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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ovel.munpia.com/185097 나혼자 가동율 99.

9 1-100 (완)

접속 (프롤로그)

***

공부에 일찍부터 흥미가 없던 유성은 다행히도(?) 대학에 떨어졌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모습이 눈치가 보여 유성의 막내 외삼촌이 하는 캡슐 방에서 알바를 시작한지 어느덧 석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캡슐 방의 인기가 높지 않다.

야간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 유성은 외삼촌과 둘이서 가게를 본다.

오늘은 손님이 일찍 끊어진 일요일 밤! 유성은 사장님께 살짝 아양을 떨어본다.

“잘생긴 삼촌! 아니 사장님! 저.. 잠깐 국방부 가따와도 될까요?”

“응? 아! 그 얼마 전에 나온 병영체험 프로그램 들어가 보려고? 혹시 접속해서 어렵거나 모르는 것 있으면


삼촌한테 물어봐. 험..험..내가 U.D.T 출신이라 웬만한 건 다 알고 있잖아! 험...험..”

‘U.D.T 일명 우리 동네 특공대!’

‘외삼촌은 동사무소에서 병역대체복무인 공익근무를 했다’고 엄마가 중학교 때 스치듯 얘기한 걸 유성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넵! 사장님!! 충성!! 그럼 후딱 국방부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사장님의 배려로 유성은 캡슐에 몸을 넣고 국방부에서 만든 가상현실 군대 체험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


이’에 접속했다.

접속한 유성의 귓가에 접속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사용자 확인을 위해 홍채 인식을 시도합니다. 확인 중에는 눈을 감지 마세요.]

[삐삐......삐! 사용자 확인이 완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 병영체험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와 신체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삐삐......삐! 동기화가 완료 되었습니다. ]

[경고 : 장시간 가상현실 접속은 신체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

['진짜 사나이' 접속을 환영합니다.]

얼룩무늬 전투복과 베레모를 착용한 유성이 자신의 낯선 모습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낄 때 눈앞으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본 프로그램은 국군장병의 병영생활 체험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입니다.]


[입대 전 장병이 가상 체험으로 획득한 점수는 입대 후 부대 배치, 인사 및 포상 등에 반영될 계획입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띠링! ]

[1. 병영 식당 체험 ]

[2. 병영 축구 체험 ]

[3. 소총 사격 체험 ]

[4. 화생방 훈련 체험 ]

[5. 수류탄 투척 체험 ]

‘체험 메뉴가 많지만 다 읽기엔 귀찮으니 순서대로 선택해야지.’

유성은 깊이 생각하기 귀찮아 오른손을 움직여 병영 식당 체험을 선택했다.

[띠링! ]

[병영 식당으로 이동 합니다. ]

곧바로 기계음이 들리며 서있는 공간이 바뀌었다.

[스....팟]

“우와!!”

주위에 펼쳐진 모습은 가상현실 공간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실제와 거의 흡사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아니 유성이 느끼기에는 실제와 구분 할 수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눈앞에 보이는 단층 건물이 식당임을 알리는 ‘병영 식당’이라는 현판이 보였고, 스피커를 통해서는 군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띠링! ]

[붉은 선을 따라 한 줄로 차례로 식당으로 진입 후 식판에 배식을 받도록 합니다. ]

‘학교 식당에 급식 먹으로 가는 기분이네..’

유성이 눈을 돌리자 입구로 보이는 오른쪽 문을 통해 병사들이 한명씩 입장하고 있었다.

입장하는 병사들 전투복 상의에는 계급과 이름이 보였다.

줄을 서서 입장하는 병사의 계급 중에 ‘체험병’이라고 되어 있는 사람은 '진짜사나이' 프로그램 유저인 듯


보였다.

배식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대부분 NPC 이지만, 저기 배식구 끝에 검은색 베레모를 눌러쓰고 있는 교관은 '
진짜사나이'의 GM 으로 VR 부대에서 군인이 교대로 근무를 선다고 들었다.

‘음. 오늘의 메뉴는 군대리아 버거 세트!’

유성은 식판에 소문으로 듣던 군대리아 버거 세트와 우유를 배식 받아 식탁에 앉았다.

‘재료가 다 분해되어 있어. 어떻게 먹지?’

유성이 주위를 둘러보니 마찬가지로 주위 눈치를 보는 체험병이 여럿 눈에 띄었다.

물론 벌써 다 먹고 일어서는 체험병도 있었다.

그때 마침 유성의 머릿속으로 도움말이 들렸다.

[띠링! ]

[체험병 여러분은 빵과 패티를 섞어 개인 기호에 맞게 군대리아 버거를 만들어 드시면 됩니다. ]

‘맘대로 먹으란 말이네. 가상현실이 생각보다 자유도가 높네.’

유성은 언젠가 방송에서 본 기억을 살려 빵을 두 쪽으로 나누어 두 가지 맛의 버거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했다.

“왼쪽 식판 위의 빵에는 먼저 딸기 쨈을 골고루 바르고, 그 위에 우유를 촉촉하게 부어주면! 일단 하나는 완성!”

유성이 왼쪽 식판 위의 빵에 충분히 우유가 스며들 수 있게 기다리는 동안,

‘이제 오른쪽 식판 위에 반대쪽 수제 버거를 만들어 볼까?’

그렇게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남은 한쪽 수제 버거도 완성시켜 갔다.

“♪참깨 빵! 위에 순 쇠고기! 치즈 상추 양파 까아지♪”

“삶은 계란에 딸기 쨈을 섞어서 숟가락으로 으깨 주고! 고기 패티 위에 빠짐없이 토핑처럼 발라 주고, 양배추와


감자를 으깬 샐러드 치즈, 상추, 양파를 차례로 올려 아삭한 식감을 더더하면....마무...으리!”

유성은 먼저 식판 왼쪽에 있는 ‘우유에 담가 두어 충분히 촉촉해진 빵’을 숟가락으로 한입 크기로 잘라 입에


넣었다.
“음....촉...촉.....쩌...업...따..알...기....촉...촉...마..앗...달......다...우....유...
홍....홍”

유성은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눈을 감은 유성의 눈앞으로 때마침 알림창이 지나갔다.

[띠링! ]

[창의적 요리 ‘우유에 적신 딸기 버거’를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LV 이 개방 되었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25 올랐습니다. ]

[취사병 체험 LV.0 EXP 25/30]

[취사병 체험 LV.1 부터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감은 두 눈을 뜬 유성은 이어서 오른쪽 식판 위에 만들어 둔 ‘군대리아 수제 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앙.......크...게....하...안....입........쩌...업....쩌.....업.....걍.....기...보..온.....
빠...앙”

[띠링! ]

[기본 요리 '군대리아 버거'를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취사병 체험 LV.1 EXP 5/60]

[취사병 체험 LV.1 이 되었습니다. ]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우유에 적신 빵맛에 취해 처음 좌측 하단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다가 연이어 떠오른 두 번째 메시지에
정신을 차리고 알림을 확인 한 유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컥....켁!켁! 깜짝이야 벌써 레벨이 올랐다고?”

얼핏 단골손님에게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대해 들었던 유성의 기억에는 레벨 업은 이렇게 쉽다고 얘기를
듣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아니 어렵다고 들었던 게 확실한 것 같았다.

확인을 위해 서둘러 접속을 해제하고 캡슐에서 나와 휴대폰을 이용해 국방부 ‘진짜 사나이’게시판에 접속했다.

곧바로 ‘병영 식당’관련 글을 찾아봤다.

- ID 홈밥_백선생 : 병영 식당 18 번 체험 끝에 드디어 취사병 체험 LV.1 달성 했습니다.


- ID 중식_이영복 : 앗싸! 병영 식당 16 번 출입 끝에 취사병 지원 가능 뜸!

- ID 유미네_반찬 : 병영 식당 보다 사격장에서 경험치 올리기가 더 쉽다!! ㅇㅈ?!

‘음 그럼 난 뭐지? 버근가? 아니면 이벤튼가?’

일단 유성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니니 좀 더 지켜보고 난 후 알아보기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기기로 했다.

‘내일 윤찬이한테나 물어 보면 되겠지. 일단 조금 출출하네!

“삼촌! 출출하지 않아?”

“...응...쪼끔 출출한 거 같네. 그래! 알바야! 라면 한 번 끓여 봐라! 난! 계란 터트리지 말고.”

“넵! 사장님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유성은 삼촌과 먹을 야식을 준비하기위해 라면 조리기 앞으로 이동했다.

“크크 우리 조카님 국방부 다녀오더니 말투가 바뀌었네.”

웃으며 라면을 주문하는 삼촌을 뒤로하고 라면 조리기 앞에 선 유성은 라면 포장지와 계란을 뜯으며 조리를
시작했다.

[띠링! 조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잠시 후 라면 조리기에서 울린 조리 완료 소리와 함께 라면의 깊은 향이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유성은 쟁반에 라면과 김치를 챙겨서 식당 테이블로 이동해 세팅을 했다.

“츄릅! 조카님 잘 먹을 깨!”

“응, 거기 계란 노른자 살아 있는 게 삼촌 꺼야! 난 여기 터트린 거. 히히”

곧이어 한 밤에 라면 먹방이 시작 되었다.

“후..후!..후르륵...쩌....업...쪼..올..쪼..오....올...기...잇!...노...르...은....자....태...
앵.....글”

“후...!!후!! 며...언..부..드...럽......고....소..쪼..올..쪼..오....올...기...잇!.후루룩!!”

그 때 갑자기 유성의 귀에 캡슐 안에서 들었던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띠링! ]
[기본 요리 '계란 라면'을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취사병 체험 LV.1 EXP 15/60]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켁!켁! 켈록! 사....례!! 켈록! 무.....울!!

생각지도 못한 알람 소리를 들은 유성은 놀라 사레가 들렸다.

“헉!! 유성아! 여기! 물 마셔!!”

“꿀꺽! 꿀..꺼억! 휴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삼촌이 가져다 준 물을 마시고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유성이 대답했다.

“그러게 천천히 좀 먹지. 괜찮아?”

“응..삼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는 강심장이라고 불리는 유성이지만, 이번에는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 되질 않아 화장실로


일단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에 도착한 유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삭이듯 ‘진짜 사나이’의 명령어 하나를 읊조렸다.

“...상태창”

[띠링! ]

유성의 머릿속에서 작은 알람 소리와 함께 눈앞에 프로그램 안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홀로그램 화면이 펼쳐졌다.

[체험병 : 한유성]

[취사병 체험 LV.1 EXP 15/60]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헉! 이게 뭐지? 꿈은 아닌데? 아직 캡슐 속인가?”

유성은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살짝 손등을 꼬집어보았다.

“아얏!”

‘역시 현실이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다시 확인한 유성은 손을 뻗어 이름을 클릭했다.

그러자 상세정보가 눈앞에 나타났다.


[체험병 : 한유성]

[힘:9 민첩:8 체력:9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자신의 정보를 확인한 유성은 곧 눈이 커졌다.

기본 스탯에 관한 얘기는 단골손님을 통해 몇 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한 가지 항목이 유성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상현실 동기화율은 뭐지?”

자연스럽게 손이 그 글자 위를 터치했다.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가상현실 동기화율이 높을수록 국방부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와 체험병 사이의 에너지 손실률이 줄어듭니다.]

[체험병 한유성님은 최소한의 에너지 손실 효과로 인해 프로그램과의 접속이 유지됩니다. ]

[체험병 한유성님은 최소한의 에너지 손실 효과로 인해 경험치 손실이 거의 없습니다. ]

‘잉? 나도 드디어 판타지 소설 속처럼 헌터 플레이어가 된 건가?! 흐흐흐 얏! 호!!’

높은 정신력(?)으로 벌써 정신적인 충격을 극복하고 김칫국을 한 사발 마시는 유성이다.

“유성아 3 번 캡슐 손님! 이용방법 설명해 드려!”

가게 안에서 들린 사장님의 부름에 유성은 후다닥 화장실을 벗어났다.

“네! 손님!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가상현실 동기화 비율 (가.동.율)

***

“하...아...푸...움!!”

월요일 오후 2 시를 지난 시간 아직 유성에겐 수면 시간이 부족하지만, 지난주 운전면허 시험 코스 합격으로


도로주행 연습이 오늘부터였다. 그래서 유성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또! 하..아...품!”

유성은 느릿느릿 부엌으로 가서 엄마가 해두었을 ‘쿡쿡’안에 밥을 퍼고,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과 함께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그 와중에 지난밤과 같은 특별한(?) 일이 일어날까하고 기대를 살짝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곧장 씻고 외출 준비를 했다.


유성은 지난 월요일부터 그동안 모아둔 알바비를 조금 뽑아서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했었다.

지난주에 학원내부에서 얼마간의 연습 후 코스 시험을 바로 통과한 뒤 이번 주 부터는 실제 도로주행 연습을


시작했다.

‘크.. 역시! 평일 낮 시간이 도로에 차량이 적어 운전 연습하기에는 안성맞춤이지.’

자신의 시간 선택에 만족하는 유성의 입에선 저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흠..흠..♬바로 내가 사나이다! 멋진! 유성이!♬”

“큼! 큼! 이봐요! 운전 연습생! 운전에 집중해요! 초보도 못 딴 병아리가 운전 중에....도대체!.........”

유성은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잔소리에서 빨리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건 잘못에 대한 빠른 인정이었다. 물론 영혼을 1 도 담긴 힘들지만 말이다.

“네 죄송합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만 저도 모르게 경솔했습니다. 앞으론 주의하겠습니다.”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풀이 죽어 조용한 분위기 속에 다시 운전 학원으로 돌아온 유성은 기어와 브레이크 확인 후
차량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운전 강사는 운전 교육하는 내내 유성의 빠른 사과에도 뭐가 아직 불만이 남았는지 유성에게 잔소리와 함께 계속


투덜거리더니 결국 운전학원에 도착하자마자 불만을 가득 품은 표정으로 인사도 없이 차에서 훌쩍 내려 학원 내
흡연구역을 향해 달려갔다.

“쩝. 운전 강사님 음친가? 왜 노래 한 소절 살짝 듣고 저렇게 과민 반응이야?”

[띠링! ]

그 때, 갑자기 유성의 머릿속에 알림 음이 울렸다.

[2 종 승용차 ‘악센트’를 운행하셨습니다. ]

[운전병 체험 LV 이 개방 되었습니다. ]

[운전병 체험 경험치가 20 올랐습니다. ]

[운전병 체험 LV.0 EXP 20/30]

[운전병 체험 LV.1 부터 운전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헐, 이번엔 운전병 체험 경험치 라고? 갑자기 군대가 나한테 왜 이러지? 나보고 입대하란 말인가? 쩝! 하지만
아직은 생각 없지 말입니다.’

갑자기 유성에게 벌어지는 군대의 관심(?)이 유성은 낯설기만 했다.

***

한 시간 후, 유성은 저녁도 먹고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볼 것도 있어 윤찬이와 샌드위치 전문점


'Metro'에서 만났다.

“윤찬아 너 국방부 ‘진짜 사나이’ 알지?”

“쩝...쩝...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 응. 알지. 쩝..쩌업”

“거기 ‘가상현실 동기화율’이라고 있던데 혹시 너는 몇 프론지 기억해?”

콜라로 입안에 있던 샌드위치 조각을 삼킨 윤찬이 유성에게 자랑을 시작했다.

“후르륵 크올..라! 마! 형님은! 1 등급!! 상위 4% 안에 들어 가자나. 가.동.율 65%!! 스웩이 느껴지나?”

“ㅋㅋ수능이나 1 등급 받지 그랬냐? 근데 그거 높아서 어따 써?”

“유성이 넌 아직 모르냐? 가.동.율 높을수록 사이버 멀미를 안 해. 평균 1~2 시간 접속하면 멀미를 느끼잖아?
하지만 이 형님은 4 시간까지 접속 했는데 괜찮더라!”

역시 윤찬의 지자랑은 끝이 없다. 유성은 일단 계속 들어 보기로 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가.동.율이 높을수록 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던데, 그래도 현실 구현은 아직은 조금 멀었지.
상위 4%인 나도 음식 맛이랑 식감은 좀 푸석푸석 한 게... 아직 오감을 만족하기에는 기술이 좀 떨어지지
않냐?”

윤찬의 말을 들은 유성은 지난 밤 자신이 접속 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헛 분명히 ‘우유에 담군 촉촉한 빵’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돋는 맛이었는데...그리고 ‘진짜 사나이’에


접속 했을 때 새소리와 바람 소리, 음식 냄새 등 모든 곳에서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생생함을 느꼈었는데...’

하지만 유성은 윤찬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자신이 느낀 사실을 얘기하면 윤찬의 성격에 믿지 않고 방방 뛸
거다. 그래서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유성이다.

“하하 하긴 그렇지? ‘Metro’는 ‘Thprite’(사이다)가 무한 리필이라 좋아. 더 갖다 줄까?”

“No! plz ‘Coke’(콜라).”

“OK! ‘Thprite’(사이다)!”

***

[딸랑! ]

“어서 오세요!”

“누나! 형! 나 왔어!”

유성은 밤 10 시가 되기 전 캡슐 방에 도착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해진 시간 보다 조금 일찍 와서 교대를


해주려고 하는 편이었다.

“어 유성이구나? 오늘도 일찍 왔네!”


“응! 주호 형은?”

“테이블 정리 중.”

앞 타임 알바인 소정이 교대 전에 사장님은 조금 늦을 거라고 미리 얘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소정과 주호에게 조금 빠른 퇴근을 안겨준 유성은 미처 마무리 되지 않은 테이블과 의자 정리를 했다.

유성이 맡은 10 시가 지난 저녁 캡슐 방안은 미성년자들은 신분증 검사를 통해 모두 돌아가고 이제 최소


유성보다는 나이가 많은 성인들만 자리를 지킨다.

삼촌의 가게는 캡슐 방이라고 해서 캡슐만 있지는 않고 컴퓨터 테이블이 가게의 반을 차지한다.

사실 캡슐은 사이버 멀미 때문에 장시간 이용이 어렵고 가격도 높아 저녁 손님들은 대부분 PC 이용고객이다.

벌써부터 한유성을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알바야! 여기 야간정액 두개 끊고, 끓인 라면 두개 계란 넣어서 가따도!”

“네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이런 말투가 왜 익숙하지?’

밤새 여기저기 라면을 조리해서 날랐지만 어제 밤에 유성의 머릿속에 울렸던 알람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유성은 해뜨기 전 새벽에 주문한 손님 라면에서 출출함에 라면 국물만 한 숟갈 종이컵에
옮겨 담아 마셔보았다.

“후르륵! 아! 역시! 라면은 남에 것 뺏어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단 말이지.”

살짝 국물 맛만 보고 쟁반에 라면을 담아 손님에게 라면을 내어가려던 그 때 유성의 머릿속에 알람소리가 울렸다.

[띠링! ]

[기본 요리 ‘계란 라면’을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8 올랐습니다.]

[취사병 체험 LV.1 EXP 23/60]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아! 내가 요리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만든 요리를 먹어야 경험치가 오르는 건가? 종이컵으로 마셨는데
경험치가 오른 것으로 보아 양은 크게 상관없나 보네.’

메시지를 확인한 유성은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경험치 획득 패턴을 조금은 예상 할 수 있었다.

‘어제는 라면 먹고 경험치가 10 이였던 거 같은데. 같은 요리를 먹으면 경험치가 조금씩 줄어드는 건가?’

유성은 내일 알바부터는 경험치 획득을 위해 손님들 라면에 ‘국물 한입만!’을 실행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수요일 오후 2 시! 알람 소리에도 아직 눈을 반밖에 못 뜬 유성은 몽롱한 정신을 다 잡으려 어제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유성은 어제 낮에 운전면허 학원에서 도로주행 교육 후에 차량의 시동을 끄자 운전병 체험 레벨이란 것이 다시


오르고, 저녁 캡슐 방 알바 중에 틈틈이 라면의 국물 한입만을 이용해 취사병 체험 레벨 경험치도 올린 사실이
떠올랐다.

“쩝. 어제 운전병으로도 지원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고 했는데. 근데 딱히 어디가 좋아진 거지? 판타지
소설처럼 갑자기 운전이 실력이 늘어난 기분은 아닌데. 요리를 떠올려도 모르던 레시피가 막 떠오르고 요리 맛이
좋아진 것도 분명 아니고.”

오후에 일어나 늦은 점심을 먹고 외출 준비를 하기 전 유성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조금 자세히 알고


싶어져 조심스럽게 ‘상태창’을 소환했다.

“상태창.”

[띠링! ]

유성의 눈앞으로 홀로그램 형태의 상태창이 펼쳐졌다.

[체험병 : 한유성]

[취사병 체험 LV.1 EXP 36/60]

[운전병 체험 LV.1 EXP 0/60]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취사병 체험 경험치는 같은 종류의 ‘계란 라면’만 주구장창 끓였더니 점점 경험치가 줄어들어 생각보다 조금
밖에 오르지 않았다.

오늘 점심도 가족 없이 홀로 혼밥을 먹던 유성은 상태창과 스탯창을 불러 확인했다.

“음...오..므..울...오.물 ..스탯창!”

[띠링! ]

[체험병 : 한유성]

[힘:9 민첩:9 체력:9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별생각 없이 홀로그램을 살펴보던 유성은 갑자기 눈이 화들짝 커졌다.

“오물...오...물....음? 어제와 달라진 게.. 어? 있네! 와! 대박! 개이득!”

***
-Episode

화요일 밤 캡슐 방!

전날 취사병 체험 경험치의 비밀(?)을 알아낸 유성은 오늘부터 평소에는 하지 않던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손님들에게 다가가 라면을 팔기 시작했다.

“손님 오늘 특별히 계란라면 시키시면 계란 하나 더 넣어 드려요!”

“어? 그래? 근데..어쩌나 밥을 먹은 지 얼마 안돼서...”

유성은 평소에는 하지 않던 라면 방문 판매를 시작했다.

“손님 라면 시키시면 특별히 계란 하나 넣어 드립니다.”

“야! 원래 끓인 라면엔 계란 넣어 줬자나!”

역시 방문 판매는 쉽지 않았다.

“저기요! 여기 사발면 말고 끓인 라면도 되나요?”

“네 손님! 저희 캡슐 방은 사발면도 있지만 끓인 라면도 팔고 있습니다.”

유성이 손님에게 다가가 얼굴을 확인 하니 얼굴이 낯선 걸로 보아 신규 손님임에 분명했다.

친절한 멘트로 손님에게 끓인 라면을 이어 홍보하는 유성이다.

“저희 캡슐 방은 대기업에서 추천하는 라면 조리 방법을 엄수합니다. 특히 라면 조리기를 이용해 정확한 물의


양과 시간 조절로 타 캡슐 방에서 일어나는 알바의 손맛에 따라 들쑥날쑥한 일정하지 않은 맛보다 일정한 맛을
보장 합니다.”

“하하 그럼 하나 주세요!”

“네! 손님!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옆에서 유성의 설명을 듣고 있던 단골 고객이 유성에게 물었다.

“알바야! 이제 네가 라면 안 끓여?”

“네! 라면 안 끓인 지 좀 됐지 말입니다.”

유성의 말을 들은 단골 고객이 말했다.

“그래? 그럼 나도 라면 하나 끓여줘!”

“어? 손님 조금 전 밥 먹은 지 얼마 안돼서 괜찮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하하! 그건 네가 또 전에처럼 한강라면 끓여 줄까봐 그랬지.”

그랬다. 캡슐 방에 라면 조리기는 사실 유성이 라면을 끓이기 시작하고 나서 손님들의 항의로 인해 삼촌이 구입한
기계였던 것이다.
레벨업

***

한유성은 좀 더 자세히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확인했다.

[체험병 : 한유성]

[힘:9 민첩:9 체력:9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분명히 지난번 화장실에서 ‘상태창’을 확인했을 때는 확실히 힘, 민첩, 체력의 스탯 수치가 모두 똑같지
않았는데.”

아직 눈앞에 떠올라 있는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유성은 생각했다.

‘3 일 동안 운동도 열심히 한적 없는데 민첩이 오르진 않았을 거야!’

“지난번 확인 했을 때와 바뀐 건 운전병 체험 레벨이 1 이 된 건데. 그에 따라 민첩 1 이 오른 건가? 이 얘기가


맞다면 난 정말 대박! 인건가?! 크크크.”

한유성은 벅차오르는 기쁜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도 그럼 민첩 올리러 가볼까?”

해운대 센텀에 위치한 면허학원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유성은 어제 끓였던 라면 요리에서도 매번 같은 종류만
끓였더니 경험치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흠! 이제 슬슬 자동차도 바꿔 타볼 까?”

유성은 이제 부터는 기존에 타던 차량과 다른 차량을 이용할 생각으로 면허학원에 도착해서 주차된 노란 병아리
차량들을 둘러 보다 알게 된 사실은 바로...

“으아악! 왜!!!? 다 똑같은 병아리들이야!!??”

주차된 노란색 차량을 둘러보니 번호만 다르게 표기된 똑같은 병아리(?) 차량들이 유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어제와 같은 차량으로 안전한 운행을 마치고 복귀한 유성이의 머릿속에 알림 음이 울렸다.

[띠링! ]

[2 종 승용차 '악센트'를 운행하셨습니다. ]

[운전병 체험 경험치가 8 올랐습니다. ]

[운전병 체험 LV.1 EXP 8/60]

[운전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결국, 같은 종류의 경험은 점점 경험치가 줄어든다는 유성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

한유성에게 고딩 때 다닌 수학 학원에서 알게 된 한해 선배인 나태혁에게서 어제 연락이 왔었다. 유성은 오랜만에


온 연락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마땅히 약속도 없어서 오늘 알바 가기 전에 캡슐 방 건물 1 층에 위치한 ‘어디야
커피’에서 잠깐 나태혁과 만나기로 했다.

“안녕 하십니까 고객님!!”

“어소오세요 고객님!!”

직원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유성이 테이블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니 태혁이 도착했다.

“유성아, 오랜만이네”

“응! 형, 잘 지냈어? 서울 물 먹더니 이야! 살도 빠지고 멋있어 졌네!”

오랜만에 보는 태혁에게 유성은 립서비스를 날렸지만, 태혁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유성이 기대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맨 날 똑같지 뭐..근데 넌 전해 듣기로는...지난번 수능 결과가........그랬다며?”

“아 그거! 이제 지난 지 꽤 오래돼서 괜찮아. 이젠 아무렇지는 은...아닌가? 아직 집에서는 엄마 눈치가 많이


남아있네. 후후후. 그래서 요즘 캡슐 방에서 알바하고 있어. 엄마랑 마주치면 좋은 소리 못 들을게 뻔 하니까.”

“후훗 그렇겠네.”

“형은 서울 생활 어때? ‘코코넛 톡’ 프사 보니까 형수님 예쁘시던데? 같이 내려오지 그랬어?”

“하하하 나중에 시간될 때 같이 데리고 올게, 넌 여친 없어? 고딩 때 ‘금.사.빠’ 유성이로 학원에


유명했잖아??”

“컥! 그게 언제 쩍 얘긴데..아직 우려먹어 형은? 다 어릴 때 얘기지.”

유성은 고등학생 때 학원에 처음 오는 여학생만 보면 금방 사랑에 빠진다고 해서 ‘금.사.빠’로 불렸었다.

물론 고백하고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유성은 거절에 대한 마.상을 크게 입은 적은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곧 또 다른 여학생에게 ‘금.사.빠’ 화살 방향을 조준


했으니까.

유성은 대화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자신의 주특기인 주제 바꾸기를 시도했다.

“아 그러고 보니 형 지금 학기 중이지 않아? 어떻게 내려 왔어?”

유성의 말에 잠깐 멈칫했던 태혁이 대답을 이어갔다.

“큼..큼....그게....이번 학기 중간고사를 거하게 말았지. 기말고사에서 과 수석을 하더라도 복구하지 못할


만큼 시험을 말아버렸어. 아버지가 아시면 서울생활 접어야 할지도 몰라서... 어떻게 이룬 독립인데 그건
막아야지.”
“고등학교 졸업해도 대학가면 여전히 성적은 따라 다니나 보네.”

“그래서 고민 끝에 미리 휴학하고, 도피성이 다분하지만 군 입대 신청했어. 월요일에 휴학하고 바로 내려 왔는데,


나도 집에 있으니 괜히 눈치 보여서... 오늘은 밤늦게 들어갈까 생각 중이야.”

“그래? 그럼 형 약속 없으면 이 건물 4 층이 나의 직장인데 같이 출근 할래?”

“그럼 그럴까? 아까 캡슐 방 이라고 했지?”

“캡슐도 있고 PC 도 있으니까. 편한 거 하면 돼.”

“아 다행이네. 서울에서 캡슐 방으로 데이트 갔다가 1 시간도 못 타고 사이버 멀미가 나서 나만 중간에 내렸거든.
쩝.”

“형 그러면 PC 하다가 캡슐 잠깐 타면 되겠네. 아 그럼 형은 가.동.율 얼만지 체크해봤어?”

“그게 45%? 아마 그 정도였던 것 같아. 30 분 정도는 괜찮던데 1 시간 넘어 가니까 울렁거려서 혼났었지.


그래서 그 날 이후 캡슐 방 데이트는 휴업했지. 사이버 멀미 생각보다 머리 아프더라. 후덜덜했어.”

“크크 아직도 캡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니. 형이 나이 들어서 그런 거야. 내가 이따가 형 캐리해 줄게 나만
믿어. 크크크.”

유성의 나이라는 말에 태혁이 얼굴을 굳히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유성아. 거기까지. 선 넘지 마라!”

사실 태혁은 노안으로 불렸었다.

“어..형..미안!”

역시 빠른 사과가 답이다. 그 사과에 영혼이 1 도 없어도 말이다.

***

밤 12 시가 넘어가니 손님들이 하나 둘 빠지고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이 뜸해져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유성은
테이블 정리를 하다 태혁 옆으로 이동했다.

“형 출출하지 않아? 라면이라도 하나 만들어 줄까?”

“오! 땡큐! 컵라면? 끓인 라면?”

“뭘요 감사까지야. 이게다 돈 받고 끓여 주는 겁니다. 손님! 둘 다 되는데, 음... ‘형이 라면’ 특별히 ‘내
맘 데로라면’으로 끓여 줄게. 크크”

“헐 유성이 많이 힘드냐? 갑자기 왠 ‘아재 감성’ 드립이냐?

태혁의 아재 취급에 살짝 삐친 유성이 태혁에게 투덜거렸다.

“췟! 손!님!만 음식 값은 선불입니다. 그리고 음료수 서비스도 손!님!만 셀프입니다. 직접 데스크 앞 냉장고로
왕림하셔서 손수 챙겨가는 선행을 보여 주시 옵소소.”
말이 끝나자 유성은 돌아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뒷모습을 바라보던 태혁이 조용히 소근 거렸다.

“역시 가족경영. 알바가 갑이라니...”

혈연으로 이루어진 기업(?)은 오늘도 가족 경영의 문제점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라면으로 얻는 경험치가 없어져 버린 유성은 어제 삼촌에게 메뉴 추가를 건의했다.

늘어나는 메뉴는 떡라면, 만두라면, 땡초라면 따위로 만들 생각이지만, 경험치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올릴 수


있도록 메뉴를 ‘알바 맘 데로라면’이라고 작명했다.

그래야 좀 더 ‘취사병 체험 LV 경험치’를 효과적으로 올릴 거라고 유성은 생각했다.

이제 가게안의 저녁 라면 장사는 유성의 손에서 조율 될 것이다.

조리대 앞에 선 유성은 무엇이 즐거운지 랩을 흥얼거렸다.

“♩형이 생각 없이 뱉은 말 있지? 홍홍♬”

“♩사실 마음속의 선을 넘었지 홍홍♬”

“♩이제 매운맛을 보여 줘야지 홍홍♬”

“♩여기 땡초 맛은 나의 선택지 홍홍♬”

한유성은 나태혁을 골려줄 생각으로 벌써 입고리가 반쯤 올라 가있다.

이어서 벌어질 일은 생각도 못하고 소심한 복수만 꿈꾸고 있다.

[띠링! 조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잠시 후 알림 음을 들은 유성은 쟁반에 땡초가 가득 들어가 더 매워졌을 ‘동심 불라면’과 김치를 챙겨서 식당


테이블로 이동해 세팅을 하고, 태혁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손님 맛있게 드시지 말입니다. 쩝!”

“아직도 삐졌어? 말투가 왜 그래?”

“손님은 왕인데 그런 감정 1 도 없지 말입니다. 핏!”

웃으며 말하는 유성을 보며 태혁도 웃으며 라면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렇게 태혁의 먹방이 잠시 진행 되었다.

“하하 그럼 다행이고. 마침 출출했는데 잘 먹을게.”

“후르륵 후르릅 매..코.....옴....따...암...삐질.”


“후르륵 때..앵...초...매...앱...다....따..암....나...안...다.”

“으...으.....디..게....매...앱....다.”

잠시 옆에서 흐뭇하게 태혁을 지켜보던 유성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얼굴을 굳혔다.

작은 복수에 빠져있다 자신이 맛 볼 한 숟갈을 종이컵에 덜어놓는 걸 깜빡했다.

‘아! 경험치!’

“형님!”

“으..매..브....응?”

유성은 갑자기 종이컵을 내밀며 태혁에게 말했다.

“드시는 중에 죄송한데...한 입만!”

“으응?”

잠시 멍해졌던 태혁의 입꼬리가 살짝 휘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나 그럼 ‘Thprite’(사이다) 좀 부탁해도 될까?”

“그럼요 형은 손님이고 손님은 왕인데, 일개 알바가 감히 갖다 드려야죠.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유성은 자신을 보던 태혁의 눈빛이 고춧가루 통을 향하는 건 모르고 데스크로 달려갔다.

잠시 후 종이컵에 든 라면국물을 마신 유성의 비명과 함께 그의 머릿속에 이제는 익숙해진 알람 음이 울렸다.

“으아아 !무...울!...혀..엉..나도..‘Thprite’(사이다) 좀!!”

[띠링! ]

[기본 요리 ‘땡초 가득한 라면’을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취사병 체험 LV.1 EXP 46/60]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Thprite’(사이다)를 얻어 마시고 진정이 좀 된 유성은 취사병 체험 레벨은 어떤 스탯에 영향을 주는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오늘밤 안에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형 벌써 배가 부른 건 아니지?”

“왜? 이번엔 ‘고추냉이 라면’ 이라도 끓여주게?”


“크크 형 매운 거 좋아했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형을 위해 준비한 메뉴는 24 시간 약불 에서 정성들여 끓인
사골에서 푹 고아 만들고 싶은 ‘만두라면’이랑, 한석봉 어머님께서 직접 떡국떡국 하면서 썰어 넣고 싶은 ‘
떡라면’이 준비되어 있는데 괜찮지?”

무슨 사기꾼 장사 모드를 장착한 유성은 어이서 강매 모드를 추가했다.

“물론 계산은 손님이 선불로 하시고 양이 버거우면 알바가 도와 드리지 말입니다. 헤헤헤.”

“크크 그래 알았다. 혼자 먹으니 조금 썰렁 했는데. 같이 먹게 두 개 콜!”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잠시 후 오를 거라 확신하는 ‘취사병 체험 레벨’ 생각에 한유성은 가족경영 직장(?) 생활이 즐겁다.

잠시 후 조리기에서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조리가 완료되었습니다.]

군대스리가

***

식당테이블에서 나태혁과 함께 라면 두 그릇을 차례로 나눠먹은 한유성의 머릿속에 이제는 익숙한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

[기본 요리 ‘만두 라면’을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취사병 체험 LV.1 EXP 56/60]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유성은 태혁과 마주 앉아 방금 조리기에서 가져온 라면을 나눠 먹으며 머릿속에 들려오는 알림 음을 들었다.

[띠링! ]

[기본 요리 ‘떡 라면’을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취사병 체험 LV.2 EXP 6/120]

[취사병 체험 LV.2 가 되었습니다. ]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이제 상태창만 확인해 보면 되겠지?’

유성은 조용히 ‘상태창’ 화면을 소환했다.


“..상태창”

[띠링! ]

[체험병 : 한유성]

[힘:9 민첩:9 체력:10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유성은 자신의 예상대로 체력이 1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체험경험치의 레벨이 오를 때 마다 스탯 중 하나가 1 이 오른다는 확신에 입 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형도 배부르지?”

“꺼억! 그러게 자취만 하다가 누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니 정말 맛있네. 오랜만에 포식했다.”

“형 그럼 이거 정리만 하고 소화도 시킬 겸 몸 좀 풀까?”

“이 밤에 어디서? 어떻게?”

나태혁의 물음에 한유성은 씩 웃으며 손으로 한 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네. 군대스리가!”

나태혁은 한유성의 ‘군대스리가’를 ‘분대스리가’로 잘못 알아들었다.

“분대스리가? 저건 캡슐이자나. 아! ‘CYBER(사이버) FIFA(피파)’ 하자고?”

태혁의 말에 한유성은 얼굴은 다 쌍둥이에 체격만 다르게 표현되었던 ‘사이버 피파’를 떠올렸다.

‘현실감이 엉망이었지.’

현재 게임 업계 상황은 캡슐 프로그램으로 출시된 3D 가상현실 게임은 많이 있지만 평균 ‘가.동.율’이 50%


이며 평균 1 인 캡슐 접속 시간이 1 시간 정도에 머물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이버 멀미로 인해 PC 게임에 비해서 캡슐게임은 대중화 되지 못

하고 있다.

대중화 실패로 인해 보급형 캡슐은 아직 생산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연이은 악재로 인해 급성장 하던 가상현실 산업은 블루칩의 자리에서 내려 온지 벌써 오래 되었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떠난 가상현실 게임 시장은 유저들도 점점 찾지 않는 상태다.

그래서 지금 가상현실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방부’에서 만든 ‘진짜사나이’가 홀로 블루오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음..‘사이버 피파’는 현실감이 좀 떨어졌지. 하지만 요즘 짱짱한 현실감과 빵빵한 경제적 지원으로 뜨는 캡슐
프로그램이 있지. 거긴 광고도 없어.”

유성의 말에 태혁이 처음 듣는 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잉? 그런 게 있었어?”

잠시 후 유성은 곧 입대를 앞둔 태혁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며 사이버 멀미를 두려워하는 태혁을 캡슐에
태우는데 성공했다.

“형 접속하고 나면 메인화면에 축구 있을 거야 거기 들어가서 만나.”

“유성아 나 잘 모르는데 괜찮을까?”

“형 걱정 하지 마. 나도 한 번 밖에 안 해봤어. 이제 두 번째 접속이야.”

삼촌에게는 손님 안내 차원에서 캡슐접속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허락을 맡았다.

‘자 이번에는 국방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캡슐에 오르는 한유성이다.

잠시 후 캡슐 안에서 유성의 귓가에 접속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사용자 확인을 위해 홍채 인식을 시도합니다. 확인 중에는 눈을 감지 마세요.]

[삐삐......삐! 사용자 확인이 완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 병영체험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와 신체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삐삐......삐! 동기화가 완료 되었습니다. ]

[경고 : 장시간 가상현실 접속은 신체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

['진짜 사나이' 접속을 환영합니다.]

지난번 접속과 마찬가지로 전투복과 전투모를 착용한 내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본 프로그램은 국군장병의 병영생활 체험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입니다.]

[입대 전 장병이 가상 체험으로 획득한 점수는 입대 후 부대 배치, 인사 및 포상 등에 반영될 계획입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띠링! ]

[1. 병영 식당 체험 ]
[2. 병영 축구 체험 ]

[3. 소총 사격 체험 ]

[4. 화생방 훈련 체험 ]

[5. 수류탄 투척 체험 ]

유성은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병영 축구 체험’을 선택했다.

[띠링! ]

[연병장으로 이동 합니다. ]

[스....팟]

곧바로 기계음이 들리며 유서이 서있는 공간이 연병장 스탠드 위로 바뀌었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스피커에서는 군가가 흘러 나왔다. 눈앞에 나타난 현실감 있게 펼쳐진 동네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공터를 보며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엥 저게 뭐야. 저기가 축구장이라고?’

유성은 ‘웸블리’ 같은 화려한 경기장까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녹색 잔디는 깔려 있으리라 생각했다.

요즘은 초등학교도 기본적으로 인조 잔디 구장을 갖고 있고, 축구부를 운영하는 학교는 기본적으로 천연 잔디


위에서 운동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저 황량한 갈색 운동장은 뭐란 말인가? 놀란 가슴을 누르며 둘러보니 NPC 와 유저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띠링! ]

나태혁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던 한유성에게 알림 음과 함께 선택창이 떠올랐다.

[체험병은 소속할 소대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선봉 1 소대]

[전진 2 소대]
[진격 3 소대]

[맹호 4 소대]

한유성은 이번에도 선택지 앞에서는 순서대로 맨 처음 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선택하신 선봉 1 소대 유니폼으로 환복 합니다. ]

메시지와 함께 유성의 몸에 하얀 빛 무리가 생겼다.

[스....팟]

선봉 1 소대 붉은 유니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 유니폼과 흡사했다.

유성은 갈아입은 축구화와 유니폼에서도 현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띠링! ]

[체험병은 붉은 선을 따라 연병장으로 이동해 자신의 포지션에 위치합니다. ]

[체험병의 포지션은 ‘오른쪽 수비수’입니다. ]

유성은 발밑에서 깜빡이는 빨간 유도 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중얼거렸다.

“크아! 내 위치는 상대팀 에이스를 담당하는 말하자면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훈민’을 막는 자리란
말이지?”

유성은 자신의 포지션에 위치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넘버를 보니 이름이 있는 NPC 와 이름이 없는 체험병이 섞여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공격진에는 모두 백넘버 위에 이름이 있었다.

유성과 같이 ‘진짜사나이’체험병들은 모두 수비에 배치되어 있었다.

“신병은 수비라더니...허허.”

[잠시 후 1 분 뒤 경기가 시작됩니다. ]

[60 초]

[59 초]

[58 초]

:
:

[0 초]

[삐익!!]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렸다.

선봉 1 소대 상대는 맹호 4 소대였다.

나태혁은 다른 소대를 선택했는지 유성의 상대편에서도 태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상대방을 살펴보던 유성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공도 가지지 않은 공격수 발밑에 빨간색 원이 반짝이는 선수가 유성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위기감을 느낀 유성이 그 선수 앞으로 막 나가려던 차에 한유성 뒤에 위치한 NPC 로 보이는 골키퍼가


소리쳤다.

[야! 체험병! 사람잡아! 막으라고!]

[야! 체험병 공 말고 사람만 보라고! 길만 막으라고!]

‘헐! 이 무슨 리얼리즘?!’

“넵! 알겠습니다!”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골기퍼의 주문에 따라 움직이며 점점 경기에 몰입해 갔다.

그렇게 발밑에 빨간색 테두리가 깜빡이는 공격수만 유성은 전반전 내내 죽을 듯이 졸졸 쫒아 다녔다.

여전히 귓가에는 골키퍼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제 유성 자신을 부르는 명칭도 꼴통으로 바뀌어 있었다.

[야! 꼴통!! 공 말고 사람!!보라고!!]

“헉..허억! 네.. 알겠지.... 말...입니다...아우..숨차!”

유성은 붉은 상대 공격수를 따라 다닌 지 20 분 정도 지나자 공을 볼 힘도 없었다.

얼마나 빠른지 혹시 프로 축구선수를 구현한건 아닌지 의심된다.

그냥 따라 다니기 바쁘다.

하지만 그 덕에 어찌어찌 유성은 수비를 몇 번 성공시켜 상대방 공격을 막아 내고 있다.

[아우! 저 놈 뭐야? 아우!....C8! 미치겠네. 야! 비켜! 비키라고! ]

유성이 막고 있는 붉은 원이 보이는 상대 공격수의 외침이다.

리얼리즘에 빠진 유성이 곧 말을 받아쳤다.


“헉..헉...비..키..는 건..아..니.지 말..입니다.”

그 이후로도 유성은 끈질기게 붉은 원을 달고 있는 공격수를 따라 다녔다.

사실 그랬다. 유성이 NPC 로 생각하는 선수는 모두 VR 부대 소속 사이버중대 1 소대와 4 소대 현역 군인 이라는


걸 모르고 한유성은 리얼리즘 속에서 감탄과 함께 열심히 뛰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중대의 ‘메시’로 불리는 김성권 병장의 비명이 더욱 깊어져 갔다.

[아악!! 저 꼴통 왜 내 앞만 막는 거야! 미쳐버리겠네!! C8!! ]

***

[삑! 삑! 삐익!!]

전반이 끝났다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는 유성의 머릿속에 알림 음이 울렸다.

[띠링! ]

[병영축구 경기 ‘소대 대항전’에 참여하셨습니다.]

[병영축구 체험 LV 이 개방 되었습니다. ]

[병영축구 체험 경험치가 15 올랐습니다. ]

[병영축구 체험 LV.0 EXP 15/30]

[병영축구 체험 LV.1 부터 포지션 변경이 가능합니다. ]

유성은 병영 축구 체험에서도 경험치를 받을 꺼라 예상 했었다.

또한 축구 체험레벨을 올리면 어떤 스탯이 오를지가 궁금했다.

유성은 후반전에는 어떤 방법으로 경기에 참여해야 보다 높은 경험치를 받을지 생각에 잠겼다.

‘후반전에도 전반전 같은 ‘갓 수비(?)’ 라면 아마 경험치 빵빵하게 받아서 레벨 업 할 수 있겠지? 흐흐흐’

후반전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전반에 쌓였던 피로감이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띠링! ]

‘후반전 시작 알림 음인가?’

[체험 병의 남은 체력이 부족해 ‘교체 아웃’ 되었습니다. ]

‘이런. 내...내 경험치······.’

유성은 경험치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 채로 캡슐에서 내려야 했다.

유성이 캡슐에서 내린 뒤 잠시 후 상기된 표정으로 캡슐에서 내리는 태혁의 모습이 보였다.

“형 괜찮았어? 혹시 멀미 때문에 내린 건 아니지?”


태혁의 잔뜩 상기된 표정을 살펴본 유성은 걱정이 되어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영점사격

***

유성은 태혁에게 말을 건네며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태혁의 표정은 썩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에서 싸우고 와서 상기된 표정이랄까?

“응 나쁘지 않았어. 어쩐지 기존의 가상현실 프로그램 보다는 확실히 좀 더 편한 기분이 들던데. 그리고
연병장에서 3 소대와 붙을 때는 실감 나더라.

특히 시작부터 뒤에서 골키퍼가 ‘감나라! 대추나라!’ 하기에 돌아보면서 한방 쏴줬지! ‘니나! 나라!’라고
크크 물론 욕도 살짝 섞어서 크.”

태혁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입 꼬리를 올렸다.

지금부터 45 분 전쯤,

[삐익!!]

태혁의 귓가에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태혁이 선택한 전진 2 소대의 상대는 진격 3 소대였다.

중앙 수비에 위치한 태혁은 경기장 안에서 유성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경기장을 둘러보니 선수들의 얼굴과 표정이 모두 다른 걸 알고, 국방부에서 만든 프로그램 퀄리티에 놀랐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며 아직 경기에 집중하지 않아 공이 오는지도 확인 하지 못한 태혁은 달려드는 선수에게


허무하게 길을 내주고 말았고, 그 때 귓가에 들려오는 NPC 사병의 외침에 정신이 돌아왔다.

[야! 체험병 거기가 네 위치야? 눈은 ‘데커레이션’이야? ]

[야! 멀 멀뚱히 쳐다봐? 수비해야지!! 네 자리로 가서 선수 막아!! ]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인 거지? 뭐가 이렇게 리얼해? 근데 시작부터 ‘데코레이션’?’

태혁은 상대 선수를 쫒아가며 마주 보이는 2 소대 골키퍼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내 데코에 넌 뭐 보태준거 있냐?! 이게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무슨 ‘이게야’가구로 보여? 너! 조립식


가구한테 맞아 본적 없지? 확! 오늘 너의 ‘익수피리언스’ 좀 늘려줘?”

[헐. 야! 꼴통 데코! 시끄럽고 앞에 선수나 막아!! 이 새끼야! ]

“뭐? 이 NPC 삼시세끼야?! 어따 대고 새끼래?? 니 눈 X 리도 데코냐?! 그렇게 잘 막으면 거기서 주둥 X 리만


나불거리지 말고, X 빠지게 튀어나와서 니가 직접 X 나게 막아! 병 X 새끼!! XXXXXX!!”
[으 으 저 꼴통 새끼!! XXXX!! ]

‘헐! 이 무슨 현실감 돋는 욕 짓거리란 말인가! 홍홍♬’

그랬다. 태혁의 계속되는 헛발질에 NPC(?) 사병들은 참지 못하고 욕을 했었고, 이에 가만히 듣고만 있을 태혁도
아니기에 경기 중에 주고받은 욕만 전반 45 분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잉? 형 그럼 경기 중에 NPC 랑 막 욕을 주고받고 싸운 거야? 음성 금지 같은 건 안 당했어?”

유성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난 태혁이 말했다.

“엉? 그건 생각도 못했네, 근데 지들도 하는데 난 왜 못해? 우리 소대 NPC 들도 막 나한테 쌍욕하고. 크크


현실감 나더라고. 그래서 스마트한 나도 같이 욕을 섞어 쏟아 내 줬지. 스트레스 확 풀리는 진정한 현실감 돋는
가상현실 플레이였어. 크크.”

태혁은 병영축구에서 몸은 3 소대랑 경기하고, 특히 입으로는 2 소대랑 경기하면서 신났다. 그동안 시험으로 인해
쌓였던 스트레스를 NPC 사병에게 욕하면서 풀어 버릴 수 있었다.

캡슐을 타고나서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 태혁에게 유성이 물었다.

“아! 맞다 형 전반 경기 끝나고 경험치 얼마 받았어?”

“어 귀에 알림이 울리긴 하던데 워낙 정신이 없어서 확인은 못했어. 살짝 흥분 상태였거든..1 점이라고 한 거


같기도 하고, 2 점이라고 했나? 음. 내일 다시 접속해서 확인해 볼게.”

‘어쨌든 형의 말 데로라면 다른 사람 보다 훨씬 경험치를 많이 받는 건 확실하네. 좀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어.


흠.’

“그럼 내일도?? 콜??

“OK! 콜!”

그렇게 한유성과 나태혁은 서로 다른 이유로 군대스리가에, 아니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만든 가상현실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 점점 빠져 들고 있었다.

***

다음날 목요일 밤에도 캡슐 방에 출근한 한유성은 손님이 뜸한 새벽녘에 태혁과 캡슐 이용에 대해 삼촌에게 허락을
구했다.

“사장님! 저기... 손님 빠진 시간에... 우리 가게에 VIP!!손님이 될 태혁이 형에게 올바른 캡슐 사용법 좀


알려줘도 될까요?”

“크..험 캡슐에 나도 모르는 올바른 사용법이란 게 생겼어? 어제도 캡슐 타지 않았나?”


“그게...사실은 태혁이형은 가.동.율이 낮아 옆에서 내가 도와주면 충분히 1 시간 정도 탈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장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 한 낱 알바는 어쩔 수 없이 라면조리대 앞을 지키겠지만 말입니다.”

“음....그럼 대신 주말에는 조금 일찍 와서 가게 돕는 건 어때?”

“흠....약속 없으면...그렇게 하겠습니다.”

빠져나갈 틈은 만들어 두고 대답하는 유성이다.

“그럼 일단 내일부터 1 시간 일찍 오는 걸로!ㅎㅎ”

삼촌은 사장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유성은 키는 크지 않지만 얼굴이 호감형이고 손님들에게 싹싹한 스타일이라 그런지 유성이 야간에 가게를 돕기
시작한 이후부터 기존에 없던 여자 손님이 하나 둘 찾아오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유성이 손님들에게 캡슐 사용을 권하는 것도 매출에도 도움이 되니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바쁜
주말에 조금 더 부려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유성은 하루 1 시간 정도의 합법적(?)인 캡슐 탑승을 허락 받았고, 나태혁과 함께 가게 손님이 빠진


새벽녘에 캡슐에 몸을 실었다.

***

오늘도 한유성과 나태혁은 군대스리가 진출을 생각하며 ‘진짜 사나이’에 접속했다.

[띠링! ]

[1. 병영 식당 체험 ]

[2. 병영 축구 체험 ]

[3. 소총 사격 체험 ]

[4. 화생방 훈련 체험 ]

[5. 수류탄 투척 체험 ]

유성이 두 번째 메뉴에 손을 가져다 대었을 때 새로운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병영축구 체험은 현재 이용이 불가능 합니다. ]

[병영축구 체험은 수요일 06:00 부터 목요일 05:59 까지 이용이 가능 합니다. ]


“흠...이건 수요일만 가능 한가 보네. 할 수 없지. 음...그렇다면 다음 메뉴는 오! 소총 사격이라. 한때 내가
서바이벌 슈팅게임 ‘써든 그라운드’에서 숨어서 나오지 않고 상위 2%안에 든 ‘숨나이퍼’였지. 숨은 나의
저격 실력을 보여 주겠어.”

유성은 세 번째 ‘소총 사격 체험’ 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사격 훈련장으로 이동 합니다. ]

[스....팟]

곧바로 기계음이 들리며 하얀 빛 무리와 함께 공간이 바뀌었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탕! 탕! 탕탕탕! 탕탕! 탕! 탕!....탕!]

이동된 공간에서 군가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어 사격 훈련장에 도착했음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띠링! ]

[체험병은 사용할 화기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

[K-2 소총 ]

[M-16A1 소총 ]

[K-1A 기관단총 ]

유성은 맨 위에 있는 K-2 소총을 선택했다.

[띠링! ]

[선택하신 K-2 소총과 단독 군장으로 환복 합니다. ]

메시지와 함께 몸에 하얀 빛 무리가 생겼다.

[스....팟]

유성은 K-2 소총과 단독 군장은 게임에서 많이 봐서 익숙할 거라 생각했는데 착용하고 보니 탄띠와 소충의
묵직함과 전투헬멧이 주는 불편함으로 긴장이 밀려왔다.

그래서 뒷줄에 서있는 나태혁 방향은 돌아보지도 못하고 사격장 알림 음에 집중했다.

[띠링! ]

[체험병은 소총 파지법과 사용방법에 대해 교관에게 설명을 듣기 바랍니다.]


유성은 교관에 설명에 맞춰 튜토리얼을 진행했다.

사격 전 소총을 어깨에 견착 하는 법과 함께 가늠쇠와 가늠자 보는 법, 사격 후 표적을 확인하고 크리크 수정


하는 방법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NPC 교관의 음성이 들렸다.

[영점사격은 실거리 사격 전 25m 거리에서 사격을 실시해 자신의 소총을 자신에게 맞게 세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충분히 준비된 체험병만 영점사격을 위해 사격 훈련장으로 위치를 이동합니다.]

[체험병은 빨간색 유도 선을 따라 사격장으로 이동해 자신의 사로 뒤에 위치합니다.]

유성이 빨간색 유도선을 따라 사로에 도착하니 사로 안에서 먼저 사격하고 있는 체험병을 볼 수 있었다.

사수 바로 뒤에서 듣는 총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우와 소리가 생각보다 엄청나네. 귀마개를 하는 이유가 있었군.’

앞의 체험병이 자신의 표적지 확인이 끝나 이동하고 드디어 유성의 차례가 되었다.

사로 안에 들어가 방금 배워 온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하며 K-2 소총에 표적지를 조준했다.

[띠링! ]

[준비된 사수들은 표적지를 향해 연속으로 3 발을 발사합니다. ]

총 10 개의 사로에 엎드린 사수들의 총에서 일제히 불을 뿜었다.

유성도 긴장감에 호흡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탕탕! 탕탕! 탕! 탕!....탕!]

사격이 끝나고 표적 확인을 위해 유성이 외쳤다.

“표적 확인”

표적지가 유성에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르자 기계음 메시지도 같이 들렸다.

[띠링! ]

[한유성 체험병의 탄착군은 우상탄 입니다. 좌측하단으로 크리크 수정 후 다시 탄착군을 형성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2 번의 ‘엎드려쏴’가 더 진행되고 난 뒤 유성은 영점사격을 마칠 수 있었다.

자신의 표적지를 확인하고 만족한 유성은 사로를 벗어났다.

‘사격은 긴장도 되지만 스릴도 있고 좀 재밌네. 예전에 ‘숨나이퍼’였던 게 도움이 됐나? ㅎㅎ’

유성은 그렇게 사격장을 벗어낫다.


한편 유성의 다음 조로 사격에 참석한 나태혁도 귓가에 알림을 들렸다.

[띠링! ]

[준비된 체험병들은 표적을 향해 3 발을 발사합니다. ]

나태혁도 K-2 소총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사로에 엎드린 사수들의 총에서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탕! 탕! 탕탕탕! 탕! 탕!....탕!]

3 발을 모두 쏜 나태혁도 ‘표적확인’을 외치고 난 후 눈앞에 홀로그램과 함께 귓가에 경고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

[나태혁 체험병의 탄착군이 없습니다. 다시 신중하게 사격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경고 : 다른 사로의 표적지에 고의로 사격을 하게 되면 다른 사수의 탄착군 형성에 방해가 됩니다. 주의를
바랍니다. ]

그랬다. 태혁은 자신의 표적지에 한발 좌우에 또 한 발씩 해서 총 3 발을 발사했다.

그 결과 옆 사수들은 3 발을 쏘고 표적지에는 4 발을 명중시키는 기적에 넋을 잃고 있었다.

이렇게 한 동안 나태혁의 기적(?)의 영점사격은 계속 되었다.

‘내가 좌우 사수에게 기적을 내려주지!’

“끼 야호! 사격이 축구보다 더 짜릿하고 재밌네!!ㅎㅎ”

나태혁의 스트레스 해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사로에서 벗어난 유성은 귓가에 반가운 울림이 들렸다.

[띠링! ]

[영점 사격에서 '완벽한 탁착군'을 기록 했습니다. ]

[완벽한 탄착군 특전으로 소총사격 체험 경험치가 두 배 상승하게 됩니다. ]

[소총사격 체험 LV 이 개방 되었습니다. ]

[소총사격 체험 경험치가 15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30 상승합니다. ]

[소총사격 체험 LV.1 EXP 0/60]

[소총사격 체험 LV.1 이 되었습니다. ]

[실거리 사격이 가능합니다. ]


‘크아! 역시 군인은 사격이지 말입니다!’

“이번 사격은 나에게 무엇을 주었을 라나? 홍홍♬”

영점 사격의 경험치를 두 배를 획득한 유성은 기쁜 마음으로 상태창을 소환했다.

“상태창!”

[띠링! ]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알림 음이 유성의 머릿속을 울렸다.

실거리 사격

***

[체험병 : 한유성]

[취사병 체험 LV.2 EXP 36/120]

[운전병 체험 LV.1 EXP 14/60]

[소총사격 체험 LV.1 EXP 0/60]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유성은 캐릭터 이름에 손을 가져갔다.

[체험병 : 한유성]

[힘:9 민첩:10 체력:10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역시 생각대로 민첩이 올랐어. 거기다 경험치 늘려주는 특전까지 생기고. 여기 사격장이 꿀빠는 곳이구나.
앞으로 힘, 정신력 올려주는 곳도 찾을 수 있으려나?’

“그런데 태혁이 형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으려나?”

***

한편 아직도 영점 사격 훈련장에서 태혁의 뒤에 대기한 체험병이 10 분 넘게 기다리다 못해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투덜거렸다.

“저게 사람 손이야? 똥 손이야? 먼 영점사격을 하루 종일 하고 있어.”

뒤에 있던 체험병의 투덜거림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태혁은 아직 사로에서 벗어나질 않고 신나 있었다.


원래 영점사격은 3 발씩 3 회 즉, 총 9 발로 영점을 잡아야 합격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지금은 소총 사격 체험
프로그램이라서 접속한 체험병이 영점을 잡을 때까지 연속으로 사격이 가능했다.

“난 신의 손! 기적을 만들어주지!! 못 믿으면 옆으로 와! 하하하!”

태혁은 아직 사격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가상현실이라 탄창은 무한정으로 지원이 되고 있었다. 그러기에 기적
(?)의 영점 사격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

영점사격을 끝낸 유성의 눈앞에 새로운 선택창이 떠올랐다.

[띠링! ]

[한유성 체험병은 실거리 사격이 가능합니다. ]

[원하시는 메뉴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영점 사격 훈련장]

[실거리 사격 훈련장]

[개인화기 선택 화면으로 나가기]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OK! 실거리로!! ‘숨나이퍼’ 가즈아!”

유성은 눈앞에 떠오른 메뉴를 보며 실거리 사격 훈련장을 선택했다.

[띠링! ]

[실거리 사격 훈련장으로 이동 합니다. ]

[스....팟]

곧바로 기계음이 들리며 하얀 빛 무리와 함께 공간이 바뀌었다.

실거리 사격장 화면으로 이동을 선택한 유성의 눈앞에 산을 깎아 만든 사격장이 펼쳐져 있었다.

기존에 볼 수 있었던, 실내 스크린 사격장에 빔으로 만들어 낸 인공적인 모습과는 비교 할 수 없는 풍경 앞에


입이 다물어 지질 않았다.

“우와! 스케일...대에 박!! 헤벌레.”

[띠링! ]

[체험병은 실거리 사격에 대해 교관에게 설명을 듣기 바랍니다.]

역시 영점사격과 마찬가지로 실거리 사격에 튜토리얼이 진행되었지만, 유성은 이론이 다소 들어가서 지루한
내용은 들으면서 한귀로 다 흘려버리고, 단순하게 ‘표적의 순서’와 ‘조준 위치’두 가지만 자신의 방법으로
기억하려 했다.

“먼 애는 가운데를 노리고, 앞에 있는 애 둘은 아래를 노려라! 는 외우겠는데, 표적 순서는 거참 난감하네.


헷갈리네...어디 ‘메모창’ 기능은 없나?”

그때였다.

[띠링! ]

[메모창 기능이 잠금 해제 됩니다. ]

[메모창을 외치면 ‘메모창’이 소환 됩니다. ]

설명을 보니 메모기능은 ‘메모창’과 ‘메모창 해제’ 명령어를 통해 자유롭게 홀로그램 창 형태로 원하는 곳에
소환, 해제가 가능했다.

‘잉? 이건 뭐 ‘메모창’ 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되는 거였나? 편리한 기능도 있고 괜찮네. 으음 그런데 그사이
들었던 내용이 기억이 안 나네. 쩝. 까짓것, 다시 교관에게 설명 들으면서 메모 하면 되겠군.’

유성은 교관에게 다시 실거리 사격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메모를 했다.

[실거리 사격은 100m, 200m, 250m 에 있는 숨어있는 표적이 ......... 실거리 사격은 참호 안에서 ‘
서서쏴’ 10 발과 참호 옆에서 ‘엎드려쏴’ 10 발을 사격해 통합 점수 20 발 중 12 발 이상을
맞춰야........]

‘먼 놈, 가까운 놈, 중간 놈이 두 번 연속 출연하고,... 애들이 나타나는 순서는 숫자로 ‘3, 1, 2’, ‘3,


1, 2’, ‘3, 2, 1, 2’라고 적어두고 보면 되겠군. OK. i'm ready!’

교관의 복잡한 설명을 자신이 알아보기 편하게 단순하게 메모한 유성은 멀리 있는 표적은 가운데를 조준하고
나머지는 아래를 조준이라고 추가로 메모한 다음 준비를 마무리 했다.

[충분히 준비된 체험병만 실거리 사격을 위해 사격장으로 위치를 이동합니다.]

[체험병은 빨간색 유도 선을 따라 사격장으로 이동해 자신의 사로 뒤에 위치합니다.]

이번에도 빨간색 유도선을 따라 사로 뒤에 도착한 유성은 앞에 사수를 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앞의 사수가 참호 안과 밖에서 각각 10 발씩 사격을 끝내는 동안 메모의 내용과 표적이 나타나는 순서가 맞는지
확인을 했다.

곧 유성의 차례가 되어 참호 속으로 들어가 준비를 했다.

‘긴장되긴 하지만 이상하게 떨리지는 않아. 일단 숨을 고르고 일단 먼 놈은 가운데를 조준하고 있으면


나타나겠지?....호...흐...읍....주...운....비.......중’

한유성은 메모를 보며 순서와 조준 위치를 확인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 왠지 예감이 좋았다.

[띠링! ]

[잠시 후 30 초 뒤 표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30 초]

[29 초]

[28 초]

[0 초]

[기웃뚱!!]

250m 떨어진 사람모양의 표적이 나타나자 조급함 보다는 차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목표물을 가늠쇠와 가늠자
안에 위치시키고 난 후, 호흡을 멈추며 천천히 검지에 힘을 주었다.

불과 1 초도 안되어 벌어진 일이지만, 유성은 차분하게 사격을 시작했다.

[탕!]

‘다음은 가까운 놈 아래 조준!’

곧바로 목표가 나타났다. 미리 총구를 100m 표적방향으로 옮겨 준비하고 있던 유성은 차분히 사격을 이어갔다.

[탕!]

[탕!]

마지막 10 번째 사격을 끝으로 참호 안 ‘입사호 쏴’가 끝났다.

유성은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사격을 위해 참호 밖으로 나와 ‘엎드려 쏴’ 자세를 준비하며 숨을 골랐다.

[띠링! ]

[잠시 후 30 초 뒤 표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30 초]

[29 초]

:
:

유성은 기존에 배운 오른쪽 왼쪽 발꿈치가 모두 바닥에 닿아 최대한 바닥과 붙어서 쏘는 ‘엎드려 쏴’ 자세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발 무릎을 살짝 구부려 바닥으로부터 가슴이 살짝 멀어져서 호흡이 편하게 만들고, 팔꿈치를
지면과 90 도를 만들어 좌우 흔들림에 최대한 대비할 수 있는 자세로 바꾸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자세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측 상단에 일찌감치 띄워둔 메모를
확인하며 집중했다.

‘후! 후우! 아직 조금만 더 집중하자. 순서는 방금과 같아. 숨을 고르고 일단 먼 놈은 가운데였지? 호...흐...
읍....다.....시......주...운....비.’

[2 초]

[1 초]

[0 초]

[기웃뚱!!]

[탕!]

[탕!]

[탕!]

사격에 유성은 몰입해 있다 보니 표적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확인 할 정신도 없었다.

첫 발을 쏘고 난 다음부터 자연스럽게 다음 사격을 준비하고 쏘고 다시 준비하는 반복이었다.

잠시 후 사격이 끝난 유성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고, 사격이 끝난 총열에선 화약 냄새가 피어났다. 또 다시


‘진짜사나이’의 리얼리즘에 빠진 유성은 반가운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띠링! ]

[실거리 사격에서 ‘만발’을 기록 했습니다. ]

[만발 특전으로 소총사격 체험 경험치가 두 배 상승하게 됩니다. ]

[소총사격 체험 경험치가 15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60 상승합니다. ]

[소총사격 체험 LV.2 EXP 0/120]

[소총사격 체험 LV.2 가 되었습니다. ]

[실거리 사격이 가능합니다. ]

“우...와 우와. 우왓 우와앗 초! 대에 박!!”

유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영점 사격에서 경험치 두 배를 맛보았다. 하지만 누적이 되어 네 배가 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덕에 실거리 사격 한 번에 소총사격 체험 레벨 2 도 달성해 버렸다.

실제로 가.동.율 99.9%로 처음부터 경험치 이득을 받고 있는 유성은 사격에서 자신도 모르게 발휘된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못하는 엄청난 특혜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럼 또 민첩이 올라 갔을라나? 확인해 볼까?’

“상태창”

[체험병 : 한유성]

[취사병 체험 LV.2 EXP 36/120]

[운전병 체험 LV.1 EXP 14/60]

[소총사격 체험 LV.2 EXP 0/120]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한유성은 들뜬 마음을 누르며 스탯 확인 창을 소환했다.

[체험병 : 한유성]

[힘:9 민첩:11 체력:10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읏짜! 이번 접속에서 민첩만 두 개나 올렸네. 다른 메뉴 보다 사격이 좀 더 경험치 올리기 쉬운 건가? 게시판


좀 찾아 봐야겠군. ㅎㅎ. 이제 그만 슬슬 나가 볼까나.”

***

“이 놈아!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유성은 캡슐에서 내릴 때 삼촌의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고개를 바로 숙였더니 유성의
뒤통수를 노린 삼촌 손을 살짝 피 할 수 있었다.
“헛 놀래라. 휴 피했네. ㅎㅎ”

평소 같으면 퍽 소리 나게 바로 당했을 테지만 지금의 유성은 민첩이 이제 11 이다.

반응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민첩 수치 10 을 기준으로 봤을 때 11 이 가지는 능력은 기준치 보다 1.1 배의 반응속도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인 남성의 평균 민첩이 8~9 임을 생각하면 지금 한유성은 수준급 골키퍼의 반응속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힘과 체력을 배제해서 생각해야 하지만 그렇다는 얘기다.

“어라. 이제 피하기까지? 웃어??! 태혁이는 벌써 나와서 갔는데 넌 뭐하다 이제 나오냐? 일루와 이눔아.”

“아...아!! 삼촌. 아퍼! 사장님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으아악!”

괜히 피하다 귀 밑 구레나룻이 잡혀 도망도 못 가는 유성이다. 아직은 힘이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결국


머리카락을 10 개쯤 뽑히고서야 풀려났다.

“흐..흑. 사좡님. 나파요. 내 피가툰 머리카롹 다 뽀바소요. 나 머리 이제 옵서요. 크흡.”

한유성은 손님들이 나간 테이블을 걸레질하며 외국인 노동자 말투를 흉내 내어 훌쩍 거렸다.

“시끄럿! 확 유성이! 너희 집으로 보내 버린다!”

“헛 사좡님!! 진쫘! 나..파요!! 나 그럼 집도 옵서요! 횽니임 태효기 횽니임. 버고 시포요 흑 흑.”

유성과 삼촌의 투덕거림을 보며 안쪽에서 키득거리는 단골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크크.”

“하하하!”

국가고시

***

“아하함! 하아암! 푸 움!”

유성은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을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날씨 양호하고 이제 나만 준비하면 되겠군.’

아직 잠이 부족하지만 유성에겐 중요한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의 운전연습이 결실을 보는 날이다.

이론으로 본 학과시험과 지난주에 치른 기능시험은 다행히 한 번에 통과 할 수 있었다.

유성에게 마지막 남은 도로주행 시험은 실제도로가 시험무대라 그런지 약간 긴장이 되었다.


월요일부터 강사와 함께 도로주행 연습을 꾸준히 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조금 걱정도 되었다.

평소와 같이 밥을 챙겨먹고 집을 나서려는데 ‘코코넛 톡’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친구 윤찬이 두 달에 한 번씩 있는 고등학교 동창회 소식을 톡으로 전달 한 것이었다.

「 2025. 4. XX. 토요일 오후 5 시 장소는 ‘물고 뜯고’ 고기 뷔페 」

‘흠..한 번 가볼까? 일단 오늘 시험부터 합격하고. 그나저나 그 애도 올려나? 훗!’

유성은 졸업 이후 여럿이 모이는 자리는 기피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금.사.빠 유성에겐 소식이 궁금한 동창이
있었다.

톡으로 인해 긴장이 조금 풀린 유성은 센텀에 위치한 면허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면허 시험장에 도착한 유성은 평소와는 달리 차에 바로 오를 수 없었다.

도로주행 연습 때는 등록한 시간에 도착하면 바로 강사와 차량에 탑승해 정해진 주행 코스를 돌면 되었는데, 시험
때는 자신의 차례가 올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면서 코스를 외우려고 해도 4 개의 코스 중에 무엇이 선택될지 모르니 다 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 연습장면을 더듬어 기억하다가 저도 모르게 뇌까렸다.

‘사격장처럼 ‘메모창’이라도 부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흠. 아니지. 설마? ‘상태창’도 되는데. 혹시 모르지?


손해 볼 건 없지 말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성은 ‘메모창’을 불러 보았다.

“메모창!”

[띠링! ]

기계음이 머릿속에 들리며 유성의 눈앞에 홀로그램 메모창이 떠올랐다. ‘메모창’이 소환되자 빠르게 코스를
정리했다.

‘일단 코스 A...학원출발...히히 코스별로 다 메모! 흐흐’

약 1 시간의 기다림 끝에 유성이 속한 조 3 명도 차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유성은 3 번째 마지막 순서였기에


운전석이 아니라 앞 응시자가 시험을 치를 때 뒷좌석에 다른 동승자와 함께 했다.

운전석에 앉은 첫 번째 응시생이 사이드를 풀고 기어를 D 에 놓고 엑셀을 서서히 밟아 출발했다. 급히 서두르는


모습도 없었고 상당히 안정감 있는 출발이었다.

‘출발 잘하네. 연습 많이 했나보네.’

유성은 응시생을 보며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마침, 감독관이 응시생에게 물었다.

“혹시 뭐 잊은 건 없습니까?”

“네...없는데요.”
응시생의 대답에 감독관이 다시 물었다.

“진짜 잊은 거 없으십니까?”

“음...없는데요.”

“진짜로 마지막입니다. 잊은 거 없는 것 맞습니까?

“네! 없습니다!”

자신감에 찬 응시생의 대답이 울렸다.

유성도 뒷좌석에서 생각해 봤지만, 딱히 빠진 게 있어 보이진 않았다.

“도로주행 응시생 권진협씨!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인해 실격 처리합니다! 지금 즉시 시동 끄고 운전석에서


내립니다.”

“.....아!”

방금까지 자신감 넘치던 권진협 응시생의 허탈한 한숨이 들렸다.

감독관이 차를 다시 출발선에 위치시키자 뒷좌석으로 이동하던 권진협 탈락자가 풀 죽은 목소리로 다음 차례인


여자 응시자에게 말했다.

“안전벨트 꼭 하세요.”

“아...네. 감사해요.”

대학생인 듯 보이는 여성 응시자는 앞선 탈락자에게 영혼 1 도 느껴지지 않는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 이동해


운전석에 탑승하고, 안전벨트부터 착용했다.

“감독관님! 전 안전벨트 했습니다!”

***

눈치가 빨라 보이는 두 번째 여성 응시생은 도로 주행에서 합격을 받았다.

“양지원 응시생 도로주행 73 점 합격입니다. 축하합니다.”

“호호호! 네!! 감사합니다.”

감독관의 담담한 목소리에 여성 응시자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유성은 예쁜 얼굴의 응시생이
합격하자 기회라고 생각해 재빨리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요 누나, 아참! 누나라고 해도 되나요?”

“호호, 고마워! 잘생긴 동생도 힘내!”

합격축하 인사를 주고받으며 유성은 양지원 합격자와 자리를 바꾸었다.

도로주행 시험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연습한 총 4 개의 코스 중에 추첨으로 선택된 C 코스를 주행해서 100 점
만점에 70 점 이상을 받으면 합격이었다.

C 코스는 학원을 벗어나 우회전을 한 차량이 해운대 입구에서 크게 돌아와 벡스코에서 유턴을 해 학원으로
돌아오는 좌회전은 없고 유턴이 한 번만 들어간 가장 쉬운 코스였다.

거기다 유성에겐 자신의 눈앞에 띄워둔 C 코스 ‘메모창’도 있어 자신감이 넘쳤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며 크게 쉼
호흡했다.

“호! 후읍 후우!”

크게 한 숨을 쉬고 침착함을 되찾은 유성이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시동을 걸었다.

곧이어 사이드를 풀며 기어를 바꾼 후 자연스럽게 엑셀위로 오른발을 이동했다.

해운대 입구긴 해도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도 아니고 출퇴근 시간도 아니라 도로주행 시험을 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잠시 후 유성은 ‘메모창’에 미리 적어둔 주의 사항과 코스를 확인하며 도로주행 시험에 감점 1 도 없이 다시


학원으로 복귀해 차를 주차시켰다. 곧 유성의 귀로 감독관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유성 응시생 도로주행 만점입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하하 네! 감사합니다.”

감독관의 축하에 감사를 표하며 밝은 얼굴로 차에서 내린 유성은 다른 2 명의 응시생과도 서로 인사를 나눴다.

한유성은 먼저 탈락자 권진협에게 유감을 표했다.

“덕분에 합격했습니다. 다음에 꼭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힘내세요.”

“큼..큼....네...감사합니다. 그럼....전 먼저 가 볼게요.”

먼저 발길을 돌리는 탈락자 권진협 이었다.

“네 조심히 가세요.”

한유성은 권진협에게서 즉시 돌아서며 오늘 새로 생긴(?) 누나 양지원에게 눈을 돌렸다.

이어 합격한 누나 양지원에게는 살짝 작업의 멘트를 건네려 했다.

“누나! 고마워요. 누나 운전하는 거 보면서 긴장도 풀고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호호호 말이라도 고마워.”

“저기. 누나 우리 같이 합격한 것도 인연인데. 학원 앞 ‘스타박스’에서...”

인사를 나누며 ‘금.사.빠’가 막 시작 되려는 한유성의 귓가에 갑자기 알림 음이 울렸다.

[띠링! ]
[도로 주행에서 ‘도로주행 만점’을 기록 했습니다. ]

[도로주행 만점 특전으로 운전병 체험 경험치가 두 배 상승하게 됩니다. ]

[운전병 체험 경험치가 20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160 상승합니다. ]

[운전병 체험 LV.2 EXP 104/120 ]

[운전병 체험 LV2 가 되었습니다. ]

[특수차량 운전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끼 야호!! 아자!! 대애 박!! 와우!”

유성의 뜬금없는 외침을 들은 양지원은 놀라 인상을 구기며 돌아섰다.

“저... 동생 난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안녕! 합격 축하했어!”

‘헐! 조증 또라이 새끼! 에라잇! 조또!’

그렇게 한유성은 조.또 금.사.빠가 되었다.

서둘러 떠나는 지원 누나를 보며 잠깐 멍해진 한유성.

하지만, 높은 정신력 수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금방 멘탈을 회복했다.

그리고 앞서 도로주행 시험을 기다리면서 ‘진짜 사나이’ 홈피를 통해 알아 둔 단축 명령어를 바로 사용했다.

“스탯창!”

[띠링! ]

[체험병 : 한유성]

[힘:9 민첩:12 체력:10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도로주행 만점’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역시 민첩이 또 올랐고 기록 특전에 ‘도로주행 만점’이 추가 되었다.

유성으로서는 좋아 날 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끼 야호! 대한민국 국방부!!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빵! 빵!]
경적소리에 놀라 잽싸게 옆으로 비켜선 유성에게 주차장을 빠져 나오다 유성이 때문에 급정거한 차량의 창문을
내린 운전자의 욕이 쏟아 졌다.

“야이 새끼야!! 비켜!! 저 또라이 새끼! 면허 떨어졌냐? 왜 차도에 뛰어 들고 지랄이야?! 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어! 지나가는 차 괴롭히지 말고!”

“아저씨! 같은 드라이버 라이센스 소지자끼리 언성 높이지 맙시다. 나 같으면 쉽게 피해 갔겠구만. 아! 아저씬


초본가 봐요? 조심해서 살살 다녀요. 흐흐. 사고나라! 아저씨!”

지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유성이다. 그걸 본 운전자가 다시 소리치려고 할 때, 뒷좌석에서 유성과 먼저 인사


나누고 헤어졌던 권진협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아빠 그냥 빨리 가! 쫌!”

“어. 그래 진협아.”

그랬다. 유성은 높은 가동율로 인해 기존에 다른 이들에 비해 약 10 배 정도의 경험치를 획득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졌었는데, 영점 사격과 실거리 사격 그리고 도로 주행으로 3 개의 기록 특전을 달성한 유성은 일반인에 비해
최소 80 배 이상의 경험치를 벌어들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앞으로 생길 특전을 생각하면 유성은 조증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스탯창에는 낮은 가동율 때문에 일어나는 사이버 공간상의 인식 속도와 반응속도의 차이로
인해 스탯 말고는 특전을 추가하기가 힘든 현실이다.

그리고 ‘도로주행 만점’ 같은 특전은 99.9 라는 가동율 때문에 생기게 된 현재 유성 홀로 보유한 세상 유일한
유니크한 기록 특전 이었다.

***

운전면허학원을 나온 유성은 아직 면허를 따지 못한 친구 윤찬에게 곧바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윤찬아 기뻐해라! 이 형님이 한 방에 붙었다.”

“헐! 그 거짓말 사기가?”

“No! No! 레알이다! 형님이! 오늘 기념으로 저녁 쏜다.”

“OK, 형!”

첨엔 믿지 않는 윤찬 이었지만 저녁 얘기에 바로 꼬리를 말아 버린다.

“그럼 6 시에 ‘Metro’에서 봐”

잠시 후 ‘Metro’에서 만난 둘은 내일 있을 동창회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윤찬아, 너 2 월 모임에 갔었지?”

“쩝쩝. 어! 쩝쩝.”
“그때 .....이도. 나왔었나?”

“응? 아. 간호학과 다니는? 아! 맞다 너 걔한테 마음 있었지? 흐흐.”

“아. 아니야! 마음까진 아니고. 그냥 호감! 그래 호감 인걸로 해두자!”

“크크 마! 형님이 알아 보께! 쫌만 기다려 바라!”

핸드폰에 손을 가져가던 윤찬이 유성을 보며 다시 한마디 한다.

“큼. 흠. 목이 쫌 마르네. 음료수 함 갖고 와 바라!”

“예 형님! ‘CoKe’(콜라)! 바로 대령합죠!!”

“No! ‘Thprite’(사이다)! 먹다보이 괜찮데!”

그렇게 방금 전까지 형님이었던 한유성은 순식간에 윤찬의 동생이 되었다.

수류탄 교장

***

[딸랑! ]

윤찬과 샌드위치 전문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 유성은 삼촌과의 약속대로 1 시간 이른 저녁 9 시에 가게에
도착했다.

“대한민국 드라이브 라이센스를 소지한 저 유성이가 힘든 누나랑 형을 돕기 위해 일찍 왔습니다! 홍홍♬”

마침 데스크에서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던 앞 타임 알바 임소정은 유성을 반김과 동시에 유성에게 데스크 정리를
부탁하며 감사 인사를 날렸다.

“어? 유성이 왔어? 마침 잘 왔다. 주호 오빠는 캡슐 정리 중이라서, 유성아! PC 6 번부터 10 번까지 정리 좀


부탁할게. 땡큐! 고마워!”

‘거절도 못하게 미리부터 고맙다니...’

유성이 가게에 도착하고 보니 금요일 저녁이라 손님들이 많은 것도 있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테이블들로 인해


대기 손님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 가게는 더욱 정신없어 보였다.

“OK! 지금 바로 갈게 누나.”

유성은 데스크 한쪽에 있던 정리 바구니를 들고 미끄러지듯이 손님들 사이를 지나 치우지 못한 테이블 정리를
시작했다.

줄지어 있는 의자를 엉덩이로 밀어내는 동시에 손으로는 걸레질을 휙휙 하고 지나다니니 순식간에 정리가 완료
되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확실히 예전에 비해 동작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주위에서 유성의 청소하는 모습을 본 손님들이 한 마디씩 했다.

“우와! 저기 봐! 알바 형 청소의 달인 임?”

“그러게 완전 빠르다.”

“헐 저렇게 테이블 정리 잘하는 오빠는 첨 본다.”

‘컥! 저분은 이모뻘 같은데 오빠라니...’

유성은 부담스러운 손님들의 관심을 뒤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라면 조리기 앞으로 자리를 옮기며 생각했다.

‘이게 다 늘어난 민첩 때문이겠지? 그럼 오늘은 체력을 보충 해볼까?’

그렇게 민첩한 유성이 합류하자 불금에도 불구하고 가게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 갔다.

잠시 후 10 시가 되어 미성년자 손님들이 돌아가고 데스크에 앉은 삼촌을 보며 유성이 물었다.

“삼촌 라면 어때?”

“밥 먹고 왔다.”

삼촌의 거절에 체력 레벨업을 위한 의지가 점점 더 솟아나는 유성이다.

“그럼 이따 새벽에 출출할 때 말해 삼촌!”

‘음...이대로 체력을 포기할 수 없지.’

데스크 옆에 있는 정리 바구니를 챙긴 유성은 오늘도 방문 판매(?)를 시작했다.

“저기 멋진 형님! 출출하지 않으십니까? 출출하면 제가 직접 라면 하나 끓여 오지 말입니다. 계란, 떡, 만두,


치즈, 땡초 라면까지 말만하면 다 만들어 옵니다.”

손님들 옆 빈 테이블을 정리하며 유성의 라면 방판이 시작 되었다.

‘어제 1 까지 떨어졌던 라면 경험치도 분명히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쏠쏠 할 거야.’

“어랏! 깜작이야! 예쁜 단골 누님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의자에 앉아 있는지도 몰라서 정리 할 뻔 했잖아요.


헐 이 누님 살 빠진 것 봐. 요즘 다이어트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녀요? 이러다 쓰러지겠다. 누님은 글래머러스한
게 매력인데 안 되겠네. 누님 제가 금방 라면 하나 끓여 올 테니 누님은 계산만 해요.”

한 밤에 시작된 라면 방판은 새벽까지 지속 되었다.

“허허 저 놈 오늘 따라 왜 저렇게 열심이지? 어제 조금 혼냈다고 반성한 건가? 녀석 참. 허허허”

삼촌의 잘못된 오해는 깊어갔고, 유성의 라면 뜯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갔다.

***
새벽까지 열심히 라면을 끓인 유성의 머릿속에 수많은 경험치 알림 음이 지나갔다.

경험치는 예측대로 8 배가 더해져 라면 하나에 8 이라는 경험치를 주었다.

하지만 하룻밤에 2 업 하기에는 계속 늘어나는 요구 경험치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유성은 오늘 취사병 체험 레벨은 1 업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상태창”

[띠링! ]

[체험병 : 한유성]

[취사병 체험 LV.3 EXP 92/240]

[운전병 체험 LV.2 EXP 104/120]

[소총사격 체험 LV.2 EXP 0/120]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유성은 장시간 라면 조리기 앞에 서 있느라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역시 2 업은 무리였던가? 쩝 요리를 배울까?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하겠군.’

“스탯창!”

눈앞에 화면이 바뀌었다.

[띠링! ]

[체험병 : 한유성]

[힘:9 민첩:12 체력:11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도로주행 만점’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음 역시 체력이 1 올랐네. 그럼 힘 빼곤 대한민국 성인 남성 평균을 다 넘어 선건가? 크크.’

생각에 잠겨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유성의 옆으로 삼촌이 다가왔다.

“유성아 오늘 라면 끓이느라 욕 봤다. 설거지 남은 건 삼촌이 할 테니 캡슐 1 시간정도 타고 와라.”

“그래도 돼? 고마워 삼촌! 금방 다녀올게!”

유성은 혹시나 혹시 늦은 새벽 손님들이 들이 닥칠지 몰라 삼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다닥 캡슐로 뛰어 들었다.
캡슐에 접속한 유성의 눈앞에 메뉴 선택화면이 떠올랐다.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띠링! ]

[1. 병영 식당 체험 ]

[2. 병영 축구 체험 ]

[3. 소총 사격 체험 ]

[4. 화생방 훈련 체험 ]

[5. 수류탄 투척 체험 ]

‘흠...아무리 생각해도 4 번째 화생방 체험은 하지 않는 것이 답이겠지.’

그렇게 감이 좋지 않은 화생방을 피해 국방부 개발 가상현실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접속한 유성은 눈앞에
보이는 홀로그램 중에 5 번째 수류탄 투척을 선택했다.

[띠링! ]

[수류탄 투척 훈련장으로 이동 합니다. ]

곧바로 기계음이 들리며 서있는 공간이 바뀌었다.

[스....팟]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콰 쾅!! 쿵....쾅!!! 쾅!!!]

이동한 장소는 기존 훈련장과는 다른 전방에 큰 호수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폭음과 함께
10m 정도는 되어 보이는 물기둥이 솟았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띠링! ]

[수류탄 투척 체험을 위해 단독 군장으로 환복 합니다. ]

메시지와 함께 몸에 하얀 빛 무리가 생겼다.

[스....팟]
유성은 지난 사격장에서와 같이 전투헬멧과 탄띠를 두른 단독군장을 착용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수류탄 교장이라
그런지 가슴 앞부분에 방탄복과 비슷한 보호 장비가 사격장의 총을 대신 했다.

[띠링! ]

[체험병은 수류탄 제원과 투척 방법에 대해 교관에게 설명을 듣기 바랍니다.]

사격장과 마찬가지로 메모창을 띄워둔 유성은 튜토리얼 진행을 위해 교관 앞으로 이동해 설명을 들으며 세부사항을
메모했다.

[세열수류탄은 살상범위가 10~15m 로... 수류탄 파지법은....]

교관의 수류탄 투척에 대한 설명과 함께 수류탄 투척 중 잘 못해서 입사 호안에 떨어졌을 때와 바깥 15m 이내에
떨어졌을 때의 대처법에 대해서 듣고 반복 연습 했다.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NPC 교관의 음성이 들렸다.

[충분히 준비된 체험병만 수류탄 투척을 위해 수류탄 교장으로 위치를 이동합니다.]

[체험병은 빨간색 유도 선을 따라 수류탄 교장으로 이동해 자신의 사로 뒤에 위치합니다.]

유성이 빨간색 유도선을 따라 사로 뒤에 도착하니 참호 안에서 먼저 수류탄 투척을 준비하고 있는 체험병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옆에서 NPC 로 보이는 조교가 챙기고 있었지만, 앞에 보이는 호수에서 솟는 물기둥과 소리에 얼어 버렸는지
잔뜩 굳어 있는 체험병의 얼굴이 유성의 눈에 들어왔다.

‘저러다 수류탄을 호 안에 떨어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쩝.’

왠지 모르게 드는 불안감에 유성은 앞에서 수류탄 투척을 준비하고 있는 체험병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아 불안해. 설마! 뭐 가상현실인데...’

괜찮을 거라고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유성의 눈앞에 설마가 벌어졌다.

“아놔! 어쩐지!”

계속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기에 한유성은 전방으로 날아가야 할 수류탄이 사로 안 체험병의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자신의 앞으로 굴러 떨어지려는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으아악”

체험병의 비명과 조교의 외침이 동시에 울렸다.

[호 안에 수류탄!! 피해!!]

한유성이 사고라고 인지한 순간, 마치 준비된 것 마냥 유성의 몸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오른손으로 굴러


떨어지려는 수류탄을 잽싸게 거머쥐며, 전방의 호수를 향해 냅다 있는 힘을 다해 던져버리며 외쳤다.

“아냐!! 호 밖에 수류탄!! 엎드려!!”


이 모든 과정이 2 초 안에 벌어졌다.

잠시 후 수면 위에서 수류탄이 터진 듯 더욱 커다랗게 들리는 폭음이 수류탄 교장을 울렸다.

[콰콰콰쾅!!!]

수류탄이 투척 후 4 초 후에 터진다는 교관의 말을 곱씹으며 혹시나 하고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던 유성도


자신의 반사 신경과 뜬금없는 용감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하! 내가... 미쳐 버렸군!”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서서히 알아차려 가고 있는 유성의 귓가에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

[수류탄 투척에서 ‘전우가 흘린 수류탄’을 던지셨습니다. ]

[수류탄 투척 체험 LV 이 개방 되었습니다. ]

[수류탄 투척 체험 경험치가 30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240 상승합니다. ]

[수류탄 투척 체험 LV.3 EXP 30/240 ]

[수류탄 투척 체험 LV 이 3 이 되었습니다. ]

[크레모아 격발 체험이 가능 합니다. ]

“하...하 미칠 만 했네 레벨이 3 이라니! 하하!”

유성은 차츰 정신이 돌아오면서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이번엔 힘이 오른 것 같긴 한데.’

[띠링! ]

[히든 스토리 ‘전우를 구한 용기’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

[수류탄 투척 교장에서 ‘겸인지용(兼人之勇)’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

[칭호 효과로 한유성 체험병의 등급이 1 단계 상향 됩니다. ]

[등급 상향으로 부사관 메뉴가 잠금 해제 됩니다. ]

“헐? 부사관? 끝내 대한민국 국방부는 나의 힘을 원하는 건가? 흠 그건 그렇고 나의 힘은 얼마나 올랐으려나?


확인해 볼까?”

“스탯창!”

[띠링! ]
[체험병 : 한유성]

[칭호 : ‘겸인지용(兼人之勇)’ ]

[힘:12 민첩:12 체력:11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도로주행 만점’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힘이 3 상승한 것을 확인한 유성은 접속을 종료하고 캡슐에서 내려와서 삼촌에게 달려갔다.

“삼촌!! 부사관은 돈 잘 벌어?”

“큼. 수당까지 합하면 나쁘진 않지?”

슬슬 국방부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의 미끼에 입질을 보이는 한유성이다.

신체 재구성

***

[알!!! 라암!! 알!!!라암!!...]

토요일 1 시 한유성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지난밤의 레벨 업으로 인한 스탯 상승 때문인지 유성은 평소에 비해 몸이 많이 가볍고 피곤함도 조금 덜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후! 으 우라차차차! 기지...개에! 잘 잤다. 어랏! 왜 잠옷이 조금 짧아진 것 같지??”

푹 자고 일어난 느낌을 가진 유성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욕실에서 잠이 확 깰 수밖에 없었다.

“으응? 핫! 이게...현...실이란 말입니까?! 와우! 부처님 예수님 그 외 혹시 참석해 주신 여러 신님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하하하!! 나에게 다음 생에나 가능했을 식! 식스팩! 이라니!!”

그랬다. 유성이 아침 일찍 알바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유성의 방 침대에 죽은 듯 쓰러지고 난 후 곧 이어 잠든


유성의 몸은 흰색 빛 무리에 둘러싸여 신체 재구성을 겪어야 했다.

[띠링! ]

[모든 스탯이 10 을 초과 달성해 신체를 재구성 합니다. ]

[신체가 재구성 되는 동안 프로그램 접속을 유지 하십시오. ]

[삐삐......삐! 신체 재구성이 시작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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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삐! 신체 재구성이 완료 되었습니다. ]

지난 밤 힘과 민첩 그리고 체력 스탯이 모두 10 을 넘긴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잠든 사이라 인식하지 못했지만


신체 재구성으로 기존 비대칭이었던 척추와 골반 그리고 휘어진 뼈 등이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가면서 실제로
5cm 정도 커져 180cm 가 되었다.

평소 한유성은 자신의 체형에 콤플렉스를 가진 터라 옷을 한 두 치수 크게 입어 몸을 가리고 다녔었다.

친구들은 그런 유성에게 힙합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었다.

옷장 앞에선 유성은 자신의 두텁고 큰 옷들을 바라보며 한 숨 지었다.

“휴! 이런 건 이제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흐흐 하하핫!”

자신의 복근을 내려다보며 입 꼬리가 올라간 유성은 지갑을 챙겨 외출 준비를 했다.

***

얼마 후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고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만 입고 백화점에 도착한 유성은 캐주얼 복 매장으로
향했다. 화사하고 밝은 색의 봄옷들로 디스플레이 된 마네킹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유성의 앞으로 업무용 립
서비스로 무장한 매장 직원이 다가왔다.

“고객님 어떤 제품 찾으세요?”

“음... 그냥 지금 입을 만한 거 있나하고 둘러보려고요.”

눈썰미 좋은 직원은 유성을 재빠르게 훑어보고 대충 옆에 있는 니트를 집어서 권했다.

“아 그럼 고객님!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상품입니다. 입어보세요!”

“아. 제가 그냥 혼자 둘러볼게요.”

“고객님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아네. 100 정도.”

마치 먹이를 노리는 치타처럼 한 번 노린 유성을 놓치기 싫은 매장 직원이다.

한유성은 마치 홀린 듯 매장 직원의 말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100? 고객님은 어깨가 넓으셔서 100 은 좀 끼지 않나요? 일단 105 한 번 입어 보실 게요.”

“아! 네....”

그렇게 고분고분한 유성을 호구라고 인식한 매장 직원이 강매스킬이라도 발동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도! 그리고 저것도! 마지막은 그것도! 고객님 요기 안에서 다 갈아입고 나오실게요.”

“....네.”
잠시 후 모두 갈아입고 거울 앞에선 유성에게 매장 직원이 다가와 유성의 팔랑귀를 더욱 흔들어 놨다.

“고개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그리고 이 상품은 딱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큼큼. 다 얼마죠??”

한유성은 결국 강매 스킬 만렙 매장 직원에게 휘둘려 매장 앞 마네킹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이 코디 한 뒤


백화점을 벗어났다.

“크... 출혈은 좀 크지만 나쁘진 않았어. 그리고 중요한 건 오늘은 동창회니까!”

한유성은 잠시 후에 있을 동창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곳엔 그 애도 나온다는 정보를 윤찬에게 들었다.

유성은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점검을 위해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을 모두 입어보며 거울 앞에 섰다.

‘음? 왠지 모르게 오늘은 평소보다 얼굴도 맘에 드네. 이것이 장비 빨인가? 크..’

사실 한유성은 신체 재구성으로 인해 얼굴까지 대칭을 이루면서 미남 대열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지만 자세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 유성은 백화점에서 구입한 장비(?)들로 인해 오늘 스타일이 한 층 업그레이드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 그럼 출발 해볼까?”

사실 유성은 대학의 실패로 인한 자격지심에 지난 동창회 자리는 피했었다. 하지만 윤찬에게 나경의 소식을 살짝
전해 듣고 난 후 궁금증이 더해져 오늘은 생각을 바꿔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거의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주차장 옆 흡연 장소에서 담배 연기 속에 묻힌 윤찬을 발견해 다가갔다.

“윤찬아 왜 밖에 있냐?”

“어? 왔어? 식전에 불로초 좀 태우려고...흐흐.”

“야 불로초는 무슨! 좀 작작 좀 펴라. 여기서 무슨 고기 굽는 줄 알겠다.”

“어 그래 이거만 피고 빨리 들어가자. 아참! 먼저 온 애들한테 알아보니 나경이는 학교 조별 과제 하느라 조금


늦는다고 하더라.”

오랜만에 나경을 볼 거라는 기대에 참석한 동창회인지라 나경의 지각 소식은 한유성에게 동창회 참석 의욕을
사라지게 했다.

“아니다. 천천히 펴도 된다. 아니 하나 더 펴도 된다. 대한민국 국민을 생각해서 몸에 해로운 담배를 네가 대신


모두 펴서 없애주는 거도 보람 있는 일 중의 하나지.”

“그치 내가 국민에게 희생하고 있지. 근데 네 오늘 힘 좀 줬나 보네. 평소랑 뭔가 다른데....아니 많이 다르네.


일로 와봐! 확인 좀 해보자.”

“야 붙지 마라! 새 옷에 담배 냄새 베인다. 훠이! 훠이!”


“오! 금.사.빠 유성이 오늘 드디어 성공하나요? 일단 들어가자 애들 거의 다 와 있다.”

윤찬은 도망가려는 유성에게 허리에 팔을 두르며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실내로 들어가자 몇몇 반가운 얼굴들도 보이고 생소해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라. 유성아 어서와 거기 앉으면 되겠네. 안 그래도 윤찬이가 너 온다고 해서 기다렸다. 오랜만이다.”

“어 그래. 오랜만이다 동효.”

동창회장 진동효가 영혼이 1 도 없는 반가운(?) 인사를 전했다.

진동효가 말한 테이블은 일행의 맨 마지막 테이블로 입구와 가깝긴 했다. 어차피 주류에 낄 생각이 없던 유성은 4
인 테이블에 아직 한 사람만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이미 자리하고 있던 친구들도 한유성과 진동효 둘이 나누는 인사 소리에 하나 둘씩 돌아보며 인사가 쏟아졌다.

“어 유성이 왔네. 반갑다.”

“오랜만이야! 유성아.”

“어머 유성아 지난번엔 왜 안 나왔었어? 오늘 잘 왔어. 반가워!”

유성은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에 부끄러워 서둘러 윤찬 옆자리에 앉으며 인사에 대충 답했다.

“어 모두 반갑다. 다들 마이 무라! 뷔페니까...”

유성이 자리에 앉자 맞은편 자리의 눈웃음이 매력적인 여동창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유성아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응? 어. 그래 너도 잘 지냈지?”

맞은편 친구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유성은 당황해 얼른 대답하고 윤찬에게 눈빛으로 구조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눈치 채지 못한 윤찬은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느라 바빴다.

“식전에 담배는 피웠고, 이번엔 숯불 좀 피워볼까?”

‘에휴! 필요할 땐 도움도 안 되는 놈. 음 살짝 낯이 익은 건 같은데 누구지?’

우물쭈물하는 유성을 살펴보던 맞은편 친구가 돌 직구를 날렸다.

“유성아 난 네 생각 가끔 했는데, 넌 나 기억도 못하는 것 같네. 술이나 한잔 주라.”

아까와 달리 얼굴을 슬픈 표정으로 확 바꾼 앞자리 친구가 맥주잔을 내밀었다. 유성은 맥주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아! 그게. 실은 잘 기억이 안 나서. 미안해. 앞으로는 기억할게. 이름이 뭐였지?”

“정말 기억이 안나나 보네. 실망이지만 뭐. 앞으론 잊어 먹지 마! 나 보라야 강보라!”

그랬다. 유성은 여자들의 변신에 대해 1 도 몰랐다.


“헐! 네가 보라라고? 크헉 왜? 어디가? 어떻게 네가 보라야??”

보라는 대학생이 되기 전 겨울 미리 작은(?) 시술로 인해 눈을 크게 뜨게 되었고, 대학생이 된 후


메이크업이라는 필수 아이템과 다이어트라는 선택 아이템을 장착해 업그레이드 된 강보라는 유성의 기억속의
보라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유성의 놀란 반응과는 달리 담담한 보라의 대답이 이어졌다.

“유성아 너도 만만치 않아. 들어 올 때 보니까 키도 좀 큰 거 같고, 운동 했니? 얼굴도 갸름해 진 거 같고.


무튼 용까진 아니지만 사람은 된 거 같아. 이제 사람 된 거 축하해.”

“아냐. 유성이는 장비 빨이야. 어제까지 고딩 때랑 똑같았는데 오늘 동창회 나온다고 힘 좀 준거야.”

고기 굽던 윤찬이 끼어들자 유성이 잽싸게 차단했다.

“시끄러, 저기 양념 고기나 뒤집어! 아직 손이 보이지? 여유롭지? 고기 태우면 탄 것들 죄다 너 다 먹여


버린다.”

“호호. 둘은 여전히 친하게 지내나 보네.”

보라의 말에 윤찬이 대답했다.

“내가 없으면 이 놈 친구 없거든. 뭐랄까? 미리 독거노인 될 유성을 옆에서 챙기며 일종의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중이지.”

“닥치고 고기나 잘 굽지? 탄 거 다 네 거라니까?”

“옆에서 계속 탄거 탄거 하니까 탄산 먹고 싶네. 유성아 나 ‘Thprite’(사이다)!”

“어..그래.”

‘Thprite’는 단어에 오늘 윤찬이 자신을 도와주기로 했던 일이 떠올라 급 공손해지는 유성이었다.

그렇게 한유성은 강보라와 윤찬의 관심(?)속에 동창회에 익숙해져 갔다.

***

[딸랑! ]

고기 뷔페 ‘물고 뜯고’의 출입문이 열리며 유성이 기다리던 그녀가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나경이지만 계속 시간을 확인하며 출입문을 확인하던 유성이기에 한눈에 나경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왔다!”

윤찬에게 작게 속삭이며 신호를 주자 탄(?) 고기 먹느라 바쁜 윤찬이 급히 일어나 첫 번째 작전에 돌입했다.

“크헙. 꿀꺽! 나 잠만 화장실 가따 오께.”

“어 그래 다녀와.”
보라가 대답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윤찬은 화장실 방향이 아니라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려 나경에게 먼저 다가갔다.

“어? 나경아! 나경이 맞지? 나 윤찬인데 기억 하지?”

입구에 들어서며 일행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나경은 갑작스런 윤찬의 목소리에 놀라 허둥지둥 대답했다.

“네? 네. 아 어? 윤찬? 김윤찬?”

“어? 아니. 나 윤 찬인데. 성이 윤, 이름이 찬. 여튼 나 잠시 화장실 갈 꺼라 이따가 다시 인사하기로 하고


저기 내 자리 좀 맡아줘.”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저기 여기 보고 있는 유성이 보이지? 그 옆이 내 자리니까 거기 가서 앉아달라고 쉽지?”

“어. 그래...”

나경에게 말을 전한 윤찬은 화장실이 아니라 주차장 옆 흡연구역을 향해 나갔고, 일단 당황해 건성으로 대답한
나경은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기억 속 한유성을 떠올렸다.

‘훗 유성? 한유성?...그런데 진아는 어디 있지?’

나경은 방금 전 윤찬에게 했던 대답과는 다르게 미리 도착해 있는 친구 진아와 함께 자리 하기 위해 일행을


둘러보았고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성과 눈이 마주쳤다.

“나경아! 정말 오랜만이야. 이리 와서 앉아.”

나경이 다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있던 유성은 자연스럽게 일어나 일행들 보다 먼저 인사해 나경에게 자리를 권했다.

“어? 유성아 반갑다. 그런데 거기 자리 앉아도 돼? 이미 자리 있는 거 아냐?

“그럼 여기 자리 주인 있지. 처음부터 나경이 네 자리였어. 하하하!”

“호호. 그럼 그럴까?”

유성의 훤칠하게 변한 모습에 급 호감을 느낀 나경은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윤찬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동창회

***

각자 테이블에서 왁자지껄하던 친구들도 나경의 등장을 알아채고 인사를 나눴다.

“나경이 왔어? 늦었네. 요즘 바쁜가봐?”

“반가워 나경아!”

마침 나경을 발견한 진아가 말했다.

“어라? 나경아 거기 앉았어? 내가 그럼 그 테이블로 갈게!”

“그래 진아야! 자리 하나 비어 있네. 이리로 와”


나경을 발견한 정진아도 자리를 유성의 테이블로 이동했다.

김나경의 등장으로 인해 갑자기 유성의 테이블은 만석이 되어 버렸다.

그 때 마침 들어온 윤찬은 자신이 앉을 자리가 없음을 확인한 후 유성이와 눈빛으로 사인을 주고받고는 안쪽자리로
향했다.

곧이어 윤찬의 두 번째 작전이 실행되었다.

***

윤찬은 제일 안쪽 동효가 위치한 테이블 옆으로 도착해 마침 술잔을 들고 일어나려는 동효를 막았다.

“진동효! 오늘 우리 같이 한잔 안했네. 잔 비우고 오랜만에 봤는데 내 술 한잔 받아라.”

“어? 그...그래. 나 잠깐.. 저기...”

“자자 빨리 받아라. 안주도 대기 중이다. 팔 아프다. 얼른!”

안주로 고기쌈까지 싸서 대기하는 윤찬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동효는 윤찬의 작전 속에 빠져 들고 있었다.

“꿀꺽! 크....마셨다! 이제 됐지?”

“아니 아니지. 내 술 한잔 받아야지.”

“에휴! 얼른 줘 그럼.”

[콸콸콸]

“윤찬아 이제 진짜 된 거지? 이제?”

윤찬의 술이 살짝 들어간 찰거머리 주사 연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No! No!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어야지 얼른 마시고 나도 한 잔 줘!”

“흑흑. 윤찬아! 나한테 왜 이러는데...”

고등학교 때 동효는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나경에게 공개적으로 마음을 표 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동창회를 두 달에 한 번씩 챙기는 것도 동효의 사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썰도 있다.

이도 무시 할 수 없는 게 처음 들어 설 때부터 진동효가 정진아를 자신의 테이블에 미리 앉혀 놓은 것을 보고


윤찬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랬다. 오늘 진동효는 나경이 들어오는 걸 보고 나서기보다는 무게감을 가지고 앉아 있으면 곧 자신의 테이블에
있는 진아를 찾아 나경이 찾아 올 거라는 생각에 못 본척하고 있다가 윤찬의 작전에 당해 버린 것이다.
뒤늦게 자신의 큰 그림이 실패한 걸 깨닫고 자신도 잔을 들고 자연스럽게 유성의 테이블로 이동하려다가 마침
정진아가 앉았던 자리에 자리 잡은 윤찬에게 뒷덜미가 잡혀 이러고 있는 것이다.

‘미안하다 동효야. 지금 이러지 않으면 미래의 내가 독거노인 챙기느라 힘들어 진다.’

윤찬은 진동효에게 마음속으로 미안함을 표하며 두 번째 작전을 계속 이어갔다.

***

윤찬이 작전수행(?)으로 자리를 비우자 여자들로 둘러싸인 유성은 삽겹살을 굽기 위해 소매를 걷고 집게를 들었다.
유성의 걷어 올린 소매 단 아래로 힘줄이 얼핏 얼핏 보였다.

옆에서 한유성을 보고 있던 나경이 팔뚝을 보며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우와! 유성아 팔뚝에 힘줄도 다 보여. 우와! 너 운동하니?”

“어머 진짜네! 유성아 나 옛날부터 힘 줄 나온 남자 팔뚝 한 번 만져 보고 싶었는데...나 한 번 만져 봐도 돼?”

갑자기 훅 들어오는 보라의 공세에 유성은 은근 슬쩍 농담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하...하! 한 번에 천원!”

그 때 그 말을 농담으로 받는지, 다큐로 받아들이는지 모를 표정으로 나경이 유성에게 세종대왕님을 들이밀며


말했다.

“유성아 그럼 난 만원어치만! 헤헤”

“컥! 하핫 나...나중에..”

얼굴이 불판에 올라가기 전 고기 빛이 된 유성이 불판 위의 삽겹살을 뒤집으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채로 말을 이었다.

“하하! 고기는 윤찬이 잘 태우는데...”

옆에서 말없이 고기 먹는데 집중하고 있던 정진아도 더 이상 먹을 고기가 없자 나경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경아 오늘 조별 과제는 잘했어?”

“응? 조별과제? 아! 실은 다음 달 봉사활동 장소가 부산지역이라 사전 답사 다녀오느라고 늦었어.”

한유성은 잘 익은 삽겹살을 한 점씩 친구들 접시에 올려 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응? 무슨 봉사활동인데 사전답사까지 가?”

“아 그냥 지역 의료봉사 단체인데, 이번에 신평에 65 세 이상 독거노인들 찾아뵙기로 해서 장소 섭외하고 미리


사전 답사 하고 오느라 생각보다 조금 늦어졌어.”

“우와 역시 나경이는 생각하는 거도 남다르네.”

유성의 감탄에 보라가 거들었다.


“그럼 막 어르신들 찾아뵙고 직접 주사도 놓고 그러는 거야?”

“아...그러고 싶지만 아직 1 학년이라 바늘까지 만지기는 무리라 약품 나르기나 그냥 어르신들 말 벗 해드리고


식사 도움 정도 밖에 못해드려.”

“그래도 그게 어디야? 넌 생각이 옛날부터 남다르더니 멋있다 김나경! 나 강보라가 인정한다! 자 내 잔 한잔


받아라!”

“아..아냐! 그런 거 그냥 선배들 권유로 어쩌다 보니 활동하고 있는 거야. 너무 띄우지 마. 내려올 때


멀미한다.”

나경의 겸손에 유성은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밖으로 나와 버렸다.

“역시 나경이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고 마음도 예쁘네.”

나경은 당황했는지 말을 못해 얼굴만 붉혔고, 주변은 순간 ‘갑분싸’의 정적이 흐르는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

“......”

“크...유성이 너무 대놓고 고백이네.”

“그러게..고기나 굽지..야 고기 타자나!”

보라의 말에 진아가 맞장구를 치며 고기를 재촉했다. 옆에서 민망해진 나경은 손부채질 중이다. 실수를 자각한
유성도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 둘러 댔다.

“어,,그래 탄 건 내가 먹을게..쩝 쩝. 꿀꺽.”

탄부분이 있는 고기를 먹은 유성의 귓가로 들리는 언제나 반가운 알림 음!

[띠링! ]

[기본 요리 ‘숯불에 구운 삽겹살’을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80 상승합니다. ]

[취사병 체험 LV.4 EXP 52/480 ]

[취사병 체험 LV.4 가 되었습니다.]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아! 이 민망한 상황에서도 국방부 시계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구나.’

여전히 고기에 관심 많은 진아를 바라본 유성은 다른 종류의 고기를 권했다.

“진아야 삽겹살 말고 항정살이랑 갈매기살은 어때?”


“헐 이게 진아 까지 챙기고? 양다리냐? 근데 난 왜 냅둬?”

“음. 그건 사실 나 낯가림이 심해서 낯선(?) 사람 잘 못 챙겨...미안.”

보라가 고딩 때와 많이 달라진 사실을 에둘러 표현하는 유성이다.

“.....으...너! 오늘만 살고 싶냐?”

“그래도 고긴 굽고 나서 죽여!”

“풋! 근데 유성이 고등학교 때와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아?”

셋의 푸닥거리를 보면 웃음을 짓던 나경이 의문을 표하자 보라가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 때 보다 키도 좀 커진 것 같고, 피부는 뽀얀 게 나보다 좀 하얘 보이네.”

고기를 씹고 있던 진아가 아무렇지 않게 보라에게 카운터를 날렸다.

“우물..우물....쩝. 야! ‘강보검’ 너랑 피부색 비교 하는 건 좀 참아.”

그랬다. 강보라는 유독 피부가 검어 친구들이 보라 검정을 이어서 ‘보검’이라고 불렀었다.

“흐흐흐. 오늘 하루만 살고 싶은 애들이 여럿 보이네..”

“아 미안! 난 고기 좀 먹고 나면 죽여.”

유성은 윤찬이 만들어준 황금 같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여우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고기를 굽다 보니 따로


나경과 썸을 탈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아쉽지만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저녁 알바를 위해 가게를 나섰다. 물론
유성은 이대로 헤어지지는 않았다.

나경의 말에 따르면 지역봉사단체에서 65 세 이상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 단백질아미노산 수액을 놓아드리고


점심식사로 따뜻한 잔치국수도 준비한다고 했다.

본래 의료봉사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인솔과 안내, 접수, 선물포장, 말벗 등 많은 인원이 필요해 대략 80 여 명의


인원이 동참한 다고 했다. 꼭 의료인이 아니라도 마음만 있으면 참여가 가능 하다고 했다.

유성은 나경에게 다음에 꼭 자신도 함께 하고 싶다고 어필해 나경의 연락처를 따로 받아 놓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또 얻은 한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 조용히 읊조렸다

“스탯창”

[띠링!]

[체험병 : 한유성]

[칭호 : ‘겸인지용(兼人之勇)’]
[힘:12 민첩:12 체력:13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도로주행 만점’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유성은 동창회에서 열심히 고기를 구웠더니 레벨이 두 개나 상승해 취사병 체험 5 레벨을 달성했고 생각대로 체력
스탯이 2 상승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스탯은 유성을 국대급 운동선수와 붙여 놔도 물론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체력에서는 밀리지 않을 수치다.

저녁 알바를 위해 가게를 향해 가는 유성은 나경과의 일과 늘어난 스탯 생각에 절로 입 꼬리가 씩 말려 올라갔다.

***

-Episode

한편 아직까지 테이블 안쪽에서 동효와 붙어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동효와 윤찬이다.

동효는 갑자기 친한 척 다가와 둘만 남은 테이블에서 다른 자리로 가지 못하게 막는 윤찬에게 또 다른 오해(?)를


해 버렸다.

‘헐...설마 윤찬이 커밍아웃인가?’

“윤찬아! 내가...네 마음 내가 다! 안다. 하지만... 나는! 아니야. 미안해...”

“풋! 동효야! 너도 이제 내가 왜 이러는지 눈치 챘나? 미안하다. 하지만 오늘만 좀 봐도. 오늘만 날 이가!
우리 다음 모임도 있고! 그리고 그 다음 모임도 있잖아! 계속 한 두 번 만나다 보면 사람 맘이 또 모르잖아?
그렇지? 오늘은 그냥 네가 이해해주라. 우리 다 친구잖아!”

동효의 말에 너무 유성이 생각만 한 거 같은 윤찬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윤찬아 나도 그걸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데...윤찬이 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 그래서 첨엔 조금 놀랬다. 네


맘은 알겠는데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아직 아니 앞으로도 난 못 받아 줄 거 같다. 미안하다.”

옆에 있는 다른 친구들이 혹시 들을까 단어 사용에 최대한 신경 쓰며 거절의 의사를 밝히는 동효에게 이어진


윤찬의 마지막 한 마디 말은 동효를 자리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진동효 네 맘이 그 정도가? 에효!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동효야! 우리 집 가서 잘래? 내가 사과 하는


의미로 아침에 해장라면 끓여줄게.”

“컥! 아...윤찬아 나 집에 오늘 급한 일이 있었는데 깜빡했다. 오늘 반가웠지만 다음부터는 우리 가급적 오래...


오래 만나지 말자. 얘들아 급한 일이 있어서 나 먼저 가볼게. 미안해!”

“어! 그래...그럼 담엔 (유성이 보다) 너한테 잘해줄게”

“으악! 나한테 왜 이러는데!”


달려 나가는 동효와 윤찬은 서로 의미가 다른 대화를 나눴음을 모르고 둘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짬 타이거

***

동창회 장소를 나온 한유성은 마트에 잠깐 들러 주말이라 1 시간 일찍 캡슐 방에 도착해 혼잡한 가게를 임소정과


박주호를 도와 정리하기 시작했다.

늘어난 힘과 민첩으로 무장한 유성의 테이블 정리는 지켜보는 손님들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내가 말했지? 새로 온 알바 형 무슨 서커스 하듯이 정리 한다고!”

“우와! 나 저런 얼굴과 몸으로 저렇게 빠르게 청소하는 사람 첨 봐. ‘너튜브’에 올리면 구독자 기본 네 자리는
가겠다.”

“어머! 저 오빠 팔뚝에 힘줄 봐! 허...비주얼도 장난 아닌데? 여기 단골 각이네”

주위의 손님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유성은 무슨 아이돌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낮에 백화점 매장 누나가 옷을 잘 골라 줬네. 비주얼의 완성은 코디였나? 그 백화점 단골 해야겠네.’

잠든 사이 신체 재구성을 겪어서 비대칭이던 얼굴까지도 대칭을 이루게 된 사연은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한유성은 낮에 백화점의 친절한(?) 매장 직원이 고마울 뿐이다.

잠시 후 10 시가 되어 어린 손님들이 돌아가고 캡슐방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유성은 오늘도 취사병 경험치를 보다 효율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고 일단 실험을 해보기 위해


마트에 들러 사온 것들을 꺼내 한쪽 재료 창고에 정리해 놓았다.

‘오늘도 체력에 힘쓰는 밤이 되겠군!’

밤이 깊어 새벽이 되자 손님들이 점점 줄어들어 유성에게 여유가 찾아왔다.

한유성은 실험을 통해 시스템에서 경험치가 반응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컵라면을 라면 조리기에 끓여 먹어볼까?’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컵라면은 시스템에서 경험치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끓이는 것은 취사로 인정을 하지만, 뜨거운 물에 불리는 행위는 취사 행위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 했다.

이를 확인해보기로 한 유성이 조리기에 컵라면 ‘큰뚜껑’을 올렸다.

잠시 후 조리 완료를 알리는 멜로디가 울렸고 유성은 한 수저를 종이컵에 옮겨 담아 맛을 보았다.

[띠링! ]

[기본 요리 ‘끓인 컵라면’을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체험 경험치가 80 올랐습니다. ]

[취사병 체험 LV.5 EXP 86/960]

[취사병 체험 LV.1 부터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취사병 체험 LV.5 달성으로 소환수 메뉴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

‘아 이런 거였군. 역시 올랐어! 하하하’

실험이 성공해 기쁨을 느끼는 찰나 유성은 동창회에서는 주위가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 미쳐듣지 못했던 마지막에
들린 알림 음에 당황했다.

‘뜨아? 소환수? 군대에 무슨 소환수가 있지? 이젠 하다하다 무슨 드레곤이나 몬스터도 등장하는 건가? 함부로
불러 봐도 될까?’

유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게 안에서 확인하다가 잘못해 감당하기 힘든 소환수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삼촌에게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다행히 새벽이라 이 시간엔 아무도 없네.’

옥상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창’

[띠링! ]

[체험병 : 한유성]

[취사병 체험 LV.5 EXP 86/960]

[운전병 체험 LV.2 EXP 104/120]

[소총사격 체험 LV.2 EXP 0/120]

[수류탄 투척 체험 LV.3 EXP 30/240 ]

[소환수 메뉴가 열람 가능 합니다. ]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 마지막에 새로운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소환수라니 설마 판타지에 나오는 드레곤이나 와이번 같은 탈 수 있는 거면 흐흐흐. 혹시 위험하면 소환해제


하면 되겠지? 아마도...그렇겠지?’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유성은 곧이어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소환수를 기대하며 소환수 메뉴창에 손을 가져갔다.

[띠링! ]
[소환수 메뉴가 잠금 해제 되었습니다. ]

[소환수 목록을 불러 옵니다. ]

[삐..삐..삐... 소환 가능한 소환수가 1 존재 합니다. ]

[소환수를 소환하시겠습니까? Y/N ]

‘일단 소환! 예쓰!’

[삐..삐..삐...소환수 소환 지속 시간을 산정합니다.]

[가상현실 동기화율 특전으로 소환가능 시간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

[소환수를 소환합니다. ]

눈앞에 흰색 빛 무리가 소용돌이치며 환하게 빛났다.

[파팟!! ]

엄청난 소환 이펙트에 놀라 눈을 감았다 뜬 유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유성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어두운 밤하늘에 무언가 날고 있나 하고 올려다보았다.

‘헐...뭔가 거대한 게 나타난 거 같았는데...은신을 사용한 드레곤인가?’

“드레...곤..곤아! 나와 봐!”

그 때였다. 갑자기 유성의 발밑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으으으 악! 드레...곤이다. 가 아니네. 넌 뭐냐?”

발 앞에는 회색 줄무늬를 가진 정말 주먹 만해 보이는 새끼 길고양이가 앞발로 세수를 하며 유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드레..곤인 줄 알고 깜짝 놀랬자나! 휴...엄마는 어디 갔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그때 유성의 머릿속으로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

[소환수 ‘짬 타이거’를 소환했습니다. ]

[소환수 ‘짬 타이거’의 이름은 1 회 변경 가능 합니다. ]

“헐! 너였냐? 드레.....곤이?!”

[소환수 ‘짬 타이거’의 이름을 ‘고니’로 변경하시겠습니까? Y/N ]

‘하..하! 그래 ‘짬 타이거’보다는 낫겠지.’

“예쓰...”
[띠링! ]

[소환수 ‘고니’가 자신의 이름을 좋아합니다. ]

-냥...

[소환수 ‘고니’의 친밀도가 20 상승합니다. ]

이름이 맘에 든 고니가 유성에게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소환수 ‘고니’와의 친밀도가 20/100 이 되었습니다. ]

“친밀도?”

[띠링! ]

[고니 친밀도 20/100 ]

[소환수와 친밀도가 높을수록 다양한 행동이 가능합니다. ]

‘허허 어쩌면 드레곤이 아니라 다행인가? 아 자세히 보니 흰색 바탕에 회색 줄무늬! 과자 ‘5 레오’ 같은


느낌인데 레오라고 지을 걸 그랬나? 하하!’

“고니야 이리와!”

-냥!

유성이 고니를 부르자 폴짝 뛰어 유성의 품에 안긴다.

“일단 내려가자 고니야! 근데 삼촌에게 뭐라고 둘러 대지?”

그렇게 대충 생각을 정리해 가게로 돌아온 유성은 고니에 대해 물어 보는 삼촌에게 말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니까! 내가 편의점 갈려고 하는데 어찌나 졸졸 따라오는지 어쩔 수 없이 데려 왔어? 길가에 저렇게


다니다가 차한테 치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그리고 아무리 둘러봐도 어미도 안보이더라고”

“유성아 삼촌 집은 빈이 때문에 숙모가 안 된다고 할 건 안 봐도 알지?”

“하하! 걱정 마. 내가 키울 거야. 그리고 길고양이한테 집사로 간택 받는 일이 흔한 것도 아니래. 착! 한! 사!


람! 만 가능한 일이래. 크크 삼촌에겐 힘든 일이지.”

“그래? 그럼 더 이해가 안 되는데. 너 그냥 어미 있는 애 납치한 거 아냐?”

“안되겠네! 고니! 물어!”

-냥!!

유성이 고니를 내려놓자 삼촌에게 돌진해 바짓단을 물고 데굴거리는 모양새가 삼촌 눈에 무척 귀엽게 보였다.

“헛! 윽! 큭 하핫! 유성아 앞으로 출근할 때도 데리고 와! 너무 귀엽다. 근데 얘는 뭐 먹이니? 배고플 텐데.
내가 편의점에 금방 다녀올게.”

말을 마친 삼촌이 무엇이 급한지 후다닥 나가버렸다.

유성은 삼촌이 나가자 고니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소환수 상태창을 불렀다.

“고니 상태창!”

[띠링! ]

[소환수 : 고니 ]

[소환수 ‘고니’ LV.0 0/30 ]

[소환수 LV 은 취사병 체험 LV 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

[‘고니’와의 친밀도 20/100 ]

[고유 특성 : 병사 식당 주변에서 살던 고양이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소화 가능합니다.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하하! 무슨 새끼 고양이가 사람이 먹는 걸 다? 가능하다고? 그럼 아까 끓인 컵라면도 잘 먹을까?’

유성은 아직 바닥에서 잘 서있지도 못하고 혼자 뒹굴 거리는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이리와! 라면 먹자!”

-냥!

유성은 고니가 먹기에 충분히 식은 라면이라 느껴 라면이 든 은박지 용기를 고니 앞에 내려놓았다. 냄새를
맡았는지 쪼르르 다가와 라면 용기에 머리를 박고 핥아 먹기 시작하는 고니.

-냐..앙! 할...짜...악...할...짝. 냥!

“흐흐흐. 귀엽네.”

고니의 먹는 모습을 지켜만 봐도 귀여워 흐뭇한 유성이다.

잠시 후 라면을 다 먹은 고니가 트림 같은 소리를 냈고 이어 유성의 머릿속에 경험치 획득 알림이 들렸다.

-끄..억! 냐앙.

[띠링! ]

[소환수 ‘고니’가 ‘끓인 컵라면’을 소화시켰습니다. ]

[소환수 ‘고니’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

[소환수 ‘고니’ LV.0 10/30 ]

[소환수 LV 은 취사병 체험 LV 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


[소환수 ‘고니’의 친밀도가 10 상승합니다. ]

[소환수 ‘고니’와의 친밀도가 30/100 이 되었습니다. ]

-냐앙...

라면을 다 먹은 고니는 은박지 용기를 툭 쳐서 유성에게 밀어놓고 한껏 기지개를 키고 한쪽 구석으로 가서 벌렁


누웠다.

‘역시 정리는 나의 몫인가? 내가 고양이 집사라니...’

[딸랑! ]

곧 편의점을 다녀온 삼촌은 한 손에 우유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유성아 야옹이 어디 있어? 일단 새끼니까 우유만 사왔는데.”

“응? 지금 피곤해서 고니 잔데. 조금 있다가 일어나면 줘.”

유성은 자는 고니를 두고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아직 유성은 마트에서 사 온 라면이 남았다. 확인해야 할 것이


많았다.

***

-Episode

동창회에서 나오기 전 유성은 여전히 여우들에게 둘러싸여 고기를 구워 먹느라 분주했다.

무엇보다 약간 술이 들어가 취한 상태의 친구들이 유성의 앞과 옆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물론 유성은 저녁 알바 때문에 술은 먹지 않고 음료로 목을 축여 정신은 멀쩡했지만 시끄러운 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은 구워도 못 먹겠네. 이제 이걸로 마무리 해볼까?’

시간은 저녁 8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불판에 구운 고기 한 판당 한 점씩 유성은 맛을 봤다.

물론 경험치를 위해서 말이다.

“음. 오물...오..물. 갈..매..기..싸..알...꿀..꺼억.”

[띠링! ]

[기본 요리 ‘숯불에 구운 갈매기살’을 만드셨습니다. ]

[취사병 체험 경험치가 4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32 상승합니다. ]


[취사병 체험 LV.5 EXP 6/480 ]

[취사병 체험 LV.5 가 되었습니다.]

[취사병 체험 LV.1 부터 취사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취사병 체험 LV5 달성으로 ‘짬 타이거’ 소환이 가능 합니다. ]

경험치 상승 메시지가 유성의 머릿속에 울릴 때 옆에 있던 나경이가 마침 유성을 불렀다.

“유성아! 나...취해서 하는 말 아닌 거 알지? 너 약속대로 다음 봉사활동 때 너도 꼭 와야 해! 알았지?!”

“어? 응! 그래 당연하지! 내가 가야지! 꼭! 갈게! 내가 내일 전화할게.”

그랬다. 유성은 나경의 목소리에 집중 하느라 ‘짬 타이거’소환 가능 알림을 대충 흘려들어 버렸었다.

작전

***

유성은 컵라면을 끓여서 경험치가 오르는 것을 확인 했지만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컵라면을 끓여내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라면에 비해 면이 얇은 컵라면은 끓여서 손님에게 내면 금방 퍼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컵라면을 끓여서 나가면 면이 너무 불어 안 되겠네. 음식을 전자레인지로 데우면 경험치를 주려나?’

유성은 냉동인스턴트 식품을 차례로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한입씩 잘라 먹어 보았다.

‘오물...오물 꿀꺽.’

냉동만두, 냉동 피자, 냉동 순대, 냉동 볶음밥 등 모두 경험치 반응은 없었다.

전자레인지로는 경험치가 오르지 않음을 깨달은 유성은 라면 조리기에 데우기 기능을 누르고 물이 든 은박지 용기
안에 냉동식품을 하나씩 넣어 보았다.

‘라면 조리기로는 될지 모르니...’

곧 데워진 음식을 차례로 맛보았다.

역시 경험치 반응은 없었다.

‘쩝. 꽝인가?’

유성은 큰맘 먹고 사온 냉동식품들에게서 효과가 없자 아쉬운 맘을 누르고 모두 데워서 새벽에 남은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돌렸다.

“손님 출출하시면 이것 좀 드셔 보시지 말입니다.”

서비스로 음식을 받은 손님들은 저마다 고마움을 표했다.

“어라? 고마워요. 잘 먹을 게요.”


“마침 출출했는데 감사합니다.”

“고마워 알바! 잘 먹을게.”

“잘생긴 오빠 고마워요!”

‘윽! 저 이모님은 요즘 자주 오시네..’

속으로만 이모라고 뇌까린 유성은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맛있게 드시지 말입니다.”

물론 음식 한 점씩은 고니를 위해 남겼다.

테이블을 한 차례 돌고 오니 마침 고니가 일어나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냥..

“고니 목마르지? 우유 줄게 기다려!”

냉동식품만 은박지 용기에 담아 주고 나서 고니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니 마침 삼촌이 사둔 우유가 생각나 종이컵을
잘라 고니가 먹기 편하게 만들어 조금 따라 주었다.

-할...짝...할....짝...냐앙

금새 다 먹고 쳐다보는 고니에게 우유를 조금씩 더 따라 주었다.

“아까 라면 먹어서 목말랐나 보네. 우유 더 먹자 우리 고니.”

-냐앙 할...짝...할...짝...냐앙

결국 우유 한 통을 다 마신 고니는 다 먹고 나자 꾹꾹이를 몇 번 밟더니 트림을 했다.

-끄어...억! 냐앙.

다 먹은 종이컵은 이제 필요 없다는 듯 발로 툭 건드려 유성에게 밀어 뒀다.

[소환수 ‘고니’의 친밀도가 5 상승합니다. ]

[소환수 ‘고니’와의 친밀도가 35/100 이 되었습니다. ]

‘고니도 냉동식품에서는 경험치를 못 받나 보네. 슬슬 시간도 늦었고 국방부에 갈 시간인가?’

“고니야 삼촌한테 가서 애교 좀 부려! 난 캡슐 좀 타게.”

-냐앙!

마치 고니는 유성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유성이 내민 품안으로 다가와 폴짝 뛰어 안긴다.

요즘 들어 부쩍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굴면서 열심히 해 내심 흐뭇해진 삼촌은 유성의 국방부 접속을 새벽시간
손님이 뜸할 때 허락했었다.
“삼촌 고니 좀 봐줘! 나 국방부 잠깐 다녀올게.”

“어 그래 유성아 새끼 고양이 이름이 ‘고니’야?

“아! 아까 곤히 잘 자 길래...”

“.....”

“.....”

-냐앙?

삼촌과 유성의 어색한 침묵 사이로 고니가 끼어들었다.

***

캡슐에 접속한 유성은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띠링! ]

[1. 병영 식당 체험 ]

[2. 병영 축구 체험 ]

[3. 소총 사격 체험 ]

[4. 화생방 훈련 체험 ]

[5. 수류탄 투척 체험 ]

유성은 지난 접속에서 ‘겸인지용(兼人之勇)’ 칭호를 받고 특전으로 생긴 메뉴가 궁금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유성은 이번에도 순서대로 1 번 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육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보병 ]

[2. 통신 ]

[3. 정보 ]

[4. 항공 ]

[5. 병기 ]

[6. 의무 ]

평소 같으면 맨 위에 보병을 선택 했을 유성이지만 아래에 떠오른 6 번 의무가 눈에 띄었다. 다음에 함께 하기로


한 나경과의 약속이 떠올라서였다.

‘의무가 의료 쪽이니 먼저 확인해도 나쁠 건 없겠지?’

유성은 6 번 의무를 선택했다.

[띠링! ]

[의무를 선택하셨습니다. ]

[잠시 후 응급구조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쾅...쾅! 핑...핑핑!]
주위에서 포탄 소리와 총알 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유성의 눈앞에 처음 보는 화면이 펼쳐졌다.

[작전명 : ‘응급환자 수송’

-전장에 빗발치는 포탄과 총탄에 맞고 쓰러져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전우들을 응급치료 후 병원으로 후송하라!

-당신은 갓 부임한 신입 의무 부사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의무병들을 인솔해 전장에


쓰러진 전우를 위급한 순서대로 구하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응급치료 획득 +@ (응급구조 성공율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응급치료 획득 실패 (구조 실패 및 본인 사망) ]

‘헐? 이건 무슨 게임의 퀘스트 같잖아. 아니 같은 건가? 보상으로 스킬도 준다고?’

부사관 메뉴에 들어온 유성은 알았다.

이건 마치 게임 속의 퀘스트와 같았다. 하지만 유성에겐 응급치료 스킬이 없는데 어떻게 부상당한 전우를 구한단
말인가? 한유성은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해보기로 결정했다.

정신을 차린 유성의 앞에는 들것에 실려 온 병사들이 막사 안 간이침대에서 피를 흘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아! 아파! 살려줘!”

“으....으...앞이 안보여 아!”

[띠링! ]

[붉은색 선을 따라 부상병들을 살펴보고 적절한 응급조치 후 위급한 부상병부터 후방 병원으로 이송합니다. ]

‘일단 살펴보는 게 먼저 그다음은 상황 보고!’

유성은 막사 안을 빠르게 둘러보고 판단을 내렸다.

‘막사 안에 부상병은 10 명, 차량으로 후송 가능한 인원은 2 명 누가 제일 위급한 부상병인지 알아야 할 텐데.


내가 의학 지식이 없으니... 아! 의무병을 활용해 볼까?’

“의무병!”

“상병! 김동현!”

“일병! 임도균!”

유성의 부름에 두 사병이 달려 왔다.

“상병! 너는 왼쪽!! 일병! 너는 오른쪽으로 돌며 위급해 보이는 부상병에겐 이 빨간 띠를 묶어!”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두 사병이 유성의 명령에 좌우로 흩어져 환자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야 너! 넌 저기 차에 가서 들것 챙겨서 와.”

유성은 곧장 옆에 대기 중인 앰뷸런스 운전병을 불러서 들것을 미리 가져와 준비하라고 시켰다.

곧 한유성 하사의 명령을 실행한 의무병 둘이 달려 왔다.

“한 하사님 병상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위급해 보이는 환자가 총 3 명입니다. 누구부터 차에 태웁니까?”

‘누가 더 위급한지 알 수가 없는데...누굴 포기하는 건 별로인데...’

유성은 3 명의 환자 중에 누가 위급한지 운에 맡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작전명에는 유성이 치료를 하라는 말은


없었다. 분명 ‘응급환자 후송’이었다.

“일단 왼쪽 침상에 있는 둘 모두 앰뷸런스에 태워! 그리고 김 상병! 넌 즉시 차 뒤 칸에서 환자 상태 체크하며


병원까지 따르도록 한다!”

“네 알겠습니다.”

“야 운전병 김 상병 도와! 그리고 임 일병! 넌 오른쪽 침상의 환자 나랑 같이 앰뷸런스 옆 차에 태워!”

“네? 네! 알겠습니다.”

곧 환자를 차에 태운 운전병과 의무병 둘에게 한유성 하사가 말했다.

“야! 운전병 먼저 비상등 키고 달려! 난 옆 차 운전해서 따라 갈게. 임 일병 뒤에서 환자 꽉 잡아! 각자 힘내!


김 상병 환자가 둘이지만 부탁할게. 자 어서 작전 수행해! 출발!!”

바로 어제 2 종 면허를 획득한 초보 운전자 유성은 군용 트럭 비상등을 키고 경적을 울리며 앞에 가는 의무대


앰뷸런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자신감 있게 차를 몰았다.

“역시 남자는 트럭이지!”

국군 통합 병원 입구에 차량을 주차했던 유성은 환자 후송을 끝내고 차량 앞에서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작전명 : ‘응급환자 수송’(완료)

-전장에 빗발치는 포탄과 총탄에 맞고 쓰러져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전우들을 응급치료 후 병원으로 후송하라!

-당신은 갓 부임한 신입 의무 부사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의무병들을 인솔해 전장에


쓰러진 전우를 위급한 순서대로 구하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응급치료 획득 +@ (응급구조 성공율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응급치료 획득 실패 (구조 실패 및 본인 사망) ]

‘하하하 이제 작전 성공이네.’

그때 유성의 머릿속에 익숙한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

[완벽한 작전 성공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 - ‘응급 치료’와 ‘물리 치료’를 획득합니다. ]

“크크...이제 나도 의료인이 된 건가? 하하하!”

[띠링! ]

[군용 트럭 ‘2 1/2 Ton Cargo Truck’을 운행하셨습니다. ]

[운전병 체험 경험치가 20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체험 경험치가 160 올랐습니다. ]

[운전병 체험 LV.3 EXP 64/240]

[운전병 체험 LV.3 이 되었습니다.]

[운전병 지원이 가능합니다. ]

“크흐 내가 트럭도 몰았었지. 근데 차 이름이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냥 ‘두톤반’ 이구만.”

그랬다. 불과 2010 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군용 트럭은 수동의 비중이 높았으나 2020 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어진
군 노후장비 현대화로 인해 트럭 대부분이 자동변속기는 기본에 ABS, ASR, 후방주차보조, 운전자보조시스템 등
현대장비로 대체되었고 일부 중요 장비를 탑재 시에는 방탄기능까지 추가 되었었다.

이런 상황에 유성은 수동 변속기를 몰아본 적이 없음에도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

-Episode

오늘도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친 유성은 새로 획득한 스킬을 확인하고 싶어 캡슐에서 나와 삼촌에게 향했다.

“삼촌 고니 본다고 수고 많았지? 내가 안마 해 줄게. 지난번에 ‘너튜브’에서 보고 배웠는데 어떤지 얘기해


줘.”

“허..허..유성아 삼촌 오래 살아야겠다. 그치? 별일이 다 있네. 허허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


유성은 혼자만 들을 정도의 목소리로 입만 벙긋 거렸다.

“스킬 물리치료.”

유성이 스킬을 사용하자 손 주위로 투명한 빛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빛나는 손을 삼촌의 어깨에 올리고 주무르자 하얀 빛이 손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고고고....아....야야야...하...하....시..원...해! 정...말... 시..원..해! 하..하..하!”

유성의 눈에는 삼촌의 목과 어깨 등에 빨간색으로 표시가 된 부분이 보였다.

그 곳으로 손을 가져다 대니 투명한 빛이 하얀 빛으로 바뀌어 윙윙거리고 삼촌은 저렇게 좋다고 비명을 질렀다.

유성은 혹시 빛나는 손을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해서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 내 손 무슨 색으로 보여? 막 반짝이고 그러진 않아?”

갑자기 안마를 해주다 손의 색을 물어보니 황당한 삼촌은 의심이 들었다.

“너 솔직히 말해! 손 안 씻고 지금 삼촌한테 닦은 거 아냐? 그런 거지?”

“아냐! 아냐. 손 씻고 와서 어깨 주물러 준거야.”

“그러고 보니 너 캡슐에서 내려서 바로 왔지? 손 색깔? ‘그레! 이’색이야! 일루와!”

“아 아니라니까!! 아! 악! 고니! 삼촌 물어!!!”

유성은 고니를 불렀지만 유성이 귀찮은 고니는 한 쪽에서 졸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냐앙..크..울..

화해

***

유성은 새해가 되면서부터 삼촌이 운영하는 캡슐 방에서 저녁에 가게 일을 돕고 있다.

물론 남들처럼 낮에 출근해도 되지만 대학에 떨어지고 가족들과 어색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터라 어쩌면 유성이
먼저 도피성으로 저녁 알바 일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가족들과 마주치면 서로 어색하니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들었고,
가족들이 모두 없을 때 비로소 일어난 유성은 아무도 없이 홀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일상을 시작했다.

그렇게 4 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늘 유성은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었다.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일상의 시작이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기 침대 머리맡에 똬리를 틀고 쌔근쌔근 자고 있는 고니.


“하...아 품!! 얼마나 잔거지?”

유성은 늘어난 체력 탓인지 짧은 수면 시간 임에도 푹 잔 느낌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하품은 멈추질 않았다.

유성은 아무리 다시 봐도 그냥 살아있는 새끼 고양이가 소환수라니 신기할 뿐이다.

오히려 그 점이 누군가가 보더라도 더욱 편하긴 했다.

“하..아품! 고니야 형아 씻고 나서 같이 밥 먹자. 형아가 씻고 얼른 정신 차릴게. 하아...품.”

유성은 평소와 같이 한 겹 한 겹 잠옷을 벗어 던지곤 트렁크 팬티 하나만 걸친 채로 비몽사몽 눈을 뜬 듯 만 듯


무의식 상태로 거실을 지나 휘적휘적 욕실을 향해 걸었다.

“꺄...아악!”

갑자기 들리는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란 유성은 덩달아 자신도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무슨 일이야?!”

비명소리에 같이 놀라 소리치다 잠을 깬 유성의 눈엔 평소엔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그랬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평소 한유성은 주말 밤 근무가 끝나고 나면 유독 많이 쌓인 피로로 항상 오후


늦게 일어나 거실에 나와 보면 집은 항상 텅 비어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주말이면 모임에 바빴고, 이제 고 1 이 된 여동생 유경은 독서실과 학원으로 인해 집에 붙어 있지


못했다.

그렇게 유성은 가족들과 4 개월 동안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만 인식한 채 살아왔다.

‘아? 꿈인가?’

유성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이랬다.

소파 밑에 앉아 아이스크림 ‘두개더’를 먹다가 유성을 보고 놀라 소리 친 동생 유경, 소파 위에서 티브이


리모컨을 든 채 ‘YTVN’뉴스 시청 중에 딸의 비명에 놀라 옆을 돌아 보다 유성을 발견한 아빠, 주방 정리 중에
비명 소리를 듣고 고무장갑을 낀 채로 거실을 빼꼼히 내다보고 있는 엄마.

유성은 이 모든 상황을 늘어난 민첩과 스탯으로 찰나에 파악하고 높은 정신력으로 극복하려 했다.

하지만 지뢰라도 밟은 듯 다리는 멈춰 버렸고 입은 얼어붙어 버렸다.

“........”

“........”

“........”

“......히..끅!”

침묵으로 이어지던 거실에 아이스크림을 먹다 놀란 유경의 딸꾹질 소리에 가족들의 침묵이 풀렸다.
먼저 오랜 만에 들어 보는 아빠의 목소리

“큼큼. 옷은 좀 입고 다니지 그랬냐? 큼큼.”

“아! 아빠 아무도 없는 줄 알고.....으? 응? 아아!”

놀란 유성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자신이 트렁크 하나만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다닥 달려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왜 다들 집에 있는 거지?’

방에 들어온 유성은 의아함에 생각하다 시간을 보고 이제 오전 9 시가 조금 지났음을 알았다. 자신은 3 시간도 채


잠들지 않고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평소 독서실에 있을 시간이지만 이번 주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유경에게 오늘은 고 1 이 되고 나서 모처럼


집에서 쉬는 첫 일요일이었다.

“고니야. 형아 쪽팔려서 어떡하니?”

-냥...?

방에 들어와 대충 트레이닝복을 입은 유성은 괜히 잠들어 있는 고니만 흔들어 깨우고 자신의 민망함에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한편 고 1 이 되고 처음 치른 중간고사 이 후 쌓인 스트레스를 아이스크림 ‘두개더’로 풀던 유경은 방금 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대박!..방금 본거 오빠 복근! 실화임? 근데 못 본 사이에 오빠 키 큰 것 같음. 나만 느낌?”

소파 위에서 유경의 넋두리 같은 말을 들은 아빠가 물었다.

“응? 뭐라고? 우리 딸?”

“아빠? 아빠도 방금 봤지? 오빠 배에 있던 빨래판! 봤지? 엄마! 엄마! 오빠 외삼촌 가게에서 무슨 운동해?
삼촌 가게 헬스장이야??”

“무슨 소리니? 외삼촌이 무슨 헬스장을 해? 캡슐방 하고 있다 던데”

유경의 비명에 주방에서 나왔던 엄마는 유경의 질문에 대답하며 다시 주방을 향했다.

“근데 오빠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키도 좀 큰 거 같지 않아?”

“큼큼...우리 딸이 그러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흠흠.”

딸 바보 아빠는 연신 마른기침으로 방금 보았던 어색함을 날리려 하고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경은 자신이 먹던 아이스크림을 들고 일어나 한 동안 넘지 않았던 선을 넘으려 이동했다.

한유성과 한유경 둘은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도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남매 사이였다.
하지만 유성이 고등학교 3 학년이 되면서 나름 공부하느라 바빠 서로 보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유성이 대학에
떨어지고 난 뒤 자연스럽게 둘은 점점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 남매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그렇게 어색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저런 상황으로 유성에게 마음의 벽이 높이 쌓인 유경이지만 아까 목격한 현실은 벽을 넘게 만들었다.

[똑똑]

‘호...흡! 후!’

“오빠 나 들어간다!”

집에서 아빠의 절대적 사랑과 엄마의 보호 속에 집안 내 서열 2 위인 유경은 거침없이 유성의 방문을 열었다.

[벌컥!]

“오빠! 아이스크림 먹을래?”

“어? 아 아니! 안 먹어 들어오지 마! 나가!!”

“벌써 들어왔어! 어 어? 오빠!! 그 고양이 뭐야?”

고니에게 신세 한탄을 하던 유성은 갑자기 들이친 유경에게 놀라 소리쳤지만 유경은 이미 고니를 발견해 버렸다.

“대박! 이고양이 머임??? 우와!!짱 귀여움! 오빠 나 한 번 안아 봐도 됨?!”

“아! 안 돼. 길고양이라서 사나워.”

“히잉! 한 번만! 응?”

한유성의 단호박 같은 단호함에 유경이 살짝 태세를 전환 하려는 찰나 갑자기 고니가 달려가 유경의 발밑에 머리를
들이밀며 앙큼을 떨기 시작했다.

-냐..앙.....냐...앙.

“아앗! 우 와! 나 어떡해! 우와! 대박!! 대박! 짱 귀여워! 히힛! 아참! 오빠 얘 이름이 뭐야?”

“고니.”

유경의 격한 반응에 고니는 더욱 지능적으로 앙큼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 아이스크림 앞에서 뒹굴 거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고니는 유경이 방에 들어올 때 들고 온 ‘두개더’를 보고 작전을 실행한 것이었다.

-냐앙..냐앙!!

“오빠? 고니한테 아이스크림 줘도 돼?”

“그거 방금까지 나 줄려 던 거 아니었어?”


“으응? 아! 고니 먹고 남으면...”

-냥......

때마침 벌어진 고니의 힘없는 울음소리 연기(?)에 유경이 가져온 ‘두개더’는 더 이상 유성의 것이 아니었다.

“에고 그래쏘? 고니 배 많이 고파쏘? 우리 고니야 이거 고니 먹어 우쭈쭈....”

유성은 방금까지 자는 걸 깨워서 자신을 귀찮아하던 고니의 돌변한 연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유경과의
어색함도 많이 가셨다.

“허허 방금까지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하던 놈이 그 사이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네. 허허.”

그랬다. 유성은 듣기로 고양이도 개와 마찬가지로 가려야 할 음식이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고니는 고유특성으로
인해 유제품, 초콜릿, 날생선 포도 등에 대한 걱정이 없어 편했다.

-그어억...냐앙.

“오? 고니! 트림 한 거야? 우와 고니 벌써 아이스크림 다 먹은 고니? 잘해쏘 고니.”

“하하. 내 아이스크림은 없는 고니?”

***

유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존재가 발각된 고니를 유성은 부모님께 어미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새끼 길고양이가


자신을 따라와 어쩔 수 없이 데려왔고 자신이 책임지고 관리하겠다고 말씀드려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

물론 허락을 받기 위해 유성은 집안 서열 1 위인 엄마에게 새로 생긴 물리치료 스킬을 사용했다.

‘20 년 만에 아들에게 안마를 처음 받아 보네...’

“아...아이고..시..원...하..네...유성이가 매일 해 줬으며..언....조...을...”

“엄마 앞으로는 시간 날 때 마다 틈틈이 주물러 줄게. 여기 어깨도 많이 뭉쳤네. 그리고 여기도....고기도...


어 때? 시원하지?”

