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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Cherchais Un Partenaire Et C'étaitle Fils D'une Amie de Ma Mere Part 3
Je Cherchais Un Partenaire Et C'étaitle Fils D'une Amie de Ma Mere Part 3
지은이|복쩐쩐
일러스트|뒤안
타이포|MUI
펴낸이|권순남
펴낸곳|M 블루
발행일|2021. 8. 2.
ISBN|979-11-368-1620-7
대표전화|02-2091-0290
이메일|mblue_bl@mayabooks.co.kr
트위터|@m_novel_blue
정혁이 핸드폰을 보다가 피식 하고 웃는다. 우서가 찌릿, 하고 노려보니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러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또 불쌍한 척을 해 보였다.
진우서 너 화났지.
***
“사과한다더니만 이게 뭐야……!”
“사과는 이따가 하고, 급한 거부터 해결해야지. 일에 항상 우선순위라는 게 있잖아.”
“아니……! 나 아직 안 씻었다구!!”
“그럼 씻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
출장을 다녀와 씻지 못했다는 핑계로 정혁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을 줄 알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우서는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오만한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미쳤어? 옷도 안 벗고 어떻게 씻어……!”
탈의하지 않은 상태로 욕실에 끌려 와 결국은 월풀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고급스러운 호텔답게 시설은 흠잡을 곳 없이 훌륭했고, 인테리어 또한 흰 대리석으로 된
깔끔하고도 클래식한 분위기였다.
정혁은 짓궂은 얼굴로 샤워기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물이 화악 뿜어져 나오고 세찬
물줄기에 샤워기 아래 서 있던 우서의 옷이 젖어 들어갔다. 재킷은 룸에 들어왔을 때 벗어 던진
지 오래고, 그 안에 입고 있었던 흰 셔츠가 물을 흠뻑 먹어 살에 엉겨 붙었다.
“하─ 흡……!”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끝없는 물줄기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우서는 어푸 하며 눈을
감고 손을 뻗었다. 손잡이를 다시 눌러 샤워기의 물을 꺼야만 했다. 하지만 정혁이 다부진 손을
뻗어 단호하게 저지한다.
“왜, 찝찝해서 씻고 싶다며. 내가 씻겨 줄게. 파트너라면 그런 것쯤은 어렵지 않게 해 줄 수
있지.”
“야, 이, 서정… 흐아… 으읍, 너 이거 안 꺼……!?”
정혁은 그 와중에 우서의 팬츠의 버클을 풀어 벗겨 내고는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물먹은
바지가 철퍽 소리를 내며 무겁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결에 밀착된 까만 드로어즈를 잡아
내리자 탐스러운 엉덩이가 드러나고 성기가 밖으로 튕겨 나왔다.
“씻으면서 동시에 급한 용무도 해결하면 되는 거잖아.”
그야, 그딴 식으로 계산을 하면 이득이기는 하다만은… 이건 아니지!! 우서는 소리쳤다.
“으아……! 나 안 급하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정혁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샤워기 아래에 서서 움츠린 채로 젖어 들어가는
우서의 모습이 음심을 자극해 온다. 자신에게도 물줄기가 어느 정도 튀었지만 우서만큼은
아니었다. 셔츠가 젖어 버려 몸의 실루엣이 몽땅 드러나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유륜과 톡
튀어나온 유두까지 점차 점차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성기도 불거져 점차 윤곽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최근 우서는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랴, 출장에 다녀오느라 바빴고 자연스레 안달이 났다.
오늘은 진우서가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정혁은 계속해서 씹어 먹고 물고 빨 계획이었다.
“내가 급해서 그래.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거든.”
정혁은 꺼떡거리는 기둥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물에 젖어 손바닥 안에서 더욱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린다. 우서가 물을 맞으며 작게 떨었다.
“흡… 미쳤냐고. 이거 안 놔……!? 하, 빨리 꺼!”
“그래그래. 우서야, 착하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샤워기를 끌 생각은 없다. 정혁은 마주 보고 서서 입체감 있게 부푼
도톰한 가슴을 지분거렸다. 결국 우서는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을 피하기 위해 정혁의
품에 안겨 젖은 얼굴을 그의 셔츠에 비볐다.
“흐아… 진짜……!”
머리끝에서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떨어지고 그것들은 결국 정혁의 가슴팍에 닿아 옷을 흠뻑
적셔 놓았다.
“우리 옷 다 마를 때까지 집에 못 가. 진우서, 너 오늘 외박이야.”
젖은 몸을 품에 가득 안고 있던 정혁이 우서를 월풀의 가장자리에 앉혔다. 판판한 곳에
엉덩이를 대고 욕조에 발을 담가 두고는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정혁이 그런 우서의
무릎을 잡아 옆으로 벌렸다.
“하… 미친놈아.”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쓸어내리다 말고 우서는 욕을 내뱉었다. 제 앞에서 가랑이 사이를
바라보고 있는 정혁의 어깨를 기겁하며 밀어냈다.
“그렇게 말하면서 왜 아래는 세우고 있는데.”
그렇지만 서정혁이 손바닥 밀치기 한 번에 쉽게 밀려날 그런 얄팍한 체구의 소유자는 아니다.
다리를 벌리는 손아귀 힘만 더욱 거세질 뿐이었다.
“시발.”
젖은 속눈썹을 드리운 우서가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고는 욕을 읊조렸다. 손바닥으로
가려 봤자다. 서정혁이 엄청 잘하니깐, 보자마자 음심이 자극되고 뱃속이 간질간질거려 참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껏 흥분한 제 성기 때문에 더 이상 숨길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우서야, 앞으로 출장 같은 거 가지 마. 너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
“하아…….”
정혁은 우서의 손을 치우고 그대로 무릎을 세우게 해 회음부를 꾸욱 눌렀다. 젖은 셔츠 한
장만 입고 다리를 벌려 신음을 내뱉고 있으니 야하기 짝이 없다.
다른 한 손으로는 미리 비치되어 있는 바디 워시에 손을 뻗었다. 뭉근하게 비비니 물과 닿아
거품이 탐스럽게 만들어졌다. 동시에 욕실에 달큼한 향이 퍼져 나간다.
“흐읏─”
그대로 거품을 내어 천천히 아래를 닦아 냈다. 제 손이 닿을 때마다 우서는 품에서
바르작거리며 떨었다. 부드럽게 헹구어 내고는 잘 닫혀 있는 곳을 쓸어 냈다. 퍼뜩퍼뜩 튀는
우서의 어깨를 잡아 누르고 손가락을 넣어 아래를 풀어 주자 금방 뜨거운 숨을 내뱉는 우서의
모습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하아─”
“출장 간 사이에 날 잊은 건… 아니지? 연락은 왜 안 받는 건데.”
얼굴이 점점 붉어지며 색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귀와 볼과 눈가가 빨개지고 눈꼬리가 한없이
처져 가엾어 보이기까지 한다.
“하아… 그건… 읍, 배터리가……. 아읏.”
“왜 말을 제대로 못 해, 우서야… 너 설마 딴 새끼랑 한눈판 거야?”
“읏, 그게 아니…….”
“혹시 내가 싫어졌어?”
정혁은 매달리는 듯 물었지만 여유 있는 태도로 우서를 괴롭혀 나갔다. 이렇게나 잘 다물려
있으니, 의심할 여지 없이 마음이 놓인다.
“후우… 너야말로 나 냅두고… 하… 다른 사람 만나지 말라고… 읏.”
“진우서, 너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야?”
“아니거든? 그냥 후… 파트너 관리차 말하는 거지! 그리고 하아… 아, 아… 네가 나만…
만난다고, 후… 했잖아!”
정혁은 허리를 숙여 그 은밀한 공간을 손가락으로 지분거렸다. 대답을 하면서도 우서는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배 꼬았다. 정혁은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게 다른 한 팔로
저지했다. 그러고는 붉고 뻐끔거리는 공간을 점차 넓혀 가며 좀 더 깊숙이 탐했다.
우서의 반응이 귀여워 정혁은 손가락 두 개를 더 넣어 그 안을 빠르게 헤집고 자극해 갔다. 제
손을 오물조물 잘 빨아 먹는 것을 보아하니 우서는 저와 운명의 파트너가 맞다.
“맞아. 너한테만 세운다고 했지. 그래서 우서야, 나 아까 네 얼굴 볼 때 미리 세웠어. 칭찬해
줘.”
“하… 발정 난 놈.”
우서는 견딜 수 없는 감각 때문에 정혁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꽈악 붙잡았다. 힘이 들어가
손끝이 파르륵─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야하게 신음을 흘리면서 누가 누구보고 발정이 났다고 하는 걸까. 정혁은 피식 웃었다.
“칭찬 고마워. 아, 정확히는 네가 혀로 생크림 핥을 때 섰던 거 같다.”
“또라이 같은 놈.”
잊지 못한다. 그 동그란 눈으로 말똥거리면서 저를 바라보다가 혀를 날름거려 붉고 반짝이는
입술을 핥았던 그 순간을. 다 큰 성인인데도 우서가 귀엽고도 천진난만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엄청난 색기까지 전해져서 도저히 참고만 있을 순 없었다. 상대에게도 서둘러 거절의 의사를
표시할 만큼…….
오늘은 정말이지… 최악의 날일 거라 생각했었다. 정혁은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나왔던
소개팅 자리를 다시금 떠올렸다.
진우서를 볼 시간도 부족한데… 이쯤이면 우서가 서울에 올라왔을 텐데… 하는 그런 조바심
넘치는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쯤에 우서가 신기루처럼 제 앞에 나타났다.
비록 화가 난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남아 있던 근심이고 걱정이고 모두 싹─
사라지는 홀가분한 경험을 했다. 벅찬 느낌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서 저를
구원해 준 사람, 자신이 쉴 품은 이곳이 맞았다.
“아, 아흣.”
“네 앞에서만 세웠어야 했는데, 공교롭게 다른 사람 앞에서 세워 버렸네… 근데 나 정말 너
보고 흥분한 게 맞아. 절대 의심 같은 거 하지 마.”
정혁은 우서가 항상 반응해 오던 지점을 집요하게 문질렀다. 그러자 어깨를 잡고 있던
손가락이 깊숙이 파고들어 손톱까지 세워 왔다. 다리를 붙잡고 있던 손으로는 셔츠가
달라붙은 유두를 매만지고 꼬집었다. 손끝에 닿아 오는 면의 감촉과 볼록한 입체감이 좋았다.
“아, 아, 하아아…….”
우서는 탁해진 눈으로 정혁을 바라봤다. 매끈하게 생긴 섹시한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이미 앞선 일들은 상관없어진 지 오래다. 위아래의 성감대가 계속해서
자극되자 황홀한 느낌과 전율이 계속해서 뱃속을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용서해 줄 거지?”
“흡─ 으읏─ 아, 아… 거기 좋아.”
그는 정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들을 자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더한 쾌감을 원할 뿐이었다. 서정혁의 성기가 내벽을 타고 안으로 들어오면 더욱
만족스러울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우서의 몸이 녹진녹진하게 풀리며 온 신경이 한
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우서야… 넌 나 말고 다른 사람 만나면 안 돼.”
“흐으… 하… 서정혁, 이제 그만…….”
정혁은 애원하는 우서를 바라보다가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자신의 바지의 버클을 빠르게
풀어냈다. 팬츠가 바닥으로 스르륵 떨어지고 옷은 바닥에 고여 있던 물에 찰박이며 떨어졌다.
우서를 향한 소유욕을 멈출 수 없었다. 착실히 길들어 나만 찾고 나에게만 반응하기를 바란다.
이 정도의 감정은 정혁도 처음이었다. 진우서를 만나면 만날수록 도무지 감당이 되질 않고
있었다.
“빨리 대답해 봐, 진우서. 나만 만나겠다고.”
자신을 착실히 찾아와서는 이렇게 다리 벌리는 제 파트너를 도저히 사랑하지 않고서야 배길
수가 없다.
“아, 으으… 우리 사귀는 것도 아닌데 후우… 내가 누굴 만나든…….”
결국 원하는 대답은 우서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혁이 자신의 성기를 입구에 가져다
맞추며 동시에 그 요망한 입술을 삼켰다가 이를 세워 깨물었다. 빨갛게 잘 익은 통통한
아랫입술이 삼켜지고 한달음에 빨자 달달한 설탕의 맛과 향기로운 과육의 맛이 섞여 났다.
두 손이 스르륵 자신의 허리를 감아 왔다. 저절로 두 사람의 몸이 바싹 붙어져 온다. 선단과
구멍의 끝이 닿았다가 조금씩 떨어지며 끈적한 액이 늘어졌다가 다시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아니, 절대 안 돼. 다른 새끼 만나면…….”
정혁은 냉랭하게 우서를 내려다봤다. 그의 소유욕은 상상 그 이상임을 우서는 간과하고 있는
듯했다.
“아으읏, 아……!”
정혁은 그대로 힘 있게 성기를 안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우서의 고개가 꺾이고 허리가 바르르
떨며 전율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은 저만을 착실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뜨겁게 반응해
온다.
“후… 찢어 죽일 거야. 내가 핥아서 침 발라 놓고, 길들인 내 건데.”
“흐읏, 내가 왜… 네 거야… 아, 읏, 으응…….”
자신에게 몸이 꿰뚫린 채로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괘씸한 행동이지 않나. 잘 풀어진 아래로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자 그 안에서 촘촘히 자신의 것을 감싸는 뜨거운 내벽의 온기가 전해져
왔다. 쫀득하게 옭아 붙어서는 성기를 놓아주지 않고 힘주어 물고 있었다.
“하아…….”
정혁은 간신히 성기를 빼내었다. 선단이 그 끝에 걸리자 그 모습이 마치 꼬챙이에 꿰인 듯해
보였다. 그는 응징하듯이 다시 거세게 박아 단숨에 뿌리까지 쳐올렸다.
“히이익─ 하읏……!”
우서는 숨도 못 쉬고 괴로워했다. 다리를 벌리고 눈물을 머금은 채로 그렁그렁하게 정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입도 채 다물지 못하고 간신히 얕은 신음들만 뱉어 내며 배 속 깊은 곳에서
헤집고 다니는 성기를 망연하게 느꼈다.
“그렇잖아… 우서야, 너 내 거 맞잖아. 대답해 봐.”
눈을 질끈 감고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정혁을 받아들인다. 대답 대신 우서는 황홀경에 빠져
신음을 뱉어 냈다. 정신없이 흔들리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모습이 마치 긍정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널… 얼마나, 흣, 좋아하는지 알면서… 후.”
정혁은 그렇게 거칠게 밀어붙였다. 우서가 반응하는 그 지점으로 계속해서 성기를 세게 박아
넣으니 발끝까지 바르르─ 떨려 온다.
“흐윽─ 아, 아, 아……!”
몸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고, 몸이 젖혀질수록 성기 또한 배 속에 마구잡이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하… 그런 말을 해서는… 후, 안 되는 거잖아.”
정혁은 그 상태로 우서에게 추삽질을 거세게 시작했다. 뜨거운 증기가 살결에 닿아 오고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여과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서가 반응하는 은밀한 성감을 향해서 허리
짓을 하자, 성기는 그대로 울컥울컥하고 쿠퍼액을 뱉어 냈다. 뱃가죽에 달라붙어 자신을
느끼고 그에 반응하는 몸이 미칠 듯 좋았다.
