위, 반유현의 요리. ]

반유현에 대한 홍보는 공격적으로 시행되었고, 그에 따라 프랑스와 파리, 그리고 요식 업계만 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

“섭외만 된다면 완전 대박 아닙니까?”

“대박이지, 지금에 와서는 반유현 셰프는 그냥 보통 셰프가 아니니까.”

1 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한-불 문화교류의 날.

대한민국과 프랑스의 문화를 교류하는 날로, K-pop, 한류 드라마와 영화 등 두 나라를 대표하는


컨텐츠들을 이용한 축제의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하필, 그런 혜성 같은 셰프가 등장해서 말이야…….”

특히 문화교류의 날에는 그 마지막 순서로 갈라 디너(Gala dinner)가 열리는 것이 전통이었다.

프랑스의 유명 셰프가 한식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선보인다던가, 대한민국의 셰프가 프랑스의 식재료를
이용해 한식을 선보이는 등,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를 합치는 방식으로 정찬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시도라도 해봐야지, 시도도 안 해봤다간 아주 개작살이 날 거야.”

그런 행사가 있다는 것 자체가, 현재는 프랑스 파리 지방 관광청 직원들에겐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다.

중앙 관광청에서 갈라 디너에 반유현 셰프를 섭외하라는 프로젝트를 내려줬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행사라고는 해도……. 여태까지 반유현 급의 셰프는 한 번도 섭외된 적이 없잖아요. 해봤자


미슐랭 3 스타? 2 스타…… 반유현 셰프는…… 행사의 급이 맞지 않는 것 아니에요?”

“이번엔 규모가 좀 달라, 한국의 대통령도 오신다고 하잖아.”

“예? 왜, 왜요?”

“대통령이 움직이는 이유 같은 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대한민국의 대통령, 프랑스의 대통령에게 갈라 디너를 선보이는 것이라면, 반유현을 섭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국가 간의 대대적인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방심하지는 말고. 나도 섭외하려고 좀 알아보니까. 성격이 아주…….”

“성격이 왜요?”

“몰라, 자크. 너에게 이번 한불문화교류의 날이 달렸어.”

반유현의 섭외를 맡게 된 직원은 선배의 말에 안색이 좋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 치밀한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셰프라고 했어. 네가 할 건 이 행사가 어떤 행사인지만


설명해 주면 되는 거야. 그분이 알아서 판단하시겠지.”
***

한창, 메뉴 구성과 식재료에 대해 셰프들과 논의하고 있을 때, 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스케줄이 괜찮으시겠습니까?”

‘반유현’ 팀의 직원으로, 내 스케줄과 의전을 맡은 직원이었다.

“한불 문화교류라……. 참석자는?”

“대통령님께서 직접 프랑스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프랑스 대통령님도 참석하시고요. 한류 스타라


불리는 한국의 아이돌들도 참석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셰프님의 요리를 선보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내 마음속에는 이미 그곳의 갈라디너를 맡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

다만 직원의 물음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 행사에 참가함으로써 얻게 될 것들을 미리


정리해 두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 당장은 내가 오픈하게 될 레스토랑에 어떤 이득이 있을지 생각했다.

‘K-pop 스타와 대한민국의 유명인들에게 내 요리를 선보인다…….’

한류 문화교류의 날이 열리는 시점은 포시즌스-반유현의 그랜드 오프닝 이전이었기에, 내가 그 행사에


참가하게 된다면,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들의 풀(Pool)을 넓히는 것 아니겠나.

100 년을 하나의 목적만을 두고 살았기에,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누군가와 금방 친해지는 성격은 아니지만,
내 요리의 맛을 보여주는 자리라면 친구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랜드 오프닝에는 할리웃 배우들이나, 그에 버금가는 유명인들을 섭외하고 있지만, 이 몸의 국적이


대한민국인 만큼, 대한민국 국적으로 빌보드를 휩쓸고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감독이 그랜드 오프닝에
와준다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매년 있는 행사마다 내가 그 갈라디너를 맡게 된다면.’

이는 확실하지 않은 가정이었지만, 혹여나 나의 요리가 너무 강력해 내가 한불 문화교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갈라디너를 선보이는 고정 셰프가 될 가능성도 점쳐봤다.

대통령도 방문하는 국가적인 행사의 고정 셰프라……. 나의 이력에 한 줄이 추가되면서, 내 레스토랑을


매년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이 생기는 것이다.

‘포시즌스 반유현의 오너 셰프, 반유현의 갈라디너’라는 이름으로 그 행사의 이름이 붙어질 터이니
말이다.

‘아무리 바빠도, 좋은 기회가 많이 생길 것 같다. 의도치 않게 WACS 의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방금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들을 정리하자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지금 그랜드 오프닝으로 아무리 바쁘다고 한들 나가야 되는 행사였다.

“성가시거나, 귀찮아질 일은?”

“없게 만들겠습니다. 셰프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 저희 팀의 주목적이니까요.”

직원의 차분한 말에 생각을 정리했다.


“메일 보내, 준비하겠다고.”

그렇게 모든 생각을 정리했을 때, 순간적으로 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프랑스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참석을 한다라…….’

프랑스 대통령과 그 정부의 고위급 공무원들에게 요리를 대접한다.

그에 따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다름 아닌…….

‘MOF 훈장.’

1924 년에 처음 만들어진 훈장으로, 4 년 주기로 각 분야의 장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이었다.

최고 장인, 프랑스 내에서 공식적으로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이 훈장을 수여하는 기관인 만큼 그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

일이 계속해서 많아지고, 바빠지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꼈다. 내 밑에 있는 셰프들 또한 행복한


마음으로 내가 내려주었던 메뉴의 맛을 올리는 것에 최대한의 노력을 퍼붓고 있었다.

그런데, ‘반유현 팀’의 일원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현재 저희 일정이…….”

“일정이 뭔데.”

“가장 처음으로는 말씀하신 레스토랑 컨셉에 따라서 인테리어 준비하고 있고요. 식자재 납품하는 업체들
고르고 있고요. 그랜드 오프닝, 인사들 섭외하고 있고요. 프랑스 관광청하고 한불 문화교류행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 더 추가될 것 같은데.”

그들이 바쁜 것까지 신경 쓰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한국 사람들의 파리 방문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야, 더군다나 내가 이번에 한불문화교류 행사에


참가하면, 한국인 관광객들이 몰릴 테니 대비를 해야 돼.”

“어떤 방식으로요?”

“프랑스 파리에만 내 레스토랑이 4 개 있으니.”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는 루시앙의 지분이 훨씬 많이 들어있으니 제외한다면.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이 오픈되면, 내 이름이 붙은 레스토랑은 총 4 개가 된다.

“그저 음식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반유현’, 나의 음식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내 이름 자체가 많은 파급력을 불러오게 된 지금, 그에 따라 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예약 서비스를 만들 겁니다.”


“아……. 예?”

기존에 전화나 방문으로만 예약을 받았기에, 오로지 나의 이름만을 찾아온 관광객들이나 미식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규모가 아직은 작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예약 서비스를 지금 꺼내들었다.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통합으로 예약할 수 있는 어플을 만들 겁니다. 네 개의 모든 레스토랑이


파리에 있기 때문에, 각각 전화나 방문을 하지 않고도 제가 운영하는 모든 레스토랑의 예약 실태를 확인할
수 있게끔 하는 목적이 있어요.”

대형 프렌차이즈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아니면,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은 이런 서비스를 가진 적이 없었다.

고객의 편리함도 편리함이지만, 이는 혁신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주목을 불러올 수 있는 수단이었다.

나의 말에, 직원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요리도 요리지만 그런 사업적인 생각은 대체 어떻게?”

“그냥 천재가 아니십니다. 반유현 셰프님……. 매번 놀라요 정말.”

“하하하하! 다음 년이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셰프님! 저희도 이 레스토랑의 직원으로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건가요? 셰프는 아니어도…… 좀 해주세요!”

“와……. IT 사업까지……?”

“IT 사업이랄 건 아니고, 그냥 고객들이 더 편하게 제 요리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죠. 더군다나


한불문화교류행사로 한국 분들이 많이 찾아주실 것 같은데 그 전에 서비스를 구축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셰프가 아닌, 즉, 요리가 아닌 그 외 모든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는 ‘반유현’팀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이들도 혁신하고 도전하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

미슐랭 스타 11 개를 소지한 올린, 지난 포시즌스 호텔 셰프 선발 요리 테스트에서 반유현과의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파리에 계속 있으신 이유가?’

‘효율을 위해섭니다.’

‘저는 매번 주방을 떠나라고 말하곤 했는데……. 제 제자들에게 할말을…….’

‘제자들에게는 조금만 더, 지켜보라고 하십시오. 파리에 제가 계속 있는 이유가 곧 나올 거고, 그때에는


엄청난 걸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 당시에 대화를 했을 때는 반유현에게서 건방짐도 느꼈었다.

자신도 미슐랭 11 스타를 가지고 있는 중견 셰프로서 아무리 초신성이라 한들, 자신 앞에서 그런 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봤으나, 도저히 자신감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성격이 건방지거나, 허세가 몸에 베어 있는 사람이겠지.
그런데, 그가 실제로 하는 행보들은 모든 것이 자신감이었다.

“어플 이름이 반유현……?”

-다운로드 7 만.

그냥 식당을 예약하는 어플의 다운로드 수가 7 만이다. 어플의 기능에 비해 다소 많은 수치.

실제로 예약을 하려는 이들 말고도, 본인처럼 반유현 그 자체 관심을 갖고 있는 셰프들과 미식가,


팬들까지 이 어플을 다운 받았기에 이런 엄청난 수가 나왔을 것이리라.

아직 기능들은 제대로 완성이 되어있지 않은 프로토 타입이지만, 이 어플이 시사 하는 바는 명확했다.

‘파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있겠다는 이유가…….’

일단 레스토랑의 예약에서 혁신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어플의 다운로드 수가 7 만 이상이 넘었다는 것은 이 어플이 활용 될 가치가 무궁무진해진


것이고.

‘왜 파리를 떠나지 않았냐고 물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군.’

44 화. 새로운 역사는 지금부터 (2)

“그냥 예약을 위해 만든 서비스가, 웬만한 어플보다 다운로드 수가 많이 나올 줄이야.”

“레스토랑 예약보다 반유현 셰프님,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인기의 지표 아니겠습니까.”

[ 레스토랑 예약 어플 ‘반유현’ 다운로드 7 만 넘어서다. 그의 끝은 어디일까. ]

요리 전문 잡지, 신문사, 레스토랑 비평 전문 기관을 뛰어넘어 이제는 성공신화를 주제로 다루는


잡지에서도 반유현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눈밭에서 있는 힘껏 눈덩이를 굴리다가, 그 눈덩이가 점차 커져 알아서 내리막을 굴러가며 덩치를 불리는


느낌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반유현의 행동 하나하나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었으니까.

“지금 들어오는 인터뷰들도 스케줄이 너무 타이트해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메이저 언론사 빼고 다 짤라 버려. 방송사는 뭐 없어?”

“프랑스 공영방송사인 텔레비지옹(France Télévisions)에서 올해의 셰프로 선정되었다고 연락 온 것은


어떻게 할까요?”

“공영방송사? 그래, 그 정도 규모의 섭외 아니면 다 잘라버려.”

무수히 많이 들어오는 각종 매체의 섭외요청도 걸러서, 압축해 반유현에게 보고해야 할 정도였다.

“참……. 내 15 년 회사 생활 동안 이렇게 급성장하는 사람은 처음이야. 반유현 셰프님 자체가 갖는


파급력뿐만 아니라, 셰프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가치가 수직으로 성장하고 있으니까.”

“제가 입사 전에 공부한 성공경영사례에서는…… 대부분 이런 급성장에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인데, 저희


반유현 셰프님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 같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하, 그래, 자네도 잘 배워. 방금 자네가 말했다시피 책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뿐만 아니라,
이런 경험은 어떤 회사에서도 쉽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 경험상 이 정도의 흐름이라면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아. 반유현 셰프님 자체가 갖고 계신 브랜드 파워가 너무나 높아졌으니까.”

셰프로서의 이름값이 아닌, 브랜드 파워.

반유현의 브랜드 파워는 분야를 막론한 섭외를 가능케 했다.

“아,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실리콘 밸리?”

실리콘 밸리.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직원들에겐 다소 생소한 단어였다.

“IT 기업들이 있는 곳 아니야? 그쪽에서 우리한테 무슨 연락을 해.”

“어플 ‘반유현’을 더 사업적으로 구상해보자는 내용의 회사들과, 투자 회사들이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내에 있는 반유현의 레스토랑, 그 레스토랑들의 예약 실태를 한 번에 파악하고 쉽게 예약할


수 있는 그 어플의 다운로드수가 7 만을 넘어서자, 미국 실리콘 밸리에 상주하고 있는 11 곳의 IT 벤처
기업들이 그 어플 자체가 갖는 잠재력을 보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

“제안을 받은 것들을 들어보면, 다운로드 7 만이라는 인프라를 살려서, 맛집 리뷰 어플, 미식가들 논평


어플, 메뉴판 어플, 레스토랑 리뷰 어플 등 확장성이 있는 쪽으로 발전시켜서 또 다른 수익구조를
내보자는 식의 연락들이었습니다.”

“흠. 지금은 우리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잖아, 지금 당장만 해도 레스토랑 인테리어,


한불 문화교류, 그랜드 오프닝…… 자네 생각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제안이 뭔가?”

수많은 제안들이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현안들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몇 가지로 간추려 반유현에게 보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직원들은 제안 받은 프로젝트를 간추려봤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제안은 이건데요.”

“응?”

“세계 최대 여행 정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메일입니다.”

“트레블 어드바이져?”

트레블 어드바이져.

전 세계에 1 억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행 정보 제공 플랫폼.

전 세계의 호텔, 숙박 시설, 엑티비티, 맛집, 레스토랑 등 여행객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근래에는 그들의 음식점 리뷰 서비스가 공신력이 높기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들도 세계적인 호텔 그룹에서 일하는 직원들인지라, 그 서비스를 모를 리가 없었다.

“우리 호텔하고 제휴는 이미 맺어져 있잖아.”


“반유현 셰프님과의 제휴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광고 모델로요.”

“개인에게? 지금 모델이 누구였더라?”

“젊은 층의 할리웃 배우들과, NBA, EPL 등 스포츠 스타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젊고 돈 많고,
성공가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광고 모델로 쓰고 있는데, 저희 반유현 셰프님도 그들의 눈에
들었나 봅니다.”

두 사내는 그들에게 온 메일을 유심히 읽어 내려갔다.

-트레블 어드 바이져는 수년간, 여행 서비스에서 1 등만을 해온 역사 있는…….

반유현님의 이름 자체에 있는 브랜드 파워를 이용해, 세계적인 광고를 내보고 싶습니다. 저희 회사의
공식 모델에 관련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세계 1 등 음식 리뷰 서비스 업체가 우리 셰프님을 광고 모델로 쓰고 싶다는 거지?”

“그것도,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입니다. 그 광고 모델이 되었다는 자체로 저희 레스토랑의 매출도


끌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광고 모델이라……. 제대로 검토해서 보고 드려보자고.”

“아! 광고도 광고지만, 사실, 그 뒤의 내용을 보셔야 합니다.”

-저희 회사는 광고 모델만을 제안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에엥? 트레블 어드바이져……. 그 대기업이 이런 제안을 한다고?”

***

“트레블 어드바이져, 나와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한-불 문화교류 행사 갈라디너에 모든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거잖아. 맞아?”

“예, 맞습니다. 일단 그쪽에서 제안한 것들과 별개로, 이번 행사에 모든 비용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익 집단인 기업이, 일개 개인과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내가 그저 돈 따위에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안 거지 저쪽도.”

저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니, 저들의 의도를 간파해내는 것이 쉽다.

언론에 비춰진 나의 행보만을 보고, 내가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저들의


행동은 ‘나’라는 캐릭터에 대한 분석을 치밀하게 했다는 것이었으니까.

“대기업에게 그런 대우를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일단 저쪽의 지원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트레블 어드바이져 측에서 내민 제안은 이번의 지원과 관련 없다고 정확히
명시해놨으니까요.”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기업의 자본을 빌릴 생각에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자본을 뛰어넘어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가뜩이나 일손이 모자랐던 ‘반유현팀’에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럼, 엄청난 투자자가 생겼다는 건데,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한불 문화교류 행사의 갈라디너를
만들어야지.”

“예에?”

대기업의 지원으로 일이 수월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직원들은 또 나의 발언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을 줄일 생각만 하고 있던 건 아니지?”

갈라디너는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첫째 날은 각국의 대통령과 고위공무원, 그리고 각국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유명인들이 참석한다.

내가 요리하는 모습과 그들이 내 요리를 맛보는 장면들이 양국의 방송에 생중계 된다.

둘째 날에는 방송 없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나의 요리를 선보이는 행사였다.

“첫째 날에는 양국의 대통령이나, 유명인사들 때문에 주최 측에서 섭외한 호텔에서 갈라디너를 진행하고,
둘째 날의 갈라디너를 마음껏 꾸며야겠어.”

트레블 어드바이져라는, 대기업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둘째 날이었다.

첫째 날은 대통령의 경호문제와, 유명인들의 동선문제를 비롯해 행사장을 내 마음대로 꾸밀 수가 없던


탓이었다.

“첫째 날은 온전히 맛에만 집중하고, 둘째 날, 갈라디너 장소는 야외에 마련해줘.”

“예?”

“방송이 없는 만큼,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도 나의 갈라디너를 볼 수 있게, 대형 스크린,


무대, 그리고 그 앞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주고. 트레블 어드바이져 팀에서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잖아.”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것 자체에 어떤 의의를 담으려면 담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오로지 나의 활약을


더 많이, 더 강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방향으로만 굴러갈 뿐이었다.

이쯤이면 나와 가깝게 지내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것, 판이 깔리면 난 내 최고의 실력을 뽐내 그


판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낼 뿐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야외에 프라이빗 공간도 마련해둬야겠어. 첫째 날에 내 요리를 맛본 대통령 각하,


또는 유명인들이 둘째 날에도 나의 요리를 맛보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

***

샹그릴라 호텔의 그랜드 볼룸(Grand Ball room).

한-불 문화교류 행사의 갈라디너가 진행되는 곳이었다.

포시즌스 호텔에서도 이 행사가 진행될 뻔했으나,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장소를 제공할 수
없었다.

내 주방에서 내 요리를 한다면, 몸과 마음이 더 편했을 테지만, 장소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넣어두고, 나는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3 관왕을 달성한 감독 봉준원, 앨범을 냈다 하면 빌보드를 휩쓸어 버리는 아이돌 TTS,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 성공적인 신화를 이룬 기업인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사회자가 한 명 한 명 이름을 말하자, 그들이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환영해주십시오.”

대한민국의 대통령.

나는 지금 그와 한 공간에 있었다.

“아, 하하. 봉주르! 안녕하십니까. 거리는 멀지만 대한민국과 프랑스는 예부터…….

센스있게 ‘봉주르’로 인사를 시작한 대통령은 프랑스와의 역사적인 관계를 말하며, 준비한 멘트를
즐겁게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마지막엔 나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곳에 초대되신 모든 분들이 프랑스와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계시지만, 저는 이곳이 갈라디너의
행사장인 만큼, 한 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성공적인 역사를
쓰고 계신 반유현 셰프. 저희 국민들이 하나같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셰프님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영광입니다. 제가 오늘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고, 꼭 저희 국민들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그가 내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환생 1 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대통령이라니.

불과 1 년, 19 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내게 주어져 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을 떠올리니 괜스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이 여유를 느껴본 적이 지난 수십 년간 없었다는 점에서 기분이 묘하게 짜릿했다.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저들의 입장에서도, 내가 요리를 시작한 지 이제 갓 1 년이 지난


셰프인데, 이 현장의 주인공으로 지목되니 저들의 마음에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바람이 불은 듯했다.

수많은 유명인들과 기업인들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갈라디너에 앞서서 설명해 주실 것이 있나요?”

사회자가 말하며, 나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45 화. 새로운 역사는 지금부터 (3)

“저를 이런 국가적인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나에게 이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는 이들은 모두 유명인들 또는 각 국가의
고위공무원들이었다.

“오늘 준비한 요리는, 프랑스 전통요리에, 한국적 식재료를 이용한 코스 요리입니다.”

다들 기대가 된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주제는, 두 나라 문화의 화합이며 그것을 요리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주방으로 들어서자, 주방에 있던 셰프들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준비됐냐?”

로또 육인방을 비롯한, 포시즌스 레스토랑의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셰프들이 주방을 가득 메웠다.

“예! 셰프!”

“밖에서 하는 얘기들 들었지? 이곳에 오신 분들은 우리에게 기대가 많다는 것만 알아둬. 그리고 그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놀랄 만한 맛을 보여주면 돼. 그게 우리의 역할이야.”

“예! 셰프!”

이 셰프들의 심장 뛰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한우 부채살 손질 들어가, 솔 뫼니에르에 활용할 고추장 베이스 소스 만들고, 표고버섯 육수 우리는
것도 준비해, 어육장에 졸인 전복구이, 들깨 드레싱 샐러드. 지금부터 다 시작한다.”

“예!! 셰프!”

***

“기다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등장했을 때는, 장내가 완전히 조용해졌다.

“전채 요리는 한식에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내가 말하자, 주방에서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각각 그릇을 들고 나와 서빙 했다.

각 인사들의 테이블 위에 전채 요리가 놓이며,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이런 고소함은!”

전채요리의 첫 번째는 호박죽, 두 번째는 참기름, 간장으로 양념을 한, 육회를 감태에 싼 요리였다.

추가로 표고버섯 육수와 참게 내장 찜을 곁들인 계란찜을 내어놓았다.

총 세 가지 요리, 소량으로 식욕을 돋울 수 있게만 준비했다.

사람들은 맨 첫 번째 순서로 호박죽을 떠먹고 입안에 굴리며, 그 달콤함과 고소함을 즐겼다.

전채요리는 앞으로 나올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 요리를 맛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드러났다.

“느끼하지 않은 부드러움과……. 입안이 텁텁해지지 않는 깨끗한 단맛…….”

호박죽을 맛본 사람들은 곧장 감태를 집어 들었다.

입안에 감태를 넣었을 때, 감태 특유의 향이 입안을 닦아주며 뒤에 나올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더


끌어올려 준다.
“대한민국 경북 예천에서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참기름과 들기름, 그리고 올리브유를 섞어 발라
구웠습니다.”

저마다 짧은 탄성을 내뱉는 소리, 음식을 감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저들의 입안에서 이루어지는 맛, 그것들이 주는 경험에 흠뻑 취해 나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테지만, 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타지 않는 온도에서, 9 번에서 11 번 짧은 시간 뒤집어가며 구웠고요, 참기름과 들기름은 감태 특유의


풍미를 올려줍니다. 그리고 그때, 한우 육회의 담백함이 터져 나오도록 요리했습니다.”

각 테이블마다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와하하하! 진짜 대박이다. 신기해!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와, 이 정도는……!”

이 자리를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명 인사였고, 각자의 분야에서 높은 입지를 가진 사람들이었기에,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경험이 많아 요리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깊이와 이해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많을
터였다.

“일본 미야기현(宮城県)에서 장인이 구운 김이 생각나는…….”

“감태와 한우의 조합은 최고급 참치에 김을 싸 먹는 듯한…….”

“와우! 이게 한국에서 자란 소군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한우, 한우 하는지…….”

내 생각대로 요리를 음미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경험을 말하며 나의 요리를 비교했다.

맛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것의 이점은, 그들에게 더 많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자신들의 경험이 많다고 생각했기에, 나의 요리가 주는 신선한 충격은 더 강렬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미치겠네요 진짜……! 호박죽의 고소함이 감태와 연결되며 사라지고, 한우의 담백함이 터져 나오는…
….”

나는 시간 차를 두고 그들이 모든 요리를 천천히 음미할 시간을 준 뒤에, 전채요리의 마지막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섬진강 근처에서 잡은 참게의 내장을 쪄, 표고버섯 육수로 맛을 낸 계란찜 위에 곁들였습니다.


말린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낸 계란찜과 참게의 조합은…….”

“대박!”

“재료의 신선함과 맛을 모두 살린 한식이…….”

표고버섯의 진한 육수가 참게의 살, 내장과 어우러져 풍미를 높이며 부드러운 계란이 입안을 채워
풍족하게 해주는 맛.

“브라보!”

단 세 글자로 압축이 되는 맛이었다.


전채요리 순서가 모두 끝났을 때, 이 행사장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은 바뀌어있었다.

대단한 경험을 했다는 만족감과,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감. 그 공존하는 두 가지 감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은 어육장에 졸인 전복구이입니다. 제가 오늘 준비한 요리 중에 가장 한국적인 맛일 겁니다. ‘장’


은 한식을 대표하는 식재료이자 조리법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도 어육장은 소고기, 닭고기, 대구와
새우, 더불어 두부와 다시마를 메주와 함께 밀봉해 숙성시킨 장입니다.”

한국인들은 크게 기대가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고, 프랑스인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다음은 프랑스식 생선구이인 뫼니에르, 그중에서도 제가 직접 제조한 고추장을 발라 구운 뫼니에르를


선보일 것입니다. 그다음은, 다진 오리고기를 닭 껍질 안에 채워 구웠습니다. 그리고…….”

내가 코스에 대한 소개를 천천히 하다가, 잠시 말을 멈췄을 때는 완전한 정적이었다.

조금의 소음도 나지 않는. 방금 선보였던 전채요리가 아주 성공적이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순간의 정적을 이용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드렸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제 요리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정적이 깨지고,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

“처음 요리는 한식을 시작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프랑스식의 조리법을 섞어가며 한식과 프랑스식의
요리를 합쳤습니다.”

나는 이 행사에 딱 어울리는 주제를 구상했었다.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까지.’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행사의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호박죽이나 감태 육회 쌈 같이, 한식의 식재료와 조리법에 치중된 요리가 나올 때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같은 테이블에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요리를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프랑스의 호박 스프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릅니다. 이 호박죽의 호박은, 우리 대한민국이 힘든 시기를


이겨낸 원동력이었기도 합니다. 어디서든 줄기를 뻗어 자라는……. 와우, 그런데 저도 이렇게 맛있는
호박죽은 처음입니다! 하하하하.”

“감태는, 그 특유의 향 때문에, 이전부터 밥반찬으로 많이 오르곤 했죠. 대한민국은 밥이거든요!


이해했어요? 라잇?”

그리고, 프랑스의 전통 식재료와 조리법이 나올 때는 프랑스 사람들이 같은 테이블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요리를 설명해주었다.

“메추리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오랫동안 우리 프랑스에서 먹어온 전통 식재료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주로 버터에…….”

“뫼니에르는 프랑스 코스에 대부분 빠지지 않는…….”

한불 문화교류 행사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나는 양국이 서로 신경전을 펼치는 것을 목격했었다.


드러내지 않는 미묘한 신경전. 두 나라 모두 자신들의 문화가 더 우월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는 것을
봤었다.

“한식은 말이에요…….”

“음. 요리의 성지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데요. 하하하!”

그런 미묘한 신경전은 테이블 위에서 계속되다가, 마지막 나의 요리로 종결되었다.

“와, 이 솔 뫼니에르에 들어간 고추장은? 한국인들이 자주 먹는 것 아닌가요?”

“예! 하하하! 저희는 고추라는 음식과 가깝습니다. 이 전분을 묻혀 굽는 특유의 생선구이 방법은 프랑스
전통의 방법이잖아요? 반유현 셰프님의 고추장과 정말 잘 어울리네요.”

“이 비프부르기뇽은 우리나라의 갈비찜하고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맛있군요.”

한식과 프랑스 요리의 조리법을 퓨전한 내 요리.

그들의 신경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한식과 프랑스 조리법을 천천히 단계적으로 섞는 방법으로 구성한 이유입니다. 코스가 끝난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나라를 막론하고, 요리 그 자체에 주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식의 특성이 강한 요리를 처음에 내놓고, 뒤로 갈수록 프랑스식의 조리법을 섞어 넣은 이유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의 요리에 우월감을 뽐내고자, 서로 각 나라의 요리와 그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다가,
두 나라의 퓨전된 요리가 나오자 머리를 맞대고 요리가 주는 새로운 경험에 공감했다.

“한식과 프랑스 요리의 화합이……. 감동입니다. 이건 어느 나라의 것도 아니네요.”

사람들은 그제 서야 이 코스의 구성 의도를 알았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내가 선보인, 이 코스의 모든 요리들은 관중들의 심리 상태까지 좌지우지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당연히 맛이 전제된 다음에야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경험과, 감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요리에 국적은 없습니다. 오늘 제 요리가 여러분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줬다면, 저는 제 할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

짝 짝 짝!  

성공.

그 단순한 두 글자가 지금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했다.

내가 주방에서 나와 고개를 숙이자,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쳤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나의 요리의도를 만끽하고 즐겼다는 뜻이었다.

나는 한 테이블, 한 테이블을 돌며 이곳에 초대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청와대로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다음 달 행사가 있는데, 이렇게 타국에서 우리나라를 빛내주시는 분을


제가 모시지 않는 다면, 죄가 될까 두렵습니다.”
박수가 쏟아지는 중에 나의 오른손을 맞잡은 대통령이 말했다.

“반유현 셰프님,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맛이면 맛, 코스의 구성부터. 반유현 셰프님의 레스토랑에는


한번쯤 다시, 예약하고 방문하겠습니다.”

그 옆에 있던 프랑스 대통령도 내게 말했다.

한 명씩 인사를 나눌 때에는 모두가 기분 좋게 내 요리에 대해 말해주었다.

“너무 잘 먹었습니다. 혹시, 연락처를 얻을 수 있을까요?”

“예?”

“아, 안될까요? 하……. 나이도 비슷한 것 같아서,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관광차 파리에 자주올 것
같은데.”

세계적인 아이돌인, TTS 의 멤버 ‘김호’가 나의 연락처를 물었다.

그 옆에 있던 멤버들도 나를 기분 좋게 웃으며 바라봤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들도, 내가 이런 국가적인 행사에서 활약하는 것을 기분 좋게 봤나보다.

물론, 나도 이들의 관심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내일……도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저희 또 가도 될까요?”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이 공짜로 광고를 해준다고 했으니까.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이틀차 갈라디너에서는 더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

46 화. 새로운 역사는 지금부터 (4)

“한불 문화교류행사의 마지막, 그 전날 밤! 가장 큰 축제라고 할 수 있는 K-pop 콘서트가 이제 마지막


무대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8000 여 명의 관중들이 있는 무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와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인형같이 조그마한 얼굴에 눈코입이 뚜렷한, 누가 봐도 배우. 그런 두 사람의 진행을 맡았다.

이 공연이 진행된 나라는 프랑스였기에 둘의 대화는 프랑스어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박호검 씨는 어떻게 그렇게 프랑스어를 잘하세요?”

“아, 제가 고등학교 때 프랑스에서 살았었습니다. 제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알아봐 주시고,


이런 자리의 MC 를 맡겨주시니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주최 측과 프랑스까지 오셔서 열렬히 저를 환호해
주시는 저희 국민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사벨 씨, 이사벨 씨도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호호! 네, 저도 몇 마디 할 줄 알아요. 아,아안녕하세유. 싸랑합니다!”

“하하하! 잘하시네요! 여기 계신 대한민국 국민분들도 다 알아들으셨답니다. 그렇죠!?”

유럽의 K-pop 열풍을 실감 나게 하는 자리,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전광판에 비친 두 MC 의 대화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할 수 있어요. 파, 판유우현?”

“예?”

“바안유우현?”

“반유현이요?”

남자 MC 를 맡은 박호검은 자신이 들었던 단어를 다시 되물었다.

본인도 ‘반유현’이라는 셰프가 현재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셰프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반유현 셰프, 그 이름을 아시나요?”

박호검이 이사벨에게 되물었던 순간, 박호검의 귀에 꽂혀있던 인이어에서 무전이 흘러나왔다.

-아아! 박호검 씨! 이제 들리시나요? 이 행사 끝나고, 반유현 갈라디너 초대권 추첨할 예정입니다. 원래


없었는데, 갈라디너 주최 측에서 요청했으니 그렇게 알고 진행해주세요.

콘서트 진행 스텝의 무전이었다.

잠시 통신 장애로 이사벨에게만 무전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세 시간 전에 갈라 디너를 진행하셨고, 엄청난 반응을 이끌었다고 하네요. 내일 또 마지막 갈라 디너가


있다는데, 그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권을! 이 공연이 끝나고 추첨해 드린다고 합니다!”

박호검은 곧장 고개를 끄덕거리고 자연스럽게 진행에 들어갔다.

“와우! 한국과 프랑스의 외교 관계를 돈독히도 해주셨다는 반유현 셰프의 갈라디너요? 그 셰프님의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들도 예약 기간이 한 달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렇습니다! 그런,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초대권! 저희 한불 문화교류 콘서트! 그


마지막에 추첨을 통해 나눠 드립니다!”

우와아아아! 

이곳을 가득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TTS 의 팬.

보이그룹 TTS 의 SNS 를 통해, 반유현의 갈라디너가 한불 문화교류행사에서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 이곳에 모여 있는 팬들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멤버들 중 일부가 갈라디너에 참석이 예정되어 있던 터라, 그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마지막 무대! TTS 의 가짜 사랑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

TTS 를 소개한 것을 끝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온 박호검과 이사벨은 서로 인사를 나눴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제가 아까 반유현 셰프 얘기할 때, 무전이 잠깐 끊겼어서 진행이 부자연스러웠네요.


죄송합니다. 능숙하게 처리했어야 됐는데.”
“아아, 아니에요. 저도 무전을 못 받았었는데, 제가 반유현을 말한 순간 무전이 왔습니다. 반유현
셰프의 갈라디너 초대권을 추첨한다는 무전이요.”

“예? 그럼 원래 반유현 셰프를 알고 계셨다는 말이에요?”

“아, 네네 아아녕하쎄요! 싸랑합니다아! 반유혀연! 이렇게 세 가지는 알고 있었어요!”

이사벨이 반유현을 말했던 것은, 무전을 듣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알고 있던 한국어를 말한


것이었다.

“요즘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있나요? 그것도 프랑스 파리에서.”

박호검은 반유현의 현지 인기를 실감했다. 기껏해야 셰프, 아니. 셰프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이런 파급력과 인기를 가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까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못해 부러울 정도였다.

자신도 나름 팬덤이 형성되어있는 배우였으나, 이사벨에게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또박또박 소개해야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 부러움은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해 더 커져만 갔다.

“저도,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될 건데요. 제가 너무 존경하는 분입니다. 같은 나이에, 요리라는 특수한


기술 분야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시고……. 어제 있었던 갈라디너에서는 완전, 멋있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TTS 의 공연이 끝나고, 준비한 멘트를 하는 TTS 의 멤버 김호의 말이었다.

꺄아아악!

우왕아아아아!

“이 자리에서 딱 다섯 장, 그 초대권을 제가 직접 추첨해 드리겠습니다.”

우와아아앙!

무대 뒤로 들려오는 관중들의 환호가, 김호의 말에 환호를 하는 것인지, 반유현의 갈라디너 초대권에


환호를 보내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반유현’이라는 셰프의 이름이 각인되었다는 것.

“크…….”

***

“문제가 많이 생겼습니다.”

“알아.”

반유현 팀의 막내, 오스틴의 말에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오스틴의 눈빛이 흔들렸다.

“흠. 뭐가 그렇게 문제라고 호들갑이야?”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여유가 없어 보였기에, 나는 다시 부드러운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암표가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암표?”

“반유현 셰프님의 갈라디너에……. 참석하고자 TTS 팬들 사이에서 그 초대권의 가격이 한화로 130 만
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원래 내 갈라디너에 참석할 수 있는 표값은 23 만 원이었다. 이것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행사 주최


측에서 정한 값이었기에, 사람이 많이 몰린다 한들 변하지 않는 값이었다.

그런데 어제 늦은 밤 있었던 한류 문화교류 콘서트에서의 TTS 덕에, 그 초대권의 값이 몇 배나 뛰어버린


것이었다.

“그로 인해 생긴 문제들이 뭔데.”

“앞으로 다섯 시간 남은 갈라디너 현장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서, 현재 정리 중에 있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초대권을 구입해서 이곳에 참석한 손님들의, 요리에 대한 집중도도 떨어질 것
같구요.”

한불 문화교류행사 K-pop 콘서트 주최 측에 내 표를 추첨하는 것을 부탁했었다.

그리고 TTS 의 멤버 김호에게 그 표를 직접 추첨해줄 것을 부탁했었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생각이었으나, 이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릴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TTS 멤버들과 같은 공간에 근래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의 요리를 먹는다는 것이


그 팬들에게는 얼마나 매력적인 시간이겠는가.

암표의 값이 계속 올라가는 것도 이해가 됐다.

“일단 현장으로 가자.”

곧장 벤에 올라 현장으로 출발했다.

네 시간이 조금 넘게 남은 지금, 나도 슬슬 식재료를 손질하고, 셰프들과 합을 맞춰 봐야 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아아!

“이정도야?”

전생에는 아이돌의 힘을 빌렸던 적이 없었다.

그들이 방송이나 SNS 에서 나의 레스토랑을 언급한 적은 많지만, 그것은 그저 유명한 맛집을 소개했을
뿐이었고, 나의 성장이나 성취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와 결이 달랐다.

‘시점이 다르니까.’

내 이름은 셰프로서의 명성은 높지만, 대중적인 면에서 저들보다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내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프렌차이즈의 오너나, 전 세계 곳곳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저 친구들 덕분에 내 이름에 확실하게 대중성을 얹을 수 있을 것 같다.

스무 명이 넉넉히 서 있을 수 있는 무대 위에, 개수대, 화구, 등 조리에 필요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고,


그 무대 아래에는 다섯 명씩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 스무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무대와 테이블을 넓게 둘러싼 울타리가 있었는데, 셀 수 없이 많은 TTS 의 팬들이 그 울타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라면…… 요리를 맛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가 않겠는데.”

수백 명의 시선을 받으며 음식을 먹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행사장으로 몰리며, 취재진과 각종 매체들도 이 현장을 조명하고 있는 상황,


이만하면 내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듯싶었다.

그래서, 요리를 대접하는 셰프로서, 이제는 내 갈라디너에 참석한 사람들의 만족도를 위해 이 많은


인파들을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해야 했다.

그것들을 생각하며 조리대가 있는 무대 위에 올라가 그 수많은 사람들을 둘러봤을 때,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꺄아아아악!

우와아아!

아이돌 그룹 TTS 가 이용하던 벤이 공연장 내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벤이 무대 앞에 서고 문이 열리자, 김호가 내가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아직 세 시간이 넘게 남았는데, 너무 빨리 오셨네요.”

와아아아아아!

차에 내린 김호의 얼굴이 저들에게 비치자, 또, 환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기쁜 환호와는 달리 김호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제안을 수락해서는 안 됐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저 때문에 반유현 셰프님의 갈라디너 공연장이 소란스러워져, 죄송한 마음입니다. 저도 요리의 맛에


대해 요즘 꽤나 관심이 있어 반유현 셰프님을 지켜보고 있던 터라, 이곳에 추첨되어, 정당한 돈을 내고
참석하신 손님들에게 저의 존재가 피해를 끼칠 것 같습니다.”

김호는 저 울타리 밖을 둘러싸고 있는 팬들이, 자신의 잘못이라 하며 내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명예, 인기, 재력을 떠나 겸손하고 심성이 올바른 청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요리를 대하는 태도 또한 좋았다.

“오직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 맛을 보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습니다. 제가 이


자리를 떠나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 팬들도 더 이상 여기에 있지 않겠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이 현장에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자리를 떠나주겠다는 것.


암표가 생긴 것도 그렇고, 이 현장이 무질서해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그였다.

그때, 내 머릿속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계획이 스쳐 지나갔다.

“저도 제 요리를 좋아하는 분께, 선보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김호 씨, 혹시.”

“예?”

“스케줄이 되신다면 얼마 후에 있을 제 레스토랑 그랜드 오프닝에 오시겠습니까?”

“예?”

김호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요리가 그렇게 좋았나 보다.

세계적인 아이돌이 그랜드 오프닝을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쉽게 내비치니, 다른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김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더욱 그랬다.

“저희 멤버, 총원이 참석해도 될까요?”

빌보드를 휩쓸고 있는 세계적인 스타치고는 감정표현이 거칠었다.

47 화. 새로운 역사는 지금부터 (5)

김호는 팬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현장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준 뒤에 이곳을 떠났다.

TTS 멤버 총원과 프랑스 파리의 내 레스토랑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그리곤, 어수선한 행사장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정리하기 위해 SNS 에 게시글을 등록했다.

[ 스케줄 문제로, 반유현 셰프님의 갈라 디너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김호가 SNS 에 올린 글이었다.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동시에 올렸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 붙은 ‘좋아요’ 표시는 많은 사람들이 이글을 확인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Like 23,112

김호가 갑작스럽게 불참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가 참석하는 조건으로 갈라디너 초대권의 희망자를 뽑아 추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암표라는 게 생겼지만, 그 또한 그가 책임질 사항이 아니었다.

“이거 보세요. 셰프님.”

더더욱 지금 오스틴이 보여준 웹상의 한 게시글을 보니 그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반유현 갈라디너. 1,010 유로에 급매합니다.

“김호가 갈라디너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걸 밝혔는데도 암표의 표값이 그대로인데요?”

“1,010 유로면, 한화로 130 만 원?”


“예, 그렇습니다. 김호 씨가 암표의 표값을 올려놓은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셰프님, 원래 암표의 값이
그랬던 모양이에요!”

김호가 불참한다는 의사를 똑똑히 밝혔으나, 암표의 값이 떨어지지 않았다.

“엥? 더 높은 값도 있는데요?”

“그래?”

“와! 하하하하! 이거는! ‘TTS’의 김호가 셰프님한테 안 된다는 거죠? 와와! 이거 보세요 더 높은
가격에 암표를 구한다는 사람도 있어요.”

오히려 김호의 불참 선언 이후에 암표의 값은 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하게만 놓고 보면 이런 현상은, TTS 의 팬들이 몰리는 것을 우려해, 그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요리의 맛을 온전히 보지 못하겠다고 판단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졌다.

“맞는 말이잖아요, 셰프님. 암표는 온전히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던
거네요, 그 가격도 셰프님의 요리가 그만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이고. 김호 씨가 가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이네요. 사람들은 온전히 김호 때문에 암표가 형성되었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오스틴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나를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말 하지 마, 그 팬들한테 칼 맞을라.”

“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기, 김호 짱!! TTS, 김호 최고!!”

이 현상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한다면, 충분한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단 하나만은 확실하다.

이제 곧 열릴 나의 갈라디너에 참석할 사람들은 온전히 나의 요리를 원했던 사람들이라는 걸.

더군다나, 암표를 판다는 사람은 없고, 사겠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김호도 짱이지만, 셰프님도 대단하십니다. 이 정도면…… 칼 안 맞겠죠?”

무대 아래, 혹여나 누가 그 말을 들었을까 봐 좌우를 살피는 오스틴이었다.

아이돌 팬덤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셰프들 집결 시킬까요?”

이틀 차 갈라디너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위해서건, 호기심이건,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도


악의가 없이 나에게 관심을 표현해준 이들 아닌가.

100 만 원이 넘는 제안에도 표를 팔지 않고 내 갈라 디너에 참석하려는 이들이었다.

100 년의 경험상, 이런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 기분 좋은 일은 긍정적인


영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었다.

“그래, 준비시켜. 오늘 모인 분들에게 최고의 퍼포먼스와 최고의 요리를 드려야겠어.”


***

무대 위에는 스무 명의 셰프들이 조리복을 입고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내가 무대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저를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문화 교류에 앞장서는 셰프로 세워주셔서
감사하고, 저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요리를 대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신 주최 측과 관광청, 그리고
우리나라의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대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저 표정, 내가 100 년간 수 없이도 봐온 표정이라 알고 있다.

“사실, 어떤 요리를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어제는 한식과 프랑스 정통 조리법을 퓨전한,


요리들을 선보였기에, 저를 찾아준 여러분들에게 같은 주제의 요리를 선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저의 역사입니다.”

내가 ‘역사’라는 단어를 말하자, 장내가 술렁였다.

울타리 밖에도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그 술렁임에 동조했다.

“역사란, 제가 이곳 프랑스, 이 무대 위까지 오를 수 있게 해준 요리들입니다.”

나는 이틀 차 갈라 디너의 코스를 나를 강렬히 표현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했다.

어제 있었던 갈라디너는, 자의가 아니라, 행사에 섭외되어 온 유명인들이 내 요리를 먹은 것이라면, 지금


내 앞에서 요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 사람들은 오직 나, 또는 나의 요리를 먹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한국에서 처음 골목가게라는 방송에 출연해, 만들었던 계란 꿀 버터 볶음밥, 서울시 요리 대회에서


선보였던, 셰퍼드 파이와 오리가슴살 스테이크 ACK 에서 선보였던 요리들……. 제가 이제껏 오기까지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요리들이 있습니다. 이 화면을 보시죠.”

후우우웅!

무대 양옆에 걸려 있는 대형 스크린에, 효과음과 함께 수많은 음식 사진들이 떠올랐다.

“말씀드렸듯이, 제가 언론에 노출될 때 있던 요리들입니다. 서울시 요리 대회, ACK, 라스베이거스,


싱가포르 국제 요리 대회……. 여러분이 앉아계신 의자 밑에는 리모콘이 있습니다. 그 리모콘을 이용해서
선택해주세요.”

와아아아아!

사람들은 모두 선택의 의미를 알았는지 환호를 질렀다.

환호를 지르며 대형 스크린에 리모콘을 겨냥했다. 저마다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리모콘으로 요리를 다 고르셨습니까?”

장내가 다시 술렁였고, 나는 그들을 진정시켰다.

“여러분의 리모콘은 여러분이 어디에 앉아 계신 누구인지 다 등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선정하신 세


개의 요리 그대로, 선보여 드리겠습니다.”
100 명의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 다른 코스요리를 선보여 주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의뢰했었다.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는 감동을, 나는 또 세간에 주목을 받게 될 만한 퍼포먼스.

100 명의 사람들이 지금 고르고 있는 요리는 단품 메뉴가 아닌, 코스요리였다.

이런 퍼포먼스는 그 어떤 셰프에게도 쉬운 일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열 개가 넘는 모든 요리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하지.’

손에 쥔다는 것은, 모든 요리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의 튀는 맛이 없고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진 요리들이지만, 그 요리들의 조합이 어떠하더라도


완벽한 조합을 이루게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퍼포먼스는 실력만이 있어서 될 것도 아니었다.

‘트레블 어드바이져가 있었으니까.’

애초에 대기업의 인프라와 자본을 쓰려고 생각했던 것은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위함이었다.

무대 양옆, 대형 스크린에는 요리와 각 요리에 알맞게 번호가 붙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리모콘을 이용해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 세 개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현재 주방에 걸려 있는 모니터에 집계되어 표시되고 있었다.

트레블 어드바이져 개발팀에서 지원해준 프로그램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그 리모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소리로 나타났을 때, 흰 와이셔츠와 검정 바지를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맞춰 걸어 들어왔다.

“오늘, 서빙을 맡아주실 분들입니다.”

나와 함께, 포시즌스 반유현을 열어갈 셰프들, 그중에서 무대 위에 오르지 않은 셰프들과 트레블


어드바이져의 직원들이 섞여 있는 그룹이었다.

이들은 오늘 갈라 디너에서 음식을 나르는 서비스를 맡았다.

코스가 개별로 구성되는 만큼 서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필요했기에, 이또한 대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띠링! 띠링! 띠링!

100 여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먹고 싶은 요리들을 고르니, 리모콘의 소리가 요란했다.

띠링…….

그리고 그 소리가 점차 줄어들었을 때,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거를 단일한 코스로 구성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한 분


한 분이 원하는 요리를 드실 수 있게, 누구나 알고 계실, 트레블 어드바이져라는 기업의 도움을 받아
이런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그 말을 했을 때는 다시 장내가 술렁였다.

하나같이 놀라움의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놀란 원인은 모두 똑같지 않을 테지만.

“뭐야, 벌써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거야?”

“진짜 혁신적이다……. 어떻게 100 명의 코스 요리를!”

“혁신뿐이야? 정성 대박이잖아! 와 이 정성……. 100 만 원이 아깝지 않잖아.”

후우웅!

다시 효과음이 났고, 대형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그곳에는 각 테이블 번호와 그 테이블 번호에서 누른 음식들이 적혀져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그 요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우와아아아!

지금 듣고 있는 이 박수가 그 어느 때보다 컸던 것 같다.

***

“B-1 계란 볶음밥, 셰퍼드파이, 들깨 샐러드.”

“B-3 에도 계란 볶음밥 있으니까 같이 나가!”

“C-4 에 떡볶이 나갔어?”

한 명의 셰프가 주제를 선정하고 정찬 요리를 선보이는, 갈라 디너에서는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는


요리들이었다.

계란 볶음밥과 떡볶이, 갈비찜. 등 반유현이 화제를 일으켰던 요리들이 각각 서빙되고 있었다.

“진짜……. 내 인생 최고의 디너야.”

대한민국의 동네 분식집이나, 프랑스 먹자골목과 같은 곳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요리들.

그런 요리들이지만, 이 현장의 만족도는 그 어떤 식당보다 높았다.

“팀장님, 이 정도면……. 반유현 셰프는 어쩌면 저희 예상보다…….”

“차, 하하하하하! 말이 안 나오는구만.”

이 현장의 기술과 장비, 그리고 인력을 지원했던 트레블 어드바이져의 직원들도 이 현장의 광경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퍼포먼스를 생각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책으로도 볼 수 없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잖아.”

“하. 팀장님, 이 정도는 생각하지 못하셨으면서, 그러기에요? 정말 저만 몰랐던 거예요?”


반유현이 개발팀의 지원을 요청했을 때, 왜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을 의뢰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리모콘으로 음식을 투표하고 그것을 집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단순히 자신의 팬들을 모아놓고, 가장
인기가 있는 음식 하나를 선보인다던가, 그 정도의 이벤트를 할 줄 알았더니, 100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원하는 코스를 모두 만들어 선보였다.

모든 요리를 만들면 되고, 그냥 그것을 주문한 사람에 알맞게 서빙하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식업계에 종사했거나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혁신적인 도전인지 알고 있다.

“도전 정신 자체가…….”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도전이지.”

단일 코스로 구성해, 각 메뉴에 정성을 집중하는 것과, 100 여 명 각각이 선택한 코스의 모든 요리에
정성을 들이는 것과 그 절대적인 양만 봐도 그렇다.

100 여 명이 선택한 코스는 모두 달랐기에, 각 요리마다의 조합도 고려해야 했다.

‘저마다 다른 요리를 골랐을 텐데, 만족도가 높아. 모두 연관이 없는 요리지만, 하나의 플롯 안에 있는


느낌이야.’

누구는 갈비찜과 떡볶이를 골랐고, 누구는 셰퍼드 파이와 규카츠를 골랐을 것인데, 모두의 만족도는
같았다.

최상.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이 행사장 안에는 행복한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트레블 어드바이져의 두 직원들은 한창 요리가 진행되고 있는 무대 위를 올려다봤다.

저 멀리 무대 위에서 요리에 열중하는 반유현의 모습과, 그것을 비추는 대형 스크린은 이 행복을 지휘하는
자가 누구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48 화. 새로운 역사는 지금부터 (6)

무대 양옆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는 반유현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 시각적인 효과는 요리를 맛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꽂히게 만들었다.

최고의 스타 셰프로 불리는 그에게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의 생각.

“저 셰프가 우리에게…… 개개인에게 맞춰진 코스요리와……. 이 요리의 맛은 엄청난 정성이야.”

100 명의 인원에게 모두 다른 코스를 제공한 것이 그러했다.

모두가 다른 코스의 구성, 다른 요리를 먹고 있지만 그 만족감은 하나같았다.

반유현 셰프가 요리에 열중하는 그 모습은 맛과 더해져 사람들의 만족감을 키워주었다.

“내가 이 요리를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방송 보고 진짜 죽을 뻔했어.”


“예전에 라스베이거스의 미식가가 올린 논평에서 반유현의 규카츠와 동치미도 너무 먹고 싶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먹을 수 있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반유현을 알게 된 계기는 이곳에 앉아있는 모두가 달랐다.

누구는 반유현이 서울시 요리대회에서 우승한 기사를 보고, 누군가는 유튜브를 통해, 반유현이
라스베이거스에서 활약한 모습을 보고 반유현을 알게 되었다.

서울시 요리대회의 반유현을 생각하는 이들은 오리가슴살 스테이크를 생각할 것이고, 라스베이거스의
반유현을 생각하는 이들은 갈비찜과 규카츠를 떠올릴 것이다.

각자 마음속에는 가장 강렬한 반유현의 모습이 있었다.

중요한 건, 반유현은 각자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강렬한 기억들을 요리를 통해 다시금 꺼내게
해주었다.

사람들이 가장 원하고, 경험하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요리로 선보여준 것이다.

“와 백원종 아저씨가 놀랄만하네…….”

반유현이 맨 처음, 방송에 출연했을 때 선보였던, 계란 꿀 버터 볶음밥.

그 방송이 연이어 화제가 됐고, 반유현이 본격적으로 요리사의 길을 걸을 수 있던 계기였다.

“이런 요리를 맨 처음에 했다면, 천재가 맞죠. 하하하하! 그 분식집도 줄을 몇 시간씩 서서 먹어야
했는데, 프랑스에서 먹을 수 있어서 너무 감동입니다.”

입안에 꿀과 버터의 풍미가 풍족하게 채워졌다.

그 채워짐과 동시에 푸슬푸슬하고 노란 계란볶음밥이 고소함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뽐냈다.

“이, 갈비찜도 먹어보세요. 와 진짜 100 만 원이 아깝지 않아.”

암표를 130 만 원이 넘는 돈에 팔아 치우지 않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요리들이었다.

“진짜 비싼 한정식집에 가도 이 정도는…….”

갈비찜 특유의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식감, 고기의 근육과 지방의 비율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소스의
점도 또한 최상이었다.

“각 요리도 요리지만, 이 코스가 어떻게 이렇게 구성된 거야?”

모든 요리에 엄청난 맛이 있고, 엄청난 만족감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예 다른 특성의 요리들이 이렇게 잘 어울리지?”

떡볶이부터, 갈비찜, 오리가슴살 스테이크, 관자 구이 등 일련의 코스로 구성되지 않을법한 요리들이


모두 코스로 구성된 것처럼 어울렸다.

“떡볶이랑,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가 이렇게 어울린다는 말이야? 하하하하!”

어떤 요리도, 각 요리의 맛을 해치지 않으며 조화를 이루는 경험.


“이런 맛들을 조율했다고? 우리가 무슨 음식을 고를 줄 알고?”

“천재…… 그 이상이지.”

이곳에서 요리를 맛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카드 마술과 같은 요리네.”

그렇게 비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술쇼에서 게스트가 어떤 카드를 뽑던, 그 카드를 알아맞히는 마술,
이곳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어떤 요리를 선택하던, 반유현은 그 사람들이 최대치로 만족할 만한 맛을
뽑아냈다. 그것도 코스로.

“말도 안 돼…….”

진정 반유현과 그의 요리를 좋아하고, 그 요리를 맛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지껏 해보지 못한
맛의 경험에 놀라움과 감탄을 연신 쏟아냈지만, 같은 요리를 먹고 있음에도 직업이 셰프였던 이들은 마냥
좋을 수가 없었다.

마리옹과 장루이, 포시즌스의 레스토랑을 맡았던 원로 셰프인 그 둘, 그 둘이 은퇴를 결심한 계기가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저도 모르게 반유현 셰프와의 벽을 느끼는 셰프들이었다.

“구성, 퍼포먼스, 맛…….”

더군다나 저 화면에 비치는 반유현이 주방을 호령하는 모습은, 2 년도 안 된 셰프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저 무대 위에 있는 모든 셰프들이 반유현의 말에 군더더기 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특히나 그랬다.

“대체 어디서 저런 셰프가 나타난 거야……. 저 젊은 나이에 미슐랭 포스타를 가졌다고 놀랄만한 셰프가
아니었군.”

***

[ 30 년 만에 최초로 한-불 문화교류 행사 갈라디너의 고정 셰프가 탄생할 것인가. ]

각종 SNS, 온라인 매체, 유튜브에서 나의 갈라 디너가 또 회자가 되었다.

특히나 첫 번째 날에 있었던, 양국의 고위 공무원들과 스타들의 먹방이 화제가 되었다.

[ 원 따봉 날리는 대통령, 투 따봉 날리는 프랑스 대통령. ]

-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제대로 된 요리 먹는 표정인데 둘 다.

-선거철 국밥 먹방 뺨 때리는 대통령 먹방임?

[ 반유현 셰프의 요리, 폭풍 흡입하는 스타들. ]

[ TTS 멤버들과 할리웃 진출 프랑스 배우들, 반유현 요리 앞에서 하나 돼. ]

[ 3 분삭제영상! 대한민국 대통령, 먹방 요정으로 변신! 반유현 요리 앞에 장사 없음. ]

-진짜 맛있게 먹네.

-ㅁㅊㅋㅋㅋㅋㅋ 대통령이 먹방 요정?


조회수를 위한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들과 기사들도 많았지만, 대통령 또는 슈퍼스타급의 사람들이
대단한 먹방을 보여주어, 나의 요리가 한 번 더 주목을 받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먹방, 요리, 맛집 탐방 유튜브 또는 SNS,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반유현’이라는 단어를 꼭 한


번씩 사용해야 했을 정도로, 갈라디너 현장에서 내가 선보였던 ‘쇼’는 슈퍼스타들의 먹방 열풍을 타고
자연스럽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성공한 것 같습니다. 셰프님.”

내 전생의 옛 동료였던 리키가 핸드폰 속에서 재생되는 동영상을 보며 말했다.

“이미 현장에서 확인했잖아.”

“아, 그렇습니다.”

싱가포르 대회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녀석 특유의 날카로운 성질을 죽이지 않았는데, 몇 주간 내 옆에


붙어 있다가 나를 인정한 모양이다.

처음 만났을 때와의 태도를 비교해보면, 아주 깍듯했다.

“둘째 날에 했던 갈라 디너는…… 손님을 생각하는 셰프의 마음가짐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셰프님은 본인을 스타로 만들 줄 아시는 것 같습니다.”

[ 감동의 도가니, 반유현! 자신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음식을 선보이다. ]

[ 반유현 “셰프니까, 많은 사랑에는 요리로 보답하는 수밖에.” ]

[ “코스를 한정 짓기 싫었다.” 계속되는 반유현의 비현실적 퍼포먼스! 셰프들의 가슴에 비수 꽂는 반유현!


]

“스타는 무슨.”

“직접 채널을 운영하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 같은데.”

리키가 내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여줬다.

-TTS 김호가 고개 숙이는 클라쓰!! 키야!!

-반유현 직접 등판 안 하냐, 저 레시피 실제로 공개 다 하면 백만 순식간에 갈 듯한데.

-그러게 제발…… 유튜브로 와주세요ㅠㅠ 돈 없어서 반유현 셰프의 레스토랑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반유현의 요리를 즐길 수 있게.

-ㅋㅋㅋㅋ 반유현 어무니네 분식집 가면 되지 분식집 갈 돈도 없냐. 저런 셰프가 뭐하러 유튜브를 해.

“확실하게 이번 일 마무리하면 생각해봐야지. 그거뿐만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포시즌스 반유현의 오픈을 앞둔 시점, 이제 새로운 일을 벌일 때는 아니었다.

우선순위를 두라면, 그랜드 오프닝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랜드 오프닝 관련해서, 아까 반유현 팀에서 셰프님 찾았습니다. 몇 가지 제안들이 더 들어왔다고.”

“무슨 제안.”
“이번 그랜드 오프닝도 왠지 보통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제가 슬쩍 들어봤는데, 판이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셰프님이라 한들, 이 모든 걸 계획하진 않으셨을 것 아닙니…….”

“주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우연이 없어.”

“그, 그럼 모든 것들을 다 의도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주방 안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말은 셰프들 사이에서도 비유적으로 쓰이는 말이었다.

소금을 넣었다면, 짠맛이 나고 설탕을 넣었다면 단맛이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면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다는, 셰프가 맛의 모든 책임을 지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조금 다른 표현으로 그 말을 사용하곤 했다.

“벌어지는 일 중에, 우연히 어떤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나의 일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했다는 소리야.


모든 일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대로 일어나야 하는 건데. 우연과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그 일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소리지.”

“아…….”

리키가 고개를 끄덕거렸을 때, 레스토랑 문이 활짝 열렸다.

“셰프님! 셰프님께서 직접 결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반유현 팀’이 있는 포시즌스 4 층 사무실에서 헐레벌떡 내려온 오스틴이 내게 말했다.

오스틴이 ‘주방 안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라는 격언을 리키에게 이해시켜주리라, 내가


오스틴을 가리키며 리키에게 말했다.

“쟤가 무슨 말 할지, 다 알고 있으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거잖아. 모든 것이 내


의도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고.”

“아……. 네, 그렇죠.”

리키는 순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TTS 멤버들이 그랜드 오프닝에 참석하겠다고 연락 왔지? 아무리 개인 스케줄이라지만, 팀 전체가


움직이니까 회사 측에서 확인할 것들이 있을 테니까.”

“티, 팀 전체요?”

리키는 그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되묻더니 멍하니 오스틴을 바라봤다.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한 말이 맞냐는 식으로 묻는 표정이었다.

“헤엑! 셰, 셰프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럼, 호, 혹시 셰프님께서 TTS 멤버 총원을 직접 섭외하신


거예요?”

리키는 다시 한번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맞아.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그들이 내 그랜드 오프닝에 와주면,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기가


더 쉬울 것 같거든.”

“TTS 를 한 방에 섭외해버리는 반유현 셰프님……. 키야…….”


“아이돌 힘 좀 빌려보게.”

포시즌스라는 강력한 호텔 안에 나의 이름을 세우는 것에 공을 들여야 할 시점이었다.

한불문화교류 행사에서 얻었던 내 입지와 대중성, 그리고 고위 공무원, 슈퍼스타들과의 친분은 모두 바로


현재 앞에 놓인 그랜드 오프닝을 위해 이용하려고 세팅 중이었다.

이곳은 내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거점이 될 것이니까.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 셰프님, 이것도 의도하신 겁니까?”

리키가 휴대전화를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나도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사진이 리키의 휴대전화에 실려 있었다.

“어? 이거……는. 의도한 적은 없는데, 뭐……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은 있어.”

49 화. 세계정복 준비 (1)

“뭐, 생각은 해봤던 거니까. 이것도 우연은 아니네요. 근데 진짜…….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예약 실태를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예약할 수 있는 어플들은 아직 프로토타입에


있었다.

다운로드를 받고 어플을 실행시킬 수는 있지만, 그 기능이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포시즌스 반유현을 오픈하면서 어플을 런칭하려 했는데, 더 앞당겨야 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것은, 리키가 보여준 사진 두 장 때문이었다.

[ 프랑스 대통령 내외, 레드 테이블 - 반유현 현장 예약하는 모습 촬영. ]

[ 대통령 내외 경호팀 이끌고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방문. ]

전화와 현장 예약 말고도, 나는 레스토랑에 직접 예약 없이 방문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몇 개의 테이블은


자리를 비워두었었다.

이는, 예약이 꽉 차 미슐랭 평가 단원들이 방문하지 못할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는데, 지난 생에서도


예약이 대부분 꽉 찬 내 레스토랑에는 이런 시스템을 매번 적용했었다.

오픈 초기엔 셰프들의 주방 동선과 식자재의 양을 맞추기 위해 모든 테이블이 예약제로 돌아가지만,


메뉴와 맛이 안정화되면 항상 적용하는 시스템이었다.

“대통령님이 완전 셰프님의 팬인가 본데요?”

그리고 내가 메뉴 개발부터 오픈까지 참여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반유현.’에도 그 시스템이


적용되었었고, 그곳에 프랑스 대통령 내외가 방문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갈라디너에서의 내 요리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평소에 소탈하기로 유명한 대통령이었지만, 식당에 직접 찾아와 대기 번호를 받고 기다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게. 그 지위 때문에 그렇게 하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자칫하면 욕 먹을 수도 있는 것이고.”


“이상한 소문이 안 돌았으면 좋겠네요. 프랑스에서 셰프님이 잘나간 건 대통령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셰프와 정재계의 유착관계……. 이런 하찮은 소문들이요.”

“뭐, 상관없고. 대통령 각하도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해.”

“예?”

“대통령님이 저렇게 내 요리를 먹고 싶으시다고 하시는데, 못 본 체할 수 없잖아.”

프랑스에는 각 분야의 최고 장인에게 수여되는 ‘MOF’라는 훈장이 있다.

그것의 수여에 관여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물론, 대통령 혼자 결정하는 상은 아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프랑스 파리가 요리의 성지라 불리는 만큼, 매번의 삶에서 나는 프랑스에서의 활동을 안 한 적이 없었기에,
저 상을 놓친 적도 없었다.

이번 생에도 저 상을 받으리란 확신이 있지만, 그 시점이 또, 여태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빠를 것이란


본능적인 직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저 상을 얻게 되리란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 그럼 그랜드 오프닝에 참가하리라 예상되는 인물들이 벌써,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하고…… 프랑스의
대통령……? 그런 말씀이시죠?”

“규모가 제법 괜찮네.”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내가 파리에 처음 건너와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의 그랜드 오프닝을 한 지가.

근데 그 초대된 인사들의 ‘급’ 차이는 벌써 몇 계단을 뛰어넘은 것 같다.

***

오랜만에 모든 셰프들을 불러 모았다.

인테리어 공사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주방에서 소스나 여러 메뉴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개발하는
중이었다.

물론, 내 머릿속에는 포시즌스 레스토랑 3 개의 모든 메뉴들이 구상되어 있지만, 이들을 가만히 내둘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수고했다.”

내가 한불문화교류 행사에 참가하기 전부터, 주방에서 먹고 자고 했던 내 옛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들의 실력이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이들에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게 만들어졌다.

저 만큼의 노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여기까지 따라와주고, 믿을만한 행동들을 해줘서 오너 셰프로서 다들 고마워.”

“아닙니다! 셰프!”
나는 오랜만에 만난 주방의 인원들을 격려하고, 한불문화교류 행사에서 나를 도와줬던 셰프들도
격려해주었다.

그리곤, 다음의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제일 중요한 행사가 남아있어. 나, 반유현의 미래이자, 자네들의 미래를 측정해 볼 수 있는, 그런
행사. 특히나 이곳 포시즌스의 그랜드 오프닝은 역사적인 행사이기도 해.”

정적이 흘렀다.

실제로, 포시즌스 레스토랑은 파리의 맛과 요리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곳이었고, 그 레스토랑을 맡는


셰프는 포시즌스 그룹의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발된다는 것이 유명했기에, 이 호텔의 레스토랑 그랜드
오프닝은 파리 내에 거대한 행사이기도 했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 이름은 포시즌스, 반유현. 그리고 세 개의 이름은 각각 레드, 블루, 옐로.
이제, 각각의 코스와 메뉴들을 말해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방의 인원이 충원되어 지금은 약 60 여 명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의 정적이었다.

오픈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 그 메뉴와 구성을 함구하던 반유현이었는데, 드디어 오늘 그


레스토랑의 실체가 밝혀지는 것이었다.

“레드는 한식, 블루는 일식, 옐로는 중식.”

“예?”

“예에?”

전혀 상상치도 못했는지, 나의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셰프님, 동양권의 음식으로만 세 가지 레스토랑을 하신다는 겁니까?”

“이 호텔은 프랜치…….”

닐슨과 리키가 말했다.

“말을 끝까지 들어.”

내가 다시 한마디 하자, 장내는 조용해졌다.

이 60 여 명의 모든 분위기는 나의 목소리 톤과 행동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퓨전이야. 프랜치와 동양의.”

프랑스 정통요리와, 한식. - 레드

프랑스 정통요리와, 중식. - 옐로

프랑스 정통요리와, 일식. - 블루

각각 그렇게 메뉴와 코스를 구성했다.

“이유는, 갖다 붙이면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어. 그런데, 너희를 납득시킬 이유라면 거점이야.”


세계화를 위한 거점을 만든다. 이 한 문장이 그들의 마음속에 와 닿았으면 싶었지만, 그렇지 않은 듯했다.

내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할 이들에게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일할 식구들에게 이유를


명확히 이해시켜주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이었다.

“한, 중, 일 세 나라의 관광객 비율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어 이 프랑스에. 그에 따라 이곳 포시즌스의


투수객 중에 한, 중, 일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고.”

첫 번째 이유는 수치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으며, 내가 포시즌스에 한, 중, 일 퓨전 레스토랑을 차리는


논리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두 번째, 중국은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앞으로 내 레스토랑 브랜드인 ‘반유
현’을 집중적으로 진출시켜야 할 곳이야.”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된 지 몇 년이 되지 않은, 이제 불과 3 번째인 중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미슐랭


평가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이유라 함은, 미슐랭 가이드의 의지라 할 수 있다.

하루빨리 중국에 미슐랭 가이드라는 미식 가이드를 정착시키고 싶은 그들의 의지 말이다.

그래서 그곳에 내 반유현을 진출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내 실력을 대중들에게 입증시켜야 했다.

“어느 나라든 간에,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은 그 활동이 더 활발해. 내 경험상.”

“셰프님의 경험은…… 프랑스 파리에만 계셨…….”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얘기야.”

셰프들이 모두 어리둥절해 하길래, 내 경험을 말해 신뢰도를 높이려 했더만, 환생했다는 걸 말할 뻔했다.


환생 사실을 말해봤자 믿을 사람도 없고 큰일이 날것은 아니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개그를 치는
사람으로 몰리는 건 싫었다. 순간, 분위기 싸해질 뻔했다.

“일본은 알다시피, 2018 년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나라고, 그 나라의 음식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많아. 이곳을 기점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은 일식이라는 메뉴를 탑재한다.
이곳에서 개발한 일식 메뉴와 코스를 가지고, 세계 각국에 일식 레스토랑을 차릴 거야. 여기는 거점이고,
쉽게 말하면 이곳이 반유현 레스토랑 일식의 시작이지.”

일식을 하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일본의 음식문화는 그 나라가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갖게 만들었고, 그것을 그대로 증명하듯이 일식은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전생에도 그랬고, 전 전생에도 그랬듯이, 일식은 꽤나 많은 미슐랭 스타를 챙길 수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맘대로 일식 레스토랑을 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식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이유처럼,


이렇다 할 거점을 만들어서 일식에 대한 내 실력을 입증해 보이고, 천천히 세계 곳곳으로 반유현, 일식
레스토랑을 오픈할 생각이었다.

“한식은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이 말을 했을 때는, 모든 셰프들이 쉽게 납득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을 생각할 때에 가장 힘들었다.


한식. 이 음식은 100 년을 넘게 살면서 많이 접해봤지만, 레스토랑을 직접 차려본 적은 없는 분야였다.

당장 2020, 지금 시점만 놓고 봐도, 미슐랭 3 스타를 가진 한식 레스토랑은 전 세계에 2 곳에 불과했다.

미슐랭 스타만이 내 목표였던 내가 굳이 도전할 분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심이 아예 없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한불 문화교류 행사의 갈라디너를 준비하며, 한식의 매력에 대해 다시금 깨달았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며, 영양과 조화를 아우르는 음식. 아니, 이런 특성은 원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더 깊게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렇다 할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은 한국인들의 태도였다.

자신들 나라의 음식문화에 느끼는 자긍심, 분명 괜히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들을 보고 많은


가능성을 느꼈다.

“어쩌면, 한계가 없을지도 몰라.”

이유야 많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한식의 절대적인 미슐랭 스타 개수가 적은 것을 반대로


생각해봤다.

‘왜 한식은 대단한 가치가 깃들어 있는데, 유독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이 없는 것인가.’

100 년의 경험이 있는 내가, 한식에 본격적으로 도전해 본다면, 무수히 많은 미슐랭 스타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해본다면 다르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복합적으로 이번 생에 많은 기대가 생긴 분야가 한식이었다.

“나를 찾아온 손님들이 한식을 찾을 확률도 높고.”

다만, 포시즌스에서는 그 음식들에 프랑스 정통 조리법을 조금씩 곁들일 예정이었다.

이곳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인 만큼, 그 색깔을 완전히 빼버릴 수는 없었다.

“메뉴까지 다 구성해 놨으니까, 각 지휘 셰프들은 남아. 그리고, 이제, 대외적으로 알리고 그랜드
오프닝 본격적인 섭외 시작해.”

“예! 셰프!”

그렇게 회의가 끝난 날에, 포시즌스로부터 연락받은 요식업계 잡지, 신문사를 비롯해, 먹방, 쿡방 BJ
들은 포시즌스 세 개의 레스토랑을 동시에 맡게 된 셰프의 이름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그들은 그 사실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고, 자연히 대중들의 관심도 쏠리게
되었다.

더불어, 이제는 그 그랜드 오프닝에 누가 초대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도 불러 모아졌다.

포시즌스 레스토랑 세 곳의 총괄, 오너 셰프 반유현.

그 누구도, 그가 파리의 최고 셰프임을 부정할 수 없을 만한 타이틀이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날이었다.

50 화. 세계정복 준비 (2)
“또, 또, 또, 반유현 셰프야. 하하하하!”

루시앙과 올리버가 껴안은 상태로 서로 웃고 있었다.

레드 테이블의 두 셰프.

반유현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참, 기쁘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지 않습니까 셰프님?”

“그것도 그래. 기쁜 마음 한편엔 무서운 것도 있어.”

존경하면서 무서운 마음.

언제나 반유현을 가까이에서 봐오면서 느꼈던 마음이지만, 새삼스럽게 오늘 그 마음이 더 무겁게만


느껴졌다.

[ 프랑스 파리의 전설, 역사상 최초! 포시즌스 세 개의 레스토랑을 동시에 맡다. ]

마냥 기뻐할 만한 만큼의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리옹, 장루이 셰프님이 말했던, 미래를 바꾼다는 게……. 이런 거였어.”

마리옹, 장루이가 은퇴를 할 때 언질을 줬던 반유현.

그가 포시즌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 세 개를 모두 맡으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하물며, 셰프들 사이에 인맥이 넓은 루시앙도 몰랐으니, 누가 그 사실을 알았겠는가.

더군다나, 포시즌스의 모든 레스토랑을 차지했다는 것은, 헛소문으로도 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반 셰프의 혼자 실력만으로는 안돼. 경영진의 무한한 신뢰가 있었겠지.”

“포시즌스 요리 테스트가 끝났던 날 전화했었습니다. 아주 잘 봤다고 했는데. 그게 이 정도의 결과일


줄은 몰랐습니다.”

“도대체 끝이 어딜까.”

“이 메뉴들은 다 어디서 공부하고 어디서 익혔을까요?”

[ 포시즌스, 파리 - 반유현 그랜드 오프닝 초대장. ]

- 루시앙 셰프님 당신을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합니다.

- 한, 중, 일의 요리에 프랑스 퓨전 조리법이 가미된 맛을 구경하러 오세요.

- 당신의 참석이 저에겐 엄청난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올리버도 같은 초대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게, 한식, 중식, 일식이라. 그가 가끔씩 생선을 다듬는 것을 보면 유명 스시 장인이 생각나기도


했지.”

“근데, 셰프님은 답답하시겠습니다.”


“뭐가.”

초대장을 바라보며 말하던 올리버가 루시앙의 얼굴을 보더니, 낄낄대며 말했다.

“아니, 사람들은 다 루시앙 셰프님이 반셰프를 파리에 데뷔시켰고, 실력을 키워준 장본인으로 알고
있는데, 셰프님이 반 셰프의 요리를 맛보고 놀라면 모양 빠지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그건……. 그렇네. 제기랄. 그 맛 좋은 요리를 맛보고 점잖은 척을 해야 되나?”

“점잖음이 무너져도 이해 못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레드 테이블, 더 파스타의 주방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하이고. 이게 진짜여?”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제일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대표님 기분이 남다르시겠습니다. 반유현 셰프를 발굴한 장본인이시니까요.”

“그러지 말어. 이미 나보다 잘난 천재인 사람이었으니까.”

백원종, 그가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아니, 골목가게 아니었으면 지금의 반유현 셰프가 있었겠습니까.”

“아휴. 나는 방송에서 내가 거, 분식집 아들내미한테 소리쳤던 거 재방송되는 거 보면 등골이 오싹해.


그거 방송 좀 그만해.”

“푸하하하! 뭐, 어떻습니까 대표님, 유일하게 유현이한테 큰소리친 사람으로 역사에 남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나저나, 유현이 잘되면 저 좀 챙겨주기로 했었는데, 드디어 연락이 왔네요.”

골목가게의 메인 PD 이성찬이 백원종을 놀리는 식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챙겨주는 거 맞쥬. 우릴 기억해주고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준 게 어디야. 호텔 객실에,


비행기 표까지, 응? 호텔 객실만 해도 돈 100 만 원 넘고, 이 초대장, 암표로 팔면 또 100 만 원 넘을
텐데, 그 한불문화교류 행사 갈라디너처럼.”

서로 바빠서 연락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반유현의 소식을 간간이 챙겨보고 있던 백원종이었다.

“유현이 덕에 또 바빠졌네요. 방송 편수를 또 구성해야 되니까.”

“왜, 거, 그랜드 오프닝 방송에 내보내게?”

“그럼요. 분식집 아들의 달라진 삶! 다른 식당들도 중간점검 하는 것처럼, 분식집 아들! 셰프되다! 이런
식으로 내보내려고요. 반응은 뭐, 보나 마나 좋을 거잖아요. 저 같은 방송쟁이들이 놓칠 수 없는
기회죠.”

“다른 식당 중간점검이라기엔……. 우리가 가는 레스토랑이 포시즌스 파리의…… 허허. 참나, 생각할수록


놀랍고 웃기구먼.”

백원종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그랜드 오프닝, 그 날을 기대했다.


불과 1 년 만에 계란 볶음밥을 볶던 남자가 역사와 전통 깊은 파리 포시즌스의 레스토랑 하나를 맡은 것도
아니라, 모든 레스토랑을 섭렵해 버렸다니,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아 맞다. 유현이 어머니도 저희랑 같이 가는 거잖아? 이 감독 바쁘니까 내가 모셔갈게.”

***

앞으로 한 달 반 뒤, 그랜드 오프닝의 날짜가 결정됐고, 주방의 열기가 후끈했다.

포시즌스 1 층 안쪽에 위치한 세 개의 레스토랑은 각각 붙어있어, 그 주방의 총괄을 맡은 셰프들은 쉬는


시간마다 만나서 넋두리를 했다.

그들의 대화 대부분은 자신들을 이끄는, 수장 반유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이야……. 반유현 셰프님의 행보는 기적이 아니었어. 푸하하하! 지금 우리 꼴을 봐. 이러니,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미슐랭 1 스타 오리엔 하우스의 수셰프 출신, 영국 유명 잡지사 ‘THE COOK’ 선정 영향력 있는 젊은


셰프 3 위.

현재는 반유현 - 레드의 총괄을 맡고 있는 셰프, 게리가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반유현이 일으켰던 비현실적인 행보들을 모두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일식 레스토랑에 있어서, 그렇다고 쳐도 너희 모습은 정말 웃겨. 푸하하하하!”

-미슐랭 1 스타 미나의 수석 조리장 출신, 팔로우 13 만 명의 요리 전문 인플루언서.

지금은 반유현 - 블루를 맡고 있는 셰프, 에쉬였다.

“웃을 일이야? 나는 꽃빵이라는 밀가루 반죽을 처음 먹어봐.”

-미슐랭 2 스타 멘츠 키친의 부주방장 출신, CIA 수석 졸업, 요리 방송 ‘Garnish’의 공식 패널.

반유현 - 옐로의 총주방장인 아론, 그가 주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원래 일식 레스토랑 ‘미나’의 수석 조리장 출신인 에쉬를 제외한 게리와 아론은 프렌치, 이탈리안
양식으로 구분되는 전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2 주 전부터 전공을 바꿔야 했다.

반유현이 구상한 포시즌스의 레스토랑은 모두, 동양권의 조리법이 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이들은, 실력이 없어 주방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던 셰프들처럼 주방에서 몇 날 며칠을 보내야


했다.

“나도 처음엔 요리 시작할 때, 이렇게 했었는데, 이제 와서 이럴 줄은…….”

그런 시절을 이미 수년 전에 보낸 이들이었지만, 반유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편하게들, 행동하세요. 저희도 똑같이 요리를 배우는 중이니까! 하하하하! 직급은 생각하지 마시고.”

이미 주방에서 먹고 자고 하는 셰프들이 많았기에,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들보다 한참 직급이 낮은 셰프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을 빼면 말이다.


“믿고 따라야지. 그러려고 우리가 이곳에 온 거니까.”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틸 수 있던 건, 반유현의 실력 앞에서 아주 작은 물고기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포시즌스 파리라는 그 이름의 위대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 그랜드 오프닝은 인생 일대의 기회일 것만 같은 느낌의 세 셰프의 머리에 가득했다.

더군다나 이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 반유현은 그것들을 실제로 이뤄낼 것만 같은 느낌을 심어주었다.

“주방의 효율이 점점 달라졌잖아. 반유현 셰프님의 그런 태도들은 의도하신 건가?”

“설마.”

반유현의 태도라 한다면, 단 한 가지였다.

이들이 실험 삼아 선보인 요리들을 먹지도 않고 냄새와 시각적으로만 확인한 뒤에,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린 것.

한 레스토랑의 총괄을 맡고 있는 이들에게는 대단히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는 오너였고,


반유현이었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를 만족시키겠다는 오기, 그리고 그 오기는 이들의 밑에 있던 셰프들에게도


전해졌다.

직급이 한참 위인 총괄 셰프, 더군다나 꽤나 이름도 알려져 있어 이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요식업계에서 살아가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셰프들이 짐을 싸 들고 주방에 들어와 몇 날 며칠을
일하며 연구하는 모습은 그 아래의 셰프들에게도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주방의 선순환.

반유현의 그랬던 태도가 모두 의도한 것이라는 생각은 ‘반유현 팀’에 근무하고 있는 오스틴에게 들었던
것이었다.

“여유 만만하네, 일주일전에는 주방에서 나오지도 않더니.”

마침, 셰프들이 쉬는 시간을 마치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반유현이 들어왔다.

“어이. 준비는 다들 하고 놀고 있는 거야?”

“예! 셰프!”

“2 주 조금 넘었으니까, 각 레스토랑 경연을 해보자. 레드, 블루, 옐로. 꼴지팀은 전체 레스토랑 주방


청소. 그리고 그 꼴지팀 레스토랑을 맡은 총괄 셰프……. 게리, 에쉬, 아론 너희 셋 중 한 명 말이야…….
말하지 않는다. 시간은 앞으로 세 시간 뒤에 봐.”

반유현은 그렇게 두 마디를 던져놓고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방은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다.

“야야야! 우리 팀 꼴지 하면 큰일난다! 어응?”

“해보자! 블루! 그동안 연습했던 거 다 보여드리자고!”

“후. 시작하자.”
세 명의 셰프들이 주방을 지휘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이들의 의지가 주방의 열기를 넘어섰다는 점은 모두
같았다.

***

세 레스토랑 간의 경연은 즉석에서 실행된 것이었다.

내가 매번 차가운 태도를 보여 저들의 의지를 끌어올리는 것 말고도, 변화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분야가 그런 것 아니겠나, 계속되는 자극은 역치가 높아지기 마련이니까.

더군다나, 어제 내가 이들의 요리를 맛보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려줬더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 보인


듯했다.

나는 그들에게 언뜻 보이는 그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나사를 조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레드, 블루, 옐로, 각 레스토랑별 경연을 제안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 앞으로 가져 나와.”

세 레스토랑이 지금 선보인 요리들은 모두 내가 구성하고 가르쳐준 것이었기에, 그 색깔과 종류는


다르지만, 나의 의도를 가장 잘 구현한 팀이 이기는 경연이었다.

나의 소집에 모든 셰프들이 한 곳에 모였고, 내 앞에는 레드, 블루, 옐로 각각의 코스 요리들이 놓여


있었다.

“일식, 블루부터 나와. 생선은 접시 위에 올려진 시간에 따라 맛이 변하니까.”

블루의 총괄 셰프인 에쉬가 흠칫 놀라 내 앞에 섰다.

접시에 올려진 시간까지 계산한다는 말에, 놀란 모양이었다.

자신은 그것을 전혀 계산하지 않고 요리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도 안 했네. 이 참치 국수는…… 내가 말했던 그 요리 맞아?”

“죄송합니다. 셰프!”

나의 불호령에 60 여 명이 넘는 셰프 전체가, 얼어붙었다.

“대통령, 세계적인 슈퍼스타들, 세계적인 셰프들한테, 선보일 요리라고 자신한 거지 너희들?”

51 화. 세계정복 준비 (3)

총괄, 오너 셰프라면 그 레스토랑의 맛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셰프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단기간에 맛을 끌어올리는 것에만 집중했더니, 그 부분에 조금 소홀했다.

그래서, 이들이 내 주방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던 것이다.

나는 그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내 마음은 60 명이 넘는 모든 셰프들을 집결시켰다.

“참치 국수, 어디 부위를 썼지?”


이름 그대로, 익히지 않은 참치의 살을 밀가루 면처럼 가늘고 길게 잘라, 국수나 파스타처럼 먹는
요리였다.

참치의 기름짐과 담백함, 그리고 새콤달콤한 소스를 묻혀 다양한 맛을 보여주어 다음 요리를 기대하게
만들고, 식욕을 돋우는 전채 요리로 구성된 것 중 하나였다.

원래 그렇듯이, 그 레시피를 모두 알려주지 않고 그 최상의 맛을 찾아내라고 주문해뒀는데, 일식


레스토랑인 ‘반유현 - 블루’의 총괄 셰프인 에쉬는 내 주문을 온전히 이행하지 못했다.

“가마도로, 목살입니다.”

“왜? 목살을 사용했나.”

“지방 함량이 가장 많은 부위로, 가장 비싼 고급 부위이기도 하면서…….”

“가장 비싼 부위, 그런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을 테고.”

“저는 그 지방이 주는 고소한 풍미를 국수의 전반적인 베이스…….”

“참치 가져와.”

다소 공격적인 내 언사에, 60 여 명의 셰프들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으나, 나는 이런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대외적으로 포시즌스 레스토랑, 반유현을 홍보하고 나서부터는 세간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요즘, 앞서
말했듯이 셰프들의 여유가 느껴진 것도 있지만 주방의 분위기도 들떠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 반유현의 밑에서 포시즌스 세 개의 레스토랑을 각각 지휘할 셰프는 누구인가. ]

[ 내부에서 비밀 유지 중. ]

[ 반유현의 직속 셰프가 된 행운의 주인공은 과연? ]

역사 깊은 세 개의 레스토랑을 모두 얻게 되었다는 사실도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이야기였지만, 그


레스토랑을 각각 총괄하는 셰프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이들의 마음에 풍족함과 여유를 불어넣어 줬을 것이다.

자신들이 뭐라도 된 줄 알았겠지. 내가 할 일은, 그 자리가 오직 나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라면, 부담감에 쉬지를 않았을 텐데, 셋이 떠들고 있는 모습부터가 틀려먹었어. 쉬는 시간? 그런


여유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셰프!”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조금 들떠있는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내실을 더 다지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자칫 분산될 수도 있는 주방에서의 내 힘을 다시 공고히 했다. 그 밑에 있는


셰프들에게도 이 레스토랑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금 집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레드, 블루, 옐로, 세 개의 레스토랑의 경연을 연 것은 경쟁을 부추기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여러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다섯 명의 셰프가 주방에서 참치 한 마리를 통째로 가져왔고, 나는 날카로운 칼 하나를 들었다.

나의 존재를 다시 되짚어주기 위해 모인 자리인 만큼, 이 정도 퍼포먼스는 해줘야 되지 않겠나.

“참치 목살, 가마도로라 불리는 부위는 지방의 함량도 적절하고, 횟감으로도 많이 쓰이는 고급 요리지.
그런데…….”

곧장 참치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셰프들은 언뜻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감탄의 표정들, 나, 반유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깨달았다는 모습이었다.

“전채 요리로 쓰일 참치 국수의 역할이 뭐라고?”

“참치라는 식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맛을 내어…….”

“그런데, 왜 네가 한 요리는 다양한 맛이 아니야?”

참치를 해체하기에는 다소 작아 보이는 칼로, 말없이 계속해서 살을 발라냈다.

드드득! 

“이건 적신이라고도 불리지, 참치의 속살.”

참치의 살 중에서 가장 붉은색을 띠는 살을 도마 위에 올려놨다.

“중뱃살, 배꼽살, 대뱃살…….”

드드득!

쩌어어억!

군더더기 없이, 단 하나의 헛된 칼질이 없었다.

그렇게 말한 부위들을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해체했다.

와……!

이내 차갑고 굳어버린 분위기를 잊었는지, 셰프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양한 맛을 낼 거니, 다양한 부위를 써야지.”

“아…….”

“단순한 걸 왜 어렵게 생각해.”

나는 곧장 도마 위에 올려진 살들을 칼국수 면을 자르듯이 썰어댔다.

각 부위별로 색깔이 달라, 참치살로 만들어진 면들은 다채로웠다.


아무런 간과 소스도 하지 않은, 면처럼 얇게 썰린 참치살을 젓가락으로 휘감아 에쉬의 입에 가져갔다.

“먹어봐.”

“커헉!”

“다양한 맛을 먹겠다고, 고기의 여러 부위를 한입에 넣는 사람은 없지. 그런데, 그 요리의 형태가 ‘면’
이라면 그럴 수 있잖아. 왜 참치‘국수’를 만들었겠어.”

놀란 눈으로 나를 지켜보는 에쉬, 그의 입안에서 그려지는 맛을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참치 특유의 담백함과 지방의 기름짐, 그 두 풍미가 누가 이겼다고 할 것 없이 터져 나온다.

참치의 어떤 부위에서도 맛볼 수 없던 오묘함이 에쉬의 입안에서 터져 나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맛에 심취해 있는 에쉬를 바라보는 60 여 명의 셰프들.

에쉬도 그들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이 타이밍이 아주 적절한 때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간도 되지 않고, 소스도 없잖아. 나머지 맛은 네가 채워서, 여기 있는 셰프들에게 보여줘. 설마,


자신 없는 건 아니지?”

그다음 순서로, 반유현-레드, 옐로를 맡고 있는 게리와 아론도 각각 나의 지적을 받아야 했다.

“너희 둘도 마찬가지, 너희 밑에 있는 셰프들에게 오늘 네가 느낀 맛을 보여주지 못하면 자격 없는


거야.”

이때에는 내가 주는 압박감도 그렇지만, 자신의 밑에 있는 셰프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워 또 다른


압박감으로 작용했을 터였다.

아울러, 오늘 느낀 자극과 부담감은 이들의 태도를 더 변화시킬 것이고, 정확히 맛과 효율로 직결될
것이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빼앗은 건 미안하지만, 파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랜드 오프닝이 이제 코앞이다.
정신 무장의 필요가 있었다.

***

“꺼지지 않는 주방?”

포시즌스 파리의 간부 회의, 사장 로만을 중심으로 열린 회의는 오늘도 반유현에 관한 얘기였다.

“1 층 레스토랑에, 퇴근을 하는 셰프가 없다고 합니다.”

“벌써 근 2 주째, 주방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조 셰프들뿐만 아니라, 각 주방을 지휘하는 총괄 셰프들까지 퇴근을 하지


않고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아니면 그 반대로, 총괄 셰프들이 주방을 떠나지 않았기에 그 밑의 셰프들도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어떤 정신 무장을 시켰길래, 모든 셰프들이 하나 같이 자신의 일처럼 일을 할까.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좋은 일이었지만, 셰프들의 그런 열정은 너무 과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노동법과 셰프들과 작성한 근로계약서가 문제 될 소지가 있습니다.”

오늘 회의의 주된 내용이었다.

“저들이 원해서 퇴근을 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나중에 마음이 변한 셰프들이 문제 삼을 소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흠, 마음이 변할 리가……. 반유현 셰프는 그 정도까지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의 밑으로 들어오겠다는 셰프들이 줄을 지어 섰는데, 누가 그 자리를 떠나겠습니까.”

법에 의해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는 논리와, 애초에 모든 가능성을 반유현이


생각했을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

“반유현 셰프는?”

“곧 올 겁니다.”

정확한 이야기는 반유현이 회의장에 도착하면 할 수 있을 터, 경영진과 ‘반유현 팀’의 직원들은 다른


회의 안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랜드 오프닝 초대장은 대부분 발부가 되었습니다.”

“응답률은?”

“초대장을 보낸, 200 명 중, 183 명이 답했고, 169 명이 참석의사를 밝혔습니다.”

“허허…….”

포시즌스 내부에 위치한 세 개의 레스토랑이 동시에, 그랜드 오프닝을 하는 것은 역사상 없던 규모였다.

포시즌스뿐만 아니라, 이 파리 내에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행사 중, 단언컨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그랜드 오프닝일 것이리라.

그 행사를 허가한 장본인이 로만이었지만, 초대 인원의 참석률을 듣고, 저도 모르게 심박수가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약 85%가량이 되는 참석률, 규모도 규모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원래, 대부분의 레스토랑 그랜드 오프닝이라 하면 참석률이 거의 50%…….”

“압도적인 비율입니다. 현재, 반유현 셰프는 그만큼 파리 요식업계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 마냥 좋다고 해야 할 일인가? 나머지 100 장은 또 무슨 계획을 하고 계시지?”

더군다나 초대장은 아직 100 장이나 남아있는 상태, 로만의 경험상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은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장을 제작할 때, 참석률을 고려해 초대 인원의 2.5 배에서 많게는 3 배까지 제작하는데,
레스토랑 ‘반유현 - 레드, 블루, 옐로’는 초대장이 되려 100 장이나 남은 상태였다. 그것도 딱 100
장이라 하니, 반유현에게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총 300 명 규모로 하기로 했었잖아.”

“방송에 출연하실 계획이 있어, 그 방송에 출연하신 뒤에 초대장을 발부할 예정입니다.”


“방송에까지, 직접 출연한다는 건…… 흠, 규모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데 감당이 될는지 걱정이구만.
그나저나 무슨 방송?”

이번 행사는 어쩌면 포시즌스 파리의 인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거대한 행사로 발전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만은 최고 경영자로서 자신의 커리어도 반유현에게 배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누구보다
많은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프랑스 공영방송사인 텔레비지옹(France Télévisions)에서, 올해의 셰프로 선정돼.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방영 날짜가 언제인데?”

“생방송입니다.”

더군다나 반유현이 출연을 앞둔 방송이 생방송이라니, 그의 모든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때 마침, 회의장의 문이 열리면서 무표정의 반유현이 걸어 들어왔다.

“바, 반유현 셰프님!”

로만이 손을 들어 인사하자 반유현이 고개를 까닥하고는 숙인 뒤에 자리에 앉았다.

모든 간부와 경영진들의 시선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듯이 반유현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셰프들이 퇴근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 될 소지가 있다던데,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혀 문제 될 소지가 없습니다. 적어도, 제 주방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바보 같은 셰프는


없으니까요. 직원들 정신교육은 모두 끝난 상태입니다.”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앞서 직원이 이 말을 대신해주었지만 반유현이 직접 말하니 깊은 신뢰가


느껴진다.

그 특유의 자신감이 말투에서 묻어나왔다. 마치, 60 명이 조금 넘는 인원들을 한 손에 꽉 쥐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새, 생방송에 출연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제 요리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나눠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방송의


힘을 좀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후……. 어떤 방식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반유현이 대답하자, 로만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까 전, 초대장에 응한 사람들의 참석률을 들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직원들을 휘어잡는 능력이며, 그의 머릿속에 있는 계획들은 또, 새로운,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 것만 같은


느낌이다.

“놀라는 것도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존경을 표할 수 있는 것은, 로만의 안목과 그가 20 년이 넘는 기간


호텔, 요식업계에 몸담은 세월 때문이었다.

반유현이 이제껏 만들어 낸 일들은 모두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52 화. 세계정복 준비 (4)

“2020, 텔레비지옹! 올해의 셰프로 선정된, 저어어엉말! 방송에 모시기 힘든 셰프를 모셨습니다!”

프랑스 공영방송사 중 하나인 텔레비지옹은 봄이 되면, 지난해 요식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행보를


보인 ‘올해의 셰프’를 뽑는다.

요리, 영향력, 레스토랑의 인지도 등 셰프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고려한 심사, 그 기준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올해의 셰프’라는 타이틀은 국제 요리 대회의 수상과 비교되는 이력일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벌써, 78 번째! 올해의 셰프네요.”

78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올해의 셰프, 그것은 프랑스 파리, 그 도시 스스로가 요리의 성지임을 자부하기
위한 장치로도 줄곧 사용되곤 했다.

“대한민국에서 건너온! 반유현 셰프입니다!”

사회자의 말에 수많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사회자는 내 이력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미슐랭 최연소 4 스타, 세계 최초로 두 개의 레스토랑에서 동시에 수상!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30 위권


셰프! WACS 최연소 심사위원! 싱가폴 국제 요리 대회 개인부문…….”

내 소개가 그렇게 나올 때는, 인간미가 너무 없어 보일까 봐,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줬다.

“하하하! 프랑스 파리, 올해의 셰프로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

박수 소리는 더 커졌고, 사회자가 끊으라는 신호를 보내자, 이내 잠잠해졌다.

“방송 출연을 아예 접으신 건가…… 했더니, 이번 한불문화교류 행사 갈라 디너쇼가 일부 케이블 채널에서


생중계되었다고 하네요! 하하하. 반유현 셰프의 활약을 한번 같이 보실까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방송은 올해의 셰프로 선정된 셰프를 집중 인터뷰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중간중간 이렇게 다른 영상을 내보내는 것은 인터뷰를 더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행자가


대본을 체킹하고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갈라 디너 현장에서, 대통령과 슈퍼스타들이 내 음식을 맛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화면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방청객들의 탄성이 섞여 나왔고, 화면이 암전될 때쯤에 사회자가 나를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 레디! 지금 시청률 역대 최고야! 큐!”

PD 가 언질을 주자, 다시 스튜디오의 조명이 모두 켜졌다.


사회자는 고개를 끄덕거린 뒤에 내게 질문했다.

“와! 방금 영상에서는, 대통령 각하, TTS, 할리웃 배우들…… 너나 할 것 없이 각 분야 최고로 꼽히는


분들이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고 기분 좋은 탄성을 내뱉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기쁜 감정을 만들어주는 게 셰프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요. 그냥, 제 일을 해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하하하. 와우!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네요. 너무 감사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요! 역시나! 항상 당당한 그 태도도 반유현 셰프의 인기에 한몫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는 계속되었다.

내 요리를 맛본 스타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파리에 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인기의 비결은 무엇인지,
사용하는 식재료는 어디에서 구하는지, 요리의 비법은 무엇인지, 포시즌스 레스토랑을 모두 얻게 된 비결
등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하기 전에, 엄청난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그랜드 오프닝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세간의 소문에 의하면 그곳에 초대된 인사들이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초대된 분들은 경호문제나, 여러 문제로 인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기대를 모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테니까.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시길래…… 경호문제요? 그런 대단하신 분들로만 모두 초대가 된 건가요? 하기야,


파리 최고 셰프의 그랜드 오프닝이라 하면 그렇겠죠?”

“뭐, 사회자님 말씀대로 대단하신 분들로만 자리를 채우면,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전부터 인지도를
확실하게 올리겠지만, 저를 좋아해 주신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대장을 따로
남겨두었습니다. 100 장 정도요.”

“예에?! 100 장이요? 아, 아니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초대권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나에겐 미슐랭 스타도 중요하지만, 포시즌스 반유현 - 레드, 블루, 옐로는 전 세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자
기점이 될 곳이었다.

다양한 메뉴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장소이자, 나에 대한 인지도를 더 올려, 그것을 기반으로


더 많은 확장성을 갖게 되는 그런 레스토랑.

그렇기에 주방의 멤버를 구성하는 것부터, 레스토랑의 메뉴까지 나는 확장성에 초점을 맞췄었다.

더군다나 나에겐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그 확장성과 인지도를 최대의 효율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래서 파리 최대 규모의 그랜드 오프닝을 구상했던 것이고, 이 방송에 출연한 것도 그의 일환이었다.

“많은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요즘 유행인 유튜브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튜브요?”

“예, 해시태그에 ‘반유현챌린지’를 적어주시고, 제가 이제껏 선보였던 요리를 재연하시는 영상이나, 제


요리를 먹고 있는 영상을 올려주시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영상의 주인과, 제 마음을 사로잡은 영상의
주인께, 초대권을 발부해 드리겠습니다. 행사 5 일 전에요.”

행사 5 일 전에 초대장을 나눠주는 것은 그랜드 오프닝에 올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반유현 챌린지에


도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머나먼 파리까지 날아올 여력이 안 되더라도, 그 표를 지인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또, 내 갈라 디너의 암표 값이 100 만 원을 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반유현 챌린지에 도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중들의 행동을 더 부추길 확실한 방안도 마련해 놨었다.

“설령 초대권을 받지 못하셨더라도, ‘반유현챌린지’라는 해시태그가 걸린 동영상의 개수 당, 한화로 1


만 원을,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기부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

곧장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바, 반유현 챌린지요?”

“네, 당장 오늘 밤부터, 저는 유튜브를 봐야겠네요.”

-ㅋㅋㅋ 신박하다 진짜.

-저런 셰프가 있었나?

-와우! 나는 그나마 쉬운 계란김밥으로 도전.

-저거 도전해서 초대권만 받아도 개이득 아님? 지난 갈라 디너 암표값만 100 만원 넘었었는데.

-기부까지 한다니……. 영앤리치 대박!!

생방송이었던 만큼, 실시간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미 후끈해진 것 같았다.

***

유행을 만들어 내는 것만큼, 확실한 마케팅과 광고기법이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포시즌스 그랜드 오프닝을 알릴지 고민하다가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누구노래 챌린지, 버드박스 챌린지, 등등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챌린
지’에 대해서 말이다.

요리라 함은 원래 그 맛에 의해 유행이 되는 것이었기에,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유튜브나 여러 SNS 를 시작한 시점은 모두, 미슐랭 스타 10 개 이상을 소지했을 때였다.

전략적으로, 그 정도의 지위를 가진 셰프가 아니라면 웹상에서 힘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엔 방송의 힘을 빌려, 유행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올해의 셰프’에 선정되었고, 프랑스 공영방송사의 매일 저녁 8 시 뉴스의 시간을 잘라 특별 편성되어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내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만한 최고의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현재 나의 입지,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권, 기부, 타이밍 네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반유현챌린지’.

결론부터 말하면 성공적이었다.

“진짜 대단하십니다. 셰프님.”

“버, 벌써 7 천 개…….”

올라온 영상들의 댓글 반응들 또한, 이 챌린지가 더 큰 유행을 불러오리란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이게 뭐임?

-반유현 챌린지가 뭐임? 요리 하는 거?

-파리에서 유명한 셰프 있는데, 영상 하나당 1 만원씩 기부한대.

-에엥? 그런 셰프가 있다고?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영상이 올라오는 속도가 증가했다.

세계 각국에서 나의 이름을 몰랐던 이들까지, 나에 대한 정보를 찾고 내 요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으니


이 기획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반유현이라는 이름 자체가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는 캠페인의 이름인 줄 아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푸하하하! 야! 이 사람은 완전히 분장을 했네.”

영상 속의 사람들은 내 목소리와 말투를 따라 하는 것도 모자라, 분장을 하기도 했으며 메이, 헨리, 제리


같은 내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셰프들의 모습을 따라 해 영상의 구성을 더욱더 풍부하게 했다.

“가장 인기 많은 영상이 뭐야.”

그 영상들을 검수하는 직원들에게 내가 물었다.

한 직원이 내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아닙니까?”

“어? 이미 셰프님께서 초대장을 드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반유현챌린지’. 그 여섯 글자 단어의 해시태그가 붙은 영상 중 가장 조회수가 많은 영상을 보고 나는


실소를 흘렸다.

[ 백원종의 요리 비법! 나도 초대권을 갖고 싶다! ]

- 사실 저는 초대장을 받았어유! 그런데, 기부한다니까 나도 도와야지 이렇게!

#반유현챌린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로 영상을 시작한 백원종이 화력을 더해줬다.

-허이구 참나. 하여간 대단해유. 반유현! 잉? 제가 그, 골목가게 방송에서 반유현씨 욕한 건! 뭐랄까.


그, 그거 에유 자극적으로 하려구. 원래는 엄청 친해!

댓글들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백원종 급 후회.

-반유현이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백원종이 발굴한 사람 아니냐.

-그래도 반유현 의리파임. 초대장 보내는 거 보면.

-근데, 반유현 표정 안 좋다는데? 백원종 때문에 사람들이 다 반유현 챌린지 하면 기부금이 얼마임?

마지막 댓글을 읽은 직원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실제로 국적을 따를 것 없이, ‘반유현챌린지’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영상들이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는


지금, 이제 내 통장에서 빠져나갈 기부금이 걱정됐던 모양이다.

“괜찮아. 어차피 이득이야. 100 억을 줘도 못 할 광고를 한 거나 다름없어.”

그리고 이제, 여기서 한 번 더 화력을 터트리는 방법이 있다.

“영상 하나 올리자.”

“예? 어떤 영상…….”

“카메라 세팅해봐.”

직원들이 카메라를 세팅했고, 나는 그 앞에 서서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반유현 챌린지를 만든 반유현입니다. 그……. 이제 더 이상, 반유현 챌린지를 그만해주세요. 제발,


그만해주실래요?”

-ㅋㅋㅋㅋ뭐야! 기부금 다 털리나봐!

-공격하라!! 모두 반유현챌린지 도전!

-ㅋㅋㅋㅋㅋㅋㅋ그러게 왜 실수하래!

-이 형 실수 제대로 했다. 모두 공격!! 반유현 챌린지 도전하라!

-벌써 7 천만원 넘게 기부하는거임?ㅋ

-무슨 의미냐, 저 정도 스타 셰프가 얼마를 벌 텐데.

매번 무뚝뚝하고 차가운 모습들만 방송에 나갔던 터라, 내가 쩔쩔매는 모습을 살짝 비춰줬더니, 더 큰


효과를 불러왔다.

빈틈없을 것 같은 사람이 보여준 그런 모습은 대중들에게 인간미를 보여주면서 사이다까지 선사한


모양이다. 나를 놀리는 듯한 분위기까지 형성되었다.

-그만하긴 어떻게 그만해요! 기부를 한다니까 더 혼내줘야지!^^

-내일 같은 반 친구들한테 유행 시킬 거임.

백원종이 화력을 지원해줬을 때보다, 더 많은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내 영상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퍼지고 있었다.

“일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닙니까 셰프님?”

그랜드 오프닝만을 생각하고 ‘반유현챌린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직원의 말이 맞지만.

상관없었다. 크기만 다를 뿐, 어차피 그 방향은 같으니까.

53 화. 세계정복 준비(5)

-SBN 오늘의 이슈입니다. 일명 분식집 아들이라고도 불렸던, 반유현 셰프가 또 새로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신이 여태까지 보여줬던 요리를 재현하는 영상에 포시즌스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권을
증정한다는, 말로 시작된 이 챌린지는 기부 문화가 얹어져, 많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캐린
리포터?

-예, 캐린입니다. 현재,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을 들어가 보면, 인기 동영상 30 위 내에, 반유현
챌린지의 영상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와…….”

“조용히 해봐.”

“우리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유럽 각국의 총리, 대통령, 그리고 UN, WHO 세계 단체들의 주요 인사들까지, 반유현챌린지라는 이름의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습니다.

-아, 반유현 셰프가 아무리 유명한 셰프라 한들, 그분들이 ‘초대권’을 위해서 반유현 챌린지를 하지는
않을 텐데요?

-네, 그렇습니다. 반유현 셰프의 처음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기부의 색깔이 더 짙어져, 각 사회단체의
장들까지 지원사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기업들도 반유현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반유현 셰프님의 기획 의도와 다르게 라는데…….”

“풉. 그럴 리가.”

앵커와 리포터의 말에 저절로 헛웃음이 났다.

이들은 알고 있었다. 반유현의 기획 의도가 다를 리가 없다는 것을.

아마 반유현은 이슈의 규모를 정확하게 떠올리진 않았을 테지만, 비슷하게는 예측했을 것이다. 항상
정확한 예측을 기반으로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다른 채널도 틀어봐.”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세계 각국의 동영상은 11 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기부를 약속한


반유현은 한화로 11 억 원을 내는 것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추세를 살펴보자면 그
기부금이 몇 배까지 늘어날지도 확정 지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에 따라 반유현 셰프는 실제로 동영상
촬영을 하기도 했는데요, 영상 한 번 보시죠.

리포터가 화면을 돌리자, 반유현의 모습이 찍힌 영상이 나왔다.

-반유현 챌린지를 만든 반유현입니다. 그……. 이제 더 이상, 반유현 챌린지를 그만해주세요. 제발,


그만해주실래요?

연기력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이 영상은 되려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고, 더 많은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는 추세입니다.

“푸하하하! 야, 반유현 셰프님 진짜…… 저런 연기까지 하시네.”

“대체 몇 명이 놀아나는 거냐.”

“우리도 상상력의 틀을 좀 넓히자 이제, 셰프님의 계획은 도저히 예측이 안 되네.”

“욕심이지 그건…….”

마침,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의 쉬는 날, 로또 육인방은 모여서 방송을 보고 있었다.

“셰프들이나, 미식가들이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재연하는 영상이나, 대단한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
재연하는 영상이 조회수가 많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요리에 전문가거나, 인기로 조회수를 올린 사람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동영상들도 보고 있었다.

독특한 영상들이 많은 만큼, 이들을 웃게 만든 영상들도 많았다.

“야야야! 이 사람 봐 풉!”

“루이드 뤼샤르? 이 사람 그 사람이잖아!”

예전에 ‘반유현 - 더 파스타’에 그랜드 오프닝을 할 때, 세계적인 미식가의 입지를 이용해


신인셰프였던 반유현을 곤란하게 했던 그 사람.

자리에 앉아 파스타가 어쩌고, 코스 요리가 어쩌고 하던 미식가 루이드 뤼샤르도 반유현의 요리를
재연하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푸하하하하! 참나, 셰프님의 요리가 어쨌다느니 저쨌다느니 하던 사람이 이제 그 요리를 따라 하고 있는


게 웃기기도 하네.”

“이 사람도 봐봐! 하하하하하!”

미슐랭 투 스타 셰프 엘른 조까지.

지금은 폐지된 프로그램 ‘라스트 테이블’에서 반유현의 요리를 맹비난했던 셰프였다.

그 모습이 담긴 예고편이 전 세계에 방영되었고 반유현은 미슐랭 포스타를 얻게 되면서, 셰프로서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던, 셰프.

아주 정성 들여 반유현이 서울시 요리 대회에서 선보였다는,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를 시연하고 있었다.

“다들 얼굴 철판이 두껍구나.”

그렇게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영상들은 단연, 유명인이나, 유명 셰프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와중에 가장 인기 많은 동영상은…….”
“이거 진짜 큰일 나겠는데?”

***

수많은 유명 인사들과 스타들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동영상을 꼽으라면 단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상의 주인공은 인지도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조회수 11,234,256

조회수를 보면, 가장 인상 깊었던 반유현챌린지의 동영상이 ‘이’ 영상이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았다.

흑인 꼬마 아이가 내 음식을 만드는 영상이었다.

나뭇잎과 조약돌, 그리고 흙과 나뭇가지로 나의 요리를 재연하는 영상이었다.

저게 왜 내 요리라고 묻는다면, 제목을 보면 된다.

[ ‘Ban Yuhyeon - challenge’ I want to go to Paris. ]

반유현 챌린지, 파리에 가고 싶어요.

그 제목의 영상에 나오는 아이의 모습은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파리들이 피부에 달라붙어 들끓었고, 뼈는 앙상했으며, 배는 불룩 나온 6 살 정도의 아이가 식재료가 없어


나무와 흙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그러했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민을 느낄만한 그런 영상이었다.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그 영상은 조회수 천만을 가뿐히 넘어섰고, 반유현 챌린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들은 더더욱 증가했다.

“온 우주가 나를 돕는 느낌이네.”

조회수 천만.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영상에 나의 이름이 실려 있는 것부터, 이 모든 것들이 나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것에 묘한 짜릿함을 느꼈다.

100 년 동안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던 이유는, 해본 적이 없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파리에 가겠다는 이유가 뭐야?”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 싶은가 본데? 반유현챌린지의 반유현이 파리에 있는 셰프의 이름인 걸 몰랐어?”

반유현 그랜드 오프닝 초대권에 도전, 기부문화형성 두 개의 큰 프레임으로 굴러가던 챌린지는 다시금
반유현에게 관심을 모아주는 방향으로 굴러갔다.

이렇듯 아주 정확한 루틴을 갖춘 채, ‘반유현챌린지’의 규모는 점점 커져 나갔다.

나는 당연히, 이 기회에 올라타고자 했다.

“찾았냐, 출처.”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곳에 사는 아이가 유튜브를 할 리 없고, 영어를 사용할 리 없기에 이 영상을
만들어 올린 사람의 정보가 우선 궁금했다.

“예, 찾았습니다. 유니세프 한국 위원회 기업후원팀 팀장, 이상정이라는데요.”

“유니세프?”

역시나, 그 영상을 찍은 사람과 그것을 올린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쪽이랑 협조해서, 저 아이 데려와.”

“예?”

“반유현팀 보내서, 저 아이 가족들이랑 다 비행기 태워서 데려오라고. 그랜드 오프닝 초대권을 저


아이에게 전달해.”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파급력을 일으킬 만한 사람을 VIP 로 정한다면, VVIP 는 이미 정해진 것 같다.

***

내가 가진 조리복 중에서 가장 말끔한 조리복으로 빼입었다.

[ 포시즌스 파리, 반유현 - ‘레드’, ‘블루’, ‘옐로’ 그랜드 오프닝! ]

‘반유현챌린지’가 너무 많은 반응을 얻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호텔의 앞을 차지했다.

포시즌스 파리, 앞 수많은 기자들과 초대된 인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내가 잠시 밖에 나가 인사를 하자,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와 포시즌스 로비, 그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젠 놀라지도 않겠다고 말씀드렸으니……. 박수만 쳐드리겠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호텔 내 모든 간부들,


그리고 다른 지점의 사장들, 파리에 위치한 모든 호텔의 경영진들도 놀라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로만이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기부금은 다 해결됐죠?”

“우연히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연결이 돼서, 잘 해결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기회를 다른 기업들에게 돌리면 안 되지.”

수많은 ‘반유현챌린지’ 동영상의 여파로 내가 내야 할 기부금은 16 억 원을 넘어서 20 억 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3 주가 아니라 두 달의 기간이었다면 나는 30 억을 기부해야 됐을 수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올리고자, 나와 함께 기부금을 내겠다며 숟가락을 얹으려 했지만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인 로만이 이를 제지했다.
포시즌스 그룹 측에서 기부금의 대부분을 지원해줬고, 모든 기부금을 나의 이름으로 했으며 온전히 이번
일은 우리의 것이 되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메뉴 구성을 저에게도 말씀 안 해주시고……. 실망이 크지만 기대가 무척이나 됩니다.”

그랜드 오프닝에서 선보일 메뉴는 주방의 셰프들만이 알 수 있었다.

호텔 내 간부들에게는 알리려 했지만, 반유현챌린지의 여파가 너무나 커져 그에 대한 메뉴를 아예 극비로


가는 것이 더 많은 기대감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이유였다.

“이제 입장 시작했으니, 인사나 하시죠.”

내가 호텔의 정문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권을 쥐고 있던 손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포시즌스 그랜드 오프닝이 시작된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안녕하세요! 정말 너무 팬이에요 흐어어엉!”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후. 이런 역사적인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스폐인, 이탈리아, 독일 각국의 외교부 관계자나 관광청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또, 할리웃 배우들과 프랑스 유명 배우들도 나와 악수를 하곤 레스토랑 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와아아아!

엄청난 환호를 동반하며 등장한 TTS 까지.

그 멤버 총원이 참석해 나의 그랜드 오프닝을 빛내주었다.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참……. 내 인생에 이런 광경을 볼 줄이야.”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로만, 나는 로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이 행사의 진정한 VVIP 가 도착을 안 했는데요 뭘.”

“VVIP 요?”

“이 자리 전체를 빛낼, 아울러 이 행사를 진정 역사적인 자리로 만들어 줄 VVIP 요.”

“알아서 해주십시오. 반유현 셰프님, 애초에 시작부터 제가 계획했던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일단


지금까지는 최고입니다.”

손님들이 자리에 모두 앉을 때까지, 로만은 마이크를 잡고 손님들을 안내했다.

미리 섭외된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그랜드 오프닝의 시작을 알렸다.

“안녕하십니까.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이자, 경영총괄을 맡고 있는 로만입니다.”

로만의 멘트와 박수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들렸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셰프들을 격려했다.
그랜드 오프닝의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로만이 현재 서 있는 무대 위에 올라 손님들 앞에 서서
내 소개를 할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던 터였다.

“자, 오늘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다. 밖에 온 손님들 다 봤지? 평소에도 자주 말했던 거니까. 말
길게 안 한다. 불 올려.”

“예!! 셰프!!”

우와아아아아!

주방의 셰프들의 우렁찬 대답 소리가 밖으로 세어 나갔는지, 홀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주방으로 반유현팀의 한 직원이 들어왔다.

“VVIP 도착하셨습니다. 셰프님께서도 오프닝 멘트 준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5 분 뒤에 홀로


나가시겠습니다. 셰프님.”

54 화. 세계정복 준비 (6)

“반유현 셰프입니다!”

우와아아아!

꺄아아악!

열화와 같은 성원이 쏟아졌다.

레드, 블루, 옐로. 레스토랑은 총 세 개.

각각의 레스토랑은 벽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입구는 모두 붙어 있었다.

세 곳의 입구가 모두 보이는, 곳에 무대를 설치했고 각 레스토랑 안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행사를


진행했다.

잘생겼다! 멋있다! 우와아아아!

분위기는 끝을 모르고 들끓었다.

과연, 파리에 있었던 레스토랑 그랜드 오프닝 중,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그랜드 오프닝이라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이 분위기가 전채 요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식욕을 돋우며, 이곳에 초대된 사람들의 기대감을 더


올려주었다.

‘나도 적응이 잘 안 될 정도니.’

저 멀리 안쪽에 TTS 의 멤버와, 각국의 고위급 인사들도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나 보다.
즐거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기는 하나,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하기야, 어딜 가나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는 이들이 지금 이 현장에선, 내가 모든 관심을 끌어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으니까.
물론, 그 당사자인 나도 이런 분위기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요리사로서는 얻기 쉽지 않은 경험이다.

요리나 레스토랑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에 이런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경험은 말이다.

더군다나 로비, 저 멀리에 있는 시계탑 밑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이 경험의 즐거움을 더해줬다.

‘20 대 중반…….’

젊고 생기 넘치는 몸과 얼굴이 보였다. 이번 삶은 아주 파워풀하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내가 마이크를 들고 했던 말들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곳에 참석해주신 분들과, 그동안의 나의 행보를 응원해준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드린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포시즌스 관계자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반유현챌린지가 생각보다 너무 잘 돼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저를 비롯한 많은 셰프들이 수많은 노력을 했다.

우와아아아아!

그 말들을 끝으로, 다시 한번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100 년을 사는 동안 말을 유려하게 하거나, 그러기 위해 화법을 훈련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 생에는 짧은


시간 동안 무대와 방송 위의 경험을 압축적으로 해서 그런지 나 스스로도 내가 말을 꽤나 잘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사실, 오늘의 행사는 그저, 저 반유현이라는 개인의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기념행사였을 수도 있었는데,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주신 분들이 있으십니다.”

지금 타이밍이 이 들끓는 분위기를 최대로 폭발시켜 줄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이번 반유현챌린지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신 분들이죠.”

이번엔 환호와 박수가 아니라 장내가 소란스러워진 느낌이었다.

내 말에 ‘에이!’, ‘설마?’, ‘정말?’과 같은 반응을 보이며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건너온 소녀 에피아와 그녀의 가족입니다.”

내 직원들의 도움을 받은 세 명의 손님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유튜브, 반유현챌린지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여섯 살의 작은 소녀, 체구가 작아 제대로 걷지


못하는 그 소녀가 무대 위에 서서, 엄마의 말을 듣더니 나에게 말했다.

“에피아, 고맙다고 말씀드려야지. 반유현 셰프님이셔.”

“고…… 마……압 습니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 대륙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나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된 지 100 년이 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억양은 조금 다르지만 프랑스어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홀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났다.

짝짝짝짝짝.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반유현 셰프님 덕에 저희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에피아의 아버지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일주일 전에 프랑스에 도착해, 여행을 시켜주셨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배려에 감동했고…….”

이곳에 초대된 손님들의 기립박수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이때부터, 이 장소는 그저 일개 셰프의 그랜드 오프닝이 아니었다.

음식이 먹고 싶었던 아주 작고 가난한 소녀에게 최고의 음식을 선사한다는 자리, 어떻게 보면 이곳은
에피아 가족의 사소한 꿈이 이뤄지는 자리였다. 봉사와 사랑이라는 인류애를 실현하게 된 공간이랄까…….

“내 음식이 먹고 싶었어?”

“……네.”

“그래, 오늘 마음껏 먹어.”

더불어, 자신들의 현재 삶에 대해 많은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에피아를 안아서 들어 올리자 모든 사람들이 애틋함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짝짝짝짝짝.

그 와중에도 기립박수는 계속되고 있었다.

요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요리가 끝난 것처럼 박수를 받았다.

분위기는 완벽하게 만들어졌고, 최고의 맛을 보여줄 일만 남았다.

***

“이야, 완전 그림이야 그림!”

한국의 방송프로그램 ‘골목가게’의 메인 PD 이성찬이 연신 환호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우리 유현이가 또 한 건 하는구만! 하하하하! 봉사, 사랑, 감사, 이 장면에서 뽑을 수 있는 감정만 몇


가지야! 1 번 카메라 앵글 잘 잡았지?”

중간점검 특집으로, 골목가게에 의해 널리 알려진 사람들을 재조명하는 편성으로 구성된 방송을 위해


이성찬과 스탭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앞서 반유현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가족을 불러 소개한 장면은 역사적인 장면이라고 입이 닳도록
외쳐대던 이성찬이었다.

무엇보다, 골목가게에 출연한 식당 주인들이 이렇게 성장한 사례는 없었으니까, 방금 전의 장면도


그렇지만 여기까지의 반유현의 행보도 드라마의 한편과 같았다.

이성찬은 그 일부를 담을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아니, 대표님! 이거 진짜 역사적인 장면 아닙니까? 우리 카메라에 그 장면이 담긴 겁니다!”

“PD 아니랄까 봐. 그게 그렇게 좋아?”

“저희가 발굴한 공무원 준비생 분식집 아들이 이제는 인류애를 실천하는, 그런 인물이 된 거잖아요!”

오직, ‘골목가게’의 스텝들만 촬영이 허가되어 있었다.

수많은 케이블 방송사와 여러 언론 기관들이 촬영을 문의했지만, 반유현은 딱 잘라 거절한 것이다.

“카메라가 너무 많으면, 손님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대요! 그래서 우리한테만 촬영을 허가한 건데! 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대표님!”

“허허. 참……. 손님들이 불편한 것도 그렇겠지만, 맨 처음 방송을 태워준 감독님한테 은혜를 갚는다는
느낌인 것 같은데. 그냥 됐어유! 박수나 쳐유! 이런 데까지 와서 일들을 하려 그래. 이제 곧 요리 나올
것 같은데.”

그랜드 오프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성찬과 백원종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멍한 표정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중년의 여성.

백원종은 그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는 유현이랑 인사 했어유?”

“저……. 내 아들 유현이…….”“으이그! 여기 와서 그러지 말라니까! 기분 좋은 날 그러면, 사람들이


욕해유!”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에 백원종의 말을 들은 중년 여성이 금방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백원종은 핀잔을 주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잔소리를 해댔지만, 중년 여성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는
듯한 말투였다.

반유현의 어머니, 이영미.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웃으면서 맛있게 먹고 가면 되는 거쥬. 아들 저렇게 성공해서 좋으시겠어. 저기 스타들하고, 높으신


분들하고 아들내미 사진 찍는 것 봐.”

백원종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이영미도 주변을 둘러봤다.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모두가 이곳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습.

“어머!”

이영미가 곧장 카메라를 들자, 옆자리에 있던 이성찬이 말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방송 스텝들이 촬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다 담을
테니까 이 순간의 감동에 집중하세요.”

이성찬의 다소 오바스러운 말에 옆에 있던 백원종이 웃음을 터트리고, 이영미는 고개를 끄덕거린 뒤 다시


반유현을 바라봤다.

“하하하하! 가즈아! 이제 시작을 했다니! 유현아! 방송 대박의 느낌이 온다아!”

이성찬은 오늘 나오게 될 엄청난 방송거리에 매우 흥분해 있었다.

***

중식, 일식, 한식.

메뉴와 코스를 만드는 것에 생각한 핵심가치는 확장성이었다.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 이탈리안 파스타 레스토랑.

레드 테이블 - 반유현 : 정통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

이미 운영되고 있는 두 종류의 식당으로 양식의 기본이 되는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안 요리의 실력을
보여줬으니, 포시즌스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는 다른 종류의 요리에 대한 실력을 검증해, 프랑스 파리가
아닌, 아예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내가 색다른 요리를 도전하겠다 했을 때, 포시즌스 그룹 내의 반발이 있었지만, 메뉴 테스트를 통해 그


반발을 종식시켰었다.

물론,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로만의 신뢰도 내가 이곳에 동양 문화권의 요리로 레스토랑 런칭을 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줬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거, 수도 없이 말했잖아.”

지금 주방에서 부리나케 움직이고 있는 셰프들도 알고 있다.

이곳이, 레스토랑 ‘반유현’이 전 세계에 발돋움하기 위한 거점이 되리라는 것을.

거점이라는 것은 단순하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기술개발과 디자인은 본사에서 하고, 공장은 원가나 인건비가 싼 다른 지역에
세워지는 것처럼, 나는 포시즌스를 자동차 회사의 본사처럼 만들려고 했다.

메뉴 개발과 코스의 구성은 이 레스토랑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들이 전 세계에 퍼지는 방식을 생각했었다.
이런 방식은 전생에도, 전전생에서도 쓰였던 방식이다.

원래, 거대한 뿌리와 줄기 없이 잔가지를 치는 나무는 없는 것 아니겠나.

지금의 삶에서는 그 뿌리를 파리에서 가장 비싼 땅, 그 중심에 세웠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오늘은 그 뿌리에 엄청난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동파육 고기 타이밍 잘 봐. 거기, 야키도리(焼き鳥) 간장소스 가져와.”

내 명령에 맞춰 셰프들은 몇 주간 집에도 가지 않고 연습했던 요리들을 선보였다.


모든 요리들은 완성되기 전 나의 입을 거쳐 홀로 서비스되었다.

“잡채……. 여기 들어간 돼지고기의 비계 비율, 누가 측정했어. 잡채 나갈 때까지 아직 시간 많으니까


다시 준비해. 여기 지금 너희들 장난치는 곳 아니라 했다.”

실전인 만큼 나의 기준을 높이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우리가 밤낮없이 연습한 수준 안에서 말이다.

띵!

“서버! 전채요리 서비스 시작해.”

내가 종일 치며 말하자, 홀에서 대기 하고 있던 서버들이 주방으로 걸어왔다.

서버들이 접시를 들고 홀로 퍼져나가는 발걸음이, 레스토랑 ‘반유현’ 세계화의 시작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55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1)

그랜드 오프닝 내내 모든 요리를 총괄한 셰프가 마이크를 잡는 횟수는 세 번이다.

요리가 시작되기 전, 첫 번째 요리가 나왔을 때, 그리고 모든 요리가 끝났을 때,

“포시즌스 반유현은, 레드, 블루, 옐로 세 개의 레스토랑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각각 한식, 일식,


중식을 베이스로 한 프랑스 퓨전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랜드 오프닝에서 어떤
요리를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앞으로 나올 요리에 대한 설명과 오늘 요리들을 최대한 즐기라는 당부의 말을 하는 순서였다.

“그렇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서빙 직원들은 이미 첫 번째 요리를 각 손님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초대된 손님들은 테이블에 올려진 요리를 바라보며, 나의 말을 듣고 있는 모습이었다.

“코스의 순서는 프랑스 정찬의 것을 그대로 따릅니다.”

아프레티프(aperitif), 아뮤즈부쉬(Amuse Bouche), 미스아부쉬(Mise a bouche), 앙트레


(entree)……. 등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코스의 이름은 프랑스 정찬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

“코스의 순서와 방식은 그렇지만, 그 구성을 한, 중, 일 세 가지 요리를 섞어서 해봤습니다.”

이곳에 초대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그랬을 것이다.

블루, 레드, 옐로의 세 개의 레스토랑이 있다면, 대체 어느 곳에 들어가 맛을 봐야겠느냐고.

실제로도, 로비에서 내가 초대된 손님들을 맞이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하나였다.

“레드, 블루, 옐로……. 레스토랑을 선택해야 되나요?”

“상관없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와! 그럼 다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이미 내 요리 앞에서는 개인 취향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에 따라, 이들은 더더욱 한식, 중식, 일식 중 어떤 요리를 골라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입장 전까지 치솟았던 초대권의 가치를 생각하면 더 선택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에 따라 레스토랑 내부가 혼란스러워질 것을 방지하기 뿐만 아니라, 세 개의 레스토랑 모두를 한


자리에서 홍보하기 위해 나는 이 세 레스토랑의 모든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첫 번째 요리인, 아뮤즈 부쉬(Amuse Bouche)는 당근 퓌레를 곁들인, 야키도리(焼き鳥)입니다. 일식을


기본 베이스로 하는, ‘반유현 - 블루’에서 간간이 선보여질 요리입니다.”

닭껍질과 내장을 꼬치에 꽂아 구워낸 뒤, 소금으로 간을 한 요리.

‘아뮤즈 부쉬’는 프랑스 정통 정찬요리 중 식전주와 함께, 앞에 나올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리이다.

바사삭!

바삭한 식감과 함께, 닭껍질의 기름진 육질의 풍미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감탄했다.

적절하게 곁들여진 소금은 고소한 맛을 올려주고, 당근 퓨레가 그 맛들을 정리하며 전체적인 식욕을
돋우었다.

“처음 시작을 일식으로 했지만, 앞으로 나올 요리들은 한, 중, 일 세 가지의 요리가 프랑스 정찬의
구성에 따라 나올 예정입니다. 주방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을 즐겨 주십시오.”

와아아아!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주변을 둘러봤다.

이성찬이 이끄는 스텝들과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 여러 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까지는 방송이라는 정해진 플랫폼 안에서 활약하며 나를 돋보이게 했다면, 이제는 완전히 다르다.

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 약 300 여 명의 사람들은 이 순간을 더 다채롭게 하기 위해 나의 의도대로 꾸며진


것이었다.

이를테면, 초대된 모든 사람들에게 엑스트라 1, 엑스트라 2 와 같은 지명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갖고 있었다.

저 멀리, 엑스트라 3 번쯤을 맡고 있는 프랑스 대통령이 눈에 보였다.

무려 ‘대통령’인 그가 엑스트라인 이유는 이미 갈라 디너와 언론에 나의 요리를 먹고 놀라는 모습이


많이 비쳤기 때문이다.

많은 모습을 보이면 그 중요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 드라마, 영화와는 달리, 나의 ‘쇼’에서는 비중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신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와우…….”

첫 번째 요리인 야키도리를 한 움큼 베어 먹고는 눈을 감고 그 맛을 즐기고 있다.


그 옆에 영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감동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신선하진 않지만, 그들의 입지와 리액션을 보면 엑스트라 3 번 정도는 시켜줘도 될 것 같았다.

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경호원들이 애타는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기는 모습들은 신선했다.

‘먹고 싶은데 못 먹는 것만큼 비참한 모습도 없는데.’

그리고 엑스트라 109 번, 엑스트라 111 번쯤을 맡고 있는 루이드 뤼샤르와 엘른 조가 보인다.

그들은 코스의 두 번째 요리인 매생이 해물 누룽지탕과 참치국수를 맛보고 있었다.

한때 빌런의 역할을 하기도 했던 이들이,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지금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표정이었다.

또, 오늘의 주조연쯤은 되는, 백원종과 나의 어머니, 그리고 세계적인 아이돌그룹인 TTS 와 헐리웃
배우들, 그리고 세계적인 셰프들과 미식가들이 내 요리를 맛보고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키야…….”

특히나 조연 중에서 백원종 대표의 리액션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참치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다.

아무래도 이 아저씨는 주연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시켜드려도 되지, 백 대표님은.’

대한민국 내에서 그가 끼치는 요식업계의 영향력과 공신력은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자, 카메라 한 대가 백원종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

“내가 전 세계를 다 돌아다녀 봤는데, 이런 요리는 처음이에유.”

한 테이블에는 생전 처음 본 사람들도 함께했다.

자리 배치는 무작위로 선정되었다고는 하나, 이상하게도 백원종의 테이블에는 미슐랭 스타 10 개 이상을


소지한 셰프들과 세계적인 미식가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이 요리들이 하나하나…….”

메인 요리의 첫 번째, 생선요리에서는 앞서 보였던 감탄들과 또 다른 감탄을 토해냈다.

“도미 탕수는 중식, 도미 무 조림은 일식, 도미찜은 한식…… 이 세 요리를 한 접시에 구성해 내는 게
얼마나 성가시고, 고된 일인데. 참…… 모든 맛을 살리고 그 조화는, 말할 것도 없네. 허허허허.”

백원종이 앞자리의 셰프들과 미식가들을 바라보자, 그들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듯이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이었다.

“유현이 어무니, 이분들 보이죠? 이분들 나도 알고 있는 유명한 셰프님들인데, 지금 아드님 요리보고


놀랐어유! 와……. 진짜. 아들이 확실히 어머니 닮아서 재능이 있던 거야.”

반유현의 어머니인 이영미, 그녀도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요리에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백원종이었다.

“1 년 만에 만난 유현이의 요리가……. 이건 ‘그것이 궁금하다’ 아니면, ‘TV 특종 놀라운 일’에


나가야겄네.”

그의 찰진(?) 리액션들은 모두 카메라에 담기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으로 메인 요리의 두 번째인 육고기 요리가 나왔다.

-일본식 소고기 양파 볶음, 소고기 표고버섯 볶음, 소고기 깻잎말이로 구성된 메인 요리입니다. 앞서
나왔던 요리들이 그랬듯이 한, 중, 일 세 나라의 요리를 한 접시에 담아봤습니다.

이는 반유현 - 레드, 블루, 옐로의 각 요리들을 한곳에 담은 것이며 그 조화를 느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무대 위에서 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반유현은 주방에서 요리를 총괄해야 하니, 이렇게 요리가 나올 때마다 설명을 곁들여주는 사람이 있던
것이었다.

“키야, 와우.”

백원종의 앞에 자리 잡고 있던 셰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끄덕거린다.

당해낼 수 없는 맛을 본 것처럼.

백원종도 곧장 요리를 입에 넣었다.

“허허허.”

방금 전 생선 요리를 먹었을 때처럼,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소고기 양파 볶음과 소고기 표고버섯 볶음은 볶음요리라는 점이 같았지만, 그 맛에서 확실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소고기 양파 볶음은 기름짐이 느껴지지 않고 볶음요리임에도 산뜻한 느낌이었고, 버섯볶음은 매콤함이


적당히 섞인 기름짐이 입맛을 돋게 했다.

양파에서 흘려져 나오는 간장의 향은 확실한 일본풍이었고, 버섯을 씹을 때 향긋하게 올라오는 후추와
팔각의 향은 중국풍의 요리였다.

“같은 소고기지만…… 확실한 색깔이 있어.”

두 향 모두 서양인들의 입맛에 거슬리지 않게 적절히 조절한 것도 일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소고기 깻잎말이로 각종 야채와 깻잎을 소고기로 감싼 요리였는데, 이는 채소의 물과


육즙의 조화가 완벽했다.

세 나라의 요리를 모두 잡아 묶어주는 요리였다.

백원종이 주변을 둘러봤을 땐, 모두 이 요리에 반응하는 모습들이 제각각이다.

음식을 씹으면서 박수 치는 사람, 수첩을 꺼내 자신이 영감 받은 것들을 적는 사람, 가져온 비닐 봉투에


음식들을 넣는 사람, 자신이 챙겨온 카메라 렌즈에 요리에 대한 평가를 계속 이어가는 사람 등.

오늘 이 자리에서 먹었던 요리들이 최고라는 점은 확실했다.

디저트와 위스키, 사케가 나왔고, 그 뒤에는 반유현이 걸어 나왔다.

레스토랑 내부에 있던 모든 인원들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요리로 말씀드렸던 반유현입니다. 오늘 요리가 어떠셨습니까.”

반유현이 손을 귀에 가져다 대자, 엄청난 환호와 박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저런 쇼맨십과 모션들은 어디서 배워 온 건지, 약 1 년 전, 분식집에서 봤던 반유현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긴, 베테랑 셰프들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의 행보와 발전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이제 더 이상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현아…….”

하물며, 그의 어머니인 이영미도 그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알지 못하는데, 누가 반유현의 실력과 그


이유를 헤아리려 하겠는가.

“어머니, 울어유? 하하하. 그래유. 이제 울어도 돼.”

아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자리, 이 환호와 박수가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울컥했다.

기립박수와 환호가 뜨거워질수록, 반유현의 얼굴에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의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

포시즌스 호텔 객실.

오늘 그랜드 오프닝에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고 있는 남자가 둘이 있었다.

“제가 한미정상회의, G20, 올림픽 행사, 등 수많은 곳들을 다녔는데도 오늘 같은 요리들은


처음이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셰프들도 고개를 끄덕거린 것을 보면…….”

“맞습니다. 에피아? 에피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그 소녀까지 초대해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울리는 게,


또 한몫한 것 같습니다. 그 어린아이를 보며 연민도 느꼈지만, 매사에 감사함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 빈틈을 강력하게 치고 들어오는 요리…….”

“행정관님도, 이렇다 할 많은 요리들을 많이 드셔보시지 않았습니까?”

“저도, 홍보담당으로 있으면서, 많은 요리를 먹어봤지만 오늘 같은 요리는 처음입니다. 하하하하.”

청와대 행정관과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담당관.

아직도 그 요리들의 여운이 남았는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탄식했다.

“후. 그럼……. 저랑 같은 생각이십니까?”


“당연합니다.”

둘은 서로의 의견이 같다는 것을 확인한 뒤, 눈을 맞추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오늘 그랜드 오프닝을 보니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은데…… 섭외가 될는지가 걱정입니다.”

“대통령께서 직접 초대를 하시는데 여태까지 거절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정치적인 색깔을 띠는


사람이 아니라면요.”

56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2)

포시즌스 파리의 스위트 룸.

레스토랑 반유현의 그랜드 오프닝으로 인해, 대부분의 객실이 꽉 차 있던 지금, 내 이름으로 예약된
방이었다.

2 박에 300 만 원이 넘는 곳이었지만,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돈이 아깝지 않았다.

백원종과 그를 따르는 스텝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있었다.

이성찬은 편집 때문에 바빠졌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중식의 색깔을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입힐 수 있는 거야? 잉?”

“오랜만에 뵙는데, 대표님께서는 언제나 요리 얘기만…….”

“허허. 이 사람아! 같이 요리하는 사람끼리 레시피가 인사고, 조리법이 안부지!”

백원종은 그랜드 오프닝에서 먹었던 내 요리에 대해서 계속 캐물었다.

그 옆에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어머니랑 대화 좀 하라고 빠져 줄라 했는디, 어머니가 어째 딱히 할 말이 없으신가 봐. 바라만 봐도


좋으신가.”

“진짜 자랑스럽다 유현아……. 네가 파리로 간다고 했을 때, 엄마가 했던 말 기억하니?”

“하고 싶은 일만 하라고 하셨었죠. 하기 싫으면 억지로 안 해도 된다고 하셨고.”

평소에 간간이 메신저로 연락을 남기긴 했었는데, 전화나 영상 통화 같은 것은 잘하지 못했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어머니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뭐, 이해는 한다. 1 년 만에 본 아들이 완전 딴사람이 되어 있으니 놀라기도 놀랐거니와 자랑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가슴속을 꽉 채웠을 것이다.

“앞으로 자주 연락드릴게요, 어머니.”

20 년 뒤. 아니, 남은 19 년 뒤 미션에 실패하면 이 몸 말고 또 다른 몸으로 환생하게 된다.

그 짓을 6 번이나 당했으니, 가족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심지어, 미션에 성공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다.


“하이고! 어머니, 나한테 물어볼 게 아니구만유. 이런 아들을 냅두고. 나한테 전화해서 참나!
하하하하하!”

백원종과 어머니의 사이는 부쩍 친해진 듯했다.

백원종의 말투가 다소 직설적이지만, 그 안에 많은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예? 뭘요?”

“아, 아니야. 아들.”

내가 어머니와 백원종을 번갈아 보며 묻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어머니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백원종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긴 뭘 아니여. 하하하하!”

“뭔데요?”

“아니, 이제 분식집, 메뉴 뽑아내는 것도 그렇고 매출도 안정적이어서 새로운 메뉴 좀 나한테 가르쳐


달라 그러셨거든. 어머니 요리 잘하는 거 알지? 이미 분식집 메뉴에 두 개가 더 추가됐는데, 그것도 금방
하시더라고. 응용도 하시고.”

“아 그래요?”

내가 환생하자마자 눈을 떴던, 분식집의 메뉴가 백원종의 솔루션을 받아 계란 볶음밥과 불 맛 라면으로


줄었다가, 그 메뉴들이 나오는 속도가 안정화되고, 손님이 계속해서 많아지자 메뉴를 추가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메뉴들까지 모두 섭렵해서 또 가르쳐달라고 했던 모양인데, 백원종은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머니가 잘되면 잘 될수록 보람차고 기뻐했는데, 지금의 반응은 내가 자신보다 요리를 잘하니,
나에게 메뉴를 받으라는 식이었다.

“그래도, 대표님께서 프렌차이즈나…….”

메뉴라면 만들어줄 수야 있지만, 나는 큰길을 가야 되는 사람 아니겠나.

어머니의 성공도 그만하면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프렌차이즈는 내가 전문가인디, 자네가 요리 전문가잖아. 어머니가 요리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가게를 슬슬 확장할 땐데, 그 분식점에 ‘반유현 특선 메뉴’라고 써 붙여서 하나 팔면 잘
팔리겠더만.”

“아니, 아니에요! 우리 유현이 바쁜데, 내가 일을 만들면 안 되지! 그냥 메뉴 그대로 할게요!”

“어머니도 참. 아들 눈치를 왜 봐. 그동안 먹여주고 키워 줬는데. 안 그래 아들?”

백원종이 그 말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엄마, 요리를 얼마나 잘했었죠?”

한국에 완벽한 ‘내 사람’이 있으니, 확률은 낮겠지만 어머니를 이용해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김에, 2021, 내년 서울 미슐랭 스타를…….’

내 행동은 단 하나의 헛됨도 있어선 안 될 효율이어야 하니까.

***

어머니와 백원종은 며칠간 파리와 주변국의 여행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직 레스토랑 오픈의 초창기이니, 일정을 잡아보고 한국에 잠시 들어간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파리 내에 있는 내 레스토랑의 모든 예약이 꽉 찬 어플을 보며, 내 레스토랑들을 순회했다.

먼저,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였다.

“반 셰프!”

“반 셰프! 서운하던데?”

루시앙과 올리버, 이젠 날 보면 함박웃음을 짓는다.

“진짜, 대단해 이 어플리케이션! 인건비도 줄이고, 손님들도 한눈에 예약 일정을 볼 수 있어서 편하고.”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는 루시앙의 지분이 더 많이 들어있는 레스토랑이었지만, 내가 만든 예약


어플에 추가해줬다.

어쨌든 이곳에서도 나의 파스타 요리를 맛보기 위해 올 사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어플에서 예약할 수 있는 레스토랑 중 어디가 제일 손님이 많은가.”

“당연히, 반유현, 레드, 블루, 옐로 그 다음 ‘레드 테이블 - 반유현’ 순이네요.”

“허허허. 귀신같이 내 지분이 적게 들어간 순이구만?”

루시앙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자, 올리버가 말했다.

“큰일이네요. 셰프님, 이제는 반 셰프의 스승이라는 타이틀도 먹히지가 않으니까요.”

“허허허. 올리버, 자네 반 셰프를 뭐로 보나? 반 셰프는 은혜를 그렇게 저버릴 사람이 아니야. 반
셰프가 나를 스승이라고 언질만 해주면, 문제없잖아?”

“큭큭.”

중년의 두 남성이 콩트를 하듯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니, 반 셰프, 글쎄, 그랜드 오프닝 그 현장에서 루시앙 셰프님이 너무 맛있거나 감동하는 표정을
지으면 본인이…….”

“허허! 올리버, 자네는 못 하는 말이 없네.”

그 뒤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유현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루시앙은 맛있어도 맛있다고 표현을 못 한 것이다. 그저,
무협지의 스승처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 정도를 보여줬다는 것.

루시앙이 그랬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올리버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런 저런 얘기를 한 뒤에는, 시금치 파스타, 버섯 파스타 등 봄철 재료를 이용한 파스타의 레시피를


보여주고 직접 시연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거린 뒤, 똑같이 시연해 보이며 나의 테스트를 기다렸다.

이제, 그와 나와의 직급은 자연스럽게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나에게 미슐랭 포스타라는 확실한 명함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나의 입지는 그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올해는 투스타를 받았으니까, 내년엔 쓰리스타를 받아야죠, 이곳에서.”

투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에서 쓰리스타를 받으면, 미션에 필요한 별 중에서 한 개가 추가되는 것이다.

내 한마디가 두 중년의 셰프에겐 강력하게 들렸는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이었다.

“충! 성!”

“뭐냐 그건.”

메이, 헨리, 제리, 최민성이 나에게 경례로 인사를 했다.

“오버 좀 하지 마라 민성아.”

군대를 갔다 온건 대한민국 국적의 최민성뿐이었으니, 그가 생각한 인사법인 게 분명했다.

최민성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흔들렸다.

그랜드 오프닝에서의 내 활약이 이곳까지 소문났는지 이들도 꽤나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오늘, 코스 테이스팅 있잖아.”

“준비하겠습니다!”

이곳은 내가 두 달 주기로 메뉴와 코스를 구성해놓고, 테스트 받는 레스토랑이었다.

식자재의 신선도와 홀의 청결 상태를 확인했을 때쯤, 이들이 메뉴를 들고 나왔다.

“농어찜, 크림 소스가 너무 묽어, 이 요리에 쉐어 되는 와인도 바꿔. 식물성 풍미가 주로 나는,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으로.”

“예! 셰프!”

메뉴의 맛은 꽤나 준수한 편이었다. 내가 주방을 비우는 날이 많은데도 수준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생의 동료들을 미리 섭외하길 잘한 것 같다.

특히나 최민성은 이번 생에 처음 만난 인연인데 부족함 없이 잘 융화되고 있었다.

“이대로 열심히 계속해. 레스토랑 반유현, 그 뒤에 너희의 이름이 붙을 날도 있을 거야. 그리고, 여기도
2021 년에 쓰리스타를 받아야지. 그렇게 될 거고.”
아주 오랜만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아서 그런지, 네 명의 셰프 모두 감동한 표정이었다.

나는 곧바로 포시즌스로 이동했다.

포시즌스는 영업 날이었기 때문에, 이미 레스토랑 안에 손님들이 가득했다.

“와, 반유현 셰프다!”

“진짜로 있네! 이름만 세워 놓은 게 아니라 직접 주방을 운영하는 거였어!”

손님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무시하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셰프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아직 이곳은 미슐랭 스타를 얻지 못한, 올해에 미슐랭 스타를 받아야 할
주방이었으니까.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총괄 셰프들이 다가와 곧장 보고를 한다.

“셰프님 오셨습니까, 그랜드 오프닝에 선보였던 참치국수가 인기여서, 다음주까지 계속 코스에


유지해볼까 합니다.”

“저희 레드에서는 메뉴 중간에 나가는 맑은 대구탕이 반응이 좋습니다. 그런데, 대구를 공급하는
업체에서 가끔 질 나쁜 대구를 줘서……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저희 옐로는 셰프님께서 알려주신 특제 기름으로 볶음요리와 튀김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웍을 돌리는 화구를 추가로 설치해야 할 것…….”

불과 몇 달 전, 로또 육인방과 레스토랑을 차리며 그들에게 호통쳤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출신 셰프들이 나에게 모든 상황을 보고했다.

5 성급 그 이상의 팔라스 등급의 호텔, 그 호텔의 모든 레스토랑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셰프, 그게 나였다.

“맛의 수준은 계속 올릴 거야. 내 생각의 맛이 10 점이라면, 이 세 개의 레스토랑 다 6 점대야.”

내 말에 셰프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서빙 되고 있는 것들은 모두 내가 허락했던 요리들이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이 요리들이 최고의 맛인 줄 알고 있을 터였는데, 나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 생각과


반대되는 말이었다.

“유, 육 점이요?”

이곳은 나 스스로도 맛의 기준을 높게 세워둔 곳이었다.

레드, 블루, 옐로, 총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 각각 세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으리란 계획을 하고


있었으니까.

미슐랭 쓰리 스타라 함은, 나도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정도 규모의 레스토랑이라면 나


혼자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년, 총 아홉 개. 아홉 개의 별을 얻을 거야. 그런 각오로 일한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요리의 맛은 6


점도 많아. 알겠냐.”
“예! 셰프!!”

총괄 셰프들 뿐만 아니라, 내 말을 모두 들었는지 주방의 기세가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반유현 팀의 직원인 오스틴이 주방으로 내려왔다.

“너 자꾸 직원이랍시고 주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다름 아니라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급한 일인지 들어볼게.”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셰프님을 정식으로 초청하시겠다고…….”

쭈뼛쭈뼛 오스틴이 입을 열었다.

“청와대? 대통령님? 이렇게 바빠 죽겠는데 뭔 청와대야.”

“그……. 국위선양하신 분들이 초대된…….”

“거절해. 그리고 너는 주방에 함부로 들어 오지 마. 셰프들의 공간이니까.”

57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3)

“어이, 홍보담당,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창피한 일이야. 쯧쯧.”

“죄송합니다.”

“VIP 께서 특히나 염두에 두고 있는 분이 반유현 셰프라고. 아니, 프랑스에 갔다 왔다면 섭외를 당연히
했어야지. 오늘 아침 회의에도 반유현 셰프의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

청와대 사회문화정책 비서관의 말이었다.

반유현의 섭외가 불발되었다는 소식에, 연신 혀를 차며 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만날 시간도 없었다니, 자네들 비행기값 다 세금이야, 세금.”

이번 ‘국위선양자 초청 만찬’에 반유현 셰프를 초대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담당과 정책실


행정관을 프랑스로 파견했었다.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권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고위급 공무원 두 명을 파견 보낸 것은 반유현을


섭외하는 것에 큰 목적이 있었다.

“VIP 께서 이미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다네. 국정운영에 일들이 많아 당시에 못 했던, 2020 도쿄에서
활약한 선수들에게 만찬을 열어줄 것도 그렇고, 이번에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TTS 와 봉 감독,
그리고 그 스텝들까지 한 번에 초청해서 만찬을 준비하시겠다는 생각이신데, 그 자리를 빛낼 감초로
반유현 셰프를 초대하신다는 계획이란 말이야…….”

2020 년, 한 해 동안 국격을 높이고, 국위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을 초청해 만찬을 하는 자리.

그 자리의 요리가, 근래에 가장 주목을 받는 셰프인 반유현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에는 논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홍보담당관은 반유현을 섭외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VIP 와 비서관님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나, 문제점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본 바로는, 반유현 셰프가
청와대 국위선양자 만찬에 요리를 하는 것에 큰 영광을 얻고, 영예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그의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이 전 세계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자, 자네 생각은 우리 측에서 고개를 숙이면서 그를 초청해야 된다는 말이야?”

“뭐……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직접 프랑스를 갔다 온 홍보담당관이 느낀 바는 그랬다.

아무리,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또, 청와대의 이름으로 그를 초대한다고 해도 그가 움직임을


보일지가 의문이었다.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인근, 유럽 각국의 총리급 인사들이 직접 방문 예약을 하고 웨이팅을 하는
시점,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들이 SNS 에 반유현의 레스토랑을 극찬하는 시점에, 청와대 만찬이 그에게
중요한 자리가 될 것 같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폭발적으로 몸값을 올리고 있는 그를 움직이려면 확실한 미끼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반유현 셰프를 원하시면 다른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카드.”

“뭐, 이번 만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중 문화훈장(文化勳章)을 수여한다는 것을 밝힌다든가…….”

문화훈장은 말 그대로 국가에서 내리는 상훈이다.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상.

1 등급부터 5 등급으로 나뉘어 있는 이 상의 후보자를 선정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번 국위선양자 만찬에


참석하는 이들이 이 후보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말을 해서라도 그를 만찬에 초대하고 싶으신지부터 VIP 께 여쭤봐야겠는데. 일단 보고를 드리지…….


근데, 자네 생각은 그가 그 정도의 인물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

효율을 위해 계획에 없던 일들을 수행해야 될 때가 생긴다.

나는 여러 가지 판단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빕구르망을 목표로 하고 다른 가능성을 더 찾아보는 걸로.’

빕구르망.

이 또한 미슐랭 가이드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맛이 좋은, 즉 가성비가 좋은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것을 부르는 말이었다.

어머니의 분식집은 빕구르망을 목표로 도와주면서, 우선, 어머니의 요리 실력을 볼 생각이었다.

프랑스로 넘어가기 전 꽤나 괜찮은 요리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괜찮은 요리 실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곧장 계획을 바꿀 생각이었다.
한국에 곧장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것으로 말이다.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에 소속된 내 옛 전생의 동료들은 아직, 프랑스 파리가 아닌 다른 나라에


파견시키기에는 실력에 부족함이 있었다.

아직까지 내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상황, 한국에서 나의 레스토랑을 맡아 줄 사람이 분명하게


있다면 이곳에서도 미슐랭 스타를 노려보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인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온 제안이 나를 이끌었다.

문화산업 훈장. 국가에 기여한 사람들에게만 수여된다는 그 상.

뭐든지, 국가에서 수여되는 상에는 엄청난 권위가 생긴다.

만찬에 참석해 제대로 눈도장을 찍으라는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담당의 말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왕


한국에 들르는 겸해서 그곳에도 가볼까 생각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김에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씨앗을 뿌려놓고 갈 예정이다.

“왔어? 유현아. 이거 스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렵네.”

“하시던 것처럼 편하게 하세요, 감독님.”

이성찬이 공항에 직접 마중 나왔다.

전 세계 방송국에서 유일하게, 그에게만 촬영권을 부여해줬더니 나의 입지를 깨닫고는 나를 어려워했다.

레스토랑 내에 카메라가 많으면 어수선할 수 있고, 나와 그나마 친분이 있는 그를 선택했던 것뿐이었는데.

“일단, 집으로 갈까?”

“예.”

내가 이 몸으로의 환생을 시작한 분식집에 도착하니, 꽤나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일단 같은 층에 있던 가게를 밀어내고 분식집을 확장시켰고, 건너편 건물은 ‘대기실’의 명목으로 꾸며


놨다.

그리고, 그 앞에 일렬로 줄을 지어선 손님들.

“와! 반유현 셰프다!”

“뭐? 파리에 있는 거 아녔어?”

우와아아아!

나의 등장에 환호를 내지르는 손님들이었다.

나의 깜짝 등장이 놀라웠던 모양이다.

“어머, 어머! 이 집 아들을 이렇게 실물로 볼 줄이야!”

새롭게 뽑힌 직원들도 나의 등장에 매우 놀란 눈치였다.


주방에 있던 아줌마들이 환호했다.

“왔어? 우리 아들!”

주방에서 곧장 어머니가 달려와 나를 안았다.

나는 지체없이 말했다.

“어머니, 백원종 대표님 대신, 제가 직접 메뉴 개발을 도와 드릴 거예요. 그 전에, 일단 어머니 요리


실력을 제가 시험해보고 싶은데…….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이 주는 느낌 자체가 비즈니스를 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 안으로 들어가 있어 유현아.”

그런데, 웬걸, 어머니도 나에게 요리 테스트를 받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 순간 나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아니라, 셰프였다는 것은 어머니의 열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 요리 자체에 욕심이 있으셨던 건가.’

주방 뒤편에 마련된 공간, 직원들이 휴식하는 공간에 내가 들어가 있자 어머니가 금방 요리를 해


가져오셨다.

“고추장 황태구이야. 양념장도 엄마가 특별 만든 거고.”

고추장 황태구이.

결론부터 말하면, 꽤 맛있었다.

고추장을 만드는 것부터 손수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맛이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아들. 유현이가 온다고 했을 때부터 엄마가 준비한 야심작이야.”

100 년을 넘게 살면서 먹어 본 적이 있었나.

뚜렷하게 기억나질 않는 것 보면, 비슷한 요리들은 수없이 먹어봤어도, 고추장 황태구이라는 명칭을 가진
요리는 먹어보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나의 어머니인 이영미 여사께서 손수 고추장을 담가 만든 요리였으니, 이 요리는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요리였다.

“매실…… 생강…… 조청인가?”

양념장의 맛을 보니,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불어, 내가 어떻게 단 한입을 찍어 먹고 그 맛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셨는지, 본인도


고추장을 찍어 먹었다.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매콤함과 달콤함이 반반 섞인 고추장 양념에, 새콤함이 아주 조금 드러나 있었다.


이 새콤함이 이 요리의 기본 베이스를 망치지 않고 나오는 것에서 어머니의 실력을 얼추 실감했다.

황태의 살을 씹을 때도 어머니의 요리 실력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초벌구이를 한 번 하신 뒤에, 양념장을 발라, 한 번 더 구우셨네요.”

“어…….”

“초벌구이하실 때, 발랐던 들기름이 양념장과 황태 본연의 맛을 연결시켜 주기도 하고요. 이런 걸 어디서


배우셨어요?”

“예전에, 우리 엄마. 유현이 너 외할머니가 하시던 걸 보고 했는데, 확실히 살의 질감과 양념장과 살이


어우러지는 풍미가 다르더라고.”

“맛있네요.”

“유현아 엄마라고 봐주지 말고 솔직하게 평가해줘.”

언론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많이 보셨던 것일까.

내 입에서 ‘맛있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셨다.

“맛있어요.”

10 점 만점 중, 5.1 점 정도.

포시즌스의 맛이 6 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일단 어머니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

지난 100 년간, 백악관, 엘리제궁, 윈저 성, 모든 곳을 밥 먹듯이 들락거렸지만 청와대는 또 처음이었다.

태권도, 육상, 체조, 영국 축구리그 선수 등 지난 한 해 국격을 높였다고 칭송받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그중 나와 안면이 있는 TTS 의 멤버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오셨어요 반 셰프님?”

연령대가 비슷한지라, 내게 다가오는 게 친근하게 느껴졌나 보다.

나도 여유롭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예술, 예술이었어요, 진짜.”

TTS 의 멤버인 정영돈이 나를 보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에 따라 이 공간의 모든 시선들이 나를 향했다.

올림픽 스타, 스포츠 스타들도, TTS 와 이렇다 할 연을 만들고자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찰나에 내가
등장한 것이었다.

그 부러움 한 가득인, 노골적인 시선들이 나에게로 쏠리자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오늘도 요리를 보여 주신다고 해서, 저는 스케줄도 미루고 왔어요. 파리의 기억이 아직도…….”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게, 다른 이들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대통령을 영접하기 전, 대기 공간인 이곳의 정적이 더욱더 깊어만 갔다.

“오늘은 어떤 코스예요? 너무 기대돼요, 반유현 셰프님. 흐어.”

코스? 나는 이들의 기대와 반대되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추장 황태구이를 할 생각입니다.”

“예?”

“예에?”

고추장 황태구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들은 더욱더 나를 조였다.

청와대 관계자들까지 나를 바라보는데, 오늘 코스에 대해서 꽤나 많은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저희 어머니께서 개발하신 요리인데요. 모자란 부분을 조금 채웠습니다. 보리밥하고, 맑은 대구탕,


돼지고기 호박 볶음, 한식의 대표인 잡채, 그리고 고추장 황태구이로 오늘 만찬을 구성했습니다.”

다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프랑스 코스, 정찬이라고 불리는 화려함만이 요리의 전부가 아닌데.

‘해주면 먹을 것이지.’

그리고 불쾌하기도 했다. 어딜 가던 최고의 대우만 받던 이들이라, 나의 요리를 먹는 게 얼마나 영광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태도를 고쳐주려고 말했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돼지고기 호박 볶음과 잡채를 빼겠습니다. 대구탕, 고추장 황태구이 볶음, 그리고
밥만 있으면 될 것 같네요. 아, 대구탕도 필요 없을 것 같네요.”

58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4)

“반찬 세 개로…… 국위선양자 만찬을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처음엔 요리를 한식으로, 다섯 개 정도 구상했는데 그것마저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장소와 행사는,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곳이 아닙니다만. 본인의 레스토랑에서나 그런 짓을


하시죠.”

“그런, ‘짓’이요?”

청와대 내에는 총 다섯 명의 조리팀장이 있었다.

한식 두 명, 일식, 중식, 양식 각 한 명.

그중 내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사람은 한식 팀장 중 한 명인 박건우였다.

백발의 짧은 머리를 뒤로 넘긴, 중년의 남성이었다.


“대통령께서 프랑스 파리, 한불문화교류 행사에 참가하실 때, 동행했었습니다. 그 당시, 반유현
셰프님의 갈라디너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의 반유현 셰프님의 태도도 인상적입니다. 물론,
상당히 안 좋은 쪽으로요.”

그는, 한불문화교류행사에 대통령과 동행한 조리팀장 중 한 명이었다.

말투는 나를 존중하는 듯하지만, 표정은 거만하고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셰프로서의 반유현은 인정하지만, 청와대 조리실의 권위를 나에게 인정시키려는 것 같았다.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국내 귀빈들을 모신 이런 자리에서 밥, 반찬, 국 세 가지의 요리를


하다니요.”

“셰프가 준비한 요리를 평가 절하하는 게 더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대기실 내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세계적인 운동선수들, 그리고 감독과 스타들,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는 이들이었다.

자신들이 방금 전 했던 대화들이 이렇게 번진 것에 대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셰프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무지한 탓에, 그런 예의를 몰랐습니다. 셰프님의 코스 요리를 한 번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감이 너무 컸던 터라, 저희도 모르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TTS 의 멤버인 김호가 내게 와서 말했다.

자신들의 멤버들이 내가 구성한 요리에 대해 실망감을 비쳤고, 그것들이 지금의 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나에게 대신 사과했다.

그런데, 지금 조리팀장 박건우와의 대화는 그것과 별개의 문제였다.

“여기가 어떤 곳이라고……!”

나도 국위선양자의 자격으로 초대된 것인데, 박건우는 내가 만찬을 준비하는 셰프로 초대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VIP 와 귀빈분들께 요리를 대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그런 거만함과
겸손함으론……. 제 요리경력이 훨씬 많으니까 새겨 들으십쇼.”

그가 권위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나는 웃으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그를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는지, 그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점점 더 드러났다.

“망할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

“나라를 빛내 주신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식사를 대접하면 어떨까 해서, 반유현 셰프를 모셨습니다. 아,
물론,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우리나라를 빛낸, 문화 예술계의 한 분으로 초대된 것입니다. 하하하하!
초대된 손님, 그리고 셰프, 두 일을 동시에 수행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만찬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청와대 조리 팀장인 박건우가 내게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미안하기도 합니다. 우리 조리실 직원들에게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에 대해서 너무 많이 얘기를
해서요. 물론, 우리 조리실의 직원들 요리도 너무나 훌륭합니다. 하하하! 그니까, 비교를 하려는 게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가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입이 닳도록 말한 건데, 오늘 그 요리를
직원들에게도 선보일 수 있어서 좋네요. 더불어 초대된 모든 분들에게도 최고의 요리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고요. 반유현 셰프님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위기감.

질투와 시기를 넘어선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이었다.

대통령님께서 저 정도로 나의 얘기를 했다면, 밥그릇을 빼앗길 것만 같은 본능적인 느낌을 받았을 테니까.

그런데, 난 청와대 조리실 따위에 관심이 없기에 박건우를 비롯한 청와대 조리실 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대구탕은 해줘야겠네.’

밥하고 고추장 황태구이로도 저들에게 만족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대통령이 내가 좋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으니, 대구탕을 다시 추가해서 요리를 내어놓았다.

밥, 국, 메인요리 그리고 청와대 조리실에서 내어 준 김치나 장아찌와 같은 것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크아!”

맑은 국물의 대구탕,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도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건, 한국인이 유일하다.

“우와……. 시원해.”

무와 다시마, 그리고 멸치육수가 낸 진한 맛이 온몸을 개운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어떤 탄력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탱글탱글한 대구의 살이 입을 즐겁게 해줬다.

적당한 힘을 주어 부순 대구의 살에서 내리는 고소하고 담백한 풍미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이 황태구이면, 밥 100 공기는 먹겠다.”

어머니의 요리에 영감을 받아 그것을 발전시킨 고추장 황태구이 또한 엄청난 반응을 이끌고 있는 중이었다.

젓가락으로 부숴 입으로 넣은 황태는, 앞선 대구탕의 대구와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식감이었다.

대구와 황태의 식감을 ‘쫀득함’이라는 그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질감이 달랐다.

살이 부서지는 결이 다르다. 대구는 뭉슬뭉슬 무너져 내리는 반면 황태는 쩍쩍 찢어지며 안에 배어있는


양념과 기름을 뱉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씹을 때마다, 황태 특유의 고소함이 올라왔다.

“와……. 한식의 장인이라고도 불릴 만한…….”


자연스럽게도, 청와대 조리실에서 내온 작은 반찬들에는 손이 가지 않는 상차림이었다.

내가 그들의 요리를 먹어봐도, 딱 평범한, 그 정도 수준의 반찬이었으니 내 요리와 같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저 반찬들의 신세가 처량했다.

모든 테이블의 대구탕과 황태구이가 사라진 것에 반해, 반찬들은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그때, 박건우와 조리복을 입은 그 부하 직원들이 접시를 들고 걸어 나왔다.

“각하, 반유현 셰프께서 원래 준비한 요리 중에 몇 가지를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재료를 버리기가


아까워 저희가 호박전을 한번 해봤습니다.”

돼지고기볶음에, 호박도 함께 볶아 곁들여 먹으려고 했었던 건데, 내가 그 요리를 하지 않자 박건우가 그


식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들을 보고 위기감을 더 확실하게 느꼈는지, 박건우가 대통령 옆으로 걸어와 말을


하곤, 직원들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직원들은 접시를 각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호박전?’

호박의 겉에 전분과 밀가루가 묻혀진 것과 그 형상만 봐도 맛을 알 수 있었지만, 호박 그 자체를 메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양식 대부분의 요리들이 호박을 그 자체인 메인 식재료로 쓰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흠.’

호박전을 한입 베어 물자, 호박 특유의 단맛이 올라왔다.

그리고 기름도 일반 올리브유나 식용유가 아닌 여러 종류의 기름들을 혼합해 만들어 그 고소함도 괜찮았다.

‘콩기름, 옥수수유, 올리브유는 거의 안 들어갔군.’

확실히 대한민국 최고라 자부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실력은 나쁘지 않는 편에 속했다.

그런데, 호박의 수분기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씹을 때 물이 너무 많은 느낌이었고 호박 특유의 냄새,


호박 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역시, 우리 조리팀장이야. 하하하하!”

“어우! 이것도 맛있네요!”

그런데, 호박전을 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족하는 말과 표정을 지었다.

“청와대의 호박전은 뭔가 다른 게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하.”

이곳이 청와대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주는 맛도 그랬을 것이고, 나는 원래 호박전이라는 음식이 이 정도의


맛으로 만족감을 주는 음식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박건우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제 요리가 뭐,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이 행사장 내에 있는 사람들이 만족감을 표해줬다고, 금세 자신감이 올랐던 모양이다.

무시할까. 말까. 의미도 없으니 무시하자. 라고 생각했을 때, 박건우가 나를 건드렸다.

“저도 호박 말고, 대구, 황태와 같은 좋은 식재료를 썼다면, 이 정도 맛은 낼 수도 있었을까요?


하하하하.”

같은 식재료를 이용한다면, 나의 요리를 이길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내 웃음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다시 한번 주변인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똑같은 재료로. 제가 한번, 해 드릴까요? 호박전.”

“오오.”

대통령님의 기대감은 표정을 통해 드러났고, 국위선양자로 초대를 받은 이들도 그와 같았다.

다만, 박건우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하……. 하하. 뭐 굳이. 그런……. 대결을 하자는 말씀이신가요?”

마음속에 여유가 없지만, 여유로움을 억지로 표현하고자 하는 웃음.

박건우의 지금 표정이 그랬다.

***

호박전, 그 음식을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내겐 생소한 음식이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먹어봤겠지.’

박건우의 되도 않는 도발적인 말을 듣고, 그가 만든 호박전을 한 번 더 집어 먹었다.

그리고 그 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레시피가 떠올랐다.

곧장 테이블에 도마와 칼, 그리고 가스버너가 준비되었다.

대통령의 제안 때문이었다.

“반유현 셰프님, 그 과정도 이곳에 오신 손님분들이 보신다면 좋으실 것 같은데,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완곡한 요청에 나는 음식을 먹었던 테이블 위에서 그대로 요리를 시작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환호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우와아아아!
칼이 도마를 울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다다다다다!

나는 호박을 가늘게 채 썰어, 그것을 준비된 용기에 넣고 소금을 뿌렸다.

삼투현상을 일으켜 수분을 빼내는 작업이었다. 또한 호박 특유의 냄새를 줄일 수도 있으며, 수분이


적절하게 빠진 호박은 식감도 좋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옥수수 전분과 감자 전분을 용량에 맞게 넣어 버무렸다.

그리고 그것을 곧장 팬에 올렸다.

반달 모양으로 큼직하게 썰린 박건우의 호박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채 썰린 호박들이 엉켜있고, 그것을 가지런히 편 상태에서 뒤집어가며 구웠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저 조리장들의 긴장한 표정이 보인다.

치이이이익!

노릇하게 구워진 전을 접시에 담고 박건우를 먼저 불렀다.

“조리장님, 먼저 맛보시겠습니까? 대통령께 드려야 할 요리니, 먼저 좀 드셔보시죠.”

박건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고, 방금 막 꺼낸 호박전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초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크흠!”

정신을 차린 박건우가 헛기침을 한 뒤에 나를 보곤, 다시 한 점을 빠르게 집어 먹었다.

“다른 분들께도 이대로 서빙하면 될까요? 맛이 괜찮으십니까?”

나의 물음에 박건우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 그…….”

59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5)

조리복의 오른쪽 팔, 파란 글씨로 ‘청와대’라고 적혀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박건우의 표정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 미묘했다.

불안감, 초조함이 드러났으며, 열등감, 질투로 불리는 내적인 감정까지 드러났다.

“와, 바삭해! 그리고 달아!”

“바삭하다가도 씹었을 때, 호박의 식감이 없는 건 아니잖아.”

“이건……. 와.”

수분이 가득한 채소를 씹는 느낌의 호박.


내가 방금 만든 호박전은 그것과는 다른 식감을 보여주었다.

가늘게 국수처럼 채 썰린 호박들이 엉켜 있는 그 빈틈이 전혀 다른 식감을 선사했다.

“호박 특유의 냄새가 아예 없는데?”

박건우는 호박을 반달썰기로 큼직하게 베어내 기름에 부쳤기 때문에, 호박을 씹으면 호박 안에 있던
수분이 한 아름 쏟아져 나온다.

그 수분에는 호박이 갖는 단맛이 많이 함유되었지만, 호박 특유의 냄새를 동반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냄새가 호박을 못 먹을 정도로 역하거나, 불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 냄새가 없다면 맛의 수준을 더 끌어


올릴 수 있다.

“이거는 채썰기를 해서 그런지, 물이 팍팍 안 튀어나오네, 고소한 기름의 향이 더 강해. 그리고, 호박의


단맛은 살아있고…… 오묘해.”

TTS 의 멤버 김호였다.

나를 바라보며 감상평을 뱉어댔다.

평소에 요리에 관심이 많다더니, 입에서 전해지는 자극들에 집중하는 방법을 아는 듯했다. 더군다나
박건우의 호박전이라는 확실한 비교 대상이 있으니, 감평도 구체적이다.

“어우.”

오스카 시상식을 휩쓴 봉 감독은 내 요리를 먹고 어떤 영감이라도 받은 듯이 감탄을 내뱉었다.

“제가 요리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음. 그 단순한 호박전이 어떻게 이런 맛을…….”

사람들의 감탄이 모두 끝났을 때는 내가 설명을 이어갔다.

“박건우 조리장님께서도, 분명 수분을 빼는 작업을 하셨을 텐데, 반달썰기의 호박은 한계가 있습니다.
표면적이 채썰기를 한 호박보다 작으니까요. 아주 단순한 원리인데, 왜 요리에는 적용을 못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분명, 조리장님이시라면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 궁금합니다.”

당연히, 아주 정중하고 겸손한 저자세를 유지하며 말했다.

내 말에 사람들도 그 점이 궁금했는지 박건우를 바라봤다.

이미 맛에서 차이를 봤기 때문에, 이 맛의 차이가 확실한 실력에서 온 차이인지 박건우의 의도적인


조리법에서 나온 맛인지 궁금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박건우의 경직되었던 표정은 풀릴 줄은 모른다.

실력의 차이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는 알고 있던 탓이었다.

“저, 전통적인 호박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겁니다.”

“전통을 위해 맛의 한계를 규정짓는 게 한식이라면…… 제가 알고 있던 한식은, 이 현지의 한식과는


달랐군요.”

“뭐, 달랐나봅니다. 맛이 없지는 않잖아요?!”


“조리장님 말씀대로라면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는걸, 그냥 먹는 게 한식입니까?”

내 말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박건우가 한식을 평가절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리장님! 왜 한식의 맛이 규정되어 있어요? 허허허허. 청와대 조리장이 우리나라 전통요리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대통령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마도 박건우가 한식의 한계를 규정지은 것에 대한 항의였으리라.

확실한 건 그의 웃음에 어느 정도의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흠……. 죄,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빠른 인정 덕분에 나는 그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켜주지 않아도 이미 테이블 위의 호박전이 우리 둘의 실력 차이를 입증하고 있으니까.

“수분을 빼는 작업에 신중을 가했습니다. 호박의 단맛은 유지하고, 호박 특유의 냄새는 없애고, 또한
식감까지 유지하는 적정선에서 수분을 뺏습니다. 그 핵심은 채썰기였죠. 또, 콩기름, 옥수수유로 기름을
제조해 전을 부칠 때 기름의 향이 극대화되도록 했습니다. 단맛 뒤에 올라오는 기름의 고소함을 느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각 테이블 위에, 내가 만든 호박전은 ‘완판’되었다.

박건우의 호박전이 더욱더 처량했던 건, 내 호박전과의 모양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이블 위에 올려있는 모든 호박전이 박건우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감사합니다. 오늘 제 요리를 선보일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와아아아아!

정찬요리, 코스를 바랐던 사람들도 이미 나의 퍼포먼스와 요리에 매료되었는지.

내가 마지막 인사를 하자 기립박수가 쏟아져 내렸다.

‘호박 요리…….’

그 환호와 박수를 즐길 새도 없이, 내 머릿속에는 아이디어들이 솟구쳐 떠올랐다.

***

[ 반유현의 호박쇼! 극찬.]

[ 한식 무형문화재로 등극해야 되나. ]

[ 대통령 “역대 먹었던 밥 중 가장 맛있었다. 어머니 생각이 저절로 나는 맛.” ]

[ 유명인사들 연이어 극찬, 반유현 한국 진출의 발판이 될까. ]

[ 청와대 조리장들과의 신경전이 있었다? ]


청와대 출입기자들, 당시 청와대에 함께 있던 기자들이 찍어내는 기사는 역시 자극적인 맛이 강하다.

일단 조회수가 목적일 테니, 이해는 된다만 이것을 필터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 반유현. “고추장 황태구이는 어머니의 요리에 영감받은 것.” ]

“유현아 굳이…….”

“맞잖아요. 어머니의 레시피가.”

내가 짧게 웃음을 보이며 말하자, 어머니는 또 글썽이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어머니가 요리에 욕심도 있으시고, 이름을 알릴 때도 되셨죠. 분식집을 계속하기엔 아까운 실력이세요.
더군다나 아들인 제가 있고요.”

내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굳이 어머니를 언급한 이유는 지난번, 어머니의 요리에 잠재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정도 나이의 사람들은 원래, 잘 흡수를 하지 못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가르쳐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잠재력이에요. 세월에 의해 경험과 노련함을 갖췄고 거기에 배우는 자세까지
곁들여졌으니까요.”

“그, 그러니?”

파리, 포시즌스에서 열린 내 그랜드 오프닝을 보시고 나서는 나를 불편해 하셨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아들이 두려울 법도 하지만, 내 입장에선 해드릴 게 없었다.

매 삶 같은 이유였지만, 딱히 설명할 거리가 없지 않나.

나의 계획을 차근히 설명할 뿐이었다.

“제가 이번에, 청와대에 가서 호박에 대한 잠재력을 봤습니다.”

“호박?”

“네, 한식에는 호박을 주된 식재료로 이용한 요리들이 많더라고요.”

의도치 않게 받은 영감이었다.

서양의 식재료에서 호박이라 함은 주로 단호박.

스프나 라떼, 파이, 또는 쿠키에 들어가는 것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한국의 요리들은 단호박 말고도 무수히 많은 종류의 호박들이 주된 식재료로 쓰이곤 했다.

“강력한 맛을 내는 것은, 식재료를 탓할 게 아니라 실력이고요. 호박은 그 자체에 영양소도 많고 색채도


다양하고 요리의 종류가 많다는 것에서 잠재력을 봤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아직 없습니다.”

“뭐가 없어?”

“호박을 전문 식재료로 한 레스토랑이요.”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상으론 없었다.


내 100 년의 경험을 통틀어 봐도, 호박이라는 식재료를 이용해 코스요리를 구성하는 레스토랑은 없었다.

하루하루 주제를 바꾸는 레스토랑에서 호박을 주제로 하는 날은 있어도, 호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스토랑은 없었다.

“왜 없을까? 호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스토랑이 없는 이유를 떠올리는 게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의


기본이라고 생각할 텐데, 이유는 상관없습니다. 결정한 이상 맛있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한식에 많이 쓰이는 재료인 호박을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식당이 없다는 것은, 괜스레 그것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했다.

수없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레스토랑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완벽한 차별성을 갖고 시작한다는 것은, 이


요식업계의 생태계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맛의 전제를 당연시하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 저희 동네, 파리에 ‘버섯’을 전문으로 요리한 레스토랑이 미슐랭 투스타를 보유하고 있거든요.
호박이라고 안 될 건 없잖아요? 특히나 한식에서 자주 사용되는 재료이기도 하고. 호박을 이용해서 하실
수 있는 요리가 몇 가지가 되시죠? 지금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어머니는 멍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했다.

단호박 영양밥, 단호박 죽, 새우 호박 볶음, 호박선…….

단호박에는 각종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들어 있어, 누구나 웰빙을 외치는 요즘 시대를 공략하기 딱 좋은
식재료였다.

더군다나 지금 내 앞에 놓여진 영양밥은, 맛 또한 괜찮았다.

“어.”

탄성도 감탄도 아닌, 나의 짧은 말에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맛있네요.”

어머니라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게 아니라, 맛있었다.

찹쌀, 찹쌀현미, 대추, 은행 등의 재료들이 단호박의 맛에 갇혀있지 않고 어울리는 맛이 좋았다.

천일염으로 적당히 간이 되어 있었는데, 그 소금의 맛은 전체적인 맛의 풍미를 올려주는데 기여했다.

달달한 단호박과 고소한 잡곡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더군다나 이 맛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생각하니, 이 요리를 싫어할 사람은 적어도 없어 보였다.

다시금 어머니의 요리 실력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 죽 먼저 먹었어야 됐나요?”


가장 큼직하고 색이 이뻐, 영양밥에 먼저 손을 올렸었는데, 죽이 있었다.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는 식감과 목 넘김 뒤에 올라오는 단맛 또한 일품이었다.

물론 몇 가지 조정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추가하거나 덜어내면 맛을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것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새우 호박 볶음?”

100 년의 인생 동안 언제, 어디서 먹어봤을 수도 있지만.

한식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이번 삶이 처음이라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새우젓으로 감칠맛을 살려서, 매운 고추하고 같이 볶아봤어, 새우 살도 지금은 냉동밖에 없어서…….”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의 맛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의도한 맛의 조화를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주목한 요리는 이 다음이었다.

“이건, 호박선이라고 한식의 범주에 확실하게 들어가는 거야. 유현이는 아마 처음 먹어볼 텐데,
먹어봐.”

호박선.

호박의 중간중간에 칼집을 내, 그곳에 고기와 각종 채소, 그리고 버섯을 넣어 육수를 얕게 깐 냄비에
끓여 익히는 요리.

호박의 단맛과 식감, 그리고 다른 재료들의 조화가 중요한 요리였다.

“엄마가,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볼 때 나온 요리야.”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문제로 나온다는 건, 이 요리가 확실한 한식이라는 것 아니겠나.

맛을 보완하면 충분히 메인 요리로 쓰일만한 요리였다.

나는 곧장 문제점을 집어냈다.

“냄비에 넣고 끓이는 것보다, 찜 솥에서 스팀으로 찌는 게 더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돼지고기와 표고버섯의 비율도 조절해야 될 것 같구요…….”

“그, 그래?”

일단 이 정도로 마쳤다. 지금 시간은 요리를 가르쳐드리는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백 대표님에게 전화해야겠습니다. 한국에 식당을 차리는 것에는 그분이 최고니까요.”

“으응?”

“이 분식집은 프렌차이즈로 만들어서, 시스템화시킨 뒤 알아서 굴러가게 만들고 어머니도 이제 맛을 쫓는


셰프의 길로 가시죠.”

다소 황당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백원종 대표도 내 말에 동의를 한 듯했다.

-역시! 그렇쥬? 지금 기다려요. 당장 갈게유! 반유현의 한국 진출, 그리고 어머니의 꿈을 이루는 일에


내가 동참할 수 있다니! 아들 한번 잘 키웠구먼! 우리 분식집 아들.

60 화. 실제로 보니 훨씬 빠르네 (1)

“계획은 이렇습니다.”

“……허허.”

약 한 시간 만에 우리 분식집에 도착한 백원종이 헛웃음을 짓는다.

“진짜여?”

“네.”

내가 말한 계획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죽여주는구만. 실행력이.”

“네.”

“나는 당연히 찬성이야. 유현이 자네랑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람이 줄 서 있는 걸 아는데, 나를


불러주니까 내가 고맙지.”

마침, 백원종이라는 좋은 사람도 있었고 그의 회사에서 자본과 인력을 투자받아 이 일들을 진행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다.

내가 다시 파리로 떠나간다 해도, 어머니를 도와주고 자문할 사람이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
사람이 백원종이라는 사실은 지분이 얼마나 섞이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어쩐지, 어머니도 참 요리에 욕심이 있으셨어. 그게 보통 욕심이


아니야. 내가 가르쳐드린 레시피를 뜯어보고 연구하고…….”

“대표님 회사에 투자를 받아서 이 분식집은 공장처럼 알아서 굴러가게 만들고, 어머니는 레스토랑에
집중하실 겁니다.”

어차피 매출과 수익에는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나의 요리 의도를 잘 파악하고 최고의 맛을


내, 미슐랭 스타를 얻게끔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분식집은 공장처럼 굴러가게 만들고 어머니는…… 뭐, 반유현 - 펌킨?”

“그렇습니다.”

“호박이라고 왜 안 하고?”

나는 지난 삶 동안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이름을 지을 때, 나의 이름 뒤에 색깔을 명명한다고


했었는데, 또 다른 표기 방식이 있었다.

한 종류의 식재료를 메인테마로 삼는 레스토랑에서는 그 식재료의 이름을 뒤에 붙인다.

“‘반유현 - 호박’은 좀……. 한글이 촌스럽다는게 아니라, 나중에 다른 국가로의 진출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니까요.”

모든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하자, 어머니와 백원종이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정확히는 ‘왜 모든 것을 생각해 놨다는 듯이 말해?’라는 표정이었다.


“계획대로 될 겁니다.”

“구, 구체적인 계획은?”

“이태원에 자리를 봐두었습니다.”

“이태원?”

“내일 다시 방문한다고 했으니, 바로 계약서 찍으시고 인테리어 작업 들어가시죠, 저는 메뉴 개발을 조금


더 도와드리겠습니다.”

이태원,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상권으로 손꼽히는 곳.

자본금이야, 백원종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한국인보다 외국이 많다는 그 땅에서, 앞으로 전 세계로 퍼질 제 이름을 홍보할 수도 있고요. 한식 그


자체를 홍보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네요.”

백원종이 어머니를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하이고. 어머니, 가장 비싼 땅을 또 고르셨구만요! 하하하하! 그래요, 아들이 힘껏 도와준다는데,


우리도 해봐요! 아들이 반유현인 것만큼 이 업계에서 좋은 아이템이 어디 있어!”

모든 것을 백원종과 그의 회사에 맡겨놓고, 나는 짧은 기간 안에 우리 어머니가 나의 요리의도를 파악하고


가장 높은 수준의 맛을 뽑아내는 것만을 생각하면 되게끔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유. 가장 맛있게만, 메뉴 구성을 해줘.”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로 진출할 레스토랑 ‘반유현’은 대한민국 최고의 외식사업가인 백원종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나로서도 좋은 일이다. 자잘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최고의 맛만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훈련시키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오픈 날짜는?”

“매번 그랬듯이, 방송 다음 날입니다.”

“무슨, 방송?”

“대표님 출연하시는 방송이요. 골목가게.”

골목가게 중간점검 편, 파리에서 나의 그랜드 오프닝을 촬영했던 그편.

나의 활약과 스타들의 멋들어진 리액션이 방영되는 그다음 날을 오픈으로 정했다.

“음……. 거 방송까지 얼마나 남았는디?”

“한 달 반? 6 주 정도 남았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6 주?! 6 주 뒤에 오픈을 한다고?”

항상 엄청난 검증과 실험을 거쳐 가게를 오픈하는 백원종에겐 내 방식이 빨라도 너무 빨랐나 보다.
“공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맛있으면 성공하고, 맛없으면 망하는 게 레스토랑입니다.”

“그, 그것만큼 당연한 소리가 없는데! 참 어렵지! 유현이 자네는 쉬운가 봐. 허…… 참.”

손님들을 만족시키는 맛을 선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가 나의 이름을 걸고 레스토랑을 차릴 때에는


‘항상’ 그 이상의 목표가 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서 어머니가 말을 대신했다.

“유현이와 대표님 말씀대로 맛은 당연한 거구요 대표님. 저도 아들의 이름을 걸었으니, 미슐랭 스타를
받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하하하하하! 어머니, 아무리 아들이 포스타라 해도 그렇지,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유! 하하하하!”

백종원이 그 어떤 때보다 크게 웃었다.

***

“지금은 이 정도지만, 메뉴 개발하시는 것을 소홀히 하시면 안 됩니다.”

로또 육인방, 포시즌스의 전생 동료들 모두가 그랬지만 나의 가르침을 받을 때는 밤낮이 없어진다. 아니


애초에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계속 그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지 않았을 테지만.

어머니께서도 마찬가지였다. 분식집이 문을 닫은 시간, 항상 내가 가르쳐준 레시피를 몸소 구현하고


맛보고 더 발전시키려 노력하셨다. 하루에 주무시는 시간이 세 시간가량 되셨나.

그런데, 얼굴과 몸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본인도 꽤나 즐거우신 모양이었다.

“와, 이게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나온 맛이여?”

정찬 요리를 선보일 레스토랑답게, 짧게는 2 주, 길게는 한 달 주기로 코스와 메뉴를 바꿔서 구성할
것이었는데, 오픈하는 주에 선보일 메인 요리는 ‘호박선’이었다.

어머니의 주특기 요리이자, 각종 고기와 버섯 채소가 함께 들어가 있어 메인 요리라는 자리에 쓰여도


손색없는 요리였다.

“어머니께서 퇴근을 모르시고…….”

“하하하. 뭐, 자네 밑으로 들어간 셰프들이 다 그렇다고 뉴스에 난리 났더만. 맛은 최고야.”

다른 요리들도 백원종을 만족시키다 못해, 감동시켰다.

백원종은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호박의 아삭한 식감과 맛 안에서 채소들이 어우러지고……. 돼지고기와 표고버섯은 풍미와 식감을 한 층
더 쌓게 만들어주네. 이거, 나도 가르쳐줘. 하하하.”

“인테리어 현황과 홀 직원들, 그리고 주방 보조들은 어떻게 되어가죠?”

“맛있는 음식 공짜로 대접 받는 줄 알았더니, 압박하려고 부른 거였어? 하이 참……. 크흠! 인테리어는


오늘 저녁에 페인트로 디테일만 그리면 끝나고, 홀 직원들은 뽑고 있어. 주방 보조들은 우리 회사 내에
있는 직원들 보내면 되니까.”

백원종을 끌어들인 것을 잘한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지금처럼만 맛에 신경 쓰고, 나도 그 맛을 올리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됐으니까.

아울러, 앞으로도 내가 대한민국에 레스토랑을 차릴 때면 백원종의 인프라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보 채널도 더 마련해놨어. 오픈 전날 방영될, 골목가게 중간점검 편에는 ‘반유현 - 펌킨’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가잖아. 그냥 자네가 파리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고.”

어쩌면 로만이나, 포시즌스의 간부들보다 일 처리가 꼼꼼하고 빠른 느낌이었다.

수백억 원대의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라 다르긴 한 것 같다.

“어떤 채널이요? 그냥 TV, SNS, 신문광고에 돈을 뿌리는 거라면, 말씀 안 하셨겠죠?”

“이따, 저녁에 나 따라와.”

“예?”

“어쭈, 이제는 미슐랭 스타 셰프라 그냥 따라오라면 안 오는 거야? 하하하!”

백원종의 넋두리 뒤에 들은 그 말에, 나는 오늘 밤 저녁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이야아아!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 반유현입니다!”

방송사 KBC 의 프로그램, ‘연애인 중계’ 그 프로그램의 코너 중 하나인 길거리 데이트.

그곳에 백원종이 섭외되었고, 백원종은 나를 데리고 나갔다.

“오늘 와아아! 이태원 거리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 길거리 데이트의 코스가 이태원이었다는 것.

아마도 백원종이 오픈될 나와 어머니의 레스토랑을 위해 촬영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모양이었다.

“하하하하! 이야! 두 분의 포스가, 지금 이 거리에 있는 음식점과 레스토랑들이 다 문 닫을


기세인데요?”

진행자, 김승민의 큰 목소리가 부끄러웠지만,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나와 백원종, 그리고 사회자 세 명이 지나가는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섰다.

“그, 그 청와대 행사에 참석하시고 아직 한국에 있으신 건가요? 반유현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께서
한국에 계시다는 것을 모르는 팬들에게 한 말씀 하시죠.”

팬, 나에게 그 정의는 간단하다. 셰프나 미식가가 아님에도 나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연예인이 되어야 하니까.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제 요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한국에 어떤 이유로 계신 건지, 파리로 언제 다시 돌아가실 건지, 왜냐면 저희 방송관계자들도 반유현


셰프님께 되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하하하하! 팬들에게 영상편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해주시죠.”
“어, 원래 행사가 끝나고 바로 파리로 가려고 했으나, 새로운 계획이 생겨서 조금 더 남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곳, 이태원에 제 레스토랑을 차리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와아아아!

레스토랑을 오픈하겠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환호가 터져 나온다.

“와! 반응이 좋네요. 무슨 요리인가요?”

“호박…… 호박을 주된 테마로 요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와우! 호박이요? 하하하하! 셰프님께서 말씀하시니까 더 신기하고 기대가 되네요!”

김승민은 대놓고 나의 홍보를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질문했고 나는 그에 차분하게 대답해줬다.

그렇게 내가 오픈하게 될 레스토랑에 대해 몇 번의 질문이 더 오갔고, 이쯤이면 홍보는 확실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되었다.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그랬다.

“대박……. 정확한 위치가 어디예요!?”

“와! 진짜 먹고 싶다!”

“파리를 안 가도 되는 거잖아!”

김승민도 그 반응을 살피곤, 다른 질문을 이어나갔다.

“두 분이서 골목가게 때부터 이런 진한 우정을 이어가고 계신데, 두 분의 요리 실력은 누가 더……?”

김승민이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둘의 눈치를 살폈다.

백원종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의 어깨를 잡았다.

“하하하! 아니, 저는 요리사나 셰프가 아니라 사업가, 또는 요리 연구가입니다. 당연히 실전적으로


요리를 하면 이 친구가 더 잘하겠죠.”

“에이!”

우우우우!

백원종이 겸손을 떠는 모습이 재미가 없었는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야유를 보냈다.

물론, 장난이 섞인 야유였다. 백원종의 곤란한 표정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하하하하! 거봐요! 여기 계신 분들도 백원종 대표님의 실력을 알고 계시니까요.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솔직히 백원종 대표님을 개인적으로 존경하고요.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요리는 제가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우와아아아!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답을 내놨다는 듯이 환호가 쏟아져 내렸다.

백원종은 옆에서 껄껄껄 웃을 뿐이었다.


우리가 딱, 길거리에 세워진 푸드트럭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사회자가 번뜩이는 생각이 났다는 듯이, 눈알을 굴렸다.

“오오! 철판요리!”

김승민이 한 푸드트럭을 골랐고, 그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장님도 방송에 자신의 가게가 노출되는 것이었으니, 흔쾌히 허락했다.

“여기서 한번 요리 실력을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김승민, 베테랑 리포터이자 진행자답게, 컨텐츠를 뽑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사람들은 백원종에게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우와아아아아! 백원종! 백원종!

용기를 북돋아 주듯이 말이다. 이 대결이 성사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에휴. 잘못됐네유 이거? 하하하! 오케이 콜.”

백원종이 소매를 걷으며 푸드트럭으로 올라갔다.

“오늘 내가 지면, 여기 서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푸드트럭 음식 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반유현! 반유현!

백원종이 말하자, 환호는 다시 내게로 쏟아진다.

“오늘 제가 지면……. 이태원에 오픈될, ‘반유현 - 펌킨’ 일주일간 공짜.”

우와아아!!

61 화. 실제로 보니 훨씬 빠르네 (2)

애초에 이 방송에 출연 할 수 있었던 건, 백원종 덕분이었다.

약속된 찰영 장소로 이동하는 중간에 백원종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계획부터,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계획까지. 기간이 너무 짧아 비현실적으로


생각했건만, 그건 내가 머릿속에 만들어 놓은 한계였어. 대단해. 반유현.”

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힘이 다른 사람들에게 대단해 보일지는 몰라도,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매번 최고의 효율을 생각하며 움직이니까.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이었다.

“고마워. 괜히 최연소 미슐랭 포스타 셰프가 아니구만. 그나저나, 반유현 - 펌킨. 여기서도 미슐랭
스타를 받을 계획이지?”

“당연하죠.”

내 계획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것을 알았던 터라 흠칫 놀라는 백원종이었다.

“기대하겠어. 나도 자네의 빠른 속도에 발맞춰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자네를 데려가는 거야.”


‘연예인 중계’의 길거리 데이트라는 코너는 수년째 진행된 코너로, 탑스타와 리포터가 길을 걸으며
데이트하는 형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원래는 신사동 가로수 길 인근을 촬영장소로 정했지만, 나를 위해 이태원으로 촬영장소를 바꿨단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후회를 하는 백원종이었다.

“괜히 데려온 것 같기도 하고…….”

우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커질수록 백원종의 허탈한 웃음소리도 계속되었다.

“차암. 하하하하! 하여간, 제대로 홍보하는 구만유!”

“네, 감사합니다.”

나는 내가 이 내기에서 지게 된다면, 이태원에 오픈 될 ‘반유현 - 펌킨’이 일주일간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 한마디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쳤고, 그에 따라 이미 홍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제가 질까요? 이길까요?”

그래서 백원종을 이길 필요까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요리


연구가였으니까. 그 지위를 지켜주고자 작은 목소리로 백원종에게 물었다.

그런데, 백원종이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도발까지? 오늘 진검승부야. 내가 미슐랭 포스타를 이겨버리면, 창피할 텐데 난 몰라유!


알아서 해.”

우와아아아!

“자아아! 대결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철판이 두 개 준비되어 있는데요. 사장님께서 방식을
설명해주세요!”

우리 둘이 올라와 있는 푸드트럭은 철판에 각종 해산물과 고기, 그리고 야채들을 같이 볶아 작은


종이박스에 도시락의 형태로 파는 곳이었다.

철판이 두 개 마련되어 있었는데, 각각 데리야끼와 칠리 구이를 조리하는 곳이었다.

“여기 재료는 다 있구요. 두 분 다 데리야끼 소스를 이용한, 찹스테이크를 만들어 보시죠.”

“이야! 사장님께서 두 분에게 데리야끼 메뉴를 골라주신 이유는요?”

‘털보네 찹스테이크’ 그 푸드트럭의 이름과 걸맞게 턱수염이 덥수룩한 사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저희 가게의 데리야끼가 칠리보다 덜 팔리거든요? 혹시 이 두 분이 만든다면 제가 만든


데리야끼랑 뭐가 다를지……. 알고 싶어서요. 하하하!”

“아하! 한 분은 대한민국 최강 요식업 사업가, 한 분은 세계 최초 미슐랭 포스타 셰프. 두 분의……


뭐랄까 솔루션이 필요하신 거군요?”

“네. 진짜 잘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좋습니다! 그럼 사장님과 이 길거리에 계신 분들 두 분을 뽑아서 심사를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꺄아아!

나와 백원종이 기존에 있던 데리야끼 소스 통에서 소스를 찍어 먹고는 불 위에 고기와 야채를 올렸다.

치이이익!

“아 시작됐습니다!”

***

촤아아악!

취이이이익!

우리 둘이 푸드트럭 위에 올라, 철판 위의 재료를 볶는 모습이 비슷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철판


위에 있는 모든 재료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양파, 파프리카, 버섯, 마늘…….

“고기 부위가 채끝인가요?”

“네, 채끝입니다! 우와! 어떻게 만져만 보고도 부위를.”

메인 재료인 채끝살까지. 2 인분 내지는 3 인분의 요리를 만드는 일에는 누구든지 나를 이길 수 없다.

앞서 말한 ‘파악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아아 드디어! 차이점이 생기고 있습니다! 데리야끼 소스를 만드는 방식이 두 분이 서로 다르네요!”

우와아아!

진행자, 김승민은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분위기를 달궜다.

그는 요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차이점을 집어내 분위기를 과열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푸드트럭 주변엔 사람들이 더욱더 모여들었다.

“누구야?”

“뭔데? 연예인이야?”

“엥? 백원종인데?”

“야! 그 옆에 반유현이잖아!”

나와 백원종 둘이 동시에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장면이었을 테지만 이것이 ‘대결’
이라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 더욱더 고조된 것이다.

“반유현 셰프는! 냄비에 미림과 사케를 끓이고 있습니다!”

진행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땐, 토치를 가져와 냄비에 불을 올렸다.


후우웅!

아직 알코올이 날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냄비에서 불이 솟구쳤다.

불쇼를 하는 것처럼 강력한 화력의 불이었다.

“허허. 그런 퍼포먼스 하기 있기에유?”

백원종도 그에 지기 싫었는지 한번 웃어 보이더니, 고기를 굽고 있는 철판에 와인을 뿌려 불을 일으켰다.

후우우웅!

우와아아아!!

“인터뷰, 인터뷰 한번 해보겠습니다!”

고조되는 현장을 중계하기 위해 김승민이 푸드트럭 위로 올라왔다.

“백원종 대표님께서는 소스의 농도를 전분으로 맞추고 계시고, 반유현 셰프는 수분을 날려 맞추고
있습니다! 과연 이 차이가 어떤 선택을 받을 것인지! 아아! 속도는 백원종 대표님이 더 빠르신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무심하게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냄비에서 끓고 있는 데리야끼 소스를 철판에 올리며
재료들에 발랐다.

“아! 반유현 셰프는, 소스를 바르면서 굽고 있습니다.”

“데리야끼의 원래 뜻은, 양념을 계속해서 발라 굽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념을 바를 때에, 비로소 앞서 말한 ‘파악’이라는 것의 의미가 드러난다.

철판 위의 모든 재료의 성질과 굽기 정도, 수분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재료가 양념을 머금을 수


있는 정도를 알고, 어느 정도의 양념이 배어야 최고의 맛을 낼지 알고 있다.

나는 선별적으로, 데리야끼 소스를 발라 재료들을 철판 위에서 익히고 있었다.

그와 반면에, 백원종은 미리 준비한 데리야끼 소스를 끼얹어 요리를 마무리했다.

“어디서 다 배워왔데? 파리에서 아주 바쁘게 살았나벼?”

당연히 데리야끼의 유래 정도는 백원종도 알고 있었는지, 나를 보며 물었다.

“허허. 그래도 이 푸드트럭 위에서 같은 재료를 썼으니, 그렇게 큰 차이는 안 날 거야.”

그의 말이 어느 정도 맞기도 하지만, 그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같은 재료, 같은 환경이어도 맛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얼마나 많은데.

재료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찹스테이크를 먹고 그가 지을 표정이 기대가 됐다.

“자아아! 다 됐습니다. 먹고 싶으신 분! 손 한번 들어주세요!”

김승민이 우리 둘이 만들어 낸 요리를 각각 접시에 옮겨 담고 섞었다.

그리곤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을 뽑으려 했다.


꺄아아악!

우와아아아!

모든 팔이 올라왔고, 그중 가장 적극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팔을 흔들던 여성과 남성 한 명을 각각 뽑았다.

“꺄아아아악! 바, 반유현 오빠!”

올라오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나를 껴안으려는데 김승민이 이를 제지했다.

“자, 두 개 다 맛보고 평가를 하세요. 그리고, 어떤 게 더 맛있는지 골라요. 그게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면 포옹 한 번 하게 해드릴게.”

김승민이 나를 바라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특성상, 이 흐름을 깰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남성분은 뭐,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저, 저는 반유현 셰프님이 하신 요리를 집에 포장해가고 싶어요. 이거 다 드실 거 아니잖아요.”

우우우우우!

사람들 사이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누구 맘대로 그 요리를 다 포장해가냐는 식의 야유였다.

“뭐, 남성분도 제 요리가 뭔지 맞추면, 새로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백원종은 옆에서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초에 인기에 관해선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상대가
나였으니 뭐, 당연하다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와……. 대, 대박.”

“둘 다 맛있는데, 이건……. 요상한 맛인데요?”

“요, 요상해요?”

두 남녀가 요리를 먹고 맛있는 찹스테이크의 접시에 고기를 집어 먹었던 이쑤시개를 올려놨다. 그 두 개의


이쑤시개가 있는 곳은 모두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 푸드트럭의 사장님도 이쑤시개를 들어 각각의 찹스테이크를 먹었다.

“키야……. 분명 하나의 소스를 이용하는 걸 봤는데……. 이건 그 소스 안에서 재료들의 맛이 팍팍


터지는데요? 소스가 중요한 게 아니었나? 와!! 진짜!! 이거 뭐야!”

사장님도, 이쑤시개가 두 개 놓인 찹스테이크에 한 표를 던졌다.

채소를 적당량 구워, 알코올을 날린 미림과 사케, 그리고 간장과 설탕을 함께 끓인 소스 자체도 맛의
수준이 높았겠지만, 재료의 특성마다 다른 양념의 정도를 모두 통제했기에 완벽한 차이를 만들 수 있었다.

100 인분 200 인분이었다면 거의 불가능했겠지만, 2 인분, 3 인분 정도의 재료를 모두 통제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저 붓으로, 양념을 구워 바를 때, 재료마다 양념을 몇 번 덧칠 하냐, 부위마다 온도가 다른 철판의


어디서 굽냐…… 등등. 차이가 많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대충 확실한 맛의 차이를 벌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말해주자, 사장은 놀랐고 백원종은 끄덕거리며 웃어


보였다.

너무 압도적인 차이로 이겨서 그런지, 사회자인 김승민도 어쩔 줄 몰라 하고, 백원종은 씁쓸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심지어 관객들도 백원종을 위로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나는 곧장 이쑤시개를 들었다.

그리고 백원종이 한 찹스테이크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와……. 저는 이게 더 맛있는데요. 대표님?”

내가 그런 행동을 보이자, 그제서야 표정이 밝아지는 백원종이었다.

그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김승민에게서 마이크를 받은 내가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 아까 백원종 대표님이 하신 말씀 기억하시죠? 여기서 지켜봐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이


푸드트럭의 음식을 쏘겠다고 하셨잖아요. 대표님이.”

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 소리가 쏟아져 내렸고, 원래 이 푸드트럭의 사장님, 나, 백원종 대표는 요리를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리를 제공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야야야. 이번에 너무 떠서 또, 우리 방송 잡아먹히는 거 아니야?”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수많은 SNS 와 유튜브에 나와 백원종의 대결 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영상과 사진들을 기자들이 퍼 날랐고.

“MC 였던 김승민? 승민이 형한테 고마워해야겠네, 두 분 다. 생각지도 못했던 대결을 제시해서 엄청


이슈로 만들어주고.”

“뭐 방송가 사람이라고 아는 사이인가벼? 허허허. 그래야쥬. 고맙긴 하네요.”

“그나저나, 대표님도 거길 유현이 왜 데려가셔서……. 두 분이 대결하는 걸 저희 방송에서 해주셨어야지


참, 의리 없게. 예? 두 분의 관계도 저희가 맺어드린 건데!”

“하하하. 나도 몰랐어. 즉석에서 진행된 거야.”

“아무튼, 그거 때문에 인터뷰를 추가로 넣으려는 거예요. 당장 3 일 뒤가 방송인데. 그렇게 두 분이서


이태원 바닥을 후끈하게 만들어 놓으셨으니…… 지금 제가 편집해 놓은 영상은 파리에서 그랜드 오프닝을
하는 영상이니까…….”

이성찬이 혀를 차며 말했다.

골목가게 PD 인 그는, 중간점검편 이 모두 편집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나의 인터뷰를 한 컷 따고 싶다며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대단하네 대단해……. 진짜 그 말밖에 안 나온다. 유현이 너 게다가 한국에 들어올 당시에는 이런


레스토랑을 차릴 생각도 없었다며.”

“조금은 있었습니다. 할지 말지 고민하는데, 어머니께서 꽤나 높은 실력을 갖추셔서 하기로 결정했죠.”

“참……. 거짓말 같으면서도 진짜 같아 그 말들이?”

웃고 떠들다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한말씀해라.”

“매번 큰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그 성원에 보답 드리기 위해 이태원에 가게를


차리는데요. 들러서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야, 공중파에서 이런 소개 시간을 내주는데, 그냥 그렇게 넘어갈 거야? 제대로 홍보해봐 알아서 편집해
줄 테니까.”

이제 더 이상의 홍보가 필요할까. 보여줄 건 이미 이태원에서 다 보여준 것 같은데.

이태원에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말, 같은 말을 반복할수록 내 말의 무게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교포들 중에는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가


쓰리스타입니다. 그런데 저는…….”

말을 끊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저는……. 뭐? 푸하하하! 거기까지만 말하겠다 이거야? 포스타의 여유……. 멋있네. 연출을 잘 알아


유현이가.”

방송이 방영되기 3 일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셰프의 ‘반유현 - 펌킨’


오픈이 4 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62 화. 실제로 보니 훨씬 빠르네 (3)

“차암나……. 이건 또 뭔데?”

“방만경영, 경영태만 아니야?”

포시즌스의 파리, 그 간부들의 회의가 긴급히 열렸다.

휴가를 내고, 대한민국으로 날아간 반유현의 행보가 문제였다.

이번엔, 이곳의 수장인 로만도 할 말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던 그가 한마디를 던짐으로써 회의가 시작됐다.

“반유현 셰프와 계약할 당시, 겸업에 대한 조항의 바운더리를 역대 다른 셰프들 보다 넓게 잡아준 것은


사실이야.”

청와대 행사 참여, 방송프로그램 출연은 괜찮았다.

아예 대놓고 대한민국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것부터, 홍보까지 공격적으로 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진정 포시즌스 레스토랑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냐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그가 다른 곳에 창업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만, 저희 포시즌스 역사와 전통도
그렇고, 도의적으로 레스토랑 세 곳을 전부 맡은 셰프가 시간을 온전히 들여도 모자랄 판에 대외적인
활동을 저희에게 아무런 보고도 없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는 저희 호텔의
레스토랑 역사를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일 수도.”

반유현과 포시즌스는 계약을 맺을 당시에도 반유현이 다른 레스토랑을 창업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었지만, 포시즌스 레스토랑의 매출하락, 또는 이미지의 실추가 되면 그의 대외적인 행보를 문제 삼을
수 있었다.

“미연에 방지하자는 겁니다. 그때 가서 반유현 셰프와의 사이가 틀어지느니.”

문제가 되기 전에 그의 행동을 제지해야 된다는 게 간부들의 일관된 의견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제지를 할 건데? 계약상으로 그가 문제를 일으킨 게 없잖아. 더군다나 요즘 가장


잘나가는 셰프를 무슨 수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어?”

“저희 입장에서 그에게 압박을 줄 수 있는 건, ‘반유현 팀’밖에 없습니다.”

‘반유현 팀’은 포시즌스 그룹의 소속으로, 포시즌스에서 월급을 받는다.

반유현에 관련한 의전부터, 스케줄 관리, 레스토랑의 세무, 회계, 인사 모든 것을 총괄하는 부서였다.
쉽게 말하면 반유현의 팔다리가 되어주는 팀이다.

이곳의 압박을 넣게 되면 반유현도 어쩔 수 없이 그 자유로운 행동을 줄이고 포시즌스에 모든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없다는 것.

“반유현이 다뤄야 할 일들은 많은데, 그 일들을 해줄 수족들을 자르거나 늘리면서 압박을 주면 저희의
통제 안에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로만은 그렇게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한 젊은 사내를 불러 질문했다.

“어이, 오스틴 그쪽 분위기는 어때? 그쪽도 그렇게 생각해?”

그 질문을 받은 사내는 ‘반유현 팀’의 막내인 오스틴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될 것까지 계획에 넣으셨을 수도…… 그분은…….”

반유현의 생각과 그 깊이,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들을 모두 봐왔던 오스틴은 이 간부들이 회의를 하는


것조차 반유현이 생각해 놨을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반유현에게 홀린 사람처럼 말이다. 그가 종교를 만들었다면 오스틴은 1 등 신도가 되었을


오스틴이었다.

“쟤, 뭐라는 거야?”

***

“유현이. 밖에 줄 서 있는 것 봤어?”

“네, 봤습니다.”

오픈 당일, 새벽부터 사람들은 텐트와 돗자리를 깔고 문 앞에서 대기 줄을 만들었다.


#반유현_이태원

#반셰프

#반유현_길거리_음식

…백원종과 나의 푸드트럭 대결은 방송에 아직 나가지 않았음에도, SNS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또, 어제
방영된 골목가게 중간 점검편이 이슈화를 확실하게 해줬다.

[ 감탄하는 초특급 배우들……. ]

[ 프랑스 총리 및 고위 공무원들의 감탄과 기립박수, 한국인 최초 MOF 훈장 받을 수 있나. ]

[ 충격의 연속! 1 년 전 분식집 아들의 화려한 귀환. ]

[ 백원종. “분식집에서 소리쳤던 것 후회해. 부끄러워서 파리 호텔에 가만히 있었다.” ]

[ 골목가게 메인 PD.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많이 발생할 수 있게 다양한 노력하겠다.” ]

“오픈 타이밍을 잘 아는 것 같아 자네는 참. 현실인데 잘 믿겨지지가 않아. 실제로 보니까 반유현의


계획과 실행력은 훨씬 빠른데.”

“대표님께서 도와주셔서 더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주방을 채운 셰프들과, 홀 직원들은 백원종의 회사 내에서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선발된


인원들이었다.

미슐랭 스타에 도전해보겠냐는 권유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만 구성했다.

사람을 뽑고, 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데, 백원종이 가진 인프라 덕에 그


시간을 아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의 총주방장을 맡은 우리 어머니.

오픈 당일 날까지 투자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투자해, 메뉴를 완성해 놓으셨다.

“오픈이 세 시간 남은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래도 제가 파리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맛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

나는 하나씩 나오는 요리들을 맛봤다.

먼저, 호박죽이었다.

“그 지점을 잘 찾아내셨네요.”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기 위해, 호박의 씨와 섬유질을 많이 제거하는데 자칫 너무 많이 제거를 하면 그


단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섬유질에서 단맛이 많이 나오기 때문. 그래서 그 밸런스를 적절히 유지해야 되는데 지금의 호박죽은
식감이 너무 질지도, 단맛이 덜하지도 않게 적정했다.

“우유랑 팥을 조금 넣은 것도 잘하셨고요. 또 말씀드리지만 그 재료들의 존재감이 나타나선 안 됩니다.


그 둘의 성질만 빌리는 느낌으로 첨가하셔야 됩니다.”
그다음은 오동통한 새우 살과 함께 볶은 호박.

“볶을 때, 새우 내장을 이용하라고 했었는데, 그 의도를 잘 파악하신 것 같습니다. 너무 그윽하지 않게,


새우살의 향이 적절히 올라오니, 호박의 달짝지근한 맛이 돋보입니다. 충분히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줄 수도 있고요.”

나는 그렇게, 영양밥과 호박선, 호박오리 부추구이, 호박 라떼, 파이까지 모두 먹은 뒤에는 셰프들을


격려했다.

“좋네요.”

그제야 주방의 셰프들과 어머니의 표정의 긴장이 풀렸다.

내가 맛봤을 때는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만족할 만한 정도, 잘하면, 미슐랭 1 스타도 노려볼만한


솜씨였다.

어머니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내가 다른 셰프나, 스승의 개념이 아니라 아들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나의 말을 잘 흡수하신 걸지도.

맛의 완성도를 올리는 작업은 미슐랭 평가 기간에 들어가면 내가 다시 한국에 방문해 올려놓을 생각이다.

“분식집도 문의도 많아. 가맹문의가 솟구쳐서 우리 측에서도 감당할 수가 없어. 하여간 요즘 세상엔
요리도 잘해야 되지만, 눈치도 빨라야 돼.”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분식집은 시스템화를 위해, 잠시 중지되었는데 분식집이 프랜차이즈가 되고 가맹점을


모집할 것이란 냄새를 맡은 사람들의 문의가 폭발했다.

“어머니께서 분식집, 그니까 우리 회사의 새로운 브랜드인 ‘영미네 분식.’ 사외이사이자 고문으로
활동하실 거니까. 완전히 바빠 이제. 분식집 아줌마가 아니야. 하하하하! 아들 참 잘 뒀수.”

지금 말한 이 모든 게 정확히, 내가 환생하고 1 년이 조금 지난 뒤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약 1 여 년 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계셨다.

“또, 또 어머니 마음이 너무 여려서 걱정이야. 오픈 두 시간 남았으니까 울지 마세요. 화장 이쁘게


했건만 지워지겄네! 하하하하! 유현이는 비행기 시간이 애매해서 오픈까지는 못 보겠네. 이제 공항으로
출발해야 되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두 달 내지는 세 달 뒤에 다시 올게요.”

마지막으로 셰프들을 격려하는 말을 하곤 밖으로 나왔다.

“목표는 다들 아시다시피 미슐랭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오픈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곳도 ‘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걸린 레스토랑임을 명심하세요.”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았고, 셰프들과 직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

“으아.”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내렸다.

장시간의 비행 덕에 몸이 찌뿌둥했지만 나는 곧장 핸드폰을 열었다.


-반유현.

메인 화면에 있는 ‘반유현’ 어플을 눌렀다.

그러자, 어플이 실행되고 내가 생각했던 그림들이 연출되었다.

- ‘반유현 - 펌킨’ 현재 예약 불가.

나의 레스토랑을 통합적으로 예약할 수 있는 어플에 내 새로운 레스토랑이 추가될 수 있도록 조치해뒀고,


나는 실시간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문자들.

-SNS 에서 난리도 아닙니다!!!! 셰프님!!!!!! 제 2 의 반유현 챌린지가 일어난 것 같아요.

-또 해냈어! 또 해냈구나! 반유현이!! 나 진짜 PD 때려친다? 나도 식당 차려줘.

-축하해유. 또, 해내는구만^^

-아들, 유현아! 오늘 장사 잘 끝났어! 엄마도 진짜 열심히 해서 도움이 될게!

‘SNS?’

제 2 의 반유현 챌린지가 일어난 것 같다는 말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원래 SNS 내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되곤 했는데, 것보다 더 많은 반응들이 나타난 건가?

나는 곧장 SNS 어플을 실행했다. 그리고 ‘#’으로 분류되는 해시태그 창을 켰다.

인기 순위가 보이는데, 실시간 급상승 인기 태그, 그 1 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왠지 모르게 추측이


가능한 두 글자의 단어였다.

#반킨.

레스토랑 ‘반유현 - 펌킨’의 줄임말.

너도나도 그곳에 갔다 왔다는 식의 인증샷을 남겼고, 그 인증샷들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사진이 되고 있었다.

#반킨#방문성공!#4 시간대기

#반유현#반킨#반유현_못_봄#아쉬움

#반킨#예약성공!#반유현어플!

#반킨 #나도_인증샷

사람들은 마치 대단한 곳에 방문한 것처럼 인증샷을 남겼고 ‘반유현 - 펌킨’의 요리와 테이블 사진들이
올라왔다. 장사가 잘되는 곳이 더 잘되는 이유를 몸소 실현하고 있었다.

내가 저 자리에 없었음에도, 나의 이름 ‘반유현’이 만들어 낸 효과였다.

이런 인증샷의 문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약 5 주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한


레스토랑의 시작이 좋다는 점에서 즐거웠다.
‘이번 생은 돈 걱정 안 할 만큼 내 이름값이 올라간 거고. 돈도 돈이지만…… 더 좋은 걸 얻었군.’

돈도 돈이지만, 저렇게 손님이 많이 몰리면 자연히 셰프들의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늘 수밖에 없다. 내
레시피와 요리 의도를 보다 더 잘 구현할 셰프들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

셰프들의 실력상승은 당연하게도 미슐랭 스타를 얻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선순환. 내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손님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나는 셰프들의 실력을 빠르게
상승시킬 만한 이름값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음에 방문했을 때, 저 레스토랑에 어떤 기술을 입혀서 업그레이드시키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오스틴이 공항에 도착했다.

“왜 네가 왔냐. 기사님은?”

“기사님도 셰프님 입국 날짜까지 휴가를 썼는데, 셰프님께서 더 빨리 도착하셨네요.”

B 사의 최고급 검은 세단.

포시즌스 측에서 나의 의전을 위해 운전기사와 함께 내놓은 차량이었다.

나의 캐리어를 받아 트렁크로 옮기던 오스틴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계셨나요? 어떤 부분에서 제재가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일단……. 제가 아는


것들은 그렇습니다.”

“하여간 뻔한 사람들.”

지금 나의 행동이 포시즌스에 있는 레스토랑의 실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염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것들도 다 생각해 놓고, 대한민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기에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주방에 셰프들이 내가 말한 것들을 다 해뒀을라나.”

“예에? 그럼 알고 계신 거예요? 이런 조치를 받으실지?”

나는 룸미러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오스틴을 향해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제발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호텔 측에서 유치한 짓을 해버렸네. 우리 로만


사장님은 가만히 계셨데?”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내 몸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들어가니까. 레드, 블루, 옐로 셰프들 총집결시켜놔.”

63 화. 딴 맘 먹지 말고 잘해 (1)

“다 모였어?”

“예! 셰프!”

레스토랑이 끝난 뒤, 퇴근 시간 셰프들은 나의 부름에 남아있었다.


아니, 원래 퇴근 시간에 곧장 집에 가는 셰프는 없었다.

매일 레스토랑 영업이 끝나는 시간 메뉴 개발과 실력 향상을 위한 경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강압적인 분위기는 절대 없었다.

“집에 갈 사람은 가도 돼. 억지로 하는 거 싫어하니까. 진짜로.”

셰프들의 표정이 밝았다. 내가 없는 동안 의지나 열정이 많이 죽었던 모양이다.

퇴근 후 요리 연습을 할 때에 다들 나의 피드백을 받길 원하는 셰프들이었다.

그들도 내 피드백이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 터.

내가 한국에 잠시 가 있었을 땐,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쓴다는 느낌이 덜 했을 것이다.

“다들 오랜만이네. 한 달 반 동안 별일 없었냐?”

