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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그리고
윤이아 직작 (뉴토끼)
공금 갠소 교불
- 목차 -
1.
2.
3.
4.
5.
6.
1.
“선배.”
말간 웃음과 함께 천천히 밀려 올라가는 매혹적인 입술 사이로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이에요.”
가슴이 녹아내릴 것같이 부드러운 음성임에도 바닥으로 떨어지면 와장창 깨져 버릴 것같이 심장이 꽁꽁
얼어 버렸다.
자잘하게 떨리는 손끝은 꼭 말아 쥔 손바닥 사이로 숨겼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는 차마 감추지 못했다.
피식-
작게 들려오는 웃음소리.
“…….”
여유로운 음성에서 이질적인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그를 마주할 때마다
억지로 누르고 애써 감추려 했던 감정을 툭툭 건드렸다.
“지안 선배.”
흡. 순간적으로 숨을 삼켰다.
“보고 싶었어요.”
“죽어야지! 죽어야지!”
“야!”
“넌 지금 이게 즐겁냐?”
“그만 웃어라.”
“그럼 울까?”
“너 같은 걸 내가 친구라고…….”
“나 정말 죽을까?”
“에이. 뭐 그런 일로 죽어.”
“그럼 어쩌지?”
“혹시 뭐!”
“이게 진짜!”
휙 날아오는 휴지를 가뿐히 받아서 눈물까지 닦는 시늉을 마친 하은이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지안을 바라보았다.
“어떻디?”
“……뭐가.”
“아니. 그런 거 말고 너 그날처럼…….”
하아- 하아-
“나 회사 그만둘까 봐.”
“지금 확실히 결정해야 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더 미친 짓일까. 아니면 그냥 걔를 보면서 회사에 다니는
게 더 미친 짓일까.”
“둘 다 뭐 정상은 아니지.”
도움 안 되는 것.
위로는 전혀 위로되지 않았고, 취하라고 정신없이 넘기는 술에 취하기는커녕 점점 정신은 또렷해져만 갔다.
술을 더 마시고 출근해야할까.
“하아. 미치겠네.”
이미 3 년이나 지난 일이 아니던가.
□ ◆ □
“굿모닝.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직 안 온 건가.’
전혀 여유가 없는 마음이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곳저곳을 살피던 눈동자가
팀장실 창문을 향했다.
‘헉.’
빛의 속도로 몸을 숙여 책상 위로 바짝 엎드렸다.
“유지안 대리.”
“네. 팀장님.”
뭐 해. 들어오라잖아.
석한이 팀장실로 다시 들어간 후에도 멍하니 자리에 서 있는 지안에게로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뭐,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마치 자신의 옷들을 하나하나 벗겨서 손으로 쓰다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뜨거운 눈빛.
그날도 그랬다.
저 눈빛.
“문 닫고 잠깐 이쪽으로 오세요.”
일부러 열어 놨는데…….
‘이 자식아, 무슨 말 하려고.’
“팀장님.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머리…….”
“…….”
“예쁘다.”
“……!”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모든 말.
그것이 문제였다.
“……야.”
“당장 물고 빨고 싶을 정도로.”
“야!”
“장난?”
“그래요?”
“응!”
“……!”
나른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난 석한이 사무실 가운데 놓인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커피?”
“…….”
“지안 선배.”
“응?”
3 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생생하게 재생되는 기억과 함께 눈앞의 기다란 손가락이 깊숙이 파고들었던 감각이 순식간에 떠올라 저도
모르게 허벅지에 힘을 주어 꼭 붙였다.
“……뭐? 뭐라고?”
“무슨 생각 했어요?”
“…….”
“되게 야한 생각 한 거 같은 표정인데.”
“소원이 뭔데?”
꾹 다물어진 그의 입술로 시선을 집중했다.
“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 잠깐만…….”
뜨겁게 달궈진 숨결이 흐르며 얇은 입술 위로 자신의 몸속에서 흘러나오는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여…… 여기 사무실이야.”
“이 각도에서는 안 보여요.”
“그만해.”
탁.
“장난치지 마. 왜 자꾸…….”
“나랑 자요.”
“……뭐?”
“딱…… 열 번만.”
똑똑-
“유 대리. 나가 보세요.”
혹여나 자신의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킬까 봐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머금고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유지안 대리.”
“……네.”
“……네.”
“나가 보세요.”
책상에 털썩 주저앉아 재빨리 귀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아직도 귓불을 느릿하게 문지르는 손길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긴장한 나머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쳐 대는 심장을 인식하지도 못했었다.
한 손으로 셔츠를 부여잡고 뭉근하게 가슴을 문질렀지만, 정신없이 뛰는 심장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 ◆ □ 윤이아
지이잉.
[선배. 어디예요?]
지이잉.
하지만 그도 기다릴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곧바로 도착한 문자에 지안의 눈매가 가득 구겨졌다.
[나 선배 집 앞인데.]
“뭐어?”
Rrrrrr Rrrrr.
-많이 당황했어요?
-집 앞이에요. 잠깐 나와요.
“왜?”
“야.”
작은 한숨이 흘렀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그를 의식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 ◆ □
“왔어요?”
“응.”
“타세요.”
보조석 문이 열렸다.
“왜…… 왜 왔어?”
“자고 있었어요?”
“아니면 살 냄샌가?”
“야……!”
“진짜 하지 마요?”
그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었다.
“선배.”
“무슨…… 읍.”
“흐응…….”
“하아…… 선배.”
“그만해.”
“거짓말.”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아앗.”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3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어루만지는 손길이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져 당혹감이
밀려들었다.
“으응…….”
“흐읏…….”
“아, 아니야…….”
“아, 아니…….”
“난 솔직한 게 좋아요.”
“으흣…….”
“아앗. 잠깐…….”
그날 느꼈던 그 느낌.
“…….”
“젖었어요?”
“……흐읏…….”
치사한 자식.
퍽. 찰싹.
“악!”
“아오! 이 자식 아직 이 못된 버릇 못 버렸네.”
“선배! 아프잖아요.”
찰싹찰싹. 가슴, 어깨, 목 언저리를 쳐 대는 지안의 행동에 석한이 방어에 나서자 지안의 몸이 그제야
자유를 찾았다.
“야. 웃지 마.”
“쓸데없는 소리 하면 입도 한 대 친다.”
자신을 향해 똑바로 떨어지는 그의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던 예전의 감정들이
되살아날 것만 같았다.
“그건 왜요?”
뭐가 이렇게 빨라.
“악! 아파요.”
탁.
손목을 확 당기는 강한 힘.
촉-
아주 감질나고 아주 간지럽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 남자다. 아니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늘 저 눈빛에 꼼짝없이 지금처럼 사고가 멈추곤
했다.
미세하게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주한 눈빛에 담기는 오묘한 빛으로 보아 그에게 또 생각이 읽혔음이
분명하다.
“……뭐…… 뭐?”
“야 이…….”
이게 진짜.
“아. 왜 없어요!”
오늘은?
“확인하고 싶은 건 했고…….”
“결정은 했어요?”
“결정? 아…… 싫어.”
“내가 너랑 왜 자.”
“왜라…….”
응? 명분?
너랑 자는 데 명분까지 필요해?
이미 말투가 불안하다.
“아! 찾았다.”
“이거면 되는 거죠?”
“너 그거 이리 안 줘? 이리 내놔!”
“어우. 야!!”
“이렇게 안겨 주면 나야 좋죠.”
이런 건 좀 버려. 이 자식아…….
야…… 말이 그렇다고.
“그래서 나랑 안 잤어요?”
“…….”
“잤으면서. 먹튀인가?”
“야!”
“아. 맞다!”
아이씨…….
동하지 말자.
“그런데 왜 나야?”
“뭐가요?”
“너 여자 많잖아.”
그런데. 왜 나야?
“그 여자들은 안고 싶지 않으니까.”
“…….”
“선배는 안고 싶고.”
“…….”
간단 명료. 그 자체였다.
그럼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왜 열 번이야?”
잠시 생각하던 그가 빙긋 웃었다.
하아-
저거 치면 깨지겠지.
아마도 지금 그의 행동을 끌어낸 원인은 자신일 것이다. 단순히 종이에 적힌 몇 마디 약속 때문이 아닌,
그날의 자신 때문일 것이다.
“선배…….”
“뭘 그렇게 고민해요.”
“…….”
“어……! 내놔.”
구겨진 종이가 방심한 지안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
“이거 사본이에요.”
“아…… 진짜!”
“…….”
“……뭐.”
□ ◆ □
‘젖었어요? 안 젖었어요?’
이 또라이 자식…….
“근데 왜 하필 또 나타나서는……”
***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유 대리, 그거 알아?”
“아아…….”
“어? 알고 있었어?”
“아, 저도 들었어요…….”
오앤아트.
처음에 혹여나 석한을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지만, 그는 미국에 있었고 사업을
번창시키며 오앤아트가 인수한 회사가 적지 않던 터라 마음을 놓았었다.
“여자는 있으려나?”
“……네?”
‘그 여자들은 안고 싶지 않으니까.’
‘선배는 안고 싶고.’
너는 그냥 안고 싶은 거겠지.
나는 그게 아닌 걸 알면서.
□ ◆ □ 이아
“유지안 씨 보러 왔는데요?”
아, 망했다.
“저보다 바쁘신가요?”
그 앞에서 바쁘다고 말을 던진 지안의 얼굴로 정신 차리라는 듯한 눈빛을 장착한 수많은 시선이 닿았다.
“그냥 저 혼자 왔어요.”
“네. 저는 아무 데나 좋아요.”
“빨리, 나가죠.”
“오빠! 뭐야!”
“왜에?”
“왜. 내가 못 올 곳 왔어?”
“바빠! 엄청!”
“아, 몰라.”
“어디서 약을 팔아.”
“어라? 진짜인데?”
조용한 사무실.
“유 대리 왔어?”
“다들 퇴근하셨어요?”
“응. 나도 이제 가. 야근이야?”
“네.”
“수고해.”
딸깍.
“유 대리.”
“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렸다.
석한이었다.
“아……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그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선배, 잠깐 나 좀 볼까요?”
“……응?”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왜?”
“문 닫아요.”
“아무도 없어.”
“흡…….”
반걸음.
딸깍.
문이 닫히는 소리.
“응.”
“……뭐?”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날벼락.
“아니. 왜?”
창밖 도심의 불빛이 어스름히 투영되는 창문을 등지고 걸어오는 석한의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위협적이었다.
왜…… 왜 저래.
그 반걸음은 금세 따라 잡혔다.
“엄마야…….”
짙은 눈동자가 이쪽저쪽 그녀의 얼굴을 살피더니 곧바로 날카롭게 그녀의 눈동자 앞에 멈추었다.
“둘이 무슨 사이야?”
광고도 그렇다.
그래 놓고 다짜고짜 왜 끌어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게 아주 지 마음대로다.
놓기는커녕 더욱 옥죄어 오는 그의 팔.
기분 탓이냐?
“그 자식이랑 둘이 무슨 사이냐고요.”
그제야 깨달았다.
“박은준.”
“…….”
“아…….”
또 다른 깨달음.
어이가 없어서…….
“너 지금 나랑 오빠, 아니 박은준 보고 이러는 거야?”
“……오빠?”
“……우리?”
순식간에 블라우스 속으로 밀려들어 온 손끝이 단숨에 브래지어 안 풍성한 가슴을 그러잡았다.
“야…… 읍.”
“하아....이러지 마.”
너무 느렸다. 아니 감질났다.
금세 그의 의도가 느껴졌다.
“하아…… 그, 그만…….”
아래에서 잔뜩 크기를 키운 그의 물건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축축함도 함께.
톡톡.
벌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하얀 살결과 대비되는 검정 브래지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으로 탐스럽게 솟아
있는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석한아…….”
“앗…….”
야릇한 동작을 멈추지 않은 채 눈동자를 추어올려 자신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에서 치고 들어오는 자극이
너무 강했다.
“흐읏…….”
“하아…….”
눈이 마주쳤다.
째깍째깍.
“……선배…….”
반복되는 석한의 행동에 지안의 얼굴이 입술을 받아 내느라 오르락내리락 정신없이 움직였다.
“자…….”
“으음…… 읏…….”
“선배…… 선배…….”
“하앗……!”
“흐으으읏…….”
그것이 신호인 듯 벌어진 허벅지를 빠르게 쓸며 올라온 그의 손이 스타킹을 단숨에 무릎까지 내렸다가
다시 한번 발목까지 거칠게 끌어 내렸다.
순간 눈을 감았다.
“하아…….”
“선배…….”
“이러면…… 안 넣을 수가 없잖아요.”
“아앗…… 흣…….”
“하앗!”
“하…… 미치겠네.”
“아흐흣…….”
찌르고 들어오는 짜릿한 감각에 지안의 허리가 뒤로 휘었다가 다시 앞으로 넘어와 그의 몸에 매달리듯
안겨 왔다.
“하앗…… 자, 잠깐…….”
“하아…… 여기…….”
“으읏, 으읏…….”
“여기…….”
“흐으읏…… 그만…….”
“선배는 여기 만져 주는 걸 좋아하죠.”
“그만…… 읏…….”
“……입 벌려요.”
한시도 멈춤이 없는 자극에 정신이 몽롱했다. 그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눌러 내렸던 눈꺼풀을 천천히
밀어 올렸다.
“입 벌리라고. 유지안.”
“흐읏!”
철커덕철커덕.
“아…… 아앗!”
“하아…… 하아…….”
절정에 이르게 만들었던 손가락이 제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져 또다시 작게 신음을 흘렸다.
눈을 꼭 감았다.
‘창피해.’
손가락 하나에…….
그의 어깨에 턱을 기댄 채 눈을 꼭 감았다.
“……선배…….”
부르지 마. 제발.
그의 품에서 흥분에 물들어 뜨겁게 숨을 터트려버린 자신이 너무나 창피해 어디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토닥토닥 두드리다 부드럽게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가라앉아야 할 심장이 오히려 더 빠르게 뛰었다.
“왜요? 신게요?”
“아니.”
“…….”
흣- 하고 그가 웃었다.
“……응.”
“속옷.”
“응?”
“속옷 채우라고요.”
“아…….”
“됐어. 내가 할게.”
훤하게 드러난 허벅지 살이 또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 창피해 재빠르게 손으로 치마를 내리자 비스듬히
입술을 끌어 올린 그가 바닥에 떨어진 구두를 들어 그녀의 발에 조심스럽게 넣어 주었다.
“읏샤!”
“선배, 나 봐요.”
“…….”
“선배가 원할 때…….”
“…….”
“그때 안을 거야…….”
지안은 그저 놀라웠다.
은준과 자신 사이에 그럴싸한 무언가가 있어야 질투를 할 텐데, 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아…….”
“나…… 누가 내 거 건드리면.”
“완전히 미쳐 버리거든.”
얘가 왜 이러나 싶다.
“없어.”
“……네?”
“질투. 뭐 그런 거 할 거 없다고.”
“…….”
“오석한.”
“네.”
“너 완전 질투쟁이구나?”
“…….”
“네.”
말이라도 못하면.
“사촌 오빠야.”
“…….”
“박은준 우리 사촌 오빠라고!”
“……사촌?”
“뭐가요?”
“……응?”
와. 무서운 놈.
너만 하겠냐.
꿈틀거리는 주먹을 애써 꾹 누르고 눈을 흘기는 그녀의 모습에 일자로 다물어졌던 석한의 입술이 비스듬히
밀려 올라갔다.
미소를 머금고 지안을 한참 바라보던 석한이 그나마 조금 떨어졌던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어요?”
“너 진짜 치사해.”
“왜, 또 뭐가요?”
“다 알면서…….”
“…….”
“알면서 또 이런다.”
그가 선하게 빙긋 웃었다.
“또 생각한다.”
“……싫어.”
“사무실에서는 싫다고…….”
“하아…….”
“가요.”
“읍…….”
“가요. 당장.”
“어디……?”
“어디든…….”
“…….”
“나 더 미치기 전에.”
□ ◆ □
띠리릭.
차를 타고 오는 내내 그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선배, 들어와요.”
“……실례할게.”
비스듬히 올린 얼굴 아래, 맥주를 넘길 때마다 꿀렁이는 목울대에 시선이 머무르던 지안이 괜한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왜요? 긴장돼요?”
“나, 씻을래.”
왜 이리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비어 있는 거실.
“선배. 이리 와요.”
그의 목소리를 따라 방에 도착하니 좋은 향기가 더욱 강하게 밀려들었다.
“응. 좋아.”
“이쪽으로 와요.”
천천히 너울거리는 촛불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른침을 삼키며 침대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엄마야…….”
“꿈 같다.”
“…….”
“흐음…….”
들이마시는 숨에 밀려드는 좋은 향기와 함께 황홀한 감각과 황홀한 자극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깊숙하게
밀려드는 키스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석한은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고 마음껏 맛보고픈 충동을 아주 강하게 눌러야
했다.
“읏…… 자, 잠깐만…….”
새하얀 목선을 타고 그의 키스가 이어졌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치밀어 오르는 욕망에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고 흥분에 솟아오른 유두를 입
안으로 삼켰다.
“으읏…….”
파르르 떠는 그녀의 모습에 점점 흥분이 차올랐다. 손끝으로 단단하게 솟아오른 그녀의 한쪽 핑크빛
유두를 문지르며 입으로 집어삼킨 유두 끝을 혀끝으로 이리저리 돌리며 빨아 댔다.
“하앗! 으응…….”
“하아…… 석, 석한아…….”
“흐응.”
“……하아, 선배.”
웃음을 머금은 눈동자로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는 그의 모습에 안 그래도 붉은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
“읏…….”
“하…… 하지 마…….”
“앗……!”
그의 엄지가 흥분이 차오른 통통한 살점을 톡톡 건드리는가 싶더니 뭉근하게 비비기 시작했다.
“으…… 으…….”
“흐읏…… 흣…….”
“흐음…… 아직 안 되겠어요.”
그가 입을 맞춰 왔다.
“으읏…… 으읏…….”
그녀의 고개가 젖혀지며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입술을 삼켰다.
앞뒤로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자극적인 손짓에 허리가 튕겨 오르고 풍만한 젖가슴이 흔들리며
단단하게 솟은 그녀의 유두 끝이 그의 몸에 부딪혔다.
