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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묵은 탑 셰프 1-200 (完) (판타지)
100년 묵은 탑 셰프 1-200 (完) (판타지)
“미슐랭 스타 말고도 제이미 씨의 이력은 대본에 한가득 쓰여 있네요. 프랑스 최고의 장인에게 수여되는
칭호 MOF, 대영제국훈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 직접 집필하신 요리책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고…….
뭐, 그냥 잘나가는 요리사라고 하고 넘어갈까요?”
물론, 그런 이력들을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이미의 명성은 알고 있을 터였지만.
“네, 그러시죠.”
“미슐랭 스타에 관련된 이야기를 시청자분들께 해주실래요? 저희가 계속해서 미슐랭 스타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을 모르는 시청자분들도 계실 것 같거든요.”
진행자는 제이미를 당해낼 수 없다는 식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멘트를 이어나갔다.
“있는 그대로 설명 드리자면, 미슐랭 1 스타는 같은 종류의 식당들 사이에서 뛰어난 요리를 선보이는 집,
2 스타는 가던 길에서 차를 돌릴 정도로 훌륭한 요리를 선보이는 집, 3 스타는 그 요리를 먹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을 집입니다.”
“그런 것 말고, 시청자분들은 피부에 와 닿는 설명을 원하실 것 같은데요?”
와아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슐랭 스타의 공정성과 익명성은
무려 110 년이나 지속되어왔습니다. 110 여 년 간 공정성과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았더라면, 그 긴 역사를
유지할 수 없었겠죠.”
“아, 세계 최고의 요리사라는 권위를 가졌음에도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것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렇습니다.”
제이미 정도의 재력과 요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미슐랭 스타를 얻기 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재력과 영향력, 명성과 그 권위는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 환생 4 분 32 초 전. ]
‘후.’
“흠. 네. 어떤 음식이죠?”
[ 환생 3 분 11 초 전. ]
[ 미슐랭 스타 : 21 개 ]
털썩.
***
[ 미슐랭 스타 30 개를 받아라. ]
[ 20 년이 주어졌습니다. ]
[ 미슐랭 스타 30 개를 받아라. ]
‘이번엔 성공한다…….’
모든 것을 잃고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는 씁쓸함을 느끼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단, 차라리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후.’
“유현아, 순대 간 좀 썰어줄래?”
***
‘매운 떡볶이…….’
바로 이전의 삶에는 영국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요리사로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쉽지 않은 환경이다.
어떻게 해야 주변 환경을 바꾸고 효과적으로 미션을 달성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중에, 나에게 곧바로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다.
살집이 제법 있는, 중년의 남자가 사람들을 대거 거느리고 들어와 어머니를 앉혀놓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백원종의 골목가게.
“내가 이번 주까지 결정하랬지! 공부할 거면 제대로 공부만 혀. 어머니 방해하지 말고, 가게에 발도
들이지 마! 방송 타서 손님 많아지면 계산대 앉아서 놀고먹고 하려고?”
“유현아…….”
작은 모니터에 비치는 반유현, 일명 ‘분식집 아들’의 모습에 이성주와 정사랑은 놀라움의 감탄을 보냈다.
그들과 반대로 옆에 있던 백원종은 아직 자신이 기대한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식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메뉴를 두 가지로 줄였습니다. 떡볶이, 튀김, 순대를 다 빼버리고 라면하고 계란 볶음밥 두
가지로요.”
“순대는 맛있었는데…….”
“자! 분식집 아들에게 내주었던, 숙제이자! 오늘의 미션입니다! 과연! 일주일 동안 메뉴를 뽑는
숙련도를 얼마나 키워놨을지!”
진행자인 이성주의 말대로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분식집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뭐야?”
“와! 저 대파 써는 것 좀 보세요!”
“불을 올려놓고 중간에 대파를 썰고 있습니다! 저 여유를 보세요! 분식집 아들! 대체 일주일 만에 어떤
일이 있던 겁니까! 이게 백원종 대표의 특급 솔루션인가요!”
화면 속의 반유현은 메뉴를 만들어내는 숙련도뿐만 아니라, 가르쳐 주지도 않은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간단하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의 식감을 살리는 세밀함은 저 분식집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고, 빠르게 낼 수 있는 요리를 가르쳤었는데 분식집 아들인 반유현의 행동을 보면 어딘가 이상했다.
“감독님 잠깐 나 좀 봐유.”
정령, 반유현이 방송을 위해 실력을 숨기고, 부모님 등골 빼먹는 철없는 캐릭터를 거짓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당장 하차를 한다 해도 말릴 사람이 없을 터.
“유현아…… 너, 대체…….”
“겹쳐?”
“라면의 간도 짜고, 간장 베이스인 계란 볶음밥도 간하고 불 맛이 합쳐지면, 혀가 쉴 틈이 없죠. 그리고
볶음밥을 제 방식으로 만든다면 불 맛을 굳이 내지 않아도 되니,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습니다.”
***
[ 미슐랭 스타 : 0 개 ]
돈은 미슐랭 스타를 얻기 위한 시간을 줄이는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더 강력한 무기는 셰프로서의
이름값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유명호텔의 총괄 셰프, 이미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셰프 등 명망 높은 셰프들은 돈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대한민국의 케이블 방송사인 ‘TVM’이 정식으로 판권을 수입해 제목에 ‘코리아’를 붙여 제작을 진행
중에 있었고,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광고가 수많은 매체에서 뿌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스토리도 좋잖아요.”
“그래, 스토리도 좋지, 못난 철부지 아들이 정신 차려서 어머니 분식집 살려내고, 어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최종목표는 미슐랭이며, 그 첫걸음으로 ‘ACK’에 지원했다!
죽여주네, 스토리.”
“이미 팬덤도 생긴 것 같던데, 유현이 이용해서 프로그램 이슈화도 한번 하시고요. 분식집의 장사는 계속
잘되더라도, 사실 유현이 인기가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인기라는 게 원래 거품이라는 거, 선배가 제일 잘
알잖아요? 유현이는 방송 타서 좋고, 선배는 프로그램 이슈화할 수 있어서 좋고.”
“아…….”
“그렇지, 요리 대회 수상.”
“뭐, 그 정돈 해줘야지. 깍듯한 후배님의 부탁이기도 하고, 그 친구를 섭외하고 싶은 내 마음도 있으니까.
흠, 근데 요리 대회에서 수상은 할 수 있으려나, 그 친구?”
***
-서울시 요리 대회.
‘셰퍼드 파이.’
‘많이도 해먹었었지.’
어머니가 백원종 대표의 레시피와 나의 레시피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요리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내 옆에서 조리하는 법에 대해 물어보셨다.
후룩! 치이익!
“와…….”
“맛있어요?”
***
서울시 요리 대회 현장.
“이, 없습니다.”
잭 킴의 말 그대로였다.
“흠. 토마토소스도 기성품을 사용한 게 아니라, 직접 만드신 것 같네요? 토마토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게
……. 참…… 제가 한 수 배우는 느낌이에요.”
“과찬이십니다.”
심사위원들은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멀리서 그들의 주된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얼추 알 수 있었다.
***
“제 14 회 서울시 요리 대회, 여기까지 올라오신 분들은 이미 실력이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124 명 중 31 명.
“재료 공개하겠습니다!”
“오리 주물럭과 오리 백숙만 23 년째 장사해 오신 김해숙 선생님, 가마솥 오리 구이, 볶음으로 수차례
방송을 탔던 ‘감순 오리’를 운영하시는 최감순 선생님. 흠, 뭐 당연히 경력이 오래된 분들이 유리한
점이 있겠지만. 저희는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할 것입니다.”
최훈은 2 라운드의 재료를 오리로 선정함에 따라, 유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른 두 명을 말했다.
4 화. 차원이 다른 맛 (1)
“반유현 씨는 어떤 요리를?”
이들은 기대가 된다는 눈빛들을 보내며, 이것저것 질문하며 나의 조리대에 가까이 모여 있었다.
“같은 요리 일지라도 편견을 깨는 신선한 맛은, 가산점이 부여되는 항목입니다. 그런데,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는 너무나 잘 알려진 요리지요. 편견을 깨는 요리가 쉽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미 당신들의
머리에도 정형화된 맛들이 그려져 있을 텐데.”
이미 정형화된 요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충격은,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내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보면, 아직 경험이 한참 모자란 자 같았다.
뭐, 사람들이 보기에 전 청와대 조리실장한테 경험을 논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100 년을
넘게 요리한 내 앞에선 김성호의 경험을 경험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때, 잭 킴이 다가왔다.
1 라운드에 기대감을 너무 높여둔 탓에, 더 재밌고, 더 신선하고, 더 맛있는 그런 요리를 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비해, 이미 수많은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를 먹어본 저들에겐 나의 선택 자체가 진부했을 것이다.
오직 요리. 상대를 설득시킬 때에는 머리를 숙이고, 몇 마디의 말을 덧붙이는 것보다 나의 요리를 맛보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물론, 요리를 10 년, 20 년 했다고 거들먹거리는 저들에게 내 의도를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은 것도 없지는
않았다.
치이이익!
***
“충격적이네요. 맛이.”
“크흠!”
“과일 소스는 새롭고 편견을 깨는 신선한 맛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이 요리에 비가라드
같은 과일 소스를 부었다면 이 오리에게 울면서 사과를 했을 겁니다. 진부하게 죽여줘서 미안하다고.”
“나머지 상큼함과 알싸함은 곁들여진 부추와 달래로 잡아냈습니다. 겨울을 이기고 나온 봄나물은
은은하면서도 강력한 맛을 냅니다. 풍미를 더하기 위해 당근 퓌레를 약간 곁들였습니다.”
“이야…….”
시식이 끝났을 땐, 모든 심사위원들이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정이나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굽기 정도에 레스팅 시간까지 완벽하게 맞췄군요. 모든 재료의 맛까지, 오리 끝판왕이네. 이건 뭐…….
우리가 평가할 음식이 아닌 것 같아요. 참나. 허허허.”
“어……. 으응?”
“반유현 씨가 가진 그 여유와 자신감은 실력에 기반한 것이군요. 연락처 좀 가르쳐 주세요. 1 라운드의
셰퍼드 파이도 그렇고 이 오리 스테이크의 맛이 평생 생각날 것 같아서, 그냥은 못 보낼 것 같습니다.”
***
환생하자마자 곧장 방송에 출연해 서울시 요리대회라는 기회를 얻고, 그 대회에서 성과를 내 셰프로서의
이름값을 쌓을 수 있는 ACK 에 출연한 것은 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이전의 생에서는 없던
속도였다.
나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ACK 제작팀과 방송사는 언론을 이용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ACK 제작팀은 이미 100 명을 골라낸 예선을 끝난 상황에서, 나머지 100 명을 섭외하는 중이었다.
[ 어메이징 셰프 코리아 감독 김수호 “‘진짜 천재’ 셰프의 합류로 많은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
피곤했다.
잭 킴, 당연히 알고 있었다.
5 화. 차원이 다른 맛 (2)
“반유현이요.”
“반유현 님이요.”
“반유현 씨?”
환생하자마자 ‘골목가게’에 출연했을 때부터, ACK 본선에 섭외되기까지 각종 매체와 SNS 에서는 지겨울
정도로 줄곧 나를 요리 천재라고 말해왔기에,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잘생겼으니까요. 헤헤.”
그런데, 단 한 명.
어떤 요리를 하는지, 그 요리에 담긴 스토리와 맛들은 어떤지, 그 실력이 궁금하다고 잭 킴에게 말했었다.
“예.”
‘나랑 같은 요리네.’
우연의 일치인지, 내가 제출할 요리를 알아낸 것인지, 윤종혁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내가 선보일 요리와
같은, 관자 요리를 꺼냈다.
‘나를 혼내려고?’
***
요리 평가에 있어서 악명 높기로 소문난 그들에게, 엄청난 극찬을 받고 윤종혁의 심사는 끝났다.
“합격입니다.”
“관자 버터구이입니다.”
“관자는 미슐랭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로 쓰이기도 하고, 저렴한 술집의 술안주로 쓰이기도 합니다.
실력과 조리법에 따라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습니다. 본인의 요리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훈의 교포 특유의 발음으로 혀를 굴리며 말했고, 강요한이 건방진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가장 높은 맛의 관자 구이입니다.”
“흠. 와, 이거 뭐야?”
“크레송……?”
“아, 물냉이?”
“관자가 가지고 있는 단맛에 크레송, 한국말로는 물냉이, 그 녀석이 가진 약간의 쓴맛을 첨가해 풍부한
풍미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냉이 버터 소스를 올렸습니다.”
“아…….”
“와…….”
그제서야 입안에서 넘실대는 재료들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충격적이네요.”
“저희가 감히 이런 요리를…….”
“이건 뭐……. 윤종혁 셰프가 제 후배라서 말하는 것도 있지만, 음……. 윤종혁 셰프의 관자 구이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도달…… 해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음……. 맛을 그리는 법부터, 재료의 조화까지
저에게 관자 구이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주셨…….”
***
“아이고, 오랜만이라예!”
오리 장인 김해숙이었다.
“뭐, 나는 오라카면 오고, 가라카면 가는기지! 아아, 진짜 참말로 잘 먹고 있슴니데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달래랑 부추를 곁들인 스테이크예!”
“반유현 씨. 1 라운드 최우수 성적으로 합격하셨습니다. 2 라운드 미션을 선택하실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반유현 씨? 빨리 골라주시죠.”
그래놓고, 내가 미션을 선택하면 주방에선 체력이 중요하다느니 진부한 소리를 해대면서 숨겨진 그 ‘양’
을 말하겠지.
나는 자연스럽게 내 몸을 내려다봤다.
100 년간 쌓아온 지식들은 내 머릿속에 있고, 칼질을 비롯한 재료를 손질하는 동작들도 그나마 이 몸에
익숙하게 만들었지만, 요리에 필요한 ‘근육’들이 형성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
다다다다다!
다다다다!
“어우, 너무 잘하시네.”
그중 한 명은 김해숙이었다.
그녀의 요리를 제대로 맛본 적이 없지만, 칼을 다루는 것과 재료를 다루는 몸놀림에서 그녀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뭐지, 이 아저씬?’
“감이죠, 뭐. 헤.”
다다다다다!
나무랄 것이 없는 실력이었다.
망에서 양파를 꺼낼 때도, 양파를 도마에 올려놓고 자를 때도, 시선은 언제나 정면이거나 천장을
응시했다.
“반유현 씨.”
다다다다다다!
강요한이 말했다.
양파즙이 나올 때, 양파를 써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되어있는 건데, 강요한은 내 메마른 눈을 보고도
핀잔을 줬다.
다다다다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다다다다다다!
눈을 감고 양파를 썰어댔다.
다다다다다다!
내가 칼로 도마를 내려치며 이러한 박자를 만들었을 땐, 억지로 트집을 잡으려 했던 강요한의 지금 표정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
너무 충격을 받았으려나.
이번엔 완급 조절 좀 할 걸 그랬다.
***
“3 라운드는 팀 배틀입니다.”
‘재밌어.’
타고난 능력과 감각이라는 것은, 요리 경력이 없던 내가 신선하고 충격적인 요리를 만들어 내는 걸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테니까.
나의 팀원이 되고 싶은 것이었다.
“김해숙 선생님.”
“최경복 선생님.”
최경복을 선택했다.
“반유현 씨, 팀원들의 경력도 좋지만 앞으로 다양한 미션을 해야 될 테니, 다양한 연배의 팀원을 고르는
것도 좋아 보이네요.”
“윤종혁 씨.”
뿐만 아니라, 요리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계속해서 밟아왔고, 실제로 미슐랭 투스타에서도 일하고 있는
윤종혁은 김해숙과 최경복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보충할 수 있다.
“하.”
‘마음은 여린 놈이군.’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적을 깬 목소리였다.
예쁘장한 그녀의 얼굴은 당당함을 표현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그녀가 많은 긴장을 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민서윤.
“저도요.”
모두 내 팀원이 되고 싶은 이들이었다.
어쨌든 경쟁이 기반인 이 프로그램에서 당연히 저들의 마음속 한 편에는 저런 생각이 있을 것이다.
“우승하기엔 모자란 실력입니다. 그런데 이왕 본선까지 올라온 거 최고의 팀에서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 이미 뽑혀있는 내 팀원들을 바라봤다.
요리에 있어서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이나 영감을 줄 만한 사람은 적어도 이 스튜디오 안에는 없기
때문이다.
***
짧게나마 1, 2 라운드를 거치며 보여줬던 내 실력들이 저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잘 부탁드립니다.”
“예.”
그런데 오히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도제식 교육문화에 익숙하기에 자신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완전하게 허리를 굽힐 줄 안다.
‘언제까지 가려나.’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의 조리장인 그는 정교하진 않더라도 실력의 차이를 가늠할 수준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 수준도 아니라면 애초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팀장님.”
“밀가루입니다.”
“예?”
“에?”
“부, 분식이요?”
“하, 반유현 팀장님!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는 거예요? 저희는 지금 이 대회에 인생을 걸고…….”
“요리 선정에 시간을 쏟기보다, 빠르게 요리를 정하고 어떻게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고민하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이 대회가 끝나기까지 나에게 어려운 상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긴 것인데,
나의 모습이 저들에겐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똑똑한 놈. 효율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일단은 한 수 굽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
“경복 님, 밀가루 냄새를 제거하는 게 관건입니다. 시간상 반죽을 숙성시킬 수도, 다시마 물 같은 것을
쓸 수도 없으니까요. 콩가루를 넣고 반죽을 만들면 밀가루 냄새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타마고야키.”
“맞습니다. 그런데, 계란이 말려있는 형상 말고, 푸딩처럼 부드럽고. 카스테라 형식으로 만드는 게
있습니다. 교쿠라고도 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가볍게 무시했다.
“해숙 님께서는, 전체적으로 필요한 재료들을 손질해주세요. 식당에서 주문을 받듯이 팀원들이 말하는
재료를 손질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떡이 나오면, 떡볶이 소스를 만들어주세요. 고운 고춧가루
사용하시고, 올리고당은 열을 받으면 단맛이 날아가니 물엿 사용하시고요. 미원을 넣기보단, 케첩, 카레
가루, 새우 가루를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제가 맛을 봐드리겠습니다.”
“하이고! 하모 걱정 없습니더!”
치이이익!
나는 당장 그쪽으로 몸을 옮겼다.
“이렇게요.”
“최대한 차가운 물로 튀김 반죽을 만드세요. 바삭한 식감이 포인트입니다. 떡볶이, 계란 김밥과 반대되는
식감이요.”
“맛이 제일 궁금해.”
“다시 하셔야겠습니다.”
***
“이건 진짜, 우리 엄마가 해준 떡볶이보다 맛있다. 이야, 계란 김밥은 진짜 최고여. 하하하! 떡볶이가
이렇게 강력하다니.”
“이 세 개의 요리는 각각의 요리가 아니라 스토리를 갖춘, 하나의 요리인 것 같습니다. 첫 시작을
떡볶이로, 그리고 계란 김밥으로 갔다가 튀김으로. 맛과 식감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감동이고요. 합격입니다.”
“하하하! 역시 우리 팀장님!”
“축하……. 드립니다.”
총 네 팀. 스무 명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맛에 대한 경험이 많을수록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자! 스톱!”
“다음 미션 또한 팀 미션입니다.”
스슥! 스슥!
떡볶이라는 요리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지만, 저런 단순한 요리로 역대급 평가를 받아낸 팀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것이 좋을 사람은 당연히 없을 터.
“레몬즙하고, 레몬껍질을 강판에 갈아서 만든 제스트, 파프리카, 파슬리. 파슬리도 프랑스 파슬리는
아니고, 이탈리안 파슬리에요. 아몬드도 갈아 넣었고…….”
특히나 윤종혁의 태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에게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반유현 씨를 빼겠습니다.”
***
그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매번 주목을 받는 실력자들은 미션에서 한 번쯤 열외를 시켜,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인물들은 새로운 스토리를 화면에 끌어들이고, 그것들은 방송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유현 씨, 떡볶이랑 계란 김밥이랑 튀김은 진짜……. 편안한 강도의 습격이라고 해야 되나? 뭔가에
뒤통수를 맞았지만, 아주 좋았다? 응? 나 뭐라는 거야 진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촤하하하!”
“아, 안녕하십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체 시청률 4.1%.
-와······.
그리고 시간차를 두고 심사위원들의 충격을 즐기며, 여유롭게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반유현 씨요? 이번엔 제가 우습게 봤습니다. 그런데, 맛이란 게 원래는 운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운
좋게, 이것저것을 섞었는데 맛있고 신선한 맛이 탄생할 수도 있는 거죠.
앞으로 방송될 2 화, 3 화에는 윤종혁이 아주 공손한 자세로, 내가 말하는 재료들을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모습이 그려질 텐데.
...
꺄아아악!
“흠.”
명함을 놓고 간 사람들은, 내가 나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하며 밖에서 뛰어다닌 탓에, 나에게
직접 말을 건네지 못한 것이다.
“빠르긴 빨라.”
···
“어머니 돈 부족하세요?”
“아니, 엄마는 이 정도면 충분해. 이 정도 돈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아들이 이렇게 잘되니까 더 행복해.
꼭 지금처럼만······.”
***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마감 시간입니다.”
나는 분식집에 딸린 쪽방에서 문을 살짝 열어놓고 그들과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그들의 동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알았다.
“어머니, 저, 방금 들어왔어요.”
“안녕하세요. 저 찾아오셨죠?”
“안녕하십니까.”
요리에 있어서 자신들의 위치가 높다고 생각할 사람들인데, 내 앞에서 공손해진 걸 보면 정말로 나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저런 제안을 받자고 ACK 에 출연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 목표를 위해 훨씬 더 빠른 차를 원한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생각 좀 더 해보겠습니다.”
완곡하게 둘러댔다.
그 말에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는 저들의 표정을 보면, 자신들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가져왔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대한민국을 떠야겠다.’
그리고 ACK 의 세 번째 녹화 날.
“허, 허얼!”
루시앙 말릭.
통역가가 강요한의 말을 루시앙 말릭에게 전했고, 루시앙 말릭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실제로 내 목표를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내 요리를 선보일 기회가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
5 라운드의 남은 합격자는 12 명.
3 명씩 네 팀이 구성되었다.
김해숙은 그냥 다 잘하고.
“알리오 올리오.”
“에?”
“팀원들 표정 봐요. 알리오 올리오는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기라. 반유현 씨의 실력이 좋다고는 해도.
파스타로는 진짜 유명한 셰프들한테 맛을 보여줄 낀데. 괜찮겠어요? 그러다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꼴
되면 난 몰라요이.”
안심하라는 뜻이었다.
“면을 삶는 정도는, 가장 기본인 알단테(Al dente)로 맞추고, 특별한 오더가 있으면 그때그때, 바꿀
겁니다.”
이들이 파스타를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그 과정과 조리법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이거 말고요.”
“이거요?”
“마늘은 무조건 통마늘을 손질해서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제가 마늘을 준비해 달라고 하면 당장 주방으로
들어오셔서 통마늘을 손질해주세요.”
“실수만 안 하면 될 겁니다.”
손님들의 의사를 주방에 제대로 전달해야만 하고, 주방의 의도를 손님에게 전달하는 것.
미션의 변별력을 갖추기 위함인지, 심사위원으로 선발된 저들은 면의 종류까지 바꿔가며 주문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면의 익은 정도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저 65%라는 수치는 루시앙 말릭의 취향이기도 했다.
“걱정마세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
루시앙 말릭은 내가 만든 파스타 요리를 맛본 뒤에, 대단한 의심을 품었는지, 나의 주방에서 나오는
파스타들을 모조리 자신의 테이블로 가져갔다.
“쉿.”
“숨길 수 없는 실력의······.”
참가자들의 실력을 정확히 나누기 위해 한 종류의 면만이 아닌, 여러 종류의 면을 주문한 루시앙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더더기가 없어.”
루시앙 말릭의 반응을 보고, 다른 심사위원들도 반유현의 파스타에 엄청난 관심을 쏟아냈었다.
대체, 루시앙 말릭이 저 정도의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맛일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모두 와서 먹어봐.”
루시앙 말릭의 테이블 위에 반유현이 만든 16 개의 파스타 접시가 올려져 있었고, 루시앙 말릭이 포크와
수저를 내려놓자, 그의 동료와 부하직원들이 그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음.”
“엥?”
“와우!”
이렇게 대단한 파스타를 먹어 놓고도, 그것을 못 헤아리는 제자와 부하들이 한심한 루시앙 말릭 이었다.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의 맛, 그뿐만 아니라 면의 종류가 다름에도 일정한 맛을
내는 이 파스타는 본인이 지금 당장 팬을 잡더라도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최고의 컨디션과 최상의 환경이
갖춰졌다면 모를까.
***
“그런데, 어떻게······.”
“슈퍼 테이스터?”
‘확실히 쓸 만한 후배님이군.’
그러나 나의 경험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에, 씁쓸한 의문을 삼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루시앙이었다.
루시앙 말릭이 실제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제안이 의미하는 바는 완벽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 몸의 기억들을 살펴보면 군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주방의 문화는 그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고의 파스타 요리사의 주방엔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한, 얼마나 치열한 경쟁들이 있겠는가.
소시에.
요리를 갓 시작한 새내기 요리사에게, 미슐랭 스타를 가진 요리사가 이런 화끈한 제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일이었다.
“경험과 경력을 뒤엎을 수 있는 실력이 있으면 됩니다. 아니, 사실상 제가 인정한 셰프라면 가능합니다.
제 레스토랑의 수 셰프를 제가 선발하겠다는데 아무도 문제 삼을 수 없죠. 그런데…….”
아무리 미슐랭 6 스타인 루시앙이 나를 주방에 섭외했다 한들, 셰프로서 경력이나, 정통성이 없는 내가
다른 셰프들의 존경을 받으며 주방을 지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1 등, 그 후에 뵙겠습니다.”
***
와아아아!
심사위원의 말대로, 일본은 요리의 고향이라 불리는 프랑스보다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반유현! 반유현!”
시간이 제한되었기에, 수십 년간 쌓아온 비법을 이용한 조리법이 생략되기도 했지만, 내 주특기의 일부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우승자는……. 반유현입니다.”
와아아아!
“축하해유, 이게 뭔 일이래요?”
“축하드립니다.”
‘흠.’
물론, 그 어떤 삶보다 빠르고 파워풀하게 출발선에 섰다는 점에서 설레는 마음도 공존했다.
***
“정말 괜찮겠니?”
매번 나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찬성을 하시던 어머니였지만, 내가 홀몸으로 머나먼 프랑스로 떠난다고 하니,
많은 걱정을 표하셨다.
결국엔 허락하셨고, 분식집은 아무리 많은 손님이 몰려도 안정적일 정도로 직원들의 숙련도도 올라갔기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에서 부주방장을 맡아줬으면 좋겠네.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분업하고, 팀원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 방송을 통해서 봤네. 내가 오만했다는 걸 깨달았어.
자네는 그 정도의 직급을 가질 실력이 있네. 그런데, 요리를 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배운…… 그
의문만 풀어주면 좋으련만.”
당연하게도 레스토랑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수셰프. 즉, 부주방장의 직급을 가진 셰프는 많아지는
것이었으니까.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이 완벽히 자리를 잡기까진, 이곳 레드 테이블에 있는 셰프들이 조금씩 지원을
해야 할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어. 혹시 모르니, 인사는 해둬야겠지?”
내 옆에 통역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내가 자신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통역사가 저들의 대화를 통역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안절부절못하면서 내 눈치를 봤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진 탓에, 주방에 한국인을 추가로 투입하시려는 생각이실 거야.”
“이놈의 직급이 어떻든 간에, 우리한테는 신입이잖아요? 신고식을 화끈하게 치러야 될 것 같은데.”
***
“지중해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라네. 블루베리 크림에 얹은 달고기, 그리고 레몬 아이올리를 곁들인
새우와 캐비어. 트러플을 얹은 매쉬드 포테이토와 게 요리.”
“오우, 유현! 그렇게 불어를 유창하게 할 줄은……. 그런데, 캐비어……. 캐비어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혓바닥과 입천장으로 으깨며 느끼는 캐비어의 향이, 새우 살의 향을 뚫어야 했건만 그렇지 못했다.
‘싸가지 없는 새끼.’
“오늘은 쉬는 날이라, 우리 직원들이 재료를 완벽하게 선별하지 못했네. 실제 손님에게 대접하는 거라면
아예 내보내지를 않았을 텐데, 어쩌면 함께 일하게 될 자네에게 이 레스토랑의 요리를 맛보게 해주려고
없는 재료로 무리를 한 모양이야. 허허…….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나?”
“먼 길을 오셨고, 앞으로 저희의 가족이기도 하신데, 최상의 요리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원래,
트러플의 향이라는 것은…….”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을 듣기 싫었다.
루시앙도 자신의 주방에서, 요리에 장난을 친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아닌 듯했다.
‘한심한 놈들.’
앞에서도 누누이 말했지만, 엄격한 서열을 기반으로 한 도제식 교육방법이 주방에서는 만연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요리를 숭고한 예술의 끝이라고 하면서도 밥그릇을 챙기는, 애매한 생각을 가진 놈들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셰프, 아니. 셰프라는 단어가 아까운 그 사람들은 주방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진심을 담지 않는다면
의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의사에게 의사의 자격이 있습니까? 요리사가 요리에 진심을 담지 않았는데,
같은 문제를 같게 보시지 않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가벼운 마음을 가진 요리사들이 주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레스토랑엔 손님들이 식사하러 올 이유가
없습니다.”
***
“문제없습니다.”
“완전 독사래 독사. 이번에 새롭게 오픈되는 루시앙 말릭의 레스토랑, 거기 수셰프 자리를 혼자
차지하려고 그런 것 아니냐.”
“인사는 간단히 하지. 루시앙 셰프님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셰프들이 모인 도시,
이 파리에서 자네의 소문이 이미 널리 퍼졌으니,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군.”
올리버 러셀.
그 이유는 단순했다.
루시앙 말릭이 미슐랭 스타를 가졌더라도, 수셰프 자리엔 자신들이 납득하지 못할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나였고.
자신들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프랑스 파리의 고인물, 오래된 셰프들의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루시앙 셰프님이 자네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지원 취소를 한 셰프들 것을 빼고, 남은 이력서라네.”
‘오히려 잘됐군.’
알아서 자신들이 이력서를 취소했다니, 루시앙과 올리버에겐 심각한 일이었겠지만 나에겐 고마울 일이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
따라서 하나의 주방에서 각 파트를 맡게 될 조리장을 뽑는 수준에서는 기본만 갖춰져 있다면 내 눈에는
모든 사람이 동일했다.
“한국에서 ACK 보고, 따라왔습니다. 타고난 능력이건 말건, 반유현 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과도하게 충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남자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전직 운동선수라는 독기 강한 캐릭터에, 간절함까지 더해져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하는 그는, 이곳에 있을 동안은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일 하겠다는
소리다.
간절함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차라리 이런 종류의 사람이 나을 때가 있다. 100 년의 경험상 확실한 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
“확실해?”
“어차피, 다 똑같습니다.”
내가 뽑은 세 명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뭐, 비슷비슷한 실력에선 맞는 말이긴 한데. 걱정이야. 셰프라는 타이틀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각 파트의 조리장으로 쓰겠다니. 자네가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이
선택에 따른 모든 책임은 주방장과 부주방장인 우리한테 오는 것이라네.”
그들이 내뿜는 독기와 열정은 다른 경쟁자의 실력을 뒤집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어 말했다.
그들을 파트의 장으로 뽑는 것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지만, 나의 자신감에 올리버는 긴가민가했다.
천재라는 재능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루시앙과 올리버는 나를 믿어야만 했다.
경력은 없지만, 타고난 재능을 가진 놈이 선배들을 해고시키며 제대로 된 진상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넣을 ‘셰프’는 없을 테니까.
***
그 몰골을 보고 놀란 건, 올리버였다.
눈이 반쯤 풀린 렌이 생선구이를 꺼냈다.
“이리로 줘보게나.”
그런데 주방장인 올리버의 칭찬에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해도 모자를 판에, 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올리버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칭찬을 받고도 춤추지
않을 셰프는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이들은 초급요리사들이다.
“너희 어디 아파?”
반유현의 등장이었다.
“에바, 채소를 팬에 살짝 구워서 끓이라고 했는데, 그래야 채소의 풍미가…… 흠. 아직도 풍미가
가득하다는 뜻이 정확히 뭔지 몰라 넌.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연구를 해.”
“셋 다, 다시 해.”
“예! 셰프!”
“예! 셰프!!”
프랑스는 요리라는 문화를 꽃피운 나라인 만큼, 요리와 셰프들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문화도
발전되어있다.
나 또한, 파리에 거점을 둔 셰프들뿐만 아니라 ‘요리평론가’라고 불리는 그들의 레이더에 포착된 이후로,
엄청난 논쟁거리가 되고 있었다.
미슐랭 스타 셰프가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만한 기대를 불러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랜드 오프닝.
***
“견습, 수습 셰프들.”
“EAP 요리 아카데미.”
루시앙 말릭이라는 미슐랭 스타의 부름을 거절할 ‘요리 꿈나무’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루시앙이 주방의 인원들을 소개했고, 루시앙의 기존의 레스토랑인 ‘레드 테이블’에서 지원을 나온 서빙
직원들이 접시를 나르기 시작했다.
“이건 배운 적이 없는 맛인데.”
“와! 이거 뭐야?”
“크흠!”
“맛입니다. 맛. 학벌, 경력, 어떤 셰프의 밑에서 얼마나 일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장담하건대,
저희가 새롭게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최고의 맛을 지향할 것입니다.”
***
“그렇지.”
“코스는 최대한 간단히 하고, 주 요리인 파스타를 이주에 한 번꼴로 바꿔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네.”
“뭐, 자네 생각이라면.”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나의 말에 무조건적인 찬성을 표하니, 새롭게 주방의 가족이 된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채 요리로 스프, 메인 요리로 파스타, 그리고 파스타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생선구이,
마지막으로 디저트.”
“예! 셰프!”
“소스의 점성은 전분과 버터로 조절을 하지만, 자네의 파스타에는 그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세밀함이
있어. 내가 가진 옵션은 강, 중, 약이라면, 자네는 옵션이 10 단계 정도는 되는 것 같네.”
파스타의 거장, 파스타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루시앙은 나에게 요리를 배우듯이 내 옆에서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재능으로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재능인 것처럼 능숙히 해내는 나의 모습을 본 노련한 요리사들은 이따금씩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
루시앙의 동료들, 올리버의 동료였던 베테랑 셰프들을 상대로 메뉴 테스트를 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그런데,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뭐?”
루이드 뤼샤르.
“말대로 일을 벌인 김에, 제대로 해야지 않겠나. 애초에 반유현 셰프가 이 주방에 왔을 때부터 우리
레스토랑은 평범해 질 수가 없는 거야. 요리 경력이 1 년도 안된 반셰프의 천재성이 어디까지인지도
궁금하지 않나?”
미슐랭 스타 셰프의 입지와 재치 있는 입담을 이용해, 블로그와 SNS 상에서 수많은 팔로워들을 보유했고,
방송에도 자주 모습을 보이며 요리 평론가로서도 확고하게 입지를 다진 사람이었다.
실제로, 거침없는 악랄한 비평으로 유명세에 오른 그였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반대로 말하면,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커리어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기회의 날이기도 해.
완벽해질 때까지, 다시 칼 잡아, 불 올리고 팬에 기름 둘러.”
“예! 셰프!”
***
‘레드테이블-더 파스타.’
그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되자, 초대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온 기자들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일, 크림, 그리고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파스타, 각 코스의 메인 요리인 파스타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 코스는 여러분들이 수많은 자극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커리어에서 총주방장을 처음 맡은 올리버가 이토록 떨리는 게 이해되긴 했다. 그래서 그런가,
마흔이 넘은 중년의 아저씨가 귀여워 보였다.
“크흠! 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하하. 특히나 부주방장인 이 친구가 이 레스토랑의 오픈에 많은
…… 어, 자질구레한 설명 말고 맛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루이드 뤼샤르였다.
“드셔보시면 압니다.”
매번 도전적인 모습을 보이던 내가, 망설임도 없이 루이드 뤼샤르의 물음에 대답할 것을 미리 방지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단번에 코스요리를 빼야 되니, 면의 익힘 정도까지 주문받기엔 무리겠죠. 요리의 시간도 다르고
그럼, 코스의 시간도 각각 테이블마다 달라야 하니까…….”
루이드 뤼샤르는 이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자, 잠시만!”
“주방, 준비해주세요.”
“이 정도면, 나를 포함한 주방의 모든 셰프의 커리어를 배팅한 거야. 파리에서 제대로 터를 잡던가, 짐
싸고 나가던가, 둘 중 하나라네. 자신 있지 반셰프?”
웅장하지만 편안하고 평온한 소리, 그렇지만 주방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삑! 삑! 삑!
“흠.”
그리곤 나를 향해 소리쳤다.
“반 셰프! 이거 정말 할 수 있겠어?”
예를 들어, 43%의 익힘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다면 40%로 삶은 면을 사용해 볶고, 55%의 익힘 정도는
50%로 삶은 면을 볶으며, 그 익힘 정도를 더하는 것이었다.
“좋아!”
“예, 셰프!”
“예!! 셰프!”
***
면의 익힘 정도를 50%, 60%로 평범하게 주문한 손님들이 대다수였지만, 51%, 47%와 같이 짓궂은 주문을
한 손님들도 여럿 있었다.
51%와 47%라는 숫자로 주문을 받아놓고, 맛에서 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지금,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손님들이 말해주었다.
그저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와! 너무 맛있네요.”
“제가 예전에, SNS 에 글 하나를 올렸었습니다. 제가 부주방장으로 섭외한 반유현 셰프의 파스타는 같은
파스타일지라도 그 맛이 10 단계 정도로 나뉜다고요. 하지만, 오늘 보니까 그 맛이 100 단계로 나눠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실제로 오늘 그 맛을 보셨지 않습니까?”
***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요리에 관심도 제법 있어, 홀 직원들 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여섯 달 치 예약을 미리 받아버리면, 신경 쓸 일이 적어지는 것 아닌가요?”
“미슐랭.”
“미슐랭이요?”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이 엘은 중얼거렸다.
-펠리지오, 헤드 셰프 A.톰슨
“이 사람을 알아?”
실제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카지노를 보유한 호텔들은 일명 ‘큰손’이라 불리는 손님들을 자신의
호텔에 투숙시키기 위해 호텔마다 여러 전략을 구상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레스토랑이었다.
17 화. 더 파워풀 하게 (1)
내가 속해있는 레스토랑의 주방은 점점 안정화가 되었고, 이 몸으로 환생한 지 5 개월이 넘었을 때였다.
“뭔데.”
약 한 달 전, 그랜드 오프닝이 끝난 직후에 나에게 명함을 건넸던 그가 나에게 또다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셰프, 톰슨.-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의 요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으며, 그 못지않은 수많은 먹거리와 볼거리를 볼
수 있는 행사이다.
“뭐해?”
멍 때리고 있는 직원과, 가만히 편지를 읽고 있는 나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듯이, 내 옆으로 와 편지를
함께 읽었다.
“흠……. 가는 게 당연히 좋지. 전 세계 수많은 미식가들과 유명한 셰프들이 모이는 자리에, 자네의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가. 그런데, 크흠! 돌아오지 않을까 봐 겁나는구만.
라스베이거스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셰프를 여럿 봤거든. 그곳엔 셰프를 홀릴 요소들이 너무 많아.”
“더 큰물로 가야죠.”
***
‘사람만 더 있었더라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라도,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이 마구잡이로 가맹점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인맥, 정확히는 ‘사람’이었다.
행사에 참여하는 셰계적인 명성의 셰프들, 그리고 그들을 보조하거나 따르는 셰프들.
‘한 명만 만날 수 있더라도.’
***
톰슨이 나에게 명함을 줄 때, 언질을 했듯이 롤스로이스 차량에 특별 의전을 추가해 나를 데리러 온
것이다.
각종 조형물과, 조명, 그리고 분수가 펼쳐지는 라스베이거스의 거리를 보며, 성공의 상징인 세계적인
명차의 가죽 시트에 몸을 파묻고 가는 이 느낌.
“영어를 그렇게 잘하실 줄 알았다면, 통역사를 데려오지 않을 걸 그랬습니다. 하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반 셰프, 톰슨입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곧장 문을 열었다.
“영광입니다. 톰슨 셰프님.”
“크흠! 음…….”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여서 당황한 것인지, 톰슨은 연신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외식업계에 수많은 인맥들을 가진 톰슨, 그는 프랑스에서 먹었던 내 파스타에 완전히 미쳐버린 것인지,
연신 파스타를 말했다.
***
“제가 강의라고 말하긴 했지만, 부담 갖지 마세요. 그냥 반유현 셰프가 가진 기술을 선보이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저희 직원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아…….”
“내일 우리 셰프들 전부 모아서, 반유현 셰프의 파스타를 맛볼 거라네. 내가 받았던 영감을 자네들한테도
주려고. 하하! 그래서 반유현 셰프한테 필요한 게 있으면 구비해주려고 잠시 주방에 내려온 거야.”
나도 모르게 시식 평을 하려던 그때, 이들은 나의 평가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꿀꺽.
18 화. 더 파워풀 하게 (2)
“꼭 재료로만 맛의 승부를 보려는 분들이 있는데, 요리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들을 잘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일식의 대가들이 칼질 한번 한 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횟감에 칼이
지나가는 결마다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고요. 칼과 칼질이 그렇듯이,
파스타 면을 볶는 프라이팬과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비찜입니다.”
“드셔보시죠.”
“oh…….”
“wow!”
톰슨은 갈비찜을 맛본 뒤에 내가 돌아가지 못하게 프랑스행 비행기를 취소해야 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하! 보조, 당연히 필요하죠. 자, 여기서 내일 그랜드 테이스팅에 반유현 셰프를 도와줄 사람?”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안토니와 미노.
“반유현 셰프님이 저보다 어리고, 경력이 부족하다고 한들, 제 요리 실력이 그보다 부족하다 생각하면
배워야지요. 하하하! 배우는 데 자존심이 필요합니까.”
주방 서열로 치자면 톰슨의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수셰프, 안토니는 턱수염을 만지며 호탕하게 웃었다.
***
각각의 부스에서 셰프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 또한 펠리지오 호텔, 톰슨이 배정받은 부스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여기 있었군.’
헨리와 제리 형제.
“어이! 멍청이 형제들! 그 속도로 오늘 행사 준비나 하겠냐. 주방에서 설거지만 하다가, 행사라고 숨 좀
트게 해줬더니, 여유가 넘치나 봐?
그들과 눈을 마주치곤 가벼운 눈인사를 하려 했을 때, 저들은 상관의 구박에 다시 고개를 처박고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항상 큰 꿈을 가진 형제였다.
루시앙이었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Best Restaurants)’은 미슐랭 가이드보다 역사는 깊지 않지만,
그 공신력에 있어 미슐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미식가들의 지침서였다.
영국의 유명 레스토랑 메거진이 주최하는 행사로, 수많은 전문가들이 레스토랑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참여해, 그 신뢰도에서도 전 세계 미식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어떤 겁니까?”
나에게도 무척 기쁜 소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이렇게 알려지는 것은, 때때로 미슐랭 평가원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
“아…….”
“에, 엥? 우리?”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하암……. 왜, 또, 무슨 일이냐.”
“저, 저기 보세요.”
19 화. 모든 시선이 나에게(1)
“20 대의 나이에 레스토랑을 지휘하는 셰프로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기란 쉽지 않죠.
저도 당신의 나이 때엔, 주방 구석에서 양파를 썰고 있었으니까요.”
“하하하. 톰슨의 손님이기도 하고, 최연소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스폐셜 유망주 셰프가
저희 부스를 둘러보고 싶다는데, 저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지요.”
뿐만 아니라 그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요리사의 인생을 살아가는 매번의 삶마다 등장하는
고정출연자이기도 했다.
환생‧회귀를 한 내가 매번 미래를 바꾸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전생에 이름을 떨쳤던
셰프들이 이번 생에는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는데, 고든 레지는 항상
세계 정상급 셰프의 자리를 차지하는 셰프였다.
‘출연을 너무 빨리하셨군.’
우리가 부스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서 아귀를 손질하고 있던 헨리-제리 형제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헨리와 제리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내가 했다.
“허허. 그래? 이야! 자네들 특급 유망주 셰프의 눈에 들었네. 헨리, 제리 기억해야겠어 나도.”
“아귀가 손질이 다 끝나질 않아서 요리는 미리 보여드리지 못하겠네요. 어이, 조리장! 여기 반유현
셰프라고,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셰프야. 물어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대답해 드려.”
“견습, 헨리입니다!”
“제리입니다.”
고든이 나를 소개해준 덕분인지 아까 전, 헨리와 제리를 구박하던 조리장, 그렌은 깍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헨리와 제리의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칼이 아귀의 몸을 뚫는 자취가 정확하지 않아졌다.
“도와드릴게요. 가위 좀 주세요.”
“여기…….”
모든 동작이 하나의 동작같이 연결되었고, 저들의 눈에는 숙련된 미용사가 가위를 다루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후. 잘 보십시오.”
“예!”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다.
그리고 약간의 놀라움도 보였다. 자신들과 나이대가 비슷한 셰프의 실력이라곤 할 수 없을 정도로 숙련된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
내가 다시 부스로 돌아와 불에 가열되던 갈비찜을 꺼냈을 때, 대망의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가 시작되었다.
“달달하면서 약간의 점성을 가진 갈비찜 소스에, 고기가 부드럽게 갈라져 찢겨지는……. 마무리로 상큼한
백김치가 입을 개운하게 씻겨주는……. 오늘 보조로 오길 잘했습니다. 하하하하!”
각 셰프에게 배정된 부스는 행사에 모인 세계적인 미식가들에게 자신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요리를
선보여 홍보 효과를 챙길 수 있는데, ‘천재 셰프’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를 앞세워, 강력한 나의
갈비찜을 메인으로 선보인 뒤에, 레스토랑의 메뉴를 홍보하기보다 펠리지오 호텔 자체를 홍보하려는
톰슨의 의도였다.
‘뭐지.’
‘톰슨의 제자들인가.’
족히 오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허허허허! 반유현 셰프님이 보여주신 파스타랑, 갈비찜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이렇게나 많은 셰프들이
모였네요! 갈비찜이 동날 것 같으니까 추가분을 준비하셔야겠습니다! 하하하!”
하얀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줄을 서자, 행사에 참여한 일반인들 또는 기자, 미식가들이 우리의 부스에
주목했다.
미술품 전시회에서 수많은 화가들이 하나의 그림 앞에 서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그림은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저긴 뭔데?”
20 화. 모든 시선이 나에게(2)
잠시 부스에서 떨어져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던 톰슨이 헐레벌떡 다시 부스로 돌아왔다.
비정상적일 정도의 사람이 한꺼번에 부스로 몰리니 무슨 사고가 일어난 듯싶었던 것이다.
수많은 경험이 있는 베테랑 셰프인 그였지만, 세계적인 행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부스에 문제가
생겼다니 그 초조함과 불안감을 감출 수 없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왜…….”
세계적인 셰프들의 요리를 한 공간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그랜드 테이스팅’을 기획한 기획자의
의도일 터인데, 단 하나의 부스가 ‘독점’하다시피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가 처음 겪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하……. 대체 이게 무슨…….”
안토니가 주방에서 가져온 고기는 최고급 레스토랑이 쓰는 소고기답게, 마블링, 지방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적당히 끼어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고기는 스테이크를 만드는 것에는 최상급의 재료겠지만 찜요리에는 적절하지 않은
재료였다.
“저희 주방은 고기를 들일 때에, 고기의 질과 신선도를 확인하는 전문 직원이 있을 정도로 재료를
섭외하는데 정성을 다합니다. 이 고기가 최고라는 건…….”
스테이크와 같은 구이용 고기를 찜으로 요리했다가는 찜요리 특유의 고급스러운 식감을 표현할 수 없으며,
그릴 위에서는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표현해주던 마블링이 찜통 안에서는 녹아내려 소스를 느끼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더군다나, 지금 가져온 고기는 식감과 맛을 살리기 위해 각종 향신료나 허브로 미리 재워둔 고기도 아닌,
생고기 그 자체였다.
미식의 축제인 그 현장에서 수많은 셰프들의 관심을 받는 부스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미식가들과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메뉴를 바꿔야겠습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그럼 어떤 요리를?”
“쇠고기가스……?”
***
규카츠(牛カツ).
“펠리지오 호텔의 특별 게스트! 특급 유망주 셰프, 반유현 셰프의 요리,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엥? 2 부 요리?”
“그런가 봐! 다시 줄 서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서 있는 부스의 분위기가 그릴이 달궈지듯이 계속해서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지금의 나처럼, 특급 셰프들 사이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셰프에 대한
호기심이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
“대체 그 정도의 깊이는 어디서 배우는 겁니까? 세포의 크기라니……. 하하하! 반유현 셰프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저희 레스토랑에 있는 견습생들을 다 내보내고, 제가 견습 생활을 해야될 것만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정말. 정말 요리를 시작하신 지 1 년이 안 되셨다고요?”
치이이이익!
“와우! 바삭함, 고기의 풍미, 튀김의 고소함……. 기계가 맛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맛이 정교해.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느낌이야.”
“대단하시군요.”
“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지금은 주방에서 재료 손질을 도맡아 하는 인턴에 불과한 직급을 가졌지만, 나는 그녀의 잠재력을 알고
있다.
21 화. 내 이름 석 자 걸고(1)
“명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레스토랑의 메뉴로 가져다 쓰고 싶을 정도네요.”
“감사합니다.”
물론, 세계적인 셰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던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지금 내 인생의 시간상 효율을 따져
보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 환생 19 년 5 개월 3 일 4 시간 24 분 4 초 전. ]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앞서도 누누이 말했지만,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확장시키는 것에는 내가 믿고, 나를 따르는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이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을 소모했었다.
그동안 축적된 빅 데이터와 눈치로 사람을 보는 안목은 남다르겠지만, 나는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검증된 사람들을 다음 생에, 다음 생에, 두고두고 사용했었다.
“일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계신, 마츠로 셰프님의 주방에 남아 있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으신가요?”
다만, 접점을 만들었을 뿐이지, 옛 동료들이 아직은 나와 함께한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
아무런 경력과 업적이 없는 한국인 셰프를 호텔의 주방에 초대해 요리를 시켜놨더니, 다음날 그 셰프가
몸담고 있는 레스토랑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선발된 것.
“톰슨, 진짜 대단하긴 하네. 자네의 안목이, 최고 연봉을 주면서 자네를 선임한 우리도 대단하고.”
“말 좀 해보게 톰슨, 대체 뭘 보고 그렇게 대단한 원석을 발견한 거야? 아무런 경력도 없는 동양인을
호텔 주방에 초대해 강의를 시켰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건가.”
실제로 자신은 유현의 파스타의 세밀하고 정교한 맛에 깊은 영감을 받아, 자신의 직원들에게도 그런
영감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고, 그런 영감을 만들어 준 유현에게 요리 업계의 선배로서 좋은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너무 겸손해도 탈이야. 그런 대단한 천재와 커넥션을 만들었다는 건, 그리고 그 천재를 이용해 우리
호텔의 인지도를 확 올려놓지 않았나.”
“실제로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맛본 사람들이라면, 느꼈을 겁니다. 그냥 천재의 느낌이 아닙니다. 마치…
…. 비유하자면, 수십 년, 수백 년간 요리를 연구한 베테랑 중에서도 최고 베테랑 같았습니다.”
그 당시엔 오히려 톰슨 본인이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었다.
“어떤 사태긴, 우리 호텔에 최강의 맛집이라는 타이틀을 걸어준 셰프를 그냥 놓칠 텐가?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세계적인 미식가들만 몇 명이야. 셰프들은 몇 명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를 노리고 있을
텐데, 자네가 선수 쳐야지. 자네가 반유현을 이쪽으로 먼저 불렀으니까, 다른 진영보다는 승산이 있을 것
같네.”
***
“이번 반유현 셰프의 파워풀함에, 행사장에 있던 모두가 감동했습니다. 파스타, 갈비찜, 백김치, 규카츠
……. 모두 군더더기 없는 요리였습니다. 덕분에 저희 펠리지오 호텔의 레스토랑도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번의 행사에서 저희 펠리지오 호텔이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모두 반유현 셰프 덕분입니다.”
“거대 자본이 투자된 메이저 레스토랑의 셰프보다, 작은 주방이더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게
훗날 제 요리 실력을 쌓는 것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의 목적은 미슐랭 스타이기도
하지만, 펠리지오 호텔의 반유현이 아닌 반유현 그 자체가 되고 싶습니다. 저만의 표현방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런 요리사…….”
“어떤 셰프든지, 그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셰프가
되고 싶죠. 흠……. 그렇다면 타협점으로, 반유현 셰프의 이름을 내건 메뉴를 하나 만드는 게 어떨까요.
스폐셜 메뉴이자 특별메뉴로요.”
“됐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곧장 끊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
22 화. 내 이름 석 자 걸고(2)
“커헉!”
메일을 일일이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기업과 호텔그룹, 자본가들에게도 몇 개의 메일이 와 있었다.
***
“내가 쌓아온 ‘레드 테이블’이라는 브랜드의 이름값을 자네한테 빌려주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네. ‘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이 오픈되는 것은 오히려 기쁜 일일 수도 있지. 다만, 먼 훗날에 ‘반유현-레드
테이블’로 이름의 순서가 뒤바뀔까 봐 걱정되는 거야. 하하하.”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한 달입니다.”
나는 약 한 달의 기간을 내다봤다.
“자네, 설마…….”
내년 겨울,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되기 전, 루시앙과 얘기했던 대로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을 오픈할
생각이다.
그리고 ‘레드 테이블 - 파스타’ ‘레드 테이블 - 반유현’ 각각 두 개의 레스토랑 모두 미슐랭 스타를
받아낼 생각을 했다.
“그런 식으로 계획을 짜다 보면, 무너질 확률이 높지 않나? 당장 또 주방의 사람들은 어떻게 편성해
놓으려고?”
***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소개했다.
내가 다음의 레스토랑 오픈을 위해 직접 골라놓은 사람이 있다는 말에, 그들은 엄청난 호기심을 품고 쉬는
날에도 주방에 나온 것이다.
‘레드 테이블 - 반유현’은 온전히 나의 계획과 나의 뜻대로 만들어질 테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나를 믿는다고는 해도, 나의 선택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호호! 대단한 주방에서 일하고 왔구만, 노부 마츠로 셰프 하고는 나도 안면이 있지! 자네들 모두 반
셰프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친구들인가 보군!”
루시앙의 상기된 목소리에, 헨리-제리 형제와 미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
수조에 넣어둔 정어리들은 활동성이 떨어져서 얼마 못 가고 죽는데, 그의 강력한 천적인 메기를 수조에
넣어두면 활동성이 올라가서 오히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효과.
23 화. 긴장할 필요 없어 (1)
“이것도 다 공부야.”
이들의 빠른 성장이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효과적으로 쓰일 것이기에 이들에게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예, 맛있네요.”
“버섯이 엄청 신선하네요.”
“에, 예!”
“버섯은 물에 닿으면 영양분과 맛, 그리고 향이 떨어집니다. 기름과 소스가 묻어있어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지만 맛으로만 본다면, 이 접시에 올려진 버섯에는 물에 데친 버섯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버섯을 물에 데쳐 맛과 향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식감을 살리기 위함인 것…….”
“메이.”
“다른 건.”
“채끝살에 곁들여진 레드와인 소스가 조금 독특해요. 꿀이랑 포도? 라임? 어떤 과일을 으깨서 같이 졸인
것 같은데,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고기와 버섯의 향에 산뜻함을 더해서 좋네요.”
“응? 그…….”
피르앙은 매우 놀란 듯이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요리의 맛을 보고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이 자신의 주방에 있는 ‘셰프’라 불리는 이들보다
높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설명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메이가 하나를 놓친 것 같습니다. 레드와인 소스의 어딘가에 분명히, 양파의 흔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파의 단맛이 아니야. 당근의 단맛도 느껴졌어. 확실히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인 것 같습니다
셰프님. 한입에 풍부한 맛들이 있는 게 즐겁습니다.”
“정답.”
주방 보조라 생각했던 이들이, 식재료와 그 조리법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며, 요리를 한 장본인도 아닌
내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었는지 피르앙은 헛웃음을 흘렸다.
‘주방에 뭔 일이 있나.’
그곳엔 홀 매니저가 피르앙에게 귓속말을 했던 이유와, 피르앙이 급하게 주방으로 걸어간 이유가
적혀있었다.
[ 11 번 테이블. ]
-셰프 특선 버섯 코스.
한 개의 코스요리와 하나의 단품 요리.
그리고 두 가지 와인.
그런데, 음식을 평가하러 온 미식가나 비평가라면, 대부분 자신의 소속이나 신분을 밝히기 마련인데
저들은 맛과 레스토랑을 평가할 것처럼 주문해놓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가능성이 높다.’
“아…….”
실제로 피르앙이 주방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이유는, 미슐랭 평가원으로 의심되는 손님이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
미슐랭 스타를 평가하는 평가원들은 정해진 예산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당연하게도
지역별로 인원을 구성해 레스토랑들을 평가한다.
“왜 떨어. 자신 없어?”
“예!! 셰프!”
삐비비빅!
“예! 셰프!”
띵!
“서버!”
내가 종을 치며 홀 매니저를 부르자, 그가 요리가 담긴 접시를 가져갔다.
24 화. 긴장할 필요 없어 (2)
“셰프님…… 부르십니다.”
“내가 나갈까?”
“제가 가겠습니다.”
다만, 주방의 총책임자인 자신이 나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씁쓸함도 함께 느꼈을 것이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어쩌면, 요리에 20 년 가까운 시간을 소비한 자신과 ‘나’를 비교하며 회의감이나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들은 평범한 손님을 가장하고 레스토랑에 방문하기 때문에, 실제의 손님처럼 행동한다.
별을 받는 건 이미 정해진 것 같다.
***
‘동시에 얻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니면 그 이상.
타이밍상 둘도 없는 기회였다.
이렇게 예외를 만든 것은 유명한 식당이 아닌, 맛이 훌륭한 식당을 소개하는 미슐랭 가이드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시기상 올해, 미슐랭 평가 대상 리스트가 작성된 이후에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것이었으니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이 미슐랭 평가를 받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레스토랑을 오픈해, ‘현지의 맛 집’으로 만들어 놓고 미슐랭 평가원들이 방문할 수밖에
없는 레스토랑으로 만드는 것.
“하…….”
“제 계획은 그렇습니다.”
“매출이 목적이 아닌 미슐랭 스타가 목적이기에, 소규모로 오픈할 예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방의
구성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 여섯 명 중에 네 명을 뽑아 주방을 구성하겠습니다.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 생기는 저들의 빈자리는 현재 그 밑에서 보조를 하고 있는 애들을 올리면 될 것 같고요. 물론,
그 또한 경쟁으로.”
내가 이 말을 했을 땐, 로또 육인방의 얼굴에 비장함이 깃들었다.
어떻게든 내 선택을 받겠다는 표정.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들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루시앙도 그것을 느꼈는지, 이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주방의 조직구성에 대해선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린 뒤,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홍보는?”