“아앗, 으응… 흐윽……!”
자신에게 충실한 몸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며 정혁은 계속해서 우서의 배 속을 드나들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욕실에 공명하며 울려 퍼졌다.
뒤로 꺾이는 허리를 받쳐 들어 가며 정혁은 우서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간질거리는 살결과
향긋한 살 내음이 쏟아져 내려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어 왔다.
“하으, 으으… 아, 아읍…….”
우서의 앞섶을 매만지며 이를 세워 목을 물어뜯고 입술을 파묻어 키스했다. 강하게 흡입하고
입을 떼니 새빨간 자국이 손톱만치 만들어진 것이 보였다. 그 모양과 크기가 진우서와도 잘
어울려 만족스러웠다.
“너무 예뻐…….”
아래 깔려 신음하고 빨갛게 물들어 가는 제 파트너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정혁은 좀 더
힘주어 우서의 성기를 쓸어 올리며 자극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서의 뜨거운 숨이 터져
나오고 손 안에는 끈적하고 뜨거운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하아… 하…….”
우서는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고 숨을 몰아쉬었다. 정혁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좀 더 크게 허리
짓을 계속 이어 갔다.
“읏……!”
우서가 힘들어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며 고개를 젓고 작게 저항했다. 다시 그의 앞섶이 부풀어
오르는 찰나에 결장 근처에서 정혁의 귀두가 쳐올렸다가 멈췄다.
“히윽… 으읏……!!”
뜨거운 것들이 배 속에 퍼져 나가고 정혁은 천천히 사정하며 성기를 꺼냈다. 주인을 잃고
오물거리던 구멍에서 진득하니 하얀 액체가 밀려 나오고 있었다. 그대로 구멍에서 뚝뚝 떨어져
흘러 그의 허벅다리와 종아리에 가 떨어진다.
“후…….”
제 정액을 간수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야한 몸이다. 정혁이 사랑스러운 눈을
하고는 그 몸을 바라보면서 미소 지었다. 이제 제 것만 잘 품고 있다면 정말 완벽하지 않을까.
점점 자신과 잘 맞아 가는 제 파트너가 무척이지 맘에 든다. 그게 진우서라 더 좋았다.
***
『서울 시내에 마약을 유통해 오던 판매책이 무더기로 적발됐습니다. 마약을 소지, 판매하던
중간책이 덜미가 잡히며 유통 조직이 대대적으로 검거되고 있는데요, 경찰은 지금까지
국정원과 공조를 통해 중간 판매책 서른한 명을 구속했습니다.』
『커다란 규모의 조직까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될까 하는
염려 속에 경찰은 모든 상황을 대비해 대응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음…….”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우서는 도망가는 피의자들을 검거하는 현장 영상들을 집중해
바라봤다. 자신도 모르게 리모컨을 꽈악 쥐고서는 그 장면들을 생생히 눈에 담았다. 무장한
경찰들과 대치하는 범죄자들의 저항이 격했고 무척이나 필사적이었다.
서정혁이 한창 열 올리고 있는 사건들이기도 했다. 저번에 발을 다쳤을 때도 이것과 관련이
있었다고 했었던가… 해외 업자와 외국인들까지 해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이 터지고
있다고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런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와는 관련 없다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서정혁 생각이 먼저 난다. 요즘 저런 게 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녀석이 걱정된다.
정혁의 안전과 건강이 염려된다.
아직 사귀는 게 아니라지만, 저 좋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을 어떻게 무시할까. 흉흉한 범죄
소식이 전해져 올 때마다 걱정이 되어서는 안절부절못하는 게 아무래도 녀석한테 단단히 홀린
모양이었다.
그사이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우서는 소파에서 튕겨 나오듯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오예!”
우서는 뛰쳐나가듯 집을 나서다가 잊은 게 떠올랐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들어와 와인 냉장고
문을 열고 상사에게 선물 받았던 값나가는 술을 꺼냈다.
정혁의 부모님은 며칠 전부터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서정혁이 퇴근하는 시간에 그의
집으로 뻔질나게 드나드는 중이었다. 당연히 이렇게 부를 줄도 미리 눈치채고 있었지만
기뻤다. 한 손에는 와인병을 들고 편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왔는데 복도에 서 있던 누군가와 딱
마주친다.
“어……! 우서 오빠 안녕!”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슬아였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옆집 꼬마가 우서를 보고서는
손을 마구 흔들었다.
“근데 오빠 어디 가요……? 슬아는 친구들이랑 비눗방울 놀이할 거야!”
해맑게 물어 오는 통에 우서도 함께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재밌겠네, 슬아야~ 오빠는 정혁이네 가져다줄 게 있어서……!”
떡치러 간다고 할 수는 없으니, 아이를 향해서 오른손에 그러쥐고 있던 와인병을 들어 올렸다.
“근데 우서 오빠, 이상해요!”
슬아가 조금 인상을 찌푸리면서 무언가 수상하다는 듯이 표정을 달리했다.
“응? 뭐가?”
그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우서가 눈을 크게 뜨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허리를 숙였다.
“정혁 오빠 집에 강아지 키우나 봐요! 근데 그 강아지가 아픈 거 같아. 맨날 낑낑거려요.”
“강아지……?”
“응, 슬아가 어제 들었어! 화장실에서 손 씻고 있는데 강아지가 아파했어요!”
뜨악─ 우서가 입을 벌리고는 경악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다 휘청였다. 어제라면
서정혁이랑 삘 받아서 화장실에서도 잠깐 혀를 섞고 애무를 했었다. 그때 환풍구를 통해서
소리가 새어 나간 건가 싶다.
“아하하… 슬아야, 걱정하지 마. 강아지 안 아프고 튼튼하대!”
억지로 웃지만 우서의 눈가가 파르르, 하고 떨렸다. 사실 슬아야. 무척 좋아하는 소리야… 하고
우서는 전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슬아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슬아, 근데 그 강아지 보고 싶어!”
슬아야… 그 미친개가 나란다? 우서가 난감하게 웃어 보였다. 아이는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근래 들어 정혁의 집에 너무 자주 간 모양이다. 조절해야겠다
싶어 반성하면서 모른 척 너스렐 떨었다. 아이와 작별 인사까지 나눈 뒤에 얼른 계단을
뛰어오른다. 두 칸씩 성큼성큼 말이다.
도어 록 비밀번호도 안 보고 칠 수 있을 만큼 정혁의 집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제 제집인
것처럼 우서는 편히 드나드는 중이었다.
정혁의 방으로 향하자 베이지색 톤의 가구와 벽지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풍경이 보였다.
그 안에서 서정혁은 유니폼을 벗고 있었다. 넥타이를 끌어 내리면서 탈의하는 모습에 우서의
눈이 저절로 움직임을 따라간다.
“야, 서정혁. 대박 사건! 우리 슬아한테 들키게 생겼어……!”
우서는 조잘거리며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정혁의 향이 물씬 풍겨 나오고 그의 체취
묻은 방이 좋았다. 우서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 보라며 급하다는 듯 다리도 팔랑팔랑
흔들어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혁이 셔츠를 하나씩 풀어 가면서 고개를 돌려 우서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오랫동안 일을
하고 왔어서 그런지 조금 예민해진 날렵한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는데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 그게… 슬아가 내 신음을 들었나 봐. 이상한 소리가 난다더라. 그니까 내가 화장실에서는
하지 말라 했잖아.”
저 녀석 원래 저렇게 멋졌었던가. 우서는 속으로 생각하며 그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어깨에
달린 계급장을 힘주어 떼어 내는데 손등의 힘줄과 핏줄이 불거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제 세찬 심장 박동만 원상태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래. 네가 제일 즐겨 놓고는. 그럼 앞으로는 넌 내 방에다가만 가둬 둬야겠네.”
정혁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넘겨 버린다. 그 여유가 재수 없기는
한데 저도 모르게 따라서 가벼이 여기게 된다. 어이없게도, 자신 또한 서정혁을 따라서 점점
배짱이 생겨나는 모양이었다.
“여튼 앞으로 조심하자고 하는 소리… 어? 뭐야… 너 또 어디서 다쳐 왔어?”
잘생긴 정혁의 얼굴을 감상하다가 시선을 떨어트렸는데, 매끈한 가슴팍 언저리에 기다란
상흔이 있었다. 가늘고 길게 찢어져서는 그 위로는 핏자국이 굳은 채로 말라 있다.
“별거 아니야.”
정혁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상처를 흘끗 보고는 우서를 향해 눈썹을 씰룩이며 장난기
다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지만 우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저렇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건 진심 아니라는 거, 숨기고 싶어 한다는 거다. 에휴, 우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별거 아니긴……! 상처가 꽤 크잖아.”
“현장 나가서 좀 긁힌 거지.”
“이번에는 또 뭘로 긁혔는데.”
“사시미칼. 스치기만 해도 손가락 날아가는 그거.”
놀라서 얼굴이 굳고 우서가 두 눈을 깜박였다. 기다란 칼이 서정혁 앞으로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진짜로……?”
힘든 일을 하는 녀석에게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사람이라는 생각에 우서는 더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정혁은 그사이에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우서의 두 볼을 그러잡고는 얼굴을 들어 올렸다.
얼굴이 눌려 마치 찐빵처럼 돼서는 정혁을 바라보게 된다.
“진우서.”
그의 풀어진 유니폼 셔츠가 보이고 가슴팍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버클이 풀어져 유니폼
바지가 골반에 가 걸쳐 있다. 운동을 오래 해서 그런지 까무잡잡한 그의 몸이 군살 없이
탄탄하고 매끄러워 보였다.
“머, 머가…….”
우서는 볼이 붙잡힌 채로 불분명한 발음으로다가 대답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정혁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떨어지는 그의 머리칼과 그늘진 매력적인 얼굴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특히 짓궂어 보이는 얼굴 하며 반듯하고 날렵한 선을 가진 얼굴이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왜, 내가 걱정이 돼?”
“……그야 당연한 거 아니냐. 그… 그니까, 인류애라는 게 있잖아.”
우서가 얼굴을 붉히면서 어물쩍 대답했다. 지금, 흔들리는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서정혁에게
들킨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이렇게 빠르게 녀석에게 빠져 버린 건… 제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상황이긴 했다.
“나한테 가진 게 인류애뿐인 건 아니지? 네가 무슨 넬슨 만델라라도 되는 거야?”
우서가 눈을 굴려서 정혁의 노골적인 시선을 피해 버렸다. 대답하기 난감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머 약간의 애정도 있지.”
정혁이 엄지손가락을 쓸어 우서의 볼을 가볍게 훑었다. 그 나긋한 손길이 잘했다는 칭찬의
증표처럼 느껴져 왔다. 그가 피식─ 웃는다. 무언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난 또, 우리 우서 노벨 평화상이라도 타는 줄 알았네.”
“비꼬지 마라? 너 근데… 다른 안전한 일은 없는 거야?”
“음… 내가 강력 팀 들어간 이유가 있는데 아는 선배가 날 스카웃했거든, 줄 잘 타면 진급 빨리
시켜 준다길래 오케이 했지.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후회 중이고.”
정혁의 의미심장한 말에 우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일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후회 중이라니,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위험한 일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음… 힘들어서?”
“아니, 체력은 별 상관이 없어. 너도 잘 알잖아. 나 밤새우고 와서 밤일해도 거뜬한 거.”
“음……?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 건지……. 우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무직이나 할 걸 그랬나 봐. 괜한 오기를 부렸어. 네 회사에 들어가서 진우서랑 마주 보고
일하고 점심 먹고 하면 소원이 없을 텐데.”
그 말에 우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진다. 아니 사춘기 소년도 아니건만, 의도가 뻔한 저런
작업 멘트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요동치는 건 왜일까. 요 며칠 서정혁이랑 붙어먹다 보니
자신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뭔 소리야… 엉뚱한 생각 말고 하던 일이나 잘해. 그러다 잘리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제대로 반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냉정하게 대답하니 정혁의 표정이 서서히 바뀌어 간다.
번뜩이는 눈으로 봐서는 또 꼬투리 잡을 재밌는 장난이 떠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근데 그건 왜. 진우서 설마 너… 강력반 형사가 막 끌려? 도둑 때려잡고 뛰어다니고
날아다니고 하는 그런 사람?”
멋있다는 말 취소다. 왜 얘기가 또 거기로 빠지는 건지, 입과 뇌가 좆에 기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우서는 자신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홱─ 치워 버렸다.
진지하고 설레던 무드도 다 깨져 버렸다. 우서가 인상을 찌푸리는데, 그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우서의 손을 잡아서는 뒤로 해 단단히 손목을
고정시킨다.
“야……! 뭐 하는 거야!!”
뒤편에서 딱딱한 물체가 닿더니 그대로 철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덜그럭덜그럭한다. 우서가 경악했다. 헉, 설마……?
“네가 좋아하는 건 도둑 때려잡는 경찰인 거 같은데. 내 소중한 하나뿐인 파트너님 취향에
내가 또 맞춰 드려야지.”
“서정혁, 너 이거 안 풀어?!”
정혁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마저 셔츠를 벗었다. 옷으로 가려져 있던 탄탄하고 근육질인 어깨와
팔뚝이 드러났다.
“우서야, 너는 이제 도둑이야. 음… 죄목은 서정혁 강제 추행으로 하자.”
억울하다! 강제 추행은 지금 자신이 당하는 게 강제 추행이었다.
우서는 두 손을 당겨 봤다. 하지만 수갑에 단단히 고정이 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두 팔이
그대로 뒤로 묶여 완전히 사로잡힌 인질처럼 되어 버렸다.
“너는 나한테 잡히는 역할이고. 신음 소리 듣고 싶으니깐 묵비권 안 되고, 변호사 선임할 권리
따위 같은 건 없어.”
괴상하게 변해 버린 원칙도 억울하지만, 더 이상한 건 말이다, 지금 서정혁에게 잡히는 역할이
아니고… 정확히는…….
“내가 너한테 잡아먹히는 건 아니고?!”
벗어나려 팔목을 이리저리 비트는 우서를 보면서 정혁은 들켰다는 듯이 아쉽게 웃었다.
“흠… 잘 알고 있네, 진우서. 도망갈 생각 하지 마. 너 나한테서 영영 못 벗어나니깐.”
그 말을 듣고 있는데 섬뜩해서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왔다. 정혁은 그대로 우서의 셔츠의
단추를 톡, 톡 풀었다.
“빨리 풀어……! 읍─!”
그러고는 저항하는 우서의 입은 자신의 입술로 포개어 막아 버린다. 오늘도 손쉽게 진우서
체포 완료였다.
츄읍─
수갑에 묶인 채로 우서는 입을 벌려 밀려들어 오는 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움직임에 맞춰
따라오다가도 벅찬 듯 다시 쌕쌕거리며 숨을 내뱉는다. 낑낑대며 제 혀를 좇는 모습이 귀여워
정혁은 으스러지게 품에 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입 안에 사탕이나 버터 같은 것을 한 움큼 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드럽게
녹아내려서 질척거리며 제 입 안을 황홀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렇게 뜨거운
손으로 볼을 쓰다듬다가 입술을 떼어 냈다.