“핫…….”
“……내가 너무 급해서요.”
“잠깐…… 흐읏…….”
혀끝에 닿는 뜨겁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각을 가득 느끼며 천천히 원을 그리듯 그녀의 안을 핥았다.
민망한 자세에 어찌할 줄 몰라 공중을 방황하던 지안의 손이 침대로 떨어져 흐트러진 이불을 긁어내듯
감아쥐었다.
“으읏…… 하. 자, 잠깐…….”
“으…….”
거뭇한 수풀 사이로 핑크빛 작은 돌기, 그 아래 자신의 타액과 그녀의 애액이 뒤엉켜 반짝이며 벌름거리는
야한 움직임에 그의 입술이 만족스럽게 밀려 올라갔다.
“그…… 그만 봐…….”
“왜요…….”
“으읏…….”
“흐으으…… 제, 제발…….”
“하악…… 야, 야…….”
“선배…… 아파요?”
여전히 아래에서 입술을 떼지 않은 그가 속삭이며 물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아래에 퍼지자 지안이
고개를 모로 빠르게 저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의 전희는 길었다. 부드러움과 거침이 공존하는 손길로 그녀가 충분히 젖어 들도록 오랜 시간 그녀를
정성스럽게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그만…….”
치밀어 오르는 감각에 정신없이 뻗은 지안의 손이 여전히 아래에 머무는 그의 손을 빠르게 잡았다.
“하아…… 그만…….”
반들거리는 손가락을 허벅지 위로 천천히 문지르며 상체를 일으켜 그녀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가 눈을
맞추었다.
“오석한…….”
“응…….”
“……왜 나야?”
흣, 하는 웃음과 함께 그의 이마가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이래서…….”
“이름만 불러도…….”
“이렇게 가슴 설레고…….”
붉은색으로 예쁘게 물든 볼 위로 한 번,
“바라만 봐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작은 바스락거림이 끝나고 단단한 몸이 자신을 다시
타고 올랐다.
그래. 아팠다.
맞아. 아팠었지.
……크다. 힘들 거 같은데.
“저…… 저기…….”
“하아…….”
“왜요. 무서워요?”
“그게…… 내가 기억하기로…….”
“그러고 나서 어땠더라…….”
그에게 매달려 목이 쉴 정도로 자지러지게 신음을 토해 내며 격렬하게 온몸을 바르르 떨었던 그녀였다.
“읏…….”
“하앗…….”
석한이 빠르게 상체를 일으켰다. 커다란 두 손이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어 그녀의 다리를 넓게 벌리자
자신의 끝을 머금고 움찔거리는 분홍색 속살이 활짝 벌어졌다.
그대로 허리를 튕기며 그녀의 안으로 흥분한 남성을 단숨에 밀어 넣었다.
“아아아…… 으…….”
“후우…….”
“흐읏…… 읏…….”
“윽…… 하앗…….”
자신에게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가는지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파고드는 날카롭고 짜릿한 감각에 모든
신경을 쏟아 냈다.
귓가에 퍼지는 야릇한 신음과 함께 점점 더 강하게 조여 오는 그녀의 속살에 석한의 이성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정신없이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하아…… 하아…….”
“읏, 핫…….”
성마른 손길이 출렁이는 젖가슴을 움켜쥐고 손끝으로 도도록한 돌기를 강하게 슥슥 문지르자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강한 자극을 견디기 힘든 듯 그녀가 온몸을 비틀며 파르르 떨었다.
그가 다시 상체를 세웠다.
눈앞의 먹이를 노리는 며칠을 굶주린 맹수의 눈빛을 머금은 그가 그녀를 집어삼킬 듯 격렬하게 움직였다.
“하앗…… 하앗…….”
촉촉한 땀방울이 석한의 잘 갈라진 등 근육을 지나 움직일 때마다 수축하며 움푹 패는 탄탄한 엉덩이를
따라 흘렀다.
탁탁탁탁.
“으으으으으…….”
부피를 최대로 키운 그의 물건과 맞닿아 부딪히며 눌리는 속살 위로 전류가 흐르는 듯 짜릿한 감각이
스쳤다.
“하아…… 하아…….”
“흐으…….”
지안의 위에서 내려와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석한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떼어 내고 있었다.
“머리 언제 잘랐어요?”
“한 3 개월 전에?”
“렌즈는 안 껴요?”
“응.”
잠시 내렸던 눈을 크게 뜬 그가 물었다.
“왜 웃어요?”
“그런 게 궁금해?”
“네.”
“……왜?”
“있어.”
“뭔데요?”
기대에 찬 눈빛이 어둠 속에 지나치게 반짝였다.
“에이. 난 또 뭐라고.”
“화났다.”
“……응?”
“화났다고요.”
뭐래.
“어…….”
“나 말고, 얘가 지금 선배 얘기 듣고 화났어요.”
“엄마야!”
“어쩌지? 화가 많이 난 거 같은데?”
“야…… 야, 야…….”
……보통 화난 게 아닌데……?
내가…… 무슨 큰 죄 지었니?
“으으응…….”
“야…… 야, 잠깐…….”
쪽쪽 소리가 방 안 가득 퍼졌다.
“하앗…… 야…….”
어느새 허둥거리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든 그의 탄탄한 허벅지가 점점 더 예민해지기 시작한 살결에
바짝 다가와 붙었다.
“흐응…….”
“……선배.”
“…….”
“……좋아요?”
매력적인 입술이 화사하게 밀려 올라갔다. 호기심을 담았던 눈에는 즐거움만이 남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녀석…….
예전부터 그랬다.
2.
지안이 여기저기 손을 잡고 캠퍼스를 거니는 풋풋한 커플들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며 강의실을 향했다.
[야. 너 어디야?]
하은의 문자였다.
[넌 어딘데? 나 강의실이야.]
‘어…….’
‘오석한이네.’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은 느낌.
비주얼만으로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능력 아니겠는가.
“석한아, 일찍 왔네.”
“응.”
“음료수 먹을래?”
“아니. 너 먹어.”
“나 여기 앉아도 될까?”
“아니.”
“아니.”
“…….”
“귀찮아.”
어이쿠.
똑똑.
“아! 깜짝이야!”
“조심.”
스르륵 손목에서 풀려 나가는 길쭉길쭉한 손가락을 바라보던 지안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선배…….”
“……어?”
잠시 생각했다.
날 묻어 버리려는 건가?
“여기 친구 오기로…….”
순간 조용해진 강의실.
저리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자꾸 옆에서 흘깃거리는 불편한 시선이 느껴져서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생각에 빠졌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얘 돈 필요한가?
다단계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 그가 볼펜을 잡고 지안의 노트 위에 쓱쓱 무언가 써 내려갔다.
[선배 나랑 밥 먹어요…….]
[알겠어요.]
강의가 끝났다.
“선배, 저 갈게요.”
“어, 그래.”
[선배 나랑 밥 먹어요.]
그저 한 문장인데, 신경 안 쓰면 되는 문장인데…….
뒤의 점 세 개도 거슬린다.
“죄송합니다. 늦었네요.”
적당히 미안한 표정과 넘치게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석한이 강의실로 들어오자, 우중충했던 강의실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괜찮아. 빨리 와.”
“바쁘면 늦을 수 있지.”
“네, 감사합니다.”
“선배, 안녕하세요.”
“어…… 안녕.”
다들 그렇게 보지 마. 나 얘랑 안 친해.
“네, 좋아요.”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석한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꼼꼼하게 그를 살펴보았다.
과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야. 우리 과목이 과목인 만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 오늘 수업 시간에 그랬잖아. 남자들은 시각에
약하고 여자들은 만져 주면 흥분한다고…….”
철썩.
순식간의 일이었다.
강한 물 싸대기 소리와 함께 맥주를 얼굴에서부터 온몸에 뒤집어쓴 폭주남이 몸서리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탁!
“이씨…… 이게 어디서…….”
“야!”
순간 조용해진 술집.
“야, 너. 잘 들어.”
“……뭐?”
픽-
“후우-”
“푸하하하…….”
“이 새끼가.”
“…….”
“뭐?! 저 어린 새끼가!”
“어?”
“아우, 뭐야!”
“금방 그치려나.”
하염없이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머리 위에 가방을 올리고 찰박찰박 물방울을 튀기며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자……! 엄마야!”
털썩.
“엄마…….”
“선배, 나랑 밥 먹어요.”
왜일까?
“으…….”
“대답은?”
“……응?”
“밥 먹을 거예요? 안 먹을 거예요?”
“젖어요…….”
“……뭐?”
“선배 젖는다고.”
“오늘 내가 선배 데려다줄 거고. 그리고 고마운 선배가 나한테 밥을 사는 순서인데.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아…….”
후두둑.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 사이로 작은 우산 안에 나란히 자리 잡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그가 몸을 돌려 지안의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그녀의 어깨로 내렸다.
“저는 버스 타고 가요.”
“뭐?”
“이건 선배가…….”
□ ◆ □ 이아
“지안! 유지안!”
“어? 어?”
“무슨 생각 해! 몇 번 불렀는데.”
“응? 뭐?”
“야! 야!”
설마 바보가 아니고서야 지금까지 기다리지는 않겠지. 만나지 못하더라도 확인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하아- 하아-
“저 자식 바보였어?”
“야……! 너 왜…….”
“안 오면 그냥 가야지. 뭐하러…….”
“아아…….”
“누구랑요?”
“……응?”
“누구랑 약속 있었어요?”
뭐지? 이 느낌은?
“친구랑.”
“친구 누구요?”
“말하면 알아?”
“남자예요, 여자예요?”
“아아…….”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게 변했다.
지금 싸한 거 나만 느낀 거니?
또다시 그가 빙긋 웃었다.
무언가 말릴 것 같은 느낌.
“너 나한테 왜 그러는데?”
“뭐가요?”
“나 그렇게 안 한가해.”
더 말을 이었다가는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말을 받아치는 그에게 휘말릴 것만 같아서 재빨리
말을 끊었다.
“박하시네.”
“뭐가.”
“차 한잔 안 마셔요?”
“늦었어. 그냥 가자.”
“나, 열나는데.”
“야!”
“괜찮아요.”
“밥 먹고 먹으려고요. 이제 먹어야죠.”
“근데 선배…….”
지안의 몸이 다시 그를 향해 돌아갔다.
“왜?”
“나 집에 데려다주세요.”
“…….”
“여기야?”
“너 혼자 살아?”
“왜…… 왜.”
“네. 혼자 살아요.”
“…….”
“선배…… 같이 들어갈래요?”
또 시작되었다.
자꾸만 마주치면 온몸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감각에 석한을 향한 지안의 눈동자가 작게 일렁였다.
오싹한 남자.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설레고 온몸이 오싹해질 만큼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둥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을 그저 흘려들었었다.
지안은 순간 깨달았다.
“오석한…….”
“네, 선배.”
“너…….”
“……응?”
“아파? 아파?”
“야……!”
“혹시 다른 생각 한 거 아니죠?”
“이게 진짜!”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럼 됐어.”
“왜, 또?”
“근데 나 조금 서운하네.”
“……뭐가.”
“…….”
“…….”
“유. 지. 안 한정이에요.”
“……!”
‘유지안 한정이에요.’
‘바람둥이야. 바람둥이.’
지이이잉. 지이이잉.
“뭐야. 이 시간에.”
모르는 번호였다.
□ ◆ □
“선배 왔어요?”
자다 나와 부스스한 지안의 얼굴 위로 어이없는 웃음이 얹어졌다.
“이게 무슨 일인데?”
“근데 부러졌어?”
“헐…….”
말자, 말아.
“어? 벌써 가게요?”
벌써는 무슨…….
지금 새벽 5 시거든?
“왜 또?”
“내일 와 줄 거죠?”
“어딜?”
“너 친구 많잖아!”
며칠이 흘렀다.
“수업도 안 왔어?”
[야. 너 어디야.]
[집이요.]
[왜 학교 안 오는데?]
처량한 문자였다.
[시켜 먹어.]
“하아…… 진짜…….”
그날 자신 때문에 비를 많이 맞고 아파서 일어난 일이기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찾으니 당황스러움에 미안함이 쏙 사라질 지경이다.
결국, 먹을 것을 두 손 가득 들고 그의 집을 찾았다.
조용한 집 안.
“야, 나 왔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답이 없었다.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배…….”
“……어. 깨, 깼어?”
잠에서 깨서인지 아니면 아파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기운이 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마저 관능적으로
느껴져 지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선배.”
“……응?”
“왜……. 이제 왔어요…….”
“…….”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요…….”
“……야. 지, 지금…….”
“선배…… 나 지금 그런 거 말고…….”
“…….”
“다른 게 더 먹고 싶어요.”
촉-
키스가 원래 이런 거였나.
“선배…….”
“…….”
“싫으면 지금 말해요…….”
결정적으로 싫지 않았다.
작은 감촉만으로 물밀듯 치밀어 오르는 야릇한 감각에 예민해진 몸은 기대감에 충만해져 있었다.
“하아…….”
“선배…… 타임 오버예요.”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앗…… 흣…….”
“자, 잠깐만…….”
하아- 하아-
“저, 나…….”
“……괜찮아요.”
“끝까지 안 할 거야…….”
“흐으읏…….”
그의 입술이 다시 지안의 입술을 찾았다. 마치 오랜 갈증을 해소하듯 정신없이 빨아 당기는 입술에 지안이
잠시 당황했다.
“흐으응…….”
지안의 몸이 순간 움찔거렸다.
“하아…… 잠깐만…….”
어떤 느낌일까.
“하악!”
“흐읏…….”
“하아…… 미치겠네.”
그녀의 촉촉하게 젖어 있는 살결을 당장에라도 파고들 것처럼 문지르던 석한의 손가락이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선배.”
“선배…… 눈 좀 떠 봐요…….”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잃어버렸던 이성이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왔다.
쫘악-
“……지안 선배!”
쾅.
□ ◆ □
“무슨 소리야.”
“뭐를? 응? 너 설마?”
“야. 너 못 느낀다며.”
“하아…….”
“그게 지금 중요해?”
사춘기 시절부터 야한 소설을 읽거나 야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더라도 남들이 말하는 흥분은커녕 그저
무덤덤했다.
남들의 간접적 경험에 맞추어 자신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그저 아무 문제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정신없이 자신을 쓰다듬어 오는 애무에 모든 것을 맡기고 끝까지 가 보겠다고 다짐한 날도, 결국 삽입조차
하지 못하고 끝이 났다.
한 번도 흥분에 젖어 본 적이 없었다.
“오석한.”
“……오석한.”
“…….”
“오석한이라고.”
“……와, 유지안…….”
“복 받은 년.”
□ ◆ □ 이아
‘복 받은 년.’
“선배. 무슨 생각 해요?”
“……어?”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부끄러워요?”
“나 좀 봐 봐요.”
지안의 얼굴을 향해 상체를 기울인 석한이 눈동자를 천천히 움직이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하아…….”
“……하.”
“지금 선배 위험해요.”
그의 목소리에 지안도 천천히 눈을 떴다.
“뭐, 뭐가…….”
가만히 있어도 타오를 것만 같은 욕정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폭발할 듯 밀려 올라왔다.
“너…… 너 벌써 두 번 했다.”
“……응? 지금 횟수 세는 거예요?”
“……당연하지. 열 번이라며!”
“알겠어요.”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남기고 상체를 일으킨 석한이 손을 뻗어 지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단단한 상체 위에 새하얀 셔츠를 걸치고 단추를 하나씩 잠그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같이 갈래요?”
“집이요.”
“집?”
“더 안 물어봐요?”
“집에 간다며.”
“그러니까요.”
“…….”
“아…….”
“허…… 됐어요.”
최근 먹어 본 집 밥 중 가장 근사한 상차림이었다.
“잘 먹을게. 너도 먹어.”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야, 오석한.”
“네? 왜요?”
“나 신경 쓰지 말고 먹어요.”
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존재감이 철철 넘치는 남자가 저렇게 번듯하게 입고 앉아 있으니 더욱더
부담스러웠다.
“물 줄까요?”
“됐어. 내가 먹을게.”
고개를 살며시 올리며 한탄하듯 말을 내뱉는 석한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에 댄 물 컵을 천천히 기울였다.
“푸웁! 야!”
“하아…….”
“넌 안 먹어?”
“아! 저는…….”
“왜? 나 밥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서?”
“저 원래 아침 안 먹어요.”
하아- 여긴 어디지?
“귀여워.”
“…….”
“선배 되게 귀엽다.”
“그만 놀려라.”
“누구랑요?”
“…….”
“선봐.”
“…….”
“아아아아…….”
“…….”
“……응.”
“……응? 뭐가?”
“…….”
와, 저 자신감.
“잘 먹었어. 언제 나가?”
“그건 절대 싫어요.”
“그래, 나가자.”
흘깃 그를 바라보았다.
“왜요?”
“아니야.”
“싱겁긴…….”
[선배, 몸은 괜찮아요?]
답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자신을 야릇하게 만지던 손길과 온몸 구석구석 뜨겁게 훑고 지나간 그의 입술,
뜨거운 혀가 남기고 간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귓가에 터지던 그의 거친 숨결과 정신없이 흘려보내던 자신의 야한 신음.
“하아…….”
말렸다.
‘이렇게 가슴 설레고…….’
만나지 못했던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늘 자신을 보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며
행동하고 있다.
□ ◆ □
훈훈한 외모에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잘나가는 대기업 과장으로 성격도 모나지 않고 친절한 남자였다.
그래도 오늘의 만남은 주선해 주신 분을 위해 예의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저도 영화 보는 거 좋아합니다.”
“아, 그러시구나.”
“다음에 같이 영화 볼까요?”
“아…… 네.”
“잠시만요.”
[선배, 어디예요?]
석한의 문자였다.
[아직도요? 오래 만나네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급한 일 아니에요?”
“아, 저는…….”
“네. 다녀오세요.”
이럴 거면 네가 와서 나 대신 선보든가.
안면 까고 물어봐.
지이이잉. 지이이잉.
-어? 전화 받네!
아주 밝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헤어졌어요? 지금 어디예요?
-선배! 선배!
“왜?”
-근데 뭐 먹었어요?
-선배 집 앞이라고요.
“거기 왜 있어!”
-그 자식 기다리겠네요. 빨리 가 봐요.