한국에서의 방송,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의 그랜드 오프닝,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언코크드’ 등
굵직한 행사에서 내 실력을 보여줬을 때, 얻었던 메일들이었다.
“예, PD 님과 미팅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더 셰프’라는 프로에 대해선, 루시앙 셰프님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레스토랑 자리나 알아보러 가시죠. 그리고 외출한 김에, 주방 안에 들어갈 각종 집기류나 홀에서 쓰일
책상하고 의자도 오늘 다 구매해야겠습니다. 오늘부터 오픈 준비를 하는 걸로.”
***
“미국에서 살았던 기간이 길지만, 저희 부모님 두 분 다 한국 분이셔서, 한국말이 편하실 테니,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하하.”
“아, 예.”
“음,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유현 셰프님의 명함을 요구할 때 뵀지만, 저는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죠. 세계적인 셰프들이 열광하는 20 대의 천재 셰프라. 그것도 한국인……. 사실상
동양인들이 유럽의 주방에서 무시를 당하는 일이 많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 날의 기억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루시앙 셰프님께서도 저희 프로그램 초창기에 출연하셨었죠. 그때가 루시앙 셰프님께서 미슐랭 원스타를
처음 얻으셨을 때 같은데요?”
“뭐, 반 셰프의 매력이라 하면 그냥, 천재라는 것? 말 그대로 천재.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천재.”
“방송 특성상 극적인 연출을 위해 과장된 모습을 그릴 텐데, 내가 악마의 파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처럼…… 크흠! 내 생각에 반 셰프는 인위적인 프레임을 씌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음, 거침없이 성장하는 천재? 타고난 능력을 가진 무협지 주인공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거슬리는 것들을 모두 쓸어 담는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반 셰프님의 행보만 봐도 그와 다를 점이 없어
보입니다. 셰프님 말씀대로 반유현 셰프님은 이미지를 만들거나 덧씌울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큰 틀은 있어야겠죠.”
“마침, 반 셰프님이 본인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계시다니 레스토랑이 오픈되기까지의 과정을
주된 내용으로 해서 영상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천재적인 재능을 온전히 녹여내고 있는 레스토랑이다!
미친 천재가 이 일대의 모든 레스토랑을 쓸어버리겠다……는 식으로……. 하하, 제가 너무 과했습니까?”
25 화. 요리업계 슈퍼맨(1)
파리에서 반유현 셰프와 며칠간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제작진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조미료는 무조건 직접 만들어 사용할 거야. 특히나 스모크 파프리카 가루, 표고버섯 가루, 새우 가루,
다시마 가루 같은 향이 뚜렷한 조미료들. 그리고 요리에 사용되는 허브는 직접 재배해서 사용한다. 손이
많이 가겠지만 그 정성은 결국 맛으로 간다는 거. 이제 그만 말해도 되지 않나?
-예! 셰프!
“음. 정말로 미숙한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천재라고 한다면, 뛰어난 실력을 뽐내지만 어느 정도 덜
익은, 날 것의 느낌도 조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반 셰프님은 너무 완벽하니까요. 처음의 기획에 맞춰서
최대한 편집해 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한 정도입니다.”
“그게 제일 문제구만. 예능국 새끼들 귀에 들어가면 피곤해질 텐데. 국장님께서 촬영분을 보셨을라나?”
“예능국이요……?”
“그게 왜 문젭니까?”
반유현은 그 정도 단계의 셰프들 중에서 누구보다 파워풀하게 요리업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니, 그만한
불쏘시개가 없을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반유현 셰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예능국, 그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국장님을
통해 우리가 반유현 셰프를 촬영한 영상을 봤다면…… 반유현 셰프를 섭외하려고 애타게 달려들 거야.
불쏘시개로 사용하면서 투자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에는…… 반유현 셰프만 한 사람이 없으니까…
….”
반유현이 실제로 보여준 모습이 그랬고, 그것을 그대로 편집해 방송에 방영한다고 한들.
“그리고 저희가 라스베이거스 갔다가, 파리 갔다가, 발품 팔아서 노력한 게 얼만데 그 새끼들은 공짜로
그걸 가져가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아무튼. 우리 프로그램의 신뢰도 문제도 그렇고, 반유현 셰프님의 미래도 그렇고 그놈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할 순 없지.”
“이런 건 진짜. 국장님께서 중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발굴한 사람을 그런 식으로…….”
“중재는 무슨,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국장님께서도 반유현 셰프가 ‘라스트 테이블’에 출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실 거야. 반유현 셰프한테 직접 전화를 해야겠어.”
“같은 방송사끼리 출연자의 섭외를 막는 게……. 크흠! 뭐, 그쪽이 먼저 더럽게 시작한 일이니까요.”
“수고들 많네.”
“구, 국장님?”
***
거리에 온통 불어와 영어로 되어있는 간판만이 있었는데, 한글로 적혀있는 간판이 눈에 딱 들어온다.
서버는 없었고, 내 밑에서 요리를 배웠던 셰프들이 요리와 서빙을 동시에 했다.
체구는 작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당돌한 성격을 가진 메이가 서빙하며 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라스트 테이블’ 제작 총괄
“예능국에서 무슨 볼일이.”
26 화. 요리업계 슈퍼맨(2)
각자의 자리에서 탄탄히 입지를 다지던 젊은 셰프들을 섭외한 뒤, 그 셰프들의 레시피를 방송에서
공개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했다. 물론, 여기까지였다면 문제가 없었다.
‘양아치 같은 새끼.’
“제가 방송 일을 하지만, 참…… 방송이란 게 양날의 검입니다. 어떻게 다듬고 가꾸냐에 따라 맛집이
쪽박집이 되기도 하고, 쪽박집이 맛집이 되기도 하잖아요. 아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따위가 뭐, ‘
레드테이블 - 반유현’ 같은 유명한 레스토랑을 망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방송의 힘을 빌려 협박을 섞어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이번에 출연을 거절하더라도 다음에 또다시 나를
귀찮게 할 놈들이었다.
“출연하겠습니다.”
“그럼, 출연하시는 겁니다? 셰프님! 저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예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대답할 게
아니라구요! 다른 셰프들은 고개를 재깍 숙이던데……! 하하하하!”
***
< 반유현 셰프, 분식집 아들은 어떻게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최연소 셰프가 되었나. (요리가 제일
쉬웠어요!) >
“없어.”
“옙!”
“알아.”
“영국 최대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아시죠? ‘에브리데이’. 거기 회장이 방송사 FOX 의 최대 광고주
중에 한 명인데, 그 사람이 키우고 있는 셰프들 네 명이 출연한대요!”
“알아.”
“궁금하냐.”
“예.”
촬영 날짜가 당장 내일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내 눈치를 보면서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궁금증은 촬영 전날인 이제야 터진 것이고.
“아…….”
“대체 어떤 말씀이신지…….”
“그건…….”
“컥…….”
나의 앞길을 방해하려는 상대를 잔혹하게 짓밟겠다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내가 스스로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되리란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 듯했다.
벌써 세 번째 녹화.
첫 번째 촬영은 인도, 인도의 영화배우와 기업인 그리고 정치인이 출연해 셰프들이 요리한 인도 음식을
맛보고 평가했다.
두 번째 촬영은 일본이었고, 나를 포함한 셰프들이 일식을 요리해 일본의 유명 축구선수와 방송국의 PD,
그리고 소설가가 나와서 음식을 평가했다.
그의 말을 다른 셰프들도 흠칫했다.
‘아예 나를 깔고 가려는군.’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독설을 내뱉었지.’
“불고기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동안 먹었던 불고기는 미리 양념에 재어 놓았기 때문에 마이야르
반응도 일으킬 수 없었고, 소고기 특유의 풍미와 육즙, 맛을 살릴 수 없었습니다.”
“예.”
사회자의 질문에 내가 말하자, 스크린에 류형진과 최민석이 매우 기대가 된다는 식으로 박수를 치는
장면이 나왔다.
“가르쳐 드립니까?”
고기를 굽고, 레스팅 할 때, 미리 만들어 둔 양념에 고기를 넣으면, 수축했던 고기가 팽창되면서 그
양념을 빠르게 흡수한다.
치이이익!
***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내 불고기를 먹었던 메이저 리거, 류형진이 말하는 장면이 나왔고.
-너무 맛있는데요. 워낙 불고기가 유명하고 맛있긴 하지만, 이런 맛은……! 와우! 양념도 대단합니다.
오래 숙성한 게 아니라, 제한된 경연 시간 동안 요리하신 거잖아요? 최곱니다.
-메이슨 셰프의 비빔밥이야말로 저절로 고향이 생각나는 맛입니다. 한식이라 함은 맛과 영향의 균형이
중시되는 음식이니까요. 반유현 셰프의 요리는 맛에만 너무 치중했습니다. 뭐, 실용적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셰프라면 요리의 테마와 건강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부분이 하나도……
“떨리는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예고편 보셨습니까?”
“미슐랭 가이드, 파리, 2020 에 초대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올해의
미슐랭 스타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이클 엘라인이었다.
“이곳, 파리가 요리의 성지인 만큼 수많은 이슈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첫 번째로, 식약청 신고
조작사건이 있었죠.”
파리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가, 경쟁 레스토랑에 쥐를 풀어놓고 프랑스 식약청에 신고를 한
사건이었다.
미슐랭 스타를 수상하는 자리, 그 시상식의 인사말 순서에서 어떤 한 셰프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거론된 것은 나조차도 처음이었다.
‘미슐랭 스타의 영예를 차지했던 아무개 셰프가 올해로 은퇴한다. 박수를 부탁드린다.’
등의 말이었다.
마이클이 무대의 정중앙에서 한 발짝, 옆으로 비켜났고 여성 아나운서가 셰프들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 샤탈르입니다. 샤탈르는 이제 5 년째, 미슐랭 원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이 되었습니다. 제프 벤 오너 셰프와, 총 주방장 피르앙 셰프께서는 버섯 요리로 손님들께
대단한 맛을 선보이며…….”
우와아아!
원스타를 시상하는 순서에서 우리의 레스토랑인 ‘레드 테이블’이 호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세계 최연소, 미슐랭 스타 셰프의 탄생입니다.”
우와아아아아!
우와아아!
“…….”
우와아아!
“축하드립니다. 슈퍼맨.”
“감사합니다.”
“에……? 이거…….”
“바, 바, 반유현 셰프는!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두 개의 레스토랑에서
미슐랭 투스타를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무대 위로 다시 올라갔다.
우와아아아!
“셰프니이임!”
“흐어엉!!”
“존경하는 선배 셰프님들…….”
첫 시작 멘트. 그리고,
***
“이 시국에, 이런 방송을 내보내겠다고? 어떻게 책임질 거야! 온 요리계가 반유현을 외치고 있는데,
시청률 하나는 잘 나오겠다. 제기랄!”
영상의 대부분은 인위적인 편집으로 반유현 셰프의 실력을 하향시킨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수, 수습해보겠습니다.”
“…….”
우선, 초특급 배우부터,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소설가, 메이저 리거등 대형 게스트들을 섭외한 출연료도
못 건지게 생겼다.
쾅!
29 화. 쓸어 담기 시작(1)
언제나 그랬듯이, 프랑스라는 나라는 유럽 내 요리의 성지였고, 셰프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몰리는
곳이었으니까.
“존경하는 선배 셰프님들…….”
“여기 계신 셰프님들께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숭고한 예술, 또는 그 이상의 행위를 요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정의를 해두셨고, 그에 따라 요리는 갇힌
틀 없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이라는 ‘틀’은 실력이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셰프들을 주목받게 하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기능을 이용해서 젊은 셰프들의 능력을 착취하고…….”
자신이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내 말에 딱히 관심이 없던 셰프들도
얼떨결에 잔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방송사, FOX 의 라스트 테이블 PD 와 제작진은 저, 그리고 우리 셰프들의 숭고한 자존심과 가치를
짓밟으려 했습니다.”
“자! 반유현 셰프의 말대로! 우리의 자존심은 우리가 지킵시다! 방송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요리의
가치를 그저 방송의 소재로 사용하려 했던, 저! 제작진들! 그리고 저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일조한
회사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힘을 모읍시다. 위하여!”
‘끝.’
그리고 내 심기를 건드린 ‘라스트 테이블’의 PD 와 제작진들이 몰락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
[ 최연소 미슐랭 4 스타, 반유현 “요리는 숭고한 예술,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 ]
[ 합치면 214 개. ‘별’을 가진 셰프들, 방송사 FOX 의 ‘라스트 테이블’ 제작진 규탄. ]
[ 파리를 기점으로, 미슐랭 스타 셰프들 갑질 방송 퇴출 운동 시작. ]
[ 라스트 테이블 출연 셰프들의 레시피 식료품 업체와 거래한 정황들 포착! 단독공개! ]
-예! 셰프!
“당연히, 자네가 그 연설로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다는 것은 좋지. 이제 나의 브랜드인 ‘레드 테이블’이
자네의 이름에 묻히게 생겼네. 하하하! 별수 있나 뭐. 이제 나로서도 어쩔 수 없구만.”
“다음 목표는 어딘가? 미슐랭 스타를 얻었고, 자네는 지금, 한국에서 파리로 날아왔을 때랑은 그
이름값과 명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나. 나는 미슐랭 스타 네 개를 동시에 받아낸 자네를 잡아 놓을 수 있는
재산도 없고 여력도 없네.”
“파리?”
“그 자리는…….”
“예, 지금까지 미슐랭 3 스타를 유지하던 그 레스토랑이 올해 2 스타로 강등되었죠. 그 자리에 새로운
주인을 구하고 있습니다.”
***
‘타이밍이 딱 좋다.’
‘돈 냄새 가득하군.’
그 호텔로 향하는 길.
‘여전하네.’
미슐랭 스타 11 개를 가진 셰프.
30 화. 쓸어 담기 시작(2)
미슐랭 3 스타를 유지해야 된다는 강박과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가 버린 셰프.
‘까다롭기로 유명하지.’
스스로 메뉴를 구성하고, 레스토랑을 운영해본 자에게만 자격을 주는 것은, 자신들의 자리를 어떤 셰프의
성장 발판으로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까다로운 조건 덕분에 프랑스의 팔라스 등급 호텔 중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호텔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비싼 땅인 ‘골든 트라이 앵글’ 지대에 위치해 있어, 나의 이름을 이곳에
내건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크다.
한국 사람들이 적자를 내면서라도 명동이나, 강남에 가게를 내어 간판을 걸고, 홍보 효과를 거두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말이다.
“역사가 깊은 호텔이기도 하죠.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셰프들은 이 호텔 안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차리고 싶어 할 정도니까요.”
“아, 예.”
띠리릭!
객실을 둘러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곳에 초대받은 셰프들 중에 나처럼 객실을 받은 셰프들이 몇 명일지
말이다.
객실을 제공하지 않은 후보들 중에서도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면 그때에 객실을 제공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똑똑.
‘흠. 일단 얻어낸다.’
***
저들의 특성을 내 입장에서 요약하자면, 요리에 대한 이해가 높고, 깊은 지식을 가졌을 테지만. 곧
요리계를 떠날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미래를 알기에, 그들을 그렇게 평가했지만 이곳에 있는 다른 셰프들은 저들과의 인연을 맺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커리어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식으로 눈을 반짝거렸다.
“예?”
“아, 아니, 당연히 셰프님의 실력은 이미 소문이 났고, 저도 셰프님을 현재 가장 핫한 셰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슐랭 포스타를 단번에 얻으셨는데 두말할 것 없죠. 하하하. 그런데, 나이가 어리시니 더
많은 도시의 주방을 경험하는 게 좋으실 텐데…….”
“아…….”
지나친 관심이 귀찮아서, 냉소적인 태도로 대했던 것인데, 올린은 오히려 고개를 더 조아렸다.
“효율을 위해섭니다.”
“전통적인 중식을 바탕으로, 일식, 한식의 에센스를 섞습니다. 오래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중일은 얽히고 얽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문화권 안에 속하죠. 저는 식문화에서도 세 나라에 대단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엄청난 공통점도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요리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동양권
나라들의 요리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조절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동양의 요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요리를 개발해냈고, 다양한 퓨전 요리로 레스토랑을 운영해
미슐랭 스타 11 개를 받은 셰프였다.
“예를 들면요?”
“제 요리는…….”
31 화. 쓸어 담기 시작(3)
내가 한 말이 저들에게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요리를 저들에게 선보일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저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당연히, 하나의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조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흡!”
포시즌스 파리의 사장의 말은 방송 MC 의 말처럼 무게감이 없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이 테스트가 포시즌스 파리에 입점할 수 있는 다리라고 생각하니,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현장처럼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주십시오.”
“자, 뒤를 돌아주세요.”
나의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요리 보조.
그 옆에서 선택을 기다리던 중국계 미국인, 보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셰프들 쪽으로 걸어갔다.
“안부는 있다가 여쭤볼게요. 팀장님. 여기는 어쩌면 ACK 그 현장보다 중요한 자리니까요.”
나보다 나이는 일고여덟 살 많지만, ACK 촬영 당시 사용했던 팀장이라는 칭호를 여전히 사용했다.
***
“팀장님, 저는 어떤 것을 준비하면……?”
“예!”
민서윤은 나의 말에 곧장 행동했다.
‘장어로 끝을 낸다.’
파다닥! 파다닥!
그밖에 다른 수조에는 많은 종류의 어패류가 있었고, 냉장고에는 질 좋은 고기들이 가득했지만 내가
장어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앞서도 증명해 왔지만, 판이 깔리면 내 최대의 실력을 보여주는 게 내 인생에 가장 효율적이지 않았던가.
“참나……!”
“잘나셨고만.”
“창칼.”
솨악!
드드득!
칼과 장어의 뼈가 맞닿는 소리가 났고, 나는 능숙하게 장어의 내장을 걸러낸 뒤, 머리를 쳐냈다.
“민서윤 씨. 대파 좀 썰어주세요.”
“허브요? 아, 아! 아닙니다!”
숙!
숙!
수욱!
“어……?”
“……!”
32 화. 쓸어 담기 시작(4)
“가니쉬, 이거 부추인가요?”
부추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봐도, 장어와 잘 어울리는 식품이지만 그 맛에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식품이다.
마늘과 파와 같은 성질을 가진 부추는 그 특유의 알싸함을 줄이고 다른 맛을 얹어주면 장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강력한 가니쉬가 될 수 있다.
“맞습니다. 처음엔 레드 와인을 이용할 것인가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복분자 특유의 단맛과 약간의
산도를 표현하기엔 모자라다고 생각했습니다.”
“각 조리법에 최적화된 크기의 장어를 쓰는 것에도 신경 썼습니다. 32cm 에서 36cm 의 장어는 튀김용,
41cm 에서 45cm 의 장어는 구이용으로. 그 중간의 장어는 조림용으로.”
“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고, 몇몇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가 흠칫
놀라 딴청을 피웠다.
***
“무슨? 스캔들?”
“아, 방송 끝나고 요리 유학 왔죠. 장루이 셰프님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진짜, 반유현
셰프님 처음 얼굴 봤을 때 너무 놀랐어요. 와……. 아니, 미, 미슐랭 포스타 셰프 맞죠?”
“네.”
“다 별일 없이 잘 지내시네요.”
“푸아그라 라비올리입니다.”
다만 확실히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곳이라 그런지, 재료의 손질법과 관리에 엄격한 기준을 세워 놓은
듯했다.
“티, 팀장님 맛없으세요? 여기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거기에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님 중 한 명인
마리옹 셰프님이 운영하는…….”
“근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우세요? 응당 셰프라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되는
거 아니에…… 헤엑!”
“반유현 셰프님.”
이 레스토랑의 주인인 마리옹과, 포시즌스 호텔 내 또 다른 레스토랑의 주인 장루이였다.
“괜찮습니다. 어떤 말씀……?”
“무슨 말씀이신지…….”
무심코 민서윤의 얼굴을 봤더니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놀란 눈으로 나와 이 호텔의 직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세…….”
포시즌스 호텔의 레스토랑 중 한 자리, 그 비어있는 자리의 새로운 주인은 ‘나’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고, 그것을 완벽하게 확정 짓기 위해 단독으로 요리 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판단…….”
분명, 나의 요리를 맛보고 나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터인데, 아직까지 그 판단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이 호텔의 경영을 책임진 사장, 로만은 줄다리기를 했다.
경영자로서 나와의 계약을 맺을 때, 조금 더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기 위해서 고개를 굽히지
않는 것이었다.
‘확실하게 하려면.’
나에게 이 레스토랑의 자리가 중요한 것인가, 저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인가를 정확히 대보면
그 우위는 명확히 판명 난다.
“하하. 반유현 셰프님, 다소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마리옹 셰프님의 요리를 그대로 따라 하시겠다니…….
무모한 도전을 하실 필요 없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하셔도 됩니다. 저희 호텔 측에서는 그 정도
배려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배려를 해준다라…… 이들의 태도를 보건대, 아직 자신들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속으론 내가 이 호텔에 필요하다고 애타게 울부짖으면서.
무작정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내가 먼저 저들에게 솔직하게 대해줘야, 저들도 속마음을 제대로 꺼낼
것이란 생각에 말했다.
“에…… 예?”
33 화. 내가 더 별이 많아 (1)
장루이가 말했다.
나에게 요리를 배울 수 있고 저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흔쾌히 수락했다.
“네.”
더군다나 마리옹은 요리에 대한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이 일대의 셰프들에게 존경받는 셰프이기도 했으니까.
미슐랭 스타가 셰프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평가요소라 할 수 없지만, 그냥, 사실관계를 짚어줬다.
“포시즌스 호텔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계신 마리옹 셰프님과 장루이 셰프님의 미슐랭 스타를 합쳐도, 네
개가 되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
“단호박 무스, 감자 크로켓.”
“푸아그라 라비올리.”
“메추리 스테이크.”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식 조리법과 발음이 섞여 ‘고로케’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원래의 이름은 크로켓이다.
‘마리옹 셰프의 크로켓과 맛의 확실한 차이를 내야 하는데. 튀김이나, 기름은 어차피 비슷하다.’
튀김을 바삭하게 만들기 위해 반죽에 탄산수를 넣는다든가, 맥주를 넣는 방식들은 아주 평범한 것들이라는
소리다.
미슐랭 스타의 레스토랑에 있는 음식들은 모두 그 정도의 노력과 노하우는 기본으로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메뉴를 만들어 내기로 했으니, 요리의 외형이나 색감이 바뀌지 않고 미세하지만 미세하지 않게
맛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이거지.’
생크림의 농도와, 단호박의 삶은 정도, 그리고 간. 정확히 맞아 떨어져 마리옹의 레스토랑에 있던 단호박
무스가 탄생했다.
단호박 무스에 당근을 소량 으깨어 퓨레를 만들어 넣었다. 색깔이 변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당근은 단호박의 단맛과 대적하는, 새로운 단맛을 내어 줄 것이고 그렇게 쌓인 두 가지 단맛은 이 요리를
먹는 이에게 호기심과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구운 관자, 샤프란 소스를 곁들인 가자미 구이, 메추리 스테이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대……단, 하십니다.”
***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
마리옹과 장루이가 나누고 있던 대화가, 시시콜콜한 얘기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로만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가 노력한 시간들이 그대로 실력이 되었다면, 저 젊은 셰프가 우리의 요리를 따라 할 엄두를
냈겠습니까? 우리가 쓰는 시간들은 헛되이 버려지고 있고, 떠날 때가 됐다는 뜻입니다.”
로만은 반유현의 실력을 보고 회의감을 느낀 마리옹을 위로했고, 마리옹은 로만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마도, 내가 노력한 시간들이 혁신적인 요리를 생각해 낼 실력을 쌓아주진 못했지만, 저 친구가 나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알 수 있게 해준 것 같네요.”
“준비 다 됐습니다.”
***
“먼저 드셔보시죠.”
“대체…….”
“하하하하!”
나는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대답해줬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와…….”
평가를 한다는 것을 까먹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계속해서 요리를 입으로 가져가 탐구했다.
“아시겠지만 이게 첫 번째 요리입니다.”
‘테스트는 끝났고.’
저들이 내 요리를 맛볼 자격이 되는지. 더 정확히는, 마리옹의 요리와 내 요리의 완벽한 차이를 파악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테스트였다. 저들은 그 테스트를 방금 통과했다.
34 화. 내가 더 별이 많아 (2)
“이런 조화는……!”
“와.”
“환상…….”
그 비교의 대상은 프랑스 파리에 몸담고 있는 셰프들의 정신적 지주, 마리옹이었으니 말이다.
“레시피가 궁금합니다.”
마리옹이 작게 읊조렸다.
***
“축하드립니다.”
“환영합니다.”
먹자골목인 몽토르게이 거리에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내 이름이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었는데, 파리 내에 가장 비싼 땅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약 80 년 역사를 가진 포시즌스 호텔에 내
이름을 걸게 되었으니, 내가 이곳의 호텔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된다는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될 터였다.
“예?”
“아…….”
주방의 인력난.
물론, 지금 내 이름을 걸고, 셰프들을 비롯한 각 분야의 직원들을 모집한다면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다.
“당장 모집 공고를 올리면 되겠습니까? 반유현 셰프님 이름으로요. 파트별 연봉을 말씀해주시면 그대로
공고를 내겠습니다.”
“모집 공고를 올려, 셰프를 거르고, 섭외하고, 협상하고, 그것이 끝난 뒤에는 또 주방에서 합을 맞추고
…….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는 250 석 이상을 갖춘 대규모 레스토랑들 대부분이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미슐랭 스타를 획득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맞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연매출 300 억은 거뜬히 넘기는 거물급 셰프들이죠. 미슐랭 스타를 쓸어 담을
그런 셰프들만 골라놨습니다.”
“마리앙, 장루이 셰프님께서 돌연 은퇴를 하신다고, 면담요청을 하셨습니다. 사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뭐?”
“두 셰프님 모두, 올해 3 월 만료인 레스토랑 운영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은퇴를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께 면담을 요청하셨다고…….”
“예, 알겠습니다.”
35 화. 내가 더 별이 많아(3)
포시즌스 그룹 간부 총회의.
“아니, 미슐랭 3 스타라면, 당연히 매출로 직결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3 스타의 정의가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될 집인데, 투숙객들이 줄을 지을 겁니다. 하하하! 사장님도 참……. 괜한
걱정은 하지 마시죠.”
“파리는 요즘 어떻습니까?”
“와!”
“아직 오픈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반유현 셰프가 섭외되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 여기 계신 간부님들께서도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포시즌스 파리의 레스토랑 두 곳을 경영하고 계신, 마리옹 셰프님과 장루이 셰프님께서 은퇴를
선언하셨습니다.”
로만이 마침표를 찍으려 했던 말에도, 장내의 술렁임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로만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저도 압니다. 비현실적인 거, 다른 분들이라면 이 다른 전략을 세웠을 겁니다. 마리옹 셰프님과 장루이
셰프님의 은퇴를 막는 방법을 생각하셨겠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보시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반유현
셰프의 실력과 그의 말에서 나오는 자신감, 그리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아우라.
여러분도 그것들을 봤다면 제가 반유현 셰프님께 시간을 드렸다는 것에 무조건 동의하셨을 겁니다.”
***
각각 호텔의 사장이 그 호텔을 총괄하며 경영을 도맡아 하곤 하는데, 이들은 같은 사장의 직급을
가졌더라도 입지가 다르다.
“저희는 최고의 맛을 가져야만 하는 포시즌스 호텔입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욕심을 알겠지만, 검증되지
않은 셰프들을 대거 뽑아…….”
***
뉴욕의 요리학교 CIA, 프랑스의 르꼬르동 블루, 일본의 츠지 요리학교 등 각 나라의 꼽히는 요리학교들.
나의 한 마디로 저들이 학교를 휴학하거나 그만두고, 내 주방에서 일하게 된다면 상관이 없지만.
아무리 내가 영향력을 가진 셰프라 한들, 자신들의 학업을 포기하는 것에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터였다.
나는 그들이 고민하는 시간을 지켜봐 줄 시간이 없는 사람이었고.
‘주방 보조 출신들.’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엄청나게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기에, 지금의 시간은 금이었다.
‘요리 대회 출신들.’
정확히 나에게 지금 필요한 성질들을 모두 갖춘, 셰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당장 내 주방으로 들어와 일할 확률이 높으며, 배움과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 높으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어 있는 수준의 셰프들.
‘하나, 둘…….’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세계 최초로 단번에 미슐랭 포스타가 되었으며, 그 나이가 세계 최연소라는 나의
지금의 정체성이었다.
36 화. 내가 더 별이 많아(4)
“흡!”
“예, 예! 셰프!”
“됐고, 다 여기 앉아봐.”
“예?”
네 명 중, 단 한 명.
“어. 개인 부문에서, 메인요리(Plated dish Class), 아시안 밀(Asian meal Class), 라이브 쿠킹
(Live cooking Class) 총 세 가지 종목에. 너는 그중에서 라이브 쿠킹에만 출전하지?”
“푸. 그런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내 옆에 앉게 된 사람은 메이였다.
“일 안 하고 그런 얘기들이나 하고 있냐.”
“맘대로.”
퍼스트 클래스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위해 세워진 가림막 때문에 메이의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고 있으리란 게 그려졌다.
나에게도 꽤나 괜찮은 제안이었다. 우선은, 그들의 예산으로 이동수단, 숙소, 식사를 지원해 준다는 것은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내 몸을 편하게 해줄 것이다.
이번 대회에 애초에 참가하는 이유는 내 전생의 동료들과, 잠재력이 충만한 셰프들과 접점을 만드는 것에
있으니까.
“그럼, 다른 말로 하면, 셰프의 요리를 맛보지 않아도, 셰프가 요리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 실력을
가늠할 수 있으시다는 거예요?”
“어.”
“아…….”
“그나저나 셰프님이 다른 국가의 감독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시겠네요? 어쩌면 국가대표 선수들보다
나이가 어릴 수도 있고.”
“뭐, 그렇겠지.”
“아무튼, 이번엔 제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 드릴 거예요! 정식으로 대결을 신청합니다. 셰프님!
셰프님을 요리로 한번! 이겨 보…….”
“그래, 꼭 날 이겨봐.”
***
우와아아아!
말 그대로, 셰프들은 완전히 오픈된 공간에서 요리를 하고, 이 행사에 참가한 관광객들이나 심사위원들은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관람한다.
더군다나 인기나 유명세가 조금 있는 셰프들의 조리대 앞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기에, 그것들을
신경 쓰는 것도 일이었다.
“역시! 각국의 요리잡지, 요리 신문, 방송사에서 반유현 셰프의 이름을 거론했습니다. 사회자인 저
역시도 반 셰프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죠! 인터뷰를 한번 해보실까요!?”
“아, 네! 어떤 질문이신가요?”
“반유현 셰프님. 다른 셰프들의 불만을 무시하고 이 대회에 참가하셨잖아요? 당신의 행동이, 그들의
불만처럼 후배들이나, 젊고 유망한 셰프들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미슐랭
포스타에, 파리에서 유명한 레스토랑 두 개를 운영하시는데, 굳이 여기에 나오신 이유가 뭡니…….”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꺄아악!
우우우-!
박수는 나를 존경하고 응원하는 셰프들, 또는 관광객들일 것이고 야유는 나에게 시기와 질투를 가진
이들일 것이다.
‘예열은 끝났고.’
37 화. 내가 더 별이 많아(5)
“에에?”
“아! 메이!”
그에 따라, 나의 밑에서 일하던 로또 육인방의 얼굴도 간간이 비쳤는데 메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던
것이었다.
“아!! 스승과 제자가 같은 경연장에서 실력으로 승부를 봅니다. 소문처럼 반유현 셰프의 제자를 가르치는
방식이 도전적이고 신박하군요! 반유현 셰프님, 메이 셰프가 이긴다면, 하산해도 되는 겁니까?”
***
앞서도 말했지만 요리하는 과정에 가산점이 붙기도 하고, 감점이 되기도 한다.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시작을 외치자, 대형 스크린의 한쪽에는 60 분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머지 한쪽에는
참가자들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콩피(Confit).
쾅!
우와아아아!
요리 과정이 심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셰프가 위생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적절한 재료 손질법을
사용하는지를 본다는 것인데, 그런 요소에서 감점을 당할 리는 없었으니, 나는 퍼포먼스에 집중했다.
연어를 조리대에 올려놓고는 곧바로 생선 손질용 칼을 꺼내, 연어의 지느러미 아래로 칼을 넣었다.
우와아아아아!
샤아아악!
칼과 뼈와 맞닿는 소리가 나왔다.
숙! 수우욱! 다다다다!
우와아아!
‘시작했나.’
“대체 뭐야!”
“그 스승의 그 제자…….”
“국제 대회에서?”
우와아아아!
메이가 준비한 요리는 뫼니에르. 프랑스 전통의 생선 요리로, 버터에 생선을 굽기 전 밀가루나 전분을
묻혀 생선 살 특유의 식감을 살리는 요리이다.
숙! 수우욱!
우와아아아!
생선요리를 준비한 몇몇의 셰프들은 의욕을 잃었지만, 몇몇의 셰프들은 아직도 희망을 잡고 있었다.
그 셰프들은 맛에 희망을 갖고 열심히 요리를 준비하고 있으나, 그게 그들의 뜻대로 될 리는…… 당연히
없다.
***
심사위원만 35 명.
“이 셰프는 참…….”
“맛이…….”
“감점요소가 없네요.”
연어 콩피.
그리고 시금치 카라멜 소스가 그 기름짐을 한번 닦아줬고, 가니쉬로 곁들여진 브로콜리니가 입안을 한 번
더 개운하게 헹궈줬다.
“맛이 똑같다면 연어를 즉석에서 손질한…… 반유현 셰프에게 가산점을 주겠지만, 가산점을 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반유현 셰프의 요리가 더 맛있습니다.”
“이름이 메이였나?”
그리고 더더욱 심사시간이 지났을 때는, 결국 반유현의 요리 앞에,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모여 있었다.
“흠. 감탄밖에 안 나오는 요리입니다. 그런데, 반유현 셰프는 우리의 평가를 받기 위해 이 경연에
출전하신 건가요?”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해서……. 메달을 안 줄 수도 없고. 곤란하군요. 그렇다고 메달을 주자니, 전
종목을 석권할 것 같고. 다른 셰프들의 불만이 많아질 만합니다. 생태계 파괴 아닙니까? 허허…….”
38 화. 내가 더 별이 많아(6)
동메달 수상자의 호명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축하를 했고,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내 옆에 있던
메이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아니.”
“대충은.”
리키 넬슨.
“축하해.”
동메달 3 명, 은메달 2 명.
“축하한다.”
더군다나 ‘레드테이블 - 반유현’의 메이. 레스토랑의 이름에 나의 이름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나의 밑에서 일하며 요리를 배운 셰프라고 모두가 알게 되었다.
시상대로 걸어가는 메이보다, 나를 향해 뜨거운 시선과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설명할
이유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옛 동료를 비롯해 잠재력이 뛰어난 강력한 셰프들을 파리로 데려갈, 첫 번째 준비를 마쳤다.
***
“이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반유현 셰프님. 그 세 글자의 이름은 외워서 가겠어요.”
“아, 예. 당연하죠.”
“어? 이게 뭐죠 셰프님?”
***
이유는 알려주지 않고, 100 인 이상이 참석할 수 있는 연회장을 찾으라는 미션을 반유현에게서 받았다.
아마도 메이의 셰프로서의 잠재력과 실력이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은 반유현의 교육법과
메이의 호기심과 탐구력이 합쳐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싱가포르, 머나먼 타지까지 와서 100 명이 수용 가능한 장소를 3 일 만에 찾아야 했지만, 자신을 키워주고
가르쳐 준 셰프의 큰 뜻이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몇 곳의 호텔을 돌아다니며 장소를 섭외하고 있을 때에, 메이의 귀에 뜻밖의 소리가 들렸다.
‘어. 저 얼굴은.’
메이는 더 이상 출전할 종목이 없었기에 이런저런 경연들을 관람하며 다녔던 터라, 수상했던 셰프들의
얼굴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메이가 알고 있는 얼굴 중 한 명인 라이브 쿠킹, 영셰프 종목의 금메달 수상자가 반유현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39 화. 왜 나를 보고 떨어? (1)
“별칭?”
메이가 혀를 차며 나를 바라봤다.
반유현의 축복.
셰프들이 경연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었던 셰프에게 명함 같은 종이를 나눠줬는데, 그 종이가 그런
명칭을 얻었단다.
“그게 왜 축복이야?”
“그래서 어쩌시려고요?”
“내가 마음에 드는 셰프에게 초대장을 주고, 한곳에 모아서 괜찮은 제안을 해볼까 했는데, 그 초대장
자체에 힘이 생겼으니, 이 대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겠어.”
***
“예. 그렇습니다.”
“행사의 끝, 그 마지막 밤에 파리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 이 문구만 보면, 이 대회에서 수상한
셰프들을 파리에 있는 당신의 레스토랑으로 데려가려는 수작 중에 하나 아닙니까? 그것도 국가대표
감독직을 이용해서.”
속이 답답해 터질 것 같았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개인적인 영업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수상자들에게만 이런 종이를 돌렸다는
것도 노골적인 욕심을 나타내시는 것 아닙…….”
“수상자들에게만 돌린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랬다.
격려식.
“싫습니다.”
“이미 협회에 건의를 했으니, 어차피 그렇게 될 겁니다. 그리고 확실한 건, 저는 감독입니다. 제가 맡은
이 국가대표팀의 명예를 위해서 그런 건의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죠.”
“허…… 참.”
격려식이 시작되었고, 내가 격려사를 마쳤을 때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셰프들의 거침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저도, 받고 싶어요!”
약 올리듯이 말하는 게 아니라, 상당히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니 셰프들이 뒤를
돌아 한 곳을 응시했다.
셰프들은 그런 말을 내게 누가 했는지 알았다는 듯이, 김정식과 그 휘하의 코칭 스태프들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
“안녕하십니까. 사무장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솔직하게 말했다.
“제안이요?”
40 화. 왜 나를 보고 떨어? (2)
두 명의 어린 셰프는 경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반유현이 ‘반유현의 축복’이라는 종이를 나눠준 셰프였다.
워낙 거침없는 언사와 자신감으로 유명한 반유현 셰프였지만,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 대체 경연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가.
‘응?’
사무장의 저 멀리에 보이는 어떤 셰프는, 반유현이 지나갈 찰나를 맞춰 재료를 다듬는 걸 준비하다가,
그가 지나갈 때에 칼질을 시작하는 셰프도 있었다.
***
포시즌스 호텔에 새롭게 오픈할 레스토랑의 인력 문제를 해결하려 이 대회에 출전했더니만, 인생 전체의
인력 수급 문제를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가대표부문 3 코스 종목이 진행되는 한창, 웃겼던 것은, 셰프들이 나의 존재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 종이를 받게 된 셰프가 수상을 하게 되리란 징표이자 부적으로서 갖는 가치와 나에게 그러한
제안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초대장으로서의 가치 중에서, 후자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
역시나, 이 팀도 감독 김정식이 조리대 앞에서 팔짱을 끼고 셰프들의 요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메뉴가 뭡니까?”
나의 사퇴를 주장하다가 셰프들의 반발에 자신의 의견을 접었으니,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만도 했다.
“제가 도움 드릴 건?”
다른 셰프들과 달리, 내 앞에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는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푸. 무슨 영감이요?”
나에게 사퇴를 하라며 나무랄 땐 언제고, 자신이 감독을 맡은 팀이 선보일 요리가, 나에게 영감을 받은
요리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유현 셰프님이 규카츠랑 동치미 국물로 셰프들을 줄 세우신 사건 있잖아요. 그때,
저희 감독님이 동치미와 시원한 물김치 같은 음식도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구나라고 알게 되셨대요.
그래서 새콤달콤하게 입맛을 돋우는 가니쉬로 동치미를 자주 이용하곤 하셨어요.”
김소민은 내가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행사에서, 갈비찜이 다 떨어져 규카츠와 동치미 국물로 세계적인
셰프들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을 말했다.
“크흠!”
조리대 안쪽에서 요리를 하던 셰프들은 자신들 감독의 표정이 왜 그렇게 달아올랐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물김치, 감독님 얼굴처럼 빨갛게 하려면, 육수를 우리는 망에다가 고춧가루를 넣어서 담그세요. 그럼
색깔이 불그스름하게, 예쁘게 나올 겁니다. 고춧가루를 직접 뿌리면 맛이 튀니까요.”
***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
짝! 짝! 짝! 짝!
“네.”
“하하하하!”
“흠.”
얼떨결에 대회의 일정이 끝났으니, 종이를 나눠주는 것은 이걸로 끝내고 이미 종이를 받은 셰프들을
파리로 데려갈 계획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파리에서부터 생각해 온 계획을 수정해야 됐기에 머리가 복잡해지려 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성과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WACS, 공식 심사위원.
41 화. 왜 나를 보고 떨어? (3)
“후. 너무 무모했었나.”
그 잠시 동안에는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쌓였다. 그중에서 불안한 마음이 점점 머릿속을 잠식해 나갔고,
그 마음은 자신의 선택이 무모했다는 결과를 내게 만들었다.
“흠.”
당장 셰프들과 1:1 면담을 통해 계약서를 찍어도 모자랄 판에, 유유히 경연장을 돌아다니면서 종이를
나눠주는 것이라니.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생긴 것과 동시에 자신이 무모한 선택을 했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 당시 반유현이
가진 매력과 실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경영자, 기업가로서의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건 또 뭐야?”
툭.
약속은 약속이니까. 반유현에게 했던 말을 저버리는 것은, 상도가 아니라 생각한 나머지, 우선 기다려
보기로 했다.
***
포시즌스, 파리.
아무것도 없는 공간, 원래는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였고 현재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구했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들은 나의 성공을 당연히 믿고, 그 성공을 어떻게 해냈는지가 궁금한 느낌이었는데, 로만은 나의 성공
자체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물론, 이 호텔의 간부들과 다른 사장단들의 우려를 모두 떠안고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후웅! 후웅!
“뭐, 뭡니까!”
“이게…… 무슨.”
“대체, 이분들은……?”
“저와 함께 포시즌스를 이끌어갈 셰프님들이십니다.”
“예에?”
후우우.
“아니……! 저분들은.”
***
“어떻게…….”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주방의 조직을 구성할 수 있고, 실력도 웬만큼 갖춘 지휘급 주방장들입니다.”
“아니, 이분들…….”
“재료 손질부터, 잠을 안 자면서 주방에서의 제 입지를 키워왔습니다. 이제는 파도를 맞아가며 거침없는
도전을 해보고 싶어 반유현 셰프님의 부름에 이끌려왔습니다.”
“저도, 이상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창립자께서는 14 개의 미슐랭 스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 이렇게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는지…….”
이들을 각 레스토랑의 총 지휘자로 세운 이유는 경력도 경력이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요리를 수단으로 자신의 색깔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국제 요리 대회 경연장에서 확인했었다.
우와아아아아!
셰프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나는 그 찰나에, 그것을 지켜보던 로만의 안면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42 화. 왜 나를 보고 떨어? (4)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세계적인 그룹의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나에게 레스토랑 경영의 전권을
쥐여줬음에도 이런 인사 검증은 필수적인 항목이었다.
“이 셰프들은 대체 무슨 근거로?”
“하…….”
“얼마의 시간요?”
“알겠습니다.”
“후.”
로만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WACS 심사위원의 안목이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하고, 반유현의 축복이란 게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궁금하고. 아무튼, 이 셰프들 두 달이라고 하셨습니다. 저 건너에 그레이튼 호텔의 셰프들 보다 실력이
좋아지게 하는 데에.”
“두, 두 달요?”
우욱! 우웩!
***
예를 들면, 반유현 - 파리, 라스베이거스, 도쿄 이런 식으로 이름을 만들다가 지명이 겹치는 곳이 있으면
색깔을 붙이는 것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포시즌스 파리의 모든 레스토랑의 경영권을 가지셨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홍보하자는
말씀이신가요?”
“호텔의 역사에 걸맞는 역사적인 행사를 만들죠. 그러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
“후회는 없지?”
이 호텔의 레스토랑을 수년째 운영했던 마리옹과 장루이는 호텔의 객실에서 떠오른 기사들을 읽고 있었다.
[ 장루이 “후임자인 반유현 셰프를 응원, 이 호텔의 레스토랑은 역사적으로 파리의 맛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반유현을 응원하겠다. ]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잔잔하고 훈훈한 분위기로 끝날 것 같던, 그 은퇴식, 마지막 기자
회견장에서 장루이의 발언은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었다.
급하게 각종 광고를 냈지만, 급하게 그것을 해내려는 것이 미숙했는지, 이상한 소문들이 붙기 시작했다.
“틀린 것도 아니잖아. 실제로 우리가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맛보고 떠날 때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허허허.”
포시즌스 파리는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며 은퇴식이 있는 그 날밤, 가장 비싼 스위트룸을 이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은퇴를 왜 하냐…….”
“역사가 바뀌는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새롭게 쓸 셰프를 만났고요. 이전과는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나가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미래? 셰프들의 미래를 말하시는 건지요! 그 미래를 펼치는 사람이 누굽니까?”
프랑스의 유명 셰프가 한식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선보인다던가, 대한민국의 셰프가 프랑스의 식재료를
이용해 한식을 선보이는 등,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를 합치는 방식으로 정찬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예? 왜, 왜요?”
대한민국의 대통령, 프랑스의 대통령에게 갈라 디너를 선보이는 것이라면, 반유현을 섭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격이 왜요?”
“스케줄이 괜찮으시겠습니까?”
100 년을 하나의 목적만을 두고 살았기에,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누군가와 금방 친해지는 성격은 아니지만,
내 요리의 맛을 보여주는 자리라면 친구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포시즌스 반유현의 오너 셰프, 반유현의 갈라디너’라는 이름으로 그 행사의 이름이 붙어질 터이니
말이다.
‘MOF 훈장.’
프랑스 정부가 이 훈장을 수여하는 기관인 만큼 그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
“현재 저희 일정이…….”
“일정이 뭔데.”
“가장 처음으로는 말씀하신 레스토랑 컨셉에 따라서 인테리어 준비하고 있고요. 식자재 납품하는 업체들
고르고 있고요. 그랜드 오프닝, 인사들 섭외하고 있고요. 프랑스 관광청하고 한불 문화교류행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요?”
기존에 전화나 방문으로만 예약을 받았기에, 오로지 나의 이름만을 찾아온 관광객들이나 미식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와……. IT 사업까지……?”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
‘효율을 위해섭니다.’
자신도 미슐랭 11 스타를 가지고 있는 중견 셰프로서 아무리 초신성이라 한들, 자신 앞에서 그런 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봤으나, 도저히 자신감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성격이 건방지거나, 허세가 몸에 베어 있는 사람이겠지.
그런데, 그가 실제로 하는 행보들은 모든 것이 자신감이었다.
-다운로드 7 만.
“실리콘 밸리?”
실리콘 밸리.
“응?”
“트레블 어드바이져?”
트레블 어드바이져.
전 세계의 호텔, 숙박 시설, 엑티비티, 맛집, 레스토랑 등 여행객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근래에는 그들의 음식점 리뷰 서비스가 공신력이 높기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젊은 층의 할리웃 배우들과, NBA, EPL 등 스포츠 스타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젊고 돈 많고,
성공가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광고 모델로 쓰고 있는데, 저희 반유현 셰프님도 그들의 눈에
들었나 봅니다.”
반유현님의 이름 자체에 있는 브랜드 파워를 이용해, 세계적인 광고를 내보고 싶습니다. 저희 회사의
공식 모델에 관련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
“예, 맞습니다. 일단 그쪽에서 제안한 것들과 별개로, 이번 행사에 모든 비용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니, 저들의 의도를 간파해내는 것이 쉽다.
“예, 그렇습니다. 트레블 어드바이져 측에서 내민 제안은 이번의 지원과 관련 없다고 정확히
명시해놨으니까요.”
“그럼, 엄청난 투자자가 생겼다는 건데,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한불 문화교류 행사의 갈라디너를
만들어야지.”
“예에?”
내가 요리하는 모습과 그들이 내 요리를 맛보는 장면들이 양국의 방송에 생중계 된다.
“첫째 날에는 양국의 대통령이나, 유명인사들 때문에 주최 측에서 섭외한 호텔에서 갈라디너를 진행하고,
둘째 날의 갈라디너를 마음껏 꾸며야겠어.”
“예?”
***
포시즌스 호텔에서도 이 행사가 진행될 뻔했으나,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장소를 제공할 수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3 관왕을 달성한 감독 봉준원, 앨범을 냈다 하면 빌보드를 휩쓸어 버리는 아이돌 TTS,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 성공적인 신화를 이룬 기업인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
나는 지금 그와 한 공간에 있었다.
센스있게 ‘봉주르’로 인사를 시작한 대통령은 프랑스와의 역사적인 관계를 말하며, 준비한 멘트를
즐겁게 이어나갔다.
“이곳에 초대되신 모든 분들이 프랑스와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계시지만, 저는 이곳이 갈라디너의
행사장인 만큼, 한 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성공적인 역사를
쓰고 계신 반유현 셰프. 저희 국민들이 하나같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셰프님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영광입니다. 제가 오늘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고, 꼭 저희 국민들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그가 내 눈을 맞추며 말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나에게 이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는 이들은 모두 유명인들 또는 각 국가의
고위공무원들이었다.
“준비됐냐?”
“예! 셰프!”
“밖에서 하는 얘기들 들었지? 이곳에 오신 분들은 우리에게 기대가 많다는 것만 알아둬. 그리고 그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놀랄 만한 맛을 보여주면 돼. 그게 우리의 역할이야.”
“예! 셰프!”
“한우 부채살 손질 들어가, 솔 뫼니에르에 활용할 고추장 베이스 소스 만들고, 표고버섯 육수 우리는
것도 준비해, 어육장에 졸인 전복구이, 들깨 드레싱 샐러드. 지금부터 다 시작한다.”
“예!! 셰프!”
***
“와! 이런 고소함은!”
전채요리의 첫 번째는 호박죽, 두 번째는 참기름, 간장으로 양념을 한, 육회를 감태에 싼 요리였다.
전채요리는 앞으로 나올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 요리를 맛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드러났다.
“와, 이 정도는……!”
내 생각대로 요리를 음미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경험을 말하며 나의 요리를 비교했다.
자신들의 경험이 많다고 생각했기에, 나의 요리가 주는 신선한 충격은 더 강렬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미치겠네요 진짜……! 호박죽의 고소함이 감태와 연결되며 사라지고, 한우의 담백함이 터져 나오는…
….”
“대박!”
표고버섯의 진한 육수가 참게의 살, 내장과 어우러져 풍미를 높이며 부드러운 계란이 입안을 채워
풍족하게 해주는 맛.
“브라보!”
***
“처음 요리는 한식을 시작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프랑스식의 조리법을 섞어가며 한식과 프랑스식의
요리를 합쳤습니다.”
호박죽이나 감태 육회 쌈 같이, 한식의 식재료와 조리법에 치중된 요리가 나올 때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같은 테이블에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요리를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한식은 말이에요…….”
“예! 하하하! 저희는 고추라는 음식과 가깝습니다. 이 전분을 묻혀 굽는 특유의 생선구이 방법은 프랑스
전통의 방법이잖아요? 반유현 셰프님의 고추장과 정말 잘 어울리네요.”
“한식과 프랑스 조리법을 천천히 단계적으로 섞는 방법으로 구성한 이유입니다. 코스가 끝난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나라를 막론하고, 요리 그 자체에 주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의 요리에 우월감을 뽐내고자, 서로 각 나라의 요리와 그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다가,
두 나라의 퓨전된 요리가 나오자 머리를 맞대고 요리가 주는 새로운 경험에 공감했다.
“새로운 경험과, 감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요리에 국적은 없습니다. 오늘 제 요리가 여러분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줬다면, 저는 제 할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
짝 짝 짝!
성공.
“예?”
“아, 안될까요? 하……. 나이도 비슷한 것 같아서,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관광차 파리에 자주올 것
같은데.”
8000 여 명의 관중들이 있는 무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와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예?”
“바안유우현?”
“반유현이요?”
“와우! 한국과 프랑스의 외교 관계를 돈독히도 해주셨다는 반유현 셰프의 갈라디너요? 그 셰프님의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들도 예약 기간이 한 달이 넘는다고 하는데!”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수고하셨습니다!”
박호검은 반유현의 현지 인기를 실감했다. 기껏해야 셰프, 아니. 셰프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이런 파급력과 인기를 가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꺄아아악!
우왕아아아아!
우와아아앙!
“크…….”
***
“문제가 많이 생겼습니다.”
“알아.”
“반유현 셰프님의 갈라디너에……. 참석하고자 TTS 팬들 사이에서 그 초대권의 가격이 한화로 130 만
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곧장 벤에 올라 현장으로 출발했다.
우와아아아아!
“이정도야?”
그들이 방송이나 SNS 에서 나의 레스토랑을 언급한 적은 많지만, 그것은 그저 유명한 맛집을 소개했을
뿐이었고, 나의 성장이나 성취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것들이었다.
‘시점이 다르니까.’
꺄아아아악!
우와아아!
“안녕하십니까.”
와아아아아아!
“무슨 말씀이신지.”
“예?”
“예?”
-Like 23,112
“엥? 더 높은 값도 있는데요?”
“그래?”
“와! 하하하하! 이거는! ‘TTS’의 김호가 셰프님한테 안 된다는 거죠? 와와! 이거 보세요 더 높은
가격에 암표를 구한다는 사람도 있어요.”
“맞는 말이잖아요, 셰프님. 암표는 온전히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던
거네요, 그 가격도 셰프님의 요리가 그만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이고. 김호 씨가 가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이네요. 사람들은 온전히 김호 때문에 암표가 형성되었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단 하나만은 확실하다.
“셰프들 집결 시킬까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저를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문화 교류에 앞장서는 셰프로 세워주셔서
감사하고, 저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요리를 대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신 주최 측과 관광청, 그리고
우리나라의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후우우웅!
와아아아아!
무대 양옆, 대형 스크린에는 요리와 각 요리에 알맞게 번호가 붙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리모콘을 이용해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 세 개를 선택했다.
코스가 개별로 구성되는 만큼 서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필요했기에, 이또한 대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띠링…….
후우웅!
우와아아아!
***
이 현장의 기술과 장비, 그리고 인력을 지원했던 트레블 어드바이져의 직원들도 이 현장의 광경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리모콘으로 음식을 투표하고 그것을 집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단순히 자신의 팬들을 모아놓고, 가장
인기가 있는 음식 하나를 선보인다던가, 그 정도의 이벤트를 할 줄 알았더니, 100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원하는 코스를 모두 만들어 선보였다.
모든 요리를 만들면 되고, 그냥 그것을 주문한 사람에 알맞게 서빙하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도전 정신 자체가…….”
단일 코스로 구성해, 각 메뉴에 정성을 집중하는 것과, 100 여 명 각각이 선택한 코스의 모든 요리에
정성을 들이는 것과 그 절대적인 양만 봐도 그렇다.
누구는 갈비찜과 떡볶이를 골랐고, 누구는 셰퍼드 파이와 규카츠를 골랐을 것인데, 모두의 만족도는
같았다.
최상.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저 멀리 무대 위에서 요리에 열중하는 반유현의 모습과, 그것을 비추는 대형 스크린은 이 행복을 지휘하는
자가 누구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는 반유현이 서울시 요리대회에서 우승한 기사를 보고, 누군가는 유튜브를 통해, 반유현이
라스베이거스에서 활약한 모습을 보고 반유현을 알게 되었다.
서울시 요리대회의 반유현을 생각하는 이들은 오리가슴살 스테이크를 생각할 것이고, 라스베이거스의
반유현을 생각하는 이들은 갈비찜과 규카츠를 떠올릴 것이다.
중요한 건, 반유현은 각자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강렬한 기억들을 요리를 통해 다시금 꺼내게
해주었다.
“이런 요리를 맨 처음에 했다면, 천재가 맞죠. 하하하하! 그 분식집도 줄을 몇 시간씩 서서 먹어야
했는데, 프랑스에서 먹을 수 있어서 너무 감동입니다.”
갈비찜 특유의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식감, 고기의 근육과 지방의 비율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소스의
점도 또한 최상이었다.
“천재…… 그 이상이지.”
그렇게 비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술쇼에서 게스트가 어떤 카드를 뽑던, 그 카드를 알아맞히는 마술,
이곳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어떤 요리를 선택하던, 반유현은 그 사람들이 최대치로 만족할 만한 맛을
뽑아냈다. 그것도 코스로.
“말도 안 돼…….”
진정 반유현과 그의 요리를 좋아하고, 그 요리를 맛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지껏 해보지 못한
맛의 경험에 놀라움과 감탄을 연신 쏟아냈지만, 같은 요리를 먹고 있음에도 직업이 셰프였던 이들은 마냥
좋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셰프가 나타난 거야……. 저 젊은 나이에 미슐랭 포스타를 가졌다고 놀랄만한 셰프가
아니었군.”
***
“아, 그렇습니다.”
“둘째 날에 했던 갈라 디너는…… 손님을 생각하는 셰프의 마음가짐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셰프님은 본인을 스타로 만들 줄 아시는 것 같습니다.”
“스타는 무슨.”
“무슨 제안.”
“이번 그랜드 오프닝도 왠지 보통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제가 슬쩍 들어봤는데, 판이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셰프님이라 한들, 이 모든 걸 계획하진 않으셨을 것 아닙니…….”
“아…….”
“아……. 네, 그렇죠.”
“티, 팀 전체요?”
49 화. 세계정복 준비 (1)
“뭐, 생각은 해봤던 거니까. 이것도 우연은 아니네요. 근데 진짜……. 어떻게 이런 일이.”
“예?”
그것의 수여에 관여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물론, 대통령 혼자 결정하는 상은 아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프랑스 파리가 요리의 성지라 불리는 만큼, 매번의 삶에서 나는 프랑스에서의 활동을 안 한 적이 없었기에,
저 상을 놓친 적도 없었다.
“그, 그럼 그랜드 오프닝에 참가하리라 예상되는 인물들이 벌써,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하고…… 프랑스의
대통령……? 그런 말씀이시죠?”
“규모가 제법 괜찮네.”
***
인테리어 공사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주방에서 소스나 여러 메뉴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개발하는
중이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셰프!”
나는 오랜만에 만난 주방의 인원들을 격려하고, 한불문화교류 행사에서 나를 도와줬던 셰프들도
격려해주었다.
“이제 제일 중요한 행사가 남아있어. 나, 반유현의 미래이자, 자네들의 미래를 측정해 볼 수 있는, 그런
행사. 특히나 이곳 포시즌스의 그랜드 오프닝은 역사적인 행사이기도 해.”
정적이 흘렀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 이름은 포시즌스, 반유현. 그리고 세 개의 이름은 각각 레드, 블루, 옐로.
이제, 각각의 코스와 메뉴들을 말해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방의 인원이 충원되어 지금은 약 60 여 명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의 정적이었다.
“예?”
“예에?”
“이 호텔은 프랜치…….”
“두 번째, 중국은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앞으로 내 레스토랑 브랜드인 ‘반유
현’을 집중적으로 진출시켜야 할 곳이야.”