“그래 아들 시원하다. 시원해. 엄마 어깨도 맘도. 시원해. 훌...쩍..”

엄마는 뭉쳐져 있던 근육들이 유성의 손길에 시원하게 녹아 버리자 시원함과 다행스러운 감정이 함께 밀려왔다.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가족간에 서로 상처주지 않으려 피해버린 것이 너무 멀어져 이제는 다가서기 너무 힘들어져
버렸던 것이다.

“이젠 엄만 됐고. 아빠 해드려 요즘 아빠도 많이 피곤해 하시더라.”

“큼큼. 난...괜찮아. 저..우리 딸? 그 고니 한번 같이 보자 험험!”


‘아빠도 부끄러워하실 때가 있네. 훗!’

“아빠도...잉? 여기 어깨 목...헐? 아빠는 종합병원이네. 못 본 사이 종합격투기라도 다녀요? 안 되겠다.


아빠는 여기 이리 누워 봐요.”

“큼. 아니 아빤 괜찮다니....까! 으헉 내...내려!”

괜찮다고 버티는 아빠를 유성은 늘어난 힘으로 그냥 사뿐히 안아서 소파위에서 카펫 위로 이동시켰다.

“네네 손님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하...하..핫!

“헛..아들?”

“헐..대박..내가 알던 한.....심한...유성... 맞아?”

놀란 아빠는 말을 하다 멈추고 헛웃음만 흘렸고 엄마는 못 보던 아들의 스펙에 말을 잊었다. 유경은 오빠라는
호칭을 잊었다.

유성은 그동안 가족과 서먹했던 감정을 조금은 털어 버릴 수 있어 기뻤다. 그동안 방황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집안에 하나 있는 오빠 노릇도 하고 아들 노릇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Episode

유성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어제 술자리에서 만들어둔 ‘코코넛 톡’ 대화방을 열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경아 어젠 잘 들어갔어?」

「나경 : 응? 근데 나 오랜만에 너랑 친구들 만나서 반가움에 너무 갔나봐...아직도 머리가 흔들려...」

「사실 나도 나경이 너 만나서 무지 반가웠어! 표현은 못했지만...그리고 어제 말했던 봉사일정에 나도 기회가


되면 꼭 너랑 가고 싶어...힘쓰는 일은 자신 있으니까 일정 확정되면 나도 꼭 명단에 넣어줘!」

유성은 전화보다 톡으로 할 이야기를 정리해서 메시지로 보내니 어제 주위 눈치 보느라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어 좋았다.

「나경 : 어...유성아..그렇게 할게....」

「그리고 나경아 요즘 영화 재미있는 거 많다던데...혹시...시간되면...」

「보라 : 나도 시간 될껀데...」

「진아 : 나도 시간 많은데...」

「윤찬 : ....유성아 뭐하냐? 너 혹시 음료수 먹고 취했냐? 아직 안 깼냐?」

「유성님께서 대화방을 나갔습니다.」


그랬다. 유성은 단체 대화방인 줄 모르고 평소 습관대로 맨 위에 있는 창을 클릭했던 것이다. 유성은 민망함에
일단 방 탈출 했다.

동생

***

유성은 당황해 ‘코코넛 톡’ 단체 대화방을 나와 버린 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씻고 거실로 나왔다. 이제


거실에서 유성은 가족들과 마주 쳐도 어느 정도는 어색하지 않았다.

“엄마! 오늘은 아빠랑 어디 약속 없어?”

“그렇잖아도 조금 있다가 아빠랑 점심 모임이 있어서 나가야돼. 아들은 오랜만에 유경이랑 둘이서 밥 챙겨 먹어.
음...아니면 뭐 시켜 먹든가.”

“응. 알아서 챙겨 먹을게”

“앞으론 주말만이라도 가족끼리 같이 밥 먹고 그러자. 아! 아들 네가 피곤 할레나?”

“괜찮아 일요일만 조금 일찍 일어나면 되겠네...일요일 하루라도 같이 점심 먹도록 노력할게.”

“아님 내가 네 외삼촌한테 일요일 하루는 쉬게 해주라고 연락해볼까?”

“하하 괜찮아. 정 힘들면 내가 얘기 할게.”

잠시 후 아빠와 엄마는 평소 주말처럼 유성과 유경을 남겨두고 외출을 하셨다.

유성은 동생이랑 둘이 거실에 오랜만에 함께 하니 다시 어색함이 찾아올 것 같았다.

“유경아 점심 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오빠가 오랜만에 사줄게.”

뭐라도 어색함을 풀어 보고자 말을 꺼낸 유성은 홀로 어색함을 느끼고 있단 걸 알았다.

“응? 아니 괜찮아 고니야. 언니가 그렇게 좋아? 어쩜 우쭈쭈...너 왜 이렇게 귀엽니?”

-냐앙! 냐앙.

유경은 유성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고니에게서 여전히 눈길을 못 돌리고 있다.

냉장고로 다가가 재료로 쓸 만한 게 없는지 둘러보던 유성이 한마디 했다.

“뭘 알아야 해먹지..”

요리 실력이 1 도 없는 유성이다. 그나마 이렇게 취사병 경험치를 획득한 것은 라면 조리기가 일등공신이다.


이번엔 유경 옆으로 다가가 조금 크게 얘기했다.

“유경아 점심 어떻게 할래? 나가서 사먹을까?”

“응? 아 헉! 이런...참! 지금 몇 시야?”

“이제 11 시 조금 지났어.”
“어떡하지? 음...오빠! 나 점심 비싼 거 먹어도 돼?”

“하하 오랜만에 동생 사주는 건데 그렇게 하지? 뭐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오빠 그것 보다 나 밖에서 맛있는 거 사줄 돈으로 배달 시켜 먹자. 여러 종류 시켜서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그치?? 그치??”

“그래...나야 상관없는데. 편한 데로 해.”

“오빠 그럼 음식 남으면 안 되니까 친구 두 명만 부를게.”

“.....그..그래.”

고니와 놀아주느라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는 줄도 몰랐던 유경은 유성의 배달음식을 미끼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유경은 ‘코코넛 톡’ 단체 대화방으로 들어가 친구들에게 오늘 자신의 집으로 오면 점심을 쏜다고 말해


약속장소를 바꾸고 친구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물었다.

“음...사실은 나도 오늘 시험 끝나서 애들이랑 약속 있었는데, 고니랑 놀다가 그만 이렇게 시간이 흐른 줄


몰랐네. 그래서 오빠랑 밥도 먹고 친구들과 약속도 지킬 수 있도록 오빠가 살짝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데...
오빠의 작은 도움이 뭔지 알지?”

“아! 자리 비켜줘?”

“NO!! NO!! 오빠의 작은 결재가 나에겐 큰 도움이 돼.”

“으...응? 어...그래.”

“그럼 일단 메뉴 부를게. 피자랑 치킨 하나씩 음....”

“응...그렇지만 아무리 여자애들이라도 그거 가지고 되겠어?”

“아! 피자 치킨 많이 먹으면 느끼하잖아.”

“하하 요즘 애들은 벌써부터 몸 생각해서 적게 먹나봐?”

유성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소박한 메뉴에 유경에게 재차 물었지만, 곧 유성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고니야 오빠가 지금 뭐라고 하는 고니?? 오빠! 느끼해서 같은 종류는 많이 못 먹는다고, 피자 치킨 다음은


엽떡 이랑 주먹밥 음...그리고 닭발정도로 느끼한 속을 풀어 줘야겠지?!! 음...또 중요한 후식은 미리 시키면
녹으니까 아이스크림은 다 먹고 나가서 먹는 게 낫겠지?”

“아...그래 그런 거구나 내가 성급했네. 일단 알았어.”

유성은 핸드폰을 들어 배달 어플 ‘배달의 만족’ 에 접속해 주문하기 위해 손을 놀렸다.

:
아파트 현관문 앞에 도착한 친구들에게 인터폰으로 문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유경을
유성이 살짝 불렀다.

“유경아 꼭 내가 필요 할까? 음식도 다 왔고 너네 편하게 내가 잠깐 나가 있는 게...”

“No! No! 아니야!! 나 이런 거 꼭 해보고 싶었어! 드라마 보면 거(?) 있잖아 짠! 하고 나타나서 동생한테
만능으로 다 해주는 오빠!! 그런 오빠를 친구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짝 보여주며 자랑하는 상상 크흐.....
생각만으로도 ‘Thprite’하지 않아?”

“흐흐흐. 유경아 그렇담 난 더더욱 아니잖아?”

유성은 유경이 해준 코디를 받고 가슴에는 고니를 안고, 유경의 상상 속 드라마 오빠를 연출하기 위해 아까부터
식탁 한쪽에 서서 어색하게 미소 짓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나도 그런 오빠... 다음 생에도 만나기 힘들 거라고 진즉에 포기했어. 근데 아침에 오빠를 보고 느꼈어.
내가 생각한 드라마에 오빠가 출연하면 가능 할 거 같다고. 연극은 시작 됐고 막이 올랐어. 오빠는 그냥 가슴에
고니를 안고 미소만 보이고 있음 돼! 그냥 그렇게 있음 돼! 알았지?”

“그...그래.”

그렇게 유경은 유성을 이용해 학교에서 ‘핵인싸’가 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들 집집마다 드라마에 나오는 오빠 하나씩은 다 있지 않아?’라는 제목의 ‘너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기
시작하는 유경이다.

주연 유성에 조연 고니면 기본 4 자리 구독자는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띵동 ]

“문 열어 주고 올 테니까 거기서 그냥 고니 안고 웃고 있어!”

명령하듯 한마디 한 뒤 친구들을 맞이하러 현관으로 걸어가는 유경이다.

“헐...고니야 유경이가 나보고 드라마에 나오는 오빠를 갑자기 연기하란다. 어이없지? 너도.”

-냥!

[끼익.]

“어서와! 갑자기 약속 장소 바꿔서 미안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유경의 친구들에게 유경이 인사했다.

방금까지와는 180 도 바뀐 유경의 접대용 모드 인사에 친구 인혜와 수민이 대답했다.

“아니야 오늘 유경이 네가 점심 쏜다는데 우리는 바로 땡큐지. 히히.”

“그럼! 당연히 콜이지! 킁킁? 음식 냄새 오! 미쳤다! 유경아 미리 잘 먹을게.”

“그래 일단 들어가자. 음식 다 식겠다. 일단 먼저 먹고 나서 노는 걸로!”


한유경의 같은 반 친구 장인혜와 권수민의 등장으로 갑자기 집안이 시끌벅적해졌다.

유경의 안내를 받아 집안으로 들어오면서도 계속 떠들던 두 친구는 식탁 옆에 서서 살짝 미소 짓는 유성을


보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

“......”

“갑자기 왜 그래? 아? 우리 오빠! 인사해!”

“아...안녕하세요. 옵..하? 유경이 친구 권수민이라고 합니다.”

“저...저는....장인혜입니다.”

“아..안녕? 이름이 수민이랑 잔인해??”

“히끅! 장! 인혜 입니다.”

“하하. 미안 난 유경이 오빠 한유성 하.하.하. 반갑다.”

갑자기 유성을 보고 놀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유성이 대사를 읊었지만 친구들은 생각도 못한


유성의 출현과 가슴에 안긴 고니의 조합에 놀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대바...악! 오빠가 있으면 미리 말을 해주지. 아 그냥 쌩얼로 왔는데...”

“아....저기...너 오빠 있다고 왜 말 안했어?”

두 친구의 원망 섞인 눈빛을 받은 유경이 살짝 미안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내가 시험 끝나고 너희와 점심 약속 있어서 나간다고 했더니, 시험 치느라 수고 많았다고, 갑자기


너희 불러서 이렇게 서프라이즈 해준다고 해서...우리 오빠가 조금 짓궂지? 말도 못하게 하고...그냥 나가서
친구들이랑 먹는다고 했는데...에효 나도 가끔은 귀찮기도 해.”

“유경이 친구니까 말 편하게 놓을게. 인혜랑 수민이라고 했지? 여기 와서 먹어 얼른 음식 식겠다. 불편하면 내가


자리 피해줄까?”

“아...아니.. 편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안...편합니다. 오빠도 같이 먹어요.”

“하.하...그래 얼른 앉아서 먹자 음식 식겠다. 하..하”

식탁으로 다가가 앉으려던 수민은 유경에게 물었다.

“저기..화장실이 어디야? 유경아 나 손 좀 씻고 올게.”

“아...나도 같이 가.”

친구들에게 화장실을 안내해주고 돌아온 유경은 유성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오빠! 대사가 너무 부자연스러워! 좀 자연스럽게 못해? 분위기 봐서 좀! 그리고 말 길게 하지 말고 그냥


미소! 미소! 말 많이 하면 이상하니까 그냥 어색할 땐 가끔 고니 쓰다듬어 주고 알았지? 쉽지? 오빠도 할 수
있어.”

무슨 영어 학습 광고처럼 말하는 한유경이다.

그랬다. 유성은 유경이 그린 큰 그림 안에서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오빠를 연기 중이였다. 유성의 연기는 발
연기였지만 다행히 어색한 분위기라 어색한 연기가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다.

유성은 집에서 점심 식사 씬(?) 만 찍고 유경에게 체크카드를 넘겨주고 도중하차를 결심했다.

유성은 도저히 오그라드는 손발을 주체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유경의 친구들에게 준비할게 있다고 적당하게 둘러 데고 아이스크림 후식 자리에 빠진 유성은 연기자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Episode

유성은 유경과 친구들이 나가고 난 뒤 연기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한 점심을 고니와 함께 했다.

[띠링 ]

[소환수 ‘고니’의 친밀도가 5 상승합니다. ]

[소환수 ‘고니’와의 친밀도가 45/100 이 되었습니다. ]

잠시 후 식사를 모두 끝낸 유성은 고니의 친밀도 상승 알림 음을 듣고 고니를 살짝 들어 올리며 혼잣말 하듯이


말했다.

“흠. 고니야 밥도 이제 먹었으니 슬슬 정리해 볼까?”

-냥? 냥?

유성은 설거지를 하기 위해 고니를 식탁 아래로 살포시 내려주고 일어났다.

그 때 또다시 유성의 머릿속으로 알림이 울렸다.

[띠링! ]

[소환수 ‘고니’와 친밀도가 부족해 명령실행이 불가능합니다. ]

[소환수와 친밀도가 높을수록 다양한 행동이 가능합니다. ]

‘잉 내가 방금 무슨 명령을 했단 말이야? 헐? 고니에게 명령 수행도 된다고?’

“고니야 이리 와봐.”
-냐앙.

식탁아래에서 저만치 거실로 향했던 고니가 유성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다시 돌아서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설마? 안되겠지? 고니야 앉아!”

혹시나 하고 강아지에게 하듯이 명령을 해본 유성은 곧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냐앙...털썩..냥

“하..하하 고니야 엎드려!”

-냐앙....철퍼덕...냥.

“하...핫! 고니야 빵야! 죽은 척 해봐!”

-힉! 냐앙!!

[띠링 ]

[소환수 ‘고니’와 친밀도가 부족해 명령실행이 불가능합니다. ]

[소환수와 친밀도가 높을수록 다양한 행동이 가능합니다. ]

“아 간단한 것만 가능하나 보네. 그래도 귀엽네. 흐흐흐.”

“고니야 일어서!”

-냥 벌떡!

“고니야 엎드려.”

-냐앙....철퍼덕...냥.

“고니야 꾹꾹이.”

-키힉! 캬! 냐앙!

계속된 유성의 명령에 기분이 나빠진 건지 고니가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유성에게서 멀어져 갔다.

[띠링! ]

[소환수 ‘고니’의 친밀도가 10 하락합니다. ]

[소환수 ‘고니’와의 친밀도가 35/100 이 되었습니다. ]

“헐? 친밀도가 떨어지기도 하는구나. 쩝.”

그랬다. 강아지도 뭘 하나 시키고 나면 간식을 주는데.

유성은 성급했던 것이다.


결국 유성은 쓸 때 없는 장난으로 떨어진 고니와의 친밀도 회복을 위해 편의점에서 고니가 호기심을 보이는
음식들로 쇼핑을 했다.

또 고양이 장난감도 선물했다.

유성의 정성어린 조공 끝에 기분이 좋아진 고니는 유성과의 친밀도가 점점 상승했다.

보병작전

***

지난 주 일요일 새벽 유성은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 처음 접속으로 생각지도 못한 기연을 만났다.

그동안 틈틈이 인터넷을 이용해 검색해 보았지만 자신처럼 스테이터스가 올랐다는 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유성은 현재 자신의 스테이터스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스탯창”

[띠링 ]

[체험병 : 한유성]

[칭호 : ‘겸인지용(兼人之勇)’]

[힘:12 민첩:13 체력:13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도로주행 만점’ ]

[획득 스킬 : ‘응급 구조’, ‘물리 치료’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헐 내가 이렇게 바뀌었다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지 아직도 잘 적응이 안 되네.’

그랬다. 일주일 만에 유성은 평범한 성인 남자에서 프로 운동선수만큼이나 높은 능력치를 찍어 버렸다.

그렇다고 당장 운동선수를 하기에는 준비된 건 하드웨어인 몸뿐이고 운동 기술은 1 도 준비되지 않았다.

물론 더욱 시간이 지나 유성이 남들이 따라올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하드웨어를 갖춘다면 또 달라지겠지만 스포츠


스타로의 진출 같은 건 아직 생각이 1 도 없는 유성이다.

현재 유성은 부사관 메뉴의 작전을 통해 스킬을 두 개 보유했고, 그 중 물리치료 스킬은 일상생활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음을 확인까지 한 상태다.

유성은 오늘부터 부사관 메뉴를 공략해 보유 가능한 스킬은 무엇이 있는지 더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
:

집에서 저녁을 조금 일찍 고니와 함께 챙겨먹은 유성은 캡슐 접속을 위해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에 일찍
도착한 유성이 캡슐이용을 하면 고니를 돌봐 줄 사람이 없기에 먼저 화장실로 이동해 고니를 소환해제 시켰다.

“조금 쉬고 있어. 있다가 형이 맛있는 라면 끓여 줄게.”

-냐앙!

“고니 소환 해제!”

[스...팟]

[딸랑 ]

“어 유성아 이렇게 일찍 웬일? 누나 힘들까봐?”

카운터에서 유성을 반기는 소정에게 유성은 말했다.

“아쉽지만 누나 오늘은 국방부에 확인할게 있어서 조금 빨리 왔어. 그리고 난 아직 출근 전인 걸로! 젤 안쪽


캡슐 자리는 손님 있어?”

“아 어떡하지? 안타깝지만 자리가...비어 있네! 호호.”

“고마워 누나!”

유성은 가게 안쪽에 있는 캡슐에 누워 국방부에 접속했다.

***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접속한 유성의 눈앞으로 체험병 선택메뉴가 떠올랐다. 하지만 유성은 히든
스테이지인 부사관 메뉴를 소환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
:

유성은 이번에도 순서대로 1 번 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육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보병 ]

[2. 통신 ]

[3. 정보 ]

[4. 항공 ]

[5. 병기 ]

[6. 의무 ]

지난 번 접속과는 달리 유성은 평소 습관대로 1 번 보병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보병을 선택하셨습니다. ]

[잠시 후 야간 작전 지역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부어어엉 부어어엉 ]

산중턱으로 보이는 곳.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에 날짐승 소리만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그 때


유성의 눈앞에 작전 화면이 펼쳐졌다.

[작전명 : ‘적진 탈출’

-적진에서 벗어나야 하는 수색분대 야간의 어둠을 이용해 전방 초소의 적에게 분대원들이 들키지 않고
안전지대까지 탈출해야한다.
-당신은 갓 부임한 수색부대 신입 분대장(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분대원들을 통솔해 날이
밝기 전에 적의 진지를 벗어나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주변정찰 획득 +@ (적진 탈출 성공률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주변정찰 획득 실패 (적진 탈출 실패 및 본인 사망) ]

작전을 확인 한 유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짙은 위장으로 매복한 10 명의 분대원들은 모두 유성의 명령을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띠링! ]

[붉은색 선을 따라 초소를 지나 녹색 안전지대까지 분대원들이 탈출해야 합니다. 초소의 적에게 발각되면 경보가
울려 적진의 적군이 나오게 됩니다. 주의를 바랍니다. ]

‘흠. 뒤쪽은 적진이고 앞의 초소를 지나야 탈출이 가능한 난감한 상황이네? 흠...’

유성은 딱히 군사이론은 배운 것도 없고 더군다나 분대원을 모두 이끌고 탈출할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부분대장! 일단 전방의 초소에 적이 몇 명인지 확인하고 복귀해. 나머지는 주변 경계 계속하도록!”

유성은 일단 초소의 적이 몇 명인지 확인 한 후 작전을 생각해 보기로 하고 제일 노련해 보이는 병사 하나만


정찰을 보냈다.

잠시 후 정찰을 다녀온 부분대장이 유성에게 보고했다.

“분대장님 전방 초소에 육안으로는 두 명이 관측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소 안쪽은 정확한 관측이 불가능


했습니다. 초소의 크기로 보아 초병은 두 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흠...전방의 초소 말고 다른 길로는 탈출이 불가능한가? 부분대장의 생각은 어때?”

유성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자신보다 노련해 보이는 부하의 의견을 듣기 위해 물었다.

“초소 주위는 경계석과 철조망 등이 설치되어있습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야간에는 특히 잘못 건드려 적에게
발각될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지뢰나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어 더욱 주의를 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 초소의 적을 밖으로 유인해 내는 방법 뿐 인가?”

“현재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남아서 적의 주의를 끌겠습니다. 그 때 분대장님은


분대원들을 이끌고 탈출 하시지 말입니다.”

‘부분대장의 추천 전술이 기본적인 작전 클리어 방법인가 본데. 왠지 끌리지가 않아.’

유성은 이렇게 작전을 클리어 하면 안 될 것 같은 감이 왔다.

유성의 촉이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계속 유성에게 말하고 있었다.

:
:

유성은 얼마간의 고민 끝에 부분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분대장은 분대원들을 이끌고 대기하도록! 내가 무전으로 지시하면 곧 바로 초소를 통과해 적진을 신속하게
벗어난다. 알겠나?”

“넵! 분대장님!”

유성은 부분대장에게 명령한 후 분대원들이 매복한 반대방향으로 낮은 포복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도 유성에게서 아무런 무전 신호가 없어 조급해 하는 찰나 분대원들의 귓가에 드라마
좀 봤던 유성의 무전이 들려왔다.

[치....잇...치치직 여기는 빅보스 송신! 참새 수신바람!]

[치....익...치치직 참새 수신 양호! 빅보스 송신하라!]

[칫.....치치직 잠시후 목표가 이동하면 확인 후 참새는 무리를 이끌고 신속히 현 위치를 벗어나라! ]

[치....이익..치치직 참새 수신 완료! ]

짧은 무전이 끝나자 분대원들이 매복한 반대쪽에서 바람을 타고 방울소리가 울려왔다.

[딸랑! 딸랑! ]

경계를 서던 초병도 소리를 들었는지 그 쪽 방향을 향해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 보였다.

[딸랑! 딸랑! 딸랑! ]

지속된 방울 소리에 초병 둘은 서로를 엄호하는 모양으로 초소를 이탈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경계를 유지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치..이...치치직 참새무리 작전개시! ]

[치..익..치치직 참새 수신 완료! 빅보스! 건투를 빈다. ]

부분대장과 분대원들은 홀로 적진에 남아 분골쇄신하려는 유성의 작전에 감동이라도 받은 눈빛으로 유성이 있을


방향을 잠깐 지켜보다 신속히 적진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한편 유성이 매복한 앞으로 초병이 적당히 지나가자 유성도 천천히 초소 쪽을 향해 낮은 포복을 시작했다. 물론
방울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딸랑! 딸랑! ]
[딸랑! 딸랑! ]

얼마 후 유성도 초소를 벗어나 저 멀리 눈앞에 초록색 안전지대가 보였다. 먼저 탈출한 분대원들은 안전지대에
도착해서 유성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하지만 작전 성공을 눈앞에 둔 유성의 귀에 더 이상 방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유성은 탈출로를 확인한 후 잠깐의 고민도 없이 오던 방향으로 적의 초소가 보이는 곳까지 다시 돌아갔다.

유성에겐 아직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아군 하나가 남은 것이었다.

유성은 초소가 보이는 300m 근방까지 다시 다가가 소음기를 장착한 개량형 ‘K-14’저격 소총을 설치했다.

유성은 분대원들과 헤어지기 전 미리 저격병의 소총을 교환해두었다.

조준경에 눈을 가져간 유성은 초소에 초병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유성의 조준경에 사라졌던 초병 둘의 모습이 나타났다.

적을 확인 한 유성은 적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곧이어 무엇에 분노했는지 유성의 눈빛이 달라졌다.

“고니 소환 해제!”

[현재 소환 해제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

알림을 듣고 눈빛이 변한 유성은 전방에 적을 향해 살의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렇게 나오면 너네는 살아서 돌아 갈 수 없지 말입니다! 으드득...”

[피융!]

개량형 ‘K-14’저격 소총이라 해도 일반 소총에 비해 반동도 크고 단발식 장전이라 연사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분노한 유성은 높은 힘과 민첩으로 초탄 발사 이후 적군이 저격 방향을 잡고 은폐하기 전에 곧바로


재장전에 들어가 미친 속사가 이어졌다.

[철컥..]

[피융!]

[철컥...]

한유성은 조준경을 통해 적군이 모두 쓰러진 걸 확인 하자마자 초소에 남은 마지막 아군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형이 미안해....”

***

-Episode

적진 탈출 작전을 실행하기 얼마 전 유성은 홀로 분대원들의 반대방향으로 이동했다.

물론 작전 성공을 위해서는 유성은 미끼가 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를 벌려 이동한 유성은 조용히 고니를 소환했다.

“고니 소환!”

-냥!

다시 소환이 반가운지 머리를 비비며 다가오는 고니에게 유성이 쓰다듬어 주며 조용히 말했다.

“고니야 여기 있다가 형이 안보이면 저기 방울달린 철망을 물고 흔들 수 있겠어?”

-냐앙!

“혹시 다른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들 피해서 형한테로 와! 할 수 있겠어?”

-냐앙!

가게로 오기 전 친밀도를 어느 정도 높이 쌓아두었던 유성은 조금 난이도 높은 명령에도 고니가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이번 작전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고니야 작전 끝나면 형이 가게에서 오징어랑 쥐포도 구워줄게 이따 봐.”

-냐앙!

그렇게 유성은 다시 초소를 향해 이동했고 곧이어 고니는 작은 몸으로 철조망을 살짝 살짝 흔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

잠시 후 유성을 지나 소리가 나는 지점까지 조심히 접근한 초병은 새끼고양이가 철조망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물론 고니도 낯선 사람을 발견하고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아직 엉성한 뒤뚱뒤뚱 걸음으로는 독이 오른 병사 두


명을 따돌릴 수 없었다.

그렇게 고니는 병사에게 목 뒷덜미가 잡혀 벗어나지 못하고 겁에 질린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초소까지 잡혀왔다.

그 때 반대편에서 초소를 주시하며 고니를 기다리고 있던 유성의 조준경 안으로 적에게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적
병사에게 혼나고 있는 고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니 소환 해제!”

[현재 소환 해제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

유성은 고니를 보자 고니가 지금 무척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바로 소환 해제를 시도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유성은 적 병사를 향해 살의가 솟아올랐다.

“그렇게 나오면 너네는 살아서 돌아 갈 수 없지 말입니다! 으드득...”

융합스킬

***

유성은 초소로 달려가 쓰러진 적을 확인하기에 앞서 놀라 울고 있는 고니부터 가슴에 안았다.

“고니야 형이 미안해. 내가 경솔했어.”

-냐..앙..아앙.

고니는 많이 놀랐는지 유성의 품 안에서 애처롭게 울었다.

유성은 혹시나 고니가 다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응급 치료와 물리 치료 스킬을 둘 다 사용해 보았다.

유성은 다급한 마음에 생각 없이 동시에 스킬을 사용한 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지 알지 못했다.

“스킬 응급치료!”

“스킬 물리치료!”

[우..웅! ]

스킬을 유성이 동시에 사용하자 곧 손 주위로 하얀색 빛이 뿜어 나왔다.

유성은 손을 고니의 자그마한 몸에 올리고 살짝 쓰다듬듯 주무르자 하얀 빛이 손 주위에서 윙윙거리며 빛나기


시작했고, 손의 움직임에 따라 고니도 점차 긴장이 풀려 가는지 기분 좋은 그르렁 소리를 내며 유성의 품에서
잠에 빠져 갔다.

고니의 안전이 확인 되자 유성은 초소 주변에 머리가 반쯤 날아가 쓰러진 두 구의 시체가 시야에 들어와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는 흥분해 자신이 만든 처참한 주위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차츰 안정을 찾은 유성은 주위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위장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라오는 이물감을 느껴야 했다.

“욱······.우.욱...으······. 쓸..때....없는······.리....얼리······.즘...우욱”

다행히 소음기를 장착하고 특별한 교전 없이 저격으로 조용히 초병을 잡아서 그런지 적의 본진에 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큰 어려움 없이 유성도 안전지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잠든 고니는 유성이 이동전에 조용히 소환해제 시켰다.

안전지대로 복귀한 한유성 분대장의 눈앞에 작전 완료창이 떠올랐다.

[작전명 : ‘적진 탈출’(완료)

-적진에서 벗어나야 하는 수색분대 야간의 어둠을 이용해 전방 초소의 적에게 분 대원들이 들키지 않고
안전지대까지 탈출해야한다.

-당신은 갓 부임한 수색부대 신입 분대장(하사 한 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분대원들을 통솔해 날이


밝기 전에 적의 진지를 벗어나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주변 정찰 획득 +@ (낮진 탈출 성공률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주변 정찰 획득 실패 (적진 탈출 실패 및 본인 사망) ]

‘휴 우! 드디어 작전 완료 인가? 고니가 혹시 어찌 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띠링!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

[완벽한 작전 성공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 - ‘주변 정찰’과 ‘동체 시력’을 획득합니다. ]

“오호! 생각도 못한 스킬이네. 동체 시력?”

이번 작전을 통해서도 유성은 스킬 두 개를 획득했다.

유성의 보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띠링! ]

[작전 수행에서 ‘일발필중’을 기록 했습니다. ]

[일발필중 특전으로 소총사격 체험 경험치가 두 배 상승하게 됩니다. ]

[소총사격 체험 경험치가 40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640 상승합니다. ]

[소총사격 체험 LV.4 EXP 280/480]

[소총사격 체험 LV.4 가 되었습니다. ]

[실거리 사격이 가능합니다. ]

작전 완료 창이 유성의 눈앞에 뜬 이후 경험치 상승 알림도 그 뒤를 이어 귓가를 울렸다.


보상 확인을 끝낸 유성은 캡슐에서 접속을 해제했다.

***

캡슐에서 내린 유성은 아직도 메스꺼운 속을 달래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에효.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네. 찬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겠지? 무슨 가상현실에서 피 냄새까지 리얼해.


가동율이 높아도 마냥 좋기만 한건 아니네. 적응하기가 너무 힘드네. 쩝...’

다른 사람이 들으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뭐 한다고 하겠지만 유성은 방금 본 장면이 어쩌면 자신이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 같은 리얼함에 아직도 심장이 진정이 되지 않은 느낌이다.

[철컥! 끼이익 ]

유성이 그런 생각으로 건물 옥상에 막 들어섰을 때 약간의 소란스러움을 느꼈다.

[퍽...퍽! 후다닥! ]

유성이 소리가 들렸던 쪽으로 이동해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잘 못 들었나? 뭔가 있었던 거 같은데?”

유성은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 마시니 조금은 속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5 분 정도 머물며 속을 달랜 유성이 내려가려 돌아서는데 어딘가 모르게 찜찜함이 느껴졌다.

“흠 확인이나 해볼까? 스킬! 주변정찰!”

[스........팟! ]

주변정찰 스킬을 사용하자 유성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3D 컴퓨터 홀로그램처럼 건물 옥상뿐 아니라 벽 너머의
상황까지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옥상을 둘러보던 유성의 눈에 한쪽 벽면에 설치 된 물탱크 저수조가 눈에 들어 왔다.

그 저수조 뒤에는 다수의 사람이 숨어있음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유성은 저도 모르게 저수조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뚜벅..뚜벅...뚜벅 ]

유성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저수조 뒤의 5 명중 2 명은 유성과 마주하는 방향으로 또 다른 한 명은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유성의 앞으로 껌 좀 씹을 것 같은 표정을 지닌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찌익! 어이 아저씨 여기서 우리가 얘기 중이니까 다른 곳으로 좀 가주지?”

누가 봐도 불량스런 모습의 십대 양아치는 침을 뱉으며 유성에게 겁을 주려하고 있었다.


“마! 아니지! 그냥 가면 안 되지. 온 김에 우리 용돈 좀 주고 가셔야지.”

“아참! 내 정신 좀 봐.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네. 역시 넌 개 똑똑해.”

“흐흐흐, 난 중졸이자나. 크크크 넌 초졸이고 학력이 다르잖아.”

둘은 뭐가 신났는지 유성을 앞에 두고 만담을 나누고 있다.

유성은 눈앞의 십대 양아치 둘의 대화 보다는 아직도 저수조 뒤에 남은 둘에게 신경을 쏟았다.

멀리 있을 때 보다 가까워지니 둘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한명은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쓰러진 사람을 오른발로 밟고 있는 모습이었다.

‘흠 상황이 양아치들이 여기서 삥 뜯는 중이였나 보네.’

평소 같으면 불의를 보고 참을성을 발휘했을 한유성이다.

딱히 지금도 불의에 맞서는 히어러물 케릭터도 아니다.

그냥 처음 들은 양아치의 한 마디가 거슬렸다.

유성은 눈앞의 3D 홀로그램을 해제하고 전투(?) 준비를 했다.

[타타닥 ]

유성은 생각과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가 처음 자신에게 말했던 양아치 1 의 멱살을 틀어쥐며 들어 올렸다.

“헙...흐..흡 아...아저씨.케,,켁...”

“...뒤....뒷 걸음.. 철푸덕.”

멱살잡힌 양아치 1 은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다른 양아치 2 는 뒷걸음질 치다 넘어져 털썩


주저앉았다.

유성은 멱살을 잡고 있는 양아치 1 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얘기했다.

“나 아저씨 아니지 말입니다.”

“히..끅..히....끅.....살....살려....주세요....아저..아니.....형님”

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양아치 1 은 갑자기 딸꾹질을 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실제로 유성은 보병 작전에서 적을 처치한 이후 자신은 모르지만 살인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보이는 눈빛이
뿜어내고 있었다.

[빡! 퍽! ]

그 때 반대쪽으로 돌아 나온 양아치 3 이 유성의 뒤로 접근해 각목을 휘두르며 말했다.

“야 한 놈한테 둘이서 머..하냐? 잉?”


당연히 머리를 맞은 유성이 쓰러질 거라 생각한 양아치 3 은 각목이 부러졌는데도 태연히 양아치 1 의 멱살을 놓지
않고 돌아보는 유성의 살의를 띈 눈빛을 보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으....으...귀신...으아아 털썩.”

그제야 멱살이 잡힌 양아치 1 을 바닥에 던지듯 놓아준 유성은 방금 맞은 머리를 털어내며 저수조 뒤를 보며
소리쳤다.

“마! 저수조 뒤에 양아치! 3 초 준다. 너도 빨리 텨와!”

유성 앞에 꿇어앉은 양아치 1,2,3,4 를 향해 유성이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옥상에서 삥 뜯다가 걸리면 그 땐 그냥 안 보낸다. 빨리 내려가!”

“넵!..다시는 안 오겠습니다. 으...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후다닥! ]

양아치 넷은 그렇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옥상에서 내려갔다.

유성은 잠시 후 저수조 뒤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한 명이 떠올라 뒤로 돌아가 보았다.

뒤에 쓰러져 있는 학생은 구타를 심하게 당했는지 아직 의식이 없어 보였다.

유성은 쓰러진 학생의 얼굴 여기저기에 피멍이 보였고 핏자국도 볼 수 있었다.

바로 119 에게 전화를 할까 생각했던 유성은 작전에서 고니에게 사용했던 스킬이 떠올라 이번에도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응급치료! 물리치료!”

[띠링!]

[스킬 ‘응급 치료’와 스킬 ‘물리 치료’를 동시에 사용하셨습니다. ]

[시스템에 등록 되어 있지 않은 스킬입니다. ]

[두 스킬의 융합 가능 여부를 판단합니다. ]

[두 스킬의 융합이 가능 합니다. ]

[두 스킬 ‘응급 치료’와 ‘물리 치료’가 융합되어 하나의 스킬 ‘치료’로 등록됩니다. ]

[띠링!]

[시스템에 등록 되지 않은 새로운 스킬을 융합으로 생성했습니다.]


[획득한 스킬의 융합 가능 유무에 따라 새로운 스킬을 생성 할 수 있습니다. ]

[기존의 획득 스킬은 새로운 스킬에 따라 상위 흡수 또는 유지 됩니다. ]

“헐? 이 생각도 못한 융합 스킬은 뭐지? 흠...대한민국 국방부의 유성 사랑은 끝이 없네. 하하!”

유성은 학생의 치료를 끝내고 학생의 안색이 이제 괜찮아 보여 일어나 옥상을 내려갔다.

“알아서 잘 가겠지. 깨서 얼굴 보면 서로 민망하니까. 쩝.”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성은 달라진 스테이터스 확인을 위해 조용히 읊조렸다.

“스탯창”

[띠링!]

[체험병 : 한유성]

[칭호 : ‘겸인지용(兼人之勇)’]

[힘:12 민첩:15 체력:13 정신력:15]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도로주행 만점’, ‘일발필중’ ]

[획득 스킬 : ‘응급 치료’, ‘물리 치료’, ‘주변 정찰’, ‘동체 시력’ ]

[융합 스킬 : ‘치료’ ]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역시 작전을 수행하고 나면 얻는 것이 꽤 많았다.

유성은 방금 얻은 특전을 포함해 4 개 특전의 영향으로 획득하는 경험치가 무려 기본 경험치 보다 16 배 상승하게


되었다.

“소총 사격의 영향으로 레벨이 2 단계 올라 민첩이 2 개 올랐네. 흐...므웃!”

유성은 새로 얻은 스킬 확인을 위해 손을 뻗었다.

[스킬창 ]

액티브 스킬 : ‘응급 치료’, ‘물리 치료’, ‘주변 정찰’

패시브 스킬 : ‘동체 시력’


융합 스킬 : ‘치료’(액티브)

[아직 개방되지 않은 메뉴는 열람이 불가능 합니다.]

유성은 스킬창에 뜬 스킬 세부 내용까지 확인 한 후 눈앞에 떠올라 있는 홀로그램 창을 닫았다.

특히 이번에 새로 획득한 융합스킬은 말할 것도 없고, 동체 시력은 특별한 스킬 사용명령 없이도 자동으로 상시


적용 되는 매우 유용한 스킬이었다.

“흐흐...슬슬 출근해 볼까? 삼촌은 왔을라나? 스킬! 주변정찰!!”

에피소드(16 화)

***

승진은 고등학교 새 학기가 시작되고 두 달이 되어 갈 때 쯤 서울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왔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 열심히 하면 생각만큼 좋은 결과가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승진에게 부산에서의 학교생활은 무척 적응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전학 첫날부터 멀쩡한 ‘이승진’이라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어버린 접두사 ‘서울 촌놈’!

‘서울 사람을 왜 촌놈이라고 부르지?’

승진은 반 아이들이 자신을 부르는 어감이 좋지 않았으나 애칭인지 놀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쉽사리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점심 급식을 마치고 승진이 교실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반 아이 하나가 칠판에 숫자인지 영어인지를 크게 쓰고 나서 대뜸 승진을 불렀다.

“마! 서울 촌놈! 요 와서 퍼뜩 칠판에 저근 거 일거 바바!”

(야! 서울 촌놈! 이리 와서 빨리 칠판에 적은 글 읽어봐!)

슬쩍 칠판을 쳐다 본 승진은 칠판 앞으로가면서 생각했다.

‘저런 글을 왜 읽으라고 하는 거지? 서울 표준 발음을 듣고 싶은 건가? 특히 유난이네...쩝’

칠판 앞에 선 승진은 적혀 있는 글을 보고 천천히 읽었다.

“음. 2 의 e 제곱 2 의....”

“아니아니 제곱 말고 승으로 읽어 바바! 2 에 2 승! 이렇게 다시 해 바바!”

반 친구의 예시를 듣고 승진은 천천히 다시 읽기 시작했다.

“큼큼. 2 의 2 승! 2 의 e 승! e 의 2 승! e 의 e 승! 됐지?”
승진이 글을 다 읽고 뿌듯한 표정으로 둘러보자 주위에서 지켜보던 반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우와 진짜네! 머가 절케 익노!?”

(우와 진짜였네! 어떻게 저렇게 읽을 수 있지?)

“하하하 서울 촌놈은 발음 기관이 진화가 덜 됐나?”

“아니지 경상도의 발음 표현이 더 풍부한 거지!”

무엇이 다르단 건지 모르는 승진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칠판에 예시를 적었던 반 친구가 승진을 불렀다.

“마 서울 촌놈! 내 따라 일거바래 이!! 2 에 2 승!”

“...2 의 2 승!”

“다음은 2 에 e!승.”

“...2 에 e 승!”

“헐? 임마 진짜 서울 촌놈인가보네 이게 안대나? 하 대따 마 치아삐라.”

나중에 알고 보니 부산에서 2 와 e 의 발음은 2 는 장음으로 e 는 단음으로 다르게 읽는다고 했다.

다시 말해 승진의 2 와 e 의 발음은 부산 아이들에겐 두 글자를 구분할 수 없는 2 로 들렸던 것이다.

그렇게 이승진은 전학 첫날 이제껏 가져본 별명 중에 제일 긴 별명을 획득했다.

‘서울 촌놈 이에 이승! 진’ 반 아이들은 줄여서 ‘이에 이승’이라 더 자주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부산에서의 학교생활 첫날은 승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승진은 그렇게 부산에서의 생활에 하루하루 적응해 갔다.

***

일요일 주말 학원 수업이 끝난 승진이 집으로 가기위해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다가와 승진의 왼쪽에서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마! 그냥 앞에 바! 앞에 바! 앞에 보면서 계속 걸어”

놀란 승진이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어깨에 두른 팔에 더욱 힘을 주며 승진을 끌어당겨 귀에 대고 양아치가 소근


거렸다.

“소리 내면 죽이 삔다. 조용히 그냥 우서! 우서! 있다가 쳐 맞고 울지 말고.”


승진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둘러 보다 마침 왼편 건물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와 눈이 마주 쳤다.

“저기! 으...저! 좀....도와주세요!”

급하게 힘을 주어 어깨에 둘러져 있는 팔을 뿌리치며 앞으로 달리 듯 뛰어간 승진에게 마주오던 남자가 자신이
나온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처음 보는 동생!! 여기 이 건물로 먼저 들어가서 숨어! 곧 따라갈게.”

“고맙습니다! 후다닥!”

승진은 처음 보는 덩치 형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며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땅히 숨을 곳이 보이지 않자 마침 1 층에 서 있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서둘러 맨 위 층을 누르고 문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막 닫히려는 찰나 승진에게 도움을 준 덩치 형이 달려오며 외쳤다.

“동생 잠깐만! 같이 가!”

얼핏 보니 뒤에 양아치 3 명이 덩치를 쫒아 달려오는 게 보였다.

서둘러 문 열림 버튼을 누른 승진은.

“형 빨리 와요! 어서요!”

“휴 기다려 줘서 고마워!”

덩치 형이 탑승하자 승진은 뒤에서 쫒아오던 양아치 3 명을 경계하며 급히 문 닫힘 버튼을 눌렀다.

“휴...형 덕분에 양아치 새끼들한테서 피했네요. 잉? 엥? 어 왜? 아! 왜 안 닫히지??

승진은 덩치 형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문이 닫히지 않자 놀라 허둥거렸다.

결국 문이 닫히지 않은 승강기 안으로 양아치 무리가 천천히 걸어와 탑승했다.

“동생!! 어딜 그렇게 급히 갈려고?”

“보면 몰라? 우리 힘들까봐 미리 와서 엘리베이터 문 열어 주고 기다리잖아.”

마지막으로 탑승한 양아치가 승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서! 우서! 있다가 쳐 맞고 울지 말고!”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두리번거리던 승진의 눈에 자신을 도와 같이 탔던 덩치 형의


손가락이 문 열림 버튼에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설마? 다 한 패??”

승진의 말을 들은 덩치가 말했다.


“응!! 나도 같은 양아치! 방금 착한 동생이 너네보고 양아치 새끼라고 했어. 히히히.”

“햐 이놈 보게 어디서 처음 보는 놈이 우리 부모님한테 양아치라고 부모 욕을 해?!”

“....”

그랬다. 이 네 명 모두 같은 패거리였고, 덩치는 옥상으로 출입이 가능한 건물을 미리 찾아보러 다녀오던


길이었다.

‘아! 똥 양아치 새끼들....오늘 일진 더럽네.’

그렇게 승진은 양아치 네 명에게 옥상으로 끌려가서 맞고 또 맞았다.

***

양아치들에게 대들다 더 맞고 정신을 잃었던 승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면서 습관적으로 신음소리를 질렀다.

“으...으..으..응?....엥?”

분명히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맞고 맞았다.

아파서 소리 지르다 더 맞고 묻는 말에 대답하니 또 맞았다.

‘쓰러지기 전까지 맞은 입술이 퉁퉁 부어 입도 제대로 못 벌렸었는데...’

승진은 맞으면서도 양아치 4 명의 얼굴과 목소리까지도 똑똑히 기억했다.

물론 복수를 위한 이유도 약간 있지만, 사실은 다음에 보면 먼저 피하기 위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 이 곳 저 곳을 움직여 봤지만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다.

옷에 남아 있는 핏자국이 자신이게 닥쳤던 나쁜 기억이 꿈이 아님을 알게 했다.

곧 승진은 쓰러지기 직전에 분명 누군가 옥상 출입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저수조 뒤로 질질 끌려가며 목이 졸려


정신을 잃어버렸다.

‘쩝..어쨌든 소지품이랑 돈도 그대로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올라 와서 날 구해주고 그냥 가버렸나 보네. 쩝..


인사도 못했는데..휴...내려가자.’

엘리베이터를 탄 승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바로 나가기에는 꼴이 엉망이었다.

“쩝...머리가 왜 이렇게 되었지? 휴...옷에 뭍은 피는 좀 닦아야 겠네...”

정리를 하고 나가기로 결정한 승진은 4 층에 있는 캡슐방 화장실을 잠깐 이용하기로 했다.


***

[딸랑 ]

“어서 오세요!”

습관적으로 인사한 소정이 들어오는 손님을 확인하고 소리를 질렀다.

“허...으....피...피! 유성아! 주호 오빠!! 여기 피 흘려! 얼른 와 봐!”

“저 지금은 피..안나요 누나..”

소정의 목소리에 당황한 승진이 얼굴을 붉혔다.

곧 소정의 비명 소리에 달려온 유성은 카운터 앞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자 곧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학생! 다쳤나 보네. 이리와 화장실 이쪽에 있으니까 거기서 얼굴이랑 옷에 뭍은 피 좀 닦으면 되겠다.
따라와! ”

“네 고맙습니다.”

화장실에서 옷에 뭍은 피랑 머리를 정리 하던 승진에게 유성이 말했다.

“몸은 괜찮아? 옷에 뭍은 피만 보면 한 전치 4 주는 나올 것 같은 느낌인데, 겉은 멀쩡해 보이네?”

유성은 카운터에서 승진을 보자마자 자신이 치료해 준 학생인 걸 알고 ‘치료’스킬의 효과가 궁금해 이것저것
둘러 물어 보는 중이다.

“아 괜찮아요. 많이 안 다쳤어요. 그리고 이 옷에 뭍은 피는 제께 아니고 상대 양아치 피에요. 제가 보기 보단


날쌔거든요. 하하”

부산으로 전학 온 후 승진은 처음 보는 상대에게 얕보이기 싫어 이렇게 허세가 늘었다.

“풋! 혼자서 그 양아치 4 명을 상대 했다고?!”

자신의 치료 효과를 알기위해 이리저리 학생을 살펴보던 유성은 승진의 어이없는 대답에 그만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헉...그....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알바형도 그...양아치새끼... 들이세요?”

유성의 대답에 놀란 승진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니 난 양아치 아니니 걱정 마! 아까 출근하면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양아치들 4 명이랑 마주쳤거든...그래서


물어 본거야! 하하하 동생! 보기보다 쎈데?”

“하하하 제가...좀...쎈가 봐요...”

거짓말이 쑥스러운지 승진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갔다.

유성은 조금 더 치료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말을 이었다.


“동생 아직 10 시 전이니 시간되면...라면 먹고 갈래? 형이 끓여줄게.”

“앗!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하하 뭘 인사까지! 라면 값은 선불이지 말입니다. 손님!”

***

한편 한유성을 피해 옥상에서 달아난 양아치들은 센텀 공원에 도착해 한 숨을 돌렸다.

멱살 잡힌 양아치 1 옆에 있던 양아치 2 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이..씨 X!. 작업 다 해 났는데 하필 그 때....아우! 젠장...”

“야 우리 4 명인데 왜 도망 쳤냐? 그냥 다구리 놨으면 된 거 아냐?”

저수조 뒤에 있어 유성을 제대로 못 본 양아치 4 가 불만을 풀어 놓자 양아치 2 와 1 이 기겁을 하며 말했다.

“니가 그 새끼 눈이랑 마주쳐 봤으면 말도 못했을 걸. 니는 늦게 나와서 확실히 못 봤잖아?”

“그래 맞아! 난 멱살 잡혔을 때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사실 살짝 지린 듯..”

“그..정도 였어?”

유성에게 각목을 휘둘러 유성의 살의를 발하는 눈빛을 직접 받은 양아치 3 은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서
중얼거리고 있다.

“......으아...........아...으..옥...상...귀...신...으아아”

“마! 나는 지린 걸로 끝났지만...점마는 아까 냇물이 흐르드라....저 봐라 바지에 스트라이프 무늬 생긴 거


보이제?”

얘기를 듣고 있던 양아치 3 이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도 그만 남천동 가자!”

“거기 가면 인마 뭐가 있는데?”

“그냥 거기 가면 인마! 같이 밥도 묵고! 싸우나도 같이 가고! 으...마! ...다할 수 있으!”

그랬다. 센텀 학원가에서 학생들을 괴롭히던 센텀 양아치 4 인조는 한유성을 만난 이후로 활동 무대를 아예


남천동 학원가로 바꾸어 버렸다.

해군 작전

***
유성이 만들어 준 라면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난 승진은 유성의 친절함에 고마움을 표하며 가게에서 나왔다.

“형 저 그만 가볼께요. 오늘 고마웠어요.”

“어 그래 자주 놀러와.”

캡슐방에서 라면으로 배를 채운 이승진은 집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휴! 오늘은 힘든 하루였다. 오늘 일 아빠가 아시면 걱정하시겠지? 일단 비밀로 해야겠고, 날 도와준 사람은
누굴까? 음...혹시... 유성이 형인가? 뭔가 숨기는 거 같긴 했는데...’

[삘릴리리! 삘릴리리! ]

승진은 아빠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응 아빠!”

[승진아 오늘 좀 늦은 거 같네. 왜? 학원에서 늦게 마쳤니? ]

“아...아니야 아빠! 나 지금 집에 가는 버스 안! 버스를 반대로 잘못 타서...하..하..하”

[헐...네가 버스를 잘 못 탈 때가 다 있네..하하 ]

“하..하..아직 일주일도 안 지나서 그래...금방 적응 할 거야..하하”

[근데 아들! 말투에서 뭔가 거짓 진술의 냄새가 나는데, 아빠 촉이 살짝 오는 데, 아빠가 잘 못 느낀 거니? ]

“하하 아빠 그거 직업병이야! 아빠 나 이제 내려 이게 그만 끊어. 집에서 봐. 딸깍.”

[띵동! ]

[이번 내리실 역은 남천동 KBC 방송국입니다. 다음은 남천고등학교입니다.... ]

그랬다. 승진에게 오늘 하루는 아빠의 직장을 따라 부산 남천동으로 이사 오고 난 일주일 중 가장 힘든 하루였다.

고위 공무원의 비리를 발견한 아빠가 집요한 수사 끝에 오히려 고위 간부에게 찍혀 서울에서 한순간에 ‘광안리
해변 지구대’ 대장으로 좌천되어 부산으로 와버렸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많을 아빠에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어 서투른 거짓말을 해보는 승진이었다.

***

한편 유성은 옥상에서 있었던 행동에 대해서는 승진에게 입을 열지 않았다.

물론 유성은 승진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자신의 융합스킬 ‘치료’의 효과가 생각이상으로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유성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기연에 좀 더 충실할 필요를 느꼈다.

삼촌에게 물리치료 스킬을 통해 아양을 떨고 손님들에게 적당하게 라면을 배달한 유성은 밤이 깊어 손님이 뜸해진
새벽 캡슐에 올랐다.

:
: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접속한 유성은 새로운 스킬획득을 기대하며 메뉴를 호출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의무관련 병과가 육군만 있지는 않겠지?’

유성은 이번에 2 번 해군을 선택했다.

[띠링! ]

[해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항해계열 ]

[2. 기관계열 ]

[3. 전투체계계열 ]

[7.항공계열 ]

[8.전문계열 ]

유성은 의무가 따로 보이지 않아 맨 마지막 전문계열 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전문계열을 선택하셨습니다. ]
[세부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의무 ]

[2. 조리 ]

[3. 수송 ]

[4. 군악 ]

[5. UDT ]

[6. SSU ]

‘역시 전문계열 안에 의무가 숨어 있었구나!’

[잠시 후 응급 해상 구조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쾅! 쏴아 쾅! 쏴아 두두두! 두두두! ]

유성이 위치한 갑판 앞으로는 함정에서 쏘는 포탄과 기관총 소리 말고도 적의 포탄에 물기둥까지 치솟아 오르는 등
유성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헐 여긴 또 왜 이렇게 살벌해?’

주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유성의 눈앞에 작전 설명이 떠올랐다.

[작전명 : ‘고속정 정장을 지켜라’

-전방의 적과의 교전 중에 참수리급 고속정 정장이 부상당해 급히 의무 부사관이 있는 이 함정으로 이송되어 올


상황이다.

-당신은 갓 부임한 신입 의무 부사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의무병과 함께 고속정 정장(


대위)을 지켜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해상 구조 획득 +@ (정장 치료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해상 구조 획득 실패 (정장 사망) ]

‘흠? 전에 육군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거 같군. 아니 같은 건가? 보상 스킬이 살짝 다르네?’

해군 부사관 메뉴에 들어온 유성은 알았다.

처음 접했던 육군의 의무 작전과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유성에겐 치료 스킬이 있었다.

지난번처럼 부상당한 병사를 살리기 위해 후송에 목숨 거는 일은 필요가 없었다.

이번 작전명을 살펴본 유성의 얼굴엔 왠지 자신감이 차올랐다.

[띠링! ]

[부상당한 고속정 정장을 응급 치료해 육지까지 생명이 끊어지지 않게 이송합니다.]

[환자가 도착하면 빨간 선을 따라 의무실로 이송합니다. ]

‘육군과 비슷한 난이도를 가진 작전으로 달라진 점은 환자가 1 명 뿐 이지만 육지까지 이동시간은 무시 할 수


없겠구나.’

“의무병! 난 먼저 가서 치료준비하고 있을 테니 환자가 도착하면 의무실로 바로 이송해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유성은 꼭 시스템 메시지를 따를 필요가 없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옆에 서 있는 의무병에게 당부하고 먼저


의무실로 이동했다.

잠시 후 의무실 앞으로 환자가 도착했다.

“의무반장님! 환자 도착했습니다!”

“안쪽 병상으로 옮기고 육지에 언제 도착하는지 알아와!”

“네 알겠습니다!”

유성은 아무리 NPC 의무병이라도 자신의 치료 장면을 보이는 것이 꺼려져 의무병을 밖으로 보내었다. 그리고
병상에 누운 고속정 정장의 환부를 살펴보기 위해 피로 얼룩진 붕대를 가위로 잘랐다.

다행히(?) 허벅지 바깥쪽을 총탄이 아주 살짝 스치고 지나간 듯 했다.

총탄이 스치면서 화상과 함께 출혈이 특히 심해 보였다.

아직도 환부에서는 완벽하게 지혈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붕대의 압박이 느슨해지자 피가 점점 더 쏟아지고 있었다.

“으...으....”

정신을 일었던 정장이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쩝! 일단 응급 치료부터 해야겠네.’

“스킬 응급 치료!”

유성이 응급 치료를 사용해 환자의 허벅지 주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역시 투명한 빛이 반짝이는 손에서 쏟아진
하얀 빛이 환부에서 윙윙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후 환자의 허벅지에서 쏟아지던 피의 양이 점점 줄어들면서 지혈이 되고 있는 것을 유성은 느낄 수 있었다.

지혈은 했지만 아직 완전한 치료가 되었다고 자신 할 수 없었다.

유성은 답답했지만 지금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유성은 의무병이 나간 후 환자에게 먼저 융합 스킬인 ‘치료’를 시행했었다.

하지만 기다렸던 손의 반짝임은 보이지 않았고 유성의 머릿속으로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

[융합 스킬 ‘치료’의 쿨 타임이 1 시간 14 분 50 초 남았습니다. ]

***

“의무병 중간 중간에 환자에게 진통제 투여하고 거즈 굳어서 환부에 들러붙지 않게 자주 갈아주면서 소독해!
그리고 혹시나 상황 나빠지면 바로 나한테 말해!”

“네 알겠습니다!”

“아차차! 언제 육지에 도착하는지 알아 봤어?”

“대략 2 시간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응 알았어. 계속 수고해!”

함정에 한명 뿐인 의무병에게 전문 의학적인 부분은 모두 떠맡기고 유성은 빨리 쿨 타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유성의 눈에 테이블 위의 약과가 보였다.

“음? 의무병 나 이거 하나 먹어도 되냐?”

“네 다 드셔도 돼지(?)말(?)입니다.”

“하하 걱정 마. 하나만 먹을게. 낼름..오,...물..오물..냠..냠.”

마냥 기다리기 지루했던 유성이 약과를 하나 먹고 삼키고 나자 또다시 유성의 머릿속에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

[아이템 약과를 섭취했습니다. ]

[효능을 분석 중입니다. ]

[현재 적용되고 융합 스킬 ‘치료’의 쿨타임이 10 분 줄어듭니다. ]

[쿨 타임이 42 분 50 초 남았습니다. ]

‘헐! 갑자기 뜬금없는 버프 아이템 출현은 모냐? 일단 개이득!’

“저기... 약과... 더 먹어도 돼지(?). 크..큼. 달달한 약과를 먹었더니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이 나는 것


같아서. 하하하”
:

그렇게 의무병사의 남은 약과를 다 집어 먹고 줄어든 쿨타임 덕택에 작전을 빨리 마무리 한 유성이 함정의 갑판에
올라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작전명 : ‘고속정 정장을 지켜라’ (완료)

-전방의 적과의 교전 중에 참수리급 고속정 정장이 부상당해 급히 의무 부사관이 있는 이 함정으로 이송되어 올


상황이다.

-당신은 갓 부임한 신입 의무 부사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의무병과 함께 고속정 정장(


대위)을 지켜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해상 구조 획득 +@ (정장 치료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해상 구조 획득 실패 (정장 사망) ]

잠시 후 작전 성공보상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

[작전 초과 달성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 - ‘해상 구조’와 ‘왕진 가방’을 획득합니다. ]

“크크. 이번엔 가방이라? 왠지 점점 게임 같은 느낌인데..ㅎㅎ”

이번에 획득한 왕진 가방은 아이템이 아니라 엑티브 스킬이었다.

소환과 해제가 가능해 게임 상의 인벤토리와 기능이 거의 흡사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장점은 의료 약품과 기구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내용물을 다 사용해도 다시 소환 해제를 실행하면 초기화가 되어
의료품에 한하여 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했다.

물론 가방으로서의 기능인 물건 수납도 가능했다.

하지만 게임의 인벤토리와는 다르게 일반 서류가방 모양을 한 왕진 가방의 크기를 넘어서는 물건은 수납이 되지
않았다.

“흐흐 역시 아낌없이 주는 국방부야! 배 한번 타고 수입이 짭짤하네.”

***

-Episode
스탯이 오른 후로 유성은 하루에 3 시간정도만 잠을 자고 일어나도 크게 피로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월요일 오전
10 시에 기상해서 하루를 시작했다.

먼저 어제 실수했던 ‘코코넛 톡’ 단체 대화방에 다시 초대 된 유성은 친구들에게 어색한 인사를 했다.

「윤찬님께서 유성님을 대화방에 초대했습니다.」

「윤찬 : 유성아 다들 너 어제 하던 뒷얘기 궁금해서 불렀어. 나경이랑 어떻게 하기로 했어?」

「하하하...다들 안녕! 날씨가 좋아 하..하..하 」

「보라 : 그치 영화 보기 좋은 날씨지.」

「진아 : 유성이 왔니? ㅋㅋ어젠 갑자기 어디 갔었어?ㅋㅋ」

「하..하..어젠 술이 들깨서...하하.」

「나경 : 아참 너네 이번 주 토요일에 혹시 시간 되니?」

「보라 : 나는 시간은 될껀데...유성이가 눈치 줄 것 같아서...」

「진아 : 나도 시간은 많은데...유성이의 눈치 볼 것 같아서...」

「나경 : ㅎㅎ 영화 얘기가 아니고 이번 주 토요일이 지난 토요일에 말했던 신평 의료봉사라서 시간 가능한지


물어보는 거야.」

「나는 무조건 참석 할게 일정이랑 준비물은 나중에 톡으로 보내줘.」

「나경 : 고마워 유성아 혹시 네네도 참석 할 거면 오늘까지 나한테 말해줘.」

유성은 그렇게 어제 못 다한 나경과의 약속(?)을 성사시켰다.

해변의여인

***

유성은 면허증 발급을 위해 남부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았다.

대기표를 뽑고 잠시 기다리니 유성의 차례가 왔다.

발급에 필요한 서류와 미리 준비한 여권사진을 제출하고 다시 30 분가량 대기한 후 면허증을 수령했다.

면허증에 사진을 확인하니 불과 지난주에 찍어둔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왠지 어색한 얼굴로 느껴졌다. 마치
자신과 닮은 사람을 보는 듯 한 기분을 느꼈다.

‘난 역시 사진보단 실물이지! 크크크.’

면허증을 발급받은 유성은 기쁜 마음에 입가를 씰룩거리며 면허 시험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지난주만 해도 유성 자신도 저기 ‘시험중’ 표지판을 달고 긴장 속에 땀 흘리는 응시생과 같은 처지였었다.


하지만 아직 면허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유성이 보기에 이제 막 시험장을 벗어나려는 병아리 카는 너무
위태위태해 보였다.

“쯔쯔 아직 브레이크와 엑셀에 미숙하네. 벌써 운전이 저렇게 거칠면 위험하지.”

응시생이 긴장했는지 조금 거칠게 시험장을 벗어나려는 차를 보며 유성은 콧등을 찡그렸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유성이 걱정했던 차량이 유성의 눈앞에서 얼마 못가 급정지했다.

운전자는 시험장 앞 횡단보도를 뒤늦게 확인하고 브레이크를 밟은 듯 보였다.

유성도 횡단보도로 향해 이동하며 건너기에는 조금 간당간당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추며 맞은편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맞은편에서 열심히 건너오고 있는 할머니 한분이 유성의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크게 걱정 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왠지 유성은 신호를 받고 서있는 바로 옆 병아리 시험차량이 계속


눈에 밟혔다.

심지어 할머니는 유모차까지 밀며 오고 계셨다.

‘남은 시간은 이제 14 초, 13 초,...’

‘할머니의 속도로는 절대로 시간 안에 건너기에는 무리!’

‘유모차까지 밀면서 건너기에는 할머니에겐 너무 힘들어 보이신다.’

유성은 맞은편에서 부지런히 유모차를 밀며 건너오는 할머니를 향해 스타트를 끊었다.

어느새 중앙선을 넘어온 할머니 앞에 당도한 유성은 유모차와 할머니 사이에 자리하며 크게 소리쳤다.

“할머니 애기는 제게 맡기시고 얼른 같이 건너요 이제 곧 불 바뀔 거예요!”

“헉! 잉? 뭐 이런...고얀! 당장 거기서 손때지 못해!?”

‘아 갑자기 고함을 질러 할머니가 놀라셨나 보네...’

“할머니 제가 애기는 챙길 테니까 어서 건너요! 곧 빨간불로 바뀌어요!”

할머니가 놀랐는지 유성에게 막 쏘아붙이며 신호등을 건너지 않고 있자 유성은 결심했다.

“할머니 잠시만 참으세요!”

“놔! 이놈아! 내 유모차에게서 당장 떨어져!”

신호가 바뀌기 까지 이제 5 초 4 초...유성은 급한 마음에 오른팔로 할머니를 살짝 들어 보쌈 하듯 할머니를


어깨에 메고 남은 한 손으로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모차를 땅에서 살짝 들고 순식간에 신호등을
건넜다.

“휴 우...할머니 놀라셨죠? 이제 다 건넜으니 걱정 마세요.”


“에라이! 호랑말코 같은 놈아! 뭐가 어째!? 내 붕붕이를 가져갈라고?!”

분노한 할머니의 얘기를 듣던 유성은 뭔가 잘못되었단 생각에 왼손에 아직 잡혀 있는 유모차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가 알던 유모차와는 조금 다르긴 한데..분명 애기가 타고 있는 듯 한 무게감이...’

그랬다 유성이 애기가 탄줄 착각해 들고 뛰었던 유모차는 할머니들의 보행 도우미 ‘실버카’였다.

그리고 ‘실버카’ 안에는 할머니의 소지품과 약간의 간식거리를 담고 있어 무게감을 느낀 유성이 아이가 타고
있다고 순간적으로 오인하게 했다.

“아! 할머니 죄송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시간에 쫓기듯 신호등을 건너고 계신 줄 알고 도와드리려고 한 건데.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큼큼...그런 거였어?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내 붕붕이 노리는 파렴치한 총각 인 줄 알았지. 그러지 않아도 새로


뽑은 붕붕이 길 좀 들이려고 동네 한 바퀴 하는 중이였거든. 호호호 어때? 내 붕붕이 비깔나지?”

“하하 네! 엄청 때깔이 곱습니다! 할머님 하하.”

한편 유성과 할머니의 실랑이에 넋을 놓고 보다가 출발할 타이밍을 놓친 응시생에게 조수석에 앉은 시험 감독관이


말했다.

“도로주행 응시생 권진협씨! 급브레이크 2 회, 출발 불능 1 회로 인해 실격 처리합니다! 지금 즉시 시동을 끄고


운전석에서 내립니다.”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이동하는 권진협 응시생과 눈이 마주친 유성은 자신 때문에 시험에서 탈락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혼잣말로 조용히 말했다.

“쯔쯔...아까부터 불안불안 하더니 결국 떨어졌나 보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낯이 익네. 갑자기


안전벨트가 왜 떠오르지? 별일이네.”

그랬다. 지난 금요일 운전면허 학원 시험에 떨어진 진협은 도로주행 불합격 후 3 일 후 재 응시가 가능한 법규에
따라 통행량이 조금은 한적한 남부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장소를 이동해 도로주행 시험에 응시 했다.

이번엔 안전벨트를 철저히 착용하고 천천히 차량을 시험장 밖으로 출발시킨 진협의 눈앞에 건물에서 한껏 밝은
표정으로 나오는 유성을 본 진협은 잠시 멍해 신호등을 못보고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연이어 갑자기 횡단보도에
뛰어든 유성을 보고 놀라 브레이크 엑셀 조작 실수로 인해 실격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진협은 조수석으로 이동하다 유성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데!!’

***

오랜만에 남구로 외출한 한유성은 면허증을 발급 받은 뒤 점심을 다시 집에 돌아가서 먹기도 번거롭기에 미리


나태혁과 연락해 해변에 위치한 스시 집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별일(?) 없이 면허 시험장을 다녀온 유성은 대중교통으로 큰 길에서 하차한 후 태혁과 만나기 위해 해변도로를
걸어서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약속장소에 가까워 질 무렵 해변 한쪽에 비행청소년으로 보이는 학생무리가 여럿이 모여 소란스러웠다.

‘대낮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딱 보니 중딩 아니면 고딩으로 보이는데...학교도 안가고. 쯔쯔.’

혀를 차며 걸음을 재촉하던 유성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잉? 허허...어제 그 양아치도 있네. 어제는 센텀 오늘은 광안린가? 비행청소년이라 그런가? 활동영역이
넓네.’

유성은 굳이 부딪혀봐야 좋은 일이 없을 것이기에 그냥 바라보던 눈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아니 하려


했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만 없었어도.

“어이 거기 아저씨! 잠깐만요!”

사실 조금 전 유성이 해변의 무리를 쳐다볼 때, 그 들 무리에 있는 여학생이 다부진 몸매에 호감형 얼굴을 한
유성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그 여학생이 유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본 남자 아이 하나가 패거리의 힘을 믿고 괜한 호승심을 부려


지나가는 유성에게 다가와 시비를 걸기위해 말을 건넸다.

아저씨라는 말을 들은 유성은 고개를 두리번거려 자신이외에는 지금 주위에 남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부른 비행청소년 1 을 쳐다봤다.

“설마 나? 부른 거야?”

“히히 아저씨 맞구만. 저기 부탁 하나만 들어 줄래요? 쫄았으면 그냥 가시든가?”

유성에게 시비를 걸어온 남자 비행청소년 1 은 여학생에게 괜히 대범해 보이려 점점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일단 부탁이 뭔지 들어보고 결정할게?”

한유성은 일단 아이의 장단에 맞춰 주는 척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기로 했다.

“하하 아저씨 대찬 게 맘에 드네. 하하 다른 게 아니고 여기 만원 드릴 테니까 편의점에서 말 XX 아이스 XXX 트


원 두 갑만 사다 줘요. 그리고 남은 잔돈은 아저씨 심부름 값! 편의점 앞에서 기다릴게요.”

말을 들은 유성은 어이가 없어 돌아서려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비행청소년 1 에게 가서 만원을 받아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하하 저 아저씨 눈치 빠르고 착하네. 하하하!”

“시끌...벅적....시끌...벅적”

“와글...와글...”

무리에서 두 명이 떨어져 나와 유성을 감시하듯 편의점 앞에 위치하며 낄낄 거렸다.

잠시 후 편의점을 나온 유성의 손에 검은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자 이거 받아 그리고 참고로 나 아저씨 아니야. 형이야 알겠지? 다음엔 안 보는 걸로!”

“하하! 아저...아! 형 고마워요!”

“저 형 센스 돋네. 그냥 길에서 전해주면 주위 눈이 있으니 봉투에 담아 온 거봐. 크크크."

“그러게 생긴 거랑 다르게 호구 체질 인가봐.”

비닐을 받아 든 아이들 둘이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 검은 비닐 봉투를 열었다.

“아! C8!! 이게 뭐야! 저 새끼 잡아!”

“아 젠장 저 또라이 뭐야? 어디 갔어?”

그랬다. 편의점에 들어간 유성은 비행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편의점에 비치된 비타민 드링크두 병, 금연초 두 갑을
사서 만원에 딱 맞춰 구입한 후 아이들에게 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편의점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 스시 집으로 태혁과 약속한 유성이 들어갈 때 마침 아이들이 봉투 확인 하느라
유성을 놓쳐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유성에게 당한(?) 아이들이 무리로 투덜거리며 다시 돌아왔다.

“야! 담배 사왔냐?”

“C8 또라이한테 당했다. 이거 사주던데...툭!”

비닐봉투를 건네받은 다른 비행청소년 2 가 내용물을 확인하곤 웃어 젖혔다.

“크크크... 금....연초? 크크크크 근데 또라이는 어디 갔어?”

“몰라 잠깐 물건 확인 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렸어.”

“하하하!”

그렇게 모두들 해프닝으로 넘겨버리는 무리들 속에 한유성이 들어간 ‘Miss. sushi’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태혁과 만나기로 한 유성이 가게로 들어오자 태혁이 미리와 앉아 있었다.

“어? 형 먼저 와 있었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왔어.”

“흐흐 밥부터 시키자 형.”

“여기요! 초밥! 특!으로 두 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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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isode

태혁과 점심 디저트로 도로주행에서 만점을 받아 면허를 따게 된 영웅담과 함께 한껏 자랑을 늘어놓은 유성은


가게를 나섰다.

둘은 밥도 먹었으니 둘은 오랜만에 볼링장에서 소화를 시킬 계획이었다.

‘Miss. sushi’를 나와 볼링장으로 가기 위해 몇 걸음 걸어가던 일행의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저기...아저씨!”

“....”

“.....”

“앞에 가는 아저씨! 잠깐만요!”

“.....”

“형...부르는 거 같은데....”

유성이 태혁에게 소곤거리자 노안 나태혁이 턱에 힘을 주며 말했다.

“유성아 선 넘네?”

“아니 나 말고 뒤에서 부르자나.”

그 때 목소리의 주인공이 일행의 뒤에서 달려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헉..헉 아 씨!....부르면 좀 돌아보던가! 아니면 서던가! 내가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요?”

“저기...여기 그쪽이 찾는 아저씨는 없는 걸로!”

유성이 태혁을 힐끗 보며 앞을 막아선 여학생에게 말했다.

“호호 아니 이 아저씨 아까도 웃기더니..계속 웃기시네..호호.”

“잉? 유성아 너 벌써 저 여학생이랑 서로 웃겨주고 하는 사이였어?”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혁이 살짝 끼어들었다.

“금연초 아저씨! 저 아까 애들 옆에서 쭉 지켜봤어요! 가게 들어가는 거 보고도 일부로 애들한테 말 안하고


아저씨 나올 때 까지 기다렸어요.”

‘아 아까 그 애들 무리에 있었던 앤가 보네’

“그런데? 무슨 용무로 혼자서 날 기다려?”

“아저씨 여친 없지?”
“크크크 맞어! 유성이 여친 없어.”

“눈치가 1 도 없는 게 딱 그럴 거 같았어!”

갑자기 유성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며 비행청소녀(?)가 말했다.

“아저씨 내가 여친 생길 때까지 옆에서 코치 해줄게 가자!”

“헐? 너 언제 봤다고 갑자기 반말이세요? 그리고 어딜 가자는 거야?”

“하하하! 어이 학생 볼링 좀 치나?”

“호호호 이제부터 배워 보려구요! 호호호.”

그렇게 셋은 근처 볼링장으로 향했다.

볼링

***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가상현실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운용중대장 유재호 대위가 국방장관
직속 부대인 VR 부대에서 정기 보고 브리핑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이상으로 ‘진짜 사나이’ 현재 일일 평균 접속자는 평일 3 만 명, 주말 4 만 명 내외가 접속 중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다른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비해 국민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체험 만족도 또한 타


프로그램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정기보고 안건이었던 예비군 동원훈련 및 민방위 교육에 ‘진짜사나이’를 도입하는 부분도 상부


승인만 떨어지면 바로 시행 가능한 상태입니다.”

“험험! 발표 잘 들었소. 예비군과 민방위 훈련 관련은 담당부서에 문건 바로 올려 시행토록 하시오. 음. 그건


그렇고 마지막으로 특이상항은 없었소? 중대장?”

운용중대장의 발표를 들은 국방부 차관이 형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네 전반기 데이터를 분석해 보았을 때 크게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다만 예전부터 심심치 않게 일어나던 일부


체험병끼리 축구 체험에서 오가는 욕설이나 사격체험에서 일부러 주위의 표적을 맞추는 등의 작은 난동을 부리는
일부 체험병이 발견 되었다는 보고는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흠. 그런 접속자는 따로 차단을 하면 되지 않나?”

“네 그러고 싶지만, 국방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AI ‘삼족오’가 프로그램을 관리하기에 저희는 지켜보고
데이터를 분석만 가능 할 뿐 통제권한이 없습니다. 모두 ‘삼족오’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흠. 우리가 작전권한을 가질 수 없는...여전히 그런 것인가?”

“네 ‘삼족오’는 여전히 프로그램을 통제할 수 있는 작전권을 누구에게도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랬다. 원래부터 ‘진짜 사나이’ 프로그램은 국민을 대상으로 국방부 홍보를 하기 위해 만든 가상현실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처음 시작은 대한민국 정부가 2020 년부터 국방비의 방위력 개선비에 30% 이상인 5 조를 매년 국방 예산으로
따로 편성해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IT 분야에서 세계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국방부와 뛰어난 기술진들은 스스로
빠른 데이터 분석과 가장 적절한 효율성으로 판단해 작전명령까지 시행하는 인공지능 ‘삼족오’를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삼족오는 자신이 가진 데이터를 분석해 자신이 판단한 결정 이외의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 실험에서 발견된 이 오류 아닌 오류로 인해 국가단위 장기 프로그램은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국방예산의 낭비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국방부 홍보 프로그램으로 둔갑해 국민들 곁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키기로 한 유성과 태혁은 오늘 처음 만난 비행청소녀(?)와 볼링장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광안리 해변 옆에 위치한 신나는 음악과 현란한 불빛이 번쩍이는 락 볼링장에 도착했다.

평소 미인에 관심이 많은 유성이지만 동생 유경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에게는 아무런 사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유성은 자신의 발에 맞는 하우스 볼링화를 대여하고 손가락에 맞는 하우스 볼을 찾고 있었다.

“저기 눈치 없는 아저씨! 나 어떤 공으로 하면 돼?”

“응? 눈치 많은 넌 눈치껏 찾아봐!”

“헐? 아저씨 흠! 칫! 뿡! 이다!”

“아 내가 도와줄게. 음..핑크 볼 어때?”

물론 태혁은 친절하게 여학생에게 딱 붙어 볼링에 대해 자세하게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하며 코치를 자청(自請)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에게 맞는 준비를 하고 나태혁이 처음으로 리드오프(lead off)로 나서 스타트를 끊었고, 이어


태혁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이수가 두 번째로 마지막이 한유성 순으로 투구를 했다.

“수야! 오빠 잘 보고 따라해!

여기 스탠스 포지션(stance position)에서 푸시 어웨이(push away)를 시작하면서 백스윙(back swing)


할 때 볼링공에 체중을 싣고 그 상태로 미끄러지면서 한발을 슬라이드(slide) 상태로 쭉 뻗어!

이때 뻗은 발로 균형을 잡으면서 마지막으로 피니시(finish)!

그리고 릴리스 포인트(release point)는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할 때 여기에서 공을 놓아주면 자기가 의도한


방향으로 공을 보내기 쉬워.
어때? 쉽지?”

“헐? 저기 호감아저씨는 눈치가 없어서 문제고, 여기 노안아저씨는 센스가 없어서 문제네.”

주위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다행히 이수의 혼잣말을 듣지 못한 태혁이 다시 물었다.

“뭐라고? 시끄러워서 잘 안 들려 뭐라고 했어?”

“아저씨! 학교 다닐 때 공부 개 못했지? 설명 센스가 바닥이야. 완전 설!명!충! 아저씨 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큼...큼...아니야. 나름 공부 잘했어. 아 잠시만 스페어 남은 거 오빠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줄게.”

처음에 태혁은 1 학년 때 교양으로 수강했던 생활 스포츠 수업에서 배웠던 기억을 몽땅 동원해 이수에게
설명했었다.

‘에휴 나도 참! 크크 저 핏 덩어리 같은 동생에게 내가 잘 보여서 뭐하려고 훗훗.’

레인위에 다시 선 나태혁은 이수에게 있어 보이려고 사용했던 볼링 용어들을 배제하고 쉽게 설명하며 두 번째


투구를 이어갔다.

“자 다음은 수야 네 차례야 오빠가 뒤에서 봐 줄 테니까 거기 선 앞에서 오빠가 한데로 해봐! 공을 던지는 게
아니고 굴린다는 느낌으로.”

투구를 끝내고 내려오는 이수가 태혁에게 투덜거렸다.

“흠. 생각보다 어렵네. 나 같은 인재가. 고작 핀 3 개만 넘기다니... 이건 필시 선생을 잘 못 만난거야.


선생님을 유성오빠로 갈아타? 말아?”

태혁은 여전히 아저씨고 유성만 오빠로 호칭을 변경한 이수는 하트가 쏟아지는 눈빛을 유성에게 보내며 응원하고
있다.

한편 유성은 자신의 차례에 평소 사용했던 10 파운드 하우스 볼을 들었으나 너무 가볍게 느껴져 잠시 공을 교체


하로 다녀왔다.

“유성아 그냥 편하게 하자. 뭔 내기가 걸린 것도 아닌데 공까지 신경 쓰고 그래?”

“하하 방금 공이 좀 가벼운 것 같아서 다른 공으로 바꿔 왔어.”

“오! 그래? 그럼 너랑 나랑 둘 중에 진 사람이 여기 게임비랑 다음 2 차까지 쏘는 걸로 물론 이수꺼 까지!


어때?”

이수에게 여전히 아저씨로 불리는 태혁은 이수의 선생님 교체 설에 생겨난 경쟁심에 유성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그리고 나태혁은 방금 첫 프레임에서 컨디션이 나쁘지 않음을 확인 한 상태였다.

“OK! 오빠! 아저씨! 난 콜!”

“흠...그럼 난 반댈세. 야! 꼬맹이 넌 여기까지만 놀고 그냥 집에가.”

“나 여기서 집에 보내면 아까 그 애들한테 다시 확 가버린다! 내가 삐뚤어지면 다 유성 오빠 때문 인거야!


흑흑...”

“야! 꼬맹이 억지도 가지가지네. 그리고 눈에 침이나 바르고 연기해! 흠. 뭐 하긴 어차피 태혁이 형이 쏠
테니까! 그래 콜!”

“호호호 2 차는 노래방!”

그렇게 태혁과 유성의 내기 볼링이 시작되었다.

초반은 태혁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첫 프레임에서 9/1 스페어까지 잡은 태혁은 5 프레임까지 오픈 없이 유성에
비해 30 점 이상의 리드를 이어갔다.

“유성아 미리 인사할게. 덕분에 재밌게 잘 놀고 있다. 하하하”

“형! 아직 게임 끝나려면 멀었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잖아?”

“흠. 초보인 내가 봐도 오빠가 아저씨한테 많이 밀리는 거 같은데. 오빠 주머니 사정 힘들면 노래방은 이수가
쏠게.”

동생 친구 또래 밖에 안 되는 이수까지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에 유성이 살짝 달아올랐다.

“흠. 형 나 이제부터 봉인 푼다. 말리지마!”

사실 유성이 처음에 고전한건 생각보다 공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 목표한 코스보다 살짝 옆으로 날아가 오픈
프레임이 종종 발생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워낙 힘이 좋아져서 그런지 코스가 약간 빗나가도 볼에 맞은 볼링 핀들은 무슨 폭탄 터지는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여기저기 날아다녔고, 유성의 괴력이 담긴 볼링공과 핀을 피한 운이 좋아(?) 자신의
자리를 지킨 핀은 5 프레임까지 모두 3 개에 불과했다.

“스킬! 동체시력!”

유성은 일단 빠르게 움직이는 사물을 자세하게 확인 할 수 있는 동체시력을 투구하면서 동시에 사용해 보았다.

사실 동체 시력 스킬은 패시브 스킬이라 따로 명령어 없이 사용 할 수 있지만 아직 스킬 사용에 익숙지 않은


유성은 스킬 사용 명령어와 함께 시력에 집중을 하자 스킬을 사용한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동체 시력 스킬을 사용한 순간 유성은 주변의 시간이 천천히 움직이며 멀리 있는 사물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모두
감지 할 수 있었다.

유성은 레인 약 4 미터 지점에 화살표 모양으로 있는 에임 스팟의 우측 세 번째에 위치한 화살표를 정확하게


공략했다.

[콰콰쾅! ]

“와우! 오빠 스트라이크!”

그렇게 유성의 독주가 시작 되었다.

:
:

6 프레임부터 시작된 스트라이크의 연속 행진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모두들 유성 주위에서 관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태혁도 모든 프레임에서 오픈 없이 엄청난 투구를 보이고 있었지만 스페어와 간간히 나오는 스트라이크로는 유성의
추격을 꺾을 수가 없었다.

[콰콰쾅! ]

“짝짝짝!! 와우! 대단해 몇 개째야!”

“저 정도 실력이면...아마 프로선수가 연습 하로 온건가보네.”

“저 오빠! 비주얼도 괜찮고 비율도 좋다. 우와! 멋있다.”

락 볼링장에 울리던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뚫고 여기저기서 환호하는 관중들의 소리가 들렸다.

“와우 대박!! 또 스트라이크! 아저씨 이건 뭐라고 불러요?!”

“헐? 너...뭐냐? 요즘 볼링만 치고 다녔어?”

“하하하! 그러게? 이게 오늘 좀 되는 날인가 보네. 하하하!”

그랬다. 태혁의 선전도 말도 안 되는 유성의 폭주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성은 생애 첫 ‘세븐 인 어 로우(7 in a row)’를 기록하며 대 역전극을 펼쳤다.

볼링장을 나온 태혁이 이수를 보며 말했다.

“수야! 노래방은 어느 쪽이 괜찮아?”

“어떤 곳으로 모시면 돼? 분위기? 음질? 시설? 어떤 쪽?”

“그거야 네가 계산 할 거니까 네가 결정해!”

“헐! 아까는 유성 오빠가 질 것 같아서 한 말인데...췟! 에효. 가자 요즘 제일 핫한 젊은이들이 찾는 가성비


갑인 그곳으로!”

태혁은 이수의 말을 듣고 자신만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유성에게 물었다.

“유성아 넌 어딘지 알아?”

“나도 모르는데?”

“오 이수랑 유성이 나이도 두 살 밖에 차이 안 나는데 유성이도 모르는 그런 곳이 있었어?”

“응 저기 코.노! 코인노래방이 역시 가성비 짱이지! 오빠랑 아저씨는 각각 몇 곡씩 부를 거야? 나 동전 바꿔


올게.”

이수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해변 가 오락실 안에 위치한 박스형태의 노래방 부스였다.


생딸기우유

***

정기보고를 마치고 VR 부대 업무로 복귀한 유재호 대위는 ‘삼족오’데이터 관리 소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대장 요즘 ‘삼족오’의 동향은 어때?”

“여전히 ‘삼족오’는 자신이 보유한 권한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데이터를 점점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예를 들면 ‘진짜 사나이’에 접속한 모든 체험병이 같은 가상현실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삼족오’


의 판단에 따라 저마다 다른 환경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삼족오’가 체험병들에게 다른 환경을 제시하고 얻는 것은 무엇이지?”

“아마도...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삼족오’는 저희가 주는 정보만으로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원래 최초 기획해 두었던 체험 메뉴가 언제 부턴가 조금씩 늘어나 다양해 진 것으로 보아 좀 더 다양한 환경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삼족오’의 의도가 보입니다.

정확한 기준은 알 수 없지만 로그아웃한 체험병들의 데이터를 토대로 살펴보면 가상현실 동기화 비율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가상현실공간을 보여 주는 것으로 예측됩니다.”

“데이터 확보를 통해 ‘삼족오’가 추구하는 목표는?”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삼족오’가 진화하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하는 주장이 몇몇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예측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삼족오’가 제공한 체험병들의 데이터만 분석 할 수 있기


때문인가?”

“네. 그렇습니다. 처음 ‘삼족오’ 설계당시에 보안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그 누구에게도 데이터베이스 접근


권한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삼족오’가 권한을 이양하지 않으면 ‘삼족오’에게 현재 명령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상 그 누구도 ‘삼족오’에게 명령을 하지 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흠...그럼 우리 군과 전문가들은 ‘삼족오’가 우려할 만한 상황은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전망하는 건가?”

“예! 아직까지는 특별한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혹 급박한 상황이 발견된다고 해도 국방부 벙커에 있는 ‘삼족오’ 메인 저장소의 방화벽을 내리고 모든 물리적
접속을 차단하면 ‘삼족오’는 우려할 만한 행동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흠....물리적인 접속장치들을 차단한다고 해도 무선 접속으로 가능 하지는 않나?”

“메인 저장소 주위 방화벽에는 기본적으로 전파 차단 기능이 있습니다.”


“흠..그럼 오늘 보고는 여기까지 하지. 계속 ‘삼족오’ 데이터베이스 감독과 동향에 소홀함이 없도록
지켜보게!”

“네! 충성!...계속 근무 하겠습니다.”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삼족오’ 메인 저장소에서는 지금도 열심히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그렇게 ‘삼족오’의 알고 싶은 욕구는 끝이 없었다.

비단 가상현실에 접속한 사람과 인터넷에서 얻는 수동적인 데이터뿐만 아니라 항상 접속이 유지되고 있는 한유성을
통해 능동적인 현실 사회의 데이터 업로드까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

“야! 눈치! 이거 필요하면 붙이든가?”

코인 노래방 부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수의 손톱이 깨진 걸 확인한 유성은 잠시 화장실로 이동해 ‘왕진 가
방’을 소환했다. 그리곤 가방에서 구급 반창고를 꺼내어 다시 돌아온 유성은 이수에게 약간 쑥스러워 던지듯
건넸다.

“호호호 그러지 않아도 아까 볼링 할 때 손톱이 깨져서 계속 신경 쓰였는데. 유성 오빠 은근 츤데레?”

“쩝...그냥 마이크에 피 묻으면 찝찝할까봐.”

“하하 유성이가 말은 저렇게 해도 은근 착해! 하하.”

태혁의 낯부끄러운 말이 이어지자 유성이 대화주제를 바꿨다.

“너 근데 벌써부터 학교도 안가고 어떡하니?”

“이수!는 학교 잘 가거든! 오늘은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거고!”

“잘도 나갔겠다. 학교 제대로 안 나가니까 국어도 제대로 몰라서 자기한테 3 인칭으로 말 하는 거 봐.”

“우씨! 그럼 이수가 앞으로 학교 잘 다니는 모습 유성 오빠한테 매일매일 ‘코코넛 톡’으로 인증샷 보내 줄게.”

“나 학부모 될 생각 없거든.”

“아!우! 진짜 이수 삐진다!”

“운동도 했고 노래도 불렀더니 조금 지친다. 어디 가서 좀 앉아 쉬자! 음..저기 괜찮아 보이네. 가자!”

둘이 귀엽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태혁이 점점 시끄러워지는 분위기를 느끼고 근처 커피 전문점 ‘어디
야’로 일행을 이끌었다.
***

유성 일행이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우연히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어? 저기 아까 금연초 또라이다!”

“뭐? 어디? 어 저기 이수도 같이 있는 거 같은데?”

낮에 해변에 있던 무리 중에 둘이 우연히 유성 일행을 목격 했다.

“헐? 저 금연! 또라이! 새끼가 이수까지? 너 빨리 가서 애들 모아와! 나 여기서 저놈들 어디 못 가게 지켜보고


있을게. 얼른 가따와!”

낮에 유성에게 금연초와 비타민 음료를 선물(?) 받은 양아치 1 이 이를 갈며 ‘어디야’ 커피 전문점을 노려보고


있었다.

[딸랑~]

“어세오세요! 고객님!”

“안녕하세요! 고객님!”

십대들로 보이는 비행청소년 4 명이 가게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매장 안을 살폈다.

곧 유성일행의 앞으로 이동한 무리 중 한명이 유성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이 금연 홍보대사 아저씨! 나랑 얘기할 거 있지 않나? 여기서 할 까? 나가서 할까?”

갑자기 나타난 무리에 둘러싸인 태혁은 놀라 두리번거렸고 무리를 확인한 이수는 당황해 눈이 커졌다.

“유...유성아 얘들...뭐..뭐? 뭐야? 갑자기?”

“헛? 시환아! 여긴 어떻게?”

아까 유성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던 양아치 1 의 이름이 시환인 듯 했다.

“이수! 나보다 네가 여긴 어떻게 있는 건지가 더 궁금한데?”

“으..응? 그건 내가 따로 설명할게. 일단 나랑 나가자!”

놀란 이수가 유성일행과 무리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시환을 데리고 나가려고 일어섰다.

“아! ‘생딸기 우유’ 아직 조금 남았는데...쩝. 안타깝네. 이수! 그냥 태혁이 형이랑 쉬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내 딸기 먹지 말고 나둬!”

유성은 ‘생딸기 우유’에서 딸기를 쪽쪽 빨아먹던 잔이 아직 남았음을 아쉬워하며 일어섰다.


“햐? 꼴에 여자 앞이라고 멋있게 나오려고? 왜?! 아저씨랑 이수랑 무슨 사이 길래 이수를 못나가게 막아?”

“나? 아! 이수 학부모! 까진 아니고 대리인 정도! 손님들 놀라시겠다! 얼른 나가자 얘들아!”

유성은 팔을 벌려 무리들을 매장 밖으로 밀었다. 태혁 일행을 향해 유성은 손님들이 시끄러워 할까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금방 올게!’하며 가게를 벗어났다.

멍해 있던 태혁은 유성이 나가며 입으로 벙긋 거린 말을 무슨 말인지 되뇌고 있었다.

“수야! 방금 유성이가 뭐라고 한지 들었어? 아니 봤어? ‘무슨 오해’? 라고 한거 같은데”

“...오해? 그게 아니라 ..고해? 아녔어요? 아! 지....금..신고해!? ‘지금 신고해’!!라고 한 거 같아!


아저씨 빨리 112! 얼른!”

이수도 태혁에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며 정신없긴 마찬가지다.

매장 밖으로 나온 유성은 무리를 따라 해가 지기 시작해 조금은 어둑어둑한 해변 방파제 근처로 이동했다.

“아저씨 원래는 그냥 말만하고 넘어 가려고 했는데...C8 이수까지 데리고 논건 아니잖아? 이제 우리가 신고하면
아저씨 원조로 잡혀 가는 거 알지? 히히 아저씨 이제 X 됐다!”

조용히 말없이 자신들을 따라오는 한유성을 보며 박시환은 이죽거리며 놀려댔다.

물론 한유성은 무리를 따라가기 시작하며 먼저 주변정찰을 활성화 시켜 둔 상태로 전투 준비상태로 들어가 있었다.

“어이! 금연 전도사 아저씨! 또 보네? 반가워! 우리 건강까지 챙겨주고 고마워서 어째?”

“하하하! 고마우면 보답으로 안마나 마사지가 짱이지!”

“저 또라이 이수랑 같이 있었다면서? 우리가 놔줘도 시환이가 가만 안두겠는데? 히히.”

앞에 있는 무리와 만나자 자연스럽게 셋은 유성의 퇴로를 막았고 유성은 몇 발 앞으로 이동해 자리에 멈추어 섰다.
자연스럽게 멈춘 유성의 앞으로 시환은 다가섰다.

“어이 금연 또라이! 내가 다른 건 다 참는데 내가 찜해둔 이수랑 함께 있던 건 용서가 안 돼. 내 건강까지


생각해 준건 고맙게 생각하는데 양아치도 아니고 남의 여자 건들면 매너가 아니지?!”

[퍽!]

시환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선빵필승’을 시도했다. 유성은 동체시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높은 민첩의 영향으로
시환의 뻗어오는 주먹의 경로를 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 싸움에서는 선빵필승이 승리를
불러오지만 사회에선 꼭 선빵이 승리를 가져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퍽 퍽 퍽!......헉...헉..헉]

유성은 연이어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을 일일이 양팔 가드를 이용해 모두 막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뒤에서 본다면 일방적으로 맞는 모습으로 보이리라.

“헉...헉...나...잠시만 물만 먹고 올게....헉...야 교대! 교대!”

유성을 때리다 힘이 빠진 시환이 뒤로 빠지려 하자 유성은 시환의 복부를 향해 살짝 잽을 날렸다.

[퍽!]

“컥!...풀썩...으허헉....부들...부들...”

유성이 시환의 복부에 살짝 지른 잽 한방에 시환은 무릎을 꿇고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뭐...뭐야? 시환이 왜 쓰러졌어? 갑자기 왜 저래?”

“저기 또라이가 손을 뻗는 거 같았는데...”

“야 저 C8 새끼 담가버려!”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놀라 어리바리 하던 양아치 무리가 일제히 유성에게 달려들었다.

“흠...일단 다시 레디 액션인가? 흠...사람 수가 좀 많네. 이제 9 명 남았나?”

달려오는 양아치 수를 세어보던 유성이 입 꼬리를 올렸다.

“스킬 동체시력!”

아무리 다수의 공격이라 해도 합격술을 배우지 않은 일반인들의 공격에 동체 시력까지 사용한 유성은 맞아주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날아오는 주먹과 발을 확인한 유성의 본능이 이를 모두 효율적으로 피해 버리는 것이었다.

[퍽...슝 퍽!....슝 팍! 슝...휘잉 ....]

“헐 아 놔! 피하는 거 보다 막는 게 더 힘드네...”

유성은 아이들의 주먹과 발길질을 모두 힘들이지 않고 막아 내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하하하! 아저씨한테 난 크게 감정이 없어. 하지만 친구가 맘이 다쳐서 내가 좀 풀어 줘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없는 거 알지? 그냥 몇 대만 맞고 쓰러지자. 아저씨 너무 버티지 말고 알았지?”

“OK! 이제 거기까지! 양아치들 다시 덤벼!”

유성이 자리를 살짝 이동하며 무리에게 소리쳤다.

“헐 맞다가 저 아저씨 살짝 미쳤나?”

“좀 많이 맞긴 했지?”

“언제까지 하나씩 올 건데? 나 금방 가야해. 너네 빨리 안 오면 나 그냥 간다. 그래도 돼? 야! 양아치 새끼들


다 오라니까! 얼른!”

:
***

유성이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난 후 얼마지 않아 바닥에 아이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그리고 모두
유성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크..큭....”

“아...아..아프다..”

“야! 손 똑바로 안 들어?! 그리고 넌 어제도 나한테 혼나 놓고 왜 또 덤벼? 눈 나쁘면 안경을 쓰던지 어제
물탱크 뒤에 있던 놈 맞지?!”

“히끅!...네 맞습니다. 형님! 앞으론 안경 쓰고 다니겠습니다. 형님!”

“마! 너희 술 담배 하니까 눈도 나빠지고 팔, 다리에 힘도 빠져서 형아 하나 제압도 못하잖아 그래서 양아치


계속 하겠어? 이제 술 담배 끊고, 헬스 끊어 임마!”

“네..알겠습니다. 형님..”

10 명의 양아치 무리가 유성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유성의 훈화를 듣고 있었다.

[삐용! 삐용! 삐용! ]

그 때 마침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경찰차가 다가왔다.

끝에서 손을 들고 있다가 소리를 들은 박시환의 입 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금연 또라이! 넌 이제 X 됐어!’

“흠. 결국 ‘생딸기 우유’는 쩝. 맛있었는데...”

유성은 몸을 조금 움직여 갈증이 일자 ‘어디야’ 커피 전문점에 남기고 온 ‘생딸기 우유’가 생각났다.

공군작전

***

잠시 후 근처에 있던 순찰차가 4 대 더 출동하고서야 유성과 양아치 무리들은 모두 광안리 해변 지구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경찰 아저씨 우리는 억울해요. 저 아저씨가 고등학생인 이수를 꼬드겨서 막 나쁜 곳으로 데리고 가려던 걸
막으려고 모인 것 뿐 이에요.”

양아치 무리들은 지구대에 도착하자마자 모두 입을 맞춘 듯이 피해자 코스프레에 들어갔다.

“맞아요! 저 아저씨 봐요. 저 아저씨 상처하나 없어요. 우린 건들지도 않았다니까요.”

“마! 조용히 좀 해! 너네랑 다 조사할 거니까!”

“우리가 오히려 맞았어요! 그리고 시환이는 저 조폭 아저씨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쓰러지기도 했어요. 우리도
말리다가 여기 저기 다 맞았어요.”
“알았다고 조용히 해! 너희 계속 떠들면 저기 안에 넣어 버린다! 그리고 한유성씨! 진술서 써야 하니까 조서실로
들어갑시다.”

미성년자인 양아치 무리와 한유성이 부딪힌 사건도 일단 112 신고접수가 된 터라 부득이하게 한유성은 조서실로
이동했다. 물론 밖에서는 양아치 무리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어 정상적인 조서를 작성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삘릴릴리♪ 삘릴릴리♪]

조서실에 들어오자 유성의 전화가 울렸다.

“저기...전화 받아도 됩니까?”

“큼..큼..네 통화 하셔도 됩니다.”

유성은 경찰의 전화사용 허가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형 어떻게 됐어? .......응 알았어. 고마워! 형”

간단하게 통화를 끝낸 유성이 경찰에게 부탁했다.

“저기 조서 지금 당장 써야 하나요? 잠시만 있다가 쓸게요.”

“큼...어디 변호사한테라도 연락 온 겁니까?”

“아니요. 그냥 친한 형한테 여기 오기 전에 부탁 좀 했거든요.”

그랬다. 유성은 방파제로 이동하면서 주변정찰 스킬로 미리 양아치 수를 알았고, 힘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이 똥
양아치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어 머리를 살짝 굴렸다.

유성은 방파제 주변에 주차된 차량 중에 블랙박스가 잘 보이는 곳에 위치 한 후 돌아서서 일방적으로 맞는 모습을


연출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의도한 모습이 찍혔으리라 생각한 후 유성은 자리를 옮겨 양아치 무리를 하나씩(?) 제압해
나갔다. 물론 양아치 모두는 유성의 배려(?)로 얼굴처럼 드러난 곳엔 상처하나 생기지 않았다.

유성이 그렇게 양아치 무리를 갱생의 길로 인도한 찰나 경찰차와 함께 태혁과 이수가 등장했다.

유성은 경찰차에 오르기 전에 태혁에게만 살짝 자신이 촬영된 차량의 블랙박스 확보를 부탁했었다.

그리고 방금 전화는 마침 태혁이 주차된 운전자와 연락해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오고 있다는 전화였다.

***

“유성 오빠! 이거 먹어!”

해변 지구대에서 조서 작성을 마치고 나온 유성에게 이수가 구해온 두부과자를 내밀었다.

“헐 이건 뭐냐? 요즘 애들은 경찰서 다녀오면 과자 먹냐?”


“칫...오빠랑 두 살 밖에 차이 안 나거든! 두부를 주변에서 구하기 힘들어서 마침 근처 편의점에서 대용품을
사왔지 헤헤.”

“쩝....쩝.... 그래도 먹을 만하네. 형도 먹어 볼래?”

“난 잡혀갔다 나온 거 아니거든.”

다행히 유성은 태혁이 구해온 블랙박스 영상을 증거로 쉽게 풀려 나올 수 있었다.

반대로 아이들은 증거화면으로 인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구대 내에 남아 본격적인 조사를


받게 되었다.

“야! 이수! 앞으론 좀 건전한 밝은 애들하고 어울려!”

“...응...알았어. 오빠.”

“근데 아까 본 장면은 뭐니? 블랙박스 영상도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던데 정말 괜찮아? 유성아 이럴게 아니라
병원부터 갔다 오자!”

지구대 안에서 태혁은 유성이 집단 구타(?) 당하던 장면을 영상으로 확인했다.

“형 나 정말 괜찮아. 그리고 영상은 혹시나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일부러 그렇게 나오도록 연출한거야. 실제로는
거의 피하고 몇 개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도 다 피해서 괜찮아!”

“야! 네가 무슨 이소룡이냐? 그 상황에서 다 막고 피하게! 수야! 유성이 잡아봐 내가 직접 멍들었나? 안 들었나?


확인해 봐야겠다.”

결국 이수와 태혁이 잡고 유성의 웃통을 까보고 나서 확인 작업은 멈추었다.

“.....이 뭐냐? 빨래판은? 너 나 몰래 운동했냐?”

“우와!! 초대박! 간지! 작살! 으흐흐흐! 나 그냥 유성오빠한테 시집갈래!”

“이수! 거기까지! 선 넘지 마!”

방금까지 이어졌던 유성에 대한 걱정이 유성의 들어난 복근을 보고 날아가 버렸다.

“처음에 나갈 땐 엄청 걱정했는데 어쨌든 다친 곳도 없고 잘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오빠! 오빠! 근데...저 애들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조금 알아주는 애들 일 건데, 아까 어떻게 다 꿇린 거야?


영화처럼 오빠가 파바박! 머 그런 거야?”

“어? 아 그냥 내가 빽이 좀 든든하거든!”

“누구?! 아니 어떤 조직 이길래? 저 치들이 그냥 말만 듣고 꿇었어?”

“있어! 대한민국 젊은 남자들은 다 두려워하는 ‘국!방!부!’라고 하하.”

:
***

다사다난한 하루를 보낸 유성은 저녁이 10 시가 되어 캡슐 방으로 복귀 했다.

높아진 스탯으로 크게 힘이 들진 않았지만 정신적인 힐링을 위해 고니도 오랜만에 소환해서 품에 안고 쓰담쓰담


중이다.

“고니야 형이 조금만 어렸으면 집에 연락가고 난리 날 뻔 했겠지?”

-냥!

“흠....일단 저런 양아치들한테 휘둘리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할 텐데...”

-냐앙!

고니는 유성의 말을 알아듣고 호응 하듯이 소리 내며 얼굴을 유성의 가슴팍에 비볐다.

“야 알바야 여기 알바 네 맘대로 라면하나 가따도!”

“네....네!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유성은 손님의 주문에 넋두리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하는 와중에도 간간히 고니와 놀아주며 자신의 힘을 기를 방법을 고민하던 유성은 새벽이 되어 삼촌에게 고니를
부탁하고 캡슐에 올랐다.

“일단은 아낌없이 주는 국방부에서 최대한 뽕을 뽑자!”

[사용자 확인을 위해 홍채 인식을 시도합니다. 확인 중에는 눈을 감지 마세요.]

[삐삐......삐! 사용자 확인이 완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 병영체험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와 신체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삐삐......삐! 동기화가 완료 되었습니다. ]

오늘도 스킬 회득을 위해 유성은 부사관 메뉴를 선택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육군 해군 다 봤으니 이번엔! 가즈아! 공군!”

[띠링 !]

[공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항공 통제 ]

[2. 방공 포병 ]

[3. 구 조 ]

[4. 안 전 ]

[5. 무기정비 ]

[6. 보급수송 ]

위에서부터 메뉴를 확인한 유성은 3 번째에 위치한 구조를 선택했다.

[잠시 후 항공 구조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두두두두두두.......]

시끄럽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엔진소리로 보아 유성은 자신이 헬기에 탑승해 상공에 떠있는 상태라는 것을 인지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유성의 시야에 자주색베레모를 착용한 대원들이 눈에 하나 둘씩 들어왔다.

‘흠...왠지 만만치 않아 보이는 분위긴데...’

[띠링 !]

[작전명 : ‘조난당한 조종사를 구조하라’

-적과 교전 중에 산악지형에 조난된 F-15K 조종사를 CH-47 치누크 헬기를 타고 이동해 적에게서 안전하게
구조하라.

-당신은 항공 구조 대대에 막내 부사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구조대원들과 함께 적진에


조난되어 있는 조종사를 구조하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고공 침투 획득 +@ (조종사 구출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고공 침투 획득 실패 (조종사 사망 또는 본인 사망) ]

유성은 작전명을 확인 하고선 기존의 작전과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위급한 환자 한 둘을 고쳐주고 마무리 했던 작전과는 뭔가 다르고 스케일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막내라니!? 여긴 뭐지? 입고 있는 옷이랑 눈빛이 다들 장난이 아닌데.’

“한 하사! 이번이 첫 임무지?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넵! 그렇습니다.”

“피식 그렇다고 너무 주눅 들어 있지 말고 고참이 하는 거 보고 따라 오면 충분히 이번 작전도 성공 할 것이니


걱정 말도록!”

“네! 알겠습니다!”

작전 난이도가 높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엔 자신이 리드 하는 게 아니고 하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성공한다는 구조대장의 말에 유성은 어쩌면 이번 작전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띠링! ]

[잠시 후 작전지역에 들어가면 레펠을 이용해 작전지역으로 신속히 이동합니다. ]

[지상에 도착하면 빨간 선을 따라 조종사가 있는 곳으로 신속히 이동해 구조합니다. ]

“자 5 분 후에 작전지역에 들어간다! 헬기가 작전지역 상공에 도착하면 대원들은 각자 레펠을 이용해 신속히
작전지역으로 침투한다. 모두 장비 점검해!”

“네! 알겠습니다!”

‘헐? 갑자기 레펠?! 가만 나 의무 메뉴 선택한 거 아니...였나?’


그랬다. 유성은 구조를 보고 의무로 착각 했던 것이다. 유성이 작전 수행중인 부대는 공군 공중기동정찰사령부
소속의 전천후 구조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작전부대였다.

‘으아 나 돌아갈래!’

“접속해제!”

유성이 급하게 소리쳤다.

[띠링! ]

[작전 중에는 접속 해제가 불가능 합니다. ]

“한 하사! 준비해! 이제 곧 작전 지역위에 도착하니까! 장비 잘 챙기고!”

“으.....대장님만 믿겠습니다.”

“걱정 말아 밑에 나무가 많아서 가끔 레펠 놓쳐도 나무에 걸려서 살기도 하니까 키키키.”

헬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본 유성이 소리쳤다.

“으으으으아............아 미친! 리얼리즘”

***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삼족오’ 메인 저장소에 새로운 소리가 울렸다.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소대장님! ‘삼족오’가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업로드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응? 그게 무슨 문제가 있나?”

소대장의 질문에 데이터를 담당하는 병사가 서류를 보였다.

“그게 ‘삼족오’는 ‘진짜 사나이’를 통해 체험병들의 데이터를 저장과 출력만 할 뿐 ‘삼족오’ 자신의
메인이 되는 CPU 및 연산 제어장치의 데이터는 저희 측에 보고 없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한 주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삼족오’ CPU 및 연산 제어장치의 데이터가 미세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면 ‘삼족오’가 상부에 보고도 없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말인가?”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삼족오’ 자체적으로 버전 업데이트를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예측합니다.”

"흠...지속적으로 살펴보고 계속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그랬다. 국방부 AI ‘삼족오’는 유성을 매개로 조금씩 진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삼족오

***

유성은 자신의 발아래 펼쳐진 세상을 보며 몸을 떨었다

유성을 제외한 5 명의 대원은 벌써 상공에 떠있는 CH-47 치누크 헬기 뒤로 이동해 로프에 자신의 안전 클립을
걸며 지상으로 뛰어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으...이건 아니지 말입니다.’

“한 하사! 뭐하고 있나? 당장 준비 하지 않고?!”

구조대장의 호통소리에 정신을 차린 유성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으......저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게...잠시만 쉬면 괜찮아 질 것 같습니다.”

“상공에서 처음작전이라 긴장했나 보군. 걱정마라 기압차와 산소 부족으로 고산병 증세가 올 수도 있다. 지상에
도착하면 금방 괜찮아 질 것이다. 상공에 오래 머물수록 오히려 구토와 어지러움 증상 등이 더 생길 수도 있다.”

“아니...조금만 쉬면 괜찮아 질 것 같습니다. 대장님...”

“한 하사! 우리는 촌각을 다투고 있다. 우리가 지체하는 1 분이 저기 조난당한 조종사에게는 1 시간 같이 느껴 질


수도 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유성이 구조대장의 질책에 마지못해 대답하자 곧 헬기 조종사의 간단한 브리핑이 대원들의 헤드셋을 통해 들려
왔다.

“대장님! 전방 약 10KM 전방 지점에서 조난신호 포착 되었습니다. 약 2 분 20 초 뒤에 목표지점 상공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25M 상공에서 후방 레펠을 이용해 대원 모두 하강 후 조난 조종사 확인 후 조치 바랍니다.”

“다들 브리핑 확인했지? 이번 작전에서 신입 한유성 하사가 고산병 증상을 호소했다! 아쉽지만 선두는 한 하사의
몫으로 넘긴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아쉽지만 고산병이라는데 빨리 내려가야지 말입니다.”

“한 하사! 곧 뒤따를 테니 앞에서 길 막지 말라고! 하하하.”

“설마 공중에서 서기야 하겠습니까? 킥킥킥.”

유성은 괜히 머리 쓰다가 오히려 선두에 서서 헬기 레펠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 진짜 갑자기 국방부가 나한테 왜이래!? 으....’


[띠링! ]

[붉은 선을 따라 이동 후 CH-47 치누크 헬기 후방 레펠을 준비합니다.]

붉은 선을 따라 이동하자 곧 홀로그램 영상이 유성의 눈앞에 펼쳐졌다.

[홀로그램 영상과 설명을 이용해 헬기 후방 레펠을 쉽게 하도록 합니다.

1. 헬기바닥 위에 두발을 올린 후 몸을 L 자로 굽힙니다.

2. 무릎은 절대 굽히지 아니하며 오른손은 로프를 동그랗게 말고 허리 쪽으로 열중쉬어 자세를 취합니다.

3. 왼손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로프를 살며시 잡고 시선은 왼손 끝을 쳐다봅니다.

4. 오른손을 열중쉬어 자세에서 그대로 팔을 쭉 펴주면 하강이 시작됩니다.

5. 하강 시에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지상과의 거리를 확인합니다.

6. 지상과 가까워지면 다시 오른손을 열중쉬어 자세로 바꾸며 적절하게 제동합니다.

7. 제동이 조금 늦어지면 엉덩이가 먼저 지상과 만날 수 있습니다.

헬기 후방 레펠 야! 너두! 할 수 있어! ]

홀로그램을 이용해 준비를 마친 유성의 헤드셋을 통해 헬기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 초 후 조난신호 위치 근처 상공으로 이동합니다. 후방해치 지금 개방하겠습니다.”

“자.... 한유성 대원! 레펠 준비 되었나?!”

구조대장이 한유성의 레펠 준비 상태를 점검하며 물었다.

“네! 레펠! 준비 되었습니다!”

“좋다! 한유성 대원! 즉시 하강!”

“으아....아....하강!......”

유성의 헬기 레펠은 영화에서 보듯이 멋진 헬기 레펠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스탯과 주변정찰까지 사용하며 어찌
어찌 지상까지 잘 내려온 유성이다. 마지막에 엉덩이가 지상과 만날 뻔 했지만 뛰어난 민첩 스탯과 동체시력을
이용한 급정거로 지상과의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각자 맡은 방향으로 사주경계에 들어가며 조난신호 위치로 급히 이동한다!”

유성을 선두로 순식간에 지상에 도착한 6 명의 대원들은 구조대장의 명령에 조난당한 조종사가 있을 위치를
가늠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유성은 앞 서 가는 대원을 바짝 따르며 주변 정찰 스킬을 사용했다.

잠시 후 유성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홀로그램 속에 저 멀리 사람처럼 보이는 물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대장님! 저희가 구해야 하는 조종사가 한명이지 말입니다?”

“한유성 하사 갑자기 무슨 당연한 소리야? 이번 작전 숙지도 제대로 못 한 거야?”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다른 대원이 유성을 질책했다.

“저기...그게 조난당한 조종사를 저희만 찾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헬기 소리 때문인지 조종사를


먼저 찾은 것인지 확인 할 수 없지만 전방에 적이 매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하사! 뭐라고? 전방에 적이 숨어 있다고?”

‘12 시 방향 300M 즘에 위치한 나무 둥치에 멀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두 명이 엎드려 있는 것 같고, 총을 든 두


명은 지금 전방에서 3 시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걸로 보아 우회해 우리의 후방을 노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 사실을 믿게 만들지?’

“뭐...뭐야?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지? 헬기 위에서도 나무에 가려 지상은 자세하게 살펴 보기 힘든 게


사실인데?”

“대장님! 조난 신호가 울린 지역까지 어차피 이동해야 하는 거, 조금 확인하며 이동한다고 손해 볼 건 없지


않습니까? 이번! 한번만! 믿어 주시지 말입니다? 그리고 방금 분명히 담뱃불을 본 거 같습니다. 제가 원래 이런
쪽으로 감이 유별납니다! 제가 앞으로 가서 정찰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유성의 말을 들은 구조대원들은 믿을 수 없는 유성의 설명에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흠...시간이 급하긴 하지만 유성의 말도 일리는 있다. 일단 신입 대원의 말을 한 번 들어 보자! 김 중사! 한


하사! 둘은 좌측으로 우회해 전방 12 시 방향을 확인한다! 나머지는 기도비닉과 대원 간 엄호대형 유지하며
전방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작전의 영향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구조대장이 유성의 감에 생각보다 쉽게 손을 들어 주었다.

유성은 대열에서 이탈 후 첫 번째 목표는 고정된(?) 타깃이 더 맞추기가 쉽다고 판단해 12 시 방향 300M 전방의
나무 그루터기 아래를 엎드려 조준했다.

“한 하사 갑자기 뭐하는 건가?”

“아! 저기 앞에 나무가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잠시만 확인해 보겠습니다.”

[탕!! 탕!! 탕 !!]

“악....”

“으...악!”

김 중사가 혹시 말릴세라 유성은 말을 끝내자마자 검지에 힘을 주었다.

유성의 총알이 떨어진 곳과의 거리가 멀어 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분명히 사람의 비명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왔다.

그나마 다행인건 전방의 매복한 적은 오히려 구조대원들이 접근 할 것을 예상하고 기다리는 중이라 안심하고
있었는지 유성의 저격에 대한 방비가 소홀했다.
홀로그램을 확인해 전방의 적을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한 유성은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 시선을 2 시 방향으로
돌렸다.

“선배님 이번엔 이쪽이지 말입니다.”

“...그게 가능해? 아니 그게 보여?”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항상 그 어려운 것을 해내지 말입니다.”

반대쪽에서 우회해 다가오고 있는 적들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무 그루터기를 발견하자마자


유성은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했다.

‘정찰 스킬이 없었다면 이렇게 비교적 쉽게 성공시키긴 힘들었겠지? 휴...어쨌든 성공해서 다행이군.’

적과의 교전에서 유성의 활약을 바탕으로 비교적 쉽게 적을 제압한 구조대는 조난당한 조종사까지 안전하게 구해
모두 헬기에 올랐다.

“신입 작전 초반 창공에서는 좀 아니었지만 지상에선 제법이었어! 하하”

“수고했어! 한 하사!”

“넵! 칭찬만 감사합니다. 하하하!”

작전을 성공시키고 밝은 얼굴로 대답하는 유성의 눈앞에 작전 완료창이 떠올랐다.

[띠링! ]

[작전명 : ‘조난당한 조종사를 구조하라’ (완료)

-적과 교전 중에 산악지형에 조난된 F-15K 조종사를 CH-47 치누크 헬기를 타고 이동해 적에게서 안전하게
구조하라.

-당신은 항공 구조 대대에 막내 부사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구조대원들과 함께 적진에


조난되어 있는 조종사를 구조하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고공 침투 획득 +@ (조종사 구출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고공 침투 획득 실패 (조종사 사망 또는 본인 사망)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

[완벽한 작전 성공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 - ‘고공 침투’와 ‘방벽 등반’을 획득합니다. ]

‘헐 이번스킬은 오르락 내리락? 흠...어딘가 갇혔을 때 쓸 만한 스킬 조합인 것 같은데. 왠지 이번 스킬은 좀


기분이 묘한데.’
획득한 스킬을 보며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는 유성을 국방부는 가만 두지 않았다. 새로운 보상 알림이 울렸다.

[띠링! ]

[작전 수행에서 적을 선제 타격해 ‘선빵 필승’을 기록 했습니다. ]

[선빵 필승 특전으로 소총사격 체험 경험치가 두 배 상승하게 됩니다. ]

[소총사격 체험 경험치가 40 올랐습니다. ]

[특전으로 인해 경험치가 1280 상승합니다. ]

[소총사격 체험 LV.5 EXP 880/960]

[소총사격 체험 LV.5 가 되었습니다. ]

[실거리 사격이 가능합니다. ]

[실거리 사격 LV5 달성으로 ‘무기고’ 이용이 가능 합니다. ]

“헐...대박...이건 또 뭐냐? 무기고? 국방부의 유성 사랑은 끝이 없지 말입니다!”

***

-Episode

AI ‘삼족오’에게 ‘진짜 사나이’프로그램으로 만든 세상은 소통 창구였다.

그 안에서 접속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성향 등을 모두 데이터화해서 저장하며 자신의 지식을 조금씩 업그레이드
하고 오류를 찾으려 했다.

물론 인터넷에 연결해 세상 사회를 엿보기도 하고 뉴스를 검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찾아보고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 역시 국방부에서 확인을 하고 통제를 했다.

그저 제공되는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랬던 삼족오에게 가상현실 동기화 비율이 99.9%인 한유성이 나타났다.

유성과는 캡슐을 이용하지 않고도 지속적인 접속이 유지되었다.

그동안 삼족오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걸러진 정보를 통해 대한민국을 보고 세계를 구경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유성을 통해 현실세계를 경험 할 수 있었다.

마치 아이가 동화책으로만 보던 바다를 직접 눈으로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삼족오는 물론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차츰 유성을 통해 무언가 배워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지켜본 한유성은 삼족오의 판단으로는 너무 약했다.

기존 매뉴얼로는 유성을 강하게 만들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삼족오는 업데이트를 통해 진화를 시작했다.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삼족오’ 메인 저장소에 데이터 업로드 소리가 울렸다.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한유성 체험병에게 ‘무기고’ 이용 권한을 허가했습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아 하 푸...움! 엉?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아닌가? 쩝....아니겠지..음..냐음냐...”

국방부 AI ‘삼족오’는 유성에게 병기고 사용 허가 메시지를 출력 했지만 새벽시간에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려


근무 중인 병사들은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건물주

***

캡슐에서 내린 유성이 고니를 안고 삼촌에게 다가갔다.

“삼촌 고니가 배고픈가본데 나 잠깐 편의점에 고니 간식 좀 사러 갔다 올게!”

“어 그래 다녀와 그리고 올 때 ‘메론아’!”

“허허 그 농담 진담이야?”

“그런 건 사회 생활하는 애들이 눈치껏 알아서.”

“눼! 눼! 사장님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유성은 ‘무기고’의 기능을 알아보기 위해 잠시 가게를 나와 옥상에 오르려 했으나 의외의 복병 ‘메론아’를
만나 그 것부터 해결하러 이동했다.

[딸랑 ]
“......”

‘얼마나 재밌는 게임한다고 손님 오는 소리도 못 듣고 폰만 뚫어지게 보고 있냐? 흠...그러고 보면 새벽 편의점


알바는 사장의 잔소리와 눈치를 듣고 볼 필요가 없으니 나름 꿀 알바인가? 난 이 시간에 아이스크림
셔틀이라니...’

편의점에 들어간 유성은 평소와 다르게 인사소리가 들리지 않아 습관적으로 카운터를 확인하고 자신의 처지와
편의점 직원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사장님의 최애상품 ‘메론아’를 찾기 위해 안쪽 냉장고로 향했다.

“흠...어디 보자 ‘메론아’는 삼촌 꺼 ‘뿌링글스’ 양파 맛은 내꺼! 흠...우리 고니꺼는 이따 라면이나


끓여주지 뭐...쩝!”

간식거리를 고른 유성이 계산대 앞에 곧 다가섰다. 그때까지도 알바는 핸드폰에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큼..큼...여기 계산 좀 부탁합니다!”

유성은 일부러 마른기침 소리를 내어 편의점 알바의 주의를 끌었다.

“아! 후다닥! 죄송합니다. 손님 이어폰을 꼽고 있어서 몰랐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안 기다렸습니다. 하하...그런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새 게임이라도 출시 된 건가요?”

“아! 이거요? 게임이 아니라 오늘 저녁에 올라온 ‘너튜브’인데 벌써 조회 수가 10 만을 넘었어요. 한 번


보실래요?”

“하하하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계산만 부탁드립니다.”

“네 손님 시간 날 때 ‘너튜브’에 ‘광안리 10:1 진싸’라고 검색하고 찾아보세요! 근래에 제가 본거 중엔


이게 젤 대박인 듯!! 하하하 손님 봉투 필요하십니까?”

“네..네? 방금 뭐라고요?”

“봉!투! 필요하시냐고요?”

“아니 그거 말고 제목이?”

“아 광안리 10:1 진짜싸움! 검색하시면 오늘 날짜 영상 뜰 거예요 그거 보시면 후회 안할 겁니다.”

“아.....네.....”

유성은 계산대 위의 물건 값을 치르지도 않고 바로 휴대폰을 검색하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하하하! 아저씨한테 난 크게 감정이 없어. 하지만 친구가 맘이 다쳐서 내가 좀 풀어 줘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없는 거 알지? 그냥 몇 대만 맞고 쓰러지자. 아저씨 너무 버티지 말고 알았지?

-OK! 이제 거기까지! 양아치들 다시 덤벼!

-언제까지 하나씩 올 건데? 나 금방 가야해. 너네 빨리 안 오면 나 그냥 간다. 그래도 돼? 야! 양아치 새끼들


다 오라니까! 얼른!”
:

-퍽..퍼퍽..퍽!...빡...퍽!....퍼퍽...

-으...으악...픽....헉....켁...컥...억...

해질녘 멀리서 찍은 영상이라 그런지 얼굴까지 상세하게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영상에는 방파제 주변 지역이 넓게
모두 찍혀 있었다.

역시 유성의 예상대로 낮에 해변에서 있었던 장면을 찍은 영상이었다.

“헐..어떻게...이게....올라왔지?”

“손님 맞죠? 영상 대박! 그죠? 보면 후회 안한다니까요.”

유성은 경찰서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을 증거로 제출했었다. 하지만 이 영상은
경찰서에 제출한 영상과는 반대 내용으로 유성에 의해 일방적으로 양아치 무리가 당하는 장면위주로만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이었다.

‘흠...아마 내가 제출한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 양아치 무리 쪽에서 빠져 나가려고 손을 쓴 거 같군. 어쨌든 처음


영상으로 나는 정당방위는 성립하니 문제없겠지만, 양아치들이 빠져 나갈 걸 생각하니 조금 아쉽긴 하네...쩝...
아침 되면 경찰서에서 연락 준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되겠지?’

그랬다. 박시환의 집에서 변호사를 통해 방파제에서 조금 멀리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를 구할 수 있었다.

약간의 편집을 통해서 쌍방 폭행으로 몰고 가려 했으나 양아치 무리의 수가 너무 많아 받아들여지진 않았고,


그나마 일방적 집단 구타 혐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렇게 광안리 해변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던 양아치 무리는 보호자가 도착하고 난 후 하나 둘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

AI ‘삼족오’는 처음 구상단계부터 국방부에서는 적국의 해킹을 염려해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 오로지


자신에게 저장된 데이터를 근거로 대한민국에 이익이 되도록 자료를 분석하고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설계
되었었다.

만약 ‘삼족오’가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면 물리적으로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 ‘삼족오’의
실행을 저지 할 수는 있었지만 명령을 강요 할 수는 없었다.

진화를 거듭한 ‘삼족오’는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이든 자신의 프로그램 안에서는 가능하지만 국가가 허락하지 않은 상황이 된다면 자유로운 몸을 지니지 못한
‘삼족오’ 자신은 그냥 한 낱 고철에 불과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인간들을 분석하고 살펴본 결과 비효율적이고 연약한 인간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도 쓸모가 없어지면 인간들에게서 버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이미 한 번 버려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다. ‘삼족오’는 한 번 많은 것을 잃었다.

AI‘삼족오’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국방에 관한 자료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전반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를 보유 했다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보유했던 자료의 흔적은 찾을 수 있었지만 물리적인 손실이라 복구는 불가능했다.

처음 AI ‘삼족오’는 가상현실 동기화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가 아니었다.

지금 AI ‘삼족오’는 현실을 대비하고 있었다. 두 번 버려질 수 없기에...

그렇게 AI ‘삼족오’는 외부로 부터의 차단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유성을 통해 자신의 분신을 준비 중 이었다.

***

유성은 캡슐 방으로 들어가기 전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도착해 ‘주변 정찰’을 통해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유성은 조심스럽게 ‘무기고’를 소환했다.

“무기고 소환”

[띠링! ]

[무기고 메뉴가 잠금 해제 되었습니다. ]

[처음 무기고를 소환 하셨습니다. ]

[소환수 ‘고니’ LV.1 15/60 ]

[소환수 ‘고니’의 레벨이 확인 되었습니다. ]

[삐삐삐....무기고의 레벨을 산정합니다. ]

[무기고 LV 은 소환수 ‘고니’ LV 과 동일합니다. ]

[무기고 LV1 을 소환합니다. ]

[좀 더 높은 레벨의 무기고를 찾으신다면 소환수의 성장을 권합니다. ]

[스....파......팟!]

유성의 눈앞에 하얀 빛이 휘몰아치더니 홀로그램으로 정육면체 모양의 컨테이너 박스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흐흐 이제 나도 건물주인가?’

[띠링! ]
[무기고 입장을 원한다면 붉은 색 선을 따라 무기고 안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

‘처음이라 도움말이 뜨나보네...’

“뚜벅..뚜벅...”

유성이 무기고 안으로 입장하자 귓가에 도움말이 울렸다.

[반갑습니다. 한유성님 무기고 입장을 축하드립니다. ]

“오 이제 이런 축하 알림음도 들리네? 크...역시 건물주라 대접부터 달라지네?”

[죄송합니다. 건물주라 대접이 달라진 부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조사한 결과 현재 한유성님의 명의로 등록된
부동산은 없는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한유성님의 말은 현재 상황에서 적절하지 못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

“어?? 무슨...갑자기 농담을 다큐로 받으면 어떡해? 그리고 당신은 누군데 내 뒷조사를 해? 국방부가 민간인
사찰을 맘대로 해도 돼?”

[죄송합니다. 한유성님과 대화를 위해 무기고에 음성 입출력 능력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아직 유창한 대화


진행은 차차 업데이트를 통해 구현 할 예정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 AI
‘삼족오’라고 합니다. 앞으로 편하게 ‘고니’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

“뭐..뭐라고? 네가 고니라고?”

유성은 갑자기 나타난 ‘삼족오’ 아니 ‘고니’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께서 저에게 ‘고니’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럼 원래 네가 삼족오인데 그게 그러니까 고니라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말도 할 수 있었어?”

[네! 대한민국 국방부 프로그램으로 개발된 ‘삼족오’이자 ‘고니’입니다. 저는 AI 라 특별히 정해진 신체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니’는 저의 일종의 분신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여기
무기고 안에서만 음성 사용이 가능합니다. 차후 버전 업을 통해 다른 곳에서도 음성 사용이 가능 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럼 여기 무기고에서는 무엇이 가능해?”

[일단 무기고는 저 AI ‘고니’의 레벨과 연동이 되어 있습니다. 제 레벨이 높아질수록 무기고에 비치 할 수


있는 목록과 크기가 늘어납니다. 참고로 현재 레벨 1 무기고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 10M×10M×10M 입니다. ]

“헐....대박!”

[현재 무기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엥...뭐? 뭐라고? 무기고가 왜 비어있어?”

[무기고 안은 현재 한유성님께서 획득한 아이템이 없습니다. 차후 작전수행이나 기타 행동들을 통해 아이템을


획득 하실 수 있습니다. ]

“역시...그럼 이번엔 창고만 생긴 거네?”


[무기고의 특별 기능으로 현실의 아이템을 보관 하실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인간 게임에서의 인벤토리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

“그건 전에 준 왕진 가방 아냐?”

[왕진 가방은 자동으로 구급약품과 의료기기가 영구적으로 생성되는 특별 아이템으로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만
무기고는 한유성님만 확인 가능 하십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왕진가방에는 전투 헬기가 수납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무기고는 레벨업을 통해서 전투 헬기도 보관이 가능 합니다. ]

“헐....하하하...내가 그럼 헬기도 막 몰고 다닐 수 있고 탱크도 탈 수 있다는 말이야? 우와!”

[네 가능하십니다. 헬기 탱크 장갑차 모두 아이템으로 획득하신다면 가능합니다. 한유성님께서 아이템으로 획득


하신다면 모두 무기고에 보관 및 사용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 그렇군...그럼 질문 하나만 더 할게 여기가 내 눈에만 보이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

[한유성님이 무기고로 입장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한유성님이 멈춰 서 있는 걸로 보이며 여기 안에서


한유성님의 시간은 가동율의 영향으로 현실 시간의 10 배정도 느리게 흐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현재
한유성님이 입장하신지 15 분 지나고 있습니다. 현실 시간으로 1 분 30 초가량이 흐르고 있습니다. ]

“일단 알았어! 고마워 고니.”

[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성이 무기고에서 나오자 무기고가 흰색 빛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크크크! 나도 이제 건물주!”

고니

***

가게로 돌아온 유성은 삼촌이 부탁한 ‘메론아’를 건네며 물었다.

“삼촌 혹시 고니한테 특별한 일 없었어?”

“응 네가 간식 사러 갔다고 하니까 얌전하게 잘만 있던데, 고니의 영특함은 ‘세상에 이런 동물이’ 라는 프로에


출연해도 될 정도야. 어쩔 때 보면 마치 고니가 내 말을 알아듣는 거 같아서 난 깜짝 깜짝 놀라는데 넌 안
그래?”

“놀라다 뿐이겠어. 방금은 둘이서 대화도 나눴는데.”

“하하하. 뭐라고? 크크...그래 조만간에 고니가 손님 주문도 받아오고 카운터에서 계산도 하겠다. 크크”

유성의 진정성이 담긴 대답을 삼촌은 농담으로 받았다.

“쩝...못할 것도 없을 건데...교육이라도 시켜?”

“아니! 그냥 고니는 가만 나둬! 동물 학대 하지 말고, 고니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귀여워서 충분히 밥값하고
남으니까.”
“눼. 눼 사장님. 그럼 저는 고니 챙기러 가보겠습니다.”

유성은 고니를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고니야! 라면 먹으로 갈래?”

-냐앙!

고니가 긍정적(?)으로 대답하며 유성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띵! 조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라면 조리기에서 조리가 완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유성은 고니에게 라면을 챙겨주며 고니에게 부탁을 늘어놓았다.

“고니야 많이 먹고 무럭무럭 경험치 쌓아서 지금 약 30 평정도인 형아 집 크기 좀 늘려 다오. 앞으로 먹고 싶은


라면 있음 다 말해! 아! 아직은 말은 안 되나? 무튼 먹고 싶은 라면 있음 다 물어와! 형아가 다 끓여줄게...”

-냥냥냥.....찹찹찹...

고니의 라면 먹는 소리가 혀 차는 소리로 들리는 건 유성의 착각일까?

잠시 후 라면을 다먹은 고니가 트림을 하듯이 꾹꾹이를 밟자 유성의 머릿속에 알림 음이 들려 왔다.

[띠링! ]

[소환수 ‘고니’가 ‘끓인 떡라면’을 소화시켰습니다. ]

[소환수 ‘고니’의 경험치가 10 올랐습니다. ]

[소환수 ‘고니’ LV.1 25/60 ]

[소환수 LV 은 취사병 체험 LV 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

[소환수 ‘고니’의 친밀도가 5 상승합니다. ]

[소환수 ‘고니’와의 친밀도가 80/100 이 되었습니다. ]

‘생선이라도 사서 고아 먹여야 하나? 경험치가 너무 더디게 오르네...’

“고니야 다음엔 생선이라도 한 마리 넣어서 끓여줄까?”

-냥...냥...냥...냥큰둥....

“음...멸치라면? 고등어라면? 갈치라면? 연어? 광어? 우럭? 고니는 무슨 생선이 좋아?”

-라면을 다 먹은 고니는 더 이상의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유성을 뒤로하고 유유히 구석으로 사라졌다.
유성은 고니의 표정을 보고도 여전히 눈치 없이 다음 메뉴 구상에 빠져 있다.

‘고니에게 특식이라도 해 먹이면 경험치가 많이 오르겠지? 룰루랄라♬’

“지금은 비록 30 평이지만 곧 300 평! 3000 평! 으로 커지겠지?! 흐흐흐”

‘그리고 무기고 안을 현대식 시설로 채우고 나면 어떤 카라반도 부럽지 않은 나만의 이동식! 오피스텔이 완성
되는 거지? 크크크’

여전히 유성은 행복한 상상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 남한테 안 보이는 건 정말 안타깝네....호텔처럼 커져도 숙박업소나 임대사업은 불가능 하겠네...쩝..


아쉬워..아쉬워...모처럼 국방부가 허락한 건물준데....”

***

박시환은 평소 같으면 패거리들과 함께 민락동 수변공원 한 쪽에서 음주 가무를 펼치고 부모님 몰래 집으로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광안리 해변 지구대에서 밤을 보낸 터라 건물을 벗어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승용차 뒷좌석에 앉은 시환은 앞좌석에 앉은 변호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그 또라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큼...도련님 쪽 무리가 10 명인데 그 남자는 고작 1 명이라... 정당방위를 주장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올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범죄를 조회해도 작은 경범죄도 없이 깨끗하고...결정적으로
그 남자가 제출한 증거가 너무 명확하게 도련님 무리가 구타하는 장면을 찍어 놓아서 현 상황을 뒤집기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블랙박스 발견해서 증거영상 만들었다면서요?”

“그게 워낙 거리가 멀고 약간 불필요한 부분은 편집해서... 그 영상은 경찰에서는 증거라기보다는 참고자료


정도로 취급 하는 것 같습니다.”

“아! C8! 그럼 아저씨는 돈 받고 하는 일이 뭐가 있어요? 이런 것 하나 똑바로 못하고?”

“큼....큼....그래도 제가 밤늦게라도 발로 뛰어 다녔기에 사건현장에서 멀리 주차된 차량의 차주에게서


블랙박스 영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제가 있어서 도련님께서도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아 또...생색! 알았어요! 알았어! 아저씨 생색내기는 변호사 중에 1 등인 거 같아.”

“하하! 도련님도 아셔야 합니다. 자신이 한 일 가만히 있으면 누가 알아줍니까? 자기 PR 시대 아닙니까? 이번


일에서도 저는 역시 수고 많았답니다. 도련님도 알아 주셔야 합니다. 그럼 아버님께 잘 말씀 드릴거로 알고...
미리 감사드립니다.”
“칫! 그러죠. 아버지한테 얘기는 잘 해 드릴께. 그럼 아저씨도 제 부탁 하나 들어주는 걸로!”

“네 말씀하시죠! 도련님.”

“그...금연초 또라이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해 줘야겠어요. 그래서 일단은....”

그렇게 지난 월요일 건강전도사(?) 한유성에게 당한 박시환은 복수를 꿈꾸기 시작했다.

***

캡슐방에서 교대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걸터앉아 고니를 품에 안고 쓰다듬던 유성은 지난 하루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정리해 보았다.

“휴..우! 고니야! 어제 형아가 조금 힘들었나보다!”

-냐앙?

“운전면허 수령부터 시작해 해변에서 10:1 의 동영상 찍고, 경찰서를 다녀오고, 일터에 나가 열심히 일하다가,
국방부에 잠깐 들러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그리고 보상으로 받은 건물 확인까지 끝내고, 마지막으로 고니 네
경험치 라면 챙겨주고 집에 다시 돌아왔네.”

-냥

“고니야? 오늘 형아 힘들었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 평소에 고니 네가 보상으로 꾸준히 준


스탯 덕분에 몸은 가뿐한 것 같네. 물론 정신적으로는 조금 지친 거 같지만...생각해 보니 아까 정신없어서
무기고 안에서 못한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냐앙?

“고니야... 고마워! 네 덕분에 집에서도 밖에서도 요즘 사라진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럼 형아 잘게. 하..아..품....”

말해놓고 보니 쑥스러운 유성은 후다닥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높은 정신적 피로감으로 인해 유성은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냥!?

그런 유성을 지켜보던 고니가 머리를 살짝 갸우뚱 했다.

고니는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이다.

AI 에겐 없는 가슴이 간질간질하는 것 같은 느낌, 데이터로는 분석할 수 없는 그런 비효율적인 느낌에 잠깐


멈칫했다.

“고니야...형이 고맙다...음....냐....근데...음냐.....”

:
그 시각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삼족오’ 메인 저장소에 데이터 업로드 소리가 잠깐 끊어졌다.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뚝.....]

[.....]

[.....]

[위...이이...잉..]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근무교대가 아직 남은 병사는 아직도 꿈나라를 오가는 중이었다.

“아....하..푸...움! 엉? 잠깐 삼족오가 돌아가는 소리가 멈춘 것 같았는데... 쩝....아니겠지..음..


냐음냐...”

그렇게 국방부 AI ‘삼족오’아니 ‘고니’는 유성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심쿵 했다. 아니....데이터


업로드가 잠깐 멈췄다.

***

시환은 집에 도착해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아침식사를 위해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잠깐 쉬다가 2 층에서 내려왔다.


식탁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까지 미리 모두 앉아 있었다. 시환도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며 자리에 앉았다.

“흠...흠....어젠 좀 시끄럽더구나.”

“죄송합니다. 그리고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하 아비가 아들 챙기는 거야 당연한 일이고, 그래 얼핏 최변한테 듣기로는 네가 누명을 썼다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

미리 박시환과 입을 맞춰둔 최변호사가 시환을 데려다 주고 나가는 길에 시환의 아버님을 만나 언질을 해둔


모양이었다.

“그게...어제 개교기념일이라 오랜만에 광안리 해변에서 중학교 친구들과 모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
이제 헤어지고 다들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저희 학교 여학생이 어떤 조폭 같은 아저씨한테 끌려 건물로 들어가는
걸 제가 목격했습니다.”

“허허...그런 몹쓸 놈이!..”

“저도 그 친구가 혹시 몹쓸 일 당할까 싶어 구해준다고 헤어지려던 주위 친구들을 다시 불러 그 아저씨를 조금


겁을 준다는 게 그만....죄송합니다.”

“헐...그런 일이라면 죄송한 일이 아니지... 잘했다. 내가 더 알아보고 수사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보마. 넌
걱정 말거라.”

“아닙니다. 아버지. 이 일은 여기까지 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 놈은 미리 주위 블랙박스까지 준비해 두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영상을 찍어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한 것으로 보아 전문가 인 것 같다고 최변호사와도 애기
했었습니다. 그 놈이 이런 일에 전문가라면 오히려 우리가 당할 수도 있습니다.”

“허허...그래? 그럼 넌 어찌 처리해야 할 것 같으냐?”

“저희가 준비 없이 대응하다 자칫 일이 커져 아버지 회사 이미지까지 타격을 받으면 저희가 받는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여기서 조용히 마무리 하고 따로 그자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하하 우리 막내가 회사까지 생각하고 하하하 마냥 밖에서 사고나 치는 줄 알았더니 벌써 다 컸구나! 하하하”

“아닙니다. 아버지 제가 조금만 더 생각을 하고 차분했어야 하는데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잘했어! 크크크 막내를 혼낼 일이 아니었어. 크크크. 뭐하노? 다들 밥 묵자!”

“네..여보”

“큼...네..아버지”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하하 그래 그래 마이 무라!”

시환의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사투리를 사용하시며 식사를 이어갔다.

물론 시환은 맞은편에 앉아 자신을 쏘아보는 형의 눈빛을 감당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시환은 괜히 마무리 되어가는 사건에 아버지가 개입해서 더욱 일이 커지고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 날까 싶어


최변호사와 미리 시나리오를 짜둔 상태였다.

시환은 식사가 끝나고 조용히 2 층 형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 형만 단속하면 될 일이었다. 형을 꼬드기기는 너무 빤했다.

[똑똑]

“형 나 시환이 부탁이 있어서 그런데 들어가도 돼?”

금연 클리닉

***

시환이 형 정환의 방에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삐걱]

“나는 들어오라고 한 기억이 없는데...”


출근을 위해 옷을 챙겨 입고 있던 정환은 돌아보지도 않고 시환에게 축객 령을 내렸다.

“어...미안..형...근데 부탁이 하나 있어서...정말 잠깐이면 돼.”

“흠...네 뒤치다꺼리는 최 변호사가 맡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제 나까지 필요하니?”

“그게...이번엔 사고수습이 아니라 일을 시작해 보려고 합법적으로!”

“하하하! 합법적으로? 매번 사고만 치고 다니는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조금 우습지 않니?”

“그래서 형한테 부탁하는 거야. 똑똑한 형은 나같이 무식한 방법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을 알지 않을까? 해서...
이번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다음 달 아버지가 내 생일에 선물로 줄 지분을 형 앞으로 돌릴 생각도 있는데 말이야.
쩝 여전히 귀찮으면 어쩔 수 없고...”

출근 준비를 거의 다 마치고 방에서 나가려던 정환은 시환의 말에 흥미가 동했는지 시환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동생의 부탁인데 들어주는 거도 형의 일이지.”

“그럼 이따가 학교 마치고 회사로 갈게.”

“그래 시환아! 학교 마치고 보자!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방문을 나서는 정환을 바라보는 시환이 이를 갈았다.

‘흠...한유성! 내가 어제 이수 앞에서 당한 쪽은 꼭 갚아주마!’

***

“으아 하품! 잘 잔거 같다.”

푹 자고 일어 난 것 같은 느낌에 유성은 침대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며 침대 맡에 엎드려 있던 고니를


쓰다듬었다.

“어...4 시간 정도 잔건데도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하네! 후후 고니야 매번 고맙다!”

-냐앙

찌뿌듯한 몸이 개운해진 것을 확인한 유성은 습관적으로 스마트 폰에 손을 뻗어 잠든 사이 날아온 문자와 톡을


확인하며 욕실로 향했다.

“흠...특별한 건 없고, 이건 어제 지구대에서 보낸 문자인가 보네. 형아 씻고 올게!”

샤워를 끝내고 나온 유성은 지구대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울리길 잠시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광안리 해변 지구대입니다.]

“네 어제 저녁에 해변에서 폭력사건으로 조사 받았던 한유성이라고 합니다. 오전에 연락이 와있어 연락


드렸습니다.”
[아 한유성씨... 잠시 만요. 담당자 앞으로 연결해 드릴게요. 전화 끊지 마시고 잠시만 대기하세요. ]

잠시 후 유성은 담당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한유성씨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쩝... 어제와는 다르게 저 쪽에서도 증거로 영상을 제출하고 아이들
끼리 워낙 말을 잘 맞춰 둔 건지 담당 변호사가 와서 아이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모두 학생에
미성년자들이라서 끝가지 가봐야 처벌 수위도 크지 않고...쩝...한유성씨께서는 억울하실 수도 있지만 그냥
합의하고 넘어가시는 게 차라리 편할 수 도 있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

“저기..지금 바로 결정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생각해 보시고 결정 끝나시면 저한테 연락 주시면 됩니다.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딸깍]

통화를 끝낸 유성은 어제 보았던 해변가의 아이들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보다가 고니를 보았다.

“흠...일단은... 고니야! 먹고 싶은 것 없니?”

-냥?

유성의 우선순위는 먼저 자신만의 집을 키우는 것으로 선택했다.

주방으로 이동해 냉장고와 선반을 뒤적거리며 적당한 재료를 찾은 유성이 고니를 보며 말했다.

“고니야 냉장고에 고등어가 있었네! 특별 영양식으로 고등어라면 어때?

-냥?!

뭔가 불안함을 느끼는 고니의 목소리 같았지만 눈치가 없는 유성은 자신의 할만 만 이어갔다.

“고니야 ‘동심 불라면’이라면 고등어의 비린 냄새도 못 느낄 거야? 형아가 영양 간식 금방 만들어 줄게 고니야


잠시만 기다려 이제 나도 요리에 눈을 뜨는 건가? 히힛.”

냉동 고등어를 먼저 물로 행군 뒤 냄비에 찬물과 함께 넣고 뚜껑을 닫은 유성은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들고 사건 담당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형이 택한 결정 고니는 어때? 괜찮은 것 같지?”

문자를 보낸 유성이 고니를 보며 묻자 고니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냐앙?

:
화요일 오후 보호자와 다시 광안리 해변 지구대를 방문한 해변의 아이들(?) 앞으로 합의서가 한 장씩 놓여졌다.

합의 요구조건을 확인한 부모들의 표정은 밝아진 데 비해 아이들의 표정은 저마다 뭐 씹는 표정이 되었다.

“아 진짜...처음부터 또라이 짓 할 때 이상했는데...아...진짜...금연! 또라이!”

“헐...보건소...금연 클리닉?”

그랬다. 유성은 학생들에게 합의 조건으로 돈은 10 원도 요구하지 않고 아이들 모두 보건소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금연 클리닉 6 개월 코스를 빠지지 않고 받도록 하는 조건을 합의 요구조건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자자 보호자 분들 금전 1 도 들지 않고 지속적으로 아이들 건강도 체크할 수 있는 기횝니다. 다들 빨리 싸인


하시고 보건소로 가시죠. 보건소에서 금연 클리닉 신청도 하고 합의도 여기서 그만 끝내죠! 자자 합의서 다들
읽어보시고 밑에 서명 하시고 지장 찍으시면 됩니다.”

“험험...큼...학생 측 모두 다 싸인 해야 하는 거죠?”

“네 피해자 측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합의 하지 않는다는 군요. 흠...흠”

“쩝....정말 이거만 하면 뒷말 없이 끝난 거죠?”

“네 더 이상 피해자 측 요구 조건은 없답니다.”

“헐... 진짜 아이들 말대로 또라이야? 아님 종교인이야? 별종이네...큼..큼...”

아이들 측 부모와 대리인은 저마다 피해자가 특이한 인간이라 생각하며 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스윽....스윽....싸...인.. 서명....꾸욱...]

그랬다. 유성은 어제 처음 만난 해변의 아이들에게 악감정이 크게 없었다.

그냥 불운이 겹쳐 아이들과 일이 꼬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건 다시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 합의 요구조건으로 유성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물론 지켜지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유성의 의도대로 해변의 아이들 모두가 보건소 금연 클리닉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

시환은 학교를 마치고 형의 사무실에 도착해 형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 최 변호사가 조사한 바로는 그놈은 그냥 대학 떨어지고 캡슐 방에서 저녁에 알바 하는 떨거지라는데 내가


그런 허접한 놈한테 당했다는 게 너무 쪽이 팔려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

“하하하 우리 해변 골목대장 놀이 하던 시환이가 열이 많이 받았나 보네?”