춥─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가 끊기고, 반질거리는 입술을 벌리고 있던 우서가 달뜬 얼굴을 하고는
자신을 바라봤다. 볼과 눈 밑이 붉어져 있었다. 벌써 흥분해 나른해진 얼굴을 눈에 가득 담다가
정혁은 문득 책상 위에 올려 둔 병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서야 이건 또 뭐야, 이런 걸 준비해 왔어.”
정혁이 침대에서 일어나 와인을 집어 들고 호기롭게 바라보면서 눈썹을 씰룩했다. 라벨을 보니
한 병에도 7, 80 만 원을 호가하는 그런 술이었다. 우서는 손이 묶인 채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변명을 생각하는 저 조악한 모습 때문에 정혁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준비한 건 아니고, 어, 뭐… 집에 있더라고. 그… 너 좋아하면 마시든지.”
막상 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감당이 안 된다는 얼굴이다. 제 앞에서만 솔직하지 못한 저 입이
요망했지만 무척이나 귀여웠다.
“샤토 와인을 나한테 주는 거야?”
정혁이 말도 안 된다는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17 년산 라벨이면 꽤 값이 나간다는 건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일부러 준비했으면서 아닌 척 연기하는 모습도 씹어 먹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속아 주려 웃음을 꾹 참아 보지만 진우서의 행동이 어찌나 어색한지 입술을
씰룩이게 만들고 있었다.
“흐아, 이거나 빨리 풀어. 너 진짜 장난치지 마라? 나 손목 아프다고……!”
“아. 맞다, 우서야. 나 그러고 보니 열쇠를… 서에 두고 온 거 같은데.”
“뭐……?! 이 미친놈아! 거짓말 말고 빨리 풀라고!!”
우서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는 더욱 격렬하게 반항했다. 제 성질에 못 이겨 발을 뻗으며
정혁에게 타격을 가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두 팔이 묶여 속박된 몸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에겐 상대가 되질 않는다.
우서가 발버둥 칠수록 팔을 옥죄는 수갑이 덜그럭거리며 소리만 거세질 뿐이었다.
“진우서, 나 범인 검거하는 사람이라는 거 잊지 마. 열쇠 같은 걸 소지하고 다닐 리 없잖아.”
정혁이 어깨를 으쓱이며 우서의 옆으로 물러서 발차기를 피했다. 사실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렇게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 되는 거였지만… 정혁에게 그런 것쯤은 안중에
없다. 바지춤에 들어 있는 수갑의 열쇠는 진우서에게 비밀로 하기로 한다.
“우서야, 그러지 말고 우리 사이좋게 한 잔씩 할까?”
“팔자 좋게 내가 그거 마시게 생겼어!? 너 진짜 가만 안 둔다? 이것만 풀면… 너 진짜 죽어!”
정혁은 싱긋 웃고 바둥거리는 우서를 내려다봤다. 팔이 묶인 사람의 협박 따위는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정혁은 주방에서 잔과 오프너를 가지고 와 익숙하게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제대로 즐기러 가져온 술인데 이걸 빼놓기엔 섭했다.
“맞다, 넌 손을 못 쓰지. 그러면…….”
“으응……?”
그는 술병의 주둥이를 잡고 우서에게로 다가와 반달처럼 눈을 휘어 가며 웃었다. 지금 정혁은
앞섶 펼쳐진 셔츠 차림에, 한 손에는 병을 들고 서 있었다. 누가 봐도 미친놈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그런 상태였는데, 더욱더 미친 소리를 해 온다.
“오늘 한번 제대로 놀아 보자.”
광기 어린 그런 말을 내뱉는다. 우서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경악했다.
정혁이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마시다가, 입가로 흐르는 걸 소매로 쓰윽─ 닦아 냈다. 그가 병을
탁자에 놓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점차 거리를 좁혀 우서에게로 다가왔다.
“뭐, 뭐야……!?”
발버둥 치며 뒤로 물러나 봤지만, 우서는 벽에 뒷머리를 콩 찧었다. 그가 침대 위로 기어 오듯
팔을 뻗어 다가오자 침대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으─ 흡……!”
그 뒤로는 입술 위로 말캉한 감각이 닿아 와 간질였다. 핏빛 술을 머금은 채로 정혁은 부드럽게
입을 맞춰 온다.
추읍─ 춥─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받아들이자 질척이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손이 뒤로 묶여서
우서는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턱을 쓸어 오는 손길에 온몸이 경직되고 저절로 허리가 곧게
세워졌다. 하반신은 뻣뻣해져서 발끝까지 힘이 들어갔다.
움직일 때마다 철이 덜그렁거리며 우서의 손목을 압박해 온다. 움직일 수가 없어 답답했지만
끙끙거리며 정혁의 입술을 받아 내는 것밖에는 별달리 방법이 없었다.
“흐으…….”
입술 그 틈새로 밀려들어 오는 달큼한 술에 목구멍을 열어 꼴깍이며 받아먹었다. 향기로운
과실주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지고 혀끝에는 달콤 쌉싸름한 맛이 감돌았다.
정혁은 계속해서 입을 맞추며 두 손으로 급하게 우서의 셔츠를 풀어냈다. 반쯤 열린 셔츠
사이로 희고 고운 살이 드러나자 두 손을 틈새로 집어넣어 가슴을 꽈악 움켜쥐었다.
“아, 읏─ 으응.”
희롱하듯 가슴팍에 손가락을 올려 두고는 유두를 간질이고 꼬집어 세운다. 빳빳해진 돌기는
볼록하게 입체감을 자아내고 점점 와인의 색을 닮아 가는 듯 새빨개졌다.
“하…….”
계속되는 키스로 춥─ 춥─ 하는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뜨거운 숨을 뱉어 내는 우서를
바라보다가 정혁은 여유롭게 입술을 떼어 냈다.
눈은 살짝 풀려 있고 입은 헤 벌린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핏빛 머금은
불그스름한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붉어진 젖꼭지와 탐스러운 몸이 와인의 영롱한 루비색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서야, 더 마시고 싶어?”
“…….”
대답은 없는데 고민 끝에 우서가 눈을 떨어트렸다. 자신을 마주하다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떨구지만 공들인 키스가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부정해 오지 않고 있었다.
정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 자신 또한 무척 만족스러웠으니까. 부드러운
손길로 우서의 옷들을 한 겹 한 겹 벗겨 냈다. 바지와 속옷까지 전부 다 끌어 내린 후에 정혁은
다시 병을 집어 들었다. 꼴깍꼴깍─ 하고 그의 커다란 목젖이 위아래로 울렸다.
우서의 나신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술이야말로 정말 환상적이었다.
“일어나, 우서야.”
우서의 몸을 끌어당겨 그를 일으켜 세웠다. 손이 묶여 있어서인지 휘청하면서도 그는 정혁이
이끄는 대로 따라서 바닥에 발을 디뎠다.
방 한가운데에 세워 두니 흰 몸과 새빨간 유두 그리고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입술이 제 방
풍경과는 들어맞지 않게 무척 색정적이었다.
정혁은 그 병을 들고 우서의 몸 위로 가 기울였다. 병의 입구에서 핏빛 보라색의 액체가 걸려
넘실대더니 금방 콸콸 쏟아져 내린다.
“아─ 이게……! 흡─ 뭐 하는 거야!”
우서는 눈을 꽈악 감았다. 머리끝에서 떨어져 척추를 타고 엉덩이와 허벅지 종아리에서 기다란
줄기가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미안…… 손이 미끄러졌어.”
정혁이 웃으며 사과했다. 우서는 눈을 꽉 감고 고개를 세차게 털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와인 방울이 옆으로 튀고 그 자리에는 붉은 흔적이 피부에 새겨지듯 남았다. 우서는 눈을
날카롭게 뜨고 정혁을 노려본다.
“읍─ 너 분명, 일부러 그랬어! 으으… 내가 봤거든? 이 개자식아… 죽을래?”
저번에 물에 젖은 게 너무 섹시해서 와인도 쏟아 보았는데, 예상대로 진우서는 아름다웠고
청초했다. 물을 머금고 촉촉해지고 더 반들거리는 것이 꼭 윤이 나는 열매 같았다. 싱그럽게
반짝인다.
젖은 채로 바락바락 대드는 것도 제 취향이었다. 으르렁거릴 때마다 그의 뒤편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수갑을 채운 것도 무척 잘한 일이었다.
“설마, 내가 일부러 그럴 리가 없잖아.”
“시이발……!”
바닥에 우서의 몸을 타고 흘러 고인 핏빛 웅덩이가 생겨났다. 그의 발기한 성기 끝에서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도 제 파트너는 저를 맞이할 준비가 완벽하게 된 듯했다.
“그런데 진우서는 젖어야 제맛이지. 그렇지 않아?”
너무 야하잖아. 향도 그렇고 맛도 최고임을 잘 안다. 와인에 푹 젖어 야릇하게 손이 묶여 있는
우서를 바라보며 정혁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제 품에서 녹아내리거든 무척 예쁘겠다.
“이게……!”
“잘 먹을게. 고마워, 우서야.”
정혁은 급히 자신의 셔츠를 벗어 던지고는 그대로 우서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혀를 세워
돌기를 핥고 입술을 모아 도톰한 젖꼭지를 빨다가 이를 세워서 다시 그것들을 깨물었다. 춥─
춥─ 하는 질척이는 소리가 날수록 우서의 몸이 비틀렸다. 와인의 향기와 제 파트너의 달큼한
살 내음이 전해져 와 기분을 황홀케 한다.
“흣─! 으읏!”
우서의 도톰한 입술 사이에서 새된 신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발을 구를
때마다 바닥에 고인 와인 때문에 찰박거리는 소리가 더해졌다.
뒤에 묶인 수갑 때문에 더 격렬히 몸부림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정혁은 손을 뻗어 엉덩이를 그러쥐며 그 살을 만지고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어 할짝였다.
“아─ 달고 향기롭고… 맛있어.”
엉덩이 사이로 손을 뻗어 허벅지를 잡아당기자 곧게 서 있던 우서의 다리가 좀 더 벌어졌다.
그의 둔부가 개화하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손끝에 주름진 부분이 닿아 올 것만 같아서
머릿속에는 쾌감이 피어올랐다.
“이제 뒤돌아봐.”
우서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달싹이지만, 정혁은 단단한 손으로 우서의
어깨를 잡아 뒤돌게 했다.
“흣─”
며칠간 공들여 풀어 놓아서 그런지 이미 부드럽게 풀어진 입구, 그 안으로 와인에 흠뻑 젖은
손가락을 넣었다. 저항 없이 쑤욱─ 들어간다.
“하으윽! 흐읍…….”
그런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게 아닌 모양인지, 우서가 자지러지며 울고 허리를 들썩였다.
허리를 바짝 끌어안고 구멍 안으로 넣은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니 그의 입에서는 교태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흣. 아, 으응……!”
몇 번 들락날락하며 길을 넓힌 뒤에 허리띠와 바지 버클을 풀었다. 이제는 금방이지 풀려
버려서 붉고 뻐끔거리는 입구가 정혁을 맞이하듯 벌어졌다. 그 모습이 음욕을 불러일으킨다.
앞섶에 닿게 해 뭉근하게 비비니 그 몸에 묻었던 와인들이 정혁의 성기에 그대로 떨어져서
전해져 온다.
“후…….”
“아, 아, 흐읍.”
선단을 그의 입구에 맞추고 조금씩 추삽질을 시작하며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우서의 신음은 좀 더 야릇해지고 요염해진다. 뒤로 묶인 팔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황홀경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아, 아, 읏… 거기 좋아.”
그의 몸을 드나들고 그 안을 가르고 사정없이 쳐올리기 시작하니, 우서가 그대로 따라
흔들린다. 뒤로 묶인 손도 같이 흔들리는데 마치 이제는 저항하길 포기한 모습이었다. 수갑에
묶인 우서의 모습이 꽤 맘에 들었다. 부적절한 관계의 묘미가 이러한 건지, 정혁은 계속해서
정욕에 휩싸여 배 속을 세차게 드나들었다.
“아─ 서정혁. 으읏. 흣……!”
손을 앞으로 해 우서의 가슴을 그러모았다.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단단히 그 주변의
살들을 끌어당겼다. 두 손에 살이 잔뜩 모인다. 움켜쥐고 또 살살 풀어내며 그렇게 가슴을
함께 자극했다.
“아, 아, 앗─ 읍. 나 앞에.”
우서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정혁을 따라 흔들리면서도 다급하게 재촉해 왔다.
“후… 앞이 왜.”
점점 더 피치를 올려 그의 몸을 드나들자, 우서의 몸에 묻어 있던 술이 모두 바닥으로 가
떨어졌다. 와인에 몸을 담근 듯한 모습에 시각적인 자극이 더욱 흥분을 부추겼다.
“나… 흐으, 응, 아읏, 으읏.”
그의 뒷모습을 보고 섹스하고 있었지만, 앞모습은 안 봐도 눈에 훤했다. 발기한 성기가
꼿꼿하게 서서 그대로 뱃가죽에 가 달라붙어 있을 텐데… 뻣뻣하고 저릿한 그 감각이 무척
고통스럽고 아플 것이다.
“히익, 읏. 나 앞에 만져… 줘. 아윽.”
우서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원하면서 정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서는 사정을 해 오지만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그냥 내버려 두고 싶었다. 곧이곧대로 그의
부탁을 들어줄 마음은 없었다.
“후… 만지고 있잖아.”
그 증거로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 우서가 고개를 저으면서 그곳이 아니라는 듯 세차게
도리질 쳤다. 와인에 젖은 머리칼이 흔들려 향기를 풍기고 계속해서 퍽─ 퍽─ 하며 치고
올리니 몸은 점점 녹진녹진 힘이 풀려 간다.
정혁의 쿠퍼액과 묻어 있던 와인이 구멍 사이로 삐쭉삐쭉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붉은 기가 도는
애액들을 오물거리며 뱉어 내는 구멍이 야살스럽기 그지없었다.
“내 거 잘 품고 있으면, 그러면 만져 줄게.”
“흐읏. 아, 서… 정혁… 아읏, 아앗─!!”
우서가 고개를 뒤로 꺾고는 끅끅거리며 높은 비명들을 질렀다. 농염하게 부푼 가슴을
계속해서 자극하며 우서의 안을 마구 드나들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그 안에 뿌리까지
박아 깊숙한 곳에서 사정을 하고 우서를 놓아주었다.
“하아… 하…….”
우서가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려 버렸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흐느적거린다. 그러다
결국 철퍽 하고 바닥에 고인 와인 위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뒤로는 힘을 주고 있는 건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안, 우서야… 잘 잡고 있었는데 미끄러졌어.”
“아아…….”
귀두 끝에서는 쿠퍼액이 꿀렁이며 새어 나오고 있지만 우서는 결국 사정하지 못했다.
새빨개진 성기는 터질 것같이 상당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후… 그대로 내 거 계속 품고 있어.”