전화가 끊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너무 깊게 빠지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웠을 뿐.
“죄송해요. 조금 오래 걸렸죠.”
“아…….”
지안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미안함을 가득 담은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그건 아니고요…….”
“…….”
“집에 개가 있어서요.”
에라, 모르겠다.
“……네? 개요?”
되게 집요하고 똘끼 충만한 개.
그런 개 있어요.
“어? 집 앞이라더니.”
아, 그 집 앞이 설마.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선배, 왔어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비밀번호를 몰라서요.”
“몇 번이에요?”
굴곡진 엉덩이 사이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단단함에 지안이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야.”
“참나…….”
“빨리요, 선배…….”
“야…… 잠깐…….”
석한이 천천히 눈을 내리자 지안의 짧은 머리 아래 드러난 하얗고 가느다란 목 위에 지난밤 자신이 남겼던
빨간 자욱이 옅게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흐…… 잠깐만…….”
그의 입술이 목덜미를 거슬러 올라와 적당히 도톰한 귓불을 살며시 깨물어 나른하게 비볐다. 그러자
지안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나지막하게 터져 나왔다.
“하아, 석한아…….”
“빨리요……. 네?”
쾅.
“그래서 싫었어요?”
“잠깐만! 여기서?”
만지기 좋게 적당한 탄력, 손바닥을 파고드는 부드러운 감촉과 감도에 저절로 입술이 밀려 올라갔다.
뭉근하게 비비며 자신을 바짝 끌어안는 그의 행동에 조금 전보다 더 단단해진 그의 남성이 고스란히 몸
위에 느껴졌다.
“흐읏…….”
얕지 않은 깊은 삽입.
“하앗…… 잠깐만…….”
혹여나 자신의 신음이 현관 밖 복도에 퍼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면서도 신음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늘 온몸에 감기는 자극은 예상을 벗어난다. 작은 애무에도 온몸이 하염없이 녹아내릴 듯 반응한다.
“하아…… 들, 들어가서…….”
“…….”
“흐응…….”
“……알겠어요?”
“만세.”
“…….”
“손 들라고요.”
“아…….”
“하아, 예뻐요…….”
“흣…….”
“아앙…… 응, 으응…….”
그가 입술을 떼어 냈다.
“선배. 잡아요.”
“잡으라고요.”
“하아, 미치…….”
“움직여 봐요.”
조심스럽게 앞뒤로 흔드는 자신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은 듯 손 안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읏…… 하아…….”
“흐흑…… 자, 잠깐만…….”
“움직여요. 계속.”
“계속…… 빨리…….”
“흐읏! 흣! 석한아…….”
“선배…….”
온몸에 번지는 쾌락에 자신처럼 흐트러져 신음을 터트리는 그녀의 얼굴 위로 흐릿한 눈동자를 고정하고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선배는 모를 거야…….”
“…….”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
“잡아요.”
여전히 자신의 것을 꼭 잡고 품 안에서 파르르 떠는 그녀의 몸짓에 석한이 천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도 더는 한계였다.
지안의 표정은 살필 겨를 없는 석한이 재빨리 콘돔을 자신의 남성에 씌우고 지안의 위를 점령했다.
“하아…… 넣을게요.”
“흡…….”
“흐읍…… 읏.”
그녀의 엉덩이 사이로 흘러내린 질척한 액체와 그의 몸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이 뒤섞여 새하얀 시트 위를
축축하게 적셔 갔다.
처음이었다.
그가 버릇처럼 내뱉는다고 생각했던 미칠 것 같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손을 뻗어 다급하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강하게 자신에게 매달려 정신없이 입술을 탐하는 그녀의 행동에 그의 허리짓이 점점 더 빨라졌다.
“읏…… 읏, 흐읏…….”
목을 꼭 끌어안은 그녀가 색정적으로 허리를 흔들며 신음하는 모습에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그녀의
위를 맹목적으로 내달렸다.
“흐윽…… 윽.”
“하앗, 으으으응…….”
하아- 하아-
천천히 눈을 떴다.
“…….”
“진짜.”
“…….”
그가 고개를 번쩍 들고 다시 눈을 맞췄다.
“선배도 좋았죠?”
“……응.”
“선배, 뭐 갖고 싶은 거 없어요?”
“……뭐?”
“말해 봐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 말해 봐요.”
“없어. 갖고 싶은 거.”
“진짜? 하나도 없어요?”
“아우, 좀 내려가.”
“왜요?”
“네.”
이게 무슨 소리야.
평생 이러고 살 거니?
“싫어요!”
“아니! 왜!”
오케이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안 빼면 한 번. 대체 이건 어느 나라 계산법이야.
“읏…… 야!”
“금방 다시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힘들어!”
“그럼 한 번 빼 줘요.”
“허…….”
“응?”
“…….”
“아니면 계속하고…….”
“알았어. 그만해.”
“읍, 읍…….”
“후아…… 진짜죠!”
“알았으니까. 빨리 내려가.”
“선배, 운동 좀 해야겠어요.”
“…….”
그냥 쓰러지고 말지.
혹시나 보여서 안 되는 물건이 있나 살피던 중 침대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많은 콘돔이 눈에 들어왔다.
무서운 놈.
“은근 열 받더라고요.”
유쾌하고 가벼운 목소리로 눈을 부드럽게 접으며 이야기하는 석한을 지그시 바라보다 결국 지안도 웃음을
짓고 말았다.
“응? 뭐가요?”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석한이 갑자기 엎드려 지안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래도 돼요?”
“……뭐가?”
“내 마음 그대로 드러나게. 화나면 화내고, 싫으면 싫다고 그렇게 표정 지으며 말해도 괜찮아요?”
“……왜?”
너처럼 나도 마찬가지이니까.
“……지금 되게 환한 낮이야.”
“아…… 그런가?”
“왜요? 뭐 하게요?”
“…….”
“근데 선배…….”
“응?”
“……뭐 하느라.”
어둠이 가득 찬 방.
“선배.”
“깼어?”
“으음. 뭐 하고 있었어요?”
“씻어. 집에 가야지.”
“나 오늘 자고 갈 건데요?”
“뭐?”
“알겠어. 가서 씻어.”
“네!”
[윤서영 상무.]
“회사 일인가.”
“선배, 뭐 해요?”
“응? 회사 일 아니야?”
지안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은 석한이 대충 침대 위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허리를 바짝 끌어안아 당기며
입술을 머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선배.”
“응?”
“……돼.”
입술이 다시 겹쳤다.
침대 위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가 공기 중에 울리는 질척한 입맞춤 소리와 간간이 흐르는 낮은 신음으로
덮였다.
하아- 하아-
“선배…….”
“……응.”
“……응?”
“이거…….”
“흣. 아! 아, 아니야.”
새하얀 티셔츠 위로 드러난 그녀의 동그란 가슴. 그리고 그 가운데 뾰족하게 솟은 유두가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흐응…….”
살결이 맞닿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감각. 쓱쓱, 예민해진 살 위로 비벼지는 까슬함과 적당한 힘에 또
다른 자극이 온몸으로 번졌다.
또 너무 빠르게 젖어 버렸다.
“괜찮아요……. 나도 또 섰으니까.”
털썩.
“으응…….”
“흐읏……. 서, 석한아.”
자신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 한쪽이 뭉글해 한참을 지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살며시 고개를 든 그녀의 눈동자가 몽롱한 빛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가녀린 팔이 또다시 자신에게 매달려
왔다.
“…….”
욕망을 절제한 입술이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으며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새하얀 눈이 쏟아져 내린 도로 위에 발자국을 새기는 것처럼 하얀 피부 위로 붉은 흔적을 남겼다.
자신의 입술 움직임에 따라 눈을 꼭 감고 나른하게 고개를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에 매끈한 입술이
느릿하게 밀려 올라갔다.
격렬하게 파고드는 자극이 아닌 잔잔하게 밀려드는 감각에 지안의 감은 눈매가 천천히 찌푸려졌다.
“흐으응…….”
조금씩 자신의 몸을 아래로 눌러 오는 그녀의 행동에 참을성이 바닥을 보일까 입술을 꾹 눌러 물었다.
느렸다.
그가 너무 느렸다.
“으읏, 읏…….”
온몸을 구석구석 누비는 뜨거운 손길에 꾹 눌러 물었던 그녀의 입술이 단숨에 터졌다.
“하아…… 석한아…….”
“선배, 미안해요.”
“하아…….”
“……아니.”
“나 하고 싶어…….”
“뭐……라고요?”
지안은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꺄악!”
“누가요?”
“으…… 응?”
“누가 힘이 드냐고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말까지 더듬거리며 당황한 지안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밀려 올라오려는 웃음을 꾹
눌렀다.
“내가?”
“……어. 너.”
“선배, 잊었어요?”
“무…… 뭘?”
“나 오석한이에요, 선배.”
이 와중에 또 저 자신감.
그래, 너 오석한이지.
그 오석한이지.
어느새 목덜미 위를 더듬던 그의 손가락이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살결을 부드럽게 훑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
“그럼 괜히 나도 안 참았잖아요.”
“흐읏…….”
“아앗! 흣!”
뜨거운 액체로 휘감긴 손가락 위로 자잘한 진동이 퍼졌다. 그와 함께 그녀의 잇새로 단마디 날카로운
신음이 터졌다.
“흐으으응…….”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고,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를 느릿하게 움직였다.
몽롱해진 눈동자 안으로, 미소를 머금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석한의 얼굴이 보였다.
뭐지?
다시 한번 그가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
“선배가 올라와요.”
“…….”
“선배, 뭐 해요.”
“……응?”
“나. 벗겨야죠.”
“아…….”
느릿하게 바지를 붙잡은 손을 천천히 내렸다. 아슬아슬하게 허리춤에 닿는 그녀의 손길에 석한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단한 팔이 자신을 감싸는 동시에 아랫배를 찔러 오는 단단한 느낌에 지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커다란 손 안으로 동그란 가슴을 넣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미소를 담은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하아…….”
“엉덩이 좀 들어 봐요.”
천천히 엉덩이를 들자 그가 자신의 물건을 잡고 촉촉한 물기가 흘러내리는 곳으로 뭉뚝한 끝을 맞추었다.
“흐으읏…….”
“으응…… 읏, 하…….”
작은 성취감이 느껴졌다.
“읍…….”
정신없이 자신의 입술을 탐하던 그녀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며 거친 숨결이 터졌다.
괴로운 건지 좋은 것인지 자신도 판단하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머금고 그녀가 여전히 허리를 강하게
움직였다.
“하아…… 석한아…….”
“네. 선배.”
“흐읏!”
그가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유지안…….”
“걱정하지 마요.”
“으읏, 흐읏…….”
그가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나, 힘들어요.”
하나도 안 힘든 것 같은 밝디밝은 목소리.
한 살 차이인데. 뭔가 나만 되게 늙은 느낌인데?
“진짜 자고 갈 거야?”
“그냥 집에 가서 자.”
“왜요?”
“……그냥.”
“…….”
“야!”
어째 오늘 조금 이상하다.
“……정말, 그게 다예요?”
미세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살피며 표정을 굳혀 가던 석한이 다시 눈매를 부드럽게 접었다.
“……그래.”
“…….”
“밥 먹자. 나 배고프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지안이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하나씩 몸 위로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시켜 먹자. 옷 입고 나와.”
“흐음…….”
“뭐 해. 안 나오고. 뭐 먹을래?”
“뭐 먹을 거냐고.”
작게 코웃음이 났다.
남의 집에서 잘도 잔다.
지안은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그녀가 말한 대로 지금껏 혼자만이 누리던 공간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도 했고,
가슴속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에 한참을 뒤척이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격렬하게 몸을 섞을 때는 떠오르지 않던,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자꾸만 가슴 한쪽에서 잔잔하게 느껴진다.
“……일어나.”
“…….”
“……으음.”
그녀의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린 채 실눈을 뜬 그가 그녀를 발견하고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몇 시예요?”
“지금 6 시 조금 넘었어.”
“……그래.”
“안 피곤해요?”
“아픈 데는 없어요?”
사실 이틀 사이 그와 가진 여러 번의 관계로 여기저기 근육이 뭉치고 그가 파고든 여린 살 주변이 살며시
아렸다.
“알긴 알아?”
“안 일어나?”
“아, 이것 좀 놔 봐.”
“그럼 뽀뽀 백 번 해 줘요.”
“뭐?”
그 양심 참 빨리도 찾았다.
“아! 잠깐만!”
□ ◆ □ 이아
“아침 못 먹어서 어떡해요?”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뭐 해요?”
“……응?”
설마 또 오려는 건 아니지?
“뭐 기대한 거 있어요?”
“야아…….”
“아…….”
“나 회사 근처에서 내려줘.”
“안 물어봐요?”
“뭘?”
“출장.”
“응. 너 출장 간다며.”
“하아…….”
Rrrrr, Rrrrr.
“네. 오석한입니다.”
전화를 받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갈게’ 입으로 작게 속삭이며 안전띠를 풀었다.
탁.
걸음을 옮겼다.
“좋은 아침입니다.”
“두 분이 가시는 거죠?”
“네.”
“네. 알겠습니다.”
“일단 30 분 후에 전체 회의하겠습니다.”
“네.”
“친했어요?”
“……아니요.”
카리스마라…….
“어? 유 대리 왜 웃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팀장실에서 나온 석한이 이야기를 나누던 여직원들을 지나쳐 사무실을 나갔다.
“……네? 아, 네.”
그저 가볍게 웃음을 머금고 회의 준비를 시작하는 직원들 사이에 지안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네.”
너무나도 낯선 느낌.
‘아…….’
“유지안 대리.”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석한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네. 알겠습니다.”
“어! 어!”
쾅.
“왜 그래요?”
그가 작게 속삭였다.
“나 괴롭히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또 다른 데 본다. 나 봐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을 머금은 눈동자가 지나치게 반짝거렸다. 작게 내쉬는 숨결에서 수없이
빨아들였던 그녀의 향기가 풍겨 왔다.
“하아, 가기 싫다.”
“…….”
“……!”
“계속 나 봤잖아요.”
“…….”
“아…….”
그가 그저 무관심한 줄 알았다.
민망함이 밀려왔다.
“난 그냥, 별 뜻 없이…….”
“하아…… 하아…….”
“빨리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와.”
□ ◆ □
사무실로 돌아왔다.
‘진짜, 정신 나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네. 기다릴게요.”
살며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강 대리가 눈꺼풀을 살짝 밀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이 과장님 같이 가도 되나요?”
“어?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저도요!”
“강 대리님, 같이 가도 되나요?”
“……네. 그러죠.”
“……왜, 왜요?”
“진짜인가 보다.”
“……뭐가요?”
“……네?”
저, 좀 떨어져 주실래요?
“유 대리.”
“네.”
“강 대리 어떻게 생각해?”
촉이 왔다.
“어라, 알고 있었어?”
“아니요.”
“응? 그럼 뭐야?”
두 여자의 눈이 반짝거렸다.
“오오! 썸인가요!”
몸 정이 안 들어서 문제지.
퇴근 시간이 되었다.
“네? 뭐가요.”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아니에요. 그냥 같이 가요.”
“저 잠시만요.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왜요. 누가 그렇대요?”
그가 다시 빙긋 웃었다.
이런 옳은 남자를 봤나.
툭 하고 옆구리를 찌르는 이 과장의 신호에 찰떡같이 호흡을 맞추는 직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다들 어디 가셨어요?”
“네에?”
“……네.”
“그걸 기억하세요?”
“아…… 네.”
“아, 다행이네요.”
“아…… 아닙니다.”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지안을 바라보던 강 대리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이잉.
[어디예요?]
석한의 문자였다.
[나 회식 중이야.]
금세 답변이 왔다.
더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아…….”
근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면도 많답니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안녕하십니까.”
아, 회사 직원인가?
아니, 얘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잠깐 잊고 간 게 있어서요.”
“…….”
“가지러 왔어요.”
이게 무슨 소리야…….
“한잔하시겠습니까?”
지금. 가 봐야 해. 일단 편하게.
네가 이런 말 들으면 퍽 편하겠다.
“네. 그러시죠.”
어차피 헤어지려는 찰나에 석한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그에게 미안해지는 상황이었기에 지안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선배, 가요.”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던 환한 미소가 해사하게 번져 눈앞을 어지럽혔다.
“왜요? 며칠 만에 보니 더 멋있어졌어요?”
“진짜 왜 온 거야?”
“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
“적당히 해.”
“어디 가?”
“호텔이요.”
“응?”
“야, 진짜 왜 온 거야?”
“왜 왔겠어요?”
“…….”
“…….”
“선배, 이리 와요.”
“앉아요.”
익숙하면서도 늘 낯선 감각이 밀려든다. 닿으면 닿을수록 새로운 감각이 피어나는 것만 같은 신기한 기분.
적당한 감각으로 위아래 입술을 번갈아 빨아 당기던 입술이 깊숙하게 밀려들며 벌어진 틈으로 능숙하게
혀를 밀어 넣었다.
“흐으응…….”
고작 며칠 지났을 뿐인데.
“하앗. 서, 석한아…….”
쪽- 쪽-
짧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하아…….”
천천히 움직여 그녀를 침대 가운데 내려놓고 답답하게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손끝으로 느긋하게 끌어
내렸다.
“아…… 좋다…….”
“…….”
“너무 그리웠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
“……왜 그랬어.”
“그런 거 말고 칭찬.”
“……잘했어.”
짧은 한마디에 그가 다시 웃었다.
“……그래.”
‘왜 왔겠어요?’
“열 번만 자자며……. 근데 왜 자꾸 파고들어…….”
“하아, 간 건가?”
설마 비행기 시간 늦은 건 아니겠지?
그의 문자였다.
“하아…….”
그의 온기가 식어 버린 손바닥.
또다시 밀려오는 공허함.
□ ◆ □
일주일 후.
지이잉. 지이잉.
석한이었다.
“여보세요?”
-선배. 어디예요?
“나 집. 너는 어디…….”
띠띠띠띠.
응? 뭐지?
갑자기 현관에서 들리는 도어록 누르는 소리에 지안이 빛의 속도로 고개를 현관으로 돌렸다.
블랙 슈트를 잘 차려입은 석한이 천천히 열리는 문 사이로 들어오며 장난스럽게 입술을 밀어 올렸다.