“일본은 알다시피, 2018 년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나라고, 그 나라의 음식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많아. 이곳을 기점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은 일식이라는 메뉴를 탑재한다.
이곳에서 개발한 일식 메뉴와 코스를 가지고, 세계 각국에 일식 레스토랑을 차릴 거야. 여기는 거점이고,
쉽게 말하면 이곳이 반유현 레스토랑 일식의 시작이지.”
일본의 음식문화는 그 나라가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갖게 만들었고, 그것을 그대로 증명하듯이 일식은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한식은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미슐랭 스타만이 내 목표였던 내가 굳이 도전할 분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심이 아예 없었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며, 영양과 조화를 아우르는 음식. 아니, 이런 특성은 원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더 깊게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렇다 할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은 한국인들의 태도였다.
100 년의 경험이 있는 내가, 한식에 본격적으로 도전해 본다면, 무수히 많은 미슐랭 스타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메뉴까지 다 구성해 놨으니까, 각 지휘 셰프들은 남아. 그리고, 이제, 대외적으로 알리고 그랜드
오프닝 본격적인 섭외 시작해.”
“예! 셰프!”
그렇게 회의가 끝난 날에, 포시즌스로부터 연락받은 요식업계 잡지, 신문사를 비롯해, 먹방, 쿡방 BJ
들은 포시즌스 세 개의 레스토랑을 동시에 맡게 된 셰프의 이름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그들은 그 사실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고, 자연히 대중들의 관심도 쏠리게
되었다.
50 화. 세계정복 준비 (2)
“또, 또, 또, 반유현 셰프야. 하하하하!”
레드 테이블의 두 셰프.
“도대체 끝이 어딜까.”
“아니, 사람들은 다 루시앙 셰프님이 반셰프를 파리에 데뷔시켰고, 실력을 키워준 장본인으로 알고
있는데, 셰프님이 반 셰프의 요리를 맛보고 놀라면 모양 빠지지 않습니까.”
***
“하이고. 이게 진짜여?”
“그럼요. 분식집 아들의 달라진 삶! 다른 식당들도 중간점검 하는 것처럼, 분식집 아들! 셰프되다! 이런
식으로 내보내려고요. 반응은 뭐, 보나 마나 좋을 거잖아요. 저 같은 방송쟁이들이 놓칠 수 없는
기회죠.”
***
원래 일식 레스토랑 ‘미나’의 수석 조리장 출신인 에쉬를 제외한 게리와 아론은 프렌치, 이탈리안
양식으로 구분되는 전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편하게들, 행동하세요. 저희도 똑같이 요리를 배우는 중이니까! 하하하하! 직급은 생각하지 마시고.”
“설마.”
이들이 실험 삼아 선보인 요리들을 먹지도 않고 냄새와 시각적으로만 확인한 뒤에,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린 것.
주방의 선순환.
반유현의 그랬던 태도가 모두 의도한 것이라는 생각은 ‘반유현 팀’에 근무하고 있는 오스틴에게 들었던
것이었다.
“예! 셰프!”
“후. 시작하자.”
세 명의 셰프들이 주방을 지휘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이들의 의지가 주방의 열기를 넘어섰다는 점은 모두
같았다.
***
나는 그들에게 언뜻 보이는 그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나사를 조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레드, 블루, 옐로, 각 레스토랑별 경연을 제안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 앞으로 가져 나와.”
“죄송합니다. 셰프!”
51 화. 세계정복 준비 (3)
참치의 기름짐과 담백함, 그리고 새콤달콤한 소스를 묻혀 다양한 맛을 보여주어 다음 요리를 기대하게
만들고, 식욕을 돋우는 전채 요리로 구성된 것 중 하나였다.
“가마도로, 목살입니다.”
“참치 가져와.”
대외적으로 포시즌스 레스토랑, 반유현을 홍보하고 나서부터는 세간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요즘, 앞서
말했듯이 셰프들의 여유가 느껴진 것도 있지만 주방의 분위기도 들떠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 내부에서 비밀 유지 중. ]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아닙니다!”
“참치 목살, 가마도로라 불리는 부위는 지방의 함량도 적절하고, 횟감으로도 많이 쓰이는 고급 요리지.
그런데…….”
드드득!
드드득!
쩌어어억!
와……!
“아…….”
“먹어봐.”
“커헉!”
“다양한 맛을 먹겠다고, 고기의 여러 부위를 한입에 넣는 사람은 없지. 그런데, 그 요리의 형태가 ‘면’
이라면 그럴 수 있잖아. 왜 참치‘국수’를 만들었겠어.”
아울러, 오늘 느낀 자극과 부담감은 이들의 태도를 더 변화시킬 것이고, 정확히 맛과 효율로 직결될
것이다.
이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빼앗은 건 미안하지만, 파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랜드 오프닝이 이제 코앞이다.
정신 무장의 필요가 있었다.
***
“꺼지지 않는 주방?”
아니면 그 반대로, 총괄 셰프들이 주방을 떠나지 않았기에 그 밑의 셰프들도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오늘 회의의 주된 내용이었다.
“흠, 마음이 변할 리가……. 반유현 셰프는 그 정도까지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의 밑으로 들어오겠다는 셰프들이 줄을 지어 섰는데, 누가 그 자리를 떠나겠습니까.”
“반유현 셰프는?”
“곧 올 겁니다.”
“응답률은?”
“허허…….”
그 행사를 허가한 장본인이 로만이었지만, 초대 인원의 참석률을 듣고, 저도 모르게 심박수가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압도적인 비율입니다. 현재, 반유현 셰프는 그만큼 파리 요식업계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초대장은 아직 100 장이나 남아있는 상태, 로만의 경험상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은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장을 제작할 때, 참석률을 고려해 초대 인원의 2.5 배에서 많게는 3 배까지 제작하는데,
레스토랑 ‘반유현 - 레드, 블루, 옐로’는 초대장이 되려 100 장이나 남은 상태였다. 그것도 딱 100
장이라 하니, 반유현에게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이번 행사는 어쩌면 포시즌스 파리의 인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거대한 행사로 발전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만은 최고 경영자로서 자신의 커리어도 반유현에게 배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누구보다
많은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생방송입니다.”
52 화. 세계정복 준비 (4)
“2020, 텔레비지옹! 올해의 셰프로 선정된, 저어어엉말! 방송에 모시기 힘든 셰프를 모셨습니다!”
요리, 영향력, 레스토랑의 인지도 등 셰프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고려한 심사, 그 기준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올해의 셰프’라는 타이틀은 국제 요리 대회의 수상과 비교되는 이력일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78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올해의 셰프, 그것은 프랑스 파리, 그 도시 스스로가 요리의 성지임을 자부하기
위한 장치로도 줄곧 사용되곤 했다.
와아아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방송은 올해의 셰프로 선정된 셰프를 집중 인터뷰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와아아아아!
갈라 디너 현장에서, 대통령과 슈퍼스타들이 내 음식을 맛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화면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방청객들의 탄성이 섞여 나왔고, 화면이 암전될 때쯤에 사회자가 나를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요리를 맛본 스타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파리에 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인기의 비결은 무엇인지,
사용하는 식재료는 어디에서 구하는지, 요리의 비법은 무엇인지, 포시즌스 레스토랑을 모두 얻게 된 비결
등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하기 전에, 엄청난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그랜드 오프닝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세간의 소문에 의하면 그곳에 초대된 인사들이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뭐, 사회자님 말씀대로 대단하신 분들로만 자리를 채우면,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전부터 인지도를
확실하게 올리겠지만, 저를 좋아해 주신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대장을 따로
남겨두었습니다. 100 장 정도요.”
“예에?! 100 장이요? 아, 아니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초대권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나에겐 미슐랭 스타도 중요하지만, 포시즌스 반유현 - 레드, 블루, 옐로는 전 세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자
기점이 될 곳이었다.
그렇기에 주방의 멤버를 구성하는 것부터, 레스토랑의 메뉴까지 나는 확장성에 초점을 맞췄었다.
더군다나 나에겐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그 확장성과 인지도를 최대의 효율로 끌어올려야 했다.
“유튜브요?”
우와아아아!
***
아이스 버킷 챌린지, 누구노래 챌린지, 버드박스 챌린지, 등등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챌린
지’에 대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유튜브나 여러 SNS 를 시작한 시점은 모두, 미슐랭 스타 10 개 이상을 소지했을 때였다.
“버, 벌써 7 천 개…….”
-이게 뭐임?
#반유현챌린지.
-ㅋㅋㅋㅋㅋㅋㅋ백원종 급 후회.
-근데, 반유현 표정 안 좋다는데? 백원종 때문에 사람들이 다 반유현 챌린지 하면 기부금이 얼마임?
“영상 하나 올리자.”
“예? 어떤 영상…….”
“카메라 세팅해봐.”
-ㅋㅋㅋㅋㅋㅋㅋ그러게 왜 실수하래!
53 화. 세계정복 준비(5)
-SBN 오늘의 이슈입니다. 일명 분식집 아들이라고도 불렸던, 반유현 셰프가 또 새로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신이 여태까지 보여줬던 요리를 재현하는 영상에 포시즌스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권을
증정한다는, 말로 시작된 이 챌린지는 기부 문화가 얹어져, 많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캐린
리포터?
-예, 캐린입니다. 현재,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을 들어가 보면, 인기 동영상 30 위 내에, 반유현
챌린지의 영상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와…….”
“조용히 해봐.”
“우리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유럽 각국의 총리, 대통령, 그리고 UN, WHO 세계 단체들의 주요 인사들까지, 반유현챌린지라는 이름의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습니다.
-아, 반유현 셰프가 아무리 유명한 셰프라 한들, 그분들이 ‘초대권’을 위해서 반유현 챌린지를 하지는
않을 텐데요?
-네, 그렇습니다. 반유현 셰프의 처음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기부의 색깔이 더 짙어져, 각 사회단체의
장들까지 지원사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기업들도 반유현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풉. 그럴 리가.”
아마 반유현은 이슈의 규모를 정확하게 떠올리진 않았을 테지만, 비슷하게는 예측했을 것이다. 항상
정확한 예측을 기반으로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욕심이지 그건…….”
“셰프들이나, 미식가들이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재연하는 영상이나, 대단한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
재연하는 영상이 조회수가 많네.”
“야야야! 이 사람 봐 풉!”
자리에 앉아 파스타가 어쩌고, 코스 요리가 어쩌고 하던 미식가 루이드 뤼샤르도 반유현의 요리를
재연하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미슐랭 투 스타 셰프 엘른 조까지.
“이 와중에 가장 인기 많은 동영상은…….”
“이거 진짜 큰일 나겠는데?”
***
-조회수 11,234,256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그 영상은 조회수 천만을 가뿐히 넘어섰고, 반유현 챌린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들은 더더욱 증가했다.
“온 우주가 나를 돕는 느낌이네.”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 싶은가 본데? 반유현챌린지의 반유현이 파리에 있는 셰프의 이름인 걸 몰랐어?”
반유현 그랜드 오프닝 초대권에 도전, 기부문화형성 두 개의 큰 프레임으로 굴러가던 챌린지는 다시금
반유현에게 관심을 모아주는 방향으로 굴러갔다.
“찾았냐, 출처.”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곳에 사는 아이가 유튜브를 할 리 없고, 영어를 사용할 리 없기에 이 영상을
만들어 올린 사람의 정보가 우선 궁금했다.
“유니세프?”
“예?”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파급력을 일으킬 만한 사람을 VIP 로 정한다면, VVIP 는 이미 정해진 것 같다.
***
우와아아아아!
“기부금은 다 해결됐죠?”
“감사합니다.”
내가 호텔의 정문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랜드 오프닝의 초대권을 쥐고 있던 손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스폐인, 이탈리아, 독일 각국의 외교부 관계자나 관광청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와아아아!
“VVIP 요?”
로만의 멘트와 박수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들렸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셰프들을 격려했다.
그랜드 오프닝의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로만이 현재 서 있는 무대 위에 올라 손님들 앞에 서서
내 소개를 할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던 터였다.
“자, 오늘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다. 밖에 온 손님들 다 봤지? 평소에도 자주 말했던 거니까. 말
길게 안 한다. 불 올려.”
“예!! 셰프!!”
우와아아아아!
54 화. 세계정복 준비 (6)
“반유현 셰프입니다!”
우와아아아!
꺄아아악!
과연, 파리에 있었던 레스토랑 그랜드 오프닝 중,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그랜드 오프닝이라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저 멀리 안쪽에 TTS 의 멤버와, 각국의 고위급 인사들도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나 보다.
즐거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기는 하나,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20 대 중반…….’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사실, 오늘의 행사는 그저, 저 반유현이라는 개인의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기념행사였을 수도 있었는데,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주신 분들이 있으십니다.”
내 말에 ‘에이!’, ‘설마?’, ‘정말?’과 같은 반응을 보이며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홀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났다.
짝짝짝짝짝.
음식이 먹고 싶었던 아주 작고 가난한 소녀에게 최고의 음식을 선사한다는 자리, 어떻게 보면 이곳은
에피아 가족의 사소한 꿈이 이뤄지는 자리였다. 봉사와 사랑이라는 인류애를 실현하게 된 공간이랄까…….
“내 음식이 먹고 싶었어?”
“……네.”
짝짝짝짝짝.
***
“저희가 발굴한 공무원 준비생 분식집 아들이 이제는 인류애를 실천하는, 그런 인물이 된 거잖아요!”
“카메라가 너무 많으면, 손님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대요! 그래서 우리한테만 촬영을 허가한 건데! 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대표님!”
“허허. 참……. 손님들이 불편한 것도 그렇겠지만, 맨 처음 방송을 태워준 감독님한테 은혜를 갚는다는
느낌인 것 같은데. 그냥 됐어유! 박수나 쳐유! 이런 데까지 와서 일들을 하려 그래. 이제 곧 요리 나올
것 같은데.”
백원종은 핀잔을 주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잔소리를 해댔지만, 중년 여성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는
듯한 말투였다.
반유현의 어머니, 이영미.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
이미 운영되고 있는 두 종류의 식당으로 양식의 기본이 되는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안 요리의 실력을
보여줬으니, 포시즌스 세 개의 레스토랑에서는 다른 종류의 요리에 대한 실력을 검증해, 프랑스 파리가
아닌, 아예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거점이라는 것은 단순하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기술개발과 디자인은 본사에서 하고, 공장은 원가나 인건비가 싼 다른 지역에
세워지는 것처럼, 나는 포시즌스를 자동차 회사의 본사처럼 만들려고 했다.
메뉴 개발과 코스의 구성은 이 레스토랑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들이 전 세계에 퍼지는 방식을 생각했었다.
이런 방식은 전생에도, 전전생에서도 쓰였던 방식이다.
띵!
55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1)
“상관없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와! 그럼 다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바사삭!
바삭한 식감과 함께, 닭껍질의 기름진 육질의 풍미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감탄했다.
적절하게 곁들여진 소금은 고소한 맛을 올려주고, 당근 퓨레가 그 맛들을 정리하며 전체적인 식욕을
돋우었다.
“처음 시작을 일식으로 했지만, 앞으로 나올 요리들은 한, 중, 일 세 가지의 요리가 프랑스 정찬의
구성에 따라 나올 예정입니다. 주방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을 즐겨 주십시오.”
와아아아!
이전까지는 방송이라는 정해진 플랫폼 안에서 활약하며 나를 돋보이게 했다면, 이제는 완전히 다르다.
“와우…….”
한때 빌런의 역할을 하기도 했던 이들이,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지금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표정이었다.
또, 오늘의 주조연쯤은 되는, 백원종과 나의 어머니, 그리고 세계적인 아이돌그룹인 TTS 와 헐리웃
배우들, 그리고 세계적인 셰프들과 미식가들이 내 요리를 맛보고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키야…….”
***
“이 요리들이 하나하나…….”
“도미 탕수는 중식, 도미 무 조림은 일식, 도미찜은 한식…… 이 세 요리를 한 접시에 구성해 내는 게
얼마나 성가시고, 고된 일인데. 참…… 모든 맛을 살리고 그 조화는, 말할 것도 없네. 허허허허.”
백원종이 앞자리의 셰프들과 미식가들을 바라보자, 그들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듯이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이었다.
반유현의 어머니인 이영미, 그녀도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요리에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백원종이었다.
-일본식 소고기 양파 볶음, 소고기 표고버섯 볶음, 소고기 깻잎말이로 구성된 메인 요리입니다. 앞서
나왔던 요리들이 그랬듯이 한, 중, 일 세 나라의 요리를 한 접시에 담아봤습니다.
이는 반유현 - 레드, 블루, 옐로의 각 요리들을 한곳에 담은 것이며 그 조화를 느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유현은 주방에서 요리를 총괄해야 하니, 이렇게 요리가 나올 때마다 설명을 곁들여주는 사람이 있던
것이었다.
“키야, 와우.”
당해낼 수 없는 맛을 본 것처럼.
“허허허.”
소고기 양파 볶음과 소고기 표고버섯 볶음은 볶음요리라는 점이 같았지만, 그 맛에서 확실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양파에서 흘려져 나오는 간장의 향은 확실한 일본풍이었고, 버섯을 씹을 때 향긋하게 올라오는 후추와
팔각의 향은 중국풍의 요리였다.
“유현아…….”
아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자리, 이 환호와 박수가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울컥했다.
***
포시즌스 호텔 객실.
56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2)
레스토랑 반유현의 그랜드 오프닝으로 인해, 대부분의 객실이 꽉 차 있던 지금, 내 이름으로 예약된
방이었다.
“예? 뭘요?”
“뭔데요?”
“아 그래요?”
오히려 어머니가 잘되면 잘 될수록 보람차고 기뻐했는데, 지금의 반응은 내가 자신보다 요리를 잘하니,
나에게 메뉴를 받으라는 식이었다.
한국에 완벽한 ‘내 사람’이 있으니, 확률은 낮겠지만 어머니를 이용해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김에, 2021, 내년 서울 미슐랭 스타를…….’
***
“반 셰프!”
“반 셰프! 서운하던데?”
“진짜, 대단해 이 어플리케이션! 인건비도 줄이고, 손님들도 한눈에 예약 일정을 볼 수 있어서 편하고.”
“허허허. 올리버, 자네 반 셰프를 뭐로 보나? 반 셰프는 은혜를 그렇게 저버릴 사람이 아니야. 반
셰프가 나를 스승이라고 언질만 해주면, 문제없잖아?”
“큭큭.”
“아니, 반 셰프, 글쎄, 그랜드 오프닝 그 현장에서 루시앙 셰프님이 너무 맛있거나 감동하는 표정을
지으면 본인이…….”
그 뒤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유현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루시앙은 맛있어도 맛있다고 표현을 못 한 것이다. 그저,
무협지의 스승처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 정도를 보여줬다는 것.
나에게 미슐랭 포스타라는 확실한 명함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나의 입지는 그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충! 성!”
“뭐냐 그건.”
“오버 좀 하지 마라 민성아.”
“준비하겠습니다!”
“예! 셰프!”
“이대로 열심히 계속해. 레스토랑 반유현, 그 뒤에 너희의 이름이 붙을 날도 있을 거야. 그리고, 여기도
2021 년에 쓰리스타를 받아야지. 그렇게 될 거고.”
아주 오랜만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아서 그런지, 네 명의 셰프 모두 감동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아직 이곳은 미슐랭 스타를 얻지 못한, 올해에 미슐랭 스타를 받아야 할
주방이었으니까.
“저희 레드에서는 메뉴 중간에 나가는 맑은 대구탕이 반응이 좋습니다. 그런데, 대구를 공급하는
업체에서 가끔 질 나쁜 대구를 줘서……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유, 육 점이요?”
57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3)
“죄송합니다.”
“VIP 께서 특히나 염두에 두고 있는 분이 반유현 셰프라고. 아니, 프랑스에 갔다 왔다면 섭외를 당연히
했어야지. 오늘 아침 회의에도 반유현 셰프의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
“VIP 께서 이미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다네. 국정운영에 일들이 많아 당시에 못 했던, 2020 도쿄에서
활약한 선수들에게 만찬을 열어줄 것도 그렇고, 이번에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TTS 와 봉 감독,
그리고 그 스텝들까지 한 번에 초청해서 만찬을 준비하시겠다는 생각이신데, 그 자리를 빛낼 감초로
반유현 셰프를 초대하신다는 계획이란 말이야…….”
2020 년, 한 해 동안 국격을 높이고, 국위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을 초청해 만찬을 하는 자리.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인근, 유럽 각국의 총리급 인사들이 직접 방문 예약을 하고 웨이팅을 하는
시점,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들이 SNS 에 반유현의 레스토랑을 극찬하는 시점에, 청와대 만찬이 그에게
중요한 자리가 될 것 같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어떤 카드.”
“그렇습니다.”
***
빕구르망.
“예.”
우와아아아!
“왔어? 우리 아들!”
나는 지체없이 말했다.
고추장 황태구이.
뚜렷하게 기억나질 않는 것 보면, 비슷한 요리들은 수없이 먹어봤어도, 고추장 황태구이라는 명칭을 가진
요리는 먹어보지 못했었다.
“어…….”
“맛있네요.”
“맛있어요.”
10 점 만점 중, 5.1 점 정도.
***
“오셨어요 반 셰프님?”
올림픽 스타, 스포츠 스타들도, TTS 와 이렇다 할 연을 만들고자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찰나에 내가
등장한 것이었다.
“오늘도 요리를 보여 주신다고 해서, 저는 스케줄도 미루고 왔어요. 파리의 기억이 아직도…….”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게, 다른 이들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예?”
“예에?”
‘해주면 먹을 것이지.’
“음, 다시 생각해보니 돼지고기 호박 볶음과 잡채를 빼겠습니다. 대구탕, 고추장 황태구이 볶음, 그리고
밥만 있으면 될 것 같네요. 아, 대구탕도 필요 없을 것 같네요.”
58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4)
“그런, ‘짓’이요?”
한식 두 명, 일식, 중식, 양식 각 한 명.
자신들의 멤버들이 내가 구성한 요리에 대해 실망감을 비쳤고, 그것들이 지금의 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나에게 대신 사과했다.
“여기가 어떤 곳이라고……!”
나도 국위선양자의 자격으로 초대된 것인데, 박건우는 내가 만찬을 준비하는 셰프로 초대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곳에서 VIP 와 귀빈분들께 요리를 대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그런 거만함과
겸손함으론……. 제 요리경력이 훨씬 많으니까 새겨 들으십쇼.”
“망할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
“나라를 빛내 주신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식사를 대접하면 어떨까 해서, 반유현 셰프를 모셨습니다. 아,
물론, 반유현 셰프님께서도 우리나라를 빛낸, 문화 예술계의 한 분으로 초대된 것입니다. 하하하하!
초대된 손님, 그리고 셰프, 두 일을 동시에 수행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만찬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내가 미안하기도 합니다. 우리 조리실 직원들에게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에 대해서 너무 많이 얘기를
해서요. 물론, 우리 조리실의 직원들 요리도 너무나 훌륭합니다. 하하하! 그니까, 비교를 하려는 게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가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입이 닳도록 말한 건데, 오늘 그 요리를
직원들에게도 선보일 수 있어서 좋네요. 더불어 초대된 모든 분들에게도 최고의 요리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고요. 반유현 셰프님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위기감.
대통령님께서 저 정도로 나의 얘기를 했다면, 밥그릇을 빼앗길 것만 같은 본능적인 느낌을 받았을 테니까.
그런데, 난 청와대 조리실 따위에 관심이 없기에 박건우를 비롯한 청와대 조리실 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대구탕은 해줘야겠네.’
밥하고 고추장 황태구이로도 저들에게 만족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대통령이 내가 좋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으니, 대구탕을 다시 추가해서 요리를 내어놓았다.
“크아!”
“우와……. 시원해.”
어머니의 요리에 영감을 받아 그것을 발전시킨 고추장 황태구이 또한 엄청난 반응을 이끌고 있는 중이었다.
‘호박전?’
‘흠.’
그리고 기름도 일반 올리브유나 식용유가 아닌 여러 종류의 기름들을 혼합해 만들어 그 고소함도 괜찮았다.
“오오.”
***
대통령의 제안 때문이었다.
“예.”
우와아아아!
칼이 도마를 울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다다다다다!
치이이이익!
“크흠!”
“아……. 그…….”
59 화. 이것보다 빠를 수 있나 (5)
“이건……. 와.”
박건우는 호박을 반달썰기로 큼직하게 베어내 기름에 부쳤기 때문에, 호박을 씹으면 호박 안에 있던
수분이 한 아름 쏟아져 나온다.
TTS 의 멤버 김호였다.
평소에 요리에 관심이 많다더니, 입에서 전해지는 자극들에 집중하는 방법을 아는 듯했다. 더군다나
박건우의 호박전이라는 확실한 비교 대상이 있으니, 감평도 구체적이다.
“어우.”
“박건우 조리장님께서도, 분명 수분을 빼는 작업을 하셨을 텐데, 반달썰기의 호박은 한계가 있습니다.
표면적이 채썰기를 한 호박보다 작으니까요. 아주 단순한 원리인데, 왜 요리에는 적용을 못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분명, 조리장님이시라면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 궁금합니다.”
“조리장님! 왜 한식의 맛이 규정되어 있어요? 허허허허. 청와대 조리장이 우리나라 전통요리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수분을 빼는 작업에 신중을 가했습니다. 호박의 단맛은 유지하고, 호박 특유의 냄새는 없애고, 또한
식감까지 유지하는 적정선에서 수분을 뺏습니다. 그 핵심은 채썰기였죠. 또, 콩기름, 옥수수유로 기름을
제조해 전을 부칠 때 기름의 향이 극대화되도록 했습니다. 단맛 뒤에 올라오는 기름의 고소함을 느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아!
‘호박 요리…….’
***
일단 조회수가 목적일 테니, 이해는 된다만 이것을 필터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유현아 굳이…….”
“어머니가 요리에 욕심도 있으시고, 이름을 알릴 때도 되셨죠. 분식집을 계속하기엔 아까운 실력이세요.
더군다나 아들인 제가 있고요.”
내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굳이 어머니를 언급한 이유는 지난번, 어머니의 요리에 잠재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그러니?”
“호박?”
의도치 않게 받은 영감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요리들은 단호박 말고도 무수히 많은 종류의 호박들이 주된 식재료로 쓰이곤 했다.
“뭐가 없어?”
하루하루 주제를 바꾸는 레스토랑에서 호박을 주제로 하는 날은 있어도, 호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스토랑은 없었다.
한식에 많이 쓰이는 재료인 호박을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식당이 없다는 것은, 괜스레 그것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했다.
“어머니, 저희 동네, 파리에 ‘버섯’을 전문으로 요리한 레스토랑이 미슐랭 투스타를 보유하고 있거든요.
호박이라고 안 될 건 없잖아요? 특히나 한식에서 자주 사용되는 재료이기도 하고. 호박을 이용해서 하실
수 있는 요리가 몇 가지가 되시죠? 지금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
단호박에는 각종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들어 있어, 누구나 웰빙을 외치는 요즘 시대를 공략하기 딱 좋은
식재료였다.
“어.”
“맛있네요.”
“새우 호박 볶음?”
“이건, 호박선이라고 한식의 범주에 확실하게 들어가는 거야. 유현이는 아마 처음 먹어볼 텐데,
먹어봐.”
호박선.
호박의 중간중간에 칼집을 내, 그곳에 고기와 각종 채소, 그리고 버섯을 넣어 육수를 얕게 깐 냄비에
끓여 익히는 요리.
나는 곧장 문제점을 집어냈다.
“그, 그래?”
“으응?”
“계획은 이렇습니다.”
“……허허.”
“진짜여?”
“네.”
“죽여주는구만. 실행력이.”
“네.”
마침, 백원종이라는 좋은 사람도 있었고 그의 회사에서 자본과 인력을 투자받아 이 일들을 진행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다.
내가 다시 파리로 떠나간다 해도, 어머니를 도와주고 자문할 사람이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
사람이 백원종이라는 사실은 지분이 얼마나 섞이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대표님 회사에 투자를 받아서 이 분식집은 공장처럼 알아서 굴러가게 만들고, 어머니는 레스토랑에
집중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호박이라고 왜 안 하고?”
“‘반유현 - 호박’은 좀……. 한글이 촌스럽다는게 아니라, 나중에 다른 국가로의 진출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니까요.”
“이태원?”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로 진출할 레스토랑 ‘반유현’은 대한민국 최고의 외식사업가인 백원종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오픈 날짜는?”
“무슨, 방송?”
“한 달 반? 6 주 정도 남았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항상 엄청난 검증과 실험을 거쳐 가게를 오픈하는 백원종에겐 내 방식이 빨라도 너무 빨랐나 보다.
“공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맛있으면 성공하고, 맛없으면 망하는 게 레스토랑입니다.”
“그, 그것만큼 당연한 소리가 없는데! 참 어렵지! 유현이 자네는 쉬운가 봐. 허…… 참.”
“유현이와 대표님 말씀대로 맛은 당연한 거구요 대표님. 저도 아들의 이름을 걸었으니, 미슐랭 스타를
받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
정찬 요리를 선보일 레스토랑답게, 짧게는 2 주, 길게는 한 달 주기로 코스와 메뉴를 바꿔서 구성할
것이었는데, 오픈하는 주에 선보일 메인 요리는 ‘호박선’이었다.
“호박의 아삭한 식감과 맛 안에서 채소들이 어우러지고……. 돼지고기와 표고버섯은 풍미와 식감을 한 층
더 쌓게 만들어주네. 이거, 나도 가르쳐줘. 하하하.”
“예?”
***
“그, 그 청와대 행사에 참석하시고 아직 한국에 있으신 건가요? 반유현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께서
한국에 계시다는 것을 모르는 팬들에게 한 말씀 하시죠.”
우와아아아!
“와! 진짜 먹고 싶다!”
“파리를 안 가도 되는 거잖아!”
“에이!”
우우우우!
우와아아아!
“오오! 철판요리!”
우와아아!!
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힘이 다른 사람들에게 대단해 보일지는 몰라도,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매번 최고의 효율을 생각하며 움직이니까.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이었다.
“고마워. 괜히 최연소 미슐랭 포스타 셰프가 아니구만. 그나저나, 반유현 - 펌킨. 여기서도 미슐랭
스타를 받을 계획이지?”
“당연하죠.”
우와아아아아!
“네, 감사합니다.”
우와아아아!
“자아아! 대결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철판이 두 개 준비되어 있는데요. 사장님께서 방식을
설명해주세요!”
‘털보네 찹스테이크’ 그 푸드트럭의 이름과 걸맞게 턱수염이 덥수룩한 사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꺄아아!
치이이익!
“아 시작됐습니다!”
***
촤아아악!
취이이이익!
“아아아 드디어! 차이점이 생기고 있습니다! 데리야끼 소스를 만드는 방식이 두 분이 서로 다르네요!”
우와아아!
그는 요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차이점을 집어내 분위기를 과열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야?”
“뭔데? 연예인이야?”
“엥? 백원종인데?”
“야! 그 옆에 반유현이잖아!”
나와 백원종 둘이 동시에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장면이었을 테지만 이것이 ‘대결’
이라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 더욱더 고조된 것이다.
후우우웅!
우와아아아!!
“백원종 대표님께서는 소스의 농도를 전분으로 맞추고 계시고, 반유현 셰프는 수분을 날려 맞추고
있습니다! 과연 이 차이가 어떤 선택을 받을 것인지! 아아! 속도는 백원종 대표님이 더 빠르신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무심하게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냄비에서 끓고 있는 데리야끼 소스를 철판에 올리며
재료들에 발랐다.
우와아아아!
“남성분은 뭐,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우우우우우!
백원종은 옆에서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초에 인기에 관해선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상대가
나였으니 뭐, 당연하다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와……. 대, 대박.”
“요, 요상해요?”
채소를 적당량 구워, 알코올을 날린 미림과 사케, 그리고 간장과 설탕을 함께 끓인 소스 자체도 맛의
수준이 높았겠지만, 재료의 특성마다 다른 양념의 정도를 모두 통제했기에 완벽한 차이를 만들 수 있었다.
너무 압도적인 차이로 이겨서 그런지, 사회자인 김승민도 어쩔 줄 몰라 하고, 백원종은 씁쓸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심지어 관객들도 백원종을 위로하는 분위기였다.
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 소리가 쏟아져 내렸고, 원래 이 푸드트럭의 사장님, 나, 백원종 대표는 요리를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리를 제공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이성찬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야, 공중파에서 이런 소개 시간을 내주는데, 그냥 그렇게 넘어갈 거야? 제대로 홍보해봐 알아서 편집해
줄 테니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차암나……. 이건 또 뭔데?”
반유현에 관련한 의전부터, 스케줄 관리, 레스토랑의 세무, 회계, 인사 모든 것을 총괄하는 부서였다.
쉽게 말하면 반유현의 팔다리가 되어주는 팀이다.
“반유현이 다뤄야 할 일들은 많은데, 그 일들을 해줄 수족들을 자르거나 늘리면서 압박을 주면 저희의
통제 안에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유현이. 밖에 줄 서 있는 것 봤어?”
“네, 봤습니다.”
#반셰프
#반유현_길거리_음식
…백원종과 나의 푸드트럭 대결은 방송에 아직 나가지 않았음에도, SNS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또, 어제
방영된 골목가게 중간 점검편이 이슈화를 확실하게 해줬다.
마지막 메뉴 테이스팅.
먼저, 호박죽이었다.
“그 지점을 잘 찾아내셨네요.”
섬유질에서 단맛이 많이 나오기 때문. 그래서 그 밸런스를 적절히 유지해야 되는데 지금의 호박죽은
식감이 너무 질지도, 단맛이 덜하지도 않게 적정했다.
“좋네요.”
어머니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내가 다른 셰프나, 스승의 개념이 아니라 아들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나의 말을 잘 흡수하신 걸지도.
맛의 완성도를 올리는 작업은 미슐랭 평가 기간에 들어가면 내가 다시 한국에 방문해 올려놓을 생각이다.
“분식집도 문의도 많아. 가맹문의가 솟구쳐서 우리 측에서도 감당할 수가 없어. 하여간 요즘 세상엔
요리도 잘해야 되지만, 눈치도 빨라야 돼.”
“어머니께서 분식집, 그니까 우리 회사의 새로운 브랜드인 ‘영미네 분식.’ 사외이사이자 고문으로
활동하실 거니까. 완전히 바빠 이제. 분식집 아줌마가 아니야. 하하하하! 아들 참 잘 뒀수.”
“목표는 다들 아시다시피 미슐랭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오픈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곳도 ‘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걸린 레스토랑임을 명심하세요.”
***
“으아.”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내렸다.
-축하해유. 또, 해내는구만^^
‘SNS?’
#반킨.
#반킨#방문성공!#4 시간대기
#반유현#반킨#반유현_못_봄#아쉬움
#반킨#예약성공!#반유현어플!
#반킨 #나도_인증샷
사람들은 마치 대단한 곳에 방문한 것처럼 인증샷을 남겼고 ‘반유현 - 펌킨’의 요리와 테이블 사진들이
올라왔다. 장사가 잘되는 곳이 더 잘되는 이유를 몸소 실현하고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저렇게 손님이 많이 몰리면 자연히 셰프들의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늘 수밖에 없다. 내
레시피와 요리 의도를 보다 더 잘 구현할 셰프들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
그야말로 선순환. 내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손님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나는 셰프들의 실력을 빠르게
상승시킬 만한 이름값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네가 왔냐. 기사님은?”
B 사의 최고급 검은 세단.
“하여간 뻔한 사람들.”
물론, 그런 것들도 다 생각해 놓고, 대한민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기에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63 화. 딴 맘 먹지 말고 잘해 (1)
“다 모였어?”
“예! 셰프!”
“나를 보좌하던 반유현 팀 있잖아? 너희들이 주방에서 나의 팔과 다리가 되었듯이, 그들도 행정적인 모든
업무를 봐줬었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됐고, 내가 말하려 했던 건,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 탓이야.”
***
…생략…
“이, 이게 보고서입니까?”
“후…….”
반유현의 관심이 포시즌스를 떠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반유현팀을 이용해 압박을 넣겠다는 생각에
동의했었는데, 지금 자신의 책상 앞에 놓인 보고서 단 한 장, 한 줄의 문장을 보고 깨달았다.
쾅!
로만이 책상을 내려쳤다.
“…….”
그때,
쾅!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반유현 셰프님께서 주방에 계신 시간이 줄어, 셰프들의 전체 만족가 하락으로…
….”
“그럼 일들 잘하시던가.”
쾅!
***
모든 건 계획대로 된다.
100 년을 살아보니,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지금도 그랬다.
반유현 - 블루, 중식 기반의 요리를 선보이는 내 레스토랑의 홀에, 대단한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5 명의 남성들, 요식업과 호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저들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다.
“예약된 날짜와 어플 가입날짜를 확인해보니, 이곳을 예약하려고 애초에 준비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 중년, 그리고 노신사들이 이곳에 오기 위해 아득바득 어플로 예약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자신들의 휘하에 있는 직원들을 시켜서 예약을 한 것 같았다.
“홀에서 부르십니다.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일단 반유현 셰프님께서 시간이 어떠신지
여쭤보고 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너 저 사람들 모르냐?”
“커헉!”
“예에? 저분들……한테요?”
“반유……!”
“눈물이 날 것 같은 요리들이었습니다.”
“제가 호텔을 경영한 지가 어언 30 년인데…… 이런 맛은.”
“와……. 베리 굿.”
64 화. 딴 맘 먹지 말고 잘해 (2)
“죄송합니다.”
“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리석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그래도, 레스토랑의 매출이 떨어지거나, 제가 호텔 이미지 실추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때는 말씀해주세요.
저도 포시즌스랑 오래 하고 싶습니다.”
***
“감사합니다!! 셰프!”
정확히는 7.1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내 입맛의 기준은 미슐랭이었고, 3 스타를 10 점으로 산정해 둔
것이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문제없었다.
“공고 올려.”
“예? 무슨 공고를…….”
“셰프 뽑는다고.”
“예에?”
나는 한발 더 나아갔다.
“세계 국제 요리 대회 일정 좀 뽑아 와.”
협회에서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협조해 달라는 공문이 오기도 하지만, 미리 신청을 할 수도 있었다.
-Igeho 스위스국제요리대회
***
“다른 호텔은 그룹 차원에서 반유현 셰프를 섭외하려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다고 하는데! 파리! 로만
사장님은 완벽한 대비가 되어 있는 겁니까?”
포시즌스 사장단 회의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포시즌스 호텔의 사장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1876 년 포시즌스 파리에 폭탄 테러를 하겠다는 테러범 때문에 사장단 회의가 소집된 적이 있었는데,
반유현 셰프는 그 뒤를 이은 두 번째군요.”
“일단 파리의 모든 레스토랑의 실권을 쥐고 있으니……. 거기다 그 사람이 계속해서 요상한 행보를 보이니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행동을 제지할 세부 사항들을 계약서에 기록해 놨어야죠. 로만
사장님께서도 징계를 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반유현은 미슐랭 스타를 원하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적어도 그전까지는 운영권을 내려놓지는 않을
터였다.
그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고 있지 않는 로만이었다.
“어떤 부분이요?!”
“아닙니다. 아직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십니까? 반유현 셰프입니다. 반.유.현. 셰프! 저희
그룹이 엄청난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자신의 통찰력이 맞다면, 그룹 차원의 제재보단,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할 시점이라고 생각됐다.
65 화. 공장가동 (1)
“아닙니다.”
WACS, 즉 대회의 주체측에서는 셰프로서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루고 있고,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반유
현’을 이용해 대회 자체의 파이를 키워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심사위원들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떠오르긴 했지만.
***
“반유현 셰프입니다!”
우와아아아!
관객들의 구성은 이 대회의 관계자 30 여 명을 제외한 이 대회에 참가자 자격으로 이곳에 온 셰프들이었다.
“하, 참! 요리가 아니라, 반유현 셰프님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우와아아아아!
“저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먹고 싶어서,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그랜드 오프닝이나,
갈라디너는 항상 그 암표 값이 100 만 원을 넘었었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겠죠?”
“이것들을 보시면 저절로 떠오르실 겁니다. 스위스의 정통 요리인 퐁듀(Fondue)를 만들 건데요. 퐁듀에
들어갈 치즈를 골라보겠습니다.”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
“카망베르(camembert), 매니아 층이 두터운 치즈로, 고소한 풍미는 고기의 지방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치즈는 단백질, 지방, 칼슘, 인, 비타민 A, 비타민 B 등 유익한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특유의 풍미 덕분에 수많은 요리에, 적재적소 많이 사용되는 재료였다.
“이야! 에멘탈! 정답입니다! 이건 무슨!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치즈 농장에서 일하는 장인도 아니고
……!”
우와아아악!
***
어쩌면, 그에겐 새롭게 떠오르는 셰프들을 발굴하는 것보다 반유현이라는 셰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컸을
수도 있다.
우와아아아아!
돼지의 껍질과 지방질을 바삭하게 익혀 과자와 같은 식감을 살렸고, 그 바삭함이 지나간 뒤에는 고기의
육즙과 함께 삼겹살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터져 나왔다.
알베르가 충격을 먹었던 것, 이 강력한 맛뿐만 아니라 구성이었다.
“삼겹살이 가진 지방과 살의 비율을 고려해 고기를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분류된 고기에 따라, 칼집을
넣는 횟수, 소금과 후추의 양, 시어링 시간, 오븐의 굽기 정도를 모두 달리했습니다. 여러분께 서빙된
고기는 모두 같은 치즈 퐁듀에 찍어 먹지만, 맛이 모두 다른, 풍부한 경험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와……!
“이건 무슨……!”
66 화. 공장가동 (2)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온 셰프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저마다 탄성을 내뱉으며 대회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생각과 발상은 뭐……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 맛의 다채로움이 느껴져 너무나 놀랐습니다.”
“어떻게 돼지고기를…….”
“지방과 단백질이 가진 각각의 풍미는 당연하게도 다릅니다. 그리고 그 비율을 다르게 가진 고기들을
분류해서 각각이 가진 풍미를 최대한으로 낼 수 있게 조리했습니다.”
삼겹살 퐁듀.
지방과 단백질의 함유량에 따라, 지방이 많은 고기부터 단백질이 많은 고기 순으로 고기를 플레이팅해서
내보냈다.
고기가 플레이팅 된 순서에 따라 치즈에 고기를 찍어 먹었기에, 알베르는 지방이 많은 고기의 완연한
고소함을 느끼고 난 뒤에는 육즙이 점점 많이 터져 나오는, 돼지고기 특유의 풍미가 강해지는 것을
단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대회에 참석한 유망주 셰프로 불리는 이들이나,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싶은 셰프들의 뇌리에 나를 더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대회에 참여한 셰프들은 대부분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열망이 있고, 자신의 요리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알베르의 눈치를 살피고 있고, 알베르는 괜찮다는 듯이 ‘허허’하며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뭐, 괜찮습니다. 당연히 반유현 셰프에게 먼저 질문하는 게 상황상 맞죠! 하하하하. 음…….
저는 매 대회마다 그랬듯이, 각 식재료들 간의 조화, 그리고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나 조미료가
적절하게 사용되었느냐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맛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그것들을 과하게 사용해 요리를
망치는 셰프가 있는가 하면, 아주 적절히 사용해 원래의 맛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맛을 만드는 셰프도
있는데, 저는 그 차이가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음…….”
“돼지고기 있잖아요?”
OR7D4.
“저는 이런 개개인이 가진 신체적 구조나 유전의 차이에 의해 생긴 맛의 차이까지 아우르는 셰프의 요리를
먹어보고 싶습니다.”
***
“좀 멀리 떨어져서 걸어.”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그 경연장으로 왔다.
‘돼지고기.’
‘오이.’
오이 또한 대회 시작 전, 돼지고기와 함께 잠시나마 언급을 한 식재료였는데, 자신들이 준비한 요리에
오이를 더해 어떻게든 나의 주목을 받아보고 싶은 셰프들이었다.
“대단하십니다. 참……. 셰프들이 준비한 요리에 반유현 셰프님께서 그저 언급한 식재료가 추가될
정도면.”
“우연인 것 같습니다.”
“이건 무슨 요리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오히려 당당한 참가자는 조리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목적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미간을
좁혔다.
“안 그래?”
“그, 그렇습니다.”
67 화. 공장가동 (3)
그는 나의 발언과 나의 영향력 때문에 대회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완전히
배척하고 나서 생길 문제들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눈치였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여 요리문화 발전을 도모한다는 이 대회 자체의 본질을 내가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셰프들은 내가 대회전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대로, 유전자 차이에 의한 맛의 차이를 메꾸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했고 그에 따른 레시피들을 경연에 활용하기도 했다.
“참나. 한 명의 셰프에게 휘둘리는 알베르 셰프님도 반성하시죠! 뭐 하시는 겁니까. 이 대회의 역사를
우습게 보시는 겁니까?”
심사위원들 간에 논쟁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는
듯이 내게 질문했다.
“예?”
“에에?”
“아니……그러면.”
“참나! 무슨 태도가 그래요? 이슈만 만들어 놓고, 각종 논란이 생기니 바로 사퇴를 한다고요? 애초에 이
대회가 그런 수단이었습니까?”
“뭘까.”
이제는 그의 이름값과 그에 따른 입지, 그리고 영향력이 너무나 거대해져 사람들은 그가 요리를 제대로
시작한 지 2 년도 안 된 셰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베르의 머릿속에는 반유현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고, 그 궁금증을 끝까지 파헤쳐
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흠.”
“원래, 반유현 셰프만을 보고대회에 참석한 이들이라 대회 진행에는 큰 차질이 없지 않나요? 오히려
거품이 없어져서 좋다고 다른 심사위원들은 좋아하던데.”
***
“제 목표에 동의하신 거니, 다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계획을 대외적으로 알리면 많은 제안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이점도 인정하십니까?”
“최고의 시설을 약속해야지요. 이미 그룹 내 사장단 회의에서 반유현 셰프님께 공격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것을 허가받은 상황입니다.”
“아, 아니…….”
내가 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예?”
“에?”
“무, 무료 학비 말씀이십니까?”
“…….”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은 차후, 레스토랑 ‘반유현’의 창업 기회가 부여됨. 일단 이것부터 던져보시죠.
얼마나 많은 셰프들이 몰릴지 그 반응을 보고 조건을 더 제시해야 할지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아, 알겠습니다.”
68 화. 공장가동 (4)
자신이 요리라는 분야에 꽤나 높은 숙련도를 가졌고,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수백 개의 의자를 빼곡히 채울 만큼 앉아 있던 것이었다.
“아아. 반유현입니다.”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의 개념으로 교수로 초빙한 셰프들의 스케줄을 짜 강의를 진행하는 시스템을
고려했다.
또, 그들이 각자의 주방에서 일함과 동시에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직을 맡을 만한 충분한 명분을
제시했다.
“어?”
“후……. 하하하. 반유현 셰프가 심사위원직을 내려놓고 너무나 많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셰프들이 대회에서 이탈해, 대회 자체를 잘 마쳤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아무래도, 다들 이곳으로 몰릴
것 같다는 게 저희들의 분석이었습니다. 진정 그런지 확인하러 왔고요.”
어쩌면 고고한 신념을 가진 그에게 나의 음흉한 야망을 솔직히 말하기가 불편했던 것이었다.
“하하하! 아니요. 반유현 셰프님 그 자체에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레스토랑 ‘반유현’을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이름 아래에 있다면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는지도
궁금하구요.”
“거기, 나가주세요.”
“에?”
“약 400 명의 셰프님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선발할 생각인데, 시간이 없어서요. 태도나 자세로 몇 분
거르고 생각하겠습니다. 제가 이 기관의 수장이 될 사람인데 모르셨을 리는 없고…….”
드르륵!
드르르르륵!
‘반유현’. 내 이름이 이제는, 경력과 나이와 무관하게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했다.
***
지원서를 보니, 아메리카, 중동, 아시아 대륙을 막론하고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셰프들이 자리했다. 유명
셰프들의 이름도 종종 보이기도 했다.
‘노부 마츠로?’
‘고든 레지 두바이?’
카림. 중동국가 출신의 셰프로 미슐랭 원스타를 소지한 채, 고든 레디에게 섭외되어 두바이 지점을 맡고
있는 셰프였다.
고든 레지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그가, 이제는 새롭게 모실 셰프를 찾는 모양이다.
그밖에도 각 지역에서 굵직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들이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가 되고자 하는 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 레드테이블 - 반유현 ]
“자유요리. 시작.”
“네?”
“미디움 레어로…….”
“알베르 셰프님?”
“유자를 곁들인 폰즈 소스, 그리고 생와사비를 이용해서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응용해보려고
했습니다.”
미슐랭 9 스타, 평생을 일식에만 바쳐왔던 스타 셰프에게 네덜란드의 오랜 전통과 역사가 담긴 소스를
요구하니,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레스토랑 ‘반유현’은 일식집도 아니고, ‘반유현 팩토리’에 들어올 학생들에게 일식만 가르칠 것도
아닙니다. 셰프님의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셨다면, 잘못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69 화. 공장가동 (5)
포시즌스 도쿄나, LA 에서 섭외를 실패한 셰프들, 즉, 특급 호텔의 제안을 걷어차 버리는 그 고고한
셰프들도 반유현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레시피를 수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 명도 없지? 셰프라는 직업 자체가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할 텐데…….”
띵!
***
매번 주방에서 셰프들을 지휘하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요리가 심사 된다는 것
자체가 셰프로서의 오랜 경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괜찮네.’
내가 싱가포르 국제 요리대회 갈라디너에서 했던 요리인 삼겹살 퐁듀를 그대로 선보이려 했던 알베르.
내 표정에 약간의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는지, 알베르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맛이…… 괜찮으십니까?”
“홀란데이즈 소스 맞습니까?”
사실, 그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100 년을 살아 워낙 감정이 닳았기에 웬만하면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데 지금 노부 마츠로 셰프가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내 성공 가도를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일식을 전문적으로 한다거나, 나의 제자를 전문적으로 일식 셰프로 키우지 않았기에 벌어진 미래일
수도 있지만, 내가 100 년의 삶을 살면서 요리업계를 아무리 뒤집어 놓아도 그는 언제나 일식의 대가로
우뚝 솟아나곤 했다.
바스락.
적당한 크기로 튀겨진 겉옷이 부서지며 향긋한 기름의 향을 뿜었다.
“아닌가요?”
“일반 버터가 아닌, 정제버터를 사용하셨군요. 유지방을 높여서 소스의 농도를 보다 더 걸쭉하게
만들려고 하신 겁니까? 바삭한 튀김옷의 식감과 반대인 식감을 소스로 만들려고 하신 거죠.”
“아…….”
“맞습니까?”
홀란데이즈 소스에 미묘하게나마 매운맛을 추가해, 튀긴 소고기의 풍미를 더 다양하게 만들려는 의도,
신선한 맛의 공격으로 나를 흔들려고 했던 의도가 보이기까지 했다.
“고기에는 아주 조금의 강황 가루까지 묻혀놓으신 걸 보니, 홀란데이즈 소스의 케이엔 페퍼와의 조합을
생각해 놓으신 것 같기도 하고요.”
“아…….”
“규모는 말씀드렸다시피, 300 명. 교수와 학생의 비율 10:1. 그 비율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곳에
들어온 300 명 모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시킬 자신은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45 유로요.”
설마…….
70 화. 공장가동 (6)
“선, 서!”
우와아아아아!
어어?
엥?
“그래서, 조금 오래 생각해봤습니다. 적당한 시설은 없고, 시설이 세워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은…….
저도 없고 여러분도 없을 테니까요.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열망은 여러분이나 저나 같습니다.”
“테스트.”
***
“교수님 한 분당, 10 명씩 맡아주시고. 원하시는 장소에 해주세요.”
일단, 교수 한 명당 10 명을 배정했다.
효과적인 테스트라는 것은, 이 방법은 실제 셰프들이 요리를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레스토랑 운영에 대한
복합적인 과정을 절대적인 수치인 매출과 순이익으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전혀요…….”
교수진은 다소 비현실적인 계획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팩토리의 첫 회 입학생인 셰프들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물론, 나에게 처음 ‘반유현, 테스트 - XX’를 사용해도 되겠냐고 제안한 그 팀의 실행력에 가산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접니다.”
하기야, 그들도 학생들처럼 경쟁을 해야 그들이 애초에 원했던 레스토랑 ‘반유현’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
“협찬이라 함은…….”
그리고, 아직 반유현 팩토리가 완전히 설립되지 않았기에, 팝업스토어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셰프들이
나의 이름이 붙어 있는 조리복을 입고 다니면서 적지 않은 홍보 효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했다.
“조건은?”
“거기로 선정해.”
앞으로 브라운, 그린, 바이올렛 등 많은 색깔이 생겨날 것인데 그 모든 색을 합치면 블랙이 된다.
“어려운 거 아니야.”
조리복도 한두 번 만들어봤겠나.
적게는 4 자루, 많게는 11 자루까지 들어있는 칼 세트를 선물하라 지시했더니 직원들이 알아서 협찬을
알아봤나 보다.
“어떤 회사들이.”
“예에?”
***
“이야! 이게 새로 나온 조리복이래!”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미슐랭 스타도 반유현보다 많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부 마츠로가 반유현
팩토리에 합류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에이……! 설마!”
71 화. 반유현의 이름 (1)
300 명의 셰프들, 그리고 10 명씩 짝지어 구성된 30 개의 팀은 유럽 각국에 레스토랑을 런칭했다.
언론은 그 셰프들을 마치, 숭고한 예술적 정신을 잃은 것처럼 조롱하기도 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런 조롱도 잊을 만큼, 대중들과 셰프를 비롯한 요리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뭐라고.”
대규모 협찬을 받아 진행한, 조리복의 검은 포인트가 들어간 그 디자인 자체가 주목을 받고 우리에게
협찬한 회사의 매출이 급진적으로 올라갔으니,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더군다나, 반유현 팩토리에 소속된 그 300 명의 셰프들 자체가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기에 그들이
자신들의 주방도구를 들고 다니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광고 효과를 얻게 되리라 기대한 것이었다.
대중들의 반응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활동하는 범위도 넓었다.
“내가 앞으로 사용할 칼과 국자만 해도, 몇 개겠어. 조리복은 몇 벌이겠고. 가치판단 잘하는 회사를
만나야 해.”
***
기업들이 협찬을 위한 움직임을 했던 것처럼, 유럽 각국의 부동산 업계들도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너도 할래?”
“파리? 어떻게 보면, 제일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던 팀들이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이거나.
진짜 똑똑한 팀원들이 있는 곳이거나, 두 팀 다 둘 중 하나의 종류겠네.”
우와아아아!
반유현이다!!
“감사합니다.”
“총원! 차렷!”
“국적이 어디세요?”
“멕시코입니다.”
“에, 예! 셰프!”
“메뉴가 하나입니까?”
“예! 셰프!”
“저는……. 반유현 셰프님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주인분도 그랬나 봐요, 저희보고 아주
싼값에 임대료를 해줄 테니 팝업 스토어를 시작하라고…….”
“이름이 뭡니까?”
“교수는 누구예요?”
문제는 없었다. 애초에 셰프들을 시험하기 위한 관문이었고 교수들은 그를 자문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들의 성적이 교수들의 능력에도 반영될 것인데 이렇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그게…….”
“음?”
***
“저희는 아예 대도시 말고 주택이 많은 지역으로 이동해 가려고 했습니다. 저희의 요리 실력과 임대료가
수지 타산이 맞아야 되니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의 건물주님이 편하게 들어와서 팝업 스토어를
해보라고…….”
앞의 햄버거집과 같은 이치였다.
“핫도그 하나 주세요.”
“이 팀의 지도 교수님이 안 도와주던가요?”
“네…… 그게…….”
72 화. 반유현의 이름 (2)
“여러분들이 맡은 팀원들, 여러분에게 요리를 배우고자 이곳에 들어온 셰프들의 팝업 스토어가 망하는
것이 상관없습니까?”
교수들의 실적과 평가는 ‘반유현 - 팩토리’에서 자신들의 입지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수들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겸손하지 못한 분이군요.”
이번 소집에 불참 사유도 말하지 않고 불참한 것은, 나의 이름만을 이용해 자신의 어떤 계획을 실행하고자
한다는 그의 뜻이 내비치기도 한 것이다.
“출입 횟수는.”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다고 하네요.”
“메이 셰프요?”
혼 좀 내줘야겠다.
***
“잘 어울리네.”
“가, 감사합니다.”
“저를 왜……?”
“가 보면 알아.”
“어, 어서 오십시오!”
“아…… 예! 맞습니다.”
“메이.”
“네?”
고등어가 숙성된 기술도 그렇지만, 밥에도 다시마 물을 이용해 감칠맛을 올리려 노력한 것들이 보였다.
“노부 마츠로 셰프가 본인이 숙성시킨 회와 밥을 그대로 이곳에 전달한 것 같은데. 여기 있는 셰프들은
그것을 그대로 초밥으로 만들기만 했고…….”
이 셰프들도 남의 요리를 그대로 받아 손님에게 내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도 모르는 듯했고.
“그렇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저의 노하우가 집약된 최상의 식재료를 이들에게 쥐여주고, 그 맛들을 활용하는 능력을…….”
“일식의 대가, 일식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위해, 일식을 세계화시킨다는 가짜
신념으로……. 제 이름을 그곳에 이용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미슐랭 9 스타, 본인의 요리에는
자신이 있었으니 그것을 널리 널리 퍼트릴 수단이 필요하셨겠죠.”
[ 노부 마츠로, 미슐랭 9 스타의 노하우를 도시락에 담다. 반유현 & 노부 마츠로의 콜라보! ]
만화나 영화 속의 악당을 보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원대한 야망에 사무쳐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
“자신 없냐.”
“……예?”
73 화. 반유현의 이름 (3)
사실대로 말하고, 언론에 기사가 난 것뿐인데, 노부 마츠로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역정을 냈다.
그나마 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제명의 이유는 밝히지 않았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나 보다.
여섯 번의 인생 동안 그를 적으로 돌린 것은 처음이었다.
“제 요리 인생에 똥물을 튀긴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가뜩이나 이 업계는
좁으니까요.”
“후회라……. 두고 봅시다.”
“……네.”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그가 떠난 이상 그 재료들을 계속 쓸 수는 없었으니까.
“예! 셰프!”
“잠깐만. 그 재료 다 가져와.”
“대단해, 메이.”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메이는 곧장 매직과 종이를 가져와 자신이 생각한 문장들을 적기 시작한다.
메이의 지시 아래에 셰프들이 자그마한 간이 냉장고와 밥솥을 문 앞으로 옮겼고, 그곳에 노부 마츠로가
놓고 간 생선과 샤리를 각각 넣었다.
그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것이란 그 문장은, 간판에 적힌 나의 이름과 더해져 한 줄의 문장에
엄청난 기대감이 모아졌다.
***
‘반유현 챌린지.’
나와의 대결이 아닌, 나의 제자와 대결구도가 형성된 노부 마츠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메이와의 대결구도 자체를 없애려 들기 위해 이 팝업 레스토랑의 장사를 허용하지 않았고,
메이가 이끄는 팀은 새로운 자리를 물색해야 했다.