내가 그 말을 하자, 레스토랑의 각각 총괄을 맡고 있는, 게리, 에쉬, 아론이 걸어 나왔다.

내가 손을 살짝 들어 흔들자, 보고를 하라는 소리가 아닌, 인사치레였음을 깨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름 아니라, 오늘 좀 불쾌한 일이 있었어. 아시다시피 비행기에서 내린 지 몇 시간 안 됐는데, 바로


주방으로 온 것도 그 이유야.”

셰프들의 밝았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

“나를 보좌하던 반유현 팀 있잖아? 너희들이 주방에서 나의 팔과 다리가 되었듯이, 그들도 행정적인 모든
업무를 봐줬었지…….”

셰프들과 반유현 팀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라이벌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두 그룹 모두, 자신들이 없으면 레스토랑 ‘반유현’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만 하다면 건전한 생각인데, 서로를 비교한 게 문제였다.

“그놈들이 무슨 사고를 쳤습니까?”

한 셰프가 말하자, 내 옆에 있던 오스틴이 발끈했다.

“우리가 사고를 치긴. 너흰 배우는 놈들이고, 우린 대학졸업하고 경력 쌓고 완성 돼서 ‘일’하는 거고.


반유현 셰프님 안 계시면 어디서 접시나 닦고 있을 놈이.”

“야야. 말조심해라 새끼야.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놈이랑 하루 종일 불 앞에 서 있는 셰프랑,


비교부터가 잘못됐지.”

레드의 총 주방장인 에쉬가 오스틴에게 삿대질하곤,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내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자 사태는 일단락 종료됐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됐고, 내가 말하려 했던 건,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 탓이야.”

포시즌스 측에서 나를 보좌하는 ‘반유현 팀’의 인력을 다시 총무 팀으로 이동시켜 축소했고, 그에 따라


내가 행정업무를 살펴봐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덧붙여서 했다.

“그래서, 앞으로 영업 끝난 시간 그 이후에 너희들의 요리에 대한 피드백을 예전만큼 못할 것 같아.


주방의 일도 중요하지만 오너 셰프로서 행정적인 것들도 중요해.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한들, 이
레스토랑의 가치를 높이려면 경제적인 문제들도 살펴야 하는 것이니까. 밸런스를 맞추려 한다. 밸런스를
맞추려면 주방에 있는 시간만큼 사무실에 있는 시간도 늘려야겠지?”

물론, 내 사비를 들여 직원들을 추가 고용하면 나는 주방에 더 많은 시간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문제는 포시즌스, 이 호텔 놈들이 나를 통제하려 든다는 것에 있었다.

일단 저들을 불편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셰프님께서 새롭게 레스토랑을 창업하셨어도, 저희 레스토랑의 매출은 오히려 올랐고, 손님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체 왜 호텔 측에서 그런 제재를 가하는 건가요?”

나의 말에 셰프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들은 나의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둔 것만큼, 나에게서 요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을


특장점으로 내세워 이곳에 온 것이었다.

“셰프님께서 실제로 저희 레스토랑에 관심이 소홀하셨던 겁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요리, 셰프를 그저 돈벌이로만 이용한다는 겁니까? 이 포시즌스는?”

호텔 측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셰프들의 감정이 격해졌다.

“주간 업무보고 회의가 언제냐?”

***

< 레스토랑 반유현, 레드 블루 옐로 주간 업무 현황 보고서. >

-셰프들의 근무 만족도가 떨어짐. 그에 따라 맛의 질이 점점 하.락.되.어.가.는.중

…생략…

반유현팀의 인원이 축소된 뒤로부터 일주일 뒤. 다시 간부 회의가 열렸다.

포시즌스 간부들과 사장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책상 위에 올라온 종이 한 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이, 이게 보고서입니까?”

“차암나……. 반항하는 것 같습니다.”

“뭐, 어쩌자는 겁니까 이게?”

반유현이 작성한 보고서.

매번 긍정적인 내용으로만 가득하던 보고서에는, 이전과 달리 완전히 다른 내용이 적혀있었다.


“반유현 팀의 인원 감축에 대한 항의를 하는 겁니까?”

“반유현 셰프가 주방 말고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탓에, 셰프들이 정시에 퇴근을 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셰프들의 근무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반유현 셰프의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객관성이 제일 중요한 이런 주간업무보고서에……참.”

“사장님, 반유현 셰프를 당장 부르시죠.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로만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궜다.

레스토랑을 세우고, 그 속을 채워 넣은 장본인이 반유현이다.

이 주간업무보고서에 올라온 내용이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를 판단할 사람이 오직 반유현뿐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처음부터 잘들 하지. 이제 와서 뭘 어쩌게.”

로만은 알고 있었다.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을.

이미 역사 깊은 포시즌스 레스토랑의 실권자는 반유현이며, 그를 내칠 수도 그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후…….”

로만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까지 반유현은 계획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여유로운 미소가 떠오르는 게, 왠지 그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반유현이 어떤 인간인지를 모르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부하 직원들.

지배인부터, 전무, 상무, 본부장…… 저들의 얼굴을 보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저놈들 말을 듣고, 내가 순간 혹해서 반유현팀을 건드린 게 죄야.’

저들의 말에, 로만도 순간 넘어갔었다.

반유현이 포시즌스는 이미 오픈했으니 그에 관한 일은 뒤로 미뤄놓고, 새로운 레스토랑을 창업하는 것에만


몰두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었던 탓이었다.

실제로 그가 휴가를 내서 간 한국에서의 행보가 그랬으니까.

반유현의 관심이 포시즌스를 떠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반유현팀을 이용해 압박을 넣겠다는 생각에
동의했었는데, 지금 자신의 책상 앞에 놓인 보고서 단 한 장, 한 줄의 문장을 보고 깨달았다.

이미 반유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반유현 셰프, 이거! 당장 회의장으로 불러서 추궁해야 됩니다. 보고서를 이따위로……! 어딜 감히


간부회의가 우스운 줄 알아!”

“사장님께서도 결단을 내리시죠. 반 셰프는 저희 호텔 자체를 우습게 보고 있는 겁니다.”

쾅!
로만이 책상을 내려쳤다.

“그래, 우리 호텔, 우리 포시즌스 호텔은 일개 한 명의 셰프가 절대 우습게 보지 못할…… 역사 깊은


호텔이지. 그런데, 아니, 그래서…… 반유현 셰프를 내쫓을 거야? 지금 1 층에 있는 레스토랑 세 개, 다
없앨 거야? 예약이 3 개월 뒤까지 꽉 차 있고, 그 요리를 먹기 위해 객실 예약까지 한 손님들은?”

“…….”

총 간부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쾅! 

회의실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이 회의가 진짜로 의미가 있는 회의인지 궁금해져서 왔습니다.”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었다.

그것도 각각의 레스토랑을 총괄하고 있는 에쉬, 게리, 아론이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반유현 셰프님께서 주방에 계신 시간이 줄어, 셰프들의 전체 만족가 하락으로…
….”

“어허! 여기가 지금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서 발언해!”

“버릇없게 누가 회의장 문을 박차고 들어옵니까!”

“그럼 일들 잘하시던가.”

쾅!

로만이 책상을 다시 한번 내려쳤다.

온화한 성격을 가진 그가 책상을 두 번이나 내려치니 간부들과 셰프들 모두 조용해졌다.

“다들, 가만히 계세요. 내가 직접 얘기 나누고 올 테니까.”

“저희도 같이 가시죠. 저도 얼굴 좀 보고 얘기해야겠습니다.”

“크흠! 저도 같이 가시죠 사장님.”

회의장을 걸어 나가는 로만을, 포스즌스 파리의 전무와 지배인이 따라나섰다.

***

모든 건 계획대로 된다.

100 년을 살아보니,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지금도 그랬다.

더군다나 지금은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는 느낌이었다.

반유현 - 블루, 중식 기반의 요리를 선보이는 내 레스토랑의 홀에, 대단한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5 명의 남성들, 요식업과 호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저들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다.

아, 너무 높은 사람들이라 이 업계에서도 아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모를 수도.

“저분들은 언제 예약한 거야?”

“예약된 날짜와 어플 가입날짜를 확인해보니, 이곳을 예약하려고 애초에 준비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현재 포시즌스 반유현은 예약이 3 개월가량 밀려있는 상황.

저렇게 중년, 그리고 노신사들이 이곳에 오기 위해 아득바득 어플로 예약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자신들의 휘하에 있는 직원들을 시켜서 예약을 한 것 같았다.

“홀에서 부르십니다.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일단 반유현 셰프님께서 시간이 어떠신지
여쭤보고 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너 저 사람들 모르냐?”

홀에 있는 직원이 나를 향해 말했는데, 그 직원은 저들의 정체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예, 그냥 미식가……. 또는 돈 많은 분들……로 보이는데요?”

“힐튼, 그레이튼, 웨스턴, 임페리얼 등. 세계 최대의 호텔 그룹의 주주들.”

“커헉!”

홀 직원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이 커졌다.

“잘했어.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드리고 와.”

“예에? 저분들……한테요?”

“어, ‘쇼’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서.”

홀 직원이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저들에게 말을 전하고 금방 돌아왔다.

“나오실 때까지 기다린다고…….”

저 지체 높은 대형 호텔 그룹의 주주님들이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놀란 눈빛이다.

그리고 내가 왜 시간을 뜸 들이고 있는지 상당히 궁금한 표정이었는데, 마침 그 답을 알려줄 때가 왔다.

주방에, 로만을 비롯해 포시즌스의 간부들이 내려온 것이다.

오늘이 주간 업무 회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럴 줄 알았다.

“반유……!”

나는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홀로 나갔다.

“반유현 셰프님! 식사 너무 맛있게 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요리들이었습니다.”
“제가 호텔을 경영한 지가 어언 30 년인데…… 이런 맛은.”

“와……. 베리 굿.”

테이블을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박수를 쳤다.

그때, 저 멀리 로만이 보인다. 간부들과 더불어 표정이 아주 울상이다.

저들도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 버린 것 같았다.

더군다나 주주들이 공손하게 나에게 명함을 줄 땐, 저들의 심장이 철렁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나를 어떻게 통제할지를 궁리하는 것보다, 어떻게 더 잘 해줘야 할지를 궁리해야겠지.

64 화. 딴 맘 먹지 말고 잘해 (2)

세계적인 호텔 그룹의 주주들에게 받은 명함 뭉텅이를 로만에게 건네며 말했다.

“제가 이쪽으로 가는 걸 바라시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

“죄송합니다.”

세계적인 호텔 그룹의 주주들에게 받은 명함 뭉텅이를 로만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때부터는 이들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대한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는데요. 그레이튼, 임페리얼 호텔에서.”

“반유현팀에 필요하신 만큼 인력을 증원하고…….”

“제가 이 모든 레스토랑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그 위약금도 대신 내주겠다는 뉘앙스를 가진 분도


계셨습니다. 누군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호텔 간의 도리라고 해서,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이적 시장에 나온 인력이 아닌 이미 일하고 있는 셰프를


직접적으로 섭외하고 데려갈 수는 없는 입장이라, 주주들이 돌려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 뜻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로만도 그들이 내게 어떤 뜻을 내비쳤을지 얼추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근데, 저도 이유는 알고 싶습니다. 솔직하게요. 서로 일하면서 오해가 쌓이면 안 되니까. 왜


반유현팀의 인력을 줄이셨는지?”

확실히 내 존재를 각인시켜줬으니, 반성문을 받아야 할 차례였다.

“저희 총무 팀에도 일이 갑자기 많아져, 잠시간 반유현팀의 인력을 빼어다…….”

“야.”

포시즌스 파리의 전무가 말하자, 로만이 그 말을 끊었다.

이미 내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뭣 하러 거짓말을 치냐는 식이었다.

리더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이 로만의 눈치는 꽤나 빠른 편이었다.

“그니까. 그럼 직원을 더 뽑지 왜, 반유현팀을 건드리냐고 물은 겁니다.”


내 말과 미소에 어떤 기운이라도 담겨있었나. 전무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로만이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저희 호텔 측의 염려였습니다. 기분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약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유현 셰프님이 다른 곳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또, 셰프님 한 분에게 저희 호텔
전체가 휘둘러지는 모습이 그려질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압박을 넣으면 포시즌스에
온전한 힘을 쏟으실까 해서…….”

로만이 솔직하게 모든 심정을 밝히자, 로만을 따라온 두 간부들도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리석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또 모른다.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포시즌스 파리가, 일개 한 명의 셰프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 자체가 저들 스스로는 부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앞으론 그룹 차원에서 제 행동에 관심 갖지 마세요.”

물론, 깡패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레스토랑의 매출이 떨어지거나, 제가 호텔 이미지 실추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때는 말씀해주세요.
저도 포시즌스랑 오래 하고 싶습니다.”

침착한 말투로 분위기를 풀어주니 저들의 표정도 그나마 풀렸다.

“물론, 그때만요. 그 두 상황이 아닐 시에 저를 귀찮게 한다면,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

이 레스토랑의 공간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반유현’이라는 울타리가 둘러진 성과 같이 되어버렸다.

그 견고한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만족도와 자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기분 좋은 감정들은 셰프들의 업무 효율을 증가시켰고, 그에 따라 레스토랑 전체의 맛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좋아졌네. 다음 주 코스에 추가시켜.”

“감사합니다!! 셰프!”

원스타는 쉽게 얻을 수 있고, 투스타는 얻을 수도, 못 얻을 수도 있는 수준이 되었다.

정확히는 7.1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내 입맛의 기준은 미슐랭이었고, 3 스타를 10 점으로 산정해 둔
것이었다.

규모가 작은 레스토랑이었으면 이미 달성하고도 남았겠지만, 셰프 수가 많아 나의 맛을 압축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확인해야 될 사항은 이번 연도 미슐랭 평가 기간까지 그 맛을 끌어 올릴 수 있냐였다.

‘이 정도 속도라면.’

문제없었다.

더군다나, 이 레스토랑의 예약이 3 개월 이상 가득 차 있는 상황.

셰프들의 실력 향상이 정체되는 기간이 없을 것이다.

내 레스토랑을 실시간으로 예약 할 수 있는 어플들이 온통 빨간 글씨로 채워져 있었다.

-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예약 불가. 대기번호 : 71

- 레드 테이블 - 반유현, 예약 불가. 대기번호 : 123

- 반유현 - 레드, 예약 불가. …

- 반유현 - 블루, 예약 불가. …

- 반유현 - 옐로, 예약 불가. …

-  반유현 - 펌킨, 예약 불가. …

나는 포시즌스 내 레스토랑을 차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확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포시즌스 측에 대한 내 자유도를 한껏 올려놓은 것을 잘한 것 같았다.

내가 레스토랑을 확장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를 거스를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그 인력을 충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로또 육인방이 실력이 좋긴 한데, 그들을 독립시키려면…….’

그들을 세계 각지로 파견 보내, 레스토랑 ‘반유현’의 다른 ‘색’을 맡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된다면


지금 그들의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하다.

포시즌스 내의 셰프들, 나의 옛 동료들을 둘러보니 그들은 아직 이 레스토랑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뛰어날 뿐, 로또 육인방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100 년 동안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그간 경험해 본 적 없는 압도적인 속도로 성장해 왔고, 이 문제까지 미리 파악하고 대비해 놓기에는 몸이


하나여서 아쉬운 상황이었다.

국제대회를 다니면서까지 인력을 수급했지만, 미슐랭 스타를 향한 나의 달리기 속도를 맞출 수는 없었다.

“공고 올려.”

“예? 무슨 공고를…….”

“셰프 뽑는다고.”

주방에서 나의 목소리를 들은 셰프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아냐. 너희들을 교체하겠단 말이 아니야. 걱정 말고 일들 해.”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100 년 동안 경험해 본 적 없는 문제가 생겼으니, 100 년 동안 해본 적 없는 해결책을 꺼내야 되지 않겠나.

‘완벽한 채널이 있어야 될 필요가 있어. 이 정도는 턱도 없이 부족해. 매번 인력문제로 발목을 잡힐 수는


없지.’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발목을 더 거세게 잡을 것이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빈도는 늘어날 것이니까.

‘아예, 인력 수급 공장을 만든다.’

“프랑스 내에 학교법인, 교육 법인을 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법무팀하고 협조해서 말해서 검토 좀


해줘.”

“예에?”

나에겐 돈도 있고, 이름값도 있고, 자유도 있다.

당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일은 실행시키는 게 인생 전체에 이득이 될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이 검토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나는 한발 더 나아갔다.

“세계 국제 요리 대회 일정 좀 뽑아 와.”

나는 WACS(세계조리사협회)의 공식 심사위원인 점을 이용하려 했다.

협회에서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협조해 달라는 공문이 오기도 하지만, 미리 신청을 할 수도 있었다.

-Global Chefs Challenge 글로벌셰프챌린지(세계조리사대회)

-IKA Culinary Olympics 독일 세계요리올림픽

-EXPOGAST Villeroy & Boch Culinary World Cup 룩셈부르크 요리월드컵

-Igeho 스위스국제요리대회

가장 가까운 일시를 보고 말했다.

“스위스 국제 요리대회 심사위원 자격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해.”

***

“다른 호텔은 그룹 차원에서 반유현 셰프를 섭외하려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다고 하는데! 파리! 로만
사장님은 완벽한 대비가 되어 있는 겁니까?”

포시즌스 사장단 회의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포시즌스 호텔의 사장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분기별로, 회의가 진행되며 이는 포시즌스를 설립한 초대 회장이 만들어 놓은 문화였다.


회의가 열리는 주기가 분기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는 그만큼 깊은 문화이자 역사로 자리 잡은
것이었다.

완벽히 자리 잡은 회의 문화가 있기에, 엄중한 사안이 아니면 회의가 자주 소집되지 않는다.

게다가 전 세계에 있는 사장들을 한곳에 모아야 되니 그에 대한 예산과 시간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유현’이라는 단 한 사람을 주제로 사장단이 다시 한번 모였다.

“1876 년 사장단 회의의 주기를 뒤바꾼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폭탄 테러범 말씀하시는 겁니까?”

“1876 년 포시즌스 파리에 폭탄 테러를 하겠다는 테러범 때문에 사장단 회의가 소집된 적이 있었는데,
반유현 셰프는 그 뒤를 이은 두 번째군요.”

그만큼, 반유현은 포시즌스 그룹 차원의 이슈이기도 했다.

“일단 파리의 모든 레스토랑의 실권을 쥐고 있으니……. 거기다 그 사람이 계속해서 요상한 행보를 보이니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행동을 제지할 세부 사항들을 계약서에 기록해 놨어야죠. 로만
사장님께서도 징계를 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허! 런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이사회에서 정할 일을 왜 우리 사장단이 정합니까?”

“일단, 들어나 봅시다. 반유현 셰프가 포시즌스 파리 내의 모든 레스토랑의 운영권을 포기하고, 다른


호텔로 간다면 사실상 포시즌스 파리의, 미식의 역사는 엄청난 불명예를 안을 텐데 그에 대한 대비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반유현은 미슐랭 스타를 원하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적어도 그전까지는 운영권을 내려놓지는 않을
터였다.

그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고 있지 않는 로만이었다.

“그 부분은 확실히 못 박아 두겠습니다. 반유현 셰프가 다른 호텔 그룹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요.


저는 현재, 더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요?!”

로만이 강렬한 눈빛으로 사장단을 훑어본 뒤에 말했다.

“완벽한 기회가 왔는데 그에게 투자를 하지 못할 것이 두렵습니다.”

“반유현이 다른 그룹으로 가지 못하게 투자를 더 공격적으로 진행해 그의 발을 묶자는 소린가요?”

“아닙니다. 아직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십니까? 반유현 셰프입니다. 반.유.현. 셰프! 저희
그룹이 엄청난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반유현에게 모든 관심을 끄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럴 수 없었다.

반유현이 호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반유현이라는 사람 자체가 주는 영감과 배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유현에게 그의 일상을 책으로 써도 되겠냐고 물었었던 로만이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반유현의 행보에 관심을 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로만은 반유현의 특별한 행보를 포착했다.


“인원 모집 공고, 학교법인 설립 검토, 스위스 국제대회 심사위원 자격 참가……. 이것만 보고도 감이
오지 않습니까?”

그리고 연결되는 그 일정들은 반유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유럽 내 모든 셰프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반유현이라는 사람에게 푹 빠져 있는 것도 있지만, 수치만 봐도 그가 여태까지 계획을 성공시킨


확률은 100%였다.

자신의 통찰력이 맞다면, 그룹 차원의 제재보단,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할 시점이라고 생각됐다.

65 화. 공장가동 (1)

“다들 도착하셨군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위원장님. 하하하!”

스위스 국제 요리대회, 심사위원 협의회.

심사위원으로 선발된 이들이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된 ‘반유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볼 수 있다니, 기대됩니다. 젊고 화끈한 성격을 가진 셰프라…….”

“요식업계의 태풍을 이끌고 다니는 젊은 셰프죠. 저희도 휩쓸리지 않게 조심해야겠습니다. 하하하하.”

“아니, 위원장님께서 휩쓸릴만한 분이 아니시잖아요. 호호.”

반유현,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보였던 행보가 너무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관심은


자동으로 그에게 쏠렸다.

“그나저나, 다들 들으셨습니까? 반유현 셰프가 정식적으로 한 제안을?”

“예? 무슨 제안을 했습니까? 저희와 같은 심사위원으로 선발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리고 WACS(세계조리사협회)에서 그를 심사위원으로 선발하기 위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게 화제가


되었다.

단 한 명의 셰프의 제안을 국제 대회에 반영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제 대회 개회식에서 본인의 갈라디너를 열겠다고 합니다.”

“예? 심사위원이 갈라디너를 한다고요?”

“뭐,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만, 요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셰프고, 협회 측에서는 대회 자체를


이슈화시키려면 반유현 셰프의 네임드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

“실제로, 반유현 셰프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대회 홍보가 시작되고 있으니까요.


갈라디너까지 홍보하면, 셰프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들의 관심까지 얻으리라 기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WACS, 즉 대회의 주체측에서는 셰프로서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루고 있고,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반유
현’을 이용해 대회 자체의 파이를 키워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심사위원들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 갈라디너 초대권은 어디서 얻나요? 심사위원들은 그냥 해주려나? 관계자니까.”

그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더 큰 것이 사실이었다.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감정들을 무시할 만큼, 그가 가진 셰프로서의 무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드디어,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으려나.”

“하하하하. 심사위원장님, 평소에도 반유현, 반유현 거리더니 드디어 이번에 만나시네요.”

그것은 요리 경력이 10 년, 15 년이 넘은 베테랑 셰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경력이 많은 그들에겐 더 큰 호기심과 기대감이 자리했다.

***

[ 2021 스위스 국제 요리대회, 개회 축하 갈라디너 - 반유현 셰프 ]

이번의 갈라디너의 규모는 그 어떤 그랜드 오프닝이나, 갈라디너보다 성대하게 치러졌다.

포시즌스 호텔이 그룹 차원에서 나에게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유럽 내 가장 유명한 공연관계자를 붙여 줬고, 거대한 무대와 대형 스크린


그리고 초호화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줬다.

“반유현 셰프입니다!”

무대 위에서 나를 부르는 사회자 브루노, 그 또한 스위스에서 섭외할 수 있는 최고의 MC 였다.

무대장치,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 조명, 사회자 모든 것이 초호화로 이루어졌다.

우와아아아!

내가 무대 위로 올라서자, 200 여 명이 되는 관객들이 환호와 박수를 쏟아냈다.

관객들의 구성은 이 대회의 관계자 30 여 명을 제외한 이 대회에 참가자 자격으로 이곳에 온 셰프들이었다.

“네,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환호! 마치 시상식에서나 볼법한 반응입니다. 아, 사실 제가 이런 쇼의


진행은 처음 맡아보긴 합니다만, 원래 이렇게 후끈한가요?”

“제 요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 참! 요리가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회자가 마이크를 테이블에 앉아 있는 관중들에게로 돌리자, 다시 한번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우와아아아아!

“이거, 이거, 이 정도 반응이면 객석에서 몇 분 골라서 인터뷰를 해봐야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셰프님?


말씀 좀 들어 드리면서. 좀 진정을 시켜야 될 것 같아요.”

부르노가 무대 위에서 내려갔고, 열성적인 환호를 내 지르는 한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녕하세요. 조리복을 입으신 우리, 젊은 셰프님. 화끈한 성원을 보내주고 계신데 소감 한 말씀이나,
반유현 셰프님께 하고 싶으신 말씀 있나요?”

“하아……. 제가 실력이 모란다고 생각해서 이 대회에 참석할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참석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그 뒤로도 몇 명의 사람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나는 오히려 그냥 빨리 갈라디너를 진행하고 싶을 정도였다.

내 앞에서 대놓고 나를 저렇게 치켜세워주니, 한두 번도 아니고…… 겸손한 미소를 계속 짓고 있는 게


힘들었다.

“저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먹고 싶어서,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그랜드 오프닝이나,
갈라디너는 항상 그 암표 값이 100 만 원을 넘었었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겠죠?”

“반유현 셰프님! 엄청 팬이에요! 사랑합니다!!”

사회자도 계속 일관된 사람들의 반응에 오히려 분위기가 루즈해 질 것이라는 판단에,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참…… 제가 여러 행사를 다녀봤는데, 이렇게 충성도가 높은 스타는 처음입니다. 자! 이제 그 쇼가


시작됩니다.”

브루노가 말하자,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올라왔다.

포시즌스의 셰프들과 로또 육인방이었다.

당장 갈라디너를 끝마치고 다시 파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피로도가 우려되지만 이들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밝은 표정이었다.

“갈라디너를 하기에 앞서, 직접 선별하신다고……. 어떤 걸 선별하시는 건가요?”

“이곳, 국제 요리대회가 진행되는 스위스는 오래전부터, 낙농업이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에 따라 자연히


치즈가 발전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말하자, 무대 위에 있던 테이블, 그 위에 있던 천이 거두어졌다.

그리고 그 천이 거두어진 자리에 여덟 가지의 치즈가 올려져 있었다.

“이것들을 보시면 저절로 떠오르실 겁니다. 스위스의 정통 요리인 퐁듀(Fondue)를 만들 건데요. 퐁듀에
들어갈 치즈를 골라보겠습니다.”

이전부터 누누이 말해왔지만, 퍼포먼스도 맛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의 퍼포먼스는 더 큰 빛을 발휘한다.

“와……! 오로지 맛으로만, 오늘 요리에 쓰일 치즈를 고르시겠다구요?”

무대 도우미들이 이번엔 안대를 가져와 나의 눈을 가렸다.

눈을 가리니까 이따금씩 객석의 반응들이 귀에 꽂혔다.

“뭐야, 치즈를 맛만 보고 구분해서 퐁듀를 만들겠다는 거야?”


“200 명 앞에서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는 거 아니야. 하아. 역시 반셰프님…….”

저마다 내가 안대를 쓴 행위에 대해서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얼추 맞아떨어졌다.

“아아아! 반유현 셰프님께서 치즈의 맛만 보고, 그 조합을 골라 퐁듀를 만드실 생각이십니다. 여덟 개의


치즈 중 어떤 치즈로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 내실지 궁금합니다!”

나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어 앞이 보이진 않지만.

리허설을 했던 터라, 사회자가 이 말을 했을 땐, 지금 무대 위에서 어떤 광경이 펼쳐졌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와아아아!

무대 도우미들이 올라와, 여덟 개의 치즈를 한입에 들어갈 만한 모양으로 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갈하게 접시에 올려놓고 내 입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나는 아주 여유롭게 그것의 이름을 말했다.

“부드러운 식감과 그 어떤 치즈보다 많은 향을 가지고 있는 이건……. 체다(chedda)치즈인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제가 만들 퐁듀에는 적절한 맛이 아니죠.”

사회자는 내가 방금 먹은 치즈가 체다치즈가 맞는지 접시 아래에 적힌 글씨를 읽어 확인했다.

“오, 오! 체다치즈가 맞습니다!”

우와아아아!

그리고 그다음, 또 다른 치즈가 내 입으로 들어왔다.

“카망베르(camembert), 매니아 층이 두터운 치즈로, 고소한 풍미는 고기의 지방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와……! 이것도 맞습니다!”

마치 기인열전을 보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내가 단 한 조각, 치즈의 맛을 보고 이 치즈가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있던 건, 치즈가 가진 특성


때문이었다.

치즈는 단백질, 지방, 칼슘, 인, 비타민 A, 비타민 B 등 유익한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특유의 풍미 덕분에 수많은 요리에, 적재적소 많이 사용되는 재료였다.

요리의 훌륭한 식재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하는 치즈에 대한


나의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이전에 캐비어와 트러플의 맛을 엄격히 구분 지었던 것만큼이나 치즈에 대한 경험은 풍부하다.

치즈의 종류마다 그가 가진 향과 맛은 확실하게 다르지만, 실제로 치즈가 갖는 공통적인 풍미 때문에


맛으로만 치즈를 구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곳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대부분이 셰프였다.


앞서 말한 치즈의 특성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치즈의 종류를 찍어내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에멘탈(Emmental), 다른 치즈들과 달리 단맛이 살짝 묻어있는 치즈죠, 제가 오늘 만들 퐁듀의 주된


재료가 될 것입니다.”

“이야! 에멘탈! 정답입니다! 이건 무슨!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치즈 농장에서 일하는 장인도 아니고
……!”

그리고 나는 여덟 개의 치즈 중 마지막 종류의 치즈의 이름을 말하면서 안대를 풀었다.

“그뤼에르(gruyere), 방금 맛봤던 에멘탈보다 견고한 식감이구요. 호두나, 견과류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와아아악!

치즈의 본고장인 스위스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도 꽤나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들의


소리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았다.

***

이번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알베르.

다행히 그가 원했던 반유현의 개회식 축하 갈라디너에 참석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에겐 새롭게 떠오르는 셰프들을 발굴하는 것보다 반유현이라는 셰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컸을
수도 있다.

“한 조각을 먹고, 여덟 개의 치즈를 다 맞춘다고? 미각돌기가 남다른가?”

“원래, 반유현 셰프는 맛을 보는 것에 있어서 남다른 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치즈의 종류는……!”

그리고 그 관심은 충격으로 이어졌다.

저 멀리, 무대 위에서 반유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겹살 퐁듀. 이제, 드셔보시죠.”

‘치즈에 돼지고기라……. 정통적인 조합은 아닌데.’

반유현의 목소리에 함성이 다시 한번 쏟아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돼지고기, 특히 한국에서 주로 유통되는 삼겹살을 두껍게 썰어 시어링한 뒤에 오븐에 구웠습니다.


한국에서는 ‘겉바속촉’이라는 말이 유행하곤 하는데, 그 네 글자의 단어가 왜 유행이 되는지 직접
드셔보시면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들은 실제로 알베르의 입에서 구현되었다.

돼지의 껍질과 지방질을 바삭하게 익혀 과자와 같은 식감을 살렸고, 그 바삭함이 지나간 뒤에는 고기의
육즙과 함께 삼겹살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터져 나왔다.
알베르가 충격을 먹었던 것, 이 강력한 맛뿐만 아니라 구성이었다.

“삼겹살이 가진 지방과 살의 비율을 고려해 고기를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분류된 고기에 따라, 칼집을
넣는 횟수, 소금과 후추의 양, 시어링 시간, 오븐의 굽기 정도를 모두 달리했습니다. 여러분께 서빙된
고기는 모두 같은 치즈 퐁듀에 찍어 먹지만, 맛이 모두 다른, 풍부한 경험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와……!

반유현의 말에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가 말한 설명들이 아까처럼 실제로 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같은 크기로 썰려있는 다섯 점의 고기, 각각의 고기를 치즈에 찍어 먹을 때 느껴지는 맛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마치 마술공연을 보는 것 같은 신비함에 빠지니, 황홀함까지 몰려왔다.

“완전히 미쳤구만……. 반유현…….”

그의 명성을 실제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66 화. 공장가동 (2)

이번 갈라디너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온 셰프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저마다 탄성을 내뱉으며 대회
현장을 빠져나갔다.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의 관계자들과 심사위원들이 나와 인사하기 위해 남아있었는데.

“아, 안녕하세요. 반유현 셰프님……. 그……. 와…….”

아무래도, 내가 보여준 맛에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그런 생각과 발상은 뭐……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 맛의 다채로움이 느껴져 너무나 놀랐습니다.”

이번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알베르였다.

15 년째 이 대회의 심사위원을 맡은 그는 결국 이 대회의 심사위원들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가진 인맥들이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나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요리 업계의 나의 이름이 널리 떨쳐지고 있는 것은 맞으나, 나에겐 ‘인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끈끈한 커뮤니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어떻게 돼지고기를…….”

“지방과 단백질이 가진 각각의 풍미는 당연하게도 다릅니다. 그리고 그 비율을 다르게 가진 고기들을
분류해서 각각이 가진 풍미를 최대한으로 낼 수 있게 조리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이해는 갑니다만 혀에서 그 맛을 느낄 때, 말씀하신 것들이 정말로 뚜렷하게 실현되는 게


대박이었습니다.”

삼겹살 퐁듀.

가장 맨 처음의 고기는 지방의 고소함이 강조된 부위였다.

그것을 치즈에 찍어 먹었을 때는, 지방의 고소함이 보다 더 고급짐으로 포장되는 맛이었다.

“그 맛이 계속되었다면, 질렸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지방의 풍미가 다양하긴 하지만 그 다양함이


계속되면 진부해지니까요. 그런데, 점점 육질이 많은 고기가 입안으로 들어왔죠.”

지방과 단백질의 함유량에 따라, 지방이 많은 고기부터 단백질이 많은 고기 순으로 고기를 플레이팅해서
내보냈다.

고기가 플레이팅 된 순서에 따라 치즈에 고기를 찍어 먹었기에, 알베르는 지방이 많은 고기의 완연한
고소함을 느끼고 난 뒤에는 육즙이 점점 많이 터져 나오는, 돼지고기 특유의 풍미가 강해지는 것을
단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단계가 뚜렷하고 구체적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기의 질에 따라 조리를 다르게 해, 그 각각의 특성을 완벽하게 살렸다는 것이…….”

심사위원장 알베르의 말에, 다른 심사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들이 느낀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다들 심사위원 경력이 5 년을 넘은 베테랑 셰프들이라 그런지, 표현이 명쾌했다.

“페어링 된 와인도 최고였습니다. 산도가 높은 강한 맛의 와인은 입안을 향긋하게 정리해주면서, 다음의


고기가 무슨 맛을 낼지에 대한 기대감을 올려주었습니다.”

“산도가 강한 와인은 치즈가 위장 속에서 응고되는 것을 막아 소화를 돕는 효과도 있습니다.”

“단순한 요리였지만, 그 안에 엄청난 내공이 담겨 있는 요리였습니다. 정말……. 차암나! 하하하하!”

내가 싱가포르 국제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오면서, 주최 측에 갈라 디너를 제안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이 대회에 참석한 유망주 셰프로 불리는 이들이나,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싶은 셰프들의 뇌리에 나를 더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셰프가 요리라는 행위 자체에 가진 신념이나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이 대회에 참여한 셰프들은 대부분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열망이 있고, 자신의 요리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저마다 자신들의 요리에 고귀한 신념과 정체성을 새겨 넣을 것인데, 나의 이름값만으로 셰프를


쥐락펴락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내가 이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인력수급의 문제를 더 이상 겪지 않기 위해 많은


셰프들을 내 품으로 끌기 위해서였으니, 내 요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모르게 심사를 하고 있군요. 하하하하!”

“뭐, 심사를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야지요. 최고점입니다! 최고!”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보니, 다른 셰프들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심사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기자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반유현 셰프님! 이번 대회에서,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어떤 대회가 그렇듯이,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질문은 그랬다.

심사위원에게 어떤 평가항목을 중요하게 볼 것이냐는 질문, 그런데, 지금의 분위기는 뭔가 묘하게


흘러갔다.

내 옆에 심사위원장인 알베르가 있음에도, 나에게 질문을 하는 기자들 때문이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알베르의 눈치를 살피고 있고, 알베르는 괜찮다는 듯이 ‘허허’하며 웃음을 지었다.

내가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좌우로 젓자 그제서야 기자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다시금


질문했다.

“아, 아, 순서가 잘못되었네요. 저희도 방금 반유현 셰프님의 갈라디너에 참석했어서…… 하하.


너그럽게 봐주시죠. 위원장님, 위원장님께서는 어떤 평가항목을 중점적으로 보시나요?”

“하하하. 뭐, 괜찮습니다. 당연히 반유현 셰프에게 먼저 질문하는 게 상황상 맞죠! 하하하하. 음…….
저는 매 대회마다 그랬듯이, 각 식재료들 간의 조화, 그리고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나 조미료가
적절하게 사용되었느냐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맛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그것들을 과하게 사용해 요리를
망치는 셰프가 있는가 하면, 아주 적절히 사용해 원래의 맛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맛을 만드는 셰프도
있는데, 저는 그 차이가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알베르가 답했을 땐, 한 명의 기자는 다시 내게 물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어떤 평가항목을 중점적으로 보시나요?”

“음…….”

심사위원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가항목이라…….

사실 나에겐 큰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다. 요리를 한 입만 먹어봐도 그 셰프의 수준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내게, 중요한 평가항목이 있을 리가.

내가 뭐라고 답해야 될지 생각하던 찰나에, 재밌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돼지고기 있잖아요?”

“네? 돼지고기요? 돼지 요리를 하는 셰프에게 가산점을 준다는 말씀인가요?”

“아뇨, 절대 그럴 일은 없고요.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사실, 저와 같은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은 맛을


볼 때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장 단편적인 예로는 OR7D4 라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OR7D4.

거세하지 않은 수퇘지에서 나는 냄새, 웅취라고도 하며 한국인들은 누린내, 잡내라고도 하는 그 냄새를


느낄 수 있게끔 해주는 유전자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전 세계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있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없다.

즉, 누린내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전 세계 인구 중에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저희 한국인들이 파리나, 런던 등 유럽 주요 도시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방문해서 돼지고기를 먹으면
‘맛없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게 이 때문입니다. 이 유전자가 없는 셰프들은 누린내의 존재
자체를 모르니까요. 오이의 쓴맛을 느끼는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그들은 미각돌기가 더 많아,
남들보다 오이의 쓴맛을 느껴 오이를 먹질 못하죠.”

기자들과 심사위원들의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저는 이런 개개인이 가진 신체적 구조나 유전의 차이에 의해 생긴 맛의 차이까지 아우르는 셰프의 요리를
먹어보고 싶습니다.”

내가 뱉은 이 말을 이 대회에 참가한 셰프들이 어떻게 해석할지가 궁금했다.

그에 따라 이 대회에 얼마나 많은 파급력을 가져올지 지켜볼 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만을 가지고 다음 계획을 진행시킬 생각이었다.

***

“좀 멀리 떨어져서 걸어.”

나는 심사위원들 중에 유일하게 경호원이 붙은 셰프였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나의 팬덤이 너무 강해져 나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포시즌스 측에서 경호


인력을 붙여준 것이다.

대회 주최 측에서도 내게 경호 인력이 필요한 것을 이해했는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 개인 라이브부문.

나는 그 경연장으로 왔다.

수백 명의 셰프들의 긴장한 표정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대회의 규모를 보면 개회식에서의 내 갈라디너의 규모를 작게 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참석했던


셰프들에 의해 나의 요리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는지, 나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셰프들도 많이 보였다.

조리대 사이에 있는 복도를 걸으며, 나는 셰프들의 요리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셰프들이 사용하고 있는 식재료들을 보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돼지고기.’

대부분은 아니지만, 눈에 띌 만큼 많은 셰프들이 돼지고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대회 전 했던 인터뷰에서,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것에 가산점이 부여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음에도


그저 나의 입에서 돼지고기가 언급되었다는 것만으로, 돼지고기를 자신의 요리의 주된 식재료로 선정한
셰프들이었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셰프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재료가 있었다.

‘오이.’
오이 또한 대회 시작 전, 돼지고기와 함께 잠시나마 언급을 한 식재료였는데, 자신들이 준비한 요리에
오이를 더해 어떻게든 나의 주목을 받아보고 싶은 셰프들이었다.

“대단하십니다. 참……. 셰프들이 준비한 요리에 반유현 셰프님께서 그저 언급한 식재료가 추가될
정도면.”

내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던 알베르가 말했다.

그의 15 년 심사위원 경력 동안 이런 광경은 처음 봤다는 식의 말투와 표정이었다.

“우연인 것 같습니다.”

매번 그렇지만, 겸손이란 덕목은 내게 제일 힘든 것이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해야 되니 말이다.

“근데 또, 갈라디너에서 본 반유현 셰프님의 퍼포먼스와 요리를 보면 이런 현상이 이해가되기도 합니다…


….”

나는 알베르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열심히 요리에 열중하고 있는 셰프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 셰프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건 무슨 요리입니까?”

“토르티야에 찹스테이크처럼 썰어 넣은 돼지고기를 각종 야채와 칠리소스를 넣어 싸 먹을 겁니다.”

“원래, 돼지를 사용하려 했어요?”

“아니……요.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러면 잘 봐주실까 봐…….”

돼지고기가 익은 형상을 보니 맛이 뻔하다.

내가 앞서 인터뷰에서 누린내에 대해 강조해서 그랬나, 이 셰프는 후추를 이용해 그것을 잡기 위해 후추를


너무 많이 뿌려, 고기의 겉면이 대부분 타버린 상태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젓자, 셰프는 절망의 표정으로 요리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다른 심사위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141 번 참가자. 포기하는 겁니까?”

“예.”

“하하. 반유현 셰프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는 이유로?”

“그렇습니다.”

오히려 당당한 참가자는 조리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목적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미간을
좁혔다.

이 대회의 성질 자체를 바꿔놓는 나의 존재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반유현 셰프님, 음……. 반유현 셰프님의 대단한 입지는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셰프들이 자신의
내면을 요리를 통해 마음껏 표출하는 이 대회의 성질이 조금은 변한 것 같습니다. 셰프님께서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대회와 관련한 발언들은 삼가주시죠.”

물론, 그에 따라 이런 반응이 나올 것까지 모두 내 머릿속에 있었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나의 계획에 의해 벌어지는 현상과 일들이 어떤 문제를 만들어낼지, 그것까지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것이었으니까, 다른 심사위원들의 이런 반응도 모두 내 계획에 들어있던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안 그래?”

“그, 그렇습니다.”

나의 계획을 알고 있던 오스틴이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67 화. 공장가동 (3)

애초에 이 대회를 흥하게 하고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 5 대 요리대회로 손꼽히는 이 대회에 참여한 것은 나를 부각시키고, 내가 인력수급 공장을 차리기


위한 그 발판, 또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문제가 생각보다 큽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이 대화들은 그에 따라 발생할 문제들이었기에,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심사위원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자신들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이 대회가 단 한 명의 셰프의 영향력에 좌지우지될 대회가 아닐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져서 그런지, 이들의 생각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유현 셰프를 배척하기엔 아시다시피 그의 영향력이 너무 큽니다. 이 대회 전체가 어쩌면…


….”

심사위원장인 알베르가 나를 품고 대회를 진행해야 된다는 측의 대표 주자였다.

내 요리를 먹고 맛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경험이 풍부한 그는 확실히 상황을 통찰하는 눈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나의 발언과 나의 영향력 때문에 대회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완전히
배척하고 나서 생길 문제들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눈치였다.

“앞으로 개인부문 말고, 국가대표부문, 팀 부문, 제과 제빵 부문 등 치러질 종목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잘라내시고 이 대회의 본질을 지키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라는 한 명의 개인이,
이 대회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게……. 참가하는 셰프들에게도 불편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강경파, 나의 존재를 완전히 배척시키자는 생각의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여 요리문화 발전을 도모한다는 이 대회 자체의 본질을 내가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회 첫날, 개인 라이브 부문에서 대부분의 셰프들이 나의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저들에게


좋게 보였을 리가 없었다.

또, 경연이 열리기 전, 미리 제출한 레시피를 수정할 수 있는 기간이 주어지는데 수정을 원한 셰프들


대부분이 내가 언급한 돼지고기와 오이를 레시피에 추가한 것이었다.

“돼지, 오이라는 식재료를……. 원래 저희도 구체적인 식재료들을 말하는 것을 삼갑니다.”

“맞습니다. 저희 말 한마디가 대회에 영향을 미칠까 봐서죠.”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강경파였지만, 알베르가 나를 두둔하고 있었다.

“뭐, 다른 심사위원분들의 말도 충분히 맞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 모두, 반유현


셰프의 갈라디너에서 그의 실력과 내공을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반유현 셰프가, 세계 최연소로 미슐랭
포스타의 셰프인 것을 넘어서, 그 이상의 요리였습니다. 아주 신선하고, 모두를 충격에 몰아넣은…….
20 년이 넘은 제 요리 인생에 엄청난 영감을 불어넣어 줬단 말입니다. 저는, 그런 셰프 한 명이 이 대회
자체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한 명에 의해 대회의 본질이 좌지우지되는 것도 맞지만, 반대로 대회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셰프들은 내가 대회전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대로, 유전자 차이에 의한 맛의 차이를 메꾸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했고 그에 따른 레시피들을 경연에 활용하기도 했다.

“참나. 한 명의 셰프에게 휘둘리는 알베르 셰프님도 반성하시죠! 뭐 하시는 겁니까. 이 대회의 역사를
우습게 보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 반유현 셰프는 이 대회를 위해서라도 심사위원자격을 뺏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직접 말씀해보시죠. 본인이 이 대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영향에 따른 장점과


단점을요.”

심사위원들 간에 논쟁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는
듯이 내게 질문했다.

“논쟁 자체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유감스럽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심사위원직을 내려놓도록 하고,


다음 대회에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대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을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심사위원들의 이러한 논쟁을 계획에 넣어 둔 것은 그랬다.

“예?”

“에에?”

“아니……그러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말하자 심사위원들이 놀란 눈치였다.

그제서야, 내가 이 대회의 심사위원직을 내려놓으면 생길 문제들이 떠올랐나 보다.

“참나! 무슨 태도가 그래요? 이슈만 만들어 놓고, 각종 논란이 생기니 바로 사퇴를 한다고요? 애초에 이
대회가 그런 수단이었습니까?”

맞습니다. 이 논쟁까지 모두 계획에 있던 것입니다.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더 큰 논란을 만들기 싫었다.


***

“여태껏 볼 수 없던 자신감과 요리 스타일이었어…….”

반나절 동안 있었던 논쟁을 뒤로하고, 반유현을 놓아주기로 한 알베르.

그는 대회 현장 한편에 마련된 자신의 집무실에서 생각에 빠져있었다.

“뭘까.”

요리경력은 약 26 여 년, 국제 요리대회를 심사한 것만 15 여 년.

그가 요리를 시작한 지 10 년째가 되는 해부터 줄곧 셰프들의 요리를 심사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반유현 셰프의 요리와 그가 보인 행동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리라.

“앞으로 10 년 뒤에는 대체 이 업계에 어떤 일이.”

이제는 그의 이름값과 그에 따른 입지, 그리고 영향력이 너무나 거대해져 사람들은 그가 요리를 제대로
시작한 지 2 년도 안 된 셰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2 년이라는 기간이 꾸며진 것 없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은 방송을 통해 수 차례 밝혀진바.

자연스럽게 알베르는 반유현의 10 년 뒤 미래를 상상하고 싶어졌다.

[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 반유현 셰프 심사위원직 사퇴. ]

또, 그가 보여준 모습은 마치 심사위원직을 내려놓는 것까지 생각하고 온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자신을 둘러싼 논쟁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겠지.

[ 스위스 일대에 돼지고기 파동! 반유현 셰프, 한 마디의 효과? ]

그런데, 또 그렇다고 단정 내리기엔 그가 언론에 의도적으로 비치는 모습들이 많은 것 같았다.

[ 반유현. “제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 생각 안 하고, 함부로 발언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만약 다음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선발된다면, 최대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

[ 반유현! 다음의 행보는 또다시 프랑스 파리? ]

[ 반유현의 파리 사랑, 어떤 이유가 있나. ]

요리 잡지, 요리 신문 등 주요 요리대회를 집중 조명하는 언론사에는 또 반유현의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알베르의 머릿속에는 반유현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고, 그 궁금증을 끝까지 파헤쳐
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역사에 없었던 전무후무한 행보를 보이는 셰프…….”

반유현 셰프를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리 문화의 모든 것을 바꿀 셰프일지도 몰라.”


[ 반유현 셰프 사퇴에 따른, 셰프들 대회 불참률 증가! ]

“흠.”

그리고 딱, 불쾌한 기사를 마주했을 땐, 국제 요리대회의 진행 요원인 사내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셰프들의 불참률이 현저하게 증가했습니다. 반유현 셰프의 사퇴 기사가 난 직후와 이전…….”

“원래, 반유현 셰프만을 보고대회에 참석한 이들이라 대회 진행에는 큰 차질이 없지 않나요? 오히려
거품이 없어져서 좋다고 다른 심사위원들은 좋아하던데.”

“그게……. 반유현 셰프가…….”

[ 반유현, 유렵 최대 규모의 요리 전문 교육기관 설립. 지원서 접수. ]

***

“이름은 ‘반유현 팩토리’. 검토는 끝났고, 이 계획에 이의 있으십니까?”

포시즌스 간부회의. 스위스에서 돌아오자마자 회의를 주재했다.

이들도 스위스 국제 요리대회에서 나의 영향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어떤 누구도 내 말에 반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제 목표에 동의하신 거니, 다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계획을 대외적으로 알리면 많은 제안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이점도 인정하십니까?”

모든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장인 로만과 상무, 지배인은 내가 다른 호텔 그룹의 주주들에게 명함을 받는 것을 실제로 봤으니까.


그랬던 사실이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진 모양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가진, 그 이름 자체의 네임드를 저희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호텔 측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내 질문엔 모두가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때에, 역시나 로만이 말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시설을 약속해야지요. 이미 그룹 내 사장단 회의에서 반유현 셰프님께 공격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것을 허가받은 상황입니다.”

매번 나를 믿는다고는 해도, 약간의 의문이 느껴졌었는데, 말투의 톤이 달라진 것을 보니 어느 정도 나의


계획을 인지하고 있던 모양이다.

“제게 관심을 끄라고 하셨는데, 지켜보고 있으셨나 보군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의 모든 속내를 나는 알고 있다는 정도를 말해주려고.

“아, 아니…….”

“농담입니다. 그래서, 어떤 공격적인 투자를 하실 건가요?”


“크흠! 저희 호텔과 100m 떨어진 거리에 원래, 대형마트였던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임대로 해서 첫
시작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포시즌스 파리 인근, 800 여 평의 대형마트.

내가 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괜찮네요. 공사는 바로 진행해주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선택하는 것보다는 바로바로 실행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목표는 르 꼬르동 블루입니다.”

“예?”

“에?”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라 손꼽히는 이름, 르 꼬르동 블루.

1895 년 파리에 첫 르 꼬르동 블루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전 세계 29 개의 국제적인 요리 학교가 된 곳이었다.

“학비는 공짜, 3 년 과정, 그중 1 년 동안 반유현 레스토랑에서 실습.”

“무, 무료 학비 말씀이십니까?”

“목표를,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 중 하나로 정했으니, 경쟁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 역사와 전통 앞에 저의


이름값 그 자체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

세계 최고 중 하나라 불리는 학교의 이름을 들먹이며 내 계획을 말한 것은 나의 생각의 타당성을 얻기


위함이었다.

목표가 세계 최고라니, 나의 계획에 반론할 생각을 하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홍보 시작하시고, 그 교수진을 모집하는 것에도 힘써주세요.”

세계 최고의 요리 교육 기관이 목표라면서,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계획을 쏟아내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해 주시면, 저희가 집중해서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만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내 원대한 계획 중 하나를 일부 말해줬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은 차후, 레스토랑 ‘반유현’의 창업 기회가 부여됨. 일단 이것부터 던져보시죠.
얼마나 많은 셰프들이 몰릴지 그 반응을 보고 조건을 더 제시해야 할지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아,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스위스 국제 대회에 있었던, 저와 관련된 기사들 있잖아요. 더 뿌려주세요.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실력 있는 셰프들을 계속해서 레스토랑 ‘반유현’에 공급할 수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시작이었다.


구체적으로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어떤 장애물도 없이 전 세계에 내 레스토랑을 뿌릴 수 있지.’

지금까지 달려왔던 속도와는 또 다른,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68 화. 공장가동 (4)

“이게, 지금……. 오늘 맞아?”

로만과 그의 간부들, 그리고 여태까지 반유현을 잘 따라왔던 셰프들은 눈을 다시 비비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800 평의 대형마트, 그곳의 모든 가구들을 빼고 약 400 개의 의자를 배치했었는데, 빈틈이 안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오, 오늘 날짜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맞아 다시 확인해 봐. 이 많은 사람들이 강사, 교수진일 리 없잖아.”

이들이 이렇게 크게 놀란 이유는 단순했다.

“대체 그럼 학생들은 얼마나 몰린다는 거야?”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숙련도가 높을수록 그에 해당하는 인구가 적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이 요리라는 분야에 꽤나 높은 숙련도를 가졌고,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수백 개의 의자를 빼곡히 채울 만큼 앉아 있던 것이었다.

‘반유현 팩토리’. 내 요리 전문 교육기관의 설립을 도와주던 포시즌스 측의 직원들은 혹여나 학생모집과


교수진 모집의 날짜가 혼동되어 섞였는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저분하고……. 저분은…….”

언뜻 보이는 스타 셰프, 유명 셰프들은 오늘의 날이 교수진을 모집하는, 그 면접의 날이라는 것을


반증해주었다.

“아아. 반유현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그들의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어……. 일단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집요강에도 올려놨듯이, 투잡, 그리고


부업의 개념으로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직을 맡으실 수 있습니다.”

최고 숙련도의 셰프들이 자신들의 주방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은 큰 뜻이 없으면


어렵다.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의 개념으로 교수로 초빙한 셰프들의 스케줄을 짜 강의를 진행하는 시스템을
고려했다.

또, 그들이 각자의 주방에서 일함과 동시에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직을 맡을 만한 충분한 명분을
제시했다.

“아마, 레스토랑 ‘반유현’의 오너 셰프로서의 창업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을 듣고 오신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미슐랭 스타 셰프, 특급 호텔의 총 주방장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많이
보였다. 나이대도 나보다 적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이가 없고, 침착하게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

그리고 그 중엔 나의 눈을 사로잡은 셰프가 있었다.

“알베르 셰프님, 대회는 잘 마치셨습니까?”

짧은 백발의 콧수염, 통통한 몸집. 싱가포르 국제 요리 대회의 심사위원장인 알베르였다.

“후……. 하하하. 반유현 셰프가 심사위원직을 내려놓고 너무나 많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셰프들이 대회에서 이탈해, 대회 자체를 잘 마쳤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아무래도, 다들 이곳으로 몰릴
것 같다는 게 저희들의 분석이었습니다. 진정 그런지 확인하러 왔고요.”

“죄송하지만, 저희 일원이 되지 않으신다면, 내부 정보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서류심사, 요리 테스트와


면접, 그리고 필기시험 등 여러 항목을 통해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을 구성할 생각입니다. 직접적인
관심이 없으시면 도전을 안 하시는 게…….”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어쩌면 이곳에서 요리 경력이 가장 오래 되었을 것 같은, 알베르.

경력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존경을 받고 있을만한 그 셰프가 내가 만든 교육기관에 교수가 되기 위해


응시를 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그의 행동이 불편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 당장의 내 목표는 후학 양성보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확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고한 신념을 가진 그에게 나의 음흉한 야망을 솔직히 말하기가 불편했던 것이었다.

“하하하! 아니요. 반유현 셰프님 그 자체에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레스토랑 ‘반유현’을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이름 아래에 있다면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는지도
궁금하구요.”

싱가포르 국제 요리 대회에서 나의 요리와 행동, 자신감을 비롯한 모든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포시즌스의 사장인 로만처럼, 오히려 많은 경험이 있는 자들이 나 자체의 인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 오랜 경험 동안 나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알베르도 로만과 같은 종류의 사람인 듯했다.

“나이 제한은 없지 않습니까? 반유현이라는 그 이름 밑으로 들어가고 싶은 게.”

요리 경력 30 년이 다 되어가는, 중년의 남성이 저런 말을 하니 알베르 자체에도 이목이 집중되었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들어, 선발과정을 설명했다.

“처음은 서류입니다. 지금 저희 직원들이 보내주신 서류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서류는 저 혼자


검토할 계획이고, 서류에 합격하신 분들에 한해, 요리 테스트를 진행할 겁니다. 요리 테스트 뒤에는 면접
…….”
나는 잠시 마이크를 내려놨다.

“거기, 나가주세요.”

“에?”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있던 사람.

조리복에 붙은 뱃지는 특급호텔 ‘레이언’, 그리고 그 뱃지 옆의 또 다른 뱃지는 미슐랭스타를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저 뱃지들이 저 셰프의 자신감을 채워줬으리라.

거만한 자세로 날 쳐다보고 있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약 400 명의 셰프님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선발할 생각인데, 시간이 없어서요. 태도나 자세로 몇 분
거르고 생각하겠습니다. 제가 이 기관의 수장이 될 사람인데 모르셨을 리는 없고…….”

드르륵!

드르르르륵!

내가 그 말을 뱉었을 때는, 의자 끌리는 소리가 대형마트 안을 가득 채웠다.

수백 명의 셰프들이 의자를 당겨 허리를 곧추세우는 소리였다.

‘반유현’. 내 이름이 이제는, 경력과 나이와 무관하게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했다.

***

지원서를 보니, 아메리카, 중동, 아시아 대륙을 막론하고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셰프들이 자리했다. 유명
셰프들의 이름도 종종 보이기도 했다.

‘노부 마츠로?’

이 이름을 봤을 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일식 세계화에 앞서고 있는 선두주자이자, 미슐랭 스타를 9 개나 보유하고 있는 특급셰프.

나하고는 지난 라스베이거스에서 안면을 텄고, 로또 육인방인 메이에게 처음 요리를 가르쳐주었던


스승이기도 했다.

이런 특급셰프가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일식 세계화에 내 이름을 이용하고 싶다는 건가.’

자신의 원대한 목표에 나의 이름을 그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가 가진 명성이나 입지가 나의 계획을 거스를 가능성이 있어 그 점을 확실하게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든 레지 두바이?’

그다음 내 눈에 띈 지원서는 레스토랑 ‘고든 레지 - 두바이’의 총주방장이었다.

카림. 중동국가 출신의 셰프로 미슐랭 원스타를 소지한 채, 고든 레디에게 섭외되어 두바이 지점을 맡고
있는 셰프였다.
고든 레지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그가, 이제는 새롭게 모실 셰프를 찾는 모양이다.

그밖에도 각 지역에서 굵직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들이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가 되고자 하는 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보통 프렌차이즈가 아니니까.’

전 세계에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붙은 레스토랑은, 총 4 개.

[ 레드테이블 - 반유현 ]

[ 반유현 - 레드, 블루, 옐로. ]

그 모든 곳의 예약이 3 개월 단위로 밀려있다는 것은, 그 이름은 매출이 보장되어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런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유보다 이들이 이 먼 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반유현이란 이름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겠지.’

요리를 시작한 지, 1 년이 조금 넘은 기간 동안 보여준 업적과 성과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각 지역에서 나를 둘러싼 사건들이며 소문들까지 하면, 셀 수가 없을 지경.

덕분에 이곳에 모인 셰프들은 앞으로의 내 미래가 더 기대됐던 탓이다.

-반유현 셰프님의 미래에 남은 제 요리 인생을 투자하고 싶습니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새로운 곳을 맡아, 세계정복의 초석을 마련하겠습니다.

-제 경력이 11 년, 미슐랭 3 스타. 반유현 셰프님의 경력, 1 년 반. 미슐랭 4 스타. 저도 압축해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배워보고 싶구요.

지원서의 한편에 마련된 지원 동기를 보면 그랬다.

학생들을 뽑는 것만큼이나, 교수진을 뽑는 것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유명 셰프들을 서류로 걸러내었고, 요리 테스트의 현장에 다시 와 있었다.

점수를 높게 주는 가장 큰 요소는, 이들이 초급 셰프들을 잘 가르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나의 말을 잘


알아듣고 나의 요리 의도를 잘 구현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800 평의 대형마트가, 요리 전문 교육기관으로 탈바꿈되기 직전, 축구장 같은 넓은 공터에는.

400 개의 의자가 마련되고 남은 공간엔 약 80 개의 조리대가 있었다.

“자유요리. 시작.”

내가 시작의 사인을 보내자, 셰프들이 요리를 시작했다.

재료들도 본인이 직접 준비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선보인다.

말 그대로 자유요리.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한 자유 요리와, 내가 말한 자유요리의 뜻이 다르다.

“19 번 셰프님, 농어 스테이크, 월계수 잎과 바질 말고 다른 향신료를 사용해서 맛을 내주시죠.”


“예에?”

“66 번 셰프님, 베샤멜(Bechamel)소스는 우유 말고 다른 방식으로 농도를 조절해 보시죠.”

“네?”

내 자유. ‘내’ 자유 요리였다.

앞서 말했듯이, 내 요리 의도를 가장 잘 구현한 사람을 뽑으려면 이 테스트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33 번 셰프님, 굽기는 어느 정도로 하실 생각이셨죠?”

“미디움 레어로…….”

“레어로 해주시고, 퓨레는 빼주세요. 고기의 간과 가니쉬로만 이 요리를 평가하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들이 수두룩하고 대부분이 베테랑 셰프들임에도 자신들이 힘껏


준비해온 요리를 선보이지 못할 생각에 당황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나는 그렇게 한 명 한 명에게 요리를 수정하는 것을 지시했다.

“알베르 셰프님?”

“하하하. 네. 셰프님께서 스위스에서 보여주셨던 삼겹살 퐁듀. 수정이라니……. 저의 자유요리가


아니었군요. 너무 쉽게 봤습니다. 저는 그때 먹었던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최대한 재연해서 만들어
보려 했습니다.”

“치즈 종류만 바꿔서, 다른 맛을 내보시죠. 치즈는 저쪽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알베르처럼 나의 요리를 그대로 구현에 높은 점수를 얻고자 하는 셰프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곳에 참여한 유명 셰프 중 한 명인 노부 마츠로도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선보여 연일 화제가


된 ‘규카츠’를 만들고 있었다.

“유자를 곁들인 폰즈 소스, 그리고 생와사비를 이용해서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응용해보려고
했습니다.”

“폰즈 소스는 빼고, 홀란데이즈(Hollandaise) 소스를 만들어주세요.”

미슐랭 9 스타, 평생을 일식에만 바쳐왔던 스타 셰프에게 네덜란드의 오랜 전통과 역사가 담긴 소스를
요구하니,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레스토랑 ‘반유현’은 일식집도 아니고,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올 학생들에게 일식만 가르칠 것도
아닙니다. 셰프님의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셨다면, 잘못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홀란데이즈 소스. 만들어 보겠습니다.”

노부 마츠로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69 화. 공장가동 (5)

포시즌스 도쿄나, LA 에서 섭외를 실패한 셰프들, 즉, 특급 호텔의 제안을 걷어차 버리는 그 고고한
셰프들도 반유현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레시피를 수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 명도 없지? 셰프라는 직업 자체가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할 텐데…….”

물론, 로만의 생각처럼 반유현의 요구에 반박하는 셰프도 있었다.

“예, 반유현 셰프님, 그 의도는 알겠지만. 지금 이 조리법과 레시피만이,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맛입니다. 이 요리에는 수년간의 제 노하우가 담겨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 요리를 수정하신다면,
이 요리는 더 이상 저의 정성과 노하우가 담기지 않은 요리가 되어버리니, 저는 그런 요리를 그
누구에게도 선보일 수가 없습니다.”

반유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손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반유현에게 반박한 셰프가 조리 기구를 내려놓고 입구로 걸어 나갔다.

베테랑 셰프인지라, 더 이상 반유현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자존심을 챙기는 모습이다.

반유현 또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반유현은 계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셰프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저런 모습을 거의 맨날 보는데,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있나…….’

로만은 저 인간 자체의 행동을 보는 것을 끊을 수가 없어졌다.

‘요리 실력으로만 성공한 게 아니야.’

조리법과 레시피의 수정을 지시하는 저 손짓과 말투는 그가 이 현장에서 가장 어린 나이를 가졌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만의 눈에 보이는 그의 행동과 말투는 그가 100 년의 셰프 생활을 했다 한들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약 60 여 명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반유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에는 그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띵!

그때, 타이머가 울렸고 반유현이 셰프들의 앞에 서서 말했다.

“시간 끝났습니다. 테스트하겠습니다.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대기해주세요.”

***

심사를 보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이들의 표정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매번 주방에서 셰프들을 지휘하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요리가 심사 된다는 것
자체가 셰프로서의 오랜 경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어떤 치즈를 넣으셨나요?”

“그뤼에르치즈를 빼고, 마스카포네 치즈를 넣어봤습니다.”

특히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알베르가 그랬다.

약 25 년의 요리 경험, 그리고 15 년의 국제 요리 대회 심사위원 자격을 가진 그였다.

매번 누군가를 심사하던 위치에서 심사를 받는 것 자체만으로 심장이 뛰나 보다.

‘괜찮네.’
내가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 갈라디너에서 했던 요리인 삼겹살 퐁듀를 그대로 선보이려 했던 알베르.

그 퐁듀에 들어가는 치즈 종류를 바꿔 최상의 맛을 찾아보라고 했었다.

내 표정에 약간의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는지, 알베르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맛이…… 괜찮으십니까?”

내가 선보였던 퐁듀와 다르게 알베르의 퐁듀에는 마스카포네라는 치즈가 들어갔는데, 이 치즈는 마치


버터를 만들 듯이 우유에서 분리한 크림을 원료로 사용했다.

덕분에 지방 함유율이 높아 아주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고, 치즈 특유의 짠맛이나 그 냄새가 나지 않는


치즈였다.

퐁듀 안에 있는 에멘탈 치즈의 강한 향과 맛을 중화시켜주며 식감을 살렸고, 중화된 에멘탈 치즈의 맛


덕분에 찍어 먹은 삼겹살의 육질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식감과 맛을 동시에 고려한 건가?’

과연 이 맛과 식감이 모두 의도된 것인지가 궁금했다.

우연한 맛은 없다지만, 이 맛의 깊이에 대한 의도 말이다.

내가 느끼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베르도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알베르를 쳐다보자, 알베르가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치즈 퐁듀의 맛을 조금 중화시켰기에, 고기의 맛을 더…….”

나는 그 말을 모두 듣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느낀 맛이 그가 온전히 의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신호였는데, 알베르의 표정이 초조해졌다.

‘25 년 경력의 셰프 맞아?’

미묘하게 변하는 내 표정을 확인하고 있는지, 그에 따른 심정변화가 심한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내가 알베르의 음식을 모두 먹고 입을 닦을 때, 옆에 있던 로만이 알베르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알베르 셰프님.”

“어, 로만. 오랜만이네요.”

둘은 친분이 있는지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제가 지배인으로 있었을 때, 뵀었는데, 이게 몇 년 만인지……. 여기서 이렇게 만나 뵙네요.”

“하하하. 그러게요 이게 얼마만입니까!”

나는 이미 알베르의 조리대를 지나쳤고, 둘의 대화가 내 뒤에서 들리고 있는 중이었다.

“셰프로도 그렇고, 국제 요리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엄청난 경력과 입지를 가지셨는데 왜…….”


“제 미래를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하필 대회에서 반유현 셰프님을 만나서…….”

둘은 어떤 동질감을 느꼈는지, 그 이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홀란데이즈 소스 맞습니까?”

그리고, 나는 노부 마츠로의 앞에 섰다.

사실, 그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100 년을 살아 워낙 감정이 닳았기에 웬만하면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데 지금 노부 마츠로 셰프가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내 성공 가도를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엔 등장을 빨리하셨군, 게다가 주조연이 될 수 있는 타이밍에.’

내 인생의 1 회 차부터 현재까지 각각 드라마의 1 화라고 가정해본다면, 노부 마츠로는 매 화마다 스토리의


중후반부에 매번 등장하는 조연이었다.

나와 깊은 관계는 아니지만 꼭 한 번쯤 만나서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든가 사업적인 구상을 해보는,


또는 그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그에게 많은 물음을 했던 적도 있었다.

게다가, 나의 전생의 동료인 메이가 그로부터 요리를 시작했기에, 그는 내 삶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등장의 시기가 사뭇 빠르다.

그것도 노부 마츠로가 직접 나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 찾아온 것이 그랬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번의 내 삶이 얼마나 파워풀한지 알 수 있어 그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그 어떤 누구로 태어나던지, 일식의 최강자 자리를 놓치지 않는 셰프…….’

내가 일식을 전문적으로 한다거나, 나의 제자를 전문적으로 일식 셰프로 키우지 않았기에 벌어진 미래일
수도 있지만, 내가 100 년의 삶을 살면서 요리업계를 아무리 뒤집어 놓아도 그는 언제나 일식의 대가로
우뚝 솟아나곤 했다.

“홀란데이즈 소스를 만드셨군요. 생각을 고치신 건가요?”

미슐랭 9 스타를 가진 셰프, 나보다 무려 다섯 개가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갖고 있지만 그의 원대한 계획,


일식의 세계화. 그 목표를 위해 그는 그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반유현 - 블루’라는 일식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일식 세계화에


조금이라도 나의 이름이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그였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자신의 요리를 심사받는 것일 테고.

“생각은 변함없습니다만. 일단 따르고 보겠습니다.”

아저씨가 눈빛이 꽤나 빛난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츠로가 만든 규카츠를, 그가 만든 소스에 찍어 먹었다.

바스락.
적당한 크기로 튀겨진 겉옷이 부서지며 향긋한 기름의 향을 뿜었다.

‘아주 조금의 향신료.’

원래 마츠로의 계획이었던 유자를 곁들인 폰즈 소스를, 홀란데이즈 소스로 바꾼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프랑스 최고급 코스요리를 뜻하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 그곳에 자주 쓰이는 5 대 소스 중 가장


응용을 할 수 있는 가지 수가 많은 소스였다.

계란 노른자와 버터를 기반으로, 레몬과 각종 허브, 향신료로 맛을 낼 수 있는 범위가 많은데 나는


마츠로가 어떤 맛을 찾아낼지 궁금했었다.

“케이언 페퍼(Cayenne pepper) 가루를 사용하셨네요. 독특하네.”

서양의 고춧가루로도 불리는 이 가루는 매콤한 맛을 내는데, 아주 미세하게 그 맛이 느껴졌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 노부 마츠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입술이 경직되어 올라갔고, 광대에는 약간의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닌가요?”

“흠. 맞습니다. 제가 조리하는 것을 보시고…….”

맛만 보고 그것을 가려냈는데, 자신이 그것을 소스에 넣는 것을 봤다는 식으로 말하는 마츠로였다.

“일반 버터가 아닌, 정제버터를 사용하셨군요. 유지방을 높여서 소스의 농도를 보다 더 걸쭉하게
만들려고 하신 겁니까? 바삭한 튀김옷의 식감과 반대인 식감을 소스로 만들려고 하신 거죠.”

이번엔 얼굴의 미세한 변화가 아니라, 표정과 소리로 드러났다.

“아…….”

“맞습니까?”

홀란데이즈 소스에 미묘하게나마 매운맛을 추가해, 튀긴 소고기의 풍미를 더 다양하게 만들려는 의도,
신선한 맛의 공격으로 나를 흔들려고 했던 의도가 보이기까지 했다.

나에게 이 맛들이 신선하게 느껴질 리는…….

“고기에는 아주 조금의 강황 가루까지 묻혀놓으신 걸 보니, 홀란데이즈 소스의 케이엔 페퍼와의 조합을
생각해 놓으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곤, 더 이상 없었다. 이 요리의 의도가.

“아…….”

요리로서 새로운 경험을 보여주는 것에 익숙했던 마츠로, 그의 모든 의도가 나에게 간파당했으니 그가


느낄 감정은 이 상황에서 하나였다.

“부끄러워 마세요. 제가 워낙 맛에 민감하니까요.”

이 몸보다 30 년은 많은 아저씨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심사가 아직 남아 있는 셰프들의 얼굴을 둘러보니, 잔뜩 긴장한 상태로 나를 바라봤다.


***

“규모는 말씀드렸다시피, 300 명. 교수와 학생의 비율 10:1. 그 비율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곳에
들어온 300 명 모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시킬 자신은 있습니다.”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속도는, 내가 레스토랑을 차릴 때 그랬듯이 전력질주다.

‘반유현 팩토리’를 구성할 교수진은 30 명을 뽑았고, 그들을 뽑은 바로 2 주 뒤부터, 일주일에 걸쳐


학생들의 요리 테스트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반유현팀의 막내인, 오스틴이 내 옆으로 다가와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세계 각국의 3462 명이 지원을 했고요. 음 생각보다 금방 끝났습니다. 이게…….”

3400 여 명. 르 꼬르동 블루의 전교생이 몇 명이었더라…….

그를 목표로 삼았는데, 이 지원 열기는 이미 이긴 것 같았다.

교수진이 된 이들도 그 수치에 놀라서 입을 벌렸다.

“말이 안 되는…….”

“지원비를 얼마로 설정했었지?”

“45 유로요.”

지원서를 내는 것에 한화로 하면 대략 6 만 원, 3462 명이 지원했으니 약 2 억 원의 수익을 냈다.

오스틴이 말한 것처럼 그저 팬심으로 지원을 하는 사람들의 지원서를 선별하는 것에 인력을 쓰는 것


자체가 낭비였고, 6 만 원이라는 작지 않은 돈으로 진정 의지가 있고, 없는 사람들을 한 번 거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요리 테스트에 쓸 재료비도 벌어들인 꼴이 되었네.”

3400 여 명의 수치도 역사적인 것이겠지만, 내 삶 전체에서도 이렇게 많은 셰프를 단번에 심사하고


선별하는 것도 최초였다.

“어쩌면, 내가 평생 만날 유망주 셰프들을 다 볼 수도.”

심사를 하기 위해 나온 교수진들의 얼굴을 보니, 마치 자신들이 심사를 받는 것처럼 긴장한 상태였다.

왜 이렇게 긴장을 한 거지? 라고 속으로 생각이 들었을 땐, 단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70 화. 공장가동 (6)

‘반유현 - 팩토리’ 의 첫 신입생들을 뽑는 테스트에는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았다.

내 휘하에 있는 셰프들과 교수진이 많은 수고를 해줬다.

어차피 매년 이들을 뽑을 것이고, 교육과정에서 잘하는 이와 못하는 이가 자동적으로 나눠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입생들이 요리에 대한 기본지식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냐는 것은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나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

“선, 서!”

300 여 명의 학생들이 오른손을 들며 크게 외쳤다.

어느 입학식이 그렇듯, ‘반유현 - 팩토리’의 입학식도 그렇게 시작되어 갔다.

“설립자이자, 반유현 팩토리의 원장이신 반유현 셰프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모두가 기립박수를 쳤고, 단상 위에 있던 교수진들이 모두 일어났다.

스케줄이 바쁜 그들일 테지만, 입학식인 만큼 대부분이 참석했다.

현재 런던에 있는 노부마츠로부터, 고든 레지 두바이의 총책을 맡고 있는 카림까지.

우와아아아아!

신입생들의 설렘, 그리고 원장 또는 교장의 축하, 여기까진 여느 교육기관의 입학식과 똑같았다.

그런데, 그 축사를 하는 사람이 ‘나’라는 건, 어느 교육기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차이였다.

“이곳은……. 대형마트의 모든 것을 비워낸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입학평가를 받은 곳도 이곳이었고,


지금 여기 계신 교수님들을 선발할 때, 사용했던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조리대를 모두 치워
아시다시피 아무것도 없죠. 대체 여러분이 교육을 받을 학교는 어디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겁니다.”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아니, 어느 누구도 내가 실행하는 속도를 맞출 수가 없던 것이다.

“이곳이 반유현 팩토리의 캠퍼스가 될 곳인데, 공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교수진을 뽑고, 학생들을 선발하고 입학식까지 하는 것에 막힘이 없었다.

공사와 이곳의 입학식을 같이 준비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여유를 두지 않았다.

어어?

엥?

저마다 호기심 섞인 탄성들이 섞여 나왔다.

“그래서, 조금 오래 생각해봤습니다. 적당한 시설은 없고, 시설이 세워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은…….
저도 없고 여러분도 없을 테니까요.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열망은 여러분이나 저나 같습니다.”

호기심 섞인 탄성은 다시 열정으로 바뀐다.

“유럽 전체를 학교로 써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일단 반 배치 고사를 하는 걸로.”

어느 학교건 학원이건 수준별 교육은 필수다.

그럴만한 시설이 없어서 생각한 것이었다.

“테스트.”

***
“교수님 한 분당, 10 명씩 맡아주시고. 원하시는 장소에 해주세요.”

일단, 교수 한 명당 10 명을 배정했다.

그리고 각각 교수 포함 11 명의 팀원들은 나라와 장소를 먼저 골랐다.

“런던, 로마, 마드리드…….”

나는 팝업스토어 방식의 테스트를 구성했다.

이는, 아주 효과적인 테스트이자 ‘반유현 - 팩토리’의 확실한 잠재력을 알 수 있는 전략이었다.

“순이익을 여러분의 실력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나라마다 월세와 세금이 모두 다를 테고, 식재료비도 다를


텐데, 어느 장소에 레스토랑을 오픈하느냐…….”

임시 매장을 뜻하는 팝업스토어, 그 형태로 레스토랑을 60 일 동안 오픈한다.

그리고 얻은 순이익으로 절대 평가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효과적인 테스트라는 것은, 이 방법은 실제 셰프들이 요리를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레스토랑 운영에 대한
복합적인 과정을 절대적인 수치인 매출과 순이익으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반유현 - 팩토리’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는 것은, 팝업스토어 그 자체가 여러 사람들이 ‘반유현’


이라는 이름 아래에 각 장소로 뿔뿔이 흩어져, 레스토랑을 꾸리는 것의 축소판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팩토리는 그걸 위해 세워진 것이었으니까.

“현실적인 제약마저도, 여러분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월세와 집기류, 모든 것은 포시즌스와 내가 지불한다.

그리고 그 비용들은 모두 매출로 되갚는 시스템이었다.

누가 60 일의 짧은 기간 동안 건물 임대를 해주느냐, 주방 설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이 테스트의 일종이었다.

“이게 가능할 것 같습니까?”

“전혀요…….”

교수진은 다소 비현실적인 계획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팩토리의 첫 회 입학생인 셰프들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저들끼리 건물을 알아보고, 메뉴를 연구하는 등 열정이 가득했다.

하기야, 모두들 자신의 레스토랑을 갖는 것이 꿈인 이들일 텐데 실제로 자유롭게, 짧은 기간이나마


레스토랑을 차릴 기회가 생긴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들이 그나마 손쉽게, 좋은 조건으로 레스토랑을 차릴 수 있게 나는 나의 이름을 빌려주었다.

물론, 내가 쌓은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반유현, 테스트- 레드’.

내 이름 뒤에 ‘테스트’라는 글귀가 작게 붙은 간판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제 이름을 이용해 벌써 임대료를 싼값에 구한 팀이 있다는데요.”


이미 ‘반유현’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장소를 잡은 팀이 있었다.

내가 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해 준 것은 처음 이 팀에서 나에게 먼저 제안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한 팀만이 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 모두 나의 이름 뒤에 테스트라는 글귀를 붙이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준 것이었고.

물론, 나에게 처음 ‘반유현, 테스트 - XX’를 사용해도 되겠냐고 제안한 그 팀의 실행력에 가산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누구십니까. ‘반유현, 테스트’ 라는 이름을 사용 할 수 있게 먼저 허가 요청을 한 팀을 맡은


교수님은?”

“접니다.”

고든 레지, 두바이의 총괄 셰프인 카림이었다.

“공항 근처로 잡았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을 좋아하는 관광객을 잡을 수도 있고, 제가 두바이를


들락날락거려야 하니까요. 분위기는 좋습니다.”

그의 말을 신호탄으로 다른 교수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거 어째 분위기가, 교수들 간의 경쟁에도 불이 붙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들도 학생들처럼 경쟁을 해야 그들이 애초에 원했던 레스토랑 ‘반유현’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무슨 방법이든 상관없습니다. 가장 효율적이고 멋진 레스토랑을 만들어보세요.”

***

“협찬으로 준비해, 유럽 각국에 완전하게 내 이름을 홍보할 수 있도록.”

“협찬이라 함은…….”

“조리복. 유니폼을 만들어야 되니까.”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조리복은 대한민국 중고등학교의 교복처럼 사용할 생각으로, 이들의 소속감과 그에 따른 자긍심을


높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아직 반유현 팩토리가 완전히 설립되지 않았기에, 팝업스토어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셰프들이
나의 이름이 붙어 있는 조리복을 입고 다니면서 적지 않은 홍보 효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했다.

“아! 마침 ‘CCC’. 조리복 브랜드 이름인데, 이곳에서 먼저 협찬이 들어왔습니다.”

“조건은?”

“가슴팍에 커다랗게 자신들의 브랜드 이름을 걸어 달라는 조건이요. 대신 그에 따른 광고비도…….


조리복도 받고, 돈도 받고…….”

“어떤 셰프들인데, 그깟 푼돈 벌겠다고.”

오스틴의 말대로 조건은 괜찮았지만, 나를 따르는 셰프들을 광고판 옷걸이로 쓰기 싫었다.


“다른 곳은?”

“여기는 조금 규모가 작은 곳입니다. 유명하지도 않고요. ‘UCL’? 대표가 셰프 출신이던데 조리복


브랜드를 런칭했더라고요. 제발, 입어만 준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거기로 선정해.”

‘반유현 - 팩토리’ 조리복의 디자인은 간결했다.

내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은 뒤에 색의 이름이 들어간다.

이를테면, 포시즌스의 레드, 블루, 옐로처럼.

앞으로 브라운, 그린, 바이올렛 등 많은 색깔이 생겨날 것인데 그 모든 색을 합치면 블랙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들은 모두 검은색으로 포인트가 된 조리복을 입곤 했다.

조리복의 깃과 단추, 그리고 주머니의 마감 부분이 검은색.

직급이 높은 지휘급 셰프들은 검은색 머플러가 추가로 지급되는 방식이었다.

“디자인 감각도 있으시네요 셰프님.”

“어려운 거 아니야.”

조리복도 한두 번 만들어봤겠나.

“칼 같은 것도 세트로 셰프들한테 선물해.”

“예……. 그거는 이제 비용이 비용인 만큼 저희가 협찬을 알아봤습니다.”

적게는 4 자루, 많게는 11 자루까지 들어있는 칼 세트를 선물하라 지시했더니 직원들이 알아서 협찬을
알아봤나 보다.

“음……. 대체적으로 칼을 만드는 회사들이 뭐랄까 자부심? 그게 강하더라구요.”

“대부분 그런 회사들이 장인 정신을 앞으로 내세우니까.”

“그래서 협찬이라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했구요.”

“어떤 회사들이.”

“뭐, 세간에 알려진 모든 회사들이요. 작은 회사들이 몇 군데 연락이 오긴 했는데, 괜히 반유현 셰프님의


이미지가 떨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셰프님께서 선택해주세요. 지시대로 칼을 비롯한 셰프들의
도구를 구입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협찬해 준다는 칼, 받고, 뭐 국자, 그릇 접시 협찬 다 받아.”

“예에?”

돈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내가, 모든 것을 협찬받으라고 말한 것에 대해 크게 놀라는 오스틴이었다.

“미래에 투자할 줄 아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줘야지.”


그제서야 오스틴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얘도 내 옆에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났나 보다.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파악한 것을 보면.

***

“이야! 이게 새로 나온 조리복이래!”

“야! 대박! 이것 봐! 우리는 스카프도 있어!”

반유현 팩토리의 재학생들과는 다르게, 로또 육인방에게는 검은 스카프까지 지급되었다.

엄연한, 지휘급 셰프라는 증거.

각종 언론과 TV 를 봐도, 검정색 스카프를 가진 자들은 자신들과, 포시즌스의 총괄 셰프들뿐이었다.

반유현의 뜻밖의 선물에 이들은 엄청난 흥분과 설렘을 느꼈다.

“우, 우리가 레스토랑 반유현의……! 주축인 거야?”

“더 열심히 하라는 선물이겠지? 전 세계에 퍼져서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가 올 것이라는 걸 ……!


암묵적으로 표현해 주신 거야! 이야호!”

메이가 주방에서 방방 뛰면서 그 흥분을 몸으로 표현했다.

그러다 TV 에 비친 누군가를 보고 멈춰 섰다.

“응? 왜? 못 볼 거라도 봤어?”

그러더니, 그녀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지기까지 했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로또 육인방들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왜? 대체 뭔데, 저 아저씨가 뭐 나쁜 짓이라도 했어 너한테?”

[ 노부 마츠로, 반유현 팩토리 전격 합류! ]

“아니……. 나를 처음 요리 가르쳐준 스승님인데…….”

“엥? 그분이 반유현 셰프님의 밑으로 들어왔다고?”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미슐랭 스타도 반유현보다 많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부 마츠로가 반유현
팩토리에 합류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런데, 메이가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카프, 스카프가 없어……!”

메이가 놀란 이유는 노부마츠로의 목에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검은 스카프가 없다는 것에 있었다.

“우리가 저분보다 직급이 높은 거야?”

“에이……! 설마!”

71 화. 반유현의 이름 (1)
300 명의 셰프들, 그리고 10 명씩 짝지어 구성된 30 개의 팀은 유럽 각국에 레스토랑을 런칭했다.

검은 깃과 검은 단추가 채워진 그 조리복, 그 오른쪽 어깨에 ‘반유현 - 팩토리’라는 이름이 필기체로


적혀있는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

유럽 각 나라로 퍼진 이들은 단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 반유현과 300 셰프! 유럽 각국에 팝업 스토어 런칭. ]

그들의 행보, 팝업 스토어라는 그 시스템,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이슈를 불러올 만한 것이었지만, 그


각각의 팀들을 이끄는 셰프들이 각 지역에서 유명한 셰프라는 것도 한몫했다.

[ 반유현의 밑으로 들어간, 최고 셰프들. ]

[ 미슐랭 스타 셰프들, 결국 맛보다 반유현을 쫓다. ]

[ 일식의 대가 노부 마츠로, 그가 반유현을 선택한 이유는? ]

[ WACS 의 터줏대감, 알베르! 반유현의 옷을 입다. ]

언론은 그 셰프들을 마치, 숭고한 예술적 정신을 잃은 것처럼 조롱하기도 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 세계적인 파도를 만드는 반유현, 그 끝은 어디인가. ]

[ 진짜 반유현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

[ 설립되지도 않은 반유현 - 팩토리 관심 증가! ]

[ 반유현, 전설이 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다. ]

그런 조롱도 잊을 만큼, 대중들과 셰프를 비롯한 요리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개중에서 제일 먼저 반응이 온건, 단연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이었다.

“그 칼……. 회사들이요. 독일제 명품 칼, 이태리 칼 회사들이 아무리 반유현 셰프님이어도 협찬은


힘들겠다고……. 회사 역사와 전통에 어긋난다고 하더니, 줄줄이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뭐라고.”

“세트만 선택하시면, 300 명의 셰프들 모두에게 그 칼을 협찬하겠다고 하네요.”

애초에 협찬 요청을 반려했던, 역사 깊은 명품 칼 브랜드들이 줄줄이 협찬을 하겠다고 먼저 요청을 보내온


것이었다.

“조리복 브랜드가 엄청 흥하는 것 보고 다들 군침을 흘리고 있는 꼴이네요.”

대규모 협찬을 받아 진행한, 조리복의 검은 포인트가 들어간 그 디자인 자체가 주목을 받고 우리에게
협찬한 회사의 매출이 급진적으로 올라갔으니,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아예 가방을 만들어 협찬해주겠다는 회사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반유현 팩토리에 소속된 그 300 명의 셰프들 자체가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기에 그들이
자신들의 주방도구를 들고 다니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광고 효과를 얻게 되리라 기대한 것이었다.
대중들의 반응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활동하는 범위도 넓었다.

유럽 전역에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퍼져 있으니, 그 광고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아무리 명품이라 해도, 미래에 투자할 줄 모르는 회사들이랑 같이 갈 거야?”

물론, 내가 방금 말한 대로, 명품이라 한들 가치 판단을 못 하는 회사랑은 메이트가 될 수 없다.

“다 잘라버려. 우리를 처음 알아주고 선택한 회사를 등지면 안 돼.”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까, 서로서로 윈-윈이 될 수 있는 회사를 만나는 게 우선이다.

“내가 앞으로 사용할 칼과 국자만 해도, 몇 개겠어. 조리복은 몇 벌이겠고. 가치판단 잘하는 회사를
만나야 해.”

***

“가장 매출이 높은 곳이 어디냐.”

처음엔 런칭 자체를 못 하는 팀도 있었지만, 이제는 ‘반유현 - 테스트’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기업들이 협찬을 위한 움직임을 했던 것처럼, 유럽 각국의 부동산 업계들도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 부동산 업계 지각변동! 전 세계로 퍼진 반유현을 잡아라! ]

[ 신조어까지 형성하는 그는…… 건물주와 반유현이 합쳐진 단어 반물주. ]

[ 건물주보단 반물주! 반유현 입점 시 건물 가격 상승. ]

덕분에, 어찌해야 될지 주저하던 팀들은 오히려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얻어 팝업 레스토랑을 시작했다.

“파리에도 몇 군데가 생겼구요. 런던에도 몇 군데가 생겼습니다. 진짜 대단하네요…… 유럽 전역에서


가장 비싼 땅들에…… 이렇게 싼값에 레스토랑을 오픈할 수 있다는 것이요.”

“너도 할래?”

“저는 다음 기수에 반유현 팩토리 도전해보겠습니다. 헤헤…….”

“됐고, 어디가 가장 매출이 높냐고 현재까지.”

“역시……. 파리가 제일 높네요. 아마도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높은 동네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30 개의 팀은 유럽으로 각각 흩어졌는데, 매출이 가장 높은 팀은 파리에 있는 두 개의 팝업


레스토랑이었다.

“파리? 어떻게 보면, 제일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던 팀들이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이거나.
진짜 똑똑한 팀원들이 있는 곳이거나, 두 팀 다 둘 중 하나의 종류겠네.”

당연히 파리라는 도시 자체는 임대료나 물가가 높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 있는 두 팀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아무것도 모르는 셰프들 10 명이서 갈팡질팡하다가 ‘반유현 - 팩토리’가 알아서 이슈화가
되어 손쉽게 파리라는 거대한 도시에 입점한 팀.

두 번째는, 이 시스템 자체가 이슈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기다려, 그것을 이용해 파리에 입점한 팀.

과연 후자의 전략을 사용한 팀이 있을 만큼, 현명한 셰프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서, 오히려 뒤늦게 대형 도시에 입점한 셰프들의 얼굴이 궁금한 것일지도.

“일단 파리로 가자.”

나는 곧장 차를 타고 파리에 입점한 이들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파리에 있는 두 개의 레스토랑은 우연하게도,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꼴이었다.

각각의 레스토랑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고급 세단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반유현이다!!

“감사합니다.”

곧장 고개를 숙여, 나는 오른편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경직된 채로 나를 반겼다.

이들이 내가 설립한 교육기관에 소속되어 있다지만, 요리 심사 테스트에 내가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으니, 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총원! 차렷!”

내가 등장하자, 군인들이 경례를 하듯이 구호를 붙이는 젊은 셰프가 있었다.

“국적이 어디세요?”

“멕시코입니다.”

“하지 마세요.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그 경례는 어설퍼 보입니다.”

“에, 예! 셰프!”

홀에서 그 구호를 들었는지, 주방의 셰프들은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일들 하세요. 밖에 손님들 기다리시는데.”

이들의 주요리는 햄버거였다.

수제 햄버거, 손수 패티를 제작해 굽고, 빵까지 직접 만들어 구워 그 안에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채웠다.

“메뉴가 하나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매출이 주된 평가 항목이라 생각해서,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메뉴를 하나로 했습니다.”


“저도 하나 주문하겠습니다. 만들어주세요.”

“예! 셰프!”

멕시코 국적의 이 젊은 셰프가 이 셰프들의 리더처럼 보였다.

아주 쾌활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것이, 주방에 많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저는……. 반유현 셰프님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주인분도 그랬나 봐요, 저희보고 아주
싼값에 임대료를 해줄 테니 팝업 스토어를 시작하라고…….”

뭐, 어쨌든 이곳에 팝업 레스토랑을 오픈한 것이, 그가 계획하고 의도한 바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이름이 뭡니까?”

“리카르도. 리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팀을 이끌고 있는 교수가 궁금해졌다.

“교수는 누구예요?”

“라이너 레널스 셰프님입니다.”

그는, 현재 LA 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로 미슐랭 투스타를 소지한 셰프였다.

“레시피는 교수님이 좀 가르쳐줬고?”

“아니요, 저희끼리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미국에 가셔서 현재…….”

문제는 없었다. 애초에 셰프들을 시험하기 위한 관문이었고 교수들은 그를 자문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들의 성적이 교수들의 능력에도 반영될 것인데 이렇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그 이유를 고민할 때, 한 셰프가 나에게 햄버거를 가져왔다.

“한입에 먹기는 힘들어 보이는 사이즈네.”

주방 안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주방에 있던 모든 셰프들이 순간 일을 멈추고 나를 힐끗 쳐다봤다.

나는 햄버거를 입으로 넣지 않고, 조리대 위에 올려놓고 빵을 열었다.

“토마토, 양상추, 양파, 다진 고기, 치즈……. 일들 하세요.”

일을 하라는 말에도 일을 제대로 하는 셰프들은 없었다. 모두가 시늉만 할 뿐, 나의 감평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들이었다.

“다진 돼지고기를 뭉쳐서 구울 때 불의 세기와 시간이 잘못됐습니다. 불맛은 있는데 육질과 향이 다


날아가 버렸네요. 아무튼, 이곳의 매출이 맛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셰프들의 표정을 보니, 다들 죽을상이다.

“당연하게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이 팝업 레스토랑은 반 배치고사에 불과할 뿐이고, 요리를 제대로


배운 분들이 없으니까요. 교수님한테 적극적으로 도와 달라고 하세요.”
내가 그 말을 하고 주방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 이 셰프들의 리더격인 리카르도가 나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그게…….”

“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수가 이 팝업 스토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방금 들렸던 햄버거집 바로 건너편은 핫도그를 판매했다.

소시지와 고기를 갈아 만든 정통의 칠리소스를 만들어 핫도그를 만드는 레스토랑.

“다들 별다른 계획이 없어, 저의 주 전공인 인도요리를 해볼까 했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어떻게 입점하셨어요?”

“저희는 아예 대도시 말고 주택이 많은 지역으로 이동해 가려고 했습니다. 저희의 요리 실력과 임대료가
수지 타산이 맞아야 되니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의 건물주님이 편하게 들어와서 팝업 스토어를
해보라고…….”

앞의 햄버거집과 같은 이치였다.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시간 차를 두고 기다린 뒤에 나의 이름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좋은 자리에 팝업


레스토랑을 오픈한 팀은 파리에 없었다.

“핫도그 하나 주세요.”

여기까지 온 김에, 이들의 음식도 감평 해주기 위해 핫도그를 하나 부탁했다.

“칠리소스의 농도가 너무 묽습니다. 오래 가열을 해서 나오는 소고기의 육즙으로 농도를 조절하는 게


맞는데. 그런 기본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곳도, 맛에 의해 손님이 많은 게 아니라 그저 좋은 자리,
그리고 제 이름…….”

그 말을 할 때엔 앞선 햄버거집의 사연이 떠올랐다.

“이 팀의 지도 교수님이 안 도와주던가요?”

“네…… 그게…….”

“교수 이름이 뭡니까?”

핫도그집의 이야기와 이 건너편 햄버거집의 이야기는 다를 게 없었다.

이들에게 잘나가는 특급 셰프인, 지도 교수가 붙어있는데, 이들이 최상의 맛을 내지 못하는 이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땐,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교수들이 제자들을 견제 한다라…….’

72 화. 반유현의 이름 (2)

‘반유현 - 팩토리’에 교수로 뽑아놓은 이들의 행실이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모든 교수진을 소집했다.

“여러분들이 맡은 팀원들, 여러분에게 요리를 배우고자 이곳에 들어온 셰프들의 팝업 스토어가 망하는
것이 상관없습니까?”

교수들의 실적과 평가는 ‘반유현 - 팩토리’에서 자신들의 입지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수들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애초에 학생들을 가르치리란 마음은 적었고, 나의 이름 또는 레스토랑 ‘반유현’을 얻고자 교수직을 맡은


것이기에 이런 문제가 생길 것도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물론,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여러분의 맡은 팀 중, 하위 3 개의 팀을 맡으신 교수님은 제명하겠습니다. 조직의 발전에 사명이 없고,


오로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운영
기회, 또는 제 이름을 이용해 여러분의 야망을 실현하고 싶은 생각들은 쉽게 하지 마세요.”

각 지역을 주름잡는 셰프들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여태까지 몰랐을 리는 없고.

어떻게 쉽게 쉽게 나의 이름을 이용해보려다 내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자신들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것도 있을 테고.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짧게 대답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부 마츠로 셰프님께서는 참석을 안 하셨네요…….”

노부 마츠로. 미슐랭 9 스타를 보유한 일식의 거장.

교수진 중에서 자신을 가장 과대평가하고 있는 이였다.

“겸손하지 못한 분이군요.”

그는 엄연히 ‘반유현 - 팩토리’에 소속된 일원이었고, 나는 그 조직의 수장이다.

지금 이 자리는 수장의 권한으로서 소속된 교수들을 소집한 자리였고, 그가 응당 불참할 이유를


보내왔더라면 나의 불쾌감은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불참 사유도 보내지 않고, 무시하다니.”

삶을 거듭할 때마다 만났던 인물이라, 좋게 봤었는데. 지금 보니까 내가 그를 좋게 볼 수밖에 없던


이유가 생각났다.

그보다 항상 미슐랭스타가 많고, 그보다 많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을 때에 그를 만났었으니까.

지금 노부 마츠로의 태도는 내가 유명하고, 근래에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셰프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자신이 민감하게 행동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번 소집에 불참 사유도 말하지 않고 불참한 것은, 나의 이름만을 이용해 자신의 어떤 계획을 실행하고자
한다는 그의 뜻이 내비치기도 한 것이다.

“노부 마츠로 셰프가 이끄는 팀의 팝업 스토어는 어디냐.”

“러, 런던입니다. 노부 마츠로님의 미슐랭 3 스타 보유 레스토랑인 ‘신세카이’ 그 바로 앞 건물에


차려두었다고 합니다.”

“출입 횟수는.”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다고 하네요.”

노부 마츠로는 그가 이끄는 셰프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바로 앞에 팝업 레스토랑을 차리게 한


뒤에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여야겠고, 신경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으니 자신이 상주하는 레스토랑


바로 앞에 차려두었고…….”

“저희가 직접 가서 실태를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매출은 상당히 높은데, 노부 마츠로 셰프님이 어떤


도움을 줬을지.”

“아냐. 나도 같이 가. 그리고 메이 불러.”

“메이 셰프요?”

혼 좀 내줘야겠다.

***

“잘 어울리네.”

“가, 감사합니다.”

메이가 검은색 스카프와 조리복을 차려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런던, 노부 마츠로 셰프의 레스토랑을 향하는 길이었다.

“저를 왜……?”

“가 보면 알아.”

차에서 내리자마자, 노부 마츠로의 ‘신세카이’가 보였다.

고급져 보이는 자제들로만 쌓아올려진 일본 전통식 3 층짜리 건물,

그리고 그 바로 앞에 ‘ 반유현 - 테스트’라는 간판이 붙어져 있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검은색으로 포인트 된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 경직된 말투와 몸짓으로 나를 반겼다.

나의 목에, 지휘급 셰프임을 뜻하는 스카프가 둘러져 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한 명의 젊은 여성의 목에도 스카프가 둘려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녀가


메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국제 요리 대회에서 대구 해체쇼…….”

“잘 아시네요. 여기는 메이입니다. 원래 노부 마츠로 셰프님의 제자였고, 지금은 나를 따르고 있죠.”

내가 방송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메이의 얼굴을 아는 이도 많았다.


더군다나 나의 팬이라면 메이의 얼굴을 모를 수가 없었다.

“여기는, 노부 마츠로 셰프님이 이끄는 팀 맞습니까?”

이들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기에, 나는 상급자 임에도 존대를 사용했다.

내가 반말을 하리란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셰프들은 나의 정중한 물음에 놀란 표정이었다.

잘나가고, 콧대 높아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것 같지 않는, 젊은 셰프일 줄로만 알았던 내가 예의와


겸손함을 갖췄을 것이란 걸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아…… 예! 맞습니다.”

물론, 나는 그것을 의도하고 존대를 하는 것이었다.

주방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셰프에게 존대 한다는 것은 확실한 존중의 표시니까.

존대를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감동했다는 듯이 셰프들이 나를 바라봤다.

“이곳은 무슨 메뉴를 하죠?”

“아무래도 매출을 위해서라면 회전율을 중요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숙성회를 이용한, 초밥 도시락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오스틴이 곧장 내게 차트를 준비해줬다.

그것을 읽어보니, 이 팝업 레스토랑의 매출은 30 개의 팀 중에 전체 2 위.

“매출이 높네요. 제일 잘나가는 메뉴로 주세요. 맛이 궁금합니다.”

나의 주문에 셰프들은 올 것이 왔다는 듯, 결연한 표정을 짓고 움직였다.

나는 주문을 해놓고, 주방 이곳저곳을 살폈다.

아주 협소한 공간에 테이크아웃 형식으로만 운영되는 팝업 레스토랑.

순간,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메이.”

“네?”

“저기 신세카이 레스토랑은 테이크아웃이 안 되지?”

“네, 당연히 안 되죠.”

나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한 셰프를 붙잡고 물었다.

“노부 마츠로 셰프가 도움을 준 레시피에는 어떤 게 있나요? 바로 앞에 있어서 도움을 많이 줬을 것


같은데, 실제로 매출이 높기도 하고.”

내가 이 말을 뱉었을 때에는 셰프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눈치를 본다.

쉽사리 대답을 못 하는 셰프들이었다.


“요리를 먹어보면 알겠지.”

요리가 나왔고, 나는 초밥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시메사바, 고등어초절임.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생선 중 하나였다.

“고등어가 함유한 기름기에 따른 숙성시간, 숙성시킨 고등어를 재워 둔 식초의 온도……. 여기 있는


셰프들이 할 만한 기술은 아닌 것 같은데.”

고등어 초절임이 올려진 초밥을 하나 먹고 든 생각을 바로 말했다.

고등어가 숙성된 기술도 그렇지만, 밥에도 다시마 물을 이용해 감칠맛을 올리려 노력한 것들이 보였다.

초밥에 일가견이 있는 이가 아니라면, 이런 세세한 맛들을 잡아내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을 터,


고등어 초밥 옆에 있는 광어 초밥을 먹었을 때는 확신했다.

“노부 마츠로 셰프가 본인이 숙성시킨 회와 밥을 그대로 이곳에 전달한 것 같은데. 여기 있는 셰프들은
그것을 그대로 초밥으로 만들기만 했고…….”

소문으로도 많이 들었을테지만, 셰프들은 내가 맛만 보고 그것을 알아냈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이었다.

더군다나 내 제자인 메이도 내 옆에서 초밥의 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부 마츠로 셰프님의 생선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미 노부 마츠로의 계획은 실행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의 이름 ‘반유현’을 이용해 자신의 요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일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겠다는


그 원대한 꿈.

셰프들에게 자신이 숙성시킨 회를 그대로 내어주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랬다.

자신의 꿈에 눈이 멀어 이 일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셰프들도 남의 요리를 그대로 받아 손님에게 내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도 모르는 듯했고.

때마침, 노부 마츠로가 레스토랑에 등장했다.

헐레벌떡,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가 있는 ‘반유현 - 팩토리’의 조리복을 입고 왔다.

“오셨군요. 반유현 셰프님.”

이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던 ‘반유현-팩토리’ 소속, 10 명의 셰프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첫 번째는 딱 한 번, 그와 팀이 되었을 때 마주한 노부 마츠로가 등장했다는 것에 놀랐고.

두 번째는, 메이에게는 걸려있는 스카프가 그의 목에는 없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분명, 방금 전에 메이에게 요리를 처음 가르쳐준 셰프가 노부 마츠로라고 하지 않았나.

“어, 메이……. 오랜만이야. 자네의 활약을 다 지켜보고 있었어.”

노부 마츠로도 메이의 목에 스카프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조금은 당황한 낯빛이었다.


“이들에게 셰프님의 숙성회와 밥, 그리고 감태나 김 같은 재료들을 그대로 주었군요.”

“그렇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그 당당한 태도가 문제였다.

문제가 있으니 물어봤겠지. 내가 헛웃음을 짓다 그제서야 낌새를 파악했는지 노부 마츠로가 입을 열었다.

“저의 노하우가 집약된 최상의 식재료를 이들에게 쥐여주고, 그 맛들을 활용하는 능력을…….”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알 필요가 없다고 했었나.

“일식의 대가, 일식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위해, 일식을 세계화시킨다는 가짜
신념으로……. 제 이름을 그곳에 이용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미슐랭 9 스타, 본인의 요리에는
자신이 있었으니 그것을 널리 널리 퍼트릴 수단이 필요하셨겠죠.”

마침 밖에 있던 오스틴이 종이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명함 크기의 전단지 역할을 하는 종이였다.

[ 노부 마츠로, 미슐랭 9 스타의 노하우를 도시락에 담다. 반유현 & 노부 마츠로의 콜라보! ]

“도시락에 테이크아웃 형태였으니, 맛의 기준이 그렇게 높을 것 같지 않았을 테고, 본인이 만든 숙성회와


밥을 이용해 초밥을 만들 ‘공장’ 같은 개념으로 이 셰프들을 사용하신 것이구요.”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유감입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이 셰프들에게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주면 되는


겁니까? 매출이 높게 나오면 제가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요?”

앞서 말했듯이,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서운 게 이런 거다.

메이의 표정을 보니, 그녀도 상당히 실망을 했다는 표정이다.

만화나 영화 속의 악당을 보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원대한 야망에 사무쳐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애석하게도 나는 이런 사람을 내 주변에 두기 싫었다.

“지금 이 순간부로 제명되셨습니다.”

“!!”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잠시 멈추었던 것처럼, 정적이 흘렀다.

“메이, 네가 지금부터 이곳의 총괄 셰프야.”

“아…… 어……. 네……?”

“자신 없냐.”

“아, 아닙니다! 흐…….”

이로서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교수진 중 가장 많은 인지도를 가진 노부 마츠로를 제명시켰다는 사실만으로 ‘반유현 - 팩토리’는


다시금 이슈가 될 것이다.
또, 그 이슈는 여태까지 자신이 맡은 셰프들에게 소홀히 하며 자신들의 욕망만을 지키려 했던 교수들에게
으름장을 놓은 것이고.

‘반유현 - 팩토리’ 내에서 나의 힘을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의 규모가 크고 교수진들의


인지도가 높아 나의 영향력이 적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노부 마츠로가 희생되며 그 걱정을
지워주었다.

“물론, 너는 또 다르겠지 메이.”

“……예?”

“너는, 다른 교수진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성과를 내야지. 30 개 팀 중 1 위는 당연한 거고. 이 앞에 계신


네 스승님을 이기려고도 노력해봐.”

메이가 이끄는 팝업 스토어가 좋은 성과를 낸다면, 나는 이 사실을 또 언론에 뿌릴 것이다.

[ 반유현 애제자, 메이. 미슐랭 9 스타 스승을 짓누르고 팝업 스토어 성공해내다. 반유현의 교육


시스템을 증명해내는 그녀. ‘반유혁 - 팩토리’의 수많은 기대감을 불러 모아.]

[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메이 셰프. 요리를 시작한 시점이 불과 3 년도 안 돼. ]

[ 메이. “반유현 셰프님의 셰프 양성 시스템은 세계 최강.” ]

“네가 꼭 해야 돼. 지난번 국제 요리 대회처럼, 시나리오는 다 정해져 있으니까.”

73 화. 반유현의 이름 (3)

자진사퇴. 그것보다 자극적인 단어들은 많다.

방출, 제명, 해고…….

아니, 자극적이기보다 이 단어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의도적으로 제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행위 아닙니까?”

사실대로 말하고, 언론에 기사가 난 것뿐인데, 노부 마츠로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역정을 냈다.

[ 노부 마츠로, 반유현 팩토리 교수직서 제명. ]

[ 반유현 팩토리, 제명 이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

[ 일식의 대가, 노부 마츠로 공식 성명 “반유현 팩토리 마케팅을 위한 의도적 행위.” ]

“그 이유까지 낱낱이 밝혀 드립니까?”

그나마 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제명의 이유는 밝히지 않았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나 보다.

“그럼 그대로 해보시죠. 제 요리 인생 동안 반짝 떴다가 지는 셰프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하하하


……. 조금 더 겸손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여섯 번의 인생 동안 그를 적으로 돌린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 삶 동안 노부 마츠로가 나에게 잘 대우해준 것은 내가 온전히 그보다 높은 수준의 셰프라고 인정한


탓이었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경력도 훨씬 짧은 지금의 나를 노부 마츠로는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

“제 요리 인생에 똥물을 튀긴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가뜩이나 이 업계는
좁으니까요.”

“후회라……. 두고 봅시다.”

노부 마츠로와의 전화를 끊고 메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현재의 스승인 나와,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해준 노부 마츠로의 갈등에 심란해진 듯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메이가 중요했다.

“네가 잘해야 돼. 맨날 그래왔듯이 태클 걸고 잡아당기고 귀찮게 하는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네.”

“왜, 처음 너한테 요리를 가르쳐 준 사람이라, 마음이 안 좋아?”

“아, 아니요.”

“그럼 뭐야, 그 표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 굳게 먹어. 넌 ‘반유현’이라는 배에 탔잖아.”

그녀가 매고 있는 스카프를 무심하게 잡고는 단정하게 정리해줬다.

그제 서야, 의지를 다졌는지 메이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메뉴는 준비됐냐. 저건 다 버려.”

노부 마츠로가 이 팝업 레스토랑에 두고 간, 생선과 밥, 식초 간장, 생와사비 등 모든 식재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그가 떠난 이상 그 재료들을 계속 쓸 수는 없었으니까.

“예! 셰프!”

셰프들이 곧장 그 재료들을 들고, 음식물을 처리하는 드럼통에 담으려 했다.

그때, 메이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 그 재료 다 가져와.”

메이가 무슨 행동을 할지 궁금해서, 나는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옛 스승의 정성이 담긴 식재료를 버릴 순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오랜만에 정신무장 교육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셰프님,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이 재료들 버리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무슨 아이디어인데.”

나는 메이의 아이디어를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해, 메이.”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메이는 곧장 매직과 종이를 가져와 자신이 생각한 문장들을 적기 시작한다.

[ 노부 마츠로님의 숙성회, 그리고 샤리(しゃり : 초밥에 들어가는 밥) ]

[ 저희 ‘반유현 - 테스트’는 이보다 맛있는 초밥과 메뉴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 냉장고


안에는 재료가 있으니, 원하시는 분들은 직접 가져가서 초밥을 만들어 주세요. ]

메이의 지시 아래에 셰프들이 자그마한 간이 냉장고와 밥솥을 문 앞으로 옮겼고, 그곳에 노부 마츠로가
놓고 간 생선과 샤리를 각각 넣었다.

노부 마츠로의 재료는, 이 주방에 들어올 자격이 안 된다는 문구.

그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것이란 그 문장은, 간판에 적힌 나의 이름과 더해져 한 줄의 문장에
엄청난 기대감이 모아졌다.

셰프계의 초신성이라 불리는 나, 그리고 나의 이름을 뒤에 업은 메이.

그녀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 구도를 대중들이 더 원했던 것 같다.

***

‘반유현 챌린지.’

이전에 SNS 를 통해 유행했었던 그 단어는 이제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내가 조금만 더 독특한 행보를 보이면, 그 단어가 붙게 된다.

[ 반유현 챌린지, 그의 제자 메이! 노부 마츠로에게 도전장! ]

[ 노부 마츠로의 본진! 런던, 레스토랑 앞에서 대격돌 반유현 챌린지의 시작! ]

메이가 적은 문구가 또, SNS 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구도가 대중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회자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메이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 구도가 생겨났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네.’

덕분에 노부 마츠로에겐 나보다 급이 낮은 셰프라는 인식도 생겨난 것이 사실이었다.

나와의 대결이 아닌, 나의 제자와 대결구도가 형성된 노부 마츠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죽기보다 싫었던 거야. 자신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까 봐.”

문제는, 대중들의 그러한 대결 구도 덕분에, 런던 노부 마츠로의 레스토랑 앞에 차려진 팝업 레스토랑


‘반유현-테스트’가 문을 닫게 생겼다.
“노인네. 치졸하구만. 대인배처럼 행동하더니.”

애초에 이 팝업 스토어 건물이 노부 마츠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부 마츠로는 ‘반유현 팩토리’의 반배치 고사 격 테스트인 팝업 레스토랑에서 자신이 맡은 팀의


셰프들이 높은 순이익을 낼 수 있게, 자신의 건물에 그것을 차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메이와의 대결구도 자체를 없애려 들기 위해 이 팝업 레스토랑의 장사를 허용하지 않았고,
메이가 이끄는 팀은 새로운 자리를 물색해야 했다.

“네 생각은 어때. 런던에 자리를 구해서 노부 마츠로 셰프와 끝을 볼래? 아니면, 상권을 분석하고, 네가
생각한 메뉴가 가장 잘 팔리는 곳에 팝업 레스토랑을 차릴래? 장사를 며칠 못한 것에 대해선 어느 정도
어드밴티지를 줄 테니까.”

“마츠로 셰프님이 저와의 대결 구도 자체를 꺼리신다는 게……. 저를 아주 하수로 본다는 증거고…… 저는


기분이 나빠요. 어떻게든 대결을 걸어서 짓밟고 싶은…….”

짓밟다라. 내 옆에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 있어서 그런가.

메이에게도 포식자의 성질이 발현된 것 같았다.

“그래, 원래 조금이라도 귀찮게 하는 놈들은 밟아줘야지.”

메이가 맡게 된 ‘반유현-팩토리’의 신입 셰프 10 명이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아. 내가 마츠로 셰프님을 ‘놈’이라고 했냐? 흘려들어. 실수했네.”

어쨌든, 메이가 마음을 그렇게 결심했으니 나는 메이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곧장 핸드폰을 열었다.

“어, 내가 받았던 명함 목록, 연락처들 쫙 살펴보면, 영국 관광청 있을 거야.”

내가 전화를 끊자, 메이와 셰프들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www.visitbritain.co.kr

“여기 들어가 봤어?”

“여기는…….”

“그래, 영국 관광청 홈페이지인데, 대문짝만하게 배너가 걸려있더라고.”

[ 반유현 셰프의 제자! 메이, 그녀의 팝업 레스토랑이 런던에서 시작됩니다! ]

“내 잡무랑 의전을 맡는 팀이 있잖아. 그쪽에 알아서 처리하라고 일러뒀는데 허가를 해준 모양이야.


그래서 관광청 홈페이지 메인 배너에 나랑 너의 이름이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래, 노부 마츠로는 너랑 나뿐만 아니라 영국 관광청이 하는 일에도 브레이크를 건 거야.”

지이이잉!
-연락처 보내드리겠습니다. 셰프님.

전화를 해두었던 반유현 팀에서 곧장 메시지가 왔고, 나는 또 전화기를 들었다.

-영국 관광청 CEO 샐리 콤밸.

***

런던 아이.

런던 템즈 강변에 위치한 대형 관람차의 별명이다.

매년 300 만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런던을 넘어 영국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각종 노점상들의 단속이 매우 강력한 곳이었다.

“경쟁업체도 없고 깨끗하니 자리 좋네.”

영국 관광청의 적극적인 협조로 메이와 셰프들은 이곳에 임시로 팝업 레스토랑을 오픈할 수 있었다.

풍경과 어울리는 임시 천막과, 그 안에 들어갈 조리대와 집기류까지 관광청에서 지원을 해줬다.

이런 파격적인 지원은 그 어디에도 없던 것이라고, 관광청의 수장 샐리 콤밸이 생색을 내기도 했지만,


나쁜 건 아니었다.

노부 마츠로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곳보다 이곳의 장소는 수십 배, 수백 배는 더 나갈 것이다.

“어떻게…….”

“반유현 챌린지라는 말이…….”

셰프들은 내가 직접 나선 뒤로, 상황이 변하는 모습을 봤기에 나를 우상화하기 시작이라도 한 듯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자신들을 이끄는 메이가 고군분투해서 해결하려는 것을 나는 전화 세 통으로 끝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들에겐 메이가 더 가까운 지도자였으니, 그녀를 치켜세워주고 싶지만 어쩌겠나. 효율을 생각할 때는
그것까지 챙겨주기가 참 어렵다.

관광청 직원이 상주해있고, 경찰과 각종 공무원에게도 협조가 되어, 우리가 천막을 치고 있는 것을


나무라는 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간판이 내걸린 뒤에는 이 임시 천막이 불법 노점일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 반유현 - 테스트 ]

“반유현이래!”

“뭐야, 장소가 여기로 바뀐 거야?!”

“헐!”

영어, 한국어, 일어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나는 메이에게 다가갔다.


“메뉴를 구성하는 건 도와줄 수 없겠는데.”

“네?”

메이가 순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것 봐.”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나에게 온 메일을 보여주었다.

‘반유현 - 팩토리’의 교수진들의 메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교수 카림입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적극적인 도움은…….

- …… 불공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셰프들 또한 반유현 셰프님을 뵙길 바랍니다.

- 애초에 런던 아이 밑에 장소를 차지하셨다는 것만으로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 메이 셰프가 팝업 레스토랑 테스트에 늦게 시작한 것도 있지만, 이는 형평성뿐만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 개인의 이미지에도…….

항의 메일이었다.

꼴찌 매출 3 팀의 교수들을 제명한다고 했고, 실제로 노부 마츠로는 제명이 되기도 했으니까.

어느 팀에라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교수들이었다.

교수들은 내가 나의 제자인 메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품었다는 것에서 유감을 표해왔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는 갔지만, 메이는 애초에 장사를 가장 늦게 시작했으니 나의 행동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나의 행동이 합리적으로 변하려면 여기서 그만두어야 했다.

“메뉴 관련된 도움은 줄 수 없고. 맛만 봐줄게. 무슨 메뉴를 할 건데?”

“도시락 형태로 테이크아웃은 불가능하다는 게 관광청의 입장이었죠…….”

테이크아웃을 하면 일회용품을 쓰는 빈도가 많아지고 가뜩이나 이곳엔 관광객들이 많기에 쓰레기 처리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그래서, 관광청은 이곳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테이크아웃을 금지하는 것을 내걸었었다.

“매출을 올려야 되니, 식재료 단가도 그렇고, 회전율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가장 효율적인 것을
찾아보다가 생각한 게 있습니다.

“뭔데 그니까.”

“계란 초밥.”

“하.”

요즘 나를 자주 웃게 하는 메이였다.
계란 초밥. 그 이름만 들었을 땐, 초라해 보일진 모르지만 강력한 음식이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라면.

“네가 뭘 좀 아는구나.”

74 화. 반유현의 이름 (4)

런던아이, 매년 약 300 만 명이 방문한다는 영국 최대의 관광명소에 나 홀로 임시 팝업 스토어를 열어본


것은 이번 생이 처음이었다.

지난 삶 동안, 무슨 축제니, 페스티벌이니 하면서 디너쇼를 하고 이곳에 푸드 트럭을 차려본 적이 있긴


하지만, 내 이름이 걸린 팝업스토어가 나 홀로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묘했다.

솔직히, 관광청에서 나에게 이런 대단한 자리를 줄지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사람들이 나의 이름값을 생각하는 정도와 나에 대한 시선을 다시 측정해야 할 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나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물론, 부정적인 시선도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개인이 이 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해 특혜니, 독점이니 논란도 생길 테지만,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을 영국 관광청에 기부하면 그만이다.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고. 맛있는 요리나 만들면 돼.”

다시, 나는 메이의 말에 집중했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네.”

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메이를 바라보자, 메이는 부끄럽다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장 준비해. 여기 온 김에, 맛은 봐야 될 거 아니야.”

내가 메이에게 너무나 극적인 도움을 줘 ‘반유현-팩토리’의 교수들이 항의를 했었다.

당연히 나의 이름과 힘을 이용해, 영국 내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에 그 자리를 얻었으니 그들의 항의가


이해는 갔다.

“맛만 봐주고 간다.”

뭐, 몇 마디 코멘트를 던져주는 것까지는 다른 교수들도 이해를 해주리라.

그렇게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고, 메이가 계란 초밥을 가져왔다.

총 8 개의 계란 초밥, 그 형상과 색깔이 모두 달랐다.

갈색의 빛을 띠고 있는 계란 초밥부터 밝은 노란색의 빛을 띠고 있는 것, 김과 함께 싸여있는 것, 반으로


갈라져 그 안에 밥을 감싸고 있는 것까지.

“맛도 다 다른가 본데. 뭐부터 먹냐.”

“원하시는 대로 드시면 됩니다.”


메이의 얼굴을 한번 바라본 뒤에, 나는 갈색의 빛을 띠고 있는 것을 먼저 입에 넣었다.

하도 나의 평가를 많이 봤던 메이라 그런지 이제 긴장한 내색을 비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셰프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자신들을 이끌게 된 메이가, 어쩌면 노부 마츠로보다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가쓰오부시(かつおぶし)?”

“맞습니다.”

가쓰오부시 특유의 향이 담겨있는 계란 초밥이었다.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달콤짭짜름한 맛이 터져 나왔다.

“멸치……. 다시마를 우린 시간도 알맞고.”

그 달콤한 맛이 모두 지나갔을 땐, 메이만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식초와 버무려진 밥알이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아니, 상쾌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입안에 침이 흘러나올 정도로 그 오묘한 신맛은 식욕을 돋우게
해주었다.

“잘했네.”

내 칭찬에는 메이도 순간 흠칫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음으로 나는 밝은 노란빛의 계란 초밥을 입으로 넣었다.

달콤한 맛은 바로 직전에 먹었던 계란 초밥과 비교될 만큼 적었고, 아예 새로운 맛이 올라왔다.

“흠.”

바로, 마요네즈와 명란.

두툼한 계란의 밑에 감춰져 있던, 마요네즈와 명란이 존재를 드러냈다.

바로 이전, 초밥의 쌀밥에 식초의 함유량을 미묘하게 높여 놔서 그런지, 그것들의 향과 맛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파프리카 가루를 조금 더 넣어도 되겠다. 마요네즈와 명란의 향이 강하니까.”

두 종료의 초밥을 모두 먹고, 메이의 실력이 증가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세 번째. 갈색빛과 노란빛이 적절히 섞여 있는 계란 초밥이었다.

반으로 갈라 ‘V’자 모양으로 만들어 그사이에 밥을 채워 놓은 형태였다.

그것도 이전의 계란 초밥들과 같이 매우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지만 그 중에선 최고였다.

부드러운 식감을 강조한 계란 초밥.


“좋네.”

새우를 갈아 넣었는지, 새우의 향이 올라왔고 그 뒤엔 생선 초밥을 먹은 것처럼 진한 와사비 향이


올라왔다.

“와사비 매운맛이 너무 강해. 생 와사비는 뿌리 쪽보다, 줄기 쪽으로 갈수록 그 매운맛이 덜해지는 거,


알고 있지? 사용 부위를 바꿔서 매운맛하고 밸런스 조절해.”

마지막으로 김으로 감싼 계란 초밥.

김을 양옆으로 뒤집어가며 빠르게 100 번은 구워내야 이런 고소함과 식감이 느껴질 것이다.

특유의 향을 풍기면서 입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김과, 입을 깨끗이 씻어주는 담백한 계란이 제법 잘


어울렸다.

총 네 종류의 초밥이 각각 두 개씩, 여덟 개.

각각의 재료만 준비된다면, 이 요리를 만드는 것도 빠를 것이고, 손님들이 이 음식을 먹는 속도도 빠르다.
맛과 효율을 모두 잡은 구성이었다.

“완벽하게 이기려면, 이 초밥에 들어가는 쌀알도 다 골라내. 중간중간 쌀알이 큰 것들이 섞여서 쌀알
자체가 주는 식감과 풍미가 떨어진다.”

대중들은 노부 마츠로 셰프와의 직접적인 비교를 할 것이기에, 그런 조언을 해줬다.

그의 내공이 들어간 세세한 맛의 차이를 극복하려면, 몸이 고생해야 되는 것 아니겠나.

나는 실제로 최고의 맛을 내는 초밥의 그 밥알의 개수도 헤아려 본 사람이었다.

“술을 곁들여 먹는다면, 밥알이 240 개. 이건 그냥 초밥만 먹을 거니까, 270 개.”

계란의 크기와 그 맛까지 고려한 개수를 말해주었다.

그 개수를 맞추려면 자동적으로 쌀알의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을 터.

주방에 함께 있던 셰프들은 하나같이 ‘대체 이 사람은 뭐지?’라는 표정이었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가진 내공이라곤 할 수 없는 조언들이었으니까.

“또, 있어. 샤리(しゃり) 만들 때, 식초랑 밥을 버무리는 주걱, 그 주걱을 휘젓는 횟수까지 맛에 영향을
미치는 거야. 너무 많으면 밥이 질어지고, 너무 적으면 네가 만든 식초가 밥에 잘 묻어나지 않지. 물론,
그 횟수까지도 밥알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메이는 나에게 이런 조언을 많이 들어왔던 터라,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고, 계란은 괜찮았어. 구성도 좋고. 잘 해봐. 아니, 잘 해야 돼.”

런던 아이, 그 바로 앞 나의 이름이 걸린 팝업스토어가 세워져 있는 이 자리는 나도 그렇지만 지난 삶


동안 그 어떤 사람도 혼자 차지한 적이 없는 매우 ‘공적인’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양쪽으로 올라간다.

100 년 동안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반유현 - 테스트’ 간판 바로 밑에 있는 몸집 작은 여성 메이.


매번 삶 중요한 순간에 해결사이자 승부사로 나섰던 내 사람이다.

메이에 대한 기대감은 매번 삶에서 느낀 것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즐거운 것도 이 현실이 나에게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 때문인 것 같다.

‘야경 죽이네.’

***

“아니, 하나뿐인 동료가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았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왜 하나 뿐이야, 한 명 빼도 네 명이나 있는데.”

“어쭈, 너 6 인방이라고 별명 지어준 반유현 셰프님 무시 발언한 거냐?”

로또 육 인방.

반유현이 이름 지어준, 여섯 명의 멤버 중에서 메이를 제외한 다섯 명이 런던을 방문했다.

메이의 팝업스토어가 본격적으로 오픈하는 날, 각자 휴가를 냈고, 레스토랑의 문을 닫고 이곳을 방문했다.

“너네도 계속 바빠지고 있다며.”

“우리야 뭐, 항상 바빴고 ‘레드 테이블 - 반유현’, 거기는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이 들어가서 더 바쁘지
않아?”

“어차피 레스토랑 내부가 항상 꽉 차 있는 거니까. 더 바쁜 건 못 느껴. 그냥 예약이 끝이 없이


밀려있다는 마음의 중압감 정도?”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 남아있는 렌과 에바, 그리고 ‘레드테이블 - 반유현’의 총괄 셰프로 있는


최민성, 헨리, 제리. 이들의 만남도 오랜만이었기에 할 얘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메이가 어쩌다 빠진 거야 거기에서?”

“우리도 몰라, 갑자기 반유현 셰프님의 부름에 나갔는데 런던에 눌러앉았다고 하더라고.”

메이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차가운 말투, 메이가 그나마 대화를 따뜻하게 중재했는데, 그녀가 없으니
대화는 서로 직구를 던지듯이 인사치레, 겉치레를 하지 않고 내용만이 가득 차 있었다.

“너네 주방에 메이가 빠졌는데 안 바빠?”

“우리가 바쁠 짬이냐.”

“짬?”

“하여간, 군대를 안 간 남자애들은 ‘짬’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거냐?”

“그놈의 군대는 좀…….”

헨리, 제리가 최민성의 군대 얘기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 때쯤, 웨스트 민스터(Westminster) 궁전에
도착했고, 저 멀리 강 건너에 런던 아이가 보였다.

“저 아래에 단독으로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던 사람이 역사에 없는 거 알아?”


“그, 그걸 메이가 맡은 거야?”

“그래. 메이가 꽤나 대단한 역할을 맡았데. 기사 좀 봐라.”

똑같은 조리복과 지휘급 셰프를 뜻하는 검정 스카프.

그리고 주방에서 똑같은 지위를 가졌던 메이가 아주 중요한 중책, 그것도 역사에 없었던 일을 만드는 것에
앞장서는 역할을 하니 다섯 명 모두가 내심 부러웠다.

그러나 그 부러움 속에 깃든 마음은 질투나 시기가 아니었다.

“우리도 차례로, 쓰일 거야. 반유현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래, 메이가 저런 역할을 맡았다는 건, 아주 좋은 선례야. 제발 잘 해내길…….”

처음 반유현의 밑에서 요리를 시작했을 때, 그때는 여섯 명 모두가 경쟁을 했지만, 이제는 서로 응원해
주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야!! 저긴 가봐!”

“아니야, 저건 런던 아이를 탑승하려는 사람들 줄이잖아.”

이들을 모두 태우고 있는 승합차가 다리를 모두 건넜을 때는 서서히 런던 아이가 가까워졌고, 길게 이어진


행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걸 무슨 재미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

최민성이 렌의 지적에 민망했는지, 궁시렁댔다.

“괜히 영국 최고의 관광지겠냐. 강 건너의 도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그때, 이들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야!! 런던 아이의 줄이 아니잖아!”

“미……친.”

런던 아이의 탑승 게이트로 이어지는 줄과, ‘반유현 - 테스트’로 이어지는 줄.

그 두 줄의 길이를 비교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차이는 확연했다.

아니, 런던 아이에 줄을 선 사람들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엄청난 차이였다.

“메이!!”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그녀는 너무나 바쁜 탓에 이쪽을 보지 않았다.

“이게 실화야?”

“대박났네…….”

이 기나긴 행렬은 노부 마츠로와의 이슈, 그리고 영국 관광청의 홍보 덕에 일어난 일이리라.

비현실적인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기에,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미슐랭 9 스타의 초밥과 견줄 만하잖아! 이 계란 따위가!”

“노부, 노부 마츠로와 경쟁할 만한데 진짜로?”

“제자가 스승을 이긴 거야?”

대중들은 이미 메이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75 화.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사태 (1)

[ 끊어지지 않는 행렬, ‘반유현-테스트’ 런던 아이 오픈 성공적 ]

[ 영국 관광청과의 합작! 런칭 성공적. 관광객 유치의 성공적 사례로 발돋움하다. ]

노부 마츠로는 메이와의 대결 구도가 생긴 것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쓴다고는 하지만, 사실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었다.

[ 대중들의 관심은 다시 노부 마츠로에게로…… 이런 제자를 발굴한 스승의 실력은? ]

[ ‘반유현 효과’ 반유현의 직속 제자 메이 셰프 덕에 새롭게 매출을 갱신하는 노부 마츠로의 ‘


신세카이.’ ]

‘내 가게의 매출이 메이 덕분에 올랐다고?’

더군다나 마츠로 본인과 메이의 대결 구도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제목을 찾아 기사를 써낸 것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반유현도 아니고 그의 제자……. 내 옛 자제에게 밀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이다.

이런 대중들의 반응이 지속된다면, 가짜가 진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예약 문의가 순간적으로 증가하긴 했지만, 마츠로는 일식의 대가, 미슐랭 9 스타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하기 싫었다.

요식업계 거물로 떠오르는 반유현과의 커넥션이 아니라, 그의 제자인 메이와 엮이는 것 자체가 자신이
여태까지 쌓아 올린 인지도와 명성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언론에 날 엮는 거야. 나를 제물 삼아서 자신의 제자를 키우려고, 내가 반유현을


이용해보려다 되려 엮여서 피곤해졌군.”

그래서 이 모든 논란을 종식시킬 한 방이 필요했다.

대중적인 인지도에선 반유현에게 한참 밀린다고 생각한 그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오노 이치로 셰프님.’

오노 이치로. 66 년의 긴 세월을 오로지 초밥을 만드는 것에 힘쓴 장인.

88 세의 나이에도 주방을 지키고 있는 그는 노부 마츠로의 스승이었다.

셰프라면 누구나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고, 그가 가진 요리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알 수 있다.


방송과 언론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미슐랭 3 스타를 20 년이 넘게 보유했지만 레스토랑 확장을 하지
않는, 오직 초밥 외길을 걷는 그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 한마디는 대단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노부 마츠로는 10 여 년의 세월을 그의 밑에서 요리를 배웠었다.

마침, 그가 어떤 일정에 의해 영국을 방문했고, 그가 아꼈던 제자인 노부 마츠로의 식당에 들르는 게


정해져 있던 참이었다.

‘스승님의 한 마디라면.’

좀처럼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적인 존경을 받는 셰프의 말 한마디는
충분히 이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

노부 마츠로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웃음을 터트렸다.

오직 일식의 세계화만 생각하던 자신이, 대중들에 대한 시선을 신경 쓰게 된 것이 신기했던 탓이다.

“스승님께서 언제 들어오시지?”

“예, 이미 공항에 오셨고 차를 보내드렸습니다. 영국 왕실의 일정은 3 일 뒤부터 시작되어 그때까지


저희가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지금 오노 이치로 셰프님께서 계신 곳이…….”

자신의 비서에게, 오노 이치로의 현 위치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나의 레스토랑보다 그곳에 먼저 들리신 거야!”

***

“돈 좀 더 벌면 전용기부터 바로 사야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네.”

지난 삶들을 떠올려보면, 내가 셰프로서 이 정도 위치에 다다랐을 때는 지금처럼 젊은 몸이 아니었다.


지금의 삶은 100 년의 인생에서 가장 빠른 성과를 얻은 몸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젊은 몸을 가졌지만 오히려 가장 바쁘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저, 전용기 알아볼까요?”

“내가 그 정도 부자는 아니잖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나의 레스토랑을 들르는 것부터, 유럽 각국의 주요 도시, 미국까지 퍼져있는 팝업


레스토랑, 30 개를 전부 시찰했다.

‘반유현-팩토리’의 일원이 된 그들의 태도나 요리에 대한 자세도 평가하기 위해서였고, 눈에 띈 몇몇의


셰프들도 기록해두었다.

타코, 핫도그, 카레 등 다양한 요리들이 많았고 모두에게 조언을 해줬으며 달라진 교수들의 태도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런던. 메이의 팝업 레스토랑이 있는 런던 아이 앞에 도착했다.

실시간으로 이 레스토랑의 반응을 확인하곤 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메이의 말을 들어보면, 레스토랑 문을 닫으면 셰프들이 잠을 줄이면서까지 초밥에 들어가는 쌀알의 개수를
맞추기까지 한다고 했었는데, 대중들이 그 노력을 알아준 듯했다.

음식을 먹고 나오는 사람들이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고, 만족한 표정으로 레스토랑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냥, 언론플레이나 쇼가 아니라 진짜구나. 반유현…….”

이미 수많은 잡지와 SNS, 언론에 메이의 요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계란으로 이런 다양한 맛과 경험을…… 참. 유럽 여행 와서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이야.”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속한 스타 선수들, 그리고 유럽 여행을 하고 있던 유명 연예인들도 길게


선 행렬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슈퍼스타들의 등장에도 사람들은 그들에게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지 않았고, 덕분에 혼잡스럽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줄의 질서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 줄에서 이탈하시거나, 자리를 바꾸신 분들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

일행이 있더라도, 줄에서 이탈하면 입장할 수 없는 것이 규칙.

대리로 줄을 서는 알바까지 등장하고, 그 알바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메이의 요리를


맛봤다.

재료와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던 메이가 꼼꼼하게 적어 둔
글씨가 꽤나 효력이 있나 보다.

그 누가 됐든 줄에서 이탈한 사람은 다시 줄을 기다려야 했고, 덕분에 한 번 줄에 선 사람들은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가만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물론, 이곳이 유명인들도 많이 들른다는 걸 알고 팝업 레스토랑의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관광청의 직원들에 의해 그곳도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반유현 셰프다!

“와! 반유현 셰프도 줄을 서!”

내가 그 마지막 줄에 서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안절부절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줄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 실제로 몇몇의 사람들은 줄을 포기하고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요청하곤 했다.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왜 포기하셨어요. 요리를 먹는 게 더 소중한 경험일 텐데.”

“다시 줄에 서면 되잖아요.”

나는 그저 방향을 정하지 않고 까닥까닥 고개를 숙이며 그들의 환호에 대응해준 뒤 가만히 앞을 바라봤다.

“줄이 꽤 긴 것 같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셰프님께서 오신 걸, 말씀드리고 가져올까요.”

“가만히 있어. 애들 바쁜데.”

내가 여기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슈화가 될 수 있기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평론가 또는 기자로 보이는 사내가 내 바로 뒤에 섰다.

“안녕하세요 반유현 셰프님…… 너무나 팬입니다.”

“예.”

“질문 몇 가지…….”

내 옆에 붙어있던 오스틴과 경호원들이 사내가 질문하는 것을 막아섰다.

나는 죄송하다는 눈짓을 하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사과 인사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조용히 줄에 서 계시다가 요리를 즐기셨으면 좋겠는데, 제가 바로 뒤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실 것 같습니다.”

“大丈夫です。(괜찮습니다.)”

중절모를 쓴 노신사 한 명이 뒤를 돌아보곤 일본어를 뱉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곧장 일본어로 대응했다.

그가 누군지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혹시……. 영광입니다.”

“저를 아시나요?”

“오노 이치로 셰프님 아니십니까?”

60 년이 넘는 세월을 초밥의 맛을 올리는 것에 쏟아낸 명장.

어쩌면 이 줄에 서 있는 EPL 축구 스타들이나, 유명 연예인들보다 내 가슴에 와닿는 스타였다.

그가 초밥에 있어선 압도적인 엄청난 실력을 가졌더라도, 난 그의 제자가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아주 천천히, 긴 세월 동안 세세하게 가르쳐 주기에 나와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

또, 그는 사회적 영향력도 대단하지만, 그 영향력을 이용하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나와 마주할 일도 많지


않았다.

“허허. 젊은 사람이 어떻게 나를……. 요리에 관심이 있는가 봅니다. 기분이 좋군요.”
88 세의 할아버지.

각종 대중매체에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을 것이고, 설령 관심이 있다 한들 셰프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할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얼굴을 모르는 것일 테고.

“네, 반유현이라고 합니다. 파리에서 셰프로 활동하고 있고…….”

“허허허허! 반유현 셰프? 허허허! 이거 미안합니다. 이 늙은이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못 알아뵀군요.


허허허!”

내 얼굴과 이름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이름을 말해주자 곧장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치로였다.

“저를 알고 계십니까?”

“당연하죠! 반유현 셰프를 모르는 셰프가 있을 리가! 허허허허!”

내가 바로 이전 생, 미슐랭 스타 10 개를 가지고 있을 때에도 나의 이름을 그저 한 번 들어봤다는 식으로


웃어넘겼을 때와는 달리, 호탕한 웃음을 치며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이것 또한 나의 이번 생이 아주 파워풀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러고 보니 노부 마츠로를 키워낸 스승이잖아.’

그가 자신의 애제자와 대결구도가 형성된 셰프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이곳에 줄을 서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닐 텐데.

그리고 성격상 그런 것에 관여할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의 호기심 때문에 이곳에 서 있는 거다?’

내 경험에 의한 생각은 그렇게 흘러갔다.

초밥 외길 인생이지만, 영감을 받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들을 맛보러 다니는 게 그의 유일한


취미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오노 이치로가 나에게 다시 한번 악수를 건네고 말했다.

“하이고, 앉아서 쉬어야겠네요. 비행기도 오래 탔고, 이 줄에도 오래 서 있으니, 이 늙은이가 힘이


없어서 허허허허! 요리는 기대할게요.”

그러고 보니 오노 이치로가 88 세. 내가 100 년하고 약 2 년을 더 살았다 치더라도, 나랑 14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사람이다. 힘들 수밖에. 머나먼 영국까지 온 이유부터, 그가 여기에 서 있는 이유를 알고 싶지만.

나는 요리 업계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나이 차를 가진 동생(?)을 배려해 줄 수밖에 없었다.

***

구독자 약 2.5 만 명의 요리 평론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가렛.

‘이, 이런 대박이……!’

그는 미식·평론 업계에서 가장 활발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메이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 구도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거주지도 런던이었고, 메이 셰프의 요리를 먹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뜻밖의 행운을 마주했다.

메이의 팝업 스토어에 줄을 섰는데, 그 바로 앞이 반유현이었고, 그 앞이 오노 이치로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열심히 하니까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복권에 당첨된다면 이런 기분일 것만 같다.

그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했다는 것도 가슴이 뛰었지만, 그보다 더한 생각들이 가렛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오늘이 지나고 올라갈 포스팅의 제목만 생각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 반유현, 오노 이치로. “두 제자의 전투 현장에 나타난 스타 셰프들.” ]

자극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으며, 자신의 블로그를 구독하는 사람들이 요즘 가장 궁금해할


사항을 함축적으로 담은 제목.

저들이 메이의 음식을 먹는 모습과 코멘트만 사실적으로 묘사해도 분명 많은 반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

요즘 정체되어 있던 블로그의 구독자수 증가는 물론이고, 그에 따른 수익 창출까지.

“혼자 오셨나요?”

“네!!”

“저쪽으로 앉으세요.”

가렛은 안내된 자리에 앉으면서 반유현과 오노 이치로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때, 오노 이치로의 입에 하나의 계란 초밥이 들어갔다.

76 화.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사태 (2)

분명 봤다.

오노 이치로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린 것이.

그리고 오노 이치로는 여덟 개의 초밥을 모두 비워내 놓고는 주방에 있는 메이를 가만히 응시했다.

메이의 목에 스카프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메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고, 대중들에 의해


자신의 제자와 대결 구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곳의 총책임자인 줄 알았을 것이다.

메이 또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노신사가 누군지 알았는지, 그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보였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내 가게가 아니고선 이런 신선한 초밥을 먹을 수가 없었는데.”

신선하다. 어쩌면 ‘계란’ 초밥의 맛을 높일 수 있는 가장 높은 표현 중에 하나가 아닐까.

오노 이치로가 고개를 깍듯이 숙여, 자신을 즐겁게 해 준 이에 대한 예의를 다했고 메이는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요리에 전념했다.

마침 나도 모든 요리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네. 이 정도면……. 몇 가지 조정하면 더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지? 이 현상 유지만 잘해.”


“예! 셰프!”

메이가 큰 소리로 대답하자, 팝업 스토어를 나가던 오노 이치로가 나를 쳐다본다.

자신에게 즐거운 요리를 선사해준 그녀의 스승이 ‘나’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눈치였다.

“이제 모든 팝업 스토어 일정은 끝났고 파리로 가자. 한국의 반유현-펌킨 상황은 어때?”

“예약이 계속 밀려있네요. 이태원의 대명사로 불리는 모양입니다. 근데 이제 메뉴가 한정적이니까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미슐랭 평가 기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또 도움을 드리러 가야 되겠네. 흠, 새로운 레스토랑 런칭


준비도…….”

오스틴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팝업 스토어를 나섰을 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보다 조금 먼저 나간 오노 이치로와 한 젊은 남성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제, 제발요! 대답 좀 해주세요 셰프님!”

“허허. 그 부분에 관해선 아직 할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할 말이 없으십니까아아!”

정확히 말하면, 젊은 남성이 오노 이치로의 길을 막고 애원하며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메이 셰프가 노부 마츠로 셰프님보다 나은가요? 그거 한마디만 해주세요! 네? 아니면, 노부 마츠로


셰프님의 초밥이 더 맛있는 건가요?”

내가 고개를 그들의 방향으로 까딱이자, 팝업 레스토랑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두 명의 경호원이 그를


제지했다.

“허허. 뭐, 그렇게까지…….”

오노 이치로가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곤 가려던 길로 걸어갔다.

두 명의 경호원에게 양팔이 잡힌 사내의 얼굴을 보니, 아까 전 내 바로 뒤에 서 있던 사내였다.

기자 또는 평론가로 보였던 사내, 역시나 그가 하는 질문을 보니 그런 직업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런 질문을 하시려면, 소속 먼저 밝혀야죠.”

“아아……. 저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가 휴대폰을 꺼내 나에게 보여준 블로그의 메인화면.

구독자는 2 만 5 천 명을 조금 넘어선 수준이었다.

‘꽤 괜찮네.’

내가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거리자, 경호원들이 그의 곁에서 떨어졌다.

“질문이 뭔데요?”
“메이 셰프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 구도에서 그들의 두 스승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저기 가시는 오노
이치로 셰프님과 반유현 셰프님…….”

“저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30 개의 팝업 레스토랑 ‘반유현-테스트’를 시찰하러 온 것이었고요. 오노


이치로 셰프님께서는 이곳에 왜 오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노부 마츠로님의 초밥도 먹어봤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메이 셰프의 초밥에 더 많은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녀가 저의 제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객관적인 판단입니다.”

내가 그 말을 뱉었을 땐, 내 앞의 사내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면서 흔들렸다.

나는 그것을 포착했고 그가 나에게 원하는 대답을 알 수 있었다.

구독자 2 만 5 천명, 그 정도면 이용 가치가 충분하다.

“계란으로 이런 다채로운 구성과 맛을 냈다는 것은 생선과 육류로도 더 많은 기대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더군다나 메이 셰프의 경력은 노부 마츠로 셰프님보다 훨씬 짧습니다. 여러모로 메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노 이치로 셰프님!”

저 멀리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오노 이치로를 부르자, 그가 말했다.

“……흠, 내 제자의 것도 먹어봐야 그 우위를 가릴 수 있겠죠. 메이 셰프의 것도 좋았습니다. 일단은.”

***

2.5 만 명의 구독자가 있는 블로그에서 시작된 포스팅은, 여러 매체와 SNS 에 의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워낙 거침없는 표현의 대가라 그런지, 반유현의 멘트들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 반유현 “맛, 구성, 경력을 모두 따져서 메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

[ 반유현 “제자로서가 아닌, 객관적인 평가.” ]

[ 반유현 “메이와 25 살 차이 나는 셰프, 25 년 뒤 메이에겐 미슐랭 9 스타가 어려운 일은 아닐 듯.” ]

노부 마츠로는 그 문장들을 보고는 이가 갈렸다.

완전히 반유현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를 자신의 원대한 꿈의 계획으로서 이용하려 했던 과거가 후회되기도 했다.

이 모든 프레임을 박살 낼 수 있는 기회는 이제 마지막 한 번뿐.

“뭐해! 오늘은 모든 혼을 쏟아 넣어야 돼!”

[ 오노 이치로 “아직 노부 마츠로 셰프의 초밥의 맛을 보지 못했다.” ]

자신의 스승인 오노 이치로가 자신의 초밥을 먹고 남길 코멘트가 그러했다.

그가 나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 모든 것들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점점 대중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겠지.

반유현의 제자에게 패배했다는 프레임이 씌워진 채로 대중들의 기억에서 천천히 지워지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낫다.
오노 이치로가 방문하기 약 1 시간 전, 노부 마츠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식재료를 정리했다.

전복, 참치, 광어, 소고기, 초밥에 올려질 재료들이며, 밥과 전채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그리고, 오노 이치로가 그의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오셨습니까. 셰프님.”

노부 마츠로를 비롯한 여러 셰프들이 그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가게의 영업시간이 끝난 시점이지만, 마츠로의 휘하에 있는 셰프들도 오노 이치로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허허. 이거, 셰프들은 퇴근시키지 그래. 왜 나 불편하게 만들어.”

“아닙니다. 본인들이 셰프님을 뵙고 싶어서 자리한 겁니다. 편하게 계시지요.”

“그래, 요즘 고민이 많겠어. 메이? 그 셰프에게 요리를 처음 가르쳐준 게 자네라면서.”

“그렇습니다.”

오노 이치로는 귀엽다는 듯이, 노부 마츠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츠로의 나이도 어언 50 이 넘었는데, 이치로가 그를 보는 눈빛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만화 속에 나오는 악당들처럼, 세계 정복을 꿈꾸다……. 코 깨지게 생겼구만. 허허허.”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쯔, 아니긴. 내가 자네의 꿈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자네의 요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면 알아서
될 터인데, 내가 방송이나 언론에 홍보하는 걸 본 적 있어? 괜히 욕심부리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니야?”

오노 이치로가 노부 마츠로를 나무랐고, 마츠로 또한 그것을 인정하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자네 요리 좀 먹어볼까.”

그의 말에 마츠로가 준비한 식재료들과 밥알들을 주무르며 초밥을 만들어 내어놓았다.

눈을 감고 식재료들이 주는 촉감을 느끼며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주물러 내어놓는다.

장어, 정어리, 문어, 단새우 등등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접시에 올려놓고, 오노 이치로도 맨손으로 그
초밥을 받아먹었다.

“앵콜도 있나?”

“예, 있습니다. 셰프님이라면 코스를 한 번 더 할 수도 있죠.”

“가게를 계속 차리다 보니, 과장이 늘었구만. 광어 지느러미로 하나 더.”

앵콜 메뉴로, 오노 이치로는 광어 지느러미 초밥을 요구했다.

광어 지느러미 특유의 기름진 고소함과 식감, 이 음식이 별미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노부
마츠로가 직접 제조한 식초와 지느러미 겉면에 발라진 특제기름은 풍미를 더했다.

“흠. 맛은 뒤처지지 않아. 어딜 내어놔도 최고의 칭찬을 받아도 될 만한 맛이야.”


“감사합니다.”

최고의 맛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오노 이치로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흠…… 맛은 최고야. 그런데, 기대감이 없어 기대감. 모든 초밥이 최고의 맛을 내지만, 코스가 끝났을
때 이, 지금 당장의 맛있는 요리를 또 먹고 싶었지, 자네의 다른 요리를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를
않았네.”

요리에 대한 만족감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감정.

맛의 우위는 메이보다 노부 마츠로가 높다고도 할 수 있었다.

쓰이는 식재료부터 달랐으니까.

“반유현 셰프가 말한……. 기대감이라는 게.”

그런데, 식재료의 차이를 아득히 뛰어넘어 메이의 요리를 먹었을 때 떠올랐던 생각이, 노부 마츠로의
요리를 먹은 지금엔 떠오르지 않았다.

“맛은 인정하지만, 자네가 더 잘난 셰프라고는 할 수가 없겠네. 자네가 잘 되는 것은 나도 당연히…….


크흠! 자네의 요리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 이해해주게나. 내 마음이 그렇게 시키고
있고, 내 한평생 내 마음과 반대되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자네가 알지 않나.”

“셰, 셰프님!”

“초밥의 맛은 최고였네, 대외적으로 자네의 요리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응답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게나.”

***

[ 메이 셰프의 암묵적인 승리! ]

[ 미슐랭 9 스타를 눌러 버린 초신성 셰프! ]

오노 이치로가 레스토랑 ‘신세카이’를 들렸다는 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노부 마츠로의 요리를 먹어보고 나서 평가하겠다던 오노 이치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오노 이치로 입을 닫은 이유. 제자의 몰락을 막아선 스승. ]

[ 반유현의 제자, 스승만큼이나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다. ]

대중들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서 생산해냈고, 그에 따라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첫 번째로 나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지금 이 몸의 요리 경력이 짧듯이, 메이의 요리 경력도 짧은데, 어떻게 그녀에게 저런 요리 실력을


이식했냐는 호기심이 동반된 관심이었다.

불과 요리를 시작한 지 2 년도 채 안 된 메이가 유명해졌고, 그녀를 가르친 나는 또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 관심은 내가 설립한 요리 전문 교육 기관인 ‘반유현- 팩토리’로 이어졌다.


“내년 신입생 경쟁률이 기대되네.”

그리고 또, 그러한 대중들의 관심은 이미 테스트로서 팝업 레스토랑을 영업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졌다.

‘반유현-팩토리’의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 그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이들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 조금 더 진취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들었다.

“셰프들이 이제, 팝업 레스토랑을 테스트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대표적인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린데 또.”

“30 개의 레스토랑 중 안정적인 흑자전환에 성공한 팝업 레스토랑들은 더 규모가 큰 자리를 알아보고 있고,
자신들 스스로, 전단지, 시식, 마케팅 수법을 동원해서 아예 그 지역에 자리를 잡겠다는 마인드인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그 팀의 리더인 교수들도 인프라를 총 동원하고 있고요.”

진행 상황이나, 그 효율은 모르겠으나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말이었다.

내가 이전에 말하지 않았나.

혼자의 힘으로 눈덩이를 밀다가, 이제는 그 눈덩이가 커져서 굴리지 않아도 스스로 몸집을 불리면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 끝까지 이제 한 달, 남았나. 그 이후의 결과를 보고 그들에게 더 큰 기회를 줄지…… 말지…….”

내가 지금 한 이 말도, 300 명의 셰프들과 그 교수진들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

77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1)

대지는 800 평, 총 3 층짜리 건물 ‘반유현 - 팩토리’.

자재가 싼 것들로 예산을 최소화해 지었지만, 건물 자체는 그럴듯했다.

“생각보다 잘빠졌네. 건물을 보고 이 학교에 입학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준공식, 그리고 입학식이 동시에 진행되는 날.

유럽 각국, 또는 조금 멀리 미국에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던 300 명의 신입 셰프들과 그 교수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메이 셰프님, 멀리서 그 활약 잘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1 등은 그 팀이 하겠죠?”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교수진과 신입 셰프들은 각각 자리를 나눠 앉아있었다.

단연, 이번 팝업 테스트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 팀을 이끈, 메이에게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인기가 많던데요? 밖에 있더 기자들도 메이 셰프와 인터뷰를 원하는 것 같고.”

“아니, 메이 셰프팀원에 있던 새내기 셰프들도 주목을 받았더라구요.”

“주방에 원래 있던 포지션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은 소규모로 진행된다고


들었는데.”

메이의 성격상 이런 뜨거운 관심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친절하게 대답한 이유는, 함께 있는 교수진들 중에서 자신이 최연소, 최소 기간의
경력을 가진 셰프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큰 관심을 가진 이들 모두, 미슐랭 스타를 보유했거나 그에 버금갈 만한 업적을 가진


셰프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한결같이 자신을 칭찬하며 치켜세우니, 몸 둘 바를 몰랐다.

“제 동료들이…… 숙련도가 많이 올라가서 제가 없어도 충분히 돌아갈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저를 쓰신 것 같네요. 그런데, 제가 계속 이곳의 교수진으로 있을지는…… 왜냐면
다른 교수분들의 스펙에 비해 저는 아직 그렇다 할 커리어가 없습니다.”

“겸손하기까지 하시네.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번 팝업 스토어 테스트에서 메이 셰프의 매출을 못 이긴


우리는 어떡하라고! 하하하하!”

“죄, 죄송합니다아…….”

그런데, 교수진들의 메이를 향한 노골적 관심은 사실, 메이 그 자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반유현 셰프님께서, 매출이 높은 팝업 스토어에 뭔가 다른 보상을 줄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알고 있죠? 메이 셰프는 최측근이니까.”

“에이, 우리도 같은 교수진인데 우리한테만 말 해봐요. 우리도 학생들한테 비밀로 할 테니까.”

“하하하하. 메이 셰프! 앞으로 잘해봅시다.”

“저,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신이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으로서, 이 자리에 앉아있을 줄도 몰랐는데 반유현이 생각한 계획들이야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들을 헤아리려 해봐야 헤아릴 수 없다는 걸 메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들의 말대로 반유현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메이의 경험상 단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반유현 셰프님께서, 정확히 ‘더 큰 기회’라는 말씀을 하신 거라면 계획이 있으시다는 건데…
….”

메이의 중얼거림에 모든 교수진들이 그녀에게 집중했다.

“확실한 건…… 엄청난 계획일 거예요. 누구든 상상하지 못했던.”

그가 파리로 넘어오고,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았던 게 있었던가.

“포기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반유현 셰프님의 곁에 있던 시간 동안, 셰프님의 계획을 읽었던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메이의 말이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렸는지 교수들은 입술을 내밀거나 어깨를 들썩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에이. 그거야 우리도 다 알지 메이 셰프. 반유현 셰프님이 대단하시다는 걸 우리라고 모르겠어?”

메이의 말을 아부성 멘트로 들은 교수진도 있는 듯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 그래. 하하하!”

메이는 100% 진심이었다.

진정 반유현의 계획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야야. 너네도 손님 많았다며.”

“우리 많았지. 근데 메이 셰프님 팀을 이길 수 있는 팀이 있었을까?”

“음……. 그건 좀 그래, 런던 아이라는 세계 최대 관광지에서 장사를 하는데 똥을 팔지 않는 이상 뭐…


….”

신입 셰프들 사이에서도 메이가 이끄는 팀에 많은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분 좋은 관심은 아니었다.

“야, 러트렐. 너네 팀 솔직히 반유현 셰프님 없었으면 뭣도 아니잖아. 계란 초밥?”

“제발, 닥쳐. 쌀알 개수 세는 만큼의 노력도 안 해봤으면.”

“우리 팀이 그 자리였으면, 유럽을 정복했을 건데, 아쉽네.”

“퍽이나.”

시작부터 경쟁을 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좋은 성과를 냈다는 것이 좋을 리 없었다.

저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은 나를 이기고 올라간 사람 아닌가.

“그만해, 셀리. 다들 열심히 했잖아. 결과는 곧 나오겠지. 그리고 러트렐 팀에는 핸디캡도 있었잖아.
애초에 장사를 늦게 시작했으니.”

“그래, 다들 그만해. 그나저나 반유현 셰프님께서 말하신 ‘더 큰 기회’라는 게 궁금하네.”

“그러게…….”

그때였다. 건물의 밖부터 어수선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곳에 있는 300 여 명이 넘는 사람들 모두, 그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오십니다. 모두 자리에 서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대 위로 올라가는 반유현의 모습은 이 건물이 완공되기 전과는 또 달라 보였다.

“저 포스는 뭔데…….”

“대박…….”

‘반유현 - 테스트’라는 이름의 팝업 레스토랑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해서일까.

수백 명의 셰프들 앞에서, ‘실패는 없다.’라는 한 줄의 문장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

“아. 아. 제 말 잘 들리십니까.”

예! 셰프!

관중들의 높낮이만 들어도 이들이 나에 대한 충성도, 또는 기대감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과학적이진 않지만,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랄까.

백 년을 살아서 얻은 능력 중에 또 하나일 것이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아아! 셰프!

하나의 목소리로 합쳐지진 않지만, 다들 하는 말이 똑같고 우렁차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뜻했다.

“준공식, 입학식이라고 해서 모았는데, 사실 별거 없습니다. 입학을 축하드리고 앞으로 프로그램을 잘


따라서 멋진 셰프가 되길 바랍니다.”

우와아아아!

“각설하고, 신입생의 수준 파악을 위해 진행된 팝업 레스토랑의 성적을 발표하겠습니다. 그 팀을 이끈


교수님의 성함을 호명할 터이니, 호명된 팀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정적이 흘렀고, 나는 발표를 계속했다.

“1 등, 메이 셰프. 2 등, 카림 셰프님. 3 등, 안토니오 셰프님. 4 등, 시리아 셰프님 5 등, …….”

우와아아아!!

1 등은 모두의 예상대로 메이가 차지했다.

‘자리가 좋았다.’, ‘내가 많은 도움을 줬다.’라고 하기엔, 1 등과 2 등의 매출 차이가 엄청났다.

매번 삶 해결사로 나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그녀가, 이번 삶에서도 ‘반유현 - 팩토리’의 체제를


공고히 해줬다.

“1 등 팀의 팝업 레스토랑은 손님의 재방문율 또한 압도적이었습니다.”

재방문율이 높다는 것도 그 사실을 증명했다.

이슈를 빼고, 요리의 맛이 대단해야 재방문율이 높은 것은 당연한 사실.

그제서야, 교수들이 일어나서 박수로 축하를 전하기 시작했다.

씁쓸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의 제자인 메이가 압도적인 성과를 냈다는 것은 ‘반유현-팩토리’의 대단한


홍보가 될 것이지만, 메이의 실질적인 상대였던 교수들은 자신들이 요리 경력이 3 년도 채 안 된 셰프에게
‘패’했다는 것이니까.

“물론, 매출은 요리 실력 그 자체뿐만 아니라, 상권, 기후, 많은 영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해줬다.

메이를 제외하고도, 네 명의 교수가 호명되었고, 메이의 팀 10 명과 각각 네 팀에 속해있던 40 명의


셰프들이 환호를 지르며 달려 나왔다.

“지금 이 앞에 나와 있는 50 명의 셰프는 이번 평가에서 최상위 성적을 내셨습니다. A 반,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A 반’이라고 말하자, 셰프들이 어리둥절해 하며 나를 바라봤다.

“300 명, 여섯 개의 반으로 나눴습니다. 각각 50 명씩, A, B, C, D, E, F. 이번 팝업 스토어에서


매출 최하위의 50 명은 F 반으로 배정되었고.”

이미 자신이 어떤 반에 배정되었을지 아는 셰프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세세하게 반을 가를지는 몰랐다는 표정들이다.

“각각의 반, 그 안에서 또 다섯 개의 팀을 가릅니다.”

이를테면, 최상위 성적을 낸 A 반 50 명에서, 팝업스토어의 등수대로, A-1 은 메이팀, A-2 는 카림팀,
A-3 은 안토니오 셰프팀으로. 반 안에서도 또 수준이 나뉘는 것을 생각했다.

“또, F 반의 3 팀, 4 팀, 5 팀, 즉 F-3, F-4, F-5 를 맡으셨던 교수님들은 제명 조치 되셨습니다.”

이는 약속이었다.

팝업 레스토랑 테스트에서, 최하위 세 팀의 교수를 제명시키겠다고 했었던.

나의 말에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했던 것은 지켜야 하는 게 철칙이다.

“F3, F4, F5 팀은 새로운 교수를 초빙 중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한 말 중에, 나의 목소리의 높낮이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교수들을 제명시킬 때부터, 팀 리더를 잃은 셰프들을 위로할 때까지.

강조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크게 말했다.

“그리고! 이전에 말했었죠. 매출이 높은 팀에게 더 큰 기회를 준다고.”

그 기회를 못 얻으리라 스스로 예상한 B, C, D…… 팀에 소속된 셰프들도 나의 계획 자체가 궁금한 터라


귀를 기울였다.

“A 반, A 반에 속한 5 개의 팀은 즉, A-1, A-2, A-3 …….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을 오픈할 것입니다.”

“!!”

장내가 갑작스럽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이라니, 내가 이전에 말한 ‘더 큰 기회’라는 단어가 뭔지 직감적으로 알아들은 탓이었다.

“반유현 팩토리 내에서 최상위권인 A 반의 1 팀부터 5 팀은 창업을 지원합니다. 셰프로서의 실력을 가장


빨리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최상위권 랭크에 속한 신입 셰프들에게 보다 더 효율적인 교육 방법을 생각했었다.


맛이라는 건 기본을 넘어가면 절대적일 수가 없는 것이기에, 레스토랑을 창업해 자신의 요리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며 요리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다.

실제, 레스토랑 내의 직급을 봐도 요리 실력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은, 재료를 손질하는 인턴이나
조리사들이 아니라, 수셰프나 총괄 셰프처럼, 메뉴를 만들고 주방을 지휘하는 이들이다.

당연하게도, 단순 반복 업무를 하는 것보다 창의력을 발휘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요리를


완성시키는 사람이 실력이 빨리 오를 수밖에 없다.

셰프의 실력을 빠르게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방법은 ‘반유현-팩토리’내의 셰프들에게 엄청난


동기를 부여한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반유현-화이트 1’, ‘반유현-화이트 2’ …….”

이들이 창업하게 될 레스토랑의 이름 앞엔 나의 이름 ‘반유현’을 붙여줄 것이고.

화이트라는 컬러는 이들이 훗날, 어떤 색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였다.

“매출이 높은 레스토랑은 그대로, 원하는 색을 붙여서 정식 런칭하겠습니다.”

반유현 레드, 블루, 옐로처럼. 공식적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의 일원이 된다는 것.

우와아아아!

셰프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내 말이 파격적인 제안이었기도 했고.

A 팀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이 섞여 있기도 했다.

“나머지, B, C, D, E, F 반은 ‘반유현-팩토리’. 이 건물 안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치르고, 경쟁하며


A 반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레스토랑을 창업한 A 반 중에서 매출이 가장 낮은 팀은 다시 ‘반유현-
팩토리’ 안으로 들어와야 하니까요.”

무한 경쟁으로 인한 셰프들의 빠른 성장.

그리고 레스토랑 ‘반유현’의 빠른 확장성.

두 가지를 모두 얻기 위한 계획이었다.

“반유현 화이트, 총 다섯 개의 레스토랑을 오픈할 장소는 어디입니까?”

“파리의 최대 먹자골목이라는 몽토르게이 거리. 그곳에 ‘반유현 화이트’ 1 부터 5 까지 모두 런칭 할


겁니다.”

서로 밀접해 있으면서, 경쟁을 더욱더 부추기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몽토르게이 거리, 그 안에 ‘반유현 골목’을 만들어 또 다른 거점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반유현 골목.

그 단어가 나왔을 땐, 내 뒤에 서 있던 교수들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요리의 성지라는 별명을 가진, 파리 전체를 삼키고 싶은 내 야망이 조금 비쳤나 보다.

78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2)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두 개의 레스토랑은 모두 몽토르 게이 거리 안에 위치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레스토랑 사이에 총 다섯 개의 레스토랑이 세워졌다.

‘반유현-화이트 1’, ‘반유현-화이트 2’, ‘반유현-화이트 3’ …….

하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적혀져 있는 글자.

반유현, 그리고 화이트.

당연히 또,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저 간판들은 뭐야.”

“와……. 또 뭔가를 하려나 봐.”

사람들은 이제, 나의 요리만큼이나 나의 행보에 주목을 한다.

비현실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계획을 추진하는 내 모습 그 자체가 재밌게 보였나 보다.

[ 반유현 화이트? 새로운 레스토랑 런칭 시작? ]

[ 이번엔 또 무슨 요리를……! 반유현. ]

[ 다섯 개의 레스토랑 밀접해 있고, 팝업 형식이 아닌 정식적인 임대 계약 맺어. ]

[ 순식간에 반유현 벼락 맞은 건물주들! 건물 가치 상승. ]

추측성 기사들이 난무했고, 더 많은 논란과 추측들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이제 풀어. 지금은 다섯 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반유현’을 합치면 일곱 개지. 저 거리에
반유현 골목을 조성하고, 미슐랭 스타로 줄을 세울 거라고.”

“미, 미슐랭 스타로 줄을 세울 거라는 내용도 넣습니까?”

“그래, 그건 빼자. 너무 자극적이니까. 다른 일정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A 반에 속한 최상위권 셰프들은 레스토랑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메뉴 테이스팅 날을


정해뒀다.

“메뉴 테이스팅은 셰프님께서 말씀하신 이날로…… 정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이분, 이분들을


섭외했구요.”

오스틴이 내게 다이어리를 내밀면서 설명했다.

“그리고 셰프님 말씀대로 곧장 공고를 올렸는데, 놀랐습니다. 저희 부서에 있는 직원들 모두가요. 참…….
진짜……. 신이 있다면, 요리의 신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만해. 신은 무슨.”

그 외에도 또 진행되고 있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반유현팀’을 한 번 더 놀라게 한 모양이다.

“F 반 3, 4, 5 팀을 맡을 교수를 뽑는 공고에…… 이렇게나 많은 지원서가.”

팝업 스토어 미션에서 가장 낮은 매출을 내, 제명당한 교수들의 자리를 새롭게 채워야 했다.

“왜, 문제 있어?”

“그게 아니라……. 사실 상식적으로 이런 자리에 많은 사람이 지원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반유현 - 팩토리’라고 한들, 가장 실력 없는 셰프들을 맡아야 하는 자리, 때문에 금방이라도


제명을 당해 불명예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서를 넣은 것이었다.

“이번에도 뭐 할 것 없이, 특급호텔 셰프부터, 교수 출신 셰프, 미슐랭스타 셰프들까지 많은 지원서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모든 핸디캡들을 감안하고도 ‘반유현-팩토리’에 지원할 명확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반유현-테스트라는 이름의 팝업 스토어 테스트 방식이 이들을 불러 모으는 것에 제대로 한몫한
것 같았다.

유럽 어디든, 나의 이름이 통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알려준 사건이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없잖아. 다른 반들은 모두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가뜩이나 실력이 부족해 F 반에 편성되었는데,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서 말했듯, A 반은 창업을 위한 메뉴 테이스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A 반을 제외한 다른 반들은 각


교수들이, 나에게 전달받은 커리큘럼을 진행했다.

현재 교수 자리가 공백인 F 반의 최하위 팀 3, 4, 5 팀만이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대기 상태였다.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셰프들을 잘 가르칠 수 있나, 그럴만한 스펙과 인프라를 갖췄나. 그걸로 너희가
빠르게 정하고 최종 뽑은 교수들만 나에게 보고해.”

어차피, F 반의 최하위 팀.

실적을 내지 못하면 계속해서 물갈이가 될 교수진이었다.

“시간 없잖아. F 반 셰프들도 우리 일원인데, 빨리 실력을 키워줘야지. 혹시 몰라, 저들이 A 반 1 팀에


들어갈지도. 사람 인생은 모르는 거잖아.”

“예, 셰프님 말씀대로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

세계 최고의 명문 조리학교라 꼽히는,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셰프.

츠지 요리 전문학교의 교수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였다.

‘반유현’이라는 꿈을 앉고 지원서를 넣고 당당히 합격해 맡게 된 교수직.


그 첫 수업에서 그녀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하하하하! 셰프님, 너무 이쁘신데요? 모델 하시는 것도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러게! 끝나고 술 한잔해요 셰프님.”

F 반, 5 팀.

이 조직 내에서 가장 실력이 없는 셰프들이 모여 있는 곳.

왜 이 팀 전체가 꼴찌를 했는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성함이 뭐라고 했죠? 리사 셰프님?”

“어. 리사라고 해. 앞으로 너희들을 가르치고, 이끌……. 우리 잘해보자, A 반에 올라가려면 …….”

“푸하하하! 무슨 A 반입니까. 저희는 그냥 이 학교에 몸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용돈을 안 끊는다고 하셨거든요.”

대부분의 인원들이 엄청난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단 세 명.

절친한 친구로 보이는 벨기에 출신의 셰프 세 명이 물을 흐리고 있었다.

“셰프님도 어차피 제명당하실 텐데, 저희 아버지 회사에 취직시켜 드릴까요?”

“그만해.”

“그만하긴요, 뭘. 무튼 저희는 됐고. 여기 나머지 친구들이나 잘 가르치십쇼.”

반유현이 내려준 커리큘럼에 의한 테스트에는, 각 인원들을 모두 동원해 코스 요리를 구성하는 것부터, 2


인 1 조로 짝을 지어 요리를 하고 다른 조들을 평가하는 것까지.

개인을 평가하는 테스트도 많았지만, 팀 전체, 또는 조를 이루어 평가하는 것들이 주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테스트를 구성한 것은 어떤 주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평가 방식에 의해 팀 전체의 분위기가 흐려지고 있었다.

“셰프님……. 일단 저희끼리 진행하시죠.”

무슨 이유에서 인지, 같은 팀에 속한 셰프들 또한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 세 명의 힘이 막강해 보이는 듯했다.

“너희, 뭔데.”

“하하하하! 아니, 제자들한테 뭐라고요? 뭐긴요. 셰프지.”

“너희 같은 애들이 셰프라고? 주방의 조화를 어지럽히고……. 동료들의 시간을…….”

“눼눼눼……! 푸하하하하!”

“뭐라고 하시는 거야? 하하하!”

리사는 일단, 꾹 참았다.


‘반유현’ 그 이름을 업고 만천하에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양아치들에 의해 자신의 계획에 지장이 생기면 손해 보는 것은 오히려 본인이라 생각했다.

“후……. 첫 강의는 소스의 점성에 대한 이해네.”

리사가 돌아서서, 나머지 일곱 명의 셰프들을 바라보며 말했고, 수업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벨기에 출신 셰프 세 명은 조리대에 누워 딴짓을 하고 있었다.

“셰프님…….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쟤네들 저번 교수님들한테도 그랬어요.”

“쟤네가 도대체 뭔데?”

“필레조 델리 티레.”

“뭐?”

필레조 델리 티레.

와인 제조를 하는 회사로, 전 세계 와인제조 회사 중 가장 높은 매출 10 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회사였다.

“그 회장의 아들이야?”

“……네. 요식업계에도 인맥이 많은가 봐요. 자기가 여기서 퇴출당하면 저희들도 셰프 인생 다 끝나는
거라고…….”

생각보다 더 악질이었다.

수업의 질만 나쁘게 할뿐만 아니라, 권력으로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자 하는 셰프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야. 너희들.”

“예? 저희요? 수업 잘하시다가?”

“갑자기?”

F 반을 맡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반유현’이라는 이름을 얻고 싶던 리사였다.

그리고, 유명 기업의 회장 아들이라 한들…… 리사 본인에겐 반유현의 힘이 더 강하게만 느껴졌다.

“가만 안 둬.”

“예? 푸하하핳! 무슨 만화 캐릭터예요? 뭘 가만 안 둬. 저희도 조용히 학교 다니겠습니다. 건드리지만


마세요.”

***

반유현 골목의 목표는 그 자체를 파리 내 유명 관광명소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에 따른 효과는 일일이 말할 수도 없을 정도다.

이제 시작 단계긴 하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성을 봤다.


[ 반유현 골목 조성, 프랑스 관광청 적극 지원. ]

‘반유현-화이트’는 모든 인테리어가 끝났고, 대중들에게 그 상호가 뜻하는 바도 널리 알려졌다.

유럽 각국의 관광청에서, 자신들의 주요 도시에 반유현 거리를 조성하겠냐는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이미


파리에 터전을 마련해 둔 터라 정중히 거절했다.

또, 반유현 골목이라는 것은 훗날 더 많은 곳에 조성할 터이니,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다.

각 국가의 관광청, 그 제안 자체에 대단한 의의를 둘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이름 자체가 대단한 브랜드가 되어, 창출할 가치가 작지 않기에 국가에서도 나를 섭외하려고
힘쓰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나 같은 개인을 국가기관에서 섭외하려는 것은, 요리 자체가 갖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힘 때문이었다.

런던 아이와 같은 대형 테마 시설을 세우거나,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지만,


그것들이 내가 요리로 사람들에게 주는 신선한 경험만큼이나 뚜렷한 기억을 남기지 못한다.

더군다나 가성비는 어떠한가, 그저 주방과 앉을 자리만 있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 충격적이고 신선한


경험들을 선사할 수 있다.

“이해가 되는군요. 셰프님의 이름이 갖는 가치가……. 교수진들도 셰프님께서 반유현 골목을


조성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던데.”

나의 계획은 교수진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F 반 5 팀 교수는 왜 자꾸 바뀌는 거야.”

“아, 그 부분에 대해서 가는 길에 말씀드리려 했는데요.”

일이 많아지니 사건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F 반의 교수들을 새로 초빙했고, 팝업 레스토랑 테스트에서, 30 개의 팀 중 가장 낮은 매출을 기록했던 F-


5 팀의 교수들은 며칠을 못 버티고 계속해서 사퇴를 했다.

그 자리에는 계속해서 공석이 생기는 상황. 그 원인을 듣고, 저절로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런 새끼들이 여기에 들어왔다고?”

“그렇습니다. 새롭게 교수직을 맡은 리사 셰프에 의하면…….”

보고를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원래 양아치 새끼들은 그냥 못 봐주는데, 다른 셰프들의 사기마저 꺾어버리는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원래 그 팀을 맡았던 교수들은 뭐한 거야. 그런 놈들이 있다는 보고도 안 하고.”

“그, 바로 이전 교수였던 B.레이던 교수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필레조 델리 티레.

나도 그 회사를 알고 있다.
규모가 꽤나 큰 회사라, 레스토랑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요식업에도 뛰어들었고.

와인의 대중화라는 타이틀로 몸집을 계속해서 불려 나가고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 그 회사의 회장 아들이 ‘반유현-팩토리’에 합격해 물을 흐리고 있다는 얘기는 방금 처음 들었다.

“그 교수가 일하는 업체랑 관련이 있었나 보지?”

“그렇습니다.”

“F 반 5 팀이 그놈들 때문에, 꼴찌를 한 거라면 큰 문제야. 그 양아치 새끼들이 내 계획 전체에 찬물을


끼얹는 느낌마저 드니까.”

곧장 그 수업 현장으로 걸어갔다.

양아치를 처리하는 일들쯤이야, 직원을 통해 처리하고 싶었지만.

교수들도 저놈들을 처리 못 해서 벌벌 떨었는데 어차피 직원들을 보내봤자 다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움직이려 했다.

쾅.

F 반 5 팀에게 배정된 교실의 문을 열자, 총 11 개의 조리대가 보였다.

가장 센터에 있는 조리대는 교수의 것으로, 이번에 새로 교수직을 얻게 된 젊은 여성이 있었고 7 개의


조리대에 서 있는 셰프들이 그녀를 따라 어떤 소스를 만들고 있었다.

“너희냐.”

3 명은 센터의 조리대와 가장 멀리 떨어진 조리대 위에 누워 스마트 폰을 보면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아, 반유현 셰프님! 하하하!”

“안녕하세요오.”

스멀스멀 움직이는 게,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나보다 몇 수 위의 권력을 가진 것이라 생각하는 건지 표정도 딱히 귀찮아 보였다.

“너네는 퇴학으로만 끝내선 안 될 것 같다.”

79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3)

“교수님은 겁도 없으신가…….”

벨기에 출신의 셰프, 아노.

아버지가 세계 최대 와인 제조업체인 필레조 델리 티레의 회장이란다.

그의 아버지가 가진 영향력을 나도 알고 있기는 한데, 이 새끼는 정도를 지나친 것 같다.

“에이씨! 퇴학? 퇴학이라고요?”

똥 밟은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그리곤, F-5 팀의 담당 교수인 리사를 계속해서 협박하려 했다.

내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제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서로서로 조용히 넘어가자고……. 기억할 거예요. 리사 교수님? 잘
먹고 잘사는지 볼게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면서 일어난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꽂더니 나에게 말했다.

“셰프님, 존경합니다. 큭큭. 이렇게 말하면 용서해주는 거 아니에요? 다 듣고 왔잖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 잠깐만. 막말로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습니까?”

“그러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대?”

순간 고민했다. 이런 쓰레기들에게 내 시간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인가.

이놈이 반성하고 후회할만한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했다.

평생 쓰레기처럼 살도록 내버려 둘까 말까.

“근데, 방금 하신 말씀은 취소하세요. 요즘 잘나간다고 막 하시는 것 같은데. 저를 퇴학시키면 반유현


셰프님의 창창한 미래에……큭. 말이 너무 심했나.”

아무래도, 지금 당장 저놈이 지껄이는 걸 더 들어줄 수가 없어서 족치기로 결심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저희 아버지 회사 와인을 꽤나 많이 취급하시던데. 특히나 반유현 셰프님께서


계신 포시즌스는 저희랑 인연이 깊다고요! 회장님이랑도 잘 아는 사이고.”

“어쩌라고.”

“에에?”

“뭐, 어쩌라고.”

나의 레스토랑 세 개. 즉, 포시즌스에 속한 레드, 블루, 옐로.

그 레스토랑들 때문에 자신이 포시즌스의 이름을 들먹이면 내가 고개를 숙일 줄 알았나 보다.

포시즌스와 나의 관계가 갑-을 관계라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그 관계는 맞다. 내가 갑이고, 포시즌스가 을.

“잘 못 들으셨어요? 포시즌스 그룹 회장님이랑 삼촌, 조카 하는 사이라니까요? 간판 내리고 싶어요?


하하하하! 레스토랑 와인도 다 빼줘?”

필레조 델리 티레.

그 회사 자체 규모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와인 계열사도 무수히 많기에, 저런 협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회사도 저렇게 생각을 할까.

“다 빼.”

“아, 아니 반유현 셰프님! 제가 진짜 존경한다니까요? 그런데 판단을 잘 하셔야지. 생각만큼이나


어리시네. 그렇게 후회하실 말을 하면 나중에 어떻…….”

“후회는 네가 하겠지.”

나는 옆에 있던 반유현 팀에게 지시했다.

“오늘부터 우리 레스토랑에서 필레조 델리 테리, 그 회사의 와인 다 빼. 그 계열사에 있는 것들도 다


빼버려. 배너도 제작에서 다 붙여. 그 회사의 와인을 취급하지 않으니,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는 문구로.
그리고 얘 있잖아?”

“그 회사 및 계열사 관련 와인을 모두 빼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아노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경호원들한테 똑똑히 일러둬. 이놈이 이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하라고.”

“경호원한테요?”

반유현 팀의 직원들도 이 녀석의 차림새를 우습게 봤는지, 의아하다는 식으로 물었다.

앙심을 품고, 보복을 할 힘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직원들에게도 아노는 그저 강한 힘 뒤에 숨어 있는 겁쟁이, 정도로 비친 것이다.

“나중에 울며불며 용서해달라고 다시 여기로 올 텐데, 그때 시끄럽지 않게.”

“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아노는 우리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고, 표정이 심각하게 경직되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도 않았을 테고,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 본능적으로 알게 된 터였을 것이다.

***

내가 지시한 대로, 내가 운영하는 모든 레스토랑에서는 ‘그 회사’의 모든 와인을 빼버렸다.

“죄송합니다. 손님, 손님께서 찾으시는 와인은 레스토랑 ‘반유현’ 전 지점에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대중들은 또 추측을 시작했다.

[ 레스토랑 반유현에서는 필레조 델리 티레의 와인을 마실 수 없다. ]

[ 레스토랑 반유현! 필레조 델리 티레 관련 와인 모두 제외. ]

[ 반유현과 필레조 델리 티레, 둘의 관계는? ]

[ 필레조 델리 티레의 갑질 의혹! 반유현은 왜 그 회사의 와인을 모두 지워버렸나. ]

그리고 대중들의 그러한 관심은 다시 기업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빌리엔, 유럽 사업부장.

안녕하십니까. 레스토랑 반유현에 저희 회사의 모든 와인을 공급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문 소믈리에를 파견하여 레스토랑 내 직원의 와인 교육에도 힘쓰고…….
-샤트 몽떼리, 영업이사.

저희 회사는 레스토랑 ‘반유현’에 공급되는 와인을 따로 보관하는 창고를 만들어 특별 관리를


하겠습니다.

-칼리에 샹그리아. 전무.

직접 만나 뵙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회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포도농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어떤 회사보다 최고의 원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와인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기업들이 ‘나’를 그저 판매 채널의 일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대


기업으로서의 제안을 하고 나섰다.

가장 최근 보여주었던, 팝업 레스토랑 ‘반유현-테스트’의 영향이 컸던 탓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에 소속된 셰프들이 입고 있는 조리복을 만든 회사,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칼을 제조한
회사들이 대단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내 레스토랑의 주된 와인을 제공하는 업체가
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워낙 내가 맛에 민감하고 예민하다는 것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니 나에게 선택받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광고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오히려, 필레조 델리 티레가 가장 강력한 어필을 했는데요?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나.”

-필레조 델리 티레, 프랑스 파리 지사 본부장.

존경하는 반유현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께서 저희 회사의 와인을 모두…… 어떤 이유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레스토랑 ‘반유현’에 납품되는 모든 와인의 가격을
낮추겠습니다. 또, 저희 회사 측의 소믈리에를 상시 배치시키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

“필요 없다고 해. 그리고 내 모든 레스토랑에서 당신네 회사 와인이 빠진 이유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설명해주고.”

“예 알겠습니다.”

“그 이유를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고도 물어봐.”

명품 와인 제조 회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그 기업의 오너, 그 일가의 갑질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회사가 있을까.

일단 숨통을 조금 조인 다음에 정신교육을 시작할 생각이다.

“그게 싫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도 말해주고. 샹젤리제 거리에 매장이 하나 있다며.”

“예? 샹젤리제 거리에 필레조 델리 티레의 전시장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만……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는지


…….”

***

중견기업, 또는 대기업이라고도 불릴 만한 회사의 회장 집무실.

그 안에서는 이곳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폭력적인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짝-!
“이런! 미친……자식.”

필레조 델리 티레의 오너, 2 대 회장인 루크스 델리아.

얼굴이 매우 붉어진 상태로, 아들 아노 델리아에게 말했다.

“가업을 말아먹는 놈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아버님께 들었건만. 그게 너일 줄은 내가 오늘에서야


알았다. 다른 놈도 아니고 내 아들놈이 그럴 것이란 생각에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짝!

“회,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이거 놔! 이런 망할……놈!”

회장의 집무실, 델리아 부자(父子) 말고도 여럿의 간부들이 있었는데 분위기는 그들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타오르고 있었다.

아노 델리아는 이미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얼굴엔 눈물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제 마음도 몰라…….”

짝! 짝! 퍽. 퍽.

“못난 놈 같으니라고. 당장 꺼져!”

이번엔 멱살을 잡고 달려들자, 간부들이 겨우 그를 붙잡아 말렸다.

“도련님……. 일단 자리를 피하시고…… 저희가 회장님께 잘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그렇게 아노 델리아가 눈물을 닦으면서 집무실을 나간 뒤에야, 사태는 잠잠해졌다.

“후. 상황부터 차근차근히 설명해봐. 레스토랑 반유현……. 그쪽에서 뭐라 하던?”

“일단, 보고 드린 그대로…… 도련님께서 반유현 셰프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대단해. 이렇듯 이슈를 만든 셰프가 있었나? 나도 ‘반유현 챌린지’라는 것이 유행할 때, 지켜보긴


했건만…… 대체 그 셰프가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 건가.”

대형 기업의 회장, 루크스 델리아가 셰프 한 명 또는 레스토랑의 이름을 세세하게 기억할 리는 없었다.

반유현의 이름은 업계 내에서 워낙 많이 회자되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회사 와인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대중들은 회사 와인 제조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우리 회사 제조법과 그 재료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유현 셰프가 우리 회사의 와인을 배척한 것은 내
아들이 갑질을 해서다……. 라고 공식 발표를 하는 것이 회사에 이익인 것이냐…….”

무슨 이유에선지 반유현은 필레조 델리 티레의 와인을 취급하지 않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중들은 이 회사의 제조 공법과 그 맛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란 추측을 기반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무자비하게 깎아 먹는 정보들을 재생산하고 있었다.
무분별한 정보들이 더 많이 대중들에게 뿌려져,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 전에 공식적으로 그
이유를 먼저 발표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 발표 또한 회사의 이미지 타격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오너 일가의 갑질 사건으로 퇴출·불매 운동이 시작되어 회사 가치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업들도
많았으니까.

“반유현 셰프가 원하는 게 뭐래.”

“도련님께서 한 달의 기간 동안 ‘반유현-팩토리’의 식재료 손질부터, 뒷정리 밑 청소를 하는 것이


기본이고…….”

쾅!

루크스는 책상을 내려쳤다.

그가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같다고도 느꼈기 때문이다.

“완전히 우리를 갖고 노는구만. 그리고 또 뭐야. 그쪽에서 원하는 게.”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저희 회사 제품들을 전시해둔 매장을 싼값에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뭐?”

반유현, 그는 파리에 등장하고부터 비현실적인 행보를 계속 보여 왔던 셰프다.

그가 어떤 장소를 특정해 구체적으로 제안했다는 것은 그 장소에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히 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직원들은 회장인 루크스에게 보고하기 전, 샹젤리제 거리가 반유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길래, 그런 제안을 한 건지 세세하게 조사해봤다.

“이유는 뭐야.”

“얼마 전에 반유현 셰프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몽토르게이 거리 내에 ‘반유현 골목’과의 상관관계를


따져봤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알고 계시는, 앞으로 두 달 뒤에 있을 세계 최대의 행사에서, 자신의 이름과
브랜드를 전 세계에 확실하게 어필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보여집니다.”

올림픽, 월드컵…… 어쩌면 그다음으로도 불리는 규모의 행사에서 반유현은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원래 ‘반유현 골목’이라는 것 자체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세운 계획이었는데, 마침 생각에도 없던


우리가 걸려들었고 우리를 이용해 자신의 계획을 더 효율적으로 실행하고자 한다…….”

“정황상 그렇습니다.”

루크스는 직원의 보고에 웃음을 흘렸다.

“재밌는……. 아니, 정말 대단한 셰프야. 서로 윈-윈 하는 구조로 제안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대형


기업을 찍어 누르고 달래듯이 그런 제안을 하는 것부터가.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쩔쩔매야 되는 우리도
웃기지만…….”

“유럽 내 주요 언론사 편집장님하고 연락 취해서 덮어 버릴까요?”


여태껏 회사를 음해하고, 악성루머들을 뿌렸던 경쟁사들과 사람들을 많이 처리해 왔기에, 그 대응 방법은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장인 루크스의 의견은 달랐다.

“아니, 이 사람아, 아직도 몰라? 반유현……셰프. 그렇게 다뤄선 절대로 안 되는 사람이란 걸……. 직접
만나봐야겠어.”

80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4)

“셰프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싶다고…….”

“만나길 누굴 만나.”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자신의 재력과 지위가 나에게 유효한 줄 알고 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필레조 델리 티레, 그 회사의 매장을 넘긴다는 계약서를 들고 오면 만나 준다고


해.”

그 와중에도 대중들은 세계 최대 와인 제조업체 중 하나인 필레조 델리 티레와 나의 관계에 대한 무분별한


정보를 쏟아내고 있었으니, 급한 건 저쪽이다.

그리고 그 무분별한 정보들은 사실화되어가고 있었다.

[ 반유현, 방송국 FOX 사의 갑질을 이겨냈듯이, 필레조 델리 티레의 갑질과 싸우나 ]

내가 그 회사의 와인을 모두 배척한 것이 ‘갑질’ 때문이라고 언급을 한 적은 없었으나, 실제로 그


회사에 갑질을 당한 업체와 셰프들, 그리고 소믈리에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팩트를 기반한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소믈리에협회, 필레조 델리 티레의 만행 고발 운동! ]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단지, 내 레스토랑에서 그 회사의 와인을 모두 제외시켰을 뿐.

나는 그 회사와 관련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반유현 덕분에 여태까지 갑질 당했던 소믈리에들이랑 셰프들이 들고 일어났네 ㄷㄷ

-ㅋㅋㅋㅋ근데 반유현 셰프는 아무말도 안했음, 그냥 와인을 뺀 건데 이런 사태가 벌어짐

-업계 영향력 보소……. 파괴력 대박…….

-반유현이 그 회사의 와인을 뺀 이유가 너무 궁금하네.

내가 운영하는 ‘반유현’이라는 레스토랑에 그 회사의 와인이 모두 빠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게이트가


열린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이미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나에게 명예훼손이라는


죄목을 씌우거나, 그들의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언론 플레이를 할 껀덕지도 없었다.

“그런데 셰프님, 샹젤리제 거리의 매장은 왜 필요하신 겁니까? 계획에 없으셨던 내용이고 그냥 사과만
제대로 받아내고, 세계 최대 와인 제조업체가 셰프님께 고개를 숙였다라는, 그런 이미지만 챙겨도 될 것
같습니다만…….”
“지금 저 회사가 입고 있는 피해를 봐. 샹젤리제에 있는 매장을 충분히 내놓고도 남지. 그리고 내가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매장을 원하는 건 단순한 욕심이 아니야.”

사무실에 있던 반유현팀의 모든 직원들이 나를 쳐다봤다.

“투르 드 프랑스가 열리잖아. 다다음 달에.”

투르 드 프랑스.

빠르게 반유현 골목을 조성하려 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

투르 드 프랑스.

자전거를 타고 정해진 코스 3500km 를 달리는 이 행사는 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스포츠 행사이다.

2000 명이 넘는 기자들이 취재에 나서며, 130 개국 100 개 채널에서 경기를 중계하고 35 억 명의 시청자가
경기를 관람하는, 그야말로 세계적 규모의 스포츠 행사다.

“출발점은 프랑스 인근 국가나,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하지, 도착점은 언제나 파리의 샹젤리제였고.”

600 개의 언론이 참여하는, 그 행사의 피날레가 열리는 곳이 바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였다.

“아르덴(Ardennes) 자연공원부터 샹젤리제까지.”

이번 대회는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에 위치한 자연공원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각 도시를 지나, 파리의
몽토르게이 거리, 그리고 샹젤리제 거리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구성되었다.

그 덕분에 ‘반유현 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근데 이걸 어떻게…….”

몽토르게이 거리에 조성된 ‘반유현 골목’은 그 코스에 정확히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몽토르게이 거리 안에는 수많은 골목과 도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반유현’이라는 간판이 제일 많은


거리로 투르 드 프랑스의 코스가 확정된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애초에 ‘반유현 골목’의 계획을 구성하고 실행한 것은, 투르 드 프랑스의 코스 발표 이전이었다.

오늘의 코스 발표는 레스토랑 ‘반유현’, ‘반유현팀’, ‘포시즌스’, ‘반유현 팩토리’에서 나를


따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웩!”

너무 놀란 나머지, 헛구역질을 하는 이도 있었다.

존경을 넘어선 두려움의 눈빛으로 나를 대하는 이들도 몇몇 보였다.

“기세라는 것이 있잖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 몰아치는 때인 것 같네. 우주가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아.”
나의 계속된 비현실적인 행보에, 이제는 이들이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할까 봐 조금 연기를 곁들어
주었다.

“그, 그게 아니라 셰프님…… 코스가 하나가 있는 게 아니라, 자잘한 코스들도 많은데 어떻게 하필 메인
코스 안에 반유현 골목을…….”

“몰라. 어떤 신이 날 도와주는 것 같다니까. 이 흐름 타고 가보자.”

“대체 어떤 신이요? 저도 종교를 좀 바꾸게…….”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답게, 단일 코스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21 투르 드 프랑스는 덴마크에서도 진행되는 코스도 있고, 여러 가지 짧은 코스가 있는데.

반유현 골목은 가장 많은 선수들이 참여하고, 가장 많은 언론기관이 참여하는 메인 코스의 안에 쏙 들어가


있었다.

‘이번 삶은 다르니까.’

환생한 지 2 년이 채 안 된 몸, 매번 삶에서 이 시점엔 이 정도의 강력함을 갖추지 못했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를 나의 확장성에 이용하려 했던 것은 적어도 환생하고 5 년,


10 년이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반유현, 지금의 몸은 달랐다.

이 몸의 삶에선 환생 초기인 지금, 내가 거점을 삼고 있는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를


이용해 보려 했다.

‘몽토르게이 거리에 반유현 골목은 완성되었고.’

첫 번째 삶, 요리에 아는 게 거의 없었을 때, 르꼬르 동 블루의 학비를 벌기 위해, 2021 년 투르 드


프랑스 행사에 얼음통과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며 팔았던 기억이 있었다.

두 번째 삶에서는 투르 드 프랑스 덕에 내가 일하고 배우던 레스토랑이 휴업을 했었고.

세 번째 삶에서는 조그맣게 레스토랑을 차리려던 곳이 투르 드 프랑스의 코스로 선정되어 건물 임대료가


순간 폭등해 계획을 접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삶인 지금, 이 대회 자체를 나의 이름과 브랜드를 강력하게 만드는 데 이용하려 했다.

반유현 골목이 형성되어 있는 몽토르게이 거리와 멀지 않은 샹젤리제 거리, 그곳에서 피날레가 열렸기에
나는 그곳에 내 간판을 걸기 위해 점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샹젤리제 거리에 가장 큰 매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나와 엮인 것이었다.

‘고맙게도.’

부르는 게 값인 권리금이 형성되어 있는 샹젤리제 거리, 어떤 방식으로 그곳에 내 간판을 걸 수 있을지


생각하던 찰나에, 하필 내가 설립한 학교 ‘반유현-팩토리’에서 말썽을 피우고 있는 놈이 그 거리에 가장
큰 점포를 가진 회사 오너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매장의 가치가 얼마를 하든, 그 매장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끔 상황은
흘러가고 있었다.
“필레조 델리 티레의 회사 가치가 10 퍼센트 넘게 빠졌다고 합니다.”

***

“건물주는 루이비통 본사입니다. 임대료를 조정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결국 필레조 델리 티레의 회장인 루크스 델리아는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가장 큰 매장을 내게 넘기기로


했다.

뉴욕, 홍콩, 그 다음으로 임대료가 높은 곳이 샹젤리제 거리였으니, 그 권리금이 부르는 게 값인 것은


당연했다.

부르는 게 값이던 그 자리에, 경쟁 없이 적정한 값을 책정해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또한 그 건물의 주인이 역사 깊은 명품 브랜드라니 사소한 분쟁도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명품회사랑 커넥션도 생길 수 있고.’

깊게 생각 해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루이비통 회사의 대리인으로 나온 변호사가 이것저것 서류를 검토한 뒤에, 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간판을 걸고, 내 이름과 브랜드를 노출 시킬 수 있는 전략은 더 깊게 생각해 봐야겠지만 나는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투르 드 프랑스의 코스에 내 이름을 집어넣을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남겨진 건, 나와 루크스 델리아였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회장님?”

“회사 가치가 이주 만에 크게 떨어졌습니다. 천억이 넘는 규모일 수도 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회사라,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이렇게 고분고분한 성격이었나?

내가 알기론 화가 나면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는 욱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아무튼,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루크스 델리아였다.

“뭐, 저는 그저 그 회사의 와인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그 회사가 어떤 문제가 있다거나


…… 그런 것을 말한 적이 없는데.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크흠…… 저희 회사 내에 문제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코멘트를 해주신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 아들이 많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와인 제조업체의 회장이란 남자가 말을 하니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긴 했다.

그런데, 진짜 그놈이 반성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드님은 어째서 데려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입구에서 경호원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아, 내가 경호원들에게 말했었다.
아노 델리아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이놈이 절대 이 건물 안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고.

경호원들이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재산이 천억은 훌쩍 넘는 회장이, 입구에서 자신의 아들을 붙잡는 경호원들과 실랑이하다가, 체념하고
혼자 내 사무실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들어 오라 그래.”

내가 수화기를 들고, 말하자 몇 분 뒤 아노 델리아가 들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낄낄대며 비아냥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깨가 축 처진 상태로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했다.

“사람은 안 바뀌는데…….”

내가 나지막이 읊조리자, 루크스의 얼굴이 순간 경직되었다.

같은 공간에 있던 ‘반유현팀’의 일원들은 이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타자 소리나, 서류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리더인 내가, 대형 기업의 회장을 주물럭거리는 것을 보고 소속감과 자긍심이
저절로 올라갔을 것이다.

쾅!

아노가 바닥을 부술 듯이 무릎을 꿇었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반, 유, 현 셰프님께 그리고 그 조직원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제발 저희 회사의 가치가 더는 하락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이번엔 반유현 팀의 멤버들뿐만 아니라, 루크스 델리아를 따라온 그의 의전팀원들도 놀란 눈을 떴다.

개망나니 도련님이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것은커녕, 누군가에게 사과를 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래, 뭐, 도와줄 수는 있지. 너희 아버지께서도 샹젤리제 매장을 적정한 가격에 넘겨주셨으니까.


그런데 너, 네 얼굴을 보니까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상당히 불쾌한데.”

내가 그 말을 뱉자, 아노 델리아가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런 양아치들도 회사 가치가 폭락하고 위기 상황이 닥치니까 마음고생을 하긴 했나 보다.

“죄송합니다아아……흐.”

어쨌든 이놈 덕분에, 세계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 중 하나인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매장을 아주 싼


권리금으로 얻었다.

그곳을 어떤 공간으로 꾸밀지, 내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하다.

81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5)
“야, 그 소문 들었어?”

“소문? 나는 실제로 봤는데?”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 사이에서도 세계 최대 와인 업체인 ‘필레조 델리 티레’의 회장과 그의 아들이


반유현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봤다고?”

“그래, 우리 팀 교수님이 사무실에 계셔서, 올라가서 면담을 하다가…….”

“에에? 진짜로? 그게 말이 돼? 그 회사의 회장과 악명 높은, 아노 그놈이?”

“그래, 진짜로.”

“푸하하하하!”

덕분에 반유현 팩토리 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노 델리아, 그에게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의 리더인 반유현이 그 악당을 시원하게 처리해줬다는 사실이 통쾌하고 자랑스러웠다.

“역시……. 우리 반유현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이 네 얼굴을 알긴 아냐? 감히, ‘우리’라니.”

“내 얼굴…… 모르시겠지. 참나! 우리라고 하면 안 되냐?”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은 그 악당 한 명을 처리했다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샹젤리제에 있는 그 회사의 건물이 반유현 셰프님 앞으로 넘어갔대.”

“루이비통이 소유한 그 건물 1 층? 샹젤리제 메인에 있는 곳?!”

“그래, 이번에 반유현 셰프님께서 말하신 것 보면 무슨 딜이 있었나 봐.”

[ 반유현, “필레조 델리 티레, 품질과 맛에 문제없는 회사.” ]

[ 필레조 델리 티레, 반유현 셰프의 발언에 시가총액 회복세! ]

[ 일개 개인의 말 한마디에 휘청이는 대기업? ]

어쩌면,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은 외식업계의 웬만한 기업을 주무를 수도 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알린 사건이기도 했다.

“셰프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향력을 가지신 분이지…….”

“다음 차수의 ‘반유현 팩토리’ 지원자 수가 궁금하네. 우리 후배들.”

***

[ 필레조 델리 티레, 반유현에게 샹젤리제 메인 거리에 있는 매장 넘겨. ]

[ 둘 간에 어떤 거래가 있었을까. ]
[ 기업이 갑질을 당하는 세상? ]

-ㅋㅋㅋ반유현이가 그 대형 기업에게 갑질을 했다고?

-충분히 가능할 듯, 그렇게 말 한마디에 회사가 휘청하는 것 보면.

-개인이 그럴 수 있다는 게 비현실적임. 회사 현금 보유 문제로 포도 농장을 조금 처분했다는데 그거


때문에 그런 듯.

-개소리야, 무조건 반유현의 입김이 작용한 거지. 샹젤리제 매장을 왜 줬겠냐.

당연하게도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셰프님께서 기업들을 상대로 갑질을 한다는, 논란들은 어떡할까요?”

“무시해. 대응하지 않아도 돼.”

저 회사 아들놈의 만행에 그 회사의 모든 와인을 취급 품목에서 제외시켰던 것뿐이고, 그에 따라 회사의


가치가 순간 낮아졌다.

회사로선 당연히 떨어진 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으며, 내가 말 한마디를
거들어 주는 것이 그 수단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나’라는 수단을 공짜로 이용하게 해줄 리는 없었고, 나의 제시에 따라, 샹젤리제


매장이라는 액션이 나온 것이다.

나는 그 매장이 필요했고, 저 회사는 나를 이용해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필요했다.

자본주의의 원리에 의한 거래였으니, 나의 갑질이라는 논란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이 거래가 시작된 원인과 이유를 저 회사에서도 밝히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 논란은 금방


풀이 죽어 없어질 것이었다.

“하긴 애초에 구멍가게도 아니고 대형 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한다는 논란이 말이 안 되긴 합니다.”

“그래, 알아서 없어질 거야. 그리고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몽토르게이 거리에 ‘반유현-화이트’ 다섯 개의 매장이 오픈을 네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마지막 메뉴 테스트를 위해, 나는 직원들과 함께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현장은 어떻대?”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고 합니다.”

“줄 정리를 잘해야 돼, 주변 상권에도 피해를 끼치면 안 되니까.”

“신경 써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반유현 골목’에 도착했다.

하나의 길을 기준으로 왼쪽에 두 개, 오른쪽에 총 세 개.

하얀색 배경에 검정 글씨로, ‘반유현 - 화이트’라고 적힌 간판이 배열되어 있었다.


많으면 20 석, 적으면 10 석 정도의 규모. 다섯 개의 매장으로 모두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다.

우와아아아!

내가 차에서 내리자 가게의 오픈을 기다리던 손님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항상 내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메뉴 테스트를 하는데 그 행동마저 팬들에게


소문이 나 이제는 사람들이 내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반유현!! 싸인 좀 해주세요!!

‘오픈 전부터…….’

테스트로 진행했던 팝업 레스토랑이, 정식적인 레스토랑이 된다는 것 자체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손과 펜을 내밀었지만, 경호원들이 이를 제지했다.

살짝 과장 보태어 경호원들이 없었다면, 압사를 당했을 정도의 인파였다.

나는 그 인파들을 뚫고 가장 먼저, 메이가 있는 ‘반유현-화이트 1’의 매장으로 들어갔다.

“밖에 있는 대부분이 여기 손님인 것 같은데.”

“오셨어요? 셰프님!”

메이가 활기찬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메뉴는 똑같지? 런던하고?”

“네, 런단 아이 밑에서 팝업 스토어를 했었던 이력이 너무나 유명해져서 그 소문만으로도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일단 당분간 계란 초밥이라는 메뉴를 유지하고……. 장어라든가,
우니, 한우 등 초밥의 종류를 추가한다든가…….”

“그래.”

메이를 따르는 셰프 한 명이 내게 계란 초밥이 담긴 접시를 가져왔고, 나는 그것을 눈으로만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진 크게 달라진 건 없네.”

메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그의 아래에 있는 셰프들은 놀란 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먹지도 않고 맛을 아냐는 식의 궁금증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러나, 메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셰프들도 그 호기심과 놀라움을 억지로 감췄다.

“물이라도 한 잔…….”

메이의 읊조리기가 끝나기도 전에 주방에 있던 셰프 한 명이 빠르게 뛰어나와 물 잔을 건넸다.

나는 이 사소한 것에서도 내 이름 ‘반유현’ 아래에 있는 체계가 안정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메이가 무슨 말을 할지, 항상 긴장하고 있었군.’


메이는 요리 실력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유연한 성격 탓에 주방을 확 휘어잡는 능력은 모자란
편이었다.

그녀가 이렇듯 카리스마를 갖게 된 것에는 나의 영향력이 온전히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의 영향력과 입지가 올라감에 따라, 검은 스카프를 매고 있는 직속 셰프들의 입지도 올라가는, 내가


세운 체제는 선순환의 굴레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하고 있나 보네.”

얼떨결에,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이자, 반유현 화이트의 매장을 맡고 있는 그녀였지만 역시 자신이 맡은


바 임무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실제로 매장을 운영하면서,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셰프 밑에 있다 보면 실력이 빨리 늘 거야.”

메이의 목에 걸린 스카프를 조여 주며 말했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겉보기와 향으로 알아본 결과 요리의 맛에는 문제가 당연히 없었다.

딱히 지적할 사항이 없어, 오픈하기 직전에 메이의 기를 한껏 더 살려주는 것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셰프!”

“수고해.”

“예! 셰프!”

메이가 총괄하고 있는 ‘반유현-화이트’의 매장 문을 열고 나왔을 땐, 또 수많은 인파들이 나를 가로막아


섰다.

와아아아!

경호원들이 길을 헤치며, 다음 매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때, 웬 리포터가 나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반유현! 반유현 셰프님! 잠시만요! 아아아! 잠시만요! 텔레비지옹입니다!”

프랑스 공영방송사, 나를 올해의 셰프로 뽑아주었던 그 방송사였다.

“바쁜 건 알겠는데! 잠깐만 인터뷰 좀 해주세요! 제에발요! 네?”

이미 반유현 골목이 조성된다는 것은 오래전 발표했었기에, 나는 저 리포터가 그토록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경호원들이 리포터가 내게 접근하는 것을 허락해줬다.

“샹젤리제 거리에 대해서요?”

“에? 네……. 어?”

“대본 받은 적은 없고, 그냥 어떤 질문을 하실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가 해야 될 말들이 내가 줄줄이 말하자, 당황한 눈치였다.

곧장 표정을 바꾸더니 내게 질문했다.


“이번에 샹젤리제 거리! 그 메인 거리에, 점포를 계약하셨습니다. 포시즌스 호텔이 위치한 골든
트라이앵글 지대만큼이나 값비싼 땅이죠. 조금,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만…… 실제로 파리 시민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기도 하구요. 그곳에는 어떤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계신 건지.”

“다다음달에 열릴, 축제에 최대한 녹아들 수 있는 레스토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샹젤리제 거리에 나의 레스토랑이 하나 더 세워진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 사람들은 술렁거렸고, 리포터는


계속해서 나의 답변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투, 투르 드 프랑스 말씀하시는 거죠? 예? 어떤 종류의 음식이길래…! 축제에 녹아들게 만든다는


소리십니까? 한 번만, 이것만 대답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 대답엔, 내가 미소를 보이자, 경호원들이 다시 리포터를 밀어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셰프님께서 일정이 바쁘셔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

메이의 계란초밥부터, 스파게티, 케밥, 미니피자, 만두.

총 다섯 가지 종목의 ‘반유현-화이트’가 오픈했다.

오픈하기 전, 메뉴 테스트를 위해 이곳에 들렀을 때보다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반유현이라고 적힌 한글 아래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아니, ‘수많은’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의 사람들이었다.

“셰프님께서 상권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주변 정리에 신경 쓰라고 하셨던 지시에, 홀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들보다 밖에서 줄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더 많아졌네요.”

이곳을 나 혼자 스스로, ‘반유현 골목’이라고 지칭했지만 이젠 모두가 그 이름을 인정하는 듯 했다.

지금 이 앞에 몰린 사람들을 보면, 몽토르게이 거리 안 골목, 생 소뵈르 가(Saint-Sauveur)의 이름이


‘반유현 골목’으로 바뀌는 것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어보였다.

“또, 성공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성공은 무슨.”

“반유현 팩토리에서 교육을 받은 셰프들이 정식으로 레스토랑 런칭을 한 것이 성공했고, 이는 반유현


팩토리 자체에 엄청난 관심을 끌 수 있는 결과이며,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값이 대단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내가 시시콜콜한 반응을 보일까봐 미리 준비해왔는지, ‘반유현-화이트’가 성공적으로 런칭되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읊기 시작했다.

“어떤 교육기관이 이렇게 파워풀하게, 셰프들을 성장 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또, 매출도 대단할 것


같습니다.”

반유현팀 소속인, 오스틴이 신나게 나의 성공신화를 말하곤,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계획이 더 중요해.”

실제로도 그의 말이 맞지만, 이 골목의 성공을 폭발시키기 위해선 한 가지 과제가 더 남아있다.

“샹젤리제 거리와 뚜르 드 프랑스에서의 활약, 그것까지 성공해야 이 골목이 더 빛을 발한다.”

샹젤리제 거리에 새로 얻게 된 장소.

그 거리에서의 성공은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앞으로 약 두 달 뒤 열릴 뚜르 드 프랑스를 생각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메뉴는, 수제 햄버거.”

“예에? 해, 햄버거요? 그 거리엔 이미 맥도날……. 죄송합니다!”

햄버거는 햄버거인데, 곧 열릴 세계적인 대회에 깊게 녹아들 수 있는 햄버거를 생각했다.

“맥 어쩌구? 너는 녹아든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구나.”

내 말은, 그 대회의 상징이 될 수도 있는 요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82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6)

루시앙의 지분이 섞여 그의 브랜드가 들어간 레스토랑 두 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레드 테이블 - 반유현’.

온전히 나의 이름이 이름으로 세워진 레스토랑 아홉 개.

‘반유현 - 레드, 옐로, 블루, 펌킨, 화이트 1, 2 … 5.’

셰프와 교수, 총 300 여 명이 넘는 요리 전문 교육기관, ‘반유현 - 팩토리’.

총 열두 개의 조직을 모두 성공적으로 런칭한 나는, 그야말로 신화가 되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에 있는 ‘펌킨’말고는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직접 걸어 다니며 ‘주’ 또는 월 단위로


바뀌는 메뉴를 새롭게 전수하고, 셰프들이 메뉴를 올바르게 구현했는지 테이스팅 했다.

100 년의 내공이 없었더라면, 당연히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메뉴들이 머릿속에 있고, 셰프들이 그것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끔 하는 방법들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나는 그저 그 지식들을 꺼내 놓으면 되는 것뿐이었다.

“오늘 일정은 다 끝나신 겁니까?”

마지막으로 ‘레드 테이블-반유현’에 있는 셰프들의 메뉴 테이스팅을 끝내고, 나가려 할 때, 최민성이


내게 물었다.

“아니, 샹젤리제 매장에 가봐야지. 오늘부터 인테리어 공사 들어가.”

“그쪽의 총괄 셰프로는 누가 들어갑니까?”

작은 규모지만, 메이가 ‘반유현-화이트’의 총괄을 맡게 되고 이들도 자신들은 언제쯤 쓰일 것인지 슬슬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샹젤리제는 내가 직접 들어간다. 대형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 그렇습니까.”

“조급해하지 마. 너희들 목에 걸린 검정 스카프, 그 의미 알고 있잖아.”

이제는 셰프들, 미식가들뿐만 아니라 웬만한 대중들도 알고 있었다.

검정 스카프의 의미를, 레스토랑 반유현의 지휘급 셰프이자 반유현의 직속 셰프라는 것을.

그에 따라 몇 주간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곳에 방문한 손님들이 자신들의 거취를 물어봤기에 스스로도


궁금해졌을 것이다. 자신들이 레스토랑 반유현에서 어떤 식으로 쓰일지.

은연중에 나에게 샹젤리제 매장의 총괄 셰프를 누가 맡게 되냐고 물어본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고.

“항상 믿고 있습니다. 셰프님.”

최민성이 강렬한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그때, 주방에서 헨리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셰프님, 오늘 텔레비지옹에서 셰프님 특집으로 방송한다고 하는데. 같이 보고 가시죠.”

“음?”

나는 그들에게 내 레스토랑 촬영을 허락한 적도 없었고, 그들과 인터뷰를 한 적도…….

아, 며칠 전 다섯 개의 ‘반유현-화이트’가 오픈하는 날, 즉 ‘반유현 골목’을 만드는 날에 리포터가


다짜고짜 마이크를 내밀어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다.

“예고편 보니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는 누구인가……. 뭐 이런 방식으로 짠 것 같은데,


모르셨어요?”

“어.”

“지금 하네요.”

헨리가 핸드폰을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때, 실제로 방송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성공신화! 오늘은 역사에 없는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반유현 셰프를 집중 조명해봤습니다!

우와아아아!

-아, 먼저 대한민국에서 반유현 셰프님이 요리를 시작하실 때를 저희가 입수해봤습니다! 한번 보시겠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비친 화면에 나는 웃음을 흘렸다.

-뭐하는 거예유! 그럴 거면 당장 때려치워! 요리 할거에유 말 거예유!

백원종이 나에게 호통을 치는 영상.

-대한민국에 요리 사업가인 백원종대표의…… 호통으로부터 요리를 시작해서…….

-하하하. 이게 연출인가요? 진짜인가요? 역대 최고의 셰프가 누군가에게 혼이 났다고 요리를


시작했다는데…… 뭐, 백원종? 저 대표님을 이겨보고 싶다는 치기 어린 마음이었을까요?

-이랬던 셰프가…….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딴 골목을 만들었습니다. 역사상 자신의 이름을 세웠던
셰프가 있었나요? 없었죠!

“별 재미없네, 갈게. 바빠서.”

“예! 셰프님!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 드리겠습니다!”

헨리, 제리, 최민성 이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입가에 웃음이 걸려있다.

1 년이 조금 넘었지만, 어리숙하고 앳돼 보이는 내가 백원종 앞에서 눈 깔고 혼나고 있는 게 이들의


딴에는 가장 큰 재미 요소였나 보다.

“그만 봐 새끼들아. 일해 가서.”

***

차를 타고 짧은 시간 이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까 애들이 보던 다큐를 켰다.

프랑스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이고, 저들끼리 수집한 자료로 내 편성을 짜 한 시간 동안 방송한다니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이 점에서 반유현 셰프가, 여태까지 있던 스타 셰프들과 완벽한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가요?

누군지는 몰라도 화면에 있는 한 패널이, 켜자마자 옳은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돈과 맛, 이 둘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참 힘들다고 생각합니다만…… 반유현 셰프의 행보를 보면,


돈을 참 많이 밝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적으로 굉장히 공격적인 스타일이죠. 그런데!
그렇다고 요리 그 자체, 맛에 대한 신념이나 열정이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 반유현 셰프는 그 밸런스 자체를 맞추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반유현 셰프는 어떤 셰프 입니까?

-오로지 맛에만 공을 들입니다. 맛의 수준을 올리는 것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맛이,
저절로 강력한 비즈니스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맛이 강력하고, 사람들이 그 맛을 찾고, 그에 따라
반유현 셰프는 그 맛을 사람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은 것이고……! 이, 이 얼마나 바람직한
프로세스입니까! 요리 문화의 격을 높이는 이상적인 프로세스!

콧수염이 난, 패널이었는데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나에 대한 찬양을 했다.

루시앙, 올리버, 로만도 저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만나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음, 다른 의견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이번 샹젤리제 매장의 오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계적인 축제에 자신의 요리를 녹여내고 싶다고 했던 그의 발언은, 맛보단 비즈니스적인
성향이 강한 것 아닐까요? 축제에서 자신의 이름을 더 알리고, 자신의 브랜드를 확실하게 홍보하겠다는
의지?

-음……. 이번 그의 발언이 맛 자체의 신념보다는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긴 한데, 저는 그래도 반유현


셰프가 이번에도 강력한 맛을 보여주리라 믿습니다.
그 외에도 패널들과 MC 들은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내 새로운 레스토랑들에 대해 추측을 쏟아냈다.

‘반유현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레스토랑의 메뉴를 추측하기도 했다.

“다 왔네.”

그 때 즈음,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했고 이번에 새롭게 얻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서는 반유현 팀의 소속이자, 나의 비서로 활동하고 있는 오스틴이 인테리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셰프님께서 여태까지는 인테리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아, 그 관심마저 덜어드리려고 최고의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매번 요리에만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셨으니까요.”

“지금은 달라.”

“예?”

내가 매장 전체를 둘러봤다. 1 층에 위치해 있고, 원래는 와인이 전시되어 있던 장소라 그런지, 창문들이
널찍하지 않아 어두운 분위기였다.

“이 매장의 3 분의 1 을 주방 공간으로 활용할 겁니다. 그리고, 주방의 절반을 그릴로 채워주세요.”

“예……?”

“홀에 있는 모든 책상과 의자는 빼고, 스탠드형 테이블만 놓을 겁니다.”

오스틴과 인테리어 전문가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나를 쳐다봤다.

“오스틴, 말했잖아. 이 세계적인 행사에 내 요리를 녹일 거라고.”

“아, 예! 말씀하시죠.”

인테리어 전문가는 당황했다는 듯이, 곧장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이 문하고 벽은 모두 허물어 주시고, 그 빈자리는 폴딩 도어로 해주세요.”

“폴딩……. 셰프님, 어떤 구도를 생각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밖과의 경계가 없는, 레스토랑을 만들려고 했다.

폴딩 도어를 활짝 열면, 벽도 없고, 문도 없는.

이 거리를 가득 채울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것에 힘쓰지 않을 수 있으며.

“거리 전체를 내 레스토랑으로 만들 생각이니까.”

“아…….”

나의 영향력과 힘이 일정선을 넘어서자, 나의 의견에 반박하거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이전에 루시앙이 의문을 품었듯이, 로만이 걱정 섞인 목소리를 냈듯이, 이제는 그런 사람은 없고 나의


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생각할 뿐이었다.

“간판은, 반유현 네이비.”


“나, 남색이요?”

***

인테리어 공사가 모두 끝났다.

샹젤리제 거리에, 남색 바탕의 거대한 간판이 세워졌고, 그 간판 아래의 레스토랑엔 폴딩 도어가 활짝


열려 있었다.

“남색으로 하신 이유와……. 아니, 그것보다 이번 간판에는 ‘반유현’ 글자가 노란색으로 되어 있네요?”

“남색하고 노란색은 보색이잖아.”

“예?”

이제 색깔의 조화까지 신경 쓰냐는 눈빛의 오스틴이었다.

그러더니, 문득 이 레스토랑의 색깔이 왜 남색으로 정해졌으며, 그 글씨가 노란색으로 정해진 이유를


깨달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왜. 이제 알았냐.”

“설마…….”

“그래.”

옐로 저지.

투르 드 프랑스는 각 구간, 개인 종합 1 위 선수에게 노란색 저지를 선사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선수들이 빠른 스피드로 달리는 가운데, 누가 우승 후보인지 알아보기 쉽게 노란색 옷을


입히는 것이 그 유래였다.

그래서, 레이스는 옐로 저지를 중심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다.

옐로 저지 선수와 같은 팀들은 그를 보호하고, 그 상대팀들은 그를 최대한 견제해야 하니까.

“카메라가 달리는 그들을 찍을 때, 그들이 가장 돋보이는 구간은 이 레스토랑 앞을 지날 때겠지?”

물론, 그 효과는 아주 미미하겠지만, 이번 행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 보면 된다.

역시나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요리와 그 맛이었다.