“저도 선배 집이요.”
“야, 너 뭐 하냐.”
“안 놀랐어요?”
“놀랐어.”
에이, 뭐야. 신발을 벗으며 인상을 찌푸리던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매를 곱게 접고 지안에게 다가왔다.
“어어! 야!”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지안의 풍성한 가슴이 출렁임과 동시에 그의 손바닥이 그 위를 점령하듯 강하게
쥐었다.
“흐응…….”
“하아…… 하아.”
“흐윽…….”
그가 몸을 강렬하게 붙여 왔다.
“왜 웃어요?”
“……아니야.”
“왜 웃지? 너무 좋아서?”
지안이 다시 작게 웃었다.
이 관계가 그 안에 끝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진짜 말 안 해 줘요?”
“…….”
“그게 말이든, 생각이든…….”
너는 대체…….
그가 작게 속삭였다.
“기대해요.”
“…….”
“오늘은 더 좋을 거예요…….”
생명을 불어넣듯 입 안으로 퍼지는 숨결과 함께 밀려든 그의 혀를,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빨아
당겼다.
거칠게 밀려드는 것에는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성마른 손길이 강하게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흣…… 선배…….”
“하아, 하아…….”
만질만질한 식탁 표면에 엉덩이가 닿는 순간, 잔뜩 달아오른 몸과는 확연하게 다른 차가운 온도가 느껴져
가녀린 몸이 움찔거렸다.
“흐으응…….”
“흐읏, 석한아…….”
“흐으…… 제발…….”
파고들 때마다 꿈틀거리며 손가락을 조여 오는 느낌에 석한이 가슴에서 입술을 떼어 내고 입맛을 다셨다.
제 손길에 무너져 내리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말로는 표현 못 할 전율이 온몸에 뻗쳤다.
열기를 머금어 뜨겁고 축축한 석한의 혓바닥이 예민한 살결을 야릇하게 아래에서 위로 할짝거리며
어루만졌다.
“하앗…… 흐응…….”
작은 살점이 문질러지며 휘몰아치는 감각에 지안의 몸속에서 조금씩 고개를 들던 욕정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쏟아져 내렸다.
나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지안의 몸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묻어 번질거리는 섹시한 입술이 뇌쇄적인 자태로 꿈틀거렸다.
“……괜찮아요.”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입술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속살을 파고든 손가락은 여운을 남기듯 느리게 움직였다.
몇 번을 더 찌걱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스르륵 빠져나간 손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야릇하게 문질렀다.
자신의 흔적이 붉게 피어난 탐스러운 가슴, 색정적으로 벌어진 허벅지 사이에 고스란히 드러난 핑크색
돌기, 그 아래 황홀함을 가져다줄 구멍으로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를 키운 남성의 끝을 뭉근히
비볐다.
“흑…… 흐읏!”
“하앗…….”
탁. 탁. 탁. 탁.
짧고 빠른 울림이 퍼졌다.
울먹이는 신음과 함께 흘러나온 간절한 소리에 석한의 두 팔이 그녀의 어깨와 허리를 단숨에 감싸며
품으로 당겨 안았다.
채워 주고 채워 줘도 갈증이 났다.
“하악, 흐흐읏…….”
온몸이 저리고 순식간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앓는 소리를 흘리다 숨을 삼키며 재빨리 입술을 꾹 닫았다.
“흐으응…… 흐응…….”
“……아!”
번쩍 몸이 떠올랐다.
“흐읏…….”
순간적으로 온몸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에 흠칫거리며 그의 목을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의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걱정하지 마요.”
“…….”
“다시 넣을 거니까.”
“엎드려요.”
“무릎 세우고…….”
자신의 행동을 빠짐없이 지켜보는 그의 앞에 자신의 은밀한 곳을 치켜드는 것만으로 밀려드는 민망함에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흐응…….”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우고 살며시 비틀자 그녀가 잠시 잊었던 신음을 흘렸다.
“흐윽! 자, 잠깐…….”
탁탁탁탁탁.
“으으으으으으…….”
혹여나 그녀가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그녀가 정신없이 터트리는 교성에 파묻혀 모든 사고가
멈추고 그저 그렇게 내달렸다.
“하앗…… 윽.”
“아앗, 흐응…….”
“이리 와요.”
사랑받는 느낌.
□ ◆ □
출장을 다녀온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체력 단련을 하고 온 것인지 지치지도 않는 그의 체력에 하마터면
박수갈채를 보낼 뻔했다.
“안녕하십니까. 출장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잘 다녀왔어요.”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갑자기 나타난 윤서영 상무의 모습에 직원들이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팀장 만나러 왔어요.”
“팀장님 잠깐 지금 자리 비우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들어가서 기다릴게요.”
“네. 그러십시오.”
“네. 알고 있습니다.”
마주 서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괜히 이상한 기분이 올라와 고개를 다시
돌리려는 순간.
‘아…….’
“진짜 뭐 있는 거 아니야?”
“저 잠깐 총무 팀 좀 다녀올게요.”
사무실로 돌아오자 서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팀장실 유리 너머로 책상에 앉아 있는 석한의 모습만이
보였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업무를 마무리 짓던 지안이 사무실로 급하게 들어오는 여직원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누구?”
“윤 상무랑 우리 팀장님.”
“왜? 왜?”
“와, 둘이 진짜 뭐 있나?”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네. 몸이 별로 안 좋아서요.”
“네.”
[어디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그의 답장.
자신에게만 흥분한다는 여자. 그리고 거부하지 못하고 자신의 품 안에서 신음을 터트리는 여자.
지이잉.
오랜 시간 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응?”
딩동-
“어?”
딩동-
“선배…….”
“선배, 잤어요?”
“너 번호 알잖…… 어후. 술 냄새.”
자신의 말을 듣지도 않고 어깨를 끌어안는 그의 행동과 함께 순식간에 파고드는 알싸한 알코올 냄새.
“많이 나요?”
“응. 많이 마셨어?”
“조금?”
“뭘 어떡해. 집에 가지 왜 왔어.”
“…….”
“……물 줄까?”
“씻어.”
“잠깐만 이리 와 봐요.”
어느새 다가와 뒤에서 어깨를 끌어안는 그의 행동에 숨죽인 채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누구랑 술 마셨어?’
“흐읏…….”
“오늘도 속옷 안 입었네요.”
“흐으응…….”
“읏. 자, 잠깐만…….”
“그거 알아요?”
“하아, 뭐…….”
“앗. 자, 잠깐…….”
뾰족하게 솟은 유두 끝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야릇하게 비트는 동시에, 팬티 속으로 파고든 기다란
손가락이 이미 그를 받아들일 정도로 축축하게 젖어 버린 살결 안을 깊게 파고들었다.
“흐으윽. 서, 석한아.”
“따뜻해…….”
“……흐읏.”
“좋다.”
술에 적당히 취해서일까.
거부할 수 없는 손길.
그와 몸을 섞는 이 순간.
“흐흐흑…….”
“흐응, 흐읏…….”
움직일 때마다 풀어졌다 조여 오는 황홀한 느낌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헛웃음이 나왔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그녀를 찾을 정도로 그녀에게 미쳐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안은 아찔하게 밀려들어 오는 감각에 그를 품은 자신의 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르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져 눈을 질끈 감았다.
“흐읏…….”
“나 봐. 다른 데 보지 말고…….”
“키스해 줘…….”
맞물린 입술 사이로 흐르는 신음을 받아 삼키며 한껏 빼내었던 남성을 그녀의 중심으로 강하게 밀어
넣었다.
탄탄한 근육으로 감싸진 엉덩이가 움푹 패도록, 위아래로 격렬하게 치대는 행위를 받아 내느라 여린 몸이
정신없이 팔딱거렸다.
절정의 순간.
동시에 숨이 멈췄다.
갈비뼈 사이가 저리도록 치대는 심장 소리와 함께,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쾌감을 서로를 품에 안고
조용히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비어 있는 옆자리.
“부지런도 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하체에 커다란 수건을 두른 그가 물기가 촉촉해진 자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일어났네요.”
“……어.”
“너 안 피곤해?”
뭔가 자기 혼자 되게 충전한 느낌인데.
괜히 억울하네…….
눈앞이 환해지는 잘 다듬어진 얼굴이 가깝게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지안의 얼굴을 살피던 석한이 유연하게 미끄러져 올라가 있던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선배, 피곤해요?”
“응.”
대체 맨날 무슨 힘이 저렇게 남아도는지.
“또 시작이다.”
“왜요. 나 더러워요?”
“아니요. 돼요.”
“뭐야.”
“그것도 매력 터진다.”
“아, 그렇구나.”
“……응?”
“아, 내가 그랬나?”
“네. 누구예요?”
“……말하면 네가 알아?”
“응? 누구를?”
“어제 만난 사람이요.”
“남자면…… 죽일 거니?”
고작 같은 소리 한다.
그저 입가에만 번지는 것이 아닌, 소리를 내며 웃는 지안의 모습에 석한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을
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아서요.”
“그러니까 어디가.”
“다요.”
1 초도 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 그가 술술 답했다.
“진심이야?”
“그렇죠?”
“…….”
“예나 지금이나.”
“뭐야, 갑자기.”
지안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래도 괜찮아요.”
“……응? 뭐가?”
“선배는 똑같아도.”
“…….”
큭큭- 입술을 겹쳐 오면서도 숨결 사이로 웃음을 내뱉는 그가 얄미워 몸을 비틀며 벗어나 보려 했지만,
입 안을 파고든 부드러운 감각에 잠식되어 작은 몸짓은 금세 멈추었다.
“그래서요?”
“응? 뭐가?”
“누구 만났냐고요.”
미세하게 엇나간 감정을 인정하고 이 관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묵살한 건 자신이었다.
빠져나갈 수 있을까?
‘뭔데?’
‘설마요.’
“왜 그렇게 보냐니까요?”
“어? 세워 달라고.”
“그냥 가요.”
“어딜? 회사?”
“미쳤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야…….”
너 사실 나 되게 싫어하지?
“오석한.”
“네?”
“너 그거 알지?”
“뭐요?”
“그런 건 뭐 늘 있던 일이고.”
“그런데요? 그게 뭐요?”
이 자식을 진짜.
“뭐?”
말자, 말아.
주차를 마치고 평온한 상태로 차에서 내리는 석한과 다르게 지안은 여기저기 살피며 죄지은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꺄악-!”
“선배, 지금 뭐 해요?”
“놀랐잖아!”
“우리가 무슨 불륜이에요?”
“……뭐?”
“말을 해도 꼭…….”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직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지안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뭘.”
띠링-
“안녕하세요. 윤 상무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급한 일이라니…….
왜 필요도 없는 말을 내뱉는지.
“오늘도 수고하세요.”
“네. 오 팀장님도요.”
“……응?”
“약속 있어요?”
“아니. 왜?”
“끝나고 나랑 어디 좀 가요.”
“어디 갈 건데?”
“그냥. 좋은 데요.”
그 좋은 데가 혹시 호텔, 너희 집, 이런 곳 아니니?
아…… 데이트.
“어때요?”
“그래. 그러자.”
“와……. 어디 가지.”
뭐가 저렇게 늘 솔직하냐.
‘맛있는 것도 먹고 야경 좋은 데도 가고 그래요.’
평소에 회사의 소식통이라고 불리는 여직원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음성으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럼 썸?”
“둘이 곧 약혼한대요.”
“헉…….”
“와…….”
“아…….”
제대로 체했다.
“유 대리 왜 그래?”
“사러 가려고요.”
“저 있어요. 드릴까요?”
“이 과장님 체했어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누가 아픕니까?”
알게 하고 싶지 않은데…….
“유 대리. 많이 아픕니까?”
“괜찮습니다. 진짜 별거 아닙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괜찮아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편하게라…….”
우리는 무슨 관계일까?
그가 말한 것처럼 편하게.
얼마나 지났을까.
“무슨 일 있냐?”
“아니. 일은 무슨 일.”
“아니야. 없어.”
“오석한 일이구나?”
“…….”
“안 들어도 뻔하다.”
“밥은?”
“약은?”
“먹었어.”
“죽 줄까?”
“죽 있어?”
역시 예상대로 석한이었다.
지이잉.
“야, 자냐?”
“친구 좋은 게 뭐니?”
“…….”
“왜 웃어?”
“아…….”
“…….”
“즐겨?”
“…….”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고, 자존심 세울 것도 없어. 피하면 뭐하니? 그냥 부딪혀. 그때처럼 도망가고
나서 힘들다고 난리 치지 말고. 넌 꼭 다른 때는 잘 지르다가 걔 앞에서는 그렇게 멍청하게 굴더라.”
“……됐어.”
“뭐가?”
“복 받은 년.”
“…….”
성큼성큼 긴 다리로 단숨에 다가온 석한의 두 손이 빠르게 지안의 양어깨 끝을 강하게 잡았다.
“선배…….”
바닥까지 떨어지는 낮은 음성과 찌푸려진 눈꺼풀 아래 날카로운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화났겠지?
“몸은 괜찮아요?”
“……어?”
“아……그게…….”
길게 뻗은 팔이 어깨를 감쌌다.
“뭐 먹었어요? 죽 사 왔는데.”
“화 안 났어?”
“왜요? 오늘 어디 못 가서요?”
“…….”
‘둘이 약혼한대요.’
“오석한.”
“너 약혼하니?”
그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일렁였다.
“오늘 그냥 돌아가.”
“…….”
“나 쉬고 싶어.”
“누가 그래요?”
“아니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눈빛.
아……
4.
7 년 전.
“선배! 잠깐 나랑 얘기 좀 해요.”
“아주 잠깐만요.”
“난 잠깐도 너랑 할 말 없어.”
“하아! 미치겠네!”
“됐어. 시끄러워.”
“오빠, 이 수업 들어?”
한눈에 봐도 미모가 눈부신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석한에게 다가가 너무나도 반가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나 왜 몰랐지?”
“야. 거기 목발 좀 줘 봐.”
“어라? 발은 언제 다쳤어!”
“야. 조금 비켜 봐.”
“야, 좀…….”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럼 그렇지.
지안이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나갔다.
“야…….”
“응?”
“뭐?”
“비키라고…….”
***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은 지안이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딱이네, 딱이야.
“비 오나?”
“비가 안 그치려나?”
“이런……. 난감하네.”
“같이 쓰실래요?”
한동안 들리지 않았던 귀에 익은 목소리. 그리고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신기하리만큼 생생하게 기억나는
향기.
“어제 풀었어요.”
“안 궁금해. 말 안 해도 돼.”
“화 풀렸어요?”
아- 소리와 함께 그가 다시 말을 멈추었다.
“하고 있잖아.”
“여기 말고 다른 데서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오해는 풀어야죠.”
“오해?”
다른 강의를 마친 학생들이 강의실을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던 지안이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일단 가자.”
“네!”
“빨리 가요.”
“……로 가자.”
“……네?”
“거기……로 가자고.”
“…….”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귓가를 무섭게 때리던 빗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멍멍하게 들려왔다.
“선배, 뭐라고요?”
‘유지안 뭐야.’
“저기! 저기 가자.”
아무래도 얘는 너무 위험하다.
‘어…….’
“야!”
순간 크게 튀어나온 그녀의 목소리에 그의 손이 우뚝 공중에 멈추었다.
“네. 알겠어요.”
“나 따뜻한 아메리카노.”
“……뭐?”
“뭐래.”
온전치 않은 걸음걸이.
“쟤는 대체 뭐야.”
“여기요.”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의자로 앉는 석한.
“야! 너 다리…….”
“이제 다 나았대요.”
“…….”
“괜찮아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순식간에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왜요?”
“뭐 생긴 거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농담이에요, 농담.”
그러니 앞으로 찾아오지도 말고, 알은척도 하지 마.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지안을 감정 없는 눈빛으로
한참 바라보던 석한이 입술을 작게 밀어 올리며 움직였다.
“일단, 이게 순서일 것 같네요.”
“…….”
“…….”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 것만 같아서 지안이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
“…….”
“…….”
“그런 거 아니에요.”
믿어 달라는 다부진 목소리와 함께 거짓이 없어 보이는 눈동자를 마주하자 편하게 내쉬던 숨이 멎었다.
“갑자기 왜?”
“……네?”
“뭐야…….”
장난하나, 이게…….
“선배는 잘 알아요?”
“……뭐?”
“뭐야.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건데.”
“…….”
“야…….”
“…….”
“…….”
□ ◆ □
그의 말이 떠올랐다.
“이상한 거로 치면 나만 하겠냐.”
예민한 살결을 집요하게 어루만지던 손길과 인장을 새기듯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던 입술.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미세하게 번지는 야릇한 기분이 온몸 신경 세포를 하나하나 어루만지듯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미친 건가…….”
미치기 딱 일보 직전이었다.
□ ◆ □
“오늘 주점 갈 거지?”
“내 말이……. 걔는 정말 회장감이야.”
“그래. 그러자.”
“지안아, 여기!”
“와. 선배 올지 몰랐어요.”
나도 네가 여기 있을 줄 몰랐다.
반가움이 극대화되어 있는 표정으로, 뚫어져라 지안을 살피는 석한의 모습에 주변 동기들의 눈동자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야. 너 안 바쁘냐?”
“둘이 친해?”
“네.”
동기들이 입 모아 외쳤다.
이 또라이 자식.
“아아…… 그런 뜻이야?”
“너 안 가냐?”
“선배는 언제 가요?”
“나 금방 갈 거야.”
“……할 말?”
“네.”
“은혜롭다. 은혜로워…….”
“야. 너 쟤랑 친해?”
“아니.”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수업 뭐야. 난 왜 몰랐지?”
“안희수네.”
“누구?”
지안도 아는 얼굴이었다.
“둘이 헤어졌어?”
“안희수가? 그 콧대 높은?”
“몰라. 소문이 그래. 근데 둘이 다시 사귀나?”
“아, 아니야…….”
“벌써? 나 지금 왔는데.”
“어어? 같이 가자.”
“야, 놀다 와. 이 언니 간다.”
“어라. 너 취한 거 같은데.”
어느새 멀어진 지안의 모습에 하은이 재빨리 일어나 지안을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선배.”
“……어?”
걱정 반 기대 반.
“선배! 지안 선배!”
“선배!”
“야! 너!”
“내가 왜.”
“이미 제가 할 만큼 다 한 거 같은데요.”