정혁이 우서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뒤로 모으고 울음을 삼키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서
밉다는 듯이 올려다본다. 그렇지만 성기는 곧게 세우고 있어 더욱 음심을 자극해 왔다. 마르고
군살 없는 몸에 유두와 성기가 우뚝 솟아나 더욱 눈에 띄었다. 핥아 먹고 녹을 때까지 빨아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만져 줄까?”
제발이라고 애원하는 진우서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편하게 해 주고 싶은 맘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아, 아. 빨리… 흣.”
무릎을 접어 자세를 낮추니 우서와 눈높이가 맞아 든다. 그의 아랫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서의 오른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떨어졌다. 자신의 씨물을 가득 품고 있을 그
아름다운 몸이 사랑스러웠다.
“내 거 잘 품고 있으니까 너무 예쁘잖아. 보기 좋잖아. 이렇게 계속 품고 있어, 우서야.”
“……으응.”
우서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만족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정혁은 배를 따라 손을 미끄러트리다가 우서의 성기를 그러쥐었다. 뒤로 묶인 손은
이제 더 이상 반항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순응하고 있는 듯했다.
“으읏─ 아, 아아, 좋아.”
뜨거운 숨을 뱉어 내고 그 열기와 함께 우서가 계속해서 신음했다. 기둥을 잡고 위아래로
조금씩 힘주어 움직이니 그가 허리를 배배 꼬고 몸을 가만두질 않는다.
“계속 힘주고 있어.”
그 말에 우서가 더 안절부절못하고 허리를 들썩였다. 깔고 앉은 와인 때문에 찰박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기도 했다.
“이제 내가 빼 줄 때까지 내 거 잘 품고 있는 거야.”
“흐읏, 으으, 아, 앗……!!”
우서의 눈에서 눈물이 세차게 떨어져 내렸다. 뜨거운 숨을 몰아쉬면서 온몸을 바르작거리며
떨었다. 엄지로 귀두를 막고 사정하지 못하게 한 상태로 기둥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으응, 흣… 힉……!”
그리고 마침내 다리 사이로 정혁의 정액들이 퍼져 흘렀다. 붉은 액체 속에 우서가 품고 있던
점액질의 흰 정액이 점차 번져 나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거라 생각해도 될까, 정혁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잘했다는 듯 너그러이
웃어 주었다. 그러고는 귀두를 막고 있던 손가락을 떼어 냈다. 투둑─ 소리와 함께 참았던
것들이 터져 나오고 우서는 다리를 바르작 하고 떨면서 정혁의 손에서 사정했다.
“흐읏, 흐으… 하아…….”
울음소리와 신음이 섞여 더욱 애타게 들려온다. 그대로 술과 눈물에 푹 젖은 몸을 꽈악 안아
들었다. 수갑을 찬 손이 힘없이 뒤로 툭 떨어져 내린다.
너는 배려 없이 하드하게 하는 걸 원한다 했으니, 네 취향대로 만족시켜 주어 절대로 날 잊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 내 품에 안겨서만 느낄 수 있게, 제 파트너가 다른 사람은 찾지 못하게
그렇게 길들이고 싶었다.
우서를 보고 있노라면 소유욕이 저를 완전히 잡아먹어 버린다. 만약 널 못 가지면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다. 진우서는 꼭 제 거여야만 했다.
“우서야, 사랑해.”
정혁은 이마에 키스하고 우서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또 검지로 눈에 맺힌 눈물을
거두며 눈을 맞추고 호선을 그리며 화사하게 웃었다.
***
***
‘무사히 오면 나랑 사귀나?’
아까 말했던 그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우서는 자동으로 재생되는 정혁의 말을 곱씹었다.
“어, 어, 우서 씨……! 넘쳐요, 넘쳐!”
“네……? 헉……! 아… 죄송해요!”
실린더의 용액을 적정량 따른다는 것을 쪼르륵─ 하며 넣다가 결국 넘쳐 버리고 말았다.
우서는 실험 테이블을 적신 용액들을 얼른 닦아 냈다.
일을 하는 내내 서정혁에게서 전화도 카톡도 없었다.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을 녀석으로 인해서
우서는 뭐에 홀린 듯 자꾸 실수를 했다. 정신이 딴 데 팔려서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퇴근할 때까지도 정혁에게선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실험을 끝내고 오피스 업무도 마친 뒤에
환복을 하고 카드를 찍고 나왔다. 그런데 복도에서 동료를 마주쳤다.
“우서 씨, 오늘 무슨 일 있어? 아까 평소에 안 하던 실수까지 하고.”
“아… 오늘 컨디션이 안 좋나 봐요.”
거짓말로 변명도 해 보지만 사실 정혁이 걱정돼서였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진득이 잘 기다려
보기로 한다. 내게로 돌아올 녀석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번처럼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면 눈앞에 나타나 내게 키스하고 웃으면서 눈 맞춤해 줄 거라
믿고 있었다.
조금 이상했다. 앞으로 서정혁과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돌풍이 불어오다가도 이미
결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담대해지고 차분해졌다. 기다려지고 설레고 많이 보고 싶다.
또 다가올 고백의 순간들을 상상하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정혁에게서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봄비가 부슬부슬 쏟아지고 있었다.
***
연약한 정혁
***
서정혁은 내게 어떤 존재였냐 하면…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기도 했고, 또 가까이 지내는
형제기도 했으며, 항상 같은 시기에 똑같은 관문을 넘는 라이벌이기도 했다. 이제는 같이 배를
맞추는 연인이 되었다. 우서는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었다.
우서는 잠에서 깨 눈을 떴다. 토독─ 토독─ 빗방울이 창문을 때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녀석이 돌아오거든 사귀자 말할 것이다. 확신이 들었다.
“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밤잠을 설치고 있는데 핸드폰은 고요하기만 하다. 정혁에게서 연락이
없어 애가 탄다.
그런데 아까부터 밖이 소란스러웠다. 뭐지, 싶어 우서가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키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빛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방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바라봤다. 그토록 기다리던 너일까. 하지만 서정혁의 모습이 아닌 왜소한 체격이다.
아마도 그 모습은 엄마인 것 같았다. 아직은 캄캄한 새벽이다. 그런데 왜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서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우서가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우서야, 일어나! 정혁이가……!”
우서의 엄마가 뱉은 그 이름에 털이 쭈뼛 선다.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 서정혁이 왜?”
망설이다가 천천히 그 이름을 다시 꺼내었다. 네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입 안이 쓰고 혀끝이
저릿했다.
“정혁이가 일을 하다가 글쎄…….”
그런데 우서의 엄마는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내다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서정혁이 왜……?! 무슨 일 있대?”
우서가 부스스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다가갔다. 그 얼굴이 무척이나
불안정해서 우서도 덩달아 손이 떨려 왔다.
“다쳤대. 그것도 체포하려던 사람이 휘두른 칼에 찔려서…….”
세상이 무너진다. 미친 새끼야… 너 진짜…….
우서는 온몸에 탈력감을 느꼈다. 힘이 빠지고 당장 쓰러질 것만 같은 현기증이 몸을 덮쳐 왔다.
“……많이 다쳤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묻지만 제발 아니라고, 괜찮다는 그 대답만이 나오길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 엄마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는 눈물을 삼켜 냈다. 그 서러운 흐느낌에 우서는 이
상황이 제게 어떠한 시련과 끔찍한 고통을 가져다줄 거라는 걸 직감했다.
“정혁이 지금 의식이 없대. 수술해야 될지도 모른대…….”
피가 차갑게 식어 버린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서정혁 너 진짜… 무사히 돌아오기로 했잖아. 나랑 약속했잖아. 다시 돌아와서 나랑 사귀기로
했잖아…….
***
***
***
모두가 하루 종일 병원에 있을 수 없어, 우서의 아버지가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곁에 남아
정혁의 부모님을 챙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우서는 엄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우서의 어머니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서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정혁의 걱정에 이리저리
뒤척일 뿐이었다.
우서는 불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니
어둑어둑한 하늘에 새하얀 달이 떠 있었다. 얇고도 휘어짐이 극에 달하는 초승달이었다.
세차게 비가 내리던 어제의 궂은 날씨가 다 거짓이었다는 듯이 하늘은 맑고도 청명했다.
문득 예전에 서정혁과 베란다에서 설전을 벌였던 그때가 떠올렸다. 나한테 뜬금없이 라면을
끓여 달라고 했었던가. 우서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자 따뜻하고 포근한 바람이 사근히 불어왔다. 그에 맞춰 피곤한 눈을 살포시
감았다.
‘우서야.’
마치 정혁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우서는 고개를 돌려 위를 힐끔
바라봤다.
그러나 그곳에는 불 꺼진 집이 보일 뿐, 사람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듣고 싶은 대로 그렇게
제멋대로 정혁의 목소리를 상상해 냈을 뿐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그게 당연한 건데도 마음이 헛헛하고 섭섭해져 간다. 결국은 눈앞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왔다. 도시의 화려한 야경이 온통 아른아른하고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너는 매일 그곳에서 있을 줄만 알았다. 그래서 내게 매일 장난치고 시비를 걸며 영원히 나를
귀찮게 할 줄만 알았다.
‘나 라면 끓여 줘라.’
‘너 나 버렸다?’
‘그럼 이제 나 진짜 내 맘대로 한다?’
몸이 가면 마음도 움직인다면서 그런 쉬운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던 녀석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서정혁은 저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때 그
말을 아무 뜻 없이 툭 뱉었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우서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투둑─ 툭─
하고 떨어졌다.
“흐읍─”
크게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누르려 했지만, 더 이상은 힘들었다. 오늘 하루 종일 잘 참아
왔는데, 근데 이제는 안 될 것만 같다. 소매로 벅벅 문질러 닦아 내 봐도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넘쳐 옷감을 축축하게 적셨다.
“흐윽…….”
우서는 결국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무릎이 눈물을 따라서 동그랗게
젖어 간다.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그는 그 자리에서 숨죽여 울었다.
이제는 너 없으면 안 된다.
서정혁 빨리 일어나. 다른 사람은 못 만난다. 너여야만 한다. 매일 저를 향해서 조잘거리던
녀석이 곁에서 한순간 사라져 버리니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무했고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갑갑하고 앞으로 닥칠 일들이 무섭기도 했다.
너랑 있으면 그 어디든 즐거웠고, 너와 함께했을 때 가장 많이 웃었다. 또 너와 있을 때 내가
많이 자라났다. 기쁨, 슬픔, 질투. 네게 많은 감정을 배워서 이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서정혁…….”
최악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불안감이 엄습해서 저도 모르게 걱정이 됐다. 그가 없는
미래를 상상하기에는 저는 아직 너무 미숙하다.
계속해서 아니라고 강인한 척을 해 보았지만, 단단하고 우직하게 이겨 내려 다짐을 했지만…
혹시 모를 그 최악의 상황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서정혁, 우리를 포기하지 마.
다시 멀쩡하게 돌아와서 내 곁으로 돌아와 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다시 일상으로 데려가. 나한테 다시 와 줘.
네가 무척 보고 싶었다. 차라리 병원에 버티고 그의 곁에 남아 있을 걸 하고 후회하게 된다.
의식이 없는 너라도, 그 모습이라도 보고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이렇게 흔적이 잔뜩
남은 곳에 혼자 남게 되니 괴로움은 배가 된다.
너무나도 쓸쓸했다. 이 도시가 다시 회색빛의 삭막한 공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그
품의 따뜻함을 알아 버려서, 정혁의 열정과 집념을 겪어 보아서 허전함은 우서를 좀먹어 간다.
그 짧은 새에 서정혁의 세상을 겪었고 그가 그리웠다. 우서는 그렇게 쪼그려 앉아 한참을
눈물로 그를 그렸다.
***
***
정혁의 동료들은 자리를 지키다가 늦지 않게 돌아가고 우서 홀로 남아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밤에 다시 오신다 하던 정혁의 부모님은 우서에게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주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정혁의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우서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언제나 그들의 자랑이었던
서정혁이 이 자리에 가만히 멈춰 있다.
“네, 아주머니가 더는 안 아프셨으면 좋겠어요.”
애먹이지 말고,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이제는 일어났으면……. 우서는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는 정혁을 힐끔 내려다보다가 결국 고개를 푸욱 숙였다. 바이탈 소리가 일정하고 밤이 되어
조용하던 병실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네, 걱정 마세요. 부모님들이 힘내셔야 정혁이도 빨리 일어나죠. 얼른 주무세요, 아저씨.”
우서는 밤을 지키는 것만 같은 정혁의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손끝으로 살살 만지며
전화를 끊었다. 네가 일어난다면 네가 날 아무리 놀려도 그리고 나한테 아무리 야한 농담을
해도 그게 다 좋을 거 같다.
“야, 서정혁. 나 그거 몰랐다.”
대답은 없는데 혼자 하는 대화도 조금 익숙해지고 있다. 이 익숙함이 절대 당연한 일이 되지
않게 더는 자신을 혼자 두지 않았으면 했다. 정적과 침묵 사이에서 우서가 다시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나 너 진짜 많이 좋아하나 봐. 네가 다치니깐 되게 힘드네…….”
정혁의 굳은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으로 온기가 조금씩 전해지고 있었다. 정상의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가 느껴질 때마다 뛸 듯이 기쁘고 행복했다. 슬프고 힘들지만 우서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네가 옆에 있을 때는 몰랐지. 나한테 이렇게 소중한 사람인 줄은.”
좋아한다 자각했지만 정혁에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은 줄만 알았다.
매일 옆에 있어서 내일도 그리고 몇 년 뒤에도 항상 제 곁에 있을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네 사랑과 내 마음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외의 것들을 걱정했다. 부모님이라든지
우리의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타인의 시선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네가 없다면 다른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지난 과거의 걱정들이 다 쓸데없는 것임을 이제 와 깨달았다.
더는 후회하기 싫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서정혁에게 솔직해지고 싶었다.
우서가 후회하듯 또 반성하듯 천천히 이야길 꺼냈다.
“아니, 알았던 거 같은데 말 안 했어. 미안, 이제는 솔직하게 말해 줄게. 그니깐 빨리 일어나.”
서정혁이 깨어 있었다면 아마 기뻐 날뛸 그런 대답을 했는데도 녀석에게서는 답이 없다.
“그래. 까짓것 애도 뭐 열댓 명 만들어 보자.”
그 말은 진짜 100 프로 빈말이었다. 진심은 전혀 담겨 있지 않은 허황된 얘기. 서정혁이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오기로 내뱉은 말.
“……?”
그런데 우서는 잡고 있던 손끝이 잠깐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그 미약한 힘이 기적 같아서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손과 정혁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자신이 느낀 이
감각이 거짓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다가 애타게 그를 봤다.
“……서정혁?”
그의 손에 조금씩 힘이 돌아오고, 우서의 손을 좀 더 꽉 잡는다. 우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활짝 핀 얼굴로 정혁에게 고개를 숙여 가까이 다가섰다. 눈가가 미약하게 움직이더니 눈을
스르륵 떴다. 그러곤 눈이 부신지 몇 번을 감았다 떴다.
“…….”
“서정혁……! 너 정신이 들어?”