주방으로 발을 옮기니, 주방과 홀의 경계를 짓고 있는 것은 그릴이었다.

길게 펼쳐진 그릴, 성인 남자 네 명이 누워도 될 정도의 거대한 그릴이었다.

저 그릴을 뛰어넘으면 홀이고, 뛰어넘어 들어오면 주방이다.

셰프들이 그릴에 재료들을 볶거나, 굽는 것을 손님들이 볼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숯불 그릴도, 준비하라고 하셔서, 이 가운데에 준비했습니다.”

그 긴 그릴의 가운데는 철판만이 있고 아래 공간이 비어 있었는데, 숯불을 집어넣는 곳이었다.


“말했다시피 수제 햄버거이고, 소 갈빗살을 숯불에 구워서 패티를 만들 거야.”

“아…….”

“대회 기간 동안 사람들이 이 햄버거를 어디서나 자유롭게 먹으려면 패티가 얇아야 돼. 무식하게 패티가
두껍거나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많으면, 사람들이 대회를 관전하면서 햄버거를 먹는 게 힘들어지니까.
흘리기까지 하면 거리가 너무 더러워지겠지.”

천재를 넘어선 싸이코다.

오스틴의 표정이 정확히 그랬다. 대체 어디까지 생각을 하고 있냐는 듯한 눈치였다.

“패티가 얇고, 재료를 많이 못 넣으니까. 고소한 육향이 강한 갈빗살에 숯불의 향을 입힐 생각이야.”

“그, 그럼, 메뉴 구성은 모두 끝나셨다는 것이고……. 주방 셰프들은 어떻게 구성하시겠습니까? 일단,


포시즌스에서 셰프 몇 명을 지원할까요?”

“아니, 됐어. 나 혼자 할 거야.”

“예?”

오스틴을 비롯한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나와 길게 펼쳐진 그릴을 번갈아 쳐다본다.

“이, 이 주방을 혼자 운영하시겠다고요?”

“어. 양상추랑 양파 썰줄 아는 애들만 있으면 될 것 같아.”

83 화. 원맨쇼 (1)

치이이익!

길게 펼쳐진 그릴 위에, 온갖 재료들이 올라가 있다.

“그런데 대체…… 베이커리 기술은 언제부터…….”

그 그릴 위에 올려진 재료 중, 햄버거 빵을 가리킨 오스틴이 말했다.

레스토랑에 고기와 재료들을 올려놓기 전, 햄버거 빵을 직접 만들었는데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질문하는 것도 안 지겹냐 이제. 뭐 어디서든 했겠지. 밤을 새웠다든가.”

“하루에 대체 몇 시간을 주무시는 겁니까? 스케줄 소화하시는 거 보면, 3 시간도 못 주무실 것


같습니다.”

“요즘 그런 질문 많이 하더라. 사람들이.”

치이이이이익!

길게 이어진 그릴, 나는 이곳 저곳을 빠르게 옮기며 재료들을 볶기 시작했다.

햄버거 빵, 양파, 베이컨, 마늘…… 그리고 갈빗살.

길게 이어진 그릴 가운데에 숯불이 있었는데, 다진 갈빗살에 다른 재료를 조금 첨가해 반죽을 만들어 얇게


편 뒤에 숯불에 올렸다.

사람들이 이 요리를 들고 다니며 먹기 좋게 이동성과 편의를 고려해 패티를 얇게 만들었다.

숯불을 입힌 뒤 기름에 빠르게 튀겨내듯이 구워 식감까지 살릴 생각이다.

한쪽 그릴엔 베이컨이 올라가 있는데, 그곳에 양파를 추가해 넣고 설탕을 넣어 양파가 시럽처럼 퍼지는
것을 돕는다.

그렇게 카라멜라이징한 양파에, ‘레드 테이블 - 반유현’에서 직접 만든 훈제 파프리카 가루로 매운맛을


추가했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소스의 역할을 하며, 햄버거 전체의 풍미를 돋우는 역할을 할 녀석들이다.

또 그 옆에는 이미 갈색으로 변해 물러있는 양파에, 달콤한 향을 다른 층으로 쌓기 위해 우스터 소스를


넣었다. 그리고 발사믹 식초와 케찹을 추가해 이전과는 또 다른 소스를 만들었다.

재료들을 하나씩 빵 위에 올렸고, 오스틴에게 건넸다.

“먹어봐.”

수제 햄버거 중에서는 가장 얇은 두께의 햄버거, 한입에 먹기도 편해 경기를 관람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 향을 맡으니 숯불향이 고소하게 올라온다. 오스틴이 한입 베어 물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와.”

그리곤 계속해서 햄버거를 먹는다.

인테리어를 마감하고 있는 직원들과 반유현팀의 직원들이 나를 바라봤다.

“다 오세요.”

나는 곧장 그릴 앞을 재빨리 옮겨 다니며, 여럿의 햄버거를 만들었다.

기계처럼, 착착착. 햄버거를 만드는 모습에 놀란 듯했다.

그리고, 그 맛에 놀라 나에게 모든 시선들이 쏟아졌다.

“질립니다 이제, 그 반응들도.”

그제서야, 내가 혼자 이 주방을 맡겠다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나 보다.

“그래도……. 저희 예상으로는 이곳에 방문할 손님들이 천 명은 훌쩍 넘을 것 같은데, 감당


가능하시겠습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홍보도 할 겸, 메뉴 테스트도 할 겸, 혼자 감방이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 줄 겸, 내 밑으로 소속되어


있는 모든 셰프들 집결시켜.”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두 다 조리복 입히고.”


***

투르 드 프랑스가 열리기 정확히 2 주 전.

샹젤리제 거리에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포인트가 들어가 있는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한 레스토랑 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반유현 ]

그들이 똑같이 입고 있는 옷의, 오른팔에 적힌 글씨는 그랬다.

반유현 휘하의 모든 셰프들과 조직원들이 한곳에 모였고,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을 끌 수밖에 없었다.

“뭐야?”

“레스토랑 반유현의 직원들이잖아.”

“와…….”

매장 안에 보이는 주방, 그리고 그 그릴 위에 오로지 반유현 한 명만이 서 있었다.

모든 셰프들과 직원들은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광경은 마치 어떤 종교의 교주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총 몇 명이야!”

그릴 앞에 혼자 서있는 반유현이 소리치자, 단정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말했다.

“약 450 명입니다.”

“오케이, 접수. 요리 시작.”

반유현도 조리복을 입고 있었는데, 굵직한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처럼 스카프를 두른 셰프들이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양파와 마늘을 빠르게 쳐내는가 하면, 소스를 접시에 옮겨 담아 반유현이 쓰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보조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스카프…….”

이 곳에 모여 있는 셰프들은 물론, 대중들도 저 스카프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였다.

“스카프를 맨 셰프들도, 반유현 셰프 앞에서는…….”

그때, 반유현이 그릴에 온갖 재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그릴 앞을 빠르게 움직이며 재료들을 볶는다.

사람들의 관심은 단순했다.


반유현 혼자, 이 많은 사람들의 요리를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볶음밥이나, 볶음면 같이 한 자리에 서서 단계적으로 맛을 쌓는 요리가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재료들이 준비되어야 하며, 그 재료들의 맛이 각각 살아 있어야 되는 햄버거.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준비된 재료를 하나씩 쌓아 올려 덮으면 되는, 패스트푸드로 강하게
인식되어있지만, 그 실상은 모든 식재료의 맛을 강하게 살려내야 되는, 쉬운 요리가 아니었다.

지금 그릴 앞의 반유현도 집중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그릴 앞을 옮기는 것을 보면, 여유가 보이지 않았다.

우와아아아아!

레드 와인과 발사믹 식초를 넣으며 불길과 연기가 치솟아 오르자, 셰프들이 탄성을 질러낸다.

자연스레, 투르 드 프랑스의 피날레, 결승 무대를 공사하던 인파들도 ‘반유현-네이비’라는 간판 아래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샹젤리제 거리 전체로 퍼져나가 수많은 사람들이 앞에 서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메뉴 테스트 진행 중이라, 현재는 레스토랑 ‘반유현’의 직원들과 셰프들에게만…….”

우와아아아! 

반유현이 뒤집개로 빵을 공중에서 회전시키며, 그 위에 각종 재료들을 빠르게 얹어 햄버거를 만들었다.


그리곤 후추통을 돌리며 패티에 살짝 곁들인다.

그 손짓과 몸 돌림에 놀란 사람들은 연신 환호를 내뱉고 있었다.

“제일 첫 번째로 나온 햄버거, 누가 먹을래요?”

꺄아아아악!

우와아아!

말 그대로 원맨쇼. 셰프들의 표정을 보니 반유현은 종교 단체의 교주 이상이었다.

***

“라스베이거스에서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내가 요리하고 있는 행사 부스에 줄을 길게 섰던 사건,


기억하나?”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 규모로 따지면 2.5 배.

그 파급력으로 따지면 수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 검은 띠, 조리복의 물결. ]

[ 반유현 휘하의 전 조직원 모여. 마치 집회를 연상케 해. ]

“또…….”
SNS 와 온라인 매체엔 또 한 번 내가 이슈 되었다.

이번엔,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까지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조리복을 입은 수많은 셰프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연신 환호성을 내뱉고 나서는
감탄과 환호를 쏟아내는 모습이다.

다들 한 손에 햄버거를 들고, 감격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너도 맛봤잖아.”

“그렇습니다. 크리스피한 소 갈빗살 패티가 바삭하더니, 바삭함이 깨지고 육향과 숯불향이 올라오고……
약간의 매운 향이 곁들여진 베이컨의 훈제 향, 그리고 달짝지근한 양파가 합쳐지면서…….”

“그래.”

오스틴은 또, 내가 이것을 질문할 것을 예측했다는 듯이 준비한 멘트를 꺼냈다.

아무래도 나를 만나기 전날에, 항상 내가 물어볼 것을 예측해 준비를 해 놓는 듯했다.

“포시즌스 영감님들은 문제없고? 또, 내가 새로운 업장을 차리면…….”

“예, 문제없습니다. 포시즌스, ‘반유현-레드, 블루, 옐로’ 세 개의 레스토랑 현재 예약이 꽉 찬


상태구요. 반유현 셰프님께서 지속적으로 메뉴 개편을 해주시니 불만은 없는 상태입니다. 오늘, 내일
일정은 모두 비워두겠습니다.”

혼자 주방을 뛰어다니며, 수백 개의 햄버거를 만들어 내고 나니 몸에 피로도가 쌓인 상태였다.

주방에서 일하는 것은 운동이 아니다, 운동을 좀 따로 해서 체력을 쌓아야 되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

100 년의 경험과 노하우로 그나마 효율적인 움직임을 이용해 버티고는 있는 실정이었다.

“반유현 네이비는, 앞으로 문을 계속 닫고, 행사 기간 동안만 내가 직접 운영한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투르 드 프랑스가 끝나면, 반유현 팩토리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팀으로, 한 팀 올려.”

이게 확장성이었다.

물론, 햄버거라는 메뉴가 그 기술을 전수하는 것에서 난이도가 높지 않기에, 지금 단계에서 반유현
팩토리의 인력을 적즉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긴 했지만.

앞으로 그들의 수준이 더 발전하면 세계 어디든, 내가 차릴 레스토랑에 이렇듯 인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 이미 팩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반유현-화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셰프들이 반발이 있지


않을까요? ‘반유현-네이비’는 정식 레스토랑이니까요.”

“걔네가 그럴까.”

내가 핸드폰을 오스틴에게 보여줬다.

‘반유현-골목’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사진.


“아……. 괜한 질문을 드려 죄송합니다.”

‘반유현-네이비’가 아무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고, 테스트가 아닌 정식 레스토랑이라고 한들, 지금


그들의 즐거움에 비할 바 되지 못한다.

자신의 요리를 많은 사람들이 즐겨주는 것만큼 셰프에게 값진 보람은 없으니까.

“그럼, 검은 스카프를 맨 셰프들의 반발은 없겠습니까? 언젠가 셰프님의 정식 레스토랑을…….”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을, 총알이라고 생각해. 검은 스카프를 목에 걸고 있는 셰프들은 미사일이고.


물론, 반유현 팩토리에서 미사일이 탄생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진 그렇잖아.”

“그렇습니다.”

“프랑스 파리, 내 구역에서 미사일을 가지고 싸울 필요는 없잖아. 미사일은 적진을 뚫을 때 써야지.”

파리를 제외한, 런던, 라스베이거스, LA, 홍콩, 베이징, 서울, 도쿄…… 맛의 강자들이 득시글대는
주요 도시들이 떠올랐다.

“파리는 이제, 네이비가 마지막일 거야.”

***

2021, 투르 드 파리 행사가 시작되었다.

세계인들이 프랑스로 모여들었고, 반유현 화이트의 매출은 또다시 증가했다.

그곳은 반유현 팩토리의 테스트 매장으로, 예약이 없는 곳이었기에 현장에 사람들의 행렬이 더 길게
이어진 것이다.

“걔네가 나보다 바쁘대?”

그리고, ‘반유현-네이비’라 이름 지어진 나의 레스토랑엔, 행렬이라 할 것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폴딩 도어로 이 레스토랑과 밖의 경계가 없어,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데 저 많은 사람들의 몸의 방향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포시즌스 호텔의 투숙객 증가도 엄청납니다. 파리 내에 호텔 예약률 1 위를 차지했습니다.”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난 뒤, 파리라는 도시 안, 내 영향력을 증명해줄 만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끄럽고, 너도 나가서 밖의 줄이나 정리해줘.”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그릴 앞에서 나는 왜 그 영향력이 생긴 건지, 입증해 보이고 있었다.

성인 남성 다섯 명이 누워도 될 정도의 길이를 가진 그릴 위해, 햄버거에 들어갈 재료들이 가득 올라가


있었고, 나는 기계처럼 그것들을 조리하고 있었다.

반유현! 반유현!

사람들은 쇼를 보는 듯이,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레스토랑 내부와 밖의 경계가 없다 보니, 이 샹젤리제 거리 전체가 나의 무대가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84 화. 원맨쇼 (2)

샹젤리제 거리, 투르 드 프랑스 메인 코스의 결승선.

정확히 나의 레스토랑은 결승선과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였다.

“후.”

쉬지 않고, 그릴 위의 재료들을 다듬고 햄버거를 만들다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났다.

어쩔 수 있겠나. 내가 직접 뒤집개와 집게를 들고 그릴 앞에 서 있는 것보다 파급력이 큰 쇼는 없을


테니까.

나를 향해 서 있는 손님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나를 촬영하기 위해 손을 높게 올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결승선으로 선수들이 들어오기 약 한 시간 전, 이제는 행사 주최 측과 프랑스 관광청이 직접 나서서 나의


레스토랑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정리해 주기까지 시작했다.

빠른 속도의 싸이클이 이 앞을 지나가는 만큼 안전을 위해서라도 질서 정리가 중요했다.

“마르스 광장의 DJ 파티 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린 것 같습니다. 진짜로.”

밖에서 손님들을 정리하던 오스틴이 잠시 들어와 내게 말을 건넸다.

세계적인 행사인 만큼 다양한 레크레이션들이 많이 열리는데, 에펠탑 인근, 마르스 광장에 모인


사람들보다 이 앞에 몰린 사람들이 더 많다는 얘기였다.

“바로 앞이 결승선이니까.”

“아니요. 이 가게 앞에 모인 사람들 그 자체요.”

“말할 힘도 없다.”

“반유현 골목도 지금 장난 아닙니다. 꽉 막혀서 사람이 지나갈 수가 없대요. 행사 주최 측에서 인력을


동원해 달라는데, 저희가 지금 동원할 인력이 있습니까? ‘반유현’ 산하 레스토랑이 전부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서 불타오르고 있는데.”

치이이이익!

“나는 고기랑 빵 굽느라 정신없으니까 알아서 해.”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이곳에 모인 언론들도 한몫을 했다.

선수들이 결승선을 지나기 한 시간 전, 대부분 언론들은 파이널 현장의 분위기와 시민들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송출하면서 행사 전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곤 한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내 레스토랑 앞의 현장을 송출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던 것이다.

“와아아아아! 이 열기! 2021 투르 드 프랑스의 현장입니다!”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장면이 딱 결승선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사용하기 딱
좋은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결승선을 지날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아!”

물론, 양심에 찔린 몇몇 방송사들은 나를 비춰주기도 했다.

“세계적인 셰프! 반유현 셰프의 철판 쇼가 시작되기도 했는데요! 정말 볼거리가 많습니다!”

“파리, 이 거리에 있는 쓰레기통 대부분이 반유현 셰프가 만든 햄버거 포장지로 가득 차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저도 맛이 너무 궁금해서 먹어보고 싶지만 저 수많은 인파를 뚫고 갈 자신이 없습니다.”

덕분에, ‘반유현 골목’이라는 단어가 유럽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기도 했다.

“케린 리포터! 여기는 결승선이 있는 샹젤리제인데요. 선수들이 반유현 골목 앞을 먼저 지날 텐데!


그곳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네 여기는 반유현 골목입니다! 현재 수많은 분들이, 결승선에 도달하기 직전 지점, 즉. 선수들의


스퍼트가 시작되는 지점인 반유현 골목 앞에 서 있습니다!”

발성 좋은 저 리포터들의 소리가 내게 들려 오고 있는 와중, 나는 저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문제는 나에게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아아! 지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옐로 저지를 입고 있는, 사이클 황제 크리스 폴룸 선수의 자전거가


고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내 전생엔 없던 일이었다. 어디서 어떤 나비효과가 일었는지, 옐로 저지를 입고 있는 선수의 자전거가


고장 났다는 것.

옐로 저지를 입고 있는 선수의 자전거가 고장 나면, 고쳐질 때까지 모든 선수들이 페달을 밟는 행위를


멈추는 것이 불문율이다.

“선수들의 결승선 통과까지 시간이 조금 지연되겠습니다.”

내 레스토랑 앞에 있던 관중들이 술렁였다.

지금의 상황을 인지하는 반응들, 저들은 내가 햄버거나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햄버거가 나오기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면 된다는 반응으로 태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재료가 없어.’

선수들을 비추고 있는 메인 카메라가 이곳을 집중 조명할 때, 즉 선수들이 이곳을 지날 때까지의 재료만을


준비해 뒀었다.

전 세계 방송에, 나의 레스토랑의 간판과 수많은 사람들이 햄버거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비추기 위함이
최대의 목적이었으니까.
퍼포먼스를 위해 혼자 주방을 운영했기에,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다.

메인 카메라들이 지나가면 곧장 마감하려 했는데 불가피하게 내가 주방을 운영해야 되는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제기랄.”

***

“패티용 소고기로 미리 손질해 놓은 게 없잖아.”

소 갈빗살의 지방을 제거하고 잘게 다지고 양념까지 곁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더군다나 파리 내에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소 갈빗살 그 자체를 이용해 요리하는 메뉴는 없었다.

이 시점에 재료가 없다고 선언하면,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나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 조금은 남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자리를 떠나 결승선으로


이동할 것이다.

나의 햄버거는 미끼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조금 이따 지나갈 메인 카메라 앞 엑스트라로 사용하기 위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메뉴를 바꿔야지.”

“패, 패티를 즉석에서 바꾼다는 말씀이십니까?”

반유현 팩토리에서 급하게 재료 손질을 위해 지원을 한 셰프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앞에 서 있는 쟤 보이지, 양복 입고 덩치 크고, 땀 흘리고 있는 놈.”

나는 그 셰프에게 오스틴을 가리켰다.

“내 밑으로 소속되어 있는, 모든 레스토랑에서 계란을 다 가져오라고 전해줘.”

“계란이요?”

“어. 빨리.”

“예! 셰프!”

셰프가 뛰어나가서 오스틴의 귀에 대고 말하자, 오스틴은 저 멀리서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린 뒤에 ‘


반유현 골목’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누가 봐도 ‘반유현’ 소속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줄지어 저 멀리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마다, 계란을 몇 판씩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뭐야 저건.’

그런데, 그 셰프들의 뒤로 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내 밑의 직원들도 아니고 그저 이 행사를 즐기러 온 대중들이 그 셰프들의 뒤를 잇고 있는 것이었다.

“다 이쪽에 내려놓으세요!”

셰프들이 줄지어 주방으로 들어왔고 한켠에 계란판을 쌓아뒀다.

“그쪽은 괜찮냐?”

“저희는 다 예약제잖아요. 넘치는 건 없습니다.”

목에 검정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로또 육인방 중 메이를 제외한 다섯 명의 셰프들, 그리고 반유현, 레드,
블루, 옐로 총주방장을 맡고 있는 세 명의 셰프들.

“그래, 그럼 지금부터 이쪽에 붙어. 누가 목소리가 제일 크냐.”

최민성이 고개를 끄덕거린 뒤에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여러분들! 모든 재료가 소진되었습니다!”

최민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외침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리고 곧장 여론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기다린 게 몇 시간인데, 재료 소진을 이제야 말하는 둥, 인기 많다고 서비스가 똥이라는 둥.

표정을 찡그린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 저희 셰프님은 몇 시간을 기다린 손님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아시죠! 나만


알았나아?!”

최민성은 특유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재료를 바꿔 새로운 버거를 준비할 겁니다. 줄을 그대로 지켜주세요!! 선수들이 결승선 통과하는 걸
아주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서 기다리셔야 할 것 아닙니까아!”

우와아아아!

술렁거림이 다시 환호로 이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즐거웠는지, 최민성이 내게 말했다.

“셰프님 그런데, 무슨 버거입니까?”

“달콤, 새콤, 매콤, 짭짤 풍미 가득 퐁퐁 계란 버거.”

내가 작게 읊조리자, 최민성이 그것을 그대로…….

“버거 이름은! 달콤, 새콤, 매콤, 짭짤……!”

말하려다가 멈췄다.

“장난치시는 거죠?”

“진짜야.”
최민성은 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곤 다시 소리쳤다.

“뭐! 여튼! 그 버거를 저희도 같이할 겁니다!”

검정 스카프의 의미를 알고 있는 관중들은, 검정 스카프를 맨 셰프 여덟 명의 합류를 기뻐했다.

***

버거의 이름은 장난이었지만 그 맛은 진짜였다.

“와……!!”

소 갈빗살 패티가 모자라, 그것을 대용할 패티로 선택한 것은 계란이었는데.

사실, 할 수 있는 게 계란밖에 없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어쨌든 패티로 만들려면 손질이 들어가야 한다.

계란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충족시킬 패티 재료를 찾을 수 있겠나.

“계란이 소고기 패티한테 절대 뒤지지 않는…… 재료 원가의 가치를 뒤집었습니다. 원가의 하극상인가?
맛은 최상입니다.”

포슬포슬 부드러운 계란 식감에, 달짝지근, 매콤, 짭짤, 상큼한 모든 맛이 첨가되어있다.

매콤한 훈연향을 강조해 직접 만든 파프리카 가루와 단맛을 내는 양파, 그리고 허브의 한 종류인 차이브가
톡 쏘는 상큼한 맛을 더했다.

“침이 뚝뚝 떨어지는 맛입니다.”

“와하……! 이게 즉석에서 만들어 낸 요리라고?”

“왜 파리 최강의 셰프겠어!”

단맛으로 시작되어, 톡 쏘는 새콤한 맛으로 끝나는 버거.

오히려 소고기 패티보다 화려한 맛을 내는 계란 버거에 식욕이 돋았다.

더군다나, 셰프 여덟 명이 합류해 버거를 만들었기에 사람들이 버거를 받아드는 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다.

여전히 그릴 위의 모든 재료를 내가 총괄하지만, 빵 위에 재료를 쌓는 작업은 로또육인방과 포시즌스의


총괄 셰프들이 도맡아 했다.

스크램블과 양파, 다진 베이컨 등 그릴 위의 재료를 조리하면, 나는 그것을 그릴 양쪽에 배치된 각각 네


명의 셰프들에게 밀어 넣었다. 셰프들은 그릴의 끝에서 버거를 만들었다.

우리의 손과 발은 기계처럼 맞아떨어졌다. 어쩌면, 햄버거를 만드는 기계보다 빠르다고도 할 수 있는


속도,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그 맛은 관중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모여들었고, 현장의 분위기는 계속해서 고조되고, 달아올랐다.

덕분에 빠지던 체력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광장에서 열렸던 디제잉 파티보다 뜨겁네요. 음악도 틀까요?”


“너, 디제잉 파티도 갔었냐.”

“네. 뭐처럼 축젠데 놀기도 해야죠. 셰프님 덕분에 저희도 인기가 많아져서요. 엉덩이 신나게 흔들고
놀다 왔습니다.”

“잘했어.”

헨리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몸을 흔들자, 제리가 어디선가 거대한 앰프를 가져와 음악을 튼다.

샹젤리제 거리 안, 새로운 축제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의 환호성이 비정상적으로 확 커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서 싸이클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

후우우우웅! 

옐로 저지를 입은 사이클 황제, 크리스 폴룸과 그의 팀원들이 내 레스토랑 앞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크리스 폴룸은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저 멀리 결승선에서 그를 향한 환호 소리가 들렸다.

아주 일부였지만, 내 레스토랑 앞에서 햄버거를 먹던 몇몇의 사람들도 그를 맞이하기 위해 결승선 쪽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 결승선의 환호 소리가 이쪽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하더니, 이탈했던 사람들이 다시 내


레스토랑 앞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뭐야. 확인해봐.”

제리가 곧장 주방에서 내려갔다가 빠르게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

“싸이클 황제, 크리스 폴룸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올해도 우승을 차지한 크리스 폴룸, 노란색 저지를 입고 있는 그를 촬영하고 있는 수십 대의 카메라. 그


무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 폴룸은 리듬을 타면서 자전거를 타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세계적 행사의 주인공이 내 레스토랑 앞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나 보다.

85 화. 원맨쇼(3)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크리스 폴룸과 그의 팀원들이 샴페인을 터트렸고,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와후!”

하나였던 앰프가, 추가되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더니, 광란의 파티가 벌어진 듯싶었다.

어떤 클럽을 가도 이 정도의 후끈한 분위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아마추어 싸이클 선수들은, 이곳에서 크리스 폴룸이 춤추는 것을 보곤 이곳이 결승선인 줄 알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완주의 기쁨을 표현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여, 여기 아니야! 저기야! 저기!”

“으잉? 컥!”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뒤늦게 결승선을 통과하곤, 축제의 장이 펼쳐진 이곳으로 오는 선수들.

전 세계에서 온 방송사들과 리포터들은 내 레스토랑 앞에 벌어진 축제의 장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마지막 버거를 만들고 주방에서 저들을 내려다보는데, 저들이 심히 즐거워 보였다.

‘내 요리가 저들의 즐거움을 추가했으려나.’

잠깐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관중들과 함께 몸을 흔들고 있던 최민성이 크리스 폴룸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의 귀에 속삭인다.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그러더니 크리스 폴룸이 ‘오!’ 하는 표정을 짓곤 나를 가리켰다.

아마도 최민성이 그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나 보다.

샴페인을 쥐고 있는 손마저, 검지를 펼쳐 나를 가리키는 모습.

내려와서 같이 춤을 추라는 신호였다.

내가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이번엔 헨리와 제리가 외쳤다.

“반유현! 반유현!”

매사에 냉철한 나의 모습을 보다 보니까, 내가 난처한 웃음을 짓는 게 저들의 인생 최대 재미인 듯했다.

‘새끼들이…….’

나에게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놈들이 저놈들이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때, 관중들이 따라서 내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따라붙은 크르스 폴룸마저 나의 이름을 외치며 몸을 흔들었다.

‘100 년 묵은 댄스가 뭔지 보여줘?’

못 이기는 척 내려간 뒤 리듬을 타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와! 뭐야! 반유현 셰프님!”

“뭔 춤을 또, 저렇게 잘 추셔! 푸하하하하!”

“대박! 이야! 셰프님!”


[ 반유현 - 네이비 ]

그 간판 아래 투르 드 프랑스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

[ 스포츠 기업들, 이번 대회 반유현 신드롬에 묻혀. 광고 효과 반감. ]

[ 나이스, 아이다스, 레드붐 ……. 등 투르 드 프랑스 최대 후원사들, 다음 스폰은 반유현? ]

매 대회마다 최대 투자를 하던 스포츠 기업들의 다음의 투자처로 나를 선정할 것이라는 기사까지 떴다.

실제로, 싸이클 황제이자, 대회 2 연패를 달성한 크리스 폴룸의 경기 후 찍힌 사진 대부분이 ‘반유현-


네이비’라고 적힌 햄버거 포장지를 들고 있던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관중들까지 모두 햄버거 포장지를 손에 쥐고 있었으니 이번 대회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광고 효과를 올린 것은 나였다.

[ “그냥 몸이 이끌렸습니다. 그 축제의 끝은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대회에서 일등 하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

왜 나의 레스토랑 앞으로 갔냐는 질문에 대한 크리스 폴룸의 인터뷰까지, 이번 행사로 유럽 전역, 나아가
세계에 내 이름을 알렸다.

[ 반유현의 수준급 춤 실력, 못하는 게 없는 남자. 여심 흔들! ]

[ 손에 반유현의 햄버거 쥐고 춤추는 사람들! CF 의 한 장면 같아. ]

[ ‘반유현 - 네이비’ 수제 햄버거 벤치마킹한 가게들 속속 출몰! ]

[ 반유현 버거, 전 세계인들의 관심! 광고 효과 측정 불가. ]

그리고 이번엔 나뿐만 아니라, 나의 직속 셰프들인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 세 명의 총괄 셰프들도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 반유현의 칼잡이 8 인방. ]

[ 검정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여덟 명의 셰프들. ]

[ 재료 손질 인턴 셰프부터, 레스토랑 반유현의 검정 스카프를 잡은 그들의 신화! ]

그에 대한 반응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을 실시간으로 예약할 수 있는 어플 서비스는 순간 다운이


되기도 했으며, 계속해서 다운로드 수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반유현 화이트랑 네이비는 왜 예약 안돼요? 현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매장인가?

-구경 좀 하려고만 하면 서버다운ㅡㅡ

-서버 또 다운됨 ㅉㅉ. 인원폭주 예상 못한 듯.

-이 정도 트래픽을 감당하는 레스토랑이 있다는 게 말이 안되는 거임. IT 회사도 아니고.

-그러게 알고 나불대. 우리 갓유현 셰프님은 애초에 전화 예약이 불가할 사태를 예측하고 이런 어플을
만든 것임. 그것만으로도 최고.
또, ‘반유현 골목’의 인파는 끊길 줄을 몰랐다.

프랑스 관광청은 곧장 이에 대응해, 인근에 있던 정류장의 이름을 ‘반유현 골목’으로 바꿔 관광객들의


편리성을 증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반유현 골목’을 구성하고 있는 셰프들은, 불과 ‘반유현 팩토리’의 입학식을 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셰프들이라는 소문이 퍼져 그곳에 대한 관심도 폭주했다.

해당 분야를 맡은 직원들이 있기에 내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지만.

“물들어올 때 노저으라는데, 물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모터를 달아도 부족한 판입니다.”

“배가 커지면 되잖아.”

배를 키우면 되지 않느냐.

이 말을 뱉었을 땐, 오스틴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내가 또 다른 일을 꾸미는 것을 알게 된 터였을 것이다.

“그, 그전에 반유현 네이비는 어떡할까요? 잠시 휴업한다는 공지를 붙였음에도, 그 간판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난리도 아닙니다. 빨리 재오픈을 안 하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습니다.”

“반유현 팩토리 B-1 팀 불러서 투입해. 거기 교수님이 누구지?”

“인도 출신의 베디야 셰프입니다.”

“레시피 교육은 내일부터 이 주일간 진행되고, 반유현 네이비는 2 주 뒤에 재오픈 한다고 공지 붙여.”

단품 메뉴인 햄버거. 당연히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

메뉴뿐만 아니라, 미슐랭 스타는 레스토랑 내의 분위기나 그 서비스까지 포함되는데 의자가 없는 스탠딩
테이블에 밖과의 경계가 없는 폴딩도어, 거기에 왁자지껄 젊음이 넘치는 분위기는 맛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분위기라는 단점이 있다.

“받아봤자 미슐랭 원스타나, 빕 구르망 정도야.”

빕 구르망, ‘가성비’가 뛰어난 맛집을 선정하는 미슐랭 가이드의 또 다른 기준이다.

‘반유현-네이비’는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에 있어서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샹젤리제 거리 안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 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이 투르 드 프랑스가 열렸던 그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고자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투스타, 쓰리스타를 노리는 레스토랑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 손해가 크지. 이 매장은 운영되는 것


그 자체로도, 반유현이라는 브랜드 가치에 엄청난 효과가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회전율이 높고, 원가가 낮으니, 매출을 높이고 현금 자산을 쌓는 매장으로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반유현 골목’과, ‘반유현 네이비’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회사 내에 현금보유량을 늘리며, ‘반유현
팩토리’의 연장선으로 나의 확장성을 증명하는 것에 의의를 뒀다.
“미슐랭 평가 기간까지 약 두 달 남았네.”

미슐랭 평가원들이 평가를 시작하기까지 약 두 달의 기간이 남은 시점.

나는 더 많은 미슐랭 스타를 위해 계속해서 레스토랑을 런칭시켜야 했다.

“가장 강력한 제안이 뭐야?”

그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곳의 장소를 고르라면 나의 브랜드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프랑스 파리가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들을 직접 전담하며, 맛의 수준을 계속해서 빠르게 끌어 올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주 큰 한계가 있다.

파리 내에 나의 레스토랑이 많아질수록,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경쟁이 벌어진다.

애초에 파리 내에서 최고의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반유현’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업체도 아닌, ‘반유현’이라는 이름 안에서의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경쟁은 당연히 셰프들에게 부담으로 작용 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힘들게 키워놓은 셰프들을 잃을 수 있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이미 ‘반유현’으로 포화된 파리에, 레스토랑을 또 런칭하는 것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그렇다 할 임팩트도 없거니와 미슐랭 스타 파리 평가단의 흥미를 떨어트리는 일이기도 하다.

해결책은 단 하나였다. 다른 지역을 정복하는 것.

시장이 포화되었으니, 외부에 물건을 팔아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나에게 좋은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업체들에게 제안서를 받으라고 지시했다.

나의 이름값은 내가 골라서 레스토랑의 점포를 만들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어떤 도시가 가장 매력적일지는 내 눈앞에 놓인 이 제안서들이 설명을 해줄 것이다.

“가장 매력적인 도시는, 런던입니다. 셰프님의 완벽한 안착을 위해서 이런 행사들을 지원한다고 하네요.”

“런던이라.”

***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런던이라는 도시가 갖는 매력과 상징성.

300 개 이상의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800 만 명 이상 거주하는 도시.

런던은 다문화, 다인종을 그 도시의 색깔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들의 장점으로 가장 잘 이용하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

그런 도시의 색깔은 요리 문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일단 그 도시 자체가 다른 문화권의 풍미나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는 점이 그랬다.

또,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실험적인 요리들이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보다 많이 탄생하는
곳이었다.

그런 다양한 요리 문화를 가지는 것에 더해, 이 나라가 영어권이라는 것도 런던이 요리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것에 한몫했다.

고든 레지를 비롯해 수많은 스타 셰프들을 배출한 ‘웨트스 민스턴 킹스 칼리지’의 요리사 과정에는 매년
2000 명이 넘는 학생들이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 학교에 지원하는 이유에는 분명, 이 나라가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라는 점 말고도 나에게 온 제안이 매력적이었다.

“런던이라는 도시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이 제안서가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루이비통, 세계에서


손꼽히는 패션회사가 셰프님께 제안을 보내왔습니다.”

“런던의 해러즈(Harrods)백화점 아시나요?”

해러즈는 영국 제 1 의 백화점이자, 런던의 주요 관광명소로 꼽히는 곳이었다.

“그 별관의 꼭대기 층에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장소는 누가 뭐래도 합격이었다.

해러즈 백화점은, 다양한 사람들, 그것도 대부분 문화생활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몰리는


중심부였으니까.

“내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현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이 뭐라는데?”

“매년 있는 루이비통사 주최, 세계적인 패션쇼 갈라 디너에 반유현 셰프님의 코너를 추가하겠답니다.
그래서,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 자체에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에 도와드리겠답니다.”

이건 또, 100 년의 인생을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제안이다.

“그쪽에서 얻는 건.”

“새로운 경험과, 창의성이라는 모토를 갖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
그 자체가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제안을 추진했답니다.”

덩치 큰, 명품이라고도 불리는 패션회사가 나와 내 브랜드를 섭외하기 위한 전략까지 구상해놨길래, 나는


더 구체적인 계획들을 듣고 싶었다.

“가장 빠른 런던행 비행기가 몇 시야?”

86 화. 원맨쇼(4)

나는 곧장 런던으로 향했고, 이들도 나의 발 빠른 행동에 응하기 위해 런던으로 왔다.

그리고 우리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루이비통 유럽 총괄 사장.

마이클 바크.
“혁신이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꾸는 것이죠…….”

그의 모토이자, 신념.

전 세계 수많은 경영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말을, 실제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타공인 세계적 패션 브랜드의 CEO 가 내 이름에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도 전생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보여주신 행보들을 두 글자로 줄이면 혁신이 아닐까요?”

이미 나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해왔는지, 나의 활약들을 낱낱이 읊기 시작했다.

“파리에 도착하셔서, 미슐랭 스타 셰프 루시앙을 놀라게 했고, 전문적인 셰프가 아닌 일반 셰프들을


데리고 레드테이블 더 파스타를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연이어…… 라스베가스에서의 활약, 그리고
레드테이블 반유현의 런칭……. 포시즌스 장악…… 투르 드 프랑스를 완전히 정복한 브랜드…….”

그리고 박수를 친다.

나보다 스무 살 이상은 많은 그가 나를 존경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덕분에 요리라는 세계를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저 때문에요?”

“맛이 주는 경험이란 게…… 저는 놀라운 것 같습니다. 저희 패션 사업은 어쩔 수 없이 보고 듣는 것에


치중해 아이템을 만들고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고 더 강력한 감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금 박수를 쳤다.

마이클 바크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자신이 나에게서 받은 영감을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비쳤다.

“보고 듣는 경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준의 만족감, 행복감 더 나아가 황홀함까지……. 저는 그 경험을


우리 고객들에게도 선사하고 싶어졌습니다. 마약 없이, 그저 순수한 감각으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경험에 저희 브랜드를 얹고 싶어졌습니다. 끌어주시죠 반유현 셰프님.”

마이클 버크의 화끈한 제안에, 나를 따라온 몇몇의 반유현팀의 직원들은 눈동자를 굴렸다.

이들에겐 대학 수업에서도 종종 회자되는 세계적인 경영자 자체를 앞에 둔 것도 엄청난 경험이었지만,


그의 파워풀한 말이 더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얼마나 혁신에 목을 맨 사람인지, 100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고작 생긴 지 2 년도 채 안 된


브랜드에 얹고 싶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내 직원들의 표정으로 보건대 속마음을 헤아리자면.

‘루, 루이비통이 반유현 셰프님에게 이끌어 달라……고 말한 거야?’

‘반유현’이라는 브랜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루이비통이라는 패션 브랜드가 거대했기 때문이다.


저 회사는 자산가치가 30 조를 넘는 회사였으니까.

“구체적인 조건들을 알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화끈했으면 좋겠네요.”


무심한 듯 질문하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왜?’

그러자 직원들은 다시 고개를 돌렸고, 마이클 버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서류뭉치를 꺼냈다.

“해러즈(Harrods) 백화점 별관, 그 맨 꼭대기 층에는 카페, 서점, 레스토랑 등 복합문화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곳의 절반 이상의 공간을 반유현 셰프님께 내어드릴 생각입니다. 이 백화점의
주인이자 세계 최대 국부펀드 카타르 투자청, 카타르 홀딩스 측과도 이미 얘기가 끝났습니다.”

루이비통과 해러즈 백화점의 관계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서로 여러 가지 사업들을 준비하면서


도와주고 끌어주는 관계인 듯했다.

나의 브랜드를 유치하자는 루이비통 측의 제안에 해러즈 백화점은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이 백화점은 런던 올림픽 당시, 600 만 명이 찾았을 정도로 이 지역의 명소이며, VIP 들을 위한


시스템이 그 어느 백화점보다 뛰어나 셰프님께서도 많은 커넥션을 얻어 가실 수 있으며,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파급력을…….”

“이 공간 자체가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제안을 받아서요.”

물론, 해러즈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갖는 장점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내 마음을 통째로 빼앗을 만한
제안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받은 메일함만 열어봐도, 라스베가스, 홍콩, 뉴욕 등 세계 각지에 노른자위 땅이라는 곳에서도


각각의 장점을 부각하며 나를 부르기 위한 손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흠. 이 백화점에 들어오고 싶어서 줄을 선 브랜드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만……. 그것도 꼭대기 층


절반 이상의 공간을 내어준다는 제안은 그 어떤 브랜드에도 해본 적이 없는 제안입니다. 이 때문에 해러즈
백화점 측에서도 어려움을 표했었죠.”

“그렇군요.”

내가 무심한 말투로 말하자, 마이클 버크는 다급해졌는지 말투가 빨라졌다.

160 년 역사를 가진 해러즈 백화점, 그 이름만으로도 권위와 품질을 인정받기에 이곳엔 ‘해러즈’라는
백화점의 이름을 달고 나온 상품들이 많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백화점 내에 자신의 브랜드 이름을 내거는 것 자체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연이어 말했다.

물론 나도, ‘명품’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은 전 세계의 브랜드들이 오매불망 입점을 기다리는 그곳에,


아주 파격적인 조건으로 입점한다는 것 자체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나에겐 중요한 조건이 있었다.

“임대료는 매출의 몇 퍼센트입니까?”

“임대료요? 임대료는 30 퍼센트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높은 임대료로 인해 적자를 보더라도, 입점을 시키는 것이 기존 기업들의 방식이었기에, 나의 질문의


수준이 생각보다 낮다는 듯이 마이클 버그는 말했다.

“입점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셰프님. 임대료가 천만 불이든 백만 불이든…….”


“대표님이야말로, 이전에 하셨던 말씀과는 앞뒤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해러즈 백화점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런던을 방문했더라면 누구나 찾는 관광명소이자, 이 백화점이 파는 물건들은 모두
‘명품’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로 권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루이비통의 직원, 해러즈 백화점의 직원, 그리고 반유현 팀의 직원들 총 스무 명이 넘는 인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쳐다봤다.

“레스토랑 반유현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파격적이고 새로운 경험은, 해러즈 백화점의 이름값이 필요


없습니다. 임대료는, 레스토랑 ‘반유현’이 해러즈에 입점하는 것의 이익이, 백화점과 루이비통 사에 더
큰지, 제게 더 큰지를 잘 비교해서 다시 측정해주시죠.”

내 브랜드를 품으려고 하는 회사가, 나의 가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나에겐 중요한


조건이었다.

“루이비통사와 해러즈 백화점의 명성을 알지만, 제가 임대료를 딱히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또……. 역사에 한 획을 그리셨습니다.”

“뭔 역사.”

“해러즈 백화점에, 단독으로, 임대료 없이 브랜드를 런칭하신다는 것이요. 그리고, 루이비통 브랜드
역사상 새로운 방식의 패션쇼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 그리고…….”

오스틴은 습관처럼 이번에 성사된 계약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해 말했다.

내가 성과에 대해 항상 무심한 태도를 보여서 그런지,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나 보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 일이 발생해서 얻은 것들에 대해 설명하는 오스틴이다.

160 여 년의 역사 동안, 임대료가 없이 입점을 한 브랜드는 다섯 개가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국 왕족들의 말, 그 안장을 수리하는 브랜드와 왕족들의 구두를 수선하는 브랜드 등, 100 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그 브랜드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내 관심은 어떤 브랜드가 있느냐보다,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였다.

내가 주어진 이 기회를 정리하자면 단순했다.

해러즈 백화점에 단 한 푼의 임대료 없이, 그저 나의 이름을 내거는 것만으로 입점을 했다는 것이고,
루이비통 사의 최대 규모 패션쇼에 갈라디너를 맡기로 했다는 것.

성공적인 런칭을 위해, 갈라디너 또한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내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은 많으나, 실질적으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나의 요리와


레스토랑 ‘반유현’은 저절로 사람들에게 명품화되고 있었으나, 이번 성과는 내 브랜드가 비로소
가시적으로,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명품’이 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제가 또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런칭 기간까지…… 크흠! 죄송합니다.”

“그래, 괜한 질문은 하지 마.”

해러즈 백화점 내에 레스토랑 반유현의 런칭까지 51 일.


2021 뉴욕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에 갈라디너를 선보인 다음 날 오픈을 할 계획이었다.

“주방 총괄, 최민성.”

“최민성 셰프를 런던으로 부르겠습니다.”

“반유현 팩토리 B-1 팀은 ‘반유현-네이비’를 맡기로 했으니, B-2 팀하고, B-3 팀은 런던으로 땡겨.”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그들의 거주지나 생활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도 해결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생기는 반유현 팩토리의 공백은 어떡할까요?”

나의 레스토랑 런칭 속도를 맞춰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설립했던 ‘반유현-팩토리’는 아직까지 공장처럼


셰프들을 찍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반유현 팩토리 자체에 셰프들이 바닥이 난 상태였다.

C 반 이하의 셰프들은 주방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재원이 되지 못했으니까.

“반유현 팩토리 셰프 모집 공고도 동시에 올려.”

“1 년에 한 번 뽑기로…….”

“계획 전면 수정, 두 달에 한 번씩 뽑는다.”

통제력을 잃고 달리는 말처럼 내 계획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는 그 고삐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니, 채찍질을 더했다. 이번 삶은 반드시 이 지옥 같은 회귀 굴레를 벗어나려고.

“런던에 있는 곳의 이름을 뭐로 하시겠습니까?”

“반유현, 브라운.”

“알겠습니다.”

직원들도 나의 방식에 적응되었는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확인했습니다. 셰프님께서는 메뉴 개발과 런칭에 최대한 힘쓰실 수 있도록 저희가 남은 모든 사안들을…


….”

“됐어, 내 이름 아래에 내가 모르는 게 있어선 안 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통제 하에, 그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

***

반유현 팩토리, 회의실.

반유현에 의한 회의가 소집되어, 교수들과 레스토랑 ‘반유현’의 지휘급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저건 뭐야?”

이들은 회의실 맨 앞, 스크린에 띄워져 있는 화면을 보고 서로 웅성이며 추측하기 시작했다.

“오늘 반유현 셰프님께서 우리를 소집한 이유인 것 같은데…….”


-반유현 브라운, 그랜드 오픈 D-49.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모집 D-10.

총 두 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한 장은 짙은 갈색의 천에, 노란색으로 ‘반유현’이라고 적혀있는


사진이었고, 한 장은 ‘반유현’ 산하 모든 셰프들이 입고 있는 조리복에, ‘신입생 모집’이라고
적혀있는 사진이었다.

“브라운? 레스토랑, ‘반유현 네이비’가 런칭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또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하시는


거야?”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모집은 뭔데, 1 년에 한 번 뽑기로 한 것 아니었나.”

현재 상황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적혀있는 사진들이었다.

“저게 가능해? 누가 합성으로 반유현 셰프님 행세하는 걸 제보받은 건가?”

“반유현 셰프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게 사실이라면 괜스레 불안하군요.”

“음. 저도 그렇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무리하게 계획을 추진하셨다간 조직


전체가…….”

“D-49 라는 게 실제 날짜는 아니겠지?”

반유현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않아서 그런가.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들이 혀를 차며 그 계획에 회의감을 표현했다.

그때 마침, 반유현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 한 장을 빼먹었네요. 여기 계신 분들과 관련이 크게 없을 것 같아서 그랬는데, 아무래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 브라운, 그랜드 오픈 D-49.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모집 D-10.

원래 있던 두 장의 사진 가운데에 한 장의 사진이 또 펼쳐졌다.

-2021 뉴욕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 갈라디너 D-48.

“해야 할 일들이 조금 많습니다. 잘 들으세요.”

아무래도 반유현은 저 세 개의 계획을 모두 진행시킬 심산인 듯했다.

87 화. 원맨쇼 (5)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네 개의 주제들이 온라인을 또 한 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는 세계 최대 패션기업과 셰프 반유현이 콜라보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 반유현 & 루이비통 세계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다. 2021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 ]

-와…… 역대급 콤비다.


-명품반열에 오르는 거냐.

-무슨 조합이야!! 와우!

역대 루이비통이 패션쇼에서 콜라보했던 인물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가죽장인 뤼셀 레이먼, 도자기 명장 김성원, 세계 최고의 테너 루치안 파빌로티…….

각 분야의 명인, 명장,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끌고 다니는 인물들과 콜라보를 했다.

세계 최대 패션 기업 중 하나이자, 자타공인 명품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회사답게, 최고라는 수식어에


의심이 있는 자들과는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유현…… 저 나이에 모든 걸 이루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겐 내가 이미 요리라는 분야에 모든 것을 섭렵한 장인으로 보여졌던 것이다.

두 번째 문장은 다른 의미에서 파격적이었다.

[ 반유현-브라운, 영국 제 1 의 해러즈(Harrods)백화점에 런칭 준비! ]

-???

-저 셰프는 전 세계 모든 메뉴를 깨닫고 태어난 듯.

-기계도 아니고……?

-말이 되나 저게? 몸이 몇 개인 거임?

투르 드 프랑스의 열기를 이어가겠다는 나의 의지는 알겠으나,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반응들이 제일


많았고, 두 번째로 많았던 반응들은 ‘반유현-브라운’에 대한 기대였다.

-드디어!! 우리 동네에도 반유현이 런칭!

-와……. 부럽당ㅠㅠ

-또 새로운 예약 싸움이 벌어지겠군.

-정확히 런칭 날짜가 언제임? 나 런던 여행 가는데!

-와우! 여행지 고르고 있는데, 런던으로 가야겠음.

-ㅋㅋ 미슐랭 쓰리스타의 뜻이 요리를 먹기 위해 여행을 가도 아깝지 않을 집이라던데, 오픈 전부터 런던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네.

그리고 세 번째의 문장.

[ 반유현 팩토리, 추가 신입생 모집! 지원서 접수 시작. 9 일 뒤 마감. ]

-뭐야 대박!

-허어어얼! 나도 신청!

-와, 이번엔 무조건이다 ㅠㅠ


‘반유현 신드롬’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나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셰프라는 직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바둑, 축구, 피겨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탄생은 청소년 또는 청년들이 진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대한민국은 나 때문에 요리사가 유망 직종이 되었단다.

100 년째 은퇴를 하지 못하는 나는, 저들을 말리고 싶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경쟁률이 지난번 신입생 모집에 비해, 2.7 배 증가했습니다.”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것이 불가피하군.”

나에 대한 팬심 또는, 반유현 팩토리에 지원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관심을 얻으려는 이들을 거르기 위해,
실제 의지를 가진 셰프들을 1 차적으로 거르기 위해 원서접수비를 올렸었다.

“원서접수비를 올렸음에도 이만큼 증가한 것을 보면, 올리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뻔했습니다. 그렇게


바쁘신데 어떻게 이런 디테일을 다 신경 쓰실 수 있는 겁니까 셰프님?”

그리고 가장 파격적이었던 문장은 마지막 네 번째였다.

[ 2021 뉴욕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 전격 장소 변경. ]

“그래도 배려를 많이 해 준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제대로 홍보가 됐겠어.”

[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보! 비행기표, 호텔 예약 모든 것 취소! ]

[ 반유현에게 맞춰지는 초점들! ]

[ 루이비통 최고 경영자 마이클 바크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장소 변경.” ]

원래 내가 맡은, 패션쇼의 갈라디너는 뉴욕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1 년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행사는, 나의 제안에 의해 런던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패션쇼에 초대된 모델들이나, 유명 인사들의 비행기나 호텔 값은 모두 루이비통에서 제공하는 것이었고,


장소의 변경에 따라 가질 손해 또한 루이비통사의 몫이었다.

[ 반유현의 말 한마디가 수많은 명품 브랜드와 모델들로 하여금 대서양을 건너게 했다. ]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이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바다 건너까지 장소를 옮긴 이유는 내 말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저는 패션쇼의 옷도 아니고 악세사리도 아니며, 기계도 아닙니다. 고객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해야
된다는 점에서, 저의 컨디션과 환경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뉴욕이라는 곳에 제 셰프들을
이끌고 가 최상의 컨디션을 내는 것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해러즈 백화점의 임대료를 후려쳤을(?) 때부터,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내게 어떤 오기라도


생겼는지 최고 경영자인 마이클 바크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 최대한 맞춰 드리지요. 런던에서의 갈라디너를…… 기대하겠습니다.’


뉴욕에서 열리는 패션쇼 갈라디너를 런던에서 런칭할 ‘반유현-브라운’으로 연결 짓기가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매번 그랜드 오프닝으로 성공적으로 레스토랑을 런칭했던 나는, 이번에도 그랜드 오프닝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폭제를 찾아야 했다.

뉴욕에서 열릴 세계 최대의 패션쇼는, 그곳에 초대되는 사람들이나, 내 요리를 맛보는 분위기나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행사였다.

그 행사와 내 레스토랑의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 장소를 런던으로 옮기는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쉽게 옮겨질 줄 알았나. 생각보다 루이비통사에서 나에게 거는 기대감이 커.”

“그렇습니다. 셰프님께서의 이번 발언은 또 역사적일 수 있습니다. 모든 셀럽들과 모델, 그리고


디자이너들의 일정을 고려해야 되는 게 패션 브랜드의 몫인데, 이번엔 그보다 반유현 셰프님의 의사를
존중했으니까요. 루이비통사와 콜라보를 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셰프님께서 자산 가치 30 조가 넘는
회사의 대형 이벤트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그곳에 초대된 손님들의…….”

오스틴은 매번 그랬듯이, 나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말하기 시작했다.

“됐어. 우선순위를 두자면, 패션쇼 갈라 디너가 가장 중요하고, ‘반유현-브라운’ 런칭 준비,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모집, ‘반유현-네이비’ 인수인계. 교수들하고 지휘급 셰프들에게 본인들이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전달은 해놨으니까. 걱정할 거 없잖아. 그치?”

“예, 예! 그, 그렇습니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

역대 가장 큰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포시즌스 그랜드 오프닝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초대되는 자리.

유명 인사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부호들과 기업인들도 함께하는 자리였다.

더군다나, 이들은 단체로 높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계층이었으니, 맛의 깊이를 느끼는 능력도 그 평균


수준이 높을 것이다.

“고생 좀 해주세요.”

그래서, 이번엔 나와 갈라디너를 준비하는 멤버들부터 달리했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로 있는 셰프 열 명과, 메이를 제외한 지휘급 셰프 여덟 명이 자리해, 총 열여덟


명으로 멤버를 구성했다. ‘반유현’이라는 브랜드 아래에 있는 최정예 멤버를 꾸린 것이다.

“갈라디너의 메뉴는, 3 대 진미 요리.”

-철갑상어의 알을 소금에 절인 캐비아(Caviar).

-살찐 거위의 간을 뜻하는 푸아그라(Foiegras).

-떡갈나무 숲의 땅속에서 자라는 버섯인 트러플(Truffle).

세계 3 대 진미라고도 불리는 이 재료를 이용해 메뉴를 구성했다.

패션쇼 갈라디너에 초대될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과 문화 수준 차이를 고려해 그들을 단번에 사로잡을
메뉴로 고른 것이었다.

“독특하고 신비한 향과 맛을 지닌 이 재료들은, 경제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매우 흔한 재료들입니다.


고급 레스토랑이라고 이름 붙인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이 재료들을 이용해 코스를 구성하곤 하니까요.”

내가 이 재료들로 코스를 구성한 이유였다.

“평범한 레스토랑과 레스토랑 ‘반유현’의 차이가 뭔지, 진짜 요리가 뭔지, 진정한 고급이 뭔지
보여주기에 아주 적절한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닌 그 재료들은 대개, 그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식으로 요리한다.

기름도 두르지 않고 팬에 굽거나, 날 것 그대로 슬라이스 해 먹거나, 드레싱을 조금 곁들여 먹거나.

값비싼 식재료의 맛을 해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이 이런 방식으로 3 대 진미를 내놓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의 말을 들은 셰프들은 내가 어떤 요리를 할지, 이러한 재료들을 고른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패션쇼의 테마가 혁신이라고 했으니, 우리도 제대로 된 혁신의 맛을 보여주어야겠죠.”

‘반유현-팩토리’의 한 교실, 나는 조리대 가장 앞에 서서 갈라디너에 선보일 요리를 시연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메뉴로, 캐비아. 대부분 어떻게 먹나요?”

나의 물음에 로또 육 인방이 차례로 대답했다.

“캐비아의 짠 맛을 중화시켜주는 사워크림(sour cream)과 먹거나…….”

“훈제 연어와 계란과도 잘 어울리는…….”

“그건, 갈라디너에 초대될 손님들도 수없이 먹어본 요리잖아.”

내가 답하자 장내가 조용해졌다.

나는 내 중지 크기만 한 생새우의 껍질을 빠르게 벗겨내고 내장을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의 체온을 이용해서 캐비아의 풍미를 올릴 수 있다는 것 아는 사람 있어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손을 올리는 것을 보고 나는 요리를 계속했다.

그들을 둘러봤을 땐, 10 년이 넘는 셰프들, 또는 이미 수많은 다른 셰프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교수진들에게도 내 행동을 단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되겠다는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덕분에 이 공간에 긴장감이 맴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새우를 수비드 머신을 이용해서 익힐 겁니다.”

수비드(sous vide), 프랑스어로 진공 포장을 뜻한다.

재료를 진공포장한 후 100 도 이하의 물에서 장시간 조리하는 방법을 수비드라고 하는데, 그 온도와
시간을 자유자재로 설정할 수 있으며, 저온조리에 진공포장을 하므로 식재료의 향과 영양소, 그리고 수분
파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조리법이다.

셰프들은 수비드 머신을 꺼내는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이었다.


“수비드 머신으로 장시간 익힌 새우는, 적절하게 반을 갈라 인간의 체온인 36.5 도의 물에 담가둡니다.”

그리고 소스를 만들었다.

“와인에 버터, 새우 내장과 샬롯을 이용해 뵈르블랑 소스를 만들고. 냉이까지 넣어서 새로운 향을
만듭니다.”

단맛과 버터의 고소함, 그리고 독특하게 냉이 특유의 향이 추가된 소스가 완성되었고 내 앞에 등급별로
분류된 캐비아가 각각 담긴 다섯 개의 통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열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캐비아들이 이렇게 있죠? 등급이 각각 달라 향도 다르고 맛도 다릅니다. 이 각각의


캐비아를 두 알씩, 총 열 개를 갈라놓은 새우에 담을 겁니다.”

그 동시에 방금 만든 뵈르블랑 소스도, 인간의 체온과 같은 36.5 도의 물에 진공포장해서 담가두었다.

새우의 속 안에 등급별로 모아 둔 캐비아를 모두 넣은 뒤, 만든 소스를 얹고 내 입에 넣었다.

“흠. 좋네. 추가해야 될 게…….”

새우의 향, 식감을 즐길 때쯤에 캐비아의 향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등급별로 다른 각각의 단계적인 맛을 뿜는 캐비아들.

나는 알고 있었으니 이 정도였지, 이 새우 안에 캐비아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응당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의 신선하고 충격적인 향이었을 것이다.

곁들인 뵈르블랑 소스도, 캐비아의 향과 결합되어 더 오묘한 맛을 만들어낸다.

그 동시에 터지는, 냉이 특유의 향긋함까지.

“이게, 첫 번째 메뉴입니다. 흠 세세한 맛들을 조정해야 할 듯싶지만, 프로토타입이요. 한 분씩 나와서


맛 좀 보세요.”

도제식 교육문화가 만연해 있는 주방에서 요리를 배운 터라, 반유현 팩토리 내에도 권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수들이 몇몇 보였는데, 지금의 현장엔 뒷짐을 지고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셰프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말을 끝마쳤을 땐 하나같이 후다닥! 뛰어나왔다.

나이, 경력 할 것도 없이.

역시나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최민성이 가장 빨랐고, 한 마리 새우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와……. 진짜.”

크게 감격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맛있냐.”

“하…… 네에…….”

88 화. 뜨거운 열기 (1)
하루에도 동시에 진행되는 일이 수 가지였다.

방금, 갈라디너를 함께할 셰프들에게 그 메뉴를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주고 최적화하는 것에 시간을


써달라는 말을 하고 나선, 1 층으로 내려왔다.

1 층엔 대조리실이라 불리는, 수많은 조리대가 놓인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은 입학식과 같은 행사나 요리


테스트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

그리고, 내가 그곳의 문을 열자 수많은 함성이 또 나를 반겼다.

너무 바쁜 와중에, 멘트도 길게 하지 않았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이곳, 반유현 팩토리는 세계 최고의 셰프 육성기관이며 저와


함께 요리문화를 끌어올릴, 최고의 동료를 만드는 곳입니다.”

우와아아!

사람의 수가 많아진 건 명확하게 보였다.

일단 지금의 함성소리도 이전과 달랐고, 반유현 팩토리 첫 회의 신입생을 뽑을 때에는 요리 테스트가


단번에 진행되었는데, 지금은 인원이 너무 많아 1 부, 2 부, 그리고 3 부까지 나뉘어 진행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3 부?”“네, 2 부로 나누려고 최대한 노력했으나, 수용이 불가능합니다. 불참자들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테스트 참석률이 너무 높습니다……. 그러나, 3 부에는 40 명 정도밖에 없습니다.”

“나 오늘 시간 안 되잖아.”

“조금 이따 오후에, ‘반유현-네이비’ 방문하시고, 최민성 셰프와 런던에 런칭 될 ‘반유현-브라운’


메뉴 구상 회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포시즌스 간부들과 ‘반유현-골목’에 방문…….”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스케줄이었다.

물론,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났다.

그만큼 이번 삶의 효율과 활력은 그 어떤 삶보다 강력하다는 것이었으니까.

일, 일, 일…… 그럼에도 웃음을 흘리는 내 광기(?)에 놀란 나머지 오스틴은 말을 더듬었다.

“나 밥 먹을 시간은 비워두고 스케줄 짜는 거지?”

“그, 그렇습니다.”

이 신입생들을 테스트하는 것을 다른 셰프나 교수, 직원들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나온 이유도 그


이유였다.

나보다 빠르게 심사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없으니까.

“3 부에 시험 칠 인원들도 모두 다 와 있는 거지?”

“예, 시키신 대로 시간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모두 같은 시간에 집결하라고 전달했었습니다.”

“그럼 됐어.”
교수들 또는 다른 셰프들이 이들을 심사했다면 이 심사 자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고 내가 지시한
다른 일들을 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갈라디너를 준비하는 일이나, 반유현 팩토리의 세프들을 가르치는 일이나, 반유현 골목의
매장을 관리하는 일 등…….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내 브랜드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면 할 일이 무수히 많을 것인데, 이 심사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엄청난 비효율을 초래한다.

그 비효율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기에 내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요리 시작!”

한 명의 교수가 무대 위에서 요리 시작을 외치자, 거대한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것도 필요 없어. 꺼.”

“예, 예에?”

곧장 타이머가 꺼졌고, 반유현 팩토리의 소속원이 되기 위해 요리 테스트를 하던 셰프들은 죄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요리를 멈췄다.

그러다, 내가 그들 사이를 지나다니고 나서야 타이머가 꺼진 이유를 알아차렸다.

“불합격.”

“네?”

“불합격.”

“엥?”

“불합격.”

조리대를 사이에 둔 복도를 걸으며, 그들이 서 있는 모습, 칼을 쥔 모습, 도마에 올려진 손, 재료를 물에
씻는 것, 또는 다듬는 것들을 보고 빠르게 판정을 내렸다.

“합격.”

“우, 우와! 가, 감사합니다아아!”

“여기도 합격.”

“꺄아아악!”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내가 지나가는 조리대의 셰프들이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합격과 불합격 판정이 난 셰프들은 이 교실 밖으로 나갔고, 2 부, 3 부에 테스트가 진행되기로


예정되어 있던 셰프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뭐, 뭐야?”
“엥? 너 합격이야?”

“넌 불합격?”

“시험이 이렇게 빨리 끝나? 요리는 한 거야?”

새롭게 들어온 셰프들은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혼비백산이었다.

그때에는 이 테스트의 보조로 뽑혔던 셰프들이 그들을 안내했다.

“비어있는 조리대에서 요리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1 부 테스트로 결정되어 처음 이곳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셰프들의 심사를 끝낸 뒤에, 나는 다시 새로


들어온 셰프들의 조리대를 돌기 시작했다.

“불.”

“불.”

“불.”

“합.”

이제는 그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단어도 완전히 말하지 않고 평가를 진행했다.

그렇게 ‘반유현-팩토리’는 나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내가 셰프들을 뽑는 것에 장난을 칠 리는 없고, 진심을 다 해 셰프들을 뽑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걸릴 심사를…….”

***

“올해 최소 여덟 개 이상의 미슐랭 스타는 얻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사, 삼 년 만에 열두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 로만이 물었다.

그에 대한 답이었다.

“넉넉하게 6 년? 7 년 안에 미슐랭 스타 30 개를 얻는 게 목표입니다만.”

매번 삶 20 년을 쏟아부어도 힘들었던 일이, 이번의 삶은 그 절반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전례 없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팔다리가 잘려나가지 않는다면, 적어도 10 년 안에는 30 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바, 반유현 셰프님. 10 개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들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로만이 특유의 존경스러움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진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사실, 올해 여덟 개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얻을 것이라는 계획은 어떻게 보면 보수적으로 예측한 것이었다.

포시즌스에 있는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 각각 최고 등급인 미슐랭 쓰리 스타를 받아도 이미 아홉 개가


넘어가는 수치였으니까.

더군다나, 현재 미슐랭 투스타인 레드 테이블, 더 파스타와 반유현이 쓰리 스타로 격상되어도 나는


추가로 하나씩을 더 얻게 된다.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구조인 레스토랑, ‘반유현-네이비’도 한 개 정도는 얻어 줄 수 있을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나는 로만에게 나의 계획을 보수적으로 말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선 올해 30 개를 얻어버리고 싶지만.’

당장에 시간이 부족하다. 앞으로 약 한 달 반 뒤면 미슐랭 평가 기간이 시작되고, 인력을 수급할 수가


없다.

믿지 못할 셰프들을 써서 내 브랜드 이름값의 가치를 떨어트리느니 여유를 갖기로 마음을 정했다.

“어떻게 올해에 여덟 개의 미슐랭 스타를 생각한다는 게…….”

물론, 다른 이들에겐 여유로운 생각이 아닌 듯했다.

“오, 오늘 아까 있었던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을 그렇게 뽑아도 되겠습니까?”

“네. 충분합니다. 사실 제가 그들의 요리를 맛보는 것은 일종의…… 팬 서비스였습니다.”

“예에?”

“아닙니다. 이해하기 힘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일정이 끝나면, 바로 런던으로 가서


갈라디너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포시즌스 간부들과 사장인 로만, 그리고 나는 ‘반유현-골목’에 도착했다.

포시즌스 측에서는 이곳을 본격적인 관광단지로 만들고, 그것을 자사의 이익으로 확실하게 구현하고
싶다는 뜻을 추진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동의한 일이고 그에 따른 이익들은 나에게도 관련이 되어있었다.

“이 거리에 있는 건물들을 구입해, 외부 공사를 해서 거리를 더 다채롭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요리와


더불어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구경할 것들이 있으면 이 거리가 비즈니스적으로 훌륭할 것 같은데.”

“반유현 셰프님의 동상도 하나 세우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돈 냄새를 맡는 후각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냄새를 맡아가며 어디서 돈을 만들어야 낼지 많은 안건들을 내던졌다.

우와아아아!

내가 차에서 내리자 또 인파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각각 ‘반유현-화이트 1, 2…5’라고 이름 붙어진 매장의 앞에 줄을 이룬 인사들이었다.


휴대폰을 꺼내더니 나의 사진을 마구 찍어대는데 이제는 이것도 적응이 되어 별 감흥이 없었다.

“기념품 가게를 만드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포시즌스의 간부 한 명이 말했다.

“기념품이요?”

“이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 맛을 보러 이 줄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게는 ‘반유현’


셰프의 요리, 또는 ‘반유현 셰프’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의
어떤 것을 상품화시켜서 이 골목에 그 가게를 만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로만도 꽤나 괜찮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간부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내 생각은 어떻냐는 물음이었다.

“기념품 좋습니다. 품목도 바로 떠오르네요.”

“어떤?”

경험상 알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대중들의 열띤 관심과 나를 상징하는 장소가 있을 때 그곳에 무엇을


팔면 효과적인 머니 플로우를 만들 수 있는지.

그에 따라 저들이 원할만한 정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새우 가루, 파프리카 가루, 표고버섯 가루, 다시마 가루…… 멸치 육수, 치킨스톡.”

천연 조미료, 또는 육수.

사람들이 예약을 하거나 줄을 서지 않고도 매우 간접적으로 나를 체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헉.”

“!!”

정답을 알았다는 듯이 간부들이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런 식료품 가게가 오픈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일단, 그에 관련된 계획을 수립해서 오시죠. 저는 일이 많아서 계획 수립하는 것에 깊이는 참여 못


하겠습니다.”

그에 따른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모두 내 머릿속에 들어있지만, 몸이 여러 개라도 부족한 지금 이 상황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저들에게 일을 시켜 속도를 조절할 생가이었다.

“셰프님, 이, 이거 아무래도 대단한 부자가 되실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
당장 다음 주, 갈라디너가 진행된다.

로또 육인방 중 한 명이었던 최민성은 갈라디너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반유현-브라운.’의 런칭을


준비했다.

내 밑에 있는 셰프들 모두가 바쁜 시점이었지만, 순서를 꼽으라면 그가 가장 바빴으리라.

“셰프님 말씀대로, 가장 최고급의 식자재만을 사용하는 코스가 좋은 것 같습니다. 갈라디너에서 선보일


요리와 바로 연결 지어 레스토랑으로의 유입을 늘릴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그래서, 이것들을 준비한 거냐?”

메뉴 테이스팅.

최민성과 그를 따르는 ‘반유현 팩토리’ B2 팀, B3 팀이 내 앞에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몇 주간 밤을 지새우며 내가 내린 메뉴 중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한 그들이었다.

“쥐치 간, 해삼 내장 같은 마니아층이 있는 별미를 가진 재료를 이용해 전채 요리로 했으며, 송이버섯,


안창살과 같은 귀하고 값진 재료를 주된 테마로 요리해봤습니다.”

‘반유현-브라운’의 색깔은 그렇게 정해졌다.

값비싸고, 먹고 싶어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재료들을 이용한 요리들.

돈이 많아도 최고의 맛을 쉽게 찾는 것이 어려운 요리들.

레스토랑 ‘반유현’ 내에선 가장 높은 가격의 메뉴들이 구성되는 것이었다.

“비싼 돈 받고 맛없으면 안 되는데. 알아?”

“알고 있습니다.”

“부담이 크겠네.”

“셰프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조금은 덜어냈습니다.”

내가 젓가락을 들자 최민성이 말했다.

“쥐치 간을 으깨 만든 소스, 거기에 고등어 숙회입니다.”

첫 번째로 먹을 요리를 지정해줬고, 나는 그것을 입에 넣었다.

그것을 씹자, 최민성의 표정이 순간 경직되었다.

“아직도 긴장해? 나한테 평가를 그렇게 많이 받아 놓고도.”

최민성뿐만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는 셰프들도 숨을 죽였다.

런칭까지 앞으로 일주일, 그 맛은…….

“좋네. 다음 요리는.”

89 화. 뜨거운 열기 (2)
최민성의 평가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세세한 맛의 차이들을 지적하고 매번 하는 것처럼, 오픈 직전의 메뉴 테이스팅 때 보겠다고 했다.

오픈 직전의 메뉴 테이스팅만이 남았다는 것은, 지금 당장 손님들에게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요리라는


뜻이었다.

“기대가 커.”

최민성이 듬직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주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든 것만 같았다.

물론, 기분만.

“캐비아를 품은 새우는 완벽하게 정리됐고, 다음 요리들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되나?”

루이비통 패션쇼 갈라디너의 메뉴들은, 이곳에 나와 함께 있는 열여덟 명의 셰프.

브랜드 ‘반유현’ 산하의 최정예 셰프들이 모두 숙지한 상태였고, 이제 그 동선을 짜는 일만 남았다.

메뉴가 어떤 것인지, 어떤 조리법과 재료가 들어가는지 모든 셰프들이 알았으니 업무를 분담하는 순서였다.

“캐비아를 품은 새우,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 푸아그라가 품은 안창살. 세 메뉴 다 숙지는 되었을


테고.”

처음 이 메뉴를 셰프들에게 말했을 때는, 로또 육인방을 제외한 교수들은 모두 의심을 품었었다.

세계 3 대 진미라 불리는 이 식재료들을 저마다 재료의 특성과 풍미가 강한 재료와 함께 요리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정답은 나의 것이었다. 알량한 10 년, 20 년의 경력으로 100 년의 경험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오답이었으니까.

“진짜…… 충격적인 메뉴들인데, 그 맛은 더 충격적이에요.”

“정말…… 그렇습니다! 제 요리 인생에 이런 메뉴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그 세 가지 메뉴를 먹고 놀랄 고객들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이, 어쩌면 매일 밤 런던에 모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파리의 모든 장사가 끝난 뒤에, 오후 여덟 시 오십 분 비행기로 매일같이 런던에 와 갈라디너의 합을


맞추는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 셰프들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들도 자신의 본업을 잠시 내려놓고, 밤이 되면 런던으로 모였다.

그만큼 이 행사가 자신들의 커리어에도 중요하리란 것을 알기에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 이 요리의 분업이 제일 중요해 트러플 향을 날리는 것부터 메추리 손질까지
들어가야 되니까. 헨리 잠깐 앞으로 나와.”

“예.”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 시연해봐, 구분 동작으로 끊어서 담당 업무를 정할 테니까, 새우를 나눴던


것처럼.”

헨리가 내 말에 대답을 한 뒤에는 곧장 메추리 하나를 조리대에 올려놨다.


능숙하게 메추리의 목구멍으로 메추리의 몸속에 있는 뼈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프랑스 전통방식이죠. 배를 가르고 봉합한 흔적을 보이지 않게, 어렵지 않지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가금류 손질에 능하신 분들이 이 부분을 맡아주세요. 바로 이전 메뉴인 캐비아를 품은 새우 단계에서,
새우 손질한 다음 수비드 했었죠? 그 역할을 한 셰프가 새우 수비드에 넣은 뒤에 곧바로 메추리 손질
들어가면 될 것 같네요.”

메추리의 몸을 가르고 봉합자국을 없게 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송로버섯, 트러플은 익히면 그 향이 빨리 날아가게 되는데 그것을 최대한 메추리의 몸속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메추리의 몸속에 넣을, 수분을 품은 뜨거운 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모두 방출하지 못해, 메추리의 살을 부드럽게 해주며 메추리의 몸을 갈랐을 때, 트러플의 향이 확
튀어나오는 연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왜 이런 식으로 메추리를 손질하는지는 아까 말해줬었고. 다음.”

헨리는 다음 단계의 요리를 시작했다.

양송이와 양파, 마늘을 볶은 팬에, 아보리오 쌀을 투입해 미리 만들어 둔 야채 육수를 붓는다.

야채 육수가 졸면, 와인을 넣어 풍미를 더 하고 파마산 치즈를 뿌려 고소한 맛을 더했다.

이 리조또는 메추리 안에 들어간 뒤 또 한 번 오븐에 조리될 것이기에 쌀의 텍스쳐를 너무 무르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한 트러플 오일을 곁들여 향을 돋운다.

“이것도 말했듯이, 트러플 껍질을 직접 기름에 재워서 만든 오일이에요. 진짜 트러플 오일이죠.”

곧장 리조또를 메추리 몸속 안에 넣고 오븐에 넣었다.

헨리는 동시에 새콤달콤한 포트와인 소스를 준비했다.

“과정들 보면 협업 동선이 나오죠? 리조또의 야채 육수를 맡은 셰프는, 이전 메뉴의 뵈르블랑 소스,


포트와인 소스, 다음 메뉴에서 쓰일 쥐치 간 레몬 폰즈 소스까지 하면 되겠네.”

메뉴 구성에는 이미 놀란 바 있고, 그 동선과 협업을 고려한 업무 분할까지, 셰프들은 마술쇼를 보듯이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로또 육인방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고, 나와 이번에 처음 일을 하게 된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들이


그랬다.

저들은 경력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주방을 통솔하는 능력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어야
되는지. 당연히,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줄 의무는 없었다.

“마지막 메뉴는, 푸아그라가 품은 안창살 스테이크인데, 푸아그라는 쥐치 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대규모의 행사에서 푸아그라라는 식재료를 쓰는 것은 크나큰 도박이다.

지방을 많이 함유한 거위 간을 만들기 위해, 거위의 목에 강제로 파이프를 껴놓고 만드는 푸아그라는 세계
3 대 진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잔혹성 때문에 이미 세계적으로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루이비통 컬렉션 패션쇼, 갈라디너, 세계적인 유명인들과 부호들이 많이 참석하는 자리에 괜히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푸아그라를 올리는 것 자체가 도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 어떤 논란도
있어선 안 되겠죠.”

실제로 지난 삶 동안, 이런 대규모 행사에 푸아그라를 대접해 대중들의 뭇매를 맞는 셰프들을 많이


봐왔었다.

지금까지 조금의 긁어 부스럼 없이 성장했으니, 앞으로도 논란거리를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재료가 바뀐 이유에 대해선 고객들이 요리를 먹기 직전에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갈라디너에 준비한 세 개의 요리 중, 그나마 간단한 요리였다.

소 한 마리에서 대략 2kg 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 안창살.

식감과 맛을 살리기 위해 각종 야채와 올리브유로 3 일간 마리네이드(marinate)해 숙성시켰다.

“육즙을 최대한 살려 구울, 그릴 파트가 중요한데. 아, 거기 셰프님, 두 분이 하기로 하셨구나.”

고기를 굽는 역할을 맡은 이 중 한 명은 국제 요리 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았었던 알베르였다.

대회가 끝나고, 반유현 팩토리 교수진 채용에 응했고, 교수로 채용되었던.

건너 건너로 내 귀로 들어온 바에 의하면, 자신이 처음 요리를 배울 때보다 ‘나’라는 인간 자체를


탐구하는 것에 깊은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어쩌면 로또 육인방 만큼이나 나에 대한 충성도가 높을지도 모르는 그였다.

“알베르 셰프님께서 이번 메뉴를 시연해 보시겠어요?”

알베르가 곧장 수족관에서 쥐치를 채로 잡아 도마 위에 올렸다.

푸아그라 대신 사용 할 쥐치 간은 마니아층이 두꺼운 별미이고, 신선해야 하기에 즉석에서 쥐치를 잡아


사용할 것이었다.

나는 또 메뉴가 시연되는 동안 각각의 셰프들이 해야 할 일을 집어 주었다.

알베르는 쥐치 간을 분리해내고 물에 살짝 데친 뒤, 채에 걸러 으깼다.

그리고 쯔유간장과 각종 향신료, 레몬을 곁들인 레몬 폰즈 소스에 으깬 쥐치의 간을 첨가했다.

“드셔보시죠, 알베르 셰프님.”

곧장 구운 안창살을 쥐치간을 으깨 만든 레몬 폰즈 소스에 찍어 먹는다.

구운 아스파라거스와 파프리카, 최고급 송이버섯은 가니쉬였다.

“제가 만들었지만, 최곱니다. 제가 그 대회에서 반유현 셰프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수준의


맛을 보지 못했겠죠.”

“행사장에서도 이 맛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이 이상을요.”


“예! 셰프!”

최고 연장자 셰프 알베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덕분에 다른 셰프들에게도 의지가 샘솟는 기분이다.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이, 충격적이고 신선한 맛을 빨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었다.

***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

런던시티 공항의 격납고를 통째로 빌려, 패션쇼의 현장으로 꾸몄다.

높은 천장과 드넓은 공간엔 모델들과 셀럽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화려하게 장식된 테이블에는 각각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 반유현 ]

나도 패션쇼에 초대된 인사 중 한 명이었고, 자리에 앉았다.

최민성과 헨리를 뺀 나머지 셰프들은 약 다섯 시간 뒤, 갈라디너를 준비하는 것에 열중했다.

나도 갈라 디너의 준비를 마무리하고 싶지만, 최소 한 시간 정도는 자리에 앉아 있어 달라는 루이비통사의


부탁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화려함뿐이었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부터, 그들을 밝게 비추는 조명들까지.

화려함의 대명사라 불리는 스타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나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사진 좀 찍어주시겠습니까 셰프님?”

유명 기업가부터, 가수, 패션모델 등 직업을 가리지 않고 내게 사진을 부탁했다.

수많은 모델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가져가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 분야가 아니라면 그저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최민성과 헨리, 제리는 그게 아니었는지 내 옆에서 자신들의 목에 매고 있는 검정 스카프를 서로


정리해주고 있다.

“반 셰프, 너무 멋있어요.”

언뜻 봐도 모델의 포스를 풍기는, 깊은 눈동자를 가진 백인 여성이 노골적인 표현을 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즐기는 것도 좋지만, 당장 갈라 디너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백인 모델을 시작으로 또 다른 모델들도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어색해서 앞만 보고 있는 그때, 중동의 남자들이 입는 옷인 칸두라를 입은 사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반 셰프님?”

“네, 안녕하십니까.”

아주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건 사내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우리 집, 요리사로 당신을 섭외하고 싶어서요.”

내가 피식 웃으며, 최민성과 헨리를 바라보자 최민성이 발끈하고 일어섰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우리 셰프님을 당신네 집 요리사로 섭외하고 싶다고?”

무시가 섞인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어우. 워워.”

사내는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최민성보고 자리에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아니, 정확히는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이다.

그때,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는데, 이 사내의 경호원인 듯했다.

‘중동이 국적……. 온 몸에 금 악세사리, 경호원을 동반, 명품 브랜드 패션쇼…….’

암만 봐도 산유국 거부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 개새끼가 어디다 대고.”

최민성은 그놈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씩씩대며 일어섰다.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네 부하? 이 친구는 왜 기분이 나쁜 거야? 우리 집 주방에만 수십 명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있는데,


너도 들어오라고 말하는 게, 기분 나빠? 웃기는 놈이네. 자존심만 세 가지고.”

“내가 얼마인 줄 알고.”

“얼마? 얼마가 어디 있어, 네가 원하는 자동차, 집, 여자, 돈 다 해줄게.”

기름 왕자, 돈에 한계가 없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또 처음이다.

90 화. 뜨거운 열기 (3)

세익 하이든 빈 모하메드 알리.

단숨에 말하기도 벅찬 그 이름의 주인공,

하이든 왕자라고 불리는 그는 UAE 의 왕세자였다.

이놈의 삼촌이 두바이의 가장 놓은 건물 부르즈 할리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다.

집안 자산 규모는 추정 불가, 기름 왕국의 사람들끼리 매형, 처제, 삼촌 하면서 가족을 맺고 있었으니까.


100 년의 인생을 살며, 돈에는 감각이 무뎌졌지만 이런 놈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원하는 거 있으면 다 해줄게, 우리 주방으로 들어와. 나랑 우리 가족을 위한 요리만 해줘.”

집안의 재산 규모로만 치면, 이 패션쇼를 개최한 루이비통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현실감이 있긴 하다.

“가장 필요한 게 돈 아니야? 조사 좀 해보니까 미친 듯이 사업을 벌이고 있던데.”

나와 하이든 사이의 묘한 기류를 느꼈는지, 주변 사람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대화가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 투자를 해주겠다는 건 좋습니다만. 그 싸가지가…….”

“!”

최민성과 헨리의 눈빛이 나에게 꽂힌다.

그가 아랍의 왕세자임을 알고 조용해진 최민성과 달리, 나는 그의 신분을 알고도 저런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있는데 돈이?”

“네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니까?”

워낙 망나니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미 사람들은 우리 둘의 구도를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순간 내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그 고민은 역시나 쉽게 끝났다.

매번 하던 대로.

“흠. 너 같은 새끼한테는…….”

그와 가까운 관계를 맺어, 그의 자본과 인프라를 사용하는 것이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될


듯싶지만, 아니다.

지금 나에게 돈이 더 많아진다고 해서 레스토랑을 더 빨리 런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이 인생에 목적이 아닌 이상, 이런 놈이랑 엮이는 것 자체가 내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속도를
뒤처지게 할 수 있다.

100 년의 삶 동안 수많은 재벌가 놈들이랑 관계를 맺어왔으나 실질적인 도움을 얻지 못했던 경험도 그랬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의 실력이다.

또, 나에겐 내 의견에 전혀 태클을 걸지 않는 포시즌스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기도 했다.

“뭐?”
“꺼지라고. 내 시간 뺏지 말고.”

점점 내 주변으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포착했는지, 내 경호원들이 보충되어 나를 둘러쌌다.

내 앞에 있는 이놈이 가진 경호원보다 많은 인력이었다.

나의 태도, 달라지는 주변 분위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기야, 이런 대우를 어디 가서도 받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너 같은 쓰레기 새끼한테 내 요리를 대접하기 싫은데.”

“뭐? 푸하하하하!”

갑자기 휴대폰을 든, 하이든이 어딘가 전화를 건다.

“어. 나야, 오늘 반유현 갈라디너 다 취소해! 없던 일로 해버려!”

“하, 지랄은.”

뭐, 이 패션쇼의 관계자나 루이비통사의 고위급 간부랑 통화를 했나 보다.

그런데, 이 행사장 내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뭔데! 갈라디너를 없애라 마라야!”

“반유현 갈라디너 때문에 여길 왔는데, 헛소리하고 있네.”

“우웩! 별꼴이야!”

“행사장 분위기 망치지 말고 좀 꺼져요!”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하이든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금니를 꽉 깨문 하이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를 옮겼다.

***

하이든 왕세자는 430 만의 팔로우를 보유한 SNS 스타였다.

슈퍼 다이아 수저에, 관심종자 끼가 다분한 그의 성격 덕분이었다.

[ 세계 최고의 셰프로 초대한 이가, 고작 트러플, 캐비아, 푸아그라? 세계 3 대 진미를 꺼내놓고 그걸


요리라고, 갈라디너라고 말한다……. 우리 집에 있는 내 요리사들이 더 훌륭하지 않을까. ]

최민성이 나에게 게시글을 보여줬다.

“제가 가서 후려치고 올까요? 합의금은 셰프님이 좀 보태주시면…….”

나도 그가 하는 짓을 보아하니 당장 달려가 광대뼈를 후려치고 싶지만…… 후. 100 년을 사니까 사람이


원초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댓글들은 나쁘지 않습니다. 셰프님을 옹호하는 댓글들이 더 많네요. 워낙 망나니라 불리던


인물이라서요.”
-ㅋㅋㅋㅋㅋ 이 망나니형 저기가서 또 진상 짓 하고 있네.

-반유현이랑 자기네 집 주방 셰프들을 비교하는거?

-주방에 있는 셰프들이 미슐랭 스타 세프들이래요.

-푸아그라에서 쥐치 간으로 바뀌었다는데, 메뉴도 모르고 나불대는거 보면 ㅉㅉ

-뇌가 현찰로 가득 찬 듯ㅋㅋㅋ 차라리 그 갈라디너 입장권 나한테 줘라 행복하게 좀 먹게.

관종, 돈지랄, 망나니짓으로 팔로워를 모았던 터라 대부분의 반응들은 나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막 한 시간 남은 갈라디너를 준비하고 있을 때에, 루이비통사의 총 경영자인 마이클 바크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셰프님. 저희 입장도 고려를 좀 해주셔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이든 왕세자, 저놈이 내 갈라디너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와 관련해 제대로 일 처리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제가 힘이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셰프님. 이번만…….”

매번 혁신을 외치고, 어디 가나 존경을 받는 경영자가 그렇게 고개를 숙이니 괜스레 내 마음도 미안해졌다.

기업가인지라, 거대한 자본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나 보다.

아무런 죄가 없는 그가 간절하게 사과를 하며 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놈이 내 요리를 먹는


것을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저놈이 내 요리를 먹고 어떤 짓을 할지 뻔히 보이니까 큰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내게 좋은 기회가 될지도.

패션쇼 현장에 차려진 갈라디너 주방, 밖을 내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패션쇼에 초대된 사람들 중에서도 VVIP.

루이비통사가 진정 신선한 충격의 경험을 선보이고 싶은 사람들만을 모았다.

영국 왕실의 사람들도 몇몇 보였고, 패션에 관심이 있는 기업가들,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준비됐지?”

“예!! 셰프!”

우리 셰프들의 대답 소리가 밖에도 들렸는지, 홀에서 환호 소리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셰프들의 엔돌핀을 돌게 하는 소리였다.

***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깔리더니, MC 가 나와서 행사를 진행했다.

MC 는 미슐랭 12 스타를 가진, 제임스 하몬이었다.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인사드리겠습니다.”

짝짝짝짝.

두껍고 낮게 깔린 목소리는 이 행사장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이곳에 앉아 있는 손님들도 환호를 지르지 않고 작은 소리로 박수만 치는 것도 그랬다.

제임스는 여러 가지 인사말을 내뱉은 뒤에, 곧장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후우우웅!

그때, 이 갈라디너 현장의 주방으로 보였던 공간, 주방과 홀을 분리하고 있던 벽이 사라졌다.

조립식 벽을 행사진행 요원들이 빠르게 분리하는 방식이었다.

“!”

그리고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조리복,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셰프들을 중심으로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셰프들이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우와아아아!

그 대열의 중심에 반유현이 있었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아까 MC 인 제임스 자신을 소개할 때의 점잖은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열을 갖춰 서 있는 셰프들 모두, 한 번쯤 방송이나 언론에서 비춰줬던 스타 셰프들, 더군다나 로또


육인방이라 불리는 저들은 반유현의 칼잡이라는 다른 별명으로도 불리며, 이 업계에 수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자들이었다.

“뭐야! 알베르 셰프님!”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알베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했다.

“카슬로 셰프님! 어? 저 셰프는…….”

라인업 자체로도 놀라는 사람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는 반응들이다.

반유현은 고개를 한 번 더 숙인 뒤에 요리를 시작했다.

‘뭐야, 확실히 다른 건가.’

제임스는 반유현이 세계 3 대 진미를 이용한 요리를 한다고 해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줄 알았다.

VVIP 들 앞에서 선보이는 요리인지라,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것 말고, 세계 최강의 식재료를 세계 최고의
신선도를 살려 접시에 이쁘게 내놓아 호평을 받는 것이 그의 신상에도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미 반유현의 이름값은 그가 계란 노른자 위에 트러플을 올려놓아도 사람들은 박수를 쳐줄 정도였으니까.


‘대체 뭔데.’

그런데, 미슐랭 12 스타를 가진 제임스가 보기엔 지금 주방을 움직이는 반유현과 셰프들의 몸 놀림은 그런
편안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의문점들이 제임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 마침 주방에서 콜-벨이 울렸다.

띵!

약속된 대로 MC 인 제임스는 메뉴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캐비아를 품은 새우라는 메뉴입니다!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새우, 그리고 뵈르블랑 소스를 곁들여
새콤달콤한…….”

그런데 그때, 설명을 끝마치기도 전, 사람들의 충격적이고 즐거운 표정들, 그리고 탄성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대본에 적힌 대로 메뉴에 대한 설명을 마저 끝내고, 자신의 앞으로 배달된 ‘캐비아를 품은 새


우’를 입안에 넣었다.

“하.”

자신이 봤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 요리를 한 입 씹었을 때, 저절로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촉촉하고 통통한 새우의 살과 풍미는, 물에 데치거나 구워서 만들 수 없는 맛이었다.

그리고 이 요리의 온도, 입안에 퍼지는 따뜻함은 반유현 셰프가 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느껴졌다.

인간의 체온인 36.5 도, 캐비아의 향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온도이기도 하다.

새우의 향과 풍미가 느껴질 때쯤, 캐비아 특유의 향이 입안을 덮쳤다.

‘뭐야.’

충격적이었던 것은 캐비아의 향이 완연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 번에 풍기는 것이 아닌, 씹을 때마다 달라지는 향.

‘설마.’

저도 모르게, 이 맛을 어떻게 냈는지 상상이 된다.

캐비아의 짠맛이 올라올 때쯤엔 뵈르블랑 소스가 그것을 중화시켜주었다.

그야말로 환상, 제임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재력으로나 명성으로나 이들에겐 캐비아라는 식재료가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진 않을 건데, 이들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무 숟가락, 크래커, 계란 위에 올려 먹는 캐비아가 아니라, 진정한 캐비아 ‘요리’가 뭔지 알 수


있었다는 것.

띵!
그 여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주방에서 또 한 번의 벨이 울렸다.

“어, 어…… 다음은!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입니다!”

호우우우!

우와아아아!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이전보다 강해졌다.

그와 동시에, 언뜻언뜻 사람들의 욕심이 보이기도 했다.

다들 하이든 왕세자의 반유현 셰프를 갖고 싶다던 욕심이 이해가 된 탓인지, 그를 연민의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의 속마음은 모두 비슷했을 것이다.

‘세계 최대 부호가 돈으로 반유현 셰프를 얻는 것에 실패했다……. 그럼 어떤 걸 제시해야 되지.’

세계 최고의 VVIP 들을 모아놓은 자리인지라,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랐다.

이 충격적인 경험을 이용할 비즈니스들이 무수히 많이 떠올랐던 것이 그렇다.

“반유현, 대단하군 정말.”

91 화. 뜨거운 열기 (4)

이 행사 자체가 또 어떤 반향을 일으킬 것인가.

‘트러풀을 품은 메추리’라는 메뉴 또한 앞선 메뉴와 같이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나이프로 메추리를 가르자, 트러플의 향이 순간 훅!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그 향에 매료되어 곧장 리조또를 먹은 사람은 감탄을 내뱉었다.

“캬…….”

고소한 풍미, 부드러운 쌀알들이 입안에서 트러플의 향을 은은하게 만들어주었다.

또 쭉쭉 찢어지는 메추리의 살은 리조또와는 다른, 고소한 풍미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브라보!”

이 갈라디너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먹었던 트러플이 이렇게 조화로운 요리가 될 수
있구나를 느낀 것은 당연하고, 지금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이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오페라나 뮤지컬, 그것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들이 서로


동조하면서 점점 절정에 치달았다.

“불호인 사람이 없나.”

요리라는 게 원래, 개인적 주관과 취향이 확실하게 담기는 것인데.

불만족을 표현하는 사람이 없던 것은 이 감동과 충격의 분위기에 동조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사회를 맡은 제임스는 이 상황을 최대한 냉철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주방에 있는 셰프들의 저 모습은…….’

오픈 형식의 주방에 그 안이 보였는데, 셰프들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공장에서 어떤 물건을 찍어내듯이 한 치의 오차, 또는 불량품을 내지 않을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저 동선과 분업을 누군가 짜놨을 것이라는 것.

누군가라 한다면 분명 이 주방의 총책인 반유현일 것이다.

‘그것도 베테랑 셰프들을…….’

경력 10 년이 넘는 셰프들, 저마다 자신의 노하우가 몸에 배어 있는 셰프들을 어느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저렇게 한 공장의 부품으로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단 말인가.

더군다나 본인도, 슈퍼 스타 셰프라 불리는 반유현 본인도 적잖이 녹아들어 주방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셰프들을 받쳐 주고 서브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3 년 경력은 말이 안 된다.’

미슐랭 12 스타인 제임스, 본인 스스로가 주방을 부드럽게 조화시키고 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반유현의 주방에서의 움직임이 민감하게 느껴졌다.

띵!

마지막, 종소리.

쥐치 간이 품은 안창살.

사람들은 궁금함을 못 참고 테이블에 접시가 내려지자마자,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음!”

“흠!”

들려오는 감탄의 신음소리.

안창살의 육질과 쥐치간이 으깨어 들어간 레몬 폰즈 소스가 만났다.

이 맛에서는 ‘만났다’라는 표현을 강조해야 한다.

육류와 생선 간의 풍미가 겨루지 않고 함께 가는 듯한 맛. 그 조화가 입안에서 터져 나왔다.

‘와……. 이런 맛은……! 어?’

맛을 한껏 느낀 제임스의 머릿속에, 이 장소에 있는 VVIP 들과 똑같이, 그와 접점을 만들고 싶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푸아그라가 아닌 쥐치 간을 썼다면, 나와 공통의 관심사가 있을 수도 있겠어.’

***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이라는 단어가 장내를 울려 퍼졌다.

그때, 헨리가 나에게 귓속말로 말을 건넸다.

“큭, 셰프님. 패션쇼의 피날레보다 반응이 커서 어쩝니까?”

“조용히 해.”

앵콜이란 단어와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행사 진행 요원이 나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줬다.

“깊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저와 저희 셰프들 모두 대단히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앵콜! 앵콜! 앵콜!

패션쇼, 그리고 갈라디너가 시작되기 전 온종일 점잖은 척을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모든 사람들이


내 말을 끊고는 앵콜을 외쳐댔다.

그만큼 내 요리가 신선했고, 행복했다는 증거 아닐까.

“앵콜 요리는…… 당연히 준비했습니다.”

사실 준비하지 않았다.

내 말에 나의 옆으로 서 있던 셰프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동요했고, 저 멀리 사회자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가 받은 대본의 순서에는 앵콜요리가 없을 테니까.

그 외에 행사를 진행하던 사람들조차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쥐치 간을 품은 안창살을 할 때, 가장 신선한 쥐치의 간으로 소스를 만들고 싶어서 수족관에


살아있는 쥐치를 잡아서 사용했었습니다. 저희 주방을 유심히 본 분들은 아시겠죠.”

앵콜 요리가 나올 것이 확정되자, 가만히 나의 말에 집중하는 사람들이었다.

“간을 빼내고 남은 쥐치를, 내일 오픈할 ‘반유현-브라운’에서 전채 요리로 사용하려고 냉장


숙성시켰는데 지금 조금 빼다 써야겠습니다.”

우와아아아!

내 요리에 완전히 홀릭된 사람들에게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도 있고, 내일 런던에서 오픈되는 ‘반유현-
브라운’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내 말에 셰프들이 곧장, 냉장고에 있는 쥐치를 가져왔다.

껍질과 눈, 모든 것이 그대로 붙어있고, 내장, 그중에서도 간만 빠진 쥐치가 나무 상자에 담겨 있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와주세요.”

조리대 하나를 홀 가운데로 옮겨 놓고 나는 쥐치의 손질을 시작했다.


찌이이익! 찍!

손목의 스냅으로 순식간에 쥐치의 껍질을 벗겨 내고, 날카로운 칼로 미처 벗겨지지 않은 근막들을


걸러냈다.

그리고 뼈와 살을 분리하기 위해 포를 뜨기 시작했다.

수우욱! 수우우웅!

우와아아아!!

여기까지는 평범한 손질법과 같았다.

진짜 내공은 이제부터였다.

슥! 슥! 슥!

나는 다른 결, 다른 크기로 세 점의 살을 베어냈다.

그리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사람 한 명을 지목했다.

이 행사장의 사회자였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맛에 대한 전달력이 좋을 것 같아서 지목했다.

“이 세 점을 한번 드셔보시죠.”

내가 도마 위에 올려놓은 순서 차례로 입에 집어넣은 사회자가 입을 가리더니 매우 놀랐다.

“컥!”

뭐야!? 왜 저래? 왜?

다소 과장스러워 보이는 그의 액션에 사람들이 웅성댔다.

내가 보기엔 저 정도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요리에 대해 깊은 지식이 있어 보였다.

내가 마이크를 그에게 건네자, 그가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 스시, 사시미 장인들이 칼의 결과 그 질에 따라 맛을 달리한다고 알고 있긴 있었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있나……. 세 점의 식감과 맛이 모두 달랐습니다.”

그의 그런 반응에, 의심스러워하는 목소리들도 여럿 들렸다.

방금 회를 먹은 사회자가 오바스럽긴 했으니까.

“짜고 친 거 아니에요? 하하하하!”

“에이! 설마! 같은 물고기 같은 소스인데?”

마술쇼를 보는 현장처럼 분위기가 바뀌어 간다.

“그쪽 분 나오시죠.”

세계적인 여성 모델로, 나와 전혀 커넥션이 없을 것 같은 여성을 지목했다.


“오늘 처음 뵙죠?”

“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델, 사람들도 그제서야 인정했다.

“드셔보시죠.”

내가 또 쥐포의 살을 세 점으로 썰었다.

첫 점은 매우 얇게, 종잇장과 비슷한 굵기로.

두 번째 점은 칼날을 내 손에 지그시 누른 뒤, 차가운 칼날의 온도를 조금 뺏은 뒤에 얇게.

세 번째 점은 칼날의 결을 달리해서 얇게.

“으잉?”

모델이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자, 사람들의 호기심이 매우 올라가기 시작했다.

“진짜예요?”

“진짜야?”

우오오오!

그리고 나는 한 점을 더 썰어 그 옆에 있던 할리웃 남배우에게 건넸다.

“이 소스를 찍어 드셔보시죠.”

쥐치 간을 베이스로 한, 레몬 폰즈 소스에 방금 썬 쥐치 회를 찍어 먹었다.

이를 밀어내는 듯한 탱글한 식감, 그리고 살 자체의 고소함이 쥐치 간 특유의 향과 함께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마지막 향긋한 레몬의 향이 입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며 탄성을 내뱉게 했다.

“와우.”

그의 리액션까지 확인한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자리에 앉아 계시죠. 모두에게 회를 썰어 드리겠습니다.”

이 갈라디너에서 보여줄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이 열기가 내일 있을 ‘반유현-브라운’에도 이어지길 바라면서.

***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사회자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악수를 건네어 손이 아플 지경이었는데, 그 모든 행렬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다가온 이였다.

내 손에 쥐어진 명함 뭉치를 보더니, 멋쩍은 미소로 말을 건넸다.

“아셨을 수도 있지만, 저도 셰프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미슐랭 스타 12 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 네.”

역시나, 내가 썰어준 쥐치 회를 먹고 엄청난 충격을 받을만한, 요리에 대한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미슐랭 스타를 가졌다는 것을 말하는지는 몰랐다.

뭐, 친구라도 하자는 건가, 내가 다소 냉소적 태도를 보이자 곧장 말을 이었다.

“하하. 뭐, 제 자랑을 하자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예.”

“어……. 푸아그라 대신, 쥐치의 간을 이용하셨는데, 동물 사랑이나, 동물의 생명권 존중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지?”

다들, 자신의 업장을 한번 방문해 달라, 자신의 요리를 맛봐 달라, 파티에 방문해 달라, TV 쇼에 출연해
달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달라……는 둥, 나를 이용할 수 있는 개인적인 욕망들을 꺼냈는데
제임스라는 이 사람은 다른 얘기를 꺼냈다.

전혀 예상 밖의 얘기였다.

“하하……. 음, 제가 그런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다른 이들처럼 나에게 명함을 건넨 제임스는 제 갈 길을 가다가 다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아. 정말 최고의 요리였습니다. 제가 가진 별을 다 드리고 싶을 정도로. 오늘 저녁이나 내일…… 또


난리가 나겠네요.”

***

제임스, 그가 예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이 정도 난리가 날 것은 알고 있었다.

‘반유현-브라운’이 런칭 되는, 런던 해러즈 백화점 앞 사거리는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빠아앙!

이 혼잡한 교통체증이 모두 나의 탓이라면, 딱히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갈라디너의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오픈 직전의 메뉴 테스트가 끝나고 문을 열어 손님을 받기 정확히 한 시간 전의 시점이었다.

“오우…….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들부터, 왠 기업가들도 줄을 서고 있다던데.”

“레스토랑 반유현은 대리로 줄 서기가 안 되니까 큭큭.”

모델들과 연예인들, 그리고 각종 기업인들이 줄을 서고 있는 광경이 진풍경이었다.


오픈 당일은 어플을 통한 예약 서비스가 불가하기에, 모두 직접 줄에 서기 위해 나와 있던 것이다.

덕분에 그들을 보러온 팬들에 의해 백화점 자체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성공적인 런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딘가 갈증을 느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셰프님? 이 정도면 대단한 것 아닙니까?”

내 이름값이 점점 거대해지고, 강력해지고 있는 와중에 이정도 손님들의 행렬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한 거잖아. 이 정도는.”

“다, 당연요?”

“이 거리 전체가 사람으로 꽉 찰 줄 알았는데.”

“이, 이 정도면 꽉 찬 거 아닙니까? 더군다나 이곳은 레스토랑 ‘반유현’ 중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취급하는 곳인데…….”

내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정도의


행렬은 그 증가를 표현해 주지 못했다.

물론, 주변 어느 레스토랑을 찾아봐도 이 정도의 인파를 동원한 곳은 없었지만.

“갈라디너에 의해 유럽 내 VVIP 들 사이에서 입소문은 났지만, 제대로 된 홍보가 되지 않았어.”

“예?”

“런던 시내를 사람들로 터트리려면 어떤 식으로 홍보해야 될까.”

내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셰프들이 서로 눈동자를 굴렸다.

92 화. 뜨거운 열기 (5)

털썩.

‘반유현 - 브라운’의 주방 총괄을 맡은 최민성이 홀에 주저앉았다.

“파리에 있는 모든 레스토랑 중에서 최대 매출이야. 축하해 최 셰프.”

“감사합니다!”

‘축하해’라는 말에 다시 벌떡 일어나 나의 손을 잡는 최민성이었다.

“매출도 매출인데, 유명 인사들이 너무 많이 왔네요. 싸인이라도 다 받아서 걸어 놓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동네 맛집도 아니고 싸인은 뭐야. 추잡스럽게.”

“죄송합니다.”

유명 인사들이 자신들의 파티에 게스트로 와달라는 말이 제일 많았었다.


패션 모델들, 할리웃 배우들, 기업가 사교모임 등 런던 내에 많은 모임들이 있나 보다.

“너도 이제,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셰프 중 한 명이야, 올해 여기서 미슐랭 스타를


받는다면 미슐랭 스타 셰프로 거듭나는 것이고.”

“충성! 반유현 셰프님께서 신화를 써 내려가는 것에 한몫하겠습니다.”

“너 한눈팔지 말고 당분간 여기 콕 박혀있어. 모델들하고 술 먹고 사진이라도 찍혔다간…….”

“예! 셰프! 이, 스타들한테 받은 명함들은 나중을 위해…… 일단 정리해 놓겠습니다.”

화끈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놈이라, 언질 줬다.

그리고 나는 한 장의 명함을 손에 들었다.

[ STOP SHARK FINNING, 상어잡이 반대운동, 상어 보호에 동참하세요! ]

[ sharksavers 조직위원장 - 제임스 하몬 ]

“에? 이 명함은 뭡니까 셰프님?”

“샥스핀, 푸아그라 먹지 말라고 운동하는 모임이래.”

“제임스 하몬? 미슐랭 스타셰프 아닙니까?”

“맞아.”

최민성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서렸다.

“왜.”

“아니……. 다음 달 새 메뉴는 중화풍으로, 샥스핀하고 제비집을 이용해 보려고 했는데.”

최고의 맛을 찾는 셰프들이 간과하는 것이, 이용하는 식재료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냐 였는데,


최민성도 그런 부류였다.

“푸아그라는 거위의 목에 강제로 파이프 꽂아 음식물 넣어서 간을 살찌우고, 샥스핀은 상어 지느러미만


잘라서 상어를 물에 던져, 상어는 헤엄을 못 치고 바다 밑바닥에서 산채로 익사해 죽고.”

“아…….”

“물론 맛은 있지. 그런데, 대중들이 우릴 보는 시선도 신경 써야지 이제, 회사가 점점 커지니까.”

“그럼……?”

“그래, 이 레스토랑의 모토로 삼자고.”

그랜드 오프닝이나 SNS 챌린지와 같은 홍보 수단, 그리고 방송에 너무 많은 모습을 비췄다.

조금은 더 공적으로, 공공의 일을 하는 모습도 보여 주면서 레스토랑의 홍보까지 챙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레스토랑의 테마가 뭐냐.”

“어디서든 먹기 힘들고, 가장 비싸고, 최고급의 재료를 사용하는…….”


“하필 그 중엔 잔혹한 음식들이 많아, 샥스핀, 푸아그라, 곰 발바닥, 자라 냄비 탕, 원숭이 뇌…….
미식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야,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잔혹함을 무시하기도 했지.”

“그러고 보면 사실 간장게장도…… 살아있는 게를 간장에…….”

“…….”

“죄송합니다.”

잔혹함을 무시하는 대가인지, 소위 고급요리라 불리는 것들엔 내가 방금 말한 재료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재료들을 절대 쓰지 않고, 최고의 식재료를 찾아내 최고의 맛을 낼 것이다…….”

“샥스핀, 푸아그라, 멧새…… 이런 걸 다 빼고요?”

“어, 그렇게 움직이는 게 레스토랑 이미지에도 좋고, 내 이미지에도 좋아. 여지껏 대중들한테
비즈니스적인 면모만 보여줬으니까. 이젠 나도 내 영향력을 신경 써야지.”

“아…….”

“물론 그와 더불어 홍보까지 하는 거고. 내가 직접 나서서 손님들 확 몰아 줄 테니까, 메뉴 잘


준비하고.”

“예! 셰프!”

최민성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물론, 알지? 손님의 양, 매출보다 맛이 중요하다는 것.”

“예! 셰프!”

“잊지마, 이 레스토랑 목표는 미슐랭 쓰리스타야.”

“에, 예! 셰프!”

***

“깊게 관심 가져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셰프님. 셰프님 덕에 저희 캠페인이 확실히 불이 붙을 것


같습니다.”

나는 다음날 곧장 제임스를 만났다.

제임스는 인간의 쾌락을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잔혹하게 죽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도 셰프로서 이해는 합니다. 맛이 주는 쾌락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실제로 저번 루이비통 패션쇼
갈라디너에서 셰프님의 음식을 먹고는……. 하하하.”

“네.”

“실제로, 많은 셰프님들께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참석하기도 합니다.”

내가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서 그랬는지, 내가 이곳에 제 발로 찾아온 이유를 이것저것 찔러보는


제임스였다.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값이면……. 사실 이 캠페인 자체를 광고하는 모든 것들을 끊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만한 힘이 될 테죠……. 그런데, 반유현 셰프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뭐, 평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에도 좋은 것 같구요.”

어쭙잖은 거짓말이나 핑계로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것보다 저쪽에서 먼저 오픈을 했으니, 소극적으로나마 내
의도를 전달했다.

서로 솔직해야 가장 많은 효율을 낼 수 있는 것이니까.

“저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어 좋고 셰프님께서는 그에 따른 이익을 알아서 챙기시면 될 것


같네요.”

그렇게 서로 의견을 확인하고, 당장 이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뭔지 물어봤다.

“가장 먼저, 저 스스로 그런 재료들을 사용하지…….”

의견 전달이 제대로 안 됐나, 시시한 이야기들을 하길래 피식 웃어 보였다.

그제 서야 제임스의 마음에 내 생각이 전달되었나 보다.

“돈이 요즘 모자랍니다. 샤크세이버스의 많은 지사를 차리고 직원들을 꾸리는 것에……. 캠페인을


강력하게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기부금 같은 것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나요?”

“들어와도……. 세계적인 규모로 추진해야 되다 보니 또, 이 운동 자체에 반발하는 세력들이 있어 예산이


쓰이는 게 한두 푼이 아닙니다.”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해주면 뭐든 끝나는 것 아니겠나.

“마침 해결 방안을 강구하던 중, 반 셰프님께서 연락을 주셨네요! 하하하하!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해결방안이 뭡니까?”

“현재, 이 캠페인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여럿 유명인사분들이 참여하고 계신데요. 1:1 식사 경매를 해서


그 수익금을 이용해 재단 운영에 필요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1:1 식사 경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가 시작한 그 아이디어를 이용해, 예산을 만들고 있단다.

나를 예로 들면, ‘반유현과의 1:1 할 수 있는 기회’를 경매에 부치는 것이다.

“가장 높았던 금액이 얼마입니까?”

“165 만 달러로, 할리웃 여배우 니콜라 왓슨이었습니다.”

한화로 약 20 억.

그녀와 식사 한 끼를 하기 위해, 20 억이 넘는 돈을 지불했단다.

“누가 그 돈으로 밥을 먹습니까?”

“니콜라와 식사를 한 사람은, 중국의 대부호였습니다. 금 광산이 있다나…….”


“그렇게 번 돈을 전부 기부한 것이군요 니콜라라는 여배우가?”

“그렇습니다. 다음은 NBA 의 영 선수가 할 건데, 얼마가 나올지 저도 궁금하네요.”

할리우드 배우, NBA 농구 스타, 배경 그림이 좋다.

“그다음으로는 제가 하겠습니다. 일단 1 억 원 기부로 온도 좀 올리겠습니다. 예열이요.”

***

[ 반유현 셰프! 1 억원 쾌척. 잔혹한 식재료 사용하지 않아! ]

[ 본인의 영향력 생각, 사회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 ]

[ 날카로운 사업가의 면모 내려놓는, 따뜻한 반유현 셰프! ]

[ 1:1 식사 자선경매 참여! ]

수많은 기사들이 올라왔고, 나는 고민했다.

과연, 내 이름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나와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는 것에 수억 원을 쏟을 사람이 있을까?

아, 물론 있을 것이다. 내 파워풀한 사업 방식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기업가들이나 셰프들.

그런데, 그것만으로 확실한 이슈화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 공공의 캠페인이지만, 난 내 이익을 위해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매번 그래왔지만,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최고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이 캠페인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니까.

“직접 식사까지 내가 만들어 대접해준다고 전해라.”

“예?”

“일대일로, 원하는 요리를 해준다고 해.”

이 정도 경험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되지 않을까.

제임스가 조직 운영장으로 있는 ‘샤크세이브’는 대환영의 의사를 전했다.

그저 ‘식사’로만 경매가가 정해지는 할리웃 배우와 농구스타는 가질 수 없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었으니까.

경매 과정은 모두 비공개이며, 웹상에 자신이 원하는 입찰 금액을 적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입찰하려면 여러 가지 인증 절차를 거쳐야 되는 것도 당연하다.

[ 반유현, 일대일 식사권 경매에 초강수! ]

[ 반유현, “원하는 요리를 대접해 주겠다.” ]

[ 그의 긍정적인 운동에, 너도나도 샤크세이브 운동 참가! ]


[ 전 세계로 퍼지는 샥스핀, 푸아그라 불매 운동! ]

“셰프님, 입찰 인증을 거치는 회원 자체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과의 식사가 얼마였다고?”

“54 억입니다.”

“내 가치가, 그 정도가 될까? 안될까?”

***

경매 입찰 결과 공개가 있는 날.

수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나와의 식사를 원했는지, 언론플레이까지 시작했다.

[ SS 프렌차이즈, 대표. “반유현 셰프와의 식사 위해 30 억 배팅.” ]

“기사로만 보면, 이미 할리웃 여배우는 이기셨네요.”

“의미 없잖아, 기사는. 실제로 30 억을 배팅한 것도 아닐 테고.”

“발표까지 한 시간 남았습니다. 그 전에 이것 좀 확인해주시죠 셰프님.”

오스틴이 보고서 뭉치를 나에게 건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인데, 요약한다고 요약했으나…….”

“입으로 불러봐.”

“포시즌스와 함께 진행 중인 식료품 및 천연 조미료 사업, 그 공장 설립에 관한 건이 하나 있구요.


반유현 팩토리의 신입생들의 교수 채용에 관한 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리고……. 미슐랭 평가시작
시점까지 약 한 달이 남았습니다.”

미슐랭 평가 기간까지 한 달…….

심각한 고민이 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라면, 현재 상황과 인프라를 봤을 때, 어렵게, 어렵게 한다면.

하나의 레스토랑을 더 차리는 것이 가능하다.

최대한 빨리 미슐랭 스타를 얻어야 되는 것이 내 목표였으니, 무조건 런칭을 하는 것이 맞을 수 있을 것


같으나, 미슐랭은 맛과 서비스가 모두 만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많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여러 사업들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맛을 유지하고 신경


쓰는 것이 어려웠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도 모두 빼다 썼고, 사실 셰프들이 모자란 것도 사실이야.”

반유현 팩토리의 인력들은 연이어 런칭된, 반유현 화이트, 네이비, 브라운에 모두 사용되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무한한 인력수급을 위해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했건만, 인력이 있으니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 딜레마가 생겨버린 것이다.

“이미 운영하고 있는, 각 업장에서, 셰프들을 데려다 쓰는 건…….”

“그건 안돼. 이제 곧 미슐랭 평가가 시작되니, 굳히기에 들어가야 하니까.”

“흠……. 포시즌스 측에서도 셰프의 인력에 대해선 어찌할 수가 없는 거라.”

그때, 언제나 그렇듯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으로 가면 되겠다.”

백원종이 있다.

대한민국 최대 외식 업체를 운영하는.

“그쪽하고 지분 섞어서 최고급 셰프들을 쓰면…….”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여어! 반 셰프. 무슨 일이야! 하하하하.

“잘 지내셨죠?”

곧장 본론을 얘기하려 했을 때, 백원종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어! 이야! 나도 자네와 식사 경매에 장난으로 넣어봤거든?

“예?”

-아니…… 81 억은 뭐야 대체? 누가 이런 돈을 자네하고 밥을 먹겠다고 허, 참…….

“81 억이요?”

93 화. 뜨거운 열기 (6)

“파, 파, 파, 팔십일…억이요? 셰프님 그 정도면…… 장사 안 하고 은퇴하셔도 되겠는데요?”

“은퇴?”

100 년째 은퇴를 못 하고 있으니, 그 단어에는 민감했다.

살기라도 느꼈는지 최민성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81 억에 나와의 식사를 낙찰한 놈을 알게 된 최민성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이 새끼는…….”

“맞아. 우리가 아는 놈이야.”

세익 하이든 빈 모하메드 알리.

하이든 왕세자, 산유국 왕가의 남자.


81 억 원의 가격으로 나와의 식사를 얻게 된 건 그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지 않은 인상을 풍긴 놈이었는데…… 이런 액션을 취할 줄이야.

할리웃 여배우가 20 억, NBA 농구스타가 23 억,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54 억이었는데, 나의 몸값은 81


억으로 정해졌다.

-이제 통화하기도 무서워유. 잉? 팔십억짜리 몸값의 요리사가 대체 어딨어유!

“하하. 네, 대표님 잠시만요! 제가 다시 전화 드릴게요!”

-대표님이라고도 부르지 마 이제, 백 사장이라고 불러 그냥! 허허허! 자네한테 ‘님’ 자 소리도 듣기


부담스러워서 혼나겄네.

백원종이 익살맞은 말투로 나를 놀려댔다.

애정과 축하한 마음을 항상 이런 식으로 표현하곤 한다.

입찰 발표가 있고 난 뒤에는 역시나, 수많은 기사들이 올라왔다.

그에 관한 내용은 평소에 나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써내던 요리‧미식‧레스토랑 평가 언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각종 공중파, 대형 메이저 언론사에도 이번 경매 사건이 장식되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이야기였으니까.

[ 반유현 셰프, 자선경매 81 억 원에 낙찰! ]

-레알? ㄷㄷㄷ

-ㅋㅋㅋ 미쳤다 진짜.

-버핏 형님하고 밥 먹는 것보다 20 억 넘게 비싸ㅋㅋㅋ

-레스토랑 접고 저걸로만 장사한답니다. 글 내려주세요.

-국뽕이 차오른다!!! 주모!!! 

-반유현 셰프님 아이스크림 한 개만…… 사주세요.

[ 반유현의 영향력! 샤크세이브 운동에 대중들도 대거 참가! 캠페인 분위기 확대! ]

[ 81 억원 한 번에 벌어들인 샤크세이브 캠페인이 무엇인가? ]

[ 반유현 “많은 동물들이 미식의 욕망 때문에 잔혹하게 죽어가…….” ]

[ 젊은 셰프 반유현, 그가 바꾸고 있는 외식업계! 그의 역사를 돌이켜 보자! ]

기사들은 크게 둘로 나뉘어 졌다.

나의 낙찰 가격으로 인해, 샤크세이브 캠페인 자체가 엄청난 반응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는 이야기와,
셰프로서의 나, 그리고 나의 영향력을 또 한 번 제고했다는 것.
[ 세계동물보호 협회 반유현 셰프에게 훈장 준비 중 ]

[ 대한수의사협회, “반유현 셰프 존경, 역사상 가장 화끈한 셰프.” ]

각종 단체들까지 나서서, 이번 사건에 대해 나를 높여주었다.

물론, 너무 사건 자체가 컸던 나머지 역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 자선경매에 참여했던 스타들, 반유현 셰프와의 직접 비교 꺼려해 집단 취소! ]

경매의 스케줄이 잡혀있던 유명 인사들 중 대부분이 경매를 취소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개인 돈으로 기부를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어쩌면 ‘몸값’으로 각인 될 수 있는, 자신과의 식사에 대한 경매의 값이 셰프인 나와, 인기를 먹고


사는 자신들과 직접적인 비교가 되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셰프님. 이놈에게 어떤 요리를 해줄 겁니까?”

내 성격, 내 마음이라면 경매를 철회하고 저 왕세자 놈에게 낙찰을 해주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일이 이렇게나 커져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그놈에게 요리를 대접해줘야 되긴 되는데…….

“그놈의 주방에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즐비하다며.”

“그랬었죠. 그래서 셰프님도 그들과 같은 수준일 것이라 생각했나 봅니다. 참나, 자기네 집의 주방으로
들어오라니.”

“거기서 가장 유명한 셰프가 누구야?”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라고…… 일본 여성인데 나이는 60 세, 지중해 전문가로 미슐랭 7 스타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7 스타, 7 스타면 내가 올해만 지나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셰프나 사람들에겐 납득할 수 없는, 아주 대단한 실력을 가진 셰프겠지만.

“7 스타가 가장 많은 별을 소유한 사람이야?”

“가장 많은 사람이 그렇구요. 최소 쓰리스타를 보유한 셰프들이 일곱 명이나 있다고 합니다.”

“왜 나를 돈으로 살 수 없는지, 그 셰프들과 완전한 차이를 보여주고 가르쳐 주면 되겠네.”

그리고.

“그런 고급 인력들을 모아둔 곳에, 요리를 선보일 수 있던 적이 없었잖아. 마침…… 반유현 팩토리
교수진 섭외 문제도 있고.”

그 값이 얼마든 싸가지 없는 그놈에게 내 요리 자체를 선보이는 것이 싫었는데, 얻을 것들이 몇 개 있는


것 같았다.

***

일대일 식사 당일, 수많은 기자들이 두바이에 있는 한 저택에 몰렸다.


나를 81 억에 낙찰한 하이든 왕세자가 사는 대저택.

“금수저, 다이아 수저…… 기름 수저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전용기를 런던으로 보내, 나를 직접 초대했다.

“반유현 셰프님! 81 억 원을 진짜, 전부 기부하시는 건가요?”

“패션쇼 행사에서 하이든 왕세자랑 마찰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인가요?”

“한번 식사에 81 억은 역대급! 몸값인데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수많은 기자들이 내 몸을 둘러쌌다.

“감사합니다. 제 한 끼 식사로 이만한 돈을 기부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고요. 좋은 캠페인에


쓰이는 돈이니, 기분도 좋습니다.”

“잠시만요! 몇 가지 질문 더!”

“저기요! 반유현 셰프님! 사진 한 번 만요!”

경호원들이 내 주변에 달라붙는 기자들을 제지하고 대저택의 안으로 들어가는데 한 기자가 꽤나 괜찮은
질문을 던졌다.

“런던에 런칭하신, 반유현 브라운도 최고급 식자재를 사용하는데, 그 업장에서는 샥스핀과 같은 재료들을
안 쓰시는 건가요?”

“그것들 없이도, 최고의 맛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 대단한 맛을 만들 수 있고요. 그 생각이 ‘반유현-


브라운’의 시작입니다. 감사하게도, 손님들께서 최고의 맛이라 칭해주시고 있구요.”

애초에 이 캠페인에 참여했던 것도, ‘반유현-브라운’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뜬금없이 나의 레스토랑 이름을 말해준, 기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대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와……. 징글징글하다 진짜.”

대문부터 집까지, 걸어가면 다리가 아플 정도의 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동상, 수영장, 나열된 슈퍼카들까지.

“셰프님께서도 한 몇 년 뒤에는 이 정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셰프님은 지금 당장도 살지.”

“대출이 얼마나 많이 나오겠어 셰프님 이름값이 있는데.”

함께 동행한 오스틴, 그리고 헨리와 제리가 말했다.

“켁, 저기 헬기도 있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헬기가 정열된 옆쪽, 대문으로 하이든 왕세자와 그의 수행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를 목격한 하이든 왕세자가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와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왔어요? 우리 반유현 셰프님!”

천진난만한 눈빛, 분명 갈라디너에서 봤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뭐야. 왜 이래.’

내가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고 손을 놓자, 나를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와…….”

대리석 또는 금으로 장식된 인테리어는 나의 수행원들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내뱉게 했다.

내 전생, 시간 부족으로 미션에 또 실패하리란 것을 깨닫고 남은 시간 동안 돈을 뿌리듯이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에도 이런 사치는 안 해봤는데, 이놈은 자는 시간 빼고는 사치를 부리는 것 같았다.

“이 시계는…….”

“너 가져.”

수십 개의 시계가 장식되어 있는 시계장을 쳐다보던 최민성에게 하이든이 말했다.

수천, 수억을 호가하는 시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 주는 그였다.

곧장 최민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내가 그지냐.”

헤벌레 하면서 시계를 받았더라면, 나한테 뒤지게 혼났을 텐데.

자존심은 강해서 믿음직한 놈이다.

우리는 거실의 넓은 쇼파에 앉았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몇 가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샤크세이브재단에서 보낸 기자들이 몇 명정도


우리의 주변에 서 있었다.

“대화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기자 한 명이 말했고, 내가 하이든 왕세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81 억이나 냈어?”

“미국에 유명한 재벌들 모임이 있거든? 그쪽에서 돈 모아서 80 억으로 한다고 하길래…….”

“그니까 왜 그분들보다 높은 돈을 내고 나와의 식사를 원했냐고.”

“크흠!”

패션쇼에서 봤을 땐, 나를 자신의 아래로 확실히 두고 말했는데 지금은 어째 그 태도가 하나도 없었다.

‘나한테 바라는 게 있군.’


이놈이 내게 바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건 이놈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나는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었으니,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귀여운 새끼.

“약속대로 해야지. 뭐 먹고 싶냐.”

“캐비아……. 트러플……. 푸아그라, 아니 쥐치 간…… 예술이었어.”

“지금 뭐 먹고 싶냐고 물었는데? 오늘은 네가 원하는 요리를 해주는 거니까.”

81 억을 낸 사람에게 이렇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기자들은 매우 상기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우리의 대화를 받아 적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요리를…….”

하이든 왕세자가 말을 얼버무린 그때, 그의 뒤에 서 있던 중년의 여성이 나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높은 조리모를 쓰고 있는 여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셰프님. 저는 가타무라 마츠노라고 합니다. 이 주방의 총책을 맡고 있고, 이탈리안 지중해
요리를 주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60 대 초반의 여성, 이곳에 오기 전 미슐랭 7 스타를 가진 여성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이 여자였다.

“왕세자님께서 81 억을 배팅하셨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먹고 싶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구요.”

그녀는 하이든 왕세자가 알아듣지 못하게, 불어로 말했다.

“그래서 여쭤봤습니다. 왜 80 억이 넘는 돈을 배팅하셨나고.”

“뭐라던가요.”

“이 주방에 있는 셰프들의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약 서른 개쯤은 됩니다. 세계 어떤 호텔, 레스토랑을


가도 없을 최고의 인력이요. 그런데도 본인이 생각하는 요리의 맛을 못 낸다고 하십니다.”

하이든 왕세자는 원래 요리에 엄청난 관심을 가진 남자였다.

그에 따라 자신의 주방에 초호화 셰프 군단을 꾸린 것이고, 그런데, 그 셰프 군단이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 게 문제였다.

“요즘 가장 핫한 반유현 셰프님을 이곳으로 부를 테니 그 차이를 배우라고 엄포를 놓으시더군요.”

그래놓고는 패션쇼에서 나를 섭외하지 못해서 일주일 동안 씩씩거렸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경매에 참여해 나와의 시간을 입찰받은 것이고.

“셰프님 요리의 맛을 보고 오셔서는 저희를 더 나무랐습니다. 왜 안 되냐고. 왜 이 정도의 맛을 못


내냐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셰프들이었다.

참 힘들게 산다. 미슐랭 쓰리스타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 주방에 들어와서는.

대체 얼마의 돈으로 이들을 섭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오늘은 제가 선보이는 요리보다 이 주방의 문제가 뭔지 파악하는 게 핵심이군요? 그래서 81


억이라는 돈을 쓴 거고.”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음.”

나는 주방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셰프들을 둘러봤다.

잡지에도 나오고 방송에도 몇 번씩 나왔던 유명 셰프들.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님? 이 주방의 총책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제가 봤을 땐 제대로 주방을 이끌지 못하고 계십니다.”

미슐랭 스타를 적잖이 가지고 있는 셰프들은 저절로 관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요리가 맛있고, 정확하다는 생각이 자신의 마음 깊이에 새겨졌기 때문에 협업과 누구의 지시를
받는 것에서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들은 맛에서 나오는 것이고.

나는 그 문제를 지적해줬다.

“이 주방의 대장이라면, 밑에 있는 셰프들을 먼저 굴복시키셨어야죠. 맛으로.”

“예?”

“주방의 모든 노력이 온전히 맛을 올리는 것에 쓰이려면 내 말에 의심을 갖는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이


주방의 셰프들은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님께 어느 정도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나름
잘났으니까.”

순간 빈틈을 찔린 듯이, 셰프들이 내 눈을 피했고 가타무라 마츠노는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가르쳐 드릴까요? 맛으로 어떻게 상대를 굴복시키는지.”

94 화. 뜨거운 열기 (6)

사실 가르쳐줄 게 뭐 있겠나.

그냥 요리를 압도적으로 잘하면, 주방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이다.

주방을 휘어잡으면 셰프들의 노력을 한곳에 뭉쳐 맛의 수준을 올릴 수 있는 것이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셔야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100 년을 살아보니 그렇더라, 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대체했다.

뭐, 친절하게 가르쳐줄 필요도 없었고.

어쨌든 이 왕세자 놈이 나에게 81 억을 던져서 꽤 많은 광고 효과를 얻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돈에


대한, 피고용인으로서 일을 해야 할 차례였다.

“뭐 먹고 싶냐. 81 억 받았는데, 나도 일은 해야 할 것 아니냐. 빨리 끝내자.”

“어떤 음식이든, 가능하…… 해요?”

“어.”

돈밖에 없었는데, 그 돈이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상당히 조심스러워진 하이든이었다.

더군다나 미슐랭 7 스타, 총주방장이 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는 것을 알고는 저절로 겸손해졌다.

“치킨.”

“뭐? 닭요리?”

“아니요 치킨이요. 한국식 치킨.”

한류 문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치맥이 유럽과 미국을 시작해 중동에도 퍼졌다는 얘기를 언제쯤 한번
들어봤었는데, 그 시점이 지금이었던 것 같다.

2021 년, 대한민국의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동남아를 비롯해, 중동 진출을 대거 선언했던 것이


말이다.

그런데, 80 억을 내고 치킨을 해달라는 놈은 또 처음이다.

“그 맛있는 음식을 반유현 셰프님이 하면 더 높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거 아니에요?”

당연히 하이든이 먹어본 음식은 프렌차이즈에서 내놓은 치킨일 것이다.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지. 걔네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이고.”

그런데, 치킨을 먹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이번 생에는 먹어본 적이 없었고, 저번 생에는 한국 여행차 왔다가 한번 먹어봤는데 어떤 맛인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그냥 튀긴 닭.

이들에게 최대한의 충격을 주려면 같은 맛의 범위 안에서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된다.


그게 내 요리 충격요법의 첫 번째였다.

복숭아보다 ‘달콤한 과일’로 수박을 내미는 것보다 아예 꿀맛이 나는 복숭아를 내미는 방법.

“내가 치킨을 안 먹은 지 오래돼서, 비교할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 말을 뱉었을 때는, 정확히 1 시간 뒤에 그의 수행원들이 이 두바이에 있는 모든 브랜드의 치킨을


사 왔다.

하나씩 입안에 넣으며 그 맛과 레시피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바삭한 치킨, 염지가 잘 안되어 잡내가 나는 치킨, 닭의 수분이 빠지며 튀김옷이 물러진 치킨, 닭의 살이
퍽퍽한 치킨, 맛은 없고 맵고 달기만 한 양념치킨…….

내가 맛을 볼 때에는 모두가 숨을 죽여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이었나 보다. 내가 갈라디너에서 보여준 3 대 진미 요리들이.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치킨을 사 왔다는 것은, 치킨에서도 그와 비슷한 충격을 느끼고 싶다는 듯한 바람이
묻어있는 듯했다.

“이 주방에 어떤 재료들이 있나 확인 좀 해줘.”

대충 레시피들을 머릿속에 그려 본 뒤에, 최민성과 헨리, 제리에게 말했다.

“확인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세계 모든 재료, 모든 향신료가 있으니까요.”

“확실해요?”

“예. 왕세자님께서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으신지라.”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나의 셰프들이 주방으로 가는 것을 멈췄다.

“다…… 됐어요?”

“음…… 지금 만들라면 만들 수도 있지만, 닭을 염지하고 숙성시키면 더 맛있는 닭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아침에 먹는 게 어때?”

“오……. 오케이.”

이놈이 밉상이든 말든, 80 억을 쓴 놈이다.

내 맘을 흔들 수 있는 액수도 아니고, 어차피 기부하는 돈이라 나에게 큰 의미는 없지만, 쓰는 사람에겐


그 기분을 느끼게 해줘야 되지 않겠나.

더군다나 지금은 보는 눈도 많고, 여기는 썩 괜찮아 보이는 고급인력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저놈도 그렇고, 미슐랭 쓰리스타 이상의 셰프들을 치킨으로 놀라게 하려면.’

그리고 이번 생 내내 내 요리는 항상 최고의 맛을 낼 생각이다.

***

염지.

고기에 소금을 쳐, 삼투현상을 이용해 수분을 빼고 보관을 용이하게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보관 방법이 치킨을 만들 때에는 유용하게 쓰인다.

“닭의 수분에서 닭 특유의 잡내가 났어. 잡내가 전혀 없을 수 있는 닭튀김인데.”

그것도, 치킨을 만들 때에는 수분을 빼내면서 닭에 간을 할 수 있다.

“음? 셰프님, 무슨 치킨을 오늘 처음 드셔본 것처럼 말씀하세요?”

“오늘 처음 먹어봤어.”
“예에? 한국 사람이 무슨 치킨을 안 먹어봤어요?”

“가난했었으니까. 분식집 쪽방에 살았거든. 방송 안 봤어?”

“아…….”

염지를 하기 전에, 닭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관절이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자른다. 중요한 것은 자르는 과정에서 닭 껍질이 붙어있는 형상을 조절하는
것이다.

“윙 부분은 전체가 껍질로 싸여있어. 새로운 치킨의 맛을 원했으니까. 이 껍질을 있는 듯 없는 듯


덜어낸다.”

닭 다리, 닭 날개, 닭가슴살 등 닭의 각 부위는 구조상 손질을 할 때 껍질이 말려 떨어지는 부위가 있고,
견고하게 붙어있는 부위가 있다.

당연히 나는 이것마저도 맛을 내는 것에 이용한다.

“닭 한 마리를 만들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닭에 붙어있는 뼈.

뼈의 두께, 그것마저도 맛을 내는 것에 이용했다.

여러 마리 준비된 닭에서 각각 부위별 맞는 뼈를 취합해 닭 한 마리를 만들었다.

“끔찍합니다.”

“뭐가.”

“맛을 내는 방법이요.”

부위마다 뼈의 굵기가 다르고 살의 결도 다르기에, 튀기는 시간과 튀김옷을 각각 달리해야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다.

그 뼈의 굵기와 살의 양이 가장 적절한 비율로 묶여 있는 닭의 부위를 조합했다.

“오늘 처음 드셔보신 것 같습니까?”

“어.”

“진짜 끔찍하다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주방에는 나를 따라온 셰프들만이 들어오게 했다.

눈에 보이는 퍼포먼스 없이 밖에 있는 이들을 모두 맛으로 죽여 버릴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끔찍하다는 제리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올리브유, 맛술, 생강, 다진 마늘, 후춧가루, 그리고 내가 파리에서 직접 만들어 놓은 몇 가지 조미료와


향신료를 투하한 후, 각 부위의 조합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닭(?) 한 마리를 버무렸다.

그다음 진공포장 한 뒤, 냉장 숙성을 시켜두었다.


“소스.”

소스는 총 여덟 가지를 준비했다.

갈라디너에서 선보인 뵈르블랑, 레몬폰즈 소스부터…… 아까 전 먹었던 어떤 브랜드의 마늘 간장 소스,


양념 소스에 나만의 맛을 더해서.

“보초는 우리 경호원들 시켜서 한 명씩 서라고 해.”

내 레시피가 궁금한 셰프들이 이 주방에 들어와 진공포장을 열어보고 소스의 맛을 보면 맛이 달라질


터였다.

주방에 경계병을 세워두고, 우리는 하이든 왕세자가 배정해 준 방으로 올라갔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자존심이 있을 텐데……. 레시피를 훔쳐보러 주방에 들어온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구십 프로의 확률로.”

“하기야, 셰프님께서 최강의 맛을 보여준다고 하셨으니 저도 기대가 됩니다.”

***

하이든이 배정해 준 방은 대저택의 한 공간에 마련된 게스트 하우스였다.

손님들이 머무를 때 쓰는 방인 것 같은데.

호텔보다 호화로운 가구들과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다.

수영장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몸을 녹였다.

“죽여주네요 셰프님. 덕분에 저희가 이런 호사도 누리고…….”

“고생했다 다들. 올해 미슐랭 평가만 잘 해내자.”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몸을 녹이며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나 스스로 나도 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병처럼, 일 생각이 떠올랐다.

‘아 맞다 백 대표님.’

미슐랭 평가 기간이 시작되기 전, 백원종의 인프라를 이용해 한국에 레스토랑을 추진하려 했었다.

이번 평가 기간에 마지막으로 런칭될 레스토랑.

반유현 팩토리는 다시 인원을 재정비하는 중이었고, 그를 따르는 실력 있는 셰프들도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니 내가 현재 레스토랑을 늘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백원종이었다.

이전에 전화를 하다가 끊은 기억이 있어,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예, 백 대표님.”
-어어어, 대표님 하지 말라니까. 그냥 원종이라고 불러유.

익살스러운 말투로 내 인사를 받아 든 백원종이다.

“서울에, 자리 좋은 곳에 레스토랑을 하나 더 추진하고 싶은데요. 셰프들 좀 지원해주시죠.”

-에에? 런던에 레스토랑 런칭한 지 얼마나 됐다고.

“예, 그래서 셰프가 부족합니다.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했어도, 제가 나아가는 속도가 더 빠르네요.”

-하이고……. 어떤 요리로?

내가 맨 처음 이 몸으로 환생했을 때, 백원종은 우리 분식집의 메뉴를 줄이라고 했었다.

그는 단순하게 가장 높은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내가


마구잡이로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에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을 보니, 그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네야 뭐…… 유일하게 내가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이지만, 생각해둔 메뉴가 있나? 우리 회사 측 셰프는


다들 바쁘고 최대한, 최대한 끌어모으면, 5 명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메뉴 다 구성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리랑, 셰프만 모아주십시오. 대표님. 미슐랭 평가 기간 전에


한국에 한 번 들어가서 ‘반유현-펌킨’ 점검 좀 할 때, 런칭하면 될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려 일단 그렇게 알고 있을게.

다만 자신이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본 적 없어,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자, 헨리가 말했다.

“셰프님, 너무 일만 하시는 것 아닙니까 건강도 챙기셔…….”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진동이 울려왔다.

“예, 반유현입니다.”

-네, 셰프님. 와…… 81 억이라는 숫자에 놀랐습니다.

“네, 뭐. 저도 놀랐으니까요.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번 전화는 로만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일러두신, 반유현 골목 조성 사업 중, 식료품 매장 사업이요. 그 공장 부지랑 매장


점포 계약까지 끝난 상황입니다. 반유현 골목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건물을 계약했구요. 이제
공장에서 찍어낼 반유현 셰프님의 천연 조미료 레시피를 저희가…….

“계약한 장소와 그 건물주가 누군지, 메일로 보내주시고요. 파리 들어갈 때쯤 연락드릴 테니, 그때 맞춰


회의를 주재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일들이 척척 진행되어 가고 있지만.

모든 통제를 내가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만, 기대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문제가 생기는 법.


내가 별 탈 없이 지금까지 빠르게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을 내 손안에 넣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그리고 지금 울리는 이 수화기도 내가 모든 일을 나의 통제하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호원 톰입니다. 셰프들이 주방에 진입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흠. 치킨이 숙성되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 주방도 아니고, 그들을 막기가 애매하네요. 제가
직접 내려가겠습니다.”

그들이 가진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약 30 개라는 셰프들이, 나의 레시피가 그렇게 궁금했나 보다.

“이야……. 셰프로서의 금기 아닙니까? 남의 주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셰프님께서 직접 내려가시면


많이들 창피하시겠네요. 큭.”

95 화. 뜨거운 열기 (7)

최민성은 ‘반유현-브라운’의 총괄이었기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다시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방에는 반유현의 비서 역할을 하는 오스틴과 헨리, 제리가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사업차 전화가 오셔서 저희 먼저 내려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반유현의 경호원과, 하이든 왕세자 주방에서 일하는 셰프들의 대치상황.

둘의 의견은 그랬다.

“내 주방에, 내가 함부로 들어가는 것이라니? 말이 심하네.”

“저희 셰프님의 요리가 숙성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것 때문에 주방에 들어오신 것이구요.”

치킨이 숙성되고, 반죽물과 소스들이 숙성되는 시간, 이것을 열어보고 맛보면 반유현이 생각한 의도의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기와 상온에 노출되는 시간마저도 그 미세한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반유현이었으니까.

그래서, 주방에 경호원들에게 경계근무를 서라고 명령했었다.

경호원들은 명령대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고, 셰프들이 난입해 반유현에게 보고를 한 것.

“레시피? 무슨 레시피. 아, 반유현 셰프가 숙성시키고 있는 것? 관심 없어. 우리는 우리 일하러 주방에


들어온 거야. 하하하하! 웃기는 사람들이네.”

셰프들은 반유현의 레시피에 관심이 없고 그저 일하러 주방에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

그런데, 오스틴과 헨리, 제리는 이들이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을 하러 들어오신 거라면, 조리모는 왜 안 쓰고 오셨습니까? 그리고, 요일 또는 시간별로 셰프님들이


일하는 순서가 나뉘어 있는 줄 알고 있는데, 모든 셰프님들이 주방에 다 내려오셨군요. 주방에 재밌는
구경이라도 있을 것처럼요.”

헨리의 논리적인 말에, 제리가 거들었다.

“제가 더 창피합니다. 선배님들,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곧 있으면 이 숙성된


재료들로 요리를 하실 건데, 그 맛을 보고, 궁금한 것은 반유현 셰프님께 직접 여쭙고 하는 게
셰프로서의 상도라고 생각합니다. 몰래, 냉장고를 열어보는 것보단요.”

반유현이 경호원들을 주방에 세우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벌써 냉장고를 열어 반유현이 재워둔 치킨과 소스,
반죽물들을 분석했을 것이다.

그렇게 온도와 공기에 노출됨에 따라 맛이 변했을 것이고.

그때, 제리의 말처럼 자신들의 행위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들의 행위를 부정하며 되려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두 명.”

현재 조리복을 입고 있는 헨리와 제리를 향해 말하는, 셰프.

미슐랭 포스타를 가진, 인도 출신의 셰프였다.

“반유현 셰프를 등에 업고, 뭐라도 된 줄 알고 떠들지. 예의도 없냐. 한참 선배인 우리들한테. 이것들이
어디서…….”

“예?”

헨리와 제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흘리자, 그와 함께 있던 다른 셰프들도 말을 거들었다.

“그러게, 반유현 셰프 밑에 있다고 자기들도 뭐 된 줄 아네. 야. 우리 몰라? 너희들, 얼굴 다


기억해놨어. 우리가 주방에 들어와서 뭐? 레시피를 훔쳐봐? 이것들이 진짜.”

그리고, 이 셰프들의 리더인 미슐랭 7 스타, 가타무라 마츠노가 이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만들 하세요!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도 죄송하고 반유현 셰프님의 보조


셰프분들도 사과하시죠.”

보조 셰프.

헨리와 제리는 순간 발끈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반유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게요.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숙성되고 있는 우리 재료들을 만지지는 않으셨으니,


이제 요리를 해보겠습니다.”

“크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네. 그러시겠죠. 다들 나가 주시죠. 이제 요리를 할 겁니다.”

반유현이 봐도, 그들이 주방에 한꺼번에 몰려온 것은 의도가 다분했다.

미슐랭 7 스타, 4 스타, 3 스타를 가진 이들이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다니.

하기야, 돈만 보고 이 주방으로 들어온 이들이니까, 실력은 있을지언정 요리에 대한 신념이나 자존감은


낮을 가능성이 높다.

‘누굴 바보로 아나. 거짓말을 쳐?’

반유현은 이들의 행동을 똑똑히 기억했다.


***

“와 셰프님, 이 정도면 진짜 최고의 재료들만 모아 놓은 것 아닙니까?”

“맞아. 조미료부터 야채, 허브, 고기 모든 것을 최고의 재료로만 모아놨네. 이 정도면 전 세계에 이런


식재료들을 공급하는 딜러들까지도 고용했을걸.”

각 분야, 육류면 육류, 어류면 어류, 최상급의 재료들만을 선별해 공급하는 공급원을 세계 각지에 파견
보내 재료를 공급받는다.

‘반유현-브라운’에는 각각 식재료 공급 업체들이 자신들만의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된 재료를 공급하는


방식이어서, 큰 차이는 아니지만 능동적으로 최고급 재료를 찾는 이 주방보다 퀄리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요리의 맛에 큰 차이는 없고, 이 요리에 들어간 재료가 엄선된 최고급이라는, 기분을 내는 정도였다.

“셰프들도 최소 미슐랭 쓰리스타들만 모아놨으니, 초호화 주방은 맞네요. 저 셰프님들이 자기들 잘난


맛에 사는 것만 빼면요.”

“상처받았냐?”

“아, 아닙니다.”

이 주방의 총책인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와 그 휘하의 셰프들이 헨리와 제리를 보고, 반유현의 보조
셰프라느니, 반유현을 업고 뭐라도 된 줄 아냐느니 했던 것이 영 거슬렸나 보다.

“맛으로 굴복시켜줄게.”

튀김기에 담가둔 기름에 양파를 넣었다.

그리고 숙성시켜둔 닭고기에 반죽물을 묻혔다.

부위별로 다른 두께, 그리고 다른 반죽물을 묻혀 튀김기에 넣고 튀기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소리만 들어도 튀김기의 온도와 닭이 튀겨지는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치킨의 한 조각 한 조각 시간과 온도를 달리하여 튀겼다.

“소스 준비해라.”

열두 시간 전, 만들어 숙성시켜둔 소스를 최강의 맛을 내는 온도와 점도로 맞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치킨과 소스를 플레이팅했다.

“가니쉬로 동치미도 미리 만들어 봤는데, 쓰시겠어요?”

제리가 냉장고에서 동치미 국물을 꺼냈다.

이 요리는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부터, 그리고 예전 갈라디너에서 선보였던 것이라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음. 좋아.”
내가 직접 맛을 보니 합격점이었다. 치킨무 대신 무가 얇게 슬라이스 되어 썰린 동치미를 접시에 담았다.

***

“큭.”

하이든 왕세자의 동공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중동 사람 특유의 깊은 눈을 가져서 그런지, 그 효과가 뚜렷하게 보였다.

바삭한 튀김옷, 그리고 그 안의 닭 껍질이 주는 기름진 풍미, 그것을 뚫고 엄청난 감칠맛을 품은 닭의


속살, 그보다 더한 밸런스를 갖춘 맛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치킨이 이곳에 나오기 전에 먹어봤으니까, 그 맛을 알고 있었다.

“이게 진짜라고?”

프렌차이즈의 치킨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매장의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이 본사에서 직접 교육을 받았다고 한들, 나보다 닭을 더 잘 튀기겠는가.

그리고 진짜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정성을 조금 담았더니 그 차이는 내 이름에 더해져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

“일로 와서 먹어봐.”

하이든 왕세자가 놀란 듯이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를 불렀고, 닭 다리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줬다.

바스락!

튀김옷이 깨지는 소리가 나며 그녀의 입안으로 닭의 속살이 들어갔다.

“음?”

한입 더 베어 무는 그녀.

애초에 자신이 생각하던 맛과 너무나 달랐는지,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어때? 왜 웃어?”

“닭의 살에서 촉촉한 수분이 느껴지는데, 잡내는 나지 않습니다. 튀김옷이 바삭한데 기름 냄새가 나지도
않고요. 속살은 감칠맛이…… 호불호가 전혀 없을 듯한…… 이 균형은…….”

80 억짜리 치킨에 대한 평가였다.

하이든은 그녀의 아래 직위에 있는 셰프들에게도 치킨을 건넸다.

최소 미슐랭 쓰리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셰프들도, 저마다 감탄을 내뱉었다.

“닭가슴살이 어떻게 이렇게…….”

“내가 먹은 건 목뼈인데? 목뼈에 붙어있는 살들까지……!”


차마, 치킨을 먹고 내린 평가라고 할 수 없을 정도.

누군가 이 대화를 도청하고 있다면 이들이 먹고 있는 음식은 한국 사람들이 야식으로 즐겨 먹는


치킨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덟 가지 소스는 또…….”

소스 또한 요리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맛이라고 연신 말하는 셰프들이다.

바로 이전 패션쇼 갈라디너에서 먹었던 소스도 몇 가지 그대로 있었지만.

이번엔 또 다르다. 찍어 먹는 요리가 다르니 그 점도와 농도를 달리했으니까.

“크흠! 마, 맛있습니다.”

그렇게 연신 맛있다고 말을 하던 셰프들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알량한 자존심을 앞세운 것이다. 또, 자신들이 나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하이든 왕세자의
눈밖에 날줄도 모르니까.

그러나 하이든의 마음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셰프님……. 진정…… 저희 주방에 일주일에 하루, 아니, 한 달에 하루만이라도 방문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왜?”

“이 요리가 주는 즐거움을…… 잊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때, 엄청난 액수의 돈이 주는 공허함에 빠졌다가 마약과 여자 등 쾌락을 좇는 삶을 살다가 요리를 알게


되고, 그 맛이 주는 즐거움으로 자신의 공허함을 조금씩 채웠던 하이든 왕자였다.

그리고 나를 통해 돈으로 먹을 수 없는 요리가 있다는 것을 깨우치고, 요리에 대한 태도를 달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알았으면 됐어. 주방의 문제도 지적해줬고, 최고의 치킨도 보여줬으니 ”

“…….”

“80 억 값은 한 거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주기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물론, 돈으로 될 것이란 생각은
않지만…… 저도 그에 걸맞는 것들을 제공하면 되지 않을까요?”

“주기적으로 내 요리를 먹어?”

내가 왕세자에게 일방적으로 반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반말을 하다가 이놈이 높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를 사용하니, 내가 이상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네…….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먹을 수만 있다면 제 주방의 셰프들도 필요 없습니다.”

“참내.”
“아, 아니면! 제가 이들의 월급을 지원할 테니,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들을 가르쳐 주시고 사용해
주세요!”

가타무라 마츠노와 그 휘하의 셰프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자신의 고용주가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모든 가치를 합친 것이, 반유현, ‘나’보다 못하다는 것을.

“이 셰프님들을 사용, 하라고?”

생각해보면 꽤나 괜찮은 제안이다.

하이든 왕세자에게 일주일, 아니 한 달에 한 번 식사를 대접하는 것만으로, 아무런 비용 없이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대거, 섭외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들의 자질과 인성은 다시금 검증해야겠지만.

“미슐랭 스타를 가진 것과 별개로…… 남의 요리 레시피를 공짜로 얻으려 했던 셰프들인데.”

하이든 왕세자가 셰프들을 노려본다.

도대체 어떤 돈으로,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길래 미슐랭 스타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 왕세자에게 이토록 꽉
잡혀 있는 것일까.

“제,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셰프들을 지원하든, 어떻든, 이런 방식으로 제가 셰프님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고. 저는 한 달, 아니 두 달에 한 번이라도 셰프님의 요리를 먹고 싶습니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을 듯한 태도로 아뢰니, 생각이 많아진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개인적으로 식사를 대접하곤, 세계 최대의 부호, 그의 돈과 인프라를 사용하는 게


맞는 것인가.

‘미슐랭 스타 셰프들 아홉 명에…… 7 스타 셰프도 있고…….’

머릿속은 자동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그것 말고도 더 얻어낼 것들이 있는지.

잠깐, 그러기 전에 이놈들 나의 최측근인 헨리와 제리를 보조 셰프라며 무시했었는데 그 부분부터


수정해줘야 할 것 같다.

“어이, 셰프님들, 당신들을 고용하신 고용주께서 ‘이런’ 생각을 가졌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 검정 스카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헨리와 제리의 목에 걸려 있는 그 스카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이 함부로 무시할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증거, 는 아니고. 어쩌면 당신들보다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 대, 단, 한, 셰프라는 뜻입니다.”

가타무라 마츠노를 포함한 모든 셰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표정이 왜 그래요?”

96 화. 가장 바쁜 시기 (1)

“세 달에 한 번.”
“어…….”

두 달에 한 번은 너무 많다.

그리고 조건은 더 추가되었다.

“돈을 쓰는 것에는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그것도 추가하시죠.”

하이든 왕세자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었으니, 나도 원하는 것을 말했다.

이제는 나도 존댓말을 했다. 사업적인 이야기를 해야 했으니까.

“이 주방에 최상급 재료를 공급하는 딜러들을, ‘반유현-브라운’에도 붙여주시죠.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여기 계신 모든 셰프들을 브랜드 ‘반유현’ 산하에 편입시키고, 그 월급은 왕세자님이
지불하시는 것으로. 그 조건에 세 달에 한 번 제가 요리를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자는 이것이 비현실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셰프의 요리를 먹는 것에,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지구상에 있을까.

물론, 대답은 ‘있다’이다. 돈의 가치가 무의미해져 버린 산유국의 왕자라면 말이다.

“그렇게 하면,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세 달에 한 번 먹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드릴게. 제가 말씀드린 조건이라면, 나도 할 만하니까.”

“그, 그렇다면! 다, 당장 계약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쉽게 하이든 왕세자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이든 왕세자의 개인 요리사, 미슐랭 7 스타 가타무르 마츠노를 비롯한 아홉 명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은


소속을 ‘반유현’으로 옮기며 그의 수장인 반유현의 말을 따른다. 그에 대한 월급은 하이든이 지불한다.

-전 세계에 파견되어 있는, 최상급 재료를 선별 공급하는 딜러는 ‘반유현-브라운’에 최상의 재료를
공급해야 한다.

-반유현은 세 달에 한 번 주기로, 4 인 기준의 식사를 하이든 왕세자에게 대접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그랬다.

물론 지금 당장은 여기서 끝이지만 내 요리를 몇 번 더 먹고 나서 하이든 왕세자가 취할 액션을 기대하는


것도 컸다.

내 요리를 두 번 먹고 그의 태도가 달라졌는데, 3 달, 주기적으로 나의 요리를 먹게 한 뒤에는 그를 나의


노예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구체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세계 최대 부자를 요리할 수 있는 건, 그 어떤 셰프도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다.

그제 서야 ‘맛으로 굴복시킨다.’라는 뜻을 알아버린 것인지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셰프들의 표정에 묘한


기운이 맴돈다.

“제 밑으로 들어오게 된 열 분의 셰프님들은 죄송스럽지만, 레스토랑 ‘반유현’에서는 일하실 수


없습니다. ‘반유현-팩토리’에서 실력을 검증하시고, 그다음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의 주방에 들어오실
수 있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스틴.”

“예, 셰프님.”

“이분들은 성적이 가장 낮은 F3 팀, F4 팀…… 아. 이번에 ‘반유현-팩토리’의 셰프들이 충원됐지. 가장


낮은 팀이 어디야.”

“J4 팀까지 구성되었습니다.

“그럼, 그쪽부터 반 배정해드리고.”

“알겠습니다.”

오스틴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싫은 분들은, 하이든 씨와의 계약을 파기하시죠. 하이든 씨, 이 셰프님들과의 계약 기간이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3 년입니다.”

하이든이 직접적인 고용주이며, 그는 셰프들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줬을 것이다.

셰프들은 나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지만, 계약금과 연봉을 지키려면 3 년의 기간을 채워야 했다.

“아, 그리고 반유현 팩토리의 성적이 가장 낮은 팀인 J4, 3, 2 팀은 주기적으로 있는 평가에서


상위팀으로 올라가지 못할시, 제명되는 것을 알고 계시구요. 제명이 되면…… 그 고귀한 커리어에 문제가
발생 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하이든 씨와 맺은 계약 관계도 파기될 수 있겠네요. 하이든 씨는 당신들을
나의 밑에서 일하라 명령했고, 당신들의 존재가 나한테 쓸모없다면……. 뭐, 그렇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하이든은 그저 자신이 세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나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푹 빠져있었다.

“셰프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하하!”

그저 즐겁게 나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부로 ‘반유현’으로 이적하신 여러분들은, 지금 여기,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셰프들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르세요.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어린 셰프들에게 그러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음, 그런데 그게 어렵다면 입 다물고 눈 깔고 가만히 계세요.”

헨리와 제리 그 둘이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여유롭게 둘러봤다.

***

[ 반유현 팩토리 초호화 교수진 추가 구성! ]

[ 미슐랭 7 스타 가타무라 마츠노 반유현 팩토리 가장 낮은 성적의 팀 맡아! ]

[ 그 외 합류한 셰프들의 미슐랭 스타 합치면 별이 36 개! ]

신입생들은 이미 뽑아놓고, 교수들을 충원하고 있었다.

경력이 있고, 실력 있는 셰프들이 ‘반유현-팩토리’의 교수직으로 지원서를 접수하는 것 중,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반유현-팩토리’ 내에서 가장 성적이 낮은 팀을 맡아 그 팀의 수준을 올리지 못해
제명이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번에 대거 고용된, 하이든의 개인 셰프들, 미슐랭 스타를 가진 그들이 가장 성적이 낮은 반 10 개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한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는데, 그들이 죽기 살기로 그 셰프들을 가르치리라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는 하이든과의 계약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돈맛을 본 셰프들이라, 독하게 움직일 거야. 자신의 급을 낮추는 게 어렵거든. 그만한 돈을 맞춰줄
사람은 지구상에 기름 나는 나라의 왕자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하위 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그 위의 교수들과 그를 따르는 셰프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반유현 팩토리는 규모는 커졌지만, 이전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인력수급공장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 두바이 하이든 왕세자의 대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총지원! ]

[ 산유국의 지원사격을 받는 반유현의 행보가 기대된다! 과연?! ]

[ 반유현-브라운! 세계 각국에 최고급 요리 조달하는 공급원들 파견. ]

‘반유현-브라운’의 주된 테마가 최고급 요리였는데, 그 최고급 중에서도 최고급의 재료가 조달된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애초에 자선 경매에 참여한 것 자체가 공격적 사업 성향의 나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레스토랑의 홍보를
위함이었는데, 이미지 개선은 물론, 레스토랑 홍보와 실질적인 것들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재벌들도 도움이 되는군. 요리와 맛에 미친 재벌이라면.”

내가 전생 동안 만났던 재벌들은, 내 요리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파격적인 씀씀이를 보여주지 못해 나와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나 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와 돈 좀 만진다는 저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달랐으니까.

어떻게 보면, 하이든은 돈으로 나의 요리를 3 개월에 한 번 먹게 된 것이지만. 내가 얻은 것이 더 많다.

그가 나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고 투자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 최고급 중의 최고급 재료에 반유현을 얹다! 반유현-브라운! 런던에서 가장 뜨거운 식당. ]

올 한 해 동안 차린 레스토랑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펌킨, 포시즌스의 레드, 블루, 옐로, 샹젤리제의 네이비, 반유현 골목의 화이트 1, 2,…, 5,
런던의 브라운.

화이트는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의 테스트용 레스토랑이었으니 그것만 빼도 총 여섯 개의 레스토랑을


런칭했다.

‘이제 제일 바쁜 시간이 온 거야.’


미슐랭 평가 기간은 매년 3 월부터 8 월이다.

국가, 도시에 따라 구체적인 일정은 나뉘지만 기간 전체를 놓고 보면 그랬다.

6 개월. 약 6 개월의 시간에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에 관한 평가가 이어진다.

그래서 나에겐 매년 이 시간이 가장 바쁘다.

9 월부터 다음 해 3 월까지 레스토랑을 열심히 런칭시키고, 안정화에 힘 쏟았다면.

이제는 런칭한 레스토랑을 돌아가며 그 맛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 기간이 도래한 것이다.

새롭게 확장을 하기보다 이미 있는 것들이 많은 별을 받을 수 있게 집중하는 기간.

3 월 중순이 다가오는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고, 나는 그에 따른 스케줄을 짜야했 다.

‘그랬었지.’

그랬다. 원래는 그랬는데, 올해는 이 시점에 하나의 레스토랑을 더 런칭하려고 한다.

‘한국은 평가 기간이 느리니까. 어쩌면 아직 평가 리스트 작성이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 경험상, 항상 한국은 평가 기간이 마감되는 7 월 말, 또는 8 월에 미슐랭 평가단원을 목격하곤


했으니까.

더군다나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할 수 있는 재원과 아이디어, 그리고 실행력이 있으니 나는 올해 받을 수


있는 별을 하나 더 끼워 넣기로 결심했다.

“한국에 반유현팀의 일원들은 먼저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쇼.”

“그래, 식료품 매장 사업 건도 컨펌 내려놨으니까 문제 있으면 연락 주고. 반유현 팩토리 교수진


섭외에도 이제 속도가 붙을 거니까. 직원들 더 뽑고.”

나는 그렇게 직원들의 배웅을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오셨습니까.”

최고급 세단과 수행원들이 탄 밴이 공항 앞에 정차해 있었다.

내가 이 몸으로 환생하기 전까지, 이 몸은 분식집 쪽방에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봤다. 아마


수많은 경영대학, 또는 그 연구진들의 나의 삶을 뜯어보고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태원으로 가자.”

인천공항에 내려 이태원에 진입했을 땐, 고급세단과 검정 밴이 행렬로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 차 안에 있는 사람이 얼추 유명인인 줄 알았나보다.

진한 썬텐으로 보이지도 않는 창문에 카메라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이 골목에선 걸어서 들어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인파가 많은 골목에 들어서자, 저 멀리 간판이 보인다.


[ 반유현 - 펌킨 ]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알다시피 내가 소유한 모든 레스토랑은 예약 없이 웨이팅을 통해 식사를 할 수 있는 몇 자리를 항상


남겨두었으니까.

간판이 보이는 거리에서 차 문을 열고 내리니,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우와아아아! 반유현이야! 반유현!

“엥? 런던에 있는 거 아니야?”

“두바이에 있는 거 아니야?”

이들은 나의 움직임 그 자체에 호기심이 있었나 보다.

며칠간 런던, 두바이, 파리를 누볐는데 지금 한국의 이태원에 와있었으니까.

나도 이 몸이 체력적으로 버텨주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꺄아아아악!

함성소리가 점점 커지고, 각 업소에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도 창밖으로 거리를 내려다본다.

이태원에 연예인 또는 유명인들이 출몰하는 빈도는 많지만, 또 이런 관심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빠아아아!

까닥까닥 고개를 숙이곤 반유현 펌킨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반유현이야? 헐!

홀이 어수선한 분위기로 바뀌니, 주방에서 셰프들이 나와보곤 나를 확인했다.

“어!”

“어어어!”

적잖이 당황했는지 말을 못 한다.

셰프들에게 조용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백원종 대표님들이 보낸 셰프들인가?”

내가 처음 반유현 펌킨을 런칭할 때보다 많은 셰프들이 와있었다.

백원종이 새롭게 런칭할 셰프들을 미리 이곳 주방에 보내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요리에 집중을 하는 모습.

조리복을 입은 것이 제법 셰프의 태가 났다.

조리하는 모습,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미슐랭 7 스타 가타무라 마츠노와 견주어도 될 정도로 내공이
느껴진다. 얼마나 요리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고 주방에 계신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몸으로 환생하지 않으셨다면, 계속 분식집을 운영하셨겠지.

“유, 유현아!”

드디어 나를 보곤 어머니가 달려왔다.

“예, 잘 지내셨어요?”

“무, 무슨……! 연락도 없이 와!”

나는 가방에서 검정 스카프를 꺼내어 어머니의 목에 걸어주었다.

“제가 조리복은 보내 놓고 이걸 안 드렸네요. 어머니도 엄연한 ‘반유현’의 지휘급 셰픈데.”

반유현 펌킨을 총괄하는 셰프였으니까. 어머니의 목에 검정 스카프를 걸어주었다.

짝.짝.짝.짝.

셰프들도 검정 스카프의 의미를 아는지, 박수를 쳐 어머니를 축하해줬다.

“어떻게 온 거야……. 왜 왔어. 밥은 먹었고?”

“음…….”

나는 가방에서 하나의 검정 스카프를 더 꺼내 보였다.

“이 스카프를 또 다른 한 분에게 드리려고 왔어요. 어머니.”

셰프들이 순간 숨을 쉬지 못했나 보다. 정적이 흘렀다.

너무 급전개를 했나.

“레스토랑 하나를 더 런칭할 겁니다. 메뉴도 다 구성되어 있는데…… 누가 총괄을 맡을지는 안 정해졌어요.
백원종 대표님이 보낸 셰프들이라면, 이 중에 그 셰프가 있다는 건데.”

때로는 웃음이 엄청난 긴장감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긴장감 속에서 돋보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하하하하. 과연 어떤 분이……. 어떤 분이 이 스카프랑 가장 잘 어울릴까요.”

97 화. 가장 바쁜 시기 (2)

“대표님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짜……. 저 한 번만 도와주십쇼.”

“그게 내 의사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유 이 양반아. 몸값 80 억짜리 셰프를 참내,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어? 허허.”

“대표님께서 반유현 셰프를 처음 요리계로 들였으니, 사제지간에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스타들의 냉장고를 그대로 스튜디오로 옮겨 그 안에 있는 재료들로 요리를 만드는 프로.

JJBC 사의 냉장고를 열어라. 그 방송 프로그램의 PD 가 백원종의 양팔을 붙잡고 애원하고 있었다.


“이번 시청률 안 터지면, 저 국장실 불려가서 깨집니다……. 그 유명한 아이돌 Z-드래곤이 와도 못
터트린 시청률……. 유일하게 반유현 셰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침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고.”

“그래, 상황은 이해한다만.”

백원종도 그를 돕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라’의 메인 PD 이자 예능국의 부국장인 이원성 PD 가 자신을 맨 처음으로 방송계에


입문시켜준 PD 였기 때문이다.

“거, PD 님의 부탁이니 나도 도와드리고 싶지유 당연히.”

“네, 대표님 저도 어려운 부탁인 걸 알지만요……. 신경 좀 써 주십시오.”

“유현이가 과연 제 말을 들어 줄지는 모르겠네유. 워낙 자신의 일에 관련이 없거나, 이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거든요.”

“예……. 말만 전해주시죠.”

이원성 PD 도 반유현을 직접 섭외하려 했지만, 애초에 자신의 말이 전달되는지도 의문이었다.

‘반유현팀’ 이라는 그의 의전과 스케줄을 관할하는 부서에 메일을 아무리 보내도 답장은커녕 읽었다는
표시도 없었다.

하기야, 전 세계 모든 요리 프로들이 그를 섭외하고 싶어 할 테니, 이해는 되지만…….

“지금 또 유현이가 바쁜 시기라 방송 섭외 메일은 아예 확인도 안 하고 있나벼.”

“후…….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대표님. 반유현 셰프가 섭외되면 제가 진짜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뭐든 하라는 것 다 하겠습니다.”

“하하 뭐, 그렇게까지……. 흠, 말은 한 번 해볼게요.”

***

총 여섯 명의 셰프를 백원종이 보냈다.

그래서 ‘반유현-펌킨’에 원래 근무하던 셰프들과 합쳐 총 열다섯 명의 셰프가 주방에 있었다.

“마땅한 장소가 없나?”

내가 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SNS 를 통해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지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고, 홀에 있던 사람들은 요리를 먹다 말고 주방 쪽으로 와서 사진을 찍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레스토랑 장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이다. 맛을 보러온 손님들이 온전히 맛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으니까.

“저희 본사 내에 있는 조리실도 현재, 직원들이 레시피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음,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할 그곳도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어렵습니다.”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곳은 강남역 인근의 매장이었다.

현재 그곳의 내부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그곳에서도 셰프들의 실력을 보고, 메뉴를 가르치며 런칭 이전에
해야 할 교육들을 할 장소가 마땅히 없었다.
어떤 주방을 가도, 나의 존재가 그 업소의 장사에 영향을 미치기란 마찬가지였다.

“백원종 대표님이 준비해둔 장소가 없다는 말인가요?”

“네……. 원래, 반유현 셰프님께서 한국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이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의 영업시간이 끝나면 이곳을 사용하려 했던 것이라…….”

시간이 문제였다.

내가 계획보다 빨리 도착해 버렸기에, 백원종 측에서도 미리 장소를 섭외하지 못했던 것.

“음. 골치 아프네.”

내 말에 반유현팀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 그때, 백원종에게 전화가 왔다.

“예, 대표님.”

-아니, 왜 이렇게 빨리 왔어유.

“가까운 시간에 비행기 표가 있어서 바로 타고 왔습니다. 급하기도 하고요.”

-셰프들 교육할 만한 장소가 없겠네? 거기 마감까지 6 시간 남았잖아. 6 시간 동안 쉬고 있을래유?

“흠. 마땅한 장소가 없을까요? 그냥 가만히 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라서요.”

-아, 하긴 일정이 너무 빠듯한데. 6 시간은 무린감?

백원종도 내가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소를 이리저리 찾고 있었나 보다.

그때, 백원종이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아! 방법이 있네유.

“어디요?”

***

JJBC 냉장고를 열어라 세트장.

가운데에 조리대가 두 개 놓여 있고, 셰프들이 그를 중심으로 쫙 앉아 있을 수 있는 형태였다.

모든 주방집기들까지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어 아마 지금 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이런 장소를 어떻게 섭외했습니까?”

외부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방송국의 특성상 일반인들이 몰릴 수도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모여 있긴 있다만 저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이 방송국에 출입이 허가된


직원들이었다.

“죄송하지만, 이제 나가주시죠.”
방송국 PD 와 작가들, 또는 연예인의 매니저들이 이 세트장 앞에 몰려있던 것.

‘반유현-펌킨’에 갔을 때도 그랬고, 이태원 거리도 그랬고, 내 생각보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듯했다.

연예인을 밥 먹듯이 보는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찍어대고 있는 것을 보면.

“저희 셰프들끼리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이제 나가주시죠.”

“워이워이! 나가 주세요.”

그런데, 백원종과 내가 아무리 말해도 저들이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그나마 통제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서로 웃고 떠들면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척하더니 다시 돌아온다.

성질(?) 같아서는 욕하고 소리치고 싶지만, 카메라가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빌려 쓰는 입장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자자자! 나가 주세유.”

백원종은 계속 사람 좋은 소리를 하면서 부탁하는 상황.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사진이라도 한 장씩 찍어 주고 보내려는데, 중년의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야. 너희들 다 뭐해. 일없어? 안 바빠?”

이 방송국에서 꽤나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내였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아, 안녕하십니까 셰프님. 죄송합니다. 더 좋은 장소를 물색하려 했는데 다들 촬영 중이라서요.”

명함을 내밀며 나에게 인사를 하는 그.

-JJBC 예능국 부국장, 냉장고를 열어라 PD. 이원성.

90 도 이상 허리를 굽혀 임금에게 인사를 하듯이 나에게 예를 갖췄다.

“팬입니다 반유현 셰프님.”

명함을 보니, 나에게 왜 극진한 대우를 해주는지 알 것 같았다.

“여기, 백원종 대표님이랑 잘 아는 사이신가요?”

내 옆의 백원종을 보니 살금살금 눈치를 보는 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알 것 같고.

일단, 레스토랑 런칭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교육장을 얻었네요.”

“그래, 그래, 이 PD 일단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있으니까, 이따 봐. 여기 반 셰프가 일정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유.”

“아,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최대한 도와드리겠…….”


“얼른 나가봐!”

이원성이 세트장을 나가고 나는 교육을 시작했다.

***

PD, 작가, 카메라, 조명 스탭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재료를 옮겨주고 있었다.

“저래도 되는 겁니까?”

“자네한테 저렇듯 눈도장을 찍고 싶다는데 어떡해.”

오늘 메뉴를 구성하고 그 메뉴에 대해서 교육을 하기 위해 공수한 식재료들이었다.

각종 조미료와 채소, 고기 등 적지 않은 양이었기에, 셰프들이 여러 번 움직여서 이곳까지 옮기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방송국의 직원들은 나를 돕는 데 자신들이 쓰이길 바란다는 듯이 팔을 걷어붙였다.

방송국에 취직하고 배추와 닭고기를 나를 줄 알았을까. 아무튼, 저들의 마음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모든 식재료가 옮겨졌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만두입니다.”

“네?”

나의 첫 발언부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듯이 놀랐다.

다짜고짜 만두라는 단어를 꺼내니, 백원종도 나에게 물었다.

“마, 만두라니?”

“새롭게 런칭 할 레스토랑에 어떤 메뉴를 구성했는지 가장 궁금해하셨을 것 아닙니까?”

“그, 그건 그런디.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오니까.”

“한국에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주메뉴이자, 코스를 구성할 메인 테마는 만두입니다.”

원래 말에 이것저것 살을 붙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나.

내 방식대로 나의 생각을 줄줄이 말했다.

“대단한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안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만두피는 그 만두가 줄 맛에 호기심을


갖게 하고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기대보다 더, 또는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맛을 내었을 때의 신선한 경험은 고객들이 이 요리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실제로 잠재력이 대단한 요리라고 생각한다.

일단 만두피 속 안을 어떤 재료로 채우느냐에 따라 셀 수 없이 무한한 메뉴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

“다양하기 때문에 맛 또한 강력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맛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죠.”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아르메니아의 힝깔리, 터키의 만티, 몽골의 보쯔…… 수많은 나라에 자신들의
문화를 곁들인 만두가 있듯이, 의도한 맛을 위한 변형에, 만두는 한계가 없었다.

“튀기고, 삶고, 찌고, 끓이고…… 맛을 변주하는 것도 가능하구요.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 만두를


싫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요.”

레스토랑의 메뉴를 만두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여러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설명했지만.

사실은 만두가 낼 수 있는 맛에 대한 잠재력을 중점으로 두고 선택한 것이었다.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어떤 만두를 할 건지 보여드리고, 교육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더 길게 이어가는 것이 귀찮아, 맛을 보여주기로 했다.

조리대 위에 놓인 통돼지 한 마리.

내장이 손질되 어있는 돼지로, 이놈을 옮기느라 직원들과 셰프들이 힘을 꽤나 썼다.

“고기의 어떤 부위가, 어떤 양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맛은 다르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셰프들은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왜 했을까라는 표정.

“그 양을 아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그럴 수 있다면 당연한 얘기가 아니었다.

나는 통돼지의 엉덩잇살을 도려냈고, 지방과 단백질이 있는 부위를 각각 잘라 원하는 양만큼 도마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소고기 우둔살을 도마 위에 함께 넣고 다지기 시작했다.

어떤 만두는 지방이 풍부한 삼겹살을 만두소의 재료로 사용했고, 어떤 만두는 만두소에 두부를 넣고,
당면을 넣으며 또 어떤 만두는 그것들을 넣지 않는다.

“중간에 궁금한 점 있으면 말하세요. 여기 있는 셰프들도 이 요리를 숙달해야 하니까.”

“이야! 80 억짜리 셰프에게 질문을 할 시간도 있네. 하하하! 여기 있는 셰프들 15 억씩 모아서


내야겠네.”

나는 계속해서 요리를 하고 있었고, 백원종은 옆에서 나의 말에 조미료를 첨가했다.

매우 기대가 된다는 표정, 그의 눈웃음이 그것을 말해줬다.

“돼지 잡내를 잡는 것에 와인이나 맛술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유자청, 매실청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만두피에는 어떤 전분이 들어가나요?”

“만두소 내의 두부는 어떤 의도를…….”

열정을 보니까, 백원종이 꽤나 괜찮은 셰프들을 모아 놓은 듯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를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여러분은 그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구요. 지금
제가 하는 요리와 질문의 수준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초록창에 검색해도 알 수 있을 만한 질문 말고,
조금 더 신선한 질문 없습니까?”

셰프들은 순간 경직되어 버렸고, 백원종은 그저 ‘허허…….’하며 웃고 있었다.

“그래요. 아직 이 만두가 세계 최고의 만두라는 걸 보여주지 못했으니, 제 잘못도 있는 것 같습니다. 딱


1 시간 뒤에 다시 말씀 나누겠습니다.”

98 화. 가장 바쁜 시기 (3)

“기, 기계……?”

종류별로 만들어 놓은 만두소를 만두피에 담고 만두의 모양을 빚어내는 모습을 두 글자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기계. 아니면 공장. 나무 수저를 이용해 만두피에 만두소를 재빠르게 옮겨 담고, 손가락과 나무 수저가
서로 번갈아 가며 꾹꾹 만두피를 눌렀다.

“주름, 또는 만두피 안의 공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그 모든 것들을 신경 써야


하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말을 아꼈다.

“만두를 만드는 것은 이만하고, 조리법은 따로 깊게 설명해야 하니, 설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맛을


보고 말씀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돼지고기의 각 부위별로 소고기의 부위를 다르게 조합했고, 들어가는 채소들의 양도 각각 다르게 조합해
10 가지 만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조리법에 따라 분류하니, 총 20 여 개의 만두가 만들어졌다.

“내가 만두 마니아인 거 알쥬?”

자칭 만두 마니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백원종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엄청난 기대가 된다는 듯이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사람이 한결같은 것이 기대되는 요리만 보면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삶은 만두부터 드셔보시죠. 가장 만두소 본연의 맛이 우러나올 테니.”

백원종이 나무젓가락으로 만두를 입에 집어넣었다.

“후후.”

입안에서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김.

백원종은 눈을 감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맛을 느꼈다는 듯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엥? 이건 뭐에유?”

너무나 뻔한 결과지만, 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와…… 역시는 역시여. 참나, 이런 만두는 첨인디?”

백원종이 놀란 것은 확실한 맛과 풍미를 가지고 있는 만두들이었다.

잡내 없는 암퇘지 엉덩잇살의 비중이 높은 만두, 기름기 가득한 삼겹살을 많이 넣은 만두, 야채의 풍미를
한껏 살리기 위해 부추를 많이 넣은 만두…….

생김새는 같지만 다채로운 맛들이 백원종을 사로잡았고, 각각의 만두를 먹을 때마다 기대감이 차오른다.

“이 만두는 무슨 맛일까.”

육수를 넣고 졸인 전골에서는 육수와 함께 섞인 육즙이 입안에서 쏟아져 나왔고, 굽고 튀긴 만두에서는


고기의 풍미가 한껏 고소해져서 흘러나온다.

어떻게 만두로 미슐랭 스타를 노릴 것인지, 내 계획이 정확히 표현되는 요리였다.

“주된 요리를 만두로 가고, 각각 다른 재료를 가미하기도 하는데 코스는 이런 식으로 구성될 겁니다.
다채로운 맛의 만두. 다른 셰프들도 와서 먹어보세요.”

셰프들이 한걸음에 달려 나와 만두를 먹곤 저마다 반응을 했다.

허탈한 웃음을 짓는 셰프, 연신 엄지를 치켜올리는 셰프, 입을 틀어막고 놀라는 셰프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내 말 한마디에 달라졌다.

“이곳에 계신 셰프님들은 주방의 위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겁니다.”

“아 반 셰프, 이 친구들 사이에는 각각 직급이 다 있어. 이 셰프가 이 여섯 명의 셰프들 중에서 가장…


….”

“예, 대표님, 제 밑에 있는 셰프들 중, 이 검정 스카프를 맨 셰프는 경력이 아닌, 온전히 실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머니에서 다시금 검정 스카프를 꺼내 보이자, 경직된 표정을 하는 셰프들이었다.

그것도, 매우 간절히 갖고 싶다는 표정이 섞여 있었다.

“제가 보여드린 맛 말고도, 여기 있는 재료를 이용해 자신만의, 강력한 만두를 만들어 보세요. 제한 시간
세 시간.”

***

“시간을 많이 준 이유가 있어?”

만두를 만드는 것에 세 시간이나 준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의 실력을 최대한 깊게 판단하고 싶었던 것.

저들이 맛을 보고, 수정하는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많이 주면 저절로 저들이 가진 실력들이 요리에


충분히 배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두 시간도 충분히 긴 시간인데, 그럼 제가 볼일을 보기엔 애매하니까요.”

또, 그 시간마저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백원종과 나는 레스토랑이 오픈될 점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참 바쁜, 그 레스토랑의 간판을 세우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유현’이라는 그 이름이 거리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되기에, 내가 그 현장에
직접 나타나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끄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마침, 세 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기도 하고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시간을 쪼개는 기술이 참…… 나이에 어울리지가 않아. 우리 아들이 보는 만화가 있던데, 혹시 반
셰프도 인생 2 회 차 아니야?”

“예?”

“하하하하! 하하! 아니, 대단한 사람들을 다들 그렇게 말하더만. 인생 몇 회차냐고.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2 회 차의 인생을 사는 애송이들도, 소설이나 만화의 주인공이 되나 보다.

“다 왔네. 내리자고.”

강남역 높은 회사 건물들이 세워진 그 뒷골목 사거리, 영화관, 노래방, 술집 수많은 업소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었다.

마침, 간판을 세우는 인부들이 사다리차를 이용해 간판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간판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는 서서히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에? 반유현?”

“헐! 야! 반유현이다!”

“반유현이랑 백원종이야!!”

예전에 이태원에서 길거리 음식 배틀을 했던 투샷이 세간의 이슈가 되었고, 나와 백원종이 함께 있는 이


투샷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뭐야! 레스토랑 오픈하세요?”

나는 정확히 간판 아래에 서 있었다.

[ 반유현 - 그린 ]

색에 별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니었고, 영국인으로 태어났을 때는 영국에, 프랑스인으로 태어났을 때는


프랑스에, ‘그린’을 세웠던 터라 이번에 대한민국에 새롭게 오픈될 레스토랑의 이름 그린으로 정했다.

“예, 레스토랑 오픈합니다.”

우와아아아아!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 강남 거리의 사람들이 몰리니, 경호원들이 분주해졌다.


“어떤 메뉴예요!”

“우와아아아! 반유현 또 생긴데!”

“뭐 팝니까!”

“언제 오픈해요?”

“오픈이 언제예요!”

메뉴가 뭔지, 오픈 날짜가 언제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었다.

“2 주 뒤 오픈 예정입니다.”

“잉?”

백원종이 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릴 뿐, 모든 것이 다 계획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메뉴는요! 메뉴는 있어요?”

전문적인 진행자가 있던 것도 아닌데, 알아서 홍보의 장이 열렸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중, 귀에 꽂히는 질문들에 답을 했다.

사람들의 손에 카메라가 수없이도 들려있는 것을 보니, 이만하면 내가 한국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한다는 것을 알렸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셰프들이 만두를 만들고 있는 현장으로 이동하려는 그때.

“반유현 셰프님!!”

누군가 우렁찬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낯익은 얼굴을 가진 중년의 남성이었다.

“허허허허! 반유현 셰프님! 접니다! 저요!”

최경복이었다.

환생 직후 ACK(어메이징셰프코리아)에 출전했을 때, 나의 팀원 중 하나로서 활약했던.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졌지만, 그 누구보다 요리에 엄청난 열정을 가진 그였다.

“어, 최경복 님!”

방송 출연 뒤에 중식당을 차려 잘나간다고 들었었는데, 이 어귀에 자신의 식당이 있나 보다.

“아이고! 허허허허!”

내가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자, 그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셰프님 덕에 제가 이렇게 살이 쪘습니다! 하하하하! 한 번 팀장은 영원한 팀장! 제가 연락드리려고


수많은 방법을 알아봤는데. 저 정도의 셰프는 반유현 셰프님의 근처에 닿지도 못하더군요. 하하하하!
셰프님께서 이렇게나 성공하셔서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저도 뵙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추억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네, 잘 지냈습니다. 셰프님…… 그런데, 이제 셰프님의 경쟁업소가 되었는데 어떡합니까? 하하하하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최경복이 몸을 돌린 방향을 바라보니, 붉은색 간판이 보인다.

[ 화란 ]

중식을 주로 요리하는 식당으로, 인기 메뉴는 멘보샤와 중식만두라고 했다.

“하필…… 셰프님께서 만두를 하신다니…… 저희 식당의 요리를 바꿔야 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
어쩌죠?”

“각각의 다른 맛이 있는 것이니까요.”

“모처럼 한국에 오셨고 이렇게 저를 만나셨는데,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네요 셰프님. 아아, 옆에 백원종 대표님도 계셨군요! 하하하하 제가 눈이 안 보여서리…….”

우와아아!

최경복이 나에게 진한 존경심을 표현하자, 주변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최경복도 사람들에게 꽤나 인지도가 있다는 얘기였는데, ACK 출연 이후, 장사가 잘되는 식당의 사장
정도의 반응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아저씨, 꽤나 시청률이 높은 요리 프로나,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요리 유튜브 정도는 되는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인기가 꽤나 많아지셨네요?”

“하하하, 그것도 다 셰프님 덕분이죠.”

***

최경복과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차에 올라 돌아가는 길.

최경복은 ‘냉장고를 열어라’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메인 셰프로, 그 프로에서 열리는 경연에 수많은


우승을 차지했다고 했다.

그 방송은 그의 실력이 대한민국 전체에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해, 최경복도 셰프로서 적지 않은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푸근한 인상, 장애를 극복했다는 근면성실함, 요리에 혼을 담는 신념 등 그가 인기를 가지게 된 이유는


많을 것이다.

“본인이 그렇게 된 게 모두 반 셰프 덕이라니, 겸손함도 가지고 계신 분이야.”

식당 또한 그렇게 잘되고 항상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그 모든 공이 나의 덕이라고 돌리는 것도 보통


내공의 사람은 아닌 듯했다.

아무튼, 내가 홍보에 관련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 때, 백원종은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 최경복 셰프님이 출연하시는 프로…… 내가 메인 PD 랑 잘 아는 사이야. 그런데, 자꾸 자네를
섭외했으면 좋겠다고. 섭외하고 싶은데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말만 전해달라는데.”

그 메인 PD 라는 사람과의 체면치레를 위해서 나에게 제안을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분명 나에게도 이득이 되리란 제안이기에 나에게 전하는 것이겠지.

“어떤 프로인데요 정확히?”

“연예인들 냉장고를 그대로 가져와서 그 안에 있는 재료들로 요리를 하는 건데…… 딱 한 번 출연해서


홍보를 하는 것도 좋았으면 싶겠지만. 스케줄이 안 되네. 자네가 2 주 뒤에 레스토랑을 런칭한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생각해보니 굳이 출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워낙 바쁘니까.”

지금 촬영해봤자, 2 주 뒤인 레스토랑 런칭 시점에 방영이 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했으니, 굳이 출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밝히기까지 했다.

“그 프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요리 프로입니까?”

“뭐, 내가 출연하는 골목가게 그 다음이쥬. 하하하.”

“음. 제가 출연한다고 하면, 2 주 안에 방영이 가능할까요?”

“응?”

“말씀대로 홍보효과도 좋을 것 같고, 전 세계 요리 프로 어디에도 출연하지 않는 제가, 이 프로에


출연하면 국민분들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네요.”

“허허허! 국민? 맞지 자네가 국민셰프이기도 하지.”

매번 그랬듯이 방송시점이 런칭 전날이거나, 전전날 정도 되면 또 한 번 폭발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 폭발력은 대중매체와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해 선정되는 미슐랭 평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된다.

오픈 뒤에 요리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각종 매체에 소개되고 미슐랭 평가단원들이 그것을 근거로 평가


리스트에 올리는, 전통적인 방법보다 훨씬 더 빠른 방법이었다.

방송사에서 급하게 연예인 섭외부터, 출연진 셰프들까지 모든 스케줄에 대한 조정을 해준다면…… 굳이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자네가 출연한다 하면 모든 걸 다 맞춰주겠지? 일단 연락은 해볼게유.”

99 화. 가장 바쁜 시기 (4)

“2 주 안에 방영, 어렵지만…… 그것만 맞춰주면 반유현 셰프가 출연해준다니!”

비상상황이 벌어졌다.

JJBC 의 예능국. 모든 작가, PD 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섭외에 들어갔다.

대부분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은 이런 급한 섭외에 응하지 않는다.

2 주 뒤에 방영이라면, 당장 이번 주 안에 녹화를 해야 되는데 대부분 유명 연예인들이 일부러 스케줄을


비워둔 것이 아닌 이상, 이미 스케줄이 차 있기 때문.
“일단 제가 아는 모든 매니저들한테 연락은 돌려놨는데, 역시나 문제가 있네요.”

“하, 어떻게 해야 되나…… 반유현 셰프는 반드시 잡아야 되고, 그렇다고 아무나 섭외하면 반유현 셰프를
섭외한 게 빛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무명 연예인이나, 인지도가 덜한 연예인을 섭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유현 셰프를 섭외했다면, 그에 걸맞는 인지도를 가진 연예인을 섭외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나.

“일단 답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요,”

“그러게. 다른 셰프들은 어쩐대?”

문제는, 그 출연진들도 스케줄을 바꿔야 했다.

메인 MC 와 출연하는 셰프들을 모두 합하면 10 명.

반유현을 섭외했다는 이유를 내밀면서 그들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이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셰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반유현 효과야? 하하하!”

셰프들이 모두 급박한 스케줄 조정에 응했다.

메인 MC 들도 원래 있던 스케줄을 조정하고 긴급 녹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최근 시청률이 저조했던 탓에 프로그램을 살리는 일에 동참한 것이다.

반유현의 출연은 확실하게 프로그램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흠. 회의 시간 자체가 계속 미뤄지는데 진짜 골치 아프구만.”

작가들과 조연출들이 매니저들과 연락을 하느라, 회의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연락을 끝낸 작가를 비롯한 스탭들이 회의실 안으로 한 명씩 들어왔다.

“다들 어떻게 됐어?”

“대, 대박입니다 감독님!”

“……그래?”

그리고 한 명씩 들어오는 스탭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얼굴이었다.

“좋았어!”

***

“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났다.


‘냉장고를 열어라.’의 방영 날짜를 맞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파격적인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반유현팀의 직원이 가져온 A4 용지에는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 연예인들의 명단이 적혀있었다.

급박한 섭외임에도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연예인들, ‘냉장고를 열어라’ 메인 PD 는 그 명단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나보고 고르라고 했다.

“어떤 연예인이 나와도 셰프님의 들러리로 작용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출연의사를 밝힌
연예인들은 셰프님의 팬이거나 셰프님의 요리를 엄청 먹고 싶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셰프님의
요리를 먹으려면 최소 3 개월을 기다리거나 대기줄에 6 시간 이상을 서 있어야 되고 얼마 전 셰프님의
몸값은…….”

오스틴 바로 아래에 있는 직원이라 그런지, 이 직원도 그에게서 사소한 일에 의미 부여하는 법을 배웠나


보다.

나는 천천히 명단에 적힌 이름들을 읽어 봤다.

-Z 드래곤

-채성아

-한윤정

-김래연

…배우들부터, 가수, 스포츠 스타들까지.

어떤 사람들이 내가 선보인 요리에 강력한 리액션을 할 것이며, 그 리액션으로 대단한 파급력을 불러올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예? 셰프님, 이 배우들하고 가수들 중에 아는 사람이 없다고요?”

“그래.”

“한국 사람 맞아요? 혹시 간처……ㅂ.”

이 몸으로 계속 살아왔던 것도 아니며, ‘반유현’이라는 이 몸이 가졌던 기억에는 유명인들에 대한 정보가


뚜렷하지 않았다.

환생 직후 TV 를 보겠다고 본적도 없으며 요리에만 몰두했으니까.

내가 아는 연예인이라곤 골목가게 메인 MC 이성주와 백원종뿐이다.

아, 아이돌 TTS 도 있었지.

물론, 어떤 성향을 가진 인물을 출연시키는 것이 좋을지는 알고 있었다.

“평소에 엄청 무미건조한 말투와 표정을 가지고 있어 기쁜 표정을 짓는 것 자체가 극적으로 연출될 만한


배우.”
“한 명 더 고르셔야 됩니다. 출연자는 두 명으로 구성되는 방송프로그램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백원종 대표님.”

“예?”

“그분만큼 요리와 맛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분이 어디 있어. 그리고 그분이 맛있다고 먹는 레스토랑들은


무조건 대박 나잖아.”

***

촬영 당일.

스튜디오에는 벌써 셰프들과 메인 MC 들이 자리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다들 일어나서 나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골목가게의 메인 MC 였던 이성주가 이 프로그램에도 MC 를 맡고 있었다.

개그맨 정원돈과 함께. 정원돈도 나에게 대단한 반가움을 표현했다.

“와…… 80 억, 80 억 셰프 아닙니까? 일당이 80 억이면 영국 축구리그, EPL 선수들보다 몸값이 비싼


건데요. 하하하하!”

“아, 기부라는 것에 의미 부여할 수 있어서, 몸값이 뛰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나저나 셰프님께서 출연자를 골랐다고요?! 와…… 참 우리 제작진들 너무 차별대우하네, 이


정도면 거의 인종차별 아니에요?”

개그맨답게 유려한 말솜씨로 촬영장의 분위기를 올리는 정원돈이었다.

“근데 그 배우가 섭외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워낙 예능 쪽에 출연을 안 하시는 분이라…… 또 한


분은 백원종 대표님이라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정원돈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출연 셰프들이 하나둘 내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원돈처럼 나에게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었는지, 쭈뼛쭈뼛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기질투가 만연한 세상에 이런 반응들은 또 색달랐다.

최경복도 주요 출연진 중의 한 명이었는데, 자기 자리에 앉아 ‘허허’ 웃고 있었다.

“셰프님, 오늘 어떤 요리를 준비하셨나요?”

“예?”

“준비를…….”

방송에 연출되는 것은 셰프들이 즉석에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요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론,
그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셰프들에게 미리 알려주어, 녹화 전에 어떤 요리를 할지 준비를 해오는
것이라고 한다.

“특별히 준비를 안 해왔는데, 다들 미리 준비하신 건가요?”

“예? 진짜로요?”

내가 한국에 도착한 이후로 줄고 나를 보좌하던 반유현팀의 직원을 바라보자,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야, 됐어. 큰 문제 아니야.”

셰프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계속 쳐다봤다.

‘진짜 준비를 하지 않았나?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실제로 즉석에서 한다는 건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듯한 눈빛들.

“지,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예, 뭐. 요리가 다 비슷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내가 출연자로 골랐던 배우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무뚝뚝한 성격을 가졌으리라는 것이 예상된다.

악역 전문 배우 이만식.

살벌한 얼굴(?)과 표정으로 안방극장을 넘어 영화계를 점령한 씬 스틸러.

그가 맡은 캐릭터들이 대부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들이었는데, 실제로도 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와……. 안녕하세요.”

그것보다 그가 예능 촬영 현장에 나타났다는 것이 출연진, 스텝들에겐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와 동시에, 백원종도 촬영 현장에 나타났다.

“아니! 대표님! 저희가 그렇게 말할 땐 바빠서 출연 못 하신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이거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정원돈은 또 타겟을 바꿔 백원종을 나무랐다.

“에이, 이 사람아 그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유?”

녹화시작 전부터, 출연진과 스텝들의 기대가 올라간다.

그때, PD 가 녹화를 시작하자는 사인을 보냈다.

“자자, 다들 준비하시죠!”

***
“자! 오늘의 특별 게스트를 모시겠습니다! 이거 이거 역대급 게스트입니다. 예능 최초 출연을 하신
배우님이 계시구요! 다른 한 분은 요리업계에서 워낙 존경받는 분이라, 냉장고 안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가 될 것 같습니다!”

“아…… 이분들 섭외하느라 엄청 힘들었습니다.”

사실 힘들지 않았다.

출연하겠다는 연예인을 내가 골라서 출연시킨 것이었으니까.

정원돈과 이성주가 오프닝 멘트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출연 게스트를 모시겠습니다! 이만식 씨와! 백원종 씨입니다!”

“와! 이만식 씨는 예능에 첫 출연 하시는 건데, 출연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부분 배우나 가수들은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거나, 신곡을 홍보하곤 하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다.

물론, 스텝들과 MC 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제가 요즘 요리에 관심이 정말 많습니다. 맛에 대한 진리를 찾고 있는데, 반…….”

“아하! 거기까지!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특특특별게스트를 벌써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하하하하! 아무튼, 맛의 진리를 찾기 위해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셨다 그 말씀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성주는 백원종에게 질문을 옮겼다.

“백 대표님은 저랑 방송을 진행하고 계신데, 워낙 바쁘셔서 출연을 안 하실 줄 알았는데, 참……


배신감도 느낍니다. 백 대표님께서도 역시나 ‘그분’ 때문에 출연하신 거죠?”

“그렇쥬. 하하하. 배신감은 무슨.”

고정 출연자로 함께 앉아 있는 셰프들도 분위기를 고조했다.

“빨리 보고싶네요.”

“특별 게스트…… 오늘 제가 잡겠습니다.”

“아아아! 김홍 셰프! 방금 발언 책임지셔야 될 텐데요!”

“죄송합니다. 이렇게만 말해도, 제게 이득인 것 같아서요.”

“하하하하! 함께 엮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는 건가요?”

그리고, 이성주가 말했다.

“자아아아! 오늘의 특별 게스트! 정말 힘들게 모셨습니다! 반유현 셰프입니다아아아!”

셰프들과 게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와아아아! 반유현 셰프님께서 저희 냉장고를 열어라에 참석해주셨습니다! 유럽에서 엄청난 행보를


보여주시고…… 수많은 젊은 셰프들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는 셰프님!”
“여기 계신 셰프님들하고 인연이 있으시다고요?”

“예, 백원종 대표님하고는 워낙 친한 사이고, 이성주 님도 골목가게에서 뵀던 적이 있고…….”

“하. 그러게요 골목가게를 방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완전 괴물 셰프가 돼서 다시


나타나셨네요! 하하하하.”

앉아 있는 셰프들을 둘러보니, 대부분 낯이 익은 셰프들이었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만났을 것 같은 얼굴들.

대게 인지도가 높아, 내가 참여한 서울시 요리대회나, ACK 의 심사위원 또는 진행위원으로 봤었을 것이나,
내가 수도 없이 실렸던 잡지나 언론에서 봤던 얼굴들일 수도 있고.

특급호텔의 셰프들, 미슐랭 1 스타 셰프, 언론사 선정 올해의 셰프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셰프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연출적으로 재미있고, 나의 요리가 돋보이려면 ‘그’와 대결하는 것이 가장 나아
보였다.

“그리고, 최경복 셰프님은 ACK 에서 함께 합을 맞췄던 적이 있습니다.”

“아아! 저희 냉장고를 열어라 최다 우승자 최경복 셰프님이 알고 보니 반유현 사단에 있었던 적이


있으시군요!”

“그렇습니다.”

조리복에 주렁주렁 달린 별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을 뜻했다.

특급호텔이든, 미슐랭스타 셰프이든, 그들을 이기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 같고, 이 프로그램의 대장을


상대하는 게 내 요리가 가장 돋보이는 것 아니겠나.

“자! 대진표를 한번 뽑아보겠습니다!”

100 화. 최고 속도 (1)

사실 MC 들이 멘트는 그렇게 했지만, 내 대결 상대는 이미 스텝들 그리고 출연진과 맞춰 두었다.

“자! 과연 누가 반유현 셰프를 상대하게 될 것인가!”

“아아! 셰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려 있네요! 하하하! 김홍 셰프님! 아까 하셨던 말씀은 그대로세요?”

“아니요 취소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반유현 셰프를…….”

스텝들도 내가 제안했던 대결 구도가 가장 흥미로우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전에 내가 이끌었던 팀원 중의 한 명, 그리고 현재 가장 많은 ‘냉장고를 열어라’ 별을 소지한


최경복과 나와의 대결이,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셰프들과의 대결보다 관전 포인트가 많을 것임은 분명했다.

게스트인 백원종이 여러 가지 종이가 있는 추첨 통에 손을 넣더니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그 종이에 적혀있는 글자. 최경복.

“와우! 최경복 셰프님이! 반유현 셰프님을 상대하겠습니다!”

시청자들에겐 유감스럽지만, 방송이 다 이런 것 아니겠나.


연출자들의 입장에서도 ‘나’를 이용해 이번 분량의 재미를 최대한으로 뽑아내기 위해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또, 내가 요리를 하고 그것을 맛보는 게스트들의 모습이 가장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이번 화의 마지막에


나올 테지만, 가장 먼저 요리를 하기로 했다.

바쁜 일정 덕분에 내가 빨리 요리를 하고, 편집으로 이것을 마지막에 배치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출연자들 중에 불만을 갖는 셰프는 없었다. 모두 나보다 연차가 높은 셰프들인데, 이미 셰프들


사이에서의 나의 입지는 저들이 시기와 질투를 가질 수 없을 만큼 올라간 듯했다.

“그럼! 백원종 셰프님의 냉장고를 한번 확인해볼까요?”

정원돈이 백원종의 냉장고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을 때는 출연진들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와아아! 역대급 냉장고네요. 역시, 백원종 대표님! 기대한 것만큼의 많은 재료들이 들어있습니다.”

백원종, 그 인물 자체가 갖는 영향력 때문에 내가 출연할 때 같이 출연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 인물만큼


요리와 맛을 찾는 것에 재미를 가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히 그의 냉장고에는 일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만큼의 식재료가 담겨있었다.

고기는, 닭, 돼지, 소 따지지 않고 종류별로 정리되어있었으며, 각종 조미료와 채소들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가득했다.

“유럽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반유현 셰프가 할 수 있는 요리들도 많아 보입니다! 엄청 기대가 되네요!”

“자, 누가 먼저 선공을 하실 건가요?”

순서를 묻는 정원돈의 질문에 최경복이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으로 대답했다.

“허허허. 제가 먼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이 바쁘시지만 제 요리를 한번 드셔보셨으면


좋겠네요. 괜찮으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

백원종의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최경복은 고추 잡채와 꽃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최경복이, 냄새와 촉감으로만 지방 함량이 적은 돼지고기 등심 부위를 골라내고 도마에


올려놓는 것을 시작으로 요리가 시작됐다.

탁! 탁! 탁! 탁!

“아하! 나옵니다! 최경복 셰프의 전매특허 중식도 쇼!”

MC 들은 그가 요리하는 모습에 멘트를 얹으며 화면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저 중식도에는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죠!”

“뭔가요?”

“반유현 셰프가, ACK 출연 당시 최경복 셰프가 칼질을 하는 것을 보고 맹인인 줄 몰랐다고……


진짜인가요?”

“네, 워낙 칼질을 잘하셔서, 정말 몰랐습니다.”

최경복은 순서에 따라 미리 준비해둔 야채들을 팬에 볶은 뒤에, 자신만의 비법이 들어간 특제 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이미 있던, 꽃빵에 버터를 발라 팬에 한 번 굽기 시작했다.

“아아아! 요리의 치트키죠! 버터를 바른 밀가루입니다아아!”

“백원종 대표님, 아까 냉장고를 보니까 밀가루 음식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파스타 면, 스파게티 면,
라비올리, 꽃방, 만두피…… 밀가루를 너무 좋아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하. 뭐, 인간의 몸은 탄수화물이 당기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본능을 따를 뿐…….”

MC 와 게스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최경복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곤 나도 놀랐다.

맹인이 저 정도의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요리하는 모습 자체는 그가 장애를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것을 그 아무도 알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나처럼 100 년을 넘게 요리한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눈에 훤히


보였다.

띵!

그리고 최경복은 접시에 꽃빵과 돼지와 야채를 먹음직스럽게 볶아낸 고추 잡채를 올렸다.

“자! 최경복 셰프님의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백원종 대표님의 평가가 있겠습니다!”

백원종이 냄새를 한번 맡고는 젓가락을 집었다.

그리곤 손으로 꽃방을 주욱 찢어서 볶은 야채와 고기를 올렸다.

입에 넣고, 곧장 탄성을 뱉는 백원종.

“와……. 중식의 대가라 불릴 만하네유.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먹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군침이 도는 출연진들이었다.

또, 워낙 그의 먹방이 유명했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표정들이었다.

“음…… 야채의 결도 다 살아있고, 이 소스가 뭐에유? 진짜 맛있네. 이건 제가 사고 싶을 정도네유.”

“허허허. 감사합니다.”

최경복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그의 가슴에 붙어 있는 수많은 별 배지들이 철렁하고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마음 같아선 저 별을 하나 더 달아드리고 싶은데, 반유현 셰프가 무슨 요리를 할지 모르겠네요. 워낙


충격적인 요리들을 많이 꺼내는 셰프라…….”

“허허. 그렇습니다. 저도 기대되네요.”

“음. 이건 진짜. 대박입니다. 제가 배우고 싶을 정도예요.”


백원종이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을 보곤 이제 다른 셰프들과 게스트인 이만식에게 그 접시가
돌아갔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사람들이 감탄을 하는 맛이었다.

“와우!”

“와…… 역시…… 최경복 셰프님. 하하하!”

특히나, 매사에 날카롭고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는 이만식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압권이었다.

“아아아! 이만식 씨의 표정이 저렇게 밝은 적이 있었나요! 엄청 이례적인 일이네요!”

“하하하하! 정말요! 화면에서도 음흉하고 살벌한 미소밖에 못 봤었는데, 맛이 어떤가요 이만식 씨?”

영화 외의 방송에는 출연하지 않았고, 그가 대부분 살벌하고 차가운 악당의 역할을 맡아 와서 그런지,


그가 짓는 행복한 표정이 매우 신기한 출연진들이었다.

연출자들도 그의 그런 표정을 디테일하게 담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한창 행복한 표정으로 맛을 음미하던 이만식이 입을 열었다.

“정말 최곱니다. 와……. 이런 고추 잡채와 꽃빵은 처음 먹어 보네요. 버터의 풍미가 야채들의 풍미를
이렇게 극대화시켜줄 줄은…….”

셰프들도 감탄을 멈추지 않자, MC 인 이성주와 정원돈이 중재했다.

“그만들 하시죠. 하하하. 아무리 반유현 셰프라지만 이 정도의 강력한 요리 앞에서는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맞습니다! 하하 반유현 셰프님. 앞선 요리에 대한 평가를 해주시겠습니까?”

“음…….”

내가 곧장 대답을 안 하자, 정적이 이어졌다.

“맛있습니다.”

아니, 방송이 재밌으려면 더 자극적인 멘트를 해야 되나?

“그런데, 저를 이길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와우!”

출연진과 셰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허허허허. 역시…… 우리 팀장님. 화끈하십니다.”

최경복도 적잖이 당황한 듯, 특유의 너털웃음을 흘렸다.

방송을 위한 멘트임을 그도 알 터였다.

***
냉장고를 열어라의 이원성 PD 의 눈에는 지금 녹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놓치기 싫을 정도로
재밌는 광경들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그동안 대중들에게 보여준 적 없었던 이만식의 행복한 표정, 백원종이 입이 닳도록 최경복의 요리를
칭찬한 것, 그리고 반유현의 도발적인 멘트까지.

어떻게 이 장면들을 한화에 다 담아야 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아! 반유현 셰프, 재료를 찾고 있는데요. 과연 어떤 요리를 선보이실지!”

“반유현 셰프님! 어떤 요리를 하실 건가요!”

그리고, 반유현의 요리가 시작되었다.

“만두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만두요?”

“네, 제한된 시간이 있으니 삶거나 찌지는 못하겠고. 군만두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반유현의 행동은 어딘가 이상했다.

지금까지 방송이 진행된 동안 셰프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유현은 백원종의 냉장고 문을 열어, 하나하나씩 재료들을 꺼내 보고 분류하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시는…….”

“제가, 이 안에 어떤 재료들이 있는지 미리 숙지하지 못해서요.”

“네?”

이원성 PD 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이었다.

실제로, 셰프들이 실시간으로 즉석에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라면 냉장고 안의 재료가 무엇인지 찾고,
어떤 요리를 할지 생각하는 것들이 방송에 나왔어야 했는데, 여태까지 그런 모습을 화면에 한 번도 비추지
않았었다.

당연히 이전까지는 모두 셰프들에게 미리 재료를 알려주고 준비해온 요리를 하는 방식이었으니까.

‘저게 연기일 리는 없고.’

분명 반유현에게도 전달을 했을 것인데, 무슨 이유인지 반유현은 실제로 즉석에서 재료를 파악하고


요리하는 것처럼,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처음 보듯이 이것저것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선별한 재료를 조리대 위에 올려놓고 요리를 시작하는 반유현이다.

“아아아! 한 번 더 보는군요! 이 장면을!”

반유현이 중식도를 이용해 고기와 야채를 빠르게 다지는 장면.

앞선 최경복의 퍼포먼스가 있었으니, 그와 비교하는 장면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이원성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고기와 야채를 버무리고, 조미료를 첨가해 만두소를 만든 반유현은 냉장고에서 만두피를 꺼냈다.
“만두피! 만두피는 이미 있는 것을 사용하는 반유현 셰프입니다.”

“와아아아아! 저건 명절에 만두 좀 빚어본 솜씨인데요!”

만두피에 만두소를 채워 넣고 빚기 시작했다.

백원종의 흐뭇한 웃음과 이만식의 호기심 넘치는 표정 또한 화면의 구성을 풍성하게 해 줄 요소였다.

“보통의 만두와는 다르게, 직사각형, 두 개의 면을 가진 만두로 만듭니다.”

동그란 모양이거나, 입체적인 모양의 만두가 대부분인데 반유현이 빚은 만두는 직사각형으로 마치 전병


또는 납작 만두와 같은 모양이었다.

“맛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치이이이익!

그리고 반유현은 완성된 만두를 팬에 올렸다.

식용유를 두르고, 튀기듯이 굽더니, 팬에 물을 붓고 뚜껑을 덮었다.

“만두가 완성되고 있습니다! 팬에 굽다가 뚜껑을 닫는군요!”

“바삭함과 촉촉함이 동시에 포함된 만두를 만들고자 이렇게 조리합니다.”

셰프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질 만두가 어떤 맛을 낼는지, 점점 몰입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반유현은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냉장고 이곳저곳을 뒤지더니, 백원종에게 물었다.

“냉장고에 파프리카 있습니까 대표님?”

“그 아랫간에 있어요.”

“다져놓은 마늘 말고, 통마늘 없습니까?”

“음, 그 서랍 열어보면 마늘 편은 있는데, 통마늘은 없어유.”

그러면 그럴수록 PD 의 의문은 커져만 갔다.

‘진짜로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모르고 왔다고? 그럼 저 만두 요리를 즉석에서 생각해 낸 거야?’

101 화. 최고 속도 (2)

당연히 냉장고 안에 어떤 식재료가 있든 만두를 만들 생각이었다.

애초에 이곳에 출연한 건, 강남역에 세워질 ‘반유현-그린’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다만 내가 만들 만두가 어떤 만두가 될지는 몰랐던 것뿐이다.

“진짜로 오늘 준비를 하지 않고, 즉석에서 요리를 하시는 건가요?”

팬에 만두를 굽고 있을 때, 이만식이 물어봤다.


차갑고 날카로운 말투, 악의는 담겨있지 않으나 그가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누구나 오해를 했을 법할
정도로 그는 최경복의 요리를 먹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 요리를 먹여서 빨리 저 표정을 깨트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만두를 만들어야겠다고는 생각했는데, 그 만두소를 무엇으로 채울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만두피도 없고, 고기도 없고 그랬다면요?”

“그에 따른 전략이 있었을 겁니다.”

“그, 그니까 지금 재료를 보고 프리스타일로 만두를 만드신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셰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반면에 어떤 셰프는 나의 과도한 자신감에 의문이 들었는지,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하며 그 의문을
표현했다.

간장, 마늘, 고춧가루, 식초, 파프리카 가루 등 조미료를 첨가한 소스를 만들었고, 팬에 올린 만두를
접시에 담았다.

누가 봐도 아주 단순한 요리. 그 안에 아주 강력한 맛이 담겨있다는 것은 이전에 내 만두를 먹어 본


백원종 말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와! 드디어 완성되었군요!”

셰프들의 호기심도 접시에 같이 담겼다.

호기심이란 요리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기대감으로도 통용되어 사용되곤 하는데, 나에겐 매번 그런 핸디캡
같은 것이 있다.

나의 요리가 엄청 뛰어날 것이며, 충격적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런 것이었다.

맛있으면 본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맛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감을 표하기도 한다.

“컥.”

그래서 나는 항상 그들이 기대한 것 이상의 맛을 보여주었다.

“허.”

이만식과 백원종, 둘의 외마디 감탄사가 스튜디오를 울렸다.

백원종은 이전에 나의 만두를 먹어봤음에도 또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보여주지 않은 맛을 담았으니까.

“돼기고기를 사용할 때, 돼지고기의 지방만을 담았습니다. 단백질의 풍미는 두부를 넣었고요. 두부는
만두가 익을 때, 그 속에 수분공급원으로 작용하기도 하죠. 그리고 돼지 지방의 과한 풍미를 중화시키기
위해 부추를 넣었습니다.”

물론, 돼지고기의 어떤 부위에 있는 지방이냐에 따라 풍미가 다른데,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비율로 섞었으며, 부추 또한 크기 별로 내는 향이 달라 그것도 조절했다. 또, 만두소에 넣은 두부,
그 두부의 간수가 어느 정도의 염분을 가지고 있는지도 만두의 간을 조절하는 방법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이 모든 것들의 밸런스를 따졌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이 스튜디오에


아무도 없었다.

“흠.”

백원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최경복의 요리를 먹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이다.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맛을 음미하는 백원종.

이 충격적인 맛의 놀라움, 그 근원을 알아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요리와 맛에 대한 조예가 깊어 그가 느끼는 충격도 다른 사람들보다 컸을 터인데, 이전의 충격을 한번


받았기에 이번엔 큰 충격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으니, 그가 느낀 충격은 더욱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내 시선은 카메라가 이들의 리액션을 담듯이, 자연스럽게 이만식을 향해 이동했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탄식하고 있는 이만식이었다.

“이게……!”

“왜요? 왜요? 맛있습니까?”

“아아아! 이만식 배우에게서 저런 표정을 볼 수 있었나요?”

아직 내 요리를 먹어 보지 못한 셰프들과 스텝들은 이만식과 백원종의 리액션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하하하하! 와우!”

이만식에게서 이런 호탕한 웃음을 본 적이 있었나.

정원돈과 이성주가 그의 웃음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씹었을 때 나오는 기름진 맛이…… 그리고 깔끔하게 어우러지는 야채들의 맛이……. 와!”

만두를 소스에 찍어 계속해서 입으로 가져가는 이만식을, 셰프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이만식 씨, 저희도 먹어봐야죠! 그만 드셔요 하하하!”

“아아, 죄송합니다.”

악역을 완전히 미쳐버리게 만든 만두, 셰프들도 그 맛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드시는 맛 그대로, 저에게 사랑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

[ 냉장고를 열어라 최다 우승자 최경복 반유현 앞에 무릎 꿇다. ]

[ 충격적인 맛의 연속……! 대체 무슨 맛이길래. ]


[ 강남에 오픈되는 ‘반유현-그린’. 냉장고를 열어라에서 보여준 만두의 맛 재연? ]

[ 연출인가 진짜인가, 끝나지 않은 반유현 맛의 논란 ]

셰프들의 리액션도 많은 반응을 이끌었다.

만두를 한 입 베어 물고 어깨춤을 추는 셰프, 눈을 감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셰프, 놀란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은 셰프…… 최경복 또한 내 만두를 먹고 대단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분량의 방송이 방영되고, 나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이슈가 되었다.

지금 인기 검색어를 내려다봐도 모두 나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반유현

-반유현 만두

-반유현 강남역 만두집

-만두레스토랑

[ 대한민국인이 뽑은 첫 유럽 여행 시 꼭 가봐야 할 식당 1 위 ‘반유현’ ]

[ 반유현 한국 다시 상륙! ]

[ 반유현-그린, 오픈 앞두고 대중들의 관심 폭발 ]

공사는 다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간판을 세워두고 방송에 출연했던 터라 오픈 전부터 대중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미슐랭 평가 리스트는 작성될 때에 대중매체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빈도로 설정되니, 불과 몇 주를


앞둔 평가 리스트에 ‘반유현-그린’이 당연히 추가될 것이다.

“고생했다.”

‘반유현-그린’에서 일하게 될 셰프들 또한 나에게 메뉴 테스트를 받은 다음 날부터 집에 가지 않고 맛을


올리는 것에 힘썼다.

“수분을 조금만 더 빼야 될 것 같아. 고기는 항상 그날에 다지고, 볶아. 미리 준비해둔 고기는 없는 거야.
예약제니까, 얼마의 손님이 올지 예상이 가능하니까 나태해질 수도 있어. 그때그때, 고기를 사용하는
것이. 그래서 재료들을 미리 손질해 놨다간 다 끝장나는 거야.”

지금 당장은 100 퍼센트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들의 실력이 빠르게 올라온 것 자체에 큰 만족감이
있었다.

“권화윤.”

‘반유현-그린’의 런칭 멤버 중 검정 스카프를 받은 여성의 이름이었다.

본명은 권화윤, 주방에서 불리는 그녀의 이름이 에린이라고 한다.

랩 네임 같은 건데, 주방에서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포부를 담고 새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무튼, 그녀가 1 등을 해서 검정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경력, 나이, 상관없이 실력으로만 이 친구를 뽑은 거야. 한 번의 테스트를 통해 이 친구를 뽑은 것에


대해서 의문이 들거나, 미심쩍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도 한다. 지금 단언하지만, 내 눈은 정확해. 내
밑에서 일했던 셰프들이 그랬듯이, 이번에 검정 스카프를 받지 못한 사람도, 나중에 쓰일 수 있는 거야.”

“예! 셰프!”

오픈하지도 않았는데, ‘반유현-그린’을 성공반열에 올려놓은 나의 힘에, 셰프들은 내 말을 더 철석같이


듣는다.

“그전에 이 레스토랑이 완벽한 성공반열에 오르는 게 첫 번째 목표겠지.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까지,


박차를 가하자, 앞으로 80 시간 남았네.”

한국에 들른 김에 ‘반유현-펌킨’을 감독하기 위해 이태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는데,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오픈 날짜가 알려지고 지금부터 문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꺄아아아악!

내가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소리치는 사람들, 그들을 보니 이번 한국 일정이 매우 알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로 줄을 섰다가 적발 시에는 저희 음식을 드실 수 없습니다. 이건, 전 세계 레스토랑 ‘반유현’의


공통입니다.”

우와아아아!

“질서를 지켜주시면, 저희 셰프들은 대단한 요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

“호박선에는 새로운 맛을 추가해야 될 것 같네요. 이게 몇 달 동안 계속 메뉴로 쓰일만한 맛은 아닙니다.


아, 호박전은 튀기는 기름이 바뀐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가요?”

“맛만 보고도 기름이 바뀐 것을 아니? 엄마가, 연구를 좀 했어……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니? 백
대표님도 오셔서 맛을 보고 괜찮다고 해서 바꿔봤는데.”

“괜찮았습니다. 이전보다 낫네요.”

주방을 둘러보고, 맛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했다. 대체로, 준수한 편이었다.

어머니의 호기심과 열정이 만든 결과.

예상컨대, 올해에 이 업소는 미슐랭을 무조건 받을 것이다.

“이번에 전 세계에 최고급 식재료들만 취급하는 딜러들이 생겼는데, 이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그쪽에서 공수해서 공급해야겠습니다. 채널을 확보할 때까지는 지금처럼만 유지해주시고요.”

“그래, 아들, 밥은 먹었어?”


“직업이 요리사인데 밥 못 먹고 다니겠어요?”

어떤 몸으로 태어나도, 그 어머니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내가 웃어 보이니, 나를 보며 눈시울이 촉촉해진 어머니다.

하긴, 이 몸은 원래 집안의 돈이나 갉아먹기 위해 공무원 준비하는 척을 한, 파렴치한이었으니까.

이런 성공이 감동 그 자체였을 것이다.

“저는 알아서 잘하니까요. 걱정 마세요.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아…… 요즘에, 그…….”

“뭔데요?”

내가 걱정할까 봐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어머니의 말투와 표정이었다.

“전화를 가끔 받았는데, 오늘은 밖에도 와 있더라…….”