“그럼 집에 가.”
“벌써요?”
“선배. 모르는구나.”
“뭘?”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뭐?”
“귀엽다.”
“……뭐?”
“아,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야! 너 대체.”
“키스해도 돼요?”
“……!”
“야…….”
석한의 모양 좋은 기다란 손가락이 봄바람에 살랑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짜증스러운 손길로 흐트러트렸다.
“…….”
“뭘?”
“…….”
“도저히 못 찾겠다고요.”
“아직도 궁금해요?”
“……뭐가.”
“야, 대체 무슨 말이야.”
“그냥 좋은 거라고요.”
“…….”
“…….”
“그냥 너 좋다는 여자 만나.”
“왜 도망가요?”
“아니야.”
“거짓말.”
하지만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진짜 귀신같은 자식.
그의 말이 맞았다.
“부담스러워.”
“희망적인 이야기네요.”
“응?”
“……뭐?”
“좋아해요.”
“야…… 대체…….”
“뭐?”
“왜요. 자신 없어요?”
“……뭐라는 거야.”
“한 달 안에 나한테 안 빠질 자신 없냐고요.”
“이게 진짜 미쳤나.”
안 그래도 올라오는 취기에 온몸이 후끈거리는 마당에 오기 생기게 슬슬 건드리는 석한의 행동에 온몸에
열기가 거침없이 치솟았다.
“안 넘어가면 어떻게 할 건데.”
약속할게요. 내 모든 걸 다 걸고.
“별 진짜 이상한…….”
“또라이를 다 봤냐고요?”
무서운 자식.
“빨리 대답해요.”
“잠깐만…… 머리 아파.”
감았던 눈이 번쩍 떠졌다.
나도 모르겠다.
네 마음대로 해라.
“어딜. 나 어지러워.”
“선배. 술 취했어요?”
“어. 약간…….”
“나 누군지 알아요?”
“다행이다. 난 혹시 방금 한 말 기억 못 할까 봐 걱정했잖아요.”
“못 할지도 모르지.”
아니면, 안 하고 싶든가.
“그럼 안 되는데.”
이 녀석 정말 진심인가 봐.
진짜 얘 왜 이러니.
큭 하고 웃음이 흘렀다.
“너 진짜 웃기다.”
“선배는 진짜 예뻐요.”
빤히 바라보는 진득한 눈빛 아래, 지나치게 매력적이고 섹시해 보이는 입술에 지안의 시선이 멈췄다.
그날 입 안을 파고들어 정신없이 자신의 입속을 탐하던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떠올라 온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네. 알겠어요.”
“나한테 손도 대지 마. 알았어?”
“…….”
“도와? 뭘?”
“잡아요.”
“……?”
대체 이게 무슨…….
“꽉 잡았죠?”
“절대 손은 안 댈게요.”
“아…….”
이런 뜻이었어?
황당함에 지안의 눈이 크게 떠지고 그의 손목을 잡은 손끝에 힘이 가득 실렸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촉촉하고 뜨거운 혀가 여기저기 파고들어 야릇하게 훑고 지나갈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망했다.
“하아…….”
진하게 입술 위를 지분거리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탄식이 섞인 한숨이 지안의 입술 사이로 흘러 나갔다.
그의 움직임을 막기보다 온몸을 뚫고 지나가는 짜릿하고 생경한 감각에 뭐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다급하게 들어서 차마 놓지 못했다.
마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맞닥뜨린 것처럼 신기하고 놀란 듯한 눈빛이 그녀의 얼굴
위를 한참 동안 머물렀다.
“야…… 너 대체…….”
“와…… 대체 선배…….”
“…….”
“진짜…….”
“……?”
그 또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야, 가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빨리 가자.”
“어, 어…….”
필사적으로 자신의 손목을 당기는 힘에 끌려가던 석한이 입술을 꾹 눌러 문 지안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야. 웃지 마.”
“장난하지 마.”
“하아. 이게 대체 뭐야.”
“……뭐가?”
이 자식 정말 또라이인가.
“오석한…….”
“네. 선배.”
“너 진심이야?”
“……그러니까.”
“진짜 해도 너무해요.”
“걱정하지 마요.”
“내가 노력할게요.”
“…….”
□ ◆ □
‘학교에서는 절대 같이 안 다닐 거야.’
“선배. 왔어요?”
“오래 기다렸어?”
“즐겁게 기다렸어요.”
“또…….”
“왜요. 너무 좋아요?”
“저도요.”
“아, 죄송해요.”
“너 끌어안으려고 했지.”
“네. 진짜 안 돼요?”
“어. 안 돼.”
“……뭐?”
결국, 웃음이 터져 버렸다.
“좋은 데요.”
“어어어…… 야. 어디 가.”
“밥 먹었어요?”
“아니.”
“여기예요. 와 봤어요?”
“아니.”
“들어가요.”
“뭐?”
“네. 자리 안내 좀 해 주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없어서 못 먹지.”
“다행이다.”
“야. 너 여기 엄청 비싸.”
“네. 괜찮아요.”
“선배가 사는 거예요.”
“뭐?”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던 지안이 자꾸만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에 주변을 살폈다.
“뭐지…….”
괜히 나 혼자 의식하는 걸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 많은 대기 인원을 제치고 들어온 것 자체가 뭔가 평이하지 않다.
“오석한! 어. 없네.”
눈이 마주쳤다.
잠시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눈앞의 여자가 사랑스러운 핑크빛 입술을 예쁘게 밀어 올리며 빙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지안 씨죠?”
여전히 크게 뜬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피는 그녀의 모습에 괜한 민망함이 몰려왔다.
“그런데…… 저를 아세요?”
“당연하죠.”
“어떻게…….”
“아, 누나…….”
그런데 큰누나?
“진짜 신기하다.”
“……네?”
“…….”
내력이 많은 집안이구나.
갑자기 나타난 석한이 기겁한 표정으로 빠르게 달려와 테이블을 두 손바닥으로 소리 나게 짚었다.
“넌 뭘 입어도 못생겼어.”
“일어나! 빨리.”
“야. 뒤로 안 가?”
“누나. 안 바쁘냐?”
늘 자신 앞에서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한 표정을 짓던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슬그머니 고개를 숙여 지안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혜인의 행동에 석한의 목소리가 다시금 크게 들려왔다.
“와. 이 자식 미쳤네.”
“오오. 어디 좋은 데 가려고?”
“미안해요. 당황했죠.”
큭, 하고 지안이 웃었다.
괜히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자꾸 웃음이 올라와 손바닥으로 입술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선배…….”
기분이 나쁜 걸까?
“……응?”
“예쁘다.”
“미안.”
“네? 뭐가요?”
“뭐가 아니라…….”
“뭐?”
여기 너희 누나 가게라고.
이게 진짜.
테이블을 넘어올 것처럼 자신에게 가득 다가온 석한의 어깨를 재빨리 주먹으로 툭 하고 때렸다.
“제대로 앉으라고!”
“빨리요. 우…….”
아오, 저 입술.
팍씨. 한 대 칠 수도 없고.
“어? 어? 당연하지.”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빨리 줘. 나 빨리 가야 해!”
아차 싶었다.
“그렇죠, 선배?”
오늘 참 많이 웃는다.
궁금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혜인과 여전히 즐거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석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괜한 말을 했지 싶다.
“이제 다 먹었죠?”
“아니.”
“배 안 불러요?”
“어. 하나도.”
키스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었나.
풍족하게 먹기 힘든 신선한 회들이 눈앞에 화사한 빛을 머금고 펼쳐져 있건만, 석한의 눈은 오로지
지안만을 향했다.
“석한아…….”
“나 먹다 체해서 약 사 먹고 바로 집에 갈까?”
“아…….”
“너도 빨리 먹어.”
공짜라니 염치없게 느껴지긴 했으나 맛있는 음식을 두고 깨작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복스럽게 입 안에 음식을 넣었다.
“먹는 것도 예쁘네.”
석한의 목소리에 빠르게 다가온 혜인이 제대로 앞에 서기도 전에 지안의 손바닥 안으로 밀려들어 온
석한의 손이 그녀를 당겼다.
“고마워. 잘 먹었어.”
“잘 먹었습니다.”
“네. 가 보겠습니다.”
“야! 야! 잠깐 서 봐.”
“왜요.”
“아우. 빨리.”
우뚝 멈춰 선 석한이 지안을 돌아보았다.
“허…… 진짜.”
“맞으니까. 빨리 가요.”
주차장에 도착하자 허공에 대고 다급한 손놀림으로 자동차 키 버튼을 누르던 석한이 저 멀리서 번쩍이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발견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야! 잠깐만!”
아, 왜요!
우리 지금 회 먹었어.
장난하냐?
“커피!”
“네?”
“나 커피 마셔야 해!”
“나중에 마셔요!”
아, 왜 이러실까.
역시 귀신같은 녀석.
“왜!”
“이게 진짜.”
그래. 가요, 가. 커피 아주 사발로 마시고 하자고!
“선배…….”
“왜, 왜…….”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오는 석한의 행동에 재빨리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아! 안 해요!”
내가 지나가는 개를 믿지.
“어디?”
“우리 집이요.”
“이게 진짜.”
“줄 거 있어요. 선물.”
“어, 벌써 들켰어요?”
“이게 진짜.”
“그래. 가자.”
“어? 진짜요?”
“그래.”
“싫어?”
“자, 받아요.”
“이게 뭐야.”
“참나…….”
“아. 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야.”
“엄마야!”
“이제 됐어요?”
“……뭐가?”
“선배가 해요.”
“……응?”
가슴이 울렁였다.
“왜 긴장해?”
“그러니까 빨리…….”
“흐읏…….”
엉기고 풀리는 혀끝이 얼얼해질 정도로 빨아 당기다가 야릇한 감각에 숨이 차오르면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하아…….”
“……선배.”
한동안 맞물려 허겁지겁 서로를 탐하던 입술이 잠시 떨어짐과 동시에 석한이 지안의 몸을 번쩍 들었다.
놀라기는커녕 자신을 번쩍 들어 안은 그의 허리를 두 다리로 강하게 감고 잠시 떨어진 그의 입술을 애가
타는 듯 다시 베어 물었다.
하아, 미치겠다.
“흐읏!”
흐트러져 스커트 위로 밀려올라 가 버린 블라우스 틈새로 뜨거운 온기를 머금은 손끝이 파고들었다.
혀끝이 목덜미를 핥아 올리고 입술로 빨아 당기기를 반복함과 동시에 거친 숨을 내쉬느라 들썩이는 그녀의
가슴을 손바닥 안으로 가득 넣고 움켜잡았다.
“흐응.”
요망스러운 소리를 내뱉은 지안이 잠시 놀라 눈을 떴지만 당황함도 잠시, 또다시 요망한 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브래지어 아래를 파고든 손끝이 점점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는 그녀의 유두 끝을 살살 비비기 시작하자
갑작스럽게 치고 올라오는 야한 감각에 지안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이런 느낌이구나.
“흐으응…… 흐읏…….”
신기함과 두려움.
“흐으윽! 흑!”
혀끝에 닿는 도도록한 돌기를 아무리 가득 빨아 당기고 머금어도 이미 끝까지 차오른 욕정을 풀어내기에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
그날처럼 품 안의 그녀가 혹시나 놀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날과 다르게 적극적인 그녀에게 좀 더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
이대로라면 이성적인 사고가 금세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그녀를 탐하기
급급했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든 그의 단단한 허벅지가 흥분에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여린 살점과 맞닿자
그녀가 비틀리며 꿈틀거렸다.
“으읏…… 흣…….”
거친 숨을 내쉬며 밀려오는 감각을 견디느라 가끔 찌푸려지는 눈매와 강렬한 키스로 도톰하게 부어오른
붉고 매혹적인 입술. 자신의 손길에 흐트러진 옷매무새며, 그 어느 때보다 섹시하고 요염한 자태로
자신의 아래에서 헐떡이는 그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탄식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보고 있었던 것일까.
“선배…….”
“……응.”
“괜찮아요?”
뭐가 괜찮다는 걸까.
이대로 계속 가도? 아니면 지금 미치게 치고 올라오는 또렷한 감각을 견디기 힘들지 않냐고?
“흐으읏…….”
따끔한 감각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물어 오는 그녀를 다독이듯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자신의 손끝 하나로 점점 파고들며 매달리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라 감당되지 않는 감정이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흐으윽. 아…….”
“하아…… 그, 그만.”
아랫배를 타고 전신으로 휘감아 오르는 짜릿한 감각에 온몸이 비틀리고 정신이 몽롱해져서 미칠 것만
같았다.
차마 견디지 못하고 그의 입술을 찾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정신없이 휘저어 대는 그의 손가락 감각에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아…….”
그녀의 모든 것을 가지면 왠지 그녀가 자신에게서 더욱 달아날 것만 같아서 욕심을 채우지 않기로 했다.
“제길…….”
살 걸 그랬다.
내가 미쳤지. 속으로 말을 삼키며 여전히 그녀의 안을 휘젓던 손가락 움직임을 천천히 멈추었다.
순간 지안의 몸이 놀라 움찔거렸다.
“흐읏.”
“아, 아파…….”
그렇다고 더 하라 그럴 수도 없고.
살며시 느껴지는 아쉬움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가 주는 이 모든 것들을 자신도 느끼고 즐기고 있음을
인정했다.
“……응?”
“사 올까요?”
“……응? 뭘?”
“콘돔! 아까 안 샀다고요!”
짜증 나는 새끼.
혼자 속으로 자신을 향해 욕을 가득 던졌다.
“아우! 진짜.”
“엄마야!”
어째 몇 분 만에 훅 늙어 버린 기분이 드는 거지.
“어디 가요!”
슬쩍 시선을 자신의 불룩 튀어나온 곳으로 내렸다가 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이리 와요.”
그가 팔을 쭉 뻗고 침대 위를 반대 손으로 툭툭 내리쳤다.
“……괜찮아?”
묻고 보니 이상하긴 했다.
“안 괜찮으면요.”
“……응?”
“어떻게 해 줄 건데요?”
“안 죽어요. 걱정 마요.”
“응.”
“처음이에요?”
“…….”
자신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파르르 떨어 대던 그녀의 모습이 꽤
신경 쓰였다.
“…….”
“…….”
“열흘이면 되려나?”
길다. 길어.
Rrrrr Rrrrrr.
“잠깐만.”
“받지 마요.”
“아우, 잠깐만.”
“에이. 놓기 싫은데.”
그를 겨우 떼어 내고 거실로 나갔다.
“네. 여보세요?”
기다란 손가락이 가슴팍에 다가와 흐트러진 블라우스를 추스르며 단추를 하나씩 잠그고 있었다.
“네. 알겠어요.”
“다 됐다. 가야 하죠?”
“응.”
“아쉽죠?”
“으…… 뭐?”
“왜요?”
“그거야…….”
“오늘은 여기까지…….”
“…….”
“여기까지만 욕심낼게요.”
적게 낸 건 아닌 거 같은데.
“아니!”
네. 네. 없으시겠죠.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요.”
“아니야!”
성큼 앞장서는 그를 따라 집을 나섰다.
□ ◆ □
“예쁘다.”
마주친 미소가 또렷하게 눈과 머리에 자리 잡아 잠시 멍한 시선을 흘리던 지안이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말이라도 못하면.
“왜요. 잘생겼어요?”
“그래.”
“알면 좀 갈래?”
“어…….”
“머리카락.”
그가 빙긋 웃었다.
“내 입술 말고 그런 거 먹지 마요.”
“이게 진짜.”
“언제 끝나요?”
그가 부드럽게 물어 왔다.
“기다릴게요.”
“야, 됐거든.”
“……그래.”
“야, 오석한.”
“선배. 나 갈게요.”
“응. 그래.”
‘안희수.’
“가자. 뭐 먹을까?”
“일단 가.”
탁.
□ ◆ □ 이아
-선배 어디예요?
“응. 이제 거의 끝나 가.”
“그래.”
전화를 끊자 하은이 지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같이 안 가? 한잔하자.”
“약속 있어서.”
“누구. 우리 복덩이?”
“야.”
“아…….”
“이쪽에서 올 거 같아서요.”
작게 웃는 소리와 함께 그가 물어 왔다.
“그렇게 신경 쓰여요?”
“…….”
“아니야. 그런 거…….”
“영화 뭐 볼래요?”
“아, 맞다.”
“아직 안 정했어요?”
“응.”
“너 보고 싶은 거 보자.”
“나 막 되게 야한 거 볼 건데.”
“그래.”
“오늘 조금 이상한데…….”
“……응?”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아무것도.”
분명 아무 일도 없는 하루였다.
“그냥 오늘 보자.”
다시 손을 꼭 잡고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팀 과제는 다 했어요?”
“응. 괜찮아.”
“넌 뭐…… 했어?”
“동기, 누구?”
도로 어딘가를 향했던 석한의 시선이 빠르게 지안에게로 닿았다.
“아니야. 괜찮아.”
“궁금한 거 아니었어요?”
지안이 피식 웃었다.
□ ◆ □
“재미있었어요?”
“응.”
처음에는 열심히 집중하려고 했지만, 도통 정신이 산만해서 집중되지 않아 조금씩 짜증이 밀려 올라왔다.
“저도요.”
“다행이다. 가자.”
이미 11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알겠어.”
“어어…….”
“흡…….”
순간 숨을 삼켰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의 체향이 번지고, 맞닿은 것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상하리만큼 저릿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더욱더 자신에게로 당겨 안는 행동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
지안의 몸이 작게 움찔거렸다.
마치 가득 사랑받고 있는 느낌.
□ ◆ □
[오늘 우리 집에 갈래요?]
[몸에 손도 안 댈게요.]
둘 다 학점 F 맞고 죽자는 거냐?
가도 되지 않을까? 잠시 고민이 되긴 했지만, 지난번 뜨겁게 달아올랐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재빨리
마음을 고쳐먹었다.
[싫어! 나 오늘 이거 다 못 하면 정말 망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가볍게 문자를 보내고 커피를 사 와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안희수예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얘가 나랑 할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네. 답할 수 있는 거면 답할게요.”
“…….”
직설적으로 떨어지는 눈빛과 직설적인 그녀의 질문에 순간 짜증이 밀려 올라왔다. 이런 전개일 거라는
예상이 아주 딱 맞아떨어져 버렸다.