우서의 얼굴에 놀람과 기쁨의 표식들이 퍼져 나간다. 두 눈이 커다래지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리다가도 동시에 어쩔 줄 몰라 굳어 버렸다.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정혁은 말없이 우서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그럴 만했다. 긴 수술을 받고 나서 회복하는 데도 한참의
시간을 쏟았으니까.
“아……! 의사 쌤 불러올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봐.”
뭐부터 먼저 확인해야 될지 몰라 허둥지둥대는데 잡고 있던 손이 붙들렸다. 억센 힘은
아니었지만 그 악력 때문에 뒤돌아서던 우서가 다시 움찔하고는 정혁을 바라봤다.
“여기… 어디야?”
갈라진 목소리로 우서에게 작게 속삭이는데 그 목소리가 기적같이 들렸다. 정혁의 눈동자가
이곳저곳을 훑다가 다시 기운 없이 껌뻑이면서 우서를 바라본다. 막 낮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그는 무척이나 나른해 보였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설레고 또 가슴이 미어질 듯 벅차올랐다.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샘솟고 금방 눈가에 대롱대롱 맺혔다.
“여기는 병원이고 너 일하다가 다쳐서 여기로 왔어.”
“아…….”
그는 짧게 탄식하고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았다. 미간과
이마가 찌푸려지는 것을 보아하니 과거의 기억들이 그를 괴롭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괜찮아. 수술도 잘됐대. 금방 나을 거야.”
툭 치기라도 하면 눈물을 마구 떨굴 것 같을 정도로 감격해서, 우서는 눈물을 매달고도 닦을
줄을 모르고 먼저 정혁부터 안심시켰다.
그런 우서를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이름을 불러 왔다.
“진우서.”
“으응. 왜?”
정혁의 입으로 다시 들은 제 이름, 기쁜 나머지 높은음으로 대답했다. 우서의 얼굴이 기쁨과
환희로 물들어 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못 들을 거라 생각해 가슴이 찢어질 것같이
아팠었는데 지금 이 순간은 말도 안 되게 행복했다.
“근데… 후… 너 방금 뭐라 했어?”
“어……? 나?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나… 눈 감고 다 들었는데…….”
멍하니 생각해 보지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을 불러
올까라든지 어디 아픈 데 없냐 물은 것밖에는 없는데… 제가 무슨 얘기를 했더라, 우서는 아까
했던 얘기를 다시 더듬더듬 떠올려 봤다. 정혁이 깨어난 기쁨에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별다른
말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나 아무 말도 안 했다니깐?”
우서가 눈물을 매달고는 정혁을 바라보면서 무해하게 대답했다. 두 눈을 깜빡이면서 정혁을
바라보니 결국 맺혀 있던 눈물이 톡, 톡, 하고 뺨으로 굴러떨어졌다. 우서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잔뜩 달려 있었다.
뭐라 말했는지 고민해 본다. 정혁이 깨어나니 정신이 아득해져서 계속 얼떨떨하다. 그렇게
서정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그 말이 있다.
‘그래. 까짓것 애도 뭐 열댓 명 만들어 보자.’
“어, 너 혹시… 들었어?”
우서는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정혁이 누워서는 천천히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진우서… 약속 지켜.”
저거 환자 아니다. 쟤 분명 일찍이 깨어 있었을 거다. 그리고 눈만 감고 내가 한 말들을 다 듣고
있었던 거 아닌가 싶었다. 어이가 없어서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고 화가 들끓기 시작했다.
깨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우서가 다시금 평소대로 정혁을 향해서 소리쳤다.
“아, 진짜 서정혁……!!”
우서는 발을 구르면서 볼에 흐르는 눈물도 손바닥으로 슥슥 닦아 냈다. 못 들을 줄 알고
숨김없이 본심을 말했던 건데 다시 생각해 보니 모두 다 창피했다.
짜증 난다. 적당히 말할 걸 싶었다. 이렇게 또다시 약점 잡힐 줄은 몰랐다. 서정혁은 이제
앞으로 저를 얼마나 놀려댈까, 상상할수록 미래가 암담하기도 했다.
기쁜데 복장이 터진다. 아주아주 다양한 감정이 우서의 마음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창피한데 기쁘다. 행복한데 짜증 난다.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애써 변명했다.
“서정혁, 너 그거… 환청이야. 아파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거라고.”
“아닌데. 똑똑히 들었는데.”
이제는 눈물이 쏙 들어간 채로 정혁을 향해서 항변했다. 애를 낳겠다는 저의 말도 안 되는
농담이 결국 정혁의 의식을 되찾게 한 것일까, 무슨 소환 마법 주문이라도 돼? 우서는 어이가
없어서 계속해서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에 침을 묻혔다.
“아니라니깐? 나 진짜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아니 그…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은 진짠데
그러니깐 그게…….”
결국 우서는 자신의 머리를 두 손을 감싸 쥐었다. 무얼 부정하고 또 무얼 긍정해야 될지 머리가
뒤죽박죽이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런 스스로가 짜증 나서 울상을 지으면서도 이 상황은
못내 기쁘기도 해서 입가가 씰룩이는 걸 반복했다. 정혁도 황당하다는 투로 웃었다.
“아… 존나 어지럽다. 지금.”
“아, 맞다. 빨리 가서 의사 쌤 불러올게.”
정신 차려야지 싶어 우서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두들기며 서정혁에게 잡힌 반대쪽 손을
풀어내려 할 때였다.
“그게 아니고. 네가 나랑 애를 만든다고 하니깐. 어떻게 맨정신으로 버텨.”
“이게 진짜……!”
머리를 두들기던 손으로 우서가 곧장 정혁을 향해서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눈 깜짝 않는 서정혁은 더욱더 재수가 없었다. 칼을 맞고 나니
주먹은 별 위협도 안 되나 보다. 때릴 테면 그렇게 해 보라는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대 칠 거야? 환자한테? 나 지금 깨어났는데……?”
“몰라, 너 입이 너무 살았어. 아픈 거 거짓말이지, 나 집에 갈 거야.”
주먹을 내리고 그를 노려보다가 옆자리에 놓아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서정혁, 목은 다 쉬고
입은 살아서 나른하고 낮은 목소리로다가 농담을 뱉어 오니 기분이 더욱 이상했다.
“아, 진우서. 나 갑자기 아픈 거 같아. 배랑 머리랑 어… 여기저기 다 아파.”
갑자기 또 아프단다. 우서가 가방을 챙기려다가 정혁을 홱 노려봤다.
“말하기가 힘들고 자꾸 숨이 차.”
정혁은 계속해서 자신의 상태를 어필해 왔다. 아주 좋은 먹잇감을 겟한 자의 표정으로 그리
말하면 누가 믿어 주겠냐고! 분명 아프고 초췌한 게 맞긴 한데 의심이 들기도 했다.
“숨 쉴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다쳤다는 건 지금 서정혁의 엄청난 무기다. 저의 발목을 칭칭 감아 거역할 수 없게 만드는
족쇄기도 했다. 후우, 하고 우서가 한숨을 쉬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잠깐만 기다려. 밖에다가 너 깨어났다고 말하고 올게.”
그런데 정혁이 대뜸 잡은 손에 힘을 줘 우서를 한 발자국도 떠나지 못하게 저지했다.
“나 괜찮으니깐… 잠깐만.”
“응?”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있어.”
“그래도…….”
갈라져 나오는 거친 목소리에 다시 또 그가 걱정되고 안쓰러웠다. 정혁이 한마디를 툭 뱉을
때마다 감정이 마구 널뛰고 있었다.
“진우서 네 얼굴 더 보고 싶어… 못 본 지가 오래된 거 같아. 내가 너무 오래 잔 것 같아.”
그 말에 우서의 머리가 띵하게 아파 왔다. 낮게 깔린 메마른 저음의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니
마음이 이상하다. 저는 계속해서 누워 있는 정혁의 얼굴을 봤다지만 녀석은 그게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오랜만에 보는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해 긴장이 됐다.
“진찰부터 먼저…….”
“보고 싶었어, 우서야.”
정혁에게 그리웠던 존재라는 걸 실감하자 불에 덴 듯 얼굴이 홧홧하고 뜨거워졌다. 제 말은
듣지도 않고 자꾸만 해 오는 그 고백들이 가슴을 세차게 뛰게 한다. 판단력은 흐려지고 눈앞이
점점 아득해져 갔다. 그런 말을 하면 기분이 정말 정말… 이상하잖아.
“…….”
우서는 정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날렵하고도 뾰족한 얼굴이 자신을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고 반듯하고 곧게 뻗은 코와 단정한 입술 또한 강직하고 심지가
굳어 보인다. 그의 표정이 무척 진지해 지금 이 고백만큼은 절대로 가벼운 장난 따위가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아프지만 변함없이 멋있는,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고, 더욱 사랑스러워 함께하고 싶은… 서정혁.
그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맞다.
“……나도 보고 싶었어.”
우서도 결국은 입술을 달싹여 대답했다. 병실의 창문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비치고 있었다.
고요하고 조용하지만 화려한 이 도시 속에서, 두 사람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병실의 조명 아래서 정혁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럼 이제 나랑 사귀는 건가.”
그의 눈이 간절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서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일어나서
성급하게 꺼내는 말이 고작 그딴 거라니…….
의식을 차리고 나서도 저만 찾는 무서운 집착이다. 이 정도면 내가 졌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단
말이다. 우서가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게 아니면 나랑 애부터 먼저 낳고 싶은 거야?”
잠시도 슬퍼할 수 없게 정혁은 계속해서 실없는 농담을 툭툭 뱉었다. 제가 걱정되는지 잡은
손은 힘을 더욱 주어 진심이 전해지도록 애썼다.
“이 미친놈… 진짜 너 정말 죽여 버릴 거야.”
“아, 죽다 살아난 사람을 다시 죽이겠다니, 진우서 너무 잔인한데.”
우서의 눈에서 또 눈물이 뭉글뭉글 차올랐다. 아무래도 눈에 병이라도 걸렸나 보다, 저도
모르는 새에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온다. 우서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정혁을 바라봤다.
흐릿하고 뿌옇게 보이는 풍경에서 정혁은 저를 보며 웃고 있었다.
“흐윽─ 흡.”
왜 이렇게 감성적으로 변했지. 나 이과 나왔는데, 시나 소설 따위에 별 관심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몇 마디 얘기 때문에 자꾸만 벅찬 감정이 차고 넘쳐서 더 이상 감당이 되질 않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정혁이 재촉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우서는 끄윽─ 끄윽─ 울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우서야, 이리 와.”
“흐으…….”
그제야 긴장이 풀린 우서가 눈물을 벅벅 닦으면서 정혁의 품으로 다가갔다. 눈앞이 흐릿하다.
그런데 정혁의 얼굴과 그의 손만큼은 뚜렷하게 보였다. 제가 가야 할 곳은, 가서 머물러야 할
곳은 저곳이 맞다. 우서는 확신이 들었다.
다신 정혁의 품에 안기지 못할 줄 알았다.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하고 공포에 떨었는데, 이게
지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서 그게 투두둑, 떨어져 정혁의 얼굴을 적셨다. 따뜻하고 단단한 그의 품,
그리고 익숙한 서정혁. 그에게 조심스레 가 안겼다.
정혁의 머리와 얼굴을 감싸고 꺼칠한 볼에 손을 올려서 그를 매만졌다. 그제야 실감 나는
서정혁이란 존재가 저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손끝으로 전해져 와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주고 풍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정혁이 우서의 어깨를 도닥였다. 울지 마. 울지 마, 진우서. 이렇게 귓가에 속삭여 주니 행복해
미칠 것만 같았다. 한밤중 병실에서 듣는 고백이 이렇게나 다디달 줄은 몰랐다.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었던 감동으로 제 마음을 꽉 채워 줄 줄도 몰랐다.
창 너머 저 멀리 건물의 전광판에서 웃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들……. 정혁의 품에 안기니 보이는 이 모든 세상의 만물들.
네가 내 곁에 없는 동안 계절이 어떻게 바뀌고 또 시간이 어느 정도로 흐르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었다.
창밖에서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꽃비가 흐드러지게 내리고 있다.
밝고 투명한 꽃잎이 밤을 환하게 밝힌다. 그것들이 팔랑이며 온 세상을 뒤덮는 순간 그의
고백이 들려왔다.
“사랑해, 우서야.”
서정혁이 돌아왔다. 완전히 제 품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너와 나.
후회 없이 사랑을 할 거다.
***
“하아…….”
우서는 정혁의 무릎 위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살며시 눈을 뜨자 마주하고 있던 수려한
얼굴이 보인다. 정혁은 아랫입술을 살곰살곰 빨아내다가 간질이고는 놓아주었다.
정신없는 키스는 계속되었다. 목덜미에도 잔뜩 입을 비비다가 결국 우서의 턱에다가도 촙─ 촙
─ 소리 나게 입 맞췄다. 눈두덩, 콧볼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정혁은 입술을 묻고는
키스했다.
춥─ 춥─
마치 굶주린 사람처럼 제 거라고 각인을 새겨 놓듯이 세세하게 모든 부분에 흔적을 남겼다.
쇄골과 가슴까지 내려가서는 잔뜩 흡입하듯이 볼을 홀쭉히 해 빨아 당겼다.
“흐읏…….”
성감이 자극되어 입에서는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우서가 신음하면 정혁이 고개를 들어
다시 키스를 해 입을 막아냈다. 신음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소리를 단속하며
조심스럽게 키스하고 있었다.
우서를 끌어안고 정혁은 사랑스럽다는 눈을 하고서는 기꺼이 그렇게 바라봐 왔다. 자신을
아껴 주려 하는 게 느껴져서 행복했다.
우서도 그렇게 손가락을 놀려 정혁의 상의를 벗기려 했다. 그런데 그 손을 저지하고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조금 한숨을 쉬다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꺼내었다.
“흉이 심해.”
“…….”
그의 말 때문에 우서는 갈등했다. 그래도… 괜찮다. 다쳤더라도 서정혁은 그대로 서정혁일 뿐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다시 한번 그의 옷을 말아 올리려 하니 정혁이 힘주어 손을 잡아
멈춰 세웠다.
“너한테 보여 주기 싫어서 그래.”
그래서 단단히 못 박아 줘야겠다 생각하고는 우서는 정혁의 눈을 바라보며 제 진심을 말했다.
“그런 거 가지고 싫어할 거였으면 너랑 시작도 안 했어.”
“후… 진우서 말 안 듣지.”
정혁이 안 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우서를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 쉬었다.
“너야말로 나 안 믿는 거잖아.”
그 말을 듣고는 정혁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서정혁의 마음 충분히 이해는 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흉한 것을 보여 주기 싫을 테고, 상대의
반응이 어떨지 두렵기도 하니깐…….
하지만 그런 것 따위에 쉽사리 바뀔 마음이었다면 애초에 서정혁에게 좋아한다는 고백도 안
했을 거다. 거기다가 녀석이랑 사귀겠다 결심하지도 않았을 거다. 우서는 그의 옷을 들추었다.
환자복을 벗기니 단단한 나신이 드러나고 여러 겹 감긴 붕대도 보였다. 그 위로는 피가 살짝
비치고 있었다.