어머니의 말을 듣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광경에 표정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냉장고를 열어라의 출연으로 내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탓에 나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이득을
쟁취하려는 자들이 움직인 것이다.

그전까지는 전화나 서면으로 어머니에게 압박을 넣었는데, 내가 한국에 왔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유럽에서 여러 가지 레스토랑을 런칭했음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라, 처음엔 당황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요?”

내가 워낙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었고, 인지도를 생각해 저 자세를 취할 줄 알았나 보다.

꽤나 강경한 나의 대응에 적잖이 당황한 표정들이 눈에 보였다.

“주차장 건설 사업 추진비와 상인회 가입비, 월 회비를 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태원 상인 연합회. 회장 최원태.

백발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그는 회원들과 함께, 현수막을 들고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했기에 매출에는 영향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내 브랜드와 이미지에 타격이 있기에, 이 사람들은 그


점을 이용했다.

“이 업장 덕분에 거리가 너무 더러워졌고, 줄을 선 손님들의 소음 때문에 옆의 레스토랑과 술집들에


손님이 줄어들었습니다. 거리에 통행 문제도 있고요.”

“그게, 그쪽에 회비를 내면 해결될 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상인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최고속도로 달리다 보면, 도로 위의 작은 돌들이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만 원짜리 몇 장 던져주고 해결해도 될법한 문제지만, 그 방법도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모든 것을 고려해보니, 내 대응법은 더욱더 간단해진다.

“10 원짜리 한 장 주기 싫은데, 가져가든가.”

최원태가 얼굴이 시뻘게져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자, 덩치가 산만 한 내 경호원들이 그를 막아섰다.

그리고 주먹이 사람 얼굴만 한 경호원 한 명이 묵직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정당방위 성립요건,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본인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일 것,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별말이 아닌데, 경호원의 덩치와 주먹 크기와 더해져 괜스레 최원태를 주눅 들게 했다.

102 화. 최고 속도 (3)

“흠. 어머니, 일단 제가 지적해드린 부분 잘 기억해 두시고요. 저 상인 연합회는 제가 잘 처리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남에게 피해 주고는 못사는 성격의 소유자인 어머니라, 속이 많이 상하셨을 것이다.

상인 연합회에 가입하게 하고, 회비를 내게 하며 내 레스토랑을 저들의 의도에 맞게 운영하려는 속셈,


논리적으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인데 단체, 다수의 힘을 이용해 이 주변에 있는 자영업자들을
흔들어대는 놈들이었다.

물론, 똥파리는 꼬이는 게 당연하다.

저들이 꼬이지 않을 만큼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한 내 잘못이다.

속도를 높이는 일의 일환으로 하루빨리 ‘반유현 팩토리’의 거대한 체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 를 개설하시게요?”

방송과 그 외의 대중매체들에 의해 내 소식이 전달되었고, 내가 원치 않던 기사들까지 가끔씩 등장했다.

그리고, 대중들의 수많은 관심을 직접적으로 이용하고 싶다는 마음에 SNS 계정을 만들었다.

SNS 가 인생의 낭비라는 말들이 많지만, 나에겐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저 상인 연합회, 너무 귀찮으니까 다 죽이게.”

조금 표현이 과격했나.

반유현팀의 직원들과 경호원들이 기겁했다.

SNS 의 아이디를 만들자마자 개설한 것은 내 셀카 한 장과 몇 줄의 문장이었다.

셀카는 이 아이디가 사칭이 아니며, 나라는 것을 인증하기 위함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저는 서울, 이태원 거리에 관행, 역사를 따지며 상인들에게 갑질을 해온
상인 연합회를 고발합니다. 저희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을 이유로 … 중략… 물론,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차장 건설비와 상인회 가입비, 월 회비 등 부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레스토랑에 오시는 분들은 쓰레기를 항상 챙겨주시고, 조용히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하찮은 논리를 가진 놈들을 상대해 줄 시간이 없기에 진정 나와 내 요리가 좋은 손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글은 올라온 지 10 분도 채 안 돼서 인기 게시글에 등록되었다.

-ㅋㅋㅋ상인회? 뭐 하는 놈들임?

-무시하세요 그냥. 어차피 손님들은 반유현 편임.

-돈 냄새 맡고 달려드는 듯, 가입비랑 회비 내봤자 도움도 안 주면서.

당연히 아니꼬운 시선으로 그들을 보는 사람이 많았고, 이 글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퍼져나갔다.

-뭐임? 저런 단체도 있나.

-한국에서 장사하는거 아니랬음. lol

-반셰프! 제발 도쿄로 와주세요!

-뉴욕으로 와주세요! 우리 모든 단체와 시민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용산구청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물론, 나에게 직접적인 연락 말고 내 의전을 맡은 ‘반유현팀’에 말이다.

몇 줄의 문장이 이렇듯 강한 힘을 가졌다니, 세상 살기 참 좋아졌다.

“셰프님, 그쪽에서 직접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어떻게?”

“구청장이라는 직책이…… 식품접객업소 단속 처분 권한도 있고, 상인회에서 추진 중인 주차장사업도 전면


재검토에…… 상인회장이 소유한 건물에 대해 재건축, 재개발 인허가 또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다고
하네요.”

구청에서 직접, 이태원상인회장과 상인회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이태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었다.

나의 SNS 에 적힌 문장과 외국인들의 반응에 의하면 그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것이다.

무슨 갱단 또는 마피아처럼 업주들의 돈을 뺏는 집단이 버젓이 있다는 게, 그 도시와 동네에 좋은


이미지를 줄 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구청의 대처는 언론을 타고 전해졌고, 이것은 사람들의 행동 양상도 바꾸었다.

‘반유현-펌킨’에 줄을 서고 있는 손님들이 ‘조용히 줄 서 있기’ 운동을 시작한 것.

또, 이 운동은 SNS 를 탔고, 파리와 런던에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에도 이런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단하십니다 힘이.”

“상인회장 아저씨는 뭐라냐? 반응 없어?”

“이번 달 말에 세무조사까지 시작된다니, 숨도 못 쉬고 바짝 엎드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잘나가는 맛집 정도의 수준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을 봤었나보다.

SNS 와 각종 언론을 통해 퍼져나가는 자신의 행실이 부끄러웠을 테고, 나의 파급력에 지레 겁을 먹고


엎드려 있을 상인회장이 떠올랐다.

‘멍청한 놈.’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나도 주변의 다른 가게들이 잘되는 것이 좋고 이 동네에서 함께 장사하는


상인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레스토랑 ‘반유현’의 존재가 이 상권을 살리는데 확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상인회장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보다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 했던 것이다.

“사과는 받아야지, 이런 건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되니까.”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확실하게 꺾어 버려야 한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마침 셰프님을 뵙고, 직접 사과하겠다고 상인회장과 간부들이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나한테 뭘 사과해, 우리 어머니한테 사과해야지.”

“어떡할까요?”

“일단 불러봐.”

그렇게 상인회장과 그 간부들이 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이 몸보다 스무 살, 많게는 서른 살이 많은 어른들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내가 다 부끄러웠다.

“덕분에 전 세계에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에 질서 있게 줄서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가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주차장 사업을 추진했고 그에 따라 도움을 조금 받으려 했던…….”

“지랄.”

눈동자가 흔들리는 최원태였다.

며칠간 구청과 세무서의 수많은 조사를 받았던 모양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상인회의 예산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증거들도 많았고, 사소한 욕심 때문에 인생을 완전히
던져 버린 1 인의 역사에 남게 되어버렸으니까.

“공공의 이익? 반성을 안 하시네.”


“죄, 죄송합니다! 평생을 장사만 해왔습니다. 귀금속 장사부터, 술장사…… 물장사…….”

얼굴에 철판 깔고 들이밀 땐 언제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최원태였다.

“저희 어머니한테 전화랑, 우편으로 간간이 계속 협박을 하셨더만요. 제가 한국에 들어온 것을 알고


본격적으로 작당을 시작하신 거고…….”

“그…… 그, 글만 내려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내가 이전에 올렸던 SNS 의 글이 사람들의 입에서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고, 최원태의 신상 및 모든


정보가 네티즌들에 의해 밝혀져 그의 업장은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상인회의 목적이 뭡니까?”

“혼자만의 목소리는 힘을 가질 수 없다 생각하여, 처음엔 상인들끼리 힘을 합쳐 어려운 문제나…….”

“지금은 그 순수한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상인회에 가입하지 않은 가게들 삥이나 뜯으려고 하고,
조금만 장사 잘되는 가게가 있으면…… 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것들을 상대할 시간도 없는데, 나 스스로 정의감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귀찮으니까 다들 가주세요. 우리 어머니를 만나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건 아닐 것 같고…… 제가


SNS 에 올린 글은, 상인회 여러분들이 진정 반성을 했다 싶을 때 내리겠습니다.”

“회, 회장님……! 반유현 회장님 죄송합니다.”

셰프, 대표…… 이번 생에 회장이란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소유한 레스토랑이 20 개 이상은 되었을 때 듣는 소리였는데.

“아무튼 그렇게 하겠습니다.”

***

이태원 상인 연합회를 그렇게 조져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이 제일 텃세가 심한 동네에유. 특히나 이 골목은 오래된 식당들이 많아서. 최경복 셰프도 자리
잡기 처음에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내 브랜드가치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들이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오픈 전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그 어떤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없었다.

물론, 손님들이 조심했던 것들도 있었다.

레스토랑 ‘반유현’이 어떤 문제에 휘말려 장소를 옮길까 줄에 있는 시간 동안은 최대한 조용히, 질서를
지키며 서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라’에서 만두 요리를 선보였기 때문에, ‘반유현-그린’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에 비해 질서는 더 좋아진 것 같았다.

텃세와 질서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어쨌든, 앞으로도 그렇고 깔끔하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짜 대단해. 요리 문화가 아니라, 그냥 문화를 바꿔 부러. 하하하.”

그리고 오픈 당일, ‘반유현-그린’에 와서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을 봤다.

“튀김하고 구운 만두는, 곁들이는 가니쉬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 잘했고, 일단 오픈 첫 주 메인 요리는


전골로 가는 것도 정해졌고……. 전골이 물에 끓이는 거라 육향이 조금 약해지긴 했는데, 양념장에
돼지기름을 녹여내서 단점을 보완하길 잘했네. 합격이다. 오늘 오픈 잘하자.”

레스토랑 ‘반유현’의 전통, 오픈 직전 메뉴 테이스팅을 끝내고 줄을 기다리던 손님들이 레스토랑 안을


채웠다.

“와…… 드디어!”

과장 조금 보태어 감격에, 감동에 찬 표정을 한 손님들이었다.

가장 먼저 내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며칠을 밤샌 손님들이다.

“바, 반유현 셰프!”

“네, 안녕하십니까.”

흔쾌히 그들의 부탁에 사진을 찍어줬고, 내가 직접 서빙을 도와주며 요리에 대한 설명을 했다.

“전채 요리로 떡갈비를 절인 배추에 감쌌습니다. 만두의 형상이죠. 새콤하게 식욕을 돋우는데 좋은
음식이 될 겁니다.”

나의 설명을 듣는 경험이 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기에, 정성을 담았다.

또, 이 사람들은 나와 내 요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니까.

한국에 자주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최선의 서비스로 보답할 뿐이었다.

“와……!”

“이게 반유, 현!”

더불어,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니 내 기분도 좋아졌다.

미슐랭 스타라는 맹목적인 목표가 있지만, 어쨌든 나도 요리사다.

사람들이 내 요리를 먹고 즐거워할 때, 조금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육즙과 고기의 맛을 낼 수 있나요? 반유현 셰프님!”

“영업비밀이라 죄송합니다.”

“하하하하!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가면 가르쳐 주시나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는지, 맛에 대한 평가를 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가 나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근본적인 슬픔을 해결하려는 의도였다.


“만두피는 감자전분과 옥수수 전분을 사용하셨구요. 덕분에 만두소 안에 수분을 많이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정확하십니다.”

“에, 에에? 진짜요? 진짜 정확해요?”

놀란 감격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손님.

그렇게 팬서비스를 잊지 않고 해주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마감 시간이 되니, 셰프들이 주방에서 나와 박수를 치며 케이크의 촛불을 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픈 첫날인 오늘, 성공적인 런칭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그렇게 ‘반유현-그린’까지 성공적인 오픈을 했다.

이 또한 레스토랑 창업, 또는 경영 서적에 나올만한 파워풀한 사례였다.

‘여기까지 안정화 되면 올해 받을 미슐랭 스타가…….’

그리고 내가 빠르고 강력하게 세웠던 레스토랑들이 미슐랭 스타까지 챙기게 된다면 각종 책에 나올 사례가
될 뿐만 아니라, 신화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조금 쉬시지…….”

“바쁘다.”

올해와 내년을 동시에 준비하기 위해 나는 곧장 파리로 향했다.

103 화. 최고 속도 (4)

올해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는 레스토랑의 개수를 정리했다.

“후. 가장 최근에 런칭한 ‘반유현-그린’이 올해는 마지막이야.”

미슐랭 스타 평가 기간이 시작된 이상, 더 이상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처음 미슐랭 스타를 얻었을 때처럼, 미슐랭 평가 리스트가 이미 작성되었을 시점에서, 현지의 맛집으로
만들어 리스트에 끼워 넣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전략은 아니었다.

맨 처음 그런 전략을 사용했던 것은 새로운 몸으로 환생하고 나서, 가장 빨리 미슐랭 스타를 얻어 내는


것이 인생 전체에 엄청난 효율을 가져오리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와 달리 지금은 별 두 개 세 개가 없더라도, 이미 나의 속도와 방향은 파워풀했다.

시간도 많이 남아있었다.

환생 시점까지 1 년, 2 년이 남은 시점이었다면, 무리해서라도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하겠지만. 나에겐


17 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으니까.

이제 불과 3 년도 안 된 시점에 이미 미슐랭 스타가 4 개나 있고, 올해 얻을 것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쁜


마음이 마음속에 들어온다. 드디어 은퇴를 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내 생각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항상 강조했지만, 부족한 건 인력이야.”

“예, 그렇습니다. 셰프님께서 ‘반유현-팩토리’에 수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년을 준비한다는 말은 올해 미슐랭 평가 기간이 끝난 뒤, 내년에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을 준비한다는


말과 같다.

물론, 그에 대한 구상과 메뉴들까지 내 머릿속에 있지만, 관건은 사람이다.

그게 애초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한 이유였으니까.

그런데, 내가 나아가는 속도보다 반유현 팩토리가 성장하는 속도가 월등히 빨라 그 인력수급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성장 속도는 인류역사상 없던 것이었다.

아무튼 실력이 있으며, 그 레스토랑의 색깔과 맞는 셰프를 배치하려면 더 많은 인력풀이 필요해진 상황.

나는 반유현 팩토리 또한 나의 속도에 맞추기로 결심했다.

“현재 상황은 어때, 내가 한국 갈 때, 교수들 뽑고 있었잖아.”

“교수진들은 모두 채용했으며, 최하위권인 J1 팀부터 J4 팀은 하이든 왕세자의 개인 셰프들이었던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 팀의 지휘에, 가파른 성적 상승을 보였습니다.”

“잘들 하고 있나 보네.”

미슐랭 스타 평가 기간 동안 현재 운영되고 있는 레스토랑의 셰프들을 관리하고, 맛의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반유현 팩토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남은 올해 뽑아낼 수 있는 최고의 효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년을 준비한다는 마음에서는 그랬다.

“셰프들 더 뽑아야겠어.”

“예?”

“아예, 종합대학처럼 몇천 명, 또는 만 명 정도의 인원이 최고의 커리큘럼에서 교육받을 수 있게.”

“예?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반유현 팩토리가 내 계획을 따라올 수 있게 만들겠다고.”

***

반유현 팩토리 정기 교수 회의가 열렸다.

당연히 주재자는 반유현이었고, 정기 교수 회의인 만큼 모든 교수들이 다 모여있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포시즌스 레스토랑 ‘반유현’의 시찰 때문에 조금 늦으실 예정입니다. 이미


주어진 안건에 대해서 회의를 먼저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회자는 오스틴, 반유현팀의 막내였지만 이제는 실세로 자리매김한 그였다.

“첫 번째로, 반유현 팩토리 내의 즐기는 문화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분위기가 순간 어수선해졌다.

‘반유현-팩토리’의 현재 구조는 최하위권인 J 반, 그 반에 분할된 1 팀, 2 팀, 3 팀의 교수와 셰프들은


제명을 당하는 시스템이었다.

어떻게 보면, 교육을 받는 셰프와 교수진 모두 ‘반유현’이라는 브랜드의 셰프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부분적으로 제명이라는 불명예를 얻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뭐, 그 목적이야 어찌 됐든 무한 경쟁 구조인 이 시스템에 즐기는 문화를 만들라는 게 쉽게 와닿지 않았다.

“즐기는 문화가 대체 뭡니까? 있다고 한들 누가 즐길 수 있겠습니까? 모든 셰프, 그리고 교수님들이


파리에 조성된 ‘반유현 골목’의 ‘반유현-화이트’ 매장을 꿈꾸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매장을
성공적으로 런칭시켜, 정식적인 레스토랑을 런칭하길 원하고 있고요. 또! 그 소망 말고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래 팀이 치고 올라와 제명을 당할 수도 있는데요!”

한 교수가 목소리를 높이자, 다른 교수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몸이 가녀린 여성 교수가 일어났다. 그 눈빛과 목소리만큼은 이곳에 있는 그 어떤 교수,


셰프들보다 강력했다.

“불만을 표하라고 이런 회의가 열린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위해 저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이지요.”

그녀는 A-1 팀을 맡아 현재, 반유현 골목에서 ‘반유현-화이트 1’을 운영하고 있는 메이였다.

이미 반유현의 최측근 셰프로 유명한 그녀의 말이 회의실 내 교수들의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그리고, 최근에 교수로 합류한 미슐랭 7 스타의 중년 여성이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혁신……. 불가능을 불가능이라 생각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반유현 셰프님이 왜 그런 안건을
내렸는지.”

가타무라 마츠로, 미슐랭 7 스타의 입지가 있는 인물이라,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교수진들도 그녀를 알고
있다.

엄청난 실력을 가진 그녀임과 동시에 그 실력을 기반으로 대단한 자신감이 있는 그녀였다.

대나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항상 꼿꼿했고, 누군가에게 고개를 쉽게 숙이지 않았다.

매번 자신이 맞아왔고, 자신이 가장 강력한 셰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보다 경력과 나이가 한참 어린 셰프의 말에 동조하는 것 자체가 신기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메이의 검정 스카프,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면 가타무라 마츠로가 완벽히 ‘반유현-팩토리’에 적응했다는


것인데, 그것도 교수진들의 머릿속에서는 납득이 되질 않았다.

‘하이든 왕세자의 돈맛을 보더니, 이제 반유현 셰프님의 브랜드 맛을 본 건가.’


대충 눈에 보이는 이유를 추측할 뿐이었다.

그녀와 함께 들어온 셰프들도 하이든 왕세자의 개인 셰프였는데, ‘반유현-팩토리’의 교수가 되곤 무서운


속도로 그 휘하 셰프들의 성적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동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반유현은 이들을 이런 식으로 바꿔 놓았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허리가 꼿꼿한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저렇게 조직에 충성할 수 있게 길들여 놓았다고?’

더군다나 이곳에서 유일하게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메이의 말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자, 안건들 먼저 빠르게 읊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에 이어 반유현 셰프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안건은,


반유현 팩토리 내의 셰프들끼리 교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라 하셨습니다.”

회의 안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장내는 술렁였다.

“세 번째 안건은, 셰프들을 상시로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정리하자면 그랬다.

-경쟁을 순화할 수 있는 즐기는 문화 조성.

-반유현 팩토리 내에 셰프들 끼리 교류문화 조성.

-주기적이 아니라, 상시 신입 셰프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만들기.

“그, 그 안건을 오늘 회의에서 모두 끝내자고 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이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 이 모든 해결책을 만드는 게 반유현 셰프님의 목표십니다.


아, 아니! 해결책이 나지 않으면 이 회의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 하셨는데 바쁘신 분들은 먼저
일어나시지요.”

항상 봐왔지만, 반유현이 잠깐 한국에 들렀을 때의 행보까지 알아버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범접할 수 없는 셰프이며, 그룹의 회장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만큼의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이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교수진들이 여러 가지 계획들을 꺼내며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반유현이 들어왔다.

“다 준비됐어요? 거기, 거기 셰프님부터 말해보세요.”

곧장 상석에 앉은 반유현은 한 교수를 지목했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셰프들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바르게 고쳐 앉았다.

“어……. 그…….”

“다음, 그 옆에 셰프님 말씀해 보세요.”

“그…… 생각을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출석부 번호를 불러 발표를 시키는 것과 흡사 비슷한 광경이었다.

신입, 또는 인턴 셰프도 아닌, 연륜이 있고, 더 나아가 미슐랭 스타까지 있는 셰프들이 반유현의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베테랑 셰프들이 중얼거리거나, 눈동자를 굴리고,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은 회의의 사회자인 오스틴이
보기에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대체 저 젊고 어린 사람의 카리스마는 어디서 뿜어나오는 것인가.

***

“축제를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들에게 내려주었던 세 가지 안건을 동시에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셰프들이 즐기고, 서로 교류하는 것은 누구나 이 조직에 들어오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요소였으며,


정해진 주기가 아닌 상시적으로 셰프들을 선발하는 것은, 말 그대로 ‘반유현-팩토리’의 규모를 키우려는
전략이었다.

“대학 축제처럼, 모든 셰프들과 교수진들이 참여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여러 개 만들 생각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짠 프로그램은 교육 면에서도 장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주기적으로 축제를 열어 즐기는 문화를 조성하고, 셰프들끼리 교류할 수 있게 하고, 이런 즐거운


분위기들로 사람들이 반유현 팩토리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 계획입니다.”

너무나 쉽게 이런 해결책을 꺼내서 그런지, 교수진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당연히, 축제라는 게 즐기는 문화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에는 제격인데, 왜 그것을
어떤 대단하고 혁신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냐는 반응도 있었다.

“축제는 당연히 셰프님께서 내려주신 안건 중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겉핥기식, 탁상공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메이였다.

“왜?”

“이곳에 지원한 셰프들, 그리고 교수진들은 즐기러 온 것이 아닙니다. 브랜드 ‘반유현’의 이름을 얻어
레스토랑을 런칭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 셰프들이지요. 그래서, 이 무한경쟁을 이겨내는 것이고요…….
그런 면에서 축제는 강제성을 띤, 억지의 장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즐기는 척하면서 모두가
경쟁을 하고 있겠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내 계획을 말하는 데에 한 가지를 빼먹었다.

물론, 메이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분명, 나에게 다른 놀랄만한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걸.

“그래서, 셰프님! 진짜 계획이 뭐예요?!”

“네가 말한 같은 축제긴 한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축제를 만들 거야.”

세계 최대의 미식 축제인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를 기억하는가?

내 머릿속엔 그 이상의 축제가 그려졌다.

“세계 최대의 미식, 요리 축제를 꾸려나가는 셰프이자 주인공이 된다고 해도, 강제성을 띤 억지의 장이
될까?”
내년이 되기 전, 이미 ‘반유현-팩토리’ 자체를 완성시켜 놓을 첫 번째 계획이었다.

“셰프를 상시적으로 모집할 계획은 이 건물 앞에 있어.”

또 다른 계획은 오늘 저녁부터 당장 시작할 생각이고.

104 화. 최고 속도 (5)

런던과 파리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시찰하고 또, ‘반유현 팩토리’ 앞으로 왔다.

나는 상시적으로, 셰프들을 뽑는 것에, ‘반유현 팩토리’의 거대한 건물 앞, 넓게 펼쳐진 주차장의


공간을 활용할 생각을 했다.

“여기를 자유 시장으로 만들 거야.”

처음엔 혼잡해질 수도 있겠지만,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주차장의 공간에 마련된
부스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끔 만들 생각이었다.

장사라 함은 돈을 받고 요리를 내놓는 것도 되지만,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가기 위한 장사를 뜻했다.

“총 70 개의 부스를 지어서, 매일 매일 신청을 받아,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하고 싶은 사람들을.”

그렇게 신청한 사람들은 24 시간 동안 자신이 만든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그 넓은 공간에 70 개나 차려진 부스 속에서 주목을 받는 것도 자신의


몫이었다.

“그리고,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들은 이 자유 시장에서 괜찮은 요리를 선보인 사람들을 뽑아.”

교수진들에게 직접적인 선발 권한을 모두 위임했다.

교수진들도 자신의 팀을 높은 성적에 올려놓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했다.

메이, 또는 A 반을 맡았던 교수들이 레스토랑 ‘반유현’을 운영하듯이 이들의 목표도 레스토랑 ‘반유
현’을 운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들도 자신들의 팀을 보다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셰프들을 뽑으려고 할 것 아니야.”

이로서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단순하게도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를 계속해서 무한정으로 뽑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새롭게 유입되는 셰프들에 의해 ‘반유현 팩토리’의 활기가 넘쳐질 것이다.

새로운 경쟁자, 또는 강자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것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실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셰프들은 도태되고 잘하는 셰프들은 성장하는 구조가 빠르고
효과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또,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해.”

매일 매일 자유시장에 부스를 차리고자, 셰프들이 신청하는 것처럼 교수의 권한을 가지고 싶은 셰프들도
신청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청서에 허가가 떨어지면 그 셰프는 자유시장에 입장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내가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가 되고 싶다면, 나의 이력과 커리어가 적힌 신청서를 접수하고 그것에
허가가 떨어지면 자유 시장을 종횡무진하며 10 명의 셰프를 선발하는 것이다.

현재 가장 낮은 팀이 J5 팀이었으니, 그렇게 10 명의 신입 셰프와 신입 교수가 포함된 팀은 K1 팀으로


배정하는 것이었다.

“교수가 신입 셰프들의 팀원을 알아서 만들어 오는 거야.”

요리 테스트를 할 비용도, 시간도 모두를 아끼게 될 계획이었다.

“대단…….”

“일단 이렇게 해서, 당장 내일부터 진행해. 상시적으로 셰프를 뽑는 시스템은 구축한 거야. 알겠나?”

***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임시 홈페이지가 잠시 다운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상시 모집! 자유시장에 부스를 차려서, 기존의 교수진에게 선택받거나, 새로운
교수진의 팀에 합류하세요! ]

이번에도 내 SNS 가 한몫했다.

사생활에 관해선 전혀 올리지 않고, 오로지 업무적인 것들로만 사용했는데 꽤나 파워풀했다.

-자유부스?

-뭐야 이제 상시 모집이야?

-헐…….

이제는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 그 경쟁률을 그저 꿈이라고 생각한 셰프들도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면 그럴수록 팩토리에 입학하는 셰프들의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벌써 신청이 꽉 찼습니다. 올여름까지요.”

올여름까지 매일 매일 자유부스 70 개가 세계 각국에서 온 셰프들로 꽉 차 있을 것이다.

한 달에 두 번으로 중복참가를 허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비현실적이지도,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교수들 중에 특이 이력을 가진 사람 있나?”

자유시장을 누비며, 셰프들을 꾸려 반유현 팩토리에 합류하고자 하는 신입 교수들의 직원도 폭발적이었다.

나는 그중에 눈에 띄는 몇몇을 봤다.

“김훈?”

ACK 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자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사람으로 대한민국의 젊은 셰프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는 셰프였다.
프랑스에서 한식으로 미슐랭 스타를 받았으니, 그럴 만도. 그런 그가 ‘반유현 팩토리’의 신입 교수로
지원한 것이었다.

‘김훈 셰프가 지원한다니, 또, 많은 파장이 있겠군.’

그리고 또 다른 한 명도 한국인이었다.

“윤종혁?”

대한민국 ACK 출연 당시 나의 라이벌로 지목되었다가, 박살(?)난 뒤에 나를 팀장으로 받들어 꽤나 높은


성적을 기록했던 그였다.

이력서를 보니 그도 근 2 년 동안 많은 것들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 아리에 수셰프.

-미슐랭 2 스타 레스토랑 파미노 총괄 주방장.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수셰프를 맡았고, 2 스타 레스토랑에서 총주방장을 맡은 이력이 있었다.

-BBS 선정, 근래 가장 젊고 유망한 셰프 31 위.

내가 1 위로 선정되어 있는 랭킹에 31 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ACK 준우승.

이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내가 우승한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의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딱, 이 정도. 윤정혁 정도의 셰프만 되어도, 교수진으로 뽑아. 커트라인이야.”

***

그렇게 시스템은 바로 도입되었고, 예산도 바로 투입되었다.

교수진 밑 셰프들은 주차장이 없어져 모두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야 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매일 아침, 출근 또는 등원할 때마다 놀라운 광경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검정 포인트가 들어간 조리복을 보며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 셰프들, 언젠가 자신들도 저 조리복을
입겠다는 각오로 자신들이 가져온 재료를 이용해 각 부스에 자리 잡고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교수뿐만 아니라, 이미 반유현 팩토리에 다니고 있는 셰프들도 이들의 요리를 유심히 지켜본다.

70 개의 부스 모두 각자의 개성을 뽐내기에 볼거리들이 많았고, 이들의 부러움의 눈빛을 받는 것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선배님! 요리 좀 한번 드셔 보세요!”

오른팔에 반유현이라고 적힌 조리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관심을 끄는 패기 넘치는 셰프들도


많았다.

“선배님, 반유현 셰프님 실제로 본 적 있으세요?”

“저는 멀리서 한번 뵀었어요.”


“와……! 실제로 이곳에 나오기도 하세요?”

“가끔 오신다는데! 너무 바쁘셔서요! 그리고 저희는 여기 학생이니, 막 큰 반응을 하기도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자신들에게 선배님, 선배님 하며 급 높은 대우를 해주는 셰프들에게 나지막이 정보도 흘려준다.

“교수님들도 반유현 셰프님한테 한 마디도 못 한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우리 무슨 축제도 한다는데, 그


전에 합격했으면 좋겠네요. 건투를 빌어요.”

“하 감사합니다 선배님! 꼭 뵀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교수들도 유심히 부스를 돌아다니며 셰프들의 요리를 마음껏 맛보았다.

“음?”

“하하…….”

“맛있네.”

“감사합니다!”

“어디서 왔어요?”

“프랑스에서 계속 살아왔습니다!”

“요리 경력은?”

“1 년 조금 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곧장 반유현 팩토리에 합격하는 셰프들이 생기자, 자유 시장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또, 신입 교수들의 모습도 언뜻언뜻 보였다.

“미슐랭 스타를 가진 건 아니지만, 셰프 경력이 20 년이고,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기록이 많네. 혹시


나랑 팀을 이뤄서, 반유현 팩토리 정복해 보지 않겠나?”

“아! 저는 정말로 감사합니다!”

비유하자면, 아마존, 또는 정글이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강요한 적 없지만 스스로 엄청난 활기를 띠고, 실력에 의해 선택받고 도태되는
곳.

또 한편에는 언론들이 이 광경을 카메라와 노트북에 담고 있었다.

반유현이 또 한 번 혁명적인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것들이 단발적인 것이 아닌, 매우 장기적이라는 것도 그랬다.

“이게 진짜 말이……되나.”

저들끼리 ‘반유현’이라는 브랜드 안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과 경쟁은 온전히 브랜드 ‘
반유현’이 성장하는 것에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
20 대 중반의 나이인 반유현은 대체 어떤 생각까지 하고 있는지 사실주의적 성향이 강한 기자들 또한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기자들의 눈에 띈 셰프가 한 명 있었다.

조리복을 입고 있으며, 나이는 반유현과 비슷하다 싶을 정도로 젊었다.

그 셰프는 ‘반유현 팩토리’의 신입 교수로 채용된 듯 부스를 빠르게 돌아다니며 셰프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셰프들을 섭외하는 모습이, 어떤 셰프가 오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붙어 있는


듯했다.

“윤종혁 셰프인가 저 사람이?”

***

알파벳 순서로 명명되는 반의 이름은 J 반에서 M 반까지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리고, 지금도 반유현 팩토리 앞의 자유시장에서는 수많은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규모를 불리겠다는 내 계획과 그 시스템은 그대로 성공했다.

[ 유럽 내 대학교들 반유현의 전략 재구성해 만들기로. ]

[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만드는 반유현! 이번에도 충격! ]

[ 레스토랑 창업계! 경영학회! 연이은 반유현의 행보에 충격! ]

[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는 브랜드 ‘반유현’을 알아보다! ]

각종 매체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듯이 나를 띄워주었다.

“아직 불안정하긴 한데. 내년쯤이면 완벽히 탄탄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문제가 있으면 고쳐나갈 것이고, 적극적으로 수정해나갈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 앞에서 지금의 ‘자유시장’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들은 아주 좋았다.

“전교생 모아두고 나도 교육을 한 달에 한 번씩 할 테니까, 스케줄 좀 생각해 보고.”

꺄아아아악!

밖에서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데 창문을 내려다보니, 메이를 비롯한 로또 육인방이 주차장에 펼쳐진
‘자유시장’을 지나 건물 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곳의 교수진들에게도 없는 검정 스카프를 맨 그들은 브랜드 ‘반유현’ 아래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셰프들을 물색하던 교수들도 부러움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들이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셰프님.”
“어. 한창 바쁜데. 이래라저래라해서 미안하다.”

사실 어제도, 그제도 이들을 만났었다.

미슐랭 평가 기간이기에 맛의 수준을 계속해서 높이는 작업을 했는데, 그토록 피곤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군말 없이 나의 명령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아닙니다. 셰프님께서 제일 피곤하시겠지요.”

“다름 아니라……. 메이는 알고 있을 텐데.”

“예?”

이들을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축제’를 위해서였다.

“당연히 올해는 힘들겠지만, 앞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식 요리 축제를 만들려고 해.”

“예?”

“네?”

나의 계획을 들을 때마다 놀라는 습관이 조금 나아진 듯했더니, 옛날처럼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셰프들이었다.

“너희가 거기서 한몫씩 해줘야겠다.”

105 화. 열광하라 (1)

“반유현 팩토리의 새로운 부지를 찾고 있습니다.”

‘반유현-팩토리’에 인원들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건물 증축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도달했다.

물론, ‘자유시장’에서 셰프들을 컨택할 수 있는 신입 교수들의 경력에 대한 커트라인을 더 올렸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커트라인은 올라갔지만, 오히려 새롭게 지원서를 넣는 신입 교수들은 더 많아졌다.

그만큼 좋은 재목들이 ‘반유현 팩토리’의 자유시장에 몰리고 있다는 뜻이었고, 나의 브랜드가


상업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규모는 계속해서 늘리되, 그 수준 자체는 낮아지지 않는 방향을 원했기에 테스트 빈도를 늘렸다.

때문에 셰프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지만 그만큼 제명을 당하는 셰프와 교수들도 많았다.

확실한 통제 아래, 반유현 팩토리의 규모는 성공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분위기를 잘 조성해야 되는 건데, 이전에 말했듯이 축제를 계획 중이야.”

검은 스카프를 맨 셰프들,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의 총괄 세프 세 명에게 말했다.

“즐거운 분위기 조성과, 셰프들의 교류 활동을 늘리는 것에 너희가 앞장서 달라는 말이지.”

일단, ‘반유현-팩토리’ 내부의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축제를 계획한 것도 있지만, 더 나아가 이 축제


자체를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고 싶었다.
‘반유현 골목’을 조성했듯이 이 축제 자체가 요식업의 한 문화가 된다면, ‘반유현-팩토리’에 이미 속한
셰프들은 대단한 자긍심을 느낄 것이며 그에 대한 소속감도 좋아질 것이다.

또, 이 축제가 세계적인 축제가 된다면 더 강력하고 실력있는 셰프들을 선발하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검정 스카프, 9 인의 런치‧디너 쇼.”

나 혼자만의 쇼는 분명, 한계가 있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을 모두 아우를 수 없으니까.

나만큼은 아니지만, 브랜드 ‘반유현’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세프들의 런치, 또는 디너쇼를 이용해
일단 많은 사람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축제의 장에서 ‘반유현-팩토리’ 내 셰프들의 조직문화를 만들 것이고.

“아니야, 아홉 명 다 런치에 쇼를 기획해라.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밤을


기획해야겠어.”

이 전생 동안은 축제에 협찬이나 출연을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축제를 만들려고 하니까 괜스레


재밌어졌다.

100 년을 산 나의 최대 재미는 이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구체적인 계획에 들어가겠습니다.”

“정확히 삼 주 뒤야.”

“예?”

매번 그랬듯이, 날짜를 정해놓고 달린다.

나는 항상 최고 속도로 달리지만, 나의 옆에서 달리고 있는 이들의 속도가 처질까 봐.

계속해서 목적지를 찍어주는 것이다.

‘이번엔 저기까지 뛰는 거야.’

***

또, SNS 를 이용했다.

[ 팩토리 페스티벌! 개최! ]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처음으로 개최되는 이 축제에서는 저희 브랜드 안에 지휘권을 가진 아홉


명의 셰프들의 런치(lunch)쇼가 예정되어있습니다. 런치쇼의 참여 방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 반유현 팩토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셰프들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가족 친지,


그리고 파리에 사는 이웃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이들의 성장하는 실력을 체험하고 즐기시면 됩니다.

축제의 이름은 ‘팩토리 올 데이’.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게 뭐냐? 축제?”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은 그 소식을 반유현의 SNS 로 가장 먼저 접했다.

“교수님 이게 뭐예요?”

“뭐가?”

“이거요. 팩토리 올 데이.”

“응?”

방금 막 올라온 SNS 에 교수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축제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이게…… 그니까.”

매번 그래왔지만, 반유현의 추진력은 상상을 벗어난다.

교수들은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고 축제에 관한 정보를 전달받아, 셰프들에게 전파했다.

“점심에는 너희도 봤다시피 아홉 명의 지휘급 셰프들이 런치쇼를 펼칠 거야. 사람들이 많이 몰리겠지?”

“와…… 대충 예상되는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추정은 2 천 명에서 3 천 명인데, 우리도 모르겠어.


반유현 셰프님의 계획이란 게 항상 상상의 범주를 벗어났으니까.”

자기 개발 또는 경영에 관한 책들을 살펴봐도 반유현의 실행력과 추진력은 단골로 회자되곤 했었다.

그런 점에서 셰프들도 교수의 말을 무책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반유현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2 천 명, 3 천 명이 축제에 몰리는 건 기본이겠다. 이미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 및 직원들이 900


명이 넘잖아? 뭐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해.”

셰프들은 제한 없이 모든 것을 기획할 수 있다.

술을 판매해도 되고, 요리를 판매해도 되고, 게임장을 만들어도 되고, 공연장을 만들어도 되고, ‘반유현
올 데이’라는 축제에 가상의 화폐가 만들어질 것인데, 그 화폐를 가장 많이 얻는 팀에게 성적에 있어
가산점이 부여되는 시스템이었다.

이는 모든 이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축제가 아니라 또 경쟁 아닙니까? 축제 내 가상화폐를 많이 받는 것이, 저희 팩토리 내의 성적에


반영된다는 것이요.”

일각에서는 이 축제 또한 경쟁의 하나라고 말했지만, 축제는 어느 것도 구분 짓지 않았다.

“이 축제는 우리 팀끼리 뭉치는 게 아니야. 셰프들 본인이 혼자 하거나, 다른 팀의 셰프들과 협업하거나,


교수들끼리 협의해서 팀과 팀을 합치거나……. 모든 것이 자유야. 그야말로 축제. 또, 그 부여되는
가산점이라는 게, 반을 뒤엎을만한 점수가 아니고 참여 유도만 할 수 있는 정도의 점수니까.”

“그럼……?”

“그래, 그냥 즐기면 돼. 반유현 팩토리 내의 셰프들끼리 즐기고, 화합하라는 의미가 큰 축제니까.”

***
셰프들과 교수들 총원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하자, 유럽 내 주요 국가들의 관광청도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 축제가 진행되는 장소를 자신들의 관할 구역 내로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움직임에, 최소한 수천 명의 관광객이 동원될 것이며,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어마어마할 테니까.

특히나 유럽은 각국의 축제나 행사가 거의 매달 있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에 많은 경쟁이 있는


상황이었다.

나에게 제안이 가장 먼저 온 것은 프랑스 관광청이었다.

프랑스 관광청은 ‘반유현 골목’을 조성할 때에 그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의 이름을 ‘반유현 골목’
이라고도 바꿔줬고, 반유현 골목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를 해주어 나와 커넥션이 있었다.

푸와 뒤 트론(Foire du Trone).

이동 유원지라고도 불리는 이 행사는, 프랑스 관광청에서 장소를 선정해, 다양한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테마의 카니발과 불꽃놀이 등 볼거리를 제공하며 수많은 먹거리들이 있는 축제였다.

파리 내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였는데, 그 축제 전체에 ‘반유현’을 녹여 축제 내 모든 먹거리들을 맡아


달라는 제의였다.

“다들 쟁쟁한 제안이야.”

그다음은 영국 관광청이었다.

템즈 강 페스티벌(Thames Festival).

런던이 다문화의 도시인만큼 세계 각국의 많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축제이며, 보트 경기, 불꽃놀이,


음악 공연 등 많은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

마찬가지로 나의 공간을 따로 차려줄 테니, 행사의 한 부분을 맡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가 온 것이다.

영국 관광청도,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맨 처음 반배치 고사를 할 때, 런던 주요 관광지인 런던


아이에 팝업 레스토랑을 열게 해 준 적이 있어, 이 조직도 나와 커넥션이 있는 곳이었다.

경찰까지 지원해 질서를 정리해줬기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나라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네?”

“그렇습니다. 규모로 보면 이곳의 축제가 가장 큽니다. 매년 600 만 명이 동원된다고 하네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독일 뮌헨에서 매월 9 월에서 10 월에 열리는 축제로, 세계 최대 규모의 민속축제였다.내가 기획하고


추진하는 ‘팩토리 올 데이’는 4 월 중순에 시작되는 것인데,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축제에 참여해
줄 수 있냐는 의사를 독일 관광청에서 보내온 것이다.

“얘네는 맥을 못 짚네.”

“그, 그렇습니다.”

또, 스페인 관광청에서도 연락이 왔었는데, 이곳은 유일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이들이 제안한 것은 라스 파야스(Las Fallas)라는 행사였다.

4 월 중순에 시작되지만 월초부터 미리 식전 행사들을 시작하면서 점차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그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브랜드 반유현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피날레도 아니고, 본 행사를 시작하기 전의 전채요리 역할을 맡아 달라는 거 아니냐.”

“그렇습니다.”

더불어, 몇 가지 축제를 더 말하며 내 브랜드의 참가를 제안하기도 했다.

산 페르민(San Fermin) 축제. 이 축제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것은 ‘광란의 질주’라고 불리는 행사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소들을 풀어놓고 수백 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붉은 스카프를 매고 달리며 소를 투우장으로


유인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축제.

“흥분한 소들이 달리는데 우리들의 요리가…… 가당키나 하냐. 그냥 후원사를 뽑는 거네.”

스페인 관광청의 직원들도, 나름 자기 딴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그 행사에 도움을 받는 입장인지, 저들이 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말이다.

그 부분부터 확실하게 되어야 제안을 받고, 제안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제일 윈-윈 할 수 있는 구조가 어디냐.”

“제 생각에는 역시나 푸와 뒤 트론(Foire du Trone) 인 것 같습니다.”

이 축제를 요약하자면, 임시로 놀이공원을 조성하는 것인데, 그곳의 모든 먹거리를 브랜드 반유현이
맡아달라고 제안을 한 것이다.

뭐, 독과점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나의 힘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저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으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위치도 프랑스 파리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진행해.”

그리고, 애초에 유럽 정복의 거점을 이곳 프랑스 파리로 잡았던 나였다.

독립적으로 축제를 진행하기보단, 첫 회인 만큼 국가대표 격인 행사의 주최 측과 손을 잡기로 했다.

***

축제는 3 일 동안 진행되는 것으로 정해졌고.

오늘은 그 첫 번째 날이었다.

아홉 명의 지휘급 셰프들은 각각 세 명씩 자신만의 런치쇼를 준비했다.


“야, 이 정도면 독립해도 되겠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셰프님.”

축제의 현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축제 역대 최다 인원이라고 하네요.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행사의 시작 첫날부터 3 일 동안 이곳에서 ‘팩토리 올 데이’를 진행하지만.

푸와 뒤 트론(Foire du Trone)이라는 이 행사는 약 6 주간 진행된다.

6 주 동안 5 백만 명이 방문한 것이 이 행사의 최대 인원이라고 했는데, 개장 첫날, 그 추이를 지켜보면


그 역대급 인원을 넘을 것이라는 통계가 산출되었다.

“반유현 팩토리에서 교육받은 셰프들이 얼마나 재밌게 놀고 있나 봐야지. 너희도 준비한 런치쇼 잘하고.
나도 행사 기간 내에 이곳에 있을 테니까,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106 화. 열광하라 (2)

파리 동쪽에 위치한 뱅센느(Vincennes) 숲, 그곳엔 매년 봄 놀이동산이 들어서는데, 그것의 이름을


푸와 뒤 트론(Foire du Trone)이라 했다.

같은 이름의 그 축제는 올해, 조금 다른 형식으로 꾸며졌다.

그 행사의 볼거리가 적혀 있는 팜플랫에, 나의 이름이 두 번이나 적혀 있는 것이 그랬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이 축제, 이 팜플랫에 이름을 얹고 싶어 수백만 유로를 후원하는


업체들이 있는 반면에, 나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이곳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퍼레이드.

-물총축제

…-레스토랑 반유현, 검정 스카프 셰프들의 런치쇼.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과 함께하는 축제 ‘팩토리 올 데이.’

오늘 점심부터 앞으로 약 3 일간, 이곳에 차려진 대부분의, 먹거리와 간식들이 브랜드 ‘반유현’으로부터
공급될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푸와 뒤 트론 축제의 장이 열리는 유원지에 입장할 때 ‘반유현’이라고 적힌 가상의 지폐를


받았다.

이것은 오늘 저녁에 있을 ‘팩토리 올 데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상의 화폐였다.

나는 이 축제에서 큰 역할을 맡지 않고 그들을 뒤에서 지켜보며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줄 생각이었다.

그 일례로, ‘검정 스카프 셰프들의 런치쇼’의 첫 주자인 메이의 런치쇼 현장에 나와 있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고, 저 반대편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국의 세계적인 락스타,


마혼의 공연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했다고 한다.

“락 공연 소리는 여기까지 들리는데, 메이 셰프가 요리하는 건 저 멀리서 볼 수 없잖아요.”


그렇단다.

런치쇼의 표를 구하지 못해 자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간이로 넓게 둘러쳐져 있는 펜스에 걸쳐 서서 그


쇼를 지켜보고 있었다.

메이가 무대 뒤에서 한창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길래,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언을 해주었다.

“‘쇼’라는 게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눈에 보이는 것이 사람들의 자극에
중요하게 미치니까. 그런데 우리 같은 셰프들의 쇼는, 요리를 하는 모습 말고도 그 요리의 맛으로 자극을
줄 수 있잖아. 사람들이 네가 요리하는 모습에 깊은 관심이 있더라도 신경쓰지 마. 넌 주방에서 일하는
것처럼 요리하면 돼.”

메이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메이의 런치쇼.

수많은 사람들이 메이가 등장할 때 기립박수를 쳤다.

100 여 명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펜스 밖에는 얼추 400, 500 명은 되는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크흠! 흠! 어…… 제 주 전공은 일식, 그리고 파스타, 그리고 양식입니다.”

메이가 맨 처음 요리를 시작했던 것은 일식이며, 나에게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파스타


레스토랑에서였다. 그리고, ‘레드테이블-반유현’ 에서는 프랑스 정통의 요리를 배웠을 테고.

그에 따라 자신의 전공을 소개한 메이가 오늘 요리의 테마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감사…… 오늘 요리의 주제는 감사입니다.”

메이가 그렇게 말하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저를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지금도 저를 지켜보고 계신 반유현 셰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기 계신 분들을 꼭 감동시켜서 저의 요리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반유현 셰프님께 보여드리고 저희
그룹, ‘반유현’이 더욱더 번창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열화와 같은 박수를 나와 메이에게 보냈다.

이전에 SNS 에서 ‘반유현 챌린지’를 만들어 포시즌스의 그랜드 오프닝을 성공적으로 열었던, 그때의
기억을 응용하는 것만 같았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소녀를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해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만들었었는데, 메이는 그 당시, 요리를 먹기 전의 감정 상태가 요리에도 투영된다는 것을 느꼈고 본인이
나에게 느낀 애틋한 감사의 마음이 사람들에게도 애틋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었으니까.’

셰프가 요리 앞에서 내뱉는 말들은 모두 맛을 돋우는 조미료가 될 수 있지만, 맛을 망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매번 가르쳤었다.

나의 말을 그 어떤 것보다 소중히 받아들일 그녀에게는, 나에 대한 감사 표현에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메이는 요리를 시작했다.


‘반유현-화이트 1’에서 주 메뉴로 삼는 계란초밥과, 장어초밥, 소고기 초밥 등 그녀는 자신의 주 전공인
초밥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행사를 위해 새로운 메뉴나 요리를 개발하는 부담을 갖지 말라고 언질 줬었기 때문이다.

미슐랭 평가기간인 만큼, 최민성과 포시즌스의 셰프들은 자신의 레스토랑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자신들이 레스토랑에서 하고 있는 요리들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정도로 선보이라고 지시를 해놨던 터라,
이들에게도 큰 부담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메이의 요리가 완성되었고, 배치되어있던 직원들이 메이의 초밥을 나르기 시작했다.

“커억!”

“와…….”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해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저 멀리 메이에게 엄지를 들어줬다.

그런데 그때,

“메이!” “메이!”

“반유현!” “반유현!”

종류별 몇 개의 초밥. 단품 메뉴로 구성되어있는, 런치쇼의 요리를 빠르게 먹어 치운 손님들이 나의


이름과 메이의 이름을 연신 외쳐댔다. 축제 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갔다.

“메유현!” “메유현!”

그 결과 펜스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맛을 보고 싶어 궁금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펜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점만 달라고 소리치며 애원했다.

“한 점만 주시면 안 돼요?”

런치쇼에 참석해 메이의 초밥을 먹던 사람들은 마치 우월감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더욱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밖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우리도 좀 줘봐! 치사한 사람들아!”

“우우우우!”

그렇게 분위기는 점점 가열되던 중,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다.

우와아아아아!

펜스가 무너져 내렸고, 사람들이 난리를 치며 런치쇼 공간으로 뛰어 들어왔다.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나와 메이를 둘러쌌고, 흥분한 사람들은 현장을 뛰어다니며 테이블 위에 올려진
초밥들을 집어 먹는다.

메이의 요리가 이 난동의 시발점이 되긴 했으나, 축제 기간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대낮부터, 술을 퍼마신


게 화근인 듯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아포칼립스를 쓰는 소설 작가가 이 광경을 봤더라면 작품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무대 위 메이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고, 급기야 사람들끼리 언쟁이 붙기도 했다.

‘이건 뭐…….’

분위기가 이렇게나 뜨거워진 것을 보면, ‘진짜 축제’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나의 이름 아래에서


이런 난동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싫었다.

‘가드(guard)’라고 적힌 옷을 입고 있는 행사 진행 요원들이 몇몇 난동을 극심히 부리는 사람들을


제압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직도 아수라장이었다.

“런치쇼 현장, 반유현 런치쇼 현장, 인력 충원!”

“야 새끼들아 뭐해! 빨리 다 잡아!”

행사 가드들끼리 서로 무전을 하는 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무대 위로 올라가자.”

나는 곧장 무대 위로 올라갔고 마이크를 들었다.

“다 앉으세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가 있는 무대 위로 쏠렸다.

***

내가 무대 위로 올라간 뒤에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요리 하나, 아니, 초밥 하나가 이렇듯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건, 메이도 처음 알았을 것이다.

나의 경호원들과 행사 가드들은 모두, 무대 위를 향해 줄 서 있는 긴 행렬의 질서를 정리했다.

더 이상 난동 부리는 사람들은 없었고, 사람들은 하나 같이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무대를 향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와우!”

“와……! 대박!”

모든 난동을 종식시키기 위해, 내가 직접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초밥 하나씩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재료를 곧장 충원했고 한 명씩 올라오는 사람들의 눈을 맞추며 커스텀으로 초밥을 만들어 줬다.

성격 같아선 난동을 부린 이들을 다 잡아다 족치고 싶지만, 전체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또, 축제 첫날부터 나의 이름이 들어간 행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싫었다.

몸과 마음이 조금은 고되지만, 이 위기를 ‘반유현’이 돋보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메이는 옆에서 날 돕고 있는 중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질서를 맞추는 것을 보고는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셰프님, 요리 하나가 이렇게 대단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사람들을 난폭하게도 만들고, 순한
양으로도 만들고요…….”

“본능이기도 하니까. 진짜 맛 좋은 요리를 먹겠다는 사람들의 본능. 내일 있을 런치쇼 순서는 아론이었나?


아예 저 펜스를 바꿔야겠어.”

내가 일일이 초밥을 만들어 준다는 말에, 락스타 마혼의 공연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쪽으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충원된 인력들에 의해 펜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저 구경을 할 수 밖에없었다.

“빨리 끝나자, 또 저 펜스 밖에서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마지막 한 명의 손님에게까지 초밥 한 점을 쥐여줬다.

“와아…… 이게 반유현의……!”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 한 사람의 손에 초밥을 쥐여준 뒤, 나는 바로 무대 밖으로 이동했다.

내가 이동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나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명절날, 민족의 대이동을 보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움직였다.

우와아아아!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는 것을 보고 목적지를 ‘팩토리 올 데이’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정했다.

이 열기를 그대로, 나를 따르는 셰프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셰프님께서 직접 불을 붙이시게요?”

“안 그러려고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

“뭐야, 이거 뭐, 제대로 된 축제 맞아?”

각 부스마다, 브랜드 ‘반유현’을 상징하는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부스에 들러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요리와 컨텐츠를 즐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많은 것 아니냐?”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이 들어가는 행사잖아. 미어터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이 정도면 만족해야지 임마! 역대 최다 인원이라는데! 우리가 반유현 셰프님인 것도 아니고.”

“그, 그런가?”

자신이 배정된 반, 팀에 상관없이 셰프들은 ‘반유현 팩토리’ 내에서 삼삼오오 팀을 이뤄 많은 부스를


개발했다.

기본적으로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판매하는 셰프들이 많았지만, 노래를 하는 셰프들부터, 마술을 하는


셰프들, 각자의 장기를 살려 축제 자체를 즐기려는 셰프들도 많았다.

그런데, 애초에 이들이 기대한 만큼의 사람들이 없었던 것.

젊음을 불태울 수 있는 장이 열릴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뜨뜻미지근했다.

물론, 아예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이들의 일원이었던 한 셰프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야! 저쪽에서 반유현 셰프님이 요리를 했대!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거기로 몰린 거래!”

“에이, 어쩐지. 역대 최다 인원이라면서 이쪽엔 사람들이 없더라.”

“그, 그런데! 반유현 셰프님이 지금 그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대!”

“응?”

그때 마침, 저 멀리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환호들이 들려왔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인 인파의 열기와 분위기는 셰프들에게 이곳이 축제의 현장임을 실감하게 해줬다.

“제대로 놀아보자!”

반유현이 만들어 낸 열기를 ‘팩토리 올 데이’를 한창 준비한 셰프들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107 화. 열광하라 (3)

윤종혁, 그는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으로 합류하고 ‘자유시장’에서 12 명의 셰프를 얻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반유현 팩토리 L 반의 4 팀으로 합류했다.

반유현이 요리를 처음 시작한 당시, 그와 함께 팀을 이뤄 ACK 에서 꽤나 많은 활약을 했었다.

윤종혁은 멀리서 반유현의 활약을 지켜봤었다.

그를 응원하는 마음에서는 절대 아니었고, 솔직히 말하면 배가 아팠던 것이 컸었다.

‘반유현…….’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배가 아플 정도의 선을 넘어서 버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반유현을 따르는 모든 셰프들 중에서, 자신이 반유현의 팀원으로 가장 먼저 커넥션을 맺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자부심이 저도 모르게 피어났었다.

인사라도 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새롭게 합류한 교수진과 다르게 반유현과 접점이 있다는 것을
무기로 셰프들을 조금 섭외해 보려 했지만, 반유현의 얼굴은커녕 그의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아무튼, 윤종혁은 셰프로서의 커리어를 모두 마치고 ‘반유현’이라는 이름을 얻어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자신의 실력이 나이에 비하면 절대로 다른 교수진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였고, 워낙에 자존심이
센 인물이었지만.
셰프로서 가장 빠른 출세의 길이 반유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속 알맹이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반유현, 그가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면 그에 반항할 배짱도 있다.

“기회야.”

그리고, 윤종혁은 ‘팩토리 올 데이’라는 축제에서 그 기회를 포착했다.

반유현 팩토리 내에서 한껏 주목 받을 수 있는 기회.

‘팩토리 올 데이’라는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윤종혁은 축제 중간에 열린 영국 출신 락


스타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야! 반유현이 요리를 해준대!”

“반유현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빨리 가자! 지금 아니면 언제 먹어봐!”

한창 락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쯤, 사람들이 대거 공연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인즉슨, 반유현이 요리를 만들어 준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일정에 없는 건데.’

반유현이 실제로 요리를 한다는 일정은 없었기에 윤종혁은 호기심을 품고 사람들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반유현이 무대 위에서 초밥을 만들고 있었고, 그 초밥 한 점을 먹기 위해 수백 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펜스로 둘러쳐져 마혼의 공연에서 방금 막 이쪽으로 온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

안에서 반유현에게 초밥을 건네받아 먹은 사람들은 그대로 반유현을 바라보며 펜스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 윤종혁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반유현은 이 일정이 끝나고 어디로 갈 것이며, 이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

반유현의 성격과 전략상 반유현은 ‘팩토리 올 데이’ 행사가 시작된 그 장소로 이 수많은 사람들을 끌고
갈 것이 예상되었다.

“행사 현장으로 가실 것 같습니다. 인력 배치해주세요.”

“더, 더 많은 경호 인력이 필요합니다.”

마침 펜스를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의 무전 내용도 들어버렸다.

‘확실하게 반유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윤종혁은 곧장 자신을 따르는 셰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미 반유현 화폐를 싹쓸이해서 가산점을 받을 생각은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각각 기획한 부스들이 쫙 깔려있는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았다.

어느 곳에서도 정체하지 않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니 나를 따라오던 수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이
관심이 있는 곳으로 흩어졌다.

이곳에 입장하기 전 받았던 반유현 화폐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탈하는 것을 눈여겨봤는데, ‘푸드 파이트’라는 컨텐츠를 살린 부스였다.

대부분의 셰프들이 한 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을 대비하지 못한 반면에, ‘푸드 파이트’ 라는


간판이 적힌 부스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릴 것을 대비해 놓은 듯했다.

주 메뉴는 핫도그. 참가비를 내고 참여해, 정해진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이 우승 상금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상금도 이 부스를 이끄는 교수의 개인 사비를 들였는지 두둑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이 많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지만, 나는 이 부스의 의도를 알아버렸다.

“가산점을 따려고 수작 부리는 거잖아.”

“예?”

“이 사람들이 여기서 배부르면, 다른 요리들을 먹겠냐고.”

반유현 화폐를 가장 많이 벌어들인 팀이 ‘반유현 팩토리’의 가산점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행사에서 가장 많은 부스는 단연 먹거리였는데, 이 부스를 지난 관광객들이 배가 불러, 다른


부스의 먹거리를 또 먹을 확률을 줄이는 것이었다.

요리의 맛 자체가 아니라, 푸드 파이트라는 컨셉으로 다른 부스들을 앞질러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저 내기는…… 똑똑하긴 하네.”

또, 사람들끼리 내기를 부추겨 반유현 화폐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누가 푸드 파이트에서 승리할지, 토토를 하듯이 사람들끼리 내기를 하게 한 뒤에 그에 따른 수수료로


반유현 화폐를 벌어들였다.

이 부스의 리더가 누군지 내가 고개를 들어가며 그 내부를 보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윤종혁.’

자신의 요리에 고고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던 그였는데, 이제는 나의 조직으로 들어와 이런 부스를 차리고
아주 아득바득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 그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팀장님? 오랜만이네요.”
우와아아아아!

윤종혁이 나에게 인사를 걸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윤종혁이 나와 아는 사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윤종혁을 뭔가 대단하게 본다.

더군다나 이 부스에는 한국인 출신의 셰프들이 많았는데, 모두 ‘자유시장’에서 윤종혁이 섭외한


셰프들이라 했다.

한국에서의 입지를 이용해, 한국인 셰프들을 주로 섭외한 것이다.

“오랜만이네요. 어쩌다 이렇게…….”

“이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주방들을 전전긍긍하느니, ‘반유현’ 안에서 승부를 보고 싶어졌어요.”

우와아아!

나와 윤종혁의 대화를 듣던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이게 대단한 아이디어고, 반유현 화폐도 많이 벌어들일 만한데, 다른 부스에 피해를 입힐 수 있어서.”

내가 다소 회의적인 말을 하자, 윤종혁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아니, 정확히 그 미묘함을 묘사하자면 그랬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지만, 많은 사람이 보고 있고, 자신을 따르는 셰프들의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미묘한 표정.

자존심이 센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실수를 인정해야 됨을 알면서도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애초에 자유 기획이었으니까요.”

“음, 네. 자유 기획은 맞는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요. 여기서 내기하다가 반유현 화폐를
모두 잃은 사람들도 생각해야겠네요. 맛 또는 컨셉으로 화폐를 번 게 아니라 사행성 게임을 만들었다는 게
…….”

“그럼 다 돌려드릴까요?”

말 자체는 시정을 하겠다는 말이었으나, 표정을 보니 윤종혁은 나한테 슬쩍 개기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오랜만에 봐서 기분이 좋아지려다가 주제파악을 못하는 그에게 꽂혀버렸다.

오랜만에 정신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는, 남이 아니라 나의 이름 아래에서 활동할 셰프였으니까.

“반유현 화폐 돌려주지 마시고, 저도 돈을 걸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사람들이 나의 말에 환호를 질렀다.

내가 오스틴에게 턱짓을 하자, 오스틴이 어딘가로 달려갔고.


곧장 수많은 반유현 화폐를 가져왔다.

“이 화폐를 발행하는 사람이 저라서요. 이 화폐를 다 걸겠습니다.”

윤종혁이 나와의 내기에서 이기게 된다면 단연 이번 축제에서 1 등을 차지할 것이다.

그만큼 많은 화폐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내기를 제안했다.

“이 두 분 중 어떤 분에게 돈을 더 많이 걸었나요?”

덩치가 큰 두 명의 사내, 둘은 푸드 파이트를 하기 직전이었고, 사람들은 이미 내기를 한 상태였다.

“이분이 체격이 더 좋으셔서 이분에게 많은 돈이 걸려있긴 한데. 얼마 차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체격이 조금 더 작은 이분에게 모든 화폐를 다 걸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그 대신, 이분이 먹을 핫도그를 제가 만들겠습니다. 같은 재료로요.”

윤종혁은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와의 대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만에 하나 이기게 된다면 가산점을 얻을
것이고 자신을 따르는 셰프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었으니까.

잃을 게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네요. 반유현 셰프님.”

***

두 덩치 큰 사내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중 한 명은 나의 핫도그를 먹게 되었으니, 이게 웬 횡재냐 싶은 표정이다.

주변의 사람들도 그를 부러워했다.

“나도 하고 싶네. 반유현 셰프의 핫도그라…….”

“무슨 맛일지 궁금해.”

“와…… 무슨 횡재야!”

윤종혁의 핫도그를 먹으며 푸드 파이트 할 사내가 싸울 의지를 잃을 것 같기도 해서, 당신이 이기면
레스토랑 ‘반유현’의 프리패스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핫도그를 계속해서 사내에게 건네줬다.

“오우 맛있네요!”
사내는 내가 만든 핫도그를 먹는 줄 알고 꽤나 맛있게 푸드 파이팅을 시작했다.

보기에도 참 복스러운 것이, 어떤 셰프라도 이 사내에게 요리를 선보인다면 쉽게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

“너무 맛있는데요?”

윤종혁이 그저, 반유현 화폐를 빨리 벌어들이기 위해 정성을 들이지 않고 만든 핫도그.

그 핫도그를 맛있다고 퍼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사내들의 속도가 느려졌을 때, 나는 나만의 핫도그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핫도그는 소스가 핵심이다.

“끄헉……. 배가 너무 부른데요. 셰프님.”

“조금만 힘 좀 내주세요.”

두 사내 모두 손에 들고 있는 핫도그를 겨우 입에 넣고 있었다.

마침 핫도그가 모두 떨어졌고, 윤종혁과 내가 동시에 핫도그를 만드는 것이 시작되었다.

“소 채끝살, 돼지 뒷다리 살 좀 얻어와.”

오스틴이 나의 지시에 따라 어디선가 고기를 가져왔다.

나는 받아든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다졌고, 양파와 함께 볶았다.

화이트 와인을 부어 불을 만드는 퍼포먼스도 잊지 않았다.

우와아아아!

그에 따라 사람들은 이곳으로 더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춧가루와 설탕 등 각종 향신료를 넣고, 큐민가루를 넣었다.

큐민(Cumin)가루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의 씨를 곱게 갈아 만든 향신료로, 중국어로는 쯔란이라고


불리며 양고기를 먹을 때 자주 사용되는 향신료였다.

나는 모든 양을 적절히 조절하고, 다져서 넣은 소고기의 지방이 녹아 소스의 농도가 조절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향신료와 고기의 비율이 다른 종류의 소스를 몇 개 더 만들었다.

곧장 준비된 소시지와 빵에 칠리 소스들을 얹어 사내에게 건네줬다.

“으윽. 못 먹겠는데요 셰프님…… 제가 팬인데, 죄송합니다. 끄윽!”

“드셔보세요. 다른 핫도그입니다.”

“예?”

“여태까지 드신 건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그게 제가 만든 핫도그입니다.”

사내가 놀란 듯이 한입을 크게 베어 물고, 소리를 내뱉었다.


“와우!”

“그래요. 다른 맛이 다섯 개나 더 준비되어있는데, 더 드실래요? 마실래요?”

덩치 큰 사내가 신나서 핫도그를 입에 구겨 넣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이게 핫도그지!”

108 화. 열광하라 (4)

윤종혁의 핫도그를 먹던 사내는, 포기를 선언했다.

“와! 진짜 말도 안 돼! 이 핫도그 뭐야!”

그리고 나의 팀에서 핫도그를 먹던 사내는 포기를 선언하려다가, 내가 만든 핫도그를 먹고는 네 개 정도를


더 먹었다.

“이거면…… 후. 더 먹고 싶은데, 배가 찢어질 것 같아요.”

혀와 뇌는 이 충격적이고 새로운 맛의 핫도그를 원하지만, 내장이 핫도그를 바라지 않는 상황이었다.

“후. 더 주세요! 더 먹을게요!”

“그만 드시죠.”

나도 그의 건강을 해치기는 싫었기에, 핫도그 만드는 것을 멈추었다.

“남은 칠리 소스는 여기서 쓰도록 하시고.”

결과적으로 윤종혁은 사행성 게임으로 벌어들인 ‘반유현 화폐’를 모두 나에게 돌려줘야 했다.

나는 다시 그 화폐를 이곳의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사람들은 다른 부스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시장 경제가 악화되면 정부에서 지역 화폐를 풀어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본 적이 있는가.

마치 그것처럼 사람들은 다시 반유현 화폐를 들고 행사장 내를 돌아다녔다.

“이번은 이렇게 끝내지만…….”

‘다음에 또 개기면…….’ 이라는 말을 생략했음에도 윤종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태도를 고쳐먹었다.

“자, 우리는 다시 맛으로 승부한다. 우리가 맛을 못 내서 이런 컨텐츠를 만든 게 아니니까!”

“예! 셰프!”

윤종혁은 다시 칠리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다른 셰프들은 빵과 소시지를 굽기 시작했다.

그가 칠리 소스를 만드는 것을 보니, 내가 소스를 만드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 모양이다.

“소고기 기름이 소스에 녹아져 나오는 온도와 시간이 중요합니다.”

나는 한마디를 던져놓고 다시 행사장을 돌았다.


“하하하하!”

“이야 대박이다!”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행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역대 행사 기간 동안 이렇게 먹거리가 풍족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비싼 값을 받으며 그 값의 퀄리티를 내지 못하는 푸드 트럭이나 점포들이 대부분이었고, 이처럼 많은


먹거리와 볼거리들이 함께 있던 적은 없었다고.

뿐만 아니라, 삼삼오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방출시키는 셰프들의


만족도도 높아 보였다.

‘반유현’이라는 글자가 적힌 조리복을 입고 있는 셰프들이 행복하게 웃고, 재밌게 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들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계기였을 것이다.

물론, 윤종혁처럼 맹목적인 경쟁을 하는 셰프들도 있긴 있었지만…….

“와! 셰프님! 저희 음식 좀 먹어주시면 안 될까요?”

“셰프님!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평생의 영광으로 갖고 살게요!”

여러 부스들을 지나치니, 다양한 음식들이 많았고 그것들을 만든 셰프들이 나에게 맛을 봐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요. 오늘은 축제니까.”

경쟁에서 잠시 떨어져, 즐거운 조직 문화 형성과 소통을 위해 축제를 기획한 것이었으니 나도 귀찮고 싫은


기색을 내지 않고 셰프들을 도와줬다.

“맛 괜찮네. 허브 종류를 하나 줄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허브를 몇 개 넣었는지는 어떻…….”

“세 개 넣었잖아요.”

“…….”

“그중에서 레몬밤은 빼는 게 맛에 좋을 것 같네요.”

나는 그렇게 모든 부스를 돌았고, 프랑스 파리의 제일 큰 축제 안에서 나의 조직원들을 더욱 빛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푸와 뒤 트론(Foire du Trone) 축제.

역대 기록을 보면, 그 축제가 시작된 첫날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고, 그것이 유지되다가 4 일 차가


지나면서 그 수가 점점 줄어든다고 했다.

그런데, 브랜드 ‘반유현’이 합류하고 그 그래프는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보였다고 한다.

“첫날의 참가자 수가, 작년의 참가자 수에 약 1.5 배였고, 둘째 날은 그 수를 넘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절정에 달았고, 저희 브랜드가 모두 철수한 넷째 날에는 사람들이 확 줄었지만. 작년의 첫째 날만큼의
사람들이 왔다고 합니다.”

일단 전체적인 참가자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확실했다.

대중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검정 스카프 셰프들의 런치쇼 참가한 사람입니다. 진짜 대박이었음.

-나는 첫날 참가했는데, 반유현 셰프 초밥 먹을 수 있었음!ㅋㅋㅋ

-‘팩토리 올 데이’라는 행사가 대박이던데. 이 전에 푸드트럭 차리던 놈들은 멸종.

‘푸와 뒤 트론’이라고 불리는 공원 내에 푸드 트럭과 여러 부스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반유현 팩토


리’의 셰프들이 차린 부스들이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오는 이점만 믿고 음식의 질을 낮게 팔던 장사꾼들은 모두 퇴보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반유현 팩토리’ 모든 셰프들이 다 재능을 가진 것 같음.

-‘팩토리 올 데이’를 하나의 축제로 넣어라! 파리시는 각성하라! 

-진짜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축제였음. 아예 하이 퀄리티. 유럽의 모든 축제를 이길 수도.

역사가 꽤나 긴 축제였기에, 그 비교 대상도 정확했다.

그 덕분에 ‘반유현 팩토리’의 합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반유현 팩토리 내의 셰프들도 자신들이 한몫해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반유현 팩토리 내의 셰프들도 자신들이 브랜드 ‘반유현’의 일원으로서 임무를 완수해냈다는 것에 심취해
있었으며, 축제 기간 내내 서로 소통하며 즐기고 가까워졌다고 한다.

덕분에 셰프들의 소속감이 높아졌고, 그것들은 결국 ‘반유현 팩토리’ 내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유현 팩토리 홈페이지에 트래픽이 바로 증가했습니다. ‘자유시장’에 등록하는 셰프들과 교수들의


수도 증가했구요. 그에 따른 직원들을 추가로 고용하겠습니다.”

이번 축제를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내부적으론 셰프들에게 긍정적인 자극들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고,


외부적으론 ‘반유현 팩토리’를 널리 알리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주기적으로 ‘팩토리 올 데이’라는 행사를 기획해서, 유럽 내에 열리는 대축제에 녹아들 수 있도록


추진해봐.”

“예, 알겠습니다.”

***

반유현 팩토리는 알아서 굴러가기 시작했다.

더 견고하지만 더 빠른 속도로, 내년에 내가 레스토랑을 새롭게 런칭할 시점이 오면 결코 인력이 부족해서


나의 계획을 늦출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알다시피, 미슐랭 스타 평가 기간이었기에 나는 계속 레스토랑들을 돌며 맛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힘썼다.
총괄 셰프들, 즉 지휘급 셰프들의 말에 의하면 이미 미슐랭 평가단원들로 보이는 사람이 다녀간 곳이 세
곳 있었다.

“레드테이블 더 파스타, 반유현, 그리고 반유현 네이비…… 현재는 그렇게 세 곳입니다.”

평가 단원들이 하는 행동들과 그들이 메뉴를 주문하는 방식은 대부분 널리 알려져 있어 그들을 어렵지
않게 특정할 수 있었다.

레스토랑 내에서 하는 행동들 또한 그들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고.

내가 내려준 체크리스트에 의해 평가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다녀간 것으로 파악된 곳이 세 곳이었다.

“레드테이블은 이미 각각 투스타를 가지고 있으니, 재평가를 하러 온 것일 테고.”

루시앙과 지분이 섞여 있는 레드 테이블은 이미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기에, 평가리스트


상단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빠르게 평가단원들이 레스토랑을 들린 것이다.

‘올해 과연 세 개로 격상할 수 있을까.’

스스로든 의문에는 ‘그렇다’였다.

이미 그곳을 각각 총괄하고 있는 로또 육인방의 수준은 어디 내어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을 실력을 가졌고,


내가 가장 최근까지 그곳의 맛을 확인했으니까.

“반유현 네이비.”

이곳은 브라운이 런칭 되기 직전에, 샹젤리제 거리의 축제를 위해 급조되어 차려진 곳이었는데, 단품


메뉴가 주로 팔리는 햄버거집이었다.

그래도 미슐랭 스타를 노리기 위해, 세트 메뉴라고 해서 전채요리와 디저트까지 구성한 버거를 팔곤
했는데, 서비스와 분위기 때문에 많이 받아도 원스타를 받게 되리라 생각했다.

“몽토르게이랑 샹젤리제 거리에 평가가 시작되었으니까, 이제 포시즌스에도 곧 올 거야. 일단


집중해야겠어.”

파리의 지형, 그리고 내 경험상 그렇다.

그 두 거리의 평가가 끝났다면, 골든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지대에 있는 포시즌스 레스토랑을 평가할


것이다.

포시즌스 내부에 있는 ‘반유현 -레드, 옐로, 블루’ 가 미슐랭 평가 리스트에 없을 리는 없으니까.

그 세 곳은 나에게도 중요한 곳이었다.

모두 미슐랭 쓰리스타를 얻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곳으로, 메뉴 개발과 코스 구성에 매번 많은 공을


들이는 곳이었다.

그곳의 총괄 셰프들도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로, 나의 요리 의도를 잘 구현해 내는 젊은 셰프들이었다.

세 개의 레스토랑이었으니, 각각 세 개씩 미슐랭을 얻는다면 벌써 아홉 개.

이는 포시즌스 역사의 최초일 것이며, 전 세계에 유례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은 어떻대.”

“예, 서울에 있는 두 곳 모두 평가단원이 들린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그 두 곳도 투 스타 정도는 기대해볼 만한 곳이었고.

“남은 곳은 포시즌스랑 런던에 있는 반유현 브라운인가.”

그렇게 올해 챙길 수 있는 미슐랭 스타를 계산하고 있었는데, 오스틴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셰프님…….”

“왜, 또 무슨 재수 없는 소리 하려고?”

“언론에 기사가 몇 줄 났다고 합니다.”

오스틴이 곧장 그 기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 미식 평론가 아티예프, 반유현 옐로의 대표 메뉴 동파육, 미슐랭 받을 수 있는 수준 아님. ]

[ 레스토랑 반유현을 비평하는 평론가가 나타나다! ]

[ 포시즌스 파리, 반유현 옐로 몰락의 시작? ]

[ 아티예프 소신 밝혀! ]

“흠.”

가뜩이나, 미슐랭 평가 때문에 레스토랑의 대외적인 이미지에도 민감했는데, 웬 평론가가 나타나서 나의


레스토랑 중 하나인 ‘반유현-옐로’를 깎아내린 것이었다.

평소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의 요리를 먹어보지도 않고 비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대중들은


그것들을 무시했다.

최근에 이런 평가들이 떠오르는 것은 지금이 미슐랭 평가 기간이라는 게 한몫했다.

기자들도 그것을 알기에, 이런 자극적인 기사들을 써내려가는 것.

그런데, 아티예프라는 평론가는 꽤나 유명한 미식 평론가였다.

그저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나의 요리를 비난했다기엔 인지도가 높은 사람.

실제로 어떤 문제가 있나 싶어서 포시즌스로 향했다.

“뭐냐.”

평론가의 비난을 받은 옐로의 총 주방장 아론의 표정이 깊게 굳어져 있었다.

자신도 아티예프의 비난 섞인 평론을 봤는지, 동파육을 여러 개 만들어 먹어 본 흔적이 있었다.

“맛이 이전과 같다고 생각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아론은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며, 울상을 짓곤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나는 곧장 젓가락을 들어


동파육을 입에 넣었다.
“흠.”

109 화. 열광하라 (5)

-지랄하네.

아티예프의 평론에 대한 내 코멘트였다.

동파육의 맛을 봤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없어. 그대로 진행해.”

내 한마디에 차가웠던 주방의 분위기는 다시 원래로 돌아갔다.

총괄 주방장인 아론의 표정도 금세 풀려버렸다.

“그, 그럼 왜 저 평론가는 저희 요리를 비난했을까요?”

이유는 단순했다. 나의 반응을 이끌어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개수작.

레스토랑 ‘반유현’의 수장인 내가 저 사람의 말을 듣고 요리를 수정하고 레시피를 수정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아니, 그런 액션을 취하지 않고 내가 아주 짧은 코멘트만 던져주어도 저 평론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업계의 내 입지는 그 정도였으니까.

가뜩이나 미슐랭 평가 기간인 만큼, 셰프들이 모두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기라 아티예프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대중매체에서 우리 레스토랑의 맛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길 바란 거야. 그래야 내가 어떤 코멘트라도 남길


테니까.”

아티예프의 의도대로, 대중매체에서 레스토랑 ‘반유현’의 맛에 대한 논란이 일고, 이 논란은 점점 커져


위생, 또는 식재료의 문제까지 퍼질 것이다.

어떻게든 날 깎아내고 싶은 사람들이 소문을 계속해서 가공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들의 싹을 뽑기 위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아티예프에게 도움이 될 만한 코멘트는 절대 아니다.

-혓바닥도 같이 늙으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은퇴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입맛에는 아주


좋습니다. 제 레스토랑 요리의 맛에 의심이 가는 분들은 직접 와서 드셔보세요.

일부로 매운맛으로 코멘트를 남겼다.

자신을 위해 나를 깎아내리는 그 의도가 역겨운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의 말 한마디 때문에 주방에 있던 내 셰프들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창피를 주겠다는


마음이었다.

-반유현 셰프님 열받은 듯ㄷㄷ

-아티예프! 사라져라.

-노망난 노인! 아직도 관심 받고 싶어서 깎아 내리는 꼴은ㅉㅉ.


-반유현 최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의 매운맛 코멘트 덕분에 아티예프는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그리 좋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런 반응들조차 얻고 싶었던 주목 받고 싶은 평론가, 또는 기자, 미식가들도 나의 코멘트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

[ 반유현 브라운 최고급 식재자 공급 딜러, 마약까지 밀수? ]

[ 반유현의 주방 갑질! 셰프들 밤을 새우게 해! ]

[ 반유현 인성 논란! 과연 그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도 될는지! ]

[ 똥 맛 햄버거? 반유현 네이비에 방문하다! ]

“얘네는 뭐.”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있을 법한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대응하지 말까요?”

“어, 그냥 저 논란들의 출처만 알아놔.”

“추, 출처요?”

“그래, 어떤 놈들인지는 알아야 될 것 아니야. 언젠간 만날 수도 있는데.”

나는 의미 없는 소문에 시간을 쏟는 것보다, 얼마 남지 않은 미슐랭 결과 발표 날을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쓰는 게 현명한 것이라 판단했다.

“조금 쉬시죠 셰프님, 건강도 챙기셔야.”

“쉬긴 뭘 쉬어.”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레스토랑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하지 않고, 조미료·식자재 매장을 차리는 사업도 잠시 중단했으며,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으며 레스토랑들의 맛을 끌어 올리는 것에만 집중한 지 수개월이 흘렀다.

[ 2021 파리, 미슐랭 스타 시상식 ]

그리고 작년과 정확히 같은 곳에 있었다.

올해는 이곳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초대권이 날아왔다.

[ 2021 서울, 미슐랭 스타 시상식 ]

[ 2021 런던, 미슐랭 스타 시상식 ]

각각의 도시에 내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모두 초대장이 날아온 것이다.

물론, 초대장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대충 그 결과가 예상이 됐다.

“서울에서도 별이 몇 개 나올 것 같은데.”
서울과 파리는 그 시상식 날이 겹쳐, 나는 일단 파리에 있었다.

서울에서는 백원종 대표님과 어머니가 직접 참여하시겠지.

올해도 루시앙과 올리버가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작년과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었다.

오른쪽에 ‘반유현’이라는 글씨가 붙은 셰프들이 시상식 내에 꽤나 있다는 것이었다.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의 총괄 셰프들이었는데, 나와 함께 자리했다.

이들도 이제는 셰프들에게 인사를 받는 셰프로 성장해 있었다.

이들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고, 말을 붙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작년만 해도 무대 저 멀리에서 날 응원하던 셰프들이었는데, 불과 1 년 만에 사람들이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져 있던 것이었다.

그때, 올리버가 그러한 광경들에 감동했는지 나의 어깨를 감싸며 말을 걸었다.

“밖에 그 인파들도…… 대단하던데. 내가 눈물이 다 나려 하네.”

이 시상식 밖의 현장에도 브랜드 ‘반유현’에서 일하는 모든 셰프들이 조리복을 입고 서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에 소속된 셰프들만 해도 천 명에 가까운 숫자였는데, 그들이 거리를 가득 채운 것이었다.

내가 이번 시상식에서 많은 미슐랭 스타를 받길 응원하는 것으로, 오늘 레스토랑 반유현과 반유현


팩토리는 모두 휴업이었다.

그리고,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작년에도 봤듯이, 미슐랭 가이드의 인터네셔널 디렉터, 마이클 엘라인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크아…… 이게 무슨……. 아니, 반유현 셰프님!”

이 시상식에 있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당연히 나였다.

공공연하게 나의 최대 목적이 미슐랭 스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기대감이 올라갔다.

더군다나 이 행사장의 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반유현’이라는 조리복이 적힌 셰프들은 행사의 분위기


또한 달아오르게 했다.

“1 년 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지난번에는 그의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나에게 관심을 표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교실에서 항상 전교 1 등을 하던 친구가 이번에도 전교 1 등인지 궁금해 했던 기억이 이 몸에


남아 있었다.

내 성적이 아님에도 괜스레 궁금한 그 느낌. 맨날 100 점 받던 놈이 이번에도 100 점을 맞았나 하는 그


느낌.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셰프들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이때까지 내 요리와 나의 행보에는 결점이
없었으니까.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미슐랭 스타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한 명씩, 이름과 레스토랑의 상호가 호명되면 무대 위로 올라가 미슐랭 스타의 징표인 트로피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짝짝짝짝.

박수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나도 무대 위로 올라가는 셰프들에게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미슐랭 원스타의 시상식이 다 끝나갈 때쯤. 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반유현, 네이비의 반유현 셰프!”

샹젤리제 거리의 햄버거 가게가 미슐랭 원 스타를 수여받은 순간이었다.

총괄 셰프와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가 상패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시상식이 이제 시작되는…… 건가요?”

마이클은 축하보단 떨리는 마음을 나에게 전했다.

내가 오늘, 역사상 유례없던 기록을 세울 셰프라는 것을 얼추 알고 있는 듯했다.

***

“미슐랭, 쓰리 스타……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매번 그랬지만, 쓰리 스타의 수상은 축제의 열기보단 긴장감이 맴돈다.

쓰리 스타의 무게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지구상에 몇 개 없는 최고의 맛으로 인정받는 것.

전 세계 사람들이 나의 맛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징표.

더군다나, 이번엔 역사에 없던 셰프가 탄생 될 것이란 기대감이 모아져 그 긴장감이 더했다.

나와 로또 육인방, 그리고 포시즌스의 총괄 셰프들, 또 루시앙과 올리버까지.

우리는 일렬로 손을 잡고 있었다.

‘투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없었다.’

미슐랭 투스타가 호명될 때에 나의 이름이 한 번도 불리지 않았던 것 때문에, 내 양손을 각각 잡은


셰프들의 손에 땀이 흥건했다.

스스로 쓰리스타를 받을 줄 알고 있음에도,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후.”
심호흡을 가쁘게 하는, 로또 육인방.

그리고 포시즌스의 셰프들.

이윽고, 무대 위에서 마이클 엘라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레드 테이블, 더 파스타! 올리버 셰프와! 반유현 셰프입니다!”

우와아아아!

그제서야 일렬로 맞잡고 있던 손을 넣고 박수를 쳤다.

루시앙과 올리버는 눈물을 흘렸고,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의 셰프들도 진심으로 그를 축하했다.

브랜드 ‘반유현’의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사촌 정도는 되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사회자의 설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레드 테이블 더 파스타는 신화를 만들고 있는 반유현 셰프가 파리에 처음 요리를 시작한 레스토랑으로 2
년 만에 미슐랭 쓰리스타를 거머쥐었습니다. 파스타를 주로 한 메뉴로…….”

루시앙이 눈물을 훔치며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도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진짜…….”

“울지 마십쇼 셰프님, 안 끝났는데 왜 벌써 우십니까.”

“크흑. 나이 먹어서 그런지 눈물이 많네. 내가…….”

ACK 에서 처음 나를 발견하고 파리에 데려왔을 때부터가 생각이 난 듯했다.

나의 말도 안 되는 행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결국 나를 믿었고 전적으로 지원해준 결과 오늘이


있던 것이라는, 그런 말을 하는 루시앙이었다.

그리고 또, 내 이름은 연이어서 호명되었다.

“레드 테이블! 반, 유, 현 입니다!”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아!

역대급 함성이었다.

시상식 자체가 가벼운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이 정도의 함성은 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로또 육인방도 울음을 터트렸고, 서로 얼싸안고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우리가 또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는 동안 사회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반유현의 이름이, 처음 들어간 레스토랑으로서! 검정 스카프를 맨 주요 셰프들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그들도, 불과 1 년 반 만에! 미슐랭 쓰리스타를 거머쥔! 셰프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스승인
반유현 셰프를 따라, 파리에 전례 없는 기록을 만들어 냈으며…….”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상패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로또 육인방의 장을 만들어 주느라 나는 뒤로 잠시 빠져있었는데, 행사진행요원이 나를 툭툭 쳤다.

“셰프님……!”

그리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대에서 멀리 가지 마시고, 저 무대 계단 아래에 간이 의자가 있으니까요. 거기 계시죠.”

나는 그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이름이 앞으로도 계속 호명될 터이니, 멀리 가지 말고 무대 가까이에 있으란 소리 아니겠나.

시상이 되지도 않았는데, 그의 말을 들으니 엔돌핀이 솟구쳤다.

벌써, 미슐랭 쓰리스타에 이름을 두 번이나 올렸고, 포시즌스에 속한 세 개의 레스토랑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레스토랑들이 모두 이름이 불릴 터이니, 무대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진행요원의 말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100 년을 살았음에도, 해본 적 없는 경험에…… 즐거웠다.

내 인생 이렇게 즐거웠던 순간이 있었나.

로또 육인방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무대 아래로 내려왔고, 무대 위의 마이클 엘라인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은…… 역사상 유례없던, 탑 셰프가 탄생하는 날입니다.”

우와아아아아!

110 화. 열광하라 (6)

[ Michelin guide Paris. 2021 ]

그 현장의 주인공은 나였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죄가 될 만큼.

우와아아아아!

이 행사장의 밖에서도 소식이 전해졌는지, ‘반유현’이 적힌 조리복을 입고 있는 셰프들, 수백 명,


많게는 천 명 가까이 되는 인원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포시즌스, 레스토랑…… 반유현, 레드, 옐로, 블루!”

세 개의 레스토랑이 동시에 호명되었다.

내 100 년의 역사를 통틀어도 없었던 일.

그 말은 즉, 이 지구에 유례없던 일이었다.

“단번에…… 바, 반유현 셰프는 단번에 미슐랭 스타를……!”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놀랐다’라고는 표현이 다 안 될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한 호텔 내에 세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도 최초였지만, 그곳 모두에서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아낸
것에 대한 반응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간 이룩해내지 못했던 성과에 기분이 좋을 정도였으니까, 지극히 평범한 저 인간들은 어떻겠는가.

[ 현재 보유 미슐랭 스타 : 16 개 ]

[ 환생까지 남은 시간 : 17 년 304 일 ……. ]

레드 테이블, 두 곳의 레스토랑은 원래 2 스타를 보유하던 레스토랑이었고 이번에 3 스타로 격상되어 각각


1 개의 별을 더 획득한 것이다.

그리고 ‘반유현 - 네이비’에서 1 개의 별을 획득했고, 포시즌스에 있는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 총 아홉


개의 별을 얻어냈다.

원래 있던 네 개의 별과 합쳐져 현재, 16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된 것이다.

“세계 최연소! 세계 최초! 전례가 없는 업적을……!”

16 개의 개수 자체도 위대했고 동시에 한 도시에서 10 개가 넘는 별을 차지했다는 것도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대단한 성과였지만, 나에겐 지금 시점이 더 중요했다.

이 몸은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 더불어, 미션 목표 시간까지 15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미슐랭 스타가 확정되었을 때, 떠오른 두 줄의 문장이 내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이번 생은 됐다.’

나도 모르게 확신해버렸다.

더군다나, 아직 시상이 끝나지 않은 한국과 런던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거만한 건가.’

이내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시상식 내에 있던 모든 셰프들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전설적인 셰프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그 나이에…… 전설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온전히 요리에만 집중했던 것이 아니라, 각종 방송에도 출연하고, ‘반유현 팩토리’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했고, ‘반유현 골목’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고, ‘팩토리 올 데이’라는 축제를 기획한 것처럼
여러 대외적인 활동을 하면서 이런 성과를 냈다는 것 또한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절대, 몇 줄, 몇 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업적을 세웠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하.”

이번 미슐랭 스타의 시상을 맡은, 마이클 엘라인이었다.

“후우……. 후우…….

그가 매우 흥분한 듯이 숨을 몰아쉬더니 입을 열었다.

“하, 한국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

한국에 있는 ‘반유현-펌킨’ 과 ‘반유현-그린’에서도 각각 두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었다.

[ 동시에 16 개의 미슐랭 스타를 차지한 반유현! ]

[ 미슐랭 스타 공정성 논란! ]

[ 포시즌스 측의 로비가 있던 게 아닌가! ]

[ 기업의 힘이 미슐랭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

포시즌스 전 세계 지점의 사장단이 소집되었다.

레스토랑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 이번 사건을 축하하기 위해 전 세계의 사장들이 모였던 것인데,


이들이 모인 의도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형성되어 갔다.

“어째서, 축하와 업적을 말하기보다 논란이 더 많습니까?”

“당연히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흠, 사실과 무근인 기사들이니 모두 무시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무시를 해서는 안 됩니다. 공정하게 맛에 대한 평가를 봤다……. 우리의 공정함을 증명해야지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자, 대중들과 각종 매체들은 반유현을 물고 뜯기


시작했다.

이유는 말했던 대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역사에 없던 일이 발생했다고, 공정성에 의문을 품는 인간들이란…….”

“하여간, 해결책을 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논란들을 잠재우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내일모레, 반유현이 미슐랭 스타 런던 시상식에 참여하는 스케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이 붙고 있는데, 반유현이 내일 또 미슐랭 스타를 수상하게 된다면.

관심 없던 대중들까지 달라붙어 논란은 산불이 번지듯이 더욱더 커지게 될 것이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미슐랭 스타를 만들고, 평가하고 수상한 미슐랭 가이드의 반응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 포시즌스, 반유현 측과 아무런 관계없어, 수많은 평가원들이 공정하게 평가한 것. ]

[ 미슐랭 가이드, 인터네셔널 디렉터. 마이클 엘라인. “불공정은 미슐랭 역사에 있을 수 없다. ]

[ 미슐랭 가이드, 총괄 책임. “평가 방법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다섯 가지 항목이며, 그 세부적인 것들은
비밀유지를 위해 밝힐 수 없다. ]

“능력 없는 못난 셰프들과…… 관심으로 먹고 사는 미식가들…….”

그들은 이번 사건에 계속해서 기름을 부으며, 논란을 재점화했다.

“방법이 정말 없습니까?”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진정으로 그들과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데.”

당사자인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 로만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꿈에서만 그리던 일, 포시즌스 내의 모든 레스토랑이 쓰리 스타를 받아 포시즌스의 역사, 더 나아가 파리


역사상 없던 일을 만들어 냈고,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 자체가 미식의 거점이 되었지만, 기쁜 마음보다
걱정이 더했다.

그 정도로 논란은 거세졌다.

“마냥 기쁠 줄만 알았는데, 왕관의 무게를 버텨라, 라는 말이 있는 이유를 알겠네요.”

로만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던지고 고개를 숙였을 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반유현이 등장했다.

짝짝짝짝.

전 세계에 퍼져있는 포시즌스 사장단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논란은 논란이고, 그에겐 축하를 건네는 사장단이었다.

포시즌스의 회장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축하를 해줬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내어줬다.

“여기 앉으시죠. 세프님.”

반유현이 비현실적인 계획들을 꺼낼 때마다 의문을 품었던 그들은, 이제 모두 그를 섬기게 된 것이었다.

반유현은 자리에 앉지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혹시, 저 몰래, 미슐랭에게 돈을 주려고 했다거나, 대가를 바라고 그들에게 접근했던 사장님이
계십니까?”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없습니까?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사장단이 모두 그런 짓을 했다는 적이 없다는 것을 안 반유현은, 한마디를 던져놓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럼 됐습니다. 이 논란을 종식시킬 방법이 있으니까요.”


***

[ Michelin guide London. 2021 ]

며칠 뒤, 런던에 있는 미슐랭 가이드 시상식에 왔다.

내 옆에는 런던에 위치한 ‘반유현 - 브라운’을 총괄하는 최민성이 자리했다.

최민성도 최근에 논란이 불거진 일들을 알았기에,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야.”

“예, 셰프님.”

“표정이 뭘 그러냐. 곧 미슐랭 스타 셰프가 될 놈이.”

“아,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 난 항상 공정했어.”

“알고 있습니다.”

그때, 몇몇의 셰프들이 내게 다가왔다.

오른쪽에 저마다 미슐랭 스타를 상징하는 뱃지를 차고 있던 셰프들이었다.

“논란 때문에 힘드시겠습니다. 하하.”

뱀눈에 비릿한 미소를 짓는 게 얼굴만 봐도 기분이 더러워졌다.

“신경 끄시죠.”

초면에 저런 말투를 취하는 놈.

“그러게, 적당히 하셨어야죠. 큭.”

내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행보를 보여 왔으니, 나의 모든 실력들이 거품이었고, 그 거품이 이제야


터졌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10 개 미만까지는 이해가 될 텐데, 어쩐지 너무 하셨습니다. 요리할 시간도 없으셨을 텐데,
돈도 밝히고 명예도 밝히니까 그렇게 가시는 겁니다.”

“단번에, 10 개가 넘는 별을 받았다라…… 설마 오늘까지 미슐랭 스타를 받으면 그 문제는…….”

“오늘까지요? 그렇다면 저는 미슐랭 스타를 받았던 것을 모두 반납할 겁니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거니까요.”

저들끼리 대화를 하는데, 내가 오늘도 미슐랭 스타를 수여하게 된다면, 여태까지 자신들이 받은 미슐랭
스타를 반납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그 공정성 논란에 대해 말을 더했다.

“씨발놈들이.”

최민성이 그 성격을 참지 못하고, 욕을 뱉었으나 크게 소용은 없었다.


“어우, 과격해라.”

“사람 때리시게?”

“저런 셰프가 어떻게 시상식에…….”

오히려 낄낄대며, 최민성과 나를 비웃었다.

“가서 죽일까요?”

“가만히 있어. 새끼야, 네가 깡패냐.”

“죄송합니다.”

“기다려봐.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이윽고, 미슐랭 스타의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마이클 엘라인이 수상을 맡았는데, 요 며칠간 있었던 미슐랭 공정성 논란 때문에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자신들도 깊이 검토를 했을 것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직원 또는 평가원이 나와 관계를 맺었을 수도


있을 가능성에 대해.

원스타부터 수상이 시작되었고, 투스타 수상이 끝난 뒤에 쓰리스타 수상이 시작되었다.

나와 최민성을 대놓고 비웃었던 셰프들이 대거 발탁되어 상을 받았다.

짝짝짝짝.

박수가 쏟아졌고, 셰프들은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또 나와 최민성이 있는 곳을 향해 비웃어 보였다.

내가 잘나가는 것에 대해 배가 그렇게 아팠던 것인가, 아무런 사실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그저


논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즐거워할 줄이야.

그리고, 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바, 크흠! 반유현 - 브라운의 최민성 셰프! 그리고 반유현 셰프입니다!”

짝짝짝짝.

어째서, 파리에서 울렸던 환호와 박수소리에 비해 월등히 작다.

이것을 얻음으로써 나는 올해 미슐랭 스타 19 개를 얻었는데.

평생 죽을 때까지 10 개를 받지 못하는 셰프가 있기에 비현실적인 숫자는 맞다.

그래서 이러한 공정성 논란이 생기는 것일 테고.

공정성 논란에 대해 이해는 되지만, 막상 나와 함께 노력하고 고생한 최민성이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다.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았음에도 고개를 떨구는 최민성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야, 고개 들어.”

“예……! 예! 셰프!”

그제서야 최민성이 무대 아래, 정면을 응시했다.

“아아. 반유현입니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올 한해 열아홉 개의 미슐랭 스타를 받았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셰프들 중에 저만큼 별을 가진 셰프는


없죠. 당신들이 못 할 일이라고 남의 성과를 무시하다니. 못난 당신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시상식 전체가 술렁댔다.

“그래서 내가 증명하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공정성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개 같은


논란을 만들어 낸 당신들이 다시는 요리를 못 하게 만들겠습니다.”

툭.

마이크를 거치대에 걸어 놓고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오스틴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스토랑 ‘반유현’ 내의 셰프들 총원 소집해.”

111 화. 아주 차갑게 (1)

[ 현재 보유 미슐랭 스타 : 23 개 ]

[ 환생까지 남은 시간 : 17 년 301 일 ……. ]

‘반유현’이라는 몸으로 환생하기 직전, 토크쇼에 출연했었다.

미션에 성공하지 못하리란 것을 깨닫고 이슈를 만들기 위해 토크쇼에서 죽었다.

나를 따랐던 셰프들과, 또 그 밑의 셰프들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건 이슈를 만들어 매출을 올려주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참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기야, 다섯 번째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으니 뇌가 제대로 굴러가질 않았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드는군.’

그 당시, 죽기 직전 내 눈에 떠올랐던 몇 줄의 문장들이 아직도 기억이 났다.

[ 제한 된 모든 시간이 소모되었습니다. ]

[ 미슐랭 스타 : 21 개 ]

[ ‘미슐랭 스타 25 개를 받아라!’ 실패. ]

[ 20 년 전, 2020 년으로 돌아갑니다. ]


20 년을 다 소모하고 얻은 미슐랭 스타가 21 개.

지금은 2 년이 조금 지난 시점인데, 바로 이전 삶보다 2 개의 미슐랭 스타가 더 많았다.

내가 100 년을 살았음에도 이런 적이 없었으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아니 셰프들에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게 문제였다.

셰프들은 내가 단번에 19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은 것에 대해, 공정성을 의심해야 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으니까.

“대한민국에 있는 셰프들도 모두 소집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공정성을 훼손한 적이 없는 나와 나를 따르는 셰프들은 억울했고, 그 억울함을 풀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맨날 그랬듯이, 요리로 증명하는 거야.”

너무 비유적인 표현이었나, 이미 ‘반유현-팩토리’의 대강당에 있던 셰프들과 반유현팀, 포시즌스의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로또 육인방은 대충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나, 내가 생각하기엔 저들은 나의 계획을 모르고 있다.

“역사상 없던 일을 만들어냈으니까, 역사상 없던 방식으로 해결을 해야 되는 게 맞잖아.”

“그, 그렇습니다.”

우와아아아아!

그런데, 내가 한창 생각 정리를 끝냈을 쯤, 밖에서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이 건물의 앞에 차려진, 신입 셰프들을 계속 공급받기 위해 만들어진 ‘자유시장’ 쪽이었다.

“밖에는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는데…… 저희가 촬영허가를 하지 않은 곳들도 몰려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엉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확인하지 마. 계속해서 사람이 모여들어서…… 더 이상 사람들이 모이지 못했을 때 나가서 발표한다.”

“예, 셰프.”

***

프랑스 정부가 운영하는 공영방송사 텔레비지옹, 프랑스 최대 민영 방송사이자 프랑스 내에서 가장 오래된
TF1 를 주축으로 세계 각국의 방송사들 KBM , BBS, YTM 등이 모여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 앞의 광경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미슐랭 가이드 100 년의 역사상 전례 없는 탑 셰프의 탄생을 취재하기 위함이었고, 그에 관련된 기사를
어떻게든 얻어 보려는 방송사들이었다.
“와! PD 님 오늘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그래, 다른 곳도 다들 냄새 맡고 여기로 집결한 거잖아.”

여태까지 ‘반유현’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면, 대게 큰일이 있을 때 전 직원 및 셰프들을 ‘반유현 팩토


리’로 모으는 게 관행이었다.

그 관행에 따라 반유현과 그를 따르는 직원 및 셰프들이 이곳으로 모일 것을 알고, 방송사들도 무언가


건져보기 위해 이곳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던 것이었다.

“거기다가, 오늘은 한국하고 런던에 있는 셰프들도 다 모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역사에 없던 날을 기념하려는 것인지, 멀리 떨어져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의 총괄 셰프들도 집결한다고


했다.

“내 15 년 PD 인생 중에 톱스타 에마니엘 메를랑 불륜 사건보다 많은 취재진을 모은 인간은 처음이야.”

덕분에 역사상 없던 만큼의 취재진이 한 곳에 몰렸다.

그런데, 그에 대한 불만을 품은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반유현 팩토리’ 앞 ‘자유시장’에서 부스를


설치한 셰프들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가고 싶어 ‘자유시장’ 부스를 신청했고, 교수들의 컨텍을 받기 위해 자신이


준비한 요리를 선보이는 셰프들.

‘자유시장’의 부스를 차지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새 신청한 셰프들도 있었는데, 역대급의 취재진들이


몰려 이들이 밤새 준비한 요리를 선보이기는커녕, 재료 손질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자유시장’ 부스 그 복도 사이사이를 취재진들이 무단으로 점거했기 때문이었다.

“꺼지라고!”

“당신이 뭔데 꺼지라 마라야! 반유현 팩토리 관계자야?”

“그건 아닌데…….”

그렇다고 셰프들은 정당한 권리를 말할 수도 없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일원이 아니었으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 셰프들이었으니까.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니! 우리가 여기 와서 요리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맞아! 니들이 뭔데 무단 점거하고 나서 난리야.”

급기야는 몸싸움까지 벌어져, ‘반유현 팩토리’앞은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야야! 뭐해! 다 치워버리자!”

우와아아아아!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과 촬영 장비를 들고 있던 방송국 관계자들과의 몸싸움.


그 규모는 점점 커져 프랑스 경찰들이 출동했고, 더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었다.

원래 역대급으로 많은 전 세계 취재진들이 몰려있던 곳에 새로운 크고 작은 언론사들까지 모여들었고,


경찰들까지 동원되어 장사진을 이뤘다.

“뭐야?”

“왜 저래? 무슨 일 있나 봐?”

“여기 리더, 반유현 셰프가 이번에 미슐랭 19 개를 얻었데.”

“여, 열아홉 개? 말이 돼? 아홉 개 아니고? 아니, 아홉 개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사실?”

덕분에 지나가던 사람들, 관광객들까지 반유현 팩토리 주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와…… 그 나이에, 그 얼굴에, 명성은 다 얻었고 돈까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미슐랭 스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나 봐 유명 셰프들이.”

“그래서, 저기 조리복 입은 셰프들하고, 취재진들하고 싸우고 있는 거야?”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몰라, 이 사태의 원인을 추측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인 규모가 어느 정도였냐면.

두두두두두두!

경찰 헬기와 방송사의 헬기들이 떠서 그 상황을 지켜볼 정도였다.

“뭐야! 헬기까지 떴어!”

상황과 분위기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 ‘반유현 팩토리’의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 열린다!”

취재진들은 ‘자유시장’에 있던 셰프들과의 실랑이를 그만두고, 다시금 촬영 장비를 잡고 모두 그쪽을


응시했다.

“반유현 셰프다!”

“반유현 셰프님! 한 말씀 해주시죠!”

“셰프님! 역사상 최초, 최고의 셰프가 되었는데 한 말씀 해주십시오!”

“공정성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런던에서 하셨던 말의 뜻은 뭔가요!”

수많은 플래시가 그에게 터졌다.

‘자유시장’에서 부스를 차지하던 흥분한 셰프들도 그의 모습을 보고 저절로 공손해졌다.

경찰들 또한 유명 인사의 등장에 잠시 멈칫했다.


혼란스러웠던 분위기가 저절로 정리되었다.

저 젊은 사내에게 풍기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반유현이 문 앞으로 걸어 나오고, 셰프들과 스텝들이 빠르게 마이크와 엠프를 설치했다.

무언가 발표할 것이 있는 모양.

마이크와 엠프가 설치되고 나서는, 반유현이 마이크를 들었다.

“공정성 논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을 마구 던지던 기자들과, 플래시를 터트리던 방송 관계자들도 숨을 죽였다.

“매번 그렇듯이, 저희는 이번 논란에 대해서도 요리와 맛으로 해명하고자 합니다.”

또, 수많은 플래시가 터져 나온다.

“전 세계, 각국에 계신 모든 미슐랭 스타 셰프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셰프들께 레스토랑 ‘반유현’의


요리를 선보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장내가 술렁였고, 반유현은 그것을 다시 정리했다.

“20 일, 21 일, 22 일 3 일 동안 전세계에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을 휴업하고, ‘셰프’인 분들에게


요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3 일 동안 출입할 수 있는 고객은 온전히 제 요리에 의문을 품은
셰프들입니다. 본인이 셰프라면, 신청서를 써주십시오. 저의 요리 실력과 미슐랭의 공정성에 논란을
가지신 분들은 직접 드셔보시고 판단해주십시오.”

우와아아…….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환호가 아닌, 감탄이었다.

***

[ 레스토랑 반유현 전세계 셰프들 상대로 선전포고! ]

[ 직접 맛보고 판단해라! 톱셰프의 화끈한 대응책! ]

[ 전 세계 수많은 셰프들 레스토랑 반유현 시식에 신청서 제출! ]

[ 현재, 최다 미슐랭 스타 보유 셰프인 안토니 베르만도 제출! 그 휘하의 셰프들과 함께 참석. ]

“기존에 20 일, 21 일, 22 일에 예약을 했던 고객들께는 뭐라고 말을 할까요?”

“그분들이 모두 식사를 하실 수 있게끔, 휴업 일 프리패스권을 드려.”

“예?”

“매주 하루 있는 휴업일 중에 날과 시간을 선택하셔서 대기 없이 레스토랑 ‘반유현’의 요리를 맛볼 수


있게 제공해드려.”

이미 예약이 꽉 찬 날이었기에, 손님들의 반감을 줄이려면 그 정도 파격적인 대우는 해줘야 했다.

덕분에 셰프들은 손님들의 프리패스권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몇 달간 휴일이 없겠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 이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레스토랑 ‘반유현’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킬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신청서는 마감하겠습니다.”

자신이 셰프라는 것을 증명할 자료를 함께 제출하면, 신청서가 접수되는 방식이다.

물론,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셰프일수록 신청서가 승인될 확률이 높았다.

3 일간 한국, 파리, 런던에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에서 맛을 볼 셰프들을 어느 정도 실력과 그에 따른


입지가 있는 셰프들을 뽑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아, 그리고 런던에 있는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모든 셰프들은 신청서 받지 마.”

“예? 그곳에 있던 셰프들이, 셰프님을 비웃었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꼭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게 해서…
…!”

“신청서 받지 말고, 초대권을 돌려. 꼭, 오라고.”

나와 최민성이 미슐랭 스타를 받은 것에 대해 대놓고 의문을 품었던 놈들.

그곳에 있던 총원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셰프들이 노골적으로 비웃었었다.

당연히 그것을 잊지 않았고, 놈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덤으로, 그저 논란에 의해 함부로 입을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도 보여줄 생각이었고.

“팩토리 올 데이…… 라고 이름 붙였던 축제가 있으니, 이번 3 일간은 ‘반유현 올 데이’라고 이름


붙인다.”

반유현 올 데이.

3 일 동안 전 세계 셰프들에게 내 실력을 입증하는 기간은 그렇게 명명되었다.

한국과 런던에서 셰프들이 도착했고, 나는 ‘반유현 올 데이’에서 벌어질 상황들을 미리 예측해서


그들에게 설명했다.

“어쩌면, 레스토랑 ‘반유현’이 설립되고 가장 중요한 기간일 것입니다.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야 될


시간입니다. 어떤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나를 보고 있는 셰프들의 눈에서 빛이 났다.

이들도 이 모든 논란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보였다.

“열두 시간 뒤, 최종 점검하겠습니다.”

셰프들은 각각의 레스토랑에서 운영하는 메뉴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듯 힘주어 말한 적이 얼마 없던지라, 레스토랑 오픈 전 최종 메뉴 테이스팅을 하던 때보다


긴장한 듯한 표정들이었다.

“다, 시작해.”

“예! 셰프!”
나의 최측근인 로또 육인방, 포시즌스의 셰프들, 그리고 한국에서 ‘반유현-펌킨’을 운영하는
어머니까지, 오늘만큼은 웃음기가 없었다.

112 화. 아주 차갑게 (2)

야심한 밤.

‘반유현 팩토리’의 불은 밝게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 모든 셰프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호박 라떼는……. 여기 들어가는 크림은 셰프님이 만든 것 맞습니까?”

“아닙니다. 저희 핫(hot) 파트장이 만들었습니다.”

많은 셰프들이 모여 있었고, 무척이나 공적인 자리에 어머니도 나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그림이 이상했지만, 어머니도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듯했다.

“반유현 펌킨, 핫 파트장 나오세요.”

“예! 셰프.”

“미슐랭 투 스타…… 어떻게 받았습니까? 받아놓고 긴장이 풀렸습니까?”

호박이 주된 테마로 이루어진 ‘반유현 펌킨’의 디저트 호박 라떼에 들어간 생크림의 맛을 지적했다.

분명, 몇 주 전 한국에 있었을 때와는 다른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즐겁게 요리 먹어놓고, 디저트가 그걸 망치면 손님들, 아니 손님들도 그렇고 앞서 선보인 요리들이 개밥


되는 거…… 안 가르쳐줬었나?”

“시정하겠습니다.”

원래 이 전생에도 독설로 이름을 떨쳤던 나였다.

포장하지 않고 100 퍼센트 진심을 내뱉다 보니, 다소 과격한 말이 나가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시간은 없고 난 내 모든 의사를 짧은 시간 안에 전파해야 했으니.

“반유현 펌킨은, 앞으로 한 시간 뒤에, 모든 요리. 다시 평가하겠습니다.”

내가 진정 미슐랭 스타 19 개의 별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냐, 없냐, 그것의 공정성 논란을 일축하기 위해


만든 행사가 ‘반유현 올 데이’이다. 3 일간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대거 나의 레스토랑을 방문할
것이었으니, 나는 평소보다 높은 맛의 잣대를 들이밀 수밖에 없었다.

“반유현 브라운, 최민성 셰프. 캐비어 산도 다시 조절해.”

“예, 셰프.”

“코스 나오는 속도 조정해. 주방의 모든 동선도 1 초 단위로 짜놔.”

레스토랑 ‘반유현’의 검정 스카프를 맨 셰프들.


밖에서도 높은 지위를 인정받는 그들이었지만, 내 앞에서는 벌벌 떨었다.

그 어느 때보다 깐깐함을 보였으니까.

쨍그랑!

한국, 강남에 최근에 런칭한 ‘반유현-그린’ 의 총괄을 맡은 권화윤 셰프는, 나의 말에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이 무거운 긴장감을 버텨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권화윤.”

“에, 예! 셰프! 죄, 죄송합니다.”

“내가 사람 잘못 본 거야? 내가 너한테 검정 스카프를 준 이유가 뭐야. 긴장하지 마. 하던 대로 해.”

“예! 셰프!”

나 때문만이 아니라, 원체 담이 작은 사람들이 이런 분위기에서 정신을 못 차린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대거 자신의 손님으로 오면 이런 정신 상태는 실수를 유발하게 되어 있는 법. 나는


그녀의 정신을 무장시켜줬다.

“다시 곧 자신이 맡은 레스토랑으로 돌아가야 할 것 아닙니까? 특히 한국, 런던에 있는 셰프들은요.”

“예! 셰프!”

“시간이 없습니다. ‘반유현 올 데이’가 열리는 3 일 동안 제가 당신들 곁에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여기 있을 때 최선을 다하라고.”

그렇게 그날의 테스트는 계속되었다.

마지막 스퍼트,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쇼는 그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최고의 긴장감, 한층 끌어올린 맛의 기준…… 그만큼 나와 나를 따르는 셰프들에게 중요한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엔 지치지도 않더니, 미슐랭 스타 좀 받았다고 눈들이 풀리네.”

최소 미슐랭 원 스타, 많게는 미슐랭 쓰리 스타를 보유한 셰프들이, 찬물을 끼얹어 맞은 것처럼 눈동자가
커졌다.

“지적받은 곳, ‘반유현-펌킨’뿐만 아니라, 전부다! 2 차 메뉴 테스팅, 40 분 뒤 시작.”

“예! 셰프!”

우렁차게 외친 셰프들이 발 빠르게 요리를 시작했다.

***

‘반유현 올 데이’의 행사가 시작되기 이틀 전날이었다.

신청서를 넣은 셰프들 중에서, ‘반유현 올 데이’의 행사의 초대권이 주어질 셰프들의 명단이 정리되었고,
그 초대권에는 그들이 며칠, 몇 시에 어떤 레스토랑에 방문하는지까지 모두 적혀 있었다.

그들이 방문하고 싶은 레스토랑을 신청서에 적어내면, 3 일 중에 그 날짜와 시간을 내가 정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초대권 자체가 엄청난 이슈가 되고 있었다.

“그 셰프들 때문에, 이슈화가 확실히 되긴 됐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셰프들은 저마다 SNS 에 자랑질을 해댔다. 이를 테면.

[ 반유현 올 데이! 나도 참석! #반유현 셰프에게 인정받은 셰프임. ]

[ 기대됩니다 반유현 올데이! 저는 프랑스 포시즌스 레드의 맛을 보게 되는군요! #반유현 ]

[ #반유현에게 인정받은 셰프. #반정셰. ]

[ #반정셰. 저도 갑니다! 올해 미슐랭 스타를 처음 받은 신입인데, 감사합니다! ]

[ 저도 #반정셰 즐거운 하루 입니다! ^^ ]

나에게 초대권을 받은 셰프들은 사진의 주제나 분류를 정하는 ‘#’ 해시태그에, ‘반정셰’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반유현에게…… 인정받은…… 셰프?”

“……네 그렇습니다.”

내가 한 번에 너무 많은 미슐랭 스타를 받아 공정성 논란이 있었고, 그에 따라 내 요리 실력에 논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실력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반유현 올 데이’에 초대권을 받은 셰프들 대부분은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었기에, 그 인지도가 미미하지


않았다.

쿡방, 먹방 열풍에 따라 그들이 SNS 를 한다면 꽤나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곤 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


빠르게 이슈화될 수 있었다.

반유현에게 인정받은 셰프. 반정셰.

셰프들은 이 신조어와 초대권이 찍힌 사진을 함께 올리며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반응들을 이끌어 냈다.

-와! 셰프님도 초대권을 받으신 분이네요! 축하드려요! 

-ㄷㄷ ‘반유현 올 데이’ 아무나 초대권 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고 했는데.

-와우! 킴레이든 셰프님도 가시는군요! 스타 셰프가 되신 건가요?

내가 신청서를 받고 셰프들에게 준 초대권은, 셰프들이 본인 스스로가 셰프로서 꽤나 높은 영향력과


입지를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부럽습니다!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예약도 기다리지 않고…….

-축하드립니다! 반정셰! 

그런데, 그 이슈화에 따라 문제가 생겼다.

역시나, 내 통제에서 벗어난 일에는 항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각 도시에서 공문이 떨어졌습니다.”

가뜩이나 내가 ‘반유현 올 데이’에 대해서 말할 때는, 헬기도 떴었다.

그만큼 이미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는데, 셰프들까지 나서서 SNS 질(?)을 해주니 한 번 더


폭발적인 관심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각 레스토랑의 근처에 취재진들이 너무 많이 몰려, 주거하는 사람들과 주변에 있는 업소들에 많은 피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혹자들은 레스토랑 ‘반유현’ 그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던가, 사람들이


많아져서 좋아지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졌는데,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삶의 터전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생각만 해봐도 그들이 입는 피해를
무시 할 수 없었다.

도의적인 책임뿐 아니라,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고, 이 문제를 손 놓고 가만히


봤다가는 더 큰 문제로 나에게 돌아올 것이니까.

“그러면, 중계권을 판매해야겠네.”

해결책은 간단했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질서를 얻기 갖추기 위한 중계권 판매.

“방송사 애들이나 기자들한테 돈을 받고 촬영할 권리를 팔아 그러면, 중계권을 소유하게 된 애들이 알아서,
중계권이 없는 놈들을 배척할 테고, 중계권이 있는 방송사들끼리 협력해서 질서를 만들 테고…….”

“와…….”

“방송을 위해선 모든 하는 놈들이 방송국 놈들이니까. 중계권을 주면 최적화된 상황을 만들겠지.”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내 레스토랑을 촬영할 수 있는 권리를 팔 생각이다.

더 나아가, 내부에서 셰프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까지 촬영할 권리를 말이다.

“초대권을 받은 셰프들이 문제 삼지 않을까요?”“초대권을 받고, ‘반유현 올 데이’에 참석할 수 있어서


자랑을 하는 셰프들인데, 자신들이 그곳에 참석했다는 게 방송에 나가면 더 좋아하지 않겠어?”

“아……. 그래도 방송 출연을 원치 않는 셰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오스틴의 말도 맞지만, 그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주변 질서를 위해, 중계권 판매가 불가피하니, 어쩔 수 없다고 연락 돌려. 방송 출연을 원치 않으면
초대권을 줄 수 없다고.”

내가 논란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고, 그것을 증명해 내야 되는 중요한 시점이지만.

항상 고개를 숙이란 법은 없지 않은가.

***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라고 불리는 ABC.


그 방송사 내에서 요즘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탑셰프’.

그 연출진들은 레스토랑 ‘반유현 - 브라운’ 앞에서 기쁨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감독님.”

“그러게, 중계료가 더 올라갈 때는 본부장님까지 설득해야 됐어.”

방송사 역사상, 단 3 일, 한 명의 인간이 여는 축제에 이렇게 많은 중계료를 지불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들이 많은 공을 들여 중계권을 받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현재 자신들의 방송사 프로그램, ‘탑셰프’에 출연하고 있는 안토니 베르만 때문이었다.

“세계 최초, 최연소라는 단어를 끌고 다니는 반유현 셰프와, 그 요리의 맛을 평가하는 세계 최고의
셰프를 동시에 담으려면 이 정도 중계료는 어쩌면 남는 장사일지도 몰라.”

‘탑셰프’는 셰프 다큐의 시초인 프로그램이었다.

한 명의 셰프를 특정해 그와 함께, 짧게는 2 주, 길게는 2 개월 정도의 시간을 촬영해 그의 인생을 집중


조명하는 것이었는데, 하필 이번 출연자가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를 가진 안토니 베르만이었다.

더군다나 마침, 안토니 베르만이 ‘반유현 올 데이’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최다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만큼, 그것의 공정성이 안토니 베르만에게도 중요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대중들과 수많은 방송사와 언론이 이 행사에 가지는 관심에 비례해, 베르만이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 어떤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그에 따라 중계권을 입찰하는 것이 이들에게 대단한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이미 정해졌었다.

더군다나, 안토니 베르만이 참여하는 레스토랑은 런던에 있는 ‘반유현-브라운’.

반유현은 런던에 있던 셰프들에게는 신청서를 받지 않고 초대권을 돌렸던 사실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 내막은 자세히 모르지만, 분명, 반유현과 런던 소재의 셰프들 사이에 어떤 이슈가 있을 것이


연출진들의 눈에 훤히 보였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이들은 중계료를 지불하고 ‘반유현 올 데이’에 대한 중계료를 얻어 촬영을


정식적으로 허가 받았다.

그리고 행사 당일, 베르만과 함께 ‘반유현 - 브라운’으로 입성했다.

당연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반유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베르만입니다. 영광입니다.”

세계 최연소, 최초, 역사 없던 신화를 만들어가는 셰프와,

미슐랭 스타를 가장 많이 보유했으며, 현시대 요리에 있어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라고 평가받는 셰프


중 한 명인 그가 만나 악수를 나눴다.
“앉으시죠. 곧 시작될 겁니다.”

113 화. 아주 차갑게 (3)

“내년이면 제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하하하.”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보유자인 안토니 베르만은 그렇게, 여유로운 미소를 짓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런던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나와 최민성을 향해 음흉한 웃음을 짓던 셰프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하하하하! 반유현 셰프님! 이런 행사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가 말씀드렸던 것을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실 줄이야. 이거, 탑셰프 치고는 너무 소심한 것 아닙니까?”

“그러게요. 사람 민망하게, 저희한테는 신청서도 받지 않고 초대를 하셨다는 게…… 너희들은 와서


맛이나 봐라, 내 요리가 진짜인지 아닌지, 뭐 이런…… 자신감. 멋집니다.”

“허허허! 그래. 젊은 셰프답게 패기도 있고 자신감도 있고 정말로 멋집니다.”

미슐랭 스타 런던 시상식에서 공정성을 의심하며 나를 깔봤던 무리는, 이 세 명의 셰프가 주축이었다.

각각 지중해식 레스토랑, 일식 정찬, 프랑스 정찬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들.

“우리 레스토랑과 겹치는 메뉴도 있더만.”

“아, 칼린 셰프님의 이베리코 돼지 구이, 저희가 오늘 여기서 먹을 메뉴와 겹치는군요.”

“지중해 요리의 대가 칼린 셰프님과 겹치는 메뉴가 있다니…… 그 요리로 평가를 하면 되겠네요. 칼린


셰프님의 레스토랑도 미슐랭 쓰리 스타니까요. 어떤 쓰리 스타가 진짜인지.”

중년의 남성들, 많게는 60 살까지 먹은 사내들이 추잡스럽게 입을 놀리는데 내 표정이 밝을 리가 없었다.

이놈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이용해 미슐랭 스타 공정성 논란에 불을 붙인 장본인들이기도 하고.

이놈들을 따르는 셰프들도 함께 자리했는데, 이들도 많게는 투 스타 적게는 원 스타를 가진 셰프들이었다.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이슈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자신감과 패기는


인정합니다.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지중해식 레스토랑으로 미슐랭 쓰리 스타를 소유한 칼린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러자, 그를 따르는 셰프들이 다 같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마치, 내가 이 행사가 끝난 뒤에는 셰프로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비릿한 미소였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고 저들이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저쪽에 앉아 계십쇼. 그쪽의 레스토랑과 같은 메뉴가 있다니 요리를 맛보고 입을 놀리시든가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 사람아, 입을 놀려? 이 양반이 돈 먹이고 홍보용 대가로 미슐랭 스타 받은 것 다 알아.


지금이라도 인정해. 관광청에서도 조사 들어갔으니까, 밝혀질 터……. 거, 아직 첫날이니까 조용히 어디
파리 구석에서 요리 계속하고 싶으면…… 이쯤에서 행사 다 취소하…….”

그때, 저들의 언행을 듣다 못 한 최민성이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어이, 아저씨들. 앉아있으라고, 무쇠 팬에 볶아지기 싫으면.”

“허, 참……! 아, 아저씨? 당신도 오, 오늘 끝나고 보자고.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이들도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싫었는지, 자리로 돌아갔다.

***

‘반유현 올 데이’의 중계권을 입찰받은 방송사, ABC.

그중에서도 이번 촬영의 총책을 맡은 ‘탑셰프’의 메인 프로듀서 프랭크.

프랭크는 행사가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흥미로운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도, 어떤 축제에 참여해 반유현을 응원하듯이 레스토랑 앞을 꽉 채운 장면.

수많은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슈퍼카 또는 고급세단에서 내려 레스토랑 ‘반유현-브라운’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입장하는 장면.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셰프, 베르만이 반유현에게 고개를 숙이며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영광에 감사인사를


하는 장면.

행사가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어떤 장면으로 이 분량을 구성해야 될지, 고민이 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건, 런던 소재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셰프들과 반유현의 미묘한 신경전이었다.

‘뭐야. 저들에게 초대권을 돌렸던 게 그런 이유였나?’

행사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셰프들은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 ‘반유현’에게 선발되어 초대권을 받았는데,
올해 런던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들 모두에게는 반유현이 직접 신청서를 받지 않고 초대권을 돌렸던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 의아해하고 호기심을 가졌지만, 반유현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었다.

“저쪽, 런던에서 미슐랭 스타 받은 셰프들 있잖아. 저쪽을 전담 카메라 붙여라.”

“예?”

“잔말 말고 붙여, 재밌는 그림 나올 것 같으니까.”

반유현이 저들에게 직접 초대권을 돌린 것이, 기분 좋은 이유가 아님을 얼추 알았을 때, 프랭크는 저들을


전담으로 촬영할 카메라를 배정했다.

리얼 다큐 방송경력 20 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어쩐지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채 요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영국 내 각 도시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모든 셰프들이 한 곳에 모인 자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셰프들이 자리했다.


그들이 다소 상기된 얼굴로 대단한 환호성과 박수소리를 보내니 행사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샘파이어(Samphire)를 곁들인 굴이군요…….”

메인 카메라는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셰프인 베르만을 촬영하고 있었고, 베르만은 서빙된 요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는 프랭크의 부탁이었다. 리얼 다큐라곤 하지만 PD 와 출연자 간의 ‘합’이 조금은 있어야 더 다채로운


장면들을 담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함초라고도 불리는 샘파이어를 곁들여 굴에 식감과 바다향을 추가한…….”

유럽에서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굴이었다.

살아있는 생선을 회 치고,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입에 넣는 것을 보면 기겁하는 유렵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굴을 고급 요리로 대우했다.

굴은 일부 서양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20 세기 초부터 굴의


공급량이 줄어들었다.

또, 유럽의 날씨와 지형 탓에 양식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잘 잡히지도 않는 탓에 굴의 가격은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와…… 이 맛은 최고급입니다. 해초의 바다향이 굴의 특유의 진득한 향과 합쳐져 생동감이 있군요.


더군다나 녹아 없어지는 굴에 해초의 식감이 더해져 맛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전복내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를 이용해 해산물의 풍미를 살리는 경우가 많은데, 반유현은 전복 내장의
효과를 해초로 대신해 극대화시켰다.

전복이 먹고 자란 것이 해초고, 그 내장에 있는 것이 소화된 해초라면, 바다의 향을 한껏 머금고 자란


신선한 해초 그 자체의 향은 어떤 해산물도 입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만들 수 있었다.

“전채 요리부터……. 의심의 여지 없습니다.”

PD 의 부탁에 의해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그 요리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베르만의 것이었다.

“반유현 셰프는 함초를 베이스로 한 굴의 산도까지 맞췄습니다. 그 굴의 크기와 신선도에 따라 각각


소스를…… 허. 진짜 이건, 이건, 대단합니다.”

프랭크는 당연하게도, 반유현의 요리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한 적은 없었다.

베르만이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것이 모두 연출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자니, 이 코스 요리의


디저트가 나왔을 때쯤엔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 기대가 됐다.

그리고 그 반응들이 카메라에 담겼을 때를 생각하며 즐거웠다.

현존 세계 최강의 셰프 중 한명이 또 다른 세계 최강의 셰프를 인정해 맞이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을 테니까.

“이어서, 새우 머리를 우려낸 스톡으로 맛을 낸 소스를 곁들인 이베리코 돼지구이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의 요리가 지나갔을 때는, 메인 요리인 이베리코 돼지구이가 나왔다.


이베리코는 세계 4 대 진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돼지로, 일반 돼지에 비해 풍미가 뛰어나 값이 비싸고
고급 요리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하.”

베르만은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던 연출진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앞서 먹었던 굴과 해초…… 농어…… 이베리코 돼지까지 연결되는 맛.”

그뿐만 아니라, 이 장소에 있던 대부분의 셰프들이 놀라움의 탄성을 지었다.

와……!

“바다 향으로 하나의 선을 만들고, 그 선 위에 최고급 요리들을 얹음으로써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줬습니다. 이게, 이게 미슐랭 쓰리 스타가 아니면 대체 어디가 미슐랭 쓰리 스타입니까?”

‘반유현-브라운’의 주된 테마인, 최고급 재료를 이용한 요리.

그가 선보인 요리는 단순 최고급 식자재일 뿐만 아니라, 스토리를 갖고 있는 매우 창의적인 요리였다.

창의적일 뿐만 아니라, 맛도 아주 강력한 요리.

코스의 끝으로 디저트가 나오고, 반유현이 다시 홀로 등장했을 때는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 박수를 치는 대부분의 인원들이 미슐랭 스타인 것을 생각하면, 미슐랭 가이드의 공정성 논란은 거품
터지듯 사라질 것이었다.

프랭크는 이 열띤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올해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그 명장면의 감초 역할을 하리라 생각했던 런던 소재의 셰프들을 쳐다봤다.

“요리가 그렇듯, 방송에 쓴맛도 있어야지.”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 모습, 왠지 인정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맛은 최고임을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뜻을 굽히진 않겠다는 불편한 표정.

프랭크는 그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담았다.

***

나에 대한 공정성 의심을 모두 풀어내기 위해 기획했던 행사, ‘반유현 올 데이.’

전 세계 레스토랑 ‘반유현’에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대거 초대한 이 행사는 실질적인 그들의 증언을


담기 위해 방명록을 만들었다.

“포시즌스, 레드, 블루, 옐로, 모두 이상 없습니다.”

“한국은.”

“한국의 두 곳에도 이상 없습니다.”

방명록에는 셰프들의 이름과, 그들이 직접 요리를 평가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두바이 미슐랭 투 스타, ‘르뵈네’ 총주방장 알린 셰프 : 신선한 요리 그 자체였습니다. 배우고 갑니다.

-일본 미슐랭 원 스타, ‘겐지 스시’ 총주방장 켄지 오토코 셰프 : 반유현 셰프님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요리들이었습니다. 미슐랭 23 스타를 보유할 만합니다. 그는 최고의 셰프입니다.

-프랑스 미슐랭 쓰리 스타, ‘메르 뷔 옹’ 루카스 셰프 : 프랑스의 요리문화를 이끄는 셰프임을 증명해
보인 코스였습니다. 누군가 그의 요리 실력에 의문을 품었다면 이 요리를 먹어보지 못한 셰프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실제로 내 요리가 미슐랭 스타를 동시에 19 개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는 성공.

셰프들이 직접 기록한 이 방명록들은 하나 같이 나의 요리들을 극찬했으며 나의 요리 실력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행사 끝나면, 이걸 SNS 든, 방송이든 공개해서 모든 의심을 털자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런던에서 조금…… 부정적인 방명록이 있다고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런던의 그놈들이 또 개소리를 지껄여 놨나 보다. 오스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곧장 방명록을 확인하기 위해 런던, ‘반유현-브라운’의 방명록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2021,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셰프 안토니 베르만 : 제가 아직도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만함에 취한 저를 다시 셰프의 자리로 돌려놓은 엄청난 요리. 반유현 셰프님에게 오늘
받은 인상은…….

베르만의 방명록에서 몇 장 더 넘기자, 놈들의 방명록이 나왔다.

첫 번째로 그놈들의 리더 격인, 칼린의 방명록이었다.

-런던 미슐랭 쓰리 스타, ‘그란데’ 오너 셰프 칼린 : 당연히, 맛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열광할 만한 맛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메인이었던 이베리코에 새우 머리의 향을 베이스로 한
소스가 저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창의력을 앞세워 요리 본연의 맛을……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베리코 요리는 제가 운영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한 사내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오…… 셰프님, 엄청난 소스가 될 것 같은데 제게 이 소스를 빌려주시겠어요?”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 의 ‘탑셰프’ 메인 PD, 프랭크였다.

“그러니까 이 셰프가……. 모든 셰프들이 인정하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에 반기를 들었다는 거죠?
저희가 담은 장면들과 이 글귀가 합쳐지면…… 흠. 벌써부터 너무 재밌는데요.”

114 화. 아주 차갑게 (4)

-ABC 방송사, 탑셰프 메인 프로듀서 프랭크.

그의 명함을 받아들고, 그의 적극성 적분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셰프님, 제가 오늘 촬영한 분량과 지금 전 세계 레스토랑 ‘반유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냥 넘어갈


이야기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방송에 내보내어 엄청난 화제를 일으킬만한 사건이기에, ‘반유현 올 데이’라는 행사 자체를 집중 조명해
분량을 늘리자는 의견이었다.

전 세계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반유현’이라는 한 브랜드의 레스토랑에 모이는 것도 그랬고, 그들이


하나같이 이 요리에 대해 극찬을 하는 것도 그랬다.

어쩌면 요리의 신, 아니, 역사상 없던 셰프의 탄생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마음에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탑셰프’의 PD 라면 자연스럽게 있어야 할 욕심 말이다.

그런 와중에, 그의 눈에 이런 방명록이 보인 것이다.

-런던 미슐랭 쓰리스타, ‘그란데’ 오너 셰프 칼린 : 당연히, 맛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열광할 만한 맛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생략…

모든 셰프가 하나같이 극찬을 하는 방명록에, 유일하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칼린.

런던 소재의 셰프 중 한 명이었다.

“제 생각은…….”

프랭크가 이런저런 안건을 내어놓았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다 괜찮네요.”

나는 저 런던의 셰프 놈들을 모조리 밟고 싶었고, 프랭크는 내가 그들을 밟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우리는 뜻이 같았고, 그런 의미에서 프랭크가 제시한 몇 가지 제안들이 꽤나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전략에 내 100 년 내공을 조금 얹어줬다.

“아…….”

나의 조언을 들으니, 마치 내 요리를 먹은 사람처럼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지켜보는 프랭크였다.

그 뒤에, 프랭크가 활짝 웃고는 말했다.

“바, 방송을 너무 잘 아시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셰프님의 칼이 한번 되어드리겠습니다.”

***

[ 전 세계 셰프들 상대로 실력을 입증해 보이다. ]

[ 역사상 없던 최고의 셰프 탄생. ]

[ 미슐랭 23 스타, 현존하는 탑셰프 중 한 명! ]

모두가 나를 지칭하는 기사들이었다.


‘반유현 올 데이’의 행사 첫날, 둘째 날, 셋째 날……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동시에 미슐랭 19 스타를 얻은 것도 그렇지만, 그 공정성과 의문을 모두 해치우기 위해 이런 행사를


기획했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까지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일은 나의 100 년 역사를 통틀어 봐도 없는 일이었다.

오스틴은 습관처럼 이번 일에 대해 대단한 의미 부여를 했다.

“저희 브랜드 ‘반유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전 세계에 없을 것입니다. 그에 따라 모든 셰프들의


워너비 주방이 되었고, 반유현 팩토리의 ‘자유시장’ 지원율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반유현
셰프님 그 자체는 셰프들의 우상이 되셨습니다. 셰프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탑셰프가 되신
것을…….”

“그만해. 나도 알아.”

“넵!”

나와 셰프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이번 행사와 관련된 기사와 영상들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내 100 년의 인생에도 없던 일이었고, 성과였기에,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디테일, 또는


다음에도 이런 행사를 만들 때에 참고할 사항들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자료 중 중계권을 입찰 받아 방영한 영상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 여기는 레스토랑 ‘반유현-그린’ 입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일본, 중국에 위치한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는데요! 인터뷰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나요?

리포터가 영어로 유창하게 인터뷰를 시작하는 장면들, 그곳에선 셰프들이 나와 이 행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미슐랭 스타 19 개를 얻은 것은 미슐랭 가이드가 생겨난 뒤로 없던 일이라고 합니다…… 저는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있어서, 그 공정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제가 셰프가 된 이후, 아니! 요리라는 문화가 생긴 이후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든 레지,
안토니 베르만, 노부 마츠로 등 그 유명한 스타 셰프님들도 이런 행사를 열지 못했는데…… 반유현
셰프님은 혁신의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오늘 요리 너무 기대되네요!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빨리 요리를 먹어보고 싶네요.

이 반응들이 모두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들의 반응이었다니, 이번 행사가 이토록 주목을 받고 이슈가 된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레스토랑 내부로 이동했다.

“큭.”

“하하하하!”

셰프들이 그 장면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반유현-그린’의 총주방장인 권화윤이 경직된 표정으로 마치 로봇처럼 인사를 하는 모습이 웃겨 보였다.


“쟤는…….”

멘탈을 그토록 무장시켰음에도,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아! 안녕하십니까 권화윤 셰프님! 오늘 선보일 코스는 어떤 코스인가요?

-저희는 만두를 주 테마로 하는 레스토랑이기에…….

그런데, 자신이 준비한 멘트는 곧잘 이야기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저 멘트를 수백 번 되뇌어 봤을 그녀를 생각하니 기특해졌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셰프들의 반응은 압권이었다.

-와……!

-이야! 이게 만두야?

-왜 반유현인지 알겠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요리의 맛을 본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풍족하고 다채로운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셰프’였기 때문이다.

요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방금 먹은 요리가 어떤 경지에 있는지 얼추 알 수 있는


사람들.

-장난 아닌…….

-와…….

-이건, 엄청난 내공의…….

‘반유현-그린’ 뿐만 아니라, 펌킨, 레드, 블루, 옐로 모든 영상을 찾아봐도 셰프들의 놀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각 도시에서, 또는 각 나라에서 유명한 셰프들이 맛에 놀란 이 표정들은 각각 영상 클립으로 만들어져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방명록을 생각하신 것도 정말…… 놀랐습니다.”

애초에 저들이 먹는 표정만으로는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떨쳐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저들이 직접 적은


코멘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각 레스토랑마다 방명록을 배치해뒀고, 요리를 먹은 셰프들은 자필로 직접적인 평가를 내렸었다.

“오, 여긴 방명록에 대한 편집을 너무 잘해놓은 것 같습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탑셰프’의 PD 프랭크가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이 스크린에 띄워졌다.

셰프들이 요리를 먹는 모습들과, 그 음식을 먹은 셰프가 적은 방명록을 교차로 편집해 영상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방명록을 페이드 아웃하면서 셰프들의 표정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셰프들이 요리를 먹고 놀란
장면이 나올 때, 그 셰프가 적은 방명록을 내레이션으로 더빙하는 장면들도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나와 함께 회의실에 있던 셰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셰프님! 저 아저씨 보십시오.”

“하하하! 이야, 참…… 사람이 저렇게 간사해.”

“아이고오! 얼마나 배가 아팠으면! 큭큭.”

최민성이 가장 먼저 웃음을 터트렸고, 그 주변에 있던 셰프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화면에는 런던 소재의 셰프 중 나를 가장 비웃었고, 멸시했던 칼린의 얼굴이 나왔다.

그의 얼굴이 나온 것이 웃긴 이유는 하나였다.

“저렇게 놀라놓고! 푸하하하하!”

메인 요리였던, 이베리코 돼지 구이.

그것을 먹고 흠칫 놀라 눈동자를 굴리더니 주변의 눈치를 보곤, 표정을 찡그린다.

대단한 맛에 놀라놓고는 그것을 숨기려는 표정, 그의 그런 표정 변화는 누구라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그보다 더 웃겼던건 그 동시에, 그가 지었던 표정과는 완벽히 대비되는, 그가 적은 방명록이


내레이션으로 더빙이 되어 웃음을 연출했다.

-당연히, 맛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열광할 만한 맛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메인이었던 이베리코에 새우 머리의 향을 베이스로 한 소스가 저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생략

그가 지었던 표정과는 전혀 다른 멘트. 마치, 발라드 곡의 뮤비에 락이나 트로트가 재생되는 것 같은


이질감이 웃음 포인트였다.

대비되는 음성과 그의 표정 영상은 이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배꼽을 잡았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영상들은 나의 계획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고.

***

[ 공정성 논란을 처음으로 제기한, 칼린 셰프의 우스꽝스러운 영상! ]

역시나 그 영상은 전 세계에 이슈가 되었다.

요리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의 태도가 웃겼던 것이다.

“이것까지 계획해 두신…….”

“매번 알면서 뭘 그래.”

젊은 셰프가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늙은 셰프, 앞뒤가 다른 멍청한 셰프, 쓸모없는 자존심 때문에
솔직한 평을 하지 않는 셰프…….

그 촬영분이 방영되고 그에게 붙은 꼬리표들이었다.


-맛에 놀라놓고 남 잘되는 거 배 아파서 욕하는 꼴 보소ㅋㅋㅋ

-추잡스럽다 그냥 은퇴해라

-으웩! 셰프맞냐? 셰, 프?

-그 밑에서 배운 제자들은 어떡하나…….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은 그가 운영하는 런던 미슐랭 쓰리 스타, ‘그란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셰프 인생에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그래서 그는 SNS 를 이용해 이번 사태를 진압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 요리에는 개인적인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것은, 제가


예상했던 맛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맛이 뛰어나거나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과의 맛이 날 줄
알았던 것이 복숭아 맛이 나길래 흠칫 놀랐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요리라는 그
행위 자체에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고, 그 요리를 먹고 나서 개인이 느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도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

칼린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해명하는 글을 올렸다.

내 계획대로 된 것이다. 나는 그가 어떤 말을 하며 이 사태에 대해 해명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말을 SNS 에 적었다.

[ 요리를 맛보고 표현할 ‘자유’는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자유’는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다른 개념인 것 같습니다. 당신처럼, 남의 요리를 평가 절하하고, 남의 업적을 깎아내릴 수
있는 권리를 자유라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당신이 말한 ‘자유’를 가질, ‘자격’이 당신에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

칼린보다 내 SNS 의 팔로워가 몇 배는 더 많았다.

내 SNS 의 글을 본 사람들이 다시 또 칼린의 SNS 에 유입되었고, 나와 칼린의 글은 서로 시너지를 내듯이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ㄷㄷ 반유현 셰프 대결 신청?

-와…… 전면 반박이네. 빼도 박도 못하기! 칼린ㅋㅋㅋ

-흥미진진하네! 대결이라도 해라!

-그래! 둘이 요리 대결 좀 해봐!

-ㅋㅋㅋㅋ애초에 말이되냐 미슐랭 23 스타 셰프랑 미슐랭 3 스타 셰프랑?

-그러게 왜 까불어. 미슐랭 3 스타면 그냥 가만히나 있지.

-ㅁㅊ 미슐랭 3 스타는 쉽냐?ㅋㅋ

그리고 얼마 뒤, 칼린은 또 새로운 글을 올렸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이 말이다.

[ 제 요리가 누군가에게는 더 맛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이 세상에, 당연히 제


요리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습니까? ]

물론, 요리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요리와 셰프도


존재하는 법이다. 나처럼.

[ 저는 칼린 셰프님의 말에 납득할 수 없습니다. 자유와 주관적인 취향이 있는 것이 요리라지만, 당신의


요리와 제 요리엔 주관적 취향이 없어집니다. ]

-와우!

-반유현 셰프님 세게 나가네ㅋㅋㅋ

궁지에 몰렸고, 자신의 딴에는 고양이를 한 번 물어보겠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내 눈에 물고기 한 마리가
미끼를 물어버린 꼴이었다.

[ 저거 보십시오. 반유현 셰프는 너무 거만합니다. 개인의 취향과 자유를 무시하는 셰프라니 lol. ]

“저 멘트까지 나왔으니까, 프랭크 PD 님한테 연락 넣어.”

공개처형, 나를 건드린 놈들을 혼내주는 방법이다.

115 화. 아주 차갑게 (5)

“섭외에 수락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어!”

“와…… 진짜 대박이네요. 칼린 셰프가 무조건 방송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게.”

“당연하지, 반유현 셰프의 제안에 거부했다가는 기껏 남아있는 팬층과, 인지도가 싹 날아가 버릴


테니까.”

SNS 상에서 오고 간 두 셰프 간의 설전은 이미 계획되어 있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반유현의 계획에 있던 것이었다.

‘탑셰프’의 PD 인 프랭크는 그 계획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음에 감탄했다.

“감독님, 반유현 셰프님은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질 것을 알고 계셨던가요?”

“어. 저 칼린 셰프를 방송으로 불러서, 공개 처형하자는 게 반유현 셰프님의 말씀이었어. 당연히 우리는
시청률 두둑이 챙길 수 있으니까 그에 대한 편성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지. 그리고 내가 칼린 셰프를 어떻게
섭외해야겠냐고 물으니, 방송을 어떻게 연출해야 될지 조언해주시고, 그 뒤로는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하시던데.”

칼린의 놀란 표정과 함께 내레이션 되는 방명록은 반유현이 조언을 해준 것이었다.

그가 방송을 전공했나 싶을 정도로 그는 극적인 연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반유현의 말대로 실제로 그 영상이 나가고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 대중들의 비판적인 관심은 칼린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고, 칼린은 결국 SNS 를 이용해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그걸 독사같이, 아니 코브라같이 웅크려 기다리고 지켜보던 반유현 셰프가 물어 버린 거야.”

반유현은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SNS 를 통해 코멘트를 던졌다.


칼린의 말을 존중하는 듯하면서도 대결 구도를 만드는 치밀하게 짜여진 멘트들이었다.

“처음엔 대체 어떻게, 어디서 그런 대결을 하냐고 칼린 셰프가 의문을 품자, 반유현 셰프가 우리를
거론한 거야. 이미 대결에 관해선 ‘방송’으로 구성이 되어있다고.”

“와…… 처음부터 계획에 있었다는 게. 요즘 후배 경영학과 출신 애들이 ‘반유현’ 경영 사례를 학교에서


연구한다는데. 참…… 그럴 만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칼린과 반유현의 대결이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 프로그램 ‘탑셰프’ 안에서
편성되었고 준비되고 있었다.

“맞아. 내가 이전에 말했었잖아. 그분은 인간이 아니라고. 과장 조금 보태서 말하면…… 진짜 신일지도


몰라. 요리뿐만 아니라, 사람, 이 세상, 모든 것을 주무르는 것 같잖아?”

***

‘반유현 올 데이’라는 행사로, 내가 한 해에 미슐랭 19 스타를 딴 것에 대한 의문은 완벽히 사라졌다.

작년에 얻은 것까지 합해, 총 23 개의 미슐랭 스타를 가진, 명실상부 탑셰프의 반열에 오른 순간이었다.

당장 내년, 2022 미슐랭 스타 평가 때, 이 길고 길었던 환생 굴레의 삶을 끝낼 수 있으리란 생각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런데, 성공해 본 적이 있어야지.’

물론, 마냥 기쁜 것은 아니었다.

미션에 성공한 뒤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환생을 끝내고 이 성공한 삶을 계속 누리는 건가, 어떤 보상이 있는 건가.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지는 건


……. 흠.’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미묘한 감정이었다.

막상 성공을 1 년 정도 앞에 두고 느끼는 감정은 새로웠다.

내가 그런 감정에서 깨어난 건, 로만 때문이었다.

“반유현 셰프니이이임!”

“아, 사장님 오셨습니까.”

매번 나의 행위에 대해 의심을 품던 로만이, 나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로만으로 바뀌었고,


내가 포시즌스의 레스토랑 모두에서 미슐랭 쓰리 스타를 받으니, 이제는 나를 섬기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중년의 아저씨가 저런 말투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어째 부담스럽긴 했다.

“덕분에 저도 승진하게 생겼습니다.”

포시즌스 파리를 완벽하게 파리의 관광지로 바꿔놓은 성과를 인정받아 그룹의 전략 기획 실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고 했다.

포시즌스 그룹 통째를 경영하고 움직이는 팀의 실질적인 리더를 맡게 된 것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이게 다…… 반유현 셰프님 덕이고,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려는 것을 내가 막았다.

“됐습니다. 사장님답지 않게 과하십니다.”

“여기를 끝으로 은퇴하려 했는데, 더 좋은 자리로 가다니요. 제가, 제가…… 이 모든 게 다 반유현


셰프님 덕입니다. 진짜로…… 말만 하십시오 셰프님. 충성을 다할 테니까.”

대형 그룹의 경영 실세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충성을 다한다니, 이 또한 100 년 역사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그때,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도와주시렵니까?”

낮게 깔린 내 목소리에 흠칫 놀란 로만이 대답했다.

“……예. 뭐, 필요하신 거라도?”

“어려운 건 아닙니다.”

칼린과의 대결이 성사되었고, 그 시점까지 1 주일이 남은 기간이었다.

그 대결은 나와 칼린이 각각 뽑은 50 명의 판정단의 블라인드 테스트로, 누가 만든 요리인지 모른


상태에서 맛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맛에 대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이 대결은 방송에 나가는 것이기에, 그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는 것 자체에서 임팩트를 얻고자 하려면 그
평가원들이 요리 또는 맛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어차피 과반 이상이 제 요리를 선택할 것이니까. 그 선택에 신빙성을 더하려면,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여, 역시 그렇겠죠. 당연히 100 명이든, 200 명이든 평가원들은 셰프님의 요리를 선택할 테니…….”

내 주변, 또는 브랜드 ‘반유현’ 산하에 있는 셰프들을 쓰자니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평가원을


어떻게 구성해야 될지 고민하던 중에, 로만이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호텔 업계에 오래 종사하셨으니 ‘반유현’ 또는 ‘포시즌스’에서 일하는 사람들 말고도, 셰프라든가,


미식가라든가, 음식 평론가…… 뭐, 비슷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 많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포시즌스 그룹의 전략기획실장의 파워라면…… 제가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말하자, 로만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 내, 최고의 미식가들, 음식 평론가들, 50 명을 동원하면 되겠습니까?”

“네. 로만 사장…… 아니. 전략 기획 실장님. 기대하겠습니다.”

***

방송 촬영 당일, 스튜디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사람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방송국이었기에, 이 방송사 내의 스텝들이었다.

아마도 이 방송사의 스탭들도 우리의 대결에 관심이 있는…….

“당연히, 반유현 셰프님을 보러 온 거죠. 이 대결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이기실 텐데.”

내 생각에도 로만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는 두 개의 넓은 조리대, 그것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 커튼 뒤에 100 명이 계단식으로


앉아 있는 구조였다.

“셰프님 오늘 어떤 요리를 하실 겁니까?”

“아, 요리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베리코 돼지를 이용한 요리.”

요리의 재료는 정해져 있었다.

이베리코 돼지 요리인데, 이는 칼린이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메인 요리로 쓰이고 있기도 했고, 가장 자신이 있었나 보다.

“오늘 평가원들은 초호화로 동원했습니다. 제 모든 인맥과 역량을 동원했습니다.”

로만의 말을 들어보니, 내 부탁을 받고 자신의 휴대전화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고


한다.

그렇게 연락받은 사람들 중 가장 경력이 많고, 인지도가 높은 미식가, 평론가들을 불러 모았다고. 그들이
누구인지 기대해도 좋다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얼추 그들의 얼굴을 훑어보니, 유명 레스토랑 잡지사의 본부장부터, 미식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레스토랑을 흥하게 만들고, 망하게 만들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입김을 가진 사람들.

이를테면, ‘유럽판 백원종’이라 불릴만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차지했다.

이 대회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해줄 이들의 라인업이 꽤나 빵빵하다고 생각했다.

내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자리라고 하니, 좀처럼 바쁘던 그들도 흔쾌히 자리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저쪽은 평가원을 어떻게 구성했나요?”

“저쪽도 꽤나, 괜찮은 평가원들을 구했더라구요. 르꼬르 동 블루의 졸업생들.”

프랑스 최고의 요리 학교로 불리던 그곳의 졸업반 학생들을 블라인드 평가원으로 초대했다.

칼린이 그곳 출신이었고, 그곳도 꽤나 신뢰를 받을만한 기관인지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르꼬르 동 블루, 반유현 팩토리가 출범하기 전에는 최고의 기관이었는데, 아마 그곳에 재학 중인


셰프들이 반유현 셰프님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런 것도 제 잘못입니까?”

“하하하하. 뭐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아닌가……?”


로만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 때, 칼린이 도착했다.

역시나 나를 보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예전 런던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미소였다.

“어이, 아저씨 며칠간 마음고생 좀 하셨나 봐요?”

칼린의 몰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던 최민성이 스튜디오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며 한마디를 던진 최민성이다.

“무슨 마음고생. 잘 봐. 요리라는 게 자유가 있고, 취향이 있는 거야.”

“아직 마음고생 좀 덜 했나 보네. 이따 보자고. 그 말이 맞나?”

그리고 얼마 뒤, 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됐으며, 그 진행은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셰프인 베르만이 맡았다.

“안녕하십니까. 베르만입니다. 이 대결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는 대결 방식을 설명하고는,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개인적으로 칼린 셰프가 반유현 셰프를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돌발발언이었다. 그러자 장내가 술렁였다.

사회자인 MC 가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평가원들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미슐랭 3 스타를 가진 칼린 셰프가 미슐랭 23 스타를 가진 반유현 셰프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경력과 상관없이 미슐랭 스타 스무 개 이상을 가진 셰프의 그 내공은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베르만의 발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었다. 옆에 서 있는 칼린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사회자가 이미 자신의 요리 실력을 나보다 낮다고 말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놈은 진짜, 내 요리보다 자신의 요리를 좋아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 대결은 그 실력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에 취향과 자유가 있냐 없냐의 실험적 싸움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칼린 셰프는 개인적 취향에 의해 자신의 요리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보다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고. 반유현 셰프님은 반대로 칼린 셰프님의 요리 ‘따위’는 자신의 요리
앞에 취향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고요.”

알고 보니 베르만은 이 대회의 본질을 실력에 의한 우위로 나누지 않고, 요리 자체에 개인의 ‘취향’
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용하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렇게 멍석을 깔아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도 칼린의 요리와 내 요리는, 개인적 취향도 무시할 만한 수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으니까. 그에 따라 그가 이제까지 뱉었던 모든 말과 함께 그를 침몰시킬 생각이었다.
“두 셰프는, 요리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우와아아아!

평가단으로 온 100 명의 사람들이 커튼 뒤에서 엄청난 환호를 보내왔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동파육은 처음 일 테지.”

나는 곧장 칼을 들었다.

116 화. 아주 차갑게 (6)

세계 4 대진미라 불리는 이베리코 돼지.

이 재료의 핵심은 지방이다.

‘소고기 같은 돼지고기라 불리는 이유지.’

일반적인 돼지고기에 없는 마블링이, 이 돼지고기에는 멋들어지게 박혀있다.

‘꽃목살.’

나는 그중에서도 고소한 풍미를 자랑하는 목살 부위를 요리에 이용했다.

삼겹살, 오겹살보다는 단백질이 많고, 일반적인 돼지 목살과 이베리코 돼지 목살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부위였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만든 동파육의 맛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부위이기도 했다.

치이이익!

넓게 펼쳐진 조리대 위, 그릴에 목살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어 굽기 시작했다.

시어링(Searing), 즉 갈색화 반응을 일으켜 고기 특유의 풍미를 살리기 위함이었고, 목살 곳곳에


박혀있는 지방과 근내막이, 소스에 졸여질 때, 젤라틴으로 ‘맛있게’ 녹아 나오기 위함의 물밑
작업이었다.

치이이익!

100 명의 평가원들이 먹을 요리였기에, 적지 않은 양의 고기를 굽고 있을 때, 맞은편 칼린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치이이이익!

중년의 사내에게 이런 호칭은 어울리지 않지만.

저놈도 고기를 굽고 있었다.

아까 듣기론 이베리코 오븐구이를 한다고 했는데, 그 전에 나처럼 시어링을 하며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호불호가 없는 요리를 이용하겠다는 건데.’

나의 입맛에는 같은 구이일지라도, 그 수준이 명확하게 나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에는 그렇다.


오버쿡(Overcook), 언쿡(Uncook)이 되지 않는 이상, 특히나, 120 도에서 180 도에 가열된 고기는 그
단백질과 아미노산의 구조가 바뀌어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풍미를 낸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구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요. 거, 저 평가원들 중에 열 명? 10 분의 1 의 사람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제 요리를 골라도 반유현 셰프님에게 타격이 클 것 같습니다?”

칼린은 자신의 생각을 확신이라도 한 듯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도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미 자신이 이 대결에서 패할


것은 알고 있으며 자신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그에겐 애초에 나를 이길 생각이 없었기에, 몇 대 몇으로 지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본인의 요리 앞에 취향은 없다고. 하하하하. 그 자신감과


말씀이 그대로 지켜졌으면 저도 좋겠습니다.”

취향 차이.

칼린은 계속해서 그 말을 뱉으며, 자신이 ‘반유현 올 데이’ 행사의 방명록에 내 요리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달았던 것에 대해 합리화하고 있었다.

적은 인원의 평가원들이라도 자신의 요리를 선택하게 된다면, 요리에 있어 취향이라는 게 실제 존재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이 나에 대해 비판했던 것이 무작정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힐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칼린은 나의 미슐랭 스타 개수에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품었던 이유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리고는, SNS 와 ‘탑셰프’의 방영에 의해 무너진 자신의 권위와 인지도를 다시금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생각대로 되게 해줄 마음은 없었다.

알다시피 내가 이 방송을 기획하고 출연한 의도는 저놈을 공개처형 하는 것이었으니까.

“네, 제 생각은 달라진 적이 없습니다. 요리가 절대적일 때가 있습니다. 개인 취향이 통하지 않는 요리가
때론 있는 법입니다.”

곧 벌어질 평가에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아주 큰 목소리로 말했다.

***

나와 칼린은 조리대와 평가원들이 앉아 있던 곳을 나눈, 커튼 밖에서 그들이 음식을 맛보는 장면들을


모니터로 보고 있었다.

우리의 표정 또는 몸짓이 그들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었다.

“흠!”

“와!”

사람들은 각각 칼린과 나의 요리를 맛본 뒤에 기분 좋은 탄성을 내뱉었다.

“오븐구이…… 육즙이 터져 나오네요.”


“와…… 말 그대로 터져 나온다. 어떻게 이렇게 육즙의 풍미를 잘 가둬두었는지 실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과 소스와의 조합도 아주 좋습니다. 환상적입니다.”

칼린도 미슐랭 쓰리스타를 보유한 셰프였기에 그 요리 수준이 완전히 낮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칼린의 이베리코 돼지 오븐구이를 먹는 것이 보였다.

“뭐, 그렇게 되겠습니다.”

칼린이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띠며 나를 바라봤을 때,

촬영 스텝 중 한 명이 나의 요리를 칼린에게, 칼린의 요리를 나에게 가져왔다.

서로의 요리가 궁금할 터이니 먹어보라는 듯이 말이다.

“으음?”

칼린은 접시에 담긴 나의 요리를 먹은 뒤에, 저도 모를 말을 내뱉었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궁시렁거리더니, 계속해서 내가 만든 요리를 입으로 옮겼다.

내가 만든 요리는 동파육이었다.

고기를 구워 시어링한 뒤에, 각종 채소와 소스를 넣고 장시간 끓이는 요리.

한 줄로 요약하자면 그렇지만 많은 과학적 원리와 내공이 들어가는 요리였다.

“컥.”

내 요리를 놀란 눈으로 허겁지겁 먹던 칼린이 사레가 들렸는지, 목 막힌 소리를 뱉었다.

“이거…….”

“네, 취향 같은 건 없습니다.”

칼린이 만든 구이요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강력한 풍미를 지녔지만 그게 끝이다.

특별함. 요리를 맛보는 사람들을 완전히 빠트릴 충격적인 특별함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칼린도 자신만의 특별함을 갖추기 위해 꽤나 많은 정성을 들인 사과소스를 곁들였지만.

“이 무슨.”

본인이 생각했던 그 특별함은 내 요리 앞에서 아주 평범한 것이 된다는 걸 몸소 깨달은 것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동파육은 여태껏 보지 못했던 맛입니다.”

때마침, 모니터에서 한 남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탑 오브 레스토랑’ 영국에 거처를 둔 요리 전문 잡지의 편집장의 말이었다.


로만이 섭외한 인사 중 한 명으로, 미식가 중에선 꽤나 높은 입지를 가진 이였다.

“야채에서 빠져나온 풍미가 소스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게…….”

특제 소스에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넣고 시어링한 고기를 넣어 졸일 때, 신경 썼던 부분이었다.

야채의 수분이 빠져나올 때, 그 수분이 담고 있는 풍미가 소스와 고기에 충분히 배어들도록 하는 것.

고기에서 녹아 나온 지방은 소스의 점도를 끈적하게 만들 뿐 아니라, 각종 채소의 풍미를 오래 붙잡고


있는 역할을 해주었다.

고기에 묻은 소스의 다양한 향들이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이 향을 위해서 향신료 ‘팔각’을 넣지 않은


것은 평범한 동파육과 내 동파육의 첫 번째 차이점이었다.

“이런 식감은, 감히 고기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식감입니다.”

고기의 질감도 다른 종류의 고기와는 궤를 달리했다.

살, 단백질 부위에 있는 근내막이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열, 그리고 수분이 있을 때 가장 맛있는 점도의


젤라틴으로 변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탱글탱글한 탄성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혀를 굴리자 녹아내리는 살코기는 신비로운 식감을 가졌다.

그 식감은 맛을 느끼는 ‘질감’을 다채롭게 꾸며주었다.

“이베리코 돼지를 이렇게…….”

더군다나 그 살 사이사이에 있던 마블링은 고소한 풍미를 터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 이건 정말……!”

뉴욕 타임스 음식 전문 기자, CNN 요리 기행 프로그램 메인 MC 등 요리와 미식에 관해선 높은 이해도와


인지도를 가진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들이 받는 충격은 더 했을 것이다.

특별 편성된 이 프로그램은 생방송이었기에, 동파육을 맛본 사람들의 반응이 생중계되었고, 그에 따른


반응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반유현 요리가 뭔지 알겠네.

-동파육! 저게 반유현 셰프의 요리다!ㅋㅋㅋㅋ

-잘가라 칼린 셰프.

-투표결과 100:0 나오는거 아님? 사람들 표정 보니 답 나온 것 같은데.

-돼지구이도 맛있겠다. 그런데, 손님이 없쥬?

-와. 아까 요리에 취향 따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거 레전드였다.

100 명의 평가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그 결과가 눈에 보였던 것일까.

그 반응들은 본 칼린은 완전한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이미 입술은 부르텄고 식은땀도 흘리는 것 같았다.


“저를 따르는 셰프들에게도 자주 말하는 것입니다. 요리 앞에서 함부로 입 놀리지 말라고.”

***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나와 칼린이 무대 위에 서 있고, 그 옆에 진행을 맡은 베르만 셰프가 있었다.

그리고 계단식 의자에 평가원들 100 명이 앉아 있었다.

“아아, 심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평가원들의 말씀을 먼저 들어볼까요?”

베르만이 앉아 있는 심사위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어떤 요리가 맛있었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찜보다 구이를 선호하는데…… 오늘 먹은 동파육은 제 개인 취향을 완전히 바꿔 놓은


요리였습니다.”

첫 질문에 답한 평가원부터, 그런 말을 해대니 칼린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만 갔다.

그 뒤로 이어진 베르만의 질문에 평가원들은 비슷한 답변을 내어놓았다.

“충격의 요리였습니다.”

“둘 다 대단한 요리지만 또 생각나는 것은 동파육이네요.”

로만이 평가원으로 섭외한 유명 요리 평론가, 미식가들의 평가부터.

“결과에 상관없이 이 요리를 꼭 배우고 싶습니다.”

“이런 건 아무 책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요리를…….”

르꼬르 동 블루의 학생들까지.

그때, 베르만이 귀에 꽂힌 인이어로 손을 갖다 대더니, 연출진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해 듣고는 말했다.

“아! 여기 칼린 셰프님의 아드님이 계시는군요.”

그 순간 칼린의 얼굴을 보니, 초조함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베르만은 칼린의 아들이라는 젊은 사내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건넸다.

“존경하는 아버지를 따라, 셰프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평가원으로 앉아 있는 50 명의 르꼬르동 블루 학생들 중 한 명으로, 칼린의 아들이었다.

“그렇다면 맛만 보고도 아버지의 요리가 뭔지 알고 있겠네요?”

“네…….”

왜인지 칼린의 아들인 그도 초조한 표정을 짓곤, 대답을 못 하길래 베르만은 곧장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하하. 결과를 앞에 두고 아들도 같이 떨리나 봅니다. 일단 결과를 먼저 보고! 인터뷰를 더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번 대결의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두두두두두!

효과음이 울려 퍼지고, 거대한 대형 스크린에 숫자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카지노 룰렛 게임처럼 숫자는 계속해서 뒤바뀌다가 멈추었다.

[ 반유현 99 : 칼린 1 ]

“아…….”

베르만은 당황한 듯이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평가원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이미 압도적인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란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구십구 대…… 일…… 아! 한 명, 한 명은! 칼린 셰프의 요리를 선택한 것 아닙니까!”

당황한 베르만이 곧장 정신을 차리고, 멘트를 이어나갔다.

미슐랭 세계 최다 셰프지만, 방송 출연이 잦아 진행하는 능력이 수준급이었다.

“한 분이긴 하지만, 칼린 셰프님의 요리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군요! 과연! 칼린 셰프님의 취향과 자유라는 말씀이 맞아 떨어……흠.”

그런데, 그 한 명이 누군지 알게 되자 어떤 말로 진행을 해야될지 까마득해졌다.

프롬프터에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댓글들을 보니 그러했다.

-ㅋㅋㅋㅋ 한 명? 당연히 칼린 아들 아님?

-아들한테 자기 요리 뽑으라고 시켰다가 아들 ‘혼자’ 뽑아서 급당황한 듯.

-칼린 표정 좀 클로즈업 해줘라! 

-와 아들만 불쌍. 아빠말 들었다가 삽됐네ㅋㅋㅋ

-대박이네ㅋㅋㅋ 한 두세 명이면 모를까 자기 아들 혼자 자기 요리에 투표한 거야?

-칼린 아들 아닐 수도 있잖아요. 지켜봅시다. 진짜 칼린 셰프의 요리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위에 분 칼린 셰프 마누라랍니다. 글 내려주세요.

이 프롬프터는 무대 위에 있는 나와, 칼린, 베르만에게만 보이는 것이었지만, 100 명의 평가원들 또한


당연하게도, ‘99 : 1’이란 결과의 ‘1’이 누군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에 따라 분위기가 싸해졌다.

칼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그의 아들 또한 저 멀리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베르만은 그들의 모습을 보곤 어떻게 멘트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도와 달라는 뜻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뭐…….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제 요리도 이길 수 없나 봅니다.”

그때, 칼린의 아들이 손을 들었다.

스텝이 마이크를 가져다줬고 그가 자리에 일어나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 ‘1’은 저인데…… 투, 투표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들도 살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칼린도 아들의 행동을 납득했는지, 바닥에 고개를 숙이곤 그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99 : 1’이라는 결과 자체도 그렇지만, 하필 또 그 ‘1’의 숫자가 아들이었던 탓에 칼린은 오늘 두 번


죽었다.

“이유가 있습니까? 아버지가 자신의 요리에 투표하라고 시켰었나요?”

내 질문에 크게 당황해, 이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귀여움을 느꼈다. 그래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117 화. 기반은 완성됐다 (1)

“그럼 투표 결과는 구십구 대 영…… 그렇게 되겠습니다.”

아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칼린 아들이 사실대로 말하자, 그가 투표한 것을 기권으로 처리했다.

그렇게 된 결과는 99 대 0. 만장일치.

베르만은 우리 둘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이건 저도 신기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골랐는데, 이게 참…….”

베르만은 아무리 못해도 일고여덟 명 정도는 칼린의 요리를 고를 줄 알았나 보다.

‘압도적이다.’ 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결과에 칼린에 대한 동정이 생긴 듯했다.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바, 반유현 셰프님의 말씀이 모두 맞았네요. 요리 앞에 개인적 취향이 없을 수가 없다고. 한 말씀


하시죠.”

베르만이 내게 마이크를 건넸을 때, 칼린은 아직도 얼굴을 들지 못하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미슐랭 스타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제가 아니라, 칼린 셰프에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평가원들과 연출진, 베르만까지 모두 칼린에게 동정을 느끼고 있지만 나에겐 동정 따윈 없었다.

런던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쓰리 스타를 수여했음에도 고개를 들지 못한 나의 충성스러운 동료


최민성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슐랭 쓰리 스타, 쓰리 스타를 소유한 셰프가, 백 명 중 단 한 명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다니요.
심지어 아드님조차 아버지의 요리를 인정하지 않다니…….”

이 방송은 모두 생방송이었다.

카메라 뒤로 보이는 연출진들이 나의 발언을 막으려는 듯이 고개를 젓거나 손을 크게 휘저었다.

베르만도 어쩔 줄 몰라 내 마이크를 빼앗아가려 했다.

“하하. 아, 아 반유현 셰프님, 그…… 그만 하시죠.”

물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칼린 셰프님 때문에 죽은, 이베리코 돼지에게 제가 괜히 미안합니다. 돼지의 죽음을 헛되게 하시다니.”

방송에 부적절한 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건전하게 내 생각 그대로를 말하고 있지 않나.

“알량한 경력 부심으로 후배 셰프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인간은 요리라는 문화자체를 망칠 수가 있습니다.


칼린 셰프님, 요리 문화를 위해 좋은 판단 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와우! 은퇴하라 이 말인가?

-ㅋㅋㅋㅋ와 진짜 레전드네…….

-빅피처 오졌다.

-요리에 취향이 없다고 말해놓고, 진짜 실현해 보이기…….

-요리왕 취룡도 이 정도는 못하는데, 죽여준다! 반유현!

칼린은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물론, 생방송이었다.

***

방송이 나간 뒤에는 모든 사실들이 밝혀졌다.

런던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있었던 일, 행사 ‘반유현 올 데이’의 방명록에 그가 비판적인 의견을


적었던 이유…….

결과적으로 나는 완벽하게 ‘미슐랭 스타 동시 19 개 수상’ 셰프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세계 최초의 업적이고, 앞으로도 없을 업적이라고 대중들은 평가했다.

“실제로 자신에 대한 논란을 모두 무시하는 게 셰프들의 성향입니다. 왜냐면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
그것 때문에 자신의 요리가 논란에 휩싸이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셰프님께서는
이번 방송을 통해 셰프님의 실력을 몸소 보이셨고, 한 번 더 셰프님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방송
출연이 잦은 고든 레지 셰프보다 인지도가 더 높을…….”

오스틴은 또 내 옆으로 와 주절주절 대기 시작했다.

“이번 달 일정이 어떻게 되냐.”

“반유현 셰프님 이름이 붙은 식자재 공장의 공사가, 완공될 것 같습니다. 그곳에 직접 들러 레시피
교육을 해야될 것 같고, 그게 끝나면 ‘반유현 골목’에 곧장 마트가 오픈될 것 같습니다.”

내 브랜드 자체의 인기가 계속해서 많아져, 이전부터 계획했던 것이었다.

포시즌스 측 간부들과 나의 비법이 들어간, 향신료와 천연 조미료를 판매하는 식자재마트를 오픈하겠다고.

레스토랑의 예약이 항상 꽉 차 있어, 내 요리를 맛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접적으로라도


내 요리를 맛보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물론, 식자재 마트, 그 브랜드를 세우는 것은 사람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는 미슐랭 스타 30 개를 얻겠다는 나의 목표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현금의 흐름을 훨씬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장사였다.

공장이 생기면 말 그대로 찍어내면 되는 것이고, 유통 시스템을 잘 고안해 전 세계 어디든 식자재 마트를
열어 돈을 벌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 이건, 셰프님께서 선택해 주셔야 할 사항이라 보류했습니다.”

“뭔데.”

“방송섭외이긴 한데, 곧 있으면 런칭될 식자재 마트를 홍보할 수도 있고 해서…….”

뚜렷한 목적이 없으면 당분간 방송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오스틴에게 말해놨던 터라, 방송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스틴의 행동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이유가 있으려니, 나는 그에게 한 번 더 되물었다.

“방송? 방송은 안 한다고 했잖아.”

“네, 말씀드렸다시피 확실하게 식자재 마트에 대한 홍보를 할 수 있는 방송이기에…….”

“그니까 대체 무슨 방송인데.”

“영국에서 최대 시청률을 자랑하는 ‘유명인의 밤’입니다.”

“응?”

유명인의 밤.

내가 바로 이전 삶 죽기 직전에 출연했던, 그 토크쇼.

오스틴의 말대로 영국 최대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각 분야 최고만을 섭외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탑 배우, 탑 가수 그리고 탑 셰프…… 등 다양한 직군의 최고들이 나오는 방송.

앞으로도 20 여 년간 그 진행자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영국 최고의 프로그램 자리를 한 번도 내어준 적이


없는 방송이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출연진들도 보통 사람들이 아닌지라, 셰프님께서 출연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식자재 마트 런칭 시기와 맞춰서 홍보하시는 것도…….”

이전 삶에는 환생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초대되어 지구상 최고의 셰프로 소개되었는데, 스물 중반인 지금
나이에 그 토크쇼에 초대된 것이었다.

“우주 최강 탑셰프…… 라는 타이틀로 진행한다고 하는데. 섭외에 거절할까요?”

“나간다고 해. 이 나이에 저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 있어?”

“없습니다.”

장인, 또는 한 분야에 모든 것을 통달한 자들이 주로 섭외되는 프로그램인지라, 나보다 젊은 사람은


출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그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나를 알리기 위해서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었으니까.

새롭게 런칭할 브랜드에 대해 홍보도 되는 것이고.

또, 이 토크쇼는 지난 삶 죽음의 자리로 생각했었던 것이라, 미션 성공을 눈앞에 둔 지금 출연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또, 다음 일정은.”

“이거는 확정된 것은 아니고…… 세간에 드는 소문인데요. 워낙 저희가 규모가 커져서 여러 가지 소문이


많이 들려옵니다.”

“뭔데 또 말을 끌어?”

“음…… 외국인 최초로, 프랑스 최고 영예의 훈장, 레지옹 도뇌르에 후보로 오르셨다고 합니다.”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공적을 세운 군인들에게 줄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이후에 정치, 경제, 문화,
학술, 체육 등 각 분야에서 공로가 인정되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었다.

프랑스 정부의 최고 훈장으로서 5 등급으로 나눠진다.

“접수한 정보에 의하면 4 등급 훈장의 후보로 올랐습니다. 요리 분야에서는 셰프님께서 외국인 최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셰프님을 포함해서도 요리 분야에는 그 훈장을 받은 분이 총 세 분밖에 없다고
합니다.”

프랑스 정찬 요리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킨 파울로 보퀴즈, 70 년의 세월을 요리에 쏟아부은, 요리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그도 4 등급 훈장을 받았었다.

그는 죽기 직전 3 등급 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아무튼 프랑스 정부는 나에 대해 요리 문화를 대단히


발전시킨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고, 자국 내에 최고의 스타였던, 요리계의 교황이라는 그와 같은
선상에 두고 보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 축구로 비교하자면, 아르헨티나의 메시가, 아르헨티나에서 받았던 상의 다음 주인이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중에 나올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의 손(son)이 아르헨티나에서 그 상을 받은 것이죠. 아니,
레지옹 도뇌르라면 그것보다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스틴답게 의미 부여를 했다.


“그건 뭐, 내가 결정할 건 없잖아.”

“그렇습니다. 훈장을 거절하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그 부담감과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서…… 셰프님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이력서 한 줄 추가되는 걸 싫어하는 양반들도 있기야 지. 근데 난 아니야.”

“옙!”

***

우와아아아아!

‘유명인의 밤’ 스튜디오, 지금으로부터 약 20 년 후.

아니, 바로 이전 생의 몸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우주 최강의 셰프! 반유현 셰프입니다아아!”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진행자인, 브라이언은 약 10 년 정도 이 프로그램을 이끌다 은퇴한다.

아마 이 프로그램의 짓궂은 컨셉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캬아아아…… 저 멀리, 반유현 셰프가 걸어나옵니다! 아아! 저 건방진 걸음걸이 보세요. 누가 봐도


최고의 셰프임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그의 화려한 언변에 방청객들도 함께 배꼽을 잡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참……. 최초입니다. 최초! 세계 최초! 우주 최초! 미슐랭 스타 19 개를 동시에 수여해, 23 개를 얻게


되었는데, 그럼 미슐랭 스타를 가진 것으로 치면 랭킹이 몇 위인가요?”

“세어 보진 않았는데, 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 같습니다.”

“아…… 세어 보진 않았다? 어차피 내년이면 일등을 할 것이니까?”

“네. 그렇습니다.”

“컥. 또, 이런 강적은 처음 만나 봅니다.”

우와아아아아!

“하하하하. 이게 참 생방송이라, 반유현 셰프님께서 뱉는 말씀들 때문에 기자분들은 쉴틈이 없겠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다 기삿거리야!”

브라이언은 다시 분위기를 만들고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오늘 방문해 주신 이유가 홍보 때문이시죠?”

“네.”

“아흐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은 없는데, 솔직해서 좋습니다. 무슨 홍보하러 오셨어요?


홍보 안 해도 돈 많이 벌면서. 욕심쟁이.”
“제 비법이 들어간 레시피, 그 천연 조미료와 향신료를 파는 매장을 세울 겁니다. 제 요리를 드시고
싶으셔도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해드릴 겁니다.”

“아 실제로 셰프님이 요리에 쓰는 천연 조미료를 다른 사람들도 체험할 수 있게 하겠다?”

“예.”

“그럼 뭐 합니까 우리는 셰프님이 아닌데.”

방청객들이 공감한다는 웃음을 짓곤, 박수를 쳤다.

“자, 그리고…… 레지옹 도뇌르, 프랑스 최고 영예의 훈장에, 최연소 나이로, 요리, 제빵분야 최초
외국인이란 자격으로 후보에 올랐다고 하십니다. 맞나요?”

“저도 프랑스 정부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모르겠는데, 맞는 것 같네요.”

“아, 최고의 훈장도 큰 관심이 없다? 대체 얼마나 그릇이 큰 겁니까 반유현 셰프? 크흠! 근데…… 그
한국인이셔서 애매한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라 애매하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이때에는 나도 몰랐다.

“이토 히로부미,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어두운 역사를 만들었던 그 인물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다섯 개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 그랑크루아(Grand-Croix)를 받았던 과거가 있다고 합니다…….
셰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을 할 때에는 브라이언의 목소리 톤이 달랐다.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아닌, 낮은 목소리.

그 순간, 이 몸에 어렴풋이 있던 역사의 기억이 떠올랐다.

망나니 공무원 준비생이었다고는 하나, 몇 번 책을 펼치긴 했었는지, 그 이름이 떠올랐다.

아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이름인가.

‘한반도 침략의 원흉, 외교권 박탈, 한민족의 역사를 망가트린…….’

프랑스 최고의 영예를 갖는 훈장이라지만, 이거 국민 정서상 내가 저것을 받게 되었을 때, 논란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본능적으로, 내가 몇 년 동안 쌓아왔던 행보와 업적들에 똥이 튈 일도 일어날 법한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은 단순하게 흘러갔다.

“몰랐습니다. 프랑스 최고의 훈장이든, 뭐든, 그놈이 받은 훈장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브라이언도 이런 대답을 원하진 않았는지, 다소 파격적인 내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

1800 년 나폴레옹이 제정한, 깊은 역사를 가진 훈장의 가치가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최고 영예의 훈장이라기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사람이니까요.”

118 화. 기반은 완성됐다 (2)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또 수많은 기자들이 퍼져 나갈 것이다.


그 훈장은 전생에도 받았었다.

받은 순간 요리사로서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그 훈장을 받은 이후부터, 사람들은 나를 셰프가 아닌 국가에서 인정한 최고 ‘장인’으로


추대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 몸의 국적, 그리고 이 몸의 국적과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정서를 생각했을 때, 내가


방금 뱉은 한 줄의 문장이 나에게 더 이득일 것이란 생각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되게 유명한 말인데요. 뭐…… 프랑스 정부에는
유감입니다.”

“아…… 그, 그렇습니까?”

우와아아아아!

“차암, 후. 오늘 많이 당황스럽네요. 저도 하하하하!”

내가 쉽사리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극적인 맛으로만 말을 뱉다 보니까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브라이언이 오히려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나라에 역사까지 마음에 깊이…….”

우와아아아아!

아직 나의 말에 여운이 남아있던 방청객들은 환호를 지르고,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하하하…….”

브라이언은 그저 웃음만 짓고 있었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머쓱한 웃음.

항상 각 분야 최고의 게스트들을 상대했던 그였지만, 이 정도의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화려한 언변에 당하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가는 나를 보며 그가 느꼈을


심정도 이해가 갔다.

‘이놈은 대체 뭔가 싶겠지.’

***

[ 반유현, 그가 국가대표 셰프인 이유. ]

[ 훈장 거부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세계에 알리다. ]

[ 일본 총리, 반유현 셰프에 유감 표명. ]

[ 동시에 맞불 지피는 대한민국 국민들! 일본 불매 운동 시작 ]

[ 한 명의 셰프가 만들어낸 파급력. ]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나를 치켜세우고, 수많은 기자들이 떠올랐다.


“장인……. 셰프 이상의 그런 타이틀을 셰프님의 나이에 얻는 것이 당연히 어려우니까. 셰프님께서
훈장을 무조건 받으실 줄 알았는데, 그런 선택은 또 충격입니다.”

“뭐 항상 충격이지. 그래서, ‘MOF’ 일정은.”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

예술과 장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절대 권위를 인정받는, 프랑스 교육부와 노동부 주관으로 열리는 장인
콩쿠르로, 선정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프랑스 국가공인자격증 가운데 최고 가치를 지닌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모두 확인했습니다. 지시 내려주시면 곧장 신청하겠습니다.”

브랜드 가치와 이름값을 올리려면, 이제 그 깊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셰프로서의 이름값이 아닌, 그 분야 최고라는 것의 이름값.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보 안에서도 그렇다.

이제 얻어야 할 미슐랭 스타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려면 그 단계에 맞게 나의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현재의 가치에서 머무른 상태에서, 무작정 레스토랑을 찍어내는 것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막아주고, 나의 가치를 한층 올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계획이
흐트러졌으니 나는 새로운 수단을 생각했다.

“MOF 라면…… 뭐,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미슐랭 23 스타를 더욱 빛나게 할…… 셰프 커리어의 끝이죠?”

17 개 직업군 200 여 개의 분야에서 절대평가로 심사가 이루어지는데, 상대평가가 아니다 보니,


참가자들의 역량이 떨어지는 분야에서는 아예 수상을 하지 않기도 한다.

저번 생에서도 36 살의 나이에 MOF 를 수상받았었는데, 요리제빵 분야에서 어린 나이의 축에 속했었다.

‘지금 나이는…….’

지금 MOF 를 수상한다면 또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요리 업계에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내 행보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내 가치는


이전과 다르게 또, 격상될 것이다.

그럼 그때, 마지막 은퇴를 위한 기반이 아주 완벽하게 다져질 것이며 이전에 했던 것처럼, 레스토랑을
찍어내듯이 런칭할 계획이다.

MOF, 장인 콩쿠르의 평가 방법은 두 가지였다.

심사위원의 앞에서 작품을 직접 평가를 받는 방식과, 완성된 작품을 제출해 심사받는 방식.

보석, 세공, 악기제작과는 달리, 제과, 제빵, 조리와 같은 분야는, 각 분야 최고로 손꼽히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평가받는 방식이었다.

“그 심사위원을 셰프님으로 지정하지 않은 게, 희한하네요.”


“내년이나, 내후년, 또는 내가 ‘MOF’ 타이틀을 얻게 되면 제안이 들어오겠지.”

“당연하죠. 하하하. 그때에는 제안을 받아들이실 거예요?”

“모르겠네.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내년이나, 내후년이라면 정말 은퇴를 할지도 모르니까.

물론, 이 미션의 성공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것도 맞다.

그래서, 그에 관한 계획은 보류해 놓았다.

“분야는…….”

“피곤하니까. 두 개 정도만 할까?”

“두, 두, 두, 두 개요……?”

MOF 는 특히나 요리의 성지인 파리답게, 음식에 관련된 종사자들이 출전하는 부문이 많았다.

제과, 제빵, 아이스크림, 초콜릿, 치즈, 육가공, 정육, 청과, 요리, 소믈리에, 바텐더…….

분야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자신이 있었지만.

일정이 겹치는 부문들도 있었고, 굳이 여러 개의 장인이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요리랑, 제빵.”

“이게 요리 대회가 아니라, 프랑스 최고 장인을 뽑는 콩쿨…… MOF 인데, 두 부문에 출전하시겠다고요?”

요리 분야에 참가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나의 이름값을 드높임을 위함이었고.

제빵 분야에 참가하는 것은 요리 분야의 MOF 가 된 것을 빛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왕 출전하는 김에, 4 년에 한 번 열리는 콩쿠르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MOF 세계 최연소 수상이라는 타이틀은 언제고 깨질 수가 있는 거야. 또 다른 천재가 등장할 수 있으니까.


두 분야 MOF 동시 수상은 어떤 천재라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일 테니까.”

“그 말씀은 이해가 안 되는데요…… M, O, F 그곳…… 세계 최고 장인을 뽑는 콩쿠르에 두 분야에……


동시 출전한다는 말씀, 맞으세요?”

“어. 그런 사람은 없었지. 역사상.”

물론, 문제가 있었다.

애초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까다로운 MOF 는 그에 맞는 서류 전형을 거쳐야 된다는 것.

‘요리’ 부문의 서류 전형엔 당연히 합격일 테지만, ‘제빵’ 부문에는 이렇다 할 이력이 없는 게
문제였다.

“반유현-네이비. 수제 햄버거 판매하는 내 레스토랑의 그 빵, 패티에 따라 종류만 세 가지야. 그 모두 다


내가 만든 거고. 미슐랭 스타를 받아냈잖아.”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반유현-네이비는 수제 햄버거가 주된 메뉴인데 그 햄버거에 들어가는 세 가지
종류의 빵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일단 서류에 한 줄은 채울 수 있고…….”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명색이 MOF 인데요…….”

“이번 제빵분야 MOF 출전하는 사람들 이력 좀 가져와”

“예에?”

“그대로 따라 해서, 서류에 채울 것 한 줄 만들게.”

***

국제 제과 제빵 대회 수상 경력 다수…….

2018 올림픽 갈라 디너 성공 개최, 런던 축제 ‘베이커리 파티’ 공식 셰프, 프랑스 올해의 파티시에


(Pastry Chef)…….

“MOF 참가 파티시에들 이력 보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내 빵이 맛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뿐이잖아.”

주말 저녁, 레스토랑 ‘반유현’이 모두 문을 닫은 시간에,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반유현-네이비’만이


문을 열고 불을 환하게 켜고 있었다.

“아, 아니! 셰프님 이건 대체!”

로만도 소문을 듣고는 한걸음에 달려왔다.

로또 육인방과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 포시즌스의 총괄 셰프들과 간부들까지.

반유현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지금 들려오는 함성이 그들이 모인 이유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로만 실장님?”

“나, 나도 모르겠네.”

“반유현 셰프님이…… 왜…… 빵을?”

이제 요리가 아닌, 제빵 분야까지 진출한(?) 반유현의 모습을 입을 떡 벌린 채로 쳐다보고 있는 브랜드


‘반유현’의 셰프들이었다.

오픈형 도어로 만들어진 ‘반유현-네이비’의 모든 문을 개방했고, 샹젤리제 거리에 있었던 세계적 축제,
‘투르 드 프랑스’의 열기를 다시 재현하는 듯했다.

“오스틴!”

반유현의 의전을 도맡아, 24 시간 붙어 비서 역할을 하는 그에게 이 현상에 대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만이 오스틴을 불러, 자신의 옆으로 데려왔다.

“저번에…… 투르 드 프랑스 축제 때, 그 우승자랑 선수들, 관중들 다 같이 여기서 춤추고 놀았던 것


기억하시죠.”

“당연히 기억하지. 그 일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것 아니야.”

“반유현 셰프님께서, 그 기억을 모티브로 게릴라 축제를 만드셨습니다.”

“축제?”

“지금이 그 축제입니다. 빵과 맥주, 또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춤추는…… ‘베이커리 페스티벌 반유현.’”

베이커리 페스티벌 by 반유현.

작명법 한번 직관적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반유현이 만들고 있는 빵이 나오길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전부터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며 음악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도 보였고.

“대체 왜. 대체 왜 이런 축제를 만드셨는데?”

로만은 오스틴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매번, 요리와 그 맛을 끌어올리는 것, 레스토랑을 런칭해 미슐랭 스타를 받아내는 것에 모든 집중을 쏟던


반유현이, 이제는 조금 자신을 내려놓고 젊음을 즐겨보겠다는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포시즌스 간부들끼리는 그의 심장이 뛰는 템포조차 계획되어 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이 또한 원대한 계획의 안에 있는 것일 터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로만의 심장이 거짓말처럼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무슨 업적을…….’

그때, 오스틴이 말했다.

“제빵, 지금 이 문화를 제빵 축제로 발전시키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일단 지금의 이 축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MOF 제빵 부문에도 출전하신다고…….”

“미……친.”

오스틴의 발언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프랑스 최고 장인을 뽑는 MOF 제빵 부문까지 정복하기 위해서, 서류 전형에 제출할 이력을 만들기 위해
이런 축제를 만들고 실제로 실행시킨다는 발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너는 왜 그걸 당장 보고 안 했어.”

“셰프님께서…… 곧장 빠르게 진행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오스틴이 휴대폰을 꺼내 로만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 화면에 적힌 글귀, 반유현이 SNS 에 올린 게시물이었다.

[ 샹젤리제 거리, ‘반유현-네이비’에서 제가 직접 만든 빵과, 수제 맥주, 그리고 고급 위스키를 공짜로


드릴 겁니다. 와서 즐거운 맛을 보시고 즐기시면 됩니다. 내일 밤 축제를 만들어 봅시다. 축제 이름은,
‘베이커리 페스티벌 by 반유현’ ]

로만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돌렸을 때는, 수많은 경찰들과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내들이 보였다.

“경찰들은 뭔데, 관광청과 정부와…… 합의가 된 거야?”

“파리 관광청과 합의가 되었습니다. 경찰들은 혹시 모를 안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배치되었을 것이고……
저기, 관광청 직원들은 이 축제를 파리 공식 축제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 적합성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거야? 개인의 이름을 딴, 축제를 정부에서? 관광청에서?”

로만은 도통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스틴의 말에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이 정신을 차렸다.

“반유현 셰프님이잖아요.”

우와아아아아!

때마침, 반유현의 빵이 완성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119 화. 기반은 완성됐다 (3)

“이왕 빵을 만드는데 쉬운 빵을 만들면 안 되잖아.”

맛에 의한 충격은, 그 맛 자체에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그 맛을 만드는 셰프에 의해, 그 충격이 한층 강해질 때가 있다.

매번 프랑스 정찬요리, 또는 양식을 만들던 내가 죽여주는 초밥과 갈비찜을 만들었을 때처럼.

지금도 그랬다.

대체 내가 언제, 어떻게 베이커리 기술을 습득했느냐에 대한 표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슈톨렌.’

독일 전통 빵으로, 독일인들이 크리스마스 한 달 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먹었던 빵.

말린 과일과 밀가루, 그리고 버터와 설탕을 주로 이용해 만드는 빵이다.

내가 이 빵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난이도였다.

“셰, 셰프님. 이 빵은 웬만한 파티시에들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진 않을 텐데요…….”

“그러니까 하는 거지.”

말린 과일부터, 반죽, 버터, 설탕 그리고 1 차 발효 2 차 발효 등 여느 빵보다 신경 써야 될 맛의


요소들이 많은 빵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 만든다면 충분히 맛있는 빵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맛을 이끌어내기엔
어려운 빵이 슈톨렌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재료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맛을 끌어냄과 더불어.

“커피와 잘 어울리는 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축제니 술이 빠질 수 없겠죠.”

한층 더 감각적인 맛을 위해 커피와 술을 이용하기로 했다.

“카페 로얄(Cafe Royale)과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곧 빵이 나올


예정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우와아아아아!

포시즌스의 총괄 셰프인 아론이 내가 시킨 멘트를 그대로 크게 말했고, ‘반유현-네이비’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이 샹젤리제 거리에 있었던 세계적인 축제 ‘투르 드 프랑스’가 열렸을 당시를 재연하는 듯한 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었다.

착!

내가 조리대 위에 반죽을 치대자, 그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담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뿌리며 반죽하고, 그 반죽에서 느껴지는 온도와 점도, 내 손에 붙는 정도를 따진 뒤, 5 일


전부터 화이트 와인에 절여 놓은 오렌지와 레몬 껍질, 그리고 건포도와 같은 말린 과일들을 넣고 다시
반죽을 치댔다.

“2 차 발효까지 해야 돼.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술 돌려.”

“준비한 퍼포먼스까지 할까요?”

“당연하지.”

1 차 발효가 끝나 빵이 조금 부풀어 올랐을 때, 다시 반죽을 치대고 2 차 발효가 시작된다.

대략 50 분, 그리고 빵을 구울 때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준비한 음료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카페 로얄은, 과일 숙성주인 브랜디와 각설탕, 그리고 커피를 섞어 만든 음료입니다.”

커피를 사랑한 나폴레옹이 즐겨 먹었다던 음료.

그렇기에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이 음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아론이 유리잔에 에스프레소를 넣고, 수저에 각설탕을 하나 올려 그 잔에 걸쳐놓았다.

그리고 각설탕이 올려진 수저에 브랜드를 천천히 부었다.

각설탕이 브랜디에 충분히 젖었을 때,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우오오오오!

우와아아!
영롱한 푸른빛을 띠며 각설탕이 녹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체면에 걸린 듯 그 영롱한 빛을 바라봤고, 각설탕이 녹아내렸을 땐 그대로 수저를 저어 녹은


각설탕을 섞었다.

“아이리시 커피는 커피에 위스키를 섞은 겁니다!”

그렇게 검정 스카프를 맨 나의 셰프들이 오늘 먹을 빵과 음료에 대해 설명하며 주의를 끌 때, 나는


계속해서 반죽의 발효 정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빵에 있는 맛의 요소들이 숨 쉬는 모습들, 새끼손가락으로 슬쩍 눌러 그것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눈에 한 무리가 보였다.

‘저들이 한몫해줘야 되는데.’

조리복을 입었지만, 셰프가 아닌 그들이었다.

조리복에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어 있고, 소매를 걷어 올려 보이는 전완근이 튼실했다.

반죽을 오랜 시간 해왔다는 증거.

그리고 그들의 가슴팍 왼쪽에 보이는 글귀는 아마도 그렇다.

[ 뒤 펜 피세르 ]

[ 고스율랭 ]

[ 더 폰듀 ]

…하나 같이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한 빵집들의 파티시에들이었다.

나의 빵이 어떨지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들의 밥그릇을 나에게 빼앗길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반반씩


섞여 있는 모습들.

팔짱을 끼고 저들끼리 떠들고 있지만, 저들이 마냥 즐거워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 그 무리에 있던 한 명이 등을 돌려내게 보였다.

그 등에 적힌 글자는 ‘반유현’이었다.

‘이전에 해줬던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너무나 많은 셰프들이 조리복에 내 싸인을 받아 가, 그 얼굴들이 세세히 떠오르지 않지만 저 남자는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자기가 파리 최고의 파티시에라고 소개했던 남자인가.’

하기야, 항상 내 앞에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최고라 떠들어대는 사람이 많아서 잘 모르겠다.

***

“말리오, 이거…… ‘반유현-베이커리’라는 빵집이 나왔다가는 우리 다 굶어 죽겠는데?”

‘뒤 펜 피세르’, 그곳의 1 등 파티시에 말리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이 빵집은 자타공인 최고의 빵집이었다.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들러 빵을 사 먹는 강력한 맛을 가진 빵집이다.

매번 줄을 서는 손님들 덕에, 오후 3 시 안에는 모든 빵이 판매되는 것을 보던 그도, 지금 같은 광경은


꿈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조리복, 등에 적힌 ‘반유현’이라는 글귀를 반유현에게 보여준 뒤 다시 파티시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흠. 설마. 빵 만드는 것까지 우리의 실력을 따라오겠나…….”

분야는 다르지만, 반유현이라는 인간이 가진 신념과 그 열정에 반했었다.

본인보다 스무 살은 어린 그가, 오로지 최고의 맛만을 선보이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그를


존경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반죽을 만드는 것을 보고 열광하는 모습들을 실제로 보니, 그가 두려워졌다.

“그래, 인기빨이 있겠지. 어느 정도는.”

말리오와 함께 이곳을 찾은 파티시에들은 애써 그 두려움을 감추려고 했지만.

“근데, 저 반죽을 하는 솜씨가…… 웬만한 파티시에들 보다…….”

반유현이 반죽을 치대는 모습과 함께, 대중들의 환호소리가 섞여 그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무반죽법(No-Knead)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잖아.”

저 멀리, 조리대 앞의 반유현이 반죽을 치대는 모습이 그랬다.

물리적인 힘없이도 반죽에 글루텐을 만들어 빵이 잘 부풀어 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물과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반유현의 움직임은 분명, 글루텐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많은 힘을 들여 차진 반죽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움직임은


가벼웠다.

전혀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그저 반죽이 물과 공기에 닿는 표면적을 늘리고 있는 정도였다.

최소의 힘으로 최고 높은 질의 반죽을 만들어 내는 저 움직임이, 이들에게는 보였다.

“슈톨렌, 독일 정통빵에 들어가는 말린 과일들을, 럼주가 아닌 화이트 와인에 ‘5 일’간 절인 것도…


….”

반유현이 아까 말했던 재료들도 깊은 이해가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수십 년간 빵을 만들어 왔던 이들도 모르는 정보를 그가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리오, 이것 좀 먹어봐. 빵 나오는 시간까지 이걸 먹고 기다리래.”

카페 로얄과 아이리시 커피.


말리오와 동료들은 그것을 한 모금씩 맛봤다.

“커헉.”

“뭐, 뭐야!”

말리오처럼 수십 년간 빵집을 운영했던 이들과, 카페를 운영하는 이들 또한 놀랄 맛.

각설탕을 녹이는 푸른빛으로 시선을 주목했던 카페 로얄은, 브랜디가 가졌던 특유의 향긋한 과실향과
묵직한 커피의 바디감이 조화를 이루어 신선한 경험을 선사해줬다.

“이 정도 균형을 조절했다는 건…….”

말리오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또한 커피를 취급했기에, 이 향과 맛의 수준을 몸으로 느꼈다.

믿기지 않을 정도.

말리오는 곧장 카페 로얄을 내려놓고 아이리시 커피를 들이켰다.

“와……! 미친.”

방금전 먹었던 카페 로얄과는 다른 에스프레소의 맛이 느껴졌다.

음료에 따라 다른 에스프레소를 썼다는 것 자체가 반유현은 모든 맛을 의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커피 향이 느껴진 뒤 따뜻하게 목을 훑고 지나가는 위스키, 그 향이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은은하게 올라왔다.

“부시밀즈(Bushmills)를 사용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 중 하나인 부시밀즈, 앞서 표현했든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은은한 향을


뽐냈는데, 숙성 연도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는 위스키의 특성을 완벽히 이해한 것 같았다.

“16 년산…….”

반유현이 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라고 제공한 음료 자체에 대한 충격은 이들뿐 아니라,
식음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대중들에게도 전해진 듯했다.

“와아아아!”

“이게 뭐야!”

“이런 맛이 있어? 세상에!”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반유현이 말리오를 향해 손짓했다.

누가 봐도 조리대 위로 올라오라는 신호.

“우, 우리를 부르는데?”

“뭐, 뭐야? 반유현 셰프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있어?”

“아니, 말리오가 반유현 싸인이 들어간 조리복을 입고 와서 그래!”


“야야! 대박이야! 빨리 가자!”

중년의 파티시에들이 반유현의 손짓을 받고 조리대 쪽으로 뛰어올라갔다.

***

“음료는 괜찮으셨습니까?”

프랑스 파리 내에 최고로 불리는 파티시에들, 빵이 오븐에 구워져 완성되었을 때 그들을 불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만든 빵의 강력함 정도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그럴듯한 심사위원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영광입니다. 반유현 셰프님. 항상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중 말리오라는 이 사람은, 2 대째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파티시에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등짝에 거대하게 내 싸인을 그리고 다니는. 물론, 일할 때는 이 조리복을 입지는 않는다고 했다.

내가 만든 카페 로얄과 아이리시 커피의 밸런스에 감동했는지 그 눈빛엔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중년의 아저씨들이 그런 눈빛을 보내니 기분이 묘하다.

“슈톨렌입니다.”

나는 오븐에서 나온 빵을 곧장 썰어, 그들에게 건넸다.

“밀가루의 풍미……!”

밀가루 특유의 부정적 냄새가 아닌, 풍미.

고소한 맛이 느껴지고, 말린 과일들은 저마다의 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냈다.

“이 식감은…… 베이커리 기술을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며칠 밤새우면서 독학했습니다.”

“와……!”

“어…….”

말리오가 내게 질문했을 때, 그 옆에 있던 파티시에들도 입을 떡 벌리고 감탄을 내뱉었다.

“아까 드렸던 음료까지 함께 드시는 게, 이 빵의 완성입니다.”

고소함, 달콤함, 상큼함, 그렇지만 가볍지 않은 맛이 합쳐져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 냈다.

빵은 요리보다 직관적으로 맛을 던져줄 수 있기에, 그리고 이들이 빵에 대한 이해가 깊은 파티시에라는


점에서 내가 의도한 맛이 더욱더 깊게 느껴졌을 터이다.

우와아아아아아!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파티시에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빵을 먹는 모습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빨리 빵을 내놓으라는 듯이 말이다.

술을 조금 먹여 놨더니,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나눠드려.”

나의 휘하에 있는 셰프들이 나의 말을 듣고, 빵을 썰어 포장지에 잘 담아 나누기 시작했다.

술까지, 무료로 제공해 축제의 분위기는 절정에 치달았다.

그리고 음악소리가 쿵쿵 터져 나온다.

와후!

저 멀리, 파리 관광청 관계자들의 표정을 보니 이 축제가 완전히 안착될 것만 같았다.

그에 따라 나는, 한 줄의 대단한 이력을 만들어 낼 것이고.

“MOF, 프랑스 최고 장인을 뽑는 콩쿠르에, 요리부문과 함께 제빵부문에 제가 출전하면 문제가


생길까요?”

내 빵을 맛본 프랑스 파리에 파티시에들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120 화. 기반은 완성됐다 (4)

“그가 실행한 행사의 파급력은 예선에 진출하기엔 다소 모자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부문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가…… 주력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겠죠.”

예술과 장인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절대 권위를 인정받는 '프랑스 최고 장인'(Meilleur Ouvrier de


France : MOF).

그리고 그것을 주관, 심사하는 프랑스 최고 장인 위원회.

“그런데 이건 뭡니까?”

“그, 그러게요…….”

MOF 제빵 부문의 심사위원 24 명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예선은 논문의 평가로 진행되었는데, 반유현이 제출한 논문이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 제과제빵의 창의성, 그리고 천연발효를 위한 효율적 조건 ]

반유현은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해 제출했는데, 자신의 의견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들과
과학적 지식은 이번에 논문을 제출한, 그 어떤 파티시에보다 정교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반유현이 예선에 진출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논문의 내용에는 제과제빵 분야의 대단히 권위적인 입지를 갖고 있는 파티시에들을 비판하는 내용들도
있었으며, 그것들을 전면적으로 반박하는 실험들 또한 있었다.

요리에 모든 것을 바친 그가, 제과제빵 분야에서 실제로 이런 실험들을 고안하고 해냈다는 사실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그, 그럼 본선은 진출하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여태까지 이런 논문을 쓴 파티시에가 있었습니까!”

단연, 파티시에는 자신의 창의력과 그 창의력을 손으로 빚어내는 것에 집중하느라 그 이론과 실험적
태도에는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파티시에도 아닌, 본업이 셰프인 반유현이라는 작자가 나타나 그 모든 것을 깨트린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정도의 정교한 논문은 박사인 제가…… 감히 평가하건대, 대단한 내공입니다. 이 정도 수준의 실험과
생각은 20 년 경력의 파티시에들도 몸으로 알고 있지 이렇게 이론으로 정리하기는 힘들 겁니다.”

반유현이 두 부문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MOF 의 권위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내부적으로 그의 서류
전형 합격 여부에 많은 논란이 오가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어졌다.

“이 논문들도 보아하니, ‘맛’에 대한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창의성도, 반죽도, 발효도 모두 맛을


좋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문장을 보면요. 아마도 반유현 셰프는 ‘맛’에 대한 대단한 관심이 있었고,
수년간 그것을 연구하다가 제과제빵 분야에 발을 들인 것 같습니다.”

“수년간 연구를 하다니요! 반유현 셰프의 행보를 모르십니까? 3 년 만에 미슐랭 23 스타를 받아낸 그가
연구할 시간이나 있었겠습니까!”

한 위원이 합리적인 의심을 품자, 동료 의원들도 그의 말에 동조했다.

“충분히 그럴 듯한 말입니다. 그가 이 정도의 경력을 가졌다고는…… 그의 몸이 열 개가 아닌 이상…….”

“이건, 백여 년간 쌓아 올린 저희 MOF 의 명성을 깎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요식업계의 대단한 명성과


엄청난 경제력을 갖은 그가, 논문을 대필 받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역사에 없던, 정교하고 세밀하고, 창의적인 논문이 나왔습니다. 제빵분야에서 MOF 를 수상한 그 어떤
파티시에도 이렇듯 대단한 논문을 낸 적이 없는데, 반유현 셰프가 누구한테 대필을 받습니까?”“그, 그건
그렇지만……. 반유현 셰프가 저희 MOF 라는 기관, 콩쿨 자체를 수단으로만 삼으려는 속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탕탕!

그때,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위원들을 가라앉힌 건, 프랑스 최고 장인 위원회 위원장, 베이슨이었다.

“반유현 셰프가 저희 MOF 역사 최초로 두 부문에서 수상할 것을 두려워하는 위원님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위원장인 베이슨은 이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각 분야의 MOF 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니 모든 사람이 인생 전체를 그 분야에 쏟아낸


사람들이었다.
두 부문에 출전하는 반유현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이질감 또는 불편함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최연소의 나이로 말이다.

더 나아가 그가 진정 MOF 의 두 부문에서 수상하게 된다면, 여태까지 MOF 를 받은 장인들의 불만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똑같은 심사 잣대를 들이밀고, 그가 그것을 통과하면 우리는 MOF 를 수여하면 됩니다. 그가 두 분야에서
MOF 를 수상했다는 건, 우리의 명성, 또는 여태까지 MOF 를 수상 받은 장인들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주 아주 위대한 인간임을 인정하면 되는 겁니다.”

그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지만. 베이슨은 생각을 바꿨다.

“저도 상상만 해봤던 일입니다. 어떤 인간이 두 분야에서 최고 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될 것인지…….


왠지 이번엔 그 상상이 현실로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묘하네요.”

***

본선에 진출한 파티시에는 나를 포함해 총 다섯 명.

심사장 내에 감도는 긴장감이 완벽하게 무너진 것은, 심사위원의 외마디 탄성이었다.

“컥!”

‘제과제빵의 창의성, 그리고 천연발효를 위한 효율적 조건’, 총 두 개의 논문을 제출해 예선에 합격했고,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은 24 명의 심사위원들이 내 빵의 맛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어렵지 않았다.

“이런……. 보내주신 논문의 이론을 완벽하게 담아낸 이 건 무슨……!

“와, 완벽합니다.”

“무……결.”

‘꿈’이라는 주제 아래에, 자신의 제빵 실력을 뽐내는 것이었는데, 나는 설탕과 초콜릿, 그리고 머랭


(meringue)으로 미슐랭 스타를 상징하는 별을 만들었고, 직접 만든 카스테라 위에 그것을 올렸다.

꿀에 절인 딸기를 카스테라 속과 위에 함께 곁들여, 달고 상큼한 맛을 더했다.

“30 개의 별을 갖겠다는 제 염원을 담았고, 30 개의 별을 얻은 뒤의 편안함을 맛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심사위원이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고, 그가 내뱉은 탄성에 따라 장내에서 다른 파티시에들의 평가를


보고 있던 심사위원들이 내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주제를 완벽히 따랐고, 그 맛은…….”

“머랭을 어떤 식으로 만드셨습니까?”

카스테라 맛과 식감의 기본인 머랭, 쉽게 설명하자면 계란 흰자에 설탕을 뿌려 빠르게 휘저어 만드는
거품들, 또는 크림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것을 만들 때는 속도와 설탕을 넣는 타이밍과 양이 중요한데, 나는 애초에 이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했다.

“다른 파티시에 분들은 반죽기로 머랭을 만드셨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회전하는, 그리고 계란
흰자가 빠른 속도로 휘저어지는…… 그런데, 장인이라면 그런 것들까지 다 조절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같은 빵이어도 맛이 다른 이유는 그것입니다.”

계란 흰자가 그 성질이 변하면서 거품이 일어나고, 그것들의 점도를 파악하며 설탕을 넣는다.

물론, 이곳에 있는 모든 파티시에들이 그랬겠지만, 정교함이 나와는 달랐다.

내가 100 년의 시간 중 대부분을 제빵이 아닌, 요리라는 분야에 쏟은 것은 맞지만, ‘맛’이라는 공통된


분야에서 저들이 나의 정교함을 따라올 리 없었다.

“이 식감은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반유현 씨는 셰프입니까? 파티시에입니까?”

“둘 다 맛을 쫓는 직업이라 생각하여 경계를 두지 않습니다. 셰프가 될 수도 있고 파티시에가 될 수도


있고, 소믈리에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심사위원의 질문에 대답하자, 이번엔 심사위원들뿐만 아니라, 함께 출전한 파티시에들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이 불편한 시선들, 매번 느껴왔던 것이라 이것들을 견디는 게 어렵지는 않을 줄 알았더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저들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제빵에 투자했고, 스스로를 제과제빵 분야에 대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새삼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 대회의 장에서 나의 존재 자체가 저들의 실력을 스스로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되었기에 다른 때와 달리


저들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초콜릿과 설탕의 밀도…… 그리고 꿀에 절인 딸기, 하! 딸기는 대체 어떤 꿀에 어떻게 절였길래 이런


풍미를 내는 겁니까? 완전히 녹은 카스테라가 딸기의 향을 은은하게 담은 뒤에 목을 부드럽게 내려가는…
… 이! 이! 빵은! 최고입니다.”

위원장은 한 발 떨어져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고, 나머지 심사위원들이 내가 만든 작품을 맛보곤


평가하기 시작했다.

“……아니, 여기서 이러면 대체 요리 부문에서는 어떤 맛을…….”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보니, MOF 제빵분야 최고 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으리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

그밖에 나흘 동안 이어진 평가에도 나는 계속해서 활약했다.

나의 활약이 이 콩쿨 전체에도 소문이 나, 다른 부문의 심사위원들도 멀리서 참관할 정도였다.

그리고 제빵 분야의 모든 심사가 끝났을 때에는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음에도, 각종 언론에서 ‘카더라’
기사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 반유현 역사상 최초 두 부문 MOF 탄생하나? ]

[ 심사위원 중 한 명 “충격적인 빵의 맛.” ]

[ “요리 부문이 주력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

[ 함께 했던 파티시에들 의지를 잃게 만들어. ]


[ 반유현 “맛을 쫓는 것은 파티시에나, 셰프나 똑같아.” 그가 행사장 내에서 한 말들! ]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최초로 두 부문에 출전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받으셨고, 그에 따라 기자들이 추측성 기사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기자들이야 뭐. 저게 밥벌이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기자들도 느낌상 셰프님께서 진짜, 진짜로 MOF 두
부문에서 수상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오스틴과 수행원들, 그리고 경호원들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축하드립니다.”

“김칫국 마시지 마.”

오스틴이 쓴 웃음을 짓고 한차례 말을 덧붙였다.

“셰프님, 그런데 MOF, 요리 부문에서 수상한 셰프들은 조리복 목깃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삼색의 줄을
넣잖아요. 셰프님 조리복의 그 검은 깃도 색을 바꾸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받으실 게
분명하니까요.”

“김칫국 마시지 말라 했지.”

“에이. 셰프님 빼고 저희 직원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요, 뭘. 조리복 디자인 수정안 보고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니. 한번 말하면 알아듣지. 개기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오스틴과 오늘의 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에, 오스틴이 말 한, 목깃에 프랑스를 뜻하는 삼색선이
들어간 조리복을 입고 있는 셰프들이 대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최고장인 위원회 위원장 베이슨입니다. 셰프님의 요리 부문을 심사할
심사위원이기도하구요.”

그의 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조리복 목깃에 삼색 선이 들어가 있었다.

나이 또한 지긋한 그들, 미슐랭 가이드 시상식에서도 봤던 몇몇 사람들도 있었다.

“예, 안녕하십니까.”

“제빵 부문에서 큰 활약을 하신 것을 봤습니다. 너무나 놀랐습니다. 허허허! 요리 부문에서도 큰 활약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흥미롭군요. 진짜 두 부문 동시 수상자가 탄생할는지.”

“네. 뭐.”

“반유현 셰프님이라 해서, 심사의 잣대가 낮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는 최고 장인을 뽑는…… 뭐,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4 년에 한 번 열리는 콩쿨임에도 수상자가 없던 적이 많다는 것을. 저도 셰프님께서 두
분야의 수상자가 되는 것을 바라기에, 이 평가를 우습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 최고 권위를 가진 요리 장인이자, MOF 심사 위원장인 베이슨이 인사치레 몇 마디를 하곤 돌아갔다.


그 뒤를 따르는 셰프들은 베이슨과 다르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곤 그를 뒤따라갔다.

“와…… 프랑스 최고 장인 위원회 위원장의 포스인가…….”

“야. 오스틴.”

“예?”

“저것 봐. 삼색선이 멋있냐?”

“네! 당연히 멋있잖아요. 프랑스 요리 최고라는 뜻인데.”

나는 오스틴을 보며 웃어 보이곤 말했다.

“딱 내년에 있잖아. 저 삼색선보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조리복의 검은색 깃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게 할 거야.”

“에, 예?”

그 전에, 삼색선을 가졌음에도 기존 그대로의 조리복을 입는 멋부터 보여줘야겠다.

“셰프님, 아, 아무리 그래도 MOF 인데…… 그런 발언을 대외적으로 하시면…….”

MOF 에 수상하면, 다시 레스토랑을 미친 듯이 찍어내고 미슐랭 30 개를 달성하고…….

뭐, 만에 하나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은퇴를 하게 될 터이니.

심심하면 MOF 모든 부문에 수상을 해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121 화. 기반은 완성됐다 (5)

'프랑스 최고 장인'(Meilleur Ouvrier de France : MOF).

평가 중, 요리 부문의 평가 방식은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다.

예비 장인 후보인 셰프가 자신의 팀을 이끌고 독립적인 주방에서 요리를 선보이는 것.

여러 개의 팀이 한 장소에서 여러 개의 조리대를 두고 경쟁하듯이 경연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너희들이 있어서 항상 든든해.”

나는 유럽에 있는 로또 육인방과, 포시즌스 총괄 셰프 세 명을 불렀다.

나의 최측근이고 내가 가장 믿을 만한 셰프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요리를 할지만 논하면 되잖아 너희하고는.”

나와 함께 몇 날 며칠을 밤새워 주방 동선을 맞춘 경험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눈빛만 봐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이들에겐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이 없었다.

“최고 장인을 선발하는 대회답게, 시간은 여유롭게 주어져. 주방도 우리만이 쓰는 공간이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가장 강력한 맛을 보여주면 되는 거야. 그리고 이왕이면, 파격적인 이슈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지?”
내 말에 셰프들이 거침없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저희 레스토랑 코스를 그대로 해서, 홍보 효과를 하는 건 어떨…….”

“반유현 브라운? 너희는 너무 비싼 재료를 사용해서, 우리가 잘 다뤄보지 않은 것들이야. 연습하면


되겠지만, 그런 도박을 하기보다는 반유현 레드의 요리를…….”

“레드 테이블의 요리가 프랑스 정찬에 가장…….”

‘파격적인 이슈를 만들자.’라는 말을 해서 그런지, 이들은 프랑스 최고 장인을 뽑는 대회도 자신들의


레스토랑을 홍보하려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확실히 나와 함께 생활하며 생각을 하는 굴레의 크기가 커진 탓이었다.

“그래, 그래도 MOF 잖아. 우리 레스토랑의 요리를 했다간 저 빳빳한 영감님들이 가만히 있겠냐. 흠.”

내가 잠시 고민하는 듯 신음하자, 셰프들이 모두 입을 닫았고.

그렇게 몇 초가 지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페르넨 푸안.”

“예?”

“페, 페르넨 푸안 셰프님이요?”

페르넨 푸안.

프랑스 요리의 거장이라 불리며, 프랑스 정찬 요리를 정립했고, 프랑스 요리 문화를 발전시킨,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셰프였다.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고, 셰프들에게는 마치 신과 같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셰프.

“페르넨 푸안 셰프님이 생전에 선보인 요리를 그대로 재연하자.”

심사위원들 모두, 조리복 목깃에 MOF 의 상징인 삼색선이 있었다.

그들 모두 프랑스 요리, 최고 장인이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으니, 그 조리복을 입고 있는 것일


테다.

그런 프랑스 요리의 최고봉인, 그들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페르넨 푸안 셰프의 요리를 완벽히 재연해
보인다면, 그것 자체로 그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요리는……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먹을 텐데요. 셰프님. 안정적으로 가시는 게…….”

포시즌스 총괄 셰프 중 한 명인, 게리가 말했다.

그도 프랑스에서 오랜 세월 몸담아 왔던지라, 페르넨 푸안의 요리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뭐랄까. 상당히 조심스러운 요리라고 해야 되죠…… 셰프님의 판단에 항상 저희가 헤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 심사위원들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인
그의 요리를 만진다는 것이요.”

“이미 다 적었어.”
“예에?”

어떤 요리를 선보일지 적어내는 양식에 페르넨 푸안이 생전 선보였던 요리들을 모두 적었다.

그렇게 내가 선보일 요리는 정해졌다.

***

주방 밖, 홀에는 요리 부문 심사위원 30 명이 앉아 있었다.

최고 장인 위원회 위원장이자, 요리 부문의 심사위원인 베이슨은 반유현과 그 휘하의 셰프들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들과, 그 과정을 상세히 평가하고 요리가 나오기 직전까지 그것을 재검토하는 중이었다.

‘재료 손질은 두말할 것 없고…… 주방 동선도 너무나 조화로웠다. 주방 전체를 손 위에 올려놓고


지휘하는 셰프…… 미슐랭 20 스타가 넘는 셰프들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것을 수도 없이 봤지만…
… 반유현 셰프는 손짓과 눈빛으로 모든 것을 통제했다.’

카리스마, 물론 그것이 평가항목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베이슨은 느꼈다. 반유현이라는 셰프가 주방에서 내뿜는 기세와 내공, 아우라…….

어쩌면 이제껏 봤던 셰프들 중 그것을 뛰어넘는 셰프가 없었다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장인이랍시고, 셰프들을 자신의 요리를 구현하는 보조라고 생각하는 셰프들이 허다했지.’

셰프들의 조화와 협동을 기반으로, 주방의 동선이 완벽하게 정리되었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강력한 맛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반유현일 테다.

주방의 중심에 있던 그의 모습을 봤더라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대체…….’

뉴스로, 각종 메신저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의 모습을 전달받던 그였지만, 실제로 그 모습들을 보니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예비 장인 후보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동안, 심사위원들은 재료 보관법, 손질 과정, 요리를 만드는


과정 등을 평가하는데, 그에겐 감히 그런 세세한 잣대들을 들이밀기가 싫을 정도였다.