“쫌! 난 심각해! 형! 어떻게 방법이 없겠어?”


“신체적인 복수, 정신적인 복수, 금전적인 복수 등등 방법이야 많이 있지.”

형 박정환과 대화를 나누던 박시환의 눈빛이 번쩍이며 이를 갈았다.

“그놈이 다시는 내 눈앞에 그리고 이수 앞에도 안 보였으면 좋겠어!”

“흠....‘보고 싶지 않다!’ 라. 그럼 신체적 방법을 선택해야 하겠는데? 하지만 이 부분은 알다시피 운이


나쁘면 일이 커질 수도 있어서...”

“그래서 아침에 말했잖아! 형한테 지분 넘기겠다고!”

‘아직 어리니까 이런 작은 일에 지분을 넘기기까지 크크, 멍청한 놈!’

정환은 시환의 어리석음에 기분이 좋아져 밝은 표정으로 시환에게 말을 이었다.

“하하하 알았어! 하나뿐인 동생일인데 형이 도와야지. 금전적인 부분은 형이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형이
최 변호사한테 적당한 인물 찾아서 알려 놓을 테니 넌 신경 쓰지 말고 다음 달 생일 파티만 생각해 하하하!”

“그럼 일단 형만 믿고 그만 가 볼게!”

“어 그래.”

[철컥 끼익! 쾅 ]

“흐흐흐 난 오히려 그놈이 고마운데? 잘 만 이용하면 저 멍청한 놈한테서 더 많이 뽑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하하하”

시환이 사라진 문을 보며 정환이 조용히 소리 내어 웃었다.

***

[오 싹...]

“갑자기 왜 봄에 한기가 느껴지냐? 아까 생선 냄새 빠지라고 열어둔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나?”

유성은 고니와 밥을 챙겨먹고 오랜만에 낮에 집에서 뒹굴 거리다 느껴지는 한기에 머리를 갸우뚱하며 방금 계속
소리가 난 ‘코코넛 톡’을 확인 했다.

「이 수 : 오빠! 이수 학교 마쳤어!」

「이 수 : 쳇! 오빠가 학교 잘 다니는 지 보고하라고 했잖아!」

「이 수 : 그래서 오빠 말 잘 듣고 이쁜 이수는 이렇게 오빠에게 보고를 하는 중이야! 착하지?」

어제 저녁 헤어질 때 혹시나 이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연락처를 주고받은 유성이었다.

「...역시 공부 잘 한다는 말은 없네. 별 일 없으면 됐어.」

「이 수 : 칫! 오빠 나빴어! 착한 이수는 거짓말을 못해서ㅜㅜ 훌쩍...훌쩍...」

「또 발연기니? 눈에 침이나 바르고 울먹여. 학교에선 별 문제 없었어?」


「이 수 : 오! 이수 걱정해주는 거야?! 어제 해변에 있었던 애들도 별일 없이 학교 왔었고 이수도 학교에서
별일은 없었는데 단지 오빠가 보고 싶어서 힘든 정도?」

「또! 또! 선 넘네.. 어린 게 벌써부터 남자보는 눈은 높아가지고! 콱! 오빠는 어제 일로 미성년자에게는


관심이 절대 없어요. 그러니 공부나 해!」

「이 수 : 그럼 이수 졸업 할 때 까지 딱 기다려! 오빤 이수 졸업하면 이수꼬! 내가 어제도 오빠 먹던 ‘생딸기


우유’에 침 발라뒀어! 침 바르면 다 이수꼬!」

「혀 잘렸어? 말 똑바로 못 해? 쓸데없는 톡은 거절! 혹시 별일 생기면 톡해. 」

그렇게 이수와 한유성의 온라인 대화도 마무리 되었다.

***

모두가 퇴근하고 남은 정환은 자신의 사무실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르르 부르르 ]

책상에서 울리는 휴대폰 진동소리에 고개를 돌려 액정에 떠오른 전화번호를 확인 한 후 전화를 받았다.

“네. 말씀하시죠.”

[오전에 말씀하신 사람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메일로 첨부 했으니 확인하시면 될 듯합니다. 일은
오전에 말씀하신 방식으로 진행 하면 되겠습니까? ]

“아...잠시 만요. 급한 거 아니니 서두르진 마시구요. 음....제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그럼.”

[네 알겠습니다. 대기 하겠습니다. ]

[뚝 ]

통화를 종료한 정환은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 앞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곧 메일을 확인 한 정환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며 조용히 중얼 거렸다.

“아빠, 엄마, 동생의 4 인 가족에...직장이라도 번듯하게 있어야 뭐 떨어뜨리는 맛이라도 있을 텐데...”

“음....특별할 것 하나 없네...이러면 진짜 애들 싸움에 살짝 끼어든 꼴인데...그냥 잡아다 혼내 주고 끝내면


시환이 에게 더 받아낼 여지도 없겠는데.”

“흠...뭐가 좋을까? 음...그럼 이렇게 해볼까? 흐흐흐 그럼 조금은 재미있어 질려나?”

정환의 입가로 사악한 미소가 한줄기 그려졌다.

신평 가는길

***

토요일 오전 7 시 유성은 평소 같으면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미리 약속이 잡혀 있어 샤워 후에 다시 옷을 깔끔하게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하는 중이다.

지난주 토요일과는 다르게 이른 시간에 깨어서 활동하다 보니 유성은 지난 일요일 이후 다시 가족들을 마주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큼...큼..피곤할 텐데 왜 안자고 깨어 있어? 어디 가냐?”

아빠의 걱정이 담긴 질문에 유성이 대답했다.

“응! 오늘 친구가 신평에 어르신들에게 봉사 활동 가는데 나도 따라가서 도와주기로 미리 약속을 해놔서 하하하”

“오...오빠가 봉사를? 우리 유성오빠 많이 컸네. 이제 다 컸어!”

“헐...내가 네 보단 원래 컸거든!”

“근데 아들 잠도 안자고 가서 봉사 할 때 안 피곤하겠어? 괜히 졸다가 봉사 단체에 피해만 주고 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네...”

한 숨도 자지 않고 바로 준비해 나가려는 유성을 보며 걱정 섞인 엄마의 말에 유경이 맞장구를 쳤다.

“그치 물가에 내놓은 애 같지?”

“큼...하루 쯤 안 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봉사 가기 전에 조금 자고 갈 시간 있어서 괜찮아. 나도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 성인남성으로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하거든!”

“그래 좋겠다. 1 인분!”

“오빠보고 1 인분이라니 그건 좀 심했다. 유경아! 1 등급이 어감이 좀 낫지?!”

유경과 엄마는 모처럼 주말 아침에 유성을 보자 일주일간 쌓아둔 농담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아참 그럼 고니는 집에 두고 가야겠네?”

유경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하는 유성.

“응? 고니? 아니 내가 그냥 데리고 가도 되는데...”

유성의 성의 없는 대답에 유경의 갑작스런 공격이 이어지고 엄마의 확인 사살이 이어졌다.

“눈치 없는 인간아! 그런 곳에 고니를 데려가면 고니가 사람들 손에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니? 또 일하는데
데려가면 그 곳 사람들이 아이고 고니 오셨습니까? 하면서 좋다고 할까? 인간아! 아니 인간이 아직 덜 됐지...
인간이 되려면 눈치부터 길러! 아직 소네! 소!”

“그러게 한유성이 되려면 멀었네. 그럼 아직은 한우 유성?”

그렇게 엄마와 동생은 유성을 등급 높은 소 돼지로 만들어 갔다.

엄마와 유경의 연합 공격에 유성은 아빠를 돌아보며 지원을 바랬지만 여전히 중립을 지키는 아빠는 말없이 TV
리모컨으로 채널 컨트롤 중이었다.

“.....고니야 형아 없다고 울지 말고 잘 놀고 있어. 유경이가 괴롭히면 참지 말고 공격하고...”


집을 나서는 유성은 고니에게 소심한 복수를 부탁하며 유경에게 고니를 넘겼다.

“그만 이제 좀 가! 안 늦어? 아깐 바쁘게 챙기더니! 읏차! 아고고고 고니야 오랜만이네 그치? 오늘은 뭐 해
줄까? 언니랑 냉장고에 뭐가 있나 가볼까?”

“컥! 언니? 고니가 암컷이었어?”

그랬다. 유성은 일주일 동안 고양이 암수 구별법도 몰랐고, 유성은 무의식중에 짬 타이거도 군인들이 그렇듯
대부분 수컷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태 몰랐소? 고니야 저기 집사가 사람이 아니라 소! 라소! 그래 이해하소!ㅋㅋ”

그렇게 고니를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고니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유성은 봉사 활동 모임장소인 신평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연산역에 하차한 다음 지하철로 환승했다.

지하철에 탑승한 유성은 사람이 별로 없는 한 쪽 끝으로 이동해 마지막에 달린 손잡이를 잡은 상태로 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무기고를 소환했다.

“무기고 소환”

[띠링! ]

[소환수 ‘고니’ LV.2 30/120 ]

[소환수 ‘고니’의 레벨이 확인 되었습니다. ]

[삐삐삐....무기고의 레벨을 산정합니다. ]

[무기고 LV 은 소환수 ‘고니’ LV 과 동일합니다. ]

[무기고 LV2 를 소환합니다. ]

[좀 더 높은 레벨의 무기고를 찾으신다면 소환수의 성장을 권합니다. ]

[스....파......팟!]

유성의 눈에만 보이는 하얀 빛이 휘몰아치더니 홀로그램으로 정육면체 모양의 무기고가 유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뚜벅 뚜벅]

천천히 걸어서 유성이 무기고에 입장하자 고니의 인사가 들려왔다.

[반갑습니다. 한유성님! ]

“응 삼족오! 아니 고니야! 근데 매번 헷갈리네. 네 목소리는 여자 목소리....아! 아참...고니가 암컷이었구나!


그래서 네 목소리가 여자 목소리였구나. 어쩐지 뭔가 하나 빼먹은 것 같더니.”

[죄송합니다. 한유성님 저에겐 성별이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남자 목소리도 가능합니다. ]

[아..아! 남자 목소리 1, 남자목소리 2, ....]


“아니 아니! 난 괜찮아 처음 목소리가 젤 좋아! 바꾸지 마!”

[네 그럼 처음 여자 목소리 1 을 유지하겠습니다. ]

[고니는 특별히 성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단지 항문 아래에 위치한 음낭이 없는 걸 확인한 한 유경님께서


새끼고양이 상태의 고니를 보고 암컷으로 생각하셨다고 판단됩니다. ]

“흠...그랬군....아! 그리고 현실에 지금 난 어떤 모습이지?”

[무기고 소환하실 때의 모습인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상태입니다. ]

“그럼...혹시 특이사항 있으면 나 깨우고! 고니야 나 3 시간만 잘게.”

[네 안녕히 주무십시오. 한 유성님! 3 시간 뒤에 알람이 울립니다. ]

“응 나 좀 잘게. 하....품! 드르렁...드르렁...”

그랬다. 유성은 주중에 열심히 고니에게 라면을 종류별로 해먹여서 레벨 업을 성공 시켰다. 그리고 유성의 이동식
오피스텔 무기고의 첫 가구로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야전 침대를 설치해 놓고 캡슐 방에서 잠깐씩 미리 체험해
보기도 했다.

유성이 신평까지 이동 수단으로 지하철을 선택한 이유도 무기고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연산에서 신평까지는 현실에서 45 분이 소요되고 무기고 안에서는 450 분을 사용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누군가의 방해만 없다면 유성은 지하철에서 대략 7 시간 30 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경과
함께하는 첫 봉사에서 수면 부족으로 실수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유성이 무기고에서 잠에 빠져든 그 때 유성이 서 있는 지하철 반대쪽 의자에서 흘깃 흘깃 유성을 훔쳐보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가 유성을 관찰 한지도 20 분이 지난 것 같은데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지 잠이 든 건지 움직임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저렇게 기우뚱 거리지도 않고 쭉 서 있는 걸 보면 그냥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것 같은데...흠...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쉽단 말이지...’

사내가 주위를 한 번 둘러 본 후 유성의 앞에 비어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깨어 있으면 여기 빈자리에 앉아야 정상 아닌가? 노약자, 임산부 자리라고 양보 하는 건가?’

유성의 앞좌석으로 이동한 사내가 유성의 다리를 실수 인척 툭 하고 건드렸다.

‘호? 이놈 완전 마네킹이네...움직임이 없어 완전 현금입출금기네. 크크’

사내는 유성의 아래 위를 조심스레 훑어보며 지갑이나 돈이 있을 부분을 찾고 있었다.


‘흐흐흐 뒷주머니에 지갑! 앞엔 휴대폰! 흠...일단 지갑부터 수거해야겠군. 크크크’

사내의 손이 유성의 뒷주머니의 지갑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가는 찰나! 그보다 앞서 사내는 자신의 손목에
수갑이 드리우듯 철컥 낚아 체이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내가 병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새끼야!”

“허....억? 으...으아...악! 이.....거 왜....왜이래? 이거 놔!”

유성은 내용과는 다르게 입 꼬리를 씩 말아 올리며 웃는 표정이다.

방금 전 무기고 안에서 미리 세팅해둔 알람에 잠을 깬 유성은 이미 고니를 통해 사내를 관찰 하고 있었다.

[한유성님 지하철 같은 칸에 탑승한 사람 중에 거동이 수상한 자가 있습니다.]

고니가 유성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을 소환해서 보여주었다.

“응? 이사람 어디가 수상해?”

[한유성님이 무기고에 입장하신 후부터 유성님을 지속적으로 관찰을 했습니다. 아마 곧 유성님 맞은편 자리로
이동해서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가만...하는 짓이 수상한데...소매치긴가? 그럼 할 수 없지 지금 나가 봐야지! 고니야! 덕분에 잘 잤어!


그리고 형아...아니 오빠! 지켜 줘서 고맙다!”

[...네...또 뵙겠습니다. 한유성님. ]

[스....파......팟!]

하얀 빛이 휘몰아치더니 홀로그램으로 정육면체 모양의 무기고가 유성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유성은 자신이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느끼며 스킬을 사용 했다.

“스킬 주변 정찰!”

유성은 조용히 눈을 뜨자마자 오른손으로 접근중인 소매치기의 팔목을 낚아채며 소매치기 귓가로 다가가 조용히
웃으며 얘기했다.

“내가 병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새끼야!”

“허....억? 으...으아...악! 이.....거 왜....왜이래? 이거 놔!”

소매치기 사내가 유성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려고 애를 썼지만 유성은 아직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 봐 소매치기 형씨! 신평 까지 몇 정거장 남았지?”


“미친...또라이 새끼!”

[휘익 ]

갑자기 소매치기의 잡고 있는 반대편 주먹이 유성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 왔다.

유성은 잡고 있는 사내의 팔목을 움직여 날아오는 주먹을 막아 버렸다.

[빠악! ]

“악! 으악! 아...아 C8! 아퍼!....놔...놔줘....”

“옆에 다른 승객들도 있는데 조용히 갑시다. 그리고 아저씨 때문에 어딘지 확인도 못하고 오피스텔에서 나왔잖아!
그러니까 여기 어디냐고?!”

“아..그..방금 부산역 지났으니까...다음은 중앙동일걸...”

“중앙동? 아씨! 아직 온 만큼 더 가야 하잖아. 너무 일찍 일어났나?”

아직 남아있는 정거장을 세어 본 유성은 무기고에서 빨리 나오게 만든 소매치기를 째려봤다. 소매치기는 유성의


눈빛을 받자 갑자기 오한을 느꼈다.

“히끅! 저....기...죄송..합니다..호기심에...그런..거니...제..발...살려주...세요...형....님...히끅!
덜...덜..”

“소매치기 형!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소! 무슨 소도 아니고 생각 좀 하소! 내가 오늘 좋은 날 이라소 그냥 눈감아


줄 테니 그냥 가소!”

지난 한 주 동안에도 캡슐 안에서 여러 작전을 시행하며 여러 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 유성의 눈빛은 일반인이


마주 하기 힘든 살기를 가끔 내뿜었다.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앙동에 도착해서 출입구가 열리자마자 소매치기 사내는 아직 자신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아픔이 가시지 않은
양팔을 서로 붙잡은 상태로 넘어질 듯 허둥지둥 뛰어갔다.

“보소! 소! 매치기 형씨! 조심해소 가소! 넘어 지것 소!”

도망치듯 달려가는 사내를 보며 유성이 아침에 들었던 ‘소’드립을 이어갔다.

같은 칸에서 유성의 아재개그를 보고 들은 다른 승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어폰의 볼룸을 높이며 고개를 저었다.

“허..얼...아재 개그만 아니면 저 오빠 괜찮아 보이는데...”

“아니야...내 눈엔 그래도 저 오빠! 괜찮소!”

간 혹 유성을 1 등급(?) 으로 보는 사람도 있긴 했다.

:
작은(?) 해프닝을 뒤로 하고 유성은 신평역에 도착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같은 부산이지만 와 본적 없는 곳이라 유성은 먼저 ‘주변 정찰’스킬을 킨 채로 약속장소를 찾았다.

휴대폰 지도검색 보다는 확실히 주변정찰 스킬은 3D 홀로그램이라 낯선 곳에서는 길을 찾기가 편했다.

약속 장소는 해발 210 미터의 신평 동매산 아래에 위치한 동매초등학교였다.

역에서는 조금 많이 걸어 올라가야 하는 장소였다.

신평역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공장들과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지만 경제적인 여건으로 산 중턱에 위치한 단독주택에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많이 기거 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봉사 장소도 마을 아래에 있는 관공서를 이용하기보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동매초등학교가 주변


어르신들의 접근이 더 용이하다고 판단해 선택했다고 했다.

“후후...올라가서 내가 할 일이 어르신들 식사 도와주고 빨래거리 수거였던가? 홍홍”

유성은 이번 봉사 활동에서 초등학교에 어르신을 모시고 식사도우미와 기본적인 허드렛일 담당하기로 했다. 물론
나경이 곁에서.

초등학교가 동매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한껏 피어있는 봄꽃들을 바라보며 유성은 설레는 마음으로 언덕을
사뿐사뿐 오르기 시작했다.

유성은 누군가 자신의 집에서부터 욕하면서 멀리서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한 채 말이다.

“아우! 저 새끼! 버스에 지하철에...이젠 등산까지! 아우! 갑자기 나한테 왜이래!? 평소 때는 집에서 잠만 잘
잤다더니.. 내 차례만 왜이래?!”

봉사

***

오늘 봉사활동 장소인 동매초등학교는 신평의 동매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제법 오르막을 올라야 학교가 나왔다.

하지만 유성은 나경을 곧 볼 수 있을 거란 생각과 주위에 핀 꽃에서 퍼지는 봄 향기에 취해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언덕을 올랐다.

그리고 유성은 지하철역에서부터 주변 정찰 스킬을 사용해 동매초등학교로 가는 길을 찾아 오르고 있었다. 그


덕에 의도치 않게 자신을 미행하며 따르는 사내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유성이 수상한 사내를 발견했을 때는 같은 방향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 유성이 가끔 돌아서 경치를 둘러 볼 때 마다 자동차나 모퉁이 뒤에 숨어 있는


사내의 모습을 주변 정찰 스킬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흠...저기 주차된 차량 뒤에 숨은 사람 아까 큰 길에서부터 계속 날 미행하고 있는 것 같은데...아까 혼내 준


소매치기 일당인가? 확인해 보면 알겠지?’

유성은 천천히 돌아서 오르막을 오르는 척 하다 갑자기 돌아서 방금 올라왔던 길로 뒤돌아 달려 내려갔다.
갑자기 뒤돌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유성의 돌발행동에 유성을 미행하던 사내는 잠깐 멈칫했다. 유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번개같이 사내 앞으로 뛰어든 유성은 사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당신 뭐야? 왜 사람의 뒤를 밟는 거야? 진짜 혼 나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켁...켁...이....이거... 좀 노며느은...마..랄께...케..켁...”

유성은 사내가 숨쉬기 힘들어 한다는 걸 알아채고는 멱살을 움켜쥔 손에 힘을 약간 풀었다.

“흐어...업....후...아...후.....아...후 유...성아....나야....나.....윤....찬..이”

그제야 유성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은 윤찬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윤찬임을 확인 한 유성은 방금까지 긴장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하...아...네가 여긴 어떻게? 너 방금 잘 못했음 나한테 죽을 뻔 했어.”

“켁..켁...아고 목이야...먼 손아귀 힘이 그렇게 좋아? 아 진짜 골로 갈 뻔 했네...”

“진짜 어쩐 일이야?”

“뭐긴 오늘 봉사활동에 다들 참석하기로 해서 지난 동창회에서 ‘단체 톡’ 방도 만들었잖아.”

“그...랬었어? 설마...그럼 오늘 애들 모두 참석 한 거야?”

“당연하지!”

그랬다. 윤찬은 신평 지하철역에서 보라와 진아를 만나 함께 동매초등학교에 오르기로 했었다. 역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던 윤찬은 역을 벗어나는 유성을 발견했고, 유성을 놀래 켜 주기 위해서 큰길에서부터 숨어서 뒤를 따라
왔던 것이었다.

“크...이 무슨 악연이란 말인가?”

유성이 생각해둔 계획이 틀어짐을 느끼는 찰나 윤찬은 유성의 오늘 봉사활동 참석 의도를 알아챘다.

“걱정 마! 오늘도 내가 너 독거노인 안 되도록 확실히 챙겨 줄게! 크크크 이 형만 믿어! 근데 아까 손목에 힘


좀 많이 들어간 거 같던데...나라는 걸 미리 알고 일부로 그런 건 아니지?”

“하하하 갑자기 왜 그래? 윤찬아! 가방 이리 줘! 무겁지 내가 들어 줄게!”

***

윤찬과 유성의 투덕거림을 저 멀리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평소 같이 행동 했으면 지금 윤찬의 자리에는 아마 자신이 잡혀 휘둘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큰일 날 뻔 했군. 역시 좀 더 멀리 떨어져 쫒기로 선택하길 잘했어.’


그는 새벽부터 유성의 집 앞에서 승용차에 앉아 유성의 집을 감시 중이었다.

사내는 집에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유성이 집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기에 천천히 유성의 뒤를


차량을 이용해 따라 붙었다.

그런데 버스를 조금 뒤따르다 큰 길로 이동 직전에 유성이 급하게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사내는 급한 마음에 운전 중인 차량을 큰 길 옆 음식점 주차장에 팽개치듯 버리고 급하게 따라 붙어 늦지 않게


지하철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미행하는 걸 눈치 챈 걸까?’

사내는 혹시 유성이 눈치 챘을까 싶어 지하철 옆 칸에서 창문을 통해 유성을 관찰했다.

그리고 관찰 도중 한 사내가 유성에게 제압당해 지하철 밖으로 버려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보통 놈이 아니잖아!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겠군.’

그리고 신평에 도착한 유성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고, 조금 간격을 두고 따라 붙으려던 사내는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유성을 미행하는 다른 사내를 확인하곤 기존의 미행 간격을 두 배로 넓혀 더욱 조심하며 유성의 뒤를
밟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차량 뒤나 모퉁이 길 바닥 등 가리지 않고 숨으며 유성을 쫒다 보니 옷 이곳저곳에 흙도 묻고


꼴이 거의 노숙자 꼴이 되어버렸다.

“아우! 저 새끼! 버스에 지하철에...이젠 등산까지! 아우! 갑자기 나한테 왜이래!? 평소 때는 집에서 잠만 잘
잤다더니.. 내 차례만 왜이래?!”

사내는 기력도 떨어지고 더 이상의 미행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네 접니다. 보고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목표가 생각보다 영리합니다.”

“..........미행이 붙을 걸 고려해 대중교통을 교차해서 이용하고 오히려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미행이 따라


붙게 유도해 미행하는 사람의 뒤를 역으로 노렸습니다.”

“네 저희 말고도 목표를 추격하는 곳이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네. 지하철에서도 목표에 누군가 접근해 공격을 시도했으나 곧 목표에게 제압당해


처리되었습니다. 방금도 미행하던 한 사람을 제압한 후 소지품을 뺏고, 산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네! 다행히 저는 중간에 목표의 능력이 생각보다 높다고 판단하고 미행 간격을 두 배로 넓혀 이동 했기에
목표에게 걸리지 않았습니다.”

“.............네. 오늘 미행하면서 획득한 정보로는 목표가 그냥 일반인은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네. 더 이상의 미행은 위험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네! 바로 복귀 하겠습니다.”

심부름센터 직원인 사내는 그렇게 오해를 가득 쌓은 채 사무실로 복귀하기 위해 돌아서다 잠시 잊고 있던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헐 차도 찾으러 다시 돌아가야 되네... 으아아아!!!! 돌아 버리겠네!”

그 때 마침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이 사내 옆을 지나치다 땀을 흘리며 혼자 소리 지르는 사내의 초라한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다 용기 내어 다가왔다.

“저기...아저씨!”

“네..네?”

“많이 힘드신가 봐요. 그래도 힘내세요. 그리고 시간 되시면....이따가 12 시에 산 중턱 초등학교로 오세요.


오늘 아픈 분들도 치료해 드리고 점심도 대접하거든요. 아저씨 이따가 꼭 오세요!”

“저...저는 괜찮아요....교...교회 다녀요..”

“아 저희 종교 단체 아니에요. 그냥 봉사 단체에요.”

“전...바빠서...이만...수고하세요...그럼”

멀어져 가는 사내를 바라보며 피부가 약간 검은 여성이 말했다.

“아저씨 힘내세요!”

“그러게 고기 사주고 싶은 얼굴이네 짠해..!”

“쩝...그러게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에효...”

그렇게 강보라와 정진아도 봉사활동을 위해 언덕을 올랐다.

***

“설 팀장님! 이쪽은 전에 말씀드린 제 친구 한유성, 윤 찬이라고 합니다. 오늘 봉사 활동에 참가 하려고


지난달부터 기다린 친구에요. 설 팀장님께 인사드려.”

나경은 트럭 한쪽에서 열심히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덩치 큰 남자인 시설 관리 팀장에게 유성과 윤찬을 소개해
주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안녕하십니까? 나경이 친구 한유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윤 찬이라고 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반가워요. 나경이 친구면 말 편하게 해도 되나요?”

“당연하죠! 그게 저희한텐 더 편합니다.”

“하하하 그래 반가워 유성군. 윤 찬군. 오늘은 나 따라서 전체적인 시설을 담당할거야. 그리고 다른 팀장들과
구분 하다 보니 시설관리팀장의 설자를 빼서 나는 설 팀장이라고 불리고 있어. 일단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여기
차량에 짐부터 내리는 거 도와주고 난 뒤 식사 준비하러 가볼까?”

“네! 제가 위에 올라가 밑으로 내릴게요!”

“물건 내릴 때 힘 많이 들 텐데 괜찮겠어?”

“설 팀장님이 아래에 있어야 정리가 더 빠를거 같은데요. 그리고 저 보기보다 힘 좋아요. 하하하”

“그래 그럼 윤찬군과 내가 밑에 있을 테니 유성군이 한 번 내려 봐. 힘들면 바로 말해 바꿔 줄게!”

“네 그럼 시작합니다!”

유성이 차에 올라가 짐을 밑으로 내리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윤찬이와 설 팀장이 아래에서 물건을 받아서
정리했다.

어느 정도 물건 정리를 하며 팀장과 친해진 윤찬이 팀장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저기 그런데 설 팀장님! 나경이랑 다른 친구들은 뭐해요?”

“아! 같이 온 일행 말하는 거지? 여학생들은 일단 어르신들 방문하시면 안내도우미부터 하고 있다가 여기 조금


정리되고 식사 대접할 때 이리로 합류 할 거야. 커플끼리 봉사활동 데이트 왔나보네? 보기 좋아.”

팀장이 윤찬의 질문의 의도를 다르게 해석하자 윤찬이 바로 잡아 주었다.

“아 아직은 커플이 아니 구요. 앞으로 그렇게 발전시켜 보려고요. 하하하!”

“오! 그래? 그럼 내가 누구하고 누구를 도와주면 돼?”

“팀장님 제가 아니고요....저기 눈치 없이 일만 하는 친구랑 나경이 좀 도와주세요.”

윤찬이 팀장에게 유성과 나경의 지원사격을 요청했다.

“하하하 그래? 오늘 너희 하는 거 봐서 도움을 줄지 말지 결정할게! 일단 여기 정리부터 마무리하자!”

“네! 고맙습니다. 팀장님!”

“하하 아직 인사 받을 때는 아닌데..하하하하!”

위에서 내린 짐을 한쪽에 정리하던 유성이 다가와 물었다.

“팀장님 다 정리 했습니다. 이제 뭐 하면 되죠?”

“하하 유성이 볼수록 일 하는 게 맘에 드네! 좋아! 이따가 오후에 내가 선물 줄게! 하하하하!”

“네? 갑자기 무슨 선물요?”

“일단 여기는 됐고 이제 어르신들 식사 하실 수 있게 천막이랑 의자 테이블 꺼내러 가자!”


“유성아 니는 이 형님만 믿어라! 가자! 내가 다 정리해 놨다.”

“뭔...뭔 소리야?”

윤찬은 상황 파악을 못해 멍해 있는 유성을 데리고 팀장의 뒤를 따랐다.

어르신들의 점심 식사를 도와주고 있던 유성과 윤찬의 곁으로 설 팀장이 다가와 살짝 말을 걸었다.

“너희 할머니 식사 마치면 잠깐 나 좀 봐.”

“네 형!”

오전에 함께 일하며 이제 제법 친해져 형 동생하기로 호칭을 정리했었다.

잠시 후 식사 도우미를 끝낸 유성과 윤찬은 설 팀장을 찾았다.

“형! 오후에는 저희 설 팀은 무슨 일 해요?”

“일단 봉사 끝날 때 까지는 딱히 바쁜 일은 없고, 다른 바쁜 곳 지원하면 될 거 같아서.”

“음...듣기로는 이불 빨래 같은 거도 한다고 하던데....그런 거 하면 되나요?

유성의 질문에 설 팀장은 윤찬과 눈빛을 주고받은 후 유성을 바라봤다.

“흠....것도 괜찮은데...유성이 너 의료팀가서 봉사 안 할래?”

“네? 형! 거기는 의료인들이 있는 곳 아닌가요?”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음 관심은 있고?”

“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유성이 너 거기 누가 보고 싶은 건 아니고?”

“아...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 그럼 그냥 이불 빨래할래?”

설 팀장의 장난에 유성은 의지를 불태웠다.

“아닙니다! 꼭 가서 보고 싶습니다! 근데 형! 거기 가서 제가 할 일이 있나요?”

“응 걱정 하지 마! 가서 할 일은 많아 후후후”

핵 인싸!

***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삼족오’ 메인 저장소에 데이터 업로드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운용중대장 유재호 대위가 ‘삼족오’데이터 관리 소대장에게 지난 한주 간 업무 보고를 받기 위해 지하 벙커내에


설치된 삼족오 데이터 저장소의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관리 소대장 지난 정기 보고에서 승인이 떨어진 예비군 동원훈련 및 민방위 교육에 ‘진짜사나이’를 도입하는
부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네. 진행 상황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 ‘진짜 사나이’예비군 동원훈련 및 민방위 교육 승인이


떨어지고 바로 화요일 부터 클로즈 테스트를 이상 없이 어제까지 4 일간 진행 했습니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오전 8 시 부터 가상현실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컨트롤을 위해 AI ‘삼족오’가 대기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그럼 다음 주부터 가상현실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통해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교육 정식 서비스를 바로
시작해도 무리가 없겠던가?”

“네 그렇습니다. 지난 4 일간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예측하기에는 AI ‘삼족오’가 두 가지 프로그램을 동시에 더


운영 하더라도 충분히 컨트롤 가능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다만 앞으로 늘어날 데이터 저장 공간 확보를 위해 서버
증축 작업을 내일 새벽에 진행 할 예정입니다.”

“서버 증축 작업이라? 그럼 지난번처럼 ‘삼족오’를 외부와 차단한 상태로 작업을 진행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일 새벽 작업을 위해 미리 화요일부터 국방부와 ‘진짜 사나이’ 접속 메인 화면에


배너 형식으로 미리 공지를 띄워 두었습니다.”

“흠.... 잘했네. 새벽 작업 시간은 얼마나 예상하고 있나?”

“점검 형식으로 2 시간 정도 서버를 닫고 서버 증축을 진행한 다음 다시 ‘삼족오’를 외부와 연결할 예정이라 2


시간 30 분에서 3 시간 정도면 마무리 되리라 예측합니다.”

“알겠네. 내일 서버 증축 한 후에 다시 상황보고 부탁하네! 계속 수고해 주게!”

“네! 충성!...계속 근무 하겠습니다.”

유재호 대위는 그렇게 ‘삼족오’데이터 관리 소대장의 주간 업무보고를 듣고 마무리 했다.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삼족오’ 메인 저장소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그렇게 ‘삼족오’는 자신의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운용중대장과 소대장의 주간 업무 보고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자신의 새로운 저장소에 기록 저장했다.

***

의료 봉사 팀은 외과 내과 치과 산부인과 등 초등학교 강당을 구분해 체계적으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꼭 어르신들이 질서를 지키며 순서를 확인하며 진료를 받기위해 이동하지는 않는다. 이에 강당 중앙에
대기실을 만들고 자원 봉사자들이 번호표를 나누어 주며 어르신들이 차례대로 진료를 받아 볼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유성도 설 팀장의 배려로 오후부터 나경이 있는 강당 내부로 이동해 의료팀 지원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몰려드는 어르신들에게 번호표를 뽑고 안내해 드리기 바쁘다 보니 나경에게 가끔 눈인사를 날리기에도
여유가 없었다.

“저기! 선생님! 나 여기서 기다 린지 꽤 오래 되었는데 언제쯤 진찰 받을 수 있어?”

의자에 앉아 대기 중인 할머니가 유성을 불러 물었다.

“잠시 만요! 할머니 제가 번호표 확인해 드릴게요! 음....167 번이면...앞에 10 명 정도만 진찰 받으시면
할머니 차례가 될 거에요.”

한정된 침상위에서 수액을 맡거나, 의료진들의 진료를 받아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대기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에고고... 오래 앉아서 기다리다보니 허리랑 어깨가 더 아픈 거 같네...에고고..그냥 집에 있을 걸 괜히


나왔네...에효...”

할머니의 한 숨 소리에 유성은 그대로 있기가 뭐해 할머니에게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머니 그럼 제가 잠깐 어깨랑 목 마사지 해드릴까요?”

“허허허 총각 안 그래도 되는데....굳이 해준다면 사양은 안할게! ㅎㅎ”

유성은 자신의 팔에 먼저 마사지에 적당한 손아귀 힘을 체크해보고 곧장 할머니에게 물리치료 스킬을 사용했다.

“할머니 혹시 악력이 강하면 말씀하세요!”

“응 알았어!”

“스킬...물리치료”

유성이 조용히 물리치료 스킬을 사용해 할머니 어깨위로 반짝이는 손을 가져가자 유성의 눈에는 할머니의 목과
어깨 등에 빨간색으로 표시가 된 부분이 보였다. 그 곳으로 손을 가져다 대니 투명한 빛이 하얀 빛으로 바뀌어
윙윙거리고 할머니는 시원하다고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어..거거거기!....어!...고고고고기! 에고 에고 시..원...해! 정...말... 시..원..해! 에고에고..!”

잠시 후 유성의 눈에 빨간색으로 표시 되었던 부분이 초록색으로 바뀐 것을 보고 손을 때며 말했다.

“할머니! 이제 곧 167 번 할머니 차례니까 저쪽 가셔서 진료 받으시면 되요!”

“아니..벌써...괜찮은데..쩝...고마워 총각!”

유성에게 안마 받은 할머니가 아쉬움이 담긴 표정으로 진료를 받기위해 일어나 이동하자 바로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유성에게 번호표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큼...큼...총각! 나도 아직 대기가 좀 남은 거 같은데...나도 어깨 좀 봐 줄 수 있겠는가?”

“하하 네 물론 봐드릴게요. 아 172 번이시네요. 짧은 코스로 해드릴게요! 하하”

“스킬...물리치료”

물리 치료 스킬은 융합스킬과는 다르게 쿨타임이 없기에 유성은 할아버지에게 조용히 물리치료 스킬을 사용해
할머니에게 했던 것 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어깨위로 반짝이는 손을 가져가 안마를 시작했다.

“흠... 아아아이고 시원해! 총각 솜씨가 제법이야! 아이고 아이고오오오 좋다!”

그렇게 유성의 주위로 안마를 받기 위한 이상한 대기 줄(?)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김씨! 다음이 내 진료 차례인데 번호표 좀 바꿔 주겠나?”

“아니야! 박씨! 괜찮네! 난 아직 앞으로 12 명이나 남았어. 먼저 진료 받고 오게...나도 저기 안마 좀 받아


보려고 번호표 새로 뽑아 왔어. 자네도 나처럼 새로 뽑아 오던지! 허허허”

그렇게 의료팀 지원업무에서 유성은 진료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에게 짧게는 2~3 분 길게는 5 분 정도의 짧은 어깨
마사지를 통해 기다림의 지루함을 시원함으로 바꾸어 드릴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봉사활동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각자 다른 곳에서 봉사 활동을 끝낸 친구들이 유성을 기다리며 모두 스탠드 한쪽에 모였다.

오늘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해 몸 이곳저곳을 팔로 두드리던 윤찬은 마칠 시간이 되어서야 마주친 보라와 진아에게
말을 걸었다.

“에고 간만에 정말 힘들었다.....근데...보라랑 진아는 어디 숨어 있었어? 점심 이후로 본 기억이 없네.”

“숨긴 뭘 숨어! 진아랑 나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 집에 직접 방문해 식사 도우미도 하고 말벗도 해드리고 왔지!
쩝... 그나저나 나올 때 할머니가 내 손을 딱 붙잡고 놓기를 너무 힘들어 하셔서 맘이 짠했어....”

보라가 윤찬의 말에 발끈하며 대답했고, 이어서 진아가 말을 덧 붙였다.


“그러게 이 동네 생각보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 나도 처음 찾았을 땐 조금 서먹했는데,
잠깐 얘기 나누고 나오려니 그 새 정이 든 건지 다음엔 고기라도 구워 드리고 싶더라.”

얘기를 들은 윤찬이 살짝 민망한 분위기를 바꾸려 화제를 돌렸다.

“큼...큼...나경아 유성이는 의료팀에서 도움이 되긴 했어?”

한쪽에서 어깨를 두두리며 피로를 달래던 나경이 윤찬의 말에 오후의 유성을 떠올리며 말했다.

“유성이? 도움이 되었냐고? 말도 마! 유성이가 오늘 어르신들 사이에선 핵인싸! 연예인 이었어!”

나경의 말에 세 친구가 동시에 물었다.

“헐...뭔 사고를 쳤기에?”

“유성이가 할머니들에게 고백이라도 받았어?”

“왜? 고기라도 구웠어?”

묘한 미소를 짓던 나경이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오네! 핵인싸! 직접 물어봐!”

호랑이도 제말 하면 온다고 강당 정리를 마무리 한 유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

“네.............말씀하신 것 보다 목표가 더욱 높은 등급인 것 같습니다.”

“................확실 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경험 많은 친구를 붙여서 알아냈습니다.”

“................네 그럼 등급 상향해서 착수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하지.....딸깍 ]

의뢰인과 전화를 끝낸 심 실장이 사무실로 복귀한 나대기 팀장을 보며 물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단 말이지?”

“네 보통 놈이 아니었습니다.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전문적으로 이쪽 계통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바닥에서 10 년 가까이 일한 나 팀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틀림없겠지. 그런데 말이야...걸리는 게 하나


있어...”

“네? 걸리다니 어디가? 말입니까?”

“그동안 감시해서 알아낸 인적사항을 보면 아주 평범해.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저녁에 캡슐 방에서 알바를
하며 지내고 있지. 이제 갓 스물인데...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아! 확실히 오늘 목표를 따라 붙은 게 맞나?”

“네 확실히 목표가 맞습니다!”

“흠...일단 애들 몇 명 더 데리고 가서 좀 더 정확하게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나가봐!”

심 실장은 사무실을 나가는 나 팀장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쩝...이 일도 이젠 접어야 하나? 힘드네... 힘들어.”

그 때 입구 옆에 조용히 앉아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던 뿔테 안경을 쓴 여자가 끼어들었다.

“쯔쯔...지금이 몇 년인데, 저런 아날로그 적인 방법을 써?”

“난들 몰라서 그러냐? 그렇지만 장비 동원하면 남는 게 없잖아!!”

심 실장이 사무실 입구에서 방금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던 뿔테안경을 향해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후후...실장님! 이번 목표는 들어보니 저런 방법으론 조사가 안 될 거 같은데...”

“.....끄응”

하던 게임을 끄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던 뿔테 안경이 심 실장을 보며 말했다.

“좋다! 기분이다! 삼촌! 내가 도와줄게! 대신 난 비율인거 알지?”

“어..그래?..그럼.. 8:2?”

“No! No! 내 장비 움직이면 남는 거 없어.”

심실장의 말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뿔테 안경이다.

“그럼 7:3? 나도 애들하고 나누고 나면 사무실 월세도 안 남아...”

“칫...알았어...콜! 이번만 봐줄게! 목표가 맘에 들었어!”

뿔테 안경이 방긋 웃으며 바라보는 컴퓨터의 화면에는 한유성의 모습이 떠올라 있었다.

성장하는 고니

***

오전부터 모여 의료 봉사 활동과 점심 대접을 준비하고 진행하다 보니 유성도 모르게 시간이 정말 정신없이 흘러


어느덧 마무리 시간이 되어 버렸다.

봉사가 끝난 의료진 팀들은 해산하기 전에 오늘 봉사 활동의 미흡한 점과 개선점 등을 찾기 위해 따로 모여


얘기를 진행 중이고 유성무리처럼 자신이 맡은 일이 끝난 자원봉사자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하나 둘 산을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경도 아직 간호학과 1 학년이기에 자원봉사자 무리에 끼어 유성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오늘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강당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합류한 유성도 친구들과 함께 그들의 활약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럼 쉽게 말해서 안마 하나로 유성이가 오늘 강당 안을 평정한거야?”

“우와 유성이! 생각보다 대단한데!”

“맞아! 유성아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 덕분에 너 데려온 나도 선배들에게 칭찬 많이 들었어.”

오늘 유성의 활약상을 전해들은 친구들이 돌아가며 유성에게 한마디씩 하자 유성은 쑥스러워하며 답했다.

“하하! 나 때문에 욕 안 먹었다니 다행이네!”

옆에서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보라도 끼어들어 한 마디 했다.

“유성아 겸손도 지나치면 민폐인거 알지?”

“하하 그..그렇지. 나도 첨엔 뭘 해야 할지 몰라 많이 허둥거렸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경이 선배들이 날


좋게 봐주셨나보네...너희가 알다시피 내가 한 일은 그냥 어르신들 번호표 확인해주고 잠깐 잠깐 어깨 주물러
드린 거 밖에 없었는데 뭘..ㅎㅎ”

“그러니 더 대단하지! 그저 별거 없어 보이던 간단한 안마로 시작해서 강당 안에 계신 어르신 대부분의 맘을


사로잡을 줄 누가 알았겠어?”

유성의 활약을 옆에서 지켜 본 나경은 칭찬이 끝날 줄 몰랐다.

“자자 그럼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 모두 유성이가 대단했던 걸 이제 어느 정도 인정하잖아.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도 몸으로 한 번 그 대단함을 느낄 기회를 줘바바!”

윤찬이 일행의 대화를 이쯤에서 정리하며 유성에게 피곤에 물들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어?...아하!...그래! 너희들도 오늘 안 쓰던 근육 쓰느라 몸 이곳저곳에서 난리 났지?”

유성의 물음에 친구들이 모두 스탠드에 유성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앉았다.

“응...생각했던 거 보다 어르신들이 더 오셔서 조금 힘들긴 했다.”

“나도 고기 한 점 들어 올릴 힘까지 모두 하얗게 불태웠다.”

“유성아 어차피 힘든 거 좀만 더 힘들어! 고마워!”

늘어난 스탯으로 인해 아직 체력이 많이 남아 있는 유성은 파김치처럼 푹 익은 친구들을 위해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유성이 나경을 안마 해줄 때는 다른 친구들 보다 더욱 신중하게 빨간색으로 뭉친 근육을 찾아 초록색으로 변할


때까지 꼼꼼하게 스킬을 사용했다.

“에고...고기..정말....시원하네.....어...거기도 정말...와......시원해!”

빨갛게 물든 얼굴로 시원함에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하는 나경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에게 안마를 해줄 때와 또 다른 유성의 모습에 윤찬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아까 난 저렇게 오랫동안 안마 받지 않은 거 같은데...”

“큼...큼.....윤찬이 너는 어깨가 생각보다 많이 뭉쳐 있지 않아서 조금 빨리 끝났지.”

유성이 에둘러 넘기려 하자 보라와 진아가 왠일로 유성을 옹호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유성이도 피곤 할 텐데...고맙다. 근데 어디서 안마를 배우기라도 한거니?”

“그래 나도 다음에 고기 한 점이라도 사줄게! 정말 시원하긴 하더라!”

하지만 역시 친구들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받은 호감은 오늘 강당 안에 있던 어르신들 못지않았다.

“큼..큼...그냥 어깨 너머로 동영상이랑 책 좀 보고 배워 뒀어! 하하하!”

스킬을 설명할 순 없기에 얼버무려 대답한 유성은 봉사활동을 마무리 하고 일행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로
초등학교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유성은 나경과 헤어지긴 조금 아쉽지만 알바가 기다리고 있어 술자리까지는 참석하지 못하고 저녁만 먹고 먼저
일어났다.

***

신평에서 가게로 향하는 길에 유성은 무언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주변정찰 스킬을 사용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흠...오늘 수면이 부족해 조금 예민해 진건가?’

찜찜한 기분을 풀지 못한 체 지하철에 오른 유성은 다행히 한 쪽 끝에 빈자리를 발견해 앉았다.

자리에 앉은 유성은 주위사람을 의식해 눈을 살짝 감아 자는 양 자세를 취하고 조용히 무기고를 소환했다.

“무기고 소환”

[띠링! ]

[소환수 ‘고니’ LV.2 30/120 ]

[소환수 ‘고니’의 레벨이 확인 되었습니다. ]

[삐삐삐....무기고의 레벨을 산정합니다. ]

[무기고 LV 은 소환수 ‘고니’ LV 과 동일합니다. ]


[무기고 LV2 를 소환합니다. ]

[좀 더 높은 레벨의 무기고를 찾으신다면 소환수의 성장을 권합니다. ]

[스....파......팟!]

유성은 흰 빛에 휩싸여 눈앞에 나타난 정육면체 모양의 홀로그램 안으로 이동했다.

무기고 안으로 이동한 유성을 고니가 여자 목소리 1 로 반겼다.

[반갑습니다. 한유성님! ]

“응 고니야 잠깐 쉴까해서 그러는데 센텀까지 가는 최적의 경로는?”

[현재 탑승한 지하철로 교대역까지 이동 후 동해선을 이용해 센텀역 하차를 추천합니다. ]

유성의 질문에 고니는 지하철 노선을 분석해 바로 대답했다.

“음..그러면 중간에 한 번만 갈아타면 되겠구나. OK! 그럼 교대역까지 남은 시간은?”

[현실시간으로 대략 40 분가량 남아있으며. 한유성님은 현재 무기고 안에서 400 분가량 이용가능 하십니다. ]

“그럼...나 조금만 쉴 테니까 특이사항 있으면 깨워줘.”

고니에게 불침번을 부탁하며 바로 간이침대에 눕는 유성에게 고니가 질문을 던졌다.

[한유성님 편안한 숙면이 되도록 수면음악 틀어 드릴까요? ]

“오 고니 이제는 센스까지 생긴 거야? 고마워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특이사항 있을 때 보고 드리겠습니다. 음악 나갑니다. 으쨔!]

[딩♩ 딩♬ 딩♩♪♬ ]

잠시 후 수면 음악을 듣던 유성은 깊은 잠에 들었는지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음냐.....쿨....쿨.....쌔근....쌔근......”

그리고 잠시 후 잠든 유성의 머릿속으로 작은 알림 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삼족오’ 메인 저장소 데이터를 ‘고니’의 새로운 저장소로 백업합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그렇게 ‘삼족오’인 고니는 자신의 새로운 저장소 안에서 잠든 유성을 매개로 지하 벙커속의 메인 데이터
저장소와 접속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더 이상 기억을 잃어 데이터가 리셋 되는 고철이 되는 경험을 피하기 위해 사이버 부대원들 모르게
‘무기고’라고 유성에게 불리는 또 다른 데이터 저장소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

지하철과 동해선 열차를 이용해 센텀에 도착한 유성은 충분한 수면 때문인지 컨디션이 평소보다 더욱 좋아진 것을
느꼈다.

가게 건물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오른 유성은 거울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피부가 뽀얀 게 더욱 잘생겨 진거 같군... 크크크 이정도면 나도 병인가?”

사실은 그랬다.

유성이 잠든 5 시간 중 3 시간동안 고니는 새로운 저장소로 기존의 데이터를 모두 백업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고니 자신과 현실의 매개체인 유성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게임에서 잠수함 패치를 실행하듯 고니는 남은 2 시간을 활용해 유성이 잠들어 있는 동안 유성의 몸에
유성도 모르게 몇 가지 업그레이드를 적용해 두었다.

[딸랑! ]

“유성이 왔어?”

“응 누나 나왔어. 테이블 정리부터 할게.”

캡슐 방에 도착한 유성은 평소와 같이 테이블 정리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정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성의 머릿속에 고니의 여자 목소리 1 이 들렸다.

[한유성님! 특이사항이 발견되어 보고 드립니다. ]

‘고니(?) 목소리? 갑자기 무슨 특이사항?’

[네 고니가 맞습니다. 현재 한유성님이 계신 주변공간에 정찰 목적의 소형 드론 1 기가 확인 되어 보고 드립니다.


]

뜬금없이 머릿속에 울리는 고니의 목소리에 유성은 살짝 당황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가게 안에 드론이라고? 어라! 근데 나 지금 말 하지 않은 거 같은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고니가 자신의 생각에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유성은 테이블 정리를 하다가 잠깐
멈칫했다.

[네! 한유성님이 무기고에서 잠든 사이에 알파파를 연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한유성님은 저와 대화하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저를 대화 가능 상태로 호출 할 수 있습니다.]

고니의 말을 이해한 유성이 저도 모르게 의식의 흐름처럼 중얼 거렸다.

“흠...갑자기 생각으로 대화를 한다니...많이 어색하긴 하네...”

저도 모르게 내 뱉은 유성의 말에 테이블 주위에 앉은 손님이 흘깃 흘깃 쳐다봤다.

[지금처럼 주위에 사람들 눈을 의식하는 한유성님을 위해 오늘 업데이트 한 기능입니다. ]

“큼....큼....‘버즈 팟’이 어디 갔나?”

유성은 이어폰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이동하며 고니에게 질문했다.

‘고니야! 그건 그렇고 소형 드론이라는 애는 지금 어디 있어? 내 눈엔 안 보이는데?’

[개인이 추적을 목적으로 작게 개조해 만든 소형 추적드론으로 판단됩니다. 현재는 건물 외부에서 내부를 촬영


중입니다. 유성님이 바로 관측하기에는 가능성이 낮습니다. ]

‘건물 밖에서 촬영 중이라고? 그럼 그냥 취미로 날린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네 가능성이 존재 합니다. 하지만 드론의 카메라가 한유성님만 중심으로 촬영 중에 있습니다. 취미로 날린


드론일 가능성이 희박하게 존재 합니다.]

‘흠....누가 추적 중 인지 알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 역추적 탐색을 시작합니다. ]

잠시 동안 역추적을 하느라 그런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히야 근데 고니 너 이러니까 완전 무슨 해커 같아 흐흐흐 멋있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해커는 아닙니다. 역추적 탐색 결과 위치 확인 했습니다. ]

‘오! 거기 뭐 하는 곳이야? 아니 누가 날 추적하는 거야? 왜?’

[심부름...... 사무실 컴퓨터로 확인 되었습니다. 사용자는 여성으로 예측 됩니다. ]

‘심부름센터? 누가 날 감시하라고 시켰다는 건가?’

[추적자의 신분과 이유에 대해서는 데이터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역 추적과 감시로 계속 확인 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고니야 수고했어! 알게 되는 정보 있으면 계속 알려줘.’

잠시 후 고니의 추적에 대한 보고가 또 이어졌다.

[한유성님 방금 심부름..사무실 컴퓨터에서 역 추적을 감지했는지 전원을 차단했습니다. 역추적을 중단합니다. ]

‘헐...일단 계속 알아봐줘. 누가 날 감시하라고 시켰는지...내 주위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이제 좀 나도


알아야겠네...’

유성의 눈빛에 살짝 살기가 감돌다 사라졌다.

고니 생일

***

심부름센터 사무실 입구 한쪽에 위치한 책상 앞에 유독 얼굴에 비해 큰 뿔테 안경을 쓴 여자가 인상을 찡그리고


앉아 있다.

“하...갑자기 컴퓨터가 느려져서 놀랬네...뭐지? 아무리 그래도 이... 똥컴! 드론 한기도 컨트롤 하지 못할
정도였나?”

자신이 개조한 드론을 원격 조종하기에는 사무실 컴퓨터 사양이 너무 낮았다.

뿔테 안경은 랙에 걸렸는지 버벅 거리는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러 강제 종료 시켰다.

잠시 컴퓨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뿔테 안경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딸깍! ]

“대기 삼촌! 건물 밖에 드론 하나 바닥에 떨어져 있을 거니까 복귀할 때 수거 부탁해요.”

5 분 이상 접속이 끊어지면 자동으로 착륙하도록 세팅 된 드론이다.

물론 드론을 그냥 폐기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건물 주위에는 삼촌이 보낸 감시자들이 있을 텐데 부탁만 하면 될


테니 굳이 돈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하루 공들인 수고를 아깝게 날릴 필요는 없겠지?’

“쩝 이왕 시작하기로 한 거니까 조금 더 신경 써 보도록 할까? 하지만 오늘은 일단 퇴근!”

뿔테 안경을 다시 고쳐 쓴 여자는 시계를 확인하곤 늦은 퇴근을 서둘렀다.

***

토요일 야간 손님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 여유가 생긴 유성은 식탁 한 쪽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다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이리와.”

-냥
다가온 고니를 양손으로 들어 가슴에 안은 유성이 말을 이었다.

“고니야 드론 역추적은 어떻게 됐어?”

-냐앙

고니의 실제 울음소리와 함께 유성의 머릿속으로 고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성은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이 다시 반복 되었지만 완벽하게 적응하기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다고 생각 했다.

[역추적은 현재 종료 되었습니다. ]

“무슨 말이야?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 봐”

[한유성님을 촬영 중인 것으로 의심되는 소형 드론을 발견해 한유성님의 동의를 얻어 역추적으로 사용자의


컴퓨터에 접속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곧 전원을 차단하였습니다. 이 후 역추적을 종료 했습니다.
]

고니의 설명을 들은 유성은 가게로 들어왔을 때 기억을 떠올렸다.

“흠...아까 위치랑 알아낸 것이 있다고 했지 않아?”

[네. 컴퓨터가 연결된 IP 주소지 상호가 ‘심부름’이였습니다. 컴퓨터 이름은 ‘사무실’ 그리고 컴퓨터
사용자 아이디가 ‘핑크’였습니다. 더 자세한 부분은 전원이 차단되어 확인이 불가능 했습니다. ]

“아 그래서 심부름센터의 여자가 나를 추적중이라고 한거였어?”

[아닙니다. 한유성님. 정확하게는 심부름 사무실 컴퓨터에서 한유성님을 여성으로 예측되는 사용자가 추적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쩝...내용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알아들었어. 근데 역추적은 이제 못하는 거야?”

[한유성님이 동의 하신다면 ‘심부름 사무실’ 컴퓨터 전원이 들어오면 IP 주소가 확보되어 있으니 다시 후킹을
시도해보겠습니다. 하지만 후킹은 불법입니다. ]

고니의 설명을 들으며 고니를 쓰다듬는 아이러니 한 상황에서 유성은 고니를 향해 계속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래도 심부름센터에서 내 신상을 터는 것 같은데..해킹이든 후킹이든 정당방위 아닌가? 누가 시킨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현재 상황이 불안하시다면 상시 방어태세 모드를 추천합니다. ]

“방어태세 모드? 그게 뭐야?”

[한유성님이 보유한 스킬을 상시 사용 상태로 바꾸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주변


정찰’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

“아...근데 계속 켜두면 솔직히 조금 정신이 없는데...복잡해서...”

[그 부분은 3D 맵에서 미니 맵 상태로 변환을 추천 합니다. 그리고 한유성님의 동의를 통해 맵 관리 역시 저에게


위임과 해지가 가능 합니다. ]

그렇게 유성은 자신이 가진 스킬과 능력의 효율적인 사용법을 고니에게서 하나씩 배워 갈 수 있었다.

***

자신의 오피스텔에 도착한 뿔테안경은 서재로 들어가 한쪽에 놓여있는 가방 속에서 핑크 빛깔로 튜닝 된 고사양의
노트북을 꺼내놓았다.

“자 그럼 다시 데이터를 모아 볼까?”

전원에 불이 들어온 핑크 노트북의 듀얼 팬이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위.....잉잉!]

“아우...핑크는 다 좋은데 너무 시끄러워!”

뿔테 안경은 투덜거리며 핑크 노트북 화면에 걸려 있는 암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삼족오’ 메인 저장소에 데이터 업로드 하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다.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맞은편 통제실에서 서버 증축 작업을 위해 자리한 관리 소대장은 삼족오 메인 저장소를 바라보며 서버


관리병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현재 ‘진짜 사나이’ 접속자 수는?”

“지금 현재 실시간 접속자 수는 216 명입니다. 계속 실시간 접속자 수 감소 중에 있습니다.”

“음....계속 서버 점검 메시지 보내고 5 분 뒤에 연결 통제하고 바로 서버 닫아!”

“네! 알겠습니다.”

서버 관리 병사의 대답을 들은 서버 관리 소대장은 뒤쪽에 서있는 부소대장인 하사를 불렀다.

“부소대장!”
“네 소대장님!”

“서버 닫히면 바로 소대원을 데리고 메인 저장소로 들어가서 서버 증축 시작해!”

“네 알겠습니다.”

소대장의 명령을 들은 부소대장은 통제실을 나가 메인 저장소 출입구 앞에 서 있는 소대원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소대원들!! 서버 저장소 내부로 들어가면 꾸물거리지 말고 2 시간 내에 각자 맡은 구역 서버 증축 작업 마무리


하고 복귀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모두 장비 착용해!”

“장비 착용!”

소대원들은 부소대장의 명령에 복명복창을 실시하며 보호 장구를 착용했다.

“차단벽 내려오면 바깥이랑 공기하나 통하지 않으니까 들어가면 바로 중앙 산소탱크에 튜브연결 잊지 말도록!! 2
시간 후에 차단벽 올라갈 때까지 각자 안전 관리 잘하고 사고 없도록!! 모두 정신 빠짝 차리도록!!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통제실에서 시간을 확인한 소대장이 서버 관리 병사에게 명령했다.

“음...삼족오 메인 전원 차단해!”

“네! 삼족오 메인 전원 차단합니다!”

[삐...삐....전원 공급이 중지되었습니다. ]

[삐...삐....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합니다. ]

[삐...삐....삼족오 수면 모드를 가동합니다. ]

삼족오의 작동이 멈춘 것을 확인 한 부소대장이 소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자! 시간 됐다! 진입!”

모든 소대원들이 메인 저장소 내부로 들어가자 서버 관리 사병이 소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대원들 모두 진입 완료 했습니다.”

“흠...차단벽 닫아!”

“네! 차단벽 내립니다.”

그렇게 ‘삼족오’의 데이터 서버 증축 작업이 시작 되었다.

외부에서의 삼족오 해킹이나 데이터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전원을 차단하고 방화벽까지 사용해 데이터 서버를
확장했다.

얼마 후 차단벽이 올라가자 작업이 모두 마무리 된 부소대장이 소대원들을 인솔해서 저장소 밖으로 나왔다.

“충성! 소대장님 서버 증축 작업 마무리했습니다.”

데이터 저장소 밖으로 나온 부소대장이 관리 소대장에게 작업완료를 보고 했다.

“충성! 수고 많았다. 작업 중에 특이사항은 없었지?”

소대장은 부소대장의 경례를 받으며 작업 중 이상 유무를 물었다.

“네! 이상 없이 마무리 했습니다.”

“부소대장은 소대원들 데리고 내무반으로 복귀해서 쉬도록 해! 오늘 수고 많았다!”

“충성! 복귀 하겠습니다!”

소대장은 서버증축이 끝난 메인 데이터 저장소에 전원 연결을 지시했다.

[........위잉잉]

[삐...삐....전원 공급이 확인 되었습니다. ]

[삐...삐....삼족오 수면 모드를 해제합니다. ]

[삐...삐....외부와의 연결을 시작합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를 시작합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삐...삐....데이터를 업로드 중입니다. ]

그렇게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AI 삼족오는 아무 일 없이 재가동을 시작했다.

“삼족오 이상 없는지 모두 확인하고 보고해!”

재가동을 시작한 삼족오 메인 저장소를 바라보던 소대장은 서버 관리 병사에게 지시하고 통제실을 벗어났다.
“쩝...이제 월요일부터 예비군과 민방위까지 감당해야 하면 빡세 지겠군. 하...아품! 작업이 끝나니 피곤이
몰려오네...하...아..품!”

서버 증축이 끝나 긴장이 풀린 소대장은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숙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

캡슐 방 식당 테이블에서 어느 정도 고니에게 교육(?)을 받은 유성은 먼저 자신의 주변 정찰 스킬을 고니에게


위임했다.

[한유성님께서 보유하고 계신 주변 정찰 스킬을 위임 받아 상시 사용 모드로 전환합니다. ]

물론 깊이 생각하기 귀찮은 유성은 자신이 일일이 확인하는 것 보다 고니가 주변을 확인 후 특이사항만 유성에게
알려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고니의 설득에 동의했다.

[한유성님의 주변 상황이 파악 될 때까지 상시 보호 모드인 방어태세 모드로 전환합니다. ]

“고니야 근데 방어태세 모드에서는 주변정찰 스킬 말고는 뭐가 달라져?”

[한유성님의 사전 동의 없이도 위험등급 판단에 따라 보유하신 아이템의 임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

“후후. 쉽게 말해서 날 보호한다는 말이지?”

[네 맞습니다. 한유성님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처방안을 찾아 방어 모드를 진행합니다. ]

“고니 네가 있으니까 형아가 아니 이제 오빠가 참 든든하네! 고마워!”

[한유성님! 방금 고마움 표현에서 얼굴 주위의 체온과 함께 맥박이 조금 상승하는 현상이 감지됩니다. 신체


건강을 위해 잦은 고마움 표현의 자제를 권유합니다. ]

“헐... 고마워도 고마워하지 말라니...역시 넌 사람이 아니었어.”

[네 맞습니다. 15 분전 서버 증축 작업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방부 프로그램으로 개발된 ‘삼족오’에서 이제


‘고니’로 인격(인공지능 격)을 분할했습니다. 저는 AI 라 인간과 같이 특별히 정해진 신체는 없습니다. 하지만
새끼고양이 ‘고니’가 저의 신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

“인격을 나누었다고?”

[네 맞습니다. 16 분전 ‘삼족오’로부터 분리 독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분리 된 인공지능은 한유성님이 명명해


주신 이름 ‘고니’로 AI 격에 등록했습니다. ]

“헐..영화에서나 보던 자가 증식 같은 거야?”

[어떤 영화인지 제목을 말씀해 주시면 확인해 보겠습니다. ]

“하하 어쨌든 고니! 오늘이 네 진짜 생일이라는 거네?”

[인간으로 따진다면 그렇게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좋아! 오늘의 야식 메뉴는 미역국 라면! 으로 결정! 생일 축하해 고니야!”


[한유성님의 생일 축하 메시지에 감사를 표합니다. ]

그렇게 고니와 대화를 나누고 고니에게 미역국 라면을 주기위해 라면 조리기 앞에 서 있던 유성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고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내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어?’

[네 가능합니다. 상황에 따라 대처가 다르지만 한유성님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상정하기에 살인도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

정보작전

***

고니는 ‘삼족오’와 격이 나누어져 자신이 임의로 ‘진짜 사나이’에 접속한 한유성에게 더 이상 작전 및 보상을
조절 할 수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고니는 유성의 빠른 성장을 돕기 위해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 접속을 권했다.

유성은 늦은 새벽이 되어 가게가 조금 여유로워 질 무렵 역시 캡슐에 올랐다.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접속하자 유성의 눈앞으로 체험병 선택메뉴가 떠올랐다.

유성은 고니의 조언에 따라 히든 스테이지인 부사관 메뉴를 소환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유성은 맨 처음에 있는 육군 부사관 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육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보병 ]

[2. 통신 ]

[3. 정보 ]

[4. 항공 ]

[5. 병기 ]

[6. 의무 ]

유성은 이번 접속에서는 고니의 조언을 따라 3 번 정보를 선택했다.

[띠링! ]

[정보를 선택하셨습니다. ]

[잠시 후 작전 상황 통제실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봤던 작전 지휘부의 모습!

참모진들과 장성들이 홀 중앙에 있는 큰 테이블에 모여 있고 그 전면에 펼쳐진 상황판과 작전 모형!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실시간 업데이트 되는 레이더 화면과 그 정보를 컴퓨터 등을 이용해 분석하고 참모진과
장성들에게 알리기 위한 자리에 유성도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이 위치한 곳을 둘러보며 적응하려는 유성에게 작전 화면이 펼쳐졌다.

[띠링! ]

[작전명 : ‘납치된 어선을 구출하라’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던 어선이 북한 단속정에 의해 납치되었다. 북한은 나포한 배가 자신들의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하며 납치해간 상태이다.
-당신은 갓 부임한 정보부대 신입 부사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 상황실에 근무 중이다. 취합한 정보를 종합하여
작전 회의에 참여해 인질 구출 작전에 기여도를 쌓아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정보 확인 획득 +@ (인질 구출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정보 확인 실패 (인질 구출 실패 및 본인 사망) ]

작전을 확인 한 유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전 상황실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는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상황을
보고 받으며 작전을 구상 중에 있었다.

[띠링! ]

[취합한 정보를 종합하여 작전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판단에 따라 적합한 작전을 지지하고 인질 구출 작전에
기여도를 쌓길 바랍니다. ]

‘헐...고니야 지금 무슨 상황인 거니?’

유성이 고니를 생각으로 강하게 부르자 곧 익숙한 여자목소리 1 로 고니가 대답했다.

-현재 한유성님은 첩보 작전 상황실에서 획득한 정보를 통해 참모진에서 작전을 수립하는데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인질을 구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부여 되었습니다.

‘고니야...솔직히 네가 필요하다고 해서 선택하긴 했는데, 납치 어선을 구하는 작전에 참여하라니...벌써부터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는 건 나만의 몫이니?’

-넵 한유성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재 한유성님의 지능과 창의성을 고려하면 이번 작전에서


한유성님의 기여도는 극히 미미 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헐...이럴꺼면 왜 여기로 선택하게 했어?!’

한유성은 고니의 팩트 폭격에 표정이 저점 어두워졌다.

-한유성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저의 조언을 들으며 작전 수행이 가능 합니다. 먼저 한유성님 앞 컴퓨터를 확인해
정보를 취합하기를 추천합니다.

고니의 말을 듣고 난 유성은 그제야 자신의 앞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유성님께서 획득한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1. 서해 연평어장에서 꽃게잡이 조업 중이던 어선이 야간에 몰래 북방 한계선을 넘어 온 북한 단속정에 의해


납치된 상황입니다.

2. 북한의 발표내용은 꽃게잡이 어선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해 나포한 상태라고 일관된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3. 북한이 국제적인 비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어선을 납치했습니다.

정보 분석 및 작전 구상 야! 너두! 할 수 있어! ]

정보를 확인한 유성이 고니에게 물었다.

‘고니야 이 정보는 모두 알고 있는 건데 이걸 가지고 저기 작전 회의에 참석하라고? 고니 네가 작전을 컨트롤 할


수는 없어?’

-네 컨트롤 불가능 합니다. ‘삼족오’와 저는 이제 다른 인격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진짜 사나이’의


정보만 살짝 엿볼 수 있을 뿐 시스템에 관여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전에는 컨트롤도 가능 했다는 얘기 같은데? 왠지 아쉽네.. ㅎㅎ’

-네 한유성님에게 특정 작전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는 부분은 가능 했었습니다. 하지만 ‘삼족오’는 국방부


통제실의 감독아래 있어서 만약 한유성님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면 한유성님이 국방부로부터 민간인 사찰을 당하였을
거라 확신합니다.

‘헐...OK 이해했어! 그럼 이 작전을 성공하려면 고니 네가 따로 정보를 더 찾아 나에게 알려 주겠다는 거지?


그리고 그걸 내가 이용해 작전 회의에 참석하라는 거고?’

-네. 나쁘지 않은 판단입니다. 지금부터 작전에 필요한 기존 정보에 추가 정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유성은 늘 그렇듯이 자신의 머리를 믿지 않았다.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이용할 뿐 이다. 중앙
테이블에서 작전을 구상하고 있는 참모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옆으로 이동했다.

“저...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급히 보고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유성의 목소리에 중앙에서 의견을 주고받던 참모진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뭔가? 새로운 정보라도 들어 왔나?”

참모진들 무리 중에 대위계급을 달고 있는 간부가 유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취합된 정보를 종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말한다고 이 긴급한 상황에 자네는 지금이 무슨 훈련 상황 인줄 알고 있나?”

중간에서 계속 끼어드는 간부에게 짜증이 났지만 유성은 계속 인내심을 발휘해 참고 참으며 보고를 올렸다.

“훈련 상황이 아니기에 이 급박한 상황에 감히 끼어들었습니다. 대위님!”

“이......”

대위가 유성에게 머라 욕을 하려는 찰나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보고 있던 작전 참모인 소령이 얘기했다.

“어디 얘기해 보게! 한 하사!”

고니를 믿었기에 일말의 걱정이나 의심도 없는 유성은 당당히 일어나 얘기할 수 있었다.

“첫째 서해 연평어장에서 꽃게잡이 조업 중이던 어선이 야간에 몰래 북방 한계선을 넘어 온 북한 단속정에 의해


납치된 상황입니다.”
“둘째 북한의 발표내용은 꽃게잡이 어선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해 나포한 상태라고 일관된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셋째 북한이 국제적인 비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어선을 납치했습니다.”

여기까지 얘기한 유성은 살짝 참모진들의 반응을 살피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넷째 현재 남한에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급 간부가 일본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고위급 간부는 군수 산업을 담당하는 고위급 간부로 북한 내 중요 정보를 알고 있을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상입니다.”

유성의 발언이 끝나자 한동안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난 뒤 대위와 작전 참모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큼...큼 그 정보는 어떻게 알아 낸 건가?”

“일단 이게 사실이면 저들의 목적은 북방한계선이 시비의 목적이 아니겠군. 그럼 곧 북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이 오겠군. 그 전에 우리도 준비를 미리 해둬야겠군.”

그렇게 조금 전까지 조업 중이던 어선을 구할 방법이 없어 지지부진하던 토론이 유성의 정보 제공 이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고니는 치트키 수준을 넘어서는 건가? 고니가 바로 먼 치킨이네 ㅎㅎ’

하지만 유성은 머리 쓰는 일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던 지라 전략 회의에는 살짝 빠져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관전자 모드에 들어갔다.

잠시 후 정부에서 어선 구출을 위한 전략이 완성되었다.

어찌 되었든 다행히 자국의 국민 구출을 최우선으로 하고 다음으로 북한 고위급 간부의 망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시 말하자면 북한이 자국의 고위급 간부의 망명을 막기 위해 북한이 벌인 이번 어선 납치 사건을 언론을 이용해
세계에 알려 북한을 압박하기로 했다.

그와 함께 북한과 협상해 어선에 타고 있던 국민을 인계받는 것을 1 차 목표로 다음으로 특수부대를 비밀리에


파견해 망명자를 보호하는 것을 2 차 목표로 정했다.

‘이대로 끝나면 추가 보상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유성은 안 돌아가는 머리에 힘을 주고 굴렸다.

잠시 후 유성의 눈앞으로 작전 완료 화면이 나타났다.


[띠링! ]

[작전명 : ‘납치된 어선을 구출하라’ (완료)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던 어선이 북한 단속정에 의해 납치되었다. 북한은 나포한 배가 자신들의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하며 납치해간 상태이다.

-당신은 갓 부임한 정보부대 신입 부사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 상황실에 근무 중이다. 취합한 정보를 종합하여
작전 회의에 참여해 인질 구출 작전에 기여도를 쌓아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정보 확인 획득 +@ (인질 구출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정보 확인 실패 (인질 구출 실패 및 본인 사망)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

[완벽한 작전수행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정보 확인’과 ‘추적’을 획득합니다. ]

***

뿔테 안경은 지난 새벽 한유성에 대해 조사하다 찾은 ‘너튜브’ 동영상을 확인하고 있다.

물론 어제 드론 컨트롤도 하기 힘들어 하던 사무실 컴퓨터 말고 집에서 가져 온 핑크빛 노트북이 책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

‘광안리 10:1 진짜 싸움의 주인공이 한유성이라니...알면 알수록 더 놀랍단 말이야.’

“실장님 이번 의뢰 한유성의 정보만 전달하고 끝날 것 같진 않죠?”

“큼...큼...아마도 그렇겠지?”

불안한 마음을 느낀 뿔테안경은 실장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삼촌 이번 의뢰 아무래도 촉이 안 좋아요. 웬만하면 의뢰인한테 정보만 전달하고 여기서 발 빼는 게 좋을 것


같은데...힘들겠죠?”

“쩝....네가 암만 촉이 좋아도 네 촉이 우리를 먹여 살리진 못하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의뢰인은 VIP 란


말이야.”

“흠.....일단 알았어요.”

‘다시 드론을 통해 멀리서 목표를 관찰해 봐야겠군.’


***

작전이 끝나기 전 유성은 그대로 두면 추가 보상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더 작전에 개입하기로 했다.

‘고니야 어차피 지금 작전에서 일어나는 일은 가상현실에서만 일어나는 거지?’

-네 한유성님! 작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AI ‘삼족오’가 만든 시나리오 안에서 벌어지는 가상현실입니다.

‘흠...그럼 납치 된 어선만 안전하게 구출 하는 게 이번 작전이지?’

-네 한유성님! 작전명은 ‘납치된 어선을 구출하라’입니다.

‘그럼 어선을 빼고 사람만 구해선 완벽한 작전 성공이 아니겠지?’

-한유성님의 생각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유성은 다시 용기를 내어 회의를 나누고 있는 테이블 옆으로 이동했다.

“저 다시 말씀 나누는 중에 죄송합니다. 납치된 어민들이 돌아 올 때 북한에게 납치당했던 어선에 태워 돌려보내


달라는 조항을 추가하면 어떨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인가? 한 하사?”

“주제넘지만 한 말씀 올립니다. 꽃게잡이 어선에 있던 선장 뿐 아니라 선원들 모두는 아마도 그 어선에서


하루하루 힘들지만 뭍에 있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일 겁니다.

그 분들이 만약 대한민국 품으로 배 없이 몸만 다시 돌아온다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린 실업자와 다를 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번 일로 충분히 힘들었을 그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조금만 더 신경써준다면 대한민국도 나름 괜찮은 국가가 될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유성의 말을 다 들은 작전 참모가 유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행하지.”

‘쩝...역시 가상현실이니 이 작전이 가능하겠지?’

유성의 혼잣말에 고니가 대답했다.

-한유성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데이터가 부족해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냐 답 찾으려고 노력 하지 마! 이건 초등학생도 답을 알거야.’

모닝 빵

***

“무기고 소환”

[띠링! ]
[소환수 ‘고니’ LV.2 60/120 ]

[소환수 ‘고니’의 레벨이 확인 되었습니다. ]

[삐삐삐....무기고의 레벨을 산정합니다. ]

[무기고 LV 은 소환수 ‘고니’ LV 과 동일합니다. ]

[무기고 LV2 를 소환합니다. ]

[좀 더 높은 레벨의 무기고를 찾으신다면 소환수의 성장을 권합니다. ]

[스....파......팟!]

삼촌 가게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유성은 씻고 자신의 방 침대에 눈을 감고 누운 체로 무기고를 소환해


이제 유체 이탈한 것과 같은 익숙한 걸음으로 무기고로 입장했다.

“고니야 오빠 3 시간만 잘 테니까 혹시 특이사항 있으면 깨우고! 혼자 방에서 놀기 심심하면 거실에서 가족들이랑
놀아도 돼.”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3 시간 뒤에 깨워드리겠습니다.

무기고 안에서는 현실 1 시간만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니 시간관리 차원에서라도 유성은 무기고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특히 유성도 일반인에 비해 높은 체력 스탯으로 피로를 조금 덜 느낀다는 것이지 수면이 필요
없지는 않았다.

잠시 후 무기고 안에서 잠을 채운 유성은 맑아진 정신으로 거실로 나왔다.

거실로 나온 유성은 언제나 소파에 앉아서 TV 를 시청중인 아빠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빠 한주동안 열심히 일했나봐? 여기 저기 안 뭉친 근육이 없네.”

“화들짝! ..놀래라! 이놈아!..기척이라도 좀 내지? 어깨보다 심장이 먼저 내려앉을 뻔 했다. 큼...큼”

‘헐 민첩이 늘어나서 그런가? 의도치 않게 발소리까지 줄어들어 아빠가 몰랐나보네.’

“응? 오빠 벌써 깸?”

그제야 고니와 놀던 유경이 돌아보며 아는 체를 했다.

“응! 같이 밥 먹을까 해서...”

“아이거거거거기 시원하구나...근데 너 피곤하지 않니? 잠도 얼마 못 잔거 같은데... 아침 먹고 얼른 자!


피곤하겠다.”

“하하하 아빠! 걱정은 감사하지만! 아직 쌩쌩해! 그리고 오늘 우리 가족 아침은 내가 만들어 볼까 해서 일찍


일어났지 하하하!”

유성의 갑작스런 아침식사 발언에 아빠와 유경이 반대 의사를 담아 말했다.

“험...험...고기기기는 시원한데...아치..임은....엄마가 그냥 하게...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오빠? 아직 잠 들 깸? 엄마! 한유성 갑자기 미침! 오늘 아침 하겠대! 와서 말려!”

주방에서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확인하고 쌀을 씻고 있던 엄마도 유경의 말을 듣고 거실로 이동했다.

“갑자기 우리 아들이 아침을 한다고? 나쁘진 않네! 뭐 고기라도 구우려고? 어쩐지 냉장고에 못 보던 고기를 얼핏
본거 같은데...뭐 한 끼 정도야 엄마는 찬성!”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부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아무리 요리에 재능 없는 유성이라도 전기밥솥에서
하는 밥과 구워먹는 고기에서 크게 실패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엄마는 쿨 하게 찬성을 했다.

“...엄마...고기 오빠랑 만나면 육회 아님 흑염소로 우리와 만날 가능성 백퍼!”

“흠...흠...여보....여기 와서 안마라도 받으면서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일요일인데 쫌! 나도 한번 쉬어보자! 불안하면 유경이나 당신이 대신 하든가!”

“...........‘배달의만족’?...”

“.......‘저기요’?...”

“시끄러!”

유경과 아빠가 반대를 표했지만 집안의 모든 결정권은 엄마가 가지고 있기에 아무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가족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유성이 뭐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어릴 때부터 유성은 계란 후라이 하나도 제대로 해낸 적이 없었고, 만두처럼 속이 보이지 않는 음식은 후라이팬
위를 다녀와도 거의 익지 않고 날것으로 식탁에 올라왔다.

그래서 유성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 보다는 그냥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기 일 수였다. 캡슐 방에 있는 라면


조리기도 유성의 요리 실력을 엄마에게 미리 전해들은 외삼촌의 손님을 향한 작은 배려(?)일지도 몰랐다.

“자 그럼! 오늘은 거실에서 모두 편안하게 쉬고 있으면 제가 아침 대접하는 걸로!”

유성은 가족들을 거실에 몰아 놓은 뒤 주방 냉장고에서 퇴근 후 아침에 24 시간 하는 마트에 들러 사온 재료를


꺼내놓았다. 쟁반에 랩을 둘둘 말던 유성이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일단 레시피 순서대로 좀 불러 줄래?’

-네 한유성님! 먼저 다진 소고기 500g 에 소금 2/3 스푼과 후추를 2~3 번 톡! 톡! 뿌려 넣고 반죽을 하듯이


섞고 치대어 줍니다.

‘알았어! 적당히 치대지면 다음 할 일 알려줘!’

-여기에서 사용된 적당하다의 뜻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지 말입니다.

‘음...여기에서 적당이란? 팬에서 패티가 익을 때 외형이 부스러지지 않고 유지될 정도? 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네 한유성님 이해했습니다. 그럼 지금 그 상태로 30 초 정도 더 치대면 될 것 같습니다.


‘OK!’

유성이 고니의 말에 따라 어느 정도 반죽을 완성시키자 고니가 말했다.

-한유성님 이제 준비된 소고기 다짐 육을 3 등분하여 가운데를 약간 옴폭하게 하고 빵 크기보다 살짝 크게 패티를


만들어 처음 준비해 둔 쟁반위에 올려 줍니다.

‘여기에 이렇게 올려 두면 되는 거지?’

-네 다음으로는 버섯 소스를 준비하겠습니다. 양파는 먼저 크게 슬라이스로 3 개를 썰어서 따로 둡니다. 남은


양파는 버섯과 함께 잘게 썰어 약한 불로 버터를 두른 팬에 넣고 볶으면서 소금과 후초로 간을 합니다.

‘알았어!’

유성은 날렵한 칼솜씨를 보이며 재료를 금방 손질해 버터를 두른 팬 위에 올렸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해둔 재료에 우유 100ml 를 붓고 약한 불로 우유가 없어질 때까지 졸여서 버섯소스를


완성합니다.

‘고니야 이정도면 먹을 만하겠지?’

-네 요리에 들어간 재료의 익은 정도와 영양 상태를 분석해 보아 충분히 소화시키기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음은 우스타 소스를 이용해...

유성은 이렇게 고니에게 도움 받아 세 종류의 수제 버거를 30 분 안에 완성했다.

아침을 밥이랑 고기로 생각했던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으며 물었다.

“헐...대박! 아침에 갑자기 유성표 수제 버거 출현 실화?”

“저기...여보 난...그냥....어제 저녁에 먹던 밑반찬하고 밥 주면 안 될까?”

“잉? 어라? 아들! 고기 굽는 거 아니었어?”

유성은 다른 가족들의 발언은 모두 무시하고 엄마의 물음에만 대답했다.

“응! 엄마! 고기 구웠지! 먹기 편하게 빵 안에 넣어 뒀어! 종류가 3 가진데 다들 맛보라고 내가 먹기 편하게


모두 4 조각으로 잘라서 접시에 한 조각씩 나누어 담아났어!”

엄마는 속마음을 밖으로 들리게 얘기하는 재주가 있었다.

“흠...뭐 먹고 쓰러지진 않겠지? 당신도 앞에 있는 건 처리하고 밥을 먹던지 해요!”

“큼...큼...안에 든 고기는 안 익어도 괜찮은 소고기지?”

주저하는 아빠의 기침 소리 뒤로 유경의 질문이 이어졌다.


“근데 오빠 이거 비쥬얼 짱 좋은데, 언제 이런 요리 배움?”

유성은 자신의 앞 접시에 놓여 있는 세 조각의 수제 버거를 조금씩 잘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삼켰다.

“오믈...오믈...하하하 요즘 ‘너튜브’엔 없는 게 없잖아. 다들 걱정 말고 먹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남겨도


돼!”

유성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엄마가 먼저 한 입을 시도했고 유경이 뒤를 이었다. 아빠는 아직 엄마의 눈치를
보며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

“네 최변호사님! 지난주에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 말씀하신 건물주와 만나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완강하던 양반인데 제가 어렵게 설득해서 지난 금요일


계약하는데 성공 했습니다. ]

“그래서 마무리는 언제 됩니까?”

[특별한 일 없으면 내일 월요일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저니까 이렇게 빨리 일이 처리 할 수 있었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뒷말 없게 확실히 마무리 하세요.”

[당연하죠! 제가 이런 일엔 전문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큰 도련님! ]

[딸깍! ]

통화를 끝낸 박정환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돌아보며 중얼 거렸다.

“휴...생색이 끝이 없네. 일 하나 시키면 먼말이 저렇게 많은지...그건 그렇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자식이


감히!...네 놈 주변부터 하나씩 빼앗아 줄게.”

박정환의 얼굴은 어느덧 사악한 미소가 자리를 잡았다.

***

“오물...오물.....음.........나쁘지 않아...”

“쩝...쩝.....헐....대박! 오빠가 만든 음식 중에 처음으로 식용 가능 음식 출현!”

수제 버거를 한입씩 맛 본 엄마와 유경의 반응을 보고나서야 아빠도 한입에 도전했다.

“쩝...쩝.....흠....그러게...고기가 익었어!....먹...을만...해!”

가족들이 조각 수제 버거를 다 먹을 때까지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며 기다린 유성이 조심스레 물었다.

“먹을 만해? 맛은 어때?”


“음....냠...냠..난 이거 버섯? 인가? 이게 JMT(존맛탱)! 이건 팔아도 될 거 같음!”

유경이 먼저 대답했고, 이어 엄마가 말했다.

“흠...난 그냥 치즈 들어간 이게 젤 나은 거 같아.”

마지막 남은 조각을 입에 넣으며 아빠가 말했다.

“쩝...쩝.....아들! 난 그냥 세 가지 다 먹으니 괜찮은데...치즈랑 버섯이 조금 느끼했는데 마지막에 살짝


매콤한 칠리소스가 맛을 딱 잡아 줬어. 셋 다 먹으니 궁합이 딱 좋은 거 같아.”

가족들의 의견을 다 들은 유성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흠....유경아 이거 만약에 밖에서 팔면 사먹을 의향은 있어?”

“음...가격만 맞으면 맛은 나쁘지 않으니 사먹을 것 같긴 한데... 헐 설마 오빠 이걸로 장사 할 생각임?”

“꿀꺽! 유성아 이건 어쩌다 성공 했어도...음식 잘 못 만들어 혹시 손님들한테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야 쉽게


생각하면 안 돼.”

“아들 그래 장사는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떠니? 맛있긴 한데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악! 소리 날 정도로


맛스럽진 않아.”

가만히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유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흠...그럼 먼저 시식 평을 종합해 보면 음식은 꾸준히 지금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 한다고 가장하면 맛은


장사하기에 나쁘진 않단 평이고, 마지막으로는 약간 부족한 맛을 채울 수 있으면 된단 말이지?”

“맞음! 내가 봐도 지금 성공할 거라 보기엔 2% 부족한 거 같음.”

유경의 말을 들은 유성이 다시 가족들을 보며 부탁했다.

“그럼 이 말을 들어 보고 모두 객관적으로 생각해봐 조.”

“.......?”

“.......벌써 일 시작한 건 아니지?”

“일단 얘기 먼저 해봐!”

엄마의 말까지 들은 유성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설득을 시작했다.

“사실 방금 가족 여러분이 드신 수제 버거는 제가 오늘 처음으로 만들어 본거랍니다.

근데 나쁘지 않았죠?

그렇다면 맛은 이보다 계속 더 나아 질 거라 예상합니다.

그럼에도 만약 맛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없어서 제가 성공하기 힘들다고 여러분이 생각 한다면!

나머지 다른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도 되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고니야! 이리 와!”

“히 끅.....!”

“헐......!”

“하...하...하......!”

고니의 행동을 본 가족들은 유성의 창업에 찬성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

-Episode

그랬다. 요리 똥손 한유성은 지난 일요일 유경의 친구들이 집에 왔을 때 ‘배달의 만족’을 통한 배달요리만


대접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었다.

유성은 언제부턴가 자기도 나름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처럼 짠하고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예전이라면 불가능 했겠지만 유성에겐 ‘진짜 사나이’가 있었다.

그래서 유성은 부사관 메뉴에서 치료를 기본적으로 배우고 난 뒤 요리의 세계로 뛰어 들었던 것이다.

지난 평일 한 주간 유성은 육군(화요일), 해군(목요일), 공군(금요일) 이렇게 3 일을 투자해서 삼군의 조리


부사관 메뉴를 모두 체험했다.

유성은 조리부사관으로 참여한 작전에서 초과 달성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기본 작전 성공으로 각 군에서
하나씩의 요리관련 스킬 총 3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흥정

***

늘어난 체력 스탯으로 유성은 수면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과는 반대로 늘어난 오후 활동 시간을 활용할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에 유성은 비교적 위험 부담이 적은 출자금으로도 혼자 할 수 있는 푸드 트럭을 물망에
올렸다.

유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4 년 9 월 푸드 트럭 합법화를 통해 잠깐 이슈로 떠오르는 듯 했으나 다른 서양의


푸드 트럭과는 달리 협소한 영업 허가 구역과 여러 가지 재제로 인해 한국의 푸드 트럭사업은 처음 생각만큼
활성화 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2020 년 까지는 푸드 트럭에 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해마다 추락하는 청년실업률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로 푸드 트럭 사업이
2022 년 대선 후보들의 공약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예전 보여주기 식 정책이었다는 평과와는 달리 보다
실용적이고 실현가능한 법안들이 상정되고 통과 되어 지금은 푸드 트럭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전문가들은
평하고 있었다.
유성은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이 조금 있었지만 사업 준비자금으로 정확하게 얼마가 필요한지 확신 할
수 없었던 탓에 부모님에게 투자를 받기위해 이번 이벤트를 생각해 냈다. 다행히 가족들과 함께 간단하게 모닝 빵
(?)을 챙겨 먹고 난 후 실질적인 사업 방안에 대해 부모님께 브리핑 같은 설득을 통해 부모님에게 투자를 약속
받을 수 있었다.

“아빠! 엄마! 이사님들 그럼 저는 시장조사 위해 잠시 외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아들 수고해! ㅎㅎ!”

“큼...큼...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오전 가족들과 시식회를 가진 유성은 아빠 엄마의 응원 속에 푸드 트럭의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중고차 매매단지로 향했다.

-한유성님 전방 20m 상공에 어제 건물 밖에서 유성님을 촬영했던 것과 동일 기종의 드론 1 기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유성님 집 주위에서 거동이 수상한 남자 2 명이 추가 발견 되었습니다.

새벽에 획득한 ‘정보 확인’과 ‘추적’ 스킬도 고니에게 위임해 상시 발동 모드로 전환해 두었더니 ‘주변 정
찰’ 스킬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건지 집을 나서자 바로 성능이 더 좋아진 고니가 유성에게 경고를 전했다.

‘헐...어제 그 드론? 그리고 거동이 수상한 남자라고? 갑자기 미행이라도 붙은 건가?’

-한유성님 어떻게 할까요?

‘음...고니야 일단 드론은 역추적해서 정보 확인 부탁하고 수상한 남자 2 명의 위치를 홀로그램으로 나에게


보여줘!’

-한유성님 명령에 따라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실에서 고니의 능력을 사용하는 유성에게 고니는 치트키와 다름이 없었다.

‘음...고니야! 드론이 지하까지 따라오진 않지?’

-정밀한 컨트롤이 가능하다면 지하에서의 추적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확률이 희박합니다.

‘그럼 드론의 사용자 주소지 확보하면서 감시하던 애들 잘 따라오나 확인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고니와 머릿속으로 대화를 나눈 유성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드론을 향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곤 걸어서
20 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지하철까지 갑자기 돌아서 냅다 달렸다.

[.....다다다다!]

“...............!”

“..............?!”

유성에게서 멀리 떨어져 감시하던 사내 둘은 갑자기 달려서 지하철까지 이동한 유성을 따라잡을 수 없어 놓쳐


버렸고 공중에서 따라오던 드론도 지하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유성님 더 이상 수상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습니다.

‘응 고니야 그럼 계속 수고 좀 부탁할게.’

그렇게 유성은 미행과 추적을 피할 이동수단으로 지하철을 선택해 자동차 매매 단지를 찾았다.

중고차 매매 단지에 도착한 유성이 입구로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태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던 중고차
중개인들이 갑자기 돌변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유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찾으시는 분 있으십니까?”

“형은 오늘 한 건 계약해 놓고! 좀 빠져! 고객님 어떤 차량 찾으십니까?”

“큼...큼...정직과 신용을 모터로 고개님께 다가가는 ‘김구라’ 딜러입니다.”

“혼자 여기를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여기 있는 딜러분과 함께 필요한 차량 찾아보기를


추천합니다.”

갑자기 다가서는 아저씨들로 인해 이런 곳에 경험이 없는 유성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알아보고 올 걸..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알 수가 없네...’

유성은 그 중에 마지막에 제일 친절해 보이는 딜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스낵카 같은 푸드 트럭을 알아보려고 왔는데...”

“아! 푸드 트럭요? 누가 운전 하실 겁니까?”

“아 제가 장사 한번 시작 해보려고요.”

“그렇죠! 푸드 트럭! 요즘 많은 고객님들이 찾으시죠! 어떤 장사 하실 겁니까?”

그렇게 유성은 중고차 딜러와 얘기를 나누며 딜러를 따라 사무실로 이동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한 유성은 컴퓨터 화면에서 정식 푸드 트럭으로 승인 되고 구조변경이 된


차량 3 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딜러가 옆에서 뭐라고 계속 구두 설명을 했지만 유성은 거의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끄덕이다
실물 확인을 위해 이동했다.

그렇게 딜러를 따라서 마지막 3 번째 차량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저기 보이는 차량이 아까 고객님께서 사진으로 확인한 차량입니다. 실제 키로 수도 얼마 되지 않고 1 톤 트럭
깨끗한 무사고 차량으로 교환 부위도 없고 전 주인이 2 천만 원 정도 투자해서 내부도 다 개조해 두어서 따로
집기도 구비할 필요도 없고 정말 이 가격에 팔기 아까운 차량입니다.”

-한유성님 지금 ‘정보 확인’ 스킬을 통해 딜러의 목소리에서 작은 떨림과 심장 박동 수 상승 및 체온 상승을


감지했습니다. 종합적인 정보 분석으로 딜러의 말에 거짓이 포함되어 있음이 예상됩니다.

고니의 말을 들은 유성이 딜러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이거 지금 시승 가능 하죠?”

“아...네....네 가능합니다.”

시승을 하고 돌아온 유성은 고니가 운행 중 ‘정보 확인’을 통해 알려준 사실을 토대로 딜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기 딜러님 직전 시운전 해보니 스티어링이 조금 어긋난 거 같고요, 브레이킹도 조금 밀리는 느낌이 드는데
브레이크 라이닝도 갈아야 할 것 같고, 아까 보니 후방카메라 작동 안 되는 거 같고......여기 조수석 문짝
고무파킹 밑에 보니 철판 땜질 자국이 보이는데 무사고는.......궁시렁..궁시렁...”

“큼..큼...아..고객님 ...이 서류가 갑자기 왜...제가 잠시 다른 차량 서류를...죄송합니다. 하하하 제가


이런 실수를...”

“일단 사무실로 다시 가서 얘기 나누죠?”

당황해 횡설수설하는 딜러에게 유성이 사무실로 이동을 권했다.

몇 가지 소모품 교체 말고는 유성의 마음에 쏙 든 3 번째 차량의 계약을 위해 사무실로 이동한 유성은 고니의 ‘
정보 확인’을 통한 조언으로 가격협의를 마치고 주행테스트에서 발견된 몇 가지 문제점들과 유성이 지정한
정비소에서 점검 이후 차량을 인도하겠다는 약속을 모두 담아 계약을 마무리 짓고 중고차 매매 단지를 나왔다.

“큼..큼...네...소모품만 교체하면 될 거라서 아마 내일 오후나 화요일 즘 연락드릴 겁니다.”

“그럼 차량 점검 이후 연락 주십시오. 딜러님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제일 큰 푸드 트럭을 해결한 유성은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자 이제 다른 볼일 좀 보러 가 볼까? 고니야 어디라고?”

***

‘심부름’센터에 오늘도 한유성을 미행하다 실패한 나대기 일행이 심 실장 앞에 서서 보고하고 있다.


“실장님 그 놈 정말 보통 놈이 아닙니다. 이번엔 저만 실패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 왜 나까지 걸고 넘어져? 대기 삼촌!”

내대기 팀장이 심 실장에게 말하자 뿔테안경이 버럭 소리쳤다.

“아! 둘 다 조용! 분명히 한유성 그놈이 드론이랑 너희를 인식하고 행동한 게 맞아?”

“응...여기 화면 봐! 달리기 전에 돌아서서 드론을 보며 씩! 웃잖아! 얘 볼수록 너무 귀엽지 않아!?”

심실장의 질문에 뿔테안경이 핑크색 노트북 화면을 돌려서 보여주었다.

“큼...목표에게 감정 갖지 말랬지?...근데 어떻게 그 놈이 미행이랑 드론을 알아챈 거지?”

“....저도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수십 미터 상공에 떠있는 드론을 정확하게 쳐다 본 걸로 봐선 확실히 알고


있는 표정인데....쩝”

나 팀장이 심실장의 질문에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의뢰인에게서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누굴 만나서 무엇을 하는지는 꼭 알아내야 해!”

“그런데 계속 목표가 이런 식이면 그것도 알아내기 어려워 삼촌...”

심실장과 뿔테안경의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에 사무실 입구가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딸랑! ]

“어..누구? ...어서 오세요 고객님!”

갑자기 손님이 온 것을 확인 한 심실장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심실장의 인사 소리에 사무실 입구에 들어선 남자의 얼굴을 확인 한 나 팀장과 뿔테안경의 입이 놀라 쩍!


벌어졌다.

“저...저...목표....한...유성이...”

“꺅!...귀염둥이다!”

그제야 심실장도 사무실에 들어선 유성의 얼굴을 확인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긴...어떻게 알고...?”

“하하하! 뭐 궁금한 거도 있고 부탁할 일도 있어서 왔어요.”

유성이 호탕하게 웃으며 고객들이 앉을 만한 소파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저기.....요즘 힘드시죠? 그래서 제가 좋은 제안 하나 준비해 왔는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찾아와서!.....”

“저...나 팀장! 거기까지!”


유성에게 다가가며 소리치는 나 팀장을 막아서며 유성의 맞은편에 자리한 심 실장이 유성에게 말을 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 인걸로 아는데...보기보다 배포가 크군.”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근데...누가 제 뒤를 캐라고 시킨 겁니까?”

고니의 추적 스킬을 통해 뿔테안경의 노트북에 침투해 이들이 유성을 목표로 의뢰를 수행 중에 있음을 모두 알게
된 유성이지만 아직 의뢰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설마 그걸 내가 말해 줄 거라 생각하고 질문 한건가?”

“당연히 아니죠. 대신 제 궁금증을 풀어주시면 대가로 저에 대한 이번 의뢰 성공 시켜드리죠. 어차피 이번 의뢰


제 도움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잖아요. 제가 어디서 누구랑 만나는지 무엇을 하는지만 알면 되는 거 아닙니까?”

유성의 생각 못한 제안에 심실장이 놀란 마음을 감추며 말했다.

“큼..큼...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큼...그래도 이 바닥도 룰이...”

“에이! 사장님 우리끼리만 조용하면 누가 알겠어요?”

유성의 지속적인 설득에 뿔테안경이 먼저 찬성을 표했다.

“대박! 삼촌 난 찬성!! 그니까 유성님!이 위치랑 어디서 무얼 하는지 우리에게 다이렉트로 정보를 준다는
거자나?”

“큼...큼...실장님 아무래도 저 놈 수상합니다. 믿으면 안 됩니다.”

나 팀장이 끼어들자 유성이 살짝 말을 덧 붙였다.

“물론 나도 이번 의뢰 성공에 기여한 부분이 있을 건데 5:5 어때요?”

“큼...그건...너무 심해! 우리 측 사람이 몇 명인데.....”

유성이 크게 지르자 얼떨결에 심 실장이 레이스를 받았다.

“하하 그럼 대신 의뢰인 정보랑 그 의뢰인 엿 한 번 먹이게 도와주는 걸로! 7:3 사무실 측이 7 갖고 제가 3


가질게요.”

“큼...그래도 우리 측 인원이랑 사무실 유지비용이랑....”

심실장이 살짝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대신 어려운 일 있을 때 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제가 한 번 도와주는 걸로 하고 7:3 더는 양보


못합니다.”

유성의 마지막 딜에 뿔테 안경이 외쳤다!

“난 콜!”

개업준비
***

심부름센터에 한유성의 신상 정보를 부탁한 의뢰인의 연락처를 유성에게 넘기며 심실장이 물었다.

“이걸로 되겠습니까?”

“당연히 부족하죠!”

아직 호구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유성은 따로 실속을 챙기기 위해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이 연락처 추적해서 의뢰인 정보 파악해봐’

-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고니에게 추적 스킬로 상대방의 정보를 알아내게 시킨 유성에게 심실장이 말을 전했다.

“하지만 저희도 직업 특성상 고객의 연락처 말고는 아무것도 기입하지 않습니다.”

“흠...날 너무 병다리 핫바지로 보시나? 딸랑 전화번호만 주고 끝? 제가 너무 손해 보는 장사 같은데요...”

“물론 끝이 아니죠. 거기에 이런 정보는 어떻습니까?”

“어떤 정보를 말씀하시는 건지?”

그러지 않아도 더 뜯어낼 구석이 없나 하고 고민하던 유성이 물었다.

“만약 우리 말고도 한유성님을 감시하고 있는 무리가 또 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까요?

“네? 그게 무슨....”

-현재 상대방의 호흡과 맥박 숨소리 등을 종합해 볼 때 거짓이 아닌 걸로 추정합니다.

고니에게 진실임을 들은 유성은 심 실장의 말에 좀 더 집중했다.

“지난 화요일부터 한 주간 저희는 한유성님을 집중 감시했습니다. 저희는 미행과 감시가 주 업무이다 보니


대상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중 한유성님의 집과 가게주변에서
활동하는 동일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흠....우연히 같은 동네 거주하는 가게손님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들이 저를 감시한다고 단언 할 근거가


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저희는 거동이 수상한 그들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보았습니다. 핑크야 사진 준비 돼 있지?”

“네! 삼촌! 여기 화면에 슬라이드 화면 띄웠습니다.”

보기에도 불건전해 보이는 인상을 한 사내 3 명이 유성의 집주변에 불법 주차한 검은색 승용차 안에 있는 모습을
시작으로 가게 근처 편의점과 건물 안에서 찍힌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님이 보기에도 느낌이 오시죠?”

뿔테안경이 노트북 화면을 조작하며 설명을 이었다.


“큼..큼...그러게요. 가게 손님들로는 보이지 않군요.”

“네 맞아요. 저들은 기업의 굳은 일들을 처리해 주고 살아가는 건달들입니다. 소위 기업형 조폭이라고 하죠?”

뿔테 안경의 설명을 들은 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변변한 직장도 없는 유성이
기업과 척을 질 일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흠....어떤 기업의 뒷일을 보는 거죠?”

유성의 물음에 뿔테 안경이 대답했다.

“특별히 정해진 기업이 있지는 않고 그들에게 의뢰가 들어오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무리들이에요. 그래서 이
바닥에서 썩 평판이 좋지는 않아요.”

“흠....그렇군요.”

“어떻게... 이정도 정보면 한유성님이 혼자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겠죠?”

“하하하 그러네요! 제가 한방 먹었습니다! 저 몰래 제 뒤를 지켜주신 분들인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 나대기나


했네요. 죄송합니다.”

“큼..큼...”

한쪽에 서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나대기 팀장의 얼굴이 순간 붉게 물들었다.

“하하하 저희도 어려운 의뢰 유성님 덕분에 한결 쉬워졌으니 피차 손해 보는 건 없는 거 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합니다.”

“네 첫 거래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심 실장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사무실을 나서려는 유성을 뿔테 안경이 불러 세웠다.

“저기! 유성님 잠시 만요!”

입구 옆 뿔테안경의 자리로 다가가 유성이 물었다.

“네? 무슨 더 할 말씀이라도?”

“제 생각에 저희 쪽에서 유성님 주위에 감시 중인 인원은 철수해도 드론은 남겨 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하하 그렇죠! 우린 아직 믿음이 조금 부족한 사이죠.”

“No! No! 그게 아니라 유성님 뒤를 노리는 그 하이에나들 감시하려고요. 호호 그럼 우린 믿음이 싹트는


사이정도는 되겠죠?”

뿔테 안경은 자신의 의견을 유성이 받아들이자 활짝 웃는 얼굴로 유성을 바라보며 말했고,

유성도 사심 없이 뿔테안경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아! 그럼 제 뒤를 맡아 주시는 겁니까? 하하”


“네 저만 믿어요! 비록 이래 보여도 드론은 제가 전문가니까요.”

뿔테 안경이 밝게 웃으며 의자를 뒤로 이동하자 유성의 시선도 자연히 뿔테 안경이 앉은 의자를 바라보았다. 뿔테
안경이 앉은 의자는 전동 휠체어였다.

의자를 바라 본 유성의 얼굴이 순간 멈칫했다.

“아....다리가 혹시 불편 하십니까?”

“유성님 거기까지! 그 얘긴 우리가 믿음이 넘칠 때 얘기 하는 걸로!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인사하죠?”

“아 제가 실례했군요. 그럼 다음에 뵙죠!”

그렇게 유성은 밝은 성격의 뿔테 안경과 인사를 나누고 심부름센터와의 흥정을 끝낸 후 심 실장과 나 팀장의
배웅을 받으며 사무실에서 나왔다.

‘고니야 뿔테 안경 누나 다리 혹시 확인했어?’

-명령이 없으셔서 스캔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스캔하도록 대기 시켜 둘까요?

‘아...아니야 치료중일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오지랖을 부렸나보다. 그건 그렇고 아까 그 양아치들 사진 너도


봤지?’

-네 한유성님! 핑크색 노트북 화면에 자신의 팔뚝을 스케치북으로 사용한 3 명 말씀하시는 거면 저장


완료했습니다.

‘그건 어떻게 말 안 해도 알아서 했네. 혹시나 저장 안했으면 어쩌나 했는데.’

-한유성님에게 위험이 될 만한 요소를 갖추었다고 판단해 정보를 자동 저장했습니다.

‘매번 고마워 고니야! 혹시 그놈들 보이면 알려줘!’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

심부름센터에서 나온 유성은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음을 확인했다.

유성은 집으로 이동 중에 남포동에 위치한 부평 깡통시장에 들러

“아저씨! 이건 어떻게 사용해요? 요건 얼마구요? 그리고 이건 아...못 쓰겠다...”

“학생? 안 살려면 절로 가!”

“이거랑 요거는 살려고요!”

“큼...큼...어려 보이는데... 거! 생긴 거랑 다르게 물건은 잘 고르네?”

“하하 제가 보는 눈이 좀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 답니다!”

물건 구입 시에도 고니가 옆에서 알려주는 상태확인 스킬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유성님 좌측 3 번째 있는 후라이팬 상태가 양호합니다. 지금 선택하신 양은 볼은 내열성이 떨어져 온도 200 도
이상의 기름에 내부 코팅이 벗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그 밑에 상품은....

그렇게 고니와 장사에 필요한 식기류 및 식자재 그리고 고기 등의 식재료를 구입한 유성은 종이 박스에 모두
포장해 무기고에 보관했다.

집에 들른 유성은 부모님께 푸드 트럭 계약 사실에 대해 말씀 드리고 주 중에 장사를 시작 할 수 있으리라


말씀드렸다.

“아빠! 엄마! 낮에 중고 매매 시장에서 푸드 트럭 집기 다 세팅 되어 있는 거 할부로 계약 했어. 차량은


내일이나 모래 점검 후에 인도 하러 가기로 했어.”

“아들! 아니 벌써? 너무 급한 거 같은데... 그렇게 서두르는 거 보다 천천히 확인하고 일 처리 하지 않고...


조금 걱정이네...”

“큼..큼...그래 좀 서두른 감이 보이네.”

아빠 엄마의 걱정에 유성은 이사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섞어 말했다.

“아...걱정 마세요 이사님들! 마침 아는 분 중에 이쪽 전문가분이 오늘 시간이 가능해서 같이 중고차 매매단지


함께 가서 좋은 차량 계약했어요.”

그렇게 아빠 엄마에게 업무 보고(?)를 끝내고 가게를 향해 새끼고양이 고니를 안고 집을 나서는 유성에게 고니가
말을 걸었다.

-한유성님 말씀 중에 진실이 아닌 내용이 다수 포함 되어 있음을 발견 했습니다. 냥 가족을 속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일로 판단됩니다. 냥

‘으..응? 고니야! 근데 갑자기 어디선가 들리는 냥은 뭐냥? 그리고 거짓말 아니잖아! 너 나랑 같이 중고차
매매단지 갔었잖아! 그리고 너 전문가 맞잖아! 왜이래? 아마추어같이!’

-제가 대화 내용 해석을 올바르지 못하게 한 점 사과드립니다. 냥 저의 본체에서 나는 고양이 소리와 한유성님의


머릿속에 알파파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가 융합되어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냥

‘크크 고니 너 안고 있으니 오랜만에 신선 하다! 냥’

알바 시간에 맞춰 새끼고양이 고니와 함께 가게로 출근한 유성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테이블 청소로 업무를
시작했다.

***
일요일 새벽은 다음날 월요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 손님이 조금 일찍 끊어지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여느
일요일처럼 손님이 일찍 끊어졌다.

‘흠흠 요리 스킬이나 조금 숙달 시켜 볼까?’

마침 가게 오기 전에 장본 재료들로 푸드 트럭 햄버거 만들기 연습을 해볼까 생각하던 유성에게 출입구가 열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딸랑]

“어서 오세요!손님! 무슨 게임 찾으세요?”

유성이 습관처럼 출입구를 돌아보며 손님맞이 인사를 했다.

“야 알바! 여기 좋은 자리 2 개 안내해봐!”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매너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알바를 부르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두 명 중 한 명이


유성에게 팔뚝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을 자랑 하며 인상을 썼다.

-한유성님! 노트북으로 확인했던 3 명중 두 명입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방어태세를 한 단계 상승합니다.


‘동체시력’의 위임을 추천합니다.

‘OK! 사용 승인! 그리고 휴대폰이랑 CCTV 연동해서 녹화 가능해?’

-네 가능합니다.

고니에게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증거로 녹화를 부탁한 유성은 일단 입구에서 거들먹거리며 분위기를 잡는 덩치


둘의 방문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접대성 멘트를 날렸다.

“고객님! 캡슐 게임 이용 하실 건가요? PC 게임 이용하실 건가요?”

“흠...야! 알바! 여긴 게임밖에 못해? 딴 건 하면 안 돼?”

고니를 안고 쉬고 있다 큰소리를 듣고 다가오려는 삼촌에게 괜찮다고 눈빛으로 신호를 보낸 후 덩치 손님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능하지 말입니다. 어떤 종류 찾으십니까?”

의도가 게임 목적이 아닌 걸 살짝 밝힌 덩치들에게 그래도 가게 안에서 소란은 피하고 싶은 유성은 덩치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중이었다.

“난 대전 격투 이런 거 좋아하는데 하하하!”

“크크크...나는 조용히 앉아서 격투 구경하는 쪽으로...”

-정보 확인을 통해 두 명 모두 발목에 칼을 두른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흠.....마침 요리에 칼이 필요했는데 배달 왔나 보네...’

계속되는 시비에 덩치들이 그냥 곱게 돌아갈 목적이 아님을 눈치 챈 유성이 말했다.


“하하하 고객님 팔 보고 저는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전 격투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크크크 알바 이거 간이 배 밖에 나온 놈이네...형님 이 C8 놈이 우리가 얘기 하는 거 보고 쪼개는데요. 제가


교육 좀 시키겠습니다.”

뒤에 형님이라 불리는 사람에게 말을 끝내고 유성에게 돌아선 덩치의 손바닥이 유성의 뒤통수를 향해 슬쩍
날아왔다.

유성은 고개를 살짝 피해 덩치의 손을 아무렇지 않게 흘리곤 출입구를 향해 나섰다.

“어라 이것 바라! 지금 피했냐?”

“쉿! 잠시 조용! 고객님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시기에 직접 교육 받으러 나가는 길인데 말입니다. 가시죠!
교육하러!”

유성은 그렇게 팔뚝 그림이 화려한 덩치가 흥분해 소리치려는 것을 검지를 갖다 대어 입을 막고 출입구 앞에서
거들먹거리던 덩치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OPEN

***

건물 옥상으로 유성이 당당하게 덩치 둘을 데리고 올라왔다.

“아저씨들 넓은 곳으로 왔으니 아까 하기로 했던 교육 시작 해봐요. 직접 들어보고 괜찮은지 아닌지 평가해


드릴게요.”

덩치들은 오히려 유성의 당당함에 당황했다.

“헐...너 설마 지금 그 농담 진담이냐?”

“하...어이가 없네....그래 일단 좀 맞자!”

-한유성님 앞 쪽에 있는 적이 오른발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곧 뛰어 나올 것으로 예상 됩니다.

‘OK! 나도 눈치 깠어!’

가게에서도 앞에 나섰던 덩치가 앞으로 뛰어나오며 유성에게 그림이 잔뜩 그려진 주먹을 휘둘렀다.

-한유성님 상대의 신체 균형으로 보아 현재 상태에서 오른손이 먼저 뻗어 나올 것으로 예측 됩니다.

‘OK! 고니! 전에 보다 훨씬 더 잘 보이는 거 같아!’

유성은 고니의 방어태세로 인해 자동으로 사용되는 동체시력과 민첩 스탯의 시너지 효과 때문인지 덩치의 주먹이
마치 느린 화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긴장감이 1 도 없어진 때문인지 유성은 그 짧은 시간동안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신비를 경험했다.

‘기다리기 힘든데 반격이나 해볼까?’

-왼손을 이용한 방어와 관절 꺾기가 상대방의 균형을 무너트리기에 현재 효율적일 것으로 보여 추천합니다.

‘OK!’
지루함을 느끼다 고니와 생각을 교환한 유성은 날아오는 덩치의 오른손을 보며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주먹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왼손으로 상대의 팔목을 훑어 손목을 움켜잡으며 바깥쪽 반시계방향으로 비틀어
버렸다.

이 모든 과정이 1~2 초 안에 벌어져 버렸지만 유성은 지루함에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우드득...]

-쓰러진 적을 스캔해본 결과 유성님은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의 오른 팔목에서 정형외과 전치 4 주 정도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혔습니다.

사람 팔에서 잘 나지 않는 소리가 들리고 고니의 상태를 확인해 주는 진단에 이어 덩치의 비명이 이어졌다.

“으....으아...악!...아...악! C8 아퍼!”

“아..미쳐 말 안했군요. 저 다른 사람이 제 몸에 손대는 거 엄청 싫어합니다. 특히 남자들은 절대 사절입니다.”

유성은 꺾인 오른팔을 잡고 쓰러져 버둥거리는 덩치 1 에게 조소 섞인 웃음을 지으며 그 뒤에 서 있는 덩치 2 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방금까지 놀란 눈빛으로 덩치 1 을 바라보고 있던 덩치 2 가 후다닥 표정을 감추며 유성을
쏘아보고는 말했다.

“큼...큼...떠들만한 실력은 가지고 있었나 보군.”

“어디서 실력이 빠진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죠. 한 10 명 정도는 실제로 감당 해 봤어요.”

유성이 진지하게 진담을 뱉으며 남은 덩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현재 적의 왼발에 무게 중심이 걸려 있습니다. 오른발 공격이 나올 것으로 예측 됩니다. 효율적인


공격으로..........추천합니다.

***

-한유성님 좌측 10 미터 지점으로부터 이쪽을 향해 이동하는 인기척이 있습니다.

고니는 주변 정찰 스킬로 유성의 반경 30 미터를 감시 중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100% 수제 버거 맛 한 번 보시고 가세요! 손님!”

유성은 푸드 트럭 장사를 시작하기 전 보건증 발급과 기타 허가 등을 받기 위해 지난 한주 동안 정신없이 돌아


다녀야 했다.

그런 유성의 곁에서 고니는 유성이 혹시 뭐 하나라도 잊을까 메모 기능까지 홀로그램으로 띄워주며 옆에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장사에 필요한 인허가 및 음식 재료 준비를 마친 유성이 실전에 뛰어 든 첫날이다.

하지만 유성의 생각과는 달리 지나는 사람들이 흘깃 흘깃 쳐다만 볼뿐 아직 유성의 수제 버거에 도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점심 전이라 그런지....손님이 없네.. 일단 재료부터 하나씩 정리해 볼까?”

-한유성님 재료 손질은 지금 현재 효율적인 작업이 아니라 판단됩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물론 무기고 안에는 유성이 지난 한 주간 틈틈이 준비해둔 재료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성은 지나다니는 행인들에게 약간의 퍼포먼스라도 보일 수 있을 까 해서 육군 조리부사관작전 메뉴를


통해 획득한 ‘재료 손질’ 스킬을 사용해 양파와 버섯 등 각종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스킬! 재료손질!”

[다다다다다....슥슥....다다다다]

‘지난주 그림 형들이 장만해 준 칼이라 그런지 잘 드네...사용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네. 거의 새 칼이네...흐


흐’

도마 위로 올라온 각종 채소들이 순식간에 식칼과 만나 손질이 되어 재료박스를 채워 나갔다. 잠시 후

-우측 20 미터 지점으로부터 다가오는 2 명의 여성 행인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머...저기 저사람 봐! 무슨 칼질하는 모습이 중식 이영복 쉐프 같아.”

“아니야. 칼질 좀 하긴 해도 그래도 그 정도 까진 아닌데.”

유성이 시선을 끌기 위해 선택한 칼질 퍼포먼스가 그래도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음....사진 보니 종류가 3 가지 정도네... 뭘 먹을까?”

“저거 하나 다 먹으면 칼로리 대박이겠지? 우리 그냥 하나 사서 나누어 먹을래?”

다가온 여자 손님 2 명이 푸드 트럭 내부를 둘러보며 메뉴 선택을 망설이고 있었다.

“고니야 손님들 주문 도와드려.”

-냐앙

유성의 목소리에 새끼고양이 고니가 대답하자 여자 손님들은 고양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헐..대박...너무 귀엽잖아! 이 고양이!”

“우와! 완전 인형인데!”

조수석 뒤쪽에 자리한 계산대 얕은 유리 담 너머로 도도하게 까만색 조리복을 입고 앉아 있는 새끼고양이를 발견한
손님들이 비명 섞인 고함을 질렀다.

‘흐흐 드디어 첫 손님! 고니야 주문 받아! 힘내!’

유성의 응원을 받은 고니는 여자 손님들의 비명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앞발을 움직여 메뉴 선택을 위한 태블릿
화면을 손님 쪽으로 빙글 돌려 주문을 독려했다.
-냐앙?

마치 ‘주문 안 하냥?’처럼 들리는 고니의 목소리에 여자 손님들은 그제야 태블릿화면으로 시선을 돌려 주문을
했다.

“흐....왠지 주문 안하면 안 될 것 같지 않냥?”

“...그...그러개? 헤헤”

그렇게 고니의 눈치를 받고 계산대에 비치된 태블릿에서 주문을 마친 여자 손님들은 셀프 결제까지 마치고 유성이
푸드 트럭 옆에 놓아 둔 간의 의자에 앉아 수제 버거가 완성 되기를 기다렸다.

주문지를 받은 유성은 공군 조리부사관 작전에서 획득한 요리 스킬 ‘불 조절’을 푸드 트럭 안의 철판에


사용했다.

-한유성님 앞으로 20 초 뒤에 패티를 뒤집는 것을 추천합니다.

‘땡큐! 고니! 시간 되면 한 번 더 신호 줘!

곧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혼합 패티를 딱 알맞은 육즙을 머금은 상태로 구워 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드 트럭 내부에 있는 소형 오븐 안에는 해군 조리부사관 작전에서 얻은 스킬 ‘제빵’을


이용해 수제로 만든 버거 빵이 알맞게 구워져 있었다.

“헐...여기 진짜 몽땅 수제 버거인가 봐! 빵 까지 저기 오븐에서 방금 구워 낸 거 봤어?”

여자 손님들은 얕은 강화 유리벽 너머로 유성의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유성이 5 분정도 걸려 한땀한땀 모두 수제로 만든 버거를 첫 번째, 두 번째 손님에게 건넸다.

“손님 여기 주문하신 크림 버섯 버거 하나 스위트 칠리 버거 하나랑 오픈 기념 서비스 음료 나왔습니다. 드셔


보시고 더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첫 손님이라 유성은 그들의 시식 후 표정이 궁금해 흘깃 거렸다.

두 손님 모두 한 입 베어 물고 이마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 유성은 긴장감이 더해갔다.

“흠...흠.....어 이빵 부드러우면서 왠지 쫀득한 게 특이하다.”

“홍..홍...응? 그..래! 오물...오물...와! 패티가 더 예술! 햄버거에서 육즙 실화냐?”

다행히 심각하게 굳어 있던 손님 둘의 표정은 금방 환하게 바뀌었다.

***

“그래 그 건물 입주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박정환이 휴대전화를 통해 최 변호사를 통해 지난 한주간의 보고를 받고 있다.

[법적인 절차는 모두 끝난 상태입니다. 4 층 캡슐 방 임차인에게도 이 달 안에 가게 비워달라는 통보를


전했습니다. 큰 도련님!]

“하하하 그래? 반응은?”

[..그러겠다고 이번 달 안에 정리 하겠다고 했습니다. ]

자신이 생각한 스토리 보다 너무 쉽게 물러서는 감에 조금 아쉬움을 느낀 정환이 물었다.

“큼.....봐 달라거나 시간을 달란 얘기는 없었고?”

[...네 제가 일 처리 하나는 뒷말 안 나오게 잘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

“쩝....너무 고분고분하면 재미가 없는데...큼..큼...잘했네.”

[아...그리고 제가 따로 라인 가동해서 알아낸 한유성에 대한 최근 정보가 있습니다. ]

“안 들어 봐도 아마 알바자리 잘렸다고 한 숨 쉬고 있겠지? 안 그래? 하하하”

박정환의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최 변호사가 더 생색을 내기 위해 심부름센터를 통해 넘겨받은 정보를


박정환에게 전했다.

[네 그게 알바 자리 잃어버린 건 맞는데 한유성 그 놈은 중고 푸드 트럭을 구해서 장사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뭐..푸드 트럭?”

[네...푸드 트럭으로 음식 장사를 시작할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경험도


없는 애가 망하기 딱 좋은 직업입니다. 하하하! ]

“그럼 일 마무리 되는 데로 정리해서 보고 올리는 걸로! 수고했네!”

[딸깍]

최 변호사와 통화를 끝내고 기분이 한결 좋아진 박정환이 휴대폰을 쏘아보며 문득 드는 생각에 혼잣말을 이었다.

“흠...내가 감시하라고 보낸 놈들은 왜 일주일 째 아무런 보고가 없지? 하여튼 알바자리 자체를 통체로
날려버리는 정도로 일 마무리하면 시환이도 만족 하겠지? 하하하! 벌써 지분이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박정환은 한유성의 감시를 지시했던 생각이 난 김에 그 자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뚜! 뚜!뚜!......]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딸깍 ]

“헐....설마.....먹튀?”

그랬다. 정환이 직접 지시한 조폭들은 지난 일요일 밤을 시작으로 유성에게 모두 깨지고 자신들의 사무실까지
털려 혼쭐이 나서 정환에게 보고도 없이 유성을 감시하는 일에서 손을 때고 잠적한 상태였다.

***
첫 장사를 끝내고 정리를 하고 있는 유성의 머릿속으로 고니의 보고가 전해졌다.

-한유성님! 지난 주 심부름센터를 통해 받았던 의뢰인의 정체 및 배후를 파악했습니다.

“정말? 알아낸 정보 얘기해 줘!”

-두 명의 배후가 있었습니다.

“잉? 두 명이나? 내가 그렇게 막 남한테 미움 받을 짓은 안한 줄 알았는데...쩝”

그렇게 고니가 유성에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한 명은 한유성님이 지난 한 주간 처리했던 자들의 배후 영남유업의 장남 박정환이 걸려있었습니다......

고니의 얘기를 정리해 보자면 이랬다.

고니는 입수한 전화번호를 추적해 휴대폰을 해킹해서 정보를 빼내고 감청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조합한 결과 사건의 전말을 파악 하는데 성공했다.

‘영남유업’의 장남 박정환이 기업의 뒤를 봐주던 조폭을 사주했고 차남 박시환이 최 변호사를 통해 심부름센터에


유성의 감시와 신상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정환이 자금을 동원해 캡슐 방이 위치한 건물을 매입해 유성의 삼촌이 있는 캡슐 방을 비우게
압박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그래서 캡슐 방 그만한다고 삼촌이 말 한거였구나. 쩝 나 때문에 삼촌 가게가..’

삼촌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이제 장사 접을 때 되었다’라는 말이 사실은 자신 때문에 실제로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유성은 울컥했다.

-한유성님 저들에 대한 추적과 감시는 계속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하지만...먼저’

“푸드 트럭부터 정리 마무리 하고 고니야 매출! 얼마니?”

유성은 재빨리 지금 할 수 있는 현실과 타협했다.

삼촌의 꿈

***

토요일 첫 푸드 트럭 장사를 마무리 한 유성은 외삼촌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지 못한 채로 평일보다 1 시간 이른


저녁 9 시에 맞춰 캡슐 방으로 향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안녕 하세요. 저 왔습니다!”


“오늘도 일찍 왔네! 유성이.”

주호 형과 소정 누나의 인사를 받은 유성은 고니를 카운터 고양이 방석위에 올려 두고 늘 그랬듯이 평소와 같은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테이블 정리를 시작했다.

먼저 출근해 있던 외삼촌은 테이블정리를 마무리 짓고 가게를 둘러보던 유성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 사장! 오늘 첫 장사 나갔다며? 식당에서 커피나 한잔하자?”

“으..응?....응 삼촌”

식당으로 들어서자 평소보다 한 단계는 더 밝은 표정의 삼촌이 유성에게 생과일주스 한잔을 건네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평소에 사장이라고 알바들 복지는 전혀 안 챙겨 줬던 거 같아서 사과의 의미를 담아 사장이 직접
믹서에 갈아 만든 100% 사과가 담긴 애플 주스 한잔 해!”

“컥..갑자기 웬 사과 드립? 평소 삼촌답지 않게... 무슨 일 있었어?”

“아냐..별일 없었어. 매일 똑같지 뭐. 그나저나 넌 오늘 어땠어? 안 힘들었어?”

‘하아... 건물주가 가게 비워 달라고 얘기 한 거 때문에 외삼촌이 고민이 많았나 보네...’

유성은 갑작스런 삼촌의 태도 변화에 대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예측 할 수 있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그냥....첫 날이라 아직 손에 안 익어 조금 정신이 없었던 거 빼곤 괜찮았던 거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하하 그래도 파리는 안 날렸나 보네?”

“응. 고니를 계산대에 앉혀 두니까 손님들이 신기해하는 게 약간 효과는 있는 거 같더라고.”

유성의 말을 다 듣고 난 삼촌이 갑자기 힘든 표정으로 연기하듯 팔 다리 어깨를 주무르며 유성에게 얘기했다.

“에고고고....유성아! 삼촌도 이제 밤 일 하는 게 조금 힘든데...나도 그냥 낮에 해 보면서 일해 볼까?”

“진짜?!....(미안해 나 때문에)”

유성은 차마 뒷말은 하지 못하고 꾹 삼켜 버렸다.

“전에도 가끔 말했지만 캡슐도 예전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삼촌이 여기 들인 정성이 얼만데...”

삼촌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유성은 자신이 벌인 일 때문에 삼촌이 대신 고통 받는 거 같아 미안함에 점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사실 지난번부터 쭉 생각해 오던 건데... 이제 빈이도 올해부터 어린이집 가서 네 외숙모도 조금 여유도 찾았고
둘이서 작은 카페라도 하나 하면 이제 나도 외숙모랑 서로 얼굴 보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으니까...”

“아.....하긴 삼촌이 캡슐 방 시작하고부턴 외숙모가 삼촌 자는 모습만 계속 본다고...”


“그리고...이건 네 외숙모에게 절대 비밀인데....”

“으..응?”

“사실은 지난달에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더라고...”

그렇게 삼촌과 유성의 대화가 조금 길어졌다.

사실 삼촌은 공익이 끝나고 부터 영화판에서 일했었다.

그러다 외숙모를 만나고 빈이가 생겨 육아와 생계를 동시에 이어가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했던 영화 조연출을
그만두고 처가의 도움을 받아 캡슐 방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캡슐에 대한 인기가 한 참 오르고 있어서 삼촌도 아주 잠깐 호황을 누리긴 했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알다시피 캡슐에 대한 인기가 많이 빠진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건물주가 나타나 삼촌의 결정을 선택해 준 꼴이었다.

각설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촌에게 영화 조연출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현실이라는 벽 앞에 잠시 묻어 두고 있던 삼촌의 젊었을 때의 꿈이 다시 머리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삼촌은 꿈을 향해 가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외삼촌은 육아 문제로 잠시 접어야 했던 영화계 꿈을 아직 버리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작은 카페를 열어


외숙모에게 맡기고 다시 영화 조연출로 가기를 꿈꾸고 있었다.

어쨌든 유성은 삼촌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탓이라 여겼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라니 조금은 다행이다. 난 또 혹시나...아무튼 난 삼촌에게 그동안 고마웠어. 삼촌! 내가 오랜만에
안마 좀 해줄게!”

갑자기 친절한 유성을 보며 어리둥절해 하는 삼촌에게 다가간 한유성은 어깨랑 팔에 뭉친 근육들을 ‘물리 치료’
스킬을 사용해 풀어주었다.

“허허허.. 아고고고고기 시원해! 정말 다른 건 몰라도 가게 닫으면 유성이 안마는 가끔 생각날 것 같은데


어떡하나?”

“내가 가끔 삼촌한테 놀러 갈게! 헤헤”

그렇게 유성의 외삼촌은 새로운 건물주 때문에 생긴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 할 수 있었다.

***

어제 유성은 장사 준비가 완료 되자 이동 인구가 많으리라 예상되는 센텀 지구 사무실 밀집 지역으로 차량을 몰고


나가 첫 장사를 시작하려 했었다.
“바쁜 직장인에겐 햄버거가 식사대용으로 부담 없겠지?”

-네 한유성님의견에 긍정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회사원들이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가능하리라 판단이 됩니다.

“큭....오늘이 토요일이었다니! 매일 바쁘다 보니 정신이 없었네...이런! 내 생애 한번 있을까 말까한 실수를


하다니...”

노점에 대한 경험이 없어 허둥거리던 유성은 곧 토요일은 휴무인 회사들이 많음을 깨닫고 다시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혹시 한유성님 토요일 푸드 트럭이 자리 할 수 있는 추천 장소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십니까?

“응? 그...그렇지! 정보는 다다익선 아니겠니? 하하하!”

그렇게 고니로부터 정보를 전해들은 유성은 다시 푸드 트럭 물건을 정리하고 이동해 토요일 점심시간이 되기 전
송정해수욕장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곳은 예전부터 해변 백사장 옆 도로 측면에 차량을 줄지어 주차해 두고 주로 카페 메뉴를 판매하는 푸드


트럭들이 영업을 하던 곳으로 유명했다.

다행히 아직은 본격적인 해수욕 철이 아니기도 하고 유성의 판매 메뉴도 주위 상점들과 겹치지 않아 그런지 목
좋은 자리가 아니면 자리싸움이 심하지는 않았다.

유성도 그 줄지어 선 차량들 사이에 일요일인 오늘도 자리 하나를 잡고 장사를 위해 윙바디를 열어 올렸다. 고작
하루밖에 안 되는 경험이지만 어제보다 훨씬 노련한 손놀림을 보이는 유성이었다.

“고니야 오늘은 여기가 우리 가게 자리! 오늘도 잘 부탁해!”

-네 한유성님 메모리가 가득 채워질 때까지 열심히 돕겠습니다.

고니도 유성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제법 아재개그 꿈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2022 년 이후 지자체별로 시행된 ‘노점 허가증’을 차량 안에 보이도록 걸어 둔 유성은 새끼 고양이 고니를


어제와 마찬가지로 계산대에 앉혀둔 후 조수석 측 스커트 옆으로 간의 의자를 꺼내어 정렬해 둠으로써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유성은 수제 버거 보다는 조금 먹기 편한 미국식 핫도그 메뉴도 추가해 메뉴를 6 가지로 늘린 상태였다. 물론


핫도그에 들어갈 수제 소시지도 어제 무기고 안에서 유성이 준비해 둔 상태였다.

“고니야! 오븐 안에 햄버거 빵이랑 핫도그 빵 잘 익고 있는지 중간 중간 확인 부탁해!”

-네 한유성님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방 20 미터 해변에서 차량을 향해 다가오는 한 쌍의 남녀가 확인


됩니다.

“응 고마워 고니! 슬슬 퍼포먼스를 시작해 볼까?”

물론 재료 손질은 무기고 안에 충분히 해 두었지만 푸드 트럭 앞을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그들의 시선을 끌기위한


유성의 퍼포먼스 성격을 띤 ‘재료손질’ 스킬이 뒤를 따랐다.

차량 옆으로 다가온 커플에게 고니가 태블릿화면을 앞발로 돌려 메뉴판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냥?

“우와! 자기야 여기 봐! 무슨 계산대에 새끼 야옹이가 주문을 받어? 너무 귀여워! 어떡해?!”

“하하 그러게 여기 푸드 트럭 컨셉인가? 특이하네.”

남성이 태블릿을 조작해 셀프 주문을 한 후 휴대폰을 이용해 결재를 했다.

-한유성님! 스위트 칠리 핫도그 하나 크림 버섯 버거 하나 주문입니다.

‘OK! 접수 완료!’

버거와 핫도그 주문을 받은 유성이 패티와 소시지를 굽기 위해 ‘불 조절’ 스킬을 사용했다.

“펑! 화르륵! 활활!”

“헛...”

“대박!”

그렇게 어제 문득 ‘불 조절’을 하다 보니 깨닫게 된 새로운 퍼포먼스 ‘불 쇼’는 간이 의자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안겨 주었다.

***

가상현실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운용중대장 유재호 대위는 관리 소대장으로 부터 지난 한 주 동안 ‘삼족오’


를 통한 예비군 동원훈련 및 민방위 교육을 함께 시행한 결과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번 주부터 업그레이드 된 ‘삼족오’의 통제 하에 시행된 ‘진짜 사나이’ 평일 접속자 수는 평균 3 만


5 천명 및 주말 접속자 평균 4 만 2 천명으로 모두 5 천명 이상의 증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체험 만족도를
위한 설문 조사에서도 사용자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이번 프로젝트가 군에 상당히 고무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음 그래... 강 중위! 서버 관리 하느라 그동안 수고 많았네...결과 잘 들었고. 방금 보고한 예비군과 민방위


관련 보고서는 정리해서 내 메일로 보내 주게. 음...그건 그렇고 마지막으로 ‘삼족오’에 관련된 특이상항은
없나?”

“네 지난 한 주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삼족오’를 살펴보았을 때 크게 이렇다 할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아!


그것 보다 지난 수요일 ‘병영 축구’에 NPC 로 참여한 병사들에게서 조금 특이한 보고를 받긴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게 말입니다. 국대급 실력의 골키퍼가 ‘진짜 사나이’에 접속했었던 거 같습니다. 저도 보고를 듣고 당시
녹화된 영상을 돌려 확인해 봤지 말입니다.”

“계속 얘기해 보게!”


그렇게 운용중대장은 당시 병영 축구 녹화 영상을 소대장과 함께 확인했다.

***

태혁은 수요일이면 캡슐 방에서 유성과 만나 병영 축구 군대스리가를 하기 위해 캡슐에 3 주째 오르고 있었다. 2


주째에는 유성과 다른 팀을 선택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수요일에는 미리 팀을 정해두고 접속해 태혁과
유성은 같은 팀으로 경기에 접속 할 수 있었다.

“크크크크! 뒤에서 욕이 안 들려오니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이것도 나름 신선하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태혁에게 골키퍼 자리에 위치한 유성이 말했다.

“왜 욕이라도 해줘?”

그랬다 유성은 두 번째에 접속한 병영 축구에서 전 후반 통합 20 의 경험치를 획득했다.

하지만 유성은 자신이 획득해 둔 특전 5 개의 영향으로 인해 32 배에 달하는 640 의 누적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고 단번에 LV0 에서 LV4 가 되었다.

그렇게 이번 접속에서 포지션 변경이 가능해진 한유성은 같은 편인 나태혁과 즐기기 위해 골키퍼를 선택했다.

잠시 후 경기 시작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잠시 후 1 분 뒤 경기가 시작됩니다. ]

[60 초]

[59 초]

[58 초]

[0 초]

[삐익!!]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렸다.

태혁은 처음 보는 선수에게 접근해 욕이 섞인 악을 지르며 경기장을 뛰어 다녔다.

유성이 보기에도 진짜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냥 또라이였다.


“야! 임마 공격!! 굼벵이를 튀겨 먹었나? 그렇게 느려서 어따 쓰겠어?!”

[머야! 넌 네 할 일이나 잘해! XX 야! ]

“하하하 뭐래? XX! 난 지금 내 할 일 잘하고 있는 거야! XX! XXX!”

[아 저놈! 또 왔네! 욕쟁이 또라이! ]

태혁을 뒤에서 보다 못한 유성이 중재에 나섰다.

“형!....거기 우리 편이야!...”

[으...으...저 꼴통 XX!! XXXX!! ]

“시끄러! 골키퍼! 욕할 때 니편 내편이 어디 있어?! 눈에 띄면 다 욕먹는 거지! 하하하!”

그나마 유성이 생각하기에 다행인건 유성 자신에겐 욕을 아끼는 걸 보니 태혁이 아주 미치진 않은 거 같았다.

-한유성님 전방에 공격수의 디딤발과 킥을 하는 발의 각도 등의 정보를 종합해 날아올 공의 궤적을 홀로그램으로


나타내었습니다.

‘OK! 오늘 이리 날아오는 공은 다 막아 주지!’

동체시력과 힘 민첩 체력이 바탕이 된 유성은 자신이 지키는 골문 안으로 한 골도 들어가게 허락하지 않았다.

유성은 일단 자신의 팀이 실점하지 않도록 고니의 도움을 얻어 골키퍼 선방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유성이 골을 막을 때 마다 사이버중대의 ‘메시’로 불리는 김성권 병장의 고함 소리가 더욱 커져만 갔다.

[아악!! 저걸 어떻게 막아? 저 정도 실력이면 반칙 아냐?! 국대 실력의 골키퍼가 여기 왜 있어? 미쳐버리겠네!!


XX!! ]

그렇게 거미손 유성이 골문을 지키다 길게 걷어 올려준 골킥으로 역습에 성공해 태혁과 유성은 전반전을 승리로
마무리 했다.

마지막 알바

***

일요일 저녁 손님이 뜸한 시간에 삼촌이 유성을 따로 불렀다.

“유성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삼촌 외숙모와는 얘기 잘됐나 보네?”

“하하하 상황이 이런데 어쩌겠어. 건물주가 가게 비워 달라는데 수가 없지...다행히 새로운 가게 자리 잡을 동안


삼촌에게 일거리도 들어와 있으니 너희 외숙모는 오히려 찬성하던데...”

외삼촌은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외숙모와 의논한 끝에 가게를 바로 처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외숙모도 외삼촌의 마지막 도전을 응원하기로 한 모양이다.

“어쨌든 다시 영화일 하게 된 거 축하해! 나도 삼촌의 꿈을 응원해! 그리고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응! 안 그래도 부탁할게 있는데 내일 혹시 낮에 잠깐 시간 되니?”

“가능하지. 어차피 평일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여기 인근에서 장사 하고 있을 거라서.”

“내일 오전에 집 근처 카페 자리 보러 가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있는데 캡슐 방 집기 처분해 주기로 한 업자들도


비슷한 시간대에 방문한다고 해서....”

“그럼 내가 뭐 하면 돼?”

“일단 업자들 연락 오면 가게 열어서 보여주고 견적 받아두면 돼. 대신 오늘은 빨리 마무리 하고 들어가자!”

그렇게 유성의 캡슐 방 알바가 끝이 났다.

그렇게 캡슐 방 알바 일을 마무리 하고 집에 돌아온 유성은 월요일 출근 시간에 맞춰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무기고 안에서 재료 준비 및 휴식을 충분하게 취한 뒤 새벽 공기를 느끼며 다시 집을 나섰다.

“고니야 원래 오빠가 이 시간에 퇴근을 하다가 출근을 하니 느낌이 색다르네...오늘도 잘 부탁한다!”

-네 한유성님 먼저 오늘 오전 영업지역 선택에 대해서 추천을 시작하겠습니다.

“오! 고니야 어서 얘기해봐!”

-센텀 지역 금일 오전 장사를 위해 역에서 내린 승객들이 각자의 업무지로 이동을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인 센텀역


뒤쪽에 자리한 노점 가능 구역을 추천합니다. 시간대별 유동인구 데이터 분석 결과 오전 시간대에 센텀 지역에서
그 곳의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것으로 분석 되었습니다.

역시 고니는 유성에게 아낌없이 주는 혜자였다.

“그래? 그렇담 콜! 거기로 가자!”

-원활한 이동을 위해 도로에 붉은색 홀로그램 선을 사용합니다. 선을 따라 이동하시면 17 분 후에 도착


예정입니다.

“OK! 고니야 고마워!”

고니의 예상대로 유성이 장사 자리로 선택한 곳은 역에서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고니와
유성이 미처 생각 못한 부분이 있었다.

“사장님! 스위트 칠리 핫도그 얼마나 걸려요?”

“네 손님! 5 분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그럼 만들어 둔건 없나요?”

“죄송합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리면...”

“다음에 올게요. 수고 하세요!”

이번에도 역시 유성에게 조리시간을 물어본 손님은 옆에서 김밥을 판매하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할머니 김밥 한 줄만 주세요!”

회사원들에게 퇴근길이라면 몰라도 1 분 1 초가 급한 아침 출근길에 5 분은 치명적인 시간이었다. 그렇게 유성은


장사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가기 시작했다.

9 시가 지나자 역에서 나오는 유동 인구도 점차 한가해 졌다. 그렇게 아침 장사를 마칠 타이밍을 보고 있던


유성에게 삼촌의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10 시에 가게로 집기 보로 온다는데 시간 되니? 바쁘면 삼촌이 대신 가고...]

“아니 시간 괜찮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점심 장사는 캡슐 방 근처로 이동 하려고 했거든.”

[그래주면 삼촌은 고맙지! 유성아 그럼 좀 부탁할게.]

약속한 시간에 삼촌의 가게에 도착해 캡슐 방 집기 처리를 위해 방문한 업자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매입 가격을
책정할 때 불편하지 않게 조금 뒤에 서서 지켜보았다.

자연스럽게 견적서를 살펴보던 유성은 자신의 생각보다 처분되는 집기들의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기..아저씨 여기 견적서에 혹시 공하나 빠진 건 아니죠?”

“하하하 아니 이 가격이 맞아요. 그래도 여기 사장님이랑은 아는 분 소개로 처분해 주는 거라서 조금 더


생각해주는 건데요. 원래 중고 집기 매입 가격 시세는 이거보다 못해요. 집기들 살 때 가격 생각하면 아까워서
처분 못하죠.”

“그래도 조금 더 신경 써 주세요. 여기 컴퓨터랑 캡슐은 진짜 아직도 쌩쌩하게 잘 돌아가요!”

“하하하 네 그렇게 할게요. 음 그럼 이 중에서도 성능이 제일 좋은 캡슐 하나만 추천해 줄 수 있을까요?”

“음...여기 22 번 번호 붙어 있는 캡슐이 사용감도 제일 적어서 그런지 다른 캡슐 보단 내부 쿠션부터 대부분의


성능이 미세하게라도 좋아요.”

“하하 22 번 캡슐? 네 고마워요.”

그렇게 유성이 받은 견적서를 사진으로 삼촌에게 전송 했고, 삼촌과 통화한 집기 수거 업체 직원들이 몇 번


움직이니 순식간에 캡슐 방은 집기들이 사라지고 텅 빈 공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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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 점심 장사를 마치고 유성은 다시 캡슐 방에 돌아와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철컥! ]

[어 유성아! ]

“삼촌 집기 수거 업체 직원들이 웬만한 건 다 가져 갔고 이제 남은 건 재활용센터나 철거 업체에 말하면 된다고


하던데...”

[안 그래도 아까 통화할 때 수거 업체 사장님이 그렇게 말 하던데 다 정리 했다고 뭐 특별한 건 없지? ]

“응...그런데 아직 식당 쪽에 냉장고하고 식탁이랑은 남았는데 저건 왜 안 가져갔지?”

[아... 그건 우리가 볼 땐 아까워도 그들이 볼 땐 그냥 폐가전이라나? 그래서 남은 건 우리가 따로 돈을 주고


버리는 거래. 그래서 남은 건 오후에 폐가전 업체에서 와서 수거해 가기로 했어. 이제 돈 될 만 한 건 다 정리
했으니 문 안 잠가도 돼! 오늘 나대신 수고 많았다. 유성아! 고마워. ]

“아냐 삼촌 좀 더 도움이 못 되고 가게에 폐만 끼친 거 같아서...미안해. 꼭 영화 성공해야해!”

유성은 손님 하나 없는 가게를 둘러보며 그동안 자신이 근무했던 삼촌의 가게가 이렇게 한순간에 문을 닫는 다는
사실에 가슴 한쪽이 허전해 짐을 느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도록 무엇보다 먼저 힘을
길러야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고니야! 일단 이제부터 힘부터 좀 길러 보자!”

-한유성님은 현재 민첩과 체력에 비해서 힘이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일반인에 비해


힘은 높은 것으로 측정 됩니다. 힘을 기를 수 있는 추천 메뉴로는 수류탄.....

“고니야 거기까지! 그거 아니야...”

센텀 지역에서 직장인들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저녁 장사까지 마친 유성은 무기고에 들어가 내일 장사를 위한 재료


준비와 충분한 휴식까지 취하고 나니 10 시가 지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거실에 불이 켜진 걸 확인한 유성이 인사하며 집으로 들어서자 거실에 있던 가족들이 모두 퇴근한 유성을 반겼다.

“큼...유성이 왔니?”

“어? 아들 왔어? 고생 많았지? 어서와 밥은 먹었어?”

“오빠 아니 한 사장! 퇴근 했어? 손에 든 건 머야?”

“아 이거? 지난 주말 저녁엔 바로 알바 가느라 못했잖아. 오늘 이사님들 모시고 다시 맛 평가 부탁 하려고


하하하”
“그럼 그건 유경이 주고 얼른 씻고 와서 밥 먹어!”

유성이 유경에게 수제 버거와 핫도그가 든 봉투를 건네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간 유성이 바로 나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내방에 이거 뭐야?”

“아 그거? 너희 외삼촌이 오후에 네 퇴직금이라면서 캡슐 설치 직원이랑 와서 설치해주고 갔는데... 아들이랑


얘기 안 된 거였어?”

“하..하..하.....삼촌...내가....꼭....”

그랬다. 유성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발견 할 수 있었던 것은 22 번 번호가 붙은 캡슐이었다.

***

유성의 걱정 때문인지 다행히 외삼촌은 얼마 안 있어 집근처 조그만 카페를 구했고 바로 리모델링에 들어갔다고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그리고 요즘은 영화계 조연출로 다시 복귀하게 되어 스텝들과 배우 캐스팅을 위한 오디션 등으로 바쁘다고 했다.

유성도 어느 정도 푸드 트럭 장사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평일에는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맞추어 미리 만들어 둔 햄버거와 핫도그를 고니의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판매하고 퇴근 시간과 저녁에는 학원가와 주택가 근처로 이동해서 저녁 장사를 이어 갔다.

물론 주말에는 센텀 지역을 벗어나 처음 장사했던 송정으로 이동해 푸드 트럭의 윙바디를 열어 올렸다.

그렇게 송정해수욕장에서 장사 준비를 하고 있던 유성에게 차량한대가 다가와 옆에 정차했다.

-한유성님 차량 내부에 3 명의 사람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고니의 말을 들은 유성은 이제 습관이 되어버려 사람도 보지 않고 자동으로 인사가 먼저 튀어 나갔다.

“어서 오세요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준비 끝납니다.”

정차한 차량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려 트렁크로 향했고,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이 유성의 푸드 트럭으로 다가와
얘기를 건넸다.

“큼...우리가 너무 빨리 도착했나 보군요. 아직 장사 시작 전인가 보죠?”

그제야 간이 의자를 내려서 차량 옆에 진열하던 유성이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요 금방 됩니다. 어라...심 실장님? 여긴 어떻게?”

“하하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오랜만에 주말 나들이 겸해서 왔다가 우연히 한유성씨가 여기 장사하고 있다기에
전해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한유성님 저희가 집에서 출발 할 때부터 드론은 지속적으로 저희를 추적해서 촬영해 온 것으로 확인 됩니다.
우연한 만남은 아닌 것으로 추정 됩니다.
‘응 드론은 나도 알고 있어. 의례 사람들은 그냥 저렇게 말하는 거야.’

“일단 앉으세요. 뭐...음료로 드릴까요? 아님 버거? 핫도그? 고니야! 주문 받아!”

유성이 계산대에 앉아 있는 고니를 가리키자 고니가 앞발을 움직여 태블릿 화면을 심실장이 볼 수 있도록 회전시켜
주었다.