“네 생각은 어때. 런던에 자리를 구해서 노부 마츠로 셰프와 끝을 볼래? 아니면, 상권을 분석하고, 네가
생각한 메뉴가 가장 잘 팔리는 곳에 팝업 레스토랑을 차릴래? 장사를 며칠 못한 것에 대해선 어느 정도
어드밴티지를 줄 테니까.”
곧장 핸드폰을 열었다.
-www.visitbritain.co.kr
“여기는…….”
“그렇다면…….”
지이이잉!
-연락처 보내드리겠습니다. 셰프님.
***
런던 아이.
영국 관광청의 적극적인 협조로 메이와 셰프들은 이곳에 임시로 팝업 레스토랑을 오픈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들에겐 메이가 더 가까운 지도자였으니, 그녀를 치켜세워주고 싶지만 어쩌겠나. 효율을 생각할 때는
그것까지 챙겨주기가 참 어렵다.
더군다나, 간판이 내걸린 뒤에는 이 임시 천막이 불법 노점일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 반유현 - 테스트 ]
“반유현이래!”
“헐!”
“네?”
“이것 봐.”
항의 메일이었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는 갔지만, 메이는 애초에 장사를 가장 늦게 시작했으니 나의 행동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테이크아웃을 하면 일회용품을 쓰는 빈도가 많아지고 가뜩이나 이곳엔 관광객들이 많기에 쓰레기 처리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매출을 올려야 되니, 식재료 단가도 그렇고, 회전율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가장 효율적인 것을
찾아보다가 생각한 게 있습니다.
“뭔데 그니까.”
“계란 초밥.”
“하.”
요즘 나를 자주 웃게 하는 메이였다.
계란 초밥. 그 이름만 들었을 땐, 초라해 보일진 모르지만 강력한 음식이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라면.
“네가 뭘 좀 아는구나.”
74 화. 반유현의 이름 (4)
그에 따라, 개인이 이 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해 특혜니, 독점이니 논란도 생길 테지만,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을 영국 관광청에 기부하면 그만이다.
자신들을 이끌게 된 메이가, 어쩌면 노부 마츠로보다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가쓰오부시(かつおぶし)?”
“맞습니다.”
그 달콤한 맛이 모두 지나갔을 땐, 메이만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식초와 버무려진 밥알이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아니, 상쾌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입안에 침이 흘러나올 정도로 그 오묘한 신맛은 식욕을 돋우게
해주었다.
“잘했네.”
“흠.”
각각의 재료만 준비된다면, 이 요리를 만드는 것도 빠를 것이고, 손님들이 이 음식을 먹는 속도도 빠르다.
맛과 효율을 모두 잡은 구성이었다.
“완벽하게 이기려면, 이 초밥에 들어가는 쌀알도 다 골라내. 중간중간 쌀알이 큰 것들이 섞여서 쌀알
자체가 주는 식감과 풍미가 떨어진다.”
“또, 있어. 샤리(しゃり) 만들 때, 식초랑 밥을 버무리는 주걱, 그 주걱을 휘젓는 횟수까지 맛에 영향을
미치는 거야. 너무 많으면 밥이 질어지고, 너무 적으면 네가 만든 식초가 밥에 잘 묻어나지 않지. 물론,
그 횟수까지도 밥알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야경 죽이네.’
***
로또 육 인방.
“우리야 뭐, 항상 바빴고 ‘레드 테이블 - 반유현’, 거기는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이 들어가서 더 바쁘지
않아?”
“우리도 몰라, 갑자기 반유현 셰프님의 부름에 나갔는데 런던에 눌러앉았다고 하더라고.”
메이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차가운 말투, 메이가 그나마 대화를 따뜻하게 중재했는데, 그녀가 없으니
대화는 서로 직구를 던지듯이 인사치레, 겉치레를 하지 않고 내용만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바쁠 짬이냐.”
“짬?”
헨리, 제리가 최민성의 군대 얘기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 때쯤, 웨스트 민스터(Westminster) 궁전에
도착했고, 저 멀리 강 건너에 런던 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주방에서 똑같은 지위를 가졌던 메이가 아주 중요한 중책, 그것도 역사에 없었던 일을 만드는 것에
앞장서는 역할을 하니 다섯 명 모두가 내심 부러웠다.
처음 반유현의 밑에서 요리를 시작했을 때, 그때는 여섯 명 모두가 경쟁을 했지만, 이제는 서로 응원해
주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야!! 저긴 가봐!”
“미……친.”
“메이!!”
“이게 실화야?”
“대박났네…….”
더군다나 마츠로 본인과 메이의 대결 구도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제목을 찾아 기사를 써낸 것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예약 문의가 순간적으로 증가하긴 했지만, 마츠로는 일식의 대가, 미슐랭 9 스타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하기 싫었다.
요식업계 거물로 떠오르는 반유현과의 커넥션이 아니라, 그의 제자인 메이와 엮이는 것 자체가 자신이
여태까지 쌓아 올린 인지도와 명성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승님의 한 마디라면.’
좀처럼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적인 존경을 받는 셰프의 말 한마디는
충분히 이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
“스승님께서 언제 들어오시지?”
“그런데 뭐.”
***
타코, 핫도그, 카레 등 다양한 요리들이 많았고 모두에게 조언을 해줬으며 달라진 교수들의 태도도
확인했다.
메이의 말을 들어보면, 레스토랑 문을 닫으면 셰프들이 잠을 줄이면서까지 초밥에 들어가는 쌀알의 개수를
맞추기까지 한다고 했었는데, 대중들이 그 노력을 알아준 듯했다.
음식을 먹고 나오는 사람들이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고, 만족한 표정으로 레스토랑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미 수많은 잡지와 SNS, 언론에 메이의 요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슈퍼스타들의 등장에도 사람들은 그들에게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지 않았고, 덕분에 혼잡스럽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줄의 질서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재료와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던 메이가 꼼꼼하게 적어 둔
글씨가 꽤나 효력이 있나 보다.
우와아아아!
반유현 셰프다!
줄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 실제로 몇몇의 사람들은 줄을 포기하고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요청하곤 했다.
“다시 줄에 서면 되잖아요.”
나는 그저 방향을 정하지 않고 까닥까닥 고개를 숙이며 그들의 환호에 대응해준 뒤 가만히 앞을 바라봤다.
“예.”
“질문 몇 가지…….”
“大丈夫です。(괜찮습니다.)”
“혹시……. 영광입니다.”
“저를 아시나요?”
“허허. 젊은 사람이 어떻게 나를……. 요리에 관심이 있는가 봅니다. 기분이 좋군요.”
88 세의 할아버지.
“저를 알고 계십니까?”
***
‘이, 이런 대박이……!’
그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했다는 것도 가슴이 뛰었지만, 그보다 더한 생각들이 가렛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혼자 오셨나요?”
“네!!”
“저쪽으로 앉으세요.”
분명 봤다.
오노 이치로가 고개를 깍듯이 숙여, 자신을 즐겁게 해 준 이에 대한 예의를 다했고 메이는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요리에 전념했다.
“이제 모든 팝업 스토어 일정은 끝났고 파리로 가자. 한국의 반유현-펌킨 상황은 어때?”
“어떻게 할 말이 없으십니까아아!”
“허허. 뭐, 그렇게까지…….”
‘꽤 괜찮네.’
“질문이 뭔데요?”
“메이 셰프와 노부 마츠로의 대결 구도에서 그들의 두 스승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저기 가시는 오노
이치로 셰프님과 반유현 셰프님…….”
***
워낙 거침없는 표현의 대가라 그런지, 반유현의 멘트들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반유현의 제자에게 패배했다는 프레임이 씌워진 채로 대중들의 기억에서 천천히 지워지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낫다.
오노 이치로가 방문하기 약 1 시간 전, 노부 마츠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식재료를 정리했다.
전복, 참치, 광어, 소고기, 초밥에 올려질 재료들이며, 밥과 전채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오셨습니까. 셰프님.”
“그렇습니다.”
“쯔, 아니긴. 내가 자네의 꿈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자네의 요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면 알아서
될 터인데, 내가 방송이나 언론에 홍보하는 걸 본 적 있어? 괜히 욕심부리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니야?”
“오랜만에 자네 요리 좀 먹어볼까.”
장어, 정어리, 문어, 단새우 등등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접시에 올려놓고, 오노 이치로도 맨손으로 그
초밥을 받아먹었다.
“앵콜도 있나?”
광어 지느러미 특유의 기름진 고소함과 식감, 이 음식이 별미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노부
마츠로가 직접 제조한 식초와 지느러미 겉면에 발라진 특제기름은 풍미를 더했다.
“흠…… 맛은 최고야. 그런데, 기대감이 없어 기대감. 모든 초밥이 최고의 맛을 내지만, 코스가 끝났을
때 이, 지금 당장의 맛있는 요리를 또 먹고 싶었지, 자네의 다른 요리를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를
않았네.”
그런데, 식재료의 차이를 아득히 뛰어넘어 메이의 요리를 먹었을 때 떠올랐던 생각이, 노부 마츠로의
요리를 먹은 지금엔 떠오르지 않았다.
“셰, 셰프님!”
***
“30 개의 레스토랑 중 안정적인 흑자전환에 성공한 팝업 레스토랑들은 더 규모가 큰 자리를 알아보고 있고,
자신들 스스로, 전단지, 시식, 마케팅 수법을 동원해서 아예 그 지역에 자리를 잡겠다는 마인드인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그 팀의 리더인 교수들도 인프라를 총 동원하고 있고요.”
혼자의 힘으로 눈덩이를 밀다가, 이제는 그 눈덩이가 커져서 굴리지 않아도 스스로 몸집을 불리면서
나아가고 있다고.
77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1)
“죄, 죄송합니다아…….”
자신이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으로서, 이 자리에 앉아있을 줄도 몰랐는데 반유현이 생각한 계획들이야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그…… 반유현 셰프님께서, 정확히 ‘더 큰 기회’라는 말씀을 하신 거라면 계획이 있으시다는 건데…
….”
메이의 말이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렸는지 교수들은 입술을 내밀거나 어깨를 들썩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퍽이나.”
“그만해, 셀리. 다들 열심히 했잖아. 결과는 곧 나오겠지. 그리고 러트렐 팀에는 핸디캡도 있었잖아.
애초에 장사를 늦게 시작했으니.”
“그러게…….”
“저 포스는 뭔데…….”
“대박…….”
“아. 아. 제 말 잘 들리십니까.”
예! 셰프!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아아! 셰프!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
이를테면, 최상위 성적을 낸 A 반 50 명에서, 팝업스토어의 등수대로, A-1 은 메이팀, A-2 는 카림팀,
A-3 은 안토니오 셰프팀으로. 반 안에서도 또 수준이 나뉘는 것을 생각했다.
이는 약속이었다.
“!!”
실제, 레스토랑 내의 직급을 봐도 요리 실력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은, 재료를 손질하는 인턴이나
조리사들이 아니라, 수셰프나 총괄 셰프처럼, 메뉴를 만들고 주방을 지휘하는 이들이다.
우와아아아!
두 가지를 모두 얻기 위한 계획이었다.
반유현 골목.
78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2)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레드 테이블 - 반유현’.
“뭐, 뭐야?”
“저 간판들은 뭐야.”
그리고,
“이제 풀어. 지금은 다섯 개,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 반유현’을 합치면 일곱 개지. 저 거리에
반유현 골목을 조성하고, 미슐랭 스타로 줄을 세울 거라고.”
“그리고 셰프님 말씀대로 곧장 공고를 올렸는데, 놀랐습니다. 저희 부서에 있는 직원들 모두가요. 참…….
진짜……. 신이 있다면, 요리의 신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만해. 신은 무슨.”
“왜, 문제 있어?”
아무래도, 반유현-테스트라는 이름의 팝업 스토어 테스트 방식이 이들을 불러 모으는 것에 제대로 한몫한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셰프들을 잘 가르칠 수 있나, 그럴만한 스펙과 인프라를 갖췄나. 그걸로 너희가
빠르게 정하고 최종 뽑은 교수들만 나에게 보고해.”
어차피, F 반의 최하위 팀.
***
F 반, 5 팀.
“그만해.”
“너희, 뭔데.”
“눼눼눼……! 푸하하하하!”
“필레조 델리 티레.”
“뭐?”
필레조 델리 티레.
“그 회장의 아들이야?”
“……네. 요식업계에도 인맥이 많은가 봐요. 자기가 여기서 퇴출당하면 저희들도 셰프 인생 다 끝나는
거라고…….”
생각보다 더 악질이었다.
수업의 질만 나쁘게 할뿐만 아니라, 권력으로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자 하는 셰프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야. 너희들.”
“갑자기?”
“가만 안 둬.”
***
이제는 내 이름 자체가 대단한 브랜드가 되어, 창출할 가치가 작지 않기에 국가에서도 나를 섭외하려고
힘쓰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그 자리에는 계속해서 공석이 생기는 상황. 그 원인을 듣고, 저절로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필레조 델리 티레.
나도 그 회사를 알고 있다.
규모가 꽤나 큰 회사라, 레스토랑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요식업에도 뛰어들었고.
“그렇습니다.”
곧장 그 수업 현장으로 걸어갔다.
쾅.
“너희냐.”
“안녕하세요오.”
79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3)
“교수님은 겁도 없으신가…….”
똥 밟은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그리곤, F-5 팀의 담당 교수인 리사를 계속해서 협박하려 했다.
내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제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서로서로 조용히 넘어가자고……. 기억할 거예요. 리사 교수님? 잘
먹고 잘사는지 볼게요.”
“어쩌라고.”
“에에?”
“뭐, 어쩌라고.”
필레조 델리 티레.
“다 빼.”
“후회는 네가 하겠지.”
“경호원한테요?”
***
“죄송합니다. 손님, 손님께서 찾으시는 와인은 레스토랑 ‘반유현’ 전 지점에서 취급하지 않습니다.”
-빌리엔, 유럽 사업부장.
반유현 팩토리에 소속된 셰프들이 입고 있는 조리복을 만든 회사,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칼을 제조한
회사들이 대단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내 레스토랑의 주된 와인을 제공하는 업체가
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존경하는 반유현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께서 저희 회사의 와인을 모두…… 어떤 이유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레스토랑 ‘반유현’에 납품되는 모든 와인의 가격을
낮추겠습니다. 또, 저희 회사 측의 소믈리에를 상시 배치시키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
“예 알겠습니다.”
“그게 싫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도 말해주고. 샹젤리제 거리에 매장이 하나 있다며.”
***
짝-!
“이런! 미친……자식.”
짝!
“이거 놔! 이런 망할……놈!”
회장의 집무실, 델리아 부자(父子) 말고도 여럿의 간부들이 있었는데 분위기는 그들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타오르고 있었다.
짝! 짝! 퍽. 퍽.
“우리 회사 제조법과 그 재료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유현 셰프가 우리 회사의 와인을 배척한 것은 내
아들이 갑질을 해서다……. 라고 공식 발표를 하는 것이 회사에 이익인 것이냐…….”
무슨 이유에선지 반유현은 필레조 델리 티레의 와인을 취급하지 않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오너 일가의 갑질 사건으로 퇴출·불매 운동이 시작되어 회사 가치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업들도
많았으니까.
쾅!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저희 회사 제품들을 전시해둔 매장을 싼값에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뭐?”
실제로 직원들은 회장인 루크스에게 보고하기 전, 샹젤리제 거리가 반유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길래, 그런 제안을 한 건지 세세하게 조사해봤다.
“이유는 뭐야.”
올림픽, 월드컵…… 어쩌면 그다음으로도 불리는 규모의 행사에서 반유현은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황상 그렇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아직도 몰라? 반유현……셰프. 그렇게 다뤄선 절대로 안 되는 사람이란 걸……. 직접
만나봐야겠어.”
80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4)
“셰프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싶다고…….”
“만나길 누굴 만나.”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셰프님, 샹젤리제 거리의 매장은 왜 필요하신 겁니까? 계획에 없으셨던 내용이고 그냥 사과만
제대로 받아내고, 세계 최대 와인 제조업체가 셰프님께 고개를 숙였다라는, 그런 이미지만 챙겨도 될 것
같습니다만…….”
“지금 저 회사가 입고 있는 피해를 봐. 샹젤리제에 있는 매장을 충분히 내놓고도 남지. 그리고 내가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매장을 원하는 건 단순한 욕심이 아니야.”
투르 드 프랑스.
***
투르 드 프랑스.
2000 명이 넘는 기자들이 취재에 나서며, 130 개국 100 개 채널에서 경기를 중계하고 35 억 명의 시청자가
경기를 관람하는, 그야말로 세계적 규모의 스포츠 행사다.
“출발점은 프랑스 인근 국가나,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하지, 도착점은 언제나 파리의 샹젤리제였고.”
이번 대회는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에 위치한 자연공원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각 도시를 지나, 파리의
몽토르게이 거리, 그리고 샹젤리제 거리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구성되었다.
“근데 이걸 어떻게…….”
몽토르게이 거리에 조성된 ‘반유현 골목’은 그 코스에 정확히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우웩!”
“그, 그게 아니라 셰프님…… 코스가 하나가 있는 게 아니라, 자잘한 코스들도 많은데 어떻게 하필 메인
코스 안에 반유현 골목을…….”
‘이번 삶은 다르니까.’
반유현 골목이 형성되어 있는 몽토르게이 거리와 멀지 않은 샹젤리제 거리, 그곳에서 피날레가 열렸기에
나는 그곳에 내 간판을 걸기 위해 점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샹젤리제 거리에 가장 큰 매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나와 엮인 것이었다.
‘고맙게도.’
그리고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매장의 가치가 얼마를 하든, 그 매장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끔 상황은
흘러가고 있었다.
“필레조 델리 티레의 회사 가치가 10 퍼센트 넘게 빠졌다고 합니다.”
***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루이비통 회사의 대리인으로 나온 변호사가 이것저것 서류를 검토한 뒤에, 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아, 내가 경호원들에게 말했었다.
아노 델리아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이놈이 절대 이 건물 안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고.
재산이 천억은 훌쩍 넘는 회장이, 입구에서 자신의 아들을 붙잡는 경호원들과 실랑이하다가, 체념하고
혼자 내 사무실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들어 오라 그래.”
“죄, 죄송합니다.”
“사람은 안 바뀌는데…….”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리더인 내가, 대형 기업의 회장을 주물럭거리는 것을 보고 소속감과 자긍심이
저절로 올라갔을 것이다.
쾅!
“죄송합니다아아……흐.”
81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5)
“야, 그 소문 들었어?”
“실제로 봤다고?”
“그래, 진짜로.”
“푸하하하하!”
***
[ 둘 간에 어떤 거래가 있었을까. ]
[ 기업이 갑질을 당하는 세상? ]
회사로선 당연히 떨어진 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으며, 내가 말 한마디를
거들어 주는 것이 그 수단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긴 애초에 구멍가게도 아니고 대형 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한다는 논란이 말이 안 되긴 합니다.”
“현장은 어떻대?”
우와아아아!
반유현!! 싸인 좀 해주세요!!
‘오픈 전부터…….’
“오셨어요? 셰프님!”
“그래.”
그러나, 메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셰프들도 그 호기심과 놀라움을 억지로 감췄다.
“물이라도 한 잔…….”
“잘하고 있나 보네.”
먹어보진 않았지만, 겉보기와 향으로 알아본 결과 요리의 맛에는 문제가 당연히 없었다.
딱히 지적할 사항이 없어, 오픈하기 직전에 메이의 기를 한껏 더 살려주는 것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셰프!”
“수고해.”
“예! 셰프!”
와아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
“셰프님께서 상권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주변 정리에 신경 쓰라고 하셨던 지시에, 홀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들보다 밖에서 줄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더 많아졌네요.”
“성공은 무슨.”
반유현팀 소속인, 오스틴이 신나게 나의 성공신화를 말하곤,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계획이 더 중요해.”
“메뉴는, 수제 햄버거.”
82 화. 누가 우릴 막을 수 있겠어 (6)
모든 메뉴들이 머릿속에 있고, 셰프들이 그것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끔 하는 방법들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나는 그저 그 지식들을 꺼내 놓으면 되는 것뿐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음?”
“어.”
“지금 하네요.”
헨리가 핸드폰을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때, 실제로 방송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우와아아아!
-이랬던 셰프가…….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딴 골목을 만들었습니다. 역사상 자신의 이름을 세웠던
셰프가 있었나요? 없었죠!
헨리, 제리, 최민성 이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입가에 웃음이 걸려있다.
***
-저는 이 점에서 반유현 셰프가, 여태까지 있던 스타 셰프들과 완벽한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가요?
-오로지 맛에만 공을 들입니다. 맛의 수준을 올리는 것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맛이,
저절로 강력한 비즈니스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맛이 강력하고, 사람들이 그 맛을 찾고, 그에 따라
반유현 셰프는 그 맛을 사람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은 것이고……! 이, 이 얼마나 바람직한
프로세스입니까! 요리 문화의 격을 높이는 이상적인 프로세스!
“다 왔네.”
“지금은 달라.”
“예?”
내가 매장 전체를 둘러봤다. 1 층에 위치해 있고, 원래는 와인이 전시되어 있던 장소라 그런지, 창문들이
널찍하지 않아 어두운 분위기였다.
“예……?”
“아, 예! 말씀하시죠.”
“아…….”
***
“예?”
“왜. 이제 알았냐.”
“설마…….”
“그래.”
옐로 저지.
“아…….”
“대회 기간 동안 사람들이 이 햄버거를 어디서나 자유롭게 먹으려면 패티가 얇아야 돼. 무식하게 패티가
두껍거나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많으면, 사람들이 대회를 관전하면서 햄버거를 먹는 게 힘들어지니까.
흘리기까지 하면 거리가 너무 더러워지겠지.”
“예?”
83 화. 원맨쇼 (1)
치이이익!
치이이이이익!
한쪽 그릴엔 베이컨이 올라가 있는데, 그곳에 양파를 추가해 넣고 설탕을 넣어 양파가 시럽처럼 퍼지는
것을 돕는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소스의 역할을 하며, 햄버거 전체의 풍미를 돋우는 역할을 할 녀석들이다.
“먹어봐.”
“와.”
“다 오세요.”
[ 반유현 ]
반유현 휘하의 모든 셰프들과 조직원들이 한곳에 모였고,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을 끌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와…….”
“총 몇 명이야!”
“약 450 명입니다.”
양파와 마늘을 빠르게 쳐내는가 하면, 소스를 접시에 옮겨 담아 반유현이 쓰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보조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스카프…….”
다다다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준비된 재료를 하나씩 쌓아 올려 덮으면 되는, 패스트푸드로 강하게
인식되어있지만, 그 실상은 모든 식재료의 맛을 강하게 살려내야 되는, 쉬운 요리가 아니었다.
우와아아아아!
레드 와인과 발사믹 식초를 넣으며 불길과 연기가 치솟아 오르자, 셰프들이 탄성을 질러낸다.
우와아아아!
꺄아아아악!
우와아아!
***
“알고 있습니다.”
[ 검은 띠, 조리복의 물결. ]
“또…….”
SNS 와 온라인 매체엔 또 한 번 내가 이슈 되었다.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조리복을 입은 수많은 셰프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연신 환호성을 내뱉고 나서는
감탄과 환호를 쏟아내는 모습이다.
“너도 맛봤잖아.”
“그렇습니다. 크리스피한 소 갈빗살 패티가 바삭하더니, 바삭함이 깨지고 육향과 숯불향이 올라오고……
약간의 매운 향이 곁들여진 베이컨의 훈제 향, 그리고 달짝지근한 양파가 합쳐지면서…….”
“그래.”
주방에서 일하는 것은 운동이 아니다, 운동을 좀 따로 해서 체력을 쌓아야 되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이게 확장성이었다.
물론, 햄버거라는 메뉴가 그 기술을 전수하는 것에서 난이도가 높지 않기에, 지금 단계에서 반유현
팩토리의 인력을 적즉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긴 했지만.
“걔네가 그럴까.”
“그렇습니다.”
“프랑스 파리, 내 구역에서 미사일을 가지고 싸울 필요는 없잖아. 미사일은 적진을 뚫을 때 써야지.”
파리를 제외한, 런던, 라스베이거스, LA, 홍콩, 베이징, 서울, 도쿄…… 맛의 강자들이 득시글대는
주요 도시들이 떠올랐다.
***
그곳은 반유현 팩토리의 테스트 매장으로, 예약이 없는 곳이었기에 현장에 사람들의 행렬이 더 길게
이어진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반유현! 반유현!
84 화. 원맨쇼 (2)
“후.”
“바로 앞이 결승선이니까.”
“말할 힘도 없다.”
치이이이익!
선수들이 결승선을 지나기 한 시간 전, 대부분 언론들은 파이널 현장의 분위기와 시민들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송출하면서 행사 전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곤 한다.
지금의 상황을 인지하는 반응들, 저들은 내가 햄버거나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햄버거가 나오기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면 된다는 반응으로 태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재료가 없어.’
전 세계 방송에, 나의 레스토랑의 간판과 수많은 사람들이 햄버거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비추기 위함이
최대의 목적이었으니까.
퍼포먼스를 위해 혼자 주방을 운영했기에,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다.
“제기랄.”
***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메뉴를 바꿔야지.”
“계란이요?”
“어. 빨리.”
“예! 셰프!”
‘뭐야 저건.’
“다 이쪽에 내려놓으세요!”
“그쪽은 괜찮냐?”
목에 검정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로또 육인방 중 메이를 제외한 다섯 명의 셰프들, 그리고 반유현, 레드,
블루, 옐로 총주방장을 맡고 있는 세 명의 셰프들.
“재료를 바꿔 새로운 버거를 준비할 겁니다. 줄을 그대로 지켜주세요!! 선수들이 결승선 통과하는 걸
아주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서 기다리셔야 할 것 아닙니까아!”
우와아아아!
말하려다가 멈췄다.
“장난치시는 거죠?”
“진짜야.”
최민성은 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곤 다시 소리쳤다.
***
“와……!!”
“계란이 소고기 패티한테 절대 뒤지지 않는…… 재료 원가의 가치를 뒤집었습니다. 원가의 하극상인가?
맛은 최상입니다.”
매콤한 훈연향을 강조해 직접 만든 파프리카 가루와 단맛을 내는 양파, 그리고 허브의 한 종류인 차이브가
톡 쏘는 상큼한 맛을 더했다.
“왜 파리 최강의 셰프겠어!”
“네. 뭐처럼 축젠데 놀기도 해야죠. 셰프님 덕분에 저희도 인기가 많아져서요. 엉덩이 신나게 흔들고
놀다 왔습니다.”
“잘했어.”
헨리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몸을 흔들자, 제리가 어디선가 거대한 앰프를 가져와 음악을 튼다.
후우우우웅!
“뭐야. 확인해봐.”
85 화. 원맨쇼(3)
“와후!”
“으잉? 컥!”
그러더니 그의 귀에 속삭인다.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반유현! 반유현!”
‘새끼들이…….’
***
매 대회마다 최대 투자를 하던 스포츠 기업들의 다음의 투자처로 나를 선정할 것이라는 기사까지 떴다.
[ “그냥 몸이 이끌렸습니다. 그 축제의 끝은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대회에서 일등 하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
왜 나의 레스토랑 앞으로 갔냐는 질문에 대한 크리스 폴룸의 인터뷰까지, 이번 행사로 유럽 전역, 나아가
세계에 내 이름을 알렸다.
-그러게 알고 나불대. 우리 갓유현 셰프님은 애초에 전화 예약이 불가할 사태를 예측하고 이런 어플을
만든 것임. 그것만으로도 최고.
또, ‘반유현 골목’의 인파는 끊길 줄을 몰랐다.
배를 키우면 되지 않느냐.
“그, 그전에 반유현 네이비는 어떡할까요? 잠시 휴업한다는 공지를 붙였음에도, 그 간판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난리도 아닙니다. 빨리 재오픈을 안 하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습니다.”
“레시피 교육은 내일부터 이 주일간 진행되고, 반유현 네이비는 2 주 뒤에 재오픈 한다고 공지 붙여.”
메뉴뿐만 아니라, 미슐랭 스타는 레스토랑 내의 분위기나 그 서비스까지 포함되는데 의자가 없는 스탠딩
테이블에 밖과의 경계가 없는 폴딩도어, 거기에 왁자지껄 젊음이 넘치는 분위기는 맛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분위기라는 단점이 있다.
“그렇습니다. 회전율이 높고, 원가가 낮으니, 매출을 높이고 현금 자산을 쌓는 매장으로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반유현 골목’과, ‘반유현 네이비’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회사 내에 현금보유량을 늘리며, ‘반유현
팩토리’의 연장선으로 나의 확장성을 증명하는 것에 의의를 뒀다.
“미슐랭 평가 기간까지 약 두 달 남았네.”
그 새로운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곳의 장소를 고르라면 나의 브랜드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프랑스 파리가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가장 매력적인 도시는, 런던입니다. 셰프님의 완벽한 안착을 위해서 이런 행사들을 지원한다고 하네요.”
“런던이라.”
***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런던은 다문화, 다인종을 그 도시의 색깔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들의 장점으로 가장 잘 이용하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
또,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실험적인 요리들이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보다 많이 탄생하는
곳이었다.
고든 레지를 비롯해 수많은 스타 셰프들을 배출한 ‘웨트스 민스턴 킹스 칼리지’의 요리사 과정에는 매년
2000 명이 넘는 학생들이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 학교에 지원하는 이유에는 분명, 이 나라가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라는 점 말고도 나에게 온 제안이 매력적이었다.
“매년 있는 루이비통사 주최, 세계적인 패션쇼 갈라 디너에 반유현 셰프님의 코너를 추가하겠답니다.
그래서,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 자체에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에 도와드리겠답니다.”
“그쪽에서 얻는 건.”
“새로운 경험과, 창의성이라는 모토를 갖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
그 자체가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제안을 추진했답니다.”
86 화. 원맨쇼(4)
루이비통 유럽 총괄 사장.
마이클 바크.
“혁신이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꾸는 것이죠…….”
그의 모토이자, 신념.
“저 때문에요?”
마이클 버크의 화끈한 제안에, 나를 따라온 몇몇의 반유현팀의 직원들은 눈동자를 굴렸다.
‘뭐. 왜?’
물론, 해러즈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갖는 장점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내 마음을 통째로 빼앗을 만한
제안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160 년 역사를 가진 해러즈 백화점, 그 이름만으로도 권위와 품질을 인정받기에 이곳엔 ‘해러즈’라는
백화점의 이름을 달고 나온 상품들이 많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백화점 내에 자신의 브랜드 이름을 내거는 것 자체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연이어 말했다.
***
“뭔 역사.”
“해러즈 백화점에, 단독으로, 임대료 없이 브랜드를 런칭하신다는 것이요. 그리고, 루이비통 브랜드
역사상 새로운 방식의 패션쇼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 그리고…….”
영국 왕족들의 말, 그 안장을 수리하는 브랜드와 왕족들의 구두를 수선하는 브랜드 등, 100 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그 브랜드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해러즈 백화점에 단 한 푼의 임대료 없이, 그저 나의 이름을 내거는 것만으로 입점을 했다는 것이고,
루이비통 사의 최대 규모 패션쇼에 갈라디너를 맡기로 했다는 것.
“반유현 팩토리 B-1 팀은 ‘반유현-네이비’를 맡기로 했으니, B-2 팀하고, B-3 팀은 런던으로 땡겨.”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그들의 거주지나 생활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도 해결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생기는 반유현 팩토리의 공백은 어떡할까요?”
“1 년에 한 번 뽑기로…….”
“반유현, 브라운.”
“알겠습니다.”
***
반유현에 의한 회의가 소집되어, 교수들과 레스토랑 ‘반유현’의 지휘급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저건 뭐야?”
87 화. 원맨쇼 (5)
[ 반유현 & 루이비통 세계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다. 2021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 ]
-???
-기계도 아니고……?
-와……. 부럽당ㅠㅠ
-뭐야 대박!
-허어어얼! 나도 신청!
바둑, 축구, 피겨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탄생은 청소년 또는 청년들이 진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대한민국은 나 때문에 요리사가 유망 직종이 되었단다.
나에 대한 팬심 또는, 반유현 팩토리에 지원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관심을 얻으려는 이들을 거르기 위해,
실제 의지를 가진 셰프들을 1 차적으로 거르기 위해 원서접수비를 올렸었다.
‘저는 패션쇼의 옷도 아니고 악세사리도 아니며, 기계도 아닙니다. 고객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해야
된다는 점에서, 저의 컨디션과 환경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뉴욕이라는 곳에 제 셰프들을
이끌고 가 최상의 컨디션을 내는 것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매번 그랜드 오프닝으로 성공적으로 레스토랑을 런칭했던 나는, 이번에도 그랜드 오프닝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폭제를 찾아야 했다.
***
역대 가장 큰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고생 좀 해주세요.”
패션쇼 갈라디너에 초대될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과 문화 수준 차이를 고려해 그들을 단번에 사로잡을
메뉴로 고른 것이었다.
“평범한 레스토랑과 레스토랑 ‘반유현’의 차이가 뭔지, 진짜 요리가 뭔지, 진정한 고급이 뭔지
보여주기에 아주 적절한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재료를 진공포장한 후 100 도 이하의 물에서 장시간 조리하는 방법을 수비드라고 하는데, 그 온도와
시간을 자유자재로 설정할 수 있으며, 저온조리에 진공포장을 하므로 식재료의 향과 영양소, 그리고 수분
파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조리법이다.
“와인에 버터, 새우 내장과 샬롯을 이용해 뵈르블랑 소스를 만들고. 냉이까지 넣어서 새로운 향을
만듭니다.”
단맛과 버터의 고소함, 그리고 독특하게 냉이 특유의 향이 추가된 소스가 완성되었고 내 앞에 등급별로
분류된 캐비아가 각각 담긴 다섯 개의 통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열었다.
도제식 교육문화가 만연해 있는 주방에서 요리를 배운 터라, 반유현 팩토리 내에도 권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수들이 몇몇 보였는데, 지금의 현장엔 뒷짐을 지고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셰프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나이, 경력 할 것도 없이.
그리고.
“와……. 진짜.”
“맛있냐.”
“하…… 네에…….”
88 화. 뜨거운 열기 (1)
하루에도 동시에 진행되는 일이 수 가지였다.
우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
“나 오늘 시간 안 되잖아.”
“그, 그렇습니다.”
“3 부에 시험 칠 인원들도 모두 다 와 있는 거지?”
“그럼 됐어.”
교수들 또는 다른 셰프들이 이들을 심사했다면 이 심사 자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고 내가 지시한
다른 일들을 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갈라디너를 준비하는 일이나, 반유현 팩토리의 세프들을 가르치는 일이나, 반유현 골목의
매장을 관리하는 일 등…….
“요리 시작!”
“예, 예에?”
“불합격.”
“네?”
“불합격.”
“엥?”
“불합격.”
조리대를 사이에 둔 복도를 걸으며, 그들이 서 있는 모습, 칼을 쥔 모습, 도마에 올려진 손, 재료를 물에
씻는 것, 또는 다듬는 것들을 보고 빠르게 판정을 내렸다.
“합격.”
“여기도 합격.”
“꺄아아악!”
“뭐, 뭐야?”
“엥? 너 합격이야?”
“넌 불합격?”
“불.”
“불.”
“불.”
“합.”
“하루 종일 걸릴 심사를…….”
***
그에 대한 답이었다.
“바, 반유현 셰프님. 10 개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들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로만이 특유의 존경스러움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진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사실, 올해 여덟 개 이상의 미슐랭 스타를 얻을 것이라는 계획은 어떻게 보면 보수적으로 예측한 것이었다.
“예에?”
포시즌스 측에서는 이곳을 본격적인 관광단지로 만들고, 그것을 자사의 이익으로 확실하게 구현하고
싶다는 뜻을 추진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기념품이요?”
“어떤?”
“새우 가루, 파프리카 가루, 표고버섯 가루, 다시마 가루…… 멸치 육수, 치킨스톡.”
천연 조미료, 또는 육수.
“헉.”
“!!”
“그런 식료품 가게가 오픈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나도 알고 있다.
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
당장 다음 주, 갈라디너가 진행된다.
메뉴 테이스팅.
“알고 있습니다.”
“부담이 크겠네.”
“좋네. 다음 요리는.”
89 화. 뜨거운 열기 (2)
최민성의 평가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기대가 커.”
물론, 기분만.
메뉴가 어떤 것인지, 어떤 조리법과 재료가 들어가는지 모든 셰프들이 알았으니 업무를 분담하는 순서였다.
그만큼 이 행사가 자신들의 커리어에도 중요하리란 것을 알기에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트러플을 품은 메추리, 이 요리의 분업이 제일 중요해 트러플 향을 날리는 것부터 메추리 손질까지
들어가야 되니까. 헨리 잠깐 앞으로 나와.”
“예.”
“프랑스 전통방식이죠. 배를 가르고 봉합한 흔적을 보이지 않게, 어렵지 않지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가금류 손질에 능하신 분들이 이 부분을 맡아주세요. 바로 이전 메뉴인 캐비아를 품은 새우 단계에서,
새우 손질한 다음 수비드 했었죠? 그 역할을 한 셰프가 새우 수비드에 넣은 뒤에 곧바로 메추리 손질
들어가면 될 것 같네요.”
송로버섯, 트러플은 익히면 그 향이 빨리 날아가게 되는데 그것을 최대한 메추리의 몸속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메추리의 몸속에 넣을, 수분을 품은 뜨거운 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모두 방출하지 못해, 메추리의 살을 부드럽게 해주며 메추리의 몸을 갈랐을 때, 트러플의 향이 확
튀어나오는 연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저들은 경력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주방을 통솔하는 능력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어야
되는지. 당연히,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줄 의무는 없었다.
지방을 많이 함유한 거위 간을 만들기 위해, 거위의 목에 강제로 파이프를 껴놓고 만드는 푸아그라는 세계
3 대 진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잔혹성 때문에 이미 세계적으로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루이비통 컬렉션 패션쇼, 갈라디너, 세계적인 유명인들과 부호들이 많이 참석하는 자리에 괜히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푸아그라를 올리는 것 자체가 도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 어떤 논란도
있어선 안 되겠죠.”
***
높은 천장과 드넓은 공간엔 모델들과 셀럽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화려하게 장식된 테이블에는 각각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 반유현 ]
화려함의 대명사라 불리는 스타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나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반 셰프, 너무 멋있어요.”
“네, 안녕하십니까.”
“어우. 워워.”
90 화. 뜨거운 열기 (3)
집안의 재산 규모로만 치면, 이 패션쇼를 개최한 루이비통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현실감이 있긴 하다.
“!”
매번 하던 대로.
“흠. 너 같은 새끼한테는…….”
그리고 돈이 인생에 목적이 아닌 이상, 이런 놈이랑 엮이는 것 자체가 내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속도를
뒤처지게 할 수 있다.
100 년의 삶 동안 수많은 재벌가 놈들이랑 관계를 맺어왔으나 실질적인 도움을 얻지 못했던 경험도 그랬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의 실력이다.
“뭐?”
“꺼지라고. 내 시간 뺏지 말고.”
“뭐? 푸하하하하!”
“하, 지랄은.”
“우웩! 별꼴이야!”
***
하이든 왕세자, 저놈이 내 갈라디너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와 관련해 제대로 일 처리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매번 혁신을 외치고, 어디 가나 존경을 받는 경영자가 그렇게 고개를 숙이니 괜스레 내 마음도 미안해졌다.
패션쇼 현장에 차려진 갈라디너 주방, 밖을 내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들 준비됐지?”
“예!! 셰프!”
***
짝짝짝짝.
후우우웅!
“!”
그리고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조리복,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셰프들을 중심으로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셰프들이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우와아아아!
그 대열의 중심에 반유현이 있었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라인업 자체로도 놀라는 사람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는 반응들이다.
VVIP 들 앞에서 선보이는 요리인지라,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것 말고, 세계 최강의 식재료를 세계 최고의
신선도를 살려 접시에 이쁘게 내놓아 호평을 받는 것이 그의 신상에도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슐랭 12 스타를 가진 제임스가 보기엔 지금 주방을 움직이는 반유현과 셰프들의 몸 놀림은 그런
편안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띵!
“캐비아를 품은 새우라는 메뉴입니다!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새우, 그리고 뵈르블랑 소스를 곁들여
새콤달콤한…….”
그런데 그때, 설명을 끝마치기도 전, 사람들의 충격적이고 즐거운 표정들, 그리고 탄성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
자신이 봤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 요리를 한 입 씹었을 때, 저절로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그리고 이 요리의 온도, 입안에 퍼지는 따뜻함은 반유현 셰프가 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느껴졌다.
‘뭐야.’
‘설마.’
재력으로나 명성으로나 이들에겐 캐비아라는 식재료가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진 않을 건데, 이들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띵!
그 여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주방에서 또 한 번의 벨이 울렸다.
호우우우!
우와아아아!
다들 하이든 왕세자의 반유현 셰프를 갖고 싶다던 욕심이 이해가 된 탓인지, 그를 연민의 표정으로
바라봤다.
세계 최고의 VVIP 들을 모아놓은 자리인지라,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랐다.
91 화. 뜨거운 열기 (4)
“캬…….”
“브라보!”
이 갈라디너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먹었던 트러플이 이렇게 조화로운 요리가 될 수
있구나를 느낀 것은 당연하고, 지금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이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더군다나 본인도, 슈퍼 스타 셰프라 불리는 반유현 본인도 적잖이 녹아들어 주방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셰프들을 받쳐 주고 서브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3 년 경력은 말이 안 된다.’
미슐랭 12 스타인 제임스, 본인 스스로가 주방을 부드럽게 조화시키고 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반유현의 주방에서의 움직임이 민감하게 느껴졌다.
띵!
마지막, 종소리.
쥐치 간이 품은 안창살.
그리고…….
“음!”
“흠!”
***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용히 해.”
사실 준비하지 않았다.
우와아아아!
내 요리에 완전히 홀릭된 사람들에게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도 있고, 내일 런던에서 오픈되는 ‘반유현-
브라운’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수우욱! 수우우웅!
우와아아아!!
진짜 내공은 이제부터였다.
슥! 슥! 슥!
나는 다른 결, 다른 크기로 세 점의 살을 베어냈다.
“이 세 점을 한번 드셔보시죠.”
“컥!”
뭐야!? 왜 저래? 왜?
“그쪽 분 나오시죠.”
“네.”
“드셔보시죠.”
“으잉?”
“진짜예요?”
“진짜야?”
우오오오!
“이 소스를 찍어 드셔보시죠.”
“와우.”
***
“아, 네.”
“예.”
“어……. 푸아그라 대신, 쥐치의 간을 이용하셨는데, 동물 사랑이나, 동물의 생명권 존중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지?”
다들, 자신의 업장을 한번 방문해 달라, 자신의 요리를 맛봐 달라, 파티에 방문해 달라, TV 쇼에 출연해
달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달라……는 둥, 나를 이용할 수 있는 개인적인 욕망들을 꺼냈는데
제임스라는 이 사람은 다른 얘기를 꺼냈다.
전혀 예상 밖의 얘기였다.
***
빠아앙!
“당연히 그렇겠지.”
내 이름값이 점점 거대해지고, 강력해지고 있는 와중에 이정도 손님들의 행렬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다, 당연요?”
“예?”
92 화. 뜨거운 열기 (5)
털썩.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맞아.”
“왜.”
“아…….”
“그럼……?”
조금은 더 공적으로, 공공의 일을 하는 모습도 보여 주면서 레스토랑의 홍보까지 챙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
“죄송합니다.”
“어, 그렇게 움직이는 게 레스토랑 이미지에도 좋고, 내 이미지에도 좋아. 여지껏 대중들한테
비즈니스적인 면모만 보여줬으니까. 이젠 나도 내 영향력을 신경 써야지.”
“아…….”
“예! 셰프!”
“예! 셰프!”
“에, 예! 셰프!”
***
“저도 셰프로서 이해는 합니다. 맛이 주는 쾌락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실제로 저번 루이비통 패션쇼
갈라디너에서 셰프님의 음식을 먹고는……. 하하하.”
“네.”
어쭙잖은 거짓말이나 핑계로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것보다 저쪽에서 먼저 오픈을 했으니, 소극적으로나마 내
의도를 전달했다.
1:1 식사 경매.
한화로 약 20 억.
***
“예?”
“54 억입니다.”
***
경매 입찰 결과 공개가 있는 날.
“입으로 불러봐.”
반유현 팩토리의 인력들은 연이어 런칭된, 반유현 화이트, 네이비, 브라운에 모두 사용되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무한한 인력수급을 위해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했건만, 인력이 있으니 레스토랑을 런칭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 딜레마가 생겨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으로 가면 되겠다.”
백원종이 있다.
곧장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셨죠?”
“예?”
“81 억이요?”
93 화. 뜨거운 열기 (6)
“은퇴?”
“죄송합니다.”
“이 새끼는…….”
-레알? ㄷㄷㄷ
나의 낙찰 가격으로 인해, 샤크세이브 캠페인 자체가 엄청난 반응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는 이야기와,
셰프로서의 나, 그리고 나의 영향력을 또 한 번 제고했다는 것.
[ 세계동물보호 협회 반유현 셰프에게 훈장 준비 중 ]
내 성격, 내 마음이라면 경매를 철회하고 저 왕세자 놈에게 낙찰을 해주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일이 이렇게나 커져 버렸다.
“그랬었죠. 그래서 셰프님도 그들과 같은 수준일 것이라 생각했나 봅니다. 참나, 자기네 집의 주방으로
들어오라니.”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라고…… 일본 여성인데 나이는 60 세, 지중해 전문가로 미슐랭 7 스타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급 인력들을 모아둔 곳에, 요리를 선보일 수 있던 적이 없었잖아. 마침…… 반유현 팩토리
교수진 섭외 문제도 있고.”
***
“잠시만요! 몇 가지 질문 더!”
경호원들이 내 주변에 달라붙는 기자들을 제지하고 대저택의 안으로 들어가는데 한 기자가 꽤나 괜찮은
질문을 던졌다.
“런던에 런칭하신, 반유현 브라운도 최고급 식자재를 사용하는데, 그 업장에서는 샥스핀과 같은 재료들을
안 쓰시는 건가요?”
뜬금없이 나의 레스토랑 이름을 말해준, 기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대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헬기가 정열된 옆쪽, 대문으로 하이든 왕세자와 그의 수행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를 목격한 하이든 왕세자가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와 내 손을 덥석 잡는다.
‘뭐야. 왜 이래.’
“와…….”
대리석 또는 금으로 장식된 인테리어는 나의 수행원들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내뱉게 했다.
“이 시계는…….”
“너 가져.”
“내가 그지냐.”
“미국에 유명한 재벌들 모임이 있거든? 그쪽에서 돈 모아서 80 억으로 한다고 하길래…….”
“크흠!”
가장 높은 조리모를 쓰고 있는 여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셰프님. 저는 가타무라 마츠노라고 합니다. 이 주방의 총책을 맡고 있고, 이탈리안 지중해
요리를 주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뭐라던가요.”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음.”
“그렇습니다.”
자신의 요리가 맛있고, 정확하다는 생각이 자신의 마음 깊이에 새겨졌기 때문에 협업과 누구의 지시를
받는 것에서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 문제를 지적해줬다.
“예?”
94 화. 뜨거운 열기 (6)
사실 가르쳐줄 게 뭐 있겠나.
“어.”
더군다나 미슐랭 7 스타, 총주방장이 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는 것을 알고는 저절로 겸손해졌다.
“치킨.”
“뭐? 닭요리?”
한류 문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치맥이 유럽과 미국을 시작해 중동에도 퍼졌다는 얘기를 언제쯤 한번
들어봤었는데, 그 시점이 지금이었던 것 같다.
복숭아보다 ‘달콤한 과일’로 수박을 내미는 것보다 아예 꿀맛이 나는 복숭아를 내미는 방법.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치킨을 사 왔다는 것은, 치킨에서도 그와 비슷한 충격을 느끼고 싶다는 듯한 바람이
묻어있는 듯했다.
“확실해요?”
“다…… 됐어요?”
“오……. 오케이.”
***
염지.
“오늘 처음 먹어봤어.”
“예에? 한국 사람이 무슨 치킨을 안 먹어봤어요?”
“아…….”
관절이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자른다. 중요한 것은 자르는 과정에서 닭 껍질이 붙어있는 형상을 조절하는
것이다.
닭 다리, 닭 날개, 닭가슴살 등 닭의 각 부위는 구조상 손질을 할 때 껍질이 말려 떨어지는 부위가 있고,
견고하게 붙어있는 부위가 있다.
그리고, 닭에 붙어있는 뼈.
“끔찍합니다.”
“뭐가.”
“맛을 내는 방법이요.”
“어.”
***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맞다 백 대표님.’
미슐랭 평가 기간이 시작되기 전, 백원종의 인프라를 이용해 한국에 레스토랑을 추진하려 했었다.
“예, 백 대표님.”
-어어어, 대표님 하지 말라니까. 그냥 원종이라고 불러유.
“예, 그래서 셰프가 부족합니다.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했어도, 제가 나아가는 속도가 더 빠르네요.”
-하이고……. 어떤 요리로?
“예, 반유현입니다.”
이번 전화는 로만이었다.
모든 통제를 내가 하고 있었다.
지이이잉!
“흠. 치킨이 숙성되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 주방도 아니고, 그들을 막기가 애매하네요. 제가
직접 내려가겠습니다.”
그들이 가진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약 30 개라는 셰프들이, 나의 레시피가 그렇게 궁금했나 보다.
95 화. 뜨거운 열기 (7)
둘의 의견은 그랬다.
치킨이 숙성되고, 반죽물과 소스들이 숙성되는 시간, 이것을 열어보고 맛보면 반유현이 생각한 의도의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셰프들은 반유현의 레시피에 관심이 없고 그저 일하러 주방에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
반유현이 경호원들을 주방에 세우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벌써 냉장고를 열어 반유현이 재워둔 치킨과 소스,
반죽물들을 분석했을 것이다.
그때, 제리의 말처럼 자신들의 행위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들의 행위를 부정하며 되려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두 명.”
“반유현 셰프를 등에 업고, 뭐라도 된 줄 알고 떠들지. 예의도 없냐. 한참 선배인 우리들한테. 이것들이
어디서…….”
“예?”
그리고, 이 셰프들의 리더인 미슐랭 7 스타, 가타무라 마츠노가 이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다.
보조 셰프.
각 분야, 육류면 육류, 어류면 어류, 최상급의 재료들만을 선별해 공급하는 공급원을 세계 각지에 파견
보내 재료를 공급받는다.
물론 요리의 맛에 큰 차이는 없고, 이 요리에 들어간 재료가 엄선된 최고급이라는, 기분을 내는 정도였다.
“상처받았냐?”
“아, 아닙니다.”
이 주방의 총책인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와 그 휘하의 셰프들이 헨리와 제리를 보고, 반유현의 보조
셰프라느니, 반유현을 업고 뭐라도 된 줄 아냐느니 했던 것이 영 거슬렸나 보다.
“맛으로 굴복시켜줄게.”
치이이이익!
“소스 준비해라.”
“음. 좋아.”
내가 직접 맛을 보니 합격점이었다. 치킨무 대신 무가 얇게 슬라이스 되어 썰린 동치미를 접시에 담았다.
***
“큭.”
“이게 진짜라고?”
그 매장의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이 본사에서 직접 교육을 받았다고 한들, 나보다 닭을 더 잘 튀기겠는가.
“일로 와서 먹어봐.”
바스락!
“음?”
한입 더 베어 무는 그녀.
“어때? 왜 웃어?”
“닭의 살에서 촉촉한 수분이 느껴지는데, 잡내는 나지 않습니다. 튀김옷이 바삭한데 기름 냄새가 나지도
않고요. 속살은 감칠맛이…… 호불호가 전혀 없을 듯한…… 이 균형은…….”
“크흠! 마, 맛있습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앞세운 것이다. 또, 자신들이 나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하이든 왕세자의
눈밖에 날줄도 모르니까.
“내가 왜?”
“…….”
“80 억 값은 한 거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주기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물론, 돈으로 될 것이란 생각은
않지만…… 저도 그에 걸맞는 것들을 제공하면 되지 않을까요?”
“참내.”
“아, 아니면! 제가 이들의 월급을 지원할 테니,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들을 가르쳐 주시고 사용해
주세요!”
도대체 어떤 돈으로,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길래 미슐랭 스타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 왕세자에게 이토록 꽉
잡혀 있는 것일까.
“어이, 셰프님들, 당신들을 고용하신 고용주께서 ‘이런’ 생각을 가졌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 검정 스카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당신들이 함부로 무시할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증거, 는 아니고. 어쩌면 당신들보다 많은 미슐랭
스타를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 대, 단, 한, 셰프라는 뜻입니다.”
96 화. 가장 바쁜 시기 (1)
“세 달에 한 번.”
“어…….”
두 달에 한 번은 너무 많다.
-전 세계에 파견되어 있는, 최상급 재료를 선별 공급하는 딜러는 ‘반유현-브라운’에 최상의 재료를
공급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그랬다.
“예, 셰프님.”
“알겠습니다.”
“그게 싫은 분들은, 하이든 씨와의 계약을 파기하시죠. 하이든 씨, 이 셰프님들과의 계약 기간이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3 년입니다.”
셰프들은 나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지만, 계약금과 연봉을 지키려면 3 년의 기간을 채워야 했다.
***
“돈맛을 본 셰프들이라, 독하게 움직일 거야. 자신의 급을 낮추는 게 어렵거든. 그만한 돈을 맞춰줄
사람은 지구상에 기름 나는 나라의 왕자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자선 경매에 참여한 것 자체가 공격적 사업 성향의 나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레스토랑의 홍보를
위함이었는데, 이미지 개선은 물론, 레스토랑 홍보와 실질적인 것들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한국의 펌킨, 포시즌스의 레드, 블루, 옐로, 샹젤리제의 네이비, 반유현 골목의 화이트 1, 2,…, 5,
런던의 브라운.
‘그랬었지.’
***
“오셨습니까.”
“이태원으로 가자.”
“두바이에 있는 거 아니야?”
꺄아아아악!
오빠아아아!
뭐야? 반유현이야? 헐!
“어!”
“어어어!”
조리하는 모습,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미슐랭 7 스타 가타무라 마츠노와 견주어도 될 정도로 내공이
느껴진다. 얼마나 요리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고 주방에 계신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몸으로 환생하지 않으셨다면, 계속 분식집을 운영하셨겠지.
“유, 유현아!”
“예, 잘 지내셨어요?”
짝.짝.짝.짝.
“음…….”
너무 급전개를 했나.
“레스토랑 하나를 더 런칭할 겁니다. 메뉴도 다 구성되어 있는데…… 누가 총괄을 맡을지는 안 정해졌어요.
백원종 대표님이 보낸 셰프들이라면, 이 중에 그 셰프가 있다는 건데.”
97 화. 가장 바쁜 시기 (2)
백원종도 그를 돕고 싶었다.
“예……. 말만 전해주시죠.”
‘반유현팀’ 이라는 그의 의전과 스케줄을 관할하는 부서에 메일을 아무리 보내도 답장은커녕 읽었다는
표시도 없었다.
***
“저희 본사 내에 있는 조리실도 현재, 직원들이 레시피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음,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할 그곳도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어렵습니다.”
현재 그곳의 내부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그곳에서도 셰프들의 실력을 보고, 메뉴를 가르치며 런칭 이전에
해야 할 교육들을 할 장소가 마땅히 없었다.
어떤 주방을 가도, 나의 존재가 그 업소의 장사에 영향을 미치기란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문제였다.
“음. 골치 아프네.”
“예, 대표님.”
“어디요?”
***
“죄송하지만, 이제 나가주시죠.”
방송국 PD 와 작가들, 또는 연예인의 매니저들이 이 세트장 앞에 몰려있던 것.
“워이워이! 나가 주세요.”
그나마 통제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서로 웃고 떠들면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척하더니 다시 돌아온다.
“자자자! 나가 주세유.”
***
“저래도 되는 겁니까?”
방송국에 취직하고 배추와 닭고기를 나를 줄 알았을까. 아무튼, 저들의 마음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만두입니다.”
“네?”
“마, 만두라니?”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아르메니아의 힝깔리, 터키의 만티, 몽골의 보쯔…… 수많은 나라에 자신들의
문화를 곁들인 만두가 있듯이, 의도한 맛을 위한 변형에, 만두는 한계가 없었다.
어떤 만두는 지방이 풍부한 삼겹살을 만두소의 재료로 사용했고, 어떤 만두는 만두소에 두부를 넣고,
당면을 넣으며 또 어떤 만두는 그것들을 넣지 않는다.
“돼지 잡내를 잡는 것에 와인이나 맛술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유자청, 매실청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98 화. 가장 바쁜 시기 (3)
“기, 기계……?”
종류별로 만들어 놓은 만두소를 만두피에 담고 만두의 모양을 빚어내는 모습을 두 글자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기계. 아니면 공장. 나무 수저를 이용해 만두피에 만두소를 재빠르게 옮겨 담고, 손가락과 나무 수저가
서로 번갈아 가며 꾹꾹 만두피를 눌렀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말을 아꼈다.
돼지고기의 각 부위별로 소고기의 부위를 다르게 조합했고, 들어가는 채소들의 양도 각각 다르게 조합해
10 가지 만두를 만들었다.
“후후.”
“엥? 이건 뭐에유?”
잡내 없는 암퇘지 엉덩잇살의 비중이 높은 만두, 기름기 가득한 삼겹살을 많이 넣은 만두, 야채의 풍미를
한껏 살리기 위해 부추를 많이 넣은 만두…….
생김새는 같지만 다채로운 맛들이 백원종을 사로잡았고, 각각의 만두를 먹을 때마다 기대감이 차오른다.
“이 만두는 무슨 맛일까.”
“주된 요리를 만두로 가고, 각각 다른 재료를 가미하기도 하는데 코스는 이런 식으로 구성될 겁니다.
다채로운 맛의 만두. 다른 셰프들도 와서 먹어보세요.”
“제가 보여드린 맛 말고도, 여기 있는 재료를 이용해 자신만의, 강력한 만두를 만들어 보세요. 제한 시간
세 시간.”
***
이제는, ‘반유현’이라는 그 이름이 거리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되기에, 내가 그 현장에
직접 나타나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끄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쪼개는 기술이 참…… 나이에 어울리지가 않아. 우리 아들이 보는 만화가 있던데, 혹시 반
셰프도 인생 2 회 차 아니야?”
“예?”
“하하하하! 하하! 아니, 대단한 사람들을 다들 그렇게 말하더만. 인생 몇 회차냐고.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다 왔네. 내리자고.”
강남역 높은 회사 건물들이 세워진 그 뒷골목 사거리, 영화관, 노래방, 술집 수많은 업소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었다.
“에? 반유현?”
“헐! 야! 반유현이다!”
“반유현이랑 백원종이야!!”
[ 반유현 - 그린 ]
우와아아아아!
“뭐 팝니까!”
“언제 오픈해요?”
“오픈이 언제예요!”
“2 주 뒤 오픈 예정입니다.”
“잉?”
“반유현 셰프님!!”
최경복이었다.
“아이고! 허허허허!”
[ 화란 ]
“하필…… 셰프님께서 만두를 하신다니…… 저희 식당의 요리를 바꿔야 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
어쩌죠?”