붕대에 감겨 있는 상처는 어떨지 상상도 되질 않아, 우서는 다친 부위를 한참을 안쓰럽게
바라만 봤다.
“흉터… 평생 가겠지?”
“아마도… 그렇겠지?”
정혁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관망하는 태도였다. 그런 걸 왜 묻냐며 성가시다는 얼굴로
우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겸연쩍어하는 표정이었다.
“서정혁. 다쳐도 너고, 흉이 있어도 너니깐, 난 절대 흉측하다고 하지 않을게. 난 네 모습 다
좋아할 수 있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네가 충분히 속상해할 거 안다. 평생을 가지고 가야 하는 상처일
텐데. 우서가 굳세게 결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온다면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었다.
지금이 그 얘기를 할 타이밍인 것 같았다.
“빨리 나아, 서정혁.”
그리고 정혁의 입술에 키스했다. 살포시 맞닿았다가 부드럽게 맞물렸다 떨어졌다. 속상해할
정혁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우서가 용기를 냈다. 그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작게 웃는다.
“응, 네가 빨리해 주면 빨리 나을 거 같아.”
우서는 능글거리는 농담을 하는 정혁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어 탁 소리 나게 쳤다.
“아, 왜 때려.”
“계속 밝히기만 하는 거 보니깐 이미 다 나은 거 같아서 그런다, 왜.”
“아니라고. 무진장 아파서 못 움직이겠으니깐 네가 위에서 해 줘.”
우서는 한 번 더 정혁의 이마를 툭 쳐서 밀었다. 그런데 역시나 정혁이 한 수 위다. 거기다가
다친 걸로 약점을 잡아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말 다 했다. 그는 그렇게 순순히 밀려나서 결국
침대 헤드에 가 기대었다.
“빨리.”
환자들이 쓰는 침대기에 기대앉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정혁은 상체를 비스듬히 하고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우서를 재촉해 왔다. 우서의 허리에서 천천히 손을 뗀다. 그리고 한 손은
머리 뒤로 받치고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우서 보고 알아서 해 보라는 식이었다. 혼자 풀고, 혼자 넣고, 흔들어서 사정을
시키며 달아오르는 얼굴을 하고 사정까지 도달하는 모습을 관람하고 즐길 모양인 듯했다.
“후… 그건 좀…….”
우서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곤란해하자 정혁이 안 되겠는지 두 손으로 우서의 허리를 감아
제 몸을 향해 끌어당겼다. 정혁의 웃음소리가 살포시 들려왔다. 결국 그와 몸을 좀 더 가까이
붙여 허벅지에까지 올라가 앉게 됐다.
“네가 내 모든 모습을 좋아하는 만큼 나도 너의 모든 체위를 다 사랑할 수 있으니깐 빨리 해
줘.”
조금 전 자신의 말을 똑같이 따라 한다. 제 맘은 그게 아니었는데 저질스러운 언사로 변해 간
게 속상해서 우서가 눈가를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짜증 나게!”
“흥분하다가 분수를 싸도 좋고. 기절해 버려도 뭐… 다 좋아.”
“또라이 같은 놈아.”
“진짜야. 오히려 진우서한테 엄청나게 반할지도 모르겠다.”
“알았다고 알았어, 그만해. 그렇게 말하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내가 더 민망하잖아.”
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성기 사이즈와 그동안의 체력으로
봤을 때, 어쩌면… 기절은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서는 정혁이 이제 점차
정상 컨디션을 찾아가는 것이 조금씩 두렵기 시작했다.
“빨리 해 줘.”
다시 한번 재촉해 온다. 다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정혁은 격하게 움직여서는 안 될 테다.
결국은 우서 혼자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만 했다. 병실이니 소리도 내선 안 되고… 상상하니
귀까지 달아올라 너무나도 뜨거워지는 듯했다.
“아, 알았다니깐. 그만 좀 재촉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랜만에 섹스하는 거라 긴장이 된다. 혼자 흥분시키고 흥분해서는
절제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려니 눈앞이 아찔거렸다. 서정혁을 품었던 게 오래돼서
아플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을 다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싶었다. 우서도 정혁과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 요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사귀고 나서 섹스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마음이 연결된 만큼 얼른 몸도 하나가 되었으면 했다.
지금 장소가 적절치는 않았지만, 그동안 우서도 많이 참아 오긴 했었다. 혈기왕성한 나이인데
한 사람이 다쳤다는 것만으로 억지로 참고 또 참아 온 건 정말 고역이었으니까. 침을 꿀꺽
삼키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나른하게 바라보고 있는 정혁의 모습을 보니 마지막 남은 이성이
간당간당하게 흔들리다가 툭 끊겨 버렸다.
“서정혁.”
“응.”
“너랑 사귀고 파트너 아닌, 연인으로 섹스할 수 있어서 좋아.”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그렇게 말하니깐 정혁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려 화사하게 웃었다.
“나도.”
“그럼… 불 좀 꺼 주면 안 될까.”
일단 저지르고 봤는데, 너무 창피했다. 우서의 애원과 같은 말에 정혁이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순순히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제발…….”
우서의 고개가 떨궈졌다. 정혁이 큭큭대다가는 침대 근처의 스위치를 눌렀다. 커튼까지 단단히
친 병실은 단숨에 암흑으로 바뀌었다. 어둠이 찾아옴과 동시에 그의 단단한 손이 우서의
골반을 잡고 앞뒤로 조금씩 흔들었다. 하반신이 흔들리며 옷을 입은 채로 성기가 서로 뭉근히
비벼지기 시작했다.
옷 위로 점점 탄력을 받아서 단단해지는 성기가 느껴져 온다. 자극 때문에 조금씩 달아올라
순식간에 빳빳해지고 있었다.
“으음…….”
입술을 맞추면서 하체를 계속 자극했다. 커질 대로 커진 그의 성기가 느껴지고 있다. 그렇게
정혁은 만족스럽게 입술을 물고서는 우서의 애무를 즐기고 있었다. 점차 달아올라 욕망에
잠식되어 가는 제 애인을 바라보다가 우서의 바지 버클을 풀어냈다.
달칵─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마치 바지에서 난 소리가 아닌 것처럼 묵직한 소리였다.
바지 버클을 푸는 것, 그것보다도 좀 더 큰 소리였다.
이건 분명 문이 열리는 소리와 흡사했다.
우서가 저 스스로 반문했다. 아까 문을 잠갔던가?
그래, 분명히 잠그고 왔다. 그리고 한 번 더 확인해 봤었다. 이 짓을 들키면 안 되니깐 제대로
잠갔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문이 고장 났었나?
저 뒤에서 갑자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헉……?!”
미치겠네! 너무 놀라서 우서가 정혁을 세게 끌어안았다. 맨가슴이 그대로 제 살에 찰싹
달라붙어 왔다. 의지하고 싶다거나 놓치고 싶지 않다거나 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별다른 뜻
없이 너무 놀라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게 더 큰 화를 불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두운 병실에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지고 우서는 정혁을 품에 안은 상태로 고개를 돌렸다.
미간을 찌푸리며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하지만 눈이 부셔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우서는 눈을 좀 더 가늘게 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음……?”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이 상황 정말 좆 된 거란
거다. 간호사나 의사라면 이 병원에서 당장 쫓아낼지도 모르겠다. 혹시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낭패감과 오싹함이 몰려와 우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병실을 찾아온 불청객은 곧장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켰다.
“……!”
이 방의 모든 것이 밝아졌다. 홉─ 하고 숨을 몰아쉬고 우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정혁을
바라봤다. 눈을 크게 뜨고 서정혁과 시선을 마주했는데 눈에 들어온 녀석의 모습이 가관이다.
상체가 그대로 드러나 붉게 물든 그의 목덜미와 가슴이 눈에 띄었다.
우서는 고개를 숙여 제 상체를 바라봤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니었다! 제 몸도 훤히 드러나서는
엉망으로 깨물려 있었다. 불빛 아래서 보니 더욱 야살스럽고 문란해 보였다. 다행인 건 둘 다
아직 하의를 입고 있는 것 정도. 딱 그뿐이었다.
심장이 마구 요동치고 쿵쾅거리면서 뛰어대서 도무지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
그런데 문 쪽을 바라보는 정혁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서정혁이 이런 표정 짓는 건 처음
봤다. 마치 아주 좆 된 것만 같은 표정. 그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상황을 더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경직되는 그의 근육이 느껴져 왔다. 심지어 아래까지
빠르게 식는다. 크게 두꺼웠던 그 형체가 아래서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도대체 누군데 그러는 거지……? 우서도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무서움과 공포
그리고 약간의 궁금증과 혹시 하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헉……!”
문 앞에 있는 형체가 정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제 눈에 뭐가 씐 게 아니라면 저건… 한 사람이 아니었다. 차례로 그들의 모습이 망막에
맺히고 있었다. 차라리 시력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정확히 넷이었다.
아까 보았던 모습 그대로인 서정혁의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 문 앞에 서 계셨다.
그리고 더욱 불행한 사실은 그 옆에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엄마도 있었다는 거다.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놀라 서 계셨다. 그 뒤로는 키가 크고 체구가 좋은 자신의 아버지가 보였다.
미간에 잔뜩 주름이 져 충격과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계셨다.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똑같았다. 못 볼 걸 본 듯한 경악스러운 표정.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
거짓이길 바랐지만 한 치의 오차도 거짓도 없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두 사람의 부모님이
맞았다.
“……!!”
우서의 두 눈이 저절로 커져서는 동공이 확장되고 속눈썹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분명
시야는 또렷한데 눈앞은 아득해져만 간다. 동시에 엄청난 현기증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
그것도 왜 하필… 이때 오실 게 뭐람! 하늘이 원망스럽고 비통하고 원통하고 제 처지가 처량
맞게 느껴졌다.
몇 분 전 저를 유혹해 오던 녀석을 지금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과감한 행동을 한 제 자신을 미쳤다, 돌았다며 책망해 보지만 지금 펼쳐진 모든 상황을
후회하기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 말인즉슨 망했다는 거다.
모든 가족이 총출동해서 두 사람의 진한 애무를 구경하게 된 상황이다. 우서는 결국 정혁의
품에 안긴 상태로 굳어 버렸다.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은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하…….”
하지만 건강한 몸뚱이는 전혀 그럴 조짐조차 없다. 지금 닥친 시련을 똑똑히, 아주 명백히 이겨
내려 하는 훌륭하고도 또렷한 정신 상태가 지속됐다.
정혁과 우서 그리고 부모님들까지 그들은 어버버하며 오랜 시간 말을 잇지 못하고 한 공간에
있었다. 정적만 30 초가량 지속된 것 같다. 하지만 우서가 느끼기에 그 시간은 마치 1 억
광년과도 맞먹을 정도로 무수히 길었다.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였다.
“엄마야……!!!!!!”
그 적막을 깬 것은 우서와 오랜 시간 눈을 마주치고 있던 우서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자신이
부모 신분임을 망각하고 마구 소리쳤다. 해괴망측하다는 표정으로 경악하면서 입을 두 손으로
막고는 두 아들을 향해서 비명을 질렀다.
“아악!!!!”
뒤늦게 정혁의 어머니도 소리치며 두 사람을 향해서 삿대질을 했다. 아버지들은 못 본 걸 본
것처럼 얼굴을 돌리고는 마구 고개를 저었다. 모두들 패닉인 상황에서 이거 대체 어찌 수습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제발 누가 좀 알려 줘. 아닌가. 전혀 주워 담을 수가 없는 수습 불가인
상태인 건가……?!
“서정혁?”
우서는 다급히 정혁을 바라보고 그와 눈을 마주해 표정을 읽어 내려 했다. 분명 이 녀석이라면
무슨 수가 있을 거다. 모종의 시선을 교환해 보지만 그가 단호히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우서는 애절하게 정혁을 바라봤다. 너 정말 안 되겠니!? 혹시 모르잖아,
포기하지 말라고 서정혁! 너 위기 대처 능력 뛰어나잖아! 아무거나 기발한 변명을 생각해 보란
말이야……!!
우서가 잡고 있던 정혁의 어깨를 애처롭게 흔들었다. 하지만 정혁은 입술을 짓씹으며 인상을
썼다. 그러고는 우서를 보고 작게 속삭였다.
“진우서, 미안.”
시발.
안 들킨다면서! 안 들킨다고 네가 아까 그랬잖아! 우서가 속으로 외쳐 보지만 이제 와서 누굴
탓한다고 해 봤자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탓을 할 수만 있다면 서정혁에게 모든 걸 돌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결국 원인을 찾자면 시도 때도 없이 흥분하는 제 몸과 음탕한 생각만 하는
머리를 탓하는 게 제일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 엄마… 그게.”
아닌 척을 해 보려 우서가 침대에서 후다닥 내려왔다. 이 상황은 모두 오해라고, 다 잘못된
거라고 변명이라도 하려 했다. 그런데 땅을 디딘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우서가 풀썩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으…….”
비련의 주인공처럼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아니, 왜 다리까지 말을 안 듣냐고……! 우서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얼른 일어났다.
그런데 버클이 풀려 있던 바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앗……! 우서는 골반까지 흘러내린
바지춤을 붙잡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정혁과 거리를 두었다. 그 모습이 더욱 수상함을
더한다.
“아니… 그게 그러니깐.”
이제 와 늦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 보고 싶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을
절대 놓을 수가 없었다.
우서는 두리번거리면서 자신의 상의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티셔츠가 보이지 않는다. 서정혁,
어디다 날려 먹은 거야? 서정혁을 돌아보니 그도 저와 마찬가지로 풀어 헤친 환자복을
부스럭거리며 여미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기가 차서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이마를 짚으셨다.
충격과 공포감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다가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치를 떨고 있었다.
“엄마가 왜… 여기에…….”
결국 우서의 어머니가 아들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 손은 우서의 팔을 잡아채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저 높이 손바닥을 올렸다가 떨구어 우서의 등짝을 마구 때렸다.
“아악, 엄마!!! 엄마, 잠깐만!!!!!!”
살에 달라붙을 때마다 찰싹거리며 찰진 소리가 났다. 매 맞기에 민망한 나이 서른이다.
거기다가 손바닥으론 모자란 건지 들고 있던 가방으로도 우서를 마구 때렸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소지품이 날아가고 병실은 엉망진창, 아비규환이었다. 비명이 난무하고 퍽! 퍽! 하는
둔탁한 소리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진우서, 이놈 새끼야!!!”
“아니 엄마, 내 말 좀!!!”
손바닥이 닿을 때마다 저릿한 감촉이 맨살에 그대로 전해져 왔다. 눈물도 찔끔 났다. 하지만
아픔보다도 쪽팔림이 더 컸다. 거기다가 낭패감 그리고 후회감과 허탈함까지 밀려오니 딱 혀
깨물고 죽고 싶은 감정이었다. 육체로 느껴지는 고통 따위는 전혀 느낄 수가 없는 정도였다.
“어머니……!!!”
우서가 엄마에게 무방비한 상태로 맞고 있으니, 정혁이 서둘러 침대에서 맨발로 뛰쳐
내려왔다. 그 와중에 우서를 덜 맞게 하기 위해서 등을 감싸 안고는 자세를 낮게 웅크렸다.