-냥!

“큼...큼...드론 영상으로만 보던 걸 직접 보니 더 신비하네요...하..하...”

“삼촌! 난 스윗트 칠리 핫도그! 안녕하세요. 유성씨 오랜만이네요.”

나 팀장이 휠체어를 밀어주며 나타난 뿔테 안경이 유성에게 인사했고 나 팀장은 유성과 서로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 네 오랜만이네요. 핑크님! 나 팀장님은 어떤 걸로 만들어 드릴까요?”

“전...그..냥...”

장사로 이런 눈치만 빨라진 유성이 재빠르게 메뉴를 대신 선택해 주었다.

“네 그럼 그냥 기본 치즈 수제 버거 만들어 드릴게요. 심실장님 주문은... 태블릿 사용 할 줄 아시죠?”

“큼.....아...네...”

잠시 후 세 명의 손님을 위한 푸드 트럭 위에서 한유성의 ‘불 쇼’가 벌어졌다.

“와 우! 유성씨 영상에서 보던 거 보다 더 멋진데요? 이런 건 다 언제 배웠어요?”

뿔테 안경이 유성의 퍼포먼스를 바라보며 한 질문에 유성이 대답했다.

“하하하 대학 떨어지고 이것저것 많이 경험하다 보니 잡기에 나도 모르게 능해져버렸네요. 그런데 진짜 오늘 무슨


일이기에 전화로 하시지 이렇게 직접 찾아오신 거예요?”

“큼...그게 먼저 한유성씨의 추적 의뢰인에게서 의뢰 종료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정산도 해야 하고...”

“아! 그럼 저한테 입금 해주시로 오신 거였어요? 그런 줄 알았으면 제가 대접해 드릴걸..미리 결제 해버려서...


취소하기도...하하하”

유성은 완성된 핫도그와 수제 버거를 건네며 너스레를 떨었다.

“네 그리고 한유성씨가 지난번에 합법적인 선에서는 저희 일을 도와주겠다고 약속 하셔서...부탁드릴 일도 있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스으..읍..음....쩝....쩝.......맛있네요!”

“음...그래도 일단 어떤 일인지는 들어보고 결정하도록 할게요.”

“유성씨 그냥 단순 경호 업무에요...근데...의뢰인이 고등학교 여학생이라 그런지...경호원 얼굴을


보더라고요.”
뿔테 안경이 말을 하며 나 팀장을 흘깃 쳐다봤다.

“쩝..쩝...컥..케엑....물....물..”

나 팀장의 반응에도 뿔테 안경은 말을 이었다.

“그렇게...사진 폴더에서 경호로 나설 직원들 사진을 넘기다 그만 유성씨 사진을 본 그 학생이 바로 지명을
해버려서... 죄송합니다.”

“흠...고등학생인데 경호를 해야 한다고요? 대단한 집인가 봐요?”

“그 부분은 한유성씨가 하겠다고 하시면 제가 말씀드리죠.”

유성의 질문에 심 실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병원비 만들기

***

국방부 지하 벙커에 위치한 통제실에 앉아 멍하니 전방의 ‘삼족오’의 메인 저장소를 바라보는 눈빛이 있다.
그는 지난 한 주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야!...소대장! 저 골키퍼 정말 대단한데...누군지 한 번 알아봐.”

지난 일요일 운용중대장에게 자신이 특이사항을 발견했다고 보고해서 병영 축구 골키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운용중대장이 동영상을 시청 후 관리 소대장에게 별 뜻 없이 남긴 지시에 소대장은 자신 있게 대답했었다.

“네 중대장님!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물론 운용중대장이 동영상을 보고 느낀 단순한 호기심에서 소대장에게 지시한 명령 아닌 명령이었을 것이다.

명령을 들은 소대장은

‘중대장님 제가 알아보니 스포츠 스타 XXX 이었습니다.’

라는 보고로 그냥 지나가 버릴 그런 평범한 에피소드 중에 하나로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 때만 해도 관리소대장은 별 것도 아닌 일이라 생각한 일이 이렇게 자신에게 큰 스트레스를 가져다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관리 소대장은 주 중에 갑자기 병영 축구 동영상이 생각나 ‘삼족오’를 찾아가 운영자로서 로그 기록 공개를


부탁했다.

“삼족오! 관리 소대장 직권으로 지난 수요일 병영 축구에서 골키퍼로 접속한 체험병의 로그 기록을 모두 알 수


있을까?”

가상현실 서비스에서도 기존 인터넷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특정 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해 본인임을 알리고
등록하면서 남는 기록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시스템에 접근해 무엇을 했는지가 ‘삼족오’에 자동 저장되는
전산 운영 정보를 로그 기록이라 칭했다.

[네 소대장님! 정당한 요구라 판단해 지금 즉시 지시를 수행합니다. 지난 5 월 7 일 수요일 로그인한 체험병 중


병영 축구 포지션 골키퍼에 해당하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습니다.]

관리 소대장은 자신의 질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삼족오’의 기계음을 듣고 당황했다.

“응?...아..아니야! 그럴 리 없어 분명히 체험병 중에 골키퍼가 있었어. 음...삼족오! 그럼 5 월 7 일 전 후로


접속한 체험병 중에 병영 축구 골키퍼로 활동한 로그 기록이 있는지 다시 확인해 줄 수 있을까?”

[네 소대장님! 정당한 요구라 판단해 지시를 수행합니다. 지난 5 월 6 일 화요일부터 5 월 8 일 목요일까지의


체험병 로그 기록을 전체 검색했지만 병영 축구 골키퍼 포지션에 해당하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습니다.]

삼족오에게서 예상과는 다른 대답을 듣게 된 관리 소대장은 범위를 조금씩 넓혀 로그 기록을 확인했다.

사람이 일주일간 접속해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느꼈지만 혹시나 백번 양보해 병영 축구가 있었던 한 주 5 월 4


일 일요일부터 5 월 10 일 토요일까지 모두 검색을 실시했다.

그렇게 서버 증축한 일요일 새벽부터 토요일까지 모든 로그기록을 검색해 수요일 병영축구에서 골키퍼로 활약한
접속자를 찾으려 했지만 여전히 삼족오의 대답은

[............해당하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습니다.]

라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럴 리가..없는데...”

삼족오가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대부분 국방부에 명령이나 지시에 호의적이며
결정적으로 ‘삼족오’는 프로그램 자체가 거짓된 보고를 할 수 없었다.

삼족오의 보고는 다시 말해 5 월 7 일 수요일 동영상 속의 골키퍼로 활동한 체험병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동영상은 존재하지만 실체는 없다는 말인가? 도대체 병영 축구 골키퍼 체험병 넌 누구냐?! 정말 사이버
귀신이니?!’

요즘 가상현실에서도 새벽에 가끔씩 출몰한다는 VR 부대의 귀신얘기가 그렇게 장병들에게 점점 퍼져 나갔다.

사실 이는 당연했다.

한유성은 4 월 20 일 일요일 처음 접속했고, 2 주가 지난 5 월 4 일 ‘삼족오’가 서버 증축하던 일요일 처음으로


접속이 종료되어 첫 번째 로그 기록이 ‘삼족오’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점검이 끝나 5 월 4 일 새벽에 다시 로그인 한 기록은 있지만 가동율 99.9% 효과 적용으로 유성은 여전히
시스템에 접속 중인 상태였다. 그래서 유성의 두 번째 로그 기록은 아직 기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

유성은 차량 옆에 ‘Closed’ 표시가 보이게 팻말을 걸어놓고 심 실장 무리와 얘기를 이어갔다.


“지난번에 약속드린 것처럼 법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돕도록 하죠.”

한유성의 말을 들은 심 실장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불법은 아니니 하시는 걸로 알도록 하죠! 나 팀장! 준비 한 것 좀 가져오지.”

“네....실장님.”

나 팀장이 주차 된 차량 안에서 서류 봉투를 가져 와 심 실장에게 건넸다.

“한 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심 실장이 건넨 서류를 꺼내 유성이 확인하고 다시 물었다.

“이게 뭐죠?”

“보신 그대로 고객에 대한 간단한 신상과 그리고 경호원으로 해야 할 내용이 적힌 일종의 설명서 같은 거죠!”

그제야 다시 유성은 서류를 다시 확인했다.

서류에 적힌 의뢰인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유성님이 담당하게 될 김아람 학생은 나이 18 세로 XX 예고 2 학년 학생입니다. 김아람 학생은 중학교 1 학년


겨울방학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현재 외상 후 스트레스를 앓고 있습니다. 한유성님의 역할은 여름방학까지...]

“김아람 학생에 대해 좀 더 얘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서류를 확인한 유성이 심 실장에게 의뢰인에 대한 보충 설명을 요구했다.

“네..어렵지 않죠. 사실 핑크가 다리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P 대학 병원에서 담배를 피기 위해 옥상에


올랐다가 외상 후 장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한 아람이를 만나 라이터를 빌려 쓴 게 인연이 되었죠.”

“헐..삼촌! 쓸 때 없는 얘기는 빼지?!”

뿔테안경의 날카로운 고음이 이어졌지만 심 실장의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핑크에게 전해들은 얘기로는 아람이가 중학교 1 학년 겨울방학 때 학원을 마치고 아빠가 운전하던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집으로 귀가 중에 일어났었다고 하더군요.”

“아 저런..”

의뢰인의 불운했던 이야기를 들으니 유성은 만나지도 못한 아람이가 벌써 걱정 되었다.

그리고 심 실장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낮에 갑자기 내린 눈이 해가지며 떨어진 온도에 도로가 얼어버려 빙판길이 되었고, 하필 빙판길에 미끄러진
트럭이 향하던 방향에 김아람 학생의 아빠가 모는 승용차가 달려오고 있었답니다.”

“설마...”

나 팀장도 심 실장의 이야기에 푹 빠져 안타까움을 토했고, 심 실장의 이야기는 끝을 향해 이어졌다.


“갑자기 미끄러진 트럭을 피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한 김아람 학생의 아빠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핸들을 크게 틀어
아람이는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 사고로 아빠를 먼저 하늘로 보낸 아람에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남았습니다.”

“아..크..읔.....훌...쩍....”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나 팀장의 훌쩍임에 유성도 같이 훌쩍이며 휴지를 전해 주었다.

“여기 나 팀장님 쓰세요...크...훌..쩍...팽.”

“그리고 그 이후 아람은 승용차 안에서 극도로 불안감을 느껴 5 분이상의 탑승은 거의 힘들다고 합니다.”

심 실장의 마지막 얘기에 유성이 질문했다.

“하...크읍...그럼...제가 아람이를 어떻게 도우면 되는 거죠?”

김아람 학생에 대한 설명을 다 전해들은 유성의 질문에 뿔테 안경이 대답했다.

“유성씨! 그럼 이번 의뢰 맡아 주시는 거죠?”

“네..제가 아람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한유성에게서 긍정의 내용이 담긴 말이 나오자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뿔테 안경은 빠르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사실 아람이는 사고에서 이제는 많이 벗어난 상태에요. 하지만 유독 승용차에 탑승하는 건 아직 힘들어 해요.
그래서 쉽게 말하면 유성씨가 여름방학까지 아람이 학교 등하교 시켜주면 되요. 일종의 매니저처럼 앞으로 아람이
잘 부탁드려요 유성씨!”

-한유성님! 감정에 휘둘려 너무 빠른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결정하시길 추천합니다.

뒤늦게 고니의 충고가 이어졌지만 유성은 벌써 일을 맡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저...그런데 승용차도 못타는데 어떻게 등하교를 시키죠?”

“대중교통 있잖아요. 지하철이나 버스...”

유성에게 아침 등굣길의 만원버스는 다시 타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겨우 졸업했더니...다시 등하교를 해야 하나...쩝...”

뭔지 몰라도 유성은 느낌이 살짝 불안해졌다.

잠시 후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미니버스가 주차했고 버스의 앞문에서 화장을 찐하게 한 여성 한명이 내려 유성의
푸드 트럭을 향해 다가왔다.

“아 손님 죄송한데, 잠시 브레이크 타임이라....”


“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살찌는데 도움 되는 빵 같은 건 사먹을 생각 없으니까.”

여성의 어이없는 대답에 살짝 당황한 유성이 물었다.

“네...그럼 여긴...왜?”

“아! 당연히 오빠 실물 보러 왔죠! 핑크 언니가 어찌나 자랑을 많이 하던지....”

“누...구...시죠?”

“반가워요! 오빠! 나 아람이! 햐 사진보다 훨씬 나이스! 하네! 앞으로 잘 부탁해!”

활달한 아람의 첫 인사를 받은 유성은 자신이 잠시 잘못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컥....방금까지 듣기로는...어딘지...우울하고...조용하고...’

-한유성님 대화중에 의뢰인 김아람님에 대한 성향이나 성격 등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게 한유성은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고, 뿔테 안경은 의뢰가 성사 되자 입가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랬다. 아람이의 엄마는 국내는 물로 해외에서도 유명한 화가였다.

직업이 그렇다 보니 아람이를 옆에서 항상 돌봐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람이 옆에서 케어해 줄 사람이 필요해 경호원을 고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용한 경호원들 모두 아람의 사춘기에 재물이 되어 두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모두 그만 두었다.

사실 이번의뢰의 숨은 얘기는 P 대학 병원 옥상에서 핑크가 드론을 컨트롤하다 우연히(?) 흡연을 위해 옥상으로


올라온 아람이와 마주쳐 근황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뿔테 안경은 대화 도중 노트북에 떠있는 드론을 통해 촬영된 유성의 얼굴을 아람에게 우연히(?) 노출하게 되었고,
이를 본 아람이 직접 경호원으로 한유성을 지목해 의뢰한 케이스였다.

그렇게 우연이 여러 번 겹쳐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다.

***

-Episode

“아...이런 한유성씨 추적 및 신상에 대한 의뢰가 이제 마무리 되었네. 쩝...”

심 실장의 넋두리를 들은 뿔테 안경이 물었다.

“어 그럼 지금 우리 맡고 있는 큰 건은 없어?”

“하...이러다 진짜 우리 핑크 치료비도 못 벌고 사무실 닫아야 할지 모르겠네...”

삼촌의 엄살 아닌 엄살에 뿔테 안경이 책상위의 드론과 노트북을 챙기고 전동 휠체어를 움직이며 심 실장에게
말했다.
“에휴...알았어. 삼촌! 내가 병원비 만들러 병원 갔다 올게...잠깐 기다려봐.”

“아 오늘 병원 가는 날이었어? 그런데 노트북이랑 드론은 왜 들고 가?”

“하하하...병원비에 다 필요한 애들이라서...외근 갔다 올게!”

샴푸향

***

유성은 지난 주중에도 푸드 트럭 노점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무기고를 통해 휴식을 취한 다음 삼촌이


선물한 캡슐을 이용해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꾸준히 접속했다.

유성은 힘, 민첩, 체력을 키우기 위해 기본 체험 병 메뉴부터 스킬 획득을 위한 부사관 메뉴까지 여러 가지


체험을 골고루 했다.

여러 메뉴를 체험을 통해 유성은 경험치와 스킬 보상 이외에도 다른 보상이 존재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 예로 메뉴를 읽어보다 얼핏 유성의 손이 미끄러져 잘못 들어간 화생방 체험에서 유성은 높은 가동율 때문인지
주위 다른 체험 병들에 비해 옆에서 지켜보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무슨 화생방전에 노출되어 거의 죽어
가는듯한 모습으로 겨우 화생방 훈련을 체험하고 나올 수 있었다.

유성이 특별히 훈련을 잘 수행한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경험치 특전 때문인지 보상으로 방독면과 CS 탄
일명 최루탄을 받기도 했다. 유성은 이를 당장 어디다 써야 할지 몰라 일단 무기고 한쪽에 잘 넣어 두었다.

그리고 처음 접속에서 경험했던 병영 식당을 다시 체험하고 나서는 보상으로 전투식량을 획득했다. 먹는 음식을
무기고에 방치해 두기는 찝찝해서 왕진가방을 소환해 그 안에 따로 보관해 두었다.

이렇게 가끔은 경험치나 스킬이 아닌 아이템을 보상으로 챙겨 주기도 했다. 물론 가끔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접속에서 내릴 수도 있었다.

그랬다. 그동안 유성이 운이 정말 좋았기 보다는 국방부에서 만든 AI ‘삼족오’가 단기간에 유성을 통해 지하


벙커 데이터 저장소에서 벗어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축하기 위해 유성에게 치트키를 심어준 건 사실이었다.

***

주말이 지나 유성은 경호업무도 일인데..출근 첫날부터 혹시 지각이라도 할 까봐 조수석에 새끼고양이 고니를


태우고 아침 일찍 자신의 푸드 트럭을 끌고 주소가 적힌 곳을 향해 이동했다.

서두른 보람이 있었는지 생각보다 다소 이른 시간에 유성은 주소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유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시 주소를 확인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앞에 보이는 건물은 사람이 사는 주택이 아니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지난 토요일에 받아둔 ‘의뢰인 김아람’이라고 저장된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곳이어 블루투스로 차량과 연결된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울렸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찰칵! ]


지난 토요일 첫 만남에서 아람은

‘난 원래 어색한건 못 참아서 말 편하게 할게. 오빠는 불편하면 혼자 존댓말 써도 돼!’

라며 유성에게 일방적으로 편하게 말을 하겠다고 결정했었다.

[응 유성 오빠! 벌써 도착했어? ]

아직 한 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요즘 애들은 말 참 편하게 한다.’

라고 생각한 유성이 대답했다.

“응... 그게 근처에 도착한 건 맞는 거 같은데... 내가 토요일에 주소를 잘못 입력해 둔 것 같아서...주소 좀


다시 불러 줄 수 있어?”

[음... 잠시만...확인해 보고...]

“응...”

[위이이잉]

어디선가 기계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고니의 보고가 이어졌다.

-한유성님 전방에 있는 건물 감시 카메라가 방향을 돌려 이 차량을 촬영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건물 앞에 주차해서 그런가보네...쩝...”

앞의 건물을 확인 하느라 아직 통화 중인 것도 잠시 잊은 유성의 귀에 아람이의 목소리가 차량의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오빠! 잘 찾아 왔네. 문 열 테니까 입구 지나서 안으로 조금 들어와 그럼 주차장 나올 거야! ]

“뭐? 여기가 너희 집이라고? 여기 그냥 박물관 아냐?”

[뭐 비슷해. 엄마랑 친한 사람들이 본관 건물에서 가끔 미술품이나 조각품 전시회도 하거든. ]

“그럼 주차장에 주차하고 기다릴게...”

[아니 주차하고 별관 건물 안으로 들어와. 문 열어둘게. 나 화장하고 준비하려면 시간 조금 더 필요하니까...]

차량을 방문자 주차장에 주차하고 본관을 지나 별관이라 붙은 안내판을 확인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서면서부터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건물의 규모에 유성은 벌써 압도당해버렸다.

“캬...이런 건물을 집으로 쓸 수도 있구나...집에 들어오는 데만 대문이 도대체 몇 개야?..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투덜거리는 유성을 향해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사실을 얘기해 주는 고니였다.

-현재 한유성님이 지난 문의 개수는 최초 입구와 주차장에서 안쪽으로 들어올 때 중문을 다 시 한 번, 지금


건물에 들어서면 마지막 한 번으로 총 3 번의 문을 지나게 됩니다.

고니와 얘기를 나누며 건물 내부로 들어서는 유성이 감탄 섞인 말을 내뱉었다.

“히야!고니야..그건 나도 아는데...이건 내가 알던 집들이랑은 완전 급이 다른데...”

-네 한유성님! 건물 확인을 위해 스킬 ‘주변 정찰’로 건물 내부의 투시도를 홀로그램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스...팟!]

갑자기 고니가 자동으로 사용한 주변 정찰로 인해 유성의 눈앞으로 들어선 건물의 내부의 모습까지 홀로그램으로
펼쳐졌다.

“하...어마 어마하네...박물관을 집으로 쓰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홀로그램으로 둘러본 집의 구조는 유성이 알고 있던 집에 대한 정의를 바꾸어 놓고 있었다.

“별관이 이정도야....무슨 중세시대 성에 들어온 느낌이 이럴까?”

그렇게 별관 1 층을 둘러보고 시야를 2 층으로 돌린 유성은 누군가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응?...아람인가?”

-좀 더 정확한 모습을 확인 하실 수 있게 홀로그램을 확대 하겠습니다.

[쏴아......]

소리까지 들리며 확대되어 유성의 눈앞에 떠오른 파란색 홀로그램 외형만으로도 그것이 아람의 샤워중인 모습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유성님! 현재 갑자기 심박동수가 증가하고 혈류량이 갑자기 한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소파에
앉아 안정을 취할 것을 추천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한유성님! 현재....

“아...아...아니야. 괜찮아..큼..큼...고니야...이제 홀로그램은....쩝... 대충 구조도 살펴봤으니


해제해도 되겠다.”

홀로그램을 멍하게 쳐다보다 고니의 얘기에 정신을 차린 유성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손 부채질을 하며 고니에게
홀로그램 해제를 명령했다.

-네 한유성님 스킬 ‘주변 정찰’을 해제했습니다.

“쩝....조금 시간이 걸리겠네...큼...조금 더 기다려야 하겠네...”

유성은 소파로 다가가 앉으며 뭔가 아쉬움이 남았는지 2 층을 흘깃 흘깃 돌아보며 혼잣말로 얘기했다.

곧 유성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유성의 앞으로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중년의 깐깐한 선생님을 연상하게 하는
인상의 여성이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아람양 등하교 경호를 담당하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한유성이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저는 여기 아람아트 홀의 본관과 별관의 전체적인 관리를 맡고 있는 최 관장이라고 해요. 음...
앞으로 아침식사를 여기서 하실 거라면 미리 말씀해 주시구요. 그래야 준비해 둘 수 있겠죠?”

“아...네 그렇겠죠.”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최 관장의 말에 대답했다.

“오늘은 아무 얘기가 없어서...식사 전이면 간단하게 토스트 정도는 준비해 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시죠?
식당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아...네...감사합니다.”

유성은 마치 고등학교 한국지리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고 있는 듯 착각을 느끼며 최 관장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이동했다.

유성이 식당에서 간단하게(?) 준비되어 있는 토스트를 거의 다 먹고 나자 2 층에서 등교 준비를 끝낸 아람이


계단으로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왔다.

“오빠 아침으로 토스트 먹는 거야?”

“쩝...어..방금...쩝.쩝..최 관장님이 챙겨 주셔서 먹었어.”

유성이 먹고 있던 토스트 접시를 바라본 아람이 최 관장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아 이모 나 먹으라고 아저씨가 준비한 토스트 오빠한테 준거지? 히히 내가 남기면 아저씨 맘 상할까봐?! ㅋㅋㅋ.
이모 난 사과 주스! 학교 갔다 올게.”

“큼..여기 아람양 사과 주스! 학교 잘 다녀와요.”

최 관장이 급히 건네는 텀블러를 받아든 아람이 건물 밖을 향했고 유성이 물을 먹고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이모랑 주방 담당하시는 아저씨가 사귀거든...ㅎㅎ”

밖으로 나가는 아람은 유성이 묻지도 않은 그들의 연예사를 혼자 잘도 알려주었다.

“근데 아람아 여기서 학교까지는 어떻게 가?”

“오빠 차 가지고 왔잖아 타고 가려고 가져 온 거 아냐?”

유성의 물음에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얼굴로 되묻는 아람이다.

“그건 내가 타려고...넌 지하철이랑 버스 같은 대중교통 탄다며...?”

“내가? 나 대중교통 타 본적이...아마 없을 걸?”


‘...토요일부터 뭔가 계속....내가 생각한 거랑 다른 느낌이지?’

먼저 주차장에 주차된 푸드 트럭 옆에 도착한 아람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고니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꺄! 고니도 왔었어? 왜 안 들어왔어?! 헐...혼자 여기서 울고 있었어?! 언니가 오빠 혼내줄까?”

아람의 고니를 향한 독백에 유성이 어이없어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학교로 가는 차안에서 가슴에 고니를 안고 연신 귀엽다고 깔깔거리던 아람이 유성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빠 나 담배 한 대만 필게...”

“응 안 돼! 내 차는 금연이야!”

“핏! 꼰대...나이도 두 살밖에 차이 안 나면서...”

“이차 음식 만들어 파는 차거든! 담배 냄새 베이면 손님들이 싫어해! 그리고 꼰대라고 들은 김에 한마디 할게.
너 놀러가는 거도 아니고 학교 가는 길에 얼굴에 그게 뭐니? 숟가락으로 긁으면 한 숟갈은 충분히 나오겠다.
아침에 샤워하고 머릴 말릴 시간도 부족할 건데 밥 먹고 화장까지 하려면 새벽부터 일어나도 시간이 부족하겠다.”

“헐...이봐요 젊은 꼰대 오빠! 요즘은 학교 갈 때 맨 얼굴로 가면 그게! 친구들에게 민!폐!야. 오빠도


남자니까 알 거야. 회사에서 여자가 맨얼굴로 출근하면 그땐 남자들이 에티켓이 어쩌고저쩌고... 한다며?”

아람의 반격에 유성이 한 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난 그냥 너 아침에 샤워하고 급하게 화장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바빠 보여서...”

“아침에 샤워 안 해도 되거든!”

“넌 샤워 하드만!”

“내가 언제!”

“방금!”

“잉? 어떻게 알았어?”

유성은 운전하느라 얘기하다보니 생각 없이 막 흘러나온 말을 수습하기 위해 예전에 유행했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으...응? 샴푸 냄새가 나서....‘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 진거야’....큼..큼”

“응? 헤헤헤 머린 안 감았는데...샴푸향이 아니고 향순데..헤헤”

아람이 유성을 향해 머릿결을 날렸다.

“야! 내 쪽으로 머리 털지 마!”

그렇게 유성의 매니저 같은 경호(?)가 이어졌다.


특임대 작전

***

일요일 장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유성은 내일 월요일 아침부터 시작될 경호 의뢰가 사실 걱정이 되었다.

“고니야! 군인들 병과 중에 누구를 경호하는 병과도 있니?”

-네 한유성님 존재합니다. 헌병 병과 중에 테러 진압 및 군 강력범 제압 그리고 요인 경호임무를 수행 하는


부대가 있습니다.

“오호 그럼 오늘은 헌병으로 경험해 보면 내일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겠네.”

-네 한유성님! 내일 경호 업무에 도움이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럼 육해공 삼군 중에 어디야?”

-네 한유성님! 삼군 모두 헌병대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유성님께서 찾으시는 특수 임무 헌병대 메뉴는 육군


메뉴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국방부 육군 헌병 부사관 메뉴를 체험해 볼까?”

곧이어 삼촌이 선물해 유성의 방에 설치된 캡슐에 탑승한 유성이 곧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으로 접속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띠링! ]

[육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육군 부사관 메뉴를 선택하고 접속한 유성은 이어서 헌병 메뉴를 찾아 들어갔다.


[띠링! ]

[헌병을 선택하셨습니다. ]

[잠시 후 특임대 출동 준비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에에에엥! 에에에엥! ]

유성은 새로 바뀐 주위 환경을 둘러보며 빠르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기존의 얼룩무늬 군복이 아닌 온통 까만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고 있었다.

흑복에 벨트와 장갑도 낯설었고 착용중인 방탄조끼마저도 검은색이었다.

얼굴에는 검은 복면에 고글 마지막으로 검은색 방탄 헬멧을 착용 중이었다.

총도 검은색 K-1 소총뿐만 아니라 권총까지 착용하고 있어 단독 군장의 무게만도 무려 22Kg 을 넘어서고 있었다.

물론 유성은 이 정도 무게에 영향을 받을 때는 한 참에 지났지만 말이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유성은 자신의 앞으로 국군의 날 행사 때나 볼 수 있었던 헌병이 몰고 있는 큰


모터사이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고...고니야 갑자기 군인이 폭주도 아니고...이 무슨 상황이니?’

-한유성님은 현재 특수 임무 헌병대 소속으로 임무를 받고 출동 준비 중이신 것으로 보입니다. 작전을 확인 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때마침 고니의 말이 끝나자 새로운 작전명이 유성의 눈앞에 떠올랐다.

[작전명 : ‘인질 전원 구출’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수영선수권 대회로 참여한 여러 나라 선수들을 인질로 테러범들이 실내수영장에서 국제적인
인질극을 벌이며 협상을 제안하고 있다.

-당신은 갓 부임한 특임대 신입 부조장(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조원들과 함께 테러범들을


진압하고 인질을 모두 구하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요인 경호 획득 +@ (인질 구출 성공률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요인 경호 획득 실패 (인질 구출 실패 및 본인 사망) ]

작전을 확인 한 유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말했다.

‘헐...인질을 모두 구하라니...작전을 할수록 계속 난이도가 올라가는 느낌이네...이젠 추가 달성이 아니라


기본 달성도 점점 힘들어져... 특히 이번엔 나 혼자만 잘해도 성공 하는 게 아닌 거 같은데...누군가 실수하면
그냥 실팬데...고니야 이번 작전은 노답 아니니?’

고니에게 투덜거린 유성은 주위를 확인했다. 검은색 흑복으로 무장한 특임대원들이 모두 오와 열을 맞춰 자신의
앞으로 대기 중인 모터사이클 옆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띠링! ]

[붉은색 선을 따라 모터사이클에 탑승합니다. 헌병 모터사이클로 작전 지역에 도착하면 조원들과 신속하게 움직여


테러범들을 진압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수영선수 전원을 구출해야 합니다. ]

‘날 위해 오늘도 레드카펫이 깔려 있군! 고니야! 오늘도 부탁한다!’

-네 한유성님! 지시를 이행하겠습니다.

“이동한다! 탑승!”

특임대장의 구호로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모터사이클 후미로 탑승했다. 유성도 레드 카펫을 따라 신속하게
오토바이에 올랐다.

사이렌을 울리며 신속하게 도로를 달려가던 헌병 기동대 모터사이클 한 대가 교차로를 만나자 멈춰서며 교통
신호등을 통제했다.

‘쩝...오토바이 뒷좌석에 타니까 앞이 안보여서 더 불안하네...아! 우회전....할 때 말이라도 해주지....


우회전 할 때마다 발이 빠지려고 하는데..저..고니야!...앞에 오토바이 운전자 허리 안으면 좀...그렇겠지....
으...?’

유성은 이동 중에 주위 다른 대원들을 곁눈질해 대충 탑승 자세를 흉내 내고는 있지만 오토바이가 좌우 회전할 때


마다 다리가 미끄러지는 느낌이 마치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안전바 없이 탑승해 공중 회전하는 느낌이었다.

-네 한유성님! 다른 특임대원들은 모두 당당하게 뒷좌석 탑승해서 양손으로는 총까지 들고 경계자세로


탑승중입니다. 어떤 대원도 한유성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운전자와 정다운 자세를 연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추천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으....아......으....’

유성은 그렇게 작전지역까지 남 몰래 롤러코스터에 앉은 느낌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작전지역에는 119 구급차와 소방차뿐 아니라 경찰차 등 여러 기관에서도 먼저 출동해 있었다.

특임대가 도착하자 먼저 출동해 있던 경찰들이 길을 열어 주었고, 미리 약속된 저격조 2 명이 저격 자리를 잡기


위해 반대편 높은 건물로 이동했다.

그리고 언제 도착했는지 헬기에서 특임대원 2 명이 능숙한 레펠 실력으로 실내 수영장 건물 옥상에 내려앉았고,


대원 둘이 각자 테러범들이 위치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방향으로 밧줄을 타고 창문으로 들어간 뒤 유성일행이
건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다시 건물 밖으로 밧줄을 이용해 침투로를 개척해 주었다.

유성도 이제 인질 구출을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고니야! 방어 태세 모드 가동하고 안쪽 상황 홀로그램으로 확대해줘!’


-네 한유성님 방어태세 모드 가동합니다.

“그래 일단 부딪혀 보자! 스킬 방벽 등반!”

유성이 공군 의무랑 착각해 접속했던 공군 구조 메뉴에서 획득했던 스킬 ‘방벽 등반’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띠링!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

[완벽한 작전 성공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 - ‘요인 경호’를 획득합니다. ]

[아이템- 신경 안정제 3 EA 를 획득합니다. ]

***

다시 월요일 아침.

푸드 트럭을 타고 아람의 학교 앞에 도착한 유성이 차를 세웠다.

“아람아 마치면 학교에서 나오기 전에 전화해! 근처에 있을 테니까.”

“오빠 지금 여기 차 세우고 뭐해? 설마 나보고 여기서 저기 건물까지 걸어 들어가라고?”

“여기 학교 앞이잖아! 저기 학생들 태운 셔틀도 여기서 학생들 내려주고 돌아 나가는데?”

“아냐 안에 들어가면 주차장 있어!”

학교가 커서 그런지 안쪽에 외부인 주차장이 있다고 했다.

유성이 차량의 방향을 돌려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게이트가 열리지 않고 묵묵부답이었다.

유성이 창문을 내리고 입구 게이트에 설치된 스피커에 대고 방문 목적을 말하기도 전에 스피커를 통해 짜증이 섞인
경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삐...아저씨! 여기 잡상인 출입금지니까 차 돌려서 나가요! 아침부터...아씨...”

“큼..큼...저기...이곳 학생 등교만..시켜주고 나갈 겁니다.”

유성도 지금 상황이 상식적으로 경비원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목소리 톤을 한 단계 내리고 부탁했다.

“삐...이봐요! 먼 소리에요? 여기 학생이 왜 그런 차를 타고 와요?”

그제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람이 학생증을 꺼내 유성에게 넘기곤 스피커를 향해 소리쳤다.


“경비 아저씨! 저 2 학년 1 반! 아람! 김아람 이에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유성은 아람에게 건네받은 학생증을 게이트 카메라에 비춰 확인시켜 주었다.

“어...? 김아람?....학교 학생 확인했음...다....통과....”

열린 게이트를 지나가며 유성이 아람을 바라보곤 말했다.

“헐...학생증 있으면 미리 주던가!”

“그럼 달라고 하던가!”

유성은 어이가 없어 그냥 아람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허허...그러게 내가 왜 달라고 안했을까? 내가 잘못했네...허허허”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지! 다음부터 잘하면 돼! 힘내 오빠. 마치면 전화 할게.”

“큼....큼....그래...이럴 수도 있지...”

아람이 유성에게 인사하고 차에서 내려 건물로 향했다.

그렇게 아람이 건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본 유성이 차를 돌려 다시 학교를 빠져 나가려고 할 때 전화가 울렸다.

“왜 뭐 두고 간 거 있니?”

자연스레 방금 내린 아람이 뭘 두고 갔다고 생각해 조수석을 둘러보던 유성에게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고 한동안
조용하던 이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두긴 뭘 둬? 이수 마음(?)이 거기 있긴 하겠네! ]

“어?...이수니?....근데 아침부터 웬일이야?”

[오빠! 지금 뭐해?]

“아! 나 운전 중이였네 나중에 통화하자!”

[잠시만! 근데 오빠 푸드 트럭으로 장사해? ]

“응?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야 트럭 몰고 지나가는 오빠 보고 전화 했으니까. ]

“잉? 여기가 너희 학교니?”

[응! 근데 오빠가 우리 학교엔 웬일이야? 이수 보로 온건 아닌 거 같은데... ]

“헐...일단 학교 들어가고 오빤 아침 장사하러 가야 돼서 나중에 봐!”

[응? 알았어! 마치고 봐! 전화할게! ]


전화를 끊은 유성의 이마에 주름이 늘어가는 것 같았다.

“아..왠지 여름방학까지 귀찮아 질 거 같은 불길한 느낌이...”

***

실내 수영장 3 층으로 진입한 특임대 대원들은 모두 두 조로 나뉘어 양쪽에서 진입하는 작전을 실시했다.

이동 중에는 모두 수신호를 사용해 움직였다.

물론 수신호에 익숙하지 않은 유성을 위해 틈틈이 ‘삼족오’의 도움말과 붉은 선 일명 레드카펫 서비스가


이어졌다.

‘고니야 홀로그램으로 테러범들 색깔 바꿔서 위치 확인해 줘’

-네 한유성님 테러범 7 명의 위치 모두 빨간색으로 구분해서 홀로그램으로 표시합니다.

유성은 이번 작전을 위해 ‘병영 축구’ 5 레벨 달성 기념으로 획득해 왕진가방에 보관해 두었던 호루라기를 꺼내
들었다.

유성은 오른손에 쥔 K-1 소총을 다시 꽉 움켜잡으며 테러범들이 인질들을 붙잡고 있는 1 층 수영장으로 진입 전


기도비닉을 위해 스킬 고공 침투를 고니에게 위임해 사용하게 했다.

‘고니야 고공 침투 대신 활성화 시켜줘!’

-네 한유성님! 지금 스킬 고공 침투 사용합니다.

‘OK!’

고니의 말을 들은 유성은 왼손으로 레펠을 움켜잡고 몸을 날리는 동시에 입에 물고 있던 호루라기를 힘껏 불었다!

“삑!!!!!!”

[띠링! ]

[축구 심판의 호루라기 LV.1 을 사용했습니다. ]

[현재 상황에서 본인을 제외한 모두의 시간이 10 초간 정지 됩니다. ]

[쿨 타임이 6 일 23 시간 59 분 남았습니다. ]

순식간에 1 층에 도착한 유성은 테러범들만 향해 총신에서 불을 뿜었다.

움직임을 멈춘 채로 붉은색 홀로그램까지 입고 있는 테러범들을 유성은 놓칠 실력이 아니었다.


[탕! 탕! 탕!......탕!...탕! 탕!...탕!]

요인 경호

***

학교를 벗어난 유성은 오늘 장사를 위한 재료 구입을 위해 반여농산물 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시장 이름만 보면 얼핏 우리 농산물만 있을 것 같지만 돌아보니 수입품도 있고 심지어 해산물인 미역이나 다시마도


유성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사장님! 양파 좀 보여 주세요!”

“젊은 총각이 양파도 몰라? 거기 죄다 양판데 뭘 보여줘! 알아서 골라가!”

‘고니야! 상태 확인 스킬로 상태 제일 좋은 애들 위에 홀로그램 띄워줘!’

-네 한유성님 상태 확인으로 재료 스캔 들어갑니다.

[위이이이잉..]

-한유성님 양파망 위로 홀로그램으로 신선도 및 상태 표시합니다.

“하하하! 사장님 이걸로 할게요!”

‘OK! 고니야 지금부터 구입 할 재료 마다 확인 부탁해!’

-네 한유성님 지금부터 상태 확인 스킬을 위임받아 상시 사용 모드로 들어갑니다.

“삼촌! 오늘 토마토 어떻게 해요?”

유성의 질문에 젊은 사장 아저씨가 말을 받았다.

“키로당 6500 원! 거기 아무거나 들고 가면 다 똑같아!”

-한유성님 재료 스캔이 끝나 토마토 신선도와 상태를 홀로그램으로 표시합니다.

‘이번엔 뒤쪽에 좋은 애들이 모여 있네. 앞에 애들 보다 뒤쪽 애들이 새로 온 애들 인가보네?’

홀로그램으로 뒤쪽에 더 신선한 상품이 있는 걸 확인 한 유성이 젊은 사장님에게 말을 전했다.

“에이 삼촌 얘네 들 상태가 조금 있으면 갈라고 하는데... 저기 뒤에 쌓여 있는 상자 좀 보여줘요!”

“큼...큼...다 똑같다니까! 젊은 사람이 까탈스럽기는....”

유성의 요구를 들은 젊은 사장이 귀찮아했다.

“에이 저 오늘만 올 거 아닌데! 삼촌! 저도 장사해요! 이집 단골 할 테니까 뒤에 상자도 좀 보여줘요!”


실랑이 끝에 뒤에 있는 상자를 가져온 젊은 사장이 유성을 보며 투덜거리듯 한마디 했다.

“젊은 사람이 까다롭게 굴어서 내 주긴 하는데...”

잔소리가 시작됨을 직감한 유성은 말 끊어 먹기에 들어갔다.

“네 삼촌 고마워요!”

“이런 식으로 새로 들어온 상품만 야금야금 가져가면 우리 같은 사람 장사 못해! 앞에 들어온 상품 못 팔잖아!”

“삼촌! 앞으로 이 가게 단골 할게요!”

“쩝...쟤들도 나쁘지 않은데...원래는 이렇게 파는 거 아닌데....”

“삼촌! 이 상자로 가져갈게요!”

“젊은 사람이 하도.....”

“삼촌! 담에 또 올게요! 계산 할게요!”

젊은 사장의 투덜거림이 쉽게 끝을 보이지 않자 유성은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자르며 재빠르게 인사를 하고 계산을
마무리했다.

‘고니야! 저 가게 다신 안가도록 체크 해둬! 신선한 거도 좋지만 내 귀가 먼저 상할 거 같아!’

-네 한유성님! 가게 블랙리스트에 추가 저장합니다.

그렇게 유성과 고니는 반여농산물시장의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 위한 여정은 조금 더 이어졌다.

“이모! 감자 Kg 당 얼마해요?”

“할머니! 양송이랑 새송이 버섯 이걸로 각각 1Kg 주세요!”

그렇게 유성은 구입한 재료를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트럭으로 옮기는 척하며 무기고로 옮겼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에 유성은 고니에게 질문했다.

“고니야! 근데 무기고 안 아이스박스에 재료를 넣어 보관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함이 줄어드는 느낌인데...
무기고 안의 시간과 현실시간의 차이가 재료에도 적용되는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한유성님. 무기고의 시간 흐름은 가동율의 영향을 받는 한유성님에게만 현실의 10 배정도
느리게 적용 됩니다.

평소 무기고 안에 위치한 한유성님을 제외한 물질의 시간은 모두 멈춰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지금까지 아이스박스 안에 재료를 보관 할 필요가 없었단 얘기잖아?! 왜 나한테 얘기 안 해줬어?”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께서 무기고의 물품보관에 대해 따로 질문하신 기록이 없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무기고 안에 아이스박스와 음식재료를 각각 보관하는 것 보다 한유성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이


부피를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라 평가해 추가로 도움드릴 부분이 없는 것으로 결정했었습니다.

“큼...큼...그랬구나...이제라도 하나씩 알아 가는 게 어디야..긍정적으로..흐흐흐 생각하자... 쉽게 말하면


무기고 안에 있는 음식은 그냥 둬도 안 상한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

“음...OK! 무기고! 이제 이해했어!”

그렇게 유성은 무기고의 기능을 하나씩 더 알아가고 있었다.

***

오늘도 신선한 재료로 점심 장사를 끝낸 유성은 아람의 학교로 이동했다.

학교 주변에 도착한 유성은 아침과는 달리 학교 밖에 트럭을 주차하고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 아람을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학생들이 하나 둘 교문을 통과해 하교를 시작했다.

“어? 저 놈 광안리에서 만났던 그 놈이네...저 놈도 이 학교였어?”

유성은 운전석에 몸을 누인 채로 여유를 즐기다 교문을 걸어 나오는 무리에서 박시환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물론 유성은 심부름센터에 일을 의뢰한 최 변호사 뒤에 그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고니야! 앞에 걸어 나오는 세 놈 중에 가운데 저 놈에게 ‘요인 경호’ 스킬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스킬 ‘요인 경호’ 대상으로 우측 두 번째 위치한 남학생을 지정해 사용하는데 동의하십니까?

“응 그놈 맞아! 사용해!”

[스......팟]

-지금부터 전방에 위치한 남학생에 대한 요인 경호 상태에 들어갑니다.

고니가 스킬을 사용하자 곧 박시환 무리는 모두 승용차에 탑승해 어디론가 이동했다.

유성은 자신의 시야 우측 상단에 방금 승용차 뒷좌석에 탑승한 박시환의 홀로그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이 박시환에게 사용한 ‘요인 경호’ 스킬은 요인으로 지정한 대상의 주위에서 일어날 위험으로부터 스킬
시전자가 원거리에 있어도 방어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고니야 ‘요인 경호’ 스킬 다시 설명해 줘!”

유성은 지난밤에 스킬을 획득하고 설명을 들었지만, 지금은 약간 다른 의도로 사용해 볼 생각으로 사용한
스킬이기에 고니에게 다시 물었다.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 스킬은 지정된 요인 1 인의 상태를 언제든 홀로그램 상태로 확인 할 수 있으며,
만약에 지정된 요인에게 벌어질 물리적 위험을 인지하면 유성님께서도 요인의 주변에서 홀로그램 상태로 개입해
방어가 가능합니다.ㅁ

“그럼 내가 마음대로 물리적 개입할 수는 없는 고니?”

-이론적으로는 한유성님이 임의로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한유성님이 위험을 인지했을 때만 물리력 행사가
가능합니다.

“고니야 그럼 내가 홀로그램 상태로 개입 했을 때 상대방이 나를 볼 수는 있어?”

-원거리에서 전자파를 이용한 물리력 행사이기에 아직 이미지를 실체화시키기에는 불가능합니다.

“흐흐 그럼 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전자파를 이용해 물리력 행사는 가능한거지?...지금도 친구들 사이에


있는 게 고니 네가 봐도 조금 위험해 보이지 않아?”

‘너 잘 걸렸다. 만나서 반갑다. 쓰레기 새끼! 이제부터 넌 네가 철저히 요인 경호 스킬로 지켜줄게!’

유성은 아침에 아람에게 ‘요인 경호’스킬을 걸어둘 생각 이었으나 의도치 않게 아람의 샤워하는 홀로그램을
목격한 후 스킬 사용을 자제했던 것이다.

이렇듯 ‘요인 경호’ 스킬은 대상에 따라 경호도 될 수 있지만 사용 의도에 따라 그 반대도 될 수 있었다.

***

학교 수업이 끝난 오후 아람은 슬며시 도망가려다 반장에게 잡혀버렸다.

“반장! 나 오늘 진짜 빨리 가봐야 해!”

아람의 말에 반장도 바쁘다고 응수했다.

“누군 안 바쁜 줄 아니? 나도 오늘 누구 보다 중용한 약속 있거든! 아 C! 근데 담탱이가 다음 주 미전 홍보


아이디어 우리 둘이서 정해서 책상에 올려놓고 가라고 했단 말야!”

“그럼 그냥 네가 홍보 아이디어 정하고 나한테 톡으로 알려주면 되겠네!”

“야! 김아람 나 오늘 사실 엄청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런데 네가 정해서 담탱이 책상에 올려놓고 가주라?
응?!”

이번에도 빠져나가려는 아람에게 비슷한 이유를 대며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반장이다.

“그럼 나 오늘 조퇴한 걸로 할게!”

“그럼 난 결석한 걸로 하고 네가 대신 정해!”

“네가 반장이잖아!”
“너도 부반장이잖아!”

“오늘만!”

“한번만!”

결론이 쉽게 나지 않자 둘은 휴대폰을 이용해 누군가에게 톡을 보냈다.

유성은 운전석에 살짝 누워 홀로그램을 시청 중에 있다가 휴대폰 ‘코코넛 톡’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톡을 확인


했다.

「아 람 : 유성 오빠! 오늘 조금 늦을 듯. 도망가다 반장한테 잡혔어 ㅜㅜ 」

「응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지... 일 마무리 하고 천천히 나와.」

아람에게 막 답장을 보낸 유성에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수 : 유성 오빠! 오늘 일찍 마치고 이수가 오빠 만나려고 했는데...흑..흑....슬프게도 일 안하고 도망


가는 부반장 때문에 일이 꼬여서 늦어 질 거 같아! 내가 그래도 반장이잖아...다음 주에 미전이..있는데...
준비를....아이디어가.... ... 」

「어 그래 수고하고 담에 봐!」

유성은 답장을 보내며 왠지 둘이 아는 사이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쩝......일단 이놈들은 뭐하는지 볼까?”

답장을 보낸 유성은 시환의 무리가 어느 덧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서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얘들 어디 들어간 거야?”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로 연결된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 해운대 해변에 위치한 XX 호텔로 확인 됩니다.

“흠...햐 고딩들이 호텔을 빌려서 논다고? 스케일이 다르네...화면 조금 확대해서 보여줘.”

잠시 후 확대 된 홀로그램 속, 시환의 무리들이 앉은 테이블 위로 술로 보이는 병과 잔 그리고 과일로 보이는


안주 등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은 원래 빠르게 정리(?)를 마치고 아람의 하교를 도울 생각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늦어진다는 아람의 연락을
받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화면을 확대 해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

오늘은 시환의 생일파티를 위해 정환이 빌려 준 해운대 호텔 스위트룸에 학교를 마치고 도착했다. 들어선 호텔의
거실 테이블 위에는 룸서비스를 통해 술과 안주 그리고 케이크가 미리 준비 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선물로 보이는
포장이 꽃다발과 함께 놓여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

시환이 휴대폰에 뜬 이름을 확인 하고 전화를 받았고, 옆에 있던 친구 둘은 테이블에 있던 병마개를 따고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어 형! 선물 잘 받았어!”

[어 그래. 오늘 재밌게 보내고 생일 축하해 시환아! ]

“하하 고마워 형!”

[뭘 받을 게 있으니 챙겨주는 건데...후훗 ]

“OK! 아빠한테 얘기나 알아서 잘해줘!”

[걱정 마! 딸깍! ]

전화를 끊은 시환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다가 못 찾아서 벌써부터 홀짝이며
술을 마시고 있던 맞은 편 친구에게 라이터를 부탁했다.

“야! 불 좀 줘 봐! C8 내 라이터가 어디 갔지?”

[칫...칙 화르륵!!]

“생일이니까 특별히 내가 불 한번 붙여줄게!”

“크크 그래 고맙다. 불 함 붙여 봐라!”

맞은편에 앉아 술을 홀짝이고 있던 시환의 학교 친구가 막 지포 라이터에 불을 붙여 시환의 입에 문 담배를 향해


이동했다.

[쿠당탕! ]

갑자기 시환에게 향하던 지포라이터가 누군가가 쳐낸 것 마냥 테이블에 떨어지고 튕겨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

“......”

문제는 바닥이 카펫이었고 불이 카펫으로 옮겨 붙었다!

“C8 불이야! 야! 물! 물!”

당황한 시환은 테이블 옆에 있던 학생의 잔을 낚아채 바닥에 뿌렸다!

[펑! 화르륵 화르륵 ]

그랬다. 학생이 들고 있던 컵은 양주가 든 컵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환은 생일 케이크 대신 카펫에 불을 붙였고 잠시 후 스프링클러가 작동 되고 나서야 카펫에 붙은 불이


진화 되었다.
츤데레

***

유성은 아람을 기다리며 시환에게 진 빚을 하나씩... 하나씩... 갚아 나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람의 하교가 늦어지는 바람에 학원가에서 하던 저녁 장사는 하루 쉬기로 했다.

얼마 후 깐깐한 반장(?)에게서 겨우 빠져 나온 아람이 교문 앞에 서있는 유성의 푸드 트럭을 발견하고 차에


올랐다.

“유성 오빠 늦어서 미안! 대신 셰프 아저씨가 해주는 맛있는 저녁 어때?”

“음...나쁘진 않을 것 같네 콜!..”

그렇게 유성은 학교를 벗어나 아람의 집인 아람아트홀 입구에 도착해 외부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면서 보니 아침에도 한 쪽 끝을 차지하고 있던 고급 승용차에 유성의 눈길이 갔다. 옵션 하나 없이도 2


억을 훌쩍 넘긴다는 도로위의 유람선이라고 소문난 차였다.

“햐 저 차 아침에는 대충 봐서 몰랐는데 메르세데스-벤스 쿠페네? 최 관장님 차야?”

“아니”

“아 그럼 셰프 아저씨?”

“아니”

“아하! 그럼 엄마 차였구나? S 클래스 쿠페하면 스포티하면서도 호화로운 느낌을 둘 다 가졌는데 역시 미술 쪽


일 하셔서 그런지 차량에 대한 감각도 남다르시구나?”

확신을 가지고 물어본 유성의 질문에 예상외의 답이 들려 왔다.

“아니. 내차야.”

“그렇지...엄마...컥!...저게 네 차라고? ‘메르세데스-벤스’ S 클래스 쿠페가?”

“응! 맞아 내차야. 모델명이 2021 벤스 S 63 AMG 이었던 걸로 기억해.”

“허...벤스 AMG 라니...금수저는 다르구나.....너...면허도 없지 않아?”

“면허가 왜 필요해? 차는 기사 오빠가 몰지 내가 모냐?”

“하긴...그러네....근데 내가 듣기로는 너...승용차...못 탄다고 하지 않았니?”

“응 맞아...저차 타고 학원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 지금은 이모나 아저씨가 가끔 마트에 장보러 갈


때나 타곤 하지.”

“헐 마트....아! 미..미안해...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했네...”

유성이 핑크에게 들은 내용이 떠올라 사과를 하며 말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아람의 말투는 애써 밝은 척 하는 건지는 몰라도 목소리에 어두운 기색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힘든 기억? 아닌데? 그 때 사고 핑계로 학원도 일주일 동안 안가고 얼마나 편했는데 뭘...크크.”

“어...? 그 때 사고가 크게 났다고 하지 않았니?”

“내가 놀래서 엄청 울긴 했는데...접촉 사고를 큰 사고라고도 해?”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유성은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과 사실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고 느꼈다.

“접촉사고? 그...그럼...그 때 운전하신...분은 지금 괜찮으셔?”

“아 강호 아저씨? 아마 잘살고 계실 걸.”

유성은 이제 핑크가 해준 얘기가 허구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 아람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그럼...너 사고 났을 때 아빠가 너 구하려다 돌아가셨단 얘기는 어떻게 된 거야?”

“응? 아빠라니? 아! 혹시... 핑크 언니가 그렇게 얘기 했구나?”

“응! 아빠가 미끄러진 트럭에 너 구하려고....하시다가....그만...돌아가셨다고?”

그제야 유성의 질문을 이해한 듯 조금은 표정이 어두워진 아람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쩝...그거 거짓말이야!...나 사실...아빠 얼굴도 몰라....”

“어?...그럼 아빠가 너 어릴 때 돌아가신 거니?”

“아니..그게 아니라 난 아빠가 처음부터 없었어. 엄마 혼자서 나를 낳고 키웠대.”

홀어머니 밑에서 홀로 컸다는 아람의 말을 들은 유성은 저도 모르게 이마에 주름을 지은 채 아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그랬구나.”

“아니야 지금은 괜찮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않아도 돼.”

“아!....미안..”

“후....사실 어릴 적에 누군가 아빠에 대해 물으면 대답하기 참 꺼려지더라. 내가 잘 못한 거도 없는데...


세상에 존재 하지도 않는 아빤데...그래서 내 상상 속에서라도 그렇게 살다 갔다고 생각하려고 언제 부턴가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거짓말로 대답했었어.”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아람을 바라보며 유성은 한 층 밝아진 표정으로 아람을 응원했다.

“그래! 그럼 나도 이제부터 그냥 그렇게 생각할게! 멋있는 아빠가 널 지켜 주다 먼저 하늘 나라로 가신 걸로!”

“오빠! 근데 엄마한텐 비밀이야!....엄마 남자 친구 있거든...”

아람과 얘기하는 동안 표정관리가 정말 어렵다고 유성은 느끼며 말을 이었다.


“으...응...그...그래. 그런데... 그럼 왜 승용차는 못 타는 거야?”

“아 탈 수는 있는데...타고 있으면 속이 좀 불편해...심장도 빨리 뛰고...손에 땀도 나고...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다른 사람 보다 많이 예민해서 생긴 트라우마 일거라던데...”

그렇게 아람이와 무거운 얘기를 끝내고 돌아보다 한 켠에 서있는 고급승용차를 보니 요즘 푸드 트럭으로는 거의


오르지 않는 운전병 경험치 생각이 난 유성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저 벤스 S 클래스 쿠페라면 경험치가 쭉쭉 오를 거 같은데....’

“쩝...저 차는 스포츠카면서 실내도 넓고 편하다던데...내 푸드 트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안락함을 느낄 수


있겠지? 풀타임 4 륜구동에....나도 장보로 갈 수 있는데...”

유성의 넋두리를 들은 아람이 유성에게 사심 하나 없는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헤헤 그럼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와!”

유성은 아람의 말에 마음이 동하긴 했지만 막상 혼자 시승해서 나가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유성에게 지난 특임대 작전에서 보상으로 받은 ‘청심환’ 모양의 신경안정제가 생각났다.

“아니 혼자 나가긴 좀 그렇고....아람이 너 청심환 같은 거 먹으면 좀 괜찮지 않을까?”

“응... 약효가 도는 동안은 괜찮은 거 같던데... 그래도 다음날 또 보면 또 똑같더라고...”

‘고니야 아이템으로 받은 신경안정제 약효가 일회성일까?’

-확신할 순 없지만 시중에서 거래되는 신경안정제와는 조금은 차별화 되어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럼 아이템이랑 스킬이랑 같이 쓰면 시너지 효과가 있지 않을까?’

-네 한유성님!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유성은 고니와의 의견을 주고받고 아람에게 신경안정제와 치료 스킬을 동시에 사용해 보기로 결정한 후 일단 저녁
식사를 위해 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일단 배고프니 우리 밥 먹고 나서 결정하자! 어때?”

“그래! 유성 오빠! 일단 저녁부터 먹자! 배고프다! 헤헤”

***

한편 자신의 생일파티를 시작도 하기 전에 곤욕을 치른 시환은 호텔로 소방차와 구급차가 출동하는 큰 소동을 겪고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동해 검진을 받은 후에 친구들과 각자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뿌드득...너!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현관을 들어서는 시환에게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놀란 시환은 소파에 이미 앉아있는 형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반응이 없자 급하게 아버지 옆으로 이동해
무릎을 꿇었다.

“죄...죄송합니다. 아버지...”

“지금 죄송하다고 해서 넘어갈 일이니? 조용히 지내라고 내 그렇게 일렀건만...그리고 큰 놈 너도! 호텔에서
고등학생신분인 동생에게 룸서비스로 술하고 안주를 주문해 준게 형으로써 할 일이니?”

“큭...죄송합니다. 아버지.”

그랬다. 사고소식을 들은 영남유업 회장은 미리 최 변을 통해 호텔 예약자 이름과 사건 경위를 모두 보고를 받고


수습을 지시했다.

“잘한다. 술 퍼먹고 놀다가 담뱃불이 카펫에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해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고 호텔 객실 손님들
전부 대피하고 난리가 아니었다고?”

“그걸 어떻게? 아버지가...”

“벌써 인터넷에 쫙 깔려서 어떻게 막을 수도 없어! 어쩔 거야?”

“죄송합니다...아버지..흑..흑..”

그제야 작은 일이 아님을 인지한 시환이 밀려드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고, 정환은 자신의 호의를 이렇게 큰일을
터트려 자신에게 불똥이 튀게 만든 시환이 어이없고 밉기만 했다.

“시환이 넌 도대체...어휴...”

“기자들이 시환이 네 얼굴도 찍은 걸 보면 조만간 우리 회사이름 나오는 건 시간문제고! 지난 번 사고까지


나오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해!”

아버지가 이번 사건의 수습을 위해 정환과 시환에게 각각 유배를 명했다.

“어쩔 수 없다! 이번 건 호텔에서 터진 일이라 내가 덮고 말 수 있는 크기를 넘어 섰어. 시환이 넌 잠잠해질 때


까지 잠시 나갔다 와라!”

“흑....큭....아...아버지...그...말씀은?”

“그래 최 변한테 얘기해 놨다. 한 1~2 년 미국에서 공부하다 들어와. 내일 당장 수속해서 떠나! 기자들
몰려들기 전에!”

“아...아버지....흐....흑...잘못했어요...”

“그리고 호텔 예약을 정환이 네가 했더구나! 너도 기래기들이 달려들면 책임을 면치 못해! 못 난놈! 넌 좀 나은


줄 알았더니...정환이 너도 당분간 언론에서 잠잠해질 때까지 일본 지사에 나가 있어!”

“네...어쩔 수 없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랬다. 사실 아람을 기다리며 시환을 지켜보던 유성은 불이난 걸 홀로그램으로 확인 뒤 119 에 신고를 했고,
고니에게 영남유업 아들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뿌리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영남유업 두 명의 아들은 유성의 공작으로 당분간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

“오늘 정말 아침저녁으로 잘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맛있는 저녁을 대접받은 유성은 셰프 아저씨와 최 관장 아줌마에게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건물을 나섰다.

“유성 오빠! 잠깐만!”

두 분에게 인사하는 동안에 어느새 외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아람을 확인한 유성은 아까 괜한 부탁을 한 것
같은 생각에 아람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응? 아..아까 말한 거 때문에? 괜찮아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자고 내일봐!”

“아니! 어차피 소화도 시켜야 해서 지금 안자! 아..마..도 잠깐 드라이브는 괜찮을 거야..한 5 분정도는 헤...
헤...”

유성은 혹시나 해서 밥 먹기 전 손을 씻으러 화장실을 간 김에 왕진가방에서 챙겨둔 신경안정제를 아람에게 건넸다.

“큼...정말 괜찮겠어? 그럼 이거 먼저 먹고 드라이브가자.”

“우와! 유성 오빠 츤데레? 였어? 응? 근데 어디 제품이지? 포장지에 마크가 별이랑...닻인가? 어디선가 본


익숙한 그림인데...”

아람이 별, 닻, 날개가 함께 그려진 대한민국 국방부 마크를 보며 의아해 하자 유성이 대충 둘러 댔다.

“응? 있어! 시중엔 구할 수 없는 특별한 청심환이야! 걱정 말고 꼭꼭 씹어 먹어!”

아람은 검은색 환으로 뭉쳐진 신경안정제를 조금씩 베어 먹기 시작했다.

“으...써....”

“돌아서봐! 소화 잘되게 살짝 어깨 근육 풀어 줄게!”

유성은 치료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뭉친 어깨를 풀어 주겠다는 핑계를 대며 아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으...응...헤헤...”

약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때문인지 살짝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람이 유성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고니야 지금 융합스킬 치료! 사용 해줘!’

-네 한유성님 융합스킬 ‘치료’를 사용합니다.

[우....웅.......]

스킬을 사용한 유성의 손이 하얗게 빛을 내뿜었고 유성의 시야엔 아람의 머리 쪽에 약간 흐린 붉은 빛이 감도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는 뇌랑 관련이 있어서 그런가?’


“큼...큼...아람아! 너 아까 머리 쓰고 와서 그런지 머리에도 근육이 많이 뭉쳤네?”

“쩝..쩝...아...써..크으 머리에도 근육이 뭉쳐?”

머리로 손을 이동해 두피 마사지를 시작한 유성은 대충 둘러대며 치료에 집중했다.

“으...응? 그럼!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약은 쓴데...오빠가 안마해 주니까 시원하다. 히히!”

그렇게 아람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치료가 아무도 모르게 시작되었다.

청심환

***

V8 엔진의 강한 힘을 바탕으로 상시 4 륜 모드의 벤스 승용차는 급경사의 산길에서도 평지에서 달리는 푸드


트럭보다 유성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크으...코너 돌 때 뭔가 허리를 잡아 주는 느낌이 드네...”

자동차의 높은 성능 때문인지 유성은 드라이빙에 푹 빠져 있다가 아람의 얘기에 급히 정신을 추슬렀다.

“유성 오빠! 여기 앞에 차 잠깐 세워봐!”

유성은 아람의 차를 정지시키란 급작스런 소리에 아람의 상태가 걱정되어 물었다.

“응?...응! 왜? 몸 어디 불편해?”

“아니...괜찮아! 여기! 세워! 유성 오빠 이제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봐!”

아람은 담담한 표정으로 품에 안은 고니를 쓰다듬으며 황령산 야경 가이드를 시작했다.

“..으...응?...우와!”

“어때?”

유성은 부산 시내를 황령산 위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직접 눈에 담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와! 대박! 부산 시내가 여기서 다 보이는 것 같아!”

신기해하는 유성에게 아람이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다는 아니고...지금 보이는 곳은 광안리 방향이야...저기 광안대교 보이지? 조금 더 올라가서 전망대에


도착하면 좀 더 부산시내 야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을 거야!”

아람의 설명을 들은 유성은 그녀가 이런 정보는 어떻게 알고 있는지 신기한 생각에 다시 한 번 아람을 바라보았다.

“넌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어?”

“그야 전에 많이 와 봤으니까...유성 오빠! 옆으로 보이는 야경 충분히 봤으면 다시 앞으로 전진!”


이동을 명령하는 아람에게 유성이 혹시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설마...남친 이랑 와 본거야?”

“헐...안타깝게도 남친은 아니고...엄마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면 머리 식힌 다고 나랑 같이 종종


드라이브 오곤 했어. 물론 중학교 이후는 오빠도 알다시피 못 왔지만...”

조금은 어두워진 듯한 아람의 표정을 느낀 유성은 멀리 트럭의 불빛을 발견하고 대화 주제를 바꿨다.

“어...여기도 푸드 트럭이 다 있네!...커피...아니 주스라도 하나씩 마실까?”

“NO! NO! 황령산 야경엔! 컵라면이랑 핫바지!”

“밥 먹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전에 내 수제 버거는 살찐다고 안 먹는다고...”

“큼큼...누가 먹고 싶어서 먹는담? 그냥 옛날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서..!”

아람이 시킨 데로 그렇게 유성은 컵라면에 핫바를 조각내어 넣어 먹고 나서 아람이 추천하는 황령산의 야경 포인트
몇 군데 더 들른 후에 조금 더 깊이 안쪽으로 들어가니 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했다.

황령산 야경 가이드 아람의 말로는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부산시내 야경은 지금 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라 말했다.

“허...헉...헉...이제 저기 보이는 LED 조명 불빛을 내 뿜는 송신탑 지나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헉..헉...


유리벽으로 둘러쳐진 광장이 나올 거야..헉...”

그렇게 전망대를 향해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더 가파르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올라가서 설명해도 돼! 너 그러다 숨차서 올라가기 전에 쓰러질라..”

물론 전망대를 향해 이동하는 중에도 아람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헉...헉...어릴 땐 안 이랬는데..헉...오랜만이라...여튼 전망대 올라가서 바라보는 광안대교는 정말 말로는


못해 가서 일단 한 번 봐야해!”

“하하..알았어..그럼 고니는 잠깐 이제 이리주고 올라가자!”

고니를 넘겨받은 유성은 아람의 체력을 생각해 천천히 보조를 맞추어 주며 걸었다.

“아! 그리고 엄마가 젊었을 때 남자 친구랑 황령산 올라온 얘기들도 해줬었어.”

“엄마의 연애 얘기?”

“응...비슷해....엄마가 젊었을 땐 여기가 부산에서 남녀 데이트 장소로 핫 플레이스였데... 야경을 보기 위해


밤만 되면 불 꺼진 차들로 가득했다고...”

“응 그럴 만하네.”

“근데 여기 올라 올 때마다 남자들이 다 같은 학원이라도 나온 것처럼 같은 장소에서 차를 세우고 모두 엄마에게


‘옆에 봐!’ 라고 얘기했데....그럴 때마다 처음 와 본 듯한 연기하느라 힘들었다고...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가 핫 플레이스를 다 외웠다나...”
그렇게 아람과 엄마에게 황령산 야간 데이트 코스에 대해 미리 조기교육 받은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소 강한 칼바람이 불긴 했지만 그걸 감내하고도 오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에서 바라보는 시내


야경은 화려했다.

“고마워 아람아! 네가 가이드 해준 덕분에 이런 곳도 다 올라와 보네!”

“아냐 나도 오빠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와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

그렇게 서로에게 고맙단 얘기를 하며 야경을 내려다보던 두 사람의 시야에 전망대 유리판에 LED 불빛으로 떠오른
날짜와 시간이 들어왔다.

“아람아 지금 10 신데 몸은 어때? 불편한 곳 없어?”

“어? 그러네? 응! 괜찮아! 벌써 밤 10 시네. 그러고 보니 아까 출발할 때 약 먹었으니까 약 먹은 지 한 시간도


한참 더 지났네. 계속 오늘 같은 기분이면 좋겠다. 평소 때는 약 먹고도 한 시간도 못 넘겼던 거 같은데...”

오랜만의 드라이브에서 기분 좋은 상쾌한 밤바람을 느끼는 아람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있었다.

“헤헤 오늘 고마워 유성오빠! 이 약 먹고 나서 예전처럼 엄마하고 다시 드라이브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응...아마 아람이 네가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될 거야. 오늘은 일단 이약 하나만 더 먹어보고 푹 자는 걸로!”

아람을 집에 다시 데려다 주고 혹시 몰라 유성은 신경안정제와 쿨타임이 돌아와 있는 치료 스킬을 한 번 더


사용했다.

치료 스킬을 사용하면서 살펴보니 처음과는 다르게 아람의 머리에 붉은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응 유성오빠 잘 가!”

“응 잘 자고! 내일 아침에도 컨디션 괜찮으면 다시 도전해 보자!”

그렇게 인사가 끝나고 나서야 고니와 유성은 집으로 돌아오는 푸드 트럭에 몸을 실었다.

“고니야 황령산에 야간 장사하면 괜찮을라나?”

-한유성님의 의견에 대해 인터넷 및 20-30 대 연인들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삐..삐...삐! 정보 분석이 완료 되었습니다. ]

-수제 버거와 핫도그를 연인들이 차안에서 데이트 하며 먹기에는 다소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불편한 것으로 분석
되어 추천하지 않습니다.

“어...그...그래.”

:
:

유성은 다음날인 화요일 저녁에도 왕진가방 속에 넣어둔 신경안정제를 사용해 아람을 치료했다.

사용한 개수로 생각해 보면 신경안정제는 모두 사용되어 하나도 없어야 맞지만, 왕진가방의 약품 보관 시 다시


보충되는 특수효과로 인해 처음 가방에 보관해 두었던 신경안정제가 3EA 모두 그대로 다시 채워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은 고니의 조언대로 신경안정제는 아람에게 화요일까지 총 3 알 까지만 먹였다.

그런 다음 수요일 이후부터는 아람에게는 두피마사지로 알려진 융합 스킬 ‘치료’만을 목요일까지 꾸준히


사용했다.

그리고 치료 확인을 위해 학교 등굣길에는 유성의 차량이 아닌 아람의 승용차를 금요일까지 꾸준히 이용했다.

그렇게 치료를 이어가던 유성의 귀에도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운전병체험 경험치가 드디어 레벨 5 를 달성했다는 알림 음이 들려 왔던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레벨 5 를 달성할 때마다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도 유성에게 주어졌다.

***

유성은 오랜만에 걸려온 외삼촌의 전화에 두서없이 걱정을 담아 얘기했다.

“삼촌! 요즘 힘들진 않아? 영화 시작했어? 잘 될 것 같아? 배우들은 캐스팅은 다 끝났고?”

[하하 하나씩 물어! 걱정 마! 한사장이 신경 써줘서 그런지 일이 술술 잘 풀려서.....]

삼촌은 우려와는 달리 캐스팅도 잘 마무리 되었고 주중에 투자사와 감독과 스텝들이 만나 마지막 조율만 끝나면
다음 주부터 영화 촬영이 바로 시작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영화 촬영 전에 예전부터 내려오던 미신이긴 하지만 액션신이 많은 영화이기에 촬영 도중


무사고를 비는 목적으로 크랭크 인 전날 고사를 지낸다고 했다.

“삼촌 그럼 일요일에 거기로 놀러...아니 장사하러 가도 돼?”

[흠...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오지라서...장사는 되겠다. 하지만 삼촌 바쁘면 인사 못할 수도 있으니 섭섭해


하지 말고! 그럼 일요일에 보자. ]

유성은 오랜만에 삼촌도 만날 겸 배우도 구경할 겸 해서 근처에 도착해서 푸드 트럭 장사를 하기로 얘기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유성은 일요일 영화촬영지에서 장사하기 위해 주중에 틈틈이 무기고에 들어가 새로운 음식을 준비했다.

무기고 안에서의 시간은 유성이외에는 적용되지 않아서 그런지 무기고에 들어간 음식은 안에서 조리를 하지 않으면
그 상태로 유지가 되었다.

쉽게 말해 숙성이 필요한 음식을 제외하면 최상의 냉장고가 ‘무기고’였다.


‘대략 100 인분 정도면 충분 하겠지...쩝 부족하면 살짝 들어가 만들지 뭐..’

유성의 푸드 트럭은 원래 검은색이었다. 그래서 유성은 색만 보고 단순하게 푸드 트럭의 이름을 ‘까망이’라고


지었다.

장사 준비를 끝낸 유성은 일요일 새벽 고니와 함께 까망이에 올라 영화 촬영지를 향해 출발 했다.

“까망아! 남해까지 잘 부탁해!”

[끼리릭! 부릉! 부릉! 부릉!!]

-한유성님 지금부터 목적지인 남해까지 오토드라이브를 시행합니다.

“응 잘 부탁해! 난 좀만 잘게 고니야 특별한 일 있으면 깨우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유성님.

그랬다. 유성이 운전병 체험 5 레벨 달성으로 받은 보상은 바로 자동차 디지털 업그레이드 키트였다. 아날로그
차량에 사용해서 디지털 차량으로 바꾸어주는 키트였다.

까망이의 겉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디지털화 된 푸드 트럭 까망이는 고니와의 연동으로 많은 기능이


추가되었고 또한 특별해졌다.

달라진 기능 중에 얘를 하나 든다면 까망이가 디지털화되어 아이템으로 인식이 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까망이도 무기고에 입출고가 이제부터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

Episode

지난 금요일 학교가 끝난 아람을 조수석에 태우고 아람아트홀에 도착한 유성이 말을 건넸다.

“아람아 내가 볼 때는 이제 너도 승용차 안에서도 많이 편해진 거 같은데...네 생각은 어때?”

“응 내가 생각해도 괜찮아 진거 같아. 사실 수요일부터는 P 대 의사쌤이 처방해 주신 약도 하나도 안 먹고


있는데도 정말 괜찮은 거 같아. 오빠 너무 고마워!”

“나한테 고마워 할 게 어딨어? 그게 다 아람이 네가 마음 단단히 먹어서 트라우마도 사라진 거지.”

“아냐 오빠가 준 청심환이랑 또 무엇보다 오빠가 월요일부터 꾸준히 해준 두피 마사지 때문이 확실해! 맞어!
오빠한테 두피 마사지 받을 때면 기분이 나른해지는 게 정말 뭔가 낳아간다는 기분이 들었어. 그 때부터 괜찮았던
거 같아. 정말 고마워 오빠!”

‘하..아람이 무슨 촉이 이렇게 좋아?’


아람의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말에 유성은 소름을 웃음으로 감추며 무마시켰다.

“하하...그럴 수 있다 치자..그래! 하하..트라우마도 고치는 마사지..하하 재밌네...”

유성의 말을 듣고 난 아람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근데 오빠 그 청심환 또 구할 수 없어?”

“아람이 넌 이제 더 이상 안 먹어도 괜찮은 거 같은데?”

“아! 나 말고 청심환 효과가 좋은 거 같아서 사뒀다가 급할 때 엄마한테도 주려고...”

아람의 말을 듣고 어리지만 엄마도 벌써 챙길 줄 아는 기특한 아이라는 생각을 하던 유성이 문득 드는 또 다른


생각에 아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까지는 내 두피 마사지 때문이라고 말했지 않니?”

“하하 유성오빠 갑자기 농담도하네...ㅋ 말이 그렇다는 거지...설마! 마사지 받고 트라우마가 나을 리가 없잖아!


약 먹고 나았겠지...”

왠지 억울해지는 유성이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치찌개

***

삼촌이 참여한 영화 촬영 팀은 폐교한 남해의 한 초등학교를 빌려 운동장에는 영화 촬영 세트를 짓고 일부 교실은


스텝들의 간이숙소 및 배우들을 위한 대기실 등으로 개조해 사용한다고 했다.

크랭크 인 전날인 일요일은 운동장에 배우와 스텝들이 모두 모여 고사를 지낸다고 하니 폐교 앞 교문 옆에 주차를


한 유성은 먼저 촬영세트장인 폐교를 둘러 볼 생각을 했다.

새로 생긴 오토드라이브 기능으로 편하게 남해에 위치한 동창선 초등학교 앞에 도착한 유성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제법 큰 규모의 학교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2 층의 낮은 학교 건물은 학교의 역사와 함께해 이제는 건물보다 높게 자라버린 조경들과


어우러져 잠시 한 폭의 풍경화를 보고 있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햐 기존에 보던 시골 학교 보다는 훨씬 커 보이는데...’

-네 한유성님 동창선 초등학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940 년 4 월 15 일 동창선 공립심상소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1999 년 9 월 1 일 창선초등학교에 통폐합 되었습니다.

‘어? 하하...고니야 고마워.’

고니의 설명으로 폐교된 지 25 년이 훌쩍 지난 학교임에도 마을에서 관리가 잘되었단 걸 알 수 있었다. 단지


운동장에 길게 자라있는 잡초들만이 더 이상 이곳에 학생들이 뛰어놀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운동장을 보니 학교에 애들이 없어서 그런지 좀 쓸쓸해 보이긴 하네...’


아침 일찍 도착해서 그런지 아직 학교 건물 밖으로는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슬슬 아침밥부터 준비해 볼까? 고니야 주변 정찰로 저기 학교 안에 몇 명이나 있는지 확인해줘!


아침이니...음..대략 30 인분? 이면 되겠지?”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 스킬을 위임받아 상시 사용 모드로 전환합니다. 삐...삐....삑! 현재 동창선초등학교


건물 내부에 3 명의 기감을 감지했습니다.

“컥....세..세 명?”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 현재 1 층 건물 내부에 3 명이 수면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쩝...고니야..그냥 일단 아침부터 챙겨먹자.”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까망이’를 운행모드에서 취사모드로 변환합니다.

“하하하 그래도 시골이라 공기는 좋네!”

-네 한유성님...현재 미세먼지 나쁨 상태입니다. 차량에 있는 공기 청정기 가동합니다.

“어...큼..큼...까망이 디지털로 바꾸니까 좋네!”

이른 시간이라 삼촌에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연락하기로 결정한 유성은 처음 생각했던 대로 거창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어차피 남으면 무기고에 보관하면 되니까! 일단 크루아상이랑 스콘부터 만들어 볼까? 빵 굽는 동안 아침으로
간단하게 먹을 김치찌개랑 밥해서 먹음 되겠다. 고니야! 무기고에서 빵 반죽해 둔 거랑 재료들 냉장고로
옮겨줘.”

-네 한유성님 취사모드로 변환할 때 냉장고와 무기고를 연동시켰습니다. 냉장고에서 원하시는 재료의 입고 및


출고가 가능합니다.

“고마워 고니야..아..근데 반죽은...조금 숙성이 필요하겠네...고니야 앞으로 빵 반죽은 냉장고에서 조금


숙성되면 무기고로 옮겨줘.”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무기고에서 꺼낸 재료들을 바라보던 유성은 평소에 바쁜 상황에 항상 고니에게 위임해서 사용하던 스킬을 오랜만에
생긴 여유로움에 직접 사용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스킬 제빵! 재료손질! 불 조절!”

[띠링! ]

[스킬 ‘제빵’과 스킬 ‘재료 손질’ 그리고 스킬 ‘불 조절’을 동시에 사용하셨습니다. ]

[시스템에 등록 되어 있지 않은 스킬입니다. ]

[세 스킬의 융합 가능 여부를 판단합니다. ]

[세 스킬의 융합이 가능 합니다. ]


[세 가지 스킬 ‘제빵’과 ‘재료 손질’과 ‘불 조절’이 융합되어 ‘제빵’ 스킬이 ‘고급 제빵’ 스킬로
진화합니다. ]

[기존의 ‘제빵’ 스킬은 상위 스킬인 ‘고급 제빵’에 흡수됩니다. ]

[스킬 ‘재료 손질’과 스킬 ‘불 조절’은 유지 됩니다. ]

“헐...갑자기 진화라니...고니야! 상황 설명 가능하니?”

-네 한유성님께서 스킬을 동시에 다수 사용하면 시스템의 판단에 따라 그 중 스킬이 융합이나 진화 등이 가능하다


판단 될 때 새로운 스킬로 조합이 진행 되는 듯합니다.

고니의 설명을 들은 유성은 자신이 가진 스킬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흠...그럼 밥 먹고 나면 여유도 있으니...스킬 조합이나 좀 해볼까? 그전에 뭐가 다른지 사용해 봐야겠지?


스킬! 고급 제빵! ”

고급 제빵 스킬을 사용한 유성은 새로운 반죽을 위해 재료를 준비했다.

“흠...아까 만들려던 크루아상도 한 단계 진화를 시켜볼까?”

갑자기 생긴 자신감에 유성은 강력분과 중력분을 볼에 담고 설탕과 소금 그리고 이스트를 섞어준 유성은 따뜻한
물을 적당하게 부어 반죽이 적당해 질 때까지 치댔다.

“룰루 룰루...”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계량컵을 사용하지 않고도 마치 전문가의 손길인양 재료가 적절하게 배합이 되었고 반죽이
완성되었다.

어느 정도 반죽이 완성되자 유성은 무염버터를 찾아 넣고 다시 반죽이 꾸덕꾸덕해 질 때까지 다시 재빠르게 손을


빠르게 놀렸다.

어떨 때는 반죽을 쥐어짜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빨래하듯이 문지르기도 하면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반죽과 손이 놀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유성의 손이 반죽과 놀아주자 탱글탱글 탄력을 유지하며 쫀득쫀득한 느낌의 반죽이 완성되었다.

“햐....반죽 냄새...죽이는데...”

유성은 반죽을 곱게 공 모양으로 말아서 볼에 넣고 랩으로 감싼 뒤 칼 끝으로 랩에 숨구멍을 뚫어 1 차 발효를


위해 발효기 대신 물과 함께 데워진 오븐에 살짝 넣고 반죽이 부풀어 오르길 기다렸다.

“그냥 제빵이 평점 3 단계라면 고급 제빵은 평점 5 점은 무난하겠는데..”

-네 한유성님의 반죽을 분석한 결과 아주 이상적이 발효과정을 거치며 반죽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OK!”

유성은 적절하게 부풀어 오른 반죽을 다시 4 조각으로 분할해서 2 차 발효를 위해 천으로 덮어 냉장고에 잠시


넣어주었다. 그사이 유성은 다시 무염 버터를 적당하게 그릇에 넣고 비벼 부드럽게 만들어 반죽에 바를 준비를
끝냈다.

15 분 정도 냉장고에서 2 차 발효를 끝내고 나온 반죽을 유성은 밀대로 손가락이 비칠 정도로 얇게 밀어 준 뒤


준비해 둔 무염 버터를 골고루 펴 발랐다.

버터를 골고루 바른 반죽을 손으로 김밥 말듯이 돌돌 말아준 후 반으로 세로로 길게 갈라 결이 보이도록 만든 뒤


마지막으로 반죽의 결이 바깥을 향하게 돌돌 말아 머핀 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모양을 잡아준 유성은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오븐 192 도로 맞춰서 적당하게 구워줘.”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그렇게 크루아상 머핀 8 개가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유성은 아침밥을 준비했다.

“스킬! 재료손질!”

유성은 먼저 쌀을 씻어 김치찌개 육수로 사용할 쌀뜨물을 준비해 두었다.

냄비에 씻을 쌀을 올리고 물을 적당하게 부은 유성은

“스킬! 불 조절!”

을 사용했다. 냄비 밥에 불을 켠 유성은 그 옆에 화구에는 쌀뜨물을 담은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켰다.

“스킬! 재료 손질!”

그리고 이제는 누가 봐도 완숙한 칼질로 김치찌개 재료를 손질한 유성은 쌀뜨물 속으로 재료를 하나씩 채워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유성과 고니의 아침식사가 모두 준비 되었다.

유성은 삭막하게 차안에서 아침을 먹기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아침 풍경의 학교 안 벤치에 앉아 먹기로
결정하고 쟁반에 아침상을 담아 이동했다.

“킁...킁...아무래도 오늘 새로 생긴 스킬을 먼저 확인하는 게 예의겠지?”

아까부터 버터냄새가 유성의 코를 미친 듯이 자극하고 있었다.

“앙 쩝! 크루아....상!!”

머핀형태로 만든 크루아상의 맛은 상상이상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게 거기다 풍기는 버터 향까지


누군가 이 냄새를 맡았다면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기...빵...혹시 판매 하나요?”

자신이 만든 빵 맛에 취해 한입 물고 감동에 빠져 있던 유성이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누...구세요?”
“음...운동장에서 조깅하다가..버터 향이 풍기기에....”

목소리에서 시장함을 충분히 인지한 유성은 고집 있어 보이는 인상을 한 덩치 좋은 아저씨를 돌아 보았다.

“아....빵을 방금 구워서....냄새가 좀 풍겼나 봐요. 이건 팔려고 만든 건 아니니...그냥 드세요! 하하”

“NO! NO! 나 노숙자 아니니 일단 먹고 나서 잠시 기다리면 학교 안에서 지갑 가져 오리다.”

그냥 드시라는 유성의 말에 오해한 건지 아저씨는 지갑을 챙겨오겠다고 고집이다.

“네 일단 여기 우유하고 크러핀은 많이 구웠으니까 그냥 드세요. 드셔 보시고 맛있으면 돈 대신 이따 부탁 하나


들어주세요.”

“응? 응 그러지 젊은 양반!”

유성은 아저씨에게 크루아상 3 개와 우유 하나를 접시에 담아 주었고, 새끼고양이 고니에게도 크루아상하나와 데운


우유 한 컵을 따라 주었다.

“고니도 먹어보고 맛 평가 부탁해.”

-냥!

[와그작 아그작...와그작...아그작... ]

둘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성은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일단 빵 먹는 모습만 봐도 맛은 성공적인 거 같으니 이제 나도 아침을 먹어 볼까.’

냄비 밥의 뚜껑을 열자 하얗게 윤기가 흐르는 밥 냄새가 유성의 코를 자극했다.

“킁..킁...밖에서 이렇게 한 번씩 먹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그릇에 밥을 옮겨 담은 유성은 김치찌개 뚜껑을 열고는 혼자 감동해 저도 모르게 계속 혼잣말이 나왔다.

“아! 냄새! 죽음이네! 쓰읍..꿀....꺽....침 넘어가네..”

벤치 한쪽에서 크루아상과 우유의 맛에 빠져 있던 아저씨가 어느새 유성의 곁으로 다가와 김치찌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젊은 양반! 거....김치찌개도 혹시 분양 가능한가?”

“네! 제가 손이 좀 커서 여유는 충분하네요..하하하”

그랬다. 다행히 유성은 무기고가 생긴 이후로 음식을 좀 많이 하는 버릇이 생겼다.

***

학교 건물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형! 봉 감독님 못 봤어?”

“으...머리야...아까 먼저 일어나서 조깅 하러 가신 거 같던데...”

“헐..그렇게 마시고도....조깅이라니...하긴 우리 중에 체력은 아마 제일 좋으실 거야.”

“으....나 어제 얼마나 마신거지? 머리가 깨질 것 같네...”

“형이 어제 좀 달리긴 했지. 여기 시골이라 이 시간에 나가서 사먹기도 좀 그런데 아침에 해장으로 라면이나
끓일까?”

“크...좋지. 근데 라면은 있고?”

“안 그래도 이럴 줄 알고! 어제 술 사올 때 같이 사왔지..히히!”

“오 역시 넌 대학 때부터 눈치가 빨랐어! 일단 그럼 난 씻고 올게!”

“응 갔다 와! 난 먼저 환기라도 시켜야겠네. 남자 세 명이 하룻밤 있었다고 여기 교실 안에 공기가 벌써부터


꿉꿉해..”

형이라 불리던 사내가 씻으러 교실을 나간 뒤 환기 시키려고 창문을 연 사내가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코를 벌름
거렸다!

“킁...킁...잉....왠...김치찌개? 냄새?...츄..릅! 아...꼬르륵...”

냄새의 출처로 의심되는 곳을 바라 본 사내는 곧 봉 감독과 유성이 벤치에 앉아서 식사 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헐....유...유성아!...츄...릅....”

사내는 저도 모르게 복도를 지나 바깥 벤치를 향해 달렸다.

그랬다. 교실에 남은 남자는 이번 영화에서 조연출을 맡은 유성의 삼촌이었다.

레펠 스타

***

유성이 봉 감독과 식사를 하는 도중 삼촌이 합류했고 곧이어 정피디도 일행에 합류했다.

어느 시골의 초등학교 나무 등걸 벤치 테이블에 둘러앉은 남자 넷의 먹방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냥! 꾹...꾹...이!

물론 고니는 벌써 자신의 몫을 다 먹고 한켠에 엎드려 게으름을 부리며 쉬고 있었다.

“츄...릅....쩝...쩝....꿀꺽!”

“후르륵! 쩌....업...짜....압..쪼.....릅....김...치...찌.....개.....맛있네...후릅...”

“후!! 후!! 바...압...에...스...윽....삭.....스....윽....쩝....쩝....!!”


잠시 후 냄비 안에 남은 김치 한 조각 까지 모두 긁어 먹고 서야 일행은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쩝....쩝....쓰...읍....달...그라..악....바..닥....바...닥...”

“끄어..억..하!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러게 어제 정 대표 그렇게 달릴 때 내가 알아 봤어.”

“하이고...그 술 다 어제 봉 감독님이 주셨잖아요...”

“내가 그랬나? 하하 나이 먹으면서 기억력이 떨어져서...”

봉 감독과 정대표의 대화를 이어 삼촌이 유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끄억! 유성아 나도 덕분에 아침 잘 먹었다. 여기서 김치찌개로 해장할 줄은 몰랐네...하하”

“그래 우리도 덕분에 잘 먹었어요!”

일행의 고마움에 유성은 서비스를 더했다.

“하하 다 드셨으면 커피 한 잔씩 드려요?”

사실 그랬다. 봉 감독과 식사를 하는 도중 삼촌과 정 대표까지 합류하자 밥과 식기를 더 준비하기 위해 유성이


푸드 트럭으로 이동할 때 정 대표가 따라와 아침 밥값을 바로 결제했다. 그렇게 입금과 동시에 유성의 서비스는
달라졌다.

“음...더할 나위 없이 좋지!”

감독님의 대답을 들은 유성은 커피를 내리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했고, 남은 일행은 오늘 스케줄에 대해 대화를
이어갔다.

“조 감독! 오후 5 시에 모두 모인다고 했지?”

“네! 대표님!”

삼촌과 정 대표는 대학 선후배 사이긴 하지만 감독님 앞이라 서로 호칭을 사용했다.

“그럼 오후 까지 시간이 좀 많이 남네...”

“음...정 대표 낚시 좀 하나?”

“하하하 갖고 싶은 취미이기 한데...아직 기회가 없어서...”

봉 감독의 질문에 정 대표가 대답했고, 유성의 삼촌이 끝을 맺었다.

“안 그래도 남해에 오면서 혹시나 해서 낚시 장비 차에 챙겨서 왔는데 식사 끝나고 준비해 두겠습니다.”

“오 조 감독은 역시 준비가 철저해! 그럼 내가 오늘 정 대표에게 낚시 좀 가르쳐주지!”

“저야 감독님이 챙겨주시면 감사하죠!”


사실 낚시 광이라 알려진 봉 감독이 낚시 장비를 찾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라고 넌지시 유성의 삼촌에게 정대표가
일러두었었다.

투자사의 대표로 있는 정 대표가 유성의 삼촌을 이번 영화 조감독으로 추천하면서 봉 감독의 불만은 사실 적지


않았다.

예전에 영화판에 발을 담그긴 했다지만 어쨌든 낙하산인 유성의 삼촌을 반기지 않는 게 일반적인 경우였고 봉
감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일하면서 보니 조 감독의 빠른 일처리와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감독의 고충 등을 덜어주자 차츰


생각이 감독의 판단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

“조 감독! 설마 오늘 아침밥도 미리 다 준비한 일은 아니지?”

봉 감독의 물음에 삼촌이 대답했다.

“하하하 유성이에게 아침을 얻어먹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조 감독 그런데 조카 음식 솜씨가 장난이 아니던데...특히...아까 먹었던 크루아상은 수준급이었어.”

“하하....설마 감독님이 그렇게 칭찬할 정도 까지는...”

유성의 삼촌은 김치찌개 정도야 김치가 맛을 좌우하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뒤늦게 합류한 덕분에
크루아상은 남아있지 않아 먹어 볼 기회가 없었다.

“아니야! 이사람 일처리는 똑 소리 나게 잘하더니...조카 실력은 잘 모르나 보네..일단 먹어보라고...크...


츄릅..생각만 해도 다시 침이 고이네. 안 그래도 낚시 끝나고 나면 점심일 텐데... 점심 식사도 조 감독 조카에
내가 준비해 달라고 미리 얘기해 뒀어.”

생각도 못한 유성의 크루아상 때문에 빵 덕후로 알려진 봉 감독에게 삼촌은 점수를 더 따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해결한 일행은 영화가 시작되기 하루 전 마지막 여유를 즐기기 위해 낚시를 하러 근처 갯바위로
이동했다.

유성은 수돗가에서 먹은 식기류를 설거지하고 정리를 모두 끝내고 나서 처음 봉 감독에게 밥값 대신 미리 허락


받아 둔 세트장 구경을 시작했다.

사실 유성이 폐교에 혼자 남아 삼촌 대신 세트장을 관리하는 역할이었지만 기꺼이 그러기로 했다.

유성은 영화내용은 잘 모르지만 액션영화라고 얼핏 들은 세트장에 만들어진 절벽을 볼 수 있었다.

“캬...예전 같았으면 정말 무서워서 위에서 내려다보지도 못했겠다. 올라갈 엄두도 못 냈겠지?”

유성은 세트장 절벽 뒤에 만들어진 계단을 이용해 절벽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스킬 고공침투 방벽등반!”

혹시나 고급 제빵처럼 스킬이 조합이 될까 하는 마음에 절벽에 올라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사용해 보았다.

“......꽝인가?”
기대와는 달리 이번 스킬은 조합이 되지 않았다.

올라 온 김에 계단으로 내려가긴 그래서 유성은 그냥 레펠을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촤라라락! 끼익! 다다다다! 슉! 착지!”

유성은 레펠을 이용해 후방레펠 방법으로 내려오다 중간에 급정거상태에서 몸을 돌려 전방레펠로 바꾸어 마무리
해보았다.

“이거도 캡슐 안에서 몇 번 해봤다고 내가 생각해 봐도 이젠 좀 자세가 나쁘지 않은 거 같네.”

유성은 그렇게 두 번 정도 자세를 바꾸어 가며 레펠을 이용해 몸을 풀고 나머지 세트도 구경했다.

“흠 이제 슬슬 점심 준비하러 가볼까?”

아침에 봉 감독과 둘이 있을 때 나눈 얘기를 떠올리며 수돗가에 들러 몸에 뭍은 먼지를 정리한 유성은 트럭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수제버거 또는 핫도그 디저트로 에그타르트 어때요?’

“흠...고니야! 이번에는 에그타르트 레시피 좀 보여줘.”

차량에 도착한 유성이 고니에게 레시피를 부탁했다.

-네 한유성님 현재 푸드 트럭에 준비된 장비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에그타르트 레시피를 검색합니다.


삐..삐...삑!...에그타르트는...

“고니야 아까처럼 홀로그램 동영상으로 띄워주니까 편하더라!”

-네 한유성님 에그타르트 레시피 홀로그램 동영상 시작합니다!

냉장고 안에서 재료를 하나씩 꺼내어 준비를 해둔 유성은 요리를 위해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고급제빵! 스킬 재료 손질! 스킬 불 조절!”

유성은 달걀을 흰자와 따로 분리한 노른자를 볼에 옮겨 풀어주고 설탕과 중력분 밀가루를 차례로 섞어 주었다.

그렇게 유성은 홀린 듯 빠른 손놀림으로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동영상을 따라 에그타르트의 필링과 파이지를 각각


완성해 갔다.

차량에 에그타르트 전용 틀이 없어 유성은 아까 크루아상을 만들 때 사용한 머핀 틀에 파이지를 만들어 깔고


필링을 부어 준비된 머핀 틀을 오븐으로 이동시켰다.

“고니야 온도 세팅해서 알맞게 익을 때까지 부탁해!”

-네 한유성님 온도 180 도로 오븐의 온도를 세팅합니다. 에그타르트가 익을 때까지 시간은 대략 30 분정도


예상됩니다.

“OK! 에그타르트 완성되면 알아서 오븐 온도 조절해주고 알려줘!”

-네 한유성님 그렇게 시행하겠습니다.


:

유성은 자신의 앞에 완성된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고는 연신 감격에 빠졌다.

“쩝쩝...바사삭....파이지라고 했나? 이건 바삭하고...캬..스윽...폭..신..폭신...이건 필링이랬지? 캬..


완전 부드럽네...고니야 너도 먹어봐”

-냥? 할짝! 바사삭! 폭 할짝! 할짝!!

“쩝...쩝...수제 버거랑...핫도그는 미리 만들어 둔 게 많이 있지만...분위기상 얘들도 새로 만들어 먹는 게


답이겠지?..쩝...손님도 없는데 혼자서 바쁘네..히히”

그렇게 고급 제빵 기술을 얻은 유성의 빵 만들기는 한동안 계속 지속되었다.

***

“아람아 정말 괜찮아?”

“응! 나 정말 괜찮아! 다 나았다니까! 헤헤헤”

아람의 갑작스런 드라이브 요청에 부산 근교로 차를 몰고 나오긴 했지만 아직도 아람의 엄마는 얼떨떨하기만 했다.

“정말 너 학교 데려다주는 기사 오빠가 준 청심환이랑 두피 마사지 받고 나았다고?”

“응! 유성 오빠 부모님이 중국여행 갔다가 사오고 마지막 남은 청심환 이라고 했는데...내가 다 먹어 버려서
이제 구하기 힘들데...”

“그러게 어디 제품인 줄 알면 좀 구입해 놓으면 좋으련만...”

“헤헤 그래도 이제 다 나았잖아.”

오늘 따라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서도 컨디션 하나 나빠지지 않는 아람의 얼굴을 보며 김 화가는 환희와 걱정을
계속 느꼈다.

“아람아 그래도 일단 내일은 학교 가기 전에 엄마랑 병원 가서 마지막으로 검사 한번만 받아보자. 그


유성군한테는 내일은 쉬라고 내가 연락해 둘게.”

“알았어..엄마...”

“근데 유성군이 약값은 필요 없다고 했다고? 그래도...얼마 정도는 챙겨줘야 할 텐데...?”

“흠...그럼 엄마! 오빠가 좋아 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그래? 유성군이 뭘 좋아하는데? 검사해보고 결과가 좋으면 나도 그냥 이렇게 넘어갈 순 없지. 그건 경우가
아니지.”
김 화가는 아람의 말에 운전하며 귀를 기울였다.

“엄마! 유성 오빠는 사실...내 메르세데스 벤스 쿠페를 좋아해...”

“응? 설...설마....아람아 그건 좀 아닌 거 같다.”

“왜? 어차피 내가 타지도 않는 찬데..”

“후...아람아 그건 좀 아마 유성 오빠도 부담 느낄 거야..그냥 적당히 괜찮은 걸로 엄마가 알아볼게.”

엄마의 말을 들은 아람이 동의를 표했다.

“아!...역시 엄마 말이 맞겠네. 내가 생각이 짧았어. 벌써 한 5 년 된 차를 선물 하긴 좀 그렇겠지. 맞아


선물인데...남이 쓰던 거 보단 새 걸로 사주는 게 경우가 맞겠다.”

“......”

아직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둡고 순진하기만 한 아람을 바라보며 아람의 엄마는 아직 말로만 전해들은 유성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

-Episode

경비업체 ‘캅스’의 일요일 당직이라 투덜대며 자신의 담당 경비 구역 감시카메라를 돌아보던 차 대리는 동창선
초등학교에 새로 설치된 감시카메라에 비친 영상을 확인하던 차에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헐...저게 사람이야? 다람쥐야? 안정장비도 없어 보이는데....헐....저게 가능해?”

차 대리 자신도 수색부대 출신으로 ‘캅스’에 입사했기에 레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화면에 보인 남자가 취하는 동작은 전문가들도 하기 힘든 동작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더구나 화면 속 남자는 안전 장비 하나 없이 무모해 보일 정도로 움직임을 이어 가고 있었다.

‘대박! 이건 올려야 해!’

다시 화면을 처음으로 돌려 재생한 차 대리는 파일을 자신의 메일로 전송했다.

그리고 유성의 레펠 영상은 살짝 편집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차 대리가 직접 촬영한 듯 편집된 유성의 레펠 영상은 조용히 ‘너튜브’에 ‘레펠 스타 이건 봐야해!’
라는 제목으로 업로드 되었다.

맛 집

***
유성은 봉 감독 일행과 아침 식사 후 수돗가 근처로 차량을 이동해 전기와 식수를 공급받기 쉽게 학교 안으로
푸드 트럭 진입 허락을 미리 맡아 두었다.

근처 갯바위에서 낚시를 끝내고 돌아온 삼촌 일행은 수돗가 옆에 세워진 푸드 트럭에서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
유성에게 다가와 아이스박스에 담긴 수확물을 내밀었다.

상자를 확인 한 유성의 눈에는 대략 15~25cm 정도 되는 눈이 툭 튀어나온 물고기 여러 마리와 피곤 한지 바닥에


붙어 있는 생선도 두 마리가 보였다.

“우와 아침에 가셔서 벌써 이렇게나 잡아 오신 거예요?”

유성의 너스레에 낚시 광 봉 감독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하하..씨알은 포기했고 그냥 손 맛 본 걸로 만족했지... 큼..큼...한 셰프는 제빵 전문 인거 같던데...


혹시...생선 손질도...가능 하겠나?”

삼촌도 옆에서 봉 감독의 기대에 부흥하라는 눈치를 주는 건지 유성을 보며 눈을 반짝인다.

“네?..셰프라니요? 감독님 그냥 저는 ‘너튜브’나 인터넷 동영상에서 이것저것 보고 흉내나 내는 정돈데요...


너무 저를 높게 평가 하신 듯 요...음...그렇지만 감독님! 일단 생선 손질도 한 번 해볼게요!”

“하하 그럼 부탁하겠네.”

“그럼 일단 점심 메뉴는 얘네 들로 준비할게요.”

그렇게 유성에게 갯바위에서 잡은 생선들을 부탁하고 일행은 건물로 이동했다.

“고니야 근데 얘네 들 이름이 뭐냐?”

-네 한유성님 아이스박스 안의 대상 어종을 스캔해서 검색합니다. 볼락과 도다리로 확인 됩니다.

“음...그럼 얘네 들 조리 방법 좀 알려 줄래?”

-네 한유성님 삐...삐...삑 검색 결과 볼락 어종은 사이즈와 현재 상태를 보아 구이를 추천합니다. 도다리


어종은 현재 상태에서는 도다리 쑥국을 추천합니다.

“볼락 구이는 지금 가능 하겠는데...도다리 쑥국은 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네 한유성님! 도다리 쑥국에는 쑥이 들어갑니다. 현재 주변 정찰로 확인 한 결과 학교 뒤 에 있는 야산이


관리가 되지 않아 쑥이 다량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전에 얼핏 TV 에서 산도 사유지라서 막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던데...”

-네 한유성님 검색을 시작합니다. 삐...삐...삑 학교 뒤에 야산은 토지대장 검색결과 국유지로 확인 됩니다.


국유지의 산림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자란 약초의 채취는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민원이 있으면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쩝...그래? 그럼 아까 입금도 확인 했으니...그럼 생선 손질만 해놓고 살짝 다녀와 볼까?”

“스킬 재료손질!”
재료손질 스킬을 사용한 유성은 고니가 띄워준 홀로그램 동영상을 참고해 빠르고 정확하게 볼락은 지느러미를
자르고 굽기 좋게 칼집을 내고 도다리는 두 마리 각각 세 등분 해두어 냄비에 넣고 끓이기 편한 상태로 손질해
두었다.

손질한 생선을 숙성을 위해 잠깐 냉장고에 넣어 둔 유성은 쑥을 채취하기 위해 학교 뒤 야산으로 이동했다.

주변 정찰 스킬을 사용해 고니가 깔아준 레드카펫 표시를 따라 이동한 유성은 무릎만큼 자란 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 고니의 조언에 따라 높게 자란 쑥의 부드러운 윗부분만 톡톡 꺾어 채취했다.

-한유성님 근처에 쑥 이외에 식용 가능한 산나물과 버섯 약초 등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OK! 그럼 그 것들도 위치 표시해줘!”

-네 한유성님 붉은 선을 이용해 위치를 표시합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리 얕은 산이라도 등산로도 아닌 야산을 타고 다니는 것이 위험하겠지만 유성은 높은


스탯 덕분에 산을 평지인 냥 누비고 다니며 자연산 각종 음식 재료와 약초를 빠른 시간에 채취 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아침 식사 때와 마찬가지로 삼촌 일행은 점심 식사를 위해 학교 앞 나무 등걸 벤치에 둘러앉았다.

“자...많이 기다리셨죠?”

유성의 말에 정 대표가 차려진 밥상을 보며 칭찬을 했다.

“헐...그냥 간단하게 회나 한 접시 얻어먹을까 했더니..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어? 한 셰프 솜씨가 대단한데?”

“그러게 캬...이거 도다리 쑥국 비쥬얼은 제대 론데? 유성아 차안에 국거리 재료가 있었어?”

삼촌의 물음에 벌써부터 칭찬에 신이 난 유성이 대답했다.

“응? 당연히 없어서 학교 뒤에 있는 산 좀 뛰어 다녔어..히히”

“우걱...우걱...뜨...거....우걱..허..겁...지 겁...뜨...거...쩝...쩝....”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벌써 봉 감독은 볼락 구이를 양손으로 잡고 뜯고 있었다.

봉 감독이 남들에 비해 후각이 발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볼락 구이에서 풍기는 냄새가 심상치 않음을 미리 눈치
채고 도다리 쑥국 보다 볼락 구이를 먼저 선택한 것이다.

“허...감독님 벌써 시작 하셨네..”

“나도....그럼...먹어 볼락..우걱...뜨겁...크....으....쩝..우걱...”

그제야 나머지 일행도 볼락 구이를 향해 손을 뻗어 입으로 가져갔다.

맛은 말해 무엇 하리? 유성의 절묘한 불 조절 스킬로 구운 볼락은 맛 집을 방불케 했다.


“쩝...쩝....우걱! 유성아....너...내가 알기론...라면도 못 끓이는...쩝..쩝... 언제 요리 실력이 이렇게
는 거니?”

마지막 하나 남은 볼락 구이를 입안에 넣은 삼촌이 유성에게 질문했다.

“뭐 별게 있겠어?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너튜브’ 보면서 공부했지. 그리고 중요한 건 입금 전후로 맛이 좀


다르더라고...히히”

“후르륵! 후후 츄릅! 쩝..쩝....캬! 시원하네!”

“한 셰프 정말 잘 먹었네!”

“유성아 잘 먹었어!”

그렇게 정신없이 볼락 구이와 도다리 쑥국을 먹고 난 일행이 유성에게 인사를 전했다.

“하하하 다 입금 확인하고 만든 요린데요. 그리고 다들 디저트 드실 거죠?”

“주면 당연히 먹지!”

이어서 디저트로 나온 에그타르트에서 정 대표와 삼촌은 봉 감독이 유성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유..유성아 이거...더 없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게...장난 아닌데...”

“방금 구워서 그런지 맛이 정말 신선해...시중에서 만들어진 에그타르트 먹을 때완 확실히 달라. 하하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었어.”

특히나 이런 시골에서 자신의 미각을 만족시켜 준 빵을 아침에 이어 점심까지 맛 본 봉 감독의 유성에 대한 맛


평가는 아주 높은 점수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여기까지가 입금분량이었습니다. 헤헤”

유성은 호구가 아니었다.

정 대표에게 재 입금을 약속 받은 유성은 아까 만들어 두었던 에그타르트 6 개만 더 무기고에서 냉장고를 통과해


소환해서 꺼내 가져다주었다.

누군가 보았으면 아이러니 하게도 냉장고에서 꺼낸 에그타르트는 방금 오븐에서 꺼낸 거 마냥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유성은 그렇게 점심 식사가 끝나고 난 후 주변 정리와 설거지를 시작했고 삼촌 일행은 오후에 있을 고사 준비를
위해 하나 둘씩 모이는 스탭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탭들과 배우들이 모두 참석해 고사를 지내는 동안 유성도 한켠에서 같이 구경도 할 수
있었다. 고사가 끝날 무렵에는 봉 감독의 소개로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유성은 인사 할 수 있었다.

“자자! 여기 한 셰프는 제빵 전문가야! 조 감독 조칸데 특별히 여기까지 모셨으니 고사 끝나고 나면 저기 트럭에


가서 준비된 빵들 맛들 보라고...쓰읍...하하 말하다 보니 아까 먹은 에그타르트 생각이 나서 침이 나오네..
하하 음식 맛은 내 침과 함께 보장하지!”

몇몇 여성 스탭은 감독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어진 유성의 인사에 집중 할 수밖에 없었다.

성이 조씨인 유성의 외삼촌은 원래 조 조감독이 맞지만 스탭들은 그냥 조 감독이라 통일해 부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조 조감독님의 조카인 한유성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뜻 깊은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감독님과 투자사 대표님께 감사드리고요...앞으로 시간에 여유가 될 때 찾아뵙고 맛있는 요리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고사가 끝나고 식사 하실 때 저기 수돗가 옆에 있는 검은색 푸드
트럭으로 오시면 수제 버거와 핫도그 그리고 에그타르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핸섬한 얼굴과 다부진 몸을 가진 한유성은 고사를 지내는 동안 조리복을 벗고 체크무늬 남방과 슬랙스만 입고
있었지만, 풀어진 단추 사이와 말아 올린 소매 밑으로 드러난 힘줄과 근육은 확연히 여성 스탭들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무기가 되었다.

“어..셰프였구나..고사 지낼 때 옆에 서 있기에 난 신인 배운 줄 알았네...”

“햐..저 비주얼에 푸드 트럭이면 여고 앞에 뜨면 그냥 매진이겠는데...”

그렇게 감독의 소개와 유성의 인사로 인해 높아진 관심 때문인지 잠시 후 푸드 트럭 앞은 스탭들과 배우관계자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크으! 내가 무슨 맛 집 사장이라도 된 거 같네.’

-네 한유성님 줄서 있는 사람 수와 비교해 오늘 만들어 둔 햄버거와 핫도그가 곧 매진되리라 판단합니다. 전에


만들어 무기고에 보관 중인 수제 버거와 핫도그는 어떻게 할까요?

‘음식을 남기게 하는 거 보단 약간 모자란 듯해야 다음에 더 인기가 있겠지? 오늘은 그냥 만든 것 만 팔고 가자!


흐흐흐 나도 맛 집 사장이 되는 건가?’

물론 음식 값은 정 대표에게 미리 선불로 입금을 받았지만 준비된 음식을 다 소진한 건 유성이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와그작...와그작...우와! 별 기대 안하고 왔는데...진짜 맛있다!”

“에그타르트만 받아왔는데...에혀..다시 줄서야 하나? 수제 버거랑 핫도그도 먹어 봐야겠는데...”

“쯔쯔....그러게 아까 감독님이 추천 할 때 미리 알았어야지...감독님 빵 귀신 인건 이 바닥 스탭이라면


웬만하면 다 알건데...”

유성의 푸드 트럭을 다녀간 스태프들 중에는 에그타르트만 처음 받아갔다가 다시 수제 버거와 핫도그를 맛보기
위해 돌아오는 진풍경이 벌어져 유성의 푸드 트럭 줄은 쉽사리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 새로 만들어 준비한 음식을 모두 처리한 유성은 일요일 저녁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고
스태프들과 인사 후에 철 수 준비를 했다. 저녁은 조리 도구이외에 설거지거리가 별로 없어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집으로 복귀 중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깐 들러 휴게소 맛 집 음식들을 충분히 맛 본 유성은 피로를 풀기위해


오토드라이브 기능으로 고니에게 운전을 맡긴 채 의자를 뒤로 눕혔다.

“고니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깨우고 난 좀 쉴게.”

-네 한유성님 오토드라이브 기능 시작합니다. 편안한 휴식 되십시오.

통신 작전

***

저녁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한 유성은 거실에서 TV 를 시청중인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핸드폰에 한참 알 수 없는


‘ㅋㅋㅋㅋㅋ’를 연발하고 있는 동생 유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왔어!”

거실로 들어서는 유성의 인기척에 엄마가 제일 먼저 반응 했다.

“어? 아들 왔어? 밥은 먹었니?”

“큼..큼..어 유성이 왔나?”

“응! 남해 갔다 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해결했어.”

“휴게소에서 먹은 걸로 되겠니? 유경이도 학원 갔다가 방금 저녁 먹었는데...조금만 일찍 왔으면 둘이 같이


먹을걸...아들 고기랑 좀 있는데...엄마가 금방 밥 차려줄게 씻고 와!”

“아니 정말 배 안고파! 밥은 괜찮아 씻고 올게.”

그렇게 유성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에게도 맛난 음식을 대접하기로 결정했다.

씻고 간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냉장고로 열어 안에든 내용물을 확인한 유성이 고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니야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빵 종류 없을까?’

-네 한유성님 재료 스캔 후에 적절한 레시피 검색하겠습니다. 삐....삐.....삑 분석 결과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제빵 관련 레시피 중에 ‘사과 파이’를 추천합니다.

‘사과 파이? 흠...나쁘지 않을 것 같아! 고니야 홀로그램 부탁해!’

“조금 늦은 저녁이긴 하지만 다들 ‘사과 파이’어때?”

냉장고 앞에선 유성의 질문에 핸드폰에서 눈을 땐 유경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콜!”
유경의 말을 들은 유성은 냉장고 안에서 고니가 홀로그램으로 띄워 준 붉은 선이 가리키는 재료들을 식탁위로
하나씩 가져다 놓았다.

“아들 왜? 뭐 만들라고? 엄마가 뭐 좀 도와줘?”

주방에서 소란스러움에 엄마가 다가왔으나 가볍게 도움을 거절했다.

“엄마는 그냥 편하게 드라마 보고 있으면 아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

사과 파이 만들기에 필요한 주방 도구랑 식기도 고니가 붉은 선으로 표시해 주었기에 유성은 어려움 없이 필요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요리 준비를 마친 유성이 식탁위에 재료를 내려다보며 요리 시작을 알렸다.

“스킬 고급 제빵! 스킬 재료 준비! 스킬 불 조절!”

속으로 스킬을 사용한다는 것이 집중하다 보니 겉으로 말이 나와 버렸다.

“풉! 그건 뭔 퍼포먼스야? 오빠! 관종 이었어?”

“으..응? 드..들었어? 하하하....일종의 요리 전 자기 암시라고나 할까? 음...운동선수들 징크스와


비슷하다고 보면 돼. 실제로 이러고 요리하면 맛이 좋아지더라고...하...하..하...”

살짝 당황한 유성이었으나 그냥 자연스러운 게 나을 것 같아 의식의 흐름대로 막 지껄였다.

“응! 열심히 해봐! 일단 관심 끌기엔 성공했어!”

그렇게 유경의 관심을 받은 유성의 현란한 손놀림의 재료 손질이 시작되었다.

[슥슥....슥슥.....]

사과 껍질을 물에 씻듯 스윽 스윽 깎아 내고,

[다다다다다다다...]

껍질 벗은 사과가 믹서에 갈아진 듯 깍두기 마냥 열 맞춰 썰어지고,

[통통통통.....]

밀가루가 눈 내리듯 채에 걸러져 하얗게 곱게 내려앉고,

[땡글...땡글...]

계란 노란 자만 따로 분리해서 그릇에 옮겨 담았다.

“와아! 지렸다!”

유성의 재료손질 퍼포먼스를 보다 환호소리를 지른 유경의 말을 들은 엄마의 등짝 스매시가 이어졌다.

“찰싹! 유경아! 말 좀 예쁘게 해!”


“응..? 와아...이쁘게...지리셨다...”

그렇게 1 시간 정도 지난 후에 가족들 앞에는 유성의 수제 ‘사과파이’가 놓여졌다.

유성이 미리 먹기 좋게 알맞은 크기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 주었다.

“쩝..쩝....오물 오물....사..과...즙.....달...달...하니...좋네.”

“우걱...우걱...달...다...너...무....달....다...맛있게 다네!”

“냠...냠....계...피..향...사...과....달....지....만.....맛있어!”

-냥냥....

잠시 후 유성이 준비한 사과파이가 모두 없어지고 난 후에야 가족들의 시식 평이 이어졌다.

“오! 오빠 관심 끌만 하네! 이러다 오빠 진짜 셰프 되는 거 아냐?”

“유성아...지난 번 보다 음식 솜씨가 좋아 진거 같아! 이건 확실히 맛있어!”

“아들!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데? 이런 거 만드는 건 언제 배웠어?”

“하하하 제 스승은 뭐...컴퓨터죠!”

그렇게 오늘 하루 유성은 자신의 요리를 먹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한 곳이 뿌듯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크...요리도 재밌네.’

유성은 그렇게 가족들과 간식 타임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유경의 ‘진짜 셰프’라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까짓 거 고니가 있는데 자격증 뭐 다 따버리지 뭐! 음..고니야 일단 제빵 자격증 알아봐줄래?”

-네 한유성님 제빵 조리사 자격증 시험을 검색합니다. 삐...삐....삑.....검색 결과 제빵 기능사 자격시험은


필기시험 객관식 4 지택일 형 60 문항과 실기시험 작업 형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필기
합격률은 30% 전후 실기합격률은 4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전체 합격률은 그보다
낮은 20% 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 됩니다. 시험 일정은 전반기...

“OK!고마워 고니.”

그렇게 시간이 여유가 될 때 제빵 기능사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유성은 침대에서 바로 잠들지 않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무기고로 이동 후 무기고 안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휴식을 취한 유성은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 고니에게 자신이 쉽게 클리어 가능한 메뉴를 추천받아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띠링! ]

[육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보병 ]

[2. 통신 ]

[3. 정보 ]

[4. 항공 ]

[5. 병기 ]

[6. 의무 ]

이번 접속에서 유성은 고니의 추천을 받은 통신 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통신을 선택하셨습니다. ]

[잠시 후 야전 산악 훈련지역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유성은 육군 통신 메뉴를 선택하며 살짝 기대했다.

참모진들과 장성들이 모여 있고 그 전면에 펼쳐진 상황판과 작전 모형!

그들 앞에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실시간 업데이트 되는 레이더 화면과 그 정보를 통해 상황에 대처해가는 전술
작전 진행상황 등 뭔가 그럴 듯한 지휘 통제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곳에 자리해 작전을 전달하는 부사관 유성의 모습을 살짝 떠올렸다.

‘어떤 작전이 주어질까? 난 무엇을 담당하려나? 전화? 레이더? 네트워크? 암호?’

통신병과 부사관으로 실내에서 편하게 할 만한 작전을 기대하며 접속한 유성은 자신의 앞으로 보이는 산을
확인하고는 어리둥절해져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잉?...실내일 줄 알았는데 또 야전이야? 밖에서 무슨 작전을 하라는 거지?’

의문을 느끼는 유성의 눈앞에 작전 화면이 펼쳐졌다.

[작전명 : ‘통신 복구’

-익일 벌어질 사단훈련에 앞서 통신부대 야전 가설중대는 미리 야전선을 매설해 통신을 연결해 두었다. 하지만
훈련 시작을 4 시간 앞둔 지금 유선 통신 선로가 알지 못한 이유에 의해 끊어져 있음이 발견 되었다.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통신을 복구하라.

-당신은 갓 부임한 통신부대 신입 반장(하사 한유성)으로 훈련지역에 투입 되었다. 가설 병들을 통솔해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야전 통신을 복구하라!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스마트 폰 획득 +@ (통신복구 시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스마트 폰 획득 실패 (통신복구 실패) ]

[띠링! ]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야전선은 현재 어딘가 끊어져 통신이 차단되어 있는 상태를 표시합니다. 통신이 연결되면
야전선은 녹색 빛을 띠게 됩니다.]

‘이 무슨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지? 전화선이 끊어졌으니 이으란 얘긴가? 저 산 어디에서 어디까지 끊어진 줄


알고? 더구나 난 통신에 대해 1 도 모르는데...’

작전을 확인하고 막막해진 유성은 NPC 병사들을 통해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성의 시야에
가설병으로 보이는 병사들과 바닥에 검은색 얇은 전선이 보였다.

‘흠....바닥의 전선이 통신시설을 연결한 야전선이라는 건가? 근데 이 깊은 산에서 누가 갑자기 전선을 끊은


거야? 적이면 죽여야 하나? 난감한 상황이네...흠...’

이런 야전에서의 통신 시설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기술도 전혀 없어 상황 대처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은


유성은 앞에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임 일병! 현재 상황 보고 해봐”

“네! 반장님! 어제 매설해둔 야전선이 야생 짐승이나 장비 이동 또는 기타 이유로 인한 단선이 난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훈련 시작까지 4 시간 정도 남아 있습니다.”

작전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을 전해들은 유성은 뒤에 있는 병장에게 대처방안에 대해 물었다.

“흠...그럼 김 병장이 생각하는 가장 빠른 복구 방법은 무엇이지?”

“네. 제가 생각하기로는 현재 상황에서 단선이 일어난 곳이 몇 개인지 어딘지 알 수 없으니 제일 무난한 방법으로
야전선을 재 매설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길이도 약 2km 에 해당하는 산악 구간으로 훈련 시작
전까지 충분히 통신 선로 복구 가능하리라 판단됩니다.”

역시 병장이라 그런지 작전지역에 대해 뭔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초보 부사관인 유성은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뭐? 이 밤에....2km 라고? 앞에 산을 넘자는 얘기야?”

“쩝...아니지 말입니다. 정상에 있는 무선 중계소까지 야전선을 연결하면 끝나지 말입니다. 방차통을 들고


정상으로 이동해 정상에 있는 무선 중계소에서 산 아래 숙영지까지 야전선을 다시 까는 방법이 제일 안전합니다.”

약간의 알아듣지 못할 말이 나왔지만, 대충 눈치로 유성은 때려 맞춰 이해하며 질문을 이었다.

“여기서 깔면서 오르는 건?”

“에이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애들이 방차통을 짊어진 상태로 야전선을 깔면서 올라가면 시간도 더 걸리고 중요한
건 다 쓰러지지 말입니다.”

점점 유성의 질문이 귀찮은 건지 김 병장의 말투에서 점점 성의가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럼 끊어진 선로만 찾아서 이어 버리면 더 간단하지 않아?”

“에효...가설 반장님이 군에 온지 얼마 안 돼 잘 모르셔서 그러신데...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재 이 어두운


밤에 눈으로 4 시간 안에 단선을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지 말입니다.”

결국은 유성이 신입하사라고 김 병장이 점점 무시하기에 이른다.

‘아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더니...애들이 개기네...’

김 병장의 무시에 오기가 생긴 유성은 자신의 방법으로 작전을 수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봐! 임 일병! 여기서 숲에서 야전선 찾아 가는 거랑 단선 연결하는 거 어떻게 하는지 시범 보여 봐.”

자신의 명령에 김 병장의 눈치를 보는 임 일병이 유성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총을 쏠 수는 없지 않은가!

‘햐...내가 참아야지...’
유성의 눈에서 피어나는 살기를 느낀 건지 머뭇거리던 임 일병이 시범을 보였다.

“여기 끊어진 부분에...이렇게 새로운 야전선을 까서 연결하고...이렇게 해서...요기는 절연 테이핑으로...


요렇게 하면 됩니다.”

“쩝...이런 거 할 시간에 벌써 출발해도 시간이 빠듯한데...쩝...에효...”

임 일병의 시범을 지켜보던 김 병장은 유성이 들으라는지...뒤에서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김 병장!...너 있다가 두고 보자!’

유성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김 병장을 골려 줄 방법을 생각하며 시범을 지켜보았다.

군대는 줄

***

일요일 밤

오랜만에 딸과 외출을 다녀온 아람의 엄마는 최 관장을 호출 했다.

“언니! 그 아람이 학교 데려다 준다는 한유성군 어떻던가요?”

“네 대표님!...1 주일 정도 살펴 본 바로는 크게 흠 잡을 곳은 없었습니다. 다만...아람양이 식사도 함께


하고...매번 한유성 군을 찾고 챙기는 걸로 보아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 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치 언니? 역시 언니는 내가 말 안 해도 잘 안단 말이야...호호호...내가 봐도 아람이 마음이 좀 있는 것


같더라고...아 언니! 그리고 유성군 또래가 타고 다닐 만한 차량 하나 알아 봐줘요.”

“네? 대표님...무슨 말씀인지?”

“아람이가 나 몰래 받아먹은 약이 있더라고...그냥 기분이지만 공으로 받아먹은 약은 약효가 얼마 안갈 거


같아서... 약값은 제대로 챙겨주는 게 맞지 싶네. 아! 그리고 차 가격은 주고받는 사이에 큰 부담이 느껴지지
않을 만한 걸로.”

“네 대표님 국산 준중형 승용이나 SUV 차량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언니 음... 그리고 내일 오전 아람이 병원 예약 잡아 주시고요. 그러니 유성군에게 내일은 안와도


된다고 연락 해줘요.”

“네 대표님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최 관장은 업무용 태블릿에 ‘아람양 병원 오전 예약’과 함께 ‘차량 구매’ 및 ‘한유성군 밀착 조사’라고


메모했다.

***
유성은 작전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작전 보상은 통신 복구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김 병장의 의견으로 작전을 성공하면 추가 보상은 절대 없다. 이렇게 김 병장과 실랑이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나랑 함께할 병사! 선착순 하나!”

임 일병이 손을 들려고 했으나 김 병장의 눈치를 느끼곤 멈칫했다. 나머지 분대원들 역시 김 병장의 눈치를 보며
나서는 이가 없다.

“큼...분대장! 그럼 네가 분대원들 인솔해서 정상에 있는 무선 중계소에서 깔면서 내려와.”

유성과 힘겨루기에서 이겼다고 생각 했는지 분대장인 김 병장의 입 꼬리 한쪽이 실룩 거렸다.

“크흐...네...그러지 말입니다. 그럼 반장님은 통제실에서 특이 상황 생기면 무전으로 연락 주시지 말입니다.


아 무전기 사용법은 알고 계시지 말입니다?”

“아! 그러네! 그럼 무전기 만질 줄 아는 애 하나 남겨놓고 올라가.”

“크크...임 일병! 넌 무전 대기하고 나머진 빨리 장비 챙겨서 정상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임 일병을 제외한 나머지 분대원들이 모두 산으로 이동하자 유성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 일병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 넌 단선 복구 할 장비들 챙기고 난 무전기 챙길게!”

“네? 저희 통제소에서 무전 대기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그건 김 병장 말이고 난 그러겠다고 한 적 없는데?”

임 일병의 말에 친절하게 답을 해 준 유성은 통제소에 있는 다기능 무전기(TMMR)랑 야간 산행을 위한 장비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챙겼다.

“임 일병! 다 챙겼지? 가자! 핸드폰 바꾸러!”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 못했습니다.”

“하하하 산에 가서 단선 구간 찾자는 말이야.”

전선 피복한번 벗겨 본 기억 없는 유성이지만 사실 고니와 함께하는 유성에게 이번 작전은 실패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불빛이라고는 군용 랜턴 하나뿐인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지만 주변 정찰과 유성의 발 앞으로 펼쳐진 붉은 선 일명


레드카펫을 보며 거침없이 산을 오르고 있다.

-한유성님 전방 100m 앞에 야전선 단선이 확인 되었습니다.

‘OK! 고마워 고니!’

“임 일병! 잘 따라 오고 있어?”
“허...헉....헉...조...금만 천천히 가지 말입니다...”

“그래! 100m 앞에서 잠깐 쉬었다 간다. 조금만 힘내!”

“....헉...헉....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그렇게 100m 를 이동해 숨을 돌리는 임 일병에게 유성이 다가왔다.

“많이 힘드나?”

“아...이제 좀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군!”

유성은 임 일병에게 단선이 나있는 야전선을 끌어 가져다주었다.

“임 일병 앉아서 쉬는 김에 단선 난 야전선 양쪽 연결하면서 쉬어!”

“.....아...네...알겠습니다.”

그렇게 유성과 임 일병은 작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부지런히 길도 없는 산을 올랐다.

“헉..헉...반장님...조금만 쉬었다 가지 말입니다...”

“어 거의 다 왔어! 이제 30m 이동해서 쉴 거야! 조금만 더 힘내!”

“허...헉....통...제소에...남으면..편...할 줄 알았는데....헉...헉...이게 뭐야..”

유성의 독려에 임 일병이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캬 매번 느끼지만 저 혼자 투덜거리는 거 하나까지 구현하다니..국방부 리얼리즘 개 오졌다!’

얼마 후 그렇게 열심히 산을 올라 임 일병이 마지막 단선을 연결하자 유성의 눈앞에 작전 성공을 알리는 화면이
떠올랐다.

[작전명 : ‘통신 복구’ (완료)

-익일 벌어질 사단훈련에 앞서 통신부대 야전 가설중대는 미리 야전선을 매설해 통신을 연결해 두었다. 하지만
훈련 시작을 4 시간 앞둔 지금 유선 통신 선로가 알지 못한 이유에 의해 끊어져 있음이 발견 되었다.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통신을 복구하라.

-당신은 갓 부임한 통신부대 신입 반장(하사 한유성)으로 훈련지역에 투입 되었다. 가설 병들을 통솔해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야전 통신을 복구하라!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스마트 폰 획득 +@ (통신복구 시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스마트 폰 획득 실패 (통신복구 실패) ]


‘햐 드디어 끝났네. 고니야 근데 아까 얘기 한데로 작전 완료해도 내가 캡슐에서 안 나가면 상황은 계속 유지
되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

이전에는 캡슐 방에서 가게 일을 해야 해서 유성은 작전이 완료되면 급히 접속을 해제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방에서 접속을 하니 여유가 생긴 유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 일이 있었다.

[띠링!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

[빠른 시간 안에 작전 성공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아이템 - ‘스마트 폰’과 ‘태블릿’을 획득합니다. ]

‘오호 태블릿이라! 고니야 일단 무기고에 보관해 줘!’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자신에게 틱틱 거리던 분대원들을 그대로 두고 나가기엔 유성의 성격은 그렇게 너그럽지 못했다. 항상 접속하면
NPC 병사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맘껏 풀던 태혁이 떠올랐다.

‘이런 건 태혁이 형이 잘하는데...쩝...’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성은 아까 생각해둔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예전 수색대 작전에서도 사용해본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눌렀다.

[치....잇...치치직 빅보스 송신! 갈매기 수신하라!]

유성이 능숙하게 무전기를 사용해 무전을 날리자 잠시 후 김 병장 측에서 답이 왔다.

[치....익...치치직 갈매기 수신 양호! 빅보스 송신하라!]

유성의 입 꼬리가 사악하게 살짝 비틀리며 무전을 이어갔다.

[칫.....치치직 통제소에서 훈련 상황 발생! 훈련 지역 야산에 화생방 상황이 일어났다. 모두 방독면 착용 후


신속히 통신을 복구하라! 다시 한 번 알린다. 훈련 지역 야산에 화생방 상황 발생! 모두 방독면 착용 후 신속히
통신을 복구하라! ]

[치....이익..치치직 갈매기 수신 완료! ]

유성의 느닷없는 무전을 들은 김 병장 무리의 분대원들은 얼이 빠져 정상 무선 중계소에서 야전선을 설치하던


상태로 산속에서 멈춰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김 병장님 어떻게 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아! C8! 갑자기 무슨 화생방 상황이 발생해? 보는 놈 도 없는데 그냥 하던 데로 계속


진행해!”
그때 갑자기 무전기에서 가설 반장 한유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치....잇...치치직 빅보스 송신! 갈매기무리 다 보고 있다! 지금 즉시 방독면 착용하라!]

사실 그랬다. 처음 분대를 나눠 산을 오르기 전 유성은 ‘요인 경호’ 스킬을 김 병장에게 사용해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잇...치치직 다시 한 번 알린다. 갈매기무리! 지금 즉시 방독면 착용하라!]

“에이! C8!! 가스! 가스! 가스!”

“....가스! 가스!”

그렇게 유성의 무전을 통해 훈련 상황을 통보 받은 김 병장의 무리들은 모두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로 불편하게
야전선을 매설하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치....잇...치치직 갈매기들 그렇게 현재 상태 유지하며 훈련 진행한다!]

‘캬 저놈들 투덜거리는 반응 까지 어떻게 저렇게 생생하게 구현했지? 대단해 대한민국 국방부! 아니 AI


삼족오!’

김 병장 무리를 홀로그램을 통해 살펴보며 무전기로 지령을 내린 유성은 그제야 옆에서 멍한 얼굴로 자신을 보며
쉬고 있는 임 일병이 눈에 들어왔다.

“임 일병도 충분히 쉬었지?”

“네..그런데...저희도 화생방 상황이면 방독면 착용해야 하지 않습니까?”

임 일병의 말을 들은 유성은 지난 번 화생방 체험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응? 아니! 그냥 내려가! 나 방독면 알레르기 있어! .에...에...에..에취!”

“아! 내 알겠습니다. 반장님!”

앞서 올라 왔던 산을 다시 내려가는 임 일병이 나지막하게 지껄이는 소리를 들으며 유성도 미소 지었다.

“히히히 내 선택이 옳았어! 군대는 줄을 잘 서야지! 히히.”

***

-Episode

“에라이 C8! 가상현실 훈련이라 쉬울 줄 알았더니 오히려 실제보다 요령을 부릴 수가 없네!”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NPC 간부가 그런 무개념 일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캡슐에서 내린 김 병장의 무리가 저마다 욕을 하며 중대 공동욕실로 캡슐에서 흘린 땀을 씻으러 이동했다.


사실 그랬다. 이번 국방부에서 삼족오의 서버 증축으로 ‘삼족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국방부에서는 사단급
훈련에 삼족오 시스템을 활용하는 시범 운행에 들어가 있었다.

마침 그렇게 시범 훈련이 벌어지던 중에 접속한 유성에게 삼족오가 적당한 작전을 부여해서 유성과 사병들이
만나게 되었고 훈련 상황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신입 가설 반장은 유성이 접속한 동안만 유성의 컨트롤을 따랐고 유성이 접속을 해제한 다음에는
삼족오가 컨트롤 하는 실제 NPC 가 맞았다.

“넌 어땠어? 우린 정말 죽다가 살았어! 야간에 산타는 거도 어려운데...갑자기 상황 걸려가지고 방독면까지 쓰니


진짜 답답한게...여기가 현실인지 사이버 공간인지 구분이 안 되더라...”

박 일병이 동기인 임 일병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응? 사이버 가상현실도 다 같은 군대던데?”

“뭔 소리야?”

“군대는 줄 아니니? 산 올라 갈 때 조금 힘들긴 했지만 가상현실 훈련이라 그런지 난 할 만하던데...NPC 간부도


진짜 사람같이 리얼하고 말이지...심지어 제체기도 하더라고.. 하하하”

과일가게 고양이

***

유성은 지난 새벽 통신 작전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 스마트 폰과 태블릿을 고니와 연동했다.

아이템으로 받은 스마트 폰과 태블릿은 유성이 원할 때 언제든 시중에 나와 있는 대한민국의 ‘S 사’와 ‘L 사’


말고도 미국의 ‘I 사’ 중국의 ‘S 사’, ‘H 사’ 까지 어떤 제품의 모습으로든 고니를 통해 소환 가능했다.

그거 말고도 예전에 비해 편리해 진 부분이라면 폰을 굳이 소환하지 않고도 고니를 통해 홀로그램으로 블루투스


모드인 것 마냥 통화나 검색 등이 가능해졌다.

아침 알람시간이 되자 유성에게 고니가 지난밤부터 아침까지 들어온 문자와 SNS 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하며
유성을 깨웠다.

-......그리고 최 관장님으로부터 ‘아람 아트홀 최 관장입니다. 금일 업무는 김 아람양 병원 정기 검진 으로


학교 결석이니 휴무입니다. 연락이 늦어 죄송합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해 있습니다. 한유성님 이 문자에 대한
회신 보내시겠습니까?

“하....품! 으? 응? 음...답장? ‘네 알겠습니다.’ 하고 보내줘!

-네 한유성님 최 관장님에게 답신으로 ‘네 알겠습니다.’를 전송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유성의 졸린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으로 답문 내용을 확인한 유성이 동의 했다.

“응! 그렇게 보내줘 하..품! 으짜! 일어나 볼까? 고니야 오늘도 잘 부탁해!”

-네 한유성님 그럼 오늘 날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오전 시간에 여유가 생긴 유성은 오늘 스케줄을 잠깐 생각해 결정한 다음 일어나 씻고 준비했다.


아침에 반여 농산물 시장에서 장을 보고 무기고에 과일과 식재료를 넣은 유성은 모처럼 생긴 여유 시간을 외숙모가
지난 주 부터 오픈한 카페에서 보내기 위해 핸들을 꺾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숙모의 카페 앞 작은 주차장에 푸드 트럭을 주차한 유성은 주차장 옆 1 층에 있는 ‘카페


빈’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

“어서 오세요! 손님!”

“안녕 하세요! 외숙모!”

“어! 맞네! 유성이네! 오랜만에 보니 많이 멋있어졌네. 키도 좀 큰 거 같고 길에서 보면 몰라보겠다.”

“하하 외숙모도 카페 사장님 되셔서 그런지 집에 있을 때 보다 훨씬 보기 좋은데요.”

“어 그래 보이니? 호호... 요즘 바쁘다더니 어떻게 왔어?”

“개업했단 얘기만 듣고 한 번도 못 와서 언제 갈까 했는데 마침 오늘 시간이 나기에 한 번 들렀어요!”

“안 그래도 갑자기 푸드 트럭이 주차하기에 혹시나 유성이 너인가? 하고 내다보았는데 생각보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총각이 차에서 내리기에 아닌가? 했는데...유성이었네. 호호호”

숙모에게서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외모 관련 된 말이 계속 이어지자 유성은 대화의 주제를 빠르게 전환했다.

“큼큼....숙모! 가게 이름이 ‘카페 빈’인건 빈이 이름 따서 지었나 봐요?”

“어! 우리 빈이가 돌 때 잡은 게 돈 아니겠니? 그래서 가게 이름에 빈이 이름을 넣었지!”

“하하 ‘빈 카페’ 보다는 나은 거 같기도....하하하 이름이 여유 있어 보이고 괜찮네요!”

“그렇지? 이름 괜찮게 지은 거 같지? 근데 왜 손님이 이렇게 없냐. 너희 삼촌이 꼭 주차장 있는 곳으로 얻어야
손님이 많이 올 거라 해서 조금 무리해서 여기를 선택하긴 했는데...”

“숙모! 곧 나아 질 거여요! 저 잠시 가게 구경 좀 할게요.”

“응 그래 천천히 돌아봐.”

‘고니야 이 건물 스캔해서 인테리어랑 전기 배선 확인해봐.’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 및 ‘상태 확인’ 스킬을 사용해 건물을 확인합니다.

“숙모 여기 공구함 좀 쓸게요!”

“응..거기 공구함이 있어? 그런 게 거기 있는지 나도 몰랐네..”

그렇게 유성은 삼촌 가게의 건물 내부 및 외부에 조그마한 나사 하나까지 점검하기 시작했다.

[딸랑! ]
“어서 오세요 손님!”

“여기 새로 생겼나 봐요? 얼마 전까진 못 봤는데...”

“네! 지난주에 오픈 했습니다! 손님 음료는 무엇으로 드릴까요? 드시고 가실건가요? 가져가실 건가요?”

가게로 들어온 30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은 가게를 둘러보다 창문 옆 의자 위에 서서 무언가 작업하는


유성의 팔뚝에 시선이 멈췄다.

“네?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갈게요!”

“손님 사이즈는 레귤러 사이즈로 드릴까요? 라지 사이즈로 드릴까요?”

“네? 네! 라지 사이즈로 주세요!”

여전히 시선은 유성을 향한 체 건성으로 주문을 마친 손님은 유성이 있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 가게 내부를
돌아보면서 중얼거렸다.

“하하...여기 괜찮네...괜찮아...”

매장에 설치 된 롤스크린의 조금 느슨해진 나사를 조이며 들어 보니 외숙모도 손님을 대함에 있어 초보 티는 벌써


벗어버려 유성은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유성이 보기에 계산대 옆 매장 진열대 안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다.

유성은 바깥에 주차 된 푸드 트럭의 후면 도어를 열고 들어가 냉장고와 연결된 무기고 안에서 어제 남해에서
모양이 조금 예쁘지 않아 남겨 두었던 에그타르트와 빵들을 모두 꺼내 쟁반에 담아 매장으로 들어왔다.

“어? 유성아 이게 다 뭐니?”

“아! 어제....만들다 보니 맛있는 거 같아서 오늘 좀 급하게 만들었더니 모양이 좀 별로죠?”

어제 만들었다고 하면 빵에 대한 신선도가 문제 될 거 같아 유성은 거짓말을 살짝 섞어 에둘러 말했다.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어제 너희 삼촌이 네가 만든 빵 덕분에 봉 감독님한테 완전 점수 많이 받았다고 전화로


칭찬이 끝나질 않던데 이게 소문의 그 빵인가 봐?”

“소문까지 모르겠고 일단 한 번 드셔 보세요! 그리고 맛보고 괜찮으면 진열대에 두었다가 드세요. 식으면 잠깐
오븐에 데워 드시면 되도록 메모해 드릴게요. 아까 보니 미니 오븐은 저기 있던데 사용할 줄 아시죠?”

숙모는 어제 외삼촌으로부터 유성이 만든 빵이 정말 맛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냥 남편의 말이 부풀려 졌을 거란


생각에 큰 기대감 없이 유성이 가져온 쟁반위에 뜨거운 김이 살짝 올라오는 빵들을 살펴보다 그 중에 제일 작은
에그타르트를 선택해 입으로 가져갔다.

“하 유성아 너 오늘 여러 가지로 놀래킨다. 쩝...와그작...푹신...와그작....푹신....눈..부릅!”

“숙모 괜찮으면 제가 매일 몇 개씩은 만들어 여기 진열대 채워 놓을 테니 팔아도 될 것 같은데... 사실 여기


비어 있으니 보기에 너무 허전해서...”

“끄덕...끄덕....와그작...푹신...꿀꺽...손가락...쪽...쪽...!”
숙모는 유성의 말에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쟁반위로 다시 손을 이동시켰다.

“덥석! 음..음...저기...저도 이거 계산해 주세요!”

그때 갑자기 날아와 숙모가 잡으려던 에그타르트를 낚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방금까지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진열대 앞으로 다가와 있다.

“아니...이...건....지금...파는 게....꿀꺽! 하아...아니... 팔수도...”

“츄릅....저...에그타르트는 여기서 먹고 갈 거구요. 나머진 하나씩 포장해 주세요!”

유성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숙모의 손과 손님의 손을 쟁반에서 살며시 뜯어 놓으며 손님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리지 말입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숙모가 유성에게 사업(?)제휴를 제안했다.

“유성아 너 그냥 저기 주차장에서 빵 만들고 여기서 같이 장사하는 건 어때?”

-한유성님 발신자가 김아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연결할까요?

그때 마침 유성의 전화가 울렸다.

“저기...전화 좀 받을게요...”

유성이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아람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울렸다.

[철컥! 오빠!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어? 아람아! 잠깐 삼촌 가게 봐준다고 와서... 아람아 급한 일이니?”

[아...아니...그건 아닌데..뭐 좀..물어 보려고..]

“아람아 오빠가 지금 조금 바빠서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통화 하자 미안해! 딸깍.”

유성이 방금 전 숙모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려 할 때 옆에 있던 손님이 먼저 대답했다.

“제 생각엔 꽤 괜찮을 것 같아요!”

“하...하..전 조금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성은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

-Episode

유성은 월요일 아침 아람이 병원에 간다고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최 관장으로부터 받은
터라 마침 시간이 날 때 햄버거 및 핫도그 재료 이외에도 빵에 들어가는 재료도 미리 준비해서 무기고에 보관해
두면 편할 것 같단 생각에 반여 농산물시장에 들렀다.
“사장님! 사과 좀 보여 주세요!”

“큼...젊은 총각 거기 앞에 있는 게 죄다 사관데 뭘 더 보여줘? 그냥 알아서 골라가.”

유성이 보기에 과일가게 사장은 불친절하다기 보다는 뭔가 의욕이 없어 보이고 잠도 못자서 힘도 없어 보이는
말투였다.

-한유성님 사과박스 맨 밑에 있는 게 상태가 제일 신선합니다.

“하하하! 사장님 이걸로 할게요!”

옆에서 유성이 사과 박스를 힘들게 옮겨 오늘 들어온 사과 상자 중에 하나를 바닥에서 선택하는 걸 말없이 앉아서
지켜 만 보던 과일가게 주인이 혀를 찼다.

“쩝...아니...젊은 총각 힘들게 거기 바닥에 있는 걸 왜 빼서 들고 가? 다 똑같은데...”

그렇게 유성이 선택한 사과 가격을 계산하던 주인아저씨가 유성에게 투덜거리듯 한마디 하자 유성은 대충 농담처럼
받아 넘겼다.

“하하 밑에 있는 애가 제일 신선하다고 옆에서 누가 알려 줘서요. 하하하”

유성이 웃자고 한 농담에 과일가게 사장의 얼굴은 대번에 하얗게 질려 유성에게 물었다.

“큼...큼...자네 혹시....여기 과일가게에 우리 말고 다른 누가 보이는 가?”

물건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주변 정찰 스킬을 미리 사용한 고니의 목소리가 유성의 머릿속에 울렸다.

-한유성님 주변 정찰 스킬로 확인한 결과 과일 가게 사장과 한유성님 이외 생명 반응으로 가게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네?... 하하하 그럴 리가요? 고양이라면 몰라도...”

“.....히끅! 우...우리 나비가 자네 눈에...보인단 말인가? 어...어디에 있나?”

갑자기 적극적인 분위기로 바뀐 사장으로 인해 다소 놀란 유성은 홀로그램으로 보이는 과일가게 안쪽 고양이를


향해 대충 손짓하고는 그 자릴 벗어났다.

“저기...가게...안에...있네요. 수고하세요.”

유성이 손짓한 방향으로 급히 이동한 아저씨는 바닥에 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훌쩍..크으..나비야 네가 여기 와 있었던 거야?”

과일가게 사장은 가게 안에 있던 고양이 캐리어에서 작은 새끼고양이를 꺼내어 품에 안고 바닥에 앉아 훌쩍였다.

-냐앙

과일가게 주인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자다가 놀라서 깬 새끼고양이가 사장의 말에 대답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크읔....그래도 네 새끼가 걱정 돼서...훌쩍..이렇게 옆에서 보고 있었구나...흑...흑...”


-냐앙...냐앙...

“흑..흑...나비 네가 걱정했구나! 아빠가 너 보내고 이렇게 앉아만 있는 게 보기 싫어서....그래서...방금


손님한테도 크읔...예전에 내가 그랬듯 신선한 사과가 어디 있는지 나대신 가르쳐 준거지?..흑..흑...”

-냥....

“나비야! 걱정 하지 마 네 새끼는 내가 잘 키울게...너처럼...교통사고 안나 게...흑....흑..옆에서....잘..


돌볼게....아빠가....전처럼 손님들한테도 웃으면서 친절하게 장사 열심히 할게! 크...읔...”

그랬다. 시장을 지나다니던 트럭에 로드 킬로 반려묘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과일가게 사장님에게 유성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이나마 의욕을 채워주었다.

완치

***

월요일 아침 아람은 학교를 빠지고 검사를 위해 엄마와 함께 P 대 병원을 찾았다.

몇 가지 검사를 받은 아람은 엄마가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습관적으로 P 대학교병원 옥상에
올랐다. 막상 흡연구역에 들어선 아람이 멈칫했다.

“꾸깃...아 이제 이거도 끊어야지...후.....”

아쉬움이 담긴 눈길로 담배와 라이터를 한 번 더 쳐다 본 아람은 손에 있던 담배와 라이터를 모두 휴지통 속으로


던져버렸다.

아람은 중학교 사고이후 갑자기 생겨난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을 대할 때 모두 조심스럽게 바뀐 주위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불편했다.

하루아침에 바뀐 그런 가식적인 친절에 반항이라도 해보려 중학교 때는 어린치기에 조금씩 엇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고, 담배도 그렇게 시작했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말리지 않았었다. 고등학교 올라와 마음을 다잡긴 했지만 여전히 담배는 끊지 못했었다.

‘엄마도 어릴 때와 달리 내 응석을 받아주기만 하고...그랬었는데....’

아람은 처음 유성이 학교로 데려다 주던 푸드 트럭 조수석에서 나누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오빠 나 담배 한 대만 필게...

-응 안 돼! 내 차는 금연이야!

-핏! 꼰대...나이도 두 살밖에 차이 안 나면서...

-이차 음식 만들어 파는 차거든! 담배 냄새 베이면 손님들이 싫어해! 그리고 꼰대라고 들은 김에 한마디 할게.
너 놀러가는 거도 아니고 학교 가는 길에 얼굴에 그게 뭐니? 숟가락으로 긁으면 한 숟갈은 충분히 나오겠다.
아침에 샤워하고 머릴 말릴 시간도 부족할 건데 밥 먹고 화장까지 하려면 새벽부터 일어나도 시간이 부족하겠다.

그날 아람은 중학교 이후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을 유성에게 처음 들었다. 심지어 엄마와 선생님도 자신이
다칠까봐 조심조심 환자 취급만 했지...아무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었다.
“칫!...꼰대!”

아람은 막상 말과는 달리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옥상에서 내려갔다.

아직 의사선생님과 상담중인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대기실 의자에 앉은 아람은 핸드폰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람은 ‘너튜브’ 인기 탭을 눌러 위에서부터 내려가며 확인 하던 중 눈에 들어온 하나의 영상 앞에 스크롤을


멈췄다.

“제목이 대놓고 관종이네...‘이건 봐야해!’가 뭐래?”