“각각의 다른 맛이 있는 것이니까요.”
우와아아!
최경복도 사람들에게 꽤나 인지도가 있다는 얘기였는데, ACK 출연 이후, 장사가 잘되는 식당의 사장
정도의 반응은 아닌 것 같았다.
“인기가 꽤나 많아지셨네요?”
***
“응?”
그리고 그 폭발력은 대중매체와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해 선정되는 미슐랭 평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된다.
99 화. 가장 바쁜 시기 (4)
비상상황이 벌어졌다.
“하, 어떻게 해야 되나…… 반유현 셰프는 반드시 잡아야 되고, 그렇다고 아무나 섭외하면 반유현 셰프를
섭외한 게 빛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래?”
“좋았어!”
***
“하하하하.”
“그럴 수밖에.”
“어떤 연예인이 나와도 셰프님의 들러리로 작용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출연의사를 밝힌
연예인들은 셰프님의 팬이거나 셰프님의 요리를 엄청 먹고 싶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셰프님의
요리를 먹으려면 최소 3 개월을 기다리거나 대기줄에 6 시간 이상을 서 있어야 되고 얼마 전 셰프님의
몸값은…….”
-Z 드래곤
-채성아
-한윤정
-김래연
어떤 사람들이 내가 선보인 요리에 강력한 리액션을 할 것이며, 그 리액션으로 대단한 파급력을 불러올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래.”
“예?”
***
촬영 당일.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예?”
“준비를…….”
방송에 연출되는 것은 셰프들이 즉석에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요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론,
그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셰프들에게 미리 알려주어, 녹화 전에 어떤 요리를 할지 준비를 해오는
것이라고 한다.
“예? 진짜로요?”
내가 한국에 도착한 이후로 줄고 나를 보좌하던 반유현팀의 직원을 바라보자,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진짜 준비를 하지 않았나?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실제로 즉석에서 한다는 건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듯한 눈빛들.
“지,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안녕하십니까.”
악역 전문 배우 이만식.
그가 맡은 캐릭터들이 대부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들이었는데, 실제로도 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와……. 안녕하세요.”
“자자, 다들 준비하시죠!”
***
“자! 오늘의 특별 게스트를 모시겠습니다! 이거 이거 역대급 게스트입니다. 예능 최초 출연을 하신
배우님이 계시구요! 다른 한 분은 요리업계에서 워낙 존경받는 분이라, 냉장고 안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힘들지 않았다.
대부분 배우나 가수들은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거나, 신곡을 홍보하곤 하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다.
“예 그렇습니다.”
“빨리 보고싶네요.”
대게 인지도가 높아, 내가 참여한 서울시 요리대회나, ACK 의 심사위원 또는 진행위원으로 봤었을 것이나,
내가 수도 없이 실렸던 잡지나 언론에서 봤던 얼굴들일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100 화. 최고 속도 (1)
“아아! 셰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려 있네요! 하하하! 김홍 셰프님! 아까 하셨던 말씀은 그대로세요?”
“와아아! 역대급 냉장고네요. 역시, 백원종 대표님! 기대한 것만큼의 많은 재료들이 들어있습니다.”
***
탁! 탁! 탁! 탁!
“뭔가요?”
“백원종 대표님, 아까 냉장고를 보니까 밀가루 음식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파스타 면, 스파게티 면,
라비올리, 꽃방, 만두피…… 밀가루를 너무 좋아하시는 것 아닙니까?”
띵!
그리고 최경복은 접시에 꽃빵과 돼지와 야채를 먹음직스럽게 볶아낸 고추 잡채를 올렸다.
“허허허. 감사합니다.”
“와우!”
특히나, 매사에 날카롭고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는 이만식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압권이었다.
“하하하하! 정말요! 화면에서도 음흉하고 살벌한 미소밖에 못 봤었는데, 맛이 어떤가요 이만식 씨?”
“정말 최곱니다. 와……. 이런 고추 잡채와 꽃빵은 처음 먹어 보네요. 버터의 풍미가 야채들의 풍미를
이렇게 극대화시켜줄 줄은…….”
“그만들 하시죠. 하하하. 아무리 반유현 셰프라지만 이 정도의 강력한 요리 앞에서는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음…….”
“맛있습니다.”
“와우!”
***
냉장고를 열어라의 이원성 PD 의 눈에는 지금 녹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놓치기 싫을 정도로
재밌는 광경들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그동안 대중들에게 보여준 적 없었던 이만식의 행복한 표정, 백원종이 입이 닳도록 최경복의 요리를
칭찬한 것, 그리고 반유현의 도발적인 멘트까지.
“만두요?”
“네, 제한된 시간이 있으니 삶거나 찌지는 못하겠고. 군만두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지금 뭐 하시는…….”
“네?”
실제로, 셰프들이 실시간으로 즉석에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라면 냉장고 안의 재료가 무엇인지 찾고,
어떤 요리를 할지 생각하는 것들이 방송에 나왔어야 했는데, 여태까지 그런 모습을 화면에 한 번도 비추지
않았었다.
고기와 야채를 버무리고, 조미료를 첨가해 만두소를 만든 반유현은 냉장고에서 만두피를 꺼냈다.
“만두피! 만두피는 이미 있는 것을 사용하는 반유현 셰프입니다.”
백원종의 흐뭇한 웃음과 이만식의 호기심 넘치는 표정 또한 화면의 구성을 풍성하게 해 줄 요소였다.
치이이이익!
“그 아랫간에 있어요.”
101 화. 최고 속도 (2)
“그렇습니다.”
반면에 어떤 셰프는 나의 과도한 자신감에 의문이 들었는지,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하며 그 의문을
표현했다.
간장, 마늘, 고춧가루, 식초, 파프리카 가루 등 조미료를 첨가한 소스를 만들었고, 팬에 올린 만두를
접시에 담았다.
호기심이란 요리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기대감으로도 통용되어 사용되곤 하는데, 나에겐 매번 그런 핸디캡
같은 것이 있다.
“컥.”
“허.”
“돼기고기를 사용할 때, 돼지고기의 지방만을 담았습니다. 단백질의 풍미는 두부를 넣었고요. 두부는
만두가 익을 때, 그 속에 수분공급원으로 작용하기도 하죠. 그리고 돼지 지방의 과한 풍미를 중화시키기
위해 부추를 넣었습니다.”
“흠.”
“이게……!”
“하하하하하! 와우!”
“씹었을 때 나오는 기름진 맛이…… 그리고 깔끔하게 어우러지는 야채들의 맛이……. 와!”
“아아, 죄송합니다.”
***
-반유현
-반유현 만두
-만두레스토랑
[ 반유현 한국 다시 상륙! ]
공사는 다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간판을 세워두고 방송에 출연했던 터라 오픈 전부터 대중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고생했다.”
“수분을 조금만 더 빼야 될 것 같아. 고기는 항상 그날에 다지고, 볶아. 미리 준비해둔 고기는 없는 거야.
예약제니까, 얼마의 손님이 올지 예상이 가능하니까 나태해질 수도 있어. 그때그때, 고기를 사용하는
것이. 그래서 재료들을 미리 손질해 놨다간 다 끝장나는 거야.”
지금 당장은 100 퍼센트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들의 실력이 빠르게 올라온 것 자체에 큰 만족감이
있었다.
“권화윤.”
“예! 셰프!”
꺄아아아악!
우와아아아!
***
“맛만 보고도 기름이 바뀐 것을 아니? 엄마가, 연구를 좀 했어……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니? 백
대표님도 오셔서 맛을 보고 괜찮다고 해서 바꿔봤는데.”
“이번에 전 세계에 최고급 식재료들만 취급하는 딜러들이 생겼는데, 이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그쪽에서 공수해서 공급해야겠습니다. 채널을 확보할 때까지는 지금처럼만 유지해주시고요.”
“뭔데요?”
냉장고를 열어라의 출연으로 내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탓에 나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이득을
쟁취하려는 자들이 움직인 것이다.
102 화. 최고 속도 (3)
속도를 높이는 일의 일환으로 하루빨리 ‘반유현 팩토리’의 거대한 체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 를 개설하시게요?”
그리고, 대중들의 수많은 관심을 직접적으로 이용하고 싶다는 마음에 SNS 계정을 만들었다.
조금 표현이 과격했나.
-ㅋㅋㅋ상인회? 뭐 하는 놈들임?
“어떻게?”
‘멍청한 놈.’
그런데, 레스토랑 ‘반유현’의 존재가 이 상권을 살리는데 확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상인회장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보다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 했던 것이다.
“어떡할까요?”
“일단 불러봐.”
“죄송합……니다.”
“뭐가요?”
“지랄.”
며칠간 구청과 세무서의 수많은 조사를 받았던 모양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상인회의 예산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증거들도 많았고, 사소한 욕심 때문에 인생을 완전히
던져 버린 1 인의 역사에 남게 되어버렸으니까.
“지금은 그 순수한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상인회에 가입하지 않은 가게들 삥이나 뜯으려고 하고,
조금만 장사 잘되는 가게가 있으면…… 후.”
***
“강남이 제일 텃세가 심한 동네에유. 특히나 이 골목은 오래된 식당들이 많아서. 최경복 셰프도 자리
잡기 처음에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내 브랜드가치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들이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레스토랑 ‘반유현’이 어떤 문제에 휘말려 장소를 옮길까 줄에 있는 시간 동안은 최대한 조용히, 질서를
지키며 서 있었다.
“와…… 드디어!”
“네, 안녕하십니까.”
흔쾌히 그들의 부탁에 사진을 찍어줬고, 내가 직접 서빙을 도와주며 요리에 대한 설명을 했다.
“전채 요리로 떡갈비를 절인 배추에 감쌌습니다. 만두의 형상이죠. 새콤하게 식욕을 돋우는데 좋은
음식이 될 겁니다.”
“와……!”
“영업비밀이라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빠르고 강력하게 세웠던 레스토랑들이 미슐랭 스타까지 챙기게 된다면 각종 책에 나올 사례가
될 뿐만 아니라, 신화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조금 쉬시지…….”
“바쁘다.”
103 화. 최고 속도 (4)
처음 미슐랭 스타를 얻었을 때처럼, 미슐랭 평가 리스트가 이미 작성되었을 시점에서, 현지의 맛집으로
만들어 리스트에 끼워 넣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전략은 아니었다.
시간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내가 나아가는 속도보다 반유현 팩토리가 성장하는 속도가 월등히 빨라 그 인력수급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무튼 실력이 있으며, 그 레스토랑의 색깔과 맞는 셰프를 배치하려면 더 많은 인력풀이 필요해진 상황.
“잘들 하고 있나 보네.”
“셰프들 더 뽑아야겠어.”
“예?”
***
분위기가 순간 어수선해졌다.
이미 반유현의 최측근 셰프로 유명한 그녀의 말이 회의실 내 교수들의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혁신……. 불가능을 불가능이라 생각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반유현 셰프님이 왜 그런 안건을
내렸는지.”
가타무라 마츠로, 미슐랭 7 스타의 입지가 있는 인물이라,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교수진들도 그녀를 알고
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유일하게 검정 스카프를 매고 있는 메이의 말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그랬다.
“어……. 그…….”
신입, 또는 인턴 셰프도 아닌, 연륜이 있고, 더 나아가 미슐랭 스타까지 있는 셰프들이 반유현의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베테랑 셰프들이 중얼거리거나, 눈동자를 굴리고,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은 회의의 사회자인 오스틴이
보기에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
“축제를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축제라는 게 즐기는 문화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에는 제격인데, 왜 그것을
어떤 대단하고 혁신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냐는 반응도 있었다.
“왜?”
“이곳에 지원한 셰프들, 그리고 교수진들은 즐기러 온 것이 아닙니다. 브랜드 ‘반유현’의 이름을 얻어
레스토랑을 런칭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 셰프들이지요. 그래서, 이 무한경쟁을 이겨내는 것이고요…….
그런 면에서 축제는 강제성을 띤, 억지의 장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즐기는 척하면서 모두가
경쟁을 하고 있겠죠.”
“세계 최대의 미식, 요리 축제를 꾸려나가는 셰프이자 주인공이 된다고 해도, 강제성을 띤 억지의 장이
될까?”
내년이 되기 전, 이미 ‘반유현-팩토리’ 자체를 완성시켜 놓을 첫 번째 계획이었다.
104 화. 최고 속도 (5)
처음엔 혼잡해질 수도 있겠지만,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주차장의 공간에 마련된
부스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끔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들은 이 자유 시장에서 괜찮은 요리를 선보인 사람들을 뽑아.”
메이, 또는 A 반을 맡았던 교수들이 레스토랑 ‘반유현’을 운영하듯이 이들의 목표도 레스토랑 ‘반유
현’을 운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단순하게도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를 계속해서 무한정으로 뽑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새롭게 유입되는 셰프들에 의해 ‘반유현 팩토리’의 활기가 넘쳐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실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셰프들은 도태되고 잘하는 셰프들은 성장하는 구조가 빠르고
효과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매일 자유시장에 부스를 차리고자, 셰프들이 신청하는 것처럼 교수의 권한을 가지고 싶은 셰프들도
신청을 한다.
“대단…….”
“일단 이렇게 해서, 당장 내일부터 진행해. 상시적으로 셰프를 뽑는 시스템은 구축한 거야. 알겠나?”
***
[ 반유현 팩토리! 신입생 상시 모집! 자유시장에 부스를 차려서, 기존의 교수진에게 선택받거나, 새로운
교수진의 팀에 합류하세요! ]
-자유부스?
-뭐야 이제 상시 모집이야?
-헐…….
“김훈?”
ACK 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자 미슐랭 스타를 소지한 사람으로 대한민국의 젊은 셰프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는 셰프였다.
프랑스에서 한식으로 미슐랭 스타를 받았으니, 그럴 만도. 그런 그가 ‘반유현 팩토리’의 신입 교수로
지원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도 한국인이었다.
“윤종혁?”
-ACK 준우승.
***
검정 포인트가 들어간 조리복을 보며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 셰프들, 언젠가 자신들도 저 조리복을
입겠다는 각오로 자신들이 가져온 재료를 이용해 각 부스에 자리 잡고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교수뿐만 아니라, 이미 반유현 팩토리에 다니고 있는 셰프들도 이들의 요리를 유심히 지켜본다.
“선배님! 요리 좀 한번 드셔 보세요!”
그리고 자신들에게 선배님, 선배님 하며 급 높은 대우를 해주는 셰프들에게 나지막이 정보도 흘려준다.
“음?”
“하하…….”
“맛있네.”
“감사합니다!”
“어디서 왔어요?”
“프랑스에서 계속 살아왔습니다!”
“요리 경력은?”
“1 년 조금 넘었습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강요한 적 없지만 스스로 엄청난 활기를 띠고, 실력에 의해 선택받고 도태되는
곳.
“이게 진짜 말이……되나.”
저들끼리 ‘반유현’이라는 브랜드 안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과 경쟁은 온전히 브랜드 ‘
반유현’이 성장하는 것에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
20 대 중반의 나이인 반유현은 대체 어떤 생각까지 하고 있는지 사실주의적 성향이 강한 기자들 또한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셰프는 ‘반유현 팩토리’의 신입 교수로 채용된 듯 부스를 빠르게 돌아다니며 셰프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
꺄아아아악!
밖에서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데 창문을 내려다보니, 메이를 비롯한 로또 육인방이 주차장에 펼쳐진
‘자유시장’을 지나 건물 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곳의 교수진들에게도 없는 검정 스카프를 맨 그들은 브랜드 ‘반유현’ 아래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셰프님.”
“어. 한창 바쁜데. 이래라저래라해서 미안하다.”
미슐랭 평가 기간이기에 맛의 수준을 계속해서 높이는 작업을 했는데, 그토록 피곤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군말 없이 나의 명령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예?”
“예?”
“네?”
물론, 규모는 계속해서 늘리되, 그 수준 자체는 낮아지지 않는 방향을 원했기에 테스트 빈도를 늘렸다.
때문에 셰프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지만 그만큼 제명을 당하는 셰프와 교수들도 많았다.
“즐거운 분위기 조성과, 셰프들의 교류 활동을 늘리는 것에 너희가 앞장서 달라는 말이지.”
나만큼은 아니지만, 브랜드 ‘반유현’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세프들의 런치, 또는 디너쇼를 이용해
일단 많은 사람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정확히 삼 주 뒤야.”
“예?”
***
또, SNS 를 이용했다.
“교수님 이게 뭐예요?”
“뭐가?”
“응?”
술을 판매해도 되고, 요리를 판매해도 되고, 게임장을 만들어도 되고, 공연장을 만들어도 되고, ‘반유현
올 데이’라는 축제에 가상의 화폐가 만들어질 것인데, 그 화폐를 가장 많이 얻는 팀에게 성적에 있어
가산점이 부여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럼……?”
***
셰프들과 교수들 총원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하자, 유럽 내 주요 국가들의 관광청도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프랑스 관광청은 ‘반유현 골목’을 조성할 때에 그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의 이름을 ‘반유현 골목’
이라고도 바꿔줬고, 반유현 골목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를 해주어 나와 커넥션이 있었다.
푸와 뒤 트론(Foire du Trone).
이동 유원지라고도 불리는 이 행사는, 프랑스 관광청에서 장소를 선정해, 다양한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테마의 카니발과 불꽃놀이 등 볼거리를 제공하며 수많은 먹거리들이 있는 축제였다.
그다음은 영국 관광청이었다.
템즈 강 페스티벌(Thames Festival).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얘네는 맥을 못 짚네.”
“그, 그렇습니다.”
또, 스페인 관광청에서도 연락이 왔었는데, 이곳은 유일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이들이 제안한 것은 라스 파야스(Las Fallas)라는 행사였다.
“그렇습니다.”
이 축제를 요약하자면, 임시로 놀이공원을 조성하는 것인데, 그곳의 모든 먹거리를 브랜드 반유현이
맡아달라고 제안을 한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진행해.”
***
오늘은 그 첫 번째 날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에서 교육받은 셰프들이 얼마나 재밌게 놀고 있나 봐야지. 너희도 준비한 런치쇼 잘하고.
나도 행사 기간 내에 이곳에 있을 테니까,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퍼레이드.
-물총축제
오늘 점심부터 앞으로 약 3 일간, 이곳에 차려진 대부분의, 먹거리와 간식들이 브랜드 ‘반유현’으로부터
공급될 예정이었다.
그 일례로, ‘검정 스카프 셰프들의 런치쇼’의 첫 주자인 메이의 런치쇼 현장에 나와 있었다.
“‘쇼’라는 게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눈에 보이는 것이 사람들의 자극에
중요하게 미치니까. 그런데 우리 같은 셰프들의 쇼는, 요리를 하는 모습 말고도 그 요리의 맛으로 자극을
줄 수 있잖아. 사람들이 네가 요리하는 모습에 깊은 관심이 있더라도 신경쓰지 마. 넌 주방에서 일하는
것처럼 요리하면 돼.”
이전에 SNS 에서 ‘반유현 챌린지’를 만들어 포시즌스의 그랜드 오프닝을 성공적으로 열었던, 그때의
기억을 응용하는 것만 같았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소녀를 그랜드 오프닝에 초대해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만들었었는데, 메이는 그 당시, 요리를 먹기 전의 감정 상태가 요리에도 투영된다는 것을 느꼈고 본인이
나에게 느낀 애틋한 감사의 마음이 사람들에게도 애틋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미슐랭 평가기간인 만큼, 최민성과 포시즌스의 셰프들은 자신의 레스토랑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자신들이 레스토랑에서 하고 있는 요리들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정도로 선보이라고 지시를 해놨던 터라,
이들에게도 큰 부담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메이의 요리가 완성되었고, 배치되어있던 직원들이 메이의 초밥을 나르기 시작했다.
“커억!”
“와…….”
그런데 그때,
“메이!” “메이!”
“반유현!” “반유현!”
“메유현!” “메유현!”
“한 점만 주시면 안 돼요?”
런치쇼에 참석해 메이의 초밥을 먹던 사람들은 마치 우월감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더욱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밖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우우우우!”
우와아아아아!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나와 메이를 둘러쌌고, 흥분한 사람들은 현장을 뛰어다니며 테이블 위에 올려진
초밥들을 집어 먹는다.
‘이건 뭐…….’
“무대 위로 올라가자.”
“다 앉으세요.”
***
“감사합니다! 와우!”
“와……! 대박!”
성격 같아선 난동을 부린 이들을 다 잡아다 족치고 싶지만, 전체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몸과 마음이 조금은 고되지만, 이 위기를 ‘반유현’이 돋보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일일이 초밥을 만들어 준다는 말에, 락스타 마혼의 공연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쪽으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와아…… 이게 반유현의……!”
“네, 감사합니다.”
우와아아아!
“셰프님께서 직접 불을 붙이시게요?”
***
그런데, 그 부스에 들러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요리와 컨텐츠를 즐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많은 것 아니냐?”
“그, 그런가?”
“야! 저쪽에서 반유현 셰프님이 요리를 했대!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거기로 몰린 거래!”
“응?”
그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인 인파의 열기와 분위기는 셰프들에게 이곳이 축제의 현장임을 실감하게 해줬다.
“제대로 놀아보자!”
반유현이 만들어 낸 열기를 ‘팩토리 올 데이’를 한창 준비한 셰프들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반유현…….’
어떻게 보면 반유현을 따르는 모든 셰프들 중에서, 자신이 반유현의 팀원으로 가장 먼저 커넥션을 맺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자부심이 저도 모르게 피어났었다.
인사라도 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새롭게 합류한 교수진과 다르게 반유현과 접점이 있다는 것을
무기로 셰프들을 조금 섭외해 보려 했지만, 반유현의 얼굴은커녕 그의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다.
자신의 실력이 나이에 비하면 절대로 다른 교수진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였고, 워낙에 자존심이
센 인물이었지만.
셰프로서 가장 빠른 출세의 길이 반유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기회야.”
‘일정에 없는 건데.’
반유현이 실제로 요리를 한다는 일정은 없었기에 윤종혁은 호기심을 품고 사람들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안에서 반유현에게 초밥을 건네받아 먹은 사람들은 그대로 반유현을 바라보며 펜스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반유현은 이 일정이 끝나고 어디로 갈 것이며, 이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
반유현의 성격과 전략상 반유현은 ‘팩토리 올 데이’ 행사가 시작된 그 장소로 이 수많은 사람들을 끌고
갈 것이 예상되었다.
***
어느 곳에서도 정체하지 않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니 나를 따라오던 수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이
관심이 있는 곳으로 흩어졌다.
“예?”
‘윤종혁.’
자신의 요리에 고고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던 그였는데, 이제는 나의 조직으로 들어와 이런 부스를 차리고
아주 아득바득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 그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팀장님? 오랜만이네요.”
우와아아아아!
우와아아!
“이게 대단한 아이디어고, 반유현 화폐도 많이 벌어들일 만한데, 다른 부스에 피해를 입힐 수 있어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지만, 많은 사람이 보고 있고, 자신을 따르는 셰프들의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미묘한 표정.
“애초에 자유 기획이었으니까요.”
“음, 네. 자유 기획은 맞는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요. 여기서 내기하다가 반유현 화폐를
모두 잃은 사람들도 생각해야겠네요. 맛 또는 컨셉으로 화폐를 번 게 아니라 사행성 게임을 만들었다는 게
…….”
“그럼 다 돌려드릴까요?”
우와아아아아!
그만큼 많은 화폐였다.
“이 두 분 중 어떤 분에게 돈을 더 많이 걸었나요?”
우와아아아아!
나와의 대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만에 하나 이기게 된다면 가산점을 얻을
것이고 자신을 따르는 셰프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었으니까.
잃을 게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
“와…… 무슨 횡재야!”
윤종혁의 핫도그를 먹으며 푸드 파이트 할 사내가 싸울 의지를 잃을 것 같기도 해서, 당신이 이기면
레스토랑 ‘반유현’의 프리패스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오우 맛있네요!”
사내는 내가 만든 핫도그를 먹는 줄 알고 꽤나 맛있게 푸드 파이팅을 시작했다.
“너무 맛있는데요?”
“조금만 힘 좀 내주세요.”
두 사내 모두 손에 들고 있는 핫도그를 겨우 입에 넣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드셔보세요. 다른 핫도그입니다.”
“예?”
“그만 드시죠.”
결과적으로 윤종혁은 사행성 게임으로 벌어들인 ‘반유현 화폐’를 모두 나에게 돌려줘야 했다.
“예! 셰프!”
“이야 대박이다!”
여러 부스들을 지나치니, 다양한 음식들이 많았고 그것들을 만든 셰프들이 나에게 맛을 봐달라고 애원했다.
“세 개 넣었잖아요.”
“…….”
***
그런데, 브랜드 ‘반유현’이 합류하고 그 그래프는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보였다고 한다.
대중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반유현 팩토리 내의 셰프들도 자신들이 브랜드 ‘반유현’의 일원으로서 임무를 완수해냈다는 것에 심취해
있었으며, 축제 기간 내내 서로 소통하며 즐기고 가까워졌다고 한다.
덕분에 셰프들의 소속감이 높아졌고, 그것들은 결국 ‘반유현 팩토리’ 내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
평가 단원들이 하는 행동들과 그들이 메뉴를 주문하는 방식은 대부분 널리 알려져 있어 그들을 어렵지
않게 특정할 수 있었다.
“반유현 네이비.”
그래도 미슐랭 스타를 노리기 위해, 세트 메뉴라고 해서 전채요리와 디저트까지 구성한 버거를 팔곤
했는데, 서비스와 분위기 때문에 많이 받아도 원스타를 받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올해 챙길 수 있는 미슐랭 스타를 계산하고 있었는데, 오스틴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셰프님…….”
“왜, 또 무슨 재수 없는 소리 하려고?”
[ 아티예프 소신 밝혀! ]
“흠.”
“뭐냐.”
-지랄하네.
가뜩이나 미슐랭 평가 기간인 만큼, 셰프들이 모두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기라 아티예프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아티예프! 사라져라.
“얘네는 뭐.”
“대응하지 말까요?”
“추, 출처요?”
“쉬긴 뭘 쉬어.”
***
새롭게 레스토랑을 런칭하지 않고, 조미료·식자재 매장을 차리는 사업도 잠시 중단했으며,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으며 레스토랑들의 맛을 끌어 올리는 것에만 집중한 지 수개월이 흘렀다.
“서울에서도 별이 몇 개 나올 것 같은데.”
서울과 파리는 그 시상식 날이 겹쳐, 나는 일단 파리에 있었다.
“1 년 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한 명씩, 이름과 레스토랑의 상호가 호명되면 무대 위로 올라가 미슐랭 스타의 징표인 트로피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짝짝짝짝.
***
“후.”
심호흡을 가쁘게 하는, 로또 육인방.
우와아아아!
“레드 테이블 더 파스타는 신화를 만들고 있는 반유현 셰프가 파리에 처음 요리를 시작한 레스토랑으로 2
년 만에 미슐랭 쓰리스타를 거머쥐었습니다. 파스타를 주로 한 메뉴로…….”
“진짜…….”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아!
역대급 함성이었다.
“셰프님……!”
그리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와아아아아!
내가 아니라고 하면 죄가 될 만큼.
우와아아아아!
[ 현재 보유 미슐랭 스타 : 16 개 ]
‘이번 생은 됐다.’
나도 모르게 확신해버렸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거만한 건가.’
이내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그 나이에…… 전설이.”
“후우……. 후우…….
***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미슐랭 스타를 만들고, 평가하고 수상한 미슐랭 가이드의 반응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 미슐랭 가이드, 인터네셔널 디렉터. 마이클 엘라인. “불공정은 미슐랭 역사에 있을 수 없다. ]
[ 미슐랭 가이드, 총괄 책임. “평가 방법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다섯 가지 항목이며, 그 세부적인 것들은
비밀유지를 위해 밝힐 수 없다. ]
“방법이 정말 없습니까?”
로만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던지고 고개를 숙였을 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반유현이 등장했다.
짝짝짝짝.
“혹시, 저 몰래, 미슐랭에게 돈을 주려고 했다거나, 대가를 바라고 그들에게 접근했던 사장님이
계십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야.”
“예, 셰프님.”
“아,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 난 항상 공정했어.”
“알고 있습니다.”
“신경 끄시죠.”
“그러게요. 10 개 미만까지는 이해가 될 텐데, 어쩐지 너무 하셨습니다. 요리할 시간도 없으셨을 텐데,
돈도 밝히고 명예도 밝히니까 그렇게 가시는 겁니다.”
저들끼리 대화를 하는데, 내가 오늘도 미슐랭 스타를 수여하게 된다면, 여태까지 자신들이 받은 미슐랭
스타를 반납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그 공정성 논란에 대해 말을 더했다.
“씨발놈들이.”
“사람 때리시게?”
“가서 죽일까요?”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마이클 엘라인이 수상을 맡았는데, 요 며칠간 있었던 미슐랭 공정성 논란 때문에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공정성 논란에 대해 이해는 되지만, 막상 나와 함께 노력하고 고생한 최민성이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다.
“예……! 예! 셰프!”
“아아. 반유현입니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툭.
[ 현재 보유 미슐랭 스타 : 23 개 ]
참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기야, 다섯 번째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으니 뇌가 제대로 굴러가질 않았었다.
[ 제한 된 모든 시간이 소모되었습니다. ]
[ 미슐랭 스타 : 21 개 ]
그래서, 그게 문제였다.
“그, 그렇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는데…… 저희가 촬영허가를 하지 않은 곳들도 몰려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엉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예, 셰프.”
***
프랑스 정부가 운영하는 공영방송사 텔레비지옹, 프랑스 최대 민영 방송사이자 프랑스 내에서 가장 오래된
TF1 를 주축으로 세계 각국의 방송사들 KBM , BBS, YTM 등이 모여 있었다.
미슐랭 가이드 100 년의 역사상 전례 없는 탑 셰프의 탄생을 취재하기 위함이었고, 그에 관련된 기사를
어떻게든 얻어 보려는 방송사들이었다.
“와! PD 님 오늘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꺼지라고!”
“그건 아닌데…….”
“이 새끼들이!”
우와아아아아!
“뭐야?”
“왜 저래? 무슨 일 있나 봐?”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미슐랭 스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나 봐 유명 셰프들이.”
두두두두두두!
“문 열린다!”
“반유현 셰프다!”
우와아아…….
***
“예?”
덕분에 셰프들은 손님들의 프리패스권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몇 달간 휴일이 없겠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 이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레스토랑 ‘반유현’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킬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신청서는 마감하겠습니다.”
“예? 그곳에 있던 셰프들이, 셰프님을 비웃었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꼭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게 해서…
…!”
반유현 올 데이.
“열두 시간 뒤, 최종 점검하겠습니다.”
“다, 시작해.”
“예! 셰프!”
나의 최측근인 로또 육인방, 포시즌스의 셰프들, 그리고 한국에서 ‘반유현-펌킨’을 운영하는
어머니까지, 오늘만큼은 웃음기가 없었다.
야심한 밤.
“예! 셰프.”
호박이 주된 테마로 이루어진 ‘반유현 펌킨’의 디저트 호박 라떼에 들어간 생크림의 맛을 지적했다.
“시정하겠습니다.”
“예, 셰프.”
쨍그랑!
“권화윤.”
“예! 셰프!”
“예! 셰프!”
최소 미슐랭 원 스타, 많게는 미슐랭 쓰리 스타를 보유한 셰프들이, 찬물을 끼얹어 맞은 것처럼 눈동자가
커졌다.
“예! 셰프!”
***
신청서를 넣은 셰프들 중에서, ‘반유현 올 데이’의 행사의 초대권이 주어질 셰프들의 명단이 정리되었고,
그 초대권에는 그들이 며칠, 몇 시에 어떤 레스토랑에 방문하는지까지 모두 적혀 있었다.
나에게 초대권을 받은 셰프들은 사진의 주제나 분류를 정하는 ‘#’ 해시태그에, ‘반정셰’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네 그렇습니다.”
셰프들은 이 신조어와 초대권이 찍힌 사진을 함께 올리며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반응들을 이끌어 냈다.
-축하드립니다! 반정셰!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삶의 터전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생각만 해봐도 그들이 입는 피해를
무시 할 수 없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방송사 애들이나 기자들한테 돈을 받고 촬영할 권리를 팔아 그러면, 중계권을 소유하게 된 애들이 알아서,
중계권이 없는 놈들을 배척할 테고, 중계권이 있는 방송사들끼리 협력해서 질서를 만들 테고…….”
“와…….”
“주변 질서를 위해, 중계권 판매가 불가피하니, 어쩔 수 없다고 연락 돌려. 방송 출연을 원치 않으면
초대권을 줄 수 없다고.”
***
“세계 최초, 최연소라는 단어를 끌고 다니는 반유현 셰프와, 그 요리의 맛을 평가하는 세계 최고의
셰프를 동시에 담으려면 이 정도 중계료는 어쩌면 남는 장사일지도 몰라.”
더군다나 마침, 안토니 베르만이 ‘반유현 올 데이’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최다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만큼, 그것의 공정성이 안토니 베르만에게도 중요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대중들과 수많은 방송사와 언론이 이 행사에 가지는 관심에 비례해, 베르만이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 어떤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당연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반유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세계 최다 미슐랭 스타 보유자인 안토니 베르만은 그렇게, 여유로운 미소를 짓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저쪽에 앉아 계십쇼. 그쪽의 레스토랑과 같은 메뉴가 있다니 요리를 맛보고 입을 놀리시든가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이 행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셰프들은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 ‘반유현’에게 선발되어 초대권을 받았는데,
올해 런던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들 모두에게는 반유현이 직접 신청서를 받지 않고 초대권을 돌렸던
것이었다.
“예?”
전복내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를 이용해 해산물의 풍미를 살리는 경우가 많은데, 반유현은 전복 내장의
효과를 해초로 대신해 극대화시켰다.
“하.”
와……!
코스의 끝으로 디저트가 나오고, 반유현이 다시 홀로 등장했을 때는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 박수를 치는 대부분의 인원들이 미슐랭 스타인 것을 생각하면, 미슐랭 가이드의 공정성 논란은 거품
터지듯 사라질 것이었다.
***
“한국은.”
-일본 미슐랭 원 스타, ‘겐지 스시’ 총주방장 켄지 오토코 셰프 : 반유현 셰프님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요리들이었습니다. 미슐랭 23 스타를 보유할 만합니다. 그는 최고의 셰프입니다.
-프랑스 미슐랭 쓰리 스타, ‘메르 뷔 옹’ 루카스 셰프 : 프랑스의 요리문화를 이끄는 셰프임을 증명해
보인 코스였습니다. 누군가 그의 요리 실력에 의문을 품었다면 이 요리를 먹어보지 못한 셰프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실제로 내 요리가 미슐랭 스타를 동시에 19 개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는 성공.
“그러니까 이 셰프가……. 모든 셰프들이 인정하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에 반기를 들었다는 거죠?
저희가 담은 장면들과 이 글귀가 합쳐지면…… 흠. 벌써부터 너무 재밌는데요.”
방송에 내보내어 엄청난 화제를 일으킬만한 사건이기에, ‘반유현 올 데이’라는 행사 자체를 집중 조명해
분량을 늘리자는 의견이었다.
어쩌면 요리의 신, 아니, 역사상 없던 셰프의 탄생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마음에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런던 소재의 셰프 중 한 명이었다.
“제 생각은…….”
“다 괜찮네요.”
“아…….”
***
“축하드립니다.”
“그만해. 나도 알아.”
“넵!”
-아! 여기는 레스토랑 ‘반유현-그린’ 입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일본, 중국에 위치한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는데요! 인터뷰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나요?
리포터가 영어로 유창하게 인터뷰를 시작하는 장면들, 그곳에선 셰프들이 나와 이 행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가 셰프가 된 이후, 아니! 요리라는 문화가 생긴 이후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든 레지,
안토니 베르만, 노부 마츠로 등 그 유명한 스타 셰프님들도 이런 행사를 열지 못했는데…… 반유현
셰프님은 혁신의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오늘 요리 너무 기대되네요!
“큭.”
“하하하하!”
-와……!
-이야! 이게 만두야?
-왜 반유현인지 알겠네.
-장난 아닌…….
-와…….
그래서, 각 레스토랑마다 방명록을 배치해뒀고, 요리를 먹은 셰프들은 자필로 직접적인 평가를 내렸었다.
셰프들이 요리를 먹는 모습들과, 그 음식을 먹은 셰프가 적은 방명록을 교차로 편집해 영상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방명록을 페이드 아웃하면서 셰프들의 표정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셰프들이 요리를 먹고 놀란
장면이 나올 때, 그 셰프가 적은 방명록을 내레이션으로 더빙하는 장면들도 나오기도 했다.
-당연히, 맛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열광할 만한 맛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메인이었던 이베리코에 새우 머리의 향을 베이스로 한 소스가 저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생략
…
***
젊은 셰프가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늙은 셰프, 앞뒤가 다른 멍청한 셰프, 쓸모없는 자존심 때문에
솔직한 평을 하지 않는 셰프…….
-추잡스럽다 그냥 은퇴해라
-으웩! 셰프맞냐? 셰, 프?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은 그가 운영하는 런던 미슐랭 쓰리 스타, ‘그란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셰프 인생에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 요리를 맛보고 표현할 ‘자유’는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자유’는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다른 개념인 것 같습니다. 당신처럼, 남의 요리를 평가 절하하고, 남의 업적을 깎아내릴 수
있는 권리를 자유라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당신이 말한 ‘자유’를 가질, ‘자격’이 당신에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
-그래! 둘이 요리 대결 좀 해봐!
-와우!
궁지에 몰렸고, 자신의 딴에는 고양이를 한 번 물어보겠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내 눈에 물고기 한 마리가
미끼를 물어버린 꼴이었다.
[ 저거 보십시오. 반유현 셰프는 너무 거만합니다. 개인의 취향과 자유를 무시하는 셰프라니 lol. ]
“어. 저 칼린 셰프를 방송으로 불러서, 공개 처형하자는 게 반유현 셰프님의 말씀이었어. 당연히 우리는
시청률 두둑이 챙길 수 있으니까 그에 대한 편성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지. 그리고 내가 칼린 셰프를 어떻게
섭외해야겠냐고 물으니, 방송을 어떻게 연출해야 될지 조언해주시고, 그 뒤로는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하시던데.”
그리고, 반유현의 말대로 실제로 그 영상이 나가고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 대중들의 비판적인 관심은 칼린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고, 칼린은 결국 SNS 를 이용해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처음엔 대체 어떻게, 어디서 그런 대결을 하냐고 칼린 셰프가 의문을 품자, 반유현 셰프가 우리를
거론한 거야. 이미 대결에 관해선 ‘방송’으로 구성이 되어있다고.”
그렇게, 칼린과 반유현의 대결이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 프로그램 ‘탑셰프’ 안에서
편성되었고 준비되고 있었다.
***
작년에 얻은 것까지 합해, 총 23 개의 미슐랭 스타를 가진, 명실상부 탑셰프의 반열에 오른 순간이었다.
물론, 마냥 기쁜 것은 아니었다.
“반유현 셰프니이이임!”
포시즌스 파리를 완벽하게 파리의 관광지로 바꿔놓은 성과를 인정받아 그룹의 전략 기획 실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고 했다.
대형 그룹의 경영 실세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충성을 다한다니, 이 또한 100 년 역사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어려운 건 아닙니다.”
이 대결은 방송에 나가는 것이기에, 그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는 것 자체에서 임팩트를 얻고자 하려면 그
평가원들이 요리 또는 맛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여, 역시 그렇겠죠. 당연히 100 명이든, 200 명이든 평가원들은 셰프님의 요리를 선택할 테니…….”
***
“당연히, 반유현 셰프님을 보러 온 거죠. 이 대결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이기실 텐데.”
그렇게 연락받은 사람들 중 가장 경력이 많고, 인지도가 높은 미식가, 평론가들을 불러 모았다고. 그들이
누구인지 기대해도 좋다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얼추 그들의 얼굴을 훑어보니, 유명 레스토랑 잡지사의 본부장부터, 미식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 학교로 불리던 그곳의 졸업반 학생들을 블라인드 평가원으로 초대했다.
“그런 것도 제 잘못입니까?”
“상식적으로 어떻게 미슐랭 3 스타를 가진 칼린 셰프가 미슐랭 23 스타를 가진 반유현 셰프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경력과 상관없이 미슐랭 스타 스무 개 이상을 가진 셰프의 그 내공은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놈은 진짜, 내 요리보다 자신의 요리를 좋아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 대결은 그 실력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에 취향과 자유가 있냐 없냐의 실험적 싸움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칼린 셰프는 개인적 취향에 의해 자신의 요리를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보다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고. 반유현 셰프님은 반대로 칼린 셰프님의 요리 ‘따위’는 자신의 요리
앞에 취향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고요.”
알고 보니 베르만은 이 대회의 본질을 실력에 의한 우위로 나누지 않고, 요리 자체에 개인의 ‘취향’
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용하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와아아아!
나는 곧장 칼을 들었다.
‘꽃목살.’
치이이익!
치이이익!
치이이이익!
취향 차이.
칼린은 계속해서 그 말을 뱉으며, 자신이 ‘반유현 올 데이’ 행사의 방명록에 내 요리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달았던 것에 대해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SNS 와 ‘탑셰프’의 방영에 의해 무너진 자신의 권위와 인지도를 다시금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다.
“네, 제 생각은 달라진 적이 없습니다. 요리가 절대적일 때가 있습니다. 개인 취향이 통하지 않는 요리가
때론 있는 법입니다.”
***
우리의 표정 또는 몸짓이 그들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었다.
“흠!”
“와!”
“으음?”
“아…….”
내가 만든 요리는 동파육이었다.
“컥.”
“이거…….”
“네, 취향 같은 건 없습니다.”
특별함. 요리를 맛보는 사람들을 완전히 빠트릴 충격적인 특별함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탱글탱글한 탄성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혀를 굴리자 녹아내리는 살코기는 신비로운 식감을 가졌다.
“이, 이건 정말……!”
-잘가라 칼린 셰프.
***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충격의 요리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네…….”
왜인지 칼린의 아들인 그도 초조한 표정을 짓곤, 대답을 못 하길래 베르만은 곧장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하하. 결과를 앞에 두고 아들도 같이 떨리나 봅니다. 일단 결과를 먼저 보고! 인터뷰를 더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번 대결의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두두두두두!
[ 반유현 99 : 칼린 1 ]
“아…….”
평가원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이미 압도적인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란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에 따라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이 방송은 모두 생방송이었다.
“칼린 셰프님 때문에 죽은, 이베리코 돼지에게 제가 괜히 미안합니다. 돼지의 죽음을 헛되게 하시다니.”
-ㅋㅋㅋㅋ와 진짜 레전드네…….
-빅피처 오졌다.
물론, 생방송이었다.
***
“실제로 자신에 대한 논란을 모두 무시하는 게 셰프들의 성향입니다. 왜냐면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
그것 때문에 자신의 요리가 논란에 휩싸이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셰프님께서는
이번 방송을 통해 셰프님의 실력을 몸소 보이셨고, 한 번 더 셰프님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방송
출연이 잦은 고든 레지 셰프보다 인지도가 더 높을…….”
“반유현 셰프님 이름이 붙은 식자재 공장의 공사가, 완공될 것 같습니다. 그곳에 직접 들러 레시피
교육을 해야될 것 같고, 그게 끝나면 ‘반유현 골목’에 곧장 마트가 오픈될 것 같습니다.”
물론, 식자재 마트, 그 브랜드를 세우는 것은 사람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공장이 생기면 말 그대로 찍어내면 되는 것이고, 유통 시스템을 잘 고안해 전 세계 어디든 식자재 마트를
열어 돈을 벌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뭔데.”
뚜렷한 목적이 없으면 당분간 방송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오스틴에게 말해놨던 터라, 방송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스틴의 행동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니까 대체 무슨 방송인데.”
“응?”
유명인의 밤.
이전 삶에는 환생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초대되어 지구상 최고의 셰프로 소개되었는데, 스물 중반인 지금
나이에 그 토크쇼에 초대된 것이었다.
“없습니다.”
이제는 나를 알리기 위해서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었으니까.
“또, 다음 일정은.”
“뭔데 또 말을 끌어?”
“음…… 외국인 최초로, 프랑스 최고 영예의 훈장, 레지옹 도뇌르에 후보로 오르셨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공적을 세운 군인들에게 줄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이후에 정치, 경제, 문화,
학술, 체육 등 각 분야에서 공로가 인정되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었다.
“접수한 정보에 의하면 4 등급 훈장의 후보로 올랐습니다. 요리 분야에서는 셰프님께서 외국인 최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셰프님을 포함해서도 요리 분야에는 그 훈장을 받은 분이 총 세 분밖에 없다고
합니다.”
프랑스 정찬 요리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킨 파울로 보퀴즈, 70 년의 세월을 요리에 쏟아부은, 요리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그도 4 등급 훈장을 받았었다.
“그렇습니다. 훈장을 거절하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그 부담감과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서…… 셰프님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옙!”
***
우와아아아아!
“네. 그렇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네.”
“예.”
“자, 그리고…… 레지옹 도뇌르, 프랑스 최고 영예의 훈장에, 최연소 나이로, 요리, 제빵분야 최초
외국인이란 자격으로 후보에 올랐다고 하십니다. 맞나요?”
“아, 최고의 훈장도 큰 관심이 없다? 대체 얼마나 그릇이 큰 겁니까 반유현 셰프? 크흠! 근데…… 그
한국인이셔서 애매한 것 같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어두운 역사를 만들었던 그 인물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다섯 개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 그랑크루아(Grand-Croix)를 받았던 과거가 있다고 합니다…….
셰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되게 유명한 말인데요. 뭐…… 프랑스 정부에는
유감입니다.”
“아…… 그, 그렇습니까?”
우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하하하…….”
‘이놈은 대체 뭔가 싶겠지.’
***
예술과 장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절대 권위를 인정받는, 프랑스 교육부와 노동부 주관으로 열리는 장인
콩쿠르로, 선정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프랑스 국가공인자격증 가운데 최고 가치를 지닌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현재의 가치에서 머무른 상태에서, 무작정 레스토랑을 찍어내는 것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막아주고, 나의 가치를 한층 올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계획이
흐트러졌으니 나는 새로운 수단을 생각했다.
“MOF 라면…… 뭐,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미슐랭 23 스타를 더욱 빛나게 할…… 셰프 커리어의 끝이죠?”
‘지금 나이는…….’
그럼 그때, 마지막 은퇴를 위한 기반이 아주 완벽하게 다져질 것이며 이전에 했던 것처럼, 레스토랑을
찍어내듯이 런칭할 계획이다.
심사위원의 앞에서 작품을 직접 평가를 받는 방식과, 완성된 작품을 제출해 심사받는 방식.
보석, 세공, 악기제작과는 달리, 제과, 제빵, 조리와 같은 분야는, 각 분야 최고로 손꼽히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평가받는 방식이었다.
“모르겠네.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분야는…….”
“두, 두, 두, 두 개요……?”
MOF 는 특히나 요리의 성지인 파리답게, 음식에 관련된 종사자들이 출전하는 부문이 많았다.
제과, 제빵, 아이스크림, 초콜릿, 치즈, 육가공, 정육, 청과, 요리, 소믈리에, 바텐더…….
“요리랑, 제빵.”
“이게 요리 대회가 아니라, 프랑스 최고 장인을 뽑는 콩쿨…… MOF 인데, 두 부문에 출전하시겠다고요?”
‘요리’ 부문의 서류 전형엔 당연히 합격일 테지만, ‘제빵’ 부문에는 이렇다 할 이력이 없는 게
문제였다.
“예에?”
***
국제 제과 제빵 대회 수상 경력 다수…….
우와아아아아!
“나, 나도 모르겠네.”
오픈형 도어로 만들어진 ‘반유현-네이비’의 모든 문을 개방했고, 샹젤리제 거리에 있었던 세계적 축제,
‘투르 드 프랑스’의 열기를 다시 재현하는 듯했다.
“오스틴!”
“축제?”
작명법 한번 직관적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반유현이 만들고 있는 빵이 나오길 기다리며 서 있었다.
‘이번엔 또 무슨 업적을…….’
“미……친.”
프랑스 최고 장인을 뽑는 MOF 제빵 부문까지 정복하기 위해서, 서류 전형에 제출할 이력을 만들기 위해
이런 축제를 만들고 실제로 실행시킨다는 발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너는 왜 그걸 당장 보고 안 했어.”
로만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돌렸을 때는, 수많은 경찰들과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내들이 보였다.
“파리 관광청과 합의가 되었습니다. 경찰들은 혹시 모를 안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배치되었을 것이고……
저기, 관광청 직원들은 이 축제를 파리 공식 축제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 적합성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 같습니다.”
“반유현 셰프님이잖아요.”
우와아아아아!
지금도 그랬다.
‘슈톨렌.’
“그러니까 하는 거지.”
우와아아아아!
착!
“당연하지.”
우오오오오!
우와아아!
영롱한 푸른빛을 띠며 각설탕이 녹기 시작했다.
[ 뒤 펜 피세르 ]
[ 고스율랭 ]
[ 더 폰듀 ]
그 등에 적힌 글자는 ‘반유현’이었다.
***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반죽을 만드는 것을 보고 열광하는 모습들을 실제로 보니, 그가 두려워졌다.
반유현이 반죽을 치대는 모습과 함께, 대중들의 환호소리가 섞여 그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커헉.”
“뭐, 뭐야!”
각설탕을 녹이는 푸른빛으로 시선을 주목했던 카페 로얄은, 브랜디가 가졌던 특유의 향긋한 과실향과
묵직한 커피의 바디감이 조화를 이루어 신선한 경험을 선사해줬다.
믿기지 않을 정도.
“와……! 미친.”
“부시밀즈(Bushmills)를 사용했어……!”
“16 년산…….”
반유현이 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라고 제공한 음료 자체에 대한 충격은 이들뿐 아니라,
식음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대중들에게도 전해진 듯했다.
“와아아아!”
“이게 뭐야!”
***
“음료는 괜찮으셨습니까?”
이유는 단순했다.
등짝에 거대하게 내 싸인을 그리고 다니는. 물론, 일할 때는 이 조리복을 입지는 않는다고 했다.
“슈톨렌입니다.”
“밀가루의 풍미……!”
“와……!”
“어…….”
고소함, 달콤함, 상큼함, 그렇지만 가볍지 않은 맛이 합쳐져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 냈다.
우와아아아아아!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파티시에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빵을 먹는 모습을 보고.
“나눠드려.”
와후!
“그런데 이건 뭡니까?”
“그, 그러게요…….”
반유현은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해 제출했는데, 자신의 의견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들과
과학적 지식은 이번에 논문을 제출한, 그 어떤 파티시에보다 정교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반유현이 예선에 진출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논문의 내용에는 제과제빵 분야의 대단히 권위적인 입지를 갖고 있는 파티시에들을 비판하는 내용들도
있었으며, 그것들을 전면적으로 반박하는 실험들 또한 있었다.
단연, 파티시에는 자신의 창의력과 그 창의력을 손으로 빚어내는 것에 집중하느라 그 이론과 실험적
태도에는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파티시에도 아닌, 본업이 셰프인 반유현이라는 작자가 나타나 그 모든 것을 깨트린
것이었다.
“이 정도의 정교한 논문은 박사인 제가…… 감히 평가하건대, 대단한 내공입니다. 이 정도 수준의 실험과
생각은 20 년 경력의 파티시에들도 몸으로 알고 있지 이렇게 이론으로 정리하기는 힘들 겁니다.”
반유현이 두 부문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MOF 의 권위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내부적으로 그의 서류
전형 합격 여부에 많은 논란이 오가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어졌다.
“수년간 연구를 하다니요! 반유현 셰프의 행보를 모르십니까? 3 년 만에 미슐랭 23 스타를 받아낸 그가
연구할 시간이나 있었겠습니까!”
“역사에 없던, 정교하고 세밀하고, 창의적인 논문이 나왔습니다. 제빵분야에서 MOF 를 수상한 그 어떤
파티시에도 이렇듯 대단한 논문을 낸 적이 없는데, 반유현 셰프가 누구한테 대필을 받습니까?”“그, 그건
그렇지만……. 반유현 셰프가 저희 MOF 라는 기관, 콩쿨 자체를 수단으로만 삼으려는 속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탕탕!
“똑같은 심사 잣대를 들이밀고, 그가 그것을 통과하면 우리는 MOF 를 수여하면 됩니다. 그가 두 분야에서
MOF 를 수상했다는 건, 우리의 명성, 또는 여태까지 MOF 를 수상 받은 장인들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주 아주 위대한 인간임을 인정하면 되는 겁니다.”
***
“컥!”
‘제과제빵의 창의성, 그리고 천연발효를 위한 효율적 조건’, 총 두 개의 논문을 제출해 예선에 합격했고,
본선에 진출했다.
“와, 완벽합니다.”
“무……결.”
카스테라 맛과 식감의 기본인 머랭, 쉽게 설명하자면 계란 흰자에 설탕을 뿌려 빠르게 휘저어 만드는
거품들, 또는 크림을 뜻하는 단어이다.
“다른 파티시에 분들은 반죽기로 머랭을 만드셨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회전하는, 그리고 계란
흰자가 빠른 속도로 휘저어지는…… 그런데, 장인이라면 그런 것들까지 다 조절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같은 빵이어도 맛이 다른 이유는 그것입니다.”
계란 흰자가 그 성질이 변하면서 거품이 일어나고, 그것들의 점도를 파악하며 설탕을 넣는다.
저들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제빵에 투자했고, 스스로를 제과제빵 분야에 대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새삼 불편하게 느껴졌다.
***
그리고 제빵 분야의 모든 심사가 끝났을 때에는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음에도, 각종 언론에서 ‘카더라’
기사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최초로 두 부문에 출전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받으셨고, 그에 따라 기자들이 추측성 기사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기자들이야 뭐. 저게 밥벌이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기자들도 느낌상 셰프님께서 진짜, 진짜로 MOF 두
부문에서 수상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축하드립니다.”
“셰프님, 그런데 MOF, 요리 부문에서 수상한 셰프들은 조리복 목깃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삼색의 줄을
넣잖아요. 셰프님 조리복의 그 검은 깃도 색을 바꾸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받으실 게
분명하니까요.”
“죄, 죄송합니다.”
오스틴과 오늘의 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에, 오스틴이 말 한, 목깃에 프랑스를 뜻하는 삼색선이
들어간 조리복을 입고 있는 셰프들이 대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 셰프님. 최고장인 위원회 위원장 베이슨입니다. 셰프님의 요리 부문을 심사할
심사위원이기도하구요.”
“예, 안녕하십니까.”
“네. 뭐.”
“반유현 셰프님이라 해서, 심사의 잣대가 낮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는 최고 장인을 뽑는…… 뭐,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4 년에 한 번 열리는 콩쿨임에도 수상자가 없던 적이 많다는 것을. 저도 셰프님께서 두
분야의 수상자가 되는 것을 바라기에, 이 평가를 우습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야. 오스틴.”
“예?”
“에, 예?”
“최고 장인을 선발하는 대회답게, 시간은 여유롭게 주어져. 주방도 우리만이 쓰는 공간이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가장 강력한 맛을 보여주면 되는 거야. 그리고 이왕이면, 파격적인 이슈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지?”
내 말에 셰프들이 거침없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도 MOF 잖아. 우리 레스토랑의 요리를 했다간 저 빳빳한 영감님들이 가만히 있겠냐. 흠.”
“페르넨 푸안.”
“예?”
페르넨 푸안.
프랑스 요리의 거장이라 불리며, 프랑스 정찬 요리를 정립했고, 프랑스 요리 문화를 발전시킨,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셰프였다.
그런 프랑스 요리의 최고봉인, 그들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페르넨 푸안 셰프의 요리를 완벽히 재연해
보인다면, 그것 자체로 그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뭐랄까. 상당히 조심스러운 요리라고 해야 되죠…… 셰프님의 판단에 항상 저희가 헤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 심사위원들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인
그의 요리를 만진다는 것이요.”
“이미 다 적었어.”
“예에?”
***
그런데, 베이슨은 느꼈다. 반유현이라는 셰프가 주방에서 내뿜는 기세와 내공, 아우라…….
셰프들의 조화와 협동을 기반으로, 주방의 동선이 완벽하게 정리되었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강력한 맛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반유현일 테다.
30 명의 심사위원들 중에는 원로 셰프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들은 실제로 페르넨 푸안의 제자이기도 했다.
저렇게 당돌하게, 페르넨 푸안의 요리를 재연해 보이겠다 한 셰프가 없었던 만큼, 콩쿨이 진행되고 있는
이 현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바닷가재 샐러드입니다. 베샤멜 소스에 토마토 퓌레를 섞었고, 송로버섯(truffle) 소스와 함께,
곁들였습니다.”
핑크빛 색을 띠는 소스는 버터를 베이스로 한 베샤멜 소스와 토마토 퓌레가 섞여 나는 것이었고, 은은히
퍼지는 송로버섯의 향은 후각을 자극했다.
“진짜…….”
“제기랄.”
토마토 퓌레를 곁들인 베샤멜, 그리고 송로버섯 소스, 두 가지 소스와 전혀 이질감이 없이 그 소스들이
품는 풍미를 모두 가졌고, 살이 무너지며 바닷가재 특유의 풍미를 뽐냈다.
꽃게, 새우, 대구, 가재, 홍합 등 갖가지 최고 등급의 요리가 담긴 냄비에 토마토, 고추, 월계수 잎,
타임 오렌지 껍질 등 향을 내는 재료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훨씬 더 발 된 것 같습니다.”
“하아.”
실제 페르넨 푸안의 제자였다던, 원로 셰프들은 숨을 거칠게 내쉬는 모습도 보였다.
“와……!”
그 코스와 메뉴의 이름은 페르넨 푸안이 살아생전 선보였던 것과 비슷하지만, 접시에 담긴 요리의 모습은
한층 더 발전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우와아아아아!
그런데, 마터롱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행동이 이미 짜여진 동선이 아니었는지, 경호원들이
잠깐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22 화. 그때 그 사람 (1)
가뜩이나 MOF 를 수상한 장인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고 있었는데, 이 행사의 주최자인 프랑스 대통령까지
나에게 다가오니, 이 행사의 주인공이 내가 아닐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뀌어버렸다.
수많은 방송, 매체에 출연해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요리를 선보이는 갈라 디너도 숱하게 많이
경험했지만 이런 시선들은 나로서도 꽤나 부담스러웠다.
아니, 부담스럽기보단 이런 시선들은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올 관심이 아니기에 받기가 싫었다.
“오늘 만찬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셰프들을 불러왔습…… 아, 그러고 보니 반유현 셰프님께는
오늘 만찬에 최고의 셰프들을 모셔왔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하하하하.”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예?”
“저희 가문은 대대로, 최고의 위인이나 사회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친 이에게 시계를 선물합니다. 자신이
살면서 쌓아 올린 최고의 기술을 집약해 만든 시계를 드리죠. 역대 저희 조상님들께서는 나폴레옹,
빅토르 위고, 파스퇴르 등 수많은 프랑스의 위인들에게 시계를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대손손 손재주가 뛰어난 이들이 시계공을 가업으로 받들어 후세에 전하고 있는 집안.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시계가 명품임을 증명했고, 그 시계를 받은 사람들도 자신이 이 시대에 중요한
인물임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
“그야 뭐…… 그 로렌드 노먼 가문의 사람들이 원래는 관습적으로 대통령에게 시계를 선사했는데, 이번에
마터롱 대통령은 그 시계를 유일하게 못 받은 대통령이 될 터니까.”