그러자 날아오는 매를 정혁과 동시에 맞게 된다. 등으로는 그의 맨살이 느껴져 와서인지 더욱
오싹했다. 커다란 등짝을 찰지게 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우서는 작게 신음했다.
“으윽…….”
우서는 속으로 엄청난 눈물을 흘렸다.
아… 이제 변명도 소용이 없는 거다. 서정혁이 이렇게 대신 맞아 주면 빼도 박도 못하잖아.
우서는 속으로 엄청나게 오열했다.
“너네 정말 뭐 하는 짓이야!!!”
정혁의 어머니도 가세해 팔을 걷어붙이고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자신을 때리고 있는
엄마를 막고 있는 정혁을 때렸다. 서로 물리고 물려 버렸다. 제대로 꼬이고 꼬였다. 두 분이
정혁을 흠씬 두들겨 패다시피 해서 그 충격이 고스란히 우서에게도 전달되어 온다.
억─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치는 손은 묵직했다. 하지만 까무잡잡한 근육질의 팔과
가슴이 계속해서 우서를 보호했다. 손바닥이 내려앉을 때마다 감싸 안은 팔이 더욱 견고히
우서를 끌어안았다.
“흐읍…….”
그대로 혼절하고 싶은 순간인데… 곁에 녀석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서정혁, 우린 이제 너의 소원대로 평생 함께할지도 모르겠구나. 우서는 마구마구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러라고 내가 너 키웠니!!!”
서정혁이 왜 부정을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 평소에 둘러대기 잘하면서 왜……!! 왜 아무런
말도 안 하는 건지 그런 녀석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가 그대로 맞고 있어서 우서도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퍽퍽 머리와 등짝을 맞는데 정신이 나갈 것같이 아득해졌다. 그런데 등 뒤에서 아버지들까지
팔을 붙이고 가세하려 한다.
“흐으… 서정혁. 나… 무서워.”
아버지들이 다가오는 게 슬로 모션처럼 보이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동시에 저희에게로
무지막지하게 달려오는 것 같아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후… 괜찮아.”
그렇게 말해 주니 말도 안 되지만 이 상황을 왜인지 모르게 체념하게 되고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정혁이 더 굳세게 자신을 끌어안았다. 그래서 아저씨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도
무섭지 않았다. 우서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서정혁 너 이 자식, 뭐 하는 짓이야!!”
정혁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며 빠져나와 두 팔을 벌리고 섰다. 서정혁에게 다가오는 아저씨의
앞을 우서가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정혁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게 제대로 지키고 섰다.
“후… 아저씨. 진정하세요! 정혁이 이러다 죽어요. 하… 얘 환자잖아요……!”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그래, 섹스하려다가 걸린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을 모면하고 서정혁과 나, 살아남아야겠다. 임기응변으로 어떻게든 넘겨봐야지.
그러자 분위기가 점차 차분해져서 부모님들께서도 조금씩 진정하는 듯했다. 들어 올렸던 팔이
다시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화를 삭이려고 씩씩대는 부모님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진우서, 너 이리 와.”
우서의 어머니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우서의 팔을 덥석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팔을 잡아 이 병실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갑자기 정혁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아아……!!”
그가 못 견디겠다는 듯 복부를 감싸 쥐다가 우서를 힐끗 보고 눈짓했다. 빨리 제 옆으로 와
서라는 얘기 같았다. 정혁은 계속해서 아픈 척을 하면서 비틀거리다가 우서에게로 조금씩
다가왔다.
“어, 어……! 그, 서정혁 너 괜찮아?”
우서는 결국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정혁을 끌어안은 채로 부축했다. 우서가 등을 감싸 안자
그가 팔꿈치로 톡, 건드렸다. 지금 연기 좋다며 계속하란 신호인 듯했다.
“아… 너무 아파. 죽을 거 같아, 우서야.”
이 녀석은 경찰에서 썩을 인재가 아니다. 한쪽 눈을 찡그린 정혁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는
당장이지 쓰러질 사람처럼 위태롭게 비틀거렸다. 의사 쌤이 말하길 지금쯤이면 많이 호전된
상태라 이제는 고통이 훨씬 덜할 거라 했었다. 그러니깐 저 녀석은 지금 쇼를 하고 있는
거였다. 아무래도 지금 연기는 대상감이었다.
우린 커플이고 콤비고 사귀는 사이니… 우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후… 시발. 이따위 거
하고 싶지는 않았다만, 선택지도 없고 어쩔 수가 없다. 어쨌든 녀석과 함께 살아남으려면 지금
이 방법이 최선인 듯했다. 마음속으로는 낭패라며 울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그를 걱정하는
연기를 시전했다.
“너 너무 많이 맞아서 수술한 데 잘못된 거 아니야?”
그러자 부모님들이 헉─ 하시며 우서의 말에 동요했다. 아버지들도 더 이상 아들들에게
달려들지 않았고 어머니들도 높게 들고 있던 손을 점차 내려놓으셨다.
“우서야, 나 진짜 너무 아파서 죽을 거 같아… 후…….”
“서정혁, 정신 차려! 너 또 쓰러지면 큰일 나……!”
정혁이 비틀거리고 다시 끙끙거리며 복부를 움켜쥐었다. 우서는 그런 정혁을 좀 더 단단히
안고 부축했다.
부모님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차차 이성을 되찾고 계시는 모양인지
부모님들은 정혁과 우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안심하면서도 우서는 속으로 폭풍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
***
***
***
정혁과 우서는 집에서 뒹굴면서 게으른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업무에 치이느라 피곤했던
주중은 이제 안녕. 서정혁과 주말을 보내고 있으니 마음에는 평온함이 찾아온다.
다리 하나를 올려 저를 죽부인 안듯 껴안고 있는 서정혁이 불편하긴 했지만… 이 느낌이
이상하게 안락해 중독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단단한 몸에 꽉 끼어 있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떠서 내밀었다. 입 안으로 들어가는 걸 손 하나
까닥 않고도 얻어먹을 수 있는 삶은 나름 매력이 있다.
“자, 우서야. 초코 맛.”
“아…….”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정혁이 주는 아이스크림을 스푼째 입 안에 머금었다. 그런데 맛이
이상하다. 화─ 하게 퍼지는 시원한 느낌과 치약을 먹는 찜찜한 기분.
“으… 뭐야.”
“민트 초코.”
“너 일부러 그랬지……!!”
우서가 짜증을 내며 버럭 소리 지르니 정혁이 귓가에 대고 큭큭대며 웃었다. 사귄다고 해서
매번 로맨틱한 상황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정혁은 예전처럼 저를 골려 먹기도 했다. 향기가
나는 풀은 싫다. 허브와 같은 민트 잎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가리켰다.
“어, 지금 죽을 거 같은데……? 빨리 해.”
“아, 응.”
입이 댓 발 나왔던 우서가 다시 핸드폰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언제 화가 났냐는 듯 눈도
깜빡이지 않고 손을 바삐 놀려 열중했다.
“자. 진짜 초코 맛.”
밑을 힐끔 하고 숟가락에 봉긋하게 올라온 까만 아이스크림을 확인한 우서가 안심하고 입을
벌렸다. 그 순간 불쑥 정혁의 손가락이 입 안으로 들어온다.
“아, 진짜 이게 뭐 하는……!!”
정혁은 그대로 우서의 머리통을 잡고 볼을 와구 물어서 빨아 먹듯이 우물우물했다.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눈, 코, 입 여기저기에 키스하고 손을 놀려 신체 이곳저곳을 마구 주물렀다.
“으… 이거 놔아……!”
정혁은 우서의 볼을 입에 머금은 채로 고개를 젓는다. 요즘에 서정혁은 툭하면 온몸을 다
입으로 가져갔다. 볼이나 팔다리, 배 등등. 가슴이나 하반신은 말할 것도 없고. 더워서 조금
떨어져 있고 싶을 때도 있는데 당연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핥고 빨고 물고 놓아주질 않으니
서정혁 때문에 우서는 찜통에 들어간 만두라도 된 기분이었다.
“으아, 너 때문에 죽었잖아!”
결국 캐릭터의 HP 가 다해 게임이 끝났다. 우서가 손바닥으로 정혁을 짜증스레 밀쳐 내는데
그가 퐁─ 하고 입에서 볼을 놔주었다. 굉장히 높은 점수까지 도달했다가 죽어 버려서 분했다.
약이 올라 우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정혁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어이없게도 사르륵 화가 녹아내린다. 그의 매끈하고 샐쭉한 얼굴 때문에
입꼬리가 괜히 씰룩댔다.
“정말 나 때문이야……?”
흐음…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아이템을 너무 일찍 썼던 거 같기도 하다.
“아, 몰라……!”
“왜, 진우서. 말해 봐. 그게 정말 내 탓이냐고.”
“으으… 이것 좀 놓고 말해……!”
그 뒤로도 정혁은 우서의 머리통에 마구 키스하고 또 더욱 꽈악 안아 왔다. 녀석과 이렇게
사니깐 재밌긴 했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인데 그전에 느껴 보지 못한 감정들을 느낀달까.
결국 우서는 피식피식 웃으면서 간지러움을 견뎌 냈다.
“우서야, 저녁에 뭐 먹을까.”
“으음… 나 닭볶음탕.”
“너 거기 들어간 감자 먹고 싶은 거지.”
“응, 맞아.”
이제는 척하면 척이다. 오래 알고 지낸 탓에 합치자마자 서로에게 완벽하게 적응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 걸 보고 천생연분이라 하나 보다. 우서가 흐뭇하게 웃었다.
같이 살면서 새로 깨닫게 된 건 정혁의 요리가 수준급이라는 사실이다. 설거지, 빨래 같은
살림은 뭐든 잘한다. 심지어 요리는 엄마가 해 주는 것보다 입에 잘 맞아서 탈이었다.
운동했던 녀석이라 그런지 부지런하고 힘도 잘 쓰고 거기다가 순발력도 좋아서 뭐든 착착
잘해 냈다. 거기다가 단체 생활도 자주 했던지라 항상 깔끔했고 매너가 좋았다.
그래서 부모님들께는 죄송스럽지만 이 생활 만족 만족 대만족이다!
밤에는 저를 즐겁게 해 주고 엄청난 체력으로 저를 챙겨서 살림까지 도맡아 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은 일절 나질 않고 편하기만 하다. 자식 키워도 다 소용없다는 말이 정말 몸으로 와닿았다.
몸이 편하고 마음이 즐거우니 집 생각도 나질 않는다.
“그럼 마트 갈까. 오다가 카페도 들르자. 너 좋아하는 초코케이크 사러.”
장 보러 가는 것도 재밌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달달한 것도 많이 사 주고 또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 대화를 하다 보면 계속해서 웃게 되는
그런 삶의 낙도 있었다.
“어, 그래. 나 이것만 하고.”
우서는 다시 시작한 게임에 열중하면서도 착실히 대답했다. 그동안은 회사 다니고 일에 치여
사느라 몰랐다. 그런 소소한 것들이 이렇게나 큰 재미를 주는지를. 정혁은 다시 옆에서 우서를
끌어안고 볼에 마구 뽀뽀했다.
촉─ 촙─ 쫍─ 소리가 거실에 반복해 울려 퍼졌다.
“집은 날 더워지기 전에 빨리 구하자. 나 복직하기 전이 적기야.”
“응응.”
게임에 집중해서 우서가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사실 고민은 따로 있었다. 일로 바쁘다
핑계를 대며 집 알아보는 것을 미뤄 왔지만 조금 꺼려지는 게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부모님들이었다. 정혁과 같이 살겠다고 얘기를 하자니,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었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실 것만 같았다. 사귀는 것과 동거는 완전히
다른 거니깐.
그러니 부모님들의 허락 없이 집을 구해 정혁과 동거했다가는… 정말 호적에서 파일 위험이
있다. 하루아침에 부모님들을 잃을 수 있다는 엄청난 위험을 안고 가는 행동인 것이다.
그렇다고 갈 데가 없어 서로의 집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은 부모님들께 패배를 인정하는 것
같아 그건 싫었다. 우리 둘 무척 단단히 마음먹은 건데 저자세로 숙이고 집에 들어가면 어쩌면
… 정혁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볍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듯했다. 그래서 먼저 연락도 못 하고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이곳에 계속 있을 수도 없다. 주인이 있는 집이니……. 대피 생활도 빨리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우서의 갈등이 계속된다. 우리 둘 이제 어쩌면 좋을까 싶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가는데 핸드폰 화면이 바뀌더니 액정에 발신자의 이름이 떴다.
아버지
“헉……!”
우서는 너무 놀라 경기하며 핸드폰을 놓쳐 버렸다. 다행히 소파에 가 떨어졌지만, 지잉─ 지잉
─ 하고 패브릭 위에서 마구 진동하는 핸드폰이 수신을 재촉하고 있었다. 정혁은 얼굴에
물음을 달고 우서를 바라봐 온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누군데 그래……?”
“우리 아빠. 왜 전화하셨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화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그래도 갑자기 전화가 오니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정혁도 소파에 던져진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조금씩 표정이 굳어져
갔다.
“어떡해… 서정혁, 나 못 받겠어… 흐윽…….”
그때 집에서 쫓겨난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이 안 되다가 처음 온 전화였다. 그리고 반대로 두
사람도 연락드리기가 망설여져 일단은 전화나 문자를 보류하던 참이었다.
“내가 대신 받을까?”
정혁이 묻자 우서가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다. 부모님이 무섭고
두렵다 해도 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반대와 만류가 심하다지만
정혁과 저의 관계는 무척이나 떳떳했다. 피하고 외면할 정도로 잘못한 것도 없었다.
그에게로 손을 내미니 정혁이 허리를 숙여 핸드폰을 주워 건네줬다. 손이 조금 떨렸지만
우서는 용기 내어 화면을 터치하고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 우서냐.
“네, 아빠.”
목이 미어져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데 간신히 대답하며 정혁을 바라봤다. 그 또한
조마조마한 표정이라서 제가 더 긴장이 된다.
─ 정혁인 옆에 있냐.
“아… 네.”
서정혁은 왜 찾는 걸까 싶어서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데 아빠의 얘기가 이어져 왔다.
─ 그래. 두 사람 오늘 저녁에 같이 집으로 오거라.
정혁도 핸드폰에 살짝 귀를 대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는 조금 표정을 달리했다. 나쁜
말이라도 나오면 어떨까 싶어 듣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동요하며 눈썹을 씰룩인다. 우서가 오늘
시간 괜찮냐며 눈짓했다. 그러자 그도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저희 7 시에 갈게요.”
─ 그래. 그럼 그때 보자.
오늘, 피치 못하게 결전의 날이 됐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전화를 끊고 정혁을 비장하게
바라봤다. 그 또한 마음먹고 있었던 일이었는지 아무런 말 없이 우서의 표정을 살피고는 제
품에 그저 꽈악 안아 왔다.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는데… 서로에게 단단히 묶여 있었다. 물론 무서웠지만 우린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서는 정혁을 좀 더 품에 바싹 안았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데까지도 긴장이 돼서 다리가 후들거리며 다 떨릴 지경이었다.
긴장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막상 이곳까지 찾아오니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뛰어댔다. 먹이가 될 걸 알면서도 호랑이굴에 머리를 들이민 기분이었다.