“위원장님. 대부분의 심사 위원들이 같은 평가인 것 같습니다.”

주방에서 그의 태도와 실력은 모두 만점.

심사위원들 대부분이 일치된 의견이었다.

“제가 다 긴장이 되네요. 페르넨 푸안 셰프님의 요리를 선보인다니……. 특히나, 저희는 직접 그


셰프님에게 요리를 배운 제자들 아닙니까.”

30 명의 심사위원들 중에는 원로 셰프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들은 실제로 페르넨 푸안의 제자이기도 했다.

저렇게 당돌하게, 페르넨 푸안의 요리를 재연해 보이겠다 한 셰프가 없었던 만큼, 콩쿨이 진행되고 있는
이 현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뿐만 아니라, 이 현장은 100 년 역사 최초로 MOF 를 두 부문에서 동시 수상하는 사람이 태어날 수도 있는


현장이기에, 긴장감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할 게 뭐 있어. 우리는 그저 심사위원일 뿐이야. 하던 대로, 하던 대로 하면 돼.”

그때, 전채요리가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바닷가재 샐러드입니다. 베샤멜 소스에 토마토 퓌레를 섞었고, 송로버섯(truffle) 소스와 함께,
곁들였습니다.”

핑크빛 색을 띠는 소스는 버터를 베이스로 한 베샤멜 소스와 토마토 퓌레가 섞여 나는 것이었고, 은은히
퍼지는 송로버섯의 향은 후각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향과 빛깔에 은연히 존재를 드러낸 탱글한 바닷가재의 살은…….

“진짜…….”

“제기랄.”

욕이 나올 정도의 풍미와 식감을 함유했다.

토마토 퓌레를 곁들인 베샤멜, 그리고 송로버섯 소스, 두 가지 소스와 전혀 이질감이 없이 그 소스들이
품는 풍미를 모두 가졌고, 살이 무너지며 바닷가재 특유의 풍미를 뽐냈다.

이어서 요리는 계속되었다.

“이…… 부야베스는 정말, 정말로 스승님의 요리 같잖아!”

“아니야.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지 몰라 나는 이 요리가……”

서양식 해물잡탕이라고도 불리는 부야베스(Bouillabaisse).

꽃게, 새우, 대구, 가재, 홍합 등 갖가지 최고 등급의 요리가 담긴 냄비에 토마토, 고추, 월계수 잎,
타임 오렌지 껍질 등 향을 내는 재료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훨씬 더 발 된 것 같습니다.”

“후…… 이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요리네요.”

냄비에 담긴 해산물들의 살을 베어 먹었을 때는, 서버가 바게트 빵을 가지고 나왔다.

“국물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

바게트는 반유현이 직접 숙성시킨 반죽을 오븐에 구워 만든 것으로, 이 냄비 안에 담긴 해산물처럼


신선하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콩소메(Consommé) 육수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저는, 처음입니다. 제, 요리 역사상


처음이요.”

간 쇠고기와 머랭, 그리고 각종 채소를 끓인 뒤 걸러낸 육수로 부야베스를 만들었는데, 그 베이스가 된


국물 또한 최강의 맛이었다.

고소한 바게트의 풍미와 더해져 완전히 새로운 메인 요리를 먹는 것 같은 맛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모두 술에 취한 것처럼 반유현의 요리에 빠져들었고 다음 요리가 나오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아.”
실제 페르넨 푸안의 제자였다던, 원로 셰프들은 숨을 거칠게 내쉬는 모습도 보였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요리처럼, 마음속 한 편에 묻어두고 항상 바라왔던 요리를 먹는 그 감정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감정을 덜어내더라도 이 요리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메인 요리는, 로시니(Rossini) 스테이크와 돼지 방광을 이용해 조리한 메추리구이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메뉴의 이름에 모든 셰프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와……!”

그 코스와 메뉴의 이름은 페르넨 푸안이 살아생전 선보였던 것과 비슷하지만, 접시에 담긴 요리의 모습은
한층 더 발전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프랑스 대통령의 관저이자 장관들의 회의가 열리는, 엘리제 궁.

그곳의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내가 차에서 내리자 함성을 내지르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여, 역사상 최초로! 두 부문에서 프랑스 최고 장인이 되신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반유현 셰프님! 외국인 최초 요리부문 수상이라는 업적은…….”

“페르넨 푸안의 요리를 발전시켜 심사위원들의 향수를 자극하셨다는데! 구체적으로 말씀 좀!”

경호원들이 나에게 달려드는 기자들을 막아섰고, 나는 한마디를 한 뒤에 곧장 엘리제 궁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많은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을 따로 빼서 기자님들과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엘리제 궁을 지키는 군인들이 나에게 경례를 하며 나를 반겨줬다.

프랑스 최고 장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준 것이었다.

엘리제 궁 안에 펼쳐진 연회장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각 분야의 장인으로 뽑힌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그 중, 최고 장인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베이슨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반유현 셰프님. 그때의 요리를 잊지 못해 몇 날 며칠을 밤새웠습니다. 로시니 스테이크…


… 그리고 돼지 방광을…….”

로시니 스테이크는 자신의 인생 최고의 스테이크였으며, 돼지 방광을 이용해 수분기를 날리지 않고


촉촉하게 구워낸 메추리 구이는 페르넨 푸안이 고안한 조리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셰프들에게도
수많은 영감을 줄 만한 요리였다고 평가했다.
“후. 최고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때, 프랑스 대통령인 마터롱이 문을 열고 입장했다.

모든 이들이 박수를 치고 그를 환영했고, 나도 그들을 따라 박수를 쳤다.

그런데, 마터롱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행동이 이미 짜여진 동선이 아니었는지, 경호원들이
잠깐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유현 셰프님. 매번 역사에 없는 일을 만들어내시는 것을 보고,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셰프님은 저희 프랑스의 영광이십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에게 오른손으로 악수를 건네는 대통령, 내가 그의 손을 맞잡자, 그가 왼손을 올려 나에게 예의를


다했다.

나도 왼손을 올려 두 손으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122 화. 그때 그 사람 (1)

“세계 최연소로 최고 장인 타이틀을 얻은 것도 모자라서…… 두 분야의 최고 장인이 되시다니…….”

가뜩이나 MOF 를 수상한 장인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고 있었는데, 이 행사의 주최자인 프랑스 대통령까지
나에게 다가오니, 이 행사의 주인공이 내가 아닐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뀌어버렸다.

수많은 방송, 매체에 출연해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요리를 선보이는 갈라 디너도 숱하게 많이
경험했지만 이런 시선들은 나로서도 꽤나 부담스러웠다.

아니, 부담스럽기보단 이런 시선들은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올 관심이 아니기에 받기가 싫었다.

“유례없이 미슐랭 스타 19 개를 동시 수상하시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평가 수준이 높기로 정평이


나 있는 MOF 에서도 동시 두 부문을 수상하시다니요. 요리의 신이 있다면 반유현 셰프님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그렇게 웃어 보이면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내가 슬쩍 힘을 빼자 그제 서야 손을 놓고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오늘 만찬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셰프들을 불러왔습…… 아, 그러고 보니 반유현 셰프님께는
오늘 만찬에 최고의 셰프들을 모셔왔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하하하하.”

대단한 농담이라도 한 것 마냥, 마터롱은 그렇게 웃어 보이곤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단상에 설치된 마이크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96 년의 역사를 가진 MOF 는 이렇게, 최고 장인이 되신 여러분에게 대통령이 직접 메달을 드리고,


만찬을 함께합니다. 저 역시 임기 기간 내에 프랑스 문화를 발전시켜 주시는 여러분들에게 대접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가 인사치레 이런 말들을 할 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백발의 노신사였는데, 그가 누구인지 파악하려 그를 빠르게 훑었다.


손에 지문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예술 세공 부문에서 MOF 를 수상한 장인인 것 같았다.

“저는 로렌드 노먼, 이라고 합니다.”

로렌드? 노먼? 이름과 성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시계공입니다. 이 늙은 나이에 MOF 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직업을 말하자, 그제 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가업을 시계로 삼는 시계 명문가로서, 로렉스, 브라이틀링, 태그 호이어 등 수많은 브랜드에서 활약한


가문에 속해있는 그였다.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

그런 사람이 내게 무슨 볼일이 있는가 싶어서 물었다.

“시계를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예?”

“저희 가문은 대대로, 최고의 위인이나 사회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친 이에게 시계를 선물합니다. 자신이
살면서 쌓아 올린 최고의 기술을 집약해 만든 시계를 드리죠. 역대 저희 조상님들께서는 나폴레옹,
빅토르 위고, 파스퇴르 등 수많은 프랑스의 위인들에게 시계를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대손손 손재주가 뛰어난 이들이 시계공을 가업으로 받들어 후세에 전하고 있는 집안.

그 집안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 시대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에게 자신이 얻은


모든 기술을 집대성하여 시계를 만들어 선사한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시계가 명품임을 증명했고, 그 시계를 받은 사람들도 자신이 이 시대에 중요한
인물임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100 년의 삶 동안 이 가문에게 시계를 제안받지 못했었는데, 나는 이제 셰프 그 이상의 사람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시계를 왜 저에게 주십니까. 저 앞에 대통령도 계신데.”

“반유현 팩토리…… 그곳에 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발버둥 치고, 그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위해


자유시장이라는 것을 만드시고…… 저는 그때부터 지켜봤습니다.”

로렌드 노먼은 나를 꽤나 오랜 시간 지켜온 것처럼 내 브랜드의 시스템들을 잘 알고 있었다.

“제 생각엔 반유현 셰프님 만한 혁명가가 전 세계에 없을 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는 단연 반유현 셰프님 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갔고 두 개의 메달을 동시에 목에 걸었다.

베이커리 부문에서는 나를 포함해 총 두 명, 요리 부문에서는 한 명.

프랑스 역사에 없던 순간을 만들어냄을 만끽하며 소감을 전달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요리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인사치레로 던진 말이지만, 내 말을 받아 적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자니 저들에겐 내 말이 꽤나


무겁게 들리나 보다.

***

“로렌드 노먼님이 셰프님께 다가가서 말을 건넬 때, 마터롱 대통령님의 표정이 살짝 굳었던데요.”

“그야 뭐…… 그 로렌드 노먼 가문의 사람들이 원래는 관습적으로 대통령에게 시계를 선사했는데, 이번에
마터롱 대통령은 그 시계를 유일하게 못 받은 대통령이 될 터니까.”

로만과 오스틴의 대화였다.

로만도 MOF 시상식에 초대되어 나와 함께 축하의 기쁨을 나눴었다.

로만도 시계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참, 제가 전생에 어떤 업적을 이뤘는지 셰프님을 만나서…….”

부담스럽다.

시선을 창가로 돌리고 얼마 있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파리 근교에 있는 넓은 공장 부지.

내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는 각종 소스와 조미료를 생산해 낼 공장이었다.

“셰프님께서 올려주신 레시피를 최대한…… 최대한 이 기계들이 따라갈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대한민국


공정설비 최고의 전문가들, 그리고 검정 스카프의 셰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공장을 방문해 시스템을
완성시켰습니다.”

이곳에서 프로토타입으로 생산될 소스는 두 종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실험적으로 가동을 해서 그 반응들을 보고 점차 늘려나갈 생각이었다.

“이름은 그대로 가자고.”

‘한 숟갈 굴 소스’, ‘한 숟갈 매콤 소스’.

굴 소스를 베이스로 한 소스, 그리고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였다.

전자는 볶음 요리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며, 후자는 매콤한 맛을 내고자 하는 요리에 요긴하게 쓰일


소스였다.

“저는 이 한 숟갈 굴 소스가 대박인 것 같습니다. 어떤 볶음요리에도 쓸 수 있고, 그냥 뭐 식재료만


있으면 최강의 볶음 요리가 되니까요.”

“일부로 그렇게 만들었어. 맛의 수준을 높이기보다 어떤 재료에 넣어도 맛있는.”

“저는, 매콤 소스가 더 좋던데요. 달콤하고 매콤한…… 어쩌면 한국인의 입맛을 세계인들에게 보다 더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을 것 같은 맛…….”

공장에 와, 직접 기계에서 나온 소스의 맛을 보니 내가 생각한 맛의 75%는 따라온 것 같았다.


대량 생산이지만 수많은 정교함이 들어갔기에 이 정도 수치가 나올 수 있었다.

“‘반유현’이라는 이름은 붙일까요?”

“붙여야지.”

“반유현-플레이버(flavor).”

세계적으로 나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이제는 정말 누구나 나의 요리를 맛보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의 성원에 대한 감사함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었지만.

당연히 나의 목표 안에 있는 사업이었다.

“얻을 것이 한두 개가 아니야. 파리, 반유현 골목을 시작으로 식자재 마트를 계속해서 오픈할 거야.”

레스토랑을 수십, 수백 개를 찍어내는 것보다, 내 브랜드의 맛의 가치를 낮추지 않고 전 세계 대중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으며 그에 따라 현금 자산을 빠르게 불리고, 늘어난 현금으로 확장성을 다시 한번
제고 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이미 홍보는 지난 토크쇼로 끝났고, 전 세계 각국의 홈쇼핑 사와 협의해서 다음 주부터 판매 들어가.”

***

“네에! 오늘은 반유현 특제 소스! 벌써부터 세계가 떠들썩합니다!”

유럽 각국에서는 동 시간대에 홈쇼핑이 편성되었다.

판매 개시 첫날부터 폭발적인 판매력을 보여주고, 대형마트나 그에 버금가는 유통사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기 위함이었다.

이 폭발적인 판매력을 보고, 해당 기업들은 어떻게 나의 제품을 유치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또, 저 홈쇼핑들이 나의 식자재 매장인 ‘반유현-플레이버(flavor)’의 광고 채널임을 자처하고 있었다.

“아아! 벌써 모든 물량이 판매가 완료되었습니다!”

“폭발적인 판매력입니다! 아아아! 프랑스 파리, 반유현 골목의 ‘반유현-플레이버(flavor)’에


방문하시면 이 소스를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MOF 를 동시에 두 개 수상했다는 사실, 그리고 미슐랭 스타 23 개를 가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두


종류의 소스는 날개가 달린 듯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판매된 양은 980t.

대한민국에서 미국에 수출된 고추장의 양이 약 3000t 인 것을 보면, 실로 대단한 수치였다.

“공장은 오늘부터 쉬는 날 없습니다. 바로 새로운 부지를 물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차 안에서 보고를 들으며, 반유현 골목에 도착했다.

반유현 팩토리의 성적 우수자들이 운영하는 ‘반유현-화이트’, 다섯 개의 매장과 그 다섯 개의 매장이


한눈에 보이는 위치에 ‘반유현-플레이버(flavor)’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우와아아아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반유현’이라는 간판이 새롭게 세워질 때 사람이 없는 것이 상상이 안 될 지경이었다.

딱 두 종류의 소스만을 팔고 있는 이 매장에 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렸나도 싶지만.

앞으로 이 매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소리를 질러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가 개발한 특제 소스들은 이 매장이 아닌, 다른 유통사를 통해서도 판매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신
제품들은 ‘반유현-플레이버(flavor)’라는 매장에서 먼저 판매됩니다. 쉽게 말하면 선독점입니다.”

전 세계 어느 대형마트, 어느 백화점이든 조건만 맞는다면 유통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유현-플레이버(flavor)’라는 이름을 걸고 연 식자재 마트에 프리미엄을 얹을 생각이다.

최신품들을 먼저 ‘반유현-플레이버(flavor)’에 런칭하고, 인기가 빠지거나 매출이 하락할 때쯤에


대형마트에 유통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확실한 프리미엄을 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 파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제 특제 소스를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셨습니다.”

혹시 모르지 않나.

‘반유현-플레이버(flavor)’ 덕분에 이곳의 지명인 반유현 골목이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질지.

***

“품귀 현상 덕분에 SNS 도 난리입니다. 이놈의 자랑질 하는 문화에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셰프님인 것


같습니다.”

#반유현특제소스, #반유현특제소 get, #플레이버(flavor), #반유현플레이버.

#파리여행반유현. #특제소스존맛탱.

나의 소스를 구입한 사람들이 요리를 만들어,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양송이 볶아 먹었는데, 진짜 맛있음!!

-소고기 볶아 먹어보세요ㅋㅋㅋ 백퍼임.

-와 그냥 다 볶아도 맛있는? 계란 볶음밥 먹어봄!

소, 닭, 돼지, 각종 채소 어떤 걸 볶아도 맛있을 굴 소스를 만들었으니 당연한 이야기들이었다.

-떡볶이에 넣어도 되고, 닭갈비에는 최강임.

-라면에 한 숟갈 넣어봤는데 감칠맛 대박.

매콤 소스도 마찬가지였다. 매운맛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만족할 만한 맛.


“이미 부자셨는데, 이제는 재벌이 되시겠습니다 셰프님.”

“돈은 따라오는 거라고. 내가 분식집 아들 시절에 어머니께 말씀드렸던 건데 그 말이 사실이 되니.


기분이 썩 괜찮네.”

“이제 레스토랑을 런칭 준비를 하시겠죠?”

나의 완전한 비서관이 된, 오스틴이 물었다.

그도 나의 싸이클을 알고 있던 터였다.

“내년 미슐랭 평가를 준비하실 것 아닙니까.”

“맞아.”

“메뉴 구성도 다 머릿속에 있으실 테고, 위치는 어디가 좋겠습니까?”

내 머릿속에 그에 관한 모든 계획들이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는 오스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기대에 맞게 거침없는 대답을 해주었다.

“내 레스토랑을 런칭할 다음 도시는, 미각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예에?”

실제로 그 대답이 1 초 만에 나오니, 살짝 당황한 오스틴이었다.

“라, 라스베이거스요?”

“의심의 여지 없잖아. 세계적인 셰프들이 몰리고, 맛의 도시임을 자처하는 곳.”

개 중에서 가장 강력한 레스토랑을 세울 생각이다.

123 화. 그때 그 사람 (2)

“반유현 셰프님의 비서인…… 오스틴의 말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베네시안, 벨리지오, 트럼퍼 인터내셔널, 미라지……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최소 3 성급 이상의


호텔들이 반유현에게 제안을 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다음의 행보를 라스베이거스라고 선언하신 것도 저희에게 이런 고민을 안겨주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로만에 의해 주재된 회의에는 유럽 내 포시즌스 사장단과 ‘포시즌스 - 라스베이거스’의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며칠 전, 반유현은 다음 레스토랑을 런칭할 지역이 라스베이거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었는데, 로만은


그 의도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의 공식 발표는, 사실 발표가 아닙니다. 포시즌스에서는 어떤 지원을 해줄 것이냐가


반유현 셰프님의 물음입니다.”

반유현은 자신의 라스베이거스행을 발표하고 나서, 제안받은 호텔들의 명단을 뽑아서 로만에게 건네줬다.
물론, 그 호텔들의 명단 옆에는 그들이 제안한 사항들도 함께 적혀있었다.

-지분 50%

-미슐랭 달성시, 호텔 매출 5%

-수행원, 기사, 집…… 라스베이거스 최고 대우.

“이런 제안들은 저희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다른


호텔들에서 이런 제안을 해줬는데, 반유현 셰프님과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우리는 더 마음을 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아니, 실장님! 오랜 시간 함께해 왔으니, 반유현 셰프님께서 마음을 좋게 쓰셔도 되는 것 아닙니까?


어째서 저희 회사만이 반유현 셰프님께 매번 파격적인 제안을 해야 하는 겁니까?”

“참…… 반유현 셰프님이 아직도 예전의 반유현 셰프님 인 줄 아십니까? 그룹의 손익을 따져서 데려와야
할 사람이냐고요.”

반유현의 덕을 봤기에, 그룹 내 경영전략실장으로 승진할 수 있던 로만은 완벽하게 반유현의 편에 서


있었다.

그에 따라 그룹 내에 불만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실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실장님께서는 저희 그룹의 편에서서 반유현 셰프님과의 협상을 이어나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반유현 셰프가 대단한 것을 여기 있는 모든 간부와 사장님들이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불만이 당연했지만 로만은 이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백전무패, 여태까지 반유현의 전적을 보고도 이런 말들을 하다니.

그의 파급력과 브랜드 가치는 지금보다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미슐랭 23 스타 이상을 가진 셰프가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됩니까? 그것도 스물 중반의 나이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하물며, MOF, 세계 최연소로 프랑스 최고 장인에 이름을 올린 것도
모자라서 동시 두 부문에서 수상을 하셨습니다. 대체 어떤 협상을 하라는 말입니까? 간, 쓸개를 다
내주어서라도 반유현 셰프님과 함께 가야 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곳에 모인 포시즌스의 사장단도 그의 말이 무엇인지 머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역사에는 없던 최강의 셰프가 있다면, 역사에 없는 제안을 해서라도 그를 데려와야 한다는 논리는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 그 셰프가 포시즌스의 매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럼…… 로만 실장님께서는 어떤 제안을 하고자 하시는 겁니까?”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4 개의 레스토랑을 모두 치워버리고, 레스토랑 ‘반유현’으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물론, 말 그대로 포시즌스 역사에 없던 제안인지라, 사장단과 간부들은 동요했다.

“네 개의 레스토랑 중에는 미슐랭 쓰리 스타를 보유해 많은 손님들이 찾는…….”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를 내쫓는 게 말이 되십니까?”

“쓰리 스타뿐입니까? 나머지 두 곳은 미슐랭 원 스타…….”

“재계약을 해야 될 기간이 임박해 있기는 하지만……. 그 셰프들의 반발이 거셀 것 같습니다.”

아무리 반유현이라 한들, 그 때문에 자신이 내쫓겨난다고 하면 그들의 기분이 어떨까.

더군다나 자신들이 일을 못 한 것도 아니다. 그 대상에는 오히려 포시즌스에 미슐랭 가이드의 최고 영예인,


쓰리 스타를 안겨준 셰프도 있었다.

“별 개수 셀 때가 아닙니다. 반유현 셰프님은 1 년 만에 미슐랭 스타 아홉 개를 파리에 박으셨습니다.


저희가 이 정도 액션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면목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로만의 생각은 확고했다.

반유현을 잡으려면 그가 보여줬던 행보처럼 자신들도 파격적인 제안을 해야 된다는 것.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있어야 오래가지 않겠냐는 말을 계속해서 했다.

“정리하자면, 그 셰프들이 반발을 갖지 않고, 부드럽게 반유현 셰프님에게 자리를 내어 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것은 제가 아니라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에 간부님들과 사장님들의 역할이겠죠.”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고, 로만은 회의를 정리했다.

“잘 생각하십시오. 제가 경영을 맡은 파리는, 반유현 셰프님을 모셔온 이후로 매출이 270% 상승했습니다.
또 제가 그룹 경영전략실장으로 승진했다는 것을요.”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의 사장 및 간부들이 침을 삼켰다.

***

라스베이거스에서 처음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을 오픈할 장소는 너무나 편안하게 포시즌스로 정해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포시즌스의 대우였다.

그들이 어떤 대우를 할는지 나에게 제안을 한 호텔의 명단과 그들의 제안을 로만에게 건넸는데 로만의
행동이 꽤나 파워풀했다.

“이야, 로만 사장, 아니 실장님. 승진하시더니…….”

로만이 회의장에서 했던 말들에 대해 보고를 듣고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약 2 년 전인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지나친 의심을 품던 사람이 이제는 내가 없으면 안 될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또, 그의 일하는 방식이 나를 따라 파워풀해졌다는 점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의 레스토랑들 싹 다 치우기로 결정됐어?”

“예, 그런데 그 방식이…….”

“왜.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던 레스토랑인데 다짜고짜 방 빼라고 하면…
…. 이건 나한테도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다른 방법들을 좀 알아보라고 해. 열심히 하는 그 셰프들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될 것 아니냐.”

“예…… 일단 셰프님께서 직접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스틴이 말끝을 얼버무렸다.

불도저 형식으로 셰프들을 밀어버렸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겼을 것인데, 설마 그런 방식까지도 사용한
것인가.

미슐랭 쓰리 스타고, 원 스타고 나를 위해 밀어버렸다는 점에 저들이 나를 대우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었지만 왠지 찝찝했다.

뭐 직접 확인하라는 말에 더 이상 궁금증은 표하지 않았다.

“차량 준비되어 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내리자, 나의 수행원들이 내 캐리어와 짐들을 챙겼다.

그리고 내가 나가는 공항의 출구 앞에 거대한 롤스로이스와 고급 SUV 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약 2 년 전, 펠리지오 호텔의 총주방장 톰슨에게 초대를 받아 롤스로이스를 탈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도 색다른 느낌이라고 좋아했었는데.’

그 당시에도 이렇게 어린 나이에 셰프로서 받는 대우에 좋았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상쾌함이었다.

‘예측했을지도.’

2 년은 아니지만, 몇 년 만에 이 정도의 성과를 만들어 이곳에 다시 오리라는 생각이 마음속 어느 한 편에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내가 지금 이 위치에 있는 것이겠지.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로 향하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급차 중 하나, 그 편안한 가죽시트에 몸을 기대자 앞자리에서 기자가 말을 건네


왔다.

“네, 출발하세요.”

오랜만에 보는 라스베이거스의 풍경을 어느 정도 눈에 담았을 때.

목적지에 도착했다.

“뭐야 이건?”

차에서 내리기 전 창밖에 보인 광경에 나는 오스틴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약 40 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조리복과 조리모를 쓴 것을 보면 누가 봐도 셰프인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셰프님,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의 경영 총괄을 맡고 있는 조쉬 앨런입니다.”

조쉬.
포시즌스 파리에서 로만과 합을 맞췄다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그와 함께 합을 맞춰야 한다.

중년의 남자인 그는 딱 젊었을 때, 잘생겼다는 소리를 귀에 달고 살았을 것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조쉬 사장님이 반유현 셰프님을 존경하기도 합니다. 매번 저한테 자리 한번 만들어 달라고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뵙게 되네요.”

그 옆에는 로만도 있었는데, 로만이 나지막이 그를 소개했다.

“예, 그런데, 로만 실장님. 저 뒤의 셰프들은 누구인가요?”

“그게…….”

조리복을 입고 있는 셰프들, 나는 포시즌스 측에 인력을 공급해달라거나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원래 이곳에서 일하던 셰프들은 아닐 것 같았다.

나에 의해 한순간에 자리를 잃은 셰프들이라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봐야 하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그런데, 로만의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이곳에 원래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셰프들입니다.”

로만이 조리복을 입고 공손히 서있는 셰프들에게 손짓하자, 네 명의 셰프가 걸어 나왔다.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에서 각각 네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셰프들이었다.

“자틴입니다. 인도 요리를 기반으로 퓨전 양식을 만들었습니다.”

인도 출신의 요리사인 그는 이번 라스베이거스 2021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미슐랭 쓰리 스타를 받았다.

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슐랭 쓰리 스타를 받자마자 나에 의해 자리를 강제로 내어준다는 것에 대한 엄청난 불만을 품어야 할


텐데 그의 얼굴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내가 로만을 쳐다보니 로만은 웃으면서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마커스입니다. 스웨덴에서 왔고, 저는 지중해식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에 미슐랭 원 스타를
받았습니다.”

“루이 가렐입니다. 프랑스에서 왔고, 셰프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프랑스 정찬으로 저도 이번에
미슐랭 원 스타를 받았습니다.”

“신지로입니다. 일본에서 왔습니다. 정통 일식 가이세키가 전공입니다. 아직 미슐랭은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인도 출신, 스웨덴 출신, 프랑스 출신, 일본 출신의 총괄 셰프들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알다시피, 포시즌스에서 그 레스토랑을 맡을 총괄 셰프를 뽑는 것에는 그 기준이 엄격했다.

이미 미슐랭 스타를 소유한 셰프들도 있었으니, 그들의 실력은 두말할 것 없는 정도였다.

물론, 그 비교 대상은 내가 아니라, 일반적인 셰프들이었다.


“저희도 이 셰프님들의 실력과 포시즌스에 헌신해준 그 마음을 알기에, 아무리 반유현 셰프님께서
들어오신다고 하셨어도, 이분들을 강제로 내쫓는 것에 마음이 걸렸습니다.”

“네.”“그래서…… 이분들에게 제안을 했는데, 이분들이 모두 흔쾌히 수락하셨습니다. 1 초의 망설임도


없이요.”

이 총괄 셰프들 모두, 그리고 그를 따르는 셰프들이 나의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강제로라도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레스토랑을 비워야 된다는 것이 이미 잠정적으로 결정 났고,


그렇다면 나, 아니 레스토랑 ‘반유현’에 완전히 흡수되어야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미슐랭 스타를 소유한 셰프들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 줄이야.’

아무리 ‘반유현’이라는 이름이지만, 회사 측과 나에게 반감을 가질 법한데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려 한다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제 주방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

UAE 왕세자, 그가 데리고 있던 개인 셰프들 미슐랭 7 스타를 가진 이들도 열심히 반유현 팩토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들이라고 해서 곧장 나의 주방에 발을 들일 순 없었다.

일이 순순히 풀릴 것이라 기대했던 로만과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의 간부들이 나의 말에 흠칫 놀랐다.

124 화. 그때 그 사람 (3)

‘포시즌스-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해,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과 셰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의 라스베이거스 진입에 따른 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곳에 있는 셰프들의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은하수를 만들 정도로 많은 셰프들이 있는 곳이기에, 그


어떤 셰프가 와도 이런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테지만.

“셰프님은 조금…… 아니, 많이 특별하시니까요.”

나와 같은 이력을 가진 셰프는 어느 곳에도 없다.

모든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런칭시켜 3 개월 예약이 가득 차 있고, 미슐랭 23 스타에, MOF 동시 두 부문


수상…… 그리고 프랑스 최고 영예의 훈장이라는 레지옹 도뇌르를 거절한 사람.

라스베이거스의 기업들은 새로운 포식자가 라스베이거스에 입성한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국가 기관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얘들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미국 정부 산하의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프랑스 파리의 관광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었다.

“유럽 애들한테 못 들었나? 나를 대우하는 방법을.”

런던 관광청과 파리 관광청은 나를 떠받들 듯이 대우해주며, 나에게 최대한의 협조를 해준다.


나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가치를 몸소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합을 맞춰야 될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보낸 메일을 보니 골치가 아팠다.

[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그간의 행보를 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모든


셰프들의 귀감이 될 만한 당신이 저희 라스베이거스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문제는, 이다음부터의 내용이었다.

[ 라스베이거스의 대표적인 음악&예술 축제인 ‘라이프 이즈 뷰티풀(Life is beautiful)’에 디너쇼를


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제발, 제발 맡아주시면 안 되겠냐.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지원할 것이며, 모든 조건을 맞춰 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요즘 추세인데, 아직 미국 땅까지는 그 소문이 돌지 않았나 보다.

[ 샹젤리제 거리의 ‘투르 드 프랑스’, ‘베이커리 페스티벌 by 반유현’ 등 셰프님께서 열었던 축제의
장에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번 저희 최대 축제를 빛내주시고,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메일의 내용은 절정을 향해 달렸다.

[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주소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인턴 브래드 하시몬.

“이, 인턴……?”

내 옆에 있던 오스틴도 질색했다.

“이거는…… 아무리 여러 기관과 업체의 협의를 셰프님께서 직접 안 하신다고 해도 인턴에게 셰프님 관련


사항을 맡기는 건…….”

애초에 나에게 제안을 하는 톤부터가 문제였는데, 이 비즈니스를 관할하는 자가 인턴이었다.

파리, 런던 모두 본부장급 이상 또는 관광청장이 직접 나와 행사들을 주관한 것을 보면 확실히 다른


대우였다.

“내 가치를 떨어트릴 필요는 없지, 주지사가 와도 모자랄 판에.”

내가 원하는 행사였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고리타분한 국가 기관들이 나를 대하는 직원의 직급을 낮출 것이다.

“어차피 바빠서 못해.”

뿐만 아니라,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네 개의 레스토랑을 어떻게 꾸릴지에 대한 생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이었다.

메뉴에 대한 구성은 끝났지만, 인력에 대한 문제였다.

원래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 이곳 네 개의 레스토랑을 차지하던 셰프들을 모두 실력에 따라 반유현


팩토리의 학생과 교수진으로 입학시키는 것부터…… 새로운 레스토랑을 꾸릴 셰프들을 뽑는 것까지.

인력의 부족해서가 아닌, 적재적소에 어떤 인력들을 사용할지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저 제안은 받지 말고.”
“파리, 런던과 다르게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워낙 이 도시에서 파워가…….”

물론, 나의 반응에 저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도 알고 있었다.

미국 관광산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그 관광청의 힘이 미국 내 정부기관들


중에서 얼마나 막강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저들을 굴복시킬 방법도 알고 있었다.

“이참에 저런 식으로 까불지 못하게 만들어 놔야지.”

“네?”

***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참나. 잘나가도 너무 잘나가 그렇지? 이 도시를 처음 겪어 본 것인가.”

“이게 반유현 셰프에게만 제안을 한 것이 아니라서, 다른 셰프들에게 소문이 금방 퍼질 것 같습니다.”

세계 최대의 미식 축제인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Vegas Uncork'd)’ 와 더불어 ‘라이프 이즈 뷰티풀


(Life is beautiful)’은 라스베이거스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축제였다.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분위기를 달구기 위해 관광청은 디너쇼라는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반유현이 샹젤리제 거리를 흔들었던 것처럼, 라스베이거스의 핫한 셰프들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그에 술을 제공하며 음악을 신나게 틀어놓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제기랄. 대장으로 세우려 한 사람이 발을 빼니 김이 푹 빠지네.”

‘투르 드 프랑스’, ‘베이커리 페스티벌 by 반유현’ 등 두 번의 축제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던 반유현에게


전권을 주고 이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려 했는데, 전권은커녕 반유현은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다른 셰프들은 꽤나 참여하려 하고 있습니다. 고든 레지, 노부…….”

어쩐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라이프 이즈 뷰티풀, 줄여서 ‘라이뷰’의 행사 기획 총괄 디렉터는


반유현이 거절하는 것이 마냥 좋게 보이진 않았다.

“배짱은 좋네. 라스베이거스의 신참이……. 아직 모르는 건가 이 도시의 갑은 우리인 걸?”

디렉터, 케인은 따르지 않는 이를 굴복시키는 것이 후에도 가장 빠른 일 처리를 도모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셰프에게서는 뭘 뺏어야지 애타게 우리에게 길들여질까?”

그때,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전에도 자신들의 말을 거역하는 한 셰프를 농락시켰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 최고 셰프 선정 후보에서 지우고, 이달의 레스토랑 후보에 선정하지 말고, 새롭게 오픈한
레스토랑 리스트에 반유현 셰프의 레스토랑은 이름 올리지 말고,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Vegas
Uncork'd)’에 부스 주지 말자.”
세계적인 셰프, 반유현의 반응이 기대된 케인이었다.

감히 일개 셰프 한 명이 그가 레스토랑을 오픈하려는 도시의 억압을 받고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그 기대의 기반이었다.

“아무리 날고뛰어 봤자, 국가 기관이 움직이면 어쩔 수 없는 거야.”

***

“반유현 셰프님의 뷔페라니!”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내가 포시즌스 네 개의 레스토랑을 어떻게 활용할지 말하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우……. 네 개의 레스토랑을 두 개로 통합시킨다…….”

저들의 습관상 괜스레 의문을 품고 싶었을 테지만, 내가 말한 계획이기에 따르는 느낌이랄까.

“이 도시의 규모, 그리고 주변 레스토랑의 규모를 보면, 그에 맞추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네 개의


레스토랑으로 나뉘어 있는 공간은 어떤 이점도 갖지 못합니다.”

조금이라도 의문이 들만한 부분들을 거침없이 말해주자, 간부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값을 얻으면 이렇듯 일이 진행되는 것이 쉬워진다.

“이곳은 메이, 이곳은 제리를 총괄로 세운다.”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네 개의 레스토랑은 각각 두 개씩 벽을 허물어 합칠 것이다.

그중 하나는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을 만들 것이며, 하나는 또다시 미슐랭 쓰리스타를 겨냥하는 정찬


요리를 주로 하는 레스토랑을 만들 계획이었다.

“팰리스 호텔의 ‘더 바이넬’, 윈윈 호텔의 ‘더 뷔페’, 코스모폴리탄의 ‘고져스 스푼’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로 많은 손님들이 몰리고, 유명한 레스토랑 중 상위 세 곳이 뷔페 형식입니다.”

미식의 도시라 불리는 곳, 라스베이거스에 방문한 관광객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 방식이었다.

정해진 일정 기간 먹고 싶은 음식을 모두 맛보고 싶은 관광객들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뷔페였으니까.

실제로 라스베이거스 내에 존재하는 레스토랑 중 상위 매출을 차지하는 것들에는 뷔페가 많았다.

“뷔페 방식의 레스토랑은 단연 미슐랭 스타와 거리가 멀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겁니다.
브랜드 반유현의 뷔페. 화려한 요리들과 맛을 한꺼번에 선보일 수 있는 형식은, 이 라스베이거스 내에서
제 브랜드의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고, 그에 따라 미슐랭 스타에 관한 사업들을 이어나가겠습니다.”

기대가 된다는 눈빛들, 더 이상 나의 말에 의문을 품는 자들은 없었다.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셰프들이 밀집되어 있는 그 밀도는 프랑스 파리보다 높은 곳.

그게 라스베이거스다. 이 도시에 완벽하고 안정적인 안착을 하려면 규모가 큰 대형 사업으로 시작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한꺼번에 많이 모을 수 있으며 회전율이 상대적으로 빠른, 뷔페 형식과, 내 인생의


목적인 미슐랭 스타를 노리는 레스토랑을 동시에 런칭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 구성 셰프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반유현 골목에 있는 ‘반유현-화이트’. 다섯 개의 매장의 셰프들을 등용하겠습니다.”

프랑스 파리, ‘반유현 골목’에 있는 다섯 개의 매장.

‘반유현-화이트’는 반유현 팩토리 성적 우수자들의 실험적 레스토랑이었다.

가장 성적이 높은 팀인 ‘반유현-화이트 1’의 리더는 로또 육인방이기도 한 메이였다.

그 밑으로 화이트 2, 화이트 3 의 카림, 알렌드 등 능력이 출중한 교수들이 이끄는 팀 전체를
라스베이거스를 맡을 셰프로 채용하기로 했다.

“뷔페 레스토랑에 반유현 화이트 셰프 전원을 넣고, 그 총괄로 메이를 세울 거야. 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총괄은 제리로.”

이번에도 로또 육인방 중 둘을 각각 총괄 셰프로 세웠다.

“그런데 셰프님…… 그 홍보 문제가.”

당연하게도, 레스토랑의 폭발적 오픈을 위해서 매번 했던 것처럼 이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홍보를 해야


할지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스틴의 말을 듣자 하니 약간의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관광청에서 주관하는, 라스베이거스 관광 팜플렛 ‘새롭게 오픈! 레스토랑’에 저희 브랜드를 올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광청에서 주관하는 모든 축, 축제에…….”

“모든 축제에서 날 빼겠다?”

“이게 지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저희도 계속 관광청에 그 이유를 묻고 있으나…….”

“묻지 마.”

“예?”

“묻지 않고도 알아서 답이 나오게 해줄 테니까.”

내가 저들의 제안을 거절할 때, 어떤 행동이 나올 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대응 방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만 이 카드를 쓰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는데.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아. 그래서 유감이야.”

125 화. 그때 그 사람 (4)

“마침 반유현 팩토리에 새바람을 넣을 컨텐츠도 필요했었잖아.”


“컨텐츠요?”

“그래. 컨텐츠.”

반유현 팩토리에 수많은 셰프들이 몰렸던 것의 이유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나의 존재였고, 두 번째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브랜드 ‘반유현’의 주방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반유현 골목에 있는, ‘반유현-화이트’ 다섯 개의 매장으로는 이제 부족하지.”

그리고 그들의 동기부여, 실력향상을 위해서 나는 반유현 팩토리 내의 상위 다섯 개의 팀을 직접 런칭하게


해주었다.

실험적 레스토랑이긴 하지만, 브랜드 ‘반유현’의 이름을 얹어 레스토랑을 차릴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그 매장의 이름은 ‘반유현-화이트’였는데, 이제는 그 다섯 개의 매장으로는 그들의 동기를 부여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점점 많아지고…… P 반 3 팀까지 생겼다며.”

A, B, C, …, P. 알파벳으로 이어지는 각 반에는 각각 다섯 개의 팀이 있었다.

A 반 1 팀부터 5 팀 안에 들어, 반유현 화이트까지 가기란 이제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만큼의 난이도였다.

그래서, 애초에 셰프들의 의지가 좌절되기도 했을 것이고.

나는 그래서, ‘반유현-화이트’의 개수를 늘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것도, 반유현 골목 내에 런칭하면 좋을 테지만…… 미식의 도시라는 라스베이거스에 화이트를


런칭해주면 어떨까 싶어서.”

“네? 그 실험적 레스토랑을 이곳에 런칭하시겠다구요?”

“어. 실험적 레스토랑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나의 검증을 받은 셰프들과 교수진, 그리고


레스토랑들이잖아.”

개수를 늘릴 뿐만 아니라, 그곳을 런칭하는 장소가 라스베이거스라면 반유현 팩토리에 또 다른 신선한


바람을 불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관광청 놈들이 나한테 함부로 못 하게 할 수도 있고.”

반유현 화이트를 라스베이거스에 추가적으로 런칭한다는 계획이 떠올랐을 때,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사람들을 짓밟을 계획들까지 한 번에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관광청 놈들을 짓밟기 위해 이런 계획이 떠올랐을 수도.

무튼, 순서는 중요치 않다 내가 하는 이 행동들이 모두 나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여기 올 때에, 나에게 제안했던 호텔들한테 싹 다 답장 보내.”

“뭐, 뭐라고 보내면 되겠습니까?”

“레스토랑 브랜드 ‘반유현’을 런칭하고 싶은 호텔이 있냐고.”

“그 호텔들이 이전에 제안했던 조건들이 있으니 그 조건 그대로, 반유현 화이트를 런칭하시겠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그들이 내 레스토랑을 런칭하고 싶어서 나에게 제안했던 조건에 한 가지를 더해서.”

라스베이거스 내에 존재하는 모든 호텔들은 그 자금력과 규모에 맞게, 나의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위해


셰프라는 직업으로 상상하기 힘든 돈과 대우를 제시했었다.

나는 그 조건에 더해 한 가지를 더 제시해, ‘반유현-화이트’를 런칭할 생각이었다.

“레스토랑 ‘반유현-화이트’가 런칭되는 호텔, 그리고 그 호텔의 모든 셰프들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주최하는 모든 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

그리고 정면 대결이었다.

***

“반유현 셰프가 다섯 개의 ‘반유현-화이트’, 그리고 포시즌스 호텔의 두 개의 레스토랑…… 총 합해서


일곱 개의 레스토랑을 라스베이거스에 런칭하기로 했습니다.”

소문은 빠르게 돌아, 관광청까지 퍼졌다.

아니, 이들은 반유현이 무려 일곱 개의 레스토랑을 런칭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온갖 정보력을


동원했어야 했다.

“딱 들어맞네. 숫자가…….”

행사 기획 총괄 디텍터 케인은 저도 모르게 아찔해졌다.

이 모든 것이 반유현의 소행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반유현-화이트’ 각각 다섯 개에다 포시즌스까지 더하면 여섯 개의 호텔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대형 호텔 여섯 개, 그리고 그곳에 소속된 셰프들이 라스베이거스가 주최하는 모든


행사에 불참의사를 전달해왔다.

그 정확한 이유는 제시하지 않은 채, 호텔들은 행사 후원은 물론이고 행사 장소를 제공하는 것까지 모두


취소를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위약금은 우습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관광청에 돈을 지불했다.

“팔라스 호텔, 지배인 연결해봐.”

모든 정황상 반유현의 레스토랑을 런칭하게 될 호텔들이 관광청이 주관하는 행사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인
것 같았다.

“그게 말이 되나…….”

그의 파급력이, 특급호텔이 관광청을 등지게 할 만한 것이었단 말인가.

그 때문에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축제인 ‘라이프 이즈 뷰티풀 음악 & 미술 축제(Life is


Beautiful Music & Arts Festival)’, '라스베가스 언코크드'(Vegas Uncork'd)에 엄청난 지장이
생겼다.

마음으로는 이 모든 것이 반유현의 소행임을 얼추 알았지만, 이성적으로는 정확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개 셰프 한 명이 벌인 일이라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안 받아!”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행사 기획 총괄 디텍터, 케인은 이 도시 내에서 꽤나 많은 권력을 누려왔었다.

세계적인 관광지의, 대부분의 축제를 총괄하는 그는 당연히 그에 따른 대우를 받아왔었다.

그런데, 반유현이라는 셰프 한 명에 의해 어쩌면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

아니, 자리는 고사하고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축제를 망가트려 놓았다는 역사적 대역죄인이 될지도 모른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행사 참여 및 후원을 갑작스럽게 거부한 호텔 중 가장 큰, 팔라스


호텔의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디렉터님. 지배인입니다.

“대체 뭐요?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어?!”

그가 지배인으로 승진하는 것에는, 케인이 관광청의 본부장으로 있을 때에 많은 도움을 줬었다.

호텔 그룹의 간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케인은 호텔의 인사에도 미약하게나마 아주 간접적으로


개입하곤 했는데, 그 도움을 받은 것이 현 팔라스 호텔의 지배인이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니…….”

-원수로 갚다니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디렉터님.

“그럼 뭔데? 이유도 말하지 않고 모든 후원과 장소제공, 거기다가 팔라스 호텔에 속한 셰프들까지 모두
불참 의사를 보낸 건 뭡니까?”

케인의 고성이 수화기로 전달되었고, 팔라스 호텔 지배인의 말이 얼마 있다가 들려왔다.

-저희도 살기 위해서입니다.

“뭐?”

-레스토랑 반유현을 런칭하는 것에서, 다른 호텔에게 밀린다면…… 저희 호텔의 입지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라고요?”

어이가 없었다.

라스베이거스 내에서 가장 거대한 호텔이라고도 불리는 팔라스 호텔이, 일개 셰프 한 명 때문에 관광청을


등진다니.

더군다나 그 이유가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5 성급 특급호텔이 한다는 소리가…… 그렇게나 이유가 없소?”

-디렉터님께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 반유현이라는 셰프의 이름이 이유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게 이유가
되겠습니까? 저희뿐만아니라, 저희와 동급의 특급 호텔 다섯 개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주최의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고도, 그 이유에 납득이 되지 않습니까? 물론, 관광청의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는 저희도 불이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호텔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잃음에도 반유현이라는 가치를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케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지배인의 마지막 말이 핸드폰 스피커를 울렸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여러 가지 축제를 만들어 성공시킨 이력이 있습니다.

“추, 축제?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지금!”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주최, 세계 최대의 미식축제인 ‘언코크드’를 뛰어넘을 축제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무려 여섯 개의 특급 호텔들이 관광청의 협조에 응하지 않는 이유가, 레스토랑 ‘반유현’을 런칭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가 대단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라…….

케인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특급호텔 다섯 개, 아니 포시즌스까지 포함해 여섯 개의 호텔과 함께 추, 축제를 기획한다고? 제기랄.


우리도 대응을 해야 돼. 이대로 파묻힐 순 없어.”

“마, 맞습니다!”

“반유현에 대적할만한 셰프가, 그래도…… 이 라스베이거스 안에는 있잖아.”

***

“이 사실들이 알려지면 ‘라이프 이즈 뷰티풀’ 축제 기간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리겠습니다.”

포시즌스에는 브랜드 ‘반유현’의 레스토랑을 뷔페 형식과, 파인 다이닝 형식으로 각각 따로 두 개


런칭하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었다.

그에 더해 새롭게, 팔라스 호텔, 더 메종 호텔, 윈스 호텔 등 총 다섯 개의 호텔이 ‘반유현-화이트’를


유치하기 위해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호텔들은 각각 호텔 내부에 레스토랑을 적게는 다섯 개, 많게는 열네 개까지도 소유한 호텔들이었는데


그에 따라 그들이 보유한 셰프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특급호텔들이 내 쪽으로 붙었으니 관광청에는 타격이 클 거야.”

행사 진행비를 후원하는 것부터, 장소 제공, 그리고 인력들까지 모조리 빼앗았다.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잘못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식의 사과를 할 줄 알았는데, 저들끼리 살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반격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고든 레지 셰프 사단의 레스토랑과 그에 속한 셰프들을


통해서요.”

“고든 레지 셰프라…….”

현재 미슐랭 22 스타를 소지한 고든 레지, 십여 년간 탑셰프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그는 라스베이거스에만


네 개의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 셰프였다.

매번 나의 삶에 등장하는 인물인 만큼, 변치 않는 요리 실력을 가진 셰프이기도 했다.

관광청은 고든레지를 전면에 세워 이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자신들이 보유한 인프라가 대거 빠졌으니, 강력한 한 명을 중심으로 세워서 힘을 한 번 실어보려는 것
같습니다.”

“고든 레지 셰프도 그 점이 마음에 들었으니 수락했겠지.”

고든레지는 라스베이거스 내에 자신만의 장이 열린다는 것에 흔쾌히 관광청의 제의를 수락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요 거점인 라스베이거스 내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의 진출 자체가 그에겐 위기였을 테니까.

“어쨌든, 고든 레지 셰프가 나의 반대편에 섰다는 거잖아?”

“그,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셰프님께서 준비하신 축제란 무엇인가요.”

“레스토랑 ‘반유현’이 라스베이거스에 상륙했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주최하는


모든 축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축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더 빠르게 그에 따른 준비를 하겠습니다.”

저들이 고든 레지 셰프를 사용한다니, 물리쳐야 될 적이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내 이번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재물은 고든 레지 셰프로 정해졌잖아. ‘반유현-화이트’ 셰프들하고


지금 반유현 팩토리의 A,B 반에 있는 성적 우수자들 라스베이거스로 소집해.”

구체적으로 변하니 내가 세워야 할 전략들도 명쾌해졌다.

126 화. 그때 그 사람 (5)

[ 라이프 이즈 뷰티풀! 라스베이거스 최대 행사! 디너쇼, 고든 레지 셰프 단독 메인! ]

[ 원래 참석기로 했던 셰프들 대거 이탈! ]

[ 소용돌이의 핵심은 이번에도 반유현? ]

[ 라스베이거스 상륙하자마자 뒤흔드는 반유현의 영향력 ]

총 150 명의 셰프들이 포시즌스 그랜드볼룸에 모여 있었다.

하나 같이 검은색 깃이 강조된 조리복을 입고 있는 셰프들이었다.

“다 모였지?”

내가 무대 위로 올라서자 다 같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이들의 표정을 둘러보니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품은 얼굴들이었다.

150 명이 하나 같이 이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에, 이 조직의 기운을 알 수 있었다.

몽토르게이 거리, 반유현 골목에 위치한 ‘반유현-화이트 1, 2, 3, 4, 5’의 50 명과 반유현 팩토리 A


반 50 명, B 반 50 명의 셰프들이 모여 있었다.

당연히 반유현 팩토리 내에서 최상위의 성적을 자랑하는 이들답게 그 열정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내가 무대 위에 들어서고, 첫 마디를 내뱉자마자 곧장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고든 레지 셰프 아시죠?”

이미 이들도 라스베이거스의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여러 소문을 통해 듣고 왔던 터였다.

같은 기간 동안 라스베이거스에서 두 개의 축제가 진행되며, 한 축제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가 장 큰 축제라


불리는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고, 그 축제 내에 디너쇼라는 프로그램을 고든 레지 셰프가 이끈다는
것과…….

그와 동일한 시간대에 진행되는 다른 한 축제는 반유현이 새롭게 라스베이거스에서 구상하고 있는


축제임을 알고 이 자리에 온 셰프들이었다.

그 둘의 대결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그 전쟁에서 싸울 병력들이 자신들이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던 것이었다.

[ 고든 레지 vs 반유현의 싸움. ]

[ 정통 셰프 vs 초신성 셰프! 과연 누가 라스베이거스의 왕이 될 것인가! ]

더군다나 고든 레지가 소유한 미슐랭 스타는 22 개, 내가 소유한 미슐랭스타는 23 개로 각종 매체들이 이


대결 구도를 그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에 따라 대중들의 관심도 라스베이거스로 쏠리고 있었다.

“제가 이 도시를 주물러 볼 생각인데,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내가 그 말을 뱉었을 때는, 이들의 설레는 표정에 엔돌핀마저 감도는 것 같았다.

“우리의 브랜드 ‘반유현’이 완벽하게 자리 잡고, 여러분들도 미식의 도시라는 이곳에서 꿈을


펼쳐보세요.”

그리곤 긴장감이 서서히 올라갔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축제를 구상했는지 궁금증이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고든 레지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 아시죠?”

비프 웰링턴.

쇠고기를 햄과 파이로 싸서 오븐에 구운 영국 전통 요리 중 하나였다.

고든 레지의 많은 레스토랑에서 쓰이는 메인 요리로, 그의 시그니처 요리로 자리 잡은 메뉴.

그가 행사에 어떤 요리를 내놓든지, 완벽히 손님들을 이끌어 올 수 있는 메뉴로, 나는 비프 웰링턴을


선정했다.

“그의 시그니처 메뉴를 우리는 보급형 메뉴로 선보일 겁니다.”

이들도 고든 레지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우와아아아아!

***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5 성급 호텔, 펠리지오.


그곳의 한 레스토랑을 총괄하고 있는 셰프.

-펠리지오 호텔 총주방장. A.톰슨

반유현이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반가운 마음과 그가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자마자 벌이는 일들에 대한 기대감, 두려움이었다.

“그때 그 사람이 아니야…….”

불과 몇 년 전, 반유현이 미슐랭 스타를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언코크드 축제에 자신의 부스를


반유현에게 전적으로 맡겨 그를 돋보이게 해준 그였다.

그리고 톰슨은 며칠간 반유현과 함께하면서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었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그릇이 작았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3 년 만에 미슐랭 23 스타…… 그리고 귀환……. 이 호텔 전체의 모든 것을 걸고 그를 잡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붙잡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으니까. 흠. 그나저나 나를 기억하시겠지?”

그의 말을 듣는 것은 ‘고든 레지’ 셰프였다.

“그야 모르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반유현이가, 자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겸손했겠어?”

“참…… 섭섭한 말이네. 그럼 나를 왜 찾아온 거야? 자네는 내가 반유현 셰프님과의 커넥션이 있다는
이유로 찾아온 것 아닌가.”

고든 레지는 톰슨이 약 3 년 전, 반유현과 함께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년간 셰프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온 그라면, 반유현의 조리법에 대한 특성과


그의 주방에서 습관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찌 보면 자신의 산하에 있는 셰프들과 반유현 사단의 셰프들과의 맞대결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축제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단서, 또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 걸로 섭섭해. 나이가 몇인데.”

더군다나 톰슨과 고든 레지는 펠리지오라는 호텔 그룹 안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톰슨 또한 고든 레지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빨리 말이나 해보게. 반유현 셰프 요리의 특성이 있나? 비슷한 라인이 있을 텐데 분명.”

실력있는 셰프에게는 감출 수 없는 색깔이 있다.

실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만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소리고, 그 색깔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었으니까.

매번 한식만을 요리하던 사람의 손에서, 중식이나 일식이 만들어졌을 때 은밀하게, 아주 묘하게 비슷한
풍미가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셰프의 색깔이라 할 수 있었다.

고든 레지는 그것을 셰프의 라인이라고 칭했다.


어떤 요리를 하든 셰프는 자신이 가진 라인에서 크게 벗어나는 요리를 할 수 없다는 것.

더군다나 미슐랭 23 스타를 얻은 셰프라면, 분명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의 요리가 있을 터였다.

“없어…….”

“뭐? 농담하지 말게나. 자네가 그걸 모르면 대체 누가 알겠어.”

“말로 그 범주를 규정할 수 없는 셰프라네.”

“참나…… 여기나 저기나 다들 반유현 셰프 편이라니, 외롭구만.”

톰슨은 그 당시에 반유현이 했던 요리를 떠올려봤다.

“갈비찜, 규카츠, 파스타……. 자네 말대로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졌더라도, 셰프의 색깔이 묻어 나오기
마련인데…….”

완전히 다른 최상의 맛이었다.

각각의 요리 모두가 각 요리 최고의 셰프가 커스텀해 만든 것처럼.

멍하니 그때를 회상하는 톰슨을 본 고든 레지가 혀를 찼다.

“과거 회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돋보일 전략을 짜야 되네. 톰슨. 정신 차려.”

“아니야…… 생각을 달리하는 게 어때? 반유현 셰프님과 차라리 힘을 합치는 게…….”

“셰프님, 셰프님, 거리는 것도 참 거슬리는구만. 어? 이게 얼마나 기회인지 몰라? 리스크를 충분히 안고


갈만한 기회야. 라스베이거스의 주인이 진정 누구인지 가르고. 내가 이번에 그를 누르고 확실한 주목을
받아봐.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확실한 지원을 받을 거야. 내 입지를 공고히 하고…….”

“알겠네. 당연히 그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반유현 셰프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 굳이 서로


손님들을 찢어 먹으려는 경쟁을 하기보단, 협력하는 게 어떻겠어?”

“자네도 나를 무시하는 건가?”

대화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고든 레지가 열등감에 빠져있는 것만 같았다.

하기야 평생을 요리에 쏟아부어 22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었건만, 반유현은 3 년 만에 23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었으며, 이번엔 자신의 주요 거점인 라스베이거스를 그대로 털어먹으려고 하는 빌런이
반유현이었다.

모든 역량을 짜내서 도와줘도 모자를 톰슨이 이런 미온적 태도를 보이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자네가 질 거란 말은 안 했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누구의 축제에 사람이 더 많을지 잘 알아보라고.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축제가 열리기로 했으니까.”

“허허…… 반유현 셰프님은 그때 그 사람이 아니라니까. 물론, 그때, 3 년 전에도 자네가 이렇게 방심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야.”
***

라스베이거스 도시 전체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락스타와 DJ 들이 튼 음악, 그리고 사람들은 술에 취해 흥겹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뜨거운 열기가 도시 전체를 덮었다.

나는 저쪽에서 들려오는 음악들을 들으며 나만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라는 라스베이거스 최대의 축제, 그 현장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팔라스 호텔의 셰프들도 준비가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의 브랜드를 유치하기에 성공한 다섯 개의 호텔, 그곳의 직원들과 셰프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의


축제를 도왔다.

우와아아아아!

나를 비롯한 내 산하의 셰프들이 바쁘게 움직이자, 이미 우리의 요리를 먹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펜스


뒤로 줄을 서 있었다.

준비를 하고 있는 중에도 환호를 질러댔다.

“오늘 뭐예요!”

“반유현! 와아아아!”

“여기 줄 서면 음식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같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이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라스베이거스 내에 퍼지고 있는 향 때문이었다.

“150 명이 한 번에 메뉴 테스트를 하니까 냄새가 대단합니다.”

“그렇지.”

“음? 설마…….”

“탄수화물 굽는 냄새가 사람을 안정시킨다는 것 몰라?”

고기를 굽는 냄새보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향.

셰프 150 명이 다 함께 오븐에 파이를 굽는 냄새가 도시 전체에 퍼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부터 시작된 거야. 경쟁은.”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고든 레지, 내가 관광청을 짓밟는 것에 제물이 될 그.

그도 이곳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나처럼 그의 셰프들과 함께 디너쇼를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와! 냄새 죽인다!”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들고 있었을 때, 준비해놓았던 대형 전광판이 켜졌다.

그 전광판에는 나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는데, 나는 도마에 쇠고기 안심을 올려놓고 소금과 후추를 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고든 레지 셰프의 시그니처요리, 비프 웰링턴.

쇠고기를 감싼 페이스트리 반죽이 구워지는 냄새에, 내가 요리를 하는 시각적인 효과까지 더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나는 조금 더 과장된 몸짓으로 조리를 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고기를 뜨겁게 달궈진 팬에 씨어링하는 소리, 그 소리에 스탭이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냄새, 시각, 소리까지 더해져 사람들의 기대감은 올라간다.

우와아아아!

저쪽에서 들려오던 음악 소리도 줄어들고 있었다.

고든 레지와 관광청의 합작품, 디너쇼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는데, 내 앞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저들은 식은 요리를 손님들에게 내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127 화. 그때 그 사람 (6)

“아뮤즈 부쉬(Amuse-Bouche) 형태로, 뷔페처럼 여러 가지 요리를 준비했고 샴페인, 와인, 맥주 등


각종 주류와 음료들도 뷔페처럼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열린 고든 레지의 디너쇼를 보고 온 오스틴이 내게 보고했다.

아뮤즈 부쉬는 정찬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음식 중 하나이며, 한입 또는 두 입으로 식전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요리였다.

고든 레지는 축제의 형식에 맞게 간단히 술과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다양하게 뷔페 형식으로


꾸린 듯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인원의 1/3 정도의 인원이며, 대부분이 그의 지인인 셰프들인 것 같았습니다.”

“결국 진정한 관광객들은 모두 여기에 있다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물론, 그 요리들의 주인이 될 사람들이 대부분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고든 레지 셰프의 네임드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만만치 않지. 그런데, 축제의 색에 맞지 않아.”

이곳, 라스베이거스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광객이다.


미식의 도시에 걸맞게, 먹거리도 이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요소이지만.

관광객들은 더 많은 신선한 경험을 원한다.

뷔페 형식으로 요리와 음료를 갖다 놓는 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곳 아닌가.

물론, 고든 레지의 요리라는 프리미엄이 붙겠지만.

우와아아아아!

나의 프리미엄이 더 강한 듯했다.

더군다나 나는 후각, 시각을 자극할만한 무대를 꾸며놓았다.

150 명의 셰프들이 ‘ㄷ’자의 형식으로 펼쳐진 조리대 앞에 정렬해 있었고, 오븐에서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ㄷ’자로 배치되어 있는 조리대 센터에는 내가 있었고, 그 뒤로는 나를 비추고 있는 전광판이


양옆으로 붙어 있었다.

또, 배치된 조리대는 펜스가 둘러치고 있었는데, 역시나 사람들이 그 울타리를 붙잡고 있었다.

오븐에서 풍겨오는 냄새와, 전광판에 비친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소고기 안심이 시어링 됐을 때는, 고기가 식기 전 홀스래디쉬(Horseradish) 소스를 발랐다.

홀스래디쉬는 서양 고추냉이라고도 불리며, 강렬한 매운맛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에 버터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를 넣고 부드러운 맛으로 중화시킨 소스를 만들었다.

고기가 식기 전 이 소스를 바르면 소스의 풍미가 더 강하게 배어든다.

위이이이이잉!

양송이와 마늘, 버터, 허브 등을 넣고 믹서기에 갈아 넣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볶아 수분을 날려 만든 뒥셀(duxelles)이라고 불리는 이 요리는.

비프 웰링턴에 더해져 식감과 풍미를 더했다.

“저는 새우살도 갈아 넣습니다. 고든 레지 셰프님의 비프 웰링턴과는 다른 재료입니다.”

갈아 넣은 새우의 향은 미미하지만,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비프 웰링턴의 맛을 보여줄 터이다.

요리가 점점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가 줄었는데, 이는 저들의 표정을 보니 내 요리에 진지하게
빠져든 것만 같았다.

미슐랭 23 스타의 요리는 무엇이 다를까. 왜 사람들이 나의 요리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풀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결 같은 얼굴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짭짤한 햄으로 이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베이컨을 사용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직접 만든 베이컨을 랩 위에 올리고 뒥셀을 골고루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시어링한 쇠고기 안심을 올려 김밥을 말 듯이 고기를 말았다.

“소 안심, 양송이버섯, 새우, 베이컨, 페이스트리…… 이렇게 재료를 감쌌는데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내가 모든 조리를 끝내고 그것을 오븐에 넣었을 때, 정확히 시간이 들어맞았다.

띵!

내 옆에 있던 하나의 오븐이 ‘띵’하고 울리기 시작하자.

150 명의 셰프들의 옆에 있던 오븐들이 동시에 울렸다.

띵!띠띠띠띵! 띵!띵!

150 개의 오븐이 요란하게 울리며, 나와 나를 따르는 셰프들의 디너쇼 시작을 알렸다.

우와아아아아!

***

사람들이 펜스 안으로 입장하고, 비어있는 조리대에 가서 비프 웰링턴을 받았다.

큼지막한 비프 웰링턴은 육즙이 새어나가지 않게, 셰프들이 그 자리에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포장해주었다.

바스락!

비프 웰링턴의 가장 바깥쪽, 고기를 감싸고 있는 페이스트리가 바삭하게 씹혔고 그 뒤로 새우의 풍미를


담은 버섯, 홀스래디쉬 소스가 발려진 안심, 그리고 육즙의 순서로 맛이 뿜어져 나왔다.

화우우우!

우와아아아!

하하하하하!

요리를 집어든 사람들은 저마다, 환호를 지르며 몸을 흔들었다.

“나, 나, 이런 비프 웰링턴은 처음이야!”

브랜드 반유현 산하의 150 명의 셰프들, 그 셰프들은 고든 레지의 시그니처 메뉴를 똑같이.

아니, 더 높은 수준의 맛으로 만들어냈다.

내가 이야기했던, 그의 대표메뉴를 보급형으로 더 맛있게 만들겠다는 계획이 실천된 것이었다.

“에에? 고든 레지 셰프 밑에 있다가 반유현 셰프 밑으로 간 거예요?”

“와! 이 정도면 메인 셰프해도 되겠는데! 하하하.”

사람들은 나의 브랜드 산하에 있는 셰프들, 즉, 자신에게 비프 웰링턴을 선사해준 셰프에게 이와 같은


질문들을 뱉어냈다.

셰프들은 멋쩍게 웃으며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반유현 셰프님께서 모든 레시피와 조리법을 조절해주셨습니다. 메뉴 테스트만 다섯 번 넘게 했습니다.”

“와……. 그…… 반유현 셰프 소문으로 들리는 맛에 대한 그 집념이 다 진짜예요?”

“네.”

나는 또, 샌드위치, 또는 케밥처럼 종이에 포장된 비프 웰링턴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샴페인,


와인, 맥주 중 선택한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 음악과 조명을 틀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클럽처럼 바뀌어 버렸다.

그때,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바퀴가 달린 조리대를 펜스 안으로 끌고 왔고, 그곳엔 각종 과일과 빵,


그리고 과자들이 즐비하게 깔렸다.

그 조리대에는 팻말로 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 made in 반유현 ]

그 팻말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조리대로 달려가 과자를 맛봤다.

“야!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MOF 제빵분야 장인이잖아!”

“뭐? 미슐랭 스타 23 셰프가, 제빵분야 장인이라고?”

또, 다과와 비프 웰링턴이 소진되기 시작했을 때는 각종 해산물이 준비되었다.

“편백나무찜입니다.”

향이 강한 편백나무로 만들어진 박스에 각종 해산물을 넣고 수증기로 쪄내는 요리.

편백나무 찜통 안에 수분이 안에 그대로 갇혀 있어 해산물 그 자체의 풍미와 편백나무의 향이 어우려져


극강의 맛을 내는 요리였다.

편백나무를 찜통을 열자, 수증기와 그 대단한 향이 축제장 내에 완연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와우!

사람들은 마음이 안정되는 그 향을 느끼며, 비프 웰링턴의 맛을 느꼈다.

“황홀하다.”

“와…….”

“마약이야!”

술과 곁들여진 분위기는 또 어떠한가.

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잊지 못할 만큼의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그때,

띵!

현란한 EDM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에서 오븐의 시간이 다 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띵!

“뭐, 뭐야?”

띵!

그 소리가 나자, 내 조리대 뒤에 있던 전광판이 다시 밝아졌다.

그 전광판에 내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오븐에서 내가 조리한 비프 웰링턴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접시에 옮겨 놓았다.

접시에는 소형 카메라가 붙어 있었는데, 그 각도는 접시를 들고 있는 사람과 접시에 올려진 비프 웰링턴이


비추어지는 각도였다.

전광판에는 그 소형 카메라의 시점이 잡혔고, 정장을 입은 사내가 그 접시를 들었다.

“뭐야?”

이건 또 무슨 퍼포먼스이겠거니, 사람들은 모두 춤추는 것을 멈추고 전광판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요리한 비프 웰링턴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저것을 먹을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많았다.

전광판에 비치는 비프웰링턴과 그 접시를 든 젊은 사내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뭐야? 어디가는거야?”

그리고 사내가 발걸음을 멈췄을 때,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카메라에 비치고 있는 사람이 고든 레지였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아!

하하하하!

“이야! 반유현 셰프의 도발이야?”

“와우!”

그리고, 전광판에 비친, 접시를 들고 있는 사내는 고든 레지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께서 보내주셔서 왔습니다. 현재 이 카메라로 저희 축제의 장의 전광판에


이 모습이 모두 비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뭐요?

고든 레지의 생각보다 관광객들이 몰리지 않아 불편함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나의 직원이 저런 말을


내뱉었으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는 것은 당연했다.
-훠이. 훠이. 저리 가.

그 옆에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행사 디렉터 케인이 직원을 멀리 보냈다.

-셰프님께서 이 요리를 이쪽에 대접하라고 하셨는데 그냥 돌아갈까요?

-가. 빨리. 장난칠 기분 아니니까.

그때,

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사람들의 야유소리가 이곳에서 한번, 그리고 다시 스피커에서 한번 울려 펴졌다.

그 말은 즉, 고든 레지가 있는 저쪽에서도 사람들의 야유소리가 들렸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심리는 단순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 반유현이 직접 만든 요리.

그것도 고든 레지의 시그니처 메뉴인 비프 웰링턴을 그가 직접 먹고 어떤 반응을 할지 굉장히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크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야유소리에 관광청의 총괄 디렉터인 케인과 고든 레지가 당황했다는 듯이 연신


헛기침을 뱉어댔다.

-그, 독설 잘하시지 않습니까 고든 셰프님, 드시고 아무 말이라도 내뱉어보세요!

케인이 카메라에 달린 마이크의 성능을 무시한 듯 나지막하게 말했지만, 그 모든 말까지 전광판에


보여졌다.

-크흠! 하나 줘보쇼.

고든 레지가 비프 웰링턴을 들고 있는 사내에게 말하자, 사내는 나이프를 꺼내어 비프 웰링턴을


썰어주었다.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접시에 옮긴 비프 웰링턴, 사내가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베이스팅이 적절하게


되어있었다.

육즙에 의한 윤기가 좔좔 흐르는 단면, 사내는 그것을 잘 들어 고든 레지에게 넘겼다.

바스락!

겉면에 붙어 있던 페이스트리 반죽이 바삭하게 씹혔다.

그리고 몇 초 뒤, 순간 눈동자가 이리 저리로 흔들리는 고든 레지였다.

그가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유명 방송, ‘헬리쉬 키친(Hellish kitchen)’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중들은 현재 고든 레지가 느낀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있었으리라.

-크흠!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차마 입술을 떨어트리지 못하는 고든 레지의 모습이 전광판에 보여졌다.

“하하하하!”

“뭐야!? 왜 말을 못 하지?”

“맛이 없어도 감히 평가를 못 하는 거겠지!”

옆에 있던 케인은 고든 레지의 그러한 반응에 뿔이 났다.

-뭐, 뭐 하는 겁니까 지금? 저도 하나 주세요.

사내가 케인에게 비프 웰링턴을 썰어주었고, 케인은 그것을 입에 넣자마자 말을 꺼내려 했다.

-이게……! 으…… 어?

독설을 준비해놓고는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하는 표정.

그 두 남자의 벙찐 표정은 내 요리를 먹는 관광객, 손님들의 유희거리가 되고 있었다.

128 화. 그때 그 사람 (7)

요리에서 내공이 느껴진다는 것이 이런 걸까.

고든 레지는 자신의 시그니처 메뉴라며 매번 비프 웰링턴을 말했으면서도 이 정도 수준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자신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표정이 감춰지지 않았다.

그 당혹함에 얼굴마저 빨개지기 시작했다.

“뭐야! 고든 레지 왜 저래?”

“감동했나 봐!”

“엥?”

방송에 나와 매번 붉어진 얼굴로 셰프들에게 독설을 내뱉던 그의 지금 모습은 사람들도 좀처럼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그건, 그 옆에 서 있던 케인도 마찬가지였다.

“크흠!”

괜스레 헛기침을 하던 케인도 미식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서 수년째 행사 기획을 담당했다.

숱한 셰프들의 요리를 먹어봤으며, 미식가로 곧장 전향해도 될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지금 막 입에 넣은 요리와 같은 수준은 처음이었다.

‘뭐지.’
비프 웰링턴이 놓인 접시를 들고 있는 사내에게 한 점을 더 달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들의 모습이 모두 방송에 나오고 있었으니까.

어쩐지 초점이 없는 고든 레지의 모습도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그때, ‘반유현’ 소속의 직원이라는 사내가 한마디를 던졌다.

“한 점 더 드셔보시죠.”

반유현이 이 말을 하라고 시킨 것처럼, 귀신같은 타이밍이었다.

“으응…… 예?”

저도 모르게 손부터 꺼내는 케인과 고든 레지.

그 둘은 새롭게 먹은 비프 웰링턴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바삭한 페이스트리 반죽의 고소한 풍미, 그리고 양송이와 새우의 향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쇠고기
안심만이 낼 수 있는 고기의 풍미가 퍼져 나왔다.

그 풍미는 페이스트리 반죽 안에 갇혀 더욱더 강해진 것이었고, 그 육즙 또한 입안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고기에 발라진 홀스래디쉬 소스는 매콤함이라는 단순한 맛을 뛰어넘어 모든 재료들을 아우르는 배경이
되는 느낌이었다.

“양송이를 갈아서 볶은 뒥셀(Duxelles)에는 어떻게 새우를 갈아 넣을…….”

“저는 쇠고기에 발라진 소스가 머스타드가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강한 풍미를 내는 홀스래디쉬 소스라는
게…….”

둘이 눈을 마주치더니 자신이 경험한 바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때, 정장을 입은 사내가 이 둘에게 또 말을 건넸다.

“더 많은 요리들이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보시겠습니까?”

***

편백나무 찜, 편백나무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그 위에 최강의 맛을 올려두었다.

그 맛을 지속하기 위해서 각종 샴페인을 곁들였고, 알코올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각종 제과를 준비했다.

화룡점정으로 세계적인 DJ 들까지.

“이 최강의 음식들과 노래, 술…… 라스베이거스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든 레지의 디너쇼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던 음악이 이곳에서 틀어지자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라는


라스베이거스 최대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고든 레지의 또 하나의 패착이었다.

1 부가 진행되고,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기 전, 그사이에 고든 레지의 디너쇼가 있는 것이었는데 이 축제


전체를 아우르지 않고 자신을 돋보이려 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나의 존재가 없었다면 충분히 자신의 요리를 뽐낼 수 있었겠지만.

“이 정도론 안 돼. 완전히 묶어둬.”

방금 말했다시피,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기 전 그 막간의 시간이었다.

따라서, 지금 이 펜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거품일 가능성이 있다.

나라고 함부로 자신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것들을 준비하셨던 겁니까?”

지휘급 셰프들과 반유현 팀의 꽤나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내가 축제를 여는 것에 왜 이렇게


많은 요리들을 준비하느냐고 물었었다.

“강력한 요리를 계속 투입해서 저 축제 자체를 망가트려야 파급력이 있지 않겠어?”

비프 웰링턴, 편백나무찜, 그리고 제빵과 제과가 모두 소진될 때쯤, 내 산하의 셰프들은 새로운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카르파치오(Carpaccio)야.”

감자칩만큼이나 얇게 슬라이스한 쇠고기에 레몬, 루꼴라를 비롯한 여러 향료들을 얹어 먹는 요리.

새콤한 맛이 저들의 식욕을 한 번 더 돋궈줄 것이다.

또 이 현장에 어울릴 정도로 한입에 먹기 쉬운 요리였다.

띵! 띵! 띵!

흘러나오는 EDM 음악 중간에 또다시 새로운 요리가 나올 것이라는 벨소리가 섞여 들어가자 사람들은 다시
환호를 질렀다.

우와아아아!

나는 조리대 위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지켜봤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라는 축제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는 2 부에 공연을 맡은 DJ


들, 락 밴드의 멤버들까지 내가 벌여 놓은 축제의 장에서 한껏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저래도 되는 건가?”

“알아서 하겠지. 한두 푼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닐 텐데.”

분위기를 살피려고 쭉 둘러보고 있는데, 저 멀리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서 이 수많은 인파 중에 내 눈에 쉽게 띈 것이다.

“저 사람들도 요리 좀 가져다주지 그래.”

고든 레지와 관광청의 케인, 그리고 그 휘하의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한다는 듯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곤 그의 휘하에 있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DJ, 락 밴드에게 달려가 나무랐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진 않지만, DJ 와 락밴드가 춤추는 것을 멈추니,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여러분! 곧 저희 공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까 전 축제를 했던 ‘라이프 이즈 뷰티풀!’ 그 현장으로


와주세요!”

관광청의 사람들이 이곳의 인원을 다시 자신의 쪽으로 움직이기 위해 유명 그 무리에서 섞여 놀던 DJ 와


락밴드의 멤버들을 이용한 것이다.

그들도 관광청과 계약이 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하물며, 자신들의 공연에 사람이 텅텅 비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러분! 곧 시작됩니다! 무빗 무빗!”

손짓 몸짓까지 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홍보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카르파치오의 다음 요리인, 한입에 먹기 좋은 떡갈비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치이이이익!

150 명의 셰프들이 조리대 위에 그릴을 올려놓고, 미리 준비한 떡갈비를 먹기 좋은 크기로 굽기 시작했다.

지난번 은은한 편백나무 향이 이 축제의 장을 덮었다면, 지금은 달콤한 양념이 섞인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이 축제의 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한국산 소고기에 쏘맥 한 잔 하실 분! 제가 말아드립니다아!!”

내가 옆에 있던 오스틴의 옆구리를 치자 그가 조리대 위로 올라가 분위기를 달구었다.

***

사람들은 내가 만든 펜스 안을 꽉 채웠고, 내가 준비한 음식의 양보다 2 배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의 행사장에 왜 사람이 없지? 라는 호기심은 계속해서 내가 연 축제의 장으로


사람들을 모이게끔 만들었다.

[ 내가 왔다! 반유현! ]

[ 라스베이거스에 대단한 열풍 이끌어내다! ]

[ 라이프 이즈 뷰티풀 역대 최소 인원 ]

[ ‘반유현의 디너쇼!’ 완벽한 상륙해낸 반유현! ]

각종 매체, SNS 에서 그 날을 그렇게 묘사했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 도시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 날이었다.

내가 기획한 행사와, 내 브랜드 산하에 있는 셰프들이 만들어 낸 축제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라는 ‘라이프 이즈 뷰티풀’을 압도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셰프님.”


행사장을 정리하는데 며칠이 걸렸고, 그 마지막 날.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펠리지오 호텔의 톰슨이었다.

이 몸을 처음 라스베이거스로 초대해, 언코크드 행사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게 해줬던 사람.

그때의 활약으로 프랑스에서 루시앙을 설득해 레스토랑을 런칭할 수 있었다.

이유를 만들 자면 여러모로 이번 생에 많은 도움을 줬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 는 얼추 알긴 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이 대단한 셰프가 되리라는 것을요. 하하하.”

펠리지오 호텔에 나의 이름을 딴 메뉴를 구성하겠다고 나를 설득하기도 했었다.

특급호텔인 펠리지오에 미슐랭, 올해의 레스토랑, 최고의 셰프…… 등 아무런 이력도 없는 나를


파격적으로 등용하려 했었던 그는 확실히 셰프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눈이 있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하. 네. 저야 뭐, 반유현 셰프님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호텔측 간부들에게 조금 혼나고?


하하하하. 그 후로는 잘 지냈습니다.”

내 손을 붙잡고 정말 반가워하는 그였지만, 그 표정 한편엔 불편한 기색도 들어 있는 것 같았다.

100 년의 내공으로 보건대, 나한테 어떤 말을 하려고 찾아왔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때, 딱 떠올랐다.

그가 나에게 찾아온 이유가.

“톰슨 셰프님, 그러고 보니 고든 레지 셰프님과 같은 호텔소속이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펠리지오 호텔은 톰슨이 맡은 레스토랑 외에 추가적으로 2 개의 레스토랑을 더 오픈했는데, 그 중 한 곳에


고든 레지가 레스토랑을 런칭했다.

“역시나 눈치채셨군요.”

“하실 말씀이라도?”

“그…… 관광청에서 저에게 그렇게 부탁을 하더군요. 반유현 셰프님과 저와 관계가 있으니까, 자리를 한
번만 주선해 달라고.”

나와 톰슨 사이에 미약하게나마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안, 관광청, 그리고 고든 레지가 나와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한다.

이 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톰슨도 그들의 제안이 다소 어처구니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떤 이유로 자리를 주선해 달라고 하는 겁니까?”


“제 생각엔 아무래도 이번 축제 때, 반유현 셰프님께서 완전한 영향력을 펼쳐 보이셨으니……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행사에 협조 요청을 하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알다시피 여러 개의 축제가 열린다.

그 중 언코크드는 미식의 도시에 걸맞는 축제인데, 관광청은 이 축제에 나를 제명했던 것을 후회하고


톰슨을 그 화해 ‘사절단’처럼 나에게 보낸 것이다.

“행사 다 망쳐놓고, 이번에 또 망치면 위험하겠군요. 그쪽, 관광청 쪽은요.”

“아무래도…… 적은 예산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요…… 언코크드 행사가 진행될 때에도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번처럼 본인만의 축제를 만드시면…… 이제 라스베이거스 축제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톰슨 셰프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나의 되물음에 톰슨이 한 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저도 라스베이거스에 오래 생활하면서, 관광청 놈들이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톰슨은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될지 머뭇거리던 아까와는 달리 거침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참에 싹 다 뽑아버리시죠. 관광청은 그저, 치안유지와 정책 개선의 역할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뒤에 말을 덧붙였다.

“일단 지금은 제가 이렇듯 이해관계가 있으니, 만남은 한 번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129 화. 새로운 바람 (1)

“자존심도 없습니까?”

케인과 관광청의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주관하는 모든 행사, 그리고 추천 레스토랑, 올해의 셰프 등 모든 것에서 저를


제외한 이유를 설명해주실 분이 계십니까?”

나의 차가운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는, 자신들이 나에게 개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이 기획한 행사에 참석 거부를 했다고 하는 꼬라지들이…….”

말하다 보니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놈의 성질을 100 년이 지나도 죽이지 못한 건 내 탓이었다.

“오늘부로 레스토랑 ‘반유현’이 런칭되는 포시즌스를 비롯해서, ‘반유현-화이트’가 추가적으로


런칭되는 특급호텔 다섯 개는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주관하고 기획하는 행사에 절, 대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몇 개월 뒤에 열릴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싸이코 라스베이거스, 빅 베가스 맥주 축제…… 등 굵직한


축제들에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리고 이번에 보여줬고, 지난 프랑스에서도 보여줬던 것처럼 나의 이름을 딴 축제를 만들어 세계인이
나의 품 안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들 것이었다.

“죄, 죄송…….”

“죄송은 무슨, 이제 저와 직접적으로 말씀 나눌 일이 없으니 나가주세요.”

“셰프님!”

내가 이 정도의 태도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초점을 잃은 눈의 케인이었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라는 대형 축제를 그대로 말아먹었으니, 라스베이거스 시장에게도 한 소리를 들을


예정이었다.

아니, 이미 듣고 왔을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도시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셰프인 내가


비협조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에도 책임을 물어야 할 터.

무릎을 꿇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그렇게 완강히 보류하시는 것 말고도 판단을 잠시 보류하시는 것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내 대답은 하나였다.

“싫어요.”

***

내 라스베이거스 상륙 작전의 메인은 단연 포시즌스였다.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에 두 개의 레스토랑을 런칭하는데, 하나는 뷔페, 하나는 미슐랭을 노골적으로


노리는 파인 다이닝이었다.

“나눠 먹을 필요는 없잖아.”

단연 매번 레스토랑 런칭 때마다 폭발력을 중시한 나는, 두 레스토랑을 동시에 오픈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나의 레스토랑을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연이어 다른 하나의 레스토랑을 런칭할 생각이었다.

물론, 라스베이거스 내에 준비되고 있는 ‘반유현-화이트’는 반유현 팩토리 직원들의 총괄 하에 따로


진행되고 있었다.

“뷔페가 먼저여야 될 것 같아.”

순서를 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을 생각한 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성공시키기 위한 초석이었으니까.

라스베이거스에 매출이 가장 높고 관광객이 많은 레스토랑의 대부분이 뷔페 형식이라는 것에서 따온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그 메뉴는…….”

뷔페라 한들, 맛 좋은 메뉴만을 놓는다면 시장바닥과 다를 게 없었다.


명색이 미슐랭 23 스타인데, 테마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

“제가 자신 있는 것은 해산물을 주된 테마로…….”

이곳의 총괄을 맡을 메이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반유현 골목에서 메이와 함께 ‘반유현-화이트’를 운영해오던 셰프들도 이 뷔페에 합류하게


되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우수 성적자들은 레스토랑 ‘반유현’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화된 것이다.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셰프들도 메이가 말을 꺼내자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저, 저는…… 메이 셰프님의 말씀이…….”

“저희가 계란 초밥을 만들어 왔으니까. 저희 팀의 색을 살리는 것도…….”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에 감격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이것을 꿈꾸고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했던 것이었으니까.

“생각이 그렇게밖에 안 되다니.”

물론, 이들도 나의 독설을 피하지 못했다.

나의 한마디에 벌벌 떠는 이들을 보곤 메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해산물…… 초밥…… 그런 아이디어라면 그냥 한식 뷔페, 일식 뷔페, 인도식 뷔페 단순하게 하지 그래?”

내가 그들의 말을 듣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자 메이의 표정도 이내 굳어졌다.

“그, 그럼 라스베이거스에 특성에만 맞는…… 라스베이거스에 놀러 오는 관광객들이 먹거리로 무엇을


찾을지 생각해보겠습니다.”

“됐어. 이미 다 생각해놨으니까.”

나는 이미 뷔페의 메뉴 구성을 어떻게 할지 이미 다 생각해놨었다.

“라스베이거스하면 떠오르는 거 있잖아. 정열, 열정, 젊음, 화려한 밤…… 등등.”

확실히 라스베이거스에 오는 사람들이 신선하다고 느낄 만한 요리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뷔페를 채울 요리들을 말이다.

“그 외에도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들, 카지노, 도박…….”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사업의 규모는 크게 증가하는 추세는 아니었다.

볼거리와 먹거리 또는 각종 행사와 축제들이 많아지면서 그것들을 찾는 관광객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에 방문하고 카지노를 방문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아이디어는 그곳부터 시작했다.


“각 나라의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들, 있잖아.”

각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그에 따른 먹거리도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행운을 빌며 먹는 음식들 또는, 그것을 먹게 되면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 음식들.

나는 그 요리들을 뷔페 전체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와…… 진짜 그것만큼 맞는 주제가 없네요!”

“커허…….”

한 해가 바뀔 때에 그 새로운 해의 행운을 빌며, 각 나라별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만 모아놓아도 수백


가지가 될 것이다.

또, 이는 관광객이 많은 라스베이거스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설정이었다.

“코테치노 콘 렌티치(Cotechino con lenticchie), 올리 볼렌(Olie bollen), 쟈오쯔(餃子),


바실로피타(Vasilopita) 등등 뭐 많잖아.”

세계 각국의 음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이들은 또 나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있는 스물다섯 명은 대부분 국적이 다르네, 각각 자신의 나라의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로 여섯 시간
뒤에 메뉴 테이스팅.”

내가 방금 한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르는 셰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때, 메이가 옆에서 소리쳤다.

“다들 뭐해! 여섯 시간 뒤에 메뉴 테이스팅이라고 하셨잖아! 안 움직여?”

메이도 ‘반유현 화이트’를 운영하며 내가 주방을 움직이는 방식을 몸소 배웠나 보다.

“파리로 돌아가고 싶냐?”

그녀의 말에 셰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라스베이거스에 소집된 총 150 명의 셰프들, 기존에 반유현 골목에서 ‘반유현 화이트’ 다섯 개의 매장을
각각 운영하던 50 명의 셰프들을 둘로 나눴다.

그렇게 스물다섯 명은 메이가 총괄하는 뷔페를 맡을 것이고 나머지 스물다섯 명은 제리가 총괄하는
파인다이닝을 맡을 것이었다.

또, 나머지 100 명의 셰프들 중 50 명은 이곳에 ‘반유현-화이트’를 런칭하게 될 것이고, 나머지 50 명은


프랑스 반유현 골목의 ‘반유현 화이트’를 새롭게 맡게 될 것이었다.

그에 따라 또 ‘반유현 팩토리’의 A 반과 B 반에는 공석이 생겼고, 그 반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심화되었다.

그리고 이번 반 배치 테스트에서 A 반과 B 반을 차지하게 될 유력 후보로 떠오른 팀의 교수진들은 모두


반유현과 접점이 있는 이들이었다.

UAE 하이든 왕세자의 개인 셰프들 그중에서도, 미슐랭 7 스타를 가진 가타무라 마츠오 셰프.
또, 한국인 셰프들을 대거 거느리고 있는 윤종혁 셰프, 싱가포르 국제 대회의 심사위원장인 알베르 셰프,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의 총괄 셰프들…….

저마다 각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반유현 팩토리 내에서 입지를 올리고 있었다.

“대단합니다. 역시나 반유현 셰프님과 조금이라도 연이 있는 교수진들이 A 반과 B 반으로 승급할 유력


후보라니요.”

반유현 팩토리 내의 직원들이 그 점수를 가지고 반배치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나,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이 셰프들은 모든 평가에서 1 위를 기록하며 여태까지


점수를 쌓아오던 사람들을 제쳤습니다.”

“저희 역사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이례적이네요…….”

“몇 개의 팀을 추월한 건지……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팀은 반유현에게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의 자리를 내어준 이들이었다.

원래 주방에서 합을 맞춰온 셰프들이 같은 반과 팀에 배정되어 대단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합을 맞춰왔으니, 그 실력들이 낮은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미슐랭 7 스타의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도 대단합니다. J 반이었나요? 그 당시 가장 열등했던 반을 이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니요.”

“박수를 칠 만한 성과입니다.”

직원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반유현 팩토리 내의 교수진의 활약 또한, 반유현의 행보만큼이나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셰프들에게 반유현이라는 의미가…… 이 조직의 리더, 그 이상인 것 같습니다. 그의 존재는…….”

경영, 회계 또는 그 밖의 운영에 관련한 것들을 맡은 그들은 셰프들의 열정과 의지가 어디서 생겨나는지
매번 생각하곤 했었다.

대부분 경영, 경제 전공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반유현의 성공메카니즘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허허…… 저런 걸 보면, 제가 셰프라도 이 악물고 청춘을 걸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TV 에 반유현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라스베이거스에 가장 큰 축제,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 펼쳐진 날.

그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반유현과 그의 셰프들이 요리를 제공하며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는 장면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리포터가 그 장면들에 내레이션을 덧붙였다.


-라스베이거스의 최대 축제, 그 현장에는 역사상 가장 적은 수의 관광객들이 몰렸고, 반유현 셰프가
마련한 공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입니다.

“저러니…… 누구나 셰프라면 그의 이름을 얻고 싶겠지.”

-반유현 셰프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라스베이거스의 축제에 불참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의


비서팀이 발표를 했는데요, 덕분에 여러 행사를 주관하는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축제 현장을 비추던 화면이 두 리포터가 대화를 나누는 화면으로 변경되었다.

-그 외식업계에서는 반유현 셰프를 무슨……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보듯이 하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매번 기적 같은 일들을 만들어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요.

각종 종교의 ‘신’을 보듯이 하고 있다. 그 말은 마치 대본처럼 느껴졌었다.

두 리포터가 뒤에 말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밑밥을 까는 것처럼 말이다.

-반유현 셰프는 이번에 라스베이거스에 총 일곱 개의 레스토랑을 런칭하기로 했는데 제일 먼저 오픈되는


것은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반유현 셰프가 이제껏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그랜드 오프닝이 준비되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반유현 셰프가 바로 방금 전 보여드렸던 화면, 그 축제의 장소에서 일정기간 동안, 매일,
자신의 뷔페에 런칭할 메뉴를 하나씩 공개한다고 합니다! 

화면을 보고 있던 반유현 팩토리의 직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건 또 뭐냐는 식의 표정.

“라스베이거스를 아예 뒤집어 놓으려고 하시네.”

130 화. 새로운 바람 (2)

팔라스 호텔과 포시즌스 호텔은 조경이 아주 잘된 산책로로 이어져있었다.

두 회사의 합작품인 이 산책로 중앙에는 광장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두 호텔 그룹의 중요한 행사가 각각
치러졌다.

이번에 ‘라이프 이즈 뷰티풀’에 대적하기 위한 행사도 이곳에서 열었었는데, 나는 이곳에 또 다른


축제의 장을 마련하려고 했다.

“메뉴 하나씩 맛을 보여줄 거야.”

라스베이거스에 가장 먼저 런칭하게 될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

여느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랜드 오프닝을 기획했다.

“매번 유명 인사들을 모아놓고 하는 그랜드 오프닝도 때로는 변주를 해야 돼.”

뷔페라 함은, 여러 가지 요리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방식인데 그 널려있을 요리 하나 하나를, 각각


하루에 하나씩 시식회를 여는 것이었다.

“모든 요리 하나하나를 최상의 맛을 표현해 사람들의 기대감을 올리는 것이고, 이 시식회 자체가 또 한 번
라스베이거스를 떠들썩하게 만들 거야. 그리고…….”

이처럼 시식회를 열면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염두에 둔 것은 하나였다.

“메뉴 개수는 26 개. 10 일 뒤부터, 메뉴 하나씩 오픈한다.”

10 일 뒤부터 요리 하나씩 시식회를 보이니까,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날은 37 일 뒤였다.

“37 일 뒤라면…….”

“그래.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Uncork'd)가 열리는 날.”

언코크드 행사도 사실상 뷔페와 별 다를 바 없다.

수십 개의 부스를 돌아다니며 유명 셰프들의 요리를 먹는 것이 메인인 축제인데, 나는 그 축제 자체와


내가 런칭할 뷔페의 대결구도를 만들 생각이었다.

내가 뷔페를 오픈하는 날과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날짜를 동일하게 해, 확실하게 이 도시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유명 셰프들의 음식을 이것저것 맛보는 즐거움이 클지, 레스토랑 ‘반유현’이 만들어 낸 요리 26 개를
먹는 즐거움이 클지……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

“예! 셰프!”

“다시, 2 시간 뒤, 메뉴 테이스팅 시작.”

***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을 꾸미시는 겁니까? 셰프님.”

내가 라스베이거스에 상륙하고부터는 나를 자주 찾는 톰슨이었다.

이 도시에 많은 인맥과 입지를 가진 그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나도 좋았고, 더군다나 그의 인품을 알기에


그가 나를 따르려는 것을 막지 않았다.

“다른 뷔페와는 다르게 정성을 조금 담으려는 것뿐입니다.”

요리 하나 하나, 대단한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 자체부터 이미 차별성을 갖는다.

고급 뷔페라고 한들, 그 맛은 파인 다이닝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저 정량화된 레시피로, 셰프가 아닌 조리사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요리를 만들어냈다.

유명 셰프의 이름은 그저 간판으로만 사용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쩌면 정돈된 시스템 하에 돌아가는


대형 프렌차이즈보다 총괄 셰프의 영향이 미미 한 게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들이었다.

“계획을 알고도 이딴 맛을 내냐.”

“죄, 죄송합니다! 셰프.”

나는 달랐다.

전 세계인들이 즐거운 맛의 경험을 하기 위해 몰리는 언코크드.


지난 번 언코크드에서 활약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자본과 인프라를 갖추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들도 많았고, 내 레스토랑 자체의 성공을 위해서 어떤 맛도 놓칠 수


없었다.

“타말레(Tamale)가 원래 이런 맛이야?”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것 말고…… 어떻게 조리했어.”

25 명의 셰프들은 대부분 다른 국적들을 가지고 있었고, 런칭할 뷔페 레스토랑의 테마에 맞게 각각의


나라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들을 선보여 메뉴 테이스팅을 했다.

내가 굳이 메뉴를 일일이 구상할 필요 없고, 이들이 내보인 요리들의 맛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뷔페를
꾸릴 생각이었다.

“타말레를 한 것 보니 멕시코 국적이군.”

“그, 그렇습니다!”

“옥수수 가루의 입자 크기가 너무 고운걸 써도 안 돼. 입자크기를 키워서 고기의 육집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치즈는 3 종류를 넣은 것 같은데, 그 중에 체다는 빼. 향이 너무 강하니까.”

“예, 예! 셰프! 알겠습니다!”

타말레는 멕시코의 전통요리로서, 멕시코인들이 새해의 행복을 기원하며 먹는 요리였다.

옥수수 가루를 넣어 반죽한 도우에, 고기와 야채, 그리고 치즈를 넣어 만두처럼 만든 뒤에 옥수수 잎에
싸서 오븐에 굽는 요리.

멕시코 국적의 셰프 두 명은 이 요리를 선보였는데, 역시나 나의 눈높이를 넘기는 힘들었다.

“코테치노 콘 렌티치(Cotechino con lenticchie). 족발뿐만 아니라 돼지의 어깨살도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요리야.”

“그, 그렇습니다 셰프!”

‘코테치노 콘 렌티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땅을 긁지 않는 돼지의 발을 먹으면 행운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만들어진 요리였다.

돼지 족발을 삶아 다져 만든 소시지에 돈과 부유함을 상징하는 렌틸공을 함께 넣고 육수에 쫄여 만드는


요리.

착! 턱!

“어깨살은 근육이 많고 근육 사이에 지방은 적어서 그 식감을 살릴 수 있어, 이 정도의 족발을 사용할거면,
이 정도의 어깻살을 사용해.”

소시지를 만드는 고기의 비율을 직접 도마 위에 잘라서 보여주었다.

“저희 폴란드에서는 청어 절임을 행운의 음식으로 생각합니다……. 저희 폴란드와 스칸디나비아 쪽은


청어가 매우 흔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요리가 있는데…….”

내가 폴란드 국적의 셰프 앞에서자, 그가 긴장했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앞선 멕시코와 이탈리안 국적의 셰프들이 냉혹한 평가를 받았기에 저도 모르게 긴장한 탓이었다.

나는 그가 만든 청어 절임을 맛보지도 않고 말했다.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을 만들 생각이냐?”

수르스트뢰밍은 청어를 삭힌 것으로 대단한 악취가 나는 음식으로 유명한 것이었는데, 청어를 절인 것과


삭힌 것을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큼한 향이 너무 많이 났다.

“청어는 소금에 2 주만 절여 놔. 허브, 식초, 설탕, 레몬…… 통후추, 겨자씨를 끓여서 청어에 붓고
다시 3 일 절여. 이 요리의 핵심은 하나야. 작은 붓으로 혓바닥에 기름칠을 한 것만큼의 기름기, 그
미묘한 고소함과 아삭한 식감, 뒤로 전해지는 상큼한 맛.”

“예!! 셰프!”

벌써, 세 개의 나라의 요리를 평가하고, 맛의 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는 팁들을 몇 개 제시하니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이 메뉴 테이스팅을 하고 있는 현장 전체에 긴장감과 더불어 공포감이 함께 존재하는 것 같았다.

‘조절을 해야 되나.’

많은 셰프들, 아니 모든 셰프들이 ‘저 사람은 뭐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새삼스럽게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빵 MOF 를 따내는 등 매번 비현실적인 행보를 보여주었지만, 세계 각국의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의


기원과 그 맛의 핵심을 낱낱이 알고 있다는 것까지는, 저들이 어떤 상상을 하더라도 채울 수 없는
내공이었다.

심지어 내가 이번 생에는 밟아본 적도 없는 나라인 멕시코의 행운의 음식을 속속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괜찮아.’

그래서 오히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환생, 회귀를 떠올릴 수 없으니까.

“셰프님 대체…… 이것들은 다 언제…….”

메이 또한 이번엔 크게 놀란 눈치였다.

“밤새 연구하고 맛보고, 요리하고, 내가 이정도 노력을 하는데 너희들도 보여줘야지.”

이들의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의문들을 종식시킬, 내 입에서 나온 한 문장은 이들의 의지와 열정을
다시 북돋아주었다.

그렇게 선순환, 내 주방의 시스템은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예!! 셰프!”

셰프 총원이 우렁차게 소리쳤고 나는 다시 테이스팅을 이어나갔다.

“그래, 뷔페에는 디저트도 있어야 하지. 생각 잘했어.”


“감사합니다! 셰프!”

처음으로 나의 칭찬을 받은 셰프에게 온 시선이 꽂혔다.

그만큼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셰프들이었다.

“마지팬 피그(Marzipan pig)…… 독일 국적인가?”

“그렇습니다! 셰프님의 주방에 함께하고 싶어서!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했었습니다!”

마지팬 피그는 돼지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는 독일인들이 아몬드와 설탕을 갈아 만든 반죽을 돼지
모양으로 빚어 구어 낸 과자였다.

“제과제빵 실력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워, 원래는 그 분야를 꿈꿨으나, 반유현 셰프님의 한계 없는 행보를 보고 셰프로 길을 돌렸습니다. 결국


맛이 주는 즐거움은 제빵이든 요리든……! 아! 그리고 이번에 셰프님께서 MOF 제빵 부문에서도
수상하시는 것을 보고는 정말 기뻤습니다.”

“음, 그래?”

내가 또 다시 옆으로 이동하려는데, 그 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톰슨이 눈에 들어왔다.

톰슨과 몇마디를 나누고, 메뉴 테이스팅을 시작했는데 메뉴 테이스팅에 빠져들어 잠시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날 바라보는 게 귀신을 보는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아, 톰슨 셰프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 아닙니다. 바쁘신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가겠습니다.”

***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고든 레지의 말에 톰슨은 다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관광청은 무너졌어도, 저는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번 행사로 인해, 고든 레지는 이미지에 대단한 타격을 입었다.

괜히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편에 섰나 싶을 정도로, 미슐랭 22 스타를 가진 셰프의 무게감은 온데 간 데


없었다.

대중들이 반유현과 고든레지의 대결구도를 만든 것에서 민망함을 느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하신 방안이 그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반유현의 시식회가 당장 내일부터 시작되는데, 그 모든 요리들이 지휘급 셰프가 아닌, 그저,
그저 반유현 팩토리의 성적우수자인 그들이 하는 것 아닙니까?”

고든 레지가 본 한줄기 희망은 그것이었다.

반유현이 런칭하는 뷔페식 레스토랑과 런칭 전 그 시식회를 맡은 셰프들이 지휘급 셰프가 아닌, 즉


레스토랑 반유현의 검정 스카프를 맨 셰프가 아닌, 이제 막 반유현 팩토리를 졸업한 셰프들이라는 것.

물론 그들의 실력을 이번 축제 때 봤기에,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따르는 지휘급 셰프들이 이곳에 모두 온다면 그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다.

“전 세계에 있는 레스토랑, ‘고든 레지’에도 유명 셰프들이 많습니다. 각각의 ‘고든 레지’를 총괄하는
셰프들을 모두 라스베이거스에 불러, 언코크드 행사에 참여시킬 겁니다. 아무리 반유현 셰프가
대단하다고 한들, 반유현 팩토리를 갓 졸업한 셰프들이 ‘고든 레지’의 지휘급 셰프들의 실력과 명성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겁니다.”

톰슨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고든 레지를 만류했다.

“제발…… 제발요 셰프님. 그러다가 더 상하십니다. 제가 며칠 전 봤던 반유현 셰프와, 그를 따르는


셰프들은…….”

완전히 요리에 미친놈들이었다. 라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활활 타오르는 고든 레지의 눈빛을 보니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그는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아서였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언코크드 행사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하…….”

131 화. 새로운 바람 (3)

이전 축제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조리대가 다시 재정비되어 세팅되었다.

이는, 내가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음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모으게 했다.

“뭐야? 또 뭔가 하나 봐!”

“여기 반유현 셰프가 요리했던 자리잖아.”

“뭐지? 또 다른 축제가 있나?”

그렇게 사람들의 기대가 점점 모아질 때, 나는 거대한 플래카드를 그 자리에 걸어놓았다.

[ 반유현 26 메뉴 시식회 ]

“26 메뉴?”

“어쨌든 반유현이라잖아!”

그렇게 사람들의 호기심이 폭발했을 때는 SNS 를 다시 한번 활용했다.

-라스베이거스에 런칭할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 ‘반유현’의 26 가지 메뉴를, 26 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공개할 예정입니다. 오셔서 맛보시고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첫날인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의 현장에 몰려들었다.

우와아아아!

검은색 깃이 장식된 조리복을 입고 있는 셰프들이 등장하자, 엄청난 환호성이 나올 만큼.


“오늘 메뉴는 미국의 호핑존(Hoppong John)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새해의 부를 기원하며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호핑존.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들을 모아둘, 내 레스토랑에 제격인 음식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있는 이곳 라스베이거스가 미국 땅이었으니, 첫날의 요리로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모으기에도 제격이었다.

25 명의 셰프들, 그리고 내가 이전처럼 그 중간의 조리대에 서서 대형 팬을 돌리기 시작했다.

돼지 앞다리살을 넣고 볶다가, 그 기름에 갖은 야채를 볶아주고, 식감을 더하기 위해 파리에서 직접 만든


베이컨을 얹어 주었다.

또, 동부 콩이라 불리는 검은 씨눈이 있는 콩을 그 마지막에 넣어 살짝 볶아주었다.

‘콩을 불리는 시간과 말리는 시간까지.’

그 맛에 정교함을 최대한 살렸다.

또, 파리에 있는 나의 모든 레스토랑이 사용하고 있는 닭 육수를 부어주었다.

브랜드 ‘반유현’ 산하의 식자재 마트가 아닌, 셰프들이 직접 갖은 재료를 넣고 만든 닭 육수는 그


풍미를 배가시켜주었다.

이렇게 닭 육수를 넣고 끓인 재료들을 밥 위에 얹어 먹거나, 밥과 함께 다시 볶아 먹는데, 나는 풍미의


층을 쌓기 위해 볶은 밥을 이용했다.

닭 육수를 넣고 끓인 재료가 완성될 때쯤, 미리 연습을 해두었던 셰프들이 중식 팬을 거대한 화구 위에서


돌리며 시각적인 재미 또한 더해갔다.

우와아아아아!

냄새와 시각적인 효과가 더해져 관객들의 기대감은 더욱더 올라갔다.

그리고 모든 요리가 완성되었을 때, 경호원들이 펜스의 입구를 오픈했고 사람들이 조리대 앞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국그릇 같이 생긴 접시에 셰프들이 야채와 계란을 넣고 볶은 밥을 올려주면, 사람들은 내가 있는 방향의


조리대로 넘어와 ‘호핑존’을 완성했다.

“우와!”

내가 직접 국자로 관광객들의 밥 위에 돼지고기와 닭 육수, 그리고 콩을 함께 끓인 소스를 얹어 주자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요리를 먹는 관광객들이었다.

“국물에 밥을 얹었는데, 밥알이 이렇게 살아있을 수가 있습니까?”

“캬……!”

그리고 곧장 맛을 표현하는 관광객들.

기름에 튀겨지듯이 조리된 계란 볶음밥은 짧은 시간 정도는 국물에 배어들지 않게 조리되어 쉽게


으스러지는 동부 콩과의 대비되는 식감을 더했고, 동부 콩의 고소한 맛을 가미해 주어 맛의 수준을
끌어올려 주었다.

그리고 육수의 풍미가 입안에서 오래 머물도록 해주어 깊은 맛이 느껴지게끔 만들어 주었다.

“정말, 너무 너무 맛있습니다! 이전에 저희 어머니가 했던 것보다 더요!”

“감사합니다.”

내가 관광객들과 이야기하며, 육수를 밥 위에 얹어주고 있을 때 부끄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가 슬며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관광청의 축제 총괄 디렉터 케인이었다.

괜스레 처량해 보이는 그가, 계란 볶음밥이 담긴 접시를 든 상태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예, 안녕하세요.”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에게 국물을 얹어 주었고, 그가 곧장 맛을 보더니 소리쳤다.

“오 마이…… 갓…….”

그의 표정을 보니, 이 도시 전체의 인프라와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브라이언 산니발.

라스베이거스가 속한 네바다주(State of Nevada)의 주지사였다.

그도 라스베이거스의 현재 실태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에, 지금 막 보좌관이 보고한 내용들은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기획 행사들 줄줄이 취소. ]

[ 예산 편성 다시 해야 하나! 후원호텔, 기업들 반유현에게로 쏠려! ]

[ 반유현 한 명에 휘청이는 관광산업! ]

[ 라스베이거스의 다음 투자처는 반유현인가! ]

그 한 명의 셰프, 아니, 브라이언의 입장에선 웬 미꾸라지 같은 놈이 건재했던 라스베이거스의


관광산업에 흙탕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관광청장은 뭐래.”

“관광청장은 예산 집행이나, 정책에 관련된 컨펌을 하고 대부분의 실무는 케인이라는 관광, 축제 총괄


디렉터가 맡아 하고 있…….”

“그니까, 그 상사가 관광청장 아니냐고.”

“맞, 맞습니다만 꼬리 자르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서…….”

라스베이거스의 관광청장은 반유현 사태에 대해 책임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축제 총괄 디렉터 케인의 책임이다, 이 말이야?”

“관광청 내부에서도, 반유현의 장악력을 키워준 것이 애초에 케인의 기획이었다고 합니다. 반유현
셰프에게 갑질을 해댔고, 대결구도를 만들어서 처참하게 깨진 것이 지금 사태의 원인이라고들 하는
실정입니다.”

쾅!

브라이언은 책상을 내려쳤다.

네바다주의 인구 3 분의 2 가 살고 있는 라스베이거스.

그곳의 주요 산업인 관광산업이 단 한 명의 셰프의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또한 관광청에서 자처한 일이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관광청의 인사권은 나한테 있잖아.”

브라이언도 관광청 출신으로, 라스베이거스의 토박이임을 인정받아 주지사로 당선되었었다.

그 누구보다 그 내부의 실태를 잘 알고 있던 브라이언이었다.

“그렇습니다. 주지사님께, 관광청장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 윗물부터 싹 다 경질시켜.”

대형 호텔과 관광사업을 하는 기업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썩을 대로 썩은 관광청이었다.

자신이 관광청에만 있을 때에도 라스베이거스 내에 열리는 축제에 후원하는 기업들, 그리고 그 제도가
안정화되지 못했던 터라, 이렇다 할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 힘을 마구 휘두르다 문제가 생겼다.

매번 매출을 갱신하던 탓에 그들이 어떤 기획을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기어코 문제가


되고야 말했다.

“후. 제기랄. 내 잘못이지.”

네바다 주의 기둥 사업이라 할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축제들이 단 한 명의 셰프에 의해 흔들린다는 것은


라스베이거스 도시의 입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터였다.

한 명에 의해 흔들리는 기반에, 어느 기업, 어떤 투자자들이 투자를 하겠는가.

“차 준비시켜,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어.”

반유현을 더 이상 적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앞서 관광청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유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고, 손을 잡아 더


이상 라스베이거스의 추락을 막을 생각이었다.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반유현이 속해있는 포시즌스를 가는 길에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있는 것을 목격했다.

“여기가 그거야? 반유현의 26 메뉴 시식회?”


브라이언은 곧장 차에서 내렸다.

“뭔데 이거…….”

술도 없고, 음악도 없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곤 열광할 수 있는 것이었나.

주지사인 브라이언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펜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대기하셔야 됩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그를 막아섰다.

브라이언도 경호원들이 있었기에,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대치했다.

“주지사님입니다. 반유현 셰프를 만나러 왔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반유현 셰프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브라이언의 경호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벙찐 표정을 지었다.

“돼, 됐어. 기다리지 뭐.”

아무래도 관광청이 반유현 셰프에게 큰 잘못을 했나 싶었다.

주지사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음에도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

“어디에 줄을 서면 되는 겁니까?”

“저쪽 끝입니다.”

펜스를 막고 있는 사내 한 명이 아주 멀리, 이 줄의 끝을 가리켰다.

“주, 주지사님!”

“우리라고 특별한 게 있나, 줄을 서야지.”

***

수행원에게 주지사가 왔다는 보고를 듣고는, 그를 대우해줬다.

분명, 이 도시에 새롭게 형성된 권력인 나의 이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의 이름, 그리고 나의 비협조적인 행동에 의해 이 도시의 모든 축제가 망하게 생겼으니까.

“네, 반갑습니다.”

나는 내 앞에 먼저 고개를 숙이는 이에게 함부로 대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중년의 사내는 나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하고 있다.

“존경스럽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감사합니다.”

확실하게 나에 대한 태도를 정립한 브라이언에게 호핑존을 건네주자 그 태도는 더 정갈해졌다.


“아…… 이래서…….”

내가 유럽으로 건너갔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행보가 모두 이해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또한 미국 태생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호핑존을 먹어봤겠는가.

“이게, 호핑존이 맞습니까? 차원이 다른 요리가…….”

또, 미식의 도시라 불리는 라스베이거스에 수십 년간 살았던 그였다.

맛에 대한 조예가 깊은 그가 느끼는 감동은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 실력에 브랜드 파워까지 더해지니…… 일리가 있습니다.”

그나마 품위를 지키며, 접시를 모두 비워낸 브라이언은 접시를 내려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반유현 셰프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는지 저는 모르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잘못되었죠.”

“그, 그렇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고개를 숙이는 그였다.

그만큼 주지사에겐 이 도시의 사업들이 중요한 탓이었다.

“주의 역량을 동원해서 반유현 셰프님이 기획하신 축제나, 사업들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여러 명의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후원사를 선정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것 보다 나의 브랜드인 ‘반유


현’에 기대어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들의 태도가 확실하니 나도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의 역사와 전통은 매우 오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그렇죠.”

“이제 그 역사를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예……?”

다만, 내 생각이 너무 파워풀해 이들에겐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 손에 칼을 먼저 쥐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칼을 잘 휘둘러 보신 다음에, 제 생각을 들어보시죠.


아직 제 계획들이 주지사님에게는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에……예?”

“그 칼이 뭔지는 지금 이 수많은 사람들을 보셔서 아실 텐데요.”

저 멀리까지 끊어지지 않은 줄, 브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말의 구체적인 뜻은 몰랐을 것이다.

132 화. 새로운 바람 (4)


사람이 많아지면, 현금의 흐름을 만들고, 그렇게 생긴 현금의 흐름은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모으게
되어있는 법이다.

100 년을 살면서 경험한 이 흐름은 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이 흐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칼이란 게…….”

돈이 흘러가는 그 줄기의 흐름을 완벽하게 통제하겠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그 통제를 완벽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것을 이용해 나는 주지사인 브라이언을 흔들기로 마음먹었다.

-첫날 메뉴부터 대박 났다고?

-호텔에 투숙중인 모든 관광객들이 들렀다고 함.

-ㅋㅋ 한번 먹고, 또 줄 서서 또 먹기! #반유현 #반유현셰프요리 #웨이팅시간

일단은 SNS 가 그 시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부터 그래왔듯이, 나의 요리를 먹은 것을 자랑처럼 올리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모든 업소가 3 개월 예약이 밀려있고, 내가 축제나 행사에서 선보이는 요리는


공짜에 예약이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맛보기가 쉽지 않았으니, 이렇듯 운 좋게 나의 요리를 먹은
것이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사람들은 사진을 올려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걸맞게 각종 언론과 대중매체들이 움직였다.

[ 레스토랑 매출 급감! ]

[ 각종 편의, 관광시설 사람들 빠져! 모두 반유현에게로! ]

[ 라스베이거스 반유현 신드롬! ]

[ 반유현의 첫 메뉴! 호핑존! 미식의 끝판왕 반유현 셰프의 요리 ]

[ 반유현의 26 시식회 그 다음 메뉴는? ]

그 SNS 에 올라온 글들과 기사들을 브라이언에게 모두 보여준 뒤에,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대로라면…….”

“그렇습니다. 내일의 메뉴는 뭐고, 내일모레의 메뉴는 무엇인지 궁금하겠지요.”

이곳에 온 사람들 대부분 전 세계에서 몰린 관광객들이었다.

관광객의 특성이란, 추억을 쌓고 평범한 삶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중시하는 사람들 아닌가.

물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들은 어차피 타겟팅 대상이 아니었다.
나의 목표는 식사를 해도 아주 특별한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었다.

“이 도시에는 맛집들이 즐비하지만, 지금 제가 이렇게 선보이는 요리만큼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더 이상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미 브라이언도 요리사로서 내가 가진 명성과 입지를 알 터였으니까.

“더군다나 제가 26 일간 선보일 요리는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들입니다. 카지노에 단 한 번이라도 들렸고,


돈을 잃은 사람들은 괜스레 미신을 믿기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선보일 요리들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솔깃하게 할 요리들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맥시코…… 각 나라의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였으니까.

“앞으로 남은 25 일간의 메뉴를 주지사님께 드리면 이 도시 내의 관광청의 입지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후원기업들도 다시 긍정적인 시선을 보낼 것만 같습니다.”

어떤 날에 어떤 요리를 선보일지는 비공개였다.

나와 셰프들밖에 그것을 아는 이가 없었는데, 이것을 주지사와 그 휘하의 관광청에게 알려준다면 관광청은


지난번 행사 때 잃어버린 입지를 다시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비공개인 나의 메뉴와 일정을 관광청이 공개한다는 것은, ‘반유현’에 대한 통제를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을 테니까.

자연스럽게 기업들은 관광청과 나의 커넥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등을 돌린 여러 요식업, 관광


사업을 주력으로 삼는 기업들은 다시 후원의 손길을 건넬 것이다.

“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그 정보를 주겠다고 제안하니 브라이언의 표정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물론, 저들에게 이런 혜택을 거저 줄 리는 없었다.

“곧 열릴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의 규모를 더 크게 해주십시오.”

“예?”

나는 언코크드의 행사를 기반으로, 나의 장악력을 높이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행사를 내 발판 삼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인 뒤에 장악력을 높이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발판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빛이 나는 것 아니겠나.

“언코크드의 예산을 추가집행하시고, 라스베이거스의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 각국의 특급 셰프들을 다


모셔서 역대급 축제를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언코크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면서, 그 축제의 규모를 키우라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브라이언이었다.

“몸집을 더 빠르게 키우려고요.”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바다주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축제와 관련된 예산을 늘려, 언코크드를 역대급 규모로 키워놓으면
나는 그것을 제물로 삼아, 몸집을 더 불릴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니, 그 말을 알아들은 브라이언은 이전과 달리 언성이 높아졌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체! 그럼 저희가 이 제안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외적으로 반유현


셰프님과 커넥션이 있다는 것은 아주 좋지만, 결국엔 역사 깊은 언코크드를 희생양 삼아 개인적 이득을
취하시겠다는 건데…….”

“아마도 선택권이 없으실 줄 알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주지사인 브라이언은 선택권이 없었다.

“가만히 계시다가 그 역사와 전통이 깊은 언코크드가 무너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시는 것과…….”

“…….”

“그나마 제가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후원 기업들이 완전히 등 돌리는 것을 막고 역대급 규모의 언코크드를
연 주지사로 남는 것…… 어떤 선택을 하시던 저는 좋습니다.”

***

“이제는 손을 잡은 겁니까?”

[ 반유현의 26 시식회 3 일차. ‘스칸디나비아산 청어 절임’ ]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유일하게 반유현이 선보일 시식회의 메뉴를 알고 있는 기관이 되었고, 그에 따라


또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덕분에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고, 관광청은 약속대로 언코크드의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든 레지는 자연스럽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 세계 최대의 미식축제!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탑 셰프들의 부스 늘이기 시작! ]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셰프들을 주축으로 행사가 진행되던 과거와는 달리, 관광청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셰프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번 연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많은 준비를 하던 고든 레지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관광청과 반유현이 완전한 대결구도로 가는 줄 알았고 자신이 관광청 측의 대표 주자라 생각했던 고든


레지.

전 세계에 있는 레스토랑 ‘고든 레지’의 총괄 셰프까지 동원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가져와 지난번 축제 때 파리 날렸던 것에 대한 설욕을 하고 싶었는데, 이 흐름은 그렇지
않았다.

“제 부스의 개수를 줄여야 한다니요?”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셰프님…….”


관광청의 직원이 한 얘기는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저도 미슐랭 스타 20 개가 넘는 셰프인걸…….”

“셰프님의 명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행사의 성공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너그럽게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관광청 축제 총괄도 아닌, 얼굴도 보지 못했던 직원이 나와서 자신에게 설명을 한다.

반유현과 불과 미슐랭 스타는 1 개 차이.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있어 인지도 또한 그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쿡방, 먹방 열풍에 이어 고급 요리를 대중화시키는데 크게 한몫한 사람 중 하나라고 자부하기도 했으니까.

“그냥 사장 당하느니…….”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열등감이랄까.

또는 자격지심이랄까. 괜스레 반유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나도 해보지 뭐.”

“예?”

고든 레지의 나지막한 읊조림에 관광청 직원은 당황했다.

“저도 언코크드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나도 독자 노선을 타서 싸워보지 뭐.”

“아, 아니……! 셰프님!”

관광청의 입장에서는 부스 하나를 채울 파워풀한 셰프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셰프님, 그렇게 날을 세우실 필요는 없고 매번 하셨던 것처럼 저희 관광청하고 함께 하시죠!”

“이미 준비를 너무 많이 해서…… 관광청에서 나를 독보적으로 밀 주는 게 아니라면 작은 부스에 굳이 왜


들어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던데, 나는 새우가 아니잖아. 나도 내 이름 걸고 한번 해보지.”

***

“고든 레지?”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그 행사를 둘러싼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대로.

판이 커지고, 나는 그 판을 마음껏 주무르며 나의 입지와 장악력을 높일 것이다.

“우리도 총괄 셰프들 다 부를 거야.”

판이 커지는 만큼, 나도 레스토랑 ‘반유현’의 검정 스카프를 맨 셰프들을 집결할 생각이다.

더군다나 고든 레지 셰프도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 했으니, 어떤 방식일지 예상은 가지만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언코크드 역대 최대 규모, 레스토랑 ‘고든 레지’의 탑셰프들, 그리고 내 휘하의 셰프들.”

총 세 개의 거대한 세력이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그 날.

고든 레지는 벌써 총괄 셰프들을 라스베이거스로 불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그에 따라 화력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력이야 내가 당연히, 한 수, 두 수, 백 수는 위겠지만… 그의 인지도와 명성을 무시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내일이 오세치(御節料理)잖아.”

오세치는 일본 전통의 음식으로, 일본인들이 새해 시작 행운을 기원하며 먹는 음식이었다.

1 단, 2 단, 3 단으로 혹은 5 단으로 구성된 도시락으로 각각의 층에는 야채와 고기, 삶은 새우, 청어알,
검은콩, 작은 멸치 등이 들어가 있는 음식.

행운을 얻기 위해 불의 신에게 휴식을 취하게 해준다고 하여, 불에 조리한 음식을 담지 않는 것이 전통인


이 요리는 단맛, 신맛, 매운맛, 쓴맛 등 모든 맛이 들어가며 풍족함을 상징하는 여러 재료들이 구성된다.

“오세치는 계획대로 나가고, 추첨으로 사람들을 더 모아야겠어.”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최고급 재료, 하이든 왕세자 딜러에게 연락 넣어.”

런던에 있는 ‘반유현-브라운’은 세계 최고의 식재료만을 선별해 공급하는 여러 명의 딜러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 중동 왕자에게서 얻은 인력이었는데, 그것을 활용해 행사 전 불을 지펴볼 생각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선도 높고, 귀한 재료를 담은 오세치를 반유현 26 시식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대상으로


추첨해서 선물로 증정한다고.”

“와…… 반유현 셰프님이 세계 최고의 재료로 만든, 도시락을 얻는다라…….”

아니, 불을 지피는 것에 더해 기름을 부어버릴 생각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레스토랑 반유현 식사권도 넣어라.”

축제 전부터 기세를 끌어모으는 것도 중요하니까.

모든 것들을 압살해버리려면 말이다.

133 화. 새로운 바람 (5)

일본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인, 오세치(御節料理).

세계에서 가장 신선하다는 재료들만을 이용해 만들었다.

그리고 ‘by 반유현’이라고 적힌 고급스러운 편백나무 박스에 그 요리들을 담았다.

도시락처럼 1 단, 2 단, 3 단…… 5 단으로 구성되었다.


“자아아아! 이게 바로 그! 그! 반유현 셰프님의 특별 도시락 아닙니까?”

“도시락이라뇨! 오, 세, 치! 행운을 상징하는 일본 음식 중 하나입니다.”

축제 시작 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나는 이것을 추첨으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었다.

도시락처럼 구성된 오세치는 추첨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에 적절했다.

맥시코의 타말레(Tamale)나, 이탈리아의 코테치노 콘 렌티치(Cotechino con lenticchie) 같은


것들을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니까.

“네! 어쨌든! 오늘 먹을 음식은! 반유현 셰프님의 오세치입니다!”

“우와…… 저희가 살다 살다 이런 음식까지 먹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흐어엉”

그리고 사람들에게 추첨으로 나누어줄 오세치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적인 먹방


유튜버를 섭외했다.

‘겔러거 형제.’

겔러거 형제는 엘린 겔러거와 폴 겔러거, 두 명의 형제가 운영하는 채널이며 400 만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그들은 나의 계획을 또 뜨겁게 해줄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들도 나의 요리를 독점으로 담을 수 있는 것에 대단한 매력을 느꼈다.

전 세계에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의 촬영을 거부한 것은 이렇듯, 파급력이 강한 유튜버들을 손쉽게


섭외하기 위함도 있었다.

수많은 먹방, 쿡방 유튜버들이 나의 레스토랑의 요리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나의 제안은 매우 달콤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와 셰프들, 반유현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겔러거 형제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멘트를 치며 방송을 이어나갔다.

“그니까 이 엄청난 요리를, 추첨을 통해 드린다고 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시식회에 참여만 하면, 이 요리를 얻을 수 있는 추첨권을 드린다고


합니다.”

“미슐랭 23 스타 셰프, 이 시대 최고의 탑 셰프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다는 그 경험은 얼마나


특별합니까!”

두 명의 유튜버는 주거니 받거니 말을 하곤, 오세치를 개봉했다.

“우와아아!”

“야야아아아! 이 박스부터 뿜어져 나오는 편백나무의 향이 안에 있는 재료들을 한 번 더 포장했네요!”

-빨리 보여줘!

-무슨 요리인데!

-ㅋㅋㅋㅋ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같은 도시락인데.


-성공했네. 반유현 셰프 요리를 단독으로 먹고.

박스 안의 요리들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상황, 두 명의 유튜버들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면서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따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반응들은 제각각이었다.

-야, 이거 조작이다!ㅋㅋ

-어차피 요리 보여줘봤자 반유현의 요리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음.

-반유현 이름쓰고 놀란 표정 지어서 썸네일 어그로로 시청자 땡기고 사과할 속셈.

-400 만 유튜버가 그러겠냐.

-그럼 뭐임? 반유현의 협찬을 받아서, 레스토랑 반유현만 홍보하고 저 요리는 가짜인 거임?

지금 겔러거 형제들이 열어 보인 오세치가 반유현이 만든 오세치라는 증거가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의혹을 제기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조금의 시간도 아까운 나는 곧장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와! 

-ㅋ

-진짜네.

-찐이다 찐!ㅋㅋㅋㅋ

-와! 반유현이 만든 도시락이라고?

…“네 맞습니다. 어떤 구성이 되어있을지, 한번 살펴보시죠. 그리고 이 요리를 라스베이거스의 현장에서


여러분께 나눠 드릴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뒤에 다시 고개를 숙여 카메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때부터는 이전과 다른 속도로 댓글들이 떠올랐다.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댓글들을 보곤 나의 영향력을 다시금 실감한 갤러거 형제는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먹방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 하하하. 시청자분들께서 저희의 말을 믿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함께


해주셨는데, 벌써 이렇게 등장해 주실지는 몰랐네요.”

이 정도로 시청자들의 거센 반응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는지, 겔러거 형제는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 하하! 그렇습니다. 도통 정리가 안 되면 등장해달라고 말씀을 드리긴 했었는데요. 화끈하신 성격


그대로 십니다. 자! 그럼 먹방을 시작하겠습니다.”

베테랑 먹방러로서 수많은 영상 촬영을 했지만, 이렇듯 긴장되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요리가 맛있어서인지, 왠지 모를 중압감 때문인지 평소와는 달리 그 맛의 표현이 서툴러 보였다.


“아…….”

“와우……. 정말 너무 맛있습니다. 정말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답답해졌다.

‘400 만 구독자라서 맛 표현도 풍부할 줄 알았더니만.’

“내가 직접 나서야 되나?”

내 주변에 있던 셰프들과 반유현팀의 직원들이 눈이 커졌다.

***

겔러거 형제의 기존 시청자 층과 엮여서, 반유현의 등장은 시청자수를 폭발케 했다.

- 시청자수 : 113,412

세계적인 프로게이머 ‘fakes’가 실시간 방송을 할 때, 그 시청자 수의 약 세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먹방이라는 컨텐츠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컨텐츠라는 것에 더해 전 세계, 레스토랑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주지사 브라이언의 표정은 굳어져만 갔다.

“뭔데 이건.”

“…….”

관광청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관광청의 완전한 몰락을 막기 위해, 반유현의 ‘26 시식회’ 메뉴의 일정을 받았고, 그 사실만으로도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의 규모를 키웠다.

그런데, 전 세계 유명 셰프들을 모조리 섭외한 그 행사는 반유현의 밑거름이 되게 생겼다.

애초에 그렇게 되리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본 축제의 예고편도 아닌, 고작 반유현이 추첨을 통해 선보일 상품의 먹방.

그 먹방의 시청자수가 역대급이었고, 그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방송 내려주세요 고든 레지 똥줄 타고 있답니다.

똥줄은 관광청과 역대급 규모의 예산을 집행한 주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겔러거 형제의 먹방은 계속되었다.

“이 요리는…… 음.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카즈노코(数の子)라고 하는 소금에 절인 청어알입니다.”

“와…… 이 향과 톡톡 터지는 식감은 최강의 선도가 아니면 할 수 없죠.”

1 단부터 2 단, 3 단으로 이어지는 재료들을 먹으며 하나하나 맛을 설명하는데, 그 맛의 표현이 어려웠는지


어딘가 부족해보였다.

“컥.”

“이건…….”

그리고 어떤 요리를 먹고는 말을 잇지 못하는 겔러거 형제들이었다.

연출인지, 진정 요리의 맛이 너무 뛰어나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후…… 이 엄청난! 제가 이때까지 먹어봤던 것 중에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이것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알도 그렇지만 청어 다시마 말이인 콘부마키(昆布巻き)도 그 맛이 너무나 강력하네요.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반유현이 화면 속으로 들어왔다.

“방금 말씀하신 콘부마키의 맛의 깊이는 그렇게 단조롭게 설명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요리를 단조롭게 설명했다는 것을 꾸짖듯이 말이다.

-와…… 폭풍 카리스마 보소.

-400 만 유튜버들도 그 맛을 제대로 표현 못 했다는 거네.

-하아. 진짜 먹고 싶다!

-ㅠㅠㅠㅠ 날 줘라, 내가 진짜 잘 설명해 줄 테니까.

“다시마를 담는 물, 그리고 다시마의 수분을 빼는 과정, 청어를 씻는 물의 온도…… 맛술에 있는


알코올의 양 간장에 들어간 갖은 재료들, 그리고 간장에 졸이는 시간 등 제가 의도한 맛의 단계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반유현이 등장하자, 실시간 댓글 창은 읽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댓글을 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반유현 셰프님!!!!

-그 요리 나 줘라!!!

…그리고 반유현은 자신이 말한 콘부마키를 직접 집어서 자신의 입에 넣었다.

다시마로 싼 청어, 눈을 감고 그 향을 느끼는 반유현.

“음. 제 의도가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그가 콘부마키를 먹는 모습은 겔러거 형제들이 먹는 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눈을 지그시 감은 그는 바다의 내음을 모두 느끼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와우! 반유현 먹방은 처음 보네.

-먹기도 잘 먹네요!ㅋㅋㅋ
-와 배고프다.

-다이어트 중인데…….

“불을 사용하지 않는 요리는 그 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재료 본연의 맛이 이것만큼


중요한 요리는 없으니까요.”

1 단의 음식들을 먹어 보인 반유현은 다음 칸에 포장된 요리들을 꺼냈다.

“생선살을 으깨어 달걀과 섞어 부친 요리. 다테마키(伊達巻き)입니다.”

-일본어 발음은 거의 원어민인데?

-와! 저것도 진짜 맛있겠다.

반유현이 냄새를 한번 맡더니, 멘트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생선을 으깼지만, 그 포슬포슬한 식감은 살아있는 게 포인트입니다.”

-으깼는데 식감이 어떻게 있음?

-ㅋㅋㅋㅋ반유현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음.”

어떻게 하면 저렇게 먹음직스럽게 먹을 수가 있을까.

앞선 겔러거 형제보다도 더 맛을 잔뜩 느끼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와!ㅋㅋㅋㅋ

-반유현 먹방 데뷔해라!

그 이후로도 본격적인 먹방을 시작하자, 시청자가 늘어나는 속도는 배가 되었다.

“음. 맛있네.”

반유현도 알고 있는 터였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맛있다’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느껴지는지.

그런 그가 자신의 요리를 먹으며 맛있다라는 말을 난무하자, 이 화면을 아니꼽게 보고 있던 주지사


브라이언마저 저 요리를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렸다.

***

[ 먹방 스타 된 반유현 ]

[ 그의 파급력은 어디까지인가. ]

[ 100 명에게 추첨 될 오세치 과연 그 주인은? ]

내가 겔러거 형제의 채널에 출연해, 먹방을 선보인 것이 화제가 되어 수많은 하이라이트로 편집되어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녔다.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 추첨 될 오세치는 더욱더 화제 되었고, 바로 지금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내 축제의
장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의 26 시식회에 참여해 요리를 먹기만 해도 제공되는 오세치 추첨권은 이전에 내 갈라디너의 암표가
거래되듯이 사고 팔리는 일도 일어났다.

말 그대로 추첨권. 오세치를 얻으리라는 것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격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값은 대중들의 관심을 한 번에 알게 해주는 지표가 된다.

“얼마에 사 왔어.”

완벽하게 대중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오스틴에게 직접 그 추첨권의 가격을 알아오라고 시켰었는데,


오스틴이 한 말을 들어보니 나도 조금은 놀랐다.

“한화로 89 만 원에 사 왔습니다. 그런데, 점점 더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게 마치 라스베이거스 행운을


상징하는 티켓인 양, 중국 부호들이 추첨권을 싹 다 사들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00 만 원, 200 만 원
부르는 것을 값으로 해서요.”

그에 따라 내가 만들어 놓은 축제의 장에 이전에 본 적 없던 수의 사람들이 쏠린 것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에 참여하기 위해 왔던 관광객들도 그 티켓에 돈을 더해서 셰프님의 추첨권을


사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요리를 얻기 위해 언코크드의 티켓까지 내던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요리가 부족해도 한참은 부족하겠어. 규모를 키워야지.”

이 정도 반응이라면 애초에 생각했던 언코크드는 고사하고, 라스베이거스를 집어삼킬 축제가 예상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내 머릿속에 있던 규모를 조금 더 키우기로 결정했다.

134 화. 새로운 바람 (6)

라스베이거스의 언코크드 행사 바로 전날, 또는 내 레스토랑의 런칭 전날.

그리고 26 시식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기자들까지 이렇게 많이 와있네.”

“세간에는 이 추첨식이 라스베이거스 연중행사로 잡혀야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과장하자면, 개미 떼처럼 보일만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먹방의 파급력이 이렇게 대단했나 보다.

내가 축제의 장으로 쓰려 했던 펜스를 아득히 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했다.

“오랜만입니다 셰프님. 멀리서 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UAE 의 왕세자인, 하이든도 이날 자리에 참석했다.


전 세계에 있는 최고급 식재료를 공급하는 딜러부터,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대거 지원해준 이였다.

그 대가가 3 개월마다 나의 요리를 무조건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제 셰프들은…… 잘 생활하고 있나요?”

자신의 개인 셰프들을 나의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시켰었는데, 그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온 세상이 자기 것이었던 그의 태도나 행동양식이 조금 변한 게, 나의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엔 내


앞에서의 태도가 너무 공손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성적이 엄청 좋다고 들었었는데, 맞지?”

“그렇습니다.”

옆에서 오스틴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하이든 왕세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에 대해 기쁜 듯이 말이다.

“저도 추첨권을 받았습니다! 2 6 시식회 열두 번째 날에 그 메뉴를 먹어서 받았는데, 그때 너무 바빠서


인사를 못 드렸네요.”

말투까지 어디서 공부를 한 듯이, 존대를 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하이든이었다.

‘많이 컸네.’

“가시죠 셰프님 시간이 없습니다.”

무대 뒤에서 하이든과 잠시 인사를 나눈 나는, 곧장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우와아아아아아!

행사 진행요원들이 나에게 마이크를 가져왔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반유현! 반유현!

수많은 함성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 소리와 분위기만 봐도 이미 내일 펼쳐질 축제의 장은 나의 쪽으로 기울었지만, 내심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규모가 이렇게 커질 줄이야.’

무튼, 한 편으론 생각을 정리하며 추첨식을 진행했다.

“이곳에 계신 분들 중 제가 직접 요리해 포장한 오세치를 가질 분이 계시군요.”

우와아아아! 

저들에겐 이 편백나무 박스에 담긴 요리들이 얼마나 특별할까.

그것을 생각해보니 헤아릴 수 없었다.


미슐랭 23 스타,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셰프라 불리는 나…….

내 요리를 먹으려면 3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재료만을 고집한 요리를 담아 선물로 준다.

이곳에 관광을 하러 온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한 선물은 없을 것이었다.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만큼 이 선물이 주는 의미 덕에 이들에게 분비되는 엔돌핀이 나에게도 느껴졌을 수도.

“3144 번.”

마이크로 번호를 부르자, 그 추첨권을 가지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기쁜 듯이 뛰어나왔다.

동양인, 후덕한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감사합니다.”

말을 들어보니, 중국 국적의 사내였다.

그가 잘 포장된 오세치를 들고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412 번.”

그렇게 추첨은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의 번호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69 번.”

내가 번호를 불렀을 때, 가장 처음 당첨됐던 중년의 중국인 사내가 올라왔다.

“허허허허!”

“추첨권이 두 개나 있으셨습니까?”

“허허. 감사합니다!”

그래 뭐, 두 개까지는.

가족들도 함께했을 수 있으니까.

중년의 사내는 함박웃음을 짓고 내려갔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1124 번.”

중년의 사내가 무대를 내려가다가 다시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미 한 손에 오세치를 들고 있는 사내는 다시 한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빨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뭡니까.”

“추첨권을 되는대로 구입했습니다.”

사내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추첨권을 꺼냈다.

헤아리지 않아도 100 장은 훨씬 넘어 보였다.

우우우우우!

순간 관중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오세치를 받아 내려갔다.

추첨권이 많게는 200 만 원까지 올라갔다고 했는데, 저것을 100 장 넘게 구매했다는 남자는 평범한 인물이
아닌 듯했다.

“23 번.”

“하하하하하!”

우우우우우!

이번에도 또, 그 남자.

내가 보기엔 100 장도 더, 200 장, 300 장의 추첨권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하지만 두 개까지 허용하겠습니다.”

나는 당연히 그것을 문제 삼았다.

애초에 서로 간에 거래를 하라고 만든 추첨권도 아니었으며, 내가 준비한 오세치 대부분을 그에게 주기도
싫었다.

“뭐, 뭐요?”

다만 그에 대한 관련 규정을 확실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중년의 사내가 추첨권만큼의 오세치를 내놓으라고 진상을 부린다면 저 옆에 있는 듬직한


경호원들이 힘으로 제압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곤란하고 눈꼴 시린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우우우우우!

중년의 사내를 향한 관중들의 야유는 거세졌고, 이 상황을 완벽히 정리하지 못하는 나를 일갈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뭐하냐!”

“빨리 끌어내! 돈 지랄하면 다야!?”


“탑 셰프라면서 뭐 이렇게 정리가 안 되냐!”

이 순간에 내 보좌관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추첨권을 막 사들이는 게 뭐가 잘못됐소?”

“행사를 조져놨지 않습니까. 돈이 많다고 많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데요.”

“돈이 많은데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나?”

이전에 하이든과 같은 빌런의 탄생이었다.

지금 보니까 중국 대부호의 느낌을 풍기는 사내였다.

-베이징 에너지 명예회장. 왕루이옌.

다짜고짜 자신의 명함을 내미는데, 내가 기겁이라도 할 줄 알았나 보다.

명함을 받아, 무대 아래쪽에 있던 오스틴에게 건네줬다.

“당신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오세치는 두 통만 허가하겠습니다.”

“내가 돈을 얼마나 들였는데! 어?”

언성이 높아지자 무대 아래에 있던 경호원들이 뛰어 올라왔다.

내 심기도 상당히 불편해졌다.

불타오르고 있는 축제의 현장에 찬물을 확 끼얹은 기분이었다.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 또한 이 추첨의 재미였는데.

“너, 반유현 셰프? 이러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무대 아래쪽을 내려다보자, 오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틴의 표정을 보니 문제가 해결된 듯했다.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

“뭐? 고든 레지?”

“베이징 에너지라고, 중국 최대의 정유회사입니다. 석유를 수입해서 각종 원료를 만드는…… 그런데, 그


회사의 회장인 저…… 뚱뚱한 아저씨가 레스토랑 고든 레지의 최대 투자자라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엮여버렸다.

한창 이 라스베이거스 어딘가에서 혼자 열을 내고 있을 고든 레지의 대주주라.

어째 야리꾸리한 냄새가 났다.

“고든 레지가 내 축제를 망치기 위해 돈을 대거 투입해 추첨행사를 망쳤다?”


그 냄새는 꽤나 합리적인 가설로 연결되기도 했다.

매번 삶 등장했던 고든 레지의 성격을 알기 때문인가.

원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갈아 넣을 그의 성격.

그가 매번, 내 삶에 요리의 최강자로 등장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가 요리를 시작할 때 즈음에 환생해 그가 요리 말고 다른 것을 하게 했다면 그는 또 그 분야의 최강자가


되었을 것이다.

“일리가 있네.”

내 먹방은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고, 그에 따라 오늘의 추첨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


예상되어있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언코크드 행사, 고든 레지의 축제, 그리고 나의 레스토랑 런칭을 하루 앞둔 바로 그 전날,


이 추첨식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나에게로 끌기 위함이었는데 그것을 방해할 만한 사람들은 딱 두
부류였다.

“관광청과 고든 레지…… 그런데, 저 중국인 아저씨가 우리의 추첨식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려 했다 이


말이지?”

왕루이옌, 중국 최대 정유회사의 회장이자 추첨권을 모조리 사들여 내 계획을 망치고 있는 그.

내가 오스틴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에는, 그의 경호원들도 다가와 내 경호원들과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소리쳤다.

“뭐야! 어? 행사를 기획할 거면 빈틈없이 하든가! 어? 애초에 사질 말게 했어야지. 파는 놈이 있는데


사는 놈만 죄야?”

화가 잔뜩 나 있는 목소리 같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표정엔 나의 계획을 망치려 했다는 노골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행사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별의별 알력들이 생겨났다.

더군다나 미식의 도시라는 이곳의 왕좌를 빼앗기기 싫은 세력들이다 보니, 그 알력들의 힘은 무시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저 돼지 새끼를 어떻게 처리할까. 보통 부자가 아닌데 저놈은.”

하이든 왕세자에게 처음 교육을 했을 때는 어린 맛이라도 있었다.

그냥, 윗사람을 대해 본 적 없는 철부지.

왕루이옌이라는 저자는 그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어떤 입지를 가졌고,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노골적으로 그것을 와해하려는


인간이었으니까.

“아, 잠깐만 정유회사라고 했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전 세계 석유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집안의 남자가, 저 멀리에 보였기 때문이다.

“하이든.”

***

실질적인 힘은 없지만, 그의 위세는 대단했다.

“나도 추첨권이 한 장 있는데……. 아저씨는 몇 장이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돈으로?”

하이든을 그 앞에 세워 놓으니, 왕루이옌은 아까 소리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공손해졌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인 베이징 에너지에 가장 많은 석유를 공급하는 UAE 왕세자의 얼굴을 확실히 아는
듯했다.

“여기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셰프, 셰프님이 일하시는 자리인데 그렇게 망쳐놓으면 어떡해요?


비겁하게.”

왕루이옌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왕세자님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조그맣게 사업을 하고 있는데,


혹여나 그 사업이 이 축제의 영향을 받을까 봐…….”

“돈으로 망쳐 보려 했다?”

“죄송합니다.”

“아시죠? 우리 왕가는 한번 의리로 석유 공급을 하는 것. 어떤 돈이건, 어떤 인물이건 정유사업은 그렇게


움직이는 거잖아요.”

유럽의 기업들이 그렇듯, 정유사업도 그랬다.

UAE 왕가는 상대 사업체와 가문 대대로 걸쳐 그 신뢰가 두터워지면, 웬만해서는 유통책을 바꾸지 않는다.

“제가 4 대, 그쪽의 아드님이 3 대…… 이런 추잡한 꼴을 보이시면, 제가 경영권을 가졌을 땐 중국의 정유


사업 건은…….”

역시 갑질은 하이든이 최고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왕루이옌도 몰랐을 것이다.

괜히 돈을 함부로 썼다가 가문 대대로 내려온 사업의 존재가 흔들릴 줄은.

요리사가 산유국 왕가와 관련이 있을지는 당연히 몰랐겠지.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인 왕루이옌에게 아까의 기세는 전혀 없었다.

식은땀이 났는지, 그의 등 뒤는 축축이 젖어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께 추첨권 다 드리고, 사과하세요.”


“아이고…… 당연합니다. 셰프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당연히, 사과를 받아줄 리 없었다.

“아까는 소리치고 진상 놓고 다 하더만.”

돈 많은 부하를 한 명 더 둘 참이었다.

그것도, 나를 상대해보겠다고 아득바득 열심인 고든 레지의 대주주를.

135 화. 새로운 바람 (7)

왕루이옌의 추첨권은 모두 압수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추첨권의 수만 봐도 1 억 이상의 돈을 쓴 왕루이옌이었다.

“이유는 뻔하겠지.”

“그, 그렇습니다.”

레스토랑 고든 레지의, 고든 레지 다음으로 가는 대주주였으며 이번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축제가


레스토랑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미 수년간 명품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지켜온 ‘고든 레지’의 입지는 지난번 축제인 ‘라이프 이스
뷰티풀’에서 나에 의해 한풀 꺾였기에,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대주주 중 하나인 그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크흠!”

물론, 처음엔 직접 나설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수십조의 재산을 가진 거부가 ‘쇼’를 하지는 않을 테니까.

“고든 레지가 직접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 건가 보네.”“아…….”

왕루이옌이 머뭇거리자, 하이든이 옆에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거짓말이라도 하시려고요? 자꾸 우리의 신뢰를 무너트리려고…….”

그제 서야, 왕루이옌이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관광차 라스베이거스에 왔고, 고든 레지를 만났을 때 고든 레지가 왕루이옌에게 직접 나서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

고든 레지 입장에서도 라스베이거스 내에서 수세에 몰리다 보니 히든카드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사이가 각별하신가 보네요.”

“네…… 고든 레지 셰프가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에는 저희 집에서…….”

아무튼, 완벽한 약점을 잡게 되었다.

이 추첨식에 모인 사람들의 수만 헤아려 봐도 라스베이거스 내 축제가 진행되는 내일, 내일모레의 승자는


나일 테지만.
“이 추첨권을 이렇게 사라고 시킨 게 고든 레지라고 공포할까요?”

“아…….”

“되는대로 추첨권을 사들여서 이 추첨식을 망치려 했던 게 고든 레지 셰프라고 말할까요?”

원래였다면, ‘알아서 하쇼’, ‘네 맘대로 하쇼.’ 라고 말할 인물이다.

수십조의 자산가가 뭐가 무섭겠나.

그렇지만 나에겐 그의 사업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하이든 왕세자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가 사과를 하든 말든, 한 사람이 추첨권을 돈으로 독점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졌을 관광객들을


조금은 풀어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나의 요리를 돈이 많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기도


했고.

뿐만 아니라, 나의 계획을 망치려 했던 사람을 용서해선 안 된다. 100 년의 경험상 이런 사람들은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짓밟는 게 그간 나의 방식이었으니까.

‘유감이군.’

고든 레지와는 이렇다 할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 정도 위치에 올랐을 땐, 그는 항상 언제라도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있었으니까.

이번 생 나의 진도가 너무 빨랐던 탓이었다.

고든 레지 뿐만 아니라, 마리옹, 장츠이, 노부…… 등 수많은 셰프들이 운명에도 없던 적수를 만나


인생이 달라졌다.

‘지난 삶과 상대하는 셰프들은 다르지만 대응 방법은 똑같다.’

지난 삶 동안 내 전성기에 나의 라이벌이라 불렸던 이들은 지금, 보조 셰프나 인턴 또는 이제 갓 조리장을


달게 되었을 것이다.

매번 삶 나의 전성기는 환생 뒤 13 년, 내지는 16 년이었고 지금은 고작 4 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죄송하든 말든, 저는 이 사실을 알려야겠습니다.”

어쨌든 고든 레지보다 요리 경력이 15 년은 더 적은 내가 고든 레지를 완전히 밟고 올랐다는 것을


공포하기 위한 초석이 이렇게 깔렸다.

나는 왕루이옌의 사과를 무시하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행동과 표정을 보아하니, 나에겐 진심으로 죄송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하이든의 눈치만을 보고 있을 뿐, 저놈에게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싶어졌다.


“추첨권을 모두 압수했습니다. 다시 추첨을 재개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한 손에도 다 잡히지 않을 정도의 추첨권, 내 오른손에 그것을 들고 있자니 사람들이 다시 환호했다.

자신들이 오세치를 당첨받을 확률이 높아진 것 아니겠나.

“아, 추첨하기 전에 왜 저 아저씨가 저렇게 많은 추첨권을 가지고 있었는지, 해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담담한 톤으로, 고든 레지와 왕루이옌의 관계를 말하자, 관중들은 또 다른 방향으로 열광했다.

***

[ 고든 레지의 몰락! ]

[ 베이징 에너지 명예 회장, 왕루이옌까지 나서다? ]

[ 수십조 재산가를 움직이는 셰프들의 싸움! ]

[ 음식 문화 평론가 “셰프들은 더 이상 요리사가 아니라 기업입니다. 이 사태만 보더라도.” ]

그냥 그렇게 왕루이옌이 추첨권을 많이 가지고 있던 이유에 대해서 몇 마디 던졌는데, 언론에 의해 사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루 만에, 불과 행사 하루만을 앞두고 라스베이거스에 집결해 있던 각종 요리 매체와 언론은 고든


레지를 폭격하듯 했다.

수년간 왕좌를 차지해 온 고든 레지가 언제 떨어지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 고든 레지 “오랜 친구가 날 너무 생각해서 벌어진 오해.” ]

그에 따라 고든 레지는 더 이상 이미지가 실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왕루이옌과 앞뒤를 맞춰 대국민


사과라도 하는 듯이 기자 회견을 열었다.

[ “모든 것이 제 탓, 모든 행사 취소하고 반성하겠다.” 고든 레지 셰프의 참회. ]

[ “과연 오해일까?” 셰프 칼럼니스트 이안 초이 ]

그 결과에 따라 라스베이거스에 집결했던 고든 레지 산하의 모든 셰프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로 인한 피해는 장본인인, 대주주 고든 레지와 왕루이옌이 떠안아야 했을 것이다.

불과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별 의미는 없던 세력이었잖아 어차피.”

고든 레지가 계획대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신만의 축제를 열었다 한들, 어차피 내가 이겼을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고든 레지가 왕루이옌이라는 수를 썼던 것이고.

달라진 건, 그나마 있던 고든 레지의 골수팬들도 이제는 내 요리를 먹으러 온다는 것에 있었다.

“반유현, 레인보우.”
런칭할 뷔페 형식 레스토랑의 이름이었다.

전 세계 각국의 행운을 상징하는 모든 음식을 품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었다.

레인보우, 즉 무지개는 모든 색을 품고 있고 그 자체로서 행운을 상징하기도 하니까.

“문제는 이제, 이곳에 사람들이 더 몰린다는 소리지.”

100 년간 없었던 역사에, 나도 내 파급력을 가끔은 가늠하지 못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행사 당일 전후로 비행기 표가 부족할 정도라고 합니다.”

오스틴이 약간의 과장을 섞었겠지만, 그만큼 이번 축제에 세계적인 관심이 쏠렸다.

약 한 달 동안 26 시식회, 오세치 추첨권, 먹방, 고든 레지의 철수 등 많은 이슈들이 봇물 터지듯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불을 더 지피듯이, 규모를 계속 키워나갔고.

“어쩔 수 없네, 우리도 런칭뿐만 아니라 축제의 형식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맨 처음 기획했던 것은,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을 파워풀하게 런칭하기 위해 그 재물로 라스베이거스의


언코크드를 사용하려 했었다.

더 파워풀하게 런칭하려면, 더 큰 재물이 필요할 것 같아 내 이름값을 이용해 그 축제의 규모를 키웠는데,


어째 이대로라면 내 레스토랑이 저 축제의 규모를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팔라스 호텔과 포시즌스를 잇는 그 산책로와…… 또 장소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 있냐.”

“포시즌스 호텔의 앞마당, 주차장이 있긴 있습니다. 호텔의 VIP 들이 주차하는 공간…….”

“VIP 들 상대하려면 골치 아프겠군. 다른 장소는 없나.”

26 시식회를 진행했던 장소는 꽤나 큰 공간이었지만, 이번 오세치 추첨식 때만 해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었다.

행사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벌어진 이슈들 때문에 더 큰 장소가 필요해졌다.

“펠리지오 호텔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펠리지오?”

펠리지오 호텔은 고든 레지의 레스토랑이 있는 호텔로서 이번 축제에 고든 레지에게 장소를 제공했었는데,


고든 레지 산하의 셰프들이 그곳을 비워두고 곧장 철수를 했기에 그 자리가 비어있었다.

“아마도 셰프님과 친분이 있으신 톰슨 셰프님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고든 레지는 철수했고, 세계 최대의 미식 축제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펠리지오는 빠른 대처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펠리지오의 부스를 톰슨 대신 맡아 대단한 활약을 했었던 것도 있고, 그 호텔의 총괄


주방장 중 하나인 톰슨이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이 행사에서 매출을 올리고 싶었는데, 고든 레지가 백기 들고 투항했으니 생각을 한 거야.”

“어떤 생각…… 이요?”

“관광청에 붙을지, 나에게 붙을지.”

그렇게 그들의 선택은 ‘나’였고 나에게 장소를 제공해 주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호텔들까지, 모두 야외 수영장과 산책로, 광장을 내어주겠다고 합니다. 반유현


셰프님께요.”

그밖에도 고든 레지와 조금이라도 관계를 맺고 있던 호텔들이 나에게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행사 시작까지 하루가 안 남은 시점에 다급하게, 자신들의 쓰임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기야, 세계적인 미식 축제에 자신들이 아무런 역할도 맡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걱정했을 터였다.

이 축에 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관광객들에는 2 류, 또는 3 류로 비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힘에 굴복하는 법이 빠르네. 이 호텔, 이 호텔은 공항부터 ‘신들의 정원’이 열리는 곳까지 그 거리에
있는 곳이네?”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중에서도 세계적인 셰프들이 각자의 부스를 놓고 음식을 선보이는 행사는 ‘
신들의 정원’이라는 행사였다.

내가 수년 전 활약했던 것도 그 행사였고, 그런데, 그 행사의 장까지 가는 길에 있는 호텔들도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들의 정원, 그 행사장으로 가는 길목에 내 이름이 걸린 깃을 달아.”

“하루 만에 가능할까요?”

“손으로라도 써서 만들어. 관광객들이 가다가도 발길을 돌릴 수 있게.”

오스틴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지전? 라스베이거스 땅따먹기에서는 이미 언코크드를 앞지르신 것 같습니다.”

***

‘반유현 레인보우’, 그것을 조금 색다르게 런칭해보려 했던 기획이 이렇게 나 커졌다.

[ 반유현 레인보우 ]

공항부터 라스베이거스 곳곳에 걸려있는 깃발들.

그 깃발들은 내 브랜드 산하의 레스토랑이 오늘부로 라스베이거스에 상륙했다는 것을 알렸고, 또다시 나의


영향력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관광청의 언코크드와 이렇게 정면 대결을 하는 셰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뒤로도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톰슨이 내 옆에 자리해 말했다.


행사의 1 부는, 내가 런칭할 레스토랑의 모든 메뉴를 부스 형식으로 차려 놓은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이전 ‘언코크드’에서 펠리지오 호텔의 부스를 맡았던 것처럼, 라스베이거스 관광청도 자신들의 1


부 행사를 그렇게 꾸며 놓았을 것이다.

“‘언코크드’의 대표적인 행사…… 신들의 정원이라는 1 부 행사죠. 그 당시 세계적 셰프들을 누르고 많은


주목을 받으셨었는데, 이제는 그 세계적 셰프들이 힘을 합쳐서 반유현 셰프님을 상대해야 된다니요……
하하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때, 요리들이 처음으로 완성되어져 나왔고 그 요리의 냄새가 진동했다.

“대단한 건 두고 볼 일 아닙니까. 사람들이 요리를 먹지도 않았는데, 과찬이십니다.”

요리를 먹고 나서, 그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까지가 축제의 끝 아니겠나.

우와아앙아!

대단한 환호소리와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내가 둘러놓은 축제의 장에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오스틴, 저쪽은 어떻대? 확인하고 와.”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오스틴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자, 오스틴이 ‘언코크드’ 그 현장을 살피러
발걸음을 옮겼다.

136 화. 새로운 바람 (8)

오스틴은 반유현의 지시로, 언코크드 현장을 관찰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다.

“시작을 안 한 건가?”

그리고 오스틴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오스틴을 놀라게 했다.

분명 행사 시작 시간이 지났음에도, 축제의 장이 너무나 휑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시작을 했는데?”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들이 각 셰프들의 부스에 들러 음식을 먹는 모습.

‘언코크드’ 1 부 행사인, ‘신들의 정원’ 그 행사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사람들이


있었다.

“셰프들은 다 어디 간 거야.”

더군다나, 역대 최대 규모로 행사를 주최했다는 그 증거인 스타 셰프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관광청에서 축제의 규모를 역대 최대로 벌인다는 홍보를 대대적으로 했었지만, 이렇듯 역대 최소의
사람들이 몰린 것도 신기했다.

그때, 오스틴을 향해 한 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시죠?”

“아, 저는 오스틴 님을 알지만 오스틴 님께서는 저를 모르시겠군요.”


“저를 어떻게 아시죠?”

“모를 수가 있습니까. 반유현 셰프님의 비서님. 워낙 업계에서는 유명인사시죠.”

반유현이 매번 대중매체, 방송에 탈 때마다 병풍처럼 사진에 등장했던 오스틴이었다.

덕분에 반유현과의 커넥션을 원하는 사람들은 오스틴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반유현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해서 업계 내의 자신의 지위가 올라갔고, 대우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오스틴은 이런 사람들을 경계했다.

더군다나 공문, 또는 사전 약속을 통하지 않은 이런 식의 만남은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 반유현의 행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생각하니, 당연한 태도였다.

“MJM 호텔의 지배인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명함을 내밀며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경계 강도를 조금 낮췄다.

“아, 안녕하십니까.”

특급 호텔의 간부라면 언제라도, 반유현과의 접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단하십니다. 저도 이런 광경은 처음 접해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저쪽을 보시면 사람이 별로 없는


이런 프라이빗한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몇몇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도 아주 극소수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하하하. 언코크드는 많은 호텔들이 기대를 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그 기대는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후원을 하는 액수에 따라 좋은 자리에 부스를 얻고 그 홍보효과는 다시 매출로 이어지고……
그런데, 이번 행사는 완전히 그 고리가 끊겼습니다. 라스베이거스의 ‘언코크드’…… 세계 최대 미식
축제라는 타이틀이 이제는 버거워 보일 정도입니다.”

오스틴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MJM 의 지배인이라는 그가, 자신에게 왜 이 현 상황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길게 읊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의 입에서 곧장 튀어나왔다.

“반유현 셰프 덕분이죠. 이 모든 게……. 직접 만나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지만. 하하하. 제가 감히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니까요. 비서님께서 직접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한다는 게……?”

“모든 호텔들이 이렇듯, 이제는 관광청에 무리한 후원, 협찬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호텔들에게 휘두르던, 가장 날카롭고 무서웠던 칼이 이 ‘언코크드’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칼을 잃었네요. 저들은.”

지배인이 가리킨 곳을 보자, 관광청 직원들과 주지사가 휑한 행사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방법 없다는 식으로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들은, 누가 봐도 이 축제를 연 장본인들이었다.

“각 부스를 맡고 있는 섭외된 셰프들까지, 아래 셰프들에게 맡겨놓고 반유현 셰프님이 축제를 여시는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 정도 사태라면 완전히 힘을 빼앗겼다고 봐야겠죠. 반유현 셰프라는 그 한
명에게.”
오스틴은 반유현이 단지, 이번 행사에서 언코크드보다 사람을 많이 모았고 그에 따라 대단한 홍보 효과를
거머쥐었던 것으로만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는…….”

“네?”

“아, 아닙니다.”

완벽한 힘, 라스베이거스 내의 완벽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순간 심장이 철렁! 하며 호흡이 빨라지기도 했다.

‘이 모든 것까지 생각하셨을 분이야…….’

왕좌를 차지하겠다던 반유현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짜 이 도시의 왕이 되셨다고…….”

“왕…… 딱 맞는 단어네요.”

오스틴의 주절거림에 MJM 호텔 지배인이 대답했다.

***

약간 과장 보태어 말하자면, 라스베이거스 내의 모든 관광객들이 이곳에 모인 것 같았다.

내 축제의 티켓이 없는 사람들도 사람들이 많이 몰린 것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곳을 찾았다.

뿐만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와 약 8km 떨어져 있는 매캐런 공항부터 이 행사장까지 걸려있는 나의 이름을


보곤 궁금증이 더 커졌을 것이다.

“진짜 반유현이라고?”

“그래, 반유현의 축제래.”

“와……! 미친, 사람들 모인 것 봐!”

사람들이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때,

“왕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오스틴이 내 옆으로 돌아와 나에게 언코크드의 행사장에 대한 현황을 말했다.

“셰프님께서는…… 이 모든 걸 다 생각하셨죠?”

맨 처음 라스베이거스에 왔을 때는 어떻게 파워풀하게 나의 레스토랑을 런칭할지만 생각했었다.

관광청이 호텔들을 향해 휘두르는 갑질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지만, 굳이 신경 쓸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이용해 자신들의 권위를 더 올리려는 것을 보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예 뿌리를 뽑아 나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그 뿌리가 뽑힌 자리에 내 이름을 새겨 넣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무리를 좀 했지.”

단순히 내가 ‘언코크드’라는 행사보다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다는 것 보다, 뿌리를 뽑아버리려면 과감한


액션이 필요했다.

“언코크드 티켓을 가진 사람도 내 축제에 입장할 수 있게 해준 건.”

그 행사장에 단 한 명의 사람도 남기기 싫어서 내린 과감한 액션이었다.

내가 판매한 티켓 말고도, 언코크드의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도 그 티켓으로 내 축제의 장에 입장할 수


있게 해준 것.

그에 따라 언코크드 현장에는 손가락으로도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남았다.

“언코코드 티켓의 표값을 올려주기 싫어서, 돌발적으로 축제 당일에 발표한 거야.”

뒤에서 거래되는 암표의 값은 단연, ‘반유현 레인보우’라는 축제의 티켓이 훨씬 비쌌지만 공식적인 값은
엇비슷하기에 언코크드 티켓을 가진 자가 축제의 장에 입장하는 것에 많은 불만을 품는 이는 없었다.

“저기,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도 다 유명한 셰프들이잖아.”

그리고 언코크드에 섭외된 스타 셰프들도 내 축제의 장에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호기심, 또는 자신들의 손님을 모두 뺏어간 불쾌함에 이곳을 찾은 그들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게스트의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관광청 사람들은 반응이 어떻디?”

“죽어있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표정이…….”

“그쪽의 요리는 점점 식어가고 있고, 이쪽의 요리는 계속해서 새 요리가 나오니까.”

뷔페식 레스토랑 ‘반유현 레인보우’을 맡은 25 명의 셰프들, 원래 그 인원으로만 런칭 행사를 준비하려


했는데, 축제의 판이 다시 커져 라스베이거스에 상주하고 있는 내 휘하의 모든 셰프들 150 명을 모두
축제에서 일하게 했다.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들이네요.”

사람들은 입구에서 티켓을 내밀면 접시를 받는다.

그 접시에 26 가지의 메뉴 중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담은 뒤에 그것을 즐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나의 요리를 경험하고 싶었던 사람인지라, 아주 소량씩 모든 요리를 접시에


담으려 노력했다.

“어쩌다 보니, 질서도 갖추어졌네요.”

가장 인기 있고, 맛있는 요리라고 할 것 없이 입장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렬로 모든 요리를 담으려


하다 보니 사람이 많아도 혼란스러움이 덜했다.
“맛으로 질서를 세운다라…… 오늘 또 배웠습니다.”

“그만 좀 배워. 언제까지 배우기만 할래, 앞서나가기도 좀 해야지.”

“아, 아…… 네.”

“너도 가서 밥이나 먹어라.”

***

펠리지오 호텔의 톰슨.

그는 반유현의 가까운 지인의 자격으로 그에게서 직접 티켓을 받아 입장했다.

하나, 두 개도 아닌 스물여섯 개의 요리가 있다니 저절로 심장이 뛰었다.

반유현이라는 사람 자체에 푹 빠져 있던 톰슨은 과거 10 년을 뒤돌아봐도 이렇듯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행복감도 잠시 실제 사람들이 모인 광경을 보니 이제 그가 두려워지기도 했다.

‘말도 안 돼.’

라스베이거스에 몇 년간 지내면서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축제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며 요리를 담는 모습을 보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조용히 줄을 서서 요리를 담는 사람들에게 ‘반유현’이라는 그 이름에 대한 기대감이 자신만큼이나


있다는 것 아니겠나.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눠봤고, 그의 요리를 꽤나 경험해본 톰슨이 갖는 감정을 ‘반유현’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얻은 사람들을 보니 한 번 더 반유현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이런 테마를 짤 수 있나.’

라스베이거스에는 알다시피, 뷔페 형식의 레스토랑이 꽤나 많았는데, 이렇게 완벽한 주제를 가진 뷔페는


없었다.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들이라…… 마카오에 있는 도박꾼들이 이곳에도 몰리겠네.’

26 개의 요리를 접시에 꽉 채워 담은 톰슨은 자신의 자리로 이동해 포크를 들었다.

‘……!’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아홉 번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국적을 따지지 않은 그 요리들이 하나의 테마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라 한들, 각 나라의 조리법이 다를 텐데 이 접시 안에 담긴 모든 요리는 뭣하나 튀는


것이 없었다.

또 하나, 그 요리들이 모두 메인 요리인 것처럼 비어있는 맛도 없었다.


“컥!”

톰슨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그 맛과 조화에 감탄을 내뱉었다.

“응?”

“뭐야! 이거…… 나 원래 중국요리 못 먹는데?”

국적이 서로 다른 사람들도, 접시 위의 담긴 요리 안에서 대단한 공감대를 만든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한 평생 얼마나 봐왔던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요리는 톰슨의 평생에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것도 살아온 배경이 달라, 그에 따라 형성된 맛의 취향을 가리지 않는 이 26 가지의 요리들의 조합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그때, 톰슨이 주변을 둘러봤을 땐 또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이 요리가 최고라는, 톰슨의 생각의 증거가 되어주려는 듯.

사람들이 각자의 접시 위에 담긴 요리를 비워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경쟁적으로, 더 많은 요리를 먹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했다.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말이다.

그에 따라 톰슨도 저절로 요리를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런 스스로를 부끄럽고 민망하게도 생각했지만,


별수 있나. 이 맛을 많이 즐기고 싶은 마음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나 셰프인 자신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반유현이 마이크를 들고 얘기했다.

“천천히 식사를 즐겨주십시오. 어차피 2 부가 준비되어있습니다. 2 부는 라스베이거스 역사에 남을 저녁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때를 위해 배를 비워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137 화. 반유현의 도시 (1)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반유현의 레인보우’ 그 두 행사가 시작되는 바로 전날.

“내일 당장 행사인데, 규모를 키우시는 게 리스크가…….”

뷔페식 레스토랑인 반유현 레인보우에서 일할 셰프들, 25 명으로만 축제를 꾸몄었던 것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세치 추첨식, 그리고 고든 레지의 철수가 당장 오늘에서 일어난 일이라 이 정도의 파급력을 쉽게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인원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반유현 산하 150 명의 셰프들을 불러 모으면 됩니다. 기존에 이 축제를


준비하던 25 명 셰프를 중심으로 조리를 하고 125 명의 셰프들은 그것을 그대로 배워서 따라 하는
형식으로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행사의 규모를 갑자기 키운다 하더라도, 인력에 대한 문제는 없었다.

이미 라스베이거스에는 ‘반유현 화이트’와 뷔페식 레스토랑을 런칭하고 곧이어 런칭될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셰프들이 상주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을 곧장 축제에 투입시키면 될 터였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렇게 1 부로 축제를 끝낸다면 되려 욕을 먹겠지.”

관광청이 ‘언코크드’의 규모를 계속 키웠고, 세계적 관심을 받는 찰나에 유명 셰프인 고든 레지가 나의


축제에 훼방을 놓으려다 실패해 라스베이거스 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축제를 취소하고 철수했다.

엄청난 이슈가 되기 시작했고, 당장 축제의 하루 전날인 지금, 나는 그 이슈들을 소화하기 위해 규모를


갑작스럽게 키웠다.

문제는 그에 따라 급박하게 투입시킨 인력으로 짜임새 있는 축제를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미식 축제에서 짜임새 있는 축제라 함은 어떤 요리를 어떤 수준의 맛으로 관광객들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게 내놓을 수 있냐는 것이리라.

“일단, 여기 라스베이거스에 데려온 150 명은 모두 기본 이상의 실력이 있는 셰프들이잖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또한 자신 있었다.

“내가 모든 요리를 통제하면 돼.”

조리법을 내 중심으로 맞추고, 150 명의 셰프들은 나의 보조 역할을 하게끔 만들려 했다.

“필레미뇽(filet mignon)을 수비드(Sous Vide)해서 셰프들에게 싹 돌려, 셰프들은 그것을 그릴에


굽고…… 다들 고기 굽는 건 할 줄 알 것 아니야?”

“천오백 명 이상이 넘는 인원이 먹을 고기를…….”

“1 부가 뷔페식이니까, 사람들이 배를 많이 채운 것으로 가정하고, 필레미뇽 하나당 두세 명씩은 먹을 것


아니냐. 대충 500 개 600 개의 고기를 수비드 할 수 있는 머신을 구하면 되겠네.”

“2 부 행사 시작까지 14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대형 수비드 머신은…….”

다소 급발진(?) 적인 계획을 내뱉자, 나의 비서진인, ‘반유현팀’은 또 회의적인 말들을 내뱉을


뿐이었다.

비현실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를 매번 보여줬음에 이들도 태도를 바꿔 나의 계획에 항상 따라왔지만,


이렇게 급하게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엔 항상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다.

100 년을 살아 인간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누누이 알고 있어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저들은 나의 리스크에 대해서 생각해주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계획은 바뀌지 않는다.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반유현’의 이름이 들어가는 축제에, 회사 이름이 박힌 대형 수비드


기계를 사용해줄 테니까, 가져오라고 연락들 돌려봐. 지구 반대에 있더라도 가져오지 않겠냐? 아니,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도 수비드 기계를 만들어서 가져오지 않을까?”

“아…… 그, 그건 그렇습니다.”

물론, 내 계획은 바뀌지 않을 것이란 걸 오스틴과 ‘반유현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종도 하나 준비해줘.”

“종, 말씀이십니까?”
“어, 땡땡 쳐서 소리를 내는 종말이야.”

***

수비드(Sous Vide).

원하는 재료를 진공 포장해, 일정 온도로 유지되고 있는 물에 담가 조리하는 방법이다.

재료의 모든 부위를 일정한, 같은 온도로 조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많은 양을 한 번에 조리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두꺼운 고기를 구울 때, 고기의 속 안을 그라데이션 없이 일정한 정도로 익힐 수 있고, 육즙을 완전히


가둘 수 있어 고급 레스토랑에서 많이들 사용하는 방식 중의 하나였다.

우와아아아아!

내가 사용하고 있는 조리대의 바로 뒤, 천막을 걷자 대형 수비드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 Duo ]

이 대형 기계를 협찬해준 회사의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았다.

버너, 그릴, 환풍기 등등 주방에 쓰이는 각종 장비들을 맞춤 제작하는 회사로, 내가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에 몇 번 컨택이 있던 회사였는데, 호시탐탐 나와 엮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곧장 대형 기계를
준비해서 대령해왔다.

진공 상태가 되어 있는 팩, 그 안에 각종 향신료를 넣고 마리네이드(Marinade)한 필레미뇽, 안심이


있었다.

“1 부 행사에서 요리는 어떠셨습니까?”

우와아아아아!

“다들 소화는 되셨습니까?”

1 부 행사가 끝나고 몇 시간 텀이 있은 후에,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2 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각종 와인과 샴페인, 맥주가 준비되어있고 그 안주를 준비했다.

“준비한 요리는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프랑스 말로는 필레미뇽이라고도 하지요. 지방이 없는 부위다 보니,
레어(Rare) 형태의 구이가 알맞습니다. 오늘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우와아아아!

이때까지는 모두, 내가 수비드한 고기를 그릴에 굽는, 평범한 스테이크를 선보일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은 그마저도 기대가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수비드 기계에서 약 1 시간 반 동안 55 도에서 조리된 안심을 꺼냈다.

행사 진행요원들이 진공 팩에 포장되어 있는 안심을 조리대 앞에 서 있는 150 명의 셰프들에게 나눠


주었다.

땡!
내가 준비된 종을 치자, 셰프들이 진공팩을 벗겨냈다.

내가 치는 종과 셰프들의 행동은 행사 시작 전, 미리 맞춰두었던 것이었다.

150 명의 셰프들이 단 한 번의 종소리에 일제히 같은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퍼포먼스처럼 보였는지


사람들은 또 한 번 환호성을 내뱉었다.

“진공팩을 뜯는 순간, 압력 차이에 의해서 공기가 팩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겠죠. 이 시간은 진공팩 안에
같이 넣어둔 향신료와 조미료들이 고기에 진득하게 배어들게 합니다.”

땡!

내가 다시 한번 종을 치자 셰프들이 진공팩에서 꺼낸 고기를 그릴 위에 올려놓았다.

미리 뜨겁게 가열해둔 고기가 그릴에 붙었다.

150 명의 셰프들이 각각 세 덩이씩 그릴에 올리니,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치이이이익!

땡!

이번의 종소리에서는 셰프들이 고기를 뒤집었다.

나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셰프들이 고기를 굽고 있는 조리대를 둘러봤다.

뒤집힌 고기의 갈색화 반응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저건 빼.”

“저 고기 다시 뒤집어.”

아주 빠르게 불만족스러운 고기들을 지적하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종을 울렸다.

그 소리에는 모든 셰프들이 고기의 옆면을 그릴에 붙이기 시작했다.

우와아!!

150 명의 셰프들이 하나와 같이, 계속해서 움직이자 관광객들의 반응이 고조되었다.

퍼포먼스도 퍼포먼스지만, 나, ‘반유현’이 직접 통제한 움직임 의해 만들어진 요리는 어떤 맛일까라는


궁금증과 호기심, 그리고 기대감이 섞인 반응들이었다.

땡!

그리고 이번엔 또 그들의 기대감을 한 층 더 높이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셰프들이 고기를 그릴 옆에 잘 올려놓고, 어떤 셰프는 닭고기 육수, 어떤 셰프는 야채를 우린 물, 어떤


셰프는 쇠고기 육수…… 어떤 셰프는 와인을 부어 각각 다른 액체로 그릴에 눌어붙은 것들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디글레이즈(daglaze)라고도 불리는 조리법을 실행한 것이었다.

“데글라쎄(deglacer)라고도 불리는 조리법입니다. 지방기가 별로 없는 안심 스테이크의 풍미를, 이


방식으로 한껏 살릴 겁니다.”

고기가 프라이팬 또는 그릴에 구워지며 기름과 함께 진득하게 달라붙은 고기의 진한 맛, 퐁드(Fond)


라고도 불리는 것을 각종 육수나 와인에 녹여 긁어내는 조리법인데, 나는 이것들을 소스의 베이스로
사용하려 했다.

내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뒤에 마련된 개수대에서 손을 씻은 뒤 조리복의 소매를 걷어 올리자,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조리대 앞에 다시 섰을 때, 나는 종을 또 한 번 쳤다.

땡! 

종소리에 맞춰, 디글레이즈를 시작한 셰프들이 모두 작업을 마치고 질서 있게 줄을 맞춰, 디글레이징한


퐁드를 용기에 담아 내 앞으로 가져왔다.

나는 아주 거대한 팬에 셰프들이 건네준 퐁드를 부었다.

그리고 그때, 행사 진행요원이 내 입에 마이크를 갔다 대자, 내가 말했다.

“어떤 셰프는 와인, 어떤 셰프는 닭 육수, 어떤 셰프는 쇠고기 육수에 디글레이징을 했습니다. 이는 모두
처음부터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그레이비 소스를 준비했습니다.”

우와아아아!

꺄아아아악!

그레이비(Gravy) 소스는 고기를 조리 할 때 나온 육수를 기반으로 하는 소스이며, 아까 말 한대로 지방


함량이 적은 고기의 풍미를 높일 때 사용되는 소스였다.

각각 쇠고기 육수, 닭 육수, 채로 우린 물, 와인 등으로 150 명의 셰프들이 다르게 디글레이징 한 퐁드에


또 한 번 쇠고기 육수를 추가했다.

뭐야아아!

저걸로 소스를 만든다고?

150 명이 각각 가져온 퐁드를 소스의 베이스로 사용한다는 그 발상 자체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그 소리들을 들으며, 육수를 높은 온도의 불에 졸여내고는 밀가루와 버터를 넣어 농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크림과 향신료를 넣어 그 색과 맛까지 조절해 소스를 완성했다.

“보신 것처럼 이 소스에는, 이곳에 있는 150 명의 셰프들이 고기를 구운 흔적과 정성을 담았습니다.”

땡!

내가 또 종을 치자, 자리로 돌아간 셰프들은 자신이 구워냈던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내기 시작했다.

***

150 명의 셰프들이 일제히 움직였고, 그 맛을 정리한 건 반유현의 소스였다.


이 고기의 맛을 한 줄로 설명하자면 그랬지만, 그 실상은 아니었다.

“미쳐버리겠네. 진짜.”

톰슨은 이 요리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먹여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톰슨뿐만 아니라, 그 휘하에 있는 셰프들과 동료들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주방의 규모가 아니라, 백 명이 넘는 셰프들을 종소리 하나로 통제해서 이런 맛을…….”

“하…… 땡 치면 셰프들이 움직이는 그 모습이 아직도 그려집니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수비드한 안심의 두꺼운 속은 모두 균일하게 육즙을 가둔 채로 적당히 있었다.

애초에 수비드를 하기 전, 반유현이 직접 마리네이드를 한 건지는 몰라도 그 간 또한 아주 적절했다.

그런 고기의 겉을 구워 갈색화 반응을 이끌어 냈고, 고기의 풍미를 극대화했다.

고기를 굽기 전 마리네이드와, 높은 온도에 고기의 겉면을 튀기듯이 익히는 건 여느 레스토랑에서 다 할


수 있는 정도라 놀랍진 않았었다.

문제는, 반유현이 만든 이 소스였다.

“150 명 각각 다른 육수로 디글레이징을 했고, 그것을 한곳에 합쳐 소스를 만드는 발상을 대체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애초에 그것을 생각하고 각각 셰프들에게 어떤 육수로, 어떤 와인으로 디글레이징을 할지 배정해준 것도


…….”

물론, 발상 자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맛은 또 어떠한가.

“안심이 가지고 있는 단점? 맛에서 부족한 면은 완벽히 채워주었습니다.”

“채워주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한 요리로 만들어 버렸잖아. 가니쉬도 없이 스테이크를 이렇게 풍족하게
먹어본 기억이…….”

“하아. 저 모르겠습니다. 오늘부터 반유현 셰프님한테…….”

“야야야! 그건 그래도 안 되지.”

오늘 반유현이 보여준 종소리 퍼포먼스와 그 맛은 이 장소에 있던 셰프들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친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셰프들이 또 주목한 건, 반유현의 자신감이었다.

“것보다 이런 결과가 나올 걸 알았단 소리야? 저 카메라가 대체 몇 대야.”

“이 퍼포먼스와 맛이 모두 통할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축제의 장을 두르고 있는 펜스의 밖,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방송용 카메라가 이 장면을 모두 담고 있었다.


종소리부터 셰프들이 행복에 겨워하는 장면들 모두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138 화. 반유현의 도시 (2)

두말할 것 없는 완벽한 성공이었다.

땡! 땡!

-와아아아! 저거 보세요. 어떻게 저 종소리 하나로 군더더기 없이 셰프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하루


이틀 연습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축제 시작 전, 불과 몇 시간 동안만 저 동선을 맞춰봤다고 하는데요?

-에이! 아무리 반유현 셰프라 한들 어떻게 그렇겠습니까.

요리 유튜버, 미식 유튜버, 여행 유튜버 등등 이렇다 할 채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영상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자, 사람들은 저마다 개성을 섞어 영상을 편집하고 하이라이트로 만들었다.

개중에서 단연 화제가 된 장면은 150 명의 셰프들이 내가 치는 종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와아아아아! 저 장면은 행사 바로 두 시간 전에 만들어진 동선이라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소문은 소문대로 타고 흘러가 점점 진실이 되었다.

아, 물론 실제로 행사 시작 두 시간 전에 종소리에 의한 동선을 만들고 맞춰본 것은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BBS 리포터 엘리스입니다! 오늘은 라스베이거스 ‘반유현 레인보우’라는…….

나의 영상을 퍼 나르는 것은 유튜버들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공영방송사의 여행, 다큐 채널부터 뉴스까지 그날 저녁의 나를 조명했다.

-반유현 셰프는 세계적인 미식 축제 ‘언코크드’보다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축제에 동원하며…….

-라스베이거스의 왕좌는 반유현 셰프이며, 앞으로도 그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특히나 가장 강력하게 보도를 하는 방송사는 미국, 네바다주의 지역 방송사들이었다.

프랑스 파리처럼, 라스베이거스의 부흥을 나로 하여금 다시 이루어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는


그들.

이제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를 주무르는 것은 관광청이나, 몇몇의 스타셰프, 그리고 특급호텔들이 아닌,


브랜드 ‘반유현’이라는 것을 이번 행사를 통해 똑똑히 알아버린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습니다. 그가 앞으로 런칭할 레스토랑은 무려 여섯 개나 더 있습니다.

-반유현 팩토리의 성적우수자들의 레스토랑인 ‘반유현 화이트’, 프랑스에 다섯 개 있는 그 매장을


라스베이거스에 다섯 개 더 런칭한다고 합니다!

-또,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 내부 뷔페 형식의 ‘반유현 레인보우’뿐만 아니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런칭한다고 하네요. 그렇게 되면 총 일곱 개의 ‘반유현’ 레스토랑이 라스베이거스에 런칭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관심은 또다시, 반유현 팩토리로 이어졌다.

-라스베이거스에 확정적으로 ‘반유현 화이트’를 런칭하는 사실이 알려지자, 반유현 팩토리 내부적으로도
셰프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저는 현재, 반유현 팩토리에 나와있습니다. 셰프들을 만나보시죠!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오!! 와아아!! TV 나온다!!

-네, 하하하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시구요. 이 조직의 수장인 반유현 셰프가, 라스베이거스에 반유현
화이트를 더 런칭한다고 했을 때, 내부적으로 어떤 반응들이 있었었나요?

-다들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바늘구멍 같았던 반유현 화이트의 진출이 조금이나마 늘어났다는 것이구요.
실제로 몽토르게이 골목에서 ‘반유현 화이트 1’을 운영하시던 메이 셰프님과 그 팀원들이 라스베이거스
레스토랑 ‘반유현’의 총괄 셰프가 되셨고요.

이번 라스베이거스의 행보의 시작은 완벽한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반유현 팩토리의 성적 우수자로 뽑혀 파리에서 ‘반유현 화이트’를 운영하던 다섯 개의 팀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식 레스토랑을 맡는 셰프가 되었다.

이것은 반유현 팩토리의 시스템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반유현 팩토리 내부의
셰프들에게 대단한 동기를 심어주었다.

“반유현 팩토리 자유시장의 경쟁률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부지를 구해야겠군.”

“파리, 또는 프랑스 전역의 그렇다 할 부지를 골라보겠습니다.”

“아니야. 새로운 분교를 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기존에 있던 반유현 팩토리도, 굉장히 큰 건물로 지었는데 이제는 그곳에 몰리는 관심과 사람들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나는 더 넓은 부지로 새로운 캠퍼스를 지어 이사를 고려하는, 내 비서진들 ‘반유현팀’의 제안을 일단


거절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문뜩 떠오르네, 각 대륙별로 반유현 팩토리를 두는 건 어떨까.”

“예, 예? 다시 한번 말씀해…….”

“각, 대륙, 별로, 반유현 팩토리를 두는 건 어떻겠냐고. 캠퍼스를 동시에 다섯 개씩 올릴 만큼의 현찰은
없지만 투자도 많이들 들어올 것 같은데.”

“아…….”

이들이 생각해 본 적 없던, 아니, 먼 미래에나 계획할 것으로 생각해두었던 것을 지금 말하니 또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스틴 뒤로 경호원들과 비서진들이 나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뭐해, 당장들 나가서 투자할 회사들 물어와.”

“예?”

“라스베이거스에 런칭할 레스토랑들 때문에 바쁘지만. 대륙별 반유현 팩토리의 캠퍼스를 두는 것까지
동시에 추진시키자고.”
이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 대한 관심.

그 관심에 불을 기름을 부을 생각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생각이고.

지구 전체에 있는 고급 셰프 인력을 내 손으로 만들 생각이다.

“후. 바쁘긴 바쁘겠다.”

***

[ 반유현 - 레인보우 ]

라스베이거스 첫, 레스토랑인 ‘레인보우’를 레스토랑 ‘반유현’ 예약 어플에 서비스하자 또다시 3 개월


기간의 모든 예약이 꽉 차버렸다.

뷔페 형식이라 다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보다 회전율이 빨라 현장 웨이팅을 받기에, 예약할 수 있는 양이


적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압도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공적 런칭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셰프님, 그리고 현재 저희는 투자 제안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컨펌을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내 비서진들은 레인보우의 런칭을 축하할 새도 없이, 반유현 팩토리의 5 대륙 캠퍼스에 대한 계획서,


투자제안서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 제안서 보고 문장 몇 줄 고쳐주는 것 보다, 반유현 화이트를 더 성공적으로 만드는 게 효과적일 것


같은데?”

그들이 아무리 종이에 유려한 문장들을 잘 적어봤자, 투자자들은 나의 이름과 얼굴을 보고 투자하기
마련이었다.

그의 일환으로 라스베이거스에 새롭게 런칭할 ‘반유현 화이트’가 중요했다.

반유현 팩토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 레스토랑의 부흥은 당연히 내가 계획하고 있는 5 대륙 반유현


캠퍼스에 대단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반유현 셰프님께서 ‘반유현 화이트’를 런칭할 호텔들을 다섯 개를 정하셨잖습니까? 그런데…….”

이미 내 세력들을 모으기 위해서, 반유현 화이트를 런칭하는 것을 빌미로 라스베이거스 내에 호텔들을


모았었다.

그렇게 선정된 다섯 곳이 이미 있었는데 오스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듯했다.

“다른 호텔들이, 이미 선정된 호텔과의 위약금을 모두 지불하겠다는 제안은 기본이고, 더 파격적인


제안들로 제안서를 보냈습니다.”

이미 선정된 호텔들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들로 나에게 제안을 걸어온 호텔들이었다.

물론, 이것들은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축제가 끝나고부터, 제안을 한 호텔들은 줄 잘못 선 호텔들이잖아.”

맨 처음 내가 제안을 했을 때, 관광청의 옆에 붙어 있던 호텔들이 대부분이었다.


축제가 열리고 ‘언코크드’와 관광청의 몰락에 절망하던 호텔들이 이제야 나의 가치를 몸소 깨닫고
파격적인 제안을 해 온 것이었다.

“위약금을 다 물어준다니…… 이 정도의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건 그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 치워버려. 의리가 있지.”

위약금도 많은 돈이긴 하지만, 결국엔 돈이다.

지금 내가 가진 이름값은 오히려 돈에 의해 움직이면 그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새롭게 제안 온 호텔들은 관심 하나 주지 마. 완벽하게, 어느 정도냐면 이 도시 안에서 나의 영향력에


의해 어떤 이득도 취할 수 없게 만들어야 돼.”

“아, 알겠습니다.”

“그게, 처음부터 내 가치를 알아본 회사들에 대한 표현이야.”

이런 행동을 보이면 보일수록, 나를 따르는 회사와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

‘반유현 화이트’는 런칭하기로 한 호텔들의 1 층 로비, 또는 야외 정원에 위치해 있었다.

코스요리가 아니라 대부분 단품요리의 메뉴를 몇 개씩 파는 특성 덕에 프라이빗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를 수 있는 위치를 선택한 것이다.

파리의 ‘반유현 골목’, 그곳에 위치한 ‘반유현 화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간판이 참 멋있습니다.”

이미 선정되었던 다섯 개의 호텔에 ‘반유현 화이트’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이 또한 역사상 없었다고 합니다.”

뭔가 거창하게, 계속해서 ‘역사’를 들먹거리는 오스틴에 의해 다소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이 멋진 도시에, 이런 간판을 다는 호텔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라스베이거스는 대단히 화려한 도시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이유가 멋들어진 호텔들과 그에 못지않은
건물들이었다.

그런 건물들에 어떤 간판을 내건다는 건, 그 건물의 익스테리어(exterior)를 망칠 수가 있는 것인데


‘반유현 화이트’를 런칭하기로 한 호텔들은 하나 같이 모두 간판을 내걸었다.

[ 반유현 - 화이트 ]

다섯 개의 매장, 다섯 개의 호텔 모두.

특히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호텔도 간판을 내걸었다.

“저건, 조금 무리한 것 아닌가? 내 이름이 저 호텔의 외관을 망치는 것 같아서 신경 쓰이는데.”

어떻게든 어울리게 만들기 위해 깃발 형식으로 잘 꾸며놓기도 했지만, 결국 간판은 간판이었다.


그 성 모양 호텔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해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회장이 직접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회장님이?”

“자신들이 맨 처음 반유현 화이트를 런칭하기 위해 한 제안은 반유현 셰프님이 새롭게 받은 제안에 비하면
볼품없는 것일 텐데, 그런 제안들을 모두 거절하고 의리를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다구요. 반유현 셰프님의
의리에 감탄했고 자신들도 반유현 셰프님의 브랜드가 들어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내가 보여주었던 행동에 대해, 저들도 답례를 하는 것이었다.

“가치를 제대로 아는 회사구만.”

[ 반유현 화이트! 라스베이거스에 이름을 남기다! ]

[ 특급 호텔들 역사에 유례없던 ‘간판’ 내걸어! ]

[ 외관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가치 있어. ]

호텔이 세워지고 나서 외관에 어떤 부착물도 붙이지 않는 전통을 보여왔던 특급 호텔들이 반유현이라는


이름을 내걸자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효과로, 반유현 화이트가 런칭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 달 각 호텔들의 객실이 모두 마감되었다.

139 화. 반유현의 도시 (3)

특급호텔들이 역사에 유례없던 간판을 외부에 걸어주니, 저절로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이렇듯 판이 잘 깔려 있을 때는 최고의 맛과 퍼포먼스로 그들의 기대를 만족감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오늘은 ‘반유현 팩토리’의 성적 우수자로 뽑혀, ‘반유현 화이트’ 다섯 개의 레스토랑을 맡게 될


셰프들의 메뉴 테이스팅이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이전 메뉴 테이스팅과 달리 카메라와 그 카메라를 다루는 스텝들을 동원했다.

“다들 라스베이거스에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고생하셨습니다.”

카메라가 있었으니, 메뉴 테이스팅을 시작한다는 멘트를 날려주었다.

축제, 방송, 여러 행사 경험을 셀 수 없이 하다 보니 대본을 읽은 것 같은 멘트들도 입에 착착 감겼다.

50 명과 그들을 각각 10 명씩 나눈 팀의 교수진 다섯 명.

그들은 공식적인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내 브랜드 ‘반유현’의 옷을 완전히 입게 되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메뉴 테이스팅의 수준을 올릴 겁니다.”

라스베이거스, 이 도시의 특성을 살려서 이곳에 런칭 할 ‘반유현 화이트’의 메뉴를 선정했다.

그 어떤 도시보다 밤이 화려하고, 역동적인 이 도시에서는 한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요리들이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요리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 경험에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요리.
코스로 구성된 요리가 아니라, 한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요리였기에 그 맛이 더 중요해졌다.

브랜드 ‘반유현’이라는 색을 최대한 살리려면, 그 간편함 안에 최상의 맛을 담아야 했으니까.

“꽃등심 초밥, 코코넛 새우튀김…… 찹쌀 탕수육, 칠리미트 핫도그, 전복 버터구이, 치즈 랍스타…….


각각이 준비해온 메인 메뉴 그 자체는 일단 괜찮네요.”

내 앞에 가지런히 도열해 있던 셰프들은 브랜드 ‘반유현’의 전통인 내가 직접 메뉴 테이스팅을 한다는


것에 꽤나 감격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 전통이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에 자신들이 그 현장에 있는 것에서 오는


감동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카메라가 동원되어 이 순간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번 메뉴 테이스팅에는 내가 의도하고 카메라를 동원했지만, 이들은 원래 메뉴 테이스팅을 할 때,


카메라가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나는 가장 맨 첫 번째로, 코코넛 새우튀김을 맛봤다.

내가 하나의 새우를 입에 넣자, 이들의 집중력이 나의 입을 향해 쏟아졌다.

“새우껍질을 갈아 넣었나요?”

“그렇습니다!”

유타. 말레이시아 국적을 가진 셰프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다년간 일한 경험이 있고, 멕시코
칸쿤의 특급 리조트의 레스토랑 총괄을 맡았던 자였다.

나보다 열 살 정도는 많은 사내였으나, 군인처럼 차렷 자세로 대답을 했다.

“튀김 가루에 새우껍질을 갈아 넣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으로 채용되어 팀원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성적 우수자 팀의 반열에 올린 그는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곤두세웠다.

그의 밑에 있던 셰프들도 당연히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목적을 분명히 해야 될 것 같네요. 어중간합니다.”

새우의 풍미를 위한 것인지, 튀김옷에 한층 더 바삭한 식감을 위해서인지, 재료를 쓴 이유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어…… 그, 그게.”

다년간 대규모의 특급 리조트 안에 있는 모든 레스토랑을 총괄한 그도 벙찐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애초에 새우껍질을 갈아 넣은 것에 대해 어떻게 알아냈냐는 식으로 말이다.

“새우의 살의 풍미 말고, 더 진한 향이 느껴졌습니다. 새우 내장을 이용한 것만큼 강한 풍미는 아니었고,


튀김옷에서 그 맛이 느껴져서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어떤 이유로 넣으신 겁니까?”

“새우살에는 풍미가 가득한데, 튀김옷에도 새우의 풍미를 더하고 싶어서 그랬습니…….”

“껍질을 갈아 넣을 때 그 분자를 더 갈아야 할 것 같습니다. 크기가 애매해서요.”

“예! 셰프!”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메뉴 테이스팅은 이어졌다.

“꽃등심 불초밥이라고 했는데, 숯불에 한 번 구워낸 꽃등심에 토치로 불 맛을 가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숯불의 향과 간장을 태워서 내는 불 맛이 합쳐져서 너무 무거운 느낌입니다. 밸런스가 하나도 맞질


않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밥알도. 밥알에 대한 건, ‘반유현 레인보우’로 가서 메이 셰프를 찾아 배우세요. 바쁘지만 알려줄


겁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평가가 계속해서 나오자 셰프들의 분위기는 점점 죽상이 되어갔다.

“전복 버터구이, 전복장 덮밥…… 전복의 선도도 좋고 굽기도 알맞은데 전복이 썰려 있는 결이


잘못되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셰프!”

“그리고, 전복 껍질 분리를 누가 했습니까? 전복 껍질을 분리하는 방향부터가 틀린 것 같습니다.”

나의 불호령에 또다시 셰프들의 몸과 표정이 경직된다.

“입이 있는 부분부터 파고 들어가야죠. 내장이 있는 곳으로 파고 들어가 껍질을 분리하다 보니, 내장이
터져서 그 냄새가 향에 묻어나네요. 자칫하면 비릿한 향을 낼 수도 있습니다. 내장을 손질할 때, 식도는
왜 빼지 않았습니까? 식감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카메라가 메뉴 테이스팅 현장을 찍고 있자니 나의 피드백도 자세하게 변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이었다.

“이만하겠습니다. 제가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제 선에서 통과가 되지 않는다면 ‘반유현 화이트’의


오픈되지 않을 겁니다.”

***

여태까지 메뉴 테이스팅 현장에 단 한 번도 없던 카메라가 있던 이유라 함은, 홍보였다.

내 브랜드 산하에 있는 레스토랑이라면, 메뉴 테이스팅을 필수적으로 거쳤는데 그 과정을 공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셰프들의 소문에 의해 나의 메뉴 테이스팅에 대한 이야기들이 널리 퍼졌는데, 이는 그를


이용한 것이었다.

수많은 베일에 싸여있던 메뉴 테이스팅의 현장이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생각은 실현되었다.

-제 선에서 통과가 되지 않는다면…… 오픈되지 않을 겁니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단호한 내 목소리.

이 말은 온라인에서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 레스토랑 반유현의 메뉴 테이스팅 그 현장 공개! ]

[ 최초 단독 공개!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리는 반유현의 말! 말! 말! ]

[ 반유현의 레스토랑이 맛있는 이유. ]

[ 맛을 보고 조리법까지 파악하는 그는……. ]

셰프들의 요리를 먹고, 자세하게 평가를 했던 것이 부각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었다.

-저 정도 수준의 평가로 메뉴 테이스팅을 하니 맛이 없을 수가.

-저 정도면 거의 반유현이 직접 요리하는 급이겠네!

-대박인 게, 반유현 화이트는 예약 없이 먹을 수 있음. 그렇다고 퀄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네.

내 이름을 걸고 나오는 메뉴들이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서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더군다나, 경력이 꽤나 높은 교수진들도 내 명령을 완벽히 따르는 모습 또한 내가 브랜드의 모든 메뉴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홍보는 완성됐네.”

특급호텔들이 간판을 세워준 덕에, 대외적인 홍보가 무르익을 시점에 내부적인 것들을 노출 시키며
라스베이거스 반유현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그에 따라 또, 여러 기업들이 냄새를 맡고 수많은 제안들을 보내왔다.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제안을 보내느냐는,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하는데 이번엔 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언코크드’를 완전히 꺾은 모습과, 특급호텔들이 내 이름을 대우하는 모습, 거기에 내가 메뉴


테이스팅을 하는 장면들이 이들의 행동을 부추겼을 터이다.

“포장지와 포크를 협찬하겠다는 업체와 관광객들이 줄 서 있을 때, 간이의자를 협찬하겠다는 업체……


튀김기 등 각종 주방기구를 무상으로 설치하겠다는 업체…… 반유현 화이트의 음식을 먹은 손님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주겠다는 업체…… 뭐, 끝도 없습니다. 셰프님 이름에 빌붙어서 뭐라도 얻어 보려는
이들이요.”

“당연한 거지 뭐. 다들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기 좋네.”

나에게 온 제안들을 둘러보다가 한 가지 제안을 한 업체가 눈에 띄었다.

***
“이런 혁신적인 기업에 이름을 얹어주는 것도 가치를 높일 수 있지.”

‘바이오팬시’라는 이름을 가진 기업이었다.

옥수수, 코코넛 껍질, 아보카도 씨앗을 이용해 친환경 일회용품을 생산하는 기업.

자연에 방치해도 지구를 어지럽히지 않는 물질로, 플라스틱을 대신할 소재를 개발하는 기업이었다.

이 기업은 ‘반유현 화이트’의 주제를 단번에 파악하고 나에게 제안을 걸어왔다.

초밥, 새우튀김, 전복 버터구이 등 간단한 단품 메뉴로 구성된 것들을 보고, ‘반유현 화이트’에서
수많은 일회용품들이 배출될 것을 알고 발 빠르게 제안을 한 것이었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계속해서 끼치고 있다는 것도 내 이름값을 계속해서 드높이는 일이니까.”

나는 이 기업의 제품을 다섯 개의 반유현 화이트에서 사용하려 했다.

이제 나의 명성은 셰프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기에, 그에 따른 행동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런 행동들은 나에 대한 끝없는 기대로 뭉쳐져 있는 대중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해줄 것이다.

“소각하거나 매립해도 환경문제에 아무런 영향이 없어. 더군다나 분리수거 문화가 없는 미국에서는 이
친환경 그릇과 포크, 컵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야.”

스스로의 영향력을 알고, 그렇듯 행동한다는 게 다시금 인기를 끌어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반유현 화이트에서 사용할 물품들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까요 저쪽에서?”

“현찰 좀 투자해주고, 생산량 늘려줘. 그리고 그 내용까지 모두 언론 통해서 뿌리고.”

더불어, 한번 정한 행동은 아주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것까지 보여주면 무결하다.

이쯤 되면 어떻게든 나를 깎아 먹으며 자신들의 입지를 올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길 터인데, 그들에게


빈틈을 주지 않는 행위이기도 했다.

“분명 일회용품 어쩌고 떠들고 나와서 까부는 놈이 있을 거야.”

100 년의 경험을 통해서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럼, 오픈 준비는 완벽하게 된 것이고.”

“그렇습니다!”

“그에 따라 다음 계획을 추진할 때가 된 거네.”

“다, 다음 계획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제리 셰프가 메뉴 구성과 주방 조직을 모두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들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오스틴은 나의 다음 계획이 라스베이거스에 제리가 총괄인 파인 다이닝을 런칭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애초에 라스베이거스의 계획은 뷔페 레스토랑, 반유현 화이트, 파인 다이닝…… 이렇게 해서 세


가지였으니까.

“말고, 반유현 화이트가 뭐랑 직접적인 관련이 있나.”

“반유현 팩토리의 성적 우수자들이…….”

“그래, 라스베이거스에 반유현 화이트가 성공하리란 게 거의 확실시 되었으니까. 전 세계 다섯 개 대륙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것부터 추진하자.”

140 화. 반유현의 도시 (4)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에서 쓰레기통을 추가적으로 배치할 만큼.

라스베이거스 내에 ‘반유현 화이트’ 매장 다섯 개는 성공적이었다.

쓰레기통을 추가로 배치했다는 게 왜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냐고?

바이오팬시에서 협찬받은, ‘반유현 화이트’라고 적혀 있는 친환경 일회용품 접시가 거리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길가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내에 위치한 다섯 개의 ‘반유현 화이트’는 거리를 꽤나 두고 있어 서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행렬은 서로 보였다.

레스토랑 그 점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각각의 레스토랑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였던 것이다.

내 계획과 기대에 맞게 첫 오픈 첫날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했다.

“이쯤되면 실패하는 것도 보고 싶습니다.”

“뭐?”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맞아. 나도 보고 싶어.”

이제는 실패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할 정도로 반유현이라는 몸으로 환생한 뒤에 성공의 성공을 거듭해왔다.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감정의 기억은 이 몸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꺄아아악!

반유현이다아아!

우와아아아아!

이제 내가 의전용으로 타고 다니는 차량,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경호원과 수행원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까지


소문이나, 내 차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물량은 다들 소화하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이렇듯 성공을 예감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셰프들의 숙련도였다.


‘반유현 화이트’의 셰프들이 맛을 내는 숙련도는 애초에 이렇듯 많은 사람을 예상해 주문했었다.

“천 번째의 요리를 맛보신 것도, 완전 소문이 나서요.”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을 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강도를 올려서 했다.

자신이 맡은 메뉴를 천 개 요리하고, 나는 그 마지막 천 번째의 요리를 맛봄으로써 그 요리의 맛이


떨어졌나 떨이지지 않았나 까지를 판단했다.

“오십 명 중에 단 한 명이 나가떨어졌습니다.”

의지력을 실험할 수 있는 테이스팅이기도 하고.

“어쨌든, 이제 성공했으니까 더 공격적으로 추진해도 되는 것 아니야.”

“그렇습니다.”

“당장 내일 모아봐.”

“예? 내, 내일이요?”

“시간 없어, 반유현 팩토리 계획 구상하고 바로 라스베이거스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런칭 준비해야


되니까.”

이렇듯 반유현 화이트가 성공적으로 런칭했으니, 또 담담하게 다음의 계획을 실행할 차례였다.

“규모가 커지면서, 반유현팀의 직원들도 계속 뽑아줬잖아. 내일까지 못 모아?”

“모아보겠습니다!”

“그래.”

***

“투자 설명회 정도는 하시기 위해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반유현팀’에 지시한 것은 하나였다.

반유현 팩토리 5 대륙 프로젝트에 투자할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놓으라.

“아니야.”

“그럼…….”

“투자 설명회는 이미 끝났어. 반유현 화이트의 성공적인 런칭, 그리고 나에게 협찬, 투자했던 기업들의
완전한 부흥. 이미 다 보여줬는데, 뭐가 더 필요해.”

이전 행사 때, 나에게 대형 수비드 머신을 급하게 협찬해준 ‘Duo’라는 기업은 연일 상한가를 치며 장을


마감했고, 매일 매일 최고의 매출을 갱신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또, 나에게 친환경 접시를 협찬해준 ‘바이오 팬시’라는 기업은 대기업의 투자를 공격적으로 받아 완벽한
성장의 밑거름을 만들어 놨다고 한다.

이전에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조리복을 협찬해준 업체가 중견기업 못지 않은 구색을 갖추게 된 것도 그에


대한 사례였다.

이제 기업들은 나의 이름에 돈을 얹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엔 반유현 화이트를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그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확장
투자를 받으려는 것이니 수많은 기업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나는 그 기업들의 관심에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겨 이익을 얻어내려 했다.

턱.

거대한 문을 열자, 넓은 연회장이 보였다.

내가 들어가자,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기업인, 공무원, 투자자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나는 의미 없는 모션을 하지 않고 곧장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어떤 축제나 행사가 아닌, 어떻게든 나를 잡고야 말겠다는 목적으로 모인 이들이었으니까. 나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듣고 싶어 안달 났을 그들의 애를 태우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입장했을 때, 박수를 치던 이들이 모두 박수를 멈추었다.

똘망똘망한 눈빛들, 대부분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거나, 많은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나와 눈이 한 번이라도 마주치기를 바라면서 눈빛을 쏘아 보냈다.

“이렇게나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재 유럽의 파리에는 이미 반유현 팩토리가 있습니다.


남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이렇게 총 다섯 개의 대륙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치하려고 합니다.”

다시금 박수가 쏟아져 나온다.

이들 모두 나의 계획을 지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거대한 대륙들을 커버하는 것 또한 쉽지 않겠지만. 그것들을 기점으로 반유현 팩토리를 계속 확장


시킬 겁니다. 어떻게 보면 역사에 유례없던 셰프 양성 기관을 만드는 겁니다. 그것도 가장 큰 규모이자,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으로요.”

그리고,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반유현 팀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무대 뒤로 펼쳐졌다.

“합리적인 시스템이라 하면 주기적인 경연, 그리고 그 경연의 방식, 팀별로 세분화된 교수진, 그리고
성적 우수자의 완벽한 기회 보장 등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반유현 팩토리가 확장되려면 그만큼의 ‘
반유현 화이트’가 필요합니다. 각 대륙별 반유현 화이트를 확장시킬 생각은 당연한 것이며, 레스토랑의
기본적 이해가 반유현 화이트의 기반이었기에 단품 메뉴를 주로 판매했지만, 이제는 그 규모까지 키울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계획들을 주저리주저리 모두 이야기했다.

기업은 나의 브랜드를 이용해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며, 국가는 일자리 창출 효과와
세수를 거두어들이는 것에 많은 효과를 볼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꺼낼 때마다, 장 내 사람들의 반응은 거세졌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단 하나 거짓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겠습니다. 우리들의 시간은 금, 아니 그보다 더 비싼 것이니까요.”

나는 준비한 A4 용지 하나를 들고 말했다.

“이 종이에 각자 기업, 또는 국가에서 반유현 팩토리 유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주실 수 있는지를 적고,


종이와 함께 준비된 봉투에 넣어 저희 행사 진행요원이 들고 있는 통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저마다의 팀들과 의견을 나누며 종이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세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 그를 위한 베팅은 기업이나 국가나 그에 속한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저들끼리 회의를 위한 시간을 줬다.

그런데 그때, 한 사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해왔다.

“질문할 시간은 주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꽤나 당당한 태도.

할 말만을 하고 유유히 걸어 나가는 나에게 불만을 가졌다는 듯한 목소리와 말투였다.

“결국에 반유현 셰프님은, 투자를 받으시려는 것 아닙니까? 받는 건 그쪽이고요.”

그의 언성이 높아지자 경호팀이 다급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장내의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화려한 복장과 외모를 보아하니, 아프리카 어떤 나라의 고위급 공무원처럼 보였다.

독재가 만연하고, 고위급 인물들이 많은 부를 차지하고 있는 그 대륙 특성상 나의 발언과 태도가 어쩌면


자신을 홀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내버려 둬.”

내가 손짓하자 경호원들이 다시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질문하시죠.”

다시 손짓하며 말하자 행사 요원이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줬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어느 정도의 규모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질문 하시기 전에 소속과 이름을 밝히시죠.”

져주는 듯하다가, 강하게 나가니까 맥을 짚지 못하고 당황한 사내였다.

“저, 저는 케냐 대통령 비서실 사무장입니다.”

“이름은요.”

장내는 조용했다.
내 무뚝뚝한 말투와 표정 그 자체에 의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그때, 나의 태도가 불편했던 이들이 일어나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무시하는 겁니까!”

“우리 아프리카를 무시하는 거야!”

“당장 사과해!”

“이곳엔 왕족분들도 계시다고!”

아까 말했다시피, 장기간 독재를 해왔던 이들이라 그런가.

그럴 때 아닐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싫다면요?”

언성을 높이는 그들의 앞에서, 나는 마이크로 잔잔하게 그들의 요구에 대답했다.

“내가 받는 입장이긴 한데. 해주기 싫으면 나가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막 뱉어대며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이 하나둘 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계속해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들이 원래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아니었다는 듯이 말이다.

결국에 그 진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가고, 몇몇의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

그렇게 나에게 제안할 것들을 작성하라고 한 뒤에 나는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100 년을 살았어도 생각을 안 해봤다.’

아프리카 대륙의 왕족, 독재 정권의 수하인들을 본 뒤 1 시간이 지났나.

나도 모르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0 년의 삶을 살면서, 내 휘하에 아프리카 국적의 셰프가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대륙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미슐랭 가이드가 그쪽에 진출하지 않았고, 그들의 미식문화가 맛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손에 쥐고 미션 성공을 멀지 않은 거리에 두고 있자니 별의별 생각이 떠오른다.

이번 생에 한식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을 런칭했던 것처럼


그들의 요리에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지금 든 생각은 그들의 요리 자체가 실제 ‘요리’를 문화의 하나로 향유하는 사람들에겐 생소하고 신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반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반유현 팩토리를 아프리카 대륙에 세우는 것은 문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미 각 나라의 수장, 또는 그들의 하수인, 또는 왕족인 저들이 내 이름 자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고


떠나갔으니 세금 문제며, 치안 문제며 문제가 많을 것이다.

“저들의 문화를 밖으로 빼볼까.”

결국 문화를 만든 것은 사람이었으니 아프리카의 요리 문화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빼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을 흡수하는 것은 반유현 팩토리의 다양성을 넘어서, 나 자신에게도 신선한 바람을 불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요리라는 문화 안에서의 작은 움직임이 저 대륙의 부패를 바꿀 수 있지도 않을까.

“몸집이 커지니 내가 별 생각을 다 한다. 내 목표는 미슐랭이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이전의 삶에서는 미슐랭 스타라는 단 한 가지 목적에 매몰되어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지금은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이제야 온전히 삶을 누리는 느낌이 들었다.

141 화. 요리사, 그 이상의 힘 (1)

대한민국과 일본.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 그 싸움이 이번에도 시작되었다.

“그쪽은 마음 편하시겠습니다. 반유현 셰프가 한국 사람이니.”

일본의 문부과학성,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교육부, 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가 모두 합쳐진


곳이었다.

그곳의 장이라고도 불리는 ‘대신’, 야마 마사히코는 대한민국의 문체부 장관을 보고 비웃었다.

“반유현 셰프님 스타일을 모르고 오셨나 본데, 반유현 셰프님의 고향이 대한민국이라 한들 저희 정부를
그냥 선택하실 리 없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문체부 장관 옆에 있던 대한민국 관광청장이 말해주었다.

“뭐 말씀들은 그렇게 하시겠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유치를 해낸 것처럼 보여져야, 그쪽 정부든, 반유현
셰프든 깨끗해 보이니까요.”

대답을 하면 할수록 일본 정부 측의 비아냥은 거세졌다.

먹지 못할 떡에 흙이라도 뿌리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배가 많이 아프신가 봅니다. 세계에서 미슐랭 스타가 가장 많은 나라에서, 반유현 셰프님 같은 분을


탄생시키지 못하셨으니.”

대한민국 정부의 사람들도 지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를 하신 겁니까? 저희 정부와 반유현 셰프님을 까내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니요. 저희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일본에 꼭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할 겁니다. 애초에 그 나라보다
저희 측이 실력 좋고 잠재력 있는 셰프들이 많으니까요.”

“일본 정부에서 어떤 계획을 해왔는지 궁금하네요.”

대한민국 정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일본이 총 역량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반유현이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대한민국 정부의 관광청 관계자와, 문체부 장관 등, 그들은 반유현이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몸이 편한 곳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었다.

“평범한 계획들을 꺼냈다가 괜히 망신이나 당하지 마세요.”

***

나는 한 시간 뒤, 다시 연회장에 들어갔다.

어떤 분위기로 그들의 진행상황이 흘러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연회장의 문을 열었을 때는 놀라운 광경이 눈에 펼쳐졌다.

“평범한 노력은 안 통하는 것을 아는 건가.”

맨 처음에 자리배치는 기업별, 그리고 국가기관별로 배치해서 각각 앉게 만들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기관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따라 분류했었는데, 지금은 저들 모두 각각이 속한


국가기관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발언에 힘을 싣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는 모습들이었다.

이를테면 대한민국에 있는 기업들은 대한민국 고위급 공무원과, 미국에 있는 기업들은 또 미국에 있는


공무원과 힘을 합쳐 회의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들어섰을 때 곧장 질문이 쏟아져 내렸다.

“도심과 가까운 곳이어야 하나요?”

“투자 형태는 어떻게 되나요?”

“반유현 회장님! 개별면담신청 가능한가요?”

한 중년의 사내가, 나를 셰프가 아닌 회장으로 부르자 그 뒤이어지는 질문들의 호칭도 회장으로


바뀌어버렸다.

이렇듯 사람들을 불러 모은, 업계 내의 영향력은 그 어떤 기업의 회장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았으니까.

사람들도 모두 그것을 인정한다는 태도였다.

“회장님! 저희 세 국가가 힘을 합쳐도 되는지요?”

동남아의 국경이 맞붙은 몇몇 국가는 서로 힘을 합치기도 했다.


관광산업에 많은 것을 투자하고 있는 저들은 또 다른 국가 성장 동력을 나의 브랜드로 삼았기에, 브랜드
‘반유현’의 유치를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반유현 회장님, 저희는 반유현 팩토리를 금으로 세운다면, 금으로 세울 수 있는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겠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UAE 하이든 왕세자의 아버지, 세계 공급되는 석유 대부분을 주무르는 라탄도 꽤나 공격적인 모습을
취해왔다.

이들의 질문을 모두 들어보면 문제는 단 하나였다.

내가 어떠한 가이드라인도 주지 않고, 자신들이 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으라고 한 것.

그때, 일본 국적 기업의 한 CEO 가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그 문제에 대해 물었다.

“서로 눈치싸움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이드라인 없이 어떤 투자를 할 것이냐, 그것을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에 써내라고 하신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발전을 막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정해주시고, 그 선에서 기업들과 국가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뱉어 내는 게 적절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부터 수많은 질문들에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 일본 국적 기업의 CEO


의 질문에는 대답을 해줄 필요가 느껴졌다.

조금만 살을 붙여 해석하면, 아프리카 그놈들과의 질문과 같은 맥락이었으니까.

“질문의 방향부터 제대로 선정하십시오.”

“예?”

“눈치싸움? 눈치싸움은 일본밖에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해줄 게 더 없어서 애타는


지경인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브랜드 ‘반유현’이라는 수단을 그저 그 정도로밖에 보지 않나 봅니다.”

내가 애초에 가이드라인을 선정하지 않은 것은, 투자의 한계를 정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각 나라와 기업들이 경쟁을 하지만, 서로 어떤 수가 나올지를 몰라서 무리를 하게 되는.

그래서 나에게 가장 많은 것들을 해줄 수 있는 나라와 기업을 고르는…….

그런데, 일본 정부는 그 방식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은 것 같았다.

아직도 가치 판단을 제대로 못 하는 건가.

“이미 예산의 규모를 정해놓고,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으니 답답하시겠죠. 이곳
어느 기업, 어느 국가도 그 규모를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일본 정부는 아시아에 설립될 반유현 팩토리를 세울 나라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그게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상황.

자신들의 정부가 사소한 일로,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지 못한 것이 알려져, 국민들의 질타를 받게 될
공무원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해졌다.

더군다나 저 나라는 국민들이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 아닌가. 그 문화 수준을 올려줄 ‘반유현


팩토리’ 유치 실패에 대한 손가락질은 이곳에 있는 기업과 정부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모든 건, 그 종이에 적어주신 것들로만 판단하겠습니다.”

***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각 국가의 총리급, 장관급 인사들이 자리했고, 각 기업의 수장들이 직접 자리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현실에 맞게 제안서를 써서 제출했다.

“결과는 일주일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주일도 내가 살아온 방식에 비하면 상당히 긴 시간이었지만, 이번 사업은 그 규모가 크고 따질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나는 나의 보좌관들인 반유현팀의 모든 인원과 ‘반유현 팩토리’의 행정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모든


직원들을 불러냈다.

그렇게 약 60 여 명의 인원들이 모였다.

아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를 실제로 보는 것이 신기하다는 눈빛들도 많았다.

하기야, 이제는 브랜드 ‘반유현’의 규모가 웬만한 중견 기업 못지않았으니, 그 총수인 나를 보는


경험도 쉽지 않은 것이다.

또, 이곳에 내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온 인사들은 어떠한가, 새삼 나의 영향력을 느낀 직원들은 존경의


눈빛까지 함께 보내왔다.

“제가 일일이 이것들을 검토할 수 없으니, 불렀습니다.”

이전에 ‘반유현’을 유치하기 위해 고위직 공무원, 또는 기업인들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이제 나의


직원들이 앉아있었다.

“제가 말하는 조건의 아래 단계에 있는 제안들은 모두 한쪽으로 몰아주시고, 그 이상의 제안을 한 종이만
제 앞으로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1 차적인 분류 작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일일이 다 읽어보기엔 내 시간의 가치가 그보다 훨씬 높다.

일단 커트라인을 정해주고, 그에 따라 합격된 제안서만이 내 손 안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첫째, 5 만 평 이상의 토지를 제공할 수 있나, 둘째, 시설 건축비를 얼마나 제공할 수 있나, 셋째
반유현 팩토리가 세워질 장소의 인구 밀집도와 접근성은 고려하고 있나. 넷째, 투자 이후에 경영에 모든
관심을 끌 수 있나.”

일단 그렇게 1 차 적인 분류 작업의 커트라인을 마련해주었고.

그에 따라 직원들은 봉투를 열어 각 기관들의 제안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인다는 것과 각 국가의 주요 도심에, 노른자위 땅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을 제안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 제안들은, 각 국가의 명문대학들과의 연계를 통해 학위까지 줄 수 있게 만든다는
것도 있었다.

또, 어떤 국가는 셰프들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불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모두가 모여있던 자리에서 일본 기업을 대표해 질문한 사내를 일갈했더니,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 모두 각각 자신들이 생각해온 것보다 더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제안들 중에서 상황을 가장 잘 고려한 제안이 눈에 들어왔다.