부담스럽다.
파리 근교에 있는 넓은 공장 부지.
‘한 숟갈 굴 소스’, ‘한 숟갈 매콤 소스’.
“붙여야지.”
“반유현-플레이버(flavor).”
당연히 나의 목표 안에 있는 사업이었다.
“얻을 것이 한두 개가 아니야. 파리, 반유현 골목을 시작으로 식자재 마트를 계속해서 오픈할 거야.”
***
이 폭발적인 판매력을 보고, 해당 기업들은 어떻게 나의 제품을 유치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우와아아아아!
“제가 개발한 특제 소스들은 이 매장이 아닌, 다른 유통사를 통해서도 판매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신
제품들은 ‘반유현-플레이버(flavor)’라는 매장에서 먼저 판매됩니다. 쉽게 말하면 선독점입니다.”
혹시 모르지 않나.
***
#파리여행반유현. #특제소스존맛탱.
그도 나의 싸이클을 알고 있던 터였다.
“맞아.”
“예에?”
“라, 라스베이거스요?”
123 화. 그때 그 사람 (2)
반유현은 자신의 라스베이거스행을 발표하고 나서, 제안받은 호텔들의 명단을 뽑아서 로만에게 건네줬다.
물론, 그 호텔들의 명단 옆에는 그들이 제안한 사항들도 함께 적혀있었다.
-지분 50%
-미슐랭 달성시, 호텔 매출 5%
“참…… 반유현 셰프님이 아직도 예전의 반유현 셰프님 인 줄 아십니까? 그룹의 손익을 따져서 데려와야
할 사람이냐고요.”
“실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실장님께서는 저희 그룹의 편에서서 반유현 셰프님과의 협상을 이어나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반유현 셰프가 대단한 것을 여기 있는 모든 간부와 사장님들이 알고 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역사에는 없던 최강의 셰프가 있다면, 역사에 없는 제안을 해서라도 그를 데려와야 한다는 논리는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잘 생각하십시오. 제가 경영을 맡은 파리는, 반유현 셰프님을 모셔온 이후로 매출이 270% 상승했습니다.
또 제가 그룹 경영전략실장으로 승진했다는 것을요.”
***
라스베이거스에서 처음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을 오픈할 장소는 너무나 편안하게 포시즌스로 정해졌다.
그들이 어떤 대우를 할는지 나에게 제안을 한 호텔의 명단과 그들의 제안을 로만에게 건넸는데 로만의
행동이 꽤나 파워풀했다.
“왜.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던 레스토랑인데 다짜고짜 방 빼라고 하면…
…. 이건 나한테도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다른 방법들을 좀 알아보라고 해. 열심히 하는 그 셰프들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될 것 아니냐.”
불도저 형식으로 셰프들을 밀어버렸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겼을 것인데, 설마 그런 방식까지도 사용한
것인가.
‘예측했을지도.’
“네, 출발하세요.”
목적지에 도착했다.
“뭐야 이건?”
조쉬.
포시즌스 파리에서 로만과 합을 맞췄다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그와 함께 합을 맞춰야 한다.
“조쉬 사장님이 반유현 셰프님을 존경하기도 합니다. 매번 저한테 자리 한번 만들어 달라고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뵙게 되네요.”
“그게…….”
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커스입니다. 스웨덴에서 왔고, 저는 지중해식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에 미슐랭 원 스타를
받았습니다.”
“루이 가렐입니다. 프랑스에서 왔고, 셰프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프랑스 정찬으로 저도 이번에
미슐랭 원 스타를 받았습니다.”
인도 출신, 스웨덴 출신, 프랑스 출신, 일본 출신의 총괄 셰프들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이 총괄 셰프들 모두, 그리고 그를 따르는 셰프들이 나의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UAE 왕세자, 그가 데리고 있던 개인 셰프들 미슐랭 7 스타를 가진 이들도 열심히 반유현 팩토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들이라고 해서 곧장 나의 주방에 발을 들일 순 없었다.
124 화. 그때 그 사람 (3)
[ 샹젤리제 거리의 ‘투르 드 프랑스’, ‘베이커리 페스티벌 by 반유현’ 등 셰프님께서 열었던 축제의
장에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번 저희 최대 축제를 빛내주시고,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인턴……?”
내 옆에 있던 오스틴도 질색했다.
“저 제안은 받지 말고.”
“파리, 런던과 다르게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워낙 이 도시에서 파워가…….”
“네?”
***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라스베이거스 최고 셰프 선정 후보에서 지우고, 이달의 레스토랑 후보에 선정하지 말고, 새롭게 오픈한
레스토랑 리스트에 반유현 셰프의 레스토랑은 이름 올리지 말고,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Vegas
Uncork'd)’에 부스 주지 말자.”
세계적인 셰프, 반유현의 반응이 기대된 케인이었다.
***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뷔페 방식의 레스토랑은 단연 미슐랭 스타와 거리가 멀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겁니다.
브랜드 반유현의 뷔페. 화려한 요리들과 맛을 한꺼번에 선보일 수 있는 형식은, 이 라스베이거스 내에서
제 브랜드의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고, 그에 따라 미슐랭 스타에 관한 사업들을 이어나가겠습니다.”
그 밑으로 화이트 2, 화이트 3 의 카림, 알렌드 등 능력이 출중한 교수들이 이끄는 팀 전체를
라스베이거스를 맡을 셰프로 채용하기로 했다.
“뷔페 레스토랑에 반유현 화이트 셰프 전원을 넣고, 그 총괄로 메이를 세울 거야. 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총괄은 제리로.”
“묻지 마.”
“예?”
125 화. 그때 그 사람 (4)
“그래. 컨텐츠.”
반유현 팩토리에 수많은 셰프들이 몰렸던 것의 이유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나의 존재였고, 두 번째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브랜드 ‘반유현’의 주방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A 반 1 팀부터 5 팀 안에 들어, 반유현 화이트까지 가기란 이제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만큼의 난이도였다.
그리고 정면 대결이었다.
***
“딱 들어맞네. 숫자가…….”
모든 정황상 반유현의 레스토랑을 런칭하게 될 호텔들이 관광청이 주관하는 행사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인
것 같았다.
“그게 말이 되나…….”
아니, 자리는 고사하고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축제를 망가트려 놓았다는 역사적 대역죄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 뭔데? 이유도 말하지 않고 모든 후원과 장소제공, 거기다가 팔라스 호텔에 속한 셰프들까지 모두
불참 의사를 보낸 건 뭡니까?”
-저희도 살기 위해서입니다.
“뭐?”
-레스토랑 반유현을 런칭하는 것에서, 다른 호텔에게 밀린다면…… 저희 호텔의 입지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라고요?”
어이가 없었다.
-디렉터님께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 반유현이라는 셰프의 이름이 이유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게 이유가
되겠습니까? 저희뿐만아니라, 저희와 동급의 특급 호텔 다섯 개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주최의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고도, 그 이유에 납득이 되지 않습니까? 물론, 관광청의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는 저희도 불이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호텔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잃음에도 반유현이라는 가치를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주최, 세계 최대의 미식축제인 ‘언코크드’를 뛰어넘을 축제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마, 맞습니다!”
***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잘못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식의 사과를 할 줄 알았는데, 저들끼리 살 방법을
찾았다.
“고든 레지 셰프라…….”
126 화. 그때 그 사람 (5)
“다 모였지?”
당연히 반유현 팩토리 내에서 최상위의 성적을 자랑하는 이들답게 그 열정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 고든 레지 vs 반유현의 싸움. ]
비프 웰링턴.
우와아아아아!
***
“그야 모르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반유현이가, 자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겸손했겠어?”
“참…… 섭섭한 말이네. 그럼 나를 왜 찾아온 거야? 자네는 내가 반유현 셰프님과의 커넥션이 있다는
이유로 찾아온 것 아닌가.”
“빨리 말이나 해보게. 반유현 셰프 요리의 특성이 있나? 비슷한 라인이 있을 텐데 분명.”
실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만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소리고, 그 색깔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었으니까.
매번 한식만을 요리하던 사람의 손에서, 중식이나 일식이 만들어졌을 때 은밀하게, 아주 묘하게 비슷한
풍미가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셰프의 색깔이라 할 수 있었다.
“없어…….”
“갈비찜, 규카츠, 파스타……. 자네 말대로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졌더라도, 셰프의 색깔이 묻어 나오기
마련인데…….”
모든 역량을 짜내서 도와줘도 모자를 톰슨이 이런 미온적 태도를 보이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허허…… 반유현 셰프님은 그때 그 사람이 아니라니까. 물론, 그때, 3 년 전에도 자네가 이렇게 방심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야.”
***
우와아아아아!
“오늘 뭐예요!”
“반유현! 와아아아!”
“여기 줄 서면 음식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같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그렇지.”
“음? 설마…….”
그 전광판에는 나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는데, 나는 도마에 쇠고기 안심을 올려놓고 소금과 후추를 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치이이익!
고기를 뜨겁게 달궈진 팬에 씨어링하는 소리, 그 소리에 스탭이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우와아아아!
고든 레지와 관광청의 합작품, 디너쇼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는데, 내 앞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저들은 식은 요리를 손님들에게 내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127 화. 그때 그 사람 (6)
“지금 이곳에 있는 인원의 1/3 정도의 인원이며, 대부분이 그의 지인인 셰프들인 것 같았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나의 프리미엄이 더 강한 듯했다.
150 명의 셰프들이 ‘ㄷ’자의 형식으로 펼쳐진 조리대 앞에 정렬해 있었고, 오븐에서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또, 배치된 조리대는 펜스가 둘러치고 있었는데, 역시나 사람들이 그 울타리를 붙잡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홀스래디쉬는 서양 고추냉이라고도 불리며, 강렬한 매운맛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에 버터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를 넣고 부드러운 맛으로 중화시킨 소스를 만들었다.
위이이이이잉!
요리가 점점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가 줄었는데, 이는 저들의 표정을 보니 내 요리에 진지하게
빠져든 것만 같았다.
미슐랭 23 스타의 요리는 무엇이 다를까. 왜 사람들이 나의 요리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풀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띵!
띵!띠띠띠띵! 띵!띵!
우와아아아아!
***
바스락!
화우우우!
우와아아아!
하하하하하!
브랜드 반유현 산하의 150 명의 셰프들, 그 셰프들은 고든 레지의 시그니처 메뉴를 똑같이.
“네.”
[ made in 반유현 ]
“편백나무찜입니다.”
와우!
“황홀하다.”
“와…….”
“마약이야!”
띵!
현란한 EDM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에서 오븐의 시간이 다 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띵!
“뭐, 뭐야?”
띵!
“뭐야?”
“뭐야? 어디가는거야?”
우와아아아!
하하하하!
“와우!”
-뭐요?
그때,
우우우우!
-우우우우우!
-크흠!
-크흠! 하나 줘보쇼.
바스락!
-크흠!
“하하하하!”
“뭐야!? 왜 말을 못 하지?”
-이게……! 으…… 어?
128 화. 그때 그 사람 (7)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자신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표정이 감춰지지 않았다.
“뭐야! 고든 레지 왜 저래?”
“감동했나 봐!”
“엥?”
“크흠!”
괜스레 헛기침을 하던 케인도 미식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서 수년째 행사 기획을 담당했다.
‘뭐지.’
비프 웰링턴이 놓인 접시를 들고 있는 사내에게 한 점을 더 달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 점 더 드셔보시죠.”
“으응…… 예?”
바삭한 페이스트리 반죽의 고소한 풍미, 그리고 양송이와 새우의 향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쇠고기
안심만이 낼 수 있는 고기의 풍미가 퍼져 나왔다.
고기에 발라진 홀스래디쉬 소스는 매콤함이라는 단순한 맛을 뛰어넘어 모든 재료들을 아우르는 배경이
되는 느낌이었다.
“저는 쇠고기에 발라진 소스가 머스타드가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강한 풍미를 내는 홀스래디쉬 소스라는
게…….”
***
비프 웰링턴, 편백나무찜, 그리고 제빵과 제과가 모두 소진될 때쯤, 내 산하의 셰프들은 새로운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카르파치오(Carpaccio)야.”
띵! 띵! 띵!
흘러나오는 EDM 음악 중간에 또다시 새로운 요리가 나올 것이라는 벨소리가 섞여 들어가자 사람들은 다시
환호를 질렀다.
우와아아아!
하물며, 자신들의 공연에 사람이 텅텅 비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지난번 은은한 편백나무 향이 이 축제의 장을 덮었다면, 지금은 달콤한 양념이 섞인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이 축제의 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
[ 내가 왔다! 반유현! ]
[ 라이프 이즈 뷰티풀 역대 최소 인원 ]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네, 그렇습니다.”
“역시나 눈치채셨군요.”
“하실 말씀이라도?”
“그…… 관광청에서 저에게 그렇게 부탁을 하더군요. 반유현 셰프님과 저와 관계가 있으니까, 자리를 한
번만 주선해 달라고.”
“아무래도…… 적은 예산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요…… 언코크드 행사가 진행될 때에도 반유현
셰프님께서 이번처럼 본인만의 축제를 만드시면…… 이제 라스베이거스 축제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뒤에 말을 덧붙였다.
“자존심도 없습니까?”
“죄, 죄송…….”
“셰프님!”
“그…… 그렇게 완강히 보류하시는 것 말고도 판단을 잠시 보류하시는 것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내 대답은 하나였다.
“싫어요.”
***
“그리고 그 메뉴는…….”
“됐어. 이미 다 생각해놨으니까.”
“커허…….”
“여기 있는 스물다섯 명은 대부분 국적이 다르네, 각각 자신의 나라의 행운을 상징하는 요리로 여섯 시간
뒤에 메뉴 테이스팅.”
***
라스베이거스에 소집된 총 150 명의 셰프들, 기존에 반유현 골목에서 ‘반유현 화이트’ 다섯 개의 매장을
각각 운영하던 50 명의 셰프들을 둘로 나눴다.
그렇게 스물다섯 명은 메이가 총괄하는 뷔페를 맡을 것이고 나머지 스물다섯 명은 제리가 총괄하는
파인다이닝을 맡을 것이었다.
UAE 하이든 왕세자의 개인 셰프들 그중에서도, 미슐랭 7 스타를 가진 가타무라 마츠오 셰프.
또, 한국인 셰프들을 대거 거느리고 있는 윤종혁 셰프, 싱가포르 국제 대회의 심사위원장인 알베르 셰프,
포시즌스 라스베이거스의 총괄 셰프들…….
“박수를 칠 만한 성과입니다.”
직원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경영, 회계 또는 그 밖의 운영에 관련한 것들을 맡은 그들은 셰프들의 열정과 의지가 어디서 생겨나는지
매번 생각하곤 했었다.
대부분 경영, 경제 전공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반유현의 성공메카니즘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우와아아아아아!
-그런데 반유현 셰프가 이제껏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그랜드 오프닝이 준비되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반유현 셰프가 바로 방금 전 보여드렸던 화면, 그 축제의 장소에서 일정기간 동안, 매일,
자신의 뷔페에 런칭할 메뉴를 하나씩 공개한다고 합니다!
저건 또 뭐냐는 식의 표정.
두 회사의 합작품인 이 산책로 중앙에는 광장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두 호텔 그룹의 중요한 행사가 각각
치러졌다.
“모든 요리 하나하나를 최상의 맛을 표현해 사람들의 기대감을 올리는 것이고, 이 시식회 자체가 또 한 번
라스베이거스를 떠들썩하게 만들 거야. 그리고…….”
“37 일 뒤라면…….”
“유명 셰프들의 음식을 이것저것 맛보는 즐거움이 클지, 레스토랑 ‘반유현’이 만들어 낸 요리 26 개를
먹는 즐거움이 클지……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
“예! 셰프!”
***
나는 달랐다.
“타말레(Tamale)가 원래 이런 맛이야?”
“죄송합니다!”
내가 굳이 메뉴를 일일이 구상할 필요 없고, 이들이 내보인 요리들의 맛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뷔페를
꾸릴 생각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옥수수 가루를 넣어 반죽한 도우에, 고기와 야채, 그리고 치즈를 넣어 만두처럼 만든 뒤에 옥수수 잎에
싸서 오븐에 굽는 요리.
착! 턱!
“어깨살은 근육이 많고 근육 사이에 지방은 적어서 그 식감을 살릴 수 있어, 이 정도의 족발을 사용할거면,
이 정도의 어깻살을 사용해.”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을 만들 생각이냐?”
“청어는 소금에 2 주만 절여 놔. 허브, 식초, 설탕, 레몬…… 통후추, 겨자씨를 끓여서 청어에 붓고
다시 3 일 절여. 이 요리의 핵심은 하나야. 작은 붓으로 혓바닥에 기름칠을 한 것만큼의 기름기, 그
미묘한 고소함과 아삭한 식감, 뒤로 전해지는 상큼한 맛.”
“예!! 셰프!”
‘조절을 해야 되나.’
‘그래서 괜찮아.’
메이 또한 이번엔 크게 놀란 눈치였다.
이들의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의문들을 종식시킬, 내 입에서 나온 한 문장은 이들의 의지와 열정을
다시 북돋아주었다.
“예!! 셰프!”
마지팬 피그는 돼지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는 독일인들이 아몬드와 설탕을 갈아 만든 반죽을 돼지
모양으로 빚어 구어 낸 과자였다.
“음, 그래?”
***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그렇습니다. 반유현의 시식회가 당장 내일부터 시작되는데, 그 모든 요리들이 지휘급 셰프가 아닌, 그저,
그저 반유현 팩토리의 성적우수자인 그들이 하는 것 아닙니까?”
자신을 따르는 지휘급 셰프들이 이곳에 모두 온다면 그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다.
“전 세계에 있는 레스토랑, ‘고든 레지’에도 유명 셰프들이 많습니다. 각각의 ‘고든 레지’를 총괄하는
셰프들을 모두 라스베이거스에 불러, 언코크드 행사에 참여시킬 겁니다. 아무리 반유현 셰프가
대단하다고 한들, 반유현 팩토리를 갓 졸업한 셰프들이 ‘고든 레지’의 지휘급 셰프들의 실력과 명성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겁니다.”
어떤 말을 해도 그는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아서였다.
“하…….”
“뭐야? 또 뭔가 하나 봐!”
[ 반유현 26 메뉴 시식회 ]
“26 메뉴?”
“어쨌든 반유현이라잖아!”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모든 요리가 완성되었을 때, 경호원들이 펜스의 입구를 오픈했고 사람들이 조리대 앞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우와!”
“캬……!”
“감사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괜스레 처량해 보이는 그가, 계란 볶음밥이 담긴 접시를 든 상태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예, 안녕하세요.”
“오 마이…… 갓…….”
***
브라이언 산니발.
“관광청장은 뭐래.”
“관광청 내부에서도, 반유현의 장악력을 키워준 것이 애초에 케인의 기획이었다고 합니다. 반유현
셰프에게 갑질을 해댔고, 대결구도를 만들어서 처참하게 깨진 것이 지금 사태의 원인이라고들 하는
실정입니다.”
쾅!
네바다주의 인구 3 분의 2 가 살고 있는 라스베이거스.
“그 윗물부터 싹 다 경질시켜.”
자신이 관광청에만 있을 때에도 라스베이거스 내에 열리는 축제에 후원하는 기업들, 그리고 그 제도가
안정화되지 못했던 터라, 이렇다 할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 힘을 마구 휘두르다 문제가 생겼다.
“차 준비시켜,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어.”
우와아아아아!
“뭔데 이거…….”
“대기하셔야 됩니다.”
“어디에 줄을 서면 되는 겁니까?”
“저쪽 끝입니다.”
“주, 주지사님!”
***
분명, 이 도시에 새롭게 형성된 권력인 나의 이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었을 것이다.
“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마 품위를 지키며, 접시를 모두 비워낸 브라이언은 접시를 내려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잘못되었죠.”
“……네. 그렇죠.”
“예……?”
“에……예?”
100 년을 살면서 경험한 이 흐름은 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이 흐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칼이란 게…….”
[ 레스토랑 매출 급감! ]
“이대로라면…….”
관광객의 특성이란, 추억을 쌓고 평범한 삶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중시하는 사람들 아닌가.
물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들은 어차피 타겟팅 대상이 아니었다.
나의 목표는 식사를 해도 아주 특별한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었다.
완전한 비공개인 나의 메뉴와 일정을 관광청이 공개한다는 것은, ‘반유현’에 대한 통제를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을 테니까.
“예?”
“그렇게 하는 이유가…….”
언코크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면서, 그 축제의 규모를 키우라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브라이언이었다.
네바다주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축제와 관련된 예산을 늘려, 언코크드를 역대급 규모로 키워놓으면
나는 그것을 제물로 삼아, 몸집을 더 불릴 것이다.
“…….”
“그나마 제가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후원 기업들이 완전히 등 돌리는 것을 막고 역대급 규모의 언코크드를
연 주지사로 남는 것…… 어떤 선택을 하시던 저는 좋습니다.”
***
“이제는 손을 잡은 겁니까?”
덕분에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고, 관광청은 약속대로 언코크드의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관광청 축제 총괄도 아닌, 얼굴도 보지 못했던 직원이 나와서 자신에게 설명을 한다.
“그냥 사장 당하느니…….”
“예?”
***
“고든 레지?”
내가 원했던 대로.
“내일이 오세치(御節料理)잖아.”
1 단, 2 단, 3 단으로 혹은 5 단으로 구성된 도시락으로 각각의 층에는 야채와 고기, 삶은 새우, 청어알,
검은콩, 작은 멸치 등이 들어가 있는 음식.
‘겔러거 형제.’
그리고 지금, 나와 셰프들, 반유현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겔러거 형제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멘트를 치며 방송을 이어나갔다.
“우와아아!”
-빨리 보여줘!
-무슨 요리인데!
-야, 이거 조작이다!ㅋㅋ
-그럼 뭐임? 반유현의 협찬을 받아서, 레스토랑 반유현만 홍보하고 저 요리는 가짜인 거임?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와!
-ㅋ
-진짜네.
-찐이다 찐!ㅋㅋㅋㅋ
이 정도로 시청자들의 거센 반응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는지, 겔러거 형제는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
- 시청자수 : 113,412
“뭔데 이건.”
“…….”
관광청의 완전한 몰락을 막기 위해, 반유현의 ‘26 시식회’ 메뉴의 일정을 받았고, 그 사실만으로도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의 규모를 키웠다.
애초에 그렇게 되리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컥.”
“이건…….”
-하아. 진짜 먹고 싶다!
-반유현 셰프님!!!!
-그 요리 나 줘라!!!
-먹기도 잘 먹네요!ㅋㅋㅋ
-와 배고프다.
-다이어트 중인데…….
-ㅋㅋㅋㅋ반유현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음.”
-와!ㅋㅋㅋㅋ
-반유현 먹방 데뷔해라!
“음. 맛있네.”
반유현도 알고 있는 터였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맛있다’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느껴지는지.
***
[ 먹방 스타 된 반유현 ]
[ 그의 파급력은 어디까지인가. ]
내가 겔러거 형제의 채널에 출연해, 먹방을 선보인 것이 화제가 되어 수많은 하이라이트로 편집되어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녔다.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 추첨 될 오세치는 더욱더 화제 되었고, 바로 지금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내 축제의
장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의 26 시식회에 참여해 요리를 먹기만 해도 제공되는 오세치 추첨권은 이전에 내 갈라디너의 암표가
거래되듯이 사고 팔리는 일도 일어났다.
말 그대로 추첨권. 오세치를 얻으리라는 것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격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얼마에 사 왔어.”
우와아아아아아!
“그렇습니다.”
‘많이 컸네.’
우와아아아아아!
반유현! 반유현!
우와아아아!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3144 번.”
“감사합니다.”
“412 번.”
그렇게 추첨은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의 번호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69 번.”
“허허허허!”
“추첨권이 두 개나 있으셨습니까?”
“허허. 감사합니다!”
그래 뭐, 두 개까지는.
“1124 번.”
“감사합니다.”
이미 한 손에 오세치를 들고 있는 사내는 다시 한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빨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뭡니까.”
우우우우우!
추첨권이 많게는 200 만 원까지 올라갔다고 했는데, 저것을 100 장 넘게 구매했다는 남자는 평범한 인물이
아닌 듯했다.
“23 번.”
“하하하하하!”
우우우우우!
이번에도 또, 그 남자.
애초에 서로 간에 거래를 하라고 만든 추첨권도 아니었으며, 내가 준비한 오세치 대부분을 그에게 주기도
싫었다.
“뭐, 뭐요?”
우우우우우!
중년의 사내를 향한 관중들의 야유는 거세졌고, 이 상황을 완벽히 정리하지 못하는 나를 일갈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뭐하냐!”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
“뭐? 고든 레지?”
이상하게도 엮여버렸다.
“일리가 있네.”
그리고 그는 소리쳤다.
더군다나 미식의 도시라는 이곳의 왕좌를 빼앗기기 싫은 세력들이다 보니, 그 알력들의 힘은 무시할 게
아니었다.
“하이든.”
***
그가 운영하는 회사인 베이징 에너지에 가장 많은 석유를 공급하는 UAE 왕세자의 얼굴을 확실히 아는
듯했다.
“돈으로 망쳐 보려 했다?”
“죄송합니다.”
UAE 왕가는 상대 사업체와 가문 대대로 걸쳐 그 신뢰가 두터워지면, 웬만해서는 유통책을 바꾸지 않는다.
돈 많은 부하를 한 명 더 둘 참이었다.
“이유는 뻔하겠지.”
“그, 그렇습니다.”
이미 수년간 명품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지켜온 ‘고든 레지’의 입지는 지난번 축제인 ‘라이프 이스
뷰티풀’에서 나에 의해 한풀 꺾였기에,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대주주 중 하나인 그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크흠!”
“아…….”
“죄송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계획을 망치려 했던 사람을 용서해선 안 된다. 100 년의 경험상 이런 사람들은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짓밟는 게 그간 나의 방식이었으니까.
‘유감이군.’
“……죄송합니다.”
우와아아아아!
***
[ 고든 레지의 몰락! ]
불과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든 레지가 계획대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신만의 축제를 열었다 한들, 어차피 내가 이겼을 것이다.
“반유현, 레인보우.”
런칭할 뷔페 형식 레스토랑의 이름이었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어쩔 수 없네, 우리도 런칭뿐만 아니라 축제의 형식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펠리지오?”
그렇게 그들의 선택은 ‘나’였고 나에게 장소를 제공해 주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힘에 굴복하는 법이 빠르네. 이 호텔, 이 호텔은 공항부터 ‘신들의 정원’이 열리는 곳까지 그 거리에
있는 곳이네?”
라스베이거스 ‘언코크드’ 중에서도 세계적인 셰프들이 각자의 부스를 놓고 음식을 선보이는 행사는 ‘
신들의 정원’이라는 행사였다.
“하루 만에 가능할까요?”
***
[ 반유현 레인보우 ]
우와아앙아!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오스틴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자, 오스틴이 ‘언코크드’ 그 현장을 살피러
발걸음을 옮겼다.
“시작을 안 한 건가?”
“셰프들은 다 어디 간 거야.”
관광청에서 축제의 규모를 역대 최대로 벌인다는 홍보를 대대적으로 했었지만, 이렇듯 역대 최소의
사람들이 몰린 것도 신기했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시죠?”
반유현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해서 업계 내의 자신의 지위가 올라갔고, 대우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오스틴은 이런 사람들을 경계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전한다는 게……?”
“모든 호텔들이 이렇듯, 이제는 관광청에 무리한 후원, 협찬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호텔들에게 휘두르던, 가장 날카롭고 무서웠던 칼이 이 ‘언코크드’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칼을 잃었네요. 저들은.”
지배인이 가리킨 곳을 보자, 관광청 직원들과 주지사가 휑한 행사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는…….”
“네?”
“아, 아닙니다.”
“왕…… 딱 맞는 단어네요.”
***
“진짜 반유현이라고?”
그리고 그때,
“왕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셰프님께서는…… 이 모든 걸 다 생각하셨죠?”
뒤에서 거래되는 암표의 값은 단연, ‘반유현 레인보우’라는 축제의 티켓이 훨씬 비쌌지만 공식적인 값은
엇비슷하기에 언코크드 티켓을 가진 자가 축제의 장에 입장하는 것에 많은 불만을 품는 이는 없었다.
***
‘말도 안 돼.’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며 요리를 담는 모습을 보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
“응?”
그것도 살아온 배경이 달라, 그에 따라 형성된 맛의 취향을 가리지 않는 이 26 가지의 요리들의 조합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오세치 추첨식, 그리고 고든 레지의 철수가 당장 오늘에서 일어난 일이라 이 정도의 파급력을 쉽게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 그,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종도 하나 준비해줘.”
“종, 말씀이십니까?”
“어, 땡땡 쳐서 소리를 내는 종말이야.”
***
수비드(Sous Vide).
우와아아아아!
[ Duo ]
버너, 그릴, 환풍기 등등 주방에 쓰이는 각종 장비들을 맞춤 제작하는 회사로, 내가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에 몇 번 컨택이 있던 회사였는데, 호시탐탐 나와 엮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곧장 대형 기계를
준비해서 대령해왔다.
우와아아아아!
“준비한 요리는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프랑스 말로는 필레미뇽이라고도 하지요. 지방이 없는 부위다 보니,
레어(Rare) 형태의 구이가 알맞습니다. 오늘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우와아아아!
이때까지는 모두, 내가 수비드한 고기를 그릴에 굽는, 평범한 스테이크를 선보일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땡!
내가 준비된 종을 치자, 셰프들이 진공팩을 벗겨냈다.
“진공팩을 뜯는 순간, 압력 차이에 의해서 공기가 팩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겠죠. 이 시간은 진공팩 안에
같이 넣어둔 향신료와 조미료들이 고기에 진득하게 배어들게 합니다.”
땡!
치이이이익!
땡!
“저건 빼.”
“저 고기 다시 뒤집어.”
우와아!!
땡!
땡!
“어떤 셰프는 와인, 어떤 셰프는 닭 육수, 어떤 셰프는 쇠고기 육수에 디글레이징을 했습니다. 이는 모두
처음부터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그레이비 소스를 준비했습니다.”
우와아아아!
꺄아아아악!
뭐야아아!
150 명이 각각 가져온 퐁드를 소스의 베이스로 사용한다는 그 발상 자체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보신 것처럼 이 소스에는, 이곳에 있는 150 명의 셰프들이 고기를 구운 흔적과 정성을 담았습니다.”
땡!
내가 또 종을 치자, 자리로 돌아간 셰프들은 자신이 구워냈던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내기 시작했다.
***
“미쳐버리겠네. 진짜.”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150 명 각각 다른 육수로 디글레이징을 했고, 그것을 한곳에 합쳐 소스를 만드는 발상을 대체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그 맛은 또 어떠한가.
“채워주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한 요리로 만들어 버렸잖아. 가니쉬도 없이 스테이크를 이렇게 풍족하게
먹어본 기억이…….”
땡! 땡!
-라스베이거스에 확정적으로 ‘반유현 화이트’를 런칭하는 사실이 알려지자, 반유현 팩토리 내부적으로도
셰프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저는 현재, 반유현 팩토리에 나와있습니다. 셰프들을 만나보시죠!
안녕하세요.
-네, 하하하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시구요. 이 조직의 수장인 반유현 셰프가, 라스베이거스에 반유현
화이트를 더 런칭한다고 했을 때, 내부적으로 어떤 반응들이 있었었나요?
-다들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바늘구멍 같았던 반유현 화이트의 진출이 조금이나마 늘어났다는 것이구요.
실제로 몽토르게이 골목에서 ‘반유현 화이트 1’을 운영하시던 메이 셰프님과 그 팀원들이 라스베이거스
레스토랑 ‘반유현’의 총괄 셰프가 되셨고요.
이것은 반유현 팩토리의 시스템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반유현 팩토리 내부의
셰프들에게 대단한 동기를 심어주었다.
기존에 있던 반유현 팩토리도, 굉장히 큰 건물로 지었는데 이제는 그곳에 몰리는 관심과 사람들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예, 예? 다시 한번 말씀해…….”
“각, 대륙, 별로, 반유현 팩토리를 두는 건 어떻겠냐고. 캠퍼스를 동시에 다섯 개씩 올릴 만큼의 현찰은
없지만 투자도 많이들 들어올 것 같은데.”
“아…….”
“예?”
“라스베이거스에 런칭할 레스토랑들 때문에 바쁘지만. 대륙별 반유현 팩토리의 캠퍼스를 두는 것까지
동시에 추진시키자고.”
이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 대한 관심.
***
[ 반유현 - 레인보우 ]
그들이 아무리 종이에 유려한 문장들을 잘 적어봤자, 투자자들은 나의 이름과 얼굴을 보고 투자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선정된 다섯 곳이 이미 있었는데 오스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듯했다.
“아, 알겠습니다.”
***
파리의 ‘반유현 골목’, 그곳에 위치한 ‘반유현 화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간판이 참 멋있습니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라스베이거스는 대단히 화려한 도시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이유가 멋들어진 호텔들과 그에 못지않은
건물들이었다.
[ 반유현 - 화이트 ]
다섯 개의 매장, 다섯 개의 호텔 모두.
“회장님이?”
“자신들이 맨 처음 반유현 화이트를 런칭하기 위해 한 제안은 반유현 셰프님이 새롭게 받은 제안에 비하면
볼품없는 것일 텐데, 그런 제안들을 모두 거절하고 의리를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다구요. 반유현 셰프님의
의리에 감탄했고 자신들도 반유현 셰프님의 브랜드가 들어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리고 그 효과로, 반유현 화이트가 런칭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 달 각 호텔들의 객실이 모두 마감되었다.
특급호텔들이 역사에 유례없던 간판을 외부에 걸어주니, 저절로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50 명과 그들을 각각 10 명씩 나눈 팀의 교수진 다섯 명.
요리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 경험에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요리.
코스로 구성된 요리가 아니라, 한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요리였기에 그 맛이 더 중요해졌다.
“새우껍질을 갈아 넣었나요?”
“그렇습니다!”
유타. 말레이시아 국적을 가진 셰프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다년간 일한 경험이 있고, 멕시코
칸쿤의 특급 리조트의 레스토랑 총괄을 맡았던 자였다.
새우의 풍미를 위한 것인지, 튀김옷에 한층 더 바삭한 식감을 위해서인지, 재료를 쓴 이유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어…… 그, 그게.”
“아…….”
“어떤 이유로 넣으신 겁니까?”
“예! 셰프!”
“그렇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셰프!”
“입이 있는 부분부터 파고 들어가야죠. 내장이 있는 곳으로 파고 들어가 껍질을 분리하다 보니, 내장이
터져서 그 냄새가 향에 묻어나네요. 자칫하면 비릿한 향을 낼 수도 있습니다. 내장을 손질할 때, 식도는
왜 빼지 않았습니까? 식감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이었다.
***
“홍보는 완성됐네.”
특급호텔들이 간판을 세워준 덕에, 대외적인 홍보가 무르익을 시점에 내부적인 것들을 노출 시키며
라스베이거스 반유현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제안을 보내느냐는,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하는데 이번엔 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
“이런 혁신적인 기업에 이름을 얹어주는 것도 가치를 높일 수 있지.”
옥수수, 코코넛 껍질, 아보카도 씨앗을 이용해 친환경 일회용품을 생산하는 기업.
자연에 방치해도 지구를 어지럽히지 않는 물질로, 플라스틱을 대신할 소재를 개발하는 기업이었다.
초밥, 새우튀김, 전복 버터구이 등 간단한 단품 메뉴로 구성된 것들을 보고, ‘반유현 화이트’에서
수많은 일회용품들이 배출될 것을 알고 발 빠르게 제안을 한 것이었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계속해서 끼치고 있다는 것도 내 이름값을 계속해서 드높이는 일이니까.”
“소각하거나 매립해도 환경문제에 아무런 영향이 없어. 더군다나 분리수거 문화가 없는 미국에서는 이
친환경 그릇과 포크, 컵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야.”
“그렇습니다!”
레스토랑 그 점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각각의 레스토랑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였던 것이다.
“뭐?”
“맞아. 나도 보고 싶어.”
이제는 실패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할 정도로 반유현이라는 몸으로 환생한 뒤에 성공의 성공을 거듭해왔다.
꺄아아악!
반유현이다아아!
우와아아아아!
“그렇습니다.”
“오십 명 중에 단 한 명이 나가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장 내일 모아봐.”
“예? 내, 내일이요?”
이렇듯 반유현 화이트가 성공적으로 런칭했으니, 또 담담하게 다음의 계획을 실행할 차례였다.
“모아보겠습니다!”
“그래.”
***
“아니야.”
“그럼…….”
“투자 설명회는 이미 끝났어. 반유현 화이트의 성공적인 런칭, 그리고 나에게 협찬, 투자했던 기업들의
완전한 부흥. 이미 다 보여줬는데, 뭐가 더 필요해.”
또, 나에게 친환경 접시를 협찬해준 ‘바이오 팬시’라는 기업은 대기업의 투자를 공격적으로 받아 완벽한
성장의 밑거름을 만들어 놨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번엔 반유현 화이트를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그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확장
투자를 받으려는 것이니 수많은 기업들의 관심이 쏠렸다.
턱.
“안녕하십니까.”
“합리적인 시스템이라 하면 주기적인 경연, 그리고 그 경연의 방식, 팀별로 세분화된 교수진, 그리고
성적 우수자의 완벽한 기회 보장 등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반유현 팩토리가 확장되려면 그만큼의 ‘
반유현 화이트’가 필요합니다. 각 대륙별 반유현 화이트를 확장시킬 생각은 당연한 것이며, 레스토랑의
기본적 이해가 반유현 화이트의 기반이었기에 단품 메뉴를 주로 판매했지만, 이제는 그 규모까지 키울
생각입니다.”
기업은 나의 브랜드를 이용해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며, 국가는 일자리 창출 효과와
세수를 거두어들이는 것에 많은 효과를 볼 것이다.
“앞으로 세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꽤나 당당한 태도.
“내버려 둬.”
“질문하시죠.”
“이름은요.”
장내는 조용했다.
내 무뚝뚝한 말투와 표정 그 자체에 의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무시하는 겁니까!”
“당장 사과해!”
“싫다면요?”
***
미슐랭 가이드가 그쪽에 진출하지 않았고, 그들의 미식문화가 맛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든 생각은 그들의 요리 자체가 실제 ‘요리’를 문화의 하나로 향유하는 사람들에겐 생소하고 신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반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반유현 팩토리를 아프리카 대륙에 세우는 것은 문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들을 흡수하는 것은 반유현 팩토리의 다양성을 넘어서, 나 자신에게도 신선한 바람을 불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대한민국과 일본.
“반유현 셰프님 스타일을 모르고 오셨나 본데, 반유현 셰프님의 고향이 대한민국이라 한들 저희 정부를
그냥 선택하실 리 없습니다.”
“뭐 말씀들은 그렇게 하시겠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유치를 해낸 것처럼 보여져야, 그쪽 정부든, 반유현
셰프든 깨끗해 보이니까요.”
“아니요. 저희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일본에 꼭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할 겁니다. 애초에 그 나라보다
저희 측이 실력 좋고 잠재력 있는 셰프들이 많으니까요.”
일본이 총 역량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반유현이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대한민국 정부의 관광청 관계자와, 문체부 장관 등, 그들은 반유현이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몸이 편한 곳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었다.
***
나는 한 시간 뒤, 다시 연회장에 들어갔다.
“반유현 회장님, 저희는 반유현 팩토리를 금으로 세운다면, 금으로 세울 수 있는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겠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UAE 하이든 왕세자의 아버지, 세계 공급되는 석유 대부분을 주무르는 라탄도 꽤나 공격적인 모습을
취해왔다.
“예?”
“이미 예산의 규모를 정해놓고,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으니 답답하시겠죠. 이곳
어느 기업, 어느 국가도 그 규모를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일본 정부는 아시아에 설립될 반유현 팩토리를 세울 나라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그게 아니라…….”
자신들의 정부가 사소한 일로,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지 못한 것이 알려져, 국민들의 질타를 받게 될
공무원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해졌다.
***
“제가 말하는 조건의 아래 단계에 있는 제안들은 모두 한쪽으로 몰아주시고, 그 이상의 제안을 한 종이만
제 앞으로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첫째, 5 만 평 이상의 토지를 제공할 수 있나, 둘째, 시설 건축비를 얼마나 제공할 수 있나, 셋째
반유현 팩토리가 세워질 장소의 인구 밀집도와 접근성은 고려하고 있나. 넷째, 투자 이후에 경영에 모든
관심을 끌 수 있나.”
아마도 모두가 모여있던 자리에서 일본 기업을 대표해 질문한 사내를 일갈했더니,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 모두 각각 자신들이 생각해온 것보다 더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이전, 아프리카 대륙의 기업과 공무원들이 나의 태도에 반발하며 이 자리를 뛰쳐나갔던 것들을 자신들의
기회로 삼아 제안을 한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자신들의 나라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면 아프리카 대륙이
가지고 있는 신선한 문화와 인프라를 가지고 올 것이다라는 제안.
또 중동 국가들과의 밀접한 지리적 특성까지 살려, 그들의 문화와 인프라를 그나마 치안이 좋은 자신들이
흡수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이스라엘 국가의 제안은 이스라엘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의 인프라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입학서만 가지고 있다면 언제라도 이민을 허가하겠다는 방침까지 내놓은 상황.
“오셨다고 합니다.”
“하하하!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셰프…… 아니, 회장님! 회장님께서 전 지구의 모든 셰프와 요리를
품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신 것으로 생각하고 제안서를 작성해봤습니다. 아무리 큰돈이라도 목적이 맞지
않으면 움직이시지 않는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어서요.”
“준비를 많이 하셨군요.”
“그리고…… 문화. 문화의 흐름을 반유현 팩토리로 돌려 아프리카 부패 정권 밑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더
풍족하게 만들고 이곳에서 반유현 회장님께 소리 질렀던 부패 정권의 하수인들에게도 쓴맛을 보여주시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동남아 연합’이 만약에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한다면 그것을 정확히 어디에 세울지 정해 두지는
않은 상태.
앞에서는 투자 규모, 인프라와 관련된 것들은 뜻을 모았지만, 실제로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될 장소는
자신들의 나라에 세우기 위해 물밑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은 뭐…… 이 제안이 너무 폐쇄적이잖아. 아시아 전체를 품어야 되는데. 공안에 협조하는 게 투자
조건이라니…… 치워버리고.”
“그렇지, 확장성.”
그것도 반유현 팩토리의 설립 위치를 수도인 도쿄로 잡았고 셰프들에 대한 인프라도 자신했다.
일본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것을 예측한 이야기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치만 하면 일단 장땡이니까.”
“그렇다면 역시 코리안이네요.”
이 건물을 소유한 기업과 국가가 협력해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에 나선 것인데, 그 제안이 꽤나
파격적이었다.
규모가 계속해서 커져, 60 층부터 123 층까지 반유현 팩토리가 들어서는 것도 흔쾌히 승낙한다는 의사를
표현해왔다.
반유현 팩토리의 저력을 무시해서, 123 층까지는 올라가리란 생각을 못 한 건지, 도박수를 던진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면, 일본, 중국하고도 가깝고 동남아시아하고도 먼 거리가 아니야. 지리적인 위치도 최고,
인프라도 최고, 치안도 최고…… 계약서 작성하자고.”
***
[ 대한민국 셰프 열풍 만드나! ]
시그니쳐 타워와 그에 대한 확장성, 그리고 투자 규모까지 말하니 내가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장소를
고르는 것에 아무도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의 투자가 가장 파워풀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말라는 메시지까지 보내오니, 내 직원들과 대한민국 기업, 정부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컨펌만
하면 된다.
이렇듯, 서울에 반유현 팩토리가 유치된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으자, 내가 미션을 내렸던 이스라엘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 군 복무 중인 셰프들 총원 휴가! ]
“이스라엘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를 받아오자는 제안은 신선하고 섹시했는데,
저들의 급한 마음은 뭔가 빈틈이 많은 것 같아.”
***
언코크드, 그리고 반유현 레인보우 행사가 끝난 뒤에도 라스베이거스의 열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관광청도 이렇듯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이유가 오로지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우와아아아아!
짝짝짝짝
그렇게 관광청이 흔쾌히 준비해준 자리에, 이스라엘 국적의 셰프들이 모여 있었고 나의 등장에 그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쳐주었다.
아직,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의 유치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축제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수준급 셰프들만 모았습니다. 이 정도면 이스라엘, 반유현 팩토리에 교수진의 인력을
채우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우리나라, 이스라엘은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와아아아!
“무작위로 40 명을 시험하겠습니다.”
“뭐야.”
“우릴 시험한다고?”
“아, 아니 회장님……!”
“커민(Cumin)?”
“됐습니다. 다들 들어가세요.”
정확히 11 명.
결과가 같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장관님.”
“예, 예!”
당장이라도 자신의 조국에 반유현 팩토리가 유치될 줄 알았던 셰프들의 상기된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버렸다.
요시 하이카.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방문할 때에도 직접 요리를 준비한 그는, 현지에서 가장 인정받는 셰프였다.
“공관에 머물며 치열한 경쟁에서 멀어진 제가, 반유현 셰프님의 평을 받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우와아…….
이스라엘 셰프들의 존경의 대명사인 세게르 모세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하자 긴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
“메이 셰프님!”
“그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메이 셰프!”
“아…….”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이스라엘 국적의……?”
“예?”
“아니, 그 나라에 교수진으로 활용할 셰프들이 충분한가를 판단하기 위해서 이런 행사를 기획한 것
아니야.”
가뜩이나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감자로 불리는 ‘반유현 레인보우’의 총괄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헉!”
우와아아아…….
지금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기자들 많지?”
“네…….”
“감사합니다.”
반유현과 메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요리가 끝난 셰프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테이블 위에 있는 종을 울렸다.
‘……?’
“여기 계신 셰프님들 중에, 국가의 부름에 억지로 끌려오신 분 있나요? 아니면, 반유현 팩토리가 진정
이스라엘에 설립되길 바라셔서 이 자리에 오신 건가요?”
***
우와아아아!
대중들의 관심과 기자들의 움직임이 비례하는 것이라면, 이렇듯 많은 기자들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쏠렸는지 보여주었다.
“이스라엘은 파리, 서울에 이어 세 번째로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될 겁니다. 계획대로만 된 다면요.”
우와아아아!
“그 계획이 뭡니까?”
이곳에 모였던 이스라엘 셰프 대부분들이 자신의 나라에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품는 요리의 성지로 자신의 나라가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인데,
셰프로서의 삶을 사는 이들에겐 그런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했다.
프랑스의 파리,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뉴욕, 아시아의 일본처럼 미식 문화에 특화된 나라 출신의
셰프들이 그 후광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국가가 역량을 총동원해 밀어준다고 하니, 이곳에 모인 셰프들은 자신들이 국가대표, 또는 민족열사라도
되는 듯이 나의 제안을 승낙했다.
제안이라 함은 단순했다.
자신이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되지 못하더라도, 반유현 팩토리가 고국에 유치되는 것에 악영향을 주지
말자는 듯 모두 힘을 모았다.
“예, 셰프님.”
“음…… 어떤…….”
“그냥, 이런 방식의 테스트를 반유현 팩토리 유치에 꽤나 괜찮은 제안을 했던 국가를 상대로 다 해보는 건
어때?”
“그, 그게 무슨 말씀…….”
아직, 북·남 아메리카대륙의 반유현 팩토리 설립 나라는 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나라들이 한 제안은
비슷비슷했다.
경제적 지원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큰 차이가 아니었고 두 대륙 모두 땅덩이가 커서 반유현 팩토리 규모의
제한을 두지 않았었다.
“아…….”
“효율적으로도…….”
“그, 그렇습니다.”
한 국가의 셰프들을 이렇듯 총집결시키면 그 나라의 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반유현
팩토리를 맨 처음 구성할 런칭 멤버들을 컨택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
“좋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라스베이거스에 태풍처럼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규모가 기대됩니다. 투자 제안서에는 뉴욕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왔었는데, 뉴욕이란 도시 자체가 주는 기대감 덕분에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주지사께서도 바쁘시겠습니다.”
“여러모로 시끄럽네.”
***
다음 라스베이거스로 모든 셰프 인력을 동원할 나라는 어디일까.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는 와중, 이스라엘에 이어 두 번째로 선정된 캐나다 정부의 사람들은
바빠졌다.
“도대체 왜!”
동선을 조금 맞춰보고, 조리대를 둘러보고 장시간 비행에 의한 컨디션을 조절하기에도 모자란 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셰프들을 맞이하려던 정부 사람들은 뒷목을 잡았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한 나라,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완벽한 경쟁 구도에 있는 관계였다.
적어도, 공항의 비행기에 탑승객들을 내리지 못하게 할 때는 무언가 이유라도 알려주어야 할 것인데,
공항 관계자들은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며 함구했다.
[ 캐나다 셰프 군단 입국 거부. ]
***
“퉤.”
“뭐?”
미국이란 국가의 어떤 기관이 움직인 것이라면. 너무나 거대한 힘이려니, 내가 가만히 넘길 줄 알았나
본데.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캐나다 국적의 약 600 여 명이 넘는 셰프들이 공항에 계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반유현이 직접 자신을 찾아왔다.
분명, 반유현.
최연소의 나이로 미슐랭 23 스타를 휩쓸었고,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을 거절했으며, 프랑스 최고 장인을
뽑는 MOF 에서는 최초로 두 개 분야에서 수상을 했다.
-라스베이거스 내에 위치한 공항이…… 캐나다 국적의 셰프들을 내려주지 않고, 캐나다 셰프들의 요리
테스트는 물 건너갔다. 괜스레 공정성에 의구심이 든 제가…… 아니, 미국이 요리테스트를 보는
홈그라운드인 만큼, 미국 정부가 경쟁자들을 괴롭혔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렇다면 미국 내 셰프들의 갑갑함은 누가 풀어줘야 될까요?
저일까요? 라스베이거스의 총책인 주지사님일까요.
우여곡절 끝에, 공항 사장이 브라이언의 전화를 받았고 브라이언은 셰프들이 비행기 안에 묶여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예?
-그게 무슨…….
“주지사님…….”
“왜!”
“……뭐?”
“들어오시라고 할까요?”
“그, 그래.”
“이유가 뭡니까?”
“국토안보부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
우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반유현! 반유현!
셰프, 그 이상의 영향력을 휘두르는 내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힘써준 것에 대해 상당히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각 부처와 협의해 진위를 파악하니, 내가 그렸던 시나리오대로 반유혁 팩토리의 유치를 자신들의 성과로
돌리려는 몇몇의 말단 직원들이 그런 일들을 꾸며낸 것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우와아아아.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된다는 것이 완전히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었기에, 캐나다 국적의
셰프들은 부러움의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 이곳에 오신 셰프님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요리 테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아셨을 테니, 하루만 푹
쉬시고, 당장 내일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캐나다 셰프님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그리고 만약 캐나다에
반유현 팩토리가 설립된다면, 설립될 때의 런칭 멤버를 내일 뽑을 겁니다.”
북미대륙의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를 이기고, 반유현 팩토리 유치권을 따내더라도 또 다른 경쟁자가
생긴다.
바로 옆에 있는 동료들.
자신의 나라에 반유현 팩토리라는 거대 기관이 생기는 것을 바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이곳에 온 셰프들도
많지만, 아예 작정하고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되는 것을 목표로 이곳에 온 셰프들이 훨씬 많을 터였다.
“기대하고 내일 뵙겠습니다.”
***
이것저것 식재료 상태를 점검하고 조리대 위에서의 동선까지 점검한 뒤에 휴식을 취했다.
“영광입니다 셰프님.”
“제 조리복에 싸인 한 번만 해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여유롭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만 봐도, 그는 어느 주방의 수셰프 이상의 직급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여태까지 봤던 셰프들 중에 가장 여유가 넘치십…….”
“한식을 준비해봤습니다. 홍시를 베이스로 한 고추장 소스를 바른 대하구이. 단호박 무스까지 곁들여
드시면 더 깊은 맛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불순한 의도를 가진 그에게도 나에게 요리를 평가받고 싶은 마음은 또 있었나 보다.
“흠.”
“요리 대결을 정식으로 신청합니다! 반유현! 나는 당신의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어! 여기 셰프들을
평가원으로 두고! 정식으로……!”
“지겹네요.”
“네……? 어?”
요리 경력, 20 년, 30 년? 내 앞엔 결국 조무래기들이고.
나의 시간은 이제, 그 조무래기들이 징징대는 걸 받아줄 때가 지나버렸다.
“쯧쯧.”
그런 그가, 내 앞에서 엄청난 창피를 당하니 그때부터는 심사장의 분위기가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애써 관심 받아 보려는 이가 없었다.
확실히 이를 갈았던 모양이다. 유럽에서 일하는 셰프들까지 모조리 집결되었으니 그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장시간 비행, 그리고 요리 테스트, 또 장시간 비행을 해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캐나다 셰프, 요리 테스트를 마쳤다.
“예.”
“이스라엘 쪽은 어떻대?”
***
[ 이스라엘 예루살렘! 첫 공사 시작! ]
[ 또 하나의 역사의 시작 ]
그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 인력들을 흡수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를 세우는 것
아니겠나.
“하나 더 추가하겠습니다.”
“그래야지.”
***
캐나다 출신의 셰프들을 공항에 계류시켜 방해를 놓으려 했던 것이, 어찌 됐든 자신의 책임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말이다.
우와아아아아!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왔습니다.”
“그렇다네요.”
“아, 죄송합니다. 실제 참가 인원은 600 명으로 단축하라는 말씀에 저희가 미리 검토했습니다. 나머지
셰프들은 이 현장에 참관을 하고 싶은…….”
“참관을 허락했었나?”
“예! 알겠습니다!”
자신이 총 책임자로 왔기에, 나에게 점수를 따 미국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걸 유리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간 이스라엘 정부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나마 나에게 협조적이었던 몇몇 국가의 도움을 받아 기사를
뿌렸다.
“일개 기업이 난민들의 발길을 돌리는 이례적인 현상은…… 셰프님이 그간 보여주셨던 찬란한 역사에 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주네요.”
그리고 미국 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나의 영향력을 우호적 관계로 포장하기 위해 비위를 맞춘다.
“그런가요?”
이 정도 규모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를 이용해 신선한 요리들을 만들고, 그
거대한 인프라를 이용하려 했던 것인데.
***
예전에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눈덩이를 힘껏 굴려서 그 몸집을 내 힘으로만 불렸다면, 이제는 그 눈덩이가 너무 커져서 알아서 몸집을
키우고 있노라고.
알아서 몸집을 키우고 있던 눈덩이들이 서로 갈라져, 각각의 몸집을 알아서 키우는 형태라고 해야 되나.
“어떻게 이렇게나 다들…… 적극적일 수가 있을까요. 완전히 새로운 신드롬입니다. 경영학 전공자들이
혀를 내두르고, 반유현학이라는 학문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나도 이 정도는…….”
“그렇죠. UN, 유럽연합, 미국 정부까지 나서서 반유현 팩토리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데, 아프리카
정부들도 발등에 불똥 떨어졌죠. 다시 아프리카 대륙 내의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기 위해 머리 굴리고
있을 텐데, 어쩌실 생각이세요?”
“어.”
후우우우웅!
그리고 그때, 그나마 활력이 넘치는 시장을 지나는데 길거리에서 수많은 음식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
우와아아아아!
반유현!
“아프리카에서도 날 안다고?”
우와아아아아!!!
“제발요!”
“셰프님! 저희 요리 좀 맛봐주세요!”
오스틴이 내 옆에 와서 속삭였다.
“그렇긴 한데.”
계획이라면, 이스라엘에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는 것과, 이스라엘 정부가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규제를
적절하게 완화한 것과, 반유현 팩토리의 모든 것은 무상 지원된다는 것을 아프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한 언어로 모두 번역해, 아프리카 주요 도시에 그 정보들을 뿌린 것이었다.
“그, 그러네요.”
“나를 알아?”
“나를, 셰프라고 하네. 이 사람들은 내가 반유현 팩토리의 수장이자, 유명한 요리사인 줄 알고, 나에게
맛을 인정받으면 곧장 반유현 팩토리에 입학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네.”
“예?”
***
“한 명씩 가져오라 그래.”
급하게 책상과 의자를 구한 나는 그곳에 앉아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하나씩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정말…….”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은 아프리카 연합의 사과를 듣고, 그들이 이스라엘에 설립될 반유현 팩토리에 어떤
것들을 해줄지 듣기 위함이었는데, 나의 인지도를 더욱더 높이는 것은 그들과 있을 회의에서 내가 조금 더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네”
“네가 했니?”
“농도가 너무 걸쭉해.”
내 말에 순간 몸이 경직되는 소년.
“달걀이 아닌 것 같은데.”
“어, 어떻게…….”
“메추리알이야?”
“헙…….”
“녹말을 많이 넣어서 농도가 걸쭉한 게 아니라, 메추리의 알로, 달걀을 넣은 것 같은 색감을 주려고 많이
넣다 보니까 걸쭉해진 거구나.”
소년이 놀란 눈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리자,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뭐?”
“그건 아니야.”
우와아아아아!
“예?”
***
아프리카 연합.
“예수요?”
“예, 이 사진을 보시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몸을 만지기 위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손을 내미는 그림들, 성경 속에서 많이들
봐왔던 그 그림처럼 지금 이들이 보고 있는 사진도 그랬다.
“사람들이 모두 접시에 요리를 담고 줄지어 있는 걸 보면, 저 사람이 그토록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종교 이상이군요.”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이 장기간 지도자를 해왔던 터라, 고개 숙이는 법을 모르셨을 텐데, 오늘에서야
알게 되셨군요. 한 명의 요리사…… 군대나 무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한 명의 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여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이미 이것만으로도 발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 길 오시느라…….”
“네, 고생 좀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왜 그러냐고 행사장의 분위기를 망쳐놨던 이들이 무릎을 꿇곤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일으켜 세웠고 다른
쪽으로 이동시켰다.
사태라 함은 단순했다.
“솔직하셔서 좋습니다.”
[ 그의 요리는 천국 그 자체였다 ]
“정리를 좀 해드립니까?”
이들의 표정이 다시금 변하는 것을 보고, 이 현장을 정확히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제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는 그 사람들의 행복감은, 이제껏 제가 요리를 만들어준 사람들 중에서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소금, 버터와 같은 정제된 조미료나 오로지 풍미를 돋울 수 있는 재료들이 없음에도
최선의 맛을 이끌어내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요리하는 습관들이 대부분의 셰프들에게
묻어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대륙에 와서 느낀 점이었다.
“아프리카에 간접적으로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겠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적 수도라 불리는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요리 경연을 열겠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회요. 그리고 그곳에서 합격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합격증을 얻게 될 겁니다.”
이들의 문화를 흡수하고, 무차별적으로 난민들이 이스라엘로 넘어와 반유현 팩토리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을 막고,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
[ 반유현 팩토리 경연 ]
“무슨 문제.”