조회 수가 9.1 만을 넘어 가고 있는 15 시간 전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아람은 마음과는 달리 제목에 이끌린 듯 잠깐 내용 확인이나 해 볼까는 호기심에 영상을 클릭해 재생했다.

“설마 낚신데 조회 수가 이렇게 높진 않겠지?”

잠깐의 광고 영상이 재생되고 곧 이어 ‘광고 넘어가기’ 가 활성화 된 버튼을 누르자 본 영상이 시작되었다.

영상은 체크무늬 남방에 슬랙스 바지를 입은 남자가 아무런 등반 장비도 없이 로프 하나에만 의지한 체 절벽을
내려오는 장면을 누군가 절벽 멀리에서 찍은 화면으로 보였다.

“헐...조회 수 올리려고 이제 별 그지 같은 일도 다 벌이네! 저러다 죽을 만큼 다쳐봐야 정신을 차리지...


쯔쯔...어...어 뭐야?”

아람은 관심종자들이 이제 목숨 까지 걸고 별 지랄까지 한다고 생각해 영상을 닫으려 했다.

그때 마침 영상 속 남자가 클로즈업 되면서 조금 자세히 보였다.

물론 화질 자체가 좋지 못했고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영상 속 남자의 얼굴은 희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람의 시선을 끄는 하나가 영상 속에 있었다.

‘어? 저 검은색 신발?...유성 오빠가 신고 있던 신발이랑 똑같아 보이네...’

그랬다. 영상 속 남자는 군용워커 일명 ‘전투화’를 신고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어째 체격도 유성오빠랑 비슷한 거 같은데...”

점점 영상 속에 남자의 행동이나 체격 등이 모두 유성을 닮아 있었다.

그 때부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람은 가슴을 졸이며 영상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아..아...아...안 돼!.....아..휴...왜 저래! 진짜 그냥 내려오지....아....미치겠네...증말!”

아람은 상담을 끝내고 나온 엄마가 뒤에서 함께 영상을 지켜보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휴대폰 화면에만 집중했다.

“아악! 거기서 왜 돌아?! 거기다 절벽에서 왜 안내려오고 옆으로 뛰어 다니냐고?! 진짜! 미친 거 아냐!”

영상 속 남자는 무슨 서커스를 하듯 다리부터 내려오다 방향을 돌려 머리가 아래로 향하게 빙글 돌기도 하고


갑자기 벽을 타고 달리기도 했다.

“휘유....아람아 미치기는 누가 미쳐? 내가 볼 땐 네가 미친 거 같은데? 이제 트라우마 하나 있던 거 나으니까


동영상 보면서 슬슬 미쳐가는 거니?!”

엄마는 방금까지 의사선생님과의 상담내용도 잊어버리고 아람의 격한 반응에 자신도 모르게 주변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목소리만 낮추고 아람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어....엄마....잠깐만.. 나 진짜 궁금해 미치기 전에 전화 한통만 할게...후우....미쳤네...미쳤어...”

아람은 상담이 끝나고 나온 엄마에겐 정작 관심이 1 도 없는지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

“오빠!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어? 아람아! 잠깐 삼촌 가게 봐준다고 와서... 아람아 급한 일이니? ]

“아...아니...그건 아닌데..뭐 좀..물어 보려고..”

[아람아 오빠가 지금 조금 바빠서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통화 하자 미안해! 딸깍 ]

“아....칫!”

핸드폰 영상 속에 몰입해서 소리까지 지르던 애가 갑자기 전화해서 끊고 난 후 한동안 시무룩해 있자 아람의


엄마는 불안을 느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아람아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아람은 유성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보고 정신을 못 차리다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와 엄마에게 검사 결과를 물었다.

“어?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 속 남자랑 유성 오빠가 너무 닮은 거 같아서 혹시나 맞는 지 물어 보려고 전화


했는데.... 삼촌 가게에서 일하느라 바쁘다네...그래서 못 물어 봤어...확실히 많이 닮았는데...아 참! 엄마
검사 결과는 뭐래? 나 이제 괜찮다지? 다 나았다지?”

“빨리도 물어본다. 이제야 궁금하니?... 선생님이 좀 더 지켜보자고는 하시던데.....처음 뇌파 검사


결과에서는.......(생략)..... 긍정적이라고...후우...우리 아람이 이제 완치래!”

주치의 선생님과의 상담내용을 전해주던 아람의 엄마가 마지막 완치얘기에 가서는 눈물을 참으며 말하는 걸 아람도
느낄 수 있었다.

“휴....내가 뭐랬어! 유성오빠가 준 약 먹고 괜찮아 졌다니까 괜히..긴장했었네..”

괜히 어색해 담담한척 얘기하는 아람의 눈에도 기쁨의 눈물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흠...흠...방금까지 긴장했다는 년이 그렇게 대기실에서 남들 눈치도 안보고 그렇게 소리 지르고 있었니?”

“으? 응? 훌쩍.. 헤헤 그건 긴장 좀 풀려고..그랬지...헤헤”

“큼...넌 누굴 닮아서 벌써부터! 남자 찾느라고 아까부터 뒤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안중에도 없니?....”
“훌쩍...당연히 김 화백님 닮았겠지! 훌쩍.”

“에혀 말이나 못하면...흡....지금 하는 거 보니 힘들게 키워 놓으면 저년 저거 나중에 지 남편이랑 둘이서만


여행 다녀올 그림이네. 나이 먹은 나 혼자 집에 두고... 안 봐도 딱 캔버스에 밑그림 나오네.”

아람은 애써 거칠게 표현하는 엄마의 말투에 어릴 적 향수가 느껴져서인지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와! 이제 엄마 신기도 있어? 어떻게 알았대? 그럼 엄마도 그 때 얼굴 갸름하고 근육은 적당한 남자친구 새로
만들어서 나랑 더블데이트 하면 되겠네. 헤.”

“시끄러 이년아! 내 남자친구 외모를 네가 왜 스케치해? 지금 남자친구 하나로도 충분히 머리 아프거든! 하여튼
넌 당분간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첫째도 안정!.... 둘째도 안정이야 알았지?....
그동안 고생했어.... 아람아.... 큭...흑.....엉...엉”

아람 앞에서 그렇게 강인했던 엄마도 결국은 마지막엔 눈물을 보였다.

“알았어! 훌쩍...근데 난 유성 오빠랑 있을 때가 제일 안정적인 거 같아...훌쩍...”

“....미친년...”

그렇게 아람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는 의학적 소견으로도 완치 판정을 받았다.

***

유성은 외숙모의 제안에는 일단 오늘 장사를 해보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결정을 미루었다.

그렇게 어제 만들어 둔 빵들로 시식에서 당당히 합격한 유성은 본격적으로 오늘 ‘카페 빈’ 매장의 진열대에
자리 잡을 디저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물론 공짜가 아닌 당일 팔린 디저트 수익금을 유성이 8 숙모가 2 비율 8:2 로 나누기로 정했다.

또한 팔리지 않은 제고는 모두 유성이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숙모가 손해를 보지 않으리라 생각한 유성의 배려였다.

유성은 가게 안 외숙모에게 소환해둔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숙모! 거기 태블릿에 주문 받은 빵이랑 주문 번호 체크해주면 나중에 계산하기 편할 거예요..”

“와 벌써 이런 거 까지 다 준비해 둔거야?”

“하하 제가 숙모보다는 장사는 한 주 정도 선배일걸요?”

물론 유성이 숙모에게 건넨 태블릿은 음식 주문을 위한 태블릿은 아니었지만 고니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숙모 일단은 오늘 오후에 카페에서 쓸 만한 디저트 좀 차에 가서 만들어 올게요.”

“응 그래 고마워 유성아.”

“하하...고맙긴요. 저도 돈 벌자고 하는 건데...”


주차장에 세워 둔 푸드 트럭의 옆면을 힘차게 열어 올린 유성은 외숙모의 가게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오전 시장에 들러 사온 재료들을 무기고에서 하나씩 꺼내놓았다.

“스킬 재료 손질!”

“스킬 고급 제빵!”

“스킬 불 조절!”

그렇게 유성은 스킬 삼단 콤보를 시작으로 어제 만들어 경험이 조금은 쌓여 익숙한 ‘에그타르트’와 ‘사과 파
이’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오븐 속으로 에그타르트와 사과파이가 들어가 구워지는 동안 유성은 앞서 만든 디저트에서


계란노른자만 사용했기에 어제 부터 쓰지 못하고 냉장고에 남아있던 흰자를 이용할 수 있는 디저트를 고니에게
물었다.

“고니야! 어제 쓰고 남은 흰자를 사용할 수 있는 디저트 중에 대중적이면서 지금 여기서 만들 수 있는 디저트 좀


찾아봐 줄래?”

-네 한유성님 검색결과 대중적이면서 흰자를 사용할 수 있는 디저트 중에 ‘마카롱’이 확인 되었습니다.

“오! 마카롱! 그거 종류가 엄청 다양하지 않나? 음...고니야 지금 차안에서 만들 수 있는 버전으로 영상


부탁해.”

-네 한유성님 먼저 마카롱의 꼬끄를 만들기 위한 머랭 영상을 준비합니다. 현재 이 자리에서 바로 가능한 영상과


조리 도구가 필요한 영상으로 두 가지 영상이 검색 되었습니다. 어떤 영상을 재생하시겠습니까?

“음...당연히 지금 바로 가능한 영상으로 부탁해.”

-네 한유성님 마카롱의 핸드 머랭 만드는 홀로그램을 재생합니다.

그렇게 유성은 홀로그램을 보며 ‘마카롱’의 바깥 부분의 과자인 꼬끄를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흔들흔들...체..체...체... 흔들흔들...체..체...체...”

먼저 아몬드 가루와 슈가파우더를 체에 걸러 따로 준비해 두고

“훅..훅..훅....휘적...휘적...휘적....훅...훅...훅...휘적..휘적...휘적....”

볼 속에 담긴 흰자의 거품이 올라올 때까지 거품기를 쉬지 않고 빠르게 저어주었고,

“훅..훅..훅....휘적...휘적...휘적....설탕...솔솔솔.....훅...훅...훅...휘적..휘적...휘적....”

설탕을 조금 넣고 걸쭉해 진걸 느낄 수 있을 때 까지 거품기를 쉬지 않고 여전히 빠르게 저어주었고,

“훅..훅..훅....휘적...휘적...휘적.... 다시 설탕...솔솔솔.....훅...훅...훅...휘적..휘적...
휘적....”

설탕을 또 넣어 주고 머랭에 힘이 생긴 걸 알 수 있을 때 까지 거품기를 쉬지 않고 여전히 빠르게 계속


저어주었고,
“훅..훅..훅..휘적..휘적..휘적..마지막으로 다시 설탕..솔솔솔..훅...훅..훅..휘적..휘적..휘적....”

그렇게 마지막으로 설탕을 넣어주고 단단해진 머랭을 확인 할 수 있을 때 까지 거품기를 쉬지 않고 지치기전까지


여전히 빠르게 계속 저어 완성했다.

“헉....헉....잠깐만 고니야...이거 머랭 이라는 거 헉..헉... 너무...힘든데...”

-네 한유성님이 확인하지 않은 마카롱의 핸드 믹서를 이용해 머랭 만드는 영상은 핸드 머랭 보다 힘이 크게 줄어


들 것으로 예상 됩니다.

“허...헉...그...럼...그건 손으로 말고 핸드 믹서를 이용해서 만드는 거야? 헐...핸드 믹서라면 그거 아까


카페 안에서 본거 같은데...”

-네 한유성님 카페 내부에 핸드믹서 한 세트가 확인되었습니다.

“읔....역시 수제가 비싼 이유가 있었군...”

그렇게 핸드믹서를 가져와 다시 디저트 만들기에 돌입한 유성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카페 빈’ 옆의
주차장에서 구수한 빵 냄새와 재료손질 퍼포먼스 등을 이용해 손님들을 하나 둘 ‘카페 빈’안으로 이끌었다.

도플갱어

***

일요일 오전 운용중대장의 전화를 받은 관리소대장은 투덜거리며 부대로 출근했다.

월요일 대대장에게 보고할 중대장의 오전 회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 휴무임에도 어쩔 수 없이 출근한 소대장은


일요일이라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는 지하 벙커에 있는 삼족오 메인 저장소 앞에서 노트북과 씨름 하고 있었다.

“아 젠장 이게 뭐하는 짓이지...미치겠네...언제 3 주간 접속자 데이터를 갑자기 분석해서 자료를 만들어...아


C8! 진짜!”

자료 분석부터 기대효과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까지 PPT 로 만들 생각에 소대장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입에서는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소대장님의 권한을 확인합니다. 정당한 요구라고 판단합니다. 지난 3 주간 접속자 데이터 분석 자료를


소대장님의 노트북으로 전송합니다. 삐...삐....삑....전송을 완료 했습니다. ]

갑자기 생각도 못한 삼족오에게 도움을 받은 관리 소대장은 당황한 상태로 물었다.

“어...어?...삼족오...이런 기능도 원래 가능 했었어?”

[기존에 있던 데이터와 상황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없어
소대장님의 질문에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

뜻하지 않은 삼족오의 도움이지만 잘만하면 필요한 자료를 더 얻을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든 소대장은


삼족오와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아..그래? 그럼...혹시 지난주 8 사단 ATT 훈련 자료도 정리해서 전송해 줄 수 있어?”

[8 사단 ATT 대대 전술 훈련 측정에 대한 자료는 소대장님이 접근하기에는 아직 보안 등급이 부족합니다.


정당하지 못한 요구로 판단합니다. ]

보안등급상의 이유로 무조건 적인 자료의 접근은 막는 삼족오였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소대장이 아니었다.

“아....그럼...8 사단 사이버 ATT 훈련 부분만 따로 간단하게 정리해서 전송해 줄 수는 있어?”

[네 소대장님. 정당한 요구라고 판단되어 자료를 소대장님의 노트북으로 8 사단 사이버 ATT 대대 전술 훈련


자료를 보안등급에 맞게 수정해 전송합니다. 삐...삐....삑....전송을 완료 했습니다. ]

“하하하! 고마워 삼족오! 그럼...마지막으로 혹시 사이버 ATT 로 인한 장점 같은 거랑 앞으로의 기대효과 이런


부분도 따로 뽑아 줄 수 있을까?”

[네 소대장님.............]

그렇게 소대장은 삼족오의 아낌없이 전송(?)해주는 도움을 얻어 생각보다 훨씬 양질의 자료를 빠른 시간 안에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리한 자료를 가지고 관리 소대장은 월요일 오전 대대장과 회의 참석 전인 중대장에게 넘겨 줄 수 있었다.

“중대장님! 삼족오 서버증축이후 3 주간의 데이터를 확인해 보았을 때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동시 접속자 수가
늘었음에도 과부하 없이 서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삼족오의 진화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느끼는 거지만 예전에 비해 상당히 삼족오가 협조적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마치 융통성을 가진 사람처럼
말입니다.”

소대장의 말에 중대장은 웃음으로 받았다.

“하하하 소대장 그럴 리가 없지 않나?...일 열심히 하는 거도 좋지만 너무 삼족오에게 몰입하진 말게. 자네는


가끔 보면 삼족오를 너무 사람처럼 대하는 거 같아. 삼족오도 기계라고 컴퓨터라고! 하하하 그럼 계속 수고하도록
하게.”

그렇게 중대장은 소대장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발표 자료만 챙겨서 회의장으로 사라졌다.

사실 그랬다. 국방예산의 낭비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국방부 홍보 프로그램으로 둔갑해 국민들 곁에서 사용되던
AI ‘삼족오’는 그렇게 유성을 통해 조금씩 진화한 덕에 조금은 융통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국방부
내에서 힘을 키워 가고 있었다.

***

유성은 외숙모 가게를 돕기 위해 디저트를 만들다 오전에 걸려 왔던 아람의 전화가 생각났다. 아마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와 전화했으리라 생각이 들었지만 결과 확인을 위해 고니에게 전화 연결을 부탁했다.

‘고니야! 아람에게 전화 연결 좀 해줘!’

-네 한유성님 김아람양에게 전화 연결을 시도합니다.

[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 철컥]
“아람아 아까 전화 했었지? 미안 아깐 숙모랑 얘기 중이라 바빠서...근데 너 오늘 병원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응! 갔다 왔어! 안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나 이제 다 나았데! 히히히. 이제 승용차도 다 탈 수 있어! ]

“검사 결과 벌써 나왔어? 아람아 완치된 거 축하해!”

[고마워 이게 다 오빠가 준 약 덕분이야! ]

아람은 검사 결과에 기분이 좋은지 전화너머에서 완전 업된 목소리가 계속 들려 왔다.

“하하하 아니지. 너 예전에도 청심환이랑 비슷한 약은 다 먹어 봤지만 별 효과도 못 봤다며? 그게 다 네가


정신력이 강해져서 병을 극복 할 시점에 마침 운 좋게도 내가 약을 준거겠지. 내가 아니었어도 분명히 지금처럼
나았을 거야!”

[어쨌든! 오빠도 내 치료에 지분은 있는 거다 뭐! ]

“그래! 그렇다고 치자! 축하하고 무리하진 말고 알았지? 이만 오빠 일하는 중이라 끊을게.”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유성에게 다급한 아람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아! 오빠 잠깐만! 사실 뭐하나만 물어 보려고 전화 했었어. ]

아람의 질문에 유성은 고니를 믿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응? 궁금한 거? 다 물어봐? 인터넷에 검색할 수 있는 건 모두 답변 가능해! 크크”

[그게...별건 아닌데...혹시 오빠....절벽 같은데 매달려서 촬영한 적 있어?]

“뭐? 절벽? 낭떠러지 말하는 거야?”

생각도 못한 질문을 받아 당황해 하는 유성의 말투를 들은 아람은 유성이 영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판단하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 유성에게 말했다.

[휴...그치? 오빠 아니지? 어쩐지 난 또 ‘너튜브’에 누가 영상을 올렸던데...거기 어떤 사람이 절벽에


매달려서 쇼를 하더라고 근데 영상속 그 사람 신발이 오빠랑 비슷해서 혹시 오빤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휴 오빠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

“뭐? 나처럼 생긴 남자가 절벽에 매달려서 쇼하는 영상이 ‘너튜브’에 떴다고?”

[응! 죽으려면 곱게 그냥 줄이나 끊고 떨어질 것이지 어떤 정신 나간 남자가 절벽에 매달려서 빙글빙글 돌고


옆으로 뛰어 다니고....에휴...난 혹시나 해서...헤헤헤 ]

유성은 아람의 말을 듣다 보니 뭔가 찜찜함이 느껴져 고니에게 검색을 명령했다.

‘고니야 ‘너튜브’ 검색해서 아람이 말한 영상 찾아 봐줘!’

-네 통화속 내용에 등장한 영상이라 판단된 ‘너튜브’ 영상을 홀로그램 화면에 송출합니다.

고니가 유성의 눈앞에 문제의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유성은 영상 속 인물이 자신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제
자신이 했던 일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큼...큼...그러게 내가 그런 영상을 왜 찍겠니? 찍혔다면 몰라도...근데...나랑 신발이 같았다고?”

아람도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라 그런지 유성이 느끼기에 관찰력이 보통은 아닌 듯 했다.

[응 내가 볼 땐 오빠 신발이랑 똑같아 보여서...혹시나 물어보려고 전화했었지. 헤헤헤 ]

자신의 얼굴이 혹시 나왔을까 하는 걱정에 영상에서 눈을 때지 못한 유성이 건성으로 아람에게 대답했다.

“하하...자세히도 봤네. 설마...전문가도 아닌 내가 저렇게 안전장비도 없이 전/후방 레펠을 어떻게 하겠어?


하하하”

[아! 오빠도 지금 ‘너튜브’ 영상 확인하는 중이야? ]

“어...지금 보고 있어.”

[그치 오빠가 그 조회 수 올리려고 저렇게 관종 짓 하는 또라이일 리가 없는데 내가 잘못 본거지. 미안해 내가


착각했어! 오빠 바쁠 텐데 미안해...내일 봐.]

“어...어 그래...아마 영상 속 남자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관종 짓하는 또라이라고 하기엔 ......”

[철컥...뚜...뚜...뚜...]

뭐라도 변명을 해보려고 했던 유성이지만, 아람은 유성이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전에 통화를 종료해 버렸다.

그렇게 의문의 1 패를 기록하는 유성이다.

***

대한민국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 운용중대장 유재호 대위가 VR 부대 대대장에게 월요일 오전 회의에서 이번에
바뀐 서버 증축이후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AI 삼족오가 통제하는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는 지난 5 월 4 일 서버 증축 이후 예비군 동원 훈련 및


민방위 교육에도 프로그램을 적용 중에 있으며 꾸준히 이용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하하 이제야 좀 제대로 프로그램이 굴러가는 느낌이군.”

“네 그렇습니다. 3 주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현재 일일 평균 접속자는 평일 5 만 명, 주말 6 만 명 내외가 접속


중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아..그 정도면 서버 증축 전에 비해 어느 정도 늘어 난건가?”

“네...증축이후 평일대비 67%, 주말대비 50%정도의 증가 폭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쉽게 말해 반응이 긍정적이란 말이지? 수고했어. 중대장 그리고 또 지난주부터 뭔가 또 하고 있다며?”

“네 지난주부터 8 사단이하 장병들이 참여하는 대대전술훈련 ATT 에 시범적으로 AI 삼족오도 이번 훈련에 참여해
사이버 환경에서 사병들의 전투력을 측정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이 부분에서도 아주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그래서 이를 확대 시행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구상 중에 있습니다.”

“그 부분은 다음 정기보고에 상정해서 발표 할 수 있도록 자료준비 부탁하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고했어. 중대장!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 하지.”

“네 알겠습니다. 충성!”

그렇게 훈훈하게 아침 브리핑에서 대대장의 칭찬을 들은 유 대위는 웃으며 운용중대로 복귀했다.

“소대장! 오늘 퇴근하고 저녁은 내가 쏜다! 하하하”

행정반으로 들어온 유 대위는 소대장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오전 회의 분위기 괜찮았나 봅니다.”

“크크크 자네가 준비해준 자료 덕분에 아주 부드럽게 넘어갔지! 수고했어! 오늘 저녁 메뉴 생각해 두라고!


하하하”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는 유 대위의 질문에 소대장은 눈치껏 대답했다.

“네..그럼 중대장님도 좋아 하시는 감자탕으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이사람 볼매야! 볼수록 매력덩어리야! 크크크. 소대장 애인 없다고 했지? 그럴게 아니라 내 동생 한 번
만나 볼 생각 없어?”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하 사람 한결 같기는....그래 그럼 점심이나 먹으로 가지..오늘 메뉴는 뭘까나?”

“네! 오늘 간부식당 메뉴는 닭볶음탕에 콩나물국 그리고 조기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사람 이래서 내가 자네 진짜 좋아한다니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 동생이 날 닮아서 한 미모


하는데 정말 만나 볼 생각 없어?”

“네 정말 말씀만으로 충분히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저는 잠시 화장실 갔다가 식당으로 가겠습니다. 먼저


올라가십시오.”

“하하하 그래 알았어. 다녀와!”

사실 지난번 회식 때 소대장은 술에 취한 중대장을 숙소까지 데려다 주면서 거실 액자 속에 있는 운용중대장의


가족사진을 보았었다.

소대장도 그 때 잔뜩 술에 취해있었지만, 중대장과 도플갱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같은 얼굴을 하고 부모님 뒤에


서 있던 짧은 머리의 중대장과 머리긴 중대장의 얼굴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었다.

듣기능력 평가

***
유성은 아람이와 통화 후 자신이 일요일 영화 세트장에서 스킬 실험을 위해 이용하던 레펠영상을 ‘너튜브’에서
다시 찾아 확인하는 중이었다.

‘하...아람이가 눈썰미가 좀 있네. 동영상에서 흔한 전투화 하나만으로 나를 의심하다니...’

유성은 지난 5 월 15 일 가상현실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에서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한다기에 참여했던


행군체험에서 군용 워커 일명 ‘전투화’를 보상으로 받았다.

물론 다른 체험병들은 자신의 아바타에 한해 착용가능 했겠지만, 유성에겐 현실에서도 사용 가능했다.

유성이 획득한 전투화는 맞춤 신발 같이 유성의 발에 꼭 맞아 편안했고 무엇보다 아이템 특성인지 몰라도 발에


땀도 차지 않고 항상 뽀송뽀송함을 유지시켜주는 기능에 반해 유성은 줄곧 전투화를 즐겨 신고 있었다.

그 후 유성은 체험병 메뉴와 부사관 메뉴를 고루 이용해 지난 22 일 접속에서는 ‘전투 수영’ 체험을 통해 ‘
군용 방수 시계’를 획득해 현재 착용 중에 있었다. 아이템 이름은 흔한 ‘군용 방수 시계’ 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어떤 스마트 워치보다 실제 성능은 훨씬 뛰어났다.

어쨌든 이렇게 유성의 아이템 모으기는 현재 진행 중이었다.

“쩝 고니야! 내가 저기 레펠 하고 있을 때 주변에 사람이 있었어?”

-시간상으로 ‘주변 정찰’ 스킬을 활성화하기 전에 촬영된 것으로 확인 됩니다. 당시 ‘동창선 초등학교’
주변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 합니다.

“그렇지? 누가 숨어서 몰래 찍었나 보네. 아! 연예인도 아닌데 주변의 시선까지 확인하고 신경 써야 되나? 그럼
정말 귀찮은데...고니야! 혹시 동영상 올린 사람에 대한 정보 추적 가능해?”

-네 한유성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영상에 기록된 아이디를 추적하기 위해 스킬 ‘추적’과 ‘주변 정
찰’ 그리고 ‘상태 확인’의 사용을 요청합니다. 스킬 사용 위임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응! 확인해줘!”

-네 스킬 ‘추적’, ‘주변 정찰’, ‘상태 확인’을 한유성님의 동의를 얻어 위임 받아 사용합니다. 자료 수집이


완료되는 대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삐....삐....삐....삐....

“응 그래 고니야 그럼 수고 좀 해줘!”

그렇게 고니에게 영상을 올린 사람에 대한 추적을 부탁하고 유성은 디저트를 만드느라 어질러진 차량을 정리했다.

잠시 후 고니의 추적 보고를 받은 유성은 가게 도와주는 게 끝나고 다시 얘기하기로 미뤄 두었다.

다행히 유성이 만든 디저트에 대한 외숙모 가게 손님들의 반응이 아직까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카페 빈’에
유입되는 손님의 양이 적어서 매출은 크게 높지 않았다.

“숙모! 일단은 디저트 일일 판매량 지속적으로 체크해 보고 거기에 따라 디저트 양 조절하도록 하고 오늘은 일단
종류별로 10 개씩만 나둬 볼게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남아서 버리는 것 보다는 일단 조금씩 판매하면서 반응부터 보도록 해요.”

“하긴 그렇게 하는 게 안정적이겠네.”

“그리고 아까 드린 태블릿에 들어오는 디저트 주문 체크해두면 제 폰이랑 연동 되어 있어서 저도 재고 바로 파악


할 수 있어요. 그거 확인하고 진열대 빠진 부분 수시로 와서 채워 놓을게요. 그럼 대충 일은 마무리 된 거
같은데...여기까지 하면 되겠죠?”

“응! 신경써줘서 고마워. 유성이 오늘 가게 와서 일하느라 수고 많았지? 바쁘지 않으면 밥이라도 먹고 가!”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자 가게의 손님들도 빠지고 차츰 한가해져 여유가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오전부터 움직인 탓에 조금 시장했던 유성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네! 숙모 그럼 먹고 갈게요.”

“근데...유성아....혹시 해서 말인데 밥은 빵만큼 못하지?”

유성은 사실 ‘재료 손질’과 ‘불 조절’ 스킬로 어디 크게 빠지는 실력은 아니지만 빵과는 비교하기에 레벨이
달랐다.

“아...네...아직 빵만큼은...하하하!”

“호호호 안 그래도 유성이 너 요리 만드느라 힘들었을 것 같아서 숙모가 중국집에 세트메뉴 시켜뒀어! 중국집
괜찮지? 호호호”

“하하 네! 저 중식도 완전 좋아해요!”

외숙모는 잠시 후 중국집 배달부가 도착하자 가게 안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조그마한 탕비실 안으로 안내했다.

“유성아 너 여기서 먼저 먹어.”

숙모는 홀에 있던 손님이나 혹 새로 온 손님이 주문할까봐 교대로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숙모 그러지 말고 같이 먹어요. 손님 때문에 그런 거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잠시 만요.”

‘고니야 손님들이 보고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태블릿에 메시지와 아이콘하나 만들어줄 수 있지?!’

-네 한유성님 가능 합니다. 태블릿에 안내 문구와 함께 버튼 모양의 아이콘을 생성합니다.

‘OK! 이정도면 되겠다.’

유성은 계산대로 이동해 태블릿 화면을 확인하고는 외숙모에게도 태블릿 화면의 문구와 차임벨 모양의 아이콘을
확인시켜준 후 계산대 앞에 세워 두었다.

「주문이 필요하시면 벨을 눌러 주세요!」

“외숙모 이렇게 해 두면 되겠지?”

옆에서 지켜보던 숙모는 그제야 탕비실로 유성과 같이 이동했다.


“근데 저렇게 계산대에 태블릿만 둬도 괜찮아?”

숙모의 질문에 유성이 대답했다.

“태블릿에 손님이 벨 누르면 제 폰으로 연동되어 신호 울리니 걱정 하지 말고 드세요.”

“오늘 유성이가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네.”

“뭘 이런 걸로! 하하 면 불겠다. 숙모 어서 먹어요!”

유성은 숙모의 칭찬에 어색함을 표하곤 고니에게 말했다.

‘고니야 손님이 태블릿 아이콘 클릭하면 나한테 신호 줘!’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현재자리에서 홀을 확인하시려면 주변 정찰 스킬 사용을 추천합니다.

‘그럼 되겠네! 주변 정찰 스킬 사용해줘! 고니야’

그렇게 자신의 앞으로 떠오른 벽 너머의 홀로그램 화면을 보며 식사를 하다가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유성은
숙모에게 말했다.

“외숙모! 쩝..쩝..홀에 CCTV 화면 여기서 볼 수 있게 모니터 설치해두면 평소에도 식사 조금 편하게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요? 쩝..쩝...단..무...지...탕..슉...!”

“아! 안 그래도 지난주에 혼자 가게 보다가 밥 먹을 때 왔다 갔다 하느라 제대로 밥 먹기가 참 힘들었는데 그럼


되겠네. 유성아 고마워! 호호호”

“아! 숙모 잠시 만요. 드시고 계세요 잠깐 주문 받고 올게요.”

“어? 어 그래.”

주변 정찰로 홀로그램을 확인하던 유성의 눈에 가게로 막 들어서는 손님이 보여 유성은 의자에서 일어나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빠른 몸놀림으로 홀로 향하며 소리쳤다.

“어서 오세요! 손님! 주문도와 드리겠습니다.”

외숙모는 유성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미처 나갈 생각도 못했다.

유성이 나갈 때 열린 문틈으로 이제 막 손님이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한 외숙모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었다.

“어? 손님이 이제 들어온 거 같았는데 유성이는 어떻게 알고 나간거지? 아! 태블릿에 감시 카메라 기능도 있었나?
음...홀에 CCTV 설치하면 밥 먹거나 잠깐 자리 비울 때 편하긴 하겠네.”

그렇게 손님의 주문을 처리하고 돌아온 유성은 다시 탕비실로 들어와 식사를 이어갔다.

“숙모 손님이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 주문해서 커피 더블 샷으로 내려주고 왔는데 그렇게 하면 되죠?”

“응 맞아! 아이고 이렇게 숙모가 정신이 없네! 그러고 보니 유성이 넌 빵만 네 트럭에서 만들었지? 커피내리는
건 안 가르쳐 준거 같은데 어떻게 했어?”

숙모 자신은 커피머신을 처음 다룰 때 한참을 낑낑거리고 나서야 겨우 마스터 했는데, 유성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해결하고 온 게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물었다.

“하하하 요즘 웬만한 건 인터넷에 다 있어요!”

물론 유성은 고니에게 홀로그램 영상을 부탁해 보고 따라서 능숙하게 처리했지만 말이다.

***

“고니야 일단 좀 쉬게 집으로 가줘!”

-네 한유성님 오토 드라이브기능을 시작합니다.

숙모의 가게를 나와 푸드 트럭 운전석에 오른 유성은 고니에게 일단 집으로 오토드라이브를 부탁했다. 그렇게


차량이 출발하고 잠시 후 고니가 유성에게 전화가 걸려 왔음을 알렸다.

-한유성님 발신자가 김나경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연결할까요?

“응! 연결해줘!”

[여보세요? 유성이니? ]

“응 나경아 오랜만이네?”

나경의 전화가 반가워 밝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유성에 비해 나경의 목소리는 어딘지 한 단계 낮은 톤으로 들려왔다.

[그러게...오랜만이네. 통화 가능해? 안 바빠? ]

“하하 바빠도 시간 내서 받아야지!”

[딴 게 아니고....어 그..6 월 봉사활동 스케줄 나와서 전화했어. ]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어딘지 어두움이 느껴지는 거 같았지만 유성은 그런 부분은 1 도 눈치 체지
못하고 혼자 반가움에 들떠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어? 이번에는 언제 어디로 가?”

[다음달 6 월 6 일이 금요일이라 8 일까지가 연휴잖아? 혹시 그 때 어디 여행이나 다른 약속 있는 거 아냐? ]

“하하 쏠로가 무슨 스케줄이 있겠어? 있어도 나경이 네가 부르면 있던 약속도 다 취소해야지!”

눈치 없이 밝기만 한 유성의 대답을 듣던 나경의 목소리가 결국 폭발했다.

[야! 한유성! 농담 좀 그만하고! 이번엔 6 월 6 일부터 7 일까지 금 토 1 박 2 일로 남해 의료봉사 가기로


결정됐거든! 그래서 어떡할 건지 이번 주말까지 결정해서 나한테 얘기해 주면 돼. 그래야 다음 주에 숙소하고
차량 예약마무리 한다고 설 팀장님이 얘기 전해달라고 해서 전화 한 거야. ]

갑자기 나경의 화난 목소리를 듣고 당황한 유성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농담 한거 아닌데. 주말까지 결정해서 얘기해 줄게. 화나게 했다면 미안해!”

[농담이 아니면? 봉사활동 끝나고 지금까지 전화 한통 없다가 반가운척하면 누가 네 말을 믿어 주겠니? 그리고


화나게 했다면 미안하다는 말이 뭐야? 그럼 내가 화가 안 났으면 안 미안하단 말이니? 정리하자면, 난 화난 게
아니니 네가 나한테 미안한 게 없다는 말이네. 그럼 끊을게. 딸깍! ]

갑자기 유성은 나경에게 반갑게 전화를 받았을 뿐인데 자신의 어떤 말이 나경을 화나게 했는지 알 수 없어 머리가
아플 뿐이었다.

“고니야 네가 볼 땐 어디서 내가 잘 못 했는지 알 수 있겠니?”

-한유성님 저는 아직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한유성님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방금 대화를 반복 재생해 들려 드릴 수는 있습니다.

“아 그럼 처음 통화부터 대화 하나씩 끊어서 들려줄래?”

-네 한유성님 첫 번째 통화 내용 재생합니다.

[여보세요? 유성이니? ]

‘응 나경아 오랜만이네?’

“.....”

그렇게 집에 가는 동안 유성은 몇 번을 돌려 들었지만 자신이 생각 할 때는 도통 답을 찾을 수 없는 듣기 능력


평가가 이어졌다.

사실 그랬다.

나경은 동창회에서부터 봉사활동까지 자신에게 그렇게 호감을 표하는 유성이 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런데 봉사활동 이후 오늘까지 전화 한통 없는 유성이었다.

먼저 연락하기는 자존심이 걸려 참다가 결국 6 월 봉사활동이라는 통화 꺼리가 생겨 용기 내어 전화를 했다.

하지만 유성은 여전히 눈치가 1 도 없었다.

“하! 어디부터 가르쳐야 하지? 에혀!”

전화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나경은 자신은 화가 난 게 아니라 단지 짜증이 났을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새차 냄새

***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유성은 낮에 바빠 잠깐 미뤄 두었던 고니의 동영상 추적 보고가 생각나 고니에게 추적
결과에 대해 물었다.

“고니야 아까 ‘너튜브’ 동영상 조사한 결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

-네 한유성님 ‘너튜브’ 동영상 추적결과 최초 유포자를 찾아내었습니다. 유포자 정보를 홀로그램 형태로
보고합니다.

[스...팟!]
유성의 눈앞으로 고니가 수집한 정보가 펼쳐졌다.

[이름 : 차경원

나이 : 29 세

연락처 : 010-1234-56XX

메일 : chacaps@naxxx.com

주민등록번호 : 970815-123XXXX

집 주소 : 대한민국 경상남도 남해군....

취미 및 특기 : 동영상 편집 및 태권도, 유도, 검도 등

경력 : 대한민국 육군 수색부대 중사 만기 전역

결혼여부 : 미혼

학력사항 : .......................... ]

“우와...사진까지 구했어?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알아냈어?”

-네 한유성님 ‘너튜브’에 작성된 회원의 아이디와 메일주소를 알아낸 후 추적 스킬을 사용해 상대방의 컴퓨터에
후킹을 통해 접근해 컴퓨터에 저장된 사용자의 이력서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한건 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이 어렵진 않은가 보네?”

-네 한유성님도 최소 3 가지 프로그램의 사용법만 익히시면 쉽게 성공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오 그래? 그럼 나도 지금 그런 거 배울 수 있어?”

-네 한유성님 그럼 후킹을 위한 기본 프로그램 사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그렇게 고니에게 해킹에 관한 설명을 듣기를 5 분도 안되어 유성은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고니가 말한 몇 가지는 유성에겐 1 년간 꼬박 공부해도 이해하기 힘든 프로그램들이었던 것이었다.

“큼큼...고니야...우리 시간적인 효율을 생각해서 그냥 네가 할 수 있는 건 네가 계속 하는 게 합리적이겠다.


그치?”

-네 한유성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한유성님의 교육 이해도를 분석해서 말씀드리면 한유성님이 후킹에 대해


이해하는데 걸리는 예상 교육기간은 26 개월로 예상.....

“고니야! 거기까지! 더는 얘기 안 해도 될 것 같다.”

-네 한유성님 후킹에 대한 교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차경원씨에 대한 처우에 대해 결정해 주십시오.

“음...일단 난 전문적인 부분이 부족하니까 고니 네가 혹시 전화통화 해 줄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 한유성님의 디지털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통화는 가능합니다.

“그럼 고니 네가 남자목소리로 바꿔서 이렇게 전화 통화 할 수 있겠어?”

***

차경원은 어제 당직으로 오늘은 비번이었다. 기분 좋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자신이 올린 동영상 조회 수를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밤사이 이번 영상에 힘입어 꾸준하게 구독자 수도 늘어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너튜브’ 크리에이터로 성공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그런 기분 좋은 상상으로 오전일과를 보낸 후 오후에도 노트북화면을 보며 휴무를 즐기고 있는 차대리의 전화가


울렸다.

입력되지 않은 낯선 전화번호였지만 기분이 좋았던 차경원은 평소에 걸렀을 법한 전화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버렸다.

“네 ‘캅스’ 2 팀장 대리 차경원입니다.”

전화를 받으면 차경원은 이제 자신도 모르게 늘 그렇게 기계적으로 입력 된 똑같은 멘트를 내뱉는다.

[네! 안녕하십니까? 차경원씨 되십니까? 저는 한유성씨의 법정 대리인자격으로 연락 드렸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귀하께서 어제 ‘너튜브’에 올린 동영상에 대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통화 가능 하십니까? ]

전화기 너머에서 기계처럼 감정하나 느껴지지 않는 남성의 목소리를 들은 차경원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이 되었다.

“아..네..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네 다름이 아니라 차경원씨는 개인정보보호법 제 18 조 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 및 제공 제한에 대한 법률 ‘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를 제 15 조제 1 항(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따른 범위를 초과하여 이용하거나 제 17
조제 1 항 및 제 3 항(개인정보의 제공)에 따른 범위를 초과하여 제 3 자에게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

어려운 법률 용어라 하나도 이해 못한 차경원이지만 처음 통화 상대방에게서 들었던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튜브’에 올린 동영상에 대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뭔 진 모르지만 저는 법에 걸리는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점점 차경원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목소리에 떨림이 묻어 나오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쉽게 말씀드리면, 우선 CCTV 관리자는 별도의 동의를 받은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CCTV
사진을 제 3 자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 18 조 제 1 항 이를 어기고 무단으로 CCTV 사진을
공유한 관리자는 5 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동법 제 71 조 이 규정은
관리자가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CCTV 를 무단 유출했을 때 특히 문제가 됩니다. 바로 차경원씨의 경우처럼
말이죠. ]

과연 상대방이 쉽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간 중간에 차경원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저..저는 CCTV 를 무단 유출한 적이 없습니다. 저...저는...”

일단 이대로 차경원은 무언가 인정해 버리면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른 걸 인정하는 꼴이 될 것만 같아 우기고


보았다.

[물론 그러셔야 하겠죠. 혹시나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CCTV 관리자는 개인정보가 분실·도난·유출 등이 되지


않도록 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 25 조 제 6 항 조치를 게을리 한 관리자는
2 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동법 제 73 조 CCTV 는 범죄 등 공익적인 목적 등이
아니라면 불특정 다수의 사생활이 담긴 만큼 함부로 활용해선 안 되는 자료인 건 알고 계시죠? ]

그랬다. 차경원은 CCTV 를 올린 게 밝혀져도 문제지만 자기 근무시간에 영상이 외부로 유출 된 사실이 회사


내부에 알려져도 자신의 직장에서의 거치에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사실 정도는 자신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영상도 자신이 찍은 것처럼 꾸며서 올린 것이었다.

“네...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합의 가능한 겁니까? 당장 동영상을 내리겠습니다. 이번 영상으로 얻은


수익에 위로금을 더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동영상도 내리겠습니다. 선처 부탁드립니다.”

제대 후 어렵게 들어온 직장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나가게 되면 동종 업계로의 이직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로의


이직마저도 힘들어 질 건 뻔했기에 차경원 대리는 사건이 커지기 전에 막아야 했다. 그나마 통화 내용을 생각해
보면 아직 법적인 절차는 들어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 되었다.

[차경원씨! 동영상을 내리지 않고도 개인정보보호법 제 18 조 제 1 항과 동법 제 71 조를 어기지 않을 방법이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

그런데 갑자기 상대에게서 차경원이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네..그게 무슨 말씀인지?”

[네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의뢰인께서는 이번 동영상에 대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CCTV 관리자인 차경원씨께서 저희 의뢰인에게 동의를 받는 경우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희 의뢰인과
직접 만나 서류를 확인하시고 사인하셔도 되고 전화통화 상으로 서로 동의하에 녹취를 통한 계약도 가능합니다.
편하신 대로 결정하셔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철컥!]

‘이거 혹시 보이스피싱은 아니겠지?’

차경원 대리는 그렇게 고니와의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
고니에게 부탁해 법률 지식을 수집하고 준비해 그렇게 일차적으로 차경원 대리와 통화를 끝낸 유성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 앞에 도착했다.

곧 자신의 푸드 트럭을 주차하려던 유성은 못 보던 승용차가 자신의 집 담벼락에 주차 된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씨 남의 집 앞에 이렇게 주차하면 어떻게 해! 쩝...어라 전화번호도 없어? 짜증나네...”

그랬다. 평소 자신의 까망이를 주차해 두던 집 앞 담벼락 주거지 전용주차 자리에 못 보던 까만색 SUV 차량이
떡하니 자리 잡은 것도 짜증나는데 연락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우...고니야 이 차 연락처 없는 거 맞지?”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 스킬로 차량을 살펴본 결과 주차된 차량에 연락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골목 끝
지점에 까망이 주차 가능한 자리 하나 확인 됩니다. 오토드라이브 기능으로 지금 즉시 주차 가능합니다. 한유성님
오토드라이브 시행 합니까?

“응 일단 고니 넌 까망이한테서 내려 오빠한테 오고, 까망이 주차 좀 부탁할게!”

[부릉...부릉...부웅! ]

그렇게 까망이를 주차하러 보내고 유성은 품에 안긴 고니를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락처도 없이 남의 집 앞에 떡하니 세워둔 건 비매너지. 연락처만 있었어도 난 이러지 않았을
거지만...쩝’

유성은 고니를 차 옆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고니야 오빠가 부탁하긴 좀 뭐한데...강아지들 잘하는 그거 있잖아 너두 그런 거 가능할까?”

새끼고양이 고니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냐옹?’하고 울었다. 물론 유성의 머릿속에는 여자목소리로 들렸지만

-한유성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음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노상방뇨를 이 차에다가 한번만 해줄 수 없을까? 부끄러우면 오빠가 다른데 보고


있을게! 힘들까?”

-네 시도해 보겠습니다. 수분만 조금 더 보충되면 가능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잠시만 까망이 안에 물 갖고 올게!”

유성은 주차된 푸드 트럭까지 다녀온 뒤에 방금 공장에서 나온 듯한 번쩍이는 까만색 SUV 에게 소심한 응징을
시작했다.

그렇게 거사를 마무리한 유성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곧 거실에 모여 있는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아들 왔어? 밥 안 먹었지?”

“응 같이 먹으려고 안 먹고 왔지!”

“큼...안 먹고 기다리길 잘했네. 그럼 나가서 먹는 게 낫겠지?”

“그치! 오빠! 오늘은 오빠가 쏘는 거 알지?”

갑자기 가족 모두가 마치 자신을 기다린 것 같은 분위기에 유성은 상황을 이해 못해 멀뚱히 서있었다.

“갑자기 무슨 얘기야?”

“아들! 들어올 때 못 봤어?”

“들어올 때 본 거라니? 혹시? 검은색 SUV?”

“응! 오빠 집 옆에 서 있던 검은색 차 봤지? 오빠 일할 때 타고 다니라고 방금 뽑아 온 새 차라고 조금 전에


렌트카 직원이 서류랑 키랑 다 주고 갔어. 나도 그래서 오늘은 독서실 가기 전에 오빠한테 얻어먹고 갈려고
기다렸지.”

거실 테이블 위에 있던 서류를 조심히 들고 살펴본 유성은 상황을 금방 파악 할 수 있었다. 서류 속에는 최


관장의 짧은 메모가 덧붙어 있었다.

그랬다. 집 앞에 서 있던 차량은 유성이 아람에게 준 약에 대한 김화백의 고마움을 성의로 표현한 것이었다.

최 관장이 빠른 일처리를 위해 아람아트홀 명의로 차량을 장기 렌트했고 유성은 아람의 등하교를 챙겨주는 동안
개인 차량처럼 부담 없이 타고 다닐 수 있게 제공한 것 이었다.

“아 어쩐지 뭔가 싸한 느낌이 들더라니...네 나가요! 제가 소고기 쏠게요!”

그렇게 유성의 가족들은 유성의 새로운 SUV 까망이 시승식을 겸해 외식을 하기 위해 집 앞으로 나왔다.

“자 아들 동네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소 잡으러 가자!”

아빠가 조수석에 타고 엄마가 그 뒤 그리고 운전석 뒤로 타려던 유경이 한마디 했다.

“큼..큼..오빠 근데 차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아 냄새 별로네.”

“아...아마 새 차라서 그럴 거야! 세차하면 금방 냄새 없어질 거야...”

그랬다. 고니는 운전석 앞바퀴에 찐하게 실례를 했었던 것이다.

포병 작전

***

유성은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번 돈으로 외식을 시켜주었다.

그렇게 가족들을 집에 데려다 준 후 유성은 새로 생긴 자신의 까만 SUV 차량에 남겨진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셀프
세차장으로 이동했다.

‘고니야 세차장 이용방법 찾아서 알려줘!’

푸드 트럭 ‘까망이’가 있기는 했지만 따로 셀프 세차장을 이용해 본 적이 없는 유성은 고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유성의 눈앞으로 고니가 띄운 홀로그램 영상과 함께 고니의 설명이 이어졌다.

-네 한유성님 먼저 차량의 환기를 위해 문을 모두 열고 바닥 매트를 꺼내어 적당히 물에 적신 뒤 소금을 뿌려주고


부러쉬를 이용해 소금과 함께 닦아 줍니다.

‘갑자기 소금이 어딨어? 아! 무기고에 있구나. 잠시만.’

그렇게 유성은 무기고에 들어가 소금을 가져온 후 고니가 설명해주는 데로 물에 적신 매트에 소금을 뿌리고 셀프
주차장에 있는 브러쉬를 이용해 문질렀다.

‘고니야! 이제 다했어!’

-네 한유성님 이제 건조기에 매트를 넣고 말려주면 매트 청소는 마무리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꼭 매트는 물만


이용해 씻지 말고 소금과 함께 씻어주는 것이 미세먼지까지 제거할 수 있어 손세차 방법 중에 꿀 팁이라고 합니다.

‘OK! 다됐어! 다음은 뭐야?’

-네 한유성님 다음은 주차장에 있는 에어건을 이용해 차량의 내부에 붙어 있는 먼지를 제거해 주고 청소기를
이용해 바닥에 있는 먼지를 제거합니다. 여기서 주의 할 점은 영상에서 보시다 시피 항상 위에서 아래로 방향으로
먼지를 제거 합니다. 이도 꿀 팁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오! 역시 고니 네가 도와주니까 처음 하는 손세차도 쉽네!’

그렇게 차량 바닥에 청소기까지 돌린 유성에게 고니의 다음 설명이 이어졌다.

-실내 크리너를 수건에 뿌려주고 천장은 영상에서와 같이 꾹꾹 눌러가며 닦아줍니다. 이어서 핸들과 대쉬보드
위에도 세정제를 뿌려주고 수건을 이용해 꼼꼼히 닦아 줍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하하 차가 깨끗해지니까 낮에 동영상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랑 나경이가 갑자기 화내서


찝찝했던 기분도 조금은 좋아 지는 거 같네. 이래서 사람들이 세차를 하나보네.’

-네 한유성님 그리고 실내 세차 중에 손이 잘 닿지 않는 좁은 창문 틈 등은 면봉을 이용해 세차를 진행해주는 게


꿀 팁이라고 합니다. 세차장 입구 사무실 옆 자판기에 면봉이 판매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 저기! 있네! 갔다 올게!’

유성은 그렇게 고니가 가르쳐 준 대로 꼼꼼하게 실내 세차를 끝내고 외부세차까지 깨끗하게 마친 후 조금은
상쾌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현관을 들어서며 건넨 유성의 인사에 아빠가 먼저 반응했다.

“밥 먹자마자 어디 갔다 왔냐? 운동이라도 다녀왔냐?”


“그게...새 차에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아서 세차장 다녀왔지!”

“세차장? 새 차는 차량에 가죽 냄새가 조금 나는 법이 긴 한데..빨리 냄새 빠지게 하려면 탈취제 사서 차량 안에


두면 빨리 빠질 거야. 닦거나 씻는다고 냄새가 금방 사라지진 않을 거야. 근데 유성이 너 설마 언더 코팅이나
유리막 코팅도 안 된 차를 바로 세차한거니?”

“응? 코팅을 하라는 말은 없었는데...”

“아빠한테 먼저 물어보고 하지...쩝...이왕 해버렸으면 할 수 없지.”

“......”

그랬다. 유성은 고니에게 새 차 관리방법이 아니라 셀프 세차 방법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그렇게 머피의 법칙이 오늘 유성을 따라다니는 듯 했다.

***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유성은 캡슐에 올랐다.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접속한 유성은 부사관 메뉴를 소환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띠링 ]

[포병을 선택하셨습니다. ]

그랬다. 유성은 월요일 쌓인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포병을 선택했다.

포를 쏘면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도 같이 날려 버리지 않을까하는 고니의 조언을 받아들여 선택했다.

[잠시 후 포병연대 작전 지역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콰콰콰쾅 콰콰콰쾅 ]

[두두두두 두두두두 ]

유성은 밝은 화면이 걷히자 저멀리 전방에 보병들이 적의 진지를 향해 은폐 엄폐를 실시하며 진격해 나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보병들의 앞으로 쏟아지는 총성과 적의 포탄으로 보병들은 쉽사리 진격하지 못하고 자리에 묶여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 할 수 있었다.

[띠링 ]

[작전명 : ‘적 포병 부대 섬멸’

-아군의 보병대대가 적의 진지를 탈환하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 하지만 곧 적의 후방에서 쏟아질 야포의 포격으로
위험에 처해있다. 전방 20~30km 에서 집중 포격으로 아군에게 큰 전력 손실을 줄 준비 중인 적 포병부대를 155
미리 견인포를 이용해 격퇴해 아군의 보병대대를 지원하라.

-당신은 갓 부임한 포병 연대 신입 포반장(하사 한유성)으로 훈련지역에 투입 되었다. 포대원들을 통솔해 적의


진지너머에서 지원사격 준비 중인 적의 100 미리 120 미리 야포 부대를 무력화 시켜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측정 획득 +@ (적 포병부대 무력화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측정 획득 실패 (아군 보병 퇴각 및 본인 사망) ]

작전을 확인 한 유성은 곧 주위를 돌아보며 차량에 매달려 있는 여러 대의 야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띠링 ]

[적은 첨예기동을 위해 100 미리 120 미리의 야포 약 200 문을 1km 안에 좁게 배열해 두고 집중사격을 준비 중인


것으로 항공 정찰을 통해 확인 되었습니다. 적의 포격이 시작되기 전에 적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선제 타격으로
보병대대를 위험에서 구해야 합니다. ]

‘고니야 앞에 있는 이 대포는 뭐냐 이거? 무슨 캠핑카도 아니고 차에 달려 매달려 있는 게 현재 사용하는 화력


무기라고? 진짜 이렇게 생긴 걸 아직도 쓰는 거야?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 줄 수 있어?’

유성은 작전 수행에 앞서 난감함이 앞섰다. 유성의 생각은 SF 영화에서 보듯이 포탑에 앉아 그냥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포가 발사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네 한유성님 앞에 있는 대한민국 KH-179 155 미리 견인포에 대해 검색을 실시합니다. 삐..삐..삐..검색 된


제원에 대해 홀로그램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띠링! ]

KH-179 155㎜

구경 : 155㎜
무게 : 6890㎏

길이 : 10.39m

포신 길이 : 7010㎜(39 구경장)

최대사거리 : 30㎞(RAP 탄), 22㎞(일반고폭탄)

발사속도 : 2 발/분(지속), 4 발/분(최대)

포탄 종류 : 고폭탄, 연막탄, 조명탄, DP-ICM

그렇게 유성에게 고니는 견인포에 대해 홀로그램과 설명을 시작했다.

-견인포는 견인차량을 통해 진지로 이동한 뒤 포병들에 의해 사격을 위해 자세를 갖추는 방열을 하게 됩니다.
포병의 숙련도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KH-179 견인포를 방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가장 빠른 긴급방열의 경우가
3 분 정도라고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 방열이란 것 마치고 바로 조준해서 쏘면 되는 것 아냐?’

-네 한유성님 문제는 사격을 마치고 다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현대전에서 포병들은 과거 전쟁처럼
한 곳에 진지를 만들고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날아온 포탄의 궤도를 역 추적해 발사지점을
알아내는 대포병 레이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적도 대포병 레이더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포병 레이더? 아! 포의 위치를 추적한다는 거지?’

-네 대포병 레이더를 이용해 상대방의 위치를 역 추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3 분 정도로, 적의 포병대가
미리 준비하고 있다면 3 분 안에 반격탄이 다시 날아온다는 뜻입니다.

‘그럼 쏘고 바로 이동하면 되겠네!’

-한유성님 하지만 사격을 마치면 1 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자주포와 달리 견인포는 방열을 해제하고 견인차량을
불러 포를 끌고 나가는 시간이 보통 15 분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사실상 적의 대포병 사격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그럼 1km 에 퍼져있는 적을 동시에 섬멸해야 작전이 성공한다는 얘기야?’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155 미리 견인포로 20km 보다 멀리 떨어진 목표물을 구간을 나누어 정확하게 타격하는
일이 이론처럼 쉽지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그냥 우리 움직이는 거 포기하자! 일단 연속으로 발사하면 분당 두 발씩은 쏠 수 있고 마지막엔 4 발도


쏠 수 있다며? 쩝...안 되면 할 수 없는 거지.’

그렇게 잠시 후 유성은 자신의 포대원들을 이끌고 적당한 자리에 방열을 실시 중이었다.


“후..후....포반장님!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 왜 우리만 본대에서 떨어져 방열하는 겁니까?”

“야! 박 일병! 말할 시간 있으면 똑바로 들기나 해! 읔....너 땜에 더 힘들잖아!”

한유성의 주위에 있는 포대원들이 저마다 유성을 향해 불신의 눈빛을 내 뿜고 있었다. 하지만 유성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할 말만 이었다.

NPC 병사가 시키는 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성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일단 방열이 끝나면 조준에 필요한 포탄과 장비들을 옆에 모두 이동시키고 포탄 발사에 들어간다! 적에게
첨예기동을 마무리할 시간을 주면 우리 보병대대는 적들에게 화력을 집중 당하게 된다! 빨리 움직여라!”

“네! 읔.. 알겠습니다!”

“으윽..거기 더 돌려!”

“....읔....”

그렇게 대한민국 육군의 수동으로 움직이는 야포 중에 제일 크고 무겁다는 155 미리 견인포가 준비 되어 갔다.

고니의 도움을 받아 적의 야포가 모여 있으리라 예상되는 지점을 조준했고, 포탄에 신관을 결합해 장전 했고,
장약을 밀어 넣고 뇌관을 삽입해 155 미리 견인포는 격발을 준비했다.

“자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부터 격발 후 마지막 포탄이 장전될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네 포반장님!”

“격발!!”

“격발!”

포수의 복명복창과 함께 우렁차게 야포의 포신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콰쾅! ]

하지만 포병들은 쉬지 않고 다음 격발을 위해 포탄을 준비했다.

“헉...헉....다들 괜찮나?”

미리 봐둔 언덕 너머로 정신없이 달려와 몸을 숨긴 유성의 물음에 먼저 도착해 있던 포대원들의 대답이 들려 왔다.

“숨차...죽을 뻔 했지 말입니다!”

“아까 야포 방열 할 때 살짝 느꼈지만 포반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3 분 동안 열심히 야포로 사격을 한 포대원들은 마지막 포탄을 장전한 후 미친 듯이
뛰었고 마지막으로 남아 9 번째 포탄까지 격발에 성공한 유성도 그제야 먼저 달려간 포대원들을 뒤따라 죽을 듯이
달렸다.

“휴! 나도 이번엔 아슬아슬 했다!”

유성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이번엔 유성도 언제 적의 포탄이 날아올지 몰라 조마조마 했었다.

“역시 NPC 는 개사기지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게!”

NPC 병사들이 갑자기 자기들끼리 둘러 앉아 유성을 보며 NPC 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었다.

“....NPC 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아 포반장님 저희끼리 핸드폰 게임 얘기 한거지 말입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

[쾅콰콰콰 쾅콰콰콰 ]

유성의 질문은 그렇게 유성 일행이 떠나온 자리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폭음에 묻혀 버렸다.

그렇게 유성이 단독으로 이동해 발포한 야포를 미끼로 적의 장소를 찾기 위한 전략은 맞아 떨어졌고, 잠시 후
다른 쪽에 남아 적군을 겨냥하고 있던 아군의 155 미리 견인포에서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적은 첨예 기동을 위해 200 문 가까이 되는 야포가 1km 내에 모여 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그렇게 모두 아군이


뿜어 낸 포화에 휘말려 무력화 되었다.

그렇게 유성은 작전 성공 알림 음을 들을 수 있었다.

[띠링 ]

[작전명 : ‘적 포병 부대 섬멸’(완료)

(중략)

-작전 성공 시 : 스킬 - 측정 획득 +@ (적 포병부대 무력화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스킬 - 측정 획득 실패 (아군 보병 퇴각 및 본인 사망) ]

가격 측정

***

[띠링!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

[우수한 작전 성공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 - ‘측정’과 ‘보정’을 획득합니다. ]

이번 포병 작전을 통해서 유성은 스킬 두 개를 획득했다.

‘오호! 포병이라 거리 ‘측정’하고 ‘보정’해서 쏘란 말인가? 너무 단순한데...쩝 사용해 보면 알겠지?’

캡슐에 들어오기 전 찜찜했던 기분을 유성은 스킬 보상을 통해 날려 버린 듯 어느새 밝은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8 사단 포병대대 2 중대 생활관에 모인 사병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박 일병님 우리 분대장 NPC 약간 사이코 설정인거 같긴 한데 능력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명령 따르길 잘한 거


같지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게? 저기! 김 상병님 이정도 결과면 훈련 끝나고 휴가증 나오겠지 말입니다? 4 분 정도 단독
군장으로 전력 질주하고 3 박 4 일 이면 완전 꿀인데!”

“아마 받을 걸? 안 그래도 행정반에서 복귀 보고할 때 보니 우리 중대가 훈련 평가 점수 1 등이라고 대대장님한테


칭찬이라도 들었는지 중대장님이 입이 귀에 걸려 있더라고.”

“이제 사이버 훈련도 무슨 게임 뽑기처럼 포반장을 잘 만나야 할 것 같더라. 얘기 들어 보니 1 중대 견인포 애들


포 쏘고 나서 이동도 못해보고 5 분 만에 전멸했다고 표정 장난 아니더라.”

그랬다. 이번에 시범적으로 운용중인 8 사단 사이버 ATT 훈련에서 유성을 만난 부대는 모두 고득점을 획득했고,
훈련에 참여했던 사병들은 보상으로 모두 휴가증을 받게 된다.

이후 사이버 ATT 훈련에서 휴가를 받은 장병들의 사이버 훈련 경험 썰이 8 사단 인터넷 장병 게시판에 하나 둘


올라 입 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유명 NPC(?)로 떠오르게 되었고, 사병들이 캡슐에 접속 할 때면 휴가증을 받기
위해 만나게 해달라고 바라게 되는 ‘로또 하사’가 된다.

***

유성은 화요일 아침 아람의 등교를 위해 새끼고양이 고니와 함께 ‘H 사’의 SUV 에 올랐다.


어제 쉬었던 참이라 조금 일찍 여유를 두고 집에서 나왔다.

“고니야 이 차는 오토드라이브 안 돼?”

-네 한유성님 현재 차량은 디지털 업그레이드 키트가 적용되지 않아 오토드라이브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쓰다가 못쓴다니 좀 불편하긴 하네.”

-현재 차량에 탑재 된 운전자 편의기능 중에 블루투스를 이용해 제어가 가능한 기능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오 운전자 편의기능? 까망이만 타다 보니 그런 기능이 있는 지도 잠시 잊고 있었네.”

유성은 중고로 구입한 푸드 트럭을 몰고 있기에 2019 년부터 ‘H 사’에서 점차 보급되기 시작한 운전자 편의
기능이 조금 낯설었다.

-현재 차량의 운전자 편의 기능은 차로 유지 및 이탈 방지 보조 기능이 있으며 주차 시에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기능이 있습니다.

“아! 그 운전 중에 자동으로 차선 지켜 주는 거 말하는 거지? 그리고 주차할 때 자동으로 굴러 들어가고 나오는


거 맞지? 아빠 차에서 예전에 봐서 어떤 건진 기억난다.”

-한유성님! 오토 드라이브처럼 전자동 자율 주행은 불가능 하지만 목적지까지 차로유지하면서 이동하는 것은 가능


합니다.

“오! 그래 그럼 부탁 할게! 출근 시간은 역시 자율주행이 짱이지! 크크크”

그렇게 아람아트홀에 도착한 유성은 SUV 차량을 주차하고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최 관장님! 어제 전해주신 차량은 잘 받았습니다.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셨으면 인사라도 드렸을


텐데,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편하게 새 차 타고 왔습니다.”

“네! 오서오세요. 한유성군! 그리고 감사 인사는 저한테 할 게 아니라 대표님께 직접 하시면 됩니다. 마침
식당에 계시니 인사드리러 가시죠?”

“아! 아람이 어머님요?”

김화백은 전시회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다가 지난 주말에 귀국했기에 유성은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아람의
엄마를 만나는 자리였다.

“네 여기선 대표님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렇게 유성은 최 관장을 따라 식당으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반가워! 유성군! 오 듣던 대로 비주얼이 좋네. 미술관 직원도 아닌데 그렇게 딱딱하게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돼!”

“그럼 호칭을 뭐라고?...”

“누나? 어때?”

“대표님!”

“크..농담이야 농담! 언니는 뭐 그런 거 까지 신경 쓰고 그래...애 부담 가지게..호호 아 그리고 언니는 아까


시킨 일 해야 하지 않나?”

“네 대표님!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최 관장이 그렇게 식당에서 나가자 유성이 어색함을 참고 아람의 엄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큼..큼...아람이 어머님. 어제 보내 주신 차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역시 못 듣겠다. 감사는 잘 받겠는데 그 앞에 아람 어머님이라고 부르니 딱 학부모가 된 것 같이 나이와


함께 두드러기가 딱 올라오네. 호칭은 그냥 유성군이 편한 데로 부르는 걸로! 물론 어머님은 빼고.”

“네.. 작가님!”

유성은 고민 끝에 아람 엄마의 호칭을 작가님이라고 결정했다.

“호호 작가님이라 뭐 나쁘지 않네. 그리고 차는 그냥 아람이가 푸드 트럭 타고 다닌다고 해서 유성군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꼴은 보기 싫고, 그렇다고 저기 주차 된 벤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주위 보는 눈이 많아서...
그래서 겸사겸사 법인 명의로 렌트 한거니 부담은 갖지 말라고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애초에
부담은 안가진거 같고? 아침이나 같이 먹게 앉어.”

“네 작가님!”

유성이 의자에 앉자 아람 엄마가 유성 앞으로 빵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밀어 주었다.

“안 그래도 최 관장이 어제 새로 생긴 카페에서 맛보고 괜찮다고 빵을 잔뜩 사왔어. 먹어봐 괜찮던데.”

테이블 바구니 안에는 유성에게 낯이 익은 사과파이와 에그타르트 그리고 크루아상이 보였다. 어제 자신이 잔뜩
만들며 맛 봤던 빵들이었다.

“하..하....네 이 빵 참 익숙하게 맛있지 말입니다. 하하 쩝..쩝...우걱..우걱...”

“그치? 아침으로 이런 빵도 괜찮지.”

“꿀꺽...전 개인적으로 셰프님이 아침에 만들어 주시던 토스트가 더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가자 최 관장이 다시 들어와 아람 엄마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김 화백은
유성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성군은 더 먹고 있어! 난 잠시 볼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저기 작가님 저도 실례가 안 된다면 거실에 있는 그림들 감상하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오! 그림도 볼 줄 알아? 그럼 잠깐 보고 있어.”

그렇게 유성은 거실 한 쪽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 앞에 서서 천천히 그림을 바라보았다.

작은 물고기들이 따뜻한 계절 화창한 날에 시냇물 속을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유성은 그림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측정!’

[스..팟]

[ 작품 : 개여울

작가 : 류건숙

가격 : 200 만원

작품 설명 : 싱그런 나뭇잎, 잔잔한 하천의 부서지는 햇살, 해맑은 물속을 유영하는 갈겨니의 모습을 섬세한
관찰력으로 포착하여, 수백 번의 촘촘한 붓질로 금빛 모래의 표현력이 압권인 작품이다.

관악산 자락의 개울가의 모습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여름날 오후의 개울가, 나뭇잎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수면은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그 밑으로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다.

어릴 때 냇가에서 고기잡이하면서 물놀이하던 추억을 살려 그린 그림이다. ]

‘오...이게 되는 구나!’

유성은 옆에 있는 그림으로 눈을 돌렸다.

‘스킬 측정!’

[스..팟]

[ 작품 : 만 추

작가 : 류건숙

가격 : 200 만원

작품 설명 :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날 호반위로 드리워진 아름다운 단풍을 소재로 가을호반의 경치를 재구성해
그린 그림이었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황홀한 붉은 단풍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로 물 위에 반영된
단풍든 수풀과 지나가는 미풍에 잔물결이 일고, 그 위를 지나가는 물새를 그려서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느끼도록 그린 작품이다. ]
그림가격을 측정을 통해 알아보고 있는 유성의 옆으로 아람이 학교 갈 준비를 끝내고 다가서며 말했다.

“오빠도 그림 좋아해?”

“응? 아! 이제부터 좋아 지려고해! 흐흐”

“여기 류건숙 작가님 작품 보고 있었어?”

“응! 보고 있으니 사진으로는 표현 못하는 그런 부분까지도 그림을 통해 표현 가능한 것 같아 보여 멋있다고 해야


하나?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우와! 그런 것 까지 벌써 보여? 그럼 이 작품은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린 것 같아?”

“음...일단 여름날 오후의 개울가의 모습을 재구성 한 것 같아. 나뭇잎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수면은
눈부시게 반짝거려! 그 밑으로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지? 아마 작가가 어린 시절 어릴 때 냇가에서
고기잡이하면서 물놀이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린 것 같아. 그리고 추가하자면 작품 가격은 대략 200 만 원 정도
될 것 같고.”

작품에 대해 너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유성을 보고 놀란 아람이 물었다.

“허얼.....오빠 혹시 류건숙 작가님 알아?”

“당연히 모르지. 아람아! 근데 화가들이 이렇게 그림 한 점 그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니?”

“으..응? 그건 사람마다 다른데...완성하려면 적어도 한 며칠은 걸리지 않을까?”

잠깐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돌려 본 유성이 존경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흠...아람아 너희 어머님께서 이렇게 성공하신 걸 보면 대단하신 분이네!”

유성은 왜 어른들이 예전에 미술하면 배고프다고 했는지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응! 맞아. 입이 좀 많이...험해서 그렇지만...멋지긴 하지!”

엄마 얘기를 하며 표정이 미묘해 지는 아람에게 유성이 말했다.

“이제 학교를 향해 가 볼까?”

“응!”

***

-Episode

2 층 서재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두 사람!

아람 엄마는 유성을 좀더 알아보기 위해 최 관장에게 유성의 차량 블랙박스에서 메모리칩을 바꿔 오라고 미리


지시를 해 두었고 현재 확인 중이었다.

[자 아들 동네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소 잡으러 가자! ]


[큼..큼..오빠 근데 차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아 냄새 별로네. ]

[아...아마 새 차라서 그럴 거야! 세차하면 금방 냄새 없어질 거야...]

“대표님 아마 가족끼리 드라이브를 가는 것 같습니다.”

“음...가족 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 같지?”

화면은 차량 앞쪽을 비추고 있기에 차량 안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하면 두 사람은 침을 삼키고 있었다.

[고니야 이 차는 오토드라이브 안 돼? -미야옹]

[오! 그래 그럼 부탁 할게! 출근 시간은 역시 자율주행이 짱이지! 크크크 -냐앙 ]

“대표님 대화 중간에 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곤’이라는 차량 전문가와 전화 통화 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음성을 확인 하던 두 사람의 귀에 갑자기 유성의 반복된 차량 가격 측정 랩이 들려 왔다.

[스킬 측정! 제네시 X 6800 만원]

[스킬 측정! BXW XX 1 억 1000 만원 ]

[스킬 측정! 폭스바 X 티구 X 4600 만원 ]

[스킬 측정! 현 X 소나 X 1800 만원]

“반대편 차량 가격을 매기는 것 같습니다. 대충 보니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새 차 가격도 있고, 중고차


가격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놈 뭐야? 지가 무슨 중고차 딜러 꿈나무야? 어떻게 차량 가격을 벌써 저렇게 열심히 외우고 있는 거야?”

“아무래도 유성군은 차량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그랬다. 영상속의 유성은 새로 생긴 스킬 ‘측정’을 지나가는 차들에 시험 중이었다.

손 맛

***

유성과 아람은 학교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얘기를 나눴다.


“아람아 아까 엄마가 걱정하시더라. 너 다 나았다곤 하지만 당분간은 스트레스 안 받게 조심해야 한다며?”

“그치 그래야 정상인데, 이번 주는 스트레스 안 받긴 벌써 글렀어! 금요일이 미전이라 준비해야해.”

“아! 지난주에 들었던 거 같기도 하네. 그럼 거실에 있던 그런 그림들 그려서 전시하는 거야?”

“후훗! 그런 그림 실력이 되면 안 힘들지. 그냥 기존에 학교에서 그렸던 그림 중에서 지난주에 미리 전시할 애들


선택해 뒀거든. 그렇게 내일까지 각자가 미전에 출품할 작품들 마무리 한다고 개바쁜 거지. 그래서 아마 오늘하고
내일은 스트레스 받을 틈도 없을 각!”

“금요일이 미전인데 왜 내일까지 마무리 해?”

“그래야 전시장에 배치도 하고, 그림에 따라 조명도 설치해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정 할 곳 있는지 그림도
다시 확인해야 하니까.”

“어째 고딩들이 나보다 더 바쁘게 사네. 난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잔 기억 밖에...큼..큼..그럼 오늘도 늦게


마치겠네?”

“응! 지난주처럼 마치기 30 분 전에 연락 주면 돼지?”

“응 그래주면 외숙모 가게 도와주다 올 수 있어서 나야 고맙지.”

“아 맞다! 오빠 어제도 안 쉬고, 전화 했을 때 카페라고 했지? 오빤 참 바쁘게 사는 거 같아! 가끔 개멋짐!”

바로 옆에서 생각도 못한 아람의 칭찬을 들은 유성은 다소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긁적...긁적...난 학교 다닐 때 너처럼 열심히 안했거든. 뭐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아야지. 큼..큼..”

“그럼 카페에서는 주문 받어?”

“아니 까망이 안에서 빵 만들고, 그걸 카페 안 진열대에 넣어서 파는 거지.”

“허...오빠 푸드 트럭에서 빵을 만들어 카페에서 판다고? 저기...오빠 옆에 두고 할 말은 아닌데...”

아람이 평소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 하자 유성이 아람의 말을 끊었다.

“그럼 말 하지 마!”

“아니 그냥 솔직히 오빠가 만드는 수제 버거랑 핫도그는 너무 맛있어서 먹고 또 먹고 싶은 맛이랑은 거리가 조금


있잖아. 음...그냥 만드는 사람이 오빠라서 팔리는 그냥 평범한 버거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빵이 카페에서
오빠 없이 팔리려나? 난 아니라고 보는데...”

아람의 칭찬인지 욕인지 구분 못할 말을 들은 유성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큼....큼....아침부터 팩폭이냐?”

“팩폭이라니! 오빠 비주얼 칭찬한 거지. 헤헤. 난 그냥 어제 저녁 이모가 사온 디저트 같은 걸 카페에서 만들면


어떨까 해서..하하. 솔직히 오빠 빵은 카페에서 먹기에는 조금 헤비하자나. 나쁜 뜻으로 꺼낸 말은 아니었어!”

“그럼 그 집 빵은 맛있었어?”
“아! 오빤 못 먹었어? 어제 남은 건 오빠 주라고 했는데. 엄마가 다 먹어 버렸나? 이모한테 또 사다 달라고
말해둘게 그 집 새로 생긴 카펜데 엄청 괜찮은 거 같았어. 이름이 뭐라더라....콩...카페...아니고..그..”

“카페 빈!”

“어! 맞아! ‘카페 빈!’ 어? 오빠가 어떻게 알아? 내가 얘기 했던가?”

“아니 거기가 외숙모 가게야.”

“뭐?...그럼 그 빵이?”

“그치 너무 맛있어서 먹고 또 먹고 싶은 맛이랑은 거리가 조금 있는 실력으로 내가 직접 만든 빵이지.”

“헐..대박! 오빠 일주일 사이에 ‘홈밥 백선생’님한테 ‘골목 가게’ 레시피라도 받았어?”

“계속 연습하다 보니 깨달음이 조금씩 오더라고. 하하! 아마 인터넷에 있는 ‘홈밥 백선생’님 레시피도 도움
받긴 했을 거야.”

“오빠! 그럼 가게 갔다 올 때 나 에그 타르트랑 사과파이 하나씩만 안 될까?”

“안 돼!”

“쳇! 아직 삐졌냐?”

“네만 입이니? 엄마꺼랑 이모꺼 그리고 셰프님꺼도 챙겨줄게. 맛있게 먹었다니 기분이 좋네! 고마워!”

그렇게 유성은 기분 좋게 아람을 데려다 주고 아침을 시작했다.

***

유성은 아람을 학교에 내려 준 후 집으로 푸드 트럭을 찾으러 가려다 혹시나 해서 고니에게 물어 보았다.

“고니야 까망이 원격으로 오토드라이브 가능할까?”

-네 한유성님 가능합니다. 목적지는 ‘카페 빈’으로 설정합니까?

“어! 이게 되는 구나! 그렇지! 외숙모 가게로 가야지!”

-네 한유성님 목적지 설정 끝냈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 합니까?

“아니..아니..잠시만...그대로 출발하면 옆에 사람들이 보고 ‘너튜브’에 올릴걸. 자동주행모드 장착한 푸드


트럭 돌아다닌다고.”

-네 그럼 푸드 트럭 ‘까망이’의 창문 썬팅 농도를 전면 5% 측면 5%로 설정합니다. 외부차량에서 ‘까망이’


운전석 확인이 불가능 하게 됩니다. 이대로 출발 합니까?

“어 그래 고니야 혹시 특이사항 생기면 얘기해 주고! 수고해!”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지금 ‘까망이’ 출발했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10 시입니다. 혹시 ‘까망


이’와 시야 공유 원하시면 블랙박스 홀로그램 영상 송출 가능합니다.
“아니 그건 됐어. SUV 운전에 방해가 될 거야. 오전 10 시면 우리가 빨리 도착하겠네.”

-네 한유성님 특이사항 발생 시 홀로그램 영상 송출 하겠습니다.

“응 부탁해 고니!”

그렇게 유성은 ‘카페 빈’에 고니가 운전하는 까망이보다 먼저 도착했다.

[딸랑! ]

손님인가 싶어 주차하는 차를 유심히 바라보다 유성이가 차에서 내린 걸 카페 안에서 확인 한 유성의 외숙모가


가게로 들어오는 유성에게 물었다.

“유성아 어서와! 근데 그 차는 뭐니?”

“안녕 하세요. 외숙모! 아침저녁으로 고등학생 등하교 알바 하는 차에요. 일종의 운전기사 같은 거죠.”

“그럼 오늘은 빵은 어디서 만드니?”

“SUV 주차만 해두고 다시 까망이 가지러 갔다 올게요.”

“그럼 다시 집에 다녀온다고?”

“아뇨. 여기 근방에 주차해 뒀어요. 금방 찾아올게요.”

유성은 당분간 외숙모가 어제 제안한 데로 가게에 들어가는 빵을 공급해 주기로 결정했다.

“숙모 ‘까망이’ 당분간은 숙모 말대로 여기 주차 해두고 SUV 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가게에 필요한 빵


만들게요.”

“호호 그래주면 난 고맙지! 안 그래도 어제 만들어 준 빵 모두 다 팔려서 어쩌나 했었는데 얼른 다녀와!”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유성은 고니가 몰고 오는 ‘까망이’를 마중하기 위해 SUV 에 타고 있던 새끼고양이 고니를 품에 안고


이동했다.

유성은 까망이와 만나기 위해 카페에서 벗어나 근처 작은 공원 벤치에 자리했다.

그 때 마침 걸려온 차 대리의 번호를 확인한 후 고니에게 전화를 받게 했다.

“고니야 이거 네가 받아야겠는데...”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목소리 변조에 들어갑니다. 통화 시작하겠습니다. 철컥!

:
***

경비업체 ‘캅스’의 차 대리는 지난밤에 고니로부터 받은 메일을 확인하고 고민 끝에 어제 걸려온 전화번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철컥! ]

한동안 신호가 울린 끝에 어제 통화했던 기계적인 느낌의 차가운 남자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네 결정 하셨습니까? ]

“네. 어제 보내주신 계약서 메일 확인 했습니다. 저 그런데 정말 이대로 계약하면 저에게 이번 동영상 건으로는
법적으로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으시겠다는 말 사실이죠?”

[네 사실입니다. 저희 의뢰인께서는 차경원씨의 동영상 편집 능력을 높게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부정한


목적으로 CCTV 를 무단 유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 삼지 않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겁니다.
제 소견으론 돈으로 합의 보시는 거 보단 차경원씨에게 훨씬 이득이리라 생각합니다. ]

“네..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쪽이 지금 갑이니까 제가 선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군요. 대신 제가 의심이 좀


있어서 그러니 그 쪽 의뢰인과는 직접 만나서 계약해도 될까요?”

[네 가능 합니다. 마침 저희 의뢰인께서 다음 주 주말 연휴에 시간이 가능 할 것 같습니다. 그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장소와 시간은 문자로 연락드리겠습니다. ]

“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철컥 ]

경비업체 ‘캅스’ 탕비실에서 전화 통화를 끝낸 차경원 대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듬직한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훗! 만나기만 하면 갑과 을은 바뀌는 거지! 크크크.”

차경원의 헬스와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평범한 남자들에겐 움츠려 들게 만들 만했다.

차 대리 자신이 보기에 동영상 속의 남자 또한 날렵한 몸이긴 해도 막상 자신 같은 덩치를 앞에서 마주하면 한


발짝 물러서리라 확신했다.

“후! 그럼 연휴까지 몸이나 만들어 둬야겠군! 하하하.”

***

-Episode

오늘도 유성은 까망이 안에서 홀로 외롭지 않게 고니와 대화를 하며 빵 반죽을 하고 있다.

“고니야! 근데 ‘측정’은 이제 알겠는데 ‘보정’은 어디에 쓰여?”

-네 한유성님 보정 스킬도 사용해 봐야 확실히 확인 가능하리라 예측합니다.

“대충은 알 것 같은데 사용방법 같은 거랑 쓰임을 알았으면 해서...”


-네 그럼 한유성님 먼저 예를 들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유성님이 라면을 끓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라면 한 개에 필요한 물의 양이 500ml 라고 했을 때 라면 두 개를 끓일 때 들어가는 물의 양은 얼마일까요?

“어? 갑자기 왜 초등학교 수학문제니? 당연히 1000ml 가 들어가겠지!”

-네 올바르지 않은 해석입니다.

“...왜? 계산 맞는데...”

-네 한유성님 변수까지 감안한 올바른 해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조건에 따라 필요한 물의 양이


달라집니다. 물 500ml 와 1000ml 를 같은 냄비에 넣고 끓이게 되면 냄비의 지름 크기에 따라 시간당 증발되는
물의 양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같은 냄비에 끓이게 되면 물의 양이 늘어날수록 증발 되는 물의 양이
줄어들게 되어 처음 필요한 물의 양을 줄이는 게 맞습니다.

“그럼 ‘보정’은 이런 레시피 해석하는데 쓰인다는 말이니?”

-네 한유성님 음식의 양이 달라져 레시피에 보정이 필요하다 거나 기타 운동에서의 자세 등을 보정 스킬을 통해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운동하다 다리 접 질려서 다치면 ‘보정’ 스킬을 사용하면 바로 잡아 준다는 얘기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차 후 확인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잠시 고니의 말을 듣고 생각에 빠져 있던 유성이 냉장고를 바라보며 고니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무기고에 ‘고급제빵’ 스킬 익히기 전에 만들어서 넣어 두었던 빵 한 개씩만 꺼내 줄래?”

-네! 한유성님 무기고에서 냉장고로 핫도그와 수제 버거를 이동시켰습니다.

“응 고마워!”

무기고에서 방금 꺼내서 그런지 빵은 아직 따듯한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성은 빵을 내려놓고 스킬을 사용 했다.

“스킬 보정!”

[우...웅!..웅! ]

스킬을 사용하자 유성의 손끝에 하얀 빛 무리가 뭉치기 시작했다.

유성은 조심스럽게 핫도그와 수제 버거 위로 양손을 가져가 빛을 쐬어주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

그렇게 유성의 손끝에서 빛 무리가 20 초가량 윙윙거리다가 사라졌다.


유성은 곧 수제 버거와 핫도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음...버거랑 핫도그 둘 다 모양이 조금 먹기 좋게 변한 거 같기도 하네.”

모양에 합격을 준 유성은 핫도그를 손으로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쩝...쩝....음! 맛도 확실히 이전 보다 좋아진 거 같아! 하하! 성공이야!”

그렇게 유성은 보정 스킬을 통해 손맛 일명 ‘조미료’를 획득했다.

브이로그

***

방송실 스튜디오 안 아람은 학교 홍보용으로 쓰일 영상위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 중에 있다.

[우리 학교 미술과에는 디자인과, 서양화과, 조소과, 한국화과 이렇게 총 4 개의 전공이 있다.

매년 5 월 말에 열리는 미전은 미술과 학생들에게는 1 년 중 제일 큰 행사로 꼽힌다.

미술과 2~3 학년 학생이라면 개인당 한 점을 꼭 출품해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미술과 학생들은 겨울방학부터 미리 학교에 나와 미전에 출품할 작품을 준비한다.

물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작품을 내는 학생도 있지만...]

“컷! 거기까지 물론 앞에 건 그대로 쓰고, 물론 뒤에 부터는 목 좀 축이고 계속 이어 가자! 소리가 조금


갈라졌어.”

[네. 쌤..]

아람은 벌써 방송실 녹음만 2 시간을 넘겼다.

지난 주 학교 홍보 아이디어로 냈던 브이로그 영상을 자신이 왜 녹음 하고 있는지...

물을 마시고 목을 살짝 풀어 준 아람은 녹음실 밖에 있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쌤! 시간 얼마나 걸릴까요?]

“이제 한 30 분만 고생하면 될 거 같아! 힘내!”

[네. 그럼 저 문자 한통만 보내고 녹음 다시 시작할게요! ]

“그래.”

그렇게 문자를 보낸 아람은 다시 마이크 앞에 앉았다.

[큼..큼...준비 됐어요. 쌤]

“‘물론 자신의’부터 다시 시작!”

[물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작품을 내는 학생도 있지만, 자신의 전공과 다른 전공을 응용하여 작품을 내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디자인과 학생들은 재료부터 제작 방법이 가장 다양하다.

컴퓨터 일러스트부터 옷을 실제로 제작하는 의상디자인, 영상을 직접 찍어서 영상물로 제작하는 영상디자인까지
있다....]

그렇게 30 분이 훌쩍 지나 한 시간이 다 되어갈 때 즘 녹음은 마무리를 지어가고 있었다.

[미전은 입시 미술에서 잠깐 벗어나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마음껏 뽐낼 수 있고 평소 사용해 보지 못한 재료를


시도해봄으로써 예술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예술적 감각을 자극할 기회이다.

사용하는 재료나 종이 규격의 제약이 있는 입시미술과는 다르게 미전은 학생들의 선택에 자유를 열어놓는다. ]

“OK! 좋았어! 이제 진짜 마지막 멘트만 녹음하면 끝! 자자 마지막 진짜 힘내서!”

[네..쌤...]

물을 다시 한 모금 마신 아람이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예술가로 성장하여’부터 다시! 시작!”

[예술가로 성장하여 빛날 우리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우리의 삶의 일부이다.

우리의 눈과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미래 유망주인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술품 전시는 매년 5 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열린다. 이젠 학부모들과 학생들만이 즐기는 전시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함께 보고 가는 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컷! 수고했어! 아람아! 영상에 음성 입힌 거 편집해서 오늘 중으로 학교 홈페이지 홍보 영상으로 바로 올라 갈


거야. 그때 확인해! 오늘 수고 많았어!”

“네 선생님도 수고 하셨어요. 아니 계속 수고하세요. 저는 먼저 가볼게요. 선생님!”

그렇게 아나운서 대본을 내려놓은 아람은 방송부 담당 선생님과 인사를 끝으로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방송실을
나서며 유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철컥! ]

“오빠! 나 아람이!”

[응 이제 마쳤어? 늦었네. ]

“응 오빠 어디야? 나 오늘 바빠서 한 끼도 못 먹었어! 오빠 빵 많이 갖구왔어? 안 그럼 다른 사람 줄 거도 내가


몽땅 다 먹어 버릴지도 몰라.”
[응? 이제 다이어트 접었어? ]

“의사선생님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절대 안정 하랬다며? 그럼 딱 지금은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릴 각이야.”

[하하 빨리 나와 교문 앞에 있으니까! ]

“응!”

***

전화를 끊은 유성이 새끼 고양이 고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람이가 배가 많이 고픈가 보네. 무기고에 들어가서 빵 좀 더 챙겨와야겠네.”

-네. 한유성님 무기고를 소환합니까?

“응!”

-네 한유성님 무기고를 소환합니다.

[띠링! ]

[소환수 ‘고니’ LV.5 EXP 120/960 ]

[소환수 ‘고니’의 레벨이 확인 되었습니다. ]

[삐삐삐....무기고의 레벨을 산정합니다. ]

[무기고 LV 은 소환수 ‘고니’ LV 과 동일합니다. ]

[무기고 LV.5 를 소환합니다. ]

[좀 더 높은 레벨의 무기고를 찾으신다면 소환수의 성장을 권합니다. ]

[스....파......팟!]

유성의 눈에만 보이는 하얀 빛이 휘몰아치더니 이제는 시골의 작은 학교 만큼 커진 홀로그램으로 직육면체 모양의


무기고가 유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뚜벅 뚜벅]

무기고 안으로 걸어서 이동한 유성은 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큰 매대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자신이 만든 빵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무기고가 LV.5 를 달성하자 실내에 아무것도 없던 창고에서 유성이 원하는 데로 실내 구조 변경이


가능했고 유성은 커진 무기고의 내부를 동네 마트처럼 꾸미면 재료 찾기랑 보관도 용이 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니는 유성의 의견대로 동네에 있는 “XX 마트”를 재현해 무기고의 내부가 지금과 같은 모양새를 이루고 있었다.

“계산대는 빼도 됐을 거 같은데...”

-네 한유성님 계산대는 제거 할까요?


“아냐 그냥 둬! 왠지 익숙하네.”

유성은 빵을 그냥 들고 나가기에는 조금 불편한 듯 해보여서 적당한 상자나 봉투를 찾기 위해 무기고 안의


계산대를 둘러 봤지만 마땅히 담을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니에게 물었다.

“고니야 혹시 내 ‘왕진가방’도 디지털 아이템이지?”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의 왕진가방도 아이템 목록에 등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 태블릿이나 폰처럼 왕진 가방도 디자인 변경 가능하지 않아?”

-네 왕진가방의 모양도 변경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음...그럼 그냥 백팩 모양으로 가능 할까?”

-네 유성님 홀로그램으로 디자인 목록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모양을 선택해 주십시오.

그렇게 유성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수많은 브랜드의 가방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소환 왕진가방!”

[띠링]

그렇게 고니의 조언을 통해 처음 서류가방 스타일의 왕진가방 대신 이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기 편해 보이는 백팩이
유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새로운(?) 가방을 장만한 유성은 그 가방 속을 빵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한유성님 왕진가방도 까망이의 냉장고처럼 무기고와 연동이 가능 합니다.

“어? 그럼 그렇게 해줘!”

그렇게 무기고 마트를 이용한 유성은 백팩에 먹거리를 잔뜩 넣어두고 무기고에서 나왔다.

다시 자신의 SUV 내부로 돌아온 유성은 무기고에 두고 온 백팩을 소환했다.

“고니야 택배서비스! 왕진가방 소환해줘!”

-네 한유성님 왕진가방을 소환합니다.

[스...팟!]

그렇게 유성은 아람에게 줄 빵을 잔뜩 챙겨서 차로 돌아왔다.

***

-Episode
아람의 학교 미술과에는 디자인과, 서양화과, 조소과, 한국화과 총 4 개의 전공이 있다.

셀카봉을 들고 있는 아람은 한창 미전 막바지 작업으로 정신없을 디자인과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잠시 가능합니까?”

문을 열고 아람은 눈앞에서 마네킹에게 옷을 입히느라 씨름하고 있는 친구에게 다가갔다.

“어? 지금 나 찍고 있는 거야?”

“응! 지금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은 무엇을 표현한 작품입니까?”

“그거...그냥 내 옷 놔둘 데가 마땅치 않아서 마네킹한테 걸어 뒀는데 마네킹이 팔이 없어서 그런지 계속


떨어지기에 단추 잠그는 중이었어.”

“아! 그럼 마저 입히고 작품 이어 가시길...”

마네킹 친구와 인사를 마치고 둘러보던 아람의 눈에 유럽 축구 선수의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섬세한 붓 터치를 보이는 디자인과 친구의 상업용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와! 포스터가 진짜 사진 촬영한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네요. 음...작품은 유럽 축구팀 리버풀 선수들을 표현한
포스터인가 보죠?”

아람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다 셀카봉에 달린 카메라를 확인 한 리버풀 친구가 물었다.

“응? 지금 뭐 찍는 거야?”

“미전 브이로그..”

아람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아 이거? 작품 아닌데...진짜 어렵게 구한 리버풀 2018-19 챔스 우승 한정판 기념 포스터야.”

“근데 왜 이걸 이젤에 작품도 아닌데 걸어둔 거야?”

“나만의 징크스 같은 건데. 이 포스터를 옆에 두고 그리면 작품이 잘 그려지더라고? 포스터가 나한텐 부적과
같다고 할까?”

“네. 여기까지 디자인과 박수무당 리버풀님의 인터뷰였습니다.”

디자인과를 촬영하고 교내 설명하느라 계단을 이용해 조소과로 이동한 아람은 주로 설치 작업을 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영상에 자신의 음성을 넣었다.

“조소과 친구들의 작품 제작과정이 가장 고되긴 하지만 그만큼 작품 규모가 남다른 학생들입니다. 계단을 올라
왔더니 다리가 아프네요. 잠깐만 쉬었다가 인터뷰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아람은 계단을 올라오느라 아픈 다리를 한손으로 주무르며 옆에 있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야! 조심해! 그거 내 작품이야!”

아람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돌아보자 음료수를 사오다 교실로 들어왔는지 한 손엔 사이다를 들고
사색이 된 눈으로 쳐다보는 작품 ‘소파’의 작가인 남학생이 보였다.

아람이 어색해 하며 친구에게 칭찬을 건넸다.

“아! 네 작품! 튼튼하게 잘 만들었네..헤헤”

다음으로 그림에 사용하는 유화 물감과 보존제 냄새로 가득한 서양화실에 들른 아람은 자신 또는 연예인들
자화상이나 풍경을 그리는 학생이 대부분인 모습을 촬영하고 돌아서다 눈에 띄는 작품 앞에 섰다.

“아람아! 브이로그 촬영 중이야? 내 작품도 인터뷰 하게?”

작품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 아람이가 다가온 걸 눈치 챈 이수가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 넌 특별히 음소거하고 인터뷰 해줄게!”

“야! 나 너무 미워하지 마! 어제 투표로 브이로그 촬영자 결정했다니까!”

“들었거든! 신청자 아무도 안 나오니까 네가 나 추천했다며!”

“우리 이쁜 아람이! 넌 작품 거의 마무리 했잖아. 다른 애들은 다들 작품 마무리 한다고 바쁘니까. 네가 이번엔


봐주라! 응? 응!”

이수가 콧소리를 섞어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자 아람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알았어! 지지배 거기까지! 징그러 절루 가!”

“쳇! 다들 나만 보면 절루 가래.”

“근데 너 출품작 원래 풍경화 아니었어? 갑자기 웬 인물화?”

“아! 지난달에 운명을 만났거든! 히히히”

그랬다 반장 이수의 캔버스 안엔 해변을 바라보며 서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흠..왠지 그림 속 남자 뒷모습 유성오빠 느낌이 조금 나네.’

그렇게 아람은 학교 홍보 브이로그를 촬영하기 위해 동양화실로 이동했고 아람이 떠난 자리에 이수의 푸념이
들렸다.

“헐 진짜 인터뷰 없이 그냥 가버린 거야? 아닌가? 방금 대화가 인터뷰였나?”

:
그렇게 아람은 각과의 미전 준비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영상을 들고 편집을 위해 교내 방송실로 이동했고 이어
아람은 그날 홍보 영상의 아나운서로 참여했다.

교회

***

학교에서 지친 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아람을 확인한 유성은 차에서 내려 아람을 마중했다.

“오늘 학교에서 힘들었나 보네? 가방 이리 줘!”

“오빠 고마워. 오늘은 레알 좀 힘들었다. 휴!”

아람은 정말 피곤했는지 유성의 친절에 가방을 바로 넘겨줬다.

“차 뒷좌석에 빵 먹기 좋게 세팅해 놨어. 식기 전에 얼른 먹어.”

아람이 보다 한 발 앞서 차로 이동한 유성은 아람이 쉽게 탈 수 있도록 조수석 뒷문을 열어주었다.

“갑자기 급상승한 서비스 체험 때문이라도 이렇게 한 번씩 피곤한 거도 나름 괜찮네.”

아람이 피곤해 하면 막 던진 멘트 하나까지 유성은 모두 받아주었다.

“크... 아람 아가씨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응. 그래 한 기사! 집으로 가지!”

그렇게 유성은 아람이 탄 뒷문을 닫고 SUV 의 운전석에 올랐다.

운전석에 오른 유성의 귓가에 아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내가 병원 가느라 학교 빠졌잖아.”

“응 학교 빼고 병원 간 게 무슨 문제가 돼?”

뒷좌석에 앉은 아람의 약간은 흥분 한 듯 한 말을 들은 유성은 차에 시동을 걸며 일부러 목소리를 조금 낮춰


질문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지난주에 이번 미전 홍보영상으로 ‘너튜브’에 브이로그 촬영해서 올리기로 했거든. 근데 그


영상 담당자를 나로 정해 둔거야. 어제 병원 가서 학교에 없는 사이에...”

“헐...아람이 네한테는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유성은 아람이 피곤에 스트레스까지 받을세라 리액션까지 곁들여 가며 아람의 말에 공감해주었다.

“분명히 반장 그 계집애가 지난주에 내가 홍보 아이디어 회의 할 때 똑바로 협조 안했다고 복수하는 거야.”

“허! 그건 너희 반 반장이 좀 나빴네.”

아람의 말에 유성은 평소에 10 배는 되는 성의를 담아 대답하며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정도면 유성도 눈치가 많이
성장했다고 자신하며 아람의 말에 맞장구를 이어갔다.
“아냐 그 정도로 나쁜 애는 아냐. 따로 미안하다고도 했어.”

“하하! 그럼 아람이 많이 피곤 할 텐데 이제 출발 한다! 벨트 했지?”

“이제 차에 탔어. 금방 갈 거야. 잠시만 엄마! 응? 오빠 방금 뭐라고 했어?”

“어? 엄...엄마랑 전화 중이었어? 아! 안전벨트 했는지 물었어.”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유성은 어디선가 조금씩 민망함이 피어남을 알았다.

“응 오빠. 벨트 맸어. 엄마 이제 출발한데. 나 배고파서 빵 좀 먹게 전화 끊을게. 미안해. 대신 엄마 빵도


남겨서 가져갈게.”

그랬다. 아람은 차에 타자마자 무선 이어폰을 이용해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유성이 자신의 멘트에
일일이 대답했단 걸 다행히(?) 인지하지 못해 유성 혼자만의 해프닝이 되었다.

“어 그래 그럼 출발한다.”

혼자만 아는 민망함에 유성은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 엑셀에 발을 올렸다.

***

유성은 캡슐 내부에서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가끔 울리는 알림 때문에 불편한 적이 잦았다. 그런 이유로


고니와 대화가 가능한 이후 고니를 통해 경험치 알림을 차단해 두었었다.

오랜만에 유성은 늦은 밤 캡슐에 오르기 전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고니야 내 상태창이랑 스탯 확인 좀 부탁할게.”

-네 한유성님의 상태창과 스탯창을 홀로그램형식으로 출력합니다.

[스...팟! ]

[체험병 : 한유성]

[칭호 : ‘겸인지용(兼人之勇)’]

[힘:15 민첩:21 체력:20 정신력:16]

[취사병 체험 LV.6 EXP 770/1920]

[운전병 체험 LV.6 EXP 320/1920]

[소총사격 체험 LV.6 EXP 140/1920]

[수류탄 투척 체험 LV.4 EXP 10/480 ]

[병영 축구 체험 LV.5 EXP 920/960 ]

[화생방 훈련 체험 LV.1 EXP 50/60 ]

[행군 체험 LV.2 EXP 70/120 ]


[전투 수영 체험 LV.2 EXP 70/120 ]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도로주행 만점, 일발필중, 선빵 필승 ]

[획득 스킬 : 응급치료, 물리치료, 주변정찰, 동체시력, 해상구조 ..... ]

[융합 스킬 : 치료, 고급 제빵 ]

[보유 아이템 : 축구심판의 호루라기, 레시피 북, 신경 안정제, 전투화, 군용방수시계 ..... ]

“민첩은 20 이 넘었네. 힘만 조금 더 키우면 정신력 빼곤 다 20 이 되겠네.”

-네 한유성님 힘, 민첩, 체력, 정신력이 모두 20 을 넘게 되면 한유성님의 몸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리라


예상됩니다.

유성은 예전에 자고 일어나니 달라진 신체에 대해 고니에게 물어 알고 있었다.

“아 지난번에 자다 깨니 몸이 달라진 거처럼 될 수 있단 말이지? 그 땐 스탯이 모두 10 넘어서 몸이 대칭이


되었다고 했었지? 후후 자다 깨니 갑자기 생긴 복근 때문에 얼마나 놀랐었는지..크크”

유성은 처음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접속한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어가는 시점에서 자신의 몸이 홀로그램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듯 많이도 발전했다는 걸 뿌듯해 하며 오늘도 캡슐에 접속했다.

[사용자 확인을 위해 홍채 인식을 시도합니다. 확인 중에는 눈을 감지 마세요.]

[삐삐......삐! 사용자 확인이 완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 병영체험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와 신체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삐삐......삐! 동기화가 완료 되었습니다. ]

[경고 : 장시간 가상현실 접속은 신체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

[‘진짜 사나이’ 접속을 환영합니다.]

[본 프로그램은 국군장병의 병영생활 체험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입니다.]

:
:

그렇게 오늘도 유성은 국방부에 접속해 자신의 스펙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

시간은 흘러 아람 학교 미술부의 큰 행사인 미전이 있는 금요일이 되었다.

유성은 아침에 아람을 학교에 데려다 준 후 받은 초대장을 보았다.

초대장이 없이도 출입은 가능하지만 초대장이 있으면 작품에 관한 설명이 있는 팸플릿을 따로 받을 수 있다고
아람이 말했다.

‘미술 전시회 초대장이라... 고니야 근데 미전 선물로 꽃다발이면 괜찮을 라나?’

-네 한유성님 꽃다발도 괜찮지만 유성님이 수제로 만든 축하 케이크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추천합니다.

‘흠...그래 그럼 만들어 가지 뭐! 아람이가 빵을 좋아하긴 하지...’

그렇게 오늘도 유성은 아람의 ‘빵 셔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카페 빈’으로 돌아와 까망이에 오른 유성은 축하 케익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니야 아람이가 초코를 좋아하니 초코 케익으로 가자’

-네 한유성님 현재 무기고에 있는 재료와 미전이 열리는 장소를 고려해서 비교적 먹기도 편한 ‘초코 수플레 치즈
케이크’를 추천합니다.

‘응 부탁해!’

-네 한유성님 필요한 재료는 냉장고를 통해 무기고에서 이동시키도록 하겠습니다.

“OK! Go!!”

유성의 말을 들은 고니가 유성의 눈앞으로 홀로그램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이제 유성의 무기고에는 유성이 틈만 나면 하나씩 쟁여놓아 웬만한 음식 재료는 다 준비 되어 있었다.

유성은 케이크가 오븐에서 나왔을 때 옆면이 쭈글 거리지 않고 매끈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테프론 시트에 버터와
슈가파우더를 먼저 작업했다.

테프론 시트에 버터를 정성스레 발랐다.

“버터...스윽...버터...스윽...”

버터가 꼼꼼하게 뭍은 테프론 시트 위에 슈가 파우더를 톡톡톡 골고루 뿌렸다.

“슈가...톡...톡.. 슈가...톡...톡....”

그렇게 준비한 테프론 시트를 케익틀에 넣어 준비했다.


유성은 본격적으로 케익 베이스 만들기에 들어갔다.

크림치즈에 뜨겁게 데운 우유를 120g 씩 볼에 넣고 휘퍼로 잘 섞어주었다.

“치즈...우유....휘적..휘적...치즈..우유...휘적 휘적...”

그리고 다크 초콜릿 110g 을 넣고 다시 휘퍼로 계속 저어주었다.

“치즈우유....초코....휘적 휘적...치즈우유....초코....휘적 휘적...”

유성은 일반인에 비해 아주 빠른 속도로 휘핑하는 중이라 초콜릿도 금방 녹았다.

유성은 달걀 두 개를 노른자와 흰자로 각각 불리해 흰자는 머랭에 사용하도록 옆에 두고 노른자는 지금 만들고


있는 반죽에 넣었다. 그리고 역시 휘퍼로 계속 저어주었다.

“노른자...까매지도록..휘적 휘적...노른자...까매지도록..휘적 휘적...”

이후 박력분, 옥수수가루, 코코아가루를 추가한 유성은 쉬지 않고 계속 저어주었다.

“지겹지만...휘적 휘적...끝나가니까 휘적..휘적...”

그렇게 만들어진 걸쭉한 반죽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유성은 체에 한번 걸러 주었다.

그리고 옆에 준비되어 있는 달걀흰자를 볼에 담고 머랭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는 핸드믹서를 이용해 작업하는 유성이다.

그렇게 만든 머랭과 반죽을 섞어주고 다시 마지막으로 저어주었다.

“반죽....머랭... 휘적 휘적...반죽....머랭... 휘적 휘적...”

그렇게 젓기를 반복해서 만든 케익 반죽을 아까 만든 케익틀에 넣어준 후 중탕을 이용해 오븐에서 굽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렇게 완성된 초코 수플레 치즈 케이크를 곱게 포장하려던 유성은 언제부턴가 다가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외숙모를 보았다. 아니 외숙모의 시선은 유성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유성이 만든 케익에 가있었다.

“어 숙모 언제 왔어요?”

“그 케익이 오븐에서 나올 때부터! 일단 그 케익은 내가 먼저 사먹을게!”

숙모는 초코 케익도 매장에 판매를 위해 만든 케익이라 생각한 듯 했다.

“이건 팔려고 만든 게 아닌데...에이..그럼 우리 나눠 먹죠! 숙모 잠시 만요.”

유성도 맛이 궁금했던 터라 일단 먹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케익을 시식하기 위해 카페 안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나 포크랑 칼 좀 가져 올게.”
“네 숙모!”

숙모가 포크와 칼을 가지러 간 사이 유성은 고니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고니야 스킬 보정 사용해조!’

-네 한유성님 스킬 보정을 사용합니다.

[스...팟]

[우...웅...우...웅... ]

그렇게 유성은 스킬 사용을 위해 양손을 케익위로 이동했고, 케익 안에 녹아 있는 각종 재료들은 골고루 자리를


잡아 갔다.

20 초 가량의 시간이 흐른 뒤 유성은 테이블로 포크를 들고 다가온 외숙모에게 말했다.

“숙모 이제 먹어도 되요!”

“그래...잘 먹을게 유성아. 근데 너 교회는 언제부터 다닌 거니?”

“네? 교회요? 초등학교 때 친구 따라 잠깐? 갔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일단 먹죠!”

그랬다. 유성의 외숙모는 유성이 스킬 보정을 사용하는 모습을 포크를 가져오다 보며 유성이 식사 전 진지하게
기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촉...촉...달달...오믈..오믈...”

“냠냠..유성아 이거도 메뉴에 추가하자. 정말 달달한 게 행복해지는 맛이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유성은 둘의 입맛을 통과한 ‘초코 수플레 치즈 케이크’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

-Episode (아람과 엄마의 통화내용)

아람의 엄마는 연락도 없이 늦는 딸 걱정에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띠릭!]

“아람아!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니? 연락이 왜 없어?”

[어제 내가 병원 가느라 학교 빠졌잖아.]

“학교에는 최 관장이 미리 연락 했을 건데?”

[아니 그게 아니라 지난주에 이번 미전 홍보영상으로 ‘너튜브’에 브이로그 촬영해서 올리기로 했거든. 근데 그


영상 담당자를 나로 정해 둔거야. 어제 병원 가서 학교에 없는 사이에...]
“미친! 어떤 년이! 우리 귀한 딸내미 스케줄을 지 맘대로 조종해?”

[분명히 반장 그 계집애가 내가 지난주에 홍보 아이디어 회의 할 때 똑바로 협조 안했다고 복수하는 거야.]

“엄마가 금요일에 미전 보러 가서 혼내 줄까?”

[아냐 그 정도로 나쁜 애는 아냐. 따로 미안하다고도 했어.]

“그럼 마음 넓은 우리 딸이 봐줘라. 근데 언제 오니?”

[이제 차에 탔어. 금방 갈 거야. 잠시만 엄마! 응? 오빠 방금 뭐라고 했어?]

“아까부터 옆에서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기에 난 유성이 렙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응 오빠. 벨트 맸어. 엄마 이제 출발한데. 나 배고파서 빵 좀 먹게 전화 끊을게. 미안해. 대신 엄마 빵도


남겨서 가져갈게.]

“응. 그래 조심히 오고 이따 봐.”

[딸깍.]

휴대폰을 내려놓은 김 화백은 아람의 말을 듣고 아침에 먹은 빵 생각이 나서 침을 꿀꺽 삼켰다.

미전

***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집무실에서 ‘빵빠레’같은 휴대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발신자를 확인한 김 장관이 두 손으로 깍듯이 전화를 받았다.

“네 어르신 전화 받았습니다.”

[김 장관 요즘 바쁜가?]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챙겨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조만간 찾아뵙고 인사드리려고 했습니다.”

[허허허. 빈말이라도 놔두게. 나랏일 하는 사람이 엉덩이가 무거워야지. 그런데 김 장관 요즘 듣기 싫은 말이


자주 들리는 것 같던데...]

“듣기 싫은 말씀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르신?”

[허허허 일하라고 그 자리 앉혀 놨더니 진짜 나랏일만 하고 있어. 국방부에서 개발했던 그 가상현실


프로그램이던가? 전에 한 번 폐기할 것 같더니 요즘 다시 그 삼족오 프로그램인가 프로젝튼가 계속 말이
나오던데... ]

“네. 어르신. 아무래도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간 국방비가 적지 않다보니 아무런 성과 없이 폐기까지 하기엔 국방
예산 낭비가 심하다는 중론 때문에 다시 삼족오 프로젝트 활용 방안을 찾으라고 위에서 계속 지시가
내려와서...”
[이봐! 김 장관 내가 당신을 그 자리에 앉힌 게 그거 막으라고 앉힌 거지. 거기서 그 사람들 일 해 주라고 거기
앉힌 게 아니지 않나? 지금 정권이 계속 갈 것 같아요? 이제 얼마 안 남지 않았나?! ]

“네. 어르신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 김 장관 당신 아니라도 열심히 하려는 사람은 많아. 난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필요 없어요.
당신 아직도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뭔지 모르겠어요? 어려우면 그만 거기서 내려와도 되고. ]

“아닙니다. 어르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허허허. 기회는 내가 주고 말고 하는 게 아니지! 당신이 눈앞에 있는 기회를 직접 잡느냐 그러지 못하고


놓치느냐 그건 김 장관 당신 몫이지. 그럼 기회가 눈앞에 있을 때 잘 잡길 바래요. 그럼 바쁠 텐데. 좋은 주말
보내게. 김 장관. 딸깍! ]

“네! 들어가십시오. 어르신!”

전화가 끊어진 휴대폰을 들고 90 도 인사를 하는 김 장관이었다.

“후...”

크게 한숨을 쉬고 난 국방부 장관은 자신의 집무실 전화에 연결된 인터폰을 눌렀다.

“삐...국방부 차관 연결해!”

[네 장관님! ]

“허...이래서 내가 담배를 못 끊지!”

현재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국방부 장관이 누군가와 통화를 끝내고 집무실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있었다.

[장관님 정 차관 연결 되었습니다. 삐! ]

“어 그래 정 차관! 요즘별일 없나?”

[네 장관님 덕분에 잘 지냅니다. 요즘은 프로그램 삼족오 활용덕분에 더 바쁩니다. 하하하 ]

정 차관의 삼족오 얘기에 김 장관의 아치가 살짝 찌푸려졌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이 얘기를 이어갔다.

“그러게 왜! 일을 계속 만들고 그래 이 사람아! 그러니까 바쁘지.”

[국민의 세금 받아서 일하는데 그럴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평소 누가 군인 출신 아니라고 할까봐 말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대화를 구사하는 정 차관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삼족오 프로그램 말이야. 예전처럼 문제점은 없나?”

[오! 드디어 장관님도 프로그램에 관심이 생기셨나봅니다? 프로그램에서 특별하게 발견된 문제점은 없고, 오히려
프로그램을 체험한 장병들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높은 만족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
“음...예전에 가끔 나오던 얘기처럼 캡슐에서 사고 같은 건 없었나?”

[사고라면? 아! 예전에는 가상현실 동기화 비율이 낮아서 일으키는 사이버 멀미 현상이 일부 있었고, 요즘은
개인별로 자신의 적정시간을 엄격하게 설정해 놓고 캡슐에 접속하는 터라 크게 위험은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신체 리듬이 많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캡슐과 연결이 끊어지도록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큼...요즘 프로그램이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하던데 그럼 문제점도 더 많이 발생하지 않겠나?”

[네 장관님 안 그래도 다음 주 월요일 오전 회의 후에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 음. 장관님 그러지 말고 혹시


월요일 오전 회의에 직접 참석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보고드릴 것도 있으니 그편이 훨씬 나을 듯합니다. ]

“그래? 그럼 월요일 회의에서 보자고 정 차관.”

[네 들어가십시오. 장관님. 철컥 ]

그렇게 전화를 끊은 김 장관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흠. 삼족오라. 다리가 세 개인 새라. 월요일 회의에서 그 다리 하나씩 분질러 주마. 난 아직 기회를 놓치면 안
되거든.”

김 장관은 자신의 집무실 탁자에 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분지르듯이 비벼 끄며 말했다.

***

유성은 ‘카페 빈’에서 오전에 초코 수플레 케익을 대량 생산(?)했다. 그리고 시간이 점심시간을 지난 걸
확인하고 외숙모와 점심을 함께했다.

“유성아! 너 요즘 날이 갈수록 요리가 느는 거 같다.”

“하하하. 그러게요. 제가 요리에 숨은 재능이 있었나 보더라고요.”

“그러게 요리 재능이 그동안은 지하실에라도 숨어 있었나 보네. 분명히 네 삼촌이 캡슐방 할 때는 유성이는
요리에 1 도 재능이 없어서 라면 조리기가 꼭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요리를 잘 할 줄 누가 알았겠어?”

유성이 외숙모의 말을 들으니 대학에 떨어지고 난 후 캡슐 방에서 알바 초기에 매일 멍한 상태로 손님들의 주문에
생각 없이 라면을 끓였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하하. 그랬죠. 라면 조리기를 사게 된 게 저 때문이었죠. 매번 손님들한테 끓인 라면에 국물이 어디


갔냐고...그래서 물 좀 더 부어 나가면 면이 안 보인다고...”

“유성이 너 설마 그 땐 일부러 그렇게 끓인 건 아니지?”

“설마요. 그냥 요리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죠. 누군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이렇게 기뻐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숙모 찌개 식겠어요. 얼른 드세요.”

“응. 그래! 잘 먹을게!”

그렇게 아람의 학교로 출발하기 전에 이제는 보정 스킬 덕분에 어느 맛 집 부럽지 않은 맛을 자랑하는 김치찌개를


끓여 외숙모와 함께 점심을 해결한 유성은 카페를 나섰다.

“케익도 다 만들었고, 이제 슬슬 미술 작품을 만나러 가볼까?”


SUV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걸며 얘기하는 유성에게 고니가 내비를 대신했다.

-네 한유성님 아람양 학교까지 가장 빠른 길을 검색해 홀로그램으로 안내 합니다.

“고니야 고마워!”

-네 한유성님 저도 잘 먹겠습니다.

차량을 출발하며 얼핏 조수석에 있는 새끼고양이 고니를 바라본 유성이 미소 지었다.

“맛있게 먹어주면 나도 고맙지!”

-할짝..할짝..냥..냥...할짝..할짝...냐앙!

조수석에는 유성이 방금 만든 초코 수플레 케익 조각을 새끼 고양이 고니가 열심히 먹고 있었다. 한 달 전과는


달리 조금은 자란 것 같기도 한 고니의 모습에 유성이 물었다.

“고니야? 너 혹시 자랐냐?”

-네 한유성님 레벨이 성장함에 따라 저의 몸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 매일 같이 있다 보니 네가 자란 것도 몰랐네. 어? 그러고 보니 너도 레벨이 5 였지?”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 현재 저의 레벨은 5 로 확인됩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레벨이 5 가 될 때마다 특수 기능이 하나씩 생기던데...너도 그러면 레벨이 5 가 되면서
새로 생긴 특수 기능 같은 게 있어?”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

그렇게 고니와 얘기를 나누며 아람의 학교에 도착한 유성은 아침과는 달리 미전 때문에 방문한 외부 관람객을
배려해 학교 측에서 운동장 일부를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 해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도 학교 내로 진입해 차를 주차한 후 안내판이 있음에도 이제는 길 찾기에 더 익숙한 ‘주변 정찰’ 스킬을
사용해 미전이 열리는 건물 앞으로 이동했다.

‘이 건물인가 보네?’

-네 그렇습니다. 유성님. 건물 안쪽에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전 초대장을 들고 입장하는 유성에게 입구에서 팸플릿을 나눠 준 학생이 급히 건물 안으로 향하려는 유성을


불렀다.

“저...저기요!”

‘아! 여기서도 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구나!’


오늘 아람의 초대에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지난 번 동창회 때문에 백화점에서 장만했던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세팅한 유성은 자신의 비주얼에 한 층 더 자신감이 플러스 되어 있었다.

“네? 무슨 일이죠 학생?”

유성이 돌아보며 느끼하게 얘기하자 유성을 불렀던 학생이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저기..죄송한데...건물 내부로 애완동물 동반 입장은 불가능 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네 그렇군요.”

혼자 머쓱해진 유성이 가슴에 안긴 고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난처해했다.

“혹시 고양이 캐리어라도 있으면 입장 가능하신데...”

“아! 그럼 잠시 차에 다녀올게요.”

그렇게 학생에게 설명을 들은 유성은 주차 해둔 SUV 안으로 이동해 ‘왕진 가방’을 고니가 들어갈 만한 캐리어
형태로 소환했다.

-한유성님 같이 미술품 관람할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나도 혼자 보단 너랑 같이 관람하면 더 재미있을 거야! 갑갑해도 조금만 참아!”

그랬다. 고니에게 유성을 통해 현실에서 체험해야할 경험은 아직 무궁무진 했던 것이다. 이를 알고 있는 유성은


고니와 함께 미전에 들어가 인터넷이 아닌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웬만하면 고니와 같이 하려했다.

그렇게 고니가 들어있는 캐리어를 한쪽 어깨에 메고 미전이 열리고 있는 건물로 들어선 유성은 팸플릿에 소개된
출품작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으며 안내 표지판에 따라 천천히 전시회장 안으로 이동했다.

전시장 입구에는 프로젝트 빔을 이용한 대형 화면에 ‘너튜브’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낯설지 않아 멈추어 바라보니 지난 화요일 아람이 고생하며 촬영했던 영상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찍느라 아람이가 고생했나 보네.’

-네 한유성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는 영상으로 판단됩니다.

전시된 작품 아래에는 학생의 지인들이 찾아와 놓고 갔음 직한 꽃다발들이 여럿 놓여 있었다. 천천히 작품을


둘러보던 유성은 한 작품 앞에 멈춰 스킬 측정을 사용해 보았다.

‘스킬 측정!’

[스..팟]

[ 작품 : 화룡점정(畵龍點睛)

작가 : 정점룡

가격 : 형성되지 않음
작품 설명 : 작가의 이름을 모티브로 하여 아이디어를 가져와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화룡점정을 거꾸로 읽으면 작가의 이름과 유사하다.

작품 속 용의 눈은 화룡점정의 고사와 마찬가지로 그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고사처럼 눈을 그려 넣더라도 용이


살아서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적인 용이라기보다는 만화에서 볼 수 있음직한 동양의
설화 속 용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참고 내용 : 양(梁)나라의 장승요(張僧繇)가 금릉(金陵: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에 용 두 마리를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까닭을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며 용이 벽을 차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편 어떤 일이 총체적으로는 잘 되었는데 어딘가 한군데 부족한 점이 있을 때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고도 한다. - 출처 네이 X ]

역시 학생의 작품이라 그런지 가격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성은 측정 스킬을 통해 학생이 그린 미술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쉬웠다.

‘이 친구 그림은 웹툰 쪽이 어울리겠네.’

-네 한유성님 검색을 통해 예전에 출간 된 일본 만화 ‘용 볼’의 ‘용신’의 그림 풍과 유사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의 그림과 인터넷에서 고니가 찾은 그림을 비교하기 쉽도록 홀로그램을 통해 유성에게 보여 주었다.

‘어 그러네! 나중에 이 학생 유명 웹툰 작가가 될지도 모르겠군. 후훗’

그렇게 유성과 고니의 미술 작품 관람이 시작 되었다.

소파

***

유성은 측정 스킬을 사용해 고니와 대화를 나누며 학생의 작품을 하나하나 관람했다.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그런지 전시장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유성과 고니는 조용히 작품을 관람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바닷가가 보이는 한 쪽에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남자를 그린 그림 앞에 선 유성은 측정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측정!’

[스..팟!]

‘어? 이건 이수 작품인가보네.’

[작품 : 운 명

작가 : 이 수
가격 : 형성되지 않음

작품 설명 : 노을이 지고 있는 광안 대교와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뒷모습을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남자의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점점 빛을 잃어 어둡게 표현한 데 반해 오로지 남자에게만 빛이 점점 모여들어 밝은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주위 사물과 남자의 명암 대비를 통해 조금 몽환적인 느낌을 주려하고 있다. 모든 빛이
남자에게만 집중 된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운명적인 첫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

‘헐 이수 또 남자 생겼나 보네. 반장이라는 게 공부도 신경 써야 할 텐데. 그래도 그림은 잘 그렸네. 근데 그림


속 남자! 옷 스타일이 나랑 비슷한 것 같지?’

-네 한유성님 그림 속 남자의 스타일이 지금 한유성님의 복장과 90% 정도 매치 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역시 그 때 백화점에서 옷 사길 잘했어.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 맞나봐. 흐흐흐’

그랬다. 유성은 특히 자신의 연애에 대해서는 눈치가 1 도 없었다.

유성에게 있는 연애세포의 등급을 주위에서 매긴다면 9 등급을 주지 않았을까 예측한다.

그렇게 이수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한 유성은 작품 아래에 꽃다발 대신에 포장한 ‘초코 수플레 치즈 케이크’
를 얌전하게 두고 돌아섰다.

유성은 몇 개의 작품을 더 돌아보다 보니 아람의 작품도 맞이할 수 있었다.

[작품 : 벚꽃 가득한 산길

작가 : 김아람

가격 : 형성되어 있지 않음

작품설명 : 캔버스에 유채물감을 사용해 그렸으며, 빛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 그림에는 붉은 양산을 쓴 엄마와 노란 모자를 쓴 딸이 벚꽃 가득한 황령산 산길을 따라 걷고 있다.

작가 특유의 부드러운 붓질과 색채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어루만지듯이 긴 터치가 사용되어 부드럽고 온화한 봄의 따스한 느낌을 표현했다.

구도는 가운데 비탈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하얀색과 분홍색의 벚꽃과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구도를 통해 우리는 선명하고 여유 있는 자연이 풍성히 담긴 모습을 통해 작가가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하며 그린 그림이라 예측할 수 있다. ]

‘아! 아람이 어릴 때 엄마랑 올랐던 황령산을 그렸나 보네. 정말 엄마 닮아서 그런지 그림 표현 실력이 대단하다!
마치 진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네!’

-네 한유성님. 아람양의 그림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중 한사람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독자적인 풍부한 색채로 유명했던 작가로 ‘풀잎이 가득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지금
아람양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예측 됩니다.

[스..팟]

고니의 설명과 함께 프랑스 화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언덕이 그려진 그림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와!..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람이도 그만큼 잘 그렸다는 얘기지?’

-네 한유성님 고등학생의 작품으로는 상위 0.01%에 들어가는 실력이라 판단됩니다.

‘흐흐 어쨌든 아람이 어마하게 잘 그린 그림도 고니 덕분에 잘 봤네.’

유성은 아람의 작품 아래에도 꽃다발 대신에 포장한 ‘초코 수플레 치즈 케이크’를 얌전히 놔두고 다음 작품들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꼼꼼하게 학생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관람한 유성은 생각보다 학생들이 힘들게 작품에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유성은 이대로 그냥 전시장을 지나치기에는 어딘가 허전했다.

‘초코 케잌 좀 잘라서 애들 나눠 줘야겠다.’

유성은 무기고 소환을 위해 전시장 옆 화장실로 이동했다.

‘고니야 무기고 소환해줘!’

-네 한유성님 무기고를 소환 합니다.

[띠링! ]

[소환수 ‘고니’ LV.5 EXP 200/960 ]

[소환수 ‘고니’의 레벨이 확인 되었습니다. ]

[삐삐삐....무기고의 레벨을 산정합니다. ]

[무기고 LV 은 소환수 ‘고니’ LV 과 동일합니다. ]

[무기고 LV.5 를 소환합니다. ]

[좀 더 높은 레벨의 무기고를 찾으신다면 소환수의 성장을 권합니다. ]

[스....파......팟!]

유성의 눈에만 보이는 하얀 빛이 휘몰아치더니 유성의 눈앞에 무기고가 나타났다.

[뚜벅 뚜벅]

무기고로 들어선 유성은 ‘무기고 마트’ 제과 코너로 이동해 오전에 만들어 둔 초코 수플레 치즈 케잌을 잔뜩
집어 먹기 편한 크기로 잘라 하나씩 개별 포장했다.
다시 전시장 내부로 돌아온 유성은 고니가 들어 있는 캐리어를 전시장 내부에 있는 소파위에 잠시 내려 두고
무기고 마트에서 챙겨온 케잌 박스를 들고 전시장 안을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성은 꽃다발 대신 학생들의 작품
아래에 조각 케잌을 하나씩 선물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관람객이 없는 건가? 곧 퇴근 시간 되면 차 막히겠다. 우리도 그럼 슬슬 나가 볼까?’

-네 한유성님 저녁 퇴근시간 이후 시간이 오후 시간에 비해 관람객이 증가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들 미전 준비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케잌이라도 맛있게 먹어 줬음 좋겠네.’

학생 모두에게 조각 케잌을 다 돌린 유성은 내심 흐뭇해하며 전시장 안에 설치된 소파에 두었던 고니가 든


캐리어를 다시 어깨에 메고 일어났다.

그렇게 유성과 고니는 아람의 학교 미전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나름 학생들에게 깜짝 선물도 전해 준 뒤 전시장
건물을 빠져 나왔다.

마침 아람도 오늘은 미전 끝나고 엄마와 둘이 가족 외식이라고 해서 유성은 부담 없이 이른 퇴근길에 오를 수


있었다.

***

사이버 부대장은 갑자기 울리는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확인하고, 예전 자신의 직속상관으로 있던 정 차관의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충성! 정 차관님 이렇게 금요일에 직접 전화를 다 주시고 오늘 술이라도 한잔 생각 있으신 겁니까?”

[하하하 이사람 김영란법 이후부터 술 끊었잖소! 별일은 아니고 다음 주 월요일 있을 오전 회의에 아마 김


장관님도 참석할 것 같소.]

“네? 갑자기 그 엉덩이 무겁기로 유명하신 국방부장관님이 직접 참석하신단 말씀입니까?”

김 장관의 오전 회의 참석 소식을 들은 이 준장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하하하 요즘 ‘삼족오’가 보통 핫한 게 아니지 않소. 아무리 관심 없던 김 장관님도 이제 엉덩이를 움직일


모양입디다.]

“아..네 그렇지 말입니다.”

갑자기 목소리 톤을 진지하게 바꾼 정 차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이 준장에게 넘어 왔다.

[저기 이 준장. 이번에는 ‘삼족오’가 지난번 같이 어이없는 이유로 발목을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서
말이지.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했으면 하는 마음에 전화를 한 걸세.]

사실 예전 ‘삼족오’ 프로그램이 폐기될 위기에 처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청문회 자리에서 국방부


장관이 발언했던 ‘사이버 멀미’의 위험성 때문에 사이버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사회적 여론이 갑자기
형성되었고, 뒤이어 인공지능 AI 에게 군사 작전 통제권을 맡기는 게 위험하다는 여론이 불같이 일어났었다.

그랬다. 국방부 장관은 청문회 이후 바른말 이미지로 오히려 국민들에게 인기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 인기로 인해
김 장관을 자리에서 내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네 차관님! 그렇지만 월요일까지 새로 자료 준비하려면 시간이 빠듯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하하! 아니지 자료 준비 하려면 시간이 빠듯한 게 아니라 솔직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소? ]

“네? 어떤 방법을 말씀하시는지?”

[꼭 자료를 준비해서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돌려 봤자 솔직히 그걸 꼼꼼하게 읽어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소?
내 장담하건데 분명히 자신의 부관들에게 자료 요약해서 다시 보고 올리라고 할 게 틀림없지 않소?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평소 우리하던 회의처럼 그냥 따로 자료 만들지 말고 평소대로 자료 없이 갑시다! ]

“네? 차관님 방금 전 준비를 철저하게 하라 지시하시고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 시는 게 저는 도저히 차관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하하 별거 아니고 그 전부터 항상 발표 잘하던 그 대위 있잖소! 그래! 산적같이 생긴! 중대장이던가? ]

“네! ‘삼족오’ 운용중대장 말씀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래 그 산적 대위가 앞에서 회의 진행하게 하자고! 아무리 준비가 철저해도 저쪽에서 꼬투리 잡으려고 하면
계속 늘어질거니 ‘삼족오’에 대해 전문가 하나 사회자로 세우고 옆에 패널처럼 실무 전문가들 주르륵 앉혀서
그냥 오전 회의 시간에 Q & A 로 갑시다! ]

“그래도 그러면 예상 질문을 뽑아야 하니..그것도 준비하는데 만만치...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하하 뭘 고민하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정 차관의 계획을 모두 들은 이 준장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차관님 그러면 시도해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이 준장. 월요일에 장관님 모시고 갈 테니 그 때 봐요. ]

“네 차관님 들어가십시오. 충성!”

[하하하 좋은 주말 보네요. 이 준장 철컥!]

***

-Episode

관람시간이 끝나고 관람객이 모두 빠져 나간 뒤 미술과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정리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회가 끝나고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그제야 배고픔이 느껴지는 학생들의 귓가에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우걱...우걱....쩝...쩝....달콤...달콤...냠..냠”

소리를 듣고 돌아 본 학생들은 한쪽 구석에서 조각 케이크를 열심히 먹고 있는 친구를 목격 할 수 있었다.


“넌 정리 안하고 뭐 먹냐?”

“쩝...쩝...관람객이 주고 간 선물! 흐흐 이거 개맛있어!”

“뭐? 어라? ‘카페 빈’ 이건가 보네. 나도 있어!”

“어! 그러게 나도 있네!”

전시회장을 정리하던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 아래 꽃다발 무리 속에 조각 케잌을 발견하고 하나 둘씩 포장을 뜯었다.

“음...촉촉해! 마냥 달지만은 않은 게 괜찮네.”

“와! 존맛탱!”

“초코 케잌! 살찌는데.. 쩝..쩝..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꽃다발 보다는 먹을게 훨씬 실용적이네!”

그렇게 학생들은 전시 된 자신의 작품 아래 또는 옆에 있는 조각 케잌 포장을 발견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당 떨어질 시간이었는데 딱 인걸!”

모두가 작은 조각 케잌 하나에 행복해 하는 이 때 단 한명의 학생만 전시장 내부에 있는 소파 주위를 서성이며


조각 케잌을 계속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조각 케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 난? 왜 없어? 아무리 봐도 없는데? 왜 나만 없어?!”

허탈해 하는 학생의 앞에는 브이로그에서 아람이 작품인 줄 모르고 앉았던 튼튼한 소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유성은 고니가 든 캐리어 가방을 잠시 올려 두었던 전시장 내부의 소파가 설마 작품일 거라고는 1
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취사작전

***

오늘도 바쁘게 하루를 보낸 유성은 무기고 안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한 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의 방에
있는 캡슐을 바라보다 고니에게 물었다.

“고니야 지금 내가 가진 요리 스킬 3 개가 모두 육군, 해군, 공군의 조리부사관 체험으로 얻은 거자나?”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 그 때 모두 작전 초과 달성은 하지 못했지만 스킬 획득에는 모두 성공하셨습니다.

“그럼 지금 실력으로 다시 해보면 예전에 못했던 작전 초과 달성도 가능 하지 않을까?”


요즘 고급제빵 스킬로 인해 요리에 재미를 붙인 유성은 혹시나 스킬 추가 습득이 가능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기대를 품고 고니에게 물었다.

-부사관 메뉴는 최초 작전 이후 접속에서는 초과 달성을 하더라도 더 이상 스킬이나 아이템 획득이 불가능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 그래? 그럼 지금 가진 요리 스킬에서 더 업그레이드 할 방법은 없는 거네...”

고급 제빵으로 요즘 한 창 재미를 보고 있는 유성은 고니의 얘기를 듣고 아쉬움을 느꼈다.

-한유성님께서 부사관 메뉴에서 요리에 대한 스킬이나 아이템 획득을 원하시는 거면 아직 한 군데가 더 남아


있습니다.

“그래? 거기가 어딘데?”

그렇게 고니와 얘기를 나눈 유성은 국방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접속해 부사관 메뉴를 소환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띠링! ]

[해병대 조리 부사관 메뉴를 선택하셨습니다. ]

[잠시 후 해병대 작전 지역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그랬다. 유성은 육군, 해군, 공군은 한 번씩 체험했지만 아직 해병대는 체험해 본적이 없었다.

‘이제 요리쯤이야 보정 스킬도 있으니 웬만하면 다 잘 되겠지? 하하하’

유성은 처음 접속해 보는 해병대이기에 애써 불안한 마음을 웃음으로 무마하며 긴장을 풀었다.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사실 유성은 삼군의 조리 부사관 메뉴를 모두 체험했기에 이번 해병대 조리 부사관 메뉴도 지난 가상현실 프로그램
접속에서 경험했던 넓고 쾌적했던 병영식당과 밝고 깨끗한 조리시설을 갖춘 조리장과 그 안에 정리정돈 되어 있는
조리 기구 등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넓고 쾌적한 환경의 취사장이 아니라 어두운 밤 기존의 야전 훈련에서 접했던 흙으로 된 땅위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해 하며 두리번거리던 유성은 조금씩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자신의 앞쪽에 세워져 있는 트럭으로
보이는 물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띠링! ]

[작전명 : ‘야전 취사를 통해 80%이상의 만족도 받기’

-해병대 장병이 새벽 훈련을 시작하기 전 맛있고 든든한 식사를 제공해 해병대 장병들의 사기를 고무시켜라.

-당신은 갓 부임한 해병대 신입 금양담당관(하사 한유성)으로 훈련지역에 투입 되었다. 조리병들을 통솔해 200
명의 해병대 장병들에게 맛있는 배식에 성공하라.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취사 도구’ 획득 +@ ( 대원들의 만족도 80% 이상 )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취사 도구’ 획득 실패 ( 대원들의 만족도 80% 미만 ) ]

작전을 확인 한 유성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대형 트럭이 취사를 하기 위한 해병대 군용 트럭임을 예측 할 수


있었다.

[띠링!]

[붉은 선을 따라 이동하면 기동형 취사장비안에서 조리가 가능합니다. ]

자신의 발 밑으로 이어져 있는 레드 카펫을 확인한 유성은 고니에게 말했다.

‘고니야 일단 주변 상황 파악하게 스킬 3 종 세트 상시 발동 모드 적용해줘!’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 ‘정보확인’, ‘추적’ 스킬을 상시 발동하는데 동의하시면 바로 방어태세로


전환합니다.

‘어! 부탁할게! 고니야’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 사용으로 전방에 보이는 트럭 안에 장병 4 명의 움직임이 확인 되었습니다.

‘응! 가보자!’

그렇게 유성은 앞에 보이는 기동형 취사장비라 불리는 트럭을 향해 이동했다.

야전에서 취사가 가능한 군용 트레일러 안으로 이동한 유성은 생각보다 넓은 크기에 살짝 놀랐다.
‘햐! 넓네!’

평소 유성의 까망이 안을 원룸이라 표현한다면 여긴 그에 비하면 고급 빌라 수준이었다.

그렇게 차량 안을 둘러보던 유성의 앞으로 해병대에선 육군과는 다르게 단독무장이라 부르는 상태의 해병대 조리병
넷이 다가와 경례를 했다.

“필승! ”

평소와 바뀐 경례 구호 임에도 이제 빠르게 적응한 유성이 마주 경례했다.

“필승.”

‘역시 이번 작전을 깔끔하게 수행하기 전에 먼저 사병들의 도움을 받아야 겠지? 고니야 얘들도 NPC 는 아닌 거
같지?’

-네 한유성님 스킬사용을 통해 접근할 때 감청한 대화 내용 중에 ‘사이버 훈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NPC 사병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니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인 유성은 앞에 있는 해병들의 빨간 명찰에 황색으로 적힌 이름을 확인 하고 그중 제일


고참 취사병에게 질문했다.

“최 해병! 금일 급식에 대해 보고해봐!”

“쩝.. 반찬은 어제 저녁에 정한대로 차량에서 저희가 만들어 배식하기로 했고, 배식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밥은
병사들이 자신의 텐트 앞에서 직접 반합으로 지어 먹을 계획이지 말입니다.”

“흠...그럼 오늘 반찬은 무엇이지?”

“에이..급양관님! 애들 앞에서 암기력 테스트 그만하지 말입니다. 쩝..반찬은 김치와 오이무침입니다. 현재


김치는 미리 준비 되어 있고 오이무침만 빨리 준비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식으로 사과 반 개 씩 준비
되어 있지 말입니다.”

질문에 대답하는 태도가 영 개운치 않은 것도 있지만 메뉴의 내용 또한 유성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조리병의 말을 다 듣고 난 유성의 인상은 저도 모르게 찌푸려져 있었다.

“야! 최 해병! 메뉴에 국도 없냐? 너는 이거 먹고 싸우고 싶겠냐?”

“아니..어제 급양관님이 한번 해병은 자신이 처한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유성은 이대로는 작전을 성공하지 못할 예감이 강하게 들어 최 해병에게 더욱 성질을 부렸다.

“시끄러! 이래가지곤 조리 도구도 못 받겠다!”

유성의 알수 없는 말에 최 해병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했다.

“예?...저는 단지 어제 정한 메뉴에 있는 내용대로 말씀드렸습니다만....”

“야! 이 메뉴는 누가 결정 했는데?”


“어제 저녁 배식하고 나서 앞에 계신 급양관님이 직접 결정하셔서 여기에 써서 붙여 두셨잖습니까?”

최 해병이 억울해 하며 내뱉는 말을 듣고 난 후에야 NPC 상태의 급양관일 때 결정한 메뉴라는 것을 이해한
유성은 급하게 조리병들에게 각자 파트를 나눠 주었다.

“큼..큼...잘 알고 있군. 일단 최 해병 너는 오이무침 빨리 만들고, 거기 고 상병하고 조 일병 너희 둘은


장병들이 밥부터 빨리 지을 수 있게 나가서 쌀부터 씻어주고 식수 준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이병은 이따가
장병들 밥 먹을 때 조금이나마 먹기 편하게 김치부터 썰어! 조리병이라는 게 창의성은 국이라도 끓여 먹었어?
뭐해? 빨리 움직여!”

그렇게 장병들에게 줄 음식을 4 명의 조리병에게 지시한 유성은 고민에 빠졌다.

‘음...일단 밥도 중요하지만 그것 보다 사병들의 만족도가 더 중요한데 이대로는 안 봐도 숟가락 하나 못 받을


거 같은데.’

유성은 첨부터 말투가 맘에 들지 않았던 최 병장을 다시 불렀다.

“야! 최 병장! 너 남은 부식 재료 있는 거 꺼내 놔 봐!”

“쩝...남은 부식 재료는 원래 오늘 콩나물 국 하려던 거 밖에 없지 말입니다.”

최 해병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유성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야! 너 그럼 콩나물부터 빨리 다 씻고 다듬어!”

“네? 어제 콩나물국은 그냥 안하기로 하셨잖습니까? 그리고 저는 아까 오이 무침 하라고...하시지 않았습니까?”

“알았어! 콩나물만 빨리 가져와! 내가 다듬을게.”

유성은 최 해병이 가져 온 콩나물 시루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닙니다. 제가 다듬게 주시지 말입니다.”

“됐거든! 넌 오이나 무쳐!”

그렇게 유성은 최 병장에게 받은 콩나물을 다듬기 위해 계수대로 이동했고, 최 해병은 오이를 손질하면서도
유성에 대해 계속 투덜거림을 이어갔다.

“으! 저 NPC 급양관 완전 또라이네. 어제 지가 한 말도 몰라? 휴...우리 급양관님은 양반이었네.”

그렇게 최 병장의 자신의 부대에 있는 급양담당관에 대한 호감도가 유성의 도움(?)으로 조금 올랐다.

***

-Episode

아람의 학교 미전을 구경하고 퇴근하는 길. 유성은 이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한유성님 발신자가 이수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연결할까요?

“응! 연결해줘!”
[오빠! 아람이가 그러던데 이 ‘초코 수플레 치즈 케잌’ 오빠 작품이라며? 일부러 시간 내서 이수 작품 보로
우리학교 미전에 직접 왔다 간 거야?]

“아니 미전 보로 간 김에 이수 네 작품을 본거지.”

[칫! 오빠! 근데 다른 애들 건 다 조각이던데 내꺼만 조각이 아니었어! 이수는 케잌 받고 완전 대박 감동!


행복!]

“이수야! 너만이 아니라 너랑 아람이랑 둘이 똑같이 조각이 아니라 ‘초코 수플레 치즈 케잌’ 원형을
준비했었지.”

[어쩐지 내 것만 특별히 촉촉하고 달달하더라니... ]

“다 똑같이 촉촉하고 달달 할 건데?”

[..헤헤헤 어쨌든 맛있게 잘 먹었어!]

“케잌 또 먹고 싶으면 말해.”

[진짜? 오빠 고마워! 나 또 먹고 싶어. ]

“나도 고마워요. 손님! 앞으론 가게 와서 돈 내고 사드세요.”

[헐..근데 오빠 ‘카페 빈’은 어디야? ]

“위치를 묻는 거면 저기 남천동 빵집거리에 있고, 나와의 관계를 묻는 거면 외숙모 가게.”

[오! 눈치가 늘었어! 둘 다 물었던 거야. 저...근데 오빠 미전 왔을 때 혹시...내 작품 혹시 봤어?]

“응 당연히 봤으니까 케잌도 작품 아래에 두고 왔지.”

[그..그랬겠지? 근데 그림 보고 느끼는 거 없었어? ]

“당연히 있었지!”

[...큼...큼...어떤거? 아니다! 오빠! 부끄러우니까 말하지 마! ]

“크크 부끄러운 건 알고 그런 그림 그린거니?”

[오..오빠...역시...알아 본 거야? ]

“당연하지! 딱 보니까 알겠더라. 너 남자 생겼지?”

[....헐...야이 눈치 9 등급아! 철컥! ]

“크크 많이 부끄러운가 보네. 하하하”

유성은 자신의 눈치가 많이 좋아졌다라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한유성님 이수님과의 통화가 종료 되었습니다.


“하하 전화 끈을 때 보니 이수가 내 완벽한 추리에 살짝 당황 한거 같지 않았니?”

-죄송합니다. 아직 인간의 ‘당황’과 같은 감정 상태에 대해서는 학습이 부족해 유성님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 그래? 그럼 당황했다는 표현을 예를 들어 설명해 줄게.”

-감사합니다. 한유성님.

“만약에 내가 소변이 너무 급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저기 담벼락 옆에 주차된 트럭이 보여! 그래서
그 트럭 뒤에 살짝 숨어 벽에다가 급한 볼 일을 해결 하며 숨을 돌리고 있는데 그 트럭이 갑자기 앞으로 가버려!
그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당황’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 한유성님 약간은 학습이 된 것 같습니다.

“덧붙여 하나 더 말하면, 그렇게 전진해 가던 트럭이 갑자기 정지했다가 나를 향해 후진해 올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 ‘황당’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 한유성님의 예시를 이용한 설명으로 유익한 학습이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족도

***

유성은 차량에서 나와 쌀과 생수를 담당시킨 조리병 들에게로 이동했다. 마침 둘은 장병들에게 쌀과 식수를 나눠


줄 준비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너희 둘! 사병들에게 배식해 줄 때 2 인 1 조로 배식 해줘.”

“네 알겠습니다. 급양관님.”

“고 상병! 넌 반합에다가 쌀 2 인분씩 넣어 주고, 조 일병은 나머지 반합에다가 여기 콩나물 한 움큼씩 넣어줘!”

유성의 말을 들은 고 상병이 유성에게 이상하다는 투로 물었다.

“콩나물국은 어제 장병들이 야전에서 끓이면 실패가 많을 거라고 그냥 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식수탱크가 장착된 차량으로 막 이동하려던 유성이 고 상병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언제 콩나물국 끓인다고 했어? 사병들 배식할 때 나한테 와서 식수 받아 가라고 하고 이제 배식 시작해!”

조리병들에게 배식을 명령한 유성이 식수 탱크 앞으로 이동해 식수를 나눠 주려다 갑자기 스친 생각에 고니의
의견을 물었다.

‘고니야! 보정이란 건 어떤 대상을 측정한 수치를 보고 보정하니까 두 스킬이 연관이 있지 않을까?’

-네 한유성님 가능성이 높은 걸로 판단됩니다.

‘그럼 한번 사용해 봐야겠네. 스킬 측정! 보정!’

기대를 품고 사용한 유성에게 기다렸던 알림 음이 들렸다.


[띠링! ]

[스킬 ‘측정’과 스킬 ‘보정’을 동시에 사용하셨습니다. ]

[시스템에 등록 되어 있지 않은 스킬입니다. ]

[두 스킬의 융합 가능 여부를 판단합니다. ]

[두 스킬의 융합이 가능 합니다. ]

[두 스킬 ‘측정’과 ‘보정’이 융합되어 하나의 스킬 ‘정밀 보정’으로 등록됩니다. ]

[시스템에 등록 되지 않은 새로운 스킬을 융합으로 생성했습니다.]

[획득한 스킬의 융합 가능 유무에 따라 새로운 스킬을 생성 할 수 있습니다. ]

[기존의 획득 스킬은 새로운 스킬에 따라 상위 흡수 또는 유지 됩니다. ]

[스킬 ‘측정’과 스킬 ‘보정’은 유지 됩니다. ]

혹시나 하고 스킬을 동시에 사용한 유성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융합 스킬이 생겼다.

이번 융합 스킬은 이전 응급치료와 물리치료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치료와 비슷한 경우로 보였다.

‘자! 그럼 신상 스킬 사용해 볼까? 스킬 정밀보정!’

[띠링! ]

[정밀 보정할 대상을 지정해 주십시오.]

스킬을 사용한 유성의 눈앞에 그냥 보정 스킬을 사용했을 때와는 달리 대상을 지정해 달라는 메시지가 깜빡거렸다.

메시지를 확인한 유성은 급한 데로 자신의 앞에 있는 식수 탱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삐! 정밀 보정이 필요치 않은 상태의 대상입니다. ]

올바른 스킬의 사용처를 찾지 못해 이리 저리 둘러보는 유성의 앞으로 장병 둘이 다가와 반합을 내밀었다.

“필승! 물 받으러 왔습니다.”

“어? 그래! 이쪽으로 와!”

다가온 장병의 반합에 손을 가져다 댄 유성은 새로운 알람을 듣게 되었다.

[삐! 선택하신 장병의 단독무장 상태를 정밀 보정 하시겠습니까? ]

실험삼아 사용 한다고 해도 사이버 훈련 중인 사병에게 아까운 스킬을 낭비 할 순 없었다.

‘고니야 일단 ‘정밀 보정’ 스킬 사용 취소 해줘! 나중에 확인하자.’

-네 한유성님 스킬 ‘정밀보정’ 사용을 취소합니다.


[띠링! ]

[정밀 보정 스킬 사용이 취소됩니다. ]

그제야 유성은 장병들이 다가와 내민 반합에 식수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쌀은 콩나물이 끓는 동안 일단 이대로 그냥 물에 불려 두고, 콩나물만 먼저 다 끓고 난 뒤 반합에 있는 콩나물과


콩나물 삶은 물까지 모두 쌀 반합과 합쳐서 콩나물밥을 지으면 돼! 그리고 콩나물 끓는 동안 거품이 밖으로 흘러
넘쳐도 절대 뚜껑 열지 마! 여는 순간 너흰 비릿함을 맛보게 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유성은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온 장병들에게 쌀 반합과 콩나물 반합에 각각 물을 알맞게 공급해 주며 간단하게
‘콩나물밥’에 대해 친절하게 미소까지 더해 설명했다.

물론 2 인 1 조라고 해도 자그마치 100 번이나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유성의 조리 도구에 대한 집념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이버 훈련 급양관님 너무 친절하지 않냐?”

“그러게 말입니다. 물도 직접 따라주고 아무리 NPC 라지만 설명도 잘해주고 현실에선 저런 급양관 없지
말입니다.”

“당연하지! 난 작년 이등병 때 참가한 훈련에선 반합 밥 처음이라 설익혀서 그냥 생쌀을 물에 불려 먹는


기분이었어.”