서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과 인접한 나라 이스라엘의 제안이었다.

“이스라엘? 흥미로운 제안이군. 아프리카 대륙까지 집어삼킬 수 있게 한다라…….”

이전, 아프리카 대륙의 기업과 공무원들이 나의 태도에 반발하며 이 자리를 뛰쳐나갔던 것들을 자신들의
기회로 삼아 제안을 한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자신들의 나라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면 아프리카 대륙이
가지고 있는 신선한 문화와 인프라를 가지고 올 것이다라는 제안.

또 중동 국가들과의 밀접한 지리적 특성까지 살려, 그들의 문화와 인프라를 그나마 치안이 좋은 자신들이
흡수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프랑스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보다 더 많은 문화들이 섞이고 대단한 시너지가 될 수도


있긴 한데.”

짧게 요약하자면 이스라엘 국가의 제안은 이스라엘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의 인프라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GDP 세계 32 위? 31 위? 그 정도면 경제적인 지원에도 신뢰가 가고……. 아프리카 대륙을 노골적으로


노릴 수 있다는 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지역의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입학서만 가지고 있다면 언제라도 이민을 허가하겠다는 방침까지 내놓은 상황.

“어느 정도의 인프라만 갖추고 있는지만 알면 되겠네.”

아시아에 또 다른 반유현 팩토리 설립 장소를 선정하더라도, 이스라엘이 가진 지리적 장점을 활용해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의 문화와 인프라를 ‘반유현 팩토리’에 담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긍정적인 검토가
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명 셰프들이 몇 명 있지만 그걸로는 안 되잖아?”

첫 번째로는 이스라엘 자체에,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가진 셰프들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외부적으로 다른 국가들의 셰프들도 교수진으로 참여할 테지만, 결국 중심이 되는 것은 그 나라의


셰프들이어야 그 중심이 확실히 잡히기 때문이었다.

“오셨다고 합니다.”

오스틴의 말에 뒤를 돌아보니, 한 중년의 사내가 숨을 몰아쉬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허…… 헉. 관광부 장관 단온이라고 합니다.”

나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저희로서는 도박수를 던진 것인데, 관심을 가져…… 후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제안서에 적은


내용은 각 부서의 장관들과 모두 협의가 된 내용입니다. 총리님께서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적어주신 제안서의 내용은 천문학적인 돈을 지원, 땅을 지원하는 것들보다 획기적이었습니다. 제 야망을


잘 이해하고 계신 것 같아 마음이 갔습니다.”

“하하하!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셰프…… 아니, 회장님! 회장님께서 전 지구의 모든 셰프와 요리를
품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신 것으로 생각하고 제안서를 작성해봤습니다. 아무리 큰돈이라도 목적이 맞지
않으면 움직이시지 않는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어서요.”

“준비를 많이 하셨군요.”

“그리고…… 문화. 문화의 흐름을 반유현 팩토리로 돌려 아프리카 부패 정권 밑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더
풍족하게 만들고 이곳에서 반유현 회장님께 소리 질렀던 부패 정권의 하수인들에게도 쓴맛을 보여주시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뭐, 생각을 안 했다라고 할 순 없지만.

완벽한 목적은 부패 정권을 혼내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인사치레 몇 마디를 나누고 나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 나라에 가진 셰프, 그리고 요리에 대한 인프라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이스라엘 반유현


팩토리를 구성할 셰프들을 한 번 모아보시죠. 그 수준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알았는지, 관광부 장관이 대답했다.

“아…… 예, 예! 알겠습니다!”

서른이 안 된 나이, 세계 GDP 순위 32 위에 빛나는 나라의 장관을 주무르는 느낌이 즐거웠다.

142 화. 요리사, 그 이상의 힘 (2)

“이스라엘이 어떤 준비를 해올지 지켜보고. 다른 나라들도 빨리빨리 끝내자. 라스베이거스에서 할 일도


한두 개가 아니니까.”

이스라엘에게 그 인프라에 대해 증명해 보이라는 미션을 내려주고, 다른 나라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시아 대륙부터 그 검토에 들어갔는데, ‘반유현 팩토리’ 유치를 위한 제안들이 다들 제법 강력했다.

특히나, 동남아시아의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등 국경이 인접해 있는 나라들은 손을 잡아


협의해, 투자를 제안하기도 했다.

네 개 이상의 국가들이 손을 맞잡으니 그 투자의 규모가 커질뿐더러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도 많아졌다.

“서로들 눈치싸움이야. 여기도 제외해야겠어.”

그런데, ‘동남아 연합’이 만약에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한다면 그것을 정확히 어디에 세울지 정해 두지는
않은 상태.
앞에서는 투자 규모, 인프라와 관련된 것들은 뜻을 모았지만, 실제로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될 장소는
자신들의 나라에 세우기 위해 물밑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괜히 동남아시아 네 국가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자고.”

반유현 팩토리가 저들의 알력싸움의 계기가 되는 것은 싫었기에, 나는 일단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을


제외했다. 저들의 동맹은 좋았지만, 완벽한 동맹이 아니었다.

“인도는 투자 규모를 보니 큰 관심은 없고, 베팅에만 의의를 둔 것 같네.”

“그렇습니다. 아시아의 나머지 나라들도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아직 반유현 팩토리의 가치를 몸소


깨닫지 못했……. 아니, 깨닫지 못했다고 하기에는 라스베이거스까지 날아왔군요.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소규모의 투자를 제안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소규모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의 제안은, 대형 리조트를 손쉽게 세울 정도의 규모였다.

나의 이름을 딴 테마파크를 조성해도 될 정도.

당연하게도 이는 어떤 호텔, 어떤 리조트를 가진 기업일지라도 침을 질질 흘릴만한 제안들이었다.

다만 그런 제안을 한 국가나 기업들이 많으니, 그들의 제안들이 평범해진 것이었다.

“다들 비슷비슷 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중국, 일본…… 이렇게 세 나라가 되겠습니다.”

“중국은 뭐…… 이 제안이 너무 폐쇄적이잖아. 아시아 전체를 품어야 되는데. 공안에 협조하는 게 투자
조건이라니…… 치워버리고.”

“일본도 한계가 명확해 보입니다. 확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유치’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그렇지, 확장성.”

파격적인 제안을 한 나라들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요소가 확장성이었다.

일본은 내가 자신들에게 싫은 소리를 내뱉은 것에 대해 무마해 보려는 듯 아시아 모든 국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액수를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것도 반유현 팩토리의 설립 위치를 수도인 도쿄로 잡았고 셰프들에 대한 인프라도 자신했다.

그런데, 그 이후의 계획은 전혀 없었다.

일본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것을 예측한 이야기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치만 하면 일단 장땡이니까.”

“그렇다면 역시 코리안이네요.”

“그래, 이 몸의 나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아.”

대한민국의 투자 제안은 다른 아시아 선진국들하고 비교해도 완벽한 우위를 점했다.

지금 당장의 투자 유치뿐만 아니라, 반유현 팩토리의 확장성에 대한 것을 확실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123 층의 건물을 한 층씩 차지하는 계획이라.”


서울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시그니쳐(Signature) 타워.

123 층에 달하는 이 건물은 서울의 랜드마크이기도 했다.

이 건물을 소유한 기업과 국가가 협력해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에 나선 것인데, 그 제안이 꽤나
파격적이었다.

일단, 서울 시내에서 가장 최고급, 높은 분양가를 가지고 있는 이 건물의 60 층 전체를 반유현 팩토리로


만들고 그에 대한 설계와 건축비용을 모두 제시했다.

“확장성을 완벽하게 고려했는데, 그 기업의 입장에서는 무리수 아닌가?”

더 나아가 반유현 팩토리가 점점 확장될 것을 예견해 층수를 높이자는 제안을 했다.

60 층에서 시작된 반유현 팩토리가, 점점 규모가 커진다면 61 층, 62 층까지도 모두 차지할 수 있게끔


말이다.

“123 층까지 올라가면?”

“그것마저도 허락한다고 합니다.”

규모가 계속해서 커져, 60 층부터 123 층까지 반유현 팩토리가 들어서는 것도 흔쾌히 승낙한다는 의사를
표현해왔다.

반유현 팩토리의 저력을 무시해서, 123 층까지는 올라가리란 생각을 못 한 건지, 도박수를 던진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면, 일본, 중국하고도 가깝고 동남아시아하고도 먼 거리가 아니야. 지리적인 위치도 최고,
인프라도 최고, 치안도 최고…… 계약서 작성하자고.”

이전 전생에 그 80 층에서 근사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던 기억이 있다.

건물 통째를 갖고 싶게 만들 정도의 야경.

그들의 제안에 지구상에 없는 시설을 갖춘 교육기관을 만들겠다는 욕심마저 들었다.

또, 이번 생에 그 건물의 절반 이상을 삼켜버릴 수 있다는 욕심을 살짝 건드려준 그 기업과 대한민국


정부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다음은 북아메리카 대륙, 그다음은 남아메리카 대륙.”

***

[ 아시아 반유현 팩토리 유치 도시! 서울! ]

[ 반유현의 나라임을 증명! ]

[ 역대급 투자 규모, 민관합동 투자. 머리 맞대어 해내다. ]

[ 대한민국 셰프 열풍 만드나! ]

첫 번째 선정된 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발표를 공식적으로 했고, 그에 따라 수많은 기사들이 또 쏟아졌다.

시그니쳐 타워와 그에 대한 확장성, 그리고 투자 규모까지 말하니 내가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장소를
고르는 것에 아무도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의 투자가 가장 파워풀했기 때문이었다.

[ 잠실, 반유현 팩토리의 진입으로 인한 부동산 안정 대책은? ]

[ 송파구 내의 업소들 권리금 폭주! ]

[ 브랜드 반유현의 진입으로 새우 등 터지는 서민들! ]

불만들도 많았지만, 바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에게 이런 투자를 제안했던 공무원들이다.

-불만 사항과 민원들은 접수해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말라는 메시지까지 보내오니, 내 직원들과 대한민국 기업, 정부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컨펌만
하면 된다.

이렇듯, 서울에 반유현 팩토리가 유치된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으자, 내가 미션을 내렸던 이스라엘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 이스라엘 관광부, 외교부, 국회까지 협력하여 이스라엘 셰프들 총동원! ]

[ 군 복무 중인 셰프들 총원 휴가! ]

[ 아시아, 서울과 동시에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 상륙?! ]

대한민국과 같이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군에서, 셰프 또는 요리 경력이 있는 사람들까지


동원해 인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이렇다 할 셰프 인력이 있냐고 물은 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따라 세계 곳곳에 퍼져 있던 이스라엘 출신 셰프들이 모두 라스베이거스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응집력인가. 대단해.”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유치하듯, 국가 브랜드를 올릴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는지,


이스라엘은 매우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

수많은 돈을 들여 이스라엘 국적의 모든 셰프들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집결시킨


것이었다.

“그저 셰프들의 머릿수로 증명하려는 건 아니겠지?”

“저들의 마음이 급해진 것이 느껴져,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내가 이스라엘의 요리, 셰프 인프라를 말한 건 단순한 셰프의 인력 수가 아니었다.

미식에 대한 이해 수준, 저들의 평균 실력 또한 인프라에 포함되는 요소인데 이스라엘 정부가 왜인지


그것들을 간과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스라엘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를 받아오자는 제안은 신선하고 섹시했는데,
저들의 급한 마음은 뭔가 빈틈이 많은 것 같아.”

“셰프들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모이는 모든 셰프들을 평가하기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워. 몇 명만을 뽑아서 테스트해야겠어.”

***

언코크드, 그리고 반유현 레인보우 행사가 끝난 뒤에도 라스베이거스의 열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각 기업과 국가의 공무원들, 그리고 그것을 취재하려는 기자들까지 쏠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시 몰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이스라엘 국적의 셰프들까지 모여들었으니 라스베이거스는 다시 한번 세계인들이


모이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관광청도 이렇듯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이유가 오로지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나의 말을 따르게 된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짝짝짝짝

그렇게 관광청이 흔쾌히 준비해준 자리에, 이스라엘 국적의 셰프들이 모여 있었고 나의 등장에 그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쳐주었다.

아직,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축제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스라엘 관광부 장관이 나에게 공손히 악수를 건넸다.

“예, 이 모든 분들이 이스라엘 국적의 셰프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수준급 셰프들만 모았습니다. 이 정도면 이스라엘, 반유현 팩토리에 교수진의 인력을
채우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우리나라, 이스라엘은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셰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들인지, 수준급 셰프인지, 아니면 아예 셰프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는


사람들인지…… 평가는 저희가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아, 예, 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허허허.”

내가 그와 인사를 나누고 여느 때처럼 무대 위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유능한 셰프님들이라고, 방금 막 장관님께 들었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와아아아!

자신들이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를 이끌어냈다는 듯이, 벌써부터 상기되어있는 얼굴들이었다.

“네네, 성원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스라엘 요리는 몇 번 경험했었습니다. 토마토 샥슈카(Shaksshuka)


라든가, 타히니를 곁들인 후무스…….”

민족, 국가적 자긍심이 높은 이들의 문화를 내 입으로 말해주니 또 한 번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나 화끈한 분위기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부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정말
여러분이 유능한 셰프들인지,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셰프들이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 알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이미 유명한 스타 셰프들도 계시지만…… 대체로 그 수준이 어떤지
확인할 필요가 있지요.”

내가 그 말을 내뱉었을 때는, 무대 뒤 커튼이 열리고 10 개의 조리대가 보였다.

“무작위로 40 명을 시험하겠습니다.”

약 400 여 명이 넘는 인원들이 있었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실력이 꽤나 있는 셰프들을 모아온 것이다.

나는 그 인원에서 무작위로 10 분의 1 의 인원을 뽑아 전체의 실력을 가늠하려 했다.

“뭐야.”

“우릴 시험한다고?”

“반유현 셰프한테 직접?”

조리대가 보이고 나니 장내가 술렁였다.

“아, 아니 회장님……!”

“장관님께서 하신 말들이 모두 실현되려면, 셰프님들의 실력이 기반되어야 합니다. 이 자리는 그것을


확인해 보는 자리입니다.”

장관뿐만 아니라, 셰프들의 표정도 금세 굳어졌다.

더군다나, 불과 몇 주 전 내가 메뉴 테이스팅을 하는 장면들이 송출되어 이들은 내 평가 잣대를 알고 있을


터였다.

“지금부터 제가 지목하는 셰프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일개 셰프 한 명이 한 국가의 셰프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메뉴 테이스팅이 시작되었다.

143 화. 요리사, 그 이상의 힘 (3)

40 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맛을 봤다.

그들이 어떤 요리를 하든, 그가 가진 실력을 볼 수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셰프님들이 이스라엘의 대표 요리라 할 수 있는 토마토 샥슈카(Shakshuka)를 보여주셨는데,


다들 특징이 두드러지네요.”

샥슈카라 불리는 요리.

토마토소스에 채소와 달걀을 넣고 담백하고 상큼한 맛을 내는 요리이다.

한때 세계에서 달걀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로 뽑혔던 이스라엘, 이 요리는 그런 이스라엘 사람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요리일 만큼, 그들에겐 매우 익숙한 요리였다.

이렇게 긴장된 현장에서 손에 익은 요리만큼이나, 제맛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맛의 잣대가 높다는 것을 안 셰프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전적인 요리를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셰프들이 샥슈카를 꺼내든 이유였다.

“커민(Cumin)?”

쯔란이라고도 불리는 이 향신료가 전통적으로 이 요리에 쓰이긴 했는데, 나는 곧장 표정을 찡그렸다.

“향이 너무 강해 호불호가 있는 향신료입니다. 이 요리가 본인의 입에 맛있는 음식입니까? 심사를 하는


제 입에 맛있는 음식입니까?”

대부분의 셰프들이 샥슈카를 꺼내든 것에 대한, 창의성 문제는 고사하고 맛이 불만족스러웠다.

자신의 입맛에 익숙한 맛만을 그려 놓았다는 점이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오랜 시간 먹고 자란, 음식이었으니까 요리에 창의적인 요소를 섞어 변주를 한다고


한들 큰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됐습니다. 다들 들어가세요.”

정확히 11 명.

그 이후로 심사는 보지 않았다.

결과가 같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장관님.”

“예, 예!”

“이스라엘 셰프들의 수준이 이정도인데. 반유현 팩토리에 어떤 인프라를 지원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 이게 다들 시차 적응도 있고……. 이 현장의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된 실력 발휘를…….”“반유현


팩토리, 교수진 수준을 너무 낮게 보신 것 아닙니까? 이대로라면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한다
한들, 다른 국가에서 교수진을 충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죠.”

심사 결과를 곧장 내뱉자, 장내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버렸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조국에 반유현 팩토리가 유치될 줄 알았던 셰프들의 상기된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버렸다.

“샥슈카 말고, 대중적이고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 볼 셰프 있으면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그 와중에 손을 드는 몇몇의 셰프가 있었다.

나는 그 셰프들을 지목해 무대 위로 불렀다.

“안녕하십니까. 요시 하이카라고 합니다. 반유현 셰프님과 런던에서 미슐랭 스타를 부여받았습니다. 저는


원스타를 받았습니다.”

요시 하이카.

그가 자신을 소개하자, 옆에 있던 오스틴이 나에게 귀띔해줬다.


“이스라엘의 떠오르는 신성 셰프고, 대한민국과 관련이 많습니다. 대한민국 챌린지컵 국제 요리 대회에서
금, 은, 동을 싹쓸이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손짓으로 조리대를 배정해 주었고 계속해서 셰프들이 올라왔다.

“세게르 모세, 총리님 공관에서 요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방문할 때에도 직접 요리를 준비한 그는, 현지에서 가장 인정받는 셰프였다.

“공관에 머물며 치열한 경쟁에서 멀어진 제가, 반유현 셰프님의 평을 받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우와아…….

이스라엘 셰프들의 존경의 대명사인 세게르 모세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하자 긴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다섯 명의 셰프들을 더 무대 위로 불러냈을 때, 이스라엘 관광부 장관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정도 셰프들이라면, 셰프님의 기대감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하하. 우리나라의 국보급


셰프들이니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본전도 못 건진 장관은 다시 자리로 들어갔고, 나는 셰프들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에서 날고뛰는 셰프들을 다 모아온 자리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이곳이요. 그중에서도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분들이 여기 계신 열 분인데, 기대가 됩니다. 가장, 가장 자신 있는 시그니처 요리를
만들어 주세요.”

***

메이는 ‘반유현 레인보우’의 장사를 마치고, 메뉴 개발에 대한 건을 반유현에게 보고하기 위해 반유현을


찾았다.

뿐만 아니라, 반유현이 라스베이거스에 머무는 동안은 매출과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매일 보고하라는


명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그를 찾아가려는데, 이게 웬걸, 이 도시 내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포시즌스를 나오자마자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기자들이 그랬다.

“메이 셰프님!”

“이쪽 좀 봐주세요! 대체 반유현 셰프가 무슨 일을 꾸미는 겁니까?”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되는 건가요?”

“이스라엘에서 이름이 꽤나 알려진 셰프들부터, 경력이 있는 셰프들까지 모두 집결했는데요!”

“이스라엘 정부도 함구하고 있습니다!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그때,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메이에게로 달려드는 기자들을 처치해줬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이렇듯 메이에게 수많은 기자들이 몰릴 줄 알고, 반유현이 미리 보내 놓은 경호원들이었다.

라스베이거스 내에 메이만큼 반유현과 가까운 사이인 사람은 없었으니까.

“아…… 예……. 셰프님은 어디 계시죠?”

“그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고 확실히 반유현의 경호원인 것을 깨달은 메이는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다.

“메이 셰프!”

차 안에는 톰슨이 타고 있었다.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그도, 기자들의 공세를 혼자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반유현이 불러낸 것이었다.

“아…….”

동료들까지 챙기는 치밀함이, 이렇게나 바쁜 상황에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그 차가운 성격 뒤에 숨은 섬세함을 매번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가 AI 로봇처럼 느껴졌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주차장에 다다랐고, 경호원들은 톰슨과 메이를 안내했다.

그랜드 볼룸이라 불리는 대형 연회장의 문을 열자, 수백 명의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스라엘 국적의……?”

“그렇다네. 나도 막 뉴스를 봤는데, 이거, 이거 반유현 셰프가 또 큰일을 벌이고 있어.”

“예?”

“아니, 그 나라에 교수진으로 활용할 셰프들이 충분한가를 판단하기 위해서 이런 행사를 기획한 것
아니야.”

“모든 셰프들을 불러 모으라고요?”

가뜩이나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감자로 불리는 ‘반유현 레인보우’의 총괄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를 프랑스에 있는 유럽을 포함해 총 6 개 대륙, 다시 말하면 새로운 다섯 개 대륙에


설립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검증 단계가 이렇듯 ‘반유현’스러울 줄 몰랐다.

“그, 그럼 여기에 있는 셰프들이 다…….”

“그렇다네. 이스라엘 국적의 모든 셰프들이 소집되었어.”

“헉!”

더군다나 무대 위에 올라있는 셰프들의 얼굴을 보니 낯이 익었다.


“저분은…… 대한민국 챌린지 컵에서 3 관왕 하신 분 아니에요?”

미슐랭 원스타를 가졌지만, 그 나이가 너무 어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셰프였다.

“저분은 이스라엘 공관에서 요리하시는 분?”

“세게르 모세 셰프를 아나?”

“지중해식 요리의 대가 아니에요? 베스트셀러도 있고…….”

무대 위에 긴장된 표정으로 심사를 받는 이들 모두, 요리 업계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반유현의 옆에 매번 붙어 있던 메이가 고작 그 정도로 놀란 것은 아니었다.

우와아아아…….

지금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세게르 모세 셰프가 고개를 숙일 때 나온 탄식.

“이제는 완전히…….”

“반유현 셰프가 ‘탑’ 셰프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지.”

이스라엘 현지 최고 셰프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저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들도, 반유현의 명성에는 쉽사리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요리 테스팅이 시작되었고, 반유현의 지목을 받은 셰프들이 각각 마련된 조리대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때, 반유현이 저 멀리에서 메이를 불렀고, 메이와 톰슨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기자들 많지?”

“네…….”

“경호원들 안 보냈으면, 꽤 힘들었겠네.”

“감사합니다.”

“오늘 특이사항 있어?”

“없습니다! 26 메뉴 중 새로운 메뉴 추가를 언제쯤 해야 될지만…….”

반유현과 메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요리가 끝난 셰프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테이블 위에 있는 종을 울렸다.

요리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자 반유현은 곧장 그들의 조리대로 다가갔다.

그 첫 번째 순서는 세게르 모세였다.

“지중해식 가자미 오븐 구이입니다. 후.”

반유현이 앞에 서자 긴장을 한 터인지, 짧게 숨을 내뱉은 세게르 모세였다.


“지방 함량이 적은 가자미 구이를 소금간하지 않고, 올리브 오일과 레몬, 월계수 잎을 이용해 풍미를
높였습니다. 구운 감자는 가니쉬로 활용해 봤습니다.”

반유현은 무표정으로 그 요리를 먹고는 아무런 평을 하지 않고 다음 요리로 넘어갔다.

‘……?’

매우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셰프들과 메이였다.

그렇게 총 열 명의 셰프들의 요리를 맛본 반유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 계신 셰프님들 중에, 국가의 부름에 억지로 끌려오신 분 있나요? 아니면, 반유현 팩토리가 진정
이스라엘에 설립되길 바라셔서 이 자리에 오신 건가요?”

***

우와아아아!

이스라엘의 셰프들과 장관에게 약속을 받아내고 장을 나왔을 때는 기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장소가 서울 다음으로 반유현 팩토리가 선정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기자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대중들의 관심과 기자들의 움직임이 비례하는 것이라면, 이렇듯 많은 기자들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쏠렸는지 보여주었다.

“셰프님! 한 말씀 해주시죠! 이스라엘이 선정되었습니까?”

“나라를 통째로 주무르시는 소감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반유현 셰프님 한 마디에 국격이 달라지는 것 또한 그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자들이 질서 없이 마이크를 내밀 때에,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기자들의 질문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마이크 하나만 주시죠.”

그렇게 비공식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나는 한 기자가 건네준, 여러 개의 방송사 마이크가 묶여있는 뭉치를 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파리, 서울에 이어 세 번째로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될 겁니다. 계획대로만 된 다면요.”

우와아아아!

기자들의 긴 탄식이 쏟아져 나왔고, 플래시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 계획이 뭡니까?”

“잠정적으로 결정이 난 건가요?”

이곳에 모였던 이스라엘 셰프 대부분들이 자신의 나라에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품는 요리의 성지로 자신의 나라가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인데,
셰프로서의 삶을 사는 이들에겐 그런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했다.

프랑스의 파리,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뉴욕, 아시아의 일본처럼 미식 문화에 특화된 나라 출신의
셰프들이 그 후광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뿐만 아니라, 10 년, 20 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면 나라에서 탄생한 셰프들의 숫자가 많아지리란 것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풍족한 인력시장이 열린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모두가 원하기에 이런 전제를 걸 수 있었습니다.”

그 전제에 동의한, 셰프들의 서명이 적혀있는 종이를 들어 보여주니, 플래시가 또 한 번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기자들에겐 기삿거리가 풍년인 순간이었다.

[ 이스라엘 국적의 셰프 400 여 명! 라스베이거스 10 일간 체류!? ]

[ 브랜드 ‘반유현’ 산하 초기 셰프들이 했던, 퇴근하지 않는 합숙 훈련 돌입하나!? ]

[ 한 나라의 셰프들을 가둬놓는 반유현의 영향력! ]

144 화. 요리사, 그 이상의 힘 (4)

라스베이거스에 모인 셰프들 총원이 10 일 뒤, 다시 한번 테스트를 보기로 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 모두, 이스라엘에 설립될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고, 그 초기 멤버인지라 다양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 첫 번째로 내 요리 기술을 전수 받을 능력이 되느냐와, 그것을 받아들일 열정이 있냐를 실험했는데,


몇몇의 셰프들 빼고는 모두 그것을 승낙했다.

특히나, 현지 셰프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존경을 받는 세게르 모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셰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행정부에서도 조속히 그에 따른 준비를


마친다고 하니, 유치에만 힘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총리님께서 직접 그 말을 제게 말해줬고, 제가 이
말을 셰프들에게 전하니 다들 열광했습니다.”

국가가 역량을 총동원해 밀어준다고 하니, 이곳에 모인 셰프들은 자신들이 국가대표, 또는 민족열사라도
되는 듯이 나의 제안을 승낙했다.

제안이라 함은 단순했다.

“정확히 10 일 뒤에 모든 인원을 테스트하고, 60 명을 뽑겠습니다. 이는 반유현 팩토리의 중심이 되는


초기 멤버를 뽑는 것입니다. 물론, 그 60 명의 절대적인 실력이 제 만족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의
반유현 팩토리 설립은 전면 취소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의 국적을 둔 셰프들이 세게르 모세를 중심으로 10 일 동안 합숙 훈련에 들어갔다.

자신이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되지 못하더라도, 반유현 팩토리가 고국에 유치되는 것에 악영향을 주지
말자는 듯 모두 힘을 모았다.

“저들이 내 말을 따를지는 몰랐는데, 이게 되네.”

“그, 그러게 말입니다. 반, 반 셰프! 정말…….”


나는 매일 같이 이들이 합숙하는 현장을 시찰했고, 톰슨은 나를 따랐다.

나와 함께 있으면, 그 매 순간 자신에게 최고의 영감을 준다나.

그리고 나와 톰슨, 뒤에는 내 보좌진들과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나는 손짓으로 오스틴을 불렀다.

“예, 셰프님.”

“셰프들의 이 열정이 이스라엘만 그런 것 같나?”

“음…… 어떤…….”

“그냥, 이런 방식의 테스트를 반유현 팩토리 유치에 꽤나 괜찮은 제안을 했던 국가를 상대로 다 해보는 건
어때?”

“그, 그게 무슨 말씀…….”

이스라엘의 셰프들이 이렇듯 열심인 모습을 보이니까, 또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직, 북·남 아메리카대륙의 반유현 팩토리 설립 나라는 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나라들이 한 제안은
비슷비슷했다.

경제적 지원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큰 차이가 아니었고 두 대륙 모두 땅덩이가 커서 반유현 팩토리 규모의
제한을 두지 않았었다.

“예를 들면 북 대륙의 캐나다, 미국, 멕시코.”

“아…….”

“제안한 것들을 보니, 세 나라 모두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잖아. 내가 그 나라의


셰프들을 라스베이거스로 불러 모으라 하면 모을까 안 모을까?”

“효율적으로도…….”

효율.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이다.

지금까지 시간과 노력의 효율을 항상 챙기며 달려왔기에 이번 삶이 이렇게나 잘 풀릴 수 있었던 것이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다 맞잖아?”

“그,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셰프들은 급작스럽게 이곳에 모였지만, 나는 그것들을 보고 또 다른 생각을 해냈다.

한 국가의 셰프들을 이렇듯 총집결시키면 그 나라의 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반유현
팩토리를 맨 처음 구성할 런칭 멤버들을 컨택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이런 경우가 없었으니까 다른 기업이나, 사람들은 못 한 거고. 나는 그게 되잖아.”

실제로 한 국가의 셰프들이 이렇게나 모일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럴 만한 힘을 가졌고.


“아메리카 대륙, 남미 말고, 일단 캐나다, 미국, 맥시코로 실험해보자고.”

***

[ 북미대륙, 셰프들 총집결? ]

[ 라스베이거스 별들의 전쟁 이어지나. ]

[ 국가적 역량까지 동원하려는 반유현 팩토리. ]

[ 점점 그 규모가 커져. 월드컵 유치 현장을 방불케 하는 라스베이거스 취재 열기! ]

내 생각은 곧장 계획으로 바뀌었고, 이것에 익숙한 내 보좌진들은 곧장 이것들을 추진했다.

가장 먼저, 캐나다의 셰프들을 총 소집하기로 했다.

그에 관련한 건은 캐나다 정부하고도 협력을 했는데, 나의 요청에 따라 이들은 가장 빠른 답변을 보내왔다.

경제개발장관, 국제개발장관, 인프라‧커뮤니티 장관이 곧장 라스베이거스로 날아온 것이다.

“반갑습니다. 이미 제안해주신 것들을 모두 검토하고, 의사가 있는 셰프들에게 답변을 얻었습니다. 총


892 명의 셰프들이 응했고, 642 명의 셰프들이 정해진 날짜에 이곳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각자의 일정에
맞는 비행기 표가 없어, 전세기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숙박시설도 모두 잡아두었습니다.”

캐나다 경제 개발 장관의 말이었다.

첫 인사부터 파워풀한 게 만족스러웠다.

“좋습니다.”

저들은 라스베이거스에 상주하며, 자신의 나라에서 건너온 셰프들의 요리 테스트를 준비했다.

그 장소며, 조리대며, 식기, 식재료들 모두. 내가 신경 쓸 것이 없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는 미국에도 이 소식을 전달했다.

이미 안면이 있던 네바다주의 주지사를 통해서였다.

“안녕하십니까.”

라스베이거스에 태풍처럼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라스베이거스가 포함된 네바다주나,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의도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브랜드 ‘반유현’에 의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까?”

“그렇습니다. 연방 정부에 협의했습니다. 각 주지사들에게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규모가 기대됩니다. 투자 제안서에는 뉴욕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왔었는데, 뉴욕이란 도시 자체가 주는 기대감 덕분에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아……. 예…… 그, 그렇습니다.”


“그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유명 셰프 총 3000 여 명에게 연락을 돌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장 어제 돌린 것이라 아직 응답률은


적긴 한데, 다들 반응은 폭발적이라 전해 들었습니다.”

미국 연방 정부의 내각에 있는 관광부와 투자처들도 깊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터였다.

내가 캐나다처럼 장관들을 직접 부르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나 충성스러운 전령이 있기 때문이었다.

“주지사께서도 바쁘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의 셰프들이 편하게 테스트를 치를 수 있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광청 직원들도 함께


돕고 있습니다. 저희 도시의 역량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이제,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지 않고 나, ‘반유현’의 도우미로 전락해버린


신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방 정부가 이렇듯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중간에 끼어 있는 관광청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내 눈치, 정부 눈치 중간에 끼여서 숨도 못 쉬고 일만 할 뿐이었다.

“저도 기대됩니다. 미국의 셰프들이요.”

약간의 격려를 섞어준 뒤, 나는 그간 뿌려진 기사들을 확인했다.

주지사인 브라이언이 고개를 숙인 뒤에 나갔다.

[ 역대 최대 규모의 국가 대항전이 열리다! 개최자는 반유현! ]

[ 반유현의 이름을 얻기 위해 몰리는 셰프들! ]

[ 반유현 팩토리가 무엇인가? 대중들의 관심 쏠려! ]

[ 하논, 카리나, 맥커니…… 미국 슈퍼 스타 셰프들도 라스베이거스행 확정! ]

축제라도 벌어진 양, 기자들을 기사를 쏟아냈다.

물론, 그 와중에 대중들의 관심을 먹기 위해 어그로를 끄는 셰프들도 있었다.

[ 미국 미슐랭 19 스타 셰프 칸 제임스 “나는 가지 않는다.” ]

[ 칸 제임스 발언에 신인 셰프들 눈살. ]

[ 대중들 칸 제임스 국가이익 행위 방해. 퇴출 요청! ]

“여러모로 시끄럽네.”

그렇게 전 세계가 떠들썩대기 시작했다.

이전에 기업과 고위급 공무원들이 모였을 때, 그들이 나를 회장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나는 이미 셰프, 그 이상의 힘을 가졌음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
다음 라스베이거스로 모든 셰프 인력을 동원할 나라는 어디일까.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는 와중, 이스라엘에 이어 두 번째로 선정된 캐나다 정부의 사람들은
바빠졌다.

“도대체 왜!”

“이런! 제기랄. 뭐가 문제냔 말입니다!”

당장 오늘, 오후 네 시에 이곳 MJM 호텔에 도착하기로 한 셰프 군단이 다섯 시간이 넘도록 도착하지


않았다.

셰프들 모두 각자의 일정이 있었기에, 당장 반유현의 요리 테스트 시작을 하루 앞두고 입국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래서! 일정들 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 빨리 입국했어야 됐어!”

동선을 조금 맞춰보고, 조리대를 둘러보고 장시간 비행에 의한 컨디션을 조절하기에도 모자란 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셰프들을 맞이하려던 정부 사람들은 뒷목을 잡았다.

“아, 아니 공항에서 이렇게 비협조적이어도 된다는 말이야?”

여섯 시간 전 도착한 비행기에서, 셰프들이 내리지도 못하고 공항에 계류되어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 이놈들이 힘쓴 것 아닙니까? 저희가 요리 테스트도 보지 못하게 해서 북미대륙의 반유현


팩토리 유치권을 얻으려고?”

“후. 그것도 말이 되는데.”

북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한 나라,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완벽한 경쟁 구도에 있는 관계였다.

그 세 나라 중 한 나라가 반유현 팩토리 설립을 선택받을 것이기에 이것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게다가, 어떤 이유인지도 말을 안 해주다니. 이건 뭐가 있긴 있습니다.”

적어도, 공항의 비행기에 탑승객들을 내리지 못하게 할 때는 무언가 이유라도 알려주어야 할 것인데,
공항 관계자들은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며 함구했다.

“미국 연방 정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해야겠어.”

못해도, 캐나다 ‘장관’들이 이 현장을 책임지고 있었다.

캐나다 정부 내각의 꽤나 힘 있는 자들이 직접 항의할 방안을 마련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입국을 거부하는 행위는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항.

“여론부터 만들어 보자고.”

캐나다 셰프 군단을 기다리던 기자들도 그 불만감에 실시간으로 기사를 찍어냈다.

[ 캐나다 셰프 군단 입국 거부. ]

[ 이유도 말해주지 않는 매캐런 공항. ]


[ 미국 정부의 장난인가?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 ]

***

이스라엘 셰프들의 요리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약 400 여 명의 인원이 되는 요리 테스트였기 때문에, 늦은 밤에도 계속 진행되었다.

“레몬 그라스, 강황 가루의 밸런스가 괜찮네요.”

내 칭찬에 감격해, 겨워 눈가에 눈물이 맺힌 셰프가.

“퉤.”

내가 다시 그의 음식을 뱉는 것을 보니 사색이 되었다.

“맛은 괜찮았습니다. 제가 400 명의 요리를 맛보다 보니, 삼킬 수 없습니다.”

다시금 여유를 찾은 셰프.

이 셰프들에겐 지금 나의 말이 가장 무섭고, 무거운 말이었으리라.

그때, 오스틴이 나에게 다가왔다.

“뭐?”

내 표정이 순간 굳자, 내 앞에 있는 셰프는 다시 사색이 되어버렸다.

“캐나다 셰프들의 일정이 무너졌는데, 저희가 조사해 온 바로는 매캐런 공항에서…….”

“하여간, 자국에 이익이 된다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게 저지르는 사람들이라…… 홈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이렇게 훼방을 놓는다는 거지?”

“경쟁 자체를 막으려고 미국 관광청, 외식산업부, 또는 어떤 세력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라스베이거스가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임을 이용해서, 셰프들이 경쟁하는 것 자체에 훼방을 놓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미국이란 국가의 어떤 기관이 움직인 것이라면. 너무나 거대한 힘이려니, 내가 가만히 넘길 줄 알았나
본데.

“일단 주지사 불러.”

145 화. 요리사, 그 이상의 힘 (5)

라스베이거스라는 거대 도시를 품은 네바다주.

그곳의 주지사 브라이언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제기랄! 당장 국토부 새끼들한테 연락하라고!”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캐나다 국적의 약 600 여 명이 넘는 셰프들이 공항에 계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반유현이 직접 자신을 찾아왔다.

-해결하세요. 매캐런 공항 사장, 부사장, 공항공사 임직원들의 인사권이 주지사님에게도 어느 정도 관련


있는 것 아닙니까?

분명, 반유현.

셰프가 직업인 사람이 말했다.

최연소의 나이로 미슐랭 23 스타를 휩쓸었고,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을 거절했으며, 프랑스 최고 장인을
뽑는 MOF 에서는 최초로 두 개 분야에서 수상을 했다.

20 대 중반의 나이, 시퍼렇게 젊은 사람이 그 모든 업적을 이룬 것도 모자라 전 세계 주요 나라의


행정부를 주무르고 있는 것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장관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이스라엘 내각 서열 2 위인 장관이 벌벌 떠는 모습이 그랬다.

“잘못 엮여서 골치 아프게 됐어.”

관광청 놈들의 대단한 실수 덕에 반유현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 때문에 뒷골이 땡겨왔다.

주지사가 라스베이거스 소재의 일개 셰프의 말에 이렇듯 휘둘리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존심이 꽤나


상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그가 라스베이거스에 상륙하고부터 그가 가진 힘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주지사야. 브라이언이라고! 캐나다 셰프들 왜 계류되어 있는 겁니까!”

그리고 반유현은 그 묵직한 힘으로 자신을 깊게 눌렀다.

-라스베이거스 내에 위치한 공항이…… 캐나다 국적의 셰프들을 내려주지 않고, 캐나다 셰프들의 요리
테스트는 물 건너갔다. 괜스레 공정성에 의구심이 든 제가…… 아니, 미국이 요리테스트를 보는
홈그라운드인 만큼, 미국 정부가 경쟁자들을 괴롭혔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렇다면 미국 내 셰프들의 갑갑함은 누가 풀어줘야 될까요?
저일까요? 라스베이거스의 총책인 주지사님일까요.

그래서 주지사 브라이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왜 캐나다 셰프들 묶어둔 건지 모르면, 공항 사장 바꾸라고! 말 못 알아들어?”

우여곡절 끝에, 공항 사장이 브라이언의 전화를 받았고 브라이언은 셰프들이 비행기 안에 묶여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테러 위협 신고가 들어와서, 화물칸부터 승객들까지 모조리 수색할 예정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신고만으로 전원을 수색한다고? 신고자가 누구입니까!”

-충분히 합리적 의심을 품을 수 있고, 신고자의 신원은 밝히 수는 없습니다만…… 믿을 만한 제보입니다.

“어이, 거기 있는 사람들 내일까지 못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예?

“반유현 팩토리, 반유현 팩토리 미국 설립 계획을 전면 삭제한다고!”

-그게 무슨…….

“후, 됐고. 당신 목이랑, 내 목 날아가는 줄만 알고 있으면 돼.”


때마침, 브라이언의 비서가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주지사님…….”

“왜!”

“반유현 셰프님이 오셨습니다.”

“……뭐?”

“들어오시라고 할까요?”

“그, 그래.”

수화기를 내려놓은 브라이언은 다소곳이 반유현을 기다렸다.

그리고, 반유현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유가 뭡니까?”

“테러 신고가 들어와서, 화물칸하고 전 승객을 수색한다고 합니다.”

“하필, 캐나다 셰프들이 타고 있는 전세기 두 대만을 수색하나요? 한 대도 아니고, 두 대가 모두 테러


신고가 들어왔다니, 캐나다 국적의 셰프들이 테러 단체랑 관련이라도 있나 봅니다.”

“하…… 그게 신고자에 신원을 알 수 없어서…….”

브라이언도 말하면서 냄새가 났다.

신고자의 신원을 알 수 없으며, 정확한 신고 내용까지 알 수 없다.

시나리오를 쓰기 딱 좋았다. 정말 연방정부 내에 누군가가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를 위해 이런 시나리오를


쓴 것이라면…….

“저 또한 억울합니다.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화물칸과 승객을 모두 수색한다는 것에 대한 컨펌은 어디에서 떨어진 겁니까?”

“국토안보부입니다.”

“주지사님이라면, 국토안보부의 장관님하고도 연결 라인이 있으시겠습니다.”

“그, 그렇습니다.”

***

우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반유현! 반유현!

캐나다 국적의 셰프들 600 여 명이 내가 등장하자 환호를 질렀다.


이들이 몇 시간 째 공항에 계류되어 있는 것을 풀어준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셰프, 그 이상의 영향력을 휘두르는 내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힘써준 것에 대해 상당히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뿐만 아니라, 나를 보좌하는 오스틴과 그의 직원들, 경호원들도 나의 영향력에 다시금 실감해 대단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었다.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캐나다 경제 개발 총리가 내게 인사했다.

“저희도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여러 가지 부서들의 말단 직원들이 일을 꾸며냈습니다.”

브라이언 주지사의 갖은 노력으로 국토안보부의 장관과 연결이 됐었다.

각 부처와 협의해 진위를 파악하니, 내가 그렸던 시나리오대로 반유혁 팩토리의 유치를 자신들의 성과로
돌리려는 몇몇의 말단 직원들이 그런 일들을 꾸며낸 것이었다.

뭐, 그 윗선들은 모르는 척 발뺌하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들을 꾸민 직원들을


모두 중징계 내리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 반유현 팩토리 유치 위해 가짜 테러 신고한 국토부, 외교부, 중소기업청 직원들 줄줄이 중징계, 직위


해제 ]

“가, 감사합니다.”

“기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스라엘의 셰프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10 일간 잠도 제대로 자지 않으면서


결국 반유현 팩토리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우와아아아.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된다는 것이 완전히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었기에, 캐나다 국적의
셰프들은 부러움의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 이곳에 오신 셰프님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요리 테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아셨을 테니, 하루만 푹
쉬시고, 당장 내일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캐나다 셰프님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그리고 만약 캐나다에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된다면, 설립될 때의 런칭 멤버를 내일 뽑을 겁니다.”

북미대륙의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를 이기고, 반유현 팩토리 유치권을 따내더라도 또 다른 경쟁자가
생긴다.

바로 옆에 있는 동료들.

자신의 나라에 반유현 팩토리라는 거대 기관이 생기는 것을 바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이곳에 온 셰프들도
많지만, 아예 작정하고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되는 것을 목표로 이곳에 온 셰프들이 훨씬 많을 터였다.

이미 반유현 팩토리의 시스템은 메이가 라스베이거스의 ‘반유현 레인보우’의 총괄을 맡고, 다른 상위


반들의 교수들도 ‘반유현 레인보우’에서 그녀 못지않은 지휘력을 가졌다는 것으로 증명된 바 있었다.

짧게 말하면 반유현 팩토리의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브랜드 ‘반유현’을 등에 업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반유현 팩토리였다.
현재까지 미슐랭 스타를 달성할 확률 100 퍼센트인 브랜드의 총괄 주방장이라면, 당연하게도 셰프의
욕망을 건드리기엔 충분했다.

“기대하고 내일 뵙겠습니다.”

***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대략 10 시간이 넘는 비행을 한 셰프들.

이것저것 식재료 상태를 점검하고 조리대 위에서의 동선까지 점검한 뒤에 휴식을 취했다.

그럼에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순번에 따라 조리대 위로 올랐다.

“영광입니다 셰프님.”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제 조리복에 싸인 한 번만 해주십시오!”

“야! 괜한 부탁드리지 마! 우리 요리 평가해주시는 것만 해도 얼마야!”

오히려 활력이 넘쳤던 것 같다.

“갑오징어와 카펠리니를 곁들인 부야베스입니다.”

매우 얇은 면, 스파게티 면보다 가는 면이 카펠리니인데, 그것을 한국말로 하면 해물잡탕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정통 요리인, 부야베스에 섞어 넣었다.

“카펠리니는 그 굵기가 가늘어서 익힘 정도를 맞추기 힘든데, 잘 맞추셨네요. 갑오징어 식감을 보니 그


손질과 조리 시간도 적절했고.”

장내에서 처음, 내 입에서 칭찬이 나오자 셰프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나에게 평가를 받은 셰프도 어쩔 줄 모른다는 듯이 방방 뛰기 시작했다.

“저, 정말요? 정말이에요?!”

팔을 높이 들더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내가 반유현 셰프한테! 인정받았다! 우와아아!”

외모를 보아하니, 서른 초반이나 중반쯤은 되어 보였다.

지휘급 셰프는 아니지만 주방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경력.

적게는 다섯 살에서 많게는 열 살 정도 어린 나의 칭찬이 그렇게 좋았나.

그 사내의 호들갑에 박수와 환호가 계속해서 쏟아졌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조리대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하관이 넓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중년의 사내였다.

여유롭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만 봐도, 그는 어느 주방의 수셰프 이상의 직급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여태까지 봤던 셰프들 중에 가장 여유가 넘치십…….”

“뭐, 여유를 가지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내 말을 자르며 말하는 이놈의 본새를 보아하니, 나에 대해 대단한 질투심을 가졌다던가, 같은 국적의


셰프들을 모아놓은 이 자리에서 수많은 관심을 얻고 싶다든가 둘 중 하나일 테다.

당연히 나는 관심이 없었고 그가 한 요리를 쳐다봤다.

“한식을 준비해봤습니다. 홍시를 베이스로 한 고추장 소스를 바른 대하구이. 단호박 무스까지 곁들여
드시면 더 깊은 맛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불순한 의도를 가진 그에게도 나에게 요리를 평가받고 싶은 마음은 또 있었나 보다.

한국인인 내게, 한식을 준비한 것도 그렇고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는 것도 그랬다.

나는 소스가 잘 발라진 대하를 입에 넣고 씹었다.

“흠.”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을 애써 감추려 했지만, 내겐 보였다.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는 중년의 사내.

“홍시가 조금 더 물렀을 때, 소스를 만들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싱싱한 홍시를 사용해서, 점도가 너무


진해졌습니다. 그 진득함이 고추장에까지 전해져 식감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우 살의 결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네요.”

순간 표정이 굳어버린 중년의 사내였다.

바로 옆에 자신보다 경력이 한창 낮은 셰프에겐 호평을, 자신에겐 혹평을 한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은 듯했다.

“쇼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이런 식으로 사람을……!”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그, 자신의 분노를 기회로 바꾸려는 듯이 소리쳤다.

“요리 대결을 정식으로 신청합니다! 반유현! 나는 당신의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어! 여기 셰프들을
평가원으로 두고! 정식으로……!”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답답해졌다.

“지겹네요.”

“네……? 어?”

“저한테 그런 식으로 요리 대결을 신청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제까지.”

내가 혀를 차자,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요리 실력을 인정 못 하고, 내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냥 나가세요.”

요리 경력, 20 년, 30 년? 내 앞엔 결국 조무래기들이고.
나의 시간은 이제, 그 조무래기들이 징징대는 걸 받아줄 때가 지나버렸다.

“맞아! 나가! 판 망치지 말고!”

“뭐 하는 거야! 실력이 없음 인정이라도 해야지!”

“쯧쯧.”

실제로, 이곳에 있는 모든 셰프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평가 받기 싫으면, 입 다물고 나가면 됩니다. 분위기 망치지 말고.”

146 화. 요리사, 그 이상의 힘 (6)

나를 향해 소리쳤던 중년의 사내도, 캐나다 셰프들 사이에서는 꽤나 입지가 있었나 보다.

미슐랭 스타는 없지만, 여러 커뮤니티 활동이나 미식 평론을 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린 케이스였다.

그런 그가, 내 앞에서 엄청난 창피를 당하니 그때부터는 심사장의 분위기가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애써 관심 받아 보려는 이가 없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캐나다 셰프들의 수준이 기대 이상입니다.”

600 여 명이 넘는 인원임에도, 확 튈 정도의 못난 맛은 없었다.

확실히 이를 갈았던 모양이다. 유럽에서 일하는 셰프들까지 모조리 집결되었으니 그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또 뵀으면 좋겠네요. 저도 기대됩니다.”

장시간 비행, 그리고 요리 테스트, 또 장시간 비행을 해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캐나다 셰프, 요리 테스트를 마쳤다.

“셰프님, 아니, 회장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경제 개발 장관이 고개를 숙였고, 다들 박수를 치며 요리 테스트를 마무리했다.

[ 캐나다 관광부 “반유현 팩토리 유치 아무것도 확실시되지 않아.” ]

[ 반유현 “긍정적 검토, 캐나다 셰프들의 실력 기대 이상.” ]

[ 테스트 참가 셰프 “이렇게 차분한 분위기의 심사는 처음. 반유현에 압도된 기분.” ]

라스베이거스에 온 뒤로, 온라인 매체, 신문 등 여러 대중 매체에 내 이름이 실리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정도라면, 대중들도 질릴 터이니 또 색다른 충격을 줘야 할 텐데.

“이스라엘 쪽은 어떻대?”

***
[ 이스라엘 예루살렘! 첫 공사 시작! ]

[ 미친 듯한 추진력! 날아가는 반유현! ]

[ 또 하나의 역사의 시작 ]

매번 그랬듯이, 날개가 돋친 듯이 나의 계획은 실현되고 있었다.

내가 가진 현찰을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투자했고, 이스라엘 정부의 도움이 있었다.

부르는 게 값인 예루살렘의 부동산 문제도 이스라엘 정부가 아주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 세계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예루살렘 ]

[ 미식의 성지가 될런가! ]

[ 반유현의 이름 업고 부동산 폭주! ]

이렇듯 좋은 기사들은 나에게 직접적인 투자를 한 이스라엘 정부가 낸 것이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기사 제목들이 모두 긍정적인 내용들밖에 없었다.

“내가 지시했던 기사들은 언제 나가는 거야?”

“그쪽에서 준비하고 있답니다. 오늘 오후 세 시에 일제히 나갈 것이라 합니다.”

“적당히 지금부터 뿌려야지.”

기사들의 내용은 모두 호재를 말했지만, 내가 원한 기사는 따로 있었다.

[ 아프리카 난민들이 향하는 곳, 이스라엘? ]

애초에 목적이 그랬다.

그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 인력들을 흡수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를 세우는 것
아니겠나.

“말고, 내가 원한 기사가 아니잖아 이건.”

“아, 셰프님께서 이런 것을 말씀하셨죠.”

[ 이스라엘 반유현 팩토리! 교육비, 숙식비 전원 무상. ]

“그래, 아프리카 모든 나라 언어로 번역해서 뿌려.”

“하나 더 추가하겠습니다.”

“그래야지.”

[ 이스라엘 이주민, 난민 인정 절차 간소화. ]

***

그렇게 기사가 나가고 며칠 뒤, 미국 셰프들의 요리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지난번 있었던 일은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관련자들은 모두 국격을 낮출만한 일을 한 것으로……
엄벌에 처하게…….”

“됐습니다. 이미 다 끝났고 정상대로 진행되었으니까요.”

미국 중소기업청 수석 보좌관이 이 행사의 총 책임자로 나와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설립에는, 국토부, 외교부, 관광청 등 여러 가지 부서들이 얽히고설켜 있을 텐데,


중소기업청에서 그 모든 부서를 대신해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청의 수석인 케빈 맥아레인은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조아렸다.

캐나다 출신의 셰프들을 공항에 계류시켜 방해를 놓으려 했던 것이, 어찌 됐든 자신의 책임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말이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확실하게 사과의 뜻을 전하는 것을 보면, 그 윗선에서도 케빈에게 지시를 한 것 같았다.

“몇 명의 셰프가 왔습니까? 이렇게나 많은 셰프는.”

우와아아아아!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왔습니다.”

“공문으로 말씀드리지 않았나……?”

천 명이 왔다는 소리에 내가 오스틴을 바라보자 오스틴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공문으로 이미 전달된 사항입니다.”

“그렇다네요.”

차가운 대답에 순간 흠칫한 케빈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실제 참가 인원은 600 명으로 단축하라는 말씀에 저희가 미리 검토했습니다. 나머지
셰프들은 이 현장에 참관을 하고 싶은…….”

“참관을 허락했었나?”

케빈의 말에 내가 오스틴을 바라보며 말하자 오스틴이 답했다.

“아, 애매했던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말해 두지는 않아서.”

“그래 뭐, 여기까지 먼 길 왔는데 돌려보낼 수도 없고. 앞으로는 모든 사안을 저희 팀과 협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첫 만남부터 좋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자, 케빈은 이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나 보다.

자신이 총 책임자로 왔기에, 나에게 점수를 따 미국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걸 유리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 셰프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뭐가요?”

“대륙 전체를 흔드는 그 영향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며칠간 이스라엘 정부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나마 나에게 협조적이었던 몇몇 국가의 도움을 받아 기사를
뿌렸다.

이스라엘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는 이주민, 난민에게 열려있으며 오로지 실력만을 본다고.

그리고 합격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무상 지원되는 풍족한 시설에서 요리를 배울 수 있다고.

그런 기사들은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일으켰다.

“터키-그리스-독일로 향하는 경로를 차단하니,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이주민들이 작년 한해 27%나


증가했는데, 지금 추이를 지켜보면 지중해를 건너 이스라엘로 향하는 이주민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 원인을 완벽하게 반유현 팩토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확률이 높았다.

“유럽 연합과, 저희 미국은 이 모든 게 반유현 팩토리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나 보다.

“일개 기업이 난민들의 발길을 돌리는 이례적인 현상은…… 셰프님이 그간 보여주셨던 찬란한 역사에 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주네요.”

그리고 미국 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나의 영향력을 우호적 관계로 포장하기 위해 비위를 맞춘다.

아니, 이제는 경쟁이 붙은 것이었다. 나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

“유럽 연합에서도 이주민, 난민 문제로 꽤나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돈들이 이스라엘


쪽으로 쏠리겠습니다. UN 에서도 아프리카 대륙의 이주민, 난민에 대한 문제를 반유현 팩토리와
연결해보려는 연구 예산을 짜서 벌써 연구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져왔다.

이 정도 규모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를 이용해 신선한 요리들을 만들고, 그
거대한 인프라를 이용하려 했던 것인데.

이대로라면 내 손안에서 모든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그렇게나 많은 난민과 이주민들이 유효 인력으로 전환되는 퍼센트도 그렇게 높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와 인력을 더 섬세하게 흡수하고 이용하려면 그에 따른 필터링이 확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오스틴과 보좌진들이 급하게 내 쪽으로 달려왔다.

“셰프님, 아프리카 연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예전에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눈덩이를 힘껏 굴려서 그 몸집을 내 힘으로만 불렸다면, 이제는 그 눈덩이가 너무 커져서 알아서 몸집을
키우고 있노라고.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것도 아니었다.

알아서 몸집을 키우고 있던 눈덩이들이 서로 갈라져, 각각의 몸집을 알아서 키우는 형태라고 해야 되나.

나는 그저 그것들이 어디로 굴러가는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굴러간다면 그것을 부숴버리는 정도로.

“어떻게 이렇게나 다들…… 적극적일 수가 있을까요. 완전히 새로운 신드롬입니다. 경영학 전공자들이
혀를 내두르고, 반유현학이라는 학문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경호 인력과 비서들을 태운 비행기, 전세기가 아프리카 대륙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꿈만 같습니다. 셰프님. 하하하하하!”

“그러게, 나도 이 정도는…….”

케빈과 대화를 나누던 중 아프리카 연합에서 나를 초대한다는 연락이 왔었다.

이전 국가 공무원들의 파렴치하고 안하무인 태도는 제발 용서해 달라며, 애걸복걸했다.

“이것들이 이제야 발등에 불똥 떨어진 거지.”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계획하에 움직이기 시작하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

원래 이런 것들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나였지만, 100 년의 삶을 살면서도 깊숙이 빠져 본 적 없는 그


문화를 느낀다는 설렘에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새로운 식재료, 새로운 요리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특유의 조리법…….

100 년의 삶을 산 사람이 설렌다는 감정을 느끼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이겠는가.

“확실한 필터링을 구할 수도 있어.”

또, 나 개인의 감정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그들과 협의하면 아프리카 대륙을 삼키겠다는 계획이 더


구체적으로 변하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감 또한 있었다.

“그렇죠. UN, 유럽연합, 미국 정부까지 나서서 반유현 팩토리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데, 아프리카
정부들도 발등에 불똥 떨어졌죠. 다시 아프리카 대륙 내의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기 위해 머리 굴리고
있을 텐데, 어쩌실 생각이세요?”

“반유현 팩토리 아프리카 대륙 설립은 이미 내 마음속에선 철회된 거야. 이스라엘이 이미 설립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겉으로는 그걸 가지고 아프리카 연합을 휘둘러볼까 하는 게 내 생각이야.”

“아…… 설립을 해줄 듯 말 듯 하면서요?”

“어.”

오스틴은 벙찐 표정으로 창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 생각과 계획이 감당이 안 된다는 듯이 말이다.

“국토부 차관, 케빈이 이런 대우를 해줄지는 나도 몰랐네.”

미국 국토부의 전세기,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고 싶었는지 수석 보좌관 케빈이 곧장 윗선에 컨펌을 받고


비행기를 지원했다.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많게는 이틀에 한 편, 시간 또한 맞지 않아 방법을


모색하던 나를 본 케빈이 곧장 제안한 것이다.

도착지인 리비아에는 경호 인력까지 준비를 해두었다니,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후우우우웅!

비행기가 착륙하고, 창문 밖에는 나를 태울 차량과 경호 인력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활주로 안에 들어와 저렇게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니, 아프리카 연합에서도 많은 협조를 해준 듯하다.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 공항에 곧장 내려, 차에 올랐다.

수도라 할 것 없이 황폐하고 먼지가 가득한 풍경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때, 그나마 활력이 넘치는 시장을 지나는데 길거리에서 수많은 음식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여기서 멈춰봐.”

“예?”

내 한마디에 나를 태운 차량 앞뒤로 줄 세워진 행렬이 멈추었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이런 곳에서 때 묻지 않은 아주 신선한 셰프를 만날 수도 있잖아?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둘러보자고.”

그때였다. 내가 차에서 내린 순간.

우와아아아아!

반유현!

발음이 정확하진 않지만, 분명 내 이름이 들렸다.

“아프리카에서도 날 안다고?”

147 화. 요리사, 그 이상의 힘 (7)

우와아아아아!!!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장에 흙먼지가 일었다.

“‫(الشيف بان يو هيون‬반유현 셰프님!)”

“Please taste! (맛 좀 봐주세요!)”“Prova questo piatto!(이 요리 좀 먹어봐!)”

아랍어를 주로 쓰는 나라지만, 영어와 이탈리아어도 종종 들려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순식간에 내 쪽으로 모여드는 인파에, 경호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사람들을 막아섰다.

각종 화기로 무장하고 있는 경호원들 덕에 사람들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멈췄지만 소리는 계속되었다.

“반유현 셰프님! 제발 이쪽 좀 봐주세요!”

“제발요!”

“셰프님! 저희 요리 좀 맛봐주세요!”

자신의 요리를 평가해 달라는 사람들이었다.

저마다 접시에 자신들이 판매하는 요리, 또는 갓 만들어 낸 요리를 담고 내가 맛을 봐주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계획대로, 제대로 된 것 같습니다.”

오스틴이 내 옆에 와서 속삭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됐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긴 한데.”

이번엔 오스틴보다 오히려 내가 놀랐다.

아프리카 대륙에서까지 나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니.

이 대륙에 있는 나라들, 이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이곳 사람들이 SNS 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며 이곳의 대중매체를 본 적도 없었으니까.

“이렇듯 파급력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런데 계획대로 된 것 아닙니까?”

계획이라면,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는 것과, 이스라엘 정부가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규제를
적절하게 완화한 것과, 반유현 팩토리의 모든 것은 무상 지원된다는 것을 아프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한 언어로 모두 번역해, 아프리카 주요 도시에 그 정보들을 뿌린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봐? 이건…….”

그렇다고 하기엔 이 정도의 반응은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이 사람들은 나의 존재를 알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반유현 팩토리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것을 알고 있다 쳐도, 셰프인 것은 어떻게 알아?”

“그, 그러네요.”

사업가와 셰프는 당연히 다른 경계에 있는 것인데, 이들은 나를 아주 유명한 요리사로 보고 있는 듯했다.

“나를 알아?”

나는 나를 둘러싼 경호원들 사이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작은 소녀에게 물었다.


이탈리아어로 물으니, 그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반유현 셰프님…….”

그로서 이들의 이런 열화와 같은 반응이 이해가 됐다.

“나를, 셰프라고 하네. 이 사람들은 내가 반유현 팩토리의 수장이자, 유명한 요리사인 줄 알고, 나에게
맛을 인정받으면 곧장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네.”

이 사람들이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을 보면, 이 사람들에게 반유현 팩토리는 천국, 또는 낙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애원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말이다.

“일단, 셰프님. 경호 문제도 있고 다시 차에 오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 오스틴은 경호 문제를 말하며 다시 차에 오르길 권유했다.

“우리 경호가 그것밖에 안 돼?”

“예?”

“이 사람들이 위험해 보일 정도냐고.”

“아, 그, 그건 아닙니다. 혹시나, 만에 하나의 상황을…….”

“판이 깔렸잖아. 기회를 놓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

경호 인력들은 한 시간 내에 추가로 투입되었다.

기업들에 돈을 받아 인도양을 건너는 배를 호위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대한민국 특수부대 출신들이


주축이 된 용병들을 급하게 구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 리비아 시장에 있는 사람들의 질서를 만들었다.

“한 명씩 가져오라 그래.”

급하게 책상과 의자를 구한 나는 그곳에 앉아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하나씩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정말…….”

“뭐가 그리 걱정돼. 내가 공짜로 봉사를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다 되돌아올 거야.”

“네…… 당연히 깊은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아, 아니. 당연히 제가 헤아리지 못하는 거겠죠?”

아직, 아프리카 대륙 내의 한 나라만을 들렀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조차 나에 대한 인지도가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다.

그나마 GDP 가 높은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집트 정도에서는 나를 알아볼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나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100 년을 넘게 살며,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이렇다 할 관심은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쉽사리 예상하지


못했었다.

나는 이런 관심이 엄청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은 아프리카 연합의 사과를 듣고, 그들이 이스라엘에 설립될 반유현 팩토리에 어떤
것들을 해줄지 듣기 위함이었는데, 나의 인지도를 더욱더 높이는 것은 그들과 있을 회의에서 내가 조금 더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또, 이런 관심을 외면한다면 이들의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올라간다.

“걱정하지 마. 치안이 안 좋다 한들, 저렇게나 총을 메고 있는 경호원들이 날 보고 있는데 누가 나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겠어.”

그렇게 보좌관들의 걱정 어린 분위기 속에서 요리 평가가 시작되었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한 명씩 내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요리를 올려두었다.

“에구시 수프(EGUSI SOUP)?”

“네”

나이지리아의 대중 음식으로, 이 요리를 잘 알고 있었다.

냄비에 오일과 토마토소스, 각종 해산물과 육수를 넣고 끓인 뒤 호박씨를 곱게 갈아 만든 가루와 달걀을


섞고, 녹말로 걸쭉하게 농도를 맞추는 요리.

이것을 보고 냄새를 맡자마자 그 레시피가 정확히 떠올랐다.

“네가 했니?”

아까 경호원들 사이로 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던 체구가 작은 소년.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농도가 너무 걸쭉해.”

내 말에 순간 몸이 경직되는 소년.

“해산물이 없는데도. 맛있네.”

오일과 토마토소스, 그것을 기반으로 한 곡물들의 풍미가 고소했다.

“달걀이 아닌 것 같은데.”

“어, 어떻게…….”

맛만 보고도 요리에 들어간 재료를 알아내는 내가 놀라웠나 보다.

풍미가 고소하다는 말에 미소를 짓던 소년이, 다시금 몸이 경직되었다.

그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놀라 나를 쳐다봤다.

“메추리알이야?”

“헙…….”
“녹말을 많이 넣어서 농도가 걸쭉한 게 아니라, 메추리의 알로, 달걀을 넣은 것 같은 색감을 주려고 많이
넣다 보니까 걸쭉해진 거구나.”

소년이 놀란 눈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리자,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시, 신…… 맞네요. 요리의 신?”

“뭐?”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런 줄 알고 있어요. 냄새와 맛으로만 재료를 알아맞히고, 이 힘든 생활에서


저희를 구원해…….”

“그건 아니야.”

인류애, 평화, 죄다 나하고는 관심 없는 키워드였다.

내 브랜드의 무한한 발전을 위해 나 스스로의 이미지를 챙길 때가 많지만, 과도한 설정은 사절이다.

“실력 있는 사람만 데려가.”

“그럼 저…… 는…….”

“너는 주소랑 이름 적고 가. 가능성이 있어.”

내 말에 이곳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아프리카, 1 호 반유현 팩토리 입학생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우와아아아아!

내가 갈라디너나, 그랜드 오프닝을 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진정 폭발적인 반응들이었다.

이들은 진짜 반유현 팩토리를 낙원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확실하게 해야겠네. 아프리카 연합하고 회의 시간 좀 뒤로 미뤄봐.”

“예?”

이곳 사람들의 반응이 이 정도라면, 나도 더 많은 액션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도 준비해. 회의장까지 가는 길에 마을이 보이면 무조건 하차한다.”

***

아프리카 연합.

55 개의 국가 중 약 25 개 국가의 수장들이 모인 자리였다.

이들은 모두 반유현과의 회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예수가 나타났다고들 합니다.”

“예수요?”
“예, 이 사진을 보시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몸을 만지기 위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손을 내미는 그림들, 성경 속에서 많이들
봐왔던 그 그림처럼 지금 이들이 보고 있는 사진도 그랬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반유현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

아니, 어쩌면 성경 속에서 수없이 봐왔던 그 그림들보다 사진 속의 반유현의 기세가 더 대단했다.

“사람들이 모두 접시에 요리를 담고 줄지어 있는 걸 보면, 저 사람이 그토록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러게요 무슨…… 왕한테 자신들의 음식을 대접하는 것처럼요.”

“가뜩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리비아 국민들이 저 사람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어다 준


모양입니다.”

“종교 이상이군요.”

이 회의에는 장시간 집권한 독재자들도 꽤나 있었는데, 당연히 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자를 보는 시선이


불편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민들과 스킨쉽을 하며 저런 행보를 보일 수 있는 인물은 이 대륙 내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반유현? 어쨌든 저 사람 때문에 이탈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정치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그가 국민들을 유혹하며 나라의 근간을 흔들리게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어쩌겠습니까. 유럽연합, 미국 정부까지 나서서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협력적 관계가 되어야 할 겁니다.”

“이것들 보십시오. 벌써 언론들이 그를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 반유현, 아프리카 빈민들을 위한 요리. ]

[ 세계 최고 셰프의 사랑이 담긴 행동들! ]

요리를 평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곳 회의장으로 오는 길 내내 마을이 보이면 그 마을의 식재료를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요리를 선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 정신적 지주가 되어가고 있는 반유현! ]

[ 이스라엘 반유혁 팩토리에 대한 열망 가득! ]

[ 믿을 수 없는 반유현의 행보! UN 도 주목하다! ]

그가 언론사, 기자들을 데리고 움직이는지, 그의 행보들은 매번 사진과 함께 기사로 나가며 많은 세계


기구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이미 주도권은 넘어갔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유현에게 소리를 질렀던, 각 국가의 관계자들도 있는 자리 자신들이 했던 행동에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에 대한 공부를 했던 바, 그는 자신에게 나무란 사람을 용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이 장기간 지도자를 해왔던 터라, 고개 숙이는 법을 모르셨을 텐데, 오늘에서야
알게 되셨군요. 한 명의 요리사…… 군대나 무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한 명의 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여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이미 이것만으로도 발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48 화. 거대한 움직임 (1)

짧게는 10 년, 길게는 30 년까지 한 나라를 통치한 독재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한곳에 모인 자리.

고개를 숙였던 적 없는 이들의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모든 권력을 손에 쥔 독재자와, 그 정권의 고위급 공무원이라 한들 당연히 나에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했던 내 행보들이 전 세계에 알려졌고 그에 따라 세계 주요 기관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나였으니까.

이들에게 지금 내 몸은 요리사가 아닌, 어쩌면 자신들의 밥줄을 끊기게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네, 고생 좀 했습니다.”

이틀에 걸려 회의장까지 오는 길, 모든 마을에 들러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레시피를 전수해주느라


피로도가 조금 쌓였는지, 괜스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시간을 길게 끌기 싫었다.

“얼마나 대단한 제안을 하시려고 저를 여기에 부르셨는지.”

“일단, 라스베이거스에서 셰프님께 고성을 질렀던 저희 측 직원들이 사과를 한다고 합니다.”

열 명이 넘는 인원들이 내 앞에 나와 일렬로 줄을 섰다.

그러곤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왜 그러냐고 행사장의 분위기를 망쳐놨던 이들이 무릎을 꿇곤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아프리카 연합이 반유현 팩토리에 얼마나 신선한 제안을 할지 궁금해서 온 겁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일으켜 세웠고 다른
쪽으로 이동시켰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나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그 아무도 하지 않았다.


“사람 불러 놓고, 아무런 준비를 안 했다는 말인가요?”

그때,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대통령, 포스틸라 투아주라입니다. 반유현 님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 아프리카 연합은 어떤 식으로 이


사태에 대해 대응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태라 함은 단순했다.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들이, 반유현 팩토리가 이스라엘에 설립된다는 것이 공포되었을 때, 이스라엘로


향하는 비율이 20 퍼센트가 넘게 증가했다.

“솔직하셔서 좋습니다.”

또, 내가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오고부터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은 어떠한가.

[ 리비아, 이집트, 알제리 반유현이 지나간 북아프리카 반유현 추종자들 불어나! ]

[ 각 국가 정치인보다 높은 지지율 얻고 있는 반유현! ]

[ 그의 요리는 천국 그 자체였다 ]

[ 지중해 건너려던 난민들 다시 돌아와, 반유현 영접하고파. ]

100 년간 살아온 나조차도 이런 현상을 처음 봤는데, 당연히 이들도 이런 현상을 처음 봤을 터.

나에게 어떤 제안을 할지, 나를 어떤 식으로 대우해야 할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수십 명의 지도자들이 입을 닫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정리를 좀 해드립니까?”

아프리카 연합의 본부, 아프리카 통일기구, 유엔 아프리카 경제 위원회 등이 모여 있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이곳까지 오는 길에 북아프리카에 있는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며 느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조차도 처음 겪어본 이런 파급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첫 번째로. 이 대륙의 식문화가 가진 잠재력에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자, 함께 자리에 있던 지도자들의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향과 맛이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먹는 것 자체에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뭐, 여기 계신


지도자분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의 표정이 다시금 변하는 것을 보고, 이 현장을 정확히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내 말 한마디에 시시각각 변하는 저들의 태도,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거침없이 말했다.

“제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는 그 사람들의 행복감은, 이제껏 제가 요리를 만들어준 사람들 중에서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소금, 버터와 같은 정제된 조미료나 오로지 풍미를 돋울 수 있는 재료들이 없음에도
최선의 맛을 이끌어내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요리하는 습관들이 대부분의 셰프들에게
묻어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대륙에 와서 느낀 점이었다.

내 요리를 먹고 미친 듯이 기뻐하는 사람들, 조미료 또는 향신료가 풍족하지 않다 보니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조리를 하던 사람들, 나는 그것이 이곳이 가진 잠재력의 전부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곳에서도 가질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뭐, 이만하면 됐고, 앞으로 계획을 조금 생각해봤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아프리카의 요리들이 아니라, 도시 곳곳을 누비며 먹어온 요리들은 내가 기대했던


대로 내 요리 인생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오기에 충분했다.

이 조리법과 문화를 발전시켜서 ‘반유현’이라는 브랜드에 담고 싶을 만큼.

“치안 문제가 가장 걱정됩니다. 아직까지 내전을 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고 반유현 팩토리라는 시설을


세웠을 때, 그것을 얻기 위한 분쟁도 분명 발생되리라 생각되고…….”

교수진으로 다른 나라의 셰프들을 동원해야 되는데, 그들의 안전이 걱정되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나야, 수많은 경호 인력들이 지켜주었기에 걱정 없지만, 이곳으로 오게 될 셰프들은 그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에 대한 경호를 지원해준다고 해도, 확장성을 생각해봤을 때 점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나.

또, 반유현 팩토리 자체가 아프리카 대륙의 권력 다툼의 원인 제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문제가 있음에도, 여기 계신 분들은 아프리카 ‘반유현 팩토리’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


아닌가요?”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겐 요리라는 게 선진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고.

반유현 팩토리는 계속해서 많은 국민들이 다른 나라로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아프리카에 간접적으로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겠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적 수도라 불리는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요리 경연을 열겠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회요. 그리고 그곳에서 합격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합격증을 얻게 될 겁니다.”

이들의 문화를 흡수하고, 무차별적으로 난민들이 이스라엘로 넘어와 반유현 팩토리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을 막고,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물론, 여기 계신 모든 지도자분들이 그 하루는 국경선의 경계 정도를 낮춰주셔야 가능하겠습니다.”

***

[ 반유현 팩토리 경연 ]

UN, 아프리카 연합, 유니세프까지 수많은 세계 기관들이 나의 말에 힘을 실어주어 아프리카 대륙에 내


이름을 딴 경연이 매달 열리게 되었다.

매월 7 일, 이 대회가 열리는데 이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은 이스라엘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 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거나 국경을 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천국이, 이들에겐 열린 것이었다.

[ 유럽연합 “난민 문제를 반유현 셰프가 해결.” ]

[ 반유현 셰프! 유럽에는 맛의 행복을, 아프리카엔 희망을! ]

[ 전 세계 지도자들 반유현 팩토리에 존경과 지지 의사 표현. ]

지구 전체의 문화와 조리법, 식재료를 품겠다는 야망이 조금 더 좋게 표현되어 나도 기분이 좋았다.

미슐랭 스타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레스토랑을 런칭할 테지만 이제 대중들에게 내가 그런 행보를 보이는


것은 시시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 반유현, 그가 노벨 평화상 후보가 아니라면 문제 될 것. ]

[ 아프리카 민족회의 “역사에 없던 행복감을 누리게 해준 반유현.” ]

뭐, 결과적으론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와 조리법을 삼키게 되었다.

그것들을 반유현 팩토리에 적절하게 융화될 때, 나는 그것들을 발전시켜 요리로 만들 것이다.

세계인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아주 신선한 요리를 말이다.

“대중들과 여러 단체들이 셰프님을 정치적으로 몰아가니까,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무슨 문제.”

언제나 그랬지만, 동전에 앞뒤가 있듯이 나의 성과와 성취에도 앞뒤가 있었다.

이번엔 그 파급력이 꽤나 강하다 보니 그에 따른 어두운 면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셰프님이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하신 것에 대해서 안 좋게 보는 시각들이요.”

[ 옛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켰던 것과 동일. ]

[ 반유현 브랜드를 이용해 아프리카를 그대로 삼키려 함. ]

[ 21 세기에 나타난 독재자! ]

“그 이유가, 대체 아프리카의 식재료와 조리법이 뭐가 대단하다는 식입니다.”

“뭐?”

이렇듯 의혹들이 제기된 이유는 단순했다.

전 세계에 맛 좋은 요리와, 그 요리를 만드는 조리법은 굳이 내가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하지 않아도


많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 빼면 이미 모든 요리를 다 알고 있는데.”

“네?”

“아니야.”
또, 미슐랭 23 스타를 가진 셰프가 아프리카에 진출한 것에 대해서 다른 의도가 분명 있다는 듯이 나를
몰아갔다.

“무슨 의도.”

“그런 의도를 제기한 사람들은 셰프님께서 이제 요리사로써#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의도를 아주 찐하게 갖고 움직인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럼, 안 되는데.”

요리라는 행위를 예술로 봤을 때, 저들의 저런 시선은 내 요리의 가치를 낮춘다.

정치적인 색을 입어버리면 그 색을 쉽게 씻어낼 수 없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레스토랑을 만들고 최고의 요리를 내놓는 것까지 모두 그렇게 비칠 수밖에.

“한두 명이 그러면 무시하겠는데, 계속해서 그런 의혹이 발생하면, 최고의 맛을 내보이겠다는 내 요리의


가치가 정치적인 색이 묻어서 쓰레기가 되어버려.”

“변호사, 언론사, 관련 기관들 다 불러서 조치하겠습니다.”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말고. 내가 왜 이 대륙에 왔는지 보여주면 되잖아.”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만들면 오히려 저들의 의혹에 기름을 부어주는 것과 같다.

매번 했던 대로.

“요리사니까, 요리로 보여줘야지.”

“예?”

“아프리카 각 나라의 대표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서 이 대륙의 요리 문화가 대단한지 보여준다. 아울러,
내가 이 대륙에 진출한 이유를 밝히고.”

“아…….”

“문제 있나?”

“어, 없습니다. 그, 그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하시겠습니까?”

이쯤에서는 오스틴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면서 물어봤을 터이다.

“아프리카 대륙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음식을 먹여봤자 나에 대한 의혹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아니야.”

“그, 그렇습니다.”

“그럼 알면서 왜 물어. 당연히 최대 규모지. 초대권 만들어.”

내 밑으로 들어와서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했을 비서들과 경호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후…… 저희보다 기자들도 참 바쁘겠습니다. 대중들이 셰프님께 가지는 관심은 높고, 셰프님은 맨날
충격적인 말만 뱉어대니까요. 그나마 저희는 적응이 끝나서 괜찮습니다. 당장 초대권 만들겠습니다.”

149 화. 거대한 움직임 (2)


아프리카의 축제들은 세계적으로는 그 인지도가 적지만, 유럽 내에는 꽤나 잘 알려져 있다.

특히나, 지금 4 월, ‘케이프 타운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다.

“전 세계 재즈 거물들이 이틀 동안 공연을 합니다. 재작년에만 해도 3 만여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모였다고 하네요.”

각종 내전과 치안 문제 때문에 관광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 축제의 이름을 언급하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총리가 두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저, 정말입니까?”

“아닙니다.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습니다.”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축제가 어떤 것이냐 묻자 나온 축제.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열리는 축제의 규모를 판단하기 위해서 그 축제를 거론한 것이었다.

“확실히 이 대륙의 음식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적긴 하네.”

음악, 춤 그 밖의 다른 문화들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음식 축제, 케냐의 나이로비 위크히어…… 이런 축제들이 재즈 축제의 관광객에


비하면 현저하게 적으니까.”

객관적인 수치들을 보니 또 욕심이 생겨났다.

“일단 이 대륙의 조리법과 식문화를 반유현 팩토리에 품기로 했으니까…….”

“예…… 또…… 무슨 생각을 하시는…….”

이 대륙의 음식 축제를 모든 장르의 축제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축제로 만들면 어떨까.

재즈, 불꽃축제, 예술축제, 종교축제…… 모든 장르를 생각해도 이 대륙의 식문화가 무시할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 나의 행보에 대한 의혹들이 사라질 것이다.

아울러, 요리사 ‘반유현’의 국적을 가리지 않는 위대함을 보여 줄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래서, 선택지가 두 개 있는 거네.”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케냐의 나이로비 위크히어입니다.”

아프리카의 낮은 재료 원가 덕분에, 다른 대륙이면 같은 가격에 찾아볼 수 없는 음식들이 즐비하다.

3 성급에서 5 성급까지 약 80 여 개의 식당이 참여하는 축제로, 천 명에서 많게는 육천, 칠천 명의


인원들이 동원되었던 적이 있는 축제였다.

“케냐는 어떻습니까? 제가 들어가도 문제가 없을까요?”

자신의 나라, 자신들의 축제가 나의 이름에 거론된 것만으로도 표정이 금세 금세 바뀐다.

내가 처음 아프리카 연합의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는, 총리, 부통령 장관급의 인사들이 주로 있었는데,
아프리카 내에 축제를 열겠다고 말한 뒤로는 각 국가의 대통령들이 직접 자리하고 있었다.
“레알라 케냐타입니다.”

케냐의 대통령으로 1 대 대통령 아버지를 뒤이어 5 대 대통령에 취임한 인물.

선한 인상 속에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남자였다.

내가 전생에도 그렇고 전 전생에도 그렇고 요리사로 이름을 알렸을 때, 자신들의 나라에 있는 요리사들을
나에게 보내 다짜고짜 교육을 시키라는 둥 말을 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과는 다른 성품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당연히 반유현 셰프님이 기획하신 축제가 저희 축제인 위크히어와 시너지를 일으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과 1 년 전 테러가 있었고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올해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축제를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라…….”

1 년 전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고 민간인 15 명이 사망하는 사고를 말하며 치안 문제를


말했다.

실제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몰려오면 그에 대한 안전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데, 아직까진 본인들로선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음식축제밖에 없나.”

“가나의 서아프리카 음식 축제, 남아프리카 길거리 음식축제 등 여러 가지가 더 있지만…… 그 규모가


작습니다. 그렇게 고려해보면 라고스 음식축제밖에 없습니다.”

“나이지리아는 어떻습니까?”

무하마두 리비탄.

나이지리아의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도 테러의 위협은 같은 상황입니다만. 저는 군 사령관직까지 겸하고 있어, 치안유지와 안전에 모든


것을 동원하겠습니다. 음식 축제가 열리는 라고스는 수도가 아니지만, 행사 전부터 국가 인력들을
동원해서 모든 준비를 마쳐놓겠습니다.”

“다른 국가들의 음식축제도 곁들이는 건 어떨까요?”

“예?”

“제 비서에게 얘기를 들었습니다. 크고 작은, 알려지지 않은 음식축제들도 많다고. 이왕 그렇게 인력을


총동원하실 거면, 다른 국가들의 음식축제도 흡수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음식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입니다.”

장내가 술렁였고, 그것을 정리한 것은 한 중년의 남자였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온 나라가 이 음식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엔 아프리카 경제 위원회(UNECA) 사무국장의 말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반유현 셰프님께서 팔 걷고 하신다니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본부에도 지원을 받아서 반유현 셰프님이 계획을 수행하시는데 최고의 도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
나비효과라고,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말.

정확히 지구 반대편쯤에 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일이 대단한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를 꺾은 경험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살리다. ]

세계 최대 미식 축제를 흡수한 경험이 있는 셰프가, 또 다른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니 저절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이었다.

[ 전 세계 관광객들의 이목 집중! ]

[ 유엔 사령부! 미 육군, 나이지리아 병력에 지원! ]

[ 반유현의 영향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

물론, 이런 기사들이 나면 날수록, 내가 계속해서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의혹이 커지고 있는 반대편에 맞불을 놓았다.

[ 아프리카 전 나라에, 반유현 팩토리 인력 파견. ]

[ 축제 당일 아프리카 전 대륙의 요리 선보일 것. ]

파리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 성적우수자 순으로 아프리카 파견 희망여부를 조사해서, 희망자에 한해


아프리카로 불렀다.

그리고 조를 편성해 그들을 각 나라로 보냈다.

이미 각 나라의 지도자들과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며, 최상의 경호 인력들을 투입했다.

“행사 5 일 전, 다시 이곳에 모여서 메뉴 테이스팅을 할 것이고.”

정해준 행사 당일까지 약 3 주 정도 남은 시점, 이들은 각 나라에 퍼져 각 나라가 가진 고유의 요리와


조리법, 그리고 식재료들을 파악해 올 것이다.

구석구석 문명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이들의 요리를 파헤쳐 올 나의 사절단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신기하고 생소한, 그렇지만 잘 요리하면 맛있을 것 같다…… 하는 요리들은 모두 알아 와.”

이들이 가져온 요리들을 나의 손과 입맛을 거쳐 대중들에게 옮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온전히 신선한 요리를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것이고.

“예! 셰프!”

나의 야망에 동조한 셰프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조리복에 반유현이라는 글귀를 품은 셰프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로도가 꽤 쌓였을 테지만 티 내지 않고 마구 의욕을


불살랐다.

밖에서도 내가 이곳에서 벌이고 있는 행보에 대해 알고 있었을 테다.


“질문 있는 사람.”

파리, 반유현 팩토리의 A 반부터 순서대로 100 여 명의 셰프들이 나의 말에 손을 들었다.

“아니, 질문할 것도 없다. 이 대륙에선 제약될 게 없어. 어디 오지의 소수 부족들에겐 통하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 조리복에 ‘반유현’이라는 글귀가 포함되어 있으니, 여러분들의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우와아아아아!

그때, 옆에 있던 오스틴이 내 말에 덧붙였다.

“괜히 의지를 북돋기 위해 과장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가는 모든 국가의 대통령들과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적십자의 십자가처럼, 여러분 조리복에 있는 ‘반유현’이라는 글귀가 여러분을
지켜줄 거고 길을 터줄 겁니다.”

동, 서, 남, 북 각각 경호 인력을 대동한 버스를 타고 흩어지는 셰프들을 배웅한 뒤에 나는 곧장 다음의


계획들을 나열했다.

“저 셰프들이 가져올 요리는, 축제 5 일 전 다듬으면 될 터이고, 아프리카 각 국가들의 셰프들도 이쪽으로


파견되고 있다며.”

“그렇습니다. 각 정부에서 최고의 셰프들을 이번 축제 때 동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축제에 관련된 것들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만 준비하면 되나? 추첨권 또는 초대권?”

“그렇습니다.”

“여태까지 레스토랑 반유현에 예약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초대권 돌려, 현장 웨이팅을
했던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레스토랑 반유현에 결제 내역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초대권 돌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축제 자체를 홍보 한 번 더 하고.”

“예, 알겠습니다.”

세계 각 기관의 도움을 받아 내가 크게 신경 쓸 것 없이 준비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신경 쓸 것이 없었다기보다 내 말 한마디의 힘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홍보부터, 축제가 열릴 장소, 순서, 말 한마디에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이 움직여서 일을


해내니 나는 그것이 완전한지 보고만 받으면 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도 각국으로 떠나보냈으니, 이제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울 차례였다.

“그리고, 이번 축제는 라스베이거스에 또 다른 레스토랑으로 연결 지을 거야.”“예? 그게 또 무슨 말씀…


….”

매번 평범함의 범위를 벗어나는 나의 계획 덕에, 직원들은 또 한 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전에 큰 규모의 행사나 홍보, 또는 축제를 벌였었다.

레스토랑을 폭발적으로 런칭하기 위한 그 초석으로.

“이번에도 똑같아. 나에 대한 관심을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릴 거야.”


현재, 라스베이거스에서 로또 육인방 중 한 명인 제리는, 이미 계속해서 메뉴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라스베이거스가 한창 내 이름으로 뜨거워질 때, 곧 런칭되리라 생각했던 제리인데, 내가 뜬금없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와 버려서 기세가 많이 꺾였을 거야. 지금 이 모든 세계적 관심이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갈 것이라 말해두고, 셰프들 조직도랑 가게 인테리어, 다시 짜 놓으라고 해둬.”

반유현 팩토리, 그리고 세계적인 입지, 새롭게 런칭될 레스토랑까지.

이 축제가 끝났을 때쯤, 어떻게 돼 있을지 생각해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가뜩이나 이쪽으로 오는 항공권이 얼마 없는데, 사람이 몰려서 일단 표가 다 팔렸다고 합니다!”

“제공하신 초대권이 또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는데, 값이 치솟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호텔을 미리 싹 다 예약해 놓고, 외부인들에게 비싼 값에 되팔고 있다고 합니다.”

“경호업체들 시간당 페이도 올라갔답니다. 괜스레 아프리카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 건 맞지만, 나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단서들이었다.

“우리는 계속 밀어붙여야지.”

바삐 움직여야 될 건, 나를 떠받들고 있는 각국의 지도자들, 세계 협력 기관들이었다.

150 화. 거대한 움직임 (3)

“반유현 셰프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 호텔의 한 레스토랑.

아직 오픈하지 않은 이 레스토랑의 주방엔 스물다섯 명의 셰프들이 모여있었다.

이 레스토랑의 바로 앞, ‘반유현 레인보우’에 손님이 바글거리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예? 반유현 셰프님의 지시 말씀이십니까?”

“아프리카에 힘쓰시느라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어?”

“말씀해주십시오!”

이곳의 총괄 셰프인 제리의 말에, 셰프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곳의 레스토랑 런칭을 준비시켜놓고는, 모든 팀원들을 이끌고 아프리카대륙으로 날아간 탓에


라스베이거스의 또 하나의 레스토랑인 이곳의 런칭이 지지부진해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들려온 반유현이라는 그 이름의 소식은 셰프들을 들뜨게 할 만했다.

“레스토랑 런칭 날짜가 잡혔어.”

우와아아아아!

제리의 말에, 셰프들은 다시금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 환호를 지르다가도 다시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셰프들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있던 제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제리의 얼굴을 본 셰프들도, 괜스레 불안함을 느꼈다.

“우리가 준비하던 메뉴들은 전면취소야.”

술렁이는 장내.

“무슨 소리입니까 셰프님!”

“밤새! 준비했던 메뉴들이 취소라니요!”

“셰프님께서도 인정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정도면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인정하실만한 요리라고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셰프님, 레스토랑은 런칭 준비를 하는데 우리의 메뉴가 전면 취소라는
게…….”

셰프들의 원성을 한 시간 동안 들어주던 제리는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다 짐 싸. 우리도 아프리카로 날아간다.”

“예에?”

“우리 말고도 많은 팀들이 아프리카에 모일 거야.”

***

라스베이거스를 지키고 있던 톰슨도 그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펠리지오 호텔의 간부들을 만났다.

“심상치 않습니다. 이거.”

“반유현 셰프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던 톰슨 셰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도 무언가를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반유현 팩토리 성적우수자부터, 최근 라스베이거스에 레스토랑 런칭을 준비하던 셰프들까지 모두


아프리카로 떠났다.

또, 유럽연합이며 미국정부며, UN 이며 할 것 없이 그 축제를 돕는다고 했다.

이미 대중들에게 배부된 초대권 일부는 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아프리카의


경호를 맡을 인력들의 몸값도 오르고 있었다.

“이 현상 자체만도 그렇지만. 반유현입니다 반유현.”

톰슨은 반유현이라는 존재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렇게 발생하고 있는 모든 현상을 주무르고 있을 것이며, 이 차후의 계획까지 그 머릿속에 있을 것이라고.


“역사상 없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정도입니까?”

간부들도 반유현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과연 그 정도일까.

과연 일개 셰프 한 명이 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경영, 경제 석박사, 또는 수차례 기업을 경영해봤던 중진들에겐 그랬다.

“혼자서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고 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물론, 이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걱정하는 건 톰슨 셰프님께서 이 상황에 심취해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까…….”

“아닙니다. 저는 제일 날카로운 이성적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반유현’ 산하의 모든 셰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아프리카로요. 아무래도, 이 축제…… 반유현 셰프가 무언가 제대로
승부를 낼 것만 같습니다. 프랑스, 런던, 라스베이거스…… 그 어떤 도시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규모의 움직임? 그 근거가 뭡니까. 반유현 셰프는 항상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퍼부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톰슨이 입에 닳도록 반유현이란 인간의 영향력에 대해 말해왔던 터라, 톰슨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개인적 감정이 깊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도 당연했다.

“미국 정부는 반유현 셰프에게 경호 인력을 동원해줬습니다. 아프리카 각국의 지도자들은 고개를 숙였고,
UN 관계자들은 적극 협조 공문을 시달했습니다. 유럽연합은 브랜드 ‘반유현’과 더 끈끈한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톰슨은 세계 주요기관들이 움직인 것까지, 모두 반유현의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들은 반유현의 생각에 의해 움직인 것이다.

“하하하! 톰슨 셰프님 말씀대로라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란…….”

“음…… 저는 톰슨 셰프님께 공감합니다. 여태까지의 행보를 본다면 그 모든 걸 계획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입니다.”

“톰슨 셰프님, 그래서 저희는 무얼 해야 하는 겁니까?”

몇몇 간부들이 톰슨의 말에 동조했고, 톰슨은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번 반유현 셰프님이 처음 라스베이거스에 왔을 때, 우리 호텔은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확실한 커리어 하나 없는 반유현 셰프를 라스베이거스로 초대한 셰프가 되어 많은 호사를
누렸습니다.”

말수가 없던 톰슨이 유창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열하니, 호텔 내 간부들도 그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국 그뿐이었습니다.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은 이후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저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쌓아온 실력으로 이번 아프리카 음식 대 축제에 저희
펠리지오 호텔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겁니다.”

프랑스 파리도 마찬가지였다.

“루시앙 셰프님! 반 셰프한테, 메일 온 것 보셨습니까?”


“아니. 그 바쁜 사람한테 메일이 다 왔어?”

“하하하하. 반 셰프한테 그간 삐치셨나 봅니다. 연락이 자주 오질 않아서?”

올리버와 루시앙, 반유현 초창기에 반유현이 파리에 정착하는 것을 도와준 은인이자, 어쩌면 반유현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었다.

“크흠! 삐치긴 무슨! 무슨 연락이 왔는데!?”

“아프리카로…… 오랍니다.”

“뭐?”

“말 그대로입니다. 아프리카로 셰프들을 이끌고 와달랍니다…….”

메일의 내용은 비단, 이들에게만 보낸 것 같지 않았다.

반유현은 다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형식으로 메일을 보냈다.

“내, 내가 반셰프가 부탁하는 건 다 도와주려고 했지만. 알잖나! 자네도. 내가 얼마나 반셰프를 아끼고
…….”

“어떡할까요.”

“알잖아! 내가 반 셰프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 이런 부탁은…….”

“저는 가야 될 것만 같습니다. 아무래도, 또 하나의 역사를 새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역사?”

“저랑 예전에 이 주방에 있을 때, 반 셰프가 말했었습니다. 전에 없는 역사를 계속 써 내려갈 것이라고.”

“아프리카라…… 머리 아프구만.”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뭐래유?”

“예, 대표님. 반유현 셰프가 보낸 메일입니다.”

“차암나! 전화도 아니고, 이제는 이렇게 장문의 메일로 사람을 아프리카까지 불러?”

“하하하. 아무래도 저희뿐만 아니라, 여러 그룹에 단체로 보낸 것 같습니다.”

“아니 세계 주요 기관들까지 주무르는 양반이 내 도움이 뭐가 필요하대유?”

백원종 대표에게도 반유현의 메일이 도착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 양반이라니까.”

그러면서도, 백원종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매번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며 해내는 반유현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그려. 준비해. 아프리카 구경도 해보고 좋구먼.”

***

[ 반유현 사단의 움직임. ]

브랜드 반유현이 아닌 반유현 ‘사단’이라 함은 나의 최측근 인사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미슐랭 스타 스무 개를 넘기 전, 방송에 쉴 새 없이 출연한 덕에 나의 주변 인사들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표적으로, 나를 파리에 처음 입성시킨 루시앙, 그리고 함께 일한 올리버, 또, 대한민국에서는 어쩌면


나보다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을 백원종…….

라스베이거스의 톰슨 등 실제로 나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아프리카인데, 이렇게 흔쾌히 부탁을 받아주실지는 몰랐는데?”

“저, 저희도 몰랐습니다. 숙박하고 경호 인력 충원하느라 머리 아픕니다.”

“아, 그러고 보니, 톰슨 셰프님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펠리지오 호텔 간부 양반들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기 어려웠을 텐데.”

톰슨은 오너 셰프가 아닌, 호텔에 소속된 셰프였기에 그 산하의 셰프들을 통째로 움직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간부들을 설득해 내야 했을 텐데, 그가 이곳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은 나도 꽤나 놀랐다.

“어떻게든 설득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톰슨 셰프님은 워낙 반유현 셰프님을 좋아하시니까요.”

[ 루시앙, 올리버, 백원종 …… 반유현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아프리카에! ]

[ 반유현의 최대 수혜자, 루시앙 반유현의 명령을 따라! ]

나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적절하게 있는 그들의 팬덤까지 흡수하고, 이 축제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리려는 심산이었다.

이름이 꽤나 있고, 나를 따르는 셰프들이 나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액션은 이번 축제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이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셰프님이 생각하신 대로 반응이 장난 아닙니다.”

#반유현아프리카 #아프리카#반프리카초대권

#반유현#초대권#나도#반유현챌린지

이미 SNS 상에는 나에 대한 태그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중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이, 이제 이 축제의 현장에 끼고 싶어 안달 난 셰프들과 레스토랑 업주들,


호텔들은 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마카오 MJM 총괄 셰프 리키박입니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저희 측에서…….

-미슐랭 11 스타 엘러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살았던 경험이 있어 저희 셰프들이…….

“이런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저분들을 머나먼 아프리카까지 불러 모은 게 아니야.”

저들을 머나먼 아프리카까지 부른 본격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프리카 전 지역으로 흩어져 각
나라의 요리를 배우고 온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돌아오게 된다면 알게 될 터였다.

“미슐랭 스타 셰프, 루시앙이 만든 아프리카 음식, 대한민국 프렌차이즈 거장 백원종이 만든 아프리카


음식, 펠리지오 총괄 셰프 톰슨이 만든 아프리카 음식…….”

애초에 축제의 목적이 그랬다.

아프리카 음식의 잠재력을 널리 알리는 것.

꽤나 이름값이 있는 스타 셰프들이 아프리카 조리법을 이용해 맛있는 요리를 내어놓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가 대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F1 탑 레이서인 슈마흔이 이제 갓 태어난 자동차 브랜드 회사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그때였다.

밖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오고, 버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한 팀이 온 건가.”

“저 버스 번호는, 케냐로 출발했던 팀입니다.”

버스가 정차했고, 셰프들이 내렸다.

직접 마중을 나갔고 셰프들은 차에서 내리며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떤 경험들을 하고 왔는지 궁금하네요.”

“셰프님 덕분에! 정말 신선한 경험들 많이 하고 왔습니다!”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셰프들, 하기야 나도 이 대륙에 대한 경험이 적은데 저들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저들의 기쁜 마음에 동요되어 즐기고 싶지만, 할 일이 산더미다.

“케냐…… 그 요리가 어떤 건지 좀 보자. 이제 셰프들이 들어올 시간이라, 빨리 좀 봐둬야 될 것


같거든.”

151 화. 거대한 움직임 (4)

에티오피아의 수도이자,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정치적 수도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아디스아바바.

내가 기획한 이번 축제의 본부 역할까지 하고 있는 이곳에 한 대의 대형 버스가 들어왔다.

“케냐, 거리가 좀 있는데 빨리 왔네요.”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타고 있는 버스로, 케냐로 출발했던 버스였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케냐 구석구석의 요리들을 배우기 위해 떠났던 셰프들이 돌아온 것이다.

끼이이익!

버스가 서자, 흙먼지가 날렸고 저 멀리 버스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일 때부터 이 도시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출발할 때 너무 소란스러웠나.”

경호 인력과 가이드들까지 동원하면 총 70 여 대의 버스가 한날한시에 흩어졌었는데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도 그 버스가 무슨 목적을 이루기 위해 흩어졌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제 가이드랑 대화를 해봤는데, 이 사람들도 반유현 셰프님의 메뉴 테이스팅에 대한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즉, 버스가 돌아오면 그날 메뉴 테이스팅이 열릴 것도 알고 있고요.”

“그게 무슨 대단한 구경이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러게요. 하하. 이미 이곳의 대통령이라도 되신 것 같습니다.”

오스틴과 대화를 이어가는데, 버스에서 셰프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버스의 총괄 책임자였던 셰프가 내려서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셰프님,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저는 반유현 팩토리 B-3 팀의 교수인 벤니스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와 리조또 요리를 주로 해왔고 다섯 달 전에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왔습니다.”

30 대 후반, 또는 40 대 초반의 남성이 고개를 깍듯이 숙여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태워 보낸 건, 케냐 구석구석의 요리를 배워오라고 한 것이었는데 너무 빨리


오신 것 같습니다.”

그를 일갈하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아주 잔잔한 어조로 말했는데, 내 한 마디에 버스에서 내린 모든 셰프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 의도적으로 빨리 움직였습니다.”

“의도적으로요?”

“반유현 셰프님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 70 여 대의 버스가 다 함께 이곳에 돌아올 때는 너무 혼잡해져 나의 평가를 제대로 들을 확률이 낮아질


것이라 판단했다고.

가장 먼저 도착해 나의 감평을 듣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케냐행 버스를 탔던 B3 팀의 벤니스와 그를 따르는 셰프들은 잠을 줄이면서 이동을 했다고 한다.

“자신은 있으신가요? 속도보다 얼마나 신선한 요리들을 많이 배워왔는지가 중요한데.”

“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벤니스가 말하자, 다른 셰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무슨 요리를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셰프들은 버스의 짐칸에서 곧장 붉은 빛을 띠는 벽돌을 꺼내 화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냐마초마(Nyama choma), 주로 염소고기를 불에 은근하게 오랜 시간 구워 먹는 케냐 요리로 널리


알려진 음식입니다.”

“말씀대로, 전 세계에 냐마초마를 다루는 레스토랑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요리하면,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떠올릴 요리이기도 했다.

숯불에 염소고기를 올려, 별다른 소스 없이 소금을 쳐서 굽는 요리.

어떤 부족은 피를 바르며 굽기도 하고, 타조나 악어를 구워 먹기도 한다.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아, 아니! 셰프님 저희가 가져온 냐마초마 레시피는 아주 특별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예! 셰프!”

내 말에 식은땀을 흘리던 벤니스는 곧장 셰프들이 화로를 만들고 있는 곳으로 가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UN, 아프리카 연합의 관계자들부터, 버스가 도착한 뒤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아하니, 어떤 요리를 할 것 같아서였다.

셰프들이 일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그들이 하고 있는 행동을 지켜봤다.

‘악어고기?’

화로를 만든 뒤에 이들은 잘 손질된 악어를 불에 올렸다.

“그렇습니다. 염소나, 돼지, 타조 말고 악어를 제대로 즐기는 부족을 만났습니다.”

1m 는 족히 넘는 악어였다.

머리를 제외한 모든 가죽들은 벗겨져 있는 악어.

“내장을 제거하고 악어의 뱃속에 메추리를 집어넣었습니다. 닭과 돼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악어와
메추리의 풍미가 잘 어울립니다. 악어구이는 소금만을 쳐서 그대로 먹지만, 안에 있는 메추리는 저희가
특제 소스를 개발했습니다.”

“메추리?”

벤니스의 말대로 악어고기는 단백질 함량이 높다.

지방의 고소한 풍미보다, 살코기의 풍미가 훨씬 강한 고기.

때문에 고기 특유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져 아프리카 사람들은 향신료를 가득히 넣고 조리하는데, 벤니스는
그것을 특제 소스를 가미한 메추리를 이용해 중화시키겠다고 말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기, 특유의 냄새를 없애려 지방 함량이 그것보다 높은 메추리를 이용 한다라…
….”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메추리는 그 고기의 특유의 풍미가 있어 악어의 잡내를 중화시키기에 적절했다.

그런데, 부족했다.

“식재료의 단점을 없애는 것도 그렇지만, 식재료의 장점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걸 생각해야 좋을 것


같은데요.”

이를 테면, 닭 날개와 같은 부위.

지방 함량이 많고, 그 풍미 또한 뛰어나다.

지방과 닭껍질의 풍미는 악어고기 특유의 냄새를 가릴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메추리를 악어 뱃속에 집어넣는 것보다, 닭날개를 집어 넣으면 어떻겠냐는 말을 하려고 했을 때, 한


남자가 내 뒤에서 말했다.

“메추리보다는 닭 날개가 좋을 것 같은디.”

“아, 벌써 오셨습니까?”

백원종이 도착한 것이었다.

“어때유? 반 셰프, 메추리보다 닭날개가 좋지 않어?”

“그렇습니다.”

둘이 의견을 합치자 악어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굽고 있던 셰프들이 경직되었다.

“일단 해보세요. 악어가 하나 더 있나? 확실하게 비교시켜 줄게유.”

“아프리카 판 골목가게 입니까?”

내가 익살맞은 표정으로 말하자, 백원종이 손에 들고 있던 악어를 내려놨다.

“아, 아이고 나도 모르게 그만.”

***

총 두 마리의 거대한 악어.

한 마리의 뱃속엔 특제 소스를 바른 메추리가 가득 차 있고 한 마리의 뱃속엔 백원종의 특제 소스를 바른


닭날개가 가득했다.

“닭 날개는 풍미를 한 번 더 살리기 위해, 악어 옆에서 한 번 더 굽고 소스를 발라 넣는 게 좋겠네유.”

이탈리아 출신의 미슐랭 스타 셰프, 벤니스와 백원종의 대결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미슐랭 스타를 가진 벤니스의 입장에서는 백원종이 유명 인사라고 한들 자신의 조리법에 훈수를 두는 것이


거슬렸던 탓이었다.
“아아, 미슐랭 스타 세프였어유? 나는 몰랐지. 반 셰프 자네 제자인 줄만 알고…….”

백원종이 곧장 사과는 했지만, 분위기는 그대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예기치 않게 형성된 이 분위기가 이 현장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구도가 딱 나온 것 같습니다.”

축제를 기획하는 것에 있어서는 당연히 그 홍보가 중요했는데, 이미 그렇다 할 홍보는 모두 진행되고


있었다.

백원종, 루시앙, 올리버, 톰슨을 비롯한 그 산하에 있던 스타 셰프들의 합류, 그리고 아프리카에 왔을
때부터 나와 동행하던 기자들은 매일 찍어내듯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축제가 약 2 주 남은 지금, 분위기가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을 때, 마지막 한 가지 수가 더 있었다.

“국장님, 촬영 바로 준비하시죠.”

“하하하하! 유현아! 오케이. 이탈리안 셰프 대 백원종의 대결 그 자체로 흥미롭네. 그것도 아프리카


요리를 주제로 해서.”

골목가게의 총괄 PD 였던 이성찬은 예능국 국장의 자리를 얻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고, 그에 따라 나를 처음 조명했던 방송인 골목가게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다.

또, 연이어 이성찬이 나를 주제로 만들었던 다큐들이 연이어 대박 났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반유현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됐겠냐고.”

그 말은 즉, 이 사람은 나의 통제 안에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편집 팀 전부를 데려왔는데, 구성도 이미 짜놨어.”

아프리카 각국으로 널리 퍼진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그들이 가져온 요리를 스타 셰프들이 배워


발전시키는 과정을 영상에 담을 생각이었다.

순식간에 스텝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고, 촬영 준비를 맞춰두었다.

“나래이션처럼 네가 진행을 해봐 유현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촬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벤니스 셰프는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으로, 엄밀히 말하면 제 밑에 있는 셰프입니다. 백원종 대표님은
저를 처음 요리계에 입문하게 해준 은인이구요. 저는 어느 팀도 들 수 없겠네요.”

카메라가 나를 조명한 뒤, 두 남자가 화로 옆에서 악어를 굽는 것을 비췄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기들은 굽는 방법 또한 맛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악어와 곁들이는 고기가


닭이냐, 메추리냐를 떠나서 그 조리법이 실력을 증명하죠.”

우와아아아아!

한 곳에 모여든 아프리카 사람들 고기 굽는 냄새가 나니 환호를 질러댔다.


“심사위원들은 저분들이 되겠습니다. 현지인의 입맛을 잡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 요리를 얼마나
대중적으로 발전시켰는지가 중요하니까요.”

백원종이 이기리란 생각이 들면서도, 벤니스의 특제소스가 어떤 역할을 해줄지 몰라 나조차도 기대가
되었다.

스타 셰프 vs 대한민국 대표 프렌차이즈 창업가.

그런데, 그때.

“셰프님. 다들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누구.”

“루시앙 셰프님, 톰슨 셰프님, 그리고 올리버 셰프님과 톰슨 셰프님 밑에 있는 스타 셰프들까지 거의


도착했다고 합니다. 시간을 다들 잘 맞추셨네요.”

내 몸에 부착된 마이크 덕에 저 멀리서, 오스틴의 보고를 함께 들은 이성찬 쪽을 봤다.

이성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인이어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아는, 그…… 셰프님들 맞지? 너랑 파리에서 레드 테이블을 시작한?

“네, 맞아요.”

-이거, 촬영 첫날부터 대박 그림인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악어 고기 더 있어……?

“있는 것 같습니다.”

-너랑 내가 지금 생각하는 대로, 들이대도 되는 것 맞지?

“그럼요. 얼마나 친한데.”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버스가 들어오고 있는 방향으로 카메라맨들이 이동했다.

루시앙과 톰슨, 그들의 밑에 있는 셰프들이 내리는 것을 찍으려는 카메라맨들.

나도 그쪽으로 이동했다.

버스가 멈췄고, 셰프들이 내렸다.

우와아아아아!

나를 처음 보는 셰프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이 버스의 대장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허허. 반 셰프……. 이렇게 거추장한 환영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네, 셰프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단 첫날은 조금 피곤하시겠습니다.”

“하하하. 자, 자네! 무, 무슨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거야? 이 카메라들 뭐야?”

그 옆 버스에서 내린 올리버도 내게 다가왔다.

“반 셰프!! 이게 얼마 만이야!”

“아, 올리버 셰프님. 감사합니다.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으, 응?”

카메라들이 자신을 둘러싸자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둘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려워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 악어?”

“악어 요리를 하라고?”

그리고 또 저 멀리 들어오는 버스 한 대.

[ 펠라지오 ]

그 호텔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것을 보니, 톰슨이 타고 있는 버스일 터.

“죄송합니다 셰프님들, 방송……. 다들 아시잖아요? 하루만 힘써주십시오.”

“후. 다른 사람 부탁도 아니고……. 반셰프 부탁이니까.”

“그래요. 해보죠 루시앙 셰프님!”

-첫 날부터 좋아! 유명 레스토랑 수장들의 대결을 담을 수 있다니! 하하하하!

다소 흥분한 이성찬의 목소리가 인이어로 전해졌다.

-내 느낌 알지 유현아. 이거 또 대박 느낌이다.

152 화. 거대한 움직임 (5)

벌써 축제가 열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직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급하게 화로를 만들었고 철판을 올렸다.

이 도시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는지 이 진귀한 광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진귀한 광경이라 함은 화로 앞에서 악어 요리를 하고 있는 스타 셰프들을 보는 것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B 반 중 3 팀을 이끌어, 브랜드 반유현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올리고 있는 인물인
이탈리아 미슐랭 스타 셰프 벤니스.

대한민국에서는 프렌차이즈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나, 반유현이 요리 세계로 입문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 백원종.
프랑스 파리에 나를 직접 데뷔시킨, 대중들에게는 나의 스승이라 불리며 프랑스에서 대단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미슐랭 스타 셰프 루시앙.

나의 바로 위 상관이었고, 현재는 독자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는 올리버.

걸출한 셰프들을 셀 수 없이 탄생시킨, 르꼬르동 블루의 수석 교수 출신이자 현재는 펠라지오 호텔의 총괄


주방장인 톰슨.

“이 정도의 셰프들이 한 곳에 모여 요리 대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프리카 대륙에 없던 일이래.”

우와아아아아!

셰프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을 이곳 주민들도 화로 앞에서 악어를 손질하고 요리하고 있는 이들의 정체를,
어떻게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환호를 질렀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가이드에게 저들이 어느 정도나 되는 셰프인지를


말해주자, 가이드가 사람들에게 전했고 더 많은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대중들에겐 나의 스승이라 불리는 이들이었으니, 사람들의 기대감은 더욱더 올라갔다.

더군다나, 저들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사람들의 얼굴빛이 매우 밝았다.

“백원종 대표님은, 닭 날개를 불에 바싹 구워서 껍질을 태운 뒤에 크리스피한 식감을 살리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껍질 밑에 있는 기름기는 살려, 악어의 퍽퍽한 질감에 고소한 풍미를 더하려고
하시구요.”

그리고 계속해서 절정을 향해 내달리는 이 현장의 분위기는 이성찬과 그의 직원들이 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톰슨 셰프님은, 전공인 스테이크를 만들고 계십니다. 악어 스테이크.”

식감이 제일 좋고, 살이 두툼한 악어 꼬리를 이용한 스테이크를 하는 톰슨.

“아, 루시앙 셰프님과 올리버 셰프님은 합작품으로 튀김을 준비하고 있네요.”

악어고기에 고소한 풍미를 더하고 싶어, 기름에 튀기려는 루시앙과 올리버.

그 어떤 셰프도 대충하려는 이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이며, 나를 도와주는 것에서 나아가 셰프로서의 입지를 더욱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와……! 벤니스 교수님은 가니쉬랑 또 다른 소스까지 만들고 계신데요?”

오스틴이 말했다.

벤니스가 악어 고기를 굽다 말고, 다른 재료들을 꺼내 요리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입지가 낮은 벤니스는 이번이 기회라고 확실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원래 하려던 레시피에서 자신이 특별히 잘하는 가니쉬와 소스를 이용해 승부를 보려 했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로, 내 눈에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대중들에게도 인지도를 올리는데 이만한 자리가
없겠지. 더군다나 저들은 다 내 스승이라 불리는 셰프들인데, 저들보다 맛있는 요리를 했다고 생각해봐.”
“와……! 셰프님! 다른 셰프님들도 다들 장난 아닌데요?”

그렇게, 이 현장의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만큼, 셰프들의 경쟁심도 치열해져만 갔다.

“이정도 그림까지 그린 건 아니었는데, 우리 셰프님들이 승부욕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걸 너무 간과했나.”

이 대결은 즉석에서 성사된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악어 요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톰슨과 루시앙 등이 듣지 않았다면 없었을 대결.

실제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하듯이 요리에 모든 정성을 쏟고 있는 모습들을 보니,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까지 합류하면, 나를 위해 이곳까지 온 저 셰프님들에 대단한 도움이 되겠지?”

“예?”

“그렇잖아.”

나에게 요리 감평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 셀 수 없이 많은 정도인데, 내가 직접 그들과 요리


대결을 해준다면, 나와 겨룰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들은 세계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올릴 수 있는
것 아닐까.

문득, 이 먼 곳까지 와준 저 친구들에게 그 정도 보상은 해주고 싶었다.

그때, 인이어로 이성찬의 말이 들려왔다.

-강력한 한 방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뭐 없나?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는데 여기가 한계인 것 같아,
이런 구성에는 뭐…… 미식가로 뛰어난 사람이 심사를 한다든가……. 지금 촬영되고 있는 장면에
하이라이트 없어?

“저도 이 대결에 참가하려고요.”

-하하하하. 너 진짜 방송을 잘 아는구나.

***

그렇게 나도 조리복을 입었고, 요리를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벤니스는 내가 대결에 참여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반 셰프님…… 저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톰슨도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이고! 올리버! 반 셰프가 이 대결에 참여해 준다네.”

“역시 의리파라니까!”

루시앙과 올리버도.
“몸 둘 바를 모르겠네유.”

백원종도. 모두 내가 이 대결에 참여하는 그 의도를 알았기에 고개를 숙였다.

내가 요리를 시작하자, PD 인 이성찬이 직접 해설에 들어갔다.

이전에도 여러 번 화면에 나와 멘트나 행동들이 어색하지 않은 그였다.

“악어 요리로 대결을 한다라…… 반유현 셰프의 스승들이자, 각 지역의 특급 셰프인 이들의 대결이 너무
기대됩니다.”

요리들은 점점 완성되어 나오고 있었고, 뒤늦게 요리를 시작한 나는, 이 악어를 이용해 무엇을 만들어야
될지 그 후보들을 간추리고 있었다.

‘악어 특유의 냄새를 없애면서 맛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요리…….’

“과연! 반유현 셰프가 어떤 요리를 선택해서 보여줄까요! 뒤늦게 대결에 합류한 반유현 셰프님은 이미,
구이, 튀김, 스테이크는 다른 셰프님들에게 빼앗겨 선택권이 별로 없을 텐데요…….”

구이, 튀김, 스테이크도 악어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소스나 향신료를 이용한다.

“향신료…….”

수만 가지의 레시피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한 가지 요리를 선택했다.

“카레.”

내가 작게 읊조리자 내 옆에서 열심히 자신의 요리를 만들고 있던 셰프들이 나를 모두 바라봤다.

“?”

“?!”

“……카레?”

구이, 튀김, 스테이크는 이미 각각 주인이 정해져 있기에 나는 다른 요리를 선택해야 했다.

돼지고기 대신, 악어고기를 이용한 카레.

카레의 향을 조금 순화하면, 이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나는 곧장 악어의 꼬리와 앞다리살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손질한 살코기는 계피, 커피 가루, 생강 등 각종 재료들을 넣어둔 물에 넣었고 카레 소스를 만들었다.

“양파의 단맛이 핵심입니다. 특히나, 카레의 향을 조금 순한 맛으로 할 것이기 때문에 양파를 최대한
오래 볶습니다.”

양파가 충분히 카라멜라이즈된 뒤, 당근과 감자를 넣었고 그 옆에선 각종 재료에 재워 둔 악어 고기를


볶았다.

악어 고기도 스테이크가 익듯이 갈색화 반응이 일어나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그때, 때마침 톰슨과 루시앙을 비롯한 셰프들의 요리가 끝났고,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고 요리를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벤니스, 톰슨, 루시앙, 올리버, 백원종은 자신들이 한 요리를 가장 먼저 내게 건네줬고 나는 그 접시를


잠시 옆에 두고 나의 요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 제 요리가 어떻습니까?”

벤니스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말에 그가 건넨 접시에 올려진 악어 고기와 메추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벤니스 요리의 처음 의도대로 두 고기의 조합은 적절했다.

퍽퍽하다고도 할 수 있는 악어 고기에 부드러움과 지방의 고소한 풍미를 더하기 위해 넣은 메추리가


존재감을 당당히 뽐냈고, 벤니스가 특별히 만든 매콤달콤한 소스는 그 둘의 궁합을 더욱더 좋게 만들어
주었다.

“케냐에서 잠을 줄이면서 이런 요리를 배워왔다니,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다.”

이탈리안 요리 전문가인 그가, 생소한 악어고기를 이렇게 요리한 건 그만한 노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나의 말에 사람들은 벤니스의 화로 앞에 재빠르게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허허. 뭐, 같은 소속이라고 그렇게 봐주는 거예유? 내 것도 먹어봐.”

백원종이 현지인들에게 요리를 나눠주다 말고는 내 옆으로 왔다.

악어의 뱃속에 메추리를 넣은 벤니스처럼, 백원종은 닭 날개를 구워 넣었다.

내가 닭 날개와 함께 악어 고기를 베어 물고는 백원종을 쳐다보자 백원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여. 나.”“역시, 맛있네요.”

매콤하면서 달짝지근했던 벤니스의 메추리와는 다르게, 단맛에 초점을 맞춘 소스.

그리고 단맛이 지나간 뒤에는 적절히 배어 있던 소금의 맛이 올라왔다.

단짠의 대가, 슈가보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아주 적절한 간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람들은 또다시 백원종의 화로 앞으로 몸을 옮겼다.

내 말 한마디에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줄 서는 방향을 계속 바꾸다 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셰프들의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게 형평성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블랙 페퍼 소스를 곁들인 톰슨의 악어 스테이크와, 레몬을 이용한 중식 소스를 곁들인 루시앙과 올리버의
악어 튀김.

“모두 좋습니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메뉴로 써도 될 만큼이요.”

우와아아!

“와…….”
“이런 일류 요리를……!”

현지인들도 그들의 요리에 감동했는지,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하하하!”

“와 대박이야 진짜로!”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눈에 담은 뒤에는, 나는 다시 나의 요리에 집중했다.

볶은 악어 고기를 다시 기름에 튀겨, 고소한 풍미를 더했다.

불에 구운 요리를 다시 튀겨 그 맛에 층을 만든 것이었다.

카라멜라이즈화된 양파와 각종 채소들이 볶아진 팬에 물을 붓고, 카레 가루를 넣었다.

그리고 토마토 퓨레와 샐러리 등, 카레 특유의 향을 줄이면서 맛을 다채롭게 할 재료들을 첨가했다.

“궁금하네요.”

“그러게, 샐러리를 넣은 카레? 먹어 본 적이 있나.”

“음 괜찮겠네유.”

마지막으로 팬에 볶은 뒤 튀긴, 악어 고기를 넣고 마무리했다.

“셰프님들 먼저 드셔보시죠.”

자신들의 요리를 끝마치고, 내 옆에서 나의 요리에 눈독 들이던 셰프들, 나는 그들에게 먼저 내 카레를


권했다.

“컥.”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톰슨.

“뭐, 뭐예유? 내가 카레는 전공인데, 이건…… 이야…… 내가 무릎 꿇고 배워야겄네.”

나도 내가 한 요리를 입에 넣었다.

의도대로, 카레의 향은 은은하게 입안을 가득 채웠고, 그러한 배경에서 악어 고기의 풍미가 흘러나왔다.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중간 맛이라고들 묘사되는 악어고기는, 지금 내 입에선 닭다리 살과 더 비슷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찢어져 내리며 살의 풍미를 내는, 팬에 한 번 구운 덕에 고기 특유의 맛이 진하게


더해졌고, 기름에 튀긴 덕에 육즙과 함께 고소한 맛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양파의 단맛, 당근의 맛까지. 내가 의도한 맛들이 정확하게 구현되었다.

“아니, 반 셰프! 이, 카레는 뭐야? 또 언제 이렇게…….”

“놀랍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요리한 악어는 창피한 수준이에요.”

셰프들이 충격적인 반응을 감추지 못하자.

사람들은 환호보단 탄성을 내뱉었다.


더군다나 저런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셰프들이 날고 뛴다 하는 배테랑 셰프임을 알고 있던 현지인들.

내 요리를 먹고 싶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경외감을 가진 것만 같았다.

153 화. 거대한 움직임 (6)

‘악어고기로 이런 맛을 내다니…….’

충격 그 자체였다.

벤니스는 혀를 내둘렀다.

‘카레에 가미된 향신료들은 뭐지.’

다시 한번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벤니스는 수저를 들고, 반유현이 만든 카레를 퍼먹는 것을 수차례 반복했지만, 그 맛의 근원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맛의 카레가 있다고?’

아니, 정확히는 아는 맛이었다.

향신료로 쓰인 각각의 맛을 알고 있지만, 오묘하게 그 요리의 총체적 밸런스가 맞춰져 벤니스를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건…… 진짜 신인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수장, 반유현의 요리를 처음 먹어보곤,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가진 명성에 의해 그의 요리가 원래보다 더 맛있고, 더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밑에 있는 셰프들보다 더 객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이 요리를 먹었는데,

“놀랍죠?”

“하하하하. 벤니스 셰프는, 처음 경험해 봤나 봅니다.”

“우리는 이 충격에서 익숙해져 이제 즐기잖아요?”

루시앙, 백원종, 올리버, 톰슨 등 자신과 겨뤘던 배테랑 셰프들이 다가와 말했다.

자신들은 반유현이 이 요리를 하기 전부터, 충격적인 맛의 카레가 탄생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알면서 대체 왜…….”

당연히 반유현이 대단한 맛을 내리란 걸 알 수 있던 셰프들.

자신들이 이 대결에 승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저렇게 열심히 임했단 말인가?

“왜긴요. 반유현의 이름값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그만한 힘을 쏟아야죠.”

“하하하하! 벤니스 셰프님은 그래도 이겨 보려고 하셨나 보네요.”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버렸고, 셰프로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한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진 벤니스가 고개를 숙였을 때,

“카레! 카레!”

“카레!”

반유현의 요리를 먹은 현지인들은 연신 ‘카레’를 외쳤다.

당연하다는 듯이 박수를 치는 셰프들.

그때, 이 축제를 지원한다고 했었던 각 기관의 유력 인물들이 다가왔다.

“이런 카레는 처음 맛봅니다. 제가 일본 지부에 있었을 때도…….”

UN 아프리카 경제회 회장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파급력을 이렇게 들으니, 또 새롭네요.”

현지인들이 반유현과 카레를 외치는 것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 아프리카 연합회 총무.

“아프리카 대륙을 환하게 밝혀주시니…… 다른 신이 또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옆에서 겸손하게 손을 좌우로 저으며 반유현이 말했다.

“아직 제대로 밝히지도 않았는데요.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를 만들겠다는 그의 말에, 루시앙, 백원종을 비롯한 베테랑 셰프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비유적인 표현일 것만 같은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가 그들에겐 반유현의 또 다른 계획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반유현 셰프님이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를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대체 뭘까요?”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그릴 파티라도 하시려나?”

“대륙 전체 그릴 파티? 제가 보기엔 그에 버금가는 기획을 준비하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흠.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 뭘까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올나잇으로 놀아보자는 건가? 나도 가늠이
안되네 저 양반 워낙 유별난 사람이라서.”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벤니스는 이 현장에 있는 반유현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괜스레
두려워졌다.

***

[ 다시 시작된 반유현 신드롬 ]

[ 스타 셰프들과 함께 시작된 아프리카의 흐름 ]


[ 라스베이거스 톰슨 셰프 “역사에 함께 하고파 라스베이거스로 건너왔다.” ]

[ 파리 루시앙 셰프 “이제는 우리 전체를 책임지는 반유현, 스승 타이틀 부담스럽다.” ]

행사가 1 주일 남은 시점에 축제의 준비과정을 촬영하던 방영분이 나갔다.

이번 축제 준비과정의 독점 촬영권을 넘겨주니, 이렇듯 파워풀하게 촬영과 편집, 그리고 방영까지 짧은


시간 내에 이뤄질 수 있었다.

[ 계속해서 치솟는 ‘반유현 페스티벌-아프리카’의 표값 ]

“축제 이름도 정했고, 셰프들도 모두 준비가 끝난 것 같은데 이제 그 기획도 말해봐. 우리도 그에 따라


축제 당일 촬영 팀을 구성해야 되니까. 에티오피아, 여기서 축제를 벌일 거지?”

[ 스타 셰프들 아프리카로 줄지어 도착! 반유현 산하의 셰프들과 합작해서 아프리카 요리들 습득! ]

[ 미슐랭 스타 셰프들 대거 아프리카 입국! 반유현의 부름 ]

[ 셰프들을 줄줄이 아프리카로 불러내는 반유현의 영향력! ]

각 나라로 파견 갔던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연이어 도착할 때쯤, 나는 방영된 방송을 이용해 전
세계의 셰프들을 소집했다.

각 국가 셰프들의 수준을 확인하려고 라스베이거스에 수많은 셰프들을 모았던 것처럼, 나는 네임드가 꽤나


강력한 셰프들에게 직접 연락을 했었다.

[ 요리업계 새로운 역사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반유현 셰프의 부름에 응해. ]

[ 미슐랭 4 스타 셰프, 오린나 “반유현 셰프님이 말한 새로운 역사…… 그 단어가 몸을 움직이게 했다.”
]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이 아프리카 각국으로 퍼져 배워온 요리들을 내가 소집한 네임드 셰프들이 터득하고,
그 셰프들이 이 축제에 참여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축제는 기획됐다.

“첫 방영이 또 그런 반응을 얻으니까, 셰프들을 움직이는 게 수월했습니다.”

“과연……그랬을까. 지금 네 이름값은 방송이 없었어도 셰프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해.”

계획대로 네임드 셰프들은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이 가져온 아프리카 요리들을 배우고 있었다.

“요리를 가르쳐 주고 배우는 셰프들끼리도 점점 축제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이번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안 된다. 가늠이 안 돼. 참 대단해. 너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겠지만. 반유현.”

이성찬이 카메라에 담은 장면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네임드라고 직접 나의 부름을 받은 셰프들이, 어떻게 보면 초급 셰프라 할 수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에게 아프리카 요리를 직접 배우는 장면.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은 유명 셰프들과의 접점을 갖고 그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경험이 될 터임에 즐거웠고.

네임드 셰프들은 이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그렇게 선순환의 구조 안에서 축제는 준비되어 갔다.


“이쯤에서 긴장감을 주는 겁니다.”

내가 계획을 하나씩 풀어내는 이유였다.

반유혁 팩토리의 셰프들을 이곳에 불러 모은 것도, 그들을 버스에 태워 각 나라에 파견 보낸 것도,


그리고 네임드 셰프들을 불러 아프리카 각국에서 배워온 요리를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하루도 마음 편히 있지 못하고, 항상 긴장된 상태로 셰프들은 대기를 하죠.”

그 누구도 내가 어떤 말을 내뱉을지 예측하지 못한다.

이렇게 많은 인원들을 통솔하려면,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긴장감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무, 무슨 계획인데?”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을 한번 만들어 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뭔데 대체…….”

“지난번 빌렸던 버스들을 다시 다 불러야 될 것 같습니다. 경호 인력들도 충원하고, 렌트카 회사들도


이쪽으로 불러야겠습니다.”

내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성찬 옆에, 오스틴과 보좌관들은 나의 이야기를 그대로 적기


시작했다.

“오스틴, 알아들었어? 무슨 계획인지?”

“대충 알겠습니다. 일단 셰프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모두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 다음에 셰프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듣도록 하죠.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래. 일은 그렇게 하는 거야.”

나와 오스틴을 쳐다보던 이성찬은 우리의 대화까지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한번 본 뒤에 우리의 대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뭐야 무슨 각본 짠 것처럼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다큐가 아닌 것 같잖아. 드라마 찍어?”

***

천 명이 가까이 되는 셰프들이 모여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톰슨과 런칭을 준비하려는 제리, 파리에서 온 루시앙과
올리버 밑에 있는 셰프들, 그리고 나의 부름에 한걸음에 아프리카로 건너온 유명 셰프들.

“당연히 제가 지금 말할 계획에 거부 의사를 표현하셔도 됩니다. 그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하겠습니다.


제 브랜드 산하에 있는 셰프들도 거부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 셰프들 옆에는 수많은 버스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맨 처음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타고 각국으로 흩어졌던 버스들.

셰프들이 저마다 속삭였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계획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전체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생각이 바뀐 이유는 하나였다.

세계인들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작 이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비빔밥, 불고기 파티를 대한민국에서 하는데, 대한민국인들을 주요 고객이 아닌 축제를 벌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래서, 초대권과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티켓을 모두 환불해주었습니다.”

암표야 저들끼리 불법으로 거래하는 행위였으니, 그 값에 대한 보상은 해주지 않아도 될 터.

나는 모든 티켓을 환불해주었고, 레스토랑 반유현을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보답으로 줬던 초대권은


숙박권으로 바꾸어 준다거나, 경호 인력 또는 렌트카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으로 바꾸어 줬다.

초대권을 회수하고, 티켓을 환불했다니 셰프들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아프리카에 도착하고 며칠 동안,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에게 각 나라의 요리들을 배우셨을 겁니다.”

내가 마이크에 입을 대자 다시 소란스러움은 사라졌다.

“문득, 우리끼리만의 축제가 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이렇게 버스들을 다시 모은 것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다시 아프리카 전 지역으로 퍼져 현지의 사람들까지 녹여 낼 수 있는 축제를 구상해봤습니다.”

셰프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셰프님! 대체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어떻게 아프리카 각 지역으로 갈까요? 저희가 각 지역에
팝업형식으로 레스토랑을 차린다고 한들, 사람들이 거기까지 오겠습니까?”

나는 종이를 하나 꺼내들었다.

아프리카의 지도였다.

“이곳에 여러분들이 각 나라로 퍼져, 오픈할 팝업 레스토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치안 문제가 심각한
국가는 제외되었고, 만에 하나 벌어질 상황에 대비해 각국의 군 당국과 협조했으며 경호 인력을 더
충원했습니다. 그 사실또한 대외적으로 홍보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까요 셰프님! 저희의 말은……!”

“알고 있습니다. 치안 문제가 해결된다 한들, 사람들이 그곳에 방문을 할 것이냐? 그것을 묻는 것
아닙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도장 하나를 꺼냈다.

“여러분들이 운영하는 팝업 레스토랑에서 방문한 손님들에게 도장을 찍어주세요. 그리고 그 도장을 가장


많이 받는 손님에게는 말도 안 되는 보상을 수여할 겁니다.”

순례길, 에베레스트, 올레길처럼 코스가 정해진 대다수의 여행지에서 사용하곤 하는 방법.

관광객들이 가지고 있는 지도에, 이곳에 방문했다는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오픈한 팝업 레스토랑에 방문 도장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관광객에게는 레스토랑


반유현 평생 이용권 같은, 기가 막힌 보상을 하려 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대륙에서 바쁘게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반유현 표’ 아프리카 음식을 먹기 위해서요.”

154 화. 이런 건 본적 없을걸 (1)

[ 반유현 스탬프를 모아라! ]

[ 아프리카 각 나라의 주요 도시에 있는 반유현 팝업 레스토랑! ]

[ 가장 많은 스탬프를 모은 사람에겐 브랜드 ‘반유현’의 역대급 상품이! ]

치안이 심각하게 좋지 못한 곳이거나, 내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을 빼고, 아프리카 55 개의 국가 중


15 개의 국가.

그곳에 반유현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더 많은 나라에, 더 많은 팝업 스토어를 설치해서 축제의 규모를 더 키울 수도 있었지만 그 만큼


관광객들의 피로도가 높아질 터였다.

15 개의 국가라는 것은 축제규모와 관광객들이 짊어져야 할 피로도의 밸런스를 고려한 것이었다.

15 개의 국가에 총 76 개의 팝업 레스토랑.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이 각 지역에 흩어져 배워온 아프리카 요리가 메인 요리였고, 각각 그곳의 총괄
셰프들은 나의 부름에 따라 아프리카로 건너온 셰프들이었다.

“계획대로 됐지?”

축제 시작 딱 5 일 전, 각각 지정된 나라로,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과 유명 셰프들은 흩어졌다.

그리고,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자 다시금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렌트카 관련 회사들 중에서 가장 좋은 가격과 차를 제공하는 곳으로 선정했습니다. 대체로 한국의


업체들이 좋은 제안들을 했더군요.”

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모여든 사람들의 이동수단이 되어줄, 자동차.

수많은 렌트카 업체들이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제안을 보내왔다.

“고삐를 확 쥐고 흔드니까, 그런 제안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는 거야.”

독점계약의 형태로, 렌트카 업체를 선정한다고 공포하니 업체들은 더욱더 자신들의 살을 깎아내며
경쟁적으로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업체는 최고급 승용차로만 물량을 채워 보내기로 했으며, 어떤 업체는 기존 가격의 40%의 비율을
제안하기도 했다.

“렌트카 업체들보단 완성차 업체로 계약해. 그쪽이 일처리도 깔끔할 것 같으니까.”

물론, 렌트카 업체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인이 모이는 축제에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며,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해야 되는


축제의 특성상 자신들의 차의 성능까지 홍보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말이다.

[ 독일 B 사, A 사 프리미엄 SUV 아프리카 대륙행 배에 싣기 시작! ]


[ 반유현의 이름 안에 모이는 글로벌 대기업들, 그의 사랑을 받아라! 경쟁 시작 ]

[ B 사 회장, 알츠 슈테인 “브랜드 반유현의 고객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차량 제공. ]

그 경쟁은 점점 과열되었고, 승합차와 버스들까지 넉넉히 공급되었다.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만 명까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 축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동수단에 대한


걱정이 없을 정도로 많은 차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 테라슬 모터스 회장 “도로 여건 좋지 않은 아프리카 대륙이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을 보여주기


최적화.” ]

[ 알린 머스크 “반유현 셰프의 축제에 최첨단을 얹고 싶다. 최강의 요리와 최고의 기술의 합작은
어떨까.” ]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다시금 다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의 기업들도 내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일들이 많아진 것이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있는 만큼, 그를 운용할 석유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팝업 주유소까지


만들겠습니다.

자동차 회사의 경쟁에 따른 정유회사부터, 팝업 레스토랑을 구성할 조리대, 화구, 천막, 조명 등 셀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을 상대해야 했고, 나는 그에 따라 새로운 팀을 구성해야 했다.

나의 의전, 비서, 보좌 모든 업무를 도맡아 하는 ‘반유현팀’ 내에 ‘기업협력팀’을 꾸렸다.

모든 협찬, 또는 다른 기업과의 콜라보에 관한 업무를 도맡아 하는 팀이었다.

내가 미처 생각도 못 했던 규모의 협찬들이 계속해서 들어오자, 그에 따른 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내가 100 년을 살았다 하더라도, 전문적으로 그 분야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또 그렇게 효율적이다 보니 더 많은 일들을 생각하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조명회사들, 정유회사, 대체에너지 회사들에 제안은 안 왔어?”

나의 계획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전에 말씀하셨던 조명회사들 중에, 에너지 효율이 좋은 조명을 주력으로 연구하고 판매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조명회사.

나는 아프리카에 나의 이름을 건 축제를 부흥시킴과 동시에 상징적인 것을 만들고 싶었다.

이전에 UN 아프리카 경제회 회장과의 대회에서 영감받은 키워드인,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

반유현 군단이 만들어내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요리와 더불어 이 축제 자체를 인류 역사에 남길 수 있을


만한 퍼포먼스라 생각했다.

“에너지 효율까지 생각했다면 딱 좋네. 그 회사로 선정하고, 당장 투입해 달라고 해줘. 축제까지 며칠 안
남았으니까.”
내가 계획한 행사의 규모, 그리고 대중적인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항공사들은 또 그에 따라
에티오피아, 이집트, 가나, 등 주요 도시로의 운행을 추가적으로 편성했다.

아프리카의 주요 공항에는 각각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의 팜플랫을 제작해두었고 공항에 도착한


행사 참가자들은 그 팜플렛에 그려져 있는 지도에 표시된, 반유현 팝업 레스토랑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

브랜드 ‘반유현’에서 가장 최근에 런칭된, 뷔페식 레스토랑인 ‘반유현-레인보우’.

라스베이거스 식문화의 중심이 될 정도로 매번 파격적인 요리를 뷔페의 구성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유행을 선도하는 레스토랑으로 자연히 자리 잡았다.

그를 총괄하는 메이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그녀의 이름값과 몸값이 오를수록 그녀가
개인적으로 활용할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직업이든 그렇겠지만, 항시 배우고 발전시켜야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셰프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저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가슴 뜁니다…… 셰프님.”

“저한테도 좋은 경험인데, 혼자 올 수는 없어서요. 하루 정도는 제가 자리를 비워도 용서해 주시겠죠.”

메이, 그리고 과거에는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였고, 현재는 ‘반유현 레인보우’에서 메이를 도와 수셰프
역할을 하고 있는 라일의 대화였다.

“브랜드 반유현에 들어오고 꿈만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손님들을 모은


것부터, 라스베이거스의 축제, 그리고 지금 여기…… 아프리카에 온 것도요,”

메이와 라일, 그리고 몇몇의 셰프들과 경호원들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이제 시작일 거예요 라일 셰프.”

몇 주간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던 메이는, 라스베이거스의 중심이 된 레스토랑을 운영하느라 자신의


정체성도 잃었다고 생각했다.

매번 셰프로서의 배움을 생각하던 그녀였는데, 그 에너지가 소진된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이 열릴 즈음 아프리카행을 계획했다.

그렇게 지금,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이었고.

비행기에 내려 짐을 찾고, 준비된 차량을 찾아 나아가는 도중 메이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정말 귀신같은 분이시죠.”

자신을 따라온 셰프들과 경호원을 향해 찡긋 웃고는 메이가 전화를 받았다.

-라스베이거스는 내팽개쳐 두고, 아프리카까지 오셨나.

“언제 제가 빠졌던 적이 있던가요?”

반유현의 전화였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고 온 김에 재밌게 놀다가.

“네. 벌써 기대되네요. 저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프리카 요리들을 어떻게 일류 요리로 만들어


놓으셨을지요.”

-원래는……. ‘예 셰프!’라고 따박따박 대답만 하던 애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꽤나 잘나간다고 말이


많아졌네.

“흠! 흠흠! 왜 전화하신 거예요 셰프님?”

-이동할 차량이랑, 경호원들은 다 준비했냐?

“당연하죠! 어린 애도 아니고……!”

-3 번 게이트로 나가서, 내가 준비한 차량이랑 경호원들 이용해라.

“네? 아니, 제가 준비했다니까요?”

-네가, 내 최측근이라는 걸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모양 빠지면 안 되잖아. 내 말 듣고 3 번


게이트로 나가. 가, 가오라고들 하던데.

마침 자신의 사비로 준비한 차량과 경호 인력들도 3 번 게이트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었는데,
어째서인지 반유현은 그것까지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치. 어린애 아니라니까.”

메이를 따르던 셰프들은 영문을 모른 채, 메이를 따랐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메, 메이 셰프님…… 저희 파병…… 온…… 겁니까?”

“아휴.”

마치 대통령을 영접하는 듯한, 초고급 승용차와 그를 둘러싼 고급 SUV, 승합차들.

그리고 방탄복과 각종 무기로 중무장한 경호 인력들이 있었다.

“이 정도는 필요도 없고.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아직도 자신을 보조 셰프, 또는 갓난아기처럼 보는 반유현에게 괜한 승부욕이 생겼다.

정확히는 반유현에 대한 직접적인 승부욕보다, 자신의 존재를 그에게 더 크게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쩝. 다들 차에 타요.”

혀를 한번 찬 메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급승용차에 올랐다.

***

해가 진 저녁.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들이 많잖아요. 이렇게 야밤에 축제가 지속되고 있다고요?”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하다가 다시 나왔다.


차에 오른 메이는 반유현팀에서 메이의 편의를 위해 나온 사내와 대화를 나눴다.

“예,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를 테마로 삼아서, 각각의 팝업 스토어 주변에는…… 보시면 아실 겁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는 없다는 듯이, 양손을 흔들며 조명을 표현한 그가, 말을 돌렸다.

“반유현 셰프님의 말로는, 메이 셰프님께서 모든 팝업 스토어를 돌아 스탬프를 받을 계획을 하고 있을 것


같으니 최대한 도와드리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셰프님한테는 아직도 제가 애인가 봅니다.”

“그분에겐 누구라도 애가 아닐까요. 오랜 시간 반유현 셰프님을 보좌하던 저희 팀의 팀장이신 오스틴님도


반유현 셰프님 앞에서는…….”

그렇게 반유현에 대한 이야기와 현 아프리카 축제의 상황을 듣던 메이의 일행은 첫 팝업 스토어에


도착했다.

“……와.”

앞서 계속 느꼈던 반유현에 대한 승부욕 때문에, 최대한 놀라지 않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했던 메이도 입을
떡 벌렸다.

“여기가…… 라스베이거스야? 아프리카야?”

이 나라와 도시에, 이 늦은 밤에, 이 정도 밝기의 빛들은 없었다고 했다.

라스베이거스 또는 뉴욕을 연상시키는 듯한 화려한 조명들이 팝업 스토어를 비추고 있었다.

그 밝은 조명 아래, 셰프들은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요리하고 있었고 그 앞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에는
행복한 표정으로 요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와아아아아!

말 그대로 축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고 있는 메이의 옆에, 메이를 안내하던 반유현팀의 직원이 다가왔다.

“저희가 기획한 대로 구성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15 개의 국가에, 이런 밝은 빛들이 펼쳐져 있을


겁니다.”

155 화. 이런 건 본 적 없을걸 (2)

[ 반유현 아프리카 진입 후 위성사진 ]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이 시작되고, 며칠 동안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진이 있었다.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본,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한 번쯤은 봤을 사진.

“참…….”

메이는 혀를 내둘렀다.

셰프, 요리, 충격적인 맛, 요식업계 영향력…… 반유현을 둘러싼 수많은 키워드들 중에서도 이번만큼은
그녀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뭐,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아니지.”

화제가 된 사진은 하늘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밤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중에서도 반유현의 이름을 건 축제가 시작된 날짜, 그 전후를 비교한 사진이었다.

그것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매우 높은 공신력을 갖고 있는 NASA 가 공개한 사진이었다.

“미구엘 라이언?”

NASA, 우주비행센터의 선임 연구원으로 지구의 야간모습 자료를 인터넷 서비스와 연결시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집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준 인물이었다.

그 사람이 직접 반유현의 이름을 거론하니, 그 화제성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 미구엘 라이언 “달에 반사되는 빛, 오로라, 모든 것을 제외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불빛만을 감지하는
게 나의 목표. 밤의 불빛은 도시화, 경제적 변화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분이, 정확히 반유현 셰프님을 언급한 기사는 없는데?”

“없긴요. 이걸 보세요.”

[ 미구엘 라이언 “아프리카 주요 도시의 불빛이 더 밝아진 것은 분명 반유현 셰프의 영향이 있을 것.” ]

[ “개인 한 명이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VIIRS 센서 개발 이후 처음.” ]

“…….”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경영학 전공하는 학생들한테는 반유현 경영학, 반유현 이론까지
생겼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그 기사를 모두 읽었을 땐, ‘반유현팀’에서 메이를 안내하러 나온 사내가 말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를 기획한다고 하셨었는데, 이제는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하.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

이전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창 일을 하던 메이는 이곳에서 반유현이 어떤 말을 했고, 계획을 했는지


메이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메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 앞에 있는 사내처럼, 또는, 반유현팀의 구성원들이 반유현의 모든 속내를 헤아리지 못한 것처럼,


자신도 그랬을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또 몰랐겠지.”

깊게 생각을 해봤지만, 자신도 반유현의 모든 속내를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섰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또…… 반유현이 자신을 신입 셰프나, 어린 애로 보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반유현 셰프님의 스케일에 비하면…… 나는…….’

공항에 도착했을 당시, 반유현에게 들었던 승부욕이 부끄러워져 다시금 고개를 처박은 메이였다.
***

이집트 카이로.

아프리카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지금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야간 위성사진으로 따지면 밤에 가장


밝은 빛을 내는 도시일 것이다.

나일강을 따라 길게 펼쳐진 불빛들.

나를 평가하는 대중들에 널리 퍼진 말을 하나 인용해서 말하자면.

-나일강을 따라 발전된 이집트 문명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반유현은 나일강의 불빛을 넓게 분산시켰다.

당연히, 엄청난 과장이 섞인 말이었지만,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지금 이 대륙 내에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나, ‘반유현’이고.

또 한 번 역사적인 축제를 만들었다고.

“셰프님 일정도 다 공개했습니다.”

나는 대중들의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 15 개 도시에 차려진 약 70 여 개의 팝업


레스토랑을 누비고 다녔다.

몇 날 며칠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 공개적으로 알려 아프리카 대륙 내의 모든 팝업 레스토랑들이 한 번쯤은


큰 주목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카이로에 반유현 아프리카 팝업 레스토랑-24 에 도착했을 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왔나! 반 셰프! 기다리고 있었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 24 번째 레스토랑을 총괄하고 있는 루시앙이 나를 반겼다.

“인정하긴 싫지만, 자네가 이곳에 온다는 일정이 밝혀지고 나서 사람이 더 많아졌네.”

이집트 카이로는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도 인구밀집도도 높고 워낙 관광객들이 많은 주요도시라 이미


사람이 많았었는데, 내가 이곳에 올 것이란 게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했다.

“나일강 불빛의 흐름을 바꾼 남자 아닌가! 하하하하!”

익살맞은 웃음을 하면서 나를 놀리는 루시앙이었다.

우와아아아아!

그 와중에도 카메라 플래시와 나를 향한 함성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뭐하나! 자네 팬들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자네가 직접 요리를 해보여야……. 크흠!”

불과 3 년 전, 그때와 같았으면, 그렇게 일갈해도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다시금 나의 영향력을 깨달았다는


듯이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내 눈치를 보는 루시앙이었다.

물론 저 말의 90 퍼센트 이상이 장난이었겠지만, 자신에게 머무르는 대중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탓일


테다.
그런데 그때, 루시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래그래! 루시앙 셰프님 말이 맞네요!”

“하하하! 루시앙! 루시앙!”

“루시앙! 루시앙!”

그의 이름을 외쳐대는 사람들.

루시앙의 말을 지지하는 듯해 보이지만, 그 속내는 나의 요리를 먹고 싶은 것 아니겠나.

루시앙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반 셰프! 저렇게 사람들이 기대하는데, 모른 척해서는 안 되겠지! 어?”

우와아아아아!

결국 내가 요리를 선보여야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축제라는 이름 아래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루시앙의 체면도 지켜줄 겸 분위기도 또 한 번 살릴 겸 나는 소매를 걷었다.

꺄아악!

우와아아아!

반유현! 반유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조리복의 소매를 걷으니 더 큰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내가 조리복의 소매를 걷는 행동이 내가 요리를 하리란 걸 알려주는 행동이 되었다.

옷의 소매를 걷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대단한 기대감과 설렘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건, 나조차도
즐거웠다.

우오오오와아!!

개수대에서 손까지 씻자, 분위기는 완전한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하맘입니까?”

마흐시 하맘(mahshi hamam).

한국에 삼계탕이 있다면 이집트에는 이 요리가 있다.

닭 대신 비둘기를 이용한 요리로 비둘기 속 안에 찹쌀과 각종 양념과 향신료를 넣고 찌거나 굽는 요리로,


이집트 국민들에게는 대표적인 보양식이었다.

비둘기는 시내에서 각종 병균을 묻히고 돌아다녀, 사람들에게 더러움의 대명사지만.

이집트 사람들에겐 값싸고 영양가가 높은 고단백 식품이었다.

“가, 같은 요리를 하려고?”


“그럼요.”

그제 서야 자신이 뱉었던 말의 후회를 하는 루시앙.

“왜, 왜 같은 요리를 하려고 해……?”

그가 한 하맘과, 내가 만들 하맘이 정확히 비교될 것이 불편해진 루시앙이었다.

나를 알게 된 직후부터 나와 같은 요리를 해서, 직접적인 비교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나를 프랑스 파리로 데뷔시킨 장본인이고, 반유현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에 혹시나 먹물이 튀길까
걱정하는 그를 이해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셰프님, 같지만 완전히 다른 요리를 해볼까 합니다.”

프랑스 파리를 주름잡는 무게감이 있는 셰프였지만, 그가 이렇게 작아진 건 내 탓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할 때, 저 멀리에 잘 아는 얼굴이 보였다.

“왔냐.”

메이였다.

어쩐지 루시앙보다 영향력도, 미슐랭 스타도 없는 그녀가 루시앙보다 커 보였다.

***

‘비둘기 요리를 언제 먹어봤더라.’

100 년의 인생 동안 먹어본 기억이 있기는 한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요리해야 할지, 머릿속에 금방 떠오르는 레시피가 없었다.

“한 점만 먹어보겠습니다.”

비둘기 요리는 닭보다, 메추라기와 비교해야 될 만큼 생각보다 작다.

뼈에서 살을 발라내면 더더욱 그 양이 적어진다.

그래서 하맘이라는 요리는 비둘기의 고기만큼이나 그 속에 채워지는 내용물의 맛이 중요했다.

“시나몬 가루를 찹쌀에 뿌리셨네요?”

“그렇다네, 비둘기 고기의 살과 찹쌀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줄 향이 뭔지 고민해서 넣었다네.”

비둘기 살 특유의 잡내, 내장 냄새 때문에 시나몬 향을 고려한 루시앙이었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비둘기 고기를 그나마 대중적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의도가 잘 구현된 것 같았다.

‘시나몬도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

비둘기 고기에 찹쌀을 넣고 한 번 쪄낸 뒤 그것을 굽는 것은 비둘기 특유의 향을 없애는 것에 오직 시나몬


가루만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굽는 과정에서는 다른 향을 입히는 것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에도 루시앙이 굽는 조리법을 택한 이유는 납득이 됐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현지인들에게 배워온 것을 그대로 익히신 것이니까요.”

발전시킨다고 시나몬 가루를 추가했지만, 완전히 요리를 발전시키는 못 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요리가 주제였기에, 그 주제를 지키고자 생각을 넓게 하지 않은 터였다.

“그렇게까지 조리법을 지키실 필요는 없습니다. 딱, 이 요리가 누가 봐도 하맘이라는 게 지켜진다면요.”

루시앙이 한 하맘, 비둘기 요리를 한 점 더 찢어먹은 나에게 이 요리를 훨씬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레시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둘기 특유의 냄새도 냄새지만, 살결도 더 부드럽게 만들어야 돼.’

뼈에 붙은 살의 양이 적었기에, 이 고기의 퍽퍽함을 크게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최상의 맛을 내는 건, 이미 셀 수 없이 많이 증명해온 바.

나는 조리법과 레시피를 모두 정했다.

“굽는 것 말고 기름에 튀겨야겠네.”

튀기는 과정에 비둘기 잡내를 없앨 향을 입힐 수 있고, 재료를 불에 굽는 것보다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속은 찹쌀하고 단호박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다, 단호박?”

생각지도 못한 재료에 루시앙이 고개를 흔들었다.

“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에 모여든 카이로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어떤 요리가 나올지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만 갔다.

나는 보조 셰프들이 가져온 단호박을 곧장 찜기에 넣고, 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미리 손질된 비둘기를 가져와 그 속에 있는 찹쌀을 빼내기 시작했다.

루시앙이 바로바로 조리하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해 둔 것이었다.

“그래, 다들 멀뚱멀뚱 서 있고 너만 한 셰프가 없다.”

메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비둘기의 속을 비워내는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여기가 첫 팝업 스토어야?”

“네, 빨리 빨리 돌아다녀야 되는데, 셰프님한테 인사는 해야 되니까요.”

“빨리 빨리 돌아다닐 수 있을까? 내 요리를 가장 처음으로 먹었는데.”

“네에?”
“내가 만든 아프리카 요리를 먹고도 다른 셰프들의 아프리카 요리를 먹을 수 있겠냐고.”

“…….”

“보조 셰프로 따라다니던가, 어차피 아프리카에 오픈한 전 팝업 스토어를 다 돌아다닐 참이니까.”

나는 말하면서 겉면에 수분을 제거한 비둘기 고기를 갖은 재료를 넣은 기름에 투하했다.

치이익!

그리고 그때, 메이가 입을 열었다.

“싫어요.”

그녀의 대답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156 화. 이런 건 본 적 없을걸 (3)

“싫어?”

“…….”

“싫음 말아.”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는 메이, 그녀의 지금 이런 태도는 자신의 명성과 입지는


올라가는데, 나, ‘반유현’이 그에 따른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반항심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춘기가 온 것이다.

반유현 사단 내에서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오는 정신적 혼란기.

사회적으로는 모두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과 달리, 내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에게 분노가


있었을 테지.

100 년의 인생을 살았다면 적어도 메이와는 30 년 이상을 지냈으니까,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싫나 보자.”

해결책도 간단하다. 또 한 번 벽을 느끼게 해주면 된다.

아직 내 앞에 자신이 한없이 작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100 년간 배운 건 요리만이 아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대하는 법 또한 자신 있었다.

“비켜봐.”

튀김기 옆에 서있던 메이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요리를 시작했다.

치이이익!
비둘기 고기를 튀긴 뒤, 그 속에 단호박 페이스트를 바르고 산도가 높은 쪽으로 조리한 찹쌀을 넣으려고
했다.

찹쌀에 들어간 레몬을 비롯한 갖은 채소들이 비둘기 냄새를 잡아줄 것이고, 그것을 중화시켜주고 단맛을
낼 요소로 단호박을 사용하려 한 것이다.

“버려야겠네.”

그런데, 나는 단호박을 들자마자 말했다.

“버려.”

“왜, 왜 그러나? 반 셰프.”

“단호박 페이스트를 이용하려 했으나, 호박에 문제가 있습니다.”

같은 크기의 단호박이 이런 무게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색 또 올바르지 못한 것에 나는 백프로 확신했다.

“다들 그렇네요. 다 버려야겠습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십여 개의 호박들에 모두 문제가 있었다.

“무, 무슨 문제가 있나?”

일반인들이 보기엔 겉보기에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호박과실파리.’

호박이나 수박 등 과실 내부에 알을 까고, 그 알에서 나온 새끼들은 과실 내부를 파먹으며 성장하는,


농가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벌레다.

단호박을 들어본 뒤, 그 크기에 비례해 무게가 맞지 않자 곧장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놈들이기도 하다.

“뭐, 뭐야! 진짜잖아! 다 까봐!”

루시앙이 내 말을 확인이라도 해보려는 듯이 옆에서 단호박을 반으로 자르곤 소리쳤다.

“아니, 겉보기는 똑같은데 어떻게 알아맞혔어?”

“다른 것들도 똑같을 겁니다.”

“그러니까! 비교 대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맞혔냐고!”

내가 마술이라도 벌였다는 듯이 나를 일갈하는 루시앙이었다.

정상적인 호박과 비정상인 호박이 두 개 있었다면 상대적으로 이 호박이 상했다는 것을 알기 쉬웠겠으나,


비교 대상이 없음에도 이곳에 있는 모든 호박이 호박과실파리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다.

쩍! 쩍!

그 말을 들은 메이가 곧장 칼로 나머지 호박들을 갈랐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본 나는 말했다.

“뭘 다 잘라. 자르지 마. 안 잘라도 알아야지.”

메이가 아무 말도 없이 날 올려봤다.

“…….”

그리고 동시에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와 진짜야!”

“저걸 눈으로 다 알아맞혔다고?”

“일반 호박이 없는데 어떻게 비교도 안 하고?”

“와…….”

“아! 한국에 반유현 펌킨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잖아!”

아울러, 대체 나의 요리는 어떤 맛을 낼지에 대한 기대감이 더 올라간다.

“대체 재료를 몇 번이나 만져본 사람인가…….”

단호박에 관련된 조리법을 쓸 수 없게 된 나는, 또 다른 조리법을 생각 해내야 했다.

‘비둘기…… 비둘기…… 아프리카 조리법…….’

그리고 그 생각을 시작한 지, 몇 초 뒤에 또 다른 레시피가 떠올랐다.

“타히니(tahini).”

***

타히니(tahini).

쉽게 말하자면 참깨 페이스트.

중동에서부터 북아프리카까지 넓은 지역에서 요리에 줄곧 사용되는 재료이다.

단호박 대신에 나는 비둘기의 잡내를 없애고, 그 비둘기의 몸 안에 들어가는 찹쌀과의 조합을 연결시켜 줄
재료로 이것을 떠올렸다.

“컥……!”

첫 손님이 비둘기 다리를 뜯어 한 입 베어 물고는 말을 잇지 못하자.

행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먹었음 빨리 고기 들고 나와!”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 겁니까? 나 여기 서 있는데 먹을 수 있나요?”

“맞아요! 몇 마리나 남아있는 겁니까!”

SNS 라이브 방송에 의해, 내가 이곳에서 직접 요리를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에 참여한 다른 관광객들도 자신이 짜둔 일정을 바꿔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지금 여기까지. 줄을 서신 분들에게 모두 드리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매번 했던 대로, 판이 깔리면 그 판에서 최고의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기름을 부었다.

그때, 루시앙이 내가 방금 만든 요리를 먹고는 또 감탄했다.

“참…… 먹을 때마다 충격이야. 대체 몇 년째인가.”

그의 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과정들을 나는 알고 있다.

“참깨 페이스트…… 이집트 요리에서 아주 많이 사용되는 타히니…… 그걸 비둘기 속에 바를 줄은 생각도


못 했네.”

내가 만들어 비둘기 속에 바른 건 그냥 타히니가 아니었다.

아주 살짝 볶은 마늘과, 약간의 레몬, 그리고 꿀을 첨가한 타히니, 즉 참깨 페이스트.

그것을 비둘기의 속에 발랐다.

“볶은 마늘에 남아있는 아주 약간의 마늘 향…….”

참깨의 고소한 맛에, 몇 층의 맛을 더 쌓았다.

“찹쌀의 고소한 맛과는 다른 층으로 참깨의 맛이 더해지고 그 뒤에 오는 마늘의 향은 비둘기 특유의


냄새를 완벽히 잡아준다…….”

초점이 없어진 눈으로 자신이 느낀 맛들을 읊기 시작한 루시앙.

그 옆에 있던 메이도 곧장 남은 다리 하나를 뜯어 먹었다.

“아…….”

찹쌀과 비둘기 살, 그리고 타히니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그동안 먹어 본 적이 없는 조화였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내가 이번 생에 처음 꺼낸 요리였으니까.

“튀긴 이유가…….”

또, 비둘기를 굽지 않고 튀겨낸 것 또한 맛을 올리는 방법이었다.

수분을 쫙 빼낸 구운 비둘기보다, 갖은 재료가 들어간 기름에 튀긴 비둘기가 더 부드러운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될 자명한 사실이었다.

“비둘기 잡내를! 마늘뿐만 아니라, 양파를 넣은 기름에 튀기는 방식으로도……!”

메이와 루시앙이 맛을 한껏 느낄 때쯤 내 요리를 먹기 위해 줄에 서 있던 사람들도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우와……!”

“이런 하맘은 처음이야!”

“이게 아프리카 요리야?”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있다는 말이야?”

대부분, 위생과 맛 그 모두에서 천대받던 아프리카의 요리가 다시금 새 지위를 찾은 순간이었다.

***

내가 직접 팝업 레스토랑에 방문해 요리를 선보였을 때는 또 다른 국면이 펼쳐졌다.

“팝업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도장 찍는 것이 조금은 무색해진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전역에 깔린, 반유현 팝업 레스토랑.

유명 셰프들이 아프리카 현지의 요리를 선보이는 곳,

약 70 여 개의 레스토랑은 사람이 방문하면 팜플랫에 도장을 찍어준다.

도장을 가장 많이 얻은 축제 참가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지는데, 이는 모든 팝업 레스토랑이 주목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험이었다.

“대부분의 관광객, 축제 참가자들이 도장을 찍는 것보다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큰 것 같습니다.”

새로운 국면이라 함은 방금 오스틴이 말한 것을 뜻했다.

“정확히는 셰프님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팝업 레스토랑들을 홍보하기 위해 나는 내가 몇 날 며칠 어느 팝업 레스토랑에 방문할 것을 대외적으로


알렸었다.

[ 반유현 로드! 반유현의 요리를 먹어라! ]

[ 반유현의 다음 행선지는 케이프 타운! ]

[ 반유현의 행보 팝업 레스토랑 24, 그 이후 39, 11, 차례로 갈 것. ]

[ 팝업 레스토랑의 번호에 상관 없이 이동 중. ]

[ 효율의 대명사 반유현이 레스토랑 번호와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아프리카 대륙을 누비는 이유!
집중취재 ]

내가 이집트의 전통 비둘기 요리인 하맘을 선보인 이후로, 반유현 로드라는 단어가 생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팝업 스토어를 돌아다니며 도장을 받기보다 나의 일정에 맞추었다는 것.

축제 기간 내에 가장 많은 팝업 스토어를 방문해, 도장을 받아 보상을 얻는 것보다 당장 이 순간 내


요리를 먹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축제의 기획 의도와 다른 그들의 움직임은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내가 이미 지난, 팝업 레스토랑은 무조건, 내가 앞으로 갈 팝업 레스토랑보다 관광객이 없다는 소리
아니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일정만을 따라 축제에 참여한다면, 아프리카 전 지역의 요리가 골고루 주목을
받는 것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나의 일정을 따라온 사람이 내 요리를 모두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공개한 일정은 취소하고, 랜덤으로 돌려야겠다.”

“공개하셨던 일정은 모두 없던 것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려야겠다.”

“어떤 것을 알릴까요?”

내가 방문할 팝업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내가 방문했던 팝업 레스토랑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 있게.

“아프리카 판 골목 가게를 기획해.”

셰프들이 각 곳으로 흩어지기 전 메뉴 테이스팅을 했지만,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듯한 깊은 잣대는


들이밀지 않았었다.

내가 팝업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레시피를 더 강력하게 수정했다고 하면, 내가 이미 방문했던


곳에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까.

내가 방문할 곳을 알리지 않으면서, 아프리카 전체 팝업 레스토랑에 긴장감을 더하고 미리 방문했던


곳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줄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기름을 더 부어야지.”

더불어 가장 많은 도장을 받은 사람에게 줄 보상의 폭을 넓혔다.

“이번 축제에 자동차 협찬해준 B 사에 연락해봐.”

“예? 뭐라고 할까요?”

“이번에 우리가 이용한 차들 다 어디로 가냐고. 뚜렷한 계획 없으면 헐값에 넘기라고 해.”

1 등에서 30 등까지, 레스토랑 반유현의 VIP 권을 줌과 더불어 그 밑의 등수의 사람들에겐 자동차까지.

이번에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한 대륙 전체를 흔들려면 이 정도 자본은 투입돼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은 백원종 대표님이 계신 팝업 레스토랑으로 가자.”

다음 행선지까지 정하고는, 메이를 봤다.

“넌 어쩔래? 아직도 같은 생각이야?”

자신이 큰소리쳤던 것이 있어서,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하는 메이였다.

아직도 자신이 내게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 테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짓궂게 꼬집었다.


“싫다고 말해놓은 건 있어서, 다시 나를 따르겠다 말하는 건 자존심 상할 테고, 그렇다고 나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맘대로 해. 1 분 뒤에 출발한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차에 오르자, 메이가 몇 초 뒤에 따라 올랐다.

“죄송해요…… 셰프님…….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제…… 영향력……? 이 저를 건방지게 만들었네요…….


밤새 재료 손질하고 그릇 닦던 메이로 돌아갈게요.”

157 화. 이런 건 본 적 없을 걸 (4)

[ 아프리카 출신 기업인, 스포츠 스타들도 모두 동참! ]

[ 역대급 라인업으로 분위기 고조되는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 ]

[ 그에 따라 고조되는 유럽 연합, 미국 정부의 알력싸움. ]

[ 한 명의 셰프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 그 끝은 어디인가. ]

파급력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이 축제 자체가 역사적인 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까지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니, 이런 그림을 얼추 상상해 봤던 게 예상한 것이라면 예상은 해봤다.

[ 아프리카 곳곳에 내전 멈추게 한 반유현의 축제. ]

[ 노벨 평화상 후보 유력! ]

“하하하.”

그 기사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 역대 최초 20 대 노벨상 수상자 탄생하나. ]

“노벨상? 그거 대단한 사람들만 받는 거 아니냐?”

옆에서 메이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몸으로만 치자면, 자신과 불과 두세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나.

그녀는 내 옆에서 내가 세상을 주무르는 과정을 모두 봐왔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식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해 둬.”

“네?”

“원래 이해하기 어려워서 머리가 지끈거리는 건, 그냥 운이라고 생각해 두는 게 좋잖아.”

잠시 사색에 빠져있던 메이가 내 말을 듣더니 씩 웃고는 대답했다.

“운 아니잖아요.”
“뭐?”

“다 계획하셨잖아요. 모든 걸, 분식집 아들로 있던 시절부터…….”

내가 이렇듯 성장한 게 운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최측근.

그런데, 그 방향이 조금 이상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한답시고 이 모든 걸 계획하신 거잖아요! 저를 주방으로 데려오는 것도 계획을 짠


걸지도 몰라……! 아니, 루시앙 셰프님을 만나고 백원종 대표님을 만나는 것까지……! 이 아프리카
축제는 언제쯤 계획해 두신 거예요?”

그녀에겐 이미 내가, 종교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아…… 종교라면 운이고 실력이고 없겠지.

***

“저희가 이곳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겁니까?”

언뜻 봐도 알 수 있는, 브랜드 ‘반유현’의 셰프들에게 주어지는 조리복을 입은 셰프가 제리에게 말했다.

“아직도 의심하냐.”

라스베이거스에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런칭을 준비하던 제리와 24 명의 셰프들.

그들은 반유현의 부름에 의해 곧장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왔었다.

방금 한 셰프가 제리에게 물은 것은 반유현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 있냐는 것이었다.

“축제의 규모나,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뭐, 같은 말인가요? 아무튼, 전 세계에 이런 규모의 축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저희를 위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고…….”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까지 자신들을 부른 장본인이 자신들의 존재를 잊을 수도 있냐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질문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저희를 위한 것이라고 하시니 더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 축제의 기획은 아프리카 대륙의 요리와 맛의 신선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곳이 가진 잠재력을
증폭시켜 반유현 팩토리를 포함한 브랜드 ‘반유현’에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반유현은 라스베이거스의 런칭할 레스토랑까지 머릿속에 품고 있다는 것.

“저희가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왔으니, 모른 척하기도 어려우실 테고…… 그래서 그냥 의미 없이


말한 것 아닐까요?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사실은 저희가 실제로 이곳에 올 줄 모르셨던 거 아닙니까?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 축제를 신경 쓰느라 바쁘실 것 같은데 저희가 방해가 되는 것 아닙니까?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서 저희만의 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축제의 파급력을 이용해 라스베이거스의 레스토랑까지 연착륙시킨다는 그 계획이, 아니, 도대체


축제와 런칭을 준비하고 있는 레스토랑과의 접점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며칠간 대기 상태로 있던 제리 사단의 셰프들에겐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었고.

로또 육인방이자 반유현의 최측근인 제리가, 반유현을 의심한다는 것 자체로 기분이 나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중 누군가 총대를 메고 제리에게 물었다.
제리의 답은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반유현 셰프님을 의심하는 거냐?”

반유현의 최측근으로 이름을 날렸고, 모델 같은 맵시에 외모까지 가져 유명세를 가진 제리.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내 주방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 귀신같이 반유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 셰프님. 제리입니다.”

빛나는 눈빛으로 전화를 받은 제리는 이내 전화를 끊더니 말했다.

“반유현 셰프님의 특별지시가 떨어졌다. 짐 싸.”

***

아프리카 내의 팝업 스토어를 방문하는 일정이 변경되어, 여러 곳의 팝업 스토어를 들른 다음 백원종이


총괄하고 있는 팝업 스토어로 향하는 길이었다.

“별명이 너무 많이 생기셨는데요. 이번 축제로,”

매일 차에서 현 상황을 평가해줄 기삿거리를 보고하는 오스틴이었다.

[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그런데 미움받지 않는 사랑꾼. ]

[ 돈과 미슐랭 때문에 움직인다. ]

[ 솔직해서 강한 맛, 반유현 셰프의 말말말. ]

“어제 하셨던 말씀이 또 이렇게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뉴욕 가장 공신력 있는 잡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인물 1 위 후보에 들었다는 말도 들리고.

100 년의 인생 동안 해본 적 없는 경험들로만 꽉꽉 채워진 이번 생은 보람과 성취에 무뎌진 나에게도


즐거웠다.

“피도 눈물도 없던 셰프님이…… 요즘엔 계속 즐거운 표정을 하셔서 그래도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이 기사들을 보면 확실히 셰프님은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반유현! 그의 선택은 매우 명확하고 단순하다. ]

계속 자본주의, 돈, 솔직함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 이유는 단순했다.

“기사들이 저한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연설문이나 대본을 작성하는 전담팀이
있냐고요.”

“그래서 뭐라 했어.”
“반유현 셰프님 프리스타일이라고 했습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의 행복감이 극에 달하자, 아프리카 난민들과 가난 탈출을 위해 후원하던 기업,


유명인들이 ‘반유현 재단’을 설립해 조금 더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자고 모였었다.

그리고 그 재단의 수장이자 이사장으로 나를 섭외하려 했었는데…….

내가 거절했다.

“아니, 셰프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러프하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연예인 짓은 못하겠어서.”

위대하고 좋은 일일 테지만, 아직 미슐랭 스타를 다 모으지 못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 다른 업무를 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목표는 미슐랭 스타이고, 사람들에게 맛있는 요리와 그에 따른 행복한 경험을 보다 더 많이 시켜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업 방식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불우이웃을 돕거나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것은
재미없어서 안 한다…… 가. 잘못된 멘트는 없는 것 같은데.”

[ 반유현, 아프리카에 호박과실파리 퇴치 약품 15 억 원어치 기부! ]

“재미가 없으면서도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반유현…… 이라고 또 난리입니다. 츤데레니…… 뭐니……


제가 봤을 땐 타고난 연예인이신 것 같은데요. 구설수 없이 이렇듯 미담만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계시니까요.”

내가 아무말 없이 오스틴을 바라봤다.

나를 치켜세우는 기사는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나의 눈짓에 오스틴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제리 셰프와 그 휘하의 셰프들이 움직이는 것도 많은 이슈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브랜드 반유현 산하의 지휘급 셰프를 뜻하는 검은 스카프를 맨 제리.

그가 아프리카 전역의 팝업 레스토랑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포착된 모양이었다.

“이 셰프가 독단적으로 움직일 리는 없고…… 어떤 지시를 하신 겁니까?”

“아프리카에 있는 70 여 개의 팝업스토어에 있는 모든 요리를 흡수하라고 했어.”

“예?”

매일 밤을 새우면서 아프리카를 돌아다녀야 해낼 수 있는 지시사항이었다.

“그래, 힘들겠지. 그런데 해야만 돼.”

어떻게든 이번 축제의 파급력을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과 연결 짓겠다는 생각을 한 바.

제리가 해야 될 것이 명확해졌다.

“이곳에 열린 70 개의 팝업 스토어를 축소판으로 라스베이거스에도 똑같이 열거야.”


이 축제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자 축제에 참여하고 싶어도 못 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이 축제에서 사용되는 요리를 그대로 재연해 미국에 선보이는 계획을 떠올렸다.

“축소판이요?”

“항공편, 숙소, 경호원, 렌트카 모든 게 한정되어있는 이곳의 축제는 세계인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지만 한계가 있어.”

이 축제에 참여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의 욕망을 해소시켜 줌과 동시에, 새롭게 레스토랑


반유현을 맡을 ‘제리’의 요리 실력을 만천하에 알릴 프로젝트.

이 축제의 연장선이자, 이 축제와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접점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응 좋으면……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테마를 아프리카 요리로 해보지
뭐.”

“예에?”

“아프리카 요리로 미슐랭을 받은 레스토랑은 없잖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메이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정식적인 셰프로 주방을 맡기 전, 밤을 지새우며 함께한 로또 육인방 중 한 명인, 제리가 심히 걱정된


까닭이었다.

“제리가 남은 10 여 일의 축제 기간 동안 70 개의 요리를 섭렵할 수 있겠냐.”

내 질문에 메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할 수 있겠죠. 어떻게 온 기회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시킨 거고.”

갑작스럽게 기획된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밤을 그의 어깨에 걸어봤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이집트의 카이로만큼이나 발전된 도시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우와아아아아!

“왔시유?”

백원종의 팝업 레스토랑 앞에 내리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람들이 소리쳤다.

“아프리카 판 골목가게라며? 허허허. 이거…….”

백원종이 허허 웃더니, 또 한 번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 나한테 평가받던 사장님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만……. 반유현이 내 요리를 먹어보고


수정한다니 떨리는구먼?”
“저도 손님으로 왔습니다. 줄이 이렇게나 긴데 제가 새치기를 할 순 없죠.”

백원종과 인사치레 몇 마디를 한 뒤에 나는 길게 이어진 행렬의 맨 뒤로 갔다.

몇 명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길게 이어진 행렬이었다.

“우와…… 바, 반유현 셰프 맞아요?”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젊은 여성이 물었다.

“사진 한 장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우와아아아-!

그 외에도 나에게 쏠린 시선들, 그때 그 여성의 앞에 있던 중년의 남성이 말했다.

“반유현 셰프님! 줄 서지 말고 얼른 앞에서지 그래요?”

그러자, 그의 말이 앞쪽으로 계속 전해졌다.

“그래요! 빨리 먹어요!”

“맞아 맞아! 반유현 셰프님 먼저 드시게 해!”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자신의 자리를 하나씩 양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야 단순했다.

내가 빨리 백원종의 요리를 먹어보고, 레시피를 수정해 내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담긴 것이었다.

한 사람도 토를 달지 않고 모두 내가 줄의 가장 앞으로 향하길 바랐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백원종이 소리쳤다.

“그래유! 빨리 와봐유! 나도 평가 좀 들어보게!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고! 자네 오고 나서 요리가


마음대로 안 되네! 허허허허!”

그의 말을 듣고 행렬의 앞으로 나아갈 때는 사람들이 양옆으로 길을 텄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또 충격적인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백원종이 기존에 어떤 요리를 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요리를 ‘수정’해서 가장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후.’

158 화. 이런 건 본 적 없을 걸 (5)

“보보티(Bobotie) 입니까?”
보보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통 음식으로서, 그 맛이 뛰어나 몇몇 주요 관광지에 가면 흔하진 않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었다.

“소고기, 양고기, 흰살생선까지 추가하셨군요.”

백원종이 방금 만들어낸 보보티를 나에게 건넸다.

아직 열기가 있는 그 요리에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로 나는 그것에 함유된 고기의 종류를 알 수 있었다.

한 입 베어 물자 그 레시피와 조리법에 관한 것들이 모두 떠올랐다.

“첨가된 흰살생선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다진 돼지고기와 소고기에 향신료를 추가한 후 볶고, 그 위에 계란을 올려 오븐에 굽는 요리.

하지만 백원종은 풍미를 더하기 위해 고기의 종류를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만들었다.

소고기, 양고기, 그리고 흰살생선의 살을 으깨어 첨가했다.

“카레의 향이라…….”

고수나, 커민, 시나몬, 또는 생강처럼 향이 강하고 매콤한 맛이 있으며 호불호가 있는 재료들의 양을


줄이고 전통 카레 향을 더 짙게 만들었다.

“왜, 카레가 문제에유?”

방송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대한민국에 셀 수 없이 많은 프랜차이즈 매장을 가진 대표로서 매번 요리에


대한 평가를 내렸을 백원종은 꽤나 긴장한 내색을 비췄다.

“아니요. 맛있습니다.”

“하하하. 이거 영광이네.”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자 그제서야 웃음을 보이는 백원종이었다.

그 휘하에 있는 셰프들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잉?”

내가 그 말을 뱉는 것이 여러모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빨리 이곳의 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나에게 자리를 비켜준 사람들.

아마 그 사람들은 내가 백원종의 요리를 더 맛있게 수정하리라는 엄청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기야……. 맛이란 게 원래 끝이 없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눈빛들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백원종의 요리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도 내가 요리를 한다면, 이 길고 긴 사람들의
행렬에 다시 자리를 잡고 내 요리를 먹겠다는 눈빛이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요리가 너무 맛있지만, 이거…… 분위기상 제가 그런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는 셰프들은, 요리를 예술로 보기에 이렇다 저렇다의 평을
싫어하기 마련이다.

나는 혹시나 백원종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빠졌을까, 빠르게 귓속말로 말했다.

그러자 백원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뭘……. 자네가 맛없다고 했어도 기분 나쁘지 않았을 거여. 세계 최고의
셰프의 평가를 받는 게 어디야? 응? 내 기분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혀.”

매번 평가를 하는 입장에서, 평가를 받는 것과 지적을 받는 것은 여태까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평가했던


것에 대한 권위가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인데 백원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은 신경도 쓰지 말어.”

그 이유야 단순했다.

백원종 본인은 내가 탑셰프라는 걸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평가를 내리는 것이 자신의 권위를 깎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명실상부 최고의 셰프가 평가를 내리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이 있냐는 마인드.

“그럼…… 제 방식대로 요리를 해보겠습니다.”

내가 또 소매를 걷자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

어떻게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까.

백원종의 요리를 먹고 아쉬웠던 점들을 떠올려봤다.

‘보보티의 핵심은 오븐에 구운 계란이기도 한데 계란의 존재감이 미미했다.’

각종 향신료를 추가한 다진 고기 위에 계란을 풀어 올린 뒤 오븐에 굽는 요리.

그 중 계란의 역할은 단순했다.

‘계란은 익으면서 다진 고기들의 모양을 잡아주고 풍미를 더한다…… 그런데, 계란의 풍미가 미미했어.’

세세한 감평들은 머릿속으로 했다.

백원종도 그렇고, 대중들도 그렇고 나를 탑 셰프로 인정하지만 이 정도의 평가를 겉으로 내비치면
자극적인 기사를 써내길 좋아하는 기자들이 나와 백 대표의 사이가 안 좋다느니, 백 대표의 형편없는 요리
실력이라느니 헛소리를 내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흰살생선을 뺀다.’
백원종이 다진 고기에 으깬 흰살생선을 추가해 고기 육질의 풍미를 높였지만 계란의 존재감을 미미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생선은 아무리 으깨어져도 그 살결의 식감이 살아 있기 마련이었다.

또, 계란의 포슬포슬한 식감마저 그 요리 내의 존재 이유를 모르게 만들었다.

그나마 백원종의 내공에 의해, 요리의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요리에 들어가는 어떠한 식재료도 이유 없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에겐 계란의 존재를 지워버린
흰살생선이 맛을 한층 높일 수 있더라도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고기에는 카레의 양을 줄이고 파마산(Parmesan) 치즈를 넣을 겁니다.”

“파마산? 카레와는 완전히 다른 성질과 맛인데?”

“고기, 계란, 이 두 재료의 풍미를 높이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재료입니다.”

치즈 중 황제라고 불리는 파마산 치즈의 그 특유의 향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 풍부한 육류와 잘 어울린다.

잘 다져진 고기들의 감칠맛을 올리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널리 알려진, 고기와 치즈의 조합.

이것의 마무리는 계란이었다.

“보보티는 다진 고기만큼이나 계란이 중요하잖아요.”

설탕을 적절하게 넣어서 단맛을 살린, 오믈렛(omelet)한 계란을 얹어 오븐에 굽는 단계를 빼버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다진 고기와 갖은 향신료, 그리고 파마산 치즈를 곁들인 고기를 오븐에 굽고 오믈렛
한 계란을 그 위에 잘 얹었다.

계란의 익힘 정도에도 단계가 있는 것인데, 오믈렛으로 계란의 조리 정도를 선택한 것은 그 식감까지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진 고기들이 입안에서 부스러지는 거침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식감.

띵!

오븐에서 고기를 꺼냈고, 그 위에 오믈렛 한 계란을 얹었다.

“보보티 맞습니다. 다진 고기, 향신료, 계란, 오븐 굽기.”

우와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고, 백원종이 영어로 말했다.

“제가, 제가 가장 먼저 맛봐도 되겠쥬? 아무리 그래도 여기 사장이 난데.”

사람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백원종이 내가 만든 보보티를 먹었다.

“뭐여.”

그가 말 안 해도,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맛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소와 어린양 육질의 풍미, 그것을 감칠맛과 고소함으로 묶은 파마산 치즈, 맛을 다 느끼고 부스러지는
고기들을 안아주는 계란. 그것들을 중점적으로 느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백 대표님께서 사용하신
향신료와 카레도 은은하게 향이 날 수 있도록 만들어봤습니다.”

“음……. 하하하하! 진짜 말도 안 되는군!”

백원종이 한껏 맛을 음미하다 말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이게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 할 수 있는 맛이에유? 그건 아니야. 이 엄청난 맛을 무슨 기계처럼


말해?”

백원종이 아주 상기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그를 따르던 직원들이 놀랐고 맨 앞줄에 서 있던 관광객들은
엄청난 기대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만날 때마다 요리가…….”

백원종은 내 요리 실력이 나날이 발전한다고 느꼈겠지만, 나는 그저 완성되어 있는 사람이고 그를 만날


때마다 하나씩을 꺼내주는 사람이었다.

“고기의 굽기 정도…… 계란의 식감…… 설탕의 양……. 향신료의 밸런스까지…… 보보티를 지금 한 번


먹어보고 이걸 만들었다고?”

이 물음에 대해선 어떻게 답을 해야 될지 잠시 고민했다.

반유현이라는 몸으로 태어나서는 보보티를 처음 먹어봤지만, 100 년의 인생 동안은 여럿 먹어봤으니까.

“요리가 다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소, 양, 카레와 같은 향신료, 오븐으로 하는 요리…… 보보티라는


음식이 낯설어도 그 재료들은 언제나 익숙했던 것이니까요.”

“아…… 그건 그렇지…… 그건 그런데…… 이 맛은 진짜 충격이야.”

“이제 여기 계신 손님들께 이 요리를 드릴까요?”

“그, 그러지.”

우와아아아아!

***

UN 아프리카 경제회.

“이번 축제가 역사에 남을 엄청난 민족 화합과 경제적 이득을 창출하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반유현의 연이은 파격적인 행보,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영향력과 파급효과.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엄청난 경제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과 계획들의 긍정적인 효과를 헤아릴 수 없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반유현의 존재를 거부,


또는 불편해하는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넥도날드, KKC, 요리온피자, bibiQ, 퀸즈…… 그 외의 31 개의 업체들이 해결책을 제시하라


말합니다.”
“흠. 골치 아프구만.”

세계적인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힘을 합쳐 아프리카 경제회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시작을 우리와 함께했으니까…….”

UN 아프리카 경제회는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 발전을 위해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업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투자, 인프라, 시스템에 대한 것들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테니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달라고.

일자리를 만들고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때의 제안이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것이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도와달라고 손 내밀어놓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겠지.”

반유현의 축제가 시작된 뒤로는, 매출이 떨어질 곳이 없다시피 무너져버렸다.

어떤 곳이 그러냐는 것도 따질 것이 없이 UN 아프리카 경제회의 제안을 받아 아프리카 대륙에 상륙한 모든


업체들의 매출이 그러했다.

“반유현과의 인과관계를 이렇게 내밀면서 우리에게 불만을 품은 건…….”

“우리보고 책임을 지라는 것 아닙니까.”

“반유현 셰프님을 불러온 것이 우리가 아닌데…….”

“저희가 확실하게 반유현 셰프님에게 협조하고 있어서 그 연결고리를 문제 삼아 이런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입니다. 도와달란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반유현이라는 대형 기업을 들여와 자신들의 매출을 망치냐는…
….”

반유현의 축제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저 업체들은 이곳에서 장기적으로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가운데에 끼어버린 이들에겐 해결책이 필요했다.

“방법이 있긴 해.”

그때, 경제회 회장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뱉었다.

“반유현 셰프님이 한 요리들을 각 프랜차이즈에 이식하는 건 어떨까.”

“예? 어떤 방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BiBiQ 치킨에는 반유현 셰프님이 카이로에서 비둘기 요리 하맘과 비슷한 메뉴를…… 넥도날드에는
반유현 셰프님이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서 선보인 보보티 버거를…….”

반유현의 이름과 메뉴를 아프리카 대륙에 입점해 있는 각 대형 프랜차이즈에 이식하는 방법.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반유현이라는 이름이라면 시그니처 메뉴로 활용하고 싶을 만큼,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셰프가
반유현이었으니까.
문제는 단 하나였다.

“반유현 셰프님이 그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대형 프랜차이즈에 자신의 이름을 딴 메뉴를…… 그분이 하실까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설득에 들어가야지.”

159 화. 이런 건 본 적 없을걸 (6)

“굳이 그렇게 이름을 파실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팀과 그 내부에 있는 기업협력팀 직원이 모두 모여 회의를 열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저희가 축제로 그들의 매출을 빼앗았어도, 축제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매출을
회복할 겁니다.”

불만을 품고, UN 아프리카 경제회에 문제를 제기한 수많은 프랜차이즈 업체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매우 단순했다.

UN 아프리카 경제회와의 관계를 이용해 나의 이름을 딴 메뉴를 얻고 싶은 것.

“어떻게든 반유현 셰프님과 접점을 만들어 보려는, 노골적인 의도입니다.”

저들은 아프리카 경제회의 권유로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와 사업을 시작했고, 이 대륙의 각 국가에 많은
경제적인 효과를 얻게 해주었으니.

경제회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나’로 인해 급감한 매출에 대한 해결책을 놓으라고 합심해


목소리를 내놓은 것이다.

그 목소리가 말하는 것은 ‘나’의 이름을 딴 메뉴였고.

“넥도날드, 아프리카 지점 전체에 ‘반유현 버거’와 같은 메뉴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요구를
서른 개가 넘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해는 한다.

실제로 내가 아프리카 대륙에 연 축제로 인해, 관광객들이 많아져서 얻은 매출보다, 현지인들이 그


프랜차이즈 업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을 테니까.

물론, 자본주의 이 전쟁 통에서 저들이 떼쓰다시피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이 아프리카였기 때문이다.

“한 곳만 셰프님의 이름을 쓰게 해줄 수 없는 실정입니다. 허가하려면 모든 곳에 셰프님의 이름을 딴


메뉴를…….”

당연히 나에게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된다는 강제성은 없지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봤다.

“해줄까.”

“예?”
넥도날드, bibiQ 치킨, 오미노 피자 등 모두 앞서 말했듯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업체들이다.

그들은 전 세계에 수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다.

나의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풀어주려고 내 비법이 들어간 향신료와


조미료를 판매하는 브랜드를 만들었었는데,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저들의 떼쓰기가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30 개가 넘는 프랜차이즈가…… 나의 이름을 원한다는 거잖아 어떤 방식으로든?”

“그, 그렇습니다.”

“하자. 전 세계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예? 그, 그건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요?”

나의 보좌관들이 걱정하는 건, 맛과 충격적인 경험으로 알려진 내 이름이 프랜차이즈가 가진 이미지와


희석되어 그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각종 광고나 CF 의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그런데, 프랜차이즈들이 합심해 한 목소리를 냈다는 건 오히려 나에게 좋은 제안이었다.

“하나의 브랜드에게만 내 이름을 딴 메뉴를 내어주면 너희들이 걱정하는, 나의 브랜드 파워가 희석될 수도
있지만. 서른 개가 넘는 모든 프랜차이즈에 나의 이름을 내걸면?”“아…….”

“요리와 맛으로 프랜차이즈들까지 꽉 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이 요식업계의 왕이 나라는 것을


사람들한테 줄 수 있지 않을까?”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들의 표정을 보니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는 되겠으나,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냐는 것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른 개가 넘는 프랜차이즈에 각각의 색깔에 맞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이식해야 되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어.”

물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프랜차이즈들도 내가 서른 개가 넘는 회사 모두에 메뉴를 내려 주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중에서 자신들의 회사만이 나의 선택을 받길 바라고 있었겠지.

“그 업체들 싹 다, 각각 메뉴 준비해서 내려줄게. 공문 보내라.”

“예!”

“그리고 그 메뉴들 아프리카 말고, 전 세계에서 쓸 수 있게 해준다고도 전하고.”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매장에서만 그 메뉴가 쓰이면 뭣 하겠나.

이왕 해주는 거, 전 세계 매장에 내 이름을 걸어 볼 생각이다.

그에 따라 오는 이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재밌잖아. 역대 인생 동안 해본 적이 없는 경험이라.”

***

이제 내가 탑 셰프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다.

더군다나 방송을 통해 세세하게 방영된 내 아프리카의 행보를 보고도 내가 지구에서 제일 강한 셰프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되려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일 것이다.

[ 브랜드 반유현, 아프리카 대륙 철수! 영향력 제대로 보여준 축제! ]

[ 브랜드 반유현 기업가치 수직 상승! 상장은 언제쯤 할까! 고대하는 월스트리트 ]

[ 반유현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 축제, 함께해서 영광이었다.” ]

[ 세계 각국 정상들 반유현에게 존경의 박수, 평화와 화합의 장을 만들어 내. ]

[ 관광불모지 아프리카를 살려낸 셰프, 셰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아프리카 대륙, 각 국의 지도자들은 나를 한 나라의 대통령 수준으로 대우해줬고 언제든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것도 저들끼리 서로 나의 관심을 독차지하려는 듯이 말이다.

또, 개중에는 매년 이 축제가 열리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만큼이나 축제는 사람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

“물론, 우리는 아직 안 끝났어. 긴장 풀지 마.”

애석하게도 세계인들에게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은 막을 내렸지만, 나를 비롯한 우리 팀원들은 축제


관련해서 일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우리에겐 아직 이 축제가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반유현 팩토리, 아메리카 대륙, 오세아니아 대륙 설립건도 마무리 안 됐고.”

페스티벌이 시작되게 만든 프로젝트인,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아직 그 설립지역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세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메뉴를 내려줘야 하고.”

축제가 끝나기 직전 결정한, 프랜차이즈 업체들에게 내 이름을 건 메뉴를 걸어줄 것도 개발해야 하고.

“라스베이거스에 제리가 총괄하는 레스토랑도 차려야 돼. 그리고 그 전에 제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던
축제를 축소판으로 열어야 되고.”

“예, 관련해서 지금 모두 모여 있다고 합니다.”

다른 기업이나 레스토랑의, 총괄 경영자 또는 총책임자는 이렇듯 모든 업무를 도맡아 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모든 일을 내 손아귀에 두고 진행한다.
그에 따라 일이 넓게 펼쳐지는 것을 싫어하는 특성상 이번 일도 한 번에 처리하려 했다.

더군다나 이번엔 해야 할 세 가지 일들 중에 두 가지 일은 꽤나 깊은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제리의 축제와 런칭, 그리고 프랜차이즈 업체들에게 나의 이름을 건 메뉴를


내려주는 일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것들을 한 번에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연회장, 준비해. 지금 올라가신다.”

자신들의 메뉴에 나의 이름을 얹고자 하는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 37 명과 제리와 제리 사단의 셰프들 24


명이 합쳐져 62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연회장.

내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오스틴이 무전기로 연회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 전했다.

짝짝짝짝-!

브랜드 ‘반유현’의 직원들과 기자들까지 합하면 약 100 여 명이 있는 공간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들어서자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

나는 바로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내용은 없었으나,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아프리카 페스티벌 앵콜을 할 것입니다. 이번 축제에서 아프리카 요리에 대한 잠재력을


확실히 깨달은 바, 더 많은 분들에게 그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지리적 특성상 축제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한 많은 분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저와 가장 가까운 셰프인 제리 셰프가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브랜드 ‘반유현’의 지휘급 셰프를 상징하는 검정 스카프를 제리가 무대 위로 올라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또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플래시가 터지는 중간중간, 나를 바라보고 있는 프랜차이즈 관계자들과 기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라스베이거스에 앵콜로 축제를 여는 것이랑 자신들과 무슨 관계가 있냐는 듯한, 궁금증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순서를 좀 정해볼까 합니다.”

그와 반대로 내 패턴에 익숙해진 반유현팀의 직원들은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 레시피와 이름을 건 메뉴를 제공하는 것은 저도 즐겁고 귀사의 매출 향상을 기대할
수 있어 여러분도 즐거우실 겁니다.”

내가 사람들을 이렇게 모으는 이유는 대부분 경쟁을 부추기기 위함이었다.

최근에만 봐도,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기 위한 기업과 국가들을 모았을 때나, 아프리카 각 국의
지도자들이 한곳에 모여 축제 장소를 논의했을 때나…….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경쟁심이 나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될 때, 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곧 열릴, 라스베이거스의 축제,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의 앵콜이자 축소판…… 그곳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업체에 가장 먼저 제 이름을 건 메뉴를 내려드리겠습니다.”

내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모두들 나의 말뜻을 생각하고 있는 찰나였다.

“뭡니까?”

내가 그를 지목하자, 직원이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고 그가 말했다.

“넥도날드, 아시아 태평양 지사장 찰스 월런입니다. 기획하신 축제에 모든 비용을 저희가 내겠습니다.”

화끈한 게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식으로 대답해줬다.

“그럼 우리는 넥도날드에 내려줄 메뉴부터 준비하면 되겠네요.”

내가 그 말을 내뱉었을 땐, 무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댔다.

“여기요! 셰프님! 여기 좀 봐주세요!”

“반유현 셰프님! 오레오 피자에서도 모든 걸 지원하겠습니다!”

“런던바게트 마케팅 총괄 사장입니다! 저희도 모든 디저트를 지원해 보이겠……!”

***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업체의 고위급 관계자들이 애걸복걸하며 손을 들고 소리치는 모습들이 모두


방영되었다.

그에 따라 관심은 모두 제리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게 될 축제로 쏠렸다.

“준비들은 다 됐나.”

그리고 오늘은 그 메뉴 테이스팅이 열리는 자리였다.

“시간상, 팝업 레스토랑 네 곳을 들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제외하면 모든 요리들을 그대로


베껴왔습니다.”

아프리카에 열어두었던 팝업 레스토랑들이 가까운 거리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네 곳을 방문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다.

“그래도, 네가 1 등 했잖아.”

아프리카 축제에서 팝업 레스토랑에 방문해 도장을 가장 많이 찍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브랜드 반유현 VIP
티켓을 얻은 장본인이 제리였다.

그만큼 노력을 했다는 것 아니겠나.

“전 세계인들이 다시 몰릴 거야. 이번 축제, 그리고 프랜차이즈 업체들로 인한 파급력을 생각하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이제 은퇴가 코앞이니까.”
‘은퇴’라는 단어를 말하자 제리와 내 옆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너희들은 평생 일하려고?”

100 년 동안 일해보면 안다. 일하는 즐거움은 개뿔.

“나는 서른 살 되기 전에 은퇴할 거야.”

내가 말한 은퇴가 미슐랭 스타를 얻어 환생을 멈추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직원들은 내가 농담을 하고


있는 줄 알고 하하, 허허 하며 웃기 시작했다.

“진짠데.”

그 말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160 화. 막을 수 없음 (1)

계획은 역시나 파워풀하게 실행되었다.

넥도날드에는 나의 이름을 딴 메뉴를 만들어 줬는데, 이는 다른 프랜차이즈 기업들로 하여금 엉덩이를


가만히 붙이고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 백원종-반유현 보보티 버거! 성공적인 런칭! ]

실제로 내가 넥도날드에 레시피를 알려주었고, 그것이 그대로 메뉴로 나온 건 프랜차이즈 및 요식 업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광고, 협찬, 각종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던 내가 직접 메뉴를 만들고 이름을 걸게


해주었다는 그 사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 넥도날드 연일 상한가! ]

[ 넥도날드의 경영진 문제로 몰락 예견하던 세계 최대 투자자 위넬 버핏 “반유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

그 뒤로는 여러 가지 현상이 벌어졌다.

[ 100 년 역사의 기업을 쥐고 흔드는 반유현! ]

넥도날드는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 이런 기사들이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 오레오 피자, KKC 치킨, 아웃버그 패밀리 레스토랑, 반유현에게 모두 러브콜! ]

다른 기업들은 그것마저 상관없다는 듯이 대놓고 줄을 섰다.

[ ‘백반보보티’ 버거! 연일 품절, 넥도날드 본사 “더 많은 고객들이 버거의 맛을 볼 수 있도록 노력.”


]

백원종과 나의 이름의 성씨를 합쳐, 백반.

그리고 그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에서 선보였던 ‘보보티’라는 요리를 버거 형식으로 만들었다.

“대표님 덕분에 더 잘된 것 같습니다.”


-아이고. 내 이름은 좀 빼지 그랬어. 몸 둘 바를 모르겠네. 하하하!

소고기와 어린 양고기를 다져, 그 위에 계란을 올려 오븐에 굽는 방식인 보보티.

나는 백원종이 만든 그 레시피에 치즈를 섞고, 향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인 뒤 계란의 식감을 더


부드럽게 해서 만들었었다.

마침, 그 레시피가 넥도날드가 지향하는 버거의 맛과도 유사하다고 느껴 그 레시피를 그대로 넥도날드에
전수했다.

그에 따라 약속한 대로 넥도날드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 축소판에 대한 모든


경제적 지원을 해주었다.

“맨 처음 대표님의 요리에서 영감을 받았으니 당연히 대표님의 성함이 들어가야지요.”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반셰프 밖에 없을 거야! 하하하하!

메뉴에 백원종의 이름을 함께 넣는 것을 넥도날드 측에서도 흔쾌히 수락했다.

도의적으로 백원종의 이름을 넣어, 그의 인지도와 명성을 올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을 나의 이름과 함께 넣어준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네, 대표님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꿍꿍이가 있겠지요.”

-뭔데 그려? 또 무섭게?

“나중에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계획상 백원종이라는 이름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야 될 필요가 있었다.

그 장본인은 아직 그 이유에 대해 모르겠지만.

-뭐, 뭔데! 말을 해줘야지! 안 그러면 내 이름 다시 빼야겠어유!

“빼긴 뭘 뺍니까. 대표님. 다 좋은 일이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백원종은 겁에 질린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받아들이기엔 아직 그 무게감을 버티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시아에 설립될 ‘반유현 팩토리’의 교장이자 총괄책임으로 백원종을 앉히겠다는 내
멋들어진 계획을 아직 그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에게 말하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었다.

쾅쾅쾅!

백원종과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앉아있는 방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제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제리가 들어와 내게 인사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축제가 나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 최종 보고를 받으러 나를 찾아온 것이다.

“진행상황은 문제없나.”

“모든 메뉴들 준비해놨고, 제 밑의 셰프들도 만반의 준비를 맞춰두었습니다. 제게 개인적으로도 제안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럼 됐어. 메뉴 테이스팅도 다 됐으니까. 내가 도와줄 게 있나?”

내 질문에 머뭇거리다 대답을 한 제리였다.

“……아, 그게…….”

“뭐, 런칭 계획?”

당연하게도 제리의 주요 관심사는 이 축제가 아니라, 축제가 끝난 뒤에 자신이 오픈할 레스토랑이겠지.

“그렇습니다. 축제가 끝나면, 계획대로 이제 제가 총괄하는 레스토랑의 오픈 준비가 되어야 할 텐데,


일정은 문제없습니다. 저희가 또 잠을 자지 않고…….”

“그 주제를 왜 말해주지 않냐 이 말이야?”

레스토랑의 오픈 계획만 큼지막하게 잡아놓고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는 나에게 답답함을 표현하는


제리였다.

나는 곧장 그에게 신문기사 하나를 던져 줬다.

[ 반유현은 왜 아프리카 요리에 주목하는가? ]

[ 연이은 반유현의 행보에, 요식업계 아프리카 요리 뛰어들어! ]

[ 보보티, 하맘…… 반유현의 손 거친 아프리카 요리 영상 조회수 도합 천만 돌파! ]

“무슨 요리를 해야 될지 다 정해진 것 아니야?”

전 세계인들의 반응을 보면 제리가 런칭하게 될 레스토랑의 주된 테마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 세계인들이 내가 만든, 아니면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아프리카 요리를 먹어보고 싶어


하잖아.”

“그, 그렇습니다!”

“레스토랑의 역사가 깊지 않아도, 그 레스토랑이 단숨에 미슐랭 평가 리스트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이 뭔지


알아?”

“화제성입니다.”

“그래, 화제성, 내가 매번 레스토랑을 런칭한 그 해에 미슐랭 스타를 얻을 수 있던 비결이야. 물론 맛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렇게나 세계인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아프리카 요리를 주된 테마로 하지 않는 레스토랑을


런칭해야 될 이유가 있을까.

“시작부터 이렇게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그 반응과 연결 지어서 곧장 아프리카 요리를 테마로 한
레스토랑을 준비한다. 재료의 질을 높이고, 조리법은 현대식으로 무장한 아프리카 요리. 너도 봐서
알겠지만, 그 대륙의 모든 요리들에는 이유가 있고 그에 따른 가치가 있었잖아.”

지금의 상황을 정리한 내 말대로, 여태까지 내가 런칭한 레스토랑 중,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출발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고민할 게 있나. 제리,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 요리를 전문으로 해서 미슐랭 스타를 받아내는 셰프가
되라.”

“예! 셰프!”

“쓰리스타.”

***

라스베이거스는 또 한 번 뜨겁게 열기를 모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 축제에 참여하고 싶지만 참여하지 못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 라스베이거스에서 재연되는 아프리카의 뜨거움! ]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특징을, 직업으로 묶어 본다면 크게 두 가지의 직업군이 나올 수 있었다.

[ 라스베이거스행 항공권의 가격대가 오른 건 올해 들어 두 번! 두 번 모두 반유현의 직접적 영향 ]

[ 요리의 신, 반유현에 의해 라스베이거스 요식의 성지로 굳어지는 중! ]

첫 번째는 앞서 말했듯이 관광객들이었다.

먹고, 놀고 경험하는 것이 좋아 라스베이거스에 온 사람들.

내가 주는 특별한 경험들이 좋아, 그저 나의 요리를 찾는 사람들.

저마다 평온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개 이런 부류였다.

두 번째는 이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이 축제에 자신이 얻어갈 것이 없는가를 찾는 부류들이었다.

그에 가장 많이 포함된 직업군은 단연 셰프들이었다.

“셰프들이 관광객들보다 더 신나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셰프들의 축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셰프라면 당연히 이 축제에 참여하고 싶었을 것이니 그들이 이 축제의 현장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 또한 오히려 요리를 배우고 싶어 제 발로 찾아와 공부를 하는 저 셰프들의 모습을 보고, 업계 최장의


선배로서 기특함과 연민이 들기도 했다.

나도 1 회차 인생 때는 저런 식으로 요리에 대한 시야를 넓히려 했으니까.

“이렇듯 셰프들이 몰렸다는 건, 대중들이 나의 요리에 엄청난 관심을 쏟고 있다는 말도 되니까.”


더군다나 자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프리카 요리들이 전 세계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셰프들은
아프리카 요리들을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맛보기 시작했다.

각 기업, 또는 프랜차이즈, 또는 개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직군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셰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요리를 먹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와…….”

“이런 맛이 그 대륙에 있었어?”

심지어, 이태리, 프렌치 정통 요리만을 요리라고 알던 셰프들도 다양한 레시피와 향신료가 가미된
아프리카 요리에 새롭게 눈을 떴다.

“이, 이건 혁명이야!”

관광객들도 즐거움에 흠뻑 취해있었지만, 요리를 전공하고 수학하는 셰프들에겐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었을 테다.

대중적으로 쓰이는 재료나 조리법들이 아프리카 요리에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쓰이는 것들이 많았을
테니까. 나는 그것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더 신선하고 충격적인 요리를 만들어냈다.

그게 지금 각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70 개의 아프리카 요리였고.

“셰프님. 저렇듯 카메라로 사진 찍고 메모하는 셰프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오스틴이 말했다.

“왜.”

“아마도…… 저 셰프들이 인터넷상에 ‘반유현 레시피’라고 하면서 셰프님의 요리법인 척 올려서


조회수를 얻거나, 다른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스틴의 말은, 저들 중에는 순수하게 요리 자체를 공부하는 셰프들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셰프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만 한 번 보시겠어요?”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에 접속한 오스틴은 내게 몇 가지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 반유현 요리 따라 하기! 그대로 따라 하면 집에서도 반유현의 요리를! ]

[ 반유현-옐로 모든 메뉴 레시피 공개! ]

[ 반유현-그린, 그 비법 공개! ]

“저희는 아무런 공개도 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셰프님의 명성에…….”

“언젠가 정리는 하려고 했더만…….”

매번 삶 나의 레시피를 모방하여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번 생은 그 정도가 심한 것도 사실이었다.
‘반유현’, ‘조리법’이라는 단어만 붙여도 꽤나 쏠쏠한 조회수가 나왔기 때문이었는데, 오스틴의 눈에는
카메라를 들고 요리를 맛보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적는 셰프들이 그렇게 보였나 보다.

“내가 직접 등판할까 그럼?”

“예?”

“우투브? 그거 채널 하나 만들어라. 가짜들 청소하게.”

이제는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에 거를 것이 없다.

정확히 무슨 말이냐면, 모두 나의 행보에 고개를 저절로 끄덕였고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바쁘긴 한데, 이참에 네 말대로 나를 모방하는 사람들을 정리해도 되겠어.”

이번 삶에도 언제쯤 뿌리를 뽑으려고 했는데, 생각난 바로 지금 해결해야겠다.

161 화. 막을 수 없음 (2)

“정말 가능하시겠습니까?”

반유현팀의 보좌진들과 반유현 팩토리의 경영진들, 그리고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지휘급 셰프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였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만 해도…….”

회의실 맨 앞, 그곳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여러 개의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반유현 팩토리 이스라엘, 대한민국 교수진 구성.

-제리 셰프 라스베이거스 레스토랑 런칭.

-라스베이거스 레스토랑 런칭에 따른 그랜드 오프닝 준비.

…-반유현 식자재 마트 확장, 공장 부지 계약.

-오미노 피자, bibiQ 치킨 메뉴 개발 및 전수.

…생략.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큰 제목만을 붙여놓은 것이라, 저 큰 제목 안의 소제목들만을 썼으면, 몇


페이지가 됐을 것이다.

“셰프님께서 쓰러지실까 걱정됩니다.”

지난 삶에도, 지지난 삶에도 이렇듯 많은 일들을 파워풀하게 진행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따라 내가 느끼는 피로도가 나를 따르는 직원들에게도 느껴졌는지 이들은 나를 걱정했다.

“내가 하지 못할 일을 마구잡이로 벌이는…… 그런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

물론, 피로한 것은 맞지만 모든 일들은 내 손아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오스틴.”

“예!”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작업 진행상황 보고해봐.”

오스틴이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프로젝트에서 가장 먼저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진행상황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네가 말한 진행상황 중에, 내가 모르고 있는 게 있나? 나에게 새로 업데이트 해줘야 할 상황


말이야.”

“없습니다!”

나는 그 다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메이.”

“예! 셰프!”

“라스베이거스 최고, 뷔페, 반유현 레인보우의 현재 매출, 상황, 비전…… 싹 다 보고해.”

메이도 오스틴에게 지지 않기라도 한 듯이 모든 것을 말했다.

“방금 네가 말한 메뉴들 중 내가 테이스팅 하지 않은 메뉴가 있나?”

“없습니다 셰프!”

“내가 모르는 레시피로 조리된 메뉴가 있나?”

“없습니다 셰프!”

그리고, 나의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제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일어나 말했다.

“현재, 라스베이거스 레스토랑 런칭 사업건에 대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내가 모르고 있는 상황이 있나?”

“없습니다!”

“그럼 됐어.”

내가 모든 상황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회의 주제가 바뀌었다.

“피곤하기야 하지. 그런데, 내가 벌일 수 있을 만큼의 역량까지만 하는 거야.”

이미 나의 참모들이라 할 수 있는 오스틴, 제리, 메이, 포시즌스의 로만…… 그 외의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완벽히 알기 때문에 나는 더 일을 벌인다.

“우튜브. 가짜들이 너무 많으니까 정리할 필요가 있잖아. 편집팀 만들어. 제대로.”

내 말에 나에게 걱정을 표하던 직원들이 모두 머리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자신들이 경솔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이 말이다.


“편집팀 만들라고, 왜 아무도 대답이 없어?”

내가 그 말을 하자, 오스틴이 스크린에 비친 화면을 바꾸었다.

-기업

-방송국

-봉사단체

-광고

-셰프

-팬

…“각종 단체, 조직, 개인들에게 온 메일을 분류한 카테고리입니다. 방송국 분류를 보시면, 현재
셰프님께서 구상하신 아이디어를 방송국 측과 협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구상하고 있는 생각이라 함은 단순했다.

각종 온라인 매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반유현 레시피’, ‘반유현 비법’, ‘반유현 맛의 비밀’, ‘
반유현 조리법’ 등…… 내가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은 가짜 정보들을 모조리 청소할 수 있는 계획.

“대형 방송사를 통해 셰프님께서 직접 조리법과 레시피를 공개한다면 보다 더 파워풀하리라 생각됩니다.”

내가 직접 화면에 나와서 레시피와 조리법을 보여준다면, 그간 나의 이름을 빌려 조회수를 먹고 자라났던


가짜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 방법으로 오스틴은 우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보다 방송사를 직접 이용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오스틴 선배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방송사가 가진 방송장비와 스텝들을 일개 우튜브 채널이 이길 수


없으니까요.”

그들의 말이 합리적이긴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 이름으로 그 방송사가 성장하는 것은? 무슨 값을 받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행하는 행동들이 항상 나의 성장에 밑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나는 내 행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아야 한다.

“내 이름 앞에 줄 선 방송사가 몇 갠데…….”

그런 관점에서 내가 방송에 출연했을 때, 방송사가 얻는 이익이 내가 가짜들을 청소하는 이익보다 크다는


판단이고, 방송사가 나를 출연시킴으로써 오히려 내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그걸 지불할 방송사들이 있나? 콧대 높아서.”

“찾으면 당연히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전권을 나에게 줄 방송사가 있나 찾아봐.”


전권이라 함은, 나의 결정 안에서 스텝들이 쓰이고 모든 결정권한이 나에게 있으며 그 프로그램에 의해
발생한 수입들의 대부분이 내 것이란 말이었다.

“아니면, 우튜브 채널 개설하자고.”

“예! 셰프!”

***

“나…… 이런 참 나!”

“흠.”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표정을 찡그린 상태로 회의를 진행했다.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FOX.

오래전 갑질 논란으로 반유현과 잘못된 관계를 맺었었고, 그에 따라 엄청난 피해를 입은 방송사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 계속해서 거대해지고 있는 반유현의 영향력 탓에 그때의 꼬리표가 계속해서 붙어


따라왔다.

잊을 만하면 반유현은 계속해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냈으니까.

“그래도 이건 기회 아닙니까? 아무 방송사도 반유현 셰프의 제안에 쉽사리 응답하기 어려울 겁니다.”

때마침, FOX 사에게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 제안이 들어왔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회사 인프라의 전권을 넘겨주고, 발생 비용을 제한 대부분의 수익까지


넘겨주는 조건으로 반유현 레시피와 그 조리법에 관한 컨텐츠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만,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그 사안에 대해 결정할 수 없었다.

“저희 또한 국장님, 본부장님, 부사장님…… 모두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업이 아닌 방송사 특성상 보다 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따라야 했다.

더군다나 이전에 반유현과 좋지 않은 관계를 맺었던 방송사 특성상 노골적으로 어떤 이익을 따르는 것
같이 사람들에게 보여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역발상으로, 모든 방송사들도 그럴 테니 저희가 선수를 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셰프’의 메인 PD 스티븐 리가 말했다.

이전 반유현 셰프의 다큐 영상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라스트 테이블’을 만들어 FOX 사를 갑질 방송사를 만들어 몰락게 한 PD 와는 다르게, 확실히 반유현을
가까이에서 봐왔고 그를 조금이나마 연구해봤던 PD.

그는 이번 기회가 다시 오지 않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그 사건 이후로 죽었던 쿡방을 다시 꽃피울 수 있을 만한…….”

“반유현 셰프에 대해선 나도 잘 알지만, 어떻게 한 명의 셰프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라면 반유현 셰프를 잘 모르시는 겁니다. 그는 할 수 있습니다. 쿡방의 부흥을요.
그가 레시피와 요리비법 같은 것을 공식적으로 저희 방송사를 통해 송출한다면…… 아마 대중들뿐만
아니라, 셰프들, 사업가들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저희 채널을 찾을 것입니다. 그 파급력은 또 어떻게
이어지겠습니까. 당장의 수익을 브랜드 ‘반유현’에 내어주더라도 장기적으로 대단한 이익이 될
것입니다.”

다 맞는 말이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경영진들이었다.

만에 하나, 반유현의 컨텐츠가 실패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면?

반유현의 실력과 영향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한 명에게 그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반유현이 내건 조건처럼 PD, 작가, 각 분야의 스텝들, 그리고 장비까지 모두 내어주는 꼴이 대중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 조건들 또한 실험입니다. 반유현 셰프는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어하니까요. 조금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자네가 그를 가까이에서 봐서 알겠지만…… 아니, 우리도 충분히 반유현의 영향력에 대해 이해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네. 그렇게 쉽게 결정 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야.”

“후……. 저도 각 방송부서의 부장님들과 국장님들께서 결정을 쉽게 못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게 결정될 때쯤엔 늦을 겁니다. 다른 방송사들도 결정을 내렸을 테니까요.”

스티븐은 답답했다.

반유현. 두말하면 입 아플 그 이름이다.

그가 내건 조건에 의하면, 대중들에게 비치는 방송사의 이미지도 그렇고 당장의 수익이 나진 않을 테지만
분명 결국엔 엄청난 이득이 될 것이다.

천천히 생각해보고 결정할 때쯤엔 세계 각국의 방송사들이 반유현에게 더 큰 것들을 내밀며 제안을 할
테고, 그럼 때는 이미 늦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부터는 제 살 파먹기가 되는 건데.’

다른 방송국들이 제안하기 전에 먼저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찬스라 생각한


스티븐은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반유현…… 그 이름 세 글자는 쿡방의 또 다른 부흥을 불러올 컨텐츠야.’

***

[ 반유현 TV 개설! ]

[ 우튜브 공식 채널 이름 나와! 반유현 실제 출연하나? ]

[ 반유현측 그 어떤 코멘트도 없어! ]

[ 아프리카 축제와 라스베이거스 축제에 연이어! 또 다른 바람 불어올 것인가! ]

[ 동영상 업로드되지 않았음에도 구독자 5 만 명 돌파! ]


내 우튜브 채널이 개설되었다.

채널만 만들었음에도 이렇듯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었던 건…… 내가 전 세계 수많은 방송사들에게 제안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제안을 보낸 뒤에 이런 말을 다시금 했기 때문이다.

-저희 브랜드 ‘반유현’은 마음을 함께할 방송사를 물색하던 중, 시간이 계속 지체되어 그 어떤


방송사와도 협업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귀사가 보내주신 응원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에 따라 방송사들은 또 기사들을 찍어냈고, 대중들은 동영상을 찾지 않고도 내 채널에 구독을 눌렀다.

[ 세계 최초 동영상 없는 우튜브 채널 구독자 하루 만에 8 만 명 돌파! ]

내가 직접 내뱉는 레시피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했다.

“벌써 대박 났습니다. 셰프님. 이건 팬들을 위해서라도 왜 채널을 오픈했는지 발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정식적이진 않지만, 당장 동영상 촬영과 편집을 문제없이 해낼 직원들을 뽑아놨고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거기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

“나 반유현 셰프님이랑 아는 사이라고!”

“어허! 어딜……! 원래 개나 소나 다 셰프님과 아는 사이라고들 해. 시나리오 잘 못 써왔어.”

분명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 경호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소리였다.

“또 뭐야…….”

급하게 전화기를 든 오스틴이 금방 답을 가져왔다.

“방송사 FOX 의 ‘더셰프’ 스티븐 리 PD 라는데요?”

“그분이 여길 왜 왔지? 당장 들여보내.”

오스틴이 다시 전화기를 들었고 불과 수 분 이내에, 스티븐 리가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하이고…… 후. 셰프님…… 들어오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PD 님 연락을 하시지 어째서…….”

“도통 연락이 되어야죠. 그렇게나 유명한 셰프님인데, 전화를 제가 몇 통이나 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고개를 좌우로 젖는 스티븐.

이전에 쓰던 번호는 비니지스 용으로 직원들이 관리하기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다.


방송사 PD 들에겐 수없이 전화가 왔기에, 스티븐의 전화도 직원들은 중요한 전화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무시해왔다고 귓속말을 하는 오스틴이었다.

“흠. 어쨌든 죄송합니다 PD 님 그런데, 어쩐 일로…….”

경호원과의 실랑이에 숨이 차 헉헉대던 스티븐 리가 깊게 숨을 들이쉰 뒤에 말했다.

“방송 장비, 구도, 분업 등…… 모두 형편없네요. 제가 총괄해서 컨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기회를
주시는 게 어떻겠어요? 제 커리어나 스펙이라면 아실 테고…… 제게 오는 이득은 필요 없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다 가지세요. 저는 그냥 반유현 셰프님의 개인 채널에 함께했다는 것만 있으면 됩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머리 회전이 빠르고 본능적으로, 공격적으로, 진취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나는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간 방송국 PD 의 경험을 살려 반유현 TV 의 총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합니다.”

162 화. 막을 수 없음 (3)

[ 동영상 하나 없이 채널 개설 3 일 만에 구독자 25 만 돌파! ]

채널 정보에 반유현의 특별한 레시피를 공개하겠다 적어놓았더니, 구독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졌다.

[ 세계 최대 영화 제작사 Metol 반유현에게 모든 제작비, 스텝 지원 제안! ]

[ 세계 최대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NOTFLIX 독점 제안? 개런티는 과연 얼마? ]

[ 시작부터 온라인 매체까지 접수해 버린 반유현! 셰프의 힘이란 ]

그렇게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고 나서는, 다시 한번 기업들이 움직인다.

수많은 기업들이 내게 달콤한 제안을 해오고, 그 다음엔 그것들을 본 사람들이 움직인다.

“제 생각에는 스티븐 리 PD 가 셰프님과 일해 본 경험이 있고, 실력, 경험 모든 것이 뛰어나지만 그와


견줄 수 있는 수많은 인력들이 있습니다.”

동영상 하나 없는 채널, 쉽게 말하면 노출하나 없는 채널이 구독자 25 만을 넘어선, 플랫폼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에 스티븐 리 PD 만큼이나 쟁쟁한 실력을 가진 영상, 편집계 인물들이 내 앞으로 모여들었다.

반유현팀의 직원들은 내가 매번 하던 방식대로 그 쟁쟁한 실력을 가진 PD 들끼리 경쟁시켜 더 높은 실력을


가진 사람을 뽑아야 된다고 말했다.