“뭐?”
“네?”
“아니야.”
또, 미슐랭 23 스타를 가진 셰프가 아프리카에 진출한 것에 대해서 다른 의도가 분명 있다는 듯이 나를
몰아갔다.
“무슨 의도.”
“그럼, 안 되는데.”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만들면 오히려 저들의 의혹에 기름을 부어주는 것과 같다.
매번 했던 대로.
“예?”
“아프리카 각 나라의 대표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서 이 대륙의 요리 문화가 대단한지 보여준다. 아울러,
내가 이 대륙에 진출한 이유를 밝히고.”
“아…….”
“문제 있나?”
“그, 그렇습니다.”
“후…… 저희보다 기자들도 참 바쁘겠습니다. 대중들이 셰프님께 가지는 관심은 높고, 셰프님은 맨날
충격적인 말만 뱉어대니까요. 그나마 저희는 적응이 끝나서 괜찮습니다. 당장 초대권 만들겠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열리는 축제의 규모를 판단하기 위해서 그 축제를 거론한 것이었다.
재즈, 불꽃축제, 예술축제, 종교축제…… 모든 장르를 생각해도 이 대륙의 식문화가 무시할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 나의 행보에 대한 의혹들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처음 아프리카 연합의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는, 총리, 부통령 장관급의 인사들이 주로 있었는데,
아프리카 내에 축제를 열겠다고 말한 뒤로는 각 국가의 대통령들이 직접 자리하고 있었다.
“레알라 케냐타입니다.”
내가 전생에도 그렇고 전 전생에도 그렇고 요리사로 이름을 알렸을 때, 자신들의 나라에 있는 요리사들을
나에게 보내 다짜고짜 교육을 시키라는 둥 말을 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과는 다른 성품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당연히 반유현 셰프님이 기획하신 축제가 저희 축제인 위크히어와 시너지를 일으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과 1 년 전 테러가 있었고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올해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축제를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라…….”
“나이지리아는 어떻습니까?”
무하마두 리비탄.
“예?”
***
나비효과라고,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말.
[ 전 세계 관광객들의 이목 집중! ]
물론, 이런 기사들이 나면 날수록, 내가 계속해서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온전히 신선한 요리를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것이고.
“예! 셰프!”
우와아아아아!
“그럼, 축제에 관련된 것들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만 준비하면 되나? 추첨권 또는 초대권?”
“그렇습니다.”
“여태까지 레스토랑 반유현에 예약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초대권 돌려, 현장 웨이팅을
했던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레스토랑 반유현에 결제 내역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초대권 돌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축제 자체를 홍보 한 번 더 하고.”
“예, 알겠습니다.”
“경호업체들 시간당 페이도 올라갔답니다. 괜스레 아프리카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우리는 계속 밀어붙여야지.”
“말씀해주십시오!”
우와아아아아!
“그런데…….”
술렁이는 장내.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셰프님, 레스토랑은 런칭 준비를 하는데 우리의 메뉴가 전면 취소라는
게…….”
“예에?”
***
“반유현 셰프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던 톰슨 셰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도 무언가를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혼자서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고 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물론, 이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걱정하는 건 톰슨 셰프님께서 이 상황에 심취해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까…….”
“규모의 움직임? 그 근거가 뭡니까. 반유현 셰프는 항상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퍼부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톰슨이 입에 닳도록 반유현이란 인간의 영향력에 대해 말해왔던 터라, 톰슨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개인적 감정이 깊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도 당연했다.
“미국 정부는 반유현 셰프에게 경호 인력을 동원해줬습니다. 아프리카 각국의 지도자들은 고개를 숙였고,
UN 관계자들은 적극 협조 공문을 시달했습니다. 유럽연합은 브랜드 ‘반유현’과 더 끈끈한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말수가 없던 톰슨이 유창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열하니, 호텔 내 간부들도 그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올리버와 루시앙, 반유현 초창기에 반유현이 파리에 정착하는 것을 도와준 은인이자, 어쩌면 반유현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로…… 오랍니다.”
“뭐?”
“내, 내가 반셰프가 부탁하는 건 다 도와주려고 했지만. 알잖나! 자네도. 내가 얼마나 반셰프를 아끼고
…….”
“어떡할까요.”
“역사?”
“아프리카라…… 머리 아프구만.”
“이, 이게 뭐래유?”
“차암나! 전화도 아니고, 이제는 이렇게 장문의 메일로 사람을 아프리카까지 불러?”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그려. 준비해. 아프리카 구경도 해보고 좋구먼.”
***
“아, 그러고 보니, 톰슨 셰프님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펠리지오 호텔 간부 양반들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기 어려웠을 텐데.”
톰슨은 오너 셰프가 아닌, 호텔에 소속된 셰프였기에 그 산하의 셰프들을 통째로 움직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유현아프리카 #아프리카#반프리카초대권
#반유현#초대권#나도#반유현챌린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들을 머나먼 아프리카까지 부른 본격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프리카 전 지역으로 흩어져 각
나라의 요리를 배우고 온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돌아오게 된다면 알게 될 터였다.
“예를 들면, F1 탑 레이서인 슈마흔이 이제 갓 태어난 자동차 브랜드 회사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그때였다.
“한 팀이 온 건가.”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셰프들, 하기야 나도 이 대륙에 대한 경험이 적은데 저들도 그랬을 것이다.
끼이이익!
버스가 서자, 흙먼지가 날렸고 저 멀리 버스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일 때부터 이 도시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출발할 때 너무 소란스러웠나.”
그를 일갈하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의도적으로요?”
“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기대하겠습니다.”
“예! 셰프!”
UN, 아프리카 연합의 관계자들부터, 버스가 도착한 뒤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악어고기?’
1m 는 족히 넘는 악어였다.
“내장을 제거하고 악어의 뱃속에 메추리를 집어넣었습니다. 닭과 돼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악어와
메추리의 풍미가 잘 어울립니다. 악어구이는 소금만을 쳐서 그대로 먹지만, 안에 있는 메추리는 저희가
특제 소스를 개발했습니다.”
“메추리?”
때문에 고기 특유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져 아프리카 사람들은 향신료를 가득히 넣고 조리하는데, 벤니스는
그것을 특제 소스를 가미한 메추리를 이용해 중화시키겠다고 말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기, 특유의 냄새를 없애려 지방 함량이 그것보다 높은 메추리를 이용 한다라…
….”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부족했다.
“아, 벌써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
“구도가 딱 나온 것 같습니다.”
백원종, 루시앙, 올리버, 톰슨을 비롯한 그 산하에 있던 스타 셰프들의 합류, 그리고 아프리카에 왔을
때부터 나와 동행하던 기자들은 매일 찍어내듯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국장님, 촬영 바로 준비하시죠.”
또, 연이어 이성찬이 나를 주제로 만들었던 다큐들이 연이어 대박 났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벤니스 셰프는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으로, 엄밀히 말하면 제 밑에 있는 셰프입니다. 백원종 대표님은
저를 처음 요리계에 입문하게 해준 은인이구요. 저는 어느 팀도 들 수 없겠네요.”
우와아아아아!
백원종이 이기리란 생각이 들면서도, 벤니스의 특제소스가 어떤 역할을 해줄지 몰라 나조차도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누구.”
“네, 맞아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악어 고기 더 있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쪽으로 이동했다.
우와아아아아!
“반 셰프!! 이게 얼마 만이야!”
“으, 응?”
“아, 악어?”
그리고 또 저 멀리 들어오는 버스 한 대.
[ 펠라지오 ]
-내 느낌 알지 유현아. 이거 또 대박 느낌이다.
벌써 축제가 열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 도시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는지 이 진귀한 광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B 반 중 3 팀을 이끌어, 브랜드 반유현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올리고 있는 인물인
이탈리아 미슐랭 스타 셰프 벤니스.
우와아아아아!
셰프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을 이곳 주민들도 화로 앞에서 악어를 손질하고 요리하고 있는 이들의 정체를,
어떻게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 계속해서 절정을 향해 내달리는 이 현장의 분위기는 이성찬과 그의 직원들이 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오스틴이 말했다.
원래 하려던 레시피에서 자신이 특별히 잘하는 가니쉬와 소스를 이용해 승부를 보려 했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로, 내 눈에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대중들에게도 인지도를 올리는데 이만한 자리가
없겠지. 더군다나 저들은 다 내 스승이라 불리는 셰프들인데, 저들보다 맛있는 요리를 했다고 생각해봐.”
“와……! 셰프님! 다른 셰프님들도 다들 장난 아닌데요?”
그렇게, 이 현장의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만큼, 셰프들의 경쟁심도 치열해져만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악어 요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톰슨과 루시앙 등이 듣지 않았다면 없었을 대결.
“예?”
“그렇잖아.”
-강력한 한 방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뭐 없나?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는데 여기가 한계인 것 같아,
이런 구성에는 뭐…… 미식가로 뛰어난 사람이 심사를 한다든가……. 지금 촬영되고 있는 장면에
하이라이트 없어?
***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역시 의리파라니까!”
루시앙과 올리버도.
“몸 둘 바를 모르겠네유.”
“악어 요리로 대결을 한다라…… 반유현 셰프의 스승들이자, 각 지역의 특급 셰프인 이들의 대결이 너무
기대됩니다.”
요리들은 점점 완성되어 나오고 있었고, 뒤늦게 요리를 시작한 나는, 이 악어를 이용해 무엇을 만들어야
될지 그 후보들을 간추리고 있었다.
“과연! 반유현 셰프가 어떤 요리를 선택해서 보여줄까요! 뒤늦게 대결에 합류한 반유현 셰프님은 이미,
구이, 튀김, 스테이크는 다른 셰프님들에게 빼앗겨 선택권이 별로 없을 텐데요…….”
구이, 튀김, 스테이크도 악어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소스나 향신료를 이용한다.
“향신료…….”
“카레.”
“?”
“?!”
“……카레?”
“양파의 단맛이 핵심입니다. 특히나, 카레의 향을 조금 순한 맛으로 할 것이기 때문에 양파를 최대한
오래 볶습니다.”
그때, 때마침 톰슨과 루시앙을 비롯한 셰프들의 요리가 끝났고,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고 요리를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탈리안 요리 전문가인 그가, 생소한 악어고기를 이렇게 요리한 건 그만한 노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블랙 페퍼 소스를 곁들인 톰슨의 악어 스테이크와, 레몬을 이용한 중식 소스를 곁들인 루시앙과 올리버의
악어 튀김.
우와아아!
“와…….”
“이런 일류 요리를……!”
“하하하하!”
“와 대박이야 진짜로!”
불에 구운 요리를 다시 튀겨 그 맛에 층을 만든 것이었다.
“궁금하네요.”
“음 괜찮겠네유.”
“셰프님들 먼저 드셔보시죠.”
“컥.”
나도 내가 한 요리를 입에 넣었다.
의도대로, 카레의 향은 은은하게 입안을 가득 채웠고, 그러한 배경에서 악어 고기의 풍미가 흘러나왔다.
‘악어고기로 이런 맛을 내다니…….’
충격 그 자체였다.
벤니스는 혀를 내둘렀다.
벤니스는 수저를 들고, 반유현이 만든 카레를 퍼먹는 것을 수차례 반복했지만, 그 맛의 근원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향신료로 쓰인 각각의 맛을 알고 있지만, 오묘하게 그 요리의 총체적 밸런스가 맞춰져 벤니스를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건…… 진짜 신인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반유현 팩토리의 수장, 반유현의 요리를 처음 먹어보곤,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놀랍죠?”
“알면서 대체 왜…….”
“카레! 카레!”
“카레!”
“아직 제대로 밝히지도 않았는데요.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를 만들겠다는 그의 말에, 루시앙, 백원종을 비롯한 베테랑 셰프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흠.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 뭘까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올나잇으로 놀아보자는 건가? 나도 가늠이
안되네 저 양반 워낙 유별난 사람이라서.”
그리고 그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벤니스는 이 현장에 있는 반유현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괜스레
두려워졌다.
***
[ 스타 셰프들 아프리카로 줄지어 도착! 반유현 산하의 셰프들과 합작해서 아프리카 요리들 습득! ]
각 나라로 파견 갔던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 연이어 도착할 때쯤, 나는 방영된 방송을 이용해 전
세계의 셰프들을 소집했다.
[ 미슐랭 4 스타 셰프, 오린나 “반유현 셰프님이 말한 새로운 역사…… 그 단어가 몸을 움직이게 했다.”
]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이 아프리카 각국으로 퍼져 배워온 요리들을 내가 소집한 네임드 셰프들이 터득하고,
그 셰프들이 이 축제에 참여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축제는 기획됐다.
계획대로 네임드 셰프들은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이 가져온 아프리카 요리들을 배우고 있었다.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은 유명 셰프들과의 접점을 갖고 그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경험이 될 터임에 즐거웠고.
“무, 무슨 계획인데?”
“뭔데 대체…….”
***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톰슨과 런칭을 준비하려는 제리, 파리에서 온 루시앙과
올리버 밑에 있는 셰프들, 그리고 나의 부름에 한걸음에 아프리카로 건너온 유명 셰프들.
“아프리카에 도착하고 며칠 동안,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에게 각 나라의 요리들을 배우셨을 겁니다.”
“셰프님! 대체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어떻게 아프리카 각 지역으로 갈까요? 저희가 각 지역에
팝업형식으로 레스토랑을 차린다고 한들, 사람들이 거기까지 오겠습니까?”
나는 종이를 하나 꺼내들었다.
아프리카의 지도였다.
“이곳에 여러분들이 각 나라로 퍼져, 오픈할 팝업 레스토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치안 문제가 심각한
국가는 제외되었고, 만에 하나 벌어질 상황에 대비해 각국의 군 당국과 협조했으며 경호 인력을 더
충원했습니다. 그 사실또한 대외적으로 홍보 중에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치안 문제가 해결된다 한들, 사람들이 그곳에 방문을 할 것이냐? 그것을 묻는 것
아닙니까.”
15 개의 국가에 총 76 개의 팝업 레스토랑.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이 각 지역에 흩어져 배워온 아프리카 요리가 메인 요리였고, 각각 그곳의 총괄
셰프들은 나의 부름에 따라 아프리카로 건너온 셰프들이었다.
“계획대로 됐지?”
독점계약의 형태로, 렌트카 업체를 선정한다고 공포하니 업체들은 더욱더 자신들의 살을 깎아내며
경쟁적으로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업체는 최고급 승용차로만 물량을 채워 보내기로 했으며, 어떤 업체는 기존 가격의 40%의 비율을
제안하기도 했다.
[ 알린 머스크 “반유현 셰프의 축제에 최첨단을 얹고 싶다. 최강의 요리와 최고의 기술의 합작은
어떨까.” ]
“이전에 말씀하셨던 조명회사들 중에, 에너지 효율이 좋은 조명을 주력으로 연구하고 판매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조명회사.
“에너지 효율까지 생각했다면 딱 좋네. 그 회사로 선정하고, 당장 투입해 달라고 해줘. 축제까지 며칠 안
남았으니까.”
내가 계획한 행사의 규모, 그리고 대중적인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항공사들은 또 그에 따라
에티오피아, 이집트, 가나, 등 주요 도시로의 운행을 추가적으로 편성했다.
***
그를 총괄하는 메이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그녀의 이름값과 몸값이 오를수록 그녀가
개인적으로 활용할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직업이든 그렇겠지만, 항시 배우고 발전시켜야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셰프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메이, 그리고 과거에는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였고, 현재는 ‘반유현 레인보우’에서 메이를 도와 수셰프
역할을 하고 있는 라일의 대화였다.
반유현의 전화였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고 온 김에 재밌게 놀다가.
“당연하죠! 어린 애도 아니고……!”
마침 자신의 사비로 준비한 차량과 경호 인력들도 3 번 게이트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었는데,
어째서인지 반유현은 그것까지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휴.”
“쩝. 다들 차에 타요.”
***
해가 진 저녁.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들이 많잖아요. 이렇게 야밤에 축제가 지속되고 있다고요?”
“예,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를 테마로 삼아서, 각각의 팝업 스토어 주변에는…… 보시면 아실 겁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는 없다는 듯이, 양손을 흔들며 조명을 표현한 그가, 말을 돌렸다.
“……와.”
앞서 계속 느꼈던 반유현에 대한 승부욕 때문에, 최대한 놀라지 않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했던 메이도 입을
떡 벌렸다.
그 밝은 조명 아래, 셰프들은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요리하고 있었고 그 앞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에는
행복한 표정으로 요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와아아아아!
말 그대로 축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고 있는 메이의 옆에, 메이를 안내하던 반유현팀의 직원이 다가왔다.
“참…….”
메이는 혀를 내둘렀다.
셰프, 요리, 충격적인 맛, 요식업계 영향력…… 반유현을 둘러싼 수많은 키워드들 중에서도 이번만큼은
그녀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뭐,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아니지.”
“미구엘 라이언?”
NASA, 우주비행센터의 선임 연구원으로 지구의 야간모습 자료를 인터넷 서비스와 연결시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집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준 인물이었다.
[ 미구엘 라이언 “달에 반사되는 빛, 오로라, 모든 것을 제외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불빛만을 감지하는
게 나의 목표. 밤의 불빛은 도시화, 경제적 변화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없긴요. 이걸 보세요.”
[ 미구엘 라이언 “아프리카 주요 도시의 불빛이 더 밝아진 것은 분명 반유현 셰프의 영향이 있을 것.” ]
“…….”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경영학 전공하는 학생들한테는 반유현 경영학, 반유현 이론까지
생겼다고 하는데요.”
“이 정도까지일 줄은 또 몰랐겠지.”
깊게 생각을 해봤지만, 자신도 반유현의 모든 속내를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섰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또…… 반유현이 자신을 신입 셰프나, 어린 애로 보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당시, 반유현에게 들었던 승부욕이 부끄러워져 다시금 고개를 처박은 메이였다.
***
이집트 카이로.
-나일강을 따라 발전된 이집트 문명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반유현은 나일강의 불빛을 넓게 분산시켰다.
우와아아아아!
“루시앙! 루시앙!”
우와아아아아!
꺄아악!
우와아아아!
반유현! 반유현!
옷의 소매를 걷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대단한 기대감과 설렘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건, 나조차도
즐거웠다.
우오오오와아!!
“하맘입니까?”
나를 프랑스 파리로 데뷔시킨 장본인이고, 반유현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에 혹시나 먹물이 튀길까
걱정하는 그를 이해했다.
“왔냐.”
메이였다.
***
“한 점만 먹어보겠습니다.”
“다, 단호박?”
“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에 모여든 카이로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어떤 요리가 나올지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만 갔다.
“여기가 첫 팝업 스토어야?”
“네에?”
“내가 만든 아프리카 요리를 먹고도 다른 셰프들의 아프리카 요리를 먹을 수 있겠냐고.”
“…….”
치이익!
“싫어요.”
“싫어?”
“…….”
“싫음 말아.”
“언제까지 싫나 보자.”
“비켜봐.”
치이이익!
비둘기 고기를 튀긴 뒤, 그 속에 단호박 페이스트를 바르고 산도가 높은 쪽으로 조리한 찹쌀을 넣으려고
했다.
찹쌀에 들어간 레몬을 비롯한 갖은 채소들이 비둘기 냄새를 잡아줄 것이고, 그것을 중화시켜주고 단맛을
낼 요소로 단호박을 사용하려 한 것이다.
“버려야겠네.”
“버려.”
‘호박과실파리.’
쩍! 쩍!
메이가 아무 말도 없이 날 올려봤다.
“…….”
우와아아아!
“와 진짜야!”
“와…….”
“타히니(tahini).”
***
타히니(tahini).
쉽게 말하자면 참깨 페이스트.
단호박 대신에 나는 비둘기의 잡내를 없애고, 그 비둘기의 몸 안에 들어가는 찹쌀과의 조합을 연결시켜 줄
재료로 이것을 떠올렸다.
“컥……!”
“뭐야!”
“먹었음 빨리 고기 들고 나와!”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 겁니까? 나 여기 서 있는데 먹을 수 있나요?”
SNS 라이브 방송에 의해, 내가 이곳에서 직접 요리를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 반유현
아프리카 페스티벌에 참여한 다른 관광객들도 자신이 짜둔 일정을 바꿔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우와아아아아!
“아…….”
당연하게도 내가 이번 생에 처음 꺼낸 요리였으니까.
“튀긴 이유가…….”
***
[ 팝업 레스토랑의 번호에 상관 없이 이동 중. ]
[ 효율의 대명사 반유현이 레스토랑 번호와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아프리카 대륙을 누비는 이유!
집중취재 ]
내가 이집트의 전통 비둘기 요리인 하맘을 선보인 이후로, 반유현 로드라는 단어가 생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일정만을 따라 축제에 참여한다면, 아프리카 전 지역의 요리가 골고루 주목을
받는 것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어떤 것을 알릴까요?”
“이번에 우리가 이용한 차들 다 어디로 가냐고. 뚜렷한 계획 없으면 헐값에 넘기라고 해.”
157 화. 이런 건 본 적 없을 걸 (4)
[ 노벨 평화상 후보 유력! ]
“하하하.”
그녀는 내 옆에서 내가 세상을 주무르는 과정을 모두 봐왔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식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네?”
“운 아니잖아요.”
“뭐?”
***
“아직도 의심하냐.”
이 축제의 기획은 아프리카 대륙의 요리와 맛의 신선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곳이 가진 잠재력을
증폭시켜 반유현 팩토리를 포함한 브랜드 ‘반유현’에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
“피도 눈물도 없던 셰프님이…… 요즘엔 계속 즐거운 표정을 하셔서 그래도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이 기사들을 보면 확실히 셰프님은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습니다.”
“기사들이 저한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연설문이나 대본을 작성하는 전담팀이
있냐고요.”
“그래서 뭐라 했어.”
“반유현 셰프님 프리스타일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거절했다.
“연예인 짓은 못하겠어서.”
“예?”
제리가 해야 될 것이 명확해졌다.
그래서 이 축제에서 사용되는 요리를 그대로 재연해 미국에 선보이는 계획을 떠올렸다.
“축소판이요?”
“항공편, 숙소, 경호원, 렌트카 모든 게 한정되어있는 이곳의 축제는 세계인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지만 한계가 있어.”
이 축제의 연장선이자, 이 축제와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접점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응 좋으면…… 새롭게 런칭할 레스토랑의 테마를 아프리카 요리로 해보지
뭐.”
“예에?”
***
우와아아아아!
“왔시유?”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젊은 여성이 물었다.
우와아아아-!
“그래요! 빨리 먹어요!”
이유야 단순했다.
‘후.’
158 화. 이런 건 본 적 없을 걸 (5)
“보보티(Bobotie) 입니까?”
보보티.
아직 열기가 있는 그 요리에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로 나는 그것에 함유된 고기의 종류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백원종은 풍미를 더하기 위해 고기의 종류를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만들었다.
“카레의 향이라…….”
“아니요. 맛있습니다.”
“하하하. 이거 영광이네.”
그런데,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잉?”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는 셰프들은, 요리를 예술로 보기에 이렇다 저렇다의 평을
싫어하기 마련이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뭘……. 자네가 맛없다고 했어도 기분 나쁘지 않았을 거여. 세계 최고의
셰프의 평가를 받는 게 어디야? 응? 내 기분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혀.”
그 이유야 단순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평가를 내리는 것이 자신의 권위를 깎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
‘계란은 익으면서 다진 고기들의 모양을 잡아주고 풍미를 더한다…… 그런데, 계란의 풍미가 미미했어.’
백원종도 그렇고, 대중들도 그렇고 나를 탑 셰프로 인정하지만 이 정도의 평가를 겉으로 내비치면
자극적인 기사를 써내길 좋아하는 기자들이 나와 백 대표의 사이가 안 좋다느니, 백 대표의 형편없는 요리
실력이라느니 헛소리를 내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흰살생선을 뺀다.’
백원종이 다진 고기에 으깬 흰살생선을 추가해 고기 육질의 풍미를 높였지만 계란의 존재감을 미미하게
만들었다.
요리에 들어가는 어떠한 식재료도 이유 없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에겐 계란의 존재를 지워버린
흰살생선이 맛을 한층 높일 수 있더라도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치즈 중 황제라고 불리는 파마산 치즈의 그 특유의 향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 풍부한 육류와 잘 어울린다.
설탕을 적절하게 넣어서 단맛을 살린, 오믈렛(omelet)한 계란을 얹어 오븐에 굽는 단계를 빼버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다진 고기와 갖은 향신료, 그리고 파마산 치즈를 곁들인 고기를 오븐에 굽고 오믈렛
한 계란을 그 위에 잘 얹었다.
띵!
우와아아아!
“뭐여.”
백원종이 아주 상기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그를 따르던 직원들이 놀랐고 맨 앞줄에 서 있던 관광객들은
엄청난 기대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 그러지.”
우와아아아아!
***
UN 아프리카 경제회.
“이번 축제가 역사에 남을 엄청난 민족 화합과 경제적 이득을 창출하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투자, 인프라, 시스템에 대한 것들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테니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달라고.
일자리를 만들고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때의 제안이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것이다.
반유현의 축제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저 업체들은 이곳에서 장기적으로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방법이 있긴 해.”
“BiBiQ 치킨에는 반유현 셰프님이 카이로에서 비둘기 요리 하맘과 비슷한 메뉴를…… 넥도날드에는
반유현 셰프님이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서 선보인 보보티 버거를…….”
반유현이라는 이름이라면 시그니처 메뉴로 활용하고 싶을 만큼,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셰프가
반유현이었으니까.
문제는 단 하나였다.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저희가 축제로 그들의 매출을 빼앗았어도, 축제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매출을
회복할 겁니다.”
저들은 아프리카 경제회의 권유로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와 사업을 시작했고, 이 대륙의 각 국가에 많은
경제적인 효과를 얻게 해주었으니.
“넥도날드, 아프리카 지점 전체에 ‘반유현 버거’와 같은 메뉴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요구를
서른 개가 넘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해는 한다.
당연히 나에게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된다는 강제성은 없지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봤다.
“해줄까.”
“예?”
넥도날드, bibiQ 치킨, 오미노 피자 등 모두 앞서 말했듯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업체들이다.
“그, 그렇습니다.”
“하나의 브랜드에게만 내 이름을 딴 메뉴를 내어주면 너희들이 걱정하는, 나의 브랜드 파워가 희석될 수도
있지만. 서른 개가 넘는 모든 프랜차이즈에 나의 이름을 내걸면?”“아…….”
순간 정적이 흘렀다.
“서른 개가 넘는 프랜차이즈에 각각의 색깔에 맞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를 이식해야 되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어.”
“예!”
“재밌잖아. 역대 인생 동안 해본 적이 없는 경험이라.”
***
축제가 끝나기 직전 결정한, 프랜차이즈 업체들에게 내 이름을 건 메뉴를 걸어줄 것도 개발해야 하고.
“라스베이거스에 제리가 총괄하는 레스토랑도 차려야 돼. 그리고 그 전에 제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던
축제를 축소판으로 열어야 되고.”
짝짝짝짝-!
“아.”
브랜드 ‘반유현’의 지휘급 셰프를 상징하는 검정 스카프를 제리가 무대 위로 올라와 고개를 숙였다.
라스베이거스에 앵콜로 축제를 여는 것이랑 자신들과 무슨 관계가 있냐는 듯한, 궁금증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 레시피와 이름을 건 메뉴를 제공하는 것은 저도 즐겁고 귀사의 매출 향상을 기대할
수 있어 여러분도 즐거우실 겁니다.”
최근에만 봐도, 반유현 팩토리를 유치하기 위한 기업과 국가들을 모았을 때나, 아프리카 각 국의
지도자들이 한곳에 모여 축제 장소를 논의했을 때나…….
“뭡니까?”
“넥도날드, 아시아 태평양 지사장 찰스 월런입니다. 기획하신 축제에 모든 비용을 저희가 내겠습니다.”
화끈한 게 딱 내 스타일이었다.
***
“준비들은 다 됐나.”
“그래도, 네가 1 등 했잖아.”
아프리카 축제에서 팝업 레스토랑에 방문해 도장을 가장 많이 찍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브랜드 반유현 VIP
티켓을 얻은 장본인이 제리였다.
“진짠데.”
160 화. 막을 수 없음 (1)
[ 넥도날드 연일 상한가! ]
마침, 그 레시피가 넥도날드가 지향하는 버거의 맛과도 유사하다고 느껴 그 레시피를 그대로 넥도날드에
전수했다.
도의적으로 백원종의 이름을 넣어, 그의 인지도와 명성을 올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을 나의 이름과 함께 넣어준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시아에 설립될 ‘반유현 팩토리’의 교장이자 총괄책임으로 백원종을 앉히겠다는 내
멋들어진 계획을 아직 그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에게 말하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었다.
쾅쾅쾅!
“들어와.”
제리가 들어와 내게 인사했다.
“진행상황은 문제없나.”
“……아, 그게…….”
“뭐, 런칭 계획?”
“그, 그렇습니다!”
“화제성입니다.”
“시작부터 이렇게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그 반응과 연결 지어서 곧장 아프리카 요리를 테마로 한
레스토랑을 준비한다. 재료의 질을 높이고, 조리법은 현대식으로 무장한 아프리카 요리. 너도 봐서
알겠지만, 그 대륙의 모든 요리들에는 이유가 있고 그에 따른 가치가 있었잖아.”
“고민할 게 있나. 제리,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 요리를 전문으로 해서 미슐랭 스타를 받아내는 셰프가
되라.”
“예! 셰프!”
“쓰리스타.”
***
아프리카 축제에 참여하고 싶지만 참여하지 못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셰프라면 당연히 이 축제에 참여하고 싶었을 것이니 그들이 이 축제의 현장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와…….”
심지어, 이태리, 프렌치 정통 요리만을 요리라고 알던 셰프들도 다양한 레시피와 향신료가 가미된
아프리카 요리에 새롭게 눈을 떴다.
“이, 이건 혁명이야!”
대중적으로 쓰이는 재료나 조리법들이 아프리카 요리에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쓰이는 것들이 많았을
테니까. 나는 그것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더 신선하고 충격적인 요리를 만들어냈다.
“왜.”
오스틴의 말은, 저들 중에는 순수하게 요리 자체를 공부하는 셰프들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셰프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만 한 번 보시겠어요?”
[ 반유현-그린, 그 비법 공개! ]
이번 생은 그 정도가 심한 것도 사실이었다.
‘반유현’, ‘조리법’이라는 단어만 붙여도 꽤나 쏠쏠한 조회수가 나왔기 때문이었는데, 오스틴의 눈에는
카메라를 들고 요리를 맛보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적는 셰프들이 그렇게 보였나 보다.
“예?”
161 화. 막을 수 없음 (2)
“정말 가능하시겠습니까?”
…생략.
“예!”
“없습니다!”
“메이.”
“예! 셰프!”
“없습니다 셰프!”
“없습니다 셰프!”
“없습니다!”
“그럼 됐어.”
-기업
-방송국
-봉사단체
-광고
-셰프
-팬
…“각종 단체, 조직, 개인들에게 온 메일을 분류한 카테고리입니다. 방송국 분류를 보시면, 현재
셰프님께서 구상하신 아이디어를 방송국 측과 협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각종 온라인 매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반유현 레시피’, ‘반유현 비법’, ‘반유현 맛의 비밀’, ‘
반유현 조리법’ 등…… 내가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은 가짜 정보들을 모조리 청소할 수 있는 계획.
그 방법으로 오스틴은 우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보다 방송사를 직접 이용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내 이름 앞에 줄 선 방송사가 몇 갠데…….”
“예! 셰프!”
***
“나…… 이런 참 나!”
“흠.”
“그래도 이건 기회 아닙니까? 아무 방송사도 반유현 셰프의 제안에 쉽사리 응답하기 어려울 겁니다.”
더군다나 이전에 반유현과 좋지 않은 관계를 맺었던 방송사 특성상 노골적으로 어떤 이익을 따르는 것
같이 사람들에게 보여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라스트 테이블’을 만들어 FOX 사를 갑질 방송사를 만들어 몰락게 한 PD 와는 다르게, 확실히 반유현을
가까이에서 봐왔고 그를 조금이나마 연구해봤던 PD.
반유현이 내건 조건처럼 PD, 작가, 각 분야의 스텝들, 그리고 장비까지 모두 내어주는 꼴이 대중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을 터였다.
스티븐은 답답했다.
그가 내건 조건에 의하면, 대중들에게 비치는 방송사의 이미지도 그렇고 당장의 수익이 나진 않을 테지만
분명 결국엔 엄청난 이득이 될 것이다.
천천히 생각해보고 결정할 때쯤엔 세계 각국의 방송사들이 반유현에게 더 큰 것들을 내밀며 제안을 할
테고, 그럼 때는 이미 늦은 것이라 생각했다.
***
[ 반유현 TV 개설! ]
채널만 만들었음에도 이렇듯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었던 건…… 내가 전 세계 수많은 방송사들에게 제안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정식적이진 않지만, 당장 동영상 촬영과 편집을 문제없이 해낼 직원들을 뽑아놨고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또 뭐야…….”
“도통 연락이 되어야죠. 그렇게나 유명한 셰프님인데, 전화를 제가 몇 통이나 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방송 장비, 구도, 분업 등…… 모두 형편없네요. 제가 총괄해서 컨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기회를
주시는 게 어떻겠어요? 제 커리어나 스펙이라면 아실 테고…… 제게 오는 이득은 필요 없습니다. 반유현
셰프님 다 가지세요. 저는 그냥 반유현 셰프님의 개인 채널에 함께했다는 것만 있으면 됩니다.”
162 화. 막을 수 없음 (3)
채널 정보에 반유현의 특별한 레시피를 공개하겠다 적어놓았더니, 구독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졌다.
“됐어.”
내 생각은 달랐다.
“본부장, 국장, 승진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고작 내 우튜브 채널을
관리하겠데. 물론, 지금에서야 또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아 내 채널이 성공하리란 것이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는 그 전부터 가치 판단을 똑바로 한 거야.”
“예! 알겠습니다.”
***
[ 반유현 - 레인보우 ]
[ 반유현 - ? ]
우와아아아앙!
우와아아아아!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던 축제, 그리고 그것을 축소판으로 라스베이거스에 가져왔던 축제, 그리고 각종
단체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그래서 아프리칸 파인다이닝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아프리칸 레스토랑이 미슐랭 스타를 얻은
곳은 전 세계에 없었다.
그 메뉴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내가 대충 언질을 줬는데 제리는 그것들을 모두 정리해 완성시켜 놓은
상태였다.
매번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마다 그랜드 오프닝이나, 축제를 열었던 나였기에 제리는 그에 버금가는
퍼포먼스를 원했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홍보는 없어.”
이미 런칭 그 자체로 기자들은 기사를 써 댈 것이며, 대중들은 SNS 에 신나게 내 사진을 포스팅할 것이다.
“예, 예……?”
“대중들, 그리고 셰프들, 그리고 이 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충격을 선사해야 될
숙명을 갖게 된 거야.”
“이름은…….”
“핑크.”
그냥 단순한 작명법이었다.
***
스티븐 리는 레스토랑 런칭이라는 중요한 행사와 자신이 기획하고 촬영한 동영상 런칭이 겹쳐 그 빛을
발하지 못할까 봐 일정을 뒤로 미루겠다고 전했다.
“Wow!”
163 화. 막을 수 없음 (4)
“방청객들이 있어야 리액션이 있는 것 아닌가? 우리끼리 요리하고 맛있다고 한들,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자신의 요리를 나에게 가져온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인 자신과 자신의 요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나아가 반유현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미 수많은 프랜차이즈 창업주들과 각 요리의 문화재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분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장인이 스튜디오에 찾아왔고, 내가 그의 요리를 맛보고 평가하며 더 발전시켰다 한들, 그 발전된 요리를
먹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와……!”
오스틴이 말했다.
“겨, 결국 이 채널을 꾸준히만 이어가서, 수많은 요리사들이 셰프님을 찾아오게 된다면 그들의
레스토랑에 셰프님의 손길이 닿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셰프님은 세계적으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셰프님의 손길이 닿은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고…….”
“그래, 그만해.”
***
우와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지금 내가 보는 장면이 그랬다.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마다 다운되어버리니, 문제가 많습니다. 개발팀에서 조속히 해결한다고 합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충만한 나마저도, 나를 사랑해주는 고객들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풍경이었다.
“감사할 따름이야.”
바로 건너편 메이가 총괄하고 있는, ‘반유현-레인보우’의 손님까지도 끌어올 것 같은 인파였지만,
오히려 ‘반유현-레인보우’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우와아아아아아!
“준비했던 코스 A, B 둘 다 가져와.”
정확히는 제리가 나와 깊은 공감대가 있고, 제리를 따르는 이들이 제리와 깊은 공감대가 있는 것이지만.
내가 이번 생에도 그를 찾은 이유였고.
“이 앞에 자네들 요리를 먹으려고 서있는 사람들 봤지?”
예! 셰프!
***
카오스카리.
내가 카레라는 분야에 정통하지 않더라도 요리는 맛이 우선되는 것이기에, 이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요리를 나에게 내밀 수 있는 것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반유현 포스 보소!!
그때 이미 구독자 75 만을 넘어섰다.
164 화. 막을 수 없음 (5)
그중에서도 아버지, 할아버지를 따라 가문 대대로 비법을 전수하고 발전시킨 집안의 요리는 내가 먹어봐도
맛이 있었다.
몇 번째 삶이었나.
더군다나 일본은 미슐랭 스타가 가장 많은 나라로, 그 나라의 모든 맛집을 섭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셰프가 무슨 말을 할지 핵궁금……!
-ㅋㅋㅋㅋㅋㅋㅋㅋ
-간다아아아!
-먹방도 해라 반유현!!!
……
“흠.”
-뭐야!! 만족한건가?
“맛있네요 역시…….”
두말할 것 없는 맛이었다.
-저 집 장사 대박 나겠네.
-뭔데!!!
-허걱스.
내가 그를 보곤 아무 말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형 카레의 성분이라 함은, 팜유입니다. 코코넛 기름이라고도 불리는 기름을 카레 가루에 섞은 다음
뭉쳐 놓은 것이죠.”
“기름으로 뭉쳐 놓은 카레는 고소한 풍미를 담습니다. 더군다나 다이켄 집안의 특별 레시피로 코코넛
기름을 만들었을 테고, 아울러 카레 가루 또한 특별 레시피로 만들었을 테니…… 그렇게 뭉쳐진 고형
카레는 강력한 맛을 내겠지요. 그런데 그 기름 덕분에 베이스가 되어야 할 양파의 단맛이 너무
적습니다.”
-소매 걷었다!!!
-ㅋㅋㅋㅋㅋ반유현의 소매 걷기 스킬.
-레전드…….
우튜브 플랫폼에서는 구독자 10 만에는 실버노트, 100 만에는 골드노트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수여해
주는데 10 만의 실버노트를 받기도 전에 골드노트까지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었다.
“대부분 카레 집들은 양파를 볶아서, 단맛을 최대한 낸 다음 그곳에 육수와 각종 야채, 그리고 카레를
넣습니다.”
“!”
“미슐랭의 맛은 그렇습니다.”
후우우욱!
“아…… 그 방법은…….”
-으악! 안돼!
-어디가!ㅋㅋㅋㅋ
-광고라도 있나?
***
잠시 후 뵙겠다는 말을 했지만.
-아, 아니…….
전 세계 지점에 같은 맛을 보낼 수 있다.
-레알 인생 카레였음.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 중에서 전 세계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것은 미슐랭 30 스타를
모으는 계획에 중요했다.
오세아니아 대륙에는 아직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되지 않아, 다른 대륙에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하는 것보다
좋은 효율을 낼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예. 알겠습니다.”
***
‘반유현-레인보우에서는 별을 받지 못하니까.’
새로운 요리들을 계속 개발해내고, 대중들의 반응을 빠르게 얻어 낼 수 있다는 뷔페식 레스토랑의 장점과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 내에 나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라스베이거스에 하나 더 런칭 준비한다.”
모든 건 내 머릿속에 있다고.
***
“일식 정통 코스요리.”
일식.
“와……!”
“여러분들은 이미 반유현 팩토리라는 기관에서 충분히 실력을 검증한 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계속된
테스트를 거쳐 상위의 반인, A 반을 차지한 분들이니까요.”
내가 처음 이 몸으로 환생하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절, ACK 라는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부터
안면이 있던 윤종혁.
“대단하십니다.”
“윤종혁 씨도 고생 많이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일식 단품 메뉴와 코스들로 구성할 겁니다. 정통 일식은 칼질을 하는 것조차 맛에서 차이가 날 수 있는
아주 정교한 요리입니다.”
숙성회를 만드는 것부터, 그 숙성회를 썰어내는 결이나 속도에 따라 질감이 달라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헤드 셰프 또한 뽑을 겁니다.”
***
나의 부름에 파리에 있는 반유현 팩토리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단숨에 날아온 셰프들의 역량을 선별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던 도중, 일단 이 사실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 일식 요리의 끝 보여주나! ]
한 주방을 이끄는 리더가 세 명이라는 것은 상당한 비효율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그들을 따르는
셰프들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반유현의 이름을 업었지만, 검정 스카프를 매느냐 못 매느냐가 달려있었기에, 이들도 이들을 따르는
셰프들만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교수진들을 따르던 셰프들도, 자신들의 교수가, 헤드 셰프를 맡았으면 좋겠다는 기대의 눈빛을 쏘고
있었다.
일정이 빠듯하다.
“윤종혁 셰프님, 저희에게도 그 고민을 말씀해 주십시오. 당연히, 저희도 윤종혁 셰프님께서 헤드 셰프를
맡아주시는 게 마음 편하지 않겠습니까.”
또, 자신들을 이끌어준 교수가 헤드 셰프가 된다면, 주방 내 요직을 차지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말라는 반유현의 말을 따랐을 때, 윤종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
“……괜찮을까요.”
“예?”
“셰프님, 이게 웃을 일인가요?”
“귀엽잖아.”
“귀여워요? 진짜로 윤종혁 셰프가 셰프님의 인지도나 명예를 깎아내리려고 작정한 것이라면…….”
그럴 리가 없었다.
[ 그가 내부 고발자로 나선 이유는? ]
-아…… 윤종혁 셰프! 유럽, 올해의 젊은 셰프의 랭크되기도 했고요, 한국에서는 미슐랭 스타를 가진
레스토랑의 수 셰프로도 있었고, 요리 공부를 꽤나 많이 한 엘리트…….
-네 대단한 엘리트 셰프입니다. 학교도 그렇고, 그가 근무했던 레스토랑들의 스펙도 그렇고요. 더군다나
반유현 팩토리에 교수로 들어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10 명의 셰프를 반유현 팩토리 A 반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입니다.
-영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윤종혁 셰프는 반유현 셰프의 요리 실력에 대해 상당한 의심을 품게
만드는 발언들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발언인가요?
-아……! 대체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 의도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게 없지만, 수많은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의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한 것
아닐까요?
수많은 의심들.
그런데 그때,
-아…… 지금 방금 또 연락이 왔습니다.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도 우튜브 채널을 개설했다고 하는데요. 첫
동영상의 제목이 ‘반유현 요리 그대로 따라 하기’라고 합니다아아아!
“흠.”
[ ‘반유현’ 레스토랑과 기업, 팩토리까지 모두 세무조사 해야… 정경 유착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 높다.
]
“이참에 싹 다 거두어버릴까.”
조금 더 뜸을 들여 볼 생각이었다.
***
세 명은 그제 서야 고개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셰프님…….”
순간 놀란 듯이 나를 바라봤다.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하겠습니다!!”“
***
펠라지오 호텔.
“아마…… 반유현 셰프는 그것까지 생각했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결국 반유현이 이깁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핵폭탄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67 화. 세계화는 끝났고 (3)
외부에서 나를 깎아내려 했던 세력은 대중들에게 무시와 질타를 받아 사라져 없어지는 현상이 당연했는데,
이번엔 꽤나 그 파급력이 컸었다.
-이번엔 뭔가 진짜 같은데?
“찰스 레버를 주축으로해서 반실모라는 곳에서 공식적으로 우튜브 채널과, SNS 계정을 만들었는데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댓글 창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내 팬층들이 반실모의 SNS 와 우튜브 채널에 모여들어 공격을
강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로 인해 했던 경험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신선했을 테니까. 사람들은 그랬던 경험이 가짜라는 게
너무도 싫을 테지, 그래서 다 됐네.”
“예? 다 되다니요?”
***
“라이브로 해.”
“예?”
[ 나 의심한 사람? ]
영상의 썸네일로 내가 오른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나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하기 시작했다.
-와! 반유현이다!
매번, 나를 건드린 놈들을 절대 봐주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아는 팬들이 이번에도 그 시원시원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듯, 댓글창을 채웠다.
-ㅋㅋㅋㅋ와 역시 반유현!
-잘못됐죠~ 가만 두질 않죠~
“그리고 반실모? 여하튼 그 모임에 가입해서 왕성한 활동을 해주신 셰프님들의 명단과, 그 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명단들도 다 뽑아 왔습니다.”
정확히 그들과 똑같은 요리를 만들어 맛의 우위를 점하고, 내 요리 실력이 거품이 아님을 쉽게 증명하는
방법 아닌가.
***
“그,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반유현의 기사였다.
라스베이거스 호텔 총회.
“당신이 어떻게 알아! 반유현 셰프를 만나봤어? 기사만 보고 카더라 하기는…… 크흠!”
“반유현 셰프님을 그렇게밖에 모르니까 여러분들이 브랜드 반유현 유치에 실패하는 겁니다. 반셰프님이
어딜 봐서 친분으로 사업을 진행하시는 분입니까? 당연히, 같은 조건이면 저를 선택하시겠지만, 우리는
이미…… 당신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
“하…….”
첫째로, 그들이 한 제안이 그랬고, 둘째로는 이렇듯, 그들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게끔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 알아서였다.
“톰슨 셰프님이지.”
“그럴 것 같습니다.”
“위치는.”
“펠리지오 호텔의 최상부, 원래는 호텔 vip 들이 와인과 위스키를 즐기는 공간인데 ‘반유현’을 위한
공간으로 싹 다 바꿔버린다고 합니다.”
“바로 시작하자.”
“블루 멘탈이나, 찰스 레버와 관련된 이름을 아무것도 올리지 마. 오늘부터 입에도 담지 말고, 우리는
‘아무개의 아무개 요리’라고 선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요리를 공짜로 제공하면 문제없잖아.”
“새롭게 런칭될 레스토랑의 위치는 펠리지오 호텔로 선정하고, 아직 아무한테도 알리지 마.”
***
앤디쇼.
“제가 섭외를 나섰을 때, 이미 업계에 소문이 났는지 몇몇 대형 기획사들이 연락을 줬습니다. 자기네들
회사에 있는 스타들을 활용하라고요.”
“예? 그럼 앤디 릭터…… 저분을 섭외한 게 아니라, 본인이 반유현 TV 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에 따라
출연하신 거예요?”
“와…….”
“안녕하십니까아아! 앤디 릭터입니다!!”
-엥?
-실화임?
“네, 하하하하. 맞습니다. 저 맞고요. 오늘! 또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하고 싶어서 이렇게 나왔습니다.”
앤디 릭터의 얼굴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영상을 클릭하게끔 만드는 썸네일에 비치자 실시간 시청자 수가
배로 뛰었다.
우와아아아아!
나도 토크쇼를 비롯한 방송에, 뚜렷한 목적이 없으면 나가지 않는 것처럼 앤디 릭터도 웬만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 둘이 카메라 앵글에 함께 나와 있는 투 샷은 사람들에게
꽤나 충격인 듯했다.
-???
-뭐가 최상층임?
-뭔데, 이벤트임?
-ㅋㅋㅋㅋ 와! 찰스 레버 셰프의 요리 하는 듯.
-참교육 갑니다!!!
-ㅋㅋㅋㅋ 저 표정 봐 진짜야!
-ㅋㅋㅋㅋ우와!!!
-뭐, 뭐야!
***
우와아아아아아!
우아아아아아!
셀 수 없이 많이 모여있는 사람들.
삐비비비빅!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최고의 요리로 보답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이 환호했다.
찰스 레버가 런던에서 운영하는 미슐랭 쓰리스타의 레스토랑은 정통적인 코스를 따르지 않는다.
“내가 찰스 레버의 음식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 요리들이 그의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것이라 알
수 있어.”
“예, 셰프.”
“마늘의 풍미를 입히는 것이 핵심인데, 오렌지 향도 살짝 곁들여.”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겐 각각 찰스 레버의 레스토랑에 나오는 요리를 지정해주고 유의할 점에 대해서 집어주었다.
“마츠노 셰프님은…….”
그녀가 찰스 레버의 레스토랑에 방문할 시간은 당연히 없었기에, 인터넷을 통해 찰스 레버의 요리에
사람들이 맛에 대한 리뷰를 남긴 것을 보고 이미 그 조리법과 레시피들을 안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셰프로서 훌륭한 실력을 갖췄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눈에는 한계가 보였다.
자신이 그랬듯이, 나도 인터넷에 올라온 사람들의 리뷰로만 조리법을 생각했을 터인데, 그 요리의 맛을
미세하게나마 올릴 수 있는 발전적 방법을 가져온 것에 대해 놀란 눈빛이었다.
“어떻게…….”
“닉 셰프님.”
“예! 셰프.”
“닉 셰프님은 중국식 옥수수 온면인데, 앞서 먹었던 요리들의 멋진 마무리의 역할까지 해주셔야 합니다.
다시마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말씀드렸으니, 염두에 두시고요.”
“예! 셰프!”
“긴장합니다. 지금부터.”
“예! 셰프!”
***
-개부럽다진짜!ㅋㅋㅋ
-잡았다 요놈!ㅋㅋㅋㅋ
-찰스 xx 의 요리 아닙니까?
생방송 촬영의 시청자수가 80 만을 돌파했고, 그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려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요리에
대한 평가가 필요했다.
“세계적인 요리 칼럼니스트이자 ‘미식의 길’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만드신 아니, 모리아 작가님!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저 아저씨가 누군데ㅋㅋㅋ
애시 모리아.
“아니요. 라스베이거스에서 여행을 하는데, 우리 아들놈이 우튜브에서 반유현 셰프님을 봤다고 합니다.
하하하하.”
“이거 대박인데요?”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
아무리 애시 모리아가 권위적인 평론가 일지라도 ‘반유현’, 나의 요리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터였다.
그런데, 그때.
“허, 뭐야 이건?”
주방 밖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애쉬 모리아.
‘의심을 했었는데.’
미슐랭 7 스타를 가지고 있으며 일식에 일가견이 있는 마츠노는 당연하게도 자신의 일식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반유현의 조언을 듣고는 세세함에 혀를 내둘렀었다.
‘이리를 감싸고 있는 근막……. 그것을 남기는 양까지도 반유현은 조절을 하는 건 그와는 달라…….’
그랬던 반유현의 말이 맞았다는 사람들의 반응들이 홀에서 주방으로 쏟아져 들려오고 있었다.
‘그가 말한 모든 게 맛에 구현되었어…….’
‘저 인간이라면 정말로…….’
***
“달짝지근한 계란, 그리고 폰즈소스, 그리고 터지는 복어 이리의 고소함과 알싸함……. 그리고
아카오로시(あかおろし)…… 이 미친 조화는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쳤나 보다 진짜.
“이리의 막을 이렇게 살려둔 요리는 처음입니다. 덕분에 순두부처럼 부서지기보다는, 푸딩? 약간의
탄성이 있어 계란찜과 이리 구이를 입에 오래 머금을 수 있고, 와……! 아주 별미네요.”
-마츠노?
-마츠노가 누구야?
“아아……! 그렇군요. 반유현 셰프님의 요리가 아닌데도 이런 맛을 내다니. 마츠노 셰프님을 실제로 만나
뵙고 싶습니다.”
우와아와아아!
***
[ 반유현에게 완패. ]
[ 누가 누굴 의심하나 찰스 레버. ]
-ㅋㅋㅋㅋ 개맛없대.
-반유현한테 까분 자의 최후.
그들이 나를 또 물기 시작했다.
“대처하지 말까요?”
미국 문화의 중심지라 불리는 뉴욕, 라스베이거스와 대등하게 미식의 도시라고도 불렸던 그곳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완전히 라스베이거스로 향하자 들고 일어난 뉴욕의 셰프들이었다.
“예?”
“왜, 못 믿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셰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진짜인 줄 알고 대단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는 셰프님을 비꼬거나…….”
“나도 알아.”
그러나,
레스토랑의 맛이야, 당연히 내가 메뉴 개입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할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었으니까.
“반유현을 따라 최고의 맛을 구현하는 셰프, 그런데 인기도 뒤처지지 않는 셰프. 그 사람이 새롭게 런칭
될 레스토랑을 맡는다.”
-반유현 (93.2%)
-가타무라 마츠노(2.3312……)
-윤종혁(2.3223……)
-닉 아델린(2.1……)
“이게…….”
내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그들의 우위를 소수점으로 따져야 될 만큼.
***
[ 반유현 - 퍼플 ]
“예상외로 그렇습니다.
소수점 둘째 자리, 미미한 수로 헤드 셰프의 자리를 놓친 이들은 마츠노를 헤드 셰프로 맞이해 적응했다.
“일식 정통 코스요리, 계절마다 메뉴가 다르겠지만 종류가 많지 않아서 대부분 생각하는 게 비슷할 거야.
그래서 숙제를 내려줬으니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생선의 별미인 부위와 그것을 다루는 법, 또는 조리법은 오랜 시간을 지나 완성되어 왔기에 더 뛰어난
신선함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도쿄, 교토, 오사카, 파리의 뒤를 이은 도시가
뉴욕이었다.
파리, 런던, 라스베이거스 그 다음으로 미슐랭 스타가 가장 많은 일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 몸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 사소한 외교적인 문제로 시류를 탈 수 있는,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배제했다.
‘참나.’
요리는 오로지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 내 이름에 따르는 브랜드 벨류 또한 맛에 개입해서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라스베이거스에 미슐랭 3 스타를 보유할 레스토랑, 하나는 제리가 운영 중이고, 하나는 마츠노가 런칭
준비를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다음의 도시로 뉴욕을 고른 것이다.
일명 뉴욕 셰프 연합회.
찰스 레버의 몰락을 보면서도 나를 건드린 건, 그만한 ‘수’가 있다는 것인데 어차피 나에겐 큰 의미가
없는 것일 테니까.
***
“반유현 셰프ㄴ…… 아니, 반유현 셰프가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부동산들과 컨택을 했다고합니다.”
사심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셰프들이 있는 이곳 회의장.
“다시 이전처럼, 건강하고 숭고한 예술의 가치를 좇는 생태계를 만들 셰프! 반유현을 내쫓읍시다,
우리!”
“예? 협조 요청이요?”
라스베이거스, 파리, 오사카 등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도시들은 이렇듯 셰프들이 뭉쳐있는 조직이 있다.
“군기 교육이요?”
***
뉴욕 셰프 연합회 사무국.
“냄새가 나는데.”
“무슨 냄새요?”
“원래, 반유현은 자신을 모함하거나 깎아내린 세력을 무시하지 않아. 어떻게든 되갚아주거나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부러트려 놓지.”
“무슨 일이야?”
“무슨 공문.”
수많은 레스토랑들이 뉴욕 진출을 위해, 협회에 문의를 했지만 이렇듯 표정이 찌그러진 것은 처음이었다.
“삭제해.”
“예! 삭제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입혀서 뉴욕 요식업 사수를 하겠다는 의지는 굴뚝같았다.
***
“발광하네.”
모든 게 예견된 수였다.
“예?”
“그게 무슨 말씀…….”
그래서, 더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 내놓으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 그렇습니다.”
사실 협조 요청을 보낸 것은 미끼였다.
“망하는 거지 뭐.”
***
그에 대한 답은 100 년 동안 찾지 못했다.
[ 뉴욕 셰프들 파업 선언! ]
[ 셰프 연합 소속의 한 셰프, “요식업 생태계를 망치는 건 반유현이 아닌,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알량한
우두머리, 또는 그를 따르는 조직. 그것을 도려내려 우리는 움직인다! ]
일명 반유현 지키기.
“그러면 내가 나서야지.”
“예, 셰프.”
-월드 셰프 크루.
***
C 반의 하위권 팀이나, D 반 그 아래로는 아무리 승급전을 잘 치른다 한들, A 반으로 갈 가능성이 없었지만.
자신의 브랜드가 승승장구하는 것이, 반유현 팩토리에까지 내려가 선의의 경쟁을 일으키는 것.
-하필, 레스토랑 런칭을 앞둬서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친 경쟁은 어렵게
만들어 놓은 선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제가 파리에 방문해 정리를 할 때까지.
승급전을 미뤄두세요.
“와…….”
“뭐지.”
반유현 팩토리의 경영진과 간부들은 반유현의 꼼꼼함에 고개를 좌우로 젓는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뉴욕에 새 레스토랑을 런칭한다고 하시니…… 저희 반유현 팩토리가 또다시 부흥하고
있긴 하지만…….”
“세세한 것까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직접 통제하시는 분인데, 이런 분이 현재의 자금난을 반드시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자금난.
대부분 경영학을 전공한 이들은 반유현의 행보에 대해 의심을 품었지만, 그가 또 이 문제를 해결하리란
믿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우려했던 문제들이 터지기 직전 상황이라 느끼기에, 입 밖으로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 저것 자본을 받아들이다 보면, 지금처럼 반유현 셰프님의 불도저식? 막가파식? 행보를 할 수
없다고 웬만한 투자처들은 쳐내고 계십니다.”
사업확장에 필요한 자금들은 대부분 브랜드 ‘반유현’ 이름으로의 대출, 반유현의 개인 대출 등 은행의
돈을 끌어다 썼다.
물론, 지금 이들이 말하고 있는 자금난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높은 확률로 앞으로 당연히
벌어지게 될 일에 대해 우려를 하는 것이었다.
“매출의 성장속도가 반유현의 비전을 못 따라가는 것인데, 그런 기업들이 무너지는 건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이 봐왔던 터라…….”
잠시간의 정적이었다.
***
크게 형성된 파도를 타고 인생 최대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 전력질주했을 뿐인데 현실적인 문제로
직원들이 걱정이 쌓인 모양이었다.
“돈 걱정 할 때냐 우리가?”
“아, 아닙니다!”
이 몸이 스스로, 돈을 번다고 마음먹으면 왕창 벌어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월드 셰프 크루.
“마음…… 이죠.”
뉴욕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셰프들이 오른팔에 검정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이 사건을 나의
레스토랑을 런칭하고, 세계적인 내 입지를 한 번 더 쌓는 것에 이용하고 싶었다.
“네…….”
“싹 다 흡수해야지.”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반‘s 키친”
“반스 키친이요?”
“어. 가맹점.”
***
뉴욕 소재의 대부분의 셰프들의 오른팔에,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실력으로 성공을 이뤄낸 열정을 상징하는
검정 스카프를 둘렀을 때.
“공장…… 말씀이십니까?”
“아, 가맹업주는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어 매출을 올릴 수 있고,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투자금 없이 현금 자산을 벌어들일 수 있고…… 최강의 사업인 것 같습니다.”
[ 반‘s 키친 : 알덴테 ]
라고 바꾸는 것이었다.