“후…….”
제집인데 도어 록을 열고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초인종을 눌러야 될지 감도 안 잡힌다. 모든
게 혼란스러워서 우서는 한 번 더 정혁의 손을 붙들고 꽉 쥐었다.
“잊지 마, 서정혁.”
“너도 잊지 마, 진우서.”
“아, 알았다니깐?”
전화를 받은 후에 이곳까지 오면서 서로 단단히 약속을 했다. 부모님들이 어떻게 말씀하시든
간에 흔들리지 않고, 회유하더라도 서로 배신하지 않기로 그렇게 얘기를 마쳤다.
하지만 역시나 불안하다. 부모님들이 어떻게 나오실지 몰라 어찌 대처해야 할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까 했던 거 한 번만 더 하자.”
우서가 불안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정혁이 그 위에 손바닥을 포개었다. 정혁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우서가 재촉하며 발을 굴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바닥을 스치며 스캔, 복사, 도장을 차례로 찍었다.
서른인데도 아직도 이러고 논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랑 이렇게 하면 장난친다는 생각에
가볍게 여겼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녀석과 이렇게 유치하게 놀았던 자신으로서는 손장난이
대단한 맹세가 되곤 했다.
“아, 안 되겠어. 불안해. 한 번 더.”
“아니, 이게 무슨 경건한 의식이라도 돼?”
“그래도 결의를 다지면서 딱 한 번만 더 해.”
정혁이 조금 어이없게 바라보다가 다시 내민 손바닥에 손바닥을 겹쳐 왔다. 쓸어내렸다가 쿵,
쿵, 주먹까지 부딪치고는 도장 찍듯이 손바닥에 주먹을 단단히 찍어 눌렀다.
“서정혁, 너 진짜로 다짐한 거다……? 나 버리면 안 돼.”
“알았다고 몇 번을 말해.”
정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발 믿어 달라 그리 호소하는데, 서정혁을 안 믿는 게
아니라 그냥 불안감을 잠재우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떨림이 어느 정도 잦아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에 끼익─ 하고 옆집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옆에 사는 슬아였다. 아이가 빼꼼히
문을 열고 나와서 얼굴을 내밀었다가 두 사람이 서 있는 걸 확인하고는 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빠들 지금 뭐 해요……?!”
아이는 궁금해하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 그러니깐 그게…….”
우서가 입술을 축이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사이에 정혁이 치고 들어와
말을 가로챘다.
“슬아야, 안녕~ 우리가 뭐 하고 있냐면 우서 오빠가 패배를 인정한 거야.”
“패배요……?”
“응, 우서 오빠가 조금 전에 자기가 더 못생겼다고 인정을 했거든. 그래서 이제 앞으로 제일
잘생긴 오빠는 정혁 오빠가 됐어. 슬아도 좋지?”
“네……!!”
“그래, 고마워. 하이파이브.”
손뼉을 맞부딪치면서 두 사람은 우서를 두고 킬킬거리고 웃었다. 예전부터 슬아를 만나면
정혁과 우서는 누가 더 잘생겼네 마네 유치하게 싸우곤 했었다. 오늘부로 이렇게 정리가 되는
건가 싶었다. 잘들 놀고 있다. 우서가 어이없어서 발을 탁, 탁, 구르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흠, 흠 하고는 헛기침도 했다.
“그래도 슬아, 우서 오빠도 너무 좋아!”
순식간에 우서의 표정도 다시 환해진다. 얼굴을 펴고 슬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 슬아야~”
“오빠들 둘 다 잘생겼어! 난 우서 오빠, 정혁 오빠 둘 다 좋아. 힘내, 파이팅!”
슬아는 꺄르륵 하고 웃다가 집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죽을래? 뭔 패배.”
우서가 정혁을 노려보고 있는데 그는 잘못 없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설전이 꽤 소란스러웠던 모양이다. 디리링─ 하고 도어 록 해제되는 소리가 나더니 벌컥
하고는 문이 열렸다. 바로 제집의 현관문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서의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서가 눈을 크게 뜨고 경직되어서는 뻣뻣하게 제 엄마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
막상 그 얼굴을 보니 할 말이 생각나질 않는다. 엄청 많이 연습했는데 다 까먹어 버렸다.
오랜만이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야 될지 아니면 용서부터 구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굳어 있는데 제 엄마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왔으면 들어오지그래.”
그 말에 우서는 꿀꺽 침을 삼키고는 정혁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뜨거운 손, 이제 무서울 건
없다.
다시 찾아온 집에는 저번처럼 부모님들 네 분이 쪼르륵 앉아 계셨다. 아버지들은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계시고 어머니들도 각자 편한 자세로 방석 위에 앉아 계셨다. 이 불편한
공기와 이 경직된 분위기 하며 사람을 무척 긴장하게 만든다.
우서가 작게 심호흡하면서 부모님들 앞에 가 섰다. 정혁의 부모님들 그리고 제 부모님까지
모두 두 아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계셨다. 그래서 더욱더 가슴에 돌을 얹은 듯 묵직하고
답답해졌다.
맞은편에는 두 사람이 앉을 자리에 방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우서는 자리를 확인하고 그
위에 앉았다. 편하게 앉을 수는 없다. 죄스러우니 살포시 무릎을 꿇고서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정혁도 덩달아서 무릎을 꿇고는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하실 말씀이…….”
우서가 그렇게 물으려 하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엄마가 입을 달싹이면서 어렵사리 말을
꺼내다가 말소리 대신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러고는 다시 망설이셨다. 이게 정말 맞나 고민하고 갈등하는 표정에 우서와 정혁 둘 다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어떤 중대한 얘기를 하려고 저희를 부른 건지 조마조마하면서도
궁금해져 간다.
“우서 엄마, 그래도 해야지 어떡하겠어.”
정혁의 어머니가 옆에서 복잡한 얼굴을 하고서는 우서의 엄마를 달랬다.
“그래 당신, 정했으니깐 빨리 애들한테도 말해야지.”
아버지도 거들면서 우서의 엄마를 회유했다. 그렇게 어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 수 띄운 후,
다시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모두들 비장한 표정으로다가 정혁과 우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서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정혁의 어머니, 아버지가 두 사람을 지그시 쳐다봐 온다. 두 사람
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어른들의 쏟아지는 시선을 마주해 오며 각오했다.
“우서 어머니, 애들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얘기를 하죠.”
옆에서 거드니 우서의 엄마가 입을 연다.
무슨 말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우서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바지를 꽈악 움켜쥐었다.
헤어지라고 하든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으라고 하든 어쨌든 간에 정혁과는 떨어질 수 없었다.
옆에 있는 서정혁을 힐끔거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 것도 있고 스캔 복사 도장을 얼마나 찍어댔는지 모른다. 현물 계약서는 없다지만 이
정도로 약속을 받아 냈으니 서정혁도 말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린다. 뭐든지 다 견뎌 낼 것이다.
서정혁도 괜찮다고 했다. 상처 안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깐… 어떤 말을 들어도 다 이겨 낼 수
있다. 인정할 것이고 수용할 것이다.
“후… 우서야, 정혁아. 힘든 결정이었지만… 엄마 아빠 받아들이기로 했어.”
“……?”
우서가 얼굴에 물음표를 달고 엄마를 바라봤다. 입에서 나온 말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두 사람 허락할게.”
“……네에!?”
우서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올라가고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뜨고서는 무릎을 펴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말도 안 돼……. 우서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제 부모님이 진심을 말하고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솔한 표정이었다.
뭐야, 이 전개는 뭐냐고……! 이 속도감 뭐야!! 우서가 고개를 휙─ 돌려 정혁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혁도 어리둥절한 표정인데 어쩔 수 없이 입꼬리가 씰룩대며 올라가 비죽비죽 웃음
짓고 있었다.
조금 전 모든 말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이건 완전히 예상을 깨 버린
발언이었다. 전혀 상상한 적 없어서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여하튼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이
대답은 받아들이기가 조금 곤란하다.
“우서야, 정혁아. 엄마 아빠 고민 많이 했어.”
그 차분한 목소리에 우서가 더욱 혼란스럽게 저의 부모님들을 바라봤다. 정혁의 어머니와
우서의 아버지도 그에 맞춰 의견을 모으듯 차례로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오랫동안 만나 왔다고 하니, 우리가 말린다고 해서 그만둘 사이도 아닌 것 같아
보이고… 또 둘이 잘 어울리기도 하니깐.”
“우서랑 정혁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거 생각하니깐, 엄마 아빠가 그래도 도움이 되는 게
좋겠더라고.”
“얘들아, 많이 힘들었지?”
아니, 그건 아니다. 얘를 만난 건 얼마 되지 않았고, 동정심을 받을 정도로 힘들지도 않았단
말이다. 우서가 살며시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막상 진실을 밝히려니 입이 딱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래 둘이…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 안정적으로 살길 바란다.”
“식은 내년에 올리고, 두 사람 차근히 같이 살 준비하거라.”
아버지들도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용기 내어 말을 꺼내셨다. 그 단단하고 묵직한 언사가
우서의 가슴에 와 쿵─ 하고 박힌다. 빼낼 수도 없이 아주 굳게 자리 잡게 됐다.
아, 이게 뭐야!!! 뭐냐고……!!!
벙쪄서 우서가 멍하니 제 부모님들과 정혁의 부모님 그리고 정혁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런데 별안간 정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90 도로 허리를 굽히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네. 감사합니다, 아버님……! 우서 눈에서 눈물 안 나게 제가 잘 데리고 살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사위.”
우서의 아버지가 감동받은 얼굴로 정혁을 올려다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서정혁 저 새끼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잠깐만, 아빠……? 저기 아빠, 사위라뇨……?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싶어서 우서가
단어를 곱씹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위라는 단어가 바로 그 단어인지 판단할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우서… 잘하는 건 별로 없지만 착하고 똑똑한 애니깐 잘 부탁해, 정혁아.”
엄마? 엄마……!! 우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정혁과 제
부모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혁을 따라서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으로 인해 바닥에 발이 닿았을 때 조금
휘청거렸던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이렇게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서정혁 옆으로 와 서서 그의 어깨를 톡, 톡 치고는 그를 회유하려 했다. 잘못된 건 정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은 다급해서 그의 팔을 잡고 잘잘 흔들게 된다.
“정혁이라 든든하네. 자랑스럽고.”
“우서가 겉으로 보기엔 씩씩해 보여도 외로움도 많이 타고 아직 애 같은 부분도 많아.
정혁이가 잘 보듬어 줘.”
“네, 우서 행복하게 해 줄 자신 있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정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팔을 뻗어 우서의 어깨를 꽈악
끌어안았다. 그 뒤에 자신의 옆구리에 턱 붙여 부모님들 앞에서 애정을 과시했다.
“우리 아들이 역시 믿음직스럽네.”
정혁의 부모님들도 호호 웃으시면서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우서는 정혁에게 잡혀 어깨를 맞부딪치면서도 제 귀를 의심했다. 방금 서정혁이 이상한 말을
꺼냈던 것 같다.
장인어른? 장모님?
다들 왜 이러는 거죠?
우서가 정신을 다잡고 말 한마디를 떼려 하자 정혁은 우서의 두 볼을 붙잡아 왔다. 그러고는
입에 뽀뽀를 박치기하듯이 해 왔다.
“읍─!!”
우서의 얼굴이 찌뿌되어서는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걸 놓으라며 정혁의 가슴과 어깨를 퍽퍽
쳤다. 동시에 부모님들은 남사스러운 장면에 고개를 좀 돌리고서는 헛기침을 하는데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입술이 잠시간 맞붙었다가 떨어지고 정혁도 우서를 놓아주며 헤살스럽게 웃었다.
“이─ 씨……!”
뭐냐고, 이 정신없는 와중에 서정혁은 또 엄청 멋있고 난리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싱그럽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순순한 웃음이 마치 아이 같았다.
이렇게나 기뻐하는 녀석의 표정을 오늘 처음 보는 것 같다. 꾸밈도 없었고 절제도 없이 그저
환히 웃고만 있었다.
“식은 둘이 좋을 대로 하고, 엄마 아빠는 잘 모르겠네. 그… 남자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부모님들도 쑥스러워하시면서도 두 아들끼리 잘 어울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계셨다. 결국
자리에 모인 모두가 무척이나 기쁘게 웃고 있다. 그렇지만 우서는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쩌다 보니 모두를 따라서 삐쭉삐쭉 어색하게 웃게 된다?
제 부모님들은 보수적이라 얼굴을 붉히고 계셨지만 아들들을 끝까지 믿고 응원해 주는
무척이나 깨어 있고 열려 있는 어른들이 확실했다.
녀석과 영원을 약속하긴 했는데 졸지에 영원한 피앙세가 되게 생겼다.
“그래도 집은 이 근처에 얻는 게 좋지 않을까? 직장도 가깝고 말이야.”
그럴 생각도 없고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는데 부모님들은 김칫국을 한 사발 드링킹하고도
모자라서 우서와 정혁의 결혼을 등 떠밀었다.
“정혁아, 우서야. 엄마 아빠가 그동안 반대했다고 해서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라.”
“네, 그럼요. 이렇게 허락해 주셔서 저희 너무 기쁩니다.”
정혁이 대답하는데 우서는 혼란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파티의 기분을 내는 와중에
우서만 혼자 덩그러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두 사람 이제 합치면 우리들 이제 가족이고 사돈이겠네. 너무 잘됐어.”
그러면서 다섯이서 하하 호호─ 하며 웃고 좋은 분위기로 상황을 몰고 간다. 그 틈새에서
어이가 없는 우서만 허허… 하고 김빠진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모두들 우서가 기뻐한다고 생각했는지 얼싸안고는 다 같이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좋긴 좋은데…….
서정혁이랑 안 헤어져서 좋긴 한데…….
그런데 이건 좀 갑작스럽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녀석과 파트너로 우연히 만나 우여곡절 끝에
섹스하고 엉겁결에 파트너가 됐다. 그런데 갑자기 애인이 되더니만 순식간에 동거인이
되어서는 이제 부부가 되라 한다.
자의는 맞지만 어쩐지 여기까지 급물살을 타고 떠밀려 온 듯한 느낌이었다.
우서는 패닉에 빠져서 눈 코 입의 구멍을 모두 확장한 뒤에 정혁을 바라봤다. 어안이 벙벙하다.
그런데 그는 우서를 향해서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확신에 찬 웃음이었다. 사랑 가득 담아
바라보는 시선까지.
아, 그래. 뭐……. 서정혁이면 괜찮을 거 같다. 그 결혼이라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게
돼서 잘된 건 잘된 건가……? 싶다.
그래… 그, 영원을 약속했으니깐, 우리 둘.
뭐…….
저 잘난 녀석이랑 결혼… 나쁘지 않을 거 같긴 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살아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주말에는 여행도 가고 또 평일에는 맛있는 저녁을 해
먹으며 소소하게 보내는 행복한 일상 같은 거 말이다.
그런 걸 이제 서정혁이랑 할 수 있게 됐다.
저기요.
여러분.
제가요… 그…….
파트너를 구했는데요…….
갑자기… 결혼하게 됐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