“사귀는 거 맞아요?”
“…….”
대답 없이 눈꺼풀만 천천히 내렸다 올리는 지안의 모습에 희수의 눈매가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저기요.”
“네.”
“그쪽, 석한이랑 친하지 않아요?”
“네. 친해요.”
“…….”
더 마주 앉아 있어 봐야 뭐하리.
“할 말 더 없으면 저는 이만 일어날게요.”
“잤어요?”
“석한이랑 잤냐고요.”
“역시 아직 안 잔 거 맞죠?”
“그건 내 사정이고.”
“오석한 좋아해?”
“네.”
“…….”
동요하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더러웠다.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야.
몇 시간이 지났다.
‘오석한이랑 잤어요?’
‘역시 아직 안 잔 거 맞죠?’
자고 나면 헤어진다는 소리인가?
한 달이라는 시간.
그게 그거였어?
“아, 짜증 나…….”
한참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지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나섰다.
그동안 그가 자신에게 속삭였던 말들과 행동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사실이기를, 오늘 그녀에게서 들은
말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려고 노력했던 자신이 비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띠링-
탁-
걷잡을 수 없이 뒤엉킨 생각들로 가득했던 시간이 더없이 허무하게 느껴져 가슴이 울컥거렸다.
“어! 선배!”
“허…….”
이미 내려가 버린 엘리베이터.
“선배! 잠깐만요!”
“놔!”
“잠깐만요! 어디 가요!”
“내 말 듣고 가요!”
“무슨 말? 지금 내 눈앞에서 여전히 마음 있다는 여자랑 꼭 끌어안고 있었는데. 내가 뭘 더 들어야
하는데?”
“너 내가 우습냐?”
“……네?”
“그래! 요즘 세상에 하룻밤 자는 거, 원나잇! 그거 쉽지. 그래, 아주 쉽지! 모르는 사람이랑도 자는데!
너 같은 애한테는 아주 쉽겠지!”
처음 느낀 감각에 두려움과 설렘이 밀려와 오랫동안 고민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점점 더 비참한
기분이 차올랐다.
정신 나간 년. 누굴 탓해.
“선배! 그만해요!”
“……네? 선배!”
“됐어.”
“놔! 이제 끝이야!”
“선배!”
애써 돌린 어깨가 다시 그의 손에 의해 돌려졌다.
“내 말 좀 들어 봐요!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잖아요!”
“아니요! 내가 알고 싶은 게 그거예요!”
“…….”
“뭐?”
“야…… 오석한.”
“뭘?”
차마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놔. 아파.”
“왜 자꾸 도망가요?”
“놓으라고.”
툭.
사실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이 난잡스러운 상황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짜증 난다는 생각만이 차오르고 있었다.
“선배…… 왜…….”
“손대지 마.”
“…….”
“내 몸에 손대지 마.”
“너. 약속했지?”
“…….”
“선배!”
“…….”
“그만하자.”
“싫어요.”
“…….”
“나 상관없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네가 누구를 만나든,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든. 너처럼 그러지
않았어. 이걸로 대답 됐지? 서로 상처 주지 말자. 그러니 이제 그만 끝내자.”
거짓말.
작게 속삭이는 그의 말을 외면했다.
“야! 오석한!”
“가서 하던 거나 계속해.”
“선배!”
“야! 너……!”
“닥쳐.”
“…….”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손대지 마.’
원망도 아닌 마치 증오하는 듯한 눈빛을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에 뾰족한 무언가가 심장을
관통한 것같이 아파져 왔다.
“너 뭐라고 했어…….”
“야. 이게 진짜.”
“어.”
“……뭐?”
“…….”
“야…….”
“석한아!”
“…….”
툭툭.
“야. 복 나간 년. 죽 먹어라.”
“안 먹을래.”
“그럼 먹지 말든가.”
“어.”
“그럼 다시 만나.”
“싫어.”
“그럼 말든가.”
“꼴좋다.”
“…….”
“…….”
“아 좀 일어나 봐!”
“…….”
“너 말해 봐. 오석한 싫어?”
“아니.”
“그럼?”
“모르겠어.”
“느낀다며. 걔가 만지면 느낀다며…….”
“그래서…….”
“응?”
“그래서 모르겠다고. 걔가 좋아서 느끼는 건지, 아니면 걔가 만지면 흥분해서 좋아지는 건지.”
미친년. 그게 그거 아니야?
“진짜 가는 거 맞아?”
“맞겠지.”
“…….”
“유지안. 그냥 혼자 살아.”
“…….”
“나쁜 년.”
“왜 욕하고 난리야.”
“넌 나를 너무 잘 알아.”
“미안하다.”
그가 따라와 잠시 이야기하자고 말을 걸었지만, 이러면 앞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겠다고 매정하게 답했다.
“응. 안 볼 거야.”
마음을 열지 않은 건 결국 자신이었다.
작은 오해를 더 크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밀어낼 용기가 없었기에 핑계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자신이 없었다.
“선배…….”
“아…….”
우산을 건네주고 환하게 웃으며 빗속을 뛰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환영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지안…… 너 웃긴다.”
다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 ◆ □ 이아
“어디야?”
-알았어.
“어, 혹시…….”
“아…… 안녕하세요.”
혜인이었다.
“잘 지냈어요?”
“네.”
혹시나 일행이 있을까 살피는 듯했던 혜인이 옅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석한이, 미국 간 거 알아요?”
“……네.”
안희수가 석한과 완전히 헤어진 것인지 둘이 같이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석한이 미국에 갔다는 이야기.
“하셔도 괜찮아요.”
“…….”
“다 지난 일이에요.”
“…….”
“워낙 오래된 짝사랑이긴 했지만, 사귀거나 그랬던 것도 아니고 일방적이었던 거예요. 석한이도 그저
오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매정하게 굴지 못한 것도 잘못이지만. 지안 씨에 대한 마음
진심이었어요.”
“괜찮아요. 이제 다 끝난 일인걸요.”
“그날도 술 먹고 희수가 일방적으로 찾아간 거였고. 그 모질지 못한 자식이 행동을 잘못해서 오해가 생긴
건데……. 아무튼…….”
“…….”
“누구랑요? 희수랑요?”
“네.”
하아- 혜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석한이 간다고 하니까. 희수가 집에다가 조른 모양이에요. 물론 석한이는 알지도 못했던
일이고요. 그리고 희수 지금 미국 안 갔어요. 휴학하고 잠시…….”
“네. 말씀하세요.”
“…….”
천천히 눈을 감았다.
“……좋아했어.”
이미 전하기에 너무 늦은 이야기.
5.
4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가득 쌓인 눈 위를 짜증 섞인 발걸음으로 걸었다.
“야, 최하은.”
“들어가자꾸나. 친구야.”
벌써 다 들었구먼.
“……그냥 뭐.”
“성격 차이지!”
바로 어제.
“뭐라고?”
뜨거운 호흡을 나누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그 순간 세상에 오직 그 사람에게 나밖에 없다는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사랑하고 싶었다.
“야, 너 괜찮아?”
“응.”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
“같이 가?”
“아니야. 금방 올 거야.”
추운 걸 워낙 싫어하기에 평소 같으면 짜증을 내고도 남았을 텐데, 오늘은 온몸을 파고드는 냉기가 딱히
거슬리지 않았다.
“어?”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덮여 있는 공간을 발견한 지안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뽀드득.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엄마야!”
손목 위로 느껴지는 강한 힘에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이 반짝이는 것이 하늘의 별 때문인지. 바닥의 새하얀 눈 때문인지. 아니면 눈앞의 남자의 미소
때문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선배. 위험해요.”
술을 너무 마신 걸까.
“괜찮아요?”
너무나 또렷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꺄악!”
“엄마야!”
“선배! 괜찮아요?”
“…….”
“일어나 봐요.”
“잠깐만!”
“너! 뭐야!”
“……네?”
“너 뭐냐고.”
“저 오석한이에요, 선배.”
순간 정신이 다시 번쩍 들었다.
“손댄 거 아니에요.”
“아…….”
여전했다.
믿기 어려운 광경에 잠시 치솟았던 흥분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잘 지냈어요?”
최하은. 이걸 확 그냥.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제…… 들어왔어?”
“한 달 전에?”
“아, 그렇구나.”
아, 어지러워. 괜히 많이 마셨다.
“괜찮아요?”
“어…….”
“뭘 봐. 술 마셔서 그런 거지.”
“아…….”
“하아…….”
아마도 나겠지.
작게 코웃음이 났다.
“얼굴 좋아 보이네요.”
“그래? 고마워.”
“그런가…….”
“요즘 뭐 해요?”
“회사 다녀.”
“아, 그렇구나…….”
“너는?”
“저야 아직 학교 다니죠.”
그마저 끊어지니 차가운 공기와 어색함이 뒤엉켰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거리던 석한이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친구들 기다리겠어요.”
“…….”
“저 들어가 볼게요.”
“…….”
그래. 너도 잘 지내. 가볍게 이야기를 건네야지 하는 마음과 다르게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
“……선배.”
“오석한.”
“네.”
“너…….”
무슨 용기가 났던 걸까.
“너 나랑 잘래?”
“자자. 나랑.”
“이유.”
“…….”
“…….”
“그냥. 너랑 자고 싶어졌어.”
그때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 그것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미치도록 뜨거운 쾌락에 의한
착각일지 모르지만.
나도 이제 모르겠다.
“너한테만 그래.”
“……네?”
“너한테만 흥분한다고.”
“대체…….”
“…….”
“하아…….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야.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도망쳤어. 어린 마음에
두렵기도 했고. 너랑 끝까지 가고 나면, 그 어떤 이유가 됐든 헤어지면 내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질 것만 같았어. 넌 이해가 안 되겠지만, 네가 만들었던 작은 오해조차도 두려울 정도로……
아무튼 그때는 그랬어.”
“그랬구나…….”
“…….”
“그래서 도망쳤구나…….”
“…….”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겠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만하자, 유지안.
애써 끌어올렸던 용기가 무색할 만큼, 그의 차가운 반응에 금세 단단하게 먹었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뭐?”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슨…….”
“소원 하나 들어줘요.”
자 주는 대신 소원 들어 달라 이거냐?
“소원이…… 뭔데?”
“……그래서?”
“오석한! 빨리 안 와!”
“나 가 봐야 해요. 빨리 결정해요.”
“야…….”
네가 원한다면 내가 할게.
얘는 왜 이렇게 안 변할까.
“…….”
“나랑 자자.”
“흐음…….”
“……가요.”
“타요.”
“네.”
“아…….”
“왜요?”
나만 너무 제정신이 아니잖아.
뭔가 민망함이 밀려 올라왔다.
갑자기 멈춰 선 차.
“잠깐만 기다려요.”
“오늘은 완벽하죠?”
“그러네. 완벽하다.”
“여기 어디야?”
“집이요.”
“너희 집?”
“네. 빨리 내려요.”
“으읏…….”
“들어와요.”
“뭐야?”
“소원 들어준다면서요.”
설마…….
“정답!”
“야…….”
“제가 선배와 자겠다는 약속을 번복할 일 따위는 없을 테고, 하지만 선배가 그러고 나서 약속을 안 지키면
안 되니까.”
“그래. 쓰자.”
오늘 못 할 게 뭐가 있겠니.
“네.”
“참나. 별걸 다 한다.”
술 먹고 별짓 다 한다 싶었다.
“……응?”
어느새 맥주를 원샷하고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석한의 모습에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물었다.
“원샷할까?”
그가 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
“긴장 안 되나 봐요.”
“응.”
“왜요?”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은 이게 제일 급한 거 같다.”
“선배…….”
“…….”
다시 그녀를 만난 것만으로 그저 기뻤다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그녀의 살결이 맞닿고 호흡이 섞이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욕심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절대…… 도망 못 가요.”
“안 가.”
적어도 오늘은.
“도망 안 가. 그러니…….”
스르륵 눈이 감겼다.
“흐응…….”
살결을 타고 올라온 손끝이 맞닿은 틈 사이를 파고들어 지안의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하앗! 흐읏…….”
“하아, 너무 좋아.”
풍성하고 동그란 가슴을 강하게 주무르던 손이 브래지어 속을 파고들자 손끝에 단단하게 솟아오른 그녀의
유실이 느껴졌다.
“으읏. 자, 잠깐…….”
“……오늘은 못 멈춰요.”
울 것만 같은 신음에도 한 번 시작된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나도 멈추고 싶지 않아.
단숨에 불룩한 가슴 위로 끌어 올려진 니트 아래로 그가 얼굴을 묻더니 축축하고 뜨거운 감각이 강하게
느껴졌다.
“으으응…… 흐읏…….”
그제야 그녀의 가슴 끝에서 입술을 떼어 낸 석한이 거칠게 소파 위 그녀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올라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마음은 그녀를 파고들어 정신없이 허리를 치받고도 남았을 정도로 정상 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또 사람 미치게 하지.”
일부러 마음을 돌리려 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마음을 그녀처럼 차갑게 식혀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녀를 잊으려고 쉼 없이 노력했다.
이제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석한은 뜨거워져 있었다.
오롯이 몸만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거짓임을 알고도 덮으려 했는데, 결국 또 그녀
앞에 무너져 내려 인정해 버리고 만다.
갑자기 모든 것을 멈추고 자신을 짙어진 눈동자로 이리저리 살피는 그를 지안이 몽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선배…….”
“응.”
“유지안…….”
“응.”
“응. 처음이야…….”
“…….”
“괜찮아…….”
“선배…….”
“나 안아 주라.”
“…….”
“응?”
“…….”
그때 네가 안아 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안아 줘.
“흐읏…… 흣, 흣…….”
순식간에 벗겨진 브래지어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스커트 아래 그녀의 스타킹과 팬티가 그 뒤로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울컥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나 그가 아니면 느껴 보지 못하는 신기한 감각에
기쁨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온몸을 지배했다.
“하앗! 흐으으으응…….”
“……선배.”
“…….”
“으읏! 흐흐흣!”
그리고 좁았다.
손가락을 조여 오며 움찔거리는 그녀의 속살에 잠시 호흡을 멈추었던 석한이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헤집기
시작했다.
작게 밀려 올라간 그녀의 입술, 예쁘게 그녀가 눈매를 휘자 차오른 눈물이 또 한 번 옆으로 흘러내렸다.
“걱정하지 마요…….”
“천천히…….”
“…….”
“천천히 할게요.”
“…….”
“…….”
거짓이어도 좋았다.
하나였던 손가락의 개수가 늘어나고,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일 정도로 충분히 젖어 들고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손가락을 완전히 빼내었다.
“흐흐흑…….”
그가 몸을 완전히 일으키며 그녀의 치마를 완벽히 벗겨 내고, 자신의 바지와 속옷을 단숨에 벗어 던졌다.
허벅지에 선연하게 느껴지던 단단한 물건이 고개를 치켜세운 채로 지안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자리 잡았다.
“흡…….”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저 부딪히는 살결으로 느꼈을 뿐이지, 손조차 대지 않았기에 가늠하지 못했었다.
“잠, 잠깐만!”
드…… 들어갈까?
크게 떠진 눈 안으로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감지한 석한이 천천히 상체를 내리며 그녀와 마주했다.
저기……그건 네 생각 같고.
분명 아파. 이건.
“힘 빼요. 선배.”
너 같으면 지금 힘이 빠지겠냐.
“흐윽! 아, 아파…….”
찰싹.
지안의 손바닥이 차진 소리와 함께 그의 등을 제대로 강타했다.
안 아프긴 개뿔.
아파 죽겠구먼.
“아악…… 흣!”
“아직 멀었어요.”
“하앗…… 하악…….”
“하아. 이제 다 들어갔어요…….”
“흐으으으…….”
일단 고통이 컸다.
다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허리를 살살 치받자 매끄러운 라인을 만들어 내며 휘어진 그녀의 매혹적인 몸이 자신의 움직임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으윽…… 흑!”
밀어닥친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기를 기다리며 아주 오랫동안 그녀 안에 머물며
속살을 어루만졌다.
그의 느릿한 움직임에 휘몰아치던 파도가 잠잠해지고 하얀 물결이 퍼지듯 야릇한 감각이 온몸을 잠식해
오기 시작했다.
“흐으응…… 흐응…….”
조금씩 비명이 아닌 야릇함이 담긴 신음이 그녀의 잇새로 흘러나오자 그의 움직임에 조금씩 다급함이
담기기 시작했다.
쓰다듬고 만지고 싶을 정도로 살집이 적당히 잡힌 그녀의 허벅지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허리를 튕겼다.
자신을 품에 안느라 몽롱해진 눈빛, 거칠게 숨을 내쉬느라 오르락내리락하는 잘 다듬어진 단단한 가슴.
“선배…… 제발…….”
“더, 더 해 줘…….”
“……흐윽, 선배…….”
정신없이 흔들어 대는 허리짓에 그녀의 몸이 위아래로 출렁였다. 침대 시트가 어지러이 구겨지고 발끝에
걸린 이불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자꾸만 공중에서 떨어지려는 그녀의 다리를 잡아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도록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으으으으으으…….”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흐윽!”
촉- 촉-
“왜…….”
“…….”
“괜찮아요?”
“아니.”
“많이 아팠어요?”
“정말이야…… 좋았어.”
톡 튀어나온 매력적인 쇄골 아래 가늘게 이어진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그녀가
간지러운 듯 몸을 작게 움츠렸다.
“으으응.”
“……졸려요?”
“응.”
“조금 잘래요?”
“……으응.”
“젠장.”
Rrrrr Rrrrr.
공항으로 출발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침대 위 흐트러진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천천히
손으로 쓸어내렸다.
“선배.”
“…….”
“나, 가요.”
“…….”
“아니, 나 다녀올게요.”
“…….”
“…….”
“그때 소원 꼭 들어줘요.”
“술 취해서 그런 거 아니잖아.”
그리고 행복했잖아.
“너도.”
잘 지내.
밤새 더 많은 눈이 내렸었나 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 □ 이아
“…….”
“야!”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워 보이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그의 얼굴을 살피더니 똑바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찰싹!
“아악!”
“아악?”
찰싹!
“……선배! 왜!”
“선배 말로 해요!”
“너 아주 그 못된 버릇 아직 못 고쳤지…….”
“……네?”