[ 유진이네 반찬가게. ]
10 평 남짓한 조그만 반찬가게, 그 외부의 휑함은, 내가 이 가게를 수많은 손님들로 북적이게 만들었을 때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엑!”
유진이네 반찬가게.
나는 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바, 반유혀……언?”
“네, 안녕하십니까.”
“헤……엑!”
당연히 나는 ‘반`s 키친’의 시작을 내 우튜브 채널인 ‘반유현 TV’와 함께하려고 했었다.
구독자가 300 만 명을 넘어버린 내 우튜브 채널에 출연함과 동시에, 나와 엮이는 것 자체로 수많은
손님들이 찾아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10 년째 인연을 이어오던 단골손님들이 불편해할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단골이라…… 이게 단골 분들 명단입니까?”
***
‘반스키친’의 가맹 1 호점으로 선정된 이유진은 자신의 인생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정말로 3 일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국까지 포함해 스물두 가지의 반찬이 있었는데, 나는 그 모든 반찬들을 맛보고 레시피를 수정해주었다.
셰프라면 자신의 비법, 경험, 신념이 담긴 메뉴를 없애는 것에 반발이 있을지도 모르나, 이유진은 내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엥? 반유현이 저길 왜?
-이모네 집인가?
화면의 오른쪽 위에 ‘반`s 키친’ 이라는 글귀가 붙어있었고, 사람들은 그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반스키친이 뭐야.
-또또 무슨 프로젝트냐ㅋㅋㅋㅋ
-유현이 형 진짜ㅠㅠ
레시피를 수정, 보완해주고, ‘반유현’, ‘반`s 키친’이라는 이름을 빌려줄 것이며, 당연히 공짜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건가요?”
“돼지고기 계란 장조림.”
이 몸에 이 요리들을 먹은 기억들은 있지만, 세세한 맛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내가 소지한 미슐랭 23 스타의 레스토랑 중 한식과 관련된 레스토랑의 비중이 작기 때문이었다.
사실이었다.
비빔밥, 불고기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그들의 식탁에서 오르고 내리는 이 반찬들을 내가
먹어봤을 리 없다.
또, 미림을 추가했다.
물론, 별로 대단한 건 없지만 고기를 쪄내고 양념장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부터 그녀가 느끼기엔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고기를 간장에 요리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구울 줄만 알지.”
“맛있습니까?”
“밖에 보세요.”
우와아아아아아!
“어…….”
지금 생각해보면, 미슐랭 스타를 얻는 것만큼, 어떤 유행이나 시류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지금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 요식업계에 미치는 나의 영향력,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내가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할 때라고 해야 되나.
유진이네 반찬가게로만 적혀있던 간판이 새롭게 올라가는 순간, 웨이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고생은 이제 시작입니다.”
***
대한민국 국적의 스포츠 스타들, 또는 세계적인 아이돌의 행보가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셰프님, 우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반유현 셰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참…….”
박철용 또한 브랜드 ‘반유현’의 소속 세프였기에 자신의 수장, 반유현의 활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도 언젠간…….”
요리, 그 자체의 행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그를 동경하지 않는 셰프는
없을 것이다.
-반유현 셰프가……!
-예, 이민정입니다.
-뉴욕 상황 좀 말씀해주세요!
-현재 뉴욕의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반`s 키친’이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들의 앞에는
지금 보시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14 년 됐습니다.
-진짜 한국인으로서 대단한 긍지를 느낍니다. 이 정도의 열기와 ‘오빤 청담 스타일’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아들 보고 싶네…….”
***
벌써, 스물세 개의 레스토랑, 또는 자그마한 식당에 반`s 키친이라는 이름의 간판이 붙었다.
매출의 6%를 지급 받는 조건으로 가맹된 가게들이 일주일 만에 그렇게 생겼으니, 직원들이 우려하던
현금보유랑 문제는 해결되었고, 그에 따라 내 브랜드의 가치는 급등했다.
아니, 심지어 그들의 매출이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였으니 앞으로 직원들의 입에서 돈 걱정이 나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직원들은 다 뽑아놨어?”
직원들 조직도 구성까지 끝났고, 나는 그들이 선별한 가맹점의 음식을 먹고 보완할 레시피를 내어놓으면
될 뿐이었다.
“예?”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오스틴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치…….”
“맞네.”
“다만…… 하루에 레스토랑으로 유입될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층수를 바꿔서 다시 논의를 한다고
합니다.”
이미 그 전망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는데, 내 브랜드가 입점하게 된다면 그
사람 수를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아주 소수의 사람이 방문하는,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을 만들어 달라는 거야?”
일단, 뉴욕 내 성공의 상징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고, 건물 안에는 총 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브랜드 ‘반유현’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고, 자신들이 약 80 년간 세워온 명성과 함께해 서로를 빛내자는
제안, 뉴욕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곳임을 강조했고, 또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건물 내에 최초로 개인 레스토랑을 차린 셰프가 될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어.”
“역제안을 넣자.”
“예?”
***
건물주들이 직접 셰프들을 고용해 차린 레스토랑. 건물의 입지를 이용했기에, 지분을 섞지 않았고 오로지
월급제로만 셰프들을 고용했다.
의도가 그렇다 보니 당연히 요리와 메뉴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퀄리티는 매출에 직결되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반유현이었다.
‘우리 빌딩은 반유현마저 쉽게 품는 빌딩’ 임을 공포해 건물 가치를 더더욱 높이고 임대료를 올려보려
했지만, 반유현은 쉽사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찬성측은 반유현이 가진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 오래된, 옛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물의 역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것이었고.
반대 측은 한국의 초고층 빌딩보다 50 년이나 앞서 개발된 건물이자, 미국인들의 가슴엔 영원한 성공의
상징인 그 건물을 우습게 보는 반유현의 태도가 싫다는 것이었다.
“반유현 셰프가 제안한 바는 단 하나입니다.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 입점해 줄 테니, 1 층 로비를 개조해
또 다른 레스토랑을 런칭할 수 있게 해달라…….”
“대주주께서 오신답니다.”
“엥? 기권하셨잖아.”
그때, 문이 열렸다.
“하이든입니다.”
언제나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 그 대주주가 등장했다.
***
[ 동시 두 개의 레스토랑 런칭 준비 중! ]
“어떤 걸 해볼까.”
미슐랭 스타를 얻겠다는 목적이 빠져버린 레스토랑이었으니, 색다른 생각을 해보려 했다.
전망대까지 향하는 엘리베이터, 그곳의 버튼 중 하나엔 층수가 아니라, ‘반유현’이라고 적혀있는 버튼이
있었다.
[ 반유현 - ?? ]
“사진 좀 찍자!”
‘반`s 키친’의 1 호점인 ‘유진이네 반찬가게’로 뉴욕 시내 전체에 ‘한식’ 열풍이 불었고, 사람들은
내가 직접 만든 한식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건, 오스틴을 포함한 ‘반유현’ 팀이었는데, 내가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안이 꽤나 중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말에 오스틴이 침을 꿀꺽 삼켰다.
미슐랭 스타라는 한정적인 평가 시스템을 따르느라, 내 내공이 100 퍼센트 발휘된 요리를 먹어본 사람은
100 년의 인생 동안에도 몇 없을 것이다.
“이, 이번 생이요……?”
***
경쟁이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그것들이 조직 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나는, 그것들을 정리할 겸,
새로이 런칭할 레스토랑의 셰프들과 인사를 나눌 겸 해서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셨습니까.”
“제가 시킨 일은…….”
“사무장이십니까?”
경영학 박사, 그리고 수 가지의 논문으로 이미 경영계에는 권위가 있는 케리 웰링턴이 고개를 숙였다.
“마침 잘됐네요.”
“아. 아아.”
“안녕하십니까. 반유현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휘이이익!
우와아아아악!
한마디 한마디에 함성이 실렸다.
경쟁을 심화시키지 않으면서, 그동안 열심히 한 셰프들에게 보상을 주고, 원래 예정되어있던 시험을
치르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곤 내 귀에 속삭였다.
“……예? 그, 그렇다면.”
이미 선보일 요리를 정해두고, 학생들에겐 지금 마치 요리를 선정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게…….”
세계적인 경영자들이 이렇다 할 ‘쇼’를 선보여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한 사례를 많이 봐왔던 그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들이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음?”
“한국식 자장면?”
“그렇습니다.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한 학생들의 비율이 35%가 넘습니다. 2 등인, 무생채, 멸치 볶음,
고추장 비빔밥과…….”
2 등으로 꼽힌 무생채, 멸치볶음 고추장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가진 요리는 뉴욕의 ‘유진이네 반찬가게’
에서 유래된 이름이었다.
자장면.
유일하게 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후루루루룩! 쩝. 쩝.
***
그 상대는 루시앙이었다.
또, 프랑스 파리의 ‘반유현 골목’에서 일하는 셰프들과 ‘레드 테이블 - 더 파스타’에서 일하는
셰프들까지 모두 소집되었다.
치이이이익!
“굴소스.”
“양파.”
“양배추.”
“너무 짤 것 같습니다.”
“닭육수 가져와.”
“다 되었습니다! 한번 보시죠!”
“다됐나?”
***
“우아.”
“와,”
“이게 자장면?”
“말도 안 돼…….”
자장면.
중국 산둥성 주변의 하층민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해 지금은 대중적인 음식으로 탈바꿈했지만,
고급음식은 아니었다.
기름은 식용유에 콩기름을 살짝 섞어 고소한 풍미를 더하려 했고, 면에는 표고버섯의 향을 입혔으니,
요리의 큰 줄기만 봐도 저들이 생각한 자장면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었다.
하나같이 최고의 맛을 내는 자장면에 요리를 탐구하고 배우는 입장이라면 요리라는 학문 자체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주 멍하니.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강당.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은 무릎 위에 자장면 그릇을 올려두곤, 한 손엔 젓가락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자장면의 맛을 보고는 휴대폰으로 그것에 대한 감평을 적어내는 것인데, 신나게 자장면을 먹고
즐기던 광경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나만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제법 머리가 빠르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남은 춘장을 교회나, 보육원이나, 근처 초등학교에 나눠주려고 했는데 동이 났습니다.”
“예.”
그렇게 오스틴에게 몇 개의 단어를 주곤, 이러한 단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었다.
“결대로 가는 거지 뭐.”
결대로 간다.
“알베르.”
백발의,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을 불살라 자신이 이끄는 팀을 A-1 팀으로 올려두었다.
Z 반까지 형성된 마당에, 경쟁이 더 치열해졌을 것인데 그들이 A 반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될 만큼의 스펙을 가진 자들이었다.
***
뉴욕에 런칭 될, 반유현의 새로운 레스토랑에 들어간다는 즐거움이 엄청났지만 이들의 분위기는 그와는
상반되어 있었다.
“왜들…….”
“반유현 셰프님의 주방에 들어가는 일이, 이들과 함께 섞여 일하지 못하겠다는 것과 비교할 만한 일입니까?
그것도 세계 최고의 도시, 세계 최고의 건물, 세계 최고의 주방인데요.”
그곳의 헤드 셰프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신경전이 있었지만, 자신들을 따르는 학생들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그 중, 알베르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사무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도 당연히 그 가치를 대단하다고 보고 있지만……. 확실한 위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는 학생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저는 이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고요.”
“저희는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결국에 같은 주방을 쓰게 되었지만,
저놈들과는…….”
알베르는 그게 아니었다.
“그분이 우리의 리더시니, 그의 결정을 따르겠습니다. 학생들끼리 확실히 실력을 가르라면 가르고,
주방의 서열을 정하는 방법이나…….”
***
“자기들이 내 주방에 들어오고 말고를, 함께할 셰프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하겠다는 거야 뭐야?
태도가 정확히 뭐야? 그래서 안 한다고?”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불만이 있다…… 이것을 학생들이 말하고 있고, 교수들은 난처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
반유현 팩토리의 A 반을 찍고, 뉴욕행 비행기 표까지 눈앞에 놓여져 있으니 판단하는 뇌가 많이 느려진 것
같았다.
“약 여덟 시간 삼심 분이 소요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뭐가 어쨌다고요?”
“제가 말한 시간 내에, 이 자리에 안 오셨다면 뉴욕에 런칭할 한식 주방에 발을 들이지 못하셨을 겁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요.”
반유현 팩토리의 상위급 셰프들이 또 내 레스토랑의 주방을 차지하게 되면, 다시 한번 반유현 팩토리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국, 이스라엘, 뉴욕에 설립되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 세계화 사업을 돕는 일이기도 했다.
“뭐야?”
“표정들이 왜 그래.”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이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셰프들이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터였다.
나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릴 정도였는데, 반유현 팩토리의 상징인 검은 깃으로 장식된 조리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줄줄이 발걸음을 멈췄다.
“다들 고개 들어.”
“예! 셰프!”
셰프들의 실력을 줄 세우는 동시에 레스토랑 런칭에도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
반유현 팩토리의 A 반.
총 삼십 명의 셰프들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인정하며 주방에서 시너지를 만들어내려면 단순한 경쟁 방식의 서열 정리보다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다 죽이면 돼.”
“사, 삼만 오천이요……?”
“5 천 개 식당 모든 메뉴 카피하기.”
할 수 없는 일을 건네준다.
“아, 악마…….”
내가 최연소 미슐랭 스타를 얻었을 때였나, 역사상 최초, 최연소 MOF 수상 및 두 분야 동시 수상을 했을
때였나, 최연소로 미슐랭 23 스타를 거머쥐었을 때였나…….
“이 정도는 해야지.”
***
반유현이 잡아둔 숙소를 모두 취소했기에,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은 숙소를 임시로 잡았다.
“그러게, 2 팀, 3 팀이면 반유현 팩토리라는 정교한 시스템 안에서 1 팀보다 못한 성적이라고 정해져 있는
건데, 인정하지 않는 건, 반유현 셰프님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
“뭐라고? 말 다 했냐?”
“어떤 과제입니까!”
“아니…….”
한 셰프의 말대로, 레스토랑 반유현의 런칭 멤버가 정해진 뒤로, 그 멤버 명단을 교체한 적은 역사상
없는 일이었다.
“그래, 그래서 이 과제를 해내지 못한다면……. ‘반유현’ 역사상 최악의 불명예를 얻게 되지……. 이는
다른 레스토랑을 가더라도 계속 따라다닐 거고.”
지구 최고의 주방이라 불리는 레스토랑 ‘반유현’인데, 그곳에 들어가는 확정 멤버가 되었다가 잘렸다?
반유현이 그렇게 강경한 조건을 내건 만큼,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한 과제이리라,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틀렸어. 그냥 우리 보고 제 발로 걸어 나가라는 명령이셨다.”
“대, 대체…….”
“그게 가능이나…….”
“3 천 개는 무슨……! 5 천 개가 넘어!”
셰프들은 그때 알았다.
***
반유현이라는 이름이 적힌 셰프들이 뉴욕 맨하튼 전체에 있는 식당을 뒤집고 다니며 레시피를 수집하고
있다는데, 안 그럴 수가 있겠나.
내가 입을 다물면 다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더해져만 갔다.
반유현 팩토리, A 반 1 팀.
어떤 식당에 다짜고짜 들어가서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레시피를 순순히 내어줄 식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반유현 셰프…….”
반유현.
“저희가 뉴욕에 런칭 될 레스토랑 반유현의 멤버라고 생각한 오너들은 아주 친절한 태도로 저희를
대해줬습니다.”
“절대 악용하지 않도록 해. 반유현 셰프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레시피를 순순히 내어준 맨하튼
내에 있는 오너 셰프님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예! 셰프!”
“예!! 셰프!”
***
삼십여 개의 요리를 맛보고 수정했다는 것은 ‘반`s 키친’의 후보가 될 레스토랑들이 삼십여 개나 있다는
말이었다.
그 주방을 채울 반유현 팩토리 소속 셰프들이 뉴욕을 헤집고 다니며 인지도를 넓히고 있었다.
***
그것도 내 요리가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느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렇습니다.”
“한 끼에 10 억…….”
나도 적잖이 놀랐다.
“모두 합치면…….”
몇십 원을 낸 사람부터, 수억 원을 낸 사람들까지.
“당연하지.”
무려 564 억.
우와아아아아!
“괜찮으시겠습니까?”
우와아아아아!
182 화. 몸이 몇 개야 (1)
우와아아아아!
“경매 방식으로 셰프님의 요리를 입찰 한 사람들과 그 가격을 말씀해주세요! 대중들이 궁금해 하십니다.”
프랑스 파리의 투르드 프랑스라는 축제를 열광의 도가니로 넣었을 때나, 미슐랭 스타 스무 개를 넘게
얻었을 때나, 아프리카에 꺼지지 않는 밤을 만들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어떤 큰 사건 없이 이렇듯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아니겠나.
내가 입을 열지 않고, 암암리에 계획을 실행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이토록 모았던 것이다.
‘시간차를 두길 잘했군.’
우와아아아!
“헤드 셰프는 미슐랭 7 스타인 가타무라 마츠노 셰프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수 셰프로
대한민국의 유망주 셰프, 윤종혁, 미슐랭 3 스타 셰프 닉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방에 계신 분들의
미슐랭 합이 10 개인데, 제 것까지 합하면 33 개네요. 33 개짜리 일식 정찬 레스토랑은 전 세계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뉴욕, 맨하탄 도시를 뒤집고 다니는 우리 셰프들에 대해서도 궁금하신 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 층, 한식 정찬 레스토랑의 주방에 들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우오오오.
“입찰에 참여한 사람들의 그 액수를 합치면 총 560 억 원이 나왔고, 자리를 얻어낸 분이 얼마를
써냈느냐와 그분이 누구인지는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누가 얼마에 입찰을 했는지, 맨 처음엔 공개할 생각이었지만.
***
“대체 얼마일까?”
“30 억?”
“우리 지금 TV 볼 시간 없어.”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하하하하! 대박이네 대박이야. 미슐랭 합치면 33 스타를 가진 셰프들이 오픈하는 일식 정찬, 우리는
그냥 묻혀버리는 것 아니야?”
“우리 얘기야!”
목표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성취에 자신감을 얻었던바 다시 한번 이들의 열정에
기름이 부어진 것만 같았다.
““!!”“
그에, 뉴욕에 종사하고 있는 교수진들의 동료, 후배, 또는 선배 셰프들이 레시피를 메일로 보내주곤
했었는데, 반유현의 방송이 나가자마자 엄청난 레시피들이 메일로 수신되고 있었다.
요리 문화 혁신에 기여해주세요!
-로열 파스타
……
대체로 그 메일에 함께 적힌 문장을 보면, 반유현의 말마따나 반유현 팩토리 셰프들이 충격적이고 새로운
맛을 찾는 것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레시피가 어차피 반유현이라는 사람이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보다 안된다는 것 아니야.”
“이대로라면 진짜 할 수 있겠어!”
약 5000 개가 넘는 식당의 레시피를 30 명이서 숙지해야 되는데, 레시피가 제공되어 있다면 가능할 것만
같았다.
***
“들으셨습니까?”
“뭘?”
“예! 셰프!”
“시험해보면 알겠지.”
183 화. 몸이 몇 개야 (2)
“첫 번째로, 랍스터 요리로 유명한 곳이지. 로칸 랍스터,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랍스터 피자를 만들
사람…… 너, 나와.”
로칸 랍스터, 그 레스토랑이 보유한 시그니처 메뉴로는 랍스터 피자와, 랍스터 샌드위치가 있었는데,
그것이 뉴욕 전통 먹거리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뉴욕 내에서 대단한 입지를 자리하고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음?”
물론, 나 정도의 경험과 민감한 감각이 있어야만 큰 차이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나는 이들의 노력이
레시피를 베끼는 단순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너 나와.”
“피터슨 스테이크 하우스는 두꺼운 시어링으로 유명합니다. 소금과 후추를 사용하지만 간을 하는 용도로만
하고, 양파 특제 소스나, 칠리 특제 소스, 또는 동양의 간장 베이스의 소스를 양념해 구워…….”
최고급을 지향하는 만큼, 이곳의 코스요리의 레시피를 얻는 것이 힘들었을 것인데, 셰프들은 이곳의
레시피 또한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임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반유현 팩토리의 셰프들…… 저희들이 신선하고 충격적인,
새로운 맛을 찾는 것에 동참하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레시피를 주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지난번, 기자들에게 했던 얘기들을 토대로 수많은 식당들이 레시피를 보내왔는데, 미슐랭 3 스타,
최고급 레스토랑이라 불리는 그곳도 레시피를 건네왔다.
사실, 내가 이들에게 맨하튼 5000 여 개의 식당 메뉴를 카피하라 했던 것은, 체벌성이 강했고, 이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부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그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 스스로도 모르는 능력을 개화시켜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탓이었다.
나는 전생의 기억으로 알고 있었다. 그곳이 정확히 1 년 뒤에는 대단한 맛집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강력한 맛을 품고, 언젠간 메이저로 진입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식당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집이었으니까.
***
“…….”
“…….”
교수진들 중 아무도, 자신들이 가르쳤던 반유현 팩토리 소속 셰프들이 반유현의 주문을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을 하지 못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셰프들의 경험과 능력, 그리고 이 도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요리까지도 만들게 하다니.”
반유현이 내린 5000 여 가지의 음식을 카피하라는 미션은 사실, 셰프들의 능력을 몇 단계나 뛰어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셈이었다.
셰프들은 맨하튼 내에 있는 5000 여 개의 음식을 카피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수백, 수천 가지의 요리를
직접 만들고 맛을 보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요리들을 흡수했다.
이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아주 단순한 예로 들자면, 콤비네이션 피자를 수없이 먹어본 사람이, 토마토 케찹과 밀가루의 조합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를 토대로 스파게티에 대한 레시피를 생각하며 그 요리를 맛보면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속도가 완전히 빨라지는 것이었다.
요리의 본질, 상업적으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요리들, 그 특성들을 익히는 방법을 알게 된 셰프들은
반유현이 말한, 생소한 식당의 메뉴를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 생소한 식당을 읊을 때는, 처음엔 당황했을 테지만…… 점차적으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린 맛들이 구현되는 것을 느끼며 셰프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자신의 실력을 또 한 번 체감했을 겁니다.
이건…… 반유현 셰프님이 그들의 능력을 ‘개화’시킨 것입니다. 이전과 완전히 다른 셰프들로
만들었다는 것이죠.”
아무래도, 전자의 이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알베르, 버크, 안젤라, 이 세 명의 교수진은 경외감을
느꼈다.
[ 반유현 팩토리 33 명의 셰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 층 한식 정찬 레스토랑 런칭 멤버 확정! ]
셰프들을 성장시키는 기획을 했음과 동시에, 한식 레스토랑 런칭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레스토랑 런칭을
당장 내일 하겠다고 말하는 그는…….
184 화. 몸이 몇 개야 (3)
[ 반유현 - 프리미엄 ]
“반유현 셰프님!”
“셰프님! 여기 좀 봐주세요!”
“반유현 셰프님을 보좌하는 경호원들 중에서도 최정예로만 붙였습니다. 그들이 대접받는 느낌이 들 수
있게요.”
***
“기자들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테이블 앞엔 각각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100 년의 인생을 살면서, 미션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요리사로서 성공한 삶을 살아왔기에, 수많은
기업인들을 만났었다.
돈의 가치를 떠나서도, 이들에게 최선의 정성을 다해주는 것은 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셰프의
예의였다.
뿐만 아니다. 사업가, 또는 기업가로서의 명예까지 다지고 있는 나에겐 이들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세계 부자 서열 10 위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나도…… 반유현 셰프의 요리를 먹고 싶었네. 하하하 이 시대의 흐름 아닌가. 역사에 없던 종목의
탄생이기도 하고.”
나는 내 이름과 동일 선상에 이름을 올릴 셰프가 없는, 독보적인 탑셰프이지만 이들의 영향력 앞에서는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좋습니다.”
“잘 아시는군요.”
“컥!”
“켁, 켁!”
“이게 뭐야!”
“이, 이런 양파 수프가……!”
“이 맛은…….”
짭짜름하고 고소한, 스프의 제형이 입안을 되감는 찰나에, 동시에 양파의 깊은 단맛이 몰려온다.
“제기랄……! 이런 것을 못 먹고 일만 했으니.”
요리에 대한 깊이가 없을지라도, 세계 최대 부호라 불리는 이들이 살면서 먹어본 경험들은 내 요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월렌 버크스 회장님께서는 요식업에 투자를 안 하는 걸로 유명한데, 어째, 생각이 바뀌신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해주신 요리보다 맛있네요. 가장 맛있을 줄 알았던 요리의 한계가 부서지는 충격이,
제게는 너무 소름 돋고 신선합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 충격은…….”
185 화. 몸이 몇 개야 (4)
“와…….”
내 말에 침을 꿀떡 삼키는 이들이었다.
곁가지 재료를 넣음으로써 소금물 내에서 농도의 변화가 수시로 일어나기에 다른 셰프들은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하……!”
“브라보!”
“와우!”
“이건 마치……!”
“컥!”
“와우! 베리 들리셔스!”
***
“회장님들이 생각보다 영감에 약해,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나, 생각은 그 사람을 완전히 미치게
만들어.”
수조 원대의 기업을 일군 자들이라 무수히 많은 성취와 영감을 느꼈을 것인데, 나의 요리가 그들에겐
엄청나게 큰 경험이었다고 한다.
정보와 자신들이 얻은 영감을 나누는 것에 익숙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그대로 전달했다.
나의 요리는 식재료의 혼합물, 그리고 영양가를 보충하는 음식의 의미보다 맛이라는 경험의 질을 높이는
수단의 의미가 원래부터 컸었지만.
-재벌들만 먹을 수 있음.
“바로 예약받자.”
“예?”
“막강한 팬클럽을 만드는 거지. 셰프, 요리사, 사업가, 기업가를 넘어서 온 세상을 주무르게.”
“…….”
사람들은 자신이 했던 즐거운 경험을 공감해줄 사람을 만나는 데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니까.
더군다나, 그 요리를 먹은 사람이 전세계에 몇 없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커뮤니티 가입을 재촉할
것이다.
***
첫 번째로는 말 그대로 브랜드 반유현의 기업가치 상승, 두 번째로는 그 구성원들의 긴장감 유발이었다.
반유현이 프리미엄에 선보일 요리들이, 자신들이 런칭을 준비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메뉴와 겹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가…… 반유현 셰프님이 만든 것만큼의 참치회를 선보여야, 브랜드 반유현의 명성을 깎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사람들이 다들 우리 레스토랑에서 반유현의 참치회가 구현되리란 것을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참치회뿐만이냐, 반유현 프리미엄에 사용된 가쓰오부시, 다시마 숙성, 폰즈 소스, 굴소스…… 일식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들을 뜯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수십, 수백 명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이미 수개월 예약이 밀려, 예약경쟁이 치열한 기존의 반유현 레스토랑보다, 새롭게
런칭되는 레스토랑의 예약이 당장엔 쉽기에, 그 자리를 뚫어 반유현의 요리와 식재료를 맛보고 싶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186 화. 몸이 몇 개야 (5)
예약에 성공해, 암표 형식으로 예약권을 파는 행위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어, 동시 접속률이 비슷한
수치로 며칠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수만의 사람들이 실수요자임을 증명했다.
물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완벽히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일평생 느끼지 못하는 셰프들이 태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즉,
엄청난 기회임을 알려준 뒤, 그 부담감을 자신감으로 만들어준다면 이 상황은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직전
최고의 상황이다.
“예? 그렇다면…….”
***
아니, 정확히는 기자들이 얻고자 하는 정보는 대중들의 깊은 관심이 담겨 있기에, 대중들이 알고자 하는
것들이었다.
“음악처럼요.”
“으, 음악이요?”
레스토랑의 자리를 잡고, 메뉴와 컨셉을 정하고, 그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과 동시에 셰프들을
조직하고 런칭.
“기자님들도 이렇듯 레스토랑 런칭 날짜를 예측하니까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날에, 반유현 퍼플이
찾아오겠습니다.”
“음.”
각 코스의 요리들은 대체로, 수준급의 솜씨를 뽐냈으며 내가 주문했던 특성과 그 의도가 잘 드러나 있었다.
“코스, 전체의 조화도 그렇고, 단일 메뉴들의 맛도 뛰어나. 이 정도면 그대로 런칭해도 되겠어…….
되겠는데…….”
그런데,
자신들도 경험으론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레시피를 받아 만들긴 했지만 자신들의 요리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이 이상의 맛……?”
***
“알다가도 모르겠다…….”
생선을 잡는 손가락의 온도를 맞추는 것부터 칼의 온도, 칼이 살결을 썰어 내려가는 속도, 각 요리에
들어가는 육수들의 세밀함…… 등등 말도 안 되는 세밀함을 보여주곤 다시 뉴욕으로 날아갔다.
“우리를 또 시험에…….”
[ 윤종혁 ]
[ 마츠노 ]
[ 닉 ]
이제 서야 그 말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알려준 레시피와 과장되게 말하면, 나노 단위로 재료를 다루는 법들을 이용해 자신의 반만을
따라오란 소리였다.
그렇게 자신들의 몸값을 계속 올려, 반유현이 ‘반유현 - 프리미엄’에서 얻었던 몸값의 절반을 달성하는
것을 미션으로 내려주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놈들은 주방에서 빼겠노라고, 악질 사장처럼 말하긴 했지만 셰프들 모두 반유현이
자신들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았기에 그의 미션을 수락했다.
[ 반유현의 맛을 구현 할 수 있는 제자들? ]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등장한, 입찰 시스템에 레스토랑 ‘반유현’에 눈독 들이던 이들이 다시금 모여들었다.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 그리고 외형, 레시피 등을 게임 내에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안입니다. 던전
게임에서 아주 대단한 포션이나 엄청난 효력을 가진 음식을 만드는 …… 특별 NPC 로 사용하기도 하고,
심시티 게임에서 레스토랑을 차릴 때, 반유현 셰프님의 간판을 거는 시나리오도 있고…… 메인으로는 요리
게임을 제작한다는데, 반유현 셰프님의 목소리를 따고 싶다고 합니다.”
“블라인드 업이라는 그 회사에 FPS 게임도 있는데, 거기에 캐릭터로도 쓴다고 합니다.”
“FPS?”
“예, 총싸움이요.”
아니, 사실,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
“예.”
대기업 일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아니, 직원들의 일하는 분위기는 자유롭던데 그 윗물은
썩은 느낌이었다.
“예.”
“누가 행복합니까?”
“사실, 반유현 셰프님의 캐릭터보다, 반유현 셰프님의 실제 레시피를 게임에 적용해서, ‘게임 속에서
반유현의 레시피를 찾아라’ 같은 일회성 이벤트를 해서 동시접속자를 높이려는 게 저희의 의도입니다.”
“네.”
“사실, 막말로, 쉽게 말해서…… 반유현 셰프님의 레시피야 100 억을 지불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요?”
저놈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
“이게 말이 돼?”
“왜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이것 봐.”
“15 억……?”
윤종혁은 곧장, ‘반유현팀’에 근무하는 사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것이 오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반유현에게 입찰한 MS 소프트와 알리야마에 뒤처지지만 해당 산업의 선두주자라는 점에선 공통된 회사였다.
“대체 뭐야…….”
***
“가타무라 마츠노입니다.”
“윤종혁입니다.”
“닉입니다.”
마츠노의 손님은 블라인드 업이라는 기업의 부회장으로 누구나 알만한 인물이었고, 윤종혁과 닉은 각각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엥?”
“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가격을 보고 감사함에 울컥했던 기억과, 자신에게 대단한 동기를 부여해주었던 기억이 모두 상업적인
이유였다니, 뿐만 아니라 15 억이라는 터무니없는 값은 진정으로 자신의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자들의
기회를 빼앗았던 것이니까.
“뭐, 뭐야?”
반유현의 제자, 반유현을 따르는 셰프, 그들의 요리를 먹고자 이곳에 왔던 손님들도 ‘Blind up’의
부회장인 아이즈 칸을 매섭게 노려봤다.
“뭐 하시는 거예요?”
“입 좀 다무시죠.”
말을 하다 보니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아니…….”
“제안을 한 게 잘못입니까?”
억울하기도 했다.
“일개 셰프들이, 참나. 미슐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면 몰라. 그저 반유현 이름 아래에 있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요리사들, 아니, 요리사도 아니지 반유현의 레시피를 받아쓰는 조리사들.”
“그래…… 능력이긴 능력이야,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셰프의 레시피를 받아들고는 이렇게 장사를 하니까.
그 능력을 쳐줘서 15 억을 입찰한 거고, 그 능력을 너그럽게 인정해줘서 당신들을 높은 가격에
인수한다는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되는 거 아니야?”
분위기가 이래서야, 이들의 요리를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안 손님들도 마츠노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즈 칸이라는 놈.
그의 개인 셰프들은 당연히, 시대적 흐름상 나의 요리를 복제하라는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열심히
노력했다.
자신의 셰프들이 진짜, 반유현의 요리를 복제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의 맛을 구현해 냈었으니까.
“모든 일정을 수정하고, 오늘부터 나도 이 주방에 합숙한다. 그리고, 저쪽에서 움직이는 순간 역습하는
걸로.”
“또, 제 과거를 안 겁니다. 제 계획을 망치려는 세력을 반드시 몰락시켜 왔다는 것을요…….”
-반유현과의 돌연 독립 선언!
알베르가 메인 셰프를 맡자, 자신의 입지가 주방 내에서 줄어들었고, 자신이 가르쳤던 셰프들마저
주방에서의 입지가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레스토랑 반유현 내부의 정보를 스스로 많이 알고 있다고 판단한 안젤라는 그 선택이 손쉬웠을
것이다.
“다 준비됐지?”
[ 반유현 - 에메랄드(Emerald) ]
아무튼, 사람들은 또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와 안젤라, 그리고 그녀를 인수한 ‘Blind up’이라는 기업의
경쟁 구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이 정도의 실력, 그리고 반유현의 계획을 낱낱이 알고 있는 자라면 그를 적잖이 괴롭히는 것에 성공할
것이라고.
게다가,
[ 반유현 - 에메랄드 ]
레스토랑 반유현을 예약하는 어플에, 그 이름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그가 레스토랑 런칭을 획기적으로
앞당겼다는 것이 완전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대체 어떻게…….’
자신이 그 레스토랑을 나오기 전에는 반유현이 메뉴의 구성만 제공해줬던 상태, 주방의 동선을 짜고
식재료를 조달하는 업체를 선정하는 것만 해도 큰 일인데, 그런 모든 일들을 생략했다는 것 아닌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어떤 자신감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안젤라에게 큰돈을 썼고, 반유현의 인력을 빼내어 뉴욕을 접수하고 그에게 큰 타격을 주리라는
계획이 실패한다면 그가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
“예약은 이미 만석입니다.”
“저 앞집은 어떻데.”
“…….”
그래서 더 좋았다.
“…….”
실제로 각자의 파트를 나눈 뒤에, 손발을 맞춰 요리로 만들어 내어본 적이 없기에 지금의 도전이
무모하게만 느껴진 것이다.
코스의 첫 메뉴인 불고기 편채는, 불고기 양념에 잰 고기를 레어로 익혀 육즙을 최대한 살린 후에 그 안에
갖은 야채를 넣고 돌돌 싸 먹는 음식이었다.
한국의 시그니쳐 요리라 할 수 있는 불고기와, 신선한 야채를 가미해 입맛을 돋우는 가장 첫 번째 요리로
선보인 것이었다.
“너, 너, 너, 너, 너. 너희 다섯 명은 매콤 갈비 치킨 준비해.”
“사과, 양파, 배, 무, 지금보다 더 곱게 갈아야 돼. 그리고 수분을 한번 버려. 고추장 베이스 소스는
매운맛이 너무 적어!”
“예, 셰프.”
“예!! 셰프!!”
불향만을 입히는 굽기의 정도와 양념, 그리고 야채들의 수분과 식감이 입맛을 돋운다.
“됐어. 서비스해.”
“서비스!”
아무렴, 나를 따르는 셰프들을 돈으로 유혹해 데려간 놈인데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되지 않겠나.
***
아이즈 칸.
‘대체 무슨 맛이길래.’
애초에 반유현의 요리를 먹고 싶어서 그와의 접점을 만들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이었는데, 그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아 시작된 진흙탕 싸움이었다.
“불고기 편채입니다. 레어보다 더 레어 같은 굽기로 구웠으며, 파프리카, 무순, 부추, 각각의 양념에
버무려진 야채를 싸 드시고, 준비된 불고기 양념 소스에 살짝 적셔 드시면 됩니다.”
“허.”
“이, 이게 맞는 거야?”
반유현에게서 레시피를 모두 받아 자신의 밑으로 들어온 안젤라가 구현한 요리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와…….”
“내일부터 임시휴업이야.”
“예?”
“내일부터 임시 휴업하라고.”
안젤라와 자신의 개인 셰프들의 요리도 충분히 맛있었기에, 몇 가지를 더 먹어보고 판단을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후.”
“아…….”
그런데, 그때.
“두 번째 코스는 없습니다.”
“뭐, 뭐요……?”
“…….”
“뭐 하자는 거요, 지금!”
“뭐…… 뭐, 라고?”
안젤라를 비롯한 자신의 개인 셰프들이 반유현의 요리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기에.
***
“예! 셰프!”
“이대로 이 레스토랑은 쭉 갈 거야. 이건 임시 런칭이 아니란 말이야. 다들, 정식으로 레스토랑 반유현의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
셰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도, 자신들이 해냈다는 성취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며 소리를
질렀다.
- 이 정도면 광고 아님?
전 세계가 떠들썩해지면서 아이즈 칸 부회장은 자신의 회사인 ‘Blind Up’의 이미지에 타격이 갈 것을
우려하여 곧장 레스토랑을 접었다.
“네.”
물론 감정적으로만 그랬다.
나의 계획을 망치거나 방해하려 한 자에 대해서 무관용 원칙으로 일관하고 있는 나는, 이번에도 그 원칙을
따를 뿐이었다.
가뜩이나 나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기자들 덕분에, 이 사태를 부풀리는 것이 쉬웠다.
[ 유네스코 회장. “말 그대로 문화의 역사가 될 수 있는 인물의 행보를 상업적으로 착취하려 한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 ]
수많은 유명인들과 언론사들이 그들의 행위를 부풀려 말해서, 대중들은 그들의 게임을 하는 게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정신 좀 차린 듯ㅋㅋㅋㅋㅋ
아이즈 칸의 아래에 있던, 미슐랭 스타를 가진 셰프들 열여덟 명이 나의 밑으로 들어오길 바랐다.
다시 본인들의 레스토랑을 차리기엔 너무나 멀리 온 탓에,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했다.
어차피 실력이야, 계속해서 최하위권의 반에 머무르면 제명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반유현 팩토리가
계속해서 증명해줄 것이다.
[ 반유현 팩토리 관계자 “오로지 실력만을 보는 반유현 팩토리의 규칙에 따라 그들을 품기로 함.” ]
“이스라엘로 보내.”
***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반유현 팩토리, 파리가 그랬듯이 이곳도 중동과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요리 교육의 중심이 될 것이기에,
이렇듯 사람들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대단하십니다. 인력 충원부터…….”
그리고, 중년이 나이인 세계 주요 기관의 수장들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업의 회장들 중에는 나를
찬양하며 아부성 멘트를 남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반유현 팩토리 - 이스라엘이 완공되었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높은 이름값을 가진 인사들을 여러 명 초대했었다.
이득이 되리라 싶으면 머나먼 이스라엘까지 날아와 아부성 멘트를 남발하는 실행력말이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윤종혁, 마츠노, 닉.
나를 따르는 셰프들의 몸값을 높이면, 이 미션이 끝나고 런칭할 일식 레스토랑의 이슈화에 대단한 도움이
될 것이고.
경매 방식에 의한 시스템, 그 대상인 윤종혁, 마츠노, 닉은 또 새롭게 펼쳐진 상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인지 미리 알아야겠어.”
무엇보다 10 억이라는 돈은 반유현의 몸값을 뛰어넘는 값이었다.
“이 사람들은…….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회장, 한국계 반도체 기업의 사장, 다국적 인테리어/가구 회사의 창업가였다.
“검색을 해보죠. 평소에 요리에 대해 관심이 있었나. 아니면, 뭐……. 아이즈 칸처럼 레스토랑을
런칭하기 위한 계획으로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인가.”
“어?”
“……사진도 같이 찍었네요.”
“우리가 맡은 레스토랑만 성공하면, 반유현 셰프님은 미슐랭 30 스타를 모으게 되시니까. 우리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실 거야.”
물론, 반유현은 세 개의 레스토랑 모두에서 3 스타를 받기를 원하고 있으니, 그가 가진 미슐랭 스타는 32
개가 될 것이었다.
“반유현 셰프님께서는 애초에 유럽에 데뷔하실 때, 노골적으로 미슐랭 스타를 노린다고 말씀하셨었는데,
30 개? 그 이상을 원하시는 건가?”
“그 목표에는 끝이 없지 않을까?”
“하긴, 이미 요리사라는 타이틀로 세계를 호령하고 계신데, 미슐랭 스타에 도전하시는 걸 보면…….”
“뭐하고 있냐.”
그 옆에 오스틴은 살이 빠져, 얼굴이 핼쑥한 것 반면에 반유현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셰프님께서…… 힘을 써주신…….”
“예……? 그게 무슨 말씀?”
***
다다다다다다다!
나라는 상급자가 재료 손질을 해준다는 것보다 그렇게나 많은 일들을 나에게 시키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것이다.
“다 시켜. 다 할 수 있으니까.”
“셰프님…… 아까 말씀드린…….”
“허허허. 정말요. 반유현 셰프님, 역시! 생각이 깊으십니다. 이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누군지 밝혀지면,
온갖 기자들이 달라붙어서 요리가 어땠는지 묻겠죠.”
“셰프님, 다음 요리 준비해주시죠.”
“예! 셰프!”
***
‘저게 쉬운 일이 아니야.’
반유현은 실제로 셰프들에게 ‘편하게 재료 손질을 시켜’라는 지시를 했을 것이고 그 지시를 거리낌 없이
이행하는 셰프들은 반유현의 카리스마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저 퍼포먼스도 일반인이라면…….’
셰프들의 지시를 듣고 곧장 메모를 해두어도, 순서가 꼬이거나 헷갈릴 법한데 반유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방의 모든 잡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저 디테일 이란…….’
‘서포터…….’
젠사이(ぜんさい).
세 명의 셰프는 자신들이 고안한 레시피를 반유현에게 전달했었고, 반유현은 이들의 레시피를 따라 그대로
소스를 만드는 것을 도왔다.
반유현은 빠른 속도로 이들이 주문했던 소스를 만들었고, 튀김을 위한 문어, 초회를 위한 숙성문어,
그리고 구이를 위한 장어까지 모두 손질했다.
“허.”
“왜.”
“왜 그렇게 놀라세요.”
“헙.”
폰즈 소스까지, 반유현의 손길을 거쳤을 뿐인데, 자신이 생각한 맛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마츠노 셰프님이 말씀해준 레시피에, 새우 껍질을 갈아서 살짝 곁들였습니다. 마츠노 셰프님이 생각하신
맛에서 몇 가지 맛을 추가했습니다.”
셰프들마다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경험치가 다르기에 반유현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을 마츠노는 대단한
요리가 된 것처럼 느낀 것이다.
“하…….”
***
나는 주방 보조의 역할을 맡았기에 그들이 요리를 설명하는 동안 다음 요리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컥!”
“와우……!”
“에피타이저부터 이런 솜씨라면……!”
대단한 만족.
‘뭘 봐.’
***
이전에, ‘반유현 - 프리미엄’의 손님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했던 대단한 경험을 말했다.
[ 엥?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당신이었음? ]
요리를 먹은 사람들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이 향하자, 관심받길 원하던 사람들이 대거 등판한 것이었다.
“뭔데 이것들은?”
“예, 어쩌다 보니, 반유현 세프님과 셰프님을 따르는 셰프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게 유행처럼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요리를 좋아하거나, 셰프를 꿈꾸는 마니아들이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들도 그 챌린지에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
[ 광고 업계에도 영감 주는 탑셰프? ]
1.반유현의 딸이 되었습니다.
2.반유현이 힘을 안 숨김.
4.SSS 급 셰프 능력치.
…….
#반유현소설
#반유현이_주인공인_소설쓰기.
반유현의 요리를 먹어봤냐, 먹어보지 못했냐는 셰프의 경험 수준을 가르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셰프로서 자신들이 쌓았던 경험이라면, 필력이 떨어질지 몰라도 업계의 생동감, 그리고 요리에 대한
묘사와 맛의 묘사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니까, 그 글들을 읽다 보니까, 묘하게 상상력이 자극돼. 반유현 셰프님이 진짜 판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그걸 노린 거야……?”
“에이…… 설마.”
“입지, 명성을 떠나서, 반유현 셰프님이 본인 스스로를 진짜…… 신격화…… 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는…
….”
“나도 동감하네.”
***
“당첨.”
“예?”
“아니, 셰프님. 창의적인 수많은 소재들이 있는데, 고작 200 년을 환생해 온 능력을 뽑으시는 이유가…
….”
“제일 공감 되는…….”
“예? 공감이요?”
-아하! 알고 보니 자기 능력 맞추기였구나.
뉴욕에서 내 행보와, 우튜브 채널, ‘반`s 키친’도 그랬고, ‘반유현 - 프리미엄’과 그 모델을 그대로
사용한 마츠노, 윤종혁, 닉의 몸값이 10 억을 넘어선 것. 또, ‘반유현 챌린지’와 여러 이벤트들이
합쳐져 지금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
“반유현! 반유현!”
“여기 좀 봐주세요!”
“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아!
“잠은 좀 잤나?”
“못 잤습니다.”
“자지 못했습니다.”
“그 기대에 부응해야지.”
“예! 셰프!”
“좋아졌네.”
모든 메뉴와 코스의 구성이 나의 머릿속에서 나왔지만, 이들은 나의 머리에 완전한 동기화가 되었다.
***
마지막, 미슐랭 30 스타를 채울 레스토랑의 런칭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가슴이 이상하다.
가을이 시작된 지금, 미슐랭 평가가 시작되고, 결과 발표는 연말에 나오게 된다.
즉, 몇 개월 동안 나에겐 할 일이 딱 하나 있었다.
100 년이 넘는 세월을 평가에 목매다 보니, 미션을 달성할 때가 다 되어서 놈들을 망가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쉴 틈 없는 인생이었다.
[ 반유현, 모든 공식 일정 잠시 중단. ]
[ 지난 몇 년간 없던 휴식 기간? ]
어디서든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의 요리를 뽑아낼 수 있는 셰프의 레벨을 10 이라고 한다면, 최민성은
12 는 되어버렸다.
메이, 헨리, 제리, 알베르, 마츠노, 포시즌스 옐로, 블루, 레드를 이끄는 세프들…….
100 년을 하나만 보고 살다 보니, 이런 감정에 대해서 무뎌졌었는데, 이제야 주변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
“예?”
현재는 그렇다.
“그게 무슨…….”
***
“맛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는 기관…… 그리고 그 기관의 수장을 따르는 셰프…….”
“어. 좋아.”
***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저희는 자신도 없고, 지금의 미슐랭 스타를 지키는 것에 만족할 겁니다.”
특히나, 미슐랭 쓰리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들이 그랬는데, 이미 자신들은 사람들의 뇌리에 최고의 맛을
내는 레스토랑으로 각인 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당연히, 미슐랭 쓰리스타의 레스토랑 중에서도 나의 방문을 원하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의
레벨을 5 로 지정했다.
[ 반유현 최초! ]
-저기가 레벨 5 라고?
-ㅋㅋㅋㅋ대박이다.
…….
-ㅋㅋㅋ 장난 없네.
-Wow!
같은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도 Lv1 에서 Lv3 까지 나뉘었으며,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도 Lv2 에서 Lv5
까지 나뉘었다.
그에 따라, 반유현 본인이 평가 당시의 맛과 그 레벨을 보고 그곳을 방문한 손님들의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결과는 공신력 하락으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역사와 전통을 지키면 돼. 그나저나, 저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인,
반유현의 레스토랑 평가는 다 어떻게 됐습니까?”
게다가,
반유현은 오직 자신의 요리만이, 자신이 만들어 낸 시스템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
“지원율이 가장 높은 캠퍼스라던데요.”
“예, 그렇습니다.”
백원종을 반유현 팩토리 한국 캠퍼스의 교장으로 세운 건, 그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개념도 있었다.
실제로, 셰프들 중에서는 레스토랑 ‘반유현’의 주방에 들어가는 것보다, 반유현 팩토리의 교수진이
되고 싶어 하는 셰프들도 숱하게 많았으니까.
***
[ 유명 미식가 아드론치, “반유현 레벨은 세프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마음을 이용한 파렴치한 장사. ]
[ 미슐랭 28 스타, 엘레니 “내 레스토랑에 누군가 평가하러 온다는 것을 안다면, 무조건 최고의 요리를
낼 수 있다. ]
“전 세계에 나를 모르는 셰프가 없고, 이 평가를 오직 나만이 하는데, 알리지 않아도 알려지잖아. 어차피
그럴 거라면 미리 말을 하고 가는 게 맞지.”
이유는 명확했다.
거기에 더해서,
“이곳의 레벨을 부여하면 또, 요리에 부쩍이나 관심이 많아진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미 평가된 뉴욕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들의 수준을 쉽게 알 수 있어.”
대한민국에 방문한 김에, 이 나라에서 꽤나 유명한 레스토랑에 반유현 레벨을 도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
“무슨 이슈?”
이슈.
“레스토랑 ‘주몽’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레스토랑을 물려준 경우라, 그 아들이 주방 내에서 입지를
완벽하게 못 잡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직 은퇴를 하지 않고 아들에게 완벽한 입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함께 주방에 있다고 합니다.”
‘오네 셰프’라는 직함을 받았지만 주방을 꾸리고, 주방에서의 리더쉽이 아직 모자라 아버지가 함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았고, 점점 빠르게 아들의 입지를 갖춰 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의 생각과 반대로, 레스토랑을 창업한 아버지는 끝없는 도전을 요했던 것이고, 아버지의 말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우리의 평가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즉, 지금의 삶의 진도가 너무나 빨라, 전생보다 수년이나 빠른 시점에, 이 레스토랑이 세습되는 과정에서
이곳의 요리를 먹게 되었다.
***
계획은 이미 정해졌다.
이 주방에서의 입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주방의 구성원들을 이끄는 힘을 기르기 위해, 아버지는 주방을
떠나지 않고 자신을 도왔다.
이번엔 고민욱 혼자서 모든 주방의 요리를 총괄하고, 반유현 레벨이라는 시스템의 평가를 받아볼
생각이었다.
‘X 발. 어차피 되는 거였는데.’
“반유현 셰프님이 오시면, 내 직접 인사를 드릴게. 혹여나 내가 주방의 요리에 관여하지 않고 온전히
네가 만든 요리라고 하면 주관적 감정이 들어가 요리의 평가를 낮게 볼 수도 있으니까.”
반유현도 인간인지라, 자신이 생각했던 셰프가 아닌, 다른 셰프가 요리를 만들면 평가의 잣대가
달라질수도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였다.
우와아아아아!
“반유현이다!”
반유현의 등장이었다.
“셰프님, 요리…….”
“예! 셰프!”
“예?”
“예.”
“…….”
“이 정도로는 안돼.”
“예?”
“…….”
***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모두 느껴졌다.
요리에 대한 이해가 꽤나 높아야 느낄 수 있는 맛이겠지만, 당연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뚜렷하게 이 모든
것들이 그려졌다.
그런데, 이 요리를 한 것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셰프가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에 의아했다.
“충북 진천에서 공장이 아닌, 직접 짠 기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름에서는 나지
않는 풍미가 있습니다. 저희 한식에서는 손맛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무슨……?”
“당근 퓌레의 훈연한 향미는 구현이 정말 잘 된 것 같습니다. 새우장의 간장 베이스 소스도 그렇고…….
그 훈연한 향미가 간장 베이스 소스와 정말 잘 어울리는군요.”
레스토랑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반유현 레벨’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만나기 싫었을 것인데, 그에 대한
불편함이 첫 번째였을 것이고.
“그 이상의 질문들은 레스토랑 전체를 모욕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레시피의 비법을 말하는…….”
셰프들이 레시피를 감추고, 자신의 보물로 여기는 행위는 구시대적인 행동이 되었음을 뉴욕에서 보여준 바
있었다.
‘아버지는 도전을 원하고, 아들은 도전하길 원치 않고, 또 그 아들은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있네.’
아무래도, 지금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어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지금의 상황이 자신이 이곳의 ‘오너 셰프’가 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내가 생각하는 이곳의 수준을 대외적으로 알려 ‘반유현 레벨’의 기준점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
셰프의 의도가 온전히 요리에 담긴 것인지, 그 셰프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개의 질문을 던졌던
것뿐이다.
***
[ 레벨 0 의 의미는 무엇인가! ]
큰 사고가 벌어졌다.
“X 발…….”
어떤 평가에도 법적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인증된 절차에 따라 서명을 해야만 ‘반유현 레벨’의
평가가 시작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미슐랭 쓰리스타 ‘주몽’의 레벨을 ‘0’을 받았음에도 반유현 레벨의 시스템에
문제를 삼는 사람은 아주 소수였다.
그렇게 쉽게 생각했었다.
-그러게, 반유현이 레벨을 ‘0’으로 측정한 이유가 있을 텐데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 이유를 못 찾는
건가.
***
“이제 다 끝난 건가.”
“끝……나다니요?”
“아니야.”
“은퇴라도 하신다는…….”
“예?”
두 가지 고민이었다.
싸가지없는 태도로 일관한 녀석에게 혼쭐을 내준다는 것과, 반유현 레벨의 안정화를 위해 다시 그
레스토랑에 방문해 평가를 내린다는 것.
***
“라인이라고 불러 나는.”
“라인이요?”
“수치로 따지면 94 퍼센트. 미슐랭 초대권을 받은 레스토랑의 94 퍼센트가 반유현 셰프님의 방문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반유현 셰프님의 방문을 거절하는 셰프가 없군요.”
“예, 안녕하십니까.”
[ 세계 최연소 미슐랭 스타 수상 ]
……
[ 경영석학들의 연구 사례 1 위. ]
[ 미슐랭 23 스타. ]
“하하하! 네, 지금, 반유현 셰프님에 대한 이력들이 시청자분들께 자막으로 보여지고 있는데요. 원래는
제가 친절히 읽어드리는데, 생방송 시간상, 간략히 생략하겠습니다.”
진심을 말했지만, 손국희는 진짜, 진심이 무엇이냐는 듯이 역시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온다.
“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요리 대회에 출전할 때나, 레스토랑을 런칭할 때나, 반유현 팩토리를 설립할 때, MOF 에 두 부문에
출전할 때, 축제를 기획할 때 논란은 항상 있었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이고, 저는
이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반유현 레벨의 평가는 반유현 셰프님 혼자서 하시는 건데, 오히려 그래서 논란이 큰 것 같습니다. 한
명의 셰프 혼자 맛을 보고 써내려간 ‘블로그’라고 폄하하는 세력들도 있구요.”
내가 이 몸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게 된다면, ‘반유현 레벨’에 관한 일을 계속할 것이고 ‘반유현 팩토리’
로 셰프들을 계속 양성시킬 것이니, 반드시 내가 그리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앞에서 PD 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시간이 얼마 없음을 나타내자 손국희가 멘트를 정리한다.
***
그레이스 할린 호텔.
이들에 대한 나의 존재감을.
특급호텔의 셰프들, 오래부터 미슐랭 스타를 가지고 있던 셰프들, 대한민국이 한식 장인이라 불리며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셰프들…… 등 각종 특별한 이력을 가진 셰프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회장님.”
교수진들의 눈빛 아래에, 사진을 부탁하는 셰프도, 자신이 만들어온 요리를 내미는 셰프들도 없어졌다.
이건 또 다른 이유였다.
우와아아아아!
미슐랭 투스타를 받았다는 기쁨을 표현하는 셰프들, 그리고 그들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은퇴라.
“몰라.”
“예?”
우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
‘김정식 셰프?’
“반유현 셰프님, 반유현 셰프님의 이름이 원스타, 투스타를 수여하는 차례에서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레스토랑 ‘반유현’ 전부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네요.”
나의 이름이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를 수여하는 차례에서 나오지 않아 대한민국에 위치한 모든 레스토랑
‘반유현’이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측 덕분에 함성 소리가 컸던 것이다.
그만큼이나 사람들은 나에게 확신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반유현 셰프님, 대한민국에 미슐랭이 도입된 이후, 최초로 모든 레스토랑에서 쓰리스타를
달성하셨네요.”
***
[ 반유현 은퇴 5 주년! ]
[ 5 년간 잠적한 그를 찾는 전 세계 사람들! ]
[ 팬들에 대한 예의인가. ]
정확히 5 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는 세계 최대의 기록이었다.
심지어, 그가 직접 메뉴를 개발해주거나 레시피를 수정해준 ‘반`s 키친’에 가맹된 레스토랑들도 심심치
않게 미슐랭 스타를 얻었으니, 그가 받은 미슐랭 스타를 비공식적으로 헤아려보면 훨씬 많은 별을 모았을
것이다.
자신의 브랜드 산하에 있는 모든 레스토랑에 미슐랭 스타 평가원의 방문을 거절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가, 자신들의 평가에 높은 권위를 가져다주는 인물 그 자체임을 알았고, 반유현이 미슐랭 평가를
거절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대부분의 셰프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아 가는 만큼, 미슐랭에는 그의 존재가 매우 무거웠다.
“크흠! 미슐랭 38 스타…… 셰프들과 팬들이 헤아려준 비공식을 따지면 50 스타? 크흠! 오늘부로 은퇴를
선언하겠습니다.”
충격이었다.
반유현이 저 말을 뱉었을 때는, 이곳에 모인 최측근 셰프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었다.
반유현의 그 말.
어쩌면 반유현은, 본인이 없어도 본인의 뜻을 이어갈 셰프들만을 지휘급 셰프에 앉혔는지도 모른다는 말이
세간에 떠돌 정도로 셰프들은 하나같이 뜻을 모았었다.
“그게 반유현 셰프님이 원했던 것이고. 반유현 셰프님은 본인이 맛의 기준이 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으니까.”
메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어나 말했을 때, 최민성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곤 반유현의 성대모사를
했다.
“메이, 정신 안 차려?”
최민성이 메이에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곤 모두가 박장대소했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반유현의 등장이었다.
“!!!”
***
…….
-최고의 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엔 꼭 해야 돼. 할 수 있다!
-유현아 순대 좀 썰어줘라!
[ 미션을 종료합니다. ]
[ 2. 지금 이대로의 삶 계속 살기 ]
“까고 있네.”
고민은 짧았다.
그런데, 싫다.
[ 현재의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
[ 행운을 빕니다. ]
“울긴 왜 우냐.”
“흐아아아앙!”
긴 시간 동안 했던 고민의 끝은 명확했다.
“다시 시작이야.”
“오히려 이게 아니면, 재미가 없었어. 사람들에게 요리로 신선한 경험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거…… 이게
가장 재밌고 보람찬 일이었다.”
““예!!! 셰프!””
[ 왕의 귀환! ]
…….
““예!!! 셰프!””
나를 향한 충성은 변함없었다.
-<100 년 묵은 탑셰프>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