“됐어.”

내 생각은 달랐다.

촬영하고 그 영상을 다루는 실력에 큰 차이가 없다면 마음을 크게 쓰고 있는 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스티븐 리는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곳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총괄한 사람이었으며, 한


때는 ‘더 셰프’라는 요리 프로로 전 세계 쿡방 열풍을 만들어온 장본인이었다.

“본부장, 국장, 승진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고작 내 우튜브 채널을
관리하겠데. 물론, 지금에서야 또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아 내 채널이 성공하리란 것이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는 그 전부터 가치 판단을 똑바로 한 거야.”

더군다나, 스티븐 리는 그 어떤 기업보다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인 이였다.

이미 내 채널에 많은 구독자 수가 붙기 전부터, 제 발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그 의지 또한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니까.

또, 그가 회사를 박차고 나올 때 그를 따라 나온 스텝들이 여섯 명이나 된다고 했다.

“작가, 카메라, 조명 등등 그를 평소에 따르던 직원들도 함께 회사를 때려치웠어. 내가 그를 품지 않고


다른 PD 들과 경쟁을 시키는 건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있지 않나?”

직원들은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촬영 및 편집팀은 그렇게 구성된 거고, 내일부터 촬영 들어가면 되는 거야.”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영상을 찍어 올려야 하나…….”

어떤 컨텐츠를 담을지 고민하는데, 그 고민마저도 금방 끝나버렸다.

“스티븐 감독님한테 전해. 내일 당장 찍을 컨텐츠가 뭐냐고.”

***

스티븐에게 그렇게 숙제를 던져놓고 나는 라스베이거스에 마련된 사무실을 나왔다.

“일할 게 산더미네. 일단, 제리한테 가자.”

차에 올랐고 나는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높은 층고에 다다르자 라스베이거스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 도시에 일하는 모든 사람, 기업, 레스토랑들이 나의 존재를 가슴 묵직하게 알고 있다는 것에 새삼


즐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빠진 사색에서 깨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땐,

[ 반유현 - 레인보우 ]

메이가 총괄로 있는 레스토랑의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간판이 걸려있는 바로 건너편에 또 다른 간판이 걸려있다.

[ 반유현 - ? ]

그 간판은 내가 또 다른 레스토랑을 런칭할 것이라는 예고였다.

우와아아아앙!

레스토랑 ‘레인보우’ 앞에서 웨이팅을 하던 사람들이 나를 보곤 환호했다.

이제 어디를 가도 이런 소리를 듣게 되어 별 감흥은 없지만.


레스토랑 반유현 앞에서 나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소리는 여느 곳과 달리 열광적이었다.

우와아아아아!

내가 그들에게 짧게 목례를 한 뒤에 ‘?’라고 적혀있는 간판의 문 밑으로 들어갔다.

인테리어는 모두 끝나지 않았지만 주방은 확실하게 공사가 되어있었다.

셰프들이 오픈 전날까지 메뉴에 대한 연구와 테이스팅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리와


세프들이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팔자에도 없던 아프리칸 요리를 하는 것에 불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아닙니다. 요리계에 한 획을 그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뿐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던 축제, 그리고 그것을 축소판으로 라스베이거스에 가져왔던 축제, 그리고 각종
단체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나는 그 긍정적인 분위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내 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을


아프리카 요리로 준비했다.

이는 또 요리업계 역사에도 의미가 있는 행보였는데, 아프리칸 요리를 메인 테마로, 정찬 코스를 만드는


레스토랑은 없었다가…… 요즘 나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칸 파인다이닝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아프리칸 레스토랑이 미슐랭 스타를 얻은
곳은 전 세계에 없었다.

“메뉴는 두 가지 코스로 구성했습니다. 정확히 북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코스입니다. 북아프리카식


코스는 지중해에서 얻은 재료에 쿠민, 사프란, 펜넬씨드, 시나몬…… 등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향신료를 넣어 그 외의 조미료는 최소화할 예정입니다. 재료 본연의 맛과 천연 향신료들의 향을
잘 표현해낼 것입니다. 남아프리카 코스는 육류 요리 위주로 구성되며 각각 그 요리에 걸맞는 채소를
조합하는 것을 테마로 구성했습니다. 당연히 여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같이 계절이 되면 코스를 바꿀
것입니다.”

그 메뉴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내가 대충 언질을 줬는데 제리는 그것들을 모두 정리해 완성시켜 놓은
상태였다.

“메뉴 테이스팅을 해봐야 알겠지만. 준비는 잘 되어가는 것 같군.”

주방의 제리를 따르는 약 스무 명이 넘는 셰프들은 내가 온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 ‘반유현’이 왔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요리에 열중하는 척 열심히 각자의 일들을 하고


있었다.

“다들 솔직해지라고 해라.”

뜨끔한 세프들 몇몇이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코스와 메뉴 구성은 끝났고, 홀 인테리어도 뭐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홍보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매번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마다 그랜드 오프닝이나, 축제를 열었던 나였기에 제리는 그에 버금가는
퍼포먼스를 원했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홍보는 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제리의 기대에 반대되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어. 이 아프리칸 레스토랑이 런칭되는 것을……. 라스베이거스는 물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이제는 강력한 퍼포먼스를 요하는 홍보가 필요 없는 시점이었다.

이미 나에 대한 기대치는 내가 런칭하는 레스토랑이 수용할 만한 수치가 아니었다.

“지금도 복잡한데, 홍보를 뭐하러 해.”

이미 런칭 그 자체로 기자들은 기사를 써 댈 것이며, 대중들은 SNS 에 신나게 내 사진을 포스팅할 것이다.

먹방, 쿡방 우튜버들은 밤을 새우거나, 치열한 예약경쟁을 통해 내 레스토랑에 들어와 음식을 먹곤


저들마다의 감평을 해댈 것이고…….

아무런 홍보 없이, 맨땅에 레스토랑을 설립해도 ‘반유현’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성공하는 것은


정해져 있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너야. 내가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을 누리는 첫 번째 레스토랑. 이전까지는 그 레스토랑


하나하나를 성공시키기 위해 머리 좀 많이 썼었잖아. 귀찮은 방송에도 나가고, 반유현 챌린지라는 것도
만들고, 그랜드 오프닝해서 유명인사들 인사받아주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난
반유현이고, 너는 그 밑에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제리 셰프이며, 우리는 아프리칸 요리를 주된 테마로
레스토랑을 런칭한다. 그게 끝이야.”

나는 그 증거로 실시간으로 떠오른 기사들을 제리에게 보여주었다.

이제껏 런칭한 레스토랑들과 다르게 홍보 없이 런칭한다는 내 생각에 그가 섭섭한 마음을 가질 우려


때문이었다.

[ 반유현 라스베이거스 등장! 그가 곧 런칭할 레스토랑 메뉴 테이스팅 움직임으로 보여! ]

[ 새로운 레스토랑 맡게 될 제리 셰프! 긴장한 모습으로 출근하는 모습 ]

[ 반유현의 잦은 등장은 레스토랑 오픈의 신호탄? ]

[ 반유현 TV 동영상 없이 구독자 40 만 돌파! ]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셰프님. 제게 이런 것들을 보여주시지 않아도 저는 셰프님의 말을 따를


생각이었습니다. 레스토랑 런칭 일은 언제쯤 하는 게 좋겠습니까.”

“사흘 뒤 최종 메뉴 테이스팅, 나흘 뒤 오픈.”

“예, 예……?”

“대중들, 그리고 셰프들, 그리고 이 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충격을 선사해야 될
숙명을 갖게 된 거야.”

계속해서 쌓이는 기대감에 부담감을 느낀다?

그랬다면 애초에 이렇게 전력질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계속해서 쌓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에, 충격을 더해 더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할 뿐이다.


“자동차 게임으로 따지면 부스터를 계속 써내는 거야.”

“예! 셰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나흘 뒤, 역사에 남을 레스토랑 런칭을 준비하겠습니다.”

“이름은…….”

레스토랑에 간판에 걸릴 이름이라는 단어에는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던 셰프들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었다.

“핑크.”

“예에……? 이름을 반유현 핑크로 하시겠다는……?”

“아프리카 대륙의 열정을 담고 싶은데, 레드는 이미 있는 이름이니까.”

그냥 단순한 작명법이었다.

그런데, 셰프들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더 많은 의미 부여를 원하는 것 같아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피, 핑크가요? 어떻게 핑크라는 색깔이 저랑…….”

***

스티븐 리와 그를 따르는 스텝들의 회의를 시작한 것은 나였다.

“이제, 앞으로 이틀 뒤에 아프리칸 요리를 주된 테마로 하는 레스토랑이 런칭됩니다.”

“촬영은 바로 시작하고, 영상 업로드는 레스토랑 런칭 이후에 하겠습니다.”

스티븐 리는 레스토랑 런칭이라는 중요한 행사와 자신이 기획하고 촬영한 동영상 런칭이 겹쳐 그 빛을
발하지 못할까 봐 일정을 뒤로 미루겠다고 전했다.

“일정도 일정이지만 어떤 컨텐츠로 반유현 TV 를 구성하실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에게 내려주었던 숙제, 오늘은 그것을 검사하는 시간이었다.

“애초에 반유현 TV 를 처음 생각하신 것에 초점을 두고 우리가 다룰 컨텐츠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스티븐 리가 잔잔한 톤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주 단순하지만, 반유현 셰프님이 하신다면 특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컨텐츠…… 그 컨텐츠라면


아무도 따라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스티븐은 우튜브 영상중 하나를 켜서 내게 보여줬다.

“이걸 반유현 셰프님이 하신다면, 역대 최강의 쿡방이 될 것입니다.”

“Wow!”

내 입에서 나온 ‘wow’ 소리에 앉아 있던 전 직원이 스티븐을 향해 박수를 쳤다.

163 화. 막을 수 없음 (4)
“방청객들이 있어야 리액션이 있는 것 아닌가? 우리끼리 요리하고 맛있다고 한들,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 방식을 기획한 겁니다.”

내 비서인 오스틴이 무언가 문제를 발견했다는 듯이 스티븐에게 말했다.

“자신만의 대단한 요리로 프랜차이즈를 일군 요리사…… 또는 장인들의 요리를, 반유현 셰프님께서


수정해주시는 기획……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스티븐이 가져온 기획안은 간단했다.

각 요리 분야에서 가장 잘나가는 전문가, 장인, 명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요리를 먹고 그것을 수정


보완해주는 기획안이었다.

자신의 요리를 나에게 가져온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인 자신과 자신의 요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나아가 반유현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나의 평가를 받는 것이라 함은 인생을 역전할만한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맛있다는 코멘트를 한마디만 한다면, 그의 레스토랑은 3 대가 먹고 살 정도의 많은 손님들을 불러


모을 것이니까.

아프리카 축제 이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들이 나에게 메뉴를 내어달라고 줄을 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요리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유현의 이름을 등에 업고 싶은 욕망을 가져봤을 겁니다. 저는 이번


아프리카 축제 때 확실히 느껴버렸죠. 그리고, 이런 기획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티븐 리도 그 점을 생각해 이런 기획안을 고안해냈다.

“이미 수많은 프랜차이즈 창업주들과 각 요리의 문화재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분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아니…… 제가 말한 문제는…… 우리끼리 연극 하는 것처럼 보여선 안 되는 겁니다.”

오스틴이 제기한 문제도 나름 합당했다.

장인이 스튜디오에 찾아왔고, 내가 그의 요리를 맛보고 평가하며 더 발전시켰다 한들, 그 발전된 요리를
먹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나와 장인, 둘이서 요리를 하고 맛있다느니 맛없다느니 하는 화면이 재밌을 리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해볼 생각이신 거죠?”

“역시……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나의 말에 스티븐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자신이 원했던 말을 내가 해주었다는 듯이, 아주 속 시원한 표정으로.

그와 반면에 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잘 들어. 스티븐 PD 님이 가져오신 기획안…… 아직도 이해 안 된 사람?”

갑자기 싸늘해진 장내.


이것조차 시간 낭비라 생각한 나는 스티븐의 의도를 직접 말해주었다.

“나에게 요리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프랜차이즈를 만든 장본인, 또는 각 요리의 최고라 불리는


이들이야. 내가 수정하고 보완해준 맛은…… 그들의 식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직접 느껴볼 것이고…….”

그렇게까지 말해주자 직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큰 그림이 그려지나? 오스틴, 어떻게 생각해.”

“와……!”

오스틴이 말했다.

“겨, 결국 이 채널을 꾸준히만 이어가서, 수많은 요리사들이 셰프님을 찾아오게 된다면 그들의
레스토랑에 셰프님의 손길이 닿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셰프님은 세계적으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셰프님의 손길이 닿은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고…….”

“그래, 그만해.”

***

이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여태까지의 내 모든 행보가 이


레스토랑과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신발 브랜드의 대단한 인기상품이 출시되는 날, 수많은 사람들이 매장 앞에 줄을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아니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던 핸드폰이 출시되는 날, 그와 같은 현상을 본 이 있을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지금 내가 보는 장면이 그랬다.

“이 정도라면, 바로 앞의 가게인 ‘반유현 레인보우’ 매출에도 타격이 있겠는데요?”

로또 육인방 중 하나였던 제리가 총괄하며, 아프리칸 요리를 메인 테마로 삼은 ‘반유현 핑크’.

조금 과장 보태어, 이 일대의 모든 식당의 손님들을 한곳에 불러놓은 것만 같았다.

레스토랑 오픈 6 시간 전, 나는 레스토랑 ‘반유현’의 정통인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내가 여지껏 런칭한 레스토랑들 중에서, 오픈 6 시간 전에 이렇듯 많은 인파를 동원한 레스토랑은 없었다.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 가장 꼭대기 층에 위치한 내 레스토랑의 대기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졌고 브랜드 ‘반유현’을 예약하는 어플은 서버가 또 다운되어 버렸다.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마다 다운되어버리니, 문제가 많습니다. 개발팀에서 조속히 해결한다고 합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충만한 나마저도, 나를 사랑해주는 고객들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풍경이었다.

“감사할 따름이야.”
바로 건너편 메이가 총괄하고 있는, ‘반유현-레인보우’의 손님까지도 끌어올 것 같은 인파였지만,
오히려 ‘반유현-레인보우’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고객들끼리 눈치 싸움을 한 것 같습니다. ‘반유현-핑크’로 쏠릴 줄 알고 이참에 ‘반유현-레인보우’의


요리를 맛보고자 했던 고객들일 텐데…….”

그렇게 레인보우와 핑크, 포시즌스를 향한 줄이 두 줄로 나열되어있었다.

두두두두두두!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헬기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NSC, 헬기 밑에는 네바다주의 최대 방송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오늘 날, 이 광경을 찍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한 방송사였다.

하기야, 나의 레스토랑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홍보하고 싶어 안달 난 상태였을 테니까.

우와아아아아아!

나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정갈하게 차려 입은 제리와 그를 따르는 셰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했던 코스 A, B 둘 다 가져와.”

A 코스는 중동과 지중해의 영향을 받아 각각의 주요 향신료를 메인으로 구성한 코스였다.

절대 자극적이지 않게 재료와 어울리는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들.

코스 하나하나가 지날 때마다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신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풍미를 높였다.

“A 코스에 있는 무르시아(Mrouzia)? 어린 양고기를 꿀, 생강, 아몬드, 사프란을 발라서 구운 요리……


꿀의 농도가 너무 짙어. 이 코스의 특성상 사프란의 향이 녹진하게 배어들어야 하는데, 꿀의 농도를 낮춰,
아주 미세하게.”

오픈 다섯 시간 전, 이런 피드백을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나의 주방에선 의미가 있다.

이들이 모두 나의 말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실력이 있을뿐더러 나와의 깊은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제리가 나와 깊은 공감대가 있고, 제리를 따르는 이들이 제리와 깊은 공감대가 있는 것이지만.

“B 코스 메추라기를 증기로 찔 때, 꺼내는 시간 조금만 줄여. 수분이 너무 많아. 원래 조리시간에서 2 분


정도만 빼면 되겠어.”

창의력, 코스의 구성,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렸는가 등…….

미슐랭 스타 평가의 잣대를 생각해보면 쓰리스타를 거머쥐게 되어도 손색없을 만한 맛이었다.

아프리카 전 대륙을 잠도 자지 않고 떠돌고, 돌아와서도 꺼지지 않는 주방을 운영했으며, 나를 굳건히


믿는 제리의 저력이란 이런 것일 테다.

내가 이번 생에도 그를 찾은 이유였고.
“이 앞에 자네들 요리를 먹으려고 서있는 사람들 봤지?”

“저희가 한 건 없습니다. 모두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을 보고 줄을 선 것이죠.”

“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는 순간부터는 온전히 여기 주방에 있는 셰프들의 몫이야. 잘해보자. 우리


목표는 미슐랭이다.”

예! 셰프!

셰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여지껏 한 번도 없었던 오픈 전 사람들의 반응 때문인가.

이 셰프들의 기세도 남달랐다.

“런칭 축하한다 제리.”

로또 육인 방으로 브랜드 ‘반유현’이 건재하기 전부터 고생한 제리를 축하해줬다.

“감사합니다! 셰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아버지가 일본에서 카레 장사를 30 년 했고, 그 밑에서 카레를 15 년 배운 뒤, 인도에 가서 카레를 10 년


배운……. 일본, 인도 통틀어 최고의 카레 장인이라고?”

카오스카리.

오사카에 위치한 카레 전문점으로, 현지인을 비롯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이었다.

일본 전역에 40 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 창업주는 1 대 다이켄 켄지.

그는 30 년간 일본 카레의 정통을 세운 자였다.

그리고 그 아들, 다이켄 이사오가 ‘반유현 TV’의 첫 게스트로 확정되었다.

“일본 최고 카레 가문의 첫째아들이 인도 카레의 대가가 되었다……. 캐릭터는 죽여준다.”

다이켄 이사오가 선정된 이유도 그뿐이었다.

카레라는 그 요리 분야에서 그보다 전문가인 사람이 있을까.

전문가가 있더라도 그보다 카레로 알려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카레를 계속해서 개발하는데, 아무래도 그 신메뉴를 반유현 셰프님께 평가받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한 분야의 대가들이 나를 찾아오는 것은 화제성은 당연히 있는 것이고 실제 내 요리실력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카레라는 분야에 정통하지 않더라도 요리는 맛이 우선되는 것이기에, 이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요리를 나에게 내밀 수 있는 것이었다.

“곧 오신다고 합니다. 촬영 준비하겠습니다.”


그 게스트가 도착하는 것부터, 내가 그의 요리를 평가하고 이 요리의 맛을 더 끌어올릴 방법을 제시하는
것까지 모두 라이브.

앞서 말했잖나, 나에 기대감을 거는 고객들에게 그에 더하는 충격을 주면 된다고.

나는 그 방법으로 짜여진 각본 없이 오로지 내 내공과 실력을 담을 수 있는 구성을 하기로 했다.

감독인 스티븐 리는 첫 영상부터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지만, 당연히 무리수 일 리 없었다.

‘내가 먹다 흘린 카레 양이랑, 카레 대부라 불리는 이사오가 먹은 카레 양이랑 비슷할 테니까.’

카레라 함은 흔히 밥에 비벼 먹는 그 카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종 향신료가 섞인 가루를 뭉뚱그려 카레라 부르는데, 대중들이 흔히 입에 붙여 말하다가 우리가 먹는


카레가 된 것이었다.

여러 가지 향신료의 조합들을 100 년 동안 얼마나 많이 조합해 봤을까.

나는 대중적으로 카레에 많이 들어가는 강황가루와도 아주 친했다.

그때, 마침 네 명의 카메라 군단과 한 동양인 남성이 들어왔다.

“반유현 셰프님, 일본어도 사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저를 첫 번째로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다이켄 이사오입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90 도로 꺾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그에게 예를 갖춰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다른 방송 채널들 같은 경우에…… 인터뷰도 하고 여러 가지 구성이 있겠지만, 저희는 그런 게 없습니다.


준비하신 것 바로 조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던 대로 이 방송은 각본 없는 라이브였고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다.

-반유현 포스 보소!!

-와 30 년 요리한 사람이 머리를 바닥에 박네!... ㄷㄷ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유현 님이 가진 미슐랭이 몇 갠데.

-그래도 가문 대대로 카레 요리를 했다는데, 과연....! 

-반유현이 피드백 제대로 주는 거 아니야?

-엥? 카레만 30 년 한 사람한테 줄 피드백이 있을까?

-반유현은 천상계 요리를 하는 사람이니까. 줄 피드백이 있겠지.

그때 이미 구독자 75 만을 넘어섰다.

164 화. 막을 수 없음 (5)

-레스토랑 오픈시켜 놓고 바로 라이브 방송을 하는 그는……


-두둥! 반유현 라이브 실화냐ㅋㅋㅋㅋ

-몸이 열 개라는 설이 있던데.

레스토랑, ‘반유현-핑크’의 오픈과 더불어 라이브 방송을 바로 준비했더니, 그에 대한 반응 또한 심상치


않았다.

나는 대충 댓글창들을 읽어 답해주곤, 요리를 하고 있는 이사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역시나 카레를 준비하셨군요.”

100 년을 살면서, 30 년, 40 년, 한평생 동안 한 요리만을 파고든 장인들의 요리를 숱하게 먹어봤다.

그중에서도 아버지, 할아버지를 따라 가문 대대로 비법을 전수하고 발전시킨 집안의 요리는 내가 먹어봐도
맛이 있었다.

그 깊은 노력과 내공들을 따라 하는 것에는 나조차도 많은 시간을 썼었지만, 무려 100 년이다.

다이켄 집안의 카레에 내가 자신이 있는 이유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레집을 내가 가만히 뒀을 리가.’

몇 번째 삶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집안의 카레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던 적이 있다.

향신료가 섞이는 비율, 양파에서 뽑아내는 단맛의 정도, 육수의 재료들.

하기야, 이렇듯 전 세계 현지인과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요리는 오히려 내가 모르고 있기 힘들다.

100 년 평생, 신선하고 높은 맛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으니까.

‘이번 삶에 아프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찾은 것처럼.’

더군다나 일본은 미슐랭 스타가 가장 많은 나라로, 그 나라의 모든 맛집을 섭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내가 다이켄 집안의 카레 비법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지금 내 앞에선 몇십 년 만에 보는 다이켄 이사오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무슨, 요리 테스트를 보는 건 아니니까요. 저도 세계적인 카레 장인의 요리를


먹게 되니 기대됩니다.”

“하하. 기대해주신다니 긴장되는군요. 우리 카레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반유현’의 명성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유의 저 잔잔한 말투와 말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공손함이 몸에 밴 행동.

‘저 사람 생긴 것과 달리 나이가 많지가 않지.’

흰 머리와 흰 눈썹이 날리는 외모는 나이에 비해 사람을 더 성숙하게끔 만들었다.

“고기를 따로 볶아 넣은 뒤 양파를 볶아 넣으시는군요.”


고기는 다른 팬에 볶고, 양파를 또 다른 팬에 볶은 뒤 그곳에 육수를 추가해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이는
이사오였다.

야채 중 감자가 익은 것을 확인한 이사오는 그곳에 고형 카레를 넣었다.

“고형 카레를 이용하시는 이유는.”

“하하하. 알고 계시면서…… 알고 계시는 분에게 설명할 때, 미천한 제 실력이 나올까 두렵습니다.”

현재는 방송이 되고 있는 상태라, 그래도 먼 길 찾아온 이사오에게 몇 마디 대사라도 해서 자신의 요리를


홍보할 기회를 줬더만, 이사오는 카메라 체질이 아닌 듯했다.

그 말을 바꾸어 말하면 이 인간은 정말 ‘나’라는 사람에게 자신의 요리를 평가받고 싶어 했다.

-ㅋㅋㅋ저렇게 겸손한 장인이 있냐.

-그러게, 자기보다 카레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아무리 반유현이라 한들.

-반유현이 맛보는 것 빨리 보고 싶다!

-반셰프가 무슨 말을 할지 핵궁금……!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요리 이제 내꺼’ 스킬 발동할 듯.

내가 다이켄 집안의 카레 맛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사오는 어떻게 알고 30 년


역사의 자존심을 버리고 나를 찾아왔는지도 궁금해졌다.

저런 게 인간의 촉이라는 건가. 100 년을 살며 느낀 건 진짜, 촉이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요리가 다 완성되었고, 이사오는 접시에 카레를 담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수저를 들고 입에 그 요리를 입에 넣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수많은 채팅창.

-간다아아아!

-표정봐! 저 오묘한 표정ㅋㅋㅋ

-다른 먹방러들보다 반유현이 한 입 먹는 게 더 좋음.

-먹방도 해라 반유현!!! 

……

“흠.”

-뭐야!! 만족한건가?

-ㅋㅋㅋ 설마 반유현이 만족하겠냐.

-만족할 수도 있지. 30 년 장인의 요리인데.


-www.e-kcook.co.kr 여기 보고 오셈, 반유현 신인시절 오리 요리 장인한테 훈수 두는 것 ㄷㄷ

내가 한국인으로 환생하자마자 요리 대회에 참여했을 때, 오리 장인이라고 불렸던 김해숙과 최감순…… 그


아줌마들을 오리 요리로 이겨내는 영상까지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었다.

“맛있네요 역시…….”

두말할 것 없는 맛이었다.

30 년 세월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헐!ㅋㅋㅋㅋ 반유현이 맛있대.

-저 집 장사 대박 나겠네.

-대박 정도냐 대대손손 잘 먹고 잘살겠지.

“그 집안 비법의 카레와 육수…… 고소한 맛이 일품인 카레입니다.”

이사오도 내 말에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 정도의 양은 다이켄 집안의 비법 없이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간 흠칫한 이사오의 표정이 느껴졌다.

“딱 1 인분, 단 한 명을 만족시키는 맛은 조미료, 향신료, 각 재료들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 세밀한 양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한 요리로 열 명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단 한 명만을 만족시키는 요리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을 말했다.

아주 미묘한 맛의 차이를 낼 수 있는 집중력과 정성의 양을 비교하자면 당연히 그랬다.

“저희 가문의 카레, 그 맛을 따라 할 수 있으시다는 말인가요?”

아마도, 그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어렵고 어렵게 전수 받은 이 카레에 버금가는 맛을 따라 할 수 있다는 내 말이 놀랍기도 하고,


많은 의심이 들었을 터였다.

“방금 제가 먹은 이 맛을 10 인분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보다 더 맛있게요.”

장인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당연히 있지만, 내가 이 말을 뱉음으로써 그가 얻게 될


이익은 분명하다.

-뭔데!!!

-허걱스.

-반유현 ㅅㅂ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고 또!!!!!

-ㅋㅋㅋㅋㅋㅋㅋ 개쩐다. 첫 방송부터.

내가 그를 보곤 아무 말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그는 자신에게 내가 한 말 자체가 무슨 이익으로 돌아올지 모를 테니까.


***

“고형 카레의 성분이라 함은, 팜유입니다. 코코넛 기름이라고도 불리는 기름을 카레 가루에 섞은 다음
뭉쳐 놓은 것이죠.”

마트에 가면 가루 카레와 고형 카레가 있다.

고형 카레는 단어 뜻 그대로 고체 형태의 카레이다.

큐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끓는 물에 넣으면 녹아서, 우리가 알고 있는 카레가 된다.

“기름으로 뭉쳐 놓은 카레는 고소한 풍미를 담습니다. 더군다나 다이켄 집안의 특별 레시피로 코코넛
기름을 만들었을 테고, 아울러 카레 가루 또한 특별 레시피로 만들었을 테니…… 그렇게 뭉쳐진 고형
카레는 강력한 맛을 내겠지요. 그런데 그 기름 덕분에 베이스가 되어야 할 양파의 단맛이 너무
적습니다.”

이 카레의 강력한 맛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테지만, 한계가 있었다.

더 높은 맛의 차원을 이끌어낼 수 없는 한계.

“더군다나 네모난 이 카레, 용량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겁니다.”

사각형 큐브 모양의 형태는,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다이켄 집안의 프랜차이즈에 가문 본토의 맛을


전하기에는 제격이었지만, 그 고형 카레를 만드는 기름의 고소한 풍미에 야채와 양파의 풍미들이 가려졌고,
보다 더 세밀한 맛을 만들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최대한 맛을 깎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 이 맛을 전달한 방법을 찾다 보니…….”

“대용량으로, 쉽게 맛을 전달하기 위해 고형 카레를 쓴 것을 이해는 합니다만.”

그렇게 말하곤 나는 소매를 걷었다.

-시작이다! 가즈아 반유현!

-와…… 30 년 장인 앞에서 말 안 떠는 것 보소.

-진짜 대박이네ㅋㅋㅋ! 어떻게 저래.

-소매 걷었다!!!

-ㅋㅋㅋㅋㅋ반유현의 소매 걷기 스킬.

어쩌다 보니 조리복의 소매를 걷는 것이, 내가 요리를 하기 직전의 시그널이라는 것이 전 세계에


퍼져있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감이 올라갔다.

-구독자 100 만 돌파!!!!!!

-채널 개설 일주일도 안 돼서 100 만 돌파! ㅋㅋㅋㅋ

-레전드…….

우튜브 플랫폼에서는 구독자 10 만에는 실버노트, 100 만에는 골드노트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수여해
주는데 10 만의 실버노트를 받기도 전에 골드노트까지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었다.

뭐, 사람들의 반응은 그렇게 퍼지다가도 다시 내가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모아졌다.

나는 껍질 깐 양파를 대형 육수 통에 그대로 넣고 끓였다.

“삼십 분이 넘어가면 이제 양파에서 물이 계속 나오기 시작합니다. 육수 냄비에 물 한 방울 안 넣었는데


벌써 흥건해졌죠.”

양파는 카레의 단맛을 내는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재료이기에, 이때까지는 내가 무슨 특별한 조리법을


가졌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말한 양파 맛의 존재를 높이는데 어떻게 작용할지 몰랐을 것이다.

“대부분 카레 집들은 양파를 볶아서, 단맛을 최대한 낸 다음 그곳에 육수와 각종 야채, 그리고 카레를
넣습니다.”

나는 육수통에서 나온 양파들을 모두 건져, 그 국물만을 남겼다.

그리고 내 뒤편의 조리대로 이동했다.

수많은 향신료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을 다이켄 집안의 카레 가루에 첨가했다.

“!”

이사오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슐랭의 맛은 그렇습니다.”

이 카레의 부족한 맛을 채우려는 것이 아닌, 미슐랭의 기준에 부합하려면이라고 말했다.

그 가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발언을 중간중간 섞어주어야 하지 않겠나.

후우우욱!

나는 내가 제조한 카레 가루에 양파물을 넣고 버무리기 시작했다.

“양파의 단맛이 카레에 진득하게 배어 나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아…… 그 방법은…….”

“이대로 숙성시키고, 잠시 후 뵙겠습니다!”

-으악! 안돼!

-어디가!ㅋㅋㅋㅋ

-광고라도 있나?

***

잠시 후 뵙겠다는 말을 했지만.

방송은 그렇게 끝났다.


내 카레의 맛을 다이켄 이사오가 먹고 놀라는 장면들은 방영되지 않았다.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하이라이트가 만들어질 장면들이 많았다.

-아, 아니…….

-어, 어떻게! 반유현 셰프님!

-카레를 원래 연구하신 겁니까?

-이건……! 미, 친! 양파의 단맛이 입안 가득히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면서…… 카레의 향과 담겨있는


앞다리살의 육즙…… 이 또한 모든 게…….

그가 내 카레를 먹고 뱉었던 말이었다.

육수통에 끓여놓은 양파 물과 내가 향신료들의 밸런스를 조절해 직접 섞어 만든 카레를 섞은 반죽은


대용량으로 전 세계에 있는 지점에도 보낼 수 있고, 그 양 또한 지정해 줄 수 있었다.

“지정된 수저로, 1 인분은 양파물 반죽 두 스푼.”

고형 카레를 넣는 것과 같지만, 그 세밀한 양까지 조절할 수 있었다.

“더 강한 향을 원하면 세 스푼 반……. 또는 세 스푼하고 1/3 스푼. 고형 카레는 세밀한 맛 조절이


불가하지 않습니까.”

전 세계 지점에 같은 맛을 보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방송을 그 자리에서 끈 이유였다.

[ 다이켄 가문의 카레 전문점! 카오스 카리!! 전 세계 지점에서 반유현 레시피 맛볼 수 있어! ]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그 맛을 직접 보게 하려는 뜻이었다.

“첫 방송이라면 이 정도 파급효과는 있어야지.”

그 날 이후로, 반유현 레시피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동영상들은 갈 곳을 잃었다.

165 화. 세계화는 끝났고 (1)

수십 년째 대를 타고 이어져 내려온 다이켄 집안의 카레.

전 세계에 퍼져있는 그 레스토랑의 이름인 카오스 카리에는 내 이름이 걸려있었다.

대형 햄버거 프랜차이즈, 넥도날드가 그랬듯이 카오스 카리에도 나의 이름을 딴 메뉴가 탄생했다.

[ 카오스 카리,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서 상장 준비! ]

[ 매출 급증! 모두 직영점으로 운영되는 구조 탓에, 확장 속도 느려…… 개선 중 ]

[ 넥도날드에 이어……! 또, 반유현 신드롬! 손만 대면 대박 나는 반셰프! ]

이제는 단언컨대, 문명이 발달한 곳이라면 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 반유현 채널 동영상 1 개, 구독자는 200 만 돌파! ]


[ 우튜브 플랫폼 최초 기록! ]

[ 구독자 돌파에 따라 상승하는 카오스 카리의 인지도 ]

실제로 반유현 TV 의 첫방송을 보고, 그 카레를 먹었던 사람들의 코멘트도 끝도 없이 붙고 있었다.

-레알 인생 카레였음.

-ㅋㅋㅋㅋ와 30 년 카레 장인이 자기 가게에 메뉴 내거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인정.

-진짜 그렇게 맛있는 카레 처음 먹어봄.

-더 충격적인 건, 그 맛의 퀄리티가 전 세계 지점이 다 똑같대요.

-반유현의 맛과 다이켄 가문의 레스토랑 관리법이 합쳐지니까 ㄷㄷㄷ

물론 나한테 대중들의 이러한 관심들보다 중요한 건, 미슐랭 스타 30 개를 모으는 것이었다.

이런 세계적인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이 모든 행보들이 내 최종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효율을 좋게 해줄 것이리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반유현 팩토리 최종안입니다.”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 중에서 전 세계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것은 미슐랭 30 스타를
모으는 계획에 중요했다.

아주 단편적으로만 생각해도, 전 세계 고급 셰프 인력들을 나의 브랜드로 쉽게 흡수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했으니까.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가 진행되고 나면, 전 세계의 모든 요리사들이 내 이름 안에 한 번쯤은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제는 전략게임에서 건물 짓는 것처럼, 지역하고 메뉴만 고르면 되는 건가.”

돈, 인지도, 실력, 나를 따르는 사람들…… 레스토랑을 창업하기 전 갖춰야 할 것들이 모두 있으니


앞으로의 일들은 그렇게 진행될 것이다.

현재 23 개. 이제 올해의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7 개의 별만을 채우면 된다.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거점은 모두 이렇습니다.”

“그래. 그렇게 진행하자.”

미국의 뉴욕, 브라질 상파울루, 대한민국의 서울…….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동 전체를 커버해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이미 프랑스에는 반유현 팩토리가 있으니, 각 대륙별로 총 다섯 개의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될 계획이었다.

“호주랑 뉴질랜드는 잠시 보류.”

오세아니아 대륙에는 아직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되지 않아, 다른 대륙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것보다
좋은 효율을 낼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일들이 내 손안에서 컨트롤 되는 느낌이 있어야 했다.


이렇듯 큰 프로젝트를 동시에 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만큼 속도 조절의 필요성도 느꼈다.

“각 대륙, 반유현 팩토리 교수 인력 채용 시작해.”

“예. 알겠습니다.”

***

아프리카 대륙의 축제를 해냈고, 라스베이거스에 메이, 제리가 총괄하는 두 개의 레스토랑을 각각


성공적으로 런칭했으며, 반유현 팩토리의 계획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굵직한 계획들을 마무리해놓곤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세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을 거니까…….’

각 레스토랑이 미슐랭 몇 개의 별을 얻을 것인지에 대해선 내 예측이 정확하다.

당연히 100 년간 그것만 쫓아왔으니까.

아프리카 요리가 주된 테마로 운영되는 ‘반유현-핑크’는 세 개의 별을 얻으리라 확신했다.

애초에 그러려고 이 레스토랑을 런칭했고, 그에 따라 구성된 메뉴와 내 레시피, 그리고 그것들을


풀어내는 셰프들의 조리법과 홀 직원들의 서비스까지 모두 세팅했기 때문이다.

‘반유현-레인보우에서는 별을 받지 못하니까.’

메이가 운영하는 ‘반유현-레인보우’는 뷔페형식이라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에 한계가 분명했다.

새로운 요리들을 계속 개발해내고, 대중들의 반응을 빠르게 얻어 낼 수 있다는 뷔페식 레스토랑의 장점과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 내에 나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세 개의 별을 더 얻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

한 도시에 계속해서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은 분명한 손해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을 때는 짧은 거리 안에 여러 개의 레스토랑을 세웠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랐다.

내 레스토랑이 무조건적으로 다른 레스토랑보다 고객유치에서 우월한 점이 있다면, 내 레스토랑끼리 고객


유치를 위해 싸우기보다 세계 주요 도시 하나당, 레스토랑을 하나 세워 그 도시를 점령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 라스베이거스처럼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도시라면, 레스토랑 3 개까지는 허용이 된다.

“라스베이거스에 하나 더 런칭 준비한다.”

세 개의 별은 확보했으니, 나머지 세 개의 별을 확보할 레스토랑을 런칭할 계획이다.

그렇게 여섯 개의 별을 얻고, 미션의 끝인 마지막 미슐랭 스타를 얻을 장소를 고를 생각이다.

끝이 보인다 싶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부풀어졌다.

“파리 반유현 팩토리에서 30 명 보내.”

“메뉴랑, 코스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인력을 먼저 보낼까요?”


나는 검지로 내 머리를 가리켰다.

모든 건 내 머릿속에 있다고.

“A 반 1 팀 2 팀 3 팀 하면 30 명 되잖아. 그 반을 맡은 교수님들까지 33 명이네.”

***

“일식 정통 코스요리.”

일식.

지난 100 년의 삶에서도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었던 종목이다.

첫 번째로 미슐랭 스타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가 일본임이 그러했다.

미슐랭 스타를 인생 최대 목표로 삼고 달리고 있는 나는 어쩌면 그 요리와 가장 친할지도 모른다.

“와……!”

내 앞에 모여 있는, 방금 막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반유현 팩토리 소속 33 명의 셰프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여러분들은 이미 반유현 팩토리라는 기관에서 충분히 실력을 검증한 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계속된
테스트를 거쳐 상위의 반인, A 반을 차지한 분들이니까요.”

그 교수진들도 당연히 저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중동 갑부 하이든 왕세자의 개인 주방에서 근무를 했고 미슐랭 7 스타를 보유한 가타무라 마츠노.

가타무라 마츠노와 함께 하이든 왕세자의 주방에 있던 미슐랭 3 스타 닉 아델린.

내가 처음 이 몸으로 환생하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절, ACK 라는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부터
안면이 있던 윤종혁.

“대단하십니다.”

“네, 반유현 셰프님 덕분에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타무라 마츠노의 저력은 나도 놀랄 정도였다.

당시 반유현 팩토리에서 가장 낮은 반에 속한 J 반의 셰프들을 A 반 1 팀까지 끌어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윤종혁 씨도 고생 많이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윤종혁 또 대한민국 국적의 셰프들 10 명을 이끌고 A 반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게 될 터였다.

어쩌면 오늘, 라스베이거스에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계획에 대해 말하는 지금.

이들의 인생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전 세계 수많은 기업과 셀 수 없이 많은 셰프들이 원하는 ‘반유현’의 이름을 걸고 요리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역사의 현장이 이렇게 조촐해도 되겠냐마는…….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일식 단품 메뉴와 코스들로 구성할 겁니다. 정통 일식은 칼질을 하는 것조차 맛에서 차이가 날 수 있는
아주 정교한 요리입니다.”

숙성회를 만드는 것부터, 그 숙성회를 썰어내는 결이나 속도에 따라 질감이 달라질 수 있다.

그 어떤 종목의 요리보다, 소스의 중요도가 낮다.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일식 특성상 셰프의 높은 숙련도를 요하기에,

“어떤 과정으로 반유현 팩토리의 A 반을 차지했는지 제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것보다 고된 과정이


기다릴 겁니다.”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전까지 강도 높은 수련을 할 계획이었다.

물론, 그 전에 이들이 그 강도 높은 수련을 거쳐서 내가 원하는 셰프가 될 재목들인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시간과 노력을 쏟아도 될 만한 인물들인지 말이다.

“그 과정에서 헤드 셰프 또한 뽑을 겁니다.”

세 명의 교수들이 있지만, 누가 헤드 셰프를 맡을지는 정해야 했다.

“검정 스카프를 맬 셰프 말입니다.”

30 명의 셰프들이 그랬던 것처럼, 교수진인 윤종혁, 마츠노, 닉 모두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셰프 선별 과정, 즉, 제가 여러분에게 시간을 써도 될는지에 대한 진단과, 헤드 셰프를 뽑는 과정 모두


…… 기발해야 대중들의 기대를 만족감으로 채워 줄 수 있겠죠. 항상 그랬듯이…… 특별한 방법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

나의 부름에 파리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단숨에 날아온 셰프들의 역량을 선별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던 도중, 일단 이 사실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 끝없는 반유현의 행보……! 이제는 일식 ]

[ 일식 요리의 끝 보여주나! ]

[ 레스토랑 스타트 멤버는 반유현 팩토리 출신 33 명의 셰프! ]

사람들의 기대감이 모임으로써, 이 셰프들의 긴장감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또 한 번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실제 레스토랑 ‘반유현’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기에, 이 사실은 또, 셰프들 또는 셰프 꿈나무들이 반유현 팩토리로
입학하는 것의 촉진제가 되었다.
[ 반유현 팩토리로 쏟아지는 인력들! ]

[ 새롭게 설립 준비 중인 반유현 팩토리 벌써 대기 인력들 폭주! ]

[ 세계 최대 명문 요리학교 르 꼬르등 블루 입학률 저조, 반유현 팩토리 때문? ]

“헤드 셰프를 먼저 뽑겠습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일은 계속 진행되었다.

반유현 팩토리에서 온 30 명의 셰프들이 시간을 쏟고 노력을 한 만큼 아웃풋을 만들어 내리란 것을


검증하기에 앞서, 그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온 교수들에 대한 평가가 먼저였다.

한 주방을 이끄는 리더가 세 명이라는 것은 상당한 비효율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그들을 따르는
셰프들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한 명이 메인 헤드 셰프, 나머지 두 교수님들은 수 셰프의 형태로 주방 조직을 구성할 겁니다.”

반유현의 이름을 업었지만, 검정 스카프를 매느냐 못 매느냐가 달려있었기에, 이들도 이들을 따르는
셰프들만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츠노는 이미 미슐랭 7 스타가 있고, 닉은 3 스타가 있음에도 긴장하는 것을 보면 내 브랜드 가치가


저들에겐 미슐랭 7 스타 이상을 얻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는 소리겠지.

“헤드 셰프의 요리 실력은 두말할 것 없고, 주방에서의 통솔력 또한 중요하겠죠. 제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요. 그래서 그 능력치들을 증명할 테스트를 하려고 합니다.”

그 교수진들을 따르던 셰프들도, 자신들의 교수가, 헤드 셰프를 맡았으면 좋겠다는 기대의 눈빛을 쏘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지도 올리기.”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전 세계인 투표 한 번 해보죠. 일식을 다루게 될 레스토랑 반유현을 총괄하는 셰프가 누가 좋을는지…….


그리고 나머지 30 명의 셰프들은 주방에 가서 대기하고 있으세요. 교수님들 응원할 시간 없어 이제
당신들한테도.”

올해 미슐랭 평가기간까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일정이 빠듯하다.

166 화. 세계화는 끝났고 (2)

“방법이 하나가 있긴 한데, 고민된다.”

윤종혁과 그를 따르는 10 명의 셰프들.

모두 대한민국 국적의 셰프들이었고, 초급 셰프부터 윤종혁을 따라 반유현 팩토리에서 A 반에 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 모두 윤종혁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고, 반유현의 이름을 등에 업고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기회가 생긴 것 덕분에 이들의 기세 또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반유현이 교수진들에게 내려준 ‘미션’에 의해 이들의 기세는 주춤했다.

“윤종혁 셰프님, 저희에게도 그 고민을 말씀해 주십시오. 당연히, 저희도 윤종혁 셰프님께서 헤드 셰프를
맡아주시는 게 마음 편하지 않겠습니까.”

헤드 셰프급의 셰프가 한 주방에 세 명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분파나 파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유현의 이름 아래 있다고 한들, 함께 먹고 자고 성장해온 시간이 있던 터라 완벽한 체제가 갖춰지기


전까진 자신들을 이끌어준 교수가 헤드 셰프의 자리를 차지하길 바라는 것은 당연했다.

또, 자신들을 이끌어준 교수가 헤드 셰프가 된다면, 주방 내 요직을 차지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나.

“인지도를 올리라고 하셨는데…….”

물론, 윤종혁 본인도 헤드 셰프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브랜드 ‘반유현’의 검정스카프는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셰프의 상징


아닌가.

“방법은…… 반유현 셰프님을 깎아내리는 것이야.”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말라는 반유현의 말을 따랐을 때, 윤종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

경쟁자인 가타무라 마츠노, 닉 아델린…….

이 둘은 이미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셰프들이었다.

윤종혁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근무해본 적이 있고, 올해의 젊은 셰프에도 뽑혀 본 적이 있지만, 미슐랭


스타를 받아낸 셰프들과는 애초에 시작부터 인지도에서 밀렸다.

“어그로…… 그것도 광역 어그로…….”

미친 척하고 반유현의 요리 실력이 거품이라는 것을 밝히는 내부 고발자의 역할을 해 보면 어떨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실력도 여느 셰프에게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실제로 나는 반유현 팩토리의 A 반 교수니까. 완전히 미친놈 소리는 듣지 않겠지. 사람들도 어느 정도


호기심과 의구심을 품을 거야.”

“……괜찮을까요.”

그렇게 윤종혁이 그린 그림은 단순해졌다.

반유현을 내부 고발하는 척, 인지도를 쌓아 대중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렸을 때, 요리 실력을 보여주고


셰프로서의 인지도를 쌓는다.

당연하게도, 요리 실력이 확실해야겠지만 윤종혁은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미 히스토리도 있어.”

“예?”

“나랑 반유현 셰프님은 몇 년 전, ACK 라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라이벌 관계로 비쳤던 적이


있거든.”
***

“머리를 쓰긴 썼네. 하하하.”

“셰프님, 이게 웃을 일인가요?”

“귀엽잖아.”

“귀여워요? 진짜로 윤종혁 셰프가 셰프님의 인지도나 명예를 깎아내리려고 작정한 것이라면…….”

그럴 리가 없었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메인 셰프가 되기 위해 반유현 팩토리 A 반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나.

내가 그간 봐왔던 윤종혁은 브랜드 ‘반유현’이라는 얻기 직전에 와서 이런 하찮은 일을 벌일 정도로


가치 판단을 못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주문한 ‘인지도’를 위해서 저런 행동을 했다는 것인데.

“머리가 빠르긴 빨라. 어떻게 해서라도 메인 셰프가 되겠다는 마음가짐도 좋고.”

[ 반유현 팩토리 A 반 윤종혁 셰프! 내부고발자로 나서. ]

[ 윤종혁 셰프, ACK 에서 반유현과 라이벌이었던 인물! ]

[ 그가 내부 고발자로 나선 이유는? ]

모든 매스컴들은 난리가 났다.

매번 유명인과 연예인들의 사건들을 파헤치는 방송프로에서도 내 얘기가 나왔다.

-아…… 윤종혁 셰프! 유럽, 올해의 젊은 셰프의 랭크되기도 했고요, 한국에서는 미슐랭 스타를 가진
레스토랑의 수 셰프로도 있었고, 요리 공부를 꽤나 많이 한 엘리트…….

-네 대단한 엘리트 셰프입니다. 학교도 그렇고, 그가 근무했던 레스토랑들의 스펙도 그렇고요. 더군다나
반유현 팩토리에 교수로 들어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10 명의 셰프를 반유현 팩토리 A 반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입니다.

-이야…… A 반이면……. 음. 정말 대단하군요. 전 세계 셰프들이 몰리는 그곳에 들어가 상위의 성적을


받아낸 것이니까요. 이때까지만 해도, 반유현 셰프에게 대단한 충성심을 가진 셰프라 할 수 있는데,
어제의 발언은 무엇인가요. 무슨 의도가 담겨 있을까요.

윤종혁은 우튜브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하나 올렸다.

[ 반유현의 실체, 그가 공격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 ]

-영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윤종혁 셰프는 반유현 셰프의 요리 실력에 대해 상당한 의심을 품게
만드는 발언들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발언인가요?

-반유현의 요리 8 할은 퍼포먼스이다…… 그의 퍼포먼스에 매료되어 실제의 맛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휘하에 있는 셰프들이 레시피를 밤낮으로 연구해 뽑아내며…….

-아……! 대체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 의도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게 없지만, 수많은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의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한 것
아닐까요?

수많은 의심들.

지금 보니 윤종혁은 대중들의 그러한 생각을 긁어주기까지 한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이런 속도로 성장하고 기업을 꾸릴 수 있었나, 그리고 쉴 틈 없이 계속해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인가에 대해 대중들은 궁금증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머리 잘 썼어. 진짜.”

더군다나, 윤종혁의 말 중 모든 것이 거짓이기에 내가 기분이 나쁘지 않으리라는 것도 윤종혁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아…… 지금 방금 또 연락이 왔습니다.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도 우튜브 채널을 개설했다고 하는데요. 첫
동영상의 제목이 ‘반유현 요리 그대로 따라 하기’라고 합니다아아아!

-허허허허. 그쪽 내부에서 뭔가 많은 일들이 일어난 듯합니다.

가타무라 마츠노까지 나의 이름을 들먹이며 인지도를 올리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닉 아델린 셰프도 시작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먹는 반유현 요리’

-반유현 팩토리의 A 반 교수들이 다 같이 이러는 이유가 뭔가요? 이 셰프님들은 레스토랑 ‘반유현’의


정식 셰프가 되는 것이 정해져 있던 것 아닌가요?

“흠.”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인지도를 올려 경쟁하기를 바랐는데, 결과적으로 세 명의 셰프 모두 나의 이름을


들먹이며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론 내가 없이는 미슐랭 7 스타, 3 스타를 가진 이들도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 아니겠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나를 싫어하고, 나를 저격하던 무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미슐랭 14 스타, 애시 모린 “그럴 줄 알았다. 반유현 셰프를 따르는 셰프들이 한 번쯤 고발할 줄


알았다. ]

[ 노가미 히라유 “반유현은 거품. 연예인, 아이돌과 같다.” ]

[ ‘반유현’ 레스토랑과 기업, 팩토리까지 모두 세무조사 해야… 정경 유착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 높다.
]

실제로 내 밑에 있던 셰프들이 나의 실력이 거품이라는 한목소리를 내니, 외부에서 나를 견제하던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주장은…… 내가 요리 실력은 없는 그저 아이돌이고, 그 자본력으로 사업을 한다


이거 아니야?”
“그렇습니다.”

“이참에 싹 다 거두어버릴까.”

조금 더 뜸을 들여 볼 생각이었다.

윤종혁, 마츠노, 닉. 세 명의 교수들이 나의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인지도를 쌓을수록 나를 견제하던


세력들은 그들에게 붙어 나를 몰락시킬 기회를 노릴 것이다.

“의심은 항상 내가 받고 살아야 되는 것이긴 해……. 이렇듯 성과를 낸 셰프가 지구상에, 역사상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나를 견제하고 내가 망하길 바라는 세력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지.”

그렇게 외부에서 나의 몰락을 바라던 세력들이 모두 드러날 때, 그들을 일망타진하는 것도 헤드 셰프를


뽑는 것과 별개로 해야 될 일이라 생각했다.

“윤종혁하고, 마츠노, 닉…… 이 셰프들 다 불러.”

단, 두 개의 레스토랑만 더 런칭하면, 미슐랭 스타 30 개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상되는


시점에.

나를 물고 뜯는 놈들에게 마지막 한 방을 줄 생각이었다.

***

“첫 기획은 신선했는데, 일이 이렇게나 커져서 어떡해?”

나는 미소를 입에 머금고 말했다.

내 앞에 있는 A 반의 교수진들은 모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나의 이름을 거들먹거렸다.

그들의 의도대로 대중들의 엄청난 관심이 이들을 향해 쏟아졌지만, 그것이 이들이 손쓸 수 없을 만큼


사태가 커져 버렸기에, 고개를 들 수 없던 것이다.

“무슨 죄들을 그렇게 지었습니까? 고개 들어요. 나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세 명은 그제 서야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 날 만났을 당시 고개를 숙일 줄 모르던 이들이 이렇듯 태도가 변한 건, 이 사태의 심각성과 나의


영향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리라.

“죄송합니다 셰프님…….”

“죄송합니다. 저희의 욕심에…….”

“감히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습니다. 반유현이라는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다시 고개를 숙이곤 말했다.

“아직 죄송하기는 이릅니다. 여러분들이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하면 되니까요.”

순간 놀란 듯이 나를 바라봤다.

“여러분들 덕분에 우리 브랜드를 깎아내리려는 세력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한목소리를 내니까 힘을 얻었다는 듯이…… 어디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지.”

나는 내 손에 쥐어진 기삿거리들을 내 앞에 있는 세 명에게 보여주었다.

[ “반유현 시대! 이제는 끝! 진정한 셰프들의 앞날 펼쳐질 것!” ]

[ 반유현을 따랐던 이들도 뒤돌아서다! 기업가치 하락 중! ]

[ 새롭게 준비 중인 일식 레스토랑에 영향 가나? ]

“이 모든 세력들을 저 아래로 가라앉힐 계획까지 들고 오세요. 그 사람이 헤드 셰프가 되겠네요. 그런


계획조차 없다면, 브랜드 반유현에서 더 이상…… 더 이상은 요리할 수 없겠습니다.”

일을 벌여 놓은 건 저들이니, 저들에게 이 일들을 마무리할 기회까지 줬다.

내가 직접 나서기에는 아직, 이 교수진들의 역량을 다 보지 못했다.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하겠습니다!!”“

***

“이런! 제기랄! 윤종혁? 이놈은 대체 뭐하는 놈이야!”

“가타무라 마츠노까지……! 웬 팔자에도 없는 세 명 때문에 우리가 투자했던 걸 본전도 못 찾겠습니다.”

“톰슨!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반유현의 요리 실력이 거품이고, 그는 사실 바지사장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들이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


논란의, 논란의 논란을 불러오고 있었다.

“우리 또한 어떻게 되는 겁니까!”

[ 매번 반유현의 지원사격 했던 펠라지오 호텔도 거품?! ]

펠라지오 호텔.

그 총주방장인 톰슨의 말을 따라, 반유현이 주관하는 축제나 행사에는 항상 앞장서서 그를 지원했다.

그에 따라 많은 이득을 취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사태를 대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반유현의 침몰은 우리 호텔의 침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역사와 그에 따른


이미지가 모두 가짜에 범벅되어 무너지는…….”

물론, 톰슨은 이러한 사태를 대비해야 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런 사태를 대비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도, 반유현을 향한 사랑이 그렇게 대단하십니까? 이 기사들을 보고도요! 전 세계 셰프 협회들이


움직였습니다!”

“아마…… 반유현 셰프는 그것까지 생각했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결국 반유현이 이깁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핵폭탄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67 화. 세계화는 끝났고 (3)

외부에서 나를 깎아내려 했던 세력은 대중들에게 무시와 질타를 받아 사라져 없어지는 현상이 당연했는데,
이번엔 꽤나 그 파급력이 컸었다.

-이번엔 뭔가 진짜 같은데?

-그러게 반유현의 기적과도 같은 행보가 다 짜놓은 쇼였다고?

-내가 맛본 요리들은 뭔데 그럼?

-ㅋㅋㅋㅋㅋ일류 셰프들이 반유현 무대 뒤에서 다 만들어 놓은 거 쇼만 한 거랍니다.

브랜드 ‘반유현’의 내부에서, 그것도 최측근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A 반 교수진들이


나를 욕하니, 애초에 나를 깎아 먹으며 성장하려 했던 세력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 “그럴 줄 알았다” 반유현에 의심 품던 셰프들 다시 모여! ]

[ 전 세계 200 여 명의 셰프들 반유현의 실체를 밝히는 모임, 반실모 결성. ]

[ 반실모 회장 찰스 레버 셰프, 미슐랭 15 스타, 유명 레스토랑 다수 경험한 베테랑. ]

[ 반실모로 모여드는 미슐랭 스타 셰프들과 유명 셰프들! ]

꽤나 유명한 셰프들도 함께해 ‘반실모’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모임에 힘을 싣기도 했다.

“찰스 레버? 이 사람은.”

반실모를 만든 장본인인 찰스 레버.

요리 인생 100 년을 살았기에, 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름이기도 했다.

나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것을 보면 어차피 도태될 인물이지만.

내가 이 나이에, 이 시점에 이렇듯, 미슐랭 스타를 많이 모으고 많은 영향력을 가졌던 삶이 없어


이렇게나 새로운 빌런들이 탄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미슐랭 스타도 셰프님께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꽤나 가지고 있고, 르꼬르동블루 총 동창회장을 역임한


자라서, 요리업계 인맥도 꽤나 출중한 것 같습니다.”

[ 찰스 레버 “요식 업계 생태계 파괴의 주범, 몰아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가짜로 밝혀졌으니…….” ]

[ 찰스 레버를 따르는 셰프들……! 반유현은 셰프가 아니라, 아이돌이다. ]

그를 따라, 기회다 싶어 반실모에 가입한 셰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

그러나 역시나 이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찰스 레버를 주축으로해서 반실모라는 곳에서 공식적으로 우튜브 채널과, SNS 계정을 만들었는데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오스틴은 그들의 우튜브와, SNS 계정, 그 첫 게시물을 보여주었다.

먼저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한 셰프가 나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요리라는 유구한 문화 예술을 오직 상업적이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이용한, 반유현 셰프의 실체를 밝히는 모임입니다. 그의 요리와 퍼포먼스는 모두 가짜였던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생략)

“이 사람들 큰일 나겠는데요? 이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큰 증거인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의 증언…… 은


모두 거짓된 것이었잖아요. 이미 그 세 명의 교수진들은 셰프님께 머리를 조아렸고.”

큰일 났다는, 오스틴의 말이 딱 들어맞았다.

‘반실모’라는 조직의 가장 큰 힘인 반유현 팩토리 교수진들의 증언…….

하지만 그 증언은 모두 거짓이었고, 그 증언을 한 셰프 세 명은 모두 나에게 대단한 충성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대중들도 저들의 허술함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증언만으로는 내가 이뤄낸 성과들이 모두 가짜였음을 대중들도 알고 있는 듯했다.

댓글 창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내 팬층들이 반실모의 SNS 와 우튜브 채널에 모여들어 공격을
강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 단단한 팬층의 대부분은 내 요리를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들이었다.

-엥? 거창한 모임인 줄 알았더니 증거가 고작 그들의 증언임?

-ㅋㅋㅋㅋ 처음 의혹을 제기한 반유현 팩토리 교수진들은 아무 말 없던데?

-저 셰프들 다 유명한 셰프들 아님?

-남 잘되는 꼴 못보고 ㅉㅉ. 그냥 반유현 깎아내리기 바쁜 셰프들임.

물론,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도 있었다.

-저 조직에 많은 사람들이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거나, 탑 레스토랑에 50 에 뽑힌 셰프들도 있는데, 저


사람들이 그냥 했겠냐. 하여튼 반유현에 미친놈들.

그런데, 이 전체 댓글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양이었다.

-진짜로ㅋㅋㅋㅋㅋ무슨 저딴 의혹이 있냐.

-나는 반유현 요리 실제로 먹어봤다.

-반유현 그랜드 오프닝, 두 번 참가해봤습니다. 모두 라이브였고, 반유현 셰프님이 만든 요리…… 그


냄비에서 받아먹었습니다. 냄비를 바꿔치기 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급기야, 내가 얼굴과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내 주방에서 일했던 이들이, 또는 주방 안에서 나를 경험한


이들의 인증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반유현 셰프님과 일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의 이 논란이 아주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반유현


셰프님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잡아내듯이 요리에서 그러한 행동들을 많이 보이십니다. 아주 세세한
맛을 쌓아 올리는 것부터…… 주방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생략)
-반유현의 주방에 있다가 나온 사람입니다. 재료 손질을 주로 했고, 반유현 셰프님은 제 얼굴과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저는 그분을 보며 요리의 꿈을 접었습니다. 나는 저렇게 될 수 없구나를 깨닫고요.

-아주 오래전,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유현이 만드는 요리를 봤다면…….

-그의 요리를 실제로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 요리는 그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였으니까요.

“셰프님께서 민심을 아주 잘 쌓으신 것 같습니다.”

“내가 언제 이미지 관리했냐.”

나의 요리를 맛보거나, 주방에서 나를 경험한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맛보고 경험했던 것들에 대한 부정을 참을 수 없던 탓이었다.

“나로 인해 했던 경험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신선했을 테니까. 사람들은 그랬던 경험이 가짜라는 게
너무도 싫을 테지, 그래서 다 됐네.”

“예? 다 되다니요?”

“교수진 세 명 다시 불러봐. 이제 이 사태 좀 정리하게.”

***

대중들의 그런 반응에, ‘반실모’는 주춤했고 사람들은 모두 나의 발언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대중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 반유현 TV 구독자 : 3,234,123 명 ]

이 사건과 맞물려 어쩌다 보니 구독자수는 내 예측보다 빠르게 불어났다.

“라이브로 해.”

“예?”

“녹화 영상을 올리는 것보다 사람들은 이걸 더 원할걸? 실시간으로 반응 살피는 것도 좋고.”

오스틴이 각종 촬영 장비를 준비하고 있는 스티븐 리에게 말하자, 그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말 라이브로 하십니까?”

“네, 생동감 넘치잖아요.”

스티븐 리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촬영은 시작되었다.

“제목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이브 영상 제목? 음…… 나 의심한 사람?”

나는 손을 들었고, 스티븐 리는 그것을 그대로 촬영했다.

[ 나 의심한 사람? ]
영상의 썸네일로 내가 오른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나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하기 시작했다.

-와! 반유현이다!

-ㅋㅋㅋㅋ논란의 중심에서 여유 보소.

-다들 가짜라는 증거죠?

-찰스 레버 셰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뭐, 저에 대한 논란들이 많이 있길래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찰스 레버 셰프가, 당신은 그냥 아이돌이라는데?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댓글창은 단연, 찰스 레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를 의심하지 않고, 당연히 내가 진짜배기 요리사임을 인정하지만, 싸움 구경은 재밌을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매번, 나를 건드린 놈들을 절대 봐주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아는 팬들이 이번에도 그 시원시원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듯, 댓글창을 채웠다.

“아, 찰스 레버…… 그 셰프님이 제대로 저를 저격하셨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과 그분들을 따르는


셰프님들의 요리로 제 실력을 증명해 보이려 합니다.”

사태가 이토록 커지는 것을 막지 않았던 이유였다.

계속해서 나를 모함하고, 깎아내리려는 세력이 커지길 바랐다.

한 명 한 명의 관심병자들을 상대하기보단, 거대한 세력이 된 그들을 한꺼번에 침몰시키기 위함이었다.

대중들의 반응에 의해 반실모라는 단체에 가입하는 셰프들의 수가 확실히 줄어들었지만, 찰스 레버라는


꽤나 저명한 인사와 함께하는 셰프들의 머릿수라면 충분했다.

“가장 먼저 찰스 레버…… 셰프님, 런던에 운영하고 계시는 ‘블루멘탈’이라는 레스토랑의 메뉴들을


뽑아왔습니다.”

-ㄷㄷ 또 똑같은 요리를 해서 개박살 낸다는 말인가?

-ㅋㅋㅋㅋ와 역시 반유현! 

-잘못됐죠~ 가만 두질 않죠~

“그리고 반실모? 여하튼 그 모임에 가입해서 왕성한 활동을 해주신 셰프님들의 명단과, 그 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명단들도 다 뽑아 왔습니다.”

-ㅋㅋㅋ 싸그리 싹 다 망하게 해버리겠다.

“보윈, 바탈리, 에럴…… 반실모의 주요 셰프님들 말입니다.”

-와 저 셰프들 지금 심정이 어떨까.

내가 ‘반실모’라는 조직을 만든 이와 그를 따라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려 했던 셰프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주된 메뉴들까지 읊었다.
“…… 그리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곁들인 캐비어, 자몽 소스를 곁들인 관자구이까지…….”

나의 요리 실력과 퍼포먼스에 의심을 품은 자들의 요리를 똑같이 따라 해서 만드는 것.

정확히 그들과 똑같은 요리를 만들어 맛의 우위를 점하고, 내 요리 실력이 거품이 아님을 쉽게 증명하는
방법 아닌가.

이미 수차례 이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고.

“물론, 방법은 더 파워풀할 겁니다. 첫 번째는 말씀드렸다시피, 찰스 레버 셰프님의 레스토랑 ‘블루멘


탈’의 메뉴들입니다.”

***

“어, 어떡합니까? 셰프님.”

자신의 바로 밑에 있는, 수 셰프의 말에 찰스 레버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저, 정면 대결을 해야지! 이렇게 된 거 나도 물러설 수 없어 명예가 걸렸다고.”

“상대는 천하제일의…… 반유현 셰프…….”

“그걸 누가 몰라!?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들이 아직 무기가 남아 있을 것 아니야!”

찰스 레버가 아직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였다.

반유현 팩토리 A 반 교수진들의 증언.

그들도 내부에서 반유현을 깎아내렸는데, 이 정도로 끝낼 각오라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을 터다.

현재 요리업계의 그들의 명예를 알기에 이런 마음은 점점 확신이 되었다.

“생각해봐! 너 같으면 레스토랑 ‘반유현’의 메인 셰프가 될 가능성이 높은, 반유현 팩토리 A 반의


교수가 되었는데, 뭣 하러 반유현의 실체를 밝힌다면서 반유현 셰프를 모함하겠어!”

“그,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애초에 반유현 팩토리 교수진들이 그런 말을 꺼냈다는 이유로만, 시작했던 일 아닌가.

“런던 최고 레스토랑의 타이틀을 빼앗겼잖아……!”

‘반유현-브라운’이라는 레스토랑이 런던에 들어오면서 최고 레스토랑의 자리를 빼앗겼던 바, 반유현의


몰락을 그토록 원했다.

“그럼, 반유현 팩토리 A 반의 교수진들이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반유현 팩토리 A 반의 교수들이, 반유현의 실체에 대한 증언들을 가져올 때까지.

그런데.

“셰, 셰프님! 이, 이! 이거 보세요!”

[ 반유현의 실체에 대한 의혹 처음 품었던, 윤종혁, 마츠노, 닉 셰프! 라스베이거스 새롭게 런칭될


장소에서 반유현과 함께 ‘반실모’ 셰프들의 요리 만들어. ]

[ 반유현 “제가 이번에 따라 하는 찰스 레버 셰프님의 요리는 모두 공짜로 제공, 더불어 이 요리들은 이


레스토랑의 메인 셰프를 판가름하는 자리. 많은 분들의 성원 바란다.” ]

반유현의 기사였다.

라스베이거스, 정통 일식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는 자리에, 찰스 레버의 요리들을 따라 해 볼 생각이고


그 요리들은 모두 공짜로 풀리라는 것.

아울러, 그 요리를 함께할 셰프들은 반유현 팩토리 A 반 3 인방이라는 것.

“뭐, 뭐야! 그럼 A 반 교수들은…… 애, 애초에 반유현을 깎아내릴 생각이 없었다는 거야?”

뭔가 제대로 잘못된 느낌이었다.

168 화. 세계화는 끝났고 (4)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는 더 이상 자리가 없고. 그래서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겁니다.”

라스베이거스 호텔 총회.

“이례적인 일이군요. 그 사람이 뭐길래…….”

라스베이거스, 그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호텔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이들이 이렇게 모이는 횟수는 분기에 한 번.

그러나, 올해 반유현이 라스베이거스로 상륙한 이후에는 벌써 한 분기에 세 차례나 모였다.

“뭐길래…… 라고 하기엔 너무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하하하.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인정하기 싫지만 그 한 사람


때문에 이곳에 또 모였으니까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호텔들이 단 한 명의 사람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싫었는지,


이곳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명분을 따지실 거면 경쟁에서 빠져주시죠.”

“맞습니다. 반 셰프님은, 제가 알기론 실리보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그룹과 일하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고…….”

“당신이 어떻게 알아! 반유현 셰프를 만나봤어? 기사만 보고 카더라 하기는…… 크흠!”

물론, 부끄러워하는 듯하지만 실속을 챙기려는 이들이었다.

“모두 정정당당하게 하셔야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톰슨?”

펠리지오 호텔의 총 주방장인 톰슨은, 펠라지오 호텔을 대신해서 나왔다.

다른 호텔들이 사장이나, 부사장급, 또는 지배인급 인사가 나온 것과 달리 펠리지오 호텔이 톰슨을 보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반유현 셰프님이 톰슨 셰프님이 계신 호텔로 가실 확률이 높지 않습니까?”


반유현의 새로운 계획에 올라타기 위해서였다.

“톰슨 셰프님이 친분을 이용하는 것도 정정당당하다고 봐야 되는 겁니까?”

“펠리지오 호텔은 너무 하는군요…… 이렇게 치사하게 나올 줄이야.”

반유현이 새롭게 런칭할 일식 중심의 레스토랑.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우튜브 채널에서 반유현이 공포한 이벤트.

그 장소가 될 호텔이 되기 위해, 쉽게 말하면 반유현에게 장소를 제공해 주기 위해 이 많은 관계자들이


한곳에 모인 것이었다.

‘반실모’를 조직하고 그를 따랐던 셰프들의 요리를 반유현과 그의 휘하의 셰프들이 재연하는 곳.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더불어, 그 자리에 반유현의 이름을 내건 일식 레스토랑을 런칭한다니 호텔들의 입장에서는, 이번에


브랜드 반유현을 유치하는 것은 다이아몬드를 낳는 닭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희는 이미 진 싸움 아닙니까. 톰슨 셰프님이 친분이 있으시니.”

톰슨이 여러 호텔들의 견제와 눈총을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반유현과 친분이 두터우니, 그의 호텔이 유치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반유현 셰프가 무명일 때, 라스베이거스에서 그의 활약을 도와준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그때, 톰슨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반유현 셰프님을 그렇게밖에 모르니까 여러분들이 브랜드 반유현 유치에 실패하는 겁니다. 반셰프님이
어딜 봐서 친분으로 사업을 진행하시는 분입니까? 당연히, 같은 조건이면 저를 선택하시겠지만, 우리는
이미…… 당신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

“빨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객실을 무너트려서라도 준비를 했을 겁니다…….”

이미 두터운 신뢰 관계를 맺고 있고, 사업 파트너로서 여러 가지의 일을 벌인 포시즌스.

이번에 런칭하게 될 일식 레스토랑도 그들과 함께 하는 게 여러모로 편안할 테지만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


내부에는 그렇다 할 장소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머릿속에 있던 계획이 아니라서요. 급박하게 진행되는 사안이라 이번에는, 다른


호텔과 협력을 해볼까 합니다.”

“하…….”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떨구는,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의 사장.

그를 뒤로하고 나는 계획을 실행했다.

“가장 큰 베팅을 한 곳이 어디야.”


“펠리지오……. 펠리지오 호텔입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첫째로, 그들이 한 제안이 그랬고, 둘째로는 이렇듯, 그들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게끔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 알아서였다.

“톰슨 셰프님이지.”

“그럴 것 같습니다.”

행사 시작부터, 끝까지 하루에 받을 수 있는 테이블의 개수만큼 객실을 비워 모든 손님을 숙박비 없이


투숙시키겠다는 조건.

포시즌스만큼이나 특급 호텔인 펠리지오에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맛의 경험을 가장 편안하게 할 수 있게 적극 지원한다고 합니다.”

“위치는.”

“펠리지오 호텔의 최상부, 원래는 호텔 vip 들이 와인과 위스키를 즐기는 공간인데 ‘반유현’을 위한
공간으로 싹 다 바꿔버린다고 합니다.”

“바로 시작하자.”

가장 먼저, 런던에 위치한 레스토랑 ‘블루 멘탈’.

‘반실모’, 반유현의 실체를 밝히는 모임이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조직을 만든 찰스 레버 셰프의


레스토랑이었다.

그를 상징하는 레스토랑이기도 하며, 내가 런던에 상륙하기 전 런던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이기도 했다.

“블루 멘탈의 메뉴들 싹 다 커버해서 다음 주부터 레스토랑 오픈해.”

“레시피라는 것 자체가 지적 재산권 문제와는 조금 애매해서 상관은 없을 텐데…… 이게 상업적으로


이용되거나 하면…… 어떻게든 엮어내서 찰스 레버 셰프가 문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나를 의심하고 모함했던 놈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싹 흡수해서, 그대로 선 보여 참교육을 하는


과정에 법적인 이슈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수백 번도 더 해 본 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블루 멘탈이나, 찰스 레버와 관련된 이름을 아무것도 올리지 마. 오늘부터 입에도 담지 말고, 우리는
‘아무개의 아무개 요리’라고 선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요리를 공짜로 제공하면 문제없잖아.”

계획은 모두 짜여졌으니,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스티븐 리에게 전화했다.

“감독님, 섭외력이 얼마나 됩니까. 방송국에 오래 계셨으니까……. 유명 연예인들도 많이 아시죠?”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에는 오스틴을 보고 말했다.

“새롭게 런칭될 레스토랑의 위치는 펠리지오 호텔로 선정하고, 아직 아무한테도 알리지 마.”
***

“안녕하십니까아아아! 앤디! 릭터입니다!”

앤디쇼.

미국 최대의 토크쇼를 진행하는 앤디 릭터의 이름을 빌린 쇼였다.

출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유명세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런 앤디가 직접


라스베이거스로 건너왔다.

“저 사람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기대한 만큼 섭외력이 대단하십니다.”

오프닝 멘트를 연습하고 있는 앤디 릭터를 보며, 오스틴이 스티븐 리에게 말했다.

“제가 섭외를 나섰을 때, 이미 업계에 소문이 났는지 몇몇 대형 기획사들이 연락을 줬습니다. 자기네들
회사에 있는 스타들을 활용하라고요.”

“예? 그럼 앤디 릭터…… 저분을 섭외한 게 아니라, 본인이 반유현 TV 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에 따라
출연하신 거예요?”

“하하하. 오스틴 씨는 모르시겠지만, 앤디 릭터 씨는 몸값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유명 스타입니다.


본인이 원치 않는 프로에는 출연을 안 하시죠.”

“와…….”

그렇게 오프닝 준비가 다 되었을 무렵, 내가 싸인을 보내자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 반유현 TV 실시간 시청자 수 : 411,216 ]

방송을 켜자마자 전 세계 40 만 명의 시청자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아아! 앤디 릭터입니다!!”

-엥?

-실화임?

-엔디 릭터가 우튜브 채널에 나온다고? ㅋㅋㅋㅋㅋ

-진짜 대박이네ㅋㅋㅋ ㅅㅂ 반유현 뭐냐.

-반유현!!!!! 앤디 릭터를 섭외했다고?

“네, 하하하하. 맞습니다. 저 맞고요. 오늘! 또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하고 싶어서 이렇게 나왔습니다.”

앤디 릭터의 얼굴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영상을 클릭하게끔 만드는 썸네일에 비치자 실시간 시청자 수가
배로 뛰었다.

“저도 집에서 심심할 때 우튜브를 즐겨보곤 하는데, 이런 채널이 또 있나 싶습니다.”

-형 때문에 그런거 아니야!ㅋㅋㅋ

-와…… 시청자 수 떡상중…….


“자자, 제 소개는 각설하고, 반유현 셰프님을 모시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주변 스텝들이 효과음을 내주었고 내가 화면에 나왔다.

-ㅋㅋㅋㅋ 앤디 릭슨이 나왔을 때보다 더 떡상중!

-미쳤다. 저 투샷을 내가 살면서 보다니.

나도 토크쇼를 비롯한 방송에, 뚜렷한 목적이 없으면 나가지 않는 것처럼 앤디 릭터도 웬만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 둘이 카메라 앵글에 함께 나와 있는 투 샷은 사람들에게
꽤나 충격인 듯했다.

“반유현입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충 인사치레 멘트로 사람들의 충격들을 정리하곤 나는 오늘 실시간 방송을 켠 이유를 말했다.

“장소는 펠리지오 호텔 최상층.”

-???

-뭐가 최상층임?

-레스토랑 오픈하는 곳? 일식집?

-뭔데, 이벤트임?

“펠리지오 호텔 최상층에서, 저와 제 셰프들이 요리를 공짜로, 공짜로 만들어드릴 예정입니다.”

-ㅋㅋㅋㅋ 와! 찰스 레버 셰프의 요리 하는 듯.

-아! 찰스 레버 셰프의 요리 그대로 따라 해서 누가 맛있나?

-반유현의 이 요리는 내꺼야 스킬 시전!

-참교육 갑니다!!!

-가고 싶은데, 비행기 표 값이 없네.......

사람들은 이미 내가 어떤 요리를 선보일지까지 알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 댓글 창을 보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ㅋㅋㅋㅋ 저 표정 봐 진짜야!

-반실모 세프들 요리 그대로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참교육 한다는 거!

-ㅋㅋㅋㅋ우와!!!

“저는…… 뭐. 그분들의 요리를 따라 하겠다고 한 적…… 이전 방송에 있었지만 취소하겠습니다. 그냥


저만의 요리를 공짜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장소는 펠리지오 호텔이구요. 저를 도와줄 셰프들까지
소개하겠습니다.”

내 말에는, 윤종혁, 마츠노, 닉.


가장 맨 처음 나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말했던 반유현 팩토리 A 반의 교수들이 나왔다.

-뭐, 뭐야!

-ㅋㅋㅋ그럼 다 쇼였다는 거야?

-와…… 내부의 사람들이 뱉는 말을 미끼로 반실모 같은 조직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 거야?

-ㅋㅋㅋㅋㅋ다들 망했네. 저 사람들 말 믿고 반유현 깎아내리던 사람들?

“세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예약 같은 건 없고, 현장에서 먼저 오신 순서대로, 입장하시겠습니다.”

***

방송은 종료하지 않고 계속 실행시켜두었다.

내가 요리하는 모습과 나를 따르는 교수진들이 요리를 하는 모습, 그 모습들이 모두 라이브로 상영되고


있었다.

“아! 이 소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이 맛은 어디 가서도 먹을 수 없는 맛! 뭐…… 런던 어디에 비슷한


요리를 하는 곳이 있다고도…… 아차차차! 말하면 안 되지.”

앤디는 요리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우리 모습에 다채로운 멘트들을 섞으며 화면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곤 내 옆으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셰프님, 이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담으려는데, 함께 나가시죠. 셰프님과 손님들과 인사하는


모습을 담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100 년을 살았어도, 한평생 방송일을 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따라주었다.

우와아아아아아!

우아아아아아!

내가 나가자, 수많은 함성들이 몰려왔다.

셀 수 없이 많이 모여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우튜브를 보고…… 몰려온 사람들 맞, 맞나요?”

무심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나, 확인하려 했던 앤디 릭터.

아니, 지금쯤 많은 사람이 왔을 것이라 마음속으로 단정 짓고 나와 함께 나가자고 말했던 앤디 릭터.

이 정도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말을 잇지 못했다.

삐비비비빅!

이미 경찰들이 거리를 정리하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방송에 MC 의 말 대신, 여러 소음들이 끼는 것은 방송사고 아닌가.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최고의 요리로 보답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이 환호했다.

169 화. 미국문화의 중심지 (1)

찰스 레버가 런던에서 운영하는 미슐랭 쓰리스타의 레스토랑은 정통적인 코스를 따르지 않는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요리들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던 요리들이 주된 테마로, 그의 꿈이 담긴


메뉴들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었던 과거가 있었다.

미슐랭 15 스타의 셰프, 그런 그가 ‘꿈이 담긴 요리’라고 말하니 당연히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대대적인 홍보 효과 덕분에 오히려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내가 찰스 레버의 음식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 요리들이 그의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것이라 알
수 있어.”

“그렇죠.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커서 지금은 오히려 위기 상황에 닥쳤네요.”

그의 요리를 똑같이 만들어 그와 나의 요리 실력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이고 그를 따랐던 ‘반실모’라는


조직의 몰락을 기획했던 나는, 그 의도를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 요리들이 찰스 레버의
요리임을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요리들은 색깔이 짙었으니까.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내 의도가 자연히 표출될 테니까.”

그중에서도 나는 그의 시그니처 요리라 할 수 있는 ‘백만송이 파스타’를 맡았다.

백만송이버섯이라는 버섯의 한 종류를 곁들인 파스타.

“셰프님 파스타는 또 유럽에서 워낙 유명하죠.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라는 레스토랑은 역사적인


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했고요.”

지금 주방에 함께 있는 윤종혁, 마츠노, 닉도 찰스 레버의 시그니처 요리인 백만송이 파스타를 맡고 싶어


했을 것이다.

내가 주방에 함께 있을 것이니 나의 코칭을 받을 수 있고, 이렇듯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에서 자신의


실력을 대중들에게 당당히 뽐내고 싶었을 테니까.

더군다나 라스베이거스에 일식 레스토랑이 런칭 준비 중인 지금 이들의 인지도는 그 레스토랑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러 이유로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것을 양보해줄 수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나’를 모함하는 세력들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기에 내가 직접 그의 시그니처 요리를 잡았다.

“윤종혁 셰프는 제철 채소와 함께 먹는 통전복찜. 전복은 항상 손질에 유의하고.”

“예, 셰프.”
“마늘의 풍미를 입히는 것이 핵심인데, 오렌지 향도 살짝 곁들여.”

“오, 오렌지 말씀이십니까?”

“기존 찰스 레버의 통전복찜에는 없지만, 맛을 확실히 올릴 수 있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겐 각각 찰스 레버의 레스토랑에 나오는 요리를 지정해주고 유의할 점에 대해서 집어주었다.

“마츠노 셰프님은…….”

“복어의 이리를 함께 곁들인 계란찜입니다.”

“마츠노 셰프님의 전공이니, 큰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만…….”

복어의 정소, 시라코(白子)는 고급 식재료로 특유의 크리미함과 고소함의 맛이 대표적이며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재료 중 하나였다.

별미이고, 미식가들이 자주 찾기에 고급 일식 요리에 주로 사용되었는데, 일식의 장인이라 불리는 미슐랭


7 스타의 마츠노에겐 이보다 친숙한 재료가 없었을 것이다.

“복어의 이리를 물에 데친 뒤, 퓌레를 만들 듯이 으깨어 계란과 함께 쪄낼 생각입니다. 실제로, 찰스


레버 셰프의 요리가 그렇습니다.”

그녀가 찰스 레버의 레스토랑에 방문할 시간은 당연히 없었기에, 인터넷을 통해 찰스 레버의 요리에
사람들이 맛에 대한 리뷰를 남긴 것을 보고 이미 그 조리법과 레시피들을 안 모양이었다.

나도 그들에게 최고의 맛을 위한 조리법을 지시하기 위해 마츠노처럼 사람들의 리뷰만을 이용해 찰스


레버의 조리법을 파악했었다.

그래서 그녀가 셰프로서 훌륭한 실력을 갖췄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눈에는 한계가 보였다.

“그 요리를 그대로 따라 한다면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많이 사용해본 재료이니 최고의 맛을 내실 수


있으시겠죠. 그런데, 조금 더 발전시키려면 물에 데치기보다, 구운 뒤에 계란찜이 90% 조리되었을 때,
올린 뒤 마지막 10%를 조리하는 것은 어떨까요.”

마츠노가 눈을 키우며 나를 바라봤다.

자신이 그랬듯이, 나도 인터넷에 올라온 사람들의 리뷰로만 조리법을 생각했을 터인데, 그 요리의 맛을
미세하게나마 올릴 수 있는 발전적 방법을 가져온 것에 대해 놀란 눈빛이었다.

“어떻게…….”

요리에 수십 년을 쏟아부은 중년의 셰프.

내가 이토록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니까 머릿속 수많은 의구심들이 지나갔을 터였다.

“원래 조리법을 알고…….”

그 의구심 중에는 내가 찰스 레버의 요리를 직접 맛보고, 레시피를 이것저것 따져본 뒤, 여러 가지


실험까지 한 뒤에 지금처럼 말하냐는 것이었다.

“그 요리를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방금 마츠노 셰프님이 말씀하신 조리법을 머릿속에서 따르고


머릿속으로 맛을 보았습니다. 각종 퓨전 요리를 하는 찰스 레버와 달리 일식을 오래 요리하신 내공에 의해
찰스 레버의 계란찜보다는 세밀한 맛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극적인 차이는 벌릴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실제로 조리법만 들으면 그게 어떤 맛일지 알 수 있다.

이는 100 년의 내공이며 경험으로 쌓인 데이터이자 내 실력의 기반이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해보시죠.”

나이와 경력은 훨씬 어리지만, 내가 이 주방의 리더이고 미슐랭 23 스타를 가진 셰프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마츠노는 의지가 드러나는 표정으로 조리대 앞에 섰다.

“닉 셰프님.”

“예! 셰프.”

“닉 셰프님은 중국식 옥수수 온면인데, 앞서 먹었던 요리들의 멋진 마무리의 역할까지 해주셔야 합니다.
다시마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말씀드렸으니, 염두에 두시고요.”

“예! 셰프!”

언젠지 모르게, 이들에게 대단한 충성심이 생긴 것 같았다.

자신들이 수습할 수 없는 것들을 내가 단숨에 해결해주어서 그런 건가.

“긴장합니다. 지금부터.”

“예! 셰프!”

기성 셰프라고는 할 수 없는 목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다.

***

“네! 여러분! 반유현 셰프님의 방송을 보고 몇 시간을 빠른 속도로 달려온! 또는 운 좋게


라스베이거스에서 머물던 손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앤디가 멘트를 했고,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개부럽다진짜!ㅋㅋㅋ

-와 이때에 딱 라스베이거스 갔던 사람들은 복권 당첨된 기분일 듯.

-반유현 요리를 공짜로 먹냐…….

-전생에 무슨 업적을 쌓았길래…….

당연히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아아!! 저기 저분은 펠리지오, 이곳의 모든 요리를 총괄하시는 톰슨 셰프 아닌가요? 바로 인터뷰를


해보러 가겠습니다.”

나는 주방에서 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앤디가 특종을 포착했다는 듯이 톰슨에게로 다가갔다.

“톰슨 셰프님!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관계자가 이렇게 손님들의 자리를 뺏어도 되는 건가요?”


“아……. 제가 이 호텔의 관계자이긴 하지만, 반유현 셰프님의 사업과는 직접적 연관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오오. 그럼 혹시 반유현 셰프님이 귀띔을 해준 건가요? 이렇게 게릴라 형식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겠다고요.”

“음……. 직접 말해준 적은 없었고, ‘반실모’라는 조직이 생겨나고 사태가 흘러가는 것을 보아하니,


분명 이 정도의 사건을 만드시리라 생각은 했습니다.”

-잡았다 요놈!ㅋㅋㅋㅋ

-친하니까 서로 알려준 것 아님?

그 외에, 여러 유명 셰프들도 자리에 함께했는데, 앤디는 그들을 모두 인터뷰하고선 다음으로 인터뷰할


사람들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의 요리들이 주방에서 홀로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아아아! 요리가 나옵니다!”

앤디는 주머니에서 대본을 꺼냈고, 멘트를 이어나갔다.

“첫 번째 요리는! 복어 이리를 곁들인 계란찜입니다!”

-ㅋㅋㅋㅋ 저 요리 어디서 본건데?

-찰스 xx 의 요리 아닙니까?

-찰스씨가 가진 대부분 레스토랑의 에피타이저로 준비됨.

-와ㅋㅋㅋㅋㅋ 진짜 반유현이 정면 승부해서 족친다는 거구나.

“어……. 이 요리의 맛에 대해 잘 설명해주실 분이…… 흠. 톰슨 셰프님은 반유현 셰프님과 친분이


있으니 객관적인 평가가 안 될 터이고. 아!”

생방송 촬영의 시청자수가 80 만을 돌파했고, 그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려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요리에
대한 평가가 필요했다.

앤디는 그런 평가를 해줄 사람을 물색하던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세계적인 요리 칼럼니스트이자 ‘미식의 길’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만드신 아니, 모리아 작가님!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저 아저씨가 누군데ㅋㅋㅋ

-앤디가 저렇게 말하는거 보면 최소 앤디급 이상 정도는 되는 사람 아님?

-애시 모리아도 모르냐ㅋㅋㅋㅋ 앤디가 운영하는 토크쇼에도 나왔었잖아.

애시 모리아.

지금은 내가 최연소지만, 미슐랭 16 스타를 최연소의 나이로 얻은 뒤 돌연 은퇴한 사나이.

10 년 뒤 요리 평론가로 돌아와 수많은 셰프들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나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요리업계에서의 그의 입김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요리 평론에는 권위적인 인물이었다.

“어떻게 하필 또 여기 계십니까? 섭외되어서 오신 건가요?”

저 정도의 인물을 섭외하는 것이 영상을 다채롭게 하는 것에도, 찰스 레버와 확실한 실력 비교를 하는


것에도 여러모로 좋지만, 섭외는 하지 않았었다.

“아니요. 라스베이거스에서 여행을 하는데, 우리 아들놈이 우튜브에서 반유현 셰프님을 봤다고 합니다.
하하하하.”

“이거 대박인데요?”

“앤디 씨 표정 보니까 제가 요리의 맛에 평가를 내려야 될 것 같은데,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예? 아니! 저를 안 도와주실 겁니까? 세계 최고의 평론가 중 한 분을……! 오늘의 영상에서 놓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 애시 모리아 님! 우리의 지난 정을 생각해서라도……!”

나조차도 저런 인물이 내 요리를 평가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애시 모리아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제가 감히……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평가했다간…….”

나의 영향력을 실감한 것이 이유였다.

“아…….”

그의 말에 앤디는 자신이 배려가 부족했음을 깨닫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애시 모리아가 권위적인 평론가 일지라도 ‘반유현’, 나의 요리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터였다.

앤디는 순간 당황했지만 베테랑임을 증명하듯이 부드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하하하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일반인 분들을 위주로 맛에 대한 평가를


들어야겠습니다. 첫 요리는 복어 이리를 곁들인 계란찜인데요!”

그런데, 그때.

앤디와 함께 카메라 바로 앞에 있던 애쉬 모리아가 소리쳤다.

“허, 뭐야 이건?”

혼잣말이었음에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의 소리.

그가 나의 요리를 먹고 뱉은 첫마디 말이었다.

170 화. 미국 문화의 중심지 (2)

주방 밖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츠노는 반유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뭐야 이건……! 이런 요리는, 이 미친 밸런스는 대체 얼마 만에 먹어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먹어본 적이 없는 요리일 수도 있습니다.”

첫 요리로 내어놓은, 복어 이리 구이를 올린 계란찜.

찰스 레버의 유명 요리 중 하나인 복어 이리와 계란찜에서 발전된 버전이었다.

마츠노는 반유현의 코칭에 따라 그 요리를 만들어 내어놨다.

“아 그 정도입니까? 애쉬 모리아님의 평가가!”

“이 요리는…… 반유현 셰프님께서 만드신 겁니까?”

애쉬 모리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요리 평론가가 저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반유현의 주방에서 나온 요리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입을 닫겠다던 그의 입을


속사포로 만들어 놓은 요리.

마츠노 본인이 한 요리였다.

‘의심을 했었는데.’

아니, 정확히는 반유현의 조언을 따라 그대로 만든 요리였다.

미슐랭 7 스타를 가지고 있으며 일식에 일가견이 있는 마츠노는 당연하게도 자신의 일식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반유현의 조언을 듣고는 세세함에 혀를 내둘렀었다.

‘그 모든 것들이 맛으로 표현된 거야?’

물론, 그 세밀함이 정도를 지나치는 것 같아 의심이 생기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생수에 들어간 미네랄의 농도를 조절해 물의 맛을 조절한다는 어떤 사기꾼처럼 느껴지기도 한


것이다.

‘물론 논리적으로도, 재료의 특성을 보고도 맞는 말이었긴 하지만.’

복어의 이리를 물에 한 번 대친 뒤, 으깨어 계란과 함께 쪄낸 찰스 레버의 기존 요리는 복어 이리 특유의


고소함과 알싸한 풍미를 느낄 수 있지만, 이리를 즐겨 먹는 미식가들이 찾는 주된 이유인 식감을 살릴
수는 없었다.

계란과 함께 쪄낸 복어의 이리는 어쩔 수 없이 이리 특유의 크리미함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리를 감싸고 있는 근막……. 그것을 남기는 양까지도 반유현은 조절을 하는 건 그와는 달라…….’

이리의 손질 단계부터, 반유현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복어 이리를 손질할 때, 대게는 이리의 순두부 같은 부드러움을 위해 모든 근막을 제거하는데, 반유현은


그 근막의 끝부분을 살려두었다.

‘맛이 입안에 남는 시간까지 계산해야 될 것 아닙니까.’라는 말을 하면서.

“입안의 여운을 아주 강하게 남기는 요리입니다. 다음 요리가 아득하게 기다려지는 첫 요리네요!”


“찰스 레버는 무슨. 이게 요리야! 이게 요리지!”

그랬던 반유현의 말이 맞았다는 사람들의 반응들이 홀에서 주방으로 쏟아져 들려오고 있었다.

마츠노도 반유현의 조언을 온전히 따라 만든 그 요리를 먹었을 때는, 그간 쌓아왔던 반유현에 대한 모든


의심을 푸는 순간이었다.

‘그가 말한 모든 게 맛에 구현되었어…….’

처음 중동 석유 재벌 하이든 왕세자의 개인 셰프로 있었을 때부터 그의 등장이 달갑지 않았었다.

자신의 고용주를 흔들어 놓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주방에 대한 권한을 빼앗아 간 것이니까.

그 반발감에 반유현과 직접 대결을 펼치고 완패했었다.

물론 완패는 했지만, 그 당시에도 그를 인정하지는 않았었다.

‘열심히 하고, 운도 따라주는 인간. 그런 줄로만 알았지. 그가 운이 좋아서 내가 진 거라고…….’

조리대에서 윤종혁을 지시하고 있는 반유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엄청난 연륜과 내공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식을 15 년 넘게 공부한 마츠노, 본인도 저 정도의 정교함은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그의 실력이 아득해졌다.

‘저 인간이라면 정말로…….’

반유현은 이미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는 셰프이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셰프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는 느낌이지만, 십 년이 넘는 요리 인생을 살아온 마츠노의 경험이리라.

***

“달짝지근한 계란, 그리고 폰즈소스, 그리고 터지는 복어 이리의 고소함과 알싸함……. 그리고
아카오로시(あかおろし)…… 이 미친 조화는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쳤나 보다 진짜.

-애쉬 모리아가 저 정도 말을 하는 건 처음 아님?

-ㅋㅋㅋㅋㅋ 저 사람이 평론가 전에도 미슐랭 15 스타인데, 말 다 했다.

-역시 반유현…… 그는 대체…….

“이리의 막을 이렇게 살려둔 요리는 처음입니다. 덕분에 순두부처럼 부서지기보다는, 푸딩? 약간의
탄성이 있어 계란찜과 이리 구이를 입에 오래 머금을 수 있고, 와……! 아주 별미네요.”

“하하하! 애쉬 모리아 평론가님께서!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감히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을 하셨었지만,


지금은 그의 추종자가 되어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모리아는 앤디의 말처럼 이미 나의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이 요리는! 반유현 셰프님의 지휘하에서 나왔지만,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님께서 조리하신 겁니다!”

-마츠노?

-마츠노가 누구야?

-반유현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했었던, 반유현 팩토리 A 반 교수진.

-미슐랭 7 스타 셰프임. 요리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람.

-무튼 저 사람이 애쉬 모리아를 감동시킨 것 아니야?

생방송의 MC 역할을 하고 있는, 앤디는 마츠노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는 내가 직접 그에게 주문한 것이었다.

내가 직접 한 요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은 두 가지 이익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첫째로 내가 주방에서 완전한 지휘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나는 내 맛을 나를 따르는


셰프들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나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마츠노의 입지를 올릴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아아……! 그렇군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가 아닌데도 이런 맛을 내다니. 마츠노 셰프님을 실제로 만나
뵙고 싶습니다.”

세계적 요리 평론가인 애쉬 모리아 또한 헤드 셰프의 맛의 의도를 온전히 받아 구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


줄 알았기에, 마츠노를 높게 평가했다.

마츠노가 미슐랭 스타로만 치면 자신보다 8 개의 별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홀에 있는 손님들이 마츠노의 요리를 모두 비워냈을 때는, 마츠노를 홀로 내보냈다.

“안녕하십니까. 가타무라 마츠노입니다.”

우와아와아아!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요리에 만족했다는 듯,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더불어 이는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감일 터였다.

“제 요리를 즐겁게 감상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께 드린 즐거움의 8 할


이상은 반유현 셰프님의 능력임을 밝힙니다.”

간략하게 인사한 마츠노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왜 그러셨어요. 본인의 공으로 돌려도 상관없는데.”

“셰프님의 조리법이 9 할 이상인데, 8 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정도면 제 공으로 돌린 거죠. 아주


이기적이게.”

마츠노의 진심을 확인했을 때쯤에는 다음 요리가 주방에서 홀로 전달되었다.

윤종혁의 계절 채소를 곁들인 통전복찜이었다.


“오 마이 갓!”

“전복이 이렇게 부드러워?”

-사람들 얼굴이 다 행복해 보임ㅋㅋㅋㅋ

-밖에서 기다리면서 이 방송 보는데, 미쳤다 진짜. 빨리 좀 먹고 나가라!!!

-저것도 반유현이 지시해서 만든 요리야?

나도 주방에서 우튜브를 켜놓곤 홀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전복이 은은하게 품은 마늘과 오렌지의 향을 느끼며, 그 부드러운 식감을 함께 느끼는 사람들.

전복 내장소스를 곁들였는데, 그는 전복 내장 특유의 녹진함과 고소한 맛을 냈다.

그리고 한국에서 공수해온 명이나물과 두릅은 입맛을 돋우었다.

그때, 윤종혁이 나가서 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명이나물은 대한민국 울릉도의 고산지대에서 나는 것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퀄리티라 할 수 있습니다.


한산도의 땅 두릅 또한 상쾌한 향을 가장 많이 품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가장 질 좋은 나물들과 전복의 조화, 그 안에는 또 뜻이 담겨있었다.

“두 나물의 특징은 섬 자락에서 바닷바람을 머금고 강한 향을 품게 되었습니다.”

-초록색 풀떼기를 보고 군침 도는 건 처음이네.

-ㅋㅋㅋ그러게요. 저도 육식인데, 나물이 맛있어 보이긴 처음입니다.

여러 가지 요리의 뜻을 설명하던 윤종혁은 고개를 숙여 마지막 말을 전했다.

“반유현 셰프님 덕에 이런 요리를 선보일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메인인 나의 파스타가 홀로 서빙되었다.

***

런던에 있는 찰스 레버의 레스토랑에는 손님들이 발 디딜 틈 없어졌다.

[ 반유현이 선보인 요리가 찰스 레버의 요리? ]

[ 반유현의 파스타! 찰스 레버와 정확히 동일한 재료 사용! ]

[ 반유현에 의해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찰스 레버의 레스토랑! ]

바로 어제, 나와 반유현 팩토리 A 반 교수진들이 선보인 요리를 먹어보고, 정말 이 요리들을 찰스 레버의


요리와 비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움직인 것이었다.

당연히 일반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와 런던을 요리 때문에 오갈 리는 없었고, 대부분 요리 평론가 또는


기자,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중동의 하이든 왕세자처럼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나의 요리를 직접 비교하기 위해


런던과 라스베이거스를 왕복하는 것이 문제가 없을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매거진 또는 요리를 먹고 비교하는 것이 일인 사람들에 의해 사태는 점점 커져갔고, 찰스 레버의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손님이 많아졌다는 것은, 레스토랑이라면 좋은 일일 테지만, 이번에 찰스 레버에겐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 반유현에게 완패. ]

[ 누가 누굴 의심하나 찰스 레버. ]

[ 반유현의 파스타와 정교함에서 벌써 뒤처져. 한 입만 먹어도 알 수 있다. ]

조회수와 관심이 돈인 그들은 작정하고 찰스 레버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자극적인 기사들로, 제목들로 나와 그의 실력의 차이를 묘사했다.

[ 반유현을 따르는 셰프들과 찰스 레버의 레스토랑에 있는 셰프들의 수준 차이도 한 몫. ]

[ 셰프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을 데리고 요리하는 찰스 레버, 미슐랭 자격 있나. ]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의 레스토랑 풍경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몰락을 말했다.

-ㅋㅋㅋㅋ 개맛없대.

-반유현한테 까분 자의 최후.

-반유현의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가서 그런가. 원래는 맛있기로 유명한 식당인데.

그런데 별종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다.

나와 마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찰스 레버의 요리실력이 재평가되고, 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있었지만, 그가 피해만 입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셰프들이었다.

그런 피해들보다 대중들의 관심을 크게 얻은 것에 가치를 둔 셰프들.

그들이 나를 또 물기 시작했다.

[ 반유현, 애쉬 모리아가 있던 것부터 조작 의혹 들어가야. ]

[ 대부분의 손님들이 짜여진 코스로 구성되어 있을 듯. ]

[ 뉴욕 셰프 연합회 “반유현이라는 사업가가 그 정도 연출도 못 하겠나. 조작이다.” ]

[ 익명의 뉴욕 최대 레스토랑 사업가, “반유현의 연출능력과 마케팅 능력은 가히 사기적, 찰스 레버에


손님이 몰리는 것을 봐라. 그의 이미지 타격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는 평생 놀고먹을 돈을 벌게 될 것이다.
]

찰스 레버에게 손님을 몰아주기 위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연출이라고 주장하는 셰프들이었다.

“대처하지 말까요?”

“당연히 무시해야지 귀찮게.”


“그런데 뉴욕은…….”

미국 문화의 중심지라 불리는 뉴욕, 라스베이거스와 대등하게 미식의 도시라고도 불렸던 그곳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완전히 라스베이거스로 향하자 들고 일어난 뉴욕의 셰프들이었다.

“저 뉴욕의 셰프들도 프랑스 파리만큼이나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셰프님이 실제로 다음 레스토랑을 런칭할 도시로 뉴욕을 생각하시던 것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궁금합니다. 무시할까요?”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은 간단하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나 셰프들에게는 파리나 라스베이거스만큼이나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매번 삶 뉴욕에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만큼이나.

“흠, 저 뉴욕의 셰프들. 이용해서 최대 효율을 뽑아내는 게 좋겠지?”

171 화. 미국 문화의 중심지 (3)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 평가를 바로 하지.”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인 윤종혁, 마츠노, 닉.

그 세 명 중 누가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를 맡을 것인지에 대한 테스트를 하려다 찰스


레버라는 사람까지 끼어들어 사건이 커지게 되었다.

애초에 이번 일의 시작은 헤드 셰프를 뽑는 것이었으니 나는 그 본질을 놓치지 않고 이들을 지켜봤었다.

“인지도를 가장 높게 쌓은 사람이 헤드 셰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었잖아.”

요리 실력에 있어서는 모두 뒤처지지 않았다.

미슐랭 7 스타를 가진 마츠노가 그 섬세함과 정밀함으로 나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는 조금 앞서나갈지


모르겠지만, 미슐랭 3 스타의 닉과 어딜 가나 젊고 유망한 셰프로 불리는 윤종혁도 그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요리 실력은 비슷해, 당장 마츠노가 앞서 있더라도 내 옆에 있으면 다들 비슷한 수준을 갖게 될 거야.”

“예?”

“셋 다 실력이 있다는 소리야.”

“아니…… 셰프님, 그것 말고……. 그 셰프들의 요리를 단 하나만 보셨지 않습니까? 그렇게 단정 지어


말씀하시는 게, 대단하십니다.”

칼질하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요리를 알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그 행동만 봐도 이 셰프가 나의 말을 온전히 알아들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하기야,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 하나하나가 여태까지 얻었던 명성을 빛내주거나 망가트릴 수 있는


사업이기에, 요리 하나만을 보고 헤드 셰프를 선정하는 나의 모습에 나를 따르는 직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왜, 못 믿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셰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진짜인 줄 알고 대단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는 셰프님을 비꼬거나…….”

“나도 알아.”

내가 찡긋 웃으며 말해 보이자, 그제서야 직원들이 인상을 폈다.

그러나,

“라이브 방송동안의 댓글들 모두 집계해서, 각 셰프들 언급된 댓글들 싹 다 모아와.”

나의 말에는 다시 표정이 굳어진다.

“인지도가 가장 높은 셰프를 헤드 셰프의 자리에 앉힌다고 했다니까?”

약 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나의 우튜브 채널인 반유현 TV 를 찾았었다.

윤종혁, 마츠노, 닉 세 명의 셰프는 동일한 시간을 화면에 나오게 했었다.

각각의 시간에는 그들이 요리를 하는 장면과, 홀로 나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설명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시간을 모두 같게 구성한 것이었다.

이는, 반유현 TV 의 연출 총괄책임인 스티븐 리에게 말해놨던 것이었다.

“인지도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 없지만. 요리 실력이 모두 비슷하고, 나에 대한 충성심이


같다는 전제가 깔려있으니까.”

실시간 라이브 방송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댓글로, 헤드 셰프를 뽑을 생각이었다.

레스토랑의 맛이야, 당연히 내가 메뉴 개입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할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었으니까.

맛은 당연히 최고라 생각되는 ‘반유현’이라는 브랜드가 계속해서 신선하려면 겉으로 포장되는 느낌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반유현을 따라 최고의 맛을 구현하는 셰프, 그런데 인기도 뒤처지지 않는 셰프. 그 사람이 새롭게 런칭
될 레스토랑을 맡는다.”

모두 동일한 시간을 방송에 모습을 비췄으니, 가장 많이 댓글에 언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 아니겠나.

주방에서 혼자 칼춤을 추는 어그로 같은 것도 없었고, 온전히 요리하고 그 요리를 설명하는 모습들만


보였으니, 그렇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그래서 1 등은 누군지, 퍼센트(%) 정보로 가져와 봐. 사람 이름이 언급된 댓글들 싹 다 집계해서.”

약 두 시간 뒤, 오스틴이 가져온 집계 결과에는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반유현 (93.2%)

-가타무라 마츠노(2.3312……)

-윤종혁(2.3223……)

-닉 아델린(2.1……)

“이게…….”
내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그들의 우위를 소수점으로 따져야 될 만큼.

“소수점으로 헤드 셰프를 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라스베이거스 일식 정통 레스토랑 헤드 셰프, 마츠노 셰프.”

***

헤드 셰프가 정해지자마자, 라스베이거스 펠리지오 호텔의 최상부에는 나의 이름이 걸려 있다.

[ 반유현 - 퍼플 ]

이는 헤드셰프가 된 마츠노의 제안에 의해 이름이 지어졌다.

화려함, 풍부함, 우아함 등…… 여러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색은, 아주 오래전부터 왕실에서 쓰이는


색이라고 말을 덧붙여줬다.

또, 자신이 요리를 시작하기 전 주점의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주점 이름이


‘퍼플 레인’이었다고.

그녀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보라색, 퍼플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나 또한 새롭게 런칭할 가게의 이름을 마땅히 생각해 둔 것이 없어 그녀의 말을 따랐다.

“윤종혁하고 닉의 상태는 괜찮지?”

“예상외로 그렇습니다.

소수점 둘째 자리, 미미한 수로 헤드 셰프의 자리를 놓친 이들은 마츠노를 헤드 셰프로 맞이해 적응했다.

내가 어떤 근거를 들어 판단을 했던 간에, 나의 말을 따르겠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일식 정통 코스요리, 계절마다 메뉴가 다르겠지만 종류가 많지 않아서 대부분 생각하는 게 비슷할 거야.
그래서 숙제를 내려줬으니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생선을 조리한 요리가 대부분이다.

일식 레스토랑들간의 차별점은 정교함에 담긴다.

생선의 별미인 부위와 그것을 다루는 법, 또는 조리법은 오랜 시간을 지나 완성되어 왔기에 더 뛰어난
신선함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는 다시 나에게 모아졌다.

[ 맛의 끝, 일식 정통 레스토랑 반유현은 어떤 요리를 보여줄 것인가! ]

[ 미슐랭 7 스타 마츠노, 미슐랭 23 스타 반유현의 합작! 역대 최고의 일식 요리 선보이나! ]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헤드 셰프인 마츠노에게 숙제를 내려줬다.

레스토랑을 구성할 메뉴는 내가 정해주고, 그 메뉴에서 최고의 맛을 찾아내라고.

나보다 약 스무 살이 더 많고, 요리 경력도 십몇 년이 앞서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리고 펠리지오 간부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나와 회의가 끝나고 그 레스토랑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또한 레스토랑 ‘반유현’의 상징이 되었다.

[ 일식 정통 레스토랑 반유현! 불 꺼지지 않는 런칭 준비. ]

[ 레스토랑 반유현-퍼플, 성공의 징크스! 꺼지지 않는 레스토랑! ]

“오픈 날까지 메뉴 테이스팅 최고 강도로 볼 테니까 셰프들 긴장 풀지 말라 그래.”

언론에 노출 빈도가 셰프들의 긴장을 낮추는 데에 기여한다.

셰프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이미 무엇인가 된 줄 아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연예인 병이라고도 하지. 특히나 내 밑의 셰프들은 그랬다.

이는 100 년의 경험이 말해 주는 것이며, 강력하게 엄포를 놓고 나는 다음의 계획을 진행했다.

“뉴욕행 비행기는 몇 시야.”

“앞으로 네 시간 뒤입니다. 공항으로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미국 최대 도시라 불리는 뉴욕.

문화예술, 경제의 중심지, 세계인들이 몰리는 그곳.

사람들의 열정이 숨 쉬는 도시라고 불리는 그 도시에는 셰프들의 열정 또한 그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도쿄, 교토, 오사카, 파리의 뒤를 이은 도시가
뉴욕이었다.

‘일본이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이번 삶은 뉴욕이다.’

파리, 런던, 라스베이거스 그 다음으로 미슐랭 스타가 가장 많은 일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 몸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 사소한 외교적인 문제로 시류를 탈 수 있는,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배제했다.

나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너무나 커졌기 때문에, 두 국가 간 외교 정치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참나.’

그런 생각을 해보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어떠한 요소라도 내 요리에 개입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으니까.

요리는 오로지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 내 이름에 따르는 브랜드 벨류 또한 맛에 개입해서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이는 모두 미슐랭 스타를 얻겠다는 인생 최대의 목표 때문이었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지겨운 100 년의 삶을 살아보라, 당연히 나처럼 될 수밖에 없다.

뭐 어쨌든, 뉴욕행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라스베이거스에 미슐랭 3 스타를 보유할 레스토랑, 하나는 제리가 운영 중이고, 하나는 마츠노가 런칭
준비를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다음의 도시로 뉴욕을 고른 것이다.

“왈왈거리는 셰프님들도 이용하면 쉽게 안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더군다나, 뉴욕의 웬만한 입지를 가진 셰프들이 모두 모인, 뉴욕 셰프 모임에서 나를 건드렸다.

일명 뉴욕 셰프 연합회.

파리만큼이나 자신들이 뉴욕의 셰프라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이 있는 조직.

그들이 나를 건드린 이유야 눈에 훤했다.

“찰스 레버의 레스토랑이 그토록 대단한 손님들을 모으니까, 한번 건드려 본 거지.”

나를 모함하고 깎아내리려던 의도를 가진 찰스 레버가, 내가 한 행동에 의해 ‘셰프’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지만, 그의 레스토랑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좋은 일일 테지만, 셰프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찰스 레버의 몰락을 보면서도 나를 건드린 건, 그만한 ‘수’가 있다는 것인데 어차피 나에겐 큰 의미가
없는 것일 테니까.

“뉴욕거리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있다던데, 그쪽 건물주들 연락 돌려. 바로 런칭


준비하자.”

***

“반유현 셰프ㄴ…… 아니, 반유현 셰프가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부동산들과 컨택을 했다고합니다.”

뉴욕 부동산 협회의 연락을 받은, 뉴욕 셰프 연합회.

찰스 레버를 보곤, 반유현을 건드렸다.

그런데 그가 곧장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니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 연합회였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뉴욕으로 날아온다?”

연합회의 회장이자 미슐랭 17 스타를 보유한 시몬 레인.

그 또한 반유현이 이 도시로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계획인 거야.”

뉴욕 셰프 연합은 반유현의 실체가 모두 퍼포먼스였다는, 찰스 레버보다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이유들을


들어 그를 깎아내렸다.

반유현이라는 한 인간에 의해 요리업계가 좌지우지되고 그가 레스토랑을 여러 개 런칭한 곳이 미식의


도시라 불리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그에 대해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다가 뉴욕으로 날아오고 있단다.


그는 정말 뉴욕 셰프 연합회라는 이 조직을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

뿔난 호랑이들이 가득 차 있는, 호랑이 굴로 직접 들어오려는 꿍꿍이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배짱 좋게 호랑이 굴로 들어오는 그 셰프를, 꺾어야 합니다.”

사심이 아니었다.

연합회 회장인 시몬 레인은 반유현을 꺾는 것을 사명처럼 느꼈다.

요리사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브랜드 ‘반유현’의 아래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 현실, 한 명에 의해 요리


생태계가 더럽혀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 시몬 레인은 이번엔 그것을 바로잡겠다는 마음이었다.

“저와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어 가실 분.”

수십 명의 셰프들이 있는 이곳 회의장.

시몬 레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시 이전처럼, 건강하고 숭고한 예술의 가치를 좇는 생태계를 만들 셰프! 반유현을 내쫓읍시다,
우리!”

그런데, 셰프들은 그에게 감히 도전하기 싫다는 듯이 정적이 흘렀다.

172 화. 미국 문화의 중심지 (4)

“뉴욕 셰프 연합회에 협조 요청해.”

“예? 협조 요청이요?”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할 계획인데, 관심 있는 셰프 있으면 지원하라고.”

라스베이거스, 파리, 오사카 등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도시들은 이렇듯 셰프들이 뭉쳐있는 조직이 있다.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직전, 오너들은 이런 조직들에 연락해 인력들을 충원하곤 한다.

물론, 나는 반유현 팩토리라는 거대한 인프라가 있지만.

“군기 교육 들어가야 할 것 아니야.”

“군기 교육이요?”

“그냥 무시할 수는 없어. 까불지 말라고 경고는 해야지.”

하늘을 가르며 달리고 있는 뉴욕행 비행기 안.

오스틴은 도통 내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되물었다.

뉴욕 셰프 연합회에서 나를 모함하고, 내가 뉴욕에서 레스토랑을 런칭한다는 것에 대해 으름장을 놓았건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에게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는 것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걔네들의 진짜 마음은 안 그럴 거야.”

나를 모함한 이들에게, 내가 런칭 할 레스토랑에 관심이 있냐 묻는 이유는 그랬다.


“수뇌부라 불리는 한두 놈들이 정치질을 하려고 나를 깎아내리는 거지, 실제로 그 밑에 있는 조직원,
셰프들은 오히려 내 레스토랑에 들어오고 싶어 할걸?”

다수의 셰프들, 대다수의 조직원들이 내 레스토랑에 들어오고 싶어 할 것이다.

오히려 뉴욕 셰프 연합회라는 조직을 이끌고 있는 수뇌부에 대한 의심을 하겠지.

“그 협회장 이름이 뭐라고?”

“시몬 레인이라고, 뉴욕 토박이로 불리는 자입니다. 역시나 르 꼬르 동 블루 출신이구요.”

“엘리트들이라 그런지…… 피곤해. 하여튼, 뉴욕 셰프 연합회에 공문 보내 관심 있는 셰프들의 많은 연락


바란다고.”

***

뉴욕 셰프 연합회 사무국.

특급 셰프의 상륙에 비상근무가 걸려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전 세계 셰프들의 행보가 결정되는 시대, 그가 뉴욕으로 온다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뉴욕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한다 하더라도, 셰프 연합회 소속 셰프들이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피해가 없게끔 할 대책을 세우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브랜드 ‘반유현’ 측으로부터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이런 공문을 보낼 정도로 마음이 급한 건가?”

“그러게요. 반유현 팩토리라는, 세계 최대 요리 학교가 있는데…….”

앞서 말했던 대로, 그의 말 한마디면 셀 수 없이 많을 정도의 셰프들이 움직이는데, 그가 굳이 뉴욕 셰프


연합회에서 인력을 채울 일은 없어 보였다.

“냄새가 나는데.”

“무슨 냄새요?”

“우리를 제대로 농락하려는 것 같아.”

그래서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반유현이 뉴욕 셰프 연합의 지휘 체계를 무너트리려 하는 것이라고.

“원래, 반유현은 자신을 모함하거나 깎아내린 세력을 무시하지 않아. 어떻게든 되갚아주거나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부러트려 놓지.”

“그건 워낙 유명하니까요. 애초에 우리는 그걸 노리고 그를 공격한 것 아닙니까. 반유현의 타겟이 되는


것조차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으니까요.”

“그렇지, 여러모로 반유현이 우리에게 협조 요청을 보낸 건, 우리 지휘 체계를 무너트리려는 거야. 우리


조직 체계에 들어와 있는 셰프들이, 신입 셰프들이 대거 반유현 쪽으로 이동한다고 한다면…… 우리
조직이 허술해 보이고, 우리말에 힘이 사라지겠지. 중견 셰프들도 그에 따라 대거 이탈을 할 것이고.”
“와! 그런 생각이 또 나올 수 있는 것이군요!”

사무장과 직원이 브랜드 ‘반유현’으로부터 온 메일을 보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협회장


시몬 레인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아, 회장님. 반유현으로부터 공문이 날아왔습니다.”

“무슨 공문.”

“저희 협회 게시판에 구인 게시물을 올려달라는 공문입니다…….”

협회장의 얼굴이 곧장 찌그러졌다.

수많은 레스토랑들이 뉴욕 진출을 위해, 협회에 문의를 했지만 이렇듯 표정이 찌그러진 것은 처음이었다.

“반유현…… 반유현이라고 한들…….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

자신들이 반유현을 씹었던 모든 것들을 무시하곤, 웃는 낯짝으로 협조 공문을 보낼 수 있다니.

그가 협회를 대놓고 무시하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삭제해.”

“예? 아무런 답장 없이 삭제할까요?”

“이런 개무시를 당하고 있는데 답장을 해?”

“예! 삭제하겠습니다.”

반유현의 공문을 무시할 수 있는 조직이 있을까.

시몬 레인은 또다시 씁쓸한 마음을 느꼈다.

이곳은 뉴욕, 수십 년간 역사와 끈끈한 인프라를 형성한 뉴욕 셰프 연합회의 힘이 빛을 발하는 장소이다.

파리나 라스베이거스는 모르겠지만…… 시몬 레인은 자신의 조직 내에 있는 셰프들이 반유현의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기자들 불러서 기사 뿌려. 반유현, 뉴욕 부동산 가격 변동 일으키는 주범 되나……. 아니 지금


뉴욕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부정적 사태를 다 엮어서 기사 뿌려.”

물론, 시몬 레인 본인도 이런 방법들이 떳떳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입혀서 뉴욕 요식업 사수를 하겠다는 의지는 굴뚝같았다.

***

[ 뉴욕 부동산 가격 폭등! 반유현의 영향? ]

[ 반유현, 어둠의 손길이라 불린다. ]

[ 상권을 망쳐놓는 반유현, 가뜩이나 높은 임대료 더 올라가나……. ]


[ 셰프협회장, 셰프들의 목숨 줄을 잡고 있는 자의 욕망 서서히 드러나. ]

“발광하네.”

모든 게 예견된 수였다.

저쪽에 협조 공문을 보낸 것은 내가 저들을 무시하고,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은 것처럼 비췄을 테니까.

“개가 사람을 물었어.”

“예?”

“그런데 그 사람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개는 아가리에 힘을 더 줘.”

“그게 무슨 말씀…….”

그래서, 더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 내놓으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뉴욕에 거주하는 셰프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목적으로 말이다.

반유현, 내가 이곳에 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반유현으로부터 지켜주겠노라고.

“악당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네.”

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나의 이름만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내가 최정상 셰프임을 말하는 증거였다.

“악당이 되어서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개가 사람을 물면 안 되잖아.”

“그, 그렇습니다.”

“사람을 물면 어떻게 해야 돼. 우리도 기사 쫙 뿌려.”

사실 협조 요청을 보낸 것은 미끼였다.

나는 뉴욕 셰프 연합회와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 그쪽에 손을 내밀었는데, 그 지휘부가 나의 말을


거절했다는 모양으로 기사가 나가게 된다면?

지휘부는 진정 지역 셰프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졸렬한 방식으로 나를 깎아내려


자신들의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망하는 거지 뭐.”

그렇게 나의 계획은 실행되었다.

***

항상 도시를 옮겨 다닐 때마다 이런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이 피곤하긴 했다.

물론 그 이유야 나를 둘러싼 알력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를 가지고 싶은 사람들은 많은데, 갖기가 어려우니 재를 뿌리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당연히 나를 향해 재를 뿌리는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래서 역사 공부를 해야 된다니까 사람은.”

가만히 내버려 둔 적이 없었는데, 왜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공격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100 년 동안 찾지 못했다.

열등감, 자격지심…… 그중 하나겠지 뭐.

[ 반유현 공식 성명 “뉴욕 셰프 연합에 정식적으로 협조 요청해.” ]

[ 협조를 거절한 것은 뉴욕 셰프 연합회!! ]

[ 브랜드 반유현 관계자 “반유현 셰프는 지역 전체의 이득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

[ 대기업의 골목상권 망치기는 어림도 없는 소리……! ]

[ “뉴욕 셰프 연합 지휘부의 부패, 굉장히 실망. 셰프의 한 명으로써 용서할 수 없는 일.” ]

[ 뉴욕 셰프들 파업 선언! ]

이런 기사들이 줄줄이 쏟아졌을 때, 뉴욕 내 셰프들에 의한 반응이 즉각 나타나기 시작했다.

“셰프 폭동이라고 단어가 붙었습니다.”

뉴욕 셰프 협회에 가입된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셰프들이, 업주, 또는 오너 셰프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저해하는 뉴욕 셰프 협회를 탈퇴하지 않으면 레스토랑을 이탈하겠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 셰프 연합 소속의 한 셰프, “요식업 생태계를 망치는 건 반유현이 아닌,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알량한
우두머리, 또는 그를 따르는 조직. 그것을 도려내려 우리는 움직인다! ]

“내 생각보다 발언이 거친데?”

[ “반유현은 셰프 생태계를 세운 인물, 도제적 교육방식, 경력, 학연을 모두 없애고 실력으로 우뚝 선


인물이다. 우리가 그를 지켜야 한다!!” ]

수많은 뉴욕 소재의 셰프들이 나를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했다.

내가 지금은 거대한 기업을 꾸리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는 여러 조직에 맞서 싸워 셰프들에게


실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뉴욕으로부터 나를 지켜내야 된다고 말하는 셰프들이었다.

일명 반유현 지키기.

이는 어떤 유명 셰프의 발언으로부터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 검정 스카프를 오른팔에 두른 셰프들. ]

브랜드 반유현의 상징인 목에 두른 검정 스카프.


뉴욕의 셰프들은 그것을 팔에 두르기 시작했다.

[ 외압에 굴복하지 않는, 오직 열정과 실력으로 성공함을 뜻하는 검정 스카프 ]

그렇게, 뉴욕 거리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셰프들은 오른팔에 검정 스카프를 두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뉴욕 셰프 연합회의 회장은 물러났고, 그 조직은 해산되었다.

“그러면 내가 나서야지.”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지지하는 셰프들을 위해 나는 또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사무, 행정 일하는 직원들 뽑고…… 조직도는 알아서 해.”

“예, 셰프.”

-월드 셰프 크루.

뉴욕 셰프 연합을 대신할 사조직을 결성했다.

수많은 뉴욕 정통 셰프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설립과 동시에 기존에 있던 뉴욕 셰프 연합의 회원 수를 아득히 넘어선 수치였다.

“쉽잖아. 뉴요커가 되는 것.”

내가 하루 아침에 정통 뉴요커가 된 순간이었다.

***

반유혁 팩토리에도 비상이 떨어졌다.

반유현이 뉴욕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하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A 반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미 뉴욕에 레스토랑 런칭이 확정되어 있는 상황.

시기를 따져보면, 앞으로 2 주 뒤에 있는 반 승급 전이 레스토랑 런칭 전 마지막 승급전이 될 것이다.

C 반의 하위권 팀이나, D 반 그 아래로는 아무리 승급전을 잘 치른다 한들, A 반으로 갈 가능성이 없었지만.

A 반 또는 B 반에 속한 교수진 및 그들을 따르는 셰프들은 사활을 걸어야 했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셰프가 되는 것은 자신들이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온 이유였고, 온 열정을 쏟아 넣어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였으니까.

반유현이 말한 선순환구조라는 게 이런 것일 테다.

자신의 브랜드가 승승장구하는 것이, 반유현 팩토리에까지 내려가 선의의 경쟁을 일으키는 것.

그러나, 그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을 반유현은 원치 않는 듯했다.

반유현 팩토리 행정실로 온 메일을 보면 말이다.

-하필, 레스토랑 런칭을 앞둬서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친 경쟁은 어렵게
만들어 놓은 선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제가 파리에 방문해 정리를 할 때까지.

승급전을 미뤄두세요.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 이런 것까지 신경 쓸 새가 있는 것인가.

“와…….”

“뭐지.”

“이렇게 꼼꼼할 수가…….”

그 메일을 함께 보던 반유현 팩토리 직원들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173 화. 미국 문화의 중심지 (5)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통제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십니다.”

반유현 팩토리의 경영진과 간부들은 반유현의 꼼꼼함에 고개를 좌우로 젓는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뉴욕에 새 레스토랑을 런칭한다고 하시니…… 저희 반유현 팩토리가 또다시 부흥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에게 공통되게, 마음속 한켠에 불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세한 것까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직접 통제하시는 분인데, 이런 분이 현재의 자금난을 반드시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자금난.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고 핫한 요리사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요식업을 운영하고 있는 그의 회사에


자금난이라 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그 구조를 보면 이해가 됐다.

“반유현 셰프님의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경영학을 전공한 이들은 반유현의 행보에 대해 의심을 품었지만, 그가 또 이 문제를 해결하리란
믿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우려했던 문제들이 터지기 직전 상황이라 느끼기에, 입 밖으로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계 주요 도시의 레스토랑 설립 및 반유현 팩토리 설립, 및 대규모의 축제 실행……. 현재 레스토랑


사업과 식자재 사업으로 자금을 충당하고 있기는 하나, 이번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사업에 쓰이는 돈이
너무나 많습니다.”

“투자를 받지만, 나눠주는 지분을 한정 지어 놓다 보니, 자금난이 생긴 것이고요.”

반유현에게 투자를 하고 싶은 사람과 기업들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브랜드 ‘반유현’의 강경한 투자


정책에 의해 그 진입장벽이 높았다.

“이것 저것 자본을 받아들이다 보면, 지금처럼 반유현 셰프님의 불도저식? 막가파식? 행보를 할 수
없다고 웬만한 투자처들은 쳐내고 계십니다.”

포시즌스 그룹이나, 펠리지오 호텔 같은 그룹에서 거대한 투자를 받긴 했으나 많은 지분을 내어주는


방식은 아니었다.

사업확장에 필요한 자금들은 대부분 브랜드 ‘반유현’ 이름으로의 대출, 반유현의 개인 대출 등 은행의
돈을 끌어다 썼다.

물론, 지금 이들이 말하고 있는 자금난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높은 확률로 앞으로 당연히
벌어지게 될 일에 대해 우려를 하는 것이었다.

“현금 자산을 더 늘려야 하는 것을, 반유현 셰프님도 알고 계시니…… 저희가 걱정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매출의 성장 추이를, 월가와 세계적인 증권사들은 기적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재정 건전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죠. 한 달에 내는 이자가 벌써…….”

“매출의 성장속도가 반유현의 비전을 못 따라가는 것인데, 그런 기업들이 무너지는 건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이 봐왔던 터라…….”

이 문제가 장기화되면 브랜드 반유현도 더 이상은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돈보다 레스토랑을 차리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불어 넣는 데에 치중하시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분이 사업과 회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대체…… 우리 같은
경영쟁이들은 헤아릴 수 없는 생각이죠.”

그 회의를 종결시킨 건, 그 아무도 아니었다.

잠시간의 정적이었다.

잠시간의 정적 동안 생각에 빠져있던 경영진들은 자신들이 내뱉었던 이야기들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잘…… 하시겠죠?”

“크흠! 그, 그러게요. 의심을 항상 달고 다니시는 분이니까. 매번 기적적 행보를 보여주고 계시니,


이번에도 한번 지켜보시죠.”

“현 상황에 대해서만 보고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기업이었다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을 것인데, 이들이 안일한 이유는 역시 반유현 때문이었다.

이번 문제 또한 반유현은 해내리란 믿음이 가슴속에 자리했다.

***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이었다.

100 년의 인생을 살았어도 이 정도의 성취와 성장은 해본 적 없었으니까.

크게 형성된 파도를 타고 인생 최대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 전력질주했을 뿐인데 현실적인 문제로
직원들이 걱정이 쌓인 모양이었다.

물론, 나에겐 큰 걱정은 아니었다.

“돈 걱정 할 때냐 우리가?”

“아, 아닙니다!”
이 몸이 스스로, 돈을 번다고 마음먹으면 왕창 벌어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당연히, 근본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바로 최근엔 뉴욕 소재의 셰프들을 한 곳에 모은 조직의 수장이 되었으니까.

이는 상업적으로도 아주 유용한 인프라였다.

-월드 셰프 크루.

뉴욕 셰프 연합회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세운 조직.

이 몸으로는 불과 이틀 전, 뉴욕에 처음 도착했지만 내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뉴욕 셰프 연합회가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역사와 정통에 의한


입지는 내 이름 앞에 무너졌다.

물론, 그 오래된 역사에 의해 아직도 그 모임을 지키고자 하는 잔존 세력이 있었지만.

“그 잔존 세력이 내가 신경 써야 할 수준은 아니야.”

어쨌든 대부분의 셰프들이, 월드 셰프 크루라는 곳에 가입 신청서를 냈다.

“돈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잖아.”

그들의 진실된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뉴욕 셰프 연합회보다 가입비와 회비를 두 배나 올렸다.

“마음…… 이죠.”

돈이 필요한 상황이긴 했지만, 가입비와 회비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이들이 그만한 돈을 내고, 내가 만든 조직에 가입했다는 것은 나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 마음들을 확인했으니, 이제 돈을 벌 시간이고.”

어쩌다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으니, 그 증거를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이었다.

뉴욕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셰프들이 오른팔에 검정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이 사건을 나의
레스토랑을 런칭하고, 세계적인 내 입지를 한 번 더 쌓는 것에 이용하고 싶었다.

내 생각을 어렴풋이 느낀 오스틴은 괜스레 불안감이 찾아왔는지 어떤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마음……을 확인한 다음에 돈을 번다……. 어떤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셰프님.”

“뉴욕에 있는 거의 모든 셰프들이 나를 따르겠다고 오른팔에 검정 스카프를 묶었잖아.”

“네…….”

“싹 다 흡수해야지.”

“예……? 흡수는…… 해야 될 것 같긴 합니다만. 어떤 식으로…… 현재 파리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이곳에 설립 중인 반유현 팩토리-뉴욕은 아직 완공되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합니다.
한국이나 이스라엘의 반유현 팩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방법이 없습니다.
뉴욕이 설립될 것을 미리 생각해 흡수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오스틴은 자연스럽게 반유현 팩토리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뉴욕에 한창 공사 중인 반유현 팩토리가 있었고, 매번 ‘흡수’라는 건 셰프들을 반유현 팩토리에


집어넣는 것이었으니까.

그곳에서 진정한 경쟁을 거친 자만이 나의 이름을 걸고 레스토랑을 차릴 수 있는 법칙이 있다는 건,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아는 것이었다.

“그래, 현재 뉴욕의 반유현 팩토리는 공사 중이야. 저 셰프들을 어떻게 흡수할 거냐고?”

“파리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는…… Z 반까지 모두 차버려서…… 별관을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반유혁 팩토리, 이번 계획은 그게 아니야.”

“그럼 흡수…… 라고 말씀하신 건…….”

“뉴욕에 있는 대부분의 셰프들이 나를 따르겠다는데 파리에 이어서, 뉴욕 전체를 삼킬 기회잖아.”

반유현 팩토리를 활용하지 않으면 저 많은 셰프들을 품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반‘s 키친”

“반스 키친이요?”

“어. 가맹점.”

***

반도체, 자동차, 의류 등 수많은 제조업체들이 수십만 평의 공장을 짓고, 물량을 뽑아낼 수 있는 양을


늘였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가?

뉴욕 소재의 대부분의 셰프들의 오른팔에,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실력으로 성공을 이뤄낸 열정을 상징하는
검정 스카프를 둘렀을 때.

아니, 정확히는 나를 상징하는 검정 스카프를 둘렀을 때 든 생각이었다.

“기업들이 수십만 평의 공장을 차리듯이, 나도 이 뉴욕을 반유현 공장의 부지로 삼게.”

“공장…… 말씀이십니까?”

“무언가를 생산하는 공장은 아니고, 뉴욕으로 들어오는 셰프 또는 레스토랑을 집어삼키는 공장.”

프랑스 파리에 ‘반유현-골목’을 생성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월드 셰프 크루에는 오너 셰프들의 비율도 아주 높아, 그들이 내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물론 그 간판을 내걸기 전에는 나에게 조언도 받고, 레시피 수정도 받고.”

레스토랑 ‘반유현’ 그 산하의 레이블 같은 느낌을 그려보았다.

프리미엄, 파인 다이닝, 여지껏 런칭한 레스토랑들은 온전히 나의 의도 아래에 최상의 맛을 쫓았지만,


돈이 필요하다니 돈을 위한 사업을 한 번 해보겠다는 생각에 든 생각이었다.
“뭐, 파스타 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우리에게 가맹 제안을 한 뒤에, 내가 그 레시피를
발전시켜주고 관리 시스템까지 깔아주고는 월마다 돈을 받는 거야.”

“아, 가맹업주는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어 매출을 올릴 수 있고,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투자금 없이 현금 자산을 벌어들일 수 있고…… 최강의 사업인 것 같습니다.”

“반유현이라는 브랜드를 씌울 수는 없으니까. 반’s 키친이라는 브랜드를 새로 런칭해서 말이야.


알덴테라는 이름을 가진 파스타집이 우리와 가맹을 맺었다. 그러면 간판 이름을…….”

[ 반‘s 키친 : 알덴테 ]

라고 바꾸는 것이었다.

업주의 입장에서는 월마다 고정비용이 생기긴 하지만, 나의 이름을 빌려 사용함으로써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나의 입장에서도 내가 직접 저들의 요리를 맛보고 수정할 것이기에 내 이름값이 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내가 그들의 요리를 맛보고 수정해주는 시간은 길지도 않다.

냄새나 모양새만 봐도 그 맛을 알고 고칠 수 있으니까.

또, 노동이 들어가지만 확장성이 어마어마한 사업이었다.

뉴욕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반`s 키친’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다면 뉴욕 내의 영향력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물론, 이 사업구조가 실제로 먹힐는지는 실험을 해봐야겠지.”

가슴속에 확신이 있었지만, 애초에 ‘돈’을 위한 것이었으니 사업적으로 접근했다.

‘맛’을 위한 것이었다면 내가 백 퍼센트 맞지만, 돈을 벌어들이는 일은 그와 조금은 다르다.

맛이 대단한 레스토랑들이 이따금씩 테이블 위에 파리를 날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반`s 키친의 첫 번째 가게로…… 저긴 어때.”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잡은 사무실, 그 창문 밖에 한글로 간판이 적혀 있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 유진이네 반찬가게. ]

멀지 않은 곳에 한인 타운이 있어 한글 간판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저 집은 복권에 당첨된 거네요.”

“공짜는 없어. 유진 씨? 저분이 그만한 가치를 창출시켜주시겠지.”

174 화. 미국 문화의 중심지 (6)

10 평 남짓한 조그만 반찬가게, 그 외부의 휑함은, 내가 이 가게를 수많은 손님들로 북적이게 만들었을 때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엑!”
유진이네 반찬가게.

나는 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수십 가지의 반찬들이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었고, 또 다른 반찬들을 일회용 용기에 담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괴성을 지르며 나를 반겼다.

“바, 반유혀……언?”

“네, 안녕하십니까.”

“에구머니나! 왜 이런 누추한 곳에.”

다행히 나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나는 내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쉽게 말할 수 있었다.

“반스 키친…… 그러니까 그 1 호점으로 우리 가게를 해주신다고요?”

중년의 여성 이름은 이유진.

xx 이네 가게라 이름 붙은 대부분의 곳이 아들이나 딸의 이름을 빌려 쓰는 것과는 다르게 이 반찬가게는


본인의 이름을 직접 사용했다.

100 년을 살아 본 경험 때문인지 내가 본 사람의 첫인상은 그 사람의 성격과 일치했는데, 이유진은


겉으로는 상당히 강인하게 생겼지만 속은 여린 천상여자인 아줌마였다.

“그렇습니다. 봉사나, 자선사업은 아닙니다. 저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고, 그 과정에 유진 님도


꽤나 쏠쏠한 재미를 보실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헤……엑!”

모든 계획을 듣곤,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뱉지 못하는 이유진이었다.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하이고, 나 진짜 어떡하면 좋아.”

그런 그녀가 주저하더니 자신의 고민을 말했다.

“우리는 10 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반유현 셰프님 하고 방송 나가면…….”

당연히 나는 ‘반`s 키친’의 시작을 내 우튜브 채널인 ‘반유현 TV’와 함께하려고 했었다.

구독자가 300 만 명을 넘어버린 내 우튜브 채널에 출연함과 동시에, 나와 엮이는 것 자체로 수많은
손님들이 찾아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10 년째 인연을 이어오던 단골손님들이 불편해할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단골이라…… 이게 단골 분들 명단입니까?”

낡은 노트에 적혀있는 이름들, 그곳엔 손님들이 좋아하는 반찬과 맛이 적혀있었다.

“유진님 말대로 10 년 의리를 나 잘살자고 접을 수는 없는 것이니…… 이분들을 위한 물량은 고정적으로


정해두시죠.”

“하이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러면서 본인이 일주일 전 돼지꿈, 똥 꿈, 호랑이 꿈을 계속해서 꿨었는데 이게 ‘반유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이거 봐요…… 며칠 동안 길몽을 계속 꿔서 복권을 이렇게나 사뒀는데, 더 큰 행운이 찾아왔으니 이


복권은 당첨이 안 되겠어요.”

그렇게 ‘반`s 키친’ 의 1 호점 가게가 선정되었고 일을 곧장 시작했다.

“하나씩 맛을 먼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며칠간 집에 가지 못하실 겁니다. 물론 저도 집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열심히 하는 만큼만 해주신다면 대단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냥 요리 학원이었다면 요리를 배우는 학생의 인간 됨됨이부터 손 봐 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는 요리 학원이 아닌 ‘반유현’, 나의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이었다.

‘반스키친’의 가맹 1 호점으로 선정된 이유진은 자신의 인생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정말로 3 일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명란 계란말이, 제육볶음…… 무생채, 멸치볶음은 통과.”

국까지 포함해 스물두 가지의 반찬이 있었는데, 나는 그 모든 반찬들을 맛보고 레시피를 수정해주었다.

다만, 스물두 개의 모든 반찬을 최상의 맛으로 끌어올리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기에, 메뉴의 수를


줄였다.

“셰프님 말씀을 무조건 따라야죠.”

셰프라면 자신의 비법, 경험, 신념이 담긴 메뉴를 없애는 것에 반발이 있을지도 모르나, 이유진은 내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정말로 셰프님께서 메뉴를 지우라고 했는데 그대로 가져가는 셰프들이 있어요?”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스티븐 리도 함께하고 있었다.

‘반유현 TV’의 라이브 영상을 송출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뭐야! 저기 뉴욕에 있는 반찬가게잖아!

-엥? 반유현이 저길 왜?

-이모네 집인가?

-반유현의 이모인데 반찬가게를 왜 함ㅋㅋㅋㅋ 평생 놀지.

화면의 오른쪽 위에 ‘반`s 키친’ 이라는 글귀가 붙어있었고, 사람들은 그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반스키친이 뭐야.
-또또 무슨 프로젝트냐ㅋㅋㅋㅋ

-유현이 형 진짜ㅠㅠ

-이제 봉사까지 하는 거야?

-요리의 신……. 갓유현.

그렇게 시청자들의 추측이 쌓여가고 있을 때, 나는 카메라를 응시하고 말했다.

“전 세계 수많은 팬분들, 또는 요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성원에 제가 가진 노하우나 비법을 많은


분들께 전달하려고 합니다.”

레시피를 수정, 보완해주고, ‘반유현’, ‘반`s 키친’이라는 이름을 빌려줄 것이며, 당연히 공짜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의 설명을 간단히 말해주니 빠르게 올라가던 실시간 댓글 창이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공짜면 안 되지!

-와 어쨌든 돈 내면 반유현 이름을 쓸 수 있다는 것 아니야?

-반유현한테 직접 코칭을 받는다니ㄷㄷ

-반유현 팩토리 A 반도 반유현한테 직접 코칭을 못 받을 텐데.

-ㅋㅋㅋㅋㅋ대박이네, 경쟁자들 또 불붙겠네.

지원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식당을 소유한 점주만이 할 수 있으며, 뉴욕 소재의 식당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하긴, 반유현이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없으니까ㅋㅋㅋ

-뉴욕은 그럼 반유현의 도시가 되는 거임?

-그러게, 뉴욕에 식당운영 하는 사람치고 저걸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어.

-이번에 있던 사건하고 연결지어 바로 사업해버리는 반유현…… 그는 대체…….

뭐, 이렇게 대외적으로 알리기도 했고 송출되는 방송의 영상은 스티븐 리가 도맡아 할 것이니, 나는 ‘


유진이네 반찬가게’라는 곳의 맛을 끌어올리기만 하면 될 뿐이다.

“명란 계란말이, 제육볶음, 무생채, 멸치볶음 이 네 개는 확실히 제 노하우를 전수받으셨고, 조금만 더


신경 쓰시면 완성될 것 같은 요리가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이유진은 3 일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했음에도 눈에서 빛이 났다.

그녀도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댓글 창을 본 덕도 있을 것이다.

“돼지고기 계란 장조림.”
이 몸에 이 요리들을 먹은 기억들은 있지만, 세세한 맛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내가 환생하기 전, 이 몸의 주인은 요리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니 그저 돼지고기를 씹어 삼킨


것이었을 테니까.

‘발전 가능성이 많아.’

간장에 조린 돼지고기와 계란, 간단하게 설명하면 그랬지만 맛을 올릴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다.

이유진이 만든 장조림이야 평범한 가정식에 올라가면 꽤나 맛있는 것이었지만, 나의 이름을 걸고


세계인들이 모일 이 식당에서는 부족한 편이었다.

“돼지고기 안심이죠. 간장의 간이 충분히 배어들지 못했고, 고기의 살결을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쩜, 반유현 셰프님은 모르는 게 없어!”

이유진이 만든 요리 하나하나, 지적을 했고 그에 따라 수정한 결과 이유진이 놀랄 만큼의 맛을 만들어


낸바.

이유진은 내가 이렇게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당연하게도 내가 소지한 미슐랭 23 스타의 레스토랑 중 한식과 관련된 레스토랑의 비중이 작기 때문이었다.

“한식을 베이스로 하시고…… 레스토랑을 런칭하시는 거죠?”

“아니요. 기존에 지식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니라, 맛을 보면 수정할 수 있는 점들이 떠오릅니다.”

사실이었다.

이곳, 유진이네 반찬가게에서 내가 먹어본 반찬들이 몇 개나 되겠는가.

비빔밥, 불고기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그들의 식탁에서 오르고 내리는 이 반찬들을 내가
먹어봤을 리 없다.

설령 먹어봤더라도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강렬한 요리들이 아니었을 테고.

“이 장조림도 지금부터 요리 해보시죠.”

“아니, 이 요리들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하신다……는.”

얼마 전 있었던 반유현의 실체에 대한 논란의 종결.

이유진은 내가 진정한 실력파임을 알고 그 종결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이었다.

“새롭고 충격적인 맛을 만드는 건 다 같은 방법 안에 있으니까요.”

나는 소매를 걷고 돼지고기 안심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손질한 뒤, 마늘과 각종 허브를 넣고 물을 끓인 뒤 손질한 돼지고기를 살짝 데쳤다.

“고기를 쪄낼 건데, 이전보다 수증기를 이용해서 부드럽게 만들 겁니다.”

“아! 압력솥 있어요!”


압력솥은 내부 압력을 높여 물이 증발되어 발생하는 수증기를 고기 내부로 침투시켜 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기능이 있었다.

다만 그 물이 평범한 물이라면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발생할 수 있다.

“생강, 마늘, 월계수 잎 넣은 물에, 돼지는 물에 안 닿게 채에 올려서 쪄냅니다.”

간장, 설탕, 소금 등 각종 조미료와 향신료로 양념을 만들고 생강청을 추가했다.

“생강청은 달면서, 상큼하고, 아주 약간의 매운맛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또, 미림을 추가했다.

“저는…… 와인이 더 맛을 풍부하게 할 것 같아서 와인을 넣었습니다. 연육작용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기도 하고.”

“쌀을 발효시킨 술이 감칠맛이 더 풍부합니다. 그리고 와인은 이렇게 열에 오래 노출되어 있는 요리에는


감칠맛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없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써 있는 표정은 정확히.

‘이게 미슐랭 23 스타의 지식인가…….’ 라는 표정이었다.

물론, 별로 대단한 건 없지만 고기를 쪄내고 양념장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부터 그녀가 느끼기엔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을 것이다.

평범한 반찬이 ‘요리’로 탄생하는 것을 실제로 보고 있었으니까.

몇 시간 뒤, 다 완성된 장조림의 고기를 집었다.

“아까 맛을 보니, 장조림은 차가운 상태로 먹는 것 같던데 지금 드셔 보시죠.”

“아까 맛을 보니? ……장조림을 안 드셔 보셨어요?”

한국인이 장조림을 안 먹어봤다라.

그녀의 눈에는 충분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고기를 간장에 요리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구울 줄만 알지.”

대충 둘러대자 아픈 과거를 물어봐서 미안하다는 듯 표정을 지은 이유진이 장조림을 먹었다.

“하…… 거짓말치지 마세요! 셰프님! 이 요리를 오늘 처음 먹어보고 만들었다고?”

이제는 나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이건 무슨……! 이런 요리가 다 있어요!”

“맛있습니까?”

“컥! 제가 반찬가게를 10 년 동안 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 그런데, 정말 오늘 처음 드셨다고요?


그리고 이 요리를 만들어낸 거라고요?”

의심은 항상 달고 다니는 거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내 말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단서가 있었다.

“밖에 보세요.”

낡은 건물 1 층, 통유리로 되어있는 유진이네 반찬가게.

커텐을 친 상태로 내부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유진은 내 말을 듣고 커텐을 활짝 재꼈다.

그리고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월드컵 거리 응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통유리 안으로 보이는 나를 보고 함성을 쏟는 사람들이었다.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 송출되었으니, 이만한 사람들이 모일 줄 알고 있었습니다.”

“어…….”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잃을 수도 있는데.”

이유진은 초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적응 하십쇼.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겁니다.”

175 화. 미국 문화의 중심지 (7)

감자채볶음, 무생채, 멸치볶음, 명란 계란말이 등등 나열할 것도 없이 이 가게 안에 있는 모든 반찬들이


대박을 쳤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미슐랭 23 스타가 해준 집밥이라는 타이틀로 소문이 났고, 미국인들에게는 맛과 건강을


생각한 한국 가정식 웰빙 ‘요리’라는 소문이 났다.

유진이네 반찬가게, 그 앞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때의 뉴욕 거리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를 연상케 할 정도의 인파들이 모여 있었다.

뉴욕시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경찰을 투입할 정도였으니까.

[ 건강과 맛을 챙긴! 반`s 키친 1 호점, 유진이네 반찬가게. ]

어쩌다 보니 또, 새로운 신드롬을 일으켰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으나, 그 규모에 대해선 이 정도까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100 년을 살아와서 그런지, 이 설레는 기분을 느낀다는 것 자체 때문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얼마 만이야. 이 느낌.’

나에게 이런 감정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뉴욕시 전체에 약 3 만 5 천여 개의 식당이 있는데…….”


“있는데?”

“현재, 7 천여 개의 식당이 반`s 키친 가맹 신청서를 보냈습니다. 현재…… 해당 업무를 하고 있는 팀에


마비가 와서 새로 인력을 보충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토록 기쁜 감정을 느낀 건, 뉴욕시에 수많은 식당들이 우리 회사에 가맹 신청서를 넣은 사실


자체도 그랬지만.

[ 뉴욕에서 시작된 한식 열풍! ]

[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돼지 계란 장조림! ]

[ 뉴욕시장 “멸치볶음과 무생채…… 참기름, 고추장! 최고!” ]

[ 반유현의 이름 아래 시작된 한식 열풍! 대형 프랜차이즈들 한식 메뉴 추가! ]

유진이네 반찬가게에서 맛을 본 뉴욕시민들, 또는 관광객들에 의해 한식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 뉴욕시에 있는 한식 가게들 줄줄이 매출 급등! ]

지금 생각해보면,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만큼, 어떤 유행이나 시류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지금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 요식업계에 미치는 나의 영향력,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내가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할 때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반`s 키친’의 1 호점은 대 성공이었다.

[ 반`s 키친 - 유진이네 반찬가게 ]

유진이네 반찬가게로만 적혀있던 간판이 새롭게 올라가는 순간, 웨이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고생은 이제 시작입니다.”

“…… 정말 고맙습니다 셰프님.”

이유진이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곤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또 나지막이 읊조렸다.

“제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모든 게 셰프님 덕분인데…… 셰프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대한민국 국적의 스포츠 스타들, 또는 세계적인 아이돌의 행보가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반유현의 엄마이자, ‘반유현-펌킨’의 메인 셰프인 이영미는 그 광경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기쁨의 눈물. 전 세계를 호령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느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불과 5 년도 안 된 시간, 공무원 준비생이었던 아들이 전 세계를 주무르는 거물급 셰프가 되어있었다.


자신이 맡은 레스토랑 또한 아들이 차려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셰프님, 우세요?”

‘펌킨’의 수 셰프인 박철용이 다가와 손수건을 건넸다.

그리고, 이영미가 보고 있던 TV 를 바라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반유현 셰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죠! 아프리카 전역에 빛이 들게 했던 축제와 지금 뉴욕에 불고 있는 반유현 신드롬은…….

“참…….”

박철용 또한 브랜드 ‘반유현’의 소속 세프였기에 자신의 수장, 반유현의 활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더군다나 셰프라는 직업을 갖춘 이들에겐 그의 행보가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도 언젠간…….”

셰프들에겐 그가 엄청난 자극제이기도 했다.

요리, 그 자체의 행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그를 동경하지 않는 셰프는
없을 것이다.

-반유현 셰프가……!

-반유현 셰프는 현재 뉴욕에서 반유현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단한 한식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미국엔 TTS 의 인기에 이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존재가……! 

다른 채널을 돌려봐도 모두 반유현의 이야기뿐이었으니까.

그의 활약이 이번에야말로 두드러지는 것은 그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뉴욕으로 넘어간 지 불과 2 주가 채 안


돼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아! 뉴욕에 있는 이민정 리포터!

-예, 이민정입니다.

-뉴욕 상황 좀 말씀해주세요!

-현재 뉴욕의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반`s 키친’이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들의 앞에는
지금 보시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뉴욕 거리를 비춘 화면에는 리포터의 말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 ‘반`s 키친’, 그것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반유현 셰프와 계약을 해, 반유현 세프가 직접 레시피를 수정 보완해주는, 일종의 요리 솔루션


프로그램입니다.

-반유현 셰프의 손을 거쳤다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사람들이 몰린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또한 유진이네 반찬가게라는 1 호점이 맹활약하며 뉴욕 시내에는 한식 열풍이 크게 불고


있습니다. 한인 타운의 유동 인구수가 지난달 대비 60% 늘어났다고 합니다.

리포터는 그러더니 지나가던 한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를 시도했다.

-네, 안녕하세요! 현재 뉴욕에 거주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14 년 됐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셨고, 뉴욕에 14 년째 살아오셨는데, 현재 한인타운의 인구수 증가와 반유현


신드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진짜 한국인으로서 대단한 긍지를 느낍니다. 이 정도의 열기와 ‘오빤 청담 스타일’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다들 저렇게 생각해주시니까 고맙네…….”

뉴욕시장부터, 할리우드 배우들까지 한식을 먹었다고 자랑 삼아 인증을 하니 이 열풍을 만들어 낸


반유현은 연예인의 연예인이 된 것만 같았다.

“우리 아들 보고 싶네…….”

***

“돈을 벌겠다 선언하시니…… 벌써 회사 매출이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내가 운영하는 모든 레스토랑은 최고의 맛을 지향하기 때문에 사실상 상업적으로는 가치가 떨어졌었다.

최고급이 값비싼 식재료만을 고집하기 때문이었는데, 아무리 손님이 많다 한들 순이익이 크진 않았었다.

그런데, ‘반`s 키친’이라는 나의 가맹 브랜드에 사용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노력과 지식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지식이었으니, 그 부가가치를 곧장 현찰로 만들어 낸 사업인 것이다.

“이제 뉴욕에 레스토랑을 창업하려는 셰프들이나, 사업가들이 불편해지겠습니다. 시간이 더 오래되면


뉴욕시 대부분이 반스키친이라고 네이밍 될 것 아닙니까?”

벌써, 스물세 개의 레스토랑, 또는 자그마한 식당에 반`s 키친이라는 이름의 간판이 붙었다.

매출의 6%를 지급 받는 조건으로 가맹된 가게들이 일주일 만에 그렇게 생겼으니, 직원들이 우려하던
현금보유랑 문제는 해결되었고, 그에 따라 내 브랜드의 가치는 급등했다.

내가 별다른 큰일을 하지 않아도, 나의 가르침을 받은 저 레스토랑들이 헛짓거리만 하지 않는다면 저


매출은 유지될 터였다.

아니, 심지어 그들의 매출이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였으니 앞으로 직원들의 입에서 돈 걱정이 나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직원들은 다 뽑아놨어?”

“예, 최소 스펙으로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셰프들로 꾸려놨습니다.”

직원들 조직도 구성까지 끝났고, 나는 그들이 선별한 가맹점의 음식을 먹고 보완할 레시피를 내어놓으면
될 뿐이었다.

“일주일에 두 개씩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자.”


정확한 목표치까지 설정해놨으니, 나는 다시 내가 뉴욕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뉴욕시 부동산업자들이 뭐래?”

“예, 다 연락을 받고 현재 새롭게 런칭하실 레스토랑 건물을 추려놨습니다. 직접 보고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

라스베이거스에 런칭한 아프리카 요리를 주된 테마로 하는 제리의 레스토랑과, 가타무라 마츠노의


주도하에 런칭 준비를 하고 있는 일식 레스토랑, 그리고 지금부터 런칭 준비를 할 뉴욕의 레스토랑까지
합하면 아직 총 세 개의 레스토랑이 미슐랭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내가 현재 보유한 미슐랭 스타가 23 개였으니, 이 세 곳이 각각 3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는다면 100 년의


숙원 사업인 미슐랭 30 스타를 달성하게 된다.

‘요리의 요 자도 모르던 시절부터.’

왜 이런 미션이 나에게 찾아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계란 프라이를 뒤집지도 못하던 시절, 제한 시간 내에 미슐랭 스타 5 개를 얻으라는 미션을 시작으로,


100 년이 지났고 미슐랭 30 개를 달성하라는 미션까지 받고야 말았다.

이제 그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감회가 새로웠다.

‘어쩌면 뉴욕의 이 레스토랑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군.’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 레스토랑을 끝으로 미슐랭 30 스타를 달성하게 된다.

이 미션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100 년간 달려왔던 마라톤의 끝이 보인다니 또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또다시 환생하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번만큼 최고 효율의 움직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또 한 번 이런 미션이 주어진다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하네.”

“예?”

“아, 아니야. 그래서, 위치가 어디어디에 있는데?”

역시나 내 옆에는 오스틴이 있었다.

뉴욕에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장소를 물색했고, 그에 대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입지와 위치를 따져 다섯 곳을 추렸는데 아마도 셰프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실


장소는 단 한 군데인 것 같습니다.”
“어딘데 그렇게 힘을 주고 말하는 거야?”

나의 눈높이 때문에 오스틴이 웬만하면 기대감을 심어주는 듯한 말을 하지 않는데, 그가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오스틴이 나에게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의 건물, 그리고 대단한 입지를 가진 장소.

그곳이라면 나조차도 욕심을 낼 만한 장소.

나는 오스틴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냐?”

“치…….”

“맞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세계적인 랜드마크이자, 초고층의 건물로 뉴욕 시내 전체가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전 세계 일류기업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그곳에서 제안이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망대 바로 아래층입니다.”

뉴욕 최고 임대료로 내어놓는다 하더라도 기업들이 줄을 설 정도의 로열 건물의 로열 층이었다.

“다만…… 하루에 레스토랑으로 유입될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층수를 바꿔서 다시 논의를 한다고
합니다.”

이미 그 전망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는데, 내 브랜드가 입점하게 된다면 그
사람 수를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많아져도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를 새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그들의 말이 이해가 됐다.

“그래서, 하루에 아주 소수의 사람이 방문하는,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을 만들어 달라는 거야?”

176 화. 부르는 게 값이야 (1)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 건물의 명성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일단, 뉴욕 내 성공의 상징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고, 건물 안에는 총 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한해 200 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며, 그 건물 안에는 총 65 개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데,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매일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이 제안과, 제한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미 생각은 정해지신 것 같습니다.”

건물 측에서는 나에게 제안과 그에 따른 제한을 함께 건넸다.

브랜드 ‘반유현’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고, 자신들이 약 80 년간 세워온 명성과 함께해 서로를 빛내자는
제안, 뉴욕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곳임을 강조했고, 또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건물 내에 최초로 개인 레스토랑을 차린 셰프가 될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제한은 일리가 있기도 하지.”

그러나 제한 사항이 있었다.

어차피 레스토랑 ‘반유현’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전 좌석 예약제를 해도 문제가 없어 보이니,


하루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

가뜩이나 수용인원을 웃도는 관광객들 덕분에 엘리베이터의 무리한 사용이 문제 되고 있는 지금, 나의


브랜드가 입점하면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싶으니 인원수를 조절하라는 것이었는데…….

“전 좌석 예약제를 하면 미슐랭 평가단원들이 방문할 수 없어.”

전 세계인들이 레스토랑 ‘반유현’ 어플을 통해 예약 경쟁을 할 텐데, 미슐랭 평가원들이 그 경쟁에서


이기리란 보장이 없었다.

“알다시피 내가 차리는 레스토랑은 오로지 미슐랭이잖아.”

이 정도의 위치에 올랐음에도, 브랜드 ‘반유현’ 설립 초창기에 말한 나의 목표가 똑같음에 오스틴은


놀란 눈치였다.

“그 별이 그렇게나 중요한 것입니까?”

“어.”

무튼 결론은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게 무의미해졌다는 소리다.

내가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이유는 오로지 미슐랭 스타를 얻기 위함이었으니까.

애초에 뉴욕에 건너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슐랭 스타를 가장 많이 소유한 도시 중 하나기에, 이곳엔 더 많은 평가원들이 파견되기도 하니까.

“그래도, 엠파이어에 내 이름을 박아보고 싶긴 한데.”

뉴욕 도시 전역에 ‘반`s 키친’이라는 이름이 걸리고 있는 지금.

그 빛나는 간판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100 년의 삶 동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개인 레스토랑을 차린 셰프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어떠한 셰프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것에는 이제 이렇다 할 성취감은 없었다.

내가 해보지 못한 일을 하는 것에 성취감을 느낄 뿐이지.

“역제안을 넣자.”

“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뉴욕 내 최고입지, 그리고 미슐랭 스타, 두 가지를 모두 얻고 싶으니까.”


때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미국 시민들의 정서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주주들.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단 한 사람을 빼놓고 회의가 열렸다.

“대주주님께서는 기권하셨고, 알아서 판단하시라 했습니다.”

이렇게 주주총회가 열린 것은 한 달간 2 번째였는데, 두 번의 회의가 연속으로 열린 것은 초대 회장이


죽었을 때 말고는 없었다.

“정확히 반반이니, 결정을 하기가 어렵군요.”

이렇듯 큰 이벤트가 벌어진 것은 찬성파와 반대파가 극명하게 갈려있기 때문이었다.

“1 층에 브랜드 반유현을 동시에 입점시키는 조건이라니…….”

찬성과 반대, 그렇게 두 팀으로 나뉘어진 것은 반유현이 한 제안에 의한 것이었다.

“역사와 전통 깊은 우리의 건물을 그저 상업적인 요소로 활용하려는 것입니다. 넥도날드, 아웃하우스,


스타일벅스, 초대형 프렌차이즈의 입점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브랜드 ‘반유현’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받아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전망대의 바로 아래층, 레스토랑 반유현을 입점시키는 것에는 이의가 없던 이들이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내부에는 그릴엔 알코올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이는 자신들의 것이었다.

건물주들이 직접 셰프들을 고용해 차린 레스토랑. 건물의 입지를 이용했기에, 지분을 섞지 않았고 오로지
월급제로만 셰프들을 고용했다.

자신들이 직접 레스토랑을 차린 것은 그 어떤 외식업체에게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했고,


건물 내부에 자리를 잡고자 하는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들로 하여금 임대료를 높이려는 수작이었다.

의도가 그렇다 보니 당연히 요리와 메뉴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퀄리티는 매출에 직결되었다.

임대료가 오르는 것보다 적자를 채워 넣는 양이 불어나는 게 더 빨랐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반유현이었다.

반유현이라면 대형 프렌차이즈들 하고는 달랐으니까.

대형 프렌차이즈들과 규모와 입지는 비슷하지만, 어떤 업체들보다 고급이고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신뢰를


얻고 있었다.

‘우리 빌딩은 반유현마저 쉽게 품는 빌딩’ 임을 공포해 건물 가치를 더더욱 높이고 임대료를 올려보려
했지만, 반유현은 쉽사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 자…… 이사님들! 감정 섞인 논란들은 그만하시고, 냉정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전통이니, 역사니, 이런 말들이 섞이니 회의장은 감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상업적인 이득을 따지려는 찬성측과 전통의 내세우는 반대측은 서로의 논리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찬성측은 반유현이 가진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 오래된, 옛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물의 역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것이었고.

반대 측은 한국의 초고층 빌딩보다 50 년이나 앞서 개발된 건물이자, 미국인들의 가슴엔 영원한 성공의
상징인 그 건물을 우습게 보는 반유현의 태도가 싫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의 그런 태도에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 정서에도 좋지 않을 것이란 논리였다.

이 건물은 미국인들에게 오랜 기간 자긍심을 심어주었던 건물이기도 했었으니까.

이에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사내이사 오쇼 폴 콘이 정리를 시작했다.

“반유현 셰프가 제안한 바는 단 하나입니다.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 입점해 줄 테니, 1 층 로비를 개조해
또 다른 레스토랑을 런칭할 수 있게 해달라…….”

주최자가 정리를 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은 대립각을 세웠다.

“줄 테니? 우리 엠파이어 스테이트가 언제부터 일개 셰프 한 명에게 저런 대우를 받았습니까, 우리가


갑의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 겁니다. 미국을 무시하는 겁니다.”

“거, 참! 답답한 영감이네, 시대가 어느 땐데 갑이니 뭐니 하는 겁니까? 반유현은 이 시대 최고의


요리사입니다. 건물의 가치를 한 번 더 드높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전통에 머물러 있을 겁니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총 두 개.

로비에 또 다른 레스토랑을 만들 수 있게 해주면, 전망대에도 수용인원을 제한한 레스토랑을 차리겠다는


제안은 역사에 없던 것이었다.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빌딩 측 사무장이 회의의 주최자인 오쇼 폴 콘을 찾았다.

“대주주께서 오신답니다.”

“엥? 기권하셨잖아.”

“다시 의사결정을 하기로 하셨답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급하게 파악하셨다고…….”

“가뜩이나 어려운 문제에 대주주까지 끼어버리면…….”

대주주가 등장한다는 소식에, 표정이 굳는 주주총회의 임원들.

그가 여지껏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동 기름왕국의 핏줄로, 아버지의 자산을 물려받아 이 건물의 대주주가 된 남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건물의 대주주인 회사의 대주주.

회사 간의 여러 관계들이 얽혀 있지만, 실세가 그 남자라는 것은 이견이 없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하이든입니다.”
언제나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 그 대주주가 등장했다.

“1 층 로비 개조해서 레스토랑 반유현 셰프님께 내어주고,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도 레스토랑 반유현 런칭


하겠습니다. 이사님들께서 절반이 찬성, 절반이 반대시니 제가 찬성 측에 손을 들면……. 레스토랑
반유현을 저희 건물 내에 입점시키는 것이 문제가 없겠군요.”

장내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가 이렇듯 의사를 말하는 것보다, 그의 변한 태도가 궁금해진 이사진들이었다.

철부지 다이아몬드 수저, 갑질 천재, 망나니…… 모든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란 그가.

집안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이름에 ‘님’자…… 존칭의 칭호를 붙인다니.

이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알고 보니 반유현도 기름 왕국의 왕자였나? 하이든 왕세자가 같은 핏줄을 밀어주는 것이고.

반유현의 성공신화도 그렇게 생각하니 일리가 있었다.

***

“그렇게나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신지 몰랐습니다. 대체 인맥이…….”

[ 역사 최초, 엠파이어 입점 레스토랑 그 주인은 역시나 반유현! ]

[ 동시 두 개의 레스토랑 런칭 준비 중! ]

[ 1 층 로비, 수십 년간 바뀌었던 적 없는 구조 변경 중! 반유현의 힘? ]

[ 미국 보수층 반대의사 표현, “감히 뉴욕의 상징을!” 인종차별, 혐한 정서 나타나기도 ]

[ 브랜드 반유현, 반대의사 및 인종차별 단체에 법적 조치 예고. 강경 대응. ]

1 층과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 레스토랑을 런칭할 장소를 얻어낸 방법 또한 기자들은 쏟아냈다.

[ 반유현 석유 왕국의 핏줄 의혹! ]

[ 세계 재벌 순위에 꼽지 않는, 기름가문이 밀어주는 반유현의 성공신화? ]

[ 하이든 가문, 반유현의 입점에 대해 함구. ]

“결국 됐을 테지만, 시간상 알력을 이용한 거야.”

하이든 왕세자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결국 대중들의 힘을 이용해 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두


자리를 얻어냈을 것이다.

다만 시간 효율적인 측면에서 강력한 외부의 힘이 개입되어주는 것이 좋았다.

“이 건물을 지을 당시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한 건설사의 대주주이고, 건물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회사의 대주주야, 그 집안. 그러고 보니 하이든 왕세자한테 1:1 로 요리를 제공해줘야 할 때도 온
것 같네.”

결론적으로 그 자리를 얻어냈고, 나는 또 레스토랑 런칭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내 레스토랑의 규칙 중 하나는 미슐랭 평가원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몇 자리는 온라인 예약을 받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서 웨이팅을 받아 레스토랑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데, 1 층의 레스토랑은 그렇게 만들 것이었다.

즉,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 층의 레스토랑이 미슐랭을 위한 레스토랑이었고, 전망대 바로 아래층의


자리에는…….

“어떤 걸 해볼까.”

미슐랭 스타를 얻겠다는 목적이 빠져버린 레스토랑이었으니, 색다른 생각을 해보려 했다.

“오로지 돈으로만, 돈을 위한 걸 한번 차려봐? 아니, 내 요리의 값어치를 확인해 볼 수도 있는


레스토랑을…….”

이전 생에 해본 적 없는, 아니 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들이 마구 떠올랐다.

177 화. 부르는 게 값이야 (2)

전망대 바로 아래층, 그곳에 간판이 세워지자 다시 한번 대단한 관심을 받았다.

[ 엘리베이터에 새겨진 반유현의 이름! ]

전망대까지 향하는 엘리베이터, 그곳의 버튼 중 하나엔 층수가 아니라, ‘반유현’이라고 적혀있는 버튼이
있었다.

이 건물이 지어진 수십 년의 역사 동안 층수를 나타내는 버튼에 어떤 사람의 이름이 박힌 적이 있었던가.


당연히 없었다.

뿐만 아니라, 1 층 로비의 한 공간은 몇 명의 인부들이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 공사 현장의 위에도 나의


이름이 걸려있었다.

[ 반유현 - ?? ]

뒤에 붙을 이름은 정해두지 않았기에, ‘?’ 표시로 공백인 간판.

하루에도 수만 명이 지나치는 그곳에, 나의 이름이 걸려있던 것이다.

“진짜…… 저 사람의 영향력은…….”

“와…… 여기에도 반유현이 있네.”

“사진 좀 찍자!”

나의 이름이 걸려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파리, 런던, 라스베이거스, 뉴욕…… 주요 도시에 나의 이름들이 걸려 있다 보니, 이제는 내 이름 자체가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것처럼 사람들은 나의 이름 아래로 모였다.

“이 건물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엥? 한국의 분식집 아들이잖아. 관련이 있기는, 그냥 말도 안 되는 성공신화지.”

“엄마!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요!”


그와 동시에 건물 곳곳에 붙어 있는 나의 이름은 어떤 이에게는 꿈을 심어주기도 했고 어떤 이에게는
성공의 대리만족을 해주기도 했다.

“1 층 로비와, 전망대 바로 아래층, 각각 컨셉은 정하셨습니까?”

사람들을 관찰하던 내 옆으로, 오스틴이 다가와 물었다.

항상 나의 팔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오스틴이었다.

나는 요리와 그에 따른 구상만 하면 될 뿐,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지도 꽤나 긴 시간이 되었다.

“1 층은 알다시피…… 유진이네 반찬가게의 힘에 더불어서 한식 정찬을 해볼까 생각 중이고, 전망대 바로


아래층은 지금 고민 중인데…….”

1 층 로비를 개조하여,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곳은 한식 레스토랑을 런칭해볼까 생각 중이었다.

이 몸의 어머니인 이영미가 맡은, 한국의 ‘반유현-펌킨’ 그곳도 한식이 베이스인 레스토랑이었지만 한식


정찬 요리로 미슐랭을 받아보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반`s 키친’의 1 호점인 ‘유진이네 반찬가게’로 뉴욕 시내 전체에 ‘한식’ 열풍이 불었고, 사람들은
내가 직접 만든 한식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내가 한식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만으로도 그 화제성이 충분한 상황이었다.

“한식, 그 맛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으니, 세계의 중심인 이곳에 반유현 셰프님표 한식 정찬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 것 같습니다.”

그 맛에 있어서도 한식은 세계 여느 나라의 요리에 뒤지지 않는 맛을 가졌다.

재료 밸런스와 그에 따른 영양도 정교하게 따지는 특징까지 있었으니, 웰빙 시대라 할 수 있는 요즈음의


시류에도 잘 들어맞는 요리였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그 1 층에 한식 정찬 레스토랑을 런칭 하신다는 뜻은 더 이상 말씀해주지 않으셔도,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계획입니다……. 그런데, 전망대 바로 아래층의
레스토랑은 고민하신다는 게…….”

나의 ‘고민’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그건, 오스틴을 포함한 ‘반유현’ 팀이었는데, 내가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안이 꽤나 중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유현 팩토리의 세계화 같은 사업도 그 자리에서 컨펌을 내린 내가 고민을 할 만한 사안이라면 그렇다.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는 내 인생 최초로 미슐랭 스타와는 관련 없이 런칭하는 레스토랑이니까.”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그 사업 규모에 따른 고민이 아니었다.

100 년의 인생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즐거운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항상, 맛의 논리에 입각해 최고의 맛을 내야 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시도해도


되는 것 아니겠나.

물론, 맛은 최고로 챙길 것이지만.


“그래서 지금 생각한 건데.”

나의 말에 오스틴이 침을 꿀꺽 삼켰다.

“2 인 1 조에 딱 세 팀, 하루에 여섯 명만 받는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거야. 흠, 그런데 내가 다른 곳을


돌아다녀야 되기 때문에, 하루에 여섯 명이 아닐 수도 있지, 짧게는 일주일에 여섯 명, 길게는 3 주에
여섯 명?”

뉴욕시티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세계 최고라 불리는 나의 요리를 먹는다.

그것도 자신들이 지금 먹고 있는 요리가 일주일에 단 여섯 명만이 먹을 수 있는 요리임이 강조되면,


그보다 더한 고급 레스토랑이 있을까.

“예약 경쟁 방식은 경매로 진행하고.”

나는 내 요리의 값이, 돈으로 환산되면 얼마일지 궁금했던 것이었다.

매번 정해진 메뉴와 가격에 판매되던 나의 요리.

미슐랭 스타를 얻기 위해, 손님이 아무리 많다 한들 그 가격을 올리지 않았었다.

경험상, 가격에 따른 요리의 퀄리티, 즉 가성비 또한 평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나의 요리가 얼마에 팔릴지가 궁금해.”

앞서 말했듯이, 내가 뉴욕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기에, 내가 이 주방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었기에 당연히


매일 오픈되는 레스토랑도 아니었다.

그래서 올라갈 그 값이 더 궁금했다.

“그니까…… 경매방식으로 셰프님의 요리를 먹을 사람들…… 일주일에 여섯 명을 매주 뽑는다는


말씀이시죠?”

내 100 년의 커리어를 담아서, 사람들에게 제공해준 적이 얼마나 있나 싶었다.

미슐랭 스타라는 한정적인 평가 시스템을 따르느라, 내 내공이 100 퍼센트 발휘된 요리를 먹어본 사람은
100 년의 인생 동안에도 몇 없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진짜 복 받은 거야.”

“이, 이번 생이요……?”

“아, 아니야. 계획에 맞춰 준비하자고.”

***

[ 반유현이 직접! 혼자 요리! 뉴욕 시티를 눈에 담으며 먹다! ]

[ 경매 프로그램 개발 중! 개발 즉시, 브랜드 ‘반유현’ 예약 어플에서 즉시 경매에 참가할 수 있다. ]

[ 눈치싸움 시작된 기업가들? ]

[ 세계 10 대 부호 중 한 명인 BS 소프트 회장, “제대로 된 요리 먹기 위해 준비.” ]


[ 요리에 일가견 있는 거부들 반유현 시스템에 깊은 관심. ]

특히나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내 레스토랑을 오고 싶었던, 유명인들이나 대부호들은 이번에 내가


생각한 ‘경매 방식’의 레스토랑이 아주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프라이빗한 공간과 아울러 나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그에 따른 눈치게임이 거부들의 세상에서는 시작되고 있는 듯했다.

이 경매 방식의 레스토랑의 화제성은 충분하고, 이제 공사만 끝나면 곧장 시작할 계획이었다.

내가 직접 여섯 명에게 요리를 대접해 줄 것이라, 메뉴 테이스팅 따위도 필요 없으니까.

다만, 1 층 로비에 차려질 한식 정찬 레스토랑은 그와 달랐다.

한식 정찬 레스토랑의 런칭을 위해 나는 다시 파리로 날아가야 했다.

나의 새로운 행보에 대중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만큼, 반유현 팩토리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행보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수록, 레스토랑에 들어오고 싶은 셰프들의 경쟁은 치열해지기 마련이었다.

경쟁이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그것들이 조직 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나는, 그것들을 정리할 겸,
새로이 런칭할 레스토랑의 셰프들과 인사를 나눌 겸 해서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셨습니까.”

비행기에 내려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는 반유현 팩토리의 경영진들이 차량을 대기시켜놓곤 나에게


구십도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에 내가 오스틴을 바라보자, 오스틴은 자기가 시킨 일이 아니라는 듯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내가 이렇게 과할 정도로 의전하지 말라 했잖아. 거추장스럽다고.”

“제가 시킨 일은…….”

조직 내에 나의 영향력을 알겠지만, 굳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영접하러 나온 것에 대해선


불만이었다.

한시가 소중한 지금, 굳이…….

내가 오스틴에게 한마디를 던졌을 땐, 내 말의 의도를 모두가 알아들었을 것이다.

“사무장이십니까?”

“예, 제가 사무장, 케리 웰링턴입니다.”

반유현 팩토리 파리에는 교장이 없었다.

내가 정책이나 앞으로의 전략 같은 것을 정하면, 그것을 ‘반유현’ 팀이 반유현 팩토리에 전달하고, 그


전달된 내용을 실제로 행하는 임무만을 하는, 경영진, 또는 사무팀이 있을 뿐이었다.

세계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팀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반유현 팩토리를


경영해왔기에, 나 또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뵙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경영학 박사, 그리고 수 가지의 논문으로 이미 경영계에는 권위가 있는 케리 웰링턴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반유현 팩토리, 아니, 나의 경영방식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다 하여 처음 입사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영학자인 그를 그렇게 쉽게 경영자로 앉힐 수 있었다.

“셰프들의 경쟁이 치열해졌습니까?”

“반유현 셰프님께서 최종 시험을 뒤로 미루어 주셔서 그나마 나아졌습니다.”

뉴욕의 레스토랑 런칭까지 대략 한 달, 또는 두 달.

그 전에 반 평가를 하는 시험이 하나 있었는데, A 반부터 B 반의 셰프들, 또는 C 반의 상위팀들이 그


시험에 사활을 걸었던 모양이다.

그 시험으로 뉴욕의 내 주방에 들어올 수도 있다 생각했을 테니까.

“반유현 셰프님께서 직접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휴일임에도 모든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A 반부터, Z 반까지 각 반에 다섯 개의 팀, 50 명씩.

약 1300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안내를 따라 강당으로 들어섰을 때, 엄청난 환호가 울려 퍼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반유현 팩토리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부터였다.

창문에서 나를 발견한 학생들로 시작된 함성이 내가 강당에 입장할 때까지 울려 퍼졌고, 내가 강당 무대


앞에 올랐을 때는 박수와 함께 그 소리가 작아질 줄 몰랐다.

“아. 아아.”

내가 마이크에 말을 하니,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 앞에 있는 천여 명이 넘는 학생들의 얼굴이 모두 상기되어 있는 것을 보니 또 한 번 감회가 새롭다.

이들은 모두 ‘셰프’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나의 존재가 더욱더 강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휘이이익!

“열심히들 하고 계시다고, 듣고 있었습니다. 너무들 열심히 하셔서 제가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우와아아아악!
한마디 한마디에 함성이 실렸다.

“과열된 경쟁은 조직의 구조에 악순환을 미칠 수 있다 생각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고, 열띤 열정의


여러분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나의 방문은 오히려 더 경쟁을 가열시킬 수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학생들에겐 나를 직접 만나고, 보는 것만큼의 동기부여가 없을 테니까.

경쟁을 심화시키지 않으면서, 그동안 열심히 한 셰프들에게 보상을 주고, 원래 예정되어있던 시험을
치르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먹고 싶은 요리 있으세요? 오늘만큼은 내가 직접 해줄게.”

내 말에 그 어떤 때보다 강한 함성이 몰려왔다.

저들은 내 팬서비스가, 많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178 화. 부르는 게 값이야 (3)

“오스틴, 우리 레스토랑 예약 어플에 고객센터 있지?”

“예, 그렇습니다. 고객들의 컴플레인이나…… 회사 발전을 위한 제언을 듣는 곳입니다.”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직접 1000 명이 넘는 인원들에게 요리를 해주겠다 했더니 그 1000 명의 인원들이 서로 환호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뭘 먹고들 싶으세요. 고향의 음식을 먹고 싶으실 텐데, 고향이 다들 제각각이니까.”

우와아아아아!!

내가 요리를 해주겠다는 말을 한 뒤로, 말을 한마디 던질 때마다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종이로 써낼 수는 없으니까, 반유현 브랜드 어플 켜서 ‘고객센터’ 탭이 있는데 그곳에다가 먹고 싶은


음식 써내세요. 그럼 우리 쪽에서도 집계하기가 편하니까.”

게시판 특성상, 같은 키워드를 가진 게시물끼리는 한곳에 묶이게 자동으로 분류된다.

“다른 사람들 음식에 동조하지 말고, 진짜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작성하세요.”

하나의 IP 에 하나의 게시물 많이 허용되고, 추가적으로 그 게시판에 글을 업로드 할 때는 기존에


작성했던 게시물에 이어서 작성해야 되는 규칙이 있었다.

“비밀번호만 있으면 게시물 수정도 할 수 있으니까. 천천히들 생각해 보시고.”

어느 게시판이든 간에 자신이 작성한 글을 다시 보려면 임시로 설정한 비밀번호를 접속해야 되는 것도


같았고.

내 말을 들은 반유현 팩토리의 학생들이 저마다 핸드폰을 열어,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를 적기 시작했다.

“아, 뭐 코스요리 같은 건 안 되는 거 알죠?”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사무장인 케리 웰링턴이 무대 위로 다가왔다.

그리곤 내 귀에 속삭였다.

“어떤 재료들을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학생들에게 어떤 요리를 해줄지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재료를 먼저 준비할 수 있습니까?”

“……예? 그, 그렇다면.”

나의 경영방식이나, 나의 행보를 그토록 연구해왔던 이가, 내가 지금 ‘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미 선보일 요리를 정해두고, 학생들에겐 지금 마치 요리를 선정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제가 거짓말이라도 친다는 겁니까?”

순간 기분이 안 좋을 뻔했지만, 그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의도가 이해가 갔다.

게시판의 게시물은 본인이 임시로 설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볼 수 있기에, 내가 일부러 이런


방식으로 투표를 받았다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나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재료를 빠르게 공수하겠다 얘기한 것일 테고.

“실제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요리를 보여줄 겁니다.”

“그게…….”

세계적인 경영자들이 이렇다 할 ‘쇼’를 선보여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한 사례를 많이 봐왔던 그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들이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음?”

나는 오스틴이 가져온 집계 결과에 놀랐다.

“한국식 자장면?”

“그렇습니다.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한 학생들의 비율이 35%가 넘습니다. 2 등인, 무생채, 멸치 볶음,
고추장 비빔밥과…….”

2 등으로 꼽힌 무생채, 멸치볶음 고추장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가진 요리는 뉴욕의 ‘유진이네 반찬가게’
에서 유래된 이름이었다.

그 가게에서 판매하는 반찬들을 싹 다 털어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에 비벼 먹는 레시피가 뉴욕 내에서


유행했는데, 그 유행이 이곳까지 퍼져 이 학생들은 그 요리를 먹고 싶었던 것이다.

“비빔밥은 알겠는데 자장면은 뭐야?”

자장면.

양파를 비롯한 각종 채소에 기름을 둘러 춘장과 함께 볶은 소스를 면에 비벼 먹는 요리.

유럽 파리의 학생들이 이 음식을 찾는 사람이 많은가 했더니, 그 이유는 금방 알게 되었다.

“백대표님의 먹방이……. 유행을 했습니다.”


오스틴이 나에게 동영상을 하나 보내줬다.

-이런 거는 반유현이 와도 못 만들어줘유!

유일하게 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유일하게 저 말을 뱉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사람.

백원종은 뉴욕 내의 나로 하여금 시작된 한식 열풍에 올라타기 위해 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있었다.

-이런 거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나 먹는 음식이라, 반유현? 그 양반은 관심도 없어유. 이런 건 우리나


만들어서 먹어야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 이름을 직접 거론한 영상에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나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이 있는 그가 내 이름을


직접 언급하니 영상의 조회수가 꽤나 파워풀 했다.

그렇게 영상은 인기의 물살을 타고, 이곳 유럽에 있는 학생들에게까지 보인 것이다.

“하긴, 이분 먹방을 이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지.”

백원종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자신이 만든 음식을 행복하게 먹는 모습은 충분한 흥행요소였다.

-후루루루룩! 쩝. 쩝.

자신이 직접 볶은 자장 소스에 면을 말아 먹는 백원종의 영상은 누구나 자장면을 먹게 하고 싶었으리라,


더군다나 반유현이 이 요리를 못한다는 다소 도발적인 언행은 반유현 팩토리 학생들을 자극하기 더없이
좋았고.

“오케이. 자장면? 만들어 드릴게요.”

***

“하하하. 죄송합니다, 셰프님.”

오랜만에 고개를 숙여봤다.

그 상대는 루시앙이었다.

나를 처음 파리로 데려온, 장본인이자 ‘레드 테이블’의 오너 셰프.

“됐어. 죄송은 무슨…… 자네가 아니면 나오지도 않았을 거야.”

“하하하하. 반셰프! 이런 대형 행사 때마다 우릴 불러줘서 고마워.”

그리고 루시앙의 오른팔인 올리버까지.

또, 프랑스 파리의 ‘반유현 골목’에서 일하는 셰프들과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서 일하는
셰프들까지 모두 소집되었다.

1000 명이 넘는 인원이 먹을 자장면을 요리하기 위함이었는데, 모두들 나의 지시에 따라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합을 맞춰본 적은 없지 않습니까 또?”

프랑스 파리에서, 나의 브랜드 아래에 요리를 하는 셰프들 모두 모여 주방에서 합을 맞춰본 적은 없었다.

그들도 그것이 즐거웠는지 기쁜 표정들을 지었다.

특히나 루시앙은 파를 기름에 볶아, 파기름을 만들고 있었는데 제일 궂은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임에도 즐거워 보였다.

“백대표, 그 양반은 왜 도발을 해가지고, 자장면을 만들게 한 거야.”

말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파가 익은 정도를 보아하니, 돼지고기를 넣어도 될 것 같습니다.”

대형 팬, 성인 남자 다섯 명이 쪼그려 앉아도 될 만한 팬이 세 개 있었고, 그 세 개의 팬에 파기름을


만들어 내던 루시앙이었다.

내가 말을 하자 루시앙은 어깨가 결렸다는 듯이 팔을 돌리며 한쪽으로 비켜주었다.

그리고 뒤쪽에서 돼지고기 목살을 손질하던 셰프들이 각각의 정량을 대형 팬에 투하했다.

치이이이익!

고기의 익음 정도가 같았을 때는, 간장을 조금씩 부었다.

이는, 간을 맞추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불맛을 내기 위한 용도였다.

“굴소스.”

내 말에 공장에 기계가 돌아가듯이 세프들이 재료들을 팬 앞으로 가져왔다.

“이 굴소스 내가 만든 굴소스 맞아?”

“그렇습니다. 포장지가 바뀌어서…….”

내가 직접 레시피를 개발해 공장에 전달한, 현재 식자재 마트에서 팔고 있는 굴소스를 투하했고 그 뒤로


연이어 야채들을 넣었다.

“양파.”

“양배추.”

그리고 마지막으로 춘장을 섞어 넣었다.

자장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춘장소스는, 내가 직접 기름에 튀기듯이 볶았다.

자장면의 모든 맛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춘장을 볶는 양도, 시간도, 불의 세기도, 기름의 성분도…… 모두 조절했어.”

1000 명에게 대접할 요리라 정교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신경을 썼다.

춘장 사이사이에 특별히 제조한 기름이 모두 배어들었을 때, 불을 껐다.


그 춘장을 파기름과, 돼지기름, 그리고 야채들이 볶아지고 있는 팬에 넣고 한 번 더 볶자 색깔이 너무
진했다.

“너무 짤 것 같습니다.”

물론, 색이 진한 건 의도한 바였다.

“닭육수 가져와.”

농도를 묽게 하기 위해 물을 넣기보단, 감칠맛을 높이기 위해 닭 육수를 부었고, 그것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 주방의 다른 한 켠을 바라보았다.

“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다 되었습니다! 한번 보시죠!”

“탱탱하네, 면도 준비해둔 버섯 육수에 넣고 향을 한 번 입히시죠.”

건표고를 물에 불렸다가 다시마와 함께 진하게 끓여낸 육수.

미묘하게 한식의 향을 심어주고 싶었다.

“다됐나?”

불맛을 위해 태워 날린 간장, 목살의 익힘 정도, 양파의 수분 함유량, 양배추를 넣은 이유, 춘장을 볶을


때 사용한 기름, 면에 입힌 버섯 육수의 향…… 그 밖에도 수많은 요리의 요소들을 알아낼 수 있는 셰프가
몇 명이나 될런가.

내가 그들에게 요리를 내어주는 의도 중의 하나였다.

***

“우아.”

“와,”

“이게 자장면?”

“말도 안 돼…….”

저마다 그릇을 들고 있는 셰프들이 모두 놀라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충격적인 표정을 짓고 있거나 심각하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셰프, 아니 학생들이었다.

무대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니 괜스레 흐뭇해졌다.

웅성웅성 강당 전체에서 셰프들의 목소리가 섞여 소란스러웠지만, 그 웅성임은 모두 하나의 뜻을 가졌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우리가 이런 요리를 할 수 있을까?”

자장면.
중국 산둥성 주변의 하층민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해 지금은 대중적인 음식으로 탈바꿈했지만,
고급음식은 아니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이 정도의 맛을 낸다는 것에 놀란 셰프들이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아. 하하하하하!”

심지어 같이 요리를 도와주었던 셰프들 마저 저마다 탄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춘장의 볶음정도는 고소함과 춘장 특유의 향을 살릴 수 있으며, 나는 이것을 철저히 통제했다.

기름은 식용유에 콩기름을 살짝 섞어 고소한 풍미를 더하려 했고, 면에는 표고버섯의 향을 입혔으니,
요리의 큰 줄기만 봐도 저들이 생각한 자장면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었다.

“제기랄……. 이런 게 요리였어. 감칠맛, 고소함, 야채들의 식감…….”

그것도 1000 인분이 넘는 양.

하나같이 최고의 맛을 내는 자장면에 요리를 탐구하고 배우는 입장이라면 요리라는 학문 자체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깊은 요리를 내어준 건 저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식사들 맛있게 하고 계십니까?”

내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자, 한 손에 자장면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나를 바라봤다.

이제 환호를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요리를 만든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을 만난 듯이 보고 있었다.

아주 멍하니.

“이 요리를 먹기 전, 자신이 가장 먹고 싶은 요리를 적었잖아. ‘반유현’ 어플 게시판에.”

내가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반유현 팩토리의 경영진, 학생, 셰프들이 나를


바라봤다.

“알다시피, 그 어플에 적어준 것을 바탕으로 내가 자장면이라는 요리를 만들어 준 것이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셰프들.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를 적은 게시물은 자기만 볼 수 있으니까. 다시 그 게시물에 들어가서 이 자장면에


대한 맛 평가를 하세요. 그게 이번 분기 반 승급 심사입니다. 이번 심사로 A 반에 도달하는 팀은 뉴욕에
저랑 함께 가겠죠.”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179 화. 부르는 게 값이야 (4)

“경쟁이 너무 치열하지만,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잖아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강당.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은 무릎 위에 자장면 그릇을 올려두곤, 한 손엔 젓가락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자장면의 맛을 보고는 휴대폰으로 그것에 대한 감평을 적어내는 것인데, 신나게 자장면을 먹고
즐기던 광경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경쟁이란 게, 시험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 방법을 고안해 낸 이유는 단순했다.

반 승급시험 날짜가 정해져 있던 바, 학생들은 몸을 불사르며 시험을 준비했다.

서로 눈치를 보기도 하고, 어떻게 다른 팀들을 망가트릴지 고민하기도 했던 것인데, 이는 시험 날짜를


없애버리면 모두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불시에, 시험을 보는 것이다.

“앞으로 모든 시험은 이런 식으로, 불시에 볼 것입니다. 총원의 긴장감을 유지 시킬 수 있고…… 과한


경쟁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제일 강한 팀이 살아남는 게임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기존의 것을 완화하는 수준이지만, 꽤나 효과적이었다.

“이런 종류의 시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예, 서로 다른 반들의 코스를 주고 코스의 테마와 맛의 중심을 잡는 시험을 해본 적이…….”

내가 반유현 팩토리의 사무장인, 케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가 말을 고쳤다.

“이런 규모…… 자체는 처음입니다. 시험이란 게 며칠간을 소모하며 치러지다 보니 각종 부정 행위 의혹도


많았고, 채점에 걸리는 시간도 많았는데, 이렇게 전교생을 가둬두고 놓는 시험은…… 말씀하신 대로 이런
방식이라면 불필요한 경쟁심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희 교수진이나 경영진, 그리고
사무팀이 이런 방식을 생각하지 못한 걸 보면…….”

말을 잇지 못하던 케리가, 끝내 말을 붙였다.

“이 방식은 반유현 셰프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나만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제법 머리가 빠르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경영진 또는 셰프들은 새로운 것을 배웠다며 곧장 이런 시험 방식을 따라 하려


했을 것인데, 케리는 달랐다.

아무리 훌륭한 교수진이 있다 한들, 자신들의 역량으로는 이런 시험을 못 치를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파리를 주름잡는 셰프들과, 반유현 셰프님의 지배력, 그리고 실력 모든 것이 조화되어야 가능한 시험


방식인 것 같습니다. 훌륭한 셰프가 훌륭한 제자들을 효율적으로 키운다에 대한 정답이 오늘에서야 나온
것 같습니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남은 춘장을 교회나, 보육원이나, 근처 초등학교에 나눠주려고 했는데 동이 났습니다.”

2000 인분의 춘장은 반유현 팩토리의 학생들과 교수진이 모두 비워버렸다.

“됐어, 뭘 나눠줘 우리 식구들이나 배부르게 먹으라 하지.”

“예.”

“시험 집계는 내가 말한 대로 했어?”

나는 학생들이 쓴 글에 포함된 단어의 수로 평가를 하려 했다.

“버섯의 향, 한국적인 맛, 춘장을 볶은 기름에 배어 있는 향, 돼지 목살의 육즙, 각각 다르게 익힌


양파의 식감…….”

그렇게 오스틴에게 몇 개의 단어를 주곤, 이러한 단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었다.

내가 구현한 맛의 의도를 얼마나 많이 파악했는지에 대해선, 이렇게 빠른 채점 방식이 또 없었다.

“참 놀랍게도, 대부분 높은 점수를 차지한 학생들은 대게 A 반에 위치한 학생들이었습니다.”

“결대로 가는 거지 뭐.”

결대로 간다.

말 그대로, 열심히 한 학생들이어야 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요리만 했을 리는 없으니까.”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들이 요리에 들어갔을 때 각각 어떤 맛을 내는지까지 연구해왔을


학생들이었다.

“따라서, 크게 뒤집어진 결과는 없습니다. J 반이나, F 반, Z 반과 같은 하위의 반에서는 조금의


순위변동이 일어났으나, A 반과 B 반, 상위권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스틴이 건네준 차트를 읽었을 때, 나는 가장 위에 적힌 이름을 보고 실소했다.

“알베르.”

A 반에서 가장 상위권의 점수를 가지고 있는 1 팀의 교수진 이름이었다.

“이 셰프님, 결국 이렇게까지 해냈구만.”

국제 요리 대회의 심사위원장으로서 그 당시 나를 지지 해줬으며, ‘나’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되겠다고 했었던 셰프.

백발의,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을 불살라 자신이 이끄는 팀을 A-1 팀으로 올려두었다.

“그러고 보니, 이 셰프님 덕에 내가 국제 요리 대회 심사위원의 자격을 얻었었지, 그때는 이것보다


인지도가 훨씬 부족했을 때인데, 오로지 실력만을 믿으시는 셰프님이셔.”

A-2 반, A-3 반 또한 유명 레스토랑의 유명 셰프라 불릴 수 있을 만한 자들이 교수를 맡았다.

Z 반까지 형성된 마당에, 경쟁이 더 치열해졌을 것인데 그들이 A 반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될 만큼의 스펙을 가진 자들이었다.

“뉴욕행 비행기를 끊으면 되겠네. 교수들까지 포함해서 33 장.”

***

모두 그의 일정이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연, 세계에서 제일가는 요리사이자 사업가인데 이곳에 있는 모두 그를 이해했다.

“뉴욕행 비행기 티켓 33 장과, 호텔 숙박권입니다. 현지에 도착하시면 적응하시는 기간 동안 숙소를


구해주신다고…….”

반유현은 먼저 뉴욕으로 떠났고, 이번 승급심사를 통해 A 반에 그대로 남게 된 이들에게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남겨 놨다.

뉴욕에 런칭 될, 반유현의 새로운 레스토랑에 들어간다는 즐거움이 엄청났지만 이들의 분위기는 그와는
상반되어 있었다.

“왜들…….”

사무장인 케리는 이런 분위기를 당최 알 수 없었다.

팔짱을 끼고 바닥을 보고 있는 알베르며, A-2 팀의 교수인 버크 헤지스, A-3 팀의 교수인 안젤라 하트


모두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 들의 뒤에 앉아 있는 학생들까지 그랬다.

“축제 아닙니까? 무슨 문제라고 있습니까.”

사무장인 케리는, 당연히 이들의 속 사정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반유현이 오기 전부터, 이 세팀의 경쟁이 치열했던 바 이들의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하나의 주방에 섞여서 일하는 것이 싫을 정도로 말이다.

“반유현 셰프님의 주방에 들어가는 일이, 이들과 함께 섞여 일하지 못하겠다는 것과 비교할 만한 일입니까?
그것도 세계 최고의 도시, 세계 최고의 건물, 세계 최고의 주방인데요.”

그들의 말을 듣자마자 케리는 화딱지가 났다.

이들이 가치 판단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알베르를 포함한 교수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그곳의 헤드 셰프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신경전이 있었지만, 자신들을 따르는 학생들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그 중, 알베르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사무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도 당연히 그 가치를 대단하다고 보고 있지만……. 확실한 위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는 학생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저는 이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고요.”

뒤이어, A-3 팀의 안젤라가 입을 열었다.


“저도 애초에 반유현 셰프님의 주방에 들어가고자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직을 맡았습니다. 뉴욕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우리 아이들의 마음의 골을 먼저 풀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교수들의 말을 들은 케인은 더욱더 화가 났다.

“장난? 하십니까? 이 사실을 반유현 셰프님께서 들으시면 참도 좋아라 하시겠습니다. 직접 파리까지


행차하시어 자신의 옛 동료들을 불러 자장면을 선보이고, 시험까지 직접 채점하신 뒤에 비행기표와 호텔
자리까지…….”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저희는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결국에 같은 주방을 쓰게 되었지만,
저놈들과는…….”

그러자, 다른 팀에 있던 학생들도 반발했다.

“우리가 할 말인데 그건, A-3 팀으로 턱걸이한 주제에 다른 팀의 실력을 논하냐.”

“네가 훌륭해서, A-1 팀에 들었다고 말하지 마. 알베르 셰프님 덕이니까.”

“어쭈? 그건 너희 팀 얘기 아니야? 안젤라 셰프님이 훌륭해서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거야.”

교수진들이 아닌, 학생들끼리 서로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다가 이런 사달이 나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그때, 알베르가 해결책이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모든 상황을 반유현 셰프님께 보고하시죠.”

케인은 반유현이 작금의 상황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질까 노심초사했지만.

알베르는 그게 아니었다.

반유현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고, 그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겠다는 태도였다.

“그분이 우리의 리더시니, 그의 결정을 따르겠습니다. 학생들끼리 확실히 실력을 가르라면 가르고,
주방의 서열을 정하는 방법이나…….”

소문에 의하면 국제 요리 대회에 반유현이 출전했을 때, 그를 치켜세우고 그에게 국제 심사위원의 자격을


내어준 것이 알베르라고 들었었는데, 이제 알베르는 확실히 반유현의 아랫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들 감당하실지.”

반유현이 어떤 카드를 꺼내어 이들을 진정시킬지, 저절로 기대가 됐다.

물론,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다.

***

“알베르 셰프님이 잘못 짚으셨네.”

보고를 듣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끼리 실력을 가를만한 장을 열어 달라니, 그게 뭔 소리야.”


실제로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유현 팩토리 A 반, 물론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셰프들이긴 하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태도를 보니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자기들이 내 주방에 들어오고 말고를, 함께할 셰프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하겠다는 거야 뭐야?
태도가 정확히 뭐야? 그래서 안 한다고?”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불만이 있다…… 이것을 학생들이 말하고 있고, 교수들은 난처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

반유현 팩토리의 A 반을 찍고, 뉴욕행 비행기 표까지 눈앞에 놓여져 있으니 판단하는 뇌가 많이 느려진 것
같았다.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약 여덟 시간 삼심 분이 소요됩니다.”

“내가 구매해준, 비행기표랑 호텔 숙박권 다 취소하고, 여유시간을 좀 줘서…… 12 시간 뒤에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으로 집결하라 그래.”

매번 1 등을 했기에 반유현 팩토리 A 반을 차지했을 셰프들.

그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늦은 세프들은 내 주방에 발 들일 생각 안 하면 돼.”

내가 허락하지 않은 서열 다툼 또한 무의미한 것이라 알려줄 필요가 있었고.

“짐 풀자마자, 너희들이 원하던 테스트를 진행할 것이다. 라고 전해주고.”

“예…… 알겠습니다.”

“하여간 귀여운 놈들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그렇게 땡깡을 피웠데.”

ㅈ 180 화. 부르는 게 값이야 (5)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은 또 장사진을 이루었다.

내 레스토랑의 런칭이 확정된 이후로는 기자들이 뭐 건질 것이 없나 자주 왕래하곤 했는데 그들에겐


최대의 기삿거리가 생긴 것이었다.

“뭐가 어쨌다고요?”

싸늘한 분위기에, 검은 깃으로 장식된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기어코 자신들의 실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버린 탓이었다.

“그래도, 비행기를 곧장 타고 달려온 것을 보면 반성의 기미는 있는 것 같고.”

파리-뉴욕, 비행시간만 여덟 시간이 넘는다.


더군다나 유럽과 미국이라는 심리적 거리는 어떠한가.

이들은 부리나케 짐을 싸서 뉴욕, 그것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집결한 것이었다.

“그니까. 여기 계신 서른 명의 셰프들, 다시 말해, A 반 1 팀 2 팀 3 팀을 한 셰프들이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거죠?”

내 앞에서 자신들끼리의 서열 싸움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때였다.

불필요한 서열 싸움은 반드시 주방의 비효율을 불러일으킬 테니까.

“제가 말한 시간 내에, 이 자리에 안 오셨다면 뉴욕에 런칭할 한식 주방에 발을 들이지 못하셨을 겁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요.”

이들이 파리에서 했던 언행들과 행동들이 불쾌했지만, 이들을 뉴욕 새로운 레스토랑에 런칭하는 것은


반유현 팩토리를 위한 일이고, 나를 위한 일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상위급 셰프들이 또 내 레스토랑의 주방을 차지하게 되면, 다시 한번 반유현 팩토리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었으니까.

레스토랑 ‘반유현’의 등용문으로서 반유현 팩토리는 또 한 번 입지를 다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이스라엘, 뉴욕에 설립되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사업을 돕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저들끼리의 기싸움 때문에 귀찮게 됐지만.

내가 이들을 내 주방에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더군다나, 인재 채용 측면에서도 내 조직에서 크고 자란 이들만큼 나에게 충성심이 높은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저들끼리의 관계는 그렇지만, 파리에서 뉴욕으로 한 번에 날아온 것을 보면 말이다.

“뭐야?”

“뭐야?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 아니야?”

“표정들이 왜 그래.”

“와…… 반유현 카리스마 봐.”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이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셰프들이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터였다.

나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릴 정도였는데, 반유현 팩토리의 상징인 검은 깃으로 장식된 조리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줄줄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을 또 한 번 새롭게 런칭될 레스토랑을 위한 장면으로 바꾸려 했다.

“다들 고개 들어.”

갑작스러운 나의 호령에 셰프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내 주방에서 일할 사람들이잖아. 지금부터 존칭은 생략한다. 내가 그 주방의


탑셰프니까.”
“예! 셰프!”

하나로 모인 우렁찬 대답.

사람들은 탄성을 내뱉으며 카메라를 꺼냈다.

“너희들, 서열을 확실하게 정해줄 테니까. 내 주방에 있는 동안은 그 서열을 따라.”

“예! 셰프!”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셰프들을, 한 주방에 몰아넣기 위해.

셰프들의 실력을 줄 세우는 동시에 레스토랑 런칭에도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론, 나를 귀찮게 한 것에 대한 벌도 동시에 내릴 것이다.

***

반유현 팩토리의 A 반.

그리고 A 반 내에서 성적에 따라 1, 2, 3 반.

총 삼십 명의 셰프들이다.

문제는, 반유현 팩토리라는 세계 최대, 최고의 요리 교육 기관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스스로의


자부심에 서로를 인정하지 못했다.

2 팀과 3 팀은 1 팀의 인원들이 왜 1 반인지 모르겠다는 식이었으며, 1 팀의 인원들은 2 팀과 3 팀의


셰프들이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A-2, 3 팀에 속해 있느냐는 의문을 던졌다.

경쟁이 너무나 치열한 구조 덕에 서로의 못난 점만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게 만들면서 줄 세워야 돼.”

억지로 서열을 만들어 버리면, 나의 명령이기에 그 서열을 따르는 ‘척’을 할 것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인정하며 주방에서 시너지를 만들어내려면 단순한 경쟁 방식의 서열 정리보다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또, 레스토랑 런칭에 도움이 될 만한 화제성을 띤 방식이 필요했다.

“다 죽이면 돼.”

서로 적이었으니까, 그런 구조였다면 이들을 묶은 팀으로 말도 안 되는 양의 과제를 내어준다.

저절로 전우애가 생길 수 있게.

“말했듯이 보통의 과제면 안 돼. 눈물이 날 것 같은 정도의 과제여야 서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전우애가


생기기 마련이야.”

맨 처음 서로를 견제하던 로또 육인방이 지금은 대체할 수 없는 친구 사이가 된 것처럼.

밤을 새우며 머리를 짜내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전우애가 생기기 마련이다.


“뉴욕 전체에 있는 식당이 3 만 개가 넘어. 약 3 만 5 천 개 ……?”

“사, 삼만 오천이요……?”

“그래, 삼만 오천 개는 너무 심한 것 같고. 맨해튼으로 한정 짓자.”

뉴욕 내 맨해튼에 위치한 식당은 대략 5 천 개를 웃돌 것이다.

“5 천 개 식당 모든 메뉴 카피하기.”

할 수 없는 일을 건네준다.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엄청난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말이다.

“아, 악마…….”

“악마라니, 모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내가 최연소 미슐랭 스타를 얻었을 때였나, 역사상 최초, 최연소 MOF 수상 및 두 분야 동시 수상을 했을
때였나, 최연소로 미슐랭 23 스타를 거머쥐었을 때였나…….

어쨌든,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이후부터는 나를 악당 보듯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정도는 해야지.”

“저희끼리 진행되는 겁니까?”

“아니, 기자들 불러서 기삿거리 던져줘. 그리고 교수진들 불러.”

***

“너희들이 처음부터 대가리 박았으면, 반유현 셰프님 성질 건드릴 일도 없었잖아.”

반유현이 잡아둔 숙소를 모두 취소했기에,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은 숙소를 임시로 잡았다.

그리곤, 서로를 또 탓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2 팀, 3 팀이면 반유현 팩토리라는 정교한 시스템 안에서 1 팀보다 못한 성적이라고 정해져 있는
건데, 인정하지 않는 건, 반유현 셰프님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

“뭐? 우리가 언제 반유현 셰프님을 무시했어. 뽀록으로 1 반이 된 널 무시했지.”

“뭐라고? 말 다 했냐?”

이곳에 있는 서른 명의 셰프 중, 칼을 품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분위기는 더더욱 냉랭해졌다.

반유현의 심기를 건드린 것에 대한 것조차 서로를 탓하며 분위기는 나아질 줄 몰랐다.

“그만해라……. 반유현 셰프님이 이 장면을 또 보시면 아마 우리는 평생 주방에 못 들어 갈 거야.”

한 사내의 말에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교수진들 또한 이 장면을 봤으면 피가 거꾸로 솟아 해당 셰프를 파리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세 명의 교수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

세 명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들이 반유현에게 된통 깨졌으리란 것이 자동으로 짐작이 됐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희는…….”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의 마음을 항상 이해해주셔서.”

각 팀원들은 좋지 않은 분위기에 교수들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곧장 교수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교수 중에서 1 팀을 맡고 있고, 이곳에 있는 교수진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알베르가 입을 열었다.

“반유현 세프님께서 거대한 과제를 내어놓으셨다.”

“서열을 정하는 싸움입니까?”

“어떤 과제입니까!”

알베르의 입에, 삼십 명의 셰프들이 집중했다.

“이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거나 미흡할 시, 우리는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그 말엔 이 셰프들의 심장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아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서 반유현의 주방, 그 코앞까지 도달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셰프님! 그런 적이 없지 않습니까!”

한 셰프의 말대로, 레스토랑 반유현의 런칭 멤버가 정해진 뒤로, 그 멤버 명단을 교체한 적은 역사상
없는 일이었다.

런칭 멤버 그대로 미슐랭 스타를 거머쥐는 브랜드, 레스토랑 ‘반유현’ 아닌가.

“그래, 그래서 이 과제를 해내지 못한다면……. ‘반유현’ 역사상 최악의 불명예를 얻게 되지……. 이는
다른 레스토랑을 가더라도 계속 따라다닐 거고.”

반유현이 과제에 내건 조건에 의하면, 다른 주방 어디에도 발을 들일 수 없다.

지구 최고의 주방이라 불리는 레스토랑 ‘반유현’인데, 그곳에 들어가는 확정 멤버가 되었다가 잘렸다?

셰프 커리어에 엄청난 타격일 것이다.

전 세계 셰프들이 한 번쯤 꿈꾸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는 멍청이 셰프로 낙인찍힐 테니까.

“과, 과제가 뭡니까!”

“그런 조건이라면, 저희가 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반유현이 그렇게 강경한 조건을 내건 만큼,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한 과제이리라,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틀렸어. 그냥 우리 보고 제 발로 걸어 나가라는 명령이셨다.”

“대, 대체…….”

그간 봐왔던 성격상 알베르가 농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위기는 더더욱 심각해졌고, 알베르는 반유현이 던진 과제를 말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모든 레스토랑의 메뉴 카피하기.”

“그게 가능이나…….”

“맨해튼에 식당이 3 천 개가 넘습니다!”

“3 천 개는 무슨……! 5 천 개가 넘어!”

알베르는 셰프들의 소란에 정확히 말했다.

“이 주 뒤에, 반유현 셰프님이 직접 시험을 보신다. 반유현 셰프님이 랜덤으로 한 명을 지목하시고,


맨하튼 내에 있는 식당을 고르시면, 그 지목받은 한 명이 그 식당의 메뉴를 그대로 커버해야 돼.”

아까도 말했지만, 30 명의 모든 셰프들이 맨하튼 모든 메뉴를 숙지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반유현이 누구를 지목하고, 어떤 식당을 말할지는 모르기에.

“지목받은 사람이 메뉴를 커버하지 못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연대 책임으로…… 파리로 돌아간다. 다


함께 역사상 최대의 불명예를 얻는 거야.”

셰프들은 그때 알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서로 헐뜯던 셰프들이 이제는 둘도 없는 동료가 되어버린 것을.

***

“레스토랑 런칭과 함께 이런 기획을 하시다니, 벌써 뉴욕 내 식당가가 떠들썩합니다.”

[ 반유현 사단, 셰프들 뉴욕 맨하튼 레스토랑에 매일 나타나! ]

[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 ]

[ 반유현은 또 무엇을 꾸미고 있나. ]

내가 한식 레스토랑을 런칭한다는 소식과 더불어, 반유현 팩토리 소속의 셰프들이 뉴욕 내에 있는


식당가를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내려준 과제 덕분일 텐데, 이는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 대체 반유현의 의도는 무엇일까! ]

[ 셰프들! 업주에게 직접 레시피 물어보기도! ]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적힌 셰프들이 뉴욕 맨하튼 전체에 있는 식당을 뒤집고 다니며 레시피를 수집하고
있다는데, 안 그럴 수가 있겠나.
내가 입을 다물면 다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더해져만 갔다.

“관심이 무르익었을 때, 기사 하나 더 내.”

“어떤 기사를 낼까요?”

“반유현, ‘반`s 키친’에 연이어 뉴욕을 지배하기 위해…… 셰프들 풀어…….”

사람을 푼다, 조금 거친 표현인가 싶었다.

“푼다는 표현은 뭔가…… 애들 풀어라, 같은…… 갱스터들이 사용하는 표현……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움직이는 게 모두 내 의도에 의한 것이고, 저들이 뉴욕 지배에


대한 내 야망을 표현하고 있다…… 뭐, 이런 멋들어진 표현 없냐?”

그 과정에서 저들이 얻을 전우애는 덤이었다.

181 화. 부르는 게 값이야 (6)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건가.”

반유현 팩토리, A 반 1 팀.

알베르는 뉴욕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벌써 300 여 개의 식당의 레시피를 모두 끌어왔어.”

30 명의 반유현 팩토리 소속 A 반의 셰프들, 한 셰프당 열 명씩 뉴욕 내에 있는 레스토랑들의 레시피를


얻었다.

맨하튼 내에 있는 약 5 천 개의 식당의 레시피를 모두 얻어오라는 반유현의 명령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


그 속도가 빨랐다.

“우리 학생들도 대단하지만.”

셰프들이 각자의 구역을 정해 레스토랑을 돌기 시작했고, 먹는 시간과 잠을 줄여가며 얻은 성과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줄만 알았다.

“이건 학생들이 잠을 줄여도 얻을 수 없는 성과야.”

며느리도 가르쳐 주지 않는 비법이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어떤 식당에 다짜고짜 들어가서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레시피를 순순히 내어줄 식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것을 감안하면, 셰프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얻어온 맨하튼 내 식당들의 레시피는 그들이 열심히


했다고 얻은 것들이 아니었다.

“반유현 셰프…….”

반유현.

순전히 그 이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어떤 일을 꾸미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오너들이 레시피를 손쉽게 내어준다…….”

실제로 반유현 팩토리의 학생들도 놀랐다.

“저희도 불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셰프에게 자신의 요리, 그 비법과 레시피는 자식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을 말하니 업주들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반`s 키친’과 더불어 반유현 셰프님의 어떤 계획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점주들이었습니다.”

반유현 팩토리 학생들에게 레시피를 내어준 셰프들의 생각이 그랬다.

반유현이라는 이름 아래에 있는 셰프들에게 도움을 주면, 어떤 특혜가 있지 않을까.

아니, 특혜라기보다 그와의 접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끝없는 ‘반`s 키친’의 대기 명단에서 조금이라도 앞당겨지지 않을까.

“저희가 뉴욕에 런칭 될 레스토랑 반유현의 멤버라고 생각한 오너들은 아주 친절한 태도로 저희를
대해줬습니다.”

“절대 악용하지 않도록 해. 반유현 셰프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레시피를 순순히 내어준 맨하튼
내에 있는 오너 셰프님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예! 셰프!”

한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보니, 반유현의 말대로 이들에게 ‘전우애’라는 게 생겨난 모양이었다.

반유현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있다는 자신감과 그로 인해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는 성취를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반유현 셰프님의 덕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예!! 셰프!”

***

“굴소스의 전분 비율을 빼라고 해. 너무 진득해서 고기의 식감을 망쳐.”

기계처럼 일하고 있었다.

‘반`s 키친’의 가맹점으로 신청한 뉴욕 내 식당들의 레시피를 뜯어 고쳐주는 일.

하루에도 수십 개의 요리의 맛을 보고 있었다.

요리의 온도 차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한 번 맛을 보면 이 요리가 적정 온도에서


어떤 맛을 낼지를 알고 있었다.

따라서, 수십 개의 요리가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느라 식었어도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가니쉬로 아스파라거스를 추가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 레스토랑은 괜히 특별한 것을 추가하려다가 다


망쳤으니까, 레드 와인 소스도 다시 넣고, 정통을 따르라고 해…… 그리고…….”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적어 식당에 전달한다.


그리고, 수정된 레시피로 만들어진 요리를 내가 다시 먹어본 뒤에 합격선을 넘었다면 ‘반`s 키친’
이라는 간판을 붙여주는 방식이었다.

“이 코스의 마지막에 나오는 커피에는, 소금을 조금 뿌려보라고 해봐. 소금커피 방식으로…… 이 전의


고기가 마블링이 많은 부위라 조금 더 느끼함을 닦아주려면 그게 낫겠어.”

그렇게 쌓여있는 삼십여 개의 요리를 맛봤고, 수정사항과 새로운 레시피를 내려주었다.

삼십여 개의 요리를 맛보고 수정했다는 것은 ‘반`s 키친’의 후보가 될 레스토랑들이 삼십여 개나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 또한 내가 아니면 불가능한 업무량이었다.

당장 요리의 맛을 보고 문제점을 확실하게 집어낼 셰프들이야 많겠지만, 이를 실제로 식당에 적용시킬


만한 자신감을 가준 셰프들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신을 갖는데 적어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가질 터인데, 나는 먹자마자 그에 따른 개선점들을 찍어냈다.

“마츠노, 윤종혁 셰프의 라스베이거스 일식 정찬 레스토랑은…… 다다음주에 최종 메뉴 테이스팅을


잡아두었습니다.”

그밖에도 동시에 세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첫 번째로는 라스베이거스에 런칭 될 일식 정찬 레스토랑이었고.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꽤나 잘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계속 움직이는 덕에 뉴욕 내


외식업계가 떠들썩 하니까요. 그에 대해 셰프님께서 직접 코멘트를 하지 않으시니 사람들의 관심이 더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 층 로비에 런칭될 한식 정찬 레스토랑이었다.

그 주방을 채울 반유현 팩토리 소속 셰프들이 뉴욕을 헤집고 다니며 인지도를 넓히고 있었다.

“참……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신기합니다. 식당들이 줄줄이 레시피를 내어주다니요.”

[ 반유현 팩토리 소속 셰프들! 맨하튼 내 식당가에서 계속 나타나! ]

[ 맨하튼 ‘S 스테이크’ 오너 셰프 “스테이크 소스 레시피를 알려 달라길래 알려 줬다.” ]

[ 맨하튼 내 익명의 오너 셰프 “반유현의 이름에 협조하기로 했다.” ]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세 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두 개의 프로젝트는 나의 확실한 지휘체계와 명령 하에


진행되고 있었고 그에 따른 성과들이 확실히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라스베이거스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1 층에 런칭 될 레스토랑은 그대로 가면 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전망대 바로 아래층, 그곳의 프로젝트만 움직이면 될 것 같다.”

“그렇습니다.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신 가요……?”

마지막 세 번째는 내가 직접 운영할 레스토랑인데, 반유현 팀의 수장인 오스틴은 내가 이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을 내려주지 않아 조금은 갑갑한 듯했다.

“테이블을 두지 않고, 바 형식으로 주방, 조리대 바로 앞에 긴 테이블을 넣어줘. 내가 직접 요리하는


것을 보면서 요리를 즐길 수 있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 런칭될 레스토랑은 미슐랭과 관련이 없는 레스토랑이었다.

100 년의 인생 동안, 미슐랭 스타와 관련 없는 레스토랑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계획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경매 시스템은 언제쯤 완성될 것 같아?”

“개발팀의 말에 의하면, 완성은 거의 다 되었고, 각종 버그나 오류를 바로잡는 것까지 다음 주 초쯤이면


실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매주 경매로 값을 매겨, 가장 비싼 가격을 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내 요리의 값이 매겨지는 것 자체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렇게 입찰 된 가격에 의해 대단한 화제가 될


것이다.

또, 미슐랭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는 온전히 나의 이상을 실현하는, 내 요리를 선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 주 초쯤이면…… 나도 메뉴 개발에 들어가면 되는 건가. 인테리어는 언제 끝나.”

“내부공사는 현재 모두 완료되어 바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경매 시스템 기능 완성되는 대로 런칭 하자.”

“……예 일단 그렇게 알아두겠습니다.”

***

경매를 통해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낸 사람들이 자리를 얻을 수 있다.

그 시스템이 레스토랑 ‘반유현’을 예약하는 어플에 업데이트되었고,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열광했다.

[ 세계적인 자산가들 비밀리에 반유현 레스토랑 예약. ]

[ 과연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

[ 뉴욕을 뒤집고 다니는 반유현 셰프들과의 관련성? ]

그것도 내 요리가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느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 과연 반유현 요리는 얼마인가. ]

“나는 최고의 요리를 준비하면 되겠군.”

“그, 그렇습니다.”

“내 요리, 한 끼를 먹으려고 수억 원을 투척한 사람들이니까.”