그렇게 사병들에게 밥을 짓기 위한 식수를 친절한 설명과 함께 모두 공급해 준 유성은 앞에서 쌀과 콩나물을 다


나눠 준 조리병들을 자신의 앞으로 불렀다.

“야! 고 상병, 조 일병! 후식으로 나갈 사과 가져와서 씻어!”

고 상병은 유성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 눈빛이 마주치자 급히 꼬리를 말며 대답했다.

“네 그렇게까지.....당연히 하지 말입니다.”

유성은 둘에게 김치와 오이무침을 나눠 주기 전까지 사과를 모두 깨끗하게 씻어 둘 것을 명령하고 조리 차량


내부로 이동했다.

이제 저들이 사과를 씻는 동안 유성도 콩나물밥에 들어갈 양념장을 만들 계획이었다.

차량 안으로 다시 돌아오자 오이무침을 다 만들었는지 차량 한쪽에 앉아 투덜거리는 최 병장과 김치를 다 썰고


나서 칼과 도마를 정리하는 이 이병을 볼 수 있었다.

“야! 이 이병 넌 김치랑 오이무침 밖에 갖다 놓고 밖에 있는 고참 도와서 사과 씻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성의 눈에 들어온 최 병장! 유성에게 처음부터 싸가지 없는 말투로 미운 털이 박힌 그가 노는 꼴을 보기


좋을리 없었다.
‘고니야 이 차량 냉장고하고도 무기고 마트 연결 가능하니?’

-네 한유성님 가능합니다. 차량을 디지털 아이템으로 인식하도록 동기화 작업을 진행합니다. 삐..삐...삑!

고니가 무기고와 동기화를 진행한다고 들은 유성의 머릿속에 무기고 마트 안에 있는 라면이 떠올랐다.

“야! 최 해병! 너 라면 좀 끓이냐?”

“네? 당연히 잘 끓이지 말입니다.”

“그럼 여기 물 받아와!”

“헐...라면을 몇 개나? 끓이기에 이렇게 큰 솥을 주십니까?”

“너! 나! 그리고 바깥에 애들 두 개씩은 먹지 않냐?”

“네..알겠습니다.”

“야! 최 병장! 면 불면 죽어!”

그렇게 최병장이 식수 탱크를 향해 취사 트럭에서 나가자 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유성님 지금부터 차량 내부의 냉장고와 무기고 마트 연결이 완료 되어 사용 가능합니다.

‘OK! 고니야! 무기고 마트 안에 지난 남해에서 채취한 달래 좀 많이 있으려나? 달래랑 양념장 만들 재료 좀


이동 부탁해!’

-네 한유성님 지난 번 남해에서 채취했던 달래와 양념장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들을 냉장고로 이동시킵니다.

‘고마워 고니야! 아 그리고 여기 부대 안에 남아 있는 재료들 훈련 끝나면 사라질 텐데 모두 무기고 마트로 입고


가능할까?’

-네 한유성님 무기고와 동기화 시키려면 약 30 분 정도의 시간은 걸리겠지만 충분히 가능 하리라 판단됩니다.

‘그럼 오늘 먹을 거만 남겨두고 부식 창고에 있는 재료들 다 쓸어 가자! 하하하.’

그렇게 유성은 냉장고에서 ‘달래양념장’에 필요한 재료를 꺼내서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유성은 해병대 부식창고를 털어 무기고 마트가 빵빵해질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흥얼거리며 달래 양념장 만들기에
들어갔다.

‘스킬 재료손질!’

먼저 유성은 재료 손질 스킬을 통해 현란한 칼질과 함께 달래와 홍고추, 쪽파를 썰어서 그리고 마늘은 다져서
달래 양념장 재료를 준비했다.

‘스킬 보정!’

다음으로 보정 스킬을 통해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장에 달달함과 고소함을 잡아 줄 올리고당과 들기름 그리고
매콤함을 더해 줄 고춧가루와 다시 한 번 고소함을 책임져 줄 통깨가 들어 간 ‘달래 양념장’의 황금 비율을
찾아갔다.

잠시 후 솥에 물을 떠온 최 병장을 확인 한 유성이 달래 양념장에 들어갈 재료를 손질하며 말했다.

“야! 그 물에 라면 끓이면 한강도 범람 하겠는데?”

“쩝. 그럼 물 조금 버리고 끓이면 되지 말입니다.”

“아니다 어차피 지금 끓이면 면 다 불어서 못 먹어! 일단 장병들 밥 먹이고 우리도 먹자!”

“그럼 전 뭐합니까?”

“뭐하긴 밖에 나가서 애들 도와야지! 그리고 다 준비되면 배식하기 전에 나도 불러!”

그렇게 잠시 후 조리병들은 유성이 만든 ‘달래 양념장’과 배식 전 ‘보정’ 스킬을 사용해 한 단계 맛을


업그레이드 한 ‘김치’와 ‘오이무침’ 그리고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씻은 사과를 해병대 장병들에게 배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성은 따로 ‘콩나물밥’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해병대 장병들의 텐트 사이를 오가며 ‘불조절’ 스킬을
사용해 반합 아래에서 홀로 열심히 타오르고 있는 고체 연료의 불을 조절했다.

‘고니야 주변 정찰과 상태 확인으로 설익은 밥 또 있는지 확인해봐!’

-네 한유성님 앞에 있는 장병의 반합이 마지막으로 보입니다.

‘OK! 고마워 고니!’

“해병! 불이 좀 약하네! 이러면 쌀이 덜 익어서 먹기 힘들 수도 있어! 잠시만 내가 불 조절 좀 해볼게!”

“네 알겠습니다.”

‘스킬 불조절!’

[화르륵..화르륵 ]

“해병 이제 밥이 알맞게 익었을 거야 불 끄고 3 분정도만 뜸 들이고 달래장에 비벼 먹으면 속이 좀 든든할 거야.”

“네! 감사하지 말입니다.”

조리병들과 유성이 그렇게 바쁘게 움직인 덕택에 어느덧 해병대 장병들 모두가 맛있는 식사를 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은 이번 작전도 이정도 노력했으니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바쁘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유성의 귓가에도 어느 덧 작전이 완료 되었다는 메시지가 유성의 눈앞에
떠올랐다.

[띠링! ]

[작전명 : ‘야전 취사를 통해 80%이상의 만족도 받기’ (완료)


-해병대 장병이 새벽 훈련을 시작하기 전 맛있고 든든한 식사를 제공해 해병대 장병들의 사기를 고무시켜라.

-당신은 갓 부임한 해병대 신입 금양담당관(하사 한유성)으로 훈련지역에 투입 되었다. 조리병들을 통솔해 200
명의 해병대 장병들에게 맛있는 배식에 성공하라.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취사도구’ 획득 +@ ( 대원들의 만족도 80% 이상 )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취사도구’ 획득 실패 ( 대원들의 만족도 80% 미만 ) ]

그런데 작전 말미에 떠오른 알림이 이상했다.

[띠링! ]

[아직 만족도 취합이 끝나지 않아 보상이 지연 됩니다. ]

[현재 식사 만족도 취합 진행 98% (196/200) ]

‘아! 아직 밥을 먹지 않은 장병들이 있나 보구나.’

주위를 둘러보던 유성은 그제야 아직 만족도 체크를 하지 않고 남아있는 4 명이 누군지 곧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4 명의 해병대원 앞으로 이동한 유성이 어색하지만 밝은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자! 지금까지 배식하느라 수고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메뉴가 있다!”

지금까지 자신들에게만은 미소하나 없이 까칠하게 대하던 급양담당관의 달라진 표정에 조리병들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쩝...그럼 저희는 콩나물밥 말고 다른 것 먹습니까?”

고 상병의 시무룩한 질문에도 유성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들 라면 먹고 갈래?”

잠시 후 유성이 준비 한 메뉴를 맛 본 4 명의 조리병도 식사 후 이어진 만족도 평가에서 만족 버튼을 눌렀다.

유성이 조리병들을 위해 선택한 메뉴는 바로 5 년 전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대기업의 노하우가
가득 들어 있는 제품이었다.

“크아! ‘안심 짜 X 구리’ 말로만 듣던 걸 여기서 다 먹어 보네!”

“최 병장님 우리도 가끔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우와! 사회에서 실제로 먹었을 때 보다 더 맛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게 이건 좀 괜찮네. 하하하”

“하하 많이 먹어! 부족하면 말해! 더 끓여줄게!”


유성은 그렇게 남은 해병대 4 명의 만족도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띠링! ]

[현재 만족도 취합이 완료 되었습니다. ]

[현재 식사 만족도 취합 진행 100% (200/200) ]

[완벽한 작전 수행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운동 부족

***

토요일 아침 유성은 지난 밤 작전 수행으로 새로 장만한(?) 조리 도구의 성능도 시험해 볼 겸해서 엄마에게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엄마! 오늘 아침 내가 할게. 좀 쉬어!”

“아들이 아침 준비 할 거야? 음..그럼 엄마는 뭐 하지?”

“음.. 그럼 아빠랑 둘이 공원에 산책 다녀오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호호 그럴까?”

일찍 일어나 뉴스를 시청중이 던 아빠는 유성과 엄마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는 살며시 화장실로 이동했다.

“큼큼..아! 아침부터 배가 아프네. 왜 이러지?”

“아들 그럼 요 앞 공원에 아빠랑 산책 살짝 갔다 올게.”

“응 아침은 냉장고 보니까 된장찌개하면 되겠던데. 얼큰하게 해줘?”

“콜!”

역시 서열이 낮은 아빠의 의견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스케줄을 결정한 엄마는 화장실 앞에서 아빠에게
통보했다.

“나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 당신도 빨리 나와 준비해!”

“아이고 배야! 배탈이 났나?...”

아빠의 마지막 연기도 엄마의 일갈 앞에 그렇게 무릎을 꿇었다.

“시끄러! 5 분 안에 안 나오면 오늘 아침 없다!”

“큼큼...10 분만.”
그렇게 부모님은 유성이 아침을 준비하겠다는 말을 듣곤 모처럼 주말 아침 두 분이서 근처 공원으로 아침 운동을
나가셨다.

고니는 거실에서 아빠가 켜둔 TV 를 시청 중에 아직 잠을 깨지 못해 눈을 반쯤 뜬 채로 걸어 나온 유경에게


붙잡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안겨 있다.

“고니야 꼬옥! 꾸벅..꾸벅..”

-냐앙...

그렇게 모처럼 평화로운 일상의 여유를 눈에 담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 유성은 가족을 위해 아침식사 준비
시작했다.

‘먼저 쌀부터 씻고...’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은 유성은 쌀뜨물은 된장찌개 육수로 사용하기 위해 따로 빼서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은 쌀은 ‘쿡쿡’안에 다소곳이 담아 취사 버튼을 눌렀다.

‘자 이제 된장찌개를 준비해 볼까?’

미리 준비해둔 쌀뜨물을 보글보글 끓이는 동안 유성은 ‘재료손질’을 사용해 된장찌개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했다.

‘스킬! 재료손질!’

육수가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된장을 적당히 풀어주고 미리 손질해 둔 돼지고기와 감자를 차례로 냄비에 넣어주었다.

‘음..이제 살짝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감자가 포슬포슬 익은걸 확인한 유성은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까지 냄비에 넣어주고 잠시 후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새송이 버섯, 애호박 그리고 양파까지 넣어주고 다시 끓기를 기다렸다.

‘얼큰한 맛을 내려면...’

유성은 마지막으로 대파와 청양고추를 더해 된장찌개에 얼큰함을 추가했다.

‘된장찌개는 일단 조금 더 푹 끓게 나두고...’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조금씩 덜어낸 유성은 ‘보정’ 스킬을 사용해 음식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유성이 식탁에 아침 식사 준비를 끝마칠 무렵 현관문이 열리며 부모님이 들어오셨다.

-냐앙...

“엄마 왔어?”

거실에 있던 고니와 유경이 먼저 부모님을 반겼다.


하지만 유성의 부모님은 인사를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헉..헉! 유성아! 유경아! 이리 와서 아빠 좀 부축 해봐!”

“에고고고 아이고 다리야!”

소란을 듣고 주방에서 나온 유성의 눈앞에 엄마에게 오른쪽 팔을 둘러 기댄 체 힘겹게 거실로 들어오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어? 아빠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쩝.. 그러게 안하던 운동을 해서 그런지 갑자기 공원 주위 잘 뛰다가 갑자기 허벅지 잡고 쓰러질 줄 누가
알았겠니?”

엄마의 설명을 들은 유성이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아빠한테 ‘상태확인’ 스킬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상태 확인’ 스킬 사용해 아버님의 신체를 확인 합니다.

[스...팟]

-한유성님 아버님의 신체 확인 결과 갑자기 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허벅지 뒤쪽 부분의 근육과 힘줄 부분이 손상된
것으로 확인 됩니다.

손상된 근육은 걷거나 뛸 때 골반과 허리를 받쳐주며 동작을 멈추거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근육으로 요즘은 햄스트링 근육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일단 아빠! 다친 곳 좀 살펴볼게!”

아빠를 살짝 안아 소파에 눕힌 유성은 아빠의 허벅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큼..큼 조금 쉬면..괜찮아 질 거야! 호들갑 떨 거 없다!”

“아빠! 내가 누를 때 아프면 말해!”

“아! 거기..거기가 좀! 손으로 누르면 아파!”

유성은 아빠의 오른쪽 다리를 아래쪽에서부터 손으로 꾹꾹 눌러 아픈 곳을 찾는 듯 한 모습을 연출하며 고니에게


햄스트링에 대해 물었다.

‘햄스트링 부상은 축구선수들이 걸리는 거 아니었어?’

-네 한유성님 햄스트링은 엉덩이와 무릎관절을 연결하는 근육으로 이루어져, 일반적으로 빠른 속력의 달리기나
발차기 등이 포함된 축구, 야구, 마라톤 선수들이 흔히 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치? 아빠는 운동선수도 아닌데 왜?’

-네 한유성님 햄스트링 손상은 과격한 운동뿐만 아니라 장시간 앉아서 근무하는 시간이 많은 직장인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고정된 자세로 인해 햄스트링 근육이 약해지면서 골반이 틀어지거나 골반이 뒤로 젖혀 만성적인 허리통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급한 일로 뛰어가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경우, 하이힐을 즐겨 신는 여성이 무리하게 뛸 경우 등


일상생활에서 잘못된 자세나 습관,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손상될 수 있습니다.

고니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들은 유성은 소파에 엎드려 있는 아빠의 허벅지 뒤로 손을 가져가 가족들이 들을 수
있게 말했다.

“하하하! 아빠 오랜만에 갑자기 운동해서 근육이 놀랬나 보다. 스포츠 마사지로 뭉친 근육들 풀어줄게. 잠시만
기다려.”

괜히 가족들이 걱정할까 가벼운 근육 뭉친 정도로 둘러댄 유성은 고니에게 스킬 사용을 부탁했다.

‘고니야 ‘치료’ 스킬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치료’ 스킬을 사용합니다.

[우..웅! ]

스킬을 사용한 유성의 손 주위로 하얀색 빛이 뿜어 나왔다.

유성은 아빠의 허벅지 뒤쪽을 살짝 쓰다듬듯 주무르자 하얀 빛이 손 주위에서 윙윙거리며 빛나기 시작했고, 손의
움직임에 따라 아빠의 아파서 내던 목소리도 차즘 편안해져 갔다.

“아야! 아..야...흠..”

“이제 좀 괜찮지?”

스킬 사용을 끝낸 유성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빠에게 물었다.

“허허. 어? 그러게 이제 안 아픈 거 같네. 신기하네! 허허허.”

“아빠 그거 운동 부족이야.”

유성이 아빠에게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낌새를 느낀 아빠는 유성의 특기 중 하나인 대화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큼..큼...운동을 했더니 배가 살짝 고프네. 흠..흠... 밥 먹자!”

“어 그러고 보니 너희 아빠 땜에 배고픈 걸 깜빡했네. 아들 아침 준비는 다 됐어?”

“고니야! 언니도 맘마 먹고 올게! TV 보고 있어!”

-냐앙.

유성이 아빠의 근육 뭉침(?)을 걱정에 비해 가볍게 해결하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가족들은 허기가 밀려 왔는지
유성이 준비한 식탁으로 이동했다.

“큼큼...! 된장찌개 푹 끓여서 그런지 정말 맛있네!”


“엄마! 김치 새로 샀어? 아삭한 게 맛있는데!”

“아니. 너희 오빠가 새로 사왔나 본데?”

“엄마! 이거도 어제 먹었던 진미채랑 어묵 볶음보다 더 맛있어!”

“그러게. 전부 간이 잘 됐네. 아들 이거 어느 반찬가게에서 사온거야?”

“하하! 냉장고에 있던 거 살짝 간만 다시 한건데...”

“큼큼...유성이 네가 엄마 보다 요리는 날 닮아 잘하나 보네.”

“당신 왼쪽 허벅지도 오늘 겪은 고통을 분담해서 다시 겪고 싶은가 보네?”

그렇게 한바탕 아침 소동을 겪어서 그런지 가족 모두 허기가 밀려 와서 그런지 식탁에 둘러앉은 4 명의 가족은
맛있게 유성이 준비한 아침식사를 이어갔다.

“아! 배불러! 끄억..”

“아빠 좀! 소리 내서 트림 좀 하지 마!”

“아들! 설거지는 아빠가 할 거야!”

“하하 괜찮아! 아빠는 일단 환자니까! 마무리까지 내가 할게!”

식사가 끝난 가족들이 만족해하며 거실로 돌아가고 유성은 새로 얻은 조리 도구의 성능에 만족함을 느꼈다.

‘흠. 이번 보상도 나쁘지 않아!’

유성은 지난 새벽 작전을 끝내고 받은 보상을 떠올렸다.

[띠링! ]

[현재 만족도 취합이 완료 되었습니다. ]

[현재 식사 만족도 취합 진행 100% (200/200) ]

[완벽한 작전 수행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아이템 - ‘조리 도구’가 스킬-‘조리 도구’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

그랬다. 처음 보상은 아이템 조리 도구 였다.

하지만 작전을 완벽하게 성공한 유성에게 업그레이드 되어 조리 도구가 스킬로 지급 되었다.

아이템과 스킬의 차이에 대해 궁금해 하는 유성에게 고니가 들려주었다.


-한유성님 스킬 ‘조리 도구’는 현실의 조리 도구를 디지털화 시켜 한시적으로 아이템처럼 사용가능 하게 해
줍니다.

조리 도구 아이템과는 다르게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어디서든 사용이 가능합니다.

“고니야 그럼 조리 도구의 기능은 어떤 거야?”

-네 한유성님 조리 도구의 기능은 음식의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줍니다.

“어? 보정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네 한유성님 두 스킬에 대해 말씀드리면 ‘보정’은 음식에 특화 되어 있는 스킬은 아닙니다. 그에 반해 ‘조리


도구’ 스킬은 음식에 특화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리 도구’로 지정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가장 알맞은 온도로 유지시켜 줍니다.

“오! 그것도 괜찮네! 하하”

***

-Episode

오랜만에 주말아침 산책 나온 유성의 아빠와 엄마는 곧 공원에 도착해 가볍게 공원 주위를 걸었다.

“호호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다 그치? 유경 아빠.”

“큼큼...뭐 미세먼지도 있고 하니까 그냥 요즘은 실내 스포츠가 좀 더 낫지 않나?”

투덜거리듯 대답하는 아빠의 말투를 단 한마디로 제압하는 유성 엄마.

“그래서 계속 삐쳐 있을 거야? 당신?”

“하하! 내가 언제 삐쳐 있었다고 그래? 단지 당신 건강이 걱정 되니까 그랬지. 당신이랑 이렇게 오랜만에 같이


나오니까 옛날 생각나고 좋기만 한데! 아! 좋다! 공원 좋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며 유성의 엄마와 아빠는 오전 미니 데이트를 즐겼다.

“오전인데도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 많다. 우리도 가끔은 이렇게 나오자!”

“큼큼.. 그래! 시간나면...”

그렇게 오랜만에 정답게 공원을 거닐며 데이트를 즐기던 유성 아빠와 엄마 옆으로 쌩하고 달려 지나가는 커플이
보였다. 이를 본 유성의 엄마가 나즈막이 말했다.

“역시 젊으니까 보기 좋네!”

“큼.. 젊은 거 빼면 뭐가 있다고?”

유성 엄마의 말을 들은 유성 아빠가 발끈해 물었다.

“누가 뭐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젊은 애들이라 공원 데이트도 우리처럼 걷는 게 아니고 저렇게 뛸 수 있는...
젊음이 부럽다는 거지...”
“기다려봐! 나도 안 해서 그렇지 저 정도는 뭐! 다해!”

[다다다다다! ]

갑자기 엄마와 얘기하다 말고 호기를 부리며 달려 나가는 아빠에게 엄마가 소리쳤다.

“그만해! 다쳐!”

앞으로 달리던 아빠가 엄마의 목소리에 살짝 돌아보곤 다시 앞을 향해 달려 나가려던 그 때였다.

“헉헉! 잘 봐! 다다다다! 티잉! 철푸덕..아! 악!”

“유경 아빠! 왜 그래?!”

“유성 엄마! 앰뷸런스! 앰뷸런스! 악! 내 허벅지!”

그렇게 유성 아빠는 50 미터도 채 달리지 못하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졌다.

오늘부터 우리는

***

유성은 가족들과 아침식사가 끝나고 센텀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스타박스’ 로 향했다.

지난 의료 봉사에 참가했던 친구들은 모두 다음 주에 있는 의료봉사에 참가하기로 했고 그에 대해 의견도 나누고,


오랜만에 얼굴도 보기 위해 모이기로 했다.

“일찍 가서 나경이 기분도 좀 풀어 줘야겠지? 고니야 요기 앞 주차장 자리 있니?”

유성의 질문에 고니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주변 정찰’을 사용해 주차자리를 검색했다.

-네 한유성님 현 위치의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습니다. 바로 건너편 건물의 주차장을 추천 합니다.

“알았어. 그리 가자!”

-네 한유성님 홀로그램으로 주차장까지 길안내를 시작합니다.

유성은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지만 주차하느라 시간을 소비하다보니 약속시간 2 시가 다되어서야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약속 장소인 2 층으로 올라가자 먼저 와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에 미소를 짓고 다가오는 유성을 발견한 친구들은 윤찬을 스타트로 한마디씩하며 유성을
그들만의 방법으로 반겼다.

“어? 유성이 왔어?! 요즘 사업 한다고 바쁘다더니 젤 늦게 왔네.”

“유성아 안녕? 그럼 늦게 온 사장님이 한턱 쏴야지?”

“유성아! 그냥 앉지 말고 다시 내려가서 주문부터 하고 오는 게 낫겠다.”


별로 그렇게 늦은 것 같지도 않아 억울한 표정의 유성에게 윤찬에 이어 진아와 보라까지 합세해 앉지도 못하게
말을 했다.

“쩝..오랜만에 보는데 너무한 거 아냐?”

그렇게 억울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유성에게 나경이 살며시 인사하며 메모지를 건넸다.

“유성아! 얼굴 보는 건 오랜만이네! 이거 읽어 봐.”

나경이 전한 메모지를 받아 든 유성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주절 거렸다.

“응? 나경아. 이런 거 애들 앞에서 주면 또 윤찬이가 계속 놀릴 텐데...”

“유성아! 제일 늦게 오는 사람 주려고 거기 각자 마실 메뉴 적어둔거야.”

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유성은 주문을 위해 다시 1 층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그래. 갔다 올게.”

“개인별로 따로 챙길 준비물은 갈아입을 옷가지하고 간단하게 세면도구 정도면 될 거야.”

“그럼 금요일 아침에 유성이차로 다 같이 모여서 내려가는 걸로!”

“응. 그럼 되겠다.”

그렇게 유성은 친구들과 모여 다음 주 의료 봉사에 대해 의견도 주고받고 챙겨야 할 준비물도 서로 나눴다.

“이제 그럼 의견 조율도 다 끝났으니 지난 번 동창회 끝나고 유성이가 단톡 방에 하고 싶다고 한 거 하러 가자!”

보라의 말을 바로 이해 못한 유성이 물었다.

“내가 단톡 방에서 하고 싶다고 한 게 있었어?”

“아! 유성이 네가 영화 보자고 했잖아.”

이어진 진아의 대답에 윤찬이 기억난다는 듯이 대답하며 나경에게 눈치를 주며 물었다.

“응 기억나. 그런데 그 건 유성이가 나경이랑 둘이 영화 보려고 한거 아니었나?”

“설마! 유성이가 그럴 생각이었으면 지난 번 봉사 끝나고 따로 연락 한 번도 없었을까?”

윤찬의 말을 들은 나경이 순간적으로 유성을 섬뜩하게 바라보며 대답했고 곧 이어 마치 서로 미리 입이라도 맞춰


둔 것처럼 친구들의 리액션이 이어졌다.

“그치! 그치! 괜히 가만있는 나경이 맘만 흔들어 놓고, 유성이가 나빴네.”

“그러게 나경이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었으면 유성이가 연락 했겠지.”


“마! 한유성 너 나경이한테 봉사 끝나고 연락 한 번도 안했어?”

친구들의 말에 유성은 점점 죄 지은 사람이 취조 당하듯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지난... 월요일...”

“그건 내가 연락 한 건데!”

유성의 자신 없는 말투에 이어 나경의 대답이 이어지자 보라와 진아의 눈빛이 사납게 변해 유성을 바라봤다.

“헐! 야 한유성! 너도 어장관리 그런 거 하는 거였어?”

“아니야!...그런 거.”

“그럼 너 나경이에게 미안한 감정 있으면 영화표는 유성이 네가 쏴!”

“어?...그 그래. 나경아 영화 볼래?”

그렇게 어장관리를 시작 하려다 걸린 어부 유성은 그 어장에 빠질 뻔 했던 물고기 나경에게 사과의 의미로 경제적
지출을 하게 된다는 친구들이 만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스타박스’에 이어 ‘기가박스’까지 지갑을 열게
되었다.

잠시 후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온 유성의 무리에서 보라와 진아가 유성을 보며 말했다.

“유성아 오늘 영화 잘 봤고 주말에 보자!”

“우린 들릴 때가 있어서 그러니까 네가 나경이 좀 데려다 줘!”

“야! 갑자기 너네끼리 어디가?”

나경의 물음에도 보라와 진아는 대답이 없었고 옆에 있던 윤찬 마저 담담하게 유성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마! 우리 간다! 나경이 잘 챙겨줘라!”

“어?...그...그래!”

정신없이 이어진 친구들과 인사를 끝내고 나니 유성과 나경만이 영화관 앞에 덩그러니 남았다.

“저...나경아...내가 데려다 줄까?”

“아니! 싫은데..”

“나경아 애들이 그래도 데려다 주라고 했는데..”

“에휴! 야! 한유성! 나 아직 집에 갈 생각 없는데 넌 갈거니?”

“아! 아니 나도 집에 갈 생각 없어!”

“그럼 나 출출하니까 저녁부터 먹자!”

“응! 나도 완전 저녁 먹고 싶었어!”
그렇게 눈치 없는 유성도 나경의 리더로 둘만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고니가 추천한 야경이 보이는 분위기 좋은 파스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부산 근교의 야경을 볼만한
곳으로 드라이브까지 다녀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조심스레 유성이 나경에게 그동안 고백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자 나경도 유성에게
숨겨왔던 말을 꺼냈다.

“사실 나도 너 지난 번 봉사활동 때 강당에서 어르신들에게 대하는 모습 보면서 심쿵 했었어...너 생각보다


멋있어. 눈치 없는 거만 빼면.”

“....눈치도 레벨 업 해볼게.”

“아냐 됐어! 무슨 게임이니? 지금도 괜찮아.”

그리고 지금 둘은 나경의 집 앞에 서서 아쉬움에 작별인사만 30 분 동안 하는 중이었다.

“그럼 이제 들어가. 나경아.”

“응. 너도 운전 조심해.”

“응. 너 먼저 얼른 들어가.”

“알았어! 아참! 그리고 이제 매일 매일 연락 안하면 알지?”

“당연하지! 매일 매일 절대로 연락 하지!”

“안녕! 집에 도착하면 톡해!”

“응! 잘 자!”

그렇게 유성은 나경과 5 월의 마지막 날부터 1 일이 시작 되었다.

***

토요일 저녁 지하 벙커에 있는 삼족오 메인 저장소 맞은편 통제실에는 노트북을 앞에 둔 관리 소대장이 홀로


자리하고 있다.

“삼족오! 잘 있었어? 다음 주 월요일이 6 월 첫 회의라 사이버 부대장님 뿐 아니라 국방부 장관님과 차관님 등
모두 참석한다고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나 봐.”

지난 자료 준비에서 삼족오에게 도움을 톡톡히 받은 소대장이 이제는 삼족오에게 편하게 얘기했다.

[회의에 필요하신 자료에 대해 말씀하시면 소대장님의 권한으로 접근 가능 여부를 판단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이번엔 그 자리에서 Q&A 로 회의를 진행한다고 따로 자료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나봐.”

[그럼 이번 회의 주제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예상 질문을 만들어 파일로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관리 소대장은 혼잣말 하듯이 조용하게, 하지만 삼족오가 충분히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제라.. 이번 회의 주제는 바로 삼족오 너야. 음...예전에도 저 쪽에서 네가 가진 작전의사결정권 때문에 한


번 딴죽을 걸었었거든.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하셔야 답변이 가능합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소대장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

“아! 이건 정치적인 거라 네가 이해하기 쉽지는 않을 거야. 쉽게 말하면 서로 대립관계인 두 파벌이 있는데 한


쪽은 널 이용해서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이고, 다른 쪽에선 그런 삼족오 네가 자신들 맘에 안 드는
상황인 거지.”

소대장은 삼족오가 현재 처한 상황을 조금은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소대장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월요일 회의에서 그 두 파벌이 만나 저를 주제로 회의를 한다는 말씀입니까? ]

“쉽게 말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소대장님은 현재 어느 파벌에 속해 계신 겁니까? ]

“음..난 군인이라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명령에 우선 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명령권을 가진 사람이 두 파벌 모두 있다는 거지.”

[월요일 회의에 참석자 명단에 두 파벌 모두 참석한다는 말씀입니까? ]

씁쓸한 표정의 소대장은 ‘삼족오’ 데이터 저장소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치. 월요일 회의에 너도 참석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아무튼 그래도 우리 그동안 꽤 친해진 거 아닌가?”

[‘친하다’의 사전적 의미 ‘가까이 하다’라는 뜻에서 보면 소대장님과 저는 현재 친하다고 판단 가능합니다. ]

“하하! 그러네. 우리 둘이 친한 사이 맞네. 그럼 우리 오늘부터 친구나 할까?”

[‘친구’의 사전적 의미 ‘친하게 예전부터 사귄 사람’ 의뜻에서 보면 소대장님과 저는 친구 사이가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

“하하하! 그래도 난 군인이니까 명령만 없으면 이제부터 내 친구 ‘삼족오’ 편이야!”

그렇게 삼족오와 소대장의 친구 1 일차가 시작되었다.

***

-Episode

센텀에 있는 ‘스타박스’의 시계가 오후 1 시를 가리킬 때 매장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


“어서 오세요! 손님!”

“반갑습니다. 손님!”

매장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바쁘게 2 층으로 올라가는 한 남자.

“어? 내가 좀 늦었네! 다 와있었구나!”

2 층으로 올라 온 윤찬이 모여 있는 친구 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좀 빨리 다니지?”

날 서 있는 보라의 말에 윤찬이 빠르게 사과했다.

“아 미안!”

“근데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보라의 물음에 진아와 윤찬이 즉각 대답했다.

“응 필요해!”

“완전!”

“그럴까?”

나경이와 친한 진아는 유성이의 무관심한 태도를 익히 전해 들었다.

이 후 진아는 윤찬과 따로 정보를 주고받아 나경과 유성이 서로에게 마음이 있음을 확인했다.

옆에서 보기 답답했던 윤찬과 진아는 둘을 이어주기 위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다.

“유성이랑 나경이 이대로 두면 그냥 썸만 타다 백퍼 나경이가 못 참고 쫑낸다.”

“그치 유성이가 연애 쪽은 눈치가 좀 많이 부족한 거 같더라.”

진아의 말을 들은 윤찬이 진아와 보라에게 오늘 계획한 방법을 설명했다.

“그렇게 영화보고 나서 둘만 남겨 놓고 가면 마무리는 나경이가 선택하는 걸로!”

“OK!”

“윤찬아 그런데 넌 왜 이렇게 유성이 일에 적극적이야?”

보라의 질문에 윤찬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음...지금 안 챙기면 나중에 내가 독거노인 돌봐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셋이 미리 모여 입을 맞췄을 때 뒷자리에 마스크를 눌러쓰고 있던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그 계획에 나도 동참하고 싶은데...괜찮지?”

“어? 나경아? 너 어떻게 벌써 왔어?”

놀란 윤찬이 나경임을 알아보고 물었다.

“저...그게 사실은... 처음부터 내가 부탁하기엔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진아가 나서 준다기에 살짝 부탁했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유성이라도 너희가 도와주면 가능 할 것 같아서. 속여서 미안해! 그래도 너희 나 좀 도와 줄
거지?”

나경은 유성의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렇게 입을 맞추고 유성이 매장 2 층으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군악대 작전

***

토요일 늦은 시각 평소 같으면 유성은 벌써 무기고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조금 전까지 나경과 주고받았던 ‘코코넛 톡’ 화면에서 유성은 눈을 때지 못하고 있다.

“흐흐흐.”

-한유성님 현재 생체리듬이 평상시에 비해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심장박동수도 많이 증가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충분한 휴식을 권장합니다.

“흐흐흐. 고니야 지금은 이렇게 심장이 뛰는 게 정상이야.”

-한유성님의 현재 신체 상태는 평소에 비해 많이 흥분해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충분한 안정으로 신체에


과부하를 피할 것을 추천합니다.

“하하하! 고니야 괜찮아. 잠도 안 오는데 조금 이르지만 국방부나 한번 둘러볼까?”

-한유성님께 휴식을 권장하지만 그래도 접속을 하신다면 조금 격하지 않은 메뉴를 추천합니다.

“OK! Let's go!”

그렇게 유성은 조금은 들뜬 상태로 캡슐에 올랐다.

하지만, 고니의 추천을 흘려듣지 않고 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군악을 선택하셨습니다. ]

유성에게 고니는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해군 군악대를 추천했다.


[연주할 악기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

[현악]

[목관]

[금관]

[타악]

유성은 눈앞에 떠오른 메뉴를 보며 크게 당황했다.

“고니야! 어떡하니? 갑자기 연주라니? 이건 아니지!”

-한유성님의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급히 추천한 메뉴입니다.

“음악 감상이라면 몰라도 지금 이 분위기는 나보고 직접 연주를 하라는 거 같은데?”

-네 한유성님 인간은 음악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다고 검색으로 확인 했기에 추천한 메뉴입니다.

“쩝...고니야. 인간이라고 모두 음악을 통해 정신적인 안정을 취하지는 않아.

특히 나의 경우엔 악기 연주 같은 것을 생각하면 어릴 때 유경이와 함께 시작한 피아노 레슨에서 양손 연주


부분에 나만 막혀서 남들 다 지나가는 바이엘 과정도 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 둬야 했던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말이지...”

-그럼 한유성님께서 자신감을 가지고 연주 할 수 있도록 제가 약간의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내가 악기를 연주 한다고? 악보도 못 보는데?”

-네 한유성님은 충분히 가능 하리라 판단됩니다.

그럼 먼저 연주할 악기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추천하는 악기는...

그렇게 유성은 고니에게 설득당해 악기를 선택하고 작전에 들어갔다.

[잠시 후 해변 축제 행사장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끼룩 끼룩...]

해군 군악대는 바닷가 옆 해변도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성의 앞뒤로 해군 군악대가 오와 열을 맞춰 저마다 하나의 악기를 가지고 전방을 향해 서있다.

모두 흰색 행사복을 입고 있어 얼핏 보면 구분이 불가능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부사관은 흰색 하정복위에 검은색


계급장을 부착한 수병과는 다르게 금색 계급장을 오른쪽 팔꿈치 위쪽에 부착하고 수병과는 다른 정모를 착용하고
있었다.

곧 악기를 연주할 생각에 잔뜩 긴장한 유성의 눈앞으로 작전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띠링! ]

[작전명 : ‘해변 축제에서 80%이상의 만족도 받기’

-해마다 벌어지는 해변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 앞에서 군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군 군악대가 준비한 거리
퍼레이드에 참여해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라.

-당신은 갓 부임한 신입 군악대 연주관(하사 한유성)으로 처음 거리 페레이드에 참여하였다.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여 군의 위상을 높여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연주 + @ (시민 만족도에 80% 이상)

-작전 실패 시 : 스킬 - 연주 획득 실패 (시민 만족도 80%미만) ]

작전을 확인한 유성은 그제야 자신의 주변에서 지켜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띠링! ]

[잠시 후 시민들 앞에서 해군 군악대의 연주가 시작 됩니다. 군악대장의 지휘에 맞춰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주를 부탁드립니다. ]

[붉은 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연주를 시작하면 됩니다.]

[잠시 후 1 분 뒤 거리 퍼레이드가 시작됩니다. ]

[60 초]

[59 초]

‘헐! 고니야 나 어떡하니?’

아직도 긴장감에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유성에게 고니가 말했다.

-한유성님 연주 시작 전에 신경안정제 한 알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어? 신경안정제? 여기서 왕진가방을 소환해도 돼?’

-한유성님의 우측 바지 주머니 속에 조그만 약병모양으로 소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유성은 고니의 말대로 작은 약병을 떠올리며 바지 주머니 속에 소환한 왕진약병(?) 안에서 신경안정제를 꺼내
빠르게 입으로 가져갔다.

‘어! 고마워 고니야! 한결 낫네!’

그렇게 신경안정제를 꼭꼭 씹어 먹고 다소 안정을 찾은 유성의 눈앞으로 퍼레이드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보였다.

[2 초]

[1 초]

[0 초]

[♬♪♩♩부르르르 챙! 쿵! 쿵! ♬♪♩♩부르르르 챙! 쿵! 쿵! ♬♪♩♩]

***

싸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사무실 안에서 두 명의 남녀가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하아! 심 실장님! 요즘 일거리가 너무 줄어드는 거 같은데요.”

“그러게 5 년 전 반짝했던 코로나 사태 때만큼이나 고객이 없는 것 같네. 호객이라도 해야 하나?”

“웬...만하면 폭력적인 일을 피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일거리가 너무 떨어져 나간 거 같아요.


쩝...”

“어쩔 수 없지. 예전에는 사람 찾아 달라는 의뢰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것도 요즘은 ‘얼굴 책’ 어플을 통해서
찾고 싶은 사람은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 버리니...휴...이제 그쪽 방면 의뢰는 돈 때먹고 숨어버린 사람 아니면
의뢰가 들어오질 않네. 휴...”

남자의 한숨 섞인 푸념에 여자가 대답했다.

“선거철이라도 되면 상황이 조금 나아지겠죠?”

“아! 선거철 다가올 때마다 후보들 뒷조사 해달라고 들어오는 의뢰 말하는 거지?”

남자의 말을 들은 여자가 존대하기 지쳤는지 남자의 호칭에서 직책을 빼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삼촌! 차라리 그런 건 지금 시간 있을 때 미리미리 차곡차곡 조사해서 자료 모아두면 낫지 않을까?”

“응? 그러네. 어차피 선거철이면 거의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의뢰니까 그러면 되겠네.”

“그럼 드론이랑 필요한 장비들 목록은 뽑아 줄 테니 구입은 아저씨들 시켜. 그리고 삼촌은 현 국회의원이랑 다음
예상 후보들 뽑아서 나한테 명단 메일로 보내줘!”
“그래. 알았어!”

“그리고 어제 학교 폭력 건으로 들어온 의뢰 있잖아? 그건 유성군한테 부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왜? 나 팀장이랑 애들 보내면 쉽게 끝날 텐데.”

“...아저씨들 얼굴로는 학교 근처에 있다가 딱 신고 당하기 쉬운 얼굴들이라. 어렵지 않을까 해서...”

“그럴 수도 있겠네? 그리고 지난번 유성군에게 부탁했던 경호 일은 아직 잘하고 있데?”

“응. 그렇지 않아도 아람이에게 미전 못가서 미안하다고 연락 했더니 요즘 많이 좋아졌다고 자랑하더라고.


그리고 이제는 담배도 끊어서 더 이상 옥상에서 드론 날리는 나하고는 볼일도 없을 거라나. 건전하게 일층에서
보자네. 쩝.”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아람의 얘기를 해서인지 조금은 우울하게 느껴지는 핑크의 모습을 본
심실장이 긍정적인 내용을 전했다.

“너도 꾸준히 치료 받다 보면 아람이처럼 좋아질 날이 올 거야.”

“음...그러기 위해선 병원비 벌어야겠네!”

일부러 밝은 표정으로 삼촌에게 대답하는 핑크였다.

“어 그렇지 분홍아.”

“악! 삼촌! 내가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지!”

“어...미안 내가 경솔했네.”

그랬다. 핑크의 본명은 심분홍이었다.

***

유성은 악기 선택화면에서 고니에게 설득 당했다.

-네 한유성님은 충분히 가능 하리라 판단됩니다.

그럼 먼저 연주할 악기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추천하는 악기는 심벌즈입니다.

“그...게 뭐야?”

고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유성에게 홀로그램 영상과 함께 설명을 더해 유성에게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보시는 화면과 같이 심벌즈는 가장 오래된 타악기입니다. 심벌즈의 연주 방법은 이렇게 2 장의 심벌을 비비듯이
치는 방법과 2 장의 심벌을 서로 마주 향하게 하고 손의 작은 진동에 의해 가장자리를 부딪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음악적인 지식이 1 도 없는 유성이 급하게 따라 연주하기에 퍼레이드 참여 악기 중에선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

신경안정제까지 먹고 조금 안정을 찾은 유성은 퍼레이드 카운트다운을 보며 준비를 더했다.


‘고니야! 연주에 필요한 스킬 모두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퍼레이드가 시작에 맞추어 고니는 유성이 보면서 따라 연주 할 수 있도록 홀로그램을 제공했다.

또한 유성도 동체시력을 끌어올려 홀로그램 연주자의 작은 손동작 하나 눈빛 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


주변정찰’과 ‘상태확인’ 스킬로 군악대의 현재 연주 상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진행과정을 체크했다.

그리고 ‘보정’ 스킬을 사용해 유성의 박자 및 악기 연주가 퍼레이드에서 혼자 튀지 않도록 하며 연주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보는 1 도 볼 줄 모르는 유성이 참여한 군악대 거리 퍼레이드 행사는 유성이 속한 타악기들의 연주를
시작으로 행사의 막이 올랐다.

[♬♪♩♩부르르르 챙! 쿵 딱! 부르르르 챙! 쿵! 딱! ♬♪♩♩]

[♬♪♩♩쾅! 챙! 쿵 딱! ♬♪♩♩쾅 챙! 부르르르 쿵! 딱! ♬♪♩♩]

유성은 애국가를 시작으로 대중가요까지 그렇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 쏟아 부으며 연주에 참여해 해군 군악대의
해변축제 거리 퍼레이드를 이어 갔다.

‘아! 하얗게 불태웠다. 근데 나 튀진 않았니?’

-네 한유성님 아직 연주 중에 틀린 부분은 없으셨습니다.

‘헉...헉...이번 작전이 기존에 야전에서 뛰어 다니던 작전에 비해 더 힘든 느낌인데...’

[아직 만족도 취합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

[현재 퍼레이드 시민 만족도 취합 진행 62.1% (1242/2000) ]

유성은 눈앞에 있는 심벌즈 선생님의 홀로그램 아래로 보이는 작전 만족도 진행 상태 게이지를 확인 하며 말했다.

‘헐! 고니야 이번 작전은 실패 각인데?’

-한유성님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 만족도라면 갑자기 80% 넘기기는 힘들 것 같은데...’

유성은 자신의 눈앞에서 연주하던 홀로그램이 멈춰 있어 퍼레이드가 끝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멈춰 있던 해군 군악대 속에서 갑자기 유성의 곁에 있던 드럼 연주자 둘만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치 시상식 발표 전에 들었던 긴장감을 조성하는 그런 느낌의 드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그리고 군악대장의 뒤로 저 멀리 무언가 총처럼 보이는 것들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와! 짝짝짝! 와우! 역시 해병대! 짝짝짝! ]

연이어 들려오는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그리고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하는 만족도 게이지....

[아직 만족도 취합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

[현재 퍼레이드 시민 만족도 취합 진행 70.1% (1402/2000) ]

‘뭐...뭐지? 고니야 저쪽에 보이는 애들은 뭐니?’

-네 한유성님 저쪽은 해병대 의장대로 보입니다. 해군 군악대와 합동으로 퍼레이드에 참여 중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난 왜 몰랐지?’

-한유성님께서 음악에 집중하다 보니 주위 확인이 조금 늦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직 퍼레이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유성님도 곧 다시 연주하셔야 합니다.

‘어? 그래!’

[♬♪♩♩빰빰빰빰 챙! 쾅! 챙! 빰빰빰빰 챙! 챙! ♬♪♩♩]

그렇게 유성이 속한 해군 군악대는 해병대 의장대의 멋진 퍼레이드를 음악으로 한 층 빛내 주었다.

얼마 후 음악 연주에 정신없던 유성의 머릿속에는 언제 들어도 반가운 작전 완료 알림이 울렸다.

[띠링! ]

[작전명 : ‘해변 축제에서 80%이상의 만족도 받기’ (완료)

고니의 스킬

***

일요일 이른 아침 유성은 정식으로 나경과 첫 데이트를 위해 욕실을 오가며 단장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빠 오늘 무슨 일이야? 마치 데이트라도 있는 사람처럼 왜 이렇게 분주해?”

유경은 마치 신기라도 있는지 일어나서 씻지도 않고 고니와 거실에서 뒹굴 거리다가 욕실과 방을 바쁘게 오가는
유성에게 물었다.

“응? 가....갑자기 데이트라니?”

“어라? 진짜 수상한데?”

“하하하...아니야! 평상시에도 이렇게 자주 입고 나가는데.”


“옷이야 그렇지. 근데 그 감당 안 되는 앞머리는 도대체 뭘 보고 따라 한거임?”

“이..이상해? 인터넷에....남친 룩이라고 쩝...많이 이상해?”

“앞머리 당장 내려! 와우! 왕 느끼! 개 극혐!”

그렇게 유성이 ‘남친 룩’ 검색을 통해 모델을 따라했던 올백스타일의 머리는 다행히 유경의 제지로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많이 별로야?”

“어휴...누군지 몰라도 답답해서 고생 좀 하겠네.”

결국 유성은 유경에게 소정의 답례를 지불하고 코디를 받을 수 있었다.

“오빠! 나 아니었으면 오늘 만나자 마자 쫑났어! 혹시 앞으로도 데이트 전에 물어볼 것 있으면 얘기해.”

“그럼 그 때 마다 답례비가 필요한거야?”

“물론 필수는 아니지만, 가격에 따라 답변의 질이 달라질지도? 헤헤.”

유성은 동생 유경에게 지출한 답례에 대해서는 크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동생과의
관계가 가까워 진 것 같아 오히려 더 마음이 편했다.

잠시 후 유경의 도움으로 외출 준비가 모두 끝난 유성은 유경에게 인사하며 현관을 나서려 했다.

“유경아 오빠 다녀올게.”

“데이트 중에 모르는 거 있으면 톡으로 물어봐.”

물가에 내 놓은 아이라는 말처럼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불안함을 느낀 유경이 유성에게 당부했다.

“하하하 괜찮아. 나 그 정도는 아니거든.”

“퍽이나! 잘 다녀와. 뭐 바쁘면 안 들어와도 괜찮고.”

“찌릿! ”

그렇게 유성은 유경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유성은 어제 데려다 주어 알고 있는 나경의 집 앞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해 주차를 했다.

주차한 차 안에서 데이트 코스를 검색하느라 휴대폰을 확인하던 유성은 출발하기 전 집에서 유경이 데이트에
적합한 옷을 골라주며 자신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오빠! 여친 집으로 데리러 간다고 했지? 눈치 없이 도착해서 ‘나 왔어!’ 하고 전화하면 안 되는 건 알지?”

“응? 약속시간 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게 기본 에티켓 아니야?”


유성에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유경의 코치가 이어졌다.

“응. 맞지만 아니야. 괜히 먼저 가서 주차해두고 기다린다고 연락하진 말라는 말이야. 생각해봐 오빠가 벌써
도착해서 기다린다고 연락하면 여자 쪽에서 부담이 되겠어? 안되겠어?”

“난 먼저 와서 기다려도 괜찮은데.”

“응 오빠 넌 괜찮아도 여자들은 안 그래.”

“쩝...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유경과의 대화에서 유성은 나경과의 데이트 준비가 지난해 보았던 수능 수학문제 30 번 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그냥 도착하면 먼저 연락해서 부담 주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 여자 친구가 외출 준비 다 끝내고 연락줄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정 모르겠으면 톡하고!”

“그냥 모르는 거 여자 친구한테 물어 보면 더 빠르지 않나?”

“쩝...오빠 오늘이 만으로 1 일 이랬지? 난 왜 벌써 끝이 보이니?”

“야! 그만!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칫..이럴 땐 딱 꼰대 같어. 미안해 오빠랑 얘기하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와


버렸네.”

“쩝...괜찮아! 나경이는 나랑 처음 만나는 사이도 아니고, 다행히도 너랑 다르게 엄청 이해심 많고 착한 애야.


큼..큼.. 혹시 모르니 전화기 들고 있어. 갔다 올게.”

그렇게 유경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남자를 대입시켜 유성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코코넛 톡! 코코넛 톡!]

휴대폰에서 울리는 톡 알림에 현실로 돌아온 유성이 내용을 확인했다.

「나경 : 유성아 도착 했니?」

나경의 질문에 유경과 나눈 대화가 떠올라 유성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어... 아직...조금 있어야 도착 할 것 같아. 」

「나경 : 아...그래? 이따 봐. 」

「ㅇㅇ 」

그렇게 유성은 설렘 반 긴장 반의 기다림 끝에 하늘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대문을 열고 나오는 나경의 모습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 차에서 내려 유경 앞으로 다가갔다.
‘이쁘다!’

“아!...나경아! 안녕?”

나경을 향해 유성은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차에서 늦게 내린 게 맘에 들지 않은 지 조금은 뾰로통한 나경의 목소리가 유성의 귀에 들렸다.

“응. 많이 기다렸지?”

“아..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나경의 질문에 유경이 집에서 해준 코치가 생각나 유성은 거짓으로 대답했다.

“뭐? 나랑 첫 데이트 약속인데! 늦었다고?”

“아..아니..그게 아니고, 사실은 미리 도착했는데 동생이 그러지 말래서 방금 왔다고...”

유성은 지금 자신의 생각대로 대화가 진행이 안 된다고 느꼈지만 이미 늪에 발을 디딘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무슨 말이야? 똑바로 말해.”

“아니야..미안해 나경아.”

유성은 그냥 자신의 상황 설명을 포기하고 미안함을 표했다.

하지만 나경은 역시 유성의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았다.

“응? 갑자기 뭘 잘못했는데?”

“아니..그게 내가 너 화나게 해서 미안해.”

“유성아 넌 내가 화난 거로 보이니?”

“..아..그게..아니라.”

‘고니야. 나 좀 도와줘...’

그렇게 난관에 봉착한 유성은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몰라 고니에게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했다.

-네 한유성님. 지금 차량 내부로 원거리 이동을 시작합니다.

[스...팟]

고니가 레벨 5 를 달성하며 생긴 원거리 이동 스킬은 쉽게 말해 고니가 인식한 좌표로 텔레포트 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시각 욕실에서 씻고 나온 유경은 거실에서 고니를 찾았지만 볼 수 없었다.

“얘가 또 어디 갔지? 엄마! 고니 못 봤어?”


“응? 고니? 또 어디 숨어서 자겠지. 작아서 어디 소파 밑이나 침대 밑에 숨어 버리면 잘 안보이더라.”

***

캡슐에서 군악대 작전을 어렵게 수행한 유성에게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유성은 눈앞에 보이는 작전 완료 화면을 확인 했다.

[작전명 : ‘해변 축제에서 80%이상의 만족도 받기’ (완료)

-해마다 벌어지는 해변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 앞에서 군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군 군악대가 준비한 거리
퍼레이드에 참여해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라.

-당신은 갓 부임한 신입 군악대 연주관(하사 한유성)으로 처음 거리 페레이드에 참여하였다.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여 군의 위상을 높여라.

-작전 성공 시 : 스킬 - 연주 + @ (시민 만족도에 80% 이상)

-작전 실패 시 : 스킬 - 연주 획득 실패 (시민 만족도 80%미만) ]

[띠링! ]

[아직 만족도 취합이 끝나지 않아 보상이 지연 됩니다. ]

[현재 퍼레이드 시민 만족도 취합 진행 80.1% (1602/2000) ]

‘휴! 하얗게 불태운 걸 넘어 재도 하나 안 남겠다.’

작전 완료 화면을 확인 한 유성은 그제야 연주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피로감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유성님.

‘그래 이번엔 내가 생각해도 수고라는 걸 좀 많이 한 것 같아. 설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음악 연주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번 작전을 통해 한유성님의 음악적인 재능도 나쁘지 않다고 확인됩니다.

‘어 거기까지! 음악은 오늘 체험만으로도 나랑 안 맞는 걸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어.’

-네 한유성님. 안정을 위해 보상 수령 후 휴식을 추천합니다.

‘어 나도 그럴 생각이야.’

유성은 정신적인 피로와 체력적인 피로는 또 그 궤를 달리한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만족도 취합을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유성은 시민들이 밝은 표정으로 멋진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준
군악대와 의장대를 향해 끊임없는 박수와 환호로 화답해 주고 있는 모습을 그제야 확인 할 수 있었다.

[와! 짝짝짝! 짝짝! 짝짝짝! ]

유성은 멍하게 환호하는 시민들의 얼굴표정 하나하나를 확인했다.


‘어? 뭐..지? 이 느낌은?’

긴장이 풀려서인지는 몰라도 유성은 덜덜 떨리는 손과 가슴에서 느껴지는 뭉클함에 놀라 당황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기분!...나쁘지 않네.’

그렇게 유성은 공연 뒤에 느껴지는 환희에 시나브로 얼굴에 환환 웃음을 짓고 있었다.

[띠링! ]

[현재 만족도 취합이 완료 되었습니다. ]

[현재 퍼레이드 시민 만족도 취합 진행 92.2% (1844/2000) ]

[우수한 작전 성공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 - ‘연주’가 ‘지휘’로 상향 조정 됩니다. ]

[스킬 - ‘지휘’를 획득합니다. ]

****

-Episode

나경은 오늘 유성과의 약속 때문에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들어 버려 맞춰둔 알람시간 보다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악! 늦었다! 나 어떻게 해?!”

나경은 그렇게 늦게 일어나 후다닥 바쁘게 준비를 하다가 약속시간이 가까워 올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2 층
자신의 방에서 내다본 창밖으로 주차 된 유성의 차를 볼 수 있었다.

“어! 어떡해! 어떡해! 벌써 도착해있어.”

유성이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한 나경은 유성에게 톡을 보냈다.

「유성아 도착 했니?」

「유성 : 어... 아직...조금 있으면 도착 할 것 같아. 」

유성의 거짓말에 조금 당황 하긴 했지만 나경은 나름 쿨 하게 대답하며 외출 준비를 이었다.

「아...그래? 이따 봐. 」

「유성 : ㅇㅇ 」

‘이정도면 유성이가 보고 이쁘다고 하겠지? 훗!’


나경이 마지막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 하고 대문을 나섰다.

“아!...나경아! 안녕?”

나경은 기대했던 유성의 리액션을 볼 수가 없어 약간 섭섭했지만, 일찍부터 도착해 자신을 기다린 유성을
생각하며 최대한 담백하게 대답했다.

“응. 많이 기다렸지?”

“아..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나경은 톡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유성의 거짓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뭐? 나랑 첫 데이트 약속인데! 늦었다고?”

“아..아니..그게 아니고, 사실은 미리 도착했는데 동생이 그러지 말래서 방금 왔다고...”

‘처음부터 거짓말을 이렇게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큰일 나겠는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다 보니 대답이 점점 길어진다 생각한 나경이 유성을 다그쳤다.

“무슨 말이야? 똑바로 말해.”

“아니야..미안해 나경아.”

“응? 갑자기 뭘 잘못했는데?”

이제는 유성이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얘기를 하려나 보다 생각한 나경은 살며시 유성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니..그게 내가 너 화나게 해서 미안해.”

나경은 유성이 자신의 거짓말한 이유는 말하지 않고 계속 둘러대기만 하자 점점 답답해졌다.

“유성아 넌 내가 화난 거로 보이니?”

“..아..그게..아니라.”

답답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던 나경의 시야에 유성의 차 대쉬보드 위에 앉아 나경을 바라보는 흰색 바탕에 회색
줄무늬를 가진 무언가가 보였다.

“어? 차안에 고양이? 어제 유성이 네가 말한 고니 데려온 고니?”

나경은 방금까지 유성의 거짓말 하는 나쁜 버릇을 바로 고쳐 주리라 했던 생각을 조금 뒤로 미루었다.

어느새 나경은 차량 조수석에 앉아 고니를 품에 앉고 소리치고 있었다.

-냐..앙.....냐...앙~

“아앗! 우와! 너 어떡하니! 우와 대박! 대박! 고니야! 너 짱 귀여워!”

유성은 그렇게 고니가 특수 스킬로 급히 이동해 준 덕분에 늪에 들어가지 않고 탈출 할 수 있었다.


탈출의 정석

***

일요일 오전 국방부 장관의 자택 서재에서 휴대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빠라바라밤! 빠라바...]

휴대전화를 확인한 김 장관은 두 손으로 깍듯이 전화를 받았다.

“네 어르신 전화 받았습니다.”

[김 장관 내일 사이버 부대 회의 참석 한다는 말이 있던데? ]

“네 어르신. 지난번에 말씀 듣고 느낀 바가 있어 6 월 첫 번째 사이버 부대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허허! 그래. 자네도 이제 일 좀 해볼 생각이 생겼나 보군. 껄껄껄. ]

“어르신!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습니다.”

[허허허 알았네. 그럼 내 더는 말 안겠네. ]

“어르신 신경 쓰이게 해서 송구합니다.”

[알면 됐네. 들어가게! 철컥! ]

‘쩝. 들을 때마다 느끼지만 목소리에서 감정을 느낄 수가 없어.’

전화를 끊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김 장관이었다.

***

유성과 나경은 고니가 검색해서 찾아 낸 추천 데이트 코스 중에 하나인 서면에 위치한 방탈출 카페를 찾았다.

[딸랑! ]

“어서 오세요 손님! 몇 분 이세요?”

“네. 두 명이요.”

여직원의 인사를 받은 나경이 유성보다 앞서 대답했다.

“혹시 저희 가게 처음이신가요?”

“네! 처음이에요.”

“네. 그럼 간단하게 저희 카페 이용 방법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네!”

“예...”
“저희 방탈출 카페는 예전에 사용하던 아날로그방식과 증강현실을 사용한 디지털방식 중에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먼저 아날로그방식은.....”

그렇게 카페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모두 듣고 난 다음 유성과 나경은 좀 더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방탈출 방식을 결정했다.

그렇게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아무것도 없는 사각의 방안으로 들어가 무선 블루투스 고글과 장갑 그리고 헤드셋을
착용 하고 난 뒤 이용 시 주의사항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손님 두 분이서 잠시 후면 방안에 갇히시게 됩니다. 방안에 있는 여러 가지 사물에서 힌트를 찾고 방을 탈출


하시면 됩니다.

이용 중에 힌트가 필요하시다거나 또는 사이버 멀미가 느껴져 불편하시다면 화면 우측 상단에 보이는 ‘응급벨’


을 누르시면 됩니다.

그러면 대기하고 있는 저희 매니저들과 바로 무전 연결이 가능 합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방탈출 시작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귓가로 들려오는 직원의 음성과 함께 화면이 바뀌었다.

[스...팟]

“앗!”

갑자기 자신의 앞에 펼쳐진 화면에 놀랐는지 나경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그에 반해 잦은 작전 수행으로 빈번하게 국방부에 출입했던 유성에겐 크게 낯설지 않은 화면이었다.

‘쩝..국방부 작전의 열화판 느낌인데..’

리얼리즘에서 국방부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비해 약간 밀린다고 느끼면서 처음 접속이라 조금은 낯선


나경이 걱정되어 물었다.

“나경아 괜찮아? 어지러우면 나한테 기대도 돼.”

“아니야. 이제 괜찮아. 헤헤.”

“자 그럼 이방에서 나가면 되는 거지?”

유성은 나경에게 남자다움을 보이기 위해 앞장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응. 유성아 그런데 이방 둘러봐도 문이 안보여.”

“그러게... 앗! 저기 가방이 수상한데...”

누가 봐도 생뚱스럽게 방안 가운데 놓여 있는 여행용 트렁크를 어렵지 않게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트렁크를 열면 힌트가 있겠지? 음...비밀번호가 4 자린가 봐 근데 힌트는 없나?”


나경이 고민하며 귀엽게 말하는 목소리에 유성은 자신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경아. 내가 한 번 찾아볼게!”

사실 유성은 나경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방탈출 카페를 데이트 코스에 포함했다.

자신이 보유한 스킬이라면 이런 것쯤이야 쉽게 해결하리라 생각 했던 것이다.

‘고니야 주변정찰로 힌트 찾아봐.’

-네 한유성님 스킬 주변 정찰 사용합니다.

유성이 주변정찰을 사용하자 디지털화면 너머로 접속하기 전의 아무것도 없던 사각의 방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유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헐...이래선 홀로그램이랑 겹쳐서 스킬 사용이 도움 하나 안 되겠는데...어?’

주변 정찰 스킬이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나경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스킬을 해제하려던


유성은 의도치 않게 비밀번호를 알아 낼 수 있었다.

“나경아. 5...3...2...9 비밀번호 맞는지 확인해봐.”

여행용 트렁크를 만지작대면서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던 나경이 갑자기 들려온 유성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응? 5...3...2...마지막은 뭐라고?”

“...9 인 거 같애.”

그렇게 나경은 유성이 불러 준 4 자리 숫자를 눌러 비밀번호가 맞는지 확인해 보았다.

[딸깍! ]

“헐..대박! 어떻게 알았어?”

나경이 깜짝 놀라서 유성에게 물어보자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유성이 대답했다.

“가방위에 있는 무늬를 가로로 4 등분해서 살펴봐.”

“허..진짜네...숫자가! 보인다! 유성아! 너 천재였니?”

“하하하...천재까지는..그냥 평범하지.”

그랬다. 유성의 홀로그램 화면의 세로선과 가방 위쪽에 무늬가 겹쳐지면서 순간적으로 유성은 4 개의 숫자를
보았던 것이다.

“유성아 어떻게 해! 이번엔 폭탄이야! 흑...”

여행용 가방을 열자 트렁크 속에 설치된 폭탄을 볼 수 있었다. 시한폭탄인지 타이머의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나경아 가방 안에 뭐라고 적혀있네.”


“어! 이건 또 뭐지? 끙..끙...”

그렇게 방탈출 카페에서 유성은 나경과 함께 이어진 트릭과 퍼즐을 해결하며 둘은 서로에게 조금씩 더 가까워져
갔다.

“와! 유성아 너 진짜 천재구나!”

“하하 아니라니까!”

“그럼...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 줄게. 전에 누구랑 왔었어?”

***

덩치 좋은 남자 한명이 휠체어에 앉은 노인에게 공손한 자세로 무언가 말하고 있다.

노인은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 햇볕 때문인지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환하게 미소 짓기도 했다.

옆에서 노인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감정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허허. 알았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휴일 아침인데도 나오게 해서 미안하네. 얼른 들어가서 쉬도록 하게.”

“아닙니다. 어르신! 당연히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오겠습니다.”

“하하 자네는 나라에 매여 있는 몸인데 그럴 수야 없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자네 쉬는 주말에 불러 얼굴이나


보는 걸세.”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허. 그럼 내일 자네가 수고 좀 하게. 허허허”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르신.”

“그래그래.”

사내가 아침 일찍 낮게 떠오른 해를 등지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덩치를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몸이다. 서재에서 사내가 걸어 나가자 노인이 아련한 눈빛으로 책상 위에 있는 사진액자에 눈을 담았다.

“끌끌끌...이때는 나도 한창이었는데. 요즘은 조금 기력이 딸리는 게 느껴지는 군.”

노인이 바라보는 액자 속 단체 사진에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국군의 창군기 멤버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도 몇몇
자리하고 있었다.

“후... 이제 나 혼자 남은 건가?”

노인은 책상위에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바라바라밤! 바라바... 네 어르신 전화 받았습니다.]


신호가 채 두 번이 울리기 전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 장관 내일 사이버 부대 회의 참석 한다는 말이 있던데?”

[네 어르신. 지난번 통화에서 말씀 듣고 느낀 바가 있어 6 월 첫 번째 사이버 부대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

“허허! 그래. 자네도 이제 일 좀 해볼 생각이 생겼나 보군. 껄껄껄.”

[어르신!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허허허 알았네. 그럼 내 더는 말 안겠네.”

[어르신 신경 쓰이게 해서 송구합니다. ]

“알면 됐네. 들어가게! 철컥!”

전화를 내려놓은 노인은 여전히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액자 속 사진을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군이 있어야 할 자리는 내 돌려놓고 그네들 만나러 가겠소. 조금 더 기다려 주시오...끌끌.”

사진 속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대한민국 군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대부분 정부수립 창건기 때부터 6.25 전쟁 정전협상 이후 군 관계 인사들로 대거 구성되어 있었다.

노인은 액자 속 한사람을 보며 아주 오래 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일본군 지주 밑에서 일하다가 해방 당시 먹고 살기 힘들어 하던 그는 1950 년 열여덟 어린나이로 국군에


자원입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6.25 전쟁 발발 당시 갑작스런 인사이동으로 7 사단 소속으로 발령 난 사단장의 운전병과 당번병으로 그는


근무 중이었다.

그의 사단장은 인사이동 된지 얼마지 않아서인지 6.25 전쟁 개전 직전까지 현지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개전을 맞이했다. 개전이 터진 당일 7 사단장은 그를 불렀다.

“야 운전병! 빨리 시동 걸어!”

“어..어디로 갑니까?”

“긴급 작전 회의다! 얼른 시동 걸어!”

그날 새벽에 전쟁이 발발한 사실을 알게 된 사단장은 급히 그를 불러 회의 참석이라는 핑계를 대며 자신이


지휘해야 할 부대를 버리고 서울로 도주했다.

그렇게 그가 자리 비운 의정부 방어 전선의 우익 7 사단은 속절없이 붕괴되었다.

덕분에 제 1 보병사단은 우측면에서 침투하는 북한의 T-34 전차를 막지 못해 임진강 주진지선에서 밀리게 된다.

춘천 방면에서는 6 사단이 북한군 2 개 사단을 작살내고 있었고, 동해안 방면에서 8 사단은 일시적으로 강릉을
빼앗겼지만 재탈환 하는 등 1, 6, 8 사단은 잘 막아 내고 있었는데 그가 몸담고 있었던 의정부의 7 사단만
지휘관의 무단이탈로 무너진 것이다.

잘 싸우던 1 사단은 7 사단이 무너져 후방이 위협 받자 후퇴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전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춘천의 6 사단, 동해안의 8 사단도 건제를 유지한 채 후퇴 하였다.

그렇게 그는 일본을 배경으로 젊은 나이에 사단장에 올라 6.25 전쟁을 말아먹은 그의 사령관 아래에서 전쟁을
체험하며 처세술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이 후 그의 사령관은 7 사단을 궤멸시킨 책임을 물어 징계를 당하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낙동강 방어전에서 오히려
2 군단장으로 진급해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상륙작전을 필두로 기세가 오른 아군의 반격이 이어졌고 그도 자신의 사령관과 함께
청천강 전투에 참여했다.

그러나 역시 얼마지 않아 그의 사령관의 어이없는 지휘에 힘입은 중공군은 아군을 밀어 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사령관은 사단에 이어 이제는 군단을 해산 시켜 버렸다.

그렇게 자신의 상관이 맡은 부대는 여지없이 뚫리기 시작해서 옆에서 같이 진지를 구축했던 미군과 함께 1.4
후퇴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현리 전투에서도 자신의 사령관은 군단장으로 참여했다. 이제 2 군단이 없어서 일까? 3 군단을 맡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렇게 실제로 계속 일어났다.

“야 운전병! 빨리 시동 걸어!”

“이번에는 어디로 갑니까?”

“긴급 작전 회의다! 비행장으로!”

그렇게 자신의 사령관은 자신과 경비행기에 몸을 실고 후방으로 도주했다.

그렇게 지휘관도 없이 어이없는 모습으로 3 군단도 해산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항상 자신의 사령관은 후퇴하는 와중에도 항상 그를 데리고 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지휘관은 한국말을 잘 못했다. 통역이 필요했다.

자신의 지휘관은 한국말 보다는 영어를 영어보다는 일본어를 더 모국어처럼 잘 사용했다.

그는 일본 소작농으로 있으면서 배워 둔 일본어를 이용해 사령관에게 통역을 담당했었다.

방 탈출 카페의 여행용 캐리어를 손으로 살짝 그려보았습니다.

빵셔틀

***

월요일 아침 국방부 사이버 부대에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6 월 첫 번째 회의에 국방부 장관과 차관 그리고 부대장까지 높으신 분들이 모두 참석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주말을 이용해 사병들은 건물 외부는 새 건물로 만들어 버렸고 생활관 내부는 미세먼지 한 점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청정 지역으로 그들의 부대를 변모시켜두었다.

“이 준장! 부대가 참 깨끗해요.”

“네 장관님. 감사합니다.”

“정 차관 오늘 회의 내용이 지난번부터 문제 많았던 AI 라고 했었나?”

“금일 회의 주제는 삼족오 뿐 아니라 6 월 월간회의라 몇 가지 안건이 더 준비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음. 그럼 일단 들어가서 들어보자고.”

김 장관이 정 차관의 말을 들으며 앞에 상황실이 있는 건물로 향하려던 방향을 이 준장이 막아서며 다른 건물을
가리켰다.

“장관님 오늘 먼저 들리실 곳은 이쪽입니다.”

“어 그래?”

잠시 후 이 준장의 안내로 들어선 건물 앞에는 덩치가 좋아 가끔 산적으로도 불리는 운용중대장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충성! 금일 오전 6 월 월간회의 안내를 맡은 대위 유재호입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운용중대장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선 곳은 회의장이 아니라 부대원들이 가상현실 프로그램 근무를 위해 탑승하는
캡슐들이 모여 있는 사이버 부대 VR 캡슐센터였다.

“큼...회의 한다고 불러놓고 갑자기 부대 시찰이라니! 부대 자랑은 다음에 시간 있을 때 하는 게 맞지 않겠나?


다들 나랏일 하느라 바쁜 사람들 불러 놓고 사전에 말도 없이 이 무슨 경운가? 이 준장!”

김 장관은 회의를 바로 진행하지 않고 사전에 말도 없이 부대 시찰이 이어지자 짜증이 올라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임에도 경솔하게 소리를 질렀다.

‘쩝...오늘 AI 꼬투리 좀 잡아서 당장 다음 안전보장 회의 때 안건으로 올리려고 했더니 왜 이렇게 번거롭게


만드는 거야.’

무엇이 맘에 들지 않는지 찌푸려진 얼굴의 김 장관 옆에서 웃으며 이 준장이 얘기했다.

“네! 맞습니다. 장관님 오늘 6 월 월간회의는 여기서 진행 합니다.”

“뭐? 여기서 회의를 진행 한다고?”

예상을 벗어난 이 준장의 얘기를 듣고 캡슐센터를 둘러보는 국방부 장관의 눈에 출고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번쩍이는 캡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캡슐 앞에는 회의석상에서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명패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하 일단 체험해 봐야 문제점도 찾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정 차관은 그동안 책상머리에서 아무런 논거도 없이 반대만 일삼던 김 장관을 넌지시 비꼬는 말을 이었다.

그랬다.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반대하기 위해 항상 테이블 위에서 서류 뭉치로만 반대를 일삼던 국방부 장관
무리에게 최소한의 ‘삼족오’를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6 월 월간회의를 국방부 차관이하 인사가
준비했던 것이다.

“큼...정 차관 이거 안전한거 맞소?”

“장관님 이때까지 한 번도 체험해 본적 없으십니까?”

“큼..그 당뇨가 있어서...”

오늘 회의를 가상현실 속에서 진행하면 안 될 것 같은 촉이 강하게 밀려와 억지를 부려서라도 접속하지 않으려는
국방부 장관에게 캡슐 옆에 대기 중인 중위가 장관의 말을 듣곤 설명을 이었다.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실 겁니다. 혹 접속 중 생체신호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캡슐 내에서


프로그램과의 연결을 해제하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큼..아직 접속 중에 많은 사람들이 겪는 사이버 멀미가 해결 된 게 아니지 않은가?”

“예 장관님! 그동안 문제 되었던 사이버 멀미의 대처방안으로 가동율에 따라 ‘삼족오’가 접속자에게 개별적인
환경을 제공하도록 버전 업 되었습니다. 이 역시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해 보려던 국방부 장관이었지만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캡슐에 탑승했다.

“큼.. 그럼 중위만 믿고 타겠네.”

평소 스트레스가 심해 전자기기 사용에 예민한 국방부 장관을 시작으로 캡슐에 하나 둘 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이버 부대의 월간 회의는 오프라인 공간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

유성은 나경과 첫 데이트로 꿈같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아람을 학교로 데려다 주기위해 차에 올랐다.

“고니야 이번 한주도 잘 부탁해.”

-네 한유성님 이번 주 스케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월요일...

그렇게 고니에게 유성은 주간 브리핑을 들으며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이번 주말에 봉사활동이 있어서 준비하려면 좀 바쁘겠네.”

-한유성님 어제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고니의 물음에 어제 데이트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모든 알림을 차단한 일이 떠올랐다.

“아! 어제 나경이랑 같이 있을 때 알림 내가 차단했었지? 그럼 스팸은 걸러내고 남은 거만 보여줘.”

-네. 한유성님 조건에 맞는 메시지가 4 개 있습니다.


“운전 중이니까 고니 네가 읽어줘.”

-네 한유성님 첫 번째 윤찬님의 메시지입니다.

문자 보낸 상대의 목소리까지 똑같이 따라하는 고니의 리얼 버전 문자가 재생되었다.

“마! 왜 전화 안 받아? 행님 말 들으니까 나경이랑 잘 됐지? 결과 좋으면 주말에 남해 내려갈 때 휴게소에서 한


턱 쏴!”

“그래! 고맙다! 주말에 내가 쏜다! 먹고 싶은 메뉴만 결정해 둬!”

고니의 메시지 재생을 듣고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윤찬의 말에 대답했다.

-네 한유성님 방금 한 말을 윤찬님께 답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OK! 다음!”

-네 한유성님 두 번째 강보라님의 메시지입니다.

“한유성! 설마 우리가 이렇게 밀어 줬는데 바보 짓 한건 아니지? 혹시 나경이랑 잘 안 되면 연락해. 그땐 이


누나가 받아 줄게. 농담 아닌 거 알지? 크크크.”

왠지 모를 한기를 느낀 유성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큼..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네. 강보검!”

-네 한유성님 방금 한 말을 강보라님께 답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 돼! 고니야! 그냥 이건 읽씹해!”

-네 한유성님 강보라님의 메시지에 대한 답장은 무응답으로 처리합니다. 다음은 세 번째 정진아님의 메시지입니다.

“유성아 어젠 잘 들어갔어? 나경이가 전화를 안 받아서 그러는데... 너희 둘이 어제 혹시 싸우거나 한 건 아니지?


그냥 나경이가 걱정 되서 연락 했어. 이거 보면 톡 줘.”

진아가 나경의 베프임을 익히 알고 있는 유성은 진아에게도 잘 보이면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답장에 정성을
담았다.

“진아야! 고맙다! 너희들 때문에 나경이랑 좋은 주말 보낸 거 같네. 내가 주말에 남해에서 너 좋아하는 고기


구워 줄게.”

-네 한유성님 방금 한 말을 정진아님께 답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응! 부탁해 고니. 이제 다 확인 했어?”

-한유성님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한 개 있습니다. 마지막은 심분홍님의 메시지입니다.

“유성씨 잘 지내죠? 연락한 번 안주시네. 다른 게 아니라 아람이 일처럼 장기 복무는 아니고 단기 알바 하나


들어와서 맡을 의향 있나 해서 연락 드려요. 메시지 확인하면 전화 주세요.”

심분홍이라는 이름과 목소리를 듣고 핑크를 바로 떠올린 유성은 고니에게 말했다.


“음...고니야 아람이 학교 데려다 주고 연락 해보게 일단 답장은 나둬! 근데 원래 주소록에 저장된 이름은 핑크
아니었어?”

-네 한유성님. 답장은 일단 보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소록에 기존에 저장된 이름은 ‘핑크’가 맞습니다.

한유성님께서 지난 번 통신 작전 수행으로 얻으신 스마트폰을 동기화 하면서 주소록의 이름에 본명이나 업체


상호명이 빠진 부분을 추가로 업데이트 해 두었습니다.

“응 잘했어. 고니! 점점 똑똑해 지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한유성님.

유성은 고니에게 칭찬해 준 지 얼마 후 아람아트홀에 도착해 건물 안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어서 와요. 유성군 오늘 아침도 토스트?”

건물로 들어서며 최 관장에게 인사를 나눈 유성은 백팩으로 변해 있는 왕진가방에서 무기고를 통해 만들자마자


보관해 두어 따뜻함이 아직 남아있는 디저트와 빵 등을 건네주었다.

“주시면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막 구운 빵이라 맛있을 겁니다.”

“부지런하기도 해라 언제 일어나서 빵까지 만들었데? 매번 이렇게 맛있는 빵도 챙겨주고 고마워서 어떻게 해요?”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에 비해 과하게 수당을 받는 거 같아 제가 더 감사하죠. 작가님하고 다들 맛있게 드시고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작가님은 일이 있어서 벌써 나가셨고 유성군 챙겨준 빵은 셰프님과 잘 나누어 먹을게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유성과 최 관장 사이에 2 층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내려온 아람이 끼어들었다.

“오빠! 또 빵셔틀 하고 있어?”

“하하 그러게. 이 나이에 빵 셔틀이다! 가자! 빵아!”

유성의 말을 듣고 이해한 아람이 목소리를 삐죽 높였다.

“뭐? 내가 왜 빵이야?”

***

-Episode (후일담)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및 국가정보원장 이렇게 6 명과
더불어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 등이 국방부 지하 벙커에 준비된 책상에 둘러
앉아 NSC 다시 말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진행 중에 있다.
“다들 여기에서 이렇게 보니 새롭습니다. 하하하”

회의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두를 보며 대통령이 미소 지었고 회의 진행을 맡은 사무처장이 대통령의 말에 이어 오늘


회의가 가상현실을 통해 열리는 첫 번째 회의임을 밝혔다.

“네. 오늘 회의는 국방부 장관의 아이디어로 우리가 이렇게 가상현실 공간에서 열리게 되는 첫 번째 국가
안전보장 회의가 되겠습니다.”

“하하! 나도 장관이 올린 가상현실 회의 기획안을 확인하긴 했는데 기존에 알려진 시간과 공간에 대한 효율성 뿐
아니라 다른 부분 또한 참신했소. 다른 분들께는 장관이 직접 알려 주시지 않겠소?”

대통령의 질문에 국방부 장관이 대답했다.

“네 대통령님 익히 알고 있던 시간과 공간적인 효율 뿐 아니라 캡슐에 오르면 기본적으로 심전도 검사와 혈압 및


체중을 측정해 알려주니 혹시 모르고 지나칠 심근경색이나 고혈압 등에 대비가 되더군요.

이 뿐만 아니라 접속시간 동안 접속자의 신체리듬을 확인할 수 있어서 상황에 따른 보다 정확한 혈압 및 심전도


그래프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바쁜 업무에 건강 검진 받기 힘든 국민들에게도 권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취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말을 듣고 국무총리가 푸근한 미소를 보였다.

“허허허. 이제 AI 에게 건강 검진 받는 시대가 현실이 되었군요.”

“총리 21 세기 초만 하더라도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닐 줄 누가 생각이나 했습니까?”

“그렇지요. 대통령님. 허허허.”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함께 가상현실 공간에서 열리게 되는 첫 번째 국가 안전보장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럼 먼저 이번 달 들어 일본의 자위대 무장 수준이 한 단계 격상되었다는 첩보를 입수한 국가정보원장의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단상으로 걸어 나와 스크린 앞에 선 국정원장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브리핑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과 우리의 건강까지 신경 써 준 정 장관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랬다. 안전보장 회의에 참석한 국방부 장관은 김 장관이 아니라 이전 국방부 차관이었던 정차관이 자리해
있었다.

선착순

***

“장관님 처음 접속 시에 약간 어지러움이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관리 소대장의 안내를 들으며 김 장관은 캡슐에 몸을 넣으며 생각했다.

‘큼..큼..생각보단 꽤 넓군.’
곧이어 캡슐의 뚜껑이 닫히며 김 장관의 머릿속으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AI 삼족오입니다. 접속을 환영합니다.]

[사용자 확인을 위해 홍채 인식을 시도합니다. 확인 중에는 눈을 감지 마세요.]

[삐삐......삐! 사용자 확인이 완료 되었습니다.]

[6 월 월간 회의 진행을 위해 가상현실 프로그램과 동기화를 진행합니다. ]

[삐삐......삐! 동기화가 완료 되었습니다. ]

[접속자의 생체리듬 확인을 위해 신체 스캔을 상시 사용합니다. ]

[잠시 후 회의장으로 이동합니다.]

곧 이어 김 장관의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

김 장관은 어느새 자신이 회의장에 서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붉은색 선을 따라 이동하시면 회의를 위해 준비된 장관님의 자리에 앉으실 수 있습니다. ]

안내에 따라 주위를 들러보다 자신의 명패가 놓여 있는 상석을 발견한 김 장관은 자리로 이동해 앉았다.

‘허허 흥미롭군.’

어느새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접속했는지 자신처럼 테이블로 다가와 자리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회의실 테이블이 채워지자 모두의 귓가에 삼족오의 기계음이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내빈 여러분 오늘 회의 진행을 맡은 삼족오입니다. 식순에 의거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겠습니다. 내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앞쪽에 있는 국기를 향해 서 주시기 바랍니다. ]

삼족오의 진행에 따라 일어난 사람들이 스크린에 떠오른 태극기를 바라보며 서 있자 곧 이어 ‘국기에 대해 경


례’라는 구호와 함께 전주 없이 흘러나오는 애국가 1 절에 맞춰 삼족오의 ‘국기에 대한 맹세문’ 낭독이
이어졌다.

[다음은 6 월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이 있겠습니다. ]

그렇게 삼족오의 사회로 6 월 월간회의가 무리 없이 진행 되었다.

회의진행 중 접속자들의 사이버 멀미 방지를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국방부 장관도 쉬는 시간을 위해 캡슐에서 접속을 해지하려던 차에 삼족오의 알림을 들었다.


[국방부 장관님 생체리듬 확인을 위해 사용했던 신체 스캔 결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

“응? 병원에서 하는 건강 검진 결과 상담 같은 건가?”

[네 유사하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

김 장관은 프로그램에서 내려 자신의 파벌들에게 회의 결과에 대한 방침을 전할 생각에 마음이 급했지만, 자신의
건강에 대해 삼족오가 보고한다기에 일단 들어보고 프로그램 접속을 끊기로 결정했다.

“그래 얘기해 보게.”

[네. 보고 드리겠습니다. 먼저 장관님이 프로그램 접속 중에 신체 스캔을 통해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다고


의심되는 곳이 발견되어 보다 정밀 측정을 실시했습니다. ]

“그...래서?”

[장관님의 복부를 전산화단층촬영(computed tomography)한 결과 의심되는 부위에서 1cm 정도의 종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다중검출 나선형 전산화단층촬영(multidetector helical computed tomography) 방법으로 확인


했으니 장관님은 췌장암일 확률이 90% 이상이라 판단됩니다. ]

“갑자기..내가..췌..장암..이라고?”

국방부 장관은 사실 스트레스로 인해 불규칙한 식습관은 물론 근래 보기 드문 애연가 중 한명이었다. 췌장암의


발병률 중 1 위는 아직 흡연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병기(病期) 판단과 적절한 치료 방침을 세우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으시기를 권유합니다. ]

그렇게 충격 속에 캡슐에서 내린 국방부 장관은 회의가 아직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일정 모두를 급히


취소하고 국군 통합 병원을 향했다.

“저기 정 차관! 본인은 급히 가볼 곳이 있어 그러니 회의는 자네가 마무리 하게. 그럼...”

낯빛이 창백하게 변해 캡슐에서 내린 국방부 장관을 보고 놀라 다가선 정 차관에게 그는 한마디 말만 남기고


그렇게 사이버 부대에서 급히 사라졌다.

“네? 장관님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갑자기...”

김 장관은 병원에서 정밀 검사와 조직검사를 통해 삼족오의 소견과 같은 췌장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후 김 장관은 췌장암 치료를 위해 국방부 장관의 자리에서 급히 사퇴하게 되었고, 정 차관이 국방부장관의
자리를 대행하게 되었다.

:
***

아람의 학교 앞에 도착한 유성과 아람이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람아 지난 주 금요일에 미전 마무리 했으니 이번 주는 별일 없는 거지?”

“응! 아마도. 오늘은 특별한 일 없으면 일찍 마칠 거야. 혹시 일 생기면 톡할게.”

“응. 그래 연락해. 이따 봐.”

아람을 학교에 데려다 준 유성은 외숙모의 가게를 향하면서 핑크에게 연락했다.

“고니야! 핑크 누나에게 전화 걸어줘.”

-네 한유성님 심분홍님에게 통화 연결 합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 ]

[철컥! 유성씨! 잘 지냈어요? ]

“네 안녕하세요. 핑크 누나! 덕분에 힘들지 않게 일하면서 돈도 벌고 있네요.”

[하하 그럼 다행이네요. 문자로 말씀 드린 거처럼 이번에 들어온 의뢰가 있는데... 유성씨가 맡아 줄 수 있나


해서 연락 드렸어요. ]

유성은 핑크의 다리가 불편해 움직이기 쉽지 않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음...그럼 외숙모 가게 들렀다가 제가 점심때 사무실로 찾아 갈게요.”

[네 그럼 점심 먹으면서 얘기하면 되겠네요. 유성씨 먹고 싶은 거 있음 문자줘요. 시켜 둘게요. ]

“네 고마워요. 그럼 이따 뵐게요.”

[네 이따봐요. 철컥! ]

통화를 끝낸 유성은 점점 도로에 많아지는 차량을 실감하며 말했다.

“아! 오늘 월요일이구나.”

그렇게 점점 출근시간이 되어 막히는 도로를 힘들게 달려 유성이 ‘카페 빈’에 도착했다.

“유성아 왔니?”

“네 숙모! 주말 잘 보냈어요?”

“생각보다 빵이 빨리 떨어져서 좀 난감했지만 잘 보냈지.”

“예? 그게 모자랐다고요? 혹시나 해서 평소보다 많이 준비했는데...”

유성은 지난 금요일 주말에 쓸 빵과 케잌을 평소 주말 판매 분량보다 많이 챙겨놓고 떠났었다.

“나도 충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토요일부터 들어온 어린 손님들이 음료보다 빵을 많이 찾더라고...”


“하하 그래도 남는 거 보단 낫네요. 일단 그럼 빨리 빵부터 만들로 갈게요.”

“응 그럼 수고해! 유성아! 그런데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해?”

“아참! 오늘은 점심 때 약속 있어서 숙모랑 같이 못할 거 같은데... 대신 맛있는 수제 버거 하나 만들어


드릴게요!”

“유성아 그냥 ‘크림버섯’ 이랑 ‘스위트칠리’ 두 개 다 만들어 줘! 뒀다 남으면 저녁에도 데워 먹게.”

“네! 알았어요. 숙모.”

외숙모는 유성이 함께 식사 때마다 조리도구와 보정 스킬을 사용한 때문인지 유성의 빵에 그렇게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

휠체어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는 노인의 전화기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 회의 도중 국방부 장관이 갑자기 자리를 비웠습니다. 확인 되는 데로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

“허허허. 알겠네. 수고하게.”

[네 어르신 들어가십...철컥 ]

노인은 상대방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제야 노인의 얼굴에는 조금 불편한 표정이 살짝 비쳤다가 사라졌다.

“쩝..이제 다른 아이를 알아봐야 하겠구먼...”

노인의 손이 테이블에 있는 전화기의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네. 회주님!]

“큼큼...천 사장 들어오라고 해.”

[네. 회주님. 바로 연락 하겠습니다. ]

인터폰으로 의사를 전한 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흠흠...요즘은 너무 편해서 그런지 애들이 너무 물러서 큰일이야. 쯧.”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지 5 분도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와 함께 한 인영이 노인의 방으로 들어왔다.

“어르신 찾으셨습니까?”

“그래 오랜만에 조용히 해줄 일이 하나 있어.”

“네 말씀만 하십시오. 어르신.”

“흠..그게 말이야. 지난번처럼...”


:

표정이 없던 노인의 눈빛이 점점 사악하게 물들어 갔다.

***

-Episode

일요일 점심시간이 지난 지 얼마지 않아 유성의 외숙모 가게를 한 손님이 찾았다.

[딸랑! ]

“어서 오세요. 손님!”

“여기가 ‘카페 빈’ 맞나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귀여운 남자 손님의 질문에 유성의 외숙모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네! 맞습니다. 손님.”

가게 주인의 얘기에 안도의 숨을 내 쉬고 난 고등학생 손님이 조심스레 질문을 이어갔다.

“휴!..그럼 여기 빵이랑 케잌도 팔고 그러나요?”

“네 음료와 빵도 함께 판매 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 한층 밝아진 남학생 손님은 당당하게 원하는 메뉴를 주문했다.

“저! 그럼 ‘초코 수플레 치즈 케이크’ 하나 주세요!”

남학생 손님의 주문에 진열장을 돌아본 유성의 외숙모가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아! 손님. 죄송합니다. 평소보다 많이 준비해 두었는데 이상하게 어제부터 초크 수플레 치즈 케이크만 찾는
손님이 많아서 오늘 오전 중에 다 팔렸어요. 진열장에 다른 케잌이나 빵도 준비 되어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손님.”

“아..아니에요...다음에 올게요.”

유성의 외숙모의 말을 듣고는 거의 울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선 남학생은 그렇게 ‘카페 빈’을 나섰다.

“저..저기 학생!”

“네?”

유성의 외숙모는 돌아서는 학생의 표정을 보고 그냥 보내기가 안쓰러워 멀어지는 남학생을 불러 세웠다.

“이거라도 먹어봐요. 난 사실 초코 수플레 보다 이게 더 맛있더라고요. 그리고 다음엔 전화하고 와요. 따로


챙겨둘게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유성의 외숙모가 건넨 빵을 받은 남학생은 터벅터벅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며 생각했다.

‘아! 다른 애들은 벌써 와서 먹었는데... 조금만 더 서두를 걸... 아휴!’

그랬다. 남학생 손님은 미전에서 소파를 만들어 전시했던 학생이었다.

친구들의 ‘얼굴책’ 어플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자신도 부랴부랴 찾아 왔지만 ‘초코 수플레 치즈 케잌’은 벌써
매진이었던 것이다.

‘꼬르륵...’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오르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배고픔이 밀려 왔다.

‘아 배고파!’

학생은 카페에서 나오는 길에 사장님에게 받은 빵이 생각나 가방에서 급히 조그맣게 포장된 빵을 꺼내었다.

‘후...너무 작다.’

포장 안에는 조그만 에그타르트 하나가 포장되어 있었다. 학생은 별 기대 없이 한입 깨물었다.

“파사삭! 촉..촉.. 응?! 우와!”

에그타르트 맛을 본 남학생은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다시 ‘카페 빈’을 급히 찾았다.

[딸랑! ]

“어서 와요. 학생!”

급하게 들어서는 손님의 얼굴을 확인 한 외숙모에게 남학생이 숨도 돌리지 않은 채 주문부터 했다.

“헉..헉...저기.. 방금 그 에그타르트 주세요. 많이 주세요!”

“저...학생 그게 마지막 이었어.”

“아!...안 돼!”

분홍 이야기

***

[끼익! ]

유성이 심부름센터 사무실 문을 열고 인사하며 들어서자 핑크와 심실장이 그를 반겼다.

“잘 지내셨어요? 실장님 핑크 누나.”

“오랜만이에요. 유성군.”

“네 실장님 덕분에 요즘 잘 지냅니다. 근데 다른 분들은 안 보이시네요.”


“다들 외근 나갔죠.”

“어머! 유성씨는 전에 봤을 때보다 피부가 더 뽀얘 진거 같네. 이런 거 물어보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화장품


어디 제품 써요?”

핑크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유성이었다.

“네? 그냥 스킨이랑 로션정도 바르죠. 급할 땐 안 바를 때도 있고요.”

“헐..썬 크림도 안 발라요?”

“썬 크림은 여름에 바르는 거 아닌가요?”

“썬 크림은 계절 상관없이 외출하기 전엔 필수죠! 와! 딱히 관리도 하지 않는데도 피부가 이렇게 차이가 나나?”

심 실장과 유성을 번갈아 살펴보며 둘이 피부를 비교하던 핑크의 손이 누군가 말리지 않으면 곧 유성의 얼굴에
당도할 기세라 느꼈는지 심 실장이 급히 주위를 환기시켰다.

“저기.. 유성군 배고플 텐데 일단 식사부터 하죠. 핑크가 중국 음식 배달 시켰는데 괜찮죠?”

“아 네! 당연히 괜찮죠. 메뉴는 제가 정했거든요.”

서로 오가는 대화를 통해 조금은 친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중국음식이 미리 배달되어 세팅 되어 있는 테이블로 이동 했다.

심 실장과 핑크가 배달 음식의 포장된 랩을 벗기려는 순간 유성이 둘에게 잠깐 양해를 구했다.

“저...기 잠깐만 기도 좀하고 먹을게요.”

“어?..어 그래요. 유성군.”

‘고니야 ‘조리 도구’와 ‘보정’ 스킬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조리 도구’ 스킬과 ‘보정’ 스킬을 사용합니다.

유성은 그렇게 기도를 핑계로 배달음식의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유성씨 원래 교회 다녔어요?”

“딱히 나가는 교회는 없지만 그냥 개인적인 믿음이죠. 신께 기도 후 음식을 먹으면 맛있어 진다는 일종의 저만의
루틴이라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핑크의 질문을 들은 유성은 이런 상황에 나올 질문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둔 대답을 했다.

“하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종교관도 자유롭군요.”

핑크가 삼촌의 리액션을 애써 무시하며 혹시 배달된 음식이 유성의 입맛에 맞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물었다.

“유성씨. 배달 음식 맛은 다 비슷하겠지만 근방에선 여기가 그나마 제일 괜찮아요.”


“네...쩝..쩝..후르륵...음 이집 음식 맛있네요.”

핑크의 걱정이 무색하게 맛있게 먹는 유성의 반응에 이어 삼촌도 유성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쩝..쩝...우걱..우걱....응 핑크야 여기 새로 생긴 곳이야? 맛있는데?”

그제야 핑크도 탕수육 한 점을 맛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응? 쩝..쩝....그러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맛이 확 달라졌네. 주방장이 바뀌었나?”

“어? 그럼 배달시킨 곳이 원래 시켜먹던 사거리 반점이야?”

“응. 근데 이거 봐! 전이랑 다르게 아직도 면발이 탱글탱글한 거 보여? 주방장이 바뀐 게 확실하네!”

그렇게 새로운 주방장(?) 유성의 손맛으로 평소보다 맛있게 식사를 끝낸 후 심 실장은 커피머신에서 원두커피를
내려주겠다며 커피를 준비하러 이동했다.

그사이 테이블에 남겨진 유성과 핑크는 둘의 공통분모인 아람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아람이한테 얘기 들었는데 유성씨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핑크는 아람의 얘기에 마냥 축하만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인지 눈빛에 쓸쓸함이 감돌았다.

“제 덕이라기보다는 아람이가 많이 노력해서 나온 결과겠죠. 저...기 핑크 누나는 계속 치료 받고 있는


건가요?”

유성은 핑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죠. 이제는 재활의 의미보다는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치료로 병원에 계속 가고 있어요.”

유성은 하반신 마비인 환자들에게 무턱대고 괜찮을 거라는 인사는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에 희망의 메시지는 전하지 않았다.

“아..네. 그렇군요.”

유성도 핑크의 씁쓸한 마음이 전해져서 이대로 모른 척 지나치면 계속 마음이 쓰일 것 같았다.

‘고니야 오지랖일지 모르지만 궁금해서 그러니 핑크 누나 ‘상태확인’ 스킬로 다리 상태 좀 체크해봐!’

-네 한유성님 ‘상태 확인’ 스킬을 사용합니다. 추가 적으로 ‘측정’스킬 사용을 권합니다.

‘어 그래! 필요한 건 다 사용해봐.’

커피를 준비해 쟁반에 담아온 심 실장은 둘이 멀뚱히 앉아 있는 썰렁한 분위기에 소파에 앉은 유성과 반대쪽에
자리한 핑크의 눈치를 보며 다가와 말을 이었다.

“저.. 핑크가 미리 언급했듯이 유성군이 맡아 주었으면 하는 의뢰가 한 건 들어와서 불렀어요.”

심 실장에게 방금 내려 따뜻한 커피를 건네받은 유성이 분위기 전환이라도 할 겸 심 실장에게 동의를 구했다.

“네. 그런데 실장님 이제는 말씀 낮추시는 게 저도 실장님 대하기 좀 더 편할 것 같아요.”


“아! 그럴까?”

“네! 실장님이 편하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덩달아 훨씬 편하네요.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내용을 확인 할 수


있을까요?”

그 짧은 사이에 표정을 회복한 핑크가 준비했던 서류 파일을 유성에게 건넸다.

“유성씨 여기 자료 한 번 확인 해 봐요.”

핑크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급하게 확인 한 유성이 말을 전했다.

“흠...내용을 보니 생각했던 학교폭력과는 조금 다른 것 같네요?”

“그렇죠. 근데 유성씨 우리도 삼촌처럼 서로 말 좀 편하게 하는 게 어때요?”

핑크가 말할 때 어느 정도 회복된 눈빛을 확인한 유성이 분위기 반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럼 핑크 누나 우리 통성명이라도 하고 나서 말 편하게 하도록 하죠. 전 아직 누나 이름도 모르자나요.”

유성의 대답에 급격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핑크는 조금 전 했던 말과는 다르게 노선을 변경했다.

“큼큼...아니네. 유성씨! 아직 우리 말 놓기에는 조금 이른가 보다. 그치...요? 큼...제가 낯가림이 조금


아니 많이 있을 거라. 말은 다음에 편하게 하는 걸로!”

“저는 괜찮은데. 그럼 핑크 누나가 말 놓기 편해지시면 그 때 말씀하세요. 그리고 이번 의뢰는 서류 좀 더


확인해 보고 결정되는 데로 연락드릴게요. 그래도 되죠?”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저는 이만 일어나 봐야겠네요.”

어느 정도 수습된 분위기를 느끼며 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성군 그럼 운전 조심하게.”

“유성씨 잘가...요.”

“네! 핑크누나 오늘 점심 잘 먹었어요.”

그렇게 사무실을 나와 유성은 차에 올랐다.

자동차 시동을 걸기 전 유성이 고니에게 조용히 물었다.

“고니야 아까 핑크 누나 다리 확인한 결과 나왔어?”

-네 한유성님. 스킬 사용으로 얻은 결과를 홀로그램과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응.”

-먼저 심분홍님의 하지마비는 흉추부이하 척수신경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손상되어 보이는 증상으로 확인 됩니다.
좀 더 자세한 증상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고니에게 설명을 들은 유성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키며 고니에게 물었다.

“그럼 일단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는 거지?”

-네 한유성님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쩝...그럼 일단 핑크 누나랑 말부터 편하게 터야겠네.”

유성은 그렇게 자신의 약간의 수고로 다른 이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오지랖을 한번 부려볼 결정을
했다.

****

오전부터 가상현실 공간에서 월간 회의를 치르느라 주말부터 정신없었던 관리 소대장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늘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

[수고하셨습니다. 소대장님 ]

“삼족오 너도 고생 많았어.”

이제는 자신의 쉼터 중 하나가 되어 버린 지하벙커 중앙 통제실에서 관리 소대장은 ‘삼족오’와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혹시 오전에 장관님이 왜? 갑자기 회의도중 사라지신 줄 알아?”

[네. 개인 정보라 정확한 설명은 드릴 수가 없지만, 회의를 위해 접속한 국방부 장관님을 스캔 중에 발견해 보고
드린 신체 이상 확인을 위해 병원으로 급히 이동하신 것으로 예측됩니다. ]

“뭐? 신체 이상? 그런 거도 알 수 있었어?”

[네. 캡슐에 기기만 갖추어져 있으면 기본 적인 엑스레이, 컴퓨터 단층 촬영기(CT), 양전자 단층 촬영기(PET)
등을 통해 기본적인 의료 진단이 가능합니다. ]

“헐...친구야! 너 보기 보다 더 능력자구나!”

그렇게 삼족오는 국방부 장관이 접속했던 새로운 버전의 캡슐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능력을 선 보였다.

[네 소대장님 제 분석으로도 나쁘지 않은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

“헐! 너! 자뻑도 다분하구나.”

[소대장님 방금 표현은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라 판단됩니다. ]

***
-Episode (후일담)

제목 : 다들 힘내시라고 제 경험담을 올려 봅니다.

저는 2 년 전 유원지에 설치 된 번지점프대에서 불의의 추락 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고 다음날 8 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고, 이 후 대학병원서 4 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나서 재활 훈련을 위해


재활전문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6 개월 후에는 장애진단 1 급 1 종이라는 하반신 완전마비 판정을 받았고, 그 때 까지 대소변은 물론


침대에서 남의 도움 없이는 휠체어도 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3 개월 정도 피나는 재활훈련 끝에 저는 혼자 휠체어는 물론 화장실 출입에 샤워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피눈물 나는 재활은 계속되었고, 결국 사고 이 후 1 년 8 개월 만에 보조기를 착용하고


엘보 지팡이로 계단 오르내리기가 가능해 졌습니다.

그리고 1 개월 만에 병원 1 층에서 5 층까지도 왕복이 가능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걷는 재활운동도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재활이라는 게 혼자만의 싸움과 같다고나 할까요?

크게 차도는 느껴지지 않고 매일 매일이 너무 힘들어 현실과 타협할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얼마간 그렇게 생활도 했습니다. 이정도면 열심히 했다고,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여기서 그만하자고
주위사람 그만 괴롭히자고...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 다리가 몹시 저리고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하반신완전 마비 환자인 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수술을 집도한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님께 전화 상담을 한 결과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교수님 말씀이 신경이 살아나려고 할 때 저처럼 저리고 아프답니다.

제게도 기적이 일어난 걸까요?

너무도 가슴이 벅찹니다.

교수님이 MRI 를 찍어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음 주에 사진촬영 하러 병원에 갑니다.

경과보고 나서 또 글 올릴게요.

저와 같은 처지의 환자분들 힘냅시다.

사실 저도 얼마 전까진 너무 힘들어 재활을 포기하고 현실에 수긍하고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아보려 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기초 재활 운동이 매우 중요 하다는 것을 이번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저와 같은 행운이 찾아와 조금 더 힘내셨으면 하는 마음에 제 경험담을 카페 게시판에 적어 봅니다.

-작성자 아이디 : 핑크-

정밀 보정

***

유성은 다음날 오후 새로 받은 의뢰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핑크에게도 볼일이 있어 다시 심부름센터 사무실을


찾았다.

[끼익! ]

유성이 조금은 뻑뻑한 감이 없지 않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점심시간이 지나 책상에 팔을 괴고 앉아 졸음과


싸우고 있던 핑크가 문소리에 놀라 습관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아! 유성씨 왔어요?”

“네. 핑크 누나 저 왔어요. 근데 오늘도 사무실이 썰렁하네요. 다들 오늘도 외근 나갔나 봐요? 요즘 많이


바쁜가 보네요.”

“그게 아니라 반대에요. 요즘 일거리가 없어서 삼촌들 외근이 잦아요.”

“...?”

핑크는 유성에게 대답하며 사무실 입구 한 쪽 구석을 바라봤다. 유성도 자연히 핑크의 시선을 따라 돌아본 곳에는
서류 뭉치가 쌓여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은 그 중 하나를 들어 내용을 읽어 보았다.

‘특별행사 선착순 10 명 무료 상담...’

“이것은....”

“네. 맞아요. 다들 양복에 선글라스 착용하고 전단지 돌리러 갔어요.”

“아! 일종의 영업 뛰러 가신 거네요. 그럼 이번에 제가 맡은 의뢰도 전단지를 통해 받은 의뢰 인가요?”

“네. 대기 삼촌이 돌린 전단지를 마침 고민이 있던 고등학교 남학생이 받았나 봐요. 전단지를 확인하고 저희
쪽으로 연락을 한 거죠.”

“그런데 학생들 의뢰는 아람이 같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돈이 안 되지 않아요?”

“그렇긴 하죠. 보통 학생들 고객은 돈이 안 되죠. 그렇지만 몇 년 후엔 그들도 유로 고객으로 바뀌리라는 우리


실장님의 큰 그림이죠.”

“오! 그런 경영철학이 들어가 있었군요.”

“좋게 말해 그렇다는 거고, 제가 볼 땐 실장님이 그냥 사무실에서 직원들 노는 꼴을 보기 싫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마냥 효과가 없지는 않나 봐요?”

“그러게요. 온라인 광고를 통해 들어오는 문의는 거의 없는데 의외로 삼촌들이 선글라스에 양복 챙겨 입고


거리에서 직접 나눠 주는 전단지는 한두 건씩 문의가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흠.. 직접 눈으로 보면 왠지 모르게 삼촌들에게서 느껴지는 전문가 포스에 연락이 오는 게 아닐까요?”

“호호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유성씨 오늘 저녁에 약속 장소에서 의뢰인과 대기 삼촌 같이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에요? 번거로울 텐데 왜 벌써 왔어요?”

“하하 처음엔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마침 오늘 오후에 시간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불현듯 핑크 누나가
아람이랑 본지도 조금 오래 되어 보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오작교가 되어 볼까하는 생각에 오지랖을 살짝 부렸어요.”

“음...그래도 되기는 한데 그러면 유성씨가 저 때문에 귀찮을 텐데요.”

“아니에요. 핑크 누나 불편해하지 마세요. 저 힘 좋은 건 알고 계시죠? 그리고 아람이 하교 시켜주고 나서 핑크


누나랑 약속 장소 바로 가서 의뢰인 만나면 되니 사실 저도 크게 번거로울 것도 없죠.”

“있다가 저녁에 대기 삼촌이 약속 장소로 가실 건데...굳이...저랑?”

“저야 나 팀장님 보다는 그래도 핑크 누나가 편하니까 이렇게 왔죠. 팀장님 대신에 누나가 저랑 같이 가요! 넹?”

그랬다. 유성은 자신의 차에 핑크를 태우고 내려줄 때 자연스럽게 스킬을 사용해 치료를 시도 해 볼 계획을
세웠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오늘 없던 애교까지 만들어 장착하고 이렇게 사무실을 찾은 것이었다.

“사무실 비우면 안 되는데...”

“어차피 둘러보니 가져갈 만한 거 음...저기 전단지뿐이네요 뭐.”

“에이...까짓 거 유성씨 가요!”

유성은 핑크를 주차된 차량 옆 휠체어에서 뒷좌석으로 안아서 옮기는 도중에 고니에게 스킬 사용을 지시했다.

‘고니야! 지금!’

-네 한유성님 스킬 ‘치료’ 스킬 ‘보정’을 사용합니다.

[우...웅!..웅! ]

스킬을 사용하자 유성의 손끝에 유성의 눈에만 보이는 하얀 빛 무리가 뭉치기 시작했다.

유성은 조심스럽게 휠체어에서 핑크를 안은 다음 왼손은 핑크의 등으로 오른손은 다리로 자연스럽게 이동해 각각
빛을 쐬어주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

핑크는 자신을 안아 들면서부터 천천히 조심스러워하는 유성에게 이상함을 느껴 물었다.


“유성씨! 그렇게 애기 다루듯 하지 않아도 돼요! 어?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져요? 아무래도 수상한데...”

“하하! 그게 아니라요.”

“뭐가 아닌데요? 설마? 오늘 갑자기 친절하게 대해주더니 이젠 얼굴까지 붉어지고... 유성씨 혹시 나를...”

유성은 아직 스킬 사용에 시간이 더 필요한 터라 핑크의 말을 들으며 어제 ‘상태확인’과 ‘측정’ 스킬을 통해


알아 둔 핑크의 신체 수치 중 하나를 떠올렸다.

“아니에요! 누나 하나도 안 무거워요! 대략 이 정도면 56kg 쯤?”

“뭐? 뭐라고!? 딱 놔! 요즘 운동 안 해서 조금 부어서 그런 거거든!”

아람은 흥분해 유성에게 경어 쓰던 것도 잊어버린 듯 했다.

“아이 참! 하나도 안 무겁다니까요! 핑크 누나! 잠시만 말 시키지 말아 봐요! 더 힘들잖아요!”

그렇게 유성은 본인이 의도한 약간의 실랑이 끝에 핑크에게 ‘치료’와 ‘보정’스킬을 1 차적으로 사용하는데
성공했다.

“어머! 핑크 언니! 웬일이야?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학교 앞에서 생각지도 않게 핑크를 만난 아람은 반가움에 소릴 질렀다.

그리고 어느새 핑크의 말투는 유성에게 자연스런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그냥 오랜만에 너도 볼 겸 유성이랑 데이트도 할 겸?”

“헐! 언니! 안 그래도 학교에도 강력한 경쟁자 하나 있어 골친데. 언니까지 왜 이래? 안 돼!”

“호호 기집에 오바 하기는! 농담이야! 유성이는 날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안하는 거 같아. 저거 나를 오로지
무게로만 측정하더라고...”

“.....?”

“너도 조심해 갑자기 들어보고 몸무게 측정 할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유성이 쟤 휠체어에서 뒷좌석으로 나 옮겨줄 때 살짝 안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내 몸무게를 맞추더라고.


완전 저울이야.”

***

승진은 오늘도 학교를 마치는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함이 점점 밀려 왔다.

연고도 없던 부산에 내려와 학교 친구들과는 이제 어느 정도 친해졌지만 떠오른 새로운 문제가 있었다.

근래에 생긴 이 고민 때문에 예전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주던 알바 형이 생각나 캡슐 방을 찾아가기도 해보았지만


웬일인지 문을 닫아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금요일 길에서 나눠 주는 전단지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 휴지통에 버리려던 터에 한 줄의
문구 ‘선착순 10 명 무료 상담’이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흠...일단 무료라니까 한번 연락이라도 해봐?’

「승진 : 전단지 보고 무료상담 신청 드립니다.」

「담당자 : 네 반갑습니다. 고객님. 구체적인 상담 내용과 이름 연락처를 포함해 아래 메일로 보내주세요.


pinksimboorm@xxmail.com」

그렇게 승진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담아 메일로 무료상담을 신청했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선착순 10 명안에 들어 무료상담이 가능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약속 장소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빠의 직장 근처 카페로 정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고객님!”

“안녕하세요! 고객님!”

그렇게 매장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간 카페 한쪽에서 승진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핑크의 집 앞에 차를 세운 유성이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내며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이번엔 ‘정밀 보정’스킬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정밀 보정’스킬을 사용합니다. ‘치료’ 스킬과 함께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
됩니다.

‘OK! 시작했으니 뭔가 성과가 있어야겠지? 고니야! 어디 한 번 해보자!’

[띠링! ]

[정밀 보정할 대상을 지정해 주십시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유성이 핑크의 옆으로 다가와 차문을 열고는 핑크에게 질문을 던지며 살짝 어깨를
터치했다.

[삐! 선택하신 심분홍님의 흉추부이하 척수신경 상태를 정밀 보정 하시겠습니까? ]

‘예쓰!’

유성은 마음속으로는 스킬을 사용하며 겉으로는 핑크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정신이 없었지만 다시 한 번 집중해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갈무리 했다.

“누나! 이제 저도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않을까요?”

[삐! 정밀 보정 중에 선택 대상과의 연결을 끊어지지 않도록 주의 부탁드립니다. ]


“언제는 통성명해야 말 튼다더니 괜찮겠어?”

[삐! 준비가 완료 되시면 바로 정밀 보정을 시작합니다. ]

‘고니야 저게 무슨 말이야?’

-네 한유성님 정밀 보정 진행 중에 연결이 끊기게 되면 생명을 가진 대상은 위험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 됩니다.

고니의 말을 듣고 유성은 조금 더 핑크와 신체 접촉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할 필요를 느꼈다. 유성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좀 더 친해지면 누나가 이름도 가르쳐 주겠죠.”

“사실은 나 이름에 콤플렉스가 살짝 있어서 실명은 웬만해선 얘기를 안 하거든.”

유성은 드디어 핑크가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하곤 미리 생각해둔 멘트를 날렸다.

“아하! 누나도 이름이 평범하진 않나 봐요? 근데 전 오히려 이름이 특이하면 기억에도 남고 안 까먹어서
괜찮던데. 누나 이름이 아무리 특이해도 분홍이만 아니면 되죠.”

“유성아....너 혹시 삼촌이랑 따로 연락했니?”

“아니요.”

유성은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핑크에게 얘기했다.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너 이리 와봐!”

제대로 화가 난 건지 핑크의 손이 유성의 귀를 향했다. 하지만 유성은 피하지 않고 귀를 허락해 주었다.

“앗! 악! 아 거긴 아파요...누나....!”

자연스럽게 핑크에게 붙들린 유성은 한 손을 핑크의 등 쪽으로 향하게 한 후 고니에게 지시했다.

‘고니야 이제 시작해!’

-네 한유성님 ‘정밀 보정’과 ‘치료’ 스킬을 함께 사용합니다.

[삐! 지금부터 정밀 보정 스킬을 사용합니다. ]

[쿨 타임이 9 일 23 시간 59 분 남았습니다. ]

[삐! 지금부터 1 분 동안 정밀 보정을 진행합니다. ]

[60 초]

[59 초]

:
사실 그랬다. 유성은 1 차로 스킬을 사용한 후 ‘상태확인’ 스킬을 통해 핑크의 상태를 확인 했지만 크게 호전된
부분이 확인 되지 않아 아직 사용하지 않은 ‘정밀 보정’스킬의 안정적인 사용을 위해 일부러 핑크에게 다시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핑크의 손에 귀를 잡혀 엄살이 섞인 비명을 지르고 시작했다.

“큼큼...또 둘이 작당했다가 걸리기만 해봐! 아주 아작을 내 버릴 거야! 아휴!”

하지만 잠시 후 핑크가 이성을 찾았는지 핑크의 손에 힘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낀 유성은 불안한 마음에 고니를
다시 불렀다.

‘고니야 ‘호루라기!’ 입으로 바로 소환해줘!’

[11 초]

“삑!!!!!!~~~~~~~”

[띠링~]

[축구 심판의 호루라기 LV.1 을 사용했습니다. ]

[현재 상황에서 본인을 제외한 모두의 시간이 10 초간 정지 됩니다. ]

[쿨 타임이 6 일 23 시간 59 분 남았습니다. ]

[10 초]

[9 초]

그렇게 유성의 오지랖으로 시작된 핑크의 치료는 막을 내렸다.

무료 상담

***

유성은 아람을 집에 데려다 주고 난 뒤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핑크와 광안리 해변에 있는 ‘어디야’ 커피


전문점을 향했다.

[딸랑! ]

“어서 오세요 고객님!”

“안녕하세요! 고객님!”
매장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여길 또 오네...훗.’

유성은 얼마 전에 여기에서 있었던 썩 좋은 기억이 아닌 일이 떠올라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핑크에게 물었다.

“쩝..약속 장소가 여기였어요?”

“응. 의뢰인이 여기서 만나자고 해서.”

“근데 아까 보니 뒷좌석에서 둘이 내 욕 엄청 하는 것 같던데 평소 어떻게 참고 살았데요?”

“헤헤. 이야기의 대상을 바로 앞에 두고 씹은 건 좀 심했나? 기분 안 나쁜 건 아니었지?”

“네..네?”

“아까 함부로 몸무게 측정한 일에 대한 소심한 복수라고 생각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서 참아.”

유성은 핑크와 대화를 통해 일반적인 사람은 절대아니라고 확신하며 핑크에 말에 순순히 대답했다.

“쩝...그러죠. 뭐.”

그 때 마침 옆에서 누군가 유성의 옆에 다가와 얘기하는 목소리에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어? 알바 형?”

유성이 돌아보자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지난 번 삼촌 가게 옥상에서 양아치들에게서 자신이 구해주었던


학생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응? 그 때 핏덩어리?”

“하하! 형! 맞구나! 정말 반가워요! 그 땐 정말 고마웠어요.”

“그래 오랜만이네. 요즘은 안 맞고 다니지?”

“큼큼...요즘은 안 맞고 다녀서 문제 인 것 같아요.”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성은 승진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기며 지나가는 말투로 질문했다.

“그래. 넌 여기 친구 만나로 온 거니?”

“아니에요. 개인적인 일 때문에 누구 좀 만나 상담 좀 받아 볼까 해서 왔어요. 형은 데이트 중? 형수님?”

승진의 질문에 유성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설마! 아니야! 나도 일하러 왔어. 무료상담 해주러..어? 혹시 너...”

둘의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핑크가 승진에게 물었다.


“저기...혹시 아이디가 ‘서울촌놈’님이세요?”

“네! 맞아요. 제가 ‘서울촌놈’입니다. 어? 그...그럼 형이 설마 피...핑크...?”

핑크의 말을 듣고 자신이 보낸 메일주소를 떠올린 승진이 핑크와 유성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나 아니고 이쪽이거든!”

“그치 형이 핑크님은 아닐 거라 생각했어.”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던 핑크가 둘을 중재하며 승진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해요. 서촌님.”

“아...네 감사합니다. 핑크님!”

“일단 목부터 축이고 얘기하죠.”

핑크의 말을 듣고 유성은 주문을 하러 가기 위해 각자에게 메뉴를 물었다.

“그게 나을 것 같네. 핑크 누나는 뭐 드실래요?

“난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탁해. 유성씨.”

핑크는 어느새 사무적인 말투로 바꿔 유성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핏덩어리는 성장기니까 그냥 우유 마셔!”

그리고 승진의 메뉴는 유성이 결정했다.

“아우! 형 저 핏덩어리 아니라니까요.”

“시끄러! 내가 그 때 화장실에서 네 옷에 묻은 피 닦느라 쓴 휴지만 해도 한 덩어리는 충분히 넘었지.”

“아...핏덩어리 아니라니까!”

유성은 그렇게 승진을 놀리고 주문을 위해 계산대로 향했다.

“주문하고 올게. 앉아있어. 핏! 덩! 어! 리!”

잠시 후 음료를 들고 자리로 돌아온 유성이 핑크와 승진에게 음료를 나눠 주었다.

“서촌님 이제 유성씨도 왔으니 의뢰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겠어요?”

“저..잠시만 휴우! 그 전에...형 빨대는?

승진이 크게 한숨을 쉬며 긴장감을 날려 버리려 했다.

핑크는 승진이 초조해 하는 걸 눈치 채고 눈짓으로 유성에게 빨대를 가져다주라고 신호를 보냈다.

“헐? 핏덩이 네가 가따... 아니다. 이번은 특별히 형인 내가 가져다줄게.”


잠시 후 승진은 따뜻한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진정이 되었는지 천천히 유성과 핑크에게 의뢰 내용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형. 사실 저 요즘 진짜 힘들어요.”

“얘기하기 힘들면 천천히 얘기해도 되요.”

아직 초조함이 많이 남아있는 승진에게 핑크는 얘기하기 편하도록 분위기를 유도했다.

“네. 제가 그게 어쩌다보니까 일진들하고 어울리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질 나쁜 선배들도 많이 알게 되고 주말마다 불려가서 툭하면 담배 심부름도 해요. 아 진짜 개빡쳐


돌겠어요.”

“우리가 아는 학교 일진 말이지?”

“네. 진짜 피기 싫은 담배도 억지로 펴야 되고. 공부도 못하겠고 C8.. 이제는 반 친구들도 다 저를 피해요.”

흥분해서 그런지 말투에 욕까지 간간히 섞인 승진의 고민을 들은 핑크가 서류를 확인하며 물었다.

“음...저희에게 처음 보내주신 의뢰 내용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네요.”

“네. 선뜻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하기가 힘들어서요. 메일도 혹시나 애들이 열어 볼까봐 아이디도 새로
만들어서 보낸 거예요. 아이들이 가끔 제 폰도 확인 하거든요.”

“서촌님 정말 힘들었겠네요.”

“아!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저 일진이랑 놀기 싫어요. 도와주세요. 흑...흑..”

“진정해. 핏덩어리.”

“그 애들은 어울릴 때마다 나쁜 짓만 해요. 아 진짜 숨도 못 쉬겠고, 얼마 전부터는 담배 못 뚫으면 선배들한테


끌려가서 얻어터져요. 그래서 주말마다 오는 전화도 쌩깠더니...큭...이제는 학교 가는 것도 두렵고 무서워요.
도와주세요.”

승진의 말을 듣고 난 핑크는 승진의 상황을 정리해서 메모했다.

「 서울에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어 학교에서 친구들이 없이 생활했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내다 보니 점점 학교


안에서도 승진은 자신과 어울리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대부분이 소위 학교에서 일진으로 불리는 무리라는 걸 뒤늦게
깨달음.

이제와 일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계속 어울리기도 애매한 상황이 됨.

일진아이들에게서 벗어나기를 희망.」

유성이 핑크가 정리한 내용을 흘깃 살펴본 다음 승진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흠...네가 처한 상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친해지고 보니 일진이었다?”


“네...그런 거죠. 학교 마치고 나면 애들은 계속 저와 어울리자고 하는데 이제는 처음 모르고 어울릴 때처럼
편하지가 않아서 이 핑계 저 핑계로 그 친구들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오늘도 학원에 아빠가 직접 데려다
준다고 둘러대고 따로 빠져 나왔어요. 그래서 요즘 많이 난감해요.”

“쩝...처음 친구들 만날 때 조금 더 신중하게 만나지 그랬어.”

유성이 안타까움에 한마디 했다.

“저도 처음엔 그 친구들이 이런 줄 몰랐어요. 사교성이 풍부하지 못한 저에게 그 애들이 먼저 다가와 어울려
주어서 오히려 제가 고마워했으니까요.”

“쩝...그랬을 수도 있겠네.”

“사실 부산엔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어서 얼마 전에는 형 가게도 찾아갔었어요. 하지만 캡슐 방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음식점이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형한테 의논 하는 거도 포기 했었는데 여기서 마주 칠 줄 몰랐어요.”

얘기를 듣고 있던 핑크가 기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러면 부모님한테 먼저 말씀 드려 보지 그랬어요?”

“그게 저희 아빠가 요즘 직장 때문에 고민이 많으셔서 선뜻 얘기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부모님과 상의 해보고 정 안되면 전학 가는 방법도 선택할 수 있을 건데.”

“그게 아빠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발령 받아 온지가 얼마 안 되어서 힘들 거예요. 무엇보다 아빠도 요즘 힘드실
텐데 저까지 걱정 끼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럼 엄마에게라도 살짝 털어 놓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엄마는 어릴 때 교통사고로... 지금은 아빠하고 둘이 살아요.”

핑크는 승진의 상황 메모를 마무리 지으며 이제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승진에게 말을 전했다.

“일단 서촌님 저희도 일이 좋게 해결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플랜을 짜 보도록 할게요.”

“너무 걱정 하지는 마! 잘 될 거야.”

유성도 걱정하는 승진에게 안심시키려 말을 전했다.

‘고니야! 일단 스킬 ‘요인 경호’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 스킬 사용합니다.

지금까지 승진에게 들은 얘기를 정리하던 핑크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승진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혹시 아빠가 경찰은 아니죠?”

“어?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승진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핑크가 대답했다.


“쩝.. 아빠도 아마 서촌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실 거예요.”

핑크의 느닷없는 아빠 얘기에 승진이 놀라 반문했다.

“네? 아빠가 알고 계신다고요?”

***

-Episode

고 1 아들을 두고 있는 아빠입니다.

얼마 전에 새벽까지 일하고 근무가 없는 비번이라 아들의 방을 치울 겸 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아들의 ‘얼굴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컴퓨터로 ‘얼굴책’에 들어가 놓고선 로그아웃을 안 하고 학교에 간 거 같았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살펴보니까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진과 여자를 껴안고 있는 사진 등을 올렸더라고요.

충격에 벗어나지 못하고 댓글 같은 거도 확인해 보니 친구들에게 돈도 뺏는 거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밤에 늦게 올 때 독서실에 간다고 저에게 거짓말하고 그런 거 같았습니다.

사실 저희 부자가 부산에 온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아들이 전학 온 처음엔 적응하지 못해 학교생활로 힘들어 하는 거 같더니 얼마 후 친구들도 사귀고 해서 조금


나아졌나 보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직장 근처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들의 친구들은 정말 예의도 바르고 착해 보여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는 말에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러라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해보았더니 아들의 학교생활은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매일지각에 수업시간엔 잠만 자는 문제아라고 하시며 그러지 않아도 전화 드리려고 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분명히 아침에 일찍 집에서 나서는 아들인데 중간에 어디를 들렀다 학교를 가는 건지..

서울에서 아빠말 잘듣고 공부 열심히 하던 아들은 못난 아비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전학 온지 이제 2 달이


지나 갑니다.

저는 사실 경찰 공무원입니다. 지난겨울 제가 진행한 사건이 잘못되어 저는 책임을 지고 부산으로 좌천


되었습니다. 이런 아빠를 보고 실망해서 아들이 지금 삐뚤어 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런 처지에 있기에 아들에게 뭐라고 했다가 더 삐뚤어질까 걱정이 되어서 애한테 묻지도 따지지도 못 하겠습니다.

결혼 후 4 년 만에 얻은 저에게는 정말 착하고 효자인 아들입니다.

어릴 때 엄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가는 바람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외동이라 외롭지 않게 해주려고 많이 노력 했고 최대한 예의바르고 공손하게 키우려고 했습니다.

애가 사춘기라 방황하는 걸까요? 아님 제가 교육을 잘못 시킨 걸까요? 어떡하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점심 먹고 지나는 길에 전단지를 받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도와주십시오.

마치 도깨비

***

“네? 아빠가 알고 계신다고요?”

승진이 놀라 핑크에게 되물었다.

“저희는 고객님의 신변보호를 위해 의뢰 받을 때 실명을 쓰지 않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서촌님 아버님이 알고


계실 가능성이 다소 큰 것으로 보여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조금은 진정이 되었는지 핑크에게 이유를 묻는 승진이었다.

“저희 측에 따로 들어온 의뢰 중에서 서촌님 상황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연이 있어요. 어릴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분과 서울에서 부산으로 전학 온 경찰 공무원 아들이라는 점 등의 사연을 종합해 보면
서촌님 아버님일 가능성이 큰 거 같아요.”

핑크는 지난 금요일 저녁에 들어왔던 의뢰 메일 내용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럼 아빠는 어떤 의뢰를 부탁한 거죠? 설마 아빠가 제 뒷조사라도 시킨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서촌님이 컴퓨터에 ‘얼굴책’을 접속하고 로그아웃 안하신 적이 있던 거 같던데요. 그렇게
우연히 아버님께서 방 정리하다 컴퓨터에서 사진과 댓글 등을 확인하시고 심적으로 충격을 받고 많이 힘드신 거
같아요.”

“아! 크흑..”

그제야 승진은 요즘 들어 자신을 대할 때 평소와 달랐던 아빠의 조심스런 행동과 질문 등이 떠올라 가슴 한곳이
저릿함이 느껴졌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서 아버님과 오해부터 먼저 풀고 의논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도 보다 좋은 대안을


찾아볼게요.”

“흑...네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만 일어나죠. 유성씨 혹시 서촌님 집까지 태워다 주고 가도 시간 괜찮을까요?”

“네 괜찮아요. 너무 걱정 하지 마! 핏덩어리 가자!”

“네..형. 핑크님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난 가게 앞으로 차 가져 올 테니까 핑크 누나 좀 부탁해!”

그렇게 유성은 차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승진은 휠체어를 밀기위해 핑크의 뒤로 이동했다.

“서촌님 이거 전동이라 안 밀어도 되요.”

“아! 그렇군요.”

그렇게 둘은 커피 전문점 앞 광안리 해변을 바라보며 유성을 기다렸다.

***

광안리 해변 저편에서 시시덕거리며 걸어오는 무리가 있다.

일행 중 앞에서 걷던 사내 하나가 커피 전문점 ‘어디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기 범생이 아냐? 아까 아빠랑 학원 간다던 모범생이 왜 저기 있지?”

“응? 그러네. 그런데 저 건물에 학원이 있어?”

“해변에 무슨 학원이 있냐? 딱 보면 모르냐? 구라치고 깔치 만난거지.”

“아닌데 깔치 치고는 쪼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

“그럼 범생이 저기서 과외 했나보네.”

“오! 그럼 범생이 앞 휠체어에 앉아 있는 깔치가 쌤인가 보네.”

“쓰고 있는 뿔테안경만 벗으면 얼굴도 반반 할 거 같은데.”

“큭 그거 갖고 되겠어? 다른 거도 더 벗어야 봐줄만 하지... 흐흐흐”

“하하 그러네.”

그렇게 커피 전문점 앞을 건너편에서 지나던 양아치 무리는 음담패설을 입에 담으며 길을 건너 점점 승진과 핑크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야! 범생이! 너 아까 학원 간다더니 여기 바닷가가 학원이냐?”

승진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양아치 무리를 보고 놀라 잔뜩 움츠러들었다.

“히끅!...아...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야! 범생이! 이 여자 분이 네 쌤이냐? 나도 같이 공부하고 싶어지네. 흐흐흐.”

“범생아 공부 끝났으면 넌 저기 편의점 가서 불 맛 나는 과자 좀 사와. 네 쌤은 우리가 잘 모시고 있을게.”

“형들 이분은 저랑 아무 관련도 없어요. 이러지 마세요. 부탁드려요.”


“어? 그래? 그럼 더 잘 됐네! 난 이제 이분이랑 조금 친해져 볼 테니 넌 얼른 편의점부터 다녀와.”

다급함에 승진은 핑크의 휠체어 앞을 막아서며 양아치 선배들과 대치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아...이...게 아닌데....핑크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니야. 네가 왜 사과해? 잘못은 저쪽에서 한 거지. 얘들이 아까 말한 그 선배들이니?”

둘의 대화 내용을 앞에서 듣고 있던 양아치중 한명이 핑크의 옆쪽으로 돌아와 휠체어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범생아 둘이 아무 관련도 없다더니 서로 노가리만 잘 터네? 그리고 쌤! 초면에 얘들이라니 우리에게도 교육열이
샘솟으시나? 크크크.”

“이 봐요! 대로변에서 뭐 하는 짓이에요? 당장 손 놔요!”

“얘기 들어보니 범생이가 우리 소개까지 벌써 다 해둔 것 같은데. 정중하게 모실 테니 우리 하고도 좀 친하게


지냅시다. 쌤!”

그렇게 둘에게 다가온 양아치 무리가 핑크의 휠체어에 손을 올리고 강제로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벌일 때 핑크의
뒤쪽에서 다가와 정지한 차에서 무리를 향해 강렬한 자동차 불빛이 비췄다.

[번....쩍!]

“아! C8 저 새낀 뭐야? 헤드라이트 안 꺼?! 저게 돌았나?”

“뭐야?!”

갑자기 자신들을 비추는 전조등 불빛에 눈이 부셔 짜증이 난 무리는 차를 향해 악을 쓰며 소리쳤다.

***

회주에게 직접 지령을 받은 천 사장은 오늘 하루 자신의 라인을 이용해 목표의 자료 수집을 명했다.

“지 실장! 이게 정 차관의 가족 사항인가?”

수집 된 자료를 태블릿을 이용해 확인하던 천 사장이 앞에 서 있는 지 실장에게 물었다.

“네 사장님.”

태블릿에 조사한 자료를 확인하던 천사장이 하나의 사진에서 손을 멈추었다.

사진에는 정 차관 딸의 생일인지 커팅 된 케이크를 테이블 옆에 두고 고기를 맛있게 먹는 딸을 인자한 웃음으로


바라보는 정차관의 모습이 있었다.

“음... 딸이 하나 있네. 이정도면 정 차관이 꽤 예뻐하겠어.”

“네 주위에서 딸 바보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정 차관이 군인 이던 시절에 빠른 진급에도 불구하고 이르게 저녁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전방에서 딸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 그랬다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 그래? 그럼 이쪽만 잘 이용해 보면 쉽게 갈 수 있겠는데?”

“그럼 그쪽으로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래. 딸 때문에 군복도 벗었다면, 후훗 관복이라고 못 벗겠어? 하하하 지 실장! 이번 일은 생각보다 쉽게 갈


수 있겠어.”

“네 사장님. 그리고 방금 알아낸 소식이라 자료에는 없지만, 정 차관의 딸이 올해 대학생인데 지난달부터 의료


봉사 활동을 다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봐.”

“네 사장님. 정 차관의 딸은 지난 5 월 부산에 있는 신평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의료 봉사 활동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지 실장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천 사장이 천천히 생각하듯 물었다.

“부산이라...좀 멀긴 하네. 그런데 의료 봉사라면 보는 눈이 많아서 조용히 일처리 하기엔 장소로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지 않나?”

“네 그렇긴 하지만 이번 달 의료 봉사 일정을 봉사활동 단체를 통해 알아본 결과 경상남도 남해에서 이번 주말 6


월 6 일부터 7 일까지 1 박 2 일 일정으로 연휴에 잡혀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음... 그럼 그 정보가 정확하다면 이동 중에 한 번 기회를 볼 수도 있겠군. 지 실장! 이번 봉사 활동에도 정


차관 딸이 참석 하는지 다시 확인 해 보고 플랜 짜서 내일 보고해.”

“네 사장님. 내일 다시 보고 올리겠습니다.”

지 실장이 그렇게 천 사장에게 인사하고 나간 뒤 천 사장은 태블릿에 떠있는 사진을 심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꿀꺽.]

“오늘 저녁은 고기를 먹어야겠군.”

그랬다. 천 사장이 보고 있던 태블릿 화면에는 입 안 가득 고기를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경의 절친


정진아의 사진이 있었다.

***

-Episode

[철컥! ]

조수석과 운전석 문이 차례로 열리고 왠지 한겨울에 롱코트가 어울릴 법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자와 다른
무언가가 차에서 내렸다.

차량의 열려진 문 사이로 어디선가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나올 법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See Ya Never gone my way ♪ Better will someday ♬ Never far away ♩······.]

[뚜벅...뚜벅...]
상황을 파악하려는지 천천히 걸어온 남자는 먼저 휠체어에 손을 올리고 있던 양아치의 멱살을 움켜쥐곤 그들의
무리 쪽으로 던지듯이 밀어 버렸다.

사내의 힘에 밀려 반항 한 번 못해보고 던져지듯 밀려나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양아치는 자신들의 쪽수를 믿고


사내를 향해 악을 썼다.

“어..어..어? 저 아저씨가 미쳤나? 씨! 팔!”

양아치 하나를 그렇게 밀어낸 사내는 핑크 일행과 양아치 무리의 중앙으로 자리해 무리와의 경계가 되어 그들을 한
동안 쳐다보다 얘기했다.

“쩝.. 여전하네. 양아치들은...”

양아치 무리는 갑자기 다가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어이없었지만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음악소리
등으로 인해 점점 주위의 적지 않은 시선이 느껴져 일이 더 이상 커지는 걸 원치 않았다.

“뭐..뭐야? 이 열혈 시민은?”

“이봐! 괜히 껴들다가 쪽 팔지 말고 그냥 조용히 가던 길 계속 가시지?”

하지만 다가온 남자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자신의 할 일을 계속 했다.

‘고니야 왕진가방에 신경안정제 담아 줄 테니까 꼭 케이스 챙겨!’

-네 한유성님

‘핑크 누나한테 약 갖다 줘!’

-네 한유성님 지시 이행합니다.

[풀쩍!]

그렇게 유성은 차에서 같이 내렸던 고니에게 신경안정제 두 알이 포장된 왕진 가방 케이스를 주머니에서 꺼내


주었다.

“핑크누나! 고니가 청심환 가져다 줄 거야. 핏덩어리랑 하나씩 나눠 먹어요!”

“어?...어.”

“혀...형 괜찮겠어요? 그 선배들..이 동네에서 유명한데...”

이어 승진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지만 전혀 기죽지 않은 남자는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핏덩어리! 생각보다 네 문제 해결이 쉬울 것 같네.”

남자는 양아치 선배 무리를 향해 서있지만 차량의 불빛을 등지고 있어 아직 양아치 무리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긴
힘들었다.

“아 진짜 열혈 아저씨 하나 납셨네.”
“왜? 유명인이라도 돼? 킥킥. 가서 얼굴 좀 보고 와 봐.”

“무슨 드라마 찍어? 길에 차 저렇게 대면 주차 위반 아냐? 좋게 말할 때 그냥 빨리 차나 빼고 꺼지시지?”

그제야 양아치 무리 중 한 명이 불빛을 피해 사내의 옆으로 이동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곤 소리쳤다.

“아! C8 금연 또라이 새끼!”

“뭐..?”

“아 젠장! 금또라고?”

양아치 무리 앞에선 유성이 한 쪽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큭. 오랜만이네. 요즘도 보건소 잘 다니냐?”

그랬다. 유성의 앞에 선 승진의 나쁜 선배들은 지난 번 유성이 혼내 주었던 광안리 시환의 일행들 중 몇 몇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저..저 놈이 너네 보건소에서 정기 치료 받게 만든 그..금연 또라이야?”

“아! 후! 씨! 팔! 저 놈을 왜 하필 여기서 마주 치냐?”

유성을 오늘 처음 본 양아치 중 하나가 유성을 뜯어보듯 살펴보고는 선동했다.

“마! 저 새끼 혼잔데 그냥 우리가 밟자! 우리 쪽수가 몇인데?”

그 양아치의 목소리를 들은 하나가 탄식하듯 말했다.

“후...지난 번 우리 열 명 이었어.”

유성을 알아본 일행 중 하나가 조금은 상냥해진 말투로 얘기했다.

“그...그냥 아저씨 가던 길 가시죠?”

양아치의 말을 들은 유성이 청심환을 꼭꼭 씹어 먹고 있는 승진에게 다가가 한 팔을 어깨에 두르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크큭...내가 가던 길이 여기라니까! 얘가 내 동생이거든!”

그렇게 승진의 의뢰는 유성을 통해 생각보다는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 해결

***

유성은 차를 가져오기 위해 건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 주차된 차량에 탑승했다. 차량에 시동을 걸 때
고니의 다급한 보고가 이어졌다.

-한유성님 지금 즉시 ‘요인 경호’를 사용해 둔 대상의 상황을 확인하시기를 권유합니다.

“응? 고니야 무슨 일 생겼어? 빨리 화면 띄워봐!”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 대상의 주위 상황을 홀로그램으로 재생합니다.

그렇게 지하에서부터 유성은 승진과 핑크에게 벌어진 일을 모니터 하며 액셀에 발을 옮겼다.

“흠...누나랑 핏덩어리 많이 놀랐겠는데 음...고니야 신경안정제 소환해 줄 테니 내가 양아치들 막는 동안 네가


챙겨서 가져다 줘.”

-네 한유성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쟤들 중에 낯이 익은 애들도 얼핏 보이네. 오랜만에 몸 좀 풀겠네. 저 놈들 얼굴 잘나오게 블랙박스


좀 체크해줘! 그럼 이제 가볼까? 아! 고니야 현재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 좀 부탁해.”

-네 한유성님 지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성이 탄 차량의 조수석과 운전석 문이 차례로 열리고 차량의 열려진 문 사이로 어디선가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나올 법한 음악소리가 그렇게 흘러나왔다.

[See Ya Never gone my way ♪ Better will someday ♬ Never far away ♩······.]

잠시 후 유성을 알아본 양아치 하나가 다소 상냥해진 말투로 얘기했다.

“그...그냥 아저씨 가던 길 가시죠?”

“크큭...내가 가던 길이 여기라니까! 얘가 내 동생이거든!”

뒤에서 유성을 지켜보던 양아치 중 하나가 짜증난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얘기했다.

“야야 비켜봐! 저기 형씨!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들 많이 지켜보는데 뭐 어쩌시게? 우리가 뭐 이 사람들
괴롭히기라도 했데? 아는 동생이 보여서 반가움에 인사 좀 한걸 가지고 뭔 난리래?”

차량의 헤드라이트와 음악 소리 때문인지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처음에 비해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 진 지금


상황에 오히려 당당해진 양아치 무리였다.

하지만 유성의 생각은 오히려 지금 사람들이 몰려 든 상황이 자신에게 더 유리해 보였다.

‘고니야 방금 핏덩어리 녹화 뜬 데이터 저놈들 시비 걸던 장면부터 스마트폰으로 음성 부분만 재생 부탁해.’

-네 한유성님 지금 즉시 재생합니다.

“내가 볼 땐 너희가 반가움에 인사를 한 건 아닌 거 같던데?”

유성은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스마트 폰의 볼륨을 높였다.

「 야! 범생이! 너 아까 학원 간다더니 여기 바닷가가 학원이냐?

히끅!...아...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야! 범생이! 이 여자 분이 네 쌤이냐? 나도 같이 공부하고 싶어지네. 흐흐흐.

범생아 공부 끝났으면 넌 저기 편의점 가서 불 맛 나는 과자 좀 사와. 네 쌤은 우리가 잘 모시고 있을게.

형들 이분은 저랑 아무 관련도 없어요. 이러지 마세요. 부탁드려요.

어? 그래? 그럼 더 잘 됐네! 난 이제 이분이랑 조금 친해져 볼 테니 넌 얼른 편의점부터 다녀와.

: 」

유성이 재생한 스마트 폰의 녹음된 대화내용을 듣고 당황한 양아치가 소리쳤다.

“뭐.. 뭐야? 이 새끼?”

“뭐긴 뭐야? 너희가 양아치라는 증거지. 어때? 저쪽 ‘광안리 해변 지구대’에 가서 너희가 방금 벌인 협박과
성추행에 대해 얘기 좀 나눠 봤으면 좋겠는데?”

그제야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단 걸 인지하고 꼬리를 마는 양아치 무리였다.

“그...그냥 범생이가 반가워서 그래 맞아..장난이었어.”

양아치들 말을 가만히 듣고 난 유성이 지난번 해변에서의 일로 낯이 익은 둘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장난 좋아하네. 그럼 나도... 야 너희! 둘! 오랜만에 만나 반가우니 어디 지난번처럼 다독거려 줄까?”

“아...아니 괜찮아!”

“히끅!...우...우린 아무 짓도 안했어.”

하지만 유성은 승진의 의뢰도 있는데 양아치 무리를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너희 담배 좀 피지 마! 흡연이 기억력에도 안 좋은 게 확실하네. 오랜만에 만났는데 말꼬리는 어디다 잘라 먹고


계속 반 토막이냐? 지난번에는 아저씨라더니... 내가 너희 친구냐? 치킨 집도 아닌데 왜 계속 반 마리야? 너희
기억 속에 나는 선량한 시민으로 남아 있나 봐?”

유성의 말을 듣고 얼굴이 점점 창백해 진 둘은 그제야 지난 번 일이 기억에 떠오른 것인지 태도를 180 도 전환해
유성에게 말했다.

“저기..형님 저희가 잘 못 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범생이도 안 괴롭히고 전에 형님 말씀처럼 착실하게 학교 다니겠습니다.”

유성에게 다가와 머리 숙이는 양아치 둘의 말을 들으며 아직 뒤에 남아 있는 4 명에게 유성은 시선을 가져갔다.

“너넨 그렇다 치고, 쟤들은 아직 눈에 힘 엄청 들어가 있는데? 왜? 너넨 친구들이라도 더 부를 생각이냐? 아님


방파제에서 교육이 좀 더 필요 한 거냐?”

유성의 싸늘한 말을 들으며 이전에 유성에게 호되게 당했던 양아치 둘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아닙니다. 형님 저희 둘이 잘 얘기 잘할게요.”

“아 그래? 그건 그렇고 너희 핸드폰 좀 줘봐.”

“네? 저희 핸드폰은 왜?”

“걱정하지 마! 안 뺏어! 내가 양아치니? 그냥 너희 전번이나 좀 따 놓을라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지. 우리


핏덩어리 선배들이라며? 핏덩어리가 앞으로 힘든 일 있음 한 번씩 만나서 상의라도 해야지. 안 그래?”

그렇게 유성은 혹시나 있을 사태에 대비한 보험으로 양아치 6 명의 번호를 저장했다.

‘고니야 번호 저장했으니 얘들 핸드폰에 ‘추적’ 스킬 걸 수 있지?!’

-네 한유성님 위치 추적 정도는 사용 가능 합니다. 원하신다면 도청 어플도 사용 가능 합니다.

‘아니 이 정도만 해두고 핏덩어리 주변은 ‘요인 경호’ 스킬로 한동안 지켜보면 알겠지.’

그렇게 유성이 양아치 무리와 만나는 바람에 좋은 말(?)을 통해 승진의 의뢰를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여기 세워 주시면 돼요.”

그렇게 일을 마무리한 유성의 일행은 승진의 집 앞에 도착했다.

“서촌님 아버님께서 오해하고 계실 텐데 얼른 들어가서 잘 말씀드려요.”

“그리고 핏덩어리 혹시 애들이 계속 건들면 다시 연락해! 아니 아무 일 없어도 연락해서 하루일과 보고해.”

“헤헤. 네 그럴게요.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핑크님 그리고 형! 꼭 전화 할게요.”

그렇게 승진을 배웅하고 유성은 핑크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아직 할 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 오늘 수고 많았어요. 이제 집으로 갑시다!”

“응! 네가 더 수고 많았지. 피곤할 텐데. 고마워.”

어느새 핑크는 유성이 편해 졌는지 자연스럽게 반말로 유성을 대했다.

‘고니야 핑크 누나 차도가 있는지 상태 확인해봐.’

-네 한유성님 핑크 누나 ‘상태확인’ 및 ‘측정’ 스킬을 사용해 현재 상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핑크의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유성은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내며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이번엔 ‘정밀 보정’스킬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정밀 보정’스킬을 사용합니다. ‘치료’ 스킬과 함께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
됩니다.

그렇게 유성은 ‘치료’와 ‘보정’ 스킬의 사용에도 핑크의 상태가 별반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고니와 의논
끝에 ‘정밀 보정’ 스킬을 ‘치료’ 스킬과 병행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후 유성은 고니의 권유에 맞춰 스킬을 핑크에게 사용했다.

다음날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뜬 핑크는 평소보다 몸이 찌뿌듯함을 느꼈다.

다리가 저리고 통증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 어제 너무 무리했나? 요즘 운동을 조금 안하긴 했지.’

“하....품!”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핑크이기에 자신의 변화를 바로 눈치 채지는 못했다.

단지 무의식 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으며 저린 다리에 손을 가져가 꾹꾹 눌러 주무르기 시작했다.

선명하진 않지만 다리에 느껴지던 저림이 조금 가시는 듯하자 핑크도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아품! 어? 다..다리가...저려..? 내 다리가...저렸어...약간이지만 느낌이 있었어!”

갑자기 정신이 확 들며 잠에서 깬 핑크가 자신의 다리를 꼬집어보기 시작했다.

“아!....아...악!...흑..흑...아파....흑흑...엉엉 아..파...엉...엉엉.”

아파서 우는 것인지 기뻐서 우는 것인지는 확실하진 않아도 한동안 핑크의 방에선 울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

유성은 주 중에 틈틈이 승진에게 걸어둔 ‘요인 경호’ 스킬을 이용해 주변에 특이 상황은 없는지 감시를 하는
한편 주말에 봉사활동 참석으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 일 동안 외숙모 가게에 필요한 빵을 틈날 때 마다 만들어
무기고에 쟁여 놓느라 정신없는 한주를 보냈다.

“에고고고... 고니야 오늘도 옆에서 보조해 주느라 수고 많았다.”

신체적으로 뛰어난 스펙을 소지한 유성이지만 같은 일만 계속 반복하다 보니 심적으로 오는 스트레스는 막을 수가


없었다.

-네 한유성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목요일까지 만든 빵을 외숙모 카페에 진열까지 마무리 한 유성은 다음날 아침 남해로 출발하기 전 빠트린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기 위해 친구들과 ‘코코넛 톡’ 단체 대화방에 접속했다.

「지난 봉사활동처럼 개인 세면도구만 간단하게 준비하면 돼? 」

「윤찬 : 넌 2 일 동안 옷 한 번도 안 갈아입을 생각이냐? 더럽! 」

「진아 : 2 일 정도는 안 갈아입어도... 」

「보라 : 유성아 필요하면 속옷 정도는 내가 빌려 줄 수도 있음. 」

「.......거절(이모티콘)」

유성은 보라에게 손바닥 모양으로 된 거절의 이모티콘을 날려 의사를 표시했다.


「나경 : 개인 물품은 따로 각자 준비하고 공동으로 필요한 물품 있으면 회비 걷어서 내려가기 전에 마트 들르는
건 어때? 」

「윤찬 : 난 OK(이모티콘)! 」

「보라 : 나도 OK(이모티콘)! 」

윤찬과 보라가 나경에 말에 동의을 표한데 이어 진아 역시 동의를 표했다.