내가 오늘 아주 단단히 고쳐 주마.
“선배!”
“…….”
“선배.”
너 말 한번 잘했다.
“…….”
아! 생각할수록 열 받네!
여전히 잡힌 손목을 빼내지 못해 이를 꾹 눌러 문 지안을 바라보던 석한이 스르륵 지안의 손목을 놓았다.
“네.”
“…….”
어라, 이게 아닌데.
또 대놓고 인정하니 괜히 마음이 물러져서 등짝을 때리려고 공중에 들어 올렸던 손바닥을 천천히 내렸다.
“…….”
그때는 어렸었다.
우리는 어렸었다.
“그러니 나 이제…….”
“…….”
“도망 안 가.”
“……선배.”
“…….”
“그러니 네가 나 꽉 잡아. 다시 도망치려고 하면 네가 꽉 잡으라고.”
“안 해요.”
“……?”
“약혼 안 한다고요.”
“…….”
“아니. 못 해요.”
“무슨…… 소리야?”
“불안하셨나 봐요.”
“……뭐가?”
“저희 부모님이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과 말투에 정말 자신이 심각하게 생각했던 약혼이 무척이나 가볍게 느껴졌다.
“왜 불안해?”
“……뭐?”
“사실 업무적인 관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억지로 밀어붙여서 만든 자리예요. 그리고 윤 상무네 집에서
적극적으로 밀고 있고요.”
내가 그럴 만한 인물은 되잖아요.
“……그래?”
“네.”
“그렇구나…….”
약혼하지 않겠다는 말에도 그다지 밝아지지 않고 체념한 듯한 지안의 표정에 석한의 눈매가 살며시
찌푸려졌다.
“선배, 약혼 안 한다고요.”
“알겠어.”
“뭐가…….”
“혹시, 지금 못 믿는 거예요?”
“아니야. 믿어.”
“……네?”
“…….”
“그렇죠?”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유지안.”
오직 이 순간 지안에게 그가 모든 것이었다.
“…….”
“…….”
자신을 가득 담은 그녀의 맑은 눈동자 위로 촉촉한 물기가 번지는 것이 보이자 미안한 감정이 밀려와
가슴을 콕콕 아프게 찔렀다.
조금 더 일찍 얘기해 줄걸.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그의 손끝이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 내자 잠시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던 눈동자가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콧등을 찌푸리며 훌쩍거린 그녀가 눈매를 예쁘게 휘며 웃었다.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순간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녀가 천천히 다가와 짧게 입술을
간지럽히듯 머금고 떨어져 나갔다.
자신의 말에 응? 소리와 함께 눈매를 찌푸리는 석한의 모습을 바라본 지안이 맑은 웃음을 흘렸다.
“나도…… 사랑해.”
“…….”
“…….”
“왜. 안 믿겨?”
“…….”
“사랑한다고. 오석한.”
“……선배.”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지안을 담으며 손끝으로 그녀의 존재를 새기듯 한참을 어루만졌다.
“읍…….”
지금 그런 걱정은 사치일 뿐.
“흐응…….”
“하아…… 선배…….”
맞닿은 살결이 거친 움직임에 부딪힐 때마다 서로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깊어진 신음이 듣기
좋게 흘러나와 서로를 점점 더 흥분시켰다.
“하앗…….”
급한 손길이 지안의 스커트를 허겁지겁 들어 올리고 은밀한 곳에서 흘러나온 체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속옷 위를 강하게 문질렀다.
“하아…… 석한아…….”
투명한 액체가 휘둘러진 손가락 위로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속살이 느껴지자 맞물린 석한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토해졌다.
“흐흣…….”
자꾸만 휘청이는 그녀를 꼭 끌어안던 석한이 순식간에 손가락을 빼내고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하앗…….”
침대에 내려지기가 무섭게 지안의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빠르게 떨어지고, 그 또한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상태로 그녀 위로 빠르게 올라왔다.
커다란 손바닥 안으로 그녀의 말랑한 가슴을 넣고 손가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유두를 입술로 단숨에
베어 물었다.
“하앗! 흐으으으…….”
온몸 구석구석 그의 혀가 닿았다.
허벅지 위를 찌르는 그의 단단한 물건이 어서 빨리 파고들어 마음껏 자신을 지배하고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한 쾌락을 선물해 주길 기다렸다.
풍만한 젖가슴 위를 마음껏 유린하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던 석한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었다.
자신을 기다리듯 야릇한 자세로 다리를 가득 벌리고, 애절하고 몽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
“……선배.”
“하아…… 나 더는…….”
“흐으윽…….”
그녀의 야들야들한 속살을 삼키고 빨아 대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같이 뛰고 흥분이 차올라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젠장.”
콘돔이 없었다.
번쩍 몸을 일으킨 석한이 바닥에 떨어진 옷을 재빨리 주웠다.
“……왜?”
“있어.”
“……네?”
“저기…….”
“왜…….”
대체 그 눈빛 무슨 의미야?
“선배 집에 왜 이게…….”
상자에서 콘돔을 하나 빼서 침대로 돌아온 석한이 의미가 모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게 뻔히 알면서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선배 혹시…….”
“완전…….”
“야! 그게 아니라…….”
“……조금 됐어.”
이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 그건 왜?”
벌써 불안하다.
저거 봐라, 저거.
“괜찮아요?”
“……뭐가?”
“나 오늘 이거 다 쓸 건데.”
“야!”
덜 맞았지! 덜 맞았어!
“하아…….”
한숨을 내쉬는 지안의 모습에 웃음을 머금던 석한이 천천히 입술을 꾹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석한아…… 근데.”
“…….”
“아니. 좋은 건 좋은 거고…….”
그래. 네 마음 잘 알겠다고.
“너…… 너는 아니니?”
“……뭐가요?”
이거 참 말해야 해, 말아야 해.
“나 지금 조금 급한데…….”
“…….”
“우리…… 하던 거 하면 안 될……까?”
석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못난 자식.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여전히 건재한 그의 물건 위로, 석한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자신을 엄청나게 생각하며 샀다는 콘돔이
금세 씌워졌다.
“흣…….”
“흐으응…….”
“이제부터 잘 봐요.”
“하아, 흐읏…….”
흐윽- 강한 조임에 석한이 끝까지 파고든 상태로 괴로운 듯 신음을 뱉으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싫어, 빨리…….”
이렇게 자신을 강하게 원하는 그녀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심장이 터질 것같이 흥분이 차올랐다.
“하앗! 흐읏…….”
오랜 시간 멈춤은 없었다.
달아오른 숨결을 머금은 입술이 샅샅이 그녀의 몸을 빨아 당기고 삼키고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자신이 뱉은 말을 제대로 보여 주겠다는 듯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석한의 격렬한 움직임에 정신을 차리는
것을 포기한 지안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사랑해요.
사랑해. 유지안.
나도.
나도, 사랑해.
자신이 그렇듯.
그저 서로이기에.
□ ◆ □
“우리가 무슨 불륜이니?”
“뭐가 무서워?”
“그랬어?”
“에이, 뭐예요.”
“치이…….”
어떻게 독차지해 줄까요? 음흉하게 속삭이며 들떠 보이는 미소를 담은 그의 눈빛에 지안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사무실에 도착해 그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그동안 내심 신경 쓰였던 시선들이 오늘은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다녀오셨습니까?”
“네.”
“아니요.”
“뭐 사다 드릴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른 직원과 나누는 이야기에 지안이 흘깃 그를 바라보았다.
유난히 섹시해 보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더듬고 또 더듬으며 모든 욕정을 풀어내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니,
밥 한 끼 정도는 굶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유 대리, 무슨 좋은 일 있어?”
정신 나간 여자처럼 모니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에 질문이 날아오자 재빨리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요. 전혀요.”
참 신기하지.
“그러게요. 좋아 보이네요.”
“어라? 뭐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밝은 미소를 장착한 서영이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와 석한의 사무실로 직행했다.
연애 아니거든요.
“그냥 밖에서 만나지 왜 저래?”
밖에서 나만 만날 거거든요?
그 어느 때보다 다부진 표정을 머금은 지안의 발이 전쟁터라도 나가듯 비장하게 바닥을 쿡쿡 강하게 쳐
대며 움직였다.
똑똑.
순간 살짝 당황했다.
“유 대리, 무슨 일이죠?”
“아, 그게…….”
이거 완전 민폐인데?
“결재받으러 온 건가 봐요?”
“아, 네.”
그가 몸을 돌려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볼펜 하나를 들고 다시 지안에게 돌아왔다.
응? 지난번?
“……네?”
“아…… 네, 네.”
웃지 마라.
지금 나 되게 결의 다지고 들어왔거든?
너희 둘이 뭐 하는지 궁금해서?
대체 무슨 소리야.
“네. 알겠습니다.”
“자, 여기요.”
“……네.”
“나가 보겠습니다.”
“유 대리. 왜 들어갔어?”
재미라……. 난 왜 근데 살짝 살 떨렸지?
근데 얘는 대체.
몸을 바짝 책상으로 당겨 앉았다.
“……!”
“진짜, 오석한…….”
“네. 다들 수고하세요.”
“네.”
그렇게 봐도 어쩔 수 없어.
당당한 표정의 지안이 역시나 비어 있는 결재판을 끌어안고 석한의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보다 매끈하고 유해진 목소리에 지안의 뒤로 직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와 내심 기분이 흐뭇했다.
나라서 그런 거야.
“왜?”
“또 결재받으러 왔나 봐요?”
어느새 반걸음도 되지 않는 거리로 다가온 지안의 민첩한 행동에 보기 좋게 휘어졌던 석한의 눈매가
조금씩 커졌다.
또 사람 미치게 하지.
“정확히 알고 있네.”
“왜 이렇게 귀여워요?”
“선배 나 닮아 가나 봐요.”
“아직은 네가 한 수 위지.”
“하아…….”
잠시 입술이 떨어지자 역시나 불안한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는 석한의 모습에 지안이 작게 웃었다.
“야, 오석한…….”
“……네?”
“문 잠갔어.”
“읍…….”
살짝 벌어진 지안의 허벅지 사이로 파고든 석한의 단단한 허벅지 위로 여린 살결이 비벼지자 몸이 파르르
떨려 왔다.
당장 옷을 다 벗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격렬한 그의 몸짓에 결국 목을 감고 있던 그녀의 손이 찰싹
소리를 내며 석한의 등을 쳐 댔다.
“흐읏. 야, 야……!”
지금 너 딱 맞기 좋거든?
“야…… 흣, 야!”
“무슨 얘기 했어?”
“……윤 상무랑요?”
“어.”
“그게 다야?”
“그럼 뭐가 있어요?”
“알았어.”
“네.”
“…….”
“왜요? 하지 말까요?”
“벌써 늦었어요.”
“뭐가?”
“…….”
“……야.”
“…….”
“왜요. 걱정돼요?”
그게 뭐라고 걱정해요.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석한의 다독임에도 가볍게 넘기려는 걱정이
지안을 사로잡았다.
“너 회사 잘리는 거 아니야?”
“엥?”
석한의 한쪽 눈이 가득 찌푸려졌다.
아, 그건 아닌가?
아, 맞다.
저 녀석. 대단한 녀석이었지.
“선배가 잘리겠죠.”
“뭐?”
생각해 보니 그렇네.
뭔가 되게 분하다.
“왜요?”
“어라? 왜요?”
나 누구랑 내 거 공유하는 거 별로라서요. 역시나 장난스럽게 말하는 석한의 모습에 지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 오석한이에요.
“…….”
“…….”
깜빡깜빡 천천히 오르내리는 그녀의 눈꺼풀 안으로 생각이 많았던 눈동자가 금세 맑은 빛을 담았다.
“너 그거 모르는구나?”
“뭐가요?”
“아…….”
잘해. 이 자식아.
유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다가 혹여나 밖에서 들릴까 봐 막아서는 그녀의 손바닥 사이를 간지럽히며
사라졌다.
촉- 촉- 소리를 내며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자신의 입술을 바라보는 지안의 모습에 석한이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근데 선배.”
“응?”
번쩍.
나 왜 그걸 생각 못 한 거지?
이럴 때가 아니야.
“나 나간다!”
“아, 잠깐…….”
“히익!”
“엄마야!”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을 가로막는 까만 형체에 지안이 어깨를 들썩임과 동시에 공중을 방황하던 석한의
팔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
“차, 차장님…….”
정말 심장 멎을 뻔.
“……응? 우유?”
“어……? 어…….”
“네!”
“귀여워 죽겠네.”
“네?”
석한의 혼잣말에 박 차장이 반응하자 여전히 실룩거리는 입술을 챙기며 겨우겨우 진지한 표정을 되찾았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죠?”
“와! 진짜 큰일 날 뻔.”
미쳤다. 진짜 미쳤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굳은 다짐을 마치고, 혹시나 당황한 것이 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폈다.
마음속으로 작게 속삭였다.
낯설지 않은 시선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밀려 올라갔던 지안의 입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유 대리라고 했나요?”
앞으로 석한과 자신의 사이가 아무 일 없이 그저 그렇게 지나가기를 바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욕심인 것
같은 느낌이 물씬 와 닿았다.
□ ◆ □ 이아
“나 기다렸죠?”
“뭐 해요?”
“차 마시려고.”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는 지안의 뒤로 바짝 달라붙은 석한이 지안의 잘록한 허리를 천천히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밥은?”
“대충 먹었어.”
“음. 향기 좋다.”
“아니. 선배 향기.”
흐음, 소리와 함께 목덜미에 간지럽게 숨결을 흩트려 놓더니 말랑한 입술이 하얀 살을 천천히 베어 물었다.
“간지러워.”
“몸은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아.”
“키스.”
“네. 손만 잡고 잘게요.”
“퍽이나.”
“에에? 내가 뭐 변태예요?”
“알긴 아네.”
곧 죽어도 자기 잘난 건 알지.
“선배. 이리 와요.”
“나 할 말 있어요.”
“응.”
몸을 편히 그에게 기대었다.
잠시 답이 없던 지안이 입을 열었다.
“왜? 할 말 있대?”
“네.”
“그래서?”
“만나지 말까요?”
“왜 나한테 물어봐?”
“아…….”
“아?”
“선배.”
“응?”
늘 궁금했다.
약속이 있다고 해도 그러냐는 짧은 물음이 다였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자신이 꺼내지 않으면 묻지
않았다.
“버릇……인가?”
“……네?”
“…….”
“장난이야. 만나.”
“…….”
“…….”
단순한 게 또 저럴 때는 좋네.
“같이 갈래요?”
“나?”
“아니. 내가 왜?”
“…….”
“……네?”
“믿어.”
“…….”
“질투는 하겠지만, 의심은 안 할게. 난 지금은 그냥 둘이 행복하고 싶어. 지나간 시간도 아깝고. 그러니
우리 사이에 필요 없는 일들 네가 잘 해결할 거라고 믿어.”
들이마실 때마다 몸속으로 스미는 그녀의 향기에, 몸에 닿은 그녀의 온기에, 자신만을 향하는 거짓 없는
눈빛에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벅차올랐다.
“그래.”
푸시시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보던 지안이 또로록 눈동자를 굴리다가 입술을 느릿하게 밀어 올렸다.
“같이 씻을까?”
예상치 못한 지안의 공격(?)에 잠시 나갔던 정신을 재빨리 끌어오며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선배. 지금…….”
품 안의 자신을 던지듯 소파 구석에 밀어놓고 이미 욕실로 들어가 버린 석한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
6.
“선배. 빨리 와요.”
괜히 같이 씻자고 해 놓고 왜 민망한지.
“선배!”
“알았어. 갈게.”
“빨리…….”
허벅지 위쪽까지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 셔츠 아래로 매끈하고 하얀 그녀의 다리가 빠르게 눈에 들어오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아- 이런 것도 다 행복이구나.
풍덩.
“꺄아악! 야! 뭐 하는!”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솔선수범하며 지안의 셔츠 단추를 풀어내는 석한의 손동작이 그 어느 때보다
목적에 충실하고 아주 빠르다.
“용케 안 찢는다.”
“비싸 보여서요.”
웃음이 또 터졌다.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물과 함께 자신의 몸 위를 유영하는 능숙한 손놀림에 축축한 숨결이 공중에 퍼졌다.
“흐으응.”
물기 묻은 손바닥이 볼록한 가슴을 감싸고 톡 튀어나온 핑크빛 돌기를 손가락 끝으로 빙빙 돌리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아…… 안 한다며…….”
“안 해요…….”
거짓말.
위아래로 지분거리는 손길에 어디에 신경을 쏟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며 축축한 신음을 뱉었다.
“흐읏…… 정, 정말?”
안 할 거니?
“야…….”
“그런데…… 아마 안 되겠죠?”
엉덩이 아래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단단한 물건이 찌를 듯 살결에 맞닿아 비벼지자 석한이 작게
신음하며 뜨겁게 숨을 토했다.
찰박찰박.
“해도…… 돼요?”
“하아, 넣을게요.”
“……흐읏.”
“하앗…… 흐응.”
“으읏. 자, 잠깐만…….”
“흐응…… 흐읏.”
“더 세게…… 더, 선배…….”
허리가 정신없이 앞뒤로 흔들렸다.
“안 되겠어요.”
“흣…….”
“꺄악!”
“야……! 씻어야지!”
“야, 침대 젖…….”
거칠고 험난한 사냥을 마친 맹수처럼 눈앞의 먹이를 단숨에 잡아먹을 듯한 표정과 눈빛에, 지금 침대가
젖고 있는 것 따위는 그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깨달았다.
“근데 지금 안 하면 내가 죽을 거 같아요.”
“흐읏…….”
“하아…… 석한아…….”
애액이 흥건히 흘러나오는 부들부들한 살결 위로 단단한 살결이 밀착되어 부딪힐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욕조 안 가득 담긴 물결이 뒤섞이듯 침대 위 뜨거운 공기가 정신없이 뒤엉키고 흐트러졌다.
□ ◆ □ 이아
“언제부터 이랬다고.”
길들여진다는 것.
“아침부터 왜 이래.”
“유 대리. 안녕하세요.”
서영이었다.
“안녕하세요. 상무님.”
“오 팀장한테 들었어요.”
더는 그녀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애써 그녀에게 무언가 티를 내거나 이야기하고 싶지도, 그리고 그녀의 존재가 중요하지도 않았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저랑요?”