첫 날 예약은 총 6 명으로, 두 명씩 세 팀의 예약을 받았다.

그 자리를 입찰받은 명단을 보아하니 모두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중국의 대부호, 세계적인 기업의 창업자, 전설적인 투자자.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사람은 한화로 약 8 억 원이었고, 남은 두 명은 10 억과 10 억 1 천만 원을 써냈다.

“한 끼에 10 억…….”

나도 적잖이 놀랐다.

기부와 관련된 행사도 아니고, 그저 상업적일 뿐인 내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 식사를 위해 10 억을 쾌척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밖에도 수억 원을 써낸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모두 합치면…….”

사람들이 적어낸 가격들을 모두 합하면, 500 억 원이 넘었다.

몇십 원을 낸 사람부터, 수억 원을 낸 사람들까지.

미슐랭 스타를 무수히 많이 가진 셰프들의 요리, 또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수십, 수백 번 음식을 먹는


것보다 나의 요리 한 끼를 먹는 것이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이들의 판단이었다.

맛을 느끼고 목으로 삼킨다. 내 요리는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가치로 다가갔다는 증거였다.

“대, 대외적으로 알리는 게 나을까요?”

“당연하지.”

무려 564 억.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화제를 불러올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내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들의 가치를 높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예약자들은 앉아서 쉽게 부를 쌓은 사람들이 아니라, 현명함의 상징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어?”

“요식업계를 또 한 번 뒤흔드는 가격이 나와서 그렇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사실들을 계속 내는 것에도……


이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셰프님 스스로 강박과 피로도를 생각해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때마침, 뉴욕에 설립된 사무실 창문 밖을 내려다보니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왔다.

누가, 얼마에 입찰이 되었는지 아직까지 비공개였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기삿거리가 있다는 듯이 내 사무실 앞으로 몰려든 기자들이었다.

“대외적으로 누가, 어떤 값에 낙찰했는지 알려야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뉴욕에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왜 그렇게 들쑤시고 다니는지까지 말해주고, 라스베이거스에 일식


레스토랑 런칭 준비가 한창이라는 것도 말해주고.”

저들에게 던져줄 기삿거리가 한 트럭이었다.


오스틴은 나의 말에 곧장 경호원들을 대기시켰고, 나는 경호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우와아아아아!

수많은 함성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반유현 셰프님! 여기 좀 봐주세요!”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의 행보는 뭡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아아!”

“이번 경매 예약 시스템에서 가장 높은 가격으로 입찰받은 분의 이름을 말해주세요!”

그리고 이 도시의, 아니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한 번 가져가기 위해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말씀드릴 것들이 많습니다.”

182 화. 몸이 몇 개야 (1)

우와아아아아!

함성소리는 끊어지질 않았다.

정확히는 기자들의 열띤 질문들이 합쳐져서 그렇게 들렸던 것이다.

“현재 브랜드 반유현의 행보에 대해서 정리 좀 해주시죠!”

가장 고급 정보를 얻고자 하는 기자의 말이 내 귀에 꽂혔다.

라스베이거스에 런칭 준비 중인 레스토랑, 뉴욕을 헤집고 다니는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나의 요리를


먹기 위해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

오랜만에 기자들 앞에 등장한 터라 사람들은 궁금한 것들이 많았을 터였다.

“대체 몸이 몇 개인 겁니까? 그 모든 계획을 행하시다니!”

“이번 주에만 반`s 키친의 가맹점이 스무 개가 넘게 늘어났습니다! 직접 맛을 보시는 거 맞습니까?”

“경매 방식으로 셰프님의 요리를 입찰 한 사람들과 그 가격을 말씀해주세요! 대중들이 궁금해 하십니다.”

이들을 통해서 나의 계획을 알림으로써, 홍보효과를 거둘 수도 있는 것이기에 나는 말을 아끼려 하지


않았다

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대한 보답으로 내 계획을 말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몸은 하나고, 그 모든 계획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입을 열었을 때는 수많은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투르드 프랑스라는 축제를 열광의 도가니로 넣었을 때나, 미슐랭 스타 스무 개를 넘게
얻었을 때나, 아프리카에 꺼지지 않는 밤을 만들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어떤 큰 사건 없이 이렇듯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아니겠나.
내가 입을 열지 않고, 암암리에 계획을 실행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이토록 모았던 것이다.

‘시간차를 두길 잘했군.’

쌓이는 기대감, 그리고 호기심을 한 번에 모아 터트리겠다는 계획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전에 내 직원 중 누군가 그랬었다.

대중들의 기대감이 계속되어 나 스스로 그 기대를 충족하려다 지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실제 기업 경영 사례 중에는 그렇게 자멸한 경영자나 기업가들이 많다고.

나는 그들의 사례와 달리, 계속해서 커지는 기대감을 이용할 뿐이었다.

“먼저, 라스베이거스 일식 정찬 레스토랑의 런칭 계획에 대해 궁금하실 텐데요.”

우와아아아!

“헤드 셰프는 미슐랭 7 스타인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수 셰프로
대한민국의 유망주 셰프, 윤종혁, 미슐랭 3 스타 셰프 닉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방에 계신 분들의
미슐랭 합이 10 개인데, 제 것까지 합하면 33 개네요. 33 개짜리 일식 정찬 레스토랑은 전 세계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행보를 계속 보이는 나에 대한 기대감.

그 기대감을 만족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키워갈 뿐이다.

“뉴욕, 맨하탄 도시를 뒤집고 다니는 우리 셰프들에 대해서도 궁금하신 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 층, 한식 정찬 레스토랑의 주방에 들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맨하튼 내 거의 모든 식당의…… 레시피를 얻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뭐, 관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뉴욕 도시 내에 없는, 충격적인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험치를 일정량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오오오.

탄성이 쏟아져 나왔고, 메인 답변만이 남아있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전망대 바로 아래층, 뉴욕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곳. 제가 새롭게


런칭하는 레스토랑, ‘반유현 - 스폐셜’…….”

방금 기자들 앞에 내려오기 전에 레스토랑의 이름을 정했다.

여느 때처럼 레스토랑의 앞에 내 이름을 붙인다.

뒤에는 색깔을 붙이지만, 100 년의 인생에서 처음 시도하는 레스토랑이기에 특별하게 하고 싶었다.

실제로 예약 방식이나 그 요리가 특별할 것이니 단순하게 ‘스폐셜’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왜, 내 이름과 조합된 그 단어는, 단어만으로도 사람들이 몰릴 것 같지 않나.

“입찰에 참여한 사람들의 그 액수를 합치면 총 560 억 원이 나왔고, 자리를 얻어낸 분이 얼마를
써냈느냐와 그분이 누구인지는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누가 얼마에 입찰을 했는지, 맨 처음엔 공개할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바꿨다. 레스토랑의 자리를 차지한 1, 2, 3 등의 가격을 공개해버리면 그 값이 그렇게 정해질 수


있으니까.

총액만을 던지는 게, 기자들이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기에도 좋을 것이고.

“단언컨대, 이번 입찰 가격에 보답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준비할 겁니다.”

입찰 총액과 함께 내가 방금 뱉은 말은, 또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

“대체 얼마일까?”

“30 억?”

“총액이 560 억인데, 한 명당 30 억이 나와?”

“원래, 상위 1% 사람들이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 몰라? 똑같이 560 억이라는


총액에서도 상위의 사람들만 돈을 많이 냈을 것 아니냐.”

뉴욕에 온 뒤로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었다.

하루에만 수십 개의 요리를 하고, 그 레시피를 숙지하는 일에 전념하다가 반유현이 뉴욕 지역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오길래 잠시 일을 멈췄다.

“우리 지금 TV 볼 시간 없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이건 봐야 되는 것 아니야?”

“그래, 이것만 보자 우리의 리더가 말씀하시는데…….”

반유현의 생각처럼 이들의 전우애는 이미 완성된 지 오래였다.

지옥 같은 일정과 과제, 그 속에서 몇 날 며칠을 함께한 이들은 서로 도울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끈끈한 우정의 꽃이 핀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 돕지 않는다면 반유현이 내린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탓이었다.

“그래 반유현 셰프님 말씀하시는 건, 공부라고 생각하고 보자.”

모두들 칼과 팬을 내려놓고 조그마한 TV 앞에 모였다.

때마침, 기자들의 수차례 질문을 받고 있는 반유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저런 인기를 누리면, 어떤 느낌일까.”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푸하하하. 야.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웃긴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 기자들 몰리는 거 보고 입이 귀에


걸렸으면서.”

“야야야야! 다들 조용히 해봐 이제 말씀하신다.”


반유현이 입을 열었을 때는 이들 모두 집중했다.

-라스베이거스…… 총 미슐랭 33 스타의 일식 정찬 레스토랑으로…… 전 세계에는 없습니다.

“와…… 진짜, 저런 자신감이 나는 너무 멋있어.”

“하하하하! 대박이네 대박이야. 미슐랭 합치면 33 스타를 가진 셰프들이 오픈하는 일식 정찬, 우리는
그냥 묻혀버리는 것 아니야?”

“묻히는 게 문제냐? 아예 주방에 못 들어 갈 수도 있는데, 지금 숙지해야 할 레시피가 아직도 산더미야.”

그리고 그때, 반유현의 입에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삼십여 명의 숨소리가 끊긴 것처럼 대단한 정적이 흘렀다.

-뉴욕을 휘젓고 다니는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

“우리 얘기야!”

-뉴욕에서 경험할 수 없는 충격적인 맛을 구현하기 위해, 뉴욕 내의 모든 식당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 내막이, 유치한 서열 싸움이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보를 조금 더 멋스럽게 포장한 반유현이었다.

괜스레 이들의 마음이 따뜻해질 수밖에 없었다.

말투나, 행동 모든 것이 자신들을 좋게 보지 않고 있었지만, 실제론 이 정도의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래! 가즈아! 셰프님이 우리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 아니야!”

“좋아! 해보는 거야 진짜로!”

저절로 분위기는 파이팅이 되었다.

이미 반유현의 이름 덕에 오천여 개가 넘는 식당 중에서, 약 800 개의 업소의 레시피를 얻었다.

목표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성취에 자신감을 얻었던바 다시 한번 이들의 열정에
기름이 부어진 것만 같았다.

“애들아! 이거 뭐야! 대박 났어!”

평소에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던 한 셰프가 말했다.

인사조차도 수줍어하던 그녀가 엄청난 울림으로 소리를 치니 모든 셰프들이 그녀를 바라봤다.

“우리 메일이 폭주하기 시작했어!”

같은 장소에 있던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은 노트북을 들고 있는 그녀에게 빠른 속도로 모여들었다.

““!!”“

직접 발로 뛰며 맨하튼에 있는 레시피를 수집하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교수진은, 셰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메일을 하나 개설하고 인맥을 동원해 그 메일 주소를 뿌렸었다.

그에, 뉴욕에 종사하고 있는 교수진들의 동료, 후배, 또는 선배 셰프들이 레시피를 메일로 보내주곤
했었는데, 반유현의 방송이 나가자마자 엄청난 레시피들이 메일로 수신되고 있었다.

이 속도는 이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다.

-뉴욕, ‘인사이드 하우스’

저희 닭 가슴살 스테이크, 특제 소스의 레시피를 알려 드립니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파이팅입니다!

-‘엘레강 스테이크 하우스’

부채살의 숙성법과 우리 가게만의 당근 퓌레를 가르쳐 드릴게요.

요리 문화 혁신에 기여해주세요!

-로열 파스타

우리의 시그니처 메뉴인 시금치 전복 파스타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

그 밖에도 실시간으로 메일들이 수신되고 있었다.

대체로 그 메일에 함께 적힌 문장을 보면, 반유현의 말마따나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이 충격적이고 새로운
맛을 찾는 것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속내야, 반유현의 관심을 얻는 것이겠지만…… 셰프들은 반유현의 말이 가진 힘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 뉴욕 내 오너 셰프들이 레시피를 갖다 바칠 정도의…….”

“자신들의 레시피가 어차피 반유현이라는 사람이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보다 안된다는 것 아니야.”

“이대로라면 진짜 할 수 있겠어!”

약 5000 개가 넘는 식당의 레시피를 30 명이서 숙지해야 되는데, 레시피가 제공되어 있다면 가능할 것만
같았다.

직접 발품을 팔면서 주방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포기하지 말자. 오늘부터 더 열심히 달리는 거야.”

***

“들으셨습니까?”

정해진 날짜,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을 시험하러 가는 길이었다.

“뭘?”

“셰프님의 방송이 나가고 맨해튼에 있는 식당 대부분이 메일로 자신들의 레시피를 건넸습니다.”


“음? 무슨 메일.”

오스틴의 말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띠어졌다.

“내 말 한마디에, 뉴욕에 있는 셰프들이 동조했다고?”

뉴욕에 없는 충격적이고 신선한 맛을 찾겠다는 나의 말에, 뉴욕 셰프들이 자신들의 레시피를 메일로


보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데이터를 쌓아 준 것이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 층에 도착해, 준비된 주방으로 들어가자 반유현 팩토리 셰프 30 명과 교수 3


명이 나를 반겼다.

“그래서, 맨하튼에 있는 모든 식당 숙지가 끝난 거야?”

“예! 셰프!”

어떻게 이렇게나 자신감이 있을까.

나조차도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라는 미션을 내어준 것이었으니까.

‘무슨 방법이 있는 건가.’

“이 자신감 뭐야. 기대되는데.”

나의 말에는 셰프들이 또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티끌만큼이라도 불안감이 있으면 이런 분위기가 나올 수 없다.

내가 봤을 땐, 뉴욕 내 셰프들이 메일로 레시피를 보낸 것 말고도 또 다른 묘수가 있던 것 같았다.

“시험해보면 알겠지.”

나는 맨하튼에 위치한 레스토랑 다섯 개를 읊었다.

183 화. 몸이 몇 개야 (2)

“가장 낮은 난이도부터 시작해보자고.”

지금 테스트를 받고 있는 이 셰프들이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알기 위해 가장 낮은 난이도부터 시작하려


했다.

낮은 난이도라 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식당의 메뉴들이었다.

맨하튼 내에 있는 모든 식당의 메뉴를 카피하는 미션에서, 유명한 식당을 빼놓고 할 리는 없을 테니까.

“첫 번째로, 랍스터 요리로 유명한 곳이지. 로칸 랍스터,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랍스터 피자를 만들
사람…… 너, 나와.”

로칸 랍스터, 그 레스토랑이 보유한 시그니처 메뉴로는 랍스터 피자와, 랍스터 샌드위치가 있었는데,
그것이 뉴욕 전통 먹거리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뉴욕 내에서 대단한 입지를 자리하고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유명한 레스토랑이 난이도가 낮은 것만은 아니야. 내가 먹어본 요리일 수도 있으니까.”

나에게 지목받아 앞으로 나온 셰프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꽤나 자신감을 가진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던 셰프가 지금은 긴장에 얼어 있었다.

완벽하게 숙지를 한 것에 대한 자신감이었을 것인데, 내가 직접 맛본 요리라는 것을 언급하니 그보다 더한


긴장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내 정신을 차리곤 나에게 되려 질문했다.

“로칸 랍스터의, 기존 레시피와 달리…… 맛과 풍미를 더 살리는 방식으로 요리해도 되겠습니까?”

“음?”

“저희가 알기론, 이 랍스터 샌드위치의 단가 때문에…… 민물가재의 살을 이용하고, 그곳에 토말리


(Tomally)를 발라 풍미를 살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저희 주방에 준비되어 있는 것은 9 년
이상 산 바닷가재밖에 없습니다. 민물가재의 살을 이용하는 것보다 자연히 풍미가 올라갈 것입니다.”

토말리는 랍스터 몸 안에 있는 녹색 물질로, 랍스터의 간을 뜻하는 단어인데 실제로 로칸 랍스터라는


식당에서는 재료비를 줄이기 위해, 민물가재의 살에 바닷가재의 토말리를 바르는 방식으로 풍미를
높였었다.

“단순한 노력을 한 건 아니군.”

바닷가재와 민물가재가 먹는 것들이 다르기에, 그 내장의 맛과 살의 풍미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나 정도의 경험과 민감한 감각이 있어야만 큰 차이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나는 이들의 노력이
레시피를 베끼는 단순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로칸 랍스터라는 식당이, 레시피를 줬어도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민물가재를 사용했다는 말은 안 했을


것이니까.”

실제로 맛을 보고, 그 맛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들까지 생각했다는 것 아니겠나.

“샌드위치의 맛을 보고, 어떻게 하면 이 맛을 더 끌어 올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게 민물가재의


살이라는 것을 알아낸 방식인가?”

그 생각의 흐름을 모두 집자, 셰프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이때에는 정말, 내가 오를 수 없는 아득한 벽처럼 느껴진 탓일 것이다.

“마요네즈 소스와 칠리소스의 배율이 중요할 텐데, 그건?”

“모두 숙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가 요리를 시작했다.

“피터슨, 스테이크 하우스.”

다음 업소를 읊었을 때는 모든 셰프들이 자신 있다는 눈빛이 되었다가 다시 흐려졌다.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의 이름에 자신감이 생겼다가, 그 또한 내가 세세히 레시피를 알고


있을 것이란 마음에 자신감이 떨어진 것이다.

앞서, 로칸 랍스터와 같이 질문을 깊이 할 것이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너 나와.”

그 와중에도 깊은 자신감을 보이는 셰프를 지목했다.

“고기 굽기의 정도야 기본이니까 알 수 있을 테고…….”

“피터슨 스테이크 하우스는 두꺼운 시어링으로 유명합니다. 소금과 후추를 사용하지만 간을 하는 용도로만
하고, 양파 특제 소스나, 칠리 특제 소스, 또는 동양의 간장 베이스의 소스를 양념해 구워…….”

마찬가지로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릴 앞으로 다가가 요리를 시작했다.

“숙지를 했을 테지만, 난이도가 있는 요리…… ‘펄스’.”

펄스. 미슐랭 3 스타를 가진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드레스 코드까지 갖춰져 있는 곳이었다.

최고급을 지향하는 만큼, 이곳의 코스요리의 레시피를 얻는 것이 힘들었을 것인데, 셰프들은 이곳의
레시피 또한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임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저희들이 신선하고 충격적인,
새로운 맛을 찾는 것에 동참하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레시피를 주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지난번, 기자들에게 했던 얘기들을 토대로 수많은 식당들이 레시피를 보내왔는데, 미슐랭 3 스타,
최고급 레스토랑이라 불리는 그곳도 레시피를 건네왔다.

이는 어떻게 보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슐랭의 최고 등급에 속하는 레스토랑이 코스에 대한 레시피를 온전히 공개했다?

“저희도 놀랐습니다. 맛을 물론이고 그 정통성을 스스로 자부하는 곳임에도……. 레시피를 건네 준


것이요. 반유현 셰프님과 접점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

교수진 중 한 명인 버크 헤지스가 말했다.

“저들의 자부심은…… 제가 뉴욕 출신이라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느꼈죠. 저 주방에 있는


셰프들의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꺾는 것도 반유현 셰프님이라는 것을요.”

버크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자, 나에게 지목받은 세프가 요리를 시작했다.

코스였기에, 나는 총 세 명의 셰프를 지목했다.

그 외에도, 할랄 보이즈, 딜리셔스 인 맨하튼 등 유명 레스토랑을 몇 개 더 말한 뒤에 지목했다.

“노력을 단단히 했다는 건 알았고…….”

셰프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말한, 레스토랑들의 메뉴를 그대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그 레스토랑들이 레시피를 건네줬다 하더라도, 이는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뉴욕에 온 뒤로 잠을 세 시간 이상 잔 셰프가 없다는 것은 들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진짜 테스트는 지금부터인데.”

사실, 내가 이들에게 맨하튼 5000 여 개의 식당 메뉴를 카피하라 했던 것은, 체벌성이 강했고, 이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부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실상은 그것들만을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불가능한 것을 이루기 위해, 이들의 머릿속에는 단연 ‘효율’이라는 것이 자리했을 텐데, 이 셰프들이


그 효율성에 대해 얼마나 체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 더 컸다.

“아트인 파스타, 워터 블룸, 찰스 엔 레시피, 프라이 팬…….”

나는 맨하튼 내에서 테이블 규모가 작고 유명하지 않은 식당들을 몇 개 더 읊었다.

그리고, 동시에 셰프들을 지목했다.

“왜, 이번엔 자신 없지?”

내가 방금 말한 업소들 중에는, 카피하고 숙지한 레시피가 몇 가지 있었을지는 몰라도 대부분 이들이


모르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이들이 모를만한 것들만을 내가 읊었던 것이니까.

셰프들은 순간 경직되었고, 나는 그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망했다. 라는 마음으로 가득한 표정이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 스스로도 모르는 능력을 개화시켜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탓이었다.

“내가 방금 말한 식당 중에서 ‘프라이 팬’이라는 곳은 중식 볶음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야.


테이블은 다섯 개밖에 없고, 오픈한 지도 얼마 안 되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당연히 자네들은
몰랐을 테고.”

나는 전생의 기억으로 알고 있었다. 그곳이 정확히 1 년 뒤에는 대단한 맛집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강력한 맛을 품고, 언젠간 메이저로 진입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식당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집이었으니까.

“그곳의 메인 요리는 요우먼따샤(油焖大虾), 고추기름에 은은하게 가재를 튀기듯이 볶은 요리야.”

나는 그곳의 메인메뉴를 말해주었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테스트는.”

***

“…….”

“…….”

교수진들 중 아무도, 자신들이 가르쳤던 반유현 팩토리 소속 셰프들이 반유현의 주문을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반유현의 주문을 모두 수행했을 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 모두가 반유현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즐거움보다는, 반유현의 큰 그림과 그의 실력 앞에 한없이


아득해져 버린 자신의 능력 탓이었다.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할 수가 있습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셰프들의 경험과 능력, 그리고 이 도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요리까지도 만들게 하다니.”

반유현이 내린 5000 여 가지의 음식을 카피하라는 미션은 사실, 셰프들의 능력을 몇 단계나 뛰어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셈이었다.

셰프들은 맨하튼 내에 있는 5000 여 개의 음식을 카피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수백, 수천 가지의 요리를
직접 만들고 맛을 보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요리들을 흡수했다.

이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맨하튼 지역 내의 모든 음식들을 숙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용해, 다른 요리를 흡수하는


실력이 능력이 알아서 쌓였을 겁니다.”

아주 단순한 예로 들자면, 콤비네이션 피자를 수없이 먹어본 사람이, 토마토 케찹과 밀가루의 조합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를 토대로 스파게티에 대한 레시피를 생각하며 그 요리를 맛보면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속도가 완전히 빨라지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맨하튼이라는 한정된 도시 안에서는 코드가 있으니까요.”

다른 요리일지라도, 지역의 특성과 주 고객층으로 인해 공통적인 맛들이 있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반유현이 주문했던 요우먼따샤와 같은 것이었다.

“중화요리이지만, 중식풍이 강하지 않고, 고추기름의 매운 향도 약하게…… 셰프들은 스스로 뉴욕,


맨하탄 풍의 요리에 대한 코드를 익혔고, 자신이 숙지하지 못했던 요리라도 그 코드를 씌워 만들어
냈습니다.”

요리의 본질, 상업적으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요리들, 그 특성들을 익히는 방법을 알게 된 셰프들은
반유현이 말한, 생소한 식당의 메뉴를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생소한 식당을 읊을 때는, 처음엔 당황했을 테지만…… 점차적으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린 맛들이 구현되는 것을 느끼며 셰프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자신의 실력을 또 한 번 체감했을 겁니다.
이건…… 반유현 셰프님이 그들의 능력을 ‘개화’시킨 것입니다. 이전과 완전히 다른 셰프들로
만들었다는 것이죠.”

반유현은 실제로 처음부터 이것들을 계획했을까.

밑도 끝도 없이 서열 싸움을 하는 셰프들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했던 미션이 이런 효과를 우연치 않게


얻은 것일까.

아무래도, 전자의 이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알베르, 버크, 안젤라, 이 세 명의 교수진은 경외감을
느꼈다.
[ 반유현 팩토리 33 명의 셰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 층 한식 정찬 레스토랑 런칭 멤버 확정! ]

그의 기획력과 추진력에 깊이만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 내일! 반유현 프리미엄, 첫 손님맞이! 과연 어떤 인사들이 등장할 것인가. ]

셰프들을 성장시키는 기획을 했음과 동시에, 한식 레스토랑 런칭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레스토랑 런칭을
당장 내일 하겠다고 말하는 그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교수진 세 명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자신들의 경험, 내공, 연륜, 그의 행동 근거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84 화. 몸이 몇 개야 (3)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 전망대를 향하기 위해 항상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이 건물의 완공식이 있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했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33 명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1 층, 한식 레스토랑의 런칭멤버로 확정된 것에 이어,


새로운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반유현 - 프리미엄 ]

로비에서 80 층까지 운행하는 엘리베이터에는 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층수를 표시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에, ‘79’라는 숫자 대신 적혀 있는 나의 이름이, 이렇듯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은 이유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다.

“반유현 셰프님!”

“셰프님! 여기 좀 봐주세요!”

셀 수 없이 많은 기자들, 이 기자들은 사실 오늘의 나보다 오늘 내 요리를 먹을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컸을 것이다.

내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담긴 돈이 560 억, 결국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얼마를 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다.

오늘은 그 사람들이 실제로 등장하는 날이었고.

“보안문제를 잘 해결해야 돼. 말 그대로 프리미엄이니까.”

나는 그 사람들의 정체를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궁금증을 만들어 몇 가지 효과를 거두려 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야? 라는…… 호기심을 준다는 말씀이시죠?”


나의 요리를 먹는 것이 마치 천상계의 어떤 행위같이,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줄
계획이었다.

쉽게 말하면, 나의 요리를 먹는 것이 누군가의 삶의 동기, 꿈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만 해도 나의 요리를 먹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지만, 프리미엄이라는 포장지는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요리를 먹고 싶게끔 하는 욕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경호원들 다 배치해두었습니다. 공항에 차량까지 저희가 제공하구요. 이곳에 들어올 때는 한 명당


경호원 여섯 명이 배치해서, 바리케이트를 친 뒤 이동할 겁니다.”

가장 처음엔 이들이 누구인지, 이들이 나의 요리를 먹기 위해 얼마를 냈는지 공개하려 했지만.

차라리 비밀로 감추는 게 더 큰 이익이라고 생각한 탓이다.

“반유현 셰프님을 보좌하는 경호원들 중에서도 최정예로만 붙였습니다. 그들이 대접받는 느낌이 들 수
있게요.”

내 귀에 속삭이는 오스틴의 말에 끄덕이면서 나는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

[ 강력보안…… 반유현 경호인력, ‘반유현 - 프리미엄’ 손님들 보호하는 데 최선 ]

[ 철통 보안 지키는 이유는? 그들이 세계적인 vip 이기 때문? ]

[ 수십억을 경매에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

[ 반유현 측 관계자 “프리미엄 브랜드에 맞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함이다.” ]

“기자들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주방,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차려진 bar 형식의 테이블.

그 테이블 앞엔 각각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나의 요리를 먹고 싶어, 평균 10 억 원의 거금을 낸 사람들이었다.

“뭐, 기자들이야 그게 직업이니까요! 하하하하!”

“괜찮습니다. 공항부터 해주신 반유현 셰프님의 배려에 놀랐습니다.”

우리는 인사치레 몇 마디를 나눴다.

100 년의 인생을 살면서, 미션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요리사로서 성공한 삶을 살아왔기에, 수많은
기업인들을 만났었다.

그런데, 지금의 자리와는 달랐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요리만을 먹기 위해 수억 원을


냈고, 이곳 뉴욕까지 날아온 것 아니겠나.

돈의 가치를 떠나서도, 이들에게 최선의 정성을 다해주는 것은 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셰프의
예의였다.
뿐만 아니다. 사업가, 또는 기업가로서의 명예까지 다지고 있는 나에겐 이들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야민이라고 합니다. 반 셰프님의 행보는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중국 전자 상거래, 최대 업계인 알리야마, 그곳의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인 야민.

세계 부자 서열 10 위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야민 회장님, 저번 주 2030 세게 IT 비전 포럼에서 뵀었는데, 또 뵙습니다.”

“아하하하하! 빌리 게이트 회장님, 회장님께서도 요리를 이렇게나 좋아하실 줄 몰랐습니다.”

“그냥 요리라기보단,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지요.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제가 직접 맛보고


알아야겠습니다. 하하하!”

세계 부자 서열 5 위권 밖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의 회장인 빌리


게이트가 야민과 인사를 나눴다.

“월렌 버크스 회장님께서는 워낙 요리를 즐기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옆에, 월렌 버크스.

세계 최고라 불리는 투자 회사를 설립한 인물로, 사과 하나로 수조 원의 자산을 이뤄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나도……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먹고 싶었네. 하하하 이 시대의 흐름 아닌가. 역사에 없던 종목의
탄생이기도 하고.”

야민, 빌리 게이트, 월렌 버크스.

이 세 사람이 한 번에 모인 자리라, 자본력과 영향력으로 어떤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면, 세계적인 공룡기업을 인수할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는 내 이름과 동일 선상에 이름을 올릴 셰프가 없는, 독보적인 탑셰프이지만 이들의 영향력 앞에서는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들의 거대한 영향력과는 별개로 이들을 나의 ‘팬’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먼 곳까지, 비싼 값을 내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세 명의 남자와, 각각 그들이 데려온 부인 또는 부회장과 같은 자신의 최측근인사 세 명이 이었다.

내가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여섯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박수를 쳤다.

“각각 드시고 싶은 음식을 저희 측에 말씀해 달라고 부탁드렸었습니다.”

내가 준비한 최고의 요리들 사이에, 이들이 먹고 싶은 코스를 녹여냈다.

자신들이 기대한 맛 이상의 맛을 보여주는 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상상하는 맛의 한계를 부숴주는 게, 셰프의 역할인 것은 누누이 말해왔던 것이니까.

그래서, 이들이 이곳에 오기 3 주 전, 나는 이들이 먹고 싶은 요리가 무엇이냐 물었었다.


“야민 회장님께서는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양파수프……. 양파수프를 원하셨습니다.”

야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조 원대의 자산가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며 양파수프를 말했었다.

“빌리 게이트 회장님께서는, 사모님이 드시고 싶은 오리 샤브샤브를 원하셨구요.”

애초에 이들에게 먹고 싶은 요리를 말하라 했을 때, 당신들이 생각한 이상의 맛을 만들어주겠노라고


말했었다.

스테이크, 관자구이…… 와 같은 단순한 요리를 말하더라도, 최강의 요리를 만들어 줄 테니 먹고 싶은


요리를 말하라고.

그렇게 기대감을 올려놓고, 그 기대보단 더 큰 만족을 주는 게 나의 요리니까.

내 요리에 영향을 미칠 외적 요소가 없기에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월렌 버크스 회장님께서는 콩포트(Compote)…… 특별하게 디저트를 말씀해주셨네요.”

“반유현 회장님이…… 제과 제빵분야 MOF 까지도 수상하셨다는 소식에 지상 최고의 디저트를 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입니다. 허허허. 달달한 걸 좋아하거든요.”

현금 10 억을 내놓고, 과일을 시럽에 절인 후식을 말하는 여유였다.

“야민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양파수프는 가장 처음, 에피타이저로 준비했습니다. 식욕을 돋우고, 뒤에


나올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얹는 요리로 제격일 것 같습니다.”

양파는 오랜 시간 카라멜라이즈화 시켜, 단맛을 우려내기 위해 이미 큰 팬에서 조리되고 있었다.

양파를 썬 두께에 따라, 또는 그 양파가 팬에 닿는 면적에 따라 갈색화 반응의 시간이 달라지고 이는


양파가 낼 수 있는 단맛의 깊이에 관여한다.

적절한 양파의 두께와 시간까지 알고 있는 나는 물었다.

“양파는 단맛이 베이스입니다. 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더 설명 드릴 것은 없고, 양파의 단맛을


감추고 있는 매운맛을 조금 살릴까 생각되는데, 어떠신가요?”

“좋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었던 양파 수프라고 하지 않았나.

어머니가 유명 셰프가 아니었다면, 오랜 시간 조리하는 양파에서 매운맛을 은은하게 살리는 기술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갈색화 반응이 일어난 양파를 팬에 옮겨 넣고, 강한 불로 아주 짧게 볶아낸 뒤에 닭육수를 넣었다.

닭 육수마저도, 그 뼈와 연골에서 우러나오는 국물의 맛을 고려해 만든 것이었다.

“그, 그 지금 넣는 육수랑, 간장…… 그것들은 다 반유현 셰프님 특제인가요?”

“맞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최상의 맛을 내야 하니까요.”

한 창 양파와 육수가 끓어났을 땐, 셰리(Sherry)를 넣었다.


“스폐인산 백포도주?”

“잘 아시는군요.”

팬에 들러붙은 양파의 단맛과 육수의 깊은 맛을 디글레이징 하기 위한 것이었다.

셰리를 이용해 그것을 긁어내곤, 약간의 전분을 넣고 다시 조리에 들어갔다.

“고소함, 달큰함, 아주 약간의 매운맛을 즐기시면 됩니다.”

스프가 완성되곤, 접시에 담아 이들의 앞에 올려주었다.

내 설명을 듣곤, 여섯 명이 일제히 수저를 들어 양파 수프를 떠먹었다.

“컥!”

“켁, 켁!”

“이게 뭐야!”

“이, 이런 양파 수프가……!”

그리고 동시에 동작을 멈추곤 나를 바라본다.

“양파의 껍질을 까는 것부터, 그 안에 들어가는 육수, 조미료, 시간 모든 것을 통제했습니다.”

“이 맛은…….”

짭짜름하고 고소한, 스프의 제형이 입안을 되감는 찰나에, 동시에 양파의 깊은 단맛이 몰려온다.

그리고 그 깊은 단맛 중간중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약한 매운맛은 식욕을 돋우는 데 충분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층수를 오르듯이 딱, 딱, 딱 느껴짐에 이들은 이렇게 놀란 것이었다.

“셰, 셰프님이 설명한 맛 그대로잖아!”

“제기랄……! 이런 것을 못 먹고 일만 했으니.”

“하하하하하! 그러게요. 우리가 이런 신선한 경험들을 두고, 일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열광하는 이유를, 단 한 숟갈 만에 이해한 이들이었다.

요리에 대한 깊이가 없을지라도, 세계 최대 부호라 불리는 이들이 살면서 먹어본 경험들은 내 요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월렌 버크스 회장님께서는 요식업에 투자를 안 하는 걸로 유명한데, 어째, 생각이 바뀌신 것 같습니다.”

빌리 게이트와 월렌 버크스는 원래 친분이 있었기에, 서슴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요식업이랑, 반유현이랑은 다른 종목 아닙니까. 하하하하하!”

“투자자 아니랄까 봐, 너무 정확하시네요.”

“후…… 다음 요리 때문에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NS 소프트의 주가가 폭락하는 날보다, 심장이 뛰는 날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옆에 야민과 그의 부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양파 수프를 먹고 있었다.

그리곤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희 어머니가……. 해주신 요리보다 맛있네요. 가장 맛있을 줄 알았던 요리의 한계가 부서지는 충격이,
제게는 너무 소름 돋고 신선합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 충격은…….”

자신이 사업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을 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그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 할 수 있는 건, 나만큼의 깊이를 가진 요리사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제게 이런 충격을 줄 요리사가…… 이 세상에 없었다는 것이겠죠.”

나는 그들의 말을 대충 흘려듣고는 다음의 요리를 설명했다.

“시작도 안 했습니다. 벌써 그러시면, 이 뒤의 요리가 감당이 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여유롭게 웃어 보이니, 괜스레 긴장을 한 이들이었다.

다가올 새로운 충격이 너무 클까 봐, 어느 정도의 방어기제가 작용한 탓이었다.

그런데, 에피타이저를 먹고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겠는가.

그 방패까지 허물어줄 생각이다. 이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185 화. 몸이 몇 개야 (4)

“아직도 양파 수프의 여운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와…….”

여섯 명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에피타이저로 처음 제공되었던 요리인 양파 수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빌리 게이트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오리 가슴살 샤브샤브의 육수를 준비하면서…… 그 사이에 또 어떤


요리를 드시면 좋을까 하여, 참치회를 준비해봤습니다.”

회, 날생선을 얇게 썰어낸 것을 뜻하는 말이다.

뜻은 그렇지만, 그 생선을 만지는 셰프의 손길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 것이 회였다.

“제가 저번 주에 당장, 오다 츠쿠미 선생님의 횟집을 다녀왔습니다. 과연 반유현 셰프님의 참치 회는


어떨지…….”

“허허. 저도 오다 츠쿠미 셰프의 숙성회를 먹어봤습니다만……. 양파 수프를 먹고 나니, 반유현 셰프님의


회가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오다 츠쿠미는 숙성회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인이었다.

나도 세 번째 삶에 그의 숙성회를 먹어보고, 네 번째 삶에는 그 비법을 모두 알아낸 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들에게 선보일 회는 그보다 더 발전된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온 정성을 쏟아낸 회는 거의 처음 선보이는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침을 꿀떡 삼키는 이들이었다.

“숙성회는, 냉동 참치를 해동시키는 것을 숙성이라 일컫는 회가 있고, 생참치에 각종 재료를 곁들여


숙성시키는 방식이 있습니다. 저는 두 가지 회 모두를 준비했습니다.”

생참치를 숙성한 것과 냉동 참치를 녹이며 숙성시키는 두 방법은 같은 부위여도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참치는 부위별로 각각의 맛이 강하기에 맛의 변주를 확실하게 줄 수 있었다.

이미 며칠간 숙성을 마친 회들을 꺼냈고, 나는 즉석에서 칼을 갈아 회를 썰기 시작했다.

“오도로, 뱃살입니다. 지방이 전체적으로 넓게 퍼져있어 고소함이 일품이고, 담백함은 그 덤으로


이어집니다. 숙성과정을 통해, 고소함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냉동 참치를 소금물에 담가 빼낸 뒤, 냉장 해동을 하는 숙성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염분과 시간이다.

숙성회를 꽤나 한다는 셰프들은 자신만의 시간과 염분이 있다.

나는 염분을 맞추는 것에, 소금뿐만 아니라, 갈아 넣은 무와 곁가지 재료를 함께 넣었다.

곁가지 재료를 넣음으로써 소금물 내에서 농도의 변화가 수시로 일어나기에 다른 셰프들은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나는 그 변화를 완벽히 알고 있기에 맛의 풍미를 올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를 넣었음에도 염분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하……!”

“브라보!”

“와우!”

“이건 마치……!”

맛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오도로, 같은 뱃살 부위입니다. 그러나 방금 드셨던 것과는 달리 생참치를 숙성시켰습니다. 방금


드신 냉동 참치와는 또 다른 맛이 있죠.”

다시마, 무, 생강, 돼지 뼈 육수 등을 넣고 5 일간 숙성시킨 회였다.

“컥!”

방금 먹었던 냉동 숙성회와는 달리 따뜻한 질감이 혀에 닫자마자 녹아내렸다.

또, 확실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고소한 풍미라는 한 단어로 묶일 수도 있는 맛이, 완벽한 차이를 내는 것을.

“고소한 지방질의 풍미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요?”


“이게, 같은 부위 맞습니까?”

“와우! 베리 들리셔스!”

이 외에도 계속 다른 부위를 꺼내어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건, 눈살입니다. 준비된 기름장에 찍어 김과 함께 드시지요.”

쫄깃하고 탱글한 식감, 그리고 그 육질을 씹을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감칠맛.

그것을 감쌌던 김은 에피타이저의 역할을 하듯 녹아내려 그 향을 풍기고 난 지 오래였다.

“드시는 동안, 오리 가슴살 육수가 준비되었네요.”

양파 수프에 이어, 두 번째 요리를 먹은 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빌리 게이츠가 말했던 오리 가슴살 샤브샤브, 월렌 버크스 회장이 말했던 콩포트.

그들이 원했던 요리는 최상의 맛을 보여주었고, 중간중간 내 레스토랑의 메뉴들을 선보였다.

나의 부름을 받거나, 나를 따라왔던 셰프들이 내가 전수한 레시피로 조리되는 메뉴들과 달리 직접 내가


만든 레시피를 선보인 것이기에, 그 특별함에 감명받은 손님들이었다.

그리고, 그 맛의 충격이 너무나 큰 나머지 지금의 사태가 일어났다.

“회장님들이 생각보다 영감에 약해,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나, 생각은 그 사람을 완전히 미치게
만들어.”

[ 반유현 - 프리미엄, 그 첫 손님…… 세계 최대 it 기업 회장님, 두 명 확정. ]

[ 야민 회장, 그 요리를 먹고는 천국을 경험했다. ]

[ 빌리 게이트 회장, 이 정도의 새롭고 신선한 경험은 우주 여행을 해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내가 밝히지 않았음에도, 본인들이 그렇게 했다.

앞으로도 ‘반유현 - 프리미엄’은 vip 고객들이 주 대상이었기 때문에, 프라이빗하게 그 가격과 그


인물들의 정보를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저들이 알아서 밝힌 것이었다.

[ “이 맛의 영감을 혼자만 알고 싶지 않았다.” 월렌 버크스. ]

수조 원대의 기업을 일군 자들이라 무수히 많은 성취와 영감을 느꼈을 것인데, 나의 요리가 그들에겐
엄청나게 큰 경험이었다고 한다.

정보와 자신들이 얻은 영감을 나누는 것에 익숙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그대로 전달했다.

[ 브랜드 반유현, 성공신화를 알 것 같아.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의 요리를 매일 먹고 싶다. ]

뇌를 강력하게 때리는 충격적인 맛.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신선한 맛.

새로운 경험이라는 즐거움.


그 모든 것들이 통합된 요리는 그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했다.

“세계 부호 순위 10 위 권 밖으로 떨어져 본 적 없는 이들이 그러니까, 더 난리입니다.”

“전 세계의 마케팅 회사를 합쳐놔도 저 세 명의 말 한마디를 이길 수는 없지.”

그들의 한 마디가 어떤 기업을 살리고, 어떤 기업을 죽이는 힘을 가졌다.

브랜드 ‘반유현’의 예약 어플의 동시접속자 수가 대중들에 대한 나의 관심을 반영했다.

내 요리를 먹은 회장들이 나의 요리에 대한 평을 신나게 떠들어내고 난 직후, 동시접속자 수가 3 배, 4 배


증가했으니까.

하물며, 이미 예약을 해놓은 사람들에게 그 푯값의 열 배를 지불하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나, 암거래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제 요리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야.”

나의 요리는 식재료의 혼합물, 그리고 영양가를 보충하는 음식의 의미보다 맛이라는 경험의 질을 높이는
수단의 의미가 원래부터 컸었지만.

이제는 완벽히 그 범주를 넘어서게 된 것이었다.

수많은 경험을 갖춘, 공룡 기업의 회장들이 한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그랬다.

더군다나, 나는 그들의 정체를 감추려 했는데 그들 스스로 나의 요리를 경험한 것에 대해 자랑하듯이


말하고 다녔다.

그에 따라 브랜드 ‘반유현’은 또 한 번 대단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ㅋㅋㅋ반유현이 직접 모든 것을 다하면 저런 맛이 나오는구나.

-우리같은 사람들은 평생 못 먹는 맛이야?

-재벌들만 먹을 수 있음.

-반유현이 양파를 깎는 것부터 다했다는데, 진짜 먹어보고 싶다.

-반유현이 깎다 버린 양파껍질도 맛있다는 썰이...

“다음, 손님들이 또 얼마를 써낼지 궁금하군요.”

“바로 예약받자.”

이미 초대형 그룹의 회장님들이 다녀갔으니, 그 다음엔 또 어떤 손님이 올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나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그랬다.

“이 관심은 또 상업적으로 이용해야겠어.”

“예?”

“반유현 프리미엄에서 요리를 먹은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야.”

내 요리를 맛본 사람들만이 경험한, 그 특별한 경험을 서로 대화를 나누며 그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에 따르는 효과는 명확했다.

“프리미엄 요리를 먹는 모두가, 사회적으로 대단한 명성이 있거나 부가 있는 사람이잖아. 그 사람들이


나의 요리라는 테마로 묶이면 어떨까 해서. 그리고 그 모임 자체에 끼고 싶은 사람들도 내 요리를 먹기
위해 돈을 던지지 않을까.”

내 요리를 좋아한다는 주제로, 그리고 내가 재료 손질부터 모든 것을 맡아서 한 프리미엄 요리를


먹어봤다는 주제로 모이는 사람들.

나의 경험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람들로 모임을 구성한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인간들이 모인 팬클럽을 만드는 개념이었다.

“막강한 팬클럽을 만드는 거지. 셰프, 요리사, 사업가, 기업가를 넘어서 온 세상을 주무르게.”

“…….”

양파껍질, 고기손질, 생선 비늘 벗기기부터 세세한 모든 과정을 내가 직접 한 요리를 먹고, 그 팬클럽에


가입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했던 즐거운 경험을 공감해줄 사람을 만나는 데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니까.

더군다나, 그 요리를 먹은 사람이 전세계에 몇 없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커뮤니티 가입을 재촉할
것이다.

“이름은 반유현 - 러브스?”

“…… 작명 센스는 조금 배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알아서 이름 좀 지어봐.”

***

브랜드 반유현의 부흥은 항상 두 가지 효과를 동반한다.

첫 번째로는 말 그대로 브랜드 반유현의 기업가치 상승, 두 번째로는 그 구성원들의 긴장감 유발이었다.

“후. 오늘이 메뉴 테이스팅 날인데, 어쩌냐 이걸.”

마츠노와 윤종혁, 그리고 닉이 이번 사태의 긴장감을 오롯이 안고 있었다.

“하필 ‘반유현 - 프리미엄’에서 참치회를 선보이셔서…….”

반유현이 프리미엄에 선보일 요리들이, 자신들이 런칭을 준비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메뉴와 겹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염려는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 두고 있었다.

반유현은 본인 스스로 대외적으로 그 메뉴와 구성을 알리겠다고 하지 않았었으니까.

“대체, 얼마나 맛있었길래…… 그 회장들이 저렇게 입방정을 떠는 겁니까?”

“그러게, 그 부담감은 우리의 몫이야.”


반유현의 의도와 달리 회장들이 신나게 그 맛과 요리에 대해 떠들어댔고, 그렇게 얘기한 요리 중에는
참치회가 있었는데 이는 런칭을 준비 중인 일식 레스토랑과 겹치는 요리였다.

“나쁘게 생각하지만 맙시다. 어쨌든 대중들의 관심을 런칭도 전에 얻은 거니까.”

“여태까지 런칭된 레스토랑 반유현 중에서 이 정도의 관심을 받은 곳은 없었긴 하지……?”

반유현은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전에 항상 마케팅을 하는데, 아무래도 회장단들의 입김이 더 거센


모양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브랜드 반유현은 마케팅의 범주를 맛, 그리고 요리에 두었지만.

반유현의 요리를 먹은 회장단들은 새로운 ‘경험’이라는 더 넓은 범주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가…… 반유현 셰프님이 만든 것만큼의 참치회를 선보여야, 브랜드 반유현의 명성을 깎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사람들이 다들 우리 레스토랑에서 반유현의 참치회가 구현되리란 것을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참치회뿐만이냐, 반유현 프리미엄에 사용된 가쓰오부시, 다시마 숙성, 폰즈 소스, 굴소스…… 일식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들을 뜯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수십, 수백 명이다.”

라스베이거스 일식 레스토랑 ‘반유현 - 퍼플’을 준비하는 셰프들은 그렇게 깊은 고뇌와 부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도합 미슐랭 10 개를 가졌어도, 반유현의 요리를 감당해 낼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이미 수개월 예약이 밀려, 예약경쟁이 치열한 기존의 반유현 레스토랑보다, 새롭게
런칭되는 레스토랑의 예약이 당장엔 쉽기에, 그 자리를 뚫어 반유현의 요리와 식재료를 맛보고 싶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까지…… 반유현 셰프님은 가지고 계실 거야.”

186 화. 몸이 몇 개야 (5)

“세간의 관심이, 런칭 준비 중인 일식 레스토랑과 한식 레스토랑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거대 IT 기업의 회장님들이 수억 원을 써서 나의 요리를 먹은 다음, 내놓았던 그 평가들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쉽게 줄지 않았다.

마케팅을 제대로 기획하지 않았다면, 또는 마케팅 회사에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을


정도의 파급력과 효과였다.

“대단한 사람들이기도 하지, 더군다나 그 사람들이 입이 닳도록 강조해서 말하니까…….”

황홀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대단한 영감을 얻었다.

그들의 평가는 계속 회자되어 나의 요리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문제는 런칭 준비를 하는 셰프들도, 그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 따른 관심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나를 따르는 셰프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문제라고


말하는 오스틴이었다.
특히나, 런칭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일식 레스토랑은, 벌써부터 사람들의 예약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냥, 기사나 SNS 로 회자되는 빈도뿐만 아니라, 이런 수치는 처음입니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모든 레스토랑을 통합적으로 예약할 수 있는 어플에, 새롭게 런칭되는 레스토랑은


그 레스토랑이 런칭되기 약 5 일 전에 새롭게 업로드되는데, 그 시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며칠째
동시 접속자 수가 줄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 동시 접속자 수를 보아하니, 8 만 명을 전후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는 웬만한 유명한 모바일 게임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고, 어플 자체에서도 역대급의 수치였다.

현명하기로는 세계 제일이라는 공룡 IT 기업 회장 두 명과 세계 제일의 투자자가 나의 요리가 수억 원을


내고도 아깝지 않은 경험이라고 연신 말했으니,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하기도 했다.

“어차피, 예약권을 서로 사고파는 것을 적발하면 예약권이 취소된다고 명시해놨으니까, 허수로 집계되는


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약 레스토랑의 메뉴까지 미리 주문을 하는 것이고,
결제를 미리 받기 때문에 해당 카드의 명의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게 규칙이니까요.”

예약에 성공해, 암표 형식으로 예약권을 파는 행위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어, 동시 접속률이 비슷한
수치로 며칠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수만의 사람들이 실수요자임을 증명했다.

물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완벽히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좋기만 한데, 셰프들은? 뭐? 부담이 된다고?”

동시 접속자 8 만 명을 웃돌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당연히 이렇듯 큰 관심을 받아보지 못했던 셰프들에겐, 부담이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일평생 느끼지 못하는 셰프들이 태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즉,
엄청난 기회임을 알려준 뒤, 그 부담감을 자신감으로 만들어준다면 이 상황은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직전
최고의 상황이다.

셰프들의 정신 상태를 그렇게 만드는 방법이야, 너무나 단순한 것이었다.

“반유현 어플리케이션에, 곧 런칭될 일식 레스토랑 업로드하지 마.”

“예? 그렇다면…….”

“그래, 런칭 기간을 잠시 미뤄야겠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으며 런칭된 레스토랑들이 없었으니까,


제대로 태워야지.”

***

‘반유현 - 퍼플’, 라스베이거스에 런칭 준비가 막바지에 이른, 일식 레스토랑이다.

가타무라 마츠노가 메인 셰프를 맡았고, 그 보좌로 윤종혁과 닉이 있었다.

셋 모두 실력이 기반 된 셰프들이라, 메뉴 테이스팅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가끔 셰프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나의 의도를 온전히 구현해내지 못했을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때가 있는데, 지금은 전혀 없었다.

“반유현 셰프님! 어떻게 된 겁니까! 한마디만 해주세요!”


오히려 걱정은 오늘이 메뉴 테이스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기자들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브랜드 ‘반유현’ 내에는 런칭 직전,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이 있다는 전통을 알고 있는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예약 서비스가 없이 런칭되는 겁니까?”

예약 어플에 지금 내가 가려는, 일식 레스토랑의 이름이 올라오지 않자 그 런칭 일정에 대해 더욱더


궁금해진 기자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자들이 얻고자 하는 정보는 대중들의 깊은 관심이 담겨 있기에, 대중들이 알고자 하는
것들이었다.

“여태까지 런칭된 레스토랑들의 일정과, 인테리어 일정, 셰프들의 채용 등을 고려했을 때, 늦어도 이번


주 주말에는 런칭되리라 생각했는데, 레스토랑 반유현 예약 어플에 이름이 아직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음악처럼요.”

“으, 음악이요?”

재벌 회장들이 내 요리를 숭고한 예술, 그 이상이라 했었나.

지금 내가 한 말에 기자들의 머릿속엔 그런 맥락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말한 것은 그러한 의도가 아니었다.

“가끔은 변주가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내가 미슐랭 23 스타를 얻기까지 모든 일정들이 단조로워졌다.

레스토랑의 자리를 잡고, 메뉴와 컨셉을 정하고, 그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과 동시에 셰프들을
조직하고 런칭.

모든 레스토랑들이 그에 따른 일정을 따랐기에, 기자들도 런칭 날짜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기자님들도 이렇듯 레스토랑 런칭 날짜를 예측하니까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날에, 반유현 퍼플이
찾아오겠습니다.”

나는 살짝 웃어 보이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기자들에게 저렇게 말한 것은 정확히 두 가지 효과를 동반한다.

첫째로, 말 그대로 변주다.

평소와는 다른 흐름으로, 현재 ‘반유현 - 퍼플’에 쌓이고 있는 대중들의 관심에 긴장감과 기대감을


높이는 효과다.

둘째는, 미뤄진 일정 동안 셰프들에게서 부담감을 떨쳐내고 그 완성도를 더 높을 수 있었다.

“런칭 일정을 미룬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자마자, 셰프들에게 한 이야기였다.


“메뉴 테이스팅은 일정대로, 지금 볼 거야. 준비한 메뉴들, 시작해.”

셰프들은 나의 말에 놀랄 틈도 없이, 나의 지시에 셰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 개월간, 내가 내려준 레시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셰프들이다.

런칭 일정이 미뤄졌다는 것에 대꾸나 대답을 할 새도 없이, 자신들이 노력한 것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한


집중력을 최대로 올렸다.

라임즙과, 레몬 폰즈 소스, 각종 허브를 곁들여 일식으로 만든 참치 타르타르(tartare)부터 시작해,


사케에 절인 전복찜과 전복 내장 소스를 비롯해 전통적인 일본 정식 정찬 코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음.”

각 코스의 요리들은 대체로, 수준급의 솜씨를 뽐냈으며 내가 주문했던 특성과 그 의도가 잘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참치회, 튀김 요리, 찜 요리, 소고기 요리에서도 미슐랭 스타 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요리가 나왔다.

“코스, 전체의 조화도 그렇고, 단일 메뉴들의 맛도 뛰어나. 이 정도면 그대로 런칭해도 되겠어…….
되겠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셰프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중들의 눈높이가 올라가서 말이야…….”

내 경험으론, 이 정도의 요리론 충분히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요리를 먹은 사람들도 행복감을 느끼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올 수 있을 만한 요리들이었다.

그런데,

“셰프님……!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이 이상의 맛을 가르쳐주십시오.”

마츠노와 윤종혁, 그리고 닉이 동시에 말했다.

자신들도 경험으론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레시피를 받아 만들긴 했지만 자신들의 요리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다만, 대중들이 기대하는 바가 커서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고, 그에 따라 나에게 더 높은 단계의 맛을


가르쳐 달라 했다.

“이 이상의 맛……?”

이들이 더 높은 맛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완벽한 자신감까지 가질 수 있게 할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또 동시에, 마케팅 수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

“애초에 눈높이를 미슐랭 쓰리스타에 맞췄었지…….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맛을 찾기를 너희들이


원한다면 그에 대한 세세한 비법들까지 다 알려줄게.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상업적이지 못해서…….
너희들에게도 미션을 내려야겠네.”

동시에 침을 꿀떡 삼키는 셰프들이었다.


내가 내리는 ‘미션’이라 함은 보통의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맛도 맛이지만…… 너희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 게 먼저니까.”

물론, 당연하게도 나는 그 미션을 해내는 셰프들과 일을 같이 하고 싶었다.

***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린 안 적이 없어, 요리의 신의 큰 뜻을.”

“제기랄 떠들 새가 어딨냐! 빨리 시작하자.”

가타무라 마츠노, 윤종혁, 그리고 닉의 실력을 한층 더 키워주고, 더 높은 맛을 구현 할 수 있게끔


해주겠노라고, 반유현은 특별히 며칠간 레시피를 수정해주었다.

생선을 잡는 손가락의 온도를 맞추는 것부터 칼의 온도, 칼이 살결을 썰어 내려가는 속도, 각 요리에
들어가는 육수들의 세밀함…… 등등 말도 안 되는 세밀함을 보여주곤 다시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레스토랑 반유현 통합 어플에 실린 자신들의 이름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우리를 또 시험에…….”

[ 윤종혁 ]

[ 마츠노 ]

[ 닉 ]

-반유현의 레시피를 이어받은 이들의 요리를 경매로 입찰하세요.

얼마전 ‘반유현 - 프리미엄’의 방식이 그대로 자신들의 이름에 적용되어 있었다.

물론 반유현의 언질이 있었으나, 그 말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서 추측만 하고 있었다.

‘내 반만 따라 와봐. 그럼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겠어?’

이제 서야 그 말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알려준 레시피와 과장되게 말하면, 나노 단위로 재료를 다루는 법들을 이용해 자신의 반만을
따라오란 소리였다.

정확히는 그 가격의 절반을 따라오란 소리였는데, 이 시스템은 단순했다.

약 한 달여간, 네 번의 임시 레스토랑을 열고 맛으로 손님들에게 증명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몸값을 계속 올려, 반유현이 ‘반유현 - 프리미엄’에서 얻었던 몸값의 절반을 달성하는
것을 미션으로 내려주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놈들은 주방에서 빼겠노라고, 악질 사장처럼 말하긴 했지만 셰프들 모두 반유현이
자신들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았기에 그의 미션을 수락했다.

더군다나 저 입찰 시스템의 어귀에는 ‘반유현의 레시피를 그대로 이어받았다.’라는 문구까지 추가해,


사람들의 관심이 저절로 쏠리게 해주지 않았나.
“동시 접속자가 그대로 폭주했데.”

“그럼 뭐해. 아직 우리 몸값이…….”

이 셋의 몸값은 가장 높은 마츠노는 1 억 7 천만 원, 가장 낮은 윤종혁이 5 천 5 백만 원으로 측정되었는데,


이 값은 다시금 이들의 의지를 불태웠다.

“반유현 셰프님께 비법을 다 받기도 했고……. 5 억, 한 달 안에 5 억을 달성하는 거야.”

[ 반유현의 수제자들? 다시 한번 경매 방식의 예약제! ]

[ 반유현은 무엇을 원하는가! ]

[ 반유현의 맛을 구현 할 수 있는 제자들? ]

[ 동시 접속자 14 만으로 폭주! 레스토랑 ‘반유현 - 퍼플’ 런칭 준비하던 셰프들! ]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등장한, 입찰 시스템에 레스토랑 ‘반유현’에 눈독 들이던 이들이 다시금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는 셰프들이 완벽히 성장할 수 있는 판을 짜주었다.

187 화. 경쟁의 시대 (1)

“그거랑은 별개로, 지금 셰프들 값이 얼마나 나왔어?”

“가장 높은 가격의 마츠노가 1 억 7 천……. 닉이 8 천 800, 윤종혁이 6900 만 원 나왔습니다. 마츠노는


상한선을 찍은 것 같고 나머지 셰프들은 조금씩 올랐습니다.”

“첫 번째니까 순항하고 있네. 두 번째, 세 번째는 더 뛸 거야. 네 번째쯤엔 나의 절반을 넘을 수도.”

“지금 가격만으로도 난리가 아닙니다……. 셰프님의 브랜드 이미지가 더 좋아져서요.”

웬만한 광고들은 나의 이름에 붙는 지경에 이르렀다.

각종 포털의 인기검색어부터, 언론사의 메인 화면까지 연이은 반유현 신드롬에 세상은 들썩였다.

IT 재벌 회장님들에겐 프리미엄 요리를 대접하곤, 이제 나의 요리가 그저 ‘요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게 된 덕이었다.

“셰프님의 영향력은 사실상…… 할리웃 배우? 탑스타? 그 이상입니다.”

명품 패션 브랜드, 또는 잡화, 시계 등 여러 브랜드에서 나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수억 원의 돈을 쓰려


했다.

그 돈의 수치는 대한민국의 아이돌이자 패션스타인 D 드래곤이나, 저스틴 버비의 값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장인, 명인, 최고라는 타이틀이 있음에도 어리고 젊다는 것은 이렇게나 좋은 것이다.

“검정 스카프를 콜라보하자는 얘기도 있었고, 그건 현재 진행 중입니다.”

더군다나, 마츠노, 윤종혁, 닉.

‘반유현 - 프리미엄’의 방식과 같이 이번에 나를 따르는 셰프들의 요리를 경매 형식으로 입찰하는 게 또


한 번 화제가 되어, 레스토랑 ‘반유현’의 지휘급 세프들이 다시금 회자되기도 했다.

어떤 포털 사이트에서는, 제법 방송을 탔었던 메이, 제리, 헨리 등 로또 육인방의 요리는 과연 얼마에


먹을까? 라는 토픽으로 서로들 투표를 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에 따라, 한 명품 브랜드는 그들의 상징인 검정 스카프를 직접 만들어 협찬하기로 했고, 그 프로젝트


또한 진행 중이었다.

“이러다 온몸에 명품을 바르고, 집 벽지 전체를 명품으로 바르셔도 되겠습니다.”

오스틴이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세계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이 나의 이름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가상 세계에서도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을 찾는데요 뭘.”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게임회사, ‘Blind Up’에서 컨택이 오기도 했다.

“블라인드 업? 컨택 내용이 뭐야, 미팅 들어가기 전에 나도 머릿속으로 정리는 해야지.”

지금 그 회사를 향해 가는 길이었는데, 오스틴이 그쪽에서 제안한 사항들을 정리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 그리고 외형, 레시피 등을 게임 내에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안입니다. 던전
게임에서 아주 대단한 포션이나 엄청난 효력을 가진 음식을 만드는 …… 특별 NPC 로 사용하기도 하고,
심시티 게임에서 레스토랑을 차릴 때, 반유현 셰프님의 간판을 거는 시나리오도 있고…… 메인으로는 요리
게임을 제작한다는데, 반유현 셰프님의 목소리를 따고 싶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나 그 자체, 내 외형과 목소리와…… 레시피까지를 모두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그


가격은 100 억.

중요한 건, 저들이 가장 처음 제시한 100 억이라는 값은 최소 단위이다.

나를 싼값에 활용하는 게 이득인 저들은 가장 낮은 액수로 100 억이라는 돈을 부른 것일 테니까.

“블라인드 업이라는 그 회사에 FPS 게임도 있는데, 거기에 캐릭터로도 쓴다고 합니다.”

“FPS?”

“예, 총싸움이요.”

“비싼 돈 주고, 본전은 뽑겠다는 마인드네.”

100 억 원 정도는 되니까, 저들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들과 대면 미팅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니, 사실,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나의 한계가 요리사들의 한계로 정해지고 있으니, 그런 한계들을 뚫어줄 생각이었다.

또, 게임이라는 문화를 향유하는 10 대, 20 대들……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한


그들에게 나의 모습을 자주 비추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었다.

***

거대한 사옥 내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카메라를 들고 내 사진을 찍어댔다.


게임회사여서 그런지, 확실히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근무시간에 일은 안 하고, 로비로 나와 나를 반기는 것을 보니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예.”

나를 맞이한 것은 이 회사의 경영 지원실의 간부들이었다.

대체로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직접 진두지휘한다고 들었다.

회의실 내부로 들어가니,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래서, 저희가 반유현 셰프를 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브리핑 전체의 내용과 어조를 보니 어딘가 이상하다.

이 자리에 있는 책임자라면 세상 물정 모르고 앉아있지는 않을 것인데…….

“제 의사는 상관없이 이미 결정된 사안처럼 들려서 조금은 불편합니다.”

과장이 아니라 그랬다.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서, 저들끼리 쿵짝을 모두 다 맞춰둔 내용이었다.

이미 나를 본뜬 캐릭터 개발팀을 꾸려놨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100 억이라는 돈이 부족하십니까?”

“돈도 돈이고, 제가 누구 밑에서는 일을 못 해서요.”

이들의 이런 태도는 훗날 문제가 생길만한 시그널이기도 했다.

이미 자신들을 갑이라고 상정해둔 놈들이니까.

대기업 일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아니, 직원들의 일하는 분위기는 자유롭던데 그 윗물은
썩은 느낌이었다.

“하하하…… 반유현 셰프님.”

“예.”

“이거 왜 그러십니까. 다들 기분 좋게 일하고, 도장만 찍으면 누구나 행복한 건데.”

“누가 행복합니까?”

오스틴이 테이블 밑에서 나의 손을 슬쩍 잡았다.

그러곤 이해는 하지만, 조금은 침착하는 게 좋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는다.

“사실, 반유현 셰프님의 캐릭터보다, 반유현 셰프님의 실제 레시피를 게임에 적용해서, ‘게임 속에서
반유현의 레시피를 찾아라’ 같은 일회성 이벤트를 해서 동시접속자를 높이려는 게 저희의 의도입니다.”

“네.”
“사실, 막말로, 쉽게 말해서…… 반유현 셰프님의 레시피야 100 억을 지불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요?”

“방법이야 너무 지저분해질 수 있으니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놈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해보시죠. 결과는 참혹할 수 있으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대규모 업체들, 그리고 역사 깊은 명품 브랜드들의 컨택이 물밀 듯이 오는 상황에서, 내가 이들의 처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는 것은 다른 업체들에게도 행동 지침을 알려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업체의 제안은 일단 거절했고, 이들의 다음 행동에 대해선 또 다른 행동을 할 것이다.

***

“이게 말이 돼?”

가타무라 마츠노가 입을 열었다.

함께 있는 윤종혁, 닉도 반유현이 내려준 레시피를 연구하다 말고는 마츠노에게 다가왔다.

“왜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이것 봐.”

마츠노가 보여준 것은 휴대폰 화면이었는데, 그곳에는 자신들의 요리를 먹고자 했던 사람들이 써낸


가격들이 적혀 있었다.

대외적으론 이 가격을 알리지 않은, 비공개 입찰 방식이었지만 이들은 알 수 있었다.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사람이 누구인지와 그 가격만이 적혀 있었는데, 이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15 억……?”

이미 반유현의 몸값을 넘었기 때문이다.

MS 소프트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알리야마, 그리고 세계 최대의 투자자인 월렌 버크스 회장보다 높은


가격을, 반유현이 아닌 반유현의 제자들에게 적어낸 것이었다.

“이건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반유현 셰프님이 10 억 언저리에 가격이 형성되었는데, 내가 15 억일 리가


없잖아.”

윤종혁은 곧장, ‘반유현팀’에 근무하는 사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것이 오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저쪽도 지금 난리라고 합니다. 반유현 셰프님에게 보고가 들어갔다고 하네요.”

“반유현 셰프님에게 보고가 들어갔어?”

“반유현 셰프님은 그 소식을 듣고 그냥 웃었다는데…….”


반유현의 레시피를 받아, 자신들에 대한 값을 증명하면서 자신감을 찾고 반유현이 낙찰된 가격의 절반을
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미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래서인지, 자신감보다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대체 누가……. 반유현 셰프님의 값보다 높은 가격에 나를…….”

“여기 나와 있네요. 블라인드업, 부회장.”

“블라인드업? 여기도 세계적인 게임회사잖아.”

그녀를 입찰한 사람은, 세계적인 기업의 부회장이었다.

반유현에게 입찰한 MS 소프트와 알리야마에 뒤처지지만 해당 산업의 선두주자라는 점에선 공통된 회사였다.

“이 회사의 부회장님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나?”

그들의 사소한 움직임도 기삿거리가 되는 게 다반사라, 대게 회장들의 취미나 관심사는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게 많았다.

그런데, 블라인드업의 부회장이란 사람은 관련된 행보가 없었다.

“대체 뭐야…….”

***

가타무라 마츠노, 윤종혁, 닉.

이 세 사람의 요리를 먹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입찰을 받았고, 오늘은 그 손님들을 받는 날이었다.

‘반유현 - 프리미엄’이 세 팀의 손님을 받았던 것과 달리, 이들은 한 사람당 한 팀의 손님을 받았다.

“가타무라 마츠노입니다.”

“윤종혁입니다.”

“닉입니다.”

각각 자신들을 소개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츠노의 손님은 블라인드 업이라는 기업의 부회장으로 누구나 알만한 인물이었고, 윤종혁과 닉은 각각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보고 싶었습니다.”

블라인드 업의 부회장인 아이즈 칸이라는 자였다.

마츠노에게 15 억이라는 거금을 배팅한 남자.

이 현장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듯 우렁찬 목소리였다.

“하하하하하! 얼마나 대단한 요리인지 봅시다!”

마츠노는 자신의 가치를 높게 쳐준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함을 느끼지만, 그의 거리낌 없는 태도가 내심


불편하기도 했다.

다들 같은 손님인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요리가 점점 서빙되고 그의 무례한 태도는 더 해져갔다.

“이야! 역시, 반유현 사단이구만! 마츠노 셰프!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어설프게 웃어 보인 마츠노, 그런데, 그때, 아이즈 칸의 표정의 굳어졌다.

“맛이 있습니다. 맛이 있어. 그런데, 사실 내가 오늘 여기 온건…… 이 요리만을 맛보러 온 게 아니야.”

“예?”

함께 앉아있던 손님들, 그리고 윤종혁과 닉이 그를 주목했다.

“여기 있는 세 명의 셰프님들, 제가 통째로 인수하고 싶습니다.”

“엥?”

“음?”

마츠노는 그 찰나에, 아이즈 칸이 15 억을 자신에게 배팅한 이유를 알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가격을 보고 감사함에 울컥했던 기억과, 자신에게 대단한 동기를 부여해주었던 기억이 모두 상업적인
이유였다니, 뿐만 아니라 15 억이라는 터무니없는 값은 진정으로 자신의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자들의
기회를 빼앗았던 것이니까.

아마 이런 감정은 그녀가 ‘돈’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기에 들었던 생각일 것이다.

당장 접시를 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반유현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있기에, 마츠노가


정중하게 그를 돌려보내려 했다.

받은 15 억을 환불한다 해도 반유현은 절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윤종혁이 먼저 치고 나왔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씨 X!”

188 화. 경쟁의 시대 (2)

“뭐, 뭐야?”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냐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반유현의 제자, 반유현을 따르는 셰프, 그들의 요리를 먹고자 이곳에 왔던 손님들도 ‘Blind up’의
부회장인 아이즈 칸을 매섭게 노려봤다.

아이즈 칸이 지불한 15 억에는 못 미치지만, 그들도 이들의 요리를 먹기 위해 수천만 원을 지불한


사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입장부터 이 장소가 자신의 것인 것처럼 행동하는 그가 못마땅했었다.

손님들도, 아이즈 칸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왜, 좋은 분위기를 다 망쳐요? 돈 주고 시간 써서 여기까지 왔는데.”

“입 좀 다무시죠.”

말을 하다 보니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아니…….”

이 장소에 자신의 팀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즈 칸이었다.

“제안을 한 게 잘못입니까?”

억울하기도 했다.

그저 제안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화를 내며 자신을 일갈할 이유가 있나.

그리고 억울함은 분노로 바뀌어 갔다.

“일개 셰프들이, 참나. 미슐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면 몰라. 그저 반유현 이름 아래에 있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요리사들, 아니, 요리사도 아니지 반유현의 레시피를 받아쓰는 조리사들.”

아이즈 칸은 혀를 차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 능력이긴 능력이야,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셰프의 레시피를 받아들고는 이렇게 장사를 하니까.
그 능력을 쳐줘서 15 억을 입찰한 거고, 그 능력을 너그럽게 인정해줘서 당신들을 높은 가격에
인수한다는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되는 거 아니야?”

마츠노가 닉하고 눈을 맞췄고, 닉은 그녀의 사인을 알았다는 듯이 윤종혁의 팔목을 꾹 잡고 있었다.

윤종혁은 분하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이 주방의 총괄 셰프인 마츠노가 직접 나섰다.

“나머지 두 팀의 손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저희가 꼭, 요리를 대접하겠습니다. 그 날의 비행기 값,


호텔비, 모든 것을 저희가 처리해드릴 것이고…….”

분위기가 이래서야, 이들의 요리를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안 손님들도 마츠노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즈 칸 회장님께서는 나가주시죠. 모든 비용을 환불 처리해드릴 테니까.”

마츠노의 차가운 눈빛이 아이즈 칸에게 떨어졌다.

“뭐……. 한번 해보자는 건가? 나는 좋은 제안을 했을 뿐인데, 나에게 이런 대우를 하면. 흠.”

“나가 주시죠. 드릴 요리가 없습니다.”


***

“너무나 변태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대중들에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즈 칸이라는 놈.

세계 최대 게임 회사, ‘Blind up’의 공동 창업자이자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알고 보니 맛을 즐기는


것에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기업의 유명 간부인지라, 그의 취미가 온라인 또는 대중적으로 알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가


요리와 맛을 찾는 것에 취미가 있다는 정보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자 관심이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오스틴이 몇몇의 정보원들을 통해 얻은 정보는 그가 아주 악질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개인 셰프 군단이 있습니다. 예전에, 중동 왕자 하이든처럼요.”

미슐랭 스타를 가진, 수많은 셰프들에게 높은 연봉을 주며 개인 셰프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다른 셰프들의 레시피를 복사하도록 시킨 뒤, 프라이빗하게 그 요리를 즐겼다.

예약 경쟁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한 곳에 섞여 맛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와중에, 세프님께서 구현하는 맛을…… 아이즈 칸 부회장의 셰프 군단이 온전히 구현을 못 한


겁니다.”

그의 개인 셰프들은 당연히, 시대적 흐름상 나의 요리를 복제하라는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열심히
노력했다.

아이즈 칸은 처음엔 만족했었다고 한다.

자신의 셰프들이 진짜, 반유현의 요리를 복제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의 맛을 구현해 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동료, 또는 선후배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 빌리 게이트와, 월렌 버크스, 야민 등 거물급


회장들의 발언에 자신이 느낀 맛이 반유현의 맛이 아님을 알아버렸다고 했다.

그 회장들이 웬만한 영감이나, 충격으로는 그 정도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반유현 셰프님에 대한 관심이 더욱더 커졌다고 합니다. 연간 수억 원을 쓰고도 셰프님의


요리를 그대로 카피하지 못했으니까요.”

대체 반유현이 회장들에게 선사한 충격의 맛은 어느 정도일까.

그렇게, 충격적인 맛과 경험을 하고 싶은 욕망에 셰프들을 계속 갈아치웠고, 이제는 반유현에게 직접


요리를 배우고 그의 레시피를 갖고 있는 셰프들을 인수하겠다는 마음까지 온 것이었다.

“개인 셰프를 시켜, 다른 셰프들의 레시피를 복제한다는 게 떳떳한 일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그의 이런


행보들이 감춰졌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게임 회사에서 나에 대한 레시피를 게임 속에 적용시키겠다며 접근한 것이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그냥, 회장이 나의 요리를 먹고 싶어서 게임이라는 사연을 만든 거네.”

‘반유현 - 프리미엄’의 두 번째 예약권에 대한 경쟁 입찰 시스템이 아직 오픈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오픈된다면 그가 엄청난 액수를 적어 내리라는 것도 자명해진 것이다.
“그 회사 사람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더군다나 이번엔 그 부회장이 공격을 직접 해왔고…
….”

내가 가르치고, 나를 따르는 셰프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배팅했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않고 어떤 브랜드에 소속되어 일하는 셰프들에게 부회장이 말한 그 정도의


액수는 천문학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충성심이 아무리 높은 셰프라 한들 그 순간에는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내 계획을 망치려 했다는 것이고.”

그들이 아이즈 칸의 인수 제안에 동의했더라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여지껏 준비한 일본 정찬 레스토랑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고, 나는 재빠르게 다른 레스토랑을 준비했어야 할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 아프리칸 레스토랑, 일식 레스토랑, 뉴욕의 한식 레스토랑까지, 올해에 아홉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니까.

“계획을 망치려 한 놈에게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해줄까.”

매번 그래왔지만, 적을 완벽하게 굴복시키는 게 나의 방식이었다.

아울러, 그를 꺾어 부숴버리면서 나에게 득이 될 만한 어떤 것을 취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아이즈 칸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였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하하하하! 셰프님, 이 영감의 속내가……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새까맣네요? 뉴욕에 있는


셰프들에게도 컨택을 했다고 하네요.”

나에게 구체적인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그의 행보를 주시하기 위해, 오스틴은 정보원들을 꽤나 섭외한 것 같았다.

그 정보원들에 의하면, 아이즈 칸 회장은 뉴욕 내, 한식 레스토랑의 런칭 준비를 하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 소속 셰프들에게 마츠노에게 했던 것처럼 거금의 인수 제안을 했다고 한다.

“꽤나 진취적인 노인네야…….”

“…… 그런데, 몇 명의 이탈자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반유현 팩토리, A-3 팀의 교수인 안젤라 하트.

뉴욕의 한식 정찬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멤버로 그녀와 그녀가 이끌던 팀원들이 합류했었다.

그 레스토랑의 메인 셰프 자리를 A-1 의 교수인 알베르가 차지하게 되었을 땐, 불만도 없었었다.

나의 실력과 통찰력을 아득히 인정하는 바였고, 내가 알베르를 메인 헤드 셰프로 선정한 것에 대해서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감춰두었던 욕망이 아이즈 칸이라는 작자에 의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잘됐네 그럼.”

어떤 수를 써서 놈의 생각을 부러트릴까 생각하던 찰나에, 들어온 소식에 오히려 즐거웠다.


***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였고, 뉴욕 레스토랑을 맡은 알베르와 또 다른 교수였던 버크 헤지스는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레스토랑 런칭을 위해 박차를 가하던 중, 동료가 돌연 사퇴를 한 것도 아니라 반유현과 척을 지고 있는


회사로 이적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님에도, 내 눈치를 무척이나 보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 밑의 셰프들도 이 침울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고개들 드세요. 런칭 앞두고 이런 분위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주방은 뉴욕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인데, 기세가 이래서야…….”

내 말에 일제히 고개를 드는 스물두 명의 셰프들.

“오히려 잘 됐습니다. 진즉에 거르는 것이 좋았는데.”

내가 살짝 웃어 보이자, 금세 셰프들의 표정이 피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리들의 계획을 알고 있던 주요 셰프가, 적지로 떠났으니 그 자체로 함정을 만들 수


있잖아요.”

메뉴 테이스팅 계획과 런칭 계획을 알고 있던 그녀, 그녀가 떠난 것이 오히려 아이즈 칸의 욕망을


무너트릴 함정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아이즈 칸에게 나의 레시피와 나의 일정을 일러바치는 게 기회란 말입니다.”

레시피는 셰프들에게 주었지만, 이 한식 레스토랑의 메뉴 테이스팅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모든 업소는 수 차례 메뉴 테이스팅을 하면서 맛이 완성된다.

즉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은 빙산에 일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모든 일정을 수정하고, 오늘부터 나도 이 주방에 합숙한다. 그리고, 저쪽에서 움직이는 순간 역습하는
걸로.”

완벽하게 몰락시켜야 된다.

‘배신’의 최후를 보여주면서, 브랜드 내의 셰프들의 기강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고.

“이미 반유현 팩토리 상위 반의 교수진이나, 레스토랑 ‘반유현’에서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지휘급


셰프들은 수많은 제안들을 받았을 겁니다. 대기업들로부터……. 우리 브랜드는 그 정도의 현금을 줄 수
없음에도 그들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반유현’이라는 브랜드의 성장가능성을
본 거죠.”

나의 말을 듣고 있던 숨죽인 셰프들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또, 제 과거를 안 겁니다. 제 계획을 망치려는 세력을 반드시 몰락시켜 왔다는 것을요…….”

안젤라의 이적으로 한풀 꺾인 이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말을 하고 있을 때, 반유현 팀의 한 직원이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셰, 셰프님!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반유현팀의 수장인 오스틴이 보낸 인물이었다.

그가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줬고, 나는 그 화면에 적힌 글귀를 보곤 웃었다.

-반유현 팩토리 소속, A 반 교수진과 그 팀원들, 뉴욕 내 한식 정찬 레스토랑 차려!

-반유현과의 돌연 독립 선언!

-반유현의 뉴욕 한식 정찬 레스토랑보다 빠른 런칭 확정!

아이즈 칸과 안젤라가 곧장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보다 빠른 런칭을 점해, 일단 시기상으로 앞서나가겠다는 뜻이었는데, 당연히 그들의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계획을 또 바꿔서, 당장 이번 주 내에 런칭하자고.”

189 화. 경쟁의 시대 (3)

전략이야, 눈에 훤하게 보였다.

100 년을 살면서 요리 경력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상대해 온 내게 사람 한 명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으니까.

“일단 돈에 환장한 건 맞지.”

안젤라가 나의 주방을 이탈한 것은, 가치 판단을 못 한 것이 첫 번째였다.

그렇게 가치 판단을 흐리게 만든 것은 현재 자신의 위치와 돈이었던 것이고.

알베르가 메인 셰프를 맡자, 자신의 입지가 주방 내에서 줄어들었고, 자신이 가르쳤던 셰프들마저
주방에서의 입지가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알베르가 어떠한 알력도 행사하지 않았음에도 열등감이 기반 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찰나에, 대형 기업의 스카웃 제안이 들어왔고 안젤라는 선택했다.

“이미 나의 계획과 나의 레시피, 메뉴 구성을 알고 있으니…… 뭐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더군다나, 레스토랑 반유현 내부의 정보를 스스로 많이 알고 있다고 판단한 안젤라는 그 선택이 손쉬웠을
것이다.

“배신자는 처단해야 돼. 또 다른 배신자가 나오지 않게.”

정확히 두 부류의 인간이 나의 적으로 지목된 것이다.

나의 계획을 망치려 했던 ‘Blind up’의 회장인 아이즈 칸, 그를 따라 나를 등져버린 안젤라.

“다 준비됐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 층.

로비의 공간이 개조되어 만들어진 레스토랑.


그곳엔 또다시 나의 이름이 걸린 간판이 올라갔다.

[ 반유현 - 에메랄드(Emerald) ]

한식 정찬을 주메뉴로 하며, 미슐랭 쓰리스타를 노골적으로 노리는 레스토랑.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의 색깔을 본떠 만들었다.

청록색을 뜻하는 ‘Turquoise’라는 단어보다 그 색을 표현하기에 더 직관적이고, 보석의 한 종류인


에메랄드의 최상품은 다이아몬드보다 비싸다는 점에서 레스토랑의 목적과도 일치했다.

뉴욕 내에 다국적 요리들, 그중에서도 그 어떤 역사 깊은 요리, 음식들이 셀 수 없이 많을지라도, 그


속에서 묻히지 않는, 고고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요리가 한식이라는 것을 말하는
레스토랑의 이름인 것이었다.

안젤라가 내 주방을 떠난 뒤 3 일 차에 간판이 올라가니, 한 번 더 화제가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는 행동들 중에서 화제가 되지 않는 것이 없으려나.

아무튼, 사람들은 또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와 안젤라, 그리고 그녀를 인수한 ‘Blind up’이라는 기업의
경쟁 구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조금 타이트하게 움직이자고, 나도 고생할 마음이 있어.”

“셰, 셰프님이 직접 움직이신다는 겁니까?”

“일단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잖아. 저들을 몰락시키려면.”

***

“곧장 움직임을 시작할 줄이야, 저게 일정상 되는 건가?”

아이즈 칸은 안젤라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그녀의 고품격 요리를 먹으면서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확신했었다.

이 정도의 실력, 그리고 반유현의 계획을 낱낱이 알고 있는 자라면 그를 적잖이 괴롭히는 것에 성공할
것이라고.

그렇게 작은 성취로 반유현 사단의 인력들을 자본으로 빼내어 그의 모든 요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날이


오진 않을까.

그런데, 그 생각에 비상이 걸렸다.

“말을 해봐. 왜 말을 못 해.”

안젤라가 반유현의 계획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가 알고 있는 계획은 분명…….”

그녀가 알고 있는 계획은 분명, 최소 한 달이 걸리는 것이었다.


메뉴 테이스팅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레스토랑 런칭을 하는 것은 불가했으니까.

사실 레스토랑의 메뉴를 구성한 뒤 한 달이라는 시간도 말도 안 되지만, 반유현이기에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타이트하게 반유현의 계획을 한 달로 잡고 그 안에 준비를 하려 했다.

그가 준비했던 메뉴에 자신의 소스나, 비법들을 섞어 그대로 뉴욕에 레스토랑을 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반유현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메뉴들을 다시 준비해야 했고, 그에 따라 런칭 기간이 길어질


것이었으며 낙동강 오리알 된 그 밑의 셰프들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해 뉴욕 전체를 삼키려 했다.

그런데, 반유현은 자신의 계획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안젤라 셰프, 당신이 말한 계획과는 전혀 다른데? 준비 기간도 없이 어떻게 3 일 만에…….”

반유현은 자신이 이적한 뒤 곧장, 3 일 만에 레스토랑 간판을 올려버렸다.

레스토랑 ‘반유현’에서 간판을 올렸다는 것이 런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그널임은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 반유현 - 에메랄드 ]

레스토랑 반유현을 예약하는 어플에, 그 이름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그가 레스토랑 런칭을 획기적으로
앞당겼다는 것이 완전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대체 어떻게…….’

사실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젤라였다.

자신이 그 레스토랑을 나오기 전에는 반유현이 메뉴의 구성만 제공해줬던 상태, 주방의 동선을 짜고
식재료를 조달하는 업체를 선정하는 것만 해도 큰 일인데, 그런 모든 일들을 생략했다는 것 아닌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어떤 자신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움직이다 자신이 여태껏 쌓아 올린 명예가 무너진다 해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한참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안젤라를 깨운 건, 아이즈 칸 부회장이었다.

“우리도 맞춰서 추진해.”

이미 안젤라에게 큰돈을 썼고, 반유현의 인력을 빼내어 뉴욕을 접수하고 그에게 큰 타격을 주리라는
계획이 실패한다면 그가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에 대한 조사를 해온 바, 반유현은 자신을 거스르는 것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었다.

“반유현보다 런칭 일자를 빠르게 해서, 상대해야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휘하에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셰프들의 별을 합치면 수십 개가 넘었으니까.

안젤라가 지휘를 맡고 반유현을 상대해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반유현은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을 데리고 갑작스럽게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것이었고, 자신의 진영은
수십 명의 베테랑 셰프들로 그를 상대하는 것이었으니까.

“메뉴 풀도 저 한식 레스토랑보다 훨씬 넓지. 우리는 각 분야 베테랑 셰프들로 이루어진 군단이니까.


거기에 안젤라가 반유현이 런칭할 한식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

그리고 그때, 아이즈 칸의 비서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반유현 - 에매랄드, 회장님 이름으로 예약에 성공했습니다.”

결제자와 예약자, 그리고 실방문자가 같아야만 그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회장의 비서들이 회장


명의의 카드로 아이디를 만들어 결제까지 성공해 내어, 예약에 성공했다.

“나도 맛을 보는데, 일가견이 있으니까…….”

***

“예약은 이미 만석입니다.”

한식 정찬 레스토랑인 반유현 - 에메랄드의 예약은 이미 가득 찼다.

미슐랭 스타를 위해 런칭하기로 한 레스토랑이었지만, 우선, 이곳에 방문할 평가원들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 예약으로 자리를 채웠다.

나는 원래 미슐랭 평가원들이 예약 경쟁 없이 내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하기 위해 현장


예약의 몇 자리를 비워두는데, 폭발력을 위해 모두 온라인으로 예약을 풀었다.

“저 앞집은 어떻데.”

“…….”

안젤라와 ‘Blind up’의 아이즈 칸이 내 레스토랑의 런칭 전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바로 앞 건물에


레스토랑을 런칭했다.

내가 기존에 런칭할 메뉴들에 자신들만의 레시피를 조금 가미해 메뉴들을 뽑아냈는데, 그 퀄리티가 꽤나


높았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북적이며, 그에 대한 평가들도 좋은 것을 보면 말이다.

당연히, 내가 구성한 메뉴들이야 안 좋을 리가 없었고, 안젤라와 아이즈 칸 부회장이 고용한 미슐랭


셰프들의 실력도 의심할 바가 없을 테니까.

“메뉴 수정 없이 그대로 갈 거야.”

그래서 더 좋았다.

저들이 나의 메뉴를 그대로 따라 한 건, 완벽한 실력 차이를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

그런데, 셰프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가 마치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하기야, 매번 기적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이와 같은 일은 해본 적이 없으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셰프들은, 메뉴에 대한 구성만 머릿속으로 익힌 뒤에 각자 그 메뉴와 친숙해지기 위해


그 메뉴를 각각 직접 만들어 보며 해체를 해보곤 하는 중이었다.

실제로 각자의 파트를 나눈 뒤에, 손발을 맞춰 요리로 만들어 내어본 적이 없기에 지금의 도전이
무모하게만 느껴진 것이다.

“괜찮아.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수백 명의 손님이 몰려오고, 그들에게 모두 같은 퀄리티의 요리를 제공하려면 당연히 협업이 중요하다.

“나도 힘든 거 알아. 근데 할 수 있어. 내 말만 그대로 따라.”

그래서, 어려운 일일 수 있었다.

내가 주방의 모든 손발을 맞추는 지휘자의 역할을, 그 어떤 때보다 세밀하게 했어야 되니까.

이미 합이 맞춰져 있는 주방이라면, 그 중간 과정이나 결과만을 체크하면 되는데, 이건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번에 저놈들 망가트리고, 주방 안정화시키고, 미슐랭 쓰리스타 따낸다.”

나는 그들의 사기를 높였고 요리를 곧장 시작했다.

“너, 너, 너 불고기 편채, 요리 들어가.”

내 앞에 한 줄로 서 있는 셰프들 중에서, 세 명을 지목했다.

“너는, 불고기 양념 만들어, 너는 생고기 손질해, 너는 불고기 손질된 거 불에 구워. 그리고 한 명 더


필요하겠네, 너! 양파랑 오이 썰어.”

코스의 첫 메뉴인 불고기 편채는, 불고기 양념에 잰 고기를 레어로 익혀 육즙을 최대한 살린 후에 그 안에
갖은 야채를 넣고 돌돌 싸 먹는 음식이었다.

한국의 시그니쳐 요리라 할 수 있는 불고기와, 신선한 야채를 가미해 입맛을 돋우는 가장 첫 번째 요리로
선보인 것이었다.

불고기 양념은 이미 재료를 넣는 시간 초부터, 모든 세세한 것을 나의 레시피대로 정확히 따라 만들었기에


걱정할 것이 없었고, 셰프들이 고기를 불에 익히는 것과 야채를 손질하는 것에서 작은 차이가 날 것인데,
나는 그런 것들을 신경 써야 했다.

그와 동시에, 다음 메뉴를 준비할 셰프들을 지목했다.

“너, 너, 너, 너, 너. 너희 다섯 명은 매콤 갈비 치킨 준비해.”

치킨의 도래는 아프리칸 미국계 사람들로부터였지만, 세계적으로 치-맥이라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이었다.

한국 치킨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치킨 문화를 이끌고 있는 것 또한 맞았으니, 치킨이 한식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곳에 매콤 달달한 갈비 소스를 입혀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첫 번째로 만들려 했다.


이 몸이 100 년을 살았어도, 한식에 익숙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대충 메뉴들을 떠올리면 그 맛을 최대로 뽑아낼 수 있는 레시피가 떠오르기에 지금의 과정이


가능했다.

“사과, 양파, 배, 무, 지금보다 더 곱게 갈아야 돼. 그리고 수분을 한번 버려. 고추장 베이스 소스는
매운맛이 너무 적어!”

정신없이 셰프들을 분업화시키고 곧장 메뉴를 뽑아야 했기에 자동으로 내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에 따라 셰프들은 자동으로 긴장했다.

주방은 매우 뜨거워졌지만, 셰프들은 차갑게 움직였다.

“알베르! 바쁘니까 존칭 생략하겠습니다.”

“예, 셰프.”

“오늘, 내일 안으로 저 앞에…… 저 양아치들 레스토랑 무너트리는 겁니다.”

“예!! 셰프!!”

알베르에게 자그맣게 말한 건데, 주방의 있는 모든 셰프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나의 숨소리에도 집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셰프들이었다.

이런 집중력이라면, 이 셰프들이 이 메뉴를 처음 뽑아내더라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때, 오스틴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급하게 레스토랑이 런칭된 만큼,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나를 도와 홀의 인력들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아이즈 칸 회장이 왔다고 합니다.”

뻔뻔하게도 나의 요리의 맛을 보러 왔나 보다.

“저 정도 양반이, 예약을 직접 했을 리가 없을 텐데.”

내 요리를 먹여줄 생각도 없고, 개망신을 줄 방법이 떠올랐다.

190 화. 경쟁의 시대 (4)

첫 번째 요리는 불고기 편채로, 얇게 썬 소고기를 거의 생고기이다시피 구워, 그 안에 불고기 양념과


야채들을 함께 싸 먹는 것이었다.

불향만을 입히는 굽기의 정도와 양념, 그리고 야채들의 수분과 식감이 입맛을 돋운다.

거기에 또 추가로, 우럭 타르타르와 송어 알, 표고 육수에 우린 계란찜이 나가는 것이 에피타이저


요리였다.

“됐어. 서비스해.”

손님에게 나가는 요리로서는 주방에서 합을 처음 맞춰본 셰프들이 나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들을 조율하고 지휘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는데, 이 주방의 메인 셰프를 맡기로 결정되었던


알베르가 나를 도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 주방은 코스 요리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속도를 아주


미세하게나마 결정할 수 있다.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순서와 종류가 모두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불고기 편채 했던 팀은, 김밥 팀으로 가서 야채 손질 도와줘.”

현재 홀에는 모든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 있었는데, 이 손님들이 나가고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오는


싸이클은 같다.

따라서, 첫 요리를 준비한 사람들은 이 코스가 끝이 날 때까지 시간이 남았다.

“서비스!”

홀에 이 사태를 만들어 냈던 장본인인 ‘Blind up’의 부회장, 아이즈 칸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첫 번째


요리를 서비스했다.

“첫 요리로 일단 기대감을 준다.”

저놈이 내 요리를 아예 못 먹게 하는 것이 맞지만, 오히려 하나의 요리를 먹게 한 뒤 감질 맛나게 끊는


것이 저놈을 더욱 화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쁘긴 한데.’

전 세계에서 내 코스 요리를 중간에 끊은 사람이 없었는데, 그가 최초가 될 것이다.

아무렴, 나를 따르는 셰프들을 돈으로 유혹해 데려간 놈인데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되지 않겠나.

에피타이저, 식욕을 돋우는 요리.

뒤에 나올 요리에 대한 호기심이 증대할 때, 저놈을 내쫓을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그 요리의 맛이, 본인이 데려간 안젤라의 요리의 몇 배나 높은 맛을 낸다는 것을 그가 알면 그건


안젤라에게도 벌이 되는 것이었다.

***

아이즈 칸.

그는 자연스럽게 식당에 앉았다.

그가 세계적인 기업의 인물이라는 것을 이 식당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저 수군거릴 뿐


실질적으로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거나,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곳이 반유현의 레스토랑이고,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며, 대기업의 부회장이라


한들, 그도 값진 경험을 하러 왔으니 그것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서로를 존중해 주는 분위기마저 반유현의 이름값,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비싼 레스토랑을 가도


셰프님에게 극진한 대우를 해주려고 사람들이 몰리거나, 팬이라며 사진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으니까요.”

항상 사람들이 몰려, 경호원들을 두고 있었기에 그의 비서도 이런 광경에 놀랐다.


“반유현의 이름값 덕도 있겠지. 아니, 다들 그 요리를 먹을 생각에…….”

아이즈 칸도 느꼈다. 확실히 이곳은 그 어느 프라이빗한 공간보다 손님들이 상호 간에 예의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이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 온전히 그 요리의 ‘맛’이라는 점에서도 혀를 내둘렀다.

‘대체 무슨 맛이길래.’

꽤나 가까운 친분을 가지고 있는 빌리 게이트나 월렌 버크스 회장들이 감탄할 정도라면.

엄청난 기대가 됐다.

애초에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 싶어서 그와의 접점을 만들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이었는데, 그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아 시작된 진흙탕 싸움이었다.

본질은 아이즈 칸이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 싶다는 것에 있었다.

“불고기 편채입니다. 레어보다 더 레어 같은 굽기로 구웠으며, 파프리카, 무순, 부추, 각각의 양념에
버무려진 야채를 싸 드시고, 준비된 불고기 양념 소스에 살짝 적셔 드시면 됩니다.”

한 직원이 음식을 서비스하며 설명했다.

아이즈 칸은 지체없이 설명대로 불고기에 야채를 싼 뒤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허.”

아주 얇게 썰어낸 소고기, 얇게 썰어냈음에도 육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분명 육즙을 가둘 수 없는 두께임에도, 소 특유의 담백함이 배어 나왔다.

게다가 이가 그 고기를 뚫자마자, 향기로운 나물 향이 쏟아져 나왔다.

아삭한 식감에서 나오는 수분은 나물 특유의 비린 향이 없이 상큼함만을 뽐낸다.

편채 내부에 있던 야채와 나물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양념에 버무려진 것 같았다.

그것을 한곳에 묶어주는 들기름 향 또한 일품이었다.

“이, 이게 맞는 거야?”

겨우 입을 뗀 아이즈 칸이 비서를 향해 말했다.

반유현에게서 레시피를 모두 받아 자신의 밑으로 들어온 안젤라가 구현한 요리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부, 불고기. 이 양념까지도 다르잖아.”

마지막으로 소고기와 나물, 야채를 한 번에 품는 불고기 소스 또한 아주 높은 단계의 맛이었다.

특제 간장의 깊은 풍미와 사과, 배, 양파에서 나는 단맛만을 우려낸 소스.

“급하게 준비했는데도 이 정도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건가……. 이런 게 요리다. 씹을수록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다음의 요리가 아득히 기대되는…… 이런 게 요리야.”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정도 수준의 요리가 아주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반유현을 뉴욕 내에서 몰락시키고, 그의 인력을 빼내겠다는 자신의 계획에 대항하듯이, 급작스럽게


런칭된 이 레스토랑에서 이 정도 맛의 퍼포먼스를 뽐내다니.

더군다나, 저 주방에 있는 자들은 손님상에 요리를 처음 내본 자들이 아니던가.

불고기 편채와 함께 서비스된 다른 요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럭의 숙성 정도, 표고의 향이 깊게 우러나오는 계란찜…….

“와…….”

아이즈 칸의 비서도 반유현의 솜씨에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이미 자신의 개인 셰프들이 해준 요리를 여러 차례 먹어봤던 그는, 그 요리들과 이 요리가 근본부터


다름을 느꼈다.

“이게 반유현의 요리라고. 그 요리를 가져온 셰프들을 인사 조치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즈 칸도 그것을 느꼈던바, 두려움을 느꼈다.

회사를 상장시키고 수조 원대의 자산가가 된 그에게 이런 두려움의 감정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자신의 계획이 ‘실패’할 것이란 생각을 몇 년 만에 해본 아이즈 칸이었다.

“내일부터 임시휴업이야.”

반유현의 인력을 빼오겠노라, 이미 이 앞에 레스토랑을 런칭한 상태였다.

런칭하자마자 대중들의 반응들도 좋았고 순항하는 듯했으나, 반유현의 요리가 훨씬 더 위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대중들은 이 대결 구도를 알고 있기에, 안젤라와 자신의 개인 셰프들이 확실히 비교당할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예?”

“내일부터 임시 휴업하라고.”

대기업을 꾸려봤던 자인지, 아이즈 칸은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떤 감정도 섞지 않았다.

냉정하게, 이건 확실히 지는 게임이라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아니다. 두 번째 요리까지는 먹어보자.”

그런데 그러다가도 다시 생각을 바꿨다.

안젤라와 자신의 개인 셰프들의 요리도 충분히 맛있었기에, 몇 가지를 더 먹어보고 판단을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후.”

다음 요리가 나올 때쯤이었다. 다른 테이블에는 각각 두 번째 요리인 매콤 갈비 치킨이 서비스되고 있었다.


모든 테이블에 두 번째 요리가 서비스되었을 때, 아이즈 칸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테이블에만 해당 요리가 서비스되지 않은 것이다.

비서가 곧장 서비스 직원을 불러 말했다.

“저희 두 번째 코스가 서비스되지 않았습니다.”

“아…….”

서비스 직원은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음? 저희 두 번째 코스가 서비스되지 않았다니까요?”

주방에 확인해서 금방 조치하겠다는 둥, 여러 가지 할 말이 있을 건데 서비스 직원은 안절부절못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즈 칸은 비서를 말리며 말했다.

“내비 둬. 초짜 서빙인가 보지. 이런 레스토랑, 레스토랑 반유현에서 코스를 놓칠 리가……. 가서 다른


일 보시고 홀 책임자 좀 불러주세요.”

아이즈 칸의 말에 홀 직원이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고 가는데, 그 모습이 여간 이상했다.

그런데, 그때.

“두 번째 코스는 없습니다.”

반유현이 자신의 앞에 나왔다.

“뭐, 뭐요……?”

“나가주시죠. 레스토랑 반유현의 규정을 위반한 손님에게는 요리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게 뭔 소리야. 내가 자네의 경쟁업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라고 이런 대우를…… 하는 건가?”

반유현의 등장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레스토랑 반유현을 예약하는 어플은 오직 본인 스스로 예약한 것만 인정됩니다.”

“참나, 내 명의의 카드로, 내 아이디로 예약했다고.”

“반유현 셰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너무 무례한 거 아니오!”

그의 비서도 아이즈 칸의 말을 도왔다.

“본인이 하셨다면 예약방법을 설명해보세요.”

반유현이 아이즈 칸에게 핸드폰을 건넸고, 아이즈 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보는 앞에서, 다음 코스 요리를 못 먹는 것도 모자라 천대를 받고 있었다.

“본인이 예약하셨다면, 방법은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뭐 하자는 거요, 지금!”

비서가 목소리를 높였고, 홀 직원들이 그를 둘러싼 뒤 말했다.

“레스토랑 반유현은 다른 손님들의 값진 경험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조치하고 있습니다. 레스토랑을


나가주십시오. 전액 환불 조치해드리겠습니다.”

“뭐…… 뭐, 라고?”

아이즈 칸은 굳은 얼굴로 한숨을 쉰 뒤에, 비서의 어깨를 툭툭 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반유현을 바라보고 말했다.

“생각보다 강하게 나와?”

위협적인 발언이었음에도, 반유현은 실소를 흘렸다.

아이즈 칸이 자신의 요리를 맛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안젤라를 비롯한 자신의 개인 셰프들이 반유현의 요리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기에.

그가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

그렇게 레스토랑을 런칭한 첫날부터, 주방의 안정화를 위해 나도 주방을 떠나지 않았다.

셰프들이 급작스럽게 코스를 짜낸 것이었기에, 이 레스토랑이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가려면 내가 많은


도움을 줘야겠노라고 생각했다.

“원래 반유현 레스토랑에 전통이 있는 것을 알지?”

“예! 셰프!”

“그래, 최종 메뉴 테이스팅을 하고 런칭을 해야 되는데, 상황상 하지 않았어.”

어쩔 수 없이 급작스럽게 요리를 하는 바람에, 레스토랑의 최종 메뉴 테이스팅을 하지 않고 런칭했었다.

“이대로 이 레스토랑은 쭉 갈 거야. 이건 임시 런칭이 아니란 말이야. 다들, 정식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의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

셰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도, 자신들이 해냈다는 성취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메뉴 테이스팅에 대해선 이미 대중들이 끝낸 것 같으니까.”

나와 아이즈 칸의 레스토랑은 곧장 비교되었다.

[ 반유현 사단 소속이었던 안젤라, 완패인가. ]

-ㅋㅋㅋㅋ 나댈 때부터 알아봤다.

-반유현을 떠나면 잘못된다는 걸 알려준 건가.


-반유현 레시피 그대로 장사했는데, 바로 비교당하는 거야?

[ 반유현 - 에메랄드 vs 레스토랑 안젤라 두 요리 먹어본 기자의 직접 비교! ]

- 핫한 곳 두 군데를 어떻게 예약했대?

- ㅋㅋㅋ 기자 내용 전부가 반유현의 완승이라네.

- 이 정도면 광고 아님?

- 안젤라도 스페인에서 왕년에 이름 좀 알렸던 여자 셰프 아닌가? 이 정도로 깎아내려도 되는 거야?

[ 반유현의 완승! 제자는 스승을 이길 수 없다! ]

[ 반유현 - 에메랄드 예약 대기 명단 계속해서 증가, 레스토랑 안젤라는 손님들의 컴플레인 증가. ]

[ Blind up, 아이즈 칸 부회장 반유현 레스토랑 꼼수 예약. ]

[ 대기업 부회장의 세상 제멋대로 살기 논란! ]

[ 규정, 절차 무시하는 아이즈 칸. ]

[ 자신의 손님들 위해 문전 박대한 반유현, 손님들에게 통쾌함 선사! ]

나와 아이즈 칸의 업체는 확실히 비교되고 있었고, 대중들은 나를 또 재평가했다.

191 화. 경쟁의 시대 (5)

[ 쥐도 새도 모르게 휴업한 안젤라 레스토랑. ]

전 세계가 떠들썩해지면서 아이즈 칸 부회장은 자신의 회사인 ‘Blind Up’의 이미지에 타격이 갈 것을
우려하여 곧장 레스토랑을 접었다.

나를 저버리고 떠났던 안젤라는 곧장 잠적했으며, 며칠 뒤에 은퇴를 선언했다.

“흐흑. 정말, 죄송합니다.”

“네.”

나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하기도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100 년간 이 사람 저 사람 다 봐온 난 그녀의 행동에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야 있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이러한 감정은 이 사건을 만든 ‘Blind up’의 회장 아이즈 칸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사 좀 더 풀자. 기자님들 일거리 좀 드려야지.”

물론 감정적으로만 그랬다.

나의 계획을 망치거나 방해하려 한 자에 대해서 무관용 원칙으로 일관하고 있는 나는, 이번에도 그 원칙을
따를 뿐이었다.

일벌백계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수많은 기업들이 나의 러브콜을 원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가진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한다는 면에서 ‘Blind Up’이라는 회사에게 쓴맛을 보여줘야 했다.
[ Blind Up 부회장, 세계 최고 셰프 반유현에게 쫓겨나! ]

[ Blind Up, 반유현 사단 셰프들 인수하려 했다는 의혹제기! ]

[ 인력 인수, 힘들게 키워낸 반유현 사단의 셰프들 빼가기 ]

가뜩이나 나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기자들 덕분에, 이 사태를 부풀리는 것이 쉬웠다.

[ 반유현 “도덕적인 원칙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기업.” ]

내 한마디 한마디가, 대단한 기삿거리처럼 쓰이고 있는 세상에 나는 자극적인 단어들을 섞어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당연히 기자들도 나의 편에 서서 여론을 몰이를 시작했다.

[ 기업의 악한 영향력이란 무엇인지, Blind Up 그간의 행보 밀착 취재! ]

[ 뉴욕시장, 뉴욕의 최대 관광 사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 방해한 기업 세무조사 ]

[ 미국 내 각 지자체에 압박받는 ‘Blind Up’ 비상 경영 체제 돌입. ]

[ 세계공정거래위원회 회장. “반유현과 같은 도전적인 기업을 막아서선 안 된다. 이번 행위에 대해 대가


치를 것. Blind Up 회장과 면담 신청.” ]

[ 유네스코 회장. “말 그대로 문화의 역사가 될 수 있는 인물의 행보를 상업적으로 착취하려 한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 ]

[ 유명 요리 평론가. “반유현의 요리를, 그의 밑에 있는 셰프들을 통해 빼내겠다는 건 아주 구시대적인


발상.” ]

중독성이 심한 게임들을 만드는 회사다 보니, 불매운동이라는 것이 힘들 줄 알았건만, 며칠간 ‘Blind


Up’이 내놓은 게임들의 동시 접속량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한다.

수많은 유명인들과 언론사들이 그들의 행위를 부풀려 말해서, 대중들은 그들의 게임을 하는 게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게임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졌을 테고.

[ 아이즈 칸 부회장, “모든 일 책임지고 사퇴할 것.” ]

아이즈 칸 부회장은 걷잡을 수 없는 매출 하락에, 곧장 사퇴를 했다.

회사 로비에 수많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고개를 90 도로 꺾고 있는 그의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인터넷에


도배되었다.

-ㅋㅋㅋ제가 저 회사 출신인데, 밑에 직원들한테는 눈 깜짝 안하던 양반인데.

-이제 정신 좀 차린 듯ㅋㅋㅋㅋㅋ

-부회장님! 저는 부회장님을 믿습니다. 성민은행 : 997-4452…….

-와…… 진짜 반유현은 어디까지 조패는 거냐.

-아이즈 칸은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합니다. 고개 숙이지 않는 걸로.


그리고, 나에겐 또 재밌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음, 고민할 것 있나 하던 대로 해야지.”

아이즈 칸의 아래에 있던,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들 열여덟 명이 나의 밑으로 들어오길 바랐다.

그들이 가진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서른 개가 넘는 것이었다.

아이즈 칸 부회장의 눈에 띄었을 정도로 유명세를 가지고 있던 이들 아닌가.

다시 본인들의 레스토랑을 차리기엔 너무나 멀리 온 탓에,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했다.

“그들이 잘못한 건, 아이즈 칸의 명령을 따랐던 것뿐이고…… 뭐,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 애초에


자신들의 레스토랑을 내팽개쳐두고 온 상태니까, 돌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고.”

게다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나의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한 것을 보면, 지난 기간 동안 아이즈 칸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나의 요리를 카피하면서 나의 요리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들 실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감하면서도, 아이즈 칸의 눈살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고.”

그렇다고 다들 능력이 없는 셰프들은 아니었으니, 나는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반유현 팩토리의 신임 교수진들로.

교수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들은 모두 나에 대한 벽을 깨달았고 미슐랭 스타까지도 가지고 있는


셰프들이었으니 적절했다.

어차피 실력이야, 계속해서 최하위권의 반에 머무르면 제명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가
계속해서 증명해줄 것이다.

[ 반유현 팩토리, 도합 미슐랭 37 스타! 셰프들 합류! ]

[ 적의 졸개들 포용하는 반유현! ]

[ 반유현 팩토리 관계자 “오로지 실력만을 보는 반유현 팩토리의 규칙에 따라 그들을 품기로 함.” ]

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두 배신한 자의 최후를 직접 곁에서 봤으니, 나의 적이었음에도 나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갔을 것이다.

아니, 나의 적이었음에도 나를 따르고 싶었겠지.

“그런데, 셰프님…… 반유현 팩토리 파리에는…… Z 반까지 모든 교수들이 채용되어있습니다. 열여덟 명의


교수진을 추가시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파리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라고 한 적 없는데.”

이스라엘, 뉴욕, 그리고 한국에 설립되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대기 인력이 되는 것이다.

“새롭게 설립되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들로 쓴다는 거야.”


나의 요리에 대해 아득히 깨달아 충성도가 있으며,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자들.

“이스라엘로 보내.”

어쨌든, 나의 적대세력에 속해있던 이들에게 약간(?)의 벌을 내리려고 했었는데,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의 반유현 팩토리가 완공된 상황이었다.

마침 그에 대한 인프라를 채우기 위한 계획을 짜는 중이었는데, 꽤나 괜찮은 인력들이 들어왔다.

“분부대로, 이스라엘로 보내겠습니다.”

***

반유현 팩토리 - 이스라엘의 완공식.

건물의 모든 공사가 끝났고, 그 조직도까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행사였다.

셰프들을 모집하는 단계는 현재 진행 중이었다.

A 반부터, Z 반까지 알파벳순으로 반의 이름이 정해지는 반유현 팩토리.

총 열여덟 명의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가 각 반의 교수를 맡았다.

파리에 위치한 반유현 팩토리 같은 경우에는 학생들이 많아 반마다 각각 1, 2, 3 팀으로 ‘팀’이라는


단위가 있지만.

이스라엘에 위치한 반유현 팩토리에는 설립 초기 단계이기에, 세부 팀 없이 열여덟 명의 셰프에,


유럽에서 추가로 채용한 교수들이 각각 반을 맡아 A 반부터 V 반까지 만들어졌다.

“축하드립니다. 반유현 셰프님.”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세계 주요 기관의 수장들과, 기업인들, 그리고 유명 셰프들이 이곳에 와 나를 축하해줬다.

반유현 팩토리, 파리가 그랬듯이 이곳도 중동과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요리 교육의 중심이 될 것이기에,
이렇듯 사람들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대단하십니다. 인력 충원부터…….”

“하하하하! 그만 하세요. 반유현 셰프님에게 대단하다는 말이 통하기나 하겠습니까.”

교수진을 구하고 나면, 사실 인력 충원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행정업무, 인사업무 등등은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끄는 일보다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기업 ‘반유현’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진 젊고 똑똑하며, 열정까지 충만한 인력들이 항상


문을 두드려 왔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기업에 간다고 하죠…… 아, 하하하! 참, 그래봤자 그렇게


취직하는 젊은이들이 반유현 셰프님과 비슷한 나이를 가진 이들이겠군요.”

“‘반유현’ 이라는 기업은 흐트러지는 걸 못 본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이야 전승…… 무패지요. 진짜, 역사에 없던 사업가이자 셰프구요.”


계획, 추진, 실행, 완공까지 그 어떤 지체 없이 진행된 것에 대한 평가들이었다.

“자서전은 언제 나옵니까? 한평생 경영학을 전공해 와서 그런지, 반유현 셰프님의 자서전은 꼭 읽고


싶습니다.”

“하하하! 반유현 셰프님의 자서전이라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읽게 하고 싶습니다.”

“저는 저희 직원들한테 꼭 읽게 할 겁니다.”

그리고, 중년이 나이인 세계 주요 기관의 수장들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업의 회장들 중에는 나를
찬양하며 아부성 멘트를 남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진심이 어느 정도 담겨 있겠지만, 내가 이것을 ‘아부’라고 규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나와의 접점을 만들고 싶었을 테니까.

“시간 되시면 식사라도 한번 하실까요……? 하하하. 제가…… 아주 좋은 곳으로 한번 모실 기회를


주십쇼.”

“허허, 이 양반아 반유현 셰프님 부담스럽게 뭣하는 짓이야! 셰프님,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이 친구가 관계에 서툴러서, 원! 앉아서 경영 서적이나 읽고 있으니……!”

“반유현 셰프님, 혹시 공은 좀 치십니까? 저희가 이번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골프장을 짓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반유현 셰프님께서 공치시는 걸 좋아하시면야,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주십시오.”

세계적으로, 반유현 팩토리 - 이스라엘이 완공되었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높은 이름값을 가진 인사들을 여러 명 초대했었다.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고, 출석했는데 그게 이들이 높은 이름값을 가지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이득이 되리라 싶으면 머나먼 이스라엘까지 날아와 아부성 멘트를 남발하는 실행력말이다.

“아니, 대체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UN 사무국장, 세계요리사협회장, HWO 중동지역 총무부장, OECD 기업가연합회 회장…… 세계 각 국가


주요 지자체장들부터, 세계적 프랜차이즈 기업의 회장들과, IT, 자동차 기업의 임원들까지.

그들이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나도 이런 계산 빠른 친구들이 싫지 않았기에, 웃으며 응했다.

더군다나, 라스베이거스에 일식 정찬 레스토랑 런칭 준비에 이들을 이롭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저희, 셰프들 아시나요?”

윤종혁, 마츠노, 닉.

이 세 명의 사람이 경매 시스템을 이용해, 내 몸값의 절반 이상을 달성하라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데,


그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즉, 두 번째 경매 입찰이 시작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알다마다요! 반 셰프님을 따르는 셰프들 아닙니까!”

“이번에, 아이즈 칸 회장하고 트러블이 있기도 했고.”

“저도 경매 입찰을 시도했는데,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응? 자네도 했어?”

“자네들도 했어? 얼마에 했어.”

“이 양반들아, 영업 비밀이지 그걸 왜 그렇게 궁금해해.”

이미 나에게 아부성 멘트를 남발한 회장, 또는 기관의 수장들은 경매에 응한 모양이었다.

그때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나를 따르는 셰프들의 몸값을 높이면, 이 미션이 끝나고 런칭할 일식 레스토랑의 이슈화에 대단한 도움이
될 것이고.

그들의 몸값이 올라간다는 건 저절로 나의 몸값이 올라간다는 것 아니겠나.

그 생각을 기반으로 나는 한마디를 넌지시 던졌다.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입찰에 응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이번엔 그들의 메뉴나 코스에는 절대


손대지 않고, 저도 주방에 들어가서 도와줄 것이 있으면 도와줄 생각입니다. 칼도 갈아주고…… 양파도
썰고…… 육수도 끓이고.”

직접적으로 도와준다는 말은 못 했다.

나의 이름값을 보고 저들의 요리를 먹고 싶어 입찰한 사람들이 대다수겠지만, 어쨌든 저들의 요리를 먹는


것에 경쟁적으로 돈을 낸 사람들 아닌가.

“바, 반유현 셰프님께서 요리에 참여하실 겁니까?”

“아니요. 그들의 코스를 건드리는 건, 월권인 것 같고. 허드렛일이나 조금 도와줄 생각입니다.”

내가 그 주방에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저들의 마음속에선, 경매에 써내야 할 값이 오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192 화. 마지막 레스토랑인가 (1)

경매 방식에 의한 시스템, 그 대상인 윤종혁, 마츠노, 닉은 또 새롭게 펼쳐진 상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 뭡니까 이건 또?”

세 명이 입찰된 가격의 평균치가, 10 억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미 ‘Blind Up’의 아이즈 칸이라는 놈 때문에 이 시스템 자체에 진절머리가 난 이들이었다.

이번에도, 어떤 돈 많은 졸부가 자신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줄 것이란 예측이 저절로 생겼다.

“누구인지 미리 알아야겠어.”
무엇보다 10 억이라는 돈은 반유현의 몸값을 뛰어넘는 값이었다.

반유현 - 프리미엄의 한 끼, 가장 비싸게 입찰된 것이 10 억을 조금 넘는 돈이었다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바.

그의 제자인 자신들에게 10 억이 훌쩍 넘는 돈이 베팅되었다는 것은 분명 모종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츠노는 ‘반유현’ 어플 시스템 관리팀에 연락을 했고, 10 억이 넘는 돈을 자신들에게 베팅한


사람들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회장, 한국계 반도체 기업의 사장, 다국적 인테리어/가구 회사의 창업가였다.

당연히, 한 끼에 10 억을 쉽게 쾌척하는 사람들이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수조 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라고는 생각했었다.

중요한 건, 이들이 왜 자신들에게 반유현의 몸값을 뛰어넘는 돈을 지불했냐는 것이었다.

“검색을 해보죠. 평소에 요리에 대해 관심이 있었나. 아니면, 뭐……. 아이즈 칸처럼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위한 계획으로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인가.”

윤종혁이 말했고, 닉은 옆에서 이미 검색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 닉이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었다.

[ 반유현 팩토리 - 이스라엘, 완공식 참석자 명단…….]

“이 세 명의 회장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네요.”

“어?”

자신들에게 10 억이 넘는 돈을 지불한 이들 모두, 반유현 팩토리 이스라엘 완공식에 참석했었다는 것.

VIP 신분으로 그 행사에 참석한 바, 반유현과 밀접한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사진도 같이 찍었네요.”

샴페인을 들고 그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반유현의 모습이 사진에 담기기도 했었다.

“셰프님이 우리를 밀어준 거야?”

“반유현 셰프님이 소스를 조금 뿌리신 것 같네요.”

반유현이 자신들의 몸값을 올려주기 위해, 저들에게 어떤 말을 한 것 같았다.

“우리가 맡은 레스토랑만 성공하면, 반유현 셰프님은 미슐랭 30 스타를 모으게 되시니까. 우리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실 거야.”

라스베이거스에 제리가 맡은 아프리칸 요리, 뉴욕에 알베르가 맡은 한식 정찬 레스토랑, 그리고 마츠노,


본인이 맡은 일식 정찬 레스토랑. 이 세 개의 레스토랑 모두 합쳐 7 개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받기만 해도
반유현은 30 스타가 된다.

물론, 반유현은 세 개의 레스토랑 모두에서 3 스타를 받기를 원하고 있으니, 그가 가진 미슐랭 스타는 32
개가 될 것이었다.

“30 스타 달성의 마지막 레스토랑이 우리니까…… 우리도 최선을 다하자고.”

반유현의 계획에 자신들이 큰 부분으로 자리했다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애초에 유럽에 데뷔하실 때, 노골적으로 미슐랭 스타를 노린다고 말씀하셨었는데,
30 개? 그 이상을 원하시는 건가?”

“그 목표에는 끝이 없지 않을까?”

“하긴, 이미 요리사라는 타이틀로 세계를 호령하고 계신데, 미슐랭 스타에 도전하시는 걸 보면…….”

그리고 그때, 반유현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뭐하고 있냐.”

반유현, 저 인간의 몸은 피로도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이스라엘, 뉴욕, 라스베이거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녔으니까.

그 옆에 오스틴은 살이 빠져, 얼굴이 핼쑥한 것 반면에 반유현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너희들 몸값이, 이미 내 몸값을 뛰어넘었던데?”

반유현이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셰프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셰프님께서…… 힘을 써주신…….”

“가, 감사합니다. 반유현 셰프님.”

아직도 반유현이 자신들의 앞에 등장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셰프들이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몸값이 10 억을 훌쩍 뛰어넘은 것의 이유를 대충 알고 있었으니 감사를 표했다.

“내가 주방 보조로 일할 거야. 너희들은 메뉴 그대로 준비해, 재료 손질은 내가 해준다.”

“예……? 그게 무슨 말씀?”

“나 혼자서, 너희들 재료 싹 다 손질해주겠다고. 주방 보조 필요 없어.”

“호, 혼자서요……? 그게 가능…… 하십……?”

“걱정 말고, 어떤 메뉴가 더 맛있을지 고민해.”

***

[ 반유현의 몸값 뛰어버린 제자들! 대체 반유현의 몸값은 얼마? ]

[ 반유현 - 퍼플, 런칭 준비 위해 시작된 셰프 경매 시스템! 요리계의 또 하나의 물결. ]

[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 요리 13 억 5 천만 원에 낙찰! ]

[ 윤종혁, 9 억 8 천만 원! 닉 셰프, 11 억 2 천만 원에 낙찰! ]


지난번, ‘반유현 - 프리미엄’에서는 입찰된 나의 가격을 알리지 않았었지만, 내 요리를 먹은 회장들에
의해 그 가격이 밝혀졌었다.

이번엔, 내가 직접 이들의 몸값을 밝혔다.

이만한 값어치를 가진 셰프들이 일식 정찬 레스토랑인 ‘반유현 - 퍼플’의 런칭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그 장본인인 셰프들 스스로가 그만한 프라이드를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이들의 몸값이 상승함에 따라 나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것이다.

내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반유현 - 프리미엄’의 두 번째 손님들을 뽑게 될 때에는 그 값이


얼마일지는 나조차도 기대가 되었다.

다다다다다다다!

나는 셰프들의 주문을 받아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각종 야채들부터, 고기들의 발골, 그리고 육수를 끓이는 것까지.

내가 손질을 하는 이유는, 내가 주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재료 손질 작업부터 만들 수 있는 맛을 높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보조 셰프 여러 명을 두는 것보다 나 혼자 모든 재료를 손질하면서 더 큰 효율을 얻을 수 있었다.

“셰, 셰프님. 돼지 등뼈 육수가…….”

셰프들이 나를 주방 보조로써 활용하는 게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셰프님, 이것도 부탁해도 되겠습…….”

한 명당 코스의 메뉴가 적게는 일곱 개, 많게는 열한 개까지 있었다.

그에 대한 재료와 소스를 모두 내가 맡아서 했다.

나라는 상급자가 재료 손질을 해준다는 것보다 그렇게나 많은 일들을 나에게 시키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것이다.

많은 업무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내가 상급자가 아니었어도 느낄 불편함이었다.

“다 시켜. 다 할 수 있으니까.”

윤종혁이 시킨 레몬 폰즈 소스를 고온에 숙성시키면서, 마츠노가 말한 유자제스트를 만들면서, 닉이 말한


샤리를 준비했다.

물론, 그 행동의 모든 것들이 정돈되어 있었고, 집중되는 최상이었다.

보통 셰프들이었다면, 서로 성질이 다른 재료들을 이렇게나 많이 한 번에 손질하고 준비하는 것에 멘탈이


뭉개졌을 테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수행하고 있었다.

“셰프님…… 아까 말씀드린…….”

“알아, 기억하고 있어.”


윤종혁에겐 내가, 자신이 부탁했던 것을 잊고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졌나 보다.

“내 눈치들 보지 말고 일해. 너희들 10 억이 넘는 요리를 오늘 선보여야 되니까.”

내 말에 다시 한번 집중력을 높이는 셰프들이었다.

그리고, 세 시간이 지났을 때, 오늘의 손님들이 홀 안으로 들어왔다.

“마련해주신 보안 요원과 그 보안 사안에 깜짝 놀랐습니다. 들어올 때부터 대접받는 느낌이어서요.”

‘반유현 - 프리미엄’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누구인지는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것 또한 이들이 스스로 밝힐지 모르는 일이겠지만, 한 끼에 10 억이 넘는 돈을 받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화젯거리가 되고 있는 와중에, 이들의 정체를 밝히면 기분 좋게 요리를 먹으러 온 사람들이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허허허. 정말요. 반유현 셰프님, 역시! 생각이 깊으십니다. 이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누군지 밝혀지면,
온갖 기자들이 달라붙어서 요리가 어땠는지 묻겠죠.”

오픈 주방의 형식이었고, 윤종혁, 마츠노, 닉 세 명의 셰프가 각각 한 팀씩 맡아서 요리를 선보이는


방식이었다.

내가 주방에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비싼 돈을 지불한 이들에게 예의를 다해 인사했고,


셰프들은 그 사이에 요리를 준비해 첫 번째 요리를 내놓았다.

“셰프님, 다음 요리 준비해주시죠.”

나는 정말, 오늘 주방의 보조 역할을 할 것이며 나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말하라고 당부해뒀더니, 윤종혁이 아주 편하게 말했다.

“예! 셰프!”

내가 그렇게 외치자, 홀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아주 흥미롭게 나를 바라봤다.

***

‘그냥 이벤트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한국계 반도체 업체의 회장인 최원태는 그 모습을 지켜보곤 혀를 내둘렀다.

“셰프님, 이것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셰프님, 이 요리는 다음에 나가야 합니다.”

“반유현 셰프님, 버섯의 익힘 정도는 수분이 30 퍼센트 남아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반유현을 따르는 셰프들.

오늘 요리의 주인공인 마츠노, 윤종혁, 닉은 반유현에게 스스럼없이 재료 손질을 지시하고 있었다.

당연, 반유현의 명에 따라 그에게 편하게 지시를 하고 있을 테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특히나 도제식 문화가 만연한 주방에서 상급자에게 재료 손질을 시키는 것에 불편함이 있을 건데, 지금
눈에 보이는 주방은 매우 효율적인 구조로 움직였다.

‘저게 쉬운 일이 아니야.’

기업을 운영하면서 ‘편하게 말해봐’라고 했을 때 진정 자신에게 편하게 말하는 간부가 몇 없었다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던 것이다.

반유현은 실제로 셰프들에게 ‘편하게 재료 손질을 시켜’라는 지시를 했을 것이고 그 지시를 거리낌 없이
이행하는 셰프들은 반유현의 카리스마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저 퍼포먼스도 일반인이라면…….’

반유현은 셰프들의 부탁을 단번에 알아듣고, 움직였다.

어떤 행동에도 군더더기 없이, 모든 재료들을 손질해나간다.

셰프들의 지시를 듣고 곧장 메모를 해두어도, 순서가 꼬이거나 헷갈릴 법한데 반유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방의 모든 잡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셰프님! 이것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더군다나 윤종혁이 반유현에게 말하는 재료 손질은 끝이 없었다.

한입에 담기는 많은 양의 다채로운 맛을 메인테마로 한 윤종혁의 요리는 그 테마에 맞게 많은 양의 재료


손질을 아주 세밀하게 해내야 됐다.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윤종혁의 메뉴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하는 반유현.

지시가 들어온 순서로 재료 손질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그것마저도 식재료의 특성을 살려 시간차를


두고 재료 손질을 하는 것 같았다.

‘저 디테일 이란…….’

그리고, 반유현은 간간이 요리를 하고 있는 셰프들의 모습을 체킹했다.

그 모습을 포착한 최원태는, 반유현이 왜 주방보조로 나섰는지 얼추 깨달을 수 있었다.

‘서포터…….’

자신의 품 안에서, 자신을 따르는 셰프들이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는 마음인가.

비싼 돈을 지불한 우리들에게 시각적인 퍼포먼스를 위함인가.

자신이 손질한 재료를 받아 요리하는 셰프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행위인가.

일식 레스토랑 런칭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바람에, 그 셰프들의 부담감이 너무 커졌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던 적이 있는데, 반유현은 그것을 직접 해결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저게 장인이고…… 저게 사업가고…… 저게 요리사다…….’

최원태는 이미 자신이 지불한 10 억이 넘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요리를 먹지도 않은 상태임에도 말이다.


193 화. 마지막 레스토랑인가 (2)

젠사이(ぜんさい).

일식 정찬 요리에서 에피타이저를 뜻하는 말이었다.

마츠노, 윤종혁, 닉은 각각 에피타이저의 구성을 다르게 했다.

마츠노는 문어와 새우튀김, 윤종혁은 문어 초회, 닉은 장어구이.

에피타이저는 식욕을 돋우는 역할이 중요하기에, 튀김은 폰즈 소스를, 문어 초회는 회를 담근 식초


베이스 소스를, 장어구이는 장어의 살에 칠한 소스에 새콤한 맛을 강조했다.

세 명의 셰프는 자신들이 고안한 레시피를 반유현에게 전달했었고, 반유현은 이들의 레시피를 따라 그대로
소스를 만드는 것을 도왔다.

“됐어. 먹어들 보십시오.”

반유현은 빠른 속도로 이들이 주문했던 소스를 만들었고, 튀김을 위한 문어, 초회를 위한 숙성문어,
그리고 구이를 위한 장어까지 모두 손질했다.

그리고, 그 재료들을 앞에 둔 뒤에 자신이 손질한 것이 괜찮냐는 듯 셰프들을 불렀다.

“튀김 반죽은 직접 한다고 하셨으니, 모르겠고, 문어랑 새우는 이렇게 손질했어.”

여유롭게 마츠노에게 문어와 새우를 내미는 반유현이었다.

“허.”

“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썰려있는 문어 다리.

물론, 이는 어느 정도의 내공이 있는 셰프라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마츠노가 놀랐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새우의 내장을 싹 다 손질한 게 아니라…….”

“그래, 튀김 안에서도 바다의 향미가 풍겨져 나와야 할 것 아닙니까 셰프님.”

반말과 존대를 섞어,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반유현.

대부분의 새우 손질은 새우의 허리 정중앙을 그대로 갈라 내장을 빼는 방식이거나, 이쑤시개를 꽂아


내장만을 꺼내는 방법이었는데, 반유현은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머리와 수직인 방향으로 새우의 살에
칼집을 내어놓았다.

그리고 각 새우의 내장 함량을 모두 다르게 설정해 두었다.

“맛의 단계를 만들어, 미각 세포의 준비운동을 시킨다는 개념인데…….”

바다 내음이 강한 새우, 중간 새우, 약한 새우…….

그것들이 입안에서 확실하게 단계적으로 느껴지며 식욕을 더욱 돋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마츠노는, 새우 살의 간, 튀김 반죽, 그 튀김을 찍어 먹을 폰즈 소스에 대한 깊은 연구를 했을 뿐 그
정도 디테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니, 생각은 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 정도 정교함을 실제 요리에 사용하는 셰프는 전 세계에 반유현뿐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정도 정교함을, 반유현이 말한 ‘맛의 단계’가 느껴지도록 표현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모될 텐데 그 정성의 양을 무시하고도 실행할 수 있는 건 반유현뿐이다.

10 억을 넘게 돈을 낸 손님들에게 그 정도의 정성을 보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최소 일곱


가지의 메뉴가 넘는 코스를 구성해야 된다는 점에서 밸런스를 갖춰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반유현은 그 모든 코스에 이렇다 할 정성을 쏟을 수 있는 셰프였던 것이고.

“당연히 이 정도는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반유현은 그렇게 말하곤, 마츠노의 레시피를 따라 만든 폰즈 소스를 마츠노에 내밀었다.

“헙.”

폰즈 소스까지, 반유현의 손길을 거쳤을 뿐인데, 자신이 생각한 맛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물론, 반유현의 생각은 아니었다.

“마츠노 셰프님이 말씀해준 레시피에, 새우 껍질을 갈아서 살짝 곁들였습니다. 마츠노 셰프님이 생각하신
맛에서 몇 가지 맛을 추가했습니다.”

온전히 마츠노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하여 만든 레시피였고, 그 맛에 풍미를 깊게 하는 재료를 넣었을


뿐이다.

셰프들마다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경험치가 다르기에 반유현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을 마츠노는 대단한
요리가 된 것처럼 느낀 것이다.

“하…….”

윤종혁의 문어 초회를 만들, 식초 베이스의 소스.

닉이 만들 장어구이에 버무릴 양념까지.

모두가 반유현의 손을 거치자 다른 수준의 맛을 표현했다.

그것도 여러 명이 아닌, 반유현 혼자.

이 정도의 정성과 맛을 내며 모든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으니, 이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이 정도의 맛을 생각하고, 이 레시피를 나한테 준 것 아니었어요? 주방 보조 섭섭하게.”

***

자신들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재료들은 나의 손을 거쳐 최상급으로 손질되고 정돈된 것이라는 사실이


이들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심어줬을 것이다.

또, 혹여나 주방에서 발생할 실수를 내가 커버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또한 저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것들이 요리에 반영될 것이고.’

총 30 억 원이 넘는 가치의 음식을 만들어야 되는 셰프 각각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경직되고 긴장된 셰프에게서 자연스러운 맛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니까.

뿐만 아니라 주방 내 나의 존재는 요리를 즐기는 손님들에게도 또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었다.

마츠노, 윤종혁, 닉은 각각 자신들의 손님에게 첫 번째 요리를 서비스한 뒤에 그 요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주방 보조의 역할을 맡았기에 그들이 요리를 설명하는 동안 다음 요리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첫 번째 요리를 먹은 손님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컥!”

“와우……!”

“에피타이저부터 이런 솜씨라면……!”

대단한 만족.

입안에서 시작된 황홀함을 내뱉는 말이었다.

세 명의 셰프가 선보인 요리가 모두 달랐는데, 결과는 하나와 같았다.

‘뭘 봐.’

손님들 앞에서 요리를 설명하던 마츠노, 윤종혁, 닉.

세 명의 셰프가, 손님들이 뱉어내는 환호가 있는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자신들의 요리가 이렇다 할 반응을 이끌어낼 것을 몰랐다는 듯이 말이다.

“반유현 셰프님의 영향이 있는 겁니까?”

셰프들이 나를 바라보니, 요리를 먹은 손님들도 나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셰프들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요리의 신이라 불리는 반 셰프님의 손이 닿은 재료가 들어갔기에 더 맛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츠노가 그렇게 말했고.

“저희, 스스로도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화룡점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반유현


셰프님께서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재료 손질을 하시는 과정에서요.”

윤종혁 또한 그 맛을 나의 공으로 돌렸다.

에피타이저가 서비스된 이후에는, 미소 된장을 곁들인 두부요리, 고등어, 청어, 방어, 도미 등 각종


생선회, 그리고 절인 청어와 우니를 김에 싼 마끼…… 멸치와 무를 이용해 깊은 맛을 내게 끓인 메밀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성공리에 서비스되었다.

기립박수가 쏟아져 나왔고, 나는 이 요리의 공을 셰프들에게 돌리기 위해 주방을 빠져나왔다.

***

마츠노, 윤종혁, 닉의 요리는 화제가 되었다.

삼십억 원이 넘는 매출을 하루 만에 올린 셰프로 화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요리를 먹었던 손님들의


증언에 의해 대중들로 하여금 많은 관심을 불러 모은 것이다.

이전에, ‘반유현 - 프리미엄’의 손님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했던 대단한 경험을 말했다.

[ “반유현의 맛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

[ “10 억 원이 아깝지 않다는 말이 진짜였다.” ]

-진짜 개부럽다. 반유현과 그 셰프들한테 단독대접을 받다니.

-10 억이 부족해서 반유현 밥을 못 먹네.

-누군가가 해준 요리를 먹는 게 사람들의 꿈이 된 거?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양상으로 퍼져나갔다.

[ 나도 먹어봤는데, 최고였음 진짜. ]

[ 성게알이랑, 삭힌 청어를 곁들인 마끼는 진짜……. ]

[ 엥?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당신이었음? ]

프라이빗하게 나의 요리를 즐긴 사람들에 대한 대중들의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이러한 사태를 만들었다.

요리를 먹은 사람들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이 향하자, 관심받길 원하던 사람들이 대거 등판한 것이었다.

모두 나의 요리를 먹은 사람처럼,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로 소설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 단새우가 입에서 녹아내릴 때, 숯불에 구운 대파와 양파의 향이 입안을……. ]

[ 미소 된장의 고소함과 두부의 조화는 정말 최강이었다…… 그 요리를 설명해준 반유현은. ]

상상으로만 만들어진 이야기여서 그런가.

역설적이게도, 10 억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실제 요리를 먹은 손님들보다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 윤종혁 셰프의 섬세한 손길로 썰어낸 문어 초회는 그 식감부터 일품이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윤종혁 셰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그 옆에 있던 마츠노 셰프는……. ]

뿐만 아니었다. 그렇게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내 요리의 상상 묘사가 진짜 소설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뭔데 이것들은?”

“유행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팬픽이라고 해야 될까요?”


“팬픽?”

“예, 어쩌다 보니, 반유현 세프님과 셰프님을 따르는 셰프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게 유행처럼 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생에도, 전 전생에도 없던 일이었다.

나와, 나를 따르는 셰프들을 소설 속의 인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유행이 되는 일이 발생한다니.

그것도 요리를 좋아하거나, 셰프를 꿈꾸는 마니아들이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들도 그 챌린지에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불 지펴야지 뭐해.”

여태껏 나를 둘러싼 대중들의 관심과, 화젯거리를 그냥 지나친 적이 없는 나는 또 한 번 그럴듯한 광고를


기획하려 했다.

“가장 소설을 잘 쓴 사람에게, 아니다. 지금 런칭 준비 중인 ‘반유현-퍼플’이 들어가는 소설로……


가장 잘 쓴 사람에게 예약 우선권을 제공한다고 해. 세 팀. 기간은 런칭 전날까지.”

***

‘반유현 - 퍼플’, 라스베이거스에 일식 정찬 레스토랑은 전 세계에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의 광고


효과를 얻었다.

‘반유현 - 퍼플’의 예약 우선권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움직일 줄은 그 어느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소설 쓰기라는 형식의 광고 방식은, 광고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 광고 업계에도 영감 주는 탑셰프? ]

[ 반유현 “팬들의 반응에 송구할 따름……. ]

세계적인 웹소설 플랫폼 ‘NOVEL’에도 나의 이름과 내 브랜드에 대한 내용이 담긴 소설들이 숱하게


올라왔다.

내가 허락한 것이었으니, 당연히 저작권에 대해 문제 삼지 않을 예정이었다.

1.반유현의 딸이 되었습니다.

2.반유현이 힘을 안 숨김.

3.내 셰프들이 이상하다.

4.SSS 급 셰프 능력치.

…….

“이런 경우도 있네.”

판타지, 현대 판타지 모두에서 셰프, 또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상위권을 차지했고, 나는 실소했다.

사람들이 써 내려간 소설 속 내용들은, 유명인이 먹방을 통해 광고를 찍는 것보다 더, 식욕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나도_레스토랑_반유현_예약

#반유현소설

#반유현이_주인공인_소설쓰기.

또 한 번 ‘반유현 챌린지’라는 이름의 유형이 시작된 것이었다.

나와 셰프들은 이 열기에 발맞춰 레스토랑, ‘반유현-퍼플’의 런칭을 준비했다.

194 화. 마지막 레스토랑인가 (3)

라스베이거스는 그야말로 ‘반유현 챌린지’로 뜨거워졌다.

“아마, 이 라스베이거스 내에 ‘반유현 - 핑크’를 운영하고 있는 제리 셰프와 버금갈 정도로 반유현


세프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톰슨 셰프님도 한번 도전해보시죠.”

“글에는 솜씨가 없어서 제가…… 하하.”

“아니, 그럼 제가 글을 쓸 테니까, 반유현 셰프에 대한 정보나, 그의 말투 같은 걸 제대로 묘사했는지 좀


봐주십쇼! 셰프님. 요리사로서 반유현 셰프의 먹어보지 못했다는 건…… 제자들한테도 참…….”

반유현의 요리를 먹어봤냐, 먹어보지 못했냐는 셰프의 경험 수준을 가르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그런 시점인지라, 무수히 많은 셰프들이 키보드 앞에 앉아 반유현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셰프로서 자신들이 쌓았던 경험이라면, 필력이 떨어질지 몰라도 업계의 생동감, 그리고 요리에 대한
묘사와 맛의 묘사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톰슨은, ‘반유현’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로, 라스베이거스


셰프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레스토랑 ‘반유현 - 퍼플’의 예약 우선권을 갖고자 하는 셰프 중에서, 톰슨과 친분이 있던 셰프라면


모두 그에게 연락을 해 자문을 받았다.

“내가 지금, 소설가가 된 건지…… 편집자가 된 건지…….”

원체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인지라, 웬만한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곤 했지만.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나도 반유현 셰프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데.’

그저 사람들은 자신과 반유현의 관계를 가깝다고만 생각하여 이렇듯 자문을 요청했지만.

정작, 톰슨은 반유현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인간인데.’

정직하고, 의리 있고, 항상 실력으로 승부하려 하는 그의 우직함…… 그에 따른 그의 인간성이야 알고


있지만.

그의 생각은 도통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가 하는 말에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자신의 판단이었으나, 동료 셰프들은 반유현의 대사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지?”

톰슨이 제리를 향해 말했다.

로또 육 인방이었던 제리도 라스베이거스에 터를 잡고 나서는, 반유현에 의해 톰슨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러게요. 우리라고 반유현 셰프님의…….”

“재밌는 것들도 몇몇 있더라, 반유현 셰프가 판타지 능력을 가지고…….”

“네. 저도 몇 개 봤습니다. 그런데, 그 판타지 능력을 가진 반유현 하고 지금의 반유현 셰프님하고 별


차이가 없더라구요. 하하하하.”

“그니까, 그 글들을 읽다 보니까, 묘하게 상상력이 자극돼. 반유현 셰프님이 진짜 판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큰 맥락 없는 대화를 하던 둘은 순간 눈을 마주쳤다.

이 두 사람 모두, 반유현이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노린 거야……?”

“에이…… 설마.”

반유현이, 판타지 능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무수히 많은 ‘반유현’이 주인공이 소설들과, 현실 세계의 반유현이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판타지 능력을 갖춘 소설 속 반유현을, 현실 세계의 반유현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묘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입지, 명성을 떠나서, 반유현 셰프님이 본인 스스로를 진짜…… 신격화…… 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는…
….”

베토벤, 아인슈타인 등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천재, 그 이상의 존재로 묘사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내면엔 그들이 초능력과 같은 비현실적인 어떤 것을 담고 있다는 생각들이 저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을 테니까.

반유현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상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려는 것 같았다.

이는, 반유현의 옆에 가까이에 있던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반유현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반유현 - 퍼플의 런칭 마케팅, 이벤트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동감하네.”

***

나, 또는 나의 요리, 그리고 나의 동료들로 소설을 쓰는 ‘반유현 챌린지’의 열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소설의 소재들의 양상은 대체로 단순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클리셰처럼 고정되었고, 그 능력이 무엇이냐에 대한 차이만 두고
수많은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와중에는 신기하게도, 200 년을 살아온 요리 귀신이라는 소재도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는 약간


뜨끔했다.

천 년은 아니지만, 환생 회귀의 개념을 정확히 살린 소설이었으니까.

“당첨.”

“예?”

당연히, 나의 감정을 동요케 한 그 소설을 쓴 사람을 1 위로 뽑았다.

“아니, 셰프님. 창의적인 수많은 소재들이 있는데, 고작 200 년을 환생해 온 능력을 뽑으시는 이유가…
….”

“제일 공감 되는…….”

“예? 공감이요?”

“아니, 대사나 행동 묘사, 그리고 스토리라인을 봐봐. 잘 썼잖아.”

“예? 이게……. 음.”

그렇게 두 개의 소설을 더 뽑았고, 그 소설들은 나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조회수가 폭발했다.

-반유현, 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소재만 골랐네ㄷㄷㄷ

-ㅋㅋㅋㅋ 반유현이 진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만 고른 거임?

-아하! 알고 보니 자기 능력 맞추기였구나.

또, 레스토랑 반유현은 현장 예약이 있다는 것을 강조해 알려, 런칭 당일에 나의 레스토랑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게끔 만들었다.

“라스베이거스 경찰 측에 미리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혼잡한 만큼 각종 사고가 발생 할 수 있으니까요.”

분명, 내 경호 인력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의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되었다.

그에 따른 언론, 매체 관계자들도 더더욱 몰릴 것이고.

뉴욕에서 내 행보와, 우튜브 채널, ‘반`s 키친’도 그랬고, ‘반유현 - 프리미엄’과 그 모델을 그대로
사용한 마츠노, 윤종혁, 닉의 몸값이 10 억을 넘어선 것. 또, ‘반유현 챌린지’와 여러 이벤트들이
합쳐져 지금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반유현 - 퍼플’은 레스토랑 ‘반유현’ 역사상,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

런칭 당일,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을 위해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의 경찰 병력 대부분이 이곳에 집결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이곳은


폭파되었을 것이었다.

“반유현! 반유현!”

“여기 좀 봐주세요!”

“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아!

“반유현 셰프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오늘 현장 예약 좌석을 몇 개나 열어 두셨나요!”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반유현 챌린지에서 뽑힌 소설들의 이유라도 말씀해주세요!”

요리사는 언제나 요리로 대답한다.

나는 경호 인력들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잠은 좀 잤나?”

“못 잤습니다.”

“자지 못했습니다.”

“머리에 아드레날린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이미 어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 모여있었다.

현장 예약을 통해 요리를 먹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을 보곤 이 셰프들이 편히 잠을 잘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레스토랑 ‘반유현’을 맡아 런칭한 셰프라면 이런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해야지.”

“예! 셰프!”

셰프들은 레스토랑 ‘반유현’의 전통인,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 준비에 들어갔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내 앞에 요리를 나열해놨고, 나는 그것을 맛봤다.

내가 젓가락을 든 순간, 주방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좋아졌네.”

충분히, 미슐랭 쓰리 스타를 받고도 남을 요리들이었다.

“흰 살 생선과, 바지락살로 만든 완자……. 맑은국. 패스.”

“전복내장과 우니, 그리고 청어 조림…… 패스.”

“데미그라스 소스를 곁들인 대게 다리 살…… 오케이.”


“참치, 내장에 절인 대구살……. 유자 제스트의 향이 너무 약해.”

그 밖에도 메뉴와 사케의 조합을 선정하고 메뉴 테이스팅을 마무리했다.

확실히, 이들의 몸값이 30 억 원이 넘는 돈을 책정받았을 때, 그리고 그 요리를 실제로 선보이려 할 때


내가 보여준 재료 손질에 대한 자세를 완벽히 습득한 모양이었다.

혀를 훑고 지나가는 그 어떤 맛도, 평범하지 않게 느껴졌다.

세심하게, 조그만 맛 또한 어루만져 주었다는 느낌이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일식 정찬 요리의 기본이리라.

모든 메뉴와 코스의 구성이 나의 머릿속에서 나왔지만, 이들은 나의 머리에 완전한 동기화가 되었다.

***

수많은 음식문화 평론가들이 우리의 요리에 대해 코멘트를 남겼다.

물론, 부정적인 평가는 단 한 줄도 찾을 수 없었다.

레스토랑 자체의 흠이라면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렸다는 것이었다.

즉,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번 레스토랑의 런칭도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올해 미슐랭 평가를 받을 레스토랑이…….”

아프리카 요리의 핑크, 한식 정찬의 에메랄드, 일식 정찬의 퍼플까지.

총 세 개의 레스토랑이 미슐랭 평가를 기다리는 시점이었다.

‘100 년간의 길고 길었던 사업이 끝나는 건가.’

마지막, 미슐랭 30 스타를 채울 레스토랑의 런칭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가슴이 이상하다.

심장박동수가 제멋대로 요동치는 것 같았다.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던가. 이 무한 환생 회귀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이 이후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도 좀처럼 예상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 뒤를 예상하고 달려왔던 것이 아니니까.

“딱, 미슐랭 평가 기간이 시작되는 시점에 모든 런칭 사업이 끝났네요. 이제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가을이 시작된 지금, 미슐랭 평가가 시작되고, 결과 발표는 연말에 나오게 된다.

즉, 몇 개월 동안 나에겐 할 일이 딱 하나 있었다.

전 세계에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을 돌며 맛의 퀄리티를 견고하게 만들고, 미슐랭 투스타인 레스토랑은


쓰리스타로 올리고, 쓰리스타인 레스토랑은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만으로는 시간이 남아돌지.’


한국과 뉴욕에 설립되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 대한 사업이라던가, ‘반`s 키친’, 그리고 우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 등, 곁가지 일들이 많긴 많지만, 이는 나를 바쁘게 하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이제 와서 느끼게 된 한 가지 호기심이 나를 더 움직이게끔 만들었다.

‘이 미션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 몸을 떠나는 건지.

이 몸을 계속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그래서, 지구 최강의 탑 셰프가 된 이 몸으로 몇 가지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미슐랭 스타를 짓누르는, 맛 평가 기관.’

지금, 내가 가진 명성이라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100 년이 넘는 세월을 평가에 목매다 보니, 미션을 달성할 때가 다 되어서 놈들을 망가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100 년간 그에 얽매이며 살았지만, 그깟 시스템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스스로 보이고


싶었다.

‘계획대로라면, 30 스타를 달성할 거고…… 다 끝난 마당에, 한번 해보자.’

195 화. 끝판왕 (1)

말 그대로 쉴 틈 없는 인생이었다.

단 한시도,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모든 행동들이 레스토랑을 효과적으로 런칭하기 위한 것으로 연결되었으니까.

프랑스 파리에서의 축제도, 아프리카를 불태웠던 것도, 뉴욕에서의 행보들도…….

그렇기에 사람들은 나의 다음 행보에 대한 무차별적인 추측을 내놓았다.

[ 반유현, 모든 공식 일정 잠시 중단. ]

[ 지난 몇 년간 없던 휴식 기간? ]

[ 레스토랑 런칭 그만두는 것인가! ]

항상 나의 움직임이 큰 파장을 일으켰으니까.

사람들은 기대를 했다. 내가 어떤 모습을 또 보여줄는지.

레스토랑 ‘반유현 - 퍼플’이 성공적으로 런칭 되고 그 다음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질 않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더 고조되는 것은 당연했다.

[ 전 세계, 레스토랑 ‘반유현’ 시찰하는 반유현! ]

[ 파리, 뉴욕, 런던에서 모습 보여! ]

“다음 레스토랑 런칭은 어디에 하실 겁니까 셰프님?”


나는 런던 내에, 로또 육 인방 중 한 명이었던 최민성이 맡아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이 레스토랑에서 취급하고 있는 모든 메뉴의 맛을 봤고, 새로운 메뉴에 대해 제안했으며, 약점을 보완해


미슐랭 쓰리스타를 지킬 수 있게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민성 또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가까이에 붙어 관리 감독 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연구하고


맛의 수준을 올리려고 노력했다.

어디서든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의 요리를 뽑아낼 수 있는 셰프의 레벨을 10 이라고 한다면, 최민성은
12 는 되어버렸다.

이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쯤, 레벨 9 였던 최민성에게 최대한 나의 레시피를 이용하도록 해서 쓰리스타를


달성하게끔 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다음 레스토랑은 왜 궁금해. 여기 네 잘나가는 레스토랑 있잖아.”

미소를 머금고 답한 나의 말에, 최민성이 되물었다.

“이게 제 레스토랑입니까. 대 반유현의 레스토랑, 저는 그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신하일 뿐……. 그나저나,


셰프님 다음 계획이 뭡니까?”

“다음 계획이 왜 궁금하냐고, 내 비서야?”

“아이…… 그러지 마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셰프님.”

하기야, ‘반유현’ 소속의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지휘급 셰프인 최민성이었다.

최민성뿐만 아니라, 지휘급 셰프들은 그럴 것이다.

메이, 헨리, 제리, 알베르, 마츠노, 포시즌스 옐로, 블루, 레드를 이끄는 세프들…….

지휘급 셰프들이면서 나의 다음 행보를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무늬만 지휘급 셰프라며 욕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검정 스카프를 맨 셰프들한테는 말해줘야 하나.”

“아닙니다. 저희는 셰프님의 계획을 듣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최민성뿐만 아니라, 검정 스카프를 맨 셰프들이 다 이런 식의 태도였다.

파리에서도, 라스베이거스에서도, 뉴욕에서도.

이런 셰프들한테는 나의 계획을 정확하게 말하며 설명해 주고 싶어졌다.

100 년을 하나만 보고 살다 보니, 이런 감정에 대해서 무뎌졌었는데, 이제야 주변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이미 반유현 팩토리가 완공되었고, 셰프들을 모집하고 있어, 이제 곧 한국에도, 뉴욕에도


반유현 팩토리가 완공되지.”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

“파리의 반유현 팩토리까지…… 전 세계의 모든 셰프 꿈나무들을 품을 수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이


갖춰진다는 거고.”
“그 또한 셰프님의 원대한 계획임을 알고 있습니다. 셰프가 되길 원하는 자라면 누구나 반유현 팩토리의
문을 두드리게끔 하시는 거죠……. 저희 브랜드 ‘반유현’은 넘쳐나는 인력으로 더 강해지는 것이고…
….”

이제 곧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사업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나는 가장 처음 생각했었던 그 사업에 무언가 발전된 아이디어를 얹었다.

“세계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해.”

“예?”

“요리사들이 스스로의 요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상징이나 증표가 뭐냐고.”

“그야…… 셰프님도 잘 아시다시피, 미슐랭이 아닐까요?”

현재는 그렇다.

더군다나 세계 최고의 셰프인 내가 미슐랭 스타를 얻기 위해 노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은 셰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이 곧, 자신의 요리가 가진 맛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미슐랭 말고, 반유현…… 이름은 아직 안정했어.”

맛의 기준을 ‘나’로 정할 생각이다.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에 100 년을 쏟은 것에 대한 분노와 의문이 내가 그 미션을 달성하게 되리란 확신이


들면서 생겨났었다.

내가 그 기준을 정립하는 순간 전 세계 요식업계는 내 손안에 있게 된다.

맛의 기준을 정립한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요리 교육 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요리를 배우는 새내기 셰프들은, 나에 의해 정립된 맛의 기준을 보고 배우고 듣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 그 셰프들이 반유현 팩토리를 벗어나 세상의 레스토랑에 퍼질 때.

이 세상은 새롭게 정립된 맛의 기준에 따라 요리될 것이다.

그 맛의 기준이 진정 합당하고, 높은 수준이라면. 이미 자신만의 요리를 하고 있는 셰프들도 그 기준을


따르게 되지 않을까.

“내가 이 정도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당연히, 그러셔야죠. 따르겠습니다.”

***

유럽과 미국을 돌아, 나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의 맛을 전부 체크했다.


셰프들은 메뉴 테이스팅을 하듯이 모든 메뉴를 나에게 꺼내어 줬고, 문제가 있는 레스토랑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라고 해야 하나. 나의 이름이 널리 퍼질수록, ‘반유현’이라는 이름을 건


레스토랑들에 대한 기대감이 쌓이니, 셰프들도 실력을 상승시키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번에 만난 지휘급 셰프들에게 나의 원대한 야망을 말해주니 눈이 초롱초롱했다.

“맛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는 기관…… 그리고 그 기관의 수장을 따르는 셰프…….”

이들에겐 나의 야망의 일부인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의 다음 행보에 관한 대중들의 관심이 고조 되었을 때, 나는 내 계획을 대외적으로 공포했다.

[ 반유현 “맛의 새로운 기준 만들고파.” ]

[ 반유현 “미슐랭 스타를 뛰어넘는 공신력을 제공하겠다.” ]

미슐랭 스타는 대외적으로 별을 주는 기준을 발표해두었다.

총 다섯 가지 항목으로, 풍미, 셰프의 창의성, 메뉴들의 통일성 등의 항목을 평가한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 그 정도 체계적인 항목들을 구성해두지 않았다.

“그냥 나 자체. 나 혼자 평가위원. 그냥 내 이름으로 공신력을 제공할 거야.”

시작은 수백 개의 레스토랑을 돌아, 그것을 Lv1 부터 Lv10 의 레스토랑으로 나눌 것이다.

별이 한 개, 두 개, 세 개와 달리 레벨을 열 가지로 세분화한 것은 더 세세한 맛의 수준 차이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밸런스라 한다면, 미슐랭 쓰리스타의 레스토랑이 Lv4 에서 Lv7 의 수준을 가질 것이다.

그 이상의 레벨을 만든 것은, 나와 나를 따르는 셰프들이 미슐랭 쓰리스타의 맛을 뛰어넘는 요리를 하기


때문이었다.

나와 나를 따르는 셰프말고도 그런 세프가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었고.

“나 혼자 열심히 발품 팔아서 공신력을 만들고 체계를 만들 거야.”

“뉴욕에 있는 레스토랑들부터, 예약을 해놓겠습니다. 하루에 두 곳씩 할까요?”

“어. 좋아.”

***

이름은 ‘반유현 레벨’로 정했다.

미슐랭 스타가 별을 주듯이, 나는 레스토랑에 레벨을 주고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또 요식 업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슐랭 평가 기간, 미슐랭 평가원들이 주요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평가를 하는 기간인지라, 가뜩이나


레스토랑의 오너들과 셰프들이 민감할 터인데, ‘반유현’이라는 인간.
나 또한 그렇게 레스토랑에 평가를 매기겠다니 골치가 아플 지경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저희는 자신도 없고, 지금의 미슐랭 스타를 지키는 것에 만족할 겁니다.”

나의 방문을 간절히 원하는 레스토랑이 무수히 많았지만.

미슐랭 평가원의 방문보다 나의 방문을 부담스러워해 거절하는 레스토랑도 있었다.

특히나, 미슐랭 쓰리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들이 그랬는데, 이미 자신들은 사람들의 뇌리에 최고의 맛을
내는 레스토랑으로 각인 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아시다시피, 저희 레스토랑은 미슐랭 쓰리스타를 8 년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최고의 맛을 내는데,


반유현 레벨? 뭣 하러 도전을 합니까. 괜히 욕심부렸다가, 다른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들과 비교 먹지
못할 떡은 쳐다도 보지 않는 게 제 방식입니다.”

당연히, 미슐랭 쓰리스타의 레스토랑 중에서도 나의 방문을 원하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의
레벨을 5 로 지정했다.

[ 반유현 레벨, 처음으로 Lv5 등장! ]

[ 뉴욕 소재의 아뜨매(artme). 반유현 레벨 5!! ]

[ 반유현 최초! ]

그에 따라 사람들은 더 많은 기대를 품었다.

-저기가 레벨 5 라고?

-이미 숱한 평론가들한테 극찬을 받은 레스토랑이 레벨 5 야?

-것보다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이 레벨 5 니까, 그보다 더한 레스토랑들이 있다는 것 아니야!

-ㅋㅋㅋㅋ대박이다.

-반유현이 자기의 영향력을 알 텐데, 그냥 막 선정하지는 않을 것 같음.

-대체 최고 단계인 레벨 10 의 레스토랑은 어디임?

쏟아지는 관심에, 미슐랭 원스타, 또는 투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들은 평가받기를 원했다.

자신들이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고도 남을 것이란 생각을 하던 셰프들과 업주들이 그랬다.

자신들이 미슐랭 최고의 맛인 쓰리스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과 동시에, ‘반유현 레벨’이라는


것이 미슐랭 평가를 뛰어넘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물론, 논란도 많았다.

-반유현 이라는 인간의 미식 취향 아닌가?

-하긴ㅋㅋㅋ 여러 명의 체계적인 체계가 아니라, 혼자 맛보고 점수 매기는 건데.

-저런 건 맛집 탐방 블로그에서나 하는 건데, 다만 그 주체가 반유현이라는 특별함이 있을 뿐.

-뭔 특별함이 있을 뿐이냐. 반유현이 있으면 그냥 끝난거 아니냐?


-레스토랑 반유현에 가본 사람이면 앎ㅋㅋㅋ 반유현이면 끝이라는 걸.

-ㅇㅇ 저 인간은 맛의 기준을 제시할 만함.

그렇게 인터넷상에서, 내가 제시한 ‘반유현 레벨’에 대한 논란이 일자 나는 역시나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논란을 더 크게 만들고 그것을 나의 자양분으로 만드는 데에 나는 도사였으니까.

[ 반유현, “반유현 레벨, 최고 단계인 Lv 10 을 달성할 수 있는 레스토랑은…….” ]

“반유현 - 프리미엄뿐입니다. 내가 직접 재료 손질부터, 조리까지 해야만 그 높은 단계의 맛을 낼 수


있죠.”

나의 호출에 한걸음에 달려온 기자들이 아주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의 말을 적기 시작했다.

196 화. 끝판왕 (2)

[ Press Bar : 반유현 Lv2 ]

[ Fit Sau : 반유현 Lv3 ]

[ Colombia restaurant : 반유현 Lv3 ]

[ Angel’s Grill : 반유현 Lv2 ]

…….

뉴욕 내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들에 대한 반유현의 평가였다.

그리고 그 평가는 여전히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들이 대부분, ‘반유현 레벨’에서 5 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ㅋㅋㅋ 장난 없네.

-그냥 미슐랭 평가 기관이랑 맞짱 뜬다는 건가?

-Wow!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만 평가하는데.

-미슐랭이 반유현한테 잘못한 것 있음?

물론,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었다.

아주 가끔, 거의 없을 정도로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이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보다 높은 레벨을 받은


경우가 있긴 있었으나, 대개는 미슐랭 스타의 결을 따랐다.

반유현이 측정하고 있는 ‘맛’과 미슐랭이 선정한 ‘맛’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슐랭은 약 100 여 년간 지속되어 온 평가 기관 아니던가.

반유현이 미슐랭과 달랐던 것은, 그 맛의 정도가 더 세세하다는 것이었다.

같은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도 Lv1 에서 Lv3 까지 나뉘었으며,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도 Lv2 에서 Lv5
까지 나뉘었다.

그리고 그 레벨은 실제로, 사람들에게 맛의 척도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반유현이 세계적으로 ‘맛’과 ‘요리’에 미치는 영향력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가 돌덩이를 맛있다고 하면, 돌덩이를 씹어 먹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지 않을까.

“거기에, 또 공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직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어.”

반유현은 이 흐름을 타고 ‘반유현 레벨’의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부담을 느껴야 할 곳은, 미슐랭 본사였다.

“우리랑은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타고 있긴 해…….”

‘반유현 레벨’과 ‘미슐랭’의 가장 큰 차이는, 반유현 레벨이 보다 많은 단계를 두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에 버금갈 하나의 더 큰 차이가 있었다.

“평가를 할 레스토랑에 예약을 하고, 평가를 하겠노라고 미리 밝힌다는 거지…….”

미슐랭 평가원은, 알 사람들이야 알지만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레스토랑에 방문한다.

하지만, 반유현 레벨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저 방식이 공신력을 낮출 수도 있어. 오히려 다행인걸?”

‘반유현 레벨’이라는 것이 등장하자, ‘미슐랭 스타’를 그에 비교하며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고, 세계 최고의 공신력 있는 미식 지침서라는 타이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찰나에,
미슐랭 가이드는 ‘반유현 레벨’의 빈틈을 발견했다.

“우리가 왜 100 년 동안 평가원들의 신원을 숨겼는지…… 이해를 못 했군.”

자신의 영향력만을 믿고, 먼 미래를 생각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공식적으로 평가를 할 것이라고, 말한 뒤에 평가를 하면 그 레스토랑은 평소보다 더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거나, 더 풍성한 메뉴를 구성하게 되기 마련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반유현 레벨’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자신의 레스토랑이 크게 부흥할 것을 알고


있는 셰프들은, 평소와 다르게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었다.

그에 따라, 반유현 본인이 평가 당시의 맛과 그 레벨을 보고 그곳을 방문한 손님들의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결과는 공신력 하락으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역사와 전통을 지키면 돼. 그나저나, 저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인,
반유현의 레스토랑 평가는 다 어떻게 됐습니까?”

“아시다시피, 미슐랭 스타 시상식이 있기 전까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미슐랭 스타 시상식이 있기 전까지는, 오로지 그 레스토랑을 평가했던 평가원들만 그 결과를 알고 있다.

이 또한 미슐랭 스타가 100 년 동안 공신력을 지켜온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하하하하! 본부장으로서 섭섭하지만, 이런 시스템들이 있기에 셰프들과 미식가들이 우리를 믿는


거겠죠.”

갑작스럽게 등장한 ‘반유현 레벨’로 전 세계 셰프들과 요식 업계가 떠들썩하지만, 본부장의 마음속에는


괜스레 ‘반유현 레벨’에 자신들의 영향력이 꺾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100 년간 이어왔던 전통대로, 맛을 추구하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 반유현, “반유현 - 프리미엄만이, ‘반유현 레벨’의 Lv10 을 달성하는 맛. ]

[ 오로지 자신만이 그 수준의 맛을 낼 수 있다. ]

반유현은 오직 자신의 요리만이, 자신이 만들어 낸 시스템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잘 나가다가, 너무 심취해서 망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진짜 요리로 세계를


주무르겠다는 듯이 너무 설쳐대다가, 저렇게 나사가 풀린 것을 보니 안타깝네요…….”

욕심 때문에 사람이 미쳐버리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와서 그런가.

본부장은 반유현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드디어, 한 시대를 호령한 셰프의 몰락인가…….”

경험이 만들어준 본능. 수많은 셰프들을 봐왔던 터였다.

유행을 만들어내고, 시대를 호령한 셰프의 주기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본부장의 뇌리에 스친


생각이었다.

***

[ 미슐랭 가이드 에릭 셀 본부장 “반유현 레벨은 한 셰프의 맛집 여행 일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

미슐랭 가이드의 경영을 도맡아 하고 있는 본부장까지 나선 것을 보면 저쪽도 나의 행보에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을 증명했다.

100 년 역사의 미슐랭이 셰프 한 명한테 쫄 정도인가.

본부장이 평가원들의 입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기감을 느낀 것은 맞았다.

[ “자신의 요리가 가장 맛있는 요리라 칭한, 셰프가 정하는 맛집 리스트” ]

[ 욕심의 시작, 몰락의 시작인가 반유현. ]

게다가 친(親)미슐랭계 셰프들이, 나의 행보에 빈틈을 발견한 듯이 연이어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나의 계획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하여간, 세상을 다 뒤집어놓고 또 이곳에 홀연히 나타나셨구만유.”

반유현 팩토리, 한국 캠퍼스의 완공식 날에 참석했다.

한국 캠퍼스의 교장 자리를 흔쾌히 수락했던 백원종이 혀를 차면서 나를 반겼다.


“또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 거여? 반유현 레벨?”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라면, 저를 떠올리는 세계를 만들어보려고요.”

“하 참, 무슨 소설도 아니고…… 살살혀.”

끝내 부정적인 얘기는 못 하는 백원종이 살짝 웃어 보였다.

“지원율이 가장 높은 캠퍼스라던데요.”

반유현 팩토리, 한국 캠퍼스는 완공과 동시에 실력 좋은 교수진을 채용했고, 학생들을 뽑는 과정에


이르렀다.

“경쟁률, 112 대 1. 짱짱한 회사 들어가는 거랑 비슷해유.”

“백 대표님이 교장을 맡아 주신 덕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저보다야 영향력이 강하실…….”

“허, 참! 누가 들을라! 내가 자네보다 영향력이 강하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여! 입 조심해.”

살짝 미소를 보인 채 고개를 좌우로 젓는 백원종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한국 들어온 김에 한국에 있는 식당들도 ‘반유현 레벨’을 먹인 다믄서?”

“예, 그렇습니다.”

“몸이 몇 개인지…… 내가 세다가 포기했잖아. 반유현이라는 인간이 대체 몇 명인지.”

농담조로 말을 툭툭 던지는 백원종에게는 나에 대한 경외감이 묻어나 있었다.

매번 나를 마주할 때마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백원종이었다.

“반유현 팩토리, 한국 캠퍼스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계적인 셰프들의 요람으로…….”

“내가 잘할 게 뭐 있나. 이미 반유현 팩토리에 지원하려는 초급 셰프들은 전 세계 모든 캠퍼스에 지원서를


넣는다는 말이 있어. 어쨌든 셰프가 되겠다면, 다들 반유현 팩토리에 지원을 하는 꼴이야. 이미 완성되어
있는 기관의 리더를 시켜줘서 고맙네.”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 대표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요.”

백원종을 반유현 팩토리 한국 캠퍼스의 교장으로 세운 건, 그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개념도 있었다.

요리사나, 프랜차이즈 사업가라면 누구나 앉고 싶어 할, 세계 최고의 요리 교육기관의 수장 자리.

자신의 인생 커리어에 한 줄 크게 새겨 넣고도 남을만한 자리이며, 검정 스카프를 맨 지휘급 셰프들과


버금가는 자리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 자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셰프들 중에서는 레스토랑 ‘반유현’의 주방에 들어가는 것보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되고 싶어 하는 셰프들도 숱하게 많았으니까.

“그렇다고 자네가, 은혜만 갚는다고 나를 세우진 않았을 것이고.”

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하는 백원종.

“그것도 맞습니다. 백 대표님께서 전 세계, 이 지구의 맛의 수준을 높이는데 누구보다 일을 잘하실 것


같아서요.”
반유현 레벨과 반유현 팩토리는 같은 그림 안에 있는 체계였다.

반유현 레벨이, 전 세계 셰프들이 따라가야 할 맛의 수준 자체를 높이는 일을 한다면, 반유현 팩토리는


그 맛의 수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끄는 셰프들을 만드는 기관인 것이다.

“자네의 역사에 나를 추가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네.”

***

미슐랭에서 많은 별을 받은 셰프들은, ‘반유현 레벨’이라는 새로운 미식의 척도가 등장한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체제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유현 레벨’은 맛의 수준을 더 세세하게 구분하고


있었으며, ‘나’, 반유현이라는 존재의 영향력은 셰프들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존재였으니까.

그런 내가, 주체가 되어 레스토랑을 평가하고 있는 모습 자체가 저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 ‘반유현-프리미엄’, 본인이 한 요리만이 ‘LV10’?? ]

[ 반유현 레벨, 공정성 문제! ]

[ 레스토랑 평가 의도를 알리고, 레스토랑을 방문한 뒤 평가하면, 그 레스토랑의 광고에 불과……. ]

[ 유명 미식가 아드론치, “반유현 레벨은 세프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마음을 이용한 파렴치한 장사. ]

[ 미슐랭 28 스타, 엘레니 “내 레스토랑에 누군가 평가하러 온다는 것을 안다면, 무조건 최고의 요리를
낼 수 있다. ]

논란의 주요 골자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반유현 레벨’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레벨인 10 을 달성한 레스토랑이 나의 레스토랑인 ‘반유현


- 프리미엄’이라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반유현 레벨의 점수를 매기기 위해 방문한다는 것을 그 레스토랑에 알린다는 사실이었다.

“저희도, 방문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전 세계에 나를 모르는 셰프가 없고, 이 평가를 오직 나만이 하는데, 알리지 않아도 알려지잖아. 어차피
그럴 거라면 미리 말을 하고 가는 게 맞지.”

이유는 명확했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온다고 해서 요리에 더 좋은 식재료를 쓰든, 더 풍성하게 코스를 구성하든, 다른 곳에서 실력 있는


셰프를 데려와서 가짜 요리를 내놓든, 내 눈썰미를 이길 수 없어.”

어차피 모든 레스토랑과 셰프들은, 내 손에 있다.

그들의 실력, 그들의 요리 의도, 생각…….

내가 방문했기에, 특별한 요리를 선보인다고 해서 본 실력을 감출 수는 없다. 내 앞에서.

197 화. 끝판왕 (3)


“대한민국에 있는 레스토랑에 반유현 레벨이 정확한 맛의 지표가 되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하는 게 맞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주몽’을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대한민국에 가장 처음으로, 미슐랭 평가가 도입되었을 때부터 미슐랭 쓰리스타를 놓친 적이 없으며.

사람들의 소문에 의하면, 그 맛의 수준은 수십 년째 변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도 전전생에 이곳에서 요리의 맛을 보고 한식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던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이곳의 레벨을 부여하면 또, 요리에 부쩍이나 관심이 많아진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미 평가된 뉴욕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들의 수준을 쉽게 알 수 있어.”

반유현 팩토리, 대한민국 캠퍼스의 완공식을 위해 대한민국에 방문 예정이 있어, 나의 직원들이 미리


예약해 두었다.

대한민국에 방문한 김에, 이 나라에서 꽤나 유명한 레스토랑에 반유현 레벨을 도입하기 위함이었다.

역시나, 나의 평가를 거절하는 레스토랑도 몇 있었고, 그렇지 않은 레스토랑도 있었다.

“평가받기가 두려운 것도 있고, 부든, 명예든, 이미 수없이 많이 쌓아 놓았기에 굳이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 곳일 겁니다.”

“그렇지.”

“지금 가고 있는 주몽도…… 그런 이슈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이슈?”

이슈.

나는 ‘주몽’이라는 레스토랑의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방금 오스틴이 말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주몽’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레스토랑을 물려준 경우라, 그 아들이 주방 내에서 입지를
완벽하게 못 잡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직 은퇴를 하지 않고 아들에게 완벽한 입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함께 주방에 있다고 합니다.”

레스토랑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경우였고, 자식이 레스토랑을 받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

‘오네 셰프’라는 직함을 받았지만 주방을 꾸리고, 주방에서의 리더쉽이 아직 모자라 아버지가 함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았고, 점점 빠르게 아들의 입지를 갖춰 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레스토랑이 세습되는 과정에서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았다는 것은, 아들 역시 그


실력이 어디에 뒤지지 않는 것을 뜻했으니까.

“그런데, 그 아들이 ‘반유현 레벨’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아들은 당연히 ‘반유현 레벨’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은 시점이고, 그에 따라 주방의 구성원들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점차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이 시점에서 반유현 레벨에 도전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터였다.

그의 생각과 반대로, 레스토랑을 창업한 아버지는 끝없는 도전을 요했던 것이고, 아버지의 말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우리의 평가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내가 전생에 이 레스토랑의 요리를 먹었던 것은, 아들이 레스토랑을 이미 세습 받고 수 년째 미슐랭


쓰리스타를 안정적으로 받고 있을 때였다.

즉, 지금의 삶의 진도가 너무나 빨라, 전생보다 수년이나 빠른 시점에, 이 레스토랑이 세습되는 과정에서
이곳의 요리를 먹게 되었다.

“그만큼이나 준비를 많이 했겠지.”

전생에, 지금과 달리 오너셰프의 입지를 완벽히 인정 받아 요리를 하던 그의 모습은 자부심이 넘치던


모습이었는데 이제 막 입지를 쌓아가기 시작한 그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에게 꽤나 괜찮은 요리를 선사해줬던 요리사였으니까.

***

“할 수 있어 임마. 오로지, 너의 힘으로만 이 주방을 이끌어, 높은 평가를 받아봐.”

계획은 이미 정해졌다.

미슐랭 쓰리스타를 얻는 과정에서는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게 사실이었다.

이 주방에서의 입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주방의 구성원들을 이끄는 힘을 기르기 위해, 아버지는 주방을
떠나지 않고 자신을 도왔다.

“고민욱. 겁먹지 마.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끊어 말하며, 긴장을 풀게 하는 아버지.

이번엔 고민욱 혼자서 모든 주방의 요리를 총괄하고, 반유현 레벨이라는 시스템의 평가를 받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뉴욕에 소재하고 있는 미슐랭 쓰리스타들이 받은 레벨보다 높게 받으면 이를 대대적으로 알려,


이 주방의 진짜 주인이 바뀌었음을 공고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자신감이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감이 없다기보다는 답답함, 또는 불쾌함이었으리라.

‘다 된 밥에 재를 뿌리……. 아니지, 아직 뿌려진 건 아니고 저걸 막아내야 돼.’

이미 주방 내의 입지는 공고히 되고 있었다.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는 것에 아버지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주방 내 자신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는


것을 스스로 체감하고 있었다.

몇 년만 더 지나, 미슐랭 쓰리스타를 계속 받아내기만 한다면, 본인은 대한민국 요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레스토랑 ‘주몽’의 오너셰프가 될 수 있었는데.
반유현이라는 작자가 나타나 자신이 만든 시스템을 위해 ‘주몽’의 맛을 평가하겠다고 나타났다.

고민욱은 평가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X 발. 어차피 되는 거였는데.’

더군다나 ‘반유현 레벨’이라는 시스템이 세계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된


요리를 선보이지 못했다가는 슬슬 쌓아 올라가고 있는 입지를 한 번에 잃을 가능성이 컸다.

“셰프의 도전은 잠잘 때를 제외하고 항상이야. 멈추지 마.”

아버지는 오히려, 반유현 레벨이 고민욱의 입지를 올리는 것에 제격이라며 등을 계속 떠밀었다.

“반유현 셰프님이 오시면, 내 직접 인사를 드릴게. 혹여나 내가 주방의 요리에 관여하지 않고 온전히
네가 만든 요리라고 하면 주관적 감정이 들어가 요리의 평가를 낮게 볼 수도 있으니까.”

반유현도 인간인지라, 자신이 생각했던 셰프가 아닌, 다른 셰프가 요리를 만들면 평가의 잣대가
달라질수도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였다.

모든 상황을 같게 두고 고민욱의 요리를 시험할 생각이었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때마침, 홀에서 여러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 함성소리와 동시에 고민욱의 가슴에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반유현이다!”

“헐! 반유현이 왜 여기에 있어!”

“뭐야뭐야! 반유현 셰프님!”

반유현의 등장이었다.

꽤나 가격대가 있는 레스토랑인지라, 사람들이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원하고 조용히 음식을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주몽’이었는데, 반유현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에 따라 고민욱의 심박수는 서서히 증가했다.

아버지 고광수가 직접 반유현을 응대하러 나갔고, 반유현이 자리를 잡자 홀 내부가 조용해졌다.

“셰프님, 요리…….”

멍하니 생각들을 정리하던 고민욱에게 수 셰프가 찾아와 말했다.

“아! 네, 네…… 전채요리부터 바로 들어가시죠. 냉채 육수는 제가 직접 시작하겠습니다.”

“예! 셰프!”

“육회 비빔밥, 소스도 제가 직접 만들어 보겠습니다.”

곧장 요리를 시작한 고민욱이었다.


그렇게, 전채요리 세트가 완성될 쯔음 아버지 고광수가 들어왔다.

“저런 기세를 가진 사람은 처음이야.”

“예?”

“포스라고 해야 되나……. 저렇게 어린 사람이 어떻게 저런 기운을 풍기지?”

자신의 아들 고민욱과, 반유현은 동갑이었다.

둘다 20 대 중반의 나이로, 고민욱 또한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엘리트 교육을 받아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고 자부했지만.

실력과 별개로 저 정도의 ‘포스’를 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전채요리는 준비됐나?”

“예.”

마침 반유현에게 서비스되는 전채요리 한 상이 플레이팅되고 있는 중, 고광수는 그 맛을 테이스팅하기로


했다.

온전히 아들에게 맡기기로 한 것과 달리 반유현이 풍기는 기운이 너무 드세 순간 저도 모르게 생각이 바뀐


것이었다.

“…….”

“어떠십니까. 달라진 건 없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이 정도로는 안돼.”

“예?”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너는 서브 반찬을 맡아.”

“…….”

셰프들이 다 함께 주방에 있던 탓에, 고광수가 최대한 말을 조심했지만.

고광수가 고민욱이 한 요리의 맛을 본 뒤 앞치마를 두른 것을 보면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

‘맛의 퀄리티가 전생과 다를 바 없이 좋군.’

새우살을 호박으로 감싸 캐비어를 올린 요리.

새우장과 당근 퓌레를 곁들인 요리.

새우를 생으로, 물회처럼 새콤한 과일 베이스에 절인 요리.

육회 초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양의 쌀이 들어간 육회요리.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모두 느껴졌다.
요리에 대한 이해가 꽤나 높아야 느낄 수 있는 맛이겠지만, 당연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뚜렷하게 이 모든
것들이 그려졌다.

그런데, 이 요리를 한 것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셰프가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에 의아했다.

“새우살과 호박의 맛을 연결시키기 위해 참기름을 사용한 것 같은데, 어떤 기름을 사용하신 건가요?”

“충북 진천에서 공장이 아닌, 직접 짠 기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름에서는 나지
않는 풍미가 있습니다. 저희 한식에서는 손맛이라고도 하는데…….”

“이 요리를 직접 하신 셰프님이 맞습니까?”

“그게 무슨……?”

“참기름의 맛 그 자체 말고, 호박과 새우살의 풍미를 연결시키는 역할로서의 참기름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아마도……. 제가 셰프님께서 의도하지 않은 맛을 느낀 것 같습니다.”

레시피만을 보고 요리를 했다면.

혹은 누군가 만든 요리에 대해 온전히 의도를 알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셰프들에게 내가 만든 코스와 메뉴에 대한 의도를 정확히 가르치는 이유였다.

“당근 퓌레의 훈연한 향미는 구현이 정말 잘 된 것 같습니다. 새우장의 간장 베이스 소스도 그렇고…….
그 훈연한 향미가 간장 베이스 소스와 정말 잘 어울리는군요.”

대체로 만족스러운 음식들이었다.

그런데, 그 수준들에 못 미치는 요리가 하나 있었다.

“육회……. 나머지 전채요리들이 수준급의 맛을 보여준 것과 달리, 조금 모자란 것 같습니다. 조리사가


레시피를 따라한 듯한 느낌이랄까. 무튼, 그 조리사가 낮은 수준을 갖고 있지는 않아. 썩 나쁘지는
않은데……. 이 앞에 차려진 요리들과 비교 했을 때는 맛이 튀는 수준이라.”

셰프의 앞에서 이렇다 할 평가를 하는 행위를 잘 하지는 않는데.

내가 이렇듯 평을 계속하는 것은 내 앞에 있는 이놈의 행동이 야리꾸리(?)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요리라며 당당하게 설명을 해 놓곤, 나의 무차별 질문에는 이렇듯 말을 흘린다.

아버지가 한 요리를 자신이 한 것처럼 포장하는 듯이 말이다.

“하하하. 그럴 리가요. 모두 제 총괄하에 나왔기에 맛의 라인이 같을 겁니다. 반유현 셰프님, 컨디션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함부로 저희 ‘주몽’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사업을
준비하시느라, 저희 ‘주몽’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듯한데. 꿈도 꾸지 마십시오.”

지적이 계속되자, 되려 화를 내는 모습도 그랬고.

그리고, 내가 육회를 지적했을 때는 순간 동공이 흔들리기도 했다.

“제가 한낱 미슐랭 쓰리스타만을 보고 살아가는 레스토랑을 깎아내려 뭘 얻겠습니까. 그런데, 맛으로


거짓말을 치는 셰프들은 다 망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씩 웃자, 순간 몸이 경직된 고민욱이었다.


호랑이 앞 토끼의 몸처럼.

“이 요리 본인이 한 것 맞습니까? 제 혀와 코는 못 속이거든요.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이 요리를 직접 한


아버님을 모셔오세요.”

198 화. 끝판왕 (4)

“제 요청을 거부하시는 것 맞습니까?”

“아니, 거부할 것도 없이. 이 요리는 제가 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그의 기분을 나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고민욱은 되려 화를 내며 나를 몰아세웠다.

“내가 왜 증거를 대야 합니까? 정 의심스러우면 나가세요. 저도 당신 같은 사람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싫으니까.”

그 이유야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레스토랑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반유현 레벨’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만나기 싫었을 것인데, 그에 대한
불편함이 첫 번째였을 것이고.

나의 끝없는 질문이 두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그 이상의 질문들은 레스토랑 전체를 모욕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레시피의 비법을 말하는…….”

물론, 두 번째 이유는 구시대적이다.

셰프들이 레시피를 감추고, 자신의 보물로 여기는 행위는 구시대적인 행동이 되었음을 뉴욕에서 보여준 바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뉴욕 내 거의 대부분의 레스토랑 레시피를 받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감명받은, 전 세계의 수많은 셰프들이 레시피를 서로 공유하면서 발전시키는 문화를 향유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직 이곳은 그게 아닌 듯했다.

‘아버지는 도전을 원하고, 아들은 도전하길 원치 않고, 또 그 아들은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있네.’

분명, 전생에는 고민욱이 했던 요리가 맛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어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지금의 상황이 자신이 이곳의 ‘오너 셰프’가 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그냥 조용히 먹고 평가하겠습니다.”

자존심이나, 그 명예를 생각해, 나를 쏘아붙이면 내가 평가를 멈출 줄 알았나 보다.

내가 조용히 먹고 평가를 하겠다니, 그의 눈동자가 또 한 번 흔들렸다.

“요리를 직접 하셨다니,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레스토랑이 대한민국의 반유현 레벨을 심는 것에 좋은 영향을 꽤나 미칠 것이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한식 하면 이 레스토랑을 떠올리고, 그 정통성과 창의성에 대해서도 이 레스토랑의
실력을 매우 높게 쳐주고 있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이곳의 수준을 대외적으로 알려 ‘반유현 레벨’의 기준점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그에 따라 나의 레스토랑들이 갖는 수준의 차이를 한 번 더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의 일갈에도 나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놈은 내 계획에 순순히 따라 줄 이유가 없는 듯했다.

“죄송합니다만. 반유현 셰프님. 나가주시죠.”

“…….”

“셰프님께 대접할 요리가 없습니다. 요리한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레스토랑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생긴다니.

셰프의 의도가 온전히 요리에 담긴 것인지, 그 셰프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개의 질문을 던졌던
것뿐이다.

질문은 고민욱이 기분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이놈은 지금의 이 상황을 노리고 기분 나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이 레스토랑에서 ‘반유현 레벨’ 평가를 멈추고 가장 좋아할 테니까.

“예, 나가겠습니다. 지금의 선택은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 대한민국 최초 ‘반유현 레벨’ 평가받은 ‘주몽’. 충격적인 결과! ]

[ 반유현 레벨, 대한민국 자타공인 1 타 레스토랑에 Lv 0 부여! ]

[ 레벨 0 의 의미는 무엇인가! ]

[ 평가할 가치가 없는 레스토랑 주몽? ]

큰 사고가 벌어졌다.

레스토랑 주몽을 24 년째 운영하면서도 없던 아주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X 발…….”

반유현 레벨은, 레스토랑의 사전 동의를 구하고 평가된다.

어떤 평가에도 법적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인증된 절차에 따라 서명을 해야만 ‘반유현 레벨’의
평가가 시작된다.

즉, 반유현이 레스토랑에 왔다는 것은 이미 동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반유현이 전채요리만을 먹었고, 그것만으로 레스토랑 ‘주몽’의 평가를 했다는 것이었다.

-뭐임? 우리나라 최고 레스토랑이 0 레벨?

-왘ㅋㅋㅋ 개망했네 한국 레스토랑.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반유현 - 옐로’랑 ‘주몽’ 둘 다 먹어봤는데, 레벨 0 의 수준은


아니에요 주몽이.

-와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이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보다 레벨 낮게 나온 것은 처음이네.

-미쳤다 진짜. 반유현의 정통성 무시하기!

평가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온라인은 들끓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미슐랭 쓰리스타 ‘주몽’의 레벨을 ‘0’을 받았음에도 반유현 레벨의 시스템에
문제를 삼는 사람은 아주 소수였다.

대개는 어떤 이유로, 어떤 맛이기에 주몽이 ‘0’을 받았냐는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벌써, 반유현 레벨은 그 공신력을 인정받은 건가…….”

-ㅋㅋㅋㅋ 진짜 가면 안 되겠네. 가격은 더럽게 비싸고 맛은 레벨 0 이면?

-뭐지 진짜. 어떻게 미슐랭 쓰리 스타가 레벨 0 이야 대체?

-어쨌든 세계 최고 셰프가 저곳에 방문하면 안 된다는 걸 공식화했으니까.

-하기야 한 끼에 10 만 원 넘는 돈으로 맛있게 먹을 것들이 너무 많지.

“예약률이 증가했으니, 실제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우리의 레벨이 ‘0’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쉽게 생각했었다.

요리를 직접 먹은 사람들은 레스토랑 ‘주몽’의 레벨이 ‘0’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반유현 레벨이라는 시스템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이상하게도 흘러갔다.

-음. 예전에 맛있었는데, 반유현이 말해서 그런가 맛이 없어진 것 같기도…….

-그러게, 반유현이 레벨을 ‘0’으로 측정한 이유가 있을 텐데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 이유를 못 찾는
건가.

-ㅋㅋㅋㅋ미슐랭 쓰리스타 깜냥은 아닌 것 같음.

반유현의 말에 동조되어 ‘주몽’을 어떻게든 깎아내려는 식이었다.

-엥? 사람들 왜 그러지, 레벨 0 의 수준은 아닌 것 같던데.

당연하게도 레벨 0 이 이상함을 감지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주 극소수였다.

그리고 그때 반유현이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다.


[ 반유현 “전채요리만 맛봤다. 그래서, 0 레벨.” ]

-전채요리만 맛보고 가치가 없다 판단한 건가?ㅋㅋㅋㅋ

-전채요리부터 0 레벨 수준이라는 거 아닌가?

반유현의 말에 의해 근거 없는 추측들은 계속해서 생겨났고.

레스토랑 ‘주몽’은 역사에 유례없던 위기를 맞이했다.

***

“미슐랭 스타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각각 레스토랑 ‘반유현’에 있는 지휘급 셰프들의 말을


따르면 미슐랭 평가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모두 다녀갔습니다.”

“이제 다 끝난 건가.”

“끝……나다니요?”

“아니야.”

“은퇴라도 하신다는…….”

“됐고, 레스토랑 주몽에서는 뭐래.”

내가 말을 끊자, 오스틴은 헛기침을 몇 번 한 뒤에 보고를 시작했다.

“창업자이자, 오너 셰프 고민욱의 아버지인 고광수가 직접 설욕할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맛을


평가하는 데 적극 협조를 하겠다고…….”

대중들의 무차별한 물어뜯기에, 더 이상 방안이 없던 그들은 대놓고 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특히나, 나를 내쫓았던 그의 아들, 고민욱은 A4 용지 네 장 분량의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 존경하는 반유현 셰프님, 죄송합니다. ……중략…… 모든 것을 인정합니다. ……중략…… 저는 욕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셰프의 자세가 무엇인지 가르침을 주신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

“사람들은 다……. 똑같지.”

레벨 0 을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들이 일궈온 레스토랑이 망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던 탓에 그들은


태도를 달리했다.

“사실, 다 먹어보지 않아도 그 수준을 알 수 있기는 한데.”

이미 마음속에 그 레스토랑의 수준은 정해졌다.

전채요리만 먹어봐도 그 셰프가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이 선다.

재료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그 재료의 맛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은 그 셰프의 요리 몇 가지만 짧게


먹어봐도 알 수 있다.

“예?”

현실적으로는 그런 능력이 이해가 될 리가 없으니 오스틴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대다수의 셰프들, 대중들도 그런 능력을 이해할 수 없으니 나는 고민해야 했다.

“가서 평가를 해줘야 돼 말아야 돼.”

두 가지 고민이었다.

싸가지없는 태도로 일관한 녀석에게 혼쭐을 내준다는 것과, 반유현 레벨의 안정화를 위해 다시 그
레스토랑에 방문해 평가를 내린다는 것.

물론, 고민은 아주 짧게 끝났다.

“반유현, 레벨이 수정되는 것만으로도 신뢰가 떨어질 수 있어.”

반유현 레벨의 평가 기간은 미슐랭처럼 1 년에 한 번으로 정해져 있으니, 1 년 뒤의 평가를 받게 할


생각이었다.

얄짤 없는 나의 태도에, 방문이 예정된 다른 레스토랑들은 긴장할 것이다.

***

나는 한국에 약 한 달간 더 머물러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의 주요 레스토랑에 ‘반유현 레벨’을 평가하기 위함이었으며, 레스토랑 ‘반유현’의 맛의


수준을 한 층 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 계획대로 그렇게 되었군요 셰프님.”

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오스틴을 바라봤다.

이전에 내가 했던 말처럼,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내가 제시한 맛의 기준을 따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셰프, 또는 요리 전공이 아닌 그가 느낄 정도라면, 이는 일반인들에게도 명확히 보이는 것이었다.

“라인이라고 불러 나는.”

“라인이요?”

서울에 위치한 퓨전 한식 레스토랑인 ‘고하드’가 반유현 레벨 6 을 달성하자 셰프들은 그 맛의 ‘라인’


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라인을 따라 했다는 것은, 그 레시피를 따라 한다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각각의 요리마다 재료와 그에 곁들여지는 소스가 다르지만, 그 간의 세기나, 재료 본연의 맛이 올라오는


정도가 라인인 것이다.

맛은 각각이 다르지만, 그 맛들을 관통하는 정도는 비슷한 것.

반유현 레벨이 평가 예정된 레스토랑의, 맛의 라인들이 모두 레벨을 높게 받은 레스토랑의 것을


따라간다는 소문이 세간에 돌기 시작했다.

“대체로 비슷하다고 느껴졌던 것이…….”

그에 따라 미슐랭 투스타임에도 레벨 6 을 달성한 ‘고하드’라는 레스토랑은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미슐랭 쓰리스타의 레스토랑이 레벨 5 를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이는 미슐랭의 시스템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둘째로 요리나 맛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반유현 - 프리미엄’을 제외한 현재
최고 레벨의 레스토랑의 요리를 먹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 자체는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미슐랭 스타 시상식은 1 년에 한 번 정해져 있어, 그것을 기다리는 셰프들이 애태우는데, 셰프님께서


고안한 반유현 레벨은 곧장 그 결과가 나오니, 레스토랑들도 수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발명한 ‘반유현 레벨’은 곧장, 그 결과를 발표한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시스템이자 방법이었다.

다른 셰프나 미식가들이 하루도 채 안 되어서 맛을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공신력이나 신뢰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나는 100 년을 넘게 요리를 해온 사람이다.

맛을 보면 머릿속에 그 수준이 정확히 그려진다.

애초에 ‘반유현 레벨’은 현시대에 나와 있는 그 어떤 미식 지침서가 따라 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갖추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들은 하루아침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맛을 향유하는 대중들에게도, 그들이 즐길 거리가 하루가 지날수록 많아지는 것이었다.

이제 레스토랑 ‘반유현’의 예약을 기다리거나, ‘반유현’의 런칭을 기다리는 것보다 ‘반유현’이


인정한 맛집을 찾게 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자, 자연스럽게 바로 다다음주에 예정되어 있는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


대한 관심이 고스란히 ‘반유현 레벨’로 이동했다.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파리 ]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런던 ]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뉴욕 ]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라스베이거스 ]

[ 미슐랭 스타 시상식 2021 초대권 - 서울 ]

“100 년이 넘는 역사를 지켜온 이런, 구시대적인 종이 초대장이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스틴이 나에게 미슐랭 스타 시상식 초대권을 내밀며 말했다.

“수치로 따지면 94 퍼센트. 미슐랭 초대권을 받은 레스토랑의 94 퍼센트가 반유현 셰프님의 방문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반유현 셰프님의 방문을 거절하는 셰프가 없군요.”

199 화. 끝판왕 (5)

“자……. 오늘은 저도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도 많은 기대를 하실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세계적으로도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니시고,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한…… 요리사. 반유현
셰프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나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 그리고 그와 연결된 모니터, 또 실제로 시청자들에게 방영되고 있는 화면이


내게 보였다.

시청자들에게 방영되고 있는 화면에는 나의 모습 오른편에 수많은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 세계 최초, 레스토랑 두 곳에서 미슐랭 스타 동시 수상 ]

[ 세계 최연소 미슐랭 스타 수상 ]

[ 프랑스 파리,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셰프. ]

[ 뉴욕 타임스, 세계적인 리더 top 100. ]

[ 프랑스, 세계 최초, 최연소 MOF 요리, 제빵 분야 동시 수상. ]

……

[ 경영석학들의 연구 사례 1 위. ]

[ 미슐랭 23 스타. ]

“하하하! 네, 지금, 반유현 셰프님에 대한 이력들이 시청자분들께 자막으로 보여지고 있는데요. 원래는
제가 친절히 읽어드리는데, 생방송 시간상, 간략히 생략하겠습니다.”

JABC, 대한민국에 영향력 있는 방송사 중 하나로, 그 채널의 아홉 시 뉴스에서 올 한해 가장 영향력이


있던 인물을 섭외해 앵커와 인터뷰를 나누는 코너가 있었다.

앵커이자, 이 방송국의 사장이기도 한 손국희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요약하자면……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이곳에 출연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반유현 레벨’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결국 전 세계의 셰프들에게 새로운 맛의 기준을 제시하는 미식 지침서를 만드는 것은, 그 미식 지침서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중들이 찾는 맛을 정리해둔 지침서에 따라 셰프들도 그 맛을 따라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께 항상 드리는 질문인데요. 어디서, 어떤 식으로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진부한 얘기기도 하지만, 제가 경험한 순간들을 기반으로 영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네…… 스읍. 경험이라…… 어떻게 보면 시청자분들에게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30 살도


되지 않은 파릇한 셰프님께서 경험이라는 게…… 전혀 비하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영감의 비법을
경험이라고 하신다면, 60 살, 70 살의 셰프들이 영감을 더 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100 년을 살아왔기에, 그간의 경험을 통한 영감이 많았었다.

그 긴 경험으로 지금 생에 접하는 모든 것들에서 남들과는 깊이가 달랐으니까.

진심을 말했지만, 손국희는 진짜, 진심이 무엇이냐는 듯이 역시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온다.

“100 년을 산 것 같은 경험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

“오…….”

감탄을 내뱉던 손국희는 내 답변을 짧게 정리했다.

“타고났다…… 라고 말씀을 하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촬영 스태프, 작가, 손국희까지 외마디 탄성을 내뱉는 입모양을 했다.

저마다 감탄을 하는 표정이었다.

“이야……. 시청자분들은 안 보이시겠지만, 지금 우리 스텝들도 반유현 셰프님의 기운에 놀란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뭔가 대단한 기운이 풍겨져 나오는 듯합니다. 제 경험상 대개 이 자리에
나오시는 분들이 이런 기운을 가지고 계셨는데,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왠지 모를 나의 기세를 칭찬하곤, 다음의 멘트를 이어나갔다.

“반유현 레벨, 이라는 시스템을 만드셨고 이 시스템이 세계적인 맛의 지침서가 되길 원하신다구요?”

이 질문은, 내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반유현 레벨’에 관련한 이야기를 주된 질문으로 삼아 달라는 나의 주문을 따른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논란도 많고, 이슈도 많습니다. 마냥 좋지 않게 보는 시선들도 있고요.”

“제가 요리 대회에 출전할 때나,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나,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할 때, MOF 에 두 부문에
출전할 때, 축제를 기획할 때 논란은 항상 있었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이고, 저는
이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감사하다? 왜 그렇습니까?”

“알아서 마케팅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어느 시점부터,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움직이는 것, 그 자체가 마케팅이 되었으니까요.”

“하하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셰프님. 조금 생각을 해보면, 그 말씀은 시청자분들께서도 납득을


하실 것 같습니다. 반유현 세프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게 이슈가 된 것을 보면요.”

그 뒤로도, 반유현 레벨에 관한 질문이 계속되었다.

“반유현 레벨의 평가는 반유현 셰프님 혼자서 하시는 건데, 오히려 그래서 논란이 큰 것 같습니다. 한
명의 셰프 혼자 맛을 보고 써내려간 ‘블로그’라고 폄하하는 세력들도 있구요.”

“그들이 생각하는 발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저 혼자 평가하는 지침서


인지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미식 지침서를 만드는 게 제
목적이기에, 그리고 그 지침서는 전 세계 셰프들에게 맛의 기준을 알려주는 교과서를 만드는 게
목적이기에……. 지금은 그런 논란이 있지만 제 의도에 따라 몇 년간 데이터가 쌓이면 저를 폄하하는
세력들도 알게 될 겁니다. 이만한 지침서가 없다는 것을요.”

흔들림 없이, 모든 질문에 답하자 손국희는 조금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앵커라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이 방송사의 사장이고 책임자로서, 시청률 또한 그가 책임져야 할


몫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나의 한국 방송사 출연 자체가 엄청난 이슈였기에, 이건 절호의 찬스였다.

“반유현 레벨 대 미슐랭 스타, 그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무조건 반유현 레벨입니다.”

이제 곧, 미슐랭 스타 시상식이 열린다.

나의 계획대로 나는 미슐랭 30 스타를 얻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내가 이 몸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몸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게 된다면, ‘반유현 레벨’에 관한 일을 계속할 것이고 ‘반유현 팩토리’
로 셰프들을 계속 양성시킬 것이니, 반드시 내가 그리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모든 요리, 맛, 현생에 셰프들과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몇 차원 높은 나의 기준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나 자체가 요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날이.

“아마,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 초대권을 받으셨을 텐데, 그럼 앞으로는 이제


그것들이 필요 없어진다는 말씀이기도 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분이 오셨습니다. 음…… 그래서, 반유현 레벨은 전 세계 셰프들,


그리고 맛을 찾는 대중들에게 완벽한 미식 지침서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앞에서 PD 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시간이 얼마 없음을 나타내자 손국희가 멘트를 정리한다.

“오늘 말씀 정말 감사하구요. 며칠 뒤에 있을, 미슐랭 스타 시상식에서 30 스타를 꼭 달성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그 또한 세계 최초 동시 미슐랭 스타 수상에, 최연소 30 스타겠군요.”

***

[ 대한민국 서울, 2021 미슐랭 스타 시상식 ]

미슐랭 시상식은 도시마다, 날짜가 다르거나 같았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시상식이 있는 날이었는데, 뉴욕과 그 날짜가 겹쳤다.

“영광입니다 반유현 셰프님.”

그레이스 할린 호텔.

5 성급 호텔의 연회장이 시상식의 무대로 꾸며졌는데, 이미 수많은 셰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기자들과 수많은 팬들처럼, 그들과 똑같은 모양새로 나를 반겼다.

“축하드립니다 반유현 셰프님. 벌써 이번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하하하하! 이 사람아 그렇게 아부성 멘트는 반유현 셰프님께서 싫어하신다고.”

얼굴이나,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셰프들, 또는 이름과 얼굴도 모르는 셰프들이 한 곳에 섞여


있었다.

“뵙고 싶었습니다 셰프님. 이따가 사진이라도 한번…….”

“안녕하십니까! 셰프님! 이형석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미슐랭 투스타를 보유…….”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손을 내미는 셰프들이 있는가 하면.

“셰프님! 제가 개발한 떡갈비 소스인데요! 이거 한 번만…….”

자신이 개발한 소스를 먹고 평가를 해달라 하는 셰프들도 있었다.

그나마, 이 자리에 있는 셰프들은 모두 미슐랭 스타를 보유했거나, 오늘부로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될


셰프들이었는데 체통을 지키지 않고 나에게 이렇듯 대우하는 것을 보니 새삼 다시 느꼈다.

이들에 대한 나의 존재감을.

“셰프님, 제가 와인과 위스키를 살짝 섞어…….”

나는 그들의 질문과 물음에 미소만을 띠고 내 자리로 갔다.

내 자리라 함은 공손한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셰프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모인 셰프들 중에서도 탑급의 셰프들이 모여있는 곳.

특급호텔의 셰프들, 오래부터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던 셰프들, 대한민국이 한식 장인이라 불리며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셰프들…… 등 각종 특별한 이력을 가진 셰프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회장님.”

반유현 팩토리의 서울 캠퍼스 교수진으로 채용된 이들이었다.

이들은 나에게 질문과 관심 세례를 퍼붓는 대신에 공손했다.

내가 자신들이 소속된 브랜드의 수장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으로 뽑힌 이들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했던 건, 내가 이들의 무리에 섞여들자


나에게 진한 관심을 보이던 셰프들도 멀리 나가떨어졌다.

내가 연예인 같은 존재이기에, 나에게 순간 무례함을 저지를 수도 있었겠지만, 나와 함께 이곳에 모인


반유현 팩토리 서울 캠퍼스의 교수진들은 실제로 자신들의 밥그릇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진들의 눈빛 아래에, 사진을 부탁하는 셰프도, 자신이 만들어온 요리를 내미는 셰프들도 없어졌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레스토랑 ‘반유현’의 셰프들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이태원, 강남에 존재한 레스토랑 ‘반유현’을 운영하는 셰프들이었다.


“어머니, 오늘 준비되셨나요?”

미슐랭 투스타, ‘반유현 - 펌킨’을 운영하는 나의 어머니도 함께 자리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미슐랭 아시아 태평앙 지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반유현 셰프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가 초대된 많고 많은 시상식 중에서, 서울에 방문해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였다.

오늘은 뉴욕과, 서울 두 곳에서 미슐랭 시상식이 열리는데, 뉴욕지부와 서울지부가 서로 날 사로잡기


위해 눈치싸움을 했다고 했다.

미슐랭 스타를 수여하는 그 기관에서도 일개 셰프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는 것 아니겠나.

이건 또 다른 이유였다.

‘반유현 레벨이 새로운 미식의 지침서가 될 것이라는.’

100 년을 이놈들의 평가에 갈아 넣었는데, 그 목표를 다 달성할 때가 되어가니 이놈들도 별것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 심박수는 빨라졌다. 오늘, 그리고 내일.

나는 내 100 년 인생의 종착지인 미슐랭 30 스타를 얻게 되니까.

200 화. 끝판왕 (6) 완결

시상식이 시작되었고, 올해 미슐랭 원스타를 얻게 된 셰프들이 다 같이 모여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미슐랭 투스타와 쓰리스타를 얻게 될 셰프들이 호명될 예정이었다.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곤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있는 셰프들, 이미 포기했다는 듯 초연한 자세를 하고


있는 셰프들, 미슐랭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고고한 예술가라도 된 양 다른 셰프들과 잡담을 나누는
셰프들 등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름과 레스토랑이 호명되길 기다리는 셰프들이었다.

“자, 다음으로는 미슐랭 투스타…….”

시상식 무대 위 미슐랭 원스타를 수여 받은 셰프들의 기념 촬영이 끝나고 그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갈 때,


사회자가 말했다.

우와아아아아!

미슐랭 투스타를 받았다는 기쁨을 표현하는 셰프들, 그리고 그들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이렇듯 미슐랭 한 개, 두 개를 얻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는 꿈이고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저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술을 앙 다물고 있는 내 표정을 보곤, 나의 마음을 이해했다는 듯이 오스틴이 말했다.

그도 나의 행보와 내 레스토랑들이 미슐랭 스타를 쓸어 담는 것을 보곤 미슐랭이 셰프들의 꿈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셰프님…… 그런데, 정말 은퇴하실 겁니까?”

은퇴라.

사실 지금으로선 나도 저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서울과 뉴욕은 오늘, 라스베이거스와 파리는 내일 시상식이 열린다.

즉, 나는 내일이면 미슐랭 30 스타를 얻게 되는데, 미션을 달성한 뒤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스틴의 말을 듣고는 그 뒤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심박수가 올라갔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경험이었다. 실제 미션이 끝날 생각을 하니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몰라.”

“예?”

내 입에서 ‘몰라’라는 다소 무책임한 말이 나온 것에 대해 오스틴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씨익 웃어 보이곤, 오스틴을 바라봤다.

“지금 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장 내에서 울려펴졌다.

“올해의…… 마지막 미슐랭 투스타, 김정식 셰프님의 하이어 키친입니다!”

우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

함성소리가 그 어떤 셰프들이 호명될 때보다 컸다.

‘김정식 셰프?’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해, 그의 이름을 떠올려봤다.

그런데, 김정식 셰프라는 사람 때문에 함성이 컸던 것이 아니었다.

“반유현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이 원스타, 투스타를 수여하는 차례에서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 전부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네요.”

나의 이름이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를 수여하는 차례에서 나오지 않아 대한민국에 위치한 모든 레스토랑
‘반유현’이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측 덕분에 함성 소리가 컸던 것이다.
그만큼이나 사람들은 나에게 확신이 있었다.

즉, 김정식 셰프가 미슐랭 투스타를 수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함성소리였다는 것.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들은 나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저 셰프의 가장 기쁜 순간을 빼앗아 갔다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정식 셰프님.”

“감사합니다 반유현 셰프님, 대한민국에 미슐랭이 도입된 이후, 최초로 모든 레스토랑에서 쓰리스타를
달성하셨네요.”

김정식 셰프마저도, 나를 향해 박수를 치니 이 장소에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빠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저…… 미슐랭 쓰리스타를 발표하겠습니다.”

사회자는 결과가 이미 밝혀졌다는 것을 알고는, 멋쩍은 표정으로 미슐랭 쓰리스타를 발표하였다.

***

[ 반유현 은퇴 5 주년! ]

[ 5 년간 잠적한 그를 찾는 전 세계 사람들! ]

[ 반유현을 보고 싶다! 5 년간 울부짖는 팬들! ]

[ 팬들에 대한 예의인가. ]

[ 반유현,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 약속을 언제 지킬 것인가. ]

정확히 5 년이 되는 날이었다.

5 년 전, 미슐랭 스타 시상식 라스베이거스와 파리를 끝으로 반유현은 총 38 개의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되었다.

이는 세계 최대의 기록이었다.

그 어떤 셰프도, 반유현이 은퇴 한 5 년의 기간 동안 이 기록을 깨지 못했다.

아니,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고 할 정도로, 반유현이 세운 기록은 말 그대로 전설적이었다.

반유현이 가진 모든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미슐랭 쓰리스타를 얻었고, 코스 형식으로 구성되지 않은


메뉴를 취급하던 레스토랑 ‘반유현’도 미슐랭 원스타 이상을 얻게 되었다.

심지어, 그가 직접 메뉴를 개발해주거나 레시피를 수정해준 ‘반`s 키친’에 가맹된 레스토랑들도 심심치
않게 미슐랭 스타를 얻었으니, 그가 받은 미슐랭 스타를 비공식적으로 헤아려보면 훨씬 많은 별을 모았을
것이다.

그가 전설로 불리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은퇴를 선언하는 당시, 자신이 받은 미슐랭 스타를 모두 반납하겠노라고 말했다.

자신의 브랜드 산하에 있는 모든 레스토랑에 미슐랭 스타 평가원의 방문을 거절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에, 미슐랭 스타를 평가하는 미슐랭 가이드는 반유현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애걸복걸했다.

그가, 자신들의 평가에 높은 권위를 가져다주는 인물 그 자체임을 알았고, 반유현이 미슐랭 평가를
거절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대부분의 셰프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아 가는 만큼, 미슐랭에는 그의 존재가 매우 무거웠다.

“최민성, 너 반유현 셰프님 성대모사 잘하잖아. 큭큭.”

로또 육인방을 비롯한, 포시즌스 호텔의 세프들, 알베르, 마츠노, 윤종혁…….

반유현을 따랐던 지휘급 셰프들이 모두 모였다.

반유현이 은퇴를 선언한 뒤로부터는, 매년 그 날에 다 같이 그를 기억하게 모이는 자리였다.

“여기 있는 모두, 반유현 셰프님을 그렇게나 보고 싶어 하는데, 한번 해봐. 성대모사 좀.”

제리가 최민성에게 말하자, 최민성은 곧장 목을 가다듬더니, 반유현이 은퇴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크흠! 미슐랭 38 스타…… 셰프들과 팬들이 헤아려준 비공식을 따지면 50 스타? 크흠! 오늘부로 은퇴를
선언하겠습니다.”

최민성이 반유현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에서, 그가 했던 말의 어느 정도를 덜어내기도 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그 당시의 충격이 다시금 떠오른 듯,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또한, 제가 그간 받은 모든 미슐랭 스타를 반납하겠습니다.”

충격이었다.

반유현이 저 말을 뱉었을 때는, 이곳에 모인 최측근 셰프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었다.

시대를 앞지른 맛의 수준을 보여주며 그 한계를 항상 돌파하던 셰프의 은퇴 선언이라니.

전 세계 사람들에겐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죽을 것만 같이 슬펐다.

“대신, 제 이름 아래에 있는, 전 세계 모든 레스토랑 ‘반유현’에 ‘반유현 레벨’을 부여하겠습니다.”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반유현은 전 세계 셰프들에게 숙제를 내렸었다.

“그것을 기준 삼아, 전 세계 모든 맛의 수준이 올라갔을 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맛의


기준을 제시하겠습니다. 그간 저와 저의 요리를 좋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저는
언젠가 돌아오겠습니다…….”

반유현의 그 말.

이곳에 모인 레스토랑 반유현의 지휘급 셰프들은 자신들의 전 세계 맛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


누구보다 더 노력했다.

또, 반유현이 자신들에게 내려준 ‘레벨’을, 반유현이 다시 돌아올 때는 훨씬 더 올려놓겠다는


반유현과의 약속도 있었다.

그에 따라 레스토랑 ‘반유현’은 반유현이 떠나갔어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

어쩌면 반유현은, 본인이 없어도 본인의 뜻을 이어갈 셰프들만을 지휘급 셰프에 앉혔는지도 모른다는 말이
세간에 떠돌 정도로 셰프들은 하나같이 뜻을 모았었다.

“세상이 정말 변했어. 그게 우리 덕이라는 생각을…… 감히 하기도 해.”


“감히? 나는 무조건 우리가 전 세계 맛을 끌어 올렸다고 생각해.”

“그게 반유현 셰프님이 원했던 것이고. 반유현 셰프님은 본인이 맛의 기준이 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으니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이 높은 맛을 향유하고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까.”

5 년이 지난 지금은, ‘셰프’라는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맛’의 수준에 더욱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시대가 왔다.

그에 따라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요리로 얻는 신선한 경험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수준


또한 올라갔다.

정확한 선순환구조. 셰프들은 좋은 요리를 내놓고, 그렇지 못한 셰프는 도태된다.

대중들은 그를 뚜렷하게 구분했다. 물론, 그 모든 기준은 반유현이 은퇴 전 세워둔 잣대에 의해 굴러갔다.

수치만으로 따져도 ‘반유현’의 신념하에 요리를 배우는 ‘반유현 팩토리’의 전 세계 캠퍼스를 모두


합친 졸업생 수가 벌써, 만 명을 넘어섰으니까.

어느 도시가 아니라, 전 세계를 놓고 봐도 그의 영향력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진정 요리의 기준이 되신 건데, 대체 언제 등장하실까……. 여기서 반유현 셰프님과


연락되는 분 아무도 없으시죠?”

메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어나 말했을 때, 최민성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곤 반유현의 성대모사를
했다.

“메이, 정신 안 차려?”

최민성이 메이에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곤 모두가 박장대소했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것들이…… 얼굴 좋은 것 보니까 5 년간 잘 먹고 잘살았나 본데.”

반유현의 등장이었다.

“!!!”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셰프들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눈알 그만 굴려, 눈 빠지면 요리 못하잖아.”

반유현은 특유의 말투를 내뱉곤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

내가 미션을 달성했던 날을 떠올려 보면 그랬다.

[ 미슐랭 스타를 획득했습니다! +3 ]

[ 미슐랭 스타를 획득했습니다! +1 ]


[ 미슐랭 스타를 획득했습니다! +3 ]

…….

[ 미션 달성! 미슐랭 30 스타를 얻었습니다. ]

그 글귀가 떠오르곤 100 년 동안 경험해 본 적 없는 느낌이 나를 감쌌다.

마약? 대마초? 어떤 것으로도 묘사할 수 없는 황홀한 기분이었다.

인생 동안 경험해본 적 없는 요리를 먹는다 하더라도 그때의 기분을 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황홀한 경험에 싸여 나는 현실과 단절된 어떤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제,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첫 번째 삶, 미션이 처음 주어졌을 때, 일식 장인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애걸복걸했던 기억들.

-최고의 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삶, 환생하자마자 사람들에게 요리를 선보였던 기억.

-이번엔 꼭 해야 돼. 할 수 있다!

세 번째 삶, 드디어 미션을 깰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가졌다 생각하고 처음 환생했을 때의 기억.

-씨발, 미션을 깰 수 없는 것인가. 자살하면 어떻게 되지?

네 번째 삶, 세 번의 실패에 좌절했을 때의 경험.

-최연소,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요리사지만…….

다섯 번째 삶, 대단한 타이틀을 가졌음에도 미션을 달성하지 못했던 그 때의 기억.

-유현아 순대 좀 썰어줘라!

여섯 번째 삶, 반유현이라는 몸으로 이 삶을 시작했을 당시의 기억.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기억들이 모두 끝났을 때에는 또 다른 글귀가 떠올랐다.

[ 미션을 종료합니다. ]

[ 미션의 보상으로 선택지를 드립니다. ]

[ 1. ‘반유현’ 태아로 회귀(26 년 전으로 회귀) ]

[ 2. 지금 이대로의 삶 계속 살기 ]

“회귀랑, 지금 이대로 사는 거?”

미션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인생을 꾸려갈 시간을 준다는 것과…….


지금까지 만들어 낸 성취와 성과를 온전히 누리는 것…….

“까고 있네.”

고민은 짧았다.

“지금까지 개고생했는데, 뭘 또 살아. 난 더 이상 머리 굴리면서 치열하게 살 자신 없어.”

시간을 돌려 이 몸의 태아로 돌아가면 나는 분명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할 것이다.

100 년간 산 연륜과 이번 생에서 반유현의 몸으로 경험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있으니까.

그런데, 싫다.

내가 살아왔던 삶보다 열심히 살 수가 없다. 여태까지 모든 것을 갈아 넣었다.

“계속 살 거야 이 몸으로. 그리고…… 편하게, 편하게 계속 살다가, 그냥 뒤질래.”

진짜 노력, 진짜 치열한 싸움을 해본 사람만이 지금 내 감정에 공감할 것이다.

표현은 거칠지만, 편하게 편하게 살다가 그냥 뒤지겠다는 내 말에…….

어쩌면 100 년의 인생 동안 그게 꿈이기도 했다.

[ 현재의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

[ 행운을 빕니다. ]

그렇게 나는 지금의 삶을 선택했고, 5 년간 멕시코 칸쿤, 쿠바 등, 대한민국과 다소 가깝지 않은


휴양지에 아주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어 휴식을 취했다.

그때 많은 고민을 했었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할지.

그리고 5 년의 긴 시간을 고민한 뒤에 돌아왔다.

“울긴 왜 우냐.”

내 앞에 셰프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어, 어떻게…… 셰프님……!”

“흐아아아앙!”

긴 시간 동안 했던 고민의 끝은 명확했다.

“다시 시작이야.”

셰프들의 울음과 환호 소리가 섞여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게 아니면, 재미가 없었어. 사람들에게 요리로 신선한 경험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거…… 이게
가장 재밌고 보람찬 일이었다.”

모든 셰프들이 나에게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레스토랑 반유현의, 반유현 레벨부터 재평가해야겠어. 5 년 동안 수준이 얼마나 올랐는지.”


내가 소매를 걷자, 셰프들은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는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긴장한 표정을 보였다.

5 년이 지났어도 내가 요리를 시작하는 신호인, 소매를 걷는 것을 저들의 몸이 기억하고 있던 탓이었다.

“전 세계를 또 한 번 호령한다. 레스토랑 반유현 준비됐냐.”

““예!!! 셰프!””

그 어느 때보다 큰 함성이 주방을 울렸다.

[ 반유현의 복귀! 반유현 사단 셰프들 신속히 움직여! ]

[ 브랜드 반유현, 반유현의 복귀만으로 기업가치 2 배 상승 ]

[ 수많은 팬들, 반유현 환영식 준비 중! ]

[ 뉴욕, 라스베이거스,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 전광판에 걸리는 글귀들! 반유현 사랑해! ]

[ 왕의 귀환! ]

[ 전설이 말하다. “새로운 역사를 또 한 번 만들 것.” ]

[ 전 세계 요식 업계, 그의 등장만으로도 긴장. ]

[ 과거 반유현 팀의 수장이었던, 오스틴, 곧장 파리로 복귀 중. ]

…….

“미슐랭…… 이제 그딴 허울은 없고 오직, 가장 높은 수준의 맛을 찾는 것에만 몰두한다.”

““예!!! 셰프!””

이제는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는 이 셰프들도 전부 세계적인 셰프들이 되었지만.

나를 향한 충성은 변함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군단과 다시 한번 전 세계 사람들에게 행복을 불어넣어 줄 생각에 매우 설렜다.

-<100 년 묵은 탑셰프>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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