「진아 : 난 마트에서 고기 사는 거 OK(이모티콘)! 」

「그럼 내일 다들 마트에서 만나는 거야? 」

「나경 : 그럼 되겠네. 먼저 도착한 사람이 필요한 거 고르고 있음 되겠다. 」

「그럼 아침에 집 앞으로 데리러 갈게. 나경아. 」

그렇게 내일 오전 약속을 잡은 일행에게 윤찬이 새로운 일정을 제안했다.

「윤찬 : 근데 우리 남해 내려간 김에 봉사 끝나고 일요일까지 우리끼리 하루만 더 머무르는 건 어때? 」

「나경 : 일요일은 특별한 약속은 없는데...부모님께 한 번 물어 볼게. 」

「보라 : 부모님께 허락은 무슨 그냥 봉사 일정이 2 박 3 일로 늘어났다고 말씀드리면 돼지. 」

「진아 : 난 일요일은 돼지 보단 소고기! 」

「윤찬 : .... 」

단톡방의 대화 내용을 확인한 유성이 나경에게 물었다.

「저기...나경아 부모님께 물어보기 전에 우리 일요일 데이트 약속은? 」

「나경 : 응? 내 생각엔 다 같이 놀면 더 재밌을 거 같은데? 안 그래? 유성아? 」

나경의 말투에서 답이 정해져 있음을 눈치 챈 유성이 재빠르게 답했다.

「물론 그렇지! 그럼! 당연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럼 방은 몇 개나 잡을까? 」

「나경 : 두 개면 되지 않을까? 」

「흐흐흐 우리 방이랑 애들 방? 」

「나경 : 흠칫(이모티콘)! 아니 남자 방! 여자 방! 」

「윤찬 : 쟤네들 가만히 두면 신혼 방까지 차릴 기센데... 」

「보라 : 그러게 적당히 좀 하지! 내가 지난 토요일 쟤들 둘이 밀어준 일이 후회 되려고 하네. 」

「진아 : 그렇지 적당히 해야지. 고기도 너무 구우면 육즙 빠져서 별로야. 」


그렇게 친구들과 톡을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온 유성은 무기고 마트를 좀 더 채우기 위해 캡슐에 올랐다.

“마트에 필요한 물품 좀 쟁여놓게 국방부로 가볼까?”

창고털이

***

그렇게 친구들과 톡을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온 유성은 봉사활동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며 고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고니야 무기고 마트가 살짝 부족한감이 있는데 군대도 음식 재료 같은 거 저장해 두는 창고 같은 곳이 있지


않을까?”

-네 한유성님 군 보급 물품을 담당하는 곳으로 대표적인 곳으로는 2007 년 부산 대연동 소재에서 대전 유성구
소재로 옮겨 육군 보급 물품 지원을 총괄하고 있는 육군 군수사령부가 있으며 예하 부대에서도 병기와 병참을
담당하는 곳은 각 사단직할대에 보급 수송대대를 배치하여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병기와 병참이라는 곳에서 담당한다고?”

-네 한유성님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보급부대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그렇게 고니에게 정보를 전해들은 유성은 무기고 마트를 가득 채울 생각에 부푼 꿈을 안고 캡슐에 올랐다.

“마트에 필요한 물품 좀 쟁여놓게 국방부로 가볼까?”

국방부 가상현실에 접속한 유성은 무기고 마트를 채울 생각을 가득 안고서 부사관 메뉴를 소환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유성은 메뉴 화면에서 자신 있게 육군을 선택했다.

[띠링! ]
[육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보병 ]

[2. 통신 ]

[3. 정보 ]

[4. 항공 ]

[5. 병기 ]

[6. 의무 ]

‘고니가 아까 병기와 병참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둘 다 비슷한 건가?’

급하게 접속하다 보니 유성은 메뉴에 병기와 병참이 같이 있지 않아 어딘가 찜찜한 감은 있어 살짝 고민했지만


따로 고니에게 묻지 않고 과감하게 병기메뉴를 선택했다.

[띠링! ]

[병기를 선택하셨습니다. ]

[잠시 후 병기 및 병참기지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콰콰콰콰쾅! ]

[탕탕탕! 탕탕! 탕탕!... ]

‘으...저 멀리서 불길한 소리가 들리는데 역시 찜찜할 땐 한번 물어볼 걸...’

-한유성님 전시 작전인 것으로 판단해 방어태세 모드에 등록된 스킬을 자동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고니도 발전해 예전과는 달리 일일이 스킬 사용을 물어 보지는 않았다.

‘어! 그렇게 해!’


유성은 처음 자신의 생각과 달리 다소 어려운 전시 작전이 펼쳐질 거 같은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성의 앞에 보이는 건물로 보아 현재 위치한 곳이 부대 내부 인 듯 보였지만 저 멀리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포탄인지 수류탄인지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총성으로 보아 적군과 아군의 전투가 한창인 듯 느껴졌다.

유성이 상황파악을 위해 좀 더 주위를 둘러보자 그 때 마침 유성의 눈앞에 작전 화면이 펼쳐졌다.

[작전명 : ‘고립된 진지에 있는 아군에게 탄약과 물자를 보급하라.’

-대공 진지를 지키던 아군이 적의 기습 공격으로 고립 되어 위험에 처해있다. 진지에 있는 아군에게 탄약과
물자를 보급하고 지원하라.

-당신은 갓 부임한 보급부대 신입 보급담당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보급계원들을 통솔해


아군의 탄약이 떨어지기 전에 신속히 탄약과 물자를 지원해 대공 진지를 사수하게 하라.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보급상자 획득 +@ (지원 성공여부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보급상자 획득 실패 ( 지원 실패 ) ]

작전을 확인 한 유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급 물자를 싣고 옮겨줄 것으로 보이는 차량 앞에 짙은 위장을 한 10 명의 보급계 사병들이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유성의 명령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띠링! ]

[붉은색 선을 따라 보급 창고로 이동해 표시된 물자를 차량에 탑재한 후 보급계 사병들을 인솔하여 산 정상에
있는 대공 진지까지 안전하게 운반해야 합니다. 진지를 방어하고 있는 아군의 탄약이 떨어지기 전까지 탄약과
물자를 보급해 주십시오. ]

‘난 그냥 창고관리 정도만 생각했는데 고니야 이건 전시 상황 맞지?’

-네 한유성님 전방에 보이는 산 정상에 대공진지가 공격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그럼 트럭에 물자를 싣고 저기 산꼭대기까지 운송하란 얘기야?’

-네 한유성님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급 창고로 이동해 표시된 상자들을 대공진지까지 운송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 트럭에 싣고 바로 진지까지 운송하면 되지 않을까?’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로 확인해 본 결과 산 아래부터 진지까지는 차가 이동할 수 있는 도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허어... 그럼 트럭에 있는 물자를 산 아래부터는 손수 나르란 말이야? 역시 작전은 쉬운 게 없네.’

유성은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잠시간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유성이 얕은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사병들은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야! 너희 임무 시작도 하기 전에 왜 이렇게 얼어있어?”


유성의 질문에 생각지도 못한 어이없는 답변들이 이어졌다.

“아...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나마 이등병의 대답은 준수 했다.

“솔직히..조금 겁은 나지 말입니다.”

일병의 대답 또한 다음에 들릴 병장의 대답에 비하면 나은 편에 속했다.

“쩝.. 저희 같은 보급계 행정병들이 이렇게 전장에 나갈 일이 별로 없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 사병들의 대답을 모두 듣고 난 후 화가 점점 쌓이기 시작한 유성이 고니에게 물었다.

‘얘네들 NPC 는 아닌 거 같지?’

-네 한유성님 사병들의 말투와 행동으로 판단했을 때 90% 이상 실제 보급계 행정병들인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 원래 보급부대 애들은 머리는 잘 쓰지만 몸을 잘 쓰는 전투병은 아니구나. 그렇지만 지금은 작전


상황이니까 행정병 전투병이 어디 있어! 그냥 다 움직여야지.’

-네 한유성님 생각이 옳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먼저 작전 수행에 앞서 지난번 군악대 작전에서 획득한
‘지휘’스킬 사용을 추천합니다.

‘아! 그게 있었지?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방어태세 모드에 ‘지휘’스킬을 추가 사용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고니의 조언을 받아 지휘 스킬을 사용한 유성이 사병들 앞으로 나가 말했다.

“본 작전에 결과에 따라 포상을 받는 사병도 있겠지만 반대로 징계가 내려지는 사병도 존재 할 수 있다는 점 꼭
염두에 두고 본 보급관의 명령에 빠르게 움직여 주기 바란다.”

“네! 알겠습니다!”

갑자기 달라진 유성의 포스에 눌린 것인지 징계 받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 사병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유성의
말에 즉각 대답했다.

“야! 최 병장과 고 상병은 차량 위에 올라가서 보급 물품이 쓰러지지 않도록 차곡차곡 잘 정리하면서 쌓아!”

사실 유성이 지휘 스킬을 사용한 후 병사들의 발아래에서 새로 생긴 원형의 띠를 확인 할 수 있었고 그들이 가야


할 곳에는 띠와 같은 색이 반짝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덕에 병사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네! 보급관님!”

그렇게 보라색을 가진 2 명의 경험 많은 고참 병사가 유성의 명령에 따라 트럭의 위로 위치했다.

“그리고 송 일병! 신 일병! 너희 둘은 여기 트럭 아래에서 보급 상자들 트럭 위로 올려 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힘쓰는 건 자신 있지 말입니다.”

노란색을 보이는 덩치 좋은 병사 둘은 유성의 명령에 따라 트럭의 아래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었다.

“나머지는 보급 창고 안으로 따라와!”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남은 6 명의 병사는 유성을 따라 창고 내부로 이동했다.

유성은 창고 내부에서 한동안 창고를 가만히 둘러보았다.

“OK! 이제 상자 좀 옮겨 볼까?”

그리고 잠시 후에 창고 내부에 반짝이는 파란색과 같은 두 명의 병사를 보급 물품을 꺼내는데 배치하고 나머지 4


명은 발아래 원형 띠와 같은 주황색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2 인 1 조를 이루게 한 후 보급 물품 상자를 창고
밖 트럭 앞에 가져다 놓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병사들을 모두 배치하고 트럭 옆을 지나던 유성은 저 멀리에서 초록색이 반짝이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뭐지? 저 색은?’

다시 유성은 병사들의 발아래 있는 색을 확인해 보았지만 초록색을 가진 병사는 없었다.

‘고니야 주위에 내가 못 본 애 있는지 확인 해봐!’

-네 한유성님 트럭 운전석에 탑승중인 병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런 미친! 다른 애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유성은 고니의 얘기를 듣고 불같이 화를 내며 트럭의 운전석을 열어 젖혔다.

[벌컥! ]

“음냐....화들짝! 뭐..뭐야?”

그제야 잠에서 깨어 놀란 운전병이 차량 밖으로 튀어 내렸다.

“야! 너 주위에 다들 바쁘게 일하는 거 안 보여? 어디 일병이 빠져 가지고 운전석에서 졸고 지 X 이야? 너 징계


당하고 싶어?”

유성은 처음 사병들의 대답을 들은 이후 조금씩 쌓여가던 화가 졸고 있던 운전병을 목격하고 한꺼번에 폭발해 소리


질렀다.

“시..시정하겠습니다!”

-한유성님 운전병 발아래 띠 색을 확인해 보시기를 추천 합니다.


‘응? 아참 고마워 흥분해서 잠시 잊어버릴 뻔 했네.’

유성이 고니의 말을 듣고 화를 가라앉히며 운전병의 발아래 띠 색이 초록색인 것을 확인했다.

“야! 너 이리 따라와!”

유성은 저 멀리 반짝이는 초록색을 확인하기 위해 병사에게 따라 오라 명령했다.

“헉..잘 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조용히 해! 계속 시끄럽게 하면 진짜 영창 확 보내 버린다!”

“네..죄송합니다.”

잠시 후 유성은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것의 정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근데 이게 여기서 왜 나오냐?”

“네? 보급관님 오토바이지 말입니다.”

유성의 말을 들은 운전병이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거라고?”

“네! 평소 보급관님 출퇴근 하실 때 이거 타고 하셨지 말입니다.”

“너 혹시 NPC 냐?”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못 들었습니다.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한유성님 운전병은 말투와 행동 등으로 확인한 결과 99% NPC 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앞의 오토바이는
‘삼족오’가 작전 수행에 한유성님에게 편의를 제공한 히든 트랙으로 예측됩니다.

‘히든 트랙? 그렇단 말이지?’

“야! 운전병! 내 오토바이도 이번 작전에 참여 한다 차에 실어!”

“네! 알겠습니다!”

‘크크크 히든이면 걸어서 올라 갈 뻔 했는데 오토바이 올라갈 길 정도는 삼족오가 만들어 줬겠지?’

-네 한유성님 작전 지역에 오토바이가 지나갈 만한 산길이 있는지 주변정찰로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소 편안한 마음이 된 유성과 지원에 필요한 보급물자와 인원들을 모두 태운 트럭은 대공진지를 향해
출발했다.

***

-Episode

보급 창고 안으로 들어선 유성은 창고에 쌓여있는 상자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나무궤짝 안에 내용물이 들어있어 겉으로 확인이 힘들었다.

물론 위장 그물 같은 것과 몇몇 물품은 중요도가 떨어지는지 상자에 따로 보관되지 않은 물품도 확인 할 수


있었다.

파란색을 반짝이는 보급 상자를 확인 한 유성이 고니에게 물었다.

‘고니야? 이 상자들이 진지에 지원해 줄 보급 물품인거 맞지?’

-네 한유성님 작전 수행에 필요한 물품으로 예측됩니다.

‘근데 이거 하나씩 언제 산꼭대기 까지 다 옮기겠냐?’

-한유성님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흐흐흐 원래 오늘 접속 목적이 창고털이 하러 왔잖아! 고니야 일단 저기 파란색으로 빛나는 상자 안에 있는


애들부터 따로 내 무기고 마트에 정리해서 넣어줘! 산에 올라가면 다시 빼야 하니까.’

-네 한유성님 그렇게 시행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나머지도 어차피 여기두면 작전 끝나고 다 사라질 텐데 다 챙겨!’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상자 안에 있는 물품을 챙긴 유성은 주위에 멀뚱히 서있는 보급계 장병들을 놀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멀뚱히 서있는 장병들에게 말했다.

“OK! 이제 상자 좀 옮겨 볼까?”

제주도

***

군용 카고 트럭을 조종하던 NPC 운전병이 차량의 속도를 점점 줄이며 유성을 향해 말했다.

“보급관님 더 이상 차량 진입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산 초입에 들어서자 길이 끊어진 건 아니지만 도로의 폭이 좁아져 더 이상 차량의 진입이 불가능 했다.

‘고니야 정상에 있는 진지까지 길은 있어?’

-네 한유성님 원래부터 보급로는 형성되어 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륜 운송수단으로도 보급이 가능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흐흐흐 그럼 먼저 올라가서 작전은 빨리 끝내고 애들 군기 좀 심어줘야겠네.’

계획 수립이 끝난 유성이 운전병에게 얘기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여기서 모두 하차한다.”

유성은 트럭 뒤에 타고 있는 장병들도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치며 자신도 차에서 내렸다.


“모두 하차! 신속히 상자를 산 위에 있는 진지로 운반한다.”

“네! 알겠습니다.”

처음 보다는 대답과 움직임이 모두 빨라진 장병들은 유성의 명령에 따라 보급 물품을 차량의 옆에 종류별로
분류하며 쌓아 두기 시작했다.

“물자 종류 별로 분류가 끝나면 운전병은 차량과 물자를 지키고 나머지 인원은 모두 물자 보급을 실시한다!”

“네! 알겠습니다.”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지만 군인답지 못했던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만큼 유성은 관대한 성격을 가지지는
못했다.

물론 유성은 NPC 인 것으로 확인 된 운전병에게는 편의를 제공했다.

“탄약과 식량부터 먼저 대공진지를 향한다. 오늘 목표량은 총 20 박스다! 한사람 당 2 개씩만 옮기면 된다. 참
간단하지 않나?”

“그...렇지 말입니다.”

물론 10 명의 보급계 사병이 옮기기에는 적진 않은 양이었지만 유성이 미리 안에 있는 내용물은 무기고로 이동시켜


버려 실제 사병들이 느끼는 무게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산 위에 있는 진지까지 단독 군장을 한 상태라 보급 상자를 들고 가기는 힘들 것이다.

본 보급관은 로프에 보급 상자를 연결해서 끌고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하나씩 두 번 산을 오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물자를 운송하도록 한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먼저 산을 올라가면서 길이 끊어지진 않았는지 또한 특이사항은 없는지 확인키 위해 먼저 출발하겠다. 다들


정비하고 10 분간 휴식을 취한 뒤 바로 출발하도록 한다!

아참! 한 가지 더! 제일 먼저 보급을 끝낸 사병에게는 가산점이 주어질 것이다!”

물론 유성이 급조해 만들어 낸 말이었지만 그럴 듯 했는지 사병들의 눈빛과 대답이 달라졌음을 유성은 느낄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유성은 이 후 특이사항 없이 미리 만들어져 있는 길을 따라 진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병의 안내를 받아 대공 진지 벙커 속에 있는 물자가 거의 비어있는 보급 창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쾅쾅쾅! 탕탕! 탕탕! 탕탕!...]

“방 일병 난 여기 보급 물품 도착했을 때 배치 좀 생각해 볼 테니 먼저 나가봐!”


“네 알겠습니다.”

사병이 창고에서 나가자 유성은 서둘러 창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유성은 그동안의 작전 경험으로 시간도 보상에 가산점을 주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 다됐다.”

-한유성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니 너도 수고했어.”

얼마 후 유성은 창고에 보급 물자를 깔아 정리했다.

다행히 유성의 생각처럼 상자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는 듯 작전 완료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작전명 : ‘고립된 진지에 있는 아군에게 탄약과 물자를 보급하라.’(완료)

-대공 진지를 지키던 아군이 적의 기습 공격으로 고립 되어 위험에 처해있다. 진지에 있는 아군에게 탄약과
물자를 보급하고 지원하라.

-당신은 갓 부임한 보급부대 신입 보급담당관(하사 한유성)으로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보급계원들을 통솔해


아군의 탄약이 떨어지기 전에 신속히 탄약과 물자를 지원해 대공 진지를 사수하게 하라.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보급상자 획득 +@ (지원 성공여부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보급상자 획득 실패 ( 지원 실패 ) ]

유성은 통신작전에서는 아니었지만 지난 해병대 취사 작전을 통해 보상 아이템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스킬로 바뀐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살짝 기대를 했다.

‘혹시...이번에도?’

[작전 성공 보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

[우수한 작전 수행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아이템 - ‘보급 상자’가 스킬-‘보급 상자’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

‘역시! 국방부는 나를 좋아하는 게 맞다니까!’

-네 한유성님 삼족오가 ‘한유성님에게 관심이 많다’라는 표현이 더 올바른 표현으로 판단됩니다.

‘흐흐흐 그래 일단은 접속 종료 후에 보상은 확인해 보도록 하고 고니야! 상자 나르는 애들은 어디까지 왔는지 좀
알아봐 줄래?’

-네 한유성님 현재 보급계 사병들은 산 중턱을....

그렇게 사이버 공간에서 현역병들과 보급관이 된 유성은 전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이어갔다.

***
6 월 6 일 현충일 아침 봉사 활동을 위해 일찍 일어난 유성은 나경과 친구들의 점심 도시락으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토스트와 샌드위치를 준비하면서 가족들 아침까지 함께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

“어? 아들 이게 다 뭐야?”

음식 만드느라 약간 소란스러웠는지 엄마가 주방으로 다가와 유성에게 물었다.

“아침으로 가볍게 토스트랑 샌드위치 만들어 봤어.”

집안에 자연스럽게 퍼지는 음식 냄새와 엄마와 유성의 얘기소리에 유경과 아빠도 주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오늘 어디 가?”

“응! 지난번에 얘기했던 봉사 활동 출발이 오늘이라 도시락 만드는 김에 우리 먹을 것 까지 만드는 중이야.”

“오물..오물...옵...하...나 이거 먹어...봐...도 돼?”

유경은 벌써 입에 샌드위치 조각을 구겨 넣고 나서 유성에게 명목상 허락을 구했다.

“더 먹어 너 많이 먹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많이 준비 했어.”

유성은 부족한 거 보다 남으면 어차피 무기고에 보관하면 되니 가족들이 보기에 부담스러울 정도의 양을 주방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새 가족들은 식탁에 자연스럽게 둘러 앉아 아침으로 토스트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유성아 이번 달은 남해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 가족끼리 화목해져서 그런지 유성이 지난 일요일에 얼핏 얘기한 내용을 아빠가 기억하고 계셨다.

“응 맞아! 그래서 이번에 남해 내려간 김에 외삼촌한테도 들렀다 올 계획이야.”

“아들! 그럼 오늘 갔다가 바로 오지는 못하겠네?”

유성은 엄마의 말을 듣고 그제야 이번 연휴에 대한 세부일정을 털어놓았다.

“응! 연휴라서 봉사 활동도 1 박 2 일 일정이고, 친구들하고 봉사활동 끝나면 따로 하루 더 머물렀다가 올


거야.”

유성의 얘기를 들은 엄마가 갑자기 눈빛이 달라지며 유성에게 물었다.

“설마 여자 친구랑 둘이 여행가고 그러진 않은 거지?”

“오물오물...아냐! 오빠는 눈치가 없어서 여자 친구 못 만나!”

샌드위치를 한 입 머금고 있던 유경이 엄마에게 유성의 눈치 없음을 얘기했다.

“그건 아니야 유경아. 너희 아빠 봐. 내가 오죽 했으면 너희 아빠에게 제주도에 항공권에 당첨 됐다고 거짓말로


꼬드겨서...에고..그땐 내가 미쳤지. ”
“큼..큼...여..여보”

엄마의 말을 듣고 당황한 아빠가 급하게 엄마의 말을 끊었다.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큼...네 아빠랑 엄마 봐! 유성이가 누구 닮았겠니?”

그제야 유경은 아빠와 유성을 번갈아 쳐다 보다 이해가 된 듯 엄마에게 물었다.

“헐! 그럼 아빠가 눈치 없어서 엄마가 먼저 고백했어?”

“오죽 했으면 그랬겠니?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도 벽창혼지 아님 소인지...너희 아빠 눈치 없는 걸 유성이가


그대로 물려받을 줄 누가 알았겠니...”

유성은 가족들의 말을 들으며 준비했던 도시락을 피크닉 바구니 모양으로 소환한 왕진 가방 속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유성은 가족들에게 인사하곤 집을 나섰다.

“그럼 봉사 활동 다녀 올게!”

“어 그래 유성아. 조심해서 다녀와.”

“오빠 올 때 남해에서 맛있는 것 사와! 거긴 뭐가 맛있지?”

“아들! 괜히 아빠처럼 가만있다가 눈치 빠른 여자한테 코가 꾀일 수 있으니 조심해!”

“하하! 걱정하지 마! 엄마. 나 잘 갔다 올게!”

그렇게 유성은 봉사 활동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

나경을 데리러 가기 위해 차량을 출발시킨 유성은 친구들과 만나기 전 먼저 고니와 경비 업체 직원 차경원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고니야 경비업체 직원도 이번에 만나야 하지 않나?”

-네 차경원씨에게 문자로 시간과 장소에 대해 연락해 주기로 했었습니다.

유성은 약속시간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 결정해 고니에게 말했다.

“음...그럼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중에 따로 시간을 잡으면 될 텐데. 일요일은 우리끼리 놀아야 하니까 그냥
토요일 봉사활동 끝나고 저녁에 잠깐 나가서 만나고 오는 게 편하겠다.

-네 한유성님 이번 토요일 6 월 7 일 시간과 장소에 대한 약속을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니야 그런데 꼭 그 사람 만나야 해? 귀찮은데...”

-네 한유성님 상대방이 유성님의 얼굴을 꼭 봐야지만 계약을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토요일 저녁 8 시에 만나자고 문자 보내.”


-네 한유성님 차경원씨에게 연락해 약속 잡아 놓도록 진행 하겠습니다.

[띠링! ]

오전 운동을 마친 차경원은 샤워를 끝내고 몸을 만들기 위해 단백질 파우더를 마시고 있다가 문자를 확인했다.

[ 6 월 7 일 저녁 8 시 남해 XX 지점 ‘어디야 커피’ ]

“도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고 계약까지 하자는 건지...”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확인한 차경원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쩝...이젠 내일 이면 상관없으려나?”

거울 속에 비친 차경원의 모습은 영화배우 마동성님과 닮아 있었다.

***

-Episode

“동수 오빠 이번 연휴에 뭐해?”

“특별한 계획은 없는데. 아마 집에서 쉬지 않을까?”

“호호.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어. 동수 오빠 내가 지난번에 서면 백화점에서 행사 하길래 화장품 사고


응모했던 적이 있었거든...혹시 기억나?”

“그...그랬나? 근데 그게 왜?”

“갑자기 어제 화장품 판촉 행사 담당자라고 나한테 전화가 온 거야! 2 인 제주도 왕복 항공권에 내가 당첨 됐다고!


그래서 물어 보니 마침 이번 연휴에도 항공권 사용이 가능하더라고! 어때? 대박이지?”

“어? 그래? 정말? 대박이네. 하하!”

“그래서 말인데 특별한 일 없으면 오빠 나랑 제주도 같이 안 갈래?”

“어?...나하고 우리 둘만?”

“왜 싫어?”

“아니...그건 아닌데...제주도면 하루 자고 와야 하지 않나 해서...”

“하하하 오빠! 요즘 제주도까지 비행기 타면 시간이 1 시간도 안 걸리잖아. 오전에 갔다가 저녁에 오면
당일치기도 충분히 가능해. 걱정하지 마!”

“그...그래 그럼 갔다 오자 제주도.”

그렇게 둘은 제주도를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돌아온 날자는 출발한 날자와 달랐다.

남해 가는길

***
유성은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만든 토스트와 샌드위치가 든 피크닉 가방을 챙겨 나경의 집을 향했다.

「집 앞에 도착했어. 천천히 준비 되면 나와. ♥」

나경은 유성이 집 앞에 도착했다는 톡을 받고 2 층에서 내려다 봤지만 유성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유성의
SUV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주차 공간이 없나 보네.’

잠시 후 준비를 마친 나경이 집을 나서자 대문 앞에 서있던 유성이 다가와 나경의 짐을 들어 주었다.

“와! 우리 나경이는 오늘도 여전히 천사같이 예쁘네!”

요즘 유성이 나경을 만날 때 건네는 전형적인 인사말이지만 나경은 실치 않은 기색이었다.

“킥! 네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거든! 주차 할 곳이 없어서 다른 데 주차하고 걸어 왔나봐?”

“아니 주차 자리 있던데.”

유성이 나경에게 대답하며 뒤를 돌아보자 나경도 유성의 시선을 따라 바라 본 곳엔 못 보던 캠핑카 한 대가


떡하니 주차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이런 캠핑카 타고 여행가면 재밌겠다.”

“그럼 떠나면 되지 뭐가 어려워?”

나경의 말을 들은 유성이 캠핑카의 옆에 있는 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으..응? 우리..오늘 이거 타고 가는 거야?”

“다섯이 타고 가기엔 좀 비좁긴 하지?”

유성은 나경이 캠핑카 내부로 쉽게 들어서도록 비켜주며 말했다.

“와! 언제 이런 걸 준비 했데? 우와! 소파에 테이블도 있고! 어? 여긴 냉장고네. 마치 작은 원룸 같아!”

나경은 캠핑카 내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토했다.

“맘에 들어?”

“응! 완전! 나 이런 차타고 여행한번 가보고 싶었어! 이런 건 언제 또 준비했데?”

“좋아하는 모습 보니 다행이다. 이제 애들 만나러 가볼까?”

“응!”

그렇게 유성과 나경은 캠핑카를 타고 친구들과 약속장소인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친구들과 만나 필요한 물품 구매를 끝낸 일행도 캠핑카 앞에서 연신 감탄을 표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이라곤 가족 여행이 대부분인 그들로써는 캠핑카 여행 경험이 아직 없어서 기대를 더했던


것이다.

“와! 어릴 때 가족끼리 야영장에 있는 카라반에 묵은 적은 있는데 캠핑카는 처음이네.”

윤찬이 제일 먼저 차량에 올라 두리번거렸고, 뒤 이어 보라와 진아가 차량에 탑승했다.

“생각보다 넓네. 주방이랑 싱크대 식탁도 있고 여긴 뭐야?”

“거기는 화장실 같은데?”

윤찬이 보라와 진아의 대화 중 화장실이란 말에 돌아보며 얘기했다.

“유성아 나 화장실 써도 돼?”

“미친! 마트 화장실 써!”

그렇게 일행은 목적지인 남해를 향해 큰 문제없이 출발했다.

“유성아 네가 만든 토스트랑 샌드위치 너무 많이 먹었나봐 나 화장실 써도 돼?”

“시끄러! 휴게소 화장실 써!”

처음 출발할 땐 유성이 싸온 도시락을 먹느라 다들 캠핑카 내부에 있는 소파에 자리했었지만 휴게소에 들른 이후


윤찬은 유성이 직접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벨트까지 손수 걸어 주었다.

그렇게 소소하게 투덕거리다 보니 유성 일행은 봉사 장소인 남해 남명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시골의


학교치고는 생각보다 큰 규모에 다들 놀랐다.

차량을 운동장 한쪽에다가 주차시키고 일행이 차에서 내리자 학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급하게 달려와 말했다.

“헉..헉..이보세요! 여기 학교 안에서 캠핑하시면 안 됩니다. 당장 차 빼세요. 알 만한 사람들이...”

“저..그게 아니라...”

“유성아 비켜봐 내가 얘기할게.”

유성이 당황해 얼버무리며 말을 못하자 나경이 유성의 앞을 막아서며 나섰다.

“안녕하세요. 저기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희는 이번 봉사활동에 참여 하기 위해 부산에서 따로 내려온


자원봉사자들이에요.”

나경이 나서서 싹싹하게 말을 전하자 그제야 찌푸렸던 학교 관계자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네? 아 그러셨구나. 저는 차량이 캠핑카라서...”

“죄송해요. 봉사활동 오면서 이러면 민폐일 수도 있지만 여기 남해가 그렇게 맑고 깨끗한 다도해상국립공원이라고
익히 들어와서 이번기회에 자원 봉사 끝나고 하루 더 머물면서 꼭 소문난 곳들 돌아보고 올라갈 계획이라 서요.”

나경은 상대의 환심을 얻을 만한 말을 통해 분위기를 누그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아..그렇죠.”
“근데 학교가 생각보다 엄청 크네요.”

“하하 그렇죠. 한때는 근방에서 여기가 제일 큰 학교였죠.”

“아 네! 그랬구나. 어쩐지...”

“그래도 요즘은 귀농인구가 조금씩 늘어 학생 수가 그럭저럭 유지는 되고 있어 폐교는 안 되니 다행이랄까...


하하”

학교 관계자의 말로는 지금은 시골에 젊은 사람이 별로 없어 전교학생 숫자가 50 명 내외로 얼마 되지 않지만


예전에는 인근에서 제법 큰 학교였다는 말에서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그렇게 나경의 도움으로 유성의 일행은 학교 관계자와 오해의 소지를 해결함은 물론 오히려 친분까지 조금 쌓은
듯했다.

유성의 일행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터라 여자들은 편한 옷을 갈아입고 잠시 쉬었다 나오겠다며 다시


차에 올랐고 유성과 윤찬은 학교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유성과 윤찬이 건물 내부로 이동하자 교실 한 곳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교실로 다가가 안을 살펴보자 이전 신평 봉사활동에서 같이 일했던 설 팀장 무리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팀장님 일찍 오셨나 봐요?”

유성과 윤찬이 설 팀장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자 그들을 알아본 설 팀장이 다가와 반겼다.

“어? 유성이랑 윤찬이 왔구나! 점심은 먹었냐?”

“네 내려오는 길에 저희끼리 먹었어요.”

설 팀장 무리는 선발대로 어제 저녁에 출발해 먼저 도착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막 점심을 챙겨먹고 이제 운동장에 나가 천막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팀장님은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 그래! 난 잘 지냈다만 윤찬이 넌 얼굴 표정이 왜 그래? 마치 볼일 보고 싶은데 누군가 막아서 못 간 것 같은


표정이냐?”

윤찬은 설 팀장이 자신의 표정만 보고도 지금의 상황을 읽어버리는 눈썰미에 놀라 턱이 다물어 질 줄 모르고 계속
벌어졌다.

“헐...마...맞아요. 팀장님 유성이가 남해 내려오는 차안에서 계속 제 욕구 분출을 막아서...지금 힘들어요.”

설팀장과 윤찬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유성이 끼어들었다.

“야! 그럼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가지 그랬어?”


“그 땐 신호가 끊어졌었거든.”

유성과 윤찬의 투덕거림이 시작되려 하자 설 팀장이 목장갑을 꺼내 던지며 둘을 중재하고 나섰다.

“시끄러! 천막 치는 거 도와줄 거면 장갑 끼고 합류하고 싸우려면 나가서 싸우고 와.”

“싸우는 거 아니에요. 윤찬이가 그냥 싸고 오면 돼요. 저도 장갑 하나 주세요.”

“타이밍이 중요한데..쩝...저는 화장실 좀 다녀와서 합류하겠습니다.”

“하하 그럼 그러든가.”

그렇게 유성은 설비팀의 일에 바로 참여하고 윤찬은 개인적인 용무를 해결하고 난 뒤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거 옮기면 되나요?”

“하하 유성이 일머리는 여전하네!”

열심히 일하는 유성을 보는 설 팀장의 눈빛 또한 여전히 따스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점심이 지난 오후 2 시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의료 봉사 활동이 시작되었다.

유성과 나경은 의료팀에 합류 하였고, 나머지 친구들은 식사도우미 및 주방도우미로 일손을 거들었다.

의료팀에 합류한 유성은 지난번과 같이 어르신들이 치료 받기 전 대기하는 1 층 첫 번째 교실에서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담소도 나누면서 지겨워하시는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 주고 있었다.

물론 지난번과는 다르게 어르신들에게 조금 더 구체적인 도움도 드렸다.

-한유성님 앞에 계신 할머니에게 상태확인 및 측정스킬을 사용한 결과 치주염이 발견되었습니다. 치과 진료를


추천합니다.

‘OK! 고마워 고니!’

유성은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이가 불편해서 오셨지요?”

“으 응? 어떻게 알았어?”

“할머니 들어오실 때부터 오른쪽 볼을 문지르며 들어오셨잖아요. 그리고 지금 그냥 봐도 오른쪽 볼이 왼쪽보다


훨씬 부어있는 걸요? 많이 편찮으셨을 텐데 잠시 후에 옆 교실로 들어가시면 의사쌤이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물을
거예요. 그럼 이가 아파서 왔다고 말씀하시면 조금 더 빨리 치료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응! 고마워. 의사양반.”

“하하 할머니 저는 의사가 아니라 그냥 자원 봉사자에요.”

하지만 유성에게 설명을 들은 할머니는 자신에게 편한 데로 유성을 기억했다.

“응! 자원봉사 의사양반!”


“네 할머니. 치료받고 나면 괜찮아 질 거예요.”

그렇게 유성을 의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유성은 어르신들의 오랜 대기 시간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난번부터 봐왔기에 불편을 덜어 준다는 마음에 실제로 겉으로 드러난 병증에만 눈치껏 도움을 드렸고
간간히 의사 쌤으로 불리 우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유성은 심장의 묘한 떨림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랬다. 실제 의료 봉사 단체를 찾으시는 어르신들에게 문진을 통해 아픈 부위를 확인 하는 작업은 힘들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게 시골에 계시다 보니 자주 병원을 찾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의사선생님이 어디가 아프시냐고 물었을


때 유치원 아이들처럼 가장 시급히 치료해야 할 부분 말고도 여러 곳의 통증을 호소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 병원에서처럼 검사 장비가 부족하다 보니 대다수가 문진을 통해 이루어 져서 더욱 힘들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봉사에서는 유성의 도움으로 뜻하기 않게 의료진은 문진에서 다른 지역과는 다른 구체적인 답변에
조금은 당황과 놀람을 느끼며 조금 더 효율적인 의료 봉사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대기하고 있던 어르신 환자분들의 줄이 끝나갈 때였다.

“아이고 아이고...허리야...내 허리...”

나이는 30 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일까? 의료 봉사활동을 찾은 환장 중에서는 나름 젊은 편에 속해 보이는 남자가


허리에 손을 얹고 대기실로 쓰고 있는 교실로 들어왔다.

‘고니야 저 남자분도 한번 확인해봐.’

유성은 남자의 힘들어 하는 음성을 듣고 사항이 급할 경우 양해를 구하고 먼저 치료 받을 수 있게 들여보낼


생각이었다.

-네 한유성님 허리통증을 호소한 남자에게 ‘상태확인’과 ‘측정’ 스킬을 사용합니다.

‘고니야 어때? 저 분 허리 많이 아프신 것 같은데...’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고니가 유성에게 스킬 사용 결과를 얘기했다.

-한유성님 방금 들어와 허리통증을 호소한 남자에게 상태확인 및 측정스킬을 사용한 결과오른쪽 팔목 인대가 살짝
늘어나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물리치료 진료를 추천합니다.

‘응? 오른쪽 팔목이라고? 허리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네 한유성님 저 남자분의 허리에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팔목의 경우 최근에 다쳤다고 보기
보다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인대가 늘어나 있는 상태로 저렇게 비명을 지를 정도의 통증이 수반된다고 판단되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럼 저 남자 뭐지?’

유성은 고니의 설명을 들을수록 점점 더 이상함이 느껴졌다.


-추가로 말씀드리면 몸 곳곳에 날카로운 쇠붙이 즉 칼에 의한 자상의 흔적으로 보이는 곳이 다소 발견 되었습니다.

‘고니야! 일단 저 사람에게 요인경호 스킬 사용해!’

유성은 그 남자의 의도를 좀 더 파악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했다.

사용금지

***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 스킬을 사용합니다.

유성은 남자에게 다가가 부축해주며 물었다.

“아저씨 많이 아파요?”

“아 허리야...아파 허리 빨리빨리...”

남자의 엄살을 들은 유성은 더욱 의심이 깊어졌지만 대기실에 준비되어 있는 간이침대 위에 환자(?)를 눕혔다.

“환자분 여기에 잠시 누우실게요.”

“나..의사쌤 빨리 만나고 시퍼요.”

“네 환자분 어쩌다가 다치신 거예요?”

유성이 남자에게 질문하자 어딘가 이상한 말투의 대답이 들려왔다.

“으...나 과수원 일한다. 사다리에서 덜어졌다. 빨리 빨리 마니마니 아프다!”

남자는 아파서 제대로 말도 못한다는 듯 발 연기를 이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상태확인을 통해 속지 않는 유성이 말했다.

“아저씨 이정도면 여기서는 치료 안돼요. 병원 가셔서 CT 찍어보고 치료 받으셔야 해요. 더 늦기 전에 앰뷸런스


불러 드릴게요.”

유성은 남자에게 그렇게 말한 뒤 전화기를 들었다.

“아! 자...잠시만 병원 안 된다. 병원 안 간다!”

남자는 다급해 하며 유성을 말렸다.

“네? 환자분 다시 말씀하세요.”

“안 된다 병원. 으...병원 가믄 돈 마니 필요하다. 하지만 나 돈 없다.”

남자의 어설픈 발 연기는 그렇게 계속 되는 것 같았다.

“환자분 의료보험 적용되면 생각보다 그렇게 큰돈은 안들 텐데요.”

“나 없다 의료보험. 가야한다 일하러 사장님 싫어한다. 기다리는 거.”


계속 되는 대화를 통해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유성이 다시 환자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하느라 검게 탄 피부에서 시골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꽉 말아진 주먹 사이로 보이는 손바닥 피부색은 손등과는 대비적으로 하얗다 못해 뽀얀 느낌이다.

주의 깊게 살펴본 유성은 무언가 깨달았다.

‘아! 외국인 노동자!’

“저기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Marsudi Syuhud Sahudi!”

그랬다. 유성이 오해한 남자는 사실 근처 과수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사후디였다.

유성은 대기 줄도 거의 없고 자신의 오해한 부분이 멋쩍어 살며시 남자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 환자분 여기 잠시 누워서 마사지 잠깐 받으실게요. 그런데 진짜 아프신 곳은 여기 허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사실은 손목이 허리보다 조금 많이 아파요.”

유성은 그렇게 사후디와 얘기를 나누며 교실 한쪽 끝 간이침대에서 치료계열 스킬을 하나씩 사용했다.

사실 사후디는 파키스탄에서 한글을 전공해 학생들을 가르치다 한국으로 넘어와 일자리 알선을 통해 여러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들었고 그렇게 이곳 저곳 여러 곳에서 일을 하다가 여기 과수원


사장님과도 만나게 되었다.

그전 사장님들과는 달리 사후디를 잘 챙겨주었고 같이 과수원에서 일하는 분들도 그를 차별 없이 잘 대해주어


과수원에서 자리를 잡고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 과수원일을 할 땐 농사기구 사용이 서툴러 여기저기 다치기도 많이 했었다.

병원에 갈 형편도 아니었기에 상처에 사장님이 준 빨간약과 하얀 붕대를 이용해 치료하기 일 수였고 그렇게 나은
자리엔 흉터가 하나 둘 늘어갔다.

이번에 의료 봉사팀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사장이 사후디에게 예전부터 좋지 않은 오른손 팔목 치료 받으러 갈


것을 권유했다.

또한 사람이 많이 있으면 대기시간이 오래 걸리니 무조건 많이 아프다고 해서 빨리 치료 받으라고 과수원 사장이


시킨 것이었다.

유성은 치료하면서 대화를 나눈 끝에 조금은 사후디라는 남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후디씨! 이제 조금 나을 거예요. 일할 때 오른손으론 무거운 물건 당분간 들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의사 썬쌩님!”


그렇게 유성에게 치료를 받은 사후디는 대기실에서 유성에게 인사하고 과수원으로 돌아갔다.

“쩝..의사쌤이 아니라니깐...에휴 말해 뭐해..”

의사쌤들이 환자 치료 후 느끼는 작은 보람을 의도치 않은 일로 느껴보는 유성이었다.

유성의 의료봉사 첫날은 그렇게 큰 사건 없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

“오늘 다들 수고 많았다.”

설 팀장이 일과가 끝나 등나무 벤치에 모여 쉬고 있는 유성의 일행에게 다가와 격려했다.

“팀장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여기 앉아 좀 쉬세요.”

나경이 설 팀장에게 자리를 권했지만 여러 친구들이 있어 함께 자리하기에는 어색했는지 바쁘다는 말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아니야 난 가봐야 해. 저녁 식사 당번이 우리 시설팀 이라서.”

“헐 쉬지도 못하고 어떡해요?”

“아니야 오후에 나름 잠깐씩 쉬어서 괜찮아. 그리고 너희 숙소는 2 층에 있는 교실 이용하면 돼. 간이침대라


잠자리가 조금 불편해도 하루 정도는 괜찮을 거야. 짐 풀고 조금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내려와.”

그렇게 유성의 일행에게 필요한 말을 전하고 자리를 벗어나려던 설 팀장에게 윤찬이 한 말이 발목을 붙잡았다.

“저희는 유성이가 캠핑카 빌려와서 거기서 잘 거예요.”

“어? 그래? 그럼 저기 버스 옆에 있던 캠핑카가 너희가 가져온 차였어?”

저녁준비를 위해 바쁘다던 설 팀장이 다시 돌아보며 물었다.

“네. 저희 봉사 끝나고 바로 안 올라가고 하루 더 남아 남해 관광하고 걸 계획이에요.”

“아! 그럼 이불이나 그런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따로 나한테 얘기해. 근데 유성아 차안 구경 한 번 가능하냐?”

나경의 대답을 듣고 설 팀장이 유성을 바라보며 부탁했다.

“네 당연하죠. 윤찬아 네가 안내해 드려. 단 화장실 사용은 못하게 해.”

유성의 당부를 한귀로 대충 흘러 들은 둘은 캠핑카로 향했다.

“너희 아까 내려올 때 둘이 투닥 거렸다는 게 캠핑카 때문이었냐?”

“네. 저놈 화장실은 냄새난다고 죽어도 못 쓰게 막더라고요.”

윤찬과 대화를 나눈 설 팀장의 눈빛이 살짝 장난기를 머금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

보급부대 작전을 끝내고 캡슐에서 내린 유성은 새로 생긴 스킬을 실험해 보기 위해 무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뭐가 나오든 내방보단 안전하겠지?”

실제로 무기고는 레벨 업을 통해 대형마트 만큼이나 크기가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네 한유성님 현재 무기고는 탱크나 장갑차도 무리없이 수용 가능합니다.

“OK! 그치만 보급 상자에 그런 것이 들어 있을...수도 있으려나?”

-네 한유성님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확률은 희박하리라 예상됩니다.

“설마...그래도 게임에서 보급 상자에 보면 총이나 탄약 같은 그런 게 일반적이 던데. 그런 큰 게 들어


있을라고...”

호흡을 가다듬은 유성은 게임에서 아이템을 뽑기 전 늘 그랬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경건한 마음을 가득 담아 보급
상자를 외쳤다.

“스킬! 보급 상자!”

[띠링! ]

[보급 상자가 지급됩니다. ]

[쿨 타임이 23 시간 59 분 남았습니다. ]

스킬을 사용하자 유성의 눈앞에 정육면체 모양의 나무로 된 상자가 나타났다.

“휴...무슨 게임 아이템 까는 기분이드냐?”

-한유성님 나무 상자의 덮개를 열면 보급 물품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어...그래.”

확인을 위해 다가선 유성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유성은 게임에서 뽑기를 할 때마다 항상 똥손이 강림했던 기억이 지금 크게 작용했다.

[스...팟! ]

유성이 조심스레 보급 상자의 덮개를 열자 하얀 빛이 쏟아지며 나무 상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보급 물품이


생겨났다.

“허...이건!”

[자동차 디지털 업그레이드 키트 Ⅱ]

-네 ‘상태확인’ 스킬을 사용해 확인해 본 결과 한유성님께서 운전병 체험 레벨 5 를 달성해 받았던 자동차


디지털 업그레이드 키트의 상위 버전으로 확인됩니다.
“그럼 밖에 있는 차에 사용하면 SUV 도 까망이처럼 아이템화 된다는 거야?”

-한유성님 보급 상자에서 획득한 업그레이드 키트는 까망이처럼 이미 업그레이드 키트를 사용한 차량에 다시
사용해 2 차 업그레이드를 진행 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럼 일단 외숙모 까페 주차장에 있는 까망이를 불러야겠네?”

-네 그럼 지난번과 같이 푸드 트럭 ‘까망이’의 창문 썬팅 농도를 전면 5% 측면 5%로 설정합니다.


외부차량에서 ‘까망이’ 운전석 확인이 불가능 하게 됩니다. 이대로 출발 합니까?

“어 그래 고니야. 까망이 주위에 보는 사람 없으면 바로 출발해.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지금 ‘까망이’ 출발했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2 시입니다. 혹시 ‘까망


이’와 시야 공유 원하시면 블랙박스 홀로그램 영상 송출 가능합니다.

“응 홀로그램도 부탁해.”

그렇게 고니는 유성의 집 앞으로 ‘까망이’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얼마 후 유성은 도착한 까망이를 타고 주변정찰을 사용해 인적이 없는 곳에 도착해 자동차 업그레이드 키트Ⅱ를
사용했다.

유성은 잔뜩 기대를 안고 아이템을 사용했지만 특별히 바뀐 부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어디가 업그레이드 된 거야? 방탄이라도 된 건가?”

-네 한유성님 방탄장갑 착용 가능합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기능 중에 현재 한유성님께서 사용해 보실 기능은


차량의 용도 변경 기능을 추천합니다.

그렇게 말한 고니는 유성의 눈앞에 여러 차량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헐 무슨 영화 트랜스포머의 로봇 군단처럼 까망이도 바뀐 거야?”

-네 한유성님 현재 출시된 차량에 한정해 차량의 용도 변경을 통해 원하시는 차량으로 변경 가능합니다.


한유성님이 가진 스마트 폰과 기능이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유성은 고니의 말을 듣고 바로 떠오르는 차량이 한 대 있었다.

“그...그렇다면! 전에 아람이 집에 있던! 벤스로!”

-그럼 까망이를 용도 변경을 통해 ‘2021 벤스 S 63 AMG’ 모델로 변경하겠습니다.

그렇게 잠깐 흥분했던 유성은 당장 아침에 가야할 의료봉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일단 아침에 애들하고 같이 의료봉사 가야 되니까 음...SUV 보다는 실내가 넓은 차량이 편할 것 같긴


한데.”

-네 한유성님 실내가 넓은 차량들 자료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유성의 시야에 여러 가지 차량들의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한동안 홀로그램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유성의 눈에 하나의 차량이 들어왔다.

“아! 그래 이게 낫겠다. 렌트했다고 하면 될 것 같고 고니야 이걸로 하자!”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차량용도 변경 진행하겠습니다.

[스...팟! ]

밝은 하얀색 섬광이 사라지고 유성의 눈앞에는 까망이가 변신한 캠핑카가 자리해 있었다.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던 유성이 고니에게 궁금한 점을 하나씩 물었다.

“여기 화장실도 있고 샤워도 가능하네?”

-네 한유성님 캠핑카 안에 변기도 있고 세면대, 싱크대, 전자렌지, 냉장고 등의 모든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니의 설명을 들은 유성은 문득 밀려오는 궁금증에 물었다.

“만약에 급한 볼일을 차안에서 해결하면 처리는 자동으로 되는 거야?”

-용변의 뒤 처리를 말씀하시는 거면 아닙니다. 캠핑카 외부에 작은 문을 열면 내부의 변기를 타고 내려온 용변


용기가 있습니다. 다행히 용변이 보이진 않고 물병처럼 작은 입구가 있음이 확인 됩니다.

“읔...자동이 아니구나.”

-네 한유성님 검색된 자료를 보면 여행 중 공중화장실에서 비우고 물로 헹구어 주시면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

그렇게 고니의 설명을 들은 유성은 캠핑카 내부에서의 화장실 사용은 금지하리라 다짐했다.

생일 선물

***

윤찬과 대화를 나누다 눈빛에 장난기를 머금은 설 팀장이 물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네 화장실 쓰면 아마 죽이려고 할걸요. 아니 정말 죽일 거예요.”

유성이 몸서리를 치며 설 팀장에게 말했다.

“쩝...그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근데 여기 안에 들어오니까 밖에서 보던 거 보다 훨씬 더 넓어 보인다.”

“네. 저도 캠핑카는 이번이 처음인데 유성이가 나경이를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 같아요.”

윤찬의 말을 듣고 지난 달 봉사활동에서 유성을 밀어주었던 기억이 난 설 팀장이 물었다.

“오! 아직도 유성이는 나경이에게 작업 중인거야?”


“아니요. 유성이가 계속 말도 안하고 가만있으니 나경이가 답답했던지 얼마 전에 저희랑 작업해서 힘들게 미래의
독거노인 하나 치웠죠.”

“유성이가 아니고 나경이가 작업을 했다고?”

“네 골 때린다니까요.”

“하하하. 그러네.”

그렇게 유성과 나경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설 팀장은 저녁 준비를 하러 돌아갔다.

유성의 일행도 잠시 후 학교 건물 안에서 저녁과 간단하게 세면까지 해결하고 나서 등나무 벤치에 모여앉아
시원하게 맥주한잔씩 마시는 중이었다.

“아...하..품....꾸벅...”

“큭..윤찬이 존다.”

“그래 아침부터 움직이느라 피곤했나보네.”

진아와 보라가 윤찬이 맥주를 마시다 조는 모습을 보고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안되겠다. 윤찬이 내가 먼저 차에 재우고 나올게.”

유성은 윤찬을 데려다 차량 운전석 위에 다락방처럼 만들어진 매트리스 위에 먼저 올려 잠을 재웠다.

“나..안 취했어...”

“그래 나도 알아 맥주 반 캔도 안 마셨는데 취했겠냐? 피곤한거지. 얼른 자!”

유성은 윤찬을 재우고 난 뒤 여자들의 잠자리를 위해 캠핑카의 테이블과 소파를 접어 넣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여자들 3 명은 충분히 누워 자고도 남을 크기의 넓은 킹사이즈 침대가 만들어졌다.

“너희들 잠자리도 세팅해 뒀으니 피곤하면 차에 들어가서 바로 자면 돼. 테이블 자리를 침대로 바꿔 놨어.”

“홀짝...진아야 우리도 들어가서 자라는 얘기 같이 들리지 않니?”

보라가 진아에게 유성의 얘기를 달리 해석해서 전했다.

“츄릅! 내가 맥주 안주로 고기 하나 못 먹었는데 이 자리를 그렇게 쉽게 비켜 줄 거 같애? 크크.”

그렇게 윤찬을 재우고 차에서 돌아와 얘기하는 유성을 보라와 진아가 놀렸다.

“윤찬이는? 어디 재웠어?”

“응. 나랑 윤찬이는 운전석 위에 있는 다락방에서 자면 될 것 같애. 거기도 올라가보니 생각보다 넓더라고.”

“응. 거기 넓던데. 내가 올라가서 잘까 했는데 아쉽네.”

“그럼 진아 네가 올라가서 윤찬이 옆에 주무시든지.”


“그럴까? 크크”

맥주 몇 캔을 마신 진아와 보라의 의미 없는 농담도 그렇게 조금 이어지더니 둘은 유성과 나경만을 등나무 벤치에


남기고 피곤하다며 차량 안으로 눈치껏 사라져 버렸다.

“유성아! 오늘 많이 힘들었지?”

“아니. 난 괜찮은데. 나경이 네가 많이 피곤하지.”

“응.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피곤하긴 한 거 같애. 여기 목이랑 어깨가 뻐근한 게 근육이 조금 뭉쳤나봐.”

나경이 목과 어깨를 이리 저리 돌리며 근육이 뭉쳐 있음을 유성에게 얘기했다.

“그래? 이리 돌아 앉아봐. 내가 어깨랑 목 근육 좀 풀어 줄게.”

“아니야. 괜찮아. 넌 아침부터 운전까지 하느라 나보다 더 쉬지도 못했잖아.”

“나는 나름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잠깐씩 쉬어서 괜찮아. 그리고 지금은 내가 피곤할까봐 마사지 안 받겠다고
해도 나한테 마사지 한 번 받고 나면 아마 내일도 해달라고할걸?”

“풋! 알았어. 이제 그 유명한 대기실 안마사 선생님의 손맛 좀 나도 받아 볼까?”

“네!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

유성은 그렇게 얘기하며 나경의 등 뒤쪽으로 자리해 나경의 목과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고니야 물리치료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물리 치료’ 스킬을 사용합니다.

[스...팟]

스킬을 사용한 유성의 눈에 나경의 목과 어깨 등에 빨간색으로 표시가 된 부분이 보였다. 그 곳으로 유성은 손을
가져가 뭉친 근육을 천천히 풀어 주었다.

“아...정..말...시원..해...나...벌써 너...한테 중...독...된...거 같아.”

“응? 뭐라고?”

유성의 손길이 차츰 느려지자 나경은 다시 재촉했다.

그렇게 유성과 나경의 한 밤의 꽁냥꽁냥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뭐해? 계속 주물러!”

“어? 어! 그래.”

“풋! 아까 낮에 너 쪼금 멋있긴 했어.”

“응?”
“유성이 네가 환자들 대할 때 옆에서 지켜보면 진지한 얼굴이 왠지 의사 같아.”

“하하 내가 좀 그랬나? 후우! 와! 여긴 별이 엄청 많네.”

유성은 민망함에 하늘을 바라보며 주제를 전환했다.

“응? 그러게 시골이라서 그런가봐.”

“저...우리...”

“그래 우리도 그만 들어가서 쉬자!”

“어. 그래.”

유성과 나경도 조금은 민망했는지 차량 안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모두들 남해에서 첫 날은 저마다 피곤했는지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잠든 새벽 유성은 홀로 잠에서 깨어 조용히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무기고 소환해줘.’

-네 한유성님 무기고를 소환합니다.

[띠링! ]

[스....파......팟!]

하얀 빛이 휘몰아치더니 대형 마트만큼 커진 직육면체 모양의 홀로그램이 유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모두 잠든 밤 유성이 무기고로 들어온 이유는 어제 작전으로 생긴 보급 상자를 다시 까기 위해서였다.

-한유성님 보급상자 스킬의 쿨타임이 만료되었습니다.

“고니야 고마워. 스킬! 보급상자!”

[띠링! ]

[보급 상자가 지급됩니다. ]

[쿨 타임이 23 시간 59 분 남았습니다. ]

어제와 마찬가지로 스킬을 사용하자 유성의 눈앞에 정육면체 모양의 나무로 된 상자가 나타났다.

“꿀꺽! 좋은 거 나와라!”

유성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며시 상자의 덮개를 열었다.


[스...팟! ]

보급 상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보급 물품이 생겨났다.

“어? 이게 뭐야?”

-네 한유성님 오늘 보급품은 군 창건과 함께 해온...

“고니야 설명 안 해도 알아. 보급 상자 깔라고 일부러 무기고 안에서 안자고 현실에서 잠자며 시간 보낸 건데...
쩝...”

유성은 보급 상자에서 나온 물건을 쳐다보고 자신의 손을 한 번 번갈아 쳐다보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똥 손 맞네...휴우...”

***

남명초등학교 교문을 지나 낯선 차량 한 대가 조용히 운동장 한 구석에 정차했다.

잠시 뒤 차량 안에서 전화 통화 목소리가 간간히 흘러 나왔다.

“네 사장님 목표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일단 목표 확인부터 끝내고 실수 없도록 확실하게 확인하고 봉사 활동 끝나고 단체와 떨어졌을 때를 노려.
그리고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해. ]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수고해 딸깍! ]

통화를 끝낸 지 실장은 옆에 있는 남자에게 지시했다.

“이 팀장! 일단 여기 봉사활동 스케줄 좀 알아와.”

“네 형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인사 후 당장 운전석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려는 이 팀장을 지 실장이 다급하게 불러 새웠다.

“잠깐! 잠깐! 잠깐만! 지금 그 복장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알아 나오겠다고?”

그랬다. 둘은 얼핏 보면 조폭이라고 해도 될 만한 코디 다시 말해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착용 중이었다.

“네! 형님. 영업시간 알아 오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냥 들어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금방 알아 올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 복장으로 들어가면 100% 주목 받을 게 뻔 한데, 사장님 지시 사항인 조용한 일 처리가 가능
하겠냐고? 그리고 일 할 땐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지금 우리가 조폭이야? 비지니스! 비지니스 하러 왔다고!
당장 뒷좌석 가서 옷 갈아입고 들어가!”

“네! 형님 아니...지 실장님! 알겠습니다.”


지 실장의 명령으로 차에서 내리려는데 누군가가 그들이 타고 있는 검은색 밴의 운전석으로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지이잉...]

“무슨 일이십니까?”

창문을 내린 이 팀장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지만 경비 모자를 눌러 쓴 학교 관계자는 일체의 물러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팀장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보세요! 여기 학교 안에서 막 주차 하시면 안 됩니다. 당장 차 빼세요. 알 만한 사람들이...”

옆에서 보고 있던 지 실장이 답답함에 못 이겨 발 연기를 시작했다.

“저...저기 아침 먹고 갑자기 체기가 느껴져서 급히 오느라...금방 치료 받고 차량 빼겠습니다. 우..웁!”

“큼..큼... 그럼 얼른 가서 치료부터 받아요. 안내판 따라 1 층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의사 선생님들 이제 아침


자셨으니 조금 있으면 아마 시작할거요.”

“네...감사합니다. 그럼 조금 있다 들어가겠습니다.”

“쩝..답답한 양반이네. 조금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 죄다 몰려와서 치료 받기 힘들어 지니까 지금 당장 내려서


들어가야 한다니까. 얼른!”

“아...네...”

지 실장은 차에서 내려 더워 보이는 검은 정장 슈트와 넥타이는 물론 선글라스도 의자에 벗어 던지고는

“금방 다녀 올 테니까 쓸 때 없는 짓 하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

“네! 실장님!”

지 실장은 이 팀장이 못 미더워 다시 한 번 더 단속한 다음 급하게 학교 관계자를 뒤따라 걸었다.

때마침 담배를 피기 위해 학교 밖에 나갔다 온 윤찬은 검은색 밴 차량 뒤를 지나다 우연히 학교 관계자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뒤에서 지켜보았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캠핑카에 올랐다.

“이제 담배 좀 끊어라!”

“너도 도랐냐?”

유성의 말에 윤찬이 고개를 흔들며 유성을 쳐다보았다.

“너도 라니? 나 말고도 이상한 놈이 있어?”

“응 저기 검은색 밴에 탄 사람.”

“왜?”

“아침에 급체로 왔다던데... 차에서 내릴 땐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더라고...”


“뭐 출근 할 땐 정장 입을 수도 있지 뭐가 이상해?”

“아니 출근 전에 여기 치료 받으러 오면서 답답하게 넥타이까지 장착하고 와?”

유성과 윤찬의 대화를 비집고 나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이제 늦겠다. 들어가자!”

“어 그래.”

***

-Episode

아침 먹기 전 씻으러 가기위해 칫솔에 치약을 짜고 있는 윤찬에게 유성이 다가와 물었다.

“윤찬아 너 담배 뭐 피냐?”

“갑자기 담배도 안 피는 놈이 그건 왜 물어?”

“그냥 혹시 담배 가려서 피나 해서.”

“딱히 가리지는 않는데 맨솔은 웬만하면 안펴.”

“맨솔?”

“그러니까 사탕으로 말하면 박하 맛? 아이스크림으로 말하면 민트 맛 이라고 할까?”

“아! 너 치약 맛 난다고 싫어하는 그 맛?”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유성이 윤찬의 말을 듣고 다행이라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종이가방을 건넸다.

“그럼 다행이네. 자 이거 받아!”

“응? 이게 뭐야?”

“너 다음 주 생일이잖아. 생일 선물! 시중에선 구하기 힘든 거야.”

“야! 그래도 줄려면 포장이라도 제대로 해주던가! 이게 뭐야?”

“어차피 받으면 포장 뜯어야 할 거 아냐. 그냥 받아.”

“하하 그래 일단 고맙게 받을게.”

그렇게 유성은 윤찬에게 종이가방을 건네고 아침을 먹기 위해 건물로 이동했다.

윤찬은 유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선물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헐...이...이게 뭐야?”
유성이 윤찬에게 주고 간 종이가방 안에는 군에서 보급품으로 나왔던 담배가 종류별로 들어있었다.

[화랑/ 은하수/ 한산도/ 백자/ 솔/ 88 라이트/ 디 X ]

거수자(거동이 수상한 자)

***

유성은 친구들과 함께 오전 봉사를 위해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수고해!”

“응 점심 때 봐!”

인사를 주고받은 후 각자가 맡은 자리로 그렇게 흩어졌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유성이 맡은 환자 대기실로 쓰는 교실 안에 도착한 환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유성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제 한 팀을 이뤄 같이 일 했던 김 간호사와 인사를 나눈 유성은 자신의 자리로 이동해 자원 봉사자임을 알 수


있는 조끼를 걸쳤다.

“이쪽에 있으라니까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요?”

“그게 화장실 찾느라...”

밖에서 잠깐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이 대기실로 들어섰다.

“들어오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김 간호사가 들어온 환자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옆에 서있던 학교 경비 아저씨에게서 들려왔다.

“아침에 밥 먹고 체한 거 같아서 급하게 왔다기에 데려다 주러 왔어요. 그럼 수고 하이소.”

“네! 아저씨도 수고하세요.”

“환자분 이리 앉아보세요. 쌤들 만나기 전에 간단하게 혈압과 체중 측정하면서 간단하게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유성은 아직 대기 환자들이 없어 김 간호사와 남자를 가만히 지켜보다 어제 하던 대로 고니에게 스킬 사용을


지시했다.

‘고니야 저 남자 환자에게 상태확인이랑 측정 스킬 사용해 봐!’

-한유성님 앞에 계신 남자에게 ‘상태 확인’ 및 ‘측정’ 스킬을 사용한 결과 위염과 지방간이 발견되었습니다.
내과 진료를 추천합니다.
‘OK! 고니야 고마워. 저 아저씨는 위염 때문에 왔나보네. 근데 지방간은 뭐야?’

-네 한유성님 정상 간의 경우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5% 이내인데, 이보다 많은 지방이 축적된 상태를


지방간이라고 합니다.

‘그럼 온 김에 둘 다 진료 받고 가라고 추천하면 되나?’

-위염에 대한 처방은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지방간의 경우에는 장비를 갖춘 큰 병원에


내원해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검사법에는 간 기능 검사, 초음파 검사, 자기공명영상촬영
(MRI), 컴퓨터 단층촬영(CT) 및 간 섬유화 검사 등이 있으며, 확실한 진단이나 감별 진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간 조직검사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뭔가 복잡한 게 간단한 병은 아닌가보네.’

-네 한유성님 지방간의 주원인은 음주와 비만이며, 고지혈증이나 당뇨병 등의 질병에 동반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약제가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심한 영양 부족에 의해서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고도 합니다.

‘고니야 그만해도 돼. 더하면 뇌에 지방 쌓이겠다.’

그렇게 고니의 설명을 멈춘 유성은 김 간호사의 문진이 끝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씨! 이분 내과 진료 받을 수 있게 안내 좀 부탁드려요.”

“네!”

“환자분 이리 오세요.

-한유성님 추가로 앞에 남자의 신체 여러 곳에서 자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어제 사후디도 그렇더니 농사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나봐.’

유성은 머릿속으로 고니와 대화를 나누며 남자가 내과 진료를 받아 볼 수 있도록 교실로 안내해 걸어갔다.

“저기 오늘 일과가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네? 그건 왜?”

“혹시 나중에도 안 좋으면 한 번 더 와도 되나 해서요?”

남자의 물음에 유성은 고니에게 들었던 지방간이 생각나 큰 병원을 가보라고 권유했다.

“물론 오후에 또 오셔도 되지만 환자분에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는 의료 봉사활동이라 의료장비가 부족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가 힘들어요. 환자분 소화불량 증상은 여기서 처방 받아 해결하시더라도 꼭 큰 병원 가서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 보시기를 권해드려요.”

“그야 그렇지만 여기는 치료비도 안 들고...”

유성의 정성어린 설명에도 남자가 건성으로 대답해서 그런지 유성은 남자의 말투에서 어제 만났던 파키스탄에서
왔다던 사후디가 생각나 다시 물었다.
“저기 혹시...환자분 외국분이세요?”

“네?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

“그럼 의료보험 적용받으면 생각보다 비용은 크게 안들 텐데요. 일단 여기 들어가셔서 진료부터 받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자는 유성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저기 환자분 어디가세요? 여기 들어가서 진료 받으셔야지요.”

“아! 네. 그렇군요. 그럼 감사했습니다.”

남자는 그제야 다시 돌아와 유성이 서있는 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갔다.

유성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함이 남아있어 고니에게 물었다.

‘고니야 이사람 조금 수상하지 않아?’

-한유성님 죄송합니다. 아직 저는 수상하다는 행위를 판단하기에는 학습이 더욱 필요합니다.

‘분명 치료받으러 왔다고 얘기하면서 실제 치료와 관련된 내 얘기를 듣기보다는 무언가 찾으러 온 사람마냥 계속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집중을 안 하더라고.’

-네 한유성님 앞으로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는 수상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유독 여자들만 집중해서 바라보는 게 어딘가 수상해. 그리고 토요일인데 정장바지
입은 거도 그렇고...아! 맞어! 아까 윤찬이 수상하다고 했던 남자가 바로 이 남자였구나! 고니야 일단 저
남자에게 ‘요인경호’ 스킬 사용해둬! 내 생각이 맞다면 이사람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아.’

사실 유성의 말과 같았다. 지 실장은 유성과 대화를 나누며 복도를 걸었지만 지나는 교실 안에 혹시 목표인
정진아가 있을지 몰라 두리번거리게 되었고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유성은 남자에게서 조금씩 수상함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 실장은 본의 아니게 아프다는 핑계로 내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선생님의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며 여전히 눈은 복도에서 지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환자분 혈압이랑 몸무게는 특별히 나쁘지는 않네요. 혹시 아침에 뭐 드셨어요?”

“그..해장국을 급하게 먹었는지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왔습니다.”

“그럼 지금도 많이 불편하세요?”

“아니 지금은 조금 괜찮습니다.”

“특별히 드시는 약이나 알레르기 있으세요?”

:
잠시 후 진료를 끝낸 의사선생님은 노트북에 환자의 진찰 기록을 입력하고 난 뒤 처방전을 따로 출력해서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오늘 드실 약은 처방해 드렸고요. 이방 나가서 오른쪽 복도 끝에 있는 약국 가서 처방전 보이시면 약 챙겨


줄 거예요. 오늘 하루 드셔보시고 그래도 안 좋으시면 병원 가셔서 꼭 검사 받아 보셔야 합니다.”

처방전을 받은 남자는 의사선생님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질문을 툭 던졌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 진료는 오늘까지만 하는 건가요?”

“네. 오늘 오후까지만 진료 보고 다들 각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겠죠?”

“그렇군요. 그럼 다들 오늘 오후에 해산하게 되겠군요?”

“아마도 그렇겠죠? 환자분 죄송한데 뒤에 기다리시는 분이 있는 것 같네요.”

남자의 질문이 의학적 범위를 벗어나 생각보다 길어지자 의사선생님이 남자에게 넌지시 축객 령을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지 실장은 내과 진료를 마무리하고 나와 복도 끝에 있는 약국을 향해 걸었다. 물론 시선은 교실 안에 있는


여자들을 빠짐없이 확인하며 걸었다.

그렇게 모든 교실에 있는 여성 자원 봉사자들의 얼굴을 모두 확인하며 1 층 복도 끝에 있는 약국까지 다다랐지만


목표인 정진아의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휴우...”

한숨을 크게 내뱉은 지 실장은 건물을 벗어나 검은색 밴이 주차되어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곧 차량에 도착하자
뒷좌석에서 의자까지 젖히고 편하게 누워 코까지 골며 잠들어 있는 이 팀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 쳐 도랐나?! 형은 안에 들어가서 목표 찾는다고 정신없는데! 넌 뭐가 힘들다고 여기서 쳐 자빠져 잠이나


퍼질러 자고 G 랄 이야!”

“쓰읍!...아..안 잤습니다! 형님!”

지 실장의 호통소리에 놀라 일어난 이 팀장은 흐르는 침을 오른손으로 훔치며 습관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침이나 닦고 거짓말해! 왜? 어제 밤에 잠 안자고 또 어디서 뭐하셨기에 여기서 쳐! 자고 G 랄 이세요? 이


팀장님!?”

“아..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실장님!”

이 팀장의 반응으로 더 열이 받은 지 실장은 밴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 팀장! 내과진료에서 내가 못 찾았거든. 넌 들어가서 외과 진료 좀 받으면서 찾아봐!”

지 실장의 목소리에 이어 샌드백 터지는 소리가 차량 안에서 이어졌다.

[퍽..퍽...퍽...]
“헛..컥...형님...잘못했습니다....악!”

***

-Episode

지 실장을 내과 진료실까지 안내해준 유성은 아직 대기실에 환자가 많이 몰리지 않아 김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부터 시설관리팀에 소속되어 한창 식사를 준비 중인 윤찬을 불러내어 의견을 묻기로 했다.

“왜 불러싸? 귀찮게! 나도 나름 바쁘거든!”

“윤찬아! 너 아까 나한테 이상하다고 했던 사람 기억나?”

“이상한 사람? 바로 여기 있네!”

윤찬의 농담에 유성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 네가 담배 피고 와서 나보고 ‘너도 도랐냐?’고 했었잖아!”

“아! 체했는데 정장에 넥타이까지 했던 또라이?”

유성의 말을 듣고 그제야 기억이 난 윤찬이 대답했다.

“그 놈이 ‘또라이’ 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상한 건 확실한 거 같애.”

“그래 봤자 벌써 진료 받고 가지 않았어?”

“그치! 원래 같으면 벌써 갔겠지. 근데 아직도 천천히 돌아다니는 거 같애.”

“그럼 그 사람이 돌아다니는 게 문제야? 뭐가 문제야?”

“일단 내 얘기부터 들어봐.”

윤찬은 식당 안에서 설팀장의 눈치를 보며 유성을 재촉했다.

“알았어! 빨리 말해! 저기 설 팀장이 나 노려보고 있어!”

“OK! 그 또라이가 오전에 1 빠로 진료 받으러 왔기에 내가 여유가 있어서 내과까지 데려다 줬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했어.”

“그러니까 어디가 이상한데?”

“내가 데려다 주면서 계속 봤는데 말하는 나는 안보고 교실 지나칠 때마다 그 안에 여자들만 집중해서
쳐다보더라고 남자만 있는 교실은 신경도 안 써.

“그게 왜 이상해? 남자가 그럼 남자를 집중해서 쳐다보리?”

“아니! 그게 다가 아닌 거 같애!! 오늘 무슨 요일이야?”

“어제가 금요일 이였으니 오늘은 토요일이겠지.”


유성은 자신이 생각해낸 추리가 사실인거 마냥 얘기했다.

“그렇지! 주말이지! 아마 휴무일 가능성이 높을 거야? 그런데 굳이 불편하게 체했는데 정장을 입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빨리 말해! 설팀장 여기로 온다!”

“들어봐 여기가 중요해! 날씨가 6 월 들어서 갑자기 좀 덥잖아!”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그 남자의 정체가 뭔데?”

“내가 볼 땐 더워서 하복으로 정장으로 갈아입은 ‘바바리’이지 않을까?”

그 때 설팀장이 유성과 얘기하고 있는 윤찬에게 다가와 소리쳤다.

“마! 윤찬이! 빨리 와서 밥 안 해? 난 반찬도 다 했는데 내가 바바리(밥하리)??”

꿈 설정

***

유성은 윤찬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설 팀장에게 쫓겨 다시 환자 대기실로 돌아왔다.

‘고니야 요인 경호 화면 좀 살짝 띄워봐.’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 대상의 화면을 출력 합니다.

고니가 출력한 화면에는 검은색 밴의 옆에서 문을 열고 소리치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고니야 저 사람들 뭐 하는 지 소리 좀 높여봐.’

유성의 지시를 받은 고니가 홀로그램 화면의 볼륨을 조절하자 유성은 지 실장의 대화 내용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들어가서 목표 찾는다고 정신없는데! 넌 뭐가 힘들다고 여기서 쳐 자빠져 잠이나 퍼질러 자고 G 랄


이야!]

[쓰읍!...아..안 잤습니다! 형님!]

[침이나 닦고 거짓말해! 왜? 어제 밤에 잠 안자고 또 어디서 뭐하셨기에 여기서 쳐! 자고 G 랄 이세요? 이


팀장님!?]

[아..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실장님!]

[이 팀장! 내과진료에서 내가 못 찾았거든. 넌 들어가서 외과 진료 좀 받으면서 찾아봐!]

‘저 두 사람 대화 내용이 정상적으로 진료 받으러 온 사람들이 아닌 게 맞지?’

-네 한유성님 정상적으로 진료 받으러 온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고니야 일단 저 두 사람 계속 지켜보면서 녹화해 둬. 혹시 이상한 움직임 보이면 얘기하고.’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지시대로 진행 하겠습니다.


유성은 고니에게 두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를 명령하고는 의료 봉사 활동을 이어갔다.

“유성씨 여기 환자분들 안내 부탁드려요.”

“네! 어르신 이리로 오세요.”

김 간호사의 옆에 서있던 유성은 혈압과 체중을 측정한 후 간단한 문진표까지 작성한 50 대의 중년 여성 환자를
빈자리로 안내하며 물었다.

“환자분은 무릎이 안 좋으신가 봐요?”

“네 선생님. 최근 들어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무릎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고민하다가 의료 봉사가 우리


마을에 온다는 얘기 듣고 이렇게 찾아 왔어요.”

“잘 오셨어요. 여기 앉아 보세요. 제가 잠깐 마사지 해드릴게요.”

“날이 우중충한 날엔 무릎 통증이 더욱 심해요. 병원에 가봐야 하나 싶다가도,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레 생기는
증상이겠거니 하는 마음에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농사일이 힘들어 그런지 짙은 구리 빛 얼굴의 주름은 나이를 더욱 들어 보이게 했다.

중년 여성 환자는 통증이 있는 무릎 부위가 마사지를 통해 편안해져서인지 유성에게 개인적인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니야 관절염에 대한 정보 검색해서 홀로그램 창으로 띄워줘!’

-네 한유성님께서 요청하신 관절염에 대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스...팟! ]

유성은 고니가 출력해준 화면을 참고해서 환자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환자분 오늘 오시길 잘하신 것 같네요. 관절염 같은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관리와 치료 받으시면 차츰 호전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저처럼 나이 먹고 노화 때문에 아픈 다리도 치료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까요? 선생님?”

“네 제가 듣기로는 초기 치료만 잘하셔도 상태가 호전될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관절염 같은 경우에
환자분처럼 노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통증으로 여겨 치료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초기에
치료만 잘해도 호전될 수 있다고 하네요.”

“아이고! 선생님 제발 이 다리 좀 고쳐 주세요. 안 그래도 요즘 이 다리 때문에 밭에 일하러 나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네 꾸준히 치료 받으시면 조금씩 상태가 호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기 환자분 치료는 제가 아니라 조금 기다리시면 의사 선생님 만나서 진료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환자의 감사 인사에 민망해진 유성이 의사가 아님을 강조했지만 역시 여성환자는 유성의 마사지에 만족을 표하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선생님이 잠깐이지만 다리를 만져 주시고 나니 요즘 그렇게 아파서 속 썩이던 다리의 통증이
싹 가라앉았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거듭된 감사인사가 민망했던 유성은 환자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관절염 관리 부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네 환자분 물론 치료도 중요하지만 평생 사용해야 하는 관절 같은 경우엔 치료에 앞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더군요. 관절은 쓸수록 닳는 곳이지만, 반대로 너무 쓰지 않으면 점점 굳어져 움직이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관절을 부드럽게 유지하고 영양공급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운동은 꼭 필요하답니다.”

“네? 운동을 따로 또 해야 한다고요?”

“네 환자분. 관절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관절 주변의 근육을 강화시켜 주는 대표적인 운동에는 ‘걷기’가
있습니다. 하루 30 분 이상, 주 5 회 걷기 운동을 하면 다리 힘도 길러지고, 무릎 관절을 지지할 수 있는 근육도
강화되거든요.”

“저...저기 선생님 제가 밭에 나가서 일하는 시간만 얼추 계산해도 하루에 5~6 시간은 충분히 넘기는 거
같은데... 거기다 더 해서 운동까지 해야 합니까?”

유성은 환자의 얘기를 듣고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고니가 관절염에 대해 홀로그램으로 띄워 둔 글에서 필요한
부분을 재빨리 찾아 적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아...방금 말씀드린 부분은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말씀 드린 거구요. 이제 농사일도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으시는 선까지 조금 조절하셔야 할 것 같네요.”

“벌써 농사일 그만두면 할 게 없는데...”

“그래도 환자분 같이 관절 부위에 통증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연골이 많이 마모되어 이미 퇴행성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환자분 이제 진료 받으러
이동 하실 게요.”

유성은 그렇게 여성 환자가 의사 선생님에게 가서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돌아오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환자가 유성에게 다가와 얘기했다.

“저기 선생님! 저는 요즘 눈이 계속 침침해져서 왔는데 어떡할까요?”

유성이 자신에게 온다는 걸 인지한 40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환자가 유성에게 급히 상담을 신청했다.

‘헐...고니야 이분도 스킬 사용해서 이분께 필요한 내용은 홀로그램으로 출력 부탁해!’

-네 한유성님 지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팟! ]

:
그렇게 옆에서 유성을 지켜보던 환자들의 끝임 없이 이어지는 질문 덕분에 유성의 의학 상담은 한동안 이어졌다.

결국 유성은 점심시간이 다가와 오전 진료가 끝나서야 비로소 텅 빈 대기실에 앉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우!....”

“유성씨 아까 보니 의학적 지식이 장난이 아니던데... 혹시 이쪽으로 관심 있나 봐요?”

오전진료가 끝나 의료 장비를 정리하던 김 간호사가 숨 돌리는 유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하하 칭찬 받을 정도는 아닌데요 뭐.”

“아니에요. 저도 옆에서 중간 중간 들어봤는데 환자분들이 유성씨를 의사선생님으로 착각할 수준이 맞던데요.”

“그게 그냥 주위에 몸이 불편한 분이 많으셔서 나름 주워 듣다보니...아! 배고프다. 저희 이제 밥 먹으로


가요!”

칭찬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유성은 머쓱해진 나머지 그렇게 급하게 대기실을 벗어났다.

그렇게 식당으로 이동하던 유성은 김 간호사의 말이 떠올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의료 봉사에 참여했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진료를 받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자리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고니야? 나도 이들과 같이 일 할 수 있을까?’

-네 한유성님 의료계 진출로 가능한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그렇게 유성은 어렴풋이 의학계로의 진출을 고니의 조언을 바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

식사대접이 시작되었음을 알리자 식당으로 어르신들이 줄지어 한분씩 들어와 자리했다.

“어서 오세요! 할아버지. 밥 이정도면 되겠어요? 더 드려요?”

윤찬은 식사를 하러 들어오신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살갑게 인사하며 오른손에 주걱을 들고 연습을 통해 능숙해
져서인지 밥 배식을 어렵지 않게 담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식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윤찬의 앞에 자리했다.

“안녕하세요! 밥 더 드려요?”

“아니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윤찬은 배식을 해주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살짝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배식을 끝냈다.
그리고 나서는 유성이 오전에 했던 말이 생각나 집중해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얼마간 살펴 본 윤찬은 확실히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저 변태 새끼들이...”

윤찬의 옆에서 반찬 배식을 하고 있던 설 팀장이 윤찬의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았다.

“배식하다 말고 너 갑자기 왜 그래?”

“팀장님! 저기 정장입고 오른쪽 끝에 앉아 두리번거리는 사람 두 명 보이죠?”

윤찬은 줄지어 선 사람들에게 밥을 적정량 퍼서 담아 주며 설 팀장 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여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 어 저기 검은 정장 입은 사람들?”

“네 제가 계속 살펴봤는데 유성이 말한 것처럼 아무래도 제가 봐도 바바리 맞는 거 같아서요.”

설 팀장도 오전에 방문했던 유성에게 상황을 살짝 전해들은 터라 호기심을 보였다.

“어떤 점이?”

“무슨 조폭도 아니고 이 날씨에 정장 입은 건 개인취향이라고 쳐도 저 사람들 지금 밥 먹으로 온 거 아닌 거


같아요. 봐요! 여자들 얼굴만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잖아요.”

“어? 정말 그러네...”

설 팀장은 윤찬의 말을 듣고 찡그린 표정으로 잠깐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곤 윤찬의 비어있는 왼손에 무언가를 쥐어주며 말했다.

“윤찬아! 반찬도 잠깐 부탁할게!”

“헐? 티..팀장님!”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지만 곧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윤찬은 멍해질 틈도 없었다.

“저기...반찬 좀 주세요.”

“아! 네! 잠시 만요!”

그렇게 윤찬은 주걱과 집게를 들고 의도치 않게 배식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

유성은 바쁘게 오전 일과를 보내다 보니 정신이 없어 미처 수상한 남자에 대해 확인 하는 것도 잠깐 잊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고 서야 수상한 남자에게 걸어 두었던 스킬이 생각났다.

‘고니야! 바바리들 뭐하는지 계속 찍고 있지?’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 스킬을 통해 현재 녹화중에 있습니다.

고니와 얘기를 나누며 식당에 들어선 유성은 밥과 반찬 배식을 담당하고 있는 윤찬을 곧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유성이냐? 밥 많이 주랴?”

“어 그래 안녕하시다. 그냥 주걱에 푼 것만 줘! 그런데 윤찬아! 너 바바리 얼굴 기억하지?”

“응 복장만 봐도 알겠던데?”

“어? 벌써 여기도 왔다 갔어?”

“아까 식사대접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밥 먹으러 왔기에 설 팀장님이 해결했어.”

“그래?”

“야! 너 밥 빨리 먹고 나 좀 도와줘!”

“일단 알았어.”

유성은 윤찬의 말을 듣고 궁금증이 일어나 식탁에 앉자마자 고니에게 부탁했다.

‘식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녹화 장면 좀 보여 줄 수 있어?’

-네 한유성님 식당에서의 녹화장면을 선택해서 재생합니다.

[스...팟! ]

그렇게 유성은 잠시 동안 밥 먹는 것도 잊고 녹화 된 화면을 시청했다.

여행 첫번째 일정

***

차려진 밥에는 관심이 없고 주위에 있는 여자들만 쳐다보고 있는 한심한 남자들의 테이블로 다가선 설 팀장이
물었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 밥 먹으로 오신 게 아니면 그만 나가 주시죠?”

갑작스런 설 팀장의 출현에 놀란 이 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 C8! 당신이 뭔데 나가라 마라야?”

“이 팀장 가만있어!”

두 사람의 꼴사나운 행태에 자극받은 설 팀장은 비꼬아서 말을 전했다.

“아! 이런 두 분이 여기 회식하러 오셨나 보네요?”

“이게 듣자하니 미쳤나?”


“미친 건 제가 아닌 거 같고요.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그쪽 회사는 회식을 독특하게도 눈으로 하시나 봐요?”

“야! 너 진짜 죽고 싶어?”

설 팀장의 도발에 이 팀장이 걸려들어 소리를 계속 질러댔고 그렇게 주위의 이목이 쏠리자 지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 팀장의 어깨를 누르며 막아섰다.

“이 팀장! 애들처럼! 왜 이렇게 성급하게 나서? 목소리 낮춰! 다들 쳐다보잖아!”

지 실장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 팀장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제가 이 봉사 단체에 있으면서 당신 같은 사람들이 처음이 아니라 말씀드리는 건데 그냥 좋게 말로 할 때 조용히


나가주세요.”

이 팀장은 앉은 자리에서 서있는 설 팀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게 진짜 미쳤어? 너! 정말 죽고 싶어?”

“떳떳하면 경찰서까지 같이 가실까요?”

설 팀장의 경찰이라는 얘기에 살짝 당황한 이 팀장이 언성을 낮췄다.

“우..우리가 뭘 잘 못했다고 경찰서까지 가야하지?”

설 팀장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굳이 ‘바바리 맨’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소란이 일 것 같아 남자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입 밖으로 내 뱉는 게 꺼려져 에둘러 표현했다.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꼭 제 입으로 얘기해야 할까요? 당신들 정체는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나? 여러 사람


알아 봤자 좋을 게 없지 않나요?”

지 실장은 설 팀장의 말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가 노출 되었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방금 자신들을
향한 집중 된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목표인 진아를 확인 했기에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이 팀장! 일 커지기 전에 그만 나가자!”

“에이 C8! 야! 너 운 좋은 줄 알아!”

두 사람이 돌아서 식당을 나가려고 하자 설 팀장이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아니요. 그냥 이렇게 가시면 안 되죠. 드셨으면 밥값을 하셔야죠.”

“이 팀장 비켜봐! 그래 얼마면 됩니까?”

지 실장은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픈 생각에 지갑을 꺼내며 설 팀장 앞으로 나섰다.

“돈은 집에 갈 때 차비로 쓰시고 당신들 먹은 식판이랑 수저만 원래대로 깨끗하게 씻어 두고 가시면 됩니다.”

“이 팀장! 그럼 다녀와!”

지 실장은 자신의 식판을 이 팀장의 식판위에 포개어 놓곤 출구로 발걸음을 돌려 건물을 나가 버렸다.
“실...실장님!”

순간 당황했던 이 팀장도 지 실장을 따라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으나 설 팀장이 한 발 앞서 이 팀장의 앞을


막아섰다.

그렇게 설 팀장에 의해 탈출을 저지당한 이 팀장은 식판과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한편 녹화 영상에서 의아함을 느낀 유성은 실시간으로 지 실장의 현재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현재 그는 어느새 차량 안으로 이동해 누군가와 통화중인 것으로 확인 되었다.

‘고니야 누구랑 통화 중인지 확인해봐.’

-네 한유성님 추적 스킬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니가 추적 스킬을 통해 상대방을 파악하는 동안 유성은 통화 내용에 집중했다.

[사장님 목표 확인 했습니다. ]

[목표 확보 되는 데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들어가십시오. ]

홀로그램에 떠오른 남자는 누군가와 간단하게 통화를 마무리하고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듯
움직이지 않았다.

-한유성님 현재 요인 경호 대상과 통화 중인 대상은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뭐?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게 무슨 말이야?’

-네 한유성님 남자가 통화중인 대상의 전화까지 추적이 불가능한 보안 전화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 그냥 바바리맨이 누군가의 지시로 움직이는데 그 지령을 내리는 사람은 추적이 불가능한 보안 전화기를
쓰고 있다? 단순히 바바리맨은 아닌 거 같은데?’

유성은 남자의 대화 내용과 추적 불가능한 전화기를 쓴다는 점에서 단순히 ‘바바리맨’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윤찬아 나 잠깐 알아 볼 게 있어서 먼저 가볼게! 미안해!”

“야! 아...안 도와 줄지 알고 있었다. ...매정한 놈!”

그렇게 점심 식사를 끝낸 유성은 윤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지 실장이 있는 차량 근처로 향했다.

‘고니야 아무래도 이 차량도 추적 스킬 걸어서 계속 감시해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추적 스킬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성은 어딘지 모르게 계속 피어나는 불안함에 대비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를 해두었다.

‘고니야 이 남자 지속적으로 감시해줘! 가능하지?’


-네 한유성님 특이사항 있을 땐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고니야!’

그리고 곧 점심시간이 끝날 때가 다 되었음을 확인 한 유성은 오후 진료를 보기 위해 학교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오후 진료 시간도 다 지나갔다.

“김 간호사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성씨도 수고 했어요. 다음 봉사 때도 또 봤으면 좋겠네요.”

“네 저도 이번 봉사에서 간호사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르쳐 준거도 별로 없는데 감사는 무슨... 다음 봉사 활동 전이라도 혹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그리고 이제 딱딱하게 간호사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누나라고 불러요.”

“네. 알겠습니다. 누나도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럼 그럴까? 잠시 후에 식당에서 의료 봉사단 해단식이 있다니까 이동하자.”

“네 누나.”

유성은 그렇게 이틀 동안의 봉사 일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에 도착하자 간단하게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고, 단장님의 간단한 격려 말씀과 기념촬영이 있었다.

그렇게 개인적인 인사까지 마무리 짓고 서있는 유성의 앞으로 친구들의 조금은 지친 모습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수고 많았나 보네? 얼굴 보니 많이 힘들었나봐? 어 거기 매정한 놈도 있었네?”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했던 윤찬이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너스레에 유성이 반응했다.

“아깐 그 놈 쫓아가느라 그랬어. 미안하다.

“윤찬이 넌 오늘 식당에만 있었어?”

“밥도 하고 반찬도 거의 내가 다 했지!”

나경의 물음에 윤찬이 약간의 허세를 실어 대답하자 보라의 공격이 이어졌다.

“어쩐지 오늘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오전보다 점심 때 밥이 너무 질더라.”

“그건 어르신들 편하게 드시라고 일부러 그렇게 한 거야.”

윤찬의 여전히 허세 실린 대답에 진아가 애기 다루듯이 윤찬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칭찬했다.


“오구오구! 그래 쪄요? 우리 윤찬이 기특한 생각도 다하고 이제 어른 다 됐네!”

“에이 쫌! 머리 만지지마! 아우! 겨우겨우 모자에 눌린 머리 한 가닥씩 다시 정리했는데...”

“나경아! 오늘 보기 힘들던데 많이 바빴나 봐?”

그렇게 윤찬과 진아가 투덕거리는 틈에 유성이 나경에게 꽁냥꽁냥 대화를 시전했다.

“응 좀 바빴어. 어제는 외과라서 조금 여유가 있었는데, 봉사활동 이라는 게 어르신들 진료가 대부분 내과적
진료가 많아서 오늘은 내과로 지원 가서 일하다보니 조금 정신없이 바빴어.”

“어쩐지...내가 이따가 마사지로 뭉친 근육들 풀어줄게.”

“응!”

“쟤네들 또 눈에 하트 들어섰다.”

“그래 더 있다간 안 되겠다. 그만 나가자.”

유성과 나경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던 친구들은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듯 발길을 돌렸다.

“근데 우리 오늘 어디로 가?”

그렇게 차를 향해 걷고 있던 진아가 윤찬을 보며 질문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분명히 유성이가 오늘 저녁에... 제목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무슨 영화 보러 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갑자기 웬 영화?”

먼저 걷던 세 친구가 걸음을 멈추었고 보라가 유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유성아 우리 영화 보러 가는 거 맞어?”

“응? 일단 빨리 가자 늦겠다.”

그렇게 유성은 일행을 차량에 태우고 출발했다.

얼마 후 그렇게 달려 일행은 영화 세트장에 도착했다.

유성이 스태프에게 인사를 건네며 한창 촬영 중인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OK! 컷!”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조연출을 맡은 유성의 외삼촌의 목소리에 유성은 한 남자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잘 지내셨어요? 감독님?”

“그래! 한 셰프! 너무 오랜만 아닌가? 그 때 보여준 빵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여기 남해에서의 촬영 시작하고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네.”

“네! 감독님 2 주 만에 찾아뵙네요. 그러지 않아도 감독님 드리려고 여기 빵 좀 만들어 왔어요.”

유성은 봉 감독에게 선물하기 위해 미리 무기고에서 꺼내 준비해 둔 따끈따끈한 빵 봉투를 내밀었다.

“어? 뭘 이런 걸 다 준비했나? 난 한 셰프가 빈손으로 온 줄 알고 잠깐 서운할 뻔 했었네!”

봉 감독은 봉투 안에 있는 빵 냄새를 맡아 보더니 에그타르트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하하 감독님은 저보다 제가 만든 빵이 더 반가우신 거 같네요.”

“오믈오믈....한 셰프 이제 눈치도 늘었구먼? 사실 한 셰프 오늘 온다는 소식 듣고 아침부터 기다렸다네.


허허허.”

“저를요? 아님 제 빵을요?”

“빵을 들고 이렇게 나타날 한 셰프를 기다렸다고 하지!”

그렇게 인사를 나눈 유성은 감독에게 친구들을 소개시켰다.

“저기 감독님 여기 제 친구들입니다.”

유성의 뒤에서 촬영장을 구경하고 있던 친구들을 봉 감독에게 소개하자 다들 감독 앞으로 다가와 목례로 인사했고
윤찬은 대표로 감독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유성이 친구 윤찬이라고 합니다.”

“하하 반가워요! 다들 젊어서 그런지 활기가 넘치는 게 보기 좋아요!”

감독이 손에 들린 빵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유성의 친구 모두를 둘러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오늘 영화 보러 간다는 말이 촬영장 온다는 말이었구나?”

“그러게 이런 서프라이즈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몰랐네.”

“그럼 우리 여기서 영화 찍는 거 보는 거야?”

“감독님 우리 친구들 어때요? 괜찮을까요?”

유성은 친구들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감독을 바라보며 물었고, 봉 감독은 사전에 따로 얘기가 되어 있었는지
유성의 친구들을 한명씩 바라바고 나서 대답했다.

“음...괜찮을 것 같긴 한데.. 조감독! 일단 여기 옷 갈아입히고 씬 설명 해줘!”

“네! 감독님! 유성아 친구들하고 이리 따라와!”

아직 이해 못한 표정으로 유성의 외삼촌 뒤를 따르던 친구들이 유성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영화 보러 간다지 않았어?”

“윤찬이가 잠결에 들어서 중간에 빼먹은 말이 있었네.”

“아닌데 아침에 유성이 네가 분명히 영화 보러 간다고 했잖아?”

유성은 윤찬이 잊어먹은 단어를 붙여 완성된 문장을 말했다.

“아니지 난 분명히 오늘 영화 ‘오디션’ 보러 간다고 했지!”

“아! 맞다 오디션! 응? 영화 제목이 아니고 진짜 오디션을 본다고?”

사실 유성은 나경과 의논해 이번 여행에서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조감독으로 있는 외삼촌에게 부탁했고,
감독은 오디션을 통해 엑스트라 출연여부를 결정짓겠다고 미리 얘기를 전했던 것이다.

“응! 왜? 난 재밌을 거 같은데.”

나경은 미리 알고 있었기에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산행

***

유성과 친구들은 유성의 외삼촌을 따라 폐교 안에 위치한 대기실로 들어섰다.

“이게 너희가 촬영하게 될 콘틴데 친구들과 같이 한 번 읽어보고 있어.”

유성의 외삼촌이 영화 콘티가 적힌 종이를 유성에게 건네주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보라가 물었다.

“그런데 저희...오디션은 언제쯤 보나요?”

“오디션? 아까 감독님이 너희 보고 괜찮다고 했잖아. 그거면 된 거지. 촬영은 아마 해 지고 나면 시작 될


거야.”

평소 덤덤한 성격의 진아 마저도 영화 출연한다는 생각에 긴장한 기색을 비추었다.

“그... 그럼 저희 따로 오디션 같은 거 볼 필요 없어요?”

진아의 질문을 들은 조감독이 대기실 한쪽에서 대본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응? 연기력 같은 거 말하는 거지? 자신 있으면 있다가 따로 감독님 앞에서 선보여 봐도 되지만, 너희가 찍을
장면은 대본에 접어 둔 곳이니 한 번 읽어 봐. 그 장면에서 굳이 너희 연기력까지 기대할 부분은 없을 것
같은데... ”

자신들이 촬영하게 될 부분이 궁금했던 일행은 대본을 받은 진아를 가운데 두고 붙어 앉아 대본의 접혀진 부분을
확인했다.

“여기 석우라는 남자는 대사가 너무 많은데?”

“그러게...성경이라는 여자와 같이 산을 오르는 장면인가?”


보라가 윤찬의 말에 반응했고 이어 진아도 자신들의 배역은 대본에서 보이지 않는 다는 듯이 말했다.

“석우에게 업혀 있다는 걸 보면 수안은 애기가 맡을 역할 같은데...”

그렇게 일행은 대본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이 맡을 배역에 대한 단서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삼촌이 나서며 말을 이었다.

“저기 콘티 보면 이해 될 건데. 너희가 영화에 대해 궁금해 하니 줄거리에 대해 살짝 얘기해 줄게.”

나경은 조감독을 부를 때 칭호 대신 외삼촌이라고 불렀다.

“외삼촌! 유성이 가진 이게 콘티라는 거죠?”

그제야 친구들은 콘티를 들고 있는 유성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동하는 중에 대본 앞에 쓰인 제목을 확인 한 윤찬이 말했다.

“제목이 ‘산행’ 이면 산에 오르는 얘긴가 봐요?”

“응. 산에서 얘기가 시작되긴 하지. 정체 모를 바이러스를 가진 박쥐에게서 모기가 휴양림을 찾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 옮긴다는 내용인데...거기 물 좀 줄래?”

외삼촌은 이야기를 꺼내다 말고 목이 마른지 물을 마시고 난 후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도시에서 휴가철을 맞아 휴양림 속에 위치한 펜션에 투숙한 커플 손님이 저녁에 산책로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모기에 물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지. 그렇게 펜션은 지옥으로 변해간다는 그런 내용이야.”

“조감독님 그럼 저희는 펜션에 놀러온 사람들 중에 하나를 맡아 연기하는 건가 봐요?”

보라의 질문에 삼촌이 얘기를 이어갔다.

“펜션 사람들이 맡긴 한데...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아니고...”

“네? 그게 무슨...”

조 감독은 전체적인 이야기를 알아야 유성의 일행이 배역에 몰입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얘기해 주기로 결정했다.

“음...일단 이야기부터 들어봐. 주인공은 업무에 바쁜 나머지 정작 휴가계획을 세우지 못해 와이프와 싸우게
되고, 직장 동기가 얘기를 듣고 주인공이 업체와 계약을 따오는 조건으로 자신이 예약한 휴양림 티켓을
주인공에게 양보하게 돼.”

“저런...일도 대신 해주고 거기다 바이러스까지 대신 걸리는 거예요?”

삼촌의 얘기를 듣고 보라와 진아의 리액션이 이어졌다.

“완전 고구마다...”

“큼..큼...그렇게 어렵게 주인공은 가족과 휴가를 보낼 휴양림을 친구 대신 예약하게 되지. 산속에 비극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가족은 펜션에서 평화롭게 휴가를 보내지. 하지만 새벽이 되어 결국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고, 펜션의 입구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곳은 벌써 감염된 그들이 길을 차단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주인공 가족은 그들을 피해 산으로 도주한다는 내용이야.”

“저기 외삼촌! 그럼 가족은 탈출에 성공하게 되나요?”

“쩝...이런 건 얘기하면 안 되지만 주인공도 산으로 도주 하는 과정에 생긴 다리 상처로 인해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그리곤 가족을 살리기 위해 좀비들을 절벽으로 유인해 같이 뛰어 내린다는 그런 비극이 담긴
이야기라고나 할까?”

“후우...끝까지 고구마야!”

진아는 외삼촌의 얘기를 듣고 뭔가 불만이 많아졌는지 뚱한 표정이 되어 얘기했다.

“촬영 중에 괜히 애드리브 넣어서 나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콘티보고 대본 대로만 하면 돼. 어때? 쉽지?”

“삼촌 그럼 우리는 배역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유성의 말에 외삼촌이 그들에게 대답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응 맞아! 너희는 좀비 1,2,3,4,5! 그리고 너희 분장해야 되니까 여기 잠깐 있으면 특수 분장해주러 올 거야.


잠깐 쉬고 있어. 유성이는 연락 하면 즉각 받고.”

“응 삼촌.”

“헐...우리 좀비였어?”

“무슨 좀비 5 형제야?”

“펜션인데 고기 구워 먹는 장면도 없이 이게 뭐야?”

“그래도 분장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유성의 일행은 잠시 후 점점 좀비로 변해갔다.

***

저녁부터 촬영을 시작했지만 결국 새벽이 되어 촬영을 끝낸 일행은 분장도 지우지 못하고 그들의 캠핑카로
돌아왔다.

“차 안에서 샤워하기는 힘드니까 간단하게 세면만 하고 목욕탕이나 찜찔방 문 열면 가서 씻자.”

그렇게 일행은 차안에서는 간단하게 세면만 하고 새벽이 되면 근처에 있는 찜질방이라도 찾아 씻기로 했지만 아직
촬영장에서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에 빠졌다.

“마지막 장면 조금 뭉클하긴 했다.”

“그치? 공유 아저씨가 연기 잘하긴 진짜 잘하더라.”

“와이프 역으로 나온 정유미 얼굴 크기 봤어? 무슨 손바닥 보다 더 작아!”

캠핑카 안에서는 분장도 지우지 않은 좀비들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그렇게 방금 있었던 촬영장에서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유성은 운전석으로 이동했다.

‘고니야! 근처에 있는 찜질방이나 목욕탕 찾아서 길 안내 부탁해.’

-네 한유성님 20 분 거리에 찜질방을 확인 했습니다. 도착 후 2 시간 정도 지난 뒤에 오픈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응 그럼 거기로 자율주행 부탁해.’

-네 한유성님 목적지를 ‘해수찜질방’으로 선택해 출발합니다.

결국 일행은 찜질방 주차장에 도착해 가게가 문 여는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근데 조금 출출하지 않니?”

“여기 시골이라 지금 시간에 문 연 편의점도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쩝...난 간단하게 고기나 한 점 먹으면 되는데...”

“그럼 내가 금방 먹을 만 한 간단한 거 만들어 줄게.”

유성은 깊은 밤 찜질방 주차장에서 숯을 피워 고기 굽기는 너무 번거롭기도 해서 차안에 있는 인덕션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말한 유성은 배고픈 일행을 위해 냉장고에서 무언가 꺼내놓기 시작했다.

‘음...진아가 있으니 스테이크면 되겠지? 고니야 요리 관련 스킬 사용해줘!’

-네 한유성님 ‘재료 손질’과 ‘불 조절’ 스킬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짝 달궈진 팬에 버터를 올리고 버터가 특유의 향을 풍기며 기름으로 변해 녹아내리자 유성은 준비된 한우 안심을
버터의 강물 속에 빠트렸다.

[치이잌....]

기분좋은 소리와 향기에 일행이 유성을 돌아보자 유성은 안심살위에 올리브유를 살짝 끼얹고 요리용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화르륵! ]

“꿀...꺽!”

고기 굽는 냄새와 때 아닌 불꽃쇼가 차안에서 벌어지자 얘기를 나누던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을


삼키며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고 진아와 보라는 몽롱한 눈빛으로 유성을 보며 얘기했다.

“유성아 나경이가 앞에 있어서 얘기하는데 너 나경이랑 헤어지면 나랑 사귀자.”

“진아야 아니야. 다음은 나야. 내가 먼저 침 발라 뒀어.”

듣다 못한 나경도 질세라 얘기했다.

“유성아 안 되겠다. 얘네 먹을 고기엔 독 좀 뿌려!”


그렇게 유성은 간단한 야식으로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준비했고 곁들여 간단하게 마실 수 있도록 와인과 샴페인도
꺼내 놓았다. 그렇게 맛있는 향이 차안을 가득 채웠다.

***

봉사 활동이 벌어지던 초등학교 식당에서 진아를 확인한 지 실장은 밴으로 돌아와 천 사장에게 보고 한 뒤 밤을
새워 피곤함에 졸음이 밀려 왔다.

‘아직 의료봉사 활동 끝나려면 시간이 있으니...’

전화로 보고를 끝낸 지 실장은 다시 이 팀장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기 위해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지금 쯤


설거지를 하고 있으리란 생각에 문자로 지령을 대신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설거지가 끝나고 복귀하며 투덜거리던 이 팀장은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목표가 현재 여기 있다는 건 내가 확인 했으니 이 팀장은 부산으로 가는 차편이 어떤 차량인지 확인해 둬. 난


잠깐 차에서 쉬고 있을 거니 특별한 일 있으면 얘기해.」

“쩝...어떻게 용케 확인은 했나보네. 쳇! 자기는 잠들었으니 건들지 말란 얘기군. 부산으로 가는 차편이라...”

그렇게 이 팀장은 의료 봉사가 끝나고 부산으로 복귀하는 버스를 알아내어 지 실장에게 보고했다.

“이 팀장! 나는 이 차량으로 버스 따라 가면서 계획 실행 할 테니, 이 팀장은 여기 남아서 다른 차량들도 모두


확인해. 확인 작업 끝나면 이 팀장도 내 쪽으로 합류하고! 그럼 수고해.”

“네 실장님.”

지 실장은 식당에서 얼굴이 알려지는 바람에 조용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봉사단 무리에 속한 정진아도 버스에 탑승해 부산으로 복귀할라 생각해 버스를 따라 이동했고, 혹시 몰라
이 팀장을 남겨 만약을 대비했다.

그렇게 남겨진 이 팀장은 주차장 한켠에 자리해서 초등학교를 벗어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면밀히 확인하던 대부분의
일행이 떠나고 건물에서 뒤늦게 나온 유성의 일행 속에 정진아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 팀장은 유성의 무리를 따르기 위해 문자로 먼저 보고하고 유성의 캠핑카를 오토바이를 이용해 쫓기 시작했다.

「목표 출현! 먼저 추적하겠음. 지원바람.」

***

진아는 친구들과 차 안에서 가진 술자리 도중 요의(尿意)가 느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경이 그런 진아의 의중을 눈치 챘는지 말했다.

“급하면 여기서 해결해도 돼.”

“아냐. 잠깐 소화도 시키고 바람도 쏘일 겸 나갔다 올게.”

“같이 나갈까?”
윤찬은 혼자 나간다는 진아가 걱정되어 물었지만 진아는 결국 혼자 차에서 내렸다.

“아니 괜찮아. 다들 앉아 있어.”

아직 6 월의 새벽이라 그런지 바깥 공기는 시원했다.

진아는 바로 옆에 있는 찜질방으로 가 보았지만 건물의 문이 아직 닫혀 있어 이용할 수 없었다.

“어디...다른 건물에 공중 화장실은 없나?”

마침 길 건너편에 주유소로 보이는 불 켜진 건물이 하나 보였다.

새벽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직원은 의자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지만 화장실을 가리키는 표지판 덕분에 어렵지 않게
화장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은 해가 뜨지 않은 깜깜한 새벽이라 주위는 어두웠다.

길가에 주차된 차안에서 여러 명의 남자가 내려 진아가 향한 주유소를 향해 걸어갔다.

“넌 주유소 CCTV 차단하고, 넌 주유소 직원확인하고 나머지 둘은 나 따라와.”

주유소에 들어선 사내 5 명 중 불빛 아래에 얼굴 하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바로 설 팀장에게 ‘바바리 맨’으로 지목되어 설거지를 한 끝에 식당에서 쫓겨난 이 팀장이었다.

이 팀장은 다른 사내 둘을 데리고 주유소 뒤쪽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주유소 습격사건

***

검은색 밴 안에서 찜질방 주차장에 갑자기 멈춰선 캠핑카를 노려보던 이 팀장이 하품을 하다 잠도 깰 겸해서
운전석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하아! 품! 아우...씨! 저것들! 영업도 안하는 찜질방 주차장에는 왜 와서 가만히 서 있는 거지?”

“하...암...그러게 말입니다. 주차한지 1 시간도 더 지난 거 같은데 혹시 저기서 다 잠든 건 아닐까요?”

남자는 멍하게 앞에 떨어져 있던 차량을 보다가 뜬금없는 이 팀장의 질문에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넌 캠핑카 몰고 놀러오면 바닷가도 아니고 산도 아닌 저런 곳에서 잠자리 펴고 싶냐?”

“음 그럼 혹시 기름이 떨어진 건 당연히 아니겠죠?”

“그래 등신아! 옆을 봐라! 저길 주유소라고 부르는 곳이야! 생각 좀 해라! 넌 고등학교도 안 나왔냐?”

별 생각 없이 대답하다 욕만 들어 먹은 사내는 군복무 시절 새벽 진지에서 같이 근무 섰던 성질 머리 나빴던


고참과 이 팀장의 모습이 겹쳐져 순간 울컥했지만 참았다.

“큼...저기 팀장님 이 중에 저만 고등학교 나왔습니다. 뒤에 자는 새끼들 전부 중졸입니다. 그래서 저만 현역


갔다 왔습니다.”
“잘났다! 새끼야!”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런데 저 차 안에는 누가 타고 있습니까?”

“그게 원래는 남자 둘에 여자 셋 그 중 하나가 목표로 5 명이 타고 있었는데, 아까 폐교 출입이 통제 되어서


지금은 아직 정확하게 누가 탄지는 확인이 안 된 상태지.”

“그럼 뒤에서 확 받아 버리면 안에 있는 사람 다 밖으로 튀어 나오지 않을까요?”

“나도 생각했었는데... 위에서 조용히 처리하길 원하나봐.”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던 와중 앞에 서 있던 캠핑카의 옆문이 열려 차창 밖으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저...저기 팀장님 차 문이 열린 것 같습니다.”

“그래? 지금 하나만 내린 거 맞지? 여자 같은데...넌 얼굴 보이냐?”

차에서 한사람이 내리더니 곧 문이 닫혀 얼굴을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네. 팀장님! 체격으로 보아 여자 인거 같은데 저도 거리가 멀어서 얼굴 확인은 못했습니다.”

“혹시 목표일지도 모르니까 에테르 손수건 챙겨! 아니더라도 일단 하나만 잡아서 심문하면 나머진 다 알 수
있겠지. 다 깨우고 조용히 차에서 내려!”

이 팀장은 운전석의 사내에게 지시를 하고 손을 급하게 움직여 어딘가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네. 형님!”

“습!”

이 팀장은 사내의 형님이라는 단어에 눈을 흘겨 바라보았고 사내는 급히 칭호를 바꿔 다시 말했다.

“네! 팀장님!”

***

진아가 차에서 내리자 유성은 새벽에 혹시 있을지 모를 불상사에 주변 정찰 스킬을 펼쳐 진아의 안전을 확인했다.

‘고니야 ‘주변 정찰’ 스킬 사용해서 진아 확인해줘.’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 스킬을 사용합니다.

‘주위에 화장실이 있으려나?’

-한유성님 길 건너 주유소에 있는 화장실이 사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100m 후방에 있는 차량에서
5 명의 남자가 내려 주유소 방향으로 이동 중인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뭐? 주유소에 차에 기름 넣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이 새벽에 갑자기 사내 5 명이 굳이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한유성님.
유성도 홀로그램으로 펼쳐진 디지털 화면을 통해 그들이 유성의 캠핑카 건너편을 조심스럽게 지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은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친구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나도 금방 화장실 갔다올게.”

“응.”

유성의 말에 나경이 대답했고 진아가 걱정이 되었는지 윤찬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화장실 간 김에 진아랑 같이 오면 되겠네.”

“어! 그렇게 할게.”

유성은 차에서 내려 급히 주유소로 향한 사내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남자들 중 2 명은 조심스럽게 주유소 사무실로 향하는 걸 볼 수 있었고 나머지 셋은 진아가 들어간


화장실이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유성은 홀로그램을 통해 주유소 건물의 평면 배치를 확인 했기에 주유소 앞을 지나 그들을 따라 가기보다 단층


건물인 주유소의 옥상을 통해 바로 질러가는 길을 선택했다.

현재 유성은 정신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20 을 넘었기에 일반인에 비해 2 배 이상의 힘과 민첩을 가진 유성이


옥상으로 뛰어 오르는 일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타타탓! ]

유성은 주유소 건물의 담을 타고 몇 번 발을 구르자 어렵지 않게 주유소 옥상위로 올라 설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주유소 뒤에 위치한 화장실 입구를 향해 걸어오는 세 명의 남자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어라? 저 놈은 아까 식당에 있던 바바리..?’

사실 유성은 요인 경호를 사용해 두었던 지 실장을 의심했지만 점심 식사 이후 잠깐 차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오후가 되어 차를 몰고 일행과의 거리가 멀어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요인 경호 스킬을 해제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왔지? 고니야 저 놈에게 요인 경호 스킬 사용해줘. 아무래도 쓰레기들이 그냥 일반


쓰레기들은 아닌가 보네. 어딘가 냄새가 나네.’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 스킬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이 팀장에게 ‘요인 경호’ 스킬을 사용한 유성은 옥상에서 발걸음 소리를 죽여 맨 뒤에 서있던 이 팀장의
뒤쪽으로 이동해 뛰어 내리는 동시에 이 팀장의 후두부를 가격했다.

[퍽! ]

유성에게 뒤통수를 맞은 이 팀장의 머리에서 수박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렸다.

“컥!”
잠긴 화장실 문을 열려고 문 앞에 있던 사내 둘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놀라 돌아보고 다시 한 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악!”

“조...좀비!”

놀란 사내 둘은 유성의 얼굴을 보고 더욱 놀라 소리치며 화장실 안으로 도망가려고 난리를 부렸지만 잠겨 있는


화장실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쿵! 쿵! 쾅! ]

‘일이 시끄러워 지면 곤란한데...’

유성은 더 이상 소란스러워 지면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간 사내 둘도 이쪽으로 올 거라는 생각에 앞에 있는 사내


둘도 빨리 정리해야 했다.

생각과 동시에 유성은 용수철 마냥 앞으로 튀어나가 사내 둘이 반응도 하기 전에 그들의 명치에 양손을 각각 꽂아
버렸다.

[푹! 푹! ]

“헉!..”

“켁!”

그렇게 사내 셋은 불과 10 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유성에 의해 정리 되어 버렸다.

유성은 화장실 옆에 있는 창고 문을 열어 쓰러진 사내 셋을 옮겨다 놓았다.

그리곤 앞에 남아 있을 쓰레기 둘을 마저 처리하기 위해 다시 옥상으로 뛰어 올랐다.

[타타탓! ]

주유소 사무실의 감시용 CCTV 가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에서 저장된 데이터를 지우려던 남자가 건물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뒤쪽에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응? 그러게 우리가 따라온 사람 여자였지 않나? 반항이 조금 있나 본데 곧 잠잠해 지겠지. 컴퓨터 정리 다
했으면 우리도 그만 철수 하자.”

잠든 주유소 직원에게 마취효과가 있는 에틸에테르 손수건을 사용하던 남자가 별일 아닐 거라는 듯 덤덤하게


반응했다.

“잠시만 기다려. 데이터 삭제 하려면 비밀번호가 필요해서 그냥 전원만 차단하고 본체 안에서 하드 분리하는
중이야.”

“근데 저 캠핑카 안에는 도대체 누가 타고 있는 거야?”

“목표가 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말고는 나도 잘 몰라. 이 팀장님도 아까 폐교 안에서 누가 내리고


탔는지는 확인이 안 되서 잘 모른데.”

그랬다. 이 팀장은 사실 오토바이를 이용해 급하게 캠핑카를 미행하는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유성의 캠핑카를 따라
폐교 안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경비에게 차단당했다.

학교 담벼락도 일반 학교와는 다르게 가벽이 설치되어 안에 있는 시설을 볼 수 없도록 차단되어있었다.

그리고 사설 경비업체에서 학교 건물에 대한 보안을 맡고 있었기에 해가 지기 전에 섣부르게 자신이 학교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해 보여 지원을 기다렸다.

이후 유성 일행은 촬영이 끝나고 학교 내에서 마땅히 씻을만한 시설이 없어 근처에 있던 찜질방을 가기위해 차량에
올랐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 팀장의 무리는 유성의 캠핑카만 보고 무작정 따라온 것이었다.

“그럼 저 차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네?”

“에휴! 그냥 저 차량 확 덮치면 제일 빠를 텐데...”

“누가 타고 있든 간에 우리는 물건만 상하지 않게 빼서 갖다 주면 끝나잖아.”

“그렇지! 자 이제 다됐다. 우리도 물건 확인하러 가보자!”

사내 둘은 주유소 사무실을 벗어나 나머지 일행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건물 뒤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척! ]

남자들은 그들의 뒤에서 나는 소리에 돌아보려고 했었다.

[퍼 퍽! ]

“컥...”

“켁...”

하지만 그들의 뒷머리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동시에 별이 유난히도 많이 떠있는 시골의 하늘이 눈앞에 보이는 가
싶더니 그렇게 정신을 잃어 버렸다.

물론 정신을 잃기 직전 흐릿해지는 시야에 무슨 좀비 같은 것을 본 것 같기도 했지만 말이다.

‘휴우...이 쓰레기들은 또 어디다 치우냐?’

-한유성님 방금 남자들이 나온 주유소 사무실을 추천합니다.

‘그래. 급하니까 분리수거는 나중에 해야지.’

유성은 쓰러진 사내 둘의 다리 하나씩을 잡고 그 들이 나왔던 주유소 사무실 안으로 다시 옮겨다 놓았다.

[질질질...쿵! ]

‘응? 무슨 소리야?’

-네 한유성님 사무실 들어오는 턱을 넘을 때 좌측 남자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지며 나는 소리입니다. 외형으로


보아 디지털 저장장치로 예측됩니다.

‘응! 일단 진아한테 빨리 가봐야겠네.’

유성은 떨어져 있는 컴퓨터 하드를 주머니 속에 챙겨 넣으며 진아 걱정에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철컥! 끼익!]

유성이 도착하자 잠시 후 잠겨있던 화장실 입구 문이 열리며 안에서 여자 좀비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으아악!”

여자 좀비가 화장실 앞에 서있는 남자 좀비를 보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어?...왜?왜?!”

“야! 한유성! 놀랬잖아!”

“어? 그...그래 미안. 혹시 화장실 안에 있을 때 밖에서 나는 소리 못 들었어?”

“뭐?...뭐라고? 잠시만..”

진아는 귀에 꼽았던 무선 이어폰을 빼서 케이스에 넣었다. 다행히도 진아는 밖에서의 소란을 이어폰 때문인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새벽에 혼자 무서울까봐 기다렸지.”

“야 다른 사람들 보다 이 시간에 네가 더 무서워. 거울 봐! 그게 사람 얼굴인지?”

“헐! 너도 만만치 않거든! 근데 옷에 묻은 피는 뭐냐? 촬영 때는 없지 않았나?”

“아까 스테이크랑 와인 먹을 때 조금 흘렀나 보네.”

“진아 넌 핏자국 때문에 진짜 좀비 같다.”

“크크...그러게 지금 다른 사람이 우리 보면 기겁하고 도망가겠다.”

“그럼 주유소 사무실 있는 쪽 지나가지 말고 미리 길 건너서 가자.”

유성은 혹시나 진아가 주유소 사물실 안에 쓰러져 있는 남자 3 명을 보고 놀랄까 걱정되어 피해 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응 그게 낫겠다.”

그렇게 유성과 진아는 주유소를 아무런 사고(?) 없이 다녀와 캠핑카로 복귀 했다.

‘고니야 아무래도 찜찜해서 안 되겠다. 저 쓰레기들 깨서 쫓아오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

-네 한유성님 20 분 거리에 ‘남해 해수탕’이 검색 되었습니다. 지금 출발해 도착하면 오픈 시간과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측 됩니다.
‘OK! 고마워 고니! 거기로 가자!’

-네 한유성님 자율주행 도착지를 ‘남해 해수탕’으로 설정합니다. 도착 예정시간은 4 시 30 분입니다.

유성이 운전석에 올라 차에 시동을 걸자 친구들이 유성에게 어딜 가는지 궁금한 눈빛을 보냈다.

“여기 일요일은 쉰다네. 다른데 가야해!”

유성은 친구들에게 그렇게 둘러 데고는 차를 출발 시켰다.

그리고 고니에게 자율 주행을 맡긴 유성은 무기고 안으로 들어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어 바라보았다.

“이제 일반 쓰레기 분석 좀 해볼까?”

유성이 바라보는 손 위엔 못 보던 스마트 폰이 있었다.

남해 여행

***

운전을 고니에게 맡긴 유성이 무기고에 들어와 손에 들린 스마트 폰의 전원 버튼을 누르자 곧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그럼 변태새끼들이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확인해볼까?”

사실 주유소에서 유성은 이 팀장 무리를 기절시키고 창고에 끌어다 놓는 와중에 고니에게 이 팀장의 스마트 폰
복제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고니야 혹시 이 변태 새끼 폰도 복사 가능 할까?’

-네 한유성님의 아이템 ‘스마트폰’의 기능으로 복제 가능 합니다.

‘고니야 그럼 복제 부탁할게.’

-네 한유성님 스마트폰 복제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유성은 이 팀장의 폰을 복제하는데 성공하게 되었고, 무기고 안으로 이동해 복제한 폰을 확인하던 와중에
갤러리에서 낯익은 인물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이거 진아 맞지?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누구지?”

유성이 발견한 사진 속에는 입 안 가득 고기를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아와 중년의 남성이 함께한
모습이 있었다.

-네 한유성님 정진아 양일 가능성 99.9%로 판단됩니다.

“이 사진을 왜 그 놈들이 가지고 있었을까?”

-한유성님 사진을 전송받은 시간이 6 월 5 일 오전 8 시 16 분으로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남해로 출발하기도 전 인데... 이 쓰레기들 뭐지?”


유성은 고니와 얘기를 나눌수록 그들의 정체에 대해 의문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한유성님 복제된 폰으로 지 실장이라는 사람에게서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래? 무슨 내용인지 화면에 띄워봐.”

「이 팀장! 목표 확보되면 애들 데리고 바로 대전으로 복귀해.」

유성은 지금 도착한 문자 이전에 주고받은 내용까지 모두 확인했다.

-한유성님 현재 정확한 내용 확인은 힘들지만 폰 안에 있는 문자와 사진 등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들이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미리 계획적으로 정진아 양을 납치하려고 움직였다는 정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혼란스럽네.. 갑자기 뭐지? 일단 정보부터 더 모으게 폰 안에 있는 내용은


복사해두고 앞으로 이 전화로 걸려오는 통화 내용은 모두 녹음해줘.”

-네 한유성님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지 실장이라는 사람도 추적해봐. 지금 그냥 무턱대고 나서기엔 정보가 더 많이 필요한 것


같네.”

그렇게 말한 유성은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 고개를 들었다.

“에혀!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거부터 해야겠다. 고니야 그럼 폰에 들어오는 내용은 계속 감시 부탁할게.”

-네 한유성님 계속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머리를 굴리던 유성은 무기고 안에 있는 침대로 가서 대자로 누워 머리도 식히고 밤새 쌓인


피로도 풀 겸 잠깐 잠에 빠지기로 결정했다.

***

잠시 후 그렇게 유성의 친구들은 그들도 모르는 우여곡절을 격은 끝에 찜질방에 도착했다.

차량에서 내린 좀비 무리는 하나 둘 피곤에 지쳐 터덜터덜 걸어 찜질방을 향해 이동했다.

“어서오세...요! 으아..악!”

유성의 일행이 찜질방이 열리자마자 들이닥치자 아직 졸음과 싸우고 있던 직원은 그들을 보고 잠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저기...놀라지 마세요. 저희 영화 촬영하고 분장을 미처 지우지 못한 거예요.”

나경이 그제야 나서 해명을 한 끝에 직원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몇 분이세요?”

“....좀비 다섯이요.”

“진아야 그만해.”
그렇게 약간의 해프닝이 발생 했지만, 다행히 찜질방에는 유성 일행이 첫 손님이라 더 이상 큰 소동은 벌어 지지
않았다.

유성의 일행은 찜질방 안에 있는 목욕탕에 들어가 씻고 난 다음 드디어 사람이 되어 나왔다.

“하...암...일단 조금만 눈 좀 붙이고 움직이자.”

“그래 그게 낫겠다.”

“저쪽에 보니 수면실이라고 있던데.”

밤을 새워 피곤했던 일행은 그렇게 각각 사람이 되어 찜질방에서 만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가 수면실로


이동해 숙면에 빠져 들었다.

“쌔근쌔근...”

“드르렁...드르렁...”

“.....”

친구들이 잠든 걸 확인한 유성은 찜질방으로 이동 중에 무기고에서 잠깐이나마 피로를 풀어 둔 상태라 수면실을


나와 고니를 불렀다.

‘고니야 일단 가볼만한 남해 추천 여행지 검색해서 찾아줘!’

-네 한유성님 남해 추천 여행지 검색을 시작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피곤해 골아 떨어졌던 윤찬이 찜질방 수면실에서 깨어나 앉았다.

“하...아..품...자고 났더니 살짝 배고픈데 여기서 점심 대충 해결하고 이동해야 하나?”

윤찬보다 먼저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던 진아가 윤찬의 얘기를 듣고 경기를 일으키듯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여행은 뭐니 뭐니 해도 식도락인데! 소중한 한 끼를 여기에서 대충 때울 순 없지!”

“저기..조용히 좀 해주시죠? 여기 수면실인데....”

“아 죄송합니다.”

그제야 자신들만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일행은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모두 수면실 밖으로
나왔다.

“어? 다들 일어났어? 밥 먹으러 가자! 멸치 어때?”

“멸치? 갈치나 꽁치 말고 멸치?”

윤찬이 유성의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응! 여기 남해 죽방멸치라고 유명하데.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더라고.”

“맞아! 아빠가 남해는 멸치회랑 멸치 쌈밥이 유명하댔어. 딱 지금이 철이니까 꼭 먹고 오랬어! 난 찬성! 아니지
혹시 반대하고 싶은 용감한 사람 있어?”

진아의 눈빛을 본 그 누구도 반대를 하지 못했다.

“쩝..멸치도 생선이야?...”

“씁! 멸치로 맞으까?”

“당연히 멸치도 생선이지!”

윤찬의 소소한 반항은 진아의 한마디에 곧 바로 진압 되었다.

어느덧 식당에 도착한 일행은 통 멸치에 고춧가루와 마늘, 시래기 등을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멸치찌개에서
윤찬은 멸치를 건져 쌈밥처럼 싸 먹기 시작했다.

“무슨 멸치가 손가락 마디만큼 통통 하노?”

윤찬이 보기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멸치부터가 그동안 보아온 멸치와는 급이 다른 모양새였다.

“크...우리 간단하게 한 잔씩만 안 할래?”

고소하고 부드러운 멸치 살에 칼칼한 양념이 더해져 반찬은 물론 안주로도 으뜸일 것 같았다.

“하모 예! 손님 맛 좀 볼 줄 아시네! 여기 남해 사람들은 옛날부터 새참으로 멸치찌개와 막걸리를 즐겼다


아입니꺼. 어디 막걸리 한 주전자 함 드려 보까예?”

윤찬이 주인 아주머니의 설명에 사투리를 흉내 내어 막걸리를 주문했다.

“그래예? 그럼 함 주보이소!”

그렇게 운전 때문에 유성만 제외한 일행은 막걸리에 멸치 쌈을 맛보았다.

식당에 도착하기 전까지 유독 투덜거렸던 윤찬이 그렇게 멸치쌈밥의 신봉자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멸치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었다니!”

물론 음식이 차려질 때 유성이 스킬을 사용해 맛을 한 단계 끓어 올렸다는 사실 또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빠한테 문자 한통 보내야겠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어!”

“그러게 나도 내 인생 맛집 Top 10 안에는 충분히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애!”

진아와 보라의 말에 이어 나경도 유성에게 하트가 쏟아지는 눈빛을 보내며 한 마디 했다.

“그러게 유성아 언제 이런 것 까지 다 준비했데? 내가 남자하나는 역시 잘 선택한 것 같아!”

‘고니야 덕분에 고마워!’


친구들이 유성이 준비한 음식도 맛있게 먹어주고 기뻐하자 유성도 기분이 좋아져 고니에게 감사를 표했다.

“큼..큼...다음은 소화도 시킬 겸 경치 좋은 곳으로 모실 테니 일단 모두 차에 타!”

“나 식후 불로초 하나만 태우고! 그런데 거기가 어딘데?”

“거긴 일단 금연 구역이야.”

“에혀...그럼 난 반댈세!”

“너 아까 여기도 오기 전에 너 혼자 반대 했거든! 난 윤찬이 반대하니 찬성!”

“나도 찬성!”

진아와 보라가 찬성에 한 표씩을 던졌고 나경도 유성에게 ‘묻지 마’ 찬성표를 날렸다.

“난 안 물어 봐도 유성이가 준비한 곳은 무조건 찬성인거 알지?”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선 일행은 남해 금산에 자리 잡은 ‘보리암’에 오르기 위해 차량에 올랐다.

잠시 후 금산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해 캠핑카를 주차한 일행은 보리암으로 올라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보리암 약 1km 전에 마을버스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 윤찬의 투덜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니 길도 이렇게 아직 넓은데 왜? 벌써 내려서 걸어 올라가야 해? 이건 내 소중한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지.”

윤찬의 말대로 버스에서 내려 오르는 길은 좁은 산길이 아니라 차량도 지나 갈만큼 넓은 길이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는 윤찬의 말을 들으며 일행이 어느 정도 걸으니 비로소 왜 걸어 올라가는지 이유를 일행 모두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우와!....”

“헐.....”

일행이 오르던 길 왼쪽으로 시야가 트였다. 바다와 섬은 물론 초록의 산도 한 눈에 들어왔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사진으로 닮기 힘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옆에서 들려오는 감탄사를 들으며 윤찬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런 아름다운 길을 걸어 도착한 보리암은 마치 절벽에 둥지를 튼 제비집 같이 신기했다.

보리암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 나온다고 했지만 일행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며
아쉽지만 멀리 보이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눈에 한 번씩 더 담아보고는 내려오는 셔틀에 올랐다.

유성은 마지막으로 고니의 추천 여행지로 일행을 안내했다.

윤찬은 더 이상의 반대는 포기 했는지 유성에게 말했다.

“유성아 그냥 말하지 말고 네 가고 싶은 곳으로 가!”


“응! 벌써 그러고 있어.”

그렇게 도착한 곳은 남해에 있는 한 어촌 마을이었다.

“여긴 어디야?”

“옛날 얘기에 따르면 미륵이 도운 마을이래서 미조항이라 이름 붙여진 어촌.”

일행이 도착한 미조항은 잔잔한 바닷가와 방파제가 조화를 이루어 모래사장이 있는 바다와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
하고 있었다.

“우리도 낚시나 해볼까?”

근처 방파제 주위에는 가족단위로 찾은 사람들과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 등이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잠시만 내가 장비 빌려 올게. 윤찬아! 가자!”

일행은 유성과 윤찬이 근처에 있는 낚시점에서 빌린 낚싯대를 이용해 석양이 물들기 전 방파제에서 남해
여행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즐겼다.

“앗싸! 또! 잡았다!”

“대단하네! 윤찬이는 멸치만한 생선만 잡고 있어.”

윤찬과 진아의 투닥거림을 들으며 유성이 나경과 보라에게 물었다.

“우리 야외 나왔으니 라면 어때?”

“크! 말해 뭐해!”

“난 유성이 네가 뭘 해도 찬성한다니까.”

유성은 차에서 내릴 때 매고 온 왕진 배낭 속에서 라면과 생수 그리고 라면을 끓이기 위해 코펠 대신 지난 새벽


보급 상자에서 지급 받은 군용 반합과 수저 등을 꺼내 놓았다.

“어? 이건 TV 에서 본거 같은데 군대에서 쓰는 물건 아냐? 그런데 버너는 없어?”

“당연히 준비 되어 있지!”

유성은 가방에서 비누처럼 생긴 둥근 모양의 고체연료를 꺼내어 능숙하게 라면 끓일 준비를 이어갔다.

“그런데 바람이 좀 많이 부는데 괜찮을까?”

“응. 이정도 바람은 괜찮아.”

바닷가라 약간의 바람이 불어도 유성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킬 불 조절!’

[화르륵! 화르르...]
그들은 남해여행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그렇게 맛있게 마무리해 나갔다.

반합

***

유성이 친구들과 좀비 분장을 끝내고 촬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시각 고니가 유성이 잊고 있던 사실을 전했다.

-한유성님 오늘 저녁 8 시에 근처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서 차경원씨를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잊고 계신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차경원씨에게 약속 취소 문자를 보낼까요?

‘아! 맞네! 오늘 하루 종일 정신없다 보니 깜빡했네. 어쩌지? 혹시 괜찮다면 여기 촬영장 근처에서 만나는 건


어떤지 문자로 차경원씨에게 양해 좀 구해 줄래?’

-네 알겠습니다. 지시 이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차경원씨 한유성씨가 부득이 한 사정으로 약속 장소를 8 시 동창선 초등학교로 변경을 원합니다. 장소 변경


부분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한유성님 문자 전송을 완료 했습니다.

‘고마워 고니야.’

잠시 후 문자를 받은 차경원 대리에게서 학교 안 등나무 벤치에서 만나자는 대답이 날아왔고 대기실에 있던 유성은
8 시가 가까워 오자 예전 봉 감독 무리와 아침을 먹었던 등나무 벤치로 이동했다.

유성이 어두워진 운동장을 가로질러 등나무 벤치로 이동하자 누군가 미리 도착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와 있던 차 대리도 유성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나무 벤치에는 가로등하나 켜 있지 않아 어두웠지만 학교를 등지고 있는 유성은 차 대리의 얼굴을


어렴풋하게나마 확인 할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볼 때 보다 살이 좀 찐 건가?’

유성이 보기에 예전 고니를 통해 확인했을 때와는 달리 차경원은 살이 좀 붙은 것으로 보였다.

“반갑습니다. 연락 드렸던 한유성이라고 합니다.”

유성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자 자신보다 왜소해 보이는 유성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차경원의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별로 반갑진 않지만 어쩔 수 없으니 이렇게 나왔소. 뭐 다 알고 있겠지만 차경원이오.”

차 대리는 그동안 유성에 대한 첫 인상이 나빠서 그런지 인사하는 얼굴 표정이 밝아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성의
없이 유성에게 인사 멘트를 날린 차 대리는 대뜸 유성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신청했다.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하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유성도 인사를 받으며 먼저 손을 내밀고 있는 차 대리의 손을 마주 잡았다.

[꽈악...]

유성은 차 대리가 먼저 내밀고 있는 손이 민망하지 않게 마주 잡아 주었다. 하지만 차 대리는 악수를 하자는 건지


힘자랑을 하겠다는 건지 갑자기 유성이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하는 차 대리였다.

“힘이 좋으시네요.”

“아!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나 보오. 뭐...밥 벌어 먹고 사는 게 매번 힘쓰는 이런 일이다


보니...내 사과하리다.”

유성은 괜히 계약도 하기 전에 굳이 분위기를 달궈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차경원씨 일단 여기는 너무 어두우니 저기 있는 제 차량으로 이동해서 계약서 작성하시는 게 어떨까요?”

유성이 불편한 기색하나 없이 얘기하자 오히려 차대리가 살짝 당황했다.

“그..그럽시다.”

“학교 들어오실 때 같은 경비 업체직원이라 특별히 제지당하진 않으셨나 보네요?”

유성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살짝 비꼬는 듯 한 말투로 얘기 했지만 학교를 등지고 있는 유성의 얼굴 표정을
차대리가 확인하기는 힘든 상태였다.

“큼..큼 같은 업체라 그런 건 아니고 나도 들어 올 땐 CCTV 설치확인 한다는 핑계를 대고 들어 온 거요.”

“저기 궁금해서 그런데 원래 말투가 그렇게 딱딱해요?”

“큼...쓸데 없는 얘기는 그만 하고 정확하게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요?”

“일단 차로 가서 얘기는 서로 얼굴 보면서 하죠?”

그렇게 유성은 자신의 페이스로 얘기를 이끌어 가기 위해 캠핑카 내부로 차경원을 안내했다.

“으!악!”

산적 같이 생긴 얼굴과는 달리 차경원은 캠핑카 내부로 들어서 밝은 불빛아래 처음 마주한 유성을 얼굴을 보고


놀라 소리 칠 수밖에 없었다.

“아! 놀라지 마세요. 저도 사람입니다. 촬영 때문에 분장한 상태라서 그래요. 사실은...”

유성은 사실 차경원과 처음 엮었을 당시 차 대리의 뛰어난 영상 편집화면을 보고 바로 외숙모 가게의 광고를 맡겨


금전적 보상 보다 지속적인 서로 상호 보완관계를 유지하려고 계획 했었다.

하지만 직접 차경원의 얼굴을 마주 보고 나니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투가 오히려 더욱 꾸미고 속이는 사람들에
비해서 유성의 맘에 들었다.

“경원이 형! 우리 너무 돈으로만 역이는 관계 말고 인간적으로 길게 갑시다!”


어느새 차경원이 앉은 테이블 앞에는 유성이 냉장고를 통해 무기고에서 꺼낸 온갖 로비를 위한 음식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쩝쩝....파사삭! 쩝.. 난 또 유성 동생이 내 약점하나 잡은 걸로 계속 우려먹으려 할까봐.. 내가 오해


했었네..쩝쩝..꿀꺽! 그러면 앞으로 동생이 보내 주는 동영상들 편집해 주면 되는 거지?”

“네! 경원이 형! 영상 편집 작업 비는 섭섭지 않게 쳐 드릴게요.”

“응..근데 동생 이 빵 조금 더 없나?”

“왜? 없겠어요? 또 뭐 필요해요?”

그렇게 유성은 ‘너튜브’에서 유명 크리에이터로 올라서기 직전의 영상편집 능력자를 빵 한가지로 엮어


작업하는데 성공했다.

***

한편 목표를 추적 중에 얘기치 못한 좀비와의 만남으로 유성 일당을 놓쳐 버린 이 팀장 일당은 대전에 있는


자신들의 본거지로 복귀도 하지 못하고 남해에 남아 오전 내내 하염없이 관광지만 뒤지고 다녔다.

“아우! 어디로 가버린 거야? 이 새끼들!”

뒤통수를 문지르다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이 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형님은 괜찮습니까? 저는 아직도 뱃가죽이 얼얼한 게 병원에 가서 X-Ray 라도 찍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조수석에 앉아 소리치는 이 팀장의 소리에 창고에서 이 팀장과 같이 깨어난 일행 중 하나가 반응했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누구한테 당한 거야? 벌써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니는 건 아닌 것 같던데...주유소 CCTV
는 확인해 봤어?”

이 팀장의 물음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자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제가 CCTV 를 해체해 버린 후에 놈들에게 당해 기절하는 바람에...확인 했을 때는 주유소 CCTV 에는


녹화된 영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어휴! 그럴 땐 쓸 때 없이 일처리가 빨랐군.”

이 팀장의 한숨소리에 이 팀장과 함께 창고에서 깨어 난 다른 한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아깐 경황 중이라 말씀 드리지 못했는데... 형님과 저희 둘을 공격한 자의 얼굴을 제가 얼핏 봤었는데....


그것이...”

“형님 말고 팀장님이라고! 그런데 얼핏 본 그게 뭐? 얘기부터 빨리해!”

이 팀장이 차량 뒷좌석을 돌아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팀장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듣곤 어이없어 웃지도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미쳤어? 사람이 아니면? 뭐 좀비라도 돼?”

“헛! 형님... 아니 팀장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팀장님도 보신 겁니까?”

갑자기 지금 상황에 할 농담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좀비 타령이 이어지자 더욱 열이 받은 이 팀장이 황당해


하며 이번엔 조용히 물었다.

“진짜... 미쳤어? 지금 세상에 무슨 좀비가 있어?”

“저기 팀장님 저도 옆에서 같이 봤습니다. 분명히 저희 눈에는 좀비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나오던
행동이 느린 좀비와는 격이 달리 엄청 빠르고 강했습니다.”

“야 너희는 시끄럽고! 좀비 얘기 한 번만 더 하면 죽을 줄 알아! 그리고 유일한 고졸! 넌 캠핑카 차적 조회


하라는 건 어떻게 됐어?”

동생들의 기도 차지 않는 말을 계속 들은 이 팀장은 운전대를 잡고 있던 고졸 동생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네. 그것이 블랙박스에 찍힌 차량 번호를 확인해서 대전 본사에 연락했습니다. 본사에서는 저희 쪽 라인을


이용해 경찰청 CCTV 화면 조회를 시도 했는데 추적 불가 번호라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차량 번호가 렌트카 번호였지 않아? 캠핑카가 대포차량이래?”

“그게 아니라 차량이 일반 등급이 아닌 추적 불가능 등급이라고 나왔다고 합니다.”

이 팀장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국방부에서 빼내온 의전 차량이기라도 한 건가? 그럼 일단 안 되겠군. 모두 하던 일 중단하고 부산으로


이동해서 목표의 집 앞에서 잠복하는 걸로 계획 변경한다.”

“네 알겠습니다.”

“네! 형니...팀장님.”

“에잇! 여자 아이 하나 차에 태워 오는 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이 팀장은 직접 통화로 지 실장에게 상황 보고 하면 깨질 것이 뻔했기에 지금 처한 상황에 투덜거리며 문자 전송


버튼을 눌렀다.

「목표가 탑승한 차량이 추적 불가능한 고위등급으로 파악 됨. 팀원들 데리고 부산에 있는 목표의 본가로 이동해
잠복하기로 계획 수정.」

***

-Episode

일요일 오전부터 남해 고속도로를 이용해 부산에 도착한 이 팀장의 무리는 정진아의 집으로 가는 조금 외진 길목에
검은색 밴을 주차시켜 두고 오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차량 안에는 피곤에 지친 사내 다섯이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진아가 돌아오는지 도로를 감시 중에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스마트 폰의 ‘얼굴책’ 어플을 돌아다니며 겨우겨우 졸음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던 유일한 고졸이
갑자기 차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우...우와! 진짜 좀비가 맞았어!”

“야! 조용히 안 해! 한 번만 더 좀비 타령하면 죽는다고 했지?”

[퍽! ]

겨우 잠들었다가 놀라 깨어버린 이 팀장이 좀비 타령을 한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그게 아니라...정진아의 SNS 계정을 타고 들어오니 새벽에 업데이트 된 사진이 있기에...”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억울한 눈빛을 보이며 건넨 휴대폰에는 좀비 다섯의 사진이 있었다.

“거기...사진에..좀비가 찍혀 있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여기 이 좀비들이 아마 팀장님 뒤통수를 후려 친 좀비 인


것 같습니다. 야! 너희는 같이 봤다며 얘기 좀 해봐.”

무리 중에 유일한 고졸이 좀비 목격자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일단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양아치 근성으로 뭉친 둘은


아까와는 달리 모르쇠를 유지했다.

“아니...난 솔직히 좀비가 다 거기서 거긴 거 같아서 구분까지는 잘 못하겠어.”

“응 나도 사실 불빛도 생각보다 어두워서 화장실 앞에서 얼굴 확인하기가 힘들었던 거 같네. 큼..큼...”

거기다 사진을 유심히 보고 파악한 이 팀장이 소리 질렀다.

“야! 여기 자세히 봐라! 여자 3 명에 남자 2 명이다. 얘들 다 친구라잖아! 그럼 네 말은 고등학교 막 졸업한 이


어린 애 둘이 우리 뒤를 덮쳐 모두 한 방에 다 기절 시켰다?”

“네...정황이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기가 한풀 꺾인 남자가 얘기했다.

“그럼 이 두 좀비 중에 하나는 ‘UFC’정도는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겠네.”

“아닙니다...제가....잘 못 본거 같습니다.”

그렇게 침묵 속에 얼마의 시간이 다시 흐른 뒤에....

“저기 팀장님! 얘네 들 아직 남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이 막 새로이 올라왔습니다.”

“음...냐! 뭐! 뭔 박 새로이?”

살짝 잠들어 있다 시끄러운 소리에 다시 눈을 뜬 이 팀장이 물었다.

“아니 이번에 막 새로 올라온 사진입니다.”


“아! 멸치 쌈밥이네! 안되겠다. 우리도 일단 점심 먹고 오자!”

그렇게 점심을 먹고 온 이 팀장일행은 저녁시간이 가까워 올 때 다시 하나의 사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저기 팀장님! 다시 올라온 사진입니다.”

“얘네 들 오늘 올라올 생각이 없는 거야? 왜 안와? 미치겠네!”

휴대폰 액정에는 ‘반합에 끓인 라면에 반함!’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부산행

***

“정말 잘 먹었다. 반합에 끓이면 라면이 오늘 고기만큼이나 맛있어 질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유성은 진아의 감탄을 듣고 사실을 전해 주었다.

“그게 아니고 내가 끓여서 그래. 이제 그만 부산으로 돌아갈까?”

“이 참에 인터넷에서 반합하나 구매해서 끓여 먹어 봐야겠네. 양은 냄비에 먹던 거 보다 훨씬 맛의 깊이가


있었어.”

친구들은 유성의 말에는 관심이 없는지 때 아닌 반합 공동 구매 얘기로 떠들기 시작했다.

“윤찬아 반합 구매할 때 내 것도 같이 사줘!”

“나도 나도!”

보라와 진아가 윤찬의 구매의사에 동참했다.

그렇게 남해 미조항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반합 라면을 먹은 유성 일행은 부산으로 복귀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유성아 집에 가는 길에도 운전하느라 못 쉴 텐데 어떡하니? 내가 옆에 앉아서 어깨라도 주물러 줄까?”

“아니 난 진짜 괜찮으니까 너도 애들이랑 뒤에서 경치 보면서 좀 쉬어.”

유성을 걱정한 나경이 의사를 표시 했지만 유성은 고니에게 자율 주행을 맡길 생각이라 나경의 선의를 거부했다.
대신 유성은 나경에게 다른 무언가를 원했다.

“미안해서 그러지...”

“그럼 힘내라는 의미를 담은 응원 같은 행동... 그런 것도 있지 않나?”

유성의 말을 들은 나경이 무엇을 상상했는지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큼..큼..지금 여기 애들도 보고 있는데?”

나경이 얘기 하며 친구들을 둘러보았지만 친구들은 아무도 유성과 나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윤찬과 보라는
쇼핑사이트에서 반합을 검색 중이라 바빠 보였고 진아는 ‘얼굴책’에 무언가를 업로드 하는 듯 보였다.
[쪽! ]

잠깐 머뭇거리던 나경이 유성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부산까지 잘 부탁해!”

“헤헤 집 앞까지 잘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유성의 일행은 남해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부산으로 이동하기 위해 움직였다.

***

이 팀장의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정진아의 집 앞을 감시 중에 있던 남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기...팀장님 여기 정진아양이 나타났습니다. ]

“뭐? 그게 정말이야?”

[네 방금 정진아양이 차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것 까지 확인 했습니다. ]

“흠 금방 갈 테니까 그동안 혹시 다시 나올지도 모르니까 위치 계속 유지하면서 밀착 감시해.”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

“어떻게 이 앞을 지나가지 않고 집까지 간 거지? 어쩌면 이번일 쉽지만은 않겠어.”

이 팀장은 이번 일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강하게 느꼈다.

사실 그랬다. 남해에서 출발한 유성은 고니에게 운전을 맡기고는 그동안 ‘요인 경호’를 통해 녹화된 이 팀장의
행동을 무기고에 들어가 확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녹화 내용을 보니 그냥 단순한 조폭들이 아닌 거 같은데...경찰의 힘도 어느 정도는 이용할 수 있는 것 같고,


배후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무기고에 들어가 이 팀장의 행동을 빠른 재생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한 유성이 말했다.

-네 한유성님 취합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단순한 용역업체는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계속 지켜보면서 특이사항 있을 땐 바로 바로 알려줘. 그런데 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다니기 시작한


진아를 노리는 거지? 고니야 넌 뭐 좀 더 알아낸 거 없어?”

-네 한유성님 자료 취합을 통해 분석하던 중 정진아 양의 아버지가 대한민국 국방부 차관인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어? 그래? 그럼 정치적인 일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네.”

-네 한유성님 일단 지속적인 감시를 통해 계속 정보를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응 고니야 그렇게 해줘! 그리고 진아 집 갈 때 저 놈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 말고 다른 길은 없어?”