“…….”
“네. 알겠습니다.”
“…….”
왜냐고 물으려다가 그녀의 입장이면 당연히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네. 그럴게요.”
투 샷을 추가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지안이 커피를 기다리며 잠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이게 아니지.
-선배. 어디예요?
“응. 회사야.”
“응? 아, 나도 그래.”
“아니야. 나도 보고 싶어.”
-좋아서 웃는 거 맞죠?
-회사예요?
“어. 그래.”
아! 이게 아니지!
-그럼 끊어…….
“야! 잠깐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리고 고민 없이 말을 뱉었다.
-주차장이요?
“응.”
-데이트하는 거예요?
□ ◆ □
“이게 대체…….”
“저, 유 대리…….”
“너 말 제대로 안 했어?”
“윤 상무님. 이게 대체…….”
“얼마나 중요한데요?”
“아아.”
한동안 두 사람 모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밥 뭐 먹을래요?”
“매운 거 엄청 당긴다.”
“괜찮아요?”
“어.”
“진짜로요?”
“어.”
“알아요.”
“…….”
“…….”
한 박자 늦게 지안이 물었다.
“그래서?”
“뭐가 그래서예요?”
“왜 웃어?”
“근데 의외다.”
“……뭐가?”
이제 앓느니 죽지.
더는 못 한다.
“잘했어요.”
“이제 나도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무슨 걱정?”
□ ◆ □
원래 지안의 업무가 아니었지만, 출산 휴가를 들어간 직원을 대신해 맡았기에 혹여나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을 가득 안고 최선을 다해 준비를 마쳤다.
“이제 다 됐나?”
아주 얼어 죽겠네. 얼어 죽겠어.
시베리아 벌판에 불어오는 잔인하게 차가운 바람처럼 냉랭한 그녀의 모습이 어쩌면 아주 당연하게 느껴져
나머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잘 지내죠?”
“네. 보시다시피요.”
“그래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오 팀장은 출장 갔죠?”
“네.”
하아- 너 너무 투머치야.
그런 정보 줄 필요 없어.
“그런가요?”
모르겠거든요?
“그럴게요. 나랑 오 팀장 일이니.”
“네.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알아서 잘하겠지.”
□ ◆ □
“벌써 며칠째야.”
행복하다고 해야겠지?
띠링.
대체 뭘 해결하겠다고?
대체 무슨 뜻이야.
띠링.
이 미친 여자 나랑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전화기가 꺼져 있어…….
왜 하필 배터리도 나가서.
‘H 호텔이 어디더라?’
□ ◆ □
“나 지금 뭐 하냐.”
“어…….”
[12 층.]
당장 가서 잡아 와야지.
“어? 유 대리님!”
왜 하필 지금 만나냐.
내가 더 바빴거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12 층을 꾹 눌렀다.
1203 호.
‘선배는 나만 믿어요.’
쓴웃음을 지었다.
“회의한다잖아. 회의.”
‘믿어. 믿으라잖아.’
벌컥.
“악! 깜짝이야!”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림과 동시에 지안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썩였다.
“어…… 선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 ◆ □ 이아
30 분 전.
“아, 늦었네.”
똑똑.
“오 팀장, 왔어요?”
“김 팀장은요?”
“김 팀장. 늦나 봅니다?”
“윤 상무님. 술 마셨어요?”
“오늘 김 팀장 안 와요.”
“……무슨 소립니까?”
“…….”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온기가 모조리 사라진 석한의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가 마주 섰다.
“윤서영 씨…….”
“윤 상무! 지금 뭐 하는!”
“어! 어!”
“…….”
단단한 허벅지 사이로 삭제 자신의 다리를 밀어 넣으며 숨결이 맞닿을 거리까지 석한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서영의 자신만만하던 눈매가 천천히 찌푸려지고, 유혹하려는 듯 몽롱함을 담았던 눈동자가 잔잔하게
흔들렸다.
“뭐……? 꺄악!”
“아, 짜증 나.”
좌우로 목을 천천히 흔드는 석한의 행동에 으드득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서영이 순간 숨을 삼켰다.
“…….”
“…….”
“윤서영. 말해 봐. 내가 우스워?”
“…….”
“…….”
“으윽…….”
□ ◆ □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지안의 모습에 당황한 석한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야. 지금 이게…….”
설마 오석한. 너…….
“야, 잠깐…….”
“가요. 빨리…….”
쫘악.
어느새 자신과 석한에게 다가와 차진 소리를 파생시키며 손바닥을 세게 휘두른 서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지. 이 선빵은?’
내가 쳐야 하는 거 아니야?
“고자 새끼!”
쾅.
문이 닫혔다.
“…….”
“…….”
“야…… 대체…….”
“하아…….”
“참 나…….”
“어……? 어.”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
“미안해요. 오해했겠다.”
“어. 아주 많이.”
“…….”
믿으라더니 이거 영 불안하다.
안 그래도 그 여자가 덮쳤다고 하니 대체 어디를 어떻게 만졌는지 상상하기 싫은 그림이 머리를 채우려고
하는데 석한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점점 참을성이 사라지고 있었다.
“오석한.”
“하아…….”
그게 정말 최선이니?
“사실? 무슨 소리야.”
“……뭐?”
대체 무슨 소리야.
“물론 사랑도 해요. 당연히. 그런데 처음부터…… 처음부터 유지안 아니면 안 됐다고요. 이해하겠어요?”
“난 내가 무성욕자인 줄 알았어요.”
“……뭐?”
□ ◆ □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
“뭐야…….”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그저 평온했던 하루가 그녀를 마주한 날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뒤죽박죽 뒤섞여 버렸다.
“……네.”
“엄마야!”
빠르게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가 바닥에 가득 고인 물을 정신없이 튀기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에게
바짝 다가왔다.
‘흡…….’
빠르게 숨을 삼켰다.
이게 대체…….
“아, 미안해.”
“……괜찮아요.”
“가방 많이 젖었어?”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런 여자를 만나지 못했구나. 언젠가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뜨겁게 끌어안고 뜨겁게 몸을 나눌 여자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한참을 떨어지는 차가운 물아래 몸을 맡겨도 이미 뜨겁게 부풀어 오른 욕망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앓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지안…… 대체 뭐야…….”
다시 한번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왜?”
“그거야 당연히…….”
“……뭐가 당연한데?”
“괜찮아요?”
“선배가 괜찮냐고요…….”
“대체 무슨…….”
“아…….”
“…….”
“내가 죽겠더라고요.”
“그럼 너는?”
“……뭐가요?”
“미쳤어요?”
“…….”
“그건 유지안이니까.”
“…….”
“…….”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밀어낼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하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자신이 밀어내지 못함을 알고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며 긴 시간을 망설이고 고민했었다.
“정말 말도 안 된다.”
“…….”
“우리 정말 말도 안 되지 않아?”
“……선배.”
“미안해요. 그런데…….”
“키스해 줘.”
그녀 위에 멈춰 있던 그의 까만 눈동자가 작게 동요했다.
‘너 나랑 잘래?’
따스하게 속삭였던 그의 말에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지만, 어차피 하루가 지나면 사라질 행복임을 알고
있기에 두려웠었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폭풍처럼 밀려와 마음을 들쑤시는 아픔과 허무함에 지독하게 힘든 날을 보냈다.
“너도 그랬겠구나.”
“오늘은 우리 같이 행복해지자.”
몸이 우선이었는지 마음이 우선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흐응…….”
“흐읏. 석한아…….”
혀끝에 감기는 바짝 솟은 돌기를 이리저리 굴리고 맛볼 때마다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지안이 몸을
비틀었다.
허리가 휘어지고 온몸을 따라 흐르는 짜릿한 감각에 꾹 내려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좋아…… 흐읏…….”
미치도록 좋은 감각.
허벅지를 찌르는 뭉툭하고 단단한 감촉이 자신이 몸 안으로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가 달았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아…… 너무 좋아.”
몽롱한 눈동자를 반쯤 덮은 나른한 그의 눈매가 천천히 휘어졌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쾌락에 마치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지안아.”
“지안아…… 유지안…….”
“흐으응…….”
두말할 것 없이 행복했다.
처음이었다.
여전히 거칠게 흔들리는 몸이 주체가 되지 않으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정신없이 파고드는 그를
가득 느끼며 받아들였다.
“으으으으으…….”
잘 다듬어진 그의 몸을 뒤덮은 땀방울이 갈라진 근육 사이로 흘러내림과 동시에 석한의 상체가 그녀의
위로 무너져 내렸다.
“미치겠다…….”
“오석한…….”
“…….”
작은 숨결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것마저 기분이 좋아 행복한 미소를 짓는 석한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어. 좋아서.”
“이렇게?”
고요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안 가.”
“…….”
“…….”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네. 물어봐요.”
무엇이든지 답해 줄게.
말만 해 봐.
“너 혹시…….”
“네. 혹시 뭐요?”
“너도…… 처음이었어?”
“……네?”
“야……! 말해 봐. 처음이었냐고!”
“풉. 진짜구나?”
“하아…… 졸리다.”
“와. 진짜…….”
“뭐가 진짜예요.”
“나 네가 왜 이렇게 사랑스럽지?”
눈이 번쩍 뜨였다.
“뭐래…….”
나 오석한이잖아요.
“어? 아니에요?”
“글쎄…….”
“그러는 넌?”
“……네?”
“아…… 아니다.”
“왜 그래요……?”
“선배, 왜요?”
“아…… 이제 알겠다.”
“네? 뭐를요?”
“나 이제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석한이랑 잤어요?’
‘역시 아직 안 잔 거 맞죠?’
“석한아.”
“…….”
“근데 정말 내가 처음이야?”
“……무슨 말이요?”
“허…….”
“……진짜?”
“유지안. 그만…….”
“……큭큭.”
“쉬잇.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나만 봐요.”
“유지안. 사랑해.”
대답은 물론 ‘Yes’였다.
□ ◆ □
[선배. 나랑 밥 먹어요.]
[너 지금 수작 부리는 거야?]
2 개월이 흘렀다.
“왔어?”
“와…… 진짜.”
“뭐가 진짜야?”
완전 계 탔네.
“해 줘.”
“응?”
“하자. 키스.”
쪽.
“왜?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야!”
“와. 너무 좋다!”
“야야! 놔! 놔! 사람들이 보잖아!”
□ ◆ □
“나 왔어.”
“……아, 안녕하세요.”
쭈뼛거리며 인사를 건네는 지안의 앞에 거침없이 다가와 손을 덥석 잡는 혜인의 행동에 석한이 눈매를
찌푸렸다.
“야. 부담스러워.”
“네. 오랜만이에요.”
다시라……. 근데 다시 맞나?
“……네?”
“어. 아직.”
“무슨 이야긴데?”
“내가 또 언제…….”
“아직 나이가 젊기는 하지만 부모님이 연세가 조금 있으셔서 사업을 빨리 물려주고 싶어 하셨거든요. 나도
뭐 물려받기 싫다고 밖에 나와서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있고. 그래서 일로는 물론 가정적으로도 안정되길
바라셨어요.”
“네.”
“근데 얘가 도통 여자를 만나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 보여서 부모님이 약간은 강압적으로 선도 보라고
하시고, 집안끼리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엮이길 바라셨어요. 윤 상무도 그런 케이스였고요.”
처음 듣는 생경한 이야기.
집안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석한이었다.
어라, 그랬어?
지안의 예리한 눈빛이 순식간에 석한에게 닿았다.
“열 받아서.”
“……응?”
“열 받아서 그랬다고.”
대체 뭐가 열이 받았다는 걸까.
“아…….”
그래. 기억난다.
너 개 된 날.
마음속으로 다시 그분께 미안함을 전하며 자신이 몰랐던 석한의 이야기가 우스워 빙긋 웃었다.
“한 시간이었거든? 뭐가 엄청 오래야.”
알았어. 이 자식아.
“……그런데요?”
“네? 뭐라고요?”
“아무 여자?”
흡.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아무 여자?”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셔?”
“아…….”
“그냥. 걱정되잖아.”
“이게 진짜.”
“알았어. 알았다고!”
그냥 내가 아무나 할게.
그건 그냥 우리끼리만 알자.
어깨를 두른 팔이 가득 몸을 당겼다.
“의외다.”
“……뭐가?”
“뭐가 또.”
“좋겠네.”
“좋아 죽지.”
“왜? 할 말 있어?”
“응.”
“저기 지안아…….”
“응.”
“…….”
“그래. 가자.”
“……뭐?”
“응.”
“진짜로?”
“어. 그렇다고.”
“싫다고 할 줄 알았거든.”
“뭐가?”
“와! 여기 꿈 아니지?”
“그렇게 좋아?”
실컷 빙빙 돌더니 뭘 더 하려고.
“아니. 유지안이라서.”
“그래. 그래. 믿는다. 믿어. 그런데 좀 내려 줄래?”
□ ◆ □ 이아
‘이 자식이 진짜.’
“안녕하세요. 유지안입니다.”
“반가워요. 한주아예요.”
은근히 긴장이 밀려오는지 입술을 자꾸만 지분거리는 지안을 흘깃 바라본 석한이 부드럽게 지안의 손을
잡았다.
제발. 그런 말은 둘이 있을 때 하자.
괜한 긴장감이 몰려왔다.
“…….”
“어머니!”
“……네?”
“그래서 덕분에 사업하면서 훌륭한 성과를 많이 내고 있어요. 그런데 좋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잔머리도 잘 돌아간다는 뜻이죠.”
“어머니…… 대체 무슨…….”
“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요?”
“지안 씨 때문이라고요?”
“…….”
“…….”
“네. 그런 거 아니에요.”
“알겠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주아였다.
“네.”
“아아.”
“뭐가요?”
“나 이 회사에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세상에.”
우연인 줄 알았더니.
“그럼 말을 했어야지.”
“어머님. 아니라고요.”
“네…… 네?”
“아아…… 머, 멋지시다.”
“그런가? 늘 저런 모습이셔서.”
“긴장했었어?”
“석한아.”
“응. 왜?”
“어. 맞아.”
그건 또 어딜 보고?
“그런 거야?”
“응.”
지안이 신기한 상황을 접한 듯 잠시 멍하게 앉아 있다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석한과 눈이 마주쳤다.
“유지안.”
“……응?”
그녀가 피식 웃었다.
“…….”
말이라도 좋다.
□ ◆ □
석한의 말로는 본인의 지원이라고 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저 덤덤히 반응했다.
늘 시간이 맞으면 함께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둘만의 공간에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뜨겁게 몸을
섞으며 서로의 숨결을 나누었다.
띠띠띠.
몸을 뒤척이며 눈을 꼭 다시 감았다.
“제대로 들었어.”
“벌써…… 온 거야?”
“응. 보고 싶어서.”
깊게 입술이 맞물렸다.
2 주 만의 만남이었다.
“아니. 다시 가 봐야 해.”
“……뭐? 지금 일본에서…….”
“응. 맞아. 보고 싶어서 온 거야. 하아……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제발. 응? 지안아.”
“아니 왜, 흣…….”
“나 지금 네가 너무 간절해.”
“하아…… 너무 보고 싶었어.”
“흐응…….”
“흐으읏…… 천천히…….”
“하앗…… 아, 잠깐…….”
“지금…… 나만 급한 게 아닌 거 같은데…….”
속옷을 흥건하게 적시고 남을 정도로 흘러나온 액체가 손가락에 휘감겨 질척이는 소리가 번졌다.
“……나도.”
“뭐래…… 흐읏…….”
“행복하다…….”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
“…….”
“사랑한다. 유지안.”
사랑이 맞을까? 의심하며 서로를 끌어안았지만, 이제는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품었다.
용기 내 시작된 첫날 밤.
맑은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나도.”
“…….”
“나도…… 너무 행복해.”
“언제 가야 해?”
“알아.”
“알고 있었어?”
“나도 그랬으니까.”
“출장은 언제 끝나?”
“이번 출장 가서 깨달았어.”
“뭘?”
“불안? 뭐가?”
그렇게 뭐가 있었니?
“와. 너 되게.”
“……응?”
“누가 보면 2 년은 출장 갔다 온 줄 알겠다.”
“못 살아…….”
“아! 맞다.”
“응? 뭐가?”
“뭔데?”
“6 월 16 일에 시간 있어?”
“왜? 어디 여행 가게?”
“여행 가고 싶어?”
“에엥? 여행 아니야?”
“와! 진짜?”
“난 이게 힐링이야.”
“아무튼, 그날 시간 비워 둬.”
□ ◆ □
“외로웠겠어. 유 대리.”
지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 보고 싶은데 아쉽다.
나중에 나 혼자 봐야지.
똑똑.
“6 월? 3 개월 뒤인데요?”
“어? 주말이네?”
그의 말이 끝나자 직원들이 탁상 달력을 넘기며 수군거렸다.
“회사 행사인가?”
회사 행사라면 제발 넣어 둬.
“팀장님. 누구 결혼식인가요?”
“제 결혼식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뚜벅뚜벅.
결심한 마음이 담긴 듯 바닥을 강하게 때리는 석한의 구두 소리에 맞추어 심장이 쿵쿵 뛰었다.
손을 뻗어 그가 건넨 결재판을 받았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위로 조심스럽게 반지를 끼워 넣은 석한이 부드럽게 손가락 사이로 손가락
하나하나를 밀어 넣어 꼭 잡았다.
여전히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석한을 가만히 바라보다 지안도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휘파람을 불며 공중으로 내던진 서류들이 펄럭이며 떨어지는 모습에 지안이 맑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 ◆ □
6 월 16 일.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 여행지인 프라하에 도착한 지안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안 피곤해?”
“비행기 오래 탔는데도?”
“어?”
“저거 그거다.”
“응? 뭐?”
“소원 비는 동상.”
“아…….”
“우리 저거 하러 가자!”
신기한 듯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며 살피는 지안을 바라보다 석한이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소원을 누가 말해.”
“와. 서운하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어.”
금세 지안이 눈을 떴다.
“다 빌었어?”
“응. 가자.”
“근데 소원 뭐 빌었어?”
다시 집요하게 물어 오는 석한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나도. 아주 좋은 거 빌었어.”
“지안아, 너는 안 궁금해?”
단호한 그녀의 대답에 결국 석한이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 完 - 윤이아 직작 공금 갠소 교불