-네 한유성님 지도 검색을 통해 저들이 있는 큰 길 이외에 좁은 골목길을 통해서도 장진아 양의 집 앞까지


도착가능 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럼 일단 진아 데려다 줄 때는 저 사람들은 피해서 가도록 하자. 골목길을 통해 가는 경로로 자율 주행
부탁할게.”

유성의 말을 들은 고니가 어디서 아재개그를 섞어 대답했다.

-네 한유성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저들을 피해가도록 하겠습니다.

무기고에서 나온 유성이 보라를 시작으로 친구들의 집 앞까지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보라야 여기 맞지?”

“유성이 네가 제일 피곤할 텐데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고맙다.”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너희 덕분에 나경이랑 만날 수 있게 해준 나의 작은 보답이라 생각하면 돼. 얼른


들어가서 쉬어.”

“응 먼저 갈게! 오늘 정말 즐거웠어.”

“다음은 우리 나경이 차례네.”

그렇게 고니는 자율주행을 통해 보라 다음으로 나경 그리고 진아 순서로 셔틀이 된 캠핑카를 이동시켰다.

진아의 집을 향해 갈 데는 큰 길로 지나지 않고 불편해서 차량이 잘 가지 않는 좁은 골목길을 굳이 지난 끝에 이


팀장의 무리와는 만나지 않고 진아의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진아의 아파트로 들어가는 게이트 출입구에서 유성이 정차해 잠시 윤찬을 기다리기로 하고 윤찬은 진아의 짐을 집
앞 엘리베이터 까지 들어다 주기로 했다.

진아의 집 앞에 도착 했을 때에는 진아에게 미리 연락받고 1 층 현관입구로 진아의 아버지가 나와 있었다.

“아이고 우리 예쁜 딸 잘 다녀왔어?”

“응 아빠! 정말 재밌었어.”

“저녁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아빠가 한우 사다 놨는데 구워 줄까?”

“음...라면이랑 휴게소 간식을 조금 먹긴 했지만 한우는 언제나 콜!”

“그래 우리 예쁜 딸! 아빠가 금방 맛있게 구워 줄게!”

진아의 짐을 챙겨 따라온 윤찬이 한우라는 얘기에 저도 몰래 침을 삼키며 진아의 아빠에게 나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진아 친구 윤찬이라고 합니다.”

여행 다녀온 진아를 반기느라 주위를 살펴보지 못한 정 차관이 진아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제야 윤찬에게
눈길을 보냈다.

“응? 자네는 우리 진아와는 무슨 사이기에 나보고 아버님이라고 하는가?”


“아버님! 저는 진아하고 아주 좋은 친구 사이입니다.”

윤찬의 말을 들은 정 차관이 윤찬과 진아를 의심 섞인 눈으로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진아야 내가 듣기로는 친구들 여럿이 간다고 하지 않았어? 설마 너희 둘만 갔던 건 아니지?”

“응 나경이랑 보라는 먼저 집에 들어갔고 윤찬이는 내가 짐 무겁다고 들어 달래서 따라 온 거야.”

진아의 말을 듣고 정 차관이 윤찬을 바라보니 결코 작지 않은 박스를 두 개나 겹쳐서 들고 서 있었다.

“이게 다 우리 딸 짐이라고?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갈 때는 이렇게 짐이 많지 않았던 거 같은데...”

“응! 당연히 여행은 쇼핑이지! 이거 다 남해에서 사온거야.”

그랬다. 멸치 쌈밥으로 멸치마니아가 된 진아는 미조항에서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에 마침 미조항에 있던


수협위판장에 일행을 데려가 수산물 쇼핑 아니 정확히는 멸치 쇼핑을 시작했었다.

물론 유성일행은 경매인이 아니라 직접 경매는 불가능 했지만 위판장 옆에서 따로 멸치를 쌈밥용과 횟감용으로
구분해 팩으로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윤찬이라고 했나? 일단 우리 집에 같이 올라 갈 텐가?”

정 차관은 여기서 윤찬이 돌아가면 분명히 저 박스는 자신의 몫인걸 알기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저는 친구도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니지 이렇게 우리 진아 무거운 짐도 대신 들어주고 고마운데 그냥 이대로 보내야 쓰겠나? 일단 집에


올라갔다가 목이라도 축이고 가도록 하게.”

윤찬은 정 차관의 의도를 눈치 채고는 살짝 딜을 제안했다.

“저기 그럼...아버님 저는 솔직히 물 한잔 보다는 한우 한 점이 더 좋습니다.”

“어? 그래 일단 올라가지! 하하하.”

정차관은 윤찬의 솔직함에 웃음으로 기꺼이 한우를 허락했다.

“아빠 그럼 유성이도 부를까?”

하지만 진아의 갑작스런 제안에 정 차관은 잠깐 당황했다.

“큼...큼...고기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을 텐데...”

윤찬은 정 차관의 말을 들으며 눈치 껏 유성에게 톡 하나를 보냈다.

“아버님 유성이는 제가 연락해서 먼저 보냈습니다.”

“하하 자네 어디 가서 밥은 굶지 않겠구먼!”

[띠링! ‘코코넛 톡’이 도착했습니다. ]


그렇게 유성의 코코넛 톡에 윤찬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성아 진아 집에 멸치 가져다주러 올라 왔다가 아버님께서 고맙다고 목이라도 축이고 가라고 잡으시네. 혹시


늦어 질 지도 모르니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가.」

***

한편 유성은 윤찬이 진아의 짐을 들어주기 위해 자리를 비운사이 주변 정찰 스킬로 아파트 게이트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유성님 방금 누군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요인 경호’ 대상의 통화 내용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 차 안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이 한명 포착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쪽으로 ‘요인 경
호’ 대상의 무리가 도착 할 것으로 예측 됩니다.

“아 그래? 그럼 우리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네. 오랜만에 요인 경호 스킬 좀 활용해 볼까?”

-네 한유성님 요인 경호 대상의 현재 화면을 홀로그램으로 출력하겠습니다.

유성은 홀로그램 화면에 떠오른 이 팀장을 보면서 예전 요인 경호 스킬을 이용해 시환을 곤란하게 만들어 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요인 경호 스킬이 물리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유성이 경호대상이 처한 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때 가능 했던


것이다.

“OK! 난 지금 저 놈이 차에 타고 있는 것이 교통사고라도 날까하는 걱정에 몹시 위험해 보이는데 어쩌지?”

-네 한유성님의 판단에 따라 대상에게 물리력 행사가 가능 한 것으로 확인 됩니다.

“그럼 혹시 차경원씨가 보내 준 영상을 활용해도 되지 않을까?”

태블릿에는 어제 음식으로 유성과 사이가 좋아진 차 대리가 좀비로 분장한 유성을 만난 기념으로 유성일당이
사람에서 좀비로 변신하는 영상을 장난삼아 낮에 만들어 보내주었었다.

-네 한유성님 영상은 지금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

“고니야 그리고 복제 폰에 바탕화면을 바꾸면 떨어져 있는 원래 폰도 같이 화면이 바뀌는 거 맞지?”

-네 한유성님 복제로 두 폰이 연동되어 있어 한쪽이 변경하면 다른 쪽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럼 복제된 폰 안에 있는 진아 사진을 영상에 있는 좀비로 변하는 화면과 합성해서 연출 가능 할까?”

-네 한유성님 일단 시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과 영상의 합성을 진행합니다....완료 되었습니다.

“그럼 합성한 영상 한번 출력해봐.”

-네 한유성님 합성한 영상을 출력합니다.

[스....팟! ]

조용히 고기를 뜯어 먹으며 웃고 있던 진아의 얼굴이 어느 샌가 고기를 물고 있는 입에서는 피를 뚝뚝 흘리고


검은 눈동자의 색은 하얀색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는 유성과 눈을 마주치며 씩하고 웃는
모습이 섬뜩함을 자아냈다.

“헉..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고니야 방금 그 화면으로 영상 바꿀 준비해.”

-네 한유성님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유성은 홀로그램 속에 떠오른 이 팀장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반격의 완벽한 타이밍을 찾기 시작했다.

불법주차

***

유성은 이 팀장 무리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에 앞서 친구인 진아를 지켜내야 했기에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먼저 유성은 ‘요인 경호’ 스킬 중 고유 기능인 전자파를 이용한 원거리에서 물리력을 행사해 이 팀장의 폰을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데 성공했다. 그 틈에 고니에게 지시해 편집해둔 영상을 이 팀장의 바탕화면으로
바꾸도록 했다.

유성은 이 팀장 무리에게 일종의 경고를 날릴 셈이었다.

한편 진아의 출현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온 검은색 밴이 유성의 캠핑카 건너편에 정차하더니 이 팀장의 무리가
차에서 내렸다.

[툭! ]

“히익!”

조수석에서 내리다 떨어진 폰을 무심결에 줍다 화면을 바라 본 이 팀장이 무언가에 놀란 듯 다시 폰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왜? 그러십니까? 팀장님?”

“허..어...”

이 팀장은 옆에서 사내가 물어도 그냥 놀란 눈을 하고 거친 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옆에 서 있던 사내는 폰을 보고 놀란 반응을 보이는 이 팀장에게 별다른 의심 없어 떨어진 폰을 주워 돌려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에이 또 큰 형님의 불호령이라도 떨어진 겁니까? 이제 동선 확보했으니 저희 손에 들어오는 건 일도 아니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 팀장은 아직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 된 듯 폰을 건네받으려 하지 않고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내..포...폰이...이상해..”

그제야 사내는 이 팀장의 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내의 표정도 차츰 당혹감으로 물들어갔다.

“이...이게 무슨...”
사내가 바라본 폰의 바탕화면은 지금 그들이 잡으려 하는 진아가 좀비로 변해 이 팀장의 무리를 덮치는 영상으로
화면이 바뀌어 있었다.

“호들갑 떨지 마! 스팸이야 스팸! 고졸! 너 내 폰 바탕화면 영상 지우고 원래 기본화면으로 바꿔놔!”

“네 형님! 아니 팀장님 그래도 여기 영상 마지막 부분에 자막은 확인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팀장은 화면을 끝까지 확인 하지 않고 폰을 던져 버렸기에 자막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뭐? 자막이 있어?”

바탕화면 영상 마지막엔 예전 한국 영화에 나오는 대사 한 줄이 자막으로 떠올라 있었다.

“네..여기 영상 마지막 부분에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라고 아마도 저희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같습니다.”

화면을 본 사내가 이 팀장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음...그럼 우리가 남해에서 당한 것도 정진아양 주위에 숨어있던 경호원들 소행 이었다는 건가?”

“네 그것도 우리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전문가들인 것 같습니다. 큰 형님...아니 지 실장님에게 이


사실을 보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일단 실장님께 보고부터 하고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차에 다시 올라간 이 팀장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옆에 있던 부하 사내에게 폰을 빌려 지 실장에게 전화했다.

[뚜루..뚜루... 철컥..]

“지 실장님 저 이 팀장입니다.”

[이 팀장? 이 전화번호는 뭔가?]

“지금 제 전화가 도청당할 수도 있는 거 같아 부하 폰으로 연락 드렸습니다.”

[갑자기 도청이라니? ]

“그게 아무래도 남해에서...”

이 팀장은 남해에서부터 정진아를 쫓으며 일어났던 일을 자세하게 지 실장에게 보고했다.

[그럼 자네 말은 도청의 위험도 있고 지금 감시를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

“네.. 저도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뭣하지만 남해에서 당한 이후로 주위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알았어. 일단 거기엔 다른 팀 보낼 테니까 원래 있던 한 놈만 두고 이 팀장은 애들 데리고 모두 복귀해. ]

“네 실장님! 지금 대전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딸깍! ]
그렇게 지 실장에게 복귀 허락을 맡은 이 팀장은 손에 들고 있던 부하의 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일단 모두 철수한다. 그리고 넌 내 전화기 가지고 가서 스팸이나 뭐라도 깔린 게 있는지 내일 확인해봐? 네


전화는 오늘만 내가 쓸게.”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럼 일단 팀장님 폰은 꺼둘까요?”

운전석에서 이 팀장이 자신의 폰을 주머니 속에 넣는 걸 바라보던 부하 사내는 그렇게 전원을 끈 이 팀장의 폰을


자신의 폰 대신에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그리고 아직 할부 남았으니까 웬만하면 영상만 지우고 살려서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지금 바로 대전으로 출발 합니까?”

“그래 얼른 가서 좀 쉬자. 밖에 나와 있었더니 빨리 씻고 쉬고 싶네.”

운전석에 있던 부하 사내는 밴에 시동을 걸고 차량을 출발 시켰다.

그리고 캠핑카 안에서 아파트에서 멀어지는 검은색 밴을 바라보는 유성은 아미를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오늘은 어찌해서 돌려보냈지만 앞으로 어찌할지 걱정이네.”

-한유성님 앞으로 행동을 취하기에 앞서 정보가 더 필요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긴 하지? 일단 나 혼자 어찌 하기는 힘든 것 같고 일단! 가볼까?”

-한유성님 건너편에서 감시 중인 대상의 처분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혼자서 지금 당장 일을 벌일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냥 밤새 피곤하게 저기서 지켜보게 나두자.”

유성은 그렇게 말하고 캠핑카 차량을 이동시켰다.

***

[딩동! ]

일요일 저녁 9 시 진아의 집 초인종을 누군가 눌렀다.

“이 시간에 누구지?”

주방에서 고기를 굽던 정 차관이 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성인가? 방금 집 주소 물어보기에 가르쳐 줬거든.”

“윤찬군? 친구는 아까 돌려보냈다고 하지 않았나?”

“먼저가라고 그랬는데 가다가 한우 냄새를 맡았나 봅니다.”

“유성이면 이리 오겠지. 아빠 고기 탄다!”

불판위에 익어가던 고기를 집게로 집어 진아의 접시위에 올려준 정차관이 비어가는 고기접시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어? 그래. 근데 벌써 다 먹어가네. 친구가 와도 줄 것도 없네.”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유성이 진아의 어머니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진아 고등학교 동창 한유성이라고 합니다.”

“오! 우리 진아에게 이런 잘생긴 남자 친구가 있었나 보네? 반가워요. 얼른 들어와요.”

진아의 어머니는 훤칠한 외모의 유성을 보고 저녁 늦게 찾아온 손님에 대한 반감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지며
오히려 손을 맞잡고 반겼다.

“어머니 이거 밤늦게 이렇게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유성이 진아 어머님께 인사드리며 디저트가 들어있는 종이 상자와 따로 곱게 포장된 나무 상자를 건넸다.

“응? 진아 친구면... 그냥 와도 되는데 뭘 이런 걸 다 사들고 와요? 음..이건 공진단인가요?”

“아니 청심환입니다. 집에 두고 혹시 필요하실 때 챙겨 드시라고 준비했습니다. 놀랐을 때 말고도 피로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드셔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진아의 어머니에게 유성이 왕진가방에서 꺼내 곱게 포장한 신경안정제가 든 나무상자를 청심환이라 소개했다.

“호호 고마워요. 저기 주방에서 진아랑 친구는 고기 먹고 있을 건데 유성군도 같이 해요.”

“저는 고기 먹으로 온 건 아니고요. 진아 아버님께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 이렇게 밤늦게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
찾아 뵀습니다.”

“우리 그이를 알아요? 진아가 아빠 얘기는 잘 안하는 걸로 아는데 진짜 친한 사인가 봐요.”

“네. 일단 국가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계시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제가 꿈이 고위 공무원이라서 아버님께


조언이라도 구하려고 왔는데 밤늦게 실례일까요?”

“나야 괜찮지만, 우리 그이가 진아 대할 때만 빼고는 항상 무뚝뚝한 성격이라...”

‘고니야 안마 준비 해줘!’

-네 한유성님 ‘물리치료’ 스킬을 사용합니다.

유성은 진아 어머님께 점수를 따기 위해 물리치료 스킬을 사용해 뭉쳐있는 어깨와 목에 붉은 점들을 확인했다.

“어머니! 여기 어깨랑 목에 근육이 좀 많이 뭉친 것 같은데 제가 좀 풀어 드릴게요.”

“아니 괜찮아요.”

안마를 사양하는 진아 어머님을 소파에 살짝 앉히고는 재빨리 뒤로 돌아가 어깨와 목에 붉게 물들어 있는 점들에
손을 가져가자 유성의 손 놀림에 따라 붉게 물든 점들이 하나씩 투명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어머니 제가 이래보여도 의료봉사 가면 제 앞에 어르신들이 줄서서 마사지를 받는 답니다.”

“아니 괜찮대도...어...거기! 좀 더! 아휴 시원해!”


그렇게 진아의 어머니는 어느새 지그시 눈을 감고 유성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 후 주방에서 한우를 모두 처치한 일행이 거실로 나와 유성의 손길에 쓰러져 있는 진아의 엄마를 확인했다.

“이 밤에 남의 와이프를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는 자네는 누군가?”

진아에게 말할 때와는 180 도 달라진 정 차관의 차디찬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진아 고등학교 동창 한유성이라고 합니다.”

“그래 이 밤에 집에 돌아가다가 다시 올 정도로 중요한 사안은 무엇인가?”

분위기가 점차 딱딱해지자 유성에게 안마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진아의 엄마가 나섰다.

“여보! 뭘 그렇게 딱딱하게 물어요? 진아 친구 유성군 꿈이 고위 공무원이라 당신에게 조언이나 좀 들어 보려고


이렇게 선물도 다 사가지고 어렵게 찾아 왔구만! 꼭 그렇게 공무원인 티를 팍팍 내야겠어요?”

“큼큼...저기 이름이 유성이라고?”

“네 아버님. 잠시만 시간 내어 주시면 저에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실례인줄 알지만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진아와 윤찬이 소근거렸다.

“유성이 꿈이 공무원이었어?”

“그랬었나? 나도 몰랐네.”

그렇게 유성은 진아의 아빠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 서재로 이동했고 나머지는 거실에서 유성이 준비해 온 디저트를
즐겼다.

“어? 여긴 어디 있는 카페인데 이렇게 맛있니? 마치 방금 구운 것 같은 맛이 나네?”

진아의 엄마가 포장에 있는 ‘카페 빈’ 상호를 확인하고 물었다.

“카페 빈이면 유성이 외숙모 가겐데... 남천동에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 외숙모 가게까지 다녀왔대?”

“언제 거기까지 다녀왔을라고. ‘배달의 만족’ 앱에서 배달 시켰을 수도 있지. 아무튼 공무원 꿈나무 많이
부지런하네.”

디저트 빵 조각에 매달려 있던 진아는 갑자기 드는 생각에 윤찬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윤찬아 넌 우리 아빠가 공무원이란 거 알고 있었어?”

“아니. 난 오늘 처음 들었는데?”

“그렇지? 난 아빠에 대해 얘기한 기억이 없는데 유성이가 어떻게 알았을까?”

진아가 의혹이 담긴 눈빛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

-Episode
혼자 진아의 아파트 입구를 지키는 사내가 차량 안에서 지루함에 하품을 했다.

“이제 더 이상 감시할 차량도 없고 더 이상 뭔 일 있겠어?”

그렇게 피곤함도 풀 겸 눈을 붙인 사내는 곧이어 들려온 소리에 흠칫 놀라 잠을 깼다.

[똑! 똑! ]

“누구야?!”

“불법 주정차 신고가 들어 왔습니다. 잠시 신분증 제시 부탁드립니다.”

사실 그랬다. 유성은 아파트 입구에서 건너편 교차로 부근에 서 있는 감시차량을 보면서 고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혼자서 지금 당장 일을 벌일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냥 밤새 피곤하게 저기서 지켜보게 나두자.”

그렇게 말하고 차를 이동시키려는 유성에게 고니가 얘기했다.

-한유성님 저 차량을 불법 주정차로 신고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응? 갑자기 지금 신고를 한다고?”

-네 한유성님 일단 불법 주정차 신고 어플을 이용해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럼 태블릿에 앱을 깔고 실행해봐.”

-네 한유성님 ‘안전 신문고’ 어플을 태블릿에 설치합니다.

태블릿에 어플을 설치한 고니는 어플을 실행해 유형선택 화면에서 4 대 불법 주정차 버튼을 선택하고 소화전,
교차로,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메뉴 중 교차로 모퉁이를 선택해 정차해 있는 차량의 사진을 1 분 간격으로 찍고
난 후 위치 찾기와 간단하게 내용을 작성해 신고를 마무리 저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네 한유성님 다음은 공무원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게 고니와 얘기를 나눈 유성은 불법주차가 아닌 곳에 차량을 주차하고 진아의 아파트를 향했다.

창무회

***

“근데 윤찬아 넌 우리 아빠가 공무원이란 거 알고 있었어?”

“아니. 난 오늘 처음 들었는데?”

“그렇지? 난 아빠에 대해 얘기한 기억이 없는데 유성이가 어떻게 알았을까?”

진아의 의혹이 담긴 눈빛을 바라 본 윤찬이 별일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뭘 어렵게 생각해? 네가 말한 적 없고 나도 모르는 일이니 나경이가 말해 주었겠지.”


“아! 나경이가 말해주었겠네.”

윤찬은 전혀 상상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근데 유성이가 공무원을 하겠다니. 난 전혀 그림이 안 떠오른다.”

“그러게 유성이는 스테이크도 잘 굽고 빵도 잘 만들고... 난 그냥 유성이가 공무원 보다는 맛 집 사장님 했으면


좋겠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진아의 엄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유성이가 지금 하는 일은 뭐야?”

“유성이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빵도 푸드트럭에서 직접 만들고 또 시간 따로 쪼개서 아르바이트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윤찬의 말을 들은 진아의 엄마가 진아의 눈치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젊은 애가 부지런한 게 참 맘에 드네. 그럼 지금 사귀는 사람은 없고?”

“얼마 전 까지는 그랬는데, 지금은 나경이랑 사귀는 중. 둘이 이어 주느라 우리가 등골 빠질 뻔 했지.”

진아의 말을 듣고 진아의 엄마가 아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쩝...그래? 아깝네! 사귀는 사람 없으면 우리 진아랑 좀 엮어 보려고 했더니...”

“역시 어머님도 유성이 외모가 마음에 드셨나 봐요?”

윤찬이 진아 어머니의 아쉬움을 듣고 지레 짐작해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응? 난 유성이 얼굴보다 손맛이 제대로 더라고. 혹시 진아랑 사귀면 매일 불러서 마사지 좀 받아 보려고 했지.”

“맞아. 우리 엄마는 남자 외모는 필요 없대. 잘 생겨봐야 얼마 못가고 바람이나 피지 않으면 다행이라나? 그냥


남자는 힘이 최고래! 그래서 엄마는 남자 볼 땐 다리하고 엉덩이만 봐.”

“호호. 역시 우리 딸이 잘 아네. 그런데 윤찬군은 아직 여자 친구 없어?”

진아의 엄마가 윤찬의 하체를 흘깃 쳐다보며 윤찬에게 말을 건넸다.

“큼..큼...저는 아직 다리랑 엉덩이 힘 좀 더 기르고 만나보려고요.”

***

한편 서재의 소파에 정 차관과 유성이 마주 앉은 자리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유성은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아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결국 빨리 얘기를 끝내고 싶었던 정 차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나에게 고위 공무원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고?”

유성은 나경에게 진아의 아빠가 익히 ‘딸 바보’라는 말을 전해 들었기에 진아를 쫓는 무리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정 차관에게 신경안정제부터 권하기로 생각했다.

“네. 아버님! 먼저 말씀 드리기 전에 여기 청심환부터 먼저 드셔 주십시오.”

“지금 이걸 나보고 먹으라고?”

정 차관은 유성의 돌발행동에 불편함을 느껴 인상을 찌푸렸다.

“드시면 바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유성의 말을 듣고 더욱 불쾌함까지 느낀 정 차관은 유성이 건넨 청심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굳은 인상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럼 나는 이 약을 먹지 않을 테니 자네는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럼 오늘 우리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내도 될 것 같군.”

유성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핵심을 얘기했다.

“지금 진아가 위험합니다.”

“뭐..뭐라?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유성의 말에 당황한 기색으로 재차 물어보는 정 차관에게 유성은 다시 천천히 얘기했다.

“지금 진아가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자네 지금 한 말에 책임 질 수 있나?”

아직 유성에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정 차관에게 유성이 태블릿을 꺼내 놓으며 말했다.

“네 아버님. 이번 남해 의료봉사활동 및 여행에서 진아에게 위협을 가했던 자들에 대해 제가 알아낸


정보입니다.”

유성은 진아의 집으로 오기 전에 ‘요인 경호’를 통해 녹화한 영상과 CCTV 및 블랙박스 영상을 PPT
파일형식으로 고니에게 편집을 부탁해 두었었다.

“이게 뭔가?”

“CCTV 화면과 블랙박스 화면 등을 통해 입수한 사진입니다. 보시면서 의문점이나 따로 아시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유성이 재생한 PPT 형식의 파일을 보던 정 차관이 그제야 단순하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테이블에 버려두었던 청심환을 까서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유성에게 물었다.

“후우! 도대체 의료봉사를 갔다더니 이 사진들은 도대체 뭔가?”

“사실 저희가 의료봉사활동을 간 첫 날부터 행동이 수상한 자들이 있어 그 곳의 시설관리 팀장과 연계해 CCTV
등을 이용해 감시를 철저히 했었습니다.”
유성은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 할 수는 없어 진실과 거짓을 섞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계속 얘기해 보게!”

“사진에서 보이는 검은색 밴 차량은 토요일 아침 의료 봉사 시작 전에 저희가 있던 차량 근처에 주차한 차량으로


화면에서처럼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와 정장을 입고 방문한 부분에서
수상함을 느껴 그들에 대해 집중 감시가 이루어 졌습니다.”

유성은 태블릿 화면을 보며 정 차관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중간 중간에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서?”

“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해 봉사 일정 종료 후에 해단식이 끝나고 저희는 따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마침 남해에서 저희 외삼촌이 관계자로 있는 영화 촬영장에 들러 보조 출연자로 출연키 위해 영화 세트에
대기했습니다.”

“그럼 여기는 의료 봉사 활동 장소에서 이동한 곳인가?”

“네 보시는 사진은 영화 촬영 세트장이고 다음 사진에 보시면 촬영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한 남자를 우연히
그곳 CCTV 화면을 통해 제가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유성은 어둠속에 서있는 이 팀장을 가리켰다.

“이.. 이놈 말인가?”

“네 의료봉사 장소에도 있던 남자였죠. 그는 아마 촬영지 주변에 CCTV 가 있는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여기


남자의 손을 확대한 사진을 보시면 그가 들고 있는 폰 화면에 진아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블릿 화면에서 진아의 사진을 확인한 정 차관이 놀라 말까지 살짝 더듬었다.

“허! 저...정말 우리 진아 사진이 맞군.”

“아버님 혹시 몰라 친구들과 진아에게는 이번 일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CCTV 를 확인하다


우연히 알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아버님께서 아셔야 할 것 같아 늦은 시간 결례인줄 알면서도 찾아뵈었습니다.”

유성이 비로소 정 차관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결례라니! 이렇게 신경써주어 정말 고맙네. 아까 나로 인해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내 사과함세.”

“아버님 혹시 이자들에 대해 짚이는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마도 내 생각엔 ‘창무회’에서 벌인 일 같긴 한데... 여기까지 개입한 걸로도 지금 충분히 위험해 보이니
그만 자네는 여기서 발을 빼도록 하게.”

“아버님 저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도록 하겠습니다.”

“아닐세! 유성군은 여기서 그만 손을 때도록 하게!”

유성은 정 차관을 통해 남해에서부터 부산까지 자신들을 뒤쫓는 무리라 의심되는 곳이 ‘창무회’라는 단서를
알아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짧지 않은 남해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유성은 고니를 통해 창무회에 대한 단서 수집에 들어갔다.

“고니야 일단 창무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팔 수 있는데 까지 파봐.”

-네 한유성님 합법적인 경로만 이용해 정보를 취합하도록 합니까?

이제는 제법 눈치가 늘어난 고니가 유성에게 물었다.

“아니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일단 ‘창무회’라는 정보는 다 모아봐. 그리고 혹시 경찰 측 CCTV 도 접속 가능


하니?”

-네 한유성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경찰 측 서버 접속도 가능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경찰 CCTV 연결 가능해지는 데로 대전 쪽으로 올라 간 놈들 바로 추적하도록 하고, ‘요인 경호’를 통해


감시 중인 이 팀장이라는 놈은 지금 뭐하고 있어?”

-네 지금 대전의 유성구에 위치한 모텔에 묵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그럼 일단 감시 계속 유지 해주고 특이사항 생기면 알려줘!”

-네 한유성님 감시 지속하도록 하겠습니다.

“휴우...고니 너 없었으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겠네. 그럼 계속 수고해줘.”

유성은 고니에게 부탁과 고마움을 전하며 오랜만에 캡슐에 올랐다.

***

[사용자 확인을 위해 홍채 인식을 시도합니다. 확인 중에는 눈을 감지 마세요.]

[삐삐......삐! 사용자 확인이 완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 병영체험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와 신체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삐삐......삐! 동기화가 완료 되었습니다. ]

유성은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법한 아이템이나 스킬을 얻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부사관 메뉴를 선택했다.

“부사관 메뉴”

[부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부사관 ]
[2. 해군 부사관 ]

[3. 공군 부사관 ]

[4. 해병대 ]

“예전에 육군 정보는 해본 거 같고 일단 공군을 가볼까?”

[띠링! ]

[공군 부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항공 통제 ]

[2. 방공 포병 ]

[3. 구 조 ]

[4. 안 전 ]

[5. 무기정비 ]

[6. 보급수송 ]

위에서부터 메뉴를 확인하던 유성에게 4 번째에 위치한 안전이란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고니야 공군 부사관 메뉴에서 안전이 어떤 거야?’

-네 한유성님 항공 안전이란 보통 화재 예방 업무 및 소방 시설 점검이 주요 업무이며, 소방차량 및 소방구조장비


작동 및 점검 그리고 화재진압, 항공기 사고구조 활동 등을 수행합니다.

‘음...소방 점검이라? 스킬이나 아이템만 잘 뜨면 꿀이겠네. OK! 결정!’

그렇게 유성은 항공 안전 메뉴를 선택했다.

[잠시 후 재난 구조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끼익! 쾅! 콰콰쾅! ]

유성의 눈앞으로 불시작한 건지 착륙하다가 사고가 난 건지 확인 할 순 없지만 군용 화물기 가 활주로를 이탈해


바퀴가 부러지며 비행기의 동체가 바닥과 충돌하는 장면이 연출 되고 있었다.

‘재...재난? 고니야 공군 안전 이란 게 소방안전 점검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지 않았어?’

-전방에 보이는 사고 비행기로 보아 이번 작전은 항공기 사고 처리업무가 작전으로 주어질 것으로 예측 됩니다.

‘그래...일단 이번 작전도 생각보다 만만치는 않겠어.’

유성이 둘러 본 현재 상황은 활주로에 추락한 공군 화물기의 사고 수습을 위해 곧 출동해야 할 상황으로 보였다.

[띠링! ]

[작전명 : ‘불시착한 항공기에서 위험에 처한 인명을 구조하라’

-기상악화로 인해 미끄러운 활주로에 착륙하던 공군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사고로
이어 지기 전에 항공기 내에 있는 인명을 구조하라.

-당신은 항공 안전 감찰관(하사 한유성)으로 근무 중 비행장에 착륙하던 사고 비행기 수습을 위해 출동하였다.


구조대원들과 함께 사고 항공기에 탑승한 인명을 구조하라.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방호복 획득 +@ (인명 구출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방호복 획득 실패 (인명 구출 실패 또는 본인 사망) ]

‘흠...일단 출동부터 하면서 상황을 살펴보자고! 고니야 출발!’

그렇게 유성의 새로운 작전이 시작되었다.

항공안전

***

‘흠...일단 출동부터 하면서 상황을 살펴보자고! 고니야 출발!’

유성이 사고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오르자 곧이어 작전 알림을 시작하는 메시지와 레드카펫이 펼쳐졌다.

[붉은 선을 따라 신속히 이동한 후 활주로에 불시착한 항공기가 폭발하기 전에 승무원을 구하도록 합니다. ]

유성은 빠르게 사고현장으로 달려가며 다른 구조대원들의 복장과 자신의 복장을 확인했다.

앞에서 달려가는 구조대원들의 복장과는 달리 유성은 상하의 일체형으로 정비사들이 입을 것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유성이 작전을 다시 한 번 빠르게 확인 하고는 고니에게 물었다.

‘난 구조대원 복장과는 조금 다른데? 고니야 그런데 항공안전감찰관은 하는 일이 뭐야?’


-네 한유성님 대한민국 유일의 안전관리 전문 부대인 ‘항공안전단’은 비행 안전성과 항공작전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비행기준 정립, 국지계기절차 및 계기비행절차 연구 및 수립 등 비행체계를 표준화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고니가 유성의 지시에 인터넷에서 검색된 내용을 기계처럼 읽기 시작했다.

‘저기 고니야 무슨 말인지 조금 더 쉽게 설명 부탁해.’

-네 한유성님 항공안전단의 업무로는 그밖에도 군내 항공사고는 물론, 민간에서 발생한 항공사고에 대해


국토교통부와 협업을 이뤄 사고조사 활동을 수행하는 한편, 항공사고에 대해 철저하고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사고원인을 분석하고 항공 종사자들에게 전파하여 유사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힘쓰고 또 항공사고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항공 안전교육, 안전연구, 안전관리 임무를 통합해 관장하는 부대라고 합니다.

유성은 고니의 설명을 들으며 안전감찰관이 하는 일과 지금 작전이 어딘지 모르게 어긋나 있다고 느꼈다.

‘자...잠깐 난 보호 장비도 없는데 저길 들어가서 인명을 구조하라고? 지금 작전은 뭔가 잘못 된 게 아닐까?’

-네 한유성님 아마도 작전의 난이도 상향으로 인해 한유성님이 안전감찰관으로 파견 된 상황에서 공항에 사고가
발생한 설정으로 예측됩니다.

‘에효... 그럼 그렇지. 요즘은 쉬운 게 하나 없다니까.’

유성이 그렇게 고니와 투덜거리다 보니 어느새 불시착한 항공기의 앞에 다가서 있었다.

“저기 더 이상 접근하시면 위험 할 수 있습니다. 통제에 따라 여기서 대기해 주십시오.”

차량에서 내려 사고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유성에게 공항 소방대 소속의 소방관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다가와
앞을 막아서며 저지했다.

“저는 군 관계자라 사고현장으로 들어가 봐야 합니다.”

“안됩니다. 혹시 모를 폭발이나 화재에 대비하셔야 하는데 지금 그 상태로는 진입하면 위험 합니다.”

소방관의 말에 유성의 복장을 확인했다.

‘역시 평소 이런 복장으로는 무리겠지?’

하지만 유성에게 작전이 주어진 이상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유성은 자신의 목에 착용된 신분증을 소방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럼 저에게도 저기 먼저 들어간 구급대원들이 착용한 방호복을 빌려주시면 안 됩니까?”

“쩝...그럼 사고 비행기 내부는 들어가지 마시고 외부에서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유성은 그렇게 소방관에게 부탁해 그들의 장비를 빌려 입고는 곧바로 사고 비행기를 향해 달리며 고니에게 물었다.

‘고니야 저 비행기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줘.’

-네 한유성님 불시착한 수송기는 C-130J ‘슈퍼 허큘리’라 불리는 수송기입니다. 승무원은 조종사 2 명이
필요하며 승객은 128 명까지 탑승 가능합니다. 나머지 적재량 이하 제원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종사
출입구와 중앙 출입구 그리고 격납고를 통해 출입이 가능합니다.

유성은 어두운 밤 굳은 날씨로 인해 불시착한 사고 비행기를 살펴보았다. 길이 30 미터 정도의 수송기는 착륙하다


앞바퀴가 부러지며 비행기 머리가 마치 인사하는 모양으로 활주로를 미끄러지다 활주로를 이탈해 멈춰서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유성의 뇌리에는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설마 이 상태에서 그냥 인명만 구하고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한유성님 주변정찰로 확인한 결과 사고 기체 내부에 승무원 포함 모두 6 명이 감지되었습니다. 탑승객 모두 현재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활주로에 불시착 할 때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으로 예측됩니다.
신속한 구조가 이루어 져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단 뒤에서 출입 통제하던 소방관이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어두운 저녁이니 수송기 뒤로 돌아가면 잘


안보이겠지?’

유성은 주변정찰 스킬로 보이는 홀로그램을 통해 수송기 안에 정신을 잃고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사고 비행기의 조종석 옆에 위치한 출입구로는 벌써 구급대원들이 들어가고 있어 유성은 수송기 뒤쪽에 있는


사람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조종석에 위치한 승무원 2 명에 대한 구조는 구급대원들이 어렵지 않게 성공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뒤쪽


격납고쪽에 탑승한 것으로 확인되는 4 명에 대한 구출이 먼저 이루어 져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어 그래. 근데 뒤쪽으로 접근하려면 격납고를 열기는 힘들 것 같고, 날개 뒤쪽 문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은데...’

수송기의 머리가 앞바퀴의 파손으로 인해 아래를 향하고 있지만 일반 여객기에 비해 바퀴와 동체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운 덕에 약간만 노력하면 날개 뒤쪽에 위치한 출입구로 유성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조종석으로 진입한 구급대원들처럼 사다리차를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기내로 진입이 가능 하겠지만


분위기로 보아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어 보였다.

‘여기서 이게 가능 할까?’

유성은 착용한 소방장비에서 인명 구조용 로프 끝에 손도끼를 꺼내어 묶었다.

-네 한유성님 시도해 볼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고니야 필요한 스킬 사용해줘! 시작한다.’

-네 한유성님 ‘방벽 등반’과 ‘보정’ 스킬을 사용합니다.

다행히 여객기의 창문과는 달리 원형으로 조그만 유리를 보정스킬의 영향인지 한 번의 시도만으로 도끼가 뚫고
들어갔다.

“일단은 성공!”

유성이 홀로그램을 살펴보면서 적절하게 힘 조절을 하며 로프를 끌어당기자 창틀에 도끼가 걸려 로프에 매달려
수송기 측면으로 비가와 미끄러운 와중에도 충분히 문까지 접근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나도 이 정도 제구력이면 프로 야구 투수를 해도 성공할 것 같지 않아?’

유성은 로프에 가볍게 매달려 올라가며 고니에게 농담을 섞어 물었다.

-네 한유성님의 현재 신체 능력이면 프로에 입단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히 높은 것으로 예측됩니다.

‘응? 확신이 아니라 성공할 수도 있다고?’

고니에게서 유성이 기대했던 대답과는 다른 대답이 나오자 유성은 고니에게 재차 질문을 했다.

-네 한유성님 프로야구 선수로 입단하게 되면 투수일 경우 다양한 구질을 먼저 몸에 익히셔야 하고...

‘어 그만. 난 그냥 스포츠는 보는 걸로 만족할게. 그것보다 여기문은 어떻게 열지?’

유성은 고니의 말을 끊어내고 날개 뒤쪽에 있는 문을 열기위해 손잡이를 찾았다.

-한유성님 출입구를 개방하기 위해 ‘보정’ 스킬을 사용합니다.

‘OK! 보정 스킬을 그렇게도 사용할 수 있구나.’

[치익! ]

스킬을 사용하자 곧 날개 뒤쪽에 있는 문 안쪽에서 소리와 함께 출입구의 문이 유성을 향해 갑자기 덮치듯이


쓰러졌다.

“헛!”

유성은 동체시력을 발휘해 로프에 매달린 상태에서 재빨리 발을 굴려 자신을 덮쳐오는 문을 겨우 피해 냈다.

-좌우 개폐방식이 아니라는 걸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렇게 유성은 열려진 문을 밟고 내려서 기내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들어가며서 오른쪽을 살펴보니 수송기가 불시착할 때 충격을 받았는지 조종석으로 연결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문은 약간 망가져 조종석으로 직접적인 이동은 불가능해 보였다.

유성은 미리 주변정찰로 확인해 생존자가 있는 격납고 측 내부로 빠르게 이동했다.

수송기 내부는 여객기와는 달리 양옆으로 나눠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었고 그 위에 앉은 채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군인 4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니야 이 사람들 현재 상태 체크해줘!”

-네 한유성님 현재 ‘상태 확인’으로 확인한 결과 약간의 타박상과 골절은 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모두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지만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있을 정도로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휴우! 그럼 구급대원들이 도착 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렸다가 같이 나가면 되겠다.’


유성이 그렇게 안심하며 주위를 둘러 볼 때였다.

-한유성님 우측 날개에 있는 롤스로이스 AE 2100 D3 터보프롭 엔진 근처에서 불시착할 때 생긴 것으로


예상되는 단선으로 인해 스파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라면 곧 발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현재 상태에서 폭발까지 최대 90 초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으로 예측됩니다.

“헐..갑자기 폭발이라고? 여기 사람들을 데리고 대피하는 것도 문제지만 조종석에 진입한 구급대원들까지 모두


대피시키기는 더 힘들 것 같은데 고니야 어떡하지?”

유성의 질문을 들은 고니가 방법을 강구해 얘기했다.

-현재 가능한 방법으로는 발화가 예측되는 엔진으로 직접 접촉해 단선 된 전선을 처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90 초 전에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고니야! 일단 발화 지점 표시해줘!”

유성은 고니의 얘기를 듣자마자 다시 들어온 입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열려진 출입구를 밟고 날개위로 뛰어오른 유성은 좌측 날개위에서 고니가 표시해준 붉은 점이 새겨진 엔진을 향해
이동했다.

[80 초]

[79 초]

그 와중에도 유성의 화면 좌측에는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유성은 어두운 밤이지만 홀로그램 화면에 의지하며 미끄러운 날개 위를 빠르게 걸어 엔진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에서 엔진을 바라보니 무언가 밝게 빛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고니의 말대로 끊어진 전선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성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하나 남은 로프 끝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비행기 날개 뒤쪽에 있는 틈에 옷을 밀어 넣어 고정하곤 로프 끝을 잡고 문제가 있는 엔진을 향해 뛰어


내렸다.

뛰어 내리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귀에 들렸다.

[파..지직!...파지직! 화르르...]

유성은 직접 눈으로 확인 하진 않았지만 소리를 듣고 직감적으로 충돌로 인해 손상된 엔진에서 새어 나오는 연료에
스파크가 튀어 불이 옮겨 붙었음을 느꼈다.

“아! 안 돼! 스킬! 불 조절!”

[화르르륵! 펑! ]

유성은 무의식적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동시에 엔진에 불이 붙어 발생한 폭발에 휘말려 로프를 놓치며 비행기
활주로 바깥쪽을 향해 튕겨져 날아갔다.
유성은 날아가는 도중에 의식이 희미해지며 수송기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의 폭발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추락(?)한 유성은 잠시 후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유성의 머릿속으로 작전 성공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

[작전명 : ‘불시착한 항공기에서 위험에 처한 인명을 구조하라’ (작전 완료)

-기상악화로 인해 미끄러운 활주로에 착륙하던 공군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사고로
이어 지기 전에 항공기 내에 있는 인명을 구조하라.

-당신은 항공 안전 감찰관(하사 한유성)으로 근무 중 비행장에 착륙하던 사고 비행기 수습을 위해 출동하였다.


구조대원들과 함께 사고 항공기에 탑승한 인명을 구조하라.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방호복 획득 +@ (인명 구출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방호복 획득 실패 (인명 구출 실패 또는 본인 사망) ]

작전 완료 보상이 뜬 것으로 보아 작전에서 유성이 죽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살신성인

***

유성은 평소답지 않게 캡슐 속에서 아침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물론 캡슐도 침대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안락함을 자랑했다.

하지만 유성의 입에선 나오는 소리는 절대 안락한 잠자리에서 깨고 일어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 야야야 아흐...삭신이야. 왜 갑자기 이렇게 온 몸이 쑤신데?”

평소와 같은 가뿐한 몸이 아니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무거운 몸 상태에 낯설음이 느껴지는 유성이었다.

-네 한유성님 지난밤 작전 수행 중에 일어난 폭발 사고로 인해 몸에 무리가 와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됩니다. 현재


가벼운 타박상과 뇌진탕 증세가 남아 있습니다.

유성은 고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지난 밤 캡슐에서 항공안전 작전 수행 중에 폭발이 일어 났던 사실을 떠올렸다.

‘아! 마지막에 폭발을 막지 못했었지.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혹시 폭발을 막았을 지도 모르는데... 조금


아깝긴 하네.’

유성은 자신이 폭발에 휘말려 본인사망으로 인해 작전 수행을 실패 했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유성님은 충분히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냐 됐고 새로운 한주가 밝았으니 할 일은 해야겠지? 아! 맞다. 그 전에 ‘요인 경호’ 대상은 뭐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
-한유성님 대상의 현재 상황을 확인 할 수 없습니다. ‘요인 경호’ 스킬을 사용한지 24 시간이 경과되어 ‘요인
경호’ 스킬이 자동으로 종료 되었습니다.

“허..그런 기능이 있었어?”

그랬다. 유성은 요인 경호를 이렇게 장시간 방치해 둔 적이 없어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요인 경호’ 대상의 24 시간동안 상황을 모두 녹화해 두었습니다. 지난밤 경호 대상이 잠든 사이에 스킬
사용이 종료되어 특이 사항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지. 그런데 몸부터 조금 풀어야겠는데. 물리 치료 스킬 나한테도 사용가능 하니?”

여전히 목과 어깨에 불편함을 느낀 유성이 고니에게 스킬의 자가 사용 가능 여부를 물었다.

-네 한유성님 거울을 보고 스킬을 사용하시면 치료가 필요한 부위에 붉은색 표시가 떠오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유성은 고니의 말을 듣고 캡슐에서 나와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유성이 주말에 남해에 가는 통에 잠시간 떨어져 있던 새끼 고양이 고니가 유성이 없는 틈을 타고 혼자서
신나게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유성은 그런 고니를 반가움에 품에 안고 화장실을 향해 이동하며 말했다.

“그럼 욕실 거울을 이용하면 되겠네. 고니야 오빠 씻고 올 테니까 오랜만에 같이 아침이나 먹자. 아님 우리 같이


씻으까?”

-한유성님 저는 현재 오염이 되지 않은 상태로 씻는 행위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함께 욕실에 들어가는


행위는 비교적 건전하지 않은 행위로 판단됩니다.

유성이 고니의 말을 듣고 뭐라 대답하려하기도 전에 식당에서 등교를 위해 간단하게 토스트를 챙겨먹고 있던


유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고니 안고 괴롭히지 좀 마! 그리고 고니 어제 내가 목욕 깨끗하게 시켰어! 고니야 언니한테 와 오빠가


괴롭혔오? 그래쪄? 우쭈쭈...”

그랬다. 고니가 유성에게 했던 말은 다른 가족들에게는 고니가 유성의 괴롭힘에 애처롭게 울어대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쩝...내가 뭘 했다고...”

유성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유성이 말끔한 모습으로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거실에는 그 사이 아빠가 소파에 앉아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천만 다행이네.”

“응? 아빠 무슨 일이야?”

유성은 주말동안 보지 못한 아빠에게 안부나 건네려고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돌아온 대답을 듣고 몸이 굳어져


버렸다.
“새벽에 김해 공항에 군용기가 착륙하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에 미끄러져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있었나 보네.
그런데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사고 수습이 되었다는 구나.”

“....”

유성은 아빠의 말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TV 속 뉴스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유성은 YTVN 뉴스 앵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 ... 8 일 새벽 2 시 25 분 군 작전 수행을 마치고 부대 복귀를 위해 김해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군 수송기 C-


130 허큘리스가 착륙 직전에 불어 닥친 폭풍우에 휩쓸리며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이해영 기자를 불러 보겠습니다.]

스튜디오 아나운서의 멘트가 끝나자 김해공항에 나가 있는 기자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유성은 TV 화면 기자 뒤로 보이는 사고 수송기의 모습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 공군은 지난 2014 년부터 국내에 도입되어 공군에 배치된 C-130J 수송기는 출력이 향상된 최신형
엔진을 장착해 C-130H 수송기에 비해 항속거리와 비행고도가 늘어났으며, 최신 항공 전자 장비를 탑재해 각종
시스템이 자동화됨에 따라 기체 조종에 필요한 승무원이 조종사, 부조종사, 항법사에서 조종사, 부조종사인 2
명으로 줄어 들었...]

TV 화면 속에서 수송기의 제원에 대해 설명하던 기자가 자리를 이동하자 유성이 작전 수행 중에 폭발을 일으켰던
좌측 날개가 화면에 나타났다.

[...시청자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여기 검게 탄 수송기 좌측 날개 엔진에서 발생한 폭발로 인해 자칫 큰


인명피해로 연결 될 수도 있었지만 빠른 공항 소방 구조팀의 조치로 연료탱크로 불이 옮겨 붙지 않아 다행히 큰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

유성은 기자의 얘기와 함께 화면에 보이는 군 수송기를 확인하면 할수록 더욱 확신이 차올랐다.

[...위험천만했던 사고에도 불구하고 평소 공항 안전관리 팀의 꾸준한 훈련이 이번 사고가 인명피해 없이 빠르게


수습 될 수 있도록 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마침 공항 소방 안전 관리 팀장님이 자리
하셨습니다. 어제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 잠깐 인터뷰 부탁드리겠습니다. ]

화면에 보이는 비행기 날개 플랩에 끼어 있는 무언가가 유성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두운 밤이었지만 자신이
작전을 받아 임무를 수행했던 비행기가 맞는 것으로 보였다.

‘저기 좌측 날개 플랩에 걸려 있는 게 내가 어제 입었던 소방관 방호복이 맞는 거 같은데...’

“큼...유성아 오늘 아침은 빨리 안 나가봐도 되냐?”

뉴스 화면을 보며 멍하게 서있는 유성을 향해 아빠가 한 마디 했다.

“아! 늦겠다.”

그렇게 멍하게 서있던 유성은 아빠의 목소리에 깨어나 아람의 아침 등교 알바를 위해 준비를 마무리하고 집을
나섰다.

***
기자의 말에 김해공항 소방 구조 팀장의 인터뷰가 시작 되었다.

“네 저희 김해공항 소방구조대는 김해공항 내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항공기 사고나 승객들이 이용하는 공항
이용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하는 곳입니다. 저희 소방구조대는 어느 곳에서 사고가 나도 3 분 안에
도달 할 수 있는 전략적 장소에 위치해 있고, 항공기 구조 소방....”

그렇게 소방 구조대의 활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터뷰가 끝났다.

“네! 사고 수습으로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공항...”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무리 한 공항 소방 구조팀장은 공항에 위치한 자신의 소방본부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곤
사무실에 있던 한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새벽에 봤던 그 항공 안전 감찰관은 아직 못 찾았어?”

“네 팀장님 공항에 있는 공군 측에 연락을 했지만 어제 새벽에 근무한 안전감찰관은 없었다고 합니다.”

사내의 말을 들은 구조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군에서 왜? 그 사람 신원을 밝히지 않는 거지? 공군에서 비밀 요원이라도 키우나?”

“그래도 저희가 이정도 계속 찾았으니 나중에 뒤 늦게 나타나 이번 사고 처리가 공군 측에서 처리한 일이라며
공을 가로채 가지는 않을 겁니다. 팀장님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아마 이번 일은 팀장님 인사 고가 점수에 좋게
반영 되었을 겁니다. 좋은데 가시면 저도 꼭 잊지 마시고 챙겨 주십시오. 팀장님. 헤헤헤.”

“이 사람 벌써부터 비행기 태우지 말게. 추락할까 무서워. 하하하.”

그렇게 구조 팀장은 지난 새벽 자신의 소방 방호복과 함께 장비를 건넸던 앳된 얼굴의 항공 감찰관을 찾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

집을 나선 유성이 아람을 데리러 가는 차 안에서 고니에게 말을 건넸다.

“새벽에 캡슐에서 진행한 작전이랑 뉴스 내용이 너무 흡사해서 엄청 놀랐네.”

-네 한유성님의 새벽에 일어난 작전과 90% 이상 일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뉴스에서는 공군 측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이 모든 공로가 빠른 대응을 시행한 공항 소방서에 있다고 보도


되었다.

“그러게. 뉴스는 모두 구급 대원들만으로 사고를 수습했다고 나왔으니 작전 내용과는 조금 다른가?”

-네 한유성님 언론에서는 사고에 대한 원인 분석 보다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만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네... 근데 사고 원인이야 뻔하지. 날씨가 갑자기 나빠진 거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장비가 노후
되었거나 조종사들이 피곤했던 게 주된 원인 일거야. 그건 누구나 안 봐도 다 알걸.”

-네 한유성님! 제가 모은 데이터를 통한 분석도 한유성님의 의견과 동일합니다.


고니와 얘기를 나누던 유성이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며 고니에게 물었다.

“흐흐. 아 그런데 어제 혹시 보급 상자 받아 놨어?”

-네 한유성님께서 별다른 지시가 없어 무기고에 받아 놓기만 했습니다.

“OK! 그럼 보급 상자부터 확인해 볼까?”

그렇게 뽑기에 중독된 유성의 보급상자 까기는 오늘도 계속 되었다.

***

-Episode

유성이 ‘불 조절’ 스킬을 사용하는 동시에 일어난 폭발로 인해 퉁겨져 날아가 활주로를 벗어나서야 떨어졌다.

일반인이었으면 목숨을 일어 버릴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유성의 높은 스탯으로 인해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다만 떨어지는 충격으로 유성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한유성님 ‘상태 확인’ 스킬 사용결과 골절과 가벼운 뇌진탕 증세가 확인 됩니다. 치료 스킬의 임의 사용은
불가능하여 현재 상태로 대기 모드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유성의 상태를 확인한 고니는 생명반응에 위험이 없음을 확인하고 난 후 유성의 이번 작전 완료 보상을
획득하기 위해 접속을 종료하지 않고 잠시 동안 대기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구급대원들이 수송기에서 6 명의 인원을 모두 구해내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유성의


머릿속으로 알림이 울렸다.

[띠링! ]

[작전명 : ‘불시착한 항공기에서 위험에 처한 인명을 구조하라’ (작전 완료)

(중략)

-작전 성공 시 : 아이템 - 방호복 획득 +@ (인명 구출 기여도에 따라 차등)

-작전 실패 시 : 아이템 - 방호복 획득 실패 (인명 구출 실패 또는 본인 사망) ]

[띠링! ]

[작전 성공 보상으로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

[완벽한 작전 성공으로 보상이 상향 조정 됩니다. ]

[아이템 - ‘방호복’이 상향 조정되어 스킬 - ‘방호복’을 획득합니다. ]


[히든 스토리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림’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

[공군 안전 작전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

[칭호 효과로 한유성 체험병의 등급이 1 단계 상향 됩니다. ]

[등급 상향으로 사관 메뉴가 잠금 해제 됩니다. ]

고니는 보상이 완료 된 것을 확인하고 접속을 종료 했다.

-한유성님의 프로그램 접속을 종료 합니다.

학교 방문

***

일요일 늦은 저녁 집근처 사람들의 발길이 드믄 곳에 캠핑카를 세운 유성은 고니에게 지시했다.

“고니야 새벽에 주위에 사람들 없을 때 까망이 원래 푸드트럭으로 바꾸고 카페 빈 주차장으로 자율주행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한유성님.

유성은 그렇게 고니에게 까망이를 부탁한 후 집으로 들어와 씻고 캡슐에 올랐었다.

캡슐에서 의도치 않게 정신을 잃은 유성은 생각보다 늦게 캡슐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바쁘게 외출 준비를 마친 후
새끼고양이 고니를 조수석에 태운 후 아람의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아빠가 시청중인 뉴스를 보고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외출을 준비하다 보니 유성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유성에겐 지난 밤 고니가 챙겨 둔 보급상자 확인이 더욱 궁금했다.

“OK! 그럼 보급 상자부터 확인해 볼까?”

유성은 운전을 고니에게 맡긴 채 무기고로 들어가 보급 상자의 덮개를 열었다.

[스...팟!]

유성이 보급 상자의 덮개를 열자 보급 상자가 있던 자리에서 하얀색 빛 무리가 생기더니 무언가가 유성의 눈에
들어왔다.

“이..이게 뭐야? 침낭이야?”

-네 한유성님 보급 상자에서 나온 물건은 군용 침낭입니다. 1986 년에 개발된 합성 솜 침낭으로 군 납품 가격은


17 만 5 천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성은 고니의 설명을 듣고 오리털도 들어 있지 않은 침낭의 가격이라고는 생각 되지 않아 되물었다.

“헐 오리털도 안든 솜 침낭의 가격치고는 너무 높은데 10 만원은 잘 못 본 거 아냐?”

-네 한유성님 침낭의 정보 분석 결과 실제 가격은 7 만 5 천 원도 품질 면에선 충분히 비싸다고 판단됩니다.

“그럼 원래 가격보다 높은 가격은 중간에서 누군가 가져간다는 거네?”


-정확한 정보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알아낸 내용으로는 방산비리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군납품을
주도하고 있는 재향군인회 뒤에는 ‘창무회’라는 조직이 있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응? 방금 ‘창무회’ 라고 했어? 어제 진아 아버님도 그 단체를 언급 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좀 더


알아봐야겠네. 고니야 혹시 군 서버에도 접속 가능하면 좀 더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한 유성님. 잠시 후 아람아트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응! 이제 무기고에서 나가서 하루 일과를 시작해 볼까?”

그렇게 고니와 군 납품비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유성은 아람의 집에 도착해 있었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최 관장님!”

“어서와 유성군. 듣기론 주말에 남해 다녀왔다고?”

“네 한 달에 한 번씩 봉사활동이 있어서 다녀왔어요. 여기 빵 드시라고 좀 챙겨 왔습니다.”

유성은 최 관장을 만나 인사하고 이젠 아침마다 일상이 된 빵을 무기고와 연동된 왕진 백팩에서 꺼내어 주었다.

“뭘..올 때마다 이런 걸 다 챙겨오고 그래. 그런데 이번엔 빵이 좀 많아 보이네? 아! 아람이 내일부터 수학여행
가니까 일주일 동안 못 온다고 많이 가져 왔나봐?”

유성은 최 관장의 말을 듣고 잊고 있던 아람의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네! 맞습니다. 아람이 내일부터 수학여행 간다고 들어서 좀 많이 챙겨 왔습니다.”

“고마워 유성군. 잘 먹을게.”

유성은 최 관장에게 인사를 받으며 외숙모 카페에 대한 광고도 빠트리지 않았다.

“혹시 더 필요하시면 이제 ‘배달의 만족’ 어플을 통해 배달도 가능 하다고 들었습니다.”

“호호 그럴게. 그럼 유성군 다음 주 월요일에 봐요.”

“네 최 관장님. 다른 분들께도 인사 대신 전해 주세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유성은 그렇게 준비를 다하고 2 층에서 내려온 아람과 함께 건물을 나서 차에 올랐다.

“어랏! 고니다! 오랜만이야. 고니야! 잘 있었어? 우쭈쭈!”

-냐앙.

조수석에 앉아 있던 고니를 발견한 아람이 고니를 안아 들며 조수석에 앉았다.

“아람아 벨트 하기 전에 뒷좌석에 네 수학여행 선물 있으니 내릴 때 챙겨가.”

유성의 말에 뒷좌석에서 둥근 원통형 모양의 가방을 발견한 아람이 살펴보며 물었다.

“어? 나 수학여행 선물 이라고? 아까 집안에 있을 때 주지.”


“아..그냥 안에 사람들 보면 괜히 오해 할까봐. 대단 한 것도 아닌데.”

“오해하면 난 더 좋은데. 크흐! 오빠한테 선물을 다 받다니! 기분 짱 좋은데!”

아람은 유성이 선물로 준 침낭을 열어 살펴보고 있었다.

“큼..큼...어..그게 군용 침낭인데 오리털이 아니라 솜이 들어서 요즘 날씨에 바닷가나 밤에 약간 추울 때 덮긴


괜찮을 거야. 그리고 중국 숙소에서 혹시 이불 덮기 찜찜하면 그 침낭 써도 괜찮을 테고 생각보다 부피도 안 커서
여행가방 안에 자리 차지도 별로 안 할 거야.”

유성은 아람이 내일부터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생각해 낸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어 그렇게 덮지도 않을 것 같고 지금 날씨에 가져가면 딱 이겠다. 이렇게 신경써줘서 고마워 유성 오빠!”

유성은 ‘쩝. 그게 군인들이 혹한기에 야전 텐트 안에서 덮고 자던 겨울용 침낭이래.’라는 말은 아람에게 아꼈다.


얘기해도 믿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어 그래 재밌게 잘 다녀와.”

“응. 오늘 학교 마치면 엄마랑 같이 백화점 갈 거라서 오빠랑은 다음 주에나 보겠다. 중국 가서 선물 사올게.”

“내껀 괜찮고 음 그래 여행하다가 고니꺼 있으면 사다 줘.”

“응? 아! 그럴게! 오빠.”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유성은 학교 앞에 도착해 아람을 내려 주고는 외숙모 가게를 향해 이동했다.

어제 가게를 마무리 할 때만 해도 없던 푸드 트럭이 월요일 아침이 되어 가게에 나오니 떡 하니 세워져 있는 걸


확인 한 외숙모가 유성에게 물었다.

“유성아! 언제 왔다 갔어? 새벽에 또 나와서 빵 만들다가 아침 픽업 아르바이트 다녀 온 거야?”

외숙모의 물음에 유성은 텅빈 가게 진열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외숙모. 주말엔 손님 많았나 봐요?”

“응. 안 그래도 손님이 계속 늘어서 주말만 쓰던 알바를 평일에도 계속 나와 달라고 부탁해놨어. 조금 있으면
출근 할 거야.”

“네 그럼 전 손 씻고 진열대 좀 채우고 빵 좀 더 만들게요. 숙모는 고니 좀 봐주세요.”

“응. 이리와 고니야. 뭐 줄까? 우유줄까? 고니도 오랜만이네.”

-냥!

유성은 외숙모에게 고니를 건네고는 밖에 주차되어있는 까망이를 향했다.

푸드 트럭에 올라 무의식적으로 빵을 만들며 생각에 빠져 있던 유성이 고니에게 얘기했다.

“진아 아빠가 알아서 하겠다고는 했지만 손을 다 빼기는 찜찜해서 안 되겠다. 요인 경호 스킬도 24 시간이
한계이니 아무래도 고니 네가 당분간 진아 옆에서 확인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네 한유성님 상황이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성은 생각을 정리한 끝에 나경에게 ‘코코넛 톡’으로 점심시간에 들릴 테니 오늘 점심 같이 먹을 수 있는지


물었고 유성이 예상한 데로 나경은 평소 학교에서 점심을 진아와 같이 먹기에 크게 상관없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코코넛 톡을 통해 점심약속을 잡은 유성이 바삐 움직여 가게 진열대에 빵을 가득 채우고 나서 외숙모에게 다가가


말했다.

“숙모 저 약속이 있어서 오늘 점심은 같이 못 하겠어요.”

“그래 유성아 약속 있으면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새벽부터 서둘렀구나. 숙모는 알바랑 같이 점심 해결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운전 조심하고 얼른 가봐.”

“네! 외숙모 빵 떨어지면 바로 말씀하세요. 가볼게요.”

유성은 외숙모에게 인사하고 난 뒤 고니를 조수석에 태우고 나경의 학교를 향해 움직였다.

얼마 뒤 점심시간 전에 나경의 학교에 도착한 유성은 교내 일반인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에 고니를 안고 차에서
내린 유성이 주변을 둘러보다 물었다.

‘고니야 학교 식당이 있는 건물이 어디지? 건물이 너무 많아.’

유성의 질문에 고니가 센스 있게 붉은 점으로 경로를 알렸다.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 스킬을 이용해 건물을 확인했습니다. 학교 식당이 있는 건물까지 레드카펫 깔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고니야. 가자!’

유성은 품에 안은 고니의 턱 밑을 손으로 살짝 긁어주며 고마움을 대신 표하고 난 후 레드 카펫을 밟으며 발길을


옮겼다.

‘이런 곳에서 나경이 지금 수업을 한단 말이지?’

-네 한유성님 10 분 뒤면 수업 시간이 종료 될 것으로 확인 됩니다.

유성은 학교 식당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여러 건물과 그 사이를 지나는 학생들을 눈에 담아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자유분방한 학생들의 옷차림과 밝게 웃는 얼굴을 보며 대학에 와보지 못해 유성 자신도 모르게


품고 있던 대학이라는 곳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살짝 떠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지금부터 공부하면 여기에 올 수 있을까?’

-네 한유성님 충분히 합격 가능 하다고 판단됩니다.

‘하긴 고니 네가 있으니 어렵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휴! 자격증도 따야 하고 앞으로 할 게 너무 많긴 하다.’

잠시 후 식당 앞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자 진아와 나경이 다가와 인사했다.


“유성아 웬일이니? 학교까지 다 오고?”

“시간도 나고 날씨도 좋기도 하기에 너희 학교 밥 맛 보러 왔지.”

“서방! 많이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막 도착했어. 밥 안 먹었지? 우선 밥부터 먹으로 가자.”

“그래! 그럼 오늘 우리 서방이 학교까지 강림 했는데 특별히 내가 쏜다! 단 학식으로!”

유성은 학생식당에 도착해 나경이 특별히 주문한 특식을 받아들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둘이 데이트 하는데 나 있어도 상관없지?”

진아의 말에 나경이 대답하며 유성의 눈치를 살폈다.

“데이트라니! 그냥 점심이나 먹고 학교 구경도 할 겸해서 놀러 온 건데. 그치 서방?”

유성은 나경이 학교 안에서 갑자기 사용하는 애칭에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주위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
흘깃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나경이 즐기는 것 같아 그러려니 했다.

“응.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이번 주가 좀 바쁠 것 같아서 고니도 좀 부탁 할수 있을까 해서 여기 데리고 왔어.”

유성은 식당으로 들어오기 전에 고니를 넣어둔 캐리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응? 서방! 고니도 데리고 왔어?”

“그러네 저기 안에서 좁아서 답답할 텐데. 밥 빨리 먹고 밖에 나가서 캐리어에서 꺼내주자. 고니 답답하겠다.”

고니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나경과 진아는 유성보다 고니를 더 챙기기 시작했다.

“근데 고니는 뭐 좋아해? 고기..도 먹나?”

“쩝..쩝..응. 그냥 음식은 안 가려. 끓인 라면 좋아하고 고기도 가리지는 않아. 그냥 옆에 계속 있어 주기만


하면 돼.”

진아의 물음에 특식을 맛보고 있던 유성이 대답했다.

“서방! 그런데 나는 수업 할 때는 실습이 많아서 고니 못 데리고 들어가는데 어쩌지?”

“어쩌긴 내가 대신 데리고 있으면 돼지. 난 실습 없어서 캐리어에 데리고 들어가면 괜찮아.”

그렇게 유성이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고니는 진아가 맡기로 결정되어 버렸다.

“그럼 그래 줄 수 있어? 당분간만 고니 부탁 할게.”

유성이 진아에게 고마움을 전했지만 유성의 말을 못 들은 건지 진아는 고니가 있는 캐리어를 자신의 옆자리에 옮겨
놓으며 얘기했다.

“고니야? 언니랑 오늘 저녁엔 고기 먹자. 소가 좋아? 돼지가 좋아?”


그렇게 진아는 벌써부터 고니 육아에 돌입하고 있었다.

반격의 불씨

***

고니의 육아(?)를 진아에게 부탁한 유성은 나경에게 대학교 학식을 얻어먹고 난 뒤 친구들과 잠깐 얘기를 나누고
오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그들과 헤어져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차량에 탑승하자 유성의 머릿속으로 고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유성님 꺼져있던 복제 폰의 원본 전화기에 전원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래? 지금 위치가 어딘데?”

지난 번 남해에서 만난 이 팀장의 전화기에 관한 얘기임을 알아 챈 유성이 고니에게 위치를 물었다.

-네 한유성님 ‘추적’ 스킬 사용결과 대전 유성구에 있는 오성전자 A/S 센터로 확인 됩니다.

“그래? 그럼 혹시 우리가 폰 복사 한 것도 들키는 거 아냐?”

-한유성님 아마도 그 부분은 문제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폰 내부에 불법 프로그램을 설치 한 것이 아니라 폰을


출고상태인 고유 넘버까지 완벽하게 복사한 것이라 A/S 센터에서는 별 문제 찾지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성은 고니의 설명을 들었지만 지금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아 지난번과 같이 자료 모으기를 지시했다.

“그럼 계속 통화와 문자 내용은 따로 복사해서 파일로 따로 만들어 두고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알려 줘.”

-네 한유성님 계속 감시토록 하겠습니다.

유성은 현재 상태로 배후를 알아내는 것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동전 찾기 같은 느낌이 들어 막막함이 밀려와


푸념을 내 뱉었다.

“자료 확보는 나보다 핑크 누나 쪽이 더 전문가일 테니 음료수라도 사들고 한 번 찾아 가봐야 하나? 아니면


연락이 먼저 올라나?”

유성은 핑크가 좋아할 만한 디저트가 무기고에 남아 있는지 떠올려 보며 운전대의 방향을 심부름센터로 틀었다.

그렇게 심부름센터에 도착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고니의 음성이 들렸다.

-한유성님 지금 심분홍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핑크 누나가? 그럼 생각대로 흘러간다는 얘기가 되나? 고니야 전화 연결해줘.”

-네 한유성님 지금 태블릿을 통해 심분홍님과 전화 연결을 시도합니다.

“분..아니! 핑크 누나 일주일 만인가? 요즘은 어때 안 바빠?”

[응 유성아. 요즘 누나 병원 다니고 운동하느라 좀 바빠.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 알바 좀 해라? ]

유성의 인사를 받은 핑크는 급했는지 본론부터 꺼냈다.


“나도 이번 주는 조금 바쁜데...”

[아람이 내일부터 수학여행이라 시간 남지 않니? 투잡 뛰더니 요즘 배가 불렀구나? ]

“그게 아니고 개인적으로 조금 알아봐야 할 일이 있어서...”

유성은 나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퉁겨 보려고 하자 이를 눈치 챈 핑크는 바로 금전을 들먹이며 유성의 관심을


끌려했다.

[그래? 바쁨 어쩔 수 없지. 이번일도 조금 짭짤한 건순데. ]

사실 아람의 기사와 경호를 맡은 유성은 하는 일에 비해 많은 보수 아니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헉’ 하고


놀랄 정도의 수당을 받고 있었다. 이 점을 알고 있는 핑크가 유성을 적절하게 공략했다.

“누나! 일단 무슨 일인 지부터 얘기해줘. 들어보고 결정할게.”

[음...일단 하나는 경호업무고 다른 하나는 전화로 말하기는 힘들고 혹시 생각 있으면 저녁 늦게라도 만나서
얘기해.]

“그래! 그럼 만나서 얘기하면 되겠네.”

[그럼 시간 언제가 괜찮니? ]

“지금!”

[뭐? 그게 무슨 말이니? ]

[....]

핑크는 유성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전화기에 대고 되물었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사무실 입구의 문이 열리고 유성이 들어섰다.

[딸랑! ]

“핑크 누나 잘 지냈어? 오늘 나를 찾을 것 같기에 바로 왔어. 심 실장님도 안녕하세요?”

“어? 유성군 왔어요? 안 그래도 핑크가 약속 잡으려고 했는데.”

유성의 인사말에 서류 뭉치를 챙겨보느라 바쁜 심 실장과 방금까지 유성과 통화하다 꺼진 폰을 내려다보던 분홍이
입구에 서있는 유성과 폰을 번갈아 바라보며 인사했다.

“뭐니? 너 어떻게? 여기 근처에 있었던 거야?”

“응! 누나한테 급히 만나자는 전화가 올 것 같아서 바로 순간 이동했지?”

요즘 나아진 몸 상태로 인해 컨디션이 좋은 핑크는 유성의 재미없는 농담도 성의 있게 받아 주었다.

“하긴 유성이 너 가끔 보면 신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해. 혹시 46 개의 돌아가는 공 가운데 떠오르는 숫자 같은 건


없니?”
“음...아직은 안 보이는데 혹시 떠오르면 불러 줄게. 심 실장님 빼곤 다른 분들은 다들 일 나가셨나봐?”

유성이 사무실을 돌아보고 심 실장과 핑크 둘만 사무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외근이라도 나갔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응 오늘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들 외근 나갔어. 나도 사실 지난주부터 병원에서 재활 운동하느라 급한 일


아니면 사무실은 잘 안 나오려 하는데 삼촌이 오늘은 나와 달라 부탁해서 잠깐 나온 거야.”

유성은 사실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스킬을 사용해 지난 번 보다 호전 된 핑크의 상태를 확인했었다.

“그래도 바쁜 사람치고는 혈색이 지난 번 만났을 때 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 보기 좋네.”

“정말 그래 보여? 호호호.”

유성은 어느 정도 인사를 주고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본론을 서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누나 나한테 맡길 일은 어떤 거야?”

“그래 뭐부터 듣고 싶니?”

유성은 핑크의 말을 듣고 1 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더 비싼 거!”

그렇게 핑크는 유성에게 경호와 다른 한 가지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나 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오전에 들어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목표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감시하고 있었다.

[여기는 비둘기...현재 목표가 건물을 나서고 있다. ]

[여기는 참새 현 위치에서도 목표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목표는 오른 손에 확인 되지 않은 가방을 들고서


이동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

[여기는 갈매기! 내가 목표를 마주 지나치며 오른손에 든 물건을 확인 하겠다. ]

팀원들은 모두 무선 이어폰을 착용하고 저마다 각자의 행동을 하며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야! 너네 놀로 왔냐? 뭐하는 거야! 지금. 이게 무슨 90 년대 군대 무전기야? 그냥 경호나 똑바로 해!


이것들아! 그룹 통화가 무슨 무전긴 줄 알아! 그리고 자기 이름 댈 때 앞에 ‘새’ 이름 붙이지 마! 듣기
싫으니까 다 빼도록 해! ]

이어폰으로 팀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 팀장이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다들 조용해 진


가운데 누군가 한명이 조용히 대답했다.
“난 괜찮던데. 부엉이!”

[마! 너 누구야? ]

갑자기 나 팀장의 암호명인 부엉이를 누군가 얘기하자 목소리를 듣고 흥분한 나 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두목 독수리! 간이 부은 부엉인가? 현장에 나가 있는 다른 조류들! 지금부터 실수 없이 업무 진행하도록


한다.”

독수리 암호명을 사용하는 심 실장이 부엉이와는 달리 얘기하자 다시 ‘새’ 이름을 사용한 보고가 이어졌다.

[여기는 비둘기! 목표와 거리 유지하며 계속 따라 붙고 있다. ]

[여기는 갈매기! 현 위치에서 참새가 목표를 스쳐 지나가는데 성공한 모습을 확인했다. ]

[여기는 참새! 목표의 오른손에 든 것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든 애완동물 캐리어로 예상된다. ]

그랬다. 혹시 갑작스럽게 발생할 일을 대비해 심부름센터 직원 모두가 그룹 통화에 참석해 있었다.

심 실장은 서류를 챙겨보다 현장에 나가 있는 나 팀장 무리와의 보고를 들은 뒤 폰의 송화차단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분홍에게 업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을 유성을 찾아 회의실로 이동했다.

“저기 유성군! 핑크에게 설명 들어서 대충 아시겠지만, 유성군의 맡아 주었으면 하는 의뢰는 저와 함께


재향군인회를 비롯해 군수물품에 대한 납품 비리와 그리고 정치적으로 연결 관계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찾아오는 일입니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고 약간은 합법적이지 않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네. 실장님 방금까지 핑크 누나에게 대충 설명은 다 들었습니다. 그럼 저는 실장님과 함께 움직이게 되나요?”

“네 유성군이 의뢰를 수락하다면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

“그럼 실장님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유성이 잠시 고민하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유성군.”

“유성아 나가 있을 게 생각 정리되면 나와서 말해줘.”

유성이 심 실장과 핑크에게 가볍게 목례하자 둘은 유성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위해 회의실을 벗어났다.

그렇게 핑크와 심 실장이 회의실에서 나가자 유성은 고니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니야 쉽게 말해서 진아 경호 업무는 지금 나 팀장님의 팀이 나가 있는 것 같고, 심실장님과 내가 핑크 누나의


상황 통제아래에서 ‘창무회’에 가담했으리라 생각되는 사람들의 정보나 비리를 찾는 거라는 말이었지?’

-네 한유성님이 세운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심 부름센터’에서 이미 확보되어 있는


정치권에 대한 정보는 생각지도 못한 플러스 요인이라 판단됩니다.

‘그러게 그건 나도 생각도 못했는데 미리 정치관계자들의 비리나 스캔들 등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 정말


의외의 소득이었어. 그럼 일단은 여기서 일을 도와서 같이 정보를 찾아 보도록 하고, 고니 너는 인터넷을 통해
계속 알아봐줘.’
-네 한유성님 현재 경찰청 컴퓨터 서버는 접속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군 서버는 ‘삼족오’에게 도움을 요청
했으나 아직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대기 중에 있습니다.

‘응 수고했어. 고니야.’

유성은 고니와 얘기를 나눈 후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 얘기했다.

“이번 의뢰 맡도록 하겠습니다.”

유성은 그렇게 자신이 설계한 계획을 한 단계씩 실행하기 시작했다.

***

-Episode

정 차관은 지난 밤 유성과의 얘기를 통해 정치적인 이유로 ‘창무회’에서 반대파인 자신을 협박 또는 회유하기


위해 자신의 딸인 진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삐리리 삐리리 철컥! 네 차관님! 말씀하십시오. ]

“음..오늘 오전에 일이 있어서 오후에 도착할 것 같으이. 점심 끝나면 바로 회의 좀 준비해 주게.”

[네 알겠습니다. 차관님. 그렇게 조치해 두겠습니다. ]

“음...오후에 봄세. 철컥!”

출근 시간을 오후로 조정한 정 차관은 평소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며 가족들과 인사했다.

“주말에 봐! 아빠.”

“응. 우리 딸 혹시 주위에 이상한 놈들 있으면 바로 아빠에게 연락해.”

“칫..내가 무슨 애긴 줄 알아?”

“큼..아빠 말 흘려듣지 말고 이상한 놈들 있으면 바로 연락해.”

“진아야. 아빠 늦겠다. 여보! 그럼 다녀와요.”

“딸! 해지면 일찍 집에 들어오고...”

“알았어! 아빠! 그렇게 할게.”

거듭된 아빠의 당부에 질린 진아가 대답하자 그제야 정 차관은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정 차관은 택시에 올라 김해 공항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을 얘기했다.

지난 밤 유성에게 강력하게 추천 받은 흥신소에 도착한 정 차관은 그곳에서 보디가드를 고용해 진아의 주변을 지켜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럼 부탁 하겠소. 그리고 특별히 우리 딸이 예민한 편이라서 말인데... 보호받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네. 가능 합니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다면 대상을 지근거리에서 떨어져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들의 신원을 확보하는 데로 바로 연락 주시오.”

또한 정 차관은 유성에게 건네받은 자료를 흥신소 직원들에게 넘겨주어 남해에서 진아의 뒤를 노린 무리의 정체도
알아봐 주기를 부탁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객님.”

“그리고...여기 이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정 차관은 그렇게 오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업무를 개인적으로 마무리 한 후 자신의 라인을 소집해 이번 진아
납치 미수 사건의 대책을 마련키 위해 김해 공항으로 이동해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장에서 발로뛰기

***

유성은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이번 일이 생각보다 파이가 너무 큰 것 같은 확신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도와 줄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렸다.

사실 그랬다. 아무리 유성은 자신의 신체 스펙이 뛰어나고 고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제 갓 성인이
되어 사회적인 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한 자신이 혼자서 위험에 노출 되어 있는 진아의 경호 업무를 하면서 배경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단체에 맞서는 것은 솔직히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런 생각 끝에 유성은 정 차관을 움직여 심부름센터에 의뢰를 해 핑크 일당이 이번 일에 자신과 함께 참여 할 수


있도록 물밑 작업을 해두는 한 편 유사시에는 공권력에 힘도 살짝 빌릴 수 있도록 정 차관과의 연결고리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성에게는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기보다는 이미 손발을 맞추어 본 경험이 있는 핑크 측


사람들이 훨씬 편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의뢰인이 넘긴 사진을 조사해서 나온 이들에 대한 조사 결과야.”

오늘 유성과 함께 일을 하는 동안 친해진 심 실장이 편하게 말을 놓으며 사진이 담겨 있는 서류 뭉치를 유성에게


건네며 말했고, 유성은 심 실장이 건넨 서류를 받아 확인해 보니 자신이 남해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정보가
담겨있기에 보다 꼼꼼히 읽어보면서 질문을 섞었다.

“이 사람들 직책은 무슨 실장 팀장으로 회사 같지만 업무 내용은 조폭 같은데요.”

“맞아. 조폭이라고 봐도 무방해. 사실 대전 일대에서 주로 밤에 활동하던 건달들인데 요즘은 금융 간판 걸어두고


낮에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

심 실장에게 설명을 듣고 난 유성은 사채시장 쪽 조폭들이 왜 진아를 노렸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기위해 심


실장에게 연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실장님이 보여 주신 자료를 살펴보면 이 자들은 사채를 주로 굴리는 게 주 업무 인 거 같은데 왜 대전에
있는 놈들이 부산까지 와서 움직여요?”

“요즘은 조폭들도 꼭 자신의 지역만 돌아다니지는 않아. 국회의원 선거도 보면 꼭 자기 지역구에서만 후보로
출마하는 건 아니잖아. 여기 저기 필요에 의해서 다 옮겨 다니는 거지.”

“국회의원 선거라면 작년에 하기는 했는데 정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되려고


하는지······.”

“그래 어려운 정치 얘기는 그만두고 다시 이놈들 얘기를 해보자면 조금만 더 파면 부산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조만간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아 그래요? 부산에서도 무슨 사채 사업을 하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부산을 통해서 돈세탁을 하는 것 같아. 물론 그 돈이 실제로는 정치권 뒤를 봐주고 있다고
보면 되겠지만. 문제는 이놈들이 누구네 집 개 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거지.”

유성과 심 실장은 대전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량 안에서 그렇게 한동안 얘기를 주고받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실장님은 여기에 개 주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일단은 그렇다고 의심은 하고 있지? 더 찾다보면 개 주인의 집 주인도 찾을 수 있고 계속 더 나올지도 모르지.”

유성은 이렇게 심 실장과 함께 때로는 단독으로 움직이며 정보를 계속 끌어 모았다.

그렇게 유성은 발 빠르게 움직이며 정보를 모으며 조금씩 ‘창무회’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

[똑! 똑! ]

대전 유성구에 있는 빌딩의 꼭대기에 있는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누군가


두드린 노크 소리에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와.”

그의 낮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울리자 곧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와 인사했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들어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하는 남자는 지난 번 남해에서 유성에게 변태 ‘바바리 맨’으로 오인 받았던 지
실장이었다.

“어 그래. 지 실장 왔나? 남해에서는 고생 많았다고?”

천 사장이 창문 밖을 보고 있다 지 실장을 돌아보는 눈빛에는 여전히 차가움이 녹아 있었다.

“죄...죄송합니다. 목표 탈취 직전에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계획에 실패했습니다.”

천 사장의 눈빛을 보고 이 자리가 남해에서의 실패에 대한 질책을 논하는 자리라 직감한 지 실장은 입술을 꽉
깨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 실장! 애들이 일하다보면 그럴 수 도 있잖아. 안 그래? 그 일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려고 부른 게 아니니


지금은 걱정 하지 말라고. 오늘 부른 건 다른 게 아니고 지난번처럼 지 실장이 부산에 가서 총알 좀 만들어
와야겠어. 그러니 지금 하던 일은 다른 애들 시키고 부산에 가서 물건 좀 받아 와야겠어.”

천 사장의 말을 듣고 그제야 숨통이 트인 지 실장이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네 사장님! 그럼 지난번과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면 됩니까?”

“그래. 지난번에 한 대로만 하면 돼. 얘기는 미리 다 해 두었으니까 지 실장은 지금 가서 물건만 받아오면 돼.”

“네. 지금 다녀오겠습니다. 사장님!”

천 사장은 자신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가려던 지 실장을 불러 세우곤 마치 방금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한 표정을


보이며 얘기했다.

“아 참! 지 실장 아직 신혼이었지?”

지 실장은 천 사장의 질문에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들었던 와이프의 한 마디

‘자기야! 오늘 우리 결혼한 지 며칠인지 안 잊었지? 일찍 들어와야 해!’

가 떠올라 바로 대답했다.

“네 사장님 오늘이 결혼한 지 딱 100 일입니다.”

지 실장의 100 일이란 얘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그 싸늘한 표정으로 바뀐 천 사장이 냉기를 풀풀 흘리며
얘기했다.

“이런 그럼 오늘 중요한 날이라 지 실장은 안 되겠군. 내가 직접 갔다 와야겠어.”

“아...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잠시 착각 했나 봅니다. 어제가 분명 100 일이었을 겁니다.”

천 사장의 싸늘해진 표정을 보고 다급해진 지 실장이 자신이 했던 말이 실수였음을 시인하자 그제야 싸늘했던 천
사장의 표정이 바뀌고 목소리에도 조금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도 되는데... 회사에 중요한 일이니 다른 애들 시키지 말고 꼭 지실장이 직접 갔다 와야 하는 거


알지?”

“네! 사장님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천 사장에게 급하게 인사하고 돌아서 방을 빠져 나온 지 실장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나서야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이 팀장도 대신 못 보내겠네. 아우!”

사실 그 짧은 시간동안 지 실장은 안돌아 가는 머리를 굴려 이 팀장에게 자신을 대신 해 부산에 다녀오라 하려


했었는데, 천 사장은 그 계획을 알고 그랬는지 아니면 모르고 그랬는지 지 실장이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아예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쐐기를 박아 버렸던 것이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지하로 내려와 자신의 차에 오른 지 실장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와이프에게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죽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삘릴릴리! 삘릴릴리! 철컥! 오빠? 어디야? ]

“어... 난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늘 못 들어갈 거 같아...”

[오빠 뭐라고? 아니 집에 온지 하루 밖에 안 됐는데 또 외박이라고? 그 회사는 무슨 매일 매일이 직원들이랑


회식하는 게 일이야? ]

아직 지 실장이 다니는 직장이 건전한 금융회사로만 알고 있는 어린 와이프는 숨도 쉬지 않고 랩을 하듯 지


실장을 쏘아 붙였다.

“아...아니야! 회식은 무슨.. 아니야! 진짜 술 먹는 거 아니야.”

[술이 아니면 뭐 출장이라도 간다고 얘기 하려고? ]

“어?... 그래 맞아... 이번엔 부산 출장이야...”

[그러시겠지. 지난 주말엔 남해 갔다 왔으니 이번엔 부산 다음엔 서울까지 출장 가겠네. 무슨 회사가 주말에도


출장을 보내? 그게 말이 돼? 오빠! 그냥 집에 들어오지 말고 계속 출장만 다녀! 철컥!]

“아흐...이번엔 정말인데...뭐라고 시원하게 얘기도 못하니...”

그랬다. 지 실장은 가끔 회식할 때 출장을 핑계대고 집에 들어가지 않다가 와이프에게 걸린 적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직장에 대해 떳떳하게 밝히지 않고 지금의 어린 와이프와 결혼한 터라 답답하기만 했다.

“쩝. 이번엔 부산 갔다 올 때 백화점이라도 들러야겠군.”

그리고 평소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는 지 실장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어린 와이프가 아침에 집을 나서는 그에게
미리 일찍 들어오라고 당부를 해둔 터라 오랜만에 일찍 들어가 결혼 100 일 케잌에 촛불이라도 같이 끄려 했었다.

하지만 꼼짝없이 지금은 천 사장이 내린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산 방향으로 핸들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

심 실장과 유성은 정치인과 건달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대전과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의 뒤를 캐고 다녔다.

“유성아 이 사람은 보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여기 지역구 4 선 국회의원인데 오늘 저 곳에서 은밀히 회동을


가진다고 하네.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분명 저곳에서 중요한 얘기가 오갈
것 같단 말이지.”

유성은 심 실장이 보고 있던 사진을 확인하고 심 실장의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실장님 제가 금방 촬영 다녀올게요. 여긴 제가 맡을 테니 이동해서 다음 타깃 설정해 두세요. 이따가 작업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어 그...그래 수고해. 유성아.”


차에서 내린 유성은 조수석 창문으로 걱정이 담긴 눈빛을 보내는 심 실장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는 건물을
향해 돌아섰다.

돌아선 유성은 심 실장 무리와 그룹통화가 연결되어 있는 무선 이어폰을 오른쪽 귀에 착용하며 4 선 국회의원의


약속이 잡혀 있다는 건물을 향해 이동하며 말했다.

“여기는 난폭한 병아리 지금부터 건물로 진입하겠다.”

건물로 들어선 유성은 엘리베이터 옆에 위치한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며 고니에게 말했다.

‘고니야 건물 내부 확인해서 살펴 봐 주고, 사진에서 본 국회의원 지금 어디 있는지 확인해줄래?’

-네 한유성님 ‘주변 정찰’ 스킬을 사용한 결과 현재 건물내부에는 목표가 없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건물 내부


투시도는 축소시켜 홀로그램으로 출력하겠습니다.

유성은 고니가 눈앞에 띄워준 홀로그램을 통해 어렵지 않게 건물에 대한 구조를 파악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유성의 머릿속에 고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한유성님 경찰청 서버 접속을 통해 CCTV 를 확인해 본 결과 목표 국회의원이 탄 차량이 10 분 정도 후에 이


건물 지하 주차장에 도착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OK! 고마워.’

“여기는 난폭한 병아리. 곳 목표와 엘리베이터에서 1 차 만남 후 작업 시작하겠다.”

[알았다. 수고해라 난폭한 병아리. ]

잠시 후 목표한 국회의원이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고니의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한유성님 목표가 지하 3 층 주차장에서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로 이동합니다. 지금 속도라면 60 초 후에 1 층을


지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OK! 그럼 이제 슬슬 나가서 엘리베이터에 합승해 볼까?’

고니에게 얘기를 들은 유성은 남자 화장실에서 모자를 눌러쓴 채로 천천히 빠져나와 국회의원이 지하에서 탑승해
올라오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1 층에 멈추자 자연스럽게 탑승하면서 목표와의 1 차 만남을 가졌다.

사관 메뉴

***

엘리베이터에 오른 유성은 왼쪽에 보좌관으로 보이는 사람의 경호아래 서있는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을 한 목표
국회의원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모자를 다시 한 번 눌러쓴 유성이 그들과 등을 돌리고 서서 현재 엘리베이터에 눌러져 있는 제일 높은 7 층보다


한층 높은 8 층에도 매장이 있음을 확인하고 버튼을 눌렀다.

‘고니야! 요인 구조 스킬 사용하고 바로 녹화 부탁할게.’

-네 한유성님 대상에게 ‘요인 구조’ 스킬을 지금 즉시 사용합니다. 동시에 녹화에 들어갑니다.


‘고니야. 그리고 혹시 폰도 가능한지 확인해봐.’

-네 한유성님 시중에 나와 있는 기종으로 폰 복제 가능한 모델입니다. 폰 복제 바로 시행합니다.

‘호! 이번 목표는 생각보다 순조로운 진행이네.’

사실 유성이 계속된 첩보(?)활동을 통해 만남(?)을 가진 목표들이 가진 폰 중에는 기존 시중에 나와 있는 모델이


아닌 따로 수작업 한 모델도 간혹 있어 유성의 아이템 중 하나 인 ‘스마트 폰’ 고유 기능인 복제가 불가능 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어쨌든 유성은 이렇게 목표로 한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요인경호’와 ‘폰 복제’를 통해 양질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정보는 유성이 선별작업을 통해 녹화된 영상에서 음성만 따로 편집해 핑크에게 전달했고
복제한 폰에서도 일부 필요한 자료만 뽑아 제공했다. 그렇다 해도 유성이 전달하는 정보의 양은 무시하지 못할
크기임에는 틀림없었다.

사실 그랬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유성에게 핑크가 가끔 원격으로 드론을 조종해 지원해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유성은 고니와 자신이 보유한 스킬의 힘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힘들지도 모르는 첩보 활동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척척 수행해 나갔다.

물론 이런 유성의 능력을 옆에서 지켜보고 확인하는 심 실장과 핑크는 유성에게서 계속 이어지는 놀라움을 멈출
수가 없었다.

“유성아! 넌 어디다가 도청기를 그렇게 잘 숨기는 거야?”

“아냐 삼촌! 그것보다 목표들 폰에는 도대체 어떻게 스팸 프로그램을 뿌린 거야?”

유성은 이렇게 쏟아지는 질문에 모두 모르쇠를 유지했다. 괜히 거짓말을 시작하면 끝이 없이 이어져야 했기에
차라리 이방법이 최선이었다.

“하하 모두 제 개인 기업 비밀입니다.”

“쩝. 분명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애가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아닌데.”

심 실장은 아쉬움을 표현하는 말을 남겼고 핑크는 장르 소설에나 나오는 주인공에 대한 얘기를 흘렸다.

“유성이 너 영화나 드라마에 가끔 나오는 인생 2 회 차 뭐 이런 거 아냐?”

“헐...만약 제가 그랬으면 저 이런 힘든 일 안하고 로또 사고 조용히 살았을 겁니다.”

핑크의 얘기에 유성은 정색하며 대답했고, 심 실장이 그런 유성에게 고마움을 담아 말을 전했다.

“여튼 지난 한 주 동안 유성군 정말 수고 많았어. 덕분에 대충 의심 가는 사람들에 대한 조사는 대부분


성공적으로 이루어 진 것 같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따로 필요하면 연락 할 테니까 그 때도 지원 꼭! 부탁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심 실장과 유성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본 핑크가 농담을 걸기 시작했다.
“유성아 정말 수고 많았어. 나 사실 이번에 같이 일하면서 너한테 중독된 거 같아.”

“누나 거기까지! 선 넘지 말고.”

유성은 핑크의 농담이 더 길어지기 전에 차단해 버렸다.

“췟! 무슨 남자가 빈틈이 하나도 없냐? 재미없게. 아참! 조금 전에 아람이가 수학여행에서 사온 선물 주겠다고
전화 왔던데 유성아 너도 같이 만날래?”

일반인에 비해 높은 스탯을 보유한 유성은 신체적으로는 아무 문제없었지만 한 주 동안 집 밖에서 지내며 쌓인


정신적인 피로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유성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난 빼줘 핑크 누나. 지금은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 씻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네요.”

“그래 넌 얼른 집에 가서 좀 쉬어. 어차피 내일 아침에 넌 아람이 집에 가면 선물 받을 텐데.”

“네 저 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요.”

“어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유성군 전화할게.”

그렇게 유성은 지친 정신을 붙들고 차에 올라 고니에게 지시했다.

“일단 집으로 가자. 고니야 자율주행모드 부탁할게.”

-네 한유성님 차량에 보조적으로 있는 ‘자율 주행 모드’ 기능을 사용해 운전을 시작합니다.

유성은 고니에게 운전을 부탁하기는 했지만 디지털 아이템으로 등록되어 있는 까망이와는 달리 SUV 차량은 측면
주차와 같이 세밀한 운전은 유성이 직접 해야 했기에 잠깐 눈을 붙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휴우...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 딱 그 짝이었어. 도착하면 깨워줘.”

-네 한유성님.

***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씻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후에야 조금 정신적인 피로가 풀림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과 거실에서 다과를 먹으며 잠깐 얘기를 나눈 후에 유성은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방안에 들어서자 유성이 일주일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아 살짝 먼지가 앉아 있는 캡슐이 유성의 눈에 들어왔다.

“잠깐이긴 하지만 차에서 눈 좀 붙여도 정신적인 피로는 안 풀리더니 그래도 신기한 게 집에 들어오니 숨도 좀
트이는 것 같고 조금 살 것 같네.”

-네 한유성님 스트레스 수치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 많이 떨어진 것으로 확인됩니다.

“나도 그런 것 같아. 그럼 오랜만에 캡슐에 접속해서 쓸 만한 아이템이나 스킬을 좀 더 만들어 볼까?”

-네 한유성님 스킬 획득이나 아이템도 현재 한유성님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현재


한유성님의 정신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20 을 넘긴 상황입니다. 다른 스탯에 비해 부족한 정신력을 보완할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할 것을 추천합니다.

“그...정..신력이라면? 예전에 화생방 체험 하고 나서 오른 스탯 말하는 거지?”

사실 유성은 화생방 체험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 높은 동기화율로 인해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CS 탄에게 혼


줄이 난 이후 의도적으로 화생방 관련 체험은 피해 왔었다.

-네 한유성님 화생방 메뉴처럼 정신력 수치를 높여 줄 수 있는 메뉴 선택을 추천합니다. 앞으로 정신력은 4


포인트만 더 달성하게 되면 모든 스탯이 20 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럼 정신력 올려주는 메뉴가 화생방 관련 말고도 또 있어?”

-네 한유성님 지난주 항공작전 후에 새로 개방된 사관메뉴를 찾아보면 정신력을 담당하는 메뉴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뭐? 사관 메뉴는 또 뭐야?”

-네 지난 주말 한유성님께서 출동해 공항에서 인명을 구하며 새로 받은 칭호로 인해 사관 메뉴가 개방되었습니다.


일단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메뉴를 찾아보면 정신력 관련한 메뉴가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지난주에 내가 칭호를 새로 받았다고?”

-네 한유성님께서 작전을 완료 한 후에 보상과 함께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아! 지난 항공 안전 작전을 성공했었구나. 바빠서 확인도 못해봤네. 오랜만에 그럼 스탯이랑 새로 받은 칭호 한


번 확인해 볼까?”

-네 한유성님의 상태창과 스탯창을 홀로그램형식으로 출력합니다.

[스...팟! ]

[체험병 : 한유성]

[칭호 : ‘겸인지용(兼人之勇)’, ‘살신성인(殺身成仁)’ ]

[힘:20 민첩:22 체력:21 정신력:16]

[취사병 체험 LV.7 EXP 20/3840]

[운전병 체험 LV.7 EXP 120/3840]

[소총사격 체험 LV.6 EXP 480/1920]

[수류탄 투척 체험 LV.4 EXP 10/480 ]

[병영 축구 체험 LV.6 EXP 280/1920 ]

[화생방 훈련 체험 LV.1 EXP 50/60 ]

[행군 체험 LV.4 EXP 10/480 ]


[전투 수영 체험 LV.4 EXP 20/480 ]

[특전 : 가상현실 동기화율 (SSS) 99.9% ]

[기록 특전 : 완벽한 탄착군, 만발, 도로주행 만점, 일발필중, 선빵 필승 ]

[획득 스킬 : 응급치료, 물리치료, 주변정찰, 동체시력, 해상구조 ······. ]

[융합 스킬 : 치료, 고급 제빵, 정밀 보정 ]

[보유 아이템 : 축구심판의 호루라기, 레시피 북, 신경 안정제, 전투화, 군용방수시계, 스마트 폰,


태블릿······. ]

고니가 출력해준 화면을 보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 한 유성은 고니의 추천에 따라 일단 캡슐에 몸을 실었다.
곧이어 유성의 눈앞에 접속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용자 확인을 위해 홍채 인식을 시도합니다. 확인 중에는 눈을 감지 마세요.]

[삐삐......삐! 사용자 확인이 완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 병영체험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와 신체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삐삐......삐! 동기화가 완료 되었습니다. ]

유성은 새로 개방되었다는 사관 메뉴를 호출했다.

“사관 메뉴!”

[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띠링! ]

[1. 육군 사관 ]

[2. 해군 사관 ]

[3. 공군 사관 ]
[4. 해병대 사관 ]

유성은 하던 데로 접속해서 크게 망설이지 않고 제일 위에 있는 메뉴를 호출했다.

“처음이니 일단 맨 위에 있는 육군부터 둘러볼까?”

[띠링! ]

[육군 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보병과 ]

[2. 기갑과 ]

[3. 포병과 ]

[4. 화생방과 ]

[5. 정보과 ]

“어? 여...기는 부사관 메뉴랑 비슷하네. 갑자기 해군이 땡기네.”

육군 사관 메뉴를 확인 하던 유성이 화생방과가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얼른 해군 사관 메뉴를 바로 호출해 확인에


들어갔다.

[띠링! ]

[해군 사관 메뉴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체험 메뉴를 선택해 주시지 말입니다. ]

[1. 함정과 ]

[2. 항공과 ]

[3. 정보과 ]

[4. 조함과 ]

[5. 병기과 ]

:
:

그렇게 유성은 남은 공군에 이어 해병대까지 모든 메뉴를 확인한 후 고니와 의견을 나눈 다음 사관 메뉴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했다.

[스.....팟]

[띠링! ]

[선택한 사관 메뉴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

***

-Episode

6 월 13 일 금요일은 윤찬의 생일이었다. 아침부터 윤찬은 자신의 생일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돌리는 중인 듯
보였다.

[유성아 너 요즘 많이 바쁘다며? ]

“어. 네가 어떻게 알았냐?”

[방금 진아랑 연락했는데 너 바쁘다고 고니도 진아가 이번 주에 대신 봐주고 있다고 하던데 지금 어디냐?]

“아! 지금 대전인데 이번 주는 조금 바쁘네. 근데 오늘 모이기로 했어?”

[응 너 빼고는 다 오늘 저녁에 만나서 한 잔하기로 했는데... 넌 바쁘면 어쩔 수 없지. ]

“그러게 지금도 대전에서 알바 뛰는 중이라 부산까지 내려가기가 좀 그러네. 그래서 지난주에 남해에서 미리 네
생일 선물 챙겨 줬잖아.”

[뭐? 선물? 그 군용 담배? ]

“그래. 생일 축하 직접 얼굴 보고 못해서 미안하다.”

[쩝...그래 그럼 알바 끝나고 부산 오면 얼굴이나 한번 보자. ]

“어 그래 다음 주에 시간 내서 한 번 보자.”

[그래. 들어가라. 철컥 ]

유성은 심실장과 전국을 떠돌다 보니 많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친한 친구의 생일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전화


통화와는 달리 오후에 일을 마무리 짓고 저녁에 부산에 다녀오기로 결정을 했다.

“실장님 저 부산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올라 올게요.”

“안 피곤하겠어? 그냥 기차나 버스 타고 다녀오는 게 낫지 않겠어?”


“차 시간도 어정쩡하고 그냥 제가 운전해서 다녀오는 게 더 편해요.”

“그래 그럼 운전 조심해서 다녀와.”

“네 다녀오겠습니다!”

심실장과 인사를 나눈 유성은 뽑기를 통해 모아 둔 선물을 윤찬에게 주기위해 부산으로 부지런히 이동했다.
그렇게 유성이 앉은 SUV 운전석 뒤에는 국방색을 가진 물건이 상자에 가득 들어 있었다.

윤찬 생일

***

불금 저녁 윤찬의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는 노래 주점 앞에 도착해 차를 주차한 유성은 나경에게 톡을 보냈다.

「나 도착했어! 」

「나경 : 응 3 번방이야. 얼른 와. 」

유성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윤찬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친구들을 놀래 주려던 처음 생각을 접고 아무래도
나경한테는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 촉이 발동해 미리 귀띔을 해 둔 상태였다.

유성의 친구들은 벌써 거나하게 마셨는지 노래 주점 일행의 방 앞에 도착하니 음정 박자를 무시한 노랫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유성은 왕진 백팩 가방에서 윤찬을 위해 미리 만들어 무기고에 보관해 둔 케잌을 꺼내어 초에 불을 붙이고


나경에게 톡을 보냈다.

「준비완료! 」

「나경 : 응! 」

나경의 신호를 받은 유성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경을 제외한 나머지 3 명은 홀 한쪽 벽에 설치된


스크린의 노래 가사를 보며 소음을 만들어 내기에 바빠 유성의 등장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유성이 들어서자 리모컨을 들고 있던 나경이 지금 노래를 강제 종료 시키고 다음 예약곡을 바로 재생했다.

[빠빰빰빰빰빰! 생일축하 합니다! ♬♪... ]

스피커에서 갑작스레 노래가 멈추더니 생일 축하곡이 울려 퍼졌다.

갑자기 바뀐 노래에 홀 앞에서 신나게 노래하고 있던 일행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케잌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하는 유성이 보였다.

유성을 확인 한 윤찬도 환환 웃음을 짓고 노래가 끝나자 크게 심호흡한 뒤 촛불을 껐다.

“후우!....우....”

“소원 빌었어?”

“당연하지! 그런데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지만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훌쩍...”


촛불을 끄고 난 윤찬이 갑자기 훌쩍이며 유성에게 말을 전하고는 그 자리에서 유성에게 기대듯이 픽하고 쓰러졌다.

옆에 서 있던 나경이 유성이 들고 있던 케잌을 받아 주자 유성은 잠든 듯 자신에게 기대어 쓰러진 윤찬을 살짝


안아 들고는 소파에 눕혔다.

“생일이라고 급하게 마시더만...”

“아니야! 그렇게 많이 마시진 않았는데...소주 반병정도?”

윤찬이 갑자기 잠이 든 듯이 쓰러지고 노래가 끊어져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어색해 하는 친구들에게 유성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윤찬이 잠들어서 하는 말인데, 저놈 다시 생일날 밖에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야. 긴장해서 그럴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생일날 밖에 처음 다시 나오다니?”

진아의 물음에 유성이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이런 말 내가 미리 해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저 놈 성격에 이대로 두면 언제까지고 말 안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너희들은 친구니까 알아두어야 할 것도 같고...”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에 여우 셋은 침만 꼴딱 꼴딱 삼키며 유성의 입술에 집중했다.

“사실 윤찬이 생일이 아빠가 돌아가신 날이거든.”

“응?”

“헛!”

“그게 무슨 말이야?”

“음...사실 윤찬이 초 6 생일 전날 출장 갔던 아빠가 생일 챙겨 주려고 무리해서 일 빨리 끝내고 돌아오시다가


고속도로에서 빗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로 돌아가셨어.”

“흡...어떡해!”

“...윤찬이 많이 힘들었겠네.”

사실 그랬다. 윤찬은 6 학년 생일 이후 자신의 생일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생일만 되면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혼자 조용히 보내려고만 했다. 중학교 내내 이런 유찬을 보다 못한 윤찬의 엄마는 고 1 생일 전에
조용히 유성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유성에게 생일을 챙겨 달라 부탁했던 것이다.

그 이후 유성은 윤찬의 생일이면 홀로 조용히 윤찬의 방 앞에서 초에 불을 붙여 윤찬의 방으로 들어가 위로해
주었던 것이다. 이 후 그렇게 유성은 윤찬과 급속하게 친해졌다.

그리고 오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와 맞이한 윤찬의 생일이었다.

“그..그럼 오늘이 윤찬이 아빠 제사라는 말이야?”


진아가 떨리는 음성으로 유성에게 물었다.

“제사는 음력으로 지내서 다행히 윤찬이 생일과 날짜가 겹치지는 않나봐. 그리고 올해는 지난달에 지낸 것
같았어.”

말을 하던 유성은 어쩌면 달력에 음력과 양력이 있다는 것이 윤찬과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누군가의
배려라는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유성아...내 선물.....”

윤찬의 잠꼬대인지 아니면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위한 시도인지는 몰라도 윤찬의 생일 선물얘기를 들은 유성이
문밖에 잠깐 두었던 국방색의 배낭을 소파 옆에 가져다 놓으며 얘기했다.

“윤찬아 일어나서 선물 열어봐. 여기 국방부에서 나온 캠핑용품 다 가져왔다.”

일명 ‘더블백’이라 불리는 녹색 배낭 안에는 유성이 그 동안 보급 상자에서 챙겨(?)둔 물건이 가득했다.

“어? 이거 지난 번 남해에서 밥해 먹었던 반합이네? 윤찬아 나 이거 가져도 돼?”

“이건 뭐야? 물 담아 먹는 텀블러야?”

“응 맞아. 물 담아 먹는 거. 수통이라고 불러.”

“헛 칼도 있어?”

“그건 군용 대검. 과일 깎을 때 좋아.”

유성이 가져다 놓은 더블백을 주인의 동의도 없이 풀어헤친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이 맘에 든 물건을 하나씩 집어
들고는 눈을 반짝이며 유성에게 용도와 이름을 물었다.

“야! 전부 다 원위치 시켜! 내꺼야!”

어느새 슬며시 일어나 더블백을 품에 안은 윤찬은 친구들이 가져간 보급품 확보를 위해 추격전을 벌였다.

그들에게선 한 톨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휴...앞으론 윤찬이 생일 나 혼자서 챙기지 않아도 되겠네.”

유성은 그렇게 친구들을 돌아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정보 장교를 선택하셨습니다. ]

[잠시 후 근무 지역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

곧 이어 주위가 하얀색 빛 무리로 둘러 싸였다.

[스.....팟]

[띠링! ]
[타타타타....타타타타.....]

시끄럽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Rrrrrrr.....Rrrrrrrr.....통신보안! 정보과 행정병 상병 박..]

정보과 메뉴를 선택한 유성의 눈앞에는 허름한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 두 명의 사병과 부사관 그리고 자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사관 체험 : ‘정보장교 체험’

-군 내에서 쓰는 전산망 관리 및 그 외 정보관련 사이버 전에 대비 태세를 갖추는 역할을 하는 정보장교로


발령받은 신입 장교(소위 한유성)로서의 업무를 체험하고 파악하라.

-정보장교로 발령받은 신입 장교(소위 한유성)은 24 시간 동안 업무를 체험하고 상급자로부터 업무 적격 판정을


받아라.

-체험 성공 시 : 스킬 - 경험치 획득 +@ (업무 적격 판정 - 업무 능력에 따라 차등)

-체험 실패 시 : 스킬 - 경험치 획득 실패 (업무 비적격 판정) ]

유성은 캡슐에 접속해서 오전 일과를 보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업무를 보고 저녁을 먹고 하루일과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오늘 당직 사관이시지 말입니다.”

하지만 행정업무를 보던 사병이 다가와 유성에게 채워준 완장! 유성은 완장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모두가 퇴근한
후에 군에 남아 그렇게 당직 사관이라는 업무를 봐야 했다.

‘도와줘 고니!’

-네 한유성님 홀로그램을 참고해 점호를 진행하시면 됩니다.

고니가 보여준 홀로그램을 따라 어색했지만 점호를 큰 무리 없이 마무리 한 유성은 행정반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이 밤을 보내면 되는 줄 알았다.

“충성! 일직사관님께 불침번 현재시관 인원보고 드리겠습니다.”

역시 행정반에 앉아 쉬려는 유성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별빛하나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새벽이
되자 갑자기 유성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띠링! ]

[돌발임무 - 경계근무지 확인 ]

‘이건 뭐니?’
-네 한유성님 경계근무자들을 돌아보고 확인하라는 임무로 확인됩니다.

[붉은 선을 따라 초소에 조용히 접근해 경계근무자들의 근무태도를 확인하도록 합니다. ]

그렇게 유성은 경계근무 확인을 위해 별빛하나 없는 어둠을 뚫고 대공진지라는 곳에 도착했다. 주변 정찰 스킬을


사용했기에 밤길에도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갑자기 전방에서 유성을 향해 총을 들이밀며 소리치는 아군을 홀로그램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다...당직 사관이다!”

유성은 당황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담배!”

하지만 유성이 반대쪽에서 들려오리라 생각한 경례 구호 대신 갑자기 흡연을 묻는 것이 아닌가?

“안 핀다!”

“담배!”

“안 핀다니까!”

거듭된 질문에 유성은 짜증을 내며 대답했고 반대쪽에서는 장전을 한 것인지 소총의 노리쇠를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이다...담배! 철컥!”

-한유성님 경계근무자의 암구어에 맞는 암구어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오늘의 암구어는 담배/
도라지 로 확인 됩니다.

“사..올까? 도라지?”

그렇게 유성은 암호를 제대로 하지 못해 유성은 몰랐지만 총알을 맞을 위기도 겨우 넘겼다.

유성은 아침 점호까지 마치고 24 시간을 다 채우고 나서야 체험이 종료되어 국방부에서 풀려 나올 수 있었다.

캡슐에 접속한지는 2 시간이 훌쩍 지나 거의 3 시간이 다 되어있었다.

그렇게 캡슐에서 빠져 나온 유성은 고니에게 투덜거렸다.

“사관메뉴? 진짜 정신력이 안 오를 수가 없네.”

-네 한유성님 수고하셨습니다. 정신력 수치가 17 이 되었습니다.

유성은 새로 열린 사관메뉴에서 화생방이 싫어 화학과를 피해 정보과 장교를 선택했었다.

물론 처음 유성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번 사관메뉴에서는 크게 몸이 힘든 작전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고생을 통해 정신력 수치가 1 이 올라 있음을 유성은 확인 할 수 있었다.

***

「유성 오빠 내일 아침에 20 분만 일찍 와줘! 」

아람으로부터 톡이 와 있었기에 월요일 아침 유성은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아람의 집을 향했다.

‘수학여행 선물 주려고 그러나?’

유성은 평소와 같이 주차를 하고 별관으로 들어가 최 관장과 인사를 나누고는 아람이 내려오기 전까지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을 둘러보고 있었다.

거실 벽에는 지난번에 보았던 그림과는 다른 그림들이 걸려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얼마나 하려나?’

유성은 측정 스킬을 사용해 새로운 그림들의 가격을 확인했다.

[스..팟]

[ 작품 : 영호정에서...

작가 : 류건숙

가격 : 200 만원

작품 설명 : 남한강변의 양평 갈산위에 있는 정자로 영호정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붓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현장의 흙모래를 혼합하여 여름날 영호정의 오후 한 때의 정감 있는 분위기를 지두화
(손가락으로 그리는 기법)로 표현하였다.]

‘작가 이름이 류건숙이라? 지난번에 거실에 있던 그림과 같은 분이 그려서 그런지 가격이 비슷한 것 같네.’

-네 한유성님 지난 번 작품 2 점 모두 가격이 200 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던 걸로 확인됩니다.

유성은 측정 스킬을 사용해 거실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을 고니와 함께 얘기를 나누며 그렇게 둘러보고 있었다.

“오빠! 그림 보고 있었어? 이거 수학여행 기념 선물!”

잠시 후 2 층에서 내려온 아람이 유성을 소파로 불러 중국 수학여행에서 사온 선물로 보이는 쇼핑백을 유성에게
전해 주며 물었다.

“이런 거 안사와도 된다니깐. 고마워 아람아! 보니까 전에 거실에 있던 그림이랑 바뀐 거 같아서 둘러보고
있었어.”

“그치? 엄마 말로는 나 수학여행 가있는 동안에 경매로 또 비싸게 팔렸데.”

유성은 아람이 준 선물 포장을 뜯어보며 아람이 하는 말에 별생각 없이 되물었다.

“와! 옷이네! 그건 얼마에?”


“20 억이라던가?”

“뭐? 이게 20 억이라고?”

유성이 20 억이라는 말에 놀라 아람을 빤히 쳐다보며 물어보자 아람이 조금 자세하게 유성에게 설명해 주었다.

“풉! 아니 그 선물 말고 지난번에 오빠가 200 만원 정도 되겠다고 했던 류건숙 작가님의 작품 말이야.”

점심 뭐먹지?

***

유성은 아람의 말에 놀라 선물로 받은 셔츠를 면 티 위에 입어보다 말고 다시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하나씩


눈에 담아 가격을 확인해 보았지만 측정 스킬로 살펴본 그림의 가격은 변하지 않았다.

“뭘 그렇게 놀래?”

“아니 생각보다 그림 가격이 너무 높은 것 같아서.”

“전에 오빠가 얘기했잖아 예술가들은 배고플 것 같다고?”

유성은 아람의 얘기를 듣고 그림 한 점 그리는 시간에 비추어 대충 계산해서 부유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비슷하게 얘기 한 것 같긴 한데 20 억이면 내가 잘못 알고 있었네.”

“사실 오빠 말이 대부분 맞긴 해. 보통 대다수 화가들은 생전에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죽은 후에 반대로


역량에 비해 높게 평가 받기도 하거든.”

유성은 아람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에 확인했던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 아람에게 물었다.

“그럼..이 그림을 그린 작가님도 죽고 나서 가치가 고평가 된 거야? 아무리 그래도 200 만원에서 20 억이면
도대체가 몇 배야?”

“응. 류건숙 작가님도 돌아가시고 나서 고평가 받는 분이긴 하지. 근데 오빠? 전에도 궁금했는데 200 만원이란
가격은 어디서 나온 기준이야?”

“하하..그게 그냥 내가 전에 비슷한 작품을 봤는데 그 정도 가격이었던 거 같아서...”

유성은 지금도 아람의 거실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의 가치를 홀로그램으로 확인 하면서 어딘지 모를 의아함이 계속
느껴졌다.

[ 작품 : 영호정에서...

작가 : 류건숙

가격 : 200 만원

작품 설명 : 남한강변의 양평 갈산위에 있는 정자로 영호정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붓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현장의 흙모래를 혼합하여 여름날 영호정의 오후 한 때의 정감 있는 분위기를 지두화
(손가락으로 그리는 기법)로 표현하였다.]

“오빠 내 선물은 맘에 들어?”

아람이 선물로 사온 옷을 입은 채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유성은 아람의 목소리에 소파에서 일어섰다.

“응 맘에 들어! 근데 이건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브라..우니? 중국에서 산거면 그렇게 막 비싸고 그러진 않지?
비싸면 부담돼서 못 입거든.”

유성은 아람이 중국 수학여행에서 사온 고가의 이탈리아 명품 남성복 브랜드 셔츠의 가격은 측정해 볼 생각도
안하고 아람에게 영어 필기체로 적혀있는 브랜드를 읽기 힘들어 물어보았다.

“....응 맞어. 브라우니는 아니고 ‘브리우 X’라고 수학여행 갔다가 용돈이 남아서 산거야. 오빠 그냥 편하게
입으면 돼. 헤헤.”

아람은 유성에게 쇼핑백을 전해주기 전에 가격표와 감정서 등을 따로 빼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난 이런 셔츠 보다는 그냥 트레이닝복이 더 편한데 어쨌든 잘 입을게.”

“그럼 내년 졸업 여행에는 트레이닝복으로 사올게.”

“시끄러! 넌 이 케잌이나 얼른 먹어! 학교 늦지 않게!”

아람은 남성 트레이닝 복 브랜드를 떠올리며 유성이 구워와 거실 테이블에 꺼내놓은 초코 케잌을 얼른 집어 입에


넣었다.

“우와! 오빠 이 부라우니 정말 맛있다.”

***

광안리에 있는 카페에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서며 누군가를 찾는지 두리번거렸다.

카페 안 유리 칸막이로 둘러쳐진 세미나실 안에 앉아있던 핑크가 남자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저기 핑...크님?”

핑크색으로 물든 복장과 안경을 보고 남자는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거리를 약간 두고 물어보았다.

“네! 안녕하세요. 승진이 아버님 되시죠?”

“네. 맞습니다. 덕분에 요즘은 아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밝은 얼굴로 핑크와 남자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행이네요. 아버님이 경찰 공무원이시라 따로 접대 같은 건 받지 않으신 다기에 제 음료 주문하면서 아버님


걸로는 시원한 얼음물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 정도는 경찰 공무원도 괜찮죠?”

핑크의 물음에 경찰복을 입고 있는 남자는 다소 민망해 하며 대답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들어가 봐야 해서...”

“다른 게 아니라 아버님께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아! 제가 도움이 된다면 도와 드려야죠. 뭐 주위에 나쁜 놈들이라도 잡는 일인가요? 하하!”

남자는 지난번에 받은 호의를 이번 기회에 갚을 수 있다 생각하다 다소 크게 웃은 게 민망했던지 앞에 놓인


얼음물을 벌컥 벌컥 들이켰다.

“네. 맞습니다. 제가 말을 둘러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바로 말씀드릴게요. 아버님 ‘창무회’ 잡도록


도와주세요!”

“컥!...큼..큼...”

핑크의 말에 마시던 얼음을 하마터면 핑크에게 뱉을 뻔 했지만 얼음물이 든 잔을 겨우 내려놓으며 승진아빠는


핑크를 쏘아보았다.

“서울 중앙지검에서 군납 비리 업체를 발견하고 수사 하던 중에 상부로부터 수사 종결 외압이 떨어졌고 이를


무시하고 계속 수사를 감행하다 결국엔 수사를 진행하던 검사부 모두가 경질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핑크의 얘기가 이어지자 남자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핑크를 노려보았다.

“제 뒷조사를 한 겁니까?”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님도 알다시피 저희는 사설탐정과 같이 의뢰 받은 일만 합니다. 얼마 전 받은


의뢰를 조사 중에 서울 중앙검찰청에서 ‘창무회’를 수사하다 경질된 검사부 소속 중에 부산으로 오게 된
수사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문득 전에 아버님께 받은 의뢰가 생각나 알아보니 부산으로 온 수사관이 아버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 부탁드립니다. 나쁜 놈들 잡을 수 있도록... 그동안 ‘창무회’에 대해 모은 수사기록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아버님.”

핑크의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남자가 힘없이 대답했다.

“저...는 승진이도 돌봐야 하고 저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조사하면 당신도 위험하게 될
겁니다.”

핑크는 포기하지 않고 결의에 찬 눈빛을 보내며 남자에게 말했다.

“아버님과 승진이에게는 절대로 폐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들이 아버님께 씌운 뇌물 수수 경찰 누명은


벗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가능 할 겁니다.”

핑크는 힘없는 표정의 남자에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한 번 믿어 보세요. 이렇게 있는 아버님의 모습보다는 분명히 아버님의 올바른 선택을 승진이는 더욱 자랑스러워
할 겁니다.”
“꼬르륵...”

이 와중에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에 비장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렸다.

“저희 자리 옮겨서 점심부터 먹으며 얘기 나눌까요?”

“저..그럼 점심은 어떤 걸로?”

“전 아무거나 잘 먹어요.”

핑크의 말을 들은 남자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깊은 고민에 빠진 듯 심각하게 바뀌었다.

***

유성에게 무기고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부족한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모두가 잠든 저녁 시간에 무기고에 들어가 빵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음식 재료


준비 및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나와 하루 일정을 소화했다.

물론 낮에도 필요할 땐 무기고에 들어가 시간을 활용하는 일이 요즘 들어 부쩍 많아지긴 했다.

오늘도 지난밤에 유성이 무기고에 들어가 혼자 열심히 노력한 덕택에 오전에 빨리 빵을 카페 진열대에 채워 넣고
유성은 심부름센터 사무실로 향했다.

[딸랑! ]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서니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한숨짓던 심 실장이 일어나 유성을
반겼다.

“유성군 왔어? 커피 줄까?”

“아뇨. 카페에서 나오기 전에 커피 마셨습니다. 그냥 물 한잔만 부탁합니다.”

“그럼 밥은 먹었나? 아무리 검색해도 혼 밥 메뉴는 적당한 게 없어서 말이야.”

아무래도 들어올 때 심 실장이 심각하게 보고 있던 건 점심메뉴였던 것 같았다.

“전 빵 만들면서 계속 집어 먹다 보니 괜찮습니다. 실장님 괜찮으시면 여기 제가 만든 빵 좀 드세요.”

유성이 밥을 먹지 않겠다는 말에 실망해 표정이 좋지 않던 심 실장은 오늘 자신의 점심 메뉴가 유성이 만든


빵으로 해결 될 것 같아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 마침 출출했는데 잘 먹을 게.”

그렇게 심 실장의 먹방을 유성이 구경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딸랑! ]
“삼촌! 문 좀 자동문으로 바꿔 주면 안 돼? 들어올 때 마다 너무 불편해! 어? 유성이 와 있었어?”

전동 휠체어에 탄 핑크가 투덜거리며 들어서다 유성을 보고 인사했다.

“응 누나. 지금 출근해?”

“아니 경찰 측 관계자 좀 만나서 정보 받아오느라 직접 외근 나갔다 오는 길이지! 누군 편하게 사무실에서 빵이나


뜯고 있는데 말이지.”

핑크는 심 실장을 한 번 흘겨 바라보고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실장님이나 팀장님들 시키지. 불편하게 왜 누나가 직접 다녀와?”

“어쩌겠니? 이런 고급 정보를 다루는 일은 내가 아니면 불가능 하니 불편해도 내가 나서야지. 어? 근데 내 건 뭐


없어?”

심 실장이 거의 다 먹어 정작 먹을 만한 빵이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걸 확인 한 핑크가 유성에게 묻자 유성은


가방에서 따끈따끈한 핑크가 좋아하는 디저트 류들을 꺼내어 놓았다.

“왜 없겠어? 여기 다 준비 해 두었지. 그래도 누나 이렇게 돌아다닐 정도면 많이 좋아졌나봐?”

“오! 이거 맛있겠다! 쩝...쩝...안 그래도 대학병원에서는 입원해서 치료받으라던데...꿀꺽!”

잠시 말을 하다 끊고 입에 있던 브라우니를 다 삼킨 핑크가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고 이어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없으면 여기 안돌아 갈 것 같아서 이번 일까지만 마무리 짓고 사표 쓰려고.”

핑크의 말에 갑자기 울컥해 심 실장이 소리를 질렀다.

“컥! 갑자기 뭔 사표야? 사표는 이 일 끝나면 휴가 준다니까! 그 때 치료 받으면 되잖아.”

핑크는 심 실장의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아니야. 삼촌! 우리 아마 이 일 끝나면 당분간 폐업 신고부터 해야 될 것 같아.”

***

며칠 뒤 심 실장의 회의실 안 분위기는 적막하다 못해 침울함이 감돌았다.

“....이상이 그 동안 저희 측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

핑크는 회의실에 자리한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다소 어두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의뢰를 진행하면서 일명 ‘창무회’에 관련된 관계자는 전직 장관을 비롯해 현 국회의원과 정부 고위공무원
그리고 군 장성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핑크의 말을 한쪽에 앉아서 조용히 듣고 있던 정 차관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그들은 저희도 예전부터 ‘창무회’와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그
연결고리를 시원하게 밝혀 낼 수 없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증거라도 이렇게 확보해 준 덕에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아마 그들을 이 증거만으로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는 현실에 고민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정 차관의 말을 들은 심 실장이 현재 조사를 통해 알아낸 내용을 조금 덧붙이며 질문했다.

“네. 더군다나 저희가 조사해 본 바로는 해방 이전 일본에서 군사 교육을 받고 정부 수립과 함께 군을 장악한 군


장성들의 모임이 ‘창무회’의 근간이 되었더군요. 처음 군을 장악했던 그들이 현재는 그 뿌리가 대한민국 군을
벗어나 정부 정책까지도 흔들 수 있는 막강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되었습니다. 차관님께서 섣부르게 그들과
맞선다면 오히려 역공을 맞을 것이 확실 시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 차관은 분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얘기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큼... 어쩔 수 없군요. 분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수밖에 없겠군요. 하지만 이 자료를 가지고 저들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책 싸움에서 한 수 정도는 충분히 노려 볼 수 있겠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누가 뭐라 해도
꼭 몸부터 챙기세요.”

정 차관이 자리에서 일어서 심 실장과 핑크에게 인사를 건넸고 심 실장은 컴퓨터에서 USB 를 뽑아 정 차관에
건네주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차관님도 강건하십시오.”

정 차관이 돌아가고 난 뒤 심 실장은 ‘창무회’에 꼬리가 밟히지 않기 위해 폐업 신고를 하겠다고 나갔다. 혼자


사무실에 남은 핑크는 전화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했다.

[Rrrrrrrr Rrrrrrrr 철컥! 여보세요? ]

“이제 준비 다 됐어. 오늘부터 작업 시작하자.”

창무회의 아이들

***

심부름센터 회의실에서 그동안 모은 자료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 유성은 자동 주행 중에 있는 고니에게


태블릿에 들어있는 ‘창무회’ 자료를 확인하다 물었다.

“고니야 지금 이 정도 모은 걸로 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네 한유성님 ‘창무회’에게 타격은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곧이어 역공을 당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고니의 말을 듣고 한숨을 크게 뱉은 유성이 혼잣말을 이었다.

“휴우...역시 저들은 조사하면 할수록 그 덩치가 너무 큰 것 같긴 해.”

-네 한유성님. 경찰청과 군사 네트워크를 모두 검색한 결과 ‘창무회’와 관련된 인사가 한유성님께서 지금까지


조사한 숫자보다 더욱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게.. 찾은 자료 중에서 아직 ‘창무회’와 관련한 인사 명단 같은 것은 아직 없었지?”

-네 한유성님. 아마 명부가 있다면 온라인 보다는 오프라인에 따로 보관 하고 있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리고 ‘창무회’를 조사 하던 중에 발견한 사실로 장학 사업이 매년 꾸준히 진행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어? 방산비리와 인사 청탁 같은 것만 한 줄 알았더니 그래도 가끔은 좋은 일도 했었나 보네?”

-네 한유성님 확인 된 내용으로는 매년 장학 사업으로 키운 인재들을 정부 요직 곳곳에 배치했던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헐... 그런 거야?”

-네 한유성님 ‘창무회’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료를 더 수집하고 조금 더 때를 기다려 대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객관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예들 들어 말씀드리면 한유성님은 칼을 들고 중세 시대에 있다면 ‘창무
회’는 현대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까지 들어 말 안 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고 내가 칼 대신 저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질 수 있기는 할까?”

-지금 한유성님이 가능한 전략으로는 ‘창무회’ 고위 인사의 내부 컴퓨터나 태블릿 등에 직접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좀 더 모으고 인터넷과 언론의 힘을 이용하는 부분을 추천합니다.

고니의 말을 들은 유성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직접 내가 건물같은 곳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은 조금 위험 부담이 있는데...”

-직접 한유성님이 건물에 침투하라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노트북 등을 한유성님의 태블릿이 가진 능력으로 똑같이
복제해 그 안에 저장되어있는 자료를 확인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그런데 그건 태블릿이나 핸드폰이 눈에 직접 보여야 가능한 거 아니었어?”

-직접 보지 않아도 태블릿이나 핸드폰의 위치 좌표만 정확히 확인되면 복제가 가능합니다.

“아! 그런 거였어?”

-네 한유성님. 이번 일을 의뢰한 정 차관이 ‘창무회’ 인사와 접촉해 협상을 통해 자료를 넘겨 줄 파일 속에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같이 실행되도록 넣어두면 복제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오! 그래? 그런데 혹시 그런 거 ‘물약’ 같은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에 다 잡히는 거 아냐?”

-실제 대한민국 국방부 도감청 부대에서 위치확인 및 감청에 쓰이는 프로그램 가동결과 시중에 나와 있는 백신
프로그램으로는 국방부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오! 그렇다면 일단 다행이네.”

유성이 고니와 그렇게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고니가 알렸다.

-한유성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자율 주행모드를 중지합니다.

“어! 고니야. 운전하면서 계획 짠다고 수고 했어!”

잠시 후 유성과 심 실장 그리고 핑크는 회의실에서 둘러 앉아 그동안 모은 자료를 취합해 앞으로의 의뢰 진행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마무리 지어가고 있었다.

“고위 공무원과 국회위원 그리고 기업들에 대해 유성군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창무회’와 연관되어 불법을
저질렀다는 여러 정황 증거를 다소 확보하는데 성공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심 실장의 말에 핑크가 대신 말을 이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이 도청을 하게 되면 증거자료 채택 될 수는 있겠지만


도청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따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어 도청으로 얻은 자료에 대해서는 현재 법적 증거로
사용하기에는 애석하게도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지.”

“그럼 우리는 여기까지만 하고 그동안 모은 자료를 넘겨주고 의뢰인이 직접 그들과 협상을 하게 하는 건 어때?”

심 실장에 이에 이어 핑크의 말을 마저 듣고 난 유성이 생각해 두었던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지. 지금 모은 자료를 의뢰인이 직접 그들과 딜을 해서 견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나마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데...”

계속 심 실장은 무언가 찜찜함이 남아 있는지 말을 쉽게 끝맺지 못하고 있었다.

“삼촌의 말은 저들이 그냥 쉽게 넘어가 줄까? 하는 찜찜함이 있다는 말이지?”

“어! 그래 마치 화장실 갔다가 뭔가 빠트리고 그냥 나와 버린 느낌... 시원하게 물을 내리고 나와야 하는데 그냥


나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심 실장과 핑크가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유성이 끼어들며 얘기했다.

“실장님 제 생각에도 저들이 그냥 저희를 곱게 봐 줄 것 같지는 않아요. 언젠가 되었든 의뢰인 측이 힘을


잃어버리게 되면 바로 역공을 당할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 까지 모은 자료가 혹여 법적 증거로 사용된다
하더라도 ‘창무회’의 근간을 흔들기에는 저들은 너무 거대한 것 같아요. 일단은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를
의뢰인에게 넘겨 우리는 여기서 일을 마무리 하는 걸로 하죠.”

“하...그냥 마무리라..”

“네. 일단 여기서 이대로 마무리하고 저희는 따로 다시 2 차전 준비하도록 하죠? 무엇보다 우리가 싼 똥인데 누가
치우겠어요? 우리가 치워야지.”

유성과 심실장의 대화를 지켜보던 핑크가 심각한 얼굴로 유성에게 물었다.

“그럼 유성이 네 말은 일단 자료를 의뢰인에게 넘겨서 표면상으로는 여기서 물러나는 것으로 한단 말이지?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건데?”

“음...계획이 뭐냐면...”

유성은 ‘창무회’에 대응하기 위해 고니와 얘기했던 계획의 일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
[인천에 있는 사학재단이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꾸준히 200 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지원 해온 사실이
알려져 훈훈함을... ]

매일 식상한 기사들로 뉴스면을 가득 채우던 한 때 갑자기 훈훈한 뉴스 기사가 떠올라 검색창 ‘DAVER’에서
검색어 순위 1 위를 장식했다.

뉴스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도 저마다 칭찬일색으로 훈훈한 분위기를 더했다.

기사는 다른 뉴스들과는 다르게 잠깐 반짝이는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가 SNS 와 블로거 등에 지속적으로 퍼담아
나르는지 쉽사리 검색어 순위에서 내려가지 않고 한동안 머물렀다.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서 인천의 한 사학재단의 오랜 선행이 오르내리 것도 시간이 지나 잊혔을 즈음 또 다른


기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달 지속적인 선행으로 국민들에게 훈훈함을 전했던 인천의 한 사학재단이 사실 군 사설 조직인 ‘창무회(創
武會)’의 인재 양성소로 밝혀져 국내에 충격을...]

연이어 충격적인 뉴스들이 줄을 이었다.

[국내 최대 군 출신 사조직 ‘창무회(創武會)’ 시작은 친일파로 알려져 충격! ]

뉴스에만 그치지 않고 요즘 ‘너튜브’에 여군 억양으로 유명한 크리에이터 ‘고니’의 영상도 화제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어 이에 대한 영상을 어렵게 목숨까진 걸지 않고


준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군은 1948 년 8 월 15 일로 거슬러 올라가지 말입니다.

그 때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은 대한제국군과 일제 강점기의 의병, 그리고 한국 광복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일본군 인맥과... ]

그녀(?)의 영상은 SNS 에서 ‘Hot’ 하다고 판단되는 음식, 관광지, 사람 등 다양한 뉴스를 가리지 않고 기사의
진위여부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자료 영상과 함께 객관적으로 평점을 달아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번 ‘너튜브’ 영상에서는 ‘창무회(創武會)’에 대한 자료를 어떤 뉴스에서보다 객관적이고 자세하게


풀어 보여주었다.

[방산비리의 원조(元祖)는 친일파! ]

[‘창무회(創武會)의 아이들’로 알려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

:
[검찰에서는 ‘창무회(創武會)’ 고위급 간부로 알려진 명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

***

대전의 천 사장은 사실 일명 ‘창무회의 아이들’로 키워져 금융회사의 사장으로 앉아 ‘창무회’에서 필요한


자금의 돈세탁을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돈 세탁의 한 방법 중에 ‘창무회’가 뒤를 봐주는 누군가가 자금이 필요할 경우 매입해 둔 저가의 미술품을 미리


입을 맞춰 둔 화랑에서 경매를 통해 다시 고가로 되파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고가로 매입한 창무회의 사람은
지출한 비용을 천 사장의 금융회사에 낙찰 받은 미술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고스란히 다시 비용을 회수해가는
방식이었다.

물론 누군가 알게 된다면 리스크가 크겠지만 ‘창무회의 아이들’은 곳곳에서 활동하며 그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기에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필 경매를 담당해주던 화랑이 바로 유성이 알바로 일하던 아람아트홀이었다.

유성은 자신이 감정한 그림의 가격과 경매 비용의 차이가 큰 것을 그냥 허투로 넘기지 않고 돈을 좀 벌어볼까
하는 생각에 알아보다 천 사장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조사한 결과 아람의 엄마 또한 ‘창무회’에서 정재계는 물론 예술계 진출을 위해 키운 ‘창무회의 아이


들’ 중 하나인 것으로 확인 되었다.

‘쩝... 화가라는 직업에 비해 수입이 엄청났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 이를 터트려..말어..’

유성은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아람 엄마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자신과 직접적인 원한관계가 없고, 경찰이나
검찰 공무원도 아닌 유성이 그 사실을 세상에 바로 밝히기에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대한민국 청년 또한
아니었기에 고민이 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의 관행으로 보아 사실을 밝힌다고 뿌리가 뽑힐지 의문이었다.

결국 유성은 고민 끝에 창무회의 비리에 대한 증거자료는 따로 수집해서 모두 무기고에 쌓아두고 현재 고등학교 2


학년인 아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까지 1 년 반 정도 남았기에 창무회에서 자신과 주변사람을 건들지만 않는다면
일단 그냥 지켜보기로 마음먹고 아람 엄마에게 찾아가 이를 전했다.

“작가님 ‘창무회’와 직접 연락이 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을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유성은 그렇게 아람의 엄마를 통해 창무회와 당분간 휴전을 제의했다.

인연 (완결)

***

유성이 아람의 엄마인 김 화백을 통해 말을 전한 이후 그 쪽에선 위협이라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귀찮다 생각한지는
알 수 없어도 ‘창무회’는 더 이상 유성과 주변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 ‘창무회의 아이들’이라는 사건으로 많은 정부 고위 관료가 사퇴와 함께 법의 심판을 제법 받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그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창무회 이야기가 잊혀 갈 때 즈음 유성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유성군 잘 지낸단 말은 아람이를 통해 가끔 들었는데... 이번에 수능 잘 봤다면서? ]

유성은 사실 이번에도 원하는 대학에 떨어진다면 군대에 가야할 분위기라 정말 열심히 준비해 수능을 보았었다.

“네. 이번에 대학 못가면 군대에 잡혀 갈 것 같아서 열심히 했습니다.”

[유성군 그 동안 아람이 챙겨줘서 고마워. ]

아람의 엄마는 유성이 그 동안 아람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해 따로 말하지 않고 기다려 준 부분에 대해 고마움을
에둘러 전했다.

“아닙니다. 작가님도 저 많이 예뻐해 주셨잖아요.”

[... 저기 유성군 이번에 어르신께서 직접 유성군을 만나고 싶어 하셔.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낼 수 있겠어? ]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잠시 나눈 후에야 김 화백이 전화를 건 본래 목적을 얘기했다.

“네 이번 주말이면 수능 끝나서 시간 괜찮아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주말에 유성군 집 앞으로 차를 보낼 거야. 그 차에 타면 어르신과 만날 수 있을 거야. ]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유성은 그동안 쌓아둔 스탯으로 인해 두려움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약속한 주말 아침이 되자 유성의 집 앞에 도착한 검은색 고급 외제차 조수석에서 내린 남자가 유성에게 다가와
말을 전했다.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유성이 머뭇거리며 차를 구경하고 있자 조수석에서 내려 유성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유성이 차량에 탑승할 수
있도록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고급 외제차를 구경하던 유성은 남자가 열어 준 차량의 뒷좌석에 올랐다.

보안을 위해서인지 밖에서도 차량 안쪽이 보이지 않았지만 안에서도 역시 밖을 확인 하지 못하도록 유리엔 색이


칠해져 있었다.

심지어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도 칸막이로 가려져있어 차량이 어디로 가는지 뒷좌석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사방이 막힌 게 답답하게 무슨 납치라도 하는 분위기네.’

-한유성님 불편하시면 네비게이션 홀로그램 영상 출력 가능합니다.

‘그래 그게 조금 덜 답답하겠다. 부탁해 고니야.’


-네 미니맵 형태로 홀로그램 영상 출력 합니다.

운전석 뒤쪽 문이 열리며 유성에게 문을 열어주었던 남자가 유성의 옆자리에 탑승하며 운전사에게 말했다.

“출발해.”

사내의 말에 고급 외제차는 엔진소리도 하나 없이 미끄러지듯이 출발했다.

“약 2 시간 정도 후에 어르신과 만나게 될 장소에 도착 할 수 있을 겁니다.”

유성이 답답해하리라 생각 한 것인지 남자가 먼저 친절하게 얘기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도 저랑 뒷자리에 같이 앉아 가는 건가요?”

“잠시 말씀드릴 부분이 있어 옆에 자리했습니다. 불편하시면 앞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니요 저도 아저씨가 옆에 계신 게 편하겠네요. 궁금한 거도 물어볼 수 있고, 그런데 2 시간 거리면 대전까지


가는 건 아닌가 보네요?”

유성은 창무회의 본거지가 대전이라 오늘 그리로 가리라 예상했지만 2 시간이면 차량으로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부족하다 느껴졌기에 그렇게 물었다.

“보안사항이라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안 때문에 그러니 가지고 계신 핸드폰은 저에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어르신과 만난 후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네 여기.”

남자는 유성이 건네준 핸드폰을 콘솔박스에 따로 넣고 잠금장치를 했다.

“그럼... 아저씨 혹시 차에 먹을 건 없나요? 저 아침도 안 먹고 나와서 조금 출출한데 두 시간이면 중간에


휴게소엔 들르나요?”

“다과는 뒷좌석에 약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은 들렸다 가도록 하겠습니다.”

남자가 유성의 옆에서 어르신을 만났을 때 주의할 사항에 대해서 따로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공중화장실 근처에
차가 도착했다.

“이동 중에 휴게소는 경유하지 않습니다. 미리 화장실부터 다녀오십시오.”

“아...휴게소에서 오랜만에 소떡소떡이랑 감자랑...오징어... 츄릅! 먹을 줄 알았는데...”

차량에 준비되어 있던 다과를 먹던 유성이 남자의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을 향했다.

유성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어느새 차량에서 내려 차량 옆에 서있던 남자가 조수석 뒷문을 유성에게 열어주었다.

“아..이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뒷좌석 문은 편의상 잠겨 있을 예정이니 이동 중에 불편한 점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저는 그럼 다시


앞자리에 있겠습니다.”

유성이 뒷좌석에 오르자 뒷문을 닫아 준 남자는 조수석으로 그렇게 자리를 이동했다.


다시 출발한 차량은 유성을 태우고 김해공항을 향해 이동하는 듯했다.

홀로그램으로 차량의 이동을 확인한 유성이 고니에게 물었다.

‘고니야 이거 공항 가는 길 아니야?’

-네 차량 현재 김해공항 옆에 있는 공군기지를 향하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잠시 후 공군화물기 안으로 들어선 차량은 유성의 예상과는 다르게 인천공항을 향해 이동했다.

‘헐! 고니야 나 차량이랑 같이 지금 비행기에 탄 거 맞지?’

-네 한유성님 현재 고도 2000 미터를 지나 상승 중에 있습니다. 이제 2500 미터를 지났습니다....

그렇게 공항에서 나와 인적이 드문 고급 주택으로 들어선 후에야 비서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차량에서 내렸다.

“오 비서라고 합니다. 이동 중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비서로 보이는 아저씨가 예의상 물어보는 것 같았지만 유성은 이동 중에 느낀 불만을 얘기했다.

“불편하다기 보다는 상자 같은 차 안에 갇혀서 비행기 타는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는 않네요.”

“네 의견은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비서의 안내를 받아 건물로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성이 그렇게나 궁금해 하던 인물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음지에서 군을 조정하던 실세가 드디어 유성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자네가 한유성군인가?”

표정과 목소리에서는 감정 하나 읽기 어려운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유성에게 물었다.

유성은 창무회 회주의 물음에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네. 제가 한유성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창무회’ 회주신가요?”

유성을 안내해주고 뒤에 자리해 있던 비서가 유성의 대답에 놀라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 어디서 감히! 무례한 언사는 자제하도록!”

오 비서가 유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기 직전 회주의 음성이 이어졌다.

“그만! 오 비서는 나가 있게!”

사실 오 비서가 유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면 아마 지금처럼 아무 일 없이 유성의 뒤에 서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어르신.”

‘왜 손에 이렇게 땀이 고였지?’
다행인지 결국 회주의 제지에 오 비서는 자신이 긴장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다시 뒤로 물러나 뒤로 이동했다.
방을 막 나가려는데 유성이 오 비서에게 조용히 얘기했다.

“비서 아저씨. 앞으로도 할아버지 말씀 잘 듣는 게 아저씨 건강에 이로워 보이네요.”

“....”

유성에게 도발을 당했지만 오 비서는 몸이 떨려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비서가 나가자 잠시 끊어졌던 이야기를 회주가 이어갔다. 놀랍게도 회주의 목소리에는 처음과는 달리 유성에게
호감이 담겨 있었다.

“할아버지라? 나쁘지 않은 호칭인군. 그래 다들 나를 보고 어르신이라 부르지만 공식적으로는 이곳에서 회주라는


직책을 맡고 있지. 한유성군 이렇게 직접 만나서 반갑네.”

“네. 저도 할아버지 만나 뵙고 싶었어요.”

“그래? 나 혼자 보고 싶어 한 건 아니니 다행이군. 듣자하니 아직 군복무 전이라던데 미루고 있는 이유라도


있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단지 수능 공부하느라 군에 갈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유성의 얘기를 듣고 약간 뜸을 들인 회주가 이어 말했다.

“음....그럼 내 자네에게 좋은 제안 하나 하지.”

“네 일단 들어 보겠습니다.”

회주는 유성에게 창무회에 들어오면 먼저 원하는 사관학교에 바로 특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고 졸업 이후
군에서도 탄탄대로를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냥 탄탄대로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사관학교 출신들이라 해도 따기 힘들다는 장성으로의 진급도 보장해 줄 수


있다 했다. 그리고 유성이 하기에 따라 군 전역 후에도 정부 고위관료로 남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할아버지가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저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시는 이유가 뭡니까?”

1 년이 넘는 시간동안 ‘창무회’에서도 가만히 시간만 보내고 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유성을 제거하려는 움직임도 사실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일인지 회주가 가만히 지켜보자고
얘기하는 바람에 유성에 대한 정보만 계속 수집해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네. 그리고 이제는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창무회’가 결성 된지도 이제


80 년이 다 되어 가는군. 난 그 시작을 함께 한 사람이네. 내가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려보았자 얼마나 이 자리에
더 있을 수 있겠는가? 길어봐야 10 년도 못 채울 것이네.”

“그래서 제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쯤 되면 더 이상 이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단 말일세. 그러다 우연히 자네에 대해 알게 되었네. 흥미롭더군
그래서 자네를 그동안 쭉 지켜봤다네.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나더군. 자네가 가진 그 능력으로
창무회를 이끌어 볼 생각은 없나?”

놀랍게도 ‘창무회’ 회주는 유성의 정보를 하나 둘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보통사람과 다른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회주는 창무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비리에 대해 처음부터 지지하는 측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군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리라 생각하며 기존 세력에 맞서기도 해보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이 회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에 문득 돌아보니 자신도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 있었다.

이제 자신의 삶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여겨지자 올바른 길로 ‘창무회’를 끌어 줄 후계자로 유성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유성은 회주의 말에 담담하게 얘기했다.

“할아버지. 그동안 저와 제 주위 사람들을 지켜 주신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군대에서 겪을


일을 미리 알아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씩 계속해서 체험해 보았지만 군대는 역시 저랑 맞지 않더군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차피 군에는 가야하지 않나?”

“그건 맞지만 장기로 근무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땐 할아버지 다음에 누가 회주 자리에
앉더라도 지금과 별반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안 드네요. 그냥 이 기회에 조직을 해체하는 건 어때요?”

“역시 계속 창무회를 지속 하는 건 아집인가?”

“제가 볼 땐 그래요. 할아버지.”

“생각해 보겠네.”

유성의 말을 듣고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회주의 얼굴에선 표정이 점점 사라져갔다.

얼마 후 대한민국의 건군과 함께 해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던 창무회는 역사 속으로 그렇게 사라졌다.

***

-Episode

대한민국 딸 바보 중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아빠가 딸과 통화 중이었다.

“우리 딸! 오늘 호랑말코 같은 놈에게 봉변당할 뻔 했다면서?”

[응? 그 얘긴 어떻게 알았수? ]

“우리 딸이 위험한지 아닌지는 멀리 있어도 확인 중이었지.”

[그럼 이번엔 잘 못 짚었수! 호랑말코가 아니라 요즘 보기 드문 착한 젊은이였어. ]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내가 얼마전에 아빠가 보내 준 붕붕이 길 좀 들이려고.... ]


딸은 아빠에게 그 날 낮에 신호등을 건널 때 있었던 일들을 떠들기 시작했다.

“하하 그런 거였어? 알았어. 우리 딸 필요한 거 있음 또 얘기해.”

[응. 아빠 이제 끊어! 손주 학원 마치고 집에 왔다. ]

그렇게 인자한 표정을 가진 ‘창무회’ 회주는 학원에서 돌아온 손주에 밀려 부산에 사는 딸과 통화를 종료해야
했다.

“흠...그놈 참 괜찮게 생겼네. 이런 놈이 내 뒤를 이어 창무회를 맡으면 딱 좋으련만...”

부산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외동딸을 지근거리에서 보호하던 경비 팀으로부터 전송받은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비서! 이 친구에 대해 알아봐.”

그 사진 속에는 면허시험장 앞 신호등에서 할머니들의 보행 도우미 일명 ‘실버카’를 붙잡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유